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ricultura 10

“멋지게 들리는데?”
모니카가 주먹을 쥐고 외쳤다.
“자기야! 우리 로또하자 로또!”
리안도 활짝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호박 팔고 인생 역전!”
“참가할거지?”
“두 말하면 잔소리!”
“멋져! 가자 가자!”
두 사람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몰린 곳으로 향했다.
식량정책국 직원들이 호박씨가 50개씩 들어있는 작은 주머니를 상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리안과 모니카는 각자 한 주머니씩 총 100개의 씨앗을 받았다.
리안은 작은 주머니속을 들여다보며 부푼 기대를 가졌다.
‘천골드……!’
애당초 빅 오우거 호박은 호박중에서도 가장 크게 자라는 품종이다.
잘만 크면 무려 1톤이 넘어가는 것도 있다.
그로인해 작물에 대해 잘아는 리안은 한편으로 걱정도 됐다.
그의 땅은 겨우 오천평밖에 없다.
‘1톤까지 큰다고 가정했을때, 씨앗 하나당 가로 세로 4미터x4미터 정도의 공간을 남겨야할텐데, 5개만 심어도 다른 작물을 심을 공간이 크게 부족해질거야. 당연히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테고. 어쩌지…… 완전 도박이네. 아, 몰라. 나중에 생각하자.’ 
이후 리안은 식량정책국에서 제공한 술과 안주를 배불리 먹고 모니카와 함께 술집을 빠져나왔다.
심부름꾼을 구해 아스트리드 가에 서신을 보낸뒤 짐마차를 타고 황도를 나섰다.
“이 늦은 시간에 꼭 가야돼?”
“땅한테 가서 내년에도 농사 잘되게 해달라고 빌어야지.”
“낮에 하면 되잖아.”
리안의 속을 모르는 모니카는 오늘 같은날 좋은 여관에서 자고 가자고 떼를 썼지만 리안은 그녀를 어르고 달래 오천평 땅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계속 그를 미행하고 있던 성녀 안네로제는 마침내 무언가 벌어질 것 같다며 피곤함에도 추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늦은 시간에 성밖으로 나가는게 수상해. 어쩌면 악마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향하는 걸지도 몰라.’
그로부터 두 시간뒤.
안네로제는 처음 와보는 오천평땅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의 예상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나름 성과가 있었다.
저 멀리, 흐물흐물 거리는 슬라임 한 마리와 마족의 편에 서서 인간을 적대시하는 켄타우로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리안을 향한 안네로제의 의심은 한층 더 깊어져갔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리안은 해맑게 웃음 지으며 자신에게 다가온 마물들을 돌려보내고 있었다.
“여기 올 필요없어. 하던거 해. 돌쇠는 늘 있던 자리에 가서 셔.”
-우우우웅.
돌쇠는 한팔을 들어보이고는 자신의 쉼터에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이내 잠든 것처럼 눈속의 파란불빛이 꺼졌다.
“허수 너도 저리 가서 혼자 놀아.”
“순무랑 상추는 아무 이상없다 주인.”
“고마워.”
“난 뭐하러 왔는지 알지. 저번에 봤지. 눈치껏 사라져주지.”
개의 환영을 비추고 있는 허수는 흐물흐물 멀리 떠나갔다.
“폰타나도 들어가서 자. 나올 필요없어.”
“일하러 온게 아닌가?”
“응, 일하러 온거 아냐. 모니카랑 잠깐 바람쐬러 왔어.”
폰타나가 갸우뚱거린다.
“혹시 데이트를 말하는 거냐?”
모니카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네 주인이 변태야.”
“얼른 들어가. 얼른.”
리안은 폰타나의 몸통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오두막 안에서 향단이가 자고 있었다.
최근 폰타나한테 달려드는 벌레들을 잡아주느라 향단이는 밤낮으로 그녀와 붙어 지냈다.
“향단아 잘자렴.”
리안은 향단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준 후 네 다리를 접고 누워있는 폰타나를 바라봤다.
“당신도 잘자.”
“시킬게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라.”
“아냐 그럴 필요없어. 푹 자고 아침에 봐.”
“음…… 알겠다.”
폰타나는 같이 있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리안이 자꾸 자라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잠을 청했다.
리안은 입구의 천을 내리고 나서 모니카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은한 달빛이 오천평땅을 비추고 있었다.
바람 소리만 근근이 들려오는 적막속, 리안은 바지를 내리고 페니스를 꺼냈다.
“빨아줘.”
“불장난을 하러 이 먼곳까지 오다니 우린 진짜 정신나갔어.”
모니카가 킥킥 거렸다.
처음 이 땅에 왔을때, 리안과 그녀는 뜨겁게 정사를 나누며 땅위에 소변을 뿌렸었다.
리안은 또 그것을 하자며 그녀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실은 라카제트를 만날 속셈이지만.
“내년에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니 별 수 없나.”
모니카는 페니스를 마주보고 무릎 꿇고 앉았다.
한 손으로 페니스를 잡고 혀를 내밀었다.
혀를 움직여 부드러이 귀두와 기둥을 핥아주다가, 페니스가 고개를 쳐들자 입을 벌리고 천천히 삼켰다.
리안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으음…… 좋아.”
“쥬븝, 쥬븝. 쭙!”
모니카의 고개가 힘차게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안네로제는 경악했다.
“어, 어찌하여 저런 짓을……!”
그녀의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차마 눈 뜨고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남녀의 낯뜨거운 애정 행각을 여태껏 보지도 겪어보지도 못한 그녀에게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저자도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걸 알고 있어……! 과연 마왕! 일부러 저러는거야. 나를 타락시키기 위해서!”
안네로제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지지않아. 지지않아! 악마의 짓궃은 장난에 지지않아! 신이시여 저를 굽어 살피소서.”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에스메랄다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마왕과 인간여인의 정사.
달빛이 밝아 멀리서도 실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마왕의 유혹에 넘어간듯한 여자는 광기와 음욕에 휩싸여 지옥의 불길속으로 온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철썩! 철썩!
이내 살과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마왕의 남근을 받아들인 그녀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바닥을 구르고, 온몸을 비틀며 낄낄대고 웃어대거나, 허공으로 들어올려진 채 다리를 벌리고, 대지에 오줌을 싸면서 음란한 소리를 끝도 없이 질러댔다.
안네로제에게는 귀와 망막을 불로 태우고 싶을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간질간질한 기분이 심장에서부터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몸이 예민해지고 있었다.
‘안돼!’
악마가 원하는대로 될 수 없어!
“현혹되지 말아라. 현혹되지 말지니라. 육신의 정욕과 음탕한 색욕에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아라. 신께서 너를 꾸짖으실 것이다.”
그녀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야릇한 기분을 떨쳐내려 지난 3년간 목격해온 죽음들을 떠올렸다.
마족과 싸우다 죽은 병사들의 시체더미 앞에서 기도를 올렸던 가슴 아픈 순간들.
그 시절을 억지로 떠올리며 귓속을 파고드는 추악한 교성을 이겨내려 애를 썼다.
“히으응! 아앙! 으으응! 사랑해! 으응!”
여인의 입에서 연거푸 쏟아지는 희열에 찬 교성.
안네로제는 소름이 끼쳤다.
마왕이 분명 저 여인을 타락시킨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찌 저런 짐승과 같은 소리를 꽥꽥 질러댈수가 있는지!
‘여자의 기분이 아무리 좋다한들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없어.’
물론 자신은 겪어본적이 없어서 잘모르지만……
짐작으로는 그랬다.
남성의 남근이 여성을 기분좋게 한다는 이야기야 다양한 개성을 가진 동료들과 모험을 하다 가끔씩 들어보기는 했지만, 설마 저정도로 미쳐날뛸까?
‘마왕이 수작을 부린게 분명해.’
그렇게 그녀가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밤하늘에 울려퍼지던 여인의 교성이 돌연 뚝 사라졌다.
기도를 드리고 있던 안네로제는 급히 시선을 들어 먼 곳을 바라봤다.
마왕은 어느새 바지를 주워입고 서있었다.
여자는 바닥에 누워있었는데, 혹시 죽었나 싶어서 유심히 관찰해보니 젖가슴이 들썩이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마왕은 짐마차에서 모포를 가져와 여인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그 광경을 본 안네로제는 미간을 찡그렸다.
‘저 알 수 없는 행동은 뭐지? 설마 제물로 바칠 준비를 하는건가?’
곧이어 마왕은 바지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을 자신의 손가락에 끼웠다.
반지였다.
반지에 박힌 보석이 달빛에 반사되어 붉은빛을 자아냈다.
멀리있는 성녀의 눈에도 확연히 보였다.
마왕은 넓은 장소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가만히 서있는가 싶더니, 곧 그의 발밑이 검게 변하며 악마의 기운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안네로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김리안, 당신은 역시 마왕이 맞았습니다.’
솔직히 동료들이 했던 말도 있고 조금까지만해도 애매했는데 이제 완전히 확신이 섰다.
저 바닥에 물결치는 악마의 기운이 그 증거였다.
안네로제는 더이상 모습을 감출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로브를 벗고 지팡이를 가린 천도 풀어헤쳤다.
“지금부터 당신을 멸하겠습니다.”
작심한 그녀가 튀어나가려는 순간, 돌연 땅밑에서 두 악마가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마왕을 토벌하러 나가려던 발걸음이 멈칫했다.
성녀는 다급히 몸을 숨겼다.
그리고 혀를 찼다.
‘셋은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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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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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아주셨군요.”
라카제트는 늘 변함없는 외모와 똑같은 복장을 입고 있었다.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메고 있는 우마족 소녀 또한 여전히 키작고 통통하긴 마찬가지.
라카제트는 오천평땅을 둘러보고 이어 잠든 모니카를 내려다보더니 미소지었다.
“아무래도 그간 잘지내신 모양이군요.”
“저번에 산 골렘이 아주 좋았어.”
리안은 그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쌓아놓은 순무와 상추를 보여주었다.
“작물의 종류와 상관없이 영혼 한 개당 200kg이라고 했지? 저 우마족 소녀가 맛있어하면 값을 더 쳐주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순무와 상추의 무게는 대충 800kg에 달했다.
영혼 4개 분량.
라카제트는 순무와 상추의 상태를 보더니 품질이 꽤 좋다며 리안을 칭찬했다.
“상품으로서 값어치가 충분하군요. 바로 시식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우마족 소녀를 불렀다.
무표정을 짓고 멍하니 서있던 우마족 소녀는 배낭을 내려놓고 순무와 상추쪽으로 걸어갔다.
“먹어라.”
라카제트가 손짓했다.
우마족 소녀는 단숨에 먹어치웠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리안은 놀란 얼굴로 연신 눈을 깜빡거렸다.
‘내가 뭘 본거지?’
방금전, 라카제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마족 소녀의 입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거대하게 벌어지더니 바닥에 쌓아올려져있던 순무와 상추만 깔끔하게 먹어치워버렸다.
우물우물.
많은 양의 채소를 미련스럽게 구겨넣은 우마족 소녀의 양볼이 아주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리안은 그녀가 씹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겉모습은 사람 같아도 괴물이구나……’
이윽고 우물거리던 음식을 삼킨 우마족 소녀는 라카제트를 돌아봤다.
그를 향해 묵묵히 손을 들어보였다.
엄지척!
라카제트가 웃는다.
“맛있었다는군요.”
뒤이어 우마족 소녀는 손가락 세 개를 펴보였다.
“200kg당 영혼 3개의 가치랍니다.”
“정말?”
