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ricultura 11

서 흐뭇했다.
“이런 날 공주 님이 계셔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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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문득 밑에서 쿡쿡 웃는 소리가 났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자, 두 명의 시녀가 하체를 닦아주는척 하면서 사타구니에 달린 것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위용에 감탄한듯 그녀들의 입가에 수줍으면서도 응큼한 미소가 걸렸다.
“크흠.”
리안이 헛기침을 했다.
응큼한 시선들이 잽싸게 다른 곳을 쳐다봤다.
언제 딴청을 부렸냐는듯이 열심히 젖은 몸을 닦아주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방문이 열렸다.
중후하게 생긴 시종장이 예복을 들고 나타났다.
이름은 던컨으로 퀸즈가든에 머물며 황후를 전담하여 보필하고 시종을 드는 자였다.
리안은 그와 엊그제부터 안면을 익혔다.
예행 연습을 하는 동안 이틀 내내 붙어다녔다.
궁중 예절도 던컨에게 배웠다.
“입으실 옷과 신발을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던컨은 시녀에게 옷과 신발을 건네고 화장대 위에 놓여진 목걸이를 쳐다봤다.
금으로 만들어진 가느다란줄에 기하학적 문양의 동그랗고 작은 메달이 달려 있었다.
“이 목걸이는 리안 님의 것입니까?”
속옷을 입고 있던 리안이 시선을 들어 화장대를 쳐다봤다.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이한 문양의 메달이군요.”
“가품입니다.”
“금으로 제작된듯 한데 가짜입니까?”
“도금이에요.”
“아, 그렇군요.”
던컨은 목걸이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다른 일을 하기 시작했다.
‘휴, 깜짝 놀랐네.’
리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심코 벗어놓았는데 관심을 받을 줄이야……
사실 저 목걸이는 죽은 마왕이 차고 있던 목걸이었다.
마왕이 가지고 있던 물건이었으니 뭔가 대단하지 않을까 싶어 그동안 계속 차고 다녔다.
그런데 그냥 평범한 목걸이인지 여태껏 아무 일도 없었다.
잠잠했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말씀드렸다시피 수여식 전에 황후마마를 먼저 찾아뵐 예정입니다. 말씀은 또박또박 크게 하시고, 얼굴은 항상 황후마마께서 내려다보기 편하시도록 그분보다 아래에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먹는 것은……”
“주는게 있으면 거절말고 다 받아먹어라.”
리안이 말하자 시종장 던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먹기 싫더라도 그 자리에서 남김없이 드셔야합니다.”
예복을 입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헤어스타일도 멋드러지게 꾸민뒤 던컨을 따라 방을 나섰다.
황후 바야트는 밝은 분위기의 화사한 방에서 리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에 들어서자 던컨이 리안을 소개했다.
“황후마마, 김리안을 데려왔습니다.”
“어서 오시구려.”
오늘 리안에게 직접 기사 작위를 수여하는 황후는 품격에 걸맞는 드레스를 입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흰 머리에 주름이 가득한 그녀를 본 첫인상은 작고 아담하다였다.
눈은 사슴 눈망울처럼 예뻤다.
‘나이 드신 분께 할 말은 아니지만 귀엽게 생기셨어.’
황후는 리안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손등을 내밀었다.
리안은 성큼성큼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등에 입맞춤을 했다.
황후는 마치 손자를 보는 눈빛으로 리안의 뺨에 손을 가져다댔다.
“어쩜 이렇게 듬직하게 생겼을까. 상상했던 모습과는 딴판이구나.”
“영광이옵니다, 황후마마.”
황후에게서 좋은 향기가 났다.
리안은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손을 가볍게 쥔 채, 이틀간 던컨이 시킨대로 열심히 연습했던 대사를 침착하게 읊조렸다.
“제게 기사 작위를 수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후마마. 마마의 기대에 부응코자 앞으로 저는 이 땅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나이다. 사악한 힘으로부터 제국을 수호하고, 악의 무리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며……”
몇 분에 걸쳐 고상한 신념과 도덕적인 말들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나서 다시금 황후의 손등에 입맞춤을 했다.
“네게 기사 작위를 주길 잘한 것 같구나. 내 말년에 가장 좋은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황후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넌 기사란 직업과 너무 잘 어울리는 아이야.”
“영광이옵니다.”
그녀는 리안의 외모가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상인이라고 해서 평범하리라 예상했건만, 실제로 만나보니 이게 웬걸. 
장군이 눈앞에 있었다.
체격이 정말 멋졌다.
어깨가 떡 벌어진데다 팔이 굵고 키도 컸다.
물론 멋진 몸매를 가진 젊은 사내들이야 황궁에 넘쳐났다.
그러나 리안의 몸은 그 이상이었다.
마치 신이 조각을 한듯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예복이 환상적으로 잘 어울렸다.
정말 상인이 맞는걸까?
‘과거가 복잡한 아이일지도.’
도저히 상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황후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탁자 위의 바구니에 담긴 사탕을 집어들었다.
리안이 예뻐보여서 뭐라도 주고 싶었다.
“이거 먹으렴.”
“감사합니다.”
리안은 설탕이 묻은 둥근 녹색 사탕을 받아들었다.
바로 입속에 넣었다.
우드득, 우드득.
치아가 좋은걸 자랑하듯 입안에서 시원하게 부숴 먹었다.
“천천히 먹거라.”
“마마, 사탕이 아주 맛있습니다.”
“그래? 하나 더 줄까?”
“주시면 그저 감사할따름입니다.”
리안은 사실 수여식을 앞두고 긴장한 까닭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황후가 자꾸 주는걸 어떡해.
배탈이 나도 받아먹어야지.
“자 이번엔 이걸로 먹어보렴.”
그녀가 빨간색 사탕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우드득.
우드득.
팍팍 깨물어서 조금씩 목구멍으로 삼켰다.
황후는 아주 흐뭇한 눈빛으로 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은 곰을 망치로 때려잡았다는 얘기를 듣고 지금까지 믿지 않고 있었다. 사람이 제 아무리 힘이 세다 할지라도 맹수의 왕인 곰을 어떻게 때려잡겠니? 그런데 널 만나 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이지 훌륭한 몸을 가졌어. 또한 그 몸에 걸맞는 의협심까지 갖추고 있으니 기사의 자질은 다 갖춘셈이나 다름없구나.”
“영광이옵니다, 마마.”
한 것도 없는데 자신을 대견하게 쳐다보는 황후의 눈빛.
리안은 칭찬을 들으니 쑥스러웠다.
“김리안 상회라는 가게를 운영한다고 들었다. 혼자서 곰을 잡을 정도면 그 실력이 아까운데 어쩌다 상인의 길에 들어선거니?”
리안은 조심히 대답해야겠다는 생각에 잠깐 뜸을 들여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제 직업은 원래 농부이옵니다. 밭에서 수확한 작물을 수월하게 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조그마한 가게를 열게 되었습니다.” 
