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diabo vai trabalhar hoje 12
얼마나 나태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는지, 앉아 있는 옥좌가 휘어져 있을 정도였다.
‘…일단, 재능을 보긴 해야겠지.’
정민우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국왕에게 ‘천안’을 사용했다.
【‘없음’의 정보를 불러옵니다】
그러자 눈앞에 새로운 정보창이 떠올랐다.
『정보창』
〈기본 정보〉
이름 : 없음
호칭 : 엘로이 녹슨
성별 : 남성
나이 : 42살
〈세부 정보〉
성향 : 악(惡)
재능 : 없음
현재 감정 : 무료함
예상대로 국왕은 아무런 재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진짜 무능의 끝을 달리는구나.’ 정민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 사실을 마교회 멤버들에게 알려줬다.
“국왕이 재능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요?”
“응? 무능한 녀석이 어떻게 왕이 된 거지?”
“…믿기지 않아.”
“윌리엄이 그리워질 것 같아. 개굴개굴.”
그리고 한 국가를 통치하는 왕이 재능이 없다는 것에 마교회 멤버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식들도 뻔할 것 같은데 바로 타국으로 이동하는 게 어떤가요?”
비너스의 제안에 정민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차피 몇 명 안 될 테니까. 확인하고 가도록 하자.”
99% 확률로 자식들 또한 재능이 없을 것이었지만, 이곳까지 발걸음을 옮긴 게 아까웠기에 확인해보기로 했다.
“해봤자 10명 안팎일 테니 빨리 확인하고 떠나도록 해요.”
“그러자.”
그렇게 약 2시간이 흘러.
“…타국으로 가자.”
재능이 있는 고등생물을 찾는 데 실패한 정민우는 타국으로 갈 것을 결정 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다른 왕국에 갈 걸 그랬나?’
잠시 날린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으나.
‘아니야, 그 덕분에 왕성의 지리는 제대로 파악해뒀으니 침략할 때 도움이 될 거야.’
어차피 침략하기 위해서는 위치를 확인해야 했기에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왕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저긴 뭐 하는 곳이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았으면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갔을 테지만.
‘뭔가… 신경 쓰인단 말이지.’
자신의 직감이 저곳으로 꼭 가보라고 알려오고 있었다.
‘지하 계단만 살펴보고 갈까?’
지하 계단만 확인하고 떠날 것을 마교회 멤버들에게 제안하자.
“그럴까요?”
“호오, 왠지 구린내가 나는데?”
“…그래.”
“저기에 보물을 모아두지 않았을까? 개굴개굴.”
다행히 마교회 멤버들도 호기심이 동했는지 흔쾌히 승낙했다.
이어서 지하 계단을 통해 내려가자.
“자물쇠로 걸려있네?”
문에 큼지막한 자물쇠가 걸린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냥, 일반 창고인가?”
정민우는 직감이 잘못됐나 싶어, 김이 팍 새는 것을 느끼던 순간.
“콜록, 콜록, 콜록.”
문 안에서 고등생물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이 있다고?’
다시 한번 문을 살펴봤지만.
‘아무리 봐도 죄수를 가두는 용은 아닌데….’
일반 창고 문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구린 냄새가 나는데?’
정민우는 짙은 호기심을 느끼며, 문 안으로 들어갔다.
“…크흑.”
그러자 몸이 쇠약해 보이는 한 고등생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네.’
얼굴은 화상을 입은 것인지 피부가 빨갛게 올라와 피부가 벗겨져 있었고.
몸은 야위다 못해 뼈밖에 안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갇혀 있는 거지?’
눈앞에 있는 고등 생물에게 호기심이 들었으나.
‘재능부터 봐볼까?’
재능이 없다면, 호기심은 그저 사치에 불과했기에 먼저 확인부터 해보기로 했다.
‘제발, 나를 실망하게 하지 말아다오.’
고등생물을 향해 ‘천안’을 사용하자.
【‘없음’의 정보를 불러옵니다】
고등생물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정보창』
이름 : 없음
호칭 : 엘비스 녹슨
성별 : 남성
나이 : 15살
〈세부 정보〉
성향 : 중(中)
재능 : 【솔로몬】
현재 감정 : 괴로움
정보창을 확인한 정민우는 잭팟이 터졌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솔로몬?’ 설화에 따르면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불렸었던 자였다.
‘효과를 봐볼까?’
정민우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재능을 눌러 효과를 확인해봤다.
【솔로몬】
어떠한 상황이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판단력과 정신력을 지니게 된다.
‘잭팟이 맞았어!’
정민우는 탐욕 어린 눈빛으로 ‘엘비스’를 바라봤다.
“민우 님, 괜찮은 재능이라도 나왔나요?”
비너스는 정민우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보며, 어떤 재능을 지녔는지에 대해 물어왔다.
“솔로몬.”
“…솔로몬이요?”
정민우의 설명에 비너스를 포함한 마교회 멤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로몬에 대해서 모르는구나.’
간략하게 솔로몬에 관해 설명해주자.
“호오, 모든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니 신선하네요.”
“지혜라… 뭔지 모르겠네.”
“…새로운 재능이라 흥미로워.”
“지혜롭다면, 우리의 말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따를 수 있겠네! 개굴개굴.”
마교회 멤버들이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내보였다.
“근데, 지혜로운데 왜 창고에 갇혀 있는 거지? 개굴개굴.”
이어지는 로크의 의문에 마교회 멤버들 또한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건, 직접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그건 정민우도 느꼈던 의문이었기에 기회가 되면 당사자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면, 타락시키는 방법은 그전과 똑같이 진행하나요?”
그전과 같은 방식.
즉, 위험해질 때까지 방관하자는 말이었다.
“아니, 그 방법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
그녀의 제안에 정민우는 고개를 저으며, 반대의 뜻을 내놓았다.
“무슨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오히려 그 상황에 닥치면, 우리를 의심할 것 같아서 말이야.”
윌리엄 때는 나이가 어렸기에 위기를 이용해 쉽게 타락시킬 수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고등생물은 성인일뿐더러 지혜 관련 고유 특성이 있어 타락시키기 힘들 것이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네요. 그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까요?”
“내가 봤을 땐 정면 돌파가 좋을 것 같아.”
“…정면 돌파요?”
“응, 말로 저 녀석을 설득하는 거지.”
지혜가 뛰어난 만큼, 현재 왕국의 상황과 닥쳐올 위기. 그리고 고등생물이 얻게 될 혜택을 설명해주면 계약하려고 할 것이었다.
“음… 지혜 쪽에 특화되어 있으니, 오히려 그게 통할 수도 있겠네요.”
비너스는 잠시 생각에 골똘히 잠기더니, 이내 찬성의 의사를 밝혔다.
“대신, 잘 풀리지 않았을 때는 그전 방법대로 가보는 것으로 하죠.”
“물론이지.”
합의를 마친 뒤. 정민우는 고등생물 앞으로 다가갔다.
‘그럼, 시작해볼까?’
그리곤 고등생물 앞에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82화 버려진 왕세자 (2)
엘비스 녹슨.
왕의 첫째 아들이자.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며, 왕세자로 책봉된 사내.
그는 ‘파콘’ 왕국의 부흥이라는 부푼 꿈을 꾸었으나, 한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았다.
그 사건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인 국왕에게 사치에 대해 지적했다는 것.
물론, 아버지의 고약한 심성을 알고 있었기에 지혜를 발휘하여 돌리고 돌려 뜻을 전했지만.
“당장 꺼져!!!”
생각 이상으로 심성이 고약했는지 오히려 역으로 화를 내며 알현실에서 내쫓고 말았다.
그날 이후 자신이 머물던 성이 불타올라 화상을 입게 되었고. 하녀가 차에 탄 독을 마시며 몸이 쇠약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혼자서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쯤.
‘이런 창고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지.’
자신을 따르는 신하들과 기사들이 제지하기 위해 노력을 했으나.
‘이상한 죄명을 뒤집어씌우고 감옥에 처넣었지.’
전부 감옥에 넣어버리며, 자신의 수족을 잘라버렸다.
이 순간 왕세자였던 ‘엘비스 녹슨’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지혜롭다고 해도 권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대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건가?’
엘비스는 몸에 한계가 왔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강제로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었는데.’
‘정’이라는 것이 뭐라고. 그것 하나 때문에 일이 이렇게 꼬여버리고 말았다.
‘기회가 다시 주어만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그때.
“…어? 안개?”
창고 안에서 스산한 검은 안개가 흘러나오더니.
뚜벅, 뚜벅, 뚜벅.
그곳에서 다섯 명의 인영이 걸어 나왔다.
‘…악마?’
머리 위에 붉은 뿔이 있는 것을 본 엘비스는 그들이 악마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가 있었다.
‘…문헌에서 봤었지.’
몇백 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악마.
그런 악마가 지금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다. 따로 소개하지 않아도 우리가 누군지 알겠지?”
가운데에 선 악마. 정민우의 물음에 엘비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악마 아닙니까?”
“맞아.”
“어떠한 연유로 이곳에 찾아왔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찾아온 이유에 관해서 묻긴 했지만, 엘비스는 그들이 왜 찾아왔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나와 계약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겠지.’
문헌에 따르면 악마는 인간을 타락시킨 뒤 계약을 통해 꼭두각시로 만든다고 적혀져 있었다.
‘문헌에 나온 대로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지만, 계약하는 부분만큼은 여러 문헌에서도 똑같이 적혀져 있었으니 신빙성이 높지.’
엘비스의 물음에 정민우는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히 너와 계약하려고 왔지.”
“계약 말입니까…?”
“그래, 계약을 통해 너를 마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왔지.”
마인.
계약을 통해 악마의 꼭두각시가 되는 대신 얻게 되는 이능.
이능이라고는 했지만,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었기에 엘비스는 마인에 관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마인이 되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마인이 되면, 네가 입은 화상과 지닌 병이 치료되고 수명이 대폭 늘어나게 되겠지. 또한, 인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강한 힘을 지니게 될 테고 말이야.”
설명을 듣고 있자니, 왜 ‘이능’이라고 불렸는지 절로 이해가 됐다.
‘이러니, 따로 기록을 해두지 않았던 거였군.’
현재, 천사에 대한 종교가 판을 치고 있으니, 악마에 대해 좋게 평가할 리가 만무했다.
마인에 대해 궁금증이 풀리니, 엘비스는 다른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그건 그렇고… 나에게 어떤 것을 원해서 찾아온 걸까?’
악마가 직접 행차한 것이라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소리였다.
‘왕세자인 나에게 찾아온 것을 보면… 파콘 왕국을 손에 넣는 것을 원하는 건가?’
냉정하게 봤을 때, 자신의 용도는 그것 말고는 없어 보였다.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어.’
이 부분은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기에 엘비스는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계약을 통해 제게 원하는 것이 뭐죠?”
“네가 모든 국가를 침략해 발아래에 두는 것이지.”
“…?”