리안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우마족 소녀는 손가락 세 개를 네 번 접었다 폈다.
“리안 님께서 준비하신 채소의 총 가치는 영혼 12개라는군요.”
“고맙다!”
리안은 기쁜 마음에 우마족 소녀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그녀의 팔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리안은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반갑게 흔들었다.
리안이 손을 놓자 팔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우마족 소녀의 시선도 리안을 보는게 아니라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상관없었다.
리안은 라카제트에게 걸어갔다.
“영혼 12개로 사고 싶은게 있어. 혹시 소금을 구할 수 있나?”
“소금 말입니까? 허허, 전혀 생각치 못했습니다. 저는 다른 것들을 소개해드릴 생각으로 기대에 한껏 부풀었는데 말이죠.”
“어떤 거?”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았던 그의 손에 직사각형 모양의 종이가 순식간에 생겨났다.
라카제트는 그것을 리안을 향해 보란듯이 흔들어보였다.
“마족의 일상을 24시간동안 체험할 수 있는 티켓입니다.”
“……?”
리안이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짓자 그가 재차 말을 이었다.
“이 티켓을 구매하시면 마족의 농촌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마족들이 사는 곳으로 날 데려가준다고?”
“네. 마족들이 어떤식으로 농사를 짓고 사는지 견학해보고 싶지 않으신지요? 싸게 해서 영혼 5개에 해드리겠습니다. 단순히 구경만 하고 오는데 많이 받을수야 없죠. 저는 양심있는 상인입니다.”
“영혼 5개라……”
리안은 잠시 고민했다.
솔직히 구미가 당긴다만……
여유가 있으면 당연히 샀을테지만.
아깝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나중에 살테니까 그건 일단 잘 보관해둬. 지금 난 소금이 필요해. 마족들도 소금 쓰지? 그쪽 동네에서 소금 좀 사와줄 수 있어? 영혼 12개 분량만큼.”
“영혼 12개 분량의 소금이면 들고 가시기가 굉장히 불편하실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리안의 눈이 커졌다.
“쉽게 구할 수 있어?”
라카제트가 미소짓는다.
“어렵지 않지요. 요즘 저희쪽에선 인간, 엘프, 드워프 마을에서 약탈한 소금의 대량 유입으로 연일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널린게 소금입니다.”
“널린게 소금……?”
리안은 놀랐다.
인간과 마족이 대치하는 현 상황이 자신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를 가져다줄 줄이야.
얼른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 하나당 소금 몇 포대쯤 쳐줄건데?”
“소금을 취급하지 않아서 고민을 해봐야할 듯합니다. 다만 리안 님께서 충분히 만족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소금이 싸니까요.”
그 자리서 바로 라카제트와 협의를 했다.
소금 200kg를 한 포대로 해서, 영혼 한 개당 20포대씩.
총 240포대.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레쯤 어떠신가요?”
“모레? 빨라서 좋군. 알았어.”
리안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니카를 또 데리고 와야하나.’
매번 이 먼곳까지 여자를 데리고 와서 응응 하기도 그렇다.
좀 더 간편한 방법이 어디 없을까?
마가 낀 땅을 만들었다 제거했다 할 수 있는 편리한 마법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떠날채비를 하던 라카제트가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멀리서 우리를 엿보는 자가 있습니다. 혹시 아는 분이십니까?”
그 말에 리안이 놀랐다.
“모르는 자야. 난 모니카랑 둘이 왔어.”
“그렇다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라카제트는 히죽 웃더니 우마족 소녀가 매고 있는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마족어가 써진 낡은 종이였다.
“응큼한 친구에게 예절을 가르쳐야겠습니다.”
그가 종이를 찢자 평범한 개 크기의 케르베로스가 나타났다.
머리가 셋 달린 녀석은 불이 붙은 몸으로 곧장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앙!
그때, 먼 곳에 있는 밭에서 벌떡 일어서는 그림자가 보였다.
리안의 눈이 커졌다.
“누구지?”
“으음, 누굴까요.”
리안과 라카제트는 나란히 서서 먼 곳을 응시했다.
소형 케르베로스는 이내 도망치는 그림자를 따라잡았다.
점프를 뛰어 그림자의 등을 덮치는 순간, 갑자기 밝은 빛이 번쩍 거렸다.
파직!
-깨갱!
케르베로스가 무력하게 튕겨져 나갔다.
라카제트가 작게 감탄하면서 턱을 어루만졌다.
“호오……”
케르베로스가 바닥을 뒹구는 동안 그림자는 빠르게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하게 뛰어가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다그닥! 다그닥!
말이 뛰는 소리도 곧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무래도 멀리 도망친 듯싶었다.
“디마크트 카라무스.”
라카제트가 주문을 외우자 바닥에서 허우적대던 케르베로스는 바람에 휩쓸리듯 공기중으로 흩뿌려지며 사라졌다.
“경비견으로 특별히 키운 녀석을 쉽게 물리치다니 실력이 제법이군요. 일반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라카제트는 미소를 지으며 여유가 있었다.
반면 리안은 안색이 굳어졌다.
“누구지……?”
누가 미행을 한 것일까.
전혀 감이 안잡혔다.
"리안 님은 위대한 힘을 가지셨기에 그 힘을 탐내거나 두려워하는 자들의 소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위대한 힘……?”
자신이 흡수한 마왕의 힘이 떠올랐다.
라카제트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나?
그에게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라카제트는 손을 내밀었다.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겠습니다. 중요한 고객을 잃을 수야 없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제가 해드릴건 이것 밖에 없군요.”
그가 내민 손바닥 위에 골프공 만한 크기의 작은 공이 올려져 있었다.
리안은 그것을 집어들었다.
“이게 뭐지?”
“수면탄입니다. 녀석이 또 나타나거든 던지십시오. 그럼 다음에 만날때까지 부디 건강하시기를.”
라카제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다음 뒤로 물러서서 배낭을 짊어진 우마족 소녀와 나란히 섰다.
“모레 무사히 뵐 수 있길 기원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라카제트의 몸이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눈길 한 번 안주던 우마족 소녀의 시선이 리안에게 향했다.
별 말은 없었으나 그녀는 계속 리안을 응시한 채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이내 두 마족이 사라지자 리안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느 때와 똑같은 논밭의 밤풍경.
한적하고 조용했다.
“미행이라니……”
조금전 라카제트의 말이 떠올랐다.
‘경비견으로 특별히 키운 녀석을 쉽게 물리치다니 실력이 제법이군요. 일반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력이 좋다라……
갑자기 마왕의 얼굴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마왕의 부하들인가?”
어떤 놈이 우리 마왕 님을 죽였냐며 이를 바득 갈았을 그들.
오랜기간 추적을 한 끝에 마침내 자신의 정체를 알아낸 것이 아닐까?
“확률이 높아.”
역시 그것 말고는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다.
폰타나 일도 있지만 노예상인은 이미 도시 치안대에 신고를 한 상태다.
올거면 치안대 병사들을 우르르 끌고 왔지 방금 같은 식으로 몰래 엿보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노예상인은 제외.
“큰일인데.”
상대가 사람이 아닌 마족이면 대단히 위험하다.
사람 죽이는건 일도 아닐거 아냐.
그리고 어떻게 싸우지? 농부 주제에 이길 수나 있을까?
리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바닥에는 모니카가 쿨쿨 자고 있었다.
그녀를 번쩍 들어서 짐마차에 실었다.
그리고 일꾼들을 전부 깨웠다.
폰타나, 향단이, 허수, 돌쇠.
만약을 대비해 오늘밤은 훅스 가에서 재워야겠다.
* * *
새벽.
에스메랄다 신전.
방으로 돌아온 안네로제는 화상에 신음했다.
“윽……”
그녀는 급히 로브를 벗어던지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오른팔을 보니 손목에서부터 어깨까지 옷이 타버리고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지옥의 화염에 쉽게 탈 옷이 아닌데……”
그녀가 입은 옷은 마왕을 상대할 목적으로 제작된 값비싼 성녀복이었다.
그렇기에 웬만한 암흑마법은 견디는 튼튼한 내구성을 자랑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케르베로스가 달라붙는 순간 옷이 타며 오른팔에 화상을 입었다.
신속히 신성 마법을 시전해서 반격했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대응이 늦었더라면 온몸이 불타버릴뻔했다.
용사 동료들과 함께 다닐때 여러차례 케르베로스를 상대한 적은 있었으나 이번 녀석은 보통의 케르베로스가 아니었다.
“능력을 상승시키는 마법 주문이 걸린건지 상당히 강했어.”
안네로제는 혀를 차며 다시금 마왕의 위력을 실감했다.
“김리안…… 과연 마왕 답습니다.”
이번 부상이 그녀를 신중케 만들었다.
섣불리 정면 승부를 하기보다 일단 지켜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치 마세요. 당신은 강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을겁니다. 이 몸은 정의를 수호하는 성녀. 당신을 멸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끝까지 감시하겠습니다.”
그녀는 추적 의지를 불태우며 오른팔에 왼손을 대고 치유 주문을 시전했다.
밝은 빛이 피부속으로 스며들었다.
치유 주문.
바로 낫지는 않지만 대신 회복 기간은 짧아진다.
일주일 정도면 화상 자국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후우……”
치유 주문을 시전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편안해졌다.
화끈거리던 통증이 크게 줄었다.
진물이 흐르던 화상 자국도 살짝 아물었다.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기자 다시금 김리안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가 어떤 여인과 살을 섞던 광경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밭에서 음탕한 짓을 하다니……!’
화가 난 그녀는 미간을 구겼다.
“정말 미친짓이었어.”
그러나 희한하게 중독성이 있다.
그 낯뜨거운 광경이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자꾸만 떠올랐다.
쾌락에 황홀해하는 여인의 신음이 귀에 남아서 윙윙거렸다.
“안돼.”
안네로제는 추악한 광경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음탕한 생각은 마왕의 정신 공격 때문이라고 여겼다.
놈이 원하는대로 당할 수 없었다.
“지지 않아.”
그날 새벽, 침대에 누운 안네로제는 결국 잠을 설쳤다.
머릿속의 더러움을 씻어내느라 동이 틀때까지 기도만 올렸다.
“휴…… 이제야 진정이 된다.”
아침.
피곤한 기색으로 아침 식사를 하던 그녀.
눈앞에 차려진 요리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마왕이 납품한 순무와 상추가 들어간 요리들!
그녀는 원수를 보는듯한 눈으로 순무와 상추를 쳐다봤다.
“설마 신전에 채소를 납품한 이유가 날 공격하기 위해서……?”
그녀는 마침내 마왕의 의도를 알아챘다.
마왕은 자신의 주변을 기웃거리며 조금씩 영혼을 갉아먹는 파렴치한 작전을 쓰고 있었다.
인간 여인과의 음탕한 짓으로 정신 공격을 하는 것도 모자라 이번엔 순무와 상추로 이성을 괴롭히겠단 말이지?
“직접 싸울 생각은 안하고 치사하군요. 당신의 비열한 수법에 당하지 않습니다.”
성녀는 발끈하며 순무와 상추를 골라냈다.
그런데……
국물 밖으로 꺼낸 순무와 상추가 점점 빈 접시에 쌓여갈수록 왠지 아까운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신선하고 맛있었는데……’
꿀꺽.
저번에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자 절로 침이 넘어갔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
결국 한숟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티자. 버텨야 해.”
그후 도시의 한 식당을 찾았다.
안네로제는 순무와 상추가 들어간 요리만 시켜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그럼에도 크게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맛이 아니야.”
