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lado 2

이야기를 들어보니, 종류가 어떤 건지는 몰라도 비슷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이 있었다는 것 같았다.
“망가진 물건들을 고치는 일을 했었지. 뭐, 이쪽 것들보단 다른 쪽으로 가는 게 효율이 좋다고 금방 재배치되었지만.”
“아....”
역시, 너무 일을 잘 해서 문제가 된 건가.
최대한 숨길 생각이었는데, 일터가 바뀌자마자 그걸 걸려버리다니. 하지만, 가만히 바라보던 김환수는 이내 뜻 밖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도와줄까?”
“예?”
“숨기고 싶은 거잖아. 이유야 대충 짐작이 가고.”
“숨길 수 있습니까?”
“어렵진 않지. 이쪽에서라면 특별히 사고를 칠 건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끄럽게 굴 생각은 없는 거잖아.”
“예. 조용히 지내고 싶습니다.”
그의 대답에, 김환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야기는 해봐야겠지만, 우리끼리라면 문제는 없을 거다. 다들 저래보여도 입이 무거운 편이야.”
“사무실에 이야기하지 않는 겁니까?”
“그쪽이야말로 조심해야 할 인간들이지. 걸리면 아마 또 재배치 이야기가 나올 거야. 어떤 식으로든 부려먹겠지.”
“그렇군요.”
“어느 쪽이야? 계속 여기서 일해도 되겠어? 아니면 사무실에 이야기할까. 부려먹힌다고는 해도, 여건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을 텐데.”
“...지금의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어디로 보낼지 알 수 없다.
각성자라는 이유로 외부로 내보내서 몬스터를 상대하라고 할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래. 그렇구나.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김환수는 다른 이야기를 이어갔다. 최강혁이 가진 능력으로 어떤 것들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것이었다.
“돈벌이가 된다고요?”
“그동안 평균적으로 나왔던 물량이 있으니까. 네가 맡아주면 그것보다 훨씬 나아지는 거잖아.”
“그건 그렇죠.”
단순한 예비 장비 같은 게 아니다.
그가 손을 대기 시작하면 다시 부대에 지급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 수준이 된다. 다시 말해, 중고로 내다 팔 수 있는 상품을 만들 수 있다.
“캠프 안에서 거래가 됩니까?”
“알게 모르게 시장이 있어. 아주 대량까지 풀 수는 없어도, 소소한 돈벌이는 될 거야. 전투부대는 장비 교체가 잦은 편이거든.
돈을 들여서 수리를 맡기기도 하는데, 전투화는 수리비나 새로 사는 거나 비슷해서.
“아... 그래서 저렇게 버려지는 거군요.”
“그렇지. 아무튼, 네가 원한다면 용돈벌이 정도는 가능할 거야. 어떻게 할래?”
최강혁에게만 혜택을 주는 건 아니었다.
일종의 입막음비로 다른 직원들에게도 일정액의 수수료를 떼어줘야 할 듯 했다.
대신 거래는 그쪽에서 알아서 해줄 테니, 그는 물량만 확보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수량이 일정하게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 뭐, 별 수 없지. 전투화 말고 다른 것도 가능한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음... 일단 알았어. 같이 가서 이야기를 더 해보자고.”
김환수가 나서서 직원들을 모아 이야기를 전하자, 다들 비슷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자가 일반 죄수로 건너올 수가 있나?”
“어떻게 숨긴 거야? 애초에 왜 잡혔어?”
“그 땐 제가 각성한 건지 몰랐습니다.”
“음....”
“그걸 모를 수도 있나?”
“그런가보지 뭐.”
“아무튼, 사무실에 알려야 한다 거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사무실 새끼들한테 걸리면 당연히 뺏기겠지.”
“오히려 놈들이 쉬쉬하면서 이쪽 재생작업에 부려먹으려고 들걸?”
“참. 그럴 수도 있구나.”
각성자가 죄수라니.
막 부려먹기 얼마나 좋은 조건인가.
그것에 불만을 품고 사고라도 친다면 당장 부대에서 몰려와 조치를 취할 텐데.
“난 수수료고 뭐고 안 줘도 되니까, 신참 못 빼가게나 해줘.”
“그러니까. 얼마만에 온 신참인데.”
“그럼 공금 쪽으로 일단 쌓고, 필요한 일 생기면 의견 모아보는 거로 하죠.”
최강혁도 거래 수수료 개념에 대해선 납득했기에 문제 없이 진행시킬 수 있었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은 지금과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적지 않은 혜택을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아예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해선 그 처리 자체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서류상에 기입하지도 않으니까.”
“일정한 재고만 확보하면 나머지는 오케이인 거지. 그래서 저런 가죽이나 전투복 천을 잘 뜯어다가 모아서 팔기도 하거든.”
“그런 걸 사가는 사람도 있습니까?”
“대량으로 싸게 넘기는 거지. 잘 이어붙이면 천막 같은 것도 만들 수 있고... 쓸 곳이야 많으니까.”
“아.”
선임들은 그렇게, 재생 작업을 하고 남는 자투리나 찌꺼기에 대해선 최강혁에게 일임한다고 했다. 어차피 그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쓰레기장이 아니라 보물창고가 될 수도 있겠는데.’
판을 깔아줬으니, 이제 뛰어노는 일만 남았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이 된 최강혁은 문득 선임들의 작업화를 훑어보았다.
“왜?”
“아... 우리 작업화도 고쳐줄 수 있는 건가?”
“같은 계열의 작업화 여분이 있으시면, 가능합니다. 아니면 이쪽 전투화를 새것처럼 만들 수도 있는데, 편하신대로 해드릴게요.”
선임들한테 잘 보여서 나쁜 일은 없다.
당장 여기 저기 흠집이 나거나 구멍이 나있는데도 신고 다니는 것을 보니, 쉽사리 바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 같았다.
그래서 슬쩍 물어보았는데, 역시나 반응들이 좋았다. 예전에 신었던 작업화들을 모아서 가져다주겠다며, 그것들을 짜깁기해서 하나라도 멀쩡하게 만들어주면 된다는 이들도 있었다.
“일단 받아두겠습니다. 제가 잘 모르니, 이름 표시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이름이야 이미 적혀있지.”
“아. 그렇네요.”
매직으로 쓰여있는 안전화 주인들의 이름.
덕분에 따로 분류할 필요가 없어져서, 일단 그것들을 근처에 적당히 모아두기로 했다.
“자, 자. 점심시간 끝나가네. 슬슬 움직이자고.”
“사무실 직원한테 걸리면 곤란하니까, 눈치 잘 보면서 해.”
“애초에 여긴 오지도 않는데 뭘.”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잖아.”
“신참, 고생해.”
“예.”
저마다 한 두 마디씩 건네며 멀어지는 선임들 이후로, 재미있는 신참이 왔다며 어깨를 두드려준 오형진이 털레털레 그쪽으로 향했다.
“억지로 시키는 거 아니니까 부담은 갖지 말고, 그냥 용돈벌이라고 생각해.”
“예.”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김환수는 전투화만 다룰 필요는 없다고도 덧붙였다.
“연습 같은 거 필요하지? 전에 보니까 그런 것 같던데.”
“군인 각성자들이요?”
“맞아.”
“예. 뭐가 되고 안 되는 지 같은 걸 알아봐야 해서요.”
“그럼 적당히 쉬면서 주변에 있는 것들 다 만져봐. 어차피 쓰레기라 신경 쓸 사람도 없으니까.”
“예.”
“녹슨 못 조심하고.”
그렇게 김환수도 떠나고 나니 다시금 오전처럼 혼자 남게 되었다. 아까 전 만들어두었던 전투화 중 몇 켤레는 선임들이 갖고 간 터라 줄어있었다.
‘예비 물자 창고에 있는 것들 중에도 손을 봐야 할 것들이 있긴 했는데... 그쪽은 그냥 두는 게 나으려나.’
고개를 흔든 그는 일단 오전에 하던 일을 이어갔다. 그래도 그때처럼 너무 기분을 내지는 않았다.
‘두 종류로 구분하자.’
적당히 창고에 넣을 것들.
제대로 고쳐서 중고로 팔아먹을 것들.
그렇게 기준을 정하고 나니, 분류작업이 수월해졌다.
마나가 소모되긴 했지만, 자투리와 찌꺼기는 알아서 처리하기로 한 덕에 그렇게 남은 부분에서 회수한 미량의 마나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오히려 남는데.’
아까 듣기로는 전투복 같은 것들의 천을 모아서 판다고 했었는데, 루팅이나 흡수를 하면 실 단위로 분해해서 다시 짜거나 하는 것도 가능할 법 했다.
‘굳이 도로 풀어버릴 것 까진 없겠고... 적당히 합쳐서 큰 천의 원단처럼 둘둘 말아놓을 수는 있겠네.’
해볼만한 일이 많았다.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물량만 작업을 미리 끝내놓은 그는 그것들을 아직 분류되지 않은 전투화들로 덮어 가려놓고 주변을 조금 돌아다녔다.
‘이쪽은 전투복하고... 활동모도 있네. 부대에서 한꺼번에 쏟아버리고 간 건가.’
전투복의 경우에는 분류 기준이 조금 달랐다.
그렇게 버려질 정도라면 일단 오염되었거나, 아니면 손상되었을 경우라고 보면 되었다.
‘이렇게 대충 버려도 되는 건가.’
버려야 할 정도로 오염되었다면 쓰레기장이 아니라 소각장으로 보내야 맞지 않나?
몬스터의 체액이나 분비물로 뒤엉겨붙어 굳어버린 것들을 보니 같은 생각이 더 강해졌다.
“...어.”
하지만, 살짝 찌푸리고 있던 미간은 곧 스르르 펴졌다. 단지 몬스터의 분비물 덩어리로 보였던 것들이, 스캔 결과 꽤 괜찮은 양의 마나를 품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와... 이거.’
이러면 정말 쓰레기장이 아니라 보물창고가 되는 건가?
일단 가능한 만큼만 루팅하고 마나를 뽑아내니, 잔뜩 엉겨 굳어있던 분비물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약간의 검은 가루 정도만 남게 되었다.
‘시스템 설명대로라면 인체에 해가 가진 않는다는 거네. 막 버려도 되겠다.’
워낙 고운 가루여서,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바람에 날아갈 정도였다. 적당히 바닥에 버리면서 계속 작업을 이어가니, 한데 뭉쳐있던 버려진 전투복들이 깔끔한 상태로 돌아왔다.
개중에는 손상된 것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냥 입어도 문제 없을 만한 상태가 더 많았다.
‘이래서 버린 거구나.’
그렇게 안쪽을 헤집어보던 최강혁은 장갑에 묻어난 찐득거리는 액체를 보았다. 마치 적당히 굳어버린 본드와 비슷한 질감이었는데, 떼어내려고 해도 잘 떼어지지가 않았다.
‘이정도면 세탁하기도 번거로울 테고 말이지.’
집으로 챙겨갈 만한 전투복이 많았다.
군인 외에는 입지 못하게 되어있었지만, 어디서들 구했는지 바지 정도는 공무원이나 일반 직원들도 입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죄수한테까지 허락하진 않을 것 같긴 한데.’
혹시 이런 것도 중고 거래가 가능할지 모르니 일단 한쪽에 잘 정리했다.
〈 10화 〉 010.
010.
‘오익훈이라....’
그 때 문득 보게 된 옷.
누군가의 전투복 상의였다.
‘심각한데.’
한쪽 옆구리가 크게 찢어져있었고, 그 주변에 피로 보이는 얼룩이 잔뜩이었다. 그 주인이 어떤 상태였는지 짐작이 갔다.
‘죽지는 않은 건가? 설마 죽은 군인의 전투복을 이렇게 아무렇게나 버리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어쩌면 정말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냥 버리지 않고 오염된 부분을 깨끗하게 만들어둔 후에 별도로 개어두었다.
“잘 되어가?”
그 때, 생수병 두 개를 들고 온 김환수가 그 중 하나를 휙 던져주며 물었다.
“전투복 보네? 전투화는?”
“너무 많이 하면 곤란할 것 같아서요.”
“그건 그렇지. 오는 사람이 없다고는 해도, 혹시 모르니까. 그나저나....”
따로 분류해둔 전투복들의 상태를 확인한 김환수는 역시, 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윗도리는 거래가 안 돼. 그나마 바지는 작업복으로 입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도 꽤 봤습니다. 그냥 넘어가는 건가요?”
“뭐. 그렇지. 위에만 다르게 입으면 군인하고 구분이 되니까.”
하지만 중고 거래는 거의 없다는 모양이었다. 쓰레기장에서 나온 전투복은 뭐가 묻어있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것도 맞네요. 그러면 예비 물자로 몰아넣는 겁니까?”
“글쎄. 전에는 그랬는데, 그쪽도 창고 하나가 꽉 찬 지 오래라서 말이야. 여기 이렇게 계속 쌓아두기만 하던 것도 그래서고.”
나름의 용돈벌이가 된다고는 하지만, 그러려면 실밥을 풀고 천 단위로 잘 정리해야 하기에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이름표도 다 떼어야 하고... 차라리 일찍 퇴근하는 게 나은 거지. 여기서 추가수당 벌어봐야 딱히 쓸 곳도 없고.”
그나마 예전엔 그런 소일거리를 할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워낙 본업 쪽에 일손이 부족할 정도라 쳐다볼 겨를도 없다는 모양이었다.
“야간 추가수당이 있다던데... 저도 해당 되는 겁니까?”
“왜. 야근하려고? 해도 되긴 하지. 근데 야근은 이쪽 말고 저쪽 일반 쓰레기장에서 해야 할 거야. 엉뚱한 데서 시간만 보낸다고 할 수 있으니까. 그쪽이 사무실에서 카메라로 볼 수 있기도 하고.”
“카메라요?”
“보안 카메라. 직원 감시용으로 단 건 아닌데, 겸사겸사 그렇게 쓰이는 거야. 누가 빈둥대면 뭐라 하기도 하고.”
