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ricultura 7
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사실 리안은 겉으로는 철벽을 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어서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미인과 한 방에 묵는다는 건 정말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몸에 절대로 손을 안대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는데, 막상 둘이 한 공간에서 자게되자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었다.
‘오드리아 님만 떠올리자. 오드리아 님만……’
그러한 와중에 그의 건강한 두 귀를 통해 리사의 옷 벗는 소리가 생동감 넘치게 들려왔다.
푹.
탁.
‘장화 벗는 소리인가?’
스르륵.
‘드레스가 바닥에 떨어졌나?’
찰그랑.
‘이건 뭔 소리지? 쇳소리 같은데?’
탁.
탁.
‘요건 또 뭐지? 바닥에 뭔가 둔탁한게 떨어졌는데?’
툭.
탁.
드륵.
‘음? 뭐가 계속 떨어지는 거지?’
딸랑.
툭.
툭.
‘도대체 옷에 뭐가 얼마나 들은거야.’
리안은 끝내 호기심을 못참고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고개를 돌려 침대밖에 서 있는 리사를 쳐다보았다.
그는 흠칫 놀랐다.
리사는 어느새 레이스가 장식된 붉은 속옷만 입은 상태였다.
아담한 가슴을 가린 브라 및 손바닥만한 크기의 천이 그녀의 중요 부위를 가리고 있었다.
“나 누우려는데 왜 일어났어?”
그녀가 반듯하게 선 채로 자신을 응시하는데, 머리는 작고 몸은 군살없이 날씬한게 아주 비율이 좋았다.
비록 가슴은 작았지만 골반 라인의 볼륨감만큼은 확실했다.
슬렌더 체형의 완벽한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몸매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뭐, 뭔가 자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요.”
시선을 둘데가 없던 리안은 급히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잡다한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너클, 단검, 송곳, 밧줄, 수갑, 독특한 모양의 팔찌, 반지, 금방울, 성분을 알 수 없는 약봉지 같은게 보였다.
리안은 황당한 눈으로 리사를 올려다봤다.
“이게 다 뭐예요?”
“만약을 대비해 들고 다니는 호신용 무기야.”
“저게 전부 옷속에 들어간다고요?”
“신기해?”
“치마속에 넣고 다녀요?”
“주머니랑 허벅지에. 가슴이 커 보일겸 브레지어 속에도 넣고.”
리사는 가볍게 대답하고 침대로 올라와 누웠다.
리안은 적나라한 속옷 차림의 그녀를 부담스러워하며 벽쪽으로 바짝 붙은뒤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그러자 리사가 말했다.
“벽보지 말고 나를 봐.”
“전 옆으로 자야 편합니다.”
“날 보면서 옆으로 누우면 되잖아.”
“벽이랑 가까이 붙어서 자면 시원한 느낌도 좀 있어서요. 덥잖아요.”
“하아, 밧줄로 꽁꽁 묶어서 나만 쳐다보게 만들고 싶다.”
“그건 납치범들이나 하는 짓이에요.”
“진짜로 납치하고 싶으니까 그러지.”
“그러지 마요.”
“당근아.”
리사는 뒤에서 그를 껴안으며 몸을 밀착시켰다.
좋은 향기와 더불어 등과 다리부분에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이 맞닿았다.
“자지 마.”
“자야합니다.”
“난 기대하고 있는데.”
리안이 몸을 돌리며 바짝 달라붙은 그녀를 멀리 밀어냈다.
그러고는 다시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잘자요.”
“……”
리사는 흐뭇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누군가랑 같이 자는거 오랜만이야. 어렸을때 언니들과 같이 잔 이후로 처음이지. 그래서일까. 잠이 안오네. 행복해서.”
“내일을 위해 주무세요.”
“어떻게 하면 날 봐줄건데?”
“조용히 자면 내일부터 봐줄게요.”
“지금 하라고. 날 보면서 자란 말이야.”
리안은 즉시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리사가 누운 자리를 바라보며 다시 잠을 청했다.
“이제 됐죠? 주무세요.”
리사는 몸을 움직여 서로의 코가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가까이 붙었다.
눈을 감은 리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뽀뽀해도 돼?”
“안돼요.”
“이마에다 할게.”
“싫어요.”
이후에도 아무런 맥락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싱거운 대화만 쭈욱 이어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몸의 피로는 더해졌고, 리안의 두근거리는 감정도 그와 비례해 조금씩 옅어져갔다.
“내일은 뭐하고 놀까?”
“그냥저냥……”
“내일은 나랑 놀아줄거지?”
“채소……”
“나 내일도 황도에 안갈거야.”
“예…… 드르렁……”
리안은 비몽사몽간에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힘없이 대답하다 어느순간 곯아 떨어졌다.
“쿠울……”
* * *
다음날.
방안을 환하게 비춘 눈부신 아침햇살에 눈이 떠졌다.
‘아침인가……?’
리안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비볐다.
‘어제 언제 잤더라……’
오른손으로 비비다 왼손으로 비비려고 손을 드는데 이상하게 빠지지 않았다.
‘음?’
무언가가 자신의 왼팔을 꽉 끌어안고 있다.
손가락으로 더듬어보니 물컹한게 잡혔다.
풍만하지 않고 그럭저럭 솟아있는게 부드럽고 말랑말랑했다.
‘마치 유방 같네……’
그 감촉이 아주 기분이 좋았다.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잠결에 일어나긴 귀찮고, 천장을 바라보고 누운 채로 그렇게 몇 번을 더 주물럭 거리는데 뜬금없이 여자의 신음이 들려왔다.
“으응……”
순간 정신이 번쩍들었다.
‘리사 아스트리드 백작!’
잊고 있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리안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옆자리를 황급히 쳐다보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자고 있는 리사가 보였다.
자신의 왼손을 가슴에 끌어안고 자는중이었다.
리안은 경악했다.
“왜 벗고 있어?”
그는 곧 자신의 몸을 보고 또 놀랐다.
자신 또한 알몸이었다.
“난 또 왜 벗고 있어?”
이 불길한 기분은 뭐지……?
기억을 되짚어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둘이 아무 짓도 안하고 대화만 나누다 잔게 끝이었다.
“분명 속옷차림으로 잤는데……?”
멍하니 중얼거리는 그때 리사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으음…… 일어났어?”
리안은 다급히 캐물었다.
“우리가 왜 벗고 있죠?”
“왜 벗다니?”
리사가 졸린 눈을 비비며 실실 웃는다.
“내 순결을 빼앗아 놓고 모른척 하기야?”
“뜨아아!”
리안은 반사적으로 괴성을 질렀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럴리가 없어요!”
“물론 너는 그럴리 없지. 내가 했으니까.”
“예……?”
“너 자고 있는 동안에 내가 덮쳤다고.”
리사가 사악하게 웃었다.
“이로써 우리는 정식으로 부부가 됐어.”
그녀는 보란듯이 자신의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아기도 곧 생기겠지?”
리안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할말을 잃었다.
“…거짓말이죠?”
“정말인데?”
“잘때 덮쳤다?”
“응.”
“제, 제대로 서기나 하던가요……? 자는중인데?”
“잘 서던데?”
“헐, 진짜로 내가 따먹혔다고……?”
리안은 망연자실하며 침대에 털썩 쓰러졌다.
단순히 즐기기만하는 모니카와 달리 자신과 결혼까지 하려는 리사.
리사를 책임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한번 자면 도무지 깰 생각을 않는 자신의 더러운 잠버릇이 원망스러웠다.
“왕과 여왕의 안식처 농장에 여자를 데려가면 오드리아 님이 싫어하실지도 모르는데……”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탄식을 내뱉는 그때였다.
갑자기 리사의 말이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했으면 흔적이 남았을거야!’
리안은 하반신으로 손을 뻗었다.
페니스랑 음모를 더듬거렸다.
정액이나 애액이 털에 묻었다면 굳은게 남아있을것이다.
그런데……
없다!
암만 찾아봐도 그런 흔적은 없었다.
사타구니 피부는 부드러웠다.
‘역시!’
리안은 확신을 갖고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시트가 벗겨진 침대 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유심히 살펴봤다.
리사가 아리송한 눈길로 쳐다보더니 물었다.
“뭐해?”
“리사님, 처녀라고 했죠?”
“그래서?”
“했으면 피가 묻었을텐데 안보이네요?”
리사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안나왔어.”
“안나올리가 있나요?”
“안나온걸 어떡해?”
“그럼 처녀가 아닌거 아닌가요?”
“단순한 사고 방식은 질색이야. 안나오는 사람도 있어.”
목소리가 금세 차가워졌다.
화를 내는게 왠지 방어하려는 모습으로 비쳤다.
리안은 한층 더 확신을 가졌다.
이어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는걸 입증할 방법이 또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다시 리사를 쳐다봤다.
“리사 님.”
전에 없이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무슨 부탁?”
리안은 헛기침을 한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대한 신사답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다리 좀 벌려주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그녀의 음부를 철저하게 조사해봐야겠다.
아주 면밀히 빈틈없이.
하지만 리사는 쉽게 허락지 않고 새침한 눈빛으로 리안을 바라봤다.
“내 말을 못 믿어?”
“전 보지 못했으니 확실히 하자는 거예요.”
리안은 덧붙였다.
“진짜 했으면…… 키스해줄게요.”
“……”
그녀는 잠깐 말이 없다가 풉 하고 웃었다.
“좋아.”
리사는 벽에 등을 기대며 반쯤 눕듯이 앉고는 가랑이를 크게 벌렸다.
그러자 황금숲 밑에 자리잡은 선홍빛 동굴 입구가 여과없이 드러났다.
“실컷 봐.”
리안은 그녀의 중심을 보고 속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오……’
보는 순간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균열 입구에 뭐 하나 삐져나온 것 없이 말끔하고 맨들맨들했다.
마치 겨드랑이쪽에 볼록 튀어나온 젖살을 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소변 냄새도 안났다.
“수치스러워. 그런데 왠지 짜릿해. 네가 봐줘서 그런것 같아. 다른 놈이었으면 죽였어.”
리사는 푸념아닌 푸념을 뱉고는 리안을 바라봤다.
“흔적 있지?”
“아뇨, 아직…… 안보이네요.”
“더 벌릴까?”
그녀의 물음에 리안은 대답을 주저했다.
여기서 다리를 더 벌렸다가는 동굴의 입구가 활짝 열리며 선홍빛 조갯살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 것 같았다.
‘그것까지 보면 위험해.’
아침의 기운을 받아서일까.
아니면 리사의 그곳 모양이 상상이상으로 예뻐서 그랬을까.
잠깐 봤을뿐인데 아래쪽으로 피가 몰리며 페니스가 부풀어 오르려는 조짐을 보였다.
‘여기서 그만 멈춰야해.’
그러나 페니스는 그의 심정도 몰라주고 결국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 큰일났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월요일 아아아
51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평소 모습보다 무려 세 배이상 커지니 티가 안날 수가 없다.
리사도 단번에 눈치챘다.
그녀는 늠름하게 발기한 페니스를 보더니 신기하다며 웃었다.
“징그러워.”
리안은 머쓱한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보지 마세요.”
“징그러운데 계속 보게 돼. 이상해.”
“어제 실컷 봤다면서요.”
“누구꺼를?”
그녀는 곧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말을 바꿨다.
“아 맞아 질리게 봤지. 잠시 잊었어.”
리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거짓말 마요. 못봤죠?”
리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봤어.”
“방금 못 본 것처럼 얘기하시던데.”
“밤에 보는거랑 달라서 그랬어. 낮에는 자세히 보이잖아.”
“음…… 그런가?”
“내 말, 못 믿겠어?”
리안의 추궁이 괘씸하다고 여겼는지 그녀가 갑자기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손을 뻗었다.
손으로 꽉 페니스를 움켜쥐었다.
“윽!”
리안은 움찔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 만지지 마시죠!”
“어제 만졌는데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문지르는거지? 아니, 어젯밤에 이렇게 문질러도 봤어.”
그녀는 보란듯이 페니스를 위아래로 문질렀다.
몸은 거짓말을 못하는 법.
그 손놀림에 리안은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그만!”
리안은 소리치며 리사의 손목을 덥썩 잡아챘다.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보았다.
“자꾸 장난치시면 진짜 안참습니다.”
눈에 힘을 주고 말하며 엄포를 놓았으나 리사는 위축되거나 미안해하는 기색없이 웃기만했다.
“화내지 마. 네가 좋아서 그래.”
“그딴 소리 그만해요. 그리고 어젯밤에 아무것도 안한 것 알고 있습니다.”
“했어.”
“거짓말 좀 그만하시라고요.”
그녀의 입가에 웃음기가 사그러 들었다.
“왜 그리 심각해? 내가 또 뭘 잘못한거야? 말해줘. 말안해주면 난 몰라.”
“안한걸 했다고 하면서 계속 장난치니까 그러죠.”
“섹스 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네가 안해주니까. 혼자라도 했다고 상상하면서 좋아했을뿐이야. 장난쳤다는건 네 착각이고.”
그녀가 팔짱을 끼며 푸념했다.
“항상 나한테 화만 내. 다정하게 대해줄 수 없어?”
리안은 순간 그녀의 말이 안타깝게 들렸다.
자신을 좋아해주는 여자한테 너무 매몰차게 대한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요.”
마음이 금세 누그러들었다.
그리고 뒤늦게 생각해보니 자신이 너무 함부로 굴었던 것 같다.
정식으로 사과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으면 됐는데 바보같이 세세히 캐묻고 확인까지 하려 했네요. 쿨하지 못했어요. 아, 쿨하지 못했다는건 행동이 시원하지 못했다, 그런 말이에요. 아무튼 실례를 범해가면서까지 과하게 행동한 것 사과드립니다.”
