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ipse 10

아파트에서 좀비들을 죽이고 있는 공통점 때문일까?
그때와 다른 점은 나를 뒤따르던 좀비들이 이젠 위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발광하며 계단을 내려오던 수십 명의 좀비들이 나와 마주쳤다.
난 기계적으로 손을 내뻗었다.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내게 달려드는 좀비들의 목을 주시했다.
“끼에에에에엑―”
[이런! 좀비의 진짜 무서움은 그들이 뭉쳤을 때 발휘됩니다! 서둘러…]
찌이이이이익―
파도처럼 놈들의 몸이 허물어졌다.
박자를 타듯이 퉁―퉁―거리며 바닥에 떨어지는 놈들의 머리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좀비들의 시체를 뛰어넘어 임무의 목표로 예상되는 최상층까지 한 번의 멈춤도 없이 꾸준하게 걸어갔다.
일반 좀비의 소규모 웨이브는 각성 첫날부터 진작에 극복했다.
[……]
메시지를 출력하다 중단한 시스템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어? 어금니 부서지겠다, 시스템아!”
웹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튜토리얼을 가장한 ‘헬 난이도’ 던전일 경우의 수를 접었다.
이건, 진짜 튜토리얼이라는 확신을 얻자마자 빠르게 속도를 높혔다.
일반 좀비들뿐이라면 경계하며 걸을 이유가 없었다.
한 번의 도약으로 한 층씩 뛰어넘으며 단번에 아파트의 최상층인 49층에 도착했다.
“살려주세요! 아무도 없나요?!”
4개의 현관문 중에 유일하게 닫힌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간드러지면서도 듣는 것만으로 서둘러 도와주고싶게 만드는 목소리.
나름 익숙한 목소리에 실실거리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고난을 거쳐 아파트 최상층에 도착한 당신! 그런 당신에게 누군가의 다급한 구조 요청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주의하세요! 이 세상에는 당신을 물어뜯는 좀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 이게 튜토리얼의 클라이막스인가본데?
단순한 메시지 출력인데도 이상하게 시스템의 의기양양함이 엿보였다.
“살려주세요! 아무도 없나요?!”
녹화라도 해놓은 양, 반복되는 톤과 반복되는 문장.
“저 새끼 단짝들도 천장에 박혀있을라나?”
끄드드득―
닫힌 문을 간단히 찌그러트린 뒤에 천장을 주시하며 집 안으로 진입했다.
“살려주세요! 아무도 없나요?!”
찬찬히 살펴본 거실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리의 근원지는 거실이 아닌 하얀 문으로 닫혀있는 침실이었다.
[프레시안 아파트의 청소 임무가 끝났습니다. 마지막 침실만 확인한다면요! 당신은…]
또 주절주절대며 메시지를 출력하는 시스템을 무시하고 침실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자루에 갇혀 바둥거리는 무언가가 애타게 나를 불렸다.
“아! 감사합니다! 어, 어서 안으로 들어오셔서 저 좀 꺼내주세요!”
오, 처음으로 살려달라는 말 대신 다른 말을 내뱉네.
심드렁한 표정으로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한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사운드 스토커 한 마리가 방 안에 들어온 나를 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의 목소리에도 침착함을 유지한 당신! 당신은 일반 좀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무언가를 포착했습니다. 그들은…]
끄드드드득―
단번에 사운드 스토커의 몸을 공처럼 찌그러트렸다.
연이어 장산 좀비가 든 자루에도 염력을 투사했다.
찌이이익―
반으로 찢어진 자루 밖으로 썩은 피가 천장까지 튀어올랐다.
앵앵거리던 목소리가 침묵하자, 뒤따라 시스템 메시지도 출력을 멈췄다.
“끝?”
가볍게 되묻는 소리에 한참을 침묵하던 시스템이 메시지를 갱신했다.
띠링―!
[‘튜토리얼 난이도’의 ‘아파트 청소’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구로구 지배율이 미약하게 오릅니다!]
[각성자 한구원의 구로구 지배율 : 6.6%]
[이후의 임무부터 ‘이지 난이도’가 개방됩니다!]
[‘노말 난이도’ 해금을 위해 5개의 '이지 난이도' 임무 성공이 필요합니다!]
오, 높은 난이도가 안 보였던 이유가 튜토리얼을 깨지 않아서였구나.
이지 난이도를 깨면 노말이 나오고, 뭐 노말 다음 또 더 높은 난이도가 나오는 그런 식이겠네.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나에게 남은 메시지가 연이어 출력됐다.
[일반 임무 수행 보상을 선택하세요!]
[1. 체력 회복 물약]
[2. 아파트 시민 구조 (2명)]
[보상을 선택하신 순간 오늘 수행 가능한 일반 임무가 차감됩니다!]
[수행 가능한 일반 임무 : 4개 (갱신까지 : 23:40:39)]
“가을이 말이 맞았네.”
‘체력 회복 물약.’
각성을 한 뒤, 처음으로 아이템다운 아이템이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나, 그쪽으로 손이 가지 않았다.
내 눈은 아까부터 계속해서 두 번째 보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민 구조.”
교주에게 사람보다 더한 보상은 없었다.
2번을 보상으로 선택하자마자 천장에서 빛무리가 내려앉았다.
흐물거리는 빛은 천천히 두 사람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서서히 사라졌다.
하얀 빛이 떠난 자리에 두 명의 남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으으으으…”
둘 중 빠르게 정신을 회복한 남자가 머리를 움켜쥔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이 잘게 떨리며 당황과 두려움을 드러냈다.
“여, 여기가 어디예요?”
난 아무런 대답없이 두 남녀를 내려다보았다.
마나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일반인 두 명이 내 앞에 내려왔다.
‘서주원… 밖에서 머리를 잘랐던 게 아니구나.’
놈 또한 보상으로 시민을 구조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와 목적은 정 반대였지만.
“꺄아아아악―!”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여성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발광했다.
내가 죽인 장산 좀비와 사운드 스토커의 사체덕분인 듯했다.
남자 또한 여성의 비명을 듣고는 바닥에 흥건한 검은 핏물을 알아차렸다.
“뭐, 뭐야아아아아―! 피, 피잖아아아아!”
정말 오랜만에 피를 보고 질겁하는 사람의 반응이었다.
백화점의 노약자들도, 별빛교회의 생존자들도 피에 무덤덤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뭐, 뭐야! 이거 우리 아파트잖아! 다, 당신은 옆집 아가씨 아니세요?”
“엉엉엉― 아저씨, 혹시 저 납치한 거예요? 겨, 경찰 오기전에 풀어주세요. 아무한테도 말 안할게요.”
“무, 무슨 소리하는 겁니까! 뉴, 뉴스보고 집 안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왔는데! 어떻게 여기 있는거지? 저, 저도 피해자에요!”
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확신했다.
납치와 경찰을 운운하고 이제는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한 뉴스를 언급했다.
두 명은 좀비 사태가 절정을 맞기도 전에 사라진 이 아파트의 시민들이었다.
서울의 막에 뒤덮이는 순간 단번에 사라졌겠지.
“흑흑흑― 저, 정말요?”
“아, 그렇다니깐요! 빨리 제 뒤에 숨으세요. 저 이상한 옷 입은 아저씨 안 보여요?”
“네에? 어? 꺄아아아아악―!”
뭔 시체 봤을때보다 날 봤을 때 반응이 더 격하냐.
여자를 등 뒤에 숨긴 남자가 양 주먹을 쥐고는 나와 대치했다.
침착하게 입을 여는 듯했지만 빠르게 꿀렁이는 목젖까진 숨기지 못했다.
“아, 아저씨! 뉴스도 안 봤어요? 이제 집 밖에 함부로 나오면 위험해요! 겨, 경찰에 신고 안 할테니까, 저희 그만 내보내주세요.”
“맞아요! 집밖에 나오지 말라고 어, 엄마한테도 전화해야하고, 동생들한테도 전화해줘야하는데…”
난 환하게 웃으며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옆으로 비켜주었다.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던 두 명이 서둘러 침실 밖으로 튀어나갔다.
난 아주 여유롭게 그들의 뒤를 따랐다.
뒤따르는 발소리에 그들의 뜀박질이 더 빨라진다.
“으아아아아악!”
선두에서 계단을 두 세 개씩 건너뛰며 내려가던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계단에 주저앉았다.
남자 앞에 즐비한 목 없는 시체들은 그야말로 고어 영화의 한복판이었다.
“이, 이게 뭐야아아아―!”
“꺄아아아악―!”
뒤늦게 참혹한 현장을 발견한 여자가 남자 뒤에서 자지러졌다.
터벅― 터벅―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라오던 나를 본 두 남녀가 공포에 질린 흰 얼굴로 덜덜 떨었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천천히 그들을 가지고노는 싸이코패스 살인마로 보이겠지.
벌벌 떨며 시체를 넘어 도망가는 모습이 그야말로 호러 영화가 따로 없었다.
“오, 오지마아아! 따라오지말라고오오오!”
“아, 아저씨 같이가요! 저, 저 버리지마세요오오!”
난 계속해서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라걸었다.
길었던 40여층의 계단이 끝나고 아파트를 벗어난 두 남녀가 더 바깥으로 달린다.
아직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도주에 열중하던 그들이 아파트 정문 너머에서 멈춰있었다.
우두커니 멈춰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들 옆에서 함께 도시를 둘러보았다.
평소에 바쁘게 오가던 차량과 사람들도.
식당과 가게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주인들도.
하다못해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이름모를 새도 없는.
침묵에 내려앉은 도시를.
멍하니 입을 벌린 그들이 제일 압권인 존재를 인식한다.
서울을 감싼 검디 검은 정체불명의 막.
여태껏 질렀던 비명이 거짓말인 듯이 그들에게 도시의 침묵이 전염됐다.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재앙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지금껏 버티고 버텼던 사람들과 다르게 그들은 지금껏 멈춰있던 절망을 한꺼번에 감내해야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또 슬프겠지.’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기에, 의지할 누군가를 찾겠지.
“저, 저게 도대체…”
클리셰처럼 영화 촬영이나 몰래 카메라냐고 묻지도 않는다.
저 검은 막이 주는 실재감은 그런 바보같은 물음을 거치지도 않고 그들에게 위압감을 심어주었다.
“문이다. 허나 열리지 않는 문이지.”
내 무심한 대답에 멍하니 검은 막만을 바라보던 그들이 나를 응시했다.
그들은 더 이상 도망가거나 울부짖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움직이고 말하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사이비들이 괜히 연락수단을 압수하고 같은 공간에 사람들을 감금하는 게 아니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이들은 알지도 못하는 새에 옆에 있는 이에게 물든다.
이 검은 막 아래의 서울은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포교의 공간이었다.
검은 막 아래의 구로구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빼곡이 박혀있는 수 많은 아파트들.
그 안에 박제되어있을 수많은 일반인들이 보였다.
“아, 아저씨는 누구세요?”
그들이 했던 말 중에 처음으로 대답할 가치가 있는 물음이었다.
잔뜩 떨리는 눈으로 내게 묻고있는 그들을 보며 자애롭게 웃었다.
다시, 한구원이 아닌 구원교의 교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과 밤을 어지럽힐 재앙.
비탄에 잠겨 울부짖을 그들 위에 오롯한 나.
“나는 너희들의 보호자이자 인도자.”
문득, 신으로 추앙받던 누군가의 생애가 떠올랐다.
그의 생애중에 이렇게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포교를 하던 때를 뭐라고 했더라?
사역의 시간?
공생애?
아니다.
시간조차 멈추고 신조차 잠든 이 도시에서.
“한마음 구원교의 교주다.”
재림(再臨)의 때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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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재림 (1)
재림 (1) ― 서울특별시 구로구 안전구역
[구조 1일차]
김지호는 주인 모를 공책에 그렇게 적었다.
“구조… 구조라.”
지금 이 상황을 구조라 부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난 무엇에 납치당했고, 또 누구에게 구조된 거지?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단 한 번의 깜빡임.
단 한 번, 눈을 감았다 뜨니 자신은 이상한 방에 주저앉아 있었다.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시야에 한 남자가 보였다.
종교적으로 느껴지는 디자인의 백색 옷.
이상하게 흐릿하여 잘 보이지 않는 얼굴.
“여, 여기가 어디예요?”
두려움을 참고 물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안면만 알던 옆집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시선 끝에 걸린 괴상쩍은 하얀색 시체.