예상한 것보다 한참 웃도는 조건에 엘비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모든 국가를 내 발아래에 두는 거라고….’
규모가 남다른 조건.
엘비스는 당혹감이 섞인 얼굴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국가를 침략해 발아래로 두시라고 하신 것 같은데 제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습니까?”
“제대로 들은 게 맞아.”
“…….”
정민우의 대답에 엘비스는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모든 국가를 침략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다시 건강을 되찾아 국왕 자리로 올라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 조건이 너무나도 터무니없었다.
“아, 너무 걱정하지는 마. 계약하게 되면 우리가 성심성의껏 도와줄 거거든.”
정민우의 말에 엘비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꼭 모든 국가를 침략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겁니까?”
“응, 20년 뒤에 다른 악마가 찾아오게 되거든.”
다른 악마?
엘비스가 이해가 가지 않는 눈빛으로 정민우를 바라보자.
“이해를 위해서 설명해주는 것이 좋겠지. 어떻게 된 것이냐면…….”
악마가 찾아오는 이유에 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즉, 내기로 인해 모든 국가를 침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국가를 침략하면, 그 이후로 너에게 간섭하는 일은 없을 거다.”
정민우의 말에 엘비스는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그저, 국왕의 자리만 승계하면 될 뿐이었는데 일이 너무나도 커져 버렸다.
‘…왜 나와 계약하려는 거지?’
유능한 인재는 차고 넘칠 텐데, 자신과 계약하려는 이유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와 계약하려는 이유가 혹시 있습니까?”
엘비스의 물음에 정민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네가 모든 국가를 통틀어서 제일 지혜로우니까.”
“…….”
지혜롭다.
어렸을 때부터 지겹도록 들어왔던 말.
하지만, 그 소리를 악마한테 들으니 다가오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그래, 나한테는 선택할 권한은 없었어.’
어차피, 저들과 계약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했던 말이 거짓일 가능성이 있지만….’
결국, 거짓말이라고 해도 악마와 계약해야지만 이곳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계약하도록 하겠습니다.”
엘비스의 결정에 정민우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생각했어. 그러면, 계약 조항을 조율해 볼까?”
이후 정민우는 품속에서 양피지를 꺼내 계약 조항을 작성했다.
― ‘갑’은 ‘정민우’, ‘비너스’, ‘2번’, ‘777번’, ‘888번’을 칭하며, ‘을’은 ‘엘비스 녹스’를 칭한다.
― ‘을’은 모든 국가를 침략할 때까지 ‘갑’의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
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 그대로 사망하게 된다.
― ‘을’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갑’에게 손해를 끼칠 수 없다.
만약, 끼치려고 할 시 ‘을’은 그대로 사망하게 된다.
“여기서, 마음에 안 드는 조항 있어?”
“…없습니다.”
계약 조항을 확인한 엘비스는 속으로 적잖게 놀라고 있었다.
‘정말, 말한 그대로잖아?’
그도 그럴 게 독소 조항은 단 ‘1’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거짓말이 섞여 있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말이야….’
괜히, 의심했던 자신이 머쓱해지는 기분이었다.
“악마는 계약서의 장난질 안친다.”
정민우의 말에 엘비스는 몸을 움찔 떨어 보이며 말했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눈빛이 불손한 게 딱 이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죄송합니다.”
엘비스는 깔끔하게 인정하며, 정민우에게 사과했다.
“됐어, 어차피 비둘기로 인해 잘못된 인식을 가졌던 것일 테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악마가 신사적이라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그럼, 양피지에 피를 흘리도록 해.”
“알겠습니다.”
톡톡―
정민우의 명령에 따라 양피지에 피를 흘리자.
【계약 완료】
계약이 완료됐다는 문자가 떠올랐다.
화르륵―
양피지가 검은 불꽃에 휩싸여 그대로 타버리더니.
“커, 커헉!”
엘비스가 검은 불꽃에 휩싸이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 이런 고통이 동반될 거라는 말씀은 없지 않았습니까…?”
“미안, 깜박했어.”
“…이런, 으아아아악!”
털썩―
엘비스는 바닥에 쓰러져, 활어처럼 몸을 사정없이 튕겨 보였다.
그렇게 5분 정도 흘렀을까?
치이이이익―
검은 불꽃이 꺼지자. 그곳에는 전과 완전히 달라진 엘비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머리와 눈동자는 검게 물들었으며, 화상 입었던 피부는 전부 치료가 되었고.
“몸에서 활력이 넘쳐요, 이런 적은 정말 오랜 만…….”
앙상했던 몸은 튼튼한 근육들로 바뀌어 있었다.
“당연하지. 우리의 마기를 절반 이상 사용했으니까.”
“정말 감사드립니다.”
엘비스는 한쪽 무릎을 꿇어 보이며, 정민우와 마교회 멤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기대하도록 할게.”
“예, 꼭 기대에 부응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정민우의 말에 엘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대답했다.
“힘도 줬으니, 네 가치를 증명해 보이도록 해봐.”
“…증명 말입니까?”
여기서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파콘’ 왕국을 자신의 손에 넣는 것 말고는 없었다.
‘어차피, 국왕의 자리를 강탈하려고 했으니 나쁠 건 없지.’
또한, 겸사겸사 자신을 방관했던 녀석들에게 복수를 해줘도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내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비웃음을 날렸었지….’
화상을 입은 날. 동생들의 비웃음은 잊을 수가 없었다.
과거, 왕국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지혜를 사용했다면, 이제부터는 오로지 악마와 자신만을 위해 지혜를 사용하겠다고 다짐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국왕 자리를 강탈하지 못했겠지만, 새롭게 부여받은 힘이라면 강탈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머릿속으로 어떻게 왕위를 강탈할지 고민하던 찰나.
“기간은 한 달이면 충분하지?”
정민우가 제한 시간을 걸어왔다.
“…한 달 말입니까?”
“왜, 너무 길어?”
“…그게 아니라 시간이 조금 촉박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엘비스의 말에 정민우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왕국에 한 달 이상의 시간을 들이는 것은 사치야.”
“…….”
“전에 계약했던 마인은 단 하루 만에 제국을 침략했었으니까. 지혜로운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다.”
물론 몬스터 대군을 동원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지만, 정민우는 굳이 그 사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만약, 한 달 내로 침략을 끝내면 네 측근도 마인으로 만들어 주도록 하마.”
이어지는 제안에 엘비스는 반사적으로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기필코 해내고 말겠습니다.”
현재, 자신의 수하들은 불구가 된 채 감옥에 갇혀 있기에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악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렇게 된 거… 한 달 내로 끝낸다.’
엘비스는 어떻게든 한 달 내로 성공해 보이겠다고 다짐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83화 버려진 왕세자 (3)
정민우와 마교회 멤버들이 떠난 뒤.
‘어떻게 해야 국왕의 자리를 한 달 내로 강탈할 수 있을까?’
엘비스는 국왕의 자리를 어떻게 강탈할까 고심하고 있었다.
‘원래는 상처가 회복된 것을 국민에게 알리면서, 국왕이 내게 손을 쓰지 못하도록 여론을 조작해 자리를 굳혀가려고 했지만….’
이 계획은 5년 이상 걸리기에 아쉽지만, 철회해야만 했다.
‘기간이 한 달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이것보다는 더 빨리 파콘 왕국을 손에 넣어야겠지….’
조금 전 악마님께서 단 하루 만에 제국을 침략한 마인이 있었다고 얘기를 했었다.
즉, 그분들의 마음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파콘 왕국을 손에 넣을 필요가 있었다.
‘내 방식대로 최대한 시간을 줄여봐야겠어.’
괜히, 다른 마인을 따라서 단 하루 만에 파콘 왕국을 손에 넣겠다가 객기를 부렸다가 겨우 얻은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가 있었다.
‘내 분수를 알아야지.’
엘비스는 턱을 쓸어 보이며, 파콘 왕국을 손에 넣을 최적의 방안을 고민했다.
그리고 약 30분 정도 고민한 결과.
‘…그래, 그게 좋겠어.’
꽤 괜찮은 방안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그년을 이용하는 거야.’
엘비스가 그년이라고 칭한 자는 아침마다 창고로 음식을 가져다주는 하녀였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상대에게 그런 표현을 쓰는 것에 의문을 표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나를 화풀이 대상으로 여긴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그녀는 가축들이 먹을 사료를 가져오는 것부터 시작해 몇 년 동안 엘비스에게 폭행을 가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년으로 인해 내 건강 상태는 빠르게 안 좋아졌지.’
그녀가 했던 만행을 생각하면 치가 떨려왔지만.
‘곧 복수할 기회가 올 테니, 너무 열 내지 말자.’
어차피, 복수할 시간이 머지않았기에 엘비스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먼저 그년을 통해 정보를 얻어낸다.’
그녀를 통해 알아낼 정보는 간단했다.
‘연회가 언제 열리는지만 알면 돼.’
바로 연회가 열리는 시기였다.
‘그 돼지… 아니 아버지는 달에 한 번씩 연회를 열어 사치를 부렸으니, 이번 달에도 열겠지.’
그렇게 연회가 열리는 시기를 알아낸 다음.
‘음식에 독을 풀어버리는 거지.’
연회에 참가한 왕족과 귀족들을 전부 독살시켜버리는 것이었다.
‘독을 푸는 일은 집사장을 시키면 되겠지.’
집사장.
아침에 밥을 가져다주는 하녀의 아비인 자.
‘딸을 끔찍하게 아끼니, 협박한다면 어쩔 수 없이 따르겠지.’
만약, 따르지 않는다면 하녀를 죽이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면 될 터였다.
‘그리고 개인 사정으로 인해 연회에 참석하지 못한 왕족이나 귀족들도 있을 테니 띠로 숙청을 취해야겠지.’
왕족과 귀족은 썩을 대로 썩었기에 새로운 왕국을 위해서 전부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지만… 그건 참아야겠지….’
악마님께 강대한 힘을 부여받았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었기에 자중할 필요가 있었다.
‘괜히, 내가 싸우겠다고 까불다가 기사한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왕족과 귀족을 지키는 기사들은 몇십 년간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기에 자신을 손쉽게 요리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엘비스는 한 기사단을 이용해 그들을 숙청할 생각이었다.
황금 기사단.
맹약으로 인해 왕을 수호하는 자들이었다.
‘왕이 죽게 되면, 그다음 계승자인 나의 명령에 따르게 되어 있지.’
즉, 독살로 왕이 죽기만 한다면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좋아, 이대로 진행한다.’
이후 엘비스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다른 작전을 짜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른 작전을 다 짰을 때.
‘여명이 차오르고 있군.’
작전을 실행할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이사벨 코든.
남작 작위를 지닌 딸이자. 엘리트만 들어올 수 있다는 왕실에서 하녀로 근무하는 여성.
“오늘도 힘차게 시작해볼까?”
그녀의 일과는 왕세자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으로 들어가자.
“이사벨 왔어?”
요리장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좋은 아침이에요!”