“농부? 농사를 지어?”
“네, 그렇습니다 마마.”
“최근 전쟁 때문에 채소가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잘 선택했구나. 아가야, 어떤 채소를 키우고 있지?”
“얼마전까지 상추와 순무를 키웠습니다만, 현재 날씨가 추워지고 있어 쉬고 있는 중입니다.”
“음. 봄이나 되어야 새로운 작물을 키울 수 있겠구나. 그럼 가게에선 지금 상추와 순무를 팔고 있느냐?”
“송구하오나 현재, 가게도 휴점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리안은 땅이 오천평 크기 밖에 안된다는 것과 그밖의 상황들을 황후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황후는 이야기를 듣고 난뒤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귀부인들이 전부 사갔다라…… 무척 맛있었나보구나.”
“최상의 채소를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키웠습니다. 맛있는 채소를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먹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리안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의 표정.
목소리.
자세.
한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때 그 행동은 그 사람이 살아왔던 삶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을 만나봐온 황후는 그의 말이 어느 누구보다 진심이라는 것과 얼마나 농사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줄곧 농사만 짓고 살아왔구나. 그것도 아주 큰 신념을 갖고 말이야.’
그나저나 순무와 상추맛이 대체 어땠길래 귀부인들이 전부 사갔을까?
황후는 혀를 찼다.
“남은게 있으면 맛이라도 볼텐데 아쉬워라.”
“내년에 새로 작물을 키우면 반드시 황후마마께 일부를 바치겠나이다.”
“그래주겠니? 기대하고 있으마.”
황후는 말을 마치며 왠지 안타까웠다.
참 신기하고도 기이한 상황이었다.
전쟁에 최적화된 몸을 가지고 고작 농사라니.
결코 농사를 비웃는게 아니다. 
리안의 몸이 대단한데, 장군을 해도 될 몸을 가지고 소박하게 농사라니, 마치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격이었다.
저 몸은 농사에 쓸게 아니라 전쟁터에서 써야했다.
“아가야, 마침 좋은 생각이 났다.”
황후는, 리안이 재배한 채소의 품질이 어떤지 불쑥 호기심이 생겼다.
저 훌륭한 몸을 썩혀가면서까지 농사를 지을만한 재주가 과연 있는지, 아니면 저 나이 되도록 아직도 자신의 길을 발견하지 못해 농사나 짓고 있는 것인지.
재주가 있다면 그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길을 방황하는 중이라면 당장 좋은 길로 이끌어 주고 싶었다.
전쟁터로 보내 공을 세우게할 심산이었다.
매일 마족과 전쟁이 벌어지며 수많은 백성이 죽어가는 이때 아까운 인재를 썩힐 수는 없는 노릇.
“내 영지의 땅 2만평을 1년간 빌려주도록 하마.”
“네?”
리안은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리둥절했다.
황후는 말을 이었다.
“1만 7천평에서 자란 작물은 네가 쓰고 싶은 곳에 쓰도록 하고 나머지 3천평은 2만평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수확한 작물을 내게 바치는 것이 어떠하느냐?”
“……?”
리안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황후의 제안에 약간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땅을 빌려준다고?’
갑자기?
왜?
당황스러운 한편, 그는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우선, 내년에 조레비치가 빌려준 땅 1만평에서 양배추 농사를 지어야 하고……
조레비치와의 거래는 얼마전 함께 삼겹살을 먹을때였다.
“메건 부인의 텃밭에 양배추를 하나도 안심었다고? 이런! 하나도 안심으면 어떡해! 내 위장은 어쩌라고!”
호통을 치는 그에게 리안은 양손을 펼쳐보였다.
“심을데가 있어야죠. 정 필요하시면 땅 좀 빌려주시던가요.”
“뭐야?”
정말 농담삼아 한 말이었는데 조레비치의 태도가 사뭇 진지해졌다.
“빌려주면 잘할 수 있어?”
그후 한동안 양배추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다 나온 얘기가 자기 땅 1만평을 빌려줄테니 거기다 양배추를 재배하라는 것이었다.
“자네 30% 먹고 70%는 내가 가질게! 어때?”
“반대로 해요. 제가 70.”
“이놈 완전 사기꾼이잖아!”
“1만평 땅에 30이면 일반 가정집에서 소비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양입니다. 상하는 것도 걱정해야죠. 70 가져가봤자 5도 못먹고 버린다에 천골드 걸겠습니다.”
“그런가? 알았어 알았어! 네가 70 먹어! 자, 끝!”
이야기가 그렇게 된것이었다.
아무튼 조레비치의 땅 1만평과 더불어 메건 부인의 텃밭도 봐줘야 하고, 오천평땅에서도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여기에 2만평이면.’
안된다.
분신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혼자서 3만 5천평이나 되는 땅을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조레비치의 땅, 오천평 땅, 황후의 땅이 제각기 멀리 떨어져 있다.
이동하는데만 반나절이 걸릴 수도 있다.
효율이 너무 안좋았다.
‘사람도 없어. 그렇다고 내가 사람을 고용할 입장도 안되고.’
돈이 있어야 뭘하지.
이성은 냉정했다.
‘거절해야해. 현상황에서 못해.’
하지만 리안은 대답을 망설였다.
욕심.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그를 붙잡았다.
‘이런 기회 흔치 않은데.’
평민은 땅을 구입조차 못하는 세상이다.
그러한 상황에 공짜로 빌려준다는 땅을 차버리다니?
더욱이 땅이 커진다는 것은 곧 얻는 이득도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
오천평땅을 봐라.
오천평땅으로 번 돈, 일꾼들에게 옷사주고 장비사주고 하다보니 금세 다 털렸다.
다시 거지로 돌아왔다.
돈을 벌려면 많은 땅을 갖고 있어야했다.
오천평보다 몇 배는 큰 땅을 갖고 있어야 부호가 될 수 있다.
부호가 된다는 것은 즉 오드리아에게 가는 길이 더욱 가까워진다는 뜻!
‘놓치면 평생 후회할지도 몰라.’
리안은 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황후마마께서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만간 소금 팔아 들어올 돈으로 사람이나 사야겠다.
또 거지 되겠네.
그러나 내년에 얻을 이득을 생각하면 무리해서라도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황후의 주름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잘 생각했다. 내년이 기대되는구나.”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가야. 너는 모르겠지만 너와 나의 내기가 시작되었단다. 네가 훌륭한 채소를 키워낸다면 앞길을 막을 생각이 없다만, 만약 나의 기준에 못미치는 채소라면 운명을 내게 맡겨야 할것이다. 내 필히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전쟁 영웅으로 만들어주마.’ 
그 후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갔다.
리안에게 연인이 있는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지.
등등……
이윽고 기사 작위 수여식의 준비가 끝나자 사람이 찾아왔다.
