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ipse 11

척돔을 울렸다.
항상 내가 시민을 구조하던 때와 똑같은 반응이 조금 많이 튀어나왔다.
평소에 내가 구하던 시민의 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고척돔의 잔디밭에 엎드려있었다.
“조용히 해! 이 씨발새끼들아! 다 닥쳐!”
“앞으로 튀어나오면 사정 없이 갈긴다! 일어서도 갈긴다! 난 분명히 경고했다!”
당황하는 시민들을 둘러싼 정체불명의 무리들.
놈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 이 씨발! 지금 바깥이 난리가 났는데 갑자기 뭐하는 짓이야아!”
엎드리고 있던 중년 남성이 침을 튀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씨발 움직이지 말라 했지!”
퍼어억―!
그런 중년의 관자놀이에 묵빛의 개머리판이 꽂혔다.
“꺄아아아아악!”
“이, 이 군인새끼들이! 민간인을 때린다아아!”
픽 쓰러지는 중년의 남성를 본 시민들이 또다시 비명을 합창처럼 내질렀다.
그 모습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앞으로 걷던 나에게 정체 불명의 무리 중 하나가 소리쳤다.
“멈춰 이 새끼야!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그대로 쏜다!”
놈이 기절한 중년의 머리를 밟고는 총구를 등쪽에 대고 있었다.
처음에는 특별 거점답게 군인들도 구출된 것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군인이라면 지금 이 광경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지금 저 놈들은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협박하고 있었다.
탕―!
“꺄아아아아악!”
“으, 으아아아악!”
나를 협박했던 놈이 보란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깜짝 놀란 시민들의 절규와 함께 놈의 총구에서 흰 연기가 나풀거렸다.
다행히 중년 남성의 머리 옆에 총알을 격발한 놈이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움찔거리기만 해도 쏜다.”
아무리 생각해도 놈의 행동이 이상했다.
원래 보통 남을 위협할 때는 총구를 위협할 상대에게 들이대지 않던가?
하지만 놈은 철저하게 시민들을 이용해 날 협박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바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 양.
“더는 다가오지 말고 저기 쌓아놓은 상자들 보이나?”
놈의 고갯짓이 향하는 곳에 상당히 많은 양의 상자들이 쌓여있었다.
“음식. 약. 생필품들이 가득 들어있지. 당장 인벤토리에 넣고 꺼져.”
인벤토리, 금, 딜레마.
이제야 완벽히 전말을 파악한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척돔에 가득 뭉친 시민들을 둘러싼 무장단체.
저 놈들이 특별 거점이 준비한 위기 상황이자 딜레마 조성자이군.
“어서 저 상자만 가지고 꺼져라. 우릴 향해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는 순간, 여기 있는 놈들은 모두 죽는다.”
한눈에 봐도 상당한 양의 상자들이었다.
저 상자에 저놈이 말한 것들이 정말 한가득 들어있다면 포인트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수치가 되겠지.
신앙 수치로 나름 풍족한 생활을 이어가는 나 또한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구조한 시민들을 신앙 포인트로 먹여 살리고 있는 나 또한, 독에 구멍이 뚫린 듯이 줄줄 신앙 포인트가 새고 있었으니까.
시민을 구조하길 선택했지만 눈 앞에 거부할 수 없는 금이 존재했다.
‘그러니 딜레마였군.’
더군다나 저렇게까지 이를 악물고 놈들이 총구를 들이밀고 있으면 평범한 각성자가 시민들을 구출할 방법이 없었다.
“어이! 이제 상자쪽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쏘겠다! 내 말 안 들려!”
평범한 각성자들이라면 말이다.
나는 놈들이 들고있는 총기들을 빠르게 훑으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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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구로구 (3)
구로구 (3) ―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
“빨리 움직이라고 이 새끼야! 한 발 더 갈겨줘?!”
놈이 나를 겁박하며 선택을 종용했다.
나는 놈이 저렇게까지 나를 협박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을 바라보았다.
총.
시민들과 나를 겨누고 있는 묵빛의 도구.
단순히 겨누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시민들은 몸을 파르르 떨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상대가 죽는다.
특별한 단련도, 기술도 필요하지 않았다.
적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햄버거를 주문하고, 햄버거를 먹는다와 비슷한 압도적으로 쉬운 두 개의 공정.
가히, 살인의 패스트푸드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번의 경고로는 모자랐나보군. 앞으로 5초를 세겠다! 5초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이 새끼 등짝에 작은 구멍 하나를 보게 될 거다!”
놈이 나에게 마지막 경고를 선언했다.
나를 주시하는 두 눈에 번들거리는 살기가 인상 깊었다.
“다섯!”
놈의 고함에 엎드린 시민들이 움찔거렸다.
잘게 떨리는 눈빛으로 나와 놈들의 대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히 놈들을 빠르게 죽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첫인상.
언제나 그렇듯 그들에게 내 존재를 각인시킬 첫 장면이 중요했다.
“넷!”
문득, 피식하며 불쑥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세상이 망하길 바랬던 찌질이가.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의지로.
시민들을 구원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것보다 더한 모순과 아이러니가 있을까?
“그래! 씨발 그렇게 계속 웃어봐! 셋!”
아, 널 비웃으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서로 정반대의 목적을 품은 두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놈의 차가운 동공엔 단 하나의 흔들림도 없었다.
흔히 평범한 사람들이 살인을 하면, 마음이 부서진다고들 표현한다.
나 또한 그 말에 동의한다.
최초 업적을 얻은 흥분감에 가려졌던, 최초로 무언가를 죽였을 때 느꼈던 꺼림칙함을 기억했다.
식칼이 머리를 가르고 펄떡거리던 것을 멈춘 신체.
혼이 떠나듯이 생기를 잃어가는 눈동자.
단순히 이런 것들을 목격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오겠지.
괜히 전쟁 후 군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이 아닐 것이다.
“씨발! 상자쪽으로 걸어 가라고! 둘!”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이어진 살상의 역사는 살해자와 피살자의 거리감을 넓히는 확장의 과정이었다.
근거리에서 서로를 찌르는 창과 칼에서.
그보다 멀리서 시위를 당기는 활로.
활에서 지금 저놈이 들고 있는 편리한 도구인 총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서 모자라, 버튼 하나를 누르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를 초토화시키는 미사일까지.
아예 시간이 더 많이 흘렀다면 공상과학에서 나오는 궤도폭격까지 볼 수 있었겠으나, 세상은 무너졌다.
더는 발전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편리한 도구는 ‘총’이었다.
“좋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이 새끼는 네가 죽이는 거다! 하나!”
나는 총을 겨누듯이 놈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빠졌더라?
기나긴 내 잡생각의 결론은.
영원히 발전하지 않을 ‘현대전’에서 내 능력은 무소불위의 만능열쇠라는 거다.
“씨발 내가 상자쪽으로 걷기만 하랬지!”
놈이 고함을 지르며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보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키이이이잉―!
찬란한 백광이 타오르듯이 전신을 휘감았다.
내 의지를 담은 마나가 말초신경을 거치며 고척돔 전체에 내려앉았다.
끄드드드득―
총알이 지나쳐야 할 직선의 통로가 구부러졌다.
놈들이 마치 살아있는 괴생물체를 보듯이 자신의 총기를 내려다보며 경악했다.
엿가락처럼 잔뜩 휘어진 총기로는 엎드린 시민들을 죽일 수 없었다.
“커헉―!”
아까부터 협박을 주도한 놈을 염력으로 내 앞까지 끌고 왔다.
숨구멍을 찾지 못해 빨개진 얼굴과 공중에 뜬 몸 덕분에 달랑이는 다리가 애처로웠다.
“소속과 이름.”
혹시나 해서 묻는 마지막 질문이었다.
내 물음에 터질 듯이 붉어진 놈의 얼굴이 나를 주시했다.
놈은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끝까지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소속과 이름. 나도 5초라도 세줘야 하나?”
놈은 끝까지 내 말에 답하지 않았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진작 입을 열고도 남을 시간동안 놈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는 것이 옳았다.
우드득―
그대로 내 염력에 묶인 놈들의 머리를 한바퀴 돌렸다.
바닥에 풀썩이며 쓰러지는 놈들이 동시에 입자가 되어 먼지처럼 흩날렸다.
역시 사람이 아니라 특별 거점이 준비한 NPC 비슷한 존재였다는 게 정답이었다.
[구로구 특별 거점 ‘고척 스카이돔’의 테마를 해결하셨습니다!]
[각성자의 구로구 지배율이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55% -> 60%]
무려 최초 업적 보상과 똑같은 5%의 지배율 상승.
특별 거점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허나, 조금 더 기다려도 다음 메시지가 출력되지 않았다.
‘……끝?’
아직 공포에 젖은 시민들이 나를 보고 있기에, 입 밖으로 되묻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름 특별 거점인데 지배율 5%만 주고 끝?
아니지.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나를 보고 있는 시민들과 사라지지 않고 쌓여있는 상자들을 훑었다.
그리고 드넓은 고척 스카이돔 자체를 바라보았다.
아마 진짜 보상은 이것들이겠지.
먼저 상자들부터 인벤토리에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둥둥 떠오르며 내 오른손까지 날아온 상자들이 차례대로 완전히 텅 비어버린 인벤토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성역을 떠나기 전에 꽉 채웠던 식량과 물품들은 이미 구조한 시민들에게 나누어 준 이후였다.
그동안 그들을 먹여 살린다고 줄줄 새었던 신앙 포인트들을 당분간은 적절하게 아낄 수 있을 것이다.
상자를 모두 인벤토리에 넣은 이후엔 고개를 들어 고척돔 전체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고척돔이 주상복합아파트에 비해서 훨씬 많은 시민들을 수용하기에 적합했다.
괜히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군대가 세웠던 대피소가 아니란 거겠지.
‘이곳으로 신도들을 옮겨야겠네.’
구로구 전체에 시민들을 퍼트리는 건.
100% 지배율을 달성한 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일단은 신도들과 새로 구출한 시민들을 한자리에 몰아넣어서 충분한 교육과 전도를 거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문제에서 고척돔은 상당히 매력적인 해답이었다.
특히나 아파트 주변에 도사리는 코를 찌르는 듯한 악취에서 해방되는 것이 주효했다.
성역에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배변 처리 문제가 구로구에선 제일 먼저 해결해야하는 급선무였다.
허나, 아직까지도 뾰족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가을이라도 있었다면 그녀가 해결책을 도출했을수도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어림도 없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문을 열자마자 콧구멍에 쑤셔박히는 시골 소똥 냄새는 피할 수 있겠지.’
더군다나 나는 이렇게 생필품과 시민, 거주 공간을 한꺼번에 보상으로 내미는 특별 거점을 보곤 작은 희망을 느꼈다.
분명 특별 거점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니, 분명히 이런 생활 자체에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특별 거점도 존재하지 않을까?
아니,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씨발, 똥 때문에 골머리를 싸매야 하다니.’
성역을 떠나온지 벌써 한달이 되어가니 그곳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나만 기다리고 있을 아영이, 가을이, 주혜.
인간이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점이 없는 안락한 시설들.
내가 공들여 탄생시킨 충성스런 신도들까지.
‘하아…….’
허나 그렇다고 인천으로 빤스런을 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마 성가을이 그런 내 모습을 본다면 대노를 넘어선 극대노 잔소리로 나를 폭격할 것이다.
더군다나 계획은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한마음 구원교를 인천에 국한시킬 수는 없었다.
구원교는 언젠가는 바깥으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
그런데 그곳이 대한민국의 모든 인프라가 집중되었던 서울이다?
이건 그냥 무조건 땡큐를 외치며 얼른 주워먹어야 하는 금덩어리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구원교의 세를 넓히면서.
인천에 있는 성역은 구원교만의 ‘천국’으로 자리매김 한다.
각종 종교에서 빠지지 않는 죽은 후의 보상을 열렬한 추종자들에게 죽지 않아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매력적이다 못해 믿지 않는 놈이 병신이 되는 종교를 만드는 것이 성가을과 나의 목표였다.
“뒤를 좀 보세요! 다리를 그렇게 밟으시면 어떡해요!”
화가 잔뜩 난 여성의 고함이 잡념을 뚫고 내게 울렸다.
천천히 나와 거리를 벌리고 있던 시민들의 무리가 출렁였다.
‘그래. 제일 중요한 보상이 남았었지.’
난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뒤를 좀 보시라구요! 사람이 기절해있다니깐요!”
“저, 저 이상한 사람이 오니까 너도 좀 뒤로 가라고!”