그녀는 산뜻하게 미소를 지으며, 요리장의 인사를 받아줬다.
“왕세자님 음식 나왔으니까. 가져가.”
요리장이 쟁반을 내밀자.
“오늘도 음식이 엄청나네요?”
고급스러운 음식이 접시에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국왕 폐하의 눈 밖에 났다고 해도 고귀한 혈통을 지닌 분이시잖아.”
“하긴, 명색의 왕세자님인데 질 낮은 음식을 드시면 안 되겠죠.”
“아무튼, 오늘도 잘 부탁한다.”
“네! 맡겨만 주세요!”
이사벨은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며, 쟁반을 들어 보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요리사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주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왕세자가 있는 창고가 아닌 개인 휴게실이었다.
‘흐흐,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나왔잖아?’
이사벨은 자리에 앉으며, 눈을 빛냈다.
‘잘 먹겠습니다!’
이어서 왕세자에게 올라갈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역시, 언제 먹어도 맛있어!’
최고급 식재료를 써서 그런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었다.
‘이 맛에 일하지!’
순식간에 음식을 해치운 이사벨은 쟁반을 들고 가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어떤 것을 줄까나?’
이어서 사료들을 훑어보며, 왕세자에게 어떤 것으로 줄지 고민했다.
‘에이 기분이다. 오늘은 돼지 사료를 주자!’
오늘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었으니, 조금 인심을 써서 돼지 사료를 주기로 했다.
그릇에 돼지 사료를 담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없게 천으로 가렸다.
‘흐흐, 오늘은 어떻게 짓뭉개 줄까나?’
하루의 일과 중 왕세자의 음식을 뺏어 먹는 게 첫 번째 행복이라면, 두 번째 행복은 왕세자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요즘 상태가 안 좋으니 따귀 10대만 때려주고 끝내야겠다.’
왕세자의 상태가 오늘내일하고 있었기에 괴롭히는 강도를 조금 낮춰주기로 했다.
‘오늘도 나를 노려보겠지?’
매일 같은 생활이 이어지지만, 왕세자는 늘 자신을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얼마나 짜릿한지.’
폭행을 당해도 노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로 짜릿한 감정이 들었다.
꼭, 왕족 위에 서 있는 기분.
이사벨은 이 기분을 오랫동안 만끽할 수 있게 왕세자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간 다음.
철커덕―
자물쇠를 풀고 창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
“음? 뭐야, 이 새X 어디 갔어?”
의자에 앉아 있을 왕세자가 보이질 않았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새X가 어디 간 거지…?”
왠지 모를 싸한 느낌을 받던 그때.
“오늘도 가축이 먹는 사료를 가져왔구나.”
귓가에 살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사벨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퍼―――억!
“꾸에에에에에엑!!!”
배에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는 동시에.
우당탕―!
몸이 뒤로 날아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쿨럭, 쿨럭!”
이사벨은 고통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몇 년간 나를 괴롭히던 년이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진 다라… 정말 맥 빠지는군.”
하지만, 들려오는 서슬 퍼런 목소리에 여기서 정신을 잃었다가는 감당하지 못 할 일이 벌어질 것을 직감했다.
‘몸 병X이 어떻게…?’
이사벨은 정신을 부여잡는 동시에 짙은 의문을 느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병X이 이런 위력을 냈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이사벨은 힘겹게 고개를 위로 올리자.
“호오, 얻어맞고 기절할 줄 알았는데 정신력이 생각보다 좋은가 보군.”
“…어?”
몸이 앙상한 왕세자가 아닌, 탄탄한 근육을 가진 왕세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이 변하긴 했지만, 이목구비는 그대로였기에 알아보는데 어렵지 않았다.
“네가 왕세자라고…?”
이사벨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정말이지 이런 순간을 줄곧 기다려왔는데… 예상했던 반응이 바로 나오지 않네.”
짜악―!
엘비스가 이사벨을 향해 따귀를 때리자.
후두둑―
입안에 하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것인지 이사벨의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래, 그런 반응을 진작 보였어야지.”
“…시X,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
상황 파악이 된 줄 알았는데, 그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네. 하긴, 이렇게 상황 파악을 못 하니 왕세자인 나를 건드렸던 것이겠지.”
엘비스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이사벨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뭐, 뭐 하는 짓이야!?”
“보면 알게 될 거다.”
그리곤 그녀가 가지고 온 돼지 사료를 한 움큼 쥐어 보이더니.
“너도 똑같이 당해봐라.”
이사벨의 입에 돼지 사료를 쑤셔 넣었다.
“으으읍!!!”
돼지 사료가 그녀의 입안에 들어가자.
“우에에엑!”
이사벨은 돼지 사료를 먹지 못하고 그대로 뱉어내 버렸다.
“뭐지? 맨날 사료를 강제로 먹이더니, 네년은 못 먹는 건가?”
“쿨럭, 쿨럭, 쿨럭!”
“아니지, 이 몸도 먹었던 것인데 미천한 네년이 못 먹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엘비스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뱉어낸 토사물과 함께 다시 입에다가 쑤셔 넣었다.
“우웁!”
그리고 다시 한번 뱉어내려는 순간.
“분명, 먹으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엘비스는 그대로 그녀의 뺨을 때렸다.
짜악―
“명령을 따르지 않는.”
짜악―
“녀석은.”
짜악―
“매가 약인.”
짜악―
“법이지.”
짜악―
“안 그런가?”
철퍼덕―
“허억, 허억, 허억!”
자비 없는 폭력에 이사벨의 몸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이번에는 현실 부정으로 인한 떨림이 아닌, 공포로 인한 떨림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뒤바뀌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그녀는.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야…?’
그간 왕세자에게 저질렀던 만행에 대한 후회감이 밀려왔다.
떨리는 눈빛으로 엘비스를 조심스럽게 쳐다보자.
“…….”
오물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야 눈빛이 볼만하구나.”
엘비스는 그녀의 시선을 맞추며,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죄, 죄송합….”
이사벨은 손을 모아 보이며, 엘비스에게 용서를 구걸하려고 했으나.
“설마, 사과 한마디로 네년의 죄가 용서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엘비스는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 이사벨의 말을 잘라버렸다.
“일단, 여태까지 이 몸이 당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줘야겠지.”
“…….”
“그러니, 부디 죽지 말고 잘 버티도록 해라. 혹시 아나? 끝까지 버텨내면 이 몸이 네년의 죄를 사면해줄지?”
“저, 정말 버티면 제 죄를 사면해주시는 겁니까?”
그녀의 물음에 엘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버틸 수만 있다면 말이지.”
“저하… 그 말을 꼭 지켜주십시오.”
“아무렴, 왕세자인 이 몸이 거짓말을 할까?”
엘비스는 창고에 굴러다니는 몽둥이를 들어 보이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첫 번째는 네년이 즐겨 사용했던 몽둥이찜질이다.”
퍼――억!
이사벨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자.
우―둑
“꾸에에에에엑!”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84화 버려진 왕세자 (4)
몇 시간 뒤.
“후.”
엘비스는 상쾌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화가 풀리는 것 같군.”
고개를 돌려 이사벨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기절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저 상태면, 하루 동안 기절해 있겠지.’
처음에는 나름대로 잘 버티기는 했으나 3시간 정도 지났을 때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기절해버렸다.
‘작은 복수는 끝냈으니, 이제 얻은 정보나 정리해볼까?’
엘비스는 여태 당했던 수모를 갚아주면서, 이사벨에게 정보를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3주 뒤에 연회가 열린다고 했지….’
시간이 촉박하면 어떡할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여유롭게 남아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왕족과 귀족이 대다수 참석한다고 했지.’
운이 좋게도 타국으로부터 물자가 들어오는 날과 맞물리게 되면서, 국왕이 성대한 연회를 열 것을 신하들에게 알렸다고 했다.
또한, 국왕은 이번 연회에 왕족, 귀족 가릴 것 없이 전원 참석하라고 명령을 내린 상태라고 한다.
‘사람들 전부 끌어모아 주면 나야 고맙지.’
참가하지 않는 자를 확인해보니, 밀림에서 가장 가까운 영지를 운영하는 귀족뿐이었다.
‘언제나 자신이 맡은 바를 최선을 다하는 자였지.’
과거, 그자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에 괜찮은 감정을 지니고 있던 엘비스였다.
‘나중에 왕위를 계승하게 되면, 고생했던 것을 치하해 줘야겠어.’
썩어빠진 왕국이지만,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귀족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면, 연회가 열리는 날도 파악했으니 집사장이 올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어.’
딸을 지극히 아끼는 작자이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사벨이 사라졌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것이었다.
‘과연, 집사장은 이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지네.’
이사벨처럼 주제 파악하지 못하고 덤벼들지, 아니면 주제 파악을 하고 꼬리를 내릴지 몹시 궁금했다.
‘뭐,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없지만 말이야.’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짓밟아줘 위치를 알려주면 그만이었다.
‘최대한 빨리 왔으면 좋겠네.’
엘비스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사장이 찾아오는 것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 * *
점심 무렵.
“이사벨을 못 봤나?”
이사벨의 아비인 집사장은 딸이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며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아니요. 이사벨은 보지 못했습니다.”
“찾아봤는데, 안 보이더라고요.”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수소문을 하고 다녀도 왕성 내에 있는 이들은 전부 모른다는 답만 들려줄 뿐이었다.
“…그런가? 알겠네.”
집사장은 혹여나 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싶어 초조한 마음으로 왕성 내를 돌아다니던 그때.
“이사벨이요? 창고 가는 것까지는 봤는데 그 뒤로는 모르겠어요.”
같이 일하는 하녀를 통해 이사벨의 행방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설마, 창고에서 아직도 나오지 않은 건가?’
평소, 왕세자를 괴롭히는 것을 좋아했던 딸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창고에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쯧, 괴롭히는 것도 적당히 하라니까.’
1 왕자가 뒤를 봐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요구한 조건 이상으로 괴롭히는 것은 좋지 못했다.
‘이번에 따끔하게 한 소리 해야겠군.’
집사장은 이사벨이 창고에 있을 것으로 확신하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지하 계단을 통해 창고 앞에 도착하자.
‘고요하군….’
거짓말처럼 창고 안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고 있지 않았다.
‘왜, 조용하지?’
못해도 떠드는 소리라도 들려와야 할 텐데 이상하리만치 너무나도 조용했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군.’
집사장은 왠지 모를 싸한 느낌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
그리고 창고 내를 훑어보니, 자신의 직감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사벨?”
그도 그럴 것이 딸의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닥에 쓰러진 딸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누구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 때문에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군가 싶어 의자에 앉은 사내를 자세히 살펴보니.
‘왕세자…?’
집사장은 그가 왕세자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완전히 바뀐 모습에 의아함이 들었지만.
“왔는가?”
엘비스가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집사장은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
집사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엘비스를 바라보자.
“이 몸이 인사를 하였는데, 왜 대답이 없지?”
엘비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불편하다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모습이 너무 바뀌어서 순간 저하인지 못 알아봤습니다.”
