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lado 3

팅 스킬의 최대치가 어느 정도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던 차였다.
‘흡수 스킬도 계속 쓰다보면 뭔가 발전하는 부분이 있을 거야. 조합 스킬도 그렇겠지.’
다만 ‘신체 강화’ 스킬의 경우 매번 시전해야 하는 스킬이 아닌 터라, 그런 발전 개념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
“후우. 오늘은 이미 잔반이 되어버렸으니 흡수하기 좀 그렇고....”
남아있던 잔반들을 여러 번에 걸쳐 모두 운반한 그는 처리장의 창고에 서서 그곳에 채워져있는 잔반들을 보았다.
‘잠깐만. 이게 오늘 하루 전체 분량은 아닌 거지?’
아마 뷔페식당에서 그런 것처럼 오전 것은 뺀 분량 아닐까? 지침이 내려온 게 오후인 것 같은데.
‘그럼 내일부터는 더 많아진다는 거잖아.’
살짝 질린 얼굴이 되었지만, 그렇게 멍때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최강혁은 당장 가장 가까이 있는 잔반통으로 다가갔다. 아직 변질될 정도로 시간이 지난 건 아니어서, 악취 같은 건 풍기지 않았다.
“빈통이 어디 있더라? 가져왔는데... 여기 있다.”
작업을 하려면 빈통 하나가 있어야 했다.
한 통을 통째로 루팅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별도로 마나를 빼낸 것들을 담을 통이 하나 필요한 것이다.
‘좋아. 세팅했고.’
접촉할 필요 없이 루팅과 꺼내기를 할 수 있어서 여러 모로 다행이었다.
왼손은 잔반통으로, 오른손은 빈 통을 향해 뻗은 그는 천천히 루팅을 시작했다.
‘가져와서 넣고... 마나를 뽑아내고... 이쪽으로 꺼내고. 좋아. 이런 식으로 반복하는 거야. 헷갈리지 말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중간에 방향을 실수하는 일도 생겼지만, 바닥에 쏟은 게 아니니 큰 문제는 없었다.
‘이건 정말 엄청난데?’
인벤토리 제작이 계속 진행되었다.
속도가 빨라진 건 아니지만, 중간에 마나 부족으로 일시정지를 하지 않는 것만 해도 그야말로 엄청나다 할 수 있었다.
‘이것들을 다 하면... 20칸? 아니 30칸도 가능할지 몰라.’
오늘만 다가 아니다.
앞으로 매일 이 이상의 잔반이 수거될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반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조금씩 작업 속도가 붙었다.
실수 또한 점점 줄어들었다.
‘됐어.’
어느새 활짝 열린 창고 문 안으로 새벽의 빛이 스며들 즈음, 최강혁은 그곳에 있던 것들의 작업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대박.”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그의 감상을 표현하기에 더 없이 적절한 말이었다.
‘이곳에서만 24칸을 만들었어.’
부사령관에겐 어떻게 알려야 할까?
있는 그대로? 아니면 역시 줄여야 하나.
‘아는 사람이 루팅 스킬이 있다고 했지. 어쩌면 그 지인도 비슷한 방법을 활용했을지 모르잖아.’
인벤토리의 칸 수라면 몰라도, 이쪽은 섣불리 줄여 말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조금만 줄이자. 20칸 정도 되었다고 하면 되겠지.’
설마 매일 매일 확인하려고 하진 않을 것 같으니, 최강혁은 미리 지금의 인벤토리에서 40칸 정도를 별도로 분리해두었다.
인벤토리를 따로 지정하여 관리하면, 누가 갑자기 물어보더라도 바로바로 세어서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 버벅댈 일이 없을 것이다.
‘다 합치면 441칸인가.’
오늘하고 내일까지 하면 5백 칸에 근접할 것이다. 잘하면 넘어갈 지도 모르고.
‘쓰레기장에서도 마나를 얻긴 하니까.’
게다가 문득 생각난 게 또 있었다.
‘몬스터 뼈 매장지에서 도로 파내겠다고 했었지. 나를 위해서.’
그것들까지 감안하면, 앞으로 인벤토리 제작 속도가 더욱 빨라질 터. 1천, 2천 칸도 그리 멀지 않다.
〈 18화 〉 018.
018.
‘잠깐만.’
그러나 그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마냥 신나할 때가 아니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분위기에 휩쓸려버릴 거야.’
계속 인벤토리 칸을 늘리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감당할 만한 마나가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 이렇게 쉽게 마나를 얻을 수 있으니 문제가 없지만, 만약 인벤토리가 엄청나게 늘어난 이후에 지금의 혜택이 없어지면....’
인벤토리를 없애는 것도 가능하다.
부담이 된다면 일부 인벤토리를 제거해서 부담을 줄이면 된다.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힘들게 만들어낸 인벤토리를 다시 없애야 한다면 시간 낭비 수준을 넘어서 대단한 손실이었다.
‘그만큼의 마나를 만약 다른 쪽에 투자했다면.’
하다 못해 체력 단련에 활용했더라면 그만큼 강한 몸을 갖게 될 테니까.
‘그래. 그 때 가서 후회하기보다, 지금부터 적당히 분배하고 속도조절을 하는 게 좋겠어.’
당장 인벤토리 몇 칸을 빠르게 늘리는 것에 전력하지 않고, 지금부터 꾸준히 다양한 부분을 성장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칸수도 줄여 말하고 있으니까, 느리다고 문제될 것도 없잖아.’
그렇게 방향이 정해졌다.
처리장 직원에게 들러 작업을 마쳤음을 알려준 그는 몰고 왔던 식당 카트를 다시 몰고 그곳으로 복귀했다.
“아직 출근 전인가보네요.”
“잔반 처리?”
“네.”
“아직 만나신 적 없었던가요?”
“예. 이래저래 엇갈려서요.”
“뭐, 굳이 만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담당자가 하던 말과 비슷한 이야기를 건네던 식당 직원은 곧 밤동안 쌓인 피로를 긴 하품에 담아 내뱉었다.
“그럼 이만 가봐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한 숨도 못 주무셔서 어떻게 해요? 당직도 아니신데.”
“괜찮습니다.”
숙소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카트를 몰아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두 발로 걷는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뛰어가면 땀을 흘리게 되겠지.’
적당히 빠른 발걸음.
이른 출근을 행하는 이들을 지나치며 숙소에 도착한 그는 그제야 다락방에 대충 밀어놓았던 짐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간이침대라... 그래도 흙침대보단 나을까.’
접이식 침대.
야근 많은 회사에서 주로 보이는 종류였다.
침대라고 하니 군용 야전 침대라도 주려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나았다.
“어우, 푹신하다.”
고작 반 뼘이나 될까 싶은 쿠션임에도 무척이나 편했다. 아주 푹신한 것도, 그렇다고 딱딱한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느낌.
“일어나자.”
왠지 더 누워있다간 그대로 잠이 들어버릴 것 같아서,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옷은... 그냥 가도 될 것 같고.”
딱히 더러워진 곳이 없으니, 바로 출발하면 될 듯 했다. 그렇게 집을 나섰더니, 멀찍이서 대형 차량과 장비들의 이동 소음이 들려왔다.
‘가까워지는데?’
설마 했는데, 정말로 그쪽으로 오고 있었다.
금세 공터로 접어든 각종 차량에서 군복과 일반 작업복이 뒤섞인 수많은 무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 벌써 시작하시는 건가요?”
“예. 빨리 해야 빨리 끝내지요.”
상하수도 공사와 전기 연결 공사.
빠르게 될 거라더니, 정말로 그렇게 일찌감치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챙겨온 장비나 지하에 묻을 것으로 보이는 대형 관 같은 것들을 보면 다소 의아해질 수 밖에 없었다.
‘고작 숙소 하나에 연결하려고 저런 것들까지 동원해?’
그리고 그런 궁금증은 곧 풀렸다.
“다른 건물들이 올라간다고요?”
“예. 지금처럼 쓰레기장 한 구석에서 일하시게 둘 수는 없으니까요. 전용 작업장을 신설할 겁니다.”
전용 작업장.
최강혁이 조합 스킬을 편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그만을 위한 일종의 공방을 만들어주겠다는 것.
“앞으로는 부대에서 반출되는 물품들이 이쪽으로 오게 될 거고요.”
일반 쓰레기를 제외한, 피복이나 전투화 같은 것들은 이제 그쪽이 아니라 이쪽으로 보낸다는 것도 들었다.
‘편하긴 하겠지만....’
사생활이 침해받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그렇게 세워질 전용 작업장에 담당 직원들이 상주할 숙소도 함께 지어질 거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미 전담 직원을 둘 거라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지만, 설마하니 집 근처에 상주시킬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으니까.
‘감시 목적일까?’
그런 의심도 들었지만, 지금으로선 어느 쪽이든 확신하기 어려웠다.
‘모르겠다. 일단 나한테 편해진 건 사실이고.’
다만, 더 이상 쓰레기장에 출근하지 않게 된 건 분명해보였다. 이곳에 온 이들은 그런 부분까진 알지 못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직접 가서 확인해보는 게 빠르겠지.’
어차피 나선 걸음이었다.
일터로 향한 그는 그곳에서 예상했던 대로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뭐야. 얼마나 됐다고 신참을 호로록 빼가냐?”
“각성자인 걸 알아버렸으니 별 수 없잖아.”
“하긴. 윗놈들이 그냥 둘 리가 없지.”
선임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그동안 많은 걸 가르쳐준 사수 김환수 또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이제 일 좀 한다 싶더니.”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말처럼 쉽진 않을 거다. 여유가 있어보이면 그만큼 일감을 더 만들어줄 놈들이니까.”
김환수는 적당히 요령껏 하라고 조언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던 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덕분에 우리 일거리도 줄어든 건 맞지.”
“여기 있던 것들도 그쪽으로 옮긴다던데?”
“아. 그래요?”
“그렇다더라고.”
새로 나올 물량만 공방으로 오는 게 아니라, 지금 쓰레기장 한켠에 엄청 쌓여있는 기존 물량들까지 옮긴다는 것 같았다.
“어쩐지, 오늘도 일할 필요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출근 안 해도 된다고.”
“집에서 쉬고 있어.”
“어차피 곧 일복 터질 테니까.”
“아....”
그렇잖아도 피곤하던 차였다.
그래도 기왕 온 김에 샤워라도 할까 싶어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그곳에서의 샤워를 천천히 꼼꼼하게 즐겼다.
‘개인 라커도 비워야겠구나.’
들어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금 나가야 한다니. 식당 못지 않게 정이 들었던 곳이라 무척 섭섭했다.
‘별 수 있나. 선택할 권한이 없으니.’
그가 나서서 이야기를 한다면 계속 그곳에서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생각해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다 저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는 혜택을 마다하는 건 바보짓이야.’
전용 작업장이 생긴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다. 굳이 그걸 거절하고 쓰레기장에 남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단순히 정이 들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한다는 건, 이곳에 있는 선임들도 바보짓이라 이야기할 것이다.
“그동안 고생했어.”
“출근 개념은 아니겠지만, 시간 나면 종종 놀러와. 쓸만한 것들 보이면 따로 빼둘 테니까.”
“예. 부탁 좀 드릴게요.”
“집 구경시켜준다는 거 잊지 말고!”
“물론입니다.”
그렇게 마지막 출근을 샤워와 짐정리로 마무리한 후, 다시금 숙소로 돌아왔을 땐 이미 근처의 땅이 꽤 깊은 곳까지 파헤쳐지고 있었다.
“와. 저쪽에도 뼈가 있었네. 어디까지 파낸 거지?”
그러고보니, 이쪽의 흙은 지구... 특히 고향 땅의 것과 비교해서 무척 약하다는 것이 기억났다.
보통 한국의 흙은 조금 파들어가면 단단하게 굳은 층이 나와서 애를 먹기 시작하는데, 이곳에선 그렇지 않았다.
‘다른 나라 중에 그런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지. 삽만 있으면 꽤 깊이까지 팔 수 있다고.’
이곳이 그랬다.
그는 문득 겨울에 언 땅을 야삽으로 때리면 불꽃이 튀어오르던, 고향 땅에서의 군생활이 떠올라 살짝 진저리를 쳤다.
‘저렇게 깊이에 있으니까 발견을 못 했지.’
가까운 곳에 수도관이 있다는 이야기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곳 공터에도 건물들을 세울 계획이 있었던 건지, 미리 그 인근까지 상하수도관을 연결해둔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공사가 빨리 될 거라고 했던 거구나.’
아예 멀리에서부터 이어야 할 상황이라면 고작 하루 이틀만에 끝날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으면 숙소를 다른 곳에 지어줬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에겐 왠지 지금 있는 곳이 편했다.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 외곽이라서 조용하기도 하고.
“어?”
그 때, 낯익은 얼굴의 군인이 다가왔다.
부대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던 사람이었다.
“혹시?”
“예. 맞습니다. 제가 사령부 쪽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어떤....”
“딱히 뭐라 정의를 내리기가 애매합니다. 그래서 대충 영어로 뭉뚱그린 거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냥 연락책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고윤호’라는 이름의 군인은 여전히 농담 섞인 말투로 이야기했다.
“군부에 협조를 구할 일이나, 궁금한 점 같은 것들, 자잘하든 크든 상관 없이 저에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제가 중간에서 연락을 담당합니다.”
“24시간요?”
“글쎄요. 최강혁씨도 잠은 주무시지 않나요? 뭐, 일과시간 이후라도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만약 정말로 최강혁이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수많은 협조 요청을 제시한다면, 한 명 정도 추가로 데려와야 할 거라고 고윤호는 말했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쭌 겁니다.”
“그렇군요. 음... 저기 오네요.”
“네?”
고개를 끄덕이던 고윤호는 이어서 최강혁의 등 뒤쪽을 살짝 턱짓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캠프에서 보기 드문 일반인 복장의 여성이 그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굽이 높지 않은 구두.
