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ricultura 3
* * *
리안은 한 번 잠이 들면 웬만해서는 깨지 않았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자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꿈속에서 오드리아와 재회했고, 놀랍게도 그녀와 기쁨의 정사를 나누었다.
사정 직전, 그는 꿈에서 깨어났다.
꿈이란 놈은 웃기게도 쌓인 욕망을 배출하려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약올리듯 딱 끊어버렸다.
오드리아의 몸속에 싸지 못했다는 크나큰 아쉬움이, 아무래도 생체리듬에 영향을 미쳐 리안을 깨운게 아닐까.
“흐음……”
살짝 눈이 떠졌지만 의식이 아직 몽롱했다.
“…깼어요?”
“응……”
“…잘 됐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친근한 어투였다.
하지만 리안은 누구의 목소리인지 분간이 안됐다.
“으응…….”
“……꺼 대단해요. 너무 훌륭하게 생겼어.”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몽롱했다.
그저 몽롱했다.
그와중에 어딘가 계속 빨리는 느낌이 들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으으……”
“방금 그건 무슨 소리죠?”
여자가 쿡쿡 웃는다.
리안은 온몸으로 퍼지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촉에 나른한 만족감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반신을 내려다보았다.
시야가 흐릿한 가운데, 사람 머리로 보이는 것이 밑으로 내려갔다 위로 올라갔다하며 빠르게 펌프질을 하는 중이었다.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자신의 쾌감도 요동쳤다.
방금전 꿈속 일이 생각났다.
혹시 오드리아가 또 펠라를 해주는걸까.
그럼 여긴 꿈속?
“공주님……?”
그 순간 의식이 확연히 돌아오며 시야가 선명해졌다.
“헉!”
리안은 눈을 휘둥그레떴다.
“당신 뭐야!”
미들렌이 불끈 솟아있는 기둥을 핥아올리며 씨익 웃는다.
“일하는 중이에요.”
언제부터 그러고 있던 것인지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풍만한 젖가슴을 출렁이며 성기를 빨아주는데, 솔직히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리안은 미간을 찡그리며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킁킁.
킁.
“이 냄새는 뭐야?”
주위를 둘러보니 어두운 실내에 촛불 하나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가 자욱했다.
“뭔짓했어?”
“긴장하지 말아요. 미약을 첨가한 향초를 피워놨어요.”
“미약?”
“네, 미약이요.”
미들렌은 리안의 가슴에 젖가슴을 비비면서 올라오더니 그대로 리안에게 입맞춤을 했다.
“기분 좋죠?”
그녀의 음성이 유난히 고혹적으로 들렸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20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츄릅.
입술이 빨리고, 이어 혀가 빨리고, 리안은 멍하니 당하면서도 저항할 기분을 못느꼈다.
무심코 연기를 마신 까닭에 어느새 욕정이 가슴 깊은 곳까지 침투한 상태였다.
미들렌의 나신을 보며 드는 생각은 황홀감과 더불어 그녀를 정복하고 싶은 욕구뿐.
‘윽! 야한 생각만 자꾸 나!’
리안은 여태껏 오드리아에게 욕정을 품은적이 없으나, 미약은 리안으로 하여금 오드리아를 성적대상으로 보게 하고 그녀 대신 현재 눈앞에 있는 미들렌이라도 취하라며 명령하고 있었다.
미들렌이 마치 오드리아로 보였다.
‘공주님을 만질 수 없으니 대신 이 여자라도……?’
리안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안돼! 다른 여자의 몸을 보며 공주님을 떠올리는 자체로도 그분을 욕보이게 하는거야!’
하지만 미들렌의 몸을 마구 찌르고 싶은 욕구가 무한히 솟구쳤다.
‘안돼! 그러지마!’
리안은 괴로워하면서도 은근히 희열을 느꼈다.
‘크읏! 그치만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자꾸!’
심지어 눈을 감았다뜰때마다 미들렌의 얼굴이 오드리아의 얼굴로 바뀌었다가 다시 미들렌의 얼굴로 돌아왔다가 하면서 리안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순간!
리안의 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발휘되면서 미약의 효과를 단칼에 죽여버렸다.
환각이 지워지고 미들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주체 못할 정도로 끓어오르던 욕망도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낮아졌다.
‘어라?’
리안은 눈을 껌뻑거렸다.
그가 정신을 차린 와중에도 미들렌의 혀는 그의 입안을 뱀처럼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공주님을 범하고 싶은 기분이 없어졌어. 괜찮아진건가……?’
야릇한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미약의 효과는 몸에서 지워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아오른 몸까지 단숨에 차가워진건 아니었다.
여운은 아직 남아있었다.
미들렌은 끊임없이 입을 맞추며 단단하게 발기한 성기를 손으로 문질렀고, 그녀가 주는 기분 좋은 쾌감은 오래 잠들어 있던 리안의 성욕을 부채질 하고 있었다.
‘이 여자한테 떨어지라고 해야할 것 같은데 목소리가 안나와……’
아름다운 미인이 홀딱 벗고 자신을 애무해주고 있다.
왠지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처럼 여겨졌다.
처음엔 미들렌을 거부했으나, 낯선 여자와의 하룻밤이라는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 시작이 어려웠을뿐이지 일단 시작된 상황이면 더 잘하면 잘했지 정색하며 발 빼는 성격은 아니었다.
둘 다 벗고 있는 마당에 끝까지 가보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자신은 이미 미들렌과 입을 맞추고 성기까지 빨렸다.
여기서 멈춰봤자 달라질게 뭐 있나 하는 핑계가 자꾸만 아른거렸다.
게다가 현재 애인도 없다.
자유로운 영혼이잖아.
그리고 문득 라카제트의 말도 떠올랐다.
‘퇴폐적이고 음란한 기운이 남아있는 공간에서 절 부르시면 언제든지 찾아뵐 수 있답니다. 남녀가 막 거사를 치른 후끈한 방안이라든지 실외라든지 말이죠.’
눈앞의 여자와 무난히 정사를 끝마친 다음 라카제트를 호출할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결국, 리안은 정했다!
‘고민해봐야 나만 손해지.’
그는 더 참지 못하고 미들렌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아앙……”
그녀가 낮게 신음을 흘린다.
“아파요 살살.”
아양 떠는듯한 그녀의 신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리안은 그 소리가 더 듣고 싶었다.
두 손으로 양유두를 잡고 이리저리 돌리고 비볐다.
‘우와, 끝내줘.’
리안은 여자의 젖가슴을 자유롭게 만지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신기했고, 호기심 많은 그의 손길이 선사하는 자극에 유두는 갈수록 단단해졌다.
“이러면 기분 좋아?”
“읏…… 리안님……! 그런걸 물어보다니 실례예요. 아읏……!”
“나 사실, 한번도 못해봤어.”
“뭘요?”
“나 아다야.”
“아다?”
“섹스를 야동으로 배웠어.”
“야동? 무슨 뜻이에요?”
“아, 미안. 그러니까 내 말은, 나 여자랑 자본적이 한번도 없다고.”
미들렌이 사랑스럽게 웃는다.
“제가 가르쳐 드리면 되죠.”
그 말이 왠지 따뜻하게 들렸다.
리안은 그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 나는 매우 건전한 사내지만 미약 때문에 하는 수 없지! 당신이 이끄는대로 당할 수 밖에!”
리안은 연극 대사를 읊듯 외치면서 탄력이 흘러넘치는 젖가슴에 뺨을 비볐다.
절로 행복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부드러워.”
“여자 가슴도 본적 없어요?”
“없어. 그러니까 실컷 만지게 해줘.”
리안은 두 손으로 젖가슴을 주물럭대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오는 살집의 풍성한 감촉을 즐겼다.
미들렌은 상체를 곧게 펴며 그가 잘 만질 수 있도록 거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아래로 손을 뻗었다.
단단하게 발기한 성기을 잡고 위아래로 문질렀다.
“자위 하는 방법은 아시죠?”
“날 뭘로 보는거야? 그 정도까지 쑥맥은 아니야.”
“아뇨. 서른살이 넘도록 자위를 모르는 남자들이 태반이더라구요. 그래서 혹시나 물어봤어요.”
“성교육을 못받았나 보네.”
리안의 입술이 미들렌의 보름달 같은 유륜과 유두를 한꺼번에 머금었다.
가슴에서 시작해 전신으로 퍼지는 쾌감을 느낀 미들렌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흘렸다.
“후으응……!”
리안은 젖가슴을 하나씩 움켜쥐고 번갈아가며 빨아댔다.
그가 유두를 희롱할때마다 미들렌의 몸이 요동을 쳤다.
성기를 문지르는 그녀의 손길도 더욱 빨라졌다.
몸은 쾌락에 지배당했지만 연구자의 자세로 진지하게 여자의 가슴을 탐닉하던 리안은 문득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의 다수가 젖어있는 기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젖가슴을 물었던 입술을 떼고 미들렌의 다리사이를 주시했다.
배려없이 바닥을 적시는 강물은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워서 다리 벌려봐.”
미들렌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가 시키는대로 해주었다.
그녀가 누워서 엉덩이를 들고 다리를 벌리자 감춰져 있던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렇게요?”
리안은 대답대신 그녀의 허리를 안고 자기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엉덩이가 천장을 향해 들어져있어서 그녀의 속살이 리안의 턱밑에 있었다.
두툼하게 접힌 까무잡잡한 조갯살은 투명한 애액으로 과하게 번들거렸다.
리안은 한동안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곳이 늘 사진으로만 봐오던 여자의……”
“부끄러워요.”
미들렌은 얼굴을 붉히며 두 손을 양뺨에 갖다댔다.
그때 그녀의 속마음을 알려주듯 갈라진틈 사이에서 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미들렌은 수줍었는지 변명을 하듯 황급히 말했다.
“미약 때문에 평소보다 더 나오는거예요.”
“당신은 환각을 안보나?”
“미약에 적응이 됐는지 몸이 달아오르는 것 외에는 정상이에요.”
“많은 남자랑 자봤나보네.”
“질투하는 거예요?”
그녀가 웃는다.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선은 다시 그녀의 균열을 응시했다.
신비하고 탐스러운 동굴.
볼록 튀어나와있는 콩알도 보였다.
‘너튜브에 나오는 AV배우가 저기를 핥아주면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했는데.’
혀를 내밀어 게걸스럽게 핥아보고 싶었으나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거길 빠는건 여자친구한테만 해줘야지.’
리안은 그녀를 놓아주고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그 자세로 보란듯이 성기를 내밀었다.
“빨아줘. 느낌이 어떤지 보고 싶어.”
“아까 해줬는데 기억안나요?”
“아깐 제정신이 아니라서 제대로 못느꼈어.”
“제가 핥아주면 남자들이 환장해요.”
“나도 환장하게 해줘봐.”
미들렌은 미소를 짓고 다가와 리안의 다리 사이에서 성기를 쥐고 엎드렸다.
성기의 기둥을 혀끝으로 찍어먹듯 핥다가 귀두를 입안에 머금었다.
동시에 리안의 고개가 뒤로 젓혀졌다.
그는 눈을 감은 채 탄성을 흘렸다.
“으아……! 야동 주인공들 기분이 이런거였군!”
미들렌의 머리가 점차 빨라지면서 나중엔 정신없이 위아래로 고개를 흔들어대자 리안은 그녀의 부드러운 입안 감촉과 따스함 그리고 강한 흡입력에 못이겨 그야말로 황홀감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도저히 싸지 않고는 못베길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우선 여, 여기서 한발!”
말을 마치자마자 예고도 없이 폭풍 사정을 해버렸다.
푸슉!
“흐읍! 컥!”
강제로 정액을 삼킨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며 기침을 해댔다.
“콜록! 콜록! 신호를 줘야죠!”
“미안. 아무튼 나 해보고 싶은거 있는데 들어줄래?”
“뭔데요?”
“싸고 나면 여자가 쪼그라든 페니스를 정성스럽게 핥아주더라고. 해줄 수 있어?”
“그게 부러웠어요?”
“그냥 느낌이 어떨지 궁금해서.”
그녀는 다시 리안의 다리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늘어진 성기를 붙잡고 혀로 깨끗이 핥아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혓바닥이 기분 좋았을까.
성기는 귀신같이 단단해졌다.
미들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싼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서요? 1분도 안지난 것 같은데?”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자극이 강한 가봐. 바로 서네.”
리안이 멋쩍게 말하자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늦게 배운 사람들이 무섭다니까.”
다음 순서는 본격적인 정사였다.
이것이야말로 그토록 기다려온 본 게임!
“여기가 아닌가……”
리안은 잠시 구멍을 찾느라 헤맸다.
그가 성기를 붙잡고 더듬더듬거리자, 멋진 근육을 가진 젊은 사내와 하나가 된다는 기대감에 안달이 나있던 미들렌이 초조하게 물었다.
“어딘지 모르겠어요?”
“여긴거 같은데 잘 안들어가네.”
“저기요. 거긴 제 항문이거든요?”
“아, 미안.”
“더 밑으로 내려가요.”
“밑으로? 여기?”
“거기서 왼쪽으로 조금만 더.”
“아하 어딘지 알겠다.”
리안은 샘물이 흘러나오는 중심부를 향해 귀두를 정조준하고는 쑤욱 밀어넣었다.
“하으읏!”
미들렌의 숨이 가빠진다.
리안은 심장이 두근두근 날뛰었다.
뿌리까지 깊숙이 들어가자 리안과 미들렌은 하나가 되어 신음을 터뜨렸다.
“여자의 몸안은 되게 부드럽네. 그리고 따뜻해……”
리안은 야동에서 본대로 허릿짓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을 익힌답시고 천천히 오가다가 이내 익숙해지자 허리는 본능대로 움직였다.
미들렌을 잡으러온 킬러처럼 그녀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헉! 헉! 나 어때? 잘하지?”