그녀는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먹지를 못하니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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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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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가 저택.
침대에서 일어난 리사는 허전한 옆자리를 보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침이야……”
그녀를 깨우러왔던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침입니다.”
“아침이라고.”
“그래요, 아침입니다.”
“그가 없어.”
“네, 없네요.”
“난 약속을 지켰어.”
“그래요, 약속을 지키셨죠.”
“그런데 왜 없지?”
“그건 저도 잘모르겠네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젯밤.
리안은 상인들의 송년회를 마치고 리사에게 서신을 보냈다.
-오늘밤 급한 일이 있어. 내일 아침에 꼭 그곳으로 갈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 부탁 들어줄거지?
하도 간곡해 보이길래 리사는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뜻대로 따랐다.
그런데 이게 뭔가?
그가 없네?
거짓말을 했단 말이지.
“…에밀리.”
“네.”
“마차 준비 시켜.”
“출근하시게요?”
“아니, 훅스 가로 갈거야. 김리안을 납치해오겠어. 그는 앞으로 훅스 가에서 살지 못할거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게 아닐까요?”
“피치 못할 사정은 한 번으로 족해.”
리사는 침대 밖으로 나와 잠옷을 벗어던졌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환한 햇살이 그녀의 알몸을 비추었다.
“날 실망시켰으니까 김리안을 오늘부터 감금시켜야겠어.”
“워워 고정하세요. 그건 좋은 결정이 아닙니다. 반발만 불러 일으킬거예요.”
“차라리 나한테 화를 내는게 좋아. 곁에 없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
“흑흑.”
에밀리는 짐짓 슬픈 표정을 지어보였다.
“구슬프게 들리는 말씀이십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리사 님, 케스티리아 입니다.”
“옷 갈아 입고 나갈게.”
“리안 님께서 귀가하셨습니다.”
리사는 흠칫하며 문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곁에있던 에밀리를 돌아봤다.
에밀리는 축하한다며 싱긋 웃어보였다.
“바깥주인 님께서 돌아오셨네요.”
* * *
“신기해?”
“르리!”
널따란 거실에서 향단이와 놀며 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향단이는 아스트리드 가에 처음왔는지라 모든 것을 신기해 했다.
“왜 이리 늦었어?”
리사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나타났다.
여느때와 똑같이 고풍스러운 드레스에 팔짱을 끼고 걸어왔다.
“리사!”
리안은 다른때 보다 더욱 환한 웃음을 짓고 다가갔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처럼 무척 반갑게 그녀를 껴안았다.
“늦어서 미안해. 일이 있었어.”
“핑계 대지마. 아니 그 전에, 뭐야? 뭐가 그리 좋아서 아침부터 실실 웃어?”
“아, 저기.”
리안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부탁할게 있어서 그렇다.
“실은……”
그는 리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현관 앞에 그의 짐마차가 서 있었고, 그 옆에 낯선 장소를 어색해하는 돌쇠와 개의 환영을 비추는 허수가 있었다.
허수가 리사를 향해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멍멍!”
리안은 짐마차의 짐칸으로 가서 덮어져 있던 검은천을 치웠다.
납작 누워있던 폰타나가 다리를 펴고 일어났다.
“숨어있느라 혼났지?”
“다리가 저리지만 괜찮다. 그대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야.”
“아냐, 아냐.”
리안은 폰타나와 짧게 대화를 나누고 다시 리사에게 다가갔다.
“얘들 당분간 여기서 지내면 안될까?”
어젯밤 미행을 당한 일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나 일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해서 급히 궁리해낸 방법이 아스트리드 가로 피신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농한기라 오천평땅에 있을 필요도 없다.
아스트리드 가는 항상 기사들이 상주하고 있기에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황도 안에 있잖아.
아무리 마족들이라고 해도 감히 황도까지 들어올 생각은 꿈도 못꿀 것이다.
“당황스럽겠지만 2주 정도만 어떻게 안될까?”
리안의 부탁을 받은 리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당분간?”
“응, 살 곳을 구할때까지만.”
리안은 곧바로 덧붙였다.
“그리고 폰타나는 현재 노예상인에게 쫓기고 있어. 근데 폰타나 일은 걱정하지마. 이따가 노예상인을 찾아가서 해결할 생각이니까. 그 사람한테 조금씩 돈을 갚아나가겠다고 말할거야.”
“……”
그녀는 리안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왜 나한테 허락 받아? 앞으로 나한테 허락 받지마. 남처럼 느껴져서 화나니까.”
리안이 기뻐했다.
“그러면 여기서 지내도 괜찮은거야?”
“네가 결정해. 네 집이니까. 그리고.”
리사는 근처에 서있던 에밀리에게 손짓했다.
“그거 가져와.”
“네. 후딱 갔다와야겠네요.”
에밀리가 싱긋 웃었다.
잠시 후 저택 안으로 들어갔던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 서류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리사는 그것을 받아 리안에게 건넸다.
“읽어봐.”
“이게 뭔데?”
“보면 알아.”
봉투를 열어보니 여러장의 문서가 들어있었다.
첫장을 꺼내 읽어보니 노예계약서라고 큼지막하게 써있다.
리안은 노예계약서 하니까 예전에 리사가 내밀었던 노예계약서가 떠올랐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김리안이든 리안이든 난 너한테 관심 없어. 허나 네가 재배한 당근에는 관심이 있지. 내 노예나 해.’
자신을 또 노예로 만든답시고 양식에 맞춰 제대로 작성해온건가 싶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폰타나의 노예계약서였다.
‘이게 어째서 리사의 손에……?’
리안은 속으로 놀라며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갔다.
다음 장까지 자세히 읽고나서 리사를 바라봤다.
“당신이 샀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묻자 리사가 뽐내듯이 웃는다.
“너 주려고 샀어. 앞으로 네가 주인이야.”
“리사!”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고마워! 이 은혜 잊지않을게!”
리안이 크게 기뻐하자 리사도 자그맣게 미소지으며 그를 두 팔로 안았다.
정작 폰타나는 리안이 하는 말만 들릴뿐 리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저 인간 여자가 이곳에 사는걸 허락해준건가……?”
그리고 향단이는 허공에서 날개짓을 하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리안과 리사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르리……?”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뭐하는 거지?’ 하는 표정.
잠시 그러고 있다 신난 얼굴로 리안의 얼굴에 찰싹 달라붙었다.
“르리!”
향단이도 리안의 얼굴을 껴안았다.
허수는 돌쇠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주인이 성공했나봐. 당분간 여기가 우리집이야.”
-우우우웅.
돌쇠는 알아들었다는듯 한 팔을 들어올렸다.
그렇게 폰타나의 문제가 해결되자 리안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을 실행에 옮길때였다.
마침 돈도 있겠다 더구나 이곳은 황도!
다양한 상점이 즐비한 곳이다.
그는 곧바로 모두와 함께 이종족 상점을 찾았다.
리안의 눈에 ‘하클랑클’ 이라고 써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나 가게 앞에 다양한 이종족과 관련된 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즉 이종족 상품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다.
리안은 씨익 웃었다.
“자, 질러볼까.”
그런 생각으로 모두를 데리고 가게안으로 들어갔다.
이종족 상점이라서 그런지 입구가 컸다.
신장이 2미터인 돌쇠도 무난히 들어갈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실내가 꽤 넓었다.
천장도 높고.
세 명의 남녀 직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이종족인 향단이, 폰타나, 허수, 돌쇠를 보고 놀라기보다는 신분이 높아보이는 리사를 보고 쭈뼛거렸다.
그나마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친절한 미소를 짓고 다가왔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으시는게 있으십니까?”
그는 리사를 보고 말했다.
리사는 팔짱을 낀 채 옆에 있던 리안을 조용히 가리켰다.
리안은 신기한 눈빛으로 내부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실례했습니다.”
주인은 리사에게 목례를 한 후 리안에게 다가갔다.
“손님, 찾으시는게 있으십니까?”
“페어리가 입을 옷과 켄타우로스 안장이 필요합니다. 둘 다 팝니까?”
“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쇼핑이란건 참 중독성이 굉장했다.
전재산 38골드 30실버.
한번 지르기 시작하니까 봇물 터지듯 계속 돈을 써재꼈다.
하필이면 상점에 없는게 없었다.
“혹시 골렘한테 입힐 장비나 옷 같은 것도 있습니까?”
“물론 있지요. 이쪽입니다.”
말만하면 다 있다고 하니 안살래야 안살 수가 없다.
우리 일꾼들에게 선물해주는 것이 처음이기도 하고, 다들 눈동자에 무언의 기대감이 가득해서 무엇이든 하나씩 사줘야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향단이에게는 예쁘고 앙증 맞은 드레스와 구리로 제작된 칼과 갑옷을.
돌쇠에게는 커다란 암벽을 파괴하는데 도움이 되는 철 건틀릿을.
폰타나에게는 상반신에 입을 수 있는 상의와 치마, 그리고 안장을.
허수에게는 슬라임들이 좋아한다는 개집만한 크기의 네모난 상자집을 선물했다.
전부 값을 치르니 무려 23골드가 나왔다.
다른건 저렴한 편이었는데 폰타나의 안장(13골드)과 돌쇠의 철 건틀릿(6골드)이 꽤 비쌌다.
‘으윽……’
리안은 속이 쓰렸으나 선물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일꾼들을 보고 코를 긁적이며 돈을 지불했다.
돈을 건네던 손이 미세하게 덜덜 떨렸던 것은 비밀.
그런 리안을 보면서 리사는 흡족하게 웃었다.
‘돈이 있어봤자 고향에 돌아갈 생각만할텐데 잘됐네. 옷이야 내가 사 입혀주면 되고 집도 있고 밥도 먹여주니 그에게 돈 따위 없어도 돼.’
리안은 자신을 세뇌했다.
‘아깝지 않아. 하지만 아깝기도 하지. 아깝지 않기는 하나 완전히 아깝지 않다고도 할 수 없어. 아까워 안아까워. 안아까워 안아까워.’
시원하게 쇼핑한 대가로 남은 돈은 15골드 30실버.
돈이 참 더럽게도 안모인다. 
이래서야 언제 오드리아 님을 뵈러갈지……
하지만 후련하고 뿌듯했다.
돈을 내다버린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을 샀다.
그동안 생각만 해온 것들을 살 수 있었기에 즐거움도 가득했다.
쇼핑이 끝난 후 아스트리드 가 저택으로 향했다.
* * *
저녁 무렵, 리사는 하녀들로 하여금 정원에서 만찬을 준비토록 지시했고, 저녁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향단이와 허수, 돌쇠는 넓은 정원에서 이리저리 뛰어놀았다.
허수와 돌쇠는 맨날 논바닥에서만 지내다가 푹신한 잔디 위를 뛰어다니니 좋고 신기한지 가끔씩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리안은 폰타나와 함께 정원에 있었다.
안장을 샀으니 어서 시험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건 이렇게 끼우는건가? 아, 됐다. 드디어 끝났어.”
삼십분 가량 낑낑대며 연구한 결과, 마침내 폰타나의 등에 안장을 채우는 작업이 끝났다.
“무거워?”
“좀 답답한 느낌이 있지만 참을 수 있다.”
“쉴때는 벗길게. 탈때만 씌울거야.”
“응. 근데 내 등에 누군가를 태우는건 처음이야……”
“긴장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폰타나의 얼굴에 살짝 수줍은 기색이 묻어났다.
윤기나는 붉은 털을 가진 꼬리도 그녀의 심란한 마음을 대변하듯 이리저리 촐랑거렸다.