평범한 듯 하면서도 깔끔한 느낌의 오피스룩.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그렇게 다가온 여성이 살짝 미소짓는 얼굴로 최강혁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한영희라고 합니다. 앞으로 행정부와의 조율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조율 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이랑 비슷하겠지요.”
슬쩍 끼어든 고윤호가 속삭이듯 말했다.
한영희는 그런 고윤호와 안면이 있는 눈치였지만,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투로 최강혁만 보았다.
“명함 뒤쪽에 보시면 제 출근과 퇴근 시간이 적혀있습니다. 그 시간에만 연락을 주시면 언제든 대화가 가능합니다.”
“연락이요?”
“네. 아... 저는 이쪽에 상주하진 못해서요. 여러 모로 제약이 있어서.”
그럴 것 같다.
이곳 캠프는 몬스터만 위험한 게 아니다.
애초에 젊은 여성의 몸으로 아무렇게나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닌 것이다.
‘공무원이라고는 하지만, 이쪽은 자원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 들었는데.’
그것도 여성이라니.
아마 가족들도 반대하지 않았을까?
왜 이런 곳에 와있나 궁금하지만, 굳이 개인사를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저도.”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한영희는 그대로 돌아서서 멀찍이 주차해둔 공무용 전기카트에 올라탔다.
소리 없이 멀어지는 카트를 멍하니 보고 있으니, 슬쩍 근처에 다가온 고윤호가 말했다.
“미인계는 아닐 겁니다.”
“예?”
“일단, 미인이 아니죠.”
“...그런 쪽으로는 생각 안 해봤는데요.”
“차마 미인이라고는 못 하시잖습니까.”
“그야... 음.”
젊고 당당한 느낌이 매력있긴 했지만, 이성으로서의 매력은 아니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평범한 느낌이 강했다.
“일은 잘 합니다. 우리 쪽하고도 자주 싸우죠.”
“싸워요?”
“일을 하다보면 각자 입장 때문에 싸울 수 밖에 없어요. 행정부와 사령부는... 전륜구동 차량의 두 앞바퀴 같은 식이거든요.”
서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를 때가 있다.
그런데 각자 자신들이 가려는 방향만 고집해서 바퀴가 제각각으로 향해버리면 결국 차가 망가지거나 전복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의견을 맞춰서 나아가야 한다고, 고윤호는 그런 비유를 들어가며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 많이 싸워요. 그렇다고 주먹질을 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저 여자가 이곳에 상주하는 건 아니라고 하니 무척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근무가 괴로워질 뻔 했어요.”
“하하. 그 정도인가요.”
최강혁의 물음에, 고윤호는 그저 고개를 휘휘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19화 〉 019.
019.
전기와 수도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잠을 자거나 빈둥거릴 시간은 없었다.
‘역시. 오늘 양이 훨씬 많아.’
아침부터 삼시세끼 양을 모두 누적시킨 결과, 처리장 창고에 모아놓은 잔반의 양이 정말 고개를 젓게 했다.
“밤동안 다 하실 수 있겠어요?”
어제와는 다른 직원이 와서 그렇게 물었다.
“어차피 한꺼번에 집어넣을 건 아니니까요. 부담이 되시면 일정한 분량씩 순환 구조로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순환 구조요?”
“예. 먼저 넣을 것들 일부 먼저 하고, 빈 통을 일단 돌려보내고... 나머지 분량은 내일 하고, 그동안 새로 잔반이 들어오고, 그런 거죠.”
창고 안을 일정 구획으로 나눠놓고, 그렇게 한쪽부터 처리하는 방식을 이야기함이었다.
어제도 다른 직원이 얼핏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 같긴 했지만, 그거야 이쪽 사정일 뿐이었다.
“일단 해보겠습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말씀해주신 대로 해볼게요.”
“네. 그러세요.”
직원이 돌아가고, 최강혁은 잔반통들을 눈으로 적당히 나누었다.
‘일단 이쪽부터 하자.’
어제 했던 속도대로라면 무리가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오늘은 저녁 시간이 끝나자 마자 온 것에 가깝다보니 시간적 여유가 더 많았다.
‘뷔페 식당 쪽은 저녁 잔반이 없었으니. 그래도 부담이 좀 덜하긴 하네.’
생각해두었던 대로, 그쪽은 잔반을 만들지 않고 요리 상태에서 흡수해버렸다.
흡수된 것들로부터 마나를 완전히 빼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찌꺼기 가루들은 일단 인벤토리쪽으로 옮겼다가 이후 밖에 나와서 버렸다.
‘확실히 흡수 쪽에서 얻는 마나량이 더 많아.’
비교하자면 거의 2배 정도 차이였다.
하지만 흡수 속도가 빠르지 못하니까, 시간으로 따지면 얼핏 비슷하거나 오히려 느리다고 할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흡수스킬도 계속 발전시켜야 해.’
고개를 끄덕인 최강혁.
그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어젯밤 작업하면서 그럭저럭 익숙해졌던 감각이 다시금 어색해져서 실수가 조금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금세 적응이 되어서 점점 속도가 올라갔다.
‘이게 문제네. 이쪽에서 얻는 마나는 당장 써먹을 수 밖에 없으니.’
최대치의 마나를 채우고 나면 계속 마나를 뽑아내봐야 아무 소용 없다. 그러니 어디에든 소모를 시켜야 하는데, 그게 좀 아쉬웠다.
‘뭐, 당장 소모시킬 만한 데가 인벤토리 제작만 있는 건 아니니까. 마침 흡수 스킬도 강화해야 하고.’
흡수 최대량 증가에도 마나를 쓸 수 있다.
다만 그 양이 따로 표시가 되는 게 아니다보니, 이게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뭔지 느낌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이쪽에 꽤 투자할 생각이니까, 내일 직접 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겠지.’
신체 강화 쪽에도 마나를 투자할 수 있으니, 그쪽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오늘은 인벤토리 확장을 10칸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나머지는 개인 성장에 골고루 부을 것이다.
‘뭐든 중심이 잡혀있어야지. 오늘은 코어 근육 쪽에 집중해서 강화하자.’
목표가 뚜렷하게 정해지니, 미관상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작업일 텐데도 신이 났다.
[체내 마나]
134.1 / 348
‘이쪽도 순조롭네. 느리긴 해도.’
체내 마나의 최대치는 그가 손을 댈 수 없는 부분이었다. 지금처럼 계속 마나를 쓰고 채우다보면 조금씩 올라갔다.
‘처음에 비해서 회복 속도가 빨라진 것 같긴 해. 확 차이날 정도는 아니지만.’
한 시간 정도 일하고 나서 5분쯤 휴식했다.
몸이 고된 작업은 아니었지만, 두 손을 이쪽 저쪽으로 뻗은 자세를 오래 유지해야 해서 너무 오래 버티면 팔이 뻐근해졌다.
‘마나를 집어넣으면 금방 풀리긴 하지만, 그렇게 낭비하긴 아깝지.’
휴식 중에는 굳은 팔만 푸는 게 아니라, 이미 작업이 끝난 잔반통들을 이쪽 직원들이 운반하기 좋게 세팅해놓는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5분이 금방 갔다.
다시금 한 시간을 작업하고 또 5분동안 휴식하는 것을 이어가던 중, 최강혁이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없네.”
다 했다.
처음엔 좀 무리일까 싶었는데, 시간을 보니 아직 3시도 되지 않았다.
‘얼추 생각했던 대로 되었고.’
인벤토리 10칸 추가 제작.
그것 외에는 흡수 스킬 강화와 신체 강화.
간단한 목표였고, 문제 없이 완료했다.
‘내일은 팔하고 다리를 강화해볼까.’
잔반은 없지만 그래도 식당에서 몰고 왔던 카트에 올라탄 그는, 사무실 쪽 건물로 몰고가 그곳의 직원에게 작업이 끝났음을 알렸다.
“정말 그걸 다 하셨어요?”
“지게차에 싣기 좋게 세팅 다 해놨습니다.”
“아. 그건 기대도 안 했는데,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별 말씀을요. 내일 오겠습니다. 아,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겠네요.”
“하하. 이따 뵙죠.”
아마도 오늘은 다른 사람이 야간 근무를 서겠지만, 결국 다들 안면이 있는 직원들이었다.
‘각성자인 게 알려지고 나서 전보다 더 친절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가식적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예전에도 다들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했었으니.
‘집에 가자.’
식당 뒤쪽에 카트를 잘 세워둔 그는 그곳에서부터 집까지 조금 빠르게 걸었다.
‘잘하면 오늘 안에도 될 수 있다고 했었는데.’
상하수도 연결 공사.
만약 다 되었다면, 돌아가서 샤워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음?’
그렇게 숙소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멀리서도 현장을 밝히는 야간 조명들이 보였다.
‘와... 저걸 철야를 하네.’
실내작업도 아니고, 노가다를 밤새서 할 수도 있나? 괜찮은 건가 싶지만, 현장을 거의 대낮처럼 비춰주고 있는 조명들을 보니 눈에 잘 안 보여서 실수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저래서 금방 끝난다고 했던 거구나.’
그렇게 가보니, 한쪽 구석의 자재에 걸터앉은 고윤호가 보였다. 그쪽도 최강혁을 보았는지 살짝 웃으며 손을 들었다.
“퇴근 안 하십니까?”
“아. 제 숙소가 이제 여기라서요.”
“......?”
아직 지어지지 않은 숙소.
하지만 이미 발령지가 정해진 터라, 이곳에서 그것이 지어질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한데요?”
“뭐, 군대가 그렇죠.”
그정도는 별 일 아니라고 고윤호는 말했다.
그동안 어떤 상황에서 일해온 건지 궁금해지는 반응이었다.
“어... 제 쪽은 작업이 끝난 건가요?”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작업 현장이 그의 숙소가 아니라 그 옆쪽 공터에 치우쳐져있었다.
“예. 한 시간 쯤 되었나... 수도하고 전기 문제 없이 연결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음... 지금 샤워를 하면 곤란할까요? 상수도는 그렇다 치고 하수도 쪽은 다를 것 같은데.”
혹시라도 한창 작업하고 있는 현장에 구정물이 흘러나오거나 하면 민폐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미 중간 중간 막으면서 작업하는 거라 문제 없을 거라고 고윤호가 이야기해주었다.
“아. 막는군요.”
“공사한다고 물도 못 내리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 다 절차가 있는 거죠.”
“오....”
“샤워도 되고, 용변을 보셔도 됩니다.”
“들어가셔서 좀 쉬실래요? 계속 여기 계시기 좀 그러실 텐데.”
“아. 저는 괜찮습니다만... 이거라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고윤호가 내민 것은 그의 휴대폰이었다.
“배터리가 거의 다 되었는데, 충전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요.”
“아. 물론 해드릴 수 있죠.”
“충전기는... 여기 있습니다.”
건빵주머니에서 꺼낸 충전기를 마저 건넨 고윤호는 내일도 이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건지 물었다.
“아마 비슷할 것 같아요. 잔반 양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렇군요. 그러면 하루에 인벤토리 확장은 얼마나 되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위에 보고해야 해서 말입니다.”
“오늘은 10칸 추가했습니다.”
“오, 10칸. 그러면 어제는....”
“아. 어제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일단 지금 인벤토리가 총 41칸입니다.”
“41칸. 예. 알겠습니다.”
손목의 단말기에 짧은 메모를 입력해둔 고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하루에 10칸 안팎으로 늘려야겠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최강혁은 그래도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적당한 진실을 섞어두기로 했다.
“최대한 부으면 조금 더 늘릴 수도 있긴 한데, 제 신체가 약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쪽에도 같이 투자 중입니다.”
“신체요? 아. 각성자들은 신체 강화도 할 수 있다고 했었지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보고 올리겠습니다.”
고윤호는 사령부와의 연락을 담당할 뿐, 최강혁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하는 식의 참견을 할 자격은 없었다.
그에게서 받은 휴대폰과 충전기를 들고 숙소로 돌아온 최강혁은 현관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다 멈칫했다.
“오.”
현관 천장에 붙어있던 전등이 아마도 센서등이었던 모양이다. 이미 고향에 있을 때도 익숙하게 보았던 거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 새삼 신기했다.
“전기가 들어온다는 거지.”
당장 쓸데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거실의 등을 켠 그는 한쪽 벽의 콘센트에 고윤호의 충전기를 꽂았다.
‘가족인가보네.’
충전기에 휴대폰을 연결하니, 화면이 밝아지면서 잠금화면이 나타났다.
그곳에 있는 건 어느 일가족의 사진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고윤호라는 건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가족들을 고향에 두고 나와있는 건가. 이쪽이 봉급이 높다고 듣긴 했지만...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다.
지금이야 그럭저럭 캠프가 안정화되었다는 평이지만, 당장 방어벽 바깥만 나가게 되면 하룻밤을 장담할 수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가족이라.’
고향에 있을, 이제는 하나 뿐인 혈육을 떠올리자 다시금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던 시선이 기억났다.
‘평생 고칠 수 없겠지.’
이미 망가져버렸다.
아무리 사과하고 뉘우쳐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건강하면 좋겠다.’
누나가 행복하길 바란다.
다친 마음이 그럭저럭 회복되면, 다시금 좋은 남자를 찾아 안정을 찾으면 좋겠다.
‘편지라도 써볼까.’
그런 생각을 해보던 그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누나 입장이라면, 그의 편지를 보자 마자 스팸 처리할 것 같았다.
‘내가 누굴 걱정할 처지가 아니지.’
욕실로 향한 그는 그 앞에 옷을 벗어놓고 들어가 샤워부스에 섰다. 넓진 않지만, 나름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는 느낌이었다.
‘욕조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얼마 전부터 뜨끈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샤워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플라스틱 욕조 같은 거라도 있는지 알아볼까.’