공처럼 말린 피육에 흐르는 검은 핏물이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뭐, 뭐야아아아아―! 피, 피잖아아아아!”
살짝 베인 손가락에서 흐르는 붉은 피완 질적으로 달랐다.
보기만해도 소름이 끼쳐오는 검정색엔 자신이 감히 재단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남자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김지호의 본능이 그에게 도주를 종용했다.
김지호는 그 본능을 반만 수용하고, 반은 거부했다.
그는 정체불명의 남성과 대치하며 자신의 등 뒤로 여성을 숨겼다.
그제야 남성의 존재를 눈치챈 옆집 여자의 비명을 들으며 그에게 협상을 제안했다.
사회를 지탱하며 자신들을 지켜주던 시스템을 언급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그저 바깥으로의 길을 열었다.
‘…지금이다!’
김지호는 달렸다.
샛길이 열리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신발장을 지나 집집마다 모두 열려있는 현관문들의 복도를 지나친다.
이상할만큼 조용한 복도에 뒤따르는 옆집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뒤를 산책하듯이 아주 여유롭게 따라오는 발소리도.
아무리 달려도 멀어지지도 또 가까워지지도 않는 소리를 의식하며 속도를 높혔다.
“으아아아아악!”
이윽고 맞이한 충격스러운 장면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목과 몸통이 따로 분리되어있는 시체들의 향연.
급격하게 흔들리는 시야에 토악질이 나오려는듯 어지러웠다.
허나 멈출 순 없었다.
터벅― 터벅―
아마도 100%, 이 현장과 관련된 그가 오고 있으니까.
김지호는 비명을 내지르며 달렸다.
같이 가자는 여성의 목소리를 피해, 40여층이 넘는 높디 높은 아파트를 피해.
헐떡이는 숨결과 함께 101동을 넘어 프레시안 아파트 정문까지.
“……어?”
그렇게 잠들어버린 도시와 재회했다.
자신의 기억과 일치하는 것들은 모두 껍데기일뿐.
자신이 자주 들리던 편의점도, 저녁마다 안주거리를 사가던 음식점도.
짧은 길에 뭔 횡단보도가 이렇게 많냐며 투덜거리게 만들던 도로 위 자동차들도.
모두 사라진 공허의 세상.
그가 살아가던 세상이 잠들었다.
허망함에 말문이 막힌 그의 망막에 익숙한 색이 비췄다.
둥글게 말린 시체에서 보던 검은색 피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문이다. 허나 열리지 않는 문이지.”
처음으로 그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김지호의 옆에 어느새 그 남자가 나란히 서서 검은 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잠들어 적막이 내린 도시에.
유일하게 잠들지 못한 누군가.
“아, 아저씨는 누구세요?”
김지호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가 누군지 물었다.
그가 자신을 보며 웃었다.
냉혹한 살인마의 이미지에 맞지 않게 자애롭게 웃은 그가 말했다.
자신은 우리의 보호자이자 인도자이며.
한마음 구원교의 교주라고.
‘…미친놈이네.’
하필 남아 있는 사람이 저런 사이비 종교쟁이라니.
뜬구름도 이런 뜬구름 잡는 대답이 없었기에, 김지호는 가슴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불쾌한 표정을 밖으로 보이진 않았다.
자신이 지나쳐온 참혹한 현장을 만든 것이 그라면, 자신은 반항하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 분명했다.
영양가 없는 문답을 끝으로 교주가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자신들을 뒤따르지 않고 앞으로 걷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잔뜩 혼란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옆집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이비가 우릴 죽이려 했다면 진작에 죽였겠지.
‘일단은 저 사람을 따라가보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그렇게 한참 앞에서 걷는 교주와 조금 멀리서 그를 따르는 남녀의 어색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개미 지나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도시를 세 사람의 발걸음이 일깨웠다.
오가는 이 없는 인도에서 어색하게 서로를 보며 웃은 남녀가 뒤늦은 통성명을 시작했다.
“하, 하하― 조, 조용하네요.”
“그것보단… 음…”
“아, 저는 김지호입니다.”
“아! 반가워요. 저는 이지우에요. 그것보다 저 아저씨를 따라가도 괜찮을까요?”
이지우.
김지호가 옆집 여자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되뇌이며 교주를 응시했다.
아까부터 어딘가로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엔 조금의 멈칫거림도 없었다.
“말하는 게 딱 사이비 같던데요…. 한마음 구원교라니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갑자기 다가와 귓가에 속삭이는 이지우 덕분에 온몸에 솜털이 일어났다.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그 물음에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저 남자는 정신이 훼까닥 돌아버린 사람 같았으니까.
그래도.
“일단은 따라가보죠. 지금 이 상황을 유일하게 아는 남자가 저 사람인 것 같아요.”
“으으으― 불안하네요. 아까 그 시체들도 보셨죠?”
“그, 그렇죠?”
“이럴 때 일수록 남은 사람들끼리 잘 뭉쳐봐요. 저는 지호 씨만 믿을게요. 그래도 되죠? 네에?”
안 그래도 가까이 붙어있던 이지우가 살짝 몸을 숙이며 김지호에게 물었다.
김지호에게만 보이도록 살짝 드러난 가슴골에 그의 얼굴이 사과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고장난 것처럼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환하게 웃는 이지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 걸까요? 이대로 걸어가면 항동이었죠?”
“그렇죠. 주변에 주상복합아파트들 많은 곳.”
그래서 땅값이 오질나게 비싸서 기억하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는 곳.
그들의 예상대로 남자는 발걸음은 항동으로 이어졌다.
모두가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고급 아파트들이 주르륵 이어졌다.
“…저건 뭘까요? 땅이 빨간데요?”
확실히 이지우의 말처럼 땅 자체가 붉은 색으로 물든 곳으로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일단 그들도 천천히 남자의 뒤를 따랐다.
텅―!
“어억!”
붉은 구역에 발을 내딛자마자 김지호의 몸이 무언가에 튕겨나왔다.
추하게 바닥을 나뒹구는 소리에 한참 앞에서 걸어가던 남자도 뒤돌아 오고 있었다.
“괘, 괜찮아요, 지호 씨?”
“아아, 네, 네.”
이지우의 걱정에 머쓱한 미소를 지은 김지호가 남자를 응시했다.
자신들이 아닌 허공을 응시하는 남자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그의 동공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에 맞춰서 절묘하게 붉은 구역이 초록색으로 바뀌어갔다.
절묘하게?
아니다.
다시금 무심하게 앞을 걸어가는 남자를 보며 김지호가 눈을 번뜩였다.
‘저 남자… 우리에겐 안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
처음으로 얻은 단서를 소중하게 머릿속에 담은 김지호가 초록색 구역에 발을 내딛었다.
이번엔, 아까처럼 뒤로 튕기지 않았다.
다시금 빠르게 남자의 뒤를 따르며 찬찬히 그의 뒷모습을 살폈다.
혹시나 흘릴 단서의 조각을 모은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남자는 유리창으로 뒤덮인 주상복합아파트로 들어섰다.
뒤따라 들어오는 그들에 맞춰서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닫혔다.
터벅― 터벅―
고급스런 내부의 대리석이 그들의 발걸음을 증폭시켰다.
허나, 그들의 발걸음도 이내 멎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앞을 걸어가던 남자가 처음으로 로비 중앙에 멈춰있었다.
“저, 아저씨!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간거죠? 구, 구조대는요?”
자신에게 말할 때보다 훨씬 겁에 질린 목소리로 이지우가 남자에게 물었다.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김지호도 남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람은 너희뿐이다. 내일부턴 조금 더 많아지겠지.”
“네? 그…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가 따로 있나요? 대, 대피소라든지…”
“밖을 보아라, 이지우.”
남자는 그에게 알려주지도 않은 그녀의 이름으로 이지우를 불렀다.
깜짝 놀란 이지우가 밖을 가리키는 남자의 손가락을 따랐다.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은 도시를.
“구로구엔 오직 너희와 나뿐이다.”
“그, 그럼 구조대는, 구조대는 언제 오나요? 경찰이라든지, 군대라든지….”
“밖을 보아라, 이지우.”
그의 손가락이 조금 더 위로 향한다.
피처럼 검디 검은 정체불명의 막.
그리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구로구엔 오직 너희와 나뿐이다.”
“아, 아저씨는 아시는 게 있는 거죠? 그러니깐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거죠? 저희도 같이 알면 안 될까요?”
“궁금한 게 많나보구나.”
“다, 당연하죠. 그… 혹시 화나셨나요?”
아까의 참혹한 현장을 떠올린 듯 이지우의 목소리가 세차게 떨렸다.
그런 이지우를 보며 피식 웃은 남자가 강아지를 달래듯이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전혀. 오히려 묻는다는 것은 진리를 깨닫게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지.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테니까.”
“어… 하, 하하―.”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이지우가 김지호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단번에 구조 신호를 알아차린 김지호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저희를 이곳에 데리고 오신 이유가 뭔가요?!”
의도적으로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는 배에서부터 올라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는 남자의 눈동자에 어깨의 힘이 자동으로 풀렸다.
버벅거리며 다시 한 발자국 물러난 김지호를 보며 그가 말했다.
“내가 말했지 않느냐? 내가 너희의 보호자이자 인도자라고.”
“……네?”
“우리는 이제 가족이고, 이곳이 우리의 집이다.”
남자는 태연한 목소리로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미치광이같은 대답을 내뱉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들을 보며 남자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곤 다시 천장을 손가락질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안전을 만끽하며 그대들의 쉼터를 찾아라. 배가 고프다면 이곳에 오거라. 나는 이곳에 머무를테니.”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뒤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다소 어이가 없는 축객령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지호를 이지우가 툭툭 치며 이끌었다.
“가, 가요. 더 같이 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요.”
“아, 네, 네.”
잠깐 질질 끌려가던 김지호가 이지우와 나란히 걸었다.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도착한 이지우가 자연스럽게 버튼을 눌렀다.
올라가는 버튼에도, 내려가는 버튼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전기가 나갔나?”
당황스러움이 잔뜩 베인 물음에 김지호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여러 번 버튼을 눌러도 작동하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그들이 바로 옆에 있는 비상 계단으로 선회했다.
비상문을 여는 그들에게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전을 만끽하거라.”
“…뭐라는 거야, 진짜.”
작게 투덜거리는 이지우를 일별한 김지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들을 보며 은은한 미소를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꽤나 오랫동안 그의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진짜 저 남자 단단히 미쳤나봐요! 교주라는 거 보니까 사이비 교주 맞죠?”
멍하니 계단을 오르던 김지호에게 이지우가 큰소리로 물었다.
그 남자가 보이지 않게되자 바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 자뭇 걱정됐다.
“저, 지우 씨. 목소리 조금만….”
“괜찮아요! 이 정도로 멀어졌으면 절대 못 들어요.”
“그래도… 지우 씨 이름을 안 들어도 알았잖아요. 저희가 했던 말을 다 듣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
당혹감이 100% 온전히 드러난 얼굴의 이지우가 계단을 올라가는 속도를 높혔다.
날 듯이 2,3개씩 계단을 오르는 이지우를 뒤따르며 김지호가 말했다.
“지, 지우 씨. 죽일 거면 진작 죽이지 않았을까요?”
“무슨 진짜로 못하는 말이 없어요! 비, 비상문 열렸어요?”
“어…… 아니요.”
“하아… 진짜 오늘 하루가 통으로 이해가 안 돼요!”
잔뜩 짜증을 부리는 이지우가 아파트가 시작되는 4층 문을 열어젖혔다.
4층에 진입하자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는 고급 아파트들이 김지호와 이지우를 반겼다.
“일단 문은 다 열려있네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1층과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말고 여기서 휴식하는 게 어떠세요?”
“네, 좋은 생각이네요.”
“일단 저는 엄마하고 동생들한테 먼저 전화를 해봐야겠어요. 그러고보니 스마트폰도 없네요. 하아― 요즘 집전화 안 쓰는 집들이 많다는데 안에 있으려나.”
이지우가 현관문이 활짝 열린 첫 번째 아파트에 들어섰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던 그녀가 뒤따라 들어가려는 김지호를 보고는 도끼눈을 한 채로 노려봤다.
“지호 씨. 옆에 대놓고 열려있는 집도 많은데 설마 여기 들어오시려는 건 아니죠?”
“……네? 아! 다, 당연히 아니죠! 그, 죄, 죄송합니다!”
“우리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요? 그죠?”