“아....”
“아무튼 그래. 이쪽은 뭘 어떻게 하든 아무도 뭐라 안 하니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껏 해봐. 딱 하나만 지키면 돼.”
“외부 반출 금지요.”
“완전히 해체하면 상관 없어. 하의 같은 건 혼자 쓸 거면 괜찮고.”
“신경 쓰겠습니다.”
“그래. 야근할 거면 미리 말해두는 게 좋을 텐데, 어떻게 할래?”
“저녁도 그 식당에서 먹는 겁니까?”
“아니. 점심만. 왜. 양이 부족했나?”
“조금 그렇더군요.”
“진짜야? 하하. 먹고 싶은 데서 먹으면 돼. 어차피 저녁은 사비로 먹어야 하거든.”
“아.”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었다.
“그러면 혹시, 야근이 없어도 이곳에 남아있으면 문제가 될까요?”
“아. 그런 건가.”
김환수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물자 창고 쪽만 안 가면 될 거야. 나갈 때 빈손으로 가면 되고.”
“그렇군요.”
“대신 언질 정도는 주는 게 좋을 텐데... 그건 내가 말해줄게. 어차피 저쪽에서 용돈 버는 건 사무실에서도 알고 있으니까.”
“그래주시면 고맙죠.”
“그러면 그렇게 알고... 어, 왜?”
“아까 부탁하신 것 있잖습니까.”
“안전화? 벌써 됐어?”
“이따가 드릴까요?”
“아니 뭐, 곧 퇴근 시간이니까 지금 받지 뭐.”
별로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 같던 김환수는 정작 최강혁이 조합스킬로 짜깁기해 만들어준 자신의 안전화 두 켤레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 ...이야. 이거 진짜 내가 신던 것들이네. 섞여있어.”
“좀 더 신경 썼습니다. 사수시니까요.”
“아부도 떨 줄 알고. 아무튼, 잘 신을게. 한 켤레면 된다고 했는데 두 켤레나 해줬네.”
안전화라는게 요즘은 그리 비싸진 않다지만, 이쪽에선 사정이 조금 달랐다.
아무래도 지구 쪽에서 넘어오는 만큼 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가격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건 묵직하니까. 쓸데없이 비싸지지.”
“그런 거군요.”
“다른 사람들 것도 하고 있는 거지? 내것만 두 개 먼저 해주면 눈치 보이는데.”
“예. 늦어도 내일 오후까지는 될 겁니다.”
“그렇게 빨리? 뭐, 알았다.”
김환수는 두 켤레의 안전화를 가만히 살펴보다 그 앞에 서있던 최강혁을 보았다.
“너 하나 할래?”
“아. 저는 자투리들 모으면 하나 정도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아무튼 퇴근 시간 되면 아까 점심 때처럼 소리 들릴 거니까, 그 이후엔 가고 싶을 때 가면 돼. 출근 시간만 늦지 않게 신경 써주고.”
“알겠습니다.”
김환수가 왠지 신이 난 듯한 얼굴로 떠나고, 최강혁은 앞으로 이곳에서 무얼 해야 할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단순히 용돈 벌이나 하는 건 시간 낭비일 것 같아. 중요한 건 나 자신의 성장이야. 특히, 스킬과 신체를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해.’
스킬도 스킬이지만, 육체 자체의 강화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동안 틈틈이 간단한 맨손운동 정도는 해보고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저녁은 이전에 일하던 식당에서 먹으면 되겠어. 뷔페식이니까, 눈치 안 보고 많이 먹을 수도 있고.’
더 이상 남들 다 나가고 난 후에 조용히 들어가 남은 것들을 먹지 않아도 된다.
‘그나저나, 새로 온 죄수들은 어떤 이들일까.’
사형수가 둘이라고 했던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좋겠는데.
‘아. 전투복도 정리해야 되고.’
미리 빼어둔, 버려야 할 상태의 전투복들을 가능한 만큼 인벤토리에 채워넣은 그는 그 안에서 각각의 옷을 천 단위로 되돌렸다.
‘마나 소모량은... 괜찮네.’
이름표를 제거하고, 박음질된 실을 빼내고, 달려있던 주머니들도 떼어내고 나면 여러 모양과 크기의 얼룩무늬 천이 되었다.
그 상태에서는 딱히 쓸모가 많지 않았지만, 같은 것들을 하나로 이어붙이게 되면 하나의 원단이 되었다.
‘1미터는 좀 애매하니까 2미터로 갈까.’
인벤토리 공간이 넓지 못한 탓에, 거의 구겨진 상태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터라 펼쳐진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옆에 떠오른 별도의 창을 통해서 현재 작업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게 한계네.’
대략 2미터 폭에 길이 1미터가 조금 안 되는 원단이 만들어졌다. 그 재료가 재료인 탓에 자잘하게 닳은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찢어진 부분은 없었다.
‘전투 쪽 스킬을 받았으면 더 좋았을까.’
문득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나마 있어서 뭐라도 할 수 있는 거니까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애초에 머리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는지 학교 성적이 그리 대단치 못했다.
집안 사정이 그래서 그랬다는 건 결국 핑계일 뿐이다.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상황에서도 제 몫을 다하고 역량을 키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머리가 좋아지는 스킬은 없나?’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시답잖은 생각을 스스로 흩어낸 그는 새로 만들어낸 얼룩무늬 원단을 인벤토리 안에서 잘 개어 그 상태로 꺼내 적당히 감추었다.
앞으로 그곳에서 작업을 하며 틈틈이 만들어 덧붙일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그만큼 인벤토리 확장이 필요하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했다.
‘근데, 원단으로 만드는 건 좀 오바인가? 둘러댈 핑계가 없는데.’
둘둘 감는 방식이 아니라, 차라리 가로세로 1미터 정도로 나누어서 쌓아두는 게 나을까.
‘이건 나중에 기회되면 사수한테 물어보자.’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아무나 믿어선 곤란하겠지만, 일단 첫인상은 그랬다.
-퇴근할 사람 퇴근! 안 할 사람은 저녁 먹자! 퇴근할 사람 퇴근! 안 할 사람은 저녁 먹자! 퇴근할...
“.......”
아까와 비슷한 식으로 들려온 안내 방송.
역시나 녹음된 목소리였고, 최강혁은 주섬주섬 챙길 것을 챙긴 후에 탈의실로 향했다.
‘일반 식당 쪽은 작업복을 입고 가지 못한다고 했으니까.’
일터에서 일정 거리 바깥으로 나가려면 그에 맞는 복장을 걸쳐야 한다고 했다.
직원 식당은 그 범위 안쪽이라서 그대로 가도 되지만, 그 바깥은 아니었다.
“오. 신참 퇴근?”
“아. 일단은요.”
“신참 여기 있네? 이따 다시 올거라면서?”
“뭔데?”
“아. 사무실에서 들었는데, 그쪽 있잖아. 전투복 그거. 혼자 그거 해본다고 했대. 야근 말고.”
“아. 그거 손 많이 가는데.”
“가위 같은 건 있고? 아까 보니까 도구도 없는 것 같더만.”
“사무실에서 안 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잖아. 칼이나 가위는.”
“무기를 지녀도 괜찮다고 듣긴 했습니다. 사고만 안 치면요.”
최강혁이 멋쩍은 얼굴로 대답하니, 우려하던 얼굴의 선임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모범수라고 소문이 자자하긴 해. 애초에 과실치사면 운이 나빴던 거 아냐.”
“운이 얼마나 나쁘면 여기까지 오냐.”
다시금 수다가 시작되었다.
아저씨들도 이렇게 수다스러울 수 있다는 건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
“강혁이.”
“예.”
그 때, 탈의실로 고개를 들이민 김환수가 그를 불렀다. 이곳에 와서 이름으로 불린 게 처음이라 살짝 놀랐는데, 아마도 그만큼 좋은 인상을 준 듯 했다.
“이따 다시 올 거지?”
“예.”
“그래. 말은 잘 되었으니까, 문제 안 생기게 조심하고. 그쪽은 일단 너한테 맡기기로 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것들 소각장으로 실어 나르는 것까지 맡아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소각장이 어딘지는 알고?”
“잔반 처리할 때 봤습니다.”
“됐네, 그럼. 알았다. 밥 잘 먹고 와.”
“같이 안 가는 거야?”
“그러게. 옷 갈아입는 거면 저쪽 식당으로 가나보네.”
“직원 식당은 양이 부족하대잖어.”
“아하! 아까 봤지.”
다시금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옷을 다 갈아입은 최강혁은 적당히 눈치를 살피며 빠져나왔다.
‘무시당하는 것보단 낫지.’
수다쟁이 아저씨들 사이에 뒤섞여있는 건 피곤한 일이지만,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고 배척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게 뷔페 식당까지 걸어가던 그는 문득 옆에서 멈춘 트럭의 짧은 클락션 소리에 발을 멈추었다.
“어?”
“맞네요. 어디 가요?”
취사장 운전병이었다.
트럭에 뭔가 잔뜩 실려있는 거 보니, 아마 보급품을 수령하고 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짐칸에 타고 있던 군인 몇 명도 이미 안면을 익힌 이들이어서, 눈이 마주치자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는 게 보였다.
“저녁을 먹으려고요. 오늘부터는 일터가 바뀌어서.”
“아. 들었어요. 보기도 했고.”
“어떤가요?”
“음...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왠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 운전병은 그쪽으로 갈 거면 같은 방향이니 잘 되었다고 했다.
“제가 타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런가... 거기 옆에 발판 있죠? 올라탈 때 밟는 거. 그거 밟고, 그 옆에 거기 손잡이 그거 잡아보세요. 예. 그거.”
“오.”
운전병이 가르쳐준 대로 트럭 옆에 단단히 붙으니, 멈춰있던 트럭이 다시금 천천히 출발해 속도를 올렸다.
어차피 캠프 내에서 과속을 할 일도 없었으니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고, 머리와 얼굴, 목을 훑고 지나가는 공기가 나름 시원했다.
“금방 왔네요.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요. 고생해요.”
“예.”
그를 내려준 트럭이 다시금 멀어졌다.
최강혁은 바람을 맞느라 흐트러진 옷 매무시를 고치고 식당 정문으로 향했다.
‘이쪽으로 들어가보는 건 처음인데.’
손목에 차고 있던 단말기 화면을 켜서 지불용 앱을 실행시킨 그는 얼핏 본 적이 있던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제가 이쪽으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혹시나 문제가 될까 물어보니, 이미 전후사정을 알고 있는지 아무 문제 없다며 입장료를 받았다.
“.......”
그렇게 들어간 식당은 생각만큼 많은 이들이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평소 보지 못했던 떠들썩한 내부 풍경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 이제 접시에 담아서 한번씩 먹어야 하는구나.’
언젠가부터는 아예 각 요리 앞에서 재빠르게 먹고, 흡수하고, 루팅하는 것에 익숙해져있었다.
이제 일반인들처럼 먹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그는 가장 큰 접시를 들고 줄 뒤에 섰다.
〈 11화 〉 011.
011.
‘시비를 걸진 않는군.’
얼핏 얼핏 그를 아는 듯한 얼굴로 흘깃거리는 이들이 없진 않았지만, 막상 저들끼리 수군거리긴 해도 다가와서 트집을 잡거나 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이상하게도 별로 안 친했던 이웃 건물 사무실의 직원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눈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뭐지.’
내가 그렇게 모범수였나.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반응.
어느새 접시 하나를 가득 채운 그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티나지 않게 많이 먹자.’
고작 한 바퀴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산처럼 쌓거나 하는 건 하수였다. 무난한 양으로, 조용히 반복하면 된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았을까.
다시금 인벤토리 한 칸의 제작이 완료되었다는 시스템 안내가 떴을 때, 옆에 다가온 이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잔반 담당자였다.
“잘 되었구만. 이제 평범하게,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고.”
“눈치는 지금도 좀 보는데요.”
“음? ...아아.”
슬쩍 주위를 돌아본 담당자는 별 거 아니라고 했다. 위쪽에서 죄수 평가를 하며 주변 평판을 조사했는데, 그러면서 이래저래 그에 대한 소문들이 퍼졌다고.
“그... 사연도 퍼진 모양이야. 누이를 구했다고.”
“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뭐, 어느 쪽에서 보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니까.”
변호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아마 그런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것 같다.
상대가 쌓아온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면 설득력이 있었을 거라던데, 그게 아니어서 별로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
‘차라리 잘 됐지.’
당시엔 별 생각 없이 멍해서, 그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그러지 말라고 할 것이다.
‘내 악행을 정당화하려고 상대를 깎아내릴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앞에 앉아서 안 가고 있는 걸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머뭇거리는 모습이, 평소 보지 못했던 태도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게 말이야. 새로 온 죄수들 있잖아.”
“예. 이곳에서 일을 시키기로 했다고....”
“그래.”
“문제를 일으킨 겁니까?”
“아니. 아직 별 일은 없어. 일도 나름대로 애쓰는 것 같고. 근데, 뭐라고 해야 하나. 나이도 있고 해서인지 체력들이 안 좋더라고.”
말을 꺼내기 시작한 담당자는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이야기했다. 죄수들 셋이 애를 쓰긴 하는데, 그가 혼자서 하던 때보다 효율이 안 좋다고 말이다.
‘그야, 나는 각성자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점심에 나온 잔반을 다 처리하지 못한 상태라는 건 문제가 있어보였다.
“행정 사무실에도 이미 보고를 해뒀거든.”
“.......”
효율의 문제를 이유로 그를 복귀시킬 수도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 일은 이쪽 식당 직원들이 하던 건데. 이제와서.
“그래서 말이야.”
“예.”
“저녁 잔반만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
“예?”
“사무실에서 했던 이야기거든. 일단 일을 시키되, 퇴근 시간 이후에 남은 잔반은 알아서 처리하기로 말이야.”
애초에 죄수들의 체력을 빼놓기 위한 목적이 커서, 잔반 수거 상황 같은 건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게 사무실 입장이라는 것 같았다.