전기를 사용하는 순간온수기는 기분 좋아질 만큼 따뜻한 물을 금방 만들어주었다.
그만큼 많은 전기를 쓰겠지만, 그에게 전기료를 받지는 않는다고 들었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좋다.”
샤워는 금방 끝났다.
다른 이들의 체취와 물냄새, 습기가 남아있던 공용 샤워장이 아니라 개인 샤워실이라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무척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새 속옷과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간이침대에 걸터앉았다.
“두 시간 정도는 자도 될 것 같은데.”
문제는 그 때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지만, 그건 해결책이 있었다.
[예. 제가 문을 두드리겠습니다.]
손목 단말기로 고윤호 쪽에 메시지를 보냈더니, 그가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그럼... 자자.’
그제야 그는 침대에 제대로 누워 눈을 감았다.
쿵쿵쿵!
-최강혁씨!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기상하십쇼!
“......?”
지금 막 누웠는데 뭐지?
인상을 찌푸린 최강혁은 손목을 보고 눈을 꿈벅였다. 분명 방금 누웠는데 아침이 되어있었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에도 거듭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슬비슬 아래로 내려간 그는 충전이 다 된 고윤호의 휴대폰을 챙겨 현관으로 향했다.
“일어났습니다.”
“예. 아침입니다.”
“.......”
건축 현장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얼핏 보니 사람들의 구성이 바뀐 것 같은데, 아마 교대로 와서 일하는 모양이었다.
‘정말이네.’
날이 밝았다.
다시금 일과의 반복이었다.
공사 중이라 할 일이 없던 낮에도 쓰레기장으로 가서 미리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면 식당에 남은 음식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싹쓸이한 후에 처리장으로 가서 잔반들을 다루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침과 점심을 군부대의 식당에서 먹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고윤호도 그쪽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터라, 겸사겸사 같은 차를 타고 가서 먹고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동안 해당 차량 운전병과도 적잖게 친해져서, 가끔 시간이 남을 땐 인적이 드문 공터에서 군용트럭의 운전을 배우기도 했다.
〈 20화 〉 020.
020.
군용 트럭 운전은 일반 차량 운전과 여러 모로 달랐다. 그냥 크기만 좀 큰 건가 했는데, 새로 익혀야 할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차체가 워낙 단단하니까요. 아무리 살살 치여도 크게 다칠 수 있죠. 항상 조심해야 돼요.”
운전병은 휴식 때마다 하품을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항상 긴장하고 운전을 해야 하기에, 잠시 쉴 때마다 최대한 느슨하게 퍼지는 거라고.
“핑계대고 있네.”
“아. 진짜라니까요.”
고윤호가 코웃음을 치자, 운전병이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는 동안 최강혁이 조심조심 운전하던 트럭이 맨바닥에 대충 그어놓은 선 안으로 슬금슬금 들어오다가 멈추었다.
“아. 금 밟았네요.”
“...이거, 어렵네요.”
선 안에 주차하는 걸 연습 중이었는데, 역시 쉽지 않았지만 몇 번 더 시도해보자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혹시 모르지만, 제가 운전대를 넘겼다는 건 비밀입니다.”
“당연하죠.”
운전석에서 빠져나온 그는 뒤쪽으로 옮겨탔다.
점심 시간이 다 되어가는 터라 한적한 외곽 공터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곧 드문드문 경계병들이 오가게 될 것이다.
“슬슬 가보죠.”
고윤호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요즘 점심 식사 전에 애매하게 시간이 남을 때 그렇게 이것 저것 딴짓을 해보는 중이었다.
“출발합니다. 벨트들 매시고요.”
“예.”
운전병과 고윤호 입장에서도 최강혁을 전담하는 건 무척 편한 일이었다. 일종의 휴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죄수라고는 하지만 그의 사정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집에 여자 가족이 있는 이들은 같은 상황이라면 자신도 그렇게 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각성자라고는 하지만 흔히들 도는 소문과 달리 까탈스럽지도 않았고, 무척 조용하고 예의가 있었다.
그저 죄수라서 눈치를 볼 뿐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를 만나본 이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저녁도요?”
“예. 어차피 그쪽에서도 잔반이 나가야 하니까요. 저녁까지 부대 식당에서 드시고, 그쪽 잔반을 실은 차에 타서 같이 가시면 어떨까 묻는군요.”
“식사 후에 잔반을 모아서, 바로 뷔페 식당 쪽으로 가는 거군요.”
“네. 그렇게 하실 거면, 그쪽의 잔반을 매일 반출하는 것으로 변경하게 될 겁니다.”
“저는 좋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부대 식당은 여러 모로 바깥보다 낫다.
바깥의 식당들도 그리 모자란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정말로 사지에서 싸워야 할 군인들을 먹여야 할 곳이니만큼 신경을 많이 쓰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뷔페 쪽은 저녁을 흡수하고... 이쪽에서 가져간 잔반을 카트에 실어서 처리장으로 가져가면 되나? ...아니지. 그럼 일을 두 번 하잖아.’
속으로 이것 저것 계산해본 그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부대에서 나온 잔반은 곧장 처리장으로 보내달라고 말이다.
“그게 더 간단할 것 같아요. 식당 쪽에 내려놓으면 제가 또 여러 번 오가면서 날라야 해서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보고 올리겠습니다.”
예전엔 일종의 떠넘기기 식으로 식당에 놓고 가던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가 있으니 사정이 좀 달라졌다. 아마 요구한 대로 들어줄 것이다.
“그러면, 저녁 식사 후에는 저하고 같이 뷔페 쪽으로 가시는 게 좋겠군요.”
평소대로라면 숙소로 향했겠지만, 가던 길에 내려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 좋죠.”
점심식사가 끝난 후, 고윤호는 관련 이야기를 전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운전병과 최강혁은 주차장의 트럭 옆에서 편히 쉬고 있었는데, 운전병은 뭐가 재미있는지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큭큭거리는 중이었다.
“인터넷이 돼요?”
“아. 지구의 인터넷은 아니고, 이쪽에 자체적으로 깔린 인트라넷이 있어요.”
“아... 인트라넷.”
“그래도 주기적으로 지구 쪽 정보들을 가져와 업데이트하는 게시판이 있거든요. 어느 정도는 뒷북이겠지만, 그래도 바깥 소식을 알 수 있죠.”
운전병이 보고 있는 건 인트라넷에 올라와있는, 다른 캠프에서 벌어진 이슈나 가십거리인 모양이었다.
“다른 캠프들 상황은 어떻대요?”
“이곳하고 비슷해요.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곳은 점점 탄탄해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러지 못한 곳은 지금도 고생 중이죠.”
“한국 캠프가 몇 곳이라고 했었죠?”
“글쎄요. 정확한 숫자는 위에서도 알려주질 않아서... 제가 알고 있는 곳만 다섯 곳은 될 겁니다.”
운전병은 외부에 나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타 캠프를 오가며 물자를 수송해본 경험도 있다고.
“그럼 몬스터를 직접 보시기도 했겠네요.”
“아휴. 물론이죠.”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는 방금 전까지 짓고 있던 웃음기를 지우고 어깨를 부르르 털며 진저리를 쳤다.
“끔찍한 놈들입니다. 생긴 것도 생긴 거지만, 그 성질 자체가 궤를 달리해요.”
단순한 맹수 정도라면 차라리 귀여울 거라고 그는 말했다.
“일단 공격해오는 수단 자체가 버라이어티하니까요.”
“어떤데요?”
“뭐, 촉수를 내밀어서 독침을 쏴대는 선인장 놈들도 있었고... 사냥감을 잡아먹은 다음엔 그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놈도 있었고.”
아마도 다른 캠프의 정찰대가 당한 건지, 사람들의 가죽을 망토처럼 쓰고 다니던 놈들을 본 적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뭐, 옛날부터 많았잖습니까. 영화든 뭐든 해서 외계인이 침략해오거나 괴물이 튀어나오는 종류요.”
“많았죠.”
“덕분에 어느 정도 상상력이 단련되긴 했나본데, 그래도 직접 보면 또 많이 다릅니다. 실력 좋던 놈들까지 멍때리다 개죽음 당한 적도 있어요.”
그나마 운전병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었다고 그는 솔직히 말했다.
단단한 차체 안에 있기도 하고, 군인들이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고.
“아직 살아있는 동료들이, 살 수 있는 녀석들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냥 두고 악셀을 밟아야 하는 일이 생기거든요. 그게 계속 마음에 남아요.”
퇴각 명령.
때로는 다수의 병력과 물자를 온존시키기 위해 약간의 병력을 시간 끌기 용으로 두고 떠나는 경우도 있다.
“전투병과로 전직하거나, 아니면 퇴직하고 지구로 복귀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아요.”
그렇게 이야기한 운전병은 다시금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그야말로 날로 먹는거죠. 다들 부러워합니다. 바꾸자는 녀석들도 많고요.”
“그렇군요.”
최강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금세 또 킥킥거리며 휴대폰을 보는 운전병의 모습이, 이제는 그리 변덕스럽거나 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당장의 감정에 충실해지는 것.
아마도 슬픔을 오래 남겨두지 않고자 했던 노력이 그런 모습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그나저나, 이건 역시 봐도 봐도 모르겠군.’
-스캔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는 가만히 있기엔 시간이 아까워서, 잠깐씩 짬이 날 때마다 주변에 보이는 온갖 것들을 스캔해보는 중이었다.
그 중에서도 요즘 자주 스캔하게 되는 게 바로 지금 그가 앉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군용 트럭이었다.
‘스캔이라고 해서 완벽한 건 아닌 거지.’
스캔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일단 그것이 무엇인지, 현재 상태가 어떤지 정도였다.
시스템이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지도 궁금하지만, 일단 아직까지는 모르는 게 없었다.
다만 안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통달하는 건 아니었다. 마치 사진을 찍듯이, 지금 현재 스캔한 것의 상태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이 일단 문제 없는 상태긴 할 텐데.’
트럭을 스캔해보면, 그 내부에 자리잡은 수많은 부품들까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부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서로 어떻게 연계되는지 같은 부분까지 유추하는 건 불가능했다.
‘만약 고장이 나더라도, 눈에 띌 만큼 망가지거나 한 게 아니라면 스캔을 해봐도 잘 모를 거야.’
일단 정상 상태일 때의 스캔 데이터가 있으니, 그것과 비교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캔한 데이터를 따로 어디에 저장해두거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계속 반복해 살펴보며 눈에 담아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 그나마 군용트럭은 좀 단순한 구조라던데.’
그다지 의욕이 생기지 않는건, 군용 트럭을 분석해서 외워도 딱히 쓸데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차라리 이쪽이 도움될까 싶기도 하고.’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은 최강혁은 자신의 왼쪽 팔을 내려다보며, 그쪽을 스캔해보았다.
-스캔이 진행 중입니다.
별도의 창이 떠오르고, 그곳에 마치 병원에서 사용하는 고가의 장비 모니터를 보듯 팔과 그 내부를 분석한 시각 데이터가 나타났다.
‘근육량이 더 늘었나보네.’
뼈와 근육, 혈관의 상태를 눈으로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와 별도로 수치화된 각종 데이터들이 옆에 나열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차가 있는 건지, 아니면 실시간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건지 시간을 두고 다시 해보면 조금씩 그 수치가 달라졌다.
‘스캐닝 스킬도 더 발전할 수 있겠지?’
속도가 빨라진다는 건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닐 것 같았다. 하여 이렇게 계속 시도해보는 중이기도 하고.
“늦었습니다!”
그 때, 보고를 끝내고 오는지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고윤호가 보였다. 다 함께 트럭에 올라타니, 그가 숨을 고르고 나서 말했다.
“말씀하셨던 대로 되었습니다.”
“저녁이요?”
“예. 식사를 마치면, 우리는 그냥 뷔페 쪽으로 가면 됩니다. 이쪽 잔반은 취사병들이 일부 병력을 지원 받아서 처리장 쪽으로 보낼 겁니다.”
“잘 됐네요.”
“그럼 이만 가죠. 출발.”
“예이. 벨트매십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전용 작업장의 건축도 벌써 마무리단계였고, 이미 그 한쪽엔 쓰레기장쪽에서 실어온 폐 전투복과 전투화 무더기가 자리해있었다.
“벌써 수거해갔나보네.”
원래는 그 옆으로 재생이 끝난 것들이 적재되어있었는데, 아마 새 물량을 옮기면서 겸사겸사 가져간 모양이었다.
“음?”
그런데 그곳에 새로 도착한 군용 상자들이 눈에 띄었다. 원래는 탄약박스들을 채우는 용도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것 말고 다른 것들이 가득했다.
“이렇게 된 것들도... 가능하신지 확인을 부탁해왔습니다.”
고윤호가 옆에서 무척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으음.”
“안 될까요?”
“일단,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저녁에 뵙죠.”
“예.”
고윤호는 작업 현장에 있지 않는다.
아마도 스킬 성공 확률이 개인 집중력과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두어서 그런 것 같았다.
덕분에 작업 속도나 그 결과를 마음대로 세팅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그랬다.
‘벌써부터 이런 걸 보낼 줄은 몰랐네.’
개인화기였다.
아마 일반적으로 쓰는 소총 계열인 것 같았다.
하지만 대충 짐작을 해야 할 만큼 그 상태가 좋지 못했다.
‘어디 보자.’
이리 저리 박살나고 깨져서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것들의 조각이 상자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멀쩡한 게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걸 살펴볼 텐데, 대체 뭘 하면 이렇게 되나 궁금할 정도였다.
‘당연히 몬스터들이 그랬겠지. 이건 뭔가가 찢고 지나간 것 같고... 이건 밟힌 건가?’
부서진 소총의 단면을 보며 나름대로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던 그는 이미 적잖게 비워둔 인벤토리에 그것들을 한가득 루팅해보았다.