리사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보상은?”
“보상이란 말이 왜 나오죠?”
“미안하다며? 말로만 미안한거야?”
리안은 어이없었지만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를 벌려가면서까지 그녀의 음부를 확인한 행동은 스스로 심했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의처증도 없는데 대체 왜 그랬담.
“원하는게 있으면 말해봐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한해서 하나만 들어줄게요.”
그녀가 말했다.
“아까 하던거 계속해봐. 은근히 기분 좋더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랑이를 벌렸다.
그리고 여전히 곤두 서 있는 페니스를 가리켰다.
“반응 보는게 재밌어. 계속 이어가줘.”
“……”
리안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데이트는 어떨까요? 황도 데이트.”
“싫어. 난 이게 더 재밌어. 빨리 해봐. 이 다음엔 어떻게 할거야?”
성 경험이 전무하다는 그녀.
성적 호기심이 동했나보다.
사춘기 소녀처럼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리안이 망설이고만 있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
“아뇨, 생각은 났는데……”
해도 되나?
리안은 망설여졌지만 이미 그는 흥분해 있었다.
눈앞의 아름다운 여성의 성기를 보고 넣고 싶지 않은 남자가 없을 것이다.
모양도 예쁘고 맑은…… 순수 그 자체인 그녀의 성기.
자신도 넣어보고 싶은 욕심이야 가득했다.
허나 오드리아가 떠오른다.
머릿속으로 오드리아를 떠올리며 리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매우 벅찬 호감을 표시하는 그녀.
자신을 좋아해주는 여자가 있다는게 신기했고, 대단한 신분을 가졌으면서 자신처럼 하찮은 놈을 좋아해주는 그녀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
그렇게 리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결국 아슬아슬하게 견뎌내던 경계가 한순간 허물어졌다.
눈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있는 예쁜 여자랑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가 화르르 불타올랐다.
리안은 즉시 두 손을 뻗어 리사의 양다리를 끌어안고 엎드렸다.
리사는 그가 당기는대로 순순히 끌려오더니 웃었다.
“거기에 얼굴은 왜 붙여?”
‘거기’ 라는 곳은 리사의 다리 사이, 즉 음부를 말하는 것이었다.
설마 이것조차 모르는 것인가?
리안은 말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자 다짐했다.
“기분이 어떤지 느껴보세요.”
그는 곧장 혀를 내밀어 그녀의 갈라진 틈을 스윽 핥아올렸다.
방심하고 있던 리사는 순간 소름이 돋으며 몸에 전율이 일었다.
“이으응……!”
괴상한 신음을 내지른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당황했다.
“서, 설마 거기를 입으로 빠는거야?”
“좋죠?”
“더럽잖아!”
“다들 이렇게 해요.”
“말도 안돼!”
리안은 본격적으로 얼굴을 박고 핥아대기 시작했다.
그곳이 너무 예뻐서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짓이었다.
즉 미친듯이 핥고 싶었는데 마침내 소원성취!
리사는 알 수 없는 쾌감에 또다시 몸서리를 쳤다.
처음에는 생전 처음 겪는 경험이라 그런지 신음이 크게 나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꾹 참는 신음이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체면을 차리려는 것인지 아니면 수줍어서 그런 것인지, 그녀의 신음은 작았지만 몸의 반응은 확실했다.
리안의 코를 적실정도로 동굴 밖으로 물이 콸콸 쏟아졌다.
“넣을 거예요.”
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고쳐 잡았다.
평일 아침시간이다.
밭으로 나가기 전에 아침 식사도 해야하고 메건 부인의 텃밭도 돌봐야줘야 해서 시간이 빠듯했다.
리사의 안이 충분히 축축하기에 애무없이 서둘러 끝낼 생각이었다.
“넣기 직전에 알려줘.”
“지금이에요.”
“계속 보고해 계속.”
항상 도도하고 당당하기만했던 리사가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는건 처음이었다.
리안은 자그맣게 웃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그를 흥분케했다.
‘들어가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는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페니스를 그녀의 동굴 입구에 가져다댔다.
“들어갑니다.”
“……”
리사는 아무런 말없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리안은 힐끔 그녀를 본뒤에 지체하지 않고 밀어넣었다.
쑤욱.
‘뭐야 왜 안들어가?’
입구부터 너무 비좁았다.
부드럽게 잘들어가던 모니카와 달리 힘을 줘서 파고들어가야했다.
좀 더 밀어넣었다.
“흐읏!”
리사는 얼굴을 찡그리며 아픈 표정을 지었다.
누가봐도 좋아서 짓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리안은 과감히 밀고 나갔다.
심해 탐사를 하듯 조금씩 전진하며 더 더 쑤셔넣었다.
그러다 통로 한 중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와 맞닿은 감촉이 귀두로부터 전해졌다.
‘설마 이 느낌은……’
리안은 느낌이 전해지자마자 즉시 엉덩이를 뒤로빼며 한발 물러섰다.
여자 경험이 적은 나머지 처음 겪는 상황이라 잠시 혼란스러웠으나 그는 이내 그것이 처녀막이란 것을 알아챘다.
‘훗, 드디어 만났군.’
지구에 있을때 여기 저기서 주워들은 썰들이 있기에 그가 가야할 길은 단 하나.
‘힘차게 뚫어버리라고 했어. 그래야 덜 아프다고.’
폭격을 가하기 전에 리사를 쳐다봤다.
그녀는 신음을 크게 지르진 않았지만 숨쉬기가 곤란한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허우적 대고 있었다.
“아픕니까?”
“아, 아파…… 이렇게 아픈건줄 몰랐어. 흐윽!”
“그만 둘까요?”
“머, 멈추지마. 윽……! 계, 계속해.”
“표정 보니까 걱정돼서 그래요.”
“괘, 괜찮아. 너, 너는…… 너는 어때?”
“전 안아프죠.”
“아픈거 말고, 기분이 어떠냐고. 읏……!”
“날아갈 듯이 좋아요. 진짜.”
“나, 나 때문에?”
“네. 리사님 안이 너무 좋아요.”
진심이다.
심지어 그녀가 아파하는 모습마저 쾌감으로 승화되는중.
페니스가 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서 자랑스러웠다.
그녀가 힘겹게 웃는다.
“네가 좋으면 됐어. 그럼 나도 좋아.”
그 말은 감동이었다.
진심으로 아파보이는데 그걸 꾹 참아주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이토록 마음이 예뻤을 줄이야.
진작에 사랑을 나눌걸.
“조금 따끔할지도 모릅니다.”
리안은 세차게 돌진했다.
그 순간 아주 미세하지만 무언가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됐어!’
단숨에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을때 만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돌연 리사의 안색이 새파래지면서 뱀이 우는듯한 해괴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하아악! 하아악! 하아악!”
들어본적도 없는 해괴망측한 소리에 놀라 리안은 당황했다.
눈을 부릅 뜬 그녀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게다가 신음 같지 않은 신음을 계속 토해냈다.
“하악! 하아악! 하으으으아악!”
리안은 덜컥 불안해지며 황급히 페니스를 뺐다.
쑥 빠져나오는 페니스의 주위에 붉은피가 아주 조금 묻어 있었다.
서둘러 침대의 머리맡으로 갔다.
“괜찮으세요?”
다행히 그녀의 상태는 괜찮아보였다.
“흑흑……!”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아팠어……! 끄윽! 흐흑!”
“아파서 이상한 소리가 나온거예요?”
“응. 너무 쓰라려서.”
“깜짝 놀랐잖아요. 지금은 어때요?”
“빼니까 한결 나아졌어. 근데 따끔거려.”
“금방 나을거예요.”
리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이제 안할게요. 안심해요.”
그러나 리사는 싫다는듯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동시에 주저앉아 있는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와 침대 윗면을 적셨다.
그 양이 대략 소주잔으로 한잔 정도?
리안은 리사의 등을 토닥이며 새삼 깨달았다.
처녀랑 하는 건 쉽지 않구나……
리사만 특이한 경우일까?
경험이 적어 잘 모르겠다.
어쨌든 리사의 몸은 무척 섬세히 다뤄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상은 못하겠어. 그만하자.’
흐느껴 우는 리사를 끌어안은 채 리안은 그렇게 결심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문밖에서 갑자기 모니카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안! 리안!”
복도에서 뛰는 소리가 들리더니 난데없이 문이 열렸다.
그리고 대뜸 모니카가 안으로 들어왔다.
“허가 어떻게 받았어? 대단해! 나 정말 기분이 째…… 응?!”
모니카는 침대 위에서 알몸으로 있는 리안과 리사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멍하니 눈만 깜빡이던 그녀는 곧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바, 방해해서 죄송했습니다. 두 분 즐거운 시간 되세요!”
후다닥 문을 닫고 나가던 그녀가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리안, 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시간나면 나와줘. 헤헤.”
그녀는 방긋 웃어보이고는 문을 닫았다.
“아…… 문을 안잠갔었네.”
리안은 탄식을 내뱉으며 침대 밖으로 나왔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잘됐다.”
리사가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뭐가요?”
“나랑 그짓한거 봤으니까 쟤는 이제 너한테 귀찮게 안할거야.”
쿡쿡 거리며 웃는걸 보니 이제야 조금 살만한가 보다.
아까는 아파죽겠다며 듣도보도 못한 별 괴상한 신음을 내지르더니.
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리안은 대충 걸쳐입고 문밖으로 나갔다.
모니카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울상을 짓고 있던 그녀는 리안이 문을 닫자마자 대뜸 그를 껴안았다.
“흐아앙, 미안해.”
“왜 그래?”
“나 때문에 희생해준거지?”
“희생이라니? 뭘?”
그녀가 짐짓 울먹거렸다.
“이제야 모든걸 알겠어. 저 백작 여자한테 몸을 바치는 조건으로 허가 받은거지? 나 때문에 남창 노릇이나 하고 미안해. 흑흑.”
저기요, 심하게 오해하고 계신데요?
하지만 리안은 문득 오해받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게 편할 것 같았다.
모니카한테는 언젠가 떠난다고 말해놓고, 정작 리사랑 연애질이나 하면 모니카가 어이가 없다고 화낼게 분명했다.
따라서 모니카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뿐 딱히 해명을 하지 않았다.
“자기 몸이 워낙 멋지니까 탐났었나봐. 백작이면 백작답게 살 것이지 꼴에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괴로우면 말해. 대신할 노예라도 구해볼테니까.”
“아니야. 그냥 내가 바라는건……”
리안은 다정하게 웃으며 모니카의 두 손을 꼬옥 감싸쥐었다.
“당신이 잘 됐으면 좋겠어. 그래야 나도 잘 될테고.”
모니카는 감동 받은 표정을 지었다.
“역시 자기밖에 없어.”
그녀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두고 봐, 꼭 성공할게!”
* * *
모니카는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황도로 떠났다.
위에서 허가 받아야 하는 일은 끝났고 이제 본인이 처리해야할 일만 남았다.
일할 사람을 모집해야 했고, 상회 건물 내부 인테리어 공사도 진행해야 했다.
리사는 결국 메건 부인에게도 들켰다.
그리하여 리안은 메건 부인에게 꾸중을 들었다.
“아스트리드 백작 님께서 방문하셨으면 나한테 말을 했어야죠. 우리 저택은 잠깐 들렸다가는 여관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리사는 아침식사 후 에밀리와 케스티리아가 데리러 왔고, 오후에 자문관 회의가 열린다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들과 함께 황도로 떠났다.
리사는 떠나기전 리안을 향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넌 내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
리안은 오싹했다.
평생 데리고 살아야한다는 소리처럼 들려서.
아무튼 홀로 남게된 리안은, 반복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 메건 부인을 따라 그녀의 텃밭으로 향했다.
“가문에 손님이 찾아오지 않으면 무식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 세상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고 발품을 팔지 않는 이상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데 귀족들 사이에서 주류세력에 속하는 아스트리드 백작 님이 오신 것을 말도 안해주다니요. 우리 훅스 가문에 모처럼 찾아온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누가 오거든 내게 말씀해주세요. 길게 붙잡고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특히 저녁에는 방해할 생각도 없고요.”
“명심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녀의 텅 빈 텃밭을 돌볼 예정이었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아아아
5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은은한 흙 향기와 풀내음을 가득 품은 텃밭.
여름의 무더위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 다소 쌀쌀한 아침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오늘로 10월 중순.
곧 겨울이 다가오기에 텃밭에 심을 수 있는 채소가 그리 많지 않았다.
“무엇을 심으면 좋을까요?”
얼마전 메건 부인의 물음에 리안은 깊게 고민하다가 ‘파스닙’이라고 대답했다.
파스닙은 추위에 강한 흰 당근이다.
지금 심으면 겨우내 덜자란 뿌리를 뽑아다 먹을 수 있었다.
먹지 않고 남은 것들은 땅속에 심은 채 놔뒀다가 다음해 봄에 수확하는 것도 가능했다.
땅속에서 겨울을 넘긴 파스닙은 다음해 봄에 최고의 맛을 자랑하기에 상품 가치가 뛰어났다.
“파스닙이라면 두루두루 쓰이는 요리 재료니 다른 가문에 선물하기 좋겠네요. 그것으로 합시다.”
그런식으로 메건 부인의 동의하에 텃밭 가꾸기가 시작되었다.
“파스닙은 뿌리 채소라서 한 40cm 가량의 깊이까지는 흙을 곱게 갈아줘야해요. 흙이 단단하거나 거칠면 밑으로 성장하면서 뒤틀리거나 못 자라게 되거든요.”
“알겠습니다. 시작하죠.”
어제 밑거름을 텃밭에 미리 뿌려두었다.
리안은 라그레아닐을 삽으로 변신시킨뒤 밑거름과 흙을 크게 퍼올려서 뒤집었다.