“황후마마, 나가셔야할 시간입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황후 바야트는 리안을 돌아봤다.
“나가자. 나가서 네 멋진 모습을 귀족들에게 널리 알려주거라.”
“예, 황후마마.”
그때까지 줄곧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심호흡을 한 다음 황후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걷는 황후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농사 생각을 했다.
‘황후는 어떤 채소를 좋아할까?’
황후의 마음에 들면 2만평이 20만평으로 늘어날지 또 알아?
‘그녀가 좋아하는 채소를 심어서 반드시 최상급 품질로 키워내겠어.’
신선한 채소의 맛으로 황후를 감동시키고 말리라.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작품후기]흠
82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
퀸즈 그랜드 홀.
장내는 웅성거리는 소리로 시장통처럼 떠들썩했다.
널따란 홀안에 모여든 사람들은 식이 거행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름답게 치장한 레이디들이 모여 서있는 자리에 안젤라 부인의 딸 라라와 그녀의 친구 트리시도 참석해 있었다.
“성녀 님이 왜 안온다고 하셨을까?”
“바쁘신 일이 있나보지.”
“아니야, 없어.”
라라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에스메랄다 신전의 대주교로 있는 까닭에 그녀는 신전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특별한 일정도 없는데 불참을 한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오셔서 축복해주면 좋았을텐데.”
트리시가 그녀의 옷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왜?”
“그날 이후로 리안 님하고 만난적 있어?”
“아니.”
트리시가 주변을 살펴보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그날 내가 소변본거 모르시겠지?”
“걱정마. 곰 잡느라 보지도 못했어.”
“그래?”
“정신없어서 아무도 못봤어. 안심해.”
“그럼 다행이다.”
트리시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신분이 평범한 자들이 모인 자리.
식당 고몽 드 마리아를 운영하는 울라프와 그의 자녀인 다렌과 세이라가 서있었다.
“내, 리안이 잘 될줄 알았다. 대성할 인물들은 척 보면 알아.”
아버지의 말에 아들 다렌이 웃어보였다.
“날 잡아서 우리 식당에 초대해요. 바쁘셔서 그런지 너무 안오시는 것 같아요.”
“그럴까?”
울라프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조신하게 서 있는 딸을 바라봤다.
“세이라, 네 생각은 어떠냐? 리안이가 보고 싶지 않니?”
“네? 저는……”
세이라는 리안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피어올랐다.
“제 생명을 구해주신 분이니 언제든 환영해요.”
“그렇지.”
울라프는 옳다커니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가문은 은혜를 소중히 여기는 근본있는 가문이다. 식사 한번 대접했다고 은혜를 다 갚은거라고 할 수 없지. 정기적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입구쪽이 술렁거렸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쪽으로 향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와…… 저 분인가요?”
“세상에……!”
“잘 생기셨네요.”
멋지게 차려입은 리안이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등장했다.
악단이 기다렸다는듯이 장엄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리안은 붉은 융단이 깔린 중앙을 씩씩하게 걸어나갔다.
그 모습을 귀족가의 자제들 사이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쾌남 클로드.
그가 히죽 웃었다.
“훗,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이 납시었구만.”
그리고 그 근처에 서 있던 조각미남 세자르.
그 역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나의 레이디들의 마음을 훔친 사내의 등장인가. 생긴 것도 제법이군. 나에 비하면 조금 떨어지지만 말이야.”
퀸즈 그랜드 홀의 윗층 난간.
황실의 관료들이 모인 자리.
리사가 흐뭇한 표정으로 홀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는 리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신랑감을 정말 잘 고른 것 같아. 예뻐.”
“르리!”
조금전 리안이 등장했을때부터 향단이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중이었다.
“르리~”
“……”
“르리리!”
리안을 가리키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막 뭐라고 설명하는데 리사는 향단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당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조용해.”
“르리!”
“알았다니까.”
“르리? 르리리!”
“어, 그래. 어.”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에밀리가 한마디한다.
“그러지 말고 듣는척이라도 해줘요.”
“니가 해. 난 조그만 애들하고 못놀아.”
“나중에 애는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세요?”
“그건 그때가면 알아서 잘하겠지. 그리고 얘는 괴물이잖아.”
“페어리가 무슨 괴물이에요? 요정이지. 자 이리온~ 언니가 상대해줄게.”
에밀리가 양손을 펼쳐보이자 향단이가 휘리릭 날아가서 떠들어댔다.
“르리~ 르리!”
“응, 그래 그래. 리안 님이 멋지시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르리리!”
“응, 이따가 같이 만나러 가자. 널보면 무척 반가워 하실거야.”
“르리!”
리사가 힐끔 쳐다보더니 에밀리한테 물었다.
“말을 알아듣는거야?”
“아뇨.”
“방금 대화 뭐야?”
“그냥 알아듣는척 해주는 거죠.”
리사가 피식 웃었다.
“착하네.”
그 주변에 서 있던 케스티리아.
그녀는 저 멀리 있는 리안의 모습에 크게 감탄하는 중이었다.
‘몸매가 좋으니까 확실히 옷빨도 잘 받으시는군.’
그녀는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리안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조바심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속으로 갈망했다.
‘빨리 몸 만드는 비법을 배우고 싶어. 언제쯤 답례를 하러 와주실까?’
리안이 단상에 올라서자 악단의 음악이 멈췄다.
이어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황후 바야트가 등장했다.
부드러운 선율의 음악이 연주되며 리안의 기사 작위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그날, 리안은 많은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정식으로 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곰을 망치로 때려잡은 여왕의 기사 김리안’ 으로 불리게 되었다.
* * *
기사 작위 수여식이 끝난 당일 저녁.
리안은 아스트리드 가에서 묵었다.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폰타나와 허수, 돌쇠에게도 기사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줘야했고, 무엇보다 리사가 오늘은 꼭 자고 가기를 원했다.
“잘 먹었습니다!”
푸짐하게 차려진 저녁 식사가 끝난뒤, 리사가 저택 일로 인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를 틈타 혼자 있을 시간이 생겼다.
리안은 화려하게 꾸며진 신혼방에 멍하니 앉아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내가 기사가 되다니……”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그러나 탁자에 올려진 기사 훈장과 황실로부터 선물 받은 예복, 여왕의 검이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왕의 검은 의례용 검이었다.
시장에 내다 팔면 돈 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랬다가는 기사들한테 붙잡혀 갈 것 같아서 팔려던 욕심을 접었다.
그냥 가보로 소중히 보관해야겠다.
“몸이 아직도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기분이야.”
이 나라의 황후가 직접 기사 작위를 줬다.
내가 참 대단한 일을 경험했구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그리고 자신을 축하해주던 수많은 귀족들.
작위를 받던 광경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즐거운 기억이었다.
들뜬 기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찰싹.
뺨을 때렸다.