‘되네.’
이미 소유권을 이쪽으로 넘긴 듯 했다.
따로 양도 계약을 하거나 할 필요 없이, 권한을 가진 이가 의지만 보이면 되는 일이기에 간단했다.
‘이건 뭐 퍼즐도 아니고.’
조합 스킬도 만능은 아니다.
부서진 것들을 자동으로 짜맞춰주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완제품을 하나라도 끼워넣었어야지. 그게 있으면 기준이 되어줄 텐데.’
지금이라도 고윤호에게 이야기할까?
하지만, 멀쩡한 총을 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총알이 없으니까 괜찮을까? 아니지. 내가 총알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어. 너무 억지긴 하지만....’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고개를 흔든 그는 일단 적당히 모양을 만들어보는 것에 집중했다.
〈 21화 〉 021.
021.
어차피 하나에서 나온 조각들이 아닌 터라, 서로 겹치다 못해 넘치는 부분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남는 부분은 조합 과정에서 자동으로 떼어낼 수 있으니, 일단 100퍼센트 이상만 구성하면 된다.
‘근데, 이거 같은 소총 맞지?’
최강혁은 하던 것을 멈추었다.
설마하니 서로 다른 종류의 총들이 섞여있는데, 제멋대로 조합해놓고서 고쳤다고 내밀면 곤란한 일이 생길 것이다.
그는 얼른 작업장 밖으로 나가, 벤치에서 타블렛을 살펴보고 있던 고윤호를 향했다.
“맞습니다. 기본 제식 소총이죠. 군대에서 써보신 적 없습니까?”
“이렇게 생긴 건 안 써봤는데요.”
“아. 요즘 현역들은 신형을 쓸 겁니다. 좀 연식이 된 것들부터 외부로 밀어내니까요.”
아무래도 이쪽이 현역 병사들의 부대보다는 후순위로 밀릴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그는 말했다.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는 건 비슷하지만, 징집된 이들부터 챙기는 게 맞긴 하다고.
“개인적으로 돈을 써서 장비를 구하는 친구들도 있긴 합니다. 이것들은 기본 보급품이라고 보시면 맞을 겁니다.”
“음. 알겠습니다.”
궁금한 건 이미 해결했으니, 다른 건 굳이 알 필요 없다. 다시금 작업장으로 돌아온 최강혁은 인벤토리를 들여다보며 아까 전 멈췄던 조각 맞추기를 이어갔다.
‘구형이라고 해도 총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까... 대충 된 건가.’
큼직큼직한 조각들 위주로 고른 탓에 중복된 부분들이 많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맞는 것 같아. 맞는 것 같은데... 확신이 안 서.’
스킬 시도 직전에서 멈춘 그는 결국 다시금 인벤토리를 닫았다.
“예?”
“그 소총 말입니다. 멀쩡한 걸 한번 볼 수 없을까요?”
“아... 너무 부서져있었죠?”
“예. 원래 상태를 모르겠어요. 원형 비슷하게라도 모아놓고 해야 할 것 같거든요.”
“그건 문제 없습니다. 잠시만요.”
고윤호는 위쪽에 보고를 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곧장 자신의 숙소로 달려가더니, 그곳에서 멀쩡해보이는 소총 한 자루를 갖고 나왔다.
“제 겁니다.”
“집에 놓고 다녀도 괜찮은 거예요?”
“탄약은 본부에서 받아야 하니까요.”
“그럼 빈총을 뭐하러 줘요?”
“총은 본인이 관리하라는 거죠.”
“이상한데요.”
“뭐, 군대가 그렇죠.”
어지간한 책임은 개인에게 미루는 건가.
뭐, 탄약만 그쪽에서 관리한다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멀쩡한 소총을 볼 수 있으니 되었다.
“음....”
“분해해서 보여드릴까요?”
“아니요. 대충 알 것 같습니다.”
대충 수준이 아니다.
이리 저리 살펴보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스캐닝을 행하는 중이었다.
-스캔이 완료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참고가 될 것 같아요.”
“도움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고윤호는 다시금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얼핏 들어보니 그곳의 신발장 한 칸을 철제로 제작, 총기 보관함으로 쓰고 있다는 것 같았다.
탄약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잠글 수 있는 곳에 보관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그렇게 보관한다고.
‘음....’
작업장으로 돌아온 최강혁은 접이식 의자를 펴고 앉았다.
‘맞지?’
그의 눈 앞에 열린 창 하나에는 인벤토리 내부가, 다른 쪽의 창에는 조금 전 스캔했던 고윤호의 소총 상태가 떠있었다.
‘빠진 거 없지. 됐어.’
몇 번을 확인했다.
넘치면 넘쳤지 모자라진 않다.
-조합 스킬을 실행하시겠습니까?
-대상을 지정해주십시오.
그렇게 스킬을 시도하자, 실시간으로 마나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단단히 구상해두지 않았으면 시간낭비가 많았겠지만, 명확한 샘플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조합을 완료하였습니다.
“후....”
그렇게, 일단 멀쩡해보이는 소총 한 자루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인벤토리에서 꺼내지 않은 상태로 그것을 이리 저리 살펴보던 최강혁은 살짝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못 쓰겠는데.’
조합은 문제 없이 되었다.
하지만 각각의 조각을 이어붙인 부분, 서로 다른 부분이 맞물렸던 접촉면에 미세하나마 그런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개머리판 같은 부분이야 문제 없겠지만, 총열 쪽에 저런 게 있으면 안 되지 않나? 내부도 그렇고.’
잘못하면 발사 과정에서 터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걸 군인들의 손에 쥐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역시, 좀 아닌 것 같은데.”
바깥으로 꺼내서 직접 육안으로 살펴보았더니,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도드라져보였다.
“이건 안 되겠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최강혁은 자신 밖에 없는 곳임에도 주위를 돌아보았다. 지금 그가 하려는 방법이 남들의 눈에 띄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카메라 같은 게 없다는 건 이미 확인했지.’
그는 두 손에 들고 있던 소총 한 자루를 그대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에게 소유권이 있었기에, 흡수 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 아슬아슬했다.”
흡수 대상의 종류에 따라서 가능한 양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금속은 좀 덜 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도 그동안 흡수 최대량을 꾸준히 증가시켜두어서인지, 한자루를 완전히 흡수할 수 있었다.
‘이제... 재구성을 하면 되지.’
두 팔을 통해 그의 몸 안으로 흡수되었던 온갖 것들이 마치 영상을 되감는 것처럼 다시금 그곳으로 빠져나와 원래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과정에 최강혁의 의지가 단단히 개입했다는 것이었다.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되어야 해.’
그는 단순히 원래 형태를 복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곳에 남아있던 짜맞춰진 부분의 흔적들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음.”
그 결과물이 다시금 두 손 안에 자리했다.
두 눈으로 이리 저리 확인해본 그는 스캔까지 마친 후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 덜 됐어.”
나름 꼼꼼하게 봤다고 생각했는데, 약간 미흡한 곳이 있었다.
‘마나량은... 아직 괜찮아.’
그는 다시금 흡수와 재구성을 반복했다.
그것을 두 번 더 하고 나니, 그제야 만족스러울 정도의 결과물이 되었다.
[상호 유사성 99.8%]
아직 열어두고 있던, 고윤호의 소총을 스캔한 것과 비교해보았더니 그렇게 나왔다.
‘비교도 가능하구나. 이제 알았네.’
기존에 열려있던 스캔 내용을 닫지 않았더니, 그런 식의 활용도 가능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걸 계속 열어두고 있으면 찔끔찔끔 마나가 새어나간다는 걸 알기에, 그 정도 해두고 닫았다.
‘이제 됐어.’
확실한 기준이 확정되어있다면, 이후에는 조합스킬만으로 원하는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완성된 소총을 인벤토리에 넣은 그는 그것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다른 망가진 부품들을 모아 조합했다.
‘그렇지.’
역시 확실한 기준이 있어서인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소총에는 별다른 흔적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기준과 완전히 동일한 상태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도 사격장에서 안전 테스트 정도는 해야 할 거라고 일러두는 게 맞겠어.’
육안으로도, 스캔으로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미세한 크랙이 있을 수 있다.
‘잠깐 쉬어야겠다.’
소총 조합은 전투화 같은 것들보다 많은 마나가 소모되었다. 아마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차이일 것 같은데, 잠시 회복할 시간을 가져야 했다.
‘얼마나 성공했다고 해야 하지?’
이어진 고민은 그것이었다.
‘애매한데.’
실패하더라도 원재료가 소모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성공한 소총의 개수를 누락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일단 조합으로 만들어버리면, 재료가 그만큼 줄어드니까 티가 나잖아.’
워낙 부서진 조각들이 많긴 하다.
이미 ‘조합 과정에서 손상 정도가 커질 수도 있다’고 둘러대기도 했었다.
그걸 감안하면 손상이 많아져서 일부 사라졌다는 식의 핑계로 한 자루 정도는 챙길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른다.
이렇게까지 망가진 것들임에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면, 그것이 몇 자루였는지 기록해두었을 수도 있다.
‘실패하면 재료가 소모된다고 하는 게 좋았을까. 한 10퍼센트 정도만 불렀어도 괜찮을 법 했는데.’
이제와서 후회해봐야 소용 없는 일이다.
만약 그렇게 이야기했다면, 그다지 대단치 않은 것들만 제공했을 수도 있으니.
‘음... 잠깐만.’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바로 아까 전, 기준점이 될 소총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했던 고생을 떠올린 것이다.
* * *
“이게... 뭡니까?”
고윤호는 최강혁이 내민 것을 조심스럽게 받아들고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분명 부서진 소총의 조각들이라는 건 알겠지만, 마치 대충 쓸어모아다가 적당히 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제멋대로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소총의 형태조차 갖추지 못한 그것에서 눈을 뗀 고윤호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예술작품 같은 느낌이군요. 반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건가 싶습니다.”
“그게....”
최강혁은 준비해두었던 말을 천천히 풀어놓았다. 난감해하는 표정을 연습했지만, 그건 잘 되지 않았다.
“단순히 실패하기만 하는 경우는 문제가 없는데, 성공했다고 하면서 이런 식으로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이고.”
“근데, 이 상태에서는 다른 것과 조합을 해도 원래 형태는 안 나오더라고요.”
“그렇겠군요. 잘은 모르겠지만요.”
“대신....”
일단 엉망인 것을 보여주었으니, 제대로 된 것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게, 제대로 성공한 쪽입니다.”
“...오!”
‘소총이었던 것’을 땅에 내려놓은 고윤호가 그것을 건네받고는, 익숙한 동작으로 총기 점검을 행하며 날카롭게 살펴보았다.
“일단 제 눈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보이는군요.”
“그래도 테스트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확신이 안 가네요.”
“그래야겠지요. 이게 성공한 소총이라는 거군요. 이쪽은 실패고.”
“아. 이쪽도 성공입니다. 시스템에 따르면.”
“...뭐, 그렇게 보고는 해야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된 케이스가 많습니까?”
“많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지금 더 있는 겁니까?”
“아니요. 이건 도저히 쓸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몇 덩어리는 그냥 마나를 빼내서 다른 조합을 하는 데 썼습니다.”
“아....”
“별 생각 없이 하다가, 왠지 문제가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재사용이 불가능하더라도, 혹시 녹여서 쓸 수 있을까 해서요.”
“이 정도 되는 걸 다시 녹이는 것보다는 본국 쪽에서 납품받는 게 더 싸게 들 겁니다.”
“그래도 나름 금속 아닌가요?”
“합금 계열이어서, 범용성은 떨어질 겁니다.”
“아....”
“저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별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재생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들이다.
이렇게 일부나마 멀쩡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면, 고작 약간의 손실은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다.
“그래도 일단 보고는 올릴 테니, 비슷한 것들이 생기면 일단 없애지 마시고 킵해두실 수 있습니까?”
“그야 문제 없죠. 근데, 저런 것들이 많습니까?”
“본국으로 돌려보내자니 그쪽에서 필요 없다고 안 받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깝고... 이래저래 모아두던 거였죠. 비슷한 것들이 더 있습니다.”
“많이 망가지나보네요.”
“전투상황에서 망가진 것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외부에서 노획한 것들입니다.”
“노획이요?”
“우리 것들도 있고, 다른 캠프 것들도 있고... 작전 중에 비상 퇴각을 하거나 할 경우엔 물자를 버리고 가야 할 일도 생기니까요.”
“아....”
작전 중 비상 퇴각.
운전병이 했던 이야기 중에 비슷한 내용이 있었던 것 같았다. 때로는 살아있는 동료들을 두고 악셀을 밟아야 할 때도 있었다고.
“나중에 가보면 멀쩡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더군요. 뭐가 밟고 지나간 건지 박살도 나있고, 먹으려고 했는지 씹은 자국이 나있기도 하고 말이죠.”
“대단하네요. 이렇게 단단한 걸....”
“무시무시한 놈들이 많죠.”
“다른 캠프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나보죠?”
“다들 그렇죠. 물자보다는 병력을 우선 챙기는 게 맞으니까요.”
그렇게 이야기한 고윤호는 ‘차라리 부서진 총기를 수습하는 게 더 나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장비는 비교적 멀쩡하게 남아있는데, 그 일대에 인근 캠프 소속의 소대 하나가 전멸해있던 것도 보았습니다. 최대한 수습해서 그쪽으로 보내줬죠.”
“위험하지 않나요?”
“아주 위험할 정도라면 위치만 알려주는 정도로 끝냅니다. 평소 교류하던 곳이라면 겸사겸사 함께 데려다 주는 거고요.”
“그렇군요.”
“아무튼... 사실 부서진 소총 같은 건 얼마든지 소모되어도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령부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할 게 분명하니 걱정 마세요.”