그는 계속 땅을 갈아엎으며 전진했다.
메건 부인은 그 뒤를 따라다니며 뭉쳐진 흙들을 모종삽과 괭이로 잘게 깨부쉈다.
일은 거의 리안이 다 하고 있었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열심히 삽질을 해대면서 메건 부인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는 일이 즐거웠다.
“휴, 일단 하나 끝났네요.”
리안은 금세 텃밭 전체를 갈아엎었다.
“땀난다.”
“저기 의자에 앉아서 쉬세요.”
“네.”
메건 부인은 모종삽과 괭이를 번갈아 사용하며 계속 텃밭의 흙을 부드럽게 다지는 중이었다.
“부인도 같이 쉬어요.”
“난 조금만 더 하다 쉴게요.”
다지는 일이 끝나면 이후에 이랑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
파종은 일주일 뒤에 할 생각이었다.
리안은 의자에 앉아서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씨앗은 내일 오나요?”
“내일까지 보내달라고 했어요. 별탈 없으면 받을 수 있을겁니다.”
파스닙이라고 해서 다 똑같지가 않다.
이곳 웨르타뉴 제국에서는 마르가스 지방의 파스닙을 최고로 쳐주었다.
생김새는 일반 파스닙과 비슷하지만 맛과 향에서 큰 차이가 났는데, 마르가스 파스닙을 한 번 먹어 본 사람은 다른 파스닙은 못 먹고 평생 마르가스 파스닙만 찾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특산물이었다.
일주일전 메건 부인이 어디서 씨앗을 사오면 좋겠냐고 묻길래, 리안은 친절히 마르가스 파스닙이란 것도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시장에서도 파나요?”
“아마 현지에서만 팔겁니다. 고급종이라서요.”
그러자 최고 품종의 작물을 텃밭에 기르고 싶은 욕심이 발동했나 보다.
메건 부인은 마르가스 파스닙을 구매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표출했다.
“내일 당장 마르가스 지방으로 사람을 보내야겠어요.”
“씨앗이 비쌀거예요. 워낙 유명한 품종이라.”
“텃밭에 심을 정도만 구매하면 얼마 안하겠죠. 1000골드까지 낼 의향이 있어요.”
“와……”
한국 돈으로 10억.
리안은 씨앗 사는데 1000골드나 쓰는 그녀의 재력에 감탄했다.
훅스 가의 전재산은 과연 얼마나 될까?
좌우지간 그렇게 해서 구매한 마르가스 파스닙의 씨앗이 내일 도착한다.
고급 품종인만큼 리안도 기대가 됐다.
신경써서 잘 키워볼 생각이었다.
“르리~”
향단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전 텃밭으로 일하러 나올때, 식당에서 남은 음식들을 아주 조금 얻어다 향단이에게 주고 나왔는데 드디어 아침 식사가 끝난 모양이다.
2층 리안의 방 창문에서부터 텃밭까지 단숨에 날아왔다.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는 리안에게 오더니 그의 어깨에 털썩 앉았다.
“르리, 르리~”
“머리가 길어서 간지럽다고? 잘라줄까?”
“르리!”
향단이의 노란 머리카락이 어느새 발목까지 자라있었다.
페어리는 머리카락이 너무 빨리 자란다.
리안은 삽에 묻은 흙을 털어낸 후 가위로 변신시켰다.
“내 앞으로 와.”
“르리~”
“앞에 보고 떠있어.”
향단이의 등을 보며 얼마나 잘라줄까 고민하다가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해볼겸 단발로 자르기로 결정했다.
머리를 자주 잘라야하는게 귀찮아서 그런건 절대 아니었다.
절대.
‘머리 자르는게 문제가 아니라 옷부터 해결해줘야 하는데.’
현재 향단이는 네모난 흰 천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정중앙에 구멍을 뚫어놓고 거기에 머리를 쏙 집어넣어서 입고 다녔다.
등부분은 날개를 꺼내는데 지장이 없도록 대충 막 찢어놨다.
리안이 만들어준 누더기, 아니 원피스다.
어쨌든 긴 머리카락을 팍팍 자르고 있는데 갑자기 향단이가 울먹거렸다.
“르리……”
“뭐? 머리를 너무 많이 잘랐다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뭉치를 보고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잘린 머리카락들을 내려다보며 이내 눈물을 흘렸다.
“륵륵……”
“울지마, 울지마. 금방 자랄거야. 지금이 더 예쁘다? 진짜야.”
리안은 향단이를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근처에서 흙을 일구던 메건 부인이 한마디 거들어 주었다.
“향단이 머리 잘 잘랐다. 너무 예쁘네~”
“르리?”
“부인께서 너 머리 잘 잘랐데.”
“르리리?”
“진짜야.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
메건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향단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짧게 자르니까 단정하고 예쁘다.”
“르리?”
“짧게 자르니까 더 예뻐보인데.”
“너무 예뻐서 공주님처럼 보인다고 해줘요.”
메건 부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리안을 돌아보고 밝게 웃었다.
별생각 없이 그의 얼굴을 쳐다본 것이었는데, 문득 가위를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 괜스레 멋지게 느껴졌다.
‘리안 씨도 남자는 남자구나.’
소매를 걷어올린 팔에 솟은 힘줄하며 자신보다 두 세 배는 넓어보이는 어깨까지……
리안에게서 흙냄새와 뒤섞인 사내 냄새가 물씬 풍겼다.
침을 꿀꺽 삼켰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 사람은 아들뻘 청년이야.’
메건 부인은 금세 자신을 책망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그녀는 민망함을 감추려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리안 씨, 얼른 이랑 먼저 만드세요. 밭에 나가봐야하잖아요.”
“흙 다지는 일은요?”
“오전에 혼자서 할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리안은 다 자른 향단이의 머리를 서둘러 털어준뒤 자리에서 일어나 배수로를 파기 시작했다.
메건 부인도 정신차리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 * *
치안대 본부.
아침 점호 시간.
조레비치는 연병장에서 훈시중이었다.
그는 장장 한 시간 동안 병사들에게 오늘 하루 열심히 근무하라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범인은 신속히 검거하고 황도의 치안유지에 구멍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 알겠지!”
“예!”
“예!”
아침 점호를 마치고 집무실에 돌아오자 부관 하리스가 보고를 위해 대기중이었다.
“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
조레비치는 방 한가운데 서 있던 하리스를 그대로 지나치며 집무실 책상에 앉았다.
그는 서랍에서 반찬통을 꺼냈다.
반찬통 안에는 채를 썬 양배추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을 과자처럼 집어먹었다.
“음 달아. 좋다, 좋아.”
조레비치는 양배추를 잘근잘근 씹으며 히죽 웃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하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배추 입니까?”
“응, 보다시피 양배추일세.”
“그걸 왜 먹습니까? 식사 안하셨어요?”
“밥이야 먹었지. 그냥 위장에 좋길래 시간날때마다 챙겨먹고 있어.”
“양배추가 위장에 좋다고요?”
“이 사람아, 위에 엄청 좋아.”
조레비치는 흰 양배추 조각을 손에 쥐고 흔들어보였다.
“요놈만 먹으면 위장이 거짓말 같이 바로 튼튼해진다니까? 그리고 내가 먹고 있는 이 양배추는 양배추중에서도 제일 으뜸가는 최고의 양배추야. 효과 직빵이지.”
하리스가 입맛을 다시며 눈을 빛냈다.
“저도 최근 위장병으로 고생중인데 하나 먹어봐도 되겠습니까?”
“하나 가지고 되겠어?”
조레비치는 한주먹 가득 집어서 하리스에게 건넸다.
하리스는 일단 냄새부터 맡아봤다.
“호오, 신선해보이는군요.”
“맛보면 죽인다니까. 채소가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요리 같아.”
하리스는 적당히 집어서 입안에 넣었다.
식감이 아삭아삭.
“음……”
맛을 음미해가며 오물오물 씹어먹던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 신선함이 확 느껴지네요. 평소에 먹던 양배추가 아닌데요?”
“이건 시장에서 못 구하는 양배추야. 최고로 좋은거라구.”
“어디서 구하셨는데요?”
“내가 왜 알려줘야 하는데?”
“입소문이 타야 장사가 잘되죠! 그 사람이 돈맛을 봐야 계속 키울거 아니에요.”
“흠, 그런가? 훅스 가에서 사온거야.”
“훅스 가요? 메건 훅스가 당주로 있는 가문이요?”
“어.”
“그곳이 채소 장사를 한다고요? 가문이 망했나?”
“텃밭에서 키운걸 사왔어.”
“아~”
“근데 이제 없어. 내가 다 샀거든.”
조레비치는 곧바로 으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리스는 아쉬워했다.
“저도 위장이 안좋은데, 양배추 농사 또 안짓는데요?”
“음.”
조레비치는 관자놀이를 긁적이더니 입을 열었다.
“메건 부인은 어쩌려나 모르겠는데, 그 댁에 머무는 젊은 친구가 하나 있어. 양배추 농사를 둘이 같이 지은 모양인가 보더라고. 아무튼 그 친구가 조만간 채소 장사를 한다고 들었거든? 나중에 거기나 한 번 찾아가 보든지.”
“그 친구 이름이 뭔데요?”
“김리안. 아 그렇지. 조만간 오픈할 가게 이름도 김리안 상회 라고 들었어.”
“김리안 상회라…… 이름이 독특하군요.”
하리스는 오늘밤 필히 아내에게 말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업하면 양배추란 양배추는 싹 다 긁어오라고 해야겠어.’
* * *
오스틴 가문의 저택.
안젤라 부인의 딸 라라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서 있었다.
두 명의 하녀들이 라라의 몸에다 하얀 가루를 덕지덕지 펴발랐다.
얼굴, 가슴, 엉덩이, 그녀의 사타구니 등등 신체 구석구석 하얀 가루를 묻혔다.
쌀을 빻은 가루를 온몸에 묻혀 더러움을 씻어내는 일.
빛의 신 에스메랄다를 섬기는 가문으로서 한달에 한번씩은 반드시 행해야하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콜록, 콜록.”
“재채기를 하면 나한테 다 날아오잖니.”
“죄송해요. 코에 들어가서. 콜록.”
안젤라 부인은 쌀가루를 뒤집어 쓴 자신의 딸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온몸에 바르는 작업이 끝나자 하녀들은 잠시 뒤로 물러섰다.
더러움이 씻겨나갈때까지 쌀가루 범벅이 된 채로 10분을 기다려야했다.
그렇게 가만히 서있는게 전부다.
안젤라 부인은 쌀가루를 뒤집어 쓰고 있는 딸의 몸매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다 못마땅한 눈으로 딸을 바라봤다.
“너 살쪘구나?”
라라가 깜짝 놀란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콜록.”
“넌 말하지마.”
안젤라 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드레스 옆구리가 터질려고 하면 남자들이 참 좋아하겠다.”
“승마 배우고 있잖아요. 콜록!”
“승마가 운동이 돼? 제발 적당히 좀 먹으렴. 살을 찌더라도 시집가고 나서 찌란 말이야.”
“먹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그 식성을 고치라고요!”
안젤라의 잔소리를 듣고 있던 라라는 어머니의 피부가 무언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어머니, 얼굴에 뭐 바르셨어요?”
“아니? 지금은 아무것도 안발랐는데?”
“예전보다 피부가 조금 하얘진 것 같아요. 잡티도 많이 줄어들었고.”
“아.”
안젤라 부인이 깔깔 웃었다.
“요즘 자기전에 새로 배운 마스크팩을 하거든. 그래서 피부가 좋아졌어.”
“어떻게 하는 건데요?”
“도르긴이라는 채소로 하는거야.”
안젤라 부인은 딸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고, 이야기가 점점 길어지더니 나중에는 리안의 이름까지 입밖으로 흘러나왔다.
“나랑 메건 부인, 헬렌 부인 이렇게 셋이서 조만간 그 리안이란 사람한테 또 피부관리를 받아볼까 생각중이란다. 집에서 내가 해도 되는데 전문가가 직접 해주면 뭔가 느낌이 다르잖아. 솜씨도 훨씬 좋고.”
안젤라 부인은 슬그머니 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사람 덩치가 크고 인물도 잘 생겼어. 생긴 것만 보면 완전 귀족이라니깐.”
“어머니께서 남자의 외모를 칭찬하시다니 드문 일이네요. 그렇다면 정말 잘 생겼다는 건데.”
라라는 불쑥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할때 저도 데려가주세요. 그 사람한테 피부관리를 받아보고 싶어요.”
“그러마.”
안젤라 부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생긴 남자일까.’
라라는 그날이 기다려졌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오래 묵힌 카드를 슬슬 꺼낼때가..
53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
김리안 상회가 마침내 개업을 앞두고 있었다.
리안은 짐마차를 타고 모니카와 함께 가게를 구경하러 가는 중이었다.
가게는 황도 구석진 곳에 있었다.
가는 도중에 푸줏간에 들려 삼겹살 다섯근을 주문했다.
“형씨, 간도 안된 고기를 그냥 달라고?”
“예, 그냥 주세요.”
“집에서 직접 절여 먹게? 우리집에 만들어 놓은 것 있는데 그걸 사가지.”
“아뇨, 그냥 주세요.”
이곳 사람들은 생삼겹을 구워먹는다는 인식이 없다보니 잠깐 고기 사는데 공연히 대화가 길어졌다.
“알아서 해먹을게요.”
리안은 대충 둘러대고 고기를 구매한뒤 밖으로 나왔다.
길가에 세워진 짐마차에 모니카가 타고 있었다.
그녀는 커다란 잎사귀에 둘둘 감싸진 통삼겹을 보더니 물었다.
“그걸로 뭐하게?”