“정신 좀 차려야지. 이럴때가 아니야.”
기사 작위를 받은건 받은거고, 리안의 일상이 크게 달라질건 없었다.
내일 날씨를 걱정해야 하는 평범한 농부일뿐 기사가 되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농사꾼은 자신의 본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된다.
“나는 죽으나 사나 농부다.”
오드리아 님도 그것을 바라고.
기사가 되어 전쟁을 하는 일은 죽어도 없을 것이다.
왜냐.
오드리아 님이 싫어하시니까.
죽어라 농사 짓고, 죽어라 연구하는게 자신의 일.
평생 흙을 만지며 사는게 자신이 걸어가야할 길이다.
기사가 된 건 잠깐의 해프닝.
언젠가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웃고 말 일이다.
“오늘 받은 훈장이랑 칼 같은 것들은 창고에 넣어둬야겠다.”
그런식으로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랜 리안은 자신이 지금 해야할 일을 떠올렸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으니 전에 하던걸 이어가야한다.
우선 빚진 것부터 처리하자.
며칠전 마가 깃든 땅을 만든답시고 에밀리와 케스티리아에게 빚을 졌다.
마침 아스트리드 가에 왔으니 이참에 갚아야겠다.
“에밀리 씨의 요구는 간단하니까 먼저 그것부터 해결해야겠어.”
살짝 부끄럽지만 어둠의 기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싸게 치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꺼이 내주자고.
그런 마음을 먹고 리안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담을 용기 같은게 없으려나……”
얼마 후.
리안은 에밀리의 방문을 노크했다.
곧 문이 열리고 붉은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에밀리가 밖으로 나왔다.
“리안 님이 제 방에 왠일이세요? 리사 님은요?”
그녀는 속이 훤히 비치는 분홍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
유두가 봉긋 올라와 있었다.
리안은 애써 못본척하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이거 드리려고요.”
리안은 손에 쥐고 있던 투명한 유리잔을 에밀리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에밀리는 유리잔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어머! 감사합니다!”
투명한 유리잔에는 흰 정액이 반쯤 차있었다.
에밀리는 유리잔을 받아들고는 리안에게 몇 차례나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리사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세요.”
“당연하죠! 이 사실을 알았다가는 절 죽여버리실거예요. 절대 말 못해요!”
에밀리는 달콤한 목소리로 리안의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 둘만의 비밀이에요. 쪽.”
“크흠! 그럼 이만.”
리안은 급히 발길을 돌려 도망치듯 떠났다.
리사는 유리잔을 들여다보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리안 님의 정액은 어떤 맛일까? 후훗.”
방금 사정했는지 유리잔의 표면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서둘러 방문을 닫고 옷을 벗어재꼈다.
사내의 정액과 마주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리사가 만들어준 약으로 넘치는 성욕을 억누르며 살아가던 그녀였다.
간만에 맡아본 향기로운 정액 냄새가 미치도록 황홀했다.
이제 그녀는 서큐버스였다.
날개가 솟아나왔다.
꼬리가 생겼다.
손톱이 길고 날카로워졌다.
“아으응……”
알몸으로 침대에 누운 에밀리는 유리잔을 뺨에 비비며 손으로 자위를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리안이 그려졌다.
그의 굵은 목, 역삼각형의 완벽한 몸매.
그리고 굵고 기다란 페니스.
지금 이 순간, 그가 주인인 리사의 남자라고 해도 괜찮았다.
오히려 더 매력있었다.
리안을 빼앗는 상상을 하자 짜릿했다.
상상속에서 그의 페니스를 실컷 빨아댔다.
사타구니를 문지르는 손이 점차 격렬해졌다.
“흐읏…… 아앙……!”
유리잔을 기울였다.
풍만한 젖가슴 위로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움찔.
따스한 정액이 피부에 닿는 촉감이 그야말로 짜릿했다.
하지만 아껴써야 하기에 적당히 쏟았다.
정액으로 마사지하듯 가슴에 골고루 펴발랐다.
피부가 끈적거리고 번들거렸다.
코끝을 찌르는 수컷 냄새가 더욱 진해졌다.
자위를 하는 손의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졌다.
에밀리는 교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흐힝, 흐힝, 흐응!”
정액을 찍어 얼굴에도 펴발랐다.
아랫배에도 발랐다.
상당량을 덜어내 음부 입구에 골고루 묻히는 것도 모자라 질안 깊숙이 들어가도록 정액이 듬뿍 묻은 손가락을 찔러 넣으며 안을 휘저었다.
“하아……! 하아……! 하으읏!”
서큐버스의 음부는 인간과 다르다.
정액을 맛보자 질속 피부가 살아숨쉬는 것처럼 마구 꿈틀거렸다.
더 내놓으라는듯이 그녀를 쥐어짰다.
“으히이잉! 히으응!”
애액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세찬 물줄기가 한 발로 그치지 않고 연달아 퓩! 퓩! 시트 위에 계속 지려댔다.
“헉! 헉! 흐읏!”
에밀리는 한 손으로 음부를 최대한 벌리고 유리잔을 잡았다.
정액을 질속으로 흘려넣었다.
“흐윽……! 흑!”
오랜만에 맛보는 정액의 쾌감에 못이겨 눈물까지 흘려댔다.
멋진 수컷의 정액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은 가히 최고였다.
최고로 신선하고 질 좋은 정액이었다.
유리잔에 남은 마지막 정액은 남김없이 마셔버렸다.
맛도 최상이었다.
매일 받아먹고 싶을 정도로 그 맛이 기가막혔다.
“아아, 리안 님! 내 사랑……!”
한껏 쾌락에 취해 이성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과 욕망을 탐하는 지금 이 시간은 오직 그녀만의 것이었다.
입에서 무슨 막말이 흘러나오든 방의 주인인 그녀가 누릴 수 있는 특권!
음란한 서큐버스만이 할 수 있는 발칙한 상상이 끊이지 않았다.
“리안 님한테 박히고 싶어……! 흐읏, 으응!”
설령 주인의 낭군이라할지라도 쾌락에 눈이 돌아가면 유혹하고 싶은게 마물의 본능!
질 좋은 양기를 흡수하자 에밀리의 전신에서 음기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어느 정도로 흘러 넘쳤냐면……
이마에서 두 뿔이 솟아나고,
눈에서 적광이 발했으며,
가슴과 신장이 커지며 외모가 훨씬 성숙해졌다.
날개 또한 화려하고 강력하게 진화됐다.
끝이 하트 모양이던 악마의 꼬리는 마치 뱀의 꼬리처럼 굵어지며 끝이 뾰족해졌다.
“흐아아앙! 아앙! 히으읏! …어!?”
한창 황홀경을 헤매던 에밀리는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누구야?”
그녀는 애액을 뚝뚝 흘리며 침대밖으로 걸어나와 거울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설마 나야?”