어차피 죄수들은 아침 잔반을 처리할 때부터 체력이 바닥나있었고, 이대로라면 밤새도록 일을 해도 다 끝내기 힘들다고.
“그렇게 내일 되면 또 아침 잔반이 생기겠지.”
“그렇죠.”
눈에 선하다.
담당자가 무엇을 우려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잔반은 하루만 지나도 슬슬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일이 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저야....”
저녁을 공짜로 주고, 그 때 남은 식당 음식을 차지할 수 있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뭐라 대답하려 할 때 손을 들어올린 담당자가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물론 공짜로 해달라는 건 아니야. 그동안 줬던 수당만큼은 아니어도, 적절하게 분배해서 챙겨줄게.”
“어... 그럼 좋죠.”
“해줄 수 있어? 그쪽 바쁘지 않아?”
“적성에 맞는 것 같더라고요. 저녁에 퇴근도 가능하니까, 이쪽에서 식사하고 잔반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녁 식사는 기존처럼 할 수 있죠?”
“그거야 당연하지.”
앞으로는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서 죄수 셋에게 식사를 주고, 그 이후에 최강혁이 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정리되었다.
“어때요?”
“만나볼래? 딱히 추천하고 싶진 않지만.”
“사형수가 둘이랬죠?”
“맞아. 교도소에 오래 있던 것 같더라. 사형 집행 안 하잖아.”
“그렇죠. 죄목은 모르고요?”
“입에 담기 좀 그런데.”
들은 게 있는 걸까.
주변을 돌아본 담당자가 거의 귓속말을 하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연쇄살인범만 두 명이라.’
사형수가 아니라던 이도 죄목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왠지 사람들이 그를 모범수로 생각하는 게 그런 이유 때문도 있을 법 했다.
‘비교가 되는 걸까.’
그렇게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몇 바퀴를 더 돌았더니 어느새 다른 이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식사시간이 끝났다.
“오늘 배고팠나봐. 그쪽 일이 고되긴 하지.”
“아... 그렇죠.”
평소 그가 먹는 걸 본 적이 없던 담당자는 처음으로 돈을 냈으니 본전을 뽑는 게 맞다며 웃었다.
아마도 잔반을 해결하게 되어서 기분이 좋은 듯 했다.
“그럼, 이제 저쪽 들여보낼 거니까....”
“예. 저는 밖에 좀 있다가 오겠습니다.”
“그래. 이따 뒤에서 보자고.”
조용히 밖으로 나가던 그는 정문 앞에서 슬쩍 식당 안을 보았다. 곧 뒷문으로 들어오는 세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죄수들 같네.’
일단 복장부터 달랐다.
위쪽에서 정책을 바꾼 건지, 미국의 교도소에서 입힐 법한 주황색의 옷으로 통일시킨 모습이었다.
‘아니. 진짜 미국에서 준 거 같은데?’
방향을 튼 그들의 뒷모습을 보니, 등판에 영어로 뭐라뭐라 새겨져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특정 교도소의 약자일까 싶었다.
‘미군이 들어오더니, 저런 것도 지원해주는 건가.’
옷만 다른 게 아니었다.
귀에 살짝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서 다시 보니 두 다리를 채워놓은 족쇄가 보였다. 일정 보폭 이상 다리를 벌리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인 듯 했다.
‘족쇄에... 수갑은 없는 것 같지만, 목에 채운 저건 뭐지?’
마치 영화에서 보았던, 폭탄 같은 게 내장된 장치 비슷하게 생긴 것이 죄수들의 목에 동일하게 채워진 모습이었다.
‘나는 저런 거 없었는데.’
흉악범들이라 만반의 대비를 한 걸까.
정말 폭탄이 들어있는 건 아니겠지?
스캔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리가 멀어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잘은 몰라도, 행동 구속력은 확실히 있는 모양이네.’
셋이 모여있음에도 약간 주눅이 든 모습에, 당장 두 손이 자유로움에도 행패를 부리지 못하는 건 이유가 있어보였다.
“.......”
하지만 순간 순간 보이는 눈빛이 무척 사납고 서늘하게 느껴지니, 역시 위험한 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었어?”
그 때, 뒷문쪽으로 나갔던 건지 건물을 돌아 앞으로 나온 담당자가 그를 불렀다.
“궁금해서 좀 봤어요.”
“뭐, 죄수가 다 그렇지.”
“위험해보이는데, 괜찮아요?”
“뭐, 죄수 한두번 보나.”
담당자는 이 식당을 거쳐간 흉악범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고 했다. 저들의 목에 채워진 것도 지금이 처음은 아니었다고.
“아....”
최강혁은 그제야 자신이 정말 정상참작을 받은 케이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방치하는 줄 알았더니, 나름대로 배려해준 것이다.
“정말 폭탄 같은 건가요?”
“아니. 뭐, 유사시엔 비슷하게 될 수도 있긴 한데... 일단은 억제기야.”
격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도구.
무슨 기술이 들어갔나 했더니, 과학이 아니라 마법으로 만든 거라고 했다.
“예?”
“왜 놀래. 각성자들 중에 저런 거 만들어서 떼돈 버는 사람들 있는 거 몰라?”
“아. 얼핏 본 거 같아요.”
“근데 또 충전은 전기로 한다는 거지.”
“그건 신기하네요.”
착용자의 정신을 압박하여 순종적으로 만든다는 걸까. 그래서 저렇게들 주눅이 든 모습이 된 것 같은데... 정작 저걸 부수면 어떻게 될까 싶기도 했다.
“부순다고? 그럼 터지지.”
“아. 그래서 유사시 이야기가 나온 거군요.”
“나도 그것까진 몰랐었는데. 예전에 시도했던 놈이 있었거든. 그 때 알았지.”
뭘 생각하는지 진저리를 친 담당자는 이어진 최강혁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따로 건물을 지정한 것 같던데. 창고로 쓰던 컨테이너라던가.”
“그래요?”
저들도 자신이 사는 공터에 텐트를 쳐주는 건가 했는데, 역시 흉악범들이라 그렇게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지붕 있는 집에 사는 거 아냐.’
그의 흙집도 지붕이 있긴 하지만, 흙으로 덮은 거라서 비가 올 때마다 보수를 해야 했다.
‘뭐, 이웃이 아니라니까 다행이긴 하네.’
정말 저들이 근처에서 산다면 꽤 불편한 이웃이 될 것 같았다.
“죄수가 더 온다는 이야기도 있더군.”
“그렇게 빨리요?”
“요즘 정책이 조금 바뀌고 있나봐. 여기 말고 다른 정찰 캠프들이 있잖아. 전체적으로 비슷하게 활용하려는 모양이야.”
아예 교도소를 목적으로 한 캠프도 마련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는 것 같았다.
“경범죄 이상은 아예 나라에서 내보내고 싶은 거지. 우리 나라는 범죄자들 형량 낮기로 유명했잖아. 이렇게 내보내기 시작하면 같은 형량이어도 더 강하게 굴릴 수 있으니까.”
“인권단체 이목도 피할 수 있겠네요.”
“뭐, 겸사겸사지. 교도소 운영비도 아낄 수 있겠고.”
이런 저런 목적들이 뭉쳐 한 방향으로의 정책 변화를 이끈 모양이다.
“그러면 이번에도 흉악범인가요?”
“와봐야 알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고. 왜?”
“그냥 궁금해서요.”
새로운 죄수들이 더 들어오게 되면, 그만큼 이곳에서의 생활이 변화할 것이다.
어쩌면 쓰레기장 쪽으로도 죄수들이 추가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모처럼 얻은 기회가 어그러질 수도 있다.
‘퇴근 후에만 작업을 하는 게 좋을까. 낮에는 평범하게 일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담당자가 보이지 않았다. 죄수들도 나름대로 배를 채운 듯 식당 안이 비어있었다.
부르릉-
후문 쪽으로 가보니, 죄수들을 실은 군용트럭이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짐칸에 앉은 죄수 하나와 얼핏 눈이 마주친 것 같았지만, 아무 감정 없는 눈이 곧 다른 곳을 향했다.
“조금 남은 수준이 아닌데요?”
“오늘 잔반이 좀 많이 나와서... 괜찮겠어?”
“저 아시잖아요.”
걸친 게 평상복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끼는 옷도 아닌 터라 갈아입을 필요는 없었다.
“이것들 처리 전에, 식당 쪽 먼저 돌게요.”
“한데 모아서 하려고? 편한대로 해.”
“예. 오늘 당직이세요?”
“마침 그러네. 샤워하고 갈래?”
“그러면 좋죠.”
“그쪽도 샤워장 있을 텐데. 못 쓰게 해?”
“아니요. 오늘은 험한 일을 안 해서요. 내일부터 할 것 같아요.”
“그렇군. 아무튼 난 좀 들어가서 쉴게.”
“예.”
담당자는 사무실로 향했다.
식당으로 돌아간 최강혁은 다시금 접시 하나를 찾아 들고 혼자만의 만찬을 즐겼다.
‘이게 너무 편해졌단 말이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배불리 먹는 느낌도 좋지만, 조용히 혼자 먹는 식사 자체가 무척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인벤토리가 넓어질수록 루팅할 수 있는 양도 많아지고.’
루팅하고, 마나를 빼고, 도로 꺼낸다.
싱싱했던 채소들이 팍 시들고, 고기는 조금만 눌러도 부서질 듯 푸석푸석해진다.
하지만 누가 신경을 쓸까. 잔반인데.
‘이곳에서 계속 일하지 못하게 되면... 음. 요즘은 몬스터 뼈도 잘 안 보이던데.’
마나를 확보할 곳을 더 찾아봐야 할까.
일단 쓰레기장에서 생기는 찌꺼기들도 마나를 갖고 있긴 하지만, 시간에 비해 얻는 양이 많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 급하게 생각하는 건가.’
지금은 식사에 집중하자.
그렇게 평소처럼 만찬을 즐긴 그는 잔반통을 뒷문 밖으로 옮기고 그곳에 있던 리어카를 챙겼다.
“바퀴축이 상했나? 삐걱거리네.”
어제만 해도 멀쩡했는데, 얼마나 험하게 다뤘기에 그런 걸까. 스캔을 해보니, 몇몇 부위가 휘거나 헐거워져있었다.
‘당장 망가질 정도는 아닌데....’
고치고 싶긴 하지만, 그걸 통째로 넣을 만큼 인벤토리가 넓지 못했다.
하여 주위를 돌아본 그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망가진 부분에 손을 가져갔다.
〈 12화 〉 012.
012.
-대상을 흡수하시겠습니까?
-흡수가 불가능합니다.
‘역시, 버려진 게 아니라서 못 하는구나.’
망가진 곳만 흡수를 했다가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그의 소유물이 아니어서 불가능했다.
‘그러면 애초에 인벤토리가 충분해도 소용 없었겠구나. 루팅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단 손과 발로 할 수 있는 만큼만 대충 뚝딱거린 그는 잔반통을 평소보다 덜 싣는 것으로 위험부담을 줄였다.
“고생하십니다.”
“어? 오늘부터 빠지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렇게 됐습니다. 저녁에 남은 건 제가 정리하기로 했어요.”
“아....”
“낮엔 좀 안 좋았나보죠?”
“제 근무시간은 아니었는데, 이야기 들어보니 가관이었다더라고요. 다들 흐느적 흐느적하면서... 여기 얼룩 보이시죠?”
“...쏟았네요.”
“예. 그거 치우느라 시간 꽤 잡아먹었죠.”
처리장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대충 봐도 꽤 밀려있을 것 같았는데. 맞죠?”
“네. 저녁때 잔반은 고스란히 남았죠.”
“사람은 세 배로 늘었는데, 어째 한 분만도 못하네요. 생긴 건 사나워보이던데....”
새로 온 이들이 흉악범들이라는 건 이미 알려져있었다. 직원은 마치 최강혁은 그들과 다르다는 듯 선을 긋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
그게 조금 기분이 좋다가도, 자신이 뭔가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지금의 시선이나 대우가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가져갔던 것들을 처리장에 집어넣은 후, 빈 통을 수거한 최강혁은 다시금 리어카를 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니 담당자를 곤란하게 했던 저녁 잔반들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내일도 오늘처럼 하면 되겠지.’
샤워장에 들어가기 전, 사무실쪽에 들렀다.
복도에서 안쪽을 흘끔거리니 의자를 뒤로 눕혀 거의 눕다시피 하고 있던 담당자가 그를 발견하고 허리를 폈다.
“벌써 끝냈어?”
“뭐, 그렇죠.”
“이야... 샤워할 거지?”
“네. 근데, 저거 리어카 바퀴축이 문제 있는 것 같던데요. 계속 쓰면 망가질 것 같아요.”
“그래? 잠깐만.”
자리에서 일어난 담당자가 그와 함께 가서 리어카를 살폈다.
“아까 그렇게 쿵쿵거리고 하더니만....”
“작은 리어카가 멀쩡하니까 몇 번 더 움직이면 되긴 한데, 그래도 고치면 좋을 것 같아서요.”
“고쳐야지. 아니. 부대 쪽에 여유분 있을 것 같은데... 내일 한번 알아볼게. 그동안은 작은 걸 쓰자.”
“예. 전 좀 씻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 그래. 거기 탈의실 평상에 챙겨놓은 거 있으니까 가져가고.”
“......?”
뭔가 하고 들어가보니,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비누 몇 개와 샴푸, 치약과 새 칫솔 등등이 있었다. 평소 반쯤 쓴 것 위주로 빼주곤 했는데, 이렇게 아예 새것을 주는 건 처음이었다.
‘잘 됐네. 언제든 필요한 것들이니.’
이제 그 정도는 상점에서 구매할 능력이 되지만, 그래도 공짜로 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무래도 운송 비용이 붙는 건지, 지구에서의 가격을 생각하면 몇 배 이상 비싸기도 하고 말이다.
‘모처럼 보람찬 하루였어.’