“구워 먹게.”
“훈제?”
“이따 보면 알아. 철망은 준비해놨지?”
“어, 거기 갖다놨어.”
“알았어. 출발.”
오늘은 곧 다가올 개업을 기념해서 모니카가 고용한 직원들과 첫인사를 나누는 날이었다.
어떤 직원들이 뽑혔을까?
바지사장인 리안은 처음 만나는 그들에게 삼겹살을 대접할 생각이었다.
삼겹살을 싸먹을 상추도 밭에서 잔뜩 따왔다.
아직 덜자란 애기상추지만 애기상추도 상추는 상추이기에 싸먹으면 연하고 맛있다.
모니카의 가게가 있는 ‘파크 포인트’는 화물 관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여러 상회의 창고들을 한 곳에 몰아넣은 동네다.
마치 공업단지처럼 조성되어 각 상회에서 나온 직원들만 주로 거리에 보였고 일반인은 드물었다.
“저 앞에서 서면 돼.”
“응.”
리안은 허름한 목재 창고 앞에 짐마차를 세웠다.
“여기야.”
“여기?”
리안은 모니카가 가리킨 건물을 보고 혀를 찼다.
다른 상회의 유통창고보다 작고 초라해보였기 때문이다.
위치도 동네에서 가장 외진 곳에 자리해 있었다.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나.’
리안은 짐마차에서 내렸다.
커다란 나무문을 열고 모니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약 50평에 달하는 실내는 텅텅 비어있었다.
창가쪽에 자리한 책상과 의자, 탁자 외에는 있는게 없다.
내부 공기는 서늘해서 상쾌하니 좋았다.
“빨리 여길 채워야 돈을 버는데.”
모니카는 양팔을 쭉 펴고 실내를 빙글빙글 돌았다.
리안은 가만히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달만 기다려.”
그때가 되면 마침내 순무와 상추의 수확이 시작된다.
하지만 순무와 상추만으로 이곳을 다 채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 말고 다른 농부도 알아봤어?”
“현재까지 두 집 정도. 근데 다들 땅이 작아서 매입량이 얼마 안돼.”
“이제 시작이니 어쩔 수 없지. 차차 늘어날거야.”
“어차피 이 사업은 당신만 믿고 하는 거니까 상관없어.”
모니카는 신뢰 깃든 눈빛으로 리안을 바라봤다.
“당신은 최고잖아. 우리 함께 황도 사람들을 깜짝 놀래켜주자고.”
리안은 별말없이 눈웃음을 지었다.
순무와 상추가 무럭무럭 잘 자라주고 있어서 리안도 꽤 기대가 됐다.
한달 후 시중에 나오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궁금했다.
더불어 한가지 고민거리도 생겼다.
‘수확하고 나면 겨울이야. 봄이 오기전까지 최소 세 달이상은 쉬어야할텐데 농한기에는 뭘 하면서 보내는게 좋을까……’
가축이라도 키울까?
그러나 목장 설비에 투자할만한 돈이 없다.
가축도 비싸고.
품종 개량 연구라도 할까?
하지만 연구 장비를 마련할 돈이 없다.
그냥 놀까?
순무랑 상추 판 돈으로 노는건 가능하겠지.
세 달은 버티겠지 뭐.
허나 세 달을 마냥 허비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금전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좋은 일이 어디 없을까?
‘아르바이트라도 해야하나……’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고민을 하는 와중에 모니카가 갑자기 애교를 부리며 안겨왔다.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거야?”
“왜? 할거 있어?”
그녀의 야릇한 손길이 바지 한가운데를 쓸어올렸다.
“사업 번창하라는 의미로 여기서 어때……?”
그녀의 눈빛은 뜨거웠다.
리안의 페니스를 바지채 어루만지며 자신을 덮쳐달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열정적인 여자다.
건강한 구릿빛 피부색과 더불어 육감적인 몸매에 걸맞게 지나치게 왕성한 성욕을 품고 있다.
하루종일 그녀와 붙어있다보면 한번씩은 꼭 먼저 들이댈때가 있다.
밥을 먹을때도 신호를 보내고, 일을 할때도 신호를 보내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때도 은밀히 신호를 보낸다.
그럴때마다 리안은 반드시 호응해주었다.
육식 동물 같은 그녀를 충분히 감당할만한 정력을 가진 사내였으니까.
“흐으응……”
더이상 말이 필요없었다.
리안은 구석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 벽에 밀어붙였다.
벽을 보고 선 그녀의 뒤에서 탐스러운 엉덩이를 주물럭대며 뒷목과 귀에 키스를 퍼부었다.
한참을 애무에 열중하던 두 사람은 이윽고 하나가 되었다.
텅빈 창고 안은 모니카의 신음으로 가득 메워졌고 리안은 전력을 다해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 깊은 동굴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 * *
“곧 사람들 오겠다. 일어나자.”
약 한 시간 가량의 질퍽한 정사를 나눈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져서 호흡을 고르던 중이었다.
리안이 먼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얼른.”
“아…… 좀 더 쉬고 싶은데.”
모니카는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랑이 사이에서 정액이 뚝뚝 떨어짐에도 속옷을 바짝 끌어올려 입었다.
“자기야, 우리 이따가 집에서 또 하자.”
“안피곤하면.”
리안도 그녀의 애액으로 반들반들한 페니스를 바지속에 구겨넣고 단추를 잠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물(?)들을 신발로 싹싹 비벼서 대충 흔적을 가린뒤 밖으로 나갔다.
리안은 창고앞 공터에 양철통을 가져다 놓고 장작불을 피웠다.
모니카는 안에서 네모난 철망을 가지고 나왔다.
그것을 장작불 앞에 서있던 리안에게 내밀었다.
“여기.”
“오, 잘 만들었네.”
“당신 고향에서 쓰던거랑 똑같이 생겼어?”
“비슷해.”
네모난 철망, 그러니까 고기굽는데 쓰는 석쇠는 리안의 요청으로 모니카가 대장간에 가서 특별히 제작해왔다.
“이런데다 고기를 구워 먹는다니 신기해.”
“이따가 먹어봐. 맛이 끝내줘.”
“정말? 기대된다.”
모니카는 석쇠를 건네주고 나서 아주 가까이 다가와 몸을 밀착시켰다.
양철통 안의 숯들을 뒤적거리는 리안의 품에 안긴채 그를 사랑스럽게 올려다봤다.
“그 백작 여자가 뭐래?”
“뭘?”
“자기랑 하고 나서 뭐랬냐구.”
리안은 관자놀이를 긁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별말 안했어.”
“진짜?”
“진짜.”
“세상에서 가장 정력 센 남자한테 안겨놓고 아무말이 없었다고? 거짓말이지?”
“정말이야. 아무튼 가져온 고기나 썰어줘. 작고 네모나게.”
“질투 나.”
모니카는 눈을 감고 입술을 내밀었다.
키스하라는 신호다.
리안은 웃으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 번의 정사로 끝난게 못내 아쉬웠는지 뜨거운 양철통 앞에서 짧게 키스를 나누었다.
잠시 후.
사람들이 찾아왔다.
5살 아들과 6살 딸을 데리고 온 젊은부부와 젊은 여자 두 명이었다.
“모니카, 우리 왔어.”
“어서와!”
여자들은 모두 모니카의 소꿉친구들이었다.
그리고 이 소꿉친구들이 바로 모니카의 점원들이었다.
한때 동네를 주름잡던 공포의 사공주였다나 뭐라나.
생김새들을 보아하니 어렸을때 껌 좀 씹고 다녔을 것처럼 개성이 강해보였다.
“고기 사왔으니까 많이 먹고 가.”
“비싼 고기를? 이야 돈 좀 썼네?”
“고기를 사먹여야 우리 직원들이 힘을 팍팍 쓰지.”
“얘 좀 봐. 벌써부터 부려 먹을 생각이나 하는거야?”
친구들과 티격태격하며 반갑게 인사를 마친 모니카는 곧바로 리안을 소개했다.
“이분이 우리 김리안 상회의 회장. 김리안 씨야.”
부부와 여자들이 빤히 쳐다보았다.
“와…… 몸 좋다.”
“어머…… 우리랑 좀 다르게 생겼는데 멋지다.”
“정말 이분이 김리안 씨야?”
리안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뒤 점원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뵙겠습니다. 김리안입니다. 개인 사정상 앞으로 자주 보기는 어렵겠지만 모니카를 믿고 늘 최선을 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그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신기하게 쳐다봤다.
“나이가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젊으시네.”
“우리보다 어린가? 아니면 한 두 살 위?”
“모니카, 혹시 니 남자친구 아니야?”
“그렇게 보여?”
모니카가 배시시 웃는다.
“우리 실은……”
리안이 잽싸게 그녀의 등을 꼬집었다.
그러자 모니카는 입술을 빼죽 내밀며 리안을 흘깃보고는 다시 친구를 돌아봤다.
“야, 착각하지마. 우리 그런 사이 아니거든?”
톡 쏘아 붙이고는 리안에게 점원들을 한명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쪽은 베라야. 빨래나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맡아주기로 했어.”
“안녕하세요, 리안 님.”
“네, 반갑습니다.”
리안은 그녀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이 사람은 베라의 남편 케이로스야. 마차꾼으로서 운송 일을할거야.”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리안은 케이로스와 악수를 나눈뒤 아이들을 쳐다봤다.
모니카가 남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얘들은 베라와 케이로스의 자녀들.”
“안녕하떼요 아저씨.”
“안뇽하떼요.”
“안녕 얘들아~ 고기 사왔으니 오늘 많이 먹으렴.”
“네!”
“헤헤, 꼬기 신난다.”
모니카는 이어서 금발로 염색한 젊은 여자를 쳐다봤다.
“얘는 야네트. 지난주까지 식당 종업원 하다가 일 그만두고 우리 상회로 왔어.”
“돈 안주면 바로 관둘거야.”
야네트는 성격이 좀 있어보였다.
그리고 몸매가 제법 괜찮았다.
모니카처럼 육감적인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건들거리며 리안과 악수했다.
“회장님 셔츠 색깔 마음에 든다. 내 주변 사내 새끼들은 셔츠를 좆같이 입고 다니는 놈들이 많아. 당신 셔츠는 예쁘네. 일할 맛 나겠어.”
거친 여전사 느낌.
리안은 싱긋 웃으며 담담이 화답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요. 잘 해봅시다.”
“야네트는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힘도 좋아서 지배인겸 일꾼으로 일하기로 했어.”
야네트가 퉷 침을 뱉었다.
“지배인이 물건 나르는 것 봤어? 별꼴이야.”
“사람이 없는걸 어쩌냐. 닥치고 그냥 해.”
모니카는 가볍게 대꾸한 후 마지막 여자를 소개했다.
그녀 역시 금발로 염색했다.
“이 친구는 히메나. 이 친구도 지배인겸 일꾼이야.”
리안은 히메나를 보면서 살짝 놀랐다.
창고에서 짐을 옮기려면 힘이 들텐데 몸이 참 여리여리하게 생겼다.
“무거운거 들어도 괜찮으시겠어요?”
히메나는 숫기가 없는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쑥스러워했다.
“여,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얘는 남자랑 말을 잘 못해. 얼굴 붉어진 것 봐.”
“모니카!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마!”
히메나가 버럭 화를냈다.
“그런 소리는 뭐하러 해 쌍년아!”
“쉿, 조용해. 이년아 회장 님 앞이야.”
친한 사이라 그런지 리안의 눈앞에서 쌍욕이 쉽게쉽게 오갔다.
‘오 마이 갓.’
리안은 당황스러웠다.
“죄송해요. 저 원래 욕하는 사람이 아닌데 모니카가 성질을 건드네요.”
히메나는 언제 욕설을 뱉었냐는듯 수줍게 웃어보였다.
“미친년.”
모니카는 피식 웃고 말을 이어나갔다.
“히메나의 부모님은 소유권은 없지만 토지를 갖고 있어. 밀을 재배하시는데 가족들이 먹을 양만 제외하고 남는건 전부 우리한테 팔기로 하셨지.”
그녀는 히메나의 한쪽 어깨를 툭툭쳤다.
“즉, 이년 취직시켜주는 대가로 우리한테 밀을 넘기는거야.”
“썅년아 이 자리에서 일꾼 잃기 싫으면 말 곱게 해.”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리안은 서둘러 히메나를 진정시키고 나서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히메나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손을 맞잡았다.
리안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손은 여자손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거칠고 투박했다.
만져만 봐도 힘 좋은게 딱 느껴졌다.
몸은 여리여리해도 싸움을 잘할 손이다.
일도 잘하게 생긴 손이다.
그는 속으로 모니카가 제대로 뽑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다들 시킨대로 밥 안먹고 왔지?”
소개는 끝났고 이제 먹을 일만 남았다.
“당연하지. 무슨 고기 사왔어?”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이 철망은 뭐니?”
“어? 저 고기는 뭐야? 설마 생으로 된거 그대로 사온거야?”
야네트가 한 말을 리안이 받았다.
“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맛있게 구워드리겠습니다.”
리안은 아까 모니카가 먹기 좋게 썰어놓은 생고기를 접시에 담아서 양철통 옆에 가져다 놓았다.
“여러분들은 의자에 앉아계세요. 저랑 모니카가 식탁을 차리겠습니다.”
간만에 고기 굽는 솜씨를 발휘할 생각이다.
오드리아와 살때 수없이 구워봤다.
지구에 있을때보다 더 많이 구웠다.
‘여기 사람들은 구운 삼겹살이 처음 일텐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석쇠를 양철통 위에 올렸다.
미리 준비해둔 비계덩어리를 집어서 석쇠 전체에 골고루 문질렀다.
야외식탁에 앉아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의 행동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설마 저대로 구우려고?”
