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lado 1

추방당한 각성자는 행복을 꿈꾼다
- 제법넓은강
( 구제 : 이세계 처녀와 결혼하세요 → 이세계 결혼 원정기 → 추방당한 각성자는 행복을 꿈꾼다 )
( 1-326 & 327-498 만든이 다름. 서로 노고가 많네염. )
[19+][시스템][상태창][전개느림][일상][차원유랑]
각성 첫날, 오해로 인한 살인.
지구 추방 5년형.
개척 캠프에서 생존을 위해 버티다 얻은 또 다른 기회.
버려지는 것들로부터 마나를 얻고, 그것을 활용해 성장.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살아보려 한다.
-=-=-=-=-=-=-=-=-=-=-=-=-=-=-=-=-=-=-=-=-=-=-=-=-
〈 1화 〉 001.
001.
뭐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다.
딱히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뭐, 이것 저것 잘 부서졌다고 하면 될까? 어머니가 일찌감치 도망친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갈 거면 같이 좀 데려가지.
왜 자식들 떼어놓고 혼자 튀냐고. 덕분에 개고생했잖아.
그래도 자살한 아버지 장례식장엔 올 줄 알았는데, 얼굴도 안 비친 건 염치가 없어서였을까.
아무튼 그렇다.
넷이었던 가족이 둘이 되고난 후, 두 살 위의 누나는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멀쩡한 것 같지만, 속부터 썩어들어가고 있음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버지가 왜 자살했는지, 아마 누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먼저 말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묻지도 않았다.
다만 언젠가부터 학교를 잘 나가지 않는 것 같았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경찰서를 들락거리진 않아보였다.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문제 없이 받은 모양이다.
그들은 고아였지만, 시설 같은 곳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아비가 그모양이긴 했어도 전세 보증금까지 빼갈 정도로 미치진 않았던 덕에.
하지만 웃기게도 그걸 빼고 원룸으로 이사가게 된 건 아버지가 아니라 누나 때문이었다.
이제 마음잡고 열심히 살겠다더니, 다단계인지 뭔지에 빠진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 어울리던 친구들이 꼬드긴 모양인데.... 뭐, 그렇게 되었다.
낡지만 정들었던 아파트 전세가 빌라 투룸 전세로, 투베이 전세에서 원룸 월세로 바뀌어가는 동안 누나의 직업은 계속 바뀌었다.
다단계를 어찌어찌 관두고 나서는 공장에 취직한다는 것 같더니, 편의점에서 일하다 관둔 이후엔 노래방 도우미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그는 군대를 다녀왔다.
전역하고 보니 집이 사라져있었다.
아니지. 애초에 그들의 집이 아니었으니, 주소지만 바뀌었다고 보면 될까.
딱히 달라질 건 없었다.
오히려 좋아진 것 같기도 했다.
투룸 월세.
청소 상태가 개판이긴 했지만, 치워놓고 보니 꽤 깔끔한 곳이었다.
누나는 바에서 일한다고 했다.
룸싸롱 같은 곳과는 다르다고. 접대 비슷한 말동무가 있긴 하지만, 몸을 파는 개념은 아니라고 했다.
적성에 맞는지, 지금까지 들어본 중에서 가장 오래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인맥도 생긴 모양이었다.
어찌어찌 연락을 해주더니, 일자리도 소개시켜주었다. 도시 복구 작업, 부서진 건물과 도로를 보수하는 일이었다.
막노동이라고 봐야 하겠지만, 그런 일자리도 없어서 난리였다. 몸이 고되긴 했지만, 정직하게 번 돈이었다.
하지만 일의 강도보다 힘든 건 사람이었다.
어딜 가나 병신들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쪽 현장은 특히 심한 편이었다. 묵묵하게 자기 할 일만 하면 될 텐데, 사람이 셋 이상 모이면 무조건 정치질이 생겨났다.
‘답이 안 나오네.’
낡은 휴대폰.
통장 어플에 찍힌 잔액을 보던 그는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낸 뒤에 안전모를 고쳐 썼다.
“어이, 최씨!”
“예!”
최강혁.
그의 이름은 이곳에서 한 번도 불린 적이 없다.
이봐, 야 정도면 양호한 편이고, 이 새끼 저 새끼 정도가 보통이다.
그나마 최씨 정도면 존중해준다고 봐야지.
“저쪽 막혔대. 턴하자고.”
“뭐가 남았대요?”
“죽은 줄 알았던 놈이 난동을 피운다나. 두 명 죽었단다.”
“아....”
“다행이잖아. 우린 사체 처리까진 안 하니까.”
“그건 그렇죠.”
몬스터 난리가 난 세상.
이제는 그럭저럭 원래의 사회를 복구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완전히 소탕한 건 아니다.
“후우... 물 좀 있어?”
그가 최씨인 것처럼, 옆에서 묻는 이는 장씨다. 평소 땀을 많이 흘리는 그는 하루에도 몇 개의 수건을 번갈아 쓴다고 들었다.
밀고 있던 이륜 수레에서 생수병을 꺼내어 건네니, 장씨가 반갑게 받아들었다.
“올해로 몇이라고 했지?”
“저 말씀입니까? 스물 둘입니다.”
“좋을 때구만. 근데 왜 이런 데서 고생을 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나요.”
“그야 그렇지만.”
부서진 건물과 도로를 본 장씨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위험해. 사체 청소하는 애들만 죽어나가는 게 아니야. 저렇게 무너진 도로 안에도 뭐가 있을지 모르거든. 자네 오기 전에도 사고가 몇 건 있었어.”
“얼핏 들었습니다. 그래서 빈자리가 생긴 거라고요.”
“알고 있었나보군.”
“그렇게 취직한 거니까요.”
“취직은 무슨. 제대로 된 회사도 아닌데.”
이런 일은 더 이상 답이 안 나오는 인생들이나 하는 거라며, 장씨는 다시금 생수병을 기울여 꿀꺽꿀꺽 마시고 돌려주었다.
“혹시 그거야?”
“예?”
“그런 이야기 있잖아. 몬스터들 근처에 있던 사람이 각성이니 뭐니 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이야.”
“설마요. 기대도 안 합니다.”
“그래. 괜히 헛바람 들어서 시체 근처에 얼쩡거리거나 하지 말라고. 그쪽 놈들 성질 더러우니까.”
“알죠.”
안 그래도 출근 첫날에 지정구역을 잘못 알고 들어갔던 곳에서 된통 깨진 경험이 있었다.
덕분에 몬스터 사체를 직접 본 경험이 생기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오늘 작업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구역 재지정 떨어지나 대기하다가... 없으면 퇴근해야지 뭐.”
장씨의 말대로였다.
사무실로 돌아가니 비슷하게 복귀한 인부들이 여기 저기 제멋대로 모여 대기 중이었다.
“그럼 쉬어.”
“예.”
장씨도 한쪽으로 멀어졌다.
평소 어울리는 무리가 정해져있는 터라, 딱히 파벌이나 라인 같은 것에 속해있지 않았던 최강혁은 그저 밀고 갔던 수레 옆에 어정쩡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그는 포털사이트의 뉴스란을 기웃거렸다. 얼핏 이쪽에서 벌어졌다는 사고 소식이 보이긴 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세상은 안정을 원하고 있다.
여전히 몬스터가 존재하긴 하지만, 극복하고 있다고, 잘 되어간다고 믿고 싶어했다.
-퇴근하세요!
현장 사무실의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민 여직원이 그렇게 소리치자, 잔뜩 모여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오늘 일당은 어떻게 되는 건지 묻는 이는 없었다. 그저 ‘공쳤네.’정도의 푸념이 다였다. 차비라도 챙겨달라고 했다간 머지 않아 잘릴 것이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비슷한 일을 이미 겪어본 적 있는 터라 난감해하지는 않았다. 현장사무실에 맡겨두었던 개인 가방을 가져온 그는 사무실 공터 한쪽에서 작업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가방 속에서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조금 퀴퀴한 냄새가 배어있었지만, 적어도 땀과 흙먼지 투성이인 작업복보다는 나았다.
‘각성이라.’
장씨가 이야기했던 게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는데, 평범한 사람이 초능력을 얻는다던가. 뭐, 그런 거라고 한다.
덕분에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개인 몸값이 뛰어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전투 중에 죽어나가는 숫자도 만만치 않다는 것 같긴 하지만, 그만큼 새로 각성하는 이들도 많다고 하니까.
‘능력이 다들 다르다던데.’
흔히들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관리 도구는 동일하지만, 개개인이 가진 초능력은 대체적으로 차이가 있다던가.
‘근육통을 안 느끼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네.’
오늘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지만, 지난 며칠간 쌓인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오늘 하루 정도는 쉴 수 있는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지만... 거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이니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어.”
버스 정류장 근처까지 걸어온 그는 갑자기 많아진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인가 했는데, 저 멀리 폴리스라인 비슷한 것이 만들어져있었다. 범죄현장인가 싶었지만, 다시금 자세히 보니 달랐다.
‘접근 금지 표시구나.’
폴리스라인하고는 살짝 다르다.
저건 몬스터 사체 근방에 설치하는 종류다. 그 새에 또 뭐가 튀어나왔던 모양이다.
제대로 죽이긴 한 건지, 아무렇지 않게 모여 어떻게든 구경하려는 이들이 바글바글했다.
‘다들 겁이 없는 건가.’
죽은 척을 하는 몬스터도 있다는 걸 알 텐데. 인터넷에도 나와있고. 그런데도 저렇게들 휴대폰을 들고 사진과 영상을 찍는 데 혈안이다.
‘여기서 버스타긴 글렀나.’
한 정거장 더 걸어가야 할 것 같다.
가던 길에 편의점에 들러 생수 두 병을 산 그는 그 중 하나를 뜯어 입을 축였다. 이상하게 조금 전부터 목이 말라서, 하나로 모자라 나머지 하나도 마셔버렸다.
‘땀은 많이 안 흘린 것 같은데.’
나왔던 편의점을 다시 들어가, 이번엔 제일 큰 사이즈의 생수를 샀다. 하지만 그것도 금세 마셔버렸다.
‘이 정도면 배가 불러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왠지 이마와 목덜미가 조금 화끈거려서, 손을 들어 만져보니 열감이 느껴졌다.
‘감기라도 걸린 건가.’
그래서일까. 약간의 두통과 현기증이 있었다.
약을 먹어야 하나. 집에 상비약이 있던가 생각하던 그는 다음 정거장에서 버스를 탔다.
‘이상한데.’
손잡이를 잡고 서있는데, 계속 어지러웠다.
차멀미인가 생각해봤지만 그것과는 좀 달랐다. 메슥거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릴 즈음엔 조금 나아졌고,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더 괜찮아졌다.
‘열감은 아직 남아있네. 밥은 됐으니까 약먹고 좀 누울까.’
그렇게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그가 멈칫했다.
현관 안쪽에서 들려온 억눌린듯한 비명이, 약간 남아있던 두통과 함께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그만... 아파요!
-입닥쳐. 죽고 싶어?
-아윽! 하으윽!
어떻게 문을 열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현관을 열고 들어갔고, 그곳에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배불뚝이 남자였다.
나이는 50대?
아니, 40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거실의 작은 소파.
거의 쑤셔박다시피 엎드린 누나의 엉덩이에 거칠게 몸을 부딪히는 모습이었다.
“.......”
짧은 시간.
이상하게도 많은 것이 보였다.
소파 주변에 널려있는 옷들.
그 한쪽에 놓인 부엌칼.
누나의 목을 뒤에서 붙잡고 허리를 움직이고 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 여기 저기에 붉고 푸른 멍이 새겨진 누나의 몸.
아마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 이후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주먹을 쥐었던가? 아마 그랬던 것 같다.
* * *
-네가 다 망쳤어!
최강혁은 죽일 듯이 노려보던 누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외부 징역 5년’이라는 판결이 내려졌을 때였다.
“.......”
이리 저리 옮겨다니며 그들이 묻는 것에 답하거나 뭔가 잔뜩 작성하기도 했다.
“그래도 정상참작이 되어서 그 정도입니다.”
국선변호사는 그렇게 말했다.
살인 형량 치고는 낮은 거라고 말이다.
“누나는... 어떻습니까?”
“상담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강간이 아니었다고 했다.
일종의 플레이였다고.
알고 보니, 아비와 비슷한 연배였던 남자가 누이의 애인이었다는 모양이다.
-네가 다 망쳤어!
바에서 만난 손님.
상당한 재력에 비해 순진한 남자.
아내는 일찍 사별했고, 자식들은 장성하여 독립한 지 오래라던가.
주변 평판도 좋다고 했다.
조금 특이한 성벽 말고는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고. 누이는 그와 결혼날짜까지 잡았었다고 했다.
인생을 바꿀 기회였다고.
그걸 네가 망쳤다고.
“.......”
다시금 이송된 어딘지 모를 장소.
처음 보는 기괴한 장치 앞에 선 최강혁은 장치를 조작하고 있던 남자의 시선을 느끼고 그쪽을 보았다.
“따로 하실 말씀 있습니까?”
사무적인 태도.
마치 유언이라도 묻는 듯한 모습에, 그는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군요. 인생 말입니다.”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이어서 최강혁의 뒤를 지키고 있던 이들에게 눈짓했다.
“앞으로 걸어가십시오.”
“거기 보이는 바닥 원판 위에 서시면 됩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 있지만, 엉뚱한 행동을 하시면 위험한 상황이 생깁니다.”
수 없이 들었던 경고였다.
실탄이 채워진 총을 지닌 이들을 상대로 객기를 부릴 생각은 없다. 최강혁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천천히 걸어 바닥의 원판 위에 섰다.
금속성의 원판은 의외로 약간 따뜻한 느낌이었다.
〈 2화 〉 002.
002.
-죄수번호 6327. 최강혁. 외부 징역 5년 집행을 위한 이송 절차를 시작합니다.
어딘가 스피커가 있는지, 약간 울리는 기계음에 섞인 여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금 뜨거운데.’
살짝 따뜻한 느낌이던 원판이 점점 뜨끈해지기 시작함에, 맨발의 그는 조금 자세를 고치려다 멈추었다.
살짝만 몸을 움직여도 사방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비슷하게 움찔거리는 것이 보여서였다.
