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ricultura 5

언어를 가르치려고 해도 배우질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리안의 귀에 향단이의 말은 잘 들렸다.
그 원인은 바로 용언 때문이었다.
용언을 쓰는 리안이 언어를 가르친다는 건 즉 용언을 가르친다는 뜻인데 그 때문에 향단이가 배우질 못하는 것이다.
향단이는 결코 용언을 배울 수 없다.
그래서 향단이는 늘 ‘르리’, ‘르리리’로 리안과 소통했다.
그렇게 말해도 리안은 용언의 힘으로 전부 알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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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먹어.”
“르리!”
리안은 배식 받은 빵을 아주 작게 떼어내서 향단이에게 건네줬다.
향단이는 제 얼굴보다 큰 빵조각을 두 손으로 들고 야금야금 뜯어 먹기 시작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모니카의 모유가 주식이었으나 이빨이 자라나면서부터 매운것 빼고 아무거나 잘 먹었다.
참고로 모니카는 리안과 정사를 나눈 다음날부터 모유가 나오는 병이 점차 회복세를 보이더니 엊그제부로 병이 완전히 나았다. 
“페어리는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았는데 잡식성일줄 누가 알았겠어.”
리안은 향단이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향단이가 금세 먹어치우자 리안은 빵조각을 떼서 또 건네주었다.
“르리!”
양볼이 빵빵해지도록 오물오물 거리는데 귀여워 죽겠다.
볼록한 뺨처럼 앙증맞은 향단이의 배도 부풀어 오른게 눈에 보였다.
현재 향단이는 알몸이었다.
리안은 향단이가 더 크기 전에 슬슬 옷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어리 옷은 어디서 구하지? 직접 제작하는 수밖에 없나……”
등에 달린 날개까지 신경써야할텐데.
향단이의 옷을 고민하는 동안 두 번째 빵조각마저 전부 먹어치운 향단이가 행복한 표정으로 배를 어루만졌다.
“르리~”
아장아장 뛰어오더니 리안의 손가락을 와락 끌어안았다.
향단이는 리안의 몸에 붙어있는 것을 좋아했다.
손가락을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몸이 붕 떴다가 가라앉는 재미를 즐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향단이한테 밥을 먹이고 나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교육에 들어갔다.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향단이를 해충 퇴치 병기로 키우는 게 꿈이기에 어릴때 미리 벌레 잡는 훈련을 시킬 생각이었다.
리안은 땅 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를 잡아서 향단이가 들어있는 일명 사각 링에(훈련상자) 집어 넣었다.
성인 검지 손가락만큼 자란 향단이는 개미를 밟아죽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됐다.
“향단아 죽여!”
“르리리!”
인간으로 치면 6~7세 정도 되는 유아한테 생명을 죽이는 일을 시키는 행위가 잔혹하게 비쳐보일 수도 있겠지만, 리안도 향단이의 상황을 봐가면서 훈련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향단이가 꺼려하거나 무서워하는 기색이 있으면 다른 일을 시킬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향단이는 적성에 맞는지 웃는 얼굴로 아장아장 뛰어가서 개미를 콱 밟아 죽였다.
“르리!”
해냈다면서 만세를 외쳤다.
“잘했어.”
“르리리!”
리안은 죽은 개미의 사체를 치우고 이번에는 두 마리를 집어넣었다.
“향단아 두 마리다!”
“르리!”
향단이는 맡겨달라며 한 팔을 번쩍 들어보였다.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우왕좌왕 하는 개미들에게 달려가 콱! 콱! 연달아 밟아죽였다.
“르리!”
리안은 기뻐하는 향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넌 최고의 파이터다. UFC에 나가도 되겠어.”
쓰다듬을 받는 향단이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리안은 머릿속이 또 향단이에 대한 것들로 가득찼다.
‘파이터라면 장비도 필요해. 향단이의 갑옷도 만들어줘야할 것 같은데…… 칼이나 방패도 줘야할테고…… 흠……’
해줄건 많은데 페어리용 무기와 갑옷은 어디서 제작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돈이 없다.
‘우선 향단이의 옷부터 알아봐야겠어. 손바닥만한 천이면 충분하니까 일반 옷보다 싸겠지.’
황도에 도착하거든 재단사나 알아봐야겠다.
제국에서 가장 큰 도시니까 페어리 옷을 만들줄 아는 장인쯤이야 쉽게 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옆에서 양동이를 가져다 놓고 머리를 감고 있던 모니카가 입을 열었다.
“자기야, 수건 좀 줘.”
“자기 소리는 빼랬지.”
“나 눈 따가워 빨리. 아야야 내 눈!”
모니카는 돌아가신 양아버지의 식구들과 만나기에 앞서 외모 변신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연두색으로 염색했던 것을 지우고 머리를 감은 그녀는 리안에게 건네 받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박박 문질렀다.
“잉, 머릿결 상했어.”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가지런히 정돈하더니 리안을 쳐다봤다.
“나 어때?”
리안은 염색을 제거한 그녀의 단발머리를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언뜻 황토빛이 감도는 밝은 갈색 머리였다.
그녀의 구릿빛 피부와 잘 어울렸다.
“수수해졌네.”
“짜증나. 난 튀는 색깔이 좋은데.”
“지금 머리가 더 예뻐.”
“정말?”
“응.”
그녀는 얼마전 잠시 들른 도시에서 정숙한 느낌의 펑퍼짐한 드레스도 구매했다.
양아버지의 식구들과 재회하는게 제법 긴장이 되는지 공을 많이 들이는 눈치였다.
“나 사실 고백할게 있어.”
수건을 내려놓은 모니카가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다.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듣고 화 내지마.”
“……”
리안은 순간 오천평 땅에 관한 얘기라는 것을 직감했다.
오천평 땅의 존재가 자신이 모니카와 계약하게된 결정적인 요인이었고 그것 말고는 화낼게 없었으니까.
“혹시 땅 있다는거 거짓말이었어?”
“아냐! 그건 진짜 있어!”
“그럼 뭔데?”
“그러니까 내 말은……”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다 힘없이 말했다.
“나 사실 양어머니랑 사이가 안좋아.”
“그래서?”
“만약…… 갔다가 문전박대 당해도 이해해달라고.”
그녀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치만 내가 꼭 얘기 잘해서 그 땅에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할테니까……!”
리안은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됐어, 됐어. 알았으니까 진정해.”
“이해해주는거야?”
“응, 어차피 땅은 우리꺼잖아.”
“맞아, 우리꺼야. 아니 내꺼지.”
“아무리 당신이 싫어도 땅은 못 뺏을 것 아냐?”
“정상적으로는 그렇지. 근데 난 괜히 걱정돼서……”
“이상한 수작 부릴까봐?”
“그럴리는 없으시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난 그 집 딸이 아니니까 재산을 뺏기는 기분도 들테고 주기 싫어하면 어쩌나 해서……”
“얼굴에 철판 깔아 아가씨. 양아버지는 당신을 딸로 인정했어.”
리안은 시무룩한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그 뒤로 가서 섰다.
“힘내라고 응원해줄겸 간만에 전속 마사지사의 손맛 좀 보여줘야겠네.”
손을 뻗어 모니카의 양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주물렀다.
꾹꾹.
“윽. 으극. 윽.”
어깨를 풀어주자 아프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눈을 감은 채 빙그레 웃는다.
“이제 모유가 안나와서 아쉽지?”
“당신이 건강을 되찾아서 좋아.”
“귀찮은 일 안해서 좋단 얘기야?”
“물주가 건강해져서 좋다는 뜻이지. 병 들어서 쇠약해졌어봐. 나 혼자 어떻게 살아가라고.”
모니카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 없었으면 황도에서 거지 됐겠네.”
“리안!”
갑자기 라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시간 되시오?”
라일이 짐마차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리안은 자연스럽게 모니카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그를 돌아봤다.
“무슨 일이오?”
“마족 계집 일로 중요한 얘기가 있소이다.”
마족 계집이라하면 철창에 갇힌 액체 괴물을 말하는 것이었다.
리안과 라일은 자리를 옮겨 의자에 앉아서 얘기했다.
“마족 계집에게 탄원서를 받았는데, 귀하와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다며 내보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더이다.”
“뭐요? 뜬금없이 왜 그런 말을 한단 말이오?”
“귀하의 가르침과 인품에 탄복하여 그 정신을 배우고 싶다지 뭐요. 마족 계집한테 뭐 가르쳐준 것이라도 있소?”
리안은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다 대답했다.
“며칠전 우연히 지나가다 마족의 본성을 버리고 앞으로는 사람답게 살으라 설교를 한적은 있소.”
“오오, 깊이 있는 설교였던 모양이고만. 마족까지 탄복할 정도라니 대단하오.”
라일은 무심코 시선을 돌리다 모니카의 머리색이 달라진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는 바로 짐마차 옆에서 거울을 꺼내놓고 빗질을 하던 모니카에게 소리쳤다.
“모니카, 머리 잘했다!”
모니카는 거울을 보며 귀찮다는듯이 대꾸했다.
“훅스 가문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봐 바꿨어.”
“잘 생각했다. 여자란 자고로 정숙하고 품행이 단정해야 해.”
“시끄러워.”
라일이 모니카에게 잠깐 시선이 가 있는 동안 리안은 소리없이 웃으며 며칠전 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야, 생각해봤어?”
늦은밤, 리안은 액체 괴물이 갇혀 있는 철창 앞에 서있었다.
“어떻게 할거야?”
액체 괴물은 리안을 보자마자 벌벌 떨었다.
“나, 난 가진게 없다.”
“가진게 없어? 그럼 죽어야지.”
리안은 대뜸 주위를 향해 크게 외쳤다.
“여러분 들어보세요! 글쎄 이 마족 여자가 실은……!”
“기, 기다려! 뭐든지 다 할테니까 제발 그만둬!”
리안은 씩 웃으며 액체 괴물을 내려다봤다.
“뭐든 다 한다고?”
“으, 응……”
“나한테 충성도 할 수 있어?”
“그래, 그거! 내가 말하고 싶었던게 그거였어. 내가 가진건 충성밖에 없어.”
“어떻게 충성을 바칠건데? 그래놓고 도망가버리면?”
“안도망가. 약속해.”
액체 괴물은 진심이라는듯 소년 목소리로 힘을 주어 말했다.
“내가 살던 던전은 파괴돼서 이제 갈데도 없어. 여길 무사히 빠져나간다해도 사방에는 나보다 강한 놈들 천지고 막막하단 말이야.”
“보호자가 필요하단 소리네?”
“날 괴롭히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무엇이든 다 할게.”
리안은 턱을 어루만졌다.
“흐음, 그런데 널 쓸 곳이 있으려나……”
“난 다양한 환영을 만들 수 있어. 마력이 약해서 환영이 무거운걸 들거나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쓸데가 있을거야! 가벼운건 쥘 수 있어!”
“환영이라……”
깊이 고민하던 리안은 이내 환하게 웃었다.
“너 허수아비 라고 아냐?”
“허수아비? 모르겠는데.”
“간단히 말해 밭 지키는 인형이야. 새들을 쫓아내는 일을 하지. 그 일 잘할 수 있겠냐?”
“왠지 쉬워보여! 시켜줘!”
“좋아, 낙찰.”
액체 괴물에게 짐승이 두려워할만한 환영을 만들게 해서 24시간 밭을 지키게 하면 그럴싸할 것 같았다.
“액체 괴물이여, 오늘부터 널 충직한 신하로 삼아주겠다. 그대의 이름은?”
“사니수르파두카타보카디그스르.”
“뭔 이름이 그렇게 길어?”
“난 이래봬도 짧은 편이야.”
“허수라고 해라 허수.”
“허수?”
“허수아비의 허수.”
“어감이 이상하지만 알았어 그걸로 할게.”
리안은 말했다.
“허수야, 널 빼내려면 약간 과정이 복잡하단다.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대로 잘 따라야 돼.”
“어떻게?”
“반성문 하나 써줄테니까 그걸 기사단장 라일한테 들이밀어. 미친듯이 애절하고 간절한 표정으로. 거기에 눈물까지 흘리면 더 없이 좋다. 할 수 있지?”
이상, 여기까지가 스톤 쉴드 기사단장 라일이 모르는 뒷배경이었다.
“남은 여생 인간들에게 도움이 되는 농사를 지으며 마족의 삶을 살아온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살겠다지 뭐요. 평생 힘든 일은 안하고 살 것 같은 저 아리따운 외모로 이 얼마나 기특한 생각인지……”
라일은 말끝을 흐리며 저 멀리 철창에 갇혀있는 허수를 대견하고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리안은 그의 표정을 살피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나를 찾아온 이유가 허수…… 아니, 저 마족 여자를 거두어 달란 말씀이오?”
“그렇소.”
라일은 철창에서 시선을 거두고 리안을 돌아봤다.
“저 계집을 데려가 사람답게 만들어 주길 부탁하는 바요.”
“전리품으로 아는데 나한테 줘도 되는거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계집의 미모가 출중하다보니 그것 나름대로 머리가 아프더이다. 부하들이 각자의 공을 내세우며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어대니, 저 계집을 받은 자는 기뻐하겠으나 받지 못한 자들은 서운해하며 오늘 일이 마음의 앙금으로 남을까봐 우려가 되는거요.”
이어 말했다.
“그럴 바에야 외부인인 귀하가 차지하는게 낫겠다 싶었소. 저 계집이 직접 귀하를 지목했으니 명분도 충분하고 내 빚도 청산할겸.” 
그는 머리를 가까이 들이밀며 낮게 속삭였다.
“솔직히 내 목숨을 구해준 보답으로 저 정도면 충분하지 않소?”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쳐서 몸둘 바를 모르겠소.”
이후에도 라일과 계속 허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일은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허수에 큰 미련이 없어보였고, 무엇보다 그는 기사도 정신으로 약자를 보호하고 보수적이며 의협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잘못을 뉘우치는 자에게는 관용을 베풀라 했소. 우리가 데리고 있어봐야 부하들끼리 말썽만 일으키니 얼른 데려가시오.”
그렇게 허수는 순조롭게 리안의 손에 들어왔다.
그로부터 수일 후, 마침내 제국의 심장 황도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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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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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 부근 술집.
라카제트는 왁자지껄한 술집에 들어섰다.
“여어~!”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던 베르베로가 손을 흔들었다.