리안은 괜찮다며 그녀의 몸통을 쓰다듬었다.
“처음이니까 천천히 걷자. 어딘가 이상하면 빨리 말하고.”
폰타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리안은 그녀의 가슴과 허리에 X자로 둘러진 고삐를 잡아쥐었다.
“탄다.”
“응.”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등자를 밟고 단숨에 올라탔다.
폰타나는 잠깐 비틀대는가 싶더니 네 다리를 움직여 곧바로 균형을 잡았다.
리안은 탑승감에 만족했다.
“오우.”
올라타보니 안정감이 있었다.
자신을 떠받치는 폰타나의 힘이 아주 튼튼했다.
‘폰타나의 몸통이 이렇게나 굵었나.’
리안은 무심코 그녀의 머리에다 손을 뻗으려다 잽싸게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말처럼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그러면 안될 것 같아 얼른 방향을 바꿨다.
그녀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어때? 힘들어?”
“버틸만하다. 가벼워.”
“가볍다고?”
“체격이 커서 무거울줄 알았는데 보기와 달리 가볍군. 그대랑 똑같은 몸무게를 가진 사람들로 네 명은 더 태울 수 있겠어.”
“이야 대단한데?”
리안은 웃었다.
고삐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천천히 걸어보자.”
“응.”
다그닥.
생전처음으로 누군가를 태우고 내딛는 첫발.
폰타나가 걷기 시작했다.
리안에게는 새로운 이동수단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노예계약서도 있겠다, 정식으로 주인이 된 이상 어디든 거리낌없이 내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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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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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이 폰타나를 타고 널따란 정원을 천천히 달리는동안 어느덧 만찬 준비가 끝났다.
모두 음식이 차려진 식탁 주위에 둘러앉았다.
참석한 사람이 너무 없어 에밀리와 케스티리아도 합석했다.
리안, 리사, 에밀리, 케스티리아가 순서대로 의자에 앉고, 돌쇠는 마력 말고는 먹지를 않으니 구경을, 허수와 폰타나, 향단이는 따로 의자가 필요없었다.
허수에게는 바닥에 빈 접시를 하나 놓아주었다.
폰타나는 네 다리를 접고 바닥에 앉은 채로 식사하는게 식탁의 높이와 맞았기에 의자를 주지 않았다.
몸집이 작은 향단이는 리넨 식탁보 위에 작은 접시가 마련되어 있었다.
식탁 위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서 리안이 덜어주는 것을 받아먹을 생각이었다.
식사는 코스로 나왔다.
첫 번째 코스는 여러 지방에서 생산된 다양한 종류의 포도주들과 과일이 들어간 파이가 나왔다.
파이의 크기는 주먹보다 작았다.
두 개 먹으니까 끝났다.
양이 적어 리안의 뱃속이 꼬르륵 거렸다.
포도주는 달콤하고 맛있었다.
두 번째 코스로는 짐승의 내장 요리가 나왔다.
송아지의 췌장, 양의 뇌, 닭의 간.
허수와 폰타나는 환장하고 먹었다.
에밀리도 악마라 그런지 싱글벙글 거리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음~ 풍미가 좋네요.”
반면 향단이는 못 먹겠나보다.
리안이 음식을 조금 덜어주자 식탁보 위에 앉아있던 향단이는 코를 막으며 고개를 휘저었다.
“르리~”
“냄새가 고약해?”
“르리!”
“알았어 치울게.”
리안은 향단이한테 줬던 것을 자신이 주워먹었다.
‘흠. 순대 사면 주는 내장 먹는 맛이네.’
맛있었다.
리사는 항상 조금씩 먹고 많이 남겼다.
그녀는 식사보다 리안이 먹는 모습을 구경하는게 더 좋은 듯했다.
리안이 우물거리는 모습을 보며 자주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세 번째 코스에 메인 요리가 나왔다.
요리사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위에서 꼬치에 끼워 돌리던 새끼돼지를 나무 도마로 옮겨서 얇게 썰어냈다.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는 따끈한 고기가 각자의 접시에 푸짐하게 담겼다.
그 위에 검붉은 소스가 주르륵 뿌려졌다.
잘익은 고기 냄새도 냄새지만 소스의 냄새도 침이 고일 정도로 향이 예술이었다.
육즙과 잘 어우러져 그 맛이 기가막혔다.
“맛있어?”
리사의 물음에 리안은 우물우물 고기를 씹으면서 웃음지었다.
“행복해.”
리사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잘 먹으니까 예쁘다.”
한편,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케스티리아는 리안을 향해 끝없이 의문을 품었다.
‘도대체 뭐지? 나오는 요리마다 하나도 안남기고 다 먹고 있어. 관리를 안하는 건가?’
리안은 근육질 몸매다.
근육질 몸매를 유지하려면 식단 관리는 필수일 터.
그러나 리안은 기름이 잔뜩 낀 고기며 술이며 가리지 않고 먹어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맛있는 요리들을 앞에 두고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가릴 것은 가리며 소식중이던 케스티리아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나 먹고 있는데 몸매가 유지된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의 머리로는 도무지 답이 안나온다.
리안에게 완벽한 몸매를 만든 비결을 물어보고 싶은 욕구만 더욱 솟구쳤다.
하지만 그것은 리사에게 큰 죄를 짓는거나 마찬가지.
주인의 낭군과 사적인 대화를 주고 받는 것 자체가 불충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케스티리아는 답답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네번째 코스로는 리사를 성공케 만들어준 다양한 감자 요리가 나왔다.
달콤한 치즈가 발라진 튀김 감자.
베이컨 감자 수프.
감자를 전처럼 얇게 부친 뢰스티.
등등.
감자 요리가 나오자 리사는 말이 많아졌다.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요리들을 개발하게 되었는지 리안에게 상세히 설명해줬다.
이야기를 다 들은 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훌륭해.” 
그는 속으로 감탄했다.
‘리사가 개발한 감자 요리는 전부 지구의 현대 요리와 똑같아. 대단해. 시대를 앞서 가는 여자야.’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리사를 보면 이해할 수 없을때가 종종 있고…… 혹시 일반인과 생각하는게 달라서 창의적인가?’
다섯번째 코스로는 푸짐한 해산물 요리가 나왔다.
굴, 게, 조개, 랍스터를 통째로 쪄서 매콤한 국물과 함께 큰 쟁반에 담겨져 나왔다.
하나씩 까먹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그쯤되자 배도 불러서 음식에 손이 덜 갔다.
그야말로 배 터지게 먹었다.
마지막 코스때는 하녀들이 우르르 몰려와 접시가 어지러이 널린 식탁을 깨끗이 치우고 식탁보도 새 것으로 갈았다.
그뒤 설탕에 절인 과일, 잘게 으깬 아몬드, 사탕 같은 후식이 나왔다.
위에 부담없는 음식들 위주라 배부른 상태에서도 먹기가 수월했다.
웃음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자유롭게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리안은 리사를 상대하다가 에밀리가 끼어들면 에밀리와 대화를 나누고, 다시 리사가 말을 걸면 리사와 또 대화를 나누고, 그러다 에밀리가 끼어들면 다시 에밀리와 대화를 나누었다.
무한 반복이었다.
폰타나는 인간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알아듣는척 미소만 지었고, 케스티리아는 내내 과묵했고, 식탁 밑에서 개처럼 받아 먹고 있던 허수는 필요할때만 뭘 해달라고 말을 걸었고, 향단이는 어른들이 중요한 얘기하는가보다 하고 우물우물 씹으면서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돌쇠는 눈에 불이 꺼진 채 어느새 잠들어버렸다.
얼마 후, 즐거운 식사시간이 끝나자 모두 각자의 공간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허수는 정원에 설치한 슬라임 집에 들어갔다.
리안에게 선물 받은 집인데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다.
폰타나는 방을 배정 받았다.
저택에 60개가 넘는 방이 있었는데, 리사는 그중 가장 큰 방을 폰타나에게 내줬다.
폰타나의 덩치를 생각하면 천장은 높고 침대도 커야했다.
향단이는 리안과 자고 싶어했으나 리사가 제지했다.
그러자 향단이는 한쪽뺨을 부풀리며 잠시 시위를 했다.
“르리!”
“떼써도 안돼. 리안은 내꺼야.”
“르리리!”
“안돼. 돌아가.”
“르리!”
“응, 안돼.”
“뿌루르!”
리사가 단호히 막아서자 향단이는 결국 뚱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어쩔 수 없이 폰타나와 한방에서 자게 됐다.
리안은 리사의 서재에 들렸다가 신혼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손에 학자 플리바르의 일기장이 쥐어져 있었다.
자기전에 잠깐 읽고 잘 생각이었다.
“후, 배불러.”
그는 방에 들어와서 곧장 침대에 드러누웠다.
신혼방이랍시고 제국에서 가장 비싼 침대를 사다놨는지 너무 푹신하고 편했다.
거기에 배까지 부르니 나른했다.
졸음이 스물스물 쏟아졌지만 깨기 위해 따귀를 때렸다.
아직 잠을 자선 안된다.
세 명의 하녀가 방안을 부저런히 왔다갔다 하는 중이었다.
“흘리지 않게 조심해.”
“네.”
하녀들은 리사의 목욕을 준비하느라 고급스러운 목욕통을 가져다 놓고 그안에 따뜻한 물을 부었다.
이윽고 준비가 끝나자 리사는 거리낌없이 옷을 벗었다.
알몸으로 민트잎이 둥둥 떠다니는 목욕통 안에 들어갔다.
‘안부끄러운가.’
리안은 자신이 방안에 있음에도 하녀들의 목욕시중을 받는 리사의 모습이 신기했다.
아울러 그만큼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의미로도 보여서 그녀에게 고마웠다.
‘이따가 열심히 봉사해야겠어.’
오늘밤 침대 위에서 벌어질 일을 상상하며 그는 손에 쥐고 있던 플리바르의 일기장을 펴고 엎드려 누웠다.
“뭐 보는거야?”
목욕통 안에 앉아있던 리사가 물었다.
리안은 일기장에 시선을 둔 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플리바르의 일기장.”
“그래?”
이후 리사는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잠자코 하녀들의 목욕시중을 받았고, 리안은 옆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어가며 일기장을 들여다봤다.
-부그티어력 35년 2월 1일. 
우연히 마계에서만 자란다는 키르리니 라는 채소의 종자를 손에 넣었다.
키워 보고 싶다.
늦은 저녁 갑자기 전하가 사람을 보내왔다.
급히 입궁을 하니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하가 권하는 술을 잔뜩 퍼마셨다.
오랜만에 전하가 전하로 보였다.
기분 좋은 밤이었다.
-부그티어력 35년 2월 2일. 
이른 아침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든지 두 시간도 채 안됐는데 궁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전하께서 시키신 일이 있어 오후가 되기전까지 해놔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전하는 사탄이다 fuck!
오늘 숙취로 죽을뻔했다.
리안은 피식 웃었다.
“이젠 대놓고 욕하는구만.”
다시 집중해서 읽었다.
-부그티어력 35년 2월 10일. 
키르리니는 인간이 사는 땅에선 못자란다.
필히 마의 기운이 깃든 땅에서만 재배해야 하는데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재배기간이 한달 밖에 안되고 뿌리부터 잎까지 버릴게 없는 키르리니의 재배만 성공한다면 우리 인류는 식량사정이 한결 좋아질 것이다.
리안의 눈이 커졌다.
‘마의 기운이 깃든 땅? 내가 원하는 거잖아!’
