o diabo vai trabalhar hoje 24

로크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근데, 이렇게 느긋하게 이곳에 있어도 되는 거야? 개굴개굴.”
주위를 살피며, 걱정을 드러냈다.
“왜?”
“비둘기가 덤벼오면 곤란하잖아. 개굴개굴.”
로크의 말대로 비전투 계열이라고는 하지만, 싸우게 되면 이쪽도 손해가 막심할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 그 비둘기는 이곳에 못 올 거거든.”
정민우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라파엘이 오지 못할 거라는 강한 확신을 드러내 보였다.
“무슨 수라도 부린 거야? 개굴개굴.”
로크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타락한 비둘기를 그쪽으로 보냈거든.”
정민우는 못 오는 이유에 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타락한 비둘기를? 개굴개굴.”
“응, 전부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니 잠깐은 발이 묶여 있을 거야.”
“역시, 민우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개굴개굴.”
1품이라면, 1,000명 정도 되는 인원을 상대하는 데 몇 초도 걸리지 않겠지만.
‘라파엘은 치유 능력밖에 없으니 더 걸리겠지.’
비전투 계열이니, 5분 정도는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었다.
‘세뇌한 고등생물도 정상적으로 통과한 것을 확인했으니, 이만 돌아가 볼까?’
볼일도 마쳤고 슬슬 5분도 다 되어가니,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돌아가자.”
이후 정민우와 마교회 멤버들은 다음 작전을 진행하기 위해 신성 제국을 벗어났다.
* * *
검문과 검색을 진행하고 약 12시간 정도 흐른 뒤.
“드디어 끝났네요.”
예비 영웅들의 검사를 모두 끝마쳤다.
성녀는 개운한 표정을 지어 보이길 잠시.
“끝마친 건 좋은데… 남은 분들의 숫자가 너무 적네요.”
남은 인원을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곳에 남은 인원은 3,000명.
예상했던 인원보다 2,000명이나 적은 숫자였다.
“예비 영웅분들이 떠나지 않았다면 큰 저력이 되어주셨을 텐데….”
무리한 검문과 검색이 끝날 때 남은 인원은 8,000명.
하수인이 절반이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2,000명이라는 적은 숫자였지만.
6,000명의 예비 영웅들이 검사를 끝마치자마자 이곳을 미련 없이 떠나버렸다.
“후… 저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니 어쩔 수 없겠죠.”
미숙함으로 인해 생긴 상황이었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아.”
성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자책하던 그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저희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용사가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런가요?”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이렇게라도 검사하지 않았다면, 하수인들이 기습을 가해 피해가 생겼을 겁니다.”
“피해가 생겼다라….”
“또한, 2,000명의 하수인이 신성 제국에 들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검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고 볼 수 있죠.”
“그러게요. 그 인원을 안으로 들였을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찔하네요.”
일리 있는 설명. 아니, 정신 승리에 불과한 설명에 성녀는 설득당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니, 떠난 예비 영웅들을 보고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용사님 말씀대로, 하수인을 걸러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겠어요.”
“좋은 자세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른 뒤.
“신성 제국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계획대로 예비 영웅들을 데리고 신성 제국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영웅 선발을 위해 대성당으로 향하려는 찰나.
“…성녀님? 현재, 라파엘 님의 신탁이 내려오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선발 진행은 조금 늦춰질 것 같습니다.”
추기경이 다급한 얼굴로 다가와. 오늘 내로는 영웅 선발을 하기 힘들 것이라 알려왔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처음 일어난 일에 성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용사님, 같이 대성당에 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예비 영웅의 인솔은 추기경에게 일임하고 성녀와 용사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대성당으로 향했다.
성녀와 용사가 완전히 사라진 뒤.
콰―――――――――앙!
도시 중앙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175화 희망 없는 싸움 (4)
폭발이 일어나기 전.
“일정에 차질이 생겨, 대성당으로 향하는 것 대신 숙소로 먼저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추기경은 숙소로 안내하기 위해 예비 영웅들을 데리고 도시 쪽으로 이동했다.
“주변에 둘러보시면 알다시피, 신성 제국은 상당히 평화로운 곳입니다.”
그리고 가이드 역할을 자처하며, 이곳저곳을 소개해주던 그때.
“푸히히힛! 푸핥핥랕끄흑!”
뒤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음?”
천박한 웃음소리에 추기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뒤로 돌리자.
“끼륵, 끼륵, 끼륵!”
예비 영웅 줄에 합류한 노인이 배를 부여잡으며, 폭소를 터뜨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왠지 모를 불길함을 직감한 추기경은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왜, 그러시죠?”
“푸히히힛!”
하지만,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배를 부여잡은 채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려 보일 뿐이었다.
“예비 영웅님…?”
추기경은 노인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보이자.
“영감, 미안하오. 이 검을 다시는 뽑지 않기로 했는데….”
노인은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복수를 위해선 그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소.”
이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더니.
“울어라, 저승 참마도!”
서―걱!
허리춤에 꽂혀 있던 도검을 꺼내 보이며, 추기경이 어깨에 올린 손을 베어버렸다.
푸―확!
갑작스러운 기습.
“…어, 어?”
손목이 잘려 극심한 고통이 엄습해왔지만.
“대체… 왜?”
추기경은 고통을 참아내며 노인이 기습한 이유에 관해서 의문을 드러냈다.
“내가 자네를 공격한 이유에 대해서 듣고 싶나?”
노인의 물음에 추기경이 고개를 작게 끄덕여 보이자.
“우리가 핍박받았던 고통을 돌려주기 위함일세.”
기습을 가한 이유에 관해서 설명해줬다.
“설마…?”
추기경이 설마 하는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보자.
“맞네, 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갖 핍박을 받아온 무교자라네.”
노인이 자신을 생존자라고 말해왔다.
“분명, 철저하게 진행했을 텐데…?”
검문과 검색을 진행했던 이유가 하수인을 걸러내기 위함도 있지만, 앙심을 품은 무교인 자들을 거르기 위함도 있었다.
한데, 무교자가 검문과 검색을 통과하고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통과한 거지? 그것은 완벽했을 텐데?”
“말이란 이야기하는 것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법이지.”
추기경의 의문에 노인이 코웃음을 쳐 보이며 말했다.
즉, 완벽하리라 생각했던 검문과 검색에 허점이 존재했다는 뜻이렷다.
“모험에 가까운 도전이기에 확률이 낮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통과하게 될지 나도 예상하지 못했네.”
“…….”
추기경이 낭패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자.
“너희도 곧 우리가 겪은 고통을 느끼게 될 거야.”
노인은 이 상황이 즐거운 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무의미한 복수는 그만두도록 해라.”
추기경은 사태를 막기 위해 노인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아니, 내게는 의미가 있는 복수다.”
노인의 뜻은 완고하다 못해 굳건했기에 추기경의 설득이 통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죽은 가족들은 돌아오지 않으니, 힘 빼지 말고 순순히 투항이나 해라. 지금이라도 투항한다면 죄를 묻지 않도록 하지.”
이내,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협박을 가해봤지만.
“죽은 가족들이 돌아오지는 못하겠지… 다만, 너희를 길동무로 데려갈 수는 있겠지!”
역린을 건드렸는지, 노인이 흉포한 기세를 터뜨려왔다.
“저 노인을 죽이세요!”
추기경은 성기사에게 노인을 죽일 것을 명하는 순간.
“그렇게는 안 되지.”
노인이 자세를 고쳐 잡더니.
“울부짖어라, 저승 참마도!”
서―――――걱!
도검을 휘둘러 다가오려는 성기사들의 목을 베어버렸다.
“경지가 높은 자입니다. 방심하지 마세요!”
이어지는 추기경의 외침에 근처에 자리하고 있던 100명의 성기사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건장한 청년들이 노인을 상대로 너무 진심으로 덤벼드는구먼.”
노인은 성기사들을 보며, 혀를 차더니.
“젊은이들도 이제 같이 싸우는 게 어떤가?”
예비 영웅들을 보며, 같이 싸울 것을 청했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절반에 이르는 예비 영웅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더니.
“다시는 무교라는 이유로 핍박하지 말아라!”
“대가를 치러라!”
“우린 의지에 따라 종교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
싸움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뭐?”
상당한 숫자에 추기경이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절반의 인원이 무교자들이었다고…?”
3분의 1이 무교자들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에 추기경은 후두부를 강하게 후려 맞은 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 사실을 빨리 용사님에게 알려야 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추기경은 노인의 눈을 피해 대성당으로 이동하려고 했으나.
“그렇게는 안 되지.”
노인에게 발각되며, 길이 가로막혀버리고 말았다.
“…에잇!”
추기경은 노인을 피해 빠르게 내달렸지만.
“흐느껴라, 저승 참마도!”
서―걱!
경지가 낮았던 탓에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노인의 도검에 의해 목이 잘려버리며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데구루루―
노인은 바닥을 뒹구는 추기경의 머리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비둘기의 개로 살아왔던 자신의 잘못을 탓하게.”
우직―
머리를 밟아 터뜨리며 등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무교인 자들에게 시선을 돌리니.
“벌써, 끝낼 줄이야 빠르구먼.”
정리가 끝났는지, 무교자 무리가 가만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면, 도시 중앙으로 이동하도록 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노인이 무교자들을 이끌고 도시 중앙에 있는 연못에 도착하자.
“이제 꿈에 그리던 복수를 실현할 수 있겠구먼. 바로 시작하도록 할까?”
계획했던 마지막 작전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들, 저승길에서 만나도록 하자고.”
부――웅.
노인의 몸이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 오르자.
부――웅.
잇따라 무교자 999명의 몸도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선택한 작전은 바로. 자폭을 통해 도시를 망가뜨리는 것이었다.
경지가 상당하니, 자폭으로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을 터였다.
“먼저 가겠네!!!”
노인의 몸이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순간.
콰―――――――――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몸이 터져버렸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뒤이어 다른 무교자들의 몸도 폭발하자.
콰――――――――――――――――――앙!
도시 중앙에 거대한 버섯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 * *
자폭 소동의 소식을 접한 정민우는.
‘무교자들이 신성 제국 내에서 자폭했다고?’
가만있어도 순탄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기뻐하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상황이 좋은 쪽으로 풀리게 됐네.’
세뇌한 고등생물을 신성 제국 내로 침투시킨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이기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추가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돕는구나.’
이건, ‘그로아’ 행성을 침략하라는 우주의 뜻이 틀림없었다.
‘내부에 큰 타격도 입었겠다. 이 틈을 이용해서 몰아쳐 볼까?’
자폭으로 인해 신성 제국을 보호하던 보호막이 사라진 상황이기에 추가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신성 제국을 공격하면 다른 곳에 지원을 가지 못할 테니, 수장들이 마음 편히 침략할 수 있겠지.’
경계할 것이 사라진다면, 공격적인 행동이 가능하기에 침략하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것이었다.
‘이때 승기를 잡아내는 것도 가능하겠어.’
