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a 10

있었는데, 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수호문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마법 혁명.
그것이 강민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강민혁이라는 이름의 상징성이 대단해지면서, 사람들이 알아서 수호문이라는 과거를 묻어버렸다.
‘계획이 통했구나.’
최근 며칠.
강민혁의 인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새로운 마법 체계와 의료 마법을 발표했기 때문이 아니다.
강민혁은 수호문과의 토벌에서 갑과 을의 위치를 바꾸었다. 항상 갑으로 군림하던 강화 전사들이 강민혁을 지키겠다고 스스로 나섰으며, 강민혁은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민혁은 전장을 지휘했고, 강력한 공격 마법은 A급 데스 나이트마저 무너트렸다.
상식이라는 것이 와르르 무너졌다.
마법사가 주도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 마법과 관련된 사람들은 강민혁에게 푹 빠졌다.
마법의 희망.
마법의 얼굴.
수호문이라는 배경이 옅어지며, 강민혁을 편견 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오히려 취재진의 경우에는, 강민혁의 업적이 퇴색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수호문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수호문의 후계자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강민혁이, 마법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 ‘한 명의 마법사’로서 인정을 받았다.
강민혁이 말했다.
“제가 영국을 방문한 이유는 특정 세력에 소속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서로 정보를 교류하기 위해서 방문한 것이며, 영국 마법 협회가 저를 초대해주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마법사로서, 영국 마법 협회는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니까요.”
다소 형식적인 멘트.
강민혁은 짧게 말을 끝냈고, 영국 마법 협회가 준비한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한 영국 마법 협회.
철옹성이라 불리는 거대한 건물의 모습에, 강민혁은 감회가 새로웠다.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는 저 자리에 왕실 마법 아카데미가 있었지.’
교차하는 기억.
서로의 세상이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영국 마법 협회의 회의실.
강민혁의 방문에, 알만한 얼굴들이 먼저 악수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꼭 한번 직접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독일 마법 협회도 방문하시죠. 강민혁님을 위해서, 성대한 파티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법 학계의 명사(名士)들.
그들은 강민혁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강민혁은 현재 마법 학계를 구성하고 있는 중심이다. 최근에 ‘마법 학계는 강민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민혁이라는 이름은 강력한 힘을 지녔다. 아무리 마법 학계의 대단한 권력자라 할지라도, 강민혁을 상대로는 최대한 인자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들은, 강민혁이 예상한 현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부류였다.
“다들 자리에 앉으시죠.”
영국 마법 협회의 협회장.
웨인 번즈의 말에, 강민혁의 주변을 얼쩡거리던 사람들이 자리로 돌아갔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게 앞서,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강민혁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아닙니다. 저 또한 영광입니다.”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자면....사실 후발대의 영상을 보고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알려진 마법들은 A급 몬스터를 상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세계 최초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고는 하나, 그건 강민혁님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6서클 마법이 아닌, 새로운 마법으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으니까요. 저희는 그것이 궁금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다들 마법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강민혁님이 사용한 마법에 대해서 아는 분은 단 한 명도 없었습 니다.”
조심스러웠다.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웨인 번즈가 운을 띄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이미 존 웨슬리 대마법사님에게도 전달한 말이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마법의 체계를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마법인지는 설명해드리죠. 제가 사용하는 마법의 이름은 등급 외 마법이라는 것입니다. 서클의 특성을 활용해서, 등급을 초월하는 위력을 보여주는 마법이죠. 이 마법의 경우에는 서클의 제한은 없지만, 서클에 따라서 위력이 달라집니다. 저는 4서클 마법사지만, 등급 외 마법을 통해서 A급 몬스터에게도 통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허어.”
“등급 외 마법이라니.”
사람들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나타났다.
난생 처음 듣는 마법.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기에, 웨인 번즈가 대표로 나섰다.
“등급 외 마법이라니. 그런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겁니까?”
“예."
“마법의 소유권은 강민혁님에게 있습니다. 직접 개발하셨으니,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혹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면 마법을 공개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저희들끼리 상의한 결과, 강민혁님이 제안을 승낙만 하신다면 10억 파운드(1조 4,994억)의 대가를 지불할 의향이 있습니다. 돈이 아니라 다른 것을 원할지라도, 저희는 어떤 조건이든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웨인 번즈의 태도는 적극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4서클 마법사가 A급 데스 나이트를 쓰러트릴 수 있는 마법.
그야말로 혁명이다.
욕심으로 차오르는 사람들의 눈빛에, 강민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등급 외 마법을 공개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여러분과 거래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저의 확고한 생각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어두워지는 사람들의 표정.
그때, 구석에 있던 한 사람이 나섰다.
“제가 말해도 되겠습니까?”
50대 중반의 사내.
메부리코에 인상이 상당히 강한 그는, 강민혁의 기억에도 있는 인물이었다.
‘미국 마법 협회의 매그너스 라슨(Magnus Larsson).’
유명한 인물.
그리고,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사람 중 하나였다.
‘드디어 시작인가.’
속으로 웃었다.
강민혁은 웨인 번즈와의 형식적인 얘기가 얼른 끝나고, 저런 사람이 나서길 기다리고 있었다.
매그너스 라슨.
그는 의심과 질투가 많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강민혁의 행보에 마냥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없는지 의심부터 했다.
‘이상해.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화.
그리고 이번에 마법 혁명까지.
대단한 행보다.
강민혁은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업적을 보여주었지만, 문제는 그가 마법을 입문한 시기였다. 강민혁은 과거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수호문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을 생각하면 분명히 17살의 나이에 마법에 입문한 것이 확실한데, 그렇다면 지금 보여준 모습은 말이 되질 않는다.
마법의 천재?
그런 단어가 모든 의구심을 가라앉히기는 한다.
강민혁이 천재라면, 남들을 발견하지 못한 ‘대단한 발견’이 이렇게 연속적으로 터져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4서클의 경지에 오른다? 그건 재능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야. 어쩌면 강민혁은 오래 전부터 마법을 익히고 있었는데, 의도적으로 그 사실을 감춘 것일 수도 있어.’
의심이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진실을 부정하고 퍼즐을 맞추자, 제법 그럴 듯한 그림이 맞추어졌다.
‘강민혁은 수호문이 마법 학계를 집어삼키려고 만들어낸 가상의 마법 천재일 수도 있어. 아니, 17살의 나이에 4서클 마법사라면 천재라는 사실은 분명하겠지만 의도적으로 그 업적을 부각시킨 거지. 강민혁이 개발했다고 알려진 지식들은 수호문에서 따로 팀을 개설해서 연구를 진행한 것일 수도 있고,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는 영상도 사실 믿을 만한 자료는 아니야. 그 토벌은 수호문에서 진행한 것이니까,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조작할 가능성은 있어.’
그것은 음모론이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부분이 있었으나, 애초에 강민혁을 부정하고 보자 제법 그럴듯하게 보였다.
그래서 나섰다.
강민혁이라는 인간을 부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 전 강민혁님의 말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더블 캐스팅, 마나 동화, 의료 마법 등등 그 대단한 지식들을 공개해놓고, 등급 외 마법만 비밀로 붙이는 게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생각해보면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고 하는 증거는, 강민혁님의 가문인 수호문의 제자들이 증언한 것과 당시 촬영한 영상 뿐입니다. 강민혁님의 업적이 마법 학계에 얼마나 대단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알겠습니다만, 이번 문제는 그와 별개로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멘트를 순화시켰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밝힐 수는 없기에, 매그너스 라슨은 음모론을 돌려서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강민혁의 추종자다.
너무 공격적으로 말했다가는 역으로 당할 수도 있기에, 그는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정도로 만족했다.
당연히 긍정적인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강민혁을 대신해서 분노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당사자인 강민혁은 매우 침착했다.
‘재밌네.’
하나의 가능성.
그것이 이 자리에 파문을 일으켰다.
매그너스 라슨은 의혹을 제기했고, 사람들은 그에 분노했다. 그러나 그러한 그림은 묘하게 강민혁에게 해답을 바라고 있었다. 분노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강민혁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대답을 강요했고,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은 매그너스 라슨의 의견을 말없이 지지했다.
매그너스 라슨의 말이 틀려도 상관 없다.
아무런 손해 없이, 진실을 확인하는 방법일 테니 말이다.
‘이해해. 내가 겨우 몇 개월 만에 이루어낸 업적은, 천재라는 단어로도 납득할 수 없을 테니까.’
예상한 상황이다.
강민혁이 쌓은 탑은 아직 견고하지 못하다.
짧은 시간에 너무도 높이 올라오는 바람에, 신뢰라는 지지기반이 나약하다.
그래서 마탑 건설을 서두르지 않았다.
과유불급(過植不及)이라는 말이 있듯이, 과한 욕심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일을 망쳐버릴 것이다.
‘이 자리를 통해 단단한 기반을 쌓는다.’
하나씩.
그렇게 하나씩 이루어간다.
후일 자신이 건설할 난공불락의 성을 위해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마법을 증명할 의무는 없지만, 면전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니 괜한 오기가 생기는군요. 매그너스 라슨님이 원하시는 게 진실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증명해드리죠.”
“어떻게 말입니까?”
“방법이 따로 있겠습니까?”
강민혁이 웃었다.
아주 간단한 해결책.
그것은, 이 자리에 참석한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직접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들, 그걸 원하시는 거지 않습니까?”
떡밥을 강하게 물었다.
매그너스 라슨이라는 의심과 질투가 많은 낚시꾼을, 현실이 통용되지 않는 심해(深海)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81화. < 22. 수호문, 그리고 영국 마법 협회(4) >
사람들이 자리를 옮겼다.
영국 마법 협회의 마법 연무장.
그 무대를 바라보는 웨인 번즈의 옆으로, 존 웨슬리가 다가왔다.
“협회장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강민혁이 정말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러기엔 조건이 좋지 않아.”
어제.
웨인 번즈는 존 웨슬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강민혁이 본인을 증명하기 위해 영국 마법 협회를 방문한다고 말이다. 직접 A급 몬스터를 상대하겠다는 발언도 했으나, 존 웨슬리는 일부러 그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았다. 혹시라도 강민혁에게 부담을 안길 수도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매그너스 라슨이라는 낚시꾼은 결국 강민혁을 무대로 불러들였고, 아주 위험한 조건의 무대가 성사되고야 말았다.
“나는 강민혁의 말을 믿는다. 그간 마법 학계를 발전시킨 그가, 사람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을 테니 말이야. 하지만 강민혁이 A급 데스 나이트를 쓰러트렸을 때는 강화 전사라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있었어. 앞에서 지켜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법사의 위력은 2배가 되겠지만, 지금처럼 혼자서 감당해야만 한다면 본인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겠지.”
너무나도 무모했다.
강민혁.
그는 매그너스 라슨의 미끼를 물면서, 아주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안전장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혼자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겠습니다.”
사실 매그너스 라슨도 강민혁이 1대1로 A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그림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강민혁이 6서클 마법사라 할지라도, 근접전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상대할 경우 캐스팅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당연히 안전을 확보한 뒤에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정도의 화력이 있는지만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예상치도 못한 형태로 상황이 진행되었다.
덕분에 매그너스 라슨도 난처하게 되었다.
무대로 걸음을 옮기기 전, 몇몇 사람들이 그에게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당신이 무엇을 의심하는지는 알겠습니다만, 혹시라도 강민혁이 죽는다면 그 책임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신 겁니까? 강민혁이 그리도 의심스러우셨습니까? 만약 강민혁에게 특별한 목적이 있다 할지라도, 그는 마법 학계를 위해 헌신한 사람입니다. 이건 정말 아닙니다.”
강민혁의 지지자들.
그들의 사나운 기세에, 매그너스 라슨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단순히 강민혁의 힘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 생각지도 못하게 자충수(自充手)가 되어버린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무대를 향했다.
정말 가능할까.
A급 몬스터에게 화력이 먹히냐는 사실을 떠나서, 1대1로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건 다른 문제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들.
이내, 강민혁이 연무장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쿵.
케이지의 문이 닫혔다.
바로 앞에는, A급 몬스터인 자이언트 멘티스(giant mantis)가 있었다.
키에엑.
결박되어 있는 자이언트 멘티스.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듯이 움찔거리는 그의 모습에,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자이언트 멘티스라.’
A급 몬스터.
그중에서는 약한 편에 속하며, 그래서 실험의 용도로 많이 사용되는 개체다.