“끄, 끝내줘! 정말 쓸만해! 으응, 흐으으앙!”
그의 성기가 빠르게 들락날락할때마다 미들렌은 교성을 지르며 양손으로 지푸라기를 꽈악 움켜쥐었다.
“커다란 짐승이 날 범하는 것 같아! 허윽! 헉! 흐으응……!”
“고마워.”
리안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서 출렁이는 그녀의 젖가슴을 입에 물었다.
그날밤.
두 사람은 무려 여섯 차례나 관계를 가졌다.
다음날 정오.
미들렌은 그녀의 동료들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
그녀는 떠나기직전, 이별의 선물로 리안에게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농사로 다져진 절륜한 체력에 홀딱 반한 그녀는 길을 떠나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리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있어요 리안님!”
* * *
오후에는 딘을 만났는데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어울리지 않게 무게를 잡는달까.
“형님, 오늘부터 저도 사내입니다.”
“그게 뭐? 남자면 다들 사내지.”
“아뇨, 아뇨. 그런 말이 아닙니다.”
딘은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늘부터 저는 한 여자를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철없는 소년에서 진정한 사나이로 거듭났다는 뜻이죠.”
리안은 피식 웃었다.
“축하해.”
“감사합니다. 크흠!”
“이제 주근깨 약은 필요없는거지?”
딘이 깜짝 놀란다.
“아뇨! 그건 꼭 필요합니다!”
“너만 바라봐주는 여자가 생겼는데 뭐 필요있어. 다 갖다버려.”
“절대 안됩니다!”
“여자친구가 좋아 주근깨 약이 좋아?”
“예?”
“하나만 선택해봐. 둘 중에 어느게 더 소중해?”
리안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하늘에서 신들이 지켜보고 계시니 솔직히 말하는게 좋을거야.”
“헙!”
물어보면 꼭 대답해야 하는 줄 아는 아직은 순수한 시골 소년인 딘은 눈을 질끈 감으며 버럭 외쳤다.
“주, 주근깨 약이요!”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21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
농지 옆 이슬을 머금은 수풀에서 벌레들이 울었다.
리안은 이른 아침부터 이랑을 만들고 있었다.
괭이로 변신시킨 라그레아닐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척 가벼웠다.
손이 가벼우니 몸도 가볍고 능률도 올라간다.
금세 고랑을 파는 일을 마친뒤 20센치미터 가량 높이 쌓은 두둑에 밑거름을 붓고 흙을 뒤집었다.
무무카르의 사체에는 땅에 좋은 영양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잘게 갈아서 마을주민들과 나눠가졌다.
리안은 그것을 밑거름으로 만들고 땅에 뿌렸다.
1~2주 정도 지나면 밑거름이 땅에 골고루 퍼져 비옥한 땅으로 변할 것이다.
흔하지 않은 무무카르의 사체로 만든 귀한 밑거름이니만큼 장차 이 땅이 얼마나 건강해질지 기대가 컸다.
그렇게 오전내내 농지의 기반을 다졌다.
점심쯤 되자 딘이 나타났다.
“형님! 쉬었다 하세요!”
“너네밭 일 끝났어?”
“아뇨, 하다가 걍 도망쳐나왔어요.”
“왜?”
“아버지는 나한테만 잔소리가 심해요. 제대로 해라, 똑바로 해라, 이거 잘못됐다, 저거 좀 잘해라, 이건 이렇게 하는거다 등등! 듣기 싫어서 걍 나왔어요.”
“널 꼼꼼이 가르치려고 그러시는거야. 지금 잘 배워둬야 나중에 편하다?”
“형님도 가끔 보면 노인네 소리 한다니까. 우리 마을 어른들 보는 것 같아요.”
“그래도 어르신들 말씀이 시간이 지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다 맞는 말이더라.”
“난 아직 젊고 어리니까 됐어요. 내 멋대로 살래요.”
“그러든지 말든지. 내 앞길도 막막한데 누가 누굴 가르치겠냐.”
리안은 밭에서 나와 딘 옆에 섰다.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멋지게 다져진 밭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예쁘지? 어떠냐?”
“깔끔하고 멋지네요. 근데 우리 아버지는 이랑을 이런식으로 안만들던데. 처음 봤어요.”
“뭐, 지역마다 알려진 농사법이 다 다르니까.”
“여기다 뭐 심게요?”
“당근.”
“당근이요? 그 행상인이 당근을 사가려나? 우리 마을에서 당근은 판적이 없어요.”
“안사도 꼭 사게 만들어야지.”
행상인 여자는 세 달 후에 나타난다.
리안에게는 시간이 없다.
채소는 보통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재배기간도 4~6개월씩이나 걸린다.
그러나 당근은 계절의 영향을 덜받고 재배기간도 3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잘 크고, 빨리 자라고, 종자를 구하기도 쉽다.
현상황에 이보다 좋은 채소가 어딨을까?
시간이 금인 리안의 상황에 걸맞는 가장 최적화된 채소였다.
“파종 후 한달만 지나면 새끼 당근으로 샐러드도 만들어 먹을 수 있어. 어린잎을 따먹어도 되고.”
“행상인이 예정보다 일찍와서 못팔 걱정은 없겠네요.”
“그래서 당근을 골랐지.”
리안은 밭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반면에 딘은 아쉬운듯 땅을 쳐다봤다.
“형님. 꼭 떠나야겠어요? 여기서 우리랑 살면 안돼요?”
“나도 가능하면 여기서 살고 싶어. 하지만.”
리안은 웃으며 딘을 쳐다봤다.
“형은 말이야. 실은 몰락한 귀족 가문의 자제야. 숨겨둔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지. 그걸 되찾으러 가야해.”
“지, 진짜요?”
“아니 뻥이지. 난 평생 그지로 살았어.”
“아, 농담하지마요.”
“재밌잖아.”
리안은 딘의 어깨를 토닥이며 발길을 돌렸다.
“배고프다. 밥이나 먹으러가자.”
“밥 먹을데 있어요?”
“없어. 어차피 아무 집이나 들어가면 다들 잘 주시니까.”
“가면 또 밥값 하느라 두 세 시간 붙잡혀 있어야 하잖아요. 오늘은 우리집에 와서 먹어요. 엄마가 새참 만든다고 음식을 많이 했는데 좀 남았어요.”
“그래? 그럼 거기로 가자.”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오후에는 뭐해요?”
“오후? 우선 밑거름이 땅에 흡수되는걸 기다려야하니까 오후에는 딱히 할게없네.”
“씨는 언제 뿌리게요?”
“내일이나 모레쯤. 오후에 내가 빵 구워줄까? 기가막히게 잘 만드는데.”
“좋아요!”
“알았어. 이따가 밀가루 반죽 해놓고 공용 화덕에 불 피운 다음에 불러라.”
“그러면 제가 다 만드는거 아닌가요?”
“아니야. 잘 생각해보면 나도 뭔가 하는게 좀 있을거야.”
“아, 형님 진짜. 내가 형님 말을 믿은게 잘못이지. 그냥 형님이 빵 먹고 싶으니까 그런거잖아요.”
“들켰어?”
두 사람은 잡담을 나누며 마을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오늘부터 시작된 리안의 농사.
남은 기간 3개월.
땅은 노력하는 만큼 보답을 준다.
리안은 짧은 기간 최선을 다해 풍성한 수확으로 보답 받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오드리아와 만날 수 있을테니까.
* * *
“우리 딸이 제일 좋아하는 당근케이크가 나왔습니다.”
“와~!”
6살 꼬마 아이 리사는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엄마가 먹음직스러운 당근케이크를 식탁에 올려놓자 아빠와 언니들이 주방으로 달려와 식탁에 앉았다.
“우리딸들 많이 먹어라.”
“네!”
“네!”
“네에!”
온 가족이 함께하는 즐거운 저녁시간.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저녁을 먹던 그때였다.
갑자기 창문이 깨지며 돌덩이가 집안으로 굴러들어왔다.
“어째서 저런게?!”
가족 모두가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집밖에서 욕설과 고성이 터져나왔다.
“악마한테 영혼을 판 미친놈들!”
“개씨발 창녀들아!”
“나가뒈져!
누군가 도끼로 문을 깨부섰다.
지진이난듯 망치로 집벽을 때려부수는 소리도 들렸다.
집안으로 횃불을 던진 이도 있었다.
불길은 바닥에 깔린 카펫을 타고 빠르게 번져나갔다.
“꺄아악!”
리사는 귀를 막고 몸을 움츠렸다.
두 언니도 그녀에게 다가와 서로를 부둥켜 안고 몸을 떨었다.
엄마가 황급히 뛰어와 세 아이를 달랬다.
“괜찮아, 괜찮아.”
“나가보리다! 조금만 참아!”
아빠는 다급히 집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온 아빠의 머리를 몽둥이로 후려쳤다.
충격을 받은 아빠는 정신을 잃고 맥없이 쓰러졌다.
……………………
………………
…………
………
……
…
“꺄아아아아악!”
리사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제 임시로 지은 막사의 침대에 앉아있었다.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허억…… 헉……”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식은땀이났다.
슬프고 분통터졌던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그녀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15년전.
온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가족을 악마로 몰아세웠다.
당시 사람들은 끔찍한 괴물 같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첫째언니, 둘째언니까지, 모두 무정하게 쌓인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을 당했다.
가족중에 가장 어렸던 그녀는 잔인한 화형식이 펼쳐지던 그날, 우연히 마을에 들른 어떤 노기사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가 있었다.
리사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아픈 경험은 오늘날 리사를 복수귀로 만들었다.
“다 죽여버릴테니까. 마을도, 이 나라도.”
리사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침대에서 한참을 그러고 있는 와중에, 문득 내실 밖에서 기척이 났다.
누군가 막사에 들어온 모양이다.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천으로 가려진 내실 입구 앞에서 멈춰섰다.
“리사님. 케스티리아 입니다.”
친위대장 케스티리아.
십오년전 자신을 구해준 노기사의 손녀였다.
리사는 입구쪽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냐?”
“준비가 끝났습니다.”
“준비?”
리사는 그제야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서둘러 침대밖으로 걸어나와 잠옷을 벗었다.
아름다운 나신이 전신거울에 비쳤다.
“곧 나가겠다. 대기해.”
“네.”
현재 리사는 황제에게 하사받은 자신의 영지 실버론에 머무는 중이었다.
실버론은 그녀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했다.
그리고 원수들이 사는 마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리사는 그 마을에 와있었다.
잠시 후.
리사는 다소 음침한 색상의 드레스로 갈아입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친위대장 케스티리아를 따라 마을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는 삼백여명의 주민들이 전부 양팔이 결박된 채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중무장을 갖춘 기사들이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그들을 감시중이었다.
“영주님께서 오신다! 전원 땅에 대가리 처박아!”
“처박아! 숙이라고!”
기사들은 주민들의 머리를 사정없이 짓누르며 이마를 땅에 닿게 만들었다.
“한놈도 빠짐없이 잡아왔나요?”
“네! 마을에 사는 자들을 남녀노소할 것 없이 전부 잡아왔습니다!”
리사는 벌레보는듯한 눈빛으로 주민들을 둘러보며 그 앞에 섰다.
“케스티리아.”
“네.”
“촌장은?”
“이 사람입니다.”
리사는 케스티리아가 지목한 사람을 쳐다봤다.
그는 벌벌 떨면서 땅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곧 잔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고개를 드세요.”
“네?”
“고개를 드셔도 좋습니다.”
얼굴에 멍이든 촌장은 몸을 떨면서 조심스레 머리를 들어올렸다.
“사, 살려주십시오 영주님. 저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리사는 울먹이며 애원하는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흰 머리가 많아지셨네요. 십오년전에는 안그랬는데.”
“네……?”
“오랜만입니다 촌장님.”
“저, 저를 아십니까……?”
“저 모르시겠어요?”
촌장은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는 이내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헉! 서, 설마!?”
“이제야 기억 나셨어요?”
“어, 어떻게!”
“악마에 씌인 집 자식이 어떻게 영주가 됐냐고요?”
리사는 피식 웃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당신들이 만들어준거야. 당신들 아니었으면 내가 미치도록 농사법을 연구할리가 없었겠지.”
리사는 뒤에 서있던 케스티리아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케스티리아는 즉시 허리춤에 찬 장검을 뽑아 리사의 손에 쥐어줬다.
“난 즐거운 기분으로 고향에 왔는데 왜 다들 겁을 먹는거예요? 사람 무안하게.”
리사는 어떠한 예고도 없이 곧장 칼을 휘둘렀다.
촌장의 오른팔이 잘려나갔다.
“크아아아!”
촌장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리사는 피 묻은 칼날을 번뜩이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줄곧 차분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순간 울컥하며 고함을 쳤다.
“악마에 씌인건 바로 네 아들이었어!”
리사는 촌장의 허벅지를 칼로 찔렀다.
피가 솟구치며 재차 비명이 터져나왔다.
“네 아들이 사람들을 잡아먹었지!”
허벅지에서 칼을 뽑자 촌장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뒤로 기어서 도망쳤다.
“오, 오지마!”
“너는 아들 때문에 나와 우리 가족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웠어!”
리사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촌장의 배를 구둣발로 콱 밟고 사타구니를 찔렀다.
푹!
“크아아악!”
처참하게 당하는 촌장의 비명을 듣고 있던 주민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모두 바들바들 떨며 신께 살려달라고 수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신은 없었다.
“네 시체는 돼지한테 쳐먹일줄 알아라 쓰레기 자식아!”
말이 끝남과 동시에 리사는 가차없이 촌장의 목을 잘라버렸다.
눈 뜨고 죽은 촌장의 목이 데굴데굴 바닥을 굴러갔다.
바닥에는 핏물이 흥건했다.
잘려나간 팔과 몸뚱이, 목에서 핏물이 질질 흘렀다.
“희한하게 후련하지가 않네.”
리사는 케스티리아에게 칼을 돌려주며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다.
