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diabo vai trabalhar hoje 03

사탄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컥!”
털썩―
정민우는 바닥에 엎어지며, 오른쪽 눈을 감쌌다.
흡사, 누가 눈을 파내어 그곳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은 고통.
“이건 아픈 것 정도 따위가 아니잖아…!”
이대로 고통에 못 이겨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격이 높은 악마의 도움으로 마안(魔眼)의 새로운 효과를 발견해냈습니다】
눈앞에 메시지 창 하나가 새롭게 떠올랐다.
‘새로운 효과를 발견했다고…?’
어떤 효과가 생겼는지 궁금증이 들었으나.
“으아아아아악!”
이어진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정민우는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풀썩―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16화 디버프 (1)
“허억!”
정민우는 가쁜 숨을 내쉬며, 두 눈을 부릅떴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당혹감을 느끼던 그때.
‘설마, 여태까지 기절해 있던 건가?’
기절하기 전의 기억이 머릿속에 번뜩 떠올랐다.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겠지?’
정민우는 자신의 몸에 이상이 없는지 여기저기 둘러보며 상태를 살펴봤다.
‘다행히 문제는 없나 보네.’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정민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음?’
그리고 안정을 되찾자 방안에 가득 찬 환한 빛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미친.’
해가 중천에 떠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악마는 시간 개념을 중요시하기에 수업에 지각이라도 한다면 벌점이 부여된다.
‘늦으면, 가산점을 받은 의미가 사라지는데….’
정민우는 등골이 오싹해진 것을 느끼며 시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전 7시 32분]
“후아….”
그리고 시간을 확인한 정민우는 늦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할 수 있었다.
‘등교 시간이 9시이니 아직 늦지는 않았네.’
그렇게 안도감에 휩싸이자.
‘…그럼, 어제 공부는 하나도 못 한 건가?’
문뜩, 어제 산더미처럼 쌓인 공부를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밀린 것까지 공부하려면, 오늘은 상당히 바쁜 하루를 보내게 되겠네.’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절해버린 자신이 애석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래도 늦지 않았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겠지.’
정민우는 샤워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어제 새로운 효과가 발견됐다고 했지?’
샤워하면서, 어제 보지 못했던 ‘마안’의 새로운 효과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악마 ― 마안(魔眼)】
―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고등생물의 원하는 욕구를 꿰뚫어 볼 수 있다.
―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고등생물 또는 무생물이 지닌 마기의 총량을 확인할 수 있다.
― 마기를 소모함으로써, 고등 생물에게 디버프를 걸 수 있다.
‘디버프?’
효과를 확인한 정민우는 대마왕이 대련에서 사용했던 고유 특성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가 있었다.
‘어떤 디버프를 사용할 수 있는지 적혀있지 않은 것을 보니,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대마왕이 싸웠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아마도 자신의 추측이 맞을 것 같았다.
‘그래도 좋은 선물을 해주고 가긴 했네.’
어제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했지만, 새로 얻은 효과를 보니 충분히 감수할 만한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두 번 다시는 그 고통을 겪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야.’
이후 정민우는 샤워를 마친 뒤, 옷을 갈아입고 곧장 방문을 나섰다.
기숙사를 벗어나 복도를 거닐던 그때.
웅―성, 웅―성, 웅―성.
‘음?’
게시판 앞에 모여든 악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시간에 저기서 뭐 하는 거지?’
평소 게시판에는 건물 지도만 붙여져 있었기에 저렇게 악마들이 모여들 일이 없었다.
‘새로운 공지 사항이라도 붙여진 건가?’
정민우는 의아해하며, 게시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만, 지나갈게.”
인파를 뚫고 게시판 앞으로 다가가니.
[‘나는 악마다’ 대회 개최]
‘대회?’ 대회에 참가할 인원을 모집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정보는 못 들었는데?’
수시로 교관들의 생각을 읽었던 정민우는 처음 접해보는 정보에 당혹감을 느끼며, 내용을 자세히 확인해 봤다.
― 무릇, 진정한 악마라면 언어로만 상대를 짓누를 수 있어야 하기에 토론 대회를 개최한다.
― 대회에 참가할 의향이 있는 생도는 교무실에서 참가 신청서 작성.
― 대회는 다음 주 월요일.
― 우승자에게 가산점 5점 부여한다.
‘가산점을 부여한다고…?’
내용을 확인한 정민우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련에서 받은 가산점보다는 아니지만, 5점도 상당히 후한 점수라고 할 수 있지.’
만약, 가산점 5점까지 획득하게 된다면 수석을 차지할 확률이 소폭 상승할 것이었다.
‘그리고 토론 대회면… 내 전문분야잖아?’
환생 전, 정민우는 토론 대회에 나가 우승을 했던 경력이 있었다.
‘그때 나와 맞붙었던 녀석은 내 논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었지.’
하지만, 우승 경력이 있다고 해도 이번 대회를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됐다.
‘이번 토론 대회는 누가 더 악랄한지 뽑는 거니까.’
악마는 천성부터가 악하기에 선량한 시민이었던 자신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대회가 개최된다 했으니, 남은 기간에 열심히 준비해야겠어.’
정민우는 곧장 신청서를 작성하기로 하며, 교무실로 향했다.
* * *
“‘나는 악마다’에 참가하려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교관의 물음에 정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긴, 우승자에게 가산점이 주어지는데, 참가하질 않을 이유가 없겠지. 자, 여기에 작성하고 제출하면 된다.”
신청서를 건네받은 정민우는 작성하는 척하면서 교관을 눈치를 살폈다.
‘한 번 생각을 읽어볼까?’
공지하지 않은 이유와 평소와 달리 게시판에 공지했는지 궁금했기에 정민우는 교관에게 심안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교관을 향해 정신을 집중하자.
【상부에서 무슨 생각으로 연락 없이 갑자기 이런 대회를 개최하는지 영문을 모르겠군】
머리 위에 글자가 조합되더니, 교관의 생각이 문자로 만들어졌다.
‘연락 없이? 교관도 모르고 있었다는 건가?’
생각을 읽은 정민우는 이번 개최되는 대회가 일정에 없던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이러면, 내가 모를 수밖에 없었네.’
교관들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자신이라고 알 턱이 있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상부에서 왜 이런 결정을 한 거지?’
정민우는 교관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회가 진행된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던 찰나.
【그래도 교관들에게 미리 공지를 해줘야지. 대뜸 아침에 통보하는 식이 말이나 되는지 모르겠군】
뒤이어 교관의 생각이 문자로 만들어졌다.
‘…설마.’
그리고 교관의 생각을 읽은 정민우는 순간 머릿속에 한 가설이 떠올랐다.
‘사탄이 벌인 짓인가?’
그것은 바로 어젯밤 만났던 대마왕이 벌인 짓이라는 가설을 말이다.
‘정황으로 봤을 때 사탄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지.’
대마왕을 만난 다음 날. 갑자기 토론 대회가 열린다는 것은 충분히 의심해볼 여지가 있었다.
‘대마왕이면, 이 정도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을 테니까.’
대마왕은 자신을 수하로 두려는 상황이기에 도와주기 위해 이런 상황을 벌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대마왕이 간섭했건 말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현재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였다.
‘결국, 우승하지 못하면 다른 녀석에게 가산점을 뺏기게 되는 거니까.’
궁금증을 푼 정민우는 시선을 거두며, 신청서를 작성했다.
“여…습니다.”
“좋아, 가보도록.”
그렇게 교관에게 신청서를 제출하고 교무실을 나서려는 그때.
“어? 1번님?”
핑크녀가 놀란 눈으로 자신에게 다가왔다.
‘여기에 있다는 건… 이 녀석도 대회에 참가한다는 거겠지.’
정민우는 핑크녀를 보며, 이번 토론 대회에서 가장 귀찮은 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1번님도 대회에 참가하시나요?”
핑크녀의 물음에 정민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가산점을 주는데 안 나갈 이유가 없잖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핑크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거저먹는 대회라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겠네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그렇게 정민우와 핑크녀는 교무실을 나서며 복도를 걸었다.
“내일 시간 돼?”
“설마, 데이트 신청이신가요?”
핑크녀는 청순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요염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되물었다.
“아니, 주말에 계약서 작성하기로 했잖아.”
하지만, 정민우는 미인계에 당할 만큼 정신력이 약하지 않았기에 곧장 본론을 꺼냈다.
“…그랬나요?”
정민우의 말에 핑크녀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장난은 치지 말지.”
냉랭한 반응에 핑크녀가 몸을 움찔 떨어 보이며 말했다.
“자, 장난인데 왜 이렇게 차갑게 반응해요.”
“내가 장난을 싫어해서 말이야.”
어젯밤 대마왕에게 말장난에 놀아난 덕분에 장난에 치를 떨게 된 정민우였다.
“그래서 내일 몇 시에 만날래?”
“2시 어때요?”
“2시? 좋아, 그때 만나도록 하자.”
핑크녀에 대한 용건도 마쳤으니, 교실로 돌아가려는 순간.
‘잠깐… 그러고 보니 666번은 어떻게 된 거지?’
666번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증이 올라왔다.
‘나에 대한 용건도 마쳤으니, 계속 생도 행세는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정민우는 이왕 핑크녀를 만나 겸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666번은 대회에 나오나?”
너무, 노골적으로 물어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기에 정민우는 에둘러 질문을 던졌다.
“666번이요?”
하지만, 핑크녀는 처음 듣는 번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666번 몰라?”
“예. 저는, 수료할 가능성이 있는 분들 번호만 기억해서요.”
핑크녀의 대답에 정민우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설마, 기억을 지우고 간 건가?’
그녀가 금붕어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모임에 초대한 666번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생각을 읽어봐야겠지.’
무엇을 하든 확실한 게 좋으니, 정민우는 핑크녀를 향해 심안을 사용했다.
【666번? 처음 듣는 번호인데. 그래도 1번이 얘기했으니 조사할 가치는 있겠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리고 정말 666번에 관해 모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면 더 이상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겠어.’
궁금증도 얼추 해결했으니, 정민우는 666번에 관심을 온전히 끄기로 했다.
“그래? 알았어.”
“666번은 왜 찾으시는 거죠?”
“555번을 말하려고 한 걸 잘못 말했나 봐.”
“…그런가요?”
핑크녀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지만.
“그럴 수도 있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이후 둘은 다음 날 만날 장소까지 정한 다음에 각자의 교실로 흩어졌다.
* * *
다음 날 새벽.
밀린 공부를 마친 정민우는 핑크녀의 꼭두각시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사용해야지 잘 사용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그녀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어 수작을 부릴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꼭두각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치는 어마어마했기에 개의치 않았다.
‘먼저, 꼭두각시와의 대련을 통해 실력을 끌어올릴 수도 있지.’
로크와 아직도 대련을 진행 중이기는 하나 표본이 부족했기에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대련 상대가 필요했다.
‘꼭두각시와 대련을 하면, 빠르게 실력을 키워 올릴 수 있겠지.’
대련에서 1등 한 악마 중에 그녀의 꼭두각시가 있으니,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얻은 디버프를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사용할 수도 있고 말이야.’
다른, 악마에게 사용해볼 수도 있겠지만, 대련이 아닌 상황에 사용한 것을 교관에게 걸리기라도 한다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핑크녀도 교관에게 걸리지 않고 매혹을 걸고 다니니, 나도 디버프를 사용해도 걸릴 확률은 높지 않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그리고 꼭두각시를 통해 어느 정도 검증이 되면, 걸리지 않는 선에서 사용해봐도 괜찮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부수적인 이득에 불과하지.’