잘만하다면, 승기를 잡아내 입맛대로 휘두를 수 있으리라.
‘그러면, 원래 진행하려 했던 예비 영웅들의 반란은 나중에 사용하기로 하고. 지금은 자살특공대를 투입하는 것으로 해야겠어.’
용사가 신성 제국 내에 상주하고 있는 점이 조금 걸렸지만.
‘보호막이 없으니, 용사가 있다고 해도 큰 피해를 줄 수 있겠지.’
마왕을 격퇴한 엄청난 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신성 제국을 혼자서 보호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이렇게 진행한다고 했을 때, 신성 제국이 피해를 수복하는데 50년 정도 걸리려나?’
자살특공대가 큰 피해를 주는 데 성공하면 100년까지도 걸릴 가능성이 있었다.
‘신성 제국이 수복이 끝났을 때면 10분의 9까지 침략이 끝나 있겠네.’
10분 9까지 침략하면, 제약도 꽤 풀릴 테니 칠마장 멤버들이 용사와 싸우게 되더라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터였다.
‘계획대로 된다면 200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그로아 행성을 침략을 마칠 수 있겠네.’
물론, 라파엘의 대응에 따라 침략하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시간이 어찌 됐든, 1,000년 안에만 침략하면 그만이니까.’
확실한 것은 ‘그로아’ 행성은 자신의 손에 떨어지게 될 것이었다.
‘좋아, 그러면 바로 진행해볼까?’
이후 정민우는 새롭게 세운 작전을 실행하기로 하며, 자살특공대에게 ‘심안’을 통해 전언을 날렸다.
* * *
한편, 용사는.
“…이게 무슨 일이지?”
주변에 펼쳐지는 풍경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그도 그럴 것이 대성당을 제외한 주변 건물들이 시꺼먼 잿빛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멀리 있는 곳은 여파가 닿지 않았는지 멀쩡해 보였지만.
“아니, 대체 대성당을 다녀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도시 하나가 날아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피해였기에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콰―앙!
용사는 바닥을 걷어차 보이며, 화풀이를 해봤지만.
“젠장…!”
그런다고 참담한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하아,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분명, 대성당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가정조차 하지 않은 최악의 상황이 찾아와 있었다.
“무엇을 위해 나는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거지?”
여태까지 노력해온 것이 모조리 부정당해버린 것만 같은 기분.
5년 전에 되잡았던 정신이 붕괴할 것만 같았다.
심연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만 같은 암담함.
“정말, 침략자 상대로 대응을 할 수는 있는 걸까…?”
용사는 깊은 답답함을 느끼며, 허탈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던 그때.
― …이게 무슨 일이죠?
머릿속에 청아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청아한 목소리와 달리 그곳엔 분노가 서려 있었다.
“…….”
뭐 하다가 이제 나타난 것이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라파엘 님의 종이 인사 올립니다.”
용사는 그 말을 꾹꾹 참아내며, 라파엘에게 인사를 올렸다.
―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고 있잖아요!
하지만, 라파엘은 인사를 받아줄 생각이 없는지 대뜸 언성을 높여왔다.
“…저도 조금 전에 대성당에서 나온 것이라 아직 상황을 파악을 못 한 상태입니다.”
용사, 또한 아는 것이 없기에 모른다고 대답하자.
― 덜떨어진 것도 정도껏 해야지, 용사가 상황 파악 하나 못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라파엘은 성을 내며, 용사의 능력에 대해 힐난해왔다.
“하아….”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온 용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야, 이게 내 탓이냐?”
일그러진 얼굴로 라파엘에게 따지고 들었다.
176화 희망 없는 싸움 (5)
‘…지, 지금 이 녀석 나한테 대든 거 맞지?’
처음으로 겪어보는 하극상에 라파엘이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일개 고등생물 따위가 나한테 대들어?’
그리고 그 감정은 당혹감을 이어 이내 분노로 변해버렸다.
‘이딴 녀석을 용사라고 발탁했다니….’
재능이 뛰어난 다른 고등생물을 포기하고 선택해줬더니, 돌아오는 게 하극상이라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녀석을 용사로 발탁하는 거였는데.’
그 당시, 다른 고등생물들은 재능이 뛰어났지만 불손한 마음이 커서 지금의 용사를 선택한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판단을 잘못한 것 같았다.
‘불손한 것을 눈감고 넘어갔으면 이딴 일은 겪지도 않았을 텐데.’
대개 권력욕을 품고 있었으니,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잘 보이려고 애를 썼을 것이었다.
‘그냥, 신성력을 전부 거둬버려?’
순간, 용사의 신성력을 거둬갈까 하는 강력한 충동이 들었지만.
‘아니야… 그럴 수는 없지.’
라파엘은 고개를 내저으며,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
‘오명을 남길 수는 없어.’
용사의 신성력을 거둬간다는 것은 행성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1품 박쥐에게 행성을 침략당했다는 소문이라도 퍼져버리면, 평생 천사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말 것이었다.
‘침략을 막아낸 다음 그때 거둬가도 늦지 않아.’
꼬리표를 달고 살 수 없는 노릇이기에 라파엘은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이번만 수그려 들어가기로 했다.
― 조, 조금 전 타락한 천사들이 공격해오는 바람에 한껏 예민해져 있었나 봐요.
라파엘의 사과에 용사가 일그러졌던 표정을 펴 보이며 대답했다.
“아무리 예민했다고 해도, 조금 전의 말씀은 선을 넘으셨습니다.”
고등생물 따위에게 넘을 선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 그,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지금은 용사의 기분을 맞춰주기로 했다.
괜히, 여기서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가 용사가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면 잃을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렇다면, 저보고 덜떨어졌다고 폭언을 날린 것에 대해 사과해주시죠.”
― …….
하지만, 이어지는 용사의 요구에 라파엘은 생각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 생물에게 사과? 이게 맞는 거야?’
꼬리표를 달고 살기 싫어 기분을 맞춰주고는 있다지만.
‘내가? 저 녀석한테 사과를?’
고등 생물에게 사과하는 것은 평생 꼬리표를 달고 사는 것만큼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냥, 죽여버려?’
직접 힘을 행사할 수는 없지만, 신성력을 거두고 다른 고등 생물에게 신탁을 내리면 죽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시죠?”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는지 용사가 불손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설마, 사과하기 싫으신 겁니까?”
팔짱을 껴 보이며, 대답을 재촉해왔다.
“조금 전에 하셨던 말씀. 전부 거짓된 것이었군요?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이내, 사과하지 않으면 관계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해왔다.
‘하, 어쩔 수 없나….’
라파엘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 폭언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예민하다는 이유로 당신에게 화풀이했었나 봐요.
결국, 용사에게 사과를 건넸다.
‘…이 사실은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테니까.’
행성을 침략당한 것은 정보로 드러나지만, 사과는 다른 이들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었다.
즉, 자신이 이 수모를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었다.
‘젠장, 이 수모는 박쥐를 쫓아내고 바로 갚아주마!’
누군가 이 모습을 봤다면 수치스러워하는 것에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천사들한테도 사과하지 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사과한 게 고등생물 일 줄이야. 조금 충격적이네.’
코끼리가 개미에게 사과하는 격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었다.
“그 사과 받아들이도록 하죠. 앞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 사과를 받아줘서 고마워요.
얼추 상황이 일단락되자.
“그러면,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용사는 현 사태를 파악하겠다고 말해왔다.
― 부탁드릴게요.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후 용사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던 그때.
“무교인 자들이 자폭했다고요…?”
폭발에 휘말렸던 생존자에게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을 수가 있었다.
‘예비 영웅의 자격으로 신성 제국 내로 들어왔었다니….’
침략자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자의 소행이라는 사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니, 대체 어떻게 통과한 거야?’
철통 보안으로 이루어진 검문과 검색을 통과했다는 것에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나 하는 허탈감이 드는 한편.
‘하… 업보가 이리 돌아오는구나.’
라파엘이 벌인 짓으로 신성 제국이 고통받아야 한다는 것에 짜증이 솟구쳤다.
― 쯧, 벌레들이 끝까지 발악이네요.
그리고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라파엘이 말을 덧붙여 오면서 짜증은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사과까지 받은 마당에 이걸로 화를 낼 수는 없지….’
용사는 흥분되는 감정을 추스르고 있던 순간.
― 이렇게 된 거 저도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겠어요.
라파엘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어왔다.
“…초강수를 말입니까?”
― 네, 침략자는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벌레들이 개입하면 골치 아프니 저도 그것에 맞게 대처를 해야겠죠.
“어떤 대처를 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물론이죠. 제가 할 대처는 바로 신성 제국 국민 전부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신성 제국의 국민 전원을 영웅화.
이렇게 된다면, 예비 영웅들을 데려온 의미가 사라졌지만, 전력이 말도 안 되게 느는 것이니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 물론, 그릇의 차이가 존재하니 내는 힘의 총량은 다르겠지만 큰 전력이 되어주겠죠.
“옳으신 말씀입니다.”
― 전력이 늘어남에 따라 피해 수복을 더불어 침략자와 벌레까지 소탕이 가능할 겁니다.
무교자들을 벌레라고 칭하는 것이 마음이 들지는 않았지만.
“너무나도 좋은 소식이군요.”
굳이 지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근데, 왜 진작에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던 거지?’
기뻐하길 잠시, 용사는 잠시 의문이 들었다.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진작에 국민을 영웅으로 만들어 피해를 감소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말이다.
― 전 국민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무리가 가는 선택이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의문을 드러낸 것을 눈치챘는지 라파엘이 친절하게 설명해왔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용사는 그러한 이유라면 고민될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진짜 그런 이유로 안 했겠니?’
하지만, 이것은 변명에 불과할 뿐 실상은 다른 이유로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라파엘이 신성력이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재능과 그릇이 받쳐주지 못하는 자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되지.’
단명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끽해봐야 10년 살고 죽게 되겠지.’
단기간 엄청난 전력을 손에 넣지만, 그 수명이 짧아 꺼리는 방법이었다.
괜히, 선발을 통해 용사와 영웅을 발탁하는 게 아니었다.
또한, 재능과 그릇이 작은 자들이 신성력을 대가 없이 다루기 위해서 성기사와 사제들처럼 정규 과정을 걸쳐 단련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10년 안에 막지 못한다면 인력난을 겪게 되겠지만, 그때는 다른 국가의 고등생물을 영웅으로 만들면 그만이니까.’
어차피, 침략을 막아내고 점령이 끝나면 이 행성을 버릴 것이기에 고등생물이 얼마나 죽어 나가든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존경을 모르는 용사가 펄쩍 뛰며 난리를 치겠지만.
‘대충 둘러대면 알아서 믿겠지.’
침략자로 인해 죽었다고 하면 의심 없이 믿을 것이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 그러면, 한시가 급하니 지금 당장 진행하도록 할게요.
라파엘은 신성력을 나눠줄 범위를 정한 뒤.