“아하하― 그, 그렇죠. 아직 아니죠.”
휴우― 하마테면 큰일날 뻔했네.
이런 것도 경찰에 신고하면 잡혀가는 거 아냐?
쿵―!
빠르게 닫히는 현관문이 서둘러 집밖을 나온 김지호의 앞머리를 흔들었다.
철컥―! 띠리링―!
확실히 잠겨지기까지한 문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 김지호가 바로 옆집에 들어와 자신도 문을 닫았다.
문이 완전히 닫히는 전자음을 듣고서야 그가 거실을 훑었다.
“……와.”
그가 살았던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고급스러운 외관.
거실부터가 부티가 나는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하아…….”
자신의 집이 아닌 누군가의 집을 보고서야 밀렸던 현실감이 고개를 내밀었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자신이 가진 조각들로는 도저히 짜맞출 수 없는 크기의 퍼즐이었다.
버튼을 눌려도 전등이 들어오지 않았고.
티비는 당연히 작동하지 않았다.
“……정전.”
화장실 안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어도 마찬가지였다.
“……단수.”
좋은 소식은 하나도 없었다.
건드리는 것마다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불안에 확신만을 더해줬다.
화장실과 부엌을 살핀 김지호가 이번엔 가장 안쪽의 방문을 열어봤다.
자신의 거실만한 방에 놓인 책장과 책상.
이 집의 주인이 서재로 쓰던 공간인 것 같았다.
이름 모를 책들로 가득한 책장을 툭툭 치며 살피던 그가 겉모습만 봐도 비싸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와― 엄청 푹신푹신하네.”
김지호가 의자가 주는 편안함을 앞세워 찬찬히 머리를 굴렸다.
일단, 자신이 뭘하다가 눈을 떴었는지를 깨달아야했다.
그러니까―
난 분명히 재난 문자를 받고, 뉴스에서 보여주는 그… 무슨 장관이었지?
어떤 늙은 장관이 뭔 폭동이 일어났느니 뭐라하면서 중얼거리던 와중에 군인들이랑 같이 나가는 걸 시청했고.
뭐 저런 새끼가 다 있냐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키는 순간―
‘그래. 여기부터다.’
그 순간부터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그 이후로 눈을 깜빡이는 순간 자신은 옆집 여자와 이상한 남자와 함께 있게 되었다.
‘일단 기록. 기록부터 하자.’
책상 앞에 놓인 공책과 볼펜을 쥐고서는 천천히 자신이 오늘 얻은 단서들을 적기 시작했다.
[1. 도시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어딘가로 대피한 걸까?]
[2. 이상한 남자가 사이비에 빠져 있었다. 왜 그 남자 혼자만 여기 있었을까?]
[3. 그 남자는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봤다.]
[4. 그렇게 생각하니 빨간 구역같은 건 뭘 뜻하지?]
“아아아악! 진짜 하나도 모르겠네!”
쿵―! 쿵―!
책상을 주먹을 쥐고 쿵쿵 두드린 김지호가 볼펜을 말머리쪽으로 가져갔다.
그래도 일단 기록의 형식이니 날짜를 나누는 것이 중요했다.
잠깐 눈을 굴리던 그가 볼펜을 놀려 기준을 적었다.
[구조 1일차]
“구조… 구조라.”
지금 이 상황을 구조라 부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난 무엇에 납치당했고, 또 누구에게 구조된 거지?
머리를 어지럽히는 불분명함에 김지호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했다.
아주 잠깐만, 잠깐만 있다가 다시 생각하자… 다시…
* * *
끼에에에에엑―!
“허억!”
깜짝 놀란 김지호가 서둘러 머리를 치켜들었다.
겨우 주변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어두워진 서재와 방금 들렸던 소름끼치는 소리.
쿵―!
“아아!”
급하게 일어서다 무릎을 찍은 김지호가 콩콩 뛰며 서재의 방문을 열었다.
끼에에에에엑―!
또, 또 들렸다.
그냥 듣기만해도 기분이 나쁜 무언갈 긁어대는 소리.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보다 더 소름이 끼쳐왔다.
“꺄아아아악!”
순간 옆집에서 울린 선명한 비명소리에 김지호가 달리기 시작했다.
지우 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니, 이지우로 보이는 형체가 이미 비상문을 열고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
“지우 씨!”
김지호가 재빨리 그녀를 뒤쫓기 시작했다.
거의 닫혀가던 비상문을 열어젖히고 누가 놓았는지 모를 촛불을 뒤따라 내려갔다.
쿵쿵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이지우가 1층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지우 씨! 잠깐만요!”
그녀를 거의 다 따라잡은 김지호가 닫히는 비상문에 어깨를 들이밀었다.
쿠웅―!
활짝 열리는 비상문을 지나쳐 그 남자가 있을 로비에 들어섰다.
두두두두두두―!
“끼에에에에엑―!”
1층에 들어서자마자 더 선명하게 들리는 어떤 이들의 포효와 땅울림.
불안함에 잘게 떨리는 김지호의 시선이 유리창 앞에 서있는 그 남자를 찾았다.
그 남자 옆에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이지우까지도.
“지, 지우 씨!”
잔뜩 놀란 가슴을 다독이며 그들에게로 걷는 김지호에게도 플래쉬 라이트가 따라붙는다.
찡그린 얼굴로 위를 응시한 김지호의 눈에 둥둥 떠있는 손전등이 보였다.
“……어?”
멍하니 공중에 부유한 손전등을 바라보던 그가 이동하기 시작하는 손전등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유리창까지 그를 안내한 손전등이 천천히 바깥을 비췄다.
두두두두두두―
“…….”
사람들이 도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수 십, 수 백을 가뿐히 넘어선 인체의 파도가 잠들었던 도로를 내달렸다.
그들이 내딛는 발걸음에 유리창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크롸아아아아아―!
물결의 중간 중간에 비대한 근육덩어리가 함께 달리고 있었다.
놈이 휘두르는 팔에 사람들이 수수깡처럼 공중을 날았다.
특히나 열심히 달리던 팔 한쪽이 없는…
“잠깐만…….”
미지를 마주한 김지호의 눈이 세차게 떨려왔다.
팔이 없는 사람, 다리가 짤린 사람, 어깨가, 얼굴이 구겨진 사람.
아니… 저게 사람인가?
도저히 달릴 수 없는 상태의 사람들이 물결처럼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에엑―!”
그런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포효에 온몸에 솜털이 다 일었다.
“좀비.”
갑자기 들려온 그 남자의 말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멍하니 괴상한 광경을 주시하던 김지호와 이지우가 그를 바라보았다.
좀비.
“인간들의 세상을 무너뜨린 우리의 포식자다.”
포식자라니.
인간들의 포식자라니.
“그, 그런 게 말이…”
그 남자는 태연한 목소리로 덜덜 떨며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는 그들을 불렀다.
“김지호와 이지우.”
새하얀 백광을 토하는 눈빛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선물한 안전은 잘 만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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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재림 (2)
재림 (2) ― 서울특별시 구로구 안전구역
익숙하지 않은 침대에서 김지호가 몸을 뒹굴었다.
아까 선잠을 잔 탓인지, 충격적인 걸 목격한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선물한 안전은 잘 만끽했나?’
또랑또랑한 정신엔 그 남자의 말만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그 남자의 눈빛이 뇌리에 또렷했다.
손전등에서 나온 빛이 아닌, 그 자체로 환했던 광채.
그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만을 내뱉고는 다시 유리창 너머의 좀비들을 응시했다.
우리가 뒷걸음질치며 다시 위층으로 올라갈때까지, 계속해서.
두두두두두―
“끼에에에에엑―”
이 상황이 꿈이 아님을 대변하듯 계속해서 울리는 발구름과 포효.
건물 자체가 흔들리는 듯한 착각속에서 김지호가 어둡기만한 천장을 주시했다.
어둠에 젖어 서서히 침전하던 그는 잠들기 위한 노력을 포기했다.
아니, 잠들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무서웠고, 또 외로웠다.
‘…외롭다라.’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연애와 여자친구라는 존재가 그렇게 절박하지도 않았다.
가끔씩 오는 부모님들의 안부전화가 다소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퇴근한 후에 가볍게 마시는 맥주 한캔과 맥주가 동날때까지 재생될 영화.
그것만 있다면 이렇게 늙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던 사람이었다.
김지호는 스스로가 외로움에 강한 남자라 자부했었다.
허나, 그 외로움은 바쁘게 살아 숨쉬는 사회 안에서나 가능한 투정이었다.
진실로 모든 것이 사라진 공허에선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몰려왔다.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 선명함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캐스트 어웨이에서 괜히 배구공을 ‘윌슨’이라 여겼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내게도 그 윌슨이 있긴 있네….”
미친 사이비 윌슨이지만….
작게 웃으며 고개를 흔든 김지호가 이불과 베개를 챙겼다.
그는 지금 자신의 불안감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다.
집을 나선 그가 어둠에 물든 복도를 아까와 달리 천천히 걸어갔다.
한참 이지우를 따라잡으려 뛸때는 몰랐지만, 비상 계단의 어둠을 조금은 몰아내고 있는 촛불이 눈에 띄였다.
이것도 그 남자가 설치해둔 것일까?
끼이이익―
1층에 도착한 김지호가 먼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이 찾던 그 남자는 벤치에 앉아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터벅― 터벅―
로비에 울리는 발소리에 그 남자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주시했다.
서로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김지호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이불을 깔고 베개를 베고 누울 때까지 로비엔 좀비들의 포효만이 배경음처럼 울렸다.
“끼에에에에엑―!”
집안에 있을때보다 훨씬 선명한 괴성이 귓전을 두드렸지만, 무서움이 덜했고, 외로움이 덜했다.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 있으니까.
꼬르르륵―
그때가 되서야 중대사항을 해결한 몸이 다음 요구를 표출했다.
“아…….”
뭐, 뭐지? 아직 그렇게 배가 고프단 느낌은 안 들었는데….
꼬르륵거린 배를 이상하다는 듯이 문지르는 김지호가 상체를 일으켰다.
“먹거라.”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에게 작은 캔이 날아왔다.
그는 캔을 캐치볼을 하듯이 간단히 잡은 뒤에 눈으로 상표를 읽었다.
‘참치….’
밥 없이 먹으면 짤 텐데.
김지호는 작게 일렁이는 불만을 삼키고는 뚜껑을 따고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대충 집은 큰 덩이를 입 안에 가져가는 순간.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배가 고팠음을 알게 되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소함과 짭쪼름함.
정말 과거 속담대로 배고픔이 최고의 반찬이었다.
캔을 싹싹 긁어먹으며 기름 진 손가락을 쪽쪽 빨아먹은 후에야 살짝 정신이 돌아왔다.
급격히 휘몰아치는 부끄러움에 몰래 이불에 손을 슥슥 닦으며 그 남자가 있던 벤치를 바라보았다.
그는 하염없이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는 손전등들.
보는 것만으로 느낄 수 있는.
과학의 영역도 그렇다고 마술의 영역도 아닌 무언가.
자연히 궁금함이 목끝에서 튀어나왔다.
“저… 아저씨…”
끼이이익―
자신의 물음에 고개를 돌리던 남자와 자신의 시선이 동시에 비상문쪽으로 향했다.
이미 와있는 선객을 보고 흠칫한 이지우가 천천히 로비에 합류했다.
“받거라.”
우리들과 조금 떨어져 이불을 펼친 이지우에게 똑같이 참치캔이 날아갔다.
참치캔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그 남자에게 무언갈 말하려던 이지우가 계속해서 목까지 치밀은 요구사항을 삭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다시 창밖만을 보고 있었다.
딸깍―
결국 작게 한숨을 쉰 이지우가 참치캔을 까고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한 번 참치를 먹은 그녀가 게걸스럽게 다음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자신도, 저렇게 추하게 먹었을까?
2차로 몰아치는 대리 부끄러움을 겪던 김지호도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저 남자가 왜 창밖을 보고 있었는지 알것만 같았다.
두두두두두두―
야생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무리의 기나긴 이동이었다.
자뭇 장엄하고 신비롭게도 느껴지는 저 행렬은 멀리서 본다면 아프리카 물소들의 이동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허나 그 알맹이들을 저 남자는 좀비라 칭했다.
김지호 또한 좀비를 모르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문제였다.
그 또한 영화나 소설에서 질리도록 봐왔던 존재들이니까.
그런 공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그 좀비들이.
이젠 우리의 포식자이자 명확히 실재하는 악몽이었다.