“역시 날 만족시키려면 더 많이 죽여야해.”
케스티리아가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면서 물었다.
“주민들은 어떻게 할까요?”
리사는 손수건을 바닥에 내던지며 가볍게 대답했다.
“전부 죽여.”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막사로 향했다.
케스티리아가 손짓하자 휘하의 기사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들었다.
떠나는 리사의 등뒤에서 처절한 비명이 연달아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얼마뒤 학살을 끝낸 기사들은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다녔다.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울타리나 돌담까지 확실히 파괴했다.
리사는 마을의 존재를 철저히 지워버린뒤 영지 전체 식량 생산량의 70%를 책임지는 광활한 농지를 조성할 예정이었다.
“오셨어요?”
막사에 돌아오자 조수 에밀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리사의 지시로 지금까지 밭에서 일하고 온 그녀는 신발과 작업복에 흙이 묻어있었다.
약간 덜렁대긴 해도 착하고 성실한 조수다.
“시키신대로 잔뜩 뽑아왔어요. 한 번 보세요.”
에밀리는 마대자루를 열어서 안에 든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자루 안에는 갓 따온 선명한 주황색의 당근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잘 컸네.”
리사는 지그시 바라보더니 하나를 집어들었다.
흙을 툭툭 털고 입으로 깨물었다.
에밀리가 깜짝 놀란다.
“안씻고 드셔도 되겠어요?”
“빨리 먹어보고 싶어.”
리사는 입으로 껍질을 벗겨낸 다음에 속에 있는 깨끗한 부분만 깨물어 먹었다.
우물우물.
오래전 엄마가 텃밭에서 기르던 당근을 떠올리며 잠시 맛을 음미하던 그녀.
이내 씹던걸 모조리 뱉어냈다.
“맛이 없네. 내가 먹던 당근이 아니야.”
“맛 없어요? 저도 아까 먹었는데 신선하고 괜찮던데?”
“같은 땅에서 자란 당근이라서 어머니가 키우던 당근 맛이 날줄 알았는데 그 맛이 안나네. 전부 갖다버려.”
“네?”
에밀리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울상을 짖는다.
“이거 뽑느라 힘들어 죽을뻔했다고요! 어머니께서 키우시던 당근은 대체 어떤 맛이 났길래요!”
“어땠냐면……”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늘 끊이지 않던 과거 행복했던 시절의 당근 맛을 떠올리는 리사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머니의 당근은 익혔을때 설탕보다 달았고 생으로 먹으면 아삭하고 달콤했어. 마치 사과를 먹는 기분이었달까.”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차갑고 메마른 눈빛으로 당근을 응시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처럼 영영 떠나가버린걸까. 그 시절 당근은 이제 맛 볼 수 없나봐. 슬프게도.”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2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
당근 씨앗 파종 후 5일이 지나자 새싹이 수줍게 고개를 들며 싹이나기 시작했다.
영양분이 듬뿍 담긴 무무카르의 사체를 양분으로 삼고 자란만큼 한눈에 보기에도 일반 당근과는 새싹의 질이 달랐다.
“대박이네.”
리안은 밭을 둘러보면서 감탄을 했다.
널따란 밭에 열과 오를 맞춰 촘촘하게 심어진 새싹들은 더없이 파릇파릇하고 윤기가 흘러넘쳤다.
갓 태어난 주제에 벌써부터 줄기의 굵기가 우량아를 보는 것처럼 통통하기까지 했다.
일단 스타트는 최상이었다.
세달 남짓한 수확시기까지 이런 퀄리티만 유지해준다면 세계 최고의 특등급 당근을 내다팔 수 있을 것 같았다.
당근을 심은 첫 주.
리안은 아주 기분이 좋았다.
심은지 3주째.
발아를 끝낸 당근의 싹들이 쑥쑥자라 줄기가 무성해지려 하길래 리안은 가장 잘자란 것은 놔두고 상대적으로 작고 품질이 떨어져 보이는 것들을 과감히 뽑아줬다.
당근 재배의 핵심은 솎아주기다.
솎아주기를 게을리한다면 줄기가 잘 자라지 않고 당근의 크기도 작아진다.
당근을 심은지 3주.
항해는 순조로웠다.
심은지 6주째.
당근의 성장이 빨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요놈들이 뭘 그리 맛있게 먹고 자라는지 하루가 멀다하고 쭉쭉 자랐다.
리안은 짙은 녹음을 발산하는 당근잎들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무럭무럭 자라다오.”
그런데 이때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해충이 몰려들었다.
아침에 밭을 나가보면 잎을 갉아먹히거나 줄기가 터널처럼 뻥뚫린 당근들이 한 두 개씩 눈에 띄었다.
무무카르의 사체는 밭에 축복을 가져왔지만 그 혜택을 리안을 비롯해 마을 주민만 누린 것이 아니었다.
비옥한 땅에선 벌레도 번식을 잘한다.
먹을게 많다보니 매일이 축제다.
신나게 교미하고 혼음하며 개체수를 빠른 속도로 늘려나가는 녀석들.
잡아도 잡아도 다음날엔 또 다른 녀석이 튀어나와 잎을 야금야금 갉아먹어댔다.
“농약을 안쓰려 했는데 할 수 없군.”
리안은 자체적으로 당근의 등급을 한 등급 깎았다.
전에는 특등급 당근이었다면 지금은 한단계 내려 A+ 등급을 매겼다.
그리고 해충의 공격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는 즉시 천연농약을 제조해 밭에 살포했다.
하지만 무무카르의 축복이 너무나 강력해서일까.
해충의 공격은 도무지 멈출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놈들의 번식력은 천연농약보다 강했다.
사실 천연농약의 살충력이 그렇게 뛰어난편은 아니었다.
첫번째로 화학농약보다 약효의 지속기간이 짧았다.
두번째로 마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천연농약의 재료는 한정되어 있었기에 다양한 종류의 천연농약을 제작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리안이 만든 천연농약을 우습게 보는 해충도 있었다.
“이 자식들이 어디서 감히 떼씹을 즐기고 있어. 여기가 니들 호텔이냐?”
약을 쳐도 안죽는 놈들은 일일이 잎을 뒤집어가며 손으로 잡아줘야했다.
“공주님하고 있을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왕과 여왕의 안식처 농장에 깔린 토양은 이곳과 절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양질의 토양이었다.
그러나 해충의 수는 극히 드물었다.
농약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리안은 그 이유를 거듭 고민해본 결과, 뒤늦게 깨달았다.
오드리아가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드래곤이다 보니 벌레들은 그녀의 체취를 맡고 두려운 나머지 농장에 다가오지 않았던게 아닐까.
아무튼 그건 그거고 리안은 해충이 창궐한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당근의 등급을 또 한 단계 내렸다.
A+에서 A등급으로.
벌레를 모조리 잡겠답시고 실험삼아 검증이 안된 천연농약을 제조해 무리해서 살포한게 원인이었다.
그 부작용으로 천연농약에서 나온 기름기가 당근 줄기의 호흡을 막아 성장을 방해했다.
“실수 했네. 쯧.”
리안은 농사법에 관해 오드리아에게 많은 것을 배웠으나 아직도 배울게 많은 농업인이다.
그의 지식은 완벽하지 않다.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농사에 임하다보니 때로는 실험을 하다 실수를 저지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오늘처럼.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하루종일 밭에만 붙어있던 리안은 그제서야 일을 접고 헛간으로 귀가했다.
“후우, 피곤해.”
지친 한숨을 내쉬며 지푸라기 위에 드러눕는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해충방제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실내는 최근 그의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말해주듯 그간 다양한 천연농약을 만드는데 사용됐던 각종 실험 재료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여기가 만약 도시고 돈만 있었으면 가볍게 해결됐을 문제였는데……”
상황만 보면 해충 때문에 리안이 당근 농사를 망친것 같았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시중에 유통되는 일반 당근의 품질은 B급으로서 현재 A급인 리안의 당근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리안은 자신이 재배한 당근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뛰어난 농업인인 오드리아가 재배한 특등급 채소들을 목격한 사람이다.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채소를 맛보며 자연스레 눈이 높아지다보니, 실력이 좋다고 자만하기 보다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만족 못할때가 많았다.
지금이 그러한 상황이다.
“그냥 저렇게 키우다 수확해버리자. 별 수 없지.”
오랜 고민 끝에 결국은 단념하며 적정선에서 타협을 봤다.
해충들과 살아가자고.
완전 박멸이 불가능한 이상 해충발생이라도 최대한 저지하며 당근을 키워나가야겠다.
계속 고민해봐야 머리만 아프다.
그렇게 결론짓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때였다.
문득 나무상자에 올려둔 알록달록한 알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건 언제 부화하려나……”
몇주전 라카제트에게서 받은 요정의 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희 미들렌과 뜨거운 밤을 보낸뒤 그 다음날 받은 것이다.
당시 날이밝자 막혔던 헛간문이 열리며 미들렌이 떠나고 난뒤, 리안은 홀로 남아 라카제트가 선물한 반지를 조용히 손가락에 끼웠다.
“될려나……?”
밤새 미들렌과 서로 물고 빨고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헛간안에서 비린내가 진동했다.
이 정도면 라카제트를 불러내는데 충분한 요건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그를 부르기로 결심한 리안은 속으로 크게 외쳤다.
‘라카제트!’
잠시 조용하길래 실패했나 싶었다.
“안되나?”
그때였다.
갑자기 바닥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물결치듯 일렁거렸다.
고오오오오.
음산한 공기가 몸을 휘감는 느낌이 들면서 벽에 걸린 사물들이 덜덜덜 떨었다.
이윽고 라카제트와 우마족 소녀가 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안녕하십니까 리안님.”
라카제트가 뒷짐을 지고 웃어보였다.
마차 대신 커다란 배낭을 등에 짊어진 우마족 소녀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리안을 바라봤다.
“……”
아무 생각이 없어보였다.
“정말 올줄이야. 놀랐어.”
“별 말씀을.”
리안은 라카제트와 악수를 나누었다.
라카제트는 실내를 둘러보더니 씩 웃었다.
“황홀한 밤을 보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리안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말을 돌렸다.
“전에 부탁한 농사와 관련된 물건들은 확보해놨어?”
“송구스럽습니다만 아직 구하는 중입니다. 이전의 만남으로부터 일주일 밖에 안지났다는걸 고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물건을 주문하고 받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리거든요.”
“응. 혹시나 해서 물어봤어. 아무튼 반지가 잘 작동하는군.”
“반지는 어떠한 악조건속에서도 고장이 잘 안나도록 튼튼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제가 돈을 벌테니까요.”
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에 끼운 반지를 한번 쳐다봤다.
“알았어.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해. 돌아가봐.”
“조만간 다시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돌아가려던 라카제트는 무언가 떠오른듯 잠시 멈춰섰다.
“아차차.”
그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전 페어리 프라이를 하려고 준비중이었습니다. 이곳에 부랴부랴 온답시고 저도 모르게 그만 알을 들고 와버렸군요. 기왕 이렇게 된김에 어떠십니까? 페어리 프라이 하나 해서 드셔보시지요. 맛이 별미 입니다. 드릴까요?”
라카제트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어두운 손바닥 위에 알록달록한 알이 놓여있었다.
계란만한 크기다.
리안은 그것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페어리가 뭔데? 설마 날아다니는 작은 요정들?”
“네, 그 아이들입니다. 우리 마족들이 즐겨먹는 가축이죠.”
잔인한 놈들 같으니.
리안은 별 내색없이 물었다.
“나한테 주려고? 공짜야?”
“지인에게 선물로 받아서 많이 있습니다. 괜찮으시면 하나 드셔 보시지요.”
“고마워.”
리안은 사양않고 덥썩 받았다.
“당신 장사할줄 아네.”
라카제트는 정중히 허리를 숙여보였다.
“저는 늘 고객분들께 진실된 마음으로 다가가려 노력중입니다. 제 보잘것 없는 선물을 받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지요.”
이후 라카제트와 우마족 소녀는 바닥으로 가라앉으면서 사라졌다.
두 사람이 떠나자 음침한 기운이 넘쳐흘렀던 헛간은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그리하여 다시 현재.
“요정이라……”
리안은 지푸라기로 만든 둥지 속에 담긴 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라카제트는 프라이를 해먹으라며 줬지만 리안은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보다 부화시키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애지중지 돌보고 있는중.
과연 어떤 요정이 태어날까 기대가 컸다.
부화하면 뭘 먹여야할지 고민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그때 불현듯 좋은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러고보니 요정한테 해충 잡으라고 시키면 딱이잖아?”
칼과 방패를 쥔 요정이 밭을 감시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리안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재밌겠다.”
하지만 부화의 기미도 안보이는데 언제쯤 그게 가능할까?
운이 없으면 저대로 썩어버릴지도 모르고……
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 * *
당근을 심은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그 말인 즉!
그렇다.
수확의 시기가 찾아왔다!
“형님! 진짜 싱싱하게 잘 자랐네요!”
딘이 밭을 둘러보며 탄성을 자아냈다.
리안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밭을 가득 메우며 풍성하게 자란 줄기와 잎들.
리안이 해야할 일은 다 끝났다.
이제 행상인이 와서 밭의 가치를 측정하는 일만 남았다.
일단 수확을 하지 않고 연두색 머리 여자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당근은 이미 무럭무럭 자랐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괴물한테 습격당해서 죽은거 아냐?”
리안은 날이갈수록 초조해졌다.
“희한하구만. 세달에 한 번씩은 꼭 찾아왔는데.”
촌장도 무언가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터를 데리고 오래서 삐졌나……”
“피터가 누군데요?”
“그 여자가 소속된 상단의 주인일세. 맨날 여자만 보내기에 이번엔 상단주 좀 데려와 보라고 했지. 그게 제 딴에는 내키지 않았나봐.”
“으음……”
리안은 일주일을 허비한뒤에도 나흘을 더 기다렸다.