‘외부 징역이라... 5년은 길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바닥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이 스르르 사라졌다. 오히려 이제는 차가워진 느낌이 들 즈음, 다시금 은은한 온기가 시작되었다.
“죄수번호 6327. 최강혁. 죄목은 과실치사. 본인 맞습니까?”
“.......”
잠시 눈을 껌벅이던 그는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서있던 그곳이 아니었다.
훨씬 작은 시설이었고, 들려온 목소리 또한 스피커의 여성이 아니라 남성의 육성이었다.
“맞습니다.”
“형기 5년 집행을 시작합니다. 모시고 가세요.”
그렇게 다가온 남자는 살짝만 보아도 감히 덤비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풍겼다.
몸에 걸친 장비는 대 몬스터용으로 나온 것들과 비슷했는데, 아마도 이쪽에 대한 소문이 맞는 모양이었다.
“외부 집행은 몬스터 지역 파견이라던데, 정말입니까?”
“직접 보시죠.”
남자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딱히 수갑을 채운 것도, 포박을 하지도 않아서 의아해하며 따라가니, 어느새 건물 출구에 다다랐다.
“아....”
그렇게 남자의 말대로 직접 볼 수 있었다.
황무지 한복판에 자리한 기지의 모습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름 모를 괴조들을 말이다.
“도망치시고 싶으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기지 내에서 말썽만 안 피우면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겁니다.”
그에게 배정된 텐트와 기본 보급품을 건넨 남자가 말했다.
“이제... 무얼 하면 됩니까?”
“찾아보세요. 캠프에서 지급하는 보급품은 이정도입니다. 나머지는 본인께서 알아서 구하셔야 합니다.”
“.......”
군대 시절에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작은 주머니가방. 세면도구와 수건, 양말과 속옷 몇 가지. 군복을 연상케하는 기본 의류와 보급 운동화.
남자는 그게 전부라고 했다.
소모품이라고 해서 추가로 보급해주지도 않고, 모든 건 이곳에서 알아서 구해야 한다고 말이다.
“해주실 만한 조언이 있습니까?”
멍하니 서있던 최강혁의 물음에, 반쯤 돌아서다 멈춘 남자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가 되었든, 아끼려고 하지 마세요. 어차피 오래 못 가니까요.”
“.......”
“이곳에서의 생존율은 2년이 안 됩니다. 정식 군인이 아니라 죄수로 들어왔을 경우엔... 한 달을 넘기기 어렵죠.”
외부 징역이라는 건 결국 사형에 준한다는 뜻이다. 단지 인권 문제로, 본토에서 사형대에 올리지 못해서 생긴 형벌일 뿐이라고.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실 생각이라면... 뭐라도 하세요. 잡일이든 뭐든 해서, 정식으로 보급을 받거나 봉급을 받는 이들에게서 물품을 구하고 먹을 것을 얻어야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마저 몸을 돌린 남자는 하나 깜빡했다는 듯 다시금 고개를 돌려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남의 물건을 훔치다 걸리면 추방형입니다. 이곳의 형벌은 보통 추방형이고, 그 시간과 거리에 차등을 주는 정도죠. 궁금하시면 해보세요.”
남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존댓말을 해주고 있긴 하지만, 그건 존중이라기보다는 단지 형식일 뿐인 것 같았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시한부 환자를 보는 것 같았다. 최강혁은 얼른 자신의 보급품을 다시 체크하고 잠자리를 정리했다.
“아무 것도 없네.”
텐트는 2인용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무척 튼튼해보이던 여러 건물들과는 동떨어진 위치이기도 했다.
‘설치한 지 얼마 안 되어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설마하니 이불이나 베개조차 없는 건가. 아무리 죄수라고는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사형을 내릴 수가 없으니 이렇게 처리하는 거라고 했었다. 외부라는 건 단순히 나라 바깥을 말하는 게 아니니까. 전혀 다른 세상이니까.
“.......”
군인들일까.
얼핏 근처를 지나던 이들 중 그와 눈이 마주친 이가 있었지만, 그저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조금 전 그곳으로 안내해준 남자와 비슷한 눈빛이었다. 머잖아 죽을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옮겨도 되는 건가.’
시선을 내린 최강혁은 자신의 텐트를 보았다. 어차피 주변은 온통 공터였으니 적당한 곳으로 옮겨도 될 것 같았다. 지금 있는 곳은 땅이 울퉁불퉁해서 제대로 누울 수도 없었다.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가?’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싶었지만, 그를 상대해줄 만한 이는 보이지 않았다.
‘알아서 하라고 했으니, 알아서 하면 되겠지.’
근처를 돌아다니던 그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표시를 해두었다. 돌아와서 텐트를 철거하기 시작하니, 그제야 멀찍이서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와서 뭐라고 하는 이는 없었다. 옮겨도 괜찮다는 거겠지 싶어서, 텐트 철거를 서둘렀다.
‘조심해야지.’
텐트 재질이 질겨보이긴 하지만, 이것을 5년간 써야 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졌다. 어디가 찢어지기라도 하면 빗물이 샐 것이다.
그나저나, 먹을 것은 어디서 구해야 하나.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으니 당연히 식당이 있을 테고... 그쪽에 일거리가 있지 않을까?’
식당이라면 설거지 같은 일에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병사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개중에는 한끼 정도 제공하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떠넘길 만한 이들이 있을 것 같은데.
“.......”
그렇게 자리를 옮겨 텐트를 재설치한 그는 자신의 보급품을 그 안쪽, 미리 발로 조금 파두었던 곳에 잘 숨겨 묻다시피 했다.
이런 취급이라면, 이미 보급받은 몇 안 되는 물품들조차 제대로 지켜내기 어려울 거라 짐작한 것이다.
“이럴 게 아니지.”
아예 지금 갈아입을 수 있는 건 그렇게 하는 게 좋을까. 얼른 그 안에서 옷과 속옷을 갈아입고 보급 운동화를 신으니, 죄수 느낌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기도 했다.
‘비슷한 옷을 입은 이들이 더 있어.’
분명히 보았다.
군인들은 복장이 다르다.
그 외에도 몇몇 보급된 것인지 통일된 옷을 입은 이들이 있는데, 지금 그가 입은 옷을 걸친 이들도 적잖게 눈에 띄었다.
‘모두 다 죄수는 아닌 것 같은데.’
텐트의 위치를 잘 기억해둔 그는 서둘러 캠프 내부 시설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겸사겸사 식당이 있는 곳을 알아내면 더 좋을 것이었다.
‘아....’
그리고, 두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출입할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어있구나.’
일반 직원과 방문객 등등 기밀 시설에 출입하지 못하는 이들은 지금 그가 걸친 것과 같은 옷을 입은 듯 했다.
그렇다고 군인 옷을 훔쳐입는다고 해서 그들의 시설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겉으로는 그런 구분이 있어보였다.
‘군인 식당은 아예 출입할 수 없는 구역에 있는 모양이고.’
그나마 외부 식당을 몇 곳 찾아내긴 했다.
다행히 그 중 한 곳에서 일자리를 얻었는데, 잔뜩 모인 잔반 수거통을 수레에 실어 처리장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차에 실어 옮기면 간단할 것 같은데, 그런 일에 연료를 낭비할 수는 없다고 했다. 모두 리어카 같은 것들에 실어 직접 손으로 옮겨야 한다고.
“대신 하루 한 끼 정도는 먹을 수 있게 해주지. 따로 돈은 줄 수 없겠지만 말이야.”
“고맙습니다.”
“글쎄. 오늘은 그렇게 이야기하겠지만, 또 모르지.”
잔반 쪽을 담당하던 직원은 별로 탐탁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 일을 하게 해달라며 찾아왔던 이들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다는 것 같았다.
‘왜 그런 거지?’
잔반이 그득하게 실린 통을 리어카에 옮겨 실으며 최강혁은 생각했다.
오래된 음식 쓰레기도 아니니 딱히 악취도 나지 않았고, 옮기는 일이 그리 어렵지도 않은데 왜들 오래 버티지 못하는 걸까.
“벌써 다 했다고?”
그 날의 일을 끝내고 담당자에게 갔더니, 그가 직접 가서 비어있는 잔반통들을 확인했다.
“몇 번 오갔지?”
“하나, 둘... 여섯 번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엔 두 통만 있었고요.”
“혼자 옮긴 게 맞나?”
“네. 문제 있습니까?”
“아니. 문제는 없지.”
그의 몸을 흘깃거리던 담당자는 젊어서 그런가, 하고 중얼거렸다. 잔반통이 좀 묵직하긴 했지만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부분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거기서 손 씻고, 들어와. 마침 손님도 없으니까 정리하기 전까진 마음껏 먹으라고.”
“마음껏?”
“그래. 어차피 잔반이니까. 오늘은 저녁이지만, 내일부턴 원할 때 와서 먹어도 괜찮아. 대신 하루 한 끼라는 것 명심하고.”
담당자는 몇 가지 조건을 이야기했다.
하루 한 끼.
손님이 없을 때.
전날의 일을 남기지 않았을 때.
딱히 어려울 것 없는 조건이었다.
식당에 들어가보니 뷔페 형식이었고, 다른 곳으로 가려다 멈춘 담당자가 그에게 말했다.
“저녁 잔반은 다음 날 아침에 치우면 돼.”
“알겠습니다.”
“뭐, 원한다면 미리 치워도 문제는 없겠지. 다음 날 일이 줄어들테니.”
“고려하겠습니다.”
“그래. 많이 먹으라고.”
적어도 식사에서 차별을 두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첫날부터 좋은 직장을 구한 걸까.
‘어차피 잔반이 될 거라면 정말로 마음껏 먹어도 되겠구나.’
언젠가부터 허기짐이 심해졌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멍때리기 시작한 것도 움직이면 배가 고파져서 그런 것이었다.
‘그 날 부터였던 것 같은데.’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셨던 날.
아마도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물만 더 마시는 게 아니라, 밥도 마찬가지로 더 많이 먹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살이 찐 것도 아니고.’
구속된 이후에야 정량식을 받았으니 살이 찔 수가 없었겠지만... 이젠 어떨까.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하루 한 끼라면, 그 한끼를 제대로 먹어야지.’
그렇게 따지면, 아침보다는 저녁에 밥을 먹는 게 나을까. 낮에는 잔반이 많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다음 끼니에 재활용할 수도 있으니까.
‘인기 있는 메뉴 같은 건 먹기 어렵겠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들만 해도 풍성하기 그지 없다. 큼직한 접시에 이것 저것 잔뜩 담아 식탁으로 향한 그는 순식간에 먹어치운 후 비슷하게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왜 배가 안 부르지?’
손으로 배를 만져보면 뭔가 들어갔는지 볼록하긴 한데, 더부룩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혹시나 해서 두어 바퀴를 더 돌았더니 그제야 조금 먹은 기분이 났다.
‘더 먹을 수도 있겠는데.’
어차피 잔반통을 치우는 것도 그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으니, 아예 식탁에 앉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접시에 덜어 먹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먹었을까.
겨우겨우 배가 부른 느낌이 날 즈음 식사를 멈춘 그는 담당자를 찾아가 잘 먹었다고 인사했다.
“잔반은?”
“수거통으로 옮겼습니다. 설거지는 어떻게 할까요?”
“그건 냅둬. 주방 직원들이 할 거야. 각자 맡은 일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제대로 먹긴 한 거야?”
“예. 많이 먹었습니다.”
“그럼 됐고. 내일 보자고.”
그렇게 저녁 잔반을 마저 처리장으로 치운 그는 자신의 텐트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건 훔쳐가지 않는 건가.’
다행히 그 자리에 멀쩡하게 남아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잘 숨겨둔 보급품도 그대로였다.
‘하긴. 그럴 이유가 없지.’
오늘 돌아다니며 몇몇 이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 이 캠프에 있는 죄수는 최강혁 한 명 뿐이라고 말이다.
가장 최근에 들어왔던 죄수는 지난 달에 죽었다고 했다. 캠프 밖으로 추방되었었다고.
‘그런 짓을 했으면 죽을 만도 하지.’
강간 미수였다던가.
캠프 사무실의 여직원을 공격했다는 듯 했다. 곧바로 군인들에게 제압되었고, 10킬로미터 바깥에서 1일 추방형을 받았다.
‘거리는 상관 없지. 문제는 기간이야.’
추방형을 받았다면, 군인들이 차량에 실어 해당 거리에서 내려주고 온다고 들었다. 캠프로 걸어서 돌아오는 건 가능하겠지만, 기간이 종료되지 않으면 들여보내주지 않는다던가.
‘가까이 복귀하더라도 눈에 띄지 않는 게 좋겠지. 도로 데려가서 내려놓을 수도 있다고 하니까.’
애초에 그럴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강간범들은 재범률이 높다더니, 이런 곳에서도 못 참고 그렇게 된 건가.
“배는 채웠는데....”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이곳의 하루가 지구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밤하늘의 모습은 그곳과 비슷했다. 대신 무수히 많은 별무리 사이로 얼핏 얼핏 시커먼 것들이 돌아다니는 게 다를까.
‘아래로 내려오면 사격을 한다고 했지.’
위에서 날아다닐 땐 별 문제가 없지만, 지상으로 내려오면 제법 커다란 놈들이라고 했다. 위험하니까 아예 사격으로 견제한다고.
‘이쪽 구역도 지켜주긴 하는 건지 모르겠군.’
텐트 밖에 서서 이를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는 식당에서 구해온 빈 물병을 들어 입을 헹구었다.
‘이제 고작 하루....’
5년을 있어야 한다.
매일이 오늘같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이전의 죄수들은 왜 오래 버티지 못했던 걸까.
‘식당의 일도 그렇고.’
그다지 위험하지도, 힘들지도 않은 일인데 왜들 금방 그만두었다는 걸까.
그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 3화 〉 003.
003.
“이것들도 이쪽에서 처리합니까?”
“어. 맞아. 군인 식당 쪽 잔반이야.”
다음 날 오후.
여러 차량에서 내려진 묵직한 통들을 보고 물어보니 담당자가 그렇게 답했다.
“그냥 그대로 처리장까지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두 번 일하게 되는 것 같은데....”