집사장은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며 공손하게 대답하자.
“흠, 모습이 꽤 바뀌긴 했지.”
엘비스는 피식 웃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근데 이곳은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딸을 찾으러 왔습니다.”
“자네 딸이 누구였더라?”
“…바닥에 쓰러진 아이가 제 딸입니다.”
집사장은 엘비스가 일부러 조롱하는 것을 알았지만, 순순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년을 찾으러 온 건가?”
퍼―억.
대답을 들은 엘비스는 바닥에 쓰러진 이사벨을 발로 차 보이며 말했다.
“!!!”
그 모습에 순간 깊은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참아야 한다.’
이 상황에 분노를 터뜨려봤자. 좋을 게 없기에 집사장은 분노를 빠르게 수그러뜨렸다.
“…저하,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엘비스에게 물어보았지만.
“지금 자네가 나에게 질문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하는가?”
엘비스는 조소를 터뜨리며, 집사장의 질문에 반문해 보였다.
“…질문할 위치가 아니긴 하지요.”
집사장은 신음을 흘리며, 엘비스의 물음에 대답했다.
“하지만, 특별히 아량을 베풀어 자네의 물음에 답해주도록 하지.”
엘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덥석―
이사벨의 머리채를 잡으며 말했다.
“왕족임에도 이 몸은 이년에게 수년간 가축의 사료를 억지로 먹여졌을뿐더러 모진 고문을 당해왔지.”
“…….”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에 집사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가축 사료를 먹이고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딸에게 들었던 것과 괴리가 크게 느껴지는 이야기.
‘그저, 말로 조롱을 하던 것이 아니었나?’
1 왕자가 명령을 내렸던 것은 그저 왕세자가 다른 생각을 못 하도록 하루에 한 번 조롱을 해주는 것이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1 왕자 손에서 끝낼 수 없다….’
집사장이 왕세자 앞에서 굽히지 않았던 것은 조롱쯤은 1 왕자 선에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저 말이 사실이라면 1 왕자 선에서는 절대 해결할 수가 없었다.
‘왕족의 옥체에 손에 대는 건 중죄에 해당하지….’
국왕의 눈 밖에 난 왕세자라고 해도 왕족이었다.
또한, 왕족의 옥체를 건드리는 것은 반역으로 간주해 연좌제로 전부 사형에 처하게 됐다.
집사장은 등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창고 안을 천천히 둘러보니.
“…….”
이곳저곳에 사료로 추측되는 것들과 책상 밑에 변들이 가득 깔린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눈으로만 봐도 이사벨이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집사장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는 그때.
“그러다가 환골탈태하게 되면서, 건강을 되찾게 되고 힘을 얻게 되었지.”
엘비스는 모습이 바뀐 것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얻은 힘으로 수년간 이 몸을 괴롭혔던 년을 친히 응징해주게 된 것이지. 어때, 궁금증은 해결되었나?”
“…그, 그렇군요.”
그렇게 설명을 전부 전해 들은 집사장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환골탈태? 상황이 꼬일 대로 꼬였군.’
환골탈태라는 놀라운 사실을 들었지만, 이사벨이 왕세자의 옥체를 건드렸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정신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정신이 혼란스러운 한편, 집사장은 자신이 지금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털썩―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왕세자인 엘비스에게 용서를 비는 것.
“그러게, 딸 교육을 제대로 했어야지.”
엘비스는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팔짱을 껴 보였다.
“제, 제발 어떠한 것이든 할 테니,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쿵, 쿵, 쿵, 쿵―
집사장은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머리를 찍으며 용서를 빌었다.
몇 번이나 머리를 바닥에 찍었을까?
바닥에 피가 흥건해질 때쯤.
“정말 어떠한 것이든 할 건가?”
엘비스가 흥미 가득한 목소리로 되물어 왔다.
“예!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어떠한 것이든 성실히 수행하겠습니다!!!”
집사장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며,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자 엘비스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그 말 꼭 지킬 수 있길 바라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자네가 해줄 일은 간단하네, 이번 열리는 연회 때…… 하면 돼 쉽지?”
그리고 이어지는 명령에 집사장은 패닉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반역을 일으키겠다고…?’
명령을 따르겠다고는 했지만, 그것이 반역일 줄 꿈에도 몰랐다.
“할 수 있겠지?”
“만약, 왕세자님께서 명령한 대로 한다면, 죄를 용서해주는 겁니까?”
“물론이지.”
“…그렇다면 하겠습니다.”
그저 자신과 딸의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기에 집사장은 엘비스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한편, 정민우와 마교회 멤버들은 지금까지 일어난 상황들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을 잘 풀어가네.’
정민우는 침착하게 상황을 풀어가는 엘비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단순히 힘만 얻은 상황 속에서 저렇게 대처하는 것도 능력이야.’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가지 못한다면, 주변 국가의 시선이 몰리는 것을 감수하고 후불로 몬스터를 빌려줄 생각이었지만, 지금 하는 것을 보니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과연, 어떻게 상황을 풀어갈지 기대가 되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엘비스를 바라보고 있자.
“불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을 저렇게 가볍게 휘두르다니, 괜히 지혜와 관련된 재능을 지닌 게 아니네요.”
“…동감이야.”
“크으, 이번에도 고등생물과 계약을 잘한 것 같은데? 개굴개굴.”
비너스, 엘린, 로크 또한 자신과 생각이 같았는지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쯧, 나는 별로야.”
하지만, 아누비스는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디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비너스의 물음에 아누비스가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가 힘을 줬으면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아야지. 샌님처럼 머리만 사용하고 있잖아.”
아누비스의 말에 비너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파콘 왕국 침략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봐요.”
“후, 알겠어.”
비너스의 설득에 아누비스는 이번만 참아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민우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귀여운 투정이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니, 아누비스의 불만도 금방 해결이 될 것이었다.
‘대충, 상황이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으니 다음 일을 진행해볼까?’
정민우는 자신이 타락시켰던 비둘기를 사용할 때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부터 암시를 보내면, 파콘 왕국이 엘비스 손에 넘어갈 때쯤 비둘기가 행성에 도착하겠지.’
얼추 시간을 계산한 정민우는 디버프와 전언을 사용해 세이나에게 암시를 보냈다.
【‘다이닉’ 행성으로 와라】
그리고 성공적으로 세이나에게 암시가 걸린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겠지?’
정민우는 암시를 완벽하게 걸기 위해 수백 차례를 보내고 나서야 그만뒀다.
85화 버려진 왕세자 (5)
정민우가 수백 번의 암시를 걸고 난 뒤.
“…다이닉 행성?”
천계에 있던 세이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처음 들어보는 행성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실존하는 행성인가?’
갑작스럽게 떠오른 행성의 이름.
지나가다가 얼핏 들은 행성을 떠올린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지만.
‘한 번 찾아봐야겠어….’
세이나는 ‘다이닉’ 행성을 가야만 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일단, 이 행성이 정말 실존하는지 확인해봐야겠지.’
그녀는 도서관으로 향해 다이닉 행성에 관해 찾아봤다.
‘…있다!’
그리고 정말로 다이닉 행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행성인지 자세히 살펴볼까?’
이어서 내용을 살펴보니.
‘악마는 없고. 천사는 2품 1명, 9품 1, 000명…?’
말도 안 되는 천사들의 숫자.
‘무슨, 천사들이 이렇게나 많아?’
세이나는 당혹감을 느끼며, 내용을 읽어나갔다.
‘10분의 9 정도 점령이 끝난 상태라….’
이런 곳에 가봤자. 제대로 된 신성력을 얻지 못하고 끝날 것 같았다.
‘좋다. 말았네.’
세이나는 도로 집어넣기 위해 서적을 덮었지만.
‘…조금만 더 봐볼까?’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지 서적을 다시 펼쳐 그다음 내용을 읽어나갔다.
‘유레인 행성보다 10배나 크다고?’
그리고 행성의 크기가 상당하다는 정보를 알아낼 수가 있었다.
‘10분의 9를 점령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유레인 행성만 한 땅이 남아있다는 거잖아?’
이 정도의 크기라면, 지금 가도 신성력을 꽤 얻어낼 수가 있을 것이었다.
‘…근데, 나를 받아주시려나?’
거의 점령을 끝낸 상태에서 대뜸 껴달라고 한다면, 좋게 보지 않을 것 같았다.
본래 같으면 깔끔하게 포기했겠지만.
‘그래도 찔러나 보는 게 좋겠지….’
현재, 그녀는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니었기에 찔러나 보기로 했다.
‘행성을 점령할 수 있는 신성력을 마련해야 해.’
유레인 행성을 점령하는 것을 실패하면서 신성력이 거의 다 떨어졌기에 다음 행성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신성력을 어떻게든 모아야만 했다.
‘다이닉 행성에 가서 허락을 구해봐야겠어.’
행성에 나가 있으면, 따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에 직접 찾아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 가보자!’
마음을 굳힌 세이나는 곧장 포탈 정거장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저녁.
집사장은 왕성 내에서 일하는 친척들을 불러 모아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해줬다.
“…뭐? 그게 사실이야?”
“사형?”
“…연좌제?”
“농담하시는 거죠?”
처음에는 이 사실을 부정했으나.
“미안하게 됐네.”
집사장의 진중한 사과에 친척들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보인 반응은.
“그러게 딸 교육을 제대로 했어야지…!”
“내가 일 한 번 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성대하게 칠 줄은 몰랐군!”
“이사벨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따님 덕분에 이른 나이에 세상에 뜨게 생겼네요.”
이사벨에 대한 분노였다.
친척들 입에서 자신의 딸에 관한 온갖 모욕적인 발언이 쏟아졌으나.
“…미안하네.”
집사장은 사과의 말밖에 전할 수 없었다.
“내가 잘못 교육했네….”
자신의 딸 때문에 그들이 죽게 생겼는데 당연히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있음에도 우리가 끌려가지 않은 것을 보니… 저하가 용서해주는 대신 다른 조건을 내걸었다는 거겠지?”
그리고 친척 중 눈치가 빠른 자는 집사장과 왕세자 사이에 어떠한 대화가 오고 갔다는 것을 추측해 냈다.
“맞네.”
집사장은 순순히 인정하며, 어젯밤 왕세자가 어떤 조건을 내걸었는지 친척들에게 설명해줬다.
“““…….”””
그리고 설명을 들은 친척들은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왕세자가 내건 조건이 너무 터무니없어서였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겨우 정신을 붙잡은 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소리였네.”
집사장의 대답에 친척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 사실을 왕족들에게 고하는 것은 어떤가?”
친척 중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의견을 제시하였으나.
“고한다면, 사형을 당하게 되긴 하겠지만 우리 또한 죽는 것은 변하지 않네.”
그렇다.
왕세자가 반역죄로 사형을 당한다고 한들 이사벨이 왕족의 옥체를 건드렸던 사실은 바뀌지 않기에 그들 또한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러니, 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은 저하 쪽에 붙어 말을 따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네….”