베르베로.
올백 머리에 귀가 뾰족하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중년 사내.
흡사 인간으로 변한 뱀파이어를 닮았으나 그는 뱀파이어가 아니다.
마왕군의 군수품을 조달하는 무역업자로 라카제트와 간간이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이곳에 발 붙이는 것도 싫어하더니 마왕성에는 어쩐 일인가?”
“재밌는 이야기가 없나해서 와봤지.”
라카제트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요즘 소식을 듣자하니 우리 마족들이 힘을 못쓰는 것 같더군.”
헐벗은 서큐버스 종업원이 다가와서 그의 앞에 맥주잔을 내려놓고 뒤돌아서 떠났다.
베르베로는 탐스럽게 씰룩이는 종업원의 엉덩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그래서 오랜만에 연락한건가?”
“자네가 아니면 내가 어디서 소스를 얻겠나.”
베르베로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성의는?”
“섭섭지 않게 준비했네.”
“지난번처럼 인간 몇 마리 가지고 퉁칠 생각하지마. 내가 원하는 건 값비싼 물건이지 며칠 데리고 있으면 금방 죽어버리는 그런 시시한 애완동물 따위는 필요없어.”
“자네 방에 유황가스나 틀어놓지말게. 인간들은 유황가스가 새어나오는 곳에서 살지를 못해.”
“그 황홀한 냄새를 못 버틴다고? 인간은 역시 약해빠졌어.”
라카제트는 품속에서 금괴를 꺼내 베르베로에게 건네주고 맥주잔을 들었다.
베르베로는 금괴에 새겨진 글귀와 문양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씩 웃었다.
“천년전 금괴로군. 이 정도면 마음에 들어.”
그가 말을 이었다.
“어제 죽은 대지의 여인 호가 입항했다네. 그 전투선은 인간 왕국을 침략할 목적이었지. 하지만 항해를 중단하고 회군해서 돌아온거야. 전쟁 준비만 몇 달을 해놓고 허무하게.”
베르베로는 피로 얼룩진 맥주를 쭉 들이켰다.
이내 빈 맥주잔을 내려놓고 꺼억하고 트림을 했다.
“지금 다들 쉬쉬하는 얘기가 있어.”
베르베로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라카제트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반년째 마왕님이 안보여서 여기저기서 난리야.”
“호오?” 
“납치되거나 죽은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있지.”
“사정이 있어 잠깐 자리를 비우신게 아닐까?”
“구체적인 소문까지 떠도는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아. 반년전 용의 계곡으로 홀로 드래곤을 잡으러 가셨다가 실종됐다는 소문이지. 그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굉장한 뉴스야.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마왕이 드래곤들에게 당할줄 누가 알았겠어?”
베르베로는 라카제트에게서 떨어지며 제대로 앉았다.
“어쨌든 마왕님이 사라진 이후로 전선의 지휘관들은 결정을 내리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중이고, 전쟁이 멈추는 바람에 내 수입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지. 빌어먹을.”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식탁 밖으로 팔을 뻗었다.
때마침 쟁반을 들고 지나가던 서큐버스 종업원의 엉덩이를 꽈악 움켜쥐었다.
“이 엉덩이한테라도 위로를 받아야겠어.”
“깜짝 놀랐잖아요.”
종업원은 개의치 않고 싱긋 웃더니 그대로 가던 길을 갔다.
베르베로는 그녀를 향해 윙크를 날리고 라카제트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엊그제 부터 각지의 군단장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어. 조만간 마왕성에서 중대한 회의가 열릴 것이라는 소문이 있더군.”
“어떤 결정이 나올까?”
“모르지. 허나 분명한건 당분간 전쟁을 못한다는거야. 젠장할.”
“그거 안됐군.”
“마왕님께서 부디 무사하길 바랄뿐이야. 전쟁은 여기서 끝나면 안돼. 날 위해서.”
“돈을 위해서.”
라카제트는 그와 건배를 하며 맥주를 한모금 마셨다.
갈증이 났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그는 다시 한번 맥주를 들이켰다.
술잔이 순식간에 비워졌다.
‘김리안……’
라카제트는 입술에 맺힌 물기를 손등으로 닦으며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여보게 베르베로. 마왕은 이미 죽었어.’
* * *
황도 근교.
훅스 영지.
리안과 모니카는 라일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황도에 오면 연락주시오.”
“그러리다.”
리안은 라일과 가볍게 포옹을 나누었다.
라일은 모니카와도 인사를 나눈 후 말에 올랐다. 
“또 봅시다!”
그는 스톤 쉴드 기사단을 이끌고 떠났다.
요리사 울라프와 그의 자식들인 세이라와 다렌은 아직 남아있었다.
울라프는 식당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를 리안에게 건네주었다.
“시간나면 놀러오게.”
-고몽 드 마리아
리안은 쪽지를 고이접어 주머니에 넣고 울라프와 악수를 나누었다.
“꼭 찾아뵙겠습니다.”
“저도 가도 되죠?”
모니카가 히죽거렸다.
울라프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리안 혼자오면 심심할테니 너도 같이와.”
그렇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떠나려는데 세이라가 붙잡았다.
“리안님.”
그녀는 수줍게 말했다.
“꼭 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세이라는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등을 돌리고 뛰어갔다.
모니카가 조금 질투를 했다.
“저것봐라. 완전 뿅간 눈치인데. 흐음, 왠지 마음에 안들어.”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가자.”
리안은 마부석에 올라탔다.
모니카도 마부석에 오르며 고삐를 쥐었다.
그녀는 마족 여자의 환영을 비추고 있는 허수를 돌아봤다.
허수는 잡동사니로 비좁은 짐칸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저 계집은 왜 받은거야. 귀찮게.”
“쓸데가 있으니까 받았지.”
“내가 당신 속을 모를줄 알아? 남자들이야 다 뻔하지.”
모니카가 새침하게 말했다.
“밤에 둘이 이상한짓만 해봐. 쟤 바로 쫓아낼테니까.” 
리안은 픽 웃으며 허수를 쳐다봤다.
“허수야, 개로 변해.”
“응.”
허수는 즉시 검은색과 다갈색 털을 가진 셰퍼드의 환영을 만들어냈다.
마족 여자로 있을때 입고 있던 옷가지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모니카가 깜짝 놀란다.
“어, 어떻게 된거야?”
리안은 앞으로 그녀와 같이 지내려면 자신의 능력이나 비밀을 어느 정도 공개하는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
“쟤 이름은 허수고, 마족이 아니라 바닥을 기어다니는 끈적끈적한 액체 괴물이야. 자신을 보호하려고 아름다운 마족 여자로 변해있었던거지.”
“그런게 가능해? 놀랍다……!”
모니카는 정말로 신기했는지 마부석에서 내려 허수의 털을 쓰다듬었다.
“라일도 알아?”
“그 사람은 몰라. 나만 알지.”
모니카는 몇 번인가 허수에게 말을 걸어봤으나 허수는 모니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모니카 역시 허수가 하는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당신은 어떻게 알았어? 나한테는 마족 여자로만 보이던데.”
“내 눈은 괴물의 실체를 보는 힘이 있드라고. 그래서 허수를 보자마자 알았지.”
“당신이 무슨 마법사야? 그런 힘이 어디서……”
리안은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만. 나중에 천천히 얘기해줄테니 더는 묻지마. 사생활이란게 있으니까.”
“칫, 나중에 꼭 얘기해야돼. 나한테 숨기는게 있으면 안돼.”
“알았어.”
리안은 갑자기 장난기가 돌았다.
“허수야, 멋지고 세련된 남성으로 변신해.”
“응.”
허수는 곧바로 건장한 미남의 환영을 만들어냈다.
“세상에!”
상체가 크고 잘 발달된 사내를 보며 모니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우와, 잘 생겼어!”
리안은 피식 거렸다.
“허수야 꼬추 크기 20cm로 늘려.”
“이렇게?”
그 즉시 하반신에 달린 물건이 길쭉하게 늘어났다.
모니카는 그것을 보더니 입을 쩍 벌리며 좋아라했다.
리안이 40cm로 늘리라고 명령하자 거기서 더 늘어났다.
모니카는 징그럽다며 시선을 돌렸다.
“정도껏 커야지. 저게 뭐야.”
두 사람은 이내 훅스가의 저택이 있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다.
저택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모니카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집중이 안돼.”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자리를 교대해 리안이 고삐를 쥐고 마차를 몰았다.
모니카는 정숙한 드레스를 차려입고 양어머니인 메건 부인에게 줄 선물만 만지작 거렸다.
“좋아하실까……”
선물은 나들이용 모자였다.
한참을 말이없던 그녀가 고개를 들고 리안을 쳐다봤다.
“오늘은 나혼자 인사드릴게. 자기는 다음에 하자.”
리안은 자기란 단어에 태클을 걸고 싶었으나 그녀의 기분을 생각해 그냥 흘려들었다.
“저택에 혼자 들어가게?”
“응, 안에서 창피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일단은 분위기를 살펴야겠어. 자기는 다음에 소개시켜줄게. 밖에서 기다려.”
“그래, 그렇게 해.”
“서운해하는거 아니지?”
“그 집 사람들하고 알아서 뭐하겠다고. 나야 땅만 있으면 돼.”
모니카가 웃는다.
그녀는 마차를 모는 리안의 허벅지 위에다 손을 얹으며 살살 어루만졌다.
“땅 없으면 나도 차버릴거야?”
리안은 그녀를 돌아봤다.
농담처럼 웃으며 대꾸했다.
“당연한걸 물어.”
“나쁜놈.”
모니카가 욕설을 뱉으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식으로 잡담을 주고 받으며 철로된 대문을 통과해 작은 숲을 달려 마침내 저택 앞에 다다랐다.
모니카는 크게 심호홉을 한후 요조숙녀처럼 조심스럽게 마차에서 내렸다.
멀리서 그녀를 알아본 하녀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가씨!”
모니카는 그녀를 발견하곤 크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그간 잘 지내셨죠!”
하녀가 밝게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어머나 더 예뻐졌네~!”
“애들은 잘 있어요?”
“엄청 컸어요. 보면 깜짝 놀랄걸?”
모니카는 잠시 그녀와 하하호호 대화를 주고 받았다.
리안은 그 모습을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았다.
마치 모니카에게 고용된 마부 마냥 거리를 둔 채.
모니카와 하녀는 곧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힘내.”
리안은 그녀의 건투를 빌었다.
홀로 남겨진 그는 개의 환영을 하고 있는 허수와 잠시 놀다가, 상자에 들어있던 향단이를 꺼내 품에 안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잘 가꿔놨네.”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딸려있는 정원답게 넓고 아름다웠다.
리안은 멋지게 솟아오르는 4개의 분수를 천천히 감상하며 정원을 거닐었다.
가끔씩 수상하게 쳐다보는 하인들과 마주치곤 했는데, 리안은 그때마다 자신을 모니카의 땅에 농사지으러 온 사람이라고 간단히 소개했다.
“아아, 그래요?”
모니카가 농사짓는다는걸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지 그렇게만 말하면 다들 별말 없이 떠났다.
잠시 둘러보다 다시 짐마차가 있는곳으로 돌아온 리안은 손바닥에 들고 있는 향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근처에 있는 텃밭쪽으로 향했다.
어린 양배추가 무럭무럭 자라는중인 텃밭.
밭만 보면 본능이 꿈틀거리는 리안은 텃밭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래서 아마추어들은 안된다니까.”
텃밭에 심어진 어린 양배추들이 그의 눈에는 구해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모니카를 기다릴겸, 향단이를 밭에서 뛰어놀게해 운동시킬겸, 겸사겸사 남의 밭이나 좀 봐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리안은 곧장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모니카는 응접실에서 메건 부인과 만나고 있었다.
“테리와 스레텐은 안보이네요?”
“전쟁터에 끌려갔단다.”
오랜만에 만난 메건 부인의 목소리는 한없이 쌀쌀맞았다.
“둘 다 기사서임을 받자마자 집을 떠났지.”
“아…… 안타까우시겠어요.”
테리와 스레텐은 메건 부인의 아들들이었다.
둘 다 착하고 유순해 어린시절 모니카와도 격의 없이 친하게 지냈었다.
“다치지 않고 건강해야할텐데.”
“둘 다 알아서 잘 하겠지. 네가 신경쓸 필요는 없다.”
메건 부인은 차갑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일이 있어서 가봐야하니 천천히 둘러보다 가렴.”
“벌써 가시게요?”
“얘기 다 했잖니. 그 땅에 농사 지으라고 했잖아. 네 것이니까.”
“아뇨, 그 얘기가 아니라……”
모니카는 말끝을 흐리다 갑자기 생각난듯이 선물을 집어들었다.
메건 부인에게 두 손으로 내밀었다.
“오는 길에 사왔어요.”
메건 부인은 포장된 선물을 힐끗 쳐다보고는 모니카를 바라봤다.
“누가 사오랬어? 아무튼 뭐니?”
“모자예요. 모자 좋아하셔서 예쁜걸로 사왔어요.”
“고맙다.”
그녀는 홱 채가듯 선물을 받아들고는 문쪽으로 향했다.
“난 바빠서 떠날때 못 볼 것 같구나. 고용인들과 인사 나누거든 바로 떠나도록 해.”
“네, 또 봬요.”
“나중에 시간나면 보자구나. 볼 일이 있나 모르겠지만.”
응접실을 나온 메건 부인은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까지 걸어가는 동안, 집사를 비롯해 몇몇 하녀들이 우르르 응접실로 몰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전부 모니카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한심한 사람들.”
메건 부인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전담으로 수발을 드는 하녀의 도움을 받아 옷부터 갈아 입었다.
자신이 애지중지 키우는 텃밭에 가서 모니카가 떠날때까지 있을 생각이었다.
“오늘은 얼마나 자랐을려나.”
예쁜 아가씨란 소리를 듣고 살았던 젊은시절에는 작물을 키운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지만, 나이가 들수록 희한하게 화려한 꽃보다는 수수한 꽃이 좋고 호화로운 사교생활보다는 단조롭고 조용한 취미가 좋았다.
자신이 키운 채소로 요리를 해먹고 남는건 아는 귀부인들에게 나눠주는 생활.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이 전쟁터로 떠나간 우울한 일상에 그나마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한달까, 요즘 그녀의 삶에서 유일한 낙이었다.
“가자.”