“어느 나라 요리법이지?”
“일단 고기는 신선해보이네요. 구워 먹어도 괜찮을 듯싶어요.”
모니카가 신이난듯 떠들어댔다.
“니들 이런 고기 처음 보지? 여기 봐봐. 비계도 붙어있어.”
때마침 리안이 달궈진 석쇠에 고기를 올렸다.
치이이익.
고기 익는 소리와 함께 향기로운 냄새가 피어올랐다.
사람들은 저마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냄새 좋은데? 이런 냄새 처음 맡아봐.”
“냄새가 달아. 모니카, 혹시 귀족들이 먹는 고기 사왔어?”
“몰라. 회장 님이 알아서 사왔어.”
“닭고기야?”
“돼지.”
“세상에 돼지고기를 생으로 구워먹는 날이 올줄이야. 아흐 기대돼. 벌써 침 고여.”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리안은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고기를 노릇노릇하게 구워나갔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54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
화창한 정오.
황도의 어느 거리.
수송마차 한대가 철제 우리에 갇힌 켄타우로스를 싣고 노예시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켄타우로스의 이름은 폰타나.
쇠창살에 갇힌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인간들 천지였다.
우리에 갇힌 자신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들.
인간의 도시.
그녀는 모든게 끝났음을 실감했다.
‘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무력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힌 켄타우로스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신음했다.
시작은 마왕 반데어자르가 나타나면서부터다.
녀석은 족장에게 압박을 가해 폰타나가 속한 ‘빗물족’이 인간과 싸우도록 만들었다.
빗물족은 부족의 모든 힘을 동원해 동쪽 어느 왕국의 왕을 해치웠다.
그정도 했으면 끝난줄 알았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마왕 반데어자르를 충분히 만족시켰다고 판단하며 빗물족은 거기서 멈춰섰다.
그러나 화가난 인간들이 복수를 해왔다.
그들은 몇달 후 엄청난 수의 병력을 앞세워 빗물족을 철저히 괴멸시켜버렸다.
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어떤 용사까지 껴있었다고 한다.
폰타나는 가족과 친구들을 전부 잃었다.
이후 전쟁 포로가 된 그녀는 노예상인에게 팔리는 처지가 되었고, 현재 이곳 웨르타뉴 제국의 수도 브라간스트까지 끌려오게 되었다.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해.’
그녀는 켄타우로스 빗물족의 강인한 여전사였으나 전쟁의 참상을 겪고 난뒤로 정신적 공허함에 빠지게 되었다.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전쟁의 모순.
복수의 악순환을 낳는 전쟁에 환멸을 느꼈다.
그런 까닭에 앞으로는 조용히 은거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산속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어차피 갈곳도 없고 찾는 이도 만나야할 이도 없는 외톨이 신세.
집착과 욕심없이 자연속에 묻혀서 산수를 즐기며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그 소박한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다.
다시 말해 그녀는 앞으로 자유가 없는 노예의 삶을 살아야했다.
그저 암울했다.
“내려.”
수송마차는 어느새 노예상인들이 즐비한 골목에 멈춰서 있었다.
쇠창살이 열리고 중년의 노예상인이 손짓했다.
“내리라고.”
그가 목에 걸린 밧줄을 잡아당겼다.
올가미가 꽉 조여지면서 숨을 압박했다.
폰타나는 네 발로 일어나 묵묵히 마차에서 내렸다.
노예상인은 갑자기 그녀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퍽!
“큭!”
“말 좀 잘 들어라. 빠릿하게 행동하란 말이야.”
노예상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가게쪽을 쳐다봤다.
가게문이 열리며 젊은 사내가 뛰쳐나왔다.
그의 조수였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사내는 폰타나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오, 켄타우로스! 상체는 진짜 사람 같이 생겼네요. 헉! 저 가슴 좀 봐. 젖통 끝내주네.”
노예상인이 사내의 머리를 툭 때렸다.
“빨고 싶냐? 어? 빨고 싶어? 처맞기 전에 빨리 끌고 가.”
노예상인은 그에게 밧줄을 건네주고 가게안으로 들어갔다.
“사람 머리는 왜 자꾸 때려. 제기랄.”
사내는 가게쪽을 향해 손가락 욕을 날린 후 폰타나를 돌아봤다.
“따라와.”
폰타나는 젊은 사내를 따라 노예들이 갇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주인 님께서 널 얼마에 사셨을라나. 엄청 비싸게 줬겠지?”
사내는 중간중간 폰타나를 힐끔힐끔 훔쳐봤다.
그도 그럴것이 폰타나는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붉은색 털을 지니고 있었다.
허리까지 길게 자란 붉은 머리카락하며 발목에서 발굽까지 자란 붉은털 그리고 붉은 꼬리털까지.
사람의 머리카락보다 더욱 윤기가 나고 굉장히 예뻤다.
붉은털을 제외한 몸통 부분은 온통 하얀 것이 백마와 꼭 닮았다.
사람을 닮은 상체는 백인 여자의 피부였다.
허름한 갈색 탱크탑을 입고 배꼽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얏.”
폰타나의 외모에 넋을 잃고 걸어가던 사내는 실수로 그만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오 아파라……”
그가 아픈 이마를 어루만지는 사이 폰타나는 불현듯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충동적으로 치솟았다.
인간들과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느낌상 한번 들어가면 절대 헤어나올 수 없는 곳으로 끌려 가는 것 같았고, 지금 이 순간 도망치지 않으면 이 순간을 평생 후회할 듯싶었다.
‘살고 싶어!’
잠시 잃어버렸던 생존본능을 되찾은 그녀는 방심하고 있던 사내의 밧줄을 빼앗고 그를 걷어차버렸다.
“끄아악!”
그녀가 갑자기 난동을 부리자 주변에서 감시하고 있던 사내들이 소리쳤다.
“잡아!”
“창으로 위협해!”
“몸에 상처나면 안돼! 가치가 떨어져!”
다섯명의 사내들이 순식간에 그녀를 둘러쌌다.
하지만 켄타우로스족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가지고 있는 힘이 대단했다.
그녀는 사내 두 명을 번개처럼 쓰러뜨린 후 길이 열리자 곧바로 도주했다.
“골목 밖으로 빠져나갔어요! 빌어먹을!”
“저게 얼마짜린데 큰일났네!”
“어서 주인 님께 알려!”
사람들은 그녀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식을 접한 노예상인은 대노하며 곧장 치안대장 조레비치를 찾아갔다.
“제가 데리고 있던 켄타우로스가 도망쳤습니다! 빨리 병사들을 풀어 잡아주십시오!”
“거 관리 좀 잘하지 귀찮게 하네.”
조레비치는 투덜거리며 병사들을 소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치안대원들이 도시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여긴 인적이 드물군. 잘됐어.’
추적을 피해 달아나던 폰타나는 이윽고 도시에서 가장 외진 곳에 도착했다.
대형 창고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건물뒤에 숨어 주변을 유심히 관찰했다.
다행히 자신을 쫓아오는 자는 없었다.
도시 한복판에서부터 숨가쁘게 도망쳐온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두워질때까지 여기서 시간을 때워야겠어.’
밤에 성벽을 넘어 도시를 탈출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결정하고 한동안 조용히 숨어있는데, 문득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군침이 꿀꺽 도는 아주 맛있는 냄새였다.
‘고기 냄새……?”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고기맛이 떠오르며 자연스레 식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덩달아 뱃속이 난리를 쳤다.
꼬르륵.
꼬르륵!
꼬르르륵!
그렇지 않아도 노예상인놈이 아침에 한끼 밖에 주지않아 뱃속이 비어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한주먹도 안되는 소량만 줬었다.
“기운이 넘쳐흐르면 도망갈 궁리밖에 안해. 조금씩만 줘.”
“예!”
폰타나는 아침의 일을 회상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조용히 숨어 있고 싶은데 향기로운 고기 냄새가 자신을 유혹하듯 계속해서 풍겨왔다.
‘어디서 뭘 먹고 있는 것인지 잠깐만 살펴보고 오자.’
결국 그녀는 고기의 유혹에 못이겨 자리를 이탈하고 말았다.
* * *
“자 다 됐습니다.”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고기를 접시 두 개에 나눠 담았다.
하나씩 식탁에 내려놓자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진다.
“하…… 냄새 미치겠다. 개맛있을 것 같아.”
야네트는 못 참겠다는듯이 수저를 들었다.
고기를 수저에 담아 한 입 먹어보더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아……! 입속에서 녹아내리네.”
그녀를 멍하니 지켜보던 베라가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진짜 맛있어?”
“오줌지릴 정도로 맛있어. 빨리 먹어봐.”
“그래?”
다른 사람들도 재빨리 수저를 들었다.
“기대된다!”
“나도 먹어볼래!”
“지금 먹으면 돼요?”
“야야 그냥 먹으면 안돼! 이거랑 같이 먹으래!”
모니카는 후다닥 뛰어와서 씻은 상추의 물기를 털고 빈 접시에 올려놓았다.
상추 씻는 일을 끝낸 그녀도 자리에 앉았다.
리안은 암염을 갈아만든 소금 접시를 식탁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다들 잠깐만요.”
그의 한마디에 모두의 손길이 멈칫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응시했다.
빨리 말하라는듯이 짜증을 내는 눈길도 있었고, 아무 생각없는 눈길도 있었고, 호기심 어린 눈길도 있었다.
리안은 폭동이 일어나기 전에 얼른 시범을 보였다.
“절 따라해보세요. 우선 고기를 하나 집어서 소금에 찍고……”
그대로 상추에 싸서 먹었다.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사람들을 향해 웃어보였다.
“이런식으로 먹어야 맛있습니다. 채소랑 같이 먹으니 건강에도 도움되고요.”
고추장이나 쌈장이 있으면 좋겠지만 만드는 법을 몰랐다.
최대한 한국식으로 먹으려면 그나마 소금을 찍어먹는 수 밖에 없었다.
“고기가 굉장히 비싸보이는데 돼지의 어느 부위죠?”
베라의 남편 케이로스의 물음에 리안이 대답했다.
“돼지 옆구리살입니다. 보통 삼겹살이라고 부르죠.”
사람들은 리안이 가르쳐준대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한 손에 상추를 들고, 수저로 고기를 떠서 상추에 내려놓은뒤, 수저로 소금을 살짝 퍼서 고기 위에 톡톡 털어내듯 뿌렸다.
가장 먼저 입에 쌈을 넣은 히메나가 눈을 크게 떴다.
“오……! 겁나 맛있어!”
곧이어 다른 사람들도 각자 쌈을 입에 넣었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쏟아졌다.
“고기를 소금에 찍어먹으니까 완전 맛나네. 이봐, 회장님. 당신 요리사 출신이야?”
야네트의 질문에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요리는 전혀 못해요. 고기만 구웠을뿐입니다. 굽는건 쉽잖아요.”
모니카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행복한지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상추에 싸먹는 조합도 괜찮은데?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니까 먹기가 훨씬 좋아.”
케이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고기만 먹으면 속이 좀 부딪히는 감이 없잖아 있는데 상추랑 싸서 먹으니까 소화가 잘되는 느낌이네요.”
히메나는 고기를 꼭꼭 씹어먹은뒤 곧바로 상추만 집어서 입속에 넣었다.
“난 상추만 먹어도 맛있는 것 같아. 이 상추 잘 키웠다. 어디서 산거지?”
아이들도 빨리 먹고 싶어 죽겠나보다.
엄마인 베라를 연신 보챘다.
“엄마, 엄마, 나도 줘!”
“나도! 나도! 나 먼저 줘!”
“자자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부터 줄거예요.”
베라는 아이들에게 하나씩 쌈을 싸서 먹인뒤 뒤늦게 삼겹살을 맛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찬사가 흘러나왔다.
“이런 고기는 난생 처음 먹어보네요! 되게 맛있다!”
케이로스가 리안을 돌아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동안 제 안사람한테 고기 다운 고기를 한번도 못 사줘서 가슴이 아팠는데 회장 님 덕분에 소원을 풀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실은 저도 얻어 먹는 중입니다. 고기값은 모니카가 냈거든요.”
리안이 너스레를 떨자 한바탕 웃음이 일었다.
모니카가 입을 열었다.
“삶이 다 그렇지. 귀족들 말고 누가 제대로된 고기를 먹고 살겠어. 유통기한 지난 퍽퍽한 훈제나 먹고 사는게 아랫사람들 인생이잖아.”
야네트가 고기를 쫙쫙 씹어먹으면서 모니카를 쳐다봤다.
“야, 술 안줘?”
“술? 아 그렇지 술! 깜빡했다. 잠깐만 기다려. 저기 있어.”
“아 눈치 없는 년. 말하기 전에 즉각즉각 대령했어야지. 회장 님 앞에서 나만 술에 환장한 년으로 보이잖아.”
“아이구 우리 주정뱅이 술 참느라 혼났어?”
모니카는 손에 들고 있던 쌈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안도 같이 일어나 그녀와 함께 짐마차의 짐칸에서 술통을 들고 돌아왔다.
이내 술판이 벌어졌다.
리안은 틈틈이 고기를 구우면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는 모두와 말을 놓을 정도로 친해졌고, 각자 살아온 과정을 들어가며 끊임없이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술이 다 떨어졌다.
“내가 잽싸게 사올게!”
모니카가 짐마차를 타고 가서 술을 사오겠다며 일어섰다.
저녁이 되려면 한참 남은 낮시간이었다.
리안도 따라갔다올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문득 베라와 케이로스의 아이들이 근처를 가리켰다.
“엄마, 저게 뭐야?”
“우와, 말처럼 생긴 인간이다!”
모두의 시선이 아이들이 가리킨 방향을 쳐다봤다.