그는 더욱 몰입해서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옆에서 리사가 흰 거품이 묻은 자기 몸을 봐달라고 부르는데도 그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부그티어력 35년 2월 16일. 
마의 기운이 깃든 땅을 만들 수 있는 자를 모집한 끝에 한 여자가 찾아왔다.
마법사인 그녀는 자신을 트리길라 라고 소개했다.
남자들을 홀리고 다닐 것처럼 요염하게 생긴 여자였다.
나도 잠깐 정신이 나갔었지만 얼른 이성을 되찾았다.
어떤식으로 연구할지 그녀의 비전을 들었고 제법 납득이 갔다.
트리길라와 계약을 맺었다.
선수금을 달라고 해서 그녀에게 500부그를 줬다.
-부그티어력 35년 2월 24일. 
트리길라가 찾아와서 연구비가 부족하다며 지원을 요구했다.
1000부그를 보태줬다.
오늘 그녀의 실험실에 구경가봤더니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마음이 흡족했다.
-부그티어력 35년 3월 2일. 
트리길라가 찾아왔다.
실험실 인건비가 부족하다며 또 지원을 요구했다.
처음 세웠던 예산에서 크게 벗어나는듯했지만 아낌없이 500부그를 지원했다.
돈을 받은 트리길라는 내게 윙크를 했다.
심장이 멎는줄 알았다.
그것은 과연 뭐였을까?
혹시 나한테 관심이 있는걸까?
마음이 싱숭생숭한 밤이다.
-부그티어력 35년 3월 10일. 
트리길라가 찾아왔다.
실험실 장비를 사야한다며 5000부그를 요청해왔다.
5000부그는 꽤 큰 금액이었다.
지금까지 나간 돈이 모두 내 사비다.
한참을 망설이자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녀의 진정성 어린 따스한 말을 듣고 감동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가슴도 만지게 해줬다.
아아 너무도 상냥한 트리길라……!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여자요!
지출은 컸지만 손과 마음이 행복한 하루다.
집에 와서 트리길라의 가슴을 만진 손으로 한 발 뽑았다.
한 번도 부족해서 두 번 뽑았다.
두 번째 사정때도 양이 많이 나왔다.
트리길라는 정말이지 정자를 가득 고이게 하는 섹시한 여자다.
리안은 픽 웃었다.
‘고대에도 자위를 했네.’
일기장이 들어있던 목재상자에 봉인마법을 걸어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왕 욕하는 얘기에 외설적인 얘기까지 막 갈겨놓은거 보면 확실히 일기장은 일기장이다.
후대에 공개되면 치욕스러울 내용들로 가득 차 있으니 숨기고 싶은게 당연.
다음장을 읽어봤다.
-부그티어력 35년 3월 16일. 
트리길라가 갑자기 10000부그를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사악하고 못된 영주에게 채무를 지고 있어 갚아야한단다.
나는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흔쾌히 돈을 빌려주었다.
눈물을 흘리던 트리길라는 고맙다며 내 뺨에 뽀뽀를 했다.
날아갈 것 같았다.
“음?”
몰입해서 읽고 있던 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여자 사기꾼 아니야? 크게 한탕하고 튈 것 같은데?”
서둘러 다음장을 읽어보았다.
-부그티어력 35년 4월 1일. 
2주가 지나도록 트리길라한테 연락이 없어 오늘 그녀의 실험실을 찾아갔다.
실험실은 장비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녀와 같이 일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놀란 마음에 황급히 거리로 나와 그녀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이 글을 쓴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나한테 호감있는듯 했던 그녀가 어째서 말도 없이 떠난걸까?
내가 고백을 안해서 서운했던 것일까?
빨리 고백을 했어야 했는데 이런 멍청이 같으니……
리안은 답답해서 가슴을 쳤다.
“으이구 멍청아, 돈 먹고 튄거야.”
한숨을 내쉬며 다음장을 읽어보았다.
-부그티어력 35년 6월 15일. 
트리길라가 사라진지 두 달째.
짧지만 아름답던 사랑이 떠나갔다.
하지만 마가 깃든 땅을 만드는 연구는 계속 되어야했다.
트리길라여, 당신을 찾으러 다니지 못하는 용기없는 나를 용서해주시오.
-부그티어력 35년 6월 17일. 
공고를 한지 이틀만에 한 마법사가 찾아왔다.
이름이 세스라는 미모의 여인이었다.
난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녀는 완벽한 나의 이상형!
처음 마주했을때 가슴이 떨렸다.
그녀를 이대로 떠나보내면 하늘이 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즉시 계약을 체결했다.
우린 운명이 아닐까?
-부그티어력 35년 6월 18일. 
세스는 마가 깃든 땅을 만드는건 아주 쉬운일이라고 말했다.
마왕의 형상을 한 밀랍 인형과,
악마의 피 10밀리리터,
젊은 처녀의 소변 200밀리리터,
죽은 마물의 심장 한 개,
살아있는 두꺼비 한 마리,
악령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기도문.
위에 나열한 것들을 항아리에 넣고 하룻밤동안 땅속에 묻어두면, 다음날 항아리속에 액체로된 마의 기운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 액체를 땅에 뿌리면 마의 기운이 땅을 잠식해 금세 마가 깃든다고 한다.
“진짜……?”
리안은 일기장에 적힌 내용이 이번만큼은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일말의 기대를 품고 서둘러 다음장으로 넘겼다.
“리안?”
때마침 목욕을 끝마친 리사가 알몸인 채 침대 위로 올라왔다.
민트잎으로 목욕을 해서 그런지 그녀가 곁에 눕자 시원한 향기가 났다.
“아까부터 불렀는데 왜 대답 안해? 안아줘.”
“오우, 잠시만 잠시만! 중요한 대목이야. 이것만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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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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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마.”
“안돼, 돌려줘.”
그녀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
리안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내밀었다.
“중요한 부분이라니까.”
“목욕하면 줄게.”
“목욕?”
리안은 침대밖 목욕통을 돌아봤다.
하녀들이 리사가 씻은 물을 양동이에 퍼담는중이었다.
급히 말했다.
“물 갈지 말고 그대로 두세요.”
“새 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인 님.”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그 물로 할게요.”
“내가 씻은 물에서 하고 싶어?”
“응.”
“잘 생각했어. 마음에 쏙 든다.”
리사가 흡족하게 웃는다.
리안은 단지 빨리 씻고 싶었을 뿐이다.
일기장의 다음을 보기 위해.
“혼자 할테니까 모두 나가서 쉬세요.”
“네, 주인 님.”
“네.”
“네, 알겠습니다.”
하녀들을 모두 내보낸 후 리안은 옷을 벗고 목욕통 안으로 들어갔다.
물이 미지근했다.
“후우……”
물속에 몸을 담그자 절로 나른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리사는 알몸으로 침대에 누운 채 플리바르의 일기장을 뒤적이고 있었다.
자신은 읽을 수가 없다며 투덜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리안은 목을 뒤로 젖히고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
이 넓은 방.
화려한 가구들.
예쁜 아내(?)
등등.
값비싼 것들이 하루아침에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맨날 거지생활만 해왔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믿겨지지 않는다.
갑자기 신세가 달라지니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의 물건을 빌려쓰는 느낌이랄까.
리사와 결혼할지 말지 아직 정하지도 않았다.
리안의 우선 순위는 오드리아를 만나는게 먼저였고, 리사와의 결혼은 그 다음이었다.
그의 진심을 말하면 사실 리사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자신이 거두어야했다.
자신이 곁에 없으면 사람들을 죽이겠다는데 어떡해.
그녀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 연인처럼 어울려주는 중이었다.
이러다 함께 속세를 떠나는거지.
리사를 데리고 오드리아가 있는 곳으로 떠날 생각이다.
리사는 얼마전 분명히 약속했다.
“따라가다뇨? 어디를요?”
“네 고향. 나도 데려가.”
“남들이 부러워 하는 백작 작위도 포기해야해요. 영지도 없어지는데 괜찮으세요?”
“난 너만 있으면 돼.”
함께 떠나겠다는 약속.
이 말을 믿고 리안은 그녀를 받아들였다.
‘근데 여자들이랑 놀다보면 공주 님한테 죄송한 마음이 들어……’
나혼자만 즐거워도 되는지.
리안은 오드리아만 떠올리면 으레 미안해지며 외로운 그녀를 결코 홀로 둘 수 없다는 강한 책임감이 솟구쳤다.
그렇기에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여지를 둘 수가 없는 것이다.
하루빨리 오드리아에게 달려가고픈 마음뿐이다.
직업이 농부가 아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손님이 그의 진짜 직업.
여자들도 눈에 안들어왔다.
모니카와 리사는…… 어쩌다보니 깊은 관계가 되었을뿐, 리안의 마음속에 가장 첫 번째 여자는 언제나 오드리아였다.
여자를 사귀는 것?
‘안돼, 공주 님한테 허락 받아야 해.’
결혼?
‘큰일나. 공주 님께서 아시면 놀라실거야. 반드시 허락 받아야 해. 소, 솔직히 공주 님이 반대하면서 자기랑 결혼하자고 말씀해주시면 좋겠어……’
이상 리안은 이렇게 생각하건만, 리사는 그와 달리 아직 식을 올리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저택에 신혼방을 마련해놨다.
현재 이 방이 그 신혼방.
리안은 적당히 어울려주고 있을뿐 앞으로도 계속 아스트리드 가와 훅스 가를 오가며 언젠가 떠날 손님처럼 살아갈 예정이었다.
여기가 내 집이라기 보다는 잠시 신세지는 곳처럼 느껴졌고, 리사가 아무리 편히 지내라고 해도 시종들에게 꼬박꼬박 존대말을 하는등 편히 지낼 수가 없었다.
내게 아니니까.
나는 언젠가 사라질테니까.
이십분 후.
리사는 팔에 머리를 괴고 옆으로 누운 채 싱긋 웃었다.
“페니스까지 박박 씻었어?”
“응.”
리안은 목욕통에서 나와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았다.
머리카락도 탁탁 털었다.
몸을 완전히 말리고 나서 침대 위로 기어올라갔다.
자그맣게 솟아오른 리사의 유방에 뽀뽀를 해주고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당신 입술에서 상큼한 맛 난다.”
“좋아?”
“맛있어.”리안이 쩝쩝대며 입술을 떼는데 리사의 두 팔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포개졌다.
그대로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입술을 맞대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에 비례해서 리안의 페니스가 살며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리안은 의지의 사나이!
벌거벗은 미인을 앞에 두고도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마가 깃든 땅을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일기장을 빨리 보고 싶었다.
“끝.”
적당히 했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떼는데 리사가 자꾸 입술을 들이댔다.
“으음…… 또 해줘.”
“리사,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일기장 보고 싶어서 그러지?”
“아냐, 아냐. 잠깐만 한줄만 볼게 있어서.”
“보면서 애무해 그럼.”
리사는 반듯하게 드러누웠다.
그녀의 봉긋 솟은 가슴과 잘록한 허리,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골반까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가히 슬렌더 몸매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마른듯하면서도 늘씬하게 잘빠졌다.
가랑이 사이 볼록하게 솟은 둔덕도 싱그러운 새순 마냥 희고 앙증 맞았다.
둔덕을 덮은 금빛 수풀 모양도 예쁘고.
“기분 좋게 해줄테니까 눈 감고 있어.”
“응.”
리사는 미소 띤 얼굴로 눈을 감았다.
리안은 한 손에 일기장을 들고 펼쳤다.