그렇다고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외피의 단단함만 따지자면 A급에서도 상위 레벨에 속하며, 날카로운 앞발은 강철이라도 두부처럼 베어버리는 위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사정거리도 일반 몬스터보다는 긴 편이기 때문에, 먼 거리에서 휘두르는 앞발 공격은 마법사에게 매우 위협적이다.
‘내가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초의 상징성.
이제 그것은 없다.
유재명이 최초가 되었고, 강민혁으로서는 후발주자로서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전에는 수호문 출신의 강민혁이라는 거부감이 있었다면, 수호문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마법 혁명을 발표한 강민혁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자신이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린다? 한창 달아오르고 있는 분위기에 불을 붙이는 일이 될 것이다. 유재명에게 최초의 상징성을 넘겼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자신을 ‘마법사’로 대우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확실히 인정을 받을 기회다.
판이 깔렸다.
웨인 번즈의 고집으로, 강민혁은 마법을 캐스팅할 최초의 시간을 벌었다.
강민혁이 마나를 일으키며 마법의 캐스팅을 모두 끝내는 순간, 자이언트 멘티스의 결박이 풀렸다.
탁!
키에에에엑!
자이언트 멘티스가 뛰쳐나왔다. 둘의 거리는 50M도 되지 않는 상황. 자이언트 멘티스가 순식간에 강민혁의 지척에 도달했다. 그런데, 자이언트 멘티스가 공격을 시도하기도 전에 강민혁의 마법이 주변의 지형을 변화시켰다.
“태산.”
쿵!
쿠르르르르르릉.
땅이 뒤흔들렸다.
강민혁이 위치한 땅이 치솟으며, 강민혁은 적의 공격이 닿지 않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였다. 하지만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다. 자이언트 멘티스는 날개를 펼치며 허공으로 뛰어올랐고, 비행형 몬스터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높이의 제약을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때.
“폭발.”
쾅!
콰콰콰쾅!
키에엑.
본격적으로 마법이 사용되었다.
강력한 폭발에, 자이언트 멘티스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추락했다. 펄럭이던 날개는 방금의 폭발로 새카맣게 타버린 상태. 구멍이 숭숭 뚫린 날개는 날개로서의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강민혁은 일부러 날개에 화력을 집중하였고, 바닥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자이언트 멘티스를 향해 마법을 폭발시켰다.
더블 캐스팅.
머리가 팽팽 돌며, 마법들이 빠르게 완성되었다.
“룬 플레어.”
“룬 플레어.”
콰앙!
화르르르르르르르륵!
자이언트 멘티스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 연무장 주변으로는 10m 높이의 철창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강민혁은 바로 그곳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자이언트 멘티스의 점프력으로도 닿을 수 없는 위치. 자이언트 멘티스는 앞발의 가시를 태산의 기둥에 박아서라도 강민혁을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금 올라오기도 전에 강민혁의 마법이 작렬했다.
“룬 플레어!”
콰앙-!
화르르르륵!
강민혁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근접 전투 능력이 아니다.
강화 전사의 도움이 없다 할지라도, 본인의 몸을 스스로 보호하고 A급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
무빙 캐스팅까지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강민혁은 S급 던전 암흑 도시에서 토벌을 진행하며 ‘태산’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 공격적으로는 크게 의미가 없는 마법이지만, 정판호와 초월급 데스 나이트를 분리시켰던 태산의 효과는 확실히 활용성이 뛰어났다. A급 몬스터도 넘볼 수 없는 높이. 태산이라는 카드가 생기면서, 강민혁은 마법사에게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
당연히 태산에도 제약은 있다.
높이가 낮은 공간이나, 자이언트 멘티스가 아닌 진짜 비행형 몬스터를 상대로는 높이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이언트 멘티스는 발딱 뛰어오르며 강민혁을 공격하려고 했으나, 위치의 이점은 너무나도 컸다.
“폭발."
콰앙!
콰콰쾅!
어김없이 작렬하는 마법.
두 개의 뇌가 ‘하나의 마법’을 위해 힘을 집중했다. 몇 분은 걸려야 할 마법이 순식간에 완성되었고, 자이언트 멘티스는 강민혁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이루지 못했다. 벌써 수차례나 얻어맞은 상황에 자이언트 멘티스의 외피는 새카맣게 타버리고 말았다. 5서클의 마법으로도 상처를 입히지 못하는 몬스터가 바로 자이언트 멘티스인데, 강민혁은 그걸 넘어서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건 무력시위였다.
자이언트 멘티스는 외피가 단단하다.
단순히 마법의 방어력만 따지자면, 웨어 울프보다 더 골치 아픈 상대다.
그런데 그런 자이언트 멘티스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휘청거리면서 이제는 제대로 기둥을 타고 올라오지도 못하는 모습은, 이미 자이언트 멘티스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그나마 자이언트 멘티스라 이 정도라도 버틴 것이지, 다른 몬스터였다면 진즉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허어.”
“어찌 이런 일이.”
“...세상에 저런 마법이 존재하다니.”
당황하는 사람들의 음성이 들렸다.
당황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압도.
강민혁은 아무런 위기 없이 자이언트 멘티스를 제압하고 있었다. 단순히 위치라는 이점을 하나 확보했다는 것만으로도, 마법사들의 재앙이라 불리는 A급 몬스터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후발대 영상 안.
그 화면에서 강민혁은 강화 전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만의 힘으로도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건 이 자리에 모인 마법사들에게 묘한 감정을 선사했다.
강민혁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면서도, 마법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사실에 벅차오르는 것이 있었다.
마지막 마무리.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마나가, 결국 자이언트 멘티스의 숨통을 끊었다.
“폭발.”
콰콰콰쾅!
폭발의 위력.
끝까지 저항하던 자이언트 멘티스가 바닥에 추락했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그의 피부는, 이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변했다.
“...이게 대체.”
“정말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다니.”
4서클 마법사.
강민혁이 자이언트 멘티스를 쓰러트리는 것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연무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치 석상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에, 강민혁은 마나로 목소리를 키웠다.
“사실 지금 조금 화가 납니다. 저에게 마법 지식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이제는 증명을 바라는 당신들의 태도가 말입니다.”
이건 연기다.
저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킬 연기.
"저에게 마법 지식을 팔라고 하셨습니까? 10억 파운드는 큰돈입니다. 그 돈만 있다면, 평생 금전적인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겠죠. 그런데 제가 이전에 공개한 지식의 가치는 대체 얼마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제가 대가를 바랐다면, 이미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맞는 말이다.
돈?
강민혁에게 중요한 게 아니다.
붉은 마나석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나, 외적으로 비추어지는 상황도 아쉬울 게 전혀 없다.
“제가 마법 지식을 공개하지 않아서 그리도 못마땅하셨습니까? 수호문과 저를 묶어서, 제가 이루어낸 일을 깎아내릴 정도로? 이 자리가 끝나면 한국에서 발표된 수호문 관련 기사를 확인해보십시오. 그 기사를 본다면, 제가 수호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좌중이 압도를 당했다.
마법 학계의 명사들.
그들이 지금 강민혁에게 문책을 당하고 있었다.
다들 어딜 가서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닐 위치인데, 강민혁을 상대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이언트 멘티스를 쓰러트린 마법의 위력.
그것은 충격적이었다.
자이언트 멘티스의 단단한 외피가 흐물흐물 녹아내려 버린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을 부여했다.
강민혁.
그의 시선이 매그너스 라슨를 향했다.
순간 움찔거리는 그를 향해, 강민혁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국 마법 협회의 매그너스 라슨님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기억하도록 하죠.”
그것으로 끝이었다.
기억하겠다는 말로 상황을 끝내는 강민혁의 모습에, 순간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강민혁.
그가 누구인가?
마법 혁명의 주인공이자, 미래의 대마법사다.
그가 기억한다는 것은, 앞으로 그로 인해 만들어질 미래에서 배척이 된다는 의미일 터.
매그너스 라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크흠.”
“왜 그러게 그런 무례한 발언을 해가지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
그들은 본능적으로 매그너스 라슨과의 친분이 없다는 듯이, 시선을 회피하거나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중에는 상당한 친분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굳이 친분을 티 내려고 하지 않았다.
강민혁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내는 권력이, 지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실체화’가 되는 순간이었다.
82화. < 22. 수호문, 그리고 영국 마법 협회(5) >
상황은 종료되었다.
웨인 번즈는 마법 협회 사람들을 대표해서 강민혁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했고, 강민혁도 더 이상의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강민혁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영국 마법 협회를 떠났다. 그들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고, 떠나기 전에 웨인 번즈에게 애달픈 목소리로 말했다.
“강민혁의 기분을 잘 풀어주셔야 합니다. 그가 만약에 앞으로 마법 지식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오늘 있었던 사람들은 입지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매그너스 라슨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리를 따로 마련하도록 하죠.”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발언이었다.
강민혁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드러냈으니,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죄는 매그너스 라슨에게 있다.
그러나 그를 비난하면서도 강민혁이 마법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아니면 대놓고 침묵으로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내버려 두었던 사람들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매그너스 라슨을 강하게 제지했다면, 애초에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초라한 그들의 모습.
그들이 본래의 소속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대단한 위치에 있는지를 알기에, 웨인 번즈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강민혁의 발언에 힘이 실렸어 마법 혁명이 아니라, 오늘 보여준 힘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인해서 말이야. 과연 수호문의 후계자였던 사람이라는 건가. 힘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
문득 강민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민혁은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한국에서 발표한 수호문 관련 기사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마침 영문 번역된 기사도 있었다.
그 내용은.
[강민혁의 마법 혁명이 발표된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그간 침묵을 지키던 수호문은, 오늘 자 인터뷰에서 "강민혁은 수호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가 수호문으로 돌아오는 일은 절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더불어 수호문은 한국 마법 협회와 공식적으로 협약을 체결했다. 기존에 있었던 교류 관계와는 다르게, 앞으로는 수호문과 한국 마법 협회는 서로 공생하는 명확한 체계를 만들어갈 방침이다. 이는 마법 혁명의 여파로 보이며, 수호문은 변화하는 마법 학계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생각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호문.
그들이 발 빠르게 변화했다.
아직 대부분의 단체는 마법사들의 변화에 권력을 놓치지 않고자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반면, 수호문은 태도를 단번에 돌변했다. 절대적인 갑이 그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일정 권력을 마법사들에게 내어주고, 본인들의 힘을 더욱 강화시키는 실리적인 방법을 택했다.
과연 강덕철이었다.
그에게 강민혁은 최선이었고, 최선이 거절당했다고 해서 차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감정에 호소하고 강민혁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강덕철은 곧바로 다른 차선책을 진행했다.
“...매그너스 라슨이 참으로 곤란하게 됐군.”
그의 음모론.
그 배경에는 수호문이 있었다.
그런데 수호문이 이렇게 강경하게 입장을 밝힐 정도라면, 사실상 강민혁은 수호문에서 제명이다.
강민혁에게는 나쁜 소식일까?
아니다.
그는 강화 전사의 길을 포기하고, 마법사로서의 노선을 택했다. 이번 수호문의 결정은 그런 강민혁의 태도에 ‘신뢰’를 부여하는 것이고, 마법사들은 오히려 강민혁을 더욱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집안마저 버린 강민혁을 상대로, 매그너스 라슨은 음모론을 제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로 인한 결과는 명확하다.
매그너스 라슨은, 아주 제대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
“당신도 늙었어. 주류인 수호문도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상황에서, 그런 실수를 저지른 걸 보면.”
매그너스 라슨.
그가 괜히 불쌍해지는 웨인 번즈 협회장이었다.
강민혁은 아직 영국 마법 협회를 떠나지 않았다.
존 웨슬리의 안내를 받아, 영국 마법 협회의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곳이 협회의 일원들이 수련하는 공간입니다. 아시다시피 마법사들의 수련이란 마나의 파동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특수 물질로 구성한 개별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수련의 방은 이곳 말고도 영국 마법 협회 안에 약 150개 정도 있으며, 덕분에 수련할 공간이 부족할 일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존 웨슬리의 설명은 안내를 가장한 자랑이었다.
그는 영국 마법 협회가 얼마나 좋은 시설을 갖추었는지, 그것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확실히 좋긴 하네.’
수백의 마법사를 수용하는 규모.