슬슬 당근을 뽑지 않으면 안될시기였다.
계속 땅에 놔뒀다가 갑자기 비라도 쏟아지면 순식간에 썩어버릴게 분명했다.
“안되겠어. 오늘 전부 수확해야겠다.”
딘을 불러다 신나게 뽑아재꼈다.
수확한 당근중 일부는 딘에게 나눠주고 이어 땅을 빌려준 촌장과 주민들의 몫도 챙겨주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워했다.
“세상에나! 이렇게 질 좋은 당근은 처음봤어!”
“이거 당근 맞아? 너무 맛있어서 왕이 먹는 음식 같잖아!”
“고맙다 리안아!”
마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을때 리안은 마음속에 품고 있던 큰 결심 하나를 모두에게 밝혔다.
“저, 마을을 떠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충격이라도 받은듯 술렁거렸다.
“영원히 떠나는겨?”
“다시 돌아올거지?”
“갑자기 왜?”
더이상 무턱대고 행상인만 기다릴 수 없었다.
당근의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가까운 도시로 가서 내다팔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 돈을 바탕으로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자 했다.
“꼭 가야혀?”
“가야해요. 죄송합니다.”
다들 아쉬워하는 가운데 촌장은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데 가서도 잘 살게나. 우리를 기억해주고.”
촌장은 그동안 함께지냈던 리안을 위해 수레를 마련해주었다.
리안은 수레에 당근을 잔뜩 실은뒤 곧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모두 잘 있으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형님! 엉엉! 가지마요!”
딘은 눈물 콧물 질질 짜가며 요란하게 울어댔다.
리안은 그를 토닥이며 안아준뒤 그대로 수레를 끌고 마을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뒤에서 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밖까지 쫓아온 것이었다.
그가 울먹이며 외쳤다.
“형님! 보고 싶을거예요! 돈 많이 벌거든 우리마을에 꼭 들러주세요!”
리안은 손을 흔들며 밝게 화답했다.
“응! 너도 잘 지내고! 나중에 결혼한 거 보러올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꼭 와야돼요!”
“어!”
시원섭섭했다.
한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과 헤어지는게 아쉬워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아득히 먼 곳에서 오드리아가 기다린다.
오래전 그녀에게 했던 자신의 맹세.
‘하늘에 대고 맹세할게요. 저는 절대 오드리아님을 홀로 놔두지 않을거예요. 우린 평생 함께예요. 죽을때까지.’
리안은 그날의 맹세를 떠올리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았다.
“수백년을 쓸쓸하게 지내오신 분인데 또 홀로 외로이 둘 수 없어. 빨리 내가 가야해.”
딘과 헤어진 리안은 잠시 수레 끄는 것을 멈추고 지도를 펼쳐보았다.
촌장이 동그라미 쳐준곳.
‘란테스’라 불리는 도시를 주목했다.
거리가 꽤 멀지만 여기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도시였다.
“촌장님이 5일 정도 걸린다고 했지…… 5일간 얄짤없이 노숙이네.”
당근은 상온에서도 신선도가 오래가는 채소라 다행이었다.
그는 지도를 고이접어 품속에 넣었다.
두 손으로 힘껏 수레를 끌면서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잠시 후에는 질주하듯 내달리기 시작했다.
조만간 당근을 팔 수 있다는 기대감에 리안은 힘이 철철 흘러넘쳤다.
“조온나 빨리 달려서 4일만에 테이프 끊어주마! 으랴차차!”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초반에 2연참으로 달리고 싶은데 조카가 방학해서 조카랑 놀아줄 시간도 남겨둬야 해서 글쓸 시간이 없...
23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
지난 두 달간 영지에서 지낸 리사는 황실 자문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수도로 상경하는 길이었다.
조금씩 흔들리는 마차에 그녀와 조수 에밀리가 타고 있었다.
“에밀리, 기분이 좋아보이네.”
“그래 보여요? 황도에 가서 그러나?”
“황도가 뭐라고.”
“멋진 남자들도 많고 즐길거리가 많잖아요.”
“내 눈에는 전부 시체로만 보여.”
리사는 차갑게 대답하면서 창밖 너머로 눈길을 주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 들판이 보였다.
“…가을이네.”
“그러게요. 리사님 옷도 새로 사야겠어요. 저녁만 돼도 날씨가 쌀쌀해요.”
“언니들이랑 보리이삭 줍던게 생각나.”
어린 시절.
리사의 생각은 늘 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가족들은 그곳에 서 있었고 외모조차 변한게 없다.
언니들은 여전히 여자 아이들.
반면에 리사는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나만 홀로……”
“그 얘기 들었어요?”
리사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에밀리를 쳐다봤다.
“무슨 얘기?”
“드르바 영주님의 첫째 아드님이 되게 잘 생기셨데요. 학문에도 조예가 깊고 언변도 뛰어나셔서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다지 뭐예요. 아아, 좀 이따 만날텐데 기대된다.”
에밀리가 저혼자 신이나서 떠들어댔지만 리사는 별로 관심이 없는지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래봐야 나중엔 시체지.”
“리사님도 참.”
에밀리가 물었다.
“정말로 할 계획이세요?”
“뭐가?”
“사람들 죽이는 일이요. 두렵지 않아요?”
에밀리가 진지하게 쳐다보자 리사는 그 모습이 재밌어 작게 웃었다.
“두렵기는 커녕 기쁜걸. 인간은 위선적이야. 처음에는 도덕적이고 선한 사람처럼 굴다가도 자신이 손해볼 것 같으면 가차없이 상대를 배신하지. 나는 그것이 무척 더럽게 느껴져.”
어릴적, 부모님과 친하게 지내던 이웃주민들이 오히려 더 매몰차게 자신의 가족을 악마로 내몰던 기억이 떠올랐다.
‘부모는 물론이고 애들도 정신상태가 이상했어요! 다 같이 화형시킵시다!’
평소 상냥했던 이웃 아주머니의 폭력적인 눈빛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인간의 삶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차 있어. 우리처럼 비열한 존재들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인간이 사라지면 세상은 더욱 살기 좋아질거야.”
“……”
에밀리는 물끄러미 리사를 쳐다보다 물었다.
“마지막엔 저도 죽이실건가요?”
리사가 코웃음을 쳤다.
“너는 인간이 아니잖아.”
두 사람이 탄 마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저 멀리 란테스 성이 보였다.
“거의 다 왔네요. 드르바 영주님과 대화하실때 조심하세요. 성격대로 함부로 말씀하지 마시구요.”
“알아.”
“건성건성 대답하지 마시고요.”
에밀리는 단단히 주의를 줬다.
“하룻밤만 묵고 떠날건데 절대 사고치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자고요. 아셨죠?”
“소란스러운건 나도 질색이야.”
리사는 짧게 대답하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황금들판으로 향했다.
“시체들과 놀 기분도 없어.”
* * *
“헉! 헉! 드디어! 드디어 도착했다!”
눈앞에 잿빛 성벽이 보였다.
리안은 꼬박 3박 4일을 내달려 마침내 촌장이 알려준 란테스 성에 도착했다.
“아, 죽갔네!”
리안은 바닥에 대자로 퍼졌다.
그 자세로 한동안 숨을 고르다가 벌떡 일어섰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수레를 끌었다.
성문앞은 다양한 행색의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창을 든 경비병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리안은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통행료를 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소.”
경비병이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모습이 보였으나 리안은 걱정이 없었다.
젊은 시절 이곳에 자주 들락날락 했던 촌장이 미리 통행료를 챙겨줬기 때문이다.
“다음!”
이윽고 리안의 차례가 왔다.
리안은 수레를 끌고 당당하게 경비병에게 다가갔다.
“이름, 출신지,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하시오.”
경비병의 질문에 리안은 적당히 대답하고 통행료를 지불했다.
“당근을 팔러왔다고?”
경비병 하나가 수레쪽으로 가서 짐칸을 덮은 검은천을 창끝으로 들어올렸다.
수북히 쌓인 당근을 본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큼지막하구만. 잘 키웠네.”
“싸게 드릴테니 몇 개 사가시죠.”
리안이 넉살 좋게 제안을 했으나 경비병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우리와 계약을 맺지 않은 행상인의 경우에는 가져온 채소의 40%를 영주님께 상납하도록 되어있소. 그에 해당하는 물량을 지금 즉시 저쪽 구석에 내려놓고 가시오.”
“뭐요?”
리안은 기가막힌 나머지 헛웃음이 나왔다.
“40%나 떼어가면 난 뭘 먹고 살라고요? 당신들 흡혈귀야?”
“마족과 전쟁중인거 모르오? 영주님께서 이 땅을 지켜주셨기에 당신이 안심하고 장사를 할 수 있는거요. 그리고 상납한 채소들은 정직하게 군량으로 사용될 예정이니 아까워 하지 마시오. 덕분에 우리의 군대가 잘 먹게 되니 이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할 일이외다.”
돈 한푼 없는 마당에 애써 키운 당근까지 수탈당한다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리안은 순간 열이 뻗쳤다.
“못 줘! 뭐 이런 거지같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뾰족한 창날이 리안의 목에 들이밀어졌다.
경비병 넷이 리안을 에워싸고 있었다.
“불만이면 떠나시든가.”
“이봐, 다들 그렇게 한다고. 네가 뭐라도 돼?”
그때였다.
근처에서 힘찬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성문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인파가 양옆으로 갈라졌다.
갈라선 사람들 사이로 백마를 타고 있는 케스티리아와 그녀의 부하들이 위풍당당하게 나타났다.
“리사 아스트리드 백작님께서 도착하셨다. 즉시 길을 만드시오!”
“버, 벌써요!?”
케스티리아의 외침에 경비병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듯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켜라 비켜! 저리 비키라고! 황실자문관님께서 오실 길이다! 저리 비켜!”
사람들을 양옆으로 밀치며 마차가 통과할 수 있을만한 널따란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경비병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리안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한순간.
‘인생은 타이밍!’
다다다다닷!
잽싸게 수레를 끌고 성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말 위에 타고 있던 케스티리아가 무심코 지켜보고 있었으니……
‘흔히 볼 수 없는 검은 머리군. 농사꾼인가?’
* * *
성안으로 무사히 들어온 리안은 잠시 멈춰 눈앞에 펼쳐진 건물들을 바라봤다.
“멋지다. 정말 중세 유럽 느낌이 나네……”
중세식 고층 건물들과 돌이 깔린 도로를 보니 어딘가 낭만적이다.
만날 농촌에만 있다가 드디어 이세계 다운 이세계에 도착했달까.
리안은 가슴을 활짝펴고 도시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오우 이세계 스멜~ My 머릿속은 상쾌.”
홀린듯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당장 장사터부터 찾아야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 여관이나 박차고 들어가서 푹 쉬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거지였다.
따라서 당근을 팔아 돈을 거머쥐기 전까지 그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처지.
뱃속은 난리라도 난것처럼 꼬르륵 꼬르륵 요동쳤다.
이럴때가 아니라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간신히 시장을 찾았다.
여러 상인들이 노점을 차린 넓은 광장에 인파가 북적댔다.
“더 깎아줘.”
“그만하면 됐지 얼마나 더 깎아줘? 됐어, 됐어. 안사면 나도 말어.”
“그 사람 참 고집있네.”
“자 요거나 조금 가져가슈. 그럼 됐지? 나도 마지막이야.”
손님이 많이 몰리는 목 좋은 곳은 끼어앉을 틈도 없이 상인들이 빼곡히 차지하고 있었다.
리안은 우선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당근의 시세를 파악했다.
‘3kg에 1실버 35쿠퍼라…… 그럼 나는 무조건 3kg에 3실버다!’
어느 노점을 가봐도 자신이 키운 당근보다 품질이 좋아보이는 당근을 파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가격을 정한 리안은 장사터를 찾아다녔다.
얼마 후 그는 후미지고 으슥한 장소에서 멈춰섰다.
그곳 말고는 장사할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지.”
혀를 차며 수레를 덮은 검은천을 치웠다.
수북히 쌓인 신선한 당근들.
리안은 두근두근했다.
“자 시작해볼까.”
잠시 후 호객행위를 하는 그의 목소리가 시장 가장 끝자락에서 울려퍼졌다.
* * *
“에밀리, 여기서부턴 걸어가자.”
“성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요?”
“난 걷자고 말했어. 마차나 세워.”
도시를 달리는 마차 안.
현재 시각 오후 다섯시.
리사는 영주의 성에 일찍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성에 서둘러 들어가봐야, 리사 일행에게 하룻밤을 묵게해준 영주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비롯해 여러 귀족과 만나 사교활동을 벌여야 했다.
그게 매우 귀찮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도시 구경이나 하면서 날이 어두워졌을때쯤 성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리사는 정말 필요할때만 제외하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일이 상당히 무가치했다.
어차피 자신의 손에 죽을 사람들 아닌가.
“이따가 다리 아프다고 하지 마세요.”
에밀리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마부에게 지시해 마차를 세웠다.
이내 마차에서 내린 리사는 친위대장 케스티리아와 조수 에밀리만 남겨놓고 다른 일행은 먼저 성으로 보냈다.
“생각해둔 곳은 있으신지요?”
한 손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케스티리아의 물음에 리사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시장에 가서 연구용으로 쓸 씨앗이랑 채소나 사자.”
에밀리가 투덜 거렸다.
“제가 다 들어야하잖아요. 이러실거면 하인도 몇 명 데리고 가시지.”
“걱정마. 조금밖에 안살거야.”
세 사람은 곧장 근처의 시장으로 향했다.
저녁에 가까워지자 시장의 인파는 더욱 늘어나 발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나할것없이 리사가 가는 길마다 옆으로 바짝 비켜섰다.리사는 자신의 신분을 시장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그녀의 옷차림과 눈부신 미모를 보고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다른 지역에서 온 고위 귀족이겠지?”