― 인류를 위해 싸워주세요!
신성 제국의 고등 생물에게 신탁을 내리는 동시에 신성력을 나눠주었다.
화――――――아.
이어서 신성 제국 전체에 성스러운 빛에 휩싸이더니.
번쩍―
고등생물의 몸속으로 신성력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갓 태어난 아이부터 시작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까지.
국민 전체가 신성력을 지니게 됐기 때문인지 신성 제국 전체에서 성스러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아….”
용사는 몽롱한 눈빛으로 기적적인 광경을 바라보다가.
“아름답군요.”
얕게 몸을 떨어 보이며, 나지막한 감탄을 터뜨렸다.
― 후훗, 괜히 기적을 행사하는 힘이겠어요?
“신성 제국 국민에게 축복을 내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국민의 명을 줄이는 독약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용사는 라파엘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 여러분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은 감수할 수 있죠.
“신성 제국의 국민과 함께 침략자를 꼭 몰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하극상을 벌였냐는 듯, 용사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라파엘에게 의지를 다져 보이던 찰나.
콰―――――앙!
성문 쪽에서 폭발음이 일어났다.
― 이런, 침략자가 쳐들어왔나 보군요.
라파엘은 생각보다 빠른 습격에 달갑지 않은 목소리를 냈고.
“…피해를 수복할 시간을 주지 않는군요.”
용사는 지친 얼굴로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국민이 영웅이 되어 지킬 자도 사라졌겠다. 이참에 제대로 찍어 누를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그리고 전과 달리 싸울 의욕을 내비치며, 검집에서 성검을 꺼내 들었다.
― 좋은 생각이에요.
“다녀오겠습니다.”
― 그 힘으로 악을 처단해주세요.
“예!”
그렇게 용사가 성문 쪽으로 내달리자.
‘이제 박쥐에게 휘둘리는 일은 없겠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라파엘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진작에 이런 방식을 취할걸.’
전에는 박쥐를 물리치고 행성을 점령한 뒤 운영해 나가려고 했기에 제약된 것이 많았던 것이지, 점령하자마자 행성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꺼릴 것이 없었다.
즉, 이제는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풉, 지금쯤 엄청 당황하고 있겠지?’
당황하고 있을 정민우의 얼굴을 떠올리니 절로 통쾌한 감정이 들었다.
누가 국민 전체를 영웅으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라파엘은 정민우가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도 이번 건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정민우가 당황할 일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라파엘의 행동에 감사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라파엘이 선발 과정을 거치지 않은 덕분에 세뇌당한 고등생물들이 영웅이 됐기 때문이었다.
즉, 일회용으로 사용하고 버려졌을 말이 앞으로 두고두고 사용할 훌륭한 말로 변모하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자기 세상 같았지? 두고 봐. 내 행성을 건드린 것을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
아쉽게도 이 사실을 모르는 라파엘은 그저 의지를 다져 보일 뿐이었다.
177화 칠마장 대 용사 (1)
성문 쪽으로 내달리던 그때.
‘벌써, 들어왔나 보군.’
적들이 신성 제국 내에서 활개 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다 부숴버려!”
“없애버려라!”
“비둘기의 개들을 전부 죽여!”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적들은 건물을 부수기 여념이 없었다.
‘바로 정리에 들어간다.’
꽈―악.
용사는 성검의 손잡이를 움켜쥔 뒤.
‘죽어라.’
성검을 일직선으로 허공에 내려긋자.
풀썩.
건물을 부수던 적들이 맥없이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저벅, 저벅, 저벅.
가까이 다가가 상태를 봐보니.
‘제대로 숨이 끊어졌네.’
적들의 숨이 멎은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상처가 없는 깨끗한 상태.
상처 없이 적이 죽은 것에 의아함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영혼 베기가 통한다는 것은, 그리 경지가 높지 않다는 거군.’
영혼을 베어내 적을 죽이는 기술이기에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걸로 적을 정리하면 되겠어.’
영혼 베기는 일정 경지 이하인 적들에게만 통한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힘을 들이지 않고 다수의 적을 죽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빠르게 정리해볼까?’
용사는 피해가 커지기 전에 적들을 전부 정리하기로 했다.
파―앗.
주변을 내달리며, 적을 찾아 나서던 그때.
“이놈!!!”
후――웅!
매복해있던 한 사내가 거대한 도끼를 휘둘러왔다.
휙―
숨어있던 사실을 알고 있던 용사는 도끼를 가볍게 피해 보이며, 검을 일직선으로 내려그었지만.
“뭐야, 용사라면서 검도 제대로 못 휘두르나?”
경지가 높은 자인지 적의 영혼을 베는 것을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다 거품이었나 보네? 이것도 피해 봐라!”
적은 코웃음을 쳐 보이더니, 도끼를 다시 한번 휘둘러왔다.
후――웅!
여태까지 상대해온 적 중 마왕 다음으로 가장 빠른 공격.
‘이 실력으로 자신감을 드러낸 건가? 웃기지도 않는군.’
그러나, 마왕과의 격차가 너무 많이 났기에 용사가 보기에는 적의 공격은 조금 빠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휙―
용사는 고개를 젖히는 것으로 공격을 피해낸 뒤.
“죽어라.”
푸―욱
적의 심장에 성검을 찔러넣자.
“…컥!”
쿵―!
이렇다 할 반격 한 번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며 절명해버렸다.
“시시하네.”
큰소리쳤던 것치고는 시시한 결말.
“나불거리길래, 숨겨둔 실력이 있나 했는데 그저 입만 산 녀석이었군.”
용사는 다른 적을 찾기 위해 등을 돌리던 찰나.
쐐―――액!
뒤에서 날카로운 날붙이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휙―
용사는 허리를 숙여 보이며, 공격을 침착하게 피해낸 뒤.
스윽―
고개를 돌려 기습한 상대를 확인했다.
“…넌?”
새로운 상대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조금 전 심장이 꿰뚫려 죽었던 적이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넌 분명 죽었을 텐데? 어떻게 되살아난 거지?”
용사는 의아함을 느끼며, 적에게 죽지 않는 이유를 묻자.
“궁금하면 네가 빨아 재끼는 비둘기한테 가서 물어봐라.”
적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찌릿―
대답 없이 적을 노려보자.
“왜, 전지전능하신 비둘기가 그거 하나 못 알아내나 봐?”
적은 어깨를 으쓱이며, 한술 더 떠 조롱을 해왔다.
“네 이름은 뭐지…?”
이유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았기에 용사는 궁금증을 접는 대신 적의 이름을 물어봤다.
“‘알란’이다.”
다행히도 이름을 알려줄 생각이었는지, 순순히 대답해줬다.
“좋다, 알란. 그럼, 이만 죽어라.”
조금 특이한 적이었기에 이름을 물어봤을 뿐, 별다른 뜻은 없었다.
푸―욱.
이번엔 심장 대신 머리를 꿰뚫어버리자.
추―욱.
알란의 몸이 축 늘어져 버렸다.
“…해치웠나?”
용사는 숨이 멎은 것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검을 뽑자.
퍼――억!
알란은 언제 죽었냐는 듯 고개를 들어 보이더니, 복부를 걷어차 버렸다.
“음?”
두 번씩이나 살아날지 몰랐기에 용사는 기습을 허용해주고 말았지만.
우―득.
겨우 발차기로 타격을 입을 정도로 나약하지 않기에 용사는 태연한 얼굴로 알란의 다리를 부러뜨려버렸다.
“크흑!”
알란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나자.
“검으로는 죽지 않는 건가?”
용사는 성검으로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먹으로 알란의 몸을 가격했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단, 1초 만에 이루어진 수백 번의 타격.
머리, 어깨, 팔, 몸통, 다리 순으로 전체적으로 공격을 가하자.
“크흑!?”
관절이 기괴한 방향으로 이리저리 꺾이기 시작했다.
흡사, 망가진 인형이 춤을 추는 것만 같은 괴이함.
끝내, 목이 뒤로 꺾였을 때.
우득―
알란은 다시 한 번 절명을 맞이하게 됐다.
“후… 역시, 용사는 다르다 이건가?”
하지만, 불사신이라도 되는지 알란은 태연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보였다.
“그냥, 죽지 않는 것이었군. 긴 전투가 되겠어….”
그 모습에 용사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검집에서 성검을 다시 꺼내 들었다.
* * *
용사를 상대하고 있던 알란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생각 이상의 힘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괜히, 인류를 대표하는 강자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이거, 시간을 끌 수나 있을까?’
10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500번이 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이것도 경계해서 그런 것이지 전력을 발휘한다면 죽는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터였다.
‘동료의 죽음을 이런 식으로 날려버릴 수는 없어…!’
제 죽음을 동료의 죽음으로 칭하는 것이 의아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양도받은 목숨을 허투루 날릴 수는 없어!’
흑마법을 통해 동료의 생명을 양도받은 것이었기에 틀린 표현은 아니었다.
양도받은 목숨은 이만 개.
같은 수용소를 사용했던 죄수들의 숫자와도 같았다.
‘다른 수용소에 있던 죄수들이 침략하고 있으니,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끄는 게 관건이다!’
알란은 다른 죄수들이 신성 제국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입힐 수 있게 죽는 속도를 늦추고자 발악을 해봤으나.
서―걱.
노력이 무색하게도 용사의 일 합으로 생명의 불씨가 너무나도 쉽게 꺼져버렸다.
‘어떻게 해야 시간을 끌 수 있을까?’
알란은 죽음을 맞이하는 와중에 끊임없이 고민했다.
‘역시, 그 방법을 써야 하는 건가….’
그리고 알란은 비장의 무기로 아껴두었던 그것을 사용하기로 했다.
‘양도받은 힘을 합쳐서 대항한다….’
알란은 양도받은 목숨을 결집해 자신의 심장으로 쑤셔 넣자.
두――근!
심장이 요란스럽게 뛰기 시작하더니.
“그래… 이 힘이야!!!”
마인이 됐을 때보다 더한 쾌락과 전능감이 몸을 휩쓸었다.
몸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힘에 용사와 대적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이제는 죽으면 끝이니, 방심해서는 안 된다.’
목숨을 대가로 강력한 힘을 취한 것이기에 두 번 다시는 살아날 수가 없었다.
“이 힘은…?”
용사도 강력한 힘을 느꼈는지,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어졌다.
“무슨, 요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죽어라!”
그리고 허튼 수를 부리기 전에 죽이겠다는 듯, 다시 빼든 검으로 전보다 빠르게 검을 내질러왔다.
전이었다면, 공격한 줄도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당했겠지만.
‘보인다…!’
이제는 용사의 공격이 시야에 들어왔다.
‘해볼 만하다!’
휙―
알란은 몸을 왼쪽으로 던져 용사의 공격을 피한 뒤.
후――웅.
쥐고 있던 도끼를 용사를 향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고오오오오오―
주변의 잔해들을 날릴 정도의 엄청난 풍압.
쐐―――액!