집사장의 말에 친척들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그 말대로 따르면, 우리를 살려주는 건 확실한가?”
“맡긴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다면, 이사벨이 저지른 죄는 없던 것으로 해주시겠다고 약조하셨다네.”
갑작스럽게 이런 일을 가담하게 된 친척들은 억울하기 그지없었으나.
“후, 알겠다.”
“어쩔 수 없군.”
“따르도록 할게요.”
결국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왕세자의 내건 조건을 따르기로 했다.
왕세자가 약조했다고 한들 지킬 거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바로 준비에 들어가도록 하지.”
아무도 그 사실을 언급하는 자는 없었다.
* * *
며칠 뒤.
“그리하여, 준비를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집사장은 창고에 찾아가 준비가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엘비스에게 보고를 올렸다.
“독은 어떤 것을 사용하지?”
엘비스의 물음에 집사장은 잠시 말하는 것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히드라의 독입니다.”
“내가 먹었던 독이군.”
“…그렇습니다.”
히드라의 독.
마시게 되거나 육체에 닿게 되면 5분 안에 죽게 된다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그리도 이 독의 가장 무서웠던 점은 물처럼 맑아 마음먹고 사용하면 알아차릴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강력한 독에 엘비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10, 000분의 1로 희석한 독을 사용해서였다.
“독은 충분히 있나?”
“소량의 독밖에 없지만 물과 섞는다면 모든 음식에 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사장의 대답에 엘비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러면 위력이 약해지니 원액 그대로 국왕에 음식에 뿌리도록 해. 그리고 다른 음식들은 따로 독을 구해서 뿌리도록 하고.”
“…다른 독을 사용하면, 걸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 정도는 자네의 힘으로 알아서 해결하도록 해.”
“…저하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엘비스의 강력한 뜻에 집사장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하며 대답했다.
“그러면, 이제 돌아가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집사장은 뒤로 물러나며, 밧줄로 포박된 딸을 힐끗 쳐다봤다.
“으읍! 으으읍!”
입에 재갈이 물려 있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을 구해달라고 애타게 울부짖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짜―악!
“누가 소리를 내도 된다고 했지?”
엘비스는 이사벨의 따귀를 때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
그러자 이사벨은 바닥에 엎어지며 소리 없는 고통을 호소했다.
‘…이사벨.’
이 사단을 만들어낸 원흉이었지만, 자신의 피붙이라 그런지 저런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안 돌아가나?”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하.”
하지만, 집사장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집사장이 떠난 뒤.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군.’
엘비스는 착실하게 진행되는 계획에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겠지.’
방심으로 인해 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됐었으니, 방심이 얼마나 큰 화를 불러일으키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내 나름대로 준비를 이어가야겠지.’
엘비스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흡!’
그리고 눈을 번쩍 떠 보이자.
화르륵―
온몸에 연보라색의 마기가 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마기를 사용하는 것도 많이 안정적이야.’
책상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리자.
치이익―
타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올린 부분이 그대로 녹아내려 버렸다.
‘이 정도면, 기사는 무리더라도 병사는 눈감고도 제압할 수 있겠지.’
엘비스는 악마님들이 준 힘에 관해 연구하다가 최근 마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 상태였다.
‘여기서 다루는 것만 익숙해진다면, 위기 상황이 생겨도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겠지.’
엘비스는 빨리 연회가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남는 시간 동안 마기를 운용하는 데에 매진하기로 했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 연회가 열리는 날이 찾아왔다.
왕성 내에는 연회 준비로 인해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전보다 규모가 더 큰 만큼 경계를 확실히 서도록.”
“““예,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경계를 더욱 강화했고.
“전하께 올라갈 음식이니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도록.”
“““알겠습니다.”””
요리사들은 최고의 음식을 대령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
그리고 엘비스의 명령을 받은 집사장과 친척들은 음식에 독을 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음식들의 세팅이 끝내갈 때쯤.
쨍그랑―
“어머, 정말 죄송해요!”
친척 중의 한 명인 하녀가 유리를 깨트리며 시선을 끌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 사이.
뽕―
집사장과 다른 친척들은 품속에 숨겨 든 독 병을 꺼내 음식에 재빠르게 뿌렸다.
그다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테이블에서 물러났다.
‘여기까지는 완벽하다….’
집사장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친척들과 함께 연회장을 나서려는 순간.
“잠깐.”
연회장 문을 지키고 있던 기사가 나가려는 것을 제지해왔다.
“…왜 그러시죠?”
집사장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을 느끼며, 멈춰 세운 이유를 묻자.
“혹시, 남는 음식 있나?”
“남는 음식이요?”
“배가 조금 출출하거든.”
기사의 말에 집사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도록 하지.”
그렇게 집사장과 친척들은 음식에 독을 탄 것을 아무한테도 걸리지 않고 연회장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솔직히 통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미 진작에 걸리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파콘 왕국은 부패할 대로 부패한 곳이기에 가능했던 작전이었다.
‘경계를 강화해도 기사들이 일을 똑바로 하지 않으니 말이야….’
집사장은 새삼 망해가는 국가여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제 저하께 보고하러 가볼까?’
그는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척들과 함께 창고로 향했다.
똑똑―
“저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들어오도록.”
집사장의 보고에 엘비스는 창고 안으로 들어올 것을 허락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오랜만에 입어봤는데 어떤가?”
예복을 차려입은 엘비스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용안이 훤하십니다. 저하.”
집사장은 국왕을 칭하는 말을 엘비스에게 사용하며, 아양을 떨어 보였다.
“그래? 다행이군. 이제 일 처리가 어떻게 됐는지 들어나 볼까?”
엘비스의 물음에 집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성공적으로 모든 음식에 독을 풀었습니다.”
“좋군.”
보고를 마친 집사장은 엘비스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저하의 명령대로 했으니, 이제 이사벨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지.”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해준다는 말에 집사장과 친척들의 얼굴이 환해지며, 엘비스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살았다!’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때.
“그건 그렇고. 지금 자리한 인원이 전부인 건가?”
대뜸 인원에 대해 물어왔다.
“예, 이 인원이 전부입니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의아했으나 집사장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물음에 대답했다.
“그렇군.”
엘비스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그럼, 이제 죽어라.”
집사장과 그의 친척들을 향해 마기를 쏘아냈다.
86화 왕위 계승
촤아아아아악―
마기를 직격당한 집사장과 그의 친척들은 어떠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이 갈가리 찢겨 버렸다.
털썩―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응하지 못한 그들은 그대로 생을 마감해버리고 말았다.
“악마님께서 내려주신 힘이어서 그런지 위력이 상당하군.”
엘비스는 바닥에 쓰러진 그들을 바라보며, 작은 감탄을 터뜨렸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기사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겠어.”
그렇게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그때.
“우우웁! 우우우웁!!!”
이사벨이 충혈된 눈으로 무언가를 얘기하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또 시끄럽게 울어대는구나.”
마음 같아서는 이사벨도 바로 죽여버려야 했지만.
“기분이 좋으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특별히 들어주도록 하지.”
엘비스는 넓은 아량을 베풀어 이사벨의 입에 채우진 재갈을 풀어줬다.
“야이 X끼야! 네 명령대로 따르면 죄를 용서해준다고 했잖아!!”
그러자 이사벨은 교양 없는 말투로 엘비스에게 빽 하고 소리를 질러왔다.
그녀의 외침에 엘비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내 명령을 톡톡히 해냈으니, 약조한 대로 죄를 사면해줬다.”
“그런데 왜 죽이건대!!!”
엘비스는 무릎을 굽혀 이사벨과 시선을 맞춰주며 말했다.
“죄를 사면해준다고 했지, 죽이지 않는다고는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뭐라고?”
“들은 그대로다.”
이사벨은 당혹감이 섞인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게 그거 아니야. 이 개X끼야!!!”
그녀의 억지 주장에 엘비스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 엄연히 다르다.”
엘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목에 발을 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살려줄 이유는 없지 않나?”
“…살려줄 이유가 없다고?”
“처음이 어려운 법이지. 그다음부터는 쉬워지기 마련이니까.”
즉, 한 번 배신한 녀석들은 또 배신할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처단했다는 말이었다.
“미친 새X….”
이사벨은 경멸 가득한 시선으로 엘비스를 바라보며 욕을 내뱉었다.
“그 소리를 네년에게 들으니 기분이 언짢군.”
“뭐라는 거야. 살인자 새X가!!”
“이 일을 자초한 것이 네년이라는 사실을 잊은 건가?”
“…….”
“네년이 자초한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꼴이 역겹기 짝이 없구나.”
그렇다.
애초에 이사벨이 엘비스에게 가축 사료를 먹이고 고문하는 일이 없었다면, 이런 일 자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
이사벨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엘비스의 말을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 따지는 꼴을 보아하니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선 반성하지 않는 것 같군.”
엘비스는 발에 마기를 집중시키더니.
“뭐, 그러니까. 왕족에게 그런 짓을 저지를 생각한 거겠지. 이제 너도 아비의 품으로 보내주도록 하마.”
“자, 잠깐…!”
으드득―
그대로 이사벨의 목을 밟아 숨통을 끊어버렸다.
“후, 벌레들도 전부 처리했으니. 연회에 참석해볼까?”
이제 연회가 시작했을 테니, 곧 있으면 음식을 먹을 것이었다.
‘죽는 것은 내 눈으로 봐야지.’
엘비스는 거울을 통해 옷매무새를 점검한 뒤.
‘과연, 죽을 때는 어떤 모습을 할지 궁금하네.’
창고에 나서며, 연회장으로 향했다.
* * *
해가 저물자.
웅성, 웅성, 웅성.
연회장에는 왕족과 귀족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초대된 자들이 연회장에 전부 도착했을 때쯤.
“국왕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전부 예의를 갖춰주십시오.”
한 기사가 국왕의 입장을 알려왔다.
끼이익―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꾸벅―
왕족과 귀족들은 예우를 다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다들, 연회에 온 것을 환영하네.”
오크, 아니 국왕은 빨간 카펫을 밟으며, 고개를 숙인 자들에게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새 체력이 떨어진 것인지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숨이 거칠어졌다.
“허억, 허억, 허억.”
결국, 기사의 부축을 받은 국왕은 비대한 몸을 이끌고 겨우 옥좌에 앉을 수가 있었다.
“…후우.”
국왕은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낸 뒤.
“말은 길게 하지 않겠다. 다들 연회를 즐겼다가 돌아갈 수 있도록.”
간단한 축사를 내뱉으며, 연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제야 왕족과 귀족들은 숙였던 허리를 펴 보이며, 테이블에 올려진 음식을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꿀꺽―
“그럼, 짐도 먹어 보도록 할까?”
국왕은 군침을 흘리며, 옆에 서 있는 기사에게 눈짓하자.
“음식을 대령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기사들이 음식이 올려진 책상을 들고 가지고 왔다.
“호오, 오늘따라 음식의 때깔이 좋구나. 신경을 쓴 게 티가 나.”