“나 저분한테 반했어……”
“저분을 보니 우리 마누라는 그냥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네. 저분이야말로 진짜 여자중의 여자야. 미모가 정말 대단해!”
“뭐라고요? 오늘 귓구멍에 피 한번 나볼래요?”
“허걱! 여, 옆에 있었어!?”
사방에서 리사의 미모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가운데, 더러 용기를 내서 구걸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배가 고픕니다! 먹을 것 좀 사먹게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그때마다 리사는 기꺼이 돈 자루에서 은화를 꺼내 얼굴에 구정물이 묻은 아이들한테 한 주먹씩 쥐어주었다.
그리고 한마디씩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않았다.
“다음부턴 남한테 빌붙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으렴. 남한테 손 내미는 인간이 가장 한심한 인간이야. 열심히 일하는 개미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알겠니?”
돈을 받은 아이들은 안색이 창백해지거나 울음을 터뜨리며 도망치듯 사라졌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에밀리는 속이 터졌다.
가슴을 쾅쾅 치며 리사에게 속삭이듯 소리쳤다.
“말씀 좀 조심하시라고 당부 드렸잖아요!”
“그래.”
리사는 기계처럼 대답만 할뿐 바뀌는건 없었다.
얼마뒤 채소를 파는 상인들이 몰려있는 거리에 들어서자 손님이 북적거리는 어떤 노점이 눈에 띄었다.
“인기가 많네 저 노점.”
리사는 흥미가 생겼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젊은 상인이 순무를 팔고 있었다.
일반 순무보다 훨씬 크고 싱싱한게 왜 사람들이 몰려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가격도 품질에 비해 매우 싼편이었다.
“왕과 귀족들만 먹는 순무입니다! 어서 어서들 사가십시오! 이런 기회 흔치 않습니다!”
“저 하나 줘요!”
“난 세 개!”
순무는 리사의 눈앞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한참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던 리사는 차곡차곡 쌓여있는 순무 하나를 잡아들었다.
꽤 무거운게 속도 알차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돌연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젊은 상인을 하찮게 쳐다봤다.
“나도 이거 줘요.”
“예?”
“내 손에 들고 있는 이 무, 산다고요.”
“아, 그게 저……”
조금전까지만해도 입고 있는 속옷만 빼고 다 팔 것처럼 보이던 젊은 상인은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지 리사 앞에서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왜요? 무슨 문제있어요?”
“그, 그러니까 귀족분들은 안사시는게……”
“어째서요? 설마 차별하는건가요?”
“아, 아뇨! 차별이 아닙니다! 순무는 아랫것들이나 먹는 뿌리 채소라서 불결하기에 귀족분들은 땅위에서 자란 채소를 사드시면 어떨까 해서……”
“거짓말 마.”
리사의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나한테 쓰레기를 팔았다가 처벌 받을게 두려운 것이겠지. 아니야?”
“헉!”
리사는 뒤에 서 있던 케스티리아를 돌아봤다.
“여기 있는 무들을 전부 잘라.”
“네.”
“안됩니다!”
상인은 기겁하며 크게 당황했다.
케스티리아는 담담이 앞으로 나섰다.
번개 같이 칼을 휘둘러 돗자리 위에 쌓여있던 무들을 모조리 반으로 갈라버렸다.
촤악!
바닥에 어지러이 나뒹구는 무들.
그 속은 전부 시커멓게 썩어있었다.
리사가 웃었다.
“마법으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바꾸면 누가 모를줄 알았어?”
“세상에!”
실체를 알게된 사람들은 분노했다.
“이 자식이 우리한테 사기쳤어!”
“야이 쓰레기 같은 인간아!”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상인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병사들에게 끌려갔다.
“어떻게 아신거예요?”
에밀리가 신기하다는 눈길로 리사를 쳐다봤다.
리사가 피식 웃는다.
“앞으로 내가 사람을 속여야하는데 속아서야 되겠니?”
리사는 그 말만 하고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앞장서고 그 뒤를 케스티리아가 뒤따랐다.
뒤에 홀로 남겨진 에밀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기꾼은 사기꾼을 알아본다 같은 건가……?”
고개를 돌려보니 리사는 어느새 저 멀리 가있다.
그녀는 급히 뒤쫓아갔다.
“같이가요 리사님!”
그뒤로 느긋하게 시장을 둘러보다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도시의 주인인 드르바 영주와의 저녁 만찬만큼은 반드시 참석해야했기에 슬슬 시장을 떠나려할때였다.
거리를 걷고 있는데 스치는 시선에 한 상인이 들어왔다.
시장의 가장 후미진 곳.
그곳에서 당근을 파는 젊은 상인.
리사는 우뚝 걸음을 멈추며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구석에 있는 자리임에도 사람들이 꽤 몰려들고 있었다.
덩달아 상인도 신이나서 열심히 팔아댔다.
수레에 실려있는 당근은 한눈에 봐도 품질이 좋아보였다.
‘음? 저자는……’
케스티리아는 아까 우연히 마주친 농부의 뒷모습이 기억났다.
“와…… 저렇게 큰 당근은 처음봐요. 색도 진하네.”
에밀리가 그렇게 말하자 리사는 가당치도 않다는듯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여긴 사기꾼들 단속을 잘 안하나봐. 아까 같은 놈이 또 있네.”
에밀리가 깜짝 놀란다.
“설마, 저것도 썩은 무처럼 마법으로 수작 부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안그럼 저렇게 잘 키운 당근이 어디서 나오겠어? 저런 당근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가자.”
“어디를요?”
“몰라서 물어? 저 상인이 위선자라는 것을 낱낱이 까발려주겠어.”
리사는 거침없이 당근 상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24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많고 많은 채소중에 하필이면 당근으로 장난치니까 더 열받아.’
당근은 그녀에게 좋은 기억만 있는 채소였다.
본때를 보여주자며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여기 계셨군요!”
리사는 우뚝 멈춰섰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화려한 귀족옷을 입은 사내가 미소짓고 있었다.
“시장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마중 나왔습니다.”
“누구……?”
에밀리가 잽싸게 뛰어와서 귓가에 소근댔다.
“뒤에 기사들 데리고 다니는거 보면 모르겠어요? 성에서 나온 사람이잖아요! 분명 높은 사람일거예요!”
사내는 가슴에 한 손을 얹고 기품있게 묵례했다.
“라발 가문의 장남 지슈트라쥬입니다.”
“아하, 그랬군요. 나는 리사 아스트리드 입니다.”
“몸에서 광채가 나셔서 얼굴을 몰라봬도 바로 알 수 있겠더군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의 느끼한 대사에 리사는 속으로 역겨웠다.
자기도 모르게 쌀쌀맞은 음성이 나왔다.
“장남께서 여긴 왜 오셨죠?”
“모시러 왔습니다. 제가 성까지 길을 안내해드릴테니 함께 가시지요.”
지슈트라쥬는 성으로 가는 방향을 두 손으로 정중히 가리키며 권했다.
하지만 리사는 시선을 돌려 당근상인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어머니 어서오세요! 맛있는 당근이 왔습니다! 오늘 아니면 다음엔 없어요! 얼렁들 사가세요! 오! 열개나 사가신다고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장사하고 있는 당근상인을 째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저놈은 꼭 처리하고 가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그리고 그런 리사의 속마음을 귀신같이 눈치챈 에밀리.
‘영주의 아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성격대로 하게 놔뒀다간 큰일 날거야.’
주인이 사고칠까 두려워 후다닥 선수를 쳤다.
“리사님! 영주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면 실례예요! 성에 빨리 들어가보세요!”
에밀리는 리사의 등을 떠밀었다.
“여기는 제게 맡기시고요!”
“갑자기 왜 그래?”
“지슈트라쥬 님께서 마중 나오셨잖아요. 기다리게 하실거예요? 뒷일은 제가 처리할테니 빨리 가보세요.”
“무슨 사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지슈트라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자 에밀리는 리사의 귓가에 대고 급하게 속삭였다.
“상인한테 화내는 광경을 보여서 좋을게 뭐가 있겠어요? 들어가라면 들어가세요 좀!”
리사는 못 마땅한듯 그녀를 쳐다보다가 결국은 돌아섰다.
“저 상인놈 아주 박살을 내버려.”
“저만 믿으세요.”
리사는 성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지슈트라쥬를 지나쳤다.
“가죠.”
“네, 백작님.”
지슈트라쥬는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그녀를 따라갔다.
에밀리는 흡족하게 웃었다.
“휴, 간신히 보냈네.”
그러나 아직 안심은 금물!
“혹시 저희 란테스성의 역사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아뇨.”
“오오, 잘 됐네요. 우리 란테스성은 수백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너무 가까이 붙지 말아주실래요?”
“네?”
“1미터 이상 떨어져주면 고맙겠습니다.”
“시, 실례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둘러보며 걸을테니 아무 말씀 안하셔도 됩니다.”
지슈트라쥬와 나란히 걸어가는 리사를 보아하니 괜히 큰 실수를 할까봐 불안했다.
“하여튼 한시라도 쉬질 못하게 하신다니까.”
에밀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가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 서둘러 당근상인쪽을 돌아봤다.
케스티리아가 당근을 구매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멀뚱히 구경중이었다.
“리사님한테 가봐야하는거 아니에요?”
“당신 혼자 둘 수 없어서.”
“절 지켜주시려고요?”
“이 남자, 체격이 좋아.”
케스티리아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당근상인을 바라봤다.
“농부로 보기 힘들 정도로 몸이 좋아. 싸움이 벌어지면 에밀리가 위험할지도.”
그러나 에밀리에게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어머, 가까이서 보니 근사해.”
그녀는 두 손을 마주잡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멋진 사람이랑 어떻게 싸워……!”
당근상인의 떡 벌어진 어깨에 감탄하며 시비를 걸기보다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듬뿍 들었다.
“저런 분이 키운 당근이라면 맛있을거야……!”
“에밀리?”
그대로 넋이 나간 에밀리는 케스티리아를 지나치며 당근 상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예쁜척 머리를 귀뒤로 쓸어넘기며 웃어보였다.
“저기…… 당근 하나 주시겠어요?”
“오, 당근 당근! 1개씩은 안팔고 3kg에 3실버 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포장지가 없어서 그냥 들고 가셔야 합니다. 사시겠어요?”
당근상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에밀리의 두 눈에서 하트가 뿅뿅 흘러나왔다.
“물론이죠. 가슴에 안고 갈게요.”
“여깄습니다!”
당근상인이 당근 5개를 내밀자 에밀리는 지갑에서 3실버가 아닌 5실버를 건넸다.
“여기요.”
“많이 주셨는데요? 3실버입니다.”
“2실버는 팁이에요.”
그에게 윙크를 날렸다.
그가 환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에밀리는 당근을 사고도 떠날 생각을 안했다.
그녀는 굵직한 당근 5개를 두 팔로 끌어 안은 채 무언가에 홀린듯 당근상인의 얼굴과 몸만 뚫어져라 관찰했다.
“하여간 서큐버스란……”
근처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케스티리아가 답이 없다는듯 머리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녀는 곧장 다가가서 에밀리가 품에 안고 있던 당근 하나를 빼내서 반으로 잘랐다.
당근속을 살펴본 그녀의 눈이 커졌다.
“진짜 질 좋은 당근이잖아……?”
곁에 있던 에밀리가 당근을 살짝 깨물어 먹었다.
우물우물.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 생으로 먹어도 맛있어!
“맛있다고?”
케스티리아도 반으로 자른 당근을 급히 깨물어 먹었다.
잘근잘근.
혀가 맛을 음미한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띵하고 전율이 일었다.
“으으응! 마, 맛있어!”
두 팔로 제 몸을 감싸 안으면서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터뜨렸다.
무뚝뚝한 여기사인 케스티리아마저 몸부림치게 만드는 당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씹을수록 아삭하고 달콤한게 마치 사과?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달달한 그 맛!
당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식감과 맛이 놀라웠다.
“여기 있을때가 아니야. 빨리 리사님께 맛보여 드려야겠어!”
케스티리아는 당근상인에게 푹 빠져있는 에밀리의 목깃을 부여잡고 황급히 성쪽으로 향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요! 조금만!”
에밀리는 당근을 꼭 붙들어 안은 채 그대로 끌려갔다.
* * *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리안은 장사가 잘 돼서 신이났다.
역시 장소가 좋든 나쁘든 간에 솜씨만 확실하면 손님들도 맛집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몇 시간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있던 작은 돈 주머니에는 실버가 찰랑 소리를 내며 두둑하리만치 채워져 있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어림잡아 100실버 넘게 벌어들인 것 같다.
게다가 아직 끝이 아니다.
손님들은 여전히 줄을 서서 기다렸고, 당근도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는 것!
“자, 여기 있습니다! 제 얼굴 기억했다가 나중에 오면 또 찾아주세요!”
“어? 설마 팬티?!”
“예?”
“인큐버스!”
손이 모자를 정도로 정신없이 팔고 있는 와중에 불현듯 이상한 말을 내뱉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쪽을 쳐다봤다.
“당신 남쪽 마을에 있던 인큐버스 맞지!”
“……?”
리안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여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기쁜 얼굴로 소리쳤다.
“아, 연두색!”
“거봐! 거봐! 맞나보네!”
여자는 기뻐하며 박수를 쳐댔다.
리안도 활짝 웃었다.
“당신이 여기 웬일이야?”
“웬일이긴? 여기서 일하니까 여깄지. 당신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갇혀 있던거 아니야? 풀려났어?”
두 사람은 단 한 번 마주친것 말고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친한 친구 마냥 반갑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새 당근을 키웠다니 제법인데?”
연두색 머리 여자는 리안이 파는 당근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힘들게 키워놓고, 좋은 상품을 왜 여기서 팔아?”
“그럼 어디서 팔아? 시장말고 팔데 있어?”