도끼가 용사의 지척에 다다랐을 때.
“무슨!?”
용사가 처음으로 늦은 반응을 보이며 성검을 들여 보였다.
채―――앵!
성검과 도끼가 충돌한 뒤.
우당탕―
중심이 불안정했던 용사가 뒤로 넘어지며, 꼴사납게 바닥을 뒹굴었다.
“으하하, 용사도 별수 없구나!”
알란이 승기를 잡기 위해 넘어진 용사를 향해 달려들며, 도끼를 휘두르자.
푸――확!
가슴을 두르고 있던 갑옷이 부서지며, 그곳에 피가 솟구쳐올랐다.
‘이길 수 있다!’
알란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며, 재차 도끼를 휘두르려는 그때.
“주변에 피해가 갈까 봐. 힘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겠네.”
용사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파―앗.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어디로 간 거지?”
알란은 용사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순간.
“정의의 검으로 너를 심판할지니.”
위에서 용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
시선을 위로 올리자.
구구구구구구구―
구름이 갈라지며, 그곳에 신성력을 두른 거대한 검이 튀어나왔다.
“…어?”
알란은 저것을 맞는다면 즉사한다는 사실을 직감하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몸이?”
신성력이 몸을 짓누르며, 도망가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죽음으로 네놈의 죄를 참회해라!”
이어서 용사의 말과 함께.
고오오오오오오오오―
신성력을 두른 거대한 검이 알란을 향해 떨어졌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알란은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용사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 쓴웃음을 지어 보이던 찰나.
콰――――――――――앙!
거대한 검과 충돌하는 동시에.
삐―――――이.
강력한 빛이 터져 나오며, 세상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 * *
그로부터 100년 뒤.
‘그로아’ 행성은 정민우의 예상대로 무리 없이 침략이 진행됐다.
예상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10분의 9까지 침략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신성 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를 침략했다는 것 정도였다.
신성 제국 국민을 영웅으로 만드는 바람에, 반발이 거셌지만.
‘그래봤자 결과는 바뀌지 않지.’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침략을 당할 뿐이었다.
‘이제는 저곳만 침략하면 끝이군.’
현재, 전 인류는 신성 제국에 결집한 상태로 대항에 나서고 있었다.
‘실력자들만 살아남은 만큼, 침략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끝내 침략당하고 말겠지.’
힘의 제약이 어느 정도 풀린 수장들을 동원한다면 아무리 강자라고 해도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었다.
용사가 투입되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세뇌한 영웅을 이용하면 용사도 별수 없이 당하게 되겠지.’
기습을 꾀해, 전력을 갉아먹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 고지가 진짜 얼마 남지 않았어.’
침략을 끝내고 권좌의 자리에 도전할 생각을 하니, 벌써 기대가 되었다.
빨리, 칠마장 멤버들을 출격시키고 싶다고 생각하던 그때.
드르륵―
“민우 님?”
비너스가 천막 안으로 들어오더니.
“전 병력이 침략할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인 상태예요.”
마인들이 침략할 준비를 끝마쳤다고 보고를 올려왔다.
“알겠어.”
비너스를 따라 마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이동하니.
‘언제봐도 장관이란 말이지?’
마인들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자리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다들, 마지막 침략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들떠 보이네.’
정민우는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길 잠시.
“제군들, 이제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단상 위로 올라가며, 출정식을 연설하기 시작했다.
178화 칠마장 대 용사 (2)
한편, 연설을 듣고 있던 엘비스는.
‘이제 신성 제국만 침략하면 행성 정복이 끝난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벅찬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벅찬 감정을 느끼길 잠시, 엘비스는 어떻게 해야 악마님에게 공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고민에 잠겼다.
‘지금까지 세운 성과를 보면 다른 멤버들과 비슷하단 말이지.’
다들 각자 맡은 구역을 충실히 침략했기에 성과는 서로 비등비등한 상태였다.
‘역시, 그 방법 말고는 없는 건가…?’
고민한 결과, 엘비스는 두드러지는 성과를 낼 방법을 하나 떠올렸다.
‘용사를 죽인다.’
‘그로아’ 행성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용사를 죽이는 것이었다.
‘용사만 죽일 수 있다면, 악마님에게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을 거야.’
이번 보상은 전보다 좋다고 말씀하셨으니, 보상을 받기만 한다면 칠마장 멤버들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게 될 터였다.
‘쉽지 않은 상대이니, 처음부터 전력으로 가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엘비스가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다들 쟁쟁하니 신성 제국을 침략하는 거로는 성과를 인정받을 수 없겠어. 그렇다면 용사를 죽여서 성과를 인정받는 수밖에.’
세계수도 엘비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용사… 얼마나 강할지 기대되는군.’
고브 또한 다르지 않았다.
‘전력으로 붙을만한 상대를 찾은 것 같네.’
윌리엄은 용사를 상대로 호승심을 불태우고 있었고.
‘문헌에 따르면 용사는 드래곤마저 죽일 수 있다고 적혀져 있었지. 과연, 그게 사실일지 직접 확인해봐야겠어.’
‘용사의 피는 무슨 맛일까?’
‘용사를 언데드로 만들 수만 있다면 전력이 한층 더 강해지겠지.’
라일락, 블라디, 아이작도 용사를 죽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용사를 죽이려는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정민우에게 성과를 인정받겠다는 목표는 똑같았다.
각자의 각오를 다지며 생각에 잠겨 있자.
“이상으로 출정식을 마치도록 하겠다.”
어느새 정민우의 연설이 끝이나 있었다.
“다들, 신성 제국을 짓밟으러 진군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이어지는 명령에 칠마장 멤버들은 힘차게 대답해 보인 뒤.
척, 척, 척, 척, 척, 척, 척, 척, 척, 척, 척, 척, 척, 척, 척―
부하들을 이끌고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집어 삼켜버릴 것만 같은 검은 물결은 신성 제국을 향해 움직였다.
* * *
마인들이 신성 제국으로 진군하고 있을 당시.
‘하아, 이번 전쟁에 인류의 존속이 걸렸구나.’
용사는 곧 있을 전쟁에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100년 전까지만 해도 출발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내몰리게 된 거지?’
100년간 열심히 발버둥을 쳐봤지만, 진흙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릴수록 적군들에게 거센 공격을 받았다.
‘마왕과 싸울 때가 그리워질 줄 몰랐네….’
마왕보다 격이 낮은 존재라기에 얕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니 마왕보다 더한 상대였다.
‘지능이 높은 자와 상대하는 게 이리 힘든 거였구나.’
냉정하게 봤을 때, 자신의 머리가 그리 영특하지 않았기에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불멸자보다 살아온 삶이 짧아 지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치지만, 라파엘 님은 달라야 하는 거 아닌가?’
자신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던 것은, 천사라는 작자가 악마 상대로 너무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100년 전만 해도 이제 이긴 것과 마찬가지라고 호언장담을 하더니만….’
천사마저 아무것도 못 하고 휘둘리고 있는데 필멸자인 인류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밀리는 데에 인류의 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 것도 한몫하고 있지.’
대개 10년만 살고 생을 마감해버리니, 인구가 빠른 속도로 감소하며 점점 대응하기가 힘들어졌다.
이 부분에 의아함을 느껴 라파엘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지만.
‘침략자가 술수를 부려온 것이라고 말을 얼버무렸지….’
침략자의 소행이라고만 말하며,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이 고민은 곧 있을 전쟁에 도움이 안 되니 접어두기로 하고. 수장들을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는 게 좋겠지.’
용사는 수장들의 정보가 기록된 양피지를 꺼내며, 그들의 특징을 다시 한번 숙지했다.
100년 사이에 수장들의 정보가 많이 풀려 충분히 싸워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적이 힘을 숨긴 것을 염두에 둬야겠지.’
실전은 또 다르기에 확신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한 번이라도 맞붙어봤으면,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을 텐데….’
용사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수장들과 조우한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조우한 적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만큼, 지능이 뛰어나다는 것이겠지.’
얼마나 간악한지 수장을 처리하러 갈 때면 이미 자리에서 사라진 뒤였다.
수장을 죽이기 위해 만 번이 넘는 도전을 했지만, 전부 실패로 돌아간 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철두철미한지 알 수 있었다.
‘어휴, 그러니까 이 정보를 열심히 숙지해야….’
용사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정보를 숙지하려는 그때.
‘잠깐만….’
불현듯, 이 정보가 가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철두철미한 자들이 약점과도 같은 정보를 흘린다니?
용사는 그들이 일부러 거짓된 정보를 흘린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이런 당연한 것을 이제야 눈치채다니….’
그들에게 100년간 휘둘리다 보니, 너무 당연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정보는 참고는 하되, 맹신하면 안 되겠어.’
용사는 싸우기 전 이 사실을 자각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똑똑―
“용사님, 적들이 진군해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성녀가 문을 두드리며, 적군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때가 됐구나.’
용사는 성검을 꽉 움켜쥐며, 마음을 다잡은 뒤.
“나가겠습니다.”
끼익―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가, 갈까요?”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는 성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긴장하고 있네.’
여태까지 전쟁을 치르면서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모습.
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성녀가 긴장하고 있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떨릴 수밖에 없겠지.’
인류의 존망을 건 마지막 전쟁이 될 수도 있기에 긴장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시다, 인류를 지키러.”
용사는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하며,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네? 네! 가요. 인류를 지키러!”
성녀가 한 박자 늦게 반응하며, 용사의 뒤를 따라나섰다.
* * *
성문으로 향하니.
“앗, 용사님, 성녀님 오셨습니까?”
성기사가 다가와 인사를 건네왔다.
“준비 다 마치셨나요?”
용사는 인사를 가볍게 받으며,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예, 대포와 마법사들을 외벽 쪽에 배치해 언제든 대처할 수 있게 준비해뒀습니다.”
“좋습니다. 적이 나타나면 지체할 것 없이 총공격을 가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명령을 마치며, 미흡한 부분이 있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온다!”
인기척을 느낀 용사가 황급히 성검을 꺼내 들며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전원, 전투 태세에 돌입하도록!!”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외벽 쪽으로 다가가 지평선을 바라보자.
“…더럽게도 많네.”
잠시 뒤, 지평선 너머에 검은 물결이 일렁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첫 공격은 언데드 군대인가….”
침략자가 간악했던 것은 첫 공격은 무조건 죽어도 상관없는 언데드 군대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전부 끌어왔나 보네.”
이번 전쟁으로 싸움을 끝낼 생각인지, 여태까지 치른 전쟁 중 언데드의 숫자가 가장 많았다.
“저건, 병사들에게 맡겨야겠어.”
언데드 군대가 대포 사정거리 내로 들어오는 순간.
“쏴라!!!”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성기사의 외침에 따라 언데드 군대를 향해 대포를 쏘아내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성수가 담긴 포탄이어서 그런지 언데드들이 맥을 쓰지 못하고 쓸려나가 버렸다.
“시작이 나쁘지 않네.”