“제가 뒤로 가지 말라고 했어요? 아이 다리를 좀 밟지 말라고요!”
무리의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꼬마가 기절해서 일어나지 않고 있는 듯했다.
개머리판에 얻어맞고 기절해있는 남자를 지나치며 그들을 향해 걸었다.
내가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그들이 두 발자국 물러났다.
“이쪽으론 오지말라구요! 뒤를 좀 보세요! 그러다 사람 하나 밟아 죽이겠어요!”
여자의 고함에 인파가 서서히 양갈래로 갈라졌다.
갈라짐의 원인으로 보이는 기절한 듯 쓰러진 꼬마와 그 꼬마를 안아든 여성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오, 오지 마세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
경기를 일으키듯이 나를 보며 고개를 흔드는 여성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목소리가 예뻐서 잔뜩 기대했던 마음이 확― 사그라들었다.
자연히 내 관심은 여성보다 그 여성이 보호하는 꼬마에게 갈 수 밖에 없었다.
기절한 꼬마.
내가 지나친 중년 남성처럼 개머리판에 얻어 맞은 것도 아닌데 시작부터 기절해 있었다라.
잠깐만.
이거 어디서 많이 들었던 시나리오인데.
“아, 아가씨도 빨리 뒤로 와! 그, 그 꼬마도 뉴스에서 말하는 기절하는 사람 아냐?”
여성에게 소리치는 무리의 말에 눈빛이 번뜩였다.
‘예비 감염자.’
다른 말로 각성자.
그래, 서울은 막이 뒤덮이자마자 사람들이 모두 어딘가로 사라진 설정이었지.
그렇다면 각성자도 각성하지 못하고 그대로 어딘가로 함께 끌려갔다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시민을 구조하면 확률적으로 기절한 시민, 즉 ‘각성자’를 구출할 수도 있었다는 말이네.
‘와… 수 백명을 구했는데 지금 처음으로 만났네.’
극악의 확률 덕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보상이었다.
‘그러네. 아이템이랑 시민 구조를 나눈 이유가 있긴 하네.’
왜 누구나 아이템을 선택할게 뻔한 확실한 장점이 흐릿한 시민 구조를 아이템과 경쟁시켰는지 궁금했는데, 답이 이거였구나.
물론, 사회를 이루고 집단을 유지하는 것에 일반인들이 필수불가결한 것도 사실이지만.
시민 구조의 메리트는 바로 이것이었다.
각성자 가챠.
꼬마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발을 때자마자 여자의 고함이 울렸다.
“오지 마시라구요오오!”
여자가 덜덜 떠는 손으로 땅에 버려진 총기를 주워들었다.
총구가 휘어져 쓰지도 못하는 총으로 나를 겨누며 소리쳤다.
“저, 저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지금 이 아이는 숨은 쉬는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야합니다! 당신도 사람이라면 제발 저희를…”
그녀가 뒤쪽에서 우리의 대치를 바라보는 시민들을 보며 소리쳤다.
알 수 없는 힘으로 인간의 목을 뒤트는 살인마에게 외쳤다.
“제발 저희를 이대로 보내주세요!”
그녀의 간절함에 평온을 유지하던 눈썹이 작게 떨렸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학창 시절, 교사가 했던 푸념이 기억났다.
너희들에게는 한 마디, 한 마디이겠지만.
그걸 듣는 자신에게는 시끄러운 잡담이라고.
이것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생존을 위한 지극히 당연한 말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지루하고 익숙한 노동의 반복이었다.
그녀를 위시로 잔뜩 뭉쳐있는 시민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구해준 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총을 겨누고 두려워하는 한심한 새끼들.
한 달간 계속해서 이어진 노력의 끈이 끊어질 듯이 아슬아슬했다.
어떠한 환기도 없이 너무 기나긴 시간을 몰입한 여파이기도 했다.
‘씨발…….’
겨우 짓누른 욕설과 함께 가슴에 탁― 탁― 스파크가 튀어오른다.
신.
인간들이 표현하고 묘사하고 기록해왔던 ‘신’이란 무엇일까?
인간들이 생각한 신은.
나쁜 짓을 한 자에겐 벌을 내리고, 착한 자에겐 상을 줬다.
고민하는 자에게는 깨달음을 주며, 아픈 이들을 치유하고.
절망의 순간에 기적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합쳐서 생각해본다면 그건 신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가 아니다.
그들의 행동은 신이 아닌 인간들이 바라고 기도했던 이상의 결정체.
‘바램의 집합체’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고, 믿음에 확실한 보상을 내리는 누구보다 ‘인간적인’ 절대자.
그것이 바로 인간들이 바라고 지금까지 정형화된 신의 본모습이다.
내가 흉내 내야 할 이들의 본질이었다.
다른 누구가 아닌, 내가 선택한 정상에 오롯이 서는 방법.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나를 불안한 눈으로 주시하는 교사를 바라보았다.
‘모방 성체’로 이루어진 눈을 감고…
구해준 자에게 총을 겨누는 건방진 계집.
확연해진 광채와 함께 눈을 떴다.
구원을 마주하지 못한 어리석은 나의 딸.
나는 언제나처럼 그들을 보며 웃었다. 자애로운 미소로 그들을 반겼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의 자식들아.”
오직 나를 위해서.
“그대들이 구원을 바랬기에, 내가 임하였다.”
나는 그들의 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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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 구로구 (4)
구로구 (4) ―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
끼에에에에에엑―!
좀비들의 하울링이 ‘서울의 밤’이 찾아온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했다.
4층 지정석의 중앙에 앉은 나는 돔 형식의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밤의 광원인 달빛과 별빛도 들어오지 못하는 닫힌 천장.
그런 고척돔을 유일하게 밝히는 것은 내가 신도들에게 나누어 준 손전등뿐이었다.
작은 불빛들이 한 데 모인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비록 하늘에서 온누리를 비추는 달빛보단 아니지만.
수 백명이 든 손전등이 어렴풋이 밝히는 고척돔 또한 묘한 운치가 있었다.
드넓은 경기장에 옹기종기 뭉친 신도들의 편안한 웃음 소리와 이야기 소리.
작은 원을 이룬 무리의 중앙에, 캠프 파이어 대용으로 보이는 손전등이 그들의 얼굴을 밝혔다.
그런 신도들의 무리 중간중간에 끼여있는 다소 어색한 표정의 시민들을 바라보았다.
생경한 좀비의 포효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그들이 취할 행동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들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불빛에 달라붙는 벌레들처럼 신도들의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여태껏 내 신도가 된 이들과 틀에 박힌 듯이 똑같은 반응이었다.
신도들은 자신들을 경계하면서도 호기심을 보이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원 안으로 이끌었다.
이제 내가 밤새 그들을 위로하지 않아도 나름의 전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장 큰 원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는 김지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내가 앉은 지정석 바로 옆에 쥐죽은 듯이 기절해있는 꼬마를 응시했다.
미약하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가슴과 아주 간간히 흘러나오는 숨소리만 아니었다면, 죽었다고 생각해도 그렇게 큰 착각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예비 감염자라 생각할 만 하네.’
코골이도, 이빨을 갈지도, 그렇다고 몸부림을 치지도 않는다.
좀비 사태로 패닉이 온 시민들이 보기엔 정말로 영락 없는 ‘뭔가 있는 이상현상’이었다.
‘서주원이랑 비슷한 능력이면 좋겠는데.’
여기는 각성자가 뒤지면 다른 각성자가 스킬을 이어받는 설정 같은 건 없나?
아무리 생각해도 서주원의 스킬은 그대로 증발시키기 아까웠다.
“교주님.”
여리여리한 목소리가 공손하게 나를 불렀다.
난 꼬마를 살피던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이지우가 손전등과 종이를 든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의 눈빛이 마주치자 그녀가 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말씀하셨던 새로운 신도들의 정보입니다.”
이지우가 조심스레 내미는 종이가 파르르 떨렸다.
감격의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행동에 은은하게 웃으며 종이를 받았다.
“고맙구나.”
“아니에요, 교주님. 한없이 부족한 탓에 아직 절반도 파악하지 못한 저희를 용서해주세요.”
이지우의 첨언을 들으며 머리 위에 부유하던 손전등을 밑으로 내렸다.
그곳엔 새로 구한 시민들의 이름과 직업이 정돈된 필체로 잘 기록되어 있었다.
교사, 회사원, 공무원, 택배기사 등등.
새로 얻은 이들의 직업을 살피며 이지우에게 물었다.
“술은 어떻게 됐느냐?”
“아! 술은 제가 올라오기 전에 형제들에게 단단히 일러두고 왔습니다. 이제 곧 배급을 시작할 겁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기장에 캔 따는 소리와 크으―거리는 감탄이 쏟아져나왔다.
“목 마르신 분들, 잠이 안오시는 분들, 생각이 복잡하신 분들 여기 있는 맥주 한 캔 가져가세요! 한 캔이 부족하시면 두 캔도 드립니다. 맥주는 많아요!”
모든 게 불안하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지금 시점에서 누가 술을 거부할 수 있을까?
“이걸로 우리를 경계하는 이들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으면 하는구나.”
“아아― 반드시, 반드시 저들도 교주님의 거룩한 구원을 받아들일 겁니다! 반드시!”
그렇겠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반복해서 듣다보면 결국엔 그게 진리가 되겠지.
오늘이 안되면 내일.
내일이 안되면 그 다음날.
그렇게 절반의 종이가 완전히 채워지는 거겠지.
나를 대신해 잔뜩 목소리를 높이던 이지우를 보며 짓궂게 웃었다.
“너도 한 캔 마시고 천천히 올라오지 그랬느냐?”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불경하게 교주님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을 내젖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이지우는 구로구에서 얻은 여성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나도 구로구에 와서 처절하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화장이 벗겨진 외모에서 매력의 조각이라도 가지고 있는 여성은 의외로 찾기 힘들었다.
이지우는 그런 의미에서 아슬아슬하게 내 기준점을 넘기는 여성이었다.
또한 구로구에서 첫 번째를 다툴 만큼 열성적인 신도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다가오라는 뜻의 손짓을 하며 나긋나긋하게 속삭였다.
“오늘 너에게 상을 줘야겠구나.”
상이라는 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환희에 젖어 떨려왔다.
천천히 내 앞에 다가오는 그녀를 보며 아래를 살펴보았다.
맥주와 이야기에 취해서 위쪽엔 관심도 없는 신도와 시민들.
“앉거라.”
그대로 내 앞에서 무릎 꿇은 이지우를 천천히 이끌었다.
그녀가 내 다리 사이에서 양손을 모으고 나를 올려다봤다.
환희와 광신에 젖은 그녀는.
지금 내가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고 포상이라 하여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내 침 자체가 [종속의 액]이라 진짜 포상이 맞긴 하지만, 어쨌든 비유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지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신도들 중에서도 특히 소중한 나의 딸아.”
“아아아아!”
이지우가 격한 탄성과 함께 몸을 떨었다.
“뒤늦게 입교한 박영호가 먼저 구원의 문을 열때 섭섭하진 않았느냐?”
“아아아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교주님에게…”
“아니다. 박영호보다 더 신실하고 순종했던 너를, 내가 알고 있느니라.”
사근사근 속삭이며 기도를 위해 모인 그녀의 양손을 맞잡았다.
그녀의 동공에 온전히 맺힌 내 얼굴이 말했다.
“너 또한 구원의 문을 열기에 충분했느니라. 그런데 왜 박영호가 먼저 성역에 입성했는지 아느냐?”
“…모, 모르겠습니다.”
난 미소 지으며 잡고있는 그녀의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오랜만에 맛보는 부드러운 살결에 온몸에 활력이 돌았다.
이지우는 그런 희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이 내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너를 좀 더 곁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 아아아, 교주님!”
내 한마디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파트 비상문을 통과하며 사이비 교주라고 매도하던 이지우는 이제 없다.
육체를 넘어 영혼까지 나에게 바친 충성스런 신도만 있을 뿐.
“나를 이해해주겠느냐?”
“이해랄 것도 없습니다! 저도, 저도 교주님 곁에서 평생 교주님을 섬기며 살고 싶습니다!”
“기특하구나. 아주 기특해.”
만족스런 대답에 푸석푸석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지우가 강아지처럼 머리를 흔들며 내 손길에 호응했다.
“그런 너에게 내가 선물을 하나 주마.”
아까부터 재밌게 가지고 놀던 그녀의 양손을 다시금 붙잡고 이끌었다.