“이런건 귀족한테 팔아치웠어야지. 시장에서 팔면 제값이나 받겠어? 사람들이 돈이 어딨다고.”
“음?”
여자는 이것저것 아는체를 해가며 리안한테 설명해주더니 당장 그에게 장사를 접으라고 시켰다.
“귀족들한테 더 비싸게 팔아줄테니까 나만 믿어.”
“정말? 괜찮겠어?”
“대신 수고비나 좀 챙겨줘. 기운이 나야 더 신나게 팔아재끼지.”
“챙겨줄게.”
서로 잘 모름에도 친근히 다가오는 여자의 제안을 수긍한 리안은 서둘러 장사를 멈추고 그녀를 따라나섰다.
두 사람은 수레를 끌고 시냇가로 이동했다.
“귀족들은 채소에 흙이 묻어있으면 절대 안사.”
냇가에 쪼그리고 앉은 여자는 흙 묻은 당근을 하나 꺼내 시냇물에 깨끗이 씻었다.
“더럽고 불결하다고 생각하지. 귀족들한테 팔려면 일단 깨끗하게 보여야 해.”
“알았어.”
리안도 함께 쪼그리고 앉아 당근을 씻기 시작했다.
“서로 통성명도 못했네. 내 이름은 모니카야.”
“나는 리안. 김리안.”
“이름 참 특이하다.”
“다들 그래.”
“멀리서 왔나봐?”
“응.”
“석달전 처음 봤을때 딱 보니 사연 많게 생겼더라고. 아무튼 그건 차차 알아가면 그만이고.”
그녀가 서글서글하게 웃는다.
“여기서 오래 있을거야?”
“글쎄, 모르겠어.”
리안은 무심코 그녀의 가슴팍을 쳐다봤다가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서로 쪼그리고 앉은 까닭에 서 있을때는 잘 보이지 않던 그녀의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아무 관심 없는데 괜히 신경쓰이네.’
심지어 목둘레가 넓게 파여져 있는 서민용 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당근을 씻을때마다 풍만한 유방이 옷밖으로 빠져나올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출렁거렸다.
리안은 급히 말을 꺼냈다.
“마을에 있을때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렸어. 근데 2주 가까이 기다려도 안오더라. 일이 바빴어?”
“아니, 그냥 아팠어.”
“어디가?”
“그냥 있어 그런데가.”
대답을 꺼리는 기색이 있어 리안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개인사정이 있어 못왔던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음?’
리안은 또다시 당황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모니카의 얼굴을 마주보려 할때였다.
그녀의 가슴 앞섶이 젖어 있었다.
당근을 씻다 물이 튀어서 젖었다고 단정짓기에는 무언가 느낌이 다른 자국이었다.
뭐랄까.
유방 양쪽에서 동그랗게 번져나간듯한 자국……?
하고 추측하던 리안은 금세 생각을 끊었다.
모니카의 시선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시장에서 허락도 없이 장사를 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그거 알아? 당신 죽다 살아난거야.”
“왜?”
“당신은 정식으로 허가를 받지 못했잖아. 원래 여기서 장사를 하려면 제일 먼저 영주님께 허락을 받아야 해.”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겠지.”
“또 상인 길드에 신고도 해야하지.”
“그런 것도 있었어?”
“그것만이 아니야. 뒷골목 친구들한테도 자릿세를 상납해야해.”
“뭐가 그리 복잡해?”
“장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야. 그저 좌판만 벌리면 될줄 알았겠지만 이권 다툼이 치열하다고.”
“그러니까 오늘처럼 장사 못한다는 소리야?”
그녀가 웃었다.
“안걸린걸 다행인줄 알아. 에구, 내가 먼저 발견해서 다행이지 촌놈 하나 곡소리 날뻔했네.”
이후 당근을 전부 씻고 나서 모니카를 따라 그녀의 숙소가 있는 여관으로 향했다.
“금방 갈아입고 올게.”
1층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방으로 올라가 세련된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그 다음 귀족들이 모여 사는 저택가로 이동했다.
“잘 들어. 귀족들은 말이야. 우리보다 배운건 많지만 의외로 멍청하다? 세상물정을 몰라.”
그녀의 말대로 귀족들은 의외로 순진한면이 있었다.
모니카가 이런저런 허풍을 뒤섞어가며 청산유수의 달변으로 설득하니 그녀의 설명에 귀가 솔깃해진 귀족들은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게다가 누가봐도 당근이 최상의 품질을 자랑했기에 그녀의 말은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
한마디로 팔기가 너무 쉬웠다.
“이게 피부 미용에 좋다고?”
“쪄 먹으면 머리카락이 덜 빠져?”
“너무 귀해서 왕들도 몰래 먹는 채소라고?”
당근은 순식간에 완판을 이루었다.
그리고 리안의 돈 주머니는 찢어질 것처럼 부풀어올랐다.
“총 5골드 130실버 벌었네. 1골드만 줘. 괜찮지?”
“70실버 더 얹어줄게. 당신 아니었으면 이런 돈 못 만져봤을테니까.”
“그러게 날 빨리 만났어야지. 시장에서 판것까지 귀족들한테 팔았으면 두 배는 더 벌었겠다.”
리안은 빈 수레를 끌며 모니카와 함께 밤길을 걷는 중이었다.
피곤했지만 예상 밖의 큰 돈을 벌어 뿌듯했다.
오늘 세 끼를 당근만 먹은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뱃속이 상당히 허기져 있었다.
“괜찮은 여관 있으면 추천해줄래? 잘곳이 없어.”
“아참 오늘 도착했다고 했지. 그럼 내가 묵는 곳은 어때? 가격도 나름 저렴하고 시설도 그럭저럭 깨끗해. 아까 나 옷 갈아입으러 들렀을때 봐서 알잖아.”
돈에 밝은 상인이 묵는 곳이니 괜찮겠다 싶어 그녀를 따라갔다.
여관 주인에게 하루치 숙박료를 낸뒤 늦은 저녁식사도 하면서 오늘 하루 수고해준 모니카에게 술을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몸이 안좋아서 빨리 가서 쉴래. 미안.”
조금 창백해진 안색을 보니 어딘가 아픈게 분명했다.
“아까 당근 하나 몰래 챙겼어. 나도 맛 한번 봐야지. 가져간다.”
언제 감춰둔 것인지 마지막으로 남은 당근을 눈앞에서 흔들어보였다.
“그래, 맛있게 먹어.”
“잘자.”
그녀는 손을 흔들고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또 볼 수 있으려나? 착한 여자 같은데.”
리안은 조금 아쉬운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정 받은 방을 찾아가서 짐을 푼뒤 다시 1층으로 내려가 10분만에 식사를 끝마쳤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서 벌러덩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게 얼마만의 침대냐.”
만날 노숙만하다가 침대에 누워있으니 날아갈 것 같았다.
배도 든든하니 마음도 편하고.
“후우,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피곤한 하루였어……”
아무 생각도 안났다.
생각을 하기도 싫었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곯아떨어질 것 같았다.
자고 싶었다.
자려고 눈을 감는데……
쩌억.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
쩍.
“……?”
찌그덕.
쩌억.
“뭐지……?”
리안은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에는 쥐라도 있는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탁자 위에 올려둔 지푸라기 둥지 속 요정의 알.
그것을 바라본 리안의 눈이 커졌다.
세 달이 넘도록 잠잠했던 요정이 알에서 나오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
25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리안은 황급히 침대를 빠져나왔다.
탁자 앞으로 가서 껍질이 깨진 알을 들여다보았다.
말도 안될 정도로 자그만한 손이 금이간 껍질을 밀어내며 엄지손가락 만한 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맙소사……!”
리안은 앙증맞고 깜찍한 아기를 보며 나직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귀가 뾰족한 것만 빼고 사람이 낳은 아기와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그것도 여자 아이.
초록빛 눈동자를 가지고 리안을 신기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삐유……”
울음소리가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비슷했다.
리안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뭘 해줘야 하지? 우유를 먹여야 하나? 이 시간에 우유를 어디서 구해? 아냐, 아냐. 이제 막 태어나서 체할지도 몰라. 그냥 놔둬도 괜찮겠지? 아냐. 뭔가 해야돼. 뭘 하지!? 씻겨줘 말어?!”
리안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요람에 누워있는 것처럼 깨진 알껍질속에 편안히 누워있던 아기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리안을 빤히 쳐다봤다.
아기는 본능적으로 리안에게 애착을 느끼며 안기고 싶어했다.
“삐유ㅡ 삐삐ㅡ”
리안을 향해 작은 두 팔을 뻗어 안아달라고 졸라댔다.
하지만 리안이 그 뜻을 못알아듣고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자 곧 울음을 터뜨렸다.
“삐이이이ㅡ! 삐삐삐리이이이이ㅡ!”
“왜 그래?! 뭐가 문제야?”
당황한 리안은 우는 아기를 알껍질 채로 들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아기는 울음을 뚝 그쳤다.
그러더니 해맑은 웃음을 짓고 알껍질 밖으로 기어나왔다.
아기의 등에는 앞으로 날개가 솟아나리라는 것을 말해주듯 날개뼈가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리안은 조심스레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기는 기분 좋아하면서 밝게 웃었다.
리안은 저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귀엽다.”
손바닥 위에 올려놨더니 이젠 얼굴을 만지고 싶나보다.
리안의 얼굴을 향해 계속 팔을 뻗었다.
“삐삐ㅡ”
리안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어 코를 만지게 해주었다.
손바닥 위에 주저앉은 아기는 코를 툭툭 때리며 재밌어했다.
그날 밤, 요정의 이름을 ‘향단’이라고 지었다.
춘향의 몸종 향단이가 문득 떠올랐고, 애완동물한테 해피, 뽀삐, 단비 라고 이름 붙이듯 지어준 것이다.
“향단아, 쑥쑥 커서 나랑 벌레 잡으러 다니자.”
해충박멸 최종병기 향단이.
리안이 꿈꾸는 미래였다.
* * *
다음날 아침.
밤새 향단이랑 놀아주던 리안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늦잠을 자고 있을때, 도시는 전례 없던 고품질 당근의 등장에 술렁이고 있었다.
어느 중년하녀의 집.
하녀는 남편의 아침상에 잘게 채 썬 당근 샐러드를 내놓았다.
식탁에 앉아있던 남편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웬 당근이야?”
“주인집 마님께서 버린걸 주워왔어요.”
“썩지도 않았는데 왜 버려?”
“돈 있는 사람들은 당근 같은거 안먹는거 알잖아요. 마님께서 어제 상인들한테 혹해서 당근을 사셨는데 바깥주인님한테 크게 혼나셨어요. 이딴걸 왜 사왔냐고 하면서.”
“귀족들은 배가 불렀다니까. 아무튼 잘 됐네.”
남편은 낄낄 웃으며 수저로 샐러드를 퍼먹었다.
입안에서 몇 번 씹은 그 순간.
남편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오……! 달고 맛있어!”
“맛있어요?”
“이거 당근 맞아?”
“이이가 왜 이래? 이게 당근 아니면 뭐예요? 독이라도 넣었을까봐?”
남편에게 핀잔을 주면서 하녀도 수저로 퍼먹었다.
잠시 쩝쩝 씹더니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세상에!”
“맛있지?”
그녀가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불현듯 드는 생각.
“마님도 드셔보라고 해야겠다!”
어느 평민의 집.
아침 식탁에 차려진 당근찜을 보며 8살 배기 소년이 울음을 터뜨리는 중이었다.
“나 안머거! 나 당근 싫단 말이야! 당근 시더! 시더! 엉엉!”
“땍! 음식 가리면 못써요.”
엄마가 나서서 타일러 보지만 소용없다.
소년의 기억속에 당근은 정말 맛없는 음식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시더! 시더! 나 당근 안머거! 다른거 줘! 엉엉!”
눈물 콧물 질질 짜던 소년은 식사중인 아빠한테 매달려서 떼를 썼다.
“아빠 나 다른거 먹고 시퍼요! 당근 시러요!”
아빠는 웃으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아빠랑 하나만 약속할까?”
“뭔데요? 흑흑.”
“당근 한 숟갈만 떠먹으면 아빠가 엄마한테 부탁해서 과자 만들어주라고 할게.”
“징짜요?”
“진짜, 약속.”
“징짜 약속이에요. 꼭이에요.”
“응.”
아빠는 엄마를 돌아보며 아들과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소년은 훌쩍 대면서 수저를 들었다.
“징짜 한 숟갈만 먹을꼬야.”
접시에 놓인 당근이 마치 악마처럼 보였다.
씹지도 않고 꾹 삼켜버릴 작정이었다.
“읍!”
소년은 눈을 질끈 감고 찐 당근을 퍼먹었다.
바로 삼키려던 그때였다.
물렁물렁한 당근은 뜻밖에도 푸딩 같은 달달함을 선사해주었다.
찡그렸던 소년의 표정은 곧 놀라움으로 뒤바꼈다.
“헙!”
소년이 웃었다.
“마시떠!”
당근의 참맛을 깨달은 소년은 이내 당근에 환장한 사람처럼 정신없이 퍼먹기 시작했다.
아빠와 엄마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쟤 좀 봐. 당근을 그렇게나 싫어하던 애가……!”
집안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아들은 자신의 몫을 순식간에 비우고 나서는 엄마한테 빈 접시를 내밀기까지 했다.
“또 줘!”
달라진 아들의 모습을 보며 엄마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 잘생긴 당근상인한테 오늘 또 가봐야겠네?”
어느 귀족가 저택.
아침부터 고성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온 가족이 모인 식사자리에서 맏아들 내외를 꾸짖었다.
“땅속에서 자라는 더러운 채소를 밥상 위에 올려놓다니 제정신인게냐!”
노인은 식탁 위에 놓인 당근수프와 당근주스를 손가락질 하며 화를 삭이지 못했다.
“우리 가문이 돈이 없냐 명예가 없냐! 공짜로 줘도 안먹을 채소는 왜 사와!”