그리고 그의 입술은 리사의 발가락에서부터 발목, 정강이, 무릎, 허벅지, 둔덕, 배꼽순으로 부드럽게 입맞춤을 하며 위로 올라갔다.
-부그티어력 35년 6월 19일. 
재료를 구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마왕의 형상을 한 밀랍 인형이야 돈 주고 맡겼고, 
악마의 피는 악마사냥꾼을 고용했다.
나흘쯤 걸리다고 했다.
죽은 마물의 심장은 시장에서 손쉽게 구했다.
두꺼비는 직접 잡았다.
잡다가 연못에 빠져서 고생했다. 제기랄.
악령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기도문.
글쓰는거야 어렵지 않다.
그러나 단 하나.
젊은 처녀의 소변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세스에게 물어보니 젊은 처녀라는게 젊은 아가씨가 아니라 순결을 간직한 처녀란다.
아쉽게도 내 주위는 온통 사내놈들 아니면 나이든 여자들뿐이다.
-부그티어력 35년 6월 20일. 
결국 처녀도 돈으로 샀다.
카시 라는 여자의 소변을 받았다.
나흘 후가 기대된다.
“쭈웁.”
리안의 시선은 일기장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그의 입술은 리사의 가슴 부근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여성의 유두를 빠는 행위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시각적으로 자극적이고, 툭 튀어나와 있어 딴짓을 하며 가지고 놀기에도 딱 좋았다.
입술로 쪽쪽 빨고, 혀로 깨끗이 닦듯이 핥아 주고, 이빨로 살짝 깨물어주기도 하고.
부드럽고 섬세한 혀놀림에 유두는 금세 예민해지며 꼿꼿이 일어섰다.
“아……”
눈을 감고 있던 리사의 입에서 종종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조금씩 쾌락에 젖어드는 중이었다.
동시에 곧 벌어질 리안의 세찬 돌진을 기대하고 있었다.
-부그티어력 35년 6월 25일. 
카시라는 여자는 사기꾼이었다.
그녀는 처녀가 아니었고 그로인해 실험은 실패했다.
돈만 날렸다.
병사들을 데리고 카시를 수소문했으나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부그티어력 35년 6월 26일. 
새로운 여자를 구했다.
이번엔 부모까지 와서 처녀라고 장담하니 확실했다.
밀랍인형이 완성되는대로 즉시 실험을 재개할 계획이다.
-부그티어력 35년 6월 30일. 
실험이 성공했다!
세스의 말이 맞았다!
대략 1평 정도 크기의 암흑땅을 만들어냈다!
이는 실로 놀라운 업적이다!
내 덕분에 인류는 한 걸음 더 진보할 것이다!
‘오…… 성공했다고?’
어느새 리사의 가랑이 사이에 입술을 파묻고 있던 리안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혀는 볼록 튀어나온 음핵을 희롱하고 있었다.
그곳을 열심히 핥아대면서 시선은 여전히 일기장에 향해 있었다.
‘내일 날이 밝는대로 당장 해봐야겠어.’
성관계없이 라카제트를 부를 방법을 드디어 알아냈다.
성공만한다면 앞으로 간편하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고맙다 플리바르!’
괜스레 신이났다.
이 기쁨을 리사와 나누고 싶었다.
즉시 일기장을 접고 침대 밖으로 내던졌다.
바닥에 툭 떨어졌다.
리안은 침대에 앉아서 리사의 가랑이를 더욱 벌렸다.
갈라진 입구에서 애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을 뻗어 음핵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다.
그러자 하반신을 꿈틀대며 그녀의 입밖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미 몇 십분을 혼자 애무 받은 그녀의 몸은 한껏 달아올라있었다.
건들기만 해도 흐느적거렸다.
“으읏……”
손가락 두 개를 질내에 쑤셔넣자 리사의 엉덩이가 움찔거렸다.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이 손가락을 휘감았다.
리안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그녀의 질을 자극했다.
“흣…… 음……”
그녀의 교성은 격렬하지 않고 점잖은 편에 속했으나 느끼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애액의 양이 많아졌다.
깊게 들어갔다 나오는 손가락이 금세 흠뻑 젖었다.
침대 위로 흘러내릴 정도로 느끼고 있었다.
나중에는 낯뜨거운 소리까지 자아냈다.
찌걱! 찌걱!
“히읏…… 아앙.”
리사는 연거푸 신음을 흘렸으나 반응하는 것치고는 몸이 무척이나 얌전했다.
표정도 담담했다.
흐트러진 머리를 자주 쓸어올리며 몇 차례 숨을 크게 내쉴뿐이었다.
그외에는 가끔씩 움찔하면서 낮은 신음을 흘리는 게 다였다.
리안은 갸웃거렸다.
‘참 희한한 여자야.’
인내심이 강한건가?
모니카였다면 머리와 허리를 미친듯이 비틀어대며 좋다고 비명을 질러댔을 것이다.
하지만 리사는 그렇지 않다.
쾌감을 담담하게 이겨내고 있었다.
왠지 사람이 아닌 예쁘장한 인형이랑 하는 기분이 든다.
솔직히 리안은 팍팍 신음을 내주고 좋다고 몸부림 치는 스타일이 좋았다.
그러나 리사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꼬추로 공격해야겠어.’
리안은 격렬하게 쑤시던 손을 빼고 그녀의 입술에 페니스를 들이밀었다.
양볼이 붉게 물들어있던 리사가 슬그머니 웃는다.
별말없이 상체를 일으켜 세우더니 입을 벌리고 귀두를 머금었다.
따스한 입안 감촉이 살살 부드럽게 휘감겨온다.
리안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신음을 흘렸다.
“오우……”
“쥬븝.”
그녀의 입이 작아서 뿌리까지 삼키진 못했으나 중간정도까지 반복해서 왔다갔다하는 느낌이 황홀했다.
빠는 힘이 강했다. 
고개를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도 꽤나 자극적이었다.
무려 백작 님께서 빨아주시고 계신다.
그것도 젊고 아름다운 미모의 백작 님께서!
이 얼마나 대단한 광경인가!
그렇게 한참을 입으로 봉사받다가 그녀의 질내에 성기를 삽입했다.
후배위 자세.
양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곧장 허리를 흔들어댔다.
찰싹! 찰싹!
“히읏…… 흐읏……”
그녀의 입에서는 여전히 흐느껴 우는듯한 가녀린 신음만 들려왔다.
처음엔 자신이 못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냥 리사의 성격이었다.
그녀와 관계를 가진지 세 번째만에 깨달았다.
리사는 조용한 섹스 스타일을 가진 여자였다.
리안은 크게 반응하길 바랐지만, 익숙해지니 조용한 것도 나름 매력있게 보였다.
그러나 돌연 흥을 식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리사가 갑자기 박힌 채로 기어가더니 바닥에 던져놓았던 플리바르의 일기장을 집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침대 위에다 책을 펼쳐놓고 보는 그녀.
뒤에서 그녀의 양허리를 붙잡고 열심히 박아대던 리안은 그 모습이 조금 뜬금없게 느껴졌다.
“뭐야, 이와중에 책보는거야?”
“나도 읽고 싶은데, 흐읏, 못 읽어서 아쉽네. 아앙.”
리사는 계속 책장을 넘기며 딴짓을 했고 리안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뒀다.
리사는 원래 독특한 여자다.
‘리사라면…… 저럴 수 있지.’
자라온 과정이 궁금할 정도로 그녀의 행동이 정말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그러고 보니 나도 아까 책보면서 애무했잖아?’
혹시 그 일의 복수인가?
‘생각해보니 나도 문제가 있군.’
뭐 아무래도 좋다.
복수든 뭐든 그녀가 무엇을 하든 자신은 열심히 할일만 하면 그만.
자신이 할일이란 바로 그녀를 만족시켜주는 일!
‘책 따위 못보게 해주마!’
그 순간 허리를 튕기는 속도가 매서울 정도로 빨라졌다.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지!’
철썩! 철썩! 철썩!
오직 박는 일밖에 모르는 짐승처럼 힘차게 박아댔다.
철썩! 철썩! 철썩! 철썩! 철썩!
리사의 몸 전체의 피부가 출렁거렸다.
기다란 금빛 머리카락도 세차게 휘날렸다.
자비란 없었다.
“크흣! 리, 리안!”
리안은 흡족했다.
드디어 목소리가 커졌다.
리사는 어쩔줄 몰라하며 책을 덮고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그, 그만햇! 으읏!”
“아픈거면 그만할게!”
“하으응! 싸, 쌀것……!”
쌀 것 같다고?
오르가즘?
그렇게 알아들은 리안은 더욱 기를 쓰고 덤볐다.
철썩! 철썩! 철썩! 철썩!
그 역시 순식간에 사정감이 휘몰아쳤다.
“으윽, 리사!”
“히읏!”
리사가 먼저 골반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흘러내리던 가랑비가 소나기로 변해 줄줄 흘러내렸다.
예고도 없이 벌써 사정하고 만것이다.
리안이 간발의 차로 늦었지만 그도 모든 것을 쏟아냈다.
“나온다!”
소나기가 그치고 흰눈이 흘러내렸다.
두 성기가 맞닿은 부분에서 진득하게 흘러나오는 정액들.
리안은 사정을 마치고도 리사의 몸속을 몇 차례나 더 찔렀다.
“후우……”
“아……”
리사의 몸이 침대 위에 축 늘어졌다.
사정의 여운이 남아 몸을 움찔움찔 떨어댔다.
리안은 페니스를 빼냈다.
사정을 했음에도 그의 물건은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단단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또 하고 싶었다.
아니, 또 해야했다.
이 지칠줄 모르는 정력은 도대체 어디서 솟아나는 것일까?
리안은 지구에 있을때 하루 3번 자위가 최고 기록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간신히 세운 기록.
하루 1번이 적당했다. 
그 이상은 솔직히 몸에 무리가 갔다.
허나 마왕의 힘을 흡수한 뒤로 정력이 강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사정 한 번으로는 만족을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리안은 아직 배가 고팠다.
“리사.”
리안은 침대 위에 쓰러진 리사를 내려다보며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더 할 수 있지?”
“또……?”
약간 지쳐보이는 리사.
그런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며 해맑게 미소지었다.
“응.”
이내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지며 달콤한 키스가 길게 이어졌다.
그날밤, 신혼방의 촛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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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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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
퀸즈가든.
중년 대신 한 명이 황후 바야트를 찾아왔다.
“황후마마, 지난 낭송회때 일어난 사고의 조사를 끝마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중년 대신은 황후에게 보고서를 건넸다.
황후는 보고서를 잠시 쳐다보다가 글자가 잘 안보인다며 말로 설명을 부탁했다.
중년 대신은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클로드 경과 세자르 경의 객기로 벌어진 일입니다.”
그는 리안의 이름도 꺼냈다.
“훅스 가에서 지내는 김리안이라는 자가 나서서 곰을 망치로 때려잡았습니다. 그자 덕분에 큰 인명피해가 날뻔한 일을 무사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호오, 그래요? 용기있는 사람이군요. 어느 가문 출신이죠?”
“우리 제국민이 아닌 외국인 신분이며 배경은 특출난게 없어보입니다. 현재 김리안 상회라는 농산물 도매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농산물 도매 가게라니요……? 그럼 상인이 곰을 때려잡았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아니…… 우리 기사 님들은 뭘하고 있었나요?”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미리 대비를 못해 출동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황후는 손을 저었다.
“내 말은 그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 우리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가문의 자제들이 있었을 것 아닌가요? 다들 뭐했답니까?”