그리고 천천히 볼록 튀어나온 내 고간을 어루만지게 했다.
내 리드에 따라 그녀의 손이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부드러운 옷감의 마찰과 가느다란 손이 주는 압력에 내 물건이 껄떡였다.
“……아!”
작게 터지는 탄성에 다시 고개를 그녀에게로 향했다.
유심히 그녀를 관찰하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계속해서 껄떡거리는 자지를 보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하악― 하악―
이지우의 봉긋한 가슴이 앞 뒤로 움직이며 뜨거운 숨결을 토했다.
“교, 교주님… 제가 감히…”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안에 담긴 감정이 달랐다.
아까보다 훨씬 끈적해진 습기가 말 사이사이에 스며들어있었다.
“그러니 내가 선물이라고 말했잖니?”
“아아아아…!”
하하하하―!
형제님, 한 캔 더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왁자지껄한 신도들의 외침을 들으며 살짝 허리를 숙였다.
눈치 빠르게 살짝 몸을 치켜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직접 벗기렴.”
“…네에.”
이지우가 부드러운 손짓으로 교주복 앞에 묶인 매듭을 풀었다.
스르륵 풀린 교주복을 천천히 옆으로 젖힌 그녀가 조심스럽게 팬티마저 밑으로 내렸다.
“아…!”
이지우가 팬티를 내리자마자 불쑥 튀어나온 물건을 조심스레 맞잡았다.
살짝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촉감의 손길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성적인 쾌락이었다.
“그럼 제가 감히… 교주님의 성스러운 물건에 펠라치오를…”
“어허. 그게 무슨 소리냐.”
“……예?”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펠라치오가 아니다.
“펠라치오라니. 이건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라 하지 않았느냐.”
“…….”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그녀에게 내 물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건 정성스럽게 빨면 선물이 나오는 선물상자란다. 펠라치오는 자지를 빠는 걸 말하는 거잖니?”
“아― 아아! 맞습니다, 교주님!”
“그럼 이건 뭐지?”
나는 내 물건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
“선물상자입니다, 교주님!”
“그래.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나.”
반원을 그리는 그녀의 눈가를 포상의 의미로 어루만졌다.
눈가를 애무하던 손이 천천히 이지우의 뒷머리로 이동했다.
그녀의 손을 이끌었던 것처럼, 이번엔 그녀의 머리를 내 물건 앞으로 이끌었다.
하악― 하악―
흥분에 젖은 그녀의 숨결이 내 자지를 따뜻하게 데웠다.
“자, 선물을 받으려면 노력을 해야지?”
“……네에.”
나른한 목소리를 끝으로 그녀가 입을 벌리고 내 자지를 삼켰다.
곧바로 이어지는 눅진하면서도 부드러운 압박감에 살짝 고개를 치켜들었다.
“츄르릅!”
음란한 소리와 함께 선홍빛 혀가 뱀처럼 내 귀두를 애무했다.
질척이는 타액이 마를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그녀의 혀가 귀두 전체를 페인트 바르듯이 고르게 폈다.
“쭈웁! 쭙! 쭈우웁!”
예행연습을 끝낸 그녀가 고개를 깊게 숙이며 본격적으로 자지를 빨기 시작했다.
빠르게 앞 뒤를 왕복하는 고개에 따라 기분 좋은 한숨이 나왔다.
계속해서 눈꼬리를 위로 올려 내 반응을 체크하는 눈짓과.
천천히 불알주머니를 어루만지는 손짓에서 그녀가 처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성역에 있던 여자들이 조금 특이 케이스인거지 이지우가 이상한 건 아니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내 기준을 통과하는 외모로 순결을 지키는 여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흐으으음! 츄르륵! 쭙!”
따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손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보지를 애무했다.
번들거리는 기둥에 흘러내리는 침을 빠르게 먹어치우는 분홍빛 입술에 흥분감이 치솟았다.
“그러니 교주라는 사람이 아까 군인들 목을 돌려버린 그 남자란 말이오?”
“아니, 교주님에게 사람이라니요! 그분은 우리와 같은 범인이 아니십니다!”
밑쪽에서 한창 데시벨을 높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옹호하던 사람의 목소리는 얼굴을 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김지호가 새로 들어온 시민에게 소리쳤다.
“여러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오히려 교주님이 여러분을 구하신거 아닙니까!”
“거기다가 이렇게 음식과 잠자리까지 주시고! 혹시나 충격에 잠이라도 못 잘까봐 맥주까지 베푸시는데 그사람이라니요!”
“지금도 메아리치는 저 좀비들의 목소리가 안 들리십니까! 지금 여러분들은 교주님의 은총 아래 생존하고 계신겁니다!”
아래에서 열정적인 신도가 나를 찬양했고.
“흐으읏! 쭈우웁! 쭙! 쭙!”
다른 아래에서도 열성적인 신도가 나를 찬양했다.
슬슬 차오르는 사정감에 고개를 돌리다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난 열심히 선물상자를 애무하는 이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선물을 뜯는데 왜 그렇게 음란하게 뜯느냐? 옆에 있는 꼬마가 배울까봐 무섭구나.”
“……흐, 흐으으읏!”
그제야 내 옆좌석에 누워있는 꼬마를 발견한 이지우가 내 자지를 문 입으로 놀람을 표했다.
보지를 열심히 애무하던 그녀의 손이 턱―하고 멈췄다.
그러면서도 기특하게 고개는 계속해서 왕복하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지우가 아닌 저 꼬마에게 선물을 줄까?”
“흐으으응―! 쭈우우웁! 쭈우웁! 쭈우웁!”
콧소리와 함께 고개를 마구 흔든 그녀가 더 빠르게 고개를 움직였다.
격한 움직임에 귀두가 목젖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목젖을 넘어 더 깊게 쑤실 수 있는 아영이보다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선물을 뺏기기 싫어하는 모습이 사정욕구를 북돋웠다.
찌걱찌걱!
이지우의 끈적한 자위 소리에 맞춰서 머리에 섬광이 튀었다.
타이밍에 맞춰서 염력으로 그녀의 머리를 고정시키고 더 깊숙하게 자지를 들어밀었다.
뷰르륵! 뷰륵!
껄떡거리는 자지와 함께 그녀의 목젖이 크게 울렁거리는 게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종속의 액]이 그녀의 식도를 지나쳐 전신에 스며들었다.
손전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빛으로 물든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실실거리며 웃었다.
눈물과 침으로 잔뜩 더러워진 그녀의 얼굴을 조심히 쓸어내렸다.
내 손길에 천천히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물었다.
“내 선물이 어땠니?”
“……사랑해요, 교주님.”
동문서답이지만 꽤나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내 성액에 한층 더 신실해진 그녀에게 물었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지?”
“……네. 네! 네!”
녹음기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던 그녀가 말했다.
……뭐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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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구로구 (5)
구로구 (5) ―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
차가운 물티슈가 다시 빳빳해진 내 물건을 꼼꼼히 닦았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상 열심히 자지를 닦고 있는 이지우를 바라보았다.
“……아!”
크게 껄떡이는 내 물건에 다시금 그녀의 탄성이 울렸다.
“……교주님.”
나를 올려다보는 이지우의 눈망울에 깊은 광신과 갈구가 보였다.
그녀가 원하는 걸 베풀 수 없는 내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베었다.
나 또한 오랜만에 느끼는 쾌락에 이대로 끝까지 가고 싶은 마음은 충만했다.
하하하하하―
취기에 하하호호 웃어대는 신도들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방음의 ‘방’ 자도 신경 쓰지 않은 경기장의 구조.
아니, 애초에 열광과 환호가 울려 퍼져야하는 경기장에 방음을 신경 쓰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런 경기장에 크게 퍼지는 이지우의 신음 소리는 아직도 날 경계하고 있을 새로운 시민들에게 그리 좋은 소리로 들리진 않겠지.
옛날부터 ‘종교’와 ‘성(性)’은 별로 어우러지는 이미지는 아니었다.
덕분에 종교의 지배자에게 성적인 스캔들은 언제나 큰 논란을 야기해왔다.
나 또한 굳이 긁어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한 발 빼는 걸로 뜨거운 육체를 달랠 수 있었고.
나 또한 과거처럼 섹스에 미친놈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보자마자 내 성욕을 한계까지 자극하는 초특급 미녀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쉽게도 이지우가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경기장 안쪽에 준비된 스카이박스 등에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나도 몹시 아쉽구나, 지우야.”
“저도 언젠가는 교주님에게 은총을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상은 반드시 노력하는 자에게 돌아간단다.”
“이제부터 무엇을 하면 될까요? 저, 저는 정말 어떤 노력이든 다 할 수 있어요!”
잔뜩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그녀를 진정시켰다.
강아지처럼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자 그녀의 표정이 다시금 온순해졌다.
“기도.”
“……아아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에게 기도하거라, 내 딸아.”
“아아― 네! 네, 교주님!”
열의에 가득찬 손길이 아까 풀었던 교주복의 매듭을 다시 묶었다.
그녀가 뒷마무리에 열중하는 것을 내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교주님 말씀이 아니셨다면, 정말 죽은 줄 알았을 거예요.”
내 시선을 따라간 이지우가 꼬마를 보며 말했다.
흥분의 조미료이자 펠라치오의 관음요소가 되어준 꼬마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꼬마도 남자였군.
여태껏 내가 구했던 아이들의 성별은 대체로 남자였다.
유일한 여자 아이는 김철수의 딸인 아름이뿐이었다.
아포칼립스에선 꼬마들도 남자가 생존에 유리한 것인가?
딱 봐도 미모 포텐셜이 극상인 여자 아이를 내 입맛대로 키운다.
그것도 각성자를 ‘키잡’하는 것은 언제나 남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지만, 오늘은 아니었나보다.
뭐,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
구원교의 세가 커지면 반드시 뒤따라올 보상이었기에 그리 급하지는 않았다.
난 부드럽게 꼬마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이지우에게 말했다.
“지우야. 이 아이를 내가 없는동안 잘 보살펴 주겠니?”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그래. 언제나 너의 헌신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아아아아―! 교주니이임―”
내 한마디에 꼬마에게 걸어가던 이지우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묘하게 허벅지를 비비며 걷는 그녀의 엉덩이를 구경하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슬슬 구로구의 집도 완성됐으니, 이제 서울의 밤을 탐험해야 할 시간이었다.
고척돔을 나가는 내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배급소 유지 기간이 만료되셨습니다.]
[갱신을 위해 100,000 신앙(30일 유지)이 필요합니다.]
[100,000 신앙(30일 유지)을 지불하시겠습니까?]
정말 오랜만에 보는 성역 관리의 메시지였다.
괜시리 번져오는 그리움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촘촘히 박혀있는 별과 보름달.
인천에서 같은 밤하늘을 보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며 보급소를 갱신했다.
배급소를 유지하기 위해 쭉쭉 빠진 신앙 포인트와 여태껏 구로구 시민들을 먹여 살리는데 들어간 포인트들.
[보유 신앙 : 99000 (1200/H)]
십만 저지선이 무너진 신앙 포인트를 보며 숨을 골랐다.
상쾌한 밤공기를 마시며 별과 달을 보며 몸을 띄웠다.
쐐애애애액―!
보급소 갱신이 왔다는 것은 오늘로서 딱 성역을 나선지 한달이 됐다는 뜻이었다.
[각성자의 구로구 지배율 : 60%]
슬슬.
속도를 높여야겠다.
* * *
끼에에에에에엑―!
넓은 시야는 많은 정보를 내포한다.
도시 자체를 울리는 발구름과 포효.
서울의 상공에서 군체를 보는 것과 유리창 너머로 보는 것과은 차원이 달랐다.
뭉치고 또 뭉쳐서 검게 물든 길다란 막대기가 서울을 이리저리 쑤시고 있었다.
하나도 아닌 여러 개의 군체가 말 그래도 ‘파도’처럼 구로구를 배회하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에엑―!”
잠깐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멈춘 나에게 미사일처럼 변종이 날아들었다.
가볍게 손을 내밀어 놈들의 움직임을 제어했다.
바둥바둥거리는 놈의 허벅지에 꿈틀거리는 힘줄들.
“이 새끼들은 하체 운동을 얼마나 한 거냐?”
분명히 도서관에서 이경민을 덮쳤던 그 변종이 맞았다.
열기에 반응하는 다리가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변종.
“이건 개구리가 아니라 뭔 날다람쥐잖아!”
찌지지직―!