맏며느리가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인이 말하길 당근이 어르신들 몸에 좋다고 해서……”
“이딴거 안먹어도 건강해!”
그때까지 아무 소리 없이 듣고만 있던 맏아들이 따지듯 말했다.
“아버지! 마족과의 전쟁 때문에 이제 시대의 식문화가 달라졌습니다! 식량난 해소를 위해 수도에 있는 귀족들도 채소를 즐겨먹기 시작했다고요! 유행에 발맞춰 우리도 변해야할 것 아닙니까? 최근에는 뿌리 채소가 사람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닥쳐!”
아들의 발언에 화가 치민 노인은 접시에 올려진 닭고기를 손으로 잡아뜯고는 아들에게 보란듯이 씹지도 않고 삼키며 호통을 쳤다.
“이것봐! 이것보라고! 고기가 얼마나 맛있어! 우린 조상대대로 고기만 먹고 자랐다! 고기만 먹었어도 아들만 잘 낳았고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 컥! 컥!”
노인은 이마에 핏대가 곤두서며 가슴을 쳐댔다.
“무, 물!”
그대로 뒤로 쓰러지는 것을 맏아들이 간신히 부축했다.
“목이 막히셨어!”
“물 어딨어! 물! 빨리 물 가져와!”
“술이라도 드려!”
“아버지는 술이 안받아서 더 위험해!”
식당이 난리가 났다.
자식들은 숨이 막혀 괴로워하는 노인을 보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물은 지금 데우느라 주방에 있습니다!”
“찬물도 좋으니 빨리 가져와!”
“예!”
하인들이 다급히 물을 가지러간 사이 맏며느리가 재빨리 당근주스잔을 잡아들었다.
“급한대로 이거라도 드시게 하세요!”
“줘봐!”
맏아들은 당근주스를 건네받고 허겁지겁 노인에게 먹였다.
주황색 액체가 목구멍으로 꿀렁꿀렁 넘어가며 막혔던 식도를 단숨에 뚫어주자 노인은 그제야 살겠다는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노인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온 식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노인은 잠시 숨을 돌린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맏아들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방금 그건 무엇이냐? 물은 아닌 것 같고, 먹으면서 달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게 꽤 맛있더구나.”
“당근주스예요.”
“뭣이!? 그게 당근주스라고?”
화들짝 놀라는 아버지를 보며 맏아들이 웃었다.
“드셔보니 괜찮죠?”
노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알을 좌우로 굴리더니 갑자기 크게 외쳤다.
“당장 시장에 가서 있는대로 다 사오거라!”
* * *
“으음……”
무언가 가려운 느낌이 들어 눈을 뜨니 향단이가 얼굴에 기어다니고 있었다.
“향단아, 큰일날뻔했잖아……”
“삐이, 삐삐ㅡ”
잠결에 모기인줄 알고 손바닥으로 칠뻔했다.
리안은 두 손으로 향단이를 품에 안고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하아암, 졸려.”
“삐리삐.”
“까꿍.”
두 손바닥에 향단이를 눕혀놓고 하품을 해가며 잠시 놀아줬더니 심리적으로 안정이 됐는지 향단이는 금세 잠이들었다.
“배고프다. 너도 아무것도 안먹어서 배고프지?”
향단이를 조심스레 침대에 눕혀 놓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1층에 가서 향단이의 밥을 구할겸 자신의 아침 식사도 가져올 생각이었다.
잠시 후 방을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카운터에서 여관 주인 아주머니와 만났다.
“혹시 우유 있어요?”
“우유? 우유는 아까까정 있었는데 지금은 다 나갔지.”
아침 일찍 목장에서 우유가 배달되는데, 리안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우유가 바닥났다는 것이다.
“그러게 일찍 나왔어야지.”
“너무 피곤해서.”
리안은 하는 수 없이 수프랑 빵만 시켰다.
없으면 없는대로, 수프를 차갑게 식혀서 향단이에게 먹일 생각이었다.
얼마뒤.
“여기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방장이 건네는 빵과 수프가 담긴 접시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각, 미안한데 배달 좀 해줄래?”
“뭔 배달이요? 점원 없어요?”
“우린 돈 아낀다고 점원 안써. 내가 바빠서 그래.”
“장거리 시키면 돈 받을거예요.”
아주머니가 웃는다.
“아이고 그런게 아녀. 총각도 모니카 잘 알잖아? 아직도 자고 있는지 어젯밤에 조식 예약해놓고 통 내려오질 않네. 총각이랑 잘 아는 사이 같아서 부탁 좀 할게. 요기 2층이 방이야. 해줄거지?”
“뭐, 모니카 씨라면…… 할게요.”
그렇게 왼손에는 자신의 식사 접시를, 오른손에는 모니카의 식사 접시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투숙객들 대부분이 일하러 나간 아침시간.
계단을 올라 한적한 2층 복도에 들어서자 눈살 찌푸려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모니카의 방문 앞에서 한 남성이 희끄무레한 엉덩이를 드러내고 자위를 하는 중이었다.
“씨발년 무지 꼴리네! 헉! 헉! 한번 박아봤으면……!”
남자는 살짝 열려진 문틈 사이로 방안을 엿보며 신나게 제 물건을 흔들어댔다.
“모니카……! 모니카……! 내 애를 임신해줘! 큿!”
리안은 그 광경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저 아침부터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안에서 뭐 야한짓이라도 하나?’
리안은 기척을 지운채 걸어가서 남자의 바로 뒤에 섰다.
‘똥꼬에 확 막대기를 꽂아버릴까보다.’
잠시 그런 유머러스한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아저씨 재밌어?”
“헉! 헉!”
“좋은거면 같이 보자.”
“으응?”
페니스를 쥐고 엉거주춤으로 서 있던 남자가 뒤를 돌아보려는 찰나 리안은 곧장 엉덩이를 걷어차버렸다.
퍽!
“으헉!”
남자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우당탕!
큰소리에 놀랐는지 이내 방안에서 모니카가 뛰쳐나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상의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젖은 수건으로 유방을 가리고 나타난 그녀.
양손에 음식 접시를 들고 있는 리안을 발견하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여기 왜 있어?”
리안은 턱짓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이놈이 당신 엿보면서 딸치고 있었어. 그래서 혼내준거야.”
“정말? 미친놈.”
모니카는 즉시 경멸하는 눈빛으로 남자를 내려다봤다.
곧 그의 정체를 알아본 그녀가 황당한 표정으로 웃었다.
“너 옆방에 묵는 놈이지? 진짜 어이없네.”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그럴게요!”
“니 말을 누가 믿어?”
“뭐든 다 하겠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살려주세요!”
남자는 넙죽 큰절을 하듯 엎드리며 계속 용서를 빌었다.
“여관 아주머니한테 가서 알려. 내가 지켜보고 있을게.”
리안이 그런식으로 말했더니 뜻밖에도 모니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하러 그래? 돈 아깝게.”
“어쩌려고?”
모니카는 남자를 싸늘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야, 너 얼마있어. 실컷 구경한 값으로 가진거 다 내놔. 안그럼 눈알을 확 뽑아버릴테니까.”
“요, 용서해주신다면 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상인이어서일까.
아니면 모니카란 사람이 그런것일까.
모니카는 남자에게 적당히 금품을 받아내고 그의 죄를 눈감아주었다.
남자가 도망치듯 떠난뒤 그녀가 말했다.
“어차피 신고해도 병사들은 가볍게 웃어 넘기고 말아. 내가 저놈을 죽일게 아니라면 죽일듯이 협박하면서 돈 뜯어내는게 최고지.”
그녀는 만족스럽게 웃은뒤 음식 접시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거 내 밥이야?”
리안은 팔이 아픈것도 모르고 들고 있던 음식 접시를 앞으로 내밀었다.
“당신거야.”
“식어서 맛 없겠다. 들어와.”
리안이 뭐라 대꾸를 하기도 전에 그녀는 바로 방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향단이가 기다릴텐데.”
리안은 접시만 놓고 나오자는 생각으로 일단 그녀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실내에 들어서자 알 수 없는 비린내가 진동했다.
“뭔 냄새야?”
무심코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이었다.
“내 젖 냄새.”
“젖 냄새?”
생뚱맞게 무슨 말이지?
“방금전까지 혼자서 젖을 짰거든.”
“……?”
모니카는 가슴을 가렸던 수건을 치우며 탐스럽게 익은 유방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얼마전 장사차 들른 마을에서 해괴한 벌레한테 물리는 바람에 모유가 나오는 병에 걸렸어.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은 그녀는 실실거리며 웃었다.
이상한 병에 걸린게 걱정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다음 말은 더욱 가관이었으니까.
“혼자서 힘들었는데 잘 됐다. 당신이 짜줄래?”
빨갛게 부풀어오른 유두에서 모유가 흘러나오더니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좋은 주말 되세요
26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혼자서 해.”
리안은 관심없다는듯이 시선을 돌렸다.
쓰레기통 안에 얇게 깎아진 채 버려진 당근 껍질이 보였다.
어제 하나 가져가더니 먹긴 했나보다.
“부끄러워서 그래?”
“진담이야 농담이야?”
“난 진담인데? 정말로 혼자 짜는게 힘들어서 그래.”
“그래도 혼자서 해.”
“단호하네.”
모니카의 속을 모르겠다.
하지만 리안은 잘 모르는 여자의 몸을 괜히 만졌다가 인생이 꼬일 것 같아서 대충 둘러댔다.
“고향에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모니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애인이 있었어?”
“응.”
“실망스러운 소식이네.”
“그런줄 알고, 그럼 이만.”
뒤돌아서는데 그녀가 붙잡는다.
“잠깐 차나 마시고 가. 나쁜놈을 잡아준 은인인데 차 대접 정도는 해줘야 예의잖아. 긴밀하게 얘기할 것도 있고.”
리안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빨리줘.”
“서두르는 남자는 사정도 빨리 한다더라. 그래서 밤에 재미가 없대.”
이 여자 봐라.
어제는 괜찮더니 오늘따라 이상하게 낯뜨거운 언행을 서슴지 않는다.
“헛소리 말고 긴밀하게 할 얘기라는건 뭔데?”
“당근 정말 맛있더라. 그거 당신이 키운거 맞아?”
“내가 재배했어. 왜?”
“당신 같은 일개 농부가?”
“일개 농부가 못할건 뭔데?”
“그 정도의 일등급 당근을 재배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 인력도 많이 들고. 당신 혼자서 해냈다는게 신기해.”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실이야.”
“운이 좋았던건지 실력인건지.”
모니카는 마른잎을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티스푼으로 몇 번 휘젓더니 장난기 어린 눈으로 리안을 응시했다.
“우유 타줄까?”
“우유가 어디서 났는데?”
방안을 둘러보고 있던 리안이 쳐다보자 그녀는 기다렸다는듯이 유방을 움켜쥐고 뜨거운 김이 새어나오는 찻잔을 겨냥했다.
“내 우유. 얼마나 타줄까?”
그녀가 킥킥 웃는다.
리안은 그 광경을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상대가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고 싶어 일부러 저러나?
리안은 그녀에게 재미를 선사해줄 생각이 없었다.
“열방울.”
“진짜?”
“어.”
그녀가 놀란다.
“뭐야, 애인있다며.”
“농담. 넣지마.”
그렇게 말하는 순간 유두에 방울이 맺히더니 뚝뚝 찻잔속에 떨어졌다.
"어라? 들어가버렸네.”
고의가 아니었는지 모니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시원스레 웃고난 그녀가 입가를 씰룩이며 말했다
“다시 해줄게.”
“아냐 귀찮을텐데 그냥 줘.”
“진짜?”
“어. 그냥 먹지 뭐.”
“변태 자식.”
그녀가 쿡쿡 웃으며 다가와 찻잔을 건네줬다.
리안은 바로 한 모금 마셨다.
“어때 내 우유맛은?”
“부드럽고 풍미있군.”
그녀가 재차 자지러진다.
참 웃음이 많은 여자다.
활달하기도 하고.
“가슴은 가리는게 좋겠지?”
“불편하면 열어놔도 좋아.”
사실 여자 가슴이야 오드리아와 지낼때 많이 봐서 익숙했다.
하지만 모니카는 흰 가운을 꺼내입었다.
“당신이 집중을 못할테니 가리는게 좋겠어.”
그녀는 마주보고 앉으면서 다리를 꼬았다.
표정이 사뭇 진지한게 조금전과 분위기가 달라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난 당신 솜씨에 반했어.”
“당근 키운 솜씨?”
“응, 나랑 독점으로 계약하자.”
계약 하자는 건 앞으로 돈이 나올 곳이 생긴다는 소리.
아무 인맥도 없는 리안으로서는 유통창구가 생기는 것이 속으로 반가웠다.
그러나 그는 일단 고개를 저었다.
“채소를 재배할 땅이 없어.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떠돌이 나그네 신세거든.”
그는 혹시나 해서 덧붙였다.
“다시 마을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 그 땅은 내 목적을 실현하기에 터무니 없이 작아. 땅에서 얻은 수익도 절반 가까이 나눠야 하고. 내가 원하는 땅은 너른 평야 같은 곳이 최종 목표야. 그런 땅의 지주가 되기를 원해.”
모니카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리안의 목표에 관심을 보였다.
“돈을 많이 버는게 꿈이야?”
“누구나 부자가 되는 꿈을 꾸지. 하지만 나는 달라. 난 천문학적인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돈을 벌려는 거야.”
모니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생 여행만 다니면서 살려고?”
“아니, 우리집이 여기서 아주 먼 곳에 있어. 로렐라이 왕국이라고 알아?”
“처음 들어봤어.”
“아무튼 그 근처에 우리집이 있어. 근데 로렐라이 왕국은 여기서 대략 1년 이상은 가야할 정도로 아주 멀어. 웬만한 여행 경비로는 어림도 없는 수준이지.”