그렇게 멀쩡한 소총 한 자루와, 한때 소총이었던 덩어리 하나를 한 손에 하나씩 집어든 고윤호가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량 점검을 하고 있었는지, 기름때 묻은 장갑을 낀 운전병이 괴상하게 생긴 덩어리를 보고는 낄낄 웃는 게 보였다.
‘음. 계속 일하자.’
상당히 비어있던 마나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있었다. 그는 일단 소총은 그대로 두고, 평소 하던 전투화 작업부터 이어갈 생각이었다.
‘두 자루 챙겼으니 더 욕심부리진 말아야지. 딱히 쓸 곳도 없고.’
〈 22화 〉 022.
022.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별도로 빼놓은 소총들이 있어서, 다른 일을 하다가 한번씩 그쪽을 시도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시스템 알림이 나타난 건 그때였다.
-조합 스킬을 일정 횟수 이상 활용하여,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오. 한 단계 올라갔나?’
어떤 기능이 추가되었나 시스템창을 열어본 최강혁의 눈이 슬쩍 가늘어졌다.
“이게 뭐야.”
찬찬히 내용을 살펴본 그는 스킬 내역 창을 살펴보았다.
[스킬 내용]
신체 강화 (기본)
스캐닝 (기본)
루팅 (기본)
흡수 (고유)
조합 (고유)
ㄴ스킬 조합(파생)
“뭐야. 진짜네.”
파생 스킬이라는 게 생겨났다.
조합 스킬로부터 파생되었다는 뜻 같았다.
“아....”
그렇게 보니, ‘고유’ 스킬이라는 것의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이런 식으로 파생 스킬을 만들 수 있는 게 고유 스킬이라는 걸까? 기본 스킬은 그게 없을 것 같고.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미난 게 생긴 것 같았다.
일단 그 자체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지만, 어떻게 응용하는지에 따라서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식으로 하는... 아.’
시스템 창에 손을 뻗어 이것 저것 해보던 그는 곧 해당 스킬의 활용법을 발견했다.
‘이야....’
[스킬 조합 시뮬레이션]
그런 제목의 창이 별도로 생겨났다.
그 안에 물음표를 품은 사각 괄호가 보였다.
그가 스킬 하나를 끌어다 집어넣자, 해당 물음표가 해당 스킬의 명칭으로 바뀌더니 그 뒤쪽으로 다른 괄호들이 생겨났다.
일종의 계산식 비슷했다.
[신체강화] + [ ? ] = [ ? ]
‘그러면, 이쪽에 다른 걸 넣으면 되나?’
[신체강화] + [루팅] = [즉시 섭취]
-현재의 시뮬레이션대로 수행하시겠습니까?
‘와 씨.’
혹시나 했는데, 진짜 되는 모양이다.
그대로 실행해보려던 그는 일단 멈추었다.
‘이걸 지금 봤네.’
해당 창 아래쪽, 작은 글씨로 이어진 짧은 설명이 있었다. ‘스킬 조합’이 일정 단계 이상 올라갈 때마다 저장 슬롯이 늘어난다는 설명이었다.
‘슬롯이 있나본데?’
하여 여기 저기 살펴보니, 현재의 조합 슬롯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나마 1칸은 아니구나.”
기본 슬롯은 2칸이었다.
그리고 한번 슬롯에 넣으면 일정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뺄 수 없다고 했다.
‘아예 못 빼는 건 아니군.’
당장 ‘즉시 섭취’ 스킬을 만들어서 슬롯에 넣지는 않았다.
해당 스킬 내용은 ‘음식을 루팅하여 소화 단계를 밟지 않고 바로 몸에 적용하는 것’이었는데, 나름 쓸모가 있을 것 같긴 하지만 확 와닿지는 않았다.
‘다른 것들로 해보자.’
그는 다시금 조합 시뮬레이션 창을 다루었다. 가진 스킬이 그리 많지 않은 터라, 금방 한번씩 끼워넣을 수 있었다.
그 하나 하나를 잘 살펴본 끝에, 그는 슬롯에 넣을 조합 스킬 중 하나를 결정했다.
[스캐닝] + [루팅] = [데이터 저장소]
‘안 그래도 필요했었는데.’
평소 스캔을 하면 시스템 창 하나가 열리면서 그 안에 해당 내용이 담기는데, 그걸 닫고 나면 같은 것을 다시 보거나 할 수 없었다.
‘스캔을 한 번 더 해야 되지.’
같은 대상을 여러번 스킬할 경우엔 아마 숙련도 비슷한 게 오르는지 좀 더 빨리 되는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더 이상 근처에 없는 대상을 스캔할 수는 없다는 부분은 무척 아쉬웠다.
그런데 ‘데이터 저장소’ 라는 걸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뭔가 했더니, 그가 얻게 되는 온갖 정보들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인벤토리 100칸을 재료로 만들 수 있다는 거구나.’
100칸의 인벤토리.
적지 않은 숫자지만, 그래도 가치가 있다.
[스캐닝] + [루팅] = [데이터 저장소]
-현재의 시뮬레이션대로 수행하시겠습니까?
-수행이 완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해당 스킬을 슬롯에 지정하시겠습니까?
-지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남은 슬롯은 1칸입니다.
‘데이터 저장소’스킬을 만들어 스킬 슬롯에 넣었더니, 정말로 이제부터 그것을 만들 수 있다는 알림이 나타났다.
최강혁은 100칸의 여유 인벤토리를 확보한 후, 그것을 재료로 써서 데이터 저장소 제작에 들어갔다.
‘오래 걸리진 않는구나.’
그렇게 만들어진 데이터 저장소는 공간 개념이 아니라 용량 개념으로 보였다. 정확한 수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게이지 형태로 표시되고 있었다.
‘뭐지?’
눈에 띄는 건 그것이 비어있지 않다는 부분이었다. 뭔가 하고 열어보니, 지금까지 그가 했던 스캐닝 데이터들이 그 안에 남아있었다.
‘이전 것들도 인정해주는 거구나.’
역시 좋다.
앞으로는 저장소에서 원하는 데이터를 찾아 열람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한 칸은 어쩐다.’
다른 조합식 중에서도 쓸만한 것들이 있었다. 가령 ‘스캐닝’ 과 ‘흡수’를 조합할 경우 ‘선택 흡수’ 라는 게 된다고 했다.
‘처음부터 원하는 성분만 흡수할 수 있다는 거지.’
흡수한 후에 특정 성분만 빼서 쓰는 게 아니라, 아예 흡수 단계에서부터 걸러서 받는 것.
그렇게 되면 시간 절약이 무척 많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칸이 하나 남아있기에 신중해야 했다.
“뭐야.”
그 때, 무심코 이것 저것 조합해보던 그가 눈을 깜박이며 시스템 창을 다시 살폈다.
“이게 돼?”
어쩌다 같은 스킬을 두 번 넣었는데, 아무 변화 없는 게 아니라 앞뒤 괄호가 모두 같은 스킬로 채워져버렸다.
‘같은 스킬도 된다고?’
이러면 경우의 수가 늘어난다.
최강혁은 하나 하나 다시 해보았다.
[신체강화] + [신체강화] = [강화 효율 증가]
[스캐닝] + [스캐닝] = [스캐닝 강화]
[루팅] + [루팅] = [루팅 강화]
[흡수] + [흡수] = [흡수 강화]
[조합] + [조합] = [다중 조합]
‘강화 효율 증가는... 특별하진 않네.’
같은 스킬을 조합할 경우엔 해당 스킬을 강화하는 개념이 되는 것 같았다.
다른 건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다중 조합’ 쪽에 눈이 갔다.
‘하나씩이 아니라, 여러 개를 한 번에 조합할 수도 있다는 거구나.’
조합 스킬의 단계에 따라 그 수량의 한계가 정해진다고 하니, 당장은 그리 대단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상당히 좋은 조합스킬이라 말할 수 있었다.
‘이제 보니 스캐닝 강화도 좋을 것 같은데.’
단순히 스캔의 속도나 정확도를 올려주는 게 아니었다. 현재의 상태만 파악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 저장소와의 연계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저장소와의 연계... 도서관처럼 쓸 수도 있다는 거네.’
지금도 스캔 데이터를 저장소에 넣어서 쓸 수는 있지만, 이건 더 뛰어난 수준이었다.
‘예전엔 문서를 스캔하면 그냥... 문서였지.’
펼쳐진 부분의 글자가 보이긴 하지만, 그게 다였다. 필요하다면 매번 해당 스캔 데이터를 열람해서 찾아봐야 했을 것이다.
‘이게 있으면, 스캔된 화면이 아니라 그렇게 확보한 정보들도 별도로 저장하고... 검색이나 열람이 된다는 거구나.’
형상이 아니라 정보를 스캔한다는 것.
그냥 보아도 무척 대단하게 느껴졌다.
‘둘 중에 골라야 할 것 같은데.’
[다중 조합], 그리고 [스캐닝 강화]
두 조합식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던 그는 다중조합 쪽으로 결정했다.
‘지금은 정보를 저장해봐야 쓸 곳이 마땅치 않을 거야. 딱히 저장할 정보도 없겠지만.’
이곳은 책이 귀하다.
무게가 나가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책은 전자책 형태로 서비스된다. 개인 소장품 정도가 아니면 책을 구경하기도 어렵다.
‘다중 조합은... 시간을 아낄 수 있지.’
일을 더 빨리 행할 수 있으니, 남는 시간에는 그만큼 개인적인 성장에 쓸 수 있을 것이다.
-지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남은 슬롯이 없습니다.
결정된 이상 행동은 빨라야 한다.
그렇게 슬롯을 마저 채운 그는 데이터 저장소를 열어, 중복된 스캔 데이터들을 정리했다.
‘아직 다 차려면 먼 것 같지?’
기존까지 쌓인 데이터의 용량은 게이지의 바닥 정도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것을 정리하고 나니, 거의 채워지지 않은 수준까지 내려갔다.
‘100칸을 부어서 만들었으니, 넉넉하면 좋겠네.’
저장소가 부족해질 경우엔 추가로 제작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아직은 먼 이야기였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새로 얻은 ‘다중 조합’ 스킬을 활용해보기로 하고 다시금 작업을 이어갔다.
“개쩌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그만큼 다중 조합 스킬의 위력이 대단했다.
또한 데이터 저장소와의 연계 역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메리트 있었다.
‘일종의 틀처럼 쓸 수 있구나. 그대로 찍어내듯이... 보면서 참고할 필요가 없어졌어.’
저장소에 있던, 완벽한 수준의 전투화 데이터를 불러낸 후,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인벤토리 안에 있는 전투화들을 조합한다.
현재 한 번에 조합할 수 있는 전투화의 숫자는 3켤레였다. 재료만 충분히 있다면 한 번에 3켤레의 전투화를 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소모되는 마나는... 기존의 2배 정도인가? 그러면 효율도 좋아진 거지.’
시간도, 마나도 덜 들어가면서 결과물은 더 많이 나온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이건 못 말하지. 말하면 안 돼.’
아무리 봐도 평범하지 않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을 듯 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사령부로 갔던 고윤호가 돌아온 건 저녁 식사 1시간 쯤 전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좀 늦은 것 같아서 물어보니, 아예 재생 소총을 테스트하는 것까지 참관하고 오는 길이라 했다.
“문제 없었습니까?”
“예.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테스트를 진행하는 이들이 수백발을 쏘았다고 했다. 일부러 총열에 무리가 가도록 계속 연발로 갈겼다고.
“그러다 터지면요?”
“아. 진행이야 사람이 하지만, 총은 직접 들고 쏘지 않았습니다. 거치해서 자동으로 발사해주는 장치가 있어요. 테스트용 기계죠.”
“아....”
그러면 혹시나 터지더라도 사람이 다치진 않을 것이다. 물론 터지지도 않았으니 아무 문제 없는 게 맞을 테고.
“그럼 걱정 없네요.”
“앞으로도 그 정도 수준의 재생이 가능한 건지 궁금해합니다.”
“음. 될 겁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수준은 될 겁니다.”
“잘 됐군요.”
비슷하게 쌓인 것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것들을 전부 재생시키면 그만큼의 무기들이 새로 생기는 것이다.
“총이 많아봐야 탄약이 없으면 소용 없잖아요.”
“그래도 여분의 총기가 있으면 많은 것이 여유로워지죠. 정 뭣하면 다른 캠프에 팔아도 되고요.”
“다른 캠프는 총이 부족한가요?”
“캠프마다 사정이 다릅니다. 우리야 국가가 보조해주는 측면이 강하지만, 아예 민간 기업 차원에서 들어와있는 경우도 많아서요.”
그렇게 이야기한 고윤호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국이 장난을 친 탓이죠.”
이곳의 좌표는 미국에 돈을 주고 구입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알지 못했는데, 고윤호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아마 비슷하게 시작되었을 겁니다.”
지구와 다른 세상을 오가는 기술은 몬스터와 각성자의 탄생과도 맞물려있었다.
특수한 스킬을 가진 각성자들이 몬스터들이 침입했던 장소를 통해 역으로 들어가, 그쪽의 좌표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 그런 통로가 닫힌 후에도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을 보유한 경우도 나타났고.
“처음엔 각성자들이 들어갔었고... 언젠가부터는 좌표를 확보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이들이 나타났죠. 이동 장치도 만들어졌고요.”
최강혁을 이쪽으로 보낸 장치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돈 많이 벌겠네요.”
“아마 그럴 겁니다.”
아무튼 그렇게 확보된 좌표는 각국에서 나름대로 분석을 행한다. 정찰을 보내기도 하고, 직접 탐사대를 꾸려 보내기도 하고.
그 결과가 그리 대단치 않거나, 뭔가 있음에도 상당히 위험할 경우에는 외부에 팔아버리기도 하는데, 이곳이 그렇게 구입한 좌표라고 했다.
“문제는, 그들이 한 지역의 좌표를 한 곳에만 팔지 않았다는 거였죠.”