“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메건 부인은 창고에 잠시 들렀다가 농기구를 챙기고 텃밭으로 향했다.
이윽고 텃밭에 도착한 그녀는 우뚝 걸음을 멈춰섰다.
“저 사람은 누구지?” 
낯선 청년이 자신의 텃밭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뽑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니?”
“아뇨, 저도 처음봐요.”
웬만한 남자 하인들은 다 알고 있을 하녀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택 부지에 몰래 들어온건가?”
메건 부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청년이 하는 짓을 지켜보다가 소리쳤다.
“이봐요! 거기 누구죠?”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녀를 돌아봤다.
작업복 차림의 메건 부인과 하녀를 번갈아 보더니 곧 능청맞은 미소를 지었다.
“잘 오셨습니다. 그렇잖아도 밭에 관해 말씀드릴게 있었어요.”
리안은 그저 하녀 두 명이 밭에 일하러 온줄로만 알았다.
“제가 텃밭 예쁘게 가꾸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이리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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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메건 부인은 리안이 기세좋게 나오자 좀 당황했다.
‘새로 온 하인인가?’
불안해하거나 경계하는 기색없이 천연덕스럽게 말을 거는 것으로 보아 무단 침입자는 아닌 것 같고, 리안의 행색을 보면 여느 하인들과 다를바 없었는데, 그녀는 속으로 집사가 부족한 일손을 채우려 새로 데려온게 아닐까 하고 어림으로 짐작했다.
아무튼 그녀는 리안이 가까이 오라고 재촉하자 얼결에 그에게 다가갔다.
“여기 보세요. 잡초는 잘 뽑아주시는데 한가지 문제가 있어요. 잡초를 뽑으면 딸려나오는 흙덩이들을 그냥 놔두면 안되고 잘게 부숴야 합니다.”
리안은 쪼그리고 앉았다.
“여기 동그랗게 뭉친 흙들을 안부숴서 겉흙에 넘쳐나죠? 이런 애들 잘게 부숴야 공기가 땅속까지 잘 전달이 돼요. 땅속까지 공기가 통하면 미생물이 번식을 잘 하고 뿌리가 건강해집니다. 뿌리가 건강해지면 지상에 나와있는 채소는 말할 것도 없죠. 아주 튼튼하게 잘 자랄 거예요.”
“아……”
순식간에 리안의 설명에 몰입한 메건 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런 세세한 것 까지는 몰랐네요.”
“혹시 양배추 심을때 땅속 흙까지 잘게 다져주셨나요? 보니까 안하신 것 같기는한데.”
메건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땅은 파종할때만 조금 팠습니다.”
“저런. 텃밭 전체를 깊숙이 갈아엎고 시작하셨으면 지금 양배추보다 훨씬 질 좋은 애들이 무럭무럭 자랐을겁니다. 농사는요 흙이 고와야 합니다. 그래야 땅속 깊이 공기도 잘 통하고 수분도 잘 안말라요.”
“난 비료만 잘 주면 되는줄 알았는데.”
“땅이 이러면 비료를 줘봤자 땅속 깊이 흡수되지 못하고 손실이 많아집니다. 비료를 주나마나죠.”
리안은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메건 부인은 그가 말을 할때마다 공감되는 부분에 맞장구도 쳐주고 자신의 의견도 말해보고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물어도 보고, 오늘 처음 만난 청년이지만 신기하게도 말이 참 잘 통했다.
“여기 앉아보세요.”
리안은 쪼그리고 앉은 채 땅바닥을 손으로 툭툭쳤다.
“병 걸린 양배추 구분하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빨리 앉아보세요. 잘 모르실 것 같아서 그래요.”
“괜찮대도요.”
“어서요, 어서.”
메건 부인은 남편도 아닌 젊은 하인이 앉으란다고 덥썩 옆에 앉는 것이 마음에 걸려 망설였고, 그런데 리안은 자꾸 앉으라고 하고, 그러다 그녀는 마지못해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와 나란히 쪼그리고 앉았다. 
“이것 보세요. 이게 뭐냐면……”
리안은 어린 양배추 잎을 뒤적이면서 해박한 지식을 뽐냈다.
메건 부인은 그와의 대화속에서 배울게 많아 큰 도움이 되었고, 또 그 대화속에서 낯선 청년의 지식과 품격을 보았다.
그녀는 은근 리안이 마음에 들었다.
아들 생각도 나고 말이 잘 통하는 재미난 청년이었다.
‘농사에 관해 배울겸 오늘 저녁에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해야겠어.’
저녁 식사에 초대할 생각에 입을 여는 찰나였다.
등뒤에서 불쑥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리안……? 거기서 뭐해?”
메건 부인과 함께 앉아있던 리안이 고개를 들고 쳐다보더니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텃밭 밖에 서있는 모니카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끝났어?”
“응. 뭐하던 중이야?”
메건 부인은 당황하며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밭 좀 보고 있었어.”
“밭을 왜? 어? 어머니……?”
모니카는 리안과 나란히 서있는 메건 부인을 발견하고는 의아하게 쳐다봤다.
리안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어머니?”
“모니카와 아는 사이였나요?”
메건 부인의 냉랭한 물음에 리안은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모니카의 땅에 농사 지으러 온 사람입니다.”
그녀는 뜻밖의 대답에 놀란듯 약간 눈이 커졌다.
금세 평온을 되찾고 말했다.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흙 묻은 손을 바지에 털더니 곧장 텃밭을 나갔다.
모니카에게 다가가서 쌀쌀맞게 말했다.
“저 사람이 내 텃밭에 함부로 손대고 있더구나.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렴.”
말을 마친 메건 부인은 곧장 하녀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뭐지……?”
리안은 찬바람이 쌩쌩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 * *
얼마뒤, 리안은 짐마차를 끌고 모니카와 함께 오천평 땅으로 향하고 있었다.
“맙소사. 그 분이 양어머니였다고?”
“그래 바보야. 그것도 몰랐어?”
“내가 어떻게 알아, 얼굴을 봤어야지.”
리안은 재밌다는듯 웃었다.
“당신이 오기전까지 분위기 좋았는데 갑자기 돌변해서 놀랐어.”
“날 싫어해서 그래. 양어머니는 댁이 누군지 몰랐었나봐.”
“어쨌든 재밌네.”
“뭐가 재밌어. 짜증만 나는데.”
모니카는 팔짱을 끼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웃긴게 뭔줄 알아? 저택에 방이 수십개나 되는데 방 한칸을 못내준다는게 말이 돼?”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저택에서 못 자?”
“방이 없다고 나가서 자라더라.”
“양어머니가?”
“그래. 그 자리서 따지고 싶었는데 간신히 참았어.”
“네가 정말 미운건가.”
“날 미워하는게 맞다니깐.”
모니카는 저택에 들어갔다 나온 후로 다소 예민해진 상태였다.
내뱉는 말마다 짜증이 섞여있었다.
리안이 물었다.
“그럼 우리 어디서 자?”
“땅바닥에서 자든가 해야지.”
“여관은?”
“돈 많아?”
“그동안 행상인하면서 벌어놓은거 많잖아.”
“가게도 사야하고 사람도 고용해야 해. 앞으로 들어갈 돈이 얼만데 그 돈을 쓰니? 그리고 내 사업자금이거든?”
“그 말인즉 노숙이나 하자고?”
“별 수 있어? 오천평 땅에다가 당분간 오두막이라도 짓고 살아야지 뭐.”
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 망할 거지생활. 도대체 언제 탈출하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니카가 상속 받은 토지에 도착했다.
나즈막한 임야와 맞닿아 있는 곳으로 야트막한 언덕 위에 올라가면 인근 농지들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았다.
한 켠에는 맑은 물이 샘솟는 웅덩이도 있었다.
작은 연못만한 크기의 웅덩이를 보니 농수 걱정은 그마나 덜었다.
모니카의 양아버지가 정말 좋은 땅을 물려주신 것 같다고 리안은 땅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 자신의 농지를 처음으로 밟아본 모니카는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내 땅 멋지지? 나랑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 안들어?”
리안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그녀였으나, 안타깝게도 발밑을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이 조금전부터 심상치 않다.
리안은 쪼그리고 앉아서 흙냄새를 맡았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알 수 없는 약품 냄새가 섞여있었다.
리안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뜻 보면 아무것도 심지 않은 평범한 땅처럼 보이나, 아무것도 심지 않은게 아니라 생명이 죽었기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땅이었다.
예전에 무무카르가 망쳤던 마을의 땅보다 훨씬 더 상태가 심각했다.
“표정이 왜 그래? 실망했어?”
“아니, 실망한건 아닌데 느낌이 싸하네.”
“왜?”
“이 땅은……”
리안은 뜸을 들이다 말했다.
“농사를 못 짓는 땅이야.”
“뭐!?”
모니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슨 소리야? 땅이 있는데 왜 농사를 못 지어?”
“땅이라고 다 같은 땅이 아니야.”
예를들어 괴물이 땅을 망쳤을때, 그 땅은 괴물이 떠나고 나면 언젠가는 지력을 회복한다.
괴물은 땅의 정기를 빨아먹을지언정 땅을 영구적으로 파괴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땅은 아니다.
미생물이 분해하기 힘든 난분해성 독성 물질을 살포해 누군가가 철저히 파괴시켰다.
고로 자연적인 회복은 불가능.
비료를 잔뜩 쳐발라도 못살리는 땅이 되었다.
중금속 오염 같은 수준으로 땅이 망가졌다.
“누군가 일부러 망가뜨린게 틀림없어.”
“그럴리가……?”
모니카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쪼그리고 앉았다.
흙을 한움큼 쥐고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곧 허망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뭐야…… 흙이 왜이래…… 누가…… 어째서……”
그녀는 잠시 얼이 빠진듯 하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짐마차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분한듯 소리쳤다.
“보나마나 어머니 짓이야!”
“기다려!”
리안이 황급히 뛰어가서 붙잡았다.
“가서 뭐라고 따지게?”
“왜 그랬냐고 해야지! 모두 변상하라고 할거야!”
“증거도 없이?”
“증거는 여기 있잖아! 이 땅이 증거야!”
“당신이 따지러 올걸 예상 안했겠어? 잔뜩 화난 채로 자신한테 오길 바라고 있을거야. 쫓아낼 빌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놨겠지.”
“함정이란 소리야?”
“그럴지도 모르고. 아무튼 첫날부터 대놓고 충돌하지는 말자는 소리지.”
“땅은 개판이 됐는데 난 뭐 먹고 살라고!”
울먹이며 소리친 모니카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이 땅만 믿고 올라온건데……! 여기가 내 전부였다고!”
리안은 묵묵히 그녀를 끌어안으며 달래듯 등을 보드랍게 쓰다듬었다.
“우리가 보란듯이 해결해서 양어머니를 열받게 하는거야.”
“이 땅에선 농사 못짓는다며, 흑흑.”
“방법이 없는건 아니야. 귀찮아서 그렇지.”
모니카는 눈물로 엉망이된 얼굴로 리안을 올려다봤다.
“…어떤 방법인데? 훌쩍.”
리안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땅이 오염됐을때 정화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어. 첫째, 오염 물질을 먹는 미생물을 증식시킨다. 하지만 이 땅에는 못 써먹지.”
안고 있던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며 손가락 두 개를 펴보였다.
“둘째, 이 방법은 아주 간단해.”
리안은 모니카의 눈을 진지하게 마주보았다.
“땅의 오염된 부분만 통째로 걷어낸다.”
“표면을 파낸다고?”
“응.”
“얼마나?”
“그 깊이와 범위를 지금부터 측정해봐야지.”
리안은 즉시 왼팔에 감겨있던 라그레아닐을 삽으로 변신시켰다.
모니카는 신기한듯 쳐다보며 어떻게 했냐고 질문을 했으나 리안은 ‘나중에’ 라는 답변으로 얼버무리며 삽질을 시작했다.
삽으로 흙을 퍼서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땅위에 내려놓았다.
리안은 퍼올린 흙을 유심히 관찰했다.
잠시 후 그가 미소지었다.
“운이 좋았어.”
그 말에 모니카는 힘이 났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던 그녀는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왜? 어떻게 됐는데?”
“우리가 오기 전까지 비가 한방울도 안왔었나봐. 덕분에 독성물질이 땅속 깊이 스며들지 못했어. 천만다행이야.”
“겉흙만 퍼내면 돼?”
“오염된 부분이 지면 아래로 약 2~3cm 정도 밖에 안돼. 매우 얕은 깊이지.”
리안은 오천평 토지를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이 땅 전체를 3cm씩만 걷어내면 되겠어.”
“그렇게하면 농사지을 수 있어?”
그녀의 물음에 리안이 밝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모니카는 펄쩍펄쩍 뛰며 리안을 끌어안았다.
“사랑해!”
“숨막혀!”
그러나 리안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세 가지 문제가 남아있었다.
첫째, 오천평이 말이 오천평이지 리안 혼자 삽질하기에는 며칠이 걸릴 정도로 너무 넓다는 것.
둘째, 파낸 흙은 어디에 두냐는 것. 오염된 흙이라 농지 근처에 둘 수가 없다.
셋째, 비가 오면 모든게 끝이라는 것.
이 세 문제를 모니카에게 설명해주자 그녀는 한참을 고심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일 나랑 친한 하인분들에게 부탁드려볼게. 시간이 되면 도와주실거야. 품삯을 달라면 그까짓거 주지 뭐.”
현재로선 그 방법 밖에 없다.
돈이 들어가도 하루빨리 오염된 흙을 멀리 내다버리는게 중요했다.
리안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기하지 말고 힘내자.”
그렇게 이야기를 일단락 지었다. 
오랜 여행으로 피곤했기에 두 사람은 그만 고민하고 쉬고 싶었다.
이후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마른 나뭇가지를 구해 농지 구석에 모닥불을 피우고 주위에 잠자리를 만들었다.
모니카가 자기 짐을 풀어 헤치고 화장품과 거울, 옷 같은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하는 사이, 리안은 허수와 얘기중이었다.
“오천평 안에서만 돌아다니도록 해. 돌아다니면서 누가 오는지 안오는지 망 잘봐.”
“환영은 내 마음대로 해도 돼?”
“기왕이면 크고 무서운걸로 해. 아, 사자가 좋겠다. 사자 알지?”
“사자는 몰라. 본적이 없어.”