“처리장은 뒤쪽에서 대기해야 하니까. 이쪽에 짬시키고 그냥 복귀하는 게 빠르다 이거지.”
“아....”
“못 하겠어?”
담당자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 보니, 이런 일 때문에 금방 그만두는 이들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원래 세 명이서 하던 일이야. 다들 도망쳐서 다른 부서 직원들이 맡았었지.”
“그렇군요.”
“군인 식당 쪽 잔반은 이틀에 한 번씩 오거든. 어젠 아닌 날이었고.”
담당자의 설명은 ‘그래도 이 일을 할 거냐’는 느낌이 강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다른 부서 직원들이 이쪽 일을 거들면 소액이나마 추가 수당이 붙는다는 듯 했다.
“고작 그거 더 받는다고 좋아할 놈들은 없지. 네가 관두지 않는다면 다들 반길 거야. 어때?”
“관둘 생각은 없습니다.”
“호오... 하긴, 이제 이틀차니까.”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이던 담당자는 이어서 반가운 제안을 했다. 이대로 추가 지원 없이 혼자서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면, 하루 한 끼 외에도 약간의 수당을 줄 수 있다고 말이다.
“수당이라면, 돈 말입니까?”
“현금은 아니야. 이쪽 캠프에서 사용하는 전용화폐지. 단말기는 갖고 있지?”
“아니요. 죄수라서.”
“아. 그렇다고 했지. 그럼 어쩌나... 뭐, 일단 자네 이름에 달아놓을 테니 나중에라도 단말기를 구하든 해보라고.”
“단말기....”
“여기선 그게 있어야 뭐든 거래할 수 있을 거야. 물물교환이 아닌 이상에는 말이야.”
“네. 그런데....”
“뭐?”
“저쪽 리어카를 써도 됩니까? 이건 좀 작아서요.”
“저거? 혼자 되나? 적어도 둘은 붙어야 끌 수 있을 텐데.”
“한번 해보려고요.”
“그러든가. 길에서 엎지만 말고.”
“네.”
보통의 리어카보다 더 커다란 녀석이 한쪽에 세워져있었다. 그쪽에 실으면, 어제처럼 여섯 번을 왕복해야 할 양도 두 번 정도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오늘은 양 자체가 늘어났으니, 어제보다 더 많이 움직여야 할 테지만.
‘묵직하구나.’
군인식당의 잔반통은 크기부터 커서, 채워진 양도 거의 두배는 되었다. 혼자서 들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문제 없이 들어졌다.
‘힘이 좋아진 건가.’
어제 하루 잘 먹었다고 그렇게 된 건 아닐 텐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마저 실어올린 그는 처리장을 왕복하며 쌓여있던 것들을 마저 비웠다.
군인식당 잔반통은 설거지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해서 한쪽에 겹쳐 쌓아두었고, 이쪽 식당의 것들도 마저 치우고 나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었다.
“그걸 다 했어?”
잠시 밖에 나와본 담당자가 혀를 내둘렀다. 예전에는 하루에 다 못해서 다음날로 누적된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야 직원들이 자기 일 하고 남은 시간에 하려다보니 그렇게 된 거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며 담당자는 거듭 고개를 흔들었다.
“혹시, 각성을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제가요?”
“아니야? 이상한데.”
담당자는 혹시 모르니 ‘시스템’이나 ‘상태창’을 말해보라고 했다. 만약 정말로 각성을 한 거면 엄청난 행운 아니냐고 말이다.
“시스템... 상태창?”
그렇게 따라서 이야기한 최강혁이 멀뚱멀뚱 자신을 보자, 담당자는 비슷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님 말고.”
그렇게 담당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식사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던 최강혁은 리어카 옆에 기대어앉아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뭔데, 이거.’
원래 아무것도 없어야 할 허공에 뭔가가 생겨나있었다. 주위를 흘깃거리며 다시금 담당자가 말했던 것을 중얼거리니, 그 중 하나에 반응이 왔다.
‘시스템이구나.’
왜 그동안 몰랐을까.
아니, 아니지. 각성을 하게 될 줄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다행 아닐까.
‘생각만 갖고도 열고 닫을 수 있네.’
마치 게임의 설정창을 보여주는 듯한 반투명한 사각틀 안에는 그의 이름과 나이, 신체 사이즈 등등이 표시되어있었다.
[사용자 내용]
이름 : 최강혁
나이 : 22
키 : 173 센티미터
몸무게 : 64 킬로그램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내용.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아래에 있었다.
[스킬 내용]
신체 강화 (기본)
스캐닝 (기본)
루팅 (기본)
흡수 (고유)
조합 (고유)
‘신체 강화?’
각성을 하게 되면 일반인보다 뛰어난 체력과 지구력, 순발력 등등을 갖게 된다는데 아마 그걸 말하는 것 같았다.
스캐닝에 대해서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다. 각종 사물을 분석해서 시스템에 그 내용을 저장하는 기능이라던가.
‘두 가지는 기본 스킬인가보네. 그러면 고유스킬이 남들하고 다른 부분인가?’
흡수와 조합.
단순히 단어만 갖고는 어떤 스킬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뭘 흡수한다는 건지.
-대상을 흡수하시겠습니까?
‘깜짝이야!’
흡수에 대해서 생각하던 차에 갑자기 떠오른 새로운 창.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울리는 기계음에 기겁한 그는 다른 곳과 달리 녹색으로 빛나는 부분에 시선을 두었다.
다름아닌, 그가 손으로 짚고 있던 바닥의 돌멩이였다.
‘이걸 흡수한다고?’
-대상을 흡수하시겠습니까?
‘흡수하면 어떻게 되는데?’
-대상을 흡수하시겠습니까?
돌 같은 걸 흡수하면 몸 안에 돌이 생기는 거 아닌가? 암처럼 말이다.
‘설마 그런 걸 스킬이라고 주진 않겠지?’
혹시나 해서 다시금 주변을 돌아본 최강혁은 그 돌멩이를 손에 쥐고 흡수를 시도해보았다.
방법은 간단했다. 이어진 질문에, 마음 속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되었다.
“.......”
그러자, 손 안에 쥐고 있던 작은 돌멩이가 스르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기이한 감각에 얼른 손을 펴보니, 마치 액체처럼 녹아드는 모습의 돌멩이가 그의 손바닥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이게 뭐야?’
-지정 대상을 흡수하였습니다.
-아직 스캔되지 않은 대상입니다. 자동으로 분석에 들어갑니다.
이어서 온갖 성분들이 화면에 떠오르더니 저장되었다는 알림이 이어졌다.
-이미 스캔된 대상일 경우 흡수 속도가 빨라집니다.
나름의 조언도 이어졌다.
‘이건....’
조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떤 것을 흡수할 수 있고, 흡수할 수 없는지.
흡수한 대상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어떻게 도로 꺼내는지, 혹은 특정한 성질만 뽑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이 계속되었다.
“뭐 해? 밥 안 먹을 거야?”
식당 뒷문이 열리고, 담당자가 그에게 묻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최강혁은 여전히 귓가를 울리는 기계 목소리를 멈추고 눈 앞을 채운 창들을 치웠다.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겉치레는 됐어. 오늘처럼 일이나 잘 하라고.”
손님들도 직원들도 빠진 식당은 조용했다.
어제처럼 접시 한가득 음식을 올려 식탁에 앉은 그는 그곳에서도 시스템을 활용해보았다. 음식에 대고 스캐닝을 시도해본 것이다.
‘와....’
그렇게 분석된 결과는 제법 흥미로웠다.
그가 알고 있는 이름의 육류 및 채소와 조미료도 있었지만, 처음 듣는 것들도 그만큼 많았다.
‘원산지도 표시가 되는 건가? ...현지 조달품은 뭐야? 이게 몬스터 고기라는 거야?’
잘 먹고 있던 고기가 갑자기 무서워보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맛이 없던 건 아니어서 먹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루팅 기능도 있었지.’
그게 뭐하는 스킬인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식사하러 들어오느라 제대로 시도해보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하면 될 듯 했다.
‘이것도 되나?’
-대상을 루팅하시겠습니까?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접촉한 고기 한 점.
하지만 이어진 안내는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루팅할 수 없습니다.
-인벤토리가 부족합니다.
‘인벤토리?’
-현재 사용자의 인벤토리는 0칸입니다.
-새로운 인벤토리를 생성하시겠습니까?
‘만드는 건가?’
그러겠다고 생각하니, 잠시 ‘현재 조건 분석 중’ 이라는 알림이 떠올랐다.
-현재 사용자께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체내 마나’입니다. 대상을 활용하시겠습니까?
‘체내 마나? 나한테 마나가 있어?’
그런 건 시스템 창에서도 본 적 없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시스템이 있다고 하니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 그는 계속 진행해보았다.
‘뭐야, 이거.’
그리고, 인벤토리 생성이 시작되었다는 알림과 함께 이어진 것은 극심한 허기였다.
마치 몸에서 체력이 주욱 빨려나가는 느낌에 살짝 휘청거렸을 정도였다.
-사용자의 체내 마나가 위험수치에 이르렀습니다. 인벤토리 생성 작업을 일시중지합니다.
-체내 마나를 회복하십시오.
‘마나라는 게 체력을 말하는 건가?’
정확히 그런 뜻은 아닌 것 같은데, 아마 서로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잠시 그러고 있으니 빙빙 돌던 어지러움이 조금 가라앉았다.
‘음식으로 채울 수도 있는 거구나.’
그리고, 아까 전처럼 이어진 관련 조언들 덕분에 체내 마나라는 것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일단 먹는 음식을 통해서도 채울 수 있고, 별도의 약품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심지어 그가 가진 흡수 스킬과 연계하여, 대상에 존재하는 마나를 뽑아낼 수도 있다는 것 같았다.
‘빨리 채우려면... 흡수를 연계해야겠지.’
최강혁은 서둘러 접시를 비웠다.
먹는 속도가 무척 빨라진 것은 씹어 삼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입 안에서 흡수스킬을 섞어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접시를 들고 움직인 그는 어제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치웠다. 어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데친 브로콜리 같은 것들도 마구마구 입에 집어넣었다.
-인벤토리 생성 작업을 재개합니다.
그렇게, 아예 잔반 자체가 거의 안 생길 정도로 먹어치우면서 작업을 이어가니 결국 1칸의 인벤토리가 생성 완료되었다.
‘아. 이게 하나만 넣는 칸이 아니구나.’
그렇게 만들어진 인벤토리 1칸.
그것은 단순히 게임에서 아이템 하나를 집어넣는 식의 칸이 아니라, 작은 크기의 방과 비슷한 공간이었다. 정육면체였고, 한 변의 사이즈는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듯 보였다.
‘공간 자체는 크지 않지만, 그래도 굉장해.’
이게 있으니, 이제는 귀중품을 땅에 묻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 귀중품이라 할 만한 것 자체가 없긴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이렇게 쓸 수도 있지.’
최강혁은 아직 먹지 않았던 고기 요리를 루팅해 인벤토리 1칸을 가득 채웠다. 배가 고플 때 꺼내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칸을 계속 늘릴 수가 있구나.’
앞으로도 같은 방법으로 인벤토리 확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체내 마나가 아니라 다른 뭔가를 지불해서 칸을 늘릴 수도 있는 것 같지만, 지금 그에겐 그럴 만한 게 없었다.
“잔반은?”
“치웠습니다. 퇴근해도 될까요?”
“일 다 했으면 가야지.”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어제보다 가벼워진 발걸음.
하지만 복귀한 그를 반기는 건 텐트가 아니라, 그것이 있었던 빈 공터 뿐이었다.
“......?”
잘못 왔나 싶어서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분명 그곳이 맞았다. 애초에 그 주변 공터에 있던 텐트라곤 그의 것 뿐이었으니까.
“아....”
다행히 땅에 묻어놓았던 보급품은 멀쩡했다. 헤집어본 흔적은 있었지만, 가져가진 않은 듯 했다.
“텐트만 가져갔구나.”
어제 아무 일 없었다고 방심했다.
이곳 사람들은 보급품도 나오고 돈도 벌 테니까, 그런 건 안 건드릴 줄 알았는데.
‘보급품은 안 건드리긴 했지.’
땅에 널려있는 보급품을 하나 하나 잘 그러모은 최강혁은 텐트가 사라진 빈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죄수에겐 숙소가 허락되지 않는다고 했었지.’
그를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텐트를 가져갔을 수도 있을까? 금방 포기하고 좌절해야 하는데 하루 지켜보니 제법 잘 적응한 것 같아서?
‘글쎄.’
지금은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아무래도 좋은 기분이었다.
‘각성자가 되었다고. 내가.’
시스템이라는 게 생겼다.
몸이 강해졌고, 돌멩이도 흡수할 수 있단다. 루팅도 할 수 있고, 인벤토리도 한 칸 생겼다.
‘음. 아껴먹어야지.’
문득 그 안에 채워놓은 고기가 생각났지만, 당장 먹어버리고 싶진 않았다.
‘마나가 필요하긴 한데... 다른 방법으로도 채울 수 있다고 했으니.’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주변 풍경.
최강혁은 가장 가까이 있는, 땅 위로 불쑥 솟은 바위 하나를 바라보았다.
‘흡수해서... 마나를 빼내자.’
〈 4화 〉 004.
004.
자연에 있는 모든 것에 마나가 들어있다고 했다. 그 양에 차이는 있다고 하지만, 문제는 없다.
“.......”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기에, 슬금슬금 주변 눈치를 보며 바위로 다가간 최강혁은 그것을 깔고 앉았다.
‘일단 스캔하고 나면 더 빨리 흡수된다고 했지?’
아까 전의 조언을 잊지 않았다.
복잡한 성분이 아니어서인지 스캔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곧 흡수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각성한 걸 숨기는 게 좋을까?’
오늘은 경황이 없어서 그랬다지만, 생각해보니 아까 담당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게 잘 한 일 같기도 했다.
‘죄수니까.’
각성자라고 해도, 결국 죄수니까.
이곳은 지구도 아니니 어떤 식으로든 부려먹히기 좋을 것 같은데.
‘들키지 않는다면, 계속 숨기는 게 좋겠어.’