하루를 제법 충실하게 살았다는 기분.
무척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상은 비록 죄수의 신분이라고 해서 그리 반감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무난하게 가자. 계속 조심하고.’
샤워기 아래에서 물을 맞으며, 최강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는 옷을 입고 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루팅은 하지 못하지만, 걸려있는 휴지를 적당히 풀어서 챙기는 건 시스템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흥미로운 부분이지.’
그리고, 그렇게 뜯어 챙긴 휴지의 경우 흙집까지 가져가면 소유권이 풀렸다.
어떤 식으로 결정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곳곳의 화장실에서 조금씩 풀어 가져간 휴지가 나름 되었다.
“어. 들어가. 내일 보자고.”
“보급품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그거 뇌물이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제가 드릴 말씀이죠.”
담당자가 준 것들을 가방에 잘 채워넣은 그는 흙집으로 복귀해 그것들을 침상 아래 비밀 공간에 정리했다.
또한 그곳에서 꺼낸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인벤토리에 넣고, 새로 가져온 것을 그곳에 이어붙여 하나로 만들었다.
‘휴지심은 구하기 쉬웠지.’
그렇게 만든 휴지는 겉보기에 새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곳곳에서 가져다 쟁여놓은 보급품이 그의 보잘것없는 흙침상 아래에 쌓여가는 중이었다.
‘걸리면 문제되겠지?’
조금씩 가져온 것들이지만, 그냥 보면 멀쩡한 것들을 훔쳐온 것으로 알 것이다.
‘인벤토리가 더 넓어지면 좋겠는데.’
넓으면 넓을수록 좋지 않을까.
물론 감당할 수 있는 마나가 있어야겠지만.
‘그러면....’
침상 밑을 원래대로 잘 막아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풀었다.
오늘부터 체력단련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 시작하려는 것이다.
‘일단은 푸쉬업부터겠지?’
대단한 수련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또 열심히 하면 족할 것이다.
일단은 바닥에 엎드려 푸쉬업을 시작한 그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순수 체력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이런 저런 운동들을 통해 가늠해보았다.
‘체력 회복에도 마나가 쓰이는구나.’
그렇게 또 다른 활용법 같은 것들도 새로 익힐 수 있었다. 인위적으로 마나를 소모시켜 본신의 체력을 회복할 수도 있다는 것.
단지 힘을 쓸 때 보조하는 식으로 소모하는 방법만 알고 있었던 그는 새로운 활용방법에 흥미가 생겼다.
‘내일은 마나를 안 쓰고 잔반통을 들어볼까? 힘들면 이후에 회복을 하면 될 테고.’
체력단련의 일환이라 생각하면 될까.
하지만 마나를 쓰지 않고 들어본 적은 없으니, 일단 그게 가능한지부터 알아봐야 할 듯 했다.
‘하루 하루 충실하게 보내자. 오늘처럼.’
* * *
“강혁이! 강혁이 어딨어!”
“어딨긴, 늘 있는 곳에 있겠지.”
“왜? 뭔데?”
“일 잘하고 있는 신참을 왜 부르는 거야? 사고칠 녀석은 아닌데.”
현장이 떠들썩했다.
마침 점심식사시간 직전이라 미리 나와있는 이들이었는데, 잠시 행정사무실에 갔던 선임 하나가 그를 찾고 있었다.
“기다려봐. 오겠지 뭐.”
다른 이의 말대로였다.
곧 스피커를 통해 밥먹으라는 소리가 터져나오자, 멀리 현장 구석 모퉁이 너머에서 최강혁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제는 쓰레기장의 작업복이 어색하지 않은 모습. 그렇다고 더럽다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단지 첫날의 어색함이나 쭈뼛거림 같은 것이 사라져서 그런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 일한 지가 벌써 두 달을 훌쩍 넘어갔다.
듣기로는 저녁시간마다 뷔페식당쪽의 일까지 돕는다는 모양인데, 아마도 본인의 의지라기보다 위에서 시켜서 불려다니는 게 아닐까 다들 생각했다.
“예? 저를 찾으셨다고요?”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찔러넣던 최강혁은 누군가 그를 찾는다는 말에 의아해했다.
“뭐 확인할 게 있어서 행정사무실에 갔었거든. 거기서 네 이름이 들리더라고.”
“......?”
“각성한 걸 알아낸 것 같았어.”
“뭐야?”
“어떻게 알았지?”
“누가 씨부린 거야?”
“나 아니야! 왜 날 보냐.”
“아니. 아니야. 우리 아니라고.”
이야기를 가져온 이가 두 손을 내저었다.
“지난 주에 전체적으로 건강검진 했었잖아. 피검사도 하고.”
“아... 그거 있었지.”
최강혁도 기억났다.
단순한 검진이라고 했었다.
이곳은 지구와 유사한 환경이긴 해도 아주 동일하지는 않기에, 주기적으로 검사를 해서 혹시 모를 풍토병 같은 것에 걸리지 않았는지 알아보는 거라고.
“참. 그 때 피검사도 했었지.”
“생각도 못했네.”
각성자의 혈액은 일반인과 조금 다른 성질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단순히 뜬소문 같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피검사를 거부할 수도 없던 일이었고, 당시로서는 아무렇지 않게 했더니 걸려버린 건가.
“그래서?”
“어떻게 할 거래?”
“그건 모르겠어. 그쪽도 시끄러운 것 같아.”
조용히 지내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수.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각성자라니.
캠프가 발칵 뒤집힐 만한 일이었다.
부르릉-
그 때, 현장 입구 쪽에서 몇 대의 차량이 달려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군용 트럭과 행정 사무소의 공용차량이 섞여있었다.
“아무래도 식사는 저 빼고 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니지. 뭐라고 하나 일단 지켜보자고.”
여차하면 몸으로 지켜주기라도 할 것처럼 소매를 걷어붙이는 선임도 보였지만, 사실 그들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최강혁씨?”
긴장이 역력한 표정.
소총을 든 군인들은 상당한 경계심을 보였다.
각성자가 죄수로 들어온 적은 없었다는 걸 예전에 파악해두었다.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예. 접니다.”
“잠깐 본부로 가주셔야겠습니다.”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데?”
“우리 직원인데 왜 마음대로....”
몇몇 선임들이 나섰다.
특히 그의 사수 역할을 하던 김환수가 목의 힘줄을 돋우며 격하게 반응했지만, 군인들이 총을 고쳐드는 동작 하나에 다들 멈추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걱정 마시고 식사들 하세요.”
최강혁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야기했다. 굳이 그들을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사실 그 또한 별다른 우려가 없었다.
‘언제 들켜도 들킬 거였지.’
오히려 오래 버텼다고 할 수도 있다.
공무원과 군인들을 따라 트럭 뒤에 올라타니, 맞은 편에 앉은 군인들이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허튼 생각을 하진 않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정말입니까?”
군인들 중 하나가 슬쩍 물었다.
얼핏 기억이 나는 얼굴이었다.
아마 취사반 잔반을 식당으로 가져왔을 때 지원을 나왔던 이들 중 하나였던가.
“뭐, 그렇게 됐습니다.”
무엇을 묻는지 알았다.
군인 역시 그가 한 말을 알아들었다.
“전투 계열은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각성자는 모두 전투에 능합니다. 스킬의 차이와 별개로요.”
군인은 각성자들에 대해 뭔가 아는 듯 했다.
하긴, 군인들이니까 더 많이 알 수 있겠지.
‘저 말이 맞긴 해.’
그가 가진 고유 스킬이 전투에는 딱히 쓸모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신체는 아니었다.
그동안 마음먹고 체력단련을 행한 결과, 또한 특정한 부위들을 지정하고 성장시킨 덕에 지금 그의 신체는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도 제법 달라진 상태였다.
[사용자 내용]
이름 : 최강혁
나이 : 22
키 : 178 센티미터
몸무게 : 81 킬로그램
키는 5센티미터가 자랐고, 몸무게는 거의 20킬로그램이나 늘었다. 살이 찐 게 아니라, 근육이 붙어서 그런 것이었다.
조금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어서 잘 못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요즘은 샤워장에서 감탄하는 선임들이 많았다.
“문제가 될까요?”
이번엔 그가 군인에게 물었다.
선탑좌석에 앉아있을 공무원에게 묻는 게 확실하겠지만, 왠지 지금은 가만히 앉아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마침 대화하고 있던 이를 본 것이다.
“캠프 사령부 쪽과 이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군 쪽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고요.”
생각보다 많은 걸 들었다.
어차피 알게 될 내용이니 말해줘도 무방한 걸까.
“미군이요?”
“단순 문의였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는 거겠지요.”
각성자는 그 능력에 따라서 타국의 스카웃 제의를 받기도 한다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개중에 아주 희귀하고 대단한 스킬을 가진 경우에는 스포츠 스타 못지 않은 연봉을 보장받고 건너가기도 한다던가.
때문에 돈 많고 국력 강한 나라들이 약소국의 인재들을 빼가는 일이 많아져서, 어떤 나라들은 각성자들을 강제로 구금하는 경우도 있다는 소문이었다.
“다 왔군요.”
그렇게 대화를 주고 받는 동안, 그가 타고 있던 트럭은 이곳에 와서 접근조차 하지 못했던 초소를 지나 그 안쪽으로 진입했다.
캠프 사령부.
그곳엔 이미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 인물들이 있었다. 행정 사무실 근처에서 본듯한 얼굴도 있었지만, 그 표정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 13화 〉 013.
013.
“안으로 들어가시죠.”
“아, 예.”
촌놈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최강혁은 군인들의 안내를 따라 건물 안으로 향했다.
‘보안 수준 대단하네.’
어딜 보든 시야의 사각이 없을 것처럼 촘촘하게 배치된 카메라들이 있었다.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언뜻 회의실로 보이는 곳에 무척 많은 이들이 모여있는 게 보였다.
-저 사람이야?
-그런가본데.
수군거리는 이들이 보였다.
하긴, 캠프 안쪽에도 생활 시설이 다 갖춰져있어서, 굳이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듣긴 했다. 그를 처음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 저쪽인가요?”
그 회의실로 들어가는 건가 했는데, 옆에 있던 군인이 아니라는 듯 앞쪽을 가리켰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조용한 집무실이었다.
한쪽에 자리한 책상 위에는 ‘부사령관 양호석’ 이라는 명패가 놓여있었다.
“반갑습니다. 양호석입니다.”
소파에서 그를 맞이한 인물.
역시나 처음 본 사람이었지만, 그는 마치 오랜 지인을 대하듯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똑같네.’
악수를 청하는 양호석의 등 너머.
벽에 걸려있는 액자 속 사진의 그가 마치 복사라도 해놓은 것처럼 동일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
바지에 문질러 닦은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으니, 가볍게 흔든 양호석이 어서 앉으시라며 사람 좋게 말했다.
“커피 좋아하십니까?”
“아, 예.”
딱히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차를 맛으로 먹는 사람은 아니어서.
“커피 두 잔, 아니지. 세 잔 부탁하지.”
“예. 사령관님.”
얼른 답하고 움직이는 군인이 보였다.
근데 방금 전 양호석에게 답한 칭호가 살짝 이상했다. 명패는 부사령관이라고 새겨져있었는데.
‘물어보면 안 되는 걸까.’
이럴 땐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다.
조용히 앉아있으니, 슬쩍 그를 빼놓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니. 그가 오기 전까지 있었던 대화가 다시 이어지는 것 같았다.
‘이쪽도 결국 정치질이군.’
행정본부쪽 공무원일까.
부사령관과도 저렇게 대놓고 각을 세워 말할 정도면 아마 그 못지 않게 위쪽에 있는 사람 같은데, 아무래도 양쪽의 의견 차이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공무원쪽하고 군인 쪽이 두 파벌로 갈라져있는 건가.’
공무원들은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많은 분야에서 그의 능력을 쓰고 싶어 했다.
아직 스킬의 종류를 알지 못하니 일단 알아보자고 하고는 있지만, 적어도 그를 놓아줄 생각은 없는 게 확연히 보였다.
반면 군부는 당연하게도 각성자는 전투에 쓰이는 게 맞다는 입장이었다.
애초에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부여된 힘이라는 이야기가 지구에서도 중론으로 취급받았으니.
“그런 능력으로 잔반을 치우고, 쓰레기를 헤집는 건 국가적 낭비 아니겠습니까?”
“전투라면 이미 우리 베테랑 군인분들께서 아무 문제 없이 수행하고 계시다 알고 있습니다. 본국에서도 아주 칭찬이 자자해요.”
“그건 그렇지만....”
“지금 이대로만 하셔도 곧 공석을 메우시게 될 텐데, 왜 조바심을 내십니까?”
“허험. 험.”
그렇게 진행된 대화.
중간에 최강혁에게도 약간의 질문 같은 게 왔지만, 그다지 영양가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캠프 사령관이 공석이었구나.’
다만 최강혁은 두 남자의 대화를 통해서 지금의 캠프 상황과 두 집단의 구조에 대해 대강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게 되었다.
‘부사령관을 사령관이라 부르는 건 이미 내부적으로는 내정되었다는 분위기여서 그런 것일 수도, 아니면 이 사람의 자리 욕심이 강해서 그렇게 부르라 지시한 것일 수도 있겠지.’
권력 지향적인 군인이라.
하긴, 이쪽 군인들은 직위는 존재해도 계급은 없다고 들었다.
‘호봉보단 직위가 올라야 봉급이 확 뛴다고 했었지.’
취사장 운전병이 말했던 기억이 있다.
모두 직업군인이고, 현역하고는 다르다고.
애초에 이런 곳에 징집된 현역병들을 보냈다간 그 가족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일종의 용병이라고 했었어. 국가가 운영하는 용병.’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전히 설전을 주고 받던 두 남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결정의 시간인가.’
선택권이 그에게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죄수가 어떻게 거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자신 쪽을 고르면 그만큼의 명분이 생긴다는 것일 테지만, 선택받지 못한 쪽은 당연히 반감이 생길 터.