영국 마법 협회의 건물 구조만 보더라도 그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세계 마법 연합의 중심세력답게 내부는 상당히 잘 갖추어져 있었으며, 마법사들의 인원도 정말 많았다. 보통 일반적인 마탑들은 50~100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이곳은 오가는 길에 본 마법사들만 하더라도 그 정도는 될 것 같았다. 확실히 개인에 의해 운영되는 마탑과는 다르게, 국가 단위의 지원을 받는 마법 협회의 경우에는 그 규모와 시설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실험실에 도착했다.
“이곳은 영국 마법 협회가 자랑하는 실험실입니다. 이 공간에서 그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수많은 마법들이 탄생했죠. 잠시, 연구자들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실무자들과의 만남.
그들은 강민혁을 발견하자마자, 마치 아이돌이라도 만난 열성 팬인 것처럼 얼굴을 잔뜩 붉혔다.
“가, 강민혁님?!”
“강민혁님이 오셨어!”
“정말 영광입니다.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전투 마법사들에게 강민혁의 인식은 대단한 연구자다.
그러나 연구판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에게, 강민혁은 그야말로 마법의 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에 발표하신 의료 마법의 체계를 보고 제가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는 겁니까? 마나로 상처를 치료하다니. 그것도 생명력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자연의 마나를 활용하는 방법은, 직접 보고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강민혁님을 만나면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마법 학계의 등불이자, 희망입니다.”
“팬입니다!”
“사인 부탁드립니다.”
다들 수염 자국이 진한 아저씨들이다.
그들이 얼굴을 붉혀가며 말하는 모습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강민혁은 미소로 호의를 베풀었다.
그 모습을 존 웨슬리가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게 학자들의 세계에서 강민혁의 위상인가.’
강민혁은 4서클 마법사다.
힘이 필요한 전장에서는 아직 올라가야 할 단계가 많지만, 학자들의 세계에서는 그가 최고였다.
더블 캐스팅, 마나 동화, 의료 마법 등등.
현재 살아있는, 아니 역사를 통틀어도 강민혁만한 업적을 이루어낸 학자는 없다. 아직도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많은 발전을 이루어내고 있지만, 강민혁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강민혁은 뛰어난 학자 한 명이 인생을 바쳐야 성공할 수 있는 평생의 역작(刀作)을 수차례 성공했고, 그로 인해 학자들은 입을 모아 강민혁이 최고의 학자라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몇 분 전.
강민혁의 안내를 존 웨슬리에게 맡기며, 웨인 번즈는 신신당부했다.
“우리는 강민혁에게 실수를 저질렀어. 우리만이라도 강민혁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그의 기분을 풀어줄 필요성이 있어. 그러니 영국 마법 협회를 안내하다가 그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있다면, 협회장의 권한으로 허락할 테니 자네의 판단하에 많은 것을 보여주고 와.”
그 말의 의미.
내부자만이 알 수 있는 일정 선을 넘어도 된다는 뜻이다.
존 웨슬리가 말했다.
“강민혁 님.”
“예?”
“혹시 저희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보시겠습니까?”
예민한 문제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먼저 요청할 수는 없으나, 주인이 허락한다면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면 저야 고맙죠.”
수석 연구자 웨인 라피에르(Wayne Lapierre)는, 마치 이학범 교수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보유하고 있었다.
영국판 이학범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강민혁과의 만남에 살짝 들뜬 표정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에 대해서 설명했다.
“사실 이번 연구는 정말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레드 게이트에서 A급 몬스터인 운디네(Undine)가 나타났습니다. 아시다시피 정령 몬스터들은 등급을 넘어서는 매우 강력한 ‘권능’을 발현하는데, 운디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운디네를 쓰러트리는 과정에서, 저희는 매우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연구 자료를 넘겼다.
일명 운디네 프로젝트.
페이지를 넘기자, 웨인 라피에르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바닥에 고여있는 웅덩이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에서 ‘수(水) 속성의 마나’가 딸려 나오더니 마법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집중했습니다. 수 속성의 마나만을 빼내는 방식. 만약 저것에 성공한다면, 인간 마법사들도 강력한 물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작.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는 말이 많았다.
그러나 웨인 라피에르는 천재였고, 10년을 운디네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결과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실험 결과, 우리는 운디네의 방식을 구현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마나에서 원하는 속성의 마나만 빼내는 방식을요.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수 속성의 마나는 물의 마법을 증폭시키는 위력이 있으나, 저희의 힘으로는 컨트롤할 수 없었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마법사들은 서클이 붕괴되는 현상을 보였고, 그러한 실패 사례를 참고해서 저희는 마법을 발현시키는 서클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수 속성에 특화된 서클. 운디네와 마찬가지로 물을 다루는 원천이 있다면 우리 또한 물의 권능을 발현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현재는 물의 서클을 개별하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
강민혁이 놀랐다.
웨인 라피에르.
그는 진짜 천재였다.그가 말하는 수 속성의 마나라는 것은, 엘리샤가 사용했었던 홍염의 마법과 그 기반이 비슷했다.
‘엘리샤가 화염의 서클을 형성했던 것처럼, 웨인 라피에르는 물의 서클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방법을 알아냈어. 과연 영국 마법 협회 구나. 이런 인재가, 실험실의 수석 연구자로 있다니.’
웨인 라피에르가 말하는 물의 권능.
그것은 클리스만의 세상에도 있다.
홍염의 마법사라 불리는 엘리샤가 화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처럼, 포세이돈(Poseidon)이라는 마법사가 운디네와 같은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연구 자료도 읽었었는데, 그 힘의 기반을 지금 웨인 라피에르가 발견한 것이다.
겨우 100년의 문명.
연구 기간은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영국 마법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고는 하나, 웨인 라피에르는 2000년의 마법 문명에서도 대단하다고 말할 만한 지식에 접근한 상태였다. 완전한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수백 년의 세월이 더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실험.
웨인 라피에르는 실험의 내용을 밝혔다.
서클을 완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도 실마리를 잡지 못한 상태라, 강민혁이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어.’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화염의 서클을 형성한 경험이 있기에, 시행착오를 겪는다면 물의 서클도 만들어낼 수 있다.
강민혁이 다른 속성의 서클을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
그것은 바로 특정 속성의 마나를 빼내오는 게 정말 위험천만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웨인 라피에르가 그러한 문제를 해결했으니, 사실상 강민혁의 입장에서는 거의 완성된 연구나 다름이 없었다.
강민혁은 영국 마법 협회에 방문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의 권력을 실체화시키는 것.
매그너스 라슨이라는 인물이 먼저 실수를 저질러준 덕분에, 강민혁은 손쉽게 의도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영국 마법 협회에 ‘가능성의 씨앗’을 뿌리는 것.
그래서 존 웨슬리의 안내에 응했다.
그는 본인의 판단으로 강민혁을 연구실로 인도했다 생각하지만, 강민혁은 애초에 이곳에 목적이 있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혹시, 제가 이번 실험을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가능성의 씨앗.
그리고 물의 권능.
웨인 라피에르의 연구는, 일거양득(一學兩得)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83화. < 22. 수호문, 그리고 영국 마법 협회(6) >
속성 서클.
그에 관해서는 이전에도 도전한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웨인 라피에르처럼, 마나에서 실제로 ‘속성’을 분리시킨 성공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분리된 마나. 그것을 토대로 물의 서클을 만들어야 해.’
강민혁이 연구 자료를 펼쳤다.
웨인 라피에르가 강민혁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었고, 강민혁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물의 속성을 분리시키는 방법은 매우 위험하다. 만약 그 체계를 잘못 따라갈 경우 마나의 붕괴로 서클이 파괴되거나, 최악의 상황으로는 몸 안의 수분이 전부 증발해버린다. 고로 실험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뮬레이션 훈련이 필요하며, 평소 물과 친근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속성 분리에 많은 도움이 된다.]
속성 분리의 위험성.
이러한 사실을 알아내는 데, 웨인 라피에르는 많은 연구자들을 잃었을 것이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마법사들.
보통 그들이 마법의 발전을 위해서 숭고한 희생을 택한다. 연구 자료에서 나오는 서클이 붕괴되고 수분이 증발되는 부작용은, 그들의 몸에서 직접 일어난 현상이라는 뜻이다. 확실히 힘의 근간은 화염의 서클과 다르지 않았다. 그 또한, 부작용으로 내부가 불타오르는 현상이 있었다.
곧바로 실험에 들어갔다.
강민혁은 자신의 생각을 시뮬레이션 훈련을 통해 구현시켰다.
‘일단은 속성 분리.’
그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웨인 라피에르는 정말 안전한 방법을 찾았고, 문제는 지금부터 그 마나를 활용하는 방법에 있었다.
엘리샤는 말했었다.
“화염의 마나를 서클로 인도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작업이야. 화염의 마나를 하나의 생명처럼 대해야 하고, 아기처럼 어르고 달래야 말을 들어주거든. 그렇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서클과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그건 아주 끔찍한 재앙을 의미하지.”
속성 분리.
그리고 서클로의 인도.
인도 과정은 다행히도 화염 속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민혁은 그것에 대한 입력값을 설정하였고, 실험 모니터에서 마나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라락.
머릿속의 책장이 넘겨졌다.
마법 도서관에서 보았던 책 중 ‘인물 탐구:포세이돈’이라는 책을 펼쳤다.
엘리샤를 알게 된 이후, 강민혁은 속성 분리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에 대해서 알아보았었다.
[포세이돈이 어떻게 물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그 기반은 속성 분리에 있다. 물의 속성만으로 서클을 형성하고, 포세이돈은
그것을 바탕으로 강력한 물의 지배력을 보인다. 속성 분리는 매우 위험한 방법인데...이러한 시도들을 해보았지만, 결국 성공할 수
없었다.]
책의 저자.
그는 속성 분리에 실패했다.
웨인 라피에르는 그만큼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다. 2000년의 마법 문명이 형성된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속성 분리는 매우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었다. 당연히 성공한 사람이 생겨서 엘리샤와 포세이돈 같은 사람이 탄생했지만, 그것은 대중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만큼 희귀하고, 성공하기 힘든 마법이라는 것이다.
실패의 경험.
그건 강민혁에게 좋은 거름이 되었다.
강민혁은 비슷한 성공 사례를 알기에, 그때 저자가 말했던 실패 경험을 참고해 실험을 진행했다.
삑-
[실패했습니다.]
삑-
[실패했습니다.]
반복되는 실패.
시뮬레이션 상으로 가상의 서클은 계속해서 붕괴되었다. 그러나 강민혁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첫술에 배부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비슷한 성공 사례와 웨인 라피에르가 말해준 속성 분리 방법. 아무리 많은 성공 조건을 가지고 진행하는 실험이라지만, 둘의 결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 속성은 그 속성만의 고유 체계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클리스만의 세상에 서도 두 가지의 속성 분리를 성공시킨 마법사는 없었다.
강민혁은 실험에 무섭게 빠져들었다.
머릿속이 활짝 열리며, 시련의 탑에서 강화되었던 두뇌 능력이 ‘물의 서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강민혁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 수도 없이 실험을 반복했다.
그리고 존 웨슬리와 웨인 라피에르는,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웨인 라피에르가 말했다.
“...정말 대단하네요. 강민혁님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 정도로 빠르게 정답을 찾아가다니. 정녕 같은 인간인지 의심이 될 정도네요.”
일련의 상황.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 웨인 라피에르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바로 옆.
존 웨슬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지금 잘 하고 있는 겁니까? 제 눈에는 실패만 반복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실패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습니다. 완벽한 하나의 답을 찾아내기까지, 수천, 수만 번의 실패를 반복해야 하지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 과정에서 어떤 결과를 얻느냐입니다. 보통은 수천 번 이상의 실험을 해야 성공률이 1% 정도 오르는데, 강민혁님의 실험 결과를 보십시오. 처음에는 속성 분리를 성공하고 마나가 폭주하는 바람에 성공률이 62%로 끝났습니다. 그것은 저희가 개발해낸 연구의 한계였고, 지난 1년간 62%에서 조금도 진척되지 못했습니다.”
62%.
영국 마법 협회의 연구자들은 그 수치를 마(魔)의 벽이라 불렀다.
그 벽을 조금만 넘으면 인도의 과정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매번 똑같은 단계에서 실패했다.
연구가 슬럼프에 빠졌다.
운디네를 연구해서 속성 분리를 성공시킨 것은 정말 대단한 업적이었지만, 원래 연구는 99%를 완성해도 나머지 1%를 완성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것이다. 답보 상태에 웨인 라피에르는 상당한 답답함을 느꼈고, 그래서 강민혁에게 연구를 공개하는 것을 허락했다.