그대로 ‘프로그’의 목을 뜯어버리며 불평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잠깐 멈출때마다 귀신같이 놈들이 나를 요격하고 있었다.
과연 ‘서울의 밤’.
지상 뿐만 아니라 공중도 안전하지 않다는 뜻인가.
그렇다고 고도를 더 높일수도 없었다.
조금 더 위에는 검은 막이 자리잡고 있었고, 탐색이라는 내 목적엔 높이 올라가는 것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끼에에에에엑―!”
또 다시 화살처럼 날아오는 ‘프로그’를 염력으로 날려버리며 도시를 훑었다.
히든 피스(Hidden Piece).
단어만 들어도 게이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마법의 조각.
특히나 K-웹소설에서 빠질 수 없었던 주인공만 가질 수 있는 유구한 특권.
당연히 게임을 표방하는 시스템이 이런 요소를 빠트렸을 리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서울의 밤’이라는 명칭까지 만들며 탐험욕구를 살살 긁는 것이 보였다.
그럼, 선발대로서 당연히 내가 독식하는 게 맞지.
“아― 뭐가 나와도 기쁠 것 같은데.”
아이템다운 아이템이면 뭐든 좋을 것 같았다.
일반 임무에선 무조건 시민들을 구조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인 나에게는 아이템 하나 하나가 귀했다.
특히나 히든 요소이니 동네 잡동사니를 던져주진 않을 것 아닌가?
“드디어 염력하면 생각나는 무기 투척같은 것도 할 수 있는건가?”
각종 특수능력이 내장된 무기들이 내 위에서 둥둥 부유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마치 무협에서 나오는 초절정 고수들의 이기어검처럼 내 손짓 한번에 앞으로 쏘아지는 고급 무기들의 향연.
염력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이기도 했다.
물론, 정말 너무너무 좋은 아이템이 아니라면 그냥 염력으로 목을 뜯어내는 것이 더 편했다.
그래도 ‘서주원’같은 경우가 두 번 없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끼에에에에엑―!”
이번엔 내 진행방향을 예상해서 리드샷처럼 달려드는 프로그를 멈춰세웠다.
찌지지지직―!
기계처럼 목을 뜯어주며 빠르게 아래를 훑었다.
“서부쪽에는 잘 안 보이는데.”
대체로 내 구역으로 가득찬 서부쪽을 먼저 살폈는데, 특이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펑―!
다시 몸을 가속하며 구로구의 서부와 동부를 나누는 안양천을 넘었다.
안양천과 평행선을 이루는 서부간선도로 옆에 자리한 고현고등학교를 바라보는 내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찾았다!’
어둠에 젖은 고등학교에 선명한 붉은 빛.
불빛이라곤 달빛과 별빛 뿐이었기에, 더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펑―!
그대로 몸을 급강하하며 전통의 ‘히어로랜딩’을 선보였다.
마구 갈라진 정문 앞의 아스팔트를 툭툭 걷어차며 붉은 빛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3층 중앙 계단 바로 옆의 왼쪽 교실.’
끼에에에에엑―!
내 인상적인 착지에 감명받은 좀비들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메아리치는 시간을 봐서는, 아직 여유는 충분했다.
군체가 헐레벌떡 달려와도 난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가면 그만이었다.
‘날아갈까?’
잠깐 고민하던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마나는 충분했고, 탐색의 의미도 겸했다.
빠르게 타임어택으로 먹고 도망가야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이번엔 입구부터 정석으로 가보자.
행동방침을 정하자마자 바로 고현고에 진입하여 크게 박수를 쳤다.
‘모방 성체’로 단단해진 육체가 가공할 굉음을 내지르며 건물에 퍼졌다.
짜악―! 짜악―! 짜아악―!
“아빠 왔다아아아아!”
박수와 고함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
끼에에에에에에엑―!
건물 안에 있는 놈들이 내 목소리에 자지러지는 것이 안 봐도 보였다.
아마 치킨 든 아빠를 맞이하는 자식들같이 뒤도 안보고 내게 뛰어오고 있겠지.
괜히 깊게 들어가서 실랑이를 하느니, 그냥 여기서 다 죽이고 들어가는게 훨씬 편했다.
사사사사사삭―!
타일을 가볍게 긁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며 가까워졌다.
인벤토리에서 진작에 꺼낸 손전등이 당연하다는 듯이 천장을 비췄다.
“끼에에에에엑―!”
바퀴벌레처럼 빠르게 다가오는 사운드 스토커 무리들.
복도를 뛰어오는, 아니 날아오는 프로그들도 보였다.
키이이이이잉―!
익숙한 가동음이 울리며 전신이 백광을 토했다.
어두운 학교가 잠시 번쩍이고 난 뒤, 변종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도미노처럼 울렸다.
퍽―! 퍼억―! 퍽―!
나는 피육과 바닥이 충돌하는 소리를 들으며 빠르게 중앙계단을 돌파했다.
‘3층으로 올라가서 바로 왼쪽이었지?’
복기했던 대로 바로 왼쪽 교실 유리창에 붉은 빛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드르륵―
염력에 휩싸인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하얀 플래쉬 라이트가 교실을 훑었다.
“……뭐야?”
“끼에에에에엑―!”
유난히 교실을 꽉 채운 좀비들이 들어온 나를 환영했다.
문이 닫혀있었던 탓인지, 히든 피스의 마지막 난관을 위해서인지.
내가 낸 소음에 반응하지 않고 매복처럼 기다리던 좀비 무리들.
찌지지지직―!
곧바로 모조리 목을 비틀어버리고는 붉은 빛의 근원을 주시했다.
“……특별 임무 보상이랑 똑같잖아.”
붉은 빛일때부터 뭔가 그럴 것 같더니만.
김이 팍 식은 마음을 달래며 천천히 보석에게로 걸어갔다.
그래도 혹시 모를 다른 특이점이 있을 수도 있었다.
좀비들의 시체를 넘으며 교실 중앙에 도착한 그 순간.
“끼에에에에에엑―!”
죽었던 좀비들이 동시에 기립했다.
좁혀진 거리덕분에 놈들이 내민 손이 코 앞까지 들이닥쳤다.
퉁―!
일단 가볍게 몸을 띄우며 놈들의 손길을 뿌리쳤다.
머리가 뜯겨져 나갔는데도 공중에 뜬 내게 도약하는 놈들을 차분하게 주시했다.
키이이이이잉―!
하늘로 날아드는 놈들의 전신에 염력이 깃들었다.
과하게 들이부은 염력이 그들의 상체와 하체를 분리했다.
팔과 다리까지 모조리 뽑아내고나서야 놈들이 다시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
이번엔 방심하지 않고 기다리는 내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변종을 처치하셨습니다.]
[이곳에서는 신앙을 획득하실 수 없습니다.]
[변종에 관한 지식을 획득합니다!]
[변종 ‘송장좀비’]
[‘송장좀비’는 한 번의 기회를 더 부여받습니다. ‘송장좀비’는 그들이 죽었다 생각하여 방심한 이들에게 다시금 달려듭니다. 또한 이들은 다른 좀비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없기에 더욱 위험합니다.]
“미쳤군.”
아주 악랄함의 끝을 달리는 변종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확인 사살을 안하는 놈들은 거의 100% 죽었다고 보면 되는 건가?
죽은 좀비들을 지나치다가 불의의 기습을 처맞는 일반인들이 안 봐도 눈에 훤했다.
툭―!
그래도 변종 지식까지 얻었으니 저놈들은 확실히 두 번 죽은 거겠지.
깜짝 놀랐던 마음을 다스리며 교실 끝에서 부유하던 보석에 손을 내밀었다.
[구로구의 히든 피스를 획득합니다!]
[각성자의 구로구 지배율 : 62%]
2% 오른 지배율.
특별 임무의 보상과 똑같았다.
“……끝?”
모양은 비슷해도 좀 더 좋은 보상을 줄거라 믿었는데.
아니, 하다못해 일반 임무 보상이라도 주든지, 지배율 2%가 무슨 히든 피스 보상이야!
우우우웅―
미간을 찌푸리며 보석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던 중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괴음과 동시에 내 왼쪽 얼굴이 밝게 물들었다.
마치, 교실 벽면에 무언가가 밝게 빛나듯이.
고개를 돌려 벽면을 체크한 내 얼굴이 전체적으로 밝아졌다.
[도시일지 ‘기록 1’ 발견.]
짧은 메시지가 끝나고 벽면에 새겨진 기록이 더 크게 발광했다.
그래, 뭐가 더 있긴 있구나.
난 두 눈을 빛내며 찬찬히 기록을 살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항상 제 글을 읽으러 와주시는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또 후원해주신 분들 또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특히 처음 후원해주신 '익명'님!
비공개를 원하시는 듯하여 닉네임을 말하지는 못하지만, 처음 말씀하셨던 50화 약속은 잘 지킨 것 같아 뭔가 뿌듯하네요.
두 번째 후원 메시지에서 의무를 수행하러 가신다고 작성하셨는데, 혹시 제가 너무 늦어서 이미 들어가셨나요?
두 번째 바램 또한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그곳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쌓을 동안.
저도 이곳에서 제 이야기를 열심히 독자님들과 쌓아가고 있겠습니다.
후원자님뿐만 아니라 모든 독자님에게 다시금 감사합니다!
아직 제 역량 부족으로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PS. 1. 혹시 연참 안 하면 무단결근하시겠다는 분도 보고 계신가요? 제 능력 부족으로 연참을 못하고 있으니 농담인 건 알지만, 회사에 출근해주세요!
2. 노벨피아에서 표지 답변을 주셨습니다! 아마 조만간 제 소설에도 표지가 붙을 것 같아요!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또, 여러분들이 주신 후원 또한 모두 일러스트 생성에 반드시 사용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EP.83 도시 (1)
도시 (1) ―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현고등학교
어두운 교실의 벽면에 직선과 곡선이 유영했다.
각자의 색채를 품은 선들이 이어지며 하나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빛이 그려나간 그림은 고대벽화처럼 추상적이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를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기록은 나에게 전쟁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다. 전쟁이라기엔 사람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벽화의 메시지는 혈투였다.
검을 든 자와 창을 든 자가 얽혔다.
손에 불을 뿜는 자와 바람을 토하는 자가 격돌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에 쓰러진 자들의 중앙에 두 명의 남자가 격돌하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검은 기운으로 위를 응시하는 남자와 위에서 그런 남자를 내려다보는 또 다른 남자.
너무나도 익숙한 대치와 구도.
“……서주원?”
벽화속에 나와 서주원이 마치 살아 숨쉬듯이 대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림이지만, 서주원이 든 단검이 계속해서 검은 마나에 일렁였다.
난 조심스럽게 바람에 펄럭이는 벽화속의 교주복을 쓰다듬어보았다.
내 손길에도 아무런 이상없이 벽화는 그림을 투사했다.
난 그림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팔짱을 끼고 턱을 매만졌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그림 속에 담긴 의미를 파헤쳐보려 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미래를 예견하는 것도 아니었다.
서주원은 이미 나의 손에 처참하게 죽었다.
혹시나 다음 장면이 있을까 기대하며 조금 더 기다려도 그림은 여전히 같은 장면만을 표현하고 있었다.
도시 일지?
싸우는 각성자들과 서주원과 나?
뭐, 도시의 일기장 같은 건가?
그럼 그냥 누구와 누가 싸웠다는 단순한 기록물 아닌가?
이게 왜 히든 피스 보상이지?
더군다나 저 벽화처럼 다수의 각성자들은커녕 난 서주원밖에 보지 못했는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 ‘기록 1’로는 가닥이 안 잡히네.”
가볍게 머리를 긁적이며 시체로 가득한 고현고를 벗어났다.
“끼에에에에엑―!”
때마침 좀비 군체가 발광을 하며 정문을 돌파하고 있었다.
내가 낸 소음을 추적해 발에 땀나도록 뛰어왔겠지만, 난 갈길이 바빴다.
펑―!
그대로 공중으로 솟구치며 양손으로 프로그들의 활공을 제약했다.
크롸아아아아―!
땅바닥으로 추락하는 프로그들을 본 스테로이드가 길게 하울링을 내지르며 분노의 좀비 투척을 시작했다.
투석기에 든 돌덩이처럼 내게 날아오는 좀비들을 피하며 활공을 계속했다.
“끼에에에에에엑―!”
먹잇감을 놓친 군체의 포효가 도시를 뒤흔들었다.
펑―!
원한이 가득 담긴 하울링이 닿기 전에 서둘러 염력을 가속했다.