“복잡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전 죄를 지어서 이곳에 왔고, 그 죄를 반성하며 보내는 중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꺼냈다.
가식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보니, 입을 열기 시작하자 술술 이어졌다.
“그러니까... 높은 급여나 혜택 같은 걸 이야기할 입장이 아닐 것 같습니다. 지금 받고 있는 대우에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 두 사람의 표정이 저마다 조금 묘해졌다. 그래도 공무원 쪽이 살짝 밝아진 얼굴이긴 했는데, 현상 유지를 이야기한다면 그쪽이 유리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물론 캠프에서 제게 요구할 일이 있다면 제가 가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부대 쪽에서 제 능력이 필요하시다면 도울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부사령관이 슬쩍 앞으로 당겨앉았지만, 말이 다 끝난 것이 아니기에 뭐라고 끼어들지는 않았다.
“다만, 제가 현역으로 군대를 마치긴 했어도, 몬스터를 상대하는 전투에 능하지는 못합니다. 각성을 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대 몬스터 전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요.”
부사령관이 자못 진지한 얼굴로 동의했다.
왠지 이어질 이야기도 짐작하는 듯 했다.
“이미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부대라고 하셨는데... 제가 굴러온 돌처럼 갑자기 들어가버리면, 오히려 유지되고 있던 기강이나 균형이 흔들릴 것 같습니다.”
끄덕 끄덕.
부사령관은 억지를 쓰지 않았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그는 최강혁이 우려하는 부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비전투 쪽의 일이 있다면, 그 부분은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서 돕겠습니다.”
“음....”
공무원도 부사령관 못지 않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최강혁은 그 정도로 이야기를 끝냈다.
진지한 더 길게 이어갈 만큼 말재간이 좋은 것도 아니니,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전하면 충분하다 여겼다.
“비전투 분야라... 그러고보니, 조합이라는 고유 스킬을 보유하셨다고 했지요?”
“예. 맞습니다.”
두 남자가 대화하는 와중 중간중간 물어보던 것 중 하나가 그가 지닌 스킬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무리 혈액 검사를 통해서 각성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고 해도, 그가 가진 정확한 능력까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숨길 수 있었지.’
각성자라고 으스대며 되는 대로 떠들었다면, 가진 스킬을 전부 알려주었을 터.
하지만 먼저 다른 이들의 이야기부터 듣다보니 스킬이라는 게 모든 각성자가 동일한 숫자를 받는 건 아니라는 걸 먼저 알게 되었다.
‘기본 스킬도 마찬가지고.’
기본 스킬은 당연히 모두에게 주니까 기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본스킬들 중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보통 2개가 생기고 가끔 3개를 가진 이가 나온다던가.
“기본 스킬이... 신체강화, 그리고 루팅.”
“예. 맞습니다.”
스캐닝을 감췄다.
신중하게 결정한 건 아니었다.
보통 신체강화와 루팅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나머지 하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유 스킬의 경우엔 각성자들마다 케이스가 다르다고 했다. 누구는 5개를 가진 이도 있지만, 아예 하나도 받지 못한 각성자도 있다던가.
‘아예 없다고 하긴 좀 그랬으니.’
왠지 흡수스킬보단 조합 쪽을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대신 그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대폭 축소해서 설명했다.
“조합이라... 비슷한 스킬을 들어본 적이 있지요. 개중엔 스킬 이름이 같아도 내용이 다른 경우도 많아서, 정확히 그것과 동일한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부사령관은 이미 그가 자신의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어디 일을 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듯 했다.
맞은 편에 앉은 공무원의 눈썹 끝이 살짝 꿈틀거렸지만, 반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까 제가 제대로 적지를 못해서... 조건이 어떻게 되었었지요?”
부사령관의 물음에, 공무원 역시 비슷한 듯 자신의 수첩을 꺼냈다.
휴대폰의 메모 어플 같은 게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의 수기 작성이라니.
그런데 그게 또 어울렸다.
“일단, 루팅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하고... 동일한 형식이어야 합니다. 공산품 같은 경우가 되겠죠. 그러면 망가진 부분을 한쪽으로 몰아주거나 해서, 멀쩡한 하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더 크게 망가진 상태가 되고요.”
“그렇습니다.”
“흥미롭군요.”
그런 능력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
당장 생각나는 건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부서진 무기들을 복구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망가졌지만 차마 버리지 못해 쌓아두기만 한 것들 중 일부라도 재생시킬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니까.
“루팅이 가능해야 한다는 거지요.”
“예.”
하지만 그 조건이 걸렸다.
각성자는 아니지만, 부사령관은 군인이어서인지 각성자들에 대해 아는 게 많은 듯 했다.
“루팅은 소유권이 있어야 하니까....”
뒷말을 흐렸지만,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군용 핵심장비나 무기 같은 것의 소유권을 죄수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게 꺼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음. 임시로 한다고 쳐도, 아주 큰 건 또 안 되겠지요. 인벤토리가 충분해야 루팅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 맞습니다. 공간이 있어야 루팅이 됩니다.”
“맞군요. 역시, 제약이 많아요.”
인벤토리는 루팅을 보유한 각성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연계 기능이라 들었다.
반대로 말해서, 루팅 스킬이 없는 각성자는 인벤토리도 없다던가.
‘루팅을 숨길 걸 그랬나.’
뒤늦게 조금 후회가 들긴 했지만, 이제 와서 주워담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제 지인이 루팅 스킬을 보유한 각성자라서 들은 이야기가 좀 많습니다. 무슨 무슨 칸을 계속 만들어서 넓혀야 한다던데....”
“맞습니다. 한 칸이 대략, 이 정도 됩니다. 가로세로 높이 10센티미터요.”
“음....”
뭐라 말은 안 했지만, ‘에게게’라고 했어도 어울릴 법한 표정이었다. 그건 맞은 편의 공무원도 비슷했다.
“그러면, 지금 지니고 계신 칸이 얼마나 되십니까?”
“아....”
“말씀하시기 곤란하시겠지만, 그걸 알아야 어떤 일을 하실 수 있을지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아니요. 곤란한 게 아니라 무안해서....”
최강혁은 나름대로 군대에 막 들어갔던 신병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 시절의 어리버리한 표정을 얼굴에 담았다.
“무안이요?”
“예. 칸이 좀....”
“적어서 그러신 거면 괜찮습니다. 앞으로 늘려나가면 되지요.”
“지금은 20칸이 조금 안 됩니다.”
20칸.
그 이야기를 들은 두 남자는 각각 반응이 달랐다. 부사령관은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고,공무원은 수첩에 20칸짜리 인벤토리를 그려보는 중이었다.
“그렇게 작은 것도 아니군요. 무안해하실 필요가 없잖습니까.”
“그런가요?”
최강혁은 달래주는 듯한 반응에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동안 여기 저기 눈치를 엄청 보고 살다보니, 상대가 아직 다 믿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20칸이 조금 안 된다고 하셨지요?”
그 때, 공무원이 물었다.
“예. 정확히는... 17칸입니다.”
“흐음.”
그는 실제로 지금 세어보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나서 이야기했다.
“그러면, 평소엔 어떤 걸... 아, 이건 사생활 질문일까요?”
“아닙니다. 죄수한테 사생활이 없다는 건 이해하고 있습니다.”
좋게 좋게 가기로 했다.
적당한 거짓을 얼버무리기에도 좋았다.
그는 실제로 평소 갖고 다니는 수건 몇장과 비상용 속옷, 옷, 여분의 전투화, 두루마리 휴지 두어개 등을 테이블 위에 하나씩 꺼내놓았다.
“무기는 따로 없으십니까? 지니고 계셔도 된다고 공지가 되었다 알고 있는데요.”
“무기라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이어서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탠 건 식당 주방에서 쓰다가 버려진, 날을 갈다 갈다 아예 손잡이보다 좁게 갈려서 거의 꼬챙이처럼 된 칼 두어 자루였다.
〈 14화 〉 014.
014.
“가위하고 펜치, 드라이버 같은 것도 있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다시 넣으셔도 됩니다.”
“예.”
꺼낼 땐 조심했지만, 넣을 땐 그냥 막 루팅했다. 눈 앞에서 물건들이 사라지는 것을 본 공무원이 무척 흥미로워했다.
부사령관은 이미 본 적이 있는 광경인지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인벤토리의 그 칸들을 움직여서 전체 형태를 바꿀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부피가 큰 것들을 넣을 수 있는 건 그래서겠군요.”
“맞습니다. 일부를 따로 뗄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면... 소총 두 자루 정도는 되려나.”
17칸.
무척이나 애매한 공간.
부사령관은 생각이 많아진 얼굴이었다.
‘다행인가.’
적어도 전투에 투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쏙 들어간 것 같았다.
공무원 또한 최강혁이 설명했던 스킬과 현재의 능력을 갖고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보였다.
‘적당히 줄인 게 맞겠지?’
사실 그 10배가 아니라 20배도 넘는 칸이 있다. 슬쩍 시스템을 열어 인벤토리 내역을 살펴본 최강혁은 그곳에 쓰인 숫자를 보았다.
[ 417 ]
그것이야말로 지난 몇달동안 하루 하루 충실히 살아왔다는 증거였다.
‘앞자리 4를 떼면 17이 맞긴 하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었다.
잠시 두 사람이 이것 저것 궁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던 최강혁은 곧 공무원 남자가 자신을 보자 그쪽을 향했다.
“그러고보니....”
“예?”
“얼마 전부터 시중에 중고 전투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있습니다.”
“전투화요?”
군수물자다.
부사령관이 관심을 보였다.
‘숨길 수 없겠지.’
최강혁은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까 하다가, 왠지 문제가 될 소지가 보여서 적당히 축소했다.
“스킬을 수련하면서 만들어진 것들이 있었습니다. 선임 직원분들의 도움을 받아 중고 거래 쪽으로 넘겼습니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것들이었지만, 혹시 문제가 될까요?”
마지막 질문은 부사령관을 향한 것이었다.
쓰레기장에 있던 것이라는 말에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던 그가 뭔가 생각났는지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기적으로 그쪽에 보내고 있지요. 으음. 새것을 빼돌리거나 한 것도 아니니, 문제 삼을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버려진 것을 활용해 새것을 만들 수도 있다면 그냥 두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수련에 도움이 됩니까?”
“예. 이게 무조건 성공하는 스킬은 아니라서요.”
거짓말이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아. 그런 거였습니까? 이런.”
부사령관은 왜 이제야 말했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그 대상이 사라지거나 하는 건 아니라는 말에 조금 누그러졌다.
“실패하면 마나만 소모된다는 거군요.”
“네.”
“저런... 그러니 인벤토리를 늘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셨겠지요.”
그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까지 알아서 착각해준다. 그쪽에 마나를 소모하느라 인벤토리를 늘리지 못하는 것으로 오해해준 것이다.
“그러면 이건 어떻습니까.”
부사령관은 공무원과 최강혁을 보며 말을 꺼냈다. 세 사람이 합심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으음.’
내용은 간단했다.
지금까지 했던 대로 일을 하되, 중고 시장에 내놓는 게 아니라 군 사령부 쪽으로 보내달라는 것이다.
“설마, 새것처럼 내보내서 횡령을....”
공무원 남자가 말 뒤를 흐렸다.
부사령관은 얼른 손사래를 쳤다.
“본국에 보고할 겁니다. 어차피 보급물자를 줄일 수 있다면 그쪽도 이익이니까요.”
“소모되는 양이 많긴 했지요.”
“게다가 운송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운송비용도 절약되지 않습니까. 여러 모로 좋은 일입니다.”
“나름 설득력이 있긴 하네요. 문제는 군인들의 사기 저하 아닐까요?”
남들이 쓰던 것을 재활용해 만든 전투화.
그걸 좋아할 사람들이 있을까?
하지만, 그건 가격으로 차등을 주면 간단한 일이었다. 새것을 원하면 새것을 사라고 하고, 아니면 재생 전투화를 사라고 하면 된다.
“교환 정책도 생각해볼 법 하겠습니다.”
공무원이 제안한 것은 그냥 중고를 파는 것 외에, 군인들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헌 전투화들을 받아서 그것들을 조합해 만든 새것으로 바꿔주는 개념이었다.
“그러면 남의 것이 아니니, 반감은 덜하겠지요. 한 세 켤레 정도 받아서 하나를 돌려주면, 남는 것들을 활용해서 여유분을 만들 수도 있겠고요.”
“으음. 좋은 생각이긴 한데... 가능하겠습니까?”
부사령관이 물었다.
최강혁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만 충분하다면 문제 없습니다.”
“결국 마나가 문제군요. 지금까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보통은 먹어서 채웠습니다. 폐품 속에 남아있는 마나를 수습하기도 했고요.”
루팅과 인벤토리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인벤토리 안에 넣은 것에서 마나를 추출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짐작하고 이야기하니, 역시 부사령관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 부분을 숨기려 했다면 의심을 받을 뻔 했다.
“어차피 버려질 것들이라면, 그런 식으로 마나를 빼내는 게 낫겠군요.”
“마나를 빼요?”
공무원은 그런 쪽에 지식이 없는 것 같았다. 하여 최강혁이 간단하게 설명해주니, 그제야 이해했다.
“그러면 일반 쓰레기들 속에도 마나가 있습니까?”
“그쪽도 보긴 했지만, 거의 없는 편입니다. 차라리 소각장에서 연료로 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아... 제가 머무는 거주지 근방이 몬스터들을 묻었던 곳이더군요.”
그 부분도 결국 말해야 할 터.
어쩌다 주변에서 발견한 몬스터의 오래된 뼛조각 같은 것들도 활용했다고 하니, 부사령관이 공무원을 보았다.
“거주지가 어디 쯤이죠?”
“거기 있잖습니까. 캠프 확장 이전에 매장지로 썼던.”
“아... 거기군요. 그 시절에 해체하고 버려지는 부산물들을 묻었지요. 몬스터들의 뼈라....”