취기 어린 시야에 커다란 덩치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헛것인줄 알고 눈을 비볐다.
그러나 헛것이 아니었다.
여자들은 화들짝 놀라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리안은 그것을 보고 술이 확 깼다.
“저게 왜 여기에……?”
10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에 켄타우로스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중이었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55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목에 올가미가 걸린걸 보니 주인이 있는 노예가 분명해. 어쩌지?”
모니카의 말에 야네트가 식탁에 있는 나이프를 슬그머니 집어들었다.
“잡자.”
히메나도 슬쩍 나이프를 집었다.
“난 뒤치기 할게.”
베라는 황급히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이, 일단 가만히 지켜보는게 어떨까? 그냥 갈지도 모르잖아.”
케이로스는 리안과 이야기했다.
“왜 우리를 보는걸까요?”
“고기 냄새를 맡고 온 것 같습니다. 짐승들은 코가 예민하잖아요.”
“고기 좀 던져줄까요?”
“내가 갔다오겠습니다.”
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켄타우로스에게서 살기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공격할 의도는 없어보인다.
십중팔구 고기 굽는 냄새를 맡고 이곳까지 이르게된게 아닐까?
리안은 고기에 살짝 소금을 찍고 상추에 싸서 쌈을 쌌다.
‘요거 먹고 조용히 가주길.’
한손에 쌈을 쥐고 천천히 다가갔다.
켄타우로스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으나 여전히 적의는 없다.
녀석의 시선은 손에 쥔 쌈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역시 배고픈가?’
좋아, 부드럽게 가보자.
“배고파서 왔어?”
“……!”
켄타우로스가 깜짝 놀란다.
“…우리 말을 할줄 아는가?”
“아니.”
“하고 있잖아.”
“너희 말처럼 들릴 뿐이야. 켄타우로스도 언어가 있는지 몰랐어.”
켄타우로스는 이해가 잘 안간다는 표정으로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난 리안. 네 이름은?”
“폰타나.”
“그래, 폰타나. 혹시 배고파서 왔어?”
폰타나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입술을 열었다.
“주변에서 음식 냄새가 나길래 어디서 나는 것인지 보러온 것 뿐이다.”
그녀의 말에 리안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별일 아니여서 다행이네. 난 또 무슨 일이 있는줄 알았잖아.”
리안은 대뜸 쌈을 내밀었다.
“자, 이거 먹어.”
그러자 폰타나는 뒤로 물러서며 리안을 경계했다.
“달라고 안했다.”
“괜찮아.”
리안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옛부터 음식은 이웃과 나눠 먹으라고 했어. 이거 먹고 저기 앉아서 같이 식사하자.”
폰타나는 불안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왠지 함정 같군.”
“계속 고기만 먹고 있었는데 무슨 함정이야.”
리안이 웃었다.
폰타나는 계속 경계하는 시선으로 여기저기 구석구석 살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달라는듯이 손을 내밀었다.
“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밝게 미소지었다.
“고기를 받았어. 잘되는 중인가봐.”
“저 켄타우로스랑 회장 님이 뭐라고 말하는지 들려?”
“작아서 하나도 안들려. 회장님이 뭐라고 말했을까?”
“빨리 처먹으라고 했나보지.”
“야.”
“하하하, 야네트 때문에 배꼽 빠지겠다.”
사람들이 수다를 떠는 사이 폰타나는 손에 쥔 쌈을 빤히 응시하기만 했다.
“식기 전에 어서 먹어.”
리안이 권하자 폰타나는 그의 눈을 마주보며 조심스레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
제일 먼저 신선한 채소의 식감이 느껴졌다.
뒤이어 잘 익은 고기의 육즙이 입안에 퍼졌다.
짭쪼름하면서 고소했다.
생각보다 맛이 좋아 폰타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맛있어.’
그녀는 조금만 뜯어먹은 쌈을 재차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모조리 입안에 넣었다.
뺨이 볼록하게 부풀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났다.
생으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게다가 배고플때 먹으니 그 맛이 더욱 황홀했다.
‘인간들은 매일 맛 좋은 음식을 먹어서 싸움을 잘하는 것일까?’
이 음식 맛은 켄타우로스족들은 결코 접해보지 못한 훌륭한 맛이었다.
경이로웠다.
“맛있지? 이쪽으로 와서 우리랑 같이 먹어.”
리안은 사람들이 모여앉아있는 식탁쪽으로 걸어갔다.
“이리 와.”
그녀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폰타나는 입안에 든 음식물을 순식간에 먹어치운뒤 식탁에 놓인 고기들을 바라보았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더미가 침샘을 자극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못참겠어.’
폰타나는 주저하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리안에게 다가서려는 그때였다.
“저깄다!”
“대장님! 켄타우로스가 시민들이랑 가까이 있습니다!”
“뭣이? 어서 포획해!”
“예!”
길 저편에서 무기를 든 병사들이 우르르 뛰어오는 중이었다.
폰타나는 그들을 보자마자 일체의 망설임 없이 반대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말처럼 빠르고 점프력이 좋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저 멀리 사라졌다.
“젠장!”
병사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잡으려면 말이 있어야겠어!”
“기마대! 기마대! 저쪽으로 갔다!”
병사들은 서둘러 폰타나를 뒤쫓았다.
리안과 동료들은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치안대장 조레비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괜찮소?”
바쁘게 달려온 조레비치는 잠시 숨을 헐떡 거렸다.
숨을 고르며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리안을 보고는 눈을 크게떴다.
“어라? 팔씨름쟁이 김리안이가 여기 왜 있어?”
“안녕하세요.”
리안은 그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요 앞에 있는 창고가 제 가게입니다.”
“아하, 연다던 가게가 여기였어?”
이후 두 사람은 편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리안은 폰타나와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했고, 조레비치는 폰타나가 노예시장에서 탈출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고기 냄새에 이끌려 왔다고? 호오, 그러고 보니 냄새가 좋네. 나도 줘봐!”
리안은 고기를 한 점 집어서 조레비치에게 건넸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앙 고기를 받아먹었다.
우물우물.
눈이 커지고,
실실 웃음기가 돌더니,
엄지를 추켜세웠다.
“맛 죽이네!”
그는 갑자기 혁대를 풀고 앉더니 추격도 잊은 채 고기를 마구 집어먹기 시작했다.
“이 친구 농사일만 잘하는줄 알았더니 요리도 잘하네. 대단해. 와하하하!”
조레비치가 합석하면서 회식 자리는 금세 파투 분위기로 흘렀다.
모니카는 메건 부인의 딸이라 그와 그나마 말을 섞긴 했지만 평민 신분인 베라, 케이로스, 야네트, 히메나는 도시의 치안대장과 어울리기가 불가능했다.
네 사람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리안과 조레비치의 대화를 잠자코 지켜봐야만 했다.
“아따 술이 없는게 아쉽구만!”
조레비치는 쩝쩝 소리내면서 말하더니 리안을 쳐다봤다.
“이봐, 양배추 농사는 잘되고 있지?”
리안은 뭔 소린가 싶어 숟가락질을 멈췄다.
“양배추 농사라뇨?”
“내가 살 양배추 말이야. 이번엔 몇 평이나 심었어?”
“하나도 안심었는데요?”
조레비치는 먹으면서 쩝쩝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잠시 그의 쩝쩝 소리만 들리며 정적이 흘렀다.
돌연 그가 벌떡 일어섰다.
“하나도 안심으면 어떡해! 내 위장은 어쩌라고!”
호통을 치는 그에게 리안은 양손을 펼쳐보였다.
“심을데가 있어야죠.”
“메건 부인 텃밭은!”
“그게 제껀가요? 부인께서 다른거 심었습니다.”
“그 부인 실망이구만! 그럼 자네 땅은?”
“귀족도 아닌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땅을 가져요.”
리안은 생각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정 필요하시면 땅 좀 빌려주시던가요.”
“뭐야?”
정말 농담삼아 한 말이었는데 조레비치의 태도가 사뭇 진지해졌다.
“빌려주면 잘할 수 있어?”
그후 한동안 양배추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아울러 조레비치가 고기를 다 먹어 치우면서 ‘김리안 상회’의 첫번째 직원 회식은 어이없게 끝이났다.
* * *
초저녁.
훅스 가로 돌아가는 길.
리안이 모는 짐마차가 성문에 이르렀다.
“우리 나가요~”
모니카는 경비병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자주 드나드는터라 성문 경비병들과 제법 안면이 텄다.
훅스 가의 딸과 손님이라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경비병들은 통행증도 검사하지 않고 어서 나가라는듯이 손짓을 했다.
“조심해서 돌아가.”
“예~”
“수고하세요.”
짐마차는 성문을 빠져나와 산길로 접어들었다.
“배부르니까 졸리다.”
모니카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마부석에 편히 등을 기댔다.
그녀는 곧 조레비치 때문에 회식을 제대로 못했다며 투덜거렸다.
“그 아저씨 진짜 말 많고 눈치 없더라. 적당히 먹고 갈 것이지 어떻게 다 먹어치울 수가 있어? 하튼 귀족들은 지들만 알아. 완전 지들 세상이야.”
리안은 고삐를 쥔 채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혹시 마차에 뭐 실었어? 무거운거.”
“실은거 없는데? 왜?”
“이상하네.”
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차를 모는 느낌이 평소와 달랐다.
“마차가 잘 안나가. 평소보다 느려.”
리안의 말에 모니카는 뒤를 돌아보았다.
짐칸을 덮은 검은천이 보였다.
천을 살짝 들어보자 보이는 건 평상시에 들고다니는 옷가지들과 물통, 농기구, 빈 나무상자, 신발 같은 잡동사니들 뿐이었다.
“취해서 그런 것 아냐?”
“술은 아까 깼어. 에이 됐다. 아무것도 아니겠지.”
리안은 기분탓이라고 생각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근데 그 켄타우로스 잡혔을까?”
“잡혔을거야. 황도 경비가 얼마나 삼엄한데.”
“착해보였는데 불쌍하네.”
“아마 지금쯤 채찍으로 맞고 있을걸.”
모니카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먼 풍경을 바라보았다.
“노예상인들은 도망치다 걸린 노예한테는 되게 가혹하거든. 며칠씩 굶기고 그래.”
“어쩌다 노예가 됐을까? 생긴건 굉장히 아름답게 생겼던데.”
“켄타우로스족은 인간의 적이야. 엘프나 드워프는 인간과 함께 싸워주는데 걔들은 마족한테 붙었어.”
“아…… 그랬어?”
“자기는 전쟁에 관심없어서 몰랐지?”
“농부가 농사나 잘 지으면 되지.”
“그건 그래.”
모니카는 웃으며 입술을 들이밀었다.
리안의 뺨에 쪽하고 뽀뽀했다.
“농사 짓는 자기가 기사들보다 수만배는 더 멋있어.”
리안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말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우리 요즘 너무 가까워진 것 같아. 스스럼 없이 뽀뽀하고, 스스럼 없이 아무데서나 하고.”
모니카가 화를 냈다.
“할것 다 하고 뭔 개소리야? 또 고향 여자 얘기 꺼내면서 순정남처럼 굴려고?”
그녀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리안이 피식 웃었다.
“당신을 좋아하게될까봐 무서워서 그러지.”
“듣던중 반가운 소리네.”
모니카는 그를 와락 껴안으며 기뻐했다.
“고향따위 잊어버리고 나한테 푹 빠져버려. 나같은 현모양처가 어딨어? 해달라는건 다 해주잖아.”
“맞아, 그렇긴 하지……”
리안은 말끝을 흐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 정 들면 안되는데…… 큰일이야, 점점 정들어서. 나중에 쉽게 떠날 수나 있을런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리안이라고 했나?”
“응.”
모니카인줄 알고 얼결에 대답했다.
“배고픈데 뭐 먹을 것 좀 없을까?”
“응?”
아까 회식때 실컷 주워먹고서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뱃속에 거지가 들었어?”
리안은 무심코 대꾸하며 옆자리에 앉은 모니카를 쳐다봤다.
모니카는 뒤를 보며 놀라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그의 한쪽 어깨를 막 흔들었다.
“저, 저것 봐……!”
“왜?”
리안은 뒤를 돌아보고 기겁했다.
말만한 크기의 켄타우로스가 짐칸에 네 발로 서 있는게 아닌가!
“포, 폰타나!?”
폰타나는 달리는 마차 위에서 안정감있게 선 채 리안에게 보란듯이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배고프다. 아까 줬던 고기 또 없어?”
당황한 리안은 즉시 고삐를 잡아당겼다.
푸히힝!
말들이 투레질을 하며 마차가 멈춰섰다.
그 자리에서 긴급 면담이 이루어졌다.
“마차에 언제 탔어?”
“병사들을 따돌리고 나서 탔다.”
“그게 언제인데?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리안은 미간을 구기며 머리를 박박 긁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폰타나는 병사들에게 쫓기고 있다.
‘어쩌지?’
신고해야 되나?
아니면 도망가게 놔둘까?
모니카는 그를 쳐다보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데, 뭔데? 둘이 무슨 얘기하는 건데? 난 당신 말은 들려도 켄타우로스 말은 전혀 알아 들을 수가 없단 말이야. 나한테도 설명해줘봐. 지금 무슨 이야기 하고 있어?”
“기다려. 우선 대화 좀 해보고.”
리안은 깊게 한숨을 내쉰뒤 짐칸에 서 있는 폰타나를 올려다봤다.
“당신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 아무한테도 얘기 안할테니까 여기서 깔끔하게 헤어지자.”
밥 달라고 하는 켄타우로스를 쫓아내는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치안대에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일만 복잡해진다.
“어서 떠나.”
“……”
폰타나는 무표정으로 리안을 응시했다.
“알겠다.”