“그게……”
중년 대신은 대답을 주저하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모두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다같이 곰을 잡으려……”
황후가 말을 잘랐다.
“겁쟁이처럼 도망만 쳤나보군요.”
“……”
“한심합니다. 이 나라의 미래가 어찌되려고 그러는지.”
황후는 쯧쯧 혀를 찼다.
잠시 다른 곳을 보며 고개를 흔들던 그녀가 다시금 중년대신을 돌아봤다.
“그런데 훅스 가문이라면 작년에 남편과 사별한 메건 부인의 가문 아닌가요?”
“예, 그렇습니다 마마.”
“그 김리안이라는 상인은 훅스 가문과 어떤 인연이 있길래 그곳에서 신세를 지는거죠?”
“송구하옵니다 황후마마. 그 부분은 사건과 별개의 일이라 미처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을 주시면 이틀내로 조사를 마치겠습니다.”
“김리안을 만나봤나요?”
“조사는 귀족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건 당사자를 놔두고 귀족들만 조사했다고요?”
“송구하옵니다. 귀족의 체면이 걸려있는 문제다 보니 부득이하게 김리안을 제외해야 했습니다.”
“잘난 귀족들이 한낱 상인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창피할만도 하지요.”
황후 바야트는 쓴소리를 한뒤 손에 쥔 보고서를 내려다봤다.
리안의 간단한 신상 정보가 적혀 있었다.
“이십대 초반으로 보인다라.”
그녀가 흐뭇하게 웃었다.
“우리 모두를 구한 이 김리안이라는 젊은이에게 상을 내립시다.”
“훅스 가에 사례금을 보내는 정도로 마무리 짓는게 어떠신지요?”
황후가 다그치듯 말했다.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그러면…… 따로 생각해두신게 있으십니까?”
“그가 구해준 귀족이 어디 한 둘이어야지요. 아니, 단순히 귀족만 구한게 아닙니다. 그는 여러 가문의 생명을 구한 겁니다. 만약 곰에게 누군가 살해 당했다면 그 가문은 그날부로 대가 끊겼을테니까요.”
당시 사냥의 뜰에는 각 가문의 미래를 책임질 귀족 자제들로 북적거렸다.
“많은 가문이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황후가 미소지었다.
“궁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김리안의 작위 수여식을 엽시다.”
“네?”
중년 대신은 눈을 깜빡거렸다.
“작위 수여식이라 함은……”
“남작 작위를 주고 싶지만 그러면 주위에서 말들이 나올듯 하고 기사 정도가 좋겠죠?”
“기사요?”
중년 대신은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예, 기사 작위 정도가 가장 무난할 듯싶습니다. 고결하고 아름다우신 황후마마께서 직접 하사하시는 기사 작위니만큼 김리안이란 자도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부러워 할테지요. 황제폐하께서 하사하시는 기사 작위를 받아본 사람은 많아도 황후마마께서 직접 하신건 거의 27년만이니까요.”
황후가 미소지었다.
“그동안 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어야 말이죠. 오랜만에 나타났네요.”
일반 귀족에게 기사 작위를 받으면 단순히 기사(Knight)지만, 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으면 왕의 기사(Royal Knight) 라 칭한다.
여기서 여왕에게 하사받으면 좀 더 특별하게 불리는데, 여왕의 기사(Queen's Knight)란 호칭을 받을 수 있다.
남성 기사들 사이에서는 왕의 기사보다 여왕의 기사를 더 선호했다.
여왕의 기사란 호칭에 그들이 원하는 낭만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여왕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겠다는 각오.
우아한 여왕과 은밀히 사랑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여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기사라는 자부심까지.
여왕의 기사란 호칭은 여왕과 기사의 관계를 끈끈하게 맺어주는 연결고리이며 기사의 용기를 북돋워주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위의 사항은 젊고 아름다운 왕비에게나 해당할뿐, 바야트 황후는 할머니다.
나이 든 황후를 흠모할 기사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럼 그런줄 알고 빠른 시일내에 작위 수여식을 엽시다.”
“네, 황후마마. 신속하고 착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중년 대신이 떠난 후 황후는 의자에 앉아 김리안을 떠올렸다.
“어떻게 곰을 망치로 때려잡을 생각을 했지?”
그녀는 인자하게 웃었다.
“재밌는 젊은이야.”
조만간 황궁에 오면 사탕이나 몇 개 쥐어주면서 대화를 나눠봐야겠다.
* * *
“그가 마가 깃든 땅을 만들었다고?”
리사의 서재.
리안은 리사와 대화중이었다.
리사는 플리바르의 일기장에 적힌 내용을 알고 싶어했고, 리안은 자신이 읽은 내용들을 숨김 없이 말했다.
“마왕의 형상을 한 밀랍 인형, 악마의 피 10밀리리터, 젊은 처녀의 소변 200밀리리터, 죽은 마물의 심장 한 개, 살아있는 두꺼비 한 마리, 령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기도문이 필요해. 나도 만들어 볼 생각이야.”
“마가 깃든 땅을 만들어서 어디에 쓰게?”
“완성되면 알려줄게. 그때까지 기다려줘.”
“난 궁금한건 못참는데.”
리사는 미소 띤 얼굴로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나중에 꼭 말해줘야해.”
“응. 그리고 난 지금부터 재료들을 구하러 다닐거야. 밖에 나갔다올게.”
“따라가고 싶은데 황궁에 들어가봐야돼서 아쉽네.”
“혼자 갔다올게. 얼마 안걸려.”
리안이 서재를 나서려 하자 그녀가 불러세웠다.
“잠깐 기다려.”
“응?”
“처녀의 소변과 악마의 피는 어디서 구하게?”
“그건……”
처녀의 소변은 모니카의 친구들 중에 처녀가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모니카를 찾아가서 부탁해볼 생각이었고, 악마의 피는 에밀리에게 양해를 구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서큐버스다.
“우선 악마의 피는 에밀리 씨에게 부탁해볼까 하는데 그래도 될까?”
“나도 마침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어.”
리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그럼 처녀의 소변은?”
“소변은 글쎄. 지인들한테 물어볼 생각인데 주변에 처녀가 있으려나.”
“난 안되겠지?”
“리사는…… 응. 순결을 잃지 않아야 하나봐.”
리안은 괜히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리사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처녀의 소변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다려봐.”
잠시 후 에밀리와 케스티리아가 불려와 두 사람 앞에 나란히 섰다.
“에밀리, 리안이 악마의 피가 필요하대. 조금만 빼줘.”
“예에?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에밀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리안을 바라봤다.
리안은 미안하다며 사정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그녀가 얄궂은 미소를 지었다.
“피를 빼면 기운이 허약해질텐데 음기는 뭐로 채우죠? 아~ 서큐버스의 음기를 채우려면 젊은 남자가 필요한데 누가 안도와주려나~ 사례로 돈은 필요없는데~”
콱!
“꺄악!”
에밀리가 난데없이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리사가 그녀의 발을 밟았기 때문이다.
리사는 팔짱을 낀 채 에밀리를 쳐다봤다.
“김리안 유혹하지마. 다음엔 발로 안끝날줄 알아.”
에밀리는 찌푸린 얼굴로 아픈 발등을 어루만졌다.
“누가 진짜로 그러겠데요? 그냥 해본 소리였단 말이에요.”
“피를 빼고 나면 오후에 쉬게 해줄게. 그걸로 끝내.”
“부족해요.”
“충분해.”
리사 덕분에 악마의 피 문제는 간단히 해결됐다.
그런 와중에 에밀리는 리사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을때 리안에게 몰래 손짓을 했다.
리안의 하반신을 가리키고 손바닥을 내미는 시늉.
마치 돈을 달라는듯이.
‘무슨 뜻이지?’
리안은 잠깐 고민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서큐버스의 생리를 잘 아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
리안은 즉시 에밀리에게 손짓으로 응답했다.
먼저 자신을 가리켰다.
‘내……’
하반신을 가리키며 부산하게 손을 움직였다.
‘꼬추에서 나온 정액을 달라고요?’
에밀리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리안은 당황스럽다는듯 양손을 펼쳐보였다.
그러자 에밀리가 피를 빼면 아프다는 시늉을 했다.
‘난감한데.’
리안은 머리를 두드리며 고민해보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에밀리는 양손을 합장하며 제발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리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케스티리아를 마주보고 서있었다.
“케스티리아, 너도 해줄게 있어.”
“말씀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하는 케스티리아.
리사는 일절 망설임없이 말했다.
“네 소변이 필요해.”
“소, 소변이요?”
케스티리아는 눈을 휘둥그레떴다.
“200밀리리터의 양이 필요하니 두 번정도는 싸야할거야. 물주머니에 담아서 갖다줘.”
“리, 리사 님!”
케스티리아의 하얀 얼굴이 부끄러움에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리안을 흘깃 보고는 리사를 쳐다봤다.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더듬었다.
“어, 어째서 제, 그, 그게 필요하신 겁니까?”
“넌 남자랑 한번도 못자본 처녀잖아. 처녀의 소변이 필요해.”
리사는 아무 거리낌없이 케스티리아의 개인정보를 낱낱이 까발렸다.
그리고 별일 아니라는듯 표정이 담담했다.
“해줄거지?”
리안은 옆에서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민망해서 못들은척 딴청을 피웠다.
에밀리는 그를 쫓아다니며 열심히 몸짓으로 정액을 계속 요구했다.
케스티리아는 귀까지 새빨개진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리사 님께서 원하신다면…… 부끄럽지만 준비하겠습니다.”
“부끄러워 하지마. 사람은 누구나 소변을 봐. 나도 하루에 두 번씩은 싸.”
“리, 리사 님! 어, 언제까지 가져다 드리면 되, 됩니까?”
“지금도 괜찮고, 아무튼 오늘 내로 가능하잖아?”
“현재 소, 소변이 마렵지 않아서……”
“물을 많이 마시면 잘 나올거야. 지금 가서 마셔봐.”
“네……”
“소변은 잘 담아서 리안에게 갖다 줘. 새지 않도록.”
“리, 리안 님에게요?!”
케스티리아는 경악에 찬 눈빛으로 리안을 돌아봤다.
“어, 어째서 리안 님에게……?”
“실험해볼게 있대.”
“그, 저, 저기, 리, 리안 님께만은……”
꼭 리안이라서가 아니라 남자에게 자신의 소변을 건네주는 것이 내키지 않아보였다.
그녀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수치심이 번져가는 것을 느낀 리안은 황급히 달려와서 떠들었다.
“이상한 곳에 안쓸거예요! 그리고 답례는 반드시 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
그녀가 심히 부끄러워하며 말이 없자 리안은 재차 말했다.
“혹시 나한테 원하는거 없어요? 답례로 어떤 것이든 들어주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원하는거요?”
솔깃했는지 케스티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원하는 거? 리안 님에게 원하는 거라면……’
평소 가슴 깊이 담아두었던 어떤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의 운동 비법과 식단.
극히 사적이라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들.
문득 케스티리아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리사 님의 허락하에 리안 님과 편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해.’
수치심으로 물들었던 그녀의 얼굴이 한결 가벼워졌다.
결심을 굳힌 그녀는 리안을 향해 목례했다.
“가서 물 마시고 오겠습니다. 한 시간 정도만 기다려주십시오.”
리안이 머쓱하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답례, 원합니다.”
“아, 물론이죠. 원하는걸 말씀해보세요.”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편한대로 하세요.”
옆에서 듣고 있던 리사가 미소지었다.