-흡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그 때, 한창 바위를 흡수하던 것이 멈추었다. 이어진 안내를 읽어본 그는 흡수 또한 무한정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흡수는 일차적으로 신체 내부에 담는 개념이고... 몸에 지장이 가는 건 아니구나. 인벤토리하고 연계할 수도 있다고는 한데, 지금은 한 칸이라 쓸 수가 없네.’
흡수한 대상을, 혹은 그것으로부터 뽑아낸 특정 성분을 따로 인벤토리에 옮기거나 할 수도 있다는 것 같지만, 지금은 공간도 부족하고 그런 식으로 활용할 일도 없었다.
‘필요한 건 마나 밖에 없어. 나머지는 버리자.’
그렇게 마나를 뽑아낸 후, 나머지 찌꺼기는 적당히 가루로 만들어 주변에 배출했다.
그렇게 나머지 바위를 마저 흡수하니, 이상하게도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허기가 약간 줄었다.
‘이 배고픔은 마나가 부족해서 생기는 걸까?’
단순한 배고픔과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그 정체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그런데, 마나는 어디까지 채울 수 있지?’
-체내 마나 표시를 활성화하시겠습니까?
마나라는 게 눈으로 보이도록 표시할 수도 있는 거였나. 기본 설정은 비활성화인 것 같은데, 왜 닫아놓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체내 마나]
32.5 / 137
‘137이구나. 애매한 숫자네.’
시스템의 조언을 들어보니, 체내 마나를 거듭 소모하고 채우게 되면 조금씩 그 최대치가 상승한다고 했다.
그 외에도 관련된 스킬 수련, 혹은 약품이나 도구를 활용해서 늘리는 것도 가능한데,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첫 번째 뿐이었다.
‘10퍼센트 아래로 내려가면 위험한 거구나.’
마나 잔량은 체력과 연계되어있어서, 만약 완전히 바닥나게 되면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주 죽는 건 아니지만, 만약 주변 상황이 위험하다면 치명적일 것이다.
‘마나 관리를 잘 해야겠구나.’
가만히 있으면 거의 줄어들지 않는 편이었지만, 무거운 것을 들거나 할 때는 저절로 마나를 쓰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걸 쉽게 들 수 있었던 거군.’
두 사람이 겨우 들어올릴 법한 잔반통.
담당자가 놀란 것도 그럴 만한 일이었다.
덕분에 각성한 걸 알게 되었으니, 담당자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
‘그나저나, 단말기를 구해야 할 것 같은데... 비싸겠지?’
단말기라면 크게는 휴대폰 같은 것들, 작게는 손목에 차는 형태의 도구들이 있었다.
일단은 돈이 있어야 구할 수 있을 텐데, 이곳에선 돈이 쓰이지 않는다고 하니까 물물교환을 해야 할까?
‘바꿀 만한 물건도 없고... 이래저래 곤란하네.’
점심 잔반을 저녁에 몰아서 치우고, 낮에는 다른 일을 구해봐야 할까? 돈은 못 받더라도 대신할 만한 것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단말기를 구하는 건 어떨까.
이런 저런 고민을 떠올리는 동안, 어느새 마나 잔량이 100 근처까지 차올랐다.
그것을 활용해 새로운 인벤토리를 만들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20근처까지 내려가서 작업이 일시중지되었다.
‘밤은 기니까.’
이제 생각해보니, 그때 이후로 잠이 줄어든 것도 각성을 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어차피 텐트도 없어졌으니, 오늘은 그냥 새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주변에 널린 게 돌멩이니까. 이런 건 흡수해도 뭐라 못하겠지.’
애초에 누군가의 소유물은 흡수나 루팅을 하지 못한다고 했었는데, 이런 돌멩이는 캠프의 소유품으로 인식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잔반도 흡수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좀 그렇지.’
아직 그 정도까지 절실한 느낌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잔반을 없애버리면 분명히 문제가 될 것이다. 처리장에 줘야 할 물량이 없어질 테니까.
* * *
“텐트가 없어졌다고?”
“예. 혹시... 아닙니다.”
죄수는 실내에서 잘 수 없다.
‘혹시 창고 같은 곳이라도 없을지’ 물어보려던 것을 관둔 최강혁은 이어진 담당자의 말을 들었다.
“그거, 재보급 나오지 않나?”
“재보급이요?”
“잘은 기억 안 나는데, 아마 죄수라고 해도 몇몇 보급품은 재보급이 되는 것 같던데.”
“이상하네요. 처음에 주는 거 말고는 없다고 했었는데.”
“그런가? 정책이 바뀐 걸 수도 있고. ...아. 형량에 따라 갈리나? 몇 년형이랬지?”
“5년입니다.”
“음... 외부 징역 5년이면 큰데. 그냥 죽으라는 거잖아. 아주 흉악범이었나봐?”
“.......”
새삼 국선변호사의 무심한 얼굴이 떠올랐다. 참작이 되어서 형량이 그 정도니 다행이라고 하던...
지금 그자가 앞에 있다면, 이번엔 과실치사가 아니라 진짜 살인범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군인들한테 알아보는 게 좋을 거야.”
“네?”
“그쪽도 개인 구매품이거든. 천막이나 우의 같은 것들 말이야. 그쪽에 알아보면 낡은 천막 같은 걸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아....”
“혹시 모르잖아? 자기 천막이 낡아서, 그쪽 천막을 훔쳐갔을 수도 있고.”
그런 건가.
가능성이 있다.
군인들이 텐트까지 개인 돈으로 사야 한다는 게 이상하긴 한데, 정말 그런 상황이라면 죄수가 새 텐트를 쓰는 게 아니꼬왔을 것 같긴 하다.
“가져갈 거면 낡은 거라도 놓고 가지.”
“그러게요. 일단 일 시작하겠습니다.”
“좋아. 고생하라고.”
누가 텐트를 훔쳐갔든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정 뭣하면 토굴이라도 파볼까 생각 중이었으니.
‘인벤토리도 3칸이나 되었고.’
지난 밤을 내내 새워가며 마나를 채우고 작업을 이어간 끝에, 현재 인벤토리는 3칸이 되었다.
‘확실히, 음식으로 채울 때보다는 느렸어.’
흙과 돌 안에 들어있는 마나의 양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흡수 스킬이 있어서 다행이지, 그게 없었으면 그런 방법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늘 밤까지 하면 5칸은 만들 수 있나? 아니지. 저녁을 먹으면서 작업하고, 또 밤을 새우면....’
잘하면 6칸에서 7칸까지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면 텐트가 없어도 문제가 없어진다.
‘인벤토리가 충분하면, 조합 스킬의 효율이 높아지니까.’
새벽 나절에, 인벤토리에 있던 고기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 공간을 활용하여 루팅과 흡수, 조합 등등의 스킬을 연습해보았다.
당장 구할 수 있는 재료는 주변에 널린 흙과 돌 정도였지만, 그것들을 조합하면 꽤 재밌는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벽돌 비슷한 것도 가능해.’
한 장 한 장 찍어내는 것이 번거롭긴 하지만, 인벤토리가 늘어나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짓을 하게 되면 각성자인 걸 숨기지 못하게 될 거라는 부분인데, 그 부분은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했다.
‘겉은 그냥 토굴이나 움막처럼 해놓고, 그 토담 내부를 벽돌로 채워도 되겠지. 방법은 많아.’
텐트를 구하는 게 어렵다면, 그런 방법을 쓰는 게 좋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노숙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차라리 각성자인 걸 알려볼까.’
제대로 각잡고 작업하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황토집 비슷한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죄수라는 이유로 인정 안 될 수도 있나.
‘모르겠군.’
이곳의 정책이 어떤지 아직 잘 와닿지 않았다. 마냥 방치해버리는 것 같기도 한데, 아닐 수도 있었다.
‘일하자.’
커다란 리어카에 잔반통들을 번쩍번쩍 들어다 실은 그는 이제 익숙해진 길을 따라 처리장으로 향했다.
“양이 좀 줄었네요?”
“그런가요.”
조금 안면을 익힌 처리장 직원은 아마도 군무원인 것 같았다. 얼룩무늬 옷을 입긴 했지만, 전투병력처럼 보이진 않았다.
안경을 고쳐쓴 직원은 잔반의 양을 기록하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또 오는 거죠?”
“네. 두 번 정도요.”
그렇게 두 번 더 왕복하고 나니 저녁까지 시간이 비었다. 원래는 한 번 정도 더 가야 할 잔반이 있어야 했지만, 그건 이동 중간에 적당히 빼냈다.
‘흡수는 못하겠지만, 루팅은 문제 없지.’
굳이 피부로 접촉하지 않아도 루팅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덕에, 맨손으로 만지지 않고도 더러운 것들을 치울 수 있게 되었다.
잔반 일부를 인벤토리로 루팅한 후에 그것들에 남아있는 마나를 빼내고 찌꺼기만 통에 돌려놓는 것을 반복하다보면 그 양이 1/3 정도 줄어들곤 했다.
흡수를 하거나 하지 않은 터라, 겉보기엔 기존 잔반과 다를 바가 없었다.
혹시 처리장 안에 들어가면 문제가 생길까 싶었는데 지나고 나서도 별 말이 안 나오는 거 보면 딱히 문제는 없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돌멩이보다 많이 들어있어.’
비록 잔반이긴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마나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침과 점심의 잔반 속에서 빼낸 마나 덕에 저녁 시간이 되기 전 5칸의 인벤토리를 완성했다.
‘시작이 좋았던 것 같은데.’
단지 배를 채울 수 있는 일거리가 있을까 싶어 찾아왔던 곳. 하지만 그곳의 담당자 덕에 각성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일을 하며 성장도 가능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 찜찜해지는 건, 그의 인생이 이처럼 순탄하게 흘러갔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 될 때 집중해야지. 언제 또 날벼락이 떨어질지 알 수가 없으니.’
그날도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수거된 잔반에서 마나를 빼냈다. 비어버린 주거지로 돌아와 밤새 흡수 작업을 이어갔고, 새벽 즈음에야 조금 눈을 붙였다.
그렇게 보름 정도를 보냈다.
제대로 세탁하지 못한 탓에 지저분해진 옷과 달리, 적어도 얼굴과 손 정도는 깔끔했다. 식당에서 잔반을 수거하고 난 후에 간단히 씻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괜찮아.”
“당직이십니까?”
“그래. 아. 그리고 거기 치약하고 비누 반쯤 남은 거 있을 테니 챙겨가. 새거 꺼낼 거니까.”
“아... 고맙습니다.”
담당자와도 그럭저럭 친해진 덕에, 그가 당직 근무를 설 땐 식당 직원용 샤워장을 쓸 수도 있게 되었다.
그 때마다 모아두었던 옷을 대충 빨기도 했지만, 사실 그에겐 그런 식의 세탁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새 옷들을 집어넣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해진 인벤토리가 있어서, 그 안에 넣어두고 흙과 먼지 따위를 떼어내면 마치 세탁한 것처럼 깔끔해지곤 했다.
하지만 속옷과 달리 겉옷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건 여전히 각성자임을 숨기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다 씻었어?”
“예. 항상 고맙습니다.”
“됐어. 그보다, 아직도 못 구한 거야? 텐트 말이야.”
“예. 군인들하고 대화하기가 쉽지 않아서요.”
“무시하나보네.”
“죄수니까요. 이해합니다.”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던 적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죄를 지은 게 맞다.
비록 오해였다고는 해도, 사람을 때려죽인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음... 이건 어때.”
“예?”
“그동안 쌓인 급여가 있잖아. 자네 몫 말이야.”
“아....”
“그때 알아보니까, 자네 명의로는 계좌를 만들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일단 따로 모아두고 있거든. 이제 말해서 미안하긴 한데.”
“아닙니다.”
“어때. 그걸 써서, 텐트를 사다 줄까?”
“그럴 돈이 됩니까?”
“새걸 사긴 좀 그래도, 그럭저럭 낡은 것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아.”
“음... 혹시, 단말기 같은 걸 사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싼 걸 찾는 거지?”
“그렇죠.”
“손목에 차는 종류로, 구형 중고를 찾아봐야겠네. 그래도 지금 수준으로 몇 달은 걸릴 것 같은데.”
당장 필요한 건 텐트 아니냐는 물음에, 최강혁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어설프긴 하지만 집 비슷한 걸 만들어두었다는 말에 담당자도 더 묻지는 않았다.
〈 5화 〉 005.
005.
“그러고보니 흙집 같은 걸 만들었다는 소문은 들었지. 괜찮은 거야?”
“혼자 지내는 데엔 충분합니다.”
“음. 그러면 돈이 모이는 대로 중고 단말기라도 찾아봐줄게. 액정이 금갔거나 하는 것도 상관 없지? 이쪽은 보통 그렇게 돼서 나온 물건이 많거든.”
“고장만 아니면 상관 없습니다. 그게 있으면 계좌가 없어도 코인을 쓸 수 있는 거죠?”
“은행 연동 없이 단말기로만 쓰려고? 고장나면 날려먹을텐데... 뭐, 어쩔 수 없긴 하겠네. 아무튼 알았어.”
그동안 문제 없이, 오히려 빠릿하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해줘서일까. 담당자는 그를 제법 좋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캠프에 비밀 같은 건 없으니, 과실치사라는 죄목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죄수에 대한 선입견 같은 건 없는 걸까.
“그럼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래. 들어가.”
조용히 퇴근한 그는 야간 경계 근무자들과 몇몇 건물들의 직원들을 보았다.
저들 중에는 그를 경계하거나 업신여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눈에 익어서인지 특별히 내색하는 이들은 없었다.
‘별명도 생겼다고 했나.’
‘짬처리꾼’
사실 새롭게 만들어진 별명은 아니고, 예전부터 그 일을 하는 이들을 칭하는 말이라고 들었다.
어쩌면 그런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관두는 이들도 있었을 것 같았지만, 지금 그에겐 상관 없는 일이었다.
‘더 많은 마나가 필요해.’
인벤토리 제작에만 쓰이는 게 아니다.
체내 마나를 소모해서 할 수 있는 건 더 많이 있었다. 흡수할 수 있는 최대량을 늘릴 수도 있고, 신체의 특정 부위나 능력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확실히 수치화되어 보이는 건 아니지만, 일정시간 특정 부위를 강화하다보면 어느 정도 달라진 느낌이 오기도 했다.