“음…… 그럼 그냥 개나 해. 개로 변신해서 망봐.”
“미남이나 미녀는 안돼?”
“안돼. 그랬다가는 사람들만 더 몰려들거야. 귀신인줄 알고 놀라는 사람도 있을테고, 변태짓하려고 엿보는 놈들도 생길테지.”
“그럴지도 모르겠군. 좋아, 개로 변할게.”
허수는 즉시 개의 환영을 만들어서 주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비록 오천평 한정이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녀서 기분이 좋아보였다.
가끔씩 허락된 공간을 넘어서 곤충이나 들쥐 같은 먹이를 사냥하는 광경도 보였으나 리안은 딱히 뭐라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현재 그는 딴생각에 잠겨있었다.
‘지금이야말로 라카제트를 부를 타이밍이야. 어쩌면 그에게 지금 상황을 타개할 좋은 물건이 있을지도 몰라.’
현재까지 모아둔 영혼의 수는 부족한 느낌이 들었으나 첫 구매 70% 할인을 적용 받으면 대충 뭐라도 하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라카제트를 부르기가 쉽지 않다.
마가 낀 땅 아니면 음탕한 장소여야만 했다.
“조건이 왜 그따구인지.”
혀를 차며 단념하는 그때, 모니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자기야, 나 싫지?”
“왜?”
“처음에 얘기한거랑 달라서 실망한 것 아냐?”
“안실망했어.”
“거짓말. 솔직히 말해. 편안한 침대에서 잘줄 알았는데 차가운 땅바닥에서 자니까 도망가고 싶지?”
“왜 자꾸 이상한 말을 하는거야. 아무 생각 없으니까 입 좀 닫어.”
“어머니한테 서운하고 일도 잘 안풀리고…… 큰 돈 들어가게 생겼고…… 마음이 싱숭생숭해. 이런 와중에 당신 기분도 신경쓰이고.”
“내가 떠날까봐 불안해?”
“당신은 능력이 좋잖아. 어디를 가든 받아줄거야.”
그녀는 잠시 울먹이며 한탄을 하더니 불쑥 말했다.
“나 마사지 받고 싶어.”
“갑자기?”
“마사지 받으면 그나마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 어때……? 해줄 수 있어?”
“곤란한데. 향단이랑도 놀아줘야 하고.”
“그러지마. 나부터 캐어해줘.”
모니카는 리안의 팔을 잡아당기며 어리광을 부렸다.
“마사지가 싫으면 날 꽉 안아줘. 기대고 싶어.”
“그러다 괜히 썸 타기 싫다. 저리가.”
리안이 아무것도 안하고 목석처럼 가만히 있자 그녀가 인상을 썼다.
“바보멍청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직접 말해야 알아듣겠어? 누가 썸 타재?”
모니카는 난데없이 드레스의 어깨끈을 밑으로 내리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랑 여전히 동업하고 싶어 하는지 아닌지 확인해봐야겠어.”
“어쩌려고?”
리안이 당황하며 묻자 모니카는 바쁘게 옷을 벗어던지며 입술을 비죽였다.
“나한테 안 질렸으면 거기 밑에 달린게 발딱 서겠지.”
그녀는 턱짓으로 리안의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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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
존경하는 오드리아님.
맹세컨대 제 주인은 오로지 당신뿐입니다.
공주님을 위해서라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공주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불순한 행위는 공주님에게 닿기 위한 험난한 과정중 하나일뿐입니다.
눈앞의 소악마, 모니카양에게는 아무런 마음이 없습니다.
육체는 희열을 느끼지만 마음만은 늘 공주님에게 향해있습니다.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반드시 공주님께 가겠습니다.
단언컨대 저는 공주님의 열렬한 추종자이며 항상 당신만을 그리워하는 로맨티시스트입니다.
Wait for me!
* * *
“헉! 헉! 헉!”
리안의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모니카를 찌르는 그의 성기는 오천평이라는 바다 한가운데서 필사적으로 노를 젓는 뱃사공의 손길 마냥 힘차고 빨랐다.
찌걱! 찌걱! 
“아흑……! 핫……! 흐읏!”
내내 그를 받아주던 모니카는 팔팔한 성기의 맛에 행복했다.
박음질에 몸부림치는 그녀 역시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어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풍만한 젖가슴은 쉴새없이 출렁이며 간간이 큰 원을 그렸고, 서로의 생식기가 결합된 다리 사이에서는 애액이 줄줄 흘러나오다 못해 홍수가 터져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자세 바꾸자.”
리안은 후배위를 풀고 모니카를 마차의 짐칸으로 데려갔다.
알몸인 모니카에게 짐칸의 난간을 붙잡고 서게 한 다음 그녀의 허리를 뒤에서 잡고 그대로 찔러넣었다.
“아흣!”
굵고 뜨거운 것이 아랫배에 파고들자 모니카는 기쁜듯이 실실 웃었다.
리안은 이번 정사까지 합치면 이제 겨우 세 번째 경험인데, 그새 실력이 늘었는지 부드럽고 정확하게 하체를 쳐올렸다.
찌걱! 찌걱! 철썩! 철썩!
“내 마음이 어떤지 알겠지? 변했어 안변했어?”
“아흐…… 안변했어. 좋아, 너무 좋아. 흣, 흐읏!”
“다음부터 의심하지마. 난 이래봬도 한번 약속하면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니까.”
리안은 화가 덜 풀렸는지 괘씸한 그녀를 꾸짖었다. 
깊이 찔러넣은 성기를 한바퀴 돌리고 또 돌렸다가 완전히 빼낸다음 다시 푹 찔러넣었다.
“까흣!”
박는 순간 모니카의 큼지막한 엉덩이가 세차게 흔들리면서 젖가슴도 덩달아 출렁거렸다.
짜릿한 쾌감이 다시금 휘몰아치자 모니카는 절박한 사람처럼 혀를 내밀고 낼름낼름 거렸다.
급히 리안의 혀를 찾는 행동이었다.
리안은 그녀와 입을 맞추었다.
모니카는 그의 입술을 흡판처럼 강하게 빨아들였다.
“추릅……!”
“후읍.”
한동안 질척한 입맞춤과 함께 피스톤 운동이 지속되었다.
두 사람이 입을 맞추며 침을 뒤섞는 동안 그 아래에서는 굵고 기다란 성기가 사정없이 질안을 긁어댔다.
“아으으……! 아앙! 흐읏!”
모니카는 헐떡이며 물었다.
“자, 자기야. 꼭 떠나야 해? 아아, 으응……!”
“언제? 나중에?”
“6년뒤에 말이야. 고향따위 잊고 여기서 살면 안돼?”
그녀의 속살에 휘감긴 채 쾌락을 맛보면서도 리안은 단호했다.
“떠나야해. ”
“가지마.”
“섹스 때문에 머리가 마비됐어? 떼쓰지 마.”
그의 일갈에 모니카가 큭큭 실소를 흘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와 몸을 섞는게 황홀한 나머지 이대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잠깐 들었을뿐, 이 짜릿한 행위가 끝나고 나면 리안을 열망하는 그녀의 바람이 한층 옅어질 것이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술에 취했을때의 마음과 다음날 깬 후의 마음이 다르듯 지금 그녀의 마음이 그랬다.
그러나 차갑다 못해 자신을 무시하는 느낌마저 드는 리안의 말에 슬쩍 화가났다.
그를 괴롭히고 싶었다.
“이 호구야, 고향에 있는 그 계집애는 너한테 대주기는 했니?”
그러자 리안이 갑자기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모니카는 희열을 느끼며 신음을 내질렀다.
“아앙!”
“말조심해. 그분을 계집애라고 하지마.”
모니카는 순간 심술이 돋았다.
“계집애, 계집애, 계집애. 그년은 계집애.”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뭐야, 한대 더 때렸잖아.”
“당신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큭큭.”
그녀는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했다.
“얼굴 보면서 하고 싶어.”
리안은 평야를 보고 서 있던 그녀를 돌려세운뒤 그대로 끌어안고 번쩍 들어올렸다.
모니카의 몸이 육감적이라 다른 여자에 비해 무거웠으나 리안의 힘이 좋아 그녀를 안아든 채 정사를 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녀를 번쩍 든 채 그의 성기는 다시 제 집을 찾아들어갔다.
“으응……!”
삽입되는 순간 모니카는 반사적으로 기분 좋은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리안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리안은 젖가슴을 빨아재끼며 허리를 쳐올렸다.
곧고 단단한 성기는 부드러운 질속을 수없이 들락날락 거리며 연신 자궁문을 두드렸다.
“아……! 미치겠어!”
모니카는 쾌락을 만끽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말해봐. 그 여자랑 했어 안했어?”
“또 그 얘기야?”
“못해봤구나?”
그녀가 킥킥 웃었다.
“그 여자는 싸가지 없이 튕기대? 나처럼 잘 안줘?”
“그렇게 계속 도발하면 나 이짓 그만한다?”
모니카가 정색하며 리안의 어깨를 툭 쳤다.
“여기서 멈추면 대판 싸움날줄 알아.”
“그러니까 고향 여자 이야기 좀 그만해. 흥이 식잖아.”
“그 여자처럼 나도 좀 아껴줘보시지?”
“아껴주잖아. 내 페니스로.”
모니카는 풉 거리더니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외지에서 당신의 성욕을 채워주는 사람은 나뿐이야. 고마운줄 알라고. 내가 원하면 그 여자가 싫다는 소리 한 번쯤은 해줄 수 있잖아. 예의상.”
“질투나서 그래?”
“누가 질투를 해? 웃긴다 정말. 이 순간만이라도 나를 찬양해달라고. 찬양해 찬양.”
리안은 고민도 없이 웃으며 말했다.
“모니카 최고. 이 순간만큼은 나한테 최고의 여자.”
모니카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억지로 절 받는 격이잖아. 왠지 더 기분 나빠.”
“모니카는 죽이는 명기. 섹시한 여자.”
“그건 좀 괜찮네. 계속 해봐.”
“모니카는 매력적인 젖꼭지와 음란한 엉덩이를 가진……!”
그 후로도 두 사람은 한 시간 동안 엉겨붙은 채 장소와 자세를 바꿔가며 정사를 나누었다.
때로는 원수진듯 격렬하게, 때로는 사랑하는 연인처럼 부드럽게, 또 때로는 음담패설을 즐기며 문란한 짐승들처럼, 리안은 중간중간 모니카의 입안과 젖가슴, 풀숲이 우거진 그녀의 둔덕에 한 차례씩 사정을 했고, 마지막 네 번째 사정에 이르러서는 대지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오천평 토지의 위에다 희멀건한 액체를 넓게 흩뿌렸다.
“대지의 여신 임신시키기!”
“나도! 나도 우리땅 빨리 좋아지라고 기원할래!”
모니카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낄낄거리며 제 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오줌을 쌌다.
그녀의 갈라진 틈에서 누런 액체가 콸콸 쏟아지며 오천평 토지의 일부를 흠뻑 적셨다.
리안은 그 모습을 보며 배꼽을 잡고 자지러졌다.
그리고 냉큼 그녀에게 달려가 자신의 분신을 찔러넣었다.
“어멋, 바보야! 지금 넣으면 어떡해! 다 묻잖아!”
“저쪽에 웅덩이 있어. 씻으면 돼.”
모니카는 못 말리겠다며 웃고는 금세 느끼기 시작했다.
단단하게 곤두 선 페니스가 속살을 비집고 파고들때마다 약해진 오줌발이 갈라지거나 흩뿌려졌다.
농지 위에서 더럽게 사랑한다고 꾸짖을 사람도 없다.
하체를 적신 지린내에 흥분한 두 사람은 이전보다 더욱 거세게 불타올랐다.
* * *
“후아암, 졸려. 눈꺼풀이 무거워……”
지친 표정으로 연신 하품을 하던 모니카는 자리에 눕자마자 금세 곯아떨어졌다.
리안은 잠든 그녀를 확인한 후 손가락에 붉은 반지를 꼈다.
‘라카제트!’
부름과 동시에 발밑이 검은 기운으로 빠르게 뒤덮였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장 차림의 라카제트와 등에 커다란 배낭을 멘 우마족 소녀가 땅위로 천천히 솟구쳐 올라왔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완전히 땅위로 올라온 라카제트는 정중히 예를 갖춰 인사를 건넸다.
“불러주시기만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미소짓자 시퍼런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리안은 허리를 곧게 펴고 그와 담담이 마주했다.
“그쪽도 잘 지냈어?”
“물론입니다. 이 아이도 리안님을 어찌나 보고 싶어하던지 달래느라 혼났습니다.”
리안은 우마족 소녀를 쳐다봤다.
라카제트의 말과는 달리 통통하고 키 작은 소녀는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리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다는듯 무표정이었다.
“안녕?”
리안은 소녀의 얼굴 앞에서 밝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우마족 소녀는 눈 하나 깜빡 안하고 오직 정면만 응시했다.
이렇다할 반응이 없자 리안은 이내 흥미를 잃었다.
라카제트를 돌아봤다.
“내가 원하는 물건들은 입고 됐어?”
“드디어 구매하시는 겁니까?”
라카제트는 손바닥을 마주 비비며 씨익 웃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물건이 들어오긴 했나보다.
어째 리안보다 더 신이난듯 보였다.
과연 쓸만한게 있을지.
그때 주변 바닥을 기어다니던 허수가 리안에게 다가왔다.
“주인, 주변에서 마족의 기운이 느껴져.”
“지금 내 앞에 있어.”
“만나는 중이야?”
“응.”
허수에게는 라카제트가 보이지 않았다.
“위험한 놈이야?”
“아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라카제트가 끼어들었다.
“호오, 이 친구는 ‘거짓말쟁이 슬라임’이군요.”
그는 단숨에 허수의 실체를 꿰뚫어 보았다.
현재 허수는 셰퍼드의 환영을 비추고 있었으나 라카제트는 바닥에 흐물흐물 뭉쳐있는 녹색 액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던전 깊숙한 곳에서만 서식하는 친구가 어째서 밖에 나와 있을까요. 혹시 사역마로 길들이신 겁니까?”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보니 주인이 됐어.”
“우연으로 단정짓기에는 흔치 않은 일. 마물이 리안님을 따르는 것은 필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놀랄만한 무궁무진한 힘을 갖고 계신 분이니까요.”