〈 23화 〉 023.
023.
위험하지만, 정착에 성공만 한다면 상당한 수준의 이득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미국으로부터 좌표를 구입한 한국은 무척 진지한 태도로 개척을 시도했다.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던 덕분인지, 약간의 시행착오와 희생은 있었지만 결국 지금의 캠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간신히 캠프를 안정화하고 슬슬 외부 탐사를 이어가다가... 다른 캠프 소속의 정찰대와 조우한 겁니다.”
“아.”
“처음엔 이쪽 세상의 문명인들인 줄 알고 전투가 벌어질 뻔 했다더군요.”
그렇게 알게 되었다.
한 지역이어도, 위치에 따라서 좌표가 달라진다는 것을.
“적어도 수십 곳은 된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들어와있는 캠프들 말입니다.”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 겁니까?”
“미국이 그렇게 허술한 나라는 아니니까요. 당시엔 좌표라는 개념에 대해서 잘 모르던 시기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다들 좌표 하나 당 한 지역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몬스터들이 어디에서 들어오는 건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역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된 후엔 각각의 세상이 워낙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모두 다른 세상에서 오는 것이라 착각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사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였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미국의 노림수였다.
혼자 들어가기엔 위험부담이 큰 지역이라는 판단을 내린 미국은, 해당 지역에 여러 좌표들을 확보한 후 그것들을 팔아버렸다.
“그렇게 들어온 이들이 정착을 한 후에....”
“숟가락을 얹는군요.”
“바로 보셨습니다.”
최강혁은 문득 미국이 한국과 제휴를 해서 이쪽으로 죄수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던 것을 떠올렸다.
‘죄수들을 나라에서 내보내는 것만이 아니라, 원래부터 노리는 게 있던 거구나.’
미국 혼자서 들어가 자리를 잡기엔 리스크가 크니까 좌표를 팔아 수익도 얻고, 그렇게 들어간 이들이 자리를 잡으면 그때 한 자리 끼어드는 것.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의 선택은 얄미울 정도로 현명했던 것 같았다.
여전히 지구에선 미국을 무시할 수 있는 나라가 없으니, 나중에 끼어들어도 딱히 반발할 수 없을 테고.
“좀 재수없네요.”
“그런 면이 있죠.”
최강혁의 말에 픽 웃으며 답한 고윤호는 그래도 이쪽 캠프에서 동거하기로 한 후에 알게 모르게 들어오는 지원이 많다고 했다.
“저쪽으로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거든요. 아직 민간 쪽엔 개방이 안 된 구역이라 가보시진 못했겠지만.”
“아... 멀리서 뭔가 하고 있는 건 알았어요. 그쪽이 미국 구역인가요?”
“예. 한 반년 정도면 얼추 각이 나올 것 같다고 하더군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올리는 중입니다.”
이쪽에서도 각종 공사 속도를 끌어올리게 된 건 그쪽의 노하우와 장비 활용을 배워서 그렇다는 것 같았다.
“빨리빨리 하면 또 우리 나라 아니겠습니까. 그런 걸 안 배우곤 못 배기는 거죠.”
“24시간 풀타임 조지는 건 우리 나라만 할 줄 알았는데....”
“아. 그거는 우리 나라만 합니다.”
“.......”
“미국은 이런데서도 지킬 건 지키더군요.”
아무튼, 여기서 가장 가까운 다른 캠프는 차로 달려서 5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라고 했다.
“거리는 대략... 150킬로미터 안팎일 겁니다.”
“5시간이나 걸리나요? ...아. 길이 포장되지 않아서 그런가보군요.”
“그런 부분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전술 기동이라 속도를 많이 내진 못하거든요. 땅 속에 뭐가 있을 지도 알 수 없으니.”
그나마 초기에 비해선 속도가 많이 빨라진 거라고 했다. 전에는 거의 하루가 걸리기도 했다던가.
“장비 수준도 좋아졌지요. 드론 같은 걸 띄워서 지하까지 들여다보기도 하니까요.”
“음....”
드론이라.
그런 것도 고장난 것들이 있을까?
“사령부는 손상 등으로 버려지는 물량에 대해선 아무 문제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덩어리 상태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건 그냥 그 상태로 드리면 될까요?”
“아니요. 그 뭐지... 마나를 빼내실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렇게 자체적으로 처리하셔도 된다고 합니다.”
“아. 제가 알아서요?”
“예. 완전히 뽑아내면 가루만 남는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이건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긴 한데, 아마 비슷할 겁니다. 그래도, 녹여서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합금 계열이라고 해도 쓸모가 없진 않을 텐데요.”
“녹이는 것도 일이죠. 말씀드린대로, 이쪽에서 폐기하는 게 간단할 것 같습니다.”
상당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되어버렸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일정 분량 이상 남게 될 조각들, 혹은 완성된 총기 중 일부를 어디에 숨겨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집에 따로 비밀 공간을 만들긴 해야겠네.’
요즘 해보는 생각이었다.
장소도 몇 곳 생각해두었다.
‘아니지. 총으로 만들면 걸렸을 때 너무 곤란해지니까, 그냥 각각 재료 단위로 괴 같은 걸 만들어서 모아두는 게 낫지 않을까?’
총을 만들어봐야 쓸 곳이 없다.
차라리 자재별로 적재해두면 나중에 그걸 갖고 다른 걸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총의 설계도를 얻으면, 그걸 갖고 만들 수도 있을 거야. 재료가 달라서 문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최강혁은 일단 알았다고 답했다.
“가 계시던 동안 작업해둔 물량이 더 있는데, 이건 언제 드리면 될까요?”
“아. 더 해두셨습니까? 얼마나 되죠?”
“말로 할 게 아니라, 들어오시죠.”
작업장 안으로 고윤호를 부른 그가 앞장서자, 뒤따라 들어간 고윤호가 금방 감탄사를 발했다.
“언제 이만큼이나 하신 겁니까?”
“따로 할 게 없어서, 좀 집중했습니다.”
전투화도 전투화지만, 재생된 소총이 5정이나 있었다. 이 정도면 그가 직접 가져다주는 것보다 보급부대에 연락을 넣어서 가져가라고 하는 게 나았다.
“모두 검수는 된 거죠?”
“예. 제가 할 수 있는 건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잠깐 입구 근처로 물러난 고윤호가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연락을 할 때, 최강혁은 아직 반 이상 남아있는 상자 안의 부서진 소총 조각들을 들여다보았다.
“보급대가 곧 올 겁니다. ...음. 그쪽에서 수거하고 갈 즈음이면 얼추 저녁 시간이 될 것 같은데. 같이 올라가시죠?”
“그럼 그럴까요. 아, 참.”
“예?”
다시 밖으로 나가려던 고윤호는 문득 말을 꺼내는 최강혁을 돌아보았다.
“탄약 있잖습니까. 총알이요.”
“예.”
“그 중에도 불량이 있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현역때 보면 아주 가끔이긴 해도 불발탄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아. 있지요. 납품받는 물량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되는데, 이쪽 공방에서 재활용한 것들 중에는 종종 나옵니다.”
“재활용이요?”
“탄피는 다시 쓸 수 있으니까요. 그걸 갖고 새로 만드는 겁니다. 공장 규모는 아니지만, 나름 양이 나오죠.”
“아. 탄피.”
이쪽에서도 그걸 줍는 건가.
하지만 그런 게 있다면 이야기가 쉬워진다.
“그것도 제가 손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아... 그렇겠네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고윤호는 이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쪽은 괜찮을 겁니다.”
“예?”
“불발탄은 가져다가 분해해서 다시 만들거든요. 그렇게 어려운 작업도 아니니, 굳이 최강혁씨의 마나를 소모해야 할 일은 아니겠지요.”
“아... 그렇군요.”
“불발이 그리 자주 나오지도 않고요.”
총이 생긴 김에 총알까지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던가보다.
하지만 그가 했던 이야기는 조금 다른 쪽으로 진행될 여지가 있는 듯 했다.
“포탄이요?”
“예. 그것들은 여기서 제작이 안 되니까요.”
“음....”
박격포, 혹은 무반동포의 포탄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 것도 쓰는군요.”
“가끔, 일반 총알로는 죽이기 어려운 놈들이 있어서요.”
아직은 먼 이야기 같았다.
일단, 조합을 하려면 인벤토리에 넣어야 한다는 것부터 제약이었다. 그 정도 포탄들을 채우려면 그만큼 넓은 공간이 있어야 하니까.
‘아. 미사일 같은 게 아니라 그냥 포탄이면 공간을 그렇게 많이 차지하지는 않겠구나.’
고윤호도 그래서 꺼낸 이야기인 것 같았다.
불발된 포탄들을 재생시킬 수 있다면, 기본 소총의 재생보다 더 좋은 성과로 볼 수도 있다고.
“일단 위쪽에 이야기를 전해보겠습니다. 보안 같은 측면 때문에 거부될 수도 있지만요.”
보안의 문제.
혹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태라서 적잖은 위험성도 있다.
하지만 그쪽으로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불발탄’ 들은 포탄 종류 말고도 더 있다고 했다.
“수류탄이요?”
“예. 초기에 납품받았던 게 좀 문제가 많았습니다. 비리가 얽혀있었거든요.”
“그건 너무하네요.”
목숨을 걸고 싸워야할 군인들의 무기다.
더 강하게 만들어줘도 모자랄 판에, 불량품이라니.
“이쪽 관련자들이 추방형을 받았었죠.”
“살아서 돌아오진... 못했겠군요.”
“예. 일주일 추방형이었습니다.”
하루도 위험하다 들었다.
일주일이면 그냥 죽으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캠프 사람들이 가졌던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처리 방법은 대부분 같습니다.”
그런 불발탄들은 안전한 곳에서 일부러 터뜨려버리는 게 보통이지만, 그러지 않고 땅에 묻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초기엔 하나만 나와도 그냥 터뜨렸는데, 그 과정에 들어가는 폭약이나 수류탄도 아깝다는 지적이 나와서요.”
“그건 그렇죠.”
“일단 적당한 곳에 묻어두었다가, 일년에 한 두 번정도 정해진 시기에 한번에 터뜨리고 있습니다.”
포탄, 수류탄, 종종 크레모어도 불발이 나온다고 했다. 현역 군인으로 복무할 땐 겪지 못했던 일들인데, 이쪽에선 그렇지 않은 걸까.
“일단, 사용량이 다르니까요. 이쪽은 실제로 매일 상당한 양을 소모하고 있고... 그만큼 불량을 겪을 확률도 올라가겠지요.”
그래도 요즘은 불량탄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군인들에겐 무척 다행인 일이었다.
‘아쉬워할 일이 아니잖아.’
불량이 많을 수록 나설 여지가 커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안타까워하는 건 썩어빠진 생각이다.
최강혁은 마음 속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들려던 아쉬움을 힘껏 억눌렀다.
* * *
보급대에서 나온 간부는 왠지 낯설었다.
알고보니, 본국에서 발령온지 며칠 되지 않았다고 했다.
“반갑습니다. 보급대 이강진이라고 합니다.”
직책은 1급 관리자라고 했다.
잘 모르겠어서 고윤호를 보니, 대충 소위 쯤 될 거라고 넌지시 말해주었다.
‘차라리 계급으로 나누는 게 낫지 않나.’
어차피 급수로 따지든 계급으로 따지든 상하 관계가 있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최강혁은 보급 관리자가 일반 군인들을 부리며 재생품들을 트럭에 싣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도 슬슬 준비할까요?”
고윤호가 말했다.
이제 곧 저녁 시간이라 사람들이 몰릴 테니, 일찍 출발하지 않으면 줄을 서야 할 것이다.
“새로 들어온 분들이 많습니까?”
트럭에 올라타서 물으니, 고윤호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파견 예정 인원이 상당하다고 하더군요.”
“원래 그런가요?”
“글쎄요... 그렇게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해야겠지요.”
사령부에서도 조금 의아해하는 상황이라는 것 같았다. 본국에서 그렇게 밀어내기 식으로 군인들을 보내주는 건 전에 없던 일이어서.
“인력 부족으로 지원을 요청할 땐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이제 슬슬 자리를 잡고 나니 그쪽 사람들을 꽂아넣는 게 아닐까 의심하는 분위기입니다.”
“그쪽이요?”
“태생적 한계죠. 이곳은 엄밀히 따지면 정부 소속의 캠프는 아니니까요. 여러 곳으로 지분이 쪼개져있습니다.”
그나마 국방부의 입김이 가장 강하긴 하다고 했다. 전역, 혹은 은퇴한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식으로 보내기도 한다고.
“보통은 오래 못 버티거든요. 몇 달 내근이나 하다가 돌아가곤 하죠.”
그런데 최근 들어오고 있는 인원이나 파견 예정 인물들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부사령관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것 같습니다.”
“그 정도예요?”
내부적으로는 사령관이라 불릴 정도의 사람인데, 어쩌다 그런 상황이 된 걸까.
“거의 내정되었다고 들었었는데요.”
“거의 라는 건 아무 의미 없죠. 확정되기 전까진 아무 것도 아닌 거니까요.”
“.......”
어딜 가나 정치가 있다.
그걸 정치질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래도 설마, 사령관을 낙하산으로 꽂진 않겠죠.”
조용히 듣고 있던 운전병이 코너를 돌며 말했지만, 고윤호는 여전히 같은 표정이었다.
“글쎄. 그 설마라는 놈이 항상 사람을 잡던데 말이지.”
〈 24화 〉 024.
024.
식당에 도착하니 이미 적지 않은 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래도 줄을 서야 할 정도는 아니어서, 어렵지 않게 음식을 담아 빈 자리에 앉았다.
‘즉시 섭취 스킬이 있으면, 이렇게 씹어서 삼킬 필요도 없어진다는 건가.’