충격적이었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어느 모로보나 서큐버스 여왕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거지……?”
날아갈듯 기쁜 한편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았다.
평범한 서큐버스에 불과하던 자신이 무엇 때문에 진화한 것일까?
서큐버스 여왕이란건 고귀한 왕족 혈통을 타고난 자를 말하는게 아니라 동족중에서 특별하게 강한 힘을 가진 서큐버스를 향한 호칭일뿐이다.
서큐버스 여왕이 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태어날때부터 남다른 외모와 더불어 강한 힘을 갖고 있거나, 혹은 마왕급 인물이 힘을 부여해준다든지,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진귀한 아티팩트의 힘을 빌려야만 가능한 일.
모두 해당되지 않았던 에밀리의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찼다.
“꿈인가?”
그 말을 하기 무섭게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거울속에 비친 평범한 서큐버스의 모습.
“어라? 뭐야 갑자기?”
에밀리는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좋다 말았네.”
강력한 서큐버스 여왕의 모습일때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왜 다시 돌아왔을까?
크게 아쉬웠다.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던 그녀는 이윽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리안 님의 정액속에 날 강화해주는 힘이 들어있나……?”
그녀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해졌다.
리안의 정액으로 아직 몸이 끈적끈적했다.
몸을 문질러 손에 묻은 것들을 핥아먹었다. 
쩝쩝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분 설마,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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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77페스티벌 특별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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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벅 (*__)
83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
‘마디라지’ 라는 지역은 역겨운 생물로 가득찬 어둠의 땅이다.
지형은 험준하고 거칠었으며 이곳에 발을 디딘 자는 누구도 살아돌아오지 못한다는 소문이 세상에 널리 퍼져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전, 현자라 불리웠던 한 인어공주가 마디라지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그녀는 구정물이 고여 생긴 호수 중앙에 높은 탑을 세웠다.
스스로 그 탑을 ‘천상의 탑’ 이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존재는 세상에 그런 탑이 존재하는지 모른다.
현자가 사는 천상의 탑의 존재를 아는 것은 극히 소수뿐.
오드리아도 그중 하나였다.
첨벙!
호수에 빠져있던 오드리아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날개를 펄럭이면서 계속 위로 나아갔다.
세찬 바람에 몸에 달라붙은 구정물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내 탑의 가장 높은 층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오래된 벽돌로 만들어진 복도를 지나 탑에서 가장 화려한 방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현자 이스키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쳤군.”
“실수로 물렸다.”
“녀석이 강했던 것이겠지.”
인간과 흡사한 모습의 이스키다.
젊은 여성의 모습을 한 그녀는 양귀에 초록색 물갈퀴가 솟아나 있었다.
이스키다는 난간에 서서 저 밑을 내려다보았다.
구정물로 가득찬 호수.
호숫가에 거대한 고대 짐승의 사체가 보였다.
얼마전부터 허락도 없이 호수에 와서 살던 녀석이다.
이스키다를 잡아먹을 생각에 그녀를 호시탐탐 노리더니 결국 저꼴이 됐다.
이스키다의 청부를 받은 오드리아에 의해 조금전 죽임을 당했다.
화이트드래곤과 이천년을 넘게 살아온 고대 짐승의 싸움은 정말이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
이스키다가 잠시 내려다보는 동안, 숲에서 다양한 괴물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놈들은 여기저기 달라붙어 고대 짐승의 사체를 정신없이 뜯어먹기 시작했다.
이스키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드리아가 보채듯 말했다.
“약속을 지켰다. 너도 어서 알려줘.”
창밖을 내려다보던 이스키다의 시선이 오드리아에게 향했다.
“고귀한 드래곤이 왜 인간따위와 얽혀있는가?”
“알 필요 없다.”
“굳이 말안해도 돼. 어차피 알게 될테니까.”
이스키다는 천천히 오드리아에게 다가갔다.
푸른 원피스를 입고 있는 오드리아와 마주보고 선 그녀의 신장은 오드리아보다 훨씬 컸다.
“드래곤이여, 네 소원을 들어주마.”
이스키다는 손을 뻗어 오드리아의 머리 위에 얹었다.
“네가 원하는 이를 떠올려. 그리고 강하게 열망해라.”
“……”
오드리아는 눈을 감았다.
리안과 단란하게 살았던 시기를 떠올렸다.
그에게 농사를 가르치던 시절.
그의 해맑은 웃음에 기뻐하던 자신.
어느날 저녁 그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순간들.
오드리아의 추억은 고스란히 이스키다의 뇌속으로 전해졌다.
“그랬군.”
잠시 후.
이스키다는 오드리아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동시에 그녀의 두 눈이 밝게 빛났다.
이스키다는 고대어로 주문을 외웠다.
그 직후 그녀는 말했다.
“보인다.”
“어디에 있지?”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미래.”
눈동자가 눈부시게 빛나는 이스키다는 정면을 주시한 채 말을 이었다.
“들판이 보인다. 그는 동료들과 고립되어 있군. 주변에 다수의 기사도 보인다. 전쟁터인가?”
“전쟁터라니?”
오드리아는 미간을 좁혔다.
“그 아이는 농사밖에 지을줄 모른다. 농사 일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나와 약속 했어. 어리석게도 딴 인간을 찾았나보구나.”
“진정해. 그의 주변에 짐마차가 여러대 보인다. 짐칸에 지주대와 농기구, 어린 감자 육묘들이 보이는군. 네가 찾는 그가 맞다.”
“그렇다면 위험한 지역으로 농사를 지으러 간것이냐?”
“내게 물어봐야 소용없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미래는 언제든 바뀌는 법.”
이스키다는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마족의 대군이 습격해오고 있다. 인간들은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지. 김리안 역시 정신이 없어보이는 군. 주변 동료들에게 바쁘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다. 그의 손에 네가 준 라그레아닐이 쥐어져 있군. 칼로 변했다.”
오드리아는 덜컥 걱정이 솟구쳤다.
“그곳이 어디지? 위치를 말해줘.”
“위치는 모른다. 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만 짤막하게 볼 수 있을뿐.”
오드리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급히 입을 열었다.
“주변에 보이는 풀이나 나무 같은 것들을 설명해봐. 아무거라도 좋아. 열매나 잎사귀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근처에 과일이 달린 나무가 있다.”
“어떤 과일이 달렸지? 색은 무슨 색이야? 모양은?”
“포도송이처럼 생긴것들이 작게 달려있다. 아주 많이. 노란색으로.”
“잎사귀 모양은?”
“잎이 네 갈래로 갈라졌다.”
“우르츄바?”
우르츄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지역’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더 원하는게 있나?”
“그 정도면 됐다.”
오드리아는 즉시 뒤로 돌아섰다.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며 이스키다의 눈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오드리아는 벌써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뭐가 그리 급한지 한쪽 다리를 절면서도 속도가 빨랐다.