라카제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리안은 그저 장사꾼의 아첨이라 생각하며 흘려들었다.
“그래서 물건은? 뭘 가져왔지?”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노예나 무구가 아닌 처음으로 다루는 품목이었기에 구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은 물건들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마음에 드시는게 있으면 좋겠군요.”
라카제트는 우마족 소녀가 메고 있는 배낭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는 무언가를 꺼내더니 뒤로 휙 내던졌다.
퐁 하고 콩알탄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연기가 피어올랐다.
자욱한 연기가 걷히자 비옥한 토양이 실린 손수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프의 땅에서 가져온 ‘에라니스 흙’입니다. 생물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마법의 힘이 함유되어 있지요. 어떤 식물이든 심기만 하면 2~3배 빠른 성장을 보여줍니다.”
“오……”
리안은 놀라워하며 가까이 다가가 흙을 만져보았다.
모래보다 고운건 둘째치고 향기로운 퇴비 냄새에 당장 사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한 번 써보고 싶다!’
하지만 마음을 애써 짓눌렀다.
돈이 부족한 마당에 충동적으로 사는건 사치!
현재 리안이 원하는건 오염된 토지를 정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물건이었다.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라카제트를 쳐다보았다.
“다른건?”라카제트는 다시 배낭속에 손을 넣었다.
“한꺼번에 보여드리지요.”
그는 연달아 무언가를 꺼내 휙휙 내던졌다.
퐁!
퐁!
퐁!
퐁!
연기가 자욱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길 총 네 번.
라카제트는 하나씩 설명했다.
“지옥의 파수견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황소만한 크기의 머리 세 개 달린 개가 포효했다.
몸통에서는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케르베로스는 어떠십니까? 밭을 감시하는데 최적의 파수꾼입니다.”
리안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손을 저었다.
“패스.”
밭 다 태워 먹을 일 있어?
케르베로스는 전~혀 필요없다.
농사와 관련된 물건은 처음 다룬다더니 역시 초보티가 나는구나.
“잘 길들이기만 하면 케르베로스만한 충직한 마물도 없는데, 흐음 아쉽군요.”
라카제트는 씩 웃은뒤 다음 물건 앞에 가서 섰다.
두 번째 물건은 이름을 알 수 없는 풀이 무성하게 자란 화분이었다.
“밭에 심어 놓으면 3개월간 토지에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식물입니다. 심고 나서 관리도 필요없지요.”
“음……”
괜찮네.
리안은 짧게 고민하다 결정을 유보했다.
다음 물건을 보고 판단할 생각이다.
라카제트는 세 번째 물건 앞으로 가서 섰다.
돌돌 말린 종이들이 바닥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타인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향상시켜주는 마법을 영구적으로 배울 수 있는 주문서입니다.”
리안은 귀가 솔깃했다.
“어떤 능력을 강화할 수 있지?”
“근력, 체력, 마력, 민첩성, 지구력, 지능, 운. 이렇게 총 일곱 가지입니다. 강화 단계는 레벨 1부터 10단계 까지 있고, 리안님도 당연히 아시겠지만 단계가 올라갈수록 가격도 비싸집니다.”
라카제트는 주변에서 멀뚱멀뚱 있는 허수를 가리켰다.
“예를들어 저 사역마한테 주문을 걸어주면 평소보다 배는 더 일을 잘할 것입니다.”
“멋지네.”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라카제트가 검지 손가락을 세우고 말했다.
“우선 자신에게는 주문을 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전자의 마력이 주문을 건 대상의 마력을 최소 두 배 이상 상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문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 점은 마음에 안드네. 내가 허수보다 마력이 높을려나……?”
리안이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하자 라카제트는 웃으며 속으로 말했다.
‘아직 모르시는 걸까요? 당신보다 강한 마력을 가진 자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리안은 골치 아프다는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몰라. 다음.”
“네.”
라카제트는 곧장 마지막 물건 앞에 가서 섰다.
그의 뒤에 신장 2미터의 골렘이 듬직하게 서있었다.
“일손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되는 바위골렘입니다. 혼자서 열명분의 일을 능히 해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력만 충분하다면 한달이든 일년이든 쉬지않고 계속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오, 괜찮네.”
골렘이라……
너무 눈에 띌것 같기도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이중에 마음에 드는게 있으신지요?”
“음……”
리안은 신중히 고민해보았다.
일단 마음이 가는건, 
3개월간 영양분을 제공하는 잡초
마법 부여를 영구적으로 익힐 수 있는 주문서
바위골렘
이 셋이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영혼이 부족해 모두 사는건 무리.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도움이 될만한 물건이 무엇일까.
이윽고 결정을 내린 리안은 그것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것으로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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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
다음날 아침.
아침식사를 마친 메건 부인은 하녀를 데리고 텃밭에 와있었다.
어린 양배추 밭을 둘러보는 그녀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 사람이 말한대로 확실히…… 뭔가 좀 부족해 보여.”
어제 전문가가 한번 훑고 지나가서 그런지 그동안 잘 키웠다며 뿌듯하게 생각했던 양배추 밭의 단점이 그녀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비싼 비료를 사다 뿌리고 물도 아낌없이 퍼주며 정성을 다해 키워왔건만, 기대와 달리 평범한 양배추 밖에 되지 못했다.
그녀는 시장에서 파는 양배추보다 더 품질이 좋은 양배추를 재배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흠.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마음 같아서는 어제 그 청년에게 가서 물어보고 싶었으나 모니카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모니카의 사람이라, 그를 부르게 되면 자연스레 모니카까지 따라올테니 그 점이 싫었다.
모니카와는 가능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배우는 수 밖에 없나.”
결국 그녀는 단념했다.
청년에 대한 생각을 지우고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흙을 고르고 잡초를 뽑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하인 하나가 소리치며 뛰어왔다.
“마님! 아이구 마님!”
“무슨 일이죠?”
저 멀리 농지에서부터 뛰어온 하인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 글쎄! 앉은뱅이 산쪽에 골렘이 나타났습니다요!”
뜬금없이 골렘이라니.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 메건 부인은 바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골렘이라니? 어떤 골렘을 말하는거죠?”
“아 그! 마법사들이 돌덩이 여러개 붙여서 만드는 녀석들 있잖습니까. 사람처럼 생겨서 움직이는거요.”
메건 부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골렘이 나타났다고요?”
“네네! 지금 앉은뱅이 산쪽에 있습니다요!”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텃밭을 빠져나와 곧장 저택쪽으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가까운 용병대에 가서 처리를 의뢰할 생각이었다.
“남자들을 전부 불러모으세요.”
“다들 일하다말고 그쪽으로 몰려갔습니다요.”
“그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거길 가요? 괜한짓하다 죽지말고 전원 여기로 집합하라고 하세요.”
“잡으러 간게 아니라 구경중입니다. 골렘이 농사를 짓지 뭡니까.”
“네?”
메건 부인의 걸음이 멈췄다.
그녀는 하인을 향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농사를 짓다니요?”
하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앉은뱅이 산 옆에 모니카 아가씨의 밭이 있지 않습니까? 골렘이 거기서 일하고 있습니다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메건 부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라고요?”
* * *
모니카의 밭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뒷짐을 지고 구경중이었다.
“오래살다보니 별게 다 있네. 허허참.”
“나도 저런거 하나 있으면 좋겠구만.”
“모니카가 사온거야?”
“아마도 그렇겠지?”
“아따 돈 많은가 보오.”
메건 부인은 조용히 사람들속에 섞여 밭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바위골렘 한마리가 널따란 판자처럼 생긴 특이한 삽을 들고 삽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말도 안돼.”
녀석은 한번에 넓은 범위의 겉흙만 살짝 파냈다.
파낸 흙은 그 옆에 정차해있는 짐마차의 짐칸에다 버렸다. 
마차의 마부석에는 리안이 앉아있었다.
그는 바위골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파낸 흙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런식으로 오천평 토지의 약 5 분의 1 가량이 파헤쳐져 있었다.
바위골렘이 들고 있는 특이한 삽의 크기가 가로 1.5m 세로 1m로 워낙 컸기에 사람 열명이 흙을 퍼내는 속도보다 작업이 훨씬 빨랐다.
더구나 지치지도 않았다.
삽질을 하는 움직임은 항상 신속하고 정확했다.
“저 청년이 가져온 골렘인가……?”
메건 부인이 놀라워하는 사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 마님!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도착했습니다.”
그때까지 넋놓고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메건 부인한테 혼날까 두려웠는지 재빨리 흩어지며 각자 자기일을 하러 떠났다.
뒤늦게 메건 부인을 알아본 모니카가 다가왔다.
“어머니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녀는 웃는 얼굴로 양어머니를 마주대했다.
하지만 메건 부인은 인상을 굳히며 쌀쌀맞게 말했다.
“저 골렘은 어디서 났느냐?”
모니카는 먼 곳에 있는 리안을 가리켰다.
“저이가 구했어요. 땅이 오염돼서 걱정했는데 어찌나 잘 됐는지. 아, 맞다!”
모니카가 손뼉을 치며 물었다.
“어머니, 제 땅이 오염된거 아셨어요? 어제 여기 와봤더니 글쎄 땅이 오염되었더라고요. 누가 했는지 몰라도 정말 나쁜짓을 했지 뭐예요.”
“……”
메건 부인은 바위골렘한테 시선을 둔 채 모른척 시치미를 뗐다.
“그런걸 신경쓸 여유가 어딨겠니. 모르는 일이다.”
“네,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어요.”
메건 부인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범인은 잡았어?”
“아뇨, 아직 못잡았어요. 근데 잡을 생각도 없고 그냥 넘어가려고요.”
“잘 생각했다. 여기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괜히 들쑤셔봐야 좋을 게 없다. 사람들 입에 너에 대한 흉만 오르내리겠지.”
메건 부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섰다.
“시간이 없어서 이만 가보마.”
“벌써요? 조금 더 얘기하다 가시지.”
“차 마실 시간이야.”
“아……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메건 부인은 저택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괜스레 화가났다.
조금전 대화에서 모니카가 일부러 자신을 떠본 것 같아 괘씸했고, 거기에 더해서 망가진 땅을 다시 살려내고 있는 모습이 매우 못마땅했다.
‘땅 좀 제대로 망가뜨려 놓을 것이지!’
그렇게 씩씩대며 걸어가던 메건 부인은 우뚝 멈춰섰다.
불현듯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가만 있어보자.”
보아하니 모니카가 농사를 짓겠다며 떠들어 대는 이유가 아무래도 그 청년을 믿고 그러나본데, 만약 청년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사라지게 하냐면……
“모니카에게서 청년을 빼앗는 거야.”
그렇게 되면?
농사에 무지한 모니카는 당장 어려움에 처할 것이고 아울러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어 외롭겠지.
결국에는 이 땅을 떠날게 확실했다.
“흐음.”
갑작스레 떠오른 아이디어지만, 메건 부인은 청년을 꼬드겨 우리편으로 만드는 계획에 구미가 확 당겼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현재 청년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첫 인상이 아주 좋았다.
그와 텃밭에 관해 대화하며 함께했던 기억은 다음날이 되어도 계속 머릿속에 맴돌 정도로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농사 지식에 해박한 사람이기에 곁에 데리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손해보는 건 없어. 어차피 그는 아예 안보려 했던 모니카의 사람이니까. 온다면 손 잡아주고, 싫다면 가라지.”
이후 저택에 돌아간 그녀는 사람을 보내 리안과 모니카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 * *
“자자 사양하지 말고 많이 드세요.”
메건 부인의 말에 리안은 식탁을 살펴보았다.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인 황도 인근지역이라서 그런지 평소에는 보기 힘든 해산물 요리를 비롯해 각종 산해진미가 그를 반겨주고 있었다.
게를 넣고 끓인 스튜, 고급 치즈, 야채를 곁들인 어린 사슴 통구이, 익힌 굴 요리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멋진 요리들만 보였다.
이세계에 온지 거의 5년만에 처음 만나는 맛난 음식들!
리안은 주저하지 않고 수저를 들이밀었다.
“잘 먹겠습니다!”
먼저 껍질채 익힌 굴을 하나 까서 입안에 넣자 향긋한 바다 내음이 전해지면서 하루종일 흙을 파느라 쌓였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원기충전!
정력빵빵!
“와, 정말 신선하네요.”
리안이 맛있게 굴을 씹어먹자 옆에 앉은 메건 부인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3일전에 친정에서 보내온 굴입니다. 친정 아버지께서 특별히 신경써서 보내준 특등급 굴이지요.”
“친정이 바닷가 근처에 있으세요?”
“내 친정 가문은 대대로 린들리아 해협의 관문을 지켜왔습니다.”
“아……”
그곳 영주의 딸인가 보구나.
어쩌다 바다에서 이 내륙까지 시집을 왔담.
메건 부인의 인생도 참 순탄치는 않았겠다고, 리안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산물 요리는 정말 오랜만이라서 맛있네요.”
지구에서 먹어보고 처음이다.
순식간에 굴 세 개를 연달아 해치운 리안은 게 스튜의 국물을 떠먹었다.
그는 국물 한숟갈을 입안에 넣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줄곧 리안의 표정만 살피던 메건 부인이 바로 물었다.
“맛이 이상해요?”
“잠시만요.”
리안은 게 스튜의 국물을 한숟갈 더 떠먹으며 맛을 음미하더니 말했다.
“혹시 여기에 토마토가 들어갔나요?”
메건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긴 했습니다. 왜요?”
“이건 일반 토마토가 아니네요. 그 뭐지……”
리안은 잠깐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말했다.
“제국 북쪽 아산시라 지방에서 재배하는 노랑 마르자오 종 같은데요. 아닌가요?”
메건 부인이 깜짝 놀라더니 그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맞아요. 어떻게 안거죠?”
리안은 턱을 긁적이며 뿌듯하게 웃었다.
“노랑 마르자오 종은 단맛을 내는 일반 토마토와 달리 특유의 시큼한 맛이 있거든요. 그리고 과일 껍질은 질겨서 생으로 못먹고 대부분 갈아서 술과 조합한다든지 해산물 요리에 주로 쓰이는데, 여기 게 스튜에서 약간 시큼한 맛이 나고 작고 질긴 껍질 조각들이 드문드문 보이는게 딱 노랑 마르자오 토마토 같다 싶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리안이 더욱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노랑 마르자오 종은 전 세계적으로 아산시라 지방에서만 자라는 희귀 품종이기에 오드리아와 함께 지냈던 왕과 여왕의 안식처 농장에서도 키우던 토마토였다.