‘부위를 정하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알아서 강해진다고 했지.’
인터넷에서 유명했던 각성자들 중엔 특이하게 생긴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고릴라처럼 팔만 엄청 크거나, 시력이 몽골사람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좋았던 이들 등등.
아마 특정 부위만 집중적으로 강화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당장은 끌리는 부위가 없어서 따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음. 오늘은 별 일 없었나.’
며칠 전인가.
집에 와보니 벽 한쪽에 금이 가있었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한 번 걷어찬 듯한 모양새여서, 밤새 시간을 들여 보수하느라 인벤토리 추가 제작을 못했다.
이후로는 별 일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문짝 대신 걸려있는, 누군가 버린 우비를 적당히 접어놓은 천막을 걷고 들어가니, 예전의 텐트보다는 조금 넓고 안락한 느낌의 실내가 나타났다.
들어와본 이는 없지만, 누가 보아도 겉에서 본 것과는 좀 다르다고 할 것이다.
원형의 내부는 마치 이글루처럼 잘 다져진 흙벽과 깎아낸 듯 편평한 바닥으로 이루어져있었고, 그 한쪽엔 돌침대 느낌의 단단한 침상이 자리했다.
‘이젠 등도 안 배기고.’
이불도 베개도 없는 건 처음부터 지금껏 변하지 않았지만, 각성자의 몸이어서인지 무리가 가진 않았다.
‘아직 넉넉하네.’
벽 한쪽에 붙어있는 토기 등잔.
비죽 튀어나온 심지에 인벤토리에서 꺼낸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이니, 컴컴하던 실내가 은은하게 밝아지며 조금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아무래도 등잔에 들어있는 기름이 잔반에서 뽑아낸 폐유다보니 그런 듯 했지만, 이제는 그런 냄새에도 익숙해졌다.
‘석기 시대도 아니고.’
새삼 흙집 내부를 다시 돌아본 최강혁은 픽 웃으며 침상에 걸터앉았다. 겉보기와 다르게 그 중간 즈음이 미닫이 형태로 열 수 있는 구조였는데, 그 안에는 여분의 옷과 양말 등이 들어있었다.
처음 보급받았던 것만이 아니라 다른 옷들이 섞여있는 건 그동안 안면을 익힌 이들로부터 얻어왔기 때문이었다.
식당의 담당자도 있었고, 잔반을 받으며 친해진 군인식당쪽의 취사병도 있었다.
‘새옷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겉옷이야 그렇다 쳐도, 속옷은 새것을 몇 벌 얻기도 했다. 군인들의 속옷과 양말은 기본 보급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데, 품질이 그리 좋지는 못해서 버려지는 게 있다던가.
취사병이 조금 챙겨줘서, 더 이상 속옷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텐트는 못 구해준다고 했지.’
겉으로 너무 보이는 걸 갖다주긴 어렵다고 했다. 그나마 속옷이나 양말 정도가 최선이라고.
뭐, 돈으로 구하자면 못 구할 건 아니라는 것 같았지만 그에겐 돈이 없었다.
담당자가 맡아둔 돈은 단말기를 사는 데 쓰는 게 나을 테니 건드리지 않을 생각이고.
‘그럼 오늘도 시작해볼까.’
흙집을 짓고 나서 좋아진 것은 더 이상 밤에 작업을 할 때 주변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도 있었다.
흙집 한쪽 구석엔 마치 옛날 탈옥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비밀스런 구멍이 있었는데, 그가 평소 흡수 작업을 하다 보니 생겨난 토굴이었다.
‘이쪽은 너무 팠나... 슬슬 메워야겠네.’
너무 한쪽을 파다간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주기적으로 다시 메우고 다른 곳을 파는 걸 반복하는 중이었다.
마나를 빼낸 흙과 돌은 푸석푸석해져서 지지력이 없는 탓에, 주변의 것들을 모아 채워야 하니 시간이 적잖게 들어갔다.
‘음. 이제 몇 칸이지?’
이제 첫날처럼 필사적으로 달려들지는 않는 터라, 하루에 1칸에서 2칸 정도만 만들고 끝낸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많이 만들었을 땐 하루에 10칸 가까이 찍어내기도 해서, 지금 인벤토리는 정확히 52칸이 되어있었다.
‘뭉쳐놓으면 벽이 없어져서 좋아.’
인벤토리는 한 칸씩, 혹은 여러 칸을 따로 떼어놓을 수도, 아니면 하나로 뭉쳐놓을 수도 있었다.
뭉쳐놓을 경우엔 각 칸의 구분을 없애고 하나의 큰 공간으로 만들 수도 있는데, 지금 그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도 그랬다.
‘굳이 구분할 만한 이유도 없고.’
공간이 하나라고 해서 그 내부에 넣은 것들이 제멋대로 섞이는 건 아니었다. 지금은 식당에서 얻은, 가스가 거의 바닥난 일회용 라이터 몇 개와 칫솔, 치약, 비누 등등의 자잘한 보급품, 양말과 속옷에 일반 보급 외투 하나 정도 넣으면 대부분 찼다.
52칸이라고 해서 엄청난 공간이 아니었다.
하나로 뭉쳐놓으면 대략 가로세로 40센티미터에 높이 30센티미터 조금 넘는 수준의 육면체 공간에 불과했다.
그나마 1칸일때보다야 장족의 발전이었지만, 확장할수록 넣을 만한 것들이 늘어나니 제자리걸음 같기도 했다.
‘그래도 해야지.’
느낌이 그런 것일 뿐, 정말로 제자리걸음은 아니다. 점점 더 여유공간이 생길수록 마나 추출 작업 속도도 그만큼 빨라지고 있다.
‘앞으로 일주일 안에... 잘하면 100칸도 가능할 것 같은데.’
일단 오늘 밤의 목표는 55칸으로 잡았다.
53칸째는 이미 절반 이상 만들어졌으니, 나머지 두 칸 정도는 날이 밝기 전에 가능할 것이다.
‘음?’
그렇게 흙과 모래, 알 수 없는 식물들의 죽은 뿌리 따위를 되는 대로 흡수하고 루팅하던 그가 행동을 멈춘 건 땅 속에서 새로 발견한 것 때문이었다.
‘뼈잖아?’
이런 곳에 왜 뼈가 있나 하고 그 주변을 좀 더 파들어가보니, 일부만 보이던 뼈가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뼈가 보였을 땐, 설마하니 공동묘지 같은 곳에 거주지를 지정한 건가 싶었다. 이대로 파들어가면 사람들의 뼈와 시체가 나오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막상 파보니 그건 아니었다.
출토되고 있는 뼈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짐승의 것처럼 보이는데, 어쩌면 몬스터의 것일 수도 있을 듯 했다.
‘총알 자국이 있네.’
온전한 형태를 갖춘 뼈도 있었지만, 이리 저리 깨지거나 부러진 것들이 다수였다.
개중에는 총탄에 맞은 듯 보이는 구멍이 보이기도 했는데, 아예 탄두가 여전히 박혀있는 것도 있었다.
‘몬스터 부산물이라.’
모든 몬스터들의 가치가 다 높은 건 아니었다. 종류에 따라서 값이 나가는 부위가 따로 있었다.
그렇게 비싼 부위를 제거하고 나면, 나머지는 특수 쓰레기 정도로 취급해 정리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러면 이곳에 묻혀있는 건 그런 부분들을 제외한 나머지 찌꺼기들일까.
‘왜 이쪽에 공터가 있는지 대충 알겠네.’
사람들을 묻는 곳은 아니었으나, 분명 뭔가를 묻어 버린 곳은 맞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혹시나 하고 스캔을 해보니, 해당 뼈의 주인이 무엇이었는지 시스템이 알려주었다. 개와 비슷한 형태를 가진 몬스터도 있었고, 그보다 커다랗고 강해보이는 종류도 보였다.
‘이건 그거네.’
또 다른 뼈를 발견해 스캔했더니, 왠지 낯이 익은 녀석이 튀어나왔다. 지금도 하늘 곳곳을 날아다니고 있는 익룡 비슷하게 생긴 괴조였다.
‘나한테는 좋은 일인가?’
스캔을 마친 뼈를 흡수해본 그는 그것이 돌멩이보다 더 강한 성질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철보다는 못한 수준이었지만, 적어도 그 안에 들어있는 마나량은 돌보다 많았다.
‘이 정도 깊이로 계속 찾아봐야겠어.’
이미 묻어버린 뼈들.
이쪽 캠프에선 사용 가치가 없는 버려진 것들이니 루팅도 흡수도 가능한 듯 했다. 잘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 쓰면 된다.
‘몬스터 종류마다 마나량도 다르구나.’
몬스터의 종류, 또한 죽은지 얼마나 되었는지 등등의 차이로 들어있는 마나량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발굴과 루팅, 마나 추출과 찌꺼기 배출을 이어가다보니 꽤 이른 시간에 55칸을 완성할 수 있었다.
잠시 멈추고 밖으로 나가보니 아직 새벽이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 하면 57칸에서 58칸 까지도 가능할 것 같았지만, 당장 너무 서두르다가 지반이 무너질까 우려되었다.
하여 남은 시간은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며 토굴을 일부 메우는 작업을 하니, 아침이 밝아올 즈음엔 56칸을 완성하는 데 그쳤다.
* * *
“새 죄수요?”
“못 들었나? 하긴, 그런 걸 말해줄 리가 없지. 나도 얼핏 들은 건데, 며칠 후에 들어올 거라더군.”
“그렇군요.”
“반가운 눈치는 아니구만. 그럴 만도 하지.”
죄수에게 있어 새로운 죄수라는 건 동료가 아니라 불편한 이웃 같은 개념이었다.
게다가 감방 따위로 격리된 게 아니라 지금 그가 하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방치될 가능성이 높으니, 새로 올 죄수의 행동 성향에 따라서 싸잡아 욕을 먹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당분간 몸을 사리라고.”
담당자가 조언한 부분도 그런 쪽이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죄수들끼리 뭉쳐서 엉뚱한 짓을 벌이다 같이 추방되기도 했다고 말이다.
“여러 명이 들어오는 겁니까?”
“그건 모르겠는데, 일단 한 명은 아닌 것 같았어. 이쪽으로 온다는 건 흉악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알고 있지?”
“그렇죠.”
“알면 됐어. 조심하라고.”
고개를 끄덕인 담당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최강혁은 하던 일을 마저 마친 후, 빈병에 담아온 물로 목을 축였다.
‘집에 문을 달아두는 게 좋을까.’
새로 죄수들이 온다면, 그들에게도 텐트를 제공할 듯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텐트에 만족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처럼 그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그가 지은 흙집에 욕심을 내지 않을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 것 같은데.
‘흙집 정도야 새로 지으면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빼앗겨줄 생각은 없어.’
이제는 자신의 신체와 체력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긴 했지만, 그래도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수준이었다.
‘키가 조금 자란 것 같긴 한데.’
새로 들어올 이들은 어떨까.
여러 명이라면, 그들이 합공을 한다면 맞서 싸워야 할까. 담당자가 조심하라는 건 그런 부분도 있었는데.
‘이쪽은 죄수의 인권을 챙겨주지 않으니, 싸움에 휘말리면 무조건 동반 추방형일 가능성이 커.’
아예 처음부터 문제 없이 제압해버리는 게 나을까. 그렇다고 죽여버릴 수는 없겠지. 방치한다고 해서 살인행위까지 용납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귀찮은 일이야.’
흙집에 문을 만들어서 막는 게 나을까.
그렇다고 욕심을 안 부릴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면 초라하기 그지 없으니까.
하지만 담당자로부터 들었던 소문의 며칠 후. 정확히는 일주일 후에야 알게 된 것은 그가 우려했던 부분과 많이 달랐다.
“미군이요?”
새로 들어오기로 했던 범죄자들이 미국 사람들이었고, 동시에 미군들이 그곳에 추가주둔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 6화 〉 006.
006.
“갑자기 미국이 왜요?”
“그야 나도 모르지. 뭐, 결국 정치판에서 결정한 이야기 아닐까?”
식당 담당자는 알지 못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단지 그동안 한국인들만 있던 캠프가 규모적으로 확장된다는 것만 안다고.
“미국인들이 들어올 거야. 이미 일차 파견대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안쪽에 있어서 안 보일 테고.”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미국과 같은 캠프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쪽의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것도 같이 추진된 것 같았다.
“그 이야기요? 조금 알긴 하는데....”
“대외비 같은 건가요?”
“그 정도는 아니고요. 저도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요.”
군인식당의 취사병이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마침 관심이 있었는지, 안으로 들어가려던 담당자도 슬쩍 걸음을 멈추었다.
“동맹국이잖아요. 이래저래 정치적으로 얽힌 건 맞는 것 같아요.”
담배 연기와 함께 그렇게 내뱉은 이야기.
한국에서 도전한 파견지역 성과가 나름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미국이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었다는 모양이었다.
“운영비용을 일정부분 분담하기로 한 것 같아요. 별도로 주한미군 주둔 비용도 인상 없이 동결한 모양이고.”
“슬슬 자리 잡아가니까 끼어드는 거군.”
“뭐, 별 수 없죠. 애초에 미국에서 연결해준 곳이니까요.”
“그야 놈들이 위험할 것 같아서 버린 좌표니까 그런 거지.”
버린 좌표.
담당자의 말은 이쪽에서 흔히들 이야기되는 것이었다. 애초에 미군에서 현실성이 없어서 포기했던 외부 좌표를 한국에서 헐값에 넘겨받아 개척에 도전했던 거라고.
“아무튼, 겸사겸사 범죄자 외부 징역형이라는 개념도 수입해간 모양이예요. 그쪽도... 주마다 법이 다르잖아요. 사형이 있는 주도 있고, 아닌 주도 있고요.”
“사형은 안 시킨다는 구실도 좋고,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다 이거군.”
그렇게 이야기한 담당자가 슬쩍 최강혁을 보았지만, 정작 듣고 있던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러면, 미국 죄수들의 숙소는 그들이 따로 배정한 것 같네요. 제가 사는 곳엔 안 왔거든요.”