몬스터들의 뼈라고 해서 모두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 버려졌다면 값어치 없는 것들일 터.
지금도 그런 것들이 있다.
다만 매장지가 달라졌을 뿐이다.
“수거하는 게 어렵진 않을 겁니다.”
공무원이 말하자, 부사령관도 동의했다.
부대와 장비를 동원하면 매장된 것들을 퍼내는 건 일도 아니라고.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도록 잘게 부수어야겠군요. 뭐, 그건 중장비로 다지면 되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부사령관은 벌써부터 최강혁의 인벤토리 확장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게 커진다면 그만큼 커다란 것들을 고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런 일들을 해주신다면, 캠프 차원에서 보상을 드릴 겁니다.”
“제가 받아도 될까요?”
최강혁이 그렇게 물으니, 부사령관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상황이신지 알아보았습니다. 물론 좋지 않은 일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악의로 그런 건 아니었지 않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억제기를 채운 상태로 보냈겠죠.”
공무원이 맞장구를 치며 덧붙였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던 혜택을 다시금 제시했다.
“숙소 제공....”
“기존 공무원들의 기숙사는 어려울 겁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컨테이너박스를 활용한 개인 거처.
아마 흉악범들도 그런 곳에서 지낸다고 들었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것보단 훨씬 좋은 설비를 넣어주겠다고 했다.
“형태가 컨테이너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조립식 미니주택 형식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쓸만합니다. 이쪽은 겨울에도 춥지 않으니, 난방 쪽은 문제 없고요.”
부사령관도 그렇게 말했다.
“그걸 지금 거처에 설치해주신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거처를 옮기는 것까진 어려울 것 같군요.”
“괜찮습니다.”
흙집에 사는 것도 그럭저럭 익숙해져있던 터라 딱히 황송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샤워장과 화장실이 들어있는 개인 거처를 떠올려보니,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형평성이라면....”
“이후에도 죄수들이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흉악범이라면 다른 곳에 지내겠지만, 아니라면 아마도 제가 있는 쪽으로 올 테고요.”
“그런 부분이라면 오히려 차등을 두는 게 맞습니다.”
“예?”
“일종의 동기부여가 될 테니까요.”
눈에 보이는 차별.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인지 알게 된다면 새로 올 죄수들도 나름대로 모범수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공무원의 논리였다.
“각성자라서 주는 게 아니라, 모범수여서 주는 거군요.”
“그렇게 알려질 겁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할 거고요.”
이후에 들어올 죄수들도 성실하게 지낸다면 비슷한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재질은 튼튼한가요?”
“도둑을 걱정하시지 않을 정도는 됩니다.”
“그럼...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외에도 몇 가지 혜택을 더 보장받았다.
전투화 재생 납품 관련한 일정 부분의 수익, 마찬가지로 전투복의 경우엔 훈련용 중고 전투복으로 결정되었다.
기존까지는 그냥 버렸지만, 일반 착용 목적이 아니라 막 구르는 상황에서 거의 버릴 용도로 쓰는 거라면 재생 전투복을 써도 무방할 것 같다고.
“아. 그런데 혹시....”
그 때 문득 생각난 이름이 있었다.
무척 크게 망가져있던 전투복에 붙어있던 이름표가 떠오른 것이다.
그 이름을 물어보았더니, 부사령관이 골똘히 생각하다 뭔가 떠오른 듯 손바닥을 마주쳤다.
“예. 아주 잘 살아있지요. 고비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결국 살았습니다. 지금은 퇴역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지요.”
“아. 다행이네요.”
죽은 이의 전투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째서 그걸 궁금해했는지 이야기해주니,부사령관이 껄껄 웃었다.
“사망한 군인의 전투복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애초에 전투복을 버리는 것도 부대 차원에서 하는 건 아니고 말입니다.”
버릴 옷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의류수거함에 버리는 거라고 했다. 해당 전투복도 병상에서 깨어난 본인이 직접 그렇게 버린 거라나.
“당시 일이 기억난다고, 원래는 태워버릴까 했다가 그냥 그렇게 넣었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잘 아시네요.”
“아주 유명한 꼴통이었거든요. 실력 하나는 좋았지만...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지요.”
그나저나, 개개인들이 알아서 버리도록 해서 그렇게 더러운 상태로 들어왔던 걸까. 이제 조금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러면 전투화와 전투복... 군용 장비는 동일 제품이 많으니 대부분 가능하시겠군요.”
“예. 인벤토리에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두 개 이상요.”
“그렇겠지요. 그렇게 염두에 두고 알아보겠습니다. 그쪽은 어때요?”
부사령관의 물음에, 공무원 남자는 뭔가 잔뜩 적은 수첩을 뒷장으로 넘겼다.
“말씀을 들어보니 식당에서도 마나를 적잖게 회복하시는 것 같고....”
“맞습니다.”
“잔반 수거 일이 고되진 않으시고요?”
“그쪽에서도 마나를 좀 얻습니다. 루팅해서 빼내죠.”
“아하. 그런 게 또 가능하군요.”
고개를 끄덕인 공무원이 그것을 수첩에 적고 나서 최강혁을 보았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시던 일을 그만 두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원 처리장 일도 마찬가지고요.”
자원 처리장.
쓰레기장을 칭하는 것이다.
“그쪽 사무실에 제대로 사람을 파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시는 일을 보조해드리려면 그 일만 전담할 인력이 필요하죠.”
“그러면 우리 쪽도 한 명 보내야겠군요. 이제부턴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제대로 체계를 갖춰야 할 테니까요.”
일단 적당히 결론이 났다.
아직은 명확하게 확정된 것이 아니지만, 최강혁의 능력이 얼마나 성장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있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저도.”
부사령관과 공무원 남자가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누구 손을 먼저 잡아야 할지 몰라서, 적당히 두 손으로 감싸고 한번에 붙잡았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짧게 웃던 부사령관은 곧 대기하고 있던 군인에게 차량을 준비하라 이야기했다.
‘다행이다.’
전투 계열이 아니어서 이 정도로 끝난 게 아닐까. 그쪽 스킬의 부재가 아쉬웠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행운이었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크게 달라질 것도 없겠고.’
지금까지 하던 일을, 이제 대놓고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잔반에서 마나를 뽑아낸다는 것도 알린 덕에, 그것 또한 남들 눈치보지 않고 할 수 있게 됐다.
꼬르륵.
점심을 거른 채로 커피만 한 잔 마셔서일까. 뒤늦게 허기진 배가 아우성을 쳤다.
“.......”
소리가 꽤 크게 나서, 민망한 얼굴로 맞은 편을 보니 올 때도 그곳에 있었던 군인이 빙긋 웃었다.
“지시가 있었습니다.”
〈 15화 〉 015.
015.
“예?”
지시라니. 무슨 말일까.
어리둥절해서 물으니, 군인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군인 식당 가보신 적 없으시죠?”
“아... 그렇죠.”
애초에 안쪽으로 들어올 자격조차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뷔페식인가요?”
“물론입니다. 고열량 음식들이 잔뜩 있지요.”
“오.”
문득 예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미군 부대의 식당 사진이 생각났다.
물론 이쪽은 운송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니 그 정도 수준까지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나름 기대가 되었다.
‘그래서 가는 방향이 달랐구나.’
들어왔을 때 왔던 길하고 다른 곳으로 가고 있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식당으로 가는 거였나보다.
“저기입니다.”
군인이 문득 한쪽을 턱짓하자, 최강혁도 그곳을 돌아보았다. 길 저편 멀리에 상당히 커다란 규모의 건물 한 동이 있었다.
얼핏 실내 체육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겉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니, 아마도 조립 형태로 지어진 것 같았다.
‘일정한 크기로 규격화시킨 건가보네.’
벽돌을 쌓거나 콘크리트를 활용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미리 만들어져 납품된 조립용 벽체를 원하는 대로 결합해서 활용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살 곳도 저런 것들로 만드는 건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생각보다 튼튼한 느낌이 들었다. 식당 주변엔 막 식사를 마치고 나온 듯 보이는 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니, 붐비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겠군요.”
같이 가는 군인 역시 이래저래 식사를 거른 건 마찬가지였던 터라 함께 가는 것이라고 했다.
덕분에 입구에서도 별 문제 없이 통과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도 어떤 식으로 배식이 이루어지는지 설명을 들었다.
‘생각보다 크구나.’
밖에서 보았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안으로 들어와보니 역시나 규모가 상당했다.
사진으로 보았던 미군부대 식당 못지 않은 느낌이었고, 나온 요리들의 수준 역시 그랬다.
“식재료 말입니까? 본국에서 납품받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신선재료 같은 경우엔 이쪽에서 재배하고 있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몬스터들이 있잖아요.”
“아. 장벽 바깥이 아니라, 내부에 시설이 있습니다. 혹시 스마트팜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그, 공장식으로 한다는 것 말인가요?”
“예. 관련 기업 몇 곳이 들어와 시설을 구축한 덕분에 이런 채소 종류를 쉽게 먹을 수 있게 되었죠.”
어차피 다 돈으로 하는 일이다.
해당 기업도 수익이 나니까 이런 위험한 곳에 공장을 증설했을 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반 식당으로 들어가는 채소도 그런 곳에서 나온다고 했다.
‘하긴. 그런 걸 꾸준히 납품받는 건 쉽지 않겠지. 가격도 올라갈 테고.’
현지에서 재배된 채소는 무척 싱싱하고 아삭거렸다. 하지만 고기의 경우엔 약간씩 아쉬움이 남았다.
“배양육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공장식 설비에서 생산되죠.”
“일반 식당에서도 먹어본 것 같습니다.”
“맛이나 질감을 끌어올리는 게 가능하다고는 하는데, 단가가 많이 올라가나보더군요.”
일반 식당에서도 고기반찬이 나오긴 했지만, 가끔이었다. 담당자가 ‘오늘은 고기요리가 많다’ 라고 슬쩍 귀뜸을 해줄 정도였으니.
그래도 배양육의 경우엔 적잖게 볼 수 있었다. 역시 같은 곳에서 납품을 받았던 걸까.
“아....”
하지만 그는 곧 바깥 식당에서 먹어본 적 없었던, 군인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만 제공된다는 종류의 고기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야생 짐승입니다. 아주 몬스터라고 할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사납긴 하죠.”
물소와 코뿔소를 적당히 섞은 듯한 생김새라고 했다. 사냥이 쉬운 편은 아니지만, 워낙 개체수가 많다보니 한번 사냥할 때마다 적잖은 물량이 들어온다고.
“먹을 수 있는 사냥감이 있다는 건 다행인 일이죠. 어지간한 몬스터는 피에 독이 들어있어서 먹지 못하거든요.”
“독이요?”
“뭐, 이쪽 세상의 질병이나 기생충 같은 것들도 있고요. 그것도 잘 처리하면 고기 정도는 먹을 수 있다고는 하는데... 처리 비용이 더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맛도 그다지 없다고 들었습니다. 라며, 군인은 근처의 빈 테이블로 그를 안내했다.
“햄버거 종류를 좋아하십니까?”
슬쩍 최강혁의 식판을 본 군인이 물었다.
셀프로 만들어먹을 수 있는 햄버거 재료들이 잔뜩 담겨있어서, 취향 확실하네 싶을 정도였다.
“아. 빵을 좋아합니다.”
뷔페 식당에선 빵이 잘 안 나왔다. 나오더라도 금방 없어지곤 했는데, 아마 손님들이 배를 채우고 나서도 주머니에 슬쩍 챙겨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좋은 식당이네요.”
이런 저런 속재료를 잔뜩 채운 버거를 두 손에 들고 한 입 크게 베어먹은 그가 감상을 이야기하자, 군인이 웃으며 끄덕였다.
이제는 딱히 특별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익숙해진 식당이지만, 외부인들에겐 아닐 거라 생각하니 새삼 이곳이 처음 지어졌을 때가 기억났다.
“천천히 드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쪽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고 가셔야 할 거라서요.”
“예?”
“지금 쯤이면....”
군인은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흘깃 보고 나서 말을 이었다.
“거주지역에 공병들이 도착했을 겁니다. 어쩌면 일을 시작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아. 오늘 바로 시작하는 겁니까?”
“네. 늦어도 한 시간 정도면 외형은 완성될 겁니다. 내부 설비까지 작업해야 하니까...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빨리요?”
“작은 건물이니까요. 건축 속도를 확보하지 못하면 이곳 기지의 방어 설비를 유지하기 어렵죠.”
일반인들이야 별 문제 없이 살아가고 있다 생각하겠지만, 군인들이 바라보는 기지 상황은 그렇게 평화롭지 않은 듯 했다.
“음....”
최강혁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얼핏 들을 수 있었다.
흔히 장벽이라 부르는 외곽 방어벽의 경우 꽤나 자주 파손되기에, 제 때 수리하고 보강하지 못하면 몬스터들이 캠프 안쪽으로 난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접근하기 전에 쏴죽이는 줄 알았습니다.”
“그거 아마, 새들 이야기겠군요.”
“예. 몇 번 봤습니다.”
하늘에 돌아다니는 이름 모를 것들.
그 종류가 한 두 가지가 아니긴 하지만, 대부분 크고 괴상하며 난폭하게 생겼다.
기지에 돔을 씌우거나 한 게 아니다보니, 그저 접근하거나 내려오는 것들을 쏴서 견제하거나 죽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실제로 멀리서 총소리가 들리는 건 이제 익숙한 일이었고, 얼핏 뭔가가 맞아서 떨어지는 걸 본 적도 있었다.
“그것들은 못 먹습니까?”
“종류마다 다릅니다. 먹을 수 있는 녀석도 있긴 합니다만, 고기가 별로 안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닭하고 비슷한 맛이라던데....”
일부러 노려서 잡지는 않지만, 종종 잡힐 경우엔 해당 경계병의 분대와 소대에서 먹는다고 했다.
“저는 그쪽에서 근무하지 않아서요. 먹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근무지가 정해져있나보군요.”