용서는 첫 시작이 나쁘지 않다는 것에 위로를 얻던 찰나.
“…?”
환했던 날씨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용사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위로 올리자.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무수한 스켈레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젠장, 또 이거냐?”
질리지도 않는지, 매번 전쟁에서 스켈레톤을 하늘에서 뿌려왔다.
“조지!”
하지만, 매번 뿌려왔던 만큼 대비책은 진작에 마련되어 있었다.
“네, 용사님!”
예비 영웅 출신 중에 유일한 생존자 ‘조지’가 용사의 부름에 맞춰 방패를 하늘로 치켜들었다.
“굳건한 의지로 수호하리!”
그리곤 신성력 담아 소리치자.
화아아아아아아아―
신성 제국 전체를 감쌀 정도의 거대한 방패가 생겨나더니.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스켈레톤의 자폭 공격을 손쉽게 막아버렸다.
“조지, 고마워,”
용사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조지의 어깨를 두드리자.
“헤헤,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이에요.”
조지는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여 보였다.
“하늘은 너에게 맡길게.”
“알겠습니다, 용사님!”
“그리고 다른 곳이 위험에 처하면 지원도 해줘.”
용사의 말에 조지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용사님은요?”
어디 가는 것이냐고 질문을 건네왔다.
“적의 수장들을 찾아 나서려고.”
“적의 수장을요…?”
“응, 이 전쟁은 수장만 죽이면 이긴 것과 마찬가지니까.”
설명을 들은 조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하, 알겠습니다. 저는 용사님이 이곳을 신경 쓰지 않도록 열심히 막아 보일게요!”
“믿을게.”
용사는 피식 웃어 보이며, 조지를 격려한 뒤.
파―앗!
수장들을 찾기 위해 외벽 밖으로 뛰쳐나갔다.
타, 타, 타―앗!
적들을 베어내며, 수장들을 찾아다니던 그때.
찌릿―
강렬한 마기가 몸을 찔러왔다.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나를 불러내는 건가?’
산 중턱 너머에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부른다면, 응해주는 것이 예의겠지.’
용사는 수장들을 곧 조우한다는 사실에 긴장감과 기대감이 맴돌았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마기만 봐도 강한 상대라는 것을 알 수 있기에 방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발을 빠르게 놀리며, 산 중턱을 넘어서자.
‘찾았다….’
초원 위에 7명의 인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검은 뇌전을 두르고 있는 남성.
몸에 나무를 두른 여성.
몬스터로 추정되는 마인.
모든 것을 녹일 것만 같은 홍염을 두른 남성.
도마뱀 꼬리를 달고 있는 여성.
피부가 창백한 남성.
마지막으로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언데드까지.
‘전부, 쉽지 않은 상대야.’
용사는 수장들을 탐색하며, 힘을 가늠하고 있던 순간.
“나오시죠. 쥐새끼처럼 숨어있지 말고.”
검은 뇌전을 두른 남성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모습을 드러낼 것을 요구했다.
“…그러지.”
계속해서 나무 사이에 숨어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용사는 수장의 요구에 맞춰 초원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로써, 그들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179화 칠마장 대 용사 (3)
용사와 칠마장 멤버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여기서, 작은 틈만 보이면 전투가 바로 시작될 것만 같은 팽팽한 긴장감.
‘수적으로 불리하니, 신중하게 싸움을 거는 게 좋겠지.’
상성 상 자신이 좀 더 우위에 서 있지만, 그건 개인에 국한된 일이고 오히려 이렇게 붙는다면 불리한 전장이 될 터였다.
‘팀워크가 맞지 않는다면, 싸워볼 만할 것 같은데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
오랜 시간 무리를 지어 침략했을 터라, 팀워크 또한 뛰어나리라.
‘어떻게 싸우는 게 좋을까….’
머릿속으로 수장들과 어떻게 싸울지 고민하던 그때.
“이야기로만 듣던 비둘기의 개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영광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엘비스가 비꼬는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싸우기 전, 도발을 통해 평정심을 흔들려는 건가?’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저급한 수작.
‘평소라면 대답 대신 성검을 내질렀겠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장단에 맞춰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장단을 맞춰주는 게 손해처럼 보이겠지만, 여기서 몇 가지 이점이 존재했다.
‘대화를 통해, 특정 습관이나 약점을 파악할 수 있지.’
첫 번째 이점은, 얻었던 정보로 교차검증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일치하는 정보를 하나만 건질 수만 있다면, 그것을 파고들어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가 있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작은 정보 하나만으로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몇 가지 물어볼 것도 있으니까.’
두 번째 이점은, 침략자가 행했던 악행을 직접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침략자의 악행을 굳이 물을 필요가 있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몇 가지 있단 말이지….’
그냥 넘어가기에는 조금 꺼림칙한 부분이 있어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상대방이 도발을 걸어왔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답을 들려주는 것이 예의겠지.’
용사는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나 또한, 악명이 자자한 그대들을 보게 되니 상당히 역겨워 몸 둘 바를 모르겠군.”
했던 말을 조금 바꿔 그대로 돌려줬다.
“무교인 자들을 핍박하는 너희도 악명이 자자하던데?”
“…….”
“고등 생물에게 들어보니 우리보다 더 끔찍한 일들을 행했더군.”
“…….”
“우리가 역겨워 보여서 몸 둘 바를 모르겠으면, 자네는 자신을 얼마나 혐오하고 역겨워하는 거지?”
“…….”
“온갖 더러운 짓을 일삼은 곳의 소속이면서, 인류를 수호하는 용사라고 지칭하다니 쪽팔리지도 않는가? 뻔뻔한 것도 유분수지.”
엘비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더한 말로 받아쳐 보였다.
용사는 입만 우물거릴 뿐, 엘비스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저 녀석이 한 말처럼 무교인 자들의 입장으로 봤을 때 자신도 침략자와 다를 게 없어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말로는 싸움을 걸지 않는 것이 좋겠어.’
말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용사는 화제를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나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들었기 때문인가?”
용사의 물음에 엘비스가 턱을 쓸어 보이더니.
“확신이라기보다는, 이제 침략을 끝낼 때가 와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지.”
오만을 떨어 보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엘비스는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답해왔다.
‘이러면, 상대하기가 더 껄끄러워지는데….’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겁먹은 것을 가리기 위해 허세를 부렸다고 생각해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겠지만.
‘나와 싸우는 것을 그저 침략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군.’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자니, 위화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괜히, 물어봤어.’
용사는 엘비스와 대화를 나눌수록 말려드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궁금했던 것만 묻고 바로 싸우든가 해야겠어.’
대화는 질문을 끝으로 하지 않기로 하며, 입을 열었다.
“…싸우기에 앞서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대답해줄 수 있겠나?”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대답하는 것 자체를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흔쾌히 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상외인데…?’
도발을 통해 평정심을 흔들려는 계획인 줄 알았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속셈이지?’
용사는 엘비스의 의중에 궁금증이 들었지만.
‘대답을 들은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지.’
지금은, 질문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떻게 인류의 수명을 대폭 줄일 수 있었던 거지?”
엘비스에게 질문을 던지자.
“…뭔, 개소리지?”
엘비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려왔다.
처음 들어본다는 듯한 반응에 정말 모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발뺌하는 건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연기하는 것일 수 있기에 공격적인 어투로 재차 물었다.
“이곳을 침략하는 마당에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
“…….”
“믿기 싫으면 믿지 마. 귀찮게 적을 설득하는 취미는 없으니까.”
하지만, 대답을 들어보니 연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악마가 한 짓이라 자네가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용사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해봤지만.
“아니, 악마님은 작전을 전부 공유하기에 내가 모르고 있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악마님은 이곳에 현신할 수 없어서 단독으로 행동하는 게 불가하시지.”
엘비스가 가능성을 가볍게 일축해버렸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으로…….”
이후 엘비스에게 몇 가지 질문을 건넨 결과.
‘이럴 수가….’
용사는 그동안 라파엘이 자신에게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이 거짓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한 거지?’
어떠한 연유로 거짓말을 한 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이로 인해 라파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불신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이건 나중에 직접 물어보기로 하자.’
지금은 중요한 전투를 앞둔 상태라, 의문은 잠시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질문에 답한 건 고맙지만… 왜 이렇게 친절하게 대답해줬는지 알려줄 수 있겠나?”
용사는 검집에서 성검을 꺼내 들며, 대답해준 의도에 대해서 묻자.
“대화가 길어질수록 신성 제국의 피해가 극대화되니까.”
질문을 받은 엘비스는 자신의 의도를 거리낌 없이 밝혀왔다.
합리적인 판단.
이런 것까지 계산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내가 목적이 아니라 신성 제국이 목적이구나.’
적들의 의도를 눈치챘다면, 이렇게 순순히 대화에 응하지 않았으리라.
‘…그래도 얻어간 게 있으니 완전히 당했다고는 볼 수 없겠지.’
대화가 그리 길지 않아 적들의 정보를 교차 검증하는 데에 실패했지만, 라파엘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안 것은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답 고맙다.”
용사는 솔직하게 대답한 엘비스에게 감사함을 표한 뒤.
“그럼, 이제 죽어라!!!”
파―앗!
칠마장 멤버들에게 덤벼들었다.
쐐――액!
신성력이 깃든 성검을 엘비스에게 내지르자.
“빠르긴 하다만, 대처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군.”
파지직―
엘비스가 검은 뇌전을 일으키며,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버렸다.
파지직―
그리고 순식간에 뒤를 점하며, 발을 휘둘러왔다.
“뻔한 공격!”
휙―
용사는 허리를 숙이며, 공격을 피해냄과 동시에.
후―웅!
허공에 자리한 엘비스를 향해 성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했다.
우두둑―
바닥에서 나무들이 솟구쳐 올라와 몸을 옭아매지 않았다면 말이다.
“귀찮은 짓을!”
퍼―엉!
용사는 두 팔을 들어 올려, 나뭇가지를 힘으로 부러트리고 다시 공격을 가하려고 했지만.
“빈틈.”
고브가 나타나 대검을 휘둘러왔다.
후――웅.
투박하지만, 힘이 실린 베기.
채―――――앵!
힘이라면 용사도 자신이 있었기에 성검을 들어 호기롭게 막았지만.
“어?”
우당탕―
이내, 몸이 뒤로 날아가 바닥을 뒹굴게 되었다.
‘내가 힘에서 밀렸다고…?’
마왕과 필적한 힘을 지닌 자신이 밀렸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던 찰나.
“주, 죽으세요!”
화아아아아아아아―
드래곤의 모습을 한 라일락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브레스를 내뿜어왔다.
‘저건, 맞으면 위험하다!’
벌떡―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난 뒤.
타, 타, 타―앗
브레스를 피하고자 전속력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치이이이익―
용사의 움직임을 따라 브레스가 쫓았지만.
샤샥, 샤샥, 샤샥―
날렵한 움직임으로 인해 애꿎은 바닥만 녹게 되었다.