“아마 그럴 거예요. 미국에서 따로 죄수 수용소를 만드는 중이라고 들었어요. 강혁 아저씨처럼... 자유롭게 두진 않을 것 같아요.”
“하긴. 놈들이 세상 밖으로 내보낼 정도 범죄자면, 수준 자체가 다르지 않을까?”
“.......”
대체 어떤 범죄를 저질렀기에 없던 법까지 만들어가며 이쪽으로 보낸 걸까.
살인? 강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흉악범죄들을 고개 저어 흩어낸 최강혁은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떨구고 비벼 끄는 취사병을 보았다.
“고맙습니다. 궁금한 게 풀렸어요.”
“별 말씀을요. 대신 내려주셔서 제가 고맙죠.”
“어깨는 계속 그러십니까?”
“취사병이니까요. 고질병이죠.”
군용 트럭에 실려있던 그쪽의 잔반통을 최강혁이 대신 내려주기 시작한 지도 며칠 되었다.
평소 어깨가 많이 불편해보여서 슬쩍 스캔을 해보니, 인대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여 의무실에 가보라 이야기했지만, 이미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다들 그 정도 부상은 갖고 산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직업군인 생활을 한다는 건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여 나서서 돕기 시작했더니 이전보다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전에 물어보셨던 거 있잖아요.”
“전에?”
“예. 중고 단말기 필요하시다고.”
“아... 그거. 나 말고 이 친구가 필요한 거지.”
“그런 거였어요?”
취사병은 중고 매물을 팔 만한 이가 있다고 했다. 많이 구형에, 화면이 깨지긴 했지만 작동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이다.
“전에 들었던 값으로 구할 수 있는 건 그 정도 뿐이더라고요. 그것도 제가 계속 닦달해서 수락한 거라....”
“그 값에 구할 수 있는 게 어디야. 작동 문제 없으면 된 거지?”
“그렇죠.”
단말기가 있으면 많은 걸 할 수 있다.
혹시나 해서 행정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니, 스스로 구한 거라면 무얼 지니더라도 상관 없다고 했다.
-그것으로 범죄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는 조건 하에, 무기를 소유하셔도 됩니다. 대신에 그걸 엉뚱한 곳에 사용하시게 되면 가중처벌이 있겠지요.
평소에 신경쓰기는 귀찮으니, 일이 터지고 나면 더 세게 처벌하는 게 편하다는 걸까.
어쩌면 그의 죄목이 그리 대단치 않아서 배려해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숙소를 배정받을 수 없다는 것만 빼면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건지.’
어쨌든 취사병이 단말기를 구해주기로 했다.
돈이야 담당자가 갖고 있으니,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 될 것이다.
“잘 됐구만.”
담당자가 말했다.
앞으로는 추가 수당을 그 단말기에 직접 넣어줄 테니 잘 모아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곳에 와서 돈을 모으는 죄수도 있었습니까?”
“나름 착실하게 살던 이들이 없지는 않았어. 단지 한계가 있었을 뿐이지.”
“지금 같으면 이렇게 5년을 채우는 것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아직 별 일이 생기지 않았을 뿐이지. 그래도 지금처럼만 하라고.”
그런가.
단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뿐인가.
하지만, 그게 바로 평화 아니던가.
최강혁은 잔반통을 리어카에 실으며 생각했다. 지금의 이 심심한 평화가 아주 오래 지속되기를 말이다.
* * *
“벌써요?”
“벌써가 뭐야. 들어온 지 2주나 지났는데. 저들 딴에는 오래 버틴 거지.”
미국 쪽에서 들어왔다던 죄수들이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범죄라도 저질렀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고 했다.
“그쪽은... 그렇게 하는 거군요.”
캠프 안에서 알아서 지내도록 방치하는 게 아니었다. 외부 정찰병들과 함께 내보냈다고 한다.
최소한의 무장만 지니게 한 채로, 일종의 미끼 내지 총알받이 느낌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담당자의 말처럼 오래 버텼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캠프의 높다란 장벽 너머 세상은 무장한 군인들에게도 위험한 곳이라고 하니까.
“새로 올 거라더군.”
“죄수들이 많은가봅니다.”
“안 그래도 그쪽 감옥들이 포화상태였잖아. 몬스터 난리가 나기 이전부터 그랬으니, 경범죄자들부터 조기석방시킨다는 뉴스 본 적 없나?”
“얼핏 기억납니다.”
“그런 게지. 괜히 세금으로 먹이고 입히느니 이쪽으로 조용히 보내버리는 거야. 몬스터들을 방어하는 일에 투입한다고 하면 인권단체라도 크게 반발하지 못하니까.”
“이쪽 캠프는 방어 시설이 아니지 않던가요?”
“선제적 방어라는 개념이지. 뭐, 다 말장난이지만. 누가 그런 걸 신경쓰겠어.”
블랙 코미디 식의 말을 하고는 혼자서 키득거리던 담당자. 그는 다시금 조금 전 했던 말을 반복했다.
“새로 올 거라고. 죄수들 말이야.”
“예. 들었습니다.”
“아니. 아니. 미국 말고, 이쪽.”
“...아.”
최강혁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이곳에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는데, 이제야 새로운 죄수가 온다는 걸까.
“굉장히 흉악범인가보군요. 여러명입니까?”
“세 명이라던가, 네 명이라던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두 명은 넘는 것 같아. 괜찮겠어?”
“글쎄요. 와봐야 알 것 같습니다.”
“뭐, 자네라면 괜찮을 것 같긴 해.”
처음 보았을 때에 비해, 지금의 최강혁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눈썰미가 좋은 건 아닌 터라 자세히는 몰랐지만, 키도 더 자라고 전체적인 몸의 윤곽이 달라져서 생긴 변화였다.
“그래도 조심해.”
그러던 담당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들리는 소문이 안 좋아.”
“예?”
“새로 올 죄수들을, 미국식으로 다룰 거라는 이야기가 있어.”
“.......”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별 문제 없을 수도 있겠지만, 괜히 싸잡히지 않도록 몸 사리라고.”
“조심하겠습니다. 조언 고맙습니다.”
“자네 덕에 나도 많이 편해진 게 사실이니까, 괜히 허튼 일에 얽히지 말라는 거야.”
그리 이야기한 담당자가 안으로 들어가며 지나가듯 덧붙였다.
“오늘 저녁은 고기가 많이 남았더라고. 10분 쯤 후에 들어가면 될 거야.”
“예.”
반가운 이야기였지만, 다른 생각 때문에 즐겁지가 못했다.
‘미국식이라면, 외부 정찰용 미끼일까.’
새로 올 이들이 그만큼 흉악범이니까 할 수 있는 발상일 테지만, 같은 죄수 입장에서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하긴. 모범수 같은 개념은 없겠지.’
그동안 조용히 지냈다고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그저 한 명의 죄수일 뿐. 당장 죽어도 누구 하나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슬슬 들어가도 되려나.’
담당자가 이야기했던 10분은 금방 지나갔다.
손목에 차고 있던, 액정에 금이 간 단말기로 시간을 확인한 그는 조용히 식당으로 들어가 안쪽을 보았다.
‘아무도 없군.’
그는 서류상에 존재하는 직원이 아니었다. 애초에 죄수를 그런 식으로 고용하거나 하는 게 될 리가 없었다.
하루 한 끼를 챙겨주는 것 치고는 과한 노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얻은 것들이 많으니 불만 같은 건 없었다.
‘그동안 많이 돌아다녔지만, 여기 만큼 괜찮은 일자리도 없었지.’
고정적인 일자리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있을 만한 일이라곤 군인들의 전투화를 닦거나 잔심부름을 하는 정도였다.
‘운이 좋았어.’
사실 잔반통을 수거하고 나르는 건 힘든 일이다. 그가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모로 행운이 겹쳤다.
‘오래 가면 좋겠는데.’
평소처럼 접시를 집어든 그는 담당자의 말대로 고기 요리가 많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왠지 웃음이 지어졌다.
‘오늘도 좀 챙겨가야겠네. 몇칸만 별도로 떼어볼까.’
인벤토리는 그냥 보면 꽉 찬 것 같지만, 사실 알게 모르게 숨은 공간들이 있었다.
가능한 범위에서 분리한다고 하니, 기존 적재된 것들이 단단히 압축되고 몇 칸이 떨어져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최대한 비우고 오는 건데.’
어느새 100칸을 넘어서 그 중반이 되어가는 인벤토리지만, 그래도 아직은 마음에 들 만큼 넓지 않았다.
하지만 무작정 늘리기만 하는 것도 조금 곤란해보였다. 인벤토리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도 마나가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탓이다.
칸이 많아질수록 자연소모되는 마나량도 조금씩 늘어난다고 하니, 계속 칸을 늘리다보면 그만큼 부담이 될 듯 했다.
‘마나 최대량이 늘어날수록 회복 속도도 빨라진다고는 하는데... 아직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아.’
[체내 마나]
87.2 / 207
체내 마나량은 처음에 비해 70정도 상승했다.
그동안 계속 쓰고 채우는 걸 반복한 덕에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인벤토리 제작과 힘쓰는 일 외에는 딱히 쓸모가 없었다.
‘쓸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게 맞나?’
샐러드 한 뭉덩이를 루팅해 마나만 뽑아낸 그는 고스란히 잔반통으로 배출하고 다른 요리로 향했다.
그렇게 별로 길지 않은 저녁 식사를 끝내고 잔반까지 수거해 처리한 그는 어제와 같은 시간에 퇴근했다.
‘오늘은 샤워를 못 하겠구나.’
다른 직원의 당직일이었다.
평소 그를 보는 눈빛이 좋지 않았지만, 남들 서넛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도 묵묵히 잘 해나가고 있어서인지 트집을 잡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뒷문으로 나가는 그를 본 직원이 말을 걸었다.
“예?”
“과실치사라고 들었는데요.”
“네. 맞습니다.”
“사정이 있다던데... 누이를 구하셨다고.”
“조금 복잡합니다.”
불편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걸 내색하고 싶지도 않아서 적당히 간추려 말해주었다. 오해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을 해한 건 맞다고.
“억울하지는 않아요?”
“괜찮습니다.”
“음... 알았어요. 가보세요.”
“네. 고생하세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니, 직원은 의자를 빙글 돌려 모니터를 향했다.
‘소문이 퍼진 건가.’
과실치사라는 것 말고는 딱히 자세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비밀이 없는 곳이라더니 그런 이야기까지 돌고 있는 모양이다.
-억울하지는 않아요?
조금 전 직원의 질문이 다시금 떠올랐다.
‘전혀. 그럴 자격도 없고.’
그랬던 적도 있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사실 억울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죽은 이와 그 가족들일 것이다.
-네가 다 망쳤어!
누나의 핏발선 눈도 기억났다.
지금은 어떤지.
잘 추스르고, 계속 살아가고 있는지.
‘안부 연락 같은 걸 보낼 수는 없나? ...하긴. 내 연락 같은 건 받고 싶지도 않겠네.’
최강혁은 터덜터덜 흙집으로 돌아갔다.
왠지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지만, 평소와 다름 없이 토굴로 향했다.
“오늘은 밤을 새워야겠다. 어쩌면 내일도.”
미국 쪽이 아니라 이쪽의 죄수들이 추가된다고 했다. 그럼 당연히 이쪽 공터에 텐트를 칠 것이다.
이제는 나름대로 문짝을 만들어 막아두긴 했지만, 집이 아니라 개인적인 마찰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그냥 피할까. 힘 조절 제대로 못 하면 곤란할 것 같은데.’
죄수라고는 하지만 일반인일 것이다.
싸움에서 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 다치게 할까봐 우려되었다.
‘형량 추가는 안 돼.’
새로 찾아낸 몬스터의 뼈들을 흡수하며, 최강혁은 새로 올 죄수들이 그처럼 얌전히 지내길 바랐다.
〈 7화 〉 007.
007.
“최강혁씨. 최강혁씨 계십니까?”
새벽의 끝자락에 걸쳐있는 이른 아침.
아직 출근하려면 시간이 좀 남아있던 차에 집 밖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예. 있습니다.”
누가 찾아오는 건 처음 있는 일인 터라, 흙을 굳혀 만든 침상에서 일어난 최강혁이 조심스럽게 밖으로 향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밖에 나가보니, 찾아온 이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한 명은 하품을 참는 기색이 역력해보이는 군인이었고, 다른 이는 행정 사무실에서 얼핏 보았던 공무원이었다.
용건은 공무원 쪽이 갖고 있는 듯 했다.
슬쩍 흙집을 바라보던 그가 그 시선을 최강혁에게 돌리더니, 옆구리에 끼고 있던 타블렛을 들어 뭔가를 눈으로 훑었다.
“들어오신 지가 두 달이 넘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계시고....”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체크하는 듯하던 공무원은 이어서 본론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자리... 입니까?”
“식당에서 잔반 처리를 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루 한 끼의 식사를 제공받고 계시고요.”
“네. 맞습니다.”
“별도로 약간의 수당을 받고 계시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이건 공식적으로 허가되는 건 아니지만, 서류 상으로는 직원분들이 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니....”
“그렇죠.”
“그런데, 다름이 아니라 새로 들어오는 분들이 있을 거라서요. 오늘 정오 즈음에요.”
“네.”
“세 사람인데, 최강혁씨 케이스를 좋게 본 분들이 많은지 그대로 해보라고 하지 뭡니까.”
“제가 뭘....”
“식당의 일을 시키고, 식사를 제공해보라고요.”
“아.”
“그런데, 최강혁씨는 그쪽 일을 너무 잘 수행하셨다고 해서요. 새로 오실 분들이 너무 쉬운 일을 하게 되면 곤란하거든요.”
무슨 이야기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제가 빠져야 하는 거군요.”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대신 그 못지 않은 일자리를 찾아봤습니다.”
“.......”
공무원이 보여준 타블렛 화면.
그곳엔 그동안 눈과 발로 익힌 캠프의 약도가 있었다. 특정 표시가 되어있는 장소를 보니, 그가 알고 있는 곳이었다.
“쓰레기장이군요.”
“네. 그쪽에서 자동 분류로봇이 걸러내지 못하는 것들을 처리하는 일입니다.”