“어딘지 알아냈나?”
이스키다의 물음에 오드리아는 떠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리안이 있는 곳은 웨르타뉴 제국이다.”
이스키다가 미소지었다.
“도움이 돼서 다행이군. 하지만 명심해라. 미래란건 누군가 인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서서히 달라지기 마련이지. 오늘 본 미래와 내일 보는 미래가 같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해가 산맥 너머로 사라지며 대지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마디라지를 벗어나 하늘을 날던 오드리아는 어느 이름모를 숲속에 착지했다.
다리를 절뚝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쉴 생각이었다.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냄새를 맡고 금세 늑대들이 모여들었다.
-크아아아아!
-깨갱!
오드리아가 날개를 펼치며 길게 포효하자 늑대들은 부리나케 도망쳤다.
주변이 한적하고 고요해졌다.
오드리아는 변신을 풀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한동안 주변을 돌아다니며 약초를 캐냈다.
그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약초를 잘게 씹은뒤 찢어진 상처 부위에 붙였다.
“으윽……!”
피부가 쓰라렸다.
아픔을 참고 다시금 약초를 질겅질겅 씹으며 리안을 떠올렸다.
무표정이던 그녀의 얼굴은 이내 환한 미소로 물들었다.
“곧 갈테니 조금만 기다리렴.”
* * *
아스트리드 가 저택.
실내 훈련장.
초저녁 무렵, 리안은 답례를 하기 위해 케스티리아를 만나고 있었다.
“…관리를 안하신다고요?”
놀란 표정을 짓는 케스티리아를 향해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냥 농사짓다보니까 알아서 몸이 좋아지던데요?”
“그럴리가요?”
케스티리아는 믿기지 않았다.
특별히 관리를 안했는데 저절로 몸이 좋아지는게 어딨단 말인가!
“음식도 안가리십니까?”
“네. 음식도 주는대로 먹고 그래요.”
“말도 안됩니다!”
케스티리아는 리안의 전신을 훑어봤다.
누가봐도 몸이 좋다.
그런데 저런 몸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몸이 아니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지만 가능한 몸!
혹시나 리안이 농담을하나 싶었으나 그의 눈빛을 보면 장난을 치는건 아닌 것 같다.
솔직해보였다.
“타고난 체질인가……?”
“아마도 그런가봐요.”
“배우고 싶었는데……”
그녀는 낙심했다.
리안에게 훌륭한 몸을 만드는 비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정작 그는 모른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어쩔 수 없나.’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리안을 쳐다봤다.
“잘 알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저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케스티리아가 포기하고 돌아서려는데 리안이 붙잡았다.
“답례 못 받으셨잖아요?”
“괜찮습니다.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뇨 아뇨 그러지 마시고요. 이건 어때요?”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이거 봐봐요.”
리안은 갑자기 두 팔을 쭉 뻗고 양다리를 구부리며 자세를 낮췄다 올렸다를 반복했다.
“우리 고향에서 스쿼트 라고 하는 운동법인데 하체 발달에 좋아요.”
케스티리아는 그를 희한하게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로 운동이 되나요?”
“무지 잘됩니다. 한번 해볼래요?”
그녀는 급 호기심이 생겼다.
즉시 리안을 따라 두 팔을 뻗고 엉덩이를 내렸다 올렸다를 반복했다.
“후, 쉬워 보였는데 꽤 힘이 드네요.”
“허벅지가 탄탄해지는 느낌이죠?”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잠깐만요. 자세가 조금 삐뚤어 졌네요.”
리안은 약간 과하게 벌어진 그녀의 다리를 교정해줄 의도로 무심결에 허벅지를 만지며 안쪽으로 밀었다.
그러자 케스티리아가 움찔하며 벌떡 일어섰다.
“리, 리안 님!”
“네? 왜요?”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무슨 말을 뱉으려다 그대로 말을 삼켰다.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남자의 손이 자신의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키는 여자였다.
남자의 손이 무섭다기 보다는 다 큰 성인남녀끼리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애인이 있는 남자일수록 더더욱 외간 여자의 몸에 손을 대면 안된다고 여겼다.
한마디로 보수적이고 정조를 중시했다.
“아, 그리고.”
리안은 개의치 않으며 밝은 웃음을 짓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 정도로는 답례라고 할 수 없으니까 다른 것도 해줄게요.”
“……?”
“먹는거 있잖아요. 몸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채소를 몇 개 알거든요. 그것들을 갈아서 만든 음료를 당분간 제공해 드릴게요. 운동 끝날때마다 드셔보세요.”
“채소를 간 음료를 마시라고요? 채소 음료는 처음 들어봅니다.”
“균형 잡힌 몸매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겁니다. 내일 만들어 드릴테니 한번 드셔보세요.”
“음……”
채소를 갈아 만든 음료라니 생뚱맞았다.
누가 채소를 음료로 마신단 말인가.
수프면 몰라도.
개가 웃을 일이다.
케스티리아는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시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일단 어떤건지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보고 나서 몰래 버리든가 해야지.’
그때 불쑥 에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안 님!”
그녀는 속이 비치는 야한 잠옷에 대충 겉옷만 걸쳐입고 있었다.
뛰어왔는지 숨을 헉헉 거렸다.
“한참 찾았잖아요!”
“저를요?”
“네!”
“리사가 불러요?”
“아니요!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대뜸 리안의 손목을 붙잡았다.
“케스티리아 님, 잠시만 빌릴게요!”
“어엇, 에밀리 씨!”
“잠자코 따라오세요!”
에밀리는 냉큼 리안을 끌고 실내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겨진 케스티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지……?”
에밀리는 저택의 수많은 빈 방중 한곳으로 리안을 데려갔다.
쾅!
그녀는 문을 닫고 리안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리안은 뭐가 뭔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눈을 멀뚱히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왜 그래요?”
“솔직히 불어요. 혹시 정액에 약 같은거 탔어요?”
“아뇨?”
“진짜 안탔어요?”
“안탔는데요?”
“그럼 제 몸이 변한 이유가 뭔데요?”
“몸이 변하다뇨?”
“리안 씨가 준 정액 먹고 내가 강해졌단 말이에요.”
“강해졌다고요?”
리안은 곰곰이 생각하다 다시 그녀를 쳐다봤다.
“왜 강해졌지? 아무튼 좋은거 아닌가요?”
“그렇죠. 좋은거죠. 근데 오래가지 않았어요.”
에밀리는 겉옷을 벗더니 바닥에 떨어뜨렸다.
속옷 아래 비치는 젖가슴을 당당히 드러내며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듯 내밀었다.
“원래대로 평범해졌죠.”
갑작스러운 상황에 리안은 연신 눈만 깜빡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뭔데요?”
에밀리는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리안 씨의 정체를 밝혀야겠어요.”
“밝힐 정체가 어딨어요? 난 난데요?”