“콜록―! 콜록―!”
급하게 삼키다 참치가 목에 걸렸는지 이지우가 툭툭 가슴을 쳐댔다.
그녀의 입에 번들거리는 기름기에 김지호가 자연히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그와 다르게 그 남자는 익숙하다는 듯이 허공에서 생수병을 꺼냈다.
두 개의 생수병이 각각 자신과 이지우에게 날아왔다.
“…….”
둥실둥실거리며 자신 앞에 부유하는 갑자기 생겨난 생수병은 손전등과는 차원이 다른 마법이었다.
그저 입을 벌리고 조용히 경악하는 자신과 다르게 이지우는 서둘러 뚜껑을 따고 생수를 들이키고 있었다.
자신 또한 생수병을 손에 쥐었지만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안전과 식량 그리고 식수까지.
이유도 모를 계속되는 호의는 이제 무섭기까지했다.
“…절 강간하실 건가요?”
선의의 공포는 자신만이 겪는 것이 아니었다.
로비에 처연히 울리는 물음에 그 남자가 이지우를 응시했다.
“집이랑 밥이랑 물까지… 이렇게까지 잘해주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녀의 물음은 자신의 궁금증과 같았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이지우의 눈이 남자에게 묻고 있었다.
허나, 이불 속에 숨은 그녀의 팔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김지호는 그녀가 어떠한 ‘각오’를 하고 그 남자에게 묻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을 공처럼 말아버리고 목을 따는.
미치광이 사이비 교주.
이상하게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미치광이가 그녀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그는 엄숙히 선언했다.
“그대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이지우가 한계까지 짜낸 용기로 물은 질문이 다시 미궁에 빠졌다.
혼란을 벗어나지 못한 그들에게 다시 그가 말했다.
“어버이는 특별한 조건으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
또 시작이군.
김지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는 천천히 베개에 머리를 베었다.
“…그 종교를 믿지 않으면 쫓겨나나요?”
“전혀.”
부드럽게 잠기는 눈을 따라 이지우와 그 남자의 문답이 들렸다.
“난 단지 증명할 뿐이다. 내가 그대들의 어버이라는 사실을.”
“…….”
윗집에서는 용을 써도 오지 않던 잠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깜빡이는 정신에 나지막히 그 남자의 말이 들려왔다.
“푹 자거라. 오늘은 배고픔을 해결했으니, 내일은 외로움을 해결해주지.”
* * *
[구조 2일차]
“끄으으윽―!”
김지호가 팔을 위로 쭉 펴며 기지개를 켰다.
딱딱한 바닥에서 잔 여파 때문인지 온몸이 다 찌뿌둥했다.
쨍쨍한 햇빛과 함께 구조 2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창밖엔 어제의 좀비 웨이브가 악몽이었다는 듯이 좀비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까지 반대로 등을 돌리고 자고있는 이지우와 어제와 똑같은 자세로 창밖을 보는 그 남자가 보였다.
‘저 정도면 뭔 석상 아니야?’
조용히 혀를 내두른 김지호가 살금살금 그가 앉은 벤치로 걸어갔다.
벤치의 빈 자리에 두 개의 참치캔과 생수병이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자신들의 아침 식사일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극도로 조심스럽게 참치캔과 생수병을 품에 안은 김지호가 그를 바라보았다.
어제의 선언처럼 정말로 그는 아무런 생색도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김지호도 어제의 이지우처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가슴 깊숙이 숨겨두었던 물음이 자연스레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저… 아저씨.”
그는 듣고있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조용히 자신에게 눈을 맞췄다.
꼴깍―
침으로 목을 축인 김지호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영화에서 보던 슈퍼 히어로가 되신 건가요? 그런 거라면 어제 있었던 일이 다 설명이 되는데….”
그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보고 웃었다.
그것이 마치 더 이야기해보라는 신호라 여긴 김지호가 자신스레 목소리를 높혔다.
“그런 거라면 혹시 어떻게 히어로가 되신 건가요? 가르쳐주시면 저도 힘을 보태어…”
“김지호.”
그가 자신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자신을 찬찬히 살펴보는 그의 눈이 어제처럼 번뜩였다.
“굳이 먼 길을 돌아가려는구나. 전에 살던 세상을 무엇보다 갈망하는 프레시안 아파트의 김지호.”
다시금 재회한 광채에 감히 대답하지 못하는 김지호에게 그가 재차 말했다.
“그대는 신을 믿는가?”
“예? 아, 아니요.”
“왜 믿지 않는가?”
“없, 없을 게 분명하니까요. 과학적으로도 그렇고…”
“그대는 증거를 요구하는군.”
“그, 그렇죠. 뭐든지 팩트가 중요하니까요.”
난데없는 토론의 장이 열렸다.
김지호의 머리는 자연스럽게 그 남자가 되물을 말들을 상기했다.
‘그렇다면 좀비는 어떤 과학적 현상으로 일어난 건가?’
‘도시가 막에 둘러싸이고 내가 물체를 조종하는 건 무슨 법칙에 의거한 건가?’
……딱히 답할 말이 없었다.
허나 남자는 그렇게 묻지 않았다.
빙그레 웃은 그 남자는 예상치도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예?”
너무나도 자애로운 얼굴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 그가 말했다.
“그런 자네에게 내가 화두 하나를 던지지. 신앙심 깊은 한 남자와 신에 관한 이야기라네.”
그는 마치 옛날 이야기를 하는 할아버지처럼 느긋한 음색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앙심 깊은 한 사내가 늪에 빠졌지.
이미 허리까지 빠져있을 때 구조대원이 온 것을 보고 사내가 말했단다.
‘나는 괜찮습니다! 신앙심이 깊어서 신이 구해주실 겁니다!’
그가 어깨까지 빠졌을 때 구조대원이 다시 와서 그에게 밧줄을 던져 주겠다고 했단다.
그러자 사내는 다시 말했지.
‘도와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신앙심이 깊어서 신이 구해주실 거예요.’
잠시 후 사내는 이제 머리만 진흙 밖으로 내놓고 있었지.
구조대원이 또 달려오자 사내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단다.
‘괜찮다니깐요! 저는 신앙심이 깊어서 신이 구해주실겁니다!’
구조대원은 더 권하지 않고 물러갔어.
그는 죽었고 신을 마주했지.
사내가 신에게 물었단다.
‘신이시여, 왜 신앙심 깊은 저를 버리셨나이까.’
신이 뭐라고 답했을 것 같나?
신은.
“신은 이미 세 번의 구조대를 보냈다고 답하지. 여기서 그대는 무엇을 깨달았나?”
김지호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남자는 딱히 김지호의 대답을 바라진 않았는지, 태연하게 손가락 세 개를 흔들었다.
그가 흔드는 손가락을 따라 김지호의 동공이 함께 흔들렸다.
“한 명은 의기양양하게 소리칠 거야. ‘보아라! 신은 존재하지 않느냐!’ 허나, 틀렸지.”
그가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남은 두 개의 손가락을 흔들며 그가 다시 말했다.
“다른 한 명은 감격에 겨워 기도를 하며 말할 거야. ‘아아― 역시 신은 사람을 통해 일하는 군요!’ 허나, 틀렸어.”
그가 두 번째 손가락 또한 접었다.
남은 손가락은 하나였다.
오롯이 홀로 서있는 단 하나.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단 하나야. 구원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단다, 김지호.”
빛이 내려오고 파도가 갈라지는 것이 구원이 아니다.
사내에겐 구조대원이라는 세 번의 구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김지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먼 길을 돌아가려는구나. 힘을 얻어서 무엇을 쟁취하려하느냐? 안락한 집? 주린 배를 채울 식량?”
그가 자신을 가리키며 웃었다.
“넌 이미 그것들을 다 가졌도다.”
그렇기에, 그것은 구원이다.
남자는 잔뜩 얼어붙어있는 김지호를 가볍게 스쳐지나갔다.
문을 연 그가 홀연히 어딘가로 사라졌다.
몇 시간이 지나고 그가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이지우와 자신이 했던 행동을 똑같이 되풀이한 그들이,
윗집에 들리고, 갑자기 나타난 좀비떼에 비명을 지르고, 함께 로비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주는 식량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구조 2일차]
[구조 3일차]
[구조 4일차]
사람은 점점 늘어났다.
로비를 반쯤 채운 사람들을 보며 김지호는 잠에서 깨듯이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자신을 주시하던 그 남자와 서로를 마주했다.
그가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환한 웃음에 쉴 새 없이 요동치는 가슴이 단 하나의 단어를 표상한다.
구원.
지금 그가 행하는 행위는 빛이 내려오지도, 파도를 가르지도 않았다.
허나.
특별하진 않지만 그것은 분명.
구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세 번의 구조대 일화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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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6 재림 (3)
재림 (3) ― 서울특별시 구로구 안전구역
[구조 14일차]
늘어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진 로비의 어둠이 곳곳에 놓인 촛불들에 일렁였다.
두두두두두두―
“끼에에에에엑―!”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절망과 공포도 결국엔 익숙해진다.
인간은 모두가 그런 성정을 지닌 채 태어났다.
귓전을 때리는 포효에도 아무도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이 백색의 그 남자 주위로 몰려들었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불안을 고백하고 대답을 들었다.
고통과 슬픔을 토로하고 위로를 받았다.
이제는 그런 광경이 너무나도 익숙해진 구로구의 밤이었다.
오늘도 그 남자 곁에는 지치고 힘든 자들이 원을 이루었다.
그 남자는 무릎 위에 어린 아이를 앉히고는 옆을 응시하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관찰하던 김지호도 그 남자의 시선을 쫓았다.
그곳엔 얼마 전 그 남자가 데려온 사람들 중 기타를 들고 있던 여성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 마음이 내게 오신 교주님을 기뻐합니다~”
찬송가였다.
그녀가 이곳에 들어올 때 입고 있던 캐쥬얼한 복장이 아닌 백색 옷을 입은 채로 분홍빛 입술을 벌렸다.
“나의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고운 음색과 아름다운 멜로디.
그 곳에 담긴 다소 이해하기 힘든 가사들.
허나, 하얀 원을 이룬 이들은 모두가 몽롱한 눈빛으로 두손을 모으고 그녀를 보았다.
“세상에 온전히 교주님을 섬기는 이들이 많도록 그들을 구원하소서~”
곱게 떨리던 음색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우아하게 기타를 연주하던 손이 멈추고 그녀가 모두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잠시 여운을 즐기던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보냈다.
짝― 짝― 짝―
그 남자 또한 여성이 조심스레 무리로 섞여들 때까지 자애로운 박수를 보냈다.
“교주님! 성역에 관해 다시 말씀해주세요! 정말로 그곳에는 물이 넘치도록 많고, 친구들도 많나요?”
노래가 끝나자 그 남자의 무릎에 앉아있던 꼬마가 물었다.
소년의 반짝이는 눈빛엔 순수한 동경이 담겨 있었다.
“그렇단다.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지.”
“성역은 어떻게 해야 갈 수 있나요?”
“순백의 몸과 마음. 그것만 있다면 문이 열린단다.”
아아아―
소년과 남자의 대화에 작은 탄성이 흘렀다.
그들의 문답을 듣던 사람들이 각자의 바램을 담아 성역을 상상하고 있었다.
김지호는 가장 앞 줄에서 황홀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이지우를 응시했다.
남자를 사이비 교주라 매도하던 그녀는 더 이상 없었다.
그 누구보다 충실히 그를 따르는 열성 신도만 있을 뿐.
그러나 김지호는 감히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
이제 자신 또한 저 남자를 단순한 사이비로 매도할 확신이 없었다.
어제였던가?
아직도 그들과 거리를 두는 자신에게 다가온 이지우를 기억했다.
순백의 신도복을 입은 그녀가 오랜만에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지호 씨. 아직도 확신이 없으신가요?’
‘…….’
대답이 없는 자신을 향해 이지우가 첫날과 같이 표정을 찡그렸다.
김지호는 뒤늦게 들어온 자신을 내쫓던 그녀의 표정을 기억했다.
‘지호 씨는 너무 염치가 없으시네요. 교주님이 주신 은혜가 아니었다면 당장 굶어죽으셔도 이상할 게 없는 건 아시죠?’
그녀는 첫날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자신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김지호는 여태껏 사이비들을 믿는 자들은 어딘가 정신이 훼까닥 돌아버린 자들만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교주님이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하셨지만, 전 말해야겠어요. 가족이라도 기브 앤 테이크가 있어야죠. 조만간 선택하세요, 김지호 씨.’