그렇다.
이 모든 건 부수적인 이득에 불과하고 메인 디쉬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핑크녀의 숨겨진 전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력만 파악하면 무슨 수작을 부려도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가 있지.’
미리, 대비만 할 수 있다면, 그녀는 더 이상 위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경쟁자의 불과해지지.’
경쟁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기에 정민우는 이 부분에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빨리, 두 시가 됐으면 좋겠네.’
이후 정민우는 두 시에 있을 약속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17화 디버프 (2)
시간에 맞춰 약속된 장소로 나가자.
“1번님, 여기예요.”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핑크녀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표정 연기 하나는 일품이군.’
정민우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손을 들어 보였다.
“일찍 나와 있었네?”
“누구랑 한 약속인데, 일찍 나와야죠.”
“그래? 그럼, 바로 들어가 볼까?”
“벌써요? 조금 떠들다 들어가면 안 될까요?”
핑크녀는 아쉽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청순한 얼굴에 이런 행동까지 겹치니 상당히 귀여워 보였지만.
【고유 특성은 쓰지 못하니, 조금이라도 내게 호감을 느끼게 만들어야지】
심안으로 그녀의 생각을 읽고 있던 정민우에게는 그저 속에 뱀들이 가득한 악마로 보일 뿐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일 끝내고 헤어지자. 오늘 할 일이 많아.”
정민우의 매정한 말에 핑크녀는 혀를 차며 말했다.
“쳇, 알겠어요. 바로, 회의실로 들어가죠.”
모든 시설이 갖춰진 것과 달리, 계약하는 장소는 따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계약하는 모습을 목격하면, 약점으로 잡힐 수 있기 때문이겠지.’
계약하는 것을 다른 악마들이 알아봤자 좋을 것이 없기에 따로 장소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어차피 장소가 갖춰져 있다고 해도 거기서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이후 정민우와 핑크녀는 회의실 안에 들어가 계약할 준비를 시작했다.
“양피지는 챙기셨죠?”
핑크녀의 물음에 정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양피지를 꺼내 보였다.
“계약하는 방법은 알고 계시겠죠?”
“수업에서 배웠는데 그걸 모를까.”
정민우는 마기를 일으켜 마법진을 새겼다.
‘여기서 모양이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발동하지 않는다고 했지.’
마법진을 그리는 일은 상당히 신중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정민우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마법진을 그려냈다.
“오, 마법진을 그리는 게 상당히 빠르시네요?”
핑크녀가 의외라는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미리 연습했지.”
정민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인 뒤 엄지손가락을 깨물었다.
따끔―
그러자 엄지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똑똑―
이어서 마법진을 새긴 양피지에 피를 떨어트리자.
화아아아아―
양피지에 빛이 휩싸이며, 마법진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이제 계약 조항을 조율해보도록 하자.”
“좋아요.”
이후 정민우와 핑크녀는 서로 계약 조항을 조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정도면 됐지?”
“네, 이제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잠시 뒤 계약 조항을 전부 정하며, 내용을 마기에 써내렷다.
“마지막으로 문제 있는 게 없는지 확인하고 진행하도록 하자.”
정민우는 마지막 점검차 내용을 살펴봤다.
― ‘갑’은 ‘을’의 고유 특성에 현혹된 자들. 통칭, ‘꼭두각시’를 하루 동안 부릴 기회가 1회 주어진다.
― ‘갑’이 요청했을 때, ‘을’은 타당한 이유가 없는 한 무조건 빌려줘야 한다.
만약, 빌려주지 않을 시, ‘을’은 ‘갑’의 ‘꼭두각시’가 된다.
― ‘갑’은 ‘꼭두각시’를 통해‘을’에게 해를 끼칠 수가 없다.
만약, 이 사항을 지키지 못했을 시 ‘갑’은 ‘을’의 ‘꼭두각시’가 된다.
― 이 계약은 ‘꼭두각시’ 사용 이후 자동으로 파기가 된다.
‘문제없네.’
확인을 마친 정민우는 핑크녀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제 피를 흘려.”
“알겠습니다.”
핑크녀는 정민우의 말을 따라 엄지손가락을 깨문 뒤, 그대로 양피지가 있는 곳에 피를 흘렸다.
화아아아아―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마법진이 다시 양피지 속으로 스며들더니.
【계약 완료】
계약이 완료됐다는 문자가 떠올랐다.
화르륵―
그리고 양피지는 검은 불꽃에 휩싸여 그대로 타버렸다.
“후, 처음이라서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요.”
“별거 아니긴, 계약을 못 지키면 너는 내 ‘꼭두각시’로 전락하게 되는데.”
정민우의 말에 핑크녀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건 1번님도 마찬가지잖아요.”
“나는 그럴 일이 없어서 말이야.”
“저도 그렇거든요?”
유치한 말싸움에 정민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계약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바로 꼭두각시 좀 사용하도록 할게.”
“바로요?”
“응, 너도 내가 빨리 사용하는 게 편하잖아?”
“…그렇긴 하죠.”
곧바로 사용할 줄은 몰랐는지 핑크녀가 당황한 모습을 내비쳤다.
“무슨 용도로 사용하시려는 거죠?”
“대련 좀 해서 실력 좀 키우려고.”
“겨우 그것뿐?”
“겨우라니, 실력 키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정민우의 말에 핑크녀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지만.
“후, 그래서 몇 명 정도 필요하죠?”
이내 추궁하는 것을 멈추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러면, 몇 명 정도 필요하신 거죠?”
“전부.”
“네?”
“전부 필요하다고.”
“…그렇게나 많이요?”
“하루밖에 못 쓰는데 뽕은 뽑아야 할 거 아니야?”
정민우의 말에 핑크녀가 눈살을 살짝 좁혔다.
【역시, 대련은 핑계고 내 전력을 파악하려고 했던 거였어. 그래도, 1번의 전력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니까】
그리고 머리 위로 핑크녀의 생각이 문자로 만들어졌다.
‘내 의도를 금방 파악하네.’
두뇌가 비상한 것인지, 단 한마디에 의도를 꿰뚫는 핑크녀였다.
“거절할 거야?”
“…아니요. 그렇게 할게요. 어디로 보내면 되죠?”
“훈련장으로 보내줘. 바로 연습 들어가게.”
“…알겠습니다.”
핑크녀는 자신의 속셈을 들키지 않기 위해 떨떠름한 표정을 연기하며, 정민우의 부탁을 승낙했다.
* * *
개인 훈련실에서 몸을 풀고 있자.
“너냐? 우리를 부른 게?”
10명의 악마 무리가 개인 훈련실 안으로 들어왔다.
‘10명 정도인가….’
정민우는 대답 대신 그들을 향해 마안을 사용했다.
【소유욕】, 【소유욕】, 【소유욕】, 【소유욕】, 【소유욕】…….
그러자 그들의 욕망이 머리 위에 문자로 만들어졌다.
‘매혹을 당해서 그런지, 전부 똑같은 욕망을 지니고 있군.’
이어서 마기 총량을 확인해 보니.
‘확실히, 대련에서 1등 할 정도의 마기를 지니고 있군.’
10명에서 5명이 상당한 마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수준의 악마를 꼭두각시로 만든 것을 보면 역시, 만만하게 볼 녀석이 아니야.’
괜히, 수석으로 졸업하겠다는 포부를 지닌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딱 보니 10명 정도 유지하는 게 한계인 것 같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핑크녀가 꼭두각시를 더 늘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악마들의 머리 위에 있는 하트 모양이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것이 매혹에 걸렸다는 증거겠지.’
만약, 매혹을 풀고 다른 악마를 꼭두각시로 만든다고 해도 ‘마안’만 있다면, 아주 손쉽게 구분해 낼 수가 있을 것이었다.
“야, 내 말 씹냐?”
악마의 신경질적인 말에 정민우는 상념을 끊어내며 대답했다.
“내가 부른 게 맞아.”
“비리비리하게 생긴 게 마음에 안 드네. 999번의 부탁만 아니었으면 안 들어줬을 텐데.”
악마는 잠시 툴툴거리며, 정민우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떤 걸 도와주면 되지?”
“대련하는 거 도와주면 돼.”
정민우의 말에 악마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렵지 않군. 바로 시작하는 거야?”
“바로 시작하면 나야 좋지.”
“좋아, 그럼 나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악마는 팔을 붕붕 돌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표정을 보니, 대련을 빌미로 실컷 두들겨 패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과연, 그렇게 될까?’
정민우는 속으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작해볼까?”
이후, 준비를 마치고. 대련을 시작하겠다고 말하자.
[각 방어력에 맞춰 보호막을 설정합니다. 보호막이 파괴되면 패배입니다]
은은한 검은빛 장막이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삐―――이!
이어서 버저 소리가 울리자.
“네놈, 다시는 999번에 얼쩡거리지 못하게 해주마!”
악마가 검을 들며, 정민우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111번, 검에 특화된 녀석이었지.’
정민우는 영상 보관실에서 봤던 정보를 되뇌며, 반지에 마기를 불어넣었다.
‘대련에서 만났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였겠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어렵지 않게 승리를 따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정민우가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때와 달라진 게 없잖아?’
영상을 봤던 때 보다 발전된 모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때보다 실력이 떨어졌다고 보는 게 명확했다.
‘여자 꽁무니만 쫓으니, 실력이 퇴보하는 거겠지.’
훈련은 안 하고 999번만 쫓아다니는 데 실력이 늘 수 있겠는가?
두 번째 이유는.
‘균형감각 상실.’
“어, 어?”
대마왕으로부터 ‘디버프’ 능력을 얻게 됐기 때문이었다.
“몸이 왜 이러지?”
악마는 달려오다가 몸을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사용하면 되는 거구나.’
정민우는 단 한 번의 사용으로 ‘디버프’ 사용법을 완전히 깨달았다.
‘이거라면, 앞으로 대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유는.
“죽어!!!”
“그림자 전개.”
촤르르르륵―
그때보다 자신의 실력이 몇 배나 상승했다는 것이었다.
쨍그랑―
악마는 바닥에 치솟는 그림자의 대응 한 번 못하고 그대로 보호막이 깨져버렸다.
“어?”
일격에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악마는 멍한 얼굴로 정민우를 바라봤다.
‘이렇게 쉽게 끝난다고? 이러면, 실력을 키우지도 못하고 끝나겠는데?’
한편, 정민우는 악마를 보며 고민에 잠겼다.
‘로크와 싸우는 게 훨씬 도움이 되겠어.’
매일 자신의 대련 상대가 되어주는 로크와 하는 게 몇 배는 유익할 것 같았다.
‘…하긴, 노력을 안 하는데 도태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건가?’
정민우는 수석으로 졸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매일 공부와 훈련을 병행했다.
그렇기에 짧은 기간 만에 이런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디버프만 연습하기는 아까운데 말이지….’
정민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괜찮은 해결 방안을 떠올렸다.
“1대1은 내 상대가 안 될 것 같은 데 전부 덤비는 거 어때?”
그 방안은 바로. 10명과 동시에 싸워 다수를 상대하는 전투 능력을 길러내는 것이었다.
“…뭐라고?”
“참나, 어이가 없었어.”
“우리가 만만하게 보이냐?”
정민우의 말에 악마들은 얼굴을 구기며 발끈했다.
“왜, 화나? 그러면 대련을 통해서 증명하든지.”