거센 바람이 전신을 때리는 서울의 상공에서 빠르게 고개를 훑었다.
다음 히든 피스가 필요했다.
‘기록 1’로 모르겠다면, ‘기록 2’를 찾으면 그만이다.
* * *
쿵―!
스테로이드가 펜트하우스 바닥에 허물어졌다.
놈의 얼굴에 빼곡이 박힌 유리조각들이 플래쉬 라이트에 번쩍였다.
바스락―
두 번째 히든 피스의 위치는 구로구 동부의 고급 아파트였다.
그 중 최상층인 펜트하우스에 몸을 잔뜩 웅크린 스테로이드가 붉은 보석을 지키고 있었다.
염력 비행을 이용해 창문으로 들어온 나를 보며 포효하는 근육덩어리.
평범한 각성자였다면 기겁을 하며 오줌을 쌌을테지만, 나에겐 그리 큰 위협은 아니었다.
[각성자의 구로구 지배율 : 64%]
빠르게 보석을 흡수하고 차분히 거실 벽면을 주시했다.
파아앗―!익숙한 전조와 함께 빛이 요동치며 두 번째 벽화를 그려나갔다.
[도시일지 ‘기록 2’ 발견.]
이번 벽화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벽화가 그려나간 인간은 단 한 명.
한 사람이 무언가를 보며 손을 내뻗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놓인 금과 인형.
“……이것도 눈에 익네.”
특별 거점을 해결하는 나인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림에 집중했다.
마치 내 표정과 똑같이 표정을 찡그린 벽화속의 남자를 주시하다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잠깐만, 이번엔 그림의 크기가 너무 작은데?’
첫 번째의 웅장한 구도에 비해서 이번 그림은 너무 단출했다.
천천히 한 발자국 더 물러나서 시선을 좀 더 위로 두었다.
“…….”
진짜는 여기 있었네.
금과 인형을 향해 손을 내뻗는 인간 위로 펼쳐진 검은 막.
익숙한 형태지만, 벽화가 표현하는 것은 조금 달랐다.
검은 막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수많은 눈동자들.
눈동자의 동공이 마치 살아 움직이듯이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그런 눈들의 시선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눈. 뭐, 보고 있다 이런 거냐?”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리며 들어왔던 베란다로 다시 걸어갔다.
‘기록 2’로도 안되겠다.
[각성자의 구로구 지배율 : 66%]
퍼억― 퍽―!
구로역 플랫폼에 박쥐떼처럼 붙어있던 사운드 스토커들이 바닥과 키스했다.
흰 개미떼처럼 바닥에 쌓여가는 놈들의 시체를 일별하고는 플랫폼에 멈춰있는 열차를 주시했다.
파아앗―!
예상대로 열차의 넓은 벽면에 빛이 발광했다.
[도시일지 ‘기록 3’ 발견.]
세 번째 일지를 얻고나서야 처음으로 내가 모르는 장면이 투사됐다.
검은 막 아래로 빛의 기둥이 내려왔다.
기둥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피투성이의 남자.
그림인데도 입을 크게 벌린 남자의 처절한 포효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그런 기둥에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 하나.
특별임무나 히든 피스의 붉은 색과는 전혀 다른 푸른 색의 보석이었다.
“……웨이브인가?”
웨이브라 하기에는 군체들은 빛이 내려오는 퍼포먼스가 없어도 잘만 돌아다니던데.
뭐, ‘검은 막이 웨이브를 생성했다.’ 이런 뜻인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나는 다시 몸을 띄웠다.
한 자리에 죽치고 앉아서 고뇌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코끼리를 앞에 둔 장님이었다.
길다란 코와 두꺼운 다리를 알았다고, 코끼리를 안다고 해서는 안 된다.
희고 긴 상아와 넓게 펄럭이는 귀도 찾아야한다.
다른 벽화가 더 필요했다.
툭―!
광채를 뿜었던 육체로 바닥에 착지하며 오른손을 뻗었다.
[각성자의 구로구 지배율 : 68%]
구로리 어린이공원 미끄럼틀에 있던 네 번째 히든 피스를 흡수했다.
“후우우―”
바닥에 널부러진 ‘송장 좀비’들의 시체를 주시하며 크게 숨을 골랐다.
오늘 밤이 구로구에 들어온 이래로 가장 마나를 펑펑 써대는 날이었다.
서주원과의 소모전에서 4할 정도의 마나를 소모했었는데, 지금 남은 마나가 딱 4할 정도였다.
[모방 성체]를 최대치로 찍은 이후로 최초로 하루만에 절반이 넘는 6할의 마나를 사용했다는 뜻이었다.
“내일 아침부터 특별거점도 다 털어먹으려 했는데.”
난감함이 몰려왔다.
서주원을 죽인 다음날에는 다행히 풀 컨디션으로 돌아왔었다.
문제는 아직 히든 피스 수집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직 마나를 더 써야하는데 그럼 내일 풀 컨디션으로 마나가 꽉 차는지는 누구도 모르는 사항이다.
성역이 아닌 외지에서 마나가 얼마나 빨리 회복되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여태껏 마나를 펑펑 써대도 잠은 무조건 성역에서 잤었기에 생기는 문제였다.
[도시일지 ‘기록 4’ 발견.]
기다리던 메시지가 출력되자 가볍게 고개를 털며 염려를 날려보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풀 컨디션이 아니면 하루 더 쉬고 움직여도 급하지 않았다.
선발대.
내가 선발대라는 걸 잊지 말자.
“후우우―”
크게 심호흡하며 빛이 투사하는 다음 벽화를 살폈다.
이번 벽화는 너무 단순했다.
혹시 두 번째 벽화처럼 멀리서 보면 달라질까 싶어서 뒤로 물러나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벽화엔 식은 땀을 흘리며 바닥에 누워있는 한 남자와.
그 남자 앞에 똬리를 튼 뱀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뱀 위에 둥둥 떠다니는 보석이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그래도 여태껏 벽화에서 보석은 너무 자주 등장하여 감흥은 없었다.
일지를 계속해서 뒤져도 명쾌한 해답은 보이지 않았다.
수수께끼를 해결하려 벽화를 모으는데.
벽화를 모을수록 수수께끼가 더 오묘해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뜨고 벽화를 살피고는 염력으로 몸을 띄웠다.
이왕 시작했고 궁금증이 해소되지 못했으니.
마나가 허용하는 한에서 탐색을 계속하고 싶었다.
* * *
허억― 허억―
“하… 이럴 것 같더라니까.”
난 급하게 숨을 헐떡이며 다섯 번째 히든 피스를 바라보았다.
네 번째 히든 피스를 얻은 다음부터 공중에서 샅샅이 뒤지는데도 붉은빛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지나쳤을까 봐 여러 번 돌았는데도 보이지 않으면, 이건 무조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말이었다.
좀 커 보이는 건물의 안쪽부터 학교, 병원들을 모두 뒤엎으며 다닌 후에야 정말 겨우 붉은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 히든 피스는 영등포구와 맞닿아있는 신도림역의 지하 승강장에서 잠들어 있었다.
“하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숨을 몰아쉰다고 잠깐 숙였던 허리를 양손으로 곧추세우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승강장을 가득 메운 좀비 종합선물세트들.
신도림역 지하의 파수꾼들은 여태껏 내가 만나본 변종들은 다 모아놓은 듯한 구성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에는 사운드 스토커 아래에는 프로그와 스테로이드.
일반 좀비같아 보이는 놈들은 모조리 ‘송장 좀비’였다.
유독 이번 히든 피스에 많이 뭉쳐있는 변종들에게 염력 참교육을 해주었지만, 여기까지다.
나 또한 마지막쯤에는 바닥나는 것이 확 느껴지는 마나를 최대한 쪼개가며 영혼의 똥꼬쇼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악― 하악―
나는 마나도 아낄 겸 천천히 붉은 보석까지 걸어가서 오른손을 뻗었다.
[각성자의 구로구 지배율 : 70%]
다섯 번째 히든 피스를 흡수하자마자 스크린 도어에 빛이 발현했다.
손등으로 이마에 난 땀을 훔치고 스크린 도어를 주시했다.
[도시일지 ‘기록 5’ 발견.]
이번 그림은 한 눈에 봐도 무척이나 거대했다.
여태껏 본 벽화중에 가장 큰 스케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었다.
땅 위에 무수한 인간들이 쓰러져있었다.
각자의 무기를 들고 바닥에 누운 이들이 위를 보며 손을 내뻗고 있었다.
그런 쓰러진 자들의 육체가 쌓이고 쌓인 하나의 산.
그 산의 정상에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무언가를 위로 치켜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거 심장이야?”
모두가 애타는 표정으로 절규하는 손짓이 가리키는 곳에 남자의 심장이 있었다.
남자의 손에서 박동하는 심장이 빛을 온누리에 발하고 있었다.
그 빛이 무지개색으로 쪼개지며 도시의 끝과 검은 막에 닿았다.
[경이로운 업적! 각성자는 하루만에 모든 일지를 획득하셨습니다! (‘기록 1’을 획득한 후 24시간 이내에 ‘기록 5’를 획득.)]
[특수 업적 ‘하루 만에 싸는 조루남’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상으로 지배율을 획득합니다.]
[70% -> 72.5%]
“묘하게 살살 긁는 것 같단 말이지.”
난 허공을 보며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조루남?
특수 업적 이름 하나는 열받게 잘 지었네.
난 메시지를 옆으로 치우며 다시 벽화를 살폈다.
일단, 특수 업적을 봐서는 기록은 5에서 끝난다.
그럼 정리해보자.
첫 번째 벽화는 혈투를 벌이는 사람들과 서주원과 나?
두 번째 벽화는 금과 인형을 선택하는 인간을 지켜보는 뭔 눈동자들.
세 번째 벽화는 빛이 내려오는 기둥에 쏟아져나오는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남자.
네 번째 벽화는 누운 남자 옆에 꽈리를 튼 뱀.
“그리고…….”
난 말을 길게 늘리며 마지막 벽화를 찬찬히 살폈다.
정상에 선 남자의 심장.
그리고 그 심장에서 발하는 빛.
“……뭘 말하고 싶은거냐?”
난 다섯 번째 벽화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귀에 울릴 듯이 힘차게 박동하는 심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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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4 도시 (2)
도시 (2) ― 서울특별시 구로구 상공
히든 피스를 모두 수집하고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고척돔에 얌전히 박혀있던 나는 마나가 전부 회복된 것을 느끼자마자 밖을 나섰다.
오랜만에 느끼는 충만한 마나가 염력을 가속했다.
쐐애애애액―!
흰색 점이 좀비가 모두 사라진 서울의 아침을 비행했다.
두 눈을 찡그리게 할 만큼 밝은 햇빛을 가로지르며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목표는 그동안 놀지 않고 파악해둔 특별 거점들.
그 중 첫 번째 목표는 구로구의 최북단에 있는 축구장이었다.
환한 빛에 물든 축구장에 진입하기 전에 잠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
멀리서도 거대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고척 스카이돔.
그 안에 어느덧 천 여명에 육박해진 내 신도들을 떠올렸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식량과 보급품들도 열성 신도들에게 일임했으니 괜찮을 것이다.
특별 거점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경우를 대비한 안배였다.
벽화를 보게 된 이후부터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은 알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었다.
특히나 마나를 회복하는 동안 골머리를 싸매도 답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았다.
항상 끝에 도출되는 해답은 하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를 하고.
구로구의 지배율을 빠르게 올린다.
지금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로구의 완전 지배였다.
마음을 가다듬고는 그대로 환한 빛을 향해 강하했다.
[구로구 특별 거점 ‘안양천 축구장’에 진입하셨습니다.]
[‘안양천 축구장’의 테마는 ‘시련’입니다.]
축구장에 세워진 두 개의 골대.
그 중 오른쪽 골대에서 눈을 뜬 나는 다시 메시지를 정독했다.
시련?
축구장에서 무슨 시련을 준다는 거지?
뭐, 살인 태클이라도 들어오나?
시덥잖은 생각을 이어가던 중 하프라인에 거대한 빛이 내려왔다.
그렇게 빛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하늘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는 푸른 빛.
좀 더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두 눈을 찡그리며 집중했다.
직선으로 내리꽂히는 빛의 기둥과 그 안에 부유하는 푸른 보석.
“……어?”
곧바로 세 번째 벽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자연히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하프라인 바로 밑까지 내려온 푸른 보석이 환한 빛을 토해냈다.
[첫 번째 시련 시작.]
“끼에에에에엑―!”