강민혁.
그라면 괜찮았다.
아무리 외부인이라지만, 그가 세상에 밝힌 지식의 값어치는 상당하지 않은가.
그와 같은 사람과 지식을 공유하고 발전하는 것은, 오히려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듣고 보니 정말 대단하네요.”
모니터.
그곳에는 강민혁의 실험 성공률이 나왔다.
존 웨슬리 또한 마법 지식의 수준이 대단하지만, 그는 실험실의 체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이다. 그래서 모니터에서 올라가는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몰랐었다. 그런데 웨인 라피에르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 수치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알 수 있었다.
삑-
[실패하셨습니다.]
[성공률 63%]
삑-
[실패하셨습니다.]
[성공률 64%]
성공률이 빠르게 올랐다.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강민혁은 반드시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웨인 라피에르가 넋을 잃었다.
마치 환상적인 마법 쇼라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그는 눈앞의 기적에 빠져들었다.
“이제야 강민혁님이 어떻게 그 대단한 연구들을 성공시켰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는 그냥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종류의 천재였던 겁니다. 영국 마법 협회의 엘리트들이 전부 달라붙어도 62%에서 조금도 연구를 진척시키지 못했는데, 설명을 조금 듣고 실험에 들어간 강민혁님은 벌써 우리보다 많은 성과를 이루어내지 않았습니까? 존 웨슬리 대마법사님.”
“말씀하시죠.”
"솔직히 말해서, 전 제가 세계에서 제일의 연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단언컨대 이 세상에서, 강민혁님보다 뛰어난 연구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물론이거니와, 제가 겪었던 모든 연구자들은 강민혁님과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가능성의 씨앗.
그것이 웨인 라피에르의 마음에 심어졌다.
언제 씨앗이 발아(發芽)할지 모르나, 그는 이제 강민혁이라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실험은 계속되었다.
존 웨슬리와 웨인 라피에르는 강민혁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식사 시간이 되었지만, 오로지 실험에만 몰두하는 강민혁의 모습에 감히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해가 저물었고, 해가 떴다.
그리고 다시 해가 저물고, 다시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
탁.
“...끝났습니다.”
강민혁은 길고 길었던 실험의 종지부를 찍었다.
실험 모니터.
그곳에는, 삼일의 결과가 떠올라 있었다.
[성공률 98%]
대단한 결과다.
완벽한 성공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웨인 라피에르는 잔뜩 흥분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체 어떻게 마나의 인도에 성공하신 겁니까? 저희가 수도 없이 반복했던 실험에서는, 속성 분리에 성공한 마나가 서클의 마나와 부딪쳐서 폭주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겨우 이틀 만에 안전한 인도 방법을 찾아내시다니. 그 비결을 알고 싶습니다.”
비결이란 건 없다.
강민혁은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반복했고, 결과가 나왔을 뿐이다.
강민혁이 말했다.
“웨인 라피에르님이 가장 중요한 속성 분리를 성공하신 덕분입니다. 제일 위험한 과정이 해결되었고, 그래서 자료를 토대로 실험을 반복하니 정답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아무런 기반이 없이 실험을 진행했더라면, 결코 짧은 시간에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없었을 겁니다.”
“아닙니다. 그래도 강민혁님은 성공하셨을 겁니다.”
웨인 라피에르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은근히 상대를 띄워주는 강민혁의 화법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98%의 성공률이 눈이 확 박혔다.
성공률 100%.
완벽한 결과가 나와야만, 본격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은 결과를 예상하는 과정일 뿐이지, 실제로는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래도 대단한 결과임에는 확실했다.
속성 분리 임상실험을 성공하고서는 조금의 진척도 없었는데, 드디어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제 한계는 여기까지입니다. 서클에 문제가 생겨서 마지막 2%는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그건 웨인 라피에르님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해결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2%.
사실, 강민혁은 실험에 성공했다.
그런데도 실험에 적용시키지 않은 이유는, 그 2%라는 변수가 일어나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마나로 형성한 서클. 그걸로는 결국 2%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강화 문명.
이 세상은 강화액이라는 특수한 방법으로 빠르게 강해진다. 마법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마나를 몸에 주입하고, 그것으로 인위적으로 서클을 형성한다. 강민혁과 같이 자연의 마나로 직접 형성한 것과는 달리 단단하지 못한 서클은, 물의 서클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2%의 변수를 일으킨다. 고로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라면, 서클 강화에 대해서도 말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딱 여기서 멈추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충분히 감사함을 느끼고 많은 대가를 받을 것일 테니 말이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존 웨슬리.
그가 고개를 숙였다.
특별한 대가를 제시한 것도 아닌데, 연구를 도와준 강민혁의 모습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연구.
강민혁은 ‘정답’을 이 세상에 공개한 것이 아니다.
웨인 라피에르의 마나 분리 방법과 엘리샤의 화염 속성 서클 형성 방법. 좋은 정보들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 정보를 조합해서 정답을 만들어내는 것은 강민혁의 능력이었다. 클리스만에게 지식을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월하심법.
등급 외 마법.
그것들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진짜 마법사로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냈다는 생각에, 강민혁은 쾌감이 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양쪽 세계의 지식을 알고 있다면, 그 지식을 토대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어. 수호 심법을 토대로 월하 심법과 등급 외 마법을 만들어내고, 웨인 라피에르의 마나 분리와 엘리샤의 화염 서클 생성법으로 물의 서클의 형성 방법을 알아낸 것처럼 말이야.’
마법사.
진정으로 마법사가 된 기분이었다.
영국행은 옳은 선택이었다.
자신의 권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웨인 라피에르에게 가능성의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을 모두 떠나서, 연구를 스스로 성공했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지금부터는 가능성을 열어두자. 있는 지식을 수동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자세도 필요해.’
몸이 달아올랐다.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날 저녁.
한국에 도착한 강민혁은, 물의 서클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연구실 밖을 빠져나오지 않았던 그는, 며칠 뒤 클리스만과 약속한 날을 맞이했다.
빙의.
이제는 클리스만으로서 눈을 뜰 차례였다.
84화. < 23. 홍염의 비기 >
지독한 통증.
바짝 말라버린 입.
아직 시야가 되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강민혁은 고통에 신음했다.
‘설마 또 괴롭힘을 당한 건가?’
그건 아닐 것이다.
제임스 체스터와의 사건은 동급생들에게 강력한 임팩트를 선사했고, 그린 드래곤 상황 이후 클리스만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달라졌다. 검 한 자루로 A급 몬스터를 상대한 클리스만. 당시의 상황이 CCTV 영상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었기에, 동급생들은 눈만 마주쳐도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마침 시야가 회복되었다.
숙소라는 사실을 확인한 강민혁은, 그제야 자신이 왜 고통에 시달렸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이 상처들은?”
당황스러웠다.
클리스만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어디서 생겼는지 모를 상처들이 전신을 뒤덮고 있었고, 그중에는 아직 아물지 않은 큼지막한 상처도 있었다. 붕대를 둘둘 감은 부위는 피로 물들었다. 그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통증이 강민혁의 표정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었는데, 강민혁은 붕대를 살짝 풀어 그 안의 모습을 확인했다.
‘몬스터에게 당한 상처야.’
확실했다.
클리스만은 몬스터에게 당했다.
의료 마법으로 어느 정도는 치료한 것으로 보이나, 그런데도 상처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당시에는 상처가 대단했을 것이다. 살점이 거의 뜯겨나갈 정도가 아니라면, 이 정도의 흔적이 남을 리가 없다.
그리고.
“...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클리스만의 단전.
그 안에는 생각 이상의 마나가 차올라 있었다.
한 달 동안 10의 마나를 축적할 것을 예상했다면, 클리스만의 마나는 무려 30. 클리스만이 마나의 천재라는 전제 조건을 고려한다 할 지라도,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클리스만의 손은 딱딱한 굳은살로 가득했다. 겨우 한 달 만에 이 정도의 수준으로 성장하려면, 강민혁의 추측으로는 ‘수련’을 위해 아주 위험한 일을 경험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결국 해답은 클리스만에게 있다.
시선을 돌리니, 마침 책상 위에 일기장이 보였다.
강민혁은 곧바로 책장을 펼쳤다.
[강해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네가 가르쳐준 수호 심법, 수호 검법. 그것이 나를 살아 숨 쉬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성장 속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 왕실 마법 아카데미는 검사가 성장하기에는 좋은 환경이 아니었고, 그래서 나로서는 선택할 필요성이 있었다.]
‘선택이라니.’
검사로서 빠르게 강해지는 방법.
그건 하나밖에 없다.
바로 전장(戰場).
그곳에서의 실전 경험이야말로, 검사를 발전시키는 좋은 자양분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카데미 수업이 끝나고 장벽 너머로 이동했다. 그리고 강해지기 위해서 투쟁했다.]
“...장벽 너머라고?”
예상은 옳았다.
클리스만의 선택은 전장이었으나, 그게 장벽 너머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장벽.
몬스터 랜드와 인간들의 세상을 나눈 경계선.
그곳은 영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데다, 클리스만의 설명은 ‘장벽 너머’라고 말했다. 섬인 영국에서 매일 장벽 너머로 가는 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장벽 너머는 인간들의 삶을 허락하지 않는 불모지(不毛地)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그 지옥의 땅을 매일 찾아갔다는 말을, 강민혁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혔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장벽 너머로 이동하는 포탈(portal)이 열릴 것이다. 나를 위해 그곳 너머로 가라고 강요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곳에서의 시간이 나를 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고, 혹여 ‘나의 몸’이 죽는다 할지라도 너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육체를 잃은 나의 영혼은 소멸되겠지만, 너는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 세상의 법칙이니까. 그리고 장벽 너머에서 언제고 ‘심연의 악마’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건 너에게도 값진 경험이 될 거라 장담한다. 심연의 악마는, 이 세상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너의 세상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재앙일 테니까. ]
그때였다.
강민혁이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는 순간.
화악-
밝은 불빛이 일어났다.
숙소 안.
놀랍게도 그곳에, 클리스만이 말한 포탈이 생성되었다.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포탈.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도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만 사용할수 있다는 공간 마법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사용되었다. 그것도 그것을 사용한 마법사는 보이지 않았다. 강민혁의 눈앞에 포탈이 나타났을 뿐이고, 클리스만의 설명대로라면 포탈 너머에는 몬스터 랜드가 펼쳐질 것이다.
‘갈수록 너의 비밀은 그 무게를 더하는구나.’
어떻게.
항상 따라붙는 의문이었다.
마법은 클리스만의 힘이 아닐 테니, 그렇다면 그의 배경이 포탈을 형성했다는 것이 옳은 추측이다.
누구일까.
이런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
그들은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도 미지의 영역이라 불리는 마법을 알고 있는 데다, 왕실 마법 아카데미에도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더욱 미스터리였다. 그런 사람들이 대체 왜, 마법을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을 택한 걸까. 그들에게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던 걸까?
고민은 답을 내놓지 못한다.
결국 지금은 선택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강민혁으로서는 클리스만의 메시지가 잊혀지지 않았다.
‘심연의 악마.’
다시 한번 거론되었다.
예전에, 클리스만은 그에 대해 말했었던 적이 있다.
[......예전에만 하더라도 나는 이 세상의 힘은 마법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칼을 쥐고 몬스터와 싸우던 그 시절, 로브를 펄럭이며 마법을 사용하는 선택받은 자들의 모습은 내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게도 새로운 길이 생겼다. 나는 수호문의 심법을 통해 강해질 것이고, 심연(深滿)의 악마들을 모조리 몰살할 것이다.]
클리스만의 일기에 나왔던 내용.
처음에는 심연의 악마라는 것이 그냥 몬스터를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도 그들을 모른다는 것을 보면, 단순한 몬스터는 아니라는 것일 터.
퍼즐이 흩뿌려졌다.
퍼즐의 형체가 짐작되질 않았다.
결국.
‘포탈 너머로 가야 하는 건가.’
클리스만과 그의 조력자.
그들에 대한 의문은 많다.
그리고 클리스만이 말하는, 죽음이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친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다만.
“이게 네가 원하는 방식이라면, 기꺼이 은혜를 갚겠다.”
아직은 신뢰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강민혁은 클리스만을 위해 검을 들 것이다.