이어지는 도발에 악마들은 이를 ‘으득’ 갈며 말했다.
“후회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나중에 울면서 빌지나 말아라.”
“그 말 후회하게 해주지.”
도발이 제대로 먹혔는지, 구경하고 있던 악마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단순해서 좋네.’
매혹으로 인해 지능이 낮아졌는지, 도발에 너무나도 손쉽게 넘어왔다.
‘아니지. 이러니까 핑크녀의 매혹에 당한 건가?’
정민우는 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반지에 마기를 불어 넣었다.
따악―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자.
쏴아아아아―
개인 훈련실 바닥이 순식간에 그림자로 덮어져 버렸다.
“내 입이 산 것인지, 너희 입이 산 것인지 한 번 봐볼까?”
움찔―
정민우의 비릿한 미소에 악마들이 몸을 움찔 떨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정민우의 일방적인 대련이 시작했다.
* * *
수십 번의 대련이 끝난 뒤, 악마들은 바닥에 엎어진 상태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괴물 같은 새X….”
악마의 말에 정민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괴물이라니, 너희가 약한 것이겠지.”
자신이 아닌 로크가 대련에 나섰더라도 어렵지 않게 승리를 따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있었던 일을 999번에 말할 거야?”
정민우의 물음에 111번이 몸을 움찔 떨어 보이며 말했다.
“아, 아닌데? 안 말한 건데? 절대 999번이 네 정보를 캐와서 얘기해달라는 부탁은 안 했는데?”
“그래? 알았다.”
111번의 어설픈 연기에 정민우는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매혹이라고 해도 만능은 아니네.’
꼭두각시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이 사기적으로 느껴질 수가 있겠지만, 실상은 정신력 모자란 놈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기에 어딘가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이, 이제 대련도 끝난 것 같으니 돌아가도 되지?”
111번의 말에 정민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직이야.”
“그, 그래?”
“다들 일어나서 일렬로 서봐.”
조금 전 대련 했던 게 효과가 컸는지, 정민우의 말에 악마들은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일렬로 섰다.
‘원래는 나의 정보가 어느 정도 누출되는 것을 감수하고 진행할 생각이었다만….’
이제는 감수할 필요가 사라졌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련하면서 정보 누출을 시키지 않은 방법을 찾아냈다고 할 수 있었다.
‘사탄이 사용했던 방법을 사용하면 정보가 새어 나갈 일은 없겠지.’
망각.
정민우는 ‘디버프’를 통해 그들의 기억을 지울 심산이었다.
‘기억을 지우는 것은 엄청난 마기가 필요하지만, 얘네들 상대로는 문제없지.’
현재, 정민우가 가진 마기로는 한 명도 벅찼지만, 눈앞에 있는 악마들은 정신력도 정신력이지만, 매혹도 걸려있어 지금 가지고 있는 마기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그럼, 기억을 지워볼까?’
정민우는 악마들을 향해 곧장 ‘디버프’를 사용했다.
* * *
그날 밤.
핑크녀는 기숙사에서 꼭두각시들과 밀회를 나누고 있었다.
“…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녀의 물음에 111번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분명, 1번과 만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기억이 안 나….”
111번의 대답에 핑크녀는 한숨을 내쉬며 다른 악마들에게도 물었다.
“다른 분들도 똑같은가요?”
“““미안….”””
“알겠습니다. 다들 제 방에서 나가주세요.”
핑크녀의 축객령에 악마들은 눈치를 살피며, 기숙사 밖으로 걸어 나갔다.
‘당당하게 빌려 갈 때부터 찜찜하더라니, 이런 방법을 숨겨두고 있을 줄이야….’
전력을 노출하는 것은 위험했지만, 그래도 정민우의 전력을 알아낼 수 있다면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기에 계약을 승낙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정보는커녕, 내 정보만 뺏기고 말았네….’
핑크녀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종잡을 수 없는 사내야.’
과연, 자신이 이 사내를 제치고 수석을 차지할 수 있을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적이 어떻든 수석은 무조건 내가 차지해야만 해.’
겨우 이런 일로 수석의 자리를 포기할 그녀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한 번 당하긴 했지만, 다음부터는 이런 일은 없을 거예요. 1번님.”
핑크녀는 이 치욕을 토론 대회에서 갚아주기로 하며, 열정을 불태웠다.
18화 나는 악마다 (1)
시간이 빠르게 흘러 ‘나는 악마다’ 개최일이 찾아왔다.
“자, 여러분 92페이지 펴보세요.”
하지만, 긴급 대련 때와 달리 자율 참석이다 보니, 수업이 끝나고 나서 진행이 됐다.
“누가 읽는 게 좋을까….”
교관은 악마들을 보며, 누구를 지목할까 고민했다.
“1번 일어나서 읽어보시겠어요?”
그리고 교관은 고민 끝에 정민우를 호명했다.
“알겠습니다.”
교관들에게 평판이 좋아서 그런지, 매번 이런 발표에 선택이 되는 정민우였다.
‘이제는 완전 엘리트 이미지가 굳어졌나 보군.’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까악, 까악, 까악.
스피커로 수업이 끝났다는 벨소리가 울렸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보군요. 92페이지는 다음 수업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교관은 책을 덮으며, 그대로 교실 밖으로 나갔다.
다른 악마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밖으로 벗어나던 그때.
―‘나는 악마다’ 참가자들은 오후 2시까지 강당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교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후 2시에 시작이면, 밥 먹을 시간은 충분하네.’
정민우는 로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바로 밥 먹으러 갈까?”
밥 먹으러 가자는 소리에 로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대답했다.
“곧 토론 대회가 열리는데 밥 먹어도 괜찮겠어? 개굴개굴.”
“음? 밥 먹는 거랑 토론 대회 나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정민우의 물음에 로크가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애들은 다 밥 먹으러 가는데, 대회에 참석하는 얘들은 교실에 남아서 공부하고 있잖아. 개굴개굴.”
로크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열정이 넘치네.’
대회에 참가하는 악마들이 자리에 남아 열심히 책을 보고 있었다.
무슨 공부를 하나 자세히 살펴보니, ‘악마는 무엇인가?’라고 적힌 서적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건가 보네.’
정민우는 다시 로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괜찮아, 준비는 충분히 했거든.”
이미, 몇백 개의 예상 질문과 예상 답변을 준비한 상태였기에 여기서 더 준비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악마는 밥을 먹어야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법이야.”
“하긴, 나도 밥을 먹지 않으면 집중이 하나도 안 되더라고. 개굴개굴.”
로크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건 그렇고. 너 정말 토론 대회에 안 나가도 괜찮은 거야?”
정민우의 물음에 로크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나는 말하는 쪽은 소질이 없어서 1등 할 자신이 없거든. 개굴개굴.”
“그래?”
“응, 그래서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나 훈련을 할까 생각 중이야. 개굴개굴.”
로크의 말에 정민우는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 대회는 1등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 차라리 공부와 훈련을 해 다른 악마들과 격차를 벌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시간이 단 하루밖에 없어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겠지만.
‘그걸로도 충분하지.’
1시간만으로도 격차가 벌어지는 게 이곳이다.
그렇기에 하루는 충분한 격차를 벌리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오케이, 그럼 바로 밥 먹으러 갈까?”
“좋지. 개굴개굴.”
자리에서 일어나 로크와 함께 교실 문을 나가자.
‘음?’
마교회(魔交會) 멤버들이 교실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앗, 1번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하이~”
“……안녕.”
그리고 이내 자신을 발견하더니 핑크녀, 올빼미, 늑대인간, 얼음공주 순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너희가 여기 왜 있어?”
정민우는 의아한 눈빛을 하며, 찾아온 이유에 관해서 물어보니.
“보니까. 전부 ‘나는 악마다’에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식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왔답니다!”
핑크녀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그 이유에 관해 설명해줬다.
‘굳이?’
정민우는 귀찮음을 느끼며, 거절하려고 했지만.
“같이 드시죠. 1번님.”
“먹으러 가자.”
“…….”
다른 멤버들이 다가와 식사할 것을 제안해왔다.
‘…이러면 거절하기가 어려운데.’
핑크녀 같은 경우는 볼 장 다 본 사이기에 예의 차릴 필요가 없어 막 대할 수가 있었지만, 이들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같이 먹어야 하나.’
정민우는 옆에 서 있는 로크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다른 악마들이랑 같이 밥 먹어도 괜찮아?”
“조, 좋지. 개굴개굴.”
그러자 로크가 얼굴이 살짝 붉어진 상태로 어색하게 대답했다.
‘…얼굴이 붉어졌다고?’
로크의 상태에 정민우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핑크녀를 보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겠지?’
만약, 로크가 핑크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이라면 골치가 아파졌다.
‘그 녀석은 분명 이 부분을 이용하려고 들겠지.’
정민우는 아니길 빌며, 로크를 향해 심안을 사용했다.
【늑대 귀! 만지고 싶다! 얼굴도 너무 귀엽잖아! 개굴개굴】
머리 위에 글자가 조합되더니, 로크의 생각이 문자로 만들어졌다.
‘…늑대 귀?’
확인한 결과. 정민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늑대 귀를 좋아하는 취향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핑크녀에게 호감을 품지 않은 거면 된 거겠지.’
늑대인간은 얼굴만 보면 여전사 느낌을 물씬 풍겼기에 귀엽다는 말은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식사하러 가볼까?”
이후 정민우는 그들과 함께 급식실로 향했다.
* * *
급식실에 도착한 정민우는 식사하며 상념에 잠겼다.
‘핑크녀와 올빼미는 나갈 걸 예상하긴 했다만, 늑대인간과 얼음공주는 조금 의외네.’
겉모습만 보고 악마를 판단하면 안 되지만, 솔직히 말해서 늑대 인간은 싸움에만 관심 있을 것 같았고 얼음공주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의외로 이런 쪽에 자신 있는 건가?’
결국, 정민우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둘에게 참간 이유를 물어보기로 했다.
“다들 가산점 때문에 참가하는 거지?”
물어보겠다고 했지만,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지면 반감을 살 수도 있기에 정민우는 에둘러 다른 악마들에게 물어봤다.
“당연하죠. 꼭 1등 해서 가산점을 얻을 겁니다.”
먼저, 핑크녀가 주먹을 쥐어 보이며 대답했고.
“1등 하고 싶다는 욕심은 있으나, 저는 다른 악마들과 토론을 나눠 견문을 넓히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습니다.”
올빼미가 예의 차리며 대답했다.
이어서 늑대 인간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나는 그냥 재밌어 보여서 참가한 건데?”
늑대 인간은 별 뜻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역시, 관상은 과학인가….’
왜, 과거부터 관상이 있었는지 이해가 갈 것 같았다.
“너는?”
다음으로 얼음공주에게 물으니.
“…토론 대회를 나가면, 대화하는 게 편해질까 싶어 참가해 보는 거야.”
얼음공주는 늑대 인간과 달리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았다.
‘자기 계발을 위해서라는 건가. 그것도 나쁘지 않지.’
정민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너는?”
얼음공주가 참가한 이유에 관해서 반대로 물어왔다.
“나도 다른 악마들과 똑같이 가산점 때문에 참가한 거지.”
정민우의 대답에 얼음공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 중에서 우승자가 나온다면. 그분은 높은 확률로 수료할 수 있게 되겠군요.”
올빼미의 말에 핑크녀가 동감한다는 듯 말했다.
“그렇죠. 다들 대회에 우승해 10점이라는 가산점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래도 졸업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겠죠.”