시스템 메시지와 동시에 빛의 기둥에서 좀비들이 튀어나왔다.
줄줄이 소세지처럼 줄을 이으며 튀어나온 놈들이 직선으로 내달린다.
그들의 시선은 당연히 나에게로 집중되어있었다.
“아하.”
가볍게 몸을 띄워 일반 좀비들의 추격을 따돌렸다.
닭 쫓던 개처럼 나를 올려다보며 손을 내뻗는 놈들의 머리를 차례차례 뜯어냈다.
“끼에에에엑―!”
그렇게 딱 한 마리만 남겨두고는 빛의 기둥을 흘겨봤다.
더는 좀비들을 토해내지 않는 기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나름 엄청 긴장했는데 별 거 없잖아?
너무나도 익숙한 게임 방식이었다.
시작점이 세워지고.
그 시작점에서 쏟아져나오는 적들을 막는 디펜스 형식.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에 아―하고 탄성을 지르고 곧바로 끝까지 플레이가 가능한 간단한 원리.
그만큼이나 많은 게임에서 채용하는 방식이었다.
“끼에에에엑―!”
계속해서 애타게 손을 내뻗는 좀비를 바라보며 생각을 이었다.
저 좀비를 죽이면 두 번째 시련이 시작되고, 뭐 그렇게 계속 시련이 강화될수록 좀비들도 강화되겠지.
“그렇게 하기 싫으면 어쩔건데?”
난 가볍게 실실 웃으며 푸른 보석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키이이이잉―!
환하게 빛나는 광채와 함께 축구장이 진동했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도 디펜스류 게임에서 반드시 필요한 제한 시간이 없었다.
첫 번째 시련에서 그대로 밥도 먹고 캠핑을 해도 제재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 또한 조금 긴 시간을 할애해야 가능한 퍼포먼스가 있었다.
여태껏 내가 펼친 염력 중에 가장 지속력이 강하고 익숙한 방식.
드드드드득―!
축구장이 요동치며 잘게 뭉친 흙덩이들이 떠올랐다.
축구장이란 우주에 떠도는 수많은 행성들이 회전한다.
카가가가가각―!
이제는 나름 숙련된 공정으로 빠르게 완성한 흙빛의 회오리.
염력으로 빚은 거대한 자연현상이 그대로 빛의 기둥을 덮어 씌웠다.
흙빛이 환한 백색과 푸른색을 먹어치웠다.
내게 보이는 것은 날카롭게 벼려놓은 가시들이 회오리의 가속에 호응하는 겉모습뿐이었다.
난 오른손은 그대로 회오리에 집중한 채로, 왼손으로 아직도 애타게 발을 동동거리는 좀비의 목을 뜯었다.
찌지지직―!
검은 피분수를 일으키며 무너지는 좀비를 보던 내게 메시지가 출력됐다.
[두 번째 시련 시작.]
“끼에에에엑―!”
마지막 좀비가 죽자마자 두 번째 시련이 시작됐다.
하지만 놈들의 포효는 나에게 닿지 않았다.
카가가가가각―!
나에게 닿는 소리는 믹서기 갈리는듯 놈들의 육편이 찢어지는 소리뿐이었다.
[세 번째 시련 시작.]
[네 번째 시련 시작.]
……
시련은 이어지지만, 난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저 손을 들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커다란 스테로이드의 팔이 회오리를 뚫고 나왔지만, 그뿐이다.
그대로 무수한 가시에 갈려버린 변종들도 일반 좀비들과 똑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카가가가각―!
15분, 아니 20분 정도 지났을까.
더는 좀비들의 포효소리가 들리지 않는 회오리에 빛이 내려왔다.
파아아앗―!
회오리보다 더 커다란 빛이 아수라장이 된 축구장을 정돈했다.
자연스럽게 소멸한 회오리를 보던 내게 알림음이 울렸다.
띠링―!
[시스템이 당신에게 ‘특별 시련’을 제안합니다.]
[보상 : 원래의 보상인 ‘푸른 보석’의 강화.]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ES / NO]
“흠…….”
생각지도 못했던 시스템의 제안이었다.
이상하게 글씨를 출력하는데도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를 꽉 깨문 듯한 웅얼거림으로 놈이 내게 선택을 종용하고 있었다.
턱을 쓰다듬으며 다시금 메시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제일 처음 들었던 생각은 ‘왜?’였다.
왜, 놈은 나에게 이런 특별 시련을 제안했을까?
첫 번째 특별 거점인 고척 스카이돔에서는 제안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쉬웠던 것은 그쪽이 더했는데…
조용히 고민을 이어가는 내게 떠오르는 익숙한 이미지.
거대한 빛기둥을 보며 포효하는 피투성이의 남자.
“그래… 피투성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위를 응시했다.
피투성이가 되지 않은 게, 그렇게 불만인 거냐?
나름의 심사숙고를 마친 나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보지 뭐.”
놈이 이를 악물고 제안했으니, 보상도 이를 악물 만큼 좋겠지.
언제나 그렇듯.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내 대답에 호응하듯이 하프라인에 있던 푸른 보석이 반대편 골대로 이동했다.
파아아앗―!
다시 내리꽂히는 빛에 푸른 보석이 공명하며 번쩍였다.
[특별 시련 ‘터치 다운’]
[시련을 돌파하여 보상을 손에 쥐세요.]
두 줄의 메시지를 끝으로, 보석 앞에 무언가가 걸어나왔다.
몸을 크게 뒤뚱거리며 아장아장 걸어오는 어린 아이.
“와! 엄청 오랜만에 보네! 반갑다, 꼬마야!”
도서관에 진입하기도 전에 봤던 변종 아기였다.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같은 튼튼한 외형에 어울리는 내구력.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날려버리기만 했었던 그 변종.
아직도 변종 지식을 얻지 못한 얄미운 놈이 그때처럼 나를 올려다봤다.
나 또한 놈을 향해 손을 내뻗으며 말했다.
“얼굴은 왜 또 그렇게 시커멓게 탔어? 밖에 다닐 때는 선크림을 바르고 다녔어야지!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한 데 말이야!”
키이이이잉―!
그 시커먼 얼굴 자체를 뜯어내주마.
손 끝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백색 마나가 빠르게 놈을 향해 치달았다.
놈이 이빨 없는 아가리를 천천히 벌리며 고개를 하늘로 향했다.
쿵―! 쿵―!
땅이 작게 울리며 스테로이드가 아기 변종 앞에 섰다.
염력을 막듯이 아기를 내 시야에서 치운 것과 동시에 소리가 울린다.
아니, 고함이 터졌다.
“빼애애애애액―!”
반고리관에 직격으로 타격한 듯이 공중을 부유하던 내 몸이 흔들렀다.
그대로 방해물인 스테로이드에게 염력을 쏟아붓던 흐름이 끊겼다.
지상으로 추락하듯이 내려온 나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그때 들었던 것보다 더 심한데?
그 날에 들었던 고함에도 몸을 휘청거리긴 했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그 이후에도 이렇게 머리가 쪼개질 듯이 어지럽지는 않았다.
특히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질적으로 달랐다.
최대치에 달하는 모방성체에 보호를…
“아….”
키잉―! 키잉―!
전신을 빛내야할 백색 마나가 스파크 튀듯이 탁탁 끊기며 점멸했다.
“빼애애애애액―!”
한 번 더 울린 놈의 울음소리에 그 빛마저 더 옅어지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새끼 얼굴만 검게 물든 게 아니라, 뭘 좀 더 가지고 왔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전개가 느렸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래도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하여 오늘 좀 달렸습니다!
다음편 바로 올립니다.
다음화 보기―――――――――――――――――――――
EP.85 도시 (3)
도시 (3) ― 서울특별시 구로구 특별거점 ‘안양천 축구장’
뜨드드드득―!
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스테로이드가 커다란 팔을 땅 속에 박아넣었다.
서둘러 놈을 향해 팔을 뻗었지만, 자연히 알았다.
지금의 내 염력으로 놈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없었다.
놈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흙뭉치를 계속해서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투척할 생각이군.’
놈이 마나가 제약당한 나에게 돌진하지 않았다.
‘뒤에 있는 애새끼를 호위하면서도 나를 공격하겠다는 건가?’
놈의 속이 훤하게 다 보였다.
알 수는 있지만, 여태까지의 내 전투 스타일로는 놈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끄드드드득―
마치 막힌 길을 강제로 뚫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도하게 흐르던 강줄기가, 시냇물보다 작게 똑―똑― 떨어지는 듯한 감각.
겨우겨우 뱉어낸 염력이 제어할 수 있는 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흘러내리는 흙덩이들 뿐이었다.
그 숫자 또한 아까와는 차원이 다를만큼 적었다.
“피투성이….”
다시금 벽화를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그래, 시스템 네가 생각한 나의 약점이 이거구나?
스킬의 제약.
어쩌면 정곡을 찔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내 눈이 어지럽게 좌우로 움직이며 승리의 가능성을 점쳤다.
내가 식칼창으로 최초 업적을 먹었을 때, 내게 염력이 있었던가?
내 본질 자체가 염력이었던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가볍게 주먹을 말아쥐며 현재의 내 육체를 가늠했다.
아무리 약해졌다해도 일반인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움직임을 토해낼 수 있는 탄력적인 육체.
“빼애애애애액―!”
크롸아아아아아―!
닿을 수 없는, 하지만 닿아야하는 적.
키잉―! 키잉―!
툭툭 끊기는 염력덕에 사르르 부서지지만, 그래도 지지대가 되어줄 흙덩이들.
자연스럽게 누군가가 생각났다.
나와 함께 벽화에 박제된 묵빛의 각성자.
난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는 무기를 생각하며 몸을 통통 튀었다.
오랜만에 햇빛을 머금은 단검이 예기를 뽐내며 번쩍거렸다.
한 눈에 봐도 단단해보이는 흙덩이를 쥔 스테로이드가 나를 보며 특유의 미소를 짓는다.
나 또한 화답하며 놈에게 이죽거렸다.
“새끼가, 쫄기는.”
쾅―!
순식간에 내가 있던 곳에 작열하는 흙덩이가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사선으로 쇄도하며 놈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텅―!
단검과 충돌한 가슴 근육이 터프한 소리로 꿈틀거렸다.
바닥에 꽂히는 단검을 일별하며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찼다.
쾅―!
내가 있던 위치에 다시금 작열하는 투척.
“크롸아아아아―!”
잔뜩 분노한 스테로이드가 포효를 내지르며 두 손을 땅에 박았다.
“끼에에에엑―!”
움직임이 제약된 스테로이드에게 다가가던 와중에 울리는 하울링.
뒤늦게 튀어나온 일반 좀비들의 절반이 골대를 감쌌다.
나머지 절반은 상체를 크게 흔들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스테로이드의 투척 준비 시간을 채울 목적이 다분한 움직임.
‘그래. 특별 시련이다, 이거지?’
직선으로 내달리던 질주를 다시 사선으로 선회했다.
작은 구덩이 안에 널부러진 스테로이드의 투척물을 밟고 공중으로 치솟았다.
견제용으로 놈의 머리에 단검을 던지며 왼손을 밑으로 향했다.
아래에서 힘없이 부유하던 흙뭉치가 서서히 올라왔다.
쐐애애애액―!
스테로이드가 던진 흙덩이와 내가 던진 단검이 교차했다.
퍼어어억―!
나와 함께 부유한 흙덩이가 더 강하게 뭉친 흙덩이에 잘게 부서졌다.
여유가 생긴 팔뚝으로 단검을 막은 스테로이드가 흙덩이를 쥔 반대쪽 손을 뒤로 당겼다.
꿈틀거리는 근육에 엿보이는 무지막지한 괴력.
“빼애애애애액―!”
때마침 울리는 괴음에 부유를 이어가던 염력이 삐끗거렸다.
힘없이 허물어지는 흙덩이들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내 비행에 투자되던 염력을 고스란히 흙덩이 유지 코스트로 소모했다.
유지력을 상실한 내 몸을 중력이 지배하며 끌어당겼다.
겨우 모습을 유지시킨 흙덩이를 밟고 양손을 앞으로 향했다.
천천히 나아가는 흙뭉치 위에 서있던 나는 다시 도약했다.
퍼어어억―!
공중에서 전진하던 흙뭉치들이 산산히 부서져내렸다.
상공의 강한 바람이 교주복을 펄럭였다.
흙뭉치를 다 던진 스테로이드의 양손엔 또 다시 다른 투척물이 들려있었다.