문득 스킬 조합으로 만들 수 있었던 예시들 중 하나가 떠올랐다. 조금 나중에, 슬롯에 여유가 많아지면 그 때 한 칸 쯤 넣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음식을 먹는 재미를 포기하는 것도 좀 아쉬운 일이었다.
왠지 해당 스킬이 생기면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지금처럼 맛을 즐기지 못하고 그것을 활용해 몸에 채워버릴 것 같았다.
‘오늘도 맛있네.’
식사는 언제나 즐거웠다.
적당히 배를 채운 그는 그의 요구대로 부대 식당의 잔반이 곧장 처리장 쪽으로 옮겨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럼 우리도 슬슬 갈까요.”
고윤호가 선탑한 차량은 최강혁을 외부의 뷔페 식당 앞에 내려주고 떠났다.
그곳도 아직 저녁 시간이 끝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쪽으로 보내준다고?”
“예. 다이렉트로요.”
“이야. 그거 해달래도 안 해주던 건데....”
담당자를 만나 이야기를 전했더니, 처음 들은 소식인 듯 무척이나 기꺼워했다.
“그렇게 해주면 이쪽이야 좋지. 애초에 왜 여기다가 짬을 시키는 거냐고.”
“따로 대가를 받거나 하는 건 없었어요?”
“그 땐 군인들이 워낙 바빴으니까. 사람이 부족해서 경계병들이 제대로 잠도 못 자던 시절이었으니, 고통분담차원에서 이래 저래 떠맡은 거지.”
그렇게 맡았던 일이, 이후 여유가 생긴 후에도 되돌아가지 않고 계속 남아있었다고 했다.
“그쪽에선 불만 없고?”
“어차피 어디에 내리든 작업량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야 그렇긴 하지.”
또한 최강혁이 예전부터 그쪽 군인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둔 덕분도 있는 듯 했다.
쓰레기장에 근무하면서부터는 알게 모르게 재생 전투화 같은 것들도 챙겨주곤 했으니까.
‘반대로 받은 것도 많았지. 속옷도 그렇고.’
이제는 코인을 벌고 있으니 상점에 가서 구입해도 되겠지만, 예전에 받았던 게 꽤 남아있어서 당분간은 문제 없을 것 같았다.
“요즘은 집에서 샤워하지? 좋겠구만.”
“하하.”
담당자의 말에, 그의 배려로 그곳 샤워장을 이용했던 때가 생각났다. 생각해보면 그가 이곳에 와서 처음 만난 좋은 사람이었다.
“죄수들은 어때요?”
“음? 못 들었나?”
“예?”
“못 들었나보군. 하긴, 오늘 점심이었으니.”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억제장치가 풀린 죄수가 있었다고 했다. 목에 걸려있는 건 맞는데, 억제 효과가 사라졌다고.
“난동이라도 피운 거예요?”
“뭐.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나름 머리를 쓴답시고,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다른 두 죄수 억제기도 풀어주려고 했던 것 같더군.”
“그거 그러면....”
“터졌지, 뭐.”
“.......”
담당자는 근처 바닥을 슬쩍 턱짓했다.
“지금은 봐도 잘 모를 거야. 아까 물청소 싹 해서.”
“아....”
담당자는 무덤덤한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잘게 흔들리고 있는 눈동자를 보면, 역시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닌 듯 했다.
“뭐, 괜찮아. 처음 본 일도 아니고.”
걱정하는 시선을 알아보았을까.
담당자는 한 손을 내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안 다쳤으니까 다행이지.”
“그러면, 오전 잔반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아. 안 그래도 그걸 이야기할 생각이었거든. 그것도 좀 어떻게 안 될까? 곤란하면 직원들이 하면 되겠지만.”
“음. 그렇게 할게요. 대신 잔반처리 하지 마시고, 저녁에 하는 식으로 그냥....”
“안에 두어달라고?”
“예. 제가 알아서 할게요.”
오히려 잘 됐다.
어차피 부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올 테니, 때마다 이곳에서 내려서 뒤처리를 하면 된다.
‘이쪽에서는 잔반을 만들지 않으면 돼.’
저녁에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침과 점심에 나온 것들도 그냥 마나로 만들면 편해진다. 그만큼 처리장에서 해야 할 일도 줄어드는 건 덤이고.
“그러면 우리야 편하지. 근데 괜찮겠어?”
“예. 괜찮아요.”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 당장 내일부터 괜찮은 거지?”
“문제 없어요.”
“알았다. 그러면, 죽은 놈들한테 가던 수당도 그쪽으로 몰아주면 되겠군.”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이야기한 담당자는 이제야 신경 쓸 일이 줄어들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최강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향의 죄수들을 관리하느라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모양이었다.
“슬슬 종료 시간이군.”
시계를 확인한 담당자가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곧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벌써 다들 나갔네. 이 시간에 올 사람은 없을 것 같아서 일찍 닫을까 하는데, 바로 시작할래?”
“그러면 저도 좋죠.”
일찍 닫는 일이 드문 것도 아니다.
어차피 먹는 사람들이 거의 정해져있다보니, 더 올지 안 올지 같은 건 대충 감이 온다.
만약 누군가가 늦게 도착해서 못 들어왔다 하더라도, 다른 일반 식당으로 가면 되니 문제도 없고.
‘어디 보자....’
손바닥을 비비며 식당 안으로 들어간 최강혁은 가장 끝에 있는 요리에서부터 흡수와 루팅, 마나 획득을 시작했다.
아예 잔반조차 남기지 않는 수준까지 빼내고 있었기에, 그 속도도 상당히 빨랐다.
‘인벤토리가 더 많이 필요해.’
데이터 저장소를 만드느라 100칸을 써버린 탓에, 그럭저럭 커지고 있던 인벤토리가 적잖게 줄어버렸다.
‘이쪽 식당에서 얻는 마나는 인벤토리 제작에만 쓰자.’
그렇게 식당에 남은 음식들을 모두 없앤 그는 담당자에게 허락을 구하고 카트에 올라탔다.
“점심 잔반은 그쪽에 있다고요?”
“그냥 두기 뭣해서, 마침 현장 처리하던 군인들도 도와줬었고.”
그렇게 처리장으로 가보니, 역시나 식당에서 온 것인지 얼핏 핏자국이 남아있는듯한 잔반통들이 한쪽에 모여있었다.
‘제대로 닦지 못한 건가.’
적당히 물을 뿌린 정도로 보였다.
이미 잔반이 채워진 상태라 쏟아내고 닦기는 애매했던 모양이다.
“고생하세요.”
“예. 그쪽도요.”
처리장 직원이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자, 최강혁은 슬쩍 해가 저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도 이렇게 가는구나.’
매일 비슷한 일과.
하지만 그것을 지겹다고 이야기하기엔 그가 누리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잘 되고 있을 때 더 열심히 해야지.’
가볍게 어깨를 털고 나서 움직인 그는 평소처럼 두 팔을 이쪽 저쪽으로 뻗으며 작업을 시작했다.
* * *
어설프게 지붕만 올라간 수준이던 운전병의 대기실이 그럭저럭 고윤호의 숙소와 비슷한 수준으로 완성되었다.
“이런 걸 지어주면 아무 때나 들어가서 자버릴 텐데.”
“아. 왜그럽니까, 또.”
고윤호의 이야기에 얼굴을 찌푸리던 운전병은 그 옆쪽으로 고개를 돌려, 비슷하게 완공된 최강혁의 두 번째 작업장을 보았다.
“굳이 나눠놓을 필요가 있는 겁니까?”
“기존 작업장은 벽체가 얇으니까. 보강하는 식으로 하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게 낫다더라고. 속도도 빠르고.”
새로 지어진 작업장은 기존 작업장의 옆에 있었다. 그 절반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작았는데, 벽체는 훨씬 두껍고 튼튼한 재질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해당 작업장 안에 채워진 것들 때문이었다. 곳곳에 묻어두었던 불발탄들부터 해서, 불량으로 판정된 각종 포탄 따위가 각각 단단히 봉인된 상태로 그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곤 했다.
“사령부 반응이 장난 아니던데요. 수송부에까지 소문이 돌 정도면 말이죠.”
“그럴 수 밖에 없지. 불발탄을 고쳐주는 거 아냐. 그게 한 발에 얼만데.”
일반 탄약이야 불발이면 욕이나 하고 넘기겠지만, 포탄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그 땐 욕으로 안 끝난다.
그러니 반대로 불발이었던 걸 멀쩡한 상태로 바꿔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군인들이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근데... 봉인을 했다고 해도 여기까지 실어오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차라리 강혁씨가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오라가라 하냐. 알아서 가져와야지.”
“그야 그렇긴 한데요. 위험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해야 저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저 작업장도, 절반 정도는 안전벽으로 되어있잖아.”
“공사할 때 얼핏 보긴 했죠. 근데, 그렇게 벽으로 막아놔도 그 뭐야, 루팅이 된대요?”
“되니까 하고 있겠지.”
“신기하네.”
지금도 최강혁은 그 작업실에 있었다.
몇 분 전에 또 몇 상자가 들어갔는데, 그것을 싣고 왔던 군인들이 바깥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저 친구들도 고생이네요. 갑자기 굴러온 돌들이 생겨서.”
“어쩔 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본국에서 파견된 인원들은 처음부터 부서가 정해져있었다. 부사령관이 최대한 조율을 청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본국 의견을 따라야 했다.
그러니 기존 부서에서 밀려나듯 한직, 혹은 좀 더 위험한 부서로 배속된 인원들이 생겨났다.
저들도 그렇게 밀려난 이들이었다. 아마도 근시일 안에 은퇴와 귀환을 청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터지지 않으면 좋겠는데....”
“말이 씨가 된다잖아. 입좀 다물어.”
그 때, 작업장 밖에 설치된 적색 램프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벗어두었던 보호구 헬벳을 다시 착용하고 작업실 문을 열었다.
“초록불이면 안전 상태 아니예요?”
“그렇게 정했지.”
“못 믿을 거면 시키지도 말아야 하는 거 같은데... 예의가 아니지 않아요?”
“일단 가져가서 확인해보기 전까진 절차대로 해야지. 저 친구들이라고 별 수 있나.”
최강혁을 믿는가의 여부와 관계 없이, 위에서 시킨대로 하는 게 맞다. 특히 안전과 관련된 절차는 더더욱 신경써야 한다.
“음.”
단단히 봉해진 검은 금속 상자들을 들고 나오는, 전신 보호구를 착용한 군인들이 보였다.
고윤호는 ‘지금 터지면 오히려 우리가 더 다치는 거 아니냐’ 던 운전병의 머리를 후려칠까 생각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좀 닥치라고.”
적재를 마친 군인들의 차량이 돌아갔다.
그쪽 작업실에서 나온 최강혁이 둘을 향해 눈인사를 건네고 나서 기존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참 바쁘게 사시네.”
운전병의 말에, 고윤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되시겠지.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지금의 것들을 계속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
“어떻게 될까요?”
“뭐가.”
“낙하산이요.”
“소문일 뿐이야.”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그래서 더 이상하잖아요. 그동안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 씨가 된다는 건 이런 쪽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사령부의 분위기가 날마다 달라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 놀랄 일도 아니야.”
고윤호가 말했다.
이 캠프를 정착시키고 안정화하는 단계까지 본국의 지원은 필수적이었고, 그만큼 그쪽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했다고.
“문제는 파벌인데... 본국 상황이 좀 꼬인 모양이야.”
“뭐 들은 거라도 있어요?”
“어디 가서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말고.”
“어차피 다들 그런 식으로 말해도 퍼진 걸 텐데 뭘.”
“듣기 싫으면 말고.”
“에이. 저 입 무거운 거 아시면서.”
그렇게 떠든 운전병이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자, 고개를 저은 고윤호가 주변을 살핀 후 말했다.
“정부가 나선 것 같아.”
“정부요?”
“국방부 외에 지분을 가진 곳들을 간접적으로 조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
“세무조사라도 하는 중이래요?”
“아마도.”
“제대로 쳐낼 생각인가보네.”
중얼거리던 운전병이 미간을 구겼다.
“국방부가 제대로 먹겠다고 드는 거면, 지금 굴러오고 있는 돌들도 이해가 가네요. 서류는 깨끗했다고 하는데....”
“누가 봐도 현역이지.”
“그러니까요. 아직 짬내 안 빠진 티가 팍팍 나던데.”
본국에서 무슨 생각과 계획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이곳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만들어낸 이들은 어떤 식으로 방어하고 있는지.
사실 일반 군인들은 그런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단지 자신들이 불합리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질 거야.”
고윤호는 무심히 말했다.
“이길 수가 없지.”
“그야 그렇죠.”
운전병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어떤 개고생을 했다고 해도, 결국 본국에서 허가를 받고 임명된 이들이다.
“결국 계약직이니까요.”
“맞아.”
부사령관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다들 알고 있지만, 이번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게 중론이었다.
“우리한테 불똥이 튀지만 않으면 좋겠는데요.”
“여차하면 은퇴해야지 뭐.”
“여기 뼈를 묻네 어쩌네 하지 않았어요?”
“그게 내 뼈라고는 안 했잖아.”
“아.”
“그런 거지.”
그렇게 말하며 손목을 본 고윤호는 최강혁의 작업실로 향했다. 마침, 그쪽에서도 시간을 확인했는지 문을 열고 나오는 중이었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들 재밌게 하세요?”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 점심도 맛있으면 좋겠네요.”
“부대 식당은 항상 맛있죠.”
그럭저럭 평범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언제 부서질지 알 수 없는 위태로운 평화임을 그들 모두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 25화 〉 025.
025.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은 항상 비슷한 타이밍에 찾아오곤 한다.
-좋은 것부터 듣고 싶어? 아니면 나쁜 것부터?
진부한 대사다.
그만큼 흔한 일이라는 뜻이다.
‘찜찜해.’