한편에 기대어있는 대검(大劍)을 챙긴 강민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포탈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화악-
밝은 불빛이, 그대로 강민혁을 집어삼켰다.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허름한 숙소 안이었다면, 지금은 햇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우거진 숲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신경을 예민하게 자극하는 숲의 어둠. 그리고 코를 간질이는 퀴퀴한 냄새. 미지의 세상으로 알려진 장벽 너머는, 듣던 대로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정말 장벽 너머일까?’
장벽.
인간과 몬스터들의 땅을 나눈 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철저하게 격리되었던 이 땅은,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서식하는지 그 숫자가 예상되지 않을 정도.
확실한 건 추정치에 의하면 수억 마리의 몬스터들이 장벽 너머에 존재한다고 했다. 게이트 현상이 발발되기 이전만 하더라도 몬스터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주기적으로 일제히 장벽을 공격하는 현상을 보였다. 그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2000년 만에 게이트 현상이 나타난 것처럼 차원의 균열로 인한 현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몬스터들의 개체가 너무나도 많아지는 바람에 범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지의 땅.
강민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강민혁으로서도, 이곳에는 한치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때였다.
사삭-
‘뭔가 있다.’
수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처음에는 작은 소리를 내더니,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수풀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사사삭-
‘온다.’
꽈악.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분명히 지금 인간의 냄새를 맡았다. 예민하게 돋아오르는 감각. 들썩이던 수풀에서 괴생명체가 튀어나오는 순간, 강민혁이 검에서 오라를 일으켰다.
크아아아악!
‘...아울베어(Owlbear)?!’
A급 몬스터.
매우 희귀한 개체로, 아울베어의 파괴력은 같은 A급 중에서도 상위에 해당하는 괴물 같은 녀석이다.
고로.
카앙-!
주르르르르륵.
“크윽."
아울베어의 앞발 공격에 강민혁이 그대로 뒤로 밀려났다. 그런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 있던 풀숲도 들썩이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른 아울베어가 나타나 강민혁을 공격했다.
크아아악!
캉!
강민혁이 아울베어의 앞발 공격을 검으로 쳐냈다. 그리고 곧바로 아울베어의 외피를 베어버렸으나, 오라의 힘으로도 아울베어의 외피를 깊게 베어내지는 못했다. 살짝 베이며 피가 배어 나오는 정도? 강민혁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지는 순간, 아울베어가 동시에 강민혁을 덮쳤다.
카앙!
카카카캉!
속이 진동했다.
아울베어의 공격에 강민혁은 정신없이 뒤로 밀려났다. 올빼미의 얼굴을 한 아울베어의 아가리가 기괴하게 쩍 벌어졌고, 머리가 이리저리 회전하며 강민혁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장면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딱딱거리는 주둥이가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강민혁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아울베어의 공격을 전부 쳐냈다.
그리고.
화르르르륵.
콰앙!
크아아악!
순간적으로 일으킨 오라로 아울베어를 뒤로 밀어냈다.
단단한 아울베어의 외피조차도 쩍 갈라지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 순간, 강민혁의 검이 번뜩였다.
‘섬멸(織減).’
수호문의 비기.
오라의 힘을 강화시켜서 적을 단번에 베어버리는 일격필살의 기술. 현실에서의 강민혁으로서는 사용할 수 없었던 기술이 발현되며, 활활 타오르는 오라가 아울베어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러자 아울베어의 목이 갈라지더니, 얼굴이 바닥에 떨어지며 붉은 피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촤아아아아악!
피의 비.
그 안에서 또 다른 아울베어가 달려들었다.
그리고 치열한 접전 끝에, 강민혁은 마지막 아울베어의 목마저 베어버렸다.
서걱!
툭.
데구르르르.
목이 떨어져 나가는 아울베어.
A급 몬스터를 동시에 2마리나 처리한 상황에, 강민혁의 얼굴이 묘한 감정으로 얼룩졌다.
“...이게 뭐지?”
클리스만.
그의 몸은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그게 클리스만이 목숨을 걸고 수련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방금의 감각은 상당히 낯설었다.
아울베어.
그들을 처리하는 순간 분명히.
‘미세하지만 내 마나가 회복되었어. 정확히는, 마나의 절대량이 늘어났어.’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클리스만이 말했던 강해진다는 의미는, 단순히 전장에서의 경험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단어 그대로의 성장.
마치 게임의 퀘스트를 통해서 경험치를 얻는 것처럼, 몬스터를 처리하면 실질적인 보상을 얻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불쑥 떠오른 의문.
하지만 의문을 해소할 충분한 시간은 없었다.
이곳은 몬스터들의 땅.
크르륵.
크르르륵.
‘일단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자.’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소리에, 강민혁은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85화. < 23. 홍염의 비기(2) >
시작은 아울베어였다.
이후부터는 시체 처리반이라고 불리는 놀(noil)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놀은 아울베어와는 다르게 D급밖에 되지 않는 몬스터지만, 피 냄새를 맡은 그들은 수십, 수백 마리의 무리를 지어 떼로 공격하는 습성이 있다. 그로 인해, 강민혁은 쉴 틈 없이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서걱!
베고.
또 베고.
강민혁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놀의 머리가 날아갔다.
얼마나 많은 놀을 죽였는지 숫자를 셀 겨를도 없었다.
결국 수백 마리의 놀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나서야, 강민혁은 숨을 돌릴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후훅, 후욱.”
숨이 차올랐다.
일단 강민혁은 최대한 안전한 곳에 몸을 숨겼다. 흙을 몸에 덕지덕지 문질러서 인간의 냄새를 옅게 만들었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클리스만이 자신에게 말한 시간은 6시간이다. 그 시간이 지나야 포탈이 다시 열린다고 했기에, 체력을 분배할 필요성이 있었다.
‘마나가 확실히 늘었어.’
아울베어를 처리할 때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미약한 양이었지만, 강민혁의 예민한 감각은 마나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포착했다.
다행히도 강민혁은 일기장을 챙겼다.
책장을 펼쳐, 미처 확인하지 못한 후반부의 내용을 확인했다.
[만약 네가 나를 위해서 장벽 너머로 넘어간다면, 예민한 너의 감각으로는 몬스터가 내 육체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지. 그건 고대(古代) 마법의 효과다. 몬스터들을 죽이는 대가로, 그들의 생명력을 얻는 것이지. 이로 인해 나는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기반을 얻었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마법은 아니다. 괴물들의 생명력을 얻으면 얻을수록, 내 정신은 점점 야성(野性)에 지배당하게 된다. 그러나 내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강해지는 것뿐이다. 강해지고 더 강해져서, 몬스터들을 모조리 몰살시키는 것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고대 마법.
이해가 되지는 않으나,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강민혁이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를 근거로 제시한다면, 강민혁으로서는 그저 믿는 수밖에 없다.
‘가족을 잃은 원한이 너를 이렇게까지 만든 건가.’
클리스만.
그의 정체는 모른다.
그가 정말 클리스만인지,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러나 클리스만이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클리스만은 인과율의 법칙을 어기면서까지 강민혁으로 하여금 자신의 몸에 빙의시켰고, 이번에는 고대 마법으로 강해지는 방법을 택했다. 그가 말하는 대가는 항상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의 안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듯이, 클리스만은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장벽 너머.
수호 검법이라는 힘을 얻자마자, 클리스만은 강해지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대담한 선택을 내렸다.
강민혁은 강하다.
그래서 몬스터들을 상대로도 무사할 수 있었으나, 클리스만은 몸의 상처가 증명하는 것처럼 이곳에서의 시간이 절대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장벽 너머에서의 시간을 감내했다. 한 달 사이에 강해진 클리스만의 육체는, 그러한 시련을 대가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참 기구한 인생을 사는구나.”
한낱 인간.
수십억의 인구 중에, 클리스만은 겨우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그런데 혼자 발악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의 행보를 알아주지는 않지만, 클리스만은 몬스터를 몰살키기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픈 기억만 내려놓는다면, 그의 삶은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
본인이 알고 있는 마법 지식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그를 떠받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클리스만의 선택이다.
강민혁은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도와줄 것이다.
탁.
검을 집었다.
남은 시간은 4시간 정도.
앞으로 4시간이 흐르면, 포탈이 다시 형성되며 숙소로 돌아간다.
‘그 시간을 허투루 쓸 수는 없지.’
짧은 시간.
그 안에 최대한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클리스만이 조금은 안전하게 장벽 너머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 테니까.
밤은 깊었고, 어둠이 강민혁을 집어삼키는 순간 강민혁은 아주 길고 긴 4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화악-
머리가 핑글 돌았다.
정신을 차리자, 강민혁은 다시 숙소로 돌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후욱, 후욱.”
숨이 진정되질 않았다.
포탈이 열리기 직전까지도, 강민혁은 몬스터들의 공격에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싸움을 거듭해야만 했다.
그러나 살았다.
하얀 불빛이 강민혁을 집어삼켰고, 강민혁만을 본래의 공간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현재.
강민혁은 일단 공용 샤워실로 이동해서, 피로 찌든 몸을 씻어냈다.
쏴아아아-
“...크윽.”
쓰라린 통증이 밀려왔다.
강민혁이라고 해서 무사했던 것은 아니다. 수도 없이 달려드는 몬스터들로 인해서 강민혁도 몸에 상처가 생겼고, 그 통증을 이겨내며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였다. 사실 상식적으로는 체력적인 문제로 쓰러지는 것이 정상이었던 상황. 그런데 ‘생명력’을 흡수하는 능력이 강민혁에게 대항할 여력을 부여했다. 그게 없었다면, 강민혁은 몸을 숨기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클리스만.’
거울 안의 모습.
낯설었다.
14살이었던 클리스만이, 지금은 20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성숙하게 변했다.
서양인이라 이렇게 성장하나 싶기도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확실히 클리스만의 성장 속도는 빨랐다.
생명력의 효과 때문인 걸까.
이 정도면 노화(老化)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았다.
일단 클리스만에 관한 생각은 털어냈다.
그가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강민혁이 아는 정보만으로는 알아낼 사실이 없다. 전에는 클리스만의 정체를 알아보겠다고 여기저기 알아보았으나, 현재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클리스만.
그는 이 세상에서도 미스터리였다.
샤워를 끝내자 피로가 밀려왔다.
하지만 강민혁은 휴식이 아니라, 책상에 앉아 한편에 있던 책을 펼쳤다.
지금부터는 클리스만의 메시지를 읽는 것이 아닌, 강민혁으로서 지식의 성장을 할 차례였다.
이번 빙의.
클리스만은 크게 분류해서, 총 네 가지를 준비했다.
[최상급 5서클 마법]
[최상급 6서클 마법]
[최상급 7서클 마법]
보통은 강민혁이 서클을 형성하면 그에 해당하는 마법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최상급 7서클 마법까지 해서, 무려 수백 개의 마법이 책에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정말 7서클 최상급 마법도 알고 있었구나.”
7서클.
하급이면 모르겠지만, 최상급 7서클 마법은 보물 중의 보물이다.
8서클 마법부터는 천외 천(天外天)의 세계이기 때문에, 사실상 최상급 7서클 마법이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마법 중에는가장 강력한 수준. 그러한 지식을 클리스만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책에 기록해놓았다. 누가 이 책을 보았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 장난을 친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할 일이 많았다.
이걸 전부 익히려면, 향상된 두뇌 능력으로도 시간이 조금 걸릴 터.
강민혁은 마지막 네 번째 지식을 확인했다.
[정령 마법]
“...정령 마법이라고?”
정령.
예상치도 못한 단어였다.
강민혁의 세상에서 정령은 ‘몬스터’다.
이 세상을 위협하는 몬스터.
그런데 지금 클리스만은, 정령 마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강민혁이 페이지를 넘기자, 정령 마법에 관한 클리스만의 설명이 보였다.
[정령 마법은 원소 마법의 힘을 한 단계 강화시켜주는 매우 강력한 ‘힘’이다. 예로 들자면 포세이돈이라는 마법사가 있다. 그는 수 속성의 서클을 형성해서 물의 마법을 강화시키는 방법을 알아냈고, 정령 계약을 통해서 물의 지배력을 높였다. 주변에 존재하는 물을 다스리고 마법으로 변화시키는 능력. 그것이 바로, 정령 마법인 것이다.]
포세이돈.
그의 비밀은 강민혁이 궁금해하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클리스만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정확히 ‘해답’을 제시해주었다.
“정령 마법이라.”
아무래도 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았다.