저 생동감 넘치는 표정이 어떻게 돌아버린 자들의 표정인가?
‘가족이 될 것인지. 외부인이 될 것인지.’
망연한 자신에게 마지막 경고를 남긴 뒤에 그녀는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지우 자매님, 왜 불신자들에게 가까이 가십니까?’
‘그래도 나름 첫날부터 봤던 얼굴이라 그런지 마음이 조금 불편해서요.’
‘아아― 그것이 교주님이 말씀하셨던 가족간의 사랑이군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자매님.’
하하하하―
“어이, 지호 동생. 그 망할 기타 연주는 끝났나?”
시간을 되짚던 김지호를 껄렁껄렁한 목소리가 깨웠다.
김지호는 자연히 찡그러지는 표정을 꾹 참았다.
아무런 대답도 없는 자신 옆에 털썩 앉는 중년의 남성.
박영호.
여러모로 저 백색의 사내와 대척점에 있는 남자였다.
“씨이발, 내일부턴 조금 멀리 나가서 싸야겠네. 냄새 때문에 헛구역질한다고 씨발 똥을 못 닦겠더라니까.”
김지호는 친근하게 자신을 어깨동무하는 박영호의 손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항상 자신에게 이렇게 친한 척을 했다.
아마도 자신이 저 백색의 원에 합류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형님, 휴지 남은 거 있어요?”
“나도 없어, 이 새끼야. 내일 저 사이비가 뿌릴 때 좀 더 챙기던가.”
“아, 지금 너무 급한데―”
그런 박영호의 주위로 모이는 사람들.
주로 젊고 건장한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대체로 백색의 남자가 리더로 군림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이들이었다.
조용히 백색의 남자의 말만 울리던 로비가 박영호 무리의 잡담으로 시끄러워졌다.
곧바로 그런 그들을 이지우가 앙칼진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형님, 저 년 째려보는 것 좀 보세요. 아, 개꼴리는데.”
“이 새끼야! 딸도 있는 사람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아, 그건 죄송! 그래도 형님, 휴지 없어요?”
“이 새끼 이거, 야! 이번엔 똥이 아니라 다른 거 때문이지?”
“아, 들켰네―”
하하하하하―
오히려 자신들을 째려보는 이지우에게 보란 듯이 더 볼륨을 높이는 그들이었다.
김지호는 무리의 신경전에 끼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신은 그저 백색의 그 남자에 관해 알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러기 위하여 일부러 거리를 둔 것일 뿐인데, 박영호는 그것이 백색 남자를 향한 반항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로비를 울리는 큰 웃음에 이지우 뿐만 아니라 백색 원에 속한 모두가 박영호 무리를 째려보았다.
노약자, 어린 아이, 여성들로 이루어진 백색의 무리.
“얼씨구, 보면 어쩔건데?”
그런 그들을 코웃음을 치며 응수하는 젊은 남성들의 무리.
김지호는 자신의 관찰대상을 주시했다.
백색의 남성은 언제나처럼 은은한 웃음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저, 혀, 형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는게…”
백색 남자의 시선에 박영호 무리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들 또한 처음부터 이렇게 막나가진 않았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표출하던 불만이 시간이 지나서 이정도까지 커진 것이다.
“퉷! 씨발, 안 그래도 내가 오늘 결판을 낸다.”
“혀, 형님. 뭐 어쩌시려구요.”
“저거 봐라. 딱 믿을만한 년놈들만 저기 다 모여있는 거 봐라. 사이비라는 게 별게 아니야. 한 곳에 가둬놓고 부족한 곳을 살살 긁어주면 다 사이비라니까.”
“사이비인건 저희도 다 알죠. 그런데 저 남자는…”
“새끼야. 그래서 지금까지 살살 건드려봤잖아. 저 남자는 우리를 안 죽이는 게 아니라, 못 죽여.”
김지호는 어쩐지 백색의 남자가 자비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원래 교주라는 것들이 도덕성을 엄청 신경 쓰거든. 형님 한 번 믿어봐라. 내가 사이비에 쳐들어가서 우리 딸도 빼내 왔던 사람이야.”
박영호는 그것을 교주의 한계라 생각했다.
자신만만하게 백색 남자를 향해 박영호가 걸어갔다.
교주는 그런 박영호를 보며 오히려 환하게 웃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에 김지호의 몸에 솜털이 일었다.
“어이, 이보쇼! 내가 지금까지 봐왔는데 당신도 우리랑 똑같이 밥도 먹고 잠도 자더만.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신이요?”
박영호가 남자에게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백색의 남자는 갈라지는 원을 건너 천천히 박영호 앞에 마주 섰다.
박영호를 내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그대의 눈에는 내가 신으로 보였나보군.”
나지막한 그러나 울림이 있는 목소리.
살짝 움찔거린 박영호가 몸을 털 듯이 소리쳤다.
“당신도 말만 번지르르하게 내뱉고는 증명하는 게 하나도 없잖소! 성역이란 것도 도대체 정말 있기는 하오? 그리고 저 좀비인지 뭔지하는 것도 당신이 우릴 겁주고 믿게하려고 따로 준비해놓은 게 아니고?”
박영호의 반항을 심드렁하게 보던 김지호의 눈이 반짝였다.
의외로 박영호가 자신이 정말로 궁금했던 점들을 속사포처럼 내뱉고 있었다.
김지호의 열기를 가득 품은 볼펜이 일지로 향하고 눈은 그들에게 향했다.
“…….”
박영호의 질문이 로비에 정적을 내렸다.
그 남자는 상체를 한껏 핀 박영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공작새가 꼬리를 활짝 폈구나.”
남자의 한마디에 박영호의 몸이 확연히 움찔거렸다.
백색의 남자는 오히려 생수병을 꺼내던 허공에서 야구 배트와 손전등을 꺼냈다.
그것들을 박영호의 손에 쥐어주며 나지막히 속삭였다.
“가상한 용기를 나한테 다 쓰지 말거라. 그 용기로 나의 거짓을 증명해보거라.”
그는 부드러운 손짓으로 창 밖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공중에 뜬 손전등들이 일제히 창 밖을 비췄다.
기나긴 좀비 무리에서 낙오된 하나의 좀비.
근육 덩어리에 날아갔던 좀비가 다시 무리에 합류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단 하나의 좀비에 박영호가 승산을 느꼈다.
“다들 잘 보쇼! 이걸로 쇼는 이제 끝이니까! 얘들아 가자!”
“혀, 형님. 이러다가 저희한테 식량을 안 나눠주면…”
“아, 일단 나 믿고 나오라니깐 그러네! 지호 동생도 같이 가자!”
잔뜩 흥분한 박영호가 일방적으로 자신을 끌고가기 시작했다.
김지호가 당황한 눈빛으로 백색의 남자를 응시하니 그가 살짝 웃은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모르겠다.
오히려 박영호의 말대로 지금이 증명의 장이 될 수도 있었다.
정말 달려오는 저 존재가 좀비가 맞다면, 다른 말로는 사람의 시체라는 말이 아닌가?
신체가 결손된 시체와 건장한 남성이라니.
건장한 남성이 질 수 가 없는 매치업이다.
무리 중간중간에 위협적으로 달리던 근육 덩어리도 없으니 오히려 지금이 적기였다.
“형님. 저희는 아무것도 못 들고 나왔는데요?”
“아, 괜찮다니깐 그러네. 내가 다 생각이 있어요. 일단 저 교주놈 논리부터 깨버린 후에 협상을 하는거야.”
“……오. 어떻게요?”
“슬슬 안 믿는 애들이 탈주하려 할 때 우리가 대신 분위기를 꽉 잡아주는 거지. 그러면서 식량도 요구하고… 뭐 너희들 원하는… 알지?”
“와! 형님 진짜 천재십니다!”
“새끼야! 내가 나만 믿으라고 하잖아, 임마!”
그들이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와중에 도로 중앙에 도착했다.
로비에 있던 이들이 오히려 남자의 주도 아래 밖으로 나와 박영호 무리를 구경하는 것이 보였다.
보란 듯이 더 역동적으로 도로를 걷는 그들과 한 마리의 좀비가 서로를 인식했다.
박영호 무리를 인식한 좀비가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었다.
“끼에에에에에엑―!”
“…주, 죽은 놈이 목소리가 지나치게 우렁찬대요?”
“새끼야, 질리도록 들었는데 감상평을 왜 말해? 잘 봐라. 교주놈아.”
박영호가 자신들을 구경하는 남자를 보고 뇌까리더니 그대로 좀비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에엑―!”
좀비 또한 상체를 마구 흔들며 박영호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이새끼야!”
선공은 박영호였다.
야구 배트를 마구 흔들며 타이밍을 잡던 그가 가까이 다가온 좀비에게 야구 배트를 크게 휘둘렀다.
뻐억―!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오른쪽 어깨를 타격당한 좀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씨이발, 별 거 없잖아! 엉?!”
후련한 한숨과 함께 목을 좌우로 꺽던 박영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바닥에 쓰러졌던 좀비가 오뚝이처럼 일어나 다시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김지호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머리! 머리를 노리세요!”
아주 잠깐 자신을 일별한 박영호가 다시 좀비에게 야구 배트를 휘둘렀다.
분명 머리로 향하던 야구 배트가 역동적인 좀비의 움직임에 목으로 향했다.
뻐어억―!
이번엔 넘어지자마자 달려드는 좀비에 박영호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갔다.
“끼에에에엑―!”
박영호의 눈이 어지럽게 떨려왔다.
거리를 벌리며 야구 배트를 휘두를 수는 없었다.
자신이 허리 반동까지 주며 휘두른 타격에도 멀쩡히 서서 달려드는 놈이다.
한 번 타격이 실패할때마다 놈과의 거리가 줄어든다.
이제 또 한번 머리를 노리는데 실패하면 놈이 지척까지 치닫는다.
“혀, 형님! 머리를 노리세요! 머리!”
멀리서 들리는 무리의 응원에 박영호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개 씨발! 나도 알아! 안다고!’
무엇을 노려야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성공시키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끼에에에에엑―!”
점점 가까워지는 놈의 그로테스크한 얼굴에 용솟음치던 용기가 사라진다.
이마에서부터 시작된 식은땀이 빠르게 볼을 적시며 흘렀다.
“끼에에에에엑―!”
“이, 이 씨바아알!”
툭―
박영호가 좀 더 확실한 승리를 찾았다.
살아남는 것이 언젠간 이기는 것이니까.
박영호가 야구 배트를 좀비에게 내던지고는 자신의 무리 쪽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혀, 형님?”
박영호를 응원하던 무리가 동시에 당황스런 물음을 내뱉었다.
이를 꽉 문 채로 달려오는 박영호를 응시하던 무리가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그 중 박영호가 딛을 땅을 쳐다보던 한 남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영호 형님! 앞! 앞에 구멍!”
언제나 말보단 행동이 빨랐다.
턱―!
스테로이드가 뛰며 만든 아스팔트의 구멍에 박영호의 발이 걸려들어갔다.
그대로 발목이 꺽인 박영호가 바닥을 굴렀다.
“끄아아아악―!”
“형님!”
서둘러 달려오는 무리보다 뒤에서 빠르게 쫓아오던 좀비가 더 빨랐다.
단번에 도약한 좀비가 박영호의 등을 점거한 채로 그의 목을 물었다.
“끄, 끄아아아아악―!”
동맥이 찢어진 듯 좀비의 얼굴에 피분수가 튀었다.
박영호가 이리저리 몸을 뒤흔들었지만, 좀비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식사를 이어갔다.
“……어?”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상식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었다.
시체가 사람의 목을 뜯으니 피분수가 일었고.
목이 뜯긴 장본인이 갑자기 몸을 뒤틀었다.
이해하지 못할 각도로 마구 몸을 뒤틀던 박영호가 고개를 꺽은 채로 자신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입을 열고 소리쳤다.
“끼에에에에엑―!”
좀비 한 마리를 업은 좀비가 자신들에게로 뛰어온다.
본능적으로 도주로인 뒤쪽을 바라본 남성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두두두두두두―
“끼에에에에엑―!”
군체가 동료가 보낸 먹이 신호에 응답했다.
도망칠 새도 없이 두 마리의 좀비가 두 명의 남성을 덮쳤다.
그리고 단번에 4마리가 된 좀비가 또 다시 남성들에게 달려들었다.