기대하지 않았던 시스템 알림을 본 최강혁의 반응이 그런 식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인벤토리 1천 칸을 달성하였습니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됩니다.
뷔페 식당 쪽에서 하루 세 번씩 꼬박꼬박 남은 요리를 해치웠더니 인벤토리가 늘어나는 속도가 그만큼 빨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단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매일 매일 비슷한 일과를 보내다보니, 어느덧 두어달이 더 지나갔다.
그렇게 인벤토리 1천 칸을 만든 것이다.
‘나쁜 건 아니네. 오히려 좋아.’
시스템의 새로운 기능이라는 게, 설마하니 핸디캡을 줄 리가 없긴 했다.
새로 생긴 기능은 인벤토리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그가 상당히 원할 만한 것이기도 했다.
‘크기를 따지지 않는 칸이라고?’
말 그대로였다.
원래는 가로세로높이 10센티미터짜리 인벤토리가 한 칸이었는데, ‘단일 대상’이라면 크기와 관계 없이 뭐든 넣을 수 있는 칸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무게 제한은 1톤인가.’
역시나 공짜는 아니었다.
그런 칸을 하나 만들려면 기존의 인벤토리를 다시금 100칸 지불해야 했다.
‘되돌리는 건 없는 거네. 한 번 바꾸면 끝이야.’
그래도 한 칸 정도는 만들어야 할 듯 했다.
그동안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쌓이고 있던 게 하나 있으니까.
‘전투복 자투리 천을 둘 곳이 없었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재생품에 끼워넣어서 내보냈지만, 그럼에도 자잘하게 남는 것들이 누적되어 점점 커져갔다.
지금도 저기 한 무더기 쌓여있는 폐 전투복들 안쪽에 숨겨진 원단 뭉치가 있었다. 인벤토리에 넣기도 힘들어져서 그렇게 숨겨두고 있었다.
‘요즘은 중고 바지를 팔기도 어려웠으니.’
지난 두어달 동안 그의 일상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캠프 내부 사정은 그와 달리 굉장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저 사령부 내에 국한된 변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가 너무 크다보니 바깥까지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다.
‘부사령관은 외유가 잦고.’
무얼 하려는 건지 가까이는 캠프를 공유 중인 미군 부대 쪽을, 멀게는 아예 장벽을 넘어 외부를 나갔다오기도 하는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잘 막아내고 있는 건지, 새로운 사령관이 낙하산으로 내려온다던 소문도 그럭저럭 시들해지는 중이었다.
‘이거, 괜찮네.’
100칸을 떼어서 ‘특수 인벤토리’를 한 칸 제작한 그는 그곳에 그동안 만들어둔 전투복 원단을 루팅해 넣었다.
“와. 이제 되네.”
그동안은 넣을 수가 없어서 루팅도 안 되었었는데, 묵직한 덩어리 하나가 빠져나가니 무더기였던 폐 전투복 한쪽이 움푹 들어갔다.
‘정 안 되면 흡수해서 마나를 빼려고 했는데, 일단 이런 식으로 키핑해두는 게 낫겠지.’
폐 전투복은 품고 있는 마나량이 그리 대단치 않아서 그냥 빼버리기가 아까웠다.
그걸 재료로 뭐든 만들어서 써먹는 쪽이 좋을 것 같으니, 지금 넣은 특수 칸에 계속 모으는 게 좋을 듯 했다.
[특수 인벤토리 내역]
-1- 82.3kg / 1,000kg
‘82킬로그램이면 내 몸무게보다 무겁잖아.’
사실 기존 인벤토리 안에 못 넣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러려면 적잖게 비워야 했다.
‘이걸 이쪽에 넣어버리면 다른 걸 할 수가 없지. 뭐, 집에 꺼내놓으면 되긴 하지만.’
숙소에 비밀 공간을 만들려던 계획은 보류했다. 군용 장비들 중에 지하까지 들여다보는 것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인벤토리만 믿고 가는 수 밖에.’
현재 인벤토리는 900칸.
그 중에서 외부에 알려줄 목적으로 쪼개놓은 것이 300칸 정도였고, 나머지 6백칸 정도가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각각 100단위의 칸이긴 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리 대단치 못했다.
1천칸을 꽉 채웠을 때가 정확하게 가로세로 높이 1미터짜리 정육면체 공간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제 그 중 100칸이 떨어져나갔으니.
‘한 칸 더 만들까.’
당장 급한 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만들어두어야 할 것 같았다. 막상 필요할 때 만들려고 하는 것보다는 일단 확보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최대 무게 제한이 1톤이라... 아. 이것도 확장이 되는구나.’
별도의 칸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만, 기존에 만들어둔 칸의 최대 무게 제한을 1톤 단위로 추가할 수도 있었다.
그 각각이 기본 인벤토리 100칸을 요구하니, 역시나 쉬운 일이 없었다.
‘1톤이면... 단일 개체라는 건 어떤 방식으로 인정되는 거지?’
시스템에 나온 설명은 뭔가 부족해서, 일단 주변에 있는 것들로 실험을 해보았다.
‘전투화는... 일단 들어가긴 하는데, 추가는 안 되네. 한 켤레가 하나인가? 그래도 한짝씩 따로 치는 건 아니네.’
의자, 책상, 널려있던 전투복 등등을 되는 대로 넣었다 꺼내보니, 대충 감이 왔다.
‘여러 물질이 섞여있어도 문제는 없어. 단지 전체적으로 하나의 대상을 이루고 있으면 돼.’
만약 무게만 넉넉하다면, 자동차 같은 것도 집어넣을 수 있을 듯 했다.
‘기본 칸으로는 안 되겠지. 어지간한 소형차도 1톤은 그냥 넘어가니까. 게다가 군용차량이면... 아, 전기카트 정도면 가능하려나.’
물론 그에게 차량 소유권이 넘어올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굳이 차가 아니라도 채울 만한 것들은 많이 있었다.
‘정 안 되면 흙이나 물이라도 채울 수 있어.’
그걸 어디에 쓸까 싶지만, 말이 그렇다는 뜻이다. 당장 뭔가를 채워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음. 너무 흥분했나.’
조금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을 듯 했다.
인벤토리를 써버리면 되돌릴 수 없으니, 가급적 신중해야 한다.
‘무게 단위로 넣을 만한 게 마땅치 않기는 해.’
망가진 소총들 중에서 알루미늄 합금만 따로 추출해 보관할까? 스캔 데이터가 있으니 추후에라도 동일하게 재구성할 수 있을 텐데.
‘다른 부위는 적당히 대체할 수 있겠지만... 아니야. 지금은 총이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최강혁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넣을 게 없긴 해도, 일단 한 칸의 특수 인벤토리를 더 만들어두었다.
‘언제 써도 쓸 것 같단 말이지.’
그렇게 800칸으로 줄어든 일반 인벤토리를 보니,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만들면 되잖아.’
하나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긴 했다.
100칸의 일반 인벤토리보다 1칸의 특수 인벤토리가 소모하는 마나량이 더 적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회복 속도가 좀 올라간 것 같네. 점점 더뎌지더니.’
최강혁은 인벤토리를 만지느라 멈추고 있었던 작업을 다시 이어갔다. 그렇게 망가진 소총 더미를 인벤토리에 루팅하던 그가 순간 멈칫했다.
“오....”
또 나왔네.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방금 전 루팅된 것을 인벤토리에서 확인했다.
제멋대로 쓸어담은 소총 부품들 중에서, 약실에 총알 하나가 남아있는 것이 섞여있었다.
‘워낙 많았으니, 제대로 찾지 못한 거겠지.’
비슷하게 찾아낸 총알이 이것으로 7발째.
스캔으로 확인해보니 모두 정상 발사가 가능해보였다. 이미 기존 6발을 채운 탄창이 그가 챙겨둔 소총에 꽂혀있었다.
‘쓸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처음 총알을 찾았을 땐 무척 신이 났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쓸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오케이. 3정 더 했고.’
새로 재생한 소총 3정을 출입구 근처의 거치대에 꽂아 세운 그는 그곳에 비슷하게 거치되어있는 10자루 정도의 소총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총은 계속 가져가고 있는데... 요즘은 불발탄이 안 생기나 저쪽 갈 일이 없네.”
요즘은 무슨 일인지 고윤호도 이곳에 상주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아마도 사령부가 시끄러운 것과 연관이 있는 듯 했다.
‘죄수들도 안 들어오고.’
덕분에 뷔페식당을 혼자 맡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왠지 점점 더 찜찜해지는 기분이었다.
삑, 삐익-
그 때, 작업실 안쪽을 울리는 비프음이 들렸다. 외부에서 초인종을 눌렀다는 뜻이기에, 그는 마침 앞쪽에 있던 인터폰으로 다가갔다.
“......?”
처음 보는 여자가 화면에 보였다.
다만 그가 의아해하는 건 단순히 낯설어서가 아니라, 한국 사람이 아니어서였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글래머러스한 여성이 그곳에서 화면을 보고 있었다.
“What?”
짧은 영어실력.
인터폰을 누르고 그렇게 물으니, 상대가 카메라를 보며 뭐라 뭐라 이야기했다.
“뭐라는 거야... 아 캔 낫 스픽 잉글리시. 유 메이비, 어... 로스트 유어 웨이. 쏘... 파인드 썸원 헬프 유.”
아는 단어가 다 나온 것 같다.
의미가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그곳에 서있었다.
살짝 웃는 얼굴이 되어있는게, 왠지 엉망진창 영어 실력을 비웃는 것 같아서 빈정이 상했다.
-잠깐, 대화 나눌 수 있어요?
그 때, 여자가 말했다.
분명 한국말이었다.
“예? 저요?”
-네. 최강혁씨. 맞죠?
한국말을 잘했다.
어쩌면 그보다 잘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맞는데요.”
-사라라고 해요. 저쪽 건너편에서 왔어요.
“미군?”
-네. 군 소속은 아니고요.
“......?”
미국에서 그를 보려고 한 적이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이쪽 사령부에서, 또 가까이 붙어있던 고윤호가 나서서 차단해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궁금하긴 했었지.’
예전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 고윤호가 이야기해주었었다. ‘스카웃 제의 비슷한 걸 할 테지만, 그리 믿을 만한 이들은 아니다’라고.
드르륵.
최강혁은 철문 아래쪽에 나있는 작은 미닫이 창을 열었다. 그 정도 틈새만 있어도, 바깥에 서있는 인물을 스캔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안 나와요?”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인데요. 여러모로.”
“당신을 해할 생각은 없어요. 오히려 그 반대죠.”
“반대?”
“도움이 될 거예요. 당신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거취라는 단어도 쓰는구나.
하지만 경계심이 풀리진 않았다.
‘대체....’
그것은 방금 전 스캔한 상대방의 상태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옆구리의 홀스터에 권총 하나, 양쪽 허리춤에 각각 하나, 발목에 작은 것 하나... 총 네 자루의 권총을 갖고 있었다.
‘스캔은 제약이 없어서 좋아.’
항상 느끼는 거지만, 스캐닝 스킬은 거의 사기급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유권의 여부와 관계 없이 행할 수 있으니까.
‘스파이가 사용한다면 정말 좋은 스킬일 텐데.’
아무튼 상대를 경계하게 되는 건 무장 수준 때문만이 아니었다.
‘뭘 저렇게 집어넣은 거야?’
가슴과 엉덩이의 피부 안쪽에 뭔가가 들어있었다. 그곳만이 아니었다.
‘얼굴에도 있고... 팔하고 무릎? 저게 뭐지?’
얼핏 보았을 땐 보형물 종류인가 했다.
그런데 다시금 스캔 데이터를 이리 저리 돌려보니 그게 아니었다.
‘두껍지는 않지만, 굉장히 단단한 느낌인데.’
그녀의 피부 안쪽에는 마치 내부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금속 재질의 보호막이 들어있었다.
가슴은 심장을 보호하기 위함인 듯 했고, 각 관절, 특히 얼굴과 머리쪽은 더욱 세밀하게 신경을 쓴 모양새였다.
‘엉덩이는... 보형물이 맞는 거 같고.’
여러 모로 괴상한 여자였다.
미국은 저런 식으로 삽입수술을 행하는 걸까.
‘살 속에 저런 걸 집어넣으면, 움직일 때마다 불편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잠시 기다리고 있던 여자가 열린 쪽창 안으로 슬그머니 뭔가를 툭 집어넣었다.
아마도 명함인 것 같았다.
“필요한 일이 생기면 연락해요. 절대 그쪽이 손해볼 이야기는 아닐 테니까.”
“.......”
필요한 일이라.
그런 일이 생길까?
바닥에 떨어져있던 명함을 집어든 최강혁은 열려있던 미닫이 창을 도로 닫았다.
‘연락처네.’
명함은 단순했다.
전면엔 ‘사라 레드우드’라는 이름과 그녀의 연락처가 적혀있었고, 뒷면은 백지였다.
뭔가 조치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주워들기 전에 스캔을 해봤더니, 평범한 명함이었다.
‘일단 갖고 있자.’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은 그는 문득 바닥에서 미미한 진동을 느꼈다. 익숙한 차량의 엔진음이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돌아오셨군.’
인터폰으로 바깥을 보니, 짐작이 맞았다.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문을 열고 나가니, 차에서 내린 고윤호가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안 좋네요.”
“...점점 숨기기가 어렵군요.”
뭐에 시달렸는지 뒷목을 주무르던 고윤호의 뒤쪽으로, 적당히 공터에 주차한 트럭의 운전병이 내리는 게 보였다.
“...어?”
그런데, 지금까지 같이 지내던 이가 아니었다.
“그렇게 됐습니다.”
고윤호는 최강혁이 무엇을 보았는지 아는 듯 먼저 이야기했다.
“어디로 가셨는데요?”
“전투 수송부요.”
“그거....”
“예. 외부 지원을 나가는 보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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