포세이돈.
정령 마법.
그리고 수 속성 서클.
강민혁은 얼른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날이 밝았다.
아카데미로 등교한 강민혁은, 곧바로 마법 도서관으로 향했다.
[정령(精靈)]
한권의 책.
강민혁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령은 미스터리한 존재다. 몬스터가 세상에 나타난 직후, 몇몇 마법사들은 ‘정령계’라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차원의 균열을 통해 드러난 새로운 세상.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접근하지 못하며, 정령은 인간들에게 강한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세상에 나타나는 정령의 경우에는 인간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정령의 강력한 권능을 활용할 방법이 있다고 말하며 실제로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의 일. 이 세상에서는 이제 정령이 없다. 어쩌면 그 세상으로 통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나, 확실한 건 정령은 더 이상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정령.
그들은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과거의 기억’으로 남았다.
정령은 사라졌다.
강민혁의 세상에서는 몬스터로라도 나타났으나,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는 아예 멸종한 존재가 되었다.
그 말인즉.
‘포세이돈은 이제는 멸종되었다고 알려진 정령과 계약에 성공한 케이스야.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수 속성의 서클을 형성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물의 지배력을 높였는지 알지 못하는 거지.’
포세이돈의 마법을 탐구한 사람들.
그들의 연구가 정령의 영역까지 닿지 못한 이유였다.
이미 멸종되었다고 알려진 정령과 계약했다는 가설은, 멸종 1000년이 지난 지금 말이 되질 않았다.
클리스만의 지식.
그것은 정령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정령 계약.
그들의 차원이 위치하는 좌표와, 어떻게 하면 그들과 계약할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설명을 덧붙였다.
[정령을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 포세이돈은 벽파(善波)의 마법을 사용한다. 그에 대해서는 나도 알지 못한다. 정령 마법은 일인전승으로 내려지는 것이고,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정령과 계약하는 방법뿐이지. 하지만 난, 이것만으로도 네가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클리스만이 알려준 것은 정답이 아니다.
그는 강민혁에게 ‘미완성의 가능성’을 말해주었다.
정령과 계약하는 방법을 알았지만, 강민혁으로서는 정령의 힘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몰랐다.
수많은 책을 읽었다.
정령과 포세이돈과 관련된 책을 모조리 읽었으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지식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들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추측할 뿐, 결국 명확한 대답을 내놓는 사람은 없었다.
강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문은 책에서만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책에 답이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는 일이다.
강민혁.
그가 한 인물을 찾았다.
그의 방문에, 상대는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뭐야? 한달 동안 날 아는 체도 하지 않더니, 왜 이제와서 아는 척이야?”
상대는 바로 엘리샤였다.
엘리샤는 강민혁이 찾아오자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지난 한 달.
엘리샤는 강민혁에게 강한 관심을 표출했다. 이성적인 관심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강민혁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강민혁은 엘리샤의 말에도 전혀 반응해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서, 엘리샤는 강민혁에 대한 호감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까칠한 반응.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예상이 되었다.
그러나, 강민혁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선배, 이번에도 제가 거래를 제안해도 되겠습니까?”
“거래라고?”
“예."
“네가 뭘 제시하든 간에 난 승낙할 생각 없어. 그러니까 당장 꺼......."
“일인전승으로 내려오는 홍염(四葬)의 마법. 일인전승의 규율을 어기고, 그것을 제게 알려주십시오.”
“이 새끼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엘리샤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강민혁은 생각을 전환했다.
엘리샤의 서클 형성 방법으로 수 속성의 서클을 형성한 것처럼, 엘리샤의 지식을 알게 된다면 홍염의 마법은 물론이고 벽파의 마법도 알 수 있다. 홍염과 벽파는 모두 정령 마법으로부터 비롯되는 지식. 그렇기에, 강민혁은 그녀가 승낙할 수밖에 없는 제안을 내걸었다.
“대신, 제가 정령과 계약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령 계약.
홍염과 벽파는 사정이 다르다.
벽파는 물의 정령을 찾아 계약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홍염은 그 힘의 근원을 잃어버린 상태.
“뭐, 뭐라고?”
엘리샤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86화. < 23. 홍염의 비기(3) >
홍염의 마법.
대대로 내려지는 일인전승의 마법은 1000년 전만 하더라도 불의 정령 샐러맨더(salamander)와 같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1000년 전에 있었던 차원의 폭발로 인해서 정령계와의 링크가 완전히 끊어졌고, 홍염의 마법은 반쪽만 남은 신세가 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엘리샤는 정령이 없는 세상에서도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천재라고.
하지만 엘리샤 본인은 자신의 힘이 반쪽짜리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타고난 불의 지배력이 강해서 홍염의 마법을 어느 정도는 구현할 수 있었지만, 그건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항상 의문이 있었다. 포세이돈 또한 자신과 사정이 다르지 않을 텐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정령이 있던 시절’의 마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정령과 연관 짓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수밖에 없는 근거가 있었다.
“포세이돈은 현재 세계를 대표하는 대마법사 중 하나. 그의 마법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포세이돈이 강력한 물의 지배력을 보이는 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그 누구도 정령과의 계약은 생각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1000년 전의 폭발로 정령계와의 링크가 끊겼기 때문에? 정확히는 폭발의 영향을 받았지만, 당시의 문제는 단순히 링크가 끊긴 것으로 끝나지 않았어.”
정령 마법사들.
홍염과 벽파와 같이, 정령 마법을 추구하던 이들은 정령계의 사고로 인해 서로의 힘을 합쳤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정령계와 링크가 끊어진 이유를 알아보았고, 그 결과 진실을 알게 되었다.
"링크가 끊긴 이유는 정령계가 이 세상과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떨어졌기 때문이야. 고로 우리가 아무리 그들에게 말을 걸어도, 정령들은 우리의 부름에 응할 수 없었어. 단언컨대 정령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만약 그랬다면, 내 선조들이 어떻게든 그들과 연결하는 방법을 찾았겠지.”
사실 1000년 전만 하더라도, 정령 마법은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속성 분리라는 어려운 기술이 없다 할지라도, 정령과의 계약을 통해 특정 서클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령계와 링크가 끊어지며 정령 마법사들은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속성 분리를 이용한 활용법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들은 속성 분리로 정령 마법과 유사한 힘을 내는 마법을 알아냈고, 그들은 일인전승의 명맥을 유지했다. 원래는 정령 계약-속성 분리가 정상적인 테크트리였다면, 정령 계약이라는 과정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니 믿을 수 없었다.
포세이돈 또한 새로운 속성 지배력 방법을 찾았을 뿐, 정령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알겠어? 네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를 했는지? 그러니 그만 지껄이고 꺼져. 마음 같아서는 네 녀석을 확 불태워버리고 싶지만, 전장에서의 정을 생각해서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고 있는 거니까.”
화륵.
화르륵.
그녀의 주변에서 불길이 일었다.
불의 지배력이 강한 그녀의 감정에 따라, 불의 마나가 저절로 반응했다.
그런데 강민혁의 반응은 덤덤했다.
그녀를 통해 그간의 사정을 듣게 되었지만, 그것은 이해를 도울 뿐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얘기는 끝났습니까?”
“내 말 못 들었어? 꺼지라고!”
“그건 제 얘기도 끝나고 결정하시죠. 저는 홍염의 마법을 대가로, 정령과 계약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건 약속입니다. 제가 제안한 것이기 때문에, 먼저 정령과 계약하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그렇다면 엘리샤 선배님도 손해 볼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만약 시도했는데 거짓말이었다면, 지금 일으킨 그 화염의 마나로 절 태워버려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뭐?”
엘리샤가 당황했다.
거래.
강민혁은 아주 납득할 만한 조건을 걸었다.
엘리샤가 걱정하는 것이 정령 계약의 진위라면, 그녀가 먼저 확인하면 해결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만약.”
스륵.
강민혁이 검을 뽑았다.
날카로운 기세가, 엘리샤의 목에 서늘하게 감돌았다.
“제 거래를 응하고 정령 계약의 존재를 확인했는데도 약속을 어기신다면, 그때는 선배의 예우를 해드릴 수 없습니다. 원래 거래라는 것이 그렇거든요. 약속 불이행의 대가가 얼마나 확실한지를 보여주어야, 다음부터는 절대 거래를 우습게 보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진심이었다.
팔 한 짝을 잘라버리겠다는 기세에, 엘리샤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양자택일.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
만약 후자를 택한다면, 강민혁은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아설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일인전승의 마법이 오랜 역사를 지녔다면, 그만큼 근원에 대한 욕망은 강렬할 터.
“...알겠어. 네 거래를 받아들이지.”
결국, 엘리샤는 굴복하고 말았다.
강민혁이 방법을 말해주었다.
“선배님의 말대로 정령계와 이쪽 세상은 많이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요. 그래서 특정 속성에 대한 강한 지배력이 필요한 데, 화염 속성의 서클을 형성한 선배님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죠.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건 정령계와 연결하는 마법진이고, 그 안에는 좌표가 설정되어 있어요.”
방법은 간단했다.
하지만 정령계의 ‘좌표’를 찾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
엘리샤는 강민혁의 말대로 따랐고, 마법진을 설치한 뒤에 화염의 마나를 일으켜서 계약을 시작했다.
그러자.
화르르륵.
불꽃이 피어올랐다.
마법진이 붉은 불빛을 발하더니, 엘리샤의 정신이 차원 너머로 사라졌다. 정령 계약이라는 것은 육체의 거래가 아니다. 바로 정신의 거래. 엘리샤의 육체는 마나로 일렁이는 마법진 안에서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정신은 이곳과는 머나먼 거리에 있는 정령계로 떠나간 상태였다.
찰나의 시간.
엘리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더니 식은땀을 흘렸다.
순간 마나가 다시 회수되며,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화악-
“하악, 하악.”
엘리샤가 숨을 헐떡였다.
강민혁의 시점에서는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로서는 많은 것을 경험한 것 같았다.
“저, 정령과의 계약에 실패했어.”
실패.
예상치 못한 변수다.
엘리샤 정도의 친화력이라면 당연히 성공할 거라 생각했다.
사실 엘리샤와 거래한 이유는 ‘홍염의 비기’를 알아내기 위함도 있지만, 강민혁이 직접 실험해보기 전에 엘리샤라는 선례를 지켜보려는 의도도 있었다. 정령 계약은 정신의 거래. 클리스만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미완성의 가능성이기에, 무턱대고 실험하기엔 위험성이 크다.
이건 거래다.
강민혁은 엘리샤가 원하는 것을 충족해주는 대가로, 많은 것을 얻어갈 뿐이다.
“왜 실패했죠?”
"네 말대로 이 마법진은 정령계로 통하는 것이 맞아. 문제는..정령계가 내가 들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어. 대대로 내려오는 ‘기억’에 의하면, 정령계는 자연의 힘이 풍부하고 각자의 속성이 꽃을 피운 천국과도 같은 곳이라고 했어. 그런데 내가 본 것은 지옥이었어. 정령계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나를 발견한 샐러맨더는 비명을 지르며 불를 뿜어댔어.”
엘리샤가 공포에 떨었다.
그녀는 불의 지배력이 강하다.
샐러맨더의 감정에 같이 동화돼버리고 말았고, 그녀는 순간 샐러맨더가 느끼는 공포를 공감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정령들은 ‘몬스터’를 두려워하고 있었어. 그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몬스터의 위협을 받고 있었던 거야. 대답해줘. 대체, 정령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거야?”
“그건.........."
강민혁도 모르는 일이다.
강민혁의 세상에서 정령은 몬스터에 불과했고, 정령계라는 것 자체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
순간 강민혁의 머리가 활짝 열렸다.
흩어진 퍼즐 조각들.
그게 전체의 형상은 아니었지만, 일부의 그림을 완성시켰다.
정령.
강화 문명에서 그들이 나타났던 역사를 되돌아가다 보면, 그들에게서 일정한 체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령들은 항상 레드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냈어. 차원의 균열이 일어나면, 그들은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닥치는 대로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공격했지. 나는 그것이 단순히 몬스터들이 표출하는 분노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는 지도 몰라.’
아주 오래전.
A급 몬스터 샐러맨더가 나타나 서울숲을 불태웠다.
사람들은 샐러맨더를 무찔렀고, 폐허가 되어버린 땅 위에 ‘헌터 아카데미’라는 희망을 건설했다.
이후에도 그런 경우는 많았다.