“한마디로 고향으로 돌아갈 자금을 모은다는거네?”
“그런 뜻이지.”
“흐음……”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녀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귀족이 아닌 이상 땅을 소유하는게 힘들다는건 알지?”
“알아. 설령 돈이 있어도, 작위 없이는 토지 매매조차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전쟁에서 공을 세우지 않는 이상 평민이 땅을 갖기란 하늘의 별따기지. 게다가 너른 평야라니, 수천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이야.”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중세 유럽 봉건사회와 똑같은 제도를 가진 이곳에서 개인이 토지를 소유하기란 대단히 힘들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 이세계의 원주민인 모니카의 입으로 확인사살을 당하니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어도 낙담이 매우 컸다.
‘오드리아님과 만나려면 한 평생을 바쳐도 힘든 일일까……’
이제는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오드리아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이 심란해지는 그때 모니카가 일어섰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당신과 나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닌가 싶어.”
“그런건 연인들끼리나 하는 소리야.”
“이걸 보면 당신도 똑같은 생각이 들걸? 글은 읽을줄 알아?”
“어.”
“이야 제법인데. 적어도 무식한 농부는 아닌가 보네. 가산점 10점 추가.”
“웬 가산점?”
“내 동업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측정하는 중이야.”
“뭐?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일단 이거나 읽고 나서 얘기해.”
그녀는 책상서랍을 열고 돌돌 말린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냈다.
도로 자리에 앉으며 그것을 리안에게 건넸다.
“읽어봐.”
리안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펼치고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안에 적힌 내용은 일반적인 편지 따위가 아니었다.
유산 상속 내용이 적힌 공증 유서였다.
피상속인은 모니카의 양아버지.
자작 작위를 가진 양아버지가 최근 숨을 거두게 되면서 그가 가진 수도권쪽 땅의 일부를 모니카에게 물려준다는 이야기였다.
“……오천평에 해당하는 농지를 모니카 브루니 훅스에게 상속한다.”
“어때? 내가 달라보이지 않아?”
리안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마주봤다.
“그래서 이게 뭐?”
사실 리안은 워낙 눈치가 빠른 사람인지라 순식간에 감이 왔다.
오천평을 물려 받는다는걸 이유없이 보여줄리는 없을테고, 설마……? 하는 기대감에 그녀를 주시했다.
“자랑하려고 보여준거야?”
일부러 내색 않고 딴소리를 했는데, 짐작대로 그녀가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 땅 당신이 맡을래?”
“……”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지만 납득이 되지 않아 리안은 말문이 막혔다.
“…날 뭘 믿고?”
리안은 매우 진지했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난 이래봬도 많은 농부들을 상대해온 노련한 상인이야. 옥석을 가릴 눈은 있어. 그리고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농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결실로 보여주거든. 당신이 키운 당근을 보고 정말로 감탄했어. 엄청난 노력과 성실함 없이는 키우기 힘든 귀한 당근을 수확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부여했달까.”
모니카의 웃음이 희미해지며 그녀 역시 진지해졌다.
“당신은 무척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야. 당신 같은 사람에게 내 땅을 맡기고 싶어.”
그녀의 입가에 다시금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결정적으로 난 농사를 지을줄 몰라. 그래서 대리 구하는건데 뭐. 어차피 갈데도 없잖아? 나랑 같이 수도에 가서 정착하면 좋은거 아니야?”
“……”
리안은 한동안 뜸을 들이면서 고민에 빠졌다.
모니카의 제안은 갑작스러웠으나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 위치한 땅.
작물을 생산해서 팔기도 편리할 것이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안올 인생의 기회가 아닐까?
그러나 모니카가 왜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푸는지 여전히 의도가 궁금했다.
그녀가 설명은 해줬지만 아직 신뢰가 가지 않았다.
“여기 생활 전부 정리하고 올라가게?”
“그래야지.”
“이 지역에서 오래 일한 것 같은데 하루아침에 내치긴 아깝지 않아?”
“아깝지 않아.”
모니카는 쉽게 대꾸하면서 한 손을 가운속으로 집어넣었다.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가슴을 어루만졌다.
“아아, 짜증나게 모유가 계속 나오네. 가운이 벌써 다 젖었어. 제기랄.”
그녀가 손을 빼자 손바닥에 흰 액체가 잔뜩 묻어있었다.
그것을 가운에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사업 얘기나 계속 하자구.”
그렇게 운을 떼면서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대지주가 되는게 꿈이라면 나는 대상단을 갖는게 꿈이야. 우리는 환상의 짝꿍이 될 수 있어. 당신은 키우고 나는 내다팔고. 질 좋은 작물을 상단이 자체적으로 생산해서 내다 팔면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농산물을 살 수 있고 상단은 번거로운 유통 단계를 줄였으니 남는게 많아지겠지.”
밝은 미래를 상상하는 그녀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여기서 행상인 짓거리나 하면서 버는 돈의 수십, 수백배를 벌어들일지도 몰라. 크고 으리으리한 황금의자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리는데 안떠나고 베기겠어?”
“아직 성공할지 여부는 모르는 일이잖아.”
“당신이 키운 당근을 보고 확신이 섰어. 우리는 반드시 성공할거야.”
“만약 나를 못만났다면?”
“그랬다면 머뭇거렸겠지. 양아버지집에 돌아갈 생각은 꿈도 못꿨을거야. 그리고 그 오천평의 땅은 그 집 식구들 손에 넘어갔을지도.”
그녀가 덧붙였다.
“사실 양아버지 얼굴을 7년 넘게 못봤어. 갑자기 나타나서 땅을 달라고 하면 낯짝이 두꺼운 년이지.”
“지금은 뭔데?”
그녀가 씨익 웃는다.
“당신이 있잖아.”
그 말을 끝으로 정적이 흘렀다.
가슴이 불편했던 모니카는 방안에 굴러다니던 양동이를 가져와서 젖을 짜는데 열중했고, 리안은 묘한 비린내를 맡아가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리안은 가끔씩 모니카를 돌아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가슴에 마사지를 해주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좀 도와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선뜻 입을 열지는 못했다.
마사지 기술을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야동에서 하는걸 본게 전부라 미숙한 실력으로 나서기가 왠지 쑥스러웠다.
“상단의 이름은 뭘로 정할까? 수익 배분도 이 자리에서 결정짓자.”
같이 하겠다는 말도 안했는데 모니카가 불쑥 그렇게 말했다.
리안은 담담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피터랑은 얘기가 끝난거야?”
“피터?”
“마을 촌장한테 들었는데 당신이 속한 상단의 주인이라던데?”
그녀는 누구지?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자지러지게 웃었다.
“피터는 가상의 인물이야.”
“존재하지 않는다고?”
“난 혼자서 활동해왔어. 여자가 상인한다니까 미심쩍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가상의 동업자를 만들어냈지. 솔직히 요즘 어디를 가도 여자랑은 거래를 잘 안하려고 해. 목소리 크고 힘센 남자들 사이에서 찍소리도 못할것 같으니까 못 미더워하더라고. 자기들 물건을 못 팔아줄까봐. 여튼 그런 이유도 있고, 다른 이유로는 여자 상인한테 물건을 팔면 재수없어진다는 미신을 믿는 시골 사람들도 많아.”
모니카는 말을 마치고 나서 의자를 끌어다가 리안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따라서 내 제안은 어느 모로보나 당신한테 유리해. 고민하면 시간만 아깝지. 왜냐, 상단의 대표로 당신을 내세울거거든. 물론 표면상이지만. 하지만 대표로써 얻는 무형의 이익도 만만치 않을걸?”
* * *
영주의 성.
리사는 잠옷을 벗고 몸에 달라붙는 자줏빛 실크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오늘 오전에 또 길을 떠나야했다.
황도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임시로 풀어놓았던 짐을 가방에 정리한뒤 거울을 보며 혼자서 빗질을 했다.
문득 어제 일이 떠올랐다.
“에밀리는 어제 그 상인놈을 혼내줬으려나? 왜 아무 말이 없지?”
결과가 궁금했다.
잠시 후 에밀리는 아침식사를 나르는 하녀들과 함께 나타났다.
“편안히 주무셨어요?”
“저건 뭐야?”
리사는 에밀리보다 아침식사에 더욱 시선이 갔다.
“내가 분명 안먹겠다고 했는데.”
아침을 굶는 생활 루틴을 철저히 지키는 그녀였다.
영주에게 조식 자리에 불참하겠다고 미리 알렸는데 방으로 식사가 배달되니 어이가 없없다.
식사를 가져온 하녀가 시선을 내리고 말했다.
“영주님의 첫째 아드님이신 지슈트라쥬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아침을 굶으면 여성의 피부에 안좋다면서 꼭 드셔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음식 카트에는 고급 요리와 더불어 장미꽃과 편지가 놓여 있었다.
에밀리는 그것을 보고 쿡쿡 웃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요.”
“에밀리.”
리사가 손짓을 하자 에밀리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장미꽃과 편지를 주워들었다.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네.”
“그리고 저희 리사님은 몸매 관리를 위해 아침 식사를 삼가십니다. 마음만 받겠다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하녀들이 음식 카트를 밀고 나간뒤 에밀리는 꽃과 편지를 벽난로에 던져넣었다.
나이를 가리지 않고 시도때도 없이 남성들의 구애를 받는게 일상화된 리사에게는 그들의 선물이 그저 땔감에 불과했다.
“에밀리, 당근상인 처리 결과 보고는 왜 안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벙어리가 됐어?”
“지금 할려고 했어요. 어제 저녁엔 영주님과 만찬 이후에 곧바로 잠드셨잖아요.”
“내가 그랬나? 어서해 그럼.”
“마침 그 일로 드릴 말씀이 있어요.”
“무엇을?”
에밀리는 문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케스티리아님 들어와주세요!”
문이 열리며 케스티리아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두 손에는 뚜껑이 덮인 그릇이 들려 있었다.
아침 식사로 생각한 리사는 인상을 썼다.
“도로 갖고 나가.”
에밀리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안에 뭐가 있는지 보세요.”
케스티리아도 기대감에 미소짓고 있었다.
“맛이 아주 뛰어납니다.”
그녀가 바로 뚜껑을 열자 은색 접시 위에 ‘찐 당근’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리사가 미간을 찡그렸다.
“날 놀리는 거야?”
“어제 그 상인이 팔던 당근이에요.”
“제가 확인해본 결과 가짜가 아니었습니다.”
“그게 가짜가 아니었다고?”
에밀리와 케스티리아가 동시에 권했다.
“한번 드셔보세요.”
“부탁드립니다 리사 님.”
리사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제 그 품질 좋아보이던 당근이 가짜가 아니라는 소리에 의문이 든 나머지 마지못해 수저를 들었다.
“그자한테 세뇌라도 당한건지.”
“세뇌 당하고 싶을 정도로 그 사람이 멋있긴 했죠.”
리사는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 에밀리를 곁눈질로 흘겨보고는 찐 당근을 한숟갈 퍼서 그대로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잠시 정적.
조용히 씹기만 하던 리사가 이윽고 꿀꺽 삼켰다.
“어때요?”
에밀리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하지만 리사는 반응이 없었다.
무표정으로 정면만 응시하는 그녀.
그 자세로 한 3분이 흘렀을까.
그녀의 뺨에 갑자기 눈물 한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믿을 수 없어……!”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한 리사의 눈동자는 갈피를 못잡고 방황했다.
‘어머니의 당근맛이랑 똑같아!’
십오년을 그리워했던 그 맛이 돌아오다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전율이 밀려들며 그녀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너희가 원망스러워…… 왜…… 왜 진작에 말을 안했어……?”
어제 저녁에 바로 알렸어야지!
리사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에밀리와 케스티리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녀는 나지막이 명령했다.
“당장 가서 그 상인을 잡아와.”
목소리가 떨렸다.
희열로 꽉 찬 떨림이었다.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27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
“소작료는 얼마나 받아갈건데?”
모니카와의 사업얘기가 계속 되는중이었다.
솔직히 리안은 그녀의 얘기에 흥미가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벌써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소작료는 안받을게. 대신 그 땅에서 수확한 모든 작물을 나하고만 독점으로 거래해야 돼.”
농지 임대료를 포기한다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남의 땅에 농사를 지으면 작물의 판매만으로는 큰 돈을 거머쥐기 힘든게 현실이다.
영지에 세금도 내야한다.
세금과 임대료 걱정에 생산량 위주의 농사를 짓게 되어 작물의 품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임대료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면 리안은 오직 작물의 품질에만 집중하면 그만.
모니카가 이 사업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또 리안을 얼마나 잡고 싶어하는지, 임대료를 포기한다는 소리에 그 간절함이 절실히 묻어났다.
하지만 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조건을 붙였다.
“수확한 작물의 8할만 줄게. 나머지 2할은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쓰고 싶어.”
수확물의 일부는 어둠의 상인 라카제트에게 팔고 싶었다.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상단의 이름은 반드시 ‘김리안 상단’으로 지어.”
상단이 유명해졌을때 오드리아가 이름을 보고 찾아와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모니카는 시원한 예스걸이었다.
“좋아, 요구사항을 전부 받아줄게.”
토지 무상 임대를 선언한 것만으로도 그녀는 큰 자비를 베푼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 요구까지 들어주니 과연 거상의 자질을 갖춘 여장부의 배포가 느껴진달까, 그녀를 두고 대인배라 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니카, 당신 성격 마음에 든다. 같이 일할때 편하겠어.”
리안은 더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붙잡기로 결정했다.
“같이 가자. 수도에.”
리안이 손을 내밀었다.
모니카는 그 손을 맞잡으면서 밝게 웃었다.
“함께 가자. 성공의 길로. 영원히 쭉.”
리안은 뒷목을 긁적였다.
“난 여행비만 마련하면 도중에 그만둘거야.”
“뭐라고?”
Comentários
Postar um comentá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