정민우는 그들이 활발히 떠드는 모습을 보고.
‘슬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까?’
그들의 속마음을 확인할 때가 됐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을 향해 심안을 사용해보니.
【흠, 555번도 쉬운 상대는 아니겠어. 】
핑크녀는 올빼미를 견제하고 있었고.
【……】
【출출한데, 더 먹을까? 】
얼음공주와 늑대 인간은 대회 자체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빼미는.
【결승전에 올라가게 된다면, 1번과 999번이 올라오게 될 확률이 높으니. 계획대로, 미리 손을 써놓을 필요가 있겠어. 】
음흉한 생각을 속에 숨기고 있었다.
‘수작을 벌이시겠다?’
정민우는 속으로 올빼미를 비웃으며, 생각을 계속해서 읽었다.
【식사 이후 카페로 가자 한 다음 커피에 소량의 독을 타면 되겠지. 】
‘독이라…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거지?’
올빼미는 독과 관련된 고유 특성이 있지 않았기에 협력하는 악마가 있지 않으면 구할 수가 없었다.
‘우승자밖에 가산점을 주지 않아서 협력자는 구하기 힘들 텐데….’
독을 어떻게 구했는지 의문을 느끼던 찰나.
【혹시나 필요할까 싶어. 대련 때, 다른 악마가 뿜어낸 독을 구해두길 잘했어. 】
올빼미의 생각을 읽은 덕분에 의문을 금방 해결할 수가 있었다.
【소량의 독은 30분 이후, 미세한 메스꺼움과 현기증을 유발하는 것이니, 눈치를 채더라도 대회에 나간 뒤에 알게 되겠지. 】
대련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생도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은 교칙 위반으로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되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처벌받을 일도 없으니까.’
반대로 말해 걸리지만 않으면, 이런 짓을 마음대로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
자신에게도 다른 녀석들은 경쟁자에 불과하기에 침묵을 선택해 독을 먹게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지만.
‘아니야, 이건 너무 하책이야.’
당장 눈앞의 이익을 좇는 것은 단발성에 불과하기에 다른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차라리, 중간에 사실을 알려서 빚을 만들어둘까?’
핑크녀도 유력한 토론 대회 우승 후보이기에 조금 걸리기는 하나, 이렇게 빚을 만들어두면 나중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알아서 올빼미를 처단하려고 하겠지.’
그녀라면, 자신을 건드린 상대를 어떻게든 보복하려고 들 것이다.
‘이러면 나는 힘들이지 않고 올빼미를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생각해 보면, 꽤 나쁘지 않은 계획이지만.
‘다만, 무조건 내가 토론 대회에서 우승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어야 하지.’
도와줬다가 핑크녀에게 지기라도 한다면, 그녀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준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흠… 어떻게 해야 할까.’
정민우는 턱을 쓸며, 고민에 잠겼다.
그렇게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결국, 도와주는 것으로 계산이 섰다.
‘어차피, 토론 대회는 내 전문분야이기도 하고. 심안이 있는 한 지기도 힘들지.’
‘나는 악마다’의 대회 규정 중에 마기 사용 금지 조항이 있었지만.
‘심안은 마기를 사용하지 않으니 걸릴 일이 없지.’
심안은 마기가 아닌 정신력을 소모하는 것이기에 규정 위반 사항도 아니기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며, 상념을 마치던 그때.
“밥도 다 먹었으니, 카페로 가는 것은 어떤가요?”
때마침, 올빼미가 커피를 마실 것을 제안해왔다.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올빼미의 말에 핑크녀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2시까지 뭐하나 고민했는데 잘됐네.”
“……좋아.”
이어서 늑대 인간과 얼음공주도 나쁘지 않았는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1번님도 괜찮으시죠?”
“상관없어.”
올빼미의 물음에 정민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1번님의 친우분은 어떻게 하실 거죠?”
“나는, 기숙사로 돌아가 볼게. 개굴개굴.”
로크는 공부할 예정인지, 제안을 거절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할까요?”
이후 마교회 멤버들은 급식실에서 나와 곧장 카페로 향했다.
* * *
“자, 커피 가져왔습니다. 다들 한 잔씩 드시죠.”
올빼미가 마교회 멤버들 앞에 커피잔을 놔주며 말했다.
‘여기에 분명 독을 탔겠지.’
정민우는 올빼미 앞에 둔 커피잔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저 커피만 유일하게 독이 들어가 있지 않았을 테고.’
커피잔을 들어 냄새를 맡아 보니.
‘…냄새는 티가 안 나네.’
독이 들어가면 냄새가 다를 것으로 생각했는데, 향긋한 커피 향이 코에 맴돌았다.
‘일단, 얘기하기 전에 확실히 독을 탔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겠지.’
이미, 심안을 통해 커피에 독을 탈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마음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기에 확실하게 확인하는 것이 좋았다.
올빼미를 보며 정신을 집중하자.
【먹어라. ‘나는 악마다’ 가산점은 내가 챙겨가도록 하마! 】
머리 위에 글자가 조합되더니, 올빼미의 생각이 문자로 만들어졌다.
‘말하는 것을 보니, 커피에 독을 탄 것이 확실하네.’
확인을 마친 정민우는 곧장 행동에 옮기도록 했다.
“그럼, 커피를 마셔볼까요?”
“먹자.”
“…….”
마교회 멤버들이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마시려는 순간.
“잠깐. 먹지 말아봐.”
정민우는 손을 뻗으며, 커피를 마시는 것을 저지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마교회 멤버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왜, 그러시죠?”
핑크녀의 물음에 정민우는 커피를 가리키며 말했다.
“올빼미가 커피에 독을 탄 것 같거든.”
“…네?”
정민우의 말에 커피를 마시려고 했던 마교회 멤버들의 표정이 일순간에 굳어지며 올빼미를 쳐다봤다.
마치, 저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 듯한 눈빛.
“…에?”
올빼미는 어깨를 움찔 떨어 보이며,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하, 독이라뇨. 1번님 이런 장난은 재미없는 것 같습니다.”
금세 침착함을 되찾은 올빼미는 농담으로 치부하며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래?”
정민우는 자신이 들고 있던 커피잔을 올빼미 앞에 놔두며 말했다.
“아니라면, 이 커피를 마실 수 있겠지?”
“…….”
19화 나는 악마다 (2)
정민우의 권유에 올빼미는 아무 대답 없이 커피잔만을 바라봤다.
“왜 못 마시겠어?”
그 모습에 정민우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올빼미에게 커피를 마실 것을 재촉했다.
“정말, 독을 타신 건가요?”
“진짜, 독 탄 거면 실망스러울 것 같은데 말이지.”
“…….”
마교회 멤버들 또한, 올빼미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의심의 눈초리가 한층 더 강해졌다.
‘생각이 많나 보네.’
정민우는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올빼미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올빼미 머리 위에 문자를 바라보며 그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어떻게 이 사실을 눈치챈 거지…? 설마, 독을 탄 것을 봤나? 아니야, 분명 악마들이 없는 것을 확인했었는데…. 】
‘생각이 가득해졌군.’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모습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일단, 지금은 아니라고 우길 수밖에 없겠어… 인정했다가 처벌을 받으면 졸업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올빼미는 생각을 마치며, 정민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독을 탔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
그의 물음에 정민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증거? 굳이 그게 필요해? 그냥, 네가 커피를 마시면 끝날 일인데?”
“…….”
정민우의 말대로 증거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그저, 커피를 마셔 독을 타지 않았다고 증명하면 되는 일.
【젠장, 쉬운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나를 귀찮게 만들 줄은 몰랐군】
다시, 올빼미의 생각이 복잡해지던 순간.
“555번님, 1번님의 말이 사실인가요?”
핑크녀가 굳어진 얼굴로 올빼미에게 말을 걸었다.
“아닙니다. 이건 1번님의 모함일 뿐입니다.”
“근데, 왜 커피를 마시지 못하시는 거죠?”
“…….”
올빼미의 침묵에 핑크녀가 서슬 퍼런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규칙 중에 서로 적대하지 않는다는 조항 기억하시죠?”
“…그렇죠.”
“만약, 555번님이 독을 탄 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될지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움찔―
핑크녀의 말에 올빼미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하, 999번님도 1번님 말을 동조하시는 겁니까? 이러면 조금 실망스러울 것 같은데요.”
“실망스러울 게 뭐가 있죠? 그저, 커피만 마시면 될 뿐인데요.”
정민우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둘의 대화를 지켜봤다.
【젠장, 이렇게 된 거 먹을 수밖에 없는 건가? 】
올빼미의 생각에 정민우는 혀를 찼다.
‘이제는 커피를 마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닐 텐데.’
만약, 올빼미가 처음부터 웃어넘기며 커피를 마셨다면 아무 일도 없이 흘러갔을 것이었다.
‘오히려, 내가 이상한 녀석으로 찍혔겠지.’
하지만, 올빼미가 망설이는 바람에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고. 마교회 멤버들은 짧은 시간에 그를 불신하게 됐다.
【우승을 못 하는 건 아쉽지만, 지금은 의심을 피하는 게 우선이니까】
그러나, 올빼미는 이런 상황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커피만 마시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커피를 마시도록 하죠.”
올빼미의 말에 마교회 멤버들은 미심쩍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갑니다.”
벌컥, 벌컥, 벌컥.
이어서 올빼미는 정민우가 건넨 커피를 그대로 마셔버리며 말했다.
“이제 됐죠?”
당당한 모습에 마교회 멤버들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정민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흡사, ‘마셨는데?’라고 묻는듯한 눈빛이었다.
정민우는 마교회 멤버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올빼미에게 말했다.
“이야, 진짜 마실 줄 몰랐는데. 이번 대회는 포기하는 건가 봐?”
“…포기라뇨.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래?”
올빼미의 대답에 정민우는 조소를 띄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자리에서는 왜 일어나시는 거죠?”
“독이 든 약병이 있나 확인해보려고.”
정민우의 말에 올빼미가 표정을 와락 찌푸리며 말했다.
“이렇게 나오시면, 저는 당신과의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질 것입니다.”
“흠, 그래?”
생각보다 강하게 나오는 모습에 정민우는 무시하고 몸을 수색하려고 했지만.
“1번님? 몸까지 수색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핑크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민우를 제지했다.
“왜?”
이유에 관해서 묻자.
“심증만 있는 상태에서 강압적으로 나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물증이 있어야 한다는 뜻을 밝혀왔다.
‘독이 든 병을 찾지 못했을 때를 생각해 이러는 거군.’
정민우는 핑크녀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가 있었다.
‘만약, 독이 든 병이 나오지 않으면 올빼미가 이 상황의 우위를 점하게 될 테니까.’
또한, 자신을 의심했다는 이유로 마교회 멤버들에게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었다.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덤이고 말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좋겠지만.
‘그건, 독이 든 병이 나오지 않았을 때 이야기고.’
정민우는 확신하고 있기에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만약, 수색한다고 해도 찾을 수 없겠지. 병은 머리 뒤쪽에 숨겨뒀으니까】
저렇게 장소까지 친절히 알려주는데 어떻게 물러날 수 있겠는가?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너무 강압적으로 나간 감이 없지 않아 있네.”
“그럼, 물러나 주시는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정민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강압적으로 나가는 대신 조건을 내걸려고.”
“…조건이요?”
“응, 수색하게 해 주는 대신 조건을 내거는 거지. 예를 들어 독이 든 병이 나오지 않을 시, 마교회 탈퇴를 더불어 555번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주는 거로 말이야.”