웨인 라피에르가 영감을 얻었던 A급 몬스터 운디네 또한, 무차별적으로 주변을 공격하는 상황에 헌터들이 출동했었다. 생각해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정령들은 적아(敵我)를 구분하지 않았다. 만약 인간을 공격하는 과정에 몬스터들이 있다면, 그 몬스터들 또한 같이 공격하는 것이다.
하나의 가능성.
이전에는 미처 알아보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엘리샤의 말대로 정령계가 몬스터의 위협을 받고 있다면, 정령들은 인간뿐만 아니라 몬스터에게도 강한 분노를 표출한 것일 수도 있어. 샐러맨더가 서울숲을 불태웠던 사건. 사람들은 그게 단순히 샐러맨더가 자신의 힘을 표출한 거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서울숲 밑에는 수많은 던전이 있었어. 만약 그 던전이 샐러맨더의 분노를 자극한 거라면? 굳이 서울숲을 전부 불태워버렸던 사건이, 정령계를 공격한 몬스터들에 대한 앙갚음일 수도 있어.’
그건 진실이 아니다.
아직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되지 않은, 일부의 퍼즐만으로 유추할 수 있는 가설일 뿐이다.
강민혁이 말했다.
“선배님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2000년 전 차원의 균열이 일어나며, 이 세상에는 몬스터가 나타났고 동시에 정령계가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냈어요. 그때의 정령들이 인간에게 적의를 가진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정령의 입장에서는 인간 또한 이방인이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1000년 전에 있었던 차원의 폭발은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은 재앙을 겪게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정령계와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기던 그 날부터, 그들은 몬스터의 위협을 받은 것이죠.”
“...이 재앙이 우리만 겪는 게 아니라는 말이야?”
재앙.
엘리샤의 입장에서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위협하는 이 악마 같은 몬스터들이, 이 세상뿐만 아니라 정령계도 위협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녀와는 다르게 강민혁은 그러한 사실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강민혁이 사는 세상 또한, 몬스터들의 위협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미 2개의 세상이 처한 현실을 알고 있기에, 또 다른 세상이 위협을 받는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였다. 강화 문명의 사람들은 정령을 몬스터로 규정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이성을 잃어버린 정령의 분노에 인간들이 죽어 나간 것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가설은 아니다.
정령계가 그토록 위태로운 상황이라면, 포세이돈이라는 존재는 의문투성이였다.
‘포세이돈은 어떻게 정령 마법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었을까? 그도 나처럼 정령계의 좌표를 알고 있고, 분노한 정령들을 설득해서 계약에 성공한 걸까? 그의 존재는 미스터리야. 언제고 그를 만나게 된다면, 그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확인할 필요성이 있어.’
일단은 현재.
지금이 중요하다.
가설을 어느 정도 정리했지만, 명확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거래는 이미 체결되었고, 강민혁은 약속을 지켰기에 대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었다.
"약속대로 저는 정령과 계약하는 방법을 알려드렸어요. 분노한 정령을 달래서 계약하는 것은, 지금부터 엘리샤 선배님이 감당해야 할 문제죠. 그러니 약속을 이행할 차례에요. 제게 일인전승의 마법인 홍염의 비기를 알려주세요.”
엘리샤.
그녀는 얻은 것이 없다.
정령 계약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전설로만 알고 있었던 정령계를 목격하는 순간 이미 결단을 내렸다.
“알겠어. 알려주도록 하지.”
홍염의 마법.
일인전승의 규율은, 오늘부로 끝날 것이다.
87화. < 23. 홍염의 비기(4) >
엘리샤가 말했다.
“현재에 이르러 홍염의 마법은 체계가 변했어. 예전과는 달리 화염의 서클을 형성해서 불의 지배력을 높이고, 단계별로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하지. 하지만 ‘불의 정령’과의 계약이 가능하다면, 사실 이와 같은 과정은 필요하지 않아. 정령과의 계약. 그 하나 만으로도, 너는 보통의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불의 지배력을 얻을 수 있거든.”
엘리샤는 특이 케이스다.
타고난 불의 지배력이 높아, 정령과 계약하지 않았음에도 상당한 불의 지배력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 엘리샤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강민혁의 요구대로 근원을 잃지 않은 홍염의 마법이었다.
“불의 정령과 계약하면 2가지의 선택지가 생겨. 첫 번째는 소환. 말 그대로 불의 정령을 소환해서, 그가 직접 싸울 수 있도록 마나를 공급하는 거지. 그리고 두 번째는 지배. 속성의 지배력이 높아지면, 해당 속성들은 모두 마법사의 마나에 반응하게 돼. 직접 보여주자면.........."
바로 앞.
그곳에 모닥불을 피운 상태였다.
엘리샤가 손을 들어 올리자, 모닥불의 불길이 손길을 따라 움직이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파이어 볼.”
화르르륵.
불길이 마법으로 변했다.
활활 타오르는 화구는, 시뻘건 불길을 날름거렸다.
“이처럼 지배력을 활용해서 주변에 있는 불길을 마법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 나는 정령과 계약하지 못해서 지배력으로 다룰 수 있는 불길에 한계가 있지만, 1000년 전만 하더라도 세상을 불태우는 화마(火魔)조차도 다룰 수 있다고 들었어. 이게, 내가 사용하는 홍염의 마법의 근간이야.”
지배.
불길을 다스리는 능력.
그로부터, 홍염의 마법은 세 가지의 특별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불길을 다스리는 것을 불의 권능이라고 표현한다면, 그 불길을 하나로 모아 위력을 상승시키는 기술을 염화(炎火)라고 불러. 만약 그 기반이 파이어 볼이라면, 염화로 사용한 마법은 흡수한 화력에 따라 배 이상의 위력을 보이지. 그리고 불길을 수많은 화염 마법으로 만들어내서 동시에 쏟아내는 것을 화우(火雨)라고 하는데, 이 기술이 위력적인 이유는 마법이 일어나는 위치가 불길이 있는 어디에서든 가능하다는 거야. 만약 사방에 불길이 일어난 상태로 전투가 벌어진다면, 그 사방에 있는 불길이 모두 마법으로 변해서 적을 덮치게 되는 거지.”
불의 권능.
그로부터 비롯되는 염화와 화우.
듣는 것만으로도 홍염의 마법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었다.
엘리샤는 홍염의 ‘진짜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데도, 영국 왕실 아카데미가 대표하는 마법사가 되었다.
마지막.
홍염의 마법에는 최종 단계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겁화(却火). 이 기술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게 좋아. 화염의 서클에서 보유하고 있는 마나와 세상에 떠도는 모든 불의 원소. 그것을 폭발시켜서 세상을 화염의 지옥으로 뒤덮는 기술이거든. 이건 시전자도 보호해주지 않아. 만약 네가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찾아온다면, 혼자서 죽는 것이 억울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야.”
설명은 계속되었다.
엘리샤는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보여주었고, 아닌 것들은 기록을 남겨주었다.
그녀는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강민혁이 정령의 계약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이상, 그녀도 자신의 약속에 충실했다.
설명이 끝났다.
엘리샤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로써 나는 네게 홍염의 마법을 모두 전수해주었어. 비기를 외부에 퍼트린 나는, 하늘나라로 갔을 때 선조들의 원망을 듣겠지. 하지만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나는 반드시 정령과의 계약에 성공해서, 진짜 홍염의 마법을 사용할 거거든. 대신 나랑 약속해줘. 내게 얻은 홍염의 마법을 절대 악행(惡行)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고. 그것만 약속한다면, 네가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을게.”
그녀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이미 거래를 맺은 이상, 강민혁으로서는 약속을 추가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강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엘리샤의 표정이 밝아졌다.
엘리샤는 강민혁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지만, 강민혁이라는 사람이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강민혁은 당장 정령 계약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마법에 재능이 없는 클리스만의 몸으로는, 정령 계약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정령 마법 또한 마법의 한 갈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령 마법도 사용하지 못한다.
‘일단 정령 마법에 대해서 최대한 알아보자. 그러고 나서, 내 몸으로 직접 계약을 맺어보는 거야.’
불안 요소는 많다.
그러나 시도해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엘리샤가 말해준 홍염의 마법은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고, 강화 문명에 정령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링크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걱정되는 부분은 그들이 인간을 적대하는 것. 그것은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결국 직접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한 교수가 나타나, 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이번에 화이트 캐슬(White Castle)에서 주관하는 결투 대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보상은 화이트 캐슬의 보물. 참가 신청을 한 사람들은, 미리미리 준비하도록.”
화이트 캐슬.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강민혁은 학생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를 통해 정보를 유추할 수 있었다.
‘왕실 마법 아카데미 출신의 대마법사들. 그들이 소속된 단체의 이름을 화이트 캐슬이라고 불러.’
세계 3대 세력.
그중 하나가 바로 화이트 캐슬이었다.
화이트 캐슬은 왕실 마법 아카데미 출신만 받는다는 엄격한 제한을 두었고, 아카데미가 배출해낸 대마법사들은 내부 평가에 따라 화이트 캐슬의 선택을 받았다. 알려진 바로는 7서클 마법사만 해도 10명 이상인 데다, 화이트 캐슬의 리더는 무려 8서클의 경지였다. 그들은 세상의 정의를 수호하고 아카데미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영웅이라 칭송받는 자들이다.
그 외에도 두 가지의 세력.
마녀 집단 블랙캣 (Black Cat)과 신비주의 세력 그레이 로브(gray robe)가 있다.
그들은 철저하게 본인들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며, 화이트 캐슬과는 다르게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지 않다.
당연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화이트 캐슬이 제시하는 보상은 대단할 게 분명하니, 벌써부터 지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했다.
특히.
“화이트 캐슬이 주관하는 마법 대회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출신이며 7서클 아래의 마법사들은 모두 참가가 가능해. 그러니까, 현재 재학생뿐만 아니라 졸업한 학생들도 몰려든다는 의미지. 화이트 캐슬의 입성을 바라는 실력자들로서는 정말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어.”
주변이 떠들썩했다.
학생들이 결투 대회에 대해서 말했지만, 강민혁은 그에 신경 쓰지 않았다.
흥미로운 소식이기는 하나, 겨우 1서클에 불과한 자신이 참석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민혁은 아비드의 호출을 받고 뒤늦게 알았다.
바로, 자신이 결투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비드가 말했다.
“정말 참가할 생각인가?”
그가 내민 것은 참가 신청서였다.
한 달 전에, 클리스만은 화이트 캐슬이 주관하는 결투 대회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내가 참가하길 원하는 건가.’
결투 대회 기간.
자신이 빙의하는 시기와 겹친다.
그렇다면 클리스만은 본인이 출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참가하길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결투 대회에 흥미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법으로는 출전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마법의 경지가 낮아서, 마법 실력이 뛰어난 선배님들을 마법으로 이길 자신이 없거든요. 그래서 궁금한 게 있습니다. 결투 대회는 그 명칭이 마법 대회가 아닙니다. 참가자들이 나와서 서로 승부를 보는 것이지, 마법만 사용하라는 규칙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혹시 검으로 참가해도 되는 겁니까? 그게 가능하다면, 저도 결투 대회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대회 규칙.
혹시 몰라서 읽어두었다.
하지만 강민혁은 자신의 논리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법사가 주류인 이 세상에서, 마법이라는 규칙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암묵적인 룰이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지켜야 할 선.
그래서 결투에서 마나가 떨어지는 상황에도, 참가자들은 절대 물리적인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걸 안다.
거절당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클리스만이 의도한 일이라면 도전이라도 해봐야 했다.
아비드가 웃었다.
“원래대로라면 불가능한 일이지. 결투 대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너의 참가가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결투의 규칙에 그런 조항이 없는 것은 사실이고, 무엇보다도 결투 대회의 참가자들이 너의 출전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거든.”
“...예?”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결투 대회 참가자들.
그들이 왜 자신의 참가를 원한단 말인가.
강민혁이 클리스만으로서 이런저런 일을 벌였다지만, 그동안 인간관계는 그렇게 넓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
그건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것이었다.
“네가 검으로 웨어 울프를 쓰러트리는 순간, 자부심 높은 마법사들의 상식이 무너져 내렸다. 당연히 마법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마법사들에게, 너라는 돌연변이가 처음 나타난 거지.”
그린 드래곤 상황.
그 여파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그것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었다.