그제야 다리가 풀린 그들이 뒷걸음질쳤지만, 뒤는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지호는 본능적으로 다시 백색 남자를 향해 달렸다.
“끄아아아아아악!”
“이, 이게 뭐야아아아아! 놔, 놔아아아아!”
“혀, 형니이이임! 정신 차리세요오오!”
일지를 가슴에 품고는 뒤쪽에 요란하게 울리는 비명을 어떻게든 무시했다.
“끼에에에에엑―!”
허나, 놈들은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다.
텅―!
뒤쪽에서 자신을 향해 도약한 좀비가 앞에 있는 자동차에 부딪쳤다.
가로등과 표지판에 몸을 들이박은 좀비들이 아무런 이상도 없이 자신을 조여들어왔다.
순식간에 사방이 놈들에게 점거당했다.
“허억― 허억―”
젠장, 젠장, 젠장!
표지판을 들이박은 좀비의 왼쪽 팔이 비정상적으로 꺾여있었다.
그런 덜렁이는 팔을 내새우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끝.
명백한 끝이 자신에게 도래했다.
“끼에에에에엑―!”
놈이 자신을 향해 도약한다.
뒤쪽엔 아직도 사람과 좀비의 비명이 어우러져 있었다.
일지를 쥔 손에 힘을 풀며 그가 앞을 바라보았다.
평온한 무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백색의 무리들.
노약자와 어린 아이, 이지우를 지나서 중앙의 그 남자.
언제나처럼 환한 웃음으로 자신과 마주한 그가 입 모양으로 속삭였다.
‘구원.’
그리고 부드럽게 오른손을 들었다.
“끼에에에에엑―!”
놈들의 생생한 포효가 귓구멍을 때렸다.
놈들의 피비린내나는 숨결을 바로 코앞에서 맡을 수 있었다.
허나, 죽음이 다가오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김지호의 고개가 사방을 훑었다.
그리곤 소리 없이 경악을 내뱉었다.
세계가 멈춰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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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재림 (4)
재림 (4) ― 서울특별시 구로구 안전구역 앞
날아오던 좀비들도, 뛰어오던 좀비들도.
몸을 마구 뒤틀며 고통에 몸부림치던 남자들도, 삶을 포기한 자신마저도.
모두가 그 자리에 멈춰서 세상에 박제되었다.
“……아.”
김지호의 눈이 지금도 앞을 향하는 그 남자의 손에 머물렀다.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능(異能).
“시, 심판이다아아아아! 교주님이 불신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셨다아아아아!”
불신자들을 향한 심판이었다.
백색 무리가 환호성을 내지르며 자신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사람이 죽고,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도 그들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가족이 될지, 외부인이 될지.’
그들에게 우리는 철저한 ‘외부인’이었다.
“그 누가!”
복수의 기쁨에 몸서리치는 신도들에게 웅혼한 외침이 찾아왔다.
그 남자였다.
그는 여전히 오른손을 들고선 신도들을 꾸짖었다.
“그 누가 가족의 허물에 미소 짓는가!”
그 남자의 한 마디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 속에 그 남자가 자신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김지호. 함께 밖을 나섰던 사내들을 앞으로 끌고 오거라.”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을 얽매던 힘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김지호는 곧바로 되찾은 자유의 몸을 이끌고 조심스럽게 박영호에게 다가갔다.
“끄― 끄으으읍―!”
이제는 완벽하게 좀비가 된 박영호가 입에 재갈을 물린 듯 괴롭게 소리치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박영호의 등을 밀었다.
누군가 도와주는 듯 스르륵 밀려나는 박영호가 그 남자 앞에 마주 섰다.
그대로 그 자리에서 다시 박제된 박영호를 필두로 좀비가 된 그의 무리 전부가 교주 앞에 도열했다.
“수고했다. 이제 와서 편히 쉬거라.”
무리를 다 끌고온 뒤 헉헉대던 김지호가 그 남자의 말에 움찔했다.
습관적으로 일지를 손에 꽉 쥔 그가 백색의 무리와 동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지우와 그녀의 주변에 있던 이들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그 남자는 그런 자신을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짓더니 박영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의 자식들아, 이 자를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이 남자는 자신의 딸을 뺏어간 세상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의 무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가 들고 있지 않던 왼손을 들었다.
왼손에서 밝은 빛을 품은 병들이 튀어나와 부유했다.
둥실둥실 떠다니던 병들이 도열한 박영호 무리 위에 떠올랐다.
“그들의 슬픔에 함부로 웃지말거라. 그저 두 팔을 벌려 그들을 안아주거라. 나 또한 그러겠노라.”
박영호 무리가 동시에 고개를 치켜들어 하늘을 보았다.
천천히 벌려지는 입 안에 빛을 품은 액체가 쪼르륵 흘러내렸다.
“끼, 끼에에에에에―!”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그들의 몸이 번쩍였다.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주저앉은 그들이 계속해서 몸을 움찔거렸다.
아주 짧은 침묵 끝에 그들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들의 얼굴을 마주한 백색의 무리가 손으로 입을 막으며 경악했다.
마찬가지로 그들을 살피던 김지호가 나지막히 속삭였다.
“부활….”
좀비로 죽었던 이들이 다시 인간으로 일어섰다.
자신의 몸을 수없이 더듬던 박영호가 자신 앞에 있는 남자를 보곤 무릎을 꿇었다.
치기 어린 탈주를 감행했던 박영호 무리 모두가 사죄의 눈물을 흘렸다.
“아아아― 제가, 제가…”
김지호는 더 볼 것도 없이 두 눈을 감았다.
이제.
이곳에서 그를 믿지 않는 자는 오직 나 혼자였다.
* * *
[구조 20일차.]
“형제, 자매님들은 모두 오늘치 식량을 받아가세요!”
“따로 생리대가 필요한 자매님들은 모두 이곳으로 오세요!”
김지호는 식량과 생필품을 배급하는 박영호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입고 있는 순백의 옷은 땟물 하나 없이 깨끗했다.
바스락―
그는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스낵바를 조용히 움켜쥐었다.
이것말고는 주린 배를 채울 식량이 없었으나, 그는 줄을 서지 않았다.
어차피 식량을 배급받아도 조금만 한 눈을 팔면 어딘가로 사라져있었다.
‘불신자.’
그 남자의 신도들이 알게 모르게 마지막 남은 불신자인 자신을 따돌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저 무리의 지도자처럼 허공에 무언갈 보관하는 능력이 없으니 배급을 받아도 의미가 없었다.
음식을 몰래 훔쳐가는 찌질한 보복.
하지만 그 보복이 생존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된다면 그 무엇보다 무서워진다.
‘자신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가?’
스스로 물었지만, 답할 수 없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온몸이 말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은 지금, 아주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먹겠나?”
털썩―
그런 자신의 옆에 누군가가 앉으며 음식을 권했다.
김지호가 스낵바를 권하는 자의 얼굴을 보곤 실소를 머금었다.
“이런 게 줬다 뺐는다는 거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그 남자는 자신의 날이 선 말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미소지었다.
자신의 발 밑에 스낵바를 내려놓고는 그저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꾸리꾸리한 냄새 때문인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그대를 보니 성역에 두고온 나의 딸이 생각나는군.”
그는 자신을 보며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성역이 진짜 있다는 듯이 말씀하시는군요.”
“사실이니까.”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담담했고 또 평온했다.
“그녀도 자네와 똑같았다네. 과거를 잊으면, 다신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두려워했지.”
김지호의 힘없는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그녀는 무너진 세상에 대한 투정을 나에게 부리고 있었다네. 그래도 그게 싫지는 않았어. 그것 또한 사랑의 또다른 표현인 걸 알고있었지.”
그는 성역에 두고온 딸에게 말했지만, 김지호는 단번에 알았다.
그는 딸을 투영해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기에, 그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정해져있었다.
남자는 먼 곳을 응시하며 작게 말했다.
“사랑으로 품어주었지.”
사랑.
그가 말하는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먼 곳을 응시하던 그의 눈이 자신에게로 향했다.
“그대에게는 무엇이 좋을까?”
그 남자가 자신이 쥐고 있는 일지를 바라보았다.
“무언갈 기록하길 좋아하는 자들은 뭐든 명확한 걸 좋아하더군.”
그는 자신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곤 일어선 그를 올려다보는 자신에게 말했다.
“내일, 그대가 바라는 증거를 보여주겠네.”
확신에 찬 눈동자로 자신을 마주하던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분위기와 미혹에 압도당하지 말게. 오직 그대의 논리와 이성으로 나를 마주보게.”
그는 언제나처럼 환한 미소를 머금고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난 자네같은 사람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네.”
김지호는 발밑에 놓인 스낵바를 가슴에 품었다.
이불 위에 몸을 잔뜩 웅크린 그는 그 남자의 말을 되뇌었다.
‘내일.’
그는 내일이 오지 않기를, 그러면서도 내일이 빨리 오길 빌었다.
* * *
[구조 21일차.]
그 남자가 말한 ‘내일’은 다소 요란하게 시작됐다.
아침부터 배급으로 활발하던 로비가 침묵으로 가득 찼다.
모두가 바닥에 엎드린 사내를 바라보았다.
박영호가 신도복마저 벗어버린 나체로 그 남자의 발밑에서 울부짖었다.
“교주님! 저의 불신을 용서해주십시오!”
박영호가 쿵쿵―대며 이마를 바닥에 찍었다.
“당신을 향한 제 믿음이 너무나 어리고 또 어리석었습니다!”
쿵― 쿵―
가식으론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충격음에 김지호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정말로 남자를 믿지 못했던 지난 날을 후회하고 있었다.
저렇게 오체투지를 하고 용서를 빌 정도로.
남자는 그런 박영호 앞에 쪼그려 앉아 그의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너의 마음이 아프니, 곧 내 마음도 아프구나.”
“아아아― 교주님.”
“일어나거라. 오늘은 무척이나 아프지만 또한 기쁜 날이니.”
박영호를 일으켜 세운 그 남자가 모두에게 소리쳤다.
“오늘! 순백의 몸과 정신을 이룬 첫 번째 신도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박영호였다.
신도들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저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주님을 욕보이는 데 가장 앞장섰던 불신자가 아니었던가!
허나, 그 남자는 다시금 소리쳤다.
“지나온 시간을 말하지 말지어다! 너희들은 일생 중 일부를 순종했지만, 이자는 새로 태어난 이후 매일을 순종하며 살았다!”
그 남자가 박영호를 이끌고 천천히 밖을 나섰다.
백색의 신도들과 김지호가 그 뒤를 따랐다.
좀비가 모두 사라진 도로의 중앙에서 남자는 다시 목소리를 높혔다.
“그렇기에 난 이자에게 은총을 내린다!”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박영호의 귓가에 무언갈 속삭였다.
“아아아―”
곧바로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박영호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남자는 그 모습에 작게 미소지으며 그 또한 하늘을 응시했다.
“아…….”
모두의 눈과 입이 경탄을 내뱉었다.
남자의 몸이 부드럽게 공중에 떠올랐다.
김지호는 남자의 시선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난 내 아들에게 구원을 증명한다!”
증명.
김지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공중에 뜬 그를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그가 말했다.
“말하라! 평온을 갈망하는 나의 아들아! 네가 진정으로 바라는 단 하나를, 내가 들어주겠노라!”
남자의 몸에서 발하는 하얀 빛무리가 점점 그 크기를 넓혔다.
자연히 찌푸려지는 시야에 박영호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교주님! 당신의 죄인에게 제발! 제발 구원을 내려주십시오오오오!”
파아아앗―
그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듯이, 박영호의 앞에 빛이 내려왔다.
멍하니 박영호를 응시하던 신도들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정말로 빛이 아닌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박영호 앞에 강림했다.
하늘에서부터 일직선으로 내리꽂힌 빛이 서서히 하나의 모양을 이루어갔다.
그리고 거룩하고 거대한 문을 만들었다.
“아아아아아―!”
박영호가 비틀거리는 몸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향해 걸어갔다.
끼이이이이익―!
그런 박영호를 환영하듯이 밝은 빛을 품은 문이 서서히 열렸다.
박영호는 문이 열릴수록 선명히 보이는 그곳에 눈물을 흘렸다.
정말로.
정말로 그의 말대로 성역이 있었다.
평화롭고 싱싱한 초록색의 향연.
흰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포옹하고 있었다.
그 뒤에 자리잡은 웅장한 신전과 그 위에 오롯한…
“……빛!”