이어진 설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제는 제대로 형식을 갖추고 일당을 지불할 것이고, 그 돈이면 하루 한 끼가 아니라 하루 세 끼를 다 챙겨먹고도 남을 거라고.
또한 그동안 단말기에만 쌓이고 있던 코인을 제대로 계좌에 연동시켜줄 수 있다고.
“좋은 조건이군요.”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역시 마음에 걸리는 건 그에게 있어서 식당의 한 끼는 단순한 한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공무원 역시 의사를 물어보려는 것이 아니라 통보를 하러 온 것이었고.
“그러면 오늘부터 나가면 됩니까?”
“네. 식당에는 제가 통보할 겁니다.”
“아침 잔반은....”
“그건 새로 올 사람들이 같이 처리하면 됩니다. 이제 새 일터에만 집중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공무원은 고분고분한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이어서 타블렛의 화면을 고치고 그에게 내밀었다.
“이쪽에 서명해주세요. 개인 계정 생성을 위한 페이지입니다.”
“개인 계정이라면....”
“메신저, 계좌, 뭐 이것저것 통합해서 관리할 수 있는 본인 계정이죠. 그게 있으면 이곳 생활도 꽤 수월하실 겁니다. 커뮤니티도 있고요.”
보아하니 손목용이긴 해도 단말기가 있으니까, 그걸 활용하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거라고 했다.
‘죄수에게 너무 큰 자유를 허락하는 것 아닌가?’
모범수 같은 개념은 없는 줄 알았는데.
지금부터 생기는 걸까.
속으로 생각하며, 최강혁은 손가락으로 화면 구석에 서명을 하고 지문을 확인해주었다.
“어떤 죄수들인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사형수 둘에 무기징역 한 명이라는 것만 들었습니다. 성별은 모두 남자고요.”
“그렇군요.”
“가급적 그쪽과는 얽히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동안 잘 해오셨잖아요.”
“조심하겠습니다.”
그를 좋게 본 건지, 공무원은 가벼운 조언을 해주고 나서 타블렛을 잘 챙겼다.
“가시죠.”
“예. 하암....”
그렇게 돌아서니, 소총을 고쳐 든 군인이 그제야 참았던 하품을 조금 내보내며 공무원을 보호했다.
‘쓰레기장이라.’
죄수에게 줄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결국 그런 거겠지. 사무실에서 정화된 공기를 마시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을 줄 수는 없을 테니.
‘일찍 가볼까. 그쪽에도 사람이 있을 테니, 가급적 빨리 안면을 익혀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쓰레기장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캠프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라는 게, 말 그대로의 쓰레기들만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해당 장소로 가보니, 그의 짐작이 맞았다.
공무원은 단순히 쓰레기장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평소 잔만 처리장을 오가며 얼핏 멀리서 본 그곳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뭐야?”
그렇게 입구 쪽에 서서 안을 바라보고 있으니, 잔금이 가있는 고글을 쓴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최강혁입니다. 오늘부터....”
“아. 그 과실치사?”
“예.”
“튼튼하게 생겼구만. 이쪽으로 오라고.”
이름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불리는 건 그다지 기분 나쁜 일도 아니었다. 이상하게 짬처리꾼보다는 나은 느낌이기도 하고.
“이쪽이 탈의실. 개인 작업복이 따로 있긴 한데, 그쪽한테 보급이 올 것 같지는 않아.”
“그렇겠죠.”
“수긍이 빠르네. 아무튼, 이쪽으로.”
“여기는....”
“좀 뜯어지거나 했는데, 버리기는 애매한 작업복들 모아놓은 곳이야. 개인 지급 작업복에 문제가 생기면 여기서 임시로 갖다 쓰는 거지.”
“아.”
“사이즈는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래도 아예 구분이 없는 건 아니니까 적당히 찾아서 세 벌만 골라와.”
“예.”
위아래 일체형의 작업복.
흔히 점프슈트나 정비공 옷으로 불리는 종류였는데, 색깔은 모두 짙은 카키색으로 동일했다.
“골랐습니다.”
“적당히 찾으랬더니, 정말로 적당히 찾은 거 아니야?”
“괜찮은 옷들이군요.”
“뭐, 괜찮으니까 안 버렸지. 그러면, 다음은... 신발은 그게 다야?”
“예. 처음 보급받은 운동화 하나 뿐입니다.”
“그건 좀 안 되는데. 깨진 유리 같은 건 못 막아주니까.”
하지만 안전화의 경우엔 보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모양이었다. 뒷머리를 긁던 고글 남자는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다른 곳으로 그를 데려갔다.
“여기서 골라봐.”
“군인 전투화군요.”
“저쪽이랑 비슷해. 일단은 버려진 건데, 못 신을 수준은 아니야. 유사시 대비용이지.”
“유사시라면....”
“이쪽에 전투화 공장이 있는 건 아니니까. 만약 지구 쪽하고 연결이 끊어지거나 하면 복구할 때까진 있는 것들 갖고 버텨야 되잖아.”
“알 것 같습니다.”
“아무튼, 두 켤레만 챙겨. 사이즈 잘 보고.”
“예.”
이어서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얻은 작업복은 탈의실의 개인 라커에 두어야 하지만, 전투화는 평소에 신고 다녀도 된다는 것이다.
중고 전투화라고는 해도, 벌써부터 밑창이 거의 닳아가는 운동화보단 나았다.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그렇게 별다른 구분 없이 잔뜩 모여있는 전투화들 중에서 쓸만한 것들을 골라냈다.
혹시라도 무좀균 같은 게 남아있을 지도 몰라서 스캔까지 확실히 행하느라 작업복 고를 때보다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장갑은 보급품 쓰면 되고... 다시 가자고.”
-어이, 거기서 뭐해?
“신참 교육하잖아!”
-오....
문득 멀리서 들려온 누군가의 외침은 왠지 모를 반가움이 느껴졌다. 의아해하는 얼굴로 쳐다보니, 시선이 마주친 고글 남자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런 일을 하고 싶어하는 놈이 어디 있겠어. 보통 군부대 쪽에서 영창 대신 보내오곤 하는데, 그런 놈들이 제대로 일을 할 리가 있나.”
“그래도 죄수보단 군인이 낫지 않을까요.”
“왜. 하기 싫어?”
“그건 아닙니다.”
“아니면 됐고.”
고글 남자는 걸걸한 말투와 달리, 나름 친절한 구석이 많았다.
그를 무시하거나 대충 두지 않고 라커룸 안내에서부터 개인 사물함 지정,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와 그가 맡아야 할 일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해주었다.
“어지간한 건 자동 분류장치가 걸러낸다.”
“네.”
“...라고들 위에선 이야기하지.”
“네?”
“고장난지 오래야. 애초에 시벌놈들이 어디서 뇌물 받고 납품을 한 건지, 원래부터 제대로 분류도 안 됐었고.”
“그러면... 직접 분류해야겠군요. 전부.”
“그런 거지.”
낄낄 웃은 남자는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최강혁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오. 근육 제대론데? 식당에서 일했다더니, 고기 좀 챙겨주던가?”
“좋은 분이 많았습니다.”
“잔반 담당이면... 뭐, 그 양반이 사람 좋긴 하지. 그래도 아무한테나 잘해주진 않을 텐데. 이거, 좋은 신참이 들어온 건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그러면 나야 좋지. 야, 이 새끼야! 그걸 거기까지 왜 몰고 들어가!”
“아, 몰라. 다 태워버리라고 해.”
“분류 안 하고 넘기면 좆되는 거 뻔히 알면서... 서라고, 새끼야!”
미니 굴삭기라고 하던가.
위가 열려있는 구조의, 어린아이도 조금 배우면 다룰 수 있다던 그것을 몰고 쓰레기더미를 향해 달리던 직원이 어느새 그를 쫒아간 고글 남자에게 조종석을 빼앗기고 옆으로 떨어졌다.
“아악!”
“어이, 신참! 일루 와봐.”
그렇게 굴삭기를 멈춘 고글 남자가 그를 불러서 가보니, 그가 운전석 아래에 있던 장갑 뭉치를 들어 건네었다.
“일단 껴.”
“예.”
“고글도 필요하긴 한데, 지금 남는 게 없던가. 새로 신청해야겠네. 오늘은 앞쪽만 하라고.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고.”
“알겠습니다.”
굴삭기 모는 법을 가르쳐주나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후진으로 그곳을 빠져나가는 고글남자를 돌아보던 최강혁은 옆으로 눈을 돌려,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는 다른 직원을 보았다.
“괜찮으십니까?”
“아. 문제 없어. 자주 있는 일이야.”
“.......”
그런 일이 자주 있으면 안 되지 않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이어서 내밀어진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어차피 둘 다 장갑을 낀 손이어서 거리낄 것도 없었다.
“난 오형진. 신참은?”
“최강혁입니다.”
“이름이 아주 강하구만. 나이는 스물 조금 넘었나?”
“예. 스물 둘입니다.”
“제대로 막내네. 제일 어린 녀석이 서른 하나였는데 말이야.”
오형진은 34살이라고 했다.
또한 미니 굴삭기를 몰고 나간 고글 남자의 이름은 김환수고, 34살 동갑이라고 덧붙였다.
“그냥 적당히 하면 돼. 적당히.”
사람은 좋아보였지만, 왠지 아무래도 좋다는 느낌이었다. 얼핏 술냄새도 풍겼는데, 아침부터 어디서 술을 마신 건지 모를 일이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고글은 없고? 아. 지금 보급 안 나오고 있지.”
“신청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유리 같은 게 없는 쪽으로 가야겠네. 그쪽은 일하다보면 파편이 잘 튀거든.”
“그렇군요.”
김환수는 작은 동산처럼 쌓여있는 쓰레기더미에서 특정한 장소로 그를 안내했다. 그곳에 보이는 건 수도 없이 쌓여있는 각종 의복과 전투화 등등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것들이었다.
“이쪽이 보기에는 좀 깨끗할 것 같긴 한데,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그렇습니까?”
“뭐, 그냥 갖다 태우면 간단한데 말이지, 그러지 말라고 하니까. 어디가 문제인지, 고칠 수 있는지 버려야 하는지... 그런 걸 일일이 파악해서 분류해야 하거든.”
“저쪽에 있는 예비 전투화도 그렇게 나온 거군요.”
“맞아, 맞아. 잘 아네. 이제 보니 거기서 찾아 신은 거구만. 괜찮아? 못은 안 튀어나왔고?”
“예. 아직 오래 신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행이네. 아무튼, 이쪽 일을 좀 해주면 좋겠어. 여긴 시간은 오래 걸리는데 진척이 안 되다보니까 계속 미루게 되거든.”
굴삭기를 몰고 왔던 것도 사실은 이쪽에 있는 것들을 그냥 소각장으로 퍼다 나를 생각이었다고 했다.
“짜증나잖아. 군바리새끼들은 지들 쓰레기를 왜 이쪽으로 보내고 지랄인지.”
웃는 얼굴로 쌍욕을 하고 있는데, 의외로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몇 마디 더 떠들던 오형진은 수고하라며 손을 흔들고 멀어졌다.
“.......”
뭔가 가르쳐준 것 같긴 한데, 핵심은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류는 한다 치고, 어디에 어떤 식으로 정리해야 되는 거지?’
주변을 둘러본 최강혁은 멀찍이 떨어져있는 낡은 리어카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가져왔다.
‘일단 전투화부터 골라내볼까.’
〈 8화 〉 008.
008.
다른 건 몰라도, 쓸만한 전투화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여 전투화 무더기가 쌓여있는 곳으로 가보니, 나름 친절하게도 제 짝마다 끈으로 묶여있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버릴 때부터 이렇게 묶어서 내보내는구나.”
하지만 양쪽 전투화가 모두 망가진 경우는 드물기에, 멀쩡한 쪽을 좌우로 맞춰서 조합해야 했다.
‘어차피 끈을 풀어야 하는구나.’
가까이 있는 것들부터 묶여있는 것을 풀어내니, 멀찍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에서 하네? 오씨가 보냈지?”
“아. 예. 이쪽이 유리가 없다고.”
“유리는 없지만, 녹슨 못이 있을 수 있지. 장갑은 잘 꼈고?”
김환수라고 했던가.
그는 파상풍을 조심해야 한다며 일단 장갑부터 꼼꼼하게 확인하고 작업하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어느 수준까지 분류해야 할까요?”
“음. 기준이 필요하겠네.”
밑창이나 굽이 망가진 건 고칠 수 있다.
하지만 가죽이 찢어지면 버려야 한다고 김환수가 말했다.
“경우에 따라선, 밑창이나 굽은 거의 새삥인데, 가죽이 상해서 버려진 것들도 있거든.”
“예.”
“그런 건 따로 빼놔. 밑창하고 굽만 떼어서 모으면 좋긴 한데, 오늘 그 작업까지 하긴 어렵겠고.”
“가능하면 해보겠습니다.”
“의욕은 좋은데, 오늘만 일할 거 아니잖아. 그리고... 아, 버려야 하는 전투화는 끈도 다 뽑아서 따로 빼내고. 다 쓰일 데가 있다는 모양이야.”
“예.”
그렇게 각각의 분류법을 알려준 김환수는 잠깐 함께 일하며 몇 가지 조언을 더 건네고 나서 돌아섰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아니다. 고글이 없어서 문제네. 새 보급이 나오면 그때 일반 쓰레기 쪽도 맡아야 할 거야. 일단 여기만 도맡아봐.”
“알겠습니다. 보급이 많이 늦어지나요?”
“원래 그래. 신청 넣었으니까 늦어도 다음 연결 땐 보내겠지.”
“오늘 정오에 죄수들이 온다던데요.”
“그렇게 바로는 안 나와. 아마 그 다음편일걸. 죄수는 아니어도, 우편이나 보급품 때문에 주기적으로 연결하니까.”
“그렇군요.”
“혹시, 집에 보낼 편지 같은 거 있나? 필요하면 대신 보내줄 수 있는데.”
“아... 괜찮습니다.”
“뭐, 필요해지면 말하고.”
“예.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따 점심시간 되면 저쪽 스피커로 알려줄 거야. 아니다. 단말기 있었던가?”
“아까 라커룸에 두고 가라고 하셔서....”