‘어떻게든 반격을 가해야만 해.’
이대로 휘둘릴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반격에 나서려는 순간.
“용사는 달라도 다르군.”
블라디가 피를 흩뿌리며, 공격을 가해왔다.
쿠쿠쿠쿠쿠―
핏방울들이 모여, 거대한 허리케인을 만들어내더니.
슉, 슉, 슉, 슉, 슈―욱!
허리케인 속에서 핏방울이 튀어나와 육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용사에게 쇄도했다.
몰아치는 공격에 차마 대응하지 못한 용사는.
푹, 푹, 푹, 푹, 푸―욱!
“크흑!?”
붉은 핏방울들에 몸이 꿰뚫리고 말았다.
“으윽!”
극심한 격통에 이를 악물고 있자.
“홀홀홀! 더한 고통을 느끼도록! 앰플리파이 대미지!!!”
아이작이 귀에 거슬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저주를 걸어왔다.
입은 대미지를 증가시키는 마법이었는지, 전보다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무슨, 연계기가 이렇게 정교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연계기로 인해 파고들 틈이 없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무용에 용사는 낭패감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밀린다고…? 마왕과 호각을 이뤘던 내가…?’
적들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일방적으로 전투가 흘러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마왕과 호각을 이뤘던 자신이 고작 고등생물인 수장에게 밀린다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용사는 이러한 상황에 당혹감을 느끼는 동시에 혼란한 감정을 느꼈다.
사실, 그의 판단대로 수장들에게 밀리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수장들의 술수에 걸려들지 않았다면 말이다.
본래라면, 압도적으로 밀리는 게 아닌 상성을 통해 역으로 밀어붙이는 전투가 이어졌겠으나.
라파엘에 대한 불신 때문에 신성력의 출력이 제약되는 바람에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었다.
즉. 수장들은 정민우의 명령을 받아 용사가 라파엘에게 불신을 느끼도록 술수를 부린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용사가 묻기에 대답한 것이지만 그 방법 말고도 다른 수백 가지의 방법이 준비된 상태였다.
그저 불신한다고 신성력의 출력이 제약된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제약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용사란, 천사에게 선택받아 인류를 수호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힘을 준 존재를 불신하는데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느껴지는 마기가 상당하지만, 실력은 그 이상이야.’
애석하게도 칠마장 멤버들의 몰아치는 공격에 정신을 빼앗긴 용사는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도망쳐서 후일을 도모해야 하는 건가?’
이대로 싸우면 필패할 것이 뻔했기에 작전상 후퇴를 하는 것이 현명해 보였다.
‘그래, 신성 제국에 돌아가서 재정비하는 것이 좋겠어.’
용사는 작전상 후퇴를 하기로 하며,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어디 가시는 거죠?”
화르륵―
“큭!”
홍염에 휩싸인 새가 날개를 펄럭거리며, 길을 막아섰다.
“…피닉스?”
신화로만 내려오는 존재의 등장에 용사의 눈이 맹렬하게 흔들렸다.
180화 칠마장 대 용사 (4)
신화 속의 존재 피닉스.
‘정말, 신화 속에 나오는 그 존재라면, 이길 가능성이 0에 수렴한 것과 마찬가지야….’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것만 같은 뜨거운 열기.
자신이 불의 화신이라고 알리는 듯한 자태.
용사는, 눈앞에 있는 존재가 피닉스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적에 적혀있던 모습 그대로야….’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도 윌리엄이 피닉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저 존재를 상대로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정신이 한계까지 내몰린 용사는 분간할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진 상태였기에 그 사실을 눈치챌 턱이 없었다.
잠시, 도망칠 방안을 궁리해봤지만.
‘피닉스와 다른 수장들 상대로 내가 도망칠 수가 있나…?’
아쉽게도 이들 상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판사판으로 싸워봐?’
죽음을 불사하고 덤벼들까도 했지만.
‘…여기서 내가 죽으면 인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자신이 죽으면, 인류가 침략자의 손에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선뜻 덤벼들 수가 없었다.
사실, 그것은 핑계이고 그저 죽는 것이 무서웠다.
‘나, 난 지금 어떻게 해야 하지…?’
용사는 공황에 빠지며, 부여잡았던 정신이 천천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나, 나 같은 게 왜 용사지…?’
차라리, 지금 상황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용사님!!!”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후벼 파고들어 왔다.
“어?”
용사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성녀님?”
성녀가 당당한 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굴복하지 마세요, 용사님!”
만 명으로 추정되는 병력을 대동한 채 말이다.
“이곳엔 어떻게…?”
예상치 못한 등장에 의문을 드러내자.
“라파엘 님이 신탁을 내리셨어요!”
찾아오게 된 이유에 관해서 성녀가 짤막하게 설명해왔다.
‘…라파엘 님께서?’
용사는 정신적인 지주 성녀의 등장에 든든함을 느끼길 한편.
“자, 잠깐 그 이상 다가오면 안 돼요!!”
그들이 적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으며, 다가오려는 것을 만류했다.
“방해꾼은 사라져라.”
하지만, 만류하는 것이 늦었는지 엘비스가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구구구구구―
하늘에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우르르― 쾅쾅!
성녀와 병력이 자리한 곳에 검은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아, 안돼!”
용사는 그곳으로 이동해 검은 뇌전을 막아 보려고 했지만.
화르륵―
“당신은 가지 못합니다.”
윌리엄이 주위에 홍염을 흩뿌리며, 이동하는 것을 막아버렸다.
“꺄아아아아악!”
뒤이어 성녀의 비명이 들려옴과 함께.
치이익―
연기가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제발, 제발….”
용사는 애간장을 태우며, 검은 뇌전이 떨어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길 잠시.
“아, 아….”
연기가 흩어지더니, 그곳에 검게 타버린 시신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
성녀로 추정되는 시신을 바라보고 있자니, 과거의 추억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이, 이럴 수가….”
주르륵―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눈을 깜박이자 축축한 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젠장….”
여태까지 누가 죽든 덤덤한 반응을 보였던 것과 확연한 차이.
오랜 동료라서 이런 격한 반응을 보인 거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쟁이 끝나면, 고백하려고 했는데 젠장!!!”
사실, 용사는 성녀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다.
마왕과 싸울 때까지만 해도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지만, 이번 침략자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싸우면서 감정이 싹트게 된 것이었다.
“왜, 나한테만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건데!!!”
털썩―
용사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자신의 상황에 절규했다.
“나는 왜 행복할 수가 없는 건데!?”
성녀를 죽인 적들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성녀를 죽인 적을 무참히 도륙을 내버리고 싶다는 충돌이 들었다.
성녀가 겪은 고통을 배 이상으로 갚아주고 싶었다.
“…왜,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용사는 광기에 휩싸인 눈빛으로 엘비스에게 성녀를 죽인 이유를 묻자.
“반대로 묻지, 넌 왜 무교인 자들을 죽인 거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져왔다.
“…….”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자.
“역겨워도 이리 역겨울 수가, 전형적인 쓰레기 유형이군.”
엘비스가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왔다.
“다, 닥쳐! 그게 지금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 네가 성녀를 죽인 것은 사실이잖아!”
용사는 질문에 답하는 것 대신, 성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인류의 수호자라는 이명과 달리, 자기 안위만 챙기는 쓰레기 같은 녀석이었군. 용사의 자격이 이런 역겨움이라면 죽어도 발탁되는 일이 없었겠어.”
“모, 모욕하지 마!”
“모욕이라… 나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있는 거다만?”
“닥쳐!”
“상대할 가치가 사라졌군.”
덜떨어진 모습에 질렸다는 듯, 엘비스는 고개를 내저어 보이며 수장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이제 죽이도록 하죠.”
수장들도 동감했는지 한마디씩 덧붙여왔다.
“이런 벌레인 줄 알았으면, 침략이 시작됐을 때부터 죽일 걸 그랬어요.”
먼저, 세계수는 용사의 모습에 오만 정이 떨어졌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고.
“용사라는 이명이 아깝군.”
고브는, 자신이 생각하던 용사와 거리가 멀었는지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전력을 부딪칠 수 없는 건가.”
윌리엄은 전력으로 싸우지 못한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고.
“문헌에 기록된 내용은 전부 거짓이었나 보네요.”
라일락은 용사가 기록된 문헌을 언급하며, 코웃음을 쳤다.
“이런 저급한 녀석의 피는 안 먹어봐도 맛없을 게 뻔하지.”
“홀홀홀, 용사가 죽으면 언데드로 활용하도록 하지요.”
블라디는 오물을 본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아이작은 용사를 언데드로 만들 생각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내가 너희 따위에게 당할 것 같아!?”
광기에 휩싸인 용사가 적들을 향해 성검을 휘두르려고 했으나.
화르륵―
“으아아아악!?”
홍염이 몸을 뒤덮으면서, 성검을 휘두르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윌리엄의 시작으로 수장들이 뒤이어 용사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검은 뇌전이 용사의 몸을 불태웠고.
몸을 옭아매는 나무는 홍염의 위력을 더했다.
날카로운 검은 살갗을 찢어버렸고.
핏방울은 몸을 꿰뚫어 장기를 헤집었다.
마지막으로 저주 마법이 더해져 입었던 피해를 다시 한번 느껴야만 했다.
“크헉!?”
용사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못했다.
철퍼덕―
바닥에 쓰러지며, 이대로 생을 마감하는 건가 생각하던 찰나.
― 용사님, 일어나세요.
귓가에 성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녀님?’
성녀는 조금 전에 죽었기에 환청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 일어나서, 적들을 물리쳐주세요, 용사님!
환청이라고 해도 마지막 그녀의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었다.
‘그래… 이렇게 당할 수는 없어!’
용사는 잃었던 전의를 불태우며, 눈을 떠 보이자.
번쩍―
눈에서 황금색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서 등 뒤에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생겨나더니.
“하앗!”
펄럭―
날개를 펼침과 함께 수장들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뭐?”
엘비스는 뒤로 날아가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딴 계기로 각성을 한다고?”
성녀가 죽었다는 이유로 뜬금없이 격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에 엘비스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구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소년 만화 같은 전개라고 할 수 있었다.
전 인류가 고통의 비명을 지를 때는 외면하다가 성녀의 죽음에서야 각성하는 것이 고깝게 보일 수 있겠지만.
인간이라는 종족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인 만큼, 어떠한 이유든 계기만 주어진다면 격을 뛰어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수많은 고등생물이 죽음을 맞이할 때 눈 깜짝 안 하던 인류의 수호자는 한 사람의 죽음으로 각성하게 되었다.
* * *
용사가 각성할 당시.
“해냈어!”
라파엘은 두 손을 불끈 쥐어 보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것도 안 통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도 성공했네.”
마인들의 수작으로 인해 용사의 힘이 제약돼 애간장을 탔었지만.
“성녀를 보내는 것이 정답이었어.”
성녀의 죽음으로 용사를 각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에 반응이 없어서 설마 했지만, 순간적인 기지로 무사히 각성시켰네.”