“제게 피를 주세요.”
“예? 무슨 소리하시는 겁니까 지금?”
에밀리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리안 씨의 피를 맛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평범한지 아니면 마왕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인지를.”
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난데없이 눈에서 살광을 뿜어내며 입을 쩍벌렸다.
전에 없던 날카롭고 긴 송곳니가 자라나 있었다.
리안의 목을 향해 송곳니를 들이밀었다.
“크아……”
“자, 잠깐만……!”
리안은 방어한답시고 잽싸게 팔을 들어올리다 그만 팔꿈치로 그녀의 턱을 쳐버렸다.
퍽!
“컥!”
에밀리의 고개가 위로 쳐올려졌다.
눈을 질끈 감으며 뒷걸음질 쳤다.
“헛? 괜찮아요?”
“아우 아파라……”
그녀가 울상을 짓고 턱을 어루만졌다.
“턱 나갈뻔 했잖아요!”
“그러게 진정 좀 해요. 왜 남의 피를 빨아먹으려고 합니까? 드라큐라도 아니고.”
“리안 씨가 누구인지 피로 감별해드린다니까요?”
“다른 속셈이 있는게 아니고요?”
“없어요!”
리안은 자신의 몸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상, 에밀리의 의도가 순수하든 나쁘든 피를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괜히 일만 복잡해질지도 모르고……’
마왕의 힘 때문에 그녀가 괜히 이상하게 변해 버리면 어떡해?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건만, 에밀리가 갑자기 뜻밖의 말을 꺼냈다.
“만약 리안 씨에게 어둠의 힘이 있는게 맞다면 마가 깃든 땅을 만들기 위해서 애써 재료를 모을 필요가 없었어요! 속된 말로 우린 뻘짓을 했다고요!”
“그게 왜 뻘짓인가요……?”
“본인이 만들면 끝나는 일이거든요.”
그녀가 말했다.
“악마를 강화시키는 힘을 가진 사람이 그깟 어둠의 기운 하나 못만들어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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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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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들 수 있다고요?”
“그래요. 리안 님께서 그럴만한 힘을 갖고 있다면요.”
“흐음……”
어쩔까.
어쩌지?
‘에밀리에게 내가 마왕을 죽였다고 솔직히 말해야 하나?’
리안이 잠시 고민하는 사이 목덜미 부근에서 숨결이 느껴졌다.
에밀리가 입을 벌리고 목을 깨물려 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꺄악!”
리안이 밀쳐냈다.
“왜 그래요! 피맛만 본다니까요!”
“이러지 말고 방법이나 알려주세요. 어떻게 하면 어둠의 기운을 만들어낼 수 있죠?”
“만들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부터 알아봐야한다니까요?”
“있다고 치고 우선 알려줘보세요.”
에밀리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본다.
“뭔가 숨기는게 있군요?”
“……”
리안은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때가 되면 말해드리죠.”
그때였다.
방문이 철컥 열렸다.
리사가 들어왔다.
“둘이 여기서 뭐하는거야?”
“리사!”
“리, 리사 님?”
리사는 야한 속옷을 입고 있는 에밀리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쭈욱 훑어보더니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에밀리. 어디에 묻어줄까?”
“오, 오해세요!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에밀리는 살기 위해 전부 솔직히 털어놓았다.
리안에게 정액을 보답으로 받은 이야기.
정액을 마셨더니 서큐버스 여왕이 되었다는 이야기.
리안에게 알 수 없는 힘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
숨김없이 털어놓자 리사의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
“나도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어.”
리안이 마력 주입을 빨리 배운다든지.
“리안의 능력이 특별하다는 인상을 받았지.”
그녀는 리안을 쳐다봤다.
“이유가 뭐야?”
리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마음을 먹었다.
에밀리는 몰라도 리사는 꼭 알아야할 듯싶었다.
평생 함께 하려면 숨기는게 있어서는 안된다는게 그의 신조였다.
“나, 마왕을 죽였어.”
오드리아는 사실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고, 아주 먼 곳에서 단 둘이 농사를 짓고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마왕이 찾아왔으며, 자신이 마왕을 죽이고 그 힘을 흡수했다고.
리사와 에밀리는 마왕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역시 내 남편. 대단해.”
“맙소사! 마왕 님께서 돌아가셨다니! 믿기지 않아요! 역대 최강이라 불리우던 그분께서 인간인 리안 님한테 당하셨다고요? 진짜? 정말?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두 사람은 한동안 리안을 바라보며 놀라워했다.
심지어 에밀리는 지금부터 리안 님이 새로운 마왕이라면서 마족의 모든게 그의 것이라고 비행기까지 태웠다.
리사가 끼어들어서 한마디 안했더라면 밤새 떠들어댔을 것이다.
아무래도 에밀리가 마족이다보니 마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아주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하여튼 진실을 털어놓고 나서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어 나갔다.
“마왕 님의 힘을 흡수했으면 어둠의 기운쯤이야 식은 죽 먹기죠!”
에밀리가 말했다.
“어둠의 기운을 쓰려면 주문을 배워야하겠지만 그러려면 오래걸리니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대체하자구요.”
그녀는 어둠의 기운이 담긴 항아리를 가져와달라고 요쳥했다.
잠시 후, 리안이 항아리를 가져오자 그녀가 뚜껑을 열고 말했다.
“리안 님의 피를 몇방울 떨어뜨려보세요.”
“피를요?”
“네. 길들이는거예요.”
에밀리가 시키는대로 새끼 손가락을 찔러 피를 몇방울 항아리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항아리속의 어둠의 기운이 격렬하게 반응하더니 곧 잠잠해졌다.
“항아리를 향해 손바닥을 펼쳐보세요. 그리고 속으로 ‘나한테 와라’ 하고 원해보세요.”
에밀리의 말대로 그대로 따라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둠의 기운이 항아리 밖으로 솟구치더니 리안의 손바닥으로 모조리 빨려들어갔다.
“오……”
리안은 자신의 손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몸속에 어둠의 기운이 들어왔으나 딱히 달라진 느낌은 없었다.
“이게 다야?”
“어둠의 기운을 써보세요.”
“어떻게?”
“하고 싶은대로 하시면 됩니다. 어둠의 기운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떠올리고 원하세요.”
리안은 리사와 에밀리를 번갈아 바라본 후 바닥을 쳐다봤다.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닥을 어둠으로 뒤덮어라.’
그런 생각을 품자 그 즉시 지름 약 1미터 가량의 어둠의 원이 바닥에 생겨났다.
“헉. 진짜 생겼네?”
“리안 님! 진짜 마왕 맞네요!”
“재밌네.”
그렇게 리안은 어둠의 힘의 아주 기본적인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요기도 어둠! 저기도 어둠! 다시 어둠 수거!”
리안이 실내에 어둠을 뿌리며 기뻐하는 한편, 리사는 에밀리를 지그시 노려봤다.