“아. 그렇지. 일할 땐 빼놔야지. 그러면 이따가 점심 때 갖고 와. 이쪽 커뮤니티에 등록해줄게.”
“아. 예.”
그렇게 돌아선 김환수가 멀어졌다.
잠시 숨을 고른 최강혁은 주위를 슬쩍 돌아본 후 본격적으로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장난치냐고 할 만큼 대충대충 훑는듯한 속도.
하지만, 이미 스캔을 마친 대상이니 어디가 문제고 어느 정도 손상인지까지 파악된 터라 거침이 없었다.
“이건 단순 흠집이긴 한데... 이렇지.”
그냥 눈으로 보아선 알 수 없었을 가죽의 흠집. 하지만 조금 힘을 주어 눌러보니 우지직, 하며 그럭저럭 남아있던 부분이 찢어져 구멍이 뚫렸다.
“뭐에 이렇게 된 걸까.”
단순히 외부에 오래 노출되어서 삭았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뭔가에 할퀴어지면서 동시에 특정한 액체에 맞은 느낌인데, 아마도 몬스터와의 전투 과정에서 그렇게 된 듯 보였다.
‘경우의 수가 많구나.’
스캔으로 몇 종류의 가능성 높은 몬스터들이 나오긴 했지만, 정확한 대상까지는 알 수 없었다.
“어?”
그러던 와중, 몇몇 전투화에서 비슷한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다. 몬스터의 공격 흔적도 있었고, 아마도 사체 정리를 하다 묻은 것 같은 자국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 눈에 띈 것은 단순히 찢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끄트머리에 박혀있는 부러진 발톱이었다. 아마 빼낸다고 뺀 모양인데, 그 과정에 부러지면서 끝부분이 남은 듯 보였다.
[와일드 밀리칸의 발톱]
시스템이 그것의 주인을 알려주었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지만, 사실 몬스터들에 대해서 아는 게 그리 많지는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발톱 끝이라 그런가, 마나량이 대단치는 않네.’
이후로는 비슷한 것들이 나올 때마다 적당히 루팅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게 있으니, 최강혁은 한쪽에 제법 쌓이고 있는 버려야 할 전투화들을 보았다.
‘잠깐만.’
분명 누가 봐도 버려야 할 것들이었다.
각각 차이는 있지만, 가죽 부분이 찢어진 건 버려야한다고 이미 언질도 받았다.
“.......”
하지만 주변 눈치를 살핀 후에 그것들 중 하나를 통째로 루팅해본 그는 인벤토리에 들어있던 그것을 이리 저리 만져보고 분석해보았다.
“그냥 하나로는 안 되는구나.”
이어서 다른 전투화를 추가로 루팅한 후에야,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조합 (고유)
그가 갖고 있는 고유 스킬.
그것을 활용하면 망가진 전투화를 적당히 섞어, 온전한 상태의 것을 만들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각각 다른 부위가 손상된 것을 조합하고 나면... 손상되지 않은 하나하고 나머지 부분이 남는 거군.’
완전히 새것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있는 재료를 조합하는 것일 뿐, 상태 자체를 바꾸는 건 아니라고 시스템이 조언해주었다.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고유 스킬인 ‘흡수’를 연계해서 활용하면 되었다.
흡수는 그 상태 그대로가 아니라 물질의 최소단위까지 분해해서 저장하기에, 그렇게 분해한 것을 재구성해서 가죽 상태를 최상으로 복원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역시 체내 마나를 써야 하는구나.’
방법이 생겼다고 해서 마구마구 써먹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혹시나 하고 시도해보니, 한 켤레 정도야 큰 문제는 아니지만 대량으로 하는 건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버려져야 할 전투화들을, 그 일부나마 멀쩡하게 바꿔줄 수 있다.
가죽 손상만이 아니다.
밑창과 굽 부분 역시 흡수와 재구성을 통해서 아주 새것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
‘재활용 전문가가 될 수도 있겠는데.’
이미 쓰레기장에 버려진 것들이기에 루팅이나 흡수의 제한은 없었다. 신이 나서 이것 저것 해보며 작업을 이어가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밥들 먹고 하자! 밥들 먹고 하자! 밥들 먹고....
문득 아까 전 김환수가 이야기했던 쪽에서 녹음된 듯한 음성이 반복재생되어 들려왔다.
‘저런 식으로 알려주는 건가.’
간단한 음악이나 신호음 정도를 짐작했는데, 직설적인 느낌이 강했다.
‘두 분 밖에 못 만났지만, 그런 느낌이긴 했지.’
각자 성격은 다르지만,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듯한 사람들이었다.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시간이 난 김에, 그가 재생시킨 전투화로 갈아신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 앞쪽 공터엔 이미 몇 사람이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전자담배를 물고 있는 이도 보였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이도 있었다.
“오. 저기 오네. 신참!”
오형진이 그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얼른 마주 인사를 건네고 그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도 비슷하게 허리를 숙이니, 저마다의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새로 왔다는 친구야?”
“멀쩡하게 생겼구만. 어쩌다 여기까지 굴러들어왔대?”
“무슨 죄라고 했지?”
“과실치사래.”
“운전하다 사람 친 건가?”
“그건 모르는데.”
“그 정도로 여길 보내진 않지 않아?”
아직 여기까진 상세한 내용이 퍼지지 않은 걸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던 이들과 다시금 한 명 한 명 인사를 주고 받은 최강혁은 사무실에서 걸어나온 김환수를 보았다.
그는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왜?”
“오늘 같이 들어오기로 했던 보급이 펑크났단다. 죄수들만 온대.”
“지난 번에도 미뤘잖아?”
“그러니까.”
“일처리 시발 진짜 좆같이들 하네.”
“어디 뒤로 빼돌리고 입 닦는 거 아냐?”
“월급이라도 안 밀리니 다행이긴 하지만.”
“애초에 월급이 어디 있냐. 다 코인으로 주는데.”
“아. 그렇지.”
“그래도 환전은 되잖아.”
이어진 불평과 수다 속에서 최강혁은 새로운 지식도 몇 가지 얻을 수 있었다.
캠프에서 일하는 이들이라면 그 직종과 부서는 상관 없이 모두 코인을 급여로 지급받는다는 것이다.
다만 개개인의 월급이 다르듯 코인의 액수가 다른 건 당연했고, 그렇게 받은 코인으로 뭔가를 사거나 아니면 계좌 연동을 통해서 지구 쪽의 화폐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환전은 되지만, 이쪽에서 인출은 안 된다는 건가.’
그러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지구 쪽의 가족들에게 송금을 하거나 아니면 그쪽의 예금 적금을 부으려면 그렇게 한 단계 거쳐야 한다는 듯 했다.
“신참은 단말기 갖고 따라와. 다들 먼저 출발하고.”
“왜. 오래 걸려?”
“어지간하면 같이 가지 왜.”
사람들의 물음에, 김환수는 그럼 기다리고 있으라고 짧게 답했다. 최강혁은 얼른 탈의실로 가서 개인 라커에 있던 단말기를 챙겨왔다.
“들어가자.”
사무실로 들어가니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저마다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들었던 대로라면 엉망진창인 이들일 것 같은데, 막상 눈으로 보니 다들 열심이었다.
‘지구 쪽 문제인가.’
김환수를 따라 사무실 직원 중 하나를 찾아가니, 그쪽에서 이미 행정 공무원한테 자료를 받았다며 다시금 서명과 지문 확인을 이야기했다.
“개인 계정은 그쪽에서 다 만들어줬고요. ...아. 단말기가 있으시면 더 편하죠. 아니면 매번 이쪽으로 오셔야 할 텐데.”
그의 단말기를 받아 몇 가지 조치를 취하고 돌려준 직원은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가볍게 인사했다.
“급여는 개인 계좌로 바로 들어갈 거예요. 야근 특수가 있긴 한데... 뭐, 강제하는 건 아니니까 차근차근 알아보시고. 다른 건 그쪽 사수분한테 잘 배우시면 되겠고.”
“벌써 다 가르쳤어. 가도 돼?”
“예. 식사 하셔야죠. 다른 분들은요?”
“밖에서 기다리지.”
“그럼 얼른 가세요. 늦으면 또 모자란다고 시끄러워질 텐데.”
무슨 이야기인가 했는데,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곳 직원들이 향하는 곳은 어제까지 일하던 뷔페형 식당이 아니라 다른 방향이었다.
‘직원용 식당이구나. 문전박대를 당했었는데.’
이곳에 들어온 초반, 잘 모르고 일단 부딪쳐가며 돌아다녔을 때 가볍게 무시당하고 넘어갔던 곳이었다.
‘식판은 오랜만이네.’
따지고 보면 이쪽도 뷔페 비슷한 형식이긴 했지만, 반찬 가짓수가 한정되어있고 그 질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게다가 인기가 있을 법한 반찬은 주방 직원이 퍼주는 식이라, 왠지 군대가 생각나는 느낌이었다.
‘하루 세 끼를 그쪽 식당에서 먹어도 될 급여가 나온다더니, 그냥 급여 이야기였나.’
다행히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여러 모로 양이 아쉬워보였다.
그나마 밥과 국은 마음껏 퍼갈 수 있다고 해서 정말로 양껏 펐더니 같이 간 직원들이 껄껄 웃었다.
“나도 처음엔 저렇게 먹었지.”
“다 먹을 수 있긴 한 거야?”
“젊잖아. 먹고 일어나면 배 꺼질 나이지.”
“어우. 보기만해도 더부룩해지는데.”
길다란 식탁에 몰려앉은 그들은 저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개인 신상에 대한 질문이 오기도 했지만, 거슬리는 투는 아니어서 그럭저럭 답했다.
“이야. 잘 먹네, 우리 신참.”
“이름이 뭐랬지? 최강 뭐랬는데.”
“혁입니다. 최강혁.”
“아 그래. 최강혁. 많이 먹고 힘좀 쓰라고.”
“오전에는 안 뵈던데?”
“전투화 쪽 가있었잖아. 고글 없어서.”
“아. 그거... 그새끼들 일부러 그러는 거 같지 않아? 싸제 사다 쓰라고 말이야.”
“하루 이틀이야? 버티면 나오겠지.”
“일반 쓰레기쪽 일손 모자란데... 내가 전에 쓰던 거라도 물려줄까?”
“그거 깨져서 바꾼 거 아니었어?”
“금은 갔지.”
“에이. 그럼 안 돼. 사무실 지랄하잖아.”
뭔가 한 마디가 나오면 다들 숟가락을 얹으니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우걱우걱 밥을 퍼먹던 최강혁은 금세 그걸 다 먹고도 배가 안 차서 한 번 더 리필을 해왔다.
“이야....”
“전투화 분류는 좀 할 만해?”
“아... 조금 적응된 것 같습니다.”
“얼마나 했어?”
“뭘 그런 걸 물어. 첫날인데.”
거의 50은 되어보이던 직원의 물음에, 비슷한 또래로 보이던 동료가 어깨를 툭 치며 제지했다.
하지만 이어서 최강혁이 자신이 분류한 전투화 숫자를 대강 기억하고 이야기하자 다들 표정이 바뀌었다.
〈 9화 〉 009.
009.
“진짜야?”
“대충 본 거 아냐? 그냥 던진 거 아니면 그 속도 안 나올 텐데.”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예비 물자로 들어갈 것들이 그렇게 많이 나왔다고?”
“...너무 많은가요?”
“그렇게까지는 안 나올 텐데.”
“아니. 작업한 숫자가 많잖아. 평균 따지면 그정도 되지 않아?”
“직접 봐야 알 것 같어.”
뭔가 실수한 건가.
신나서 막 했는데, 너무 튀어버리는 것도 곤란한 거 아닌가 싶었다.
일을 너무 잘하면, 그게 기본 역량이 되어버리니 기대치가 올라간다는 걸 군대에서 충분히 배웠는데.
‘적당히 줄여서 이야기할걸 그랬나.’
하지만, 현장에 이미 해놓은 일이 있는데 감추는 것도 못할 일이었다.
하여 식사에 집중한 그는 아직 다들 식사를 끝내지 않은 것 같아서 3번째 리필을 하려다 식당 직원에게 제지당했다.
“하하! 무한 리필집이 아니라고.”
“막힐 만 했어.”
“그게 다 어디로 들어가는 거야?”
“배잖아.”
“내가 그걸 모르고 말했겠냐.”
떠들썩한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최강혁은 잔반을 수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조금 어색했지만, 얼른 선임들을 따라 현장으로 복귀했다.
“...진짜잖어?”
“이야... 이거 분류해놓은 거 봐라.”
“대충 던진 게 아니네. 손상 정도까지 구분해서 쌓았어?”
“아... 맞습니다.”
“천직이네 이거.”
“...얌마. 이걸 천직이라고 하면 욕이지.”
저마다 한 두 마디씩 던지면서도, 직원들의 눈은 한쪽에 잘 모아둔 멀쩡한 전투화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 그쪽은....”
사실 그쪽에 있는 것들은 폐품 중에서 모은 것이 아니라, 그가 인벤토리에서 조합하거나 보수한 것들이었다.
인벤토리 공간이 모자라서 다 된 건 꺼내놓고 계속 작업하다보니 그렇게 된 건데, 사실 주름이 지고 사용감이 남아있는 것 빼곤 흠잡을 곳이 없었다.
“이런 게 있었어?”
“이상하게 짝이 잘 맞네.”
“굽이 안 닳았는데? 누가 이런 걸 버려.”
“이정도면 그쪽 보급계 애들 털리지 않아?”
웅성대는 직원들.
그들의 시선이 어느새 하나둘 최강혁에게 모여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초심자의 행운이나 천직 같은 식으로 얼버무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신참.”
“예.”
“나랑 이야기 좀 하자.”
그렇게 말을 건 이는 역시 김환수였다.
옆쪽으로 따로 불러낸 그는 슬쩍 주변을 돌아보고 나서 최강혁을 향했다.
“각성자야?”
“......?”
“짐작 가는 게 있어서 그래. 다들 대충 눈치는 깠을 거고.”
“그걸 알 수 있습니까?”
“캠프에서 지낸 시간이 있으니까. 각성자들 한 둘 만나본 게 아니야. 예전에 파견 나왔던 군인들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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