“…네!?”
파격적인 제안에 핑크녀가 두 눈을 부릅떴다.
“뭐, 뭐라고요?”
올빼미 또한, 파격적인 제안에 놀랐는지,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때? 이러면, 기쁜 마음으로 수색을 받을 만하지 않아?”
“만약,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거절하면, 바로 교관에게 보고해 너를 조사해달라고 부탁해야지.”
“…….”
정민우의 말에 올빼미는 눈을 감고 잠시 상념에 잠겼다.
‘이렇게 조건을 내세우면 거절하지 못하겠지.’
누가 봐도 올빼미가 이득인 제안.
독이 든 병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공짜로 노예가 하나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만약, 자신이 제시한 것을 거절하게 된다면, 다시 의심이 붉어질 것이었다.
【이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어. 】
올빼미의 생각을 읽어보니, 그 또한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걸리지만 않으면, 1번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으니 이득이라고 할 수 있겠지】
결정을 내린 것인지, 올빼미는 눈을 떠 보이며 말했다.
“이 결정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그건 봐야 알겠지.”
올빼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수색해 보시죠.”
생각보다 당당한 모습에 핑크녀가 걱정 어린 시선으로 정민우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걱정하지 마. 확신이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정민우의 말에도 핑크녀는 안심이 안 되는지.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독이 든 병이 나오지 않아서 1번이, 555번의 노예가 되면 내 상황이 너무 불리해져】
물론, 정민우에 대한 걱정이 아닌, 555번의 힘이 강해질 것에 관한 우려였지만 말이다.
“그럼, 찾아볼까?”
정민우는 올빼미에게 다가가 몸을 수색했다.
5분 정도 흐르니.
“훗, 곧 제 노예 한 명이 생기겠군요.”
올빼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놀리는 건 여기서 끝낼까?’
정민우는 손을 빠르게 놀려 올빼미의 머리를 붙잡았다.
“지금 뭐 하시는…!”
텁석―
그리고 올빼미 머리 뒤쪽에서 병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찾았네?”
정민우는 손에 든 병을 흔들며, 올빼미를 바라보자.
“그, 그건 독이 아닙니다!”
당황한 올빼미가 발뺌을 내밀려고 했지만.
뽕―
“그럼, 전부 마셔봐.”
정민우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뚜껑을 열어 앞으로 내밀었다.
“…….”
저 정도의 독을 마신다면, 사망을 면치 못했기에 올빼미는 차마 마시려고 하지는 못했다.
“지금 인정하는 게 좋을걸? 나중에 교관에게 걸려서 처벌받는 것보다는 낫잖아?”
독을 통해 생도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은 마기 불능자로 만들어버린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기에 올빼미에게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마기 불능자는 곧 폐기 처분이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니 말이야.’
그렇기에 차라리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하는 것이 올빼미에게 살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었다.
털썩―
“…죄송합니다.”
올빼미도 정민우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무릎을 꿇어 보이며 자신이 한 행동을 인정했다.
“…정말, 1번님 말씀대로 독을 가지고 있었군요.”
핑크녀는 죽일듯한 눈빛으로 올빼미를 노려봤다.
“지금, 이 녀석 죽여도 되는 거야?”
“…교관에게 맡겨서 마기 불능자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늑대 인간과 얼음공주도 흉흉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올빼미를 노려봤다.
‘상황을 중재하는 게 좋겠네.’
여기서 소란이 일어나면, 시선이 쏠리게 될 수도 있기에 말릴 필요가 있었다.
‘다른 악마들의 귀에 우리 얘기가 들어가면 좋을 게 없으니까.’
정민우는 앞으로 나서며 마교회 멤버들을 진정시켰다.
“다들, 저 녀석을 죽이고 싶다는 건 알겠는데, 진정하고 내 얘기를 들어볼래?”
마교회 멤버들은 올빼미를 노려보는 것을 멈추고 정민우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 기회로 555번을 노예로 만들어서 요긴하게 사용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들 어때?”
정민우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마교회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뜻을 밝혔다.
“…확실히, 마기 불능자로 만드는 것보다는 그쪽이 더 유용할 것 같기는 하네요.”
“죽이는 게 좋은데, 쩝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
긍정적인 반응에 정민우는 올빼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너는 어떻게 할래? 처벌을 받아서 마기 불능자가 될래? 아니면, 우리 노예가 돼서 기회라도 엿볼래?”
정민우의 물음에 올빼미는 낭패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기 불능자가 되면 졸업할 가능성은 사라지는 것이니, 노예가 되는 게 저에겐 그나마 나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대답에 정민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올빼미의 어깨를 두드렸다.
“좋은 판단이야.”
핑크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모임이 모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할 건 해야겠죠. 555번은 첫 번째 사항을 위반한 관계로 오늘부로 마교회에 퇴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공식 노예가 결정되던 그때.
― 20분 뒤, ‘나는 악마다’ 대회가 시작됩니다. 출전하는 생도들은 시간에 맞춰 강당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곧 대회가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후 노예 계약은 대회가 끝나고 하기로 하며, 마교회 멤버들은 강당으로 향했다.
* * *
강당 안으로 들어가니.
‘입학식 때랑 완전히 달라졌네….’
입학식 때와 달리 강당이 개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대만 보면 퀴즈쇼와 비슷한데?’
다만,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무대는 1대1로 마주 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시간이 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자.
― 지금부터 ‘나는 악마다’ 대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번호가 호명되면, 무대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잠시 뒤 대회를 시작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1번, 156번은 1―1무대로 가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번호가 1번이어서 그런지 곧바로 호명되었다.
“다녀올게.”
정민우의 말에 마교회 멤버들이 손을 흔들며 응원했다.
“어차피 이길 것 같지만, 최대한 지기를 바랄게요.”
“이기든 지든 상관없으니, 다녀와라.”
“…잘가.”
응원이 맞나?
정민우는 자신이 생각한 응원이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 앞으로 걸어 나갔다.
1―1이라고 적힌 무대로 올라가자.
터벅, 터벅, 터벅.
올백 머리에 안경을 낀 악마가 잇따라 무대 위로 올라왔다.
‘외모만 봤을 때는 토론을 잘하게 생겼네….’
관상학적으로 봤을 때는 쉽지 않을 상대일 것 같았다.
“대회에 관한 규칙을 설명해주도록 하지.”
156번과 눈싸움을 벌이는 사이 교관이 올라와 규칙에 관해 설명해줬다.
“토론이 시작되면 스크린에 주제가 선정되며, 거기에 맞춰 토론하면 된다. 발언권은 1분씩 주어지며, 반박하지 못할 시 패배로 간주한다.”
상당히, 간단한 설명.
‘반박 못 하게 찍어누른 다라… 마음에 드는데?’
토론으로 상대방을 울린 전적이 있었기에 찍어누르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럼, 곧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교관이 버튼을 누르자.
삐―융.
스크린에 불빛이 들어왔다.
[부모를 잃은 어린 고등생물을 발견했다. 여기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부모를 찾는 것을 도와준다. VS 어린아이를 타락시켜 계약을 맺는다.]
누가 봐도 후자에 있는 선택지가 유리해 보였지만.
‘전자의 선택지가 나에게 배정됐네.’
설상가상으로 불리한 선택지가 정민우 쪽으로 배정이 되었다.
“이번 토론은 어렵지 않게 승리하겠군.”
156번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과연, 그럴까?’
하지만, 정민우는 당황하기는커녕 두 눈을 빛냈다.
‘이 정도의 페널티는 있어야지 토론할 맛 나지.’
이미, 예상 범위에 있었던 주제.
정민우는 이 주제로 상대방을 찍어 누를 자신이 있었다.
‘어떻게 요리해줄까?’
그렇게 어떤 방식으로 요리해줄지 고민하던 그때.
“토론을 시작한다!”
삐―――이!
버저 소리가 울려왔다.
20화 나는 악마다 (3)
삐―이.
버저가 울리기 무섭게 156번이 버튼을 눌렀다.
“이런 뻔한 주제로 토론한다는 게 웃기지만, 대회이니 말은 해야겠지.”
그리고 156번은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정민우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부모가 오기 전에 어린 고등생물을 타락시켜야 하는 이유는 간단해. 그게 타락시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지.”
정민우는 팔짱을 끼며, 156번 말을 경청했다.
“예를 들어 부모가 너를 버렸다고 귓가에 속삭여주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계약을 따낼 수 있게 되지. 하지만, 부모를 찾아주게 되면 타락시킬 기회 자체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
156번은 반박해보라는 듯, 정민우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 있게 말하길래, 뭔가 했더니 너무 허술하잖아?’
얘기를 듣던 정민우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버튼을 눌렀다.
삐―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뭐?”
“진심이면, 조금 실망스러울 것 같은데.”
“뭐라고…?”
정민우의 가벼운 도발에 156번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토론은 역시 도발부터 시작하는 거지.’
도발이 제법 잘 먹힌 것을 확인한 정민우는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내 생각은 달라. 부모를 찾아주게 되면 가족 전체를 타락시킬 기회가 찾아오는 건데, 무슨 근거로 기회가 사라지게 된다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네.”
정민우의 말에 156번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버튼을 눌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부모를 찾으면 어린 고등생물이 안정감을 찾게 되는데, 당연히 타락시키는 게 더 힘든 것 아니야?”
156번의 물음에 정민우는 버튼을 누르며 친절히 설명해줬다.
“1차원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이런 일은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뭐라고!?”
“먼저, ‘부모를 잃은 어린 고등생물’이라는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는 게 있지.”
“알 수 있는 거?”
정민우의 말에 156번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어린 고등생물이라고 해도 자신이 다니던 길을 잃기는 쉽지 않지. 상황을 유추했을 때 낯선 곳에서 길을 잃게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그게 지금 얘기와 무슨 상관이지?”
“상관있지. 낯선 곳에 왔다는 건 일거리가 없어서 이동했다는 뜻이니까.”
156번은 더 얘기해보라는 듯 턱을 까닥였다.
“잘 모르는 곳에 왔다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라면 분명히 나에게 감사함을 표할테고 그걸 이용하면 오히려 타락시키기 더욱 쉬워지고 말이야. 그러니 부모를 찾아주는 게 더 이득이지 않겠어?”
정민우가 설명을 끝마치자 156번이 버튼을 누르며 소리쳤다.
“네가 설명한 건 궤변 따위에 불과하잖아!”
“내 주장이 왜 궤변이라고 생각하지? 당연한 상황을 두고 추리하는 것뿐인데 말이야. 그런 것으로 따지면, 아이 혼자 있다고 해서 타락시키기 쉽다는 것도 궤변에 속하지 않아?”
“…….”
156번은 이를 ‘으득’ 갈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벌써,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될 텐데.’
정민우는 이번 토론은 어렵지 않게 우승할 것이라 확신했다.
‘심안도 사용할 필요가 없겠어.’
심안을 통해 생각을 읽어낸 뒤 미리 반박할 대답을 준비하는 것이 본래 계획이었지만.
‘상대가 되어야, 심안을 사용하든가 말든가 하지.’
상대가 너무 볼품이 없다 보니, 사용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 그래! 빈곤하다는 건 어떻게 확신하지?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어린 고등생물일 수도 있잖아!”
156번은 반박할 거리를 찾았다는 듯 곧바로 정민우를 쏘아붙였다.
‘쯧, 반박할 거리가 겨우 그거라니.’