이미 그 맛을 아니 자신있게 맞출 수 밖에.
“놀랍습니다.”
리안의 설명을 들은 메건 부인은 그의 해박함에 새삼 감탄했다.
“황궁에 들어가서 박사를 해도 되겠어요.”
“아뇨 뭘 이런걸 갖고요.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리안은 멋쩍게 웃으며 음식을 입안에 넣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모니카.
현재 그녀는 겉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속에서 열불이 나는 중이었다.
당장 이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거렸다.
‘어머니께서 일부러 이러시는 거야.’
오늘 초대받은 사람은 분명 자신과 리안인데, 자신은 처음 인사할때만 제외하고 식사 내내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더구나 자리 배치도 어이없었다.
리안과 메건 부인은 원탁에 서로 가까이 앉아있었고 자신은 그 두 사람의 반대편에 앉아있는 모양새였다.
당연히 소외감을 느꼈다.
메건 부인은 가까운 자리에 앉은 리안만 쳐다보고 그 하고만 대화를 나누었다.
그 모습을 강제로 봐야하는 모니카는 속상했고 질투심까지 솟구쳤다.
‘리안도 바보같아. 내 옆자리로 오던가 해야할 것 아냐. 눈치없는 놈!’
뭐가 좋다고 어머니랑 희희낙락대는지.
자기들끼리만 대화를 나누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나서 밥도 안넘어갔다.
화나고 불편한 마음은 식사내내 계속 되었다.
그녀는 버려진 개처럼 홀로 침묵을 지키며 앉아있었다.
가끔씩 리안이 말을 걸어와 주기는 했으나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얄밉기만 했다.
쓸데없는 말만 해댔고, 정녕 그녀가 원하는 말과 행동은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어머니만 남아있는 저택에 올때마다 가뜩이나 주눅이 드는데, 믿고 있던 리안마저 저러니 그녀는 더욱 풀이 죽어서 힘도 안났다.
이윽고 식사가 끝났다.
“잘 먹었습니다.”
모니카는 한숨을 내쉬며 드디어 저택을 나간다는 생각에 기운을 냈다.
그런데 양어머니가 대뜸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리안 씨는 오늘부터 우리 저택에서 묵으세요. 방은 준비해놨습니다.”
모니카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예? 저는요?”
메건 부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딱 잘라말했다.
“리안 씨는 우리 가문의 손님이잖니. 손님을 밖에서 재울 수 없다. 너는 네가 알아서 하고.”
“저는 딸이에요!”
모니카는 저녁식사 내내 참고 있던 화가 폭발했다.
양어머니를 향해 처음으로 소리쳤다.
“딸은 나가서 자도 돼요? 그게 말이 되냐구요!”
“너는 독립했으니 여기 있으면 안돼. 집에 기대는 순간 주저앉고 말거야. 지금은 처지가 힘들어도 열심히 노력해서 살아갈 생각을 하려무나.”
모니카는 황당하다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하, 난 수련중인 수도사였구나. 몰랐네요.”
“비꼬는거니?”
“어머니의 말씀이 이해가 안됐을 뿐이에요. 아무튼 제가 여기서 잘 수 없다면 리안도 절대 여기서 못 자요.”
“선택은 리안 씨가 하는거야. 리안 씨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봤어?”
“물어보나 마나죠.”
모니카는 뽐내듯 대꾸했다.
“리안이는 반드시 절 따라올겁니다!”
“리안 씨가 과연 차가운 땅바닥에서 자고 싶어할까?”
메건 부인이 웃었다.
“나 같으면 푹신한 침대가 있는 방에서 자고 싶을텐데.”
“저랑 내기 할래요?”
“그래, 해보자구나.”
메건 부인은 자신 있었다.
식사 내내 그녀와 리안의 분위기는 좋았으니까.
그리고 목욕을 할 수 있는 편안한 침실을 마다할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는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더욱이 리안은 오랜 노숙생활로 지쳐있을터.
“자 리안 씨. 나와 모니카 중에서 골라봐요. 당신은 누굴 따라가고 싶죠?”
메건 부인과 모니카의 시선이 동시에 리안에게 향했다.
그때였다.
리안이 묵묵히 겉옷을 벗는게 아닌가!
승리를 자신했던 모니카는 화들짝 놀랐다.
“침대 내가 사줄게! 아주 푹신한 걸로 사준다고! 짐승이 우글대는 들판에서 나혼자 자게 할거야?”
메건 부인이 끼어들었다.
“안심하세요. 모니카한테는 하인 다섯을 보내 밤새 지키라 일러두겠습니다.”
이어 웃으며 말했다.
“하루쯤 뜨끈한 물속에 들어가 그간의 피로를 풀고 싶지 않나요? 왕족들이 즐겨 마시는 값비싼 포도주도 준비되어 있답니다. 수발이 필요하면 전담 하녀도 붙여주겠어요.”
그 말을 듣자 모니카는 심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리안을 바라봤더니, 겉옷을 벗는 것도 모자라 이번엔 제 집 안방인 것 마냥 거실에서 조용히 신발을 벗고 있었다.
“맙소사……!”
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침울해졌다.
메건 부인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자, 선택해봐요. 나와 모니카 중에 누구죠?”
거실에 맨발로 선 리안은, 모니카와 메건 부인을 번갈아 바라보며 뜸을 들이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는……”
그는 손을 내밀어 모니카의 손을 꼭 잡았다.
“저와 모니카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실과 바늘 같은 존재입니다. 모니카가 이 저택에서 잘 수 없다면, 저도 이곳에 머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함께여야 합니다.”
그 순간, 자신이 질줄 알았던 모니카의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뜻밖의 감동을 받은 그녀는 울먹이면서 리안의 어깨를 툭 때렸다.
“바보야 옷은 왜 벗었어.”
“밥 먹고 더워서 그랬어.”
“그럼 신발은?”
“하루종일 밭에서 일했더니 무좀이 생겼나봐. 가렵더라고.”
둘의 다정한 대화를 지켜보던 메건 부인은 속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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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화가 치밀었지만 억지로 화를 삼키며 출입문을 가리켰다.
“나가는 길은 저쪽입니다.”
리안과 모니카는 눈치껏 작별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안이 다시 저택으로 들어왔다.
메건 부인은 두 번 다시 안볼 사람처럼 리안을 냉대했다.
“왜 다시 왔죠? 기회는 이제 없어요.”
“말씀드릴게 있어서 왔습니다.”
“바쁘니 짧게 말하세요.”
그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니카의 밭을 망친게 어머님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메건 부인은 잠시 시간이 멈춘듯 표정이 굳어있다가 이내 코웃음을 쳤다.
“증거 있어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괜히 시간만 버렸네. 돌아가세요.”
리안은 침착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사실, 이곳에 오기전 발라스라는 이름을 가진 하인과 만났습니다.” 
“……!”
그제야 메건 부인에게서 당혹스러운 기색이 엿보였다.
리안은 속으로 미소지었다.
그는 그동안 밭을 망가뜨린자를 찾기 위해 모니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은밀히 움직였다.
처음부터 메건 부인을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했기에 그녀의 주변부터 최우선으로 조사해보았다.
다양한 환영을 만들 수 있는 허수를 저택에 잠입시킨뒤 땅을 오염시킨 독성물질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제품을 찾으라고 명령했다.
그 결과 텅 빈 ‘베르킨텐산’ 통을 농약을 관리하는 창고에서 발견했고, 그뒤 운좋게 발라스 라는 자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그자의 멱살을 붙잡고 추궁했더니 본성은 착한 사람인지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며 술술 불더군요.”
리안은 메건 부인의 눈을 쳐다봤다.
“마님께서 시켰다, 자백했습니다.”
메건 부인은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곧 여유를 되찾았다.
“그래서요?”
그녀는 자신이 한짓이 탄로났음에도 당당했다.
“원하는게 뭐죠? 혹시 나한테 돈이라도 뜯을 생각인가요? 모니카가 그러자던가요?”
“모니카는 이 일에 관해 모릅니다.”
리안은 잘라 말했다.
“어머님께서 땅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모니카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죠?”
메건 부인은 금세 무언가 떠올랐는지 쿡쿡 웃었다.
“아아, 당신에게 내가 모르는 면이 있었나 보군요. 겉보기엔 농사밖에 모르는 성실한 청년으로 보였는데 내가 잘못봤어요.”
그녀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봐요. 어쩌면 우린 좋은 파트너가 될 수도 있겠네.”
뉘앙스가 마치 리안이 무언가를 얻어낼 목적으로 그녀를 협박하러 왔다는 투다.
“돈? 땅? 좋은 일자리? 아니면…… 흠. 나이든 귀부인의 몸은 흥미가 없을테고. 또 뭐가 있을까?”
리안은 맑은 눈빛으로 단호히 말했다.
“원하는 건 없습니다. 이번 일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묻어 두려합니다.”
“……?”
메건 부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럼 왜 날 찾아온거죠?”
“꼭 알아주셨으면 하는게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리안을 응시했다.
“해봐요.”
“모니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마요.”
“안됩니다. 꼭 들어주셔야합니다.”
“……”
메건 부인은 잠시 리안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어서 말하라는듯이 손짓했다.
리안은 즉시 입을 열었다.
“모니카는 당신을 어머니로 생각합니다. 법적으로 어머니가 아니라 진짜 어머니 말입니다. 당신은 그녀를 차갑게 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당신을 욕하는 건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곳에 오기전 당신에게 줄 선물을 고르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가 선물을 좋아하실지 싫어하실지 몇날며칠을 걱정하고 설레여 했다는걸 아십니까? 저는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모니카가 정말 어머니를 많이 위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안은 잠시 말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저는 그처럼 걱정많고 누군가를 열심히 챙겨주는 모니카를 처음 봤습니다. 그녀는 늘 활달하고 대범하며 섬세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덤벙대는 여자였거든요. 하지만 집에 돌아오고 나서 그녀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주눅들고, 눈치를 보고, 기를 못피는게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그게 나 때문이라는 건가요?”
메건 부인의 물음에 리안은 의미심장하게 대꾸했다.
“당신을 진짜 어머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녀가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쓰고 노력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리안은 메건 부인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는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말했다.
“모니카를 사랑해주세요. 그녀는 당신의 딸입니다.”
리안이 돌아간 후 메건 부인은 한동안 꼼짝않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 아이가 딸이라고?”
그녀는 자조섞인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 문득 옛날 일이 떠올랐다.
귀족들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는 진부한 이야기지만 자신이 그 진부한 이야기의 당사자가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귀족으로 태어난 남편은 젊은시절 모니카의 친모 조슬린과 연인사이였다.
하지만 조슬린의 신분이 평민이었기에 남편의 집안은 두 사람의 사랑을 허락지 않았다.
남편은 결국 자신과 결혼했고, 남편에게 평생을 그리워하는 여자가 있다는 건 시집을 오고 나서야 알게되었다.
남편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계속 조슬린과 인연을 이어나갔다.
그즈음 조슬린도 결혼을 하며 유부녀가 되었지만 남편은 개의치 않았다.
각자의 길을 걷게된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에서 진득한 우정으로 변하며 서로가 잘 되기를 응원해주는 좋은 친구사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관심을 쏟게되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홀해지기 마련.
남편은 집에 있는 처자식보다 조슬린의 가족을 더욱 알뜰히 챙기며 정작 아내인 자신을 분노케 만들었다.
그러나 그 화를 겉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속앓이만 할뿐 남편의 행동에 대해 딱히 뭐라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한다고 어릴때부터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아하고 교양있는 귀부인이면서 남편에게 순종적이었다. 
조슬린을 매일같이 증오하고 미워하면서도 늘 참고 살았다.
세월이 흘러 어느날 기쁜 소식이 도착했다.
조슬린이 병으로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로부터 몇달뒤.
남편은 불쑥 다섯살 여자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 아이가 바로 모니카였다.
엄마가 죽고나서 몇달 후 아빠까지 사고로 죽자 남편이 보다못해 데려온 것이었다.
메건 부인은 그날 몸살이 나 앓아 누웠다.
모니카의 얼굴에서 죽은 조슬린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편은 그녀가 배 아파 나은 두 아들보다 남의 딸인 모니카를 더 많이 사랑하고 아꼈다.
메건 부인은 모니카에게조차 질투심을 느꼈다.
어린 아이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지만 밉고 또 미웠다.
결국, 그러한 감정이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
방안에서 멍하니 서 있던 메건 부인은 탁자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탁자 위에는 엊그제 모니카에게 선물 받은 모자가 포장지도 뜯히지 않은 채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그녀는 무심코 포장을 뜯었다.
은박의 반짝이는 포장지를 완전히 벗겨내자 상자가 나왔다.
상자를 열자 챙이 넓은 예쁜 모자가 눈에 들어왔다.
첫눈에 보는 순간 색깔과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모니카는 자신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듯 했다.
문득 리안이 떠날때 남기고간 말이 떠올랐다.
‘모니카를 사랑해주세요. 그녀는 당신의 딸입니다.’
모니카에게 선물 받은 모자를 보고 그 말을 다시 되새겨보니 왠지 모르게 진한 울림이 전해졌다.
“틀린 말은 아니야……”
지난날 남편에게 사랑 받기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에 비해 지금은 한없이 조용하고 쓸쓸했다.
조슬린은 죽고, 남편도 떠났다.
질투를 느낄 대상도 사랑을 간절히 요구할 연인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끝난 후에 생각해보니, 과거 조슬린을 질투했던 감정들이 지금에 이르러 허무하기도 하고 부질없는 낭비처럼 느껴졌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조슬린은 단명하고 남편은 막대한 부를 남겨주며 나보다 먼저 떠났는데 뭐하러 그때 그렇게나 질투하고 속앓이를 했을까.
올해 마흔 다섯.
남편과 살아온 날보다 혼자서 살아갈 날이 훨씬 길었다.
과거에 얽매여 있기에는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니카를 왜 미워해야하지?
정말 미운 사람들은 전부 떠났고 결국 내가 이겼잖아.
여유가 생겼다.
자비심이 생겼다.
그녀의 마음에 불현듯 모성이 꿈틀거렸다.
죄없는 아이를 왜 미워했을까?