끼이이이이익―!
박영호의 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문이 닫혔다.
거대한 문은 마치 한 여름밤의 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
모두가 감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적에 입을 벌렸다.
그들의 뇌리엔 단 한 가지 진실만이 계속해서 울렸다.
박영호가 진실로 성역에 들어섰다.
“……뱀.”
기나긴 적막을 그 남자의 목소리가 조용히 일깨웠다.
“꽤나 오랜 시간동안 그대들의 마음속에 자라나는 뱀을 보고 있었다.”
문은 사라졌지만, 그는 오롯이 남아있었다.
“배고픔 때문에, 남들이 그곳에 속해있기에, 밤을 지새우기 외로워서, 또 심심해서 내가 준 옷을 입은 자들아.”
그는 남은 이들에게 고했다.
“사랑으로 포옹하는 내게 의심의 창을 치켜세우는 어리석은 자들아!”
남자의 엄숙하고 차가운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떨었다.
김지호 또한 떨리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언제나처럼 자애롭게 웃었다.
“그럼에도 난 너희를 사랑한다.”
“아아아아―!”
경탄과 경애를 내뱉는 신도들 가운데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문다.
자연히 김지호는 언제나처럼 그와 마주했다.
“괴물에 신음하는 자여, 그대 앞에 당도한 문을 열어라.”
교주의 속삭임에 김지호가 온몸을 떨었다.
그가 자신에게 답을 요하고 있었다.
“의심하지 말지어다.”
교주가 말했고.
“믿음으로서 순종하리라.”
김지호가 답했다.
“문을 연 자에게는 오직 광명뿐이라.”
진실로 박영호에게는 광명뿐이었다.
“그대들의 더러워진 육신과 영혼을 깨끗하게 하리라.”
진실로 교주님은 우리를 정화시키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대들을.”
교주님이 자신을 보며 웃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믿음으로서 답해야했다.
김지호는 교주님의 환한 웃음에 답하며 속삭였다.
“구원의 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교주님은 자신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또다시 환하게 웃어주셨다.
그리고 이번엔 자신을 바라보는 모두를 바라보며 말하셨다.
“내가 너희를 반드시.”
그의 다짐. 그의 약속. 그의 구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속삭였다.
“구원하리라.”
툭―
그는 박영호가 있었던 자리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모두가 온몸을 떨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은은한 미소와 함께 두 팔을 벌렸다.
“아아아아아아아!”
막혀버린 둑이 터지듯이 신도들이 그에게로 달렸다.
그 중 가장 앞섰던 이지우가 그의 품에 안기며 울부짖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아아아아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온전히 제가 사랑합니다 교주니이이이임!”
그의 앞에 엎드린 신도가 발에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시선에 그대로 눈을 치켜뜨고 온몸을 떨었다.
달리다 넘어진 신도가 그대로 울부짖으며 팔과 다리를 마구 흔들었다.
믿음이 전염된다.
믿음이 폭발한다.
김지호는 마구 고개를 흔들며 일지에 무언가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볼펜이 신들린 듯이 휘적이며 사각였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회개합니다! 회개합니다! 회개합니다아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신도들이 울며 소리치고 기뻐했다.
해야 할 일을 끝낸 김지호가 일지를 내던지고 그에게로 향했다.
그분의 말씀이 전부 옳았다.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의심과 경계가 아니라, 믿음과 순종이다.
“아아아아아! 믿습니다아아아! 믿습니다아아아!”
김지호가 내던진 일지가 믿음의 열기에 펄럭였다.
쨍쨍한 햇빛이 그가 마지막으로 적은 장을 비췄다.
웅장하게 펼처진 구원의 문과.
성역에 입성하는 박영호.
그 위에 오롯한 한 명의 신.
더는 일지를 쓸 필요가 없었다.
그는 방금 전 기록의 마지막 문장을 이미 완성했다.
서서히 바닥에 내려앉는 일지에 마지막 글귀가 일렁였다.
[구원 21일차.]
다음화 보기―――――――――――――――――――――
EP.78 구로구 (1)
구로구 (1) ― 대구광역시 순환진리교 본당
김성필은 대구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남성이었다.
남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취직하고, 결혼을 하고.
굴곡이 없는 인생을 자랑스러워하던 남자.
그렇기에 그는 오늘, 자신의 평범함을 저주했다.
“오늘도 우리의 위대한 진리를 함께 깨우치려는 분들이 왔습니다.”
그는 까끌까끌한 밧줄에 묶여 어딘가로 끌려가고있었다.
상황을 파악하려 눈을 크게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포대인지 자루인지 모를 것에 시야가 전부 차단당한 그에겐 오직 암흑뿐이었다.
“여, 여보! 괜찮아?”
“……응.”
자신의 뒤쪽에서 아주 나지막히 들리는 응답.
허기를 이겨내지 못한 아내는 지금 자신의 물음에 답하는 것조차도 벅찼다.
짓누르듯이 씹은 입술에서 쇠맛이 느껴졌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었다.
아내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말로 우릴 이끌었다.
“모두들 큰 박수로 이들을 환영합시다!”
짝― 짝― 짝―
무기질하게 세 번 울리는 박수.
뒤쪽에서 갑자기 오금을 가격당한 김성필이 무릎을 꿇었다.
“아아악!”
“여보! 이, 이 개새끼들아아아!”
연이어 들리는 아내의 비명에 몸을 뒤흔들었지만, 소용 없었다.
뒤쪽에서 누군가 강하게 어깨를 짓누르며 자신을 억제하고 있었다.
“왜! 정말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발 누가 대답이라도 좀 해주세요!”
김성필의 억울함과 비통함이 담긴 외침이 웅웅거리며 본당을 울렸다.
“…….”
또! 또!
자신들이 할 말만 일방적으로 하곤, 내 말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뒤쪽에 있던 누군가가 말없이 자신이 쓰고 있던 포대를 벗겼다.
드디어 시야를 확보한 김성필이 앞을 주시했다.
넓은 공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앉아있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하얀 후드를 뒤짚어 쓴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김성필이 그들을 좀 더 자세히 살피려 눈을 가늘게 떴다.
촛불만이 유일한 광원인 탓인지, 그들의 얼굴이 명확하지 않았다.
“무엇을 그리 열심히 보십니까?”
그런 자신에게 어떤 남자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유일하게 후드를 뒤집어 쓰지 않은 남자가 허리를 굽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남자였다.
잘 정돈된 이목구비와 무테의 안경이 지적이고 온건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말이 통할 것만 같은 느낌에 김성필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가, 갑자기 저희한테 왜 이러십니까?”
“갑자기라뇨? 이곳에 발을 들인건 당신들이지 않습니까?”
“그건 맞습니다만, 저희는 먹을 것을 준다는 말에…”
“네. 맞습니다. 진리교는 여러분들의 배고픔을 해결해드릴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밧줄로 몸을…”
단순히 외부인을 경계해서라기엔 지금 이곳의 분위기가 너무 이상했다.
대충 이름을 들었을 때 각오하긴 했지만, 이건 정말 상상 이상의 기묘한 광경이었다.
본당을 채운 사람 중 단 한 사람도 후드를 쓴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이곳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흘렀다.
“왜 이리 불안에 떠십니까? 진리교에 발을 들이신 기쁘디 기쁜 첫날에.”
“그… 이, 일단 제 아내가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말씀하셨던 식량을 지금 당장 어떻게 주실순 없으실까요?”
“괜찮으십니까?”
김성필이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량을 나눠주는 것에 왜 자신에게 괜찮냐고 묻는 거지?
“……당연히 괜찮죠.”
“진리에 발을 들이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고통스럽습니다.”
“……예?”
김성필이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지금 저 남자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여보.”
그를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에 김성필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살짝 웃는 그녀의 미소가 당장에라도 끊길 듯이 옅었다.
그 모습을 응시하는 김성필의 눈이 눈물로 그렁그렁해졌다.
아사(餓死)라니.
다른 특별한 이유가 아닌 단지 배가 고파서 죽는다니.
평생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은 지키지 못했지만, 그녀를 굶겨서 떠나보내긴 싫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김성필을 지나쳐 그 남자가 아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천천히 아내의 턱을 붙잡아 올린 남자가 속삭였다.
“아름답군요. 가히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입니다.”
남자가 내뱉는 말에 김성필의 동공이 떨렸다.
저 남자의 목소리에 가득한 진득함에 소름이 끼쳤다.
예상하고 두려워했던, 가장 뚜렷한 악몽.
“제, 제 아내입니다.”
“맞습니다. 당신의 아내죠. 연꽃이 왜 아름다운지 아십니까?”
“제발, 제발 그것만은… 저희는… 저희는 평생을 약속한…”
“세상이란 흙탕물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런 그의 뒤로 후드를 쓴 사람들이 삐걱거리며 다가왔다.
“뭐, 뭐하는 겁니까!”
김성필의 목소리가 닿지 못하게 하듯이 그들이 아내를 둘러싸 원을 이뤘다.
불안함에 몸을 흔들며 다가가려했지만, 여전히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뭐하는 거냐고! 이 씨발 새끼들아아아아아!”
필사적인 외침에 원에서 누군가의 머리가 살짝 튀어나왔다.
안경을 쓴 그 남자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하긴요? 당신의 요구대로 그녀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려합니다.”
그런 그들의 손에는 아무런 식량도 없었다.
저건, 배고픔을 해결하는게 아니다.
강간이다.
저 새끼들이 굶어서 기력도 없는 자신의 아내를 강간하려 한다.
“하지마아아아아! 하지말라고 이 씨발년들아아아아!”
원을 이루던 놈들이 점점 아내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발광하며 날뛰던 김성필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까드드득―!
“아아아아아악! 여, 여보오오오!”
“……어?”
아내의 비명에 김성필이 서둘러 눈을 떴다.
원을 이루던 놈들이 아내를 둘러싸 엎드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고개를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악! 아아― 그, 그마아아아안!”
……무언가를 씹고 뜯고 있었다.
피가 튀며 생살을 씹어뜯는 소리가 울렸다.
비명과 함께 몸부림치던 아내가 몸을 뒤틀었다.
김성필은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에 현실을 부정했다.
그녀가 원의 중앙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피투성이의 얼굴로 자신을 보며 입을 열었다.
“끼에에에에―”
“아, 안 돼애애애애!”
피하고 싶던 최악엔 더 밑바닥이 존재했다.
좀비가 됐다는 것은, 곧 죽었다는 것.
김성필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에게 소리쳤다.
“왜! 왜애애애애애! 내 아내를 왜 죽였어어어어!”
“죽이다니요? 저희는 그녀의 배고픔을 해결해드렸을 뿐입니다.”
“아아아아아― 이, 이, 이―”
너무 격한 분노엔 욕도 나오지 않았다.
허망하게 성대 긁는 소리를 내는 아내를 응시하던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자신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좀비들이라면 진작 난리를 피웠어야 하건만, 그녀는 그 자리에서 못 박힌 듯 서있었다.
김성필이 남자를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좀비가 된 게 아니지? 그렇지? 이, 이상한 약이나 그런 거 먹인 거 아니야? 응? 그렇지?”
남자는 아무런 대답없이 그저 미소지었다.
불안감이 더욱 증폭된 김성필이 재차 말했다.
그를 보며 간절하게 두 손을 비비며 간청했다.
“제, 제발! 제 아내보고 아름답다고 하셨잖아요! 제발, 제발 어떤 짓이라도 하셔도 되니까, 제발 살려만 주세요!”
남자가 처음으로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터벅― 터벅―
차가운 표정으로 다가온 그가 김성필의 머리를 움켜쥐고 으르렁거렸다.
“저는 구도자입니다. 또한 선각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저에게 색욕이라뇨!”
그의 몸에서 하얀 빛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저는 고작 그런 죄악을 위해 당신들을 입교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가 손가락으로 아내를 가리켰다.
“그녀에겐 이제 배고픔이 없습니다! 잠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녀를 한 단계 더 높은 존재로 창조한겁니다! 마치…”
그가 황홀에 젖은 표정으로 속삭였다.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우듯이 말입니다.”
그가 자신의 눈 앞에서 손가락으로 원을 그랬다.
하얀 잔상이 두 개의 원을 그리고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순환.”
그의 손짓과 목소리에 타오를 듯이 솟구치던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온몸에 진한 탈력감과 함께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언제나 세계의 가장 큰 진리는 순환이었습니다.”