담담하게 대답한 그녀는 민첩하게 짐칸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바닥에 착지하면서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녀는 제대로 발을 딛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꽈당!
“크앗!”
“어머, 왜 저래?”
모니카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리안은 황급히 마부석에서 내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폰타나의 상태를 살폈다.
뒷다리에 화살 두 발이 깊게 박혀 있었다.
발목에 자란 아름다운 붉은털이 흘러내린 피에 젖어서 살갗에 달라붙은 상태였다.
“출혈이 심하네.”
리안은 혀를 찼다.
폰타나는 통증에 힘들어하면서도 애써 씩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 가라. 아까는 고마웠다. 고기 맛있었어.”
뜻밖에도 그녀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심금을 울렸다.
거기에 그녀의 불쌍한 처지까지 겹치니 이거야 원, 모른체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다.
그리고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처음 보는 인간한테 밥을 달라고 했을까……
‘불쌍한 켄타우로스를 버리고 갔다간 오드리아 님한테 혼날 듯싶기도 하고. 후, 어쩌지.’
머릿속에서 불쑥 회초리를 든 오드리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리안아, 난 너를 그리 가르치지 않았다!’
결국 리안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생각을 달리 먹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혼자 애쓰는 폰타나를 서둘러 부축했다.
“날 따라와. 상처가 나을때까지 돌봐줄게.”
“방금전에 떠나라고 하지 않았나?”
“다쳤는데 어떻게 버리고 가?”
그녀도 내심 도움을 바랐던 것일까.
폰타나는 고맙다며 그의 호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리안은 폰타나를 짐칸에 태우고 다시 짐마차를 몰았다.
* * *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숲길.
조금 있으면 훅스 가의 저택에 도착한다.
폰타나를 어디에 숨길지 궁리하던 리안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로 밭을 가는 것처럼 폰타나의 몸에 쟁기를 매달고 밭을 갈면 참 편리하겠다.’
오천평 땅을 갈아엎을때 돌쇠랑 둘이 하는 것보다 셋이 하는게 시간이 더욱 단축되고 일도 편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꾼은 많을수록 좋다.
폰타나의 도움을 받으면 꽤 괜찮겠다 싶었다.
폰타나를 부려먹을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그저 직업병이랄까.
소처럼 네 발이 달리고 힘 좋게 생긴 폰타나의 몸을 보자 무심코 떠오른 생각이다.
‘도망자만 아니었어도 좋았을텐데. 쯧.’
리안은 아쉽다며 혀를 끌끌 찼다.
그는 잠시 후 훅스 가를 그대로 지나치며 허수와 돌쇠가 기다리는 오천평 땅으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폰타나를 숨길 곳은 그곳 뿐이었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56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아플거야. 꾹 참아.”
리안은 오천평 땅에 도착하자마자 폰타나에게 재갈을 물렸다.
상처를 벌리고 뒷다리에 박혀있는 첫번째 화살을 움켜쥐었다.
“간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숨에 뽑아버렸다.
“하으으윽!”
그녀는 입에 천을 문 채 비명을 내질렀다.
리안은 아픔이 줄어들는걸 기다리지 않았다.
곧바로 두 번째 화살을 잡고 그대로 뽑아버렸다.
“꺄으으으아!”
비명이 한층 더 커졌다.
그녀는 인상을 찡그리며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허억! 허억!”
눈을 부릅뜬 채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숨을 거칠게 몰아 쉬었다.
“잘 참았어.”
리안은 서둘러 손을 움직였다.
미리 준비해둔 빻은 약초를 상처 부위에 붙이고 붕대를 칭칭 감아 지혈을 했다.
폰타나의 얼굴을 쳐다보자 눈이 반쯤 풀린 것이 정신이 혼미해보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피를 많이 흘렸다.
그녀에게 수분을 보충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마차로 뛰어가서 물을 가져왔다.
꿀꺽 꿀꺽.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 폰타나는 물이 든 가죽주머니를 금세 비워버렸다.
“집에서 먹을 것 좀 가져와야겠어.”
모니카가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폰타나가 쫓기는 처지라는 것을 알고도 도와주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폰타나를 크게 걱정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중이었다.
“나도 예전에 행상인 처음할때 많이 쫓겨봤거든. 법을 어기지 않고선 장사를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그런지 범죄자들을 봐도 둔감해. 물론 이 켄타우로스는 억울하게 끌려온 노예겠지만 아무튼 난 죄의식이 무뎌졌어. 그리고 그 당시 모르는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았던 추억이 생각나는 것도 한몫했고.”
리안은 허수와 돌쇠에게 폰타나를 맡긴뒤, 잠시 모니카와 함께 훅스 가의 저택에 가서 먹을 것을 가져왔다.
“천천히 먹어.”
“좋은 냄새……!”
꼬르륵!
폰타나는 의식이 흐렸음에도 음식 냄새를 맡자 본능적으로 입속에 쑤셔넣기 시작했다.
차갑게 식어버린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굶주린 배를 채우고 나자 그녀는 이내 잠들어버렸다.
리안은 그녀의 커다란 몸을 천으로 덮어준 후 허수를 바라봤다.
“내일 아침에 올테니까 잘 보고 있어.”
“알겠다, 주인.”
이어 돌쇠를 돌아봤다.
“돌쇠 너도 허수랑 같이 잘 지켜.”
돌쇠가 한 손을 들어보이며 바위로 된 몸을 덜덜 떨었다.
-우우우웅.
“내일 보자.”
두 마물과의 작별인사를 끝으로 리안은 모니카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갔다.
폰타나가 내일 무사히 깨어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 * *
다음날.
폰타나가 깨어났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온통 밭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뒷다리에서 리안이 새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미소지었다.
“정신이 들어? 몸은 어때?”
“다리가 아픈 것 말고는 그럭저럭…… 콜록! 콜록!”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나서 다시 말했다.
“여긴 어디지?”
“내 밭이야. 마땅히 숨길 곳이 없어서 이곳으로 데려왔어.”
“그대의 밭이라고……? 농부인가?”
“응.”
리안은 붕대의 매듭을 짓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의 상처가 나을때까지 여기서 지내도록 해.”
기댈 곳이 없는 상황에 리안의 말은 폰타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걸리는게 있었다.
“두렵지 않나? 난 인간들에게 쫓기고 있다.”
“알아, 얘기 들었어. 노예로 팔려왔다가 도망쳤다며?”
“그래……”
폰타나는 침울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안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인간들한테 칼을 겨누지마. 고향에 돌아가거든 전쟁에 참전하지 말고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봐. 그러라고 위험을 감수하고 도와주는거니까.”
폰타나는 그의 말을 두 번 세 번 되새겨 보았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들어주기 힘든 요청이었다.
“…나혼자서 우리 종족 전체를 설득하는건 힘들다.”
“아, 그렇게 들렸어? 미안. 열사가 되라는 소리가 아니야. 네 종족을 설득하든지 말든지 난 관심없어. 난 그저 내가 널 구해줬듯, 너도 나중에 곤경에 처한 인간을 보거든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란 소리야. 서로 돕고 살면 좋잖아.”
“……”
폰타나는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이 사람은 착해.’
근래들어 전쟁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된 그녀는 왠지 그와 마음이 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전쟁이라면 지긋지긋 해.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냈으면……’
그녀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대가 원하는대로 해주고 싶지만 난 돌아갈 곳이 없어. 우리 부족은 전멸했다.”
“돌아갈 곳이 왜 없어? 부족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새로운 부족에 들어가면 그들에게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업적을 쌓아야할거야.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가해서 공을 세워야하는 일이 발생하겠지. 내 힘을 증명하지 못하면 서열에서 밀려나게 되고 굴욕적인 삶을 살게될 것이다. 그것이 켄타우로스 부족이 다른 부족에서 온 켄타우로스를 취급하는 방법. 같은 부족민에게는 관대하되 외부에서 온 자들에게는 모질게 군다. 능력이 우수하지 못하면 도로 쫓아내거나 죽임을 당하지.”
“꼭 사자나 늑대 무리를 보는 것 같군.”
“종족 번영을 위해 우수한 유전자만 골라 받으려는 우리 켄타우로스들의 지혜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나는 한때 전쟁을 찬양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생각이 달라졌다. 전쟁은 허무해. 이딴 생각으로 새 부족에 들어가봤자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게 뻔하다.”
외로운데다 아파서 마음이 약해진걸까.
리안이 내민 따뜻한 손길에 쉽게 마음을 열며 그녀는 진심을 털어놓았다.
“아무도 만나기 싫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평생 홀로 지내고 싶다. 세상을 등지고, 평화롭게, 조용한 곳에서.”
“……”
리안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대로 해.”
그는 화제를 전환하듯 목소리 톤을 밝게 냈다.
“복잡한 생각일랑 접고 집이나 짓자.”
“무슨 집……?”
“네가 살 집. 지금부터 만들거야.”
집을 지어준다니까 그녀가 놀란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진심이지 뻥이겠어?”
“어째서……?”
“맨바닥에서 잘수 없잖아. 그리고 집이 있어야 사람들 눈에도 덜 띌테고.”
리안은 곧바로 집짓는 일에 착수했다.
짐마차의 짐칸으로 향했다.
애초에 집을 지어줄 작정으로 톱과 밧줄 같은 것들을 잔뜩 싣고 왔다.
원래는 모니카도 같이 오고 싶어했으나 그녀는 황도에 있는 가게를 봐야해서 같이 못왔다.
“르리!”
그때까지 밭에서 벌레를 잡고 있던 향단이가 날아왔다.
장비 나르는 것을 낑낑대며 도왔다.
폰타나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터도 없는데 집을 어디에 짓겠다는 거지?”
“오해 마. 크게 지을 생각은 없으니까.”
오천평 땅 구석에다 2평 남짓한 오두막을 지을 계획이었다.
공간이 작아서 딱 누울 자리 정도 밖에 안나온다.
불편하겠지만 철거를 염두해두고 임시로 짓는거라 어쩔 수 없다.
낮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있으니 종일 그 안에서 지내라고 할 생각이었다.
밤에는 나와서 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고.
“허수는 폰타나 옆에 붙어있고 돌쇠는 따라와.”
돌쇠를 데리고 근처 숲으로 가서 나무를 잔뜩 베어왔다.
우선 집의 기둥부터 세웠다.
돌쇠를 시켜 나무 기둥을 네 군데 세우고 통나무를 하나씩 위로 쌓기 시작했다.
통나무와 통나무 사이를 밧줄로 꽁꽁 묶은뒤 대충 진흙을 발라 그럴싸한 벽을 만들어 나아갔다.
그런식으로 리안이 집을 짓는 동안 폰타나가 가끔씩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그녀는 리안에게 일을 시켜서 미안해하는 듯했다.
“나도 도와주겠다.”
“아냐, 저기 가서 쉬고 있어.”
“가만히 보고 있기가 힘들다.”
“걱정마. 잘 지어줄 생각도 없으니까. 다리만 나으면 바로 허물 오두막집이야.”
얼마 후 벽을 완성한 리안은 지붕 공사를 시작했다.
돌쇠를 밟고 천장에 올라가 나무막대기 여러개로 삼각형 모양의 지붕 뼈대를 만든뒤 그 위를 수십장의 커다란 잎사귀로 빽빽하게 뒤덮었다.
노을이 질 무렵 마침내 집이 완성됐다.
2평도 안되는 단칸방.
폰타나의 키로는 제대로 서기조차 힘든 낮은 높이의 천장.
집에 들어갈때는 항상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한다.
문은 그냥 천으로 때웠다.
잠금장치도 없이 천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끝.
바닥은 맨땅 위에 마른 지푸라기를 잔뜩 깔았다.
원래는 천을 깔아줄 생각이었으나 폰타나는 찌푸라기에 몸을 비비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따라서 바닥은 그녀의 취향이었다.
“멋지군!”
리안은 뿌듯했다.
집이 아니라 헛간 혹은 마구간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분명 집이다.
보람찬 하루를 보낸 것 같아 즐거웠다.
“나중에 돈 벌거든 근사한 집으로 바꿔줄게!”
리안은 곧바로 자신이 말실수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차차 여기서 살 것도 아닌데 말이 헛나왔네.”
그러자 폰타나가 말했다.
“여기서 살고 싶다.”
“네 집이라니까? 당분간 여기서 살라고 지은 집이야.”
“당분간이 아니라 평생 살고 싶다는 뜻이다.”
“뭐?”
리안은 깜짝 놀랐다.
“내가 혹시 잘못들었나? 농담이지?”
그녀는 이미 결심이 섰다는듯 심지 굳은 눈빛으로 대답했다.
“다시 말하마. 여기서 살고 싶다.”
“뜬금없이……?”
켄타우로스족도 아닌 인간이랑 살겠다고?
아니.
그건 둘째치고 리안은 기쁘기는 커녕 걱정부터 앞섰다.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힘들어. 지금 형편으로는 널 책임질 수가 없어.”
“내가 쫓기는 몸이라서?”
“그것도 그렇지만 나랑 있으면 뭐하게? 나는 가진게 없는 농부야.”
그는 확실히 떼어놓을 생각에 솔직히 말했다.
“널 모시고 살란 소리야?”
“대접 받을 생각 없다.”
그녀는 당당히 말했다.
“나도 일하겠다. 뭐든 다 할테니 여기서 지내게 해줘. 아까 허수한테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허수랑?”
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로 말이 안통할텐데 어떻게 얘기했어?”
“난 마물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아하.”
허수 녀석.
폰타나랑 대체 뭔 얘기를 한거야.
어쨌든 일하고 싶다는 소리에 리안의 귀가 솔깃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만큼 늘 일손이 부족했다.
‘의지가 있다면야 나쁘지 않은데……’
어젯밤에 떠올렸던 밭을 가는 소 생각이 다시금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여기서 살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솔직히 말해봐.”