자신이었다면, 그것보다 더한 맹점을 파고들어 왔을 것이었다.
정민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쉰 뒤, 버튼을 누르고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
“…뭐?”
“부유한 집안의 고등생물이었다면, 집사 또는 호위기사를 대동하고 다녔겠지. 저렇게 혼자서 길 잃을 일 없이 말이야.”
“…….”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156번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렇게 156번이 아무 대답도 못 한 상태로 1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156번 30초 내로 버튼을 누르지 않을 시 패배 처리가 된다.”
상황을 지켜보던 교관이 156번에게 경고를 날렸다.
“으….”
156번은 머리를 헤집으며, 고민에 잠겼다.
“10초 남았다.”
교관의 말에 156번은 눈을 번뜩이며 다시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가출한 것일 수도 있잖아! 가출한 것이라면, 부유한 집안이라는 논리도 성립이 될 것이고!”
156번의 말에 정민우는 코웃음을 치며, 버튼을 눌렀다.
“가출한 거면 오히려 더 좋은 거 아니야?”
“뭐, 뭐라고?”
“가출했다는 것은 가족과의 불화가 있었다는 것을 뜻하지. 그렇다면, 이미 관계가 망가질 대로 망가졌는데 타락시키는 게 전자보다 더 쉬운 게 당연한 거잖아?”
“…어?”
“또한, 부유한 집안이라면 하인들도 있을 테니 타락시킬 범위가 더 넓어져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되지.”
“그, 그런가?”
정민우의 설명에 156번은 자신도 모르게 설득됐는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앗!”
그리고 뒤늦게 자신이 수긍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이번 토론의 승자는 1번이다!”
지켜보고 있던 교관이 정민우의 승리를 알려왔다.
“아…….”
156번은 토론에서 졌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어깨가 축 처졌다.
“1번은 자리로 돌아가 쉬고 있다가 호명되면, 다시 나올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정민우는 교관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무대에서 내려갔다.
* * *
한편, 정민우의 토론을 지켜보고 있던 핑크녀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길 거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압도적으로 찍어누를 줄이야….’
언변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토론하는 모습을 보니 그의 언변은 생각 이상이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손쉽게 이겨버렸어….’
그 모습에 핑크녀는 과연 자신이 정민우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붙어보지 않고 의지가 꺾이면 어쩌겠다는 거야.’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할 수 있어. 나를 믿어야지 누가 믿겠어!’
그리고 무대 위에 있는 정민우를 호승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때.
― 342번, 999번은 10―1무대로 가주시길 바랍니다.
때마침, 안내 방송에서 자신의 번호를 호명했다.
‘…후, 가볼까?’
핑크녀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뒤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무대로 향했다.
* * *
‘다들, 토론하러 간 건가?’
자리로 돌아와 보니, 마교회 멤버들이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지켜볼까?’
정민우는 이참에 마교회 멤버들이 토론을 어떻게 하는지 봐보기로 했다.
‘어디 보자….’
무대 주변을 훑어보자. 무대에 자리한 늑대인간을 찾을 수가 있었다.
‘재미로 참가한다고 했지?’
정민우는 늑대인간이 어떤 토론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무대를 바라보니.
“너 말 다 했어? 다시 한번 말해봐!!!”
늑대인간이 격양된 얼굴로 상대방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얘기해줘? 머리가 텅텅 비었으니, 이런 기본적인 토론도 못 한다고 했다! 왜?”
상대편의 도발에 늑대인간은 차고 있던 대검을 꺼내 보이며 소리쳤다.
“너 일로 와! 일로 와!! 한판 붙어!!!”
“…….”
무기를 꺼내 들자. 상대편 악마가 몸을 떨어 보이며 뒷걸음질을 쳤다.
“너 내가 얼굴 기억했어. 나중에 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늑대인간은 계속해서 협박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그만, 더 이상 행패를 부리면 벌점을 부여하겠다.”
교관이 나서며 늑대인간을 중재했다.
“…젠장!”
늑대인간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리며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방금 내가 뭘 본거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민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길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았지만, 저렇게 깽판을 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민우는 정말 늑대인간이 10명 안에 들어서 수료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뭐, 실력이 없다면 모임에서 퇴출이 되겠지.’
늑대인간의 관심을 끄며, 정민우는 다른 마교회 멤버들을 찾아봤다.
‘찾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얼음공주가 무대에 자리한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제 주장이 맞지 않을까요?”
상대편 악마의 주장에 얼음공주가 굳게 닫힌 입을 열며 대답했다.
“…아닌데.”
“뭐라고요?”
“아니라고.”
“뭐가 아니라는 거죠?”
“아닌 건 아닌 거야.”
“예?”
“아니라니까?”
정민우는 이마를 '탁' 치며, 얼음공주를 바라봤다.
‘아니. 이유에 관해 설명해줘야지. 아니라고만 우기면 어쩌자겠 다는 거야….’
얼음공주도 늑대인간과 버금가게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그만! 여기는 토론을 하는 거지. 같은 말만 반복하는 곳이 아니다!”
결국, 참다못한 교관이 나서며, 얼음공주의 패배로 끝이 났다.
“…진짜, 아닌데….”
얼음공주는 미련을 못 버렸는지, 끝까지 ‘아닌데’라고 반복하며 힘없는 발걸음으로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토론 실력이 영 아니긴 하네.’
정민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마지막 멤버인 핑크녀를 찾아보기로 했다.
‘핑크녀는 잘하고 있으려나?’
자신이 인정한 경쟁자이기에 어떤 토론을 펼치고 있을지 기대감이 들었다.
‘오, 저기 있네.’
머리 색깔이 눈에 띄는 덕분에 핑크녀를 금방 찾아낼 수가 있었다.
“다시 한번 말씀해보시겠어요?”
“…….”
핑크녀의 물음에 상대편 악마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당신이 얘기한 예시는 이 부분에 의해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정하십니까?”
“…아니, 틀리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면, 왜 틀리지 않았는지 저에게 설명해보시겠어요?”
“…….”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상대를 압박하는 모습에 정민우는 속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역시, 예상대로 토론도 잘하네.’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도가 텄으니, 토론을 잘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42번 30초 내로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패배 처리가 된다.”
교관의 말에 악마는 고뇌에 찬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졌습니다.”
더 이상 반박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순순히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이번 토론의 승자는 999번이다.”
교관의 말에 핑크녀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깔끔하네.’
정민우는 핑크녀의 토론 스타일이 ‘깔끔하다’라는 정의를 내렸다.
자신과 정반대인 화법.
‘내가 몰아치는 바람 같다면, 핑크녀는 잔잔한 호수 같은 느낌이지.’
화법만 봤을 때 상당한 상극.
‘페이스에 말리게 된다면, 그대로 지게 된다.’
서로 스타일이 극명하게 나뉘다 보니, 한번 휘말리게 된다면 그대로 패배로 이어지게 될 것이었다.
‘만약, 내가 페이스에 말려든다고 해도 심안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빠져나오겠지만 말이야.’
정민우는 빨리 결승전이 찾아와 핑크녀와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 *
이후 정민우는 어려움 없이 연전연승을 거두며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핑크녀도 연전연승을 거두며 결승전까지 올라왔고 말이야.’
정민우는 자신 앞에 서 있는 핑크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좋은 승부를 겨뤄보자고.”
그러자 핑크녀가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졌다고 해서 보복하는 건 아니겠죠?”
제법, 귀여운 도발.
“당연하지.”
“어머, 정말 그런가요?”
“내가 질 일이 없는데 보복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
정민우의 말에 핑크녀의 미간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뚜벅, 뚜벅, 뚜벅.
“다들 준비가 됐나?”
잠시 뒤 교관이 무대 위로 올라오며, 준비 상태에 관해 물었다.
“네, 준비됐습니다.”
“저도, 준비됐어요.”
정민우와 핑크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둘 다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교관은 곧바로 버튼을 눌렀다.
삐―융.
그러자 무대 위에 설치되어 있던 스크린에 불빛이 들어왔다.
‘호오… 이 주제가 나왔단 말이지?’
그리고 주제를 확인한 정민우는 두 눈을 빛냈다.
‘생각보다 더 손쉽게 이길 수 있겠어.’
그도 그럴 게 여태까지 받아왔던 주제 중에 가장 자신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었다.
21화 나는 악마다 (4)
[고등생물은 어떤 본성을 지니고 태어날까?]
[성선설 VS 성악설]
‘이런 주제가 한 번쯤은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 토론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단골 주제.
‘그리고 운이 좋게 후자의 선택지가 나에게 배정이 됐고 말이야.’
헬조선에서 살아왔던 만큼, 성악설 굳게 믿고 있던 정민우였다.
‘이렇게 자신 있는 주제가 걸리면 지기도 쉽지 않지.’
정민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핑크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표정이 좋네.’
그리고 핑크녀 또한 표정이 밝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인해볼까?’
정민우는 대회가 시작하기 전 그녀의 생각을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핑크녀를 보며 정신을 집중하자.
【성선설이라… 어렵지 않게 승리를 따낼 수 있겠어. 】
머리 위에 글자가 조합되더니, 핑크녀의 생각이 문자로 만들어졌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군.’
서로 자신 있는 선택지가 배정됐으니, 이번 토론은 꽤 흥미진진할 것 같았다.
“저부터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핑크녀는 스크린에 시선을 떼며, 정민우에게 의사를 물었다.
“상관없어.”
정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하자.
삐―이.
핑크녀가 곧바로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고등생물이 선한 이유는 간단해요. 그들은 저희와 달리 도태된 생명을 안고 가는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죠. 이런 생물들이 어떻게 악하다고 할 수 있겠나요?”
제법 그럴싸한 논리.
‘하지만, 맹점이 너무 많아.’
정민우는 핑크녀가 어떤 속셈을 숨기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그녀의 생각을 읽었다.
【처음에 너무 강하게 나가는 것보다 이렇게 잔잔하게 밀고 나가는 게 좋겠지】
‘이런 생각이었군.’
정민우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버튼을 눌렀다.
삐―이.
“그 논리는 말이 되지 않아.”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왜냐면, 그 논리는 안전한 보금자리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아야 하기 때문이지. 만약, 위험에 닥치게 되면 그들 또한 힘이 없고, 늙은 이들부터 버리는 모습을 보이게 될 거야.”
핑크녀는 곧장 버튼을 누르며, 반박에 나섰다.
“당연히,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면 그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건 살기 위한 ‘본능’이기에 ‘본성’과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민우는 턱을 쓸어 보이며 말했다.
“상관이 없다라… 왜, 그렇게 생각하지?”
“본능은 고등생물, 하등생물 상관없이 지닌 기본 욕구이기 때문이죠.”
핑크녀의 대답에 정민우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걸 위한 빌드업이었다는 건가.’
역시, 자신이 인정한 경쟁자답게 언변이 상당히 뛰어났다.
‘이래야지 토론하는 맛이 나지.’
대회 내내 토론을 할 줄 모르는 녀석들을 상대하다가 핑크녀를 상대하니 전에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올라왔다.
‘자, 이다음의 대화는 어떻게 이끌어갈 거냐?’
정민우는 기대감이 담긴 눈빛으로 그녀의 생각을 읽어냈다.
【지금 상황까지는 나쁘지 않아. 이대로 천천히 이쪽 페이스로 끌어들여야겠어. 】
‘앙큼한 생각을 하고 있었군.’