자신의 목소리로는 각성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성녀의 목소리를 신탁을 내린 라파엘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성공적으로 먹혀들었다.
“역시, 고등생물은 역경 속에서 강해진다니까.”
경지가 한 단계 더 올랐으니, 적들을 쉽게 처리해 버릴 수 있을 것이었다.
“마인을 몰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일 테니, 마음 편히 구경하면 되겠지.”
일개 박쥐에게 여태까지 휘둘렸던 사실이 자존심이 상했지만, 침략당하지 않은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다음에는 경각심을 가지고 더 철저하게 점령하면 되겠지.”
이번 일로 자신도 깨달은 것이 있기에 다음 행성을 점령할 때는 더 빠르게 장악해 나갈 수 있으리라.
“걱정거리도 해결했겠다. 슬슬 박쥐의 면상이나 보러 가볼까?”
그전에는 박쥐에게 조롱당할 것이 뻔해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반전된 지금은 얘기가 달라졌다.
“뭐, 만나서 싸움을 걸어올 수도 있겠지만 질 일은 없으니 상관없겠지.”
비전투 계열이라 1품 박쥐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품계가 깡패라는 말이 있듯 패배할 일은 절대로 없었다.
“그러면, 박쥐 녀석들을 찾으러 가볼까?”
라파엘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박쥐를 찾아 나서려는 그때.
“그럴 필요 없어.”
펄럭.
다섯 명의 인영이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왔다.
“너….”
뜻밖의 등장에 잠시 당황하긴 했으나.
“무슨 자신감으로 모습을 드러냈지?”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비웃음 어린 얼굴로 박쥐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이유에 관해서 물었다.
라파엘의 도발에 정민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척―
중지를 들어 보이며, 물음에 화답해 보였다.
“이 자식이!!”
라파엘은 표정을 굳히며 언성을 높였지만.
“말 걸지 말아라. 죽여버리기 전에.”
“…….”
정민우의 진한 살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뭐야… 보고 받았던 거보다 마기가 상당하잖아?’
협동 공격을 당하면, 낮은 확률로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죽거리는 것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
‘수장들이 죽으면, 이 행성에서 사용할 마기도 줄어들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리자.’
그렇게 입을 다물고 정민우를 바라보고 있자.
“상황이 재밌게 흘러가잖아?”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용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속셈이지?’
판을 뒤집을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지만, 저 눈빛이 불길하게만 느껴졌다.
‘아니야,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말자. 진짜 재밌어 보여서 저러는 것일 수도 있잖아?’
침략하는 것에 미련이 없어 순수하게 지금 상황을 즐기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고.’
자신이 생각했지만 순수하게 상황을 즐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뭐지…?’
알 수 없는 정민우의 속내에 머리가 지끈거리던 순간.
“명령은 내렸으니, 우리는 천천히 기다려 보도록 하자고.”
정민우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데, 어떤 명령을 내렸는데?’
입도 움직이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니?
정민우가 심안을 통해 전언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라파엘은 그저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괜히, 초조한 감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
“홀홀홀, 악마님의 명령에 따릅니다.”
웬, 뼈다귀가 음침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성녀의 시신 옆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리바이브.”
그리곤 성녀의 시신을 향해 흑마법을 시전하자.
화아아아아―
검게 타버렸던 피부에서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
잠시 뒤, 상처를 전부 회복하고 싱그러운 성녀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벌떡―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보였다.
“미, 미친!”
라파엘은 불길함을 직감하며, 용사에게 신탁을 내리려고 했지만.
“왜, 신탁이 안 내려지는 거야!?”
애석하게도 신탁이 내려지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문제없이 신탁을 내릴 수 있었겠지만, 용사가 라파엘을 불신하게 된 것과 주변의 짙은 마기가 자리한 바람에 내릴 수 없었다.
“안돼, 안돼, 안돼!”
라파엘은 노심초사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
“서, 성녀님?”
용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성녀를 불렀다.
181화 칠마장 대 용사 (5)
용사가 조심스럽게 성녀에게 다가가자.
치이익―
“꺄아아아악!”
신성력으로 인해 성녀의 살갗이 타들어 가며,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요, 용사님, 아파요!”
“자, 잠깐만요!”
뼈가 보일 정도로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을 본 용사는 당황하며, 신성력을 거두니.
“하아….”
성녀의 피부가 더 이상 타들어 가지 않았다.
“이걸 어떡하지….”
용사는 타들어 간 피부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던 그때.
스르르―
그녀의 피부가 천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어?”
그 모습에 용사는 의아한 눈빛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자.
“주변에 있는 마기를 흡수해 자가 수복을 한 것이지.”
“…자가 수복?”
“등급이 낮은 언데드는 불가하지만, 고위 언데드는 자가 수복이 가능하거든.”
아이작이 상처가 회복된 이유에 관해서 설명해왔다.
“후….”
용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성녀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정말… 성녀님이세요?”
이어서 성녀가 맞는 질문을 건네자.
“자, 잘 모르겠어요.”
성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모르겠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모르겠다니요…?”
“생각하고 말하는 건 제가 맞는 것 같지만, 언데드로 부활했잖아요… 그래서 과연 본래의 제가 맞는지 의문이 들어서요.”
자신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모습에.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용사는 성녀에게 다가가 가슴에 손을 올린 뒤 눈을 감아 보였다.
“아….”
갑작스러운 행동에 성녀는 당황했지만, 이내 뜻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금방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로부터 약 5분 정도 흘렀을까?
용사가 옅은 미소와 함께 눈을 떠 보이며 말했다.
“성녀님이 맞네요.”
“어떻게 확신하는 거죠?”
“영혼을 봤거든요.”
“…영혼이요?”
“네, 영혼이 조금 탁해지긴 했지만, 본래의 성녀님의 영혼이 맞습니다.”
“…그렇군요.”
인류의 수호자의 말이니, 성녀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내 말이 맞지?”
용사는 확신을 더 하기 위해 아이작에게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그래, 네 말대로다. 고위 언데드는 영혼을 매개로 삼거든.”
아이작의 확답에 용사는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표정을 완전히 풀어 보였고.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성녀는 반대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성녀님, 왜 그러시죠?”
“죽어서도 인질로 잡혀있는 현실이 애석하게 느껴져서요.”
“…….”
성녀의 말에 용사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성녀를 아낀다는 것을 적들이 알았으니, 입맛대로 휘둘러질 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용사님, 인류를 위해 저를 죽여주세요.”
“…그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녀의 간곡한 부탁에 용사는 눈을 질끈 감아 보이며 거절했다.
“이대로 인류를 저버릴 생각이신가요?”
“…그렇다고 당신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용사님….”
“죄송합니다….”
용사의 완강한 태도에 성녀가 곤란함을 느끼던 찰나.
짝, 짝, 짝, 짝―!
아이작이 대뜸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홀홀홀!”
그리곤 뭐가 그리 웃긴 지, 갈비뼈를 부여잡으며 웃음을 터뜨려 보였다.
“뭐가, 그리 웃기지?”
조롱하는 것 같은 웃음소리에 용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웃길 수밖에. 진영을 옮기면 그만인 것을 이리 심각하게 고민하니까 말이야.”
아이작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진영을 옮기라고…?”
“그래, 진영을 옮기면 성녀가 인질로 잡힐 일도 없고. 너희들이 고등생물을 설득하면 신성 제국의 백성들을 죽일 필요도 없어지는 것이지.”
“헛소리…….”
용사는 아이작의 말 같지도 않은 제안을 가볍게 일축하려고 했지만.
‘나쁘지 않은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방법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백성들을 잘만 설득하면 피해 없이 이 전쟁을 끝낼 수도 있고 말이야.’
또한, 언데드는 수명이 없기에 성녀와 평생 같이 살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반대편 진영에 서면,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됐다.
‘진작에 진영을 옮겼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누군가 이 모습을 봤다면, 정의를 이리 쉽게 저버릴 수 있냐며 용사를 타박할 수도 있겠지만.
‘진영을 옮기지 않는 이상 멸망을 피해갈 순 없어.’
멸망하는 것보다는 적에게 굽히는 것이 낫다는 게 용사의 생각이었다.
“진영을 어떻게 하면 옮길 수 있지?”
진영을 옮기는 방법에 관해 묻자.
“그다지 어렵지 않아, 죽어서 언데드가 되면 돼.”
아이작이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방법을 설명해줬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저 뼈다귀가 자신을 살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에 조금 더 안전한 방법을 요구했다.
“다른 방법이라….”
아이작은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는지 두개골을 긁적이며 고민에 잠겼다.
“너희들처럼 마인이 되는 방법은 없는 건가?”
“그건, 내 권한 밖이어서 말이야.”
“권한 밖이라고?”
“그래, 마인이 되는 것은 악마님의 은총이 있어야만 가능하거든.”
“은총이라….”
용사는 고민에 잠시 잠기더니.
“그분과의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나?”
정민우와의 만남을 요청했다.
“그분을 그리 쉽게 만나 뵐 수 있는 분이…….”
아이작은 곤란하다는 듯한 어투로 용사의 요청을 거절하려는 찰나.
스으으―
초원 위에 검은 안개가 짙게 깔리더니.
뚜벅, 뚜벅, 뚜벅.
그곳에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용사는 모습을 드러낸 자가 악마라는 사실을 직감하며, 옅은 감탄을 터뜨렸다.
고고한 자태를 더불어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격식.
전에 싸웠던 마왕에게 느껴지지 않았던 고귀함이 눈앞의 악마에게는 느껴졌다.
멍한 얼굴로 악마를 바라보고 있자.
“무슨 연유로 나를 찾는 거지?”
악마가 다가오며, 자신을 찾은 이유에 관해서 물어왔다.
* * *
아이작이 성녀를 살려낼 당시.
‘생각대로 움직이는군.’
예상대로 움직이는 용사의 행동에 정민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용사가 격을 뛰어넘어버리는 산정 외에 일이 벌어졌지만, 이 정도는 순발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가 있지.’
성녀 때문에 분노했다면, 성녀를 되살려 분노를 잠재우면 그만이니라.
스켈레톤으로 부활했다면 용사의 분노가 더욱 거세졌겠지만, 아이작의 경지가 높기에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작, 용사를 꼬드겨 언데드로 만들도록 해라. 만약, 거절할시 자연스럽게 마인 쪽으로 대화를 돌리도록】
정민우는 ‘심안’을 통해 아이작에게 전언을 보내며, 상황을 면밀하게 주도해 나갔다.
‘전보다, 상황이 더 쉽게 풀리겠는데?’
심안을 통해 용사의 생각을 읽으니, 원하는 상황으로 유도하기가 너무나도 쉬웠다.
‘잘하면, 조지를 사용할 일이 없겠는데?’
위험한 상황에 쓰기 위해 영웅이 된 ‘조지’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대로 가면 사용할 일이 없을 듯싶었다.