“두 번 다시 전쟁터에 나가고 싶지 않아. 남은 여생은 조용한 곳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쉽게 결정한 것 아니야?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려고?”
“후회하지 않아. 난 한 번 말하면 반드시 지킨다.”
폰타나는 한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얹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그녀는 눈을 감고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다시 눈을 뜨며 리안을 똑바로 마주봤다.
“나를 치료해주고 나를 위해 집을 지어준 그대의 상냥함이 내 마음을 흔들었어. 떠나기 싫게 만들었지.”
오 마이 갓.
리안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나 때문에?”
의도하지 않았는데 점수를 딴건가?
남의 환심을 사서 기쁘기는 하다.
다만 멋지고, 아름답고, 덩치가 크고, 싸움 잘하게 생겼고, 식비가 많이 나갈 것 같고, 도망자 신세인 켄타우로스를 덥썩 줍기란 몹시 신중해야했다.
“일꾼이 느는건 반갑지만……”
리안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물었다.
“농사일 해본적 있어?”
“경험은 없지만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씩씩한 대답.
그녀의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힘든 일을 시켜도 불평 안할거야?”
“그럴 일은 절대 없다. 그대를 항상 소중히 생각할거야.”
좋구만?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네 다리가 낫거든 날 태우고 다녀줄 수 있어?”
“기꺼이 환영한다.”
앞으로 조금 편해지겠는데?
약간 짓궃게 물어봤다.
“짐마차처럼 몸에 수레를 매달아도 돼? 말들이 짐 운반하는 것 봤지? 그런 역할.”
“……”
이번 질문은 어려운지 생각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녀는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대가 원하면 하겠다. 신세를 지는 몸이니 어쩔 수 없지. 은혜도 갚아야 하고.”
너 합격.
더는 볼 것도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환영한다.”
“날 받아주는건가?”
“응.”
“고맙다!”
그녀는 금세 눈물까지 훔치며 대단히 기뻐했다.
“그동안 외톨이었는데 드디어 마음 붙일 곳이 생겼어……!”
그렇게 폰타나는 향단이, 허수, 돌쇠에 이어 네 번째로 리안 패밀리의 일원이 되었다.
리안 패밀리.
농사에 소질이 있어보이는 될성부른 떡잎들이자 일꾼을 뜻한다.
날이 갈수록 점점 늘어나는 일꾼들.
다음은 또 누구일까?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농사계의 어벤져스라고 쓰면 독자분들이 바로 이해할텐데
어떻게든 다르게 표현할려고 ㅋㅋ
57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
얼어붙은 호숫가의 중심에 자리한 거대한 빙산.
화이트 드래곤의 레어.
오드리아가 눈을 떴다.
“……”
얼음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는 차분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온통 투명한 얼음으로 만들어진 실내.
숨을 내쉴때마다 몸속 깊숙이 서늘한 기운이 들어왔다.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머리도 맑아졌다.
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운했다.
“……”
그녀는 얼음침대에서 내려오다 멈칫했다.
밑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얼어죽은 고니들의 시체가 보였다.
넓은 공간을 메울 정도로 그 수가 상당했다.
“…너희가 날 살렸구나.”
안타까운 광경을 목격하자 잊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부상 당한 마왕과 함께 사라져버린 리안.
뒤를 쫓으려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자신.
“리안……”
그녀의 마음속에 그를 향한 근심과 그리움이 무겁게 자리잡았다.
서둘러 왕과 여왕의 안식처 농장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니들은 극한의 상황속에서도 알을 낳고 죽었다.
몇 마리가 알을 품은채 얼어붙어 있었다.
오드리아는 하나도 빠짐없이 알을 수거했다.
그리고 레어를 빠져나와 왕과 여왕의 안식처 농장을 향해 날아갔다.
대협곡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그곳에 밝은 햇살이 내려쬐고 있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이는 왕과 여왕의 안식처 농장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반년전 마왕과 싸우며 파괴된 흔적들이 전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설마 리안이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안돼……!’
오드리아는 덜컥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황급히 농장에 착지했다.
입안에 머금고 있던 수십개의 알들을 햇볕이 잘드는 양지바른 곳에 놓아두고 즉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리안아!”
그녀는 부서진 오두막집이 있는곳으로 뛰어갔다.
무너져 내린 목재 더미를 치우고 리안의 방이 있던 곳으로 들어가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오래전 그녀가 선물해줬던 상당한 양의 보물자루만 먼지가 쌓인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오드리아는 순간 울컥하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즉시 방을 뛰쳐나갔다.
“리안아!”
리안의 이름을 계속 외치면서 부모님의 묘가 있는 토굴로 내려갔다.
거대한 드래곤의 유골과 자그마한 무덤이 자리잡은 토굴안은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채 잡초만 무성했다.
오드리아는 재차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 아버지……”
그녀는 부모님의 묘에 짧게 절을 올린 후 밖으로 뛰쳐나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안을 숨겼던 참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뛰면서 속으로 간절히 애원했다.
‘제발 있어주렴. 제발……!’
차라리 이 모든 것이 리안의 장난이었으면……
자신을 놀릴 생각에 참호속에 숨어있길 기대했다.
그러나 구덩이가 파여진 참호속 또한 텅 비어 있었다.
“왜 없는거니……”
절망스러웠지만 그녀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곧바로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현실을 부정하며 계속 리안의 장난이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리안아!”
농장 구석구석,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그녀의 눈에는 해맑게 웃는 리안의 모습이 연신 아른거렸다.
“공주님 여기에요! 저 여기 숨어있어요! 하하하!”
“혼내지 않을게! 장난 그만치고 빨리 나오렴! 리안아! 리안아!”
울먹이며 외쳐보지만 돌아오는건 허공속의 메아리뿐, 농장 전체를 아무리 둘러봐도 리안은 보이지 않았다.
“흐흑!”
오드리아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가슴을 움켜쥐고 흐느껴 울었다.
햇빛이 강렬해 땅은 불을 지핀듯 뜨거웠지만 그녀는 눈물이 마를때까지 계속 울었다.
도저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리안을 향한 그리움에 심장 반쪽을 잃어버린 기분이었고, 더불어 찾아온 절망감에 다리가 덜덜떨려 서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한참 후, 눈물을 한바탕 쏟고 나니 점차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었다.
리안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슬픔을 밀어냈다.
그녀는 좌절과 실의속에 빠진 감정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왕은 리안의 칼에 찔리고 나서 텔레포트를 했어.’
오드리아는 즉각 드래곤으로 변신했다.
절벽 밑으로 내려가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리안이 못 올라오는 바람에 밑에서 지내는건 아닌가 했으나 사람 사는 흔적 같은건 보이지 않았다.
뒤이어 봉우리 주변을 벗어나 대협곡 전체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오드리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 저를 도와주세요.’
그녀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방향을 바꿔 날았다.
아주 먼 곳에 왕성이 보였다.
그곳으로 향했다.
* * *
로렐라이 왕국.
왕도 전체가 들끓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래곤이 몇 백년만에 출현한 것이다.
아주 멋스럽게 도시 위를 날고 있었다.
“지, 진짜다! 진짜 화이트드래곤이야!”
상공을 올려다보는 시민들은 일제히 화이트드래곤을 환영하며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실줄 알았습니다!”
“기다렸어요!”
“크흑!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화이트드래곤을 향한 경의.
로렐라이 왕국 사람들에게 다른 드래곤들은 몰라도 유독 화이트드래곤만큼은 남다른 존재였다.
심지어 화이트드래곤을 목격하는 날엔 운수대통한다는 미신까지 있을 정도다.
그들은 화이트드래곤을 고귀하고 우러러 받들어야하는 신성한 존재로 숭배시하며 친근하게 여겼다.
이는 그들의 역사와 화이트드래곤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로렐라이 왕국을 세운 초대왕 베스로탄.
그의 왕비가 화이트드래곤 나즈레티고라였다.
따라서 로렐라이 왕국의 역사서에 화이트드래곤에 관한 미담과 전설은 빠질래야 빠질 수가 없는 내용이었고, 어릴때부터 왕국의 역사를 듣고 배우며 자란 백성들은 화이트드래곤을 아직도 국모라 여기며 각별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저기봐! 궁으로 날아갔다!”
“오오! 전하랑 만나는 것인가!”
한편, 화이트드래곤의 출현 소식을 접한 왕궁은 대단히 소란스러웠다.
“여태 조용히 있다가 왜? 도대체 무슨 일로 왕래가 끊긴지 200년만에 찾아왔단 말인가?”
로렐라이 왕국의 통치자 트런피오 왕은 급하게 왕복으로 갈아입느라 분주했다.
자신의 이름을 오드리아라고 밝힌 화이트드래곤이 불쑥 찾아와 왕과 만나고 싶다며 지금 기다리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혈통을 과시하듯 신하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밝혔다고 한다.
“크로네의 오드리아다.”
크로네의~ 로 시작하는 부분은 오직 왕족 혈통만이 계승할 수 있는 성.
초대왕 베스로탄은 말년에 외조카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왕국을 떠났다.
외조카의 정체가 왕의 사생아라는 소문도 돌았으나 30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베스로탄의 자녀는 당시 나즈레티고라의 뱃속에 들어있던 오드리아가 유일했다.
좌우지간 트런피오 왕 역시 ‘크로네의 트런피오 2세’가 풀네임이었다.
“크로네의 오드리아 라면 내 조상 님이신 베스로탄 님의 따님이라네. 오 맙소사. 살아있는 화석을 보는거나 마찬가지야.”
중년의 트런피오 국왕은 책으로만 볼 수 있었던 가문의 인물을 실제로 만난다는 생각에 무척 설레이고 긴장되었다.
“그분을 뭐라고 불러드려야 하지? 오드리아 할머님?”
“전하, 조금전 그분을 뵙고온 자들의 말에 의하면 현재의 외모 상태가 십대 후반으로 보일 정도로 매우 젊다고 하십니다.”
“뭣이……? 아아, 드래곤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당연한가.”
“공식 기록에 남겨진대로 공주님으로 호칭하시는 것이 맞을 듯싶사옵니다.”
“음, 알겠네.”
오드리아와 만날 준비가 끝난뒤에도 그는 한동안 방안에 머물러 있었다.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조언을 받는데 여념이 없었다.
“만약 왕위를 요구하면 갑자기 몸상태가 나빠진 것처럼 연거푸 기침을 하시어 자리를 파하시고, 땅을 달라고 하면 트리올강 이남쪽의 영지를 주어 야만족의 침입을 견제시키십시오. 그리고……”
가능성 있는 질문들을 미리 예상하고 그에 맞는 답변을 준비하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늦어!”
접대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오드리아가 호통을 치자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왕궁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왕궁 전체가 깜짝놀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눈앞에 트런피오 왕이 부리나케 나타났다.
“느, 늦어서 죄송합니다 공주 님.”
오드리아와 처음 만나는 순간 왕은 무려 세 번을 놀랐다.
그녀의 미모에 놀라고, 그녀의 젊음에 놀랐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입은 푸른색 원피스가 화려하지 않고 너무 단조로워서 놀랐다.
“이것저것 하다보니……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오드리아는 단단히 성이나 있었다.
“내 간단히 물을게 있어 찾아왔건만 뭐가 그리 오래 걸리느냐?”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보여주려는듯 마법을 부려 실내의 모든 가구를 얼려버렸다.
트런피오 왕은 긴장한 기색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주시옵소서.”
“느려 터졌어!”
오드리아는 초조함 때문에 무척이나 예민해져있었다.
리안을 찾아야될 시간에 아무것도 못하고 두 시간씩이나 잡혀있었다는 것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이성적인 드래곤이었다.
애써 화를 누르고 얼렸던 가구들을 본래대로 돌려놨다.
“앉거라.”
트런피오 왕에게 자리를 권하자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얼른 자리에 앉았다.
“공주 님께서 살아계셨을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미리 언질을 주셨더라면 환영행사를 열었을텐데 아쉽습니다.”
“난 환영행사를 좋아하지 않아.”
오드리아는 그와 마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최근 몇달 사이에 왕국 내에서 마왕을 목격한 자가 있느냐?”
“마, 마왕이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던터라 당황했다.
“마왕은……”
왕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여태껏 마왕군이 나타났다는 보고는 들어봤어도 마왕이 직접 이 땅에 나타났다는 보고는 들어본적이 없다.
“마왕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대답하고 나서 불안한 마음에 되물었다.
“혹시 마왕이 우리 왕국에서 활동……”
질문은 허용하지 않겠다는듯 오드리아가 말을 잘랐다.
“알겠다. 물어볼 것은 이것뿐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트런피오 왕은 어리둥절했다.
“벌써 가시는 겁니까……?”
“배웅나올 것 없다. 날아갈거야.”
오드리아는 그렇게만 말하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이내 화이트드래곤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와아아!”
밖에서 백성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 멀리 사라져가는 화이트드래곤.
창밖을 멍하니 지켜보던 트런피오 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듣던대로 대단하신 분이로다. 풍기는 위압감이 굉장했어.”
그는 살 것 같은 표정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쉰뒤 차분하게 조금전 일을 상기했다.
“질문 하나가지고 두 시간을 기다리셨으니 화나실만도 하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데 마왕이라……”
그는 긴 고민 끝에 오드리아의 생각을 어림짐작하고는 탄성을 자아냈다.
“그랬구만! 마왕과 생사를 건 일전을 벌이실 계획인게야!”
그런 생각이 들자 그의 눈동자에 무한한 존경심이 어렸다.
오드리아와 한 핏줄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오드리아 님께서는 세상을 구하고자 찾아오셨는데 난 저분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소인
Comentários
Postar um comentá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