“네가 결투 대회 참가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참가자들이 내게 찾아와서 말하더군. 클리스만, 네가 마법의 힘을 무시하기 때문에 무모한 도전을 하는 거라고. 그러니 네가 현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참가 신청을 반려하지 말라고 강조했어. 어차피 네가 결투 대회에 참가한다 할지라도,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클리스만의 세상.
이곳은 강화 문명과 다르다.
마법이 주류고, 강화 전사들이 마법사를 배척하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만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
강민혁은 그 판을 깨트렸다.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린 활약은, 단순히 감탄만으로 끝난 일이 아니었다.
‘그랬던 건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실력에 대한 감탄.
그런데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질투심이었다.
마법이 아닌 힘.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 강민혁의 행보는, 주류인 마법사들로서는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어이가 없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결국 어떤 세상이나 인간은 똑같았다.
강화 전사들은 그들이 나쁜 사람이기에 마법사들을 배척한 걸까?
아니다.
힘을 가진 자들의 인간성일 뿐이다.
강화 전사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우위를 만끽하는 것일 뿐이고, 마법사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위치기에 비주류의 현실에서 만족했다. 그건 상황이 부여하는 인간성의 진면목. 만약 그러한 입장이 뒤바뀐다면, 마법사는 강화 전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클리스만의 세상과 같은 태도를 취했을 것이다. 힘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그 밑의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이 현실이다.
“재밌네요."
강민혁의 표정에 흥미가 돌았다.
이전까지는 클리스만의 의도를 따라주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참가 의사가 생겼다.
“그래? 그래도 참가하겠다는 의미인가?”
결정권을 넘겼다.
강민혁이 선택을 내린다면, 아비드는 결투 대회 최초로 검사의 참가를 허락할 것이다.
모두가 동의한 일.
이제는 강민혁의 선택에 달렸다.
‘마법 문명의 마법사들.’
사실 그간 궁금했었다.
그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근접전에도 자신감을 보이는 그들을 상대로, 강화 전사인 자신의 힘이 얼마나 통할 것인지를.
이번 대회는 기회였다.
두 문명의 힘을 비교해볼 기회.
그리고, 분명히 결투 대회에는 워 메이지라 불리는 부류들도 나타날 것이다.
대답은 이미 정해졌다.
“예, 참가하겠습니다.”
88화. < 24. 두 문명이 싸우는 방식 >
강민혁의 출전이 확정되자 학생들은 난리가 났다.
클리스만은 1서클 마법사다.
그런데도 결투 대회에 출전한다는 것은, 마법사가 아니라 검사로서 출전하겠다는 의미와 같다.
“결투 대회 역사상 이런 일이 있었나?”
“단 한 번도 없지. 그래도 클리스만 정도면 잘 싸우지 않을까? 그린 드래곤 상황에서 혼자 수십 마리의 웨어 울프를 상대했었잖아.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허무하게 떨어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그래. 솔직히 클리스만의 검술 실력은 정말 의외였거든.”
강민혁을 인정하는 부류들.
그들은 강민혁의 출전에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대다수에 속하는 제임스 체스터 같은 경우에는, 그들의 말을 듣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게 말이 돼? 클리스만이 어떻게 결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가 있겠어. 웨어 울프들이랑 싸울 때야 그 녀석들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물리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었던 거지, 마법사와의 승부에서는 클리스만의 검법은 절대 통하지 않아. 생각해봐.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강력한 마법이 작렬할 텐데, 인간의 몸으로 그 파괴력을 감당할 수가 있겠어?”
제임스 체스터의 주장.
그 말에, 학생들이 동조했다.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렇네.”
“하긴, 결투 대회에 참여하는 마법사들은 못 해도 5서클 이상일 테니까.”
화이트 캐슬.
세계 3대 세력이 보물을 내건 자리다.
7서클이라는 제한을 두었으니, 5서클 이상의 왕실 마법 아카데미 출신 실력자들이 우르르 몰려들 터. 제임스 체스터의 말은 타당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제임스 체스터 일행이 강민혁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똑똑히 보았지만, 그때와 결투 대회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제임스 체스터 사건.
그건 마법사가 당한 것이 아니다.
제임스 체스터라는 일개 개인이 강민혁에게 당한 것이고, 마법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강민혁은 상대의 마법을 피하고, 마나의 흐름을 끊으며 마법사를 완벽하게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임스 체스터라는 사람이 당했다고만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3서클 마법사는 아직 마법사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얕은 경지다. 진짜 마법사들은 각인 마법을 배우는 5서클 마법사 이상이기에, 제임스 체스터와의 싸움은 의미가 없다.
제임스 체스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민혁의 모습이 보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클리스만의 출전은 결투 대회 참가자들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거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선배님들이 클리스만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에게 굴욕을 주기 위해서 출전이 허락되었다는 거야. 사실 난 걔가 본선전은커녕 예선전이나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그만큼, 결투 대회는 만만한 자리가 아니야.”
“헐."
“정말?”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검과 같은 무기를 들고 설치고 다니는 녀석들은 마법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상식에서는 마법사는 1대1에서도 절대 약하지 않았고, 강민혁 정도야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마법의 제물이 되어버릴 터. 그리고 그걸 떠나, 제임스 체스터의 말처럼 예선 통과도 의심되었다.
“그래도 예선 통과는 했으면 좋겠다. 클리스만이, 다른 마법사들과 붙는 모습을 보고 싶긴 하거든.”
마법사들의 패배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세상이다.
그리고 며칠 뒤, 결투 대회 예선이 진행되었다.
예선 당일.
A 시험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결투 대회 참가를 희망하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 출신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만큼 화이트 캐슬의 보물이라는 이름값이, 멀리 떠나있던 졸업생들을 한 자리에 불러들였다.
웅성웅성.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들었다.
재학생과 졸업생의 만남의 장이다 보니,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하기 바빴다.
그때였다.
예선 감독관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예선전의 룰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결투 대회는 실력자들이 우승을 두고 경쟁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본선에 진출 할 수 있는 참가자의 숫자는 64명으로 제한하며, 참가의 기준은 예선전의 성적으로 정해집니다. 이 예선전을 통해 여러분들은 결투 대회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를 증명해야만 합니다. 만약 64등 안에 들지 못하면, 출전은 불가능한 것이죠.”
64명.
인원에 제한을 두는 것은 당연했다.
제임스 체스터의 말처럼 실력자들이 대거 참석 의사를 밝혔지만, 그중에는 참가에 의의를 두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직 3서클밖에 되지 않은 재학생들도 많았고, 졸업생이지만 그 경지가 낮은 이들도 있었다. 결투 대회 명성에 이끌려 참가 의사를 밝힌 이들을 모두 올려 보내면 대히가 혼잡해지고 질이 떨어질 수 있기에, 예선전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걸러야만 했다.
평가 방법은 간단했다.
“참가자 여러분은 지금부터 차례로 몬스터를 상대하게 될 것입니다. 방어력이 강한 C급의 아르마딜로(armadillo) 30마리고, 이 많은 몬스터를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느냐가 평가의 기준입니다. 아르마딜로는 여러분들을 공격하지 않도록 공격적인 본능을 제거한 상태이나, 마법의 캐스팅을 방해하기 위해서 여러 장치가 가동될 예정입니다. 그러니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면, 잠시 주춤하는 그사이에 실력 있는 마법사들은 빠르게 예선전의 임무를 끝내겠죠.”
다수의 적을 상대 하는 것.
그건 마법사를 위한 임무였다.
그러한 사실을, 예선 감독관은 모르지 않았다.
‘이번 참가가 중에는 검사가 있다고 했지.’
클리스만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 예전부터 고정적으로 진행되던 예선전의 방식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예선전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럼 떨어지면 된다.
검사가 소수라고 해서, 그의 편의를 봐줄 의향은 전혀 없었다.
사실 마법사가 아닌 이들이 결투 대회 출전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예선전에 있었다. 검사가 통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아르마딜로는 마법 방어력뿐만 아니라, 물리 방어력도 매우 강한 몬스터다. 공처럼 몸을 돌돌 말고 버티는 그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텐데, 마법사처럼 범위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답이 없다.
그래서 예선 감독관은 단언했다.
시작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클리스만의 출전은,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을 맺을 것이라고 말이다.
‘애초에 결투 대회는 마법사들을 위한 축제. 남의 축제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그 기준에 부합하는 활약을 보여주어야겠지. 하지만 힘들 거야. 대체 어떻게, 마법사보다 빠르게 다수의 적을 처리하겠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예선 감독관은 클리스만에 대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예선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삑-
[참가번호 038]
[클리스만 입장]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강민혁이 안으로 들어서자, 강민혁을 따라 카메라들이 같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C급 아르마딜로라.’
잘 아는 몬스터다.
아르마딜로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실제로는 더 포악하고 마치 장갑차와 같은 단단한 외피를 지닌 몬스터다. 그런데 웃긴 것은 아르마딜로가 강민혁의 세상에서는 D급의 몬스터라는 사실이다.
‘평가 기준은 세계마다 다르다 이건가.’
강화 문명과 마법 문명.
두 세상은 똑같은 등급 구분법을 사용하지만, 서로 형성한 문명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 등급이 있었다.
아르마딜로가 그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몬스터였다.
예선 감독관의 생각처럼 아르마딜로의 방어력은 매우 단단하다. 그래서 웬만한 파괴력으로는 쓰러트리는 것이 힘든데, 그건 마법사들의 기준일 때나 하는 얘기다. 아르마딜로를 처리하기 위해서 마법사들은 일정 이상의 화력을 내야 한다면, 검사들은 외피 사이에 드러나 있는 약점을 공략하면 그만이다. 그럼 아르마딜로의 단단한 외피조차도, 쉽게 공략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숫자가 좀 많아.’
30마리라는 것.
그게 문제가 되겠지만, 강민혁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아직 ‘편견’에 갇혀 있지만, 강민혁은 이미 100년이나 발달된 문명을 안다.
그건 매우 강력한 이점이다.
삐익-
[시작!]
타닥.
시작 신호에 강민혁이 땅을 박찼다.
순간 허벅지가 크게 부풀어 오르며 엄청난 스피드를 내주었다. 클리스만이 장벽 너머에서 보낸 시간. 그 시간으로 인해, 클리스만의 육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충만하게 차오르는 힘에 강민혁은 마나를 끌어 올렸고, 곧바로 아르마딜로를 향해 마나를 분출했다.
‘오라 웨이브(aura wave).’
사사사삭.
전방으로 뿜어지는 마나의 칼날들.
그것은 바로 강화 전사가 사용할 수 있는 ‘범위 공격’이었다.
한 번에 많은 양의 마나를 사용하기 때문에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조건 마법사보다 빨리 끝내야 한다. 마나의 칼날은 무차별적으로 아르마딜로의 외피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컨트롤에 의해 정확히 틈을 파고들었다.
서걱!
사사삭!
크에에에에엑!
아르마딜로들이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흩뿌렸다.
마법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강민혁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솟아올랐지만, 강민혁은 육체적인 능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검사다. 통통 튀어 오르며 방해하는 것들을 모두 피해냈고, 아르마딜로의 몸뚱이에 검을 우악스럽게 찔러넣으며 생명줄을 끊어버렸다.
푹!
푸화하학!
피가 튀었다.
클리스만이 사용하는 대검이 아니라, 얇고 긴 검이 아르마딜로의 내부를 난도질했다.
죽이고 또 죽이고.
강민혁의 검술은 경이적일 정도로 매우 간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세상에서 알려진 검사들은 한두 마리를 처리하는 데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강민혁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순식간에 정리되는 현장.
마지막 아르마딜로가 쓰러지는 순간, 시스템의 음성이 들렸다.
삑-
[참가번호 038]
[예선 통과 시간 4분 52초]
[4번째 통과자]
".........?!"
4분 52초.
30마리의 아르마딜로를 처리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였다.
그런데 10명이 동시에 진행하는 예선전에서, 강민혁은 그런 속도에도 4위밖에 하지 못했다.
그 말인즉.
‘내 앞에 더 빠르게 처리한 사람이 3명이나 더 있다고?’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곳은 마법 문명이다.
마법이 발달된 이 세상에서, 아르마딜로의 단단한 마법 방어력은 마법의 파괴력을 버티지 못했다.
‘어쩌면 예선전에서 떨어질 수도 있겠어.’
예상과는 다른 상황.
그런데 그건 감독관도 같았다.
강민혁은 조금 더 빨랐어야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감독관들은 경악했다.
강민혁의 기록.
그건,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었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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