나를 위해 선물을 해주고 오직 나만을 생각해주는 아이인데.
“따지고 보면 모니카도 가여운 아이야.”
* * *
다음날.
3cm 정도의 겉흙을 걷어내는 일은 오늘도 계속 됐다.
바위골렘이 흙을 퍼서 마차의 짐칸을 가득 채우면 리안과 모니카는 퍼낸 흙들을 먼 곳에 버리고 왔다.
오염된 흙을 아무데나 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넓은 공터에 농사용으로 쓰는 커다란 천을 깔아놓고 그 위에 산처럼 쌓았다.
나중에 흙속의 불순물을 걸러내서 재사용할 생각이었다.
“골렘은 그냥 골렘이라고 부를거야?”
오염된 흙을 버리고 돌아가는 길.
마부석에 나란히 타고 있던 모니카가 갑자기 바위골렘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줄거냐며 물어왔다.
그에 리안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K-골렘으로 할까?”
“케이 골렘? K가 무슨 뜻이야?”
“내가 고향에 있을때 앞에다 K붙이는게 유행이었거든. 한국형 골렘.”
“그럼 그걸로 하든지.”
“아니야. 그냥 다른 이름 붙이자. 고향 생각날 것 같아.”
“아이구 우리 리안이 고향 생각나서 울 것 같아요?”
“놀리지마.”
리안은 다시 고민해보더니 말했다.
“돌쇠하자 돌쇠.”
“단순무식해서 좋다.”
“구수하고 좋지?”
“촌스럽지만 촌스러워야 빨리 정들어.”
모니카가 히히 웃었다.
그렇게 그녀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밭으로 돌아왔을때였다.
뜻밖에도 메건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모니카가 선물해준 아름다운 모자에 펑퍼짐한 귀부인 드레스를 입고 홀로 밭에 서 있었다.
“갑자기 왜 오셨지?”
“저봐! 내가 사준 모자야!”
리안과 모니카는 서둘러 마부석에서 내려 그녀에게 뛰어갔다.
“어머니!”
모니카는 양어머니가 쓰고 있는 모자를 보고 너무도 기쁜 나머지 말문을 잃었다.
“감동이에요! 흐흑!”
메건 부인은 무심한듯 하면서도 멋쩍은 표정으로 모니카를 힐끗 바라본 후 리안을 마주봤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오길래 떠날 생각이었어요.”
“죄송합니다. 흙을 버리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할 것 까지야.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내 잘못이겠죠.”
메건 부인은 바닥에 내려놓고 있던 네모난 가방을 집어들었다.
리안에게 가방을 쓱 내밀었다.
“무거우니까 빨리 받으세요.”
리안은 얼결에 가방을 받아들고 그녀를 쳐다봤다.
“이게 뭐죠?”
“흙.”
그녀는 새침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흙 처리 비용으로 주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리안은 무슨 뜻인지 곧바로 알아챘다.
반면에 모니카는 무슨 소린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흙 처리 비용?”
“그런게 있어.”
리안은 대충 얼버무리며 메건 부인을 돌아봤다.
“잘 쓰겠습니다.”
“당신이 어제 그 말을 해서 주는게 아니니까 오해 말아요. 딱히 신경도 안썼으니까.”
“오해 안합니다.”
리안은 싱글벙글 웃었다.
모니카는 서운하다는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어제 무슨 말을 했는데? 뭐야 대체. 나만 쏙 빼놓고 두 분이 무슨 얘기했어요?”
메건 부인이 그녀를 쳐다봤다.
“그리고 모니카.”
“네?”
“지금 즉시 리안 씨와 함께 저택으로 들어오렴. 너희 두 사람을 위해 방을 준비 해뒀다. 앞으로 거기서 생활하도록 해.”
“예!?”
모니카는 깜짝 놀라며 눈을 휘둥그레떴다.
“바,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듯 메건 부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셨어요……?”
“엄마가 돼서 딸을 밖에서 재울 수 없잖니. 아무튼 그런줄 알거라.”
메건 부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등을 돌리고 떠났다.
떠나는 발걸음이 빨랐다.
방금 본인이 내뱉은 말이 꽤나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꺄악!”
모니카는 리안을 끌어안고 기쁜 비명을 내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들었어? 어머니가 들어오래!”
“잘 됐다.”
“너무 좋아! 자기도 미치도록 좋지!”
“응.”
리안은 멀어져가는 메건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그는 이어 쪼그리고 앉아 그녀가 건네준 가방을 열어보았다.
열자마자 금빛으로 눈이 부셨다.
놀랍게도 가방 안에는 300골드가 들어 있었다.
한국 돈으로 치면 무려 3억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꺄악, 미쳤어!”
모니카는 재차 리안을 얼싸안고 기뻐했다.
하늘에서 난데없이 목돈이 떨어지자 리안 역시 황홀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찰랑, 찰랑.
그는 손에 넘치도록 금화를 쥐어보며 다시금 메건 부인을 쳐다봤다.
어느새 저 멀리 멀어져 있었다.
큰 길가에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오르는 그녀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장모님 사랑합니다.’
농사 준비는 더할나위없이 순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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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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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날한시에 고위 귀족 세 명이 죽었다.
그들의 시신을 안치한 관들이 황궁을 지나 신전을 들르고 마지막으로 남쪽 성문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뒤를 따르는 추모행렬만 오백명이 넘었다.
세 개의 가문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수천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죽은자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거리에는 발디딜 곳이 없어 탑의 계단, 자택의 창가 혹은 지붕 위에 올라가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쩌다 죽은거래?”
“뭐긴 뭐겠어. 또 마족놈들 짓이겠지.”
“세 분이 창관에서 술먹다 죽었다는 소리도 있던데?”
“쉿! 창관 소리는 꺼내지도 마. 저들 가문에서 알면 난리나!”
이윽고 금장식이 빛나던 세 개의 관은 남쪽 성문을 통과하며 황도를 떠났다.
세 구의 시신은 먼 길을 이동해 각자의 영지에 묻힐 것이다.
“이제야 끝났네. 따분한 장례식.”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장례식에 참석했던 리사는 성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올라탔다.
반대편 의자에 에밀리가 앉아있었다.
“고생하셨어요.”
“내가 왜 내가 죽여놓고 장례식까지 참석해야하지?”
“간단해요. 참석 안했으면 욕먹었어요.”
“알게 뭐야.”
자리에 앉은 리사는 양손에 끼고 있던 검은 레이스 장갑을 벗었다.
“출발하겠습니다.”
케스티리아가 조심스레 마차의 문을 닫았다.
잠시 후 말을 탄 그녀가 앞장섰고 마차가 그뒤를 따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조용하겠네요.”
에밀리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죽일 놈들은 다 죽여놨으니까요.”
리사는 별다른 대꾸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을 응시하는 그녀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오늘 장례식을 치른 세 명의 고위 귀족은 몇주전 암살자 라간을 고용해 자신을 죽이려했던 자들이었다.
한때 라간에게 납치됐던 그녀는 이후 황도로 돌아오자마자 통쾌하게 복수를 해버렸다.
“내가 니들따위한테 당할줄 알았어?”
리사는 한동안 쿡쿡거리며 저혼자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기를 지우고 에밀리를 돌아봤다.
“당근은 어떻게 됐어? 김당근 말이야.”
에밀리는 울상을 지었다.
“황도에 입성했다는 기록이 없어요.”
“아직도? 제대로 확인해봤어?”
“성문 출입기록을 세 번이나 뒤져봤어요. 분명 황도에 온다고 했는데 도중에 무슨 사고라도 당한건지 한달째 소식이 없지 뭐예요.”
“흐음.”
리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며 리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무사히 탈출했으니 이제 각자 갈길 가야죠. 백작님은 본인 소유의 야영지로. 저는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야영지로. 아셨죠?’
그녀가 피식 웃었다.
“각자 갈길 간건가……”
“뭐 짚이는 거 있어요?”
리사는 에밀리의 말을 무시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깜찍해.”
“네?”
“수줍음쟁이.”
“수줍음쟁이?”
“나랑 밀당을 하고 싶다 이거지?”
“뭐라구요?”
에밀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기요. 똑똑. 계세요? 리사님?”
“그래, 어울려줄게.”
리사는 소리없이 씩 웃더니 에밀리를 쳐다봤다.
“스톤 쉴드 기사단 본부로 가.”
“거긴 이미 알아봤어요. 파병 공로로 다들 포상 휴가를 가는 바람에 김당근을 아는 사람이 남아있질 않아요.”
“그들이 파병갈때 고용했던 민간인들과도 만나봤어?”
“아!”
에밀리가 손뼉을 마주쳤다.
“그건 미처 생각못했어요!”
황궁으로 향하던 마차는 이내 방향을 바꿔서 각종 기사단 본부가 밀집해있는 병영쪽으로 내달렸다.
얼마 후 스톤 쉴드 기사단 본부에 도착한 리사는 그곳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고몽 드 마리아’라는 식당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곧 시내 번화가에서 큰 식당을 운영하는 울라프와 만났다.
“오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문관님.”
리사는 그에게 리안에 관해 물어보았고, 울라프는 혹시 몰라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고 단편적인 단서만 알려주었다.
“황도에서 채소 상점을 개업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황도에 도착하면 저희 식당에 한 번 놀러오라고 했는데, 흠…… 아직도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저도 잘 모르겠군요.”
“황도로 올때 그자와 어디서 헤어졌죠?”
울라프는 리안이 황도 인근 영지인 훅스 가에 갔다는걸 알았으나 시치미를 떼며 대충 둘러댔다.
“여기서 먼 곳에 있는 영지에 잠깐 들른다고 하면서 여행 도중에 떠났습니다. 그뒤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울라프와 헤어진 후 리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그자는 뭔가 숨기는 게 있었어. 내 눈은 못속이지.”
“어쩔까요? 다시 가서 뒤집어 엎을까요?”
“아니.”
리사는 마차에 오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일단 사람을 풀어서 저 식당을 감시해. 당근이가 몰래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때를 기다린다라…… 그 방법이 좋겠네요.”
에밀리가 자리에 앉자 리사는 이어 말했다.
“김리안이나 모니카라는 이름으로 거래된 상점 건물이 있는지 부동산 관리국에 가서 알아봐.”
“제 몸이 남아나질 않겠네요. 벌써 할 일이 두 개나 늘었어요. 가뜩이나 할 것도 많은데.”
에밀리는 푸념을 늘어놓다가 문득 생각난듯 말했다.
“황도에서 채소를 유통하려면 식량정책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 그건 우리쪽 자료를 보면 알겠네요.”
“맞아. 머리가 잘 돌아가네.”
“영광이옵니다, 폐하.”
에밀리의 장난스런 대답을 뒤로 하고 리사는 창밖을 바라보며 리안을 떠올렸다.
‘내가 찾아주기를 바라는거지? 기다려 곧 갈테니까.’
그녀는 히죽 웃었다.
황도에 유통되는 모든 농산물은 식량농업정책 자문관인 리사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리하여 며칠뒤.
“당근의 목을 치실 일만 남았습니다.”
에밀리는 뿌듯하게 말하며 두 장의 문서를 리사의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목을 왜 쳐. 그럼 죽어.”
“헤헤, 말이 그렇다는 거죠.”
책상에 앉아있던 리사는 두 문서를 들여다보았다.
-농산물 유통 허가 신청서 
신청인: 김리안
(이하 생략)
-상점 등록 신청서
신청인: 김리안
상호명: 김리안 상회
(이하 생략)
리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김리안은 이제 거의 다 잡은 물고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애틋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의 사랑, 나의 용맹한 영웅, 나의 가족. 험난한 세상속에서 고생하지 말고 어서 내게 와요.”
에밀리는 양손을 들어보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완전 느끼했어요.”
“닥쳐.”
* * *
훅스 가문의 저택에서 산지 벌써 한달이 지났다.
아침 식사 후 리안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양배추 밭에 나와 있었다.
매일 오전 8시, 메건 부인과 만나 함께 텃밭을 돌보는 게 어느새 일과가 되었다.
메건 부인의 요청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리안이 눈치껏 스스로 나서서 돕다보니 자연스레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메건 부인도 직접 말은 안하지만 자신이 돕는걸 매우 기뻐하는 눈치고 딱히 시간이 걸리는 일도 아니기에 리안은 집주인의 환심을 살겸 겸사겸사 무료로 봉사중이었다.
“일찍 왔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메건 부인이 하녀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오셨어요?”
“모니카는 또 자나요?”
“원래 10시쯤 일어나잖아요.”
“다 큰 숙녀가 늦잠이라니.”
메건 부인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그녀의 뒷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지 그녀가 등장하자 이내 좋은 향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리안은 코를 긁적이며 텃밭을 둘러보았다.
“오늘은 별로 할게 없는 것 같아요. 내일이나 모레쯤 수확하면 되겠어요.”
메건 부인이 가까이 다가와 그와 나란히 섰다.
그녀는 싱그럽게 잘자란 양배추들을 내려다 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우리가 흘린 땀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네요. 전부 리안 씨 덕분입니다.”
“아뇨, 저보다는 어머님이 다 하셨죠.”
“시종들도 깜짝 놀라요. 너무 잘 키웠다고.”
곁에서 지켜보던 하녀가 불쑥 말했다.
“진짜 잘 키우셨어요. 시장에서도 이렇게 질 좋은 양배추를 본 적이 없어요.”
한달전 리안이 텃밭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부터 양배추의 품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양배추를 보고 감탄한 하인들이 방법을 물어본답시고 리안을 자주 찾아와서 귀찮게 할 정도였다.
메건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수확한 양배추는 알고 지내는 귀부인들에게 세 통씩 나눠줄 생각입니다.”
“귀한 양배추 줬다고 좋아하겠네요.”
“예, 아마 그러겠지요.”
메건 부인이 흡족하게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오로지 텃밭에서만 나온다.
평소에는 잘 웃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행동 하나하나에 품위가 느껴지는 귀부인의 모습 그자체였다.
여자가 웃음이 헤프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그녀는 웬만해서는 웃지 않았다.
자신이 절제된 생활을 살아서 그런지 모니카가 너무 실없이 웃어대면 어김없이 주의를 주곤 했다.
웃는 것 말고도 모니카가 뭐만 하면 “그러면 안돼” 라는 훈계조의 잔소리가 자주 튀어나왔다.
남자처럼 걷지 말아라.
목소리가 너무 크다.