커다란 암석을 들고 양팔을 머리 뒤로 당기는 녀석이 마치 나를 비웃듯이 얼굴을 찢었다.
다시금 지상으로 추락하던 나는 아래를 응시했다.
더는 나와 함께 부유하는 흙덩이들이 없었다.
놈은 철저하게 내가 아닌 부유하는 흙덩이이자 나의 유용한 이동수단을 요격하고 있었다.
“크롸아아아아―!”
쥐어짜내듯이 터져나오는 포효와 함께 회색 유성이 내게 날아들었다.
난 양손에 든 단검 중 하나를 견제용으로 던졌다.
팅―!
빠르게 충돌한 두 물체 중 내 단검이 그대로 튕겨나가며 비명을 질렀다.
아무런 이상없이 그대로 직선으로 꽂히는 투척물을 보며 스테로이드가 미소지었다.
좀비새끼답지 않게 끝까지 숨긴 칼날의 날카로움.
허나, 서주원보단 날카롭지 않았다.
기억속의 움직임을 따라하듯이 다른 손에 있는 단검을 박찼다.
쐐애애애애애액―!
힘을 잃지도 않고 하늘을 솟구치는 회색 빛.
“끼에에에에엑―!”
조만간 추락할 나를 기다리듯이 좀비들이 기쁨의 포효를 터트렸다.
손을 내뻗는 좀비들 위에 견제용으로 던졌던 단검이 핑그르르 돌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을 안력과 균형감에 집중했다.
끝까지 타이밍을 재던 오른발이 그나마 단검의 넓은 부분인 칼날에 안착했다.
끄드드드득―!
잔뜩 몸을 웅크린 나와 스테로이드의 눈빛이 부딪혔다.
“크롸아아아아―!”
놈이 다가올 나를 대비하며 주먹을 쥐고 팔을 당겼다.
나 또한 양손에 단검을 쥐고 마지막 도약을 개시했다.
서주원과 똑같은 방식의 접근.
달라진 것은 단 하나.
놈은 비상했지만, 나는 내리찍었다.
쐐애애애액―!
바람을 가르며 놈과 내가 교차한다.
한 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며 팔을 내지르던 놈이 당황한다.
주먹의 경로에 내가 다가오지 않았다.
난 조금 더 높은 경로에서 다른 목표를 향해 강습하고 있었다.
놈이 노림수를 숨겼던 것처럼, 나 또한 계속해서 노림수를 숨겼다.
여태껏 단 한번도 놈을 지나치지 않고 맞대응했기에 생긴 빈틈.
“빼애애애액―!”
목표물이 굉음을 내질렀지만, 난 자유로웠다.
지금의 나를 감싼 것은 이능이 아니다.
콰아앙―!
곧은 직선으로 뻗어간 단검이 놈의 이빨 없는 아가리에 쑤셔박혔다.
그리고 위로 치켜든 손짓에 따라 입 천장을 뚫고 파고들었다.
“커억―!”
놈의 굉음이 끊기고 다시금 마나가 전신을 순환했다.
골대를 지켜던 좀비들과 목표물에게 농락당한 스테로이드가 내게 달려들었다.
[변종을 처치하셨습니다.]
[이곳에서는 신앙을 획득하실 수 없습니다.]
[변종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지 못하였습니다.]
뭐, 실패라고?
처음 뜨는 지식 획득 실패 메시지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 맞다.
저거 확률형 획득이지.
그래서 ‘알아야가는 재미’냐고 욕했던 것이 생각났다.
처음으로 맞이한 불운을 잠시 접어두고 정신을 집중했다.
키이이이이잉―!
시원하게 이어지는 가동음 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내게 달려들던 그대로 멈춘 좀비들을 피해서 골대 옆에 있는 푸른 보석에 손을 닿았다.
[터치 다운!]
간단한 메시지가 출력되고 염력에 정지했던 좀비들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입자가 되어 흩어지는 그들을 바라보던 와중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구로구 특별 거점 ‘안양천 축구장’의 테마를 해결하셨습니다!]
[각성자의 구로구 지배율이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72.5% -> 77.5%]
빰빠라라―!
생경스런 축하음에 눈을 동그랗게 뜬 나에게 연이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특별 거점의 보상이 ‘특별 시련’ 통과로 강화됩니다!]
[‘복사의 돌’의 조건이 좀 더 완화됩니다!]
난 내 손에 닿았는데도 녹아내리지 않은 푸른 보석을 조심스럽게 손에 쥐었다.
[복사의 돌]
[각성자가 원하는 ‘물체’를 하나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템이다.”
보석이 발하는 푸른 빛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으로 정말로 아이템다운 아이템을 얻었다.
거기다가 물체를 복사한다는 심플한 설명.
“원래 효과는 단순할수록 파괴적인데.”
나름 어릴적부터 카드 게임을 자주 해봤기에 알 수 있었다.
길고 어려운 문장보다 단순한 문장 하나가 가지는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복사의 돌’이라니.
이건 그야말로 돌을 황금으로 만들어 준다던 ‘현자의 돌’과 다를 바 없었다.
“시스템아! 이거 나 자신도 복사 가능하냐?”
기쁨에 젖은 내 목소리에도 시스템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혹시나해서 보석으로 가슴을 툭툭 쳐보고 이리저리 굴려봐도 아무런 작동도 하지 않았다.
쩝. 내가 두명이라면 아까같은 위기 상황도 전혀 위기가 아니었을 텐데.
아쉬움으로 쩝쩝거리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이거 만약 내가 복사됐다면… 그 복사된 놈이 이지우를 따먹으면… 그건 네토라레인가?’
순간 가슴속에 울컥 치솟는 불쾌함으로 알았다.
“와! 복사 안 하길 잘했다! 시스템아, 고마워!”
씨발, 내 자신을 복사했다면 아주 큰일이 날 뻔했네.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몸 상태를 가늠했다.
오히려 마나를 제약당했던 덕분에 여유가 넘치는 잔존 마나.
손을 뻗어 바닥에 널부러진 단검들과 복사의 돌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남쪽을 응시했다.
바로 두 번째 특별 거점으로 갈 생각이었다.
* * *
[구로구 특별 거점 ‘신도림 테크노 근린 공원’에 진입하셨습니다.]
[‘신도림 테크노 근린 공원’의 테마는 ‘고뇌’입니다.]
안내 메시지와 함께 근린 공원의 산책로와 초록빛이 모조리 사라졌다.
아래에서 특별거점으로 내려오던 내 몸 또한, 다른 특별 거점과 비슷하게 새로운 위치에 기립하고 있었다.
휘이이잉―
사막이었다.
모래를 가득 담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정말 모래와 바람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테마가 해결될 때까지 인벤토리, 상점, 스킬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허?”
혹시 잘못 읽었나 싶어서 다시 한번 읽기까지했다.
그리고 전혀 변하지 않은 의미를 곱씹으며 헛웃음을 토했다.
아주 작정을 했구만, 작정을 했어.
정확한 확인을 위해 손을 뻗어 단검을 상상했다.
몇 초가 지나도 여전히 비어있는 내 손.
상점창과 스킬 또한 다를 바는 없었다.
어, 난 능력치도 없어서 스킬 잠금 당하면 그냥 일반인인데.
나를 초인으로 만들어주던 강력한 힘이 모조리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능력치가 있었어도, 시스템이 잠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태로 좀비랑 싸우라는 건 아니지?!”
그럼 무기라도 주던가!
시스템에게 들으라는 듯이 크게 소리치고는 주위를 경계했다.
휘이이잉―!
뭐, 다행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좀비는커녕 그 무엇도 사막에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 생각을 해보자.
약해진 육체가 제법 거센 바람에 잠깐 휘청였다.
모래바닥에 엉덩이를 깔고선 턱을 쓰다듬었다.
‘여태껏 내가 얻었던 단서들을 한 번 합쳐보자.’
특히나, 히든 피스였던 벽화들.
방금 전까지 나는 세 번째 벽화가 묘사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밝은 빛기둥에 내려오는 보석과.
그 보석이 토해내는 괴물들.
딱 하나 달랐던 것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포효하지 않았다는 것 뿐.
뭐, 이건 내 재량이라 생각하고, 상황은 얼추 들어맞았다.
그렇다면 벽화는 아주 높은 확률로 특별 거점의 테마들을 말하고 있는 건가?
세 번째 벽화는 ‘안양천 축구장’.
네 번째 벽화는…
천천히 기억을 뒤짚으며 네 번째 벽화를 생각했다.
누워있는 남자 옆에 꽈리를 튼 뱀.
“남자가 누워있다….”
그리고 뱀이 앞에 있다?
뭐, 무슨 상황에 대한 비유 같은 건가?
아니면 진짜 누우면 되는 건가?
“어이구!”
풀썩이는 소리와 함께 나름 푹신푹신한 모래에 머리를 이었다.
“…….”
누워있어도 아무런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사막엔 모래와 바람 뿐이었다.
그대로 누워서 생각을 이어갔다.
‘뱀이라… 진짜 뱀이라도 나오는 건가?’
뭐, 신화속의 무서운 뱀을 능력 없이 레이드해보라는 건가?
그렇다기엔 거점의 테마가 ‘고뇌’인데…….
이게 전투와 관련된 건가?
‘남자가 누워있다.’
왜 누워있을까?
힘들어서?
무엇에?
그 앞에 똬리를 튼 뱀.
진짜 뱀인가?
아니면 비유인가?
비유라면 무엇이지?
전혀 모르겠지는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상황이 익숙했다.
조금씩 선명해지는 이미지가 오히려 정신을 더 집중할수록 툭툭 끊겼다.
“후우― 정리해보자. 정리해보자.”
무언가로 힘들어하는 남자 앞에 뱀이 있다.
만약 그냥 뱀이라면, 말그대로 뱀이 있는 거고.
비유적 의미라면 뱀은 대체로 안 좋은 의미일 텐데.
“…비겁함, 사악함.”
악(惡).
힘들어하는 남자 앞에 있는 악.
“……어?”
순간 머리에서 섬광이 터지듯이 번쩍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2편 더 있습니다!
1~2시간 뒤에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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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6 도시 (4)
도시 (4) ― 서울특별시 구로구 특별 거점 ‘신도림 테크노 근린 공원’
모자이크라도 된 듯이 뿌옇던 이미지가 단번에 선명해졌다.
지치고 또 지친 사내에게 다가온 은밀한 악.
“이거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성가을은 거짓말쟁이였다.
나에게 백마탄 초인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그녀가 바랬던 것은 딱 백마탄 초인이었다.
그런 나에게 거의 강압적으로 쥐어주던 도서관의 책들.
특히나 수많은 종교 서적을 내게 독파하라 강요했었다.
평소에도 웹소설들을 읽으며 딱히 독서에 거부감이 없었기도 했고, 그녀는 항상 읽은 만큼 밤에 므흣한 보상들을 해주었기에 나도 불만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었었다.
그 중 특히나 신경 써서 읽었던 것이 바로 기독교와 관련된 서적들이었다.
그의 수많은 일화와 기적, 그리고 말들은 나에게 말 그대로 ‘바이블’이 되어주었기에 아직도 기억에 선명했다.
그 중 예수가 광야로 떠나 40일 밤낮을 머무를 때 일어났던 일.
“……광야의 유혹.”
장소 또한 텅 빈 광야나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딱― 딱―
나름의 확신을 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몸을 일으켜세우고는 행동을 정했다.
그대로 전력을 다해 사막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쨍쨍하게 내려오는 햇빛이 단숨에 온몸을 땀으로 젖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헉― 헉―거리는 호흡과 함께 다리가 모래에 푹푹 들어갔다.
나는 달리고 또 계속해서 달렸다.
[모방 성체]가 백업하지 못하는 내 몸은 1시간도 되지 않아서 그대로 녹아버릴 듯이 흐물흐물해졌다.
입가를 넘어 턱까지 질질 흐르는 침을 팔뚝으로 훔치고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풀썩―
충격에 흩날리는 모래를 무시하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의도했던 행동은 맞지만,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하아― 하아―”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는―”
“어엌 씨발!”
퍼억―!
깜짝 놀라 내려친 손에 물컹한 느낌이 딸려왔다.
그대로 바닥에 짓눌린 뱀을 보며 잠시 말을 잃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가 죽인 뱀을 보고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리필 되나요?”
[…….]
대답하지 않는 시스템을 올려다보며 어색하게 웃는 와중에 모래를 길게 끄는 소리가 났다.
천천히 상체만 들어 정면을 쳐다보니 뱀 하나가 흐물흐물거리며 내게 오고 있었다.