그녀의 바람대로 놀아줄 생각은 없었기에 정민우는 슬슬 반격에 나서기로 하며 버튼을 눌렀다.
“아쉽지만, 내 생각은 달라. 나는 그 ‘본능’이 악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뜻으로 보고 있어서 말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생명체가 설계된 것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지.”
정민우의 말에 핑크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고등생물은 육식과 초식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지. 그들은 채소만 먹어도 생명을 연명할 수 있지만, 굳이 살육을 통해 육식을 즐기지. 이것만으로 봐도 악하다는 것 아니겠어?”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핑크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분위기가 바뀌었어…. 】
핑크녀는 자신이 이끌어가던 페이스가 정민우 쪽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가면 끌려가게 돼. 어떻게든 끊어내야겠어. 】
그녀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그 말에는 어폐가 있군요.”
“어폐? 내 말에 어디가 어폐가 있었다는 거지?”
정민우는 어서 반박해보라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의 논리로 따지면, 생명체 전부가 악하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고등생물을 타락시킬 필요 없이 마기를 충족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타락시키지 않아도 마기를 충족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소리지?”
“제가 얘기하는 것은 소량의 마기가 아닌 대량의 마기에 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즉, 그녀의 말은 고등생물이 악하면 대량의 마기가 절로 들어올 텐데 왜 그러지 않냐고 반박한 것이었다.
‘급한 마음에 실수를 저질렀구나.’
그녀의 말에 정민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런 논리로 따지면, 비둘기도 따로 사제를 만들 필요가 없지 않나?”
“…….”
혀를 찌르는 말에 핑크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눈에 띄게 당황했군.’
과연, 핑크녀는 여기서 어떻게 헤쳐 나갈지 기대하며, 생각을 읽어봤다.
【…젠장, 다급한 나머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 어떻게든 다음 질문으로 이번 실수를 만회해야 해! 】
핑크녀는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버튼을 눌렀다.
“그렇다면, 용사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용사?”
“용사는 마왕을 대적하기 위해 비둘기에게 선택된 선한 존재니까요. 만약, 악했다면 과연 비둘기들이 용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용사와 마왕.
악마는 마왕의 반열로 오르게 되면, 일부의 힘으로만 행성에 현신할 수가 있지만, 비둘기는 현신 자체를 할 수가 없어 용사를 발탁하는 것이었다.
‘용사에 관한 얘기까지 끌고 오다니, 마음이 급해지긴 했나 보네.’
정민우는 슬슬 굳히기에 들어가기로 하며, 버튼을 눌렀다.
“네가 잘못 알고 있어서 하는 말인데. 용사는 선한 존재여서 비둘기에게 발탁된 게 아니야.”
“…그게 아니면 뭐죠?”
“다른 고등생물에 비해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품고 있었기에 뽑은 거지.”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라고요?”
“그래, 비둘기들은 그것을 보고 뽑은 거야.”
핑크녀는 반박할 거리가 생겼다는 듯, 진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사에 나온 문헌에 따르면 비둘기에게 발탁된 용사들은 다른 고등생물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이라고 묘사가 됐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반박하실 거죠?”
정민우는 고민도 없이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문헌에 따르면 그렇기야 하겠지. 근데, 정말 선한 것만으로 발탁했을까? 선한 것으로 따졌다면 사제가 되어야 할 텐데 왜 평범한 고등생물이 됐지?”
“…그, 그건.”
“그래, 재능이 우선순위에 놓인 것을 말하고 있지. 그래야 힘을 나눠줄 때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테니까 말이야.”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한 핑크녀는 표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하다는 기준이 너무 모호하지 않아? 마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용사들은 여자와 부를 거머쥐게 됐다고 문헌에서 나오는데 그게 과연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
“…….”
이어지는 공격에 핑크녀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주제로 돌려야 하나? 아니면, 다른 사례를 인용해야 할까? 】
생각을 읽어보니, 그녀가 바삐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날리고 끝내야겠군.’
여기서 더 시간을 끌어봤자 의미가 없었기에 정민우는 결정타를 날려 대회를 끝내기로 했다.
“그리고 고등생물이 악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지.”
“…증거요?”
“고등생물은 법이라는 족쇄를 만들어 본인에게 걸어버린다는 게 증거지.”
“그게 왜 결정적인 증거죠?”
“그야, 법이 없으면 그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되지. 마치, 우리 악마처럼 말이야.”
“…….”
정민우의 말의 끝으로 핑크녀는 허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 도저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제 패배입니다. 1번님.”
그리고 그녀는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자신의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했다.
“999번의 항복 선언으로 ‘나는 악마다’ 우승자는 1번이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교관이 앞으로 나서며, 정민우의 승리를 알렸다.
“우승자는 가운데로 오도록.”
교관의 부름에 정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운데 자리로 이동했다.
“우승자에게는 가산점 5점이 부여된다. 1번, 축하한다.”
가산점이 부여된다는 소리에 정민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로써 수석에 한 발짝 더 다 가까워졌네.’
현재 가지고 있는 가산점은 15점.
시험을 망치지 않는 이상 10등 안에 높은 확률로 들 수가 있었다.
‘시험을 망치지 않는다는 조건이 95점 이상 맞는 것을 말하는 거지만 말이야.’
하지만, 남들보다 앞서나가고 있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이었다.
‘언제 또 이런 가산점이 걸린 대회가 열릴지 모르니까.’
운이 좋아, 두 번이나 가산점을 받은 것이지 다음부터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시험과 다른 대회를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지금은 우승한 것에 기뻐하는 거로 하자.’
그것은 나중 일이기에 지금은 ‘나는 악마다’에 우승했다는 사실을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무대에서 내려가려는 찰나.
“1번님 축하드려요.”
핑크녀가 다가와 축하의 말을 건네왔다.
“고맙다.”
정민우는 축하를 받는 동시에 그녀의 생각을 읽어봤다.
【이번에는 이렇게 지게 됐지만, 다음번에는 꼭 이기고 말겠어. 】
호승심 넘치는 생각에 정민우는 의외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졌으면, 안 좋은 감정을 품을 법도 한데 의왼데?’
지금 보니 생각보다 나쁜 악마는 아닌 것 같았다.
‘가만, 악마보고 나쁘지 않다는 것은 오히려 욕인 되는 건가?’
핑크녀를 보며, 실없는 생각을 하던 그때.
“…왜, 그렇게 쳐다보시죠?”
핑크녀가 볼을 긁적이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 미안. 의외로 너도 꽤 괜찮은 녀석이다 싶어서 말이야.”
“…네?”
뜬금없는 말에 핑크녀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내려가자. 대회도 끝났으니, 노예 하나 만들러 가야지.”
설명해주기 귀찮았기에 정민우는 말을 돌리며,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도록 하죠.”
핑크녀 또한,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그 부분에 관해서 묻지 않고 정민우를 따라나섰다.
* * *
그날 밤.
“이의 없으시죠?”
핑크녀가 차게 식은 눈빛으로 올빼미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계약 조항을 본 올빼미는 따지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게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지.’
정민우는 속으로 혀를 차며, 작성한 계약 조항을 살펴봤다.
― ‘갑’은 ‘1번’, ‘777번’, ‘888번’, ‘999번’을 칭하며, ‘을’은 ‘555번’을 칭한다.
― ‘갑’이 명령을 내렸을 때, ‘을’은 무조건 명령에 따라야 한다.
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 그대로 사망하게 된다.
― ‘을’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갑’에게 손해를 끼칠 수 없다.
만약, 끼치려고 할 시 ‘을’은 그대로 사망하게 된다.
내용을 전부 살펴본 정민우는 계약 조항을 만든 핑크녀를 바라봤다.
‘진짜, 빈틈없이 만들었네.’
살펴보니, 올빼미가 빠져나갈 구멍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양피지에 피를 흘러 넣어주세요.”
“…알겠습니다.”
올빼미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엄지손가락을 깨물었다.
톡톡―
그렇게 양피지에 피를 흘리자.
화아아아아―
허공에 떠 있던 마법진이 다시 양피지 속으로 스며들었다.
【계약 완료】
그리고 계약이 완료됐다는 문자가 떠올랐다.
“하아, 이제 되돌릴 수 없게 됐군요.”
문자를 본 올빼미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로써 공식 노예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잘 부탁한다.”
정민우는 올빼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올빼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깍듯하게 대답했다.
‘이 녀석을 그쪽에 써먹으면 되겠지?’
때마침, 올빼미를 써먹을 곳이 있었기에 정민우는 첫 명령을 내릴 생각이었다.
“혹시, 555번에게 명령 내릴 거 있어?”
하지만, 개인 소유가 아니다 보니, 마교회 멤버들의 의사를 묻고 나서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없습니다.”
“그다지?”
“…없어.”
마교회 멤버들의 대답에 정민우는 올빼미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내가 먼저 명령을 내려도 상관없다는 거지?”
그 미소에 올빼미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직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올빼미의 직감은 현실이 되었다.
22화 시험 준비 (1)
“…저 보고 고블린들을 상대하라는 말씀입니까?”
올빼미는 믿기 힘들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민우에게 물었다.
“응, 대신 상대할 때 다치지 않게 상대해줘야 해.”
개인 훈련실은 대련할 때 보호막이 생성되는 것과 달리, 개인 사육장은 아쉽게도 그러한 기능이 없었다.
“하, 제가 열등한 종족들을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군요.”
올빼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부터는 매일 1시간씩 대련을 해주면 돼. 그리고 아쉬운 부분이 있으면 바로바로 피드백해주고.”
“매일 1시간씩이라….”
이어지는 말에 올빼미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왜, 싫어?”
움찔―
정민우의 물음에 올빼미가 몸을 떨어 보이며 말했다.
“…하하, 싫을 리가 있겠습니까? 하라면 해야죠.”
명령을 거절하면, 죽게 된다는 제약이 있었기에 올빼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치? 좋아할 줄 알았어.”
정민우는 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근데, 왜 이런 훈련을 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애완 몬스터를 훈련 시킨다는 것은 제 머리로 이해가 안 가서 말입니다.”
올빼미의 물음에 정민우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괜히, 궁금증 가지지 말고 까라면 까.”
정민우가 고블린에게 대련을 시키는 이유는 간단했다.
‘어떤 시험을 치를지 모르니까. 대비할 수 있는 건 전부 해야지.’
몬스터 관리 시험이 어떻게 출제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정민우는 시험을 대비해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시킬 생각이었다.
“…제가, 주제를 넘는 질문을 했군요.”
올빼미는 정민우가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정민우는 올빼미에게 시선을 거두며, 고블린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방금, 얘기했던 거 잘 들었나?”
“““끼엑!”””
연병장에 대기하고 있던 고블린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좋아, 그동안 훈련도 열심히 했으니 좋은 모습을 기대하도록 하지. 전부, 무기 들도록.”
정민우의 말에 고블린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각자의 무기를 들어 보였다.
“여기서 가장 먼저 쓰러지는 녀석은 얼차려가 있을 줄 알아라.”
움찔―
얼차려라는 말에 고블린들은 언제 겁을 먹었냐는 듯, 두 눈에 의욕이 불타올랐다.
“그럼, 시작해라!”
“““끼에에엑!!!”””
정민우의 외침에 고블린들이 일제히 올빼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아… 열등한 종족들이 저에게 덤벼오는 모습을 보니 썩 기분은 좋지 않군요.”
올빼미는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끼엑!”
그리고 가장 선두에 섰던 고블린이 올빼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쐐―액!