복잡했던 머리에 하얀 공백이 넓어진다.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고, 그 개구리는 시체가 되어 토양에 묻히고, 그 토양 위에 다시 알이 떠다닙니다.”
그가 살짝 몸을 틀었다.
그렇게 열린 시야에서 누군가 삐걱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는 인간인 당신도 사랑합니다. 허나, 인간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모두가 다시 인간으로 순환하기 위해서는 일단 모두가 좀비가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김성필이 유일하게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눈동자를 크게 떨었다.
아내가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이 순환이고 또 진리입니다.”
그 남자는 너무나도 자애로운 미소로 웃었다.
그의 몸에 백광이 서렸다.
그 환한 빛이 본당을 비췄고, 그 빛으로 드러난 세상에 김성필이 경악했다.
이곳에 인간은 저 남자 혼자였다.
“환영합니다, 김성필 신도. 당신 또한 거대한 순환의 일부분이 되셨습니다.”
아내가 자신의 몸을 껴안았다.
까드드득―
생살 씹히는 소리와 함께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눈물을 흘렸다.
“순환진리교의 가족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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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구로구 (2)
구로구 (2)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웅산 정상
특별임무 발생지인 개웅산은 천왕산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산이었다.
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천왕산의 144m보다도 낮은 126m의 언덕.
그러나 해발 126m의 작은 산이라도 염력으로 조금만 몸을 띄운다면 말이 달라진다.
탁 트인 시야로 구로구가 아닌 강남 전체가 눈에 들어올 듯이 훤했다.
물론 검은 막 덕분에 가까운 여의도에 위치한 국회의사당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게이트가 열렸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아포칼립스도 왔는데 댓글에서 본 게이트는 또 안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시스템이 허용한 시야는 딱 구로구의 전경까지였다.
그 중 내가 차지한 초록 영토를 눈대중으로 훑었다.
[각성자 한구원의 구로구 지배율 : 48%]
한달 간의 꾸준한 임무 수행으로 절반에 육박하는 지배율을 획득할 수 있었다.
[‘헬 난이도’ 해금을 위해 110개의 ‘하드 난이도’ 임무 성공이 필요합니다!]
덕분에 난이도도 쭉쭉 올랐지만. 난 아직도 난이도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난이도가 오를수록 임무에서 만나는 변종들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체감할 수 있었다.
그에 비례하여 보상이 또한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늘어난 보상에 눈깔을 뒤집고 환장할 정도는 아니었다.
몇 명의 시민 구조가 몇 십명이 되는 것이 끝이었다.
아이템 또한 포션과 상점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음식들, 유용한 소모품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시민 구조보다 매력적인 아이템은 등장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난이도가 올라가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일일 임무를 최대치까지 수행하는 것보단 구출한 시민들을 철저하게 구원교의 신도로 만드는 것에 열중하던 나날이었다.
모든게 애매모호한 난이도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훑어도 내가 차지한 초록 영토는 절대로 구로구의 절반이 될 수 없었다.
고척동과 구로동을 위시로 한 구로구의 동부라 할 수 있는 지역엔 내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저 구역은 작게 잡아도 구로구의 6할이 넘는 지역.
나는 미디어에서 자주보던 고척 스카이돔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배율 48%를 쌓을 때 동안 구조한 사람들이 고작 몇 백명….”
수 천, 수 만명을 구조하리란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지배율을 퍼주는 것이 후했다.
그에 반해 시민을 넘겨주는 비율은 너무나도 짰고.
지배율이 후한 건 어쩔 수 없는 선발대의 특권으로 이해했다.
다른 놈들과 치고 박으며 지배율 싸움을 해야하는데 각성자가 나 혼자였다.
땅따먹기 배틀로얄을 혼자 진행하는 플레이어가 되버린 것이다.
그래서 특별임무도 같이 수행할 겸, 각성자 신도도 만들 겸 다른 각성자를 기다렸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내가 구로구에 진입한 지 30일째 되는 오늘.
각성자의 그림자도 못 본 나는 그냥 내가 가진 특별 임무 생성권을 써버렸다.
그렇기에 난 지금, 개웅산의 정상에서 놈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엑―!”
산천을 뒤흔들며 정상에 올라온 좀비들을 바라보았다.
정상까지 무지성으로 달려온 탓인지 놈들의 목소리가 유독 날이 서있었다.
뒤늦게 쿵쾅거리며 올라온 스테로이드가 공중에 떠있는 나와 마주했다.
특유의 기분 나쁜 미소를 보이던 놈이 곧바로 옆에 있던 좀비에게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아마 공중에 떠있는 나를 보니 손이 근질근질거리는 모양이다.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전개에 가볍게 손을 아래로 내렸다.
파바바박―!
놈들을 기다리며 공중에 도사리던 나뭇가지들이 순식간에 지상을 폭격했다.
내게 달려오던 놈들의 무방비한 뒷통수에 작은 구멍이 생겨났다.
크롸아아아아―!
이변을 눈치챈 스테로이드가 잔뜩 화난 포효를 내지르며 자신의 팔로 머리를 보호했다.
놈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취하는 대표적인 행동 패턴이었다.
투척과 기동성이 사라진 스테로이드는 더는 내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계속해서 염력으로 나뭇가지들을 조종하며 왼손을 옆으로 젖혔다.
부들부들 떨리는 놈의 팔도 서서히 젖혀졌다.
그렇게 열린 놈의 면상에 그대로 나뭇가지들을 쏟아부었다.
파바바박―!
스테로이드의 연약한 머리에 수십 개의 나뭇가지가 다발로 꽂혔다.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야하는 아가리에도 얇고 긴 나뭇가지들이 한가득이었다.
쿵―!
놈이 먼지 구름을 내며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개웅산 특별 임무 ‘좀비 웨이브’를 성공적으로 격퇴하셨습니다. (방식 : 처치)]
[각성자 한구원에게 ‘보석’의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특별 임무 기여도 : 100%]
역시 천왕산에선 서주원 그 새끼 때문에 100%가 안 됐었네.
어떤 식으로든 좀비 웨이브에 영향을 주면 기여도를 가지는 시스템인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시스템의 악랄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분명 칼 하나 깔짝거리며 던진 서주원에게 1%를 분배해준 거라면, 다른 각성자가 난입해서 좀비라도 죽였어봐라.
기여도가 아주 쭉쭉 내려갔겠네.
[최초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특별 임무 기여도 100% 달성’]
[최초 업적 보상으로 지배율이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48% -> 53%]
오랜만에 보게된 최초 업적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한 번에 5%라니!
덕분에 이제 내 지배율이 드디어 절반을 훌쩍 넘겼다.
띠링―!
평소에 작게 울리던 알림음과는 차원이 다른 웅장한 알림음이 울렸다.
깜짝 놀라 치켜든 머리 위로 거대한 문장이 구로구 전체에 투사됐다.
[구로구의 모든 각성자 분들에게 알립니다!]
[개웅산 정상에 위치한 각성자 ‘한구원’이 지배율 50%를 돌파하셨습니다!]
[뜨거운 박수와 함께 축하해주세요!]
“……미친 새끼들.”
저절로 욕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이건 말로만 축하 메시지이지 사실상 ‘살인 독촉’이 아닌가?
정확한 위치까지 일러주는 세세함에 그저 혀를 내둘렀다.
시스템 하나 하나가 경쟁을 유발하고 있었다.
만약 구로구 내에 다른 각성자들이 혼잡한 상황에서 이런 메시지를 봤다면 매우 뒤통수가 간질간질거렸겠지.
나를 잡기 위한 연합을 짜거나, 임시 동맹을 맺을 가능성도 다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금 말하지만, 구로구엔 다른 각성자가 없었다.
임무 수행을 위해 쥐잡듯이 구로구를 뒤진 나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정상에서 부유하고 있는 보석에 손을 뻗었다.
보석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좋은 보상이었다.
내 손에 닿자마자 붉은 보석이 사르륵 녹아내리며 메시지를 띄웠다.
[특별 임무 보상 ‘보석’을 획득하셨습니다.]
[각성자의 구로구 지배율이 급격히 상승합니다!]
[53% -> 55%]
“역시 보상은 독식해야 제맛이지.”
지옥이 아닌, 아포칼립스에서의 독식이 매우 달았다.
[각성자 ‘한구원’이 구로구의 특별 거점들을 해금합니다!]
[현 시간부로 다양한 특별 거점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거점을 점령하세요!]
파아아앗!
처음 일반 임무를 파악했을 때와 똑같았다.
구로구 전체가 강력한 빛에 물들며 번쩍였다.
그때와 비슷하게 찡그렸던 눈을 뜨고 찬찬히 구로구를 살폈다.
“……고척돔.”
아까도 유심히 살폈던 고척 스카이돔이 전에 봤었던 프레시안 아파트보다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곳이 구로구의 특별 거점 중 하나라는 거지?
나는 시간을 가늠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태양을 주시했다.
잔뜩 찡그려지는 두 눈에 하늘 정중앙에 걸린 태양이 어렴풋이 보였다.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누구보다 충실한 신도가 된 초창기의 시민들 덕분에 전도에 써야할 시간을 다른 곳에 써도 무방했다.
이젠 내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신도들이 새로 합류한 시민들을 충실한 구원교도들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미 100%의 노력이 다해지는 곳에 또 다른 100%가 가버리는 것은 낭비였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펑―!
곧바로 대기를 박차며 육체가 급격한 하강을 실시했다.
멀리서 보이던 고척돔이 빠르게 가까워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강렬한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띠링―!
곧바로 작은 알림음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구로구 특별 거점 ‘고척 스카이돔’에 진입하셨습니다.]
[‘고척 스카이돔’의 테마는 ‘딜레마’입니다.]
테마?
미처 생각을 다 정리할 틈도 없이 내 위치가 이동해있었다.
분명 고척돔의 상공에 있어야 할 내가, 잘 정비된 인도에 서있었다.
차분하게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조금 긴 인도의 끝에 이어진 두 개의 계단과 그 위에 자리잡은 고척돔의 입구.
특히나 계단 앞에 뜬금없이 서있는 십자가에 시선이 끌렸다.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시체에 벌레가 꼬여있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인도를 걸어가 십자가를 마주했다.
봉긋한 가슴으로 여자였던 것만 알 수 있을 정도로 훼손이 심한 시체였다.
특히나 머리쪽으로 보이는 두개골이 V자로 쪼개져있었는데, 이것 또한 매우 유명한 짓거리라서 나 또한 알고 있었다.
카누잉(Canoeing).
죽은 사람의 머리 위에 한 발을 더 쏘는 고의적인 시체 훼손이었다.
심각하게 망가진 그녀의 머리 위에 달린 표지판.
그곳에 적혀있는 글씨를 소리내어 읽었다.
“…딜레마.”
머리와 표지판 다음으로 못이 박힌 양손에 각각 들려있는 물건에 눈길이 갔다.
그녀의 오른손엔 인형이.
왼손엔 금목걸이와 금반지가 있었다.
딜레마.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
이 정도까지 대놓고 힌트를 줬는데 이해하지 못한다면 게임 폐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었다.
여자의 양손에 들린 각각의 상징체와 두 개의 계단.
딱 봐도 하나를 선택해서 계단을 올라야하는 상황 같았다.
“……가운데로 가는 건 안되겠지?”
바보같은 되물음을 내뱉고는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흠…… 인형이랑 금목걸이라.”
여태까지 해왔던 짬으로서 생각하자면, 인형은 시민구조이고, 금은 아이템이려나?
그렇다면 난 무조건 인형쪽이지.
더는 고민할 것도 없이 오른쪽 계단을 선택해서 걸었다.
내가 오른쪽 계단에 발을 딛자마자 십자가와 왼쪽 계단이 사라졌다.
공간자체가 사라지는 마법같은 증발.
‘안으로 들어가도 단순한 고척돔이 있진 않겠네.’
좀비든 사람이든 나를 반길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고척돔의 입구를 지나 거침없이 앞으로 걸었다.
단순히 앞으로 걷기만 한다면 바로 경기장으로 이어지게 구조가 뒤바뀌어있었다.
경기장의 초록 잔디를 밟는 동시에 여자의 비명이 울렸다.
“꺄아아아아아악!”
단순히 한 사람이 아니었다.
“뭐, 뭐야! 갑자기 여긴 어디야!”
“아저씨는 누구세요! ……초, 총이잖아아아!”
여자의 비명 뒤로 수많은 웅성거림과 고함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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