‘이제, 나를 찾게 만든 다음 타락시키면 되겠지.’
과연, 용사를 타락시키면 어느 정도의 마기가 지급될까 하고 궁금증을 느끼던 그때.
“자, 잠깐만!!!”
라파엘이 절박한 표정으로 지어 보이며 소리쳐왔다.
“얘들아?”
정민우는 라파엘의 말을 무시하고 마교회 멤버들을 부르자.
“더 이상 다가오면, 싸움을 걸어오는 것으로 간주하겠어요.”
“야 가만히 있어 죽기 싫으면.”
“…방해하지 마.”
“민우한테 두들겨 맞기 싫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개굴개굴.”
마교회 멤버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 들며, 라파엘이 다가오려는 것을 저지했다.
라파엘은 죽일듯한 눈빛으로 마교회 멤버들을 노려봤지만.
“…아, 알겠다.”
이내, 꼬리를 내리며 뒤로 물러났다.
‘상황 판단 능력이 좋네.’
현재, 침략을 목전에 둔 상태라 제약이 없다시피 마기를 다룰 수 있지만, 라파엘은 점령한 국가가 줄어들어 사용할 수 있는 신성력의 제약이 크게 걸린 상태였다.
한마디로, 피해를 감수하고 싸운다면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싸울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승리를 거둘 수는 있겠지만, 마교회 멤버 중 죽는 악마가 무조건 생겨날 것이기에 굳이 피를 보면서까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덤벼든다면, 불가피하게 싸울 수밖에 없겠지만, 먼저 싸움을 걸 필요는 없지.’
라파엘도 생각이 있다면 덤벼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언제든지 싸울 수 있게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정민우! 나와 협상하자! 용사를 타락시키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할게!”
용사가 타락하게 되면,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자존심을 굽히며 협상을 제안해왔다.
‘조금 골려줄까?’
정민우는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짓고선.
“대가라….”
흥미가 동한 듯한 연기를 선보이며, 턱을 쓸어 보였다.
“원하는 게 있나? 말만 해라 어떠한 것이든 들어줄 테니!”
라파엘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이어지는 정민우의 요구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네가 점령한 행성 모두 우리에게 넘겨줘.”
그도 그럴 게 지금껏 일군 결실을 다 뱉어내라는 허무맹랑한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었다.
“뭔, 개소리야!!!”
라파엘은 화를 참지 못하고 화내자.
“협상 결렬이네.”
정민우는 미련 없이 시선을 거둬버렸다.
“내게 이런 치욕을 주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아!?”
라파엘은 자신을 건드린 것에 대해 후회할 거라고 경고를 날렸지만.
“그래, 열심히 노력해봐.”
돌아오는 것은 정민우의 조롱뿐이었다.
“쳇!”
펄럭―
라파엘은 이곳에 남아 있는 게 의미 없다고 판단했는지, 날개를 펄럭이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조금 의아한 건데, 용사의 신성력을 거둬가면 그만인 거 아니야?”
그녀가 사라진 뒤, 엘린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거둬갈 수는 있는데,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거든.”
“…오래 걸린다고?”
“응, 용사에게 나눠준 신성력이 양이 어마어마하니까 단숨에 거둬들일 수가 없거든.”
“…그래서 저런 반응을 보였던 거구나.”
“그렇지, 용사가 타락하면 신성력을 영영 가져올 수 없으니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인 거지.”
“…이해했어.”
설명을 들은 엘린은 완전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방해꾼도 사라졌겠다. 용사를 타락시켜볼까?”
다시 타락시키는 것에 열중하자.
“그분하고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나?”
용사를 타락 직전까지 유도하는 것에 성공하게 되었다.
‘나를 저리 간절히 찾는데, 모습을 드러내 주는 것이 예의겠지.’
정민우는 좋은 첫인상을 주기 위해 옷매무새를 간단히 정리하곤.
“무슨 연유로 나를 찾는 거지?”
용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앗….”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했는지, 용사의 눈동자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마, 마인이 되고 싶어서 찾았습니다….”
몇 초 뒤, 정신을 빠르게 수습한 용사는 원하는 것을 밝혀왔다.
“용사가 마인을 희망한다니, 나로서는 너무 반가운 소식이로군.”
재볼 것도 없이 정민우는 두 팔을 뻗어 보이며, 용사의 선택을 환영해줬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 일단, 들어보도록 하지.”
“성녀님의 소유권을 제게 양도해주십시오.”
“그거면 되는 건가?”
“예, 이걸로 충분합니다.”
소박한 조건.
‘수장의 자리에 껴달라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이 정도 조건이면, 거저먹는 것과 같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미룰 것 없이 바로 계약 조항을 조율해보도록 할까?”
“좋습니다.”
이후 정민우는 품속에서 양피지를 꺼내 용사와 계약 조항을 작성했다.
― ‘갑’은 ‘정민우’, ‘비너스’, ‘로크’, ‘아누비스’, ‘엘린’을 칭한다.
― ‘을’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갑’에게 손해를 끼칠 수 없다.
만약, 끼치려고 할 시 ‘을’은 그대로 사망하게 된다.
― ‘을’은 ‘갑’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만약, 이행하지 않을시 ‘을’은 그대로 사망하게 된다.
― 계약 완료 시, ‘아이작’은 ‘을’에게 성녀의 소유권을 양도한다.
“여기서, 마음에 안 드는 조항이라도 있나?”
정민우의 물음에 용사가 계약서를 한 번 더 확인하더니.
“없습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왔다.
“그렇다면, 양피지의 자네를 피를 흘리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용사가 손가락 깨문 뒤, 양피지에 피를 흘리자.
톡톡―
【계약 완료】
계약이 완료됐다는 문자가 떠오르는 동시에.
【용사를 타락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72위 마왕이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보상으로 대량의 마기가 지급됩니다】
정민우의 몸에서 막대한 마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182화 침략의 끝 (1)
용사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대량의 마기가 지급되니, 타락시키는 것이면 더한 마기를 지급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예상을 뛰어넘는 마기가 지급되면서, 결이 다른 전능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여기서 마왕의 잔재까지 얻으면 장난 아니겠는데?’
정민우는 사탄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침략이 끝났을 때, 72위 마왕의 힘과 필적할 수도 있겠어.’
심호흡하며, 흥분된 감정을 추스르자.
“““아, 아….”””
한껏 힘에 취해 있는 마교회 멤버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들 전과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마기 총량이 늘어났네.’
‘마안’으로 보니, 전보다 몇 배의 마기가 늘어나 있었다.
‘저 정도 마기면, 진급 시험은 붙은 것과 마찬가지지.’
정민우는 마교회 멤버들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잠시 놔두기로 하며, 용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으아아아아악!”
그러자 몸에 검은 불꽃에 휩싸인 채,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잠시, ‘천안’을 사용해 정보를 확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 확인은 하지 말도록 하자.’
굳이, 용사의 정보를 확인하지는 않기로 했다.
‘곧, 죽을 녀석의 정보를 뭐하러 확인해?’
그도 그럴 것이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될 텐데, 정보창을 확인하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비둘기의 개였던 녀석을 아군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
괜히, 아군으로 받아줬다가는 물만 흐릴 것이었다.
‘생각하는 사고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고 말이야.’
정신이 불안정한 것은 고려한다고 해도 용사치고는 상당히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죽였는데, 업적으로 인정돼서 또 마기를 주면 이득이니까.’
타락했기 때문에 업적으로 인정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받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그렇게 검은 불꽃이 꺼지길 기다리자.
치이익―
10분 뒤, 검은 불꽃이 꺼지며, 용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과 달라진 것은 없네.’
머리카락 색이라도 바뀔 줄 알았는데, 용사는 그전과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마기….”
용사는 새로운 힘이 신기했는지, 손에 마기를 응집시키며 멍하니 바라봤다.
“신성력은 보호하는 느낌이라면, 마기는 파괴하는 느낌이구나….”
또한, 마기가 적성에 맞는지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였다.
‘용사라서 그런지, 재능은 뛰어나네.’
마기를 저렇게 능숙하게 다룬 것은 윌리엄 다음으로 처음이었다.
‘하긴, 경지를 뛰어넘은 상태에서 마인이 됐으니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네.’
정민우는 짧은 상념을 마치며, 용사에게 말을 걸었다.
“계약대로 성녀의 소유권을 네게 넘겨주도록 하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소리에 용사는 힘을 관조하는 것을 멈추고.
“아! 알겠습니다.”
두 눈을 빛내며 힘차게 대답해 보였다.
“아이작?”
뒤에 자리한 아이작에게 시선을 던지자.
“바로 시작하겠나이다.”
아이작이 공손하게 대답하며, 용사 앞으로 다가갔다.
“성녀의 소유권을 넘길 테니,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도록.”
“알겠다.”
이어서 용사의 가슴에 손을 얹고 마기를 운영하자.
“…아!”
“…앗!”
용사와 성녀는 서로의 영혼이 이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소유권은 정상적으로 네게 넘어갔다. 앞으로 성녀는 네 명령만 따르게 될 거다.”
아이작이 소유권이 완전히 넘어갔다고 설명해주자.
“고맙다.”
용사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리곤 성녀 쪽으로 시선을 돌려,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 보이더니.
“성녀님, 이제 무거운 짊을 덜어내고 저와 같이 편안한 삶을 보내도록 합시다.”
앞으로 자신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자고 말해왔다.
“…조, 좋아요.”
전에 만류했던 것은 내숭이었는지, 성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제 신성 제국으로 가서, 백성들을 설득하도록 합시다.”
“그럴까요?”
둘은 손을 잡은 채, 신성 제국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미안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정민우가 길을 막아서며, 이동하는 것을 저지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죠?”
용사는 길을 막아선 것에 기분이 나빴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이유에 대해서 물어왔다.
“너희들은 이제 이곳에 죽을 것이기 때문이지.”
행동이 상당히 불손했지만, 아량이 넓은 정민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친절하게 그 이유에 관해 설명해줬다.
“…뭐라고?”
그리고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은 용사는 검집에 꽂힌 성검, 아니 마기를 머금으며 마검을 변한 검을 꺼내 들었다.
“다시 말해줘야 하나? 너희들은 이곳에서 죽을 것이라고 했다.”
정민우는 이죽거리며, 재차 같은 설명을 해주자.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구나!?”
용사가 분노를 터뜨리며, 마검을 내질렀다.
아니, 내지르려고 했다.
우뚝―
― 멈춰라.
마기가 실린 정민우의 명령에 몸이 멈춰버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모, 몸이 왜?”
용사는 힘을 주어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계약은 절대적이기에 정민우의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용사는 정민우에게 억울함을 호소해봤으나.
“비둘기의 개를 내 휘하에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정민우는 무엇을 기대했냐는 듯, 콧방귀를 뀌어 보일 뿐이었다.
“이 개X끼가!!”
애초에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용사는 정민우를 향해 욕설을 쏟아냈지만.
“그만. 죽어라.”
그리한다고 바뀌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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