국왕의 감탄을 터뜨리며, 음식을 집으려는 그때.
“전하, 드시기 전에 독의 유무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사가 팔을 뻗으며, 국왕이 식사하려는 것을 제지했다.
“흥, 여태까지 한 번도 음식에 독이 들었던 적은 없으니 필요 없다.”
국왕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기사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짐이 됐다고 하지 않았던가? 혹시, 이 음식을 맛보고 싶어서 그런 핑계를 댄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억지스러운 논리에 기사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났다.
“진작 그럴 것이지.”
물러난 것을 본 국왕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제일 먹음직스럽게 생긴 스테이크를 썰어 입안에 집어넣고 씹는 순간.
“컥!”
국왕이 자신의 목을 부여잡은 채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전하!!!”
놀란 기사들이 달려들려는 찰나.
“너무 맛있군!”
국왕은 황홀감에 젖은 얼굴로 스테이크를 다시 입안에 집어넣으며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
그 모습에 기사들은 질렸다는 얼굴로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국왕은 행복한 식사 시간을 보내던 그때.
“와, 왕세자님께서 들어오십니다!”
한 기사가 당혹감이 서린 목소리로 엘비스의 입장을 알려왔다.
“…왕세자? 엘비스가 이곳에 왔다고?”
국왕은 먹던 음식을 접시에 내려놓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창고에 처박혀 있을 놈이 어떻게 기어 나온 거야?”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녀석이 연회장에 찾아왔다는 것이 의문스러웠다.
연회장 안으로 들어오면 왜 찾아왔냐고 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끼익―
뚜벅, 뚜벅, 뚜벅.
키가 훤칠한 사내가 연회장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엘비스?”
처음에는 다른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인가 싶었으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자신의 첫째 아들인 엘비스가 맞았다.
“…왕세자라고?”
“분명, 왕세자는 변방의 영지로 쫓겨났다고 하지 않았어?”
“응? 내가 알기로는 병에 걸려 죽은 거로 알고 있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왕성에서 쉬쉬하고 있던 게 아니었어?”
귀족들은 왕세자의 등장에 당혹감을 드러내는 한편.
“근데, 저렇게 모습이 바뀌셨다고?”
“더 늠름해진 것 같지 않아?”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은 왜 바뀐 거지?”
전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국왕의 지척까지 다가온 엘비스는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떻게 이곳에 온 거지?”
국왕은 귀족들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창고에서 나왔는지 돌려서 물어봤다.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물쩍 넘어가는 대답에 짜증이 솟구쳤지만, 국왕은 다음으로 궁금한 것을 묻기로 했다.
“…그 바뀐 모습은 뭐냐?”
“이 모습 말입니까? 운이 좋게 깨달음을 얻어서 환골탈태하게 됐습니다.”
“환골탈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
“아마, 설명해도 전하께서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네놈!!!”
자신을 낮잡아 보는 말에 국왕은 분노를 터뜨리며 말했다.
“국왕인 나에게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
“지금 당장 무릎을 꿇어 예의 차려라!!!”
국왕의 외침에 엘비스는 한쪽 귀를 파보이더니, 옆에 있는 시중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전하께서 식사하신 지 몇 분이나 흘렀지?”
엘비스의 물음에 시중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4분 정도 되었습니다.”
대답을 들은 엘비스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곧 별세하실 때가 됐군.”
“몇 년간 창고에 처박히더니 정신이 돌아 버렸구나!!!”
중얼거림을 들은 국왕은 분노를 터뜨리며, 처형할 것을 명령 내리려는 순간.
“컥, 컥?”
“헉!”
“끄억!?”
털썩, 털썩, 털썩, 털썩, 털썩―
연회장에 자리하고 있던 왕족과 귀족들이 맥없이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그 모습에 불길함을 직감한 국왕이 엘비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고 물으려고 했지만.
“꾸익?”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몸에 엄습하면서 질문을 던질 수 없게 되었다.
“컥컥?”
철퍼덕―
바닥에 쓰러지며, 몸을 바들바들 떨자.
“““저, 전하!!!”””
기사들이 국왕 곁에 모여들며 국왕의 상태를 파악했다.
“이 증세는 히드라 독이야!”
기사단장의 외침에 기사들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히드라 독은 고위 사제가 오지 않으면 고칠 수 없는 극독이었다.
애석하게도 파콘 왕국은 종교를 믿지 않기에 사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즉, 현재로서는 독을 낫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에, 엘비스 네놈이…?”
국왕의 볼살을 부들부들 떨며, 엘비스를 노려봤다.
“푸힛, 푸하하하핫.”
그러자 엘비스는 대뜸 대소를 터뜨리며,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꼴이 말이 아니십니다.”
“왜, 왜 이런 짓을…?”
“뭘, 당연한 걸 묻습니까? 왕위를 계승하려고 그러는 거죠.”
“…왕위 계승?”
“이제 파콘 왕국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엘비스가 옥좌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스르릉―
“더 이상 다가오면 베도록 하겠습니다!”
국왕을 지키던 기사단장이 검을 꺼내 들며 엘비스에게 위협을 가했다.
“검이 상당히 날카롭군.”
검이 목에 언저리까지 왔지만, 엘비스는 겁먹기는커녕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널드 경.”
이내 기사단장 쪽으로 시선을 옮긴 엘비스는 이죽거리며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왕세자인 내가 왕위를 계승 받게 된다.”
“…알고 있습니다.”
“또한, 국왕이 위독할 때는 왕세자를 우선으로 지키게 되어 있지.”
“…….”
“그러니, 무기를 치우는 게 어떤가? 몇 초 뒤에 내가, 아니 짐이 국왕의 자리에 오르게 될 텐데.”
“하지만, 이건 명백한 반역…….”
“맹약에 따르도록 해라!”
엘비스가 호통을 치며, 맹약에 관해 들먹이자.
“…맹약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기사단장, 아널드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엘비스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쓰러진 국왕에게 다가갔다.
“왕위는 잘 물려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국왕의 왕관을 강제로 벗긴 뒤.
“드디어 손에 넣게 되었군.”
자신의 머리에 왕관을 써 보였다.
“네, 네놈…!!”
국왕은 엘비스를 향해 따지려고 했지만.
“…꾸엑.”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파콘 왕국을 다스리는 왕의 죽음이라고 하기에는 꼴사납기 그지없었다.
“평소 이 옥좌에 앉는 꿈을 꾸었지.”
엘비스는 옥좌에 걸터앉으며, 탐욕이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팔걸이를 쓸었다.
“왕국의 법에 따라 짐이 왕위를 계승 받으며, 파콘 왕국을 다스리도록 하겠다.”
이어지는 외침에 기사단장과 기사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한쪽 무릎을 꿇어 보였다.
“국왕으로 계승 받게 됐으니 너희에게 첫 임무를 내리도록 하겠다.”
“경청하겠습니다.”
기사단장의 말에 엘비스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왕족, 귀족 가릴 것 없이 이 몸에 반기를 들었던 자를 즉각 척살하도록 해라.”
반기를 든 자.
즉, 왕세자 시절 자신의 편을 서지 않았던 자들을 전부 죽이라는 명령이었다.
‘왕위를 계승하자마자 학살이라니….’
기사단장은 과연 파콘 왕국이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명령에 따릅니다.”
자신은 명령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였기에 그저 국왕의 명령에 따를 뿐이었다.
87화 20년 (1)
엘비스가 왕위를 계승한 뒤 왕성 내에는 피바람이 들이닥쳤다.
몇몇 음식을 먹지 않았던 자들이 거세게 반항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소드 마스터 경지에 오른 기사단장의 검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릴 뿐이었다.
“전하, 명령에 따라 반기를 든 자를 전부 처리했습니다.”
기사단장의 보고에 엘비스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일 처리 하나 확실하군.”
“…감사합니다.”
“아널드 경만 남고 다른 자들은 물러가 봐도 좋다.”
엘비스의 명령에 기사들은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물러났다.
“아널드 경.”
“예, 전하.”
“자네는 나와 함께 감옥에 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기사단장. 아널드는 엘비스의 명령에 의문을 드러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감옥에 갇힌 신하들을 빼려고 하는 거군.’
과거, 엘비스를 착실히 따르던 자들은 전부 감옥에 갇혔기에 그들을 만나러 간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가 있었다.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부탁하지.”
그렇게 아널드의 안내를 받으며, 감옥 안에 들어서자.
“저, 저하?”
팔, 다리가 잘린 죄수 한 명이 놀란 눈으로 말을 걸어왔다.
“…자네는 폴트인가?”
과거, 자신을 호위했던 기사였기에 엘비스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군….”
전에는 튼실한 근육을 자랑하던 기사였을 텐데, 지금은 뼈밖에 안 남은 앙상한 상태였다.
“하하, 그래도 저하께서는 옥체가 더 좋아지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폴트는 감옥에 갇히게 만든 엘비스를 원망하기는커녕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나 때문에 모진 고생을 했을 텐데, 정말 한결같군.’
신세를 한탄하며 비난이라도 했다면, 미안한 마음이 덜 했을 텐데 한 치도 변하지 않은 충성심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시큰거렸다.
“…그건 그렇고. 저하 또한 창고에 갇혀 있던 것 아니었습니까?”
폴트의 물음에 엘비스는 피식 웃으며, 자신이 쓴 왕관을 가리켰다.
“머리에 쓴 거 안 보이나?”
“…와, 왕관?”
“그래, 오늘 왕위를 계승하게 됐거든.”
“저, 전하께서 무슨 변심이 들었길래 저하를 용서해주신 겁니까?”
이어지는 폴트의 물음에 엘비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용서는 무슨, 강제로 빼앗았다.”
“…강제로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왕위에 오르자마자. 척을 졌던 녀석들은 전부 즉각 척살했다.”
엘비스의 말에 폴트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침착함을 되찾으며 말했다.
“확실히, 왕위를 계승 받기 위해서는 그 방법 말고는 없었겠군요.”
그의 태연한 모습에 엘비스는 속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부 척살했다는 것에 거부 반응을 일으킬 줄 알았는데 의외군.’
폴트는 기사라는 직책과 어울리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것에 심한 거부 반응을 일으켰었다.
‘하긴, 수년 간 고문을 당했는데 성향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건가?’
생각해보니, 팔과 다리가 고문으로 인해 잘려 나갔는데 전과 같은 성향을 유지하는 게 더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이유로 새로운 왕국을 꾸려가기 위해 내 신하들을 감옥에 구출하러 왔다.”
엘비스의 말에 폴트가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제 팔다리도 없는 불구인데, 구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새로운 왕국을 꾸려가는 데 저는 방해만 될 뿐입니다. 전하의 용안을 뵌 것만으로도 만족하니 꺼내줄 필요는 없습니다.”
폴트의 충언에 엘비스는 가볍게 무시해버리며, 철창에 열쇠를 집어넣었다.