‘와…… 다행이다.’
스스스스스―
입으로 계속 뭐 매운걸 먹었는지 스스스거리던 놈이 내 앞에서 똬리를 틀었다.
“너희는 진짜 스스스거리면서 오는구나?”
“…….”
“오우 쏘리― 계속해. 계속해.”
분위기를 읽은 내가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사과를 표했다.
마치 목을 가다듬듯이 고개를 까닥거리던 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는 자여―”
뱀답지않게… 어 뱀다운 게 뭐지?
어쨌든 낮고 음울한 목소리로 뱀이 말을 이었다.
“그대가 정말 누군가의 구세주라면 이 돌을 빵으로 바꿔보시오.”
엄숙한 분위기에 맞지 않게 웃음이 났다.
예수는 이미 극한까지 몰린 상황에서 유혹을 받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가볍게 웃으며 뱀에게 말했다.
“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말로서 산다고 해줘야 하나?”
예수가 뱀을 물리쳤던 대답을 해주자, 뱀이 스르륵 사라졌다.
허탈하게 웃으면서 눈을 깜빡이자 더 거센 바람이 내 얼굴을 때렸다.
서울의 한 고층 빌딩 위에 서있게 된 내 옆 다시금 뱀이 있었다.
“이곳에서 당신은 뛰어내릴 수 있소? 당신이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지. 허나, 능력이 사라진 지금도 당신은 그대로 당신이오?”
오…….
이건 예수한테 물었던 물음이 아닌데?
고개를 빳빳히 들고 나를 보고 있는 뱀을 쳐다보며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자꾸만 보다보니까 뱀도 좀 귀엽네.
이래서 사람들이 키웠던 건가?
난 뱀을 보며 농담하듯이 물었다.
“뛰면서 백덤블링하면 가산점 주냐?”
“…….”
난 왠지 모르게 질렸다는 눈으로 보는 뱀을 무시하며 그대로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쐐애애애액―!
그 어느 때보다 세찬 바람이 계속해서 얼굴을 강타했다.
뭐, 공포라도 느끼며 질질 짜기를 바란 건가?
멀어보이지만 급격히 가까워지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내 본질에 관해 묻는 거라면 염력은 아까도 그랬듯이 나의 본질이 아니다.
어떠한 고민과 고뇌도 없이 확신한다.
바람에 강제로 감겼던 눈을 떴다.
이번에도 어딘가로 이동한 나와 뱀.
그런 뱀 앞에 놓여진 수많은 금…
뭐야, 금은보화가 아닌데?
뱀이 나긋나긋하게 유혹하는 음색으로 말했다.
“여기,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도와줄 것들이 한가득이다. 보겠나?”
그런 내 눈에 갑작스럽게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스킬 ‘세뇌’ (획득 시 직업 스킬에 전승됩니다.)]
[스킬 ‘카마수트라’ (획득 시 직업 스킬에 전승됩니다.)]
[스킬 ‘성감 고조’ (획득 시 직업 스킬에 전승됩니다.)]
……
섹스로 가득한 세상이 내게 펼처졌다.
섹스, 말 그대로 성과 관련된 스킬과 아이템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성감 고조.”
저거랑 종속의 액이랑 같이 쓰면 그 파괴력을 가늠할 수 없겠는데?
처음으로 흔들리는 눈빛을 하는 나를 본 뱀이 목소리를 높혔다.
“하나가 아니라 전부를 줄 수 있소. 그저 당신이 구세주가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하시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소!”
난 뱀을 보며 미소지었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수없이 쌓인 아이템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아이템 ‘초강력 사정지연 콘돔(50개분)’]
“뱀아 잘 들어봐. 나는 그 솔직한 말로 여성을 만족시켜야 할 의무가 없어. 이게 여성이 갑인 연애가 아니거든.”
“…….”
“난 그냥 싸지르면 돼. 내 스킬 구성도 모르냐? 난 오히려 지루면 더 안 좋아. 난 조루처럼 속사형이 더 좋다고.”
“…….”
“여자가 만족하면 뭐 나도 기분이 좋긴 하겠지. 하지만 그게 왜…”
난 확실히 질린 듯한 눈으로 나를 보는 뱀을 보며 속삭였다.
“내가 구세주가 아니라는 증거가 되는지 모르겠구나, 악마야.”
마지막 말을 끝으로 다시금 뱀이 스르륵 사라졌다.
그리고 뱀이 있던 자리에 작은 보석이 떠올랐다.
푸른 빛도, 붉은 빛도 아닌 초록 빛.
보는 것만으로도 넘치는 생명력을 손에 쥐었다.
[구로구 특별 거점 ‘신도림 테크노 근린 공원’의 테마를 해결하셨습니다!]
[각성자의 구로구 지배율이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77.5% -> 85%]
“오, 뭐야 2.5% 더 줬는데?”
아 뭐야, 혹시 시험 하나당 2.5%였어?
“……85%!”
이제 특별 거점 2~3개만 더 하면 드디어 구로구 완전 지배인가?
그럼, 귀환석 없이도 분명히 돌아갈 수 있겠지.
구로구를 얻고 가면 얘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기쁨에 들썩이는 어깨를 따라 연약해진 몸이 서서히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용솟음치는 마나가 전신을 달구며 순환했다.
키이이이잉―!
마나를 가동시키며 육체를 점검하던 내게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특별 거점의 보상으로 ‘초록 보석’을 획득합니다!]
뭐야, 이건 왜 이름이 그냥 초록 보석이야?
난 인벤토리에서 ‘복사의 돌’을 꺼내 푸른 보석과 초록 보석을 비교했다.
확실히 복사의 돌이 훨씬 거대하고 영롱한 빛을 내뿜었다.
이게 특별 시련으로 보석이 강화되서 그런가?
만약 강화가 안 됐으면 이것도 그냥 ‘푸른 보석’으로 얻게 되는 건가?
난 다시 ‘복사의 돌’을 인벤토리에 넣고 ‘초록 보석’을 유심히 살폈다.
[초록 보석]
[뇌리에 남았기에, 실현된다.]
“이것도 문장이 짧긴 한데….”
완전 수수께끼잖아.
머리를 긁적이며 초록 보석도 인벤토리에 넣었다.
“자~ 다음 특별 거점도 가볼까?”
[당신을 인정합니다.]
염력으로 몸을 띄우려던 시야에 떠오르는 한 줄의 메시지.
그대로 몸을 멈추고 위를 응시했다.
실실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을 아꼈다.
이를 꽉 문 것 같은 느낌인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할 순 없지.
히든 피스인 벽화들과 특별 거점의 테마들.
놈은 자꾸만 나에게서 무언가를 시험하려 했다.
딜레마, 시련, 고뇌.
그중 이번 거점인 ‘고뇌’는 특히나 더 쉬웠다.
해답을 안 문제보다 간단한 문제는 없다.
이미 힌트와 전개, 답을 다 아는 상황이니 더 간단했다.
광야에서 예수가 악마를 만난 순간은 40 여일을 금식하며 고난을 겪던 순간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스스로 고난을 좀 주었다.
트리거가 당겨진 듯이 나타난 뱀이 유혹을 했지만, 전혀 치명적이지 않았다.
피로가 갉아먹지 않은 정신은 너무나도 또렷하게 악마의 의도를 파악했다.
육체적 탈진과 정신적 탈진이 이어져야 공포스러울 난관에.
가장 중요한 정신적 탈진을 빼버린 채로 임했으니 어려울 수가 없었다.
[각성자 한구원을 인정합니다.]
[당신은 초인(超人)입니다.]
뭐야, 잔뜩 화난 것 같았는데 왠 칭찬?
[허나.]
시스템은 강조하듯이 두 글자를 출력한 뒤 뜸을 들였다.
[당신은 지루합니다.]
[칭송받고 경애받는 자에게는 마땅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위기가 없습니다. 시련이 없습니다. 고뇌가 없습니다.]
마치 따지듯이 다다닥 이어지는 메시지.
[당신의 도시와 당신의 테마는 ‘신앙’.]
[성자는 시련과 고난 위에 오롯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당신에게 제안합니다.]
메시지가 끝나자마자 구로구가 번쩍였다.
내가 응시하는 하늘 위로 밝은 빛들이 서서히 떠오르다가 하나로 합쳐졌다.
파아아앗―!
[구로구의 모든 특별 거점을 하나로 합쳐 새로운 특별 거점을 생성합니다.]
[특별 거점 클리어 보상으로 ‘지배율 100%’와 ‘초록 보석의 강화’를 설정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ES / NO]
시스템의 말로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놈은 나에게 뭔가를 바라고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가 충족시키지 못했다.
뭘까?
게임의 재미? 관람의 재미?
어쨌든 놈은 지금의 내 행보를 마음에 들지 않은 눈빛으로 보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이건 무조건 아까의 그 똥꼬쇼보다 더 힘들겠네?”
그렇다고 거절하기에는 조건이 너무 좋았다.
특별 시련의 보상으로 어마어마한 아이템을 얻었다.
이번 초록 보석또한 다르지 않겠지.
거기다 여러개의 난잡한 특별 거점을 단 하나로 끝맺을 수 있다.
집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겠지.
“그에 비례해서 난이도도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지겠네.”
고뇌에 고뇌가 이어졌다.
근린 공원 특별 거점보다 오히려 지금이 그 ‘고뇌’라는 테마에 더 잘 맞았다.
“이거 선택 제한 시간 있냐?”
[…….]
시스템은 언제나 그렇듯 자기 할 말만 하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서두를 필요가 없네.”
동쪽으로 가려던 몸을 서쪽으로 틀었다.
고척돔에서 하룻동안 몸을 재정비한다.
그리고 내일.
구로구를 완전히 손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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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도시 (5)
도시 (5) ―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
“교주님. 신도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아, 수고했다. 너는 내 뒤에 있거라.”
“어, 어찌 제가 감히…”
“허허허. 괜찮다. 너의 노고를 모든 신도들이 다 아느니라.”
난 너털웃음으로 거절하는 이지우를 내 뒤에 기립시켰다.
그녀는 충분히 오늘을 즐길 자격이 있었다.
고척돔의 드넓은 경기장.
천 여명의 백색 옷으로 가득찬 잔디밭이 내려다보였다.
김지호와 초창기 신도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줄을 정렬시킨다고 바빴다.
적절한 단상이 없었기에 난 4층 지정석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몸 상태는 이보다 완벽할 순 없었다.
어제 무리하지 않은 마나 운용덕에 마나 또한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단지 시스템이 공언한 고난과 시련이 무엇인지, 찜찜할 뿐이다.
히든 피스인 벽화를 떠올렸다.
여태껏 내가 겪은 모든 특별 거점들은 모두 벽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네 번째 벽화까지 모두 이겨낸 나에게 남은 벽화는 단 하나.
마지막 도시 일지의 ‘기록 5’.
쓰러진 자들 위에 한 남자.
그 남자가 들고 있던 힘차게 박동하는 심장.
“……심장이라.”
“예? 필요하신 것이라도 있으신가요, 교주님?”
“하하, 아니다.”
뒤에서 바로 반응하는 이지우에게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금 생각을 이었다.
내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벽화는 ‘심장’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제 시스템은 모든 특별 거점을 모아 하나로 합쳤다.
그렇다면, 새로 생성한 특별 거점 또한 벽화의 영향을 받는가?
……알 수 없었다.
“…교주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생각을 이어나가기 전만 해도 다소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조용히 내려앉아있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신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부족한 신도들이었다.
청결도, 믿음도, 나와 함께 지낸 기간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구원교의 신도복을 입었다.
정결한 백색으로 자신들의 순수를 증명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내가 이끌고 가야하는 나의 자식들이다.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마나를 담았다.
그 마나는 믿음으로, 사랑으로 증폭되어 경기장을 울렸다.
“눈을 감았다 뜨니, 세상이 무너졌다.”
담담한 선고가 서두를 장식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사실이다."
그들에게 가장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가장 절실하게 깨달아야 할 사실을 주지시켰다.
“눈을 감았다 뜨니, 국가가 무너졌다. 사회가 파괴되었고. 사랑하는 가족이 사라졌다. 그것만이 유일한 사실이다!”
고조되는 목소리를 따라, 점점 눈시울을 붉히는 신도들.
그들의 크게 박동하는 심장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선명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웬 이상한 남자가 자신을 믿으라 한다! 이상한 백색 옷을 입은 자들이 믿음을 강요한다!”
그들이 처한 가장 기묘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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