“순환근무를 하는 부서도 있긴 하지만, 아닌 곳도 있습니다. ...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군인은 슬쩍 일어나는 최강혁을 보았다. 어느새 그의 식판이 깨끗해져있는 게 뒤늦게 눈에 띄었다.
“벌써 다 드셨습니까?”
“제가 좀 빠릅니다. 더 먹어도 되는 거죠?”
“물론입니다. 남겨봐야 잔반이죠.”
“좋네요.”
그러고보니, 취사반에서 가져오던 잔반이 이쪽에서 나온 거였나 싶었다. 다시금 한 바퀴를 돌기 시작한 최강혁은 다른 요리들 위주로 담아 자리로 복귀했다.
“제가 음식으로 마나를 회복해야 해서요. 이래저래 많이 먹습니다.”
“아... 들어본 것 같습니다.”
군인은 어떻게 각성하게 된 것인지 궁금해했지만, 사실 그건 최강혁도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라서 해줄 이야기가 없었다.
오히려 군인으로부터 듣게 되는 이곳에서의 생활이나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제대로 관심을 갖고 들어주는 이가 있어서인지, 군인 역시 나름 신이 난 얼굴로 이것 저것 알려주었다.
“계급이 없으면, 직위가 같은 사람들은 모두 동기처럼 지내는 겁니까?”
“비슷합니다. 해당 소대나 분대의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지긴 합니다만, 어떤 곳은 나이로 위아래를 정하기도 한다더군요.”
“나이라....”
“아니면 이곳에 들어온 경력을 따지기도 하고요. 호봉 말입니다.”
최강혁은 그 부분이 의아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계급이 있는 게 낫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엄밀히 따지면 정규군이 아니라서요. 일종의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인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걸까. 현재까지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면 문제는 없는 방식인 것 같고.
“그런 일을 하시게 된 거군요. 저도 버리기 애매한 상태의 전투화가 조금 있긴 한데, 언제 시간 내서 신청을 넣어야겠습니다.”
“최우선으로 처리해드리죠.”
“하하. 고맙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문득문득 지나가다 군인에게 인사를 건네는 동료 군인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 대부분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최강혁을 보곤 했다.
왠지 말을 걸고 싶어하는 듯한 이들도 있었지만, 합석하고 있던 군인이 적당히 눈빛으로 제지했다.
“앞으로 비슷한 시선을 많이 받으실 겁니다.”
“뭐... 크게 다를 것도 없어서요. 지금까지하고.”
“음.”
사방에서 그를 주시하는 일이라면 이미 익숙했다. 다만 시선의 종류가 조금 달라지긴 했다.
‘부담되는데.’
조용히, 그저 조용히 형량을 채우고 싶었다.
이제 그럴 수 없게 된 것 아닐까.
‘노력해보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겠지.
지금처럼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줄여가면서.
“소화도 시킬 겸, 음료수나 한 잔 하시죠.”
왠지 눈치가 보여서, 너무 오래 있지 않고 식당을 나왔다. 음료수가 따로 있나 싶어서 보니, 식당 바깥에 자판기가 있었다.
결제는 지문 인식이나 단말기 인증으로 하는 것 같았는데, 음료수의 종류가 하나 뿐인 터라 선택지 같은 건 없었다.
“비닐 같은 건가요?”
“합성 재질이죠. 아무래도 알루미늄 캔 같은 걸 쓰긴 어려운 곳이니까요.”
그렇게 건네받은 음료수는 마치 옛날 유행했던 커피우유처럼 플라스틱비닐 비슷한 재질에 들어있었다.
“현지 조달이요?”
“예. 뭐, 이쪽이라고 아주 자원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대규모 유전지대까진 아니어도, 나름 기름이 나오긴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뽑아다가 가공하죠. 다른 것도 섞고요.”
다른 것.
몬스터의 부산물 중에도 그런 쪽에 쓰이는 것들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최대한 자체조달이 되도록 해야 장기적인 주둔에 유리해지니까요.”
“그렇겠군요.”
쓰레기장에서 늘 듣는 이야기는 뭔가를 신청했는데 아직도 안 온다는 식의 불평이었다.
이쪽에서 조달할 수 없는 물품은 결국 본국에 요청을 해서 받아야 하니까, 그쪽에서 보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
“탄산이 들어있긴 한데, 그리 맛은 없죠.”
“나름 괜찮네요. 합성감미료가 들어갔군요.”
“같은 양이면 훨씬 단 맛을 내니까요.”
결국 운송비용 때문일까.
이해가 갔다.
“그러면 캠프에 각성자가 아무도 없던 겁니까?”
적당히 벤치에 앉은 둘은 다시금 대화를 이어갔다. 최강혁은 자신이 오기 전 캠프의 상황에 대해 궁금했고, 군인은 그가 이야기해줄 수 있는 부분이라면 무척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그 분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한 분도 오지 않았지요. 이쪽보다 더 좋은 환경에, 더 많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들이 많으니까요.”
“음.”
“그래서 다들 기대하고 있는 겁니다. 이전에 있었던 각성자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하는 이들이 있으니까요. 마치 전설처럼 남아있는 소문들도 있고요.”
“전 비전투계열이어서....”
“그러니 새로운 기대감이 더해지는 거죠.”
그런가.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사령부에서 결정된 대로만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변화가 생겨나긴 할 것이다.
일단 병사들의 피복 구매 비용이 적잖게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여유로 개인 장비나 전투용품에 투자할 수도 있을 터.
어쩌면 단순한 유희에 낭비할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캠프 내에서 추가로 돈이 돌게 되는 것이니 그리 나쁠 게 없다.
캠프에 새로운 활력이 더해지는 것이다.
〈 16화 〉 016.
016.
최강혁에게는 더 큰 발전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그동안 만져보지 못했던 걸 다룰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가진 인벤토리 칸도 그 숫자를 조금씩 늘려서 말해야 될 테니까... 언젠가는 덩치가 큰 군용 장비나 무기들을 고치게 될 수도 있잖아.’
문득 부사령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조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때였다.
무엇을 우려하는지 잠깐 굳었던 얼굴은 곧 아무렇지 않게 풀렸었다.
‘간단한 이야기지. 소유권을 넘긴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받은 걸 먹고 째거나 하진 못한다는 걸 아는 거야.’
각성자라고 해서 방탄인간이 되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그런 종류의 스킬을 갖고 있다는 것 같긴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안 주고 버티거나 하는 건 불가능해. 그쪽에서 부담을 가질 필요 없어.’
다만 그들은 조합 스킬에 대해 최강혁이 상당히 축소해서 이야기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일부 부품만 떼어서 챙길 수 있지.’
이미 설명했다.
조합 과정에서 한쪽으로 멀쩡한 부분을 몰아주면, 나머지 부분은 그렇지 않은 것들만 남는다고. 그 과정에 그 손상 정도가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말이다.
‘어차피 인벤토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그들이 알 수는 없지. 그렇게 부품을 모아서 완제품을 만들 수도 있을 거야.’
물론 지금부터 궁리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정말로 그에게 고가의 장비를 가져올 지도 알 수 없는 일이고.
‘여러 모로 조심해야겠어.’
부사령관도 쉽게 볼 수 없는 느낌이었지만, 수첩을 사용하는 공무원 역시 만만치 않은 뭔가가 느껴졌다.
자칫 잘못하면 어떤 식으로든 목줄이 꿰일 것 같은 기분. 그 두 사람과 있었을 때를 생각한 그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음.”
그 때, 다 마신 음료수 팩을 버리고 오면서 손목을 확인했다. 전자시계였던 것의 화면이 살짝 전환되더니, 뭔가를 보여주었다.
‘단말기였구나. 고급형인가?’
그가 지닌 것도 비슷한 기능을 쓸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화면에 금이 간 것도 그렇고, 사양 자체가 높지 않아서 빠릿빠릿하지 못했다.
화면 자체도 너무 작아서, 가입한 커뮤니티 게시물도 제대로 들어가보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들여다봐도 눈알 빠질 것 같으니까.’
돈을 더 모아서, 액정이 더 큰 단말기를 구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휴대폰이나 타블렛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건 망가져서 버리는 사람이 없는 건가.’
쓰레기장에선 보지 못했다. 아마도 전자제품을 버리는 곳이 따로 있는 듯 했다.
“이제 가시죠.”
“연락이 온 건가요?”
“예. 마무리 작업 중이라고 합니다. 지금 출발하면 얼추 시간에 맞게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가 손을 들어 신호하자, 주차장 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작은 트럭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방금 전 하품이라도 한 건지 눈가가 반짝거리던 운전병은 뒤쪽에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원하시면 출입 허가를 받고 들어오실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예?”
“다른 곳은 곤란하겠지만, 식당 정도는 이용하실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런 것도 알림이 왔습니까?”
“예. 최종 검토 중이긴 한데, 아마 될 것 같습니다. 대신 지금처럼 저 같은 군인들이 합석해서, 군용 차량을 타고 들어왔다가 나가셔야겠지요.”
“번거롭게 만들기는 좀....”
“그럴리가요. 이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반나절 쯤 보내는 거죠. 군대 다녀오셨잖습니까.”
“...하하.”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았다.
매일 매일 똑같은 훈련과 근무 중 하루 정도는 적당히 시간을 때우며 쉬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것이다.
‘이곳은 항상 실전 중이니까. 주말도 딱히 없겠지.’
그렇게 아까 전 들어오며 보았던 풍경이 다시 스쳐 지나가고, 초소를 지나 외곽지역으로 돌아갔다.
‘확실히 차가 빨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평소 걸어다니던 길을 그렇게 차량에 탑승해서 가게 되니 무척 짧게 느껴졌다.
“...와.”
멀리 그가 지내고 있는 공터지역이 눈에 보일 즈음, 최강혁은 어제까지만 해도 그곳에 없었던 건물 하나가 새로 생겨나있는 것을 보았다.
그 주변에 장비 차량과 군인들이 보였지만, 아직 공사가 끝난 게 아니라 마침 철수 준비를 하던 중인 듯 했다.
“말씀대로네요. 시간이 딱 맞았나보군요.”
“저쪽에서 딱 맞춰서 연락을 보냈죠.”
새로운 집은 기존의 흙집에서 멀지 않았다.
아마도 이삿짐 같은 걸 옮겨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는데, 그가 원하다면 지금 있는 장비로 흙집 철거를 도와주겠다고도 했다.
“꼭 철거해야 하는 건가요?”
“음. 짐이 많으십니까? 부대원들을 동원하면 이사는 금방일 겁니다.”
“아니요. 짐은 제가 직접 옮기고 싶어서요.”
“아....”
아마 개인적인 물품들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한 건지, 현장 책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존 건물을 부수라는 지시는 없었으니까요. 원하시는 대로 하셔도 됩니다.”
그는 최강혁을 새 집으로 안내했다.
이미 들어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잠금장치가 확실했다.
“이쪽이 거실입니다.”
“아. 단층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여름엔 좀 덥거든요. 아래를 좀 파내고 천장을 높이면 그만큼 시원해집니다.”
실내 구조는 단순한 편이었다. 살짝 지반 아래에 1층이 있었고, 그 절반 정도 위치에 계단과 사다리 중간쯤 될법한 것이 놓여있었다.
2층은 아예 막혀있는 공간이 아니라, 난간을 통해 1층을 내려다볼 수 있는 오픈형 방식이었다. 일종의 다락방 같은 느낌이 났다.
“저 간이침대는 원하시는 곳에 배치하시면 됩니다. 이쪽 거실을 침실처럼 쓰실 수도 있고, 저 위층에 두실 수도 있겠죠. 그리고... 이쪽이 화장실입니다.”
변기와 샤워설비가 있는 개인 화장실.
구석의 진열장엔 그가 눈치를 보며 챙겨 모으던 두루마리 휴지들이 새것으로 들어차있었다.
“아직 상수도 연결이 되지 않아서,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늦어도 이틀 안에는 될 겁니다.”
“근처에 수도관이 있나요?”
“예.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그동안 몬스터들의 뼈를 찾아 땅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수도관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아무거나 흡수하다가 수도관을 망가뜨릴 수도 있었다.
“전기 설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수도보다는 전기가 더 먼저 연결될 겁니다.”
“제가 전기도 쓸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재벌들이 쓴다는 럭셔리 독방도 이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최강혁은 너무 많이 받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무르고 싶진 않았다.
“오늘 중으로 담당 인력이 배정될 겁니다.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거나 궁금한 일이 생기면 그쪽에 문의를 주시면 됩니다.”
담당인력이라면 부사령관과 공무원 남자가 이야기했던 이들을 말하는 걸까.
담당이라는 말을 감시로 바꿔도 될 것 같은 느낌이지만, 적당히 알겠다고 답했다.
-거기! 스트랩 헐겁잖아. 제대로 조여!
-이거 누구 담당이야? 안 챙길래?
-누구 물 있는 사람?
-물은 가서 마시고 정리부터 하자!
다시금 밖으로 나와보니 한창 뒷정리가 마무리되는 모습이었다.
군인들을 태운 트럭과 건설장비들이 하나 둘 멀어지고 나니, 어느새 그곳에 혼자 남게 되었다.
“어휴.”
최강혁은 뒤로 돌아, 다시금 자신의 숙소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 주변을 한 바퀴 거닐어보기도 했다.
“내집마련을 이런데서 처음 해보네.”
엄밀히 따지면 내집은 아니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었다. 게다가 월세 같은 것도 없이 혼자서 쓸 수 있는 숙소라니.
‘일단 비밀번호부터 바꾸고.’
도어락을 설정한 그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 있던 흙집으로 향했다.
“이걸 부숴달라고 할 수가 없지.”
겉은 흙벽이지만, 그 내부엔 나름대로 벽돌 비슷한 느낌을 가진 층이 있다.
그가 남들에게 이야기했던 ‘조합’스킬의 내용대로라면 지금의 상태를 설명하기가 불가능했다.
‘간만에 밤을 새워야겠네.’