철컥―
이어서 철창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덥썩―
폴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아니, 자네의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도움이 된다. 그리고 네 잘린 팔다리를 원래 상태로 되돌릴 방법도 마련해뒀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되, 되돌릴 방법이요?”
“그건,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이곳에 쉬고 있어 다른 애들을 데리고 올 테니까.”
이후 엘비스는 자신의 신하를 찾아 폴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한 방에 모인 신하들을 훑어보니.
‘상태들이 말이 아니군.’
폴트처럼 팔다리가 없는 자가 있는가 하면, 눈을 잃은 자, 턱을 잃은 자, 귀를 잃은 자 등등 여러 모습으로 불구가 되어 있었다.
‘개자식들….’
자신의 사람들이 성치 않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기사들을 통해 죽이기는 했다만, 이렇게 심한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쉽게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래도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지.’
엘비스는 기사단장인 아널드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따로 해야 할 것이 있으니, 감옥 밖에서 기다리도록 해라.”
“명령에 따릅니다.”
아널드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옥 밖으로 벗어났다.
‘악마님들을 불러내기 전에 이들에게 간단히 설명해줘야겠지?’
악마님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실례를 저질러 버리면 큰일이었기에 사전 설명은 필수였다.
“일단, 너희의 상처를 회복시키기에 앞서 설명해야 할 것이 있다.”
엘비스는 신하들에게 여태까지 있었던 일에 대한 것과 악마에게 어떤 은총을 받았는지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해줬다.
그렇게 악마와 계약을 통해 마인이 됐다는 사실을 알리니.
“아, 악마 말입니까?”
“수백 년 전 이후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악마 말입니까?”
“이럴 수가….”
처음에는 당황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지만, 마인에 관한 혜택을 나열하자.
“기적이군요.”
“…저도 마인이 돼서 빨리 상처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천사들도 하지 못하는 기적을 악마님께서 행사하시는군요.”
“전하의 비범함을 악마님들 또한 알아차리셨던 것 같습니다.”
신하들은 몽롱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마인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제 악마님들을 부르도록 할 테니, 나타나시면 최고의 예우를 갖추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엘비스는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은 뒤, 두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악마님들이시여, 명령을 내렸던 대로 한 달 안에 ‘파콘’ 왕국을 손에 넣었습니다. 부디 미천한 저희에게 모습을 드러내 주십시오.”
이어서 간절한 목소리로 기도를 읊조리자.
스스스―
감옥 안에서 스산한 검은 안개가 흘러나오더니.
뚜벅, 뚜벅, 뚜벅.
그곳에서 다섯 명의 인영이 걸어 나왔다.
* * *
엘비스가 국왕을 독살하고 왕관을 쓸 당시.
“3주 만에 ‘파콘’ 왕국을 손에 넣어버렸군.”
정민우와 마교회 멤버들은 뒤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녀석이야.’
3주 동안 지켜보면서 따로 나서는 일은 없었지만, 정민우는 엘비스를 키우는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윌리엄이 지원을 통해 쑥쑥 성장하는 재미가 있었다면, 엘비스는 알아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앞으로 일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기대가 되네.’
상념에 잠긴 채 옥좌에 앉은 엘비스를 바라보고 있자.
“해내는 모습을 보니, 행성 침략하는 것도 문제없겠네요.”
비너스가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그러게 저 상태로만 간다면 충분히 행성을 침략하고도 남겠어.”
정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너스의 말을 공감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똑같이 진행되는 건가요?”
이어지는 물음에 정민우는 잠시 생각이 잠기더니.
“그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아.”
작전을 그대로 속행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능력이 원체 뛰어나니, 몰아줘도 문제없겠지.’
물론, 다른 고등생물을 마인으로 만들긴 해야 하니 마기를 나눠주긴 할 테지만.
‘소량의 마기만 나눠주면 되겠지.’
다른 고등 생물에게는 최소 조건으로 맞춰 마기를 나눠줄 예정이었기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후 엘비스를 따라 감옥으로 들어가자.
“악마님들이시여, 명령을 내렸던 대로 한 달 안에 ‘파콘’ 왕국을 손에 넣었습니다. 부디 미천한 저희에게 모습을 드러내 주십시오.”
잠시 뒤 무릎을 꿇으며, 우리를 간절하게 찾기 시작했다.
“저렇게 애타게 찾는데 이제 모습을 드러내 줘야겠지?”
정민우의 물음에 마교회 멤버들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죠.”
“…좋아.”
“악마를 모실 자세가 됐네.”
“후후, 저렇게 찾는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개굴개굴.”
이내 엘비스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악마님들을 뵙습니다.”
엘비스가 바닥에 넙죽 엎드려 인사를 올렸다.
“““아, 악마님들을 뵙습니다.”””
뒤이어 엘비스의 신하들이 엎드려 인사를 올리려고 했지만.
“너희는 엎드리지 않아도 된다. 뻔히 몸이 성치 않은 것을 아는데. 억지로 시킬 수는 없지.”
정민우는 손을 뻗으며, 신하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가, 감사합니다!”””
악마가 이런 호의를 베풀지 몰랐는지, 연신 고개를 숙여 보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민우는 인사를 받아주며, 눈앞에 있는 엘비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엘비스, 명령한 대로 일을 훌륭하게 해냈구나.”
“다 악마님들의 은총 덕분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우리는 힘만 줬을 뿐. 왕국을 손에 넣은 것은 네 지혜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업적을 그렇게 낮출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짧은 치하의 말이 끝나고. 정민우는 품속에서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그러면, 약속대로 네 신하를 마인으로 만들어 주도록 하겠다. 이 양피지에 신하들의 피를 흘리게 해라.”
“명령에 따릅니다.”
엘비스는 양피지를 조심스럽게 받아든 뒤 신하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다들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도록.”
손바닥을 앞으로 뻗을 것을 명령내렸다.
“““알겠습니다.”””
신하들이 군말 없이 손바닥을 앞으로 뻗자.
“흡!”
엘비스가 신하들을 향해 마기를 쏘아냈다.
따끔―
그러자 신하들의 손바닥에 생채기가 생기더니, 그곳에 작은 핏방울이 고이기 시작했다.
‘대단하네.’
살짝 베이게 하는 세심한 컨트롤에 정민우는 속으로 감탄을 떠드렸다.
‘재능이 넘치다 못해 흐르는군.’
엘비스는 마기를 통해 신하들의 핏방울을 옮겨 양피지에 떨어뜨리자.
투투투툭―
【계약 완료】
계약이 완료됐다는 문자가 떠올랐다.
“곧 극심한 고통이 동반될 테니 주의하도록.”
엘비스가 신하들에게 주의를 건네는 순간.
화르륵―
양피지가 검은 불꽃에 휩싸여 그대로 타버리더니.
“““으, 으아아아아악!”””
피를 흘린 신하들이 검은 불꽃에 휩싸이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 정도 흐르자.
치이이이익―
검은 불꽃이 꺼지다니, 그곳에는 전과 달라진 신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파, 팔이?”
“다, 다리가?”
“아, 앞이 보여!?”
“들을 수가 있어!”
“혀, 혀가 생겨났어?”
전부 불구가 되어 자리에서 설 수 없었던 그들은 건장한 상태로 바닥을 딛고 서 있었다.
“몸이 달라졌잖아?”
“…근육이 생겨났어?”
“옛날 몸보다 좋아진 것 같은데?”
또한, 앙상했던 조금 전과 달리 전부 튼튼한 육체로 탈바꿈이 되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신하들은 자신의 몸 상태 확인을 끝내자마자. 정민우와 마교회 멤버들에게 무릎을 꿇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다들, 앞으로 모든 국가를 침략하는 데 이바지하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몸이 전부 회복됐기 때문인지, 신하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차 있었다.
“그리고 엘비스?”
“예, 악마님.”
“새로운 명령을 내리도록 하겠다.”
“내려만 주십시오. 훌륭하게 해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엘비스는 전보다 충성심 가득한 눈빛으로 힘차게 대답해 보였다.
88화 20년 (2)
“새로운 명령은 간단하다. 20년 동안 파콘 왕국의 국력을 아무도 범접하지 못하게끔 강화하면 돼.”
정민우의 말에 엘비스는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게라….”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대답했다.
“악마님의 명령의 따라 아무도 범접하지 못하는 왕국으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확신에 찬 눈빛에 정민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거대하고 단단한 왕국을 만든다고 해도 인간이 가진 수명이란 족쇄 때문에, 자연스레 몰락할 수밖에 없겠지. 그러니, 달에 한 번 100명의 인간을 마인으로 만들어 주도록 하마.”
대략, ‘다이닉’ 행성의 인간 수명은 50년.
여기서 마인이 되면 전성기 시절의 육체 상태로 500살까지 수명이 늘어나게 되니 엘비스가 통치만 잘하면 파콘 왕국의 국력은 날이 갈수록 상승할 것이었다.
‘20년 뒤에는 왕국 전체가 살인 병기로 바뀌어 있겠지.’
사실, ‘유레인’ 행성 때처럼, 전부 마인으로 바꿀까도 고민했지만.
‘인간은 탐욕과 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생물이니까.’
유레인 행성 때와는 달리 강력한 경쟁자가 포진된 상태이니, 소량의 마기라도 알뜰하게 사용해야만 했다.
“넓은 아량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정민우의 배려에 엘비스는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함을 표했다.
“달에 한 번씩 찾아올 테니, 그때마다 보고를 올리면 된다.”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직스럽군.”
달에 한 번씩 찾아온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상 모습만 드러내지 않을 뿐 옆에서 관찰할 생각이었다.
‘솔로몬이라는 재능이 있으니, 어련히 잘하겠지만 혹시 모르니 옆에서 지켜봐야겠지.’
이번 행성 침략은 걸린 것이 막중하다 보니, 허투루 진행돼서는 안 됐다.
“그러면, 한 달 뒤에 보도록 하지.”
“예, 악마님!”
이후 정민우와 마교회 멤버들은 그대로 검은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모습을 감췄다.
* * *
그렇게 왕성 밖으로 걸어 나가자.
“민우 님.”
옆에서 따라 걷던 비너스가 말을 걸어왔다.
“왜?”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는데, 이제 뭐 할 것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녀의 물음에 정민우는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비둘기들을 타락시켜야지.”
그러자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엘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 6품 비둘기는 ‘다이닉’ 행성으로 온 거야?”
“그거는 이제 확인해봐야지.”
‘다이닉’ 행성에 있다면, 비둘기를 데리고 올 것이었다.
“…만약, 행성에 오지 않았으면 어떡해?”
“그러면, 비둘기들을 따로 유인할 방법을 찾아봐야겠지.”
비둘기들을 타락시키는 것은 작전 중에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성공시켜야만 했다.
‘오면 좋을 텐데….’
세이나가 행성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면, 이번 작전은 기하급수적으로 난이도가 쉬워질 것이었다.
‘일단, 암시를 보내봐야겠지.’
정민우는 적당한 위치를 떠올리며, 전언과 디버프를 동시에 사용했다.