“에밀리.”
“네?”
“우리 사이에 해결할 일이 남아있는 것 같은데?”
“해결할 일이요?”
에밀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리사가 정액이라고 한마디 내뱉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두 손으로 싹싹 빌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리사 님. 다시는 안그럴게요……!”
“벌로써 앞으로 3일간 방에서 근신해. 방밖으로 일절 나오지마.”
“전 밖에 나돌아 다니는 성격이라고요! 3일 동안 답답한 실내에 갇혀있으면 돌아버릴지도 몰라요!”
“피를 제공해 준걸 감안해서 근신으로 끝내는 걸 다행으로 알아. 그게 아니었으면 혀를 자르려고 했어.”
“웁!”
그후로 리안은 한동안 어둠의 기운을 가지고 놀았다.
어둠의 기운으로 라카제트를 불러내는 것 말고도 또 무언가 할 수 있는게 없을지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다.
“구속!”
리사의 몸을 묶어볼 생각에 몇 차례 시도해봤으나 매번 실패했다.
바닥에 깔린 어둠의 기운이 꿈틀거리기는 하는데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리사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편한테 구속 당해서 질질 끌려다니고 싶었는데.”
그러다 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에밀리는 바로 방안에 감금당했고, 리안은 리사와 함께 신혼방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훅스 가에 한통의 서신이 도착했다.
* * *
메건 부인은 아침 식사 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근처에 서 있던 집사에게 물었다.
“리안 씨는 어젯밤에 안돌아왔나요?”
“네, 마님. 아스트리드 가에서 묵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울긋불긋 단풍옷을 입고 있던 나무들은 어느새 잎들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벌써 겨울이네……”
문득 전쟁터에 나간 두 아들이 생각났다.
장남 테리.
차남 스레텐.
메건 부인에게 있어 두 아들만큼 소중한 존재가 없었다.
몸소 낳은 자식들인만큼 애착이 갔다.
남편이 자신에게 냉담할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건 아들들이었다.
두 아들만 보고 힘든 시간을 버텨냈다.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아들이 배치된 각각의 자대에 매달 군수품을 지원해주는 것도 모자라 후원금까지 대주고 있었다.
그로인해 훅스 가의 생활비가 빠듯할 지경이었으나 메건 부인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부디 아들들이 좋은 대접을 받으며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돌아오렴.”
씩씩한 두 아들을 떠올리다 보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내년에는 휴가를 받을 수 있겠지.’
빨리 그날이 다가오면 좋겠다며 따뜻한 차를 한모금 마셨을때였다.
잠시 밖에 나갔던 집사가 돌아왔다.
“마님. 첫째 도련님께 편지가 왔습니다.”
“테리한테서요?”
메건 부인의 표정이 급 밝아졌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직접 집사에게 다가갔다.
“어서 줘보세요.”
“껄껄, 제가 가져다 드릴텐데, 아무튼 여기 있습니다.”
메건 부인은 편지를 건네받고 서둘러 봉투를 개봉했다.
‘뭐라고 쓰여져 있을까.’
그녀는 의자에 앉아 바쁘게 종이를 훑었다.
-어머니, 테리입니다.
여기는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하도 많이 와서 세상이 온통 하얗습니다.
멍하니 보고 있으면 마치 동화속 나라에 온 것처럼 신기한 기분이 들어요.
우리집은 어떤지요?
눈이 내렸나요?
편지에는 어머니와 다른 부대에 배치된 동생 스레텐의 안부를 물으며 테리의 근황이 세세히 적혀있었다.
메건 부인은 편지를 읽는 내내 무척 반가운 나머지 입가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때였다.
그녀의 안색이 심각하게 변했다.
-말씀드려야할지 말지 수차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제게 무슨 일이 생길때를 대비해 알고 계시는게 좋을 것 같아 말씀드리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 심려를 끼치는게 아닐지 걱정됩니다.
어머니.
일주일 전에 벌어진 전투에서 낙마를 하는 바람에 허리를 다쳤습니다.
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달만 푹 쉬면 금방 낫는다고 합니다.
좌우간 그래서 현재 병상에만 누워 있는 중입니다.
허리말고 다른데는 괜찮으니까 염려치 마세요.
전투에 안나가니 오히려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농담할정도로 큰병은 아니니 안심해주세요.
조만간 또 편지쓰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메건 부인은 침통한 표정으로 편지를 내려놓았다.
“테리가 다치다니.”
아들은 걱정하지 말라며 수차례 당부를 했으나 아들이 조금만 다쳐도 잠을 못이루는게 어미의 마음이었다.
“하아.”
메건 부인의 얼굴에 근심이 들어앉았다.
“빨리 낫기를……”
그 무렵, 어떤 점술가 노파와 젊은 남자 조수가 훅스 가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여기지? 훅스 가가.”
“예, 선생님.”
“훗.”
노파가 히죽 웃었다.
“흐음, 이곳에 사는 과부년은 어떤 년이려나.”
“귀족이니까 씀씀이가 크겠죠?”
“니놈이 말을 잘해야지 인마.”
노파는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로 조수의 머리를 툭 때렸다.
“지난번처럼 다 된 밥에 또 재뿌리기만 해봐라 요놈.”
탁!
탁!
“아유 아프잖아요. 그만 때려요.”
“넌 아가리 닥치고 있어. 내가 알아서 할텐게.”
“알았다고요. 때리지 마요.”
“이 집에 대해 적은 종이나 줘봐 이놈 시키야.”
조수는 바지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꺼내서 건넸다.
노파는 종이를 펼쳐서 대충 훑어보았다.
종이에는 훅스 가에 관한 세간의 풍문들이 하나도 빠짐 없이 적혀있었다.
“호오, 남편이 생전에 바람났었다라.”
노파는 종이를 도로 건넸다.
“됐다. 이거면 충분해.”
“당신들 누구요?”
훅스 가에서 하인이 나왔다.
저택 앞을 기웃거리는 두 사람을 보고 수상하게 쳐다봤다.
“무슨 일이오?”
노파가 지팡이를 짚고 그에게 다가갔다.
“지나가는 길에 보니 저택에 암운이 드리워져 있구만.”
“암운? 당신이 누군데 헛소리를 지껄이는거요?”
젊은 남조수가 후다닥 달려와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여기 계신 이분은 황도에서 점 잘보기로 소문난 점술가십니다. 찾는 사람이 많아 귀족들조차 뵙기가 어려운 분인데, 여러분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마님은 안에 계시느냐?”
“우리 마님은 왜 찾소?”
“저택에 암운이 드리워져 있다고 했잖느냐. 내 걷어줄라고 그런다.”
“헛소리하지 말고 꺼……”
조수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혹시 우리를 쫓아낼 생각이라면 접어두십시오. 점술가는 함부로 쫓아내는거 아닙니다. 최소 일년은 재수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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