지하로 뚫려있는 토굴도 정리해야 한다.
서둘러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그곳에 남아있던 짐들을 얼른 새 숙소로 옮겼다.
‘생각보다 많았구나. 짐이.’
그동안 조금씩 조금씩 챙겨다가 쟁여놓았던 것들을 모두 꺼내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그다지 값진 건 없지만, 그래도 그 하나 하나를 어떻게 가져왔는지 기억이 나서 웃음이 나왔다.
“일단 정리는 나중에 하고....”
새 집의 거실에 짐들을 적당히 내려놓은 그는 인벤토리에 담아왔던 것들까지 꺼내놓고 나서 그곳을 나섰다.
그렇게 흙집으로 돌아간 후, 뚫려있던 토굴 안으로 향한 그는 그 가장 깊은 안쪽에서부터 메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생각해보니까, 대체 이걸 무슨 생각으로 시도한 거지?’
별다른 침목 하나 없이.
이거 잘못하면 무너져서 죽는 거 아닌가?
‘나름 보강하긴 했지만, 그래도 안전한 건 아닌데 말이야. 내가 그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나보네.’
상황에 여유가 생기니,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보였다.
“후우... 이쪽은 됐고.”
얼마나 지났을까.
흙집의 천장과 벽을 루팅하고 흡수하여 그것을 재료삼아 토굴을 메운 터라, 이제는 흙집의 형태도 거의 고대 유적지 느낌 정도만 남아있었다.
‘그동안 잘 지냈다. 비바람 막아줘서 고맙다.’
남아있는 부분도 남김 없이 정리하고 나니, 왠지 후련하면서도 조금 아쉬운 기분이 되었다.
‘그래. 저게 아니라, 여기 있던 집이 첫 번째로 마련한 내 집이었지.’
남들 보기엔 보잘 것 없는 흙집이겠지만, 그래도 직접 지어서인지 애착이 있었다.
흙으로 천장을 빚어 올리려는 과정에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결국 이글루 형태가 됐지.’
이런 저런 기억들이 남아있었다.
전투화 굽으로 바닥을 슬쩍 두드려보던 그는 옷을 털고 나서 새 집으로 향했다.
“아... 샤워장 못 쓰는 게 아쉽네.”
흙먼지와 땀이 거슬렸다.
그나마 입구에서 옷을 벗고 적신 수건으로 닦긴 했지만, 머리를 감지는 못했다.
“아. 안되겠다.”
일터로 가서, 그곳 샤워장을 써야겠다.
어차피 야근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항시 개방하니까, 지금 가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일단 이것들 좀 대충... 어디다 놓아야 되나.’
입구로 들어오자마자 이런 저런 짐들이 눈에 띄는 건 좋지 않을 테니, 다락방 쪽에 놓는 게 좋을 듯 했다.
인벤토리에 이것 저것 루팅해 집어넣은 후 위로 올라가서 꺼내놓는 것을 몇 번 반복하니 난잡했던 거실이 다시금 깨끗해졌다.
“흙집에 살땐 안 이랬는데.”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걸까.
깨끗한 집에 들어오려니 몸에 묻은 약간의 불결함을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흙집에선 어차피 거기도 흙바닥이니 대충 자곤 했는데.
“어? 강혁이 왔네.”
“뭐야. 오늘 철야해?”
일터에는 몇몇 선임들이 있었다.
샤워를 하러 왔다고 하니, 마침 그들도 씻고 퇴근하려던 차였다며 함께 들어갔다.
“오... 그러면 개인 숙소가 생긴 거네.”
“놀러가도 되나?”
“아직 들여놓은 게 아무 것도 없어서요. 준비 되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임들은 새로 지은 숙소 이야기보다는 부사령관을 만난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죄수가 아니지만, 역시나 안쪽 지역으로의 출입 자격은 없는 일반인들이었다.
외부지역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게 아닌 이상, 높은 직위의 군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래저래 들린 소문은 있는지, 그렇지 않아도 최강혁이 품고 있던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뒷주머니를 찬다고 들었어.”
“본국에 로비를 해서 그 자리에 올랐다던데.”
“그렇군요.”
마냥 믿을 수는 없는 이야기.
단지 소문일 뿐이었지만, 직접 만나보았던 부사령관의 느낌을 떠올려보면 아주 없는 말도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선입견은 곤란하지.’
최강혁은 자신의 판단력을 잘 믿지 않았다.
이미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으니까.
지금 그가 그곳에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니까.
‘그저 조심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 17화 〉 017.
017.
“후... 좋다.”
샤워장에서 흙먼지와 땀을 씻어낸 그는 개운한 기분으로 그곳을 나섰다.
이곳에서 밤동안 작업을 해도 되겠지만, 숙소에 대충 두고 온 짐들을 정리해야 하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다음에 구경시켜줘!”
“하하. 알겠습니다.”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이다보니, 다들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언제 날 잡아서, 고기와 먹거리를 사다 파티라도 하면 어떨까 싶었다.
‘먹거리라면 뷔페 식당 쪽에서 조금 루팅을 해두어도 되긴 한데.’
잔반이 아니라 요리를 챙겨두는 거라면 딱히 문제될 게 없을 것이다.
그것도 일종의 도둑질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거의 매일 하던 일이다보니 이제는 거리낌도 별로 없었다.
‘이미 말해둔 것도 있고.’
아직 명확한 허락은 듣지 못했지만, 음식으로 마나를 채운다는 것을 사령부에서도 알고 있으니 그런 쪽에 제약을 두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인벤토리가 넓어질수록 더 크게 부려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집으로 향하던 그가 아차 하며 걸음을 멈춘 건 오늘 저녁 잔반을 처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서였다.
‘깜빡했다.’
미리 알았다면 그쪽까지 해놓고 나서 샤워하러 갔을 텐데.
‘내일 할까? 아니야. 오전에는 다른 이들이 일을 해야 하니까, 밀려버리면 혼선이 생길 거야.’
처리장은 24시간 열려있으니, 새벽에 가도 문제는 없다. 발걸음을 돌려 식당으로 향한 그는 이 시간에도 불이 켜져있는 건물들을 보았다.
‘여기에서도 야근이라니... 한국 사람은 어딜 가도 달라지는 게 없군.’
뷔페식당은 조용했다.
담당자는 퇴근하고 없었지만, 다른 직원이 당직을 서다가 그를 맞이했다.
“아. 연락 받았어요. 좀 식긴 했는데, 출출하시면 데워드릴까요?”
“아직 안 치우셨군요. 아. 데워주시진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미 연락을 받았던 터라, 저녁 배식을 끝낸 음식들을 트레이마다 그대로 두고 있던 것 같았다.
‘내일로 미루려고 했으면 민폐를 끼쳤겠구나.’
아마도 아침 준비 이전에 직원들이 나와서 치우지 않았을까.
“정말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음... 아, 그래도 국 종류는 식지 않았을 거예요. 끈지 얼마 안 돼서.”
“네.”
그럼 식사 하시라고 적당히 인사를 건넨 직원이 사무실로 향했다.
사실 이곳에서 그다지 친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잔반 담당자 한 명 정도였고, 다른 이들은 지금처럼 적당히 데면데면한 정도였다.
‘잘 됐네. 마침 출출하기도 했고.’
남은 음식이 꽤 많았다.
식었다고는 해도 맛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
‘잔반을 남겨야겠지.’
그런 제약이 없다면 루팅이 아니라 흡수를 통해서 극한까지 빼낼 텐데.
하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미세한 가루 같은 찌꺼기만 남을 뿐 잔반이 생기지 않는다.
‘비료를 만들 목적도 있다고 하니까. 바이오가스인가 하는 것에도 필요하고.’
식사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적당한 수준에서 멈춘 그는 식당을 정리하고 잔반을 모았다.
“...음?”
그렇게 뒷문으로 나갔더니, 전에 없던 카트 한 대가 눈에 확 들어왔다.
골프장에서 쓰는 것과 비슷한 형태와 크기였는데, 왜 이런 데에 있나 싶었다.
“리어카는... 저기 있네.”
고개를 돌려보니, 얼핏 보아도 제대로 망가진 리어카가 구석에 보였다. 그가 사용하던 커다란 것 말고 작은 것도 비슷한 꼴이었다.
“뭘 어떻게 하면 저게 저렇게 되지?”
“아. 여기 계셨네요.”
그 때, 안에서 당직 직원이 나왔다.
“운전하실 줄 아시죠?”
“아. 네. 면허는 있었습니다. 지금도 인정이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카트는 면허 없어도 돼요. 운전법만 아시면 되는데, 금방 감 오실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리어카 여분이 없어서 카트를 공수받았다는 것 같았다.
카트 뒤쪽엔 큰 리어카와 엇비슷할 정도의 짐칸이 연결되어있었고, 직원은 그것을 사용하면 될 거라고 했다.
‘뭐, 나야 편해져서 좋을 것 같긴 한데.’
다만 평소에 겸사겸사 체력을 단련하려던 목적도 있었는데, 그걸 활용하면 그 부분은 없을 것이다.
‘숙소에 가서 운동을 더 해야겠군.’
카트 운전법은 직원 말대로 무척 쉬웠다.
전기 모터로 움직이는 터라 소음은 거의 없었고, 짐칸에 잔반통을 최대한 실어도 문제 없이 움직였다.
‘그래도 좀 느린 것 같은데... 오르막이 없어서 다행이네.’
처리장에 갔더니, 그쪽 직원이 웃었다.
“낮에도 그거로 오던데요. 이제 그걸 쓰는 건가보죠?”
“아. 리어카 두 대 있던 게 다 망가져서요. 임시로 받은 것 같아요.”
“아하.”
낮에는 식당 직원이 몰고 왔었다는 모양이었다.
억제장치를 채우면 운전이 힘들어지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흉악범들에게 카트 운전을 맡길 수 없어서일 수도 있었다.
“카트가 있으니 전보다 빠르겠네요.”
“짐이 무거워서 그런지, 그렇게 큰 차이는 없더라고요.”
“그건 최강혁씨 발이 빨랐던 거 아닐까요?”
“아. 그런가.”
그렇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뭐, 오늘부터 하라고 했으니 지금 하시는 게 좋겠네.”
“예?”
“위에서 지침이 내려왔어요. 오전 잔반이야 내일부터 적용되겠지만, 오늘 것들도 일단 키핑해놨거든요.”
“......?”
이어진 직원의 말에, 최강혁은 캠프 위쪽에서 정말 신경을 써주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다른 곳에서 온 잔반들이요?”
“예. 식당이 여러 곳이잖아요. 일반 식당도 있지만 저기 기업 사무실이나 상업 건물에도 자체 식당이 있기도 하고요.”
“네. 대강 알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한 지도 이제 거의 반년에 가까우니, 관련 상황이나 구조를 어느 정도 파악해두고 있었다.
“그러면, 이쪽으로 모인 잔반을 설비에 넣지 않고 일단 킵해둔다는 거군요.”
“예. 그 안에 마나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걸 빼내도 이후 처리 공정에는 영향이 없는 것 같으니까, 일단 최강혁씨가 그걸 빼내고 나서 설비에 넣으라는 거죠.”
“아... 그렇게 저녁까지 누적이 되면 양이 대단할 것 같은데요. 이곳 직원분들이 고생하시는 것 아닌가요?”
“어차피 나눠서 하나 한 번에 하나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하루 거르고, 그 다음날부터 스케쥴에 맞추면 문제는 없을 겁니다.”
대신 각 식당들이 그만큼 잔반통을 추가로 확보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건 좀 대단한데.’
군부대와 외부지역 모든 곳에서 발생하는 잔반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양이다.
그가 혼자서 열심히 해봐야 결국 식당 한 곳에서 채우는 수준이었으니,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마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죠?”
“이쪽입니다. 마침 비어있던 창고가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밖에 두면 금방 변질되죠.”
“그러니까요. 실내라고 해도 여름철엔 비슷하겠지만....”
“그 날 나온 물량은 무조건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걱정 없죠.”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창고 문이 열리자, 최강혁은 방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무를 수 없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게 다 잔반... 입니까?”
“많죠? 그나마 자원 순환이 돼서 다행이지, 그냥 땅에 파묻던 시절이었으면 이거 엄청 낭비예요.”
“그렇겠네요.”
쉽게 생각했다.
그간 지나다니며 보았던 외부 식당 정도만 머릿속에 있었을 뿐, 건물들 안에 있어서 본 적이 없었던 자체식당들의 숫자를 제대로 짐작하지 못한 것이다.
“가능... 하시죠?”
“음. 해봐야 알겠지만, 시작부터 약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진 않군요.”
일단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최강혁은 다시금 그곳을 나섰다.
아직 식당에 남아있는 잔반이 더 있으니, 그것들을 마저 가져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아침까지 열어둘 테니, 편하게 다녀오세요.”
그렇게 다시금 카트를 몰고 식당을 향하던 최강혁은 내일 저녁부터는 뷔페 식당의 저녁 잔반을 만들지 않는 것도 괜찮겠지 생각했다.
‘저 정도 양이면, 그쪽 저녁 양만큼 빠져도 문제 없을 것 같아.’
그만큼이라도 흡수 쪽으로 돌리면 별도로 더 많은 마나를 얻을 수도 있고, 동시에 흡수 스킬의 성장도 꾀할 수 있다.
‘활용할수록 스킬이 강해지니까.’
단순한 짐작이 아니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스킬, 특히 스캔이나 루팅을 거듭 활용하다보니 어느 순간 시스템의 알림이 나타났다.
-해당 스킬을 일정 횟수 이상 활용하여,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그 비슷한 알림이었던 것 같다.
‘스캐닝’의 경우 분석 속도가 소폭 상승했고, ‘루팅’은 한 번에 넣거나 꺼낼 수 있는 양이 소폭 증가했다고 했다. 루팅 가능 거리도 늘었다던가.
‘아직은 차이를 느낄 수가 없지만.’
지금은 어차피 인벤토리가 크지 않아서 기존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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