【다음 날 9품 비둘기를 한 명을 데리고 몬스터가 사는 밀림으로 와라. 】
마음 같아서는 시간까지 정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억지로 끌고 가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에 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려보도록 할까?’
* * *
한편, 정민우에게 암시를 받은 세이나는.
“…몬스터가 사는 밀림?”
고개를 갸웃거리며, 번뜩 떠오른 단어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밀림에 가시게요?”
그러자 옆에 자리하고 있던 한 천사가 말을 걸어왔다.
“…아니다. 그냥 중얼거렸던 것뿐이다.”
세이나는 천사의 물음에 손사래를 치며 말을 넘겼다.
‘어후, 빨리 친해져야 하는데 대화하기가 힘드네.’
‘다이닉’ 행성으로 향한 이후 세이나는 2품 천사의 허락을 기적적으로 받아내며 정착하게 되었다.
정착한 것은 좋았으나. 워낙 낯가림이 심해 3주 동안 천사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하아, 애들이 그립다.’
세이나는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유레인’ 행성에 생을 마감했던 천사들을 얼굴을 떠올렸다.
‘아니야, 이렇게 과거에 붙잡혀 있으면 안 돼!’
울적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세이나는 마음을 굳게 다잡으며 상념을 떨쳐내 버렸다.
‘과거에 얽매이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어.’
세이나는 용기를 내 옆에 있는 천사에게 말을 걸었다.
“크흠, 몬스터가 사는 밀림에 대해서 좀 알고 있나?”
먼저 말을 걸 줄 몰랐는지, 천사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싱긋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알다마다요. 거기 때문에 저희가 점령하는 데 애를 먹고 있거든요.”
“애를 먹고 있다고…?”
“몬스터가 워낙 많다 보니, 밀림 너머에 있는 왕국들을 점령하지 못하는 실정이거든요.”
“흐음, 그래?”
“그래서 점령당하지 않은 곳을 노려보자니, 국력이 너무 막강해 아무것도 못 하고 있죠.”
의외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천사는 쉬지 않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밀림 너머에 있는 왕국들은 상대적으로 약해서 점령만 한다면, 그 뒤로부터는 다른 왕국을 점령하기가 한결 수월해지거든요.”
즉, 밀림만 해결한다면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는 것이었다.
‘…꼭 가봐야겠어.’
천계에서 ‘다이닉’ 행성의 이름을 갑작스럽게 떠올려 오게 된 것처럼, ‘밀림’ 또한, 무조건 가야 할 것만 같은 강렬할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행성에 지리는 잘 모르는데,’
온 지 3주밖에 되지 않아 밀림으로 가려면 안내해줄 천사가 필요했다.
‘부탁을 한 번 해볼까?’
세이나는 어떻게 부탁할까 고민하던 찰나.
“가실 거면, 안내 도와드릴까요?”
마음이라도 읽은 것처럼 천사가 역으로 제안해왔다.
“바, 바쁘지 않은가?”
“바쁠 게 뭐가 있어요. 어차피 점령은 다 끝내놔서 한가하기만 한걸요.”
“그렇다면 부탁 좀 하겠다.”
“맡겨만 주세요.”
세이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시간은 언제쯤 괜찮나?”
“저는 지금이라도 상관없는데, 바로 가실까요?”
천사의 물음에 세이나는 고민에 잠겼다.
‘시간상 지금 가도 나쁘지 않겠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 당장 가는 것보다는 내일 가는 게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조금 그렇고 내일은 어떤가?”
“내일이요?”
“그래.”
“따로 이유라도 있으신 건가요?”
“…그건 아니고. 내일 가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말이야.”
천사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날이 밝자마자 출발하는 것으로 하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고맙다.”
“아니에요.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도 몸이 쑤시던 참이었거든요.”
“그럼, 내일 아침에 보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둘은 내일 밀림에 가기로 약속을 잡으며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정민우와 마교회 멤버들은 새벽부터 밀림에 자리하고 있었다.
“민우, 과연 비둘기가 올까? 개굴개굴.”
로크의 물음에 정민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오길 바라야지.”
이 작전은 세이나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기에 다소 운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안 오면, 지형을 살펴본 것만으로 만족해야겠지.”
“하긴, 안 온다고 해서 우리가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개굴개굴.”
로크 말대로 손해 볼 게 없는 작전.
만약, 오지 않는다면 비둘기를 꾀어낼 다른 작전을 구상하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오는 게 좋겠지.’
그렇게 2시간가량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고 있던 그때.
“…왔다.”
저 멀리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이는 두 인영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암시가 제대로 먹혔나 보네.’
정민우는 일이 수월하게 풀린 것에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들, 준비해.”
이어서 마교회 멤버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준비는 진작에 끝내뒀어요.”
“준비할 게 있어? 주먹 한 방이면 나가떨어질 것 같은데.”
“…준비 완료.”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고. 개굴개굴.”
마교회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각자의 무기를 움켜쥐었다.
“참고로 상처는 입히면 안 돼. 세뇌하고 다시 돌려보내야 하니까.”
상처라도 입었다가는 다른 천사들이 추궁해올 수도 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 이쪽으로 유인해볼까?’
정민우는 세이나를 향해 암시를 걸었다.
【3시 방향으로 날아와. 】
그러자 12시 방향으로 날고 있던 비둘기들이 3시 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거기서 착지하도록. 】
이어서 착지하라는 암시를 내리자.
펄럭―
곧장 아래를 향해 밀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완벽하군.’
정민우는 마교회 멤버들에게 손짓으로 이동할 것을 알리며, 비둘기들이 착지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뚜벅, 뚜벅, 뚜벅―
10분가량 이동을 하니, 저 너머에 비둘기들이 자리한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괜히, 들켰다가 도망치면 곤란하지.’
정민우는 9품 천사를 덮치기 전, 세이나에게 걸었던 ‘망각’ 디버프를 해체하고 명령을 내렸다.
【눈앞에 있는 천사를 붙잡아! 】
명령을 받은 세이나는.
“…어?”
눈이 풀리더니, 날개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세, 세이나님!?”
그 모습에 놀란 천사가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덥석―
세이나는 명령대로 천사를 와락 끌어안으며 도망치지 못하게 저지했다.
“지금.”
이어서 마교회 멤버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파―앗.
빠른 속도로 비둘기가 있는 곳으로 치고 나갔다.
“하압!”
비너스는 채찍을 휘둘러 비둘기의 몸을 묶어 버렸고.
“가만히 있는 게 좋을걸?”
아누비스는 비둘기 목에 대검을 겨누었으며.
“움직일 생각하지 마.”
엘린은 땅을 이용해 비둘기 다리를 고정해버렸다.
“개굴개굴!”
마지막으로 로크는 혀를 내뱉어 비둘기의 입을 막아 소리 지르는 것을 저지했다.
“으, 으으읍?”
비둘기는 정민우와 마교회 멤버들을 보고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빨리 끝내줄 테니 저항은 하지 말아줘.”
정민우는 비둘기에게 다가가며, 고유 특성을 복사하겠다고 생각하자.
【어떤 악마의 고유 특성을 복사하시겠습니까? 】
1. 2번
2. 555번
3. 777번
4. 888번
5. 비너스
6. 루시퍼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비너스 고유 특성을 복사할게.’
【비너스 고유 특성 ‘매혹’을 복사합니다】
복사를 끝낸 정민우는 눈앞에 있는 비둘기에게 고유 특성을 사용했다.
“나에게 복종해라.”
“읍, 으…!”
그러자 분노가 가득했던 비둘기의 눈빛이 탁하고 풀려버렸다.
“…….”
그리곤 몽롱한 표정을 바뀌더니, 이내 애틋한 표정으로 정민우를 바라봐왔다.
‘남자한테 저런 눈빛을 받으니 느낌이 별로네.’
애틋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거부감이 일어났지만.
‘이런 생각을 할 시간에 빨리 끝내는 게 좋겠지.’
정민우는 상념을 지우며, 품에서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복종한다고 했으니,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지.”
그렇게 계약서 작성을 끝내자.
“으, 읍…?”
세이나가 그랬던 것처럼 비둘기의 날개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행성을 10분의 9를 점령해도 결국 9품이라는 거지.’
아무리 신성력이 많다고 해도 4품의 악마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비둘기 1명을 꿰어냈으니, 그다음부터는 순조롭겠어.’
앞으로 비둘기들을 이용해 차차 타락시켜 나가면 될 것이었다.
‘그러면, 망각으로 기억을 지워서 다시 돌려보내도록 할까?’
이후 정민우는 세이나와 비둘기에게 디버프를 걸어 기억을 지워버린 다음. 왔던 길로 다시 돌려보냈다.
89화 20년 (3)
비둘기들을 돌려보낸 이후.
“흐흐, 다녀오도록 할게. 개굴개굴.”
“아, 귀찮아.”
로크와 아누비스는 포탈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침략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잘 확인해.”
정민우는 손을 흔들며, 그들의 임무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었다.
현재, 로크와 아누비스는 ‘유레인’ 행성의 침략 진척도를 확인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굳이 왜 확인하러 가냐고 의아해할 수 있겠지만.
‘만약, 윌리엄이 내기 도중 침략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막대한 마기를 얻게 되겠지.’
행성을 완벽하게 침략하게 되면, 업적이 달성되면서 막대한 마기가 보상으로 지급되었다.
‘막대한 마기를 얻게 된다면, 다이닉 행성을 침략하는 게 한층 더 수월해지겠지.’
보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기에 여러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었다.
“맡겨만 달라고! 개굴개굴.”
로크는 아누비스와 같이 임무를 떠난다는 것이 좋은지 광대가 밑으로 내려올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귀찮은데.”
반면, 아누비스는 이동하는 것 자체가 귀찮았는지 가기 싫은 티가 역력했다.
“하아, 그래 빨리 다녀오자.”
아누비스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였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덥석―
“헉! 개굴개굴.”
로크의 손목을 잡아채며, 소리쳤다.
“나 없는 동안 비둘기들이랑 싸우면 안 돼!”
“스, 스킨쉽이 너무 빠른 것 같은데… 개굴개굴.”
“뭐라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기나 하자.”
그리곤 로크를 이끌고 포탈 안으로 뛰어들었다.
‘둘이 좋은 시간을 보내다 오겠네.’
정민우는 포탈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뒤에 자리한 비너스와 엘린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하자.
“엘비스를 잘 감시해줘.”
비너스와 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맡겨만 주세요.”
“…어려울 것 없어.”
둘은 믿을 만했기에 로크와 아누비스 때처럼 말을 재차 강조하지는 않았다.
“그럼, 나는 개인 사육장에 다녀오도록 할게.”
손목에 찬 팔찌를 두드리자.
후――웅.
허공에 검은 공간이 생겨났다.
“다녀오세요. 민우 님.”
“…다녀와.”
정민우는 비너스와 엘린의 배웅을 받으며, 그대로 검은 공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연병장에 있는 단상 위로 올라간 정민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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