검이 복부를 향해 가까워지는 순간.
“그런, 뻔한 공격을 누가 당해주지?”
올빼미는 옆으로 한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가볍게 고블린의 공격을 피해버렸다.
퍼―억!
이어서 고블린 복부를 발로 걷어차자.
“끼엑!?”
고블린이 저 멀리 날아가며, 꼴사납게 바닥을 뒹굴었다.
“끼, 끼엑!!”
동료가 날아가는 모습을 본 고블린들은 분노를 터트리며 무기를 휘둘렀다.
“호오, 마기를 사용할 수 있을 줄이야.”
올빼미는 흥미 어린 시선으로 고블린들을 바라보며, 깃털을 휘날렸다.
“하지만, 열등한 건 변하지 않지.”
“““…끼엑!”””
챙, 챙, 챙, 챙, 채―앵!
고블린들은 들고 있는 무기로 올빼미의 공격을 잘 막는가 싶었지만.
푹, 푹, 푹, 푹, 푹―!
“““끼에에엑!”””
힘의 차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공격을 허용해주고 말았다.
“머리는 장식으로 들고 다니는 건가? 인원이 많으면 그것을 사용할 줄 알아야지.”
올빼미는, 고블린들의 잘못된 점을 꼬집으며 말했다.
“연계 자체를 모르나? 그저, 달려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나?”
그리고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았는지, 싫어했던 것 치고는 열성을 다해 지도하기 시작했다.
‘가르치는데 나름의 재능이 있는 것 같네.’
정민우는 흥미 어린 시선으로 올빼미를 바라봤다.
‘하긴, 능력이 없었으면 마교회 멤버에 들어오지도 못했겠지.’
멍청한 짓을 하다 걸려 노예로 전락하게 돼버렸지만, 올빼미의 능력은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커피에 독을 탔던 것도 걸리지 않았겠지.’
만약, 자신에게 걸리지 않았다면 올빼미가 토론 대회에서 우승했을 것이었다.
‘유능한 것을 알았으니, 더 굴려주는 것이 예의겠지.’
정민우는 올빼미를 바라보며, 더 시킬 일이 없는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끼에에에엑!”””
한편, 올빼미의 조언을 듣던 고블린들은 드디어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호오, 나를 둘러싸서 어쩌겠다는 거지?”
“끼에에엑!”
올빼미의 도발에 고블린들은 무기를 치켜들며 동시에 돌격했다.
하체, 복부, 상체.
고블린들은 서로 동선이 겹치지 않게 다채로운 공격을 가했다.
“이제 조금 봐줄 만 해졌지만….”
그 모습에 올빼미는 깃털을 흩뿌리며 말했다.
“아직도 부족한 건 여전하다.”
깃털이 올빼미의 주변 둘러싸자.
챙, 챙, 챙, 챙, 챙, 채―앵!
고블린들의 공격을 가볍게 튕겨내 버렸다.
“어리석군.”
이어서 깃털이 흩어지며, 고블린 한 마리씩 요격해버렸다.
“““끼에에엑!”””
올빼미 공격에 고블린들은 속절없이 쓰러졌지만.
“““끼에에엑!!!”””
얼차려만큼은 받기 싫었던 고블린들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끈기 하나는 좋군.”
이후 올빼미는 고블린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을 이어나갔다.
“더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와라!”
“끼엑!”
“마기를 그렇게 낭비하지 말아라!”
“끼엑!”
“정직하게 공격하지 말아라!”
“끼엑!”
“협동 플레이를 해라!”
“끼엑!”
올빼미가 지적해줄 때마다 고블린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네.’
대련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정민우는 눈에 보이는 성장세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직 어설픈 건 똑같지만 말이야.’
그렇게 1시간이 흐르자.
“훈련은 여기서 끝이다.”
시간을 확인한 올빼미가 훈련의 끝을 알려왔다.
“끼, 끼엑….”
털썩―
그러자 고블린들은 바닥에 엎어지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어땠어?”
훈련이 끝난 것을 확인한 정민우는 올빼미에게 다가가 감사평을 물었다.
“열등한 종족이라 나약한 것은 바뀌지 않지만, 제 몬스터와 비교했을 때는 몇 배나 뛰어납니다.”
“어느 부분에서?”
“마기를 다루는 것도 그렇고 조언을 해주면 금방 습득하는 부분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올빼미의 극찬에 정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고생 좀 해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정민우는 다음 날 몇 시에 찾아와야 하는지 얘기해주며, 올빼미를 돌려보냈다.
* * *
다음 날.
“이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모든 수업은 이론으로 대체된다.”
교관이 시험에 관한 공지를 해왔다.
“다들 알다시피 시험 과목은 다섯 가지로 진행된다.”
다섯 가지라는 말에 정민우는 배우는 과목들을 떠올렸다.
마계의 역사, 마계를 빛낸 위인들, 비둘기들의 특징, 악마의 본분, 행성 침략.
‘양이 상당히 많군….’
환생 전에 공부했던 교과서보다 족히 5배는 두꺼웠기에 외워야 할 것이 상당히 많았다.
‘무엇보다도 마계를 빛낸 위인들은 다른 책들보다 2배 가까이 두껍지.’
매일, 공부를 지새운 정민우조차 복습을 완전히 끝내지 못할 정도로 책의 두께가 어마어마했다.
“이론은 악마로서 살아가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되니,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교관의 말에 정민우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복습을 끝낸다고 해도 완벽하게 외우기는 힘들겠지.’
아무리, 공부에 도가 튼 자신이라고 해도 저장 용량은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정민우는 한 가지 꼼수를 쓰기로 했다.
‘꼼수라기보다는 능력을 이용한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 능력은 바로.
‘심안을 사용하는 것이지.’
교관들의 생각을 읽어 출제 범위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담당 과목 교관에게 찾아가면, 범위를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겠지.’
계획대로만 된다면, 이번 시험에서 1등은 따놓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상념을 끊으며, 다시 교관을 보니.
“그럼, 수고해라.”
할 말을 전부 전했는지, 교관은 미련 없이 교실 문밖으로 나섰다.
‘나도 슬슬 움직여볼까?’
정민우는 교과서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민우, 이번 시험 잘 볼 자신 있어? 개굴개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로크가 말을 걸어왔다.
‘조금 떠들다가 가도 상관없겠지.’
정민우는 도로 자리에 앉으며 로크의 물음에 대답해줬다.
“문제없지. 내가 이론 쪽에 강한 거 알잖아.”
그러자 로크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부럽다… 나는. 공부에 진전이 없어서 걱정이야. 개굴개굴.”
“왜, 이해가 잘 안 가?”
“응, 생각보다 잘 이해가 안 가네. 개굴개굴.”
로크의 말에 정민우는 턱을 쓸어 보이며 생각에 잠겼다.
‘이론에 약한 타입인가?’
평소 로크의 행실을 보면, 자신 다음으로 수업 태도가 좋다고 해도 무방했다.
또한, 수업이 끝나고 공부와 훈련을 병행했기에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가끔 이런 얘들이 있지.’
공부해도 도통 성과가 나지 않는 부류.
대개 이런 부류는 잘못된 공부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도와주면 금방 해결이 될 것 같기는 한데….’
자신의 공부 지식과 출제 범위를 알려준다면, 로크 또한 성적이 눈에 띄게 상승할 것이었다.
‘다만, 경쟁 상대를 도와주는 게 조금 걸리는데.’
자칫하다가 자신보다 시험을 잘 보면, 곤란했기에 선뜻 도와준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내버려 두면, 폐기처분당할 것 같은데 말이지.’
하지만, 내버려 두자니 마음에 걸렸다.
‘유일하게 나한테 목적 없이 선의를 베푸는 놈이니까.’
또한, 악마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라는 점이 한몫했다.
‘하, 출제 범위는 적당히 알려주면 되겠지.’
로크가 폐기 처분을 당하면 잠자리가 뒤숭숭해질 것 같으니, 이번만 도와주기로 했다.
‘졸업하면, 좋은 협력자를 얻을 수도 있고 말이야.’
결정을 내린 정민우는 로크를 보며 말했다.
“내가 공부하는 것 좀 알려줄까?”
“저, 정말? 개굴개굴.”
정민우의 제안에 로크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그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미, 민우야… 개굴개굴.”
“아, 들러붙지는 말고.”
껴안으려 드는 로크를 밀어내며 말했다.
“공부는 저녁에 하는 거 어때?”
“좋지. 개굴개굴.”
“그럼, 이따 저녁 6시에 도서관 앞에 만나는 거로 하자.”
“고마워. 개굴개굴.”
로크는 거듭되는 감사의 인사에 정민우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감사의 인사는 됐고. 열심히만 해.”
“알겠어! 개굴개굴.”
“나는 볼일이 있으니 잠깐 나갔다 올게.”
그렇게 정민우는 교과서를 들고 교실 문을 나가자.
“안녕!”
늑대인간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왔다.
‘얘가 왜 여…어?’
정민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늑대인간을 바라보자.
“별건 아니고. 부탁할 게 있어서 말이야.”
늑대인간이 볼을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어 보이더니.
“부탁?”
“응, 나 공부 좀 알려줘!.”
대뜸, 공부를 알려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당당하게 부탁을 하는 거지?’
로크에게 먼저 공부를 알려줄 것을 제안한 정민우였지만.
‘얘는 로크와 다르지.’
그녀는 로크와 달리 그저 경쟁자에 불과했다.
‘거절해야지.’
정민우는 고개를 저으며 늑대인간에게 말했다.
“미안, 누구를 가르쳐 주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그렇게 거절하며, 지나치려는 순간.
“알려주면, 나한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소원 하나 들어줄게!”
늑대인간이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공부를 알려주고 소원 하나라… 괜찮은데?’
무식하기는 하나, 전투 능력 하나만큼은 넘볼 자가 없었기에 그녀를 잘 활용한다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진짜 어떤 소원이든 들어줄 거야?”
그리고 정민우는 언제 매몰차게 거절했냐는 듯,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되물었다.
“으, 응.”
그 모습에 늑대인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바로 계약하러 가도록 하자.”
정민우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곧장 늑대인간을 회의실로 데려갔다.
23화 시험 준비 (2)
― ‘갑’은 ‘을’의 ‘악마는 정장을 입는다’ 시험을 성심성의껏 도와준다.
― ‘갑’이 ‘을’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타당한 이유가 없는 한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
만약, 들어주지 않을 시, ‘을’은 ‘갑’의 노예가 된다.
― 이 계약은 ‘갑’의 도움의 요청이 끝난 뒤 자동으로 파기가 된다.
계약 조항을 본 정민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됐다. 너도 확인해봐.”
정민우의 권유에 늑대인간은 떨떠름한 얼굴로 계약 조항을 확인하며 말했다.
“꼭, 계약까지 해야 해?”
늑대인간의 물음에 정민우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확실하게 하는 게 좋잖아.”
“그런가?”
“만약, 내가 도와준다 해놓고 이상하게 알려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러니까 서로를 위해 계약을 맺는 거지.”
“듣고 보니 그렇네?”
정민우의 설명에 설득된 늑대인간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깨물었다.
톡톡―
그렇게 양피지에 피를 흘리자.
화아아아아―
허공에 떠 있던 마법진이 다시 양피지 속으로 스며들었다.
【계약 완료】
그리고 계약이 완료됐다는 문자가 떠올랐다.
‘이걸로 세 번째 계약이네.’
아마, 자신처럼 생도 신분으로 이렇게 계약을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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