옷을 여자처럼 입어라.
정신수양을 위해 그림을 배워라.
등등. 
잔소리에 괴로워하던 모니카는 급기야 저택에서 탈출하는게 소원이 됐다.
“나 어머니랑 살기 싫어. 이대로 가다간 미쳐버릴 것 같아. 으아아악!”
어쨌든, 리안은 가볍게 텃밭 일을 끝마치고 메건 부인과 헤어졌다.
“자 슬슬 가볼까.”
리안은 곧장 오천평 밭으로 향했다.
밭이 넓은만큼 오늘 해야할일이 많았다.
밭까지 짐마차를 몰고 가는 동안 향단이가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다.
향단이는 훌쩍 커버려서 벌써 성체가 되어 있었다.
이전에는 검지 손가락만하던 애가 지금은 손바닥 길이만큼 자랐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도 빨라서 금빛으로 물든 머리가 어느새 엉덩이를 뒤덮을 만큼 길게 자라 있었고, 등에 솟은 날개 역시 완전히 다 자라서 나비처럼 알록달록한 무늬를 자랑하며 훨훨 날아다녔다.
“르리!”
“더 빨리 못가냐고? 이것도 빠른거야.”
향단이는 마부석에서 고삐를 쥐고 앉아 있는 리안의 주위를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하늘을 날 수 있게 된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꽤나 산만했다.
“르리리!”
“그러다 부딪히겠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
“르리!”
허공을 실컷 날아다니던 향단이는 얼마뒤 리안의 우측 어깨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앉은 자세로 두 발을 앞뒤로 흔들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르리!”
“빨리 밭에 가서 일하고 싶어?”
“르리리!”
“너도 벌써 농사꾼이 다 됐구나.”
이윽고 밭에 도착했다.
오천평에 이르는 밭 전체를 뒤덮은 새싹들이 리안을 반겨주었다.
한달전 오염된 흙을 걷어낸 후 밭에다가 순무와 상추를 심었다.
세 달 뒤면 겨울이 다가오기에 그전에 수확할 수 있는 채소가 필요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순무와 상추였다.
둘 다 3개월 정도면 자라는 채소였다.
순무와 상추의 종자는 예전에 마을에서 신세질때 주민들에게 받은게 있었다.
가장 싸고 흔한 채소들이었기에 종자가 넘쳐났고, 덕분에 많이 모아놓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순무 3500평, 상추 1500평.
지구처럼 트랙터 같은 농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 혼자서 5000평을 관리하는건 무척 버거운 일이었으나 리안은 오드리아에게 배운 이속 마법과 강인한 체력이 있었기에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이란게 휴식시간도 필요하고 자신이 자리를 비울때 대신 돌봐줄 사람도 한 명쯤은 있어야 하기에 리안은 일꾼을 한 두 명쯤 고용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하지만 끝내 일꾼을 고용하지 못했다.
메건 부인에게 받은 300골드는 모니카가 전액 갈취하다시피 가져가는 바람에(그녀는 리안에게 하루아침에 큰돈이 생기면 자신을 떠날 것이라 불안해했고, 정작 피해를 본건 자신이며 땅도 무료로 임대해줬으니 내 돈 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300골드를 전부 가지려 했다. 하지만 리안이 화를 내며 따지자 마지못해 돌쇠 사용비 및 리안의 인건비까지 해서 3골드만 내놓았다. 나머지 297골드는 땅주인인 그녀가 전부 가져갔다. 모니카는 사적으로는 섹시한 여자친구 같아도, 공적인 모습은 정말이지 냉정하기 그지없는 철저한 장사꾼이었다.)
결국 도시 란테스에서 벌어 쓰고 남은 돈 4골드와 모니카에게 받은 3골드까지 해서 리안의 전재산은 7골드, 한국 돈으로 700만원 밖에 되지않았다.
이래서야 일꾼을 고용할 생각은 꿈도 못꿨다.
“주인, 반가워.”
셰퍼드의 환영으로 밭을 지키고 있던 허수가 흐물흐물 바닥을 기어와 인사를 건넸다.
리안은 짐마차에서 내리며 허수를 향해 손을 들어보였다.
“좋은 아침. 밤새 아무일 없었어?”
“응. 새들이 짹짹 대길래 인간 여자의 환영으로 쫓아낸 것 말고는 별일 없었어.”
“잘했어.”
그때까지 구석에서 가만히 쪼그려 앉아있던 바위골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쿵.
쿵.
말못하는 돌쇠가 육중한 걸음으로 다가와 한손을 들어보였다.
리안이 가르쳐준 인사법이었다.
“넌 어디 고장난데 없지?”
돌쇠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보였다.
“오케이. 비료 내려야 하니까 이쪽으로 와.”
리안과 돌쇠가 짐칸에 실린 비료포대를 나르는 사이 향단이는 콩알 만한 손으로 리안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빨리 밭으로 들어가자고 아우성을 쳐댔다.
“르리!”
“이거 다 날라야 가지. 잠시만 기다려.”
밭에서 벌레를 잡아올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줬더니 향단이는 밭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렸다.
빨리 벌레를 잡아 리안에게 또 칭찬을 받고 싶은 모양이다.
“르리리?”
“응, 그러니까 잠시만 기다려.”
마음 급한 향단이를 애써 달래가며 돌쇠와 번갈아 가면서 열심히 비료포대를 나르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서 모니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안!”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모니카가 뜬금없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중이었다.
“뭐지? 큰일이라도 생겼나?”
잠시 후 말에서 내린 그녀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꺄악! 성공했어!”
“뭐가?”
“유통 허가 신청한거랑 상점 등록 신청한거 둘 다 성공했다고!”
리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축하해.”
“보통 행정 절차만 최소 세 달은 걸리는데 우린 일주일 밖에 안걸렸어! 놀랍지 않아?”
“빨리 처리해줘서 고맙네.”
“대체 뭐지? 이름이 특이해서 그랬나? 정말 신기해!”
자다가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왔는지 모니카는 화장도 안한 맨얼굴에 머리는 산발이었다.
리안은 진심으로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었다.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
“근데 아직 하나 남았어.”
“또 할게 있어?”
“응.”
모니카는 웃음기를 지우고 리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허가 내주기 전에 잠깐 만나러 오래.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다고.”
“잘 다녀와.”
“나만 가?”
“그럼 당신이 가지 누가 가? 당신이 주인이잖아.”
“명의는 당신 이름인데?”
“그냥 대신 왔다고 하면 되지.”
“전에 내가 한 말 못들었어? 여자 상인은 대우 못받는다고 했던 거.”
“설마 여기서도 그럴까. 아무리 그래도 제국의 수도인데.”
“설마가 아니라 여기도 그래.”
모니카는 애원하듯 리안을 부둥켜 안았다.
“날 위해 같이 가줄거지? 식당에서 만나자고 하던데 같이가서 밥만 얻어먹고 오자. 응?”
“나 오늘 할일 많아. 비료도 줘야하고 바빠.”
“오래 안걸려. 잠깐이야.”
“장난해? 여기서 황도까지 마차타고 두 시간은 걸리잖아. 갔다오면 왕복 네 시간, 또 이것저것 하다보면 반나절은 기본으로 날아가.”
모니카는 짐짓 울먹거리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망하길 바라는 거야?”
“난 사업가가 아니라 농사꾼이야. 사업은 당신이 해야지. 그게 우리의 계약이고.”
“내가 죽어도 좋다는 거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생뚱맞게.”
“사업 망하면 죽어야지. 잘 있어. 나 혼자 가서 퇴짜맞고 올게. 돌아오는 길에 어쩌면 이상한 생각을 할지도 몰라. 지금 내 모습이 마지막일지도. 흑흑.”
그럼에도 리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잘가.”
“나쁜놈! 알았어! 김리안 하루 빌리는 돈으로 50실버 줄게!”
결국 모니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녀가 돈을 제시하자 리안은 흐뭇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1골드. 안그럼 못가. 농부가 하루 쉬면 얼마나 치명적인줄 알아?”
“당신 진짜 못됐어.”
“297골드 가져갈때를 생각해.”
“남자가 정말 쫀쫀하다.”
“쫀쫀한게 아니라 당신이 우리 사이를 철저하게 사업적인 관계로 만들었어. 나도 돈만 밝힐거야. 다 필요없어.”
“쳇!”
모니카는 툴툴 거리며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1골드 주면 되잖아!”
리안은 방긋 미소를 지었다.
“공돈 벌었네.”
일이 바빠서 거절했지 실은 한번도 가보지 못한 황도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다.
리안은 그렇게 모니카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갔다.
“근데 모니카, 나 입고갈 옷이 없는데 어쩌지? 높은 사람들이 나올 거 아냐. 잘 차려 입고 가야할텐데.”
“작업복 밖에 없어?”
“어. 내가 언제 옷을 사봤어야지.”
“맞다. 당신 거지였지.”
“놀리는 거야? 아니 그럼 사주던가.”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메건 부인이 말했다.
“어쩔 수 없네요. 내가 리안 씨를 위해 미리 맞춰둔 옷이 있어요. 그걸 입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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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그녀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 남자옷을 가져왔다.
귀족 청년 스타일의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옷이었다.
텃밭 일을 도와준 기념으로 마침 내일이나 모레쯤 리안에게 깜짝 선물을 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입어보니 좀 크긴 했지만 그럭저럭 잘 맞았다.
“사이즈는 어떻게 아셨어요?”
“사내 아이를 둘이나 키워봐서 그런지 이젠 눈대중으로도 남자들의 사이즈를 알 수 있겠더군요.”
메건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자세히 설명해주진 않았다.
귀족옷을 입고 저택을 나서니 폼 잡는답시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신바람이 절로 났다.
하지만 옷이 좋으면 뭐해.
곱게 차려입은 한쌍의 커플이 타고 가는 것은 결국 퇴비 냄새 풀풀나는 짐마차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짐마차를 타고 가는 길이 즐거웠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 남자한테 잘하는 완벽한 현모양처야. 난 그분이 생각하는 것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노력하면 되지.”
“노력해도 안되니까 문제지. 당신 옷 봐봐.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 동업자끼리 앞으로 잘 해보자는 의미로 내가 먼저 옷 한벌을 선물했어야 했는데 늦었네.”
“나도 선물 안했잖아. 그걸로 쌤쌤이 쳐.”
“당신이야 꿀릴게 없잖아. 나만 매달리는 입장이고.”
그 말에 고삐를 쥐고 있는 모니카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리안이 피식 웃었다.
“옷 같은 건 필요없어. 돈을 줘야지 돈을.”
“또 그 얘기야?”
“양심없이 혼자 다 먹은건 사실이잖아.”
“그래도 3골드는 줬다 모.”
“3골드 갖고 어디 풀칠이나 하겠어. 오천평 땅에 쓸 비료값만 거진 1골드는 들어가는데.”
“아잉 자기야.”
모니카는 괜히 할 말이 없으니까 리안의 무릎을 어루만지며 애교를 부렸다.
“자기야 내가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뭔데?”
“이거 봐라?”
그녀는 다리를 활짝 벌리더니, 리안의 손을 잡고 자신의 다리 사이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리안의 손으로 그곳을 가볍게 문질렀다.
드레스 치마를 입었음에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균열의 감촉이 생동감있게 전해지자 리안은 살짝 놀란 눈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속옷, 안입었어?”
“응.”
“왜?”
“우리의 운명을 결판짓는 날에 속옷을 입어서야 되겠어?”
그녀가 싱긋 웃었다.
“속옷을 안입어야 일이 잘 풀려.”
“당신도 징크스 같은 게 있어?”
“원래 미신 같은건 잘 안믿지만 속옷 안입은 날엔 왠지 계약 맺을 확률이 높더라.”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겠지.”
리안이 손을 빼려고 하자 모니카가 힘을 주며 붙잡았다.
“빼지마. 계속 만져줘.”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 시간에 이런 한적한 시골길을 누가 다니겠어.”
리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햇볕이 내려쬐는 대낮.
풀과 나무가 우거진 구불구불한 산길.
자신들의 마차 소리만 들릴뿐 한적하기 그지없다.
다시 모니카를 돌아봤다.
“할 수 없네. 어디 한번 장사 허가를 기원하는 의식 좀 치러볼까?”
“자 제물 여기 있으니까 빨리 덤벼.”
모니카는 고삐를 쥐고 정면을 바라본 채 다리를 더욱 벌렸다.
리안은 주저하지 않고 그녀의 드레스 치마속으로 손을 넣었다.
매끈한 허벅지를 더듬으며 그녀의 중심에 도착하자 정말 아무것도 안입고 있었다.
수북한 털과 그밑에 자리잡은 부드러운 속살의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리안은 모니카와 몇 차례 관계를 가진 후 그녀와 육체 관계를 맺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연인이란 족쇄에 구애받지 않고 별다른 생각없이 마음 편히 즐긴다고 할까.
지금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일이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는 중이었다.
“아으응……”
리안이 속살을 열고 그 안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을 손가락으로 살살 간질이자 그녀가 몸을 비틀었다.
“흐긋……”
질안은 금세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애간장을 녹이던 손가락은 한 개에서 두 개로 늘어나며 동굴안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두 손가락으로 집요하게 찔러대자 모니카는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견디려 애를 썼다.
“하으읏……!”
“고삐 놓칠라. 잘 붙잡고 있어.”
“알앗……! 으응……!”
얼마 후 마차는 산길에서 멈춰섰다.
두 사람은 마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근처에 있는 나무로 가서 철썩 철썩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한적한 산길을 지나가던 한 대의 마차.
안에 타고 있던 헬렌 부인은 아무 생각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경치가 정말 좋구나. 날씨도 좋고.”
황도처럼 답답한 도시에서 생활하다 간만에 시골에 나오니 숨통이 트였다.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음?”
문득 저 앞에 주차되어 있는 짐마차가 보였다.
짐마차 위로 울창하게 자란 나무의 가지에서 나뭇잎들이 한 두 개씩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은 그리 안부는 것 같은데.”
그녀가 탄 마차가 앞으로 내달리면서 짐마차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사람없는 짐마차를 무심코 쳐다보는데, 짐마차에 언뜻 가려진 수풀쪽을 응시하던 그때였다.
우직하게 서 있는 나무기둥 앞에서 대낮부터 음란한 짓을 벌이는 두 남녀의 모습이 불쑥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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