“잘 생각했어 케스티리아. 단 답례는 리안이 해주기 쉬운걸로 요구해.”
“부담갖지 않으시도록 간단한걸로 요청드리겠습니다.”
“응.”
이로써 제일 골치 아팠던 처녀의 소변과 악마의 피가 한방에 해결됐다.
이후 리안은 나머지 재료들을 구하러 저택을 나섰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하루종일 발품을 팔았다.
마왕의 형상을 한 밀랍 인형과 죽은 마물의 심장은 기괴한 느낌이 드는 어떤 오래된 상점에서 간신히 구매했다.
살아있는 두꺼비는 직접 잡았다.
악령이 깃들기를 바란다는 기도문도 직접 썼다.
그렇게 재료들을 한데 모아 새로 산 항아리에 넣었다.
에밀리의 피도 넣었고, 케스티리아의 소변도 함께 넣었다.
그날 저녁, 오천평땅에 항아리를 파묻었다.
내일 악마의 기운이 모여있기를 기대하면서 리안은 마음이 즐거웠다.
만세를 하듯 두 팔을 올리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마가 깃든 땅이여, 어서 나에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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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79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그 모습을 멀리서 성녀 안네로제가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수작이지……?”
땅에 무언가를 묻었다.
이 땅에 저주를 가져오려는 것일까?
“황도의 기운을 조금씩 갉아먹으려는 속셈이 아닐까……?”
직접 가서 확인해보고 싶었으나, 이거야 원.
뜻밖의 인물이 개입되어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리사 아스트리드 백작!
황실자문단을 맡고 있는 그녀까지 마왕과 한편이었을줄이야.
현재 아스트리드 가문에서 나온 스무명의 여기사들이 오천평땅을 철통같이 지키는중이었다.
‘아스트리드 가문과 훅스 가문 말고 마왕과 엮인 가문이 또 있을지 몰라. 일단 계속 지켜봐야겠어.’
안네로제는 의지를 불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관련자들을 샅샅이 찾아내서 한꺼번에 일망타진 해주리라.’
리안은 케스티리아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내일 아침에 오겠습니다. 피곤하시겠지만 잘 부탁합니다.” 
“짐승의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할테니 걱정마십시오.”
엊그제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나타났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새 항아리를 지킬 사람들이 필요했고, 리사에게 부탁해 케스티리아와 휘하 기사들로 하여금 항아리를 지키게 했다.
“수고하십시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리안은 곧바로 폰타나의 등위에 올라탔다.
케스티리아와 그녀의 기사들을 오천평 땅에 남겨두고 홀로 훅스 가로 떠났다.
“어서오세요, 리안 씨.”
“안주무셨습니까?”
훅스 가에 돌아오자 메건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취침전이라 그런지 늘 말아올리고 다니던 머리를 풀어 길게 늘어놓고 있었다.
생머리를 하니까 한층 더 젊어보였다.
“낮에 황궁에서 사람이 다녀갔습니다.”
“무슨 일로요?”
황궁이란 소리에 뭔가 잘못한게 있나 벌컥 겁부터 났다.
그쪽이랑 엮일 일이 전혀 없었으니까.
메건 부인이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황후마마께서 기사 작위를 하사하실 예정이니 사흘 후에 궁으로 들어와 달랍니다.”
“저를요? 저한테 작위를 준다고요?”
그녀가 밝게 웃어보였다.
“예, 여기 황궁의 서신이 있으니 읽어보세요. 지난번 낭송회때 곰을 잡은 일을 아주 좋게 봐주신 모양입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얼떨떨했다.
이거 기뻐해야하나?
작위를 받아야하나 말아야하나.
언젠가 이 땅을 떠날 생각만 하고 있던 리안에게는 이래저래 엮이는 게 조금은 달갑지 않았다.
재산, 추억, 인맥이 늘어날수록 미련도 같이 늘어날 것이다.
이래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사 작위를 받으면 활동하기가 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앞으로 농사를 짓는데 있어 지금 신분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공짜로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받아야겠다.
기사 작위로 얻는 이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메건 부인이 황후의 인장이 찍힌 서신을 내밀었다.
“자세한건 이걸 읽어봐요. 시간이 많이 늦어서 난 이만 방에 들어가보겠습니다.”
“네, 편히 주무십시오.”
메건 부인은 뒤돌아 떠나려다 다시 리안을 바라봤다.
“사흘 후에 있을 작위 수여식에 참석하려면 나도 빨리 옷을 준비해야겠네요.”
웃으며 말을 남기고 그녀는 방으로 들어갔다.
홀로 거실에 남겨진 리안은 손에 쥐고 있는 서신을 내려다봤다.
‘내가 기사?’
두근거렸다.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 * *
다음날.
이른 아침.
리안은 폰타나를 타고 오천평땅으로 향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군요. 항아리는 무사합니다.”
케스티리아는 피곤한 기색이 다분했으나 예의와 품위를 잃지 않았다.
“다들 고생하시는데 늦을 수 없죠.”
리안은 여기사들을 향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훅스 가에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있으니 빨리 가서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케스티리아를 비롯해 여기사들이 훅스 가로 떠나는 동안, 리안은 부푼 기대감을 안고 땅에 묻은 항아리를 꺼내 열어봤다.
검고 푸른 어둠의 기운이 물결치듯 넘실거렸다.
그의 입가에 커다란 미소가 피어났다.
‘성공했다!’
급히 뚜껑을 닫았다.
이후 리안은 황도로 길을 떠났다.
소금 포대를 옮기기 쉽게 라카제트를 모니카의 창고에서 부를 생각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황도로 가는 길.
리안이나 폰타나나,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이 되자 달리는 속도는 말보다 빨랐다.
“어제도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아침부터 황도까지 가게 해서 미안해. 조금만 참아줘.”
폰타나는 붉은 머리카락이 휘날리는걸 방지하기 위해서 한복을 입을때 하는 머리 마냥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
정면을 바라보고 열심히 뛰는 그녀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신경쓰지마. 그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달릴 수 있다.”
그녀가 덧붙였다.
“난 그대의 발이야. 발은 주인이 원하면 불평없이 가야해.”
리안을 태우고 뛰는게 농사를 지을때보다 몇 배는 낫다고, 폰타나는 속으로 기뻤다.
오천평땅에서 하루종일 지낼땐 리안이 하루나 며칠 후에 돌아와서 심심했는데, 안장을 갖추고 난뒤 이렇게 항상 붙어다니니 리안과 대화를 자주 나눌 수 있고 그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도 알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다.
“어디든 빠르게 데려다줄테니까 부담없이 타고 다녀줘.”
“고마워.”
리안은 그녀의 마음씨에 감동하며 앞으로 손을 뻗어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등이나 어깨는 고삐를 고정하기 위해 장구류를 차고 있어 만질 곳이 그곳뿐이었다.
젖가슴 아래 배꼽 부근.
인간의 상체와 말의 하체로 나누어지는 경계선의 바로 윗부분이다.
아랫배가 조금 나와 있어 약간 볼록하지만 나름 평평하고 옷밖에 없어서 만지기 편했다.
폰타나도 거길 만져주면 좋아한다.
손길이 따뜻해서 좋다나 뭐라나.
갑자기 폰타나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느끼는듯한 신음을 토해냈다.
“흐으응, 그대여. 빨리 가야한다면서. 집중하게 해줘.”
“오우 미안.”
리안은 즉시 손을 떼고 고삐를 잡았다.
같은 시각.
리안과 케스티리아의 부대가 떠난지 한시간쯤 지난 오천평땅 인근 농지.
“쿠울……”
아침 일찍 밭일을 하러나온 두 농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로브를 입고 있는 어떤 여인이 후드를 뒤집어쓰고 논바닥에서 자고 있는게 아닌가!
“노숙자인가?”
“이 쌀쌀한 날씨에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여기서 퍼질러 잔데?”
“남자야? 여자야?”
“여자 같은데? 이봐요. 어이.”
농부 한명이 괭이로 툭툭 어깨를 건드리자 노숙자는 잠깐 잠꼬대를 하더니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헉!”
“아이고야.”
“흐미.”
농부들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노숙자의 정체는 바로 성녀 안네로제.
그녀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 마왕은요!?”
“마왕이라니? 당신 누구요?”
“아니 젊은 처자씩이나 되면서 왜 여기서 자? 안추워?”
“어머!”
안네로제는 급히 후드를 눌러썼다.
자리에서 냉큼 일어섰다.
“두, 두 분께 여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쁜 일이 있어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두 농부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별일 아니라 생각하며 웃어 넘겼다.
안네로제는 오천평땅을 지나치며 텅 비어 있는 광경을 보고 혀를 찼다.
‘마왕이 암흑마법으로 재운걸까? 맞아, 마왕이 손을 쓴거야!’
그녀는 스스로 잠들었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마왕탓으로 돌렸다.
어쨌거나 잠든 바람에 중요한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어제 항아리를 묻었던 장소는 이미 파헤쳐진 상태.
마왕 김리안은 항아리를 들고 어디로 사라졌을까.
항아리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잠시 방심했을뿐, 절대 놓치지 않을겁니다.”
새삼 각오를 다지며 훅스 가로 빠르게 이동했다.
저택과 가까워질수록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순간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몰려왔다.
꼬르륵.
꼬르륵.
뱃속이 난리를 쳤다.
성큼성큼 걷던 안네로제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배를 문질렀다.
“배고파……”
마왕이고 뭐고 우선 밥부터 먹고 일을 시작해야겠다.
그런데 밥을 어디서 구한담.
주위는 온통 논밭.
민가라고는 훅스 가의 저택뿐.
안네로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비상식량이라도 챙겨올걸……”
그녀는 우울했다.
* * *
폰타나가 열심히 달려준 덕분에 황도에 빠르게 도착했다.
중간에 아스트리드 가에 들려 마차에 탄 리사와 함께 모니카의 창고가 있는 파크 포인트 동네로 향했다.
“밥 먹으니까 딱 오네.”
길안내를 하던 리안이 리사의 마차보다 먼저 창고에 도착하자 모니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곁에 야네트와 히메나도 보였다.
세 사람은 창고 한켠에 적당히 생활공간을 만들어놓고 요즘 합숙을 하며 지내는중이었다.
각자 집이 멀다보니 창고에서 지내는 게 여러모로 편리했다.
폰타나의 등위에서 내리자 야네트가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회장 님, 잘 지냈어?”
리안은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예, 그럭저럭. 야네트 씨도 잘 지내셨죠?”
“못지냈어. 요즘 왜 이렇게 회장 님 얼굴 보기가 힘들어? 몸이 쑤시더라고.”
그녀가 뜻모를 윙크를 날렸다.
리안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히메나를 돌아봤다.
히메나는 몸을 배배꼬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그때…… 회식 이후로 처음이네요 회장 님.”
“좀 오래 못왔죠? 앞으로 자주 올 수 있도록 해볼게요.”
“저…… 야네트한테 얘기…… 들었어요. 어머, 어떡해. 풉.”
그녀는 뭐가 좋은지 저혼자 실실거렸다.
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얘기요?”
“야네트 저년이랑 회식날밤에……”
그때 모니카가 끼어들었다.
“우리끼리 뭔 인사야. 치워, 치워. 보여준다는게 뭐야?”
“아, 잠깐만.”
때마침 뒤쫓아오던 리사의 마차가 도착했다.
리사가 마차에서 내리자, 귀족이 부담스러운 야네트와 히메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안녕하세요, 백작 님.”
모니카는 짐짓 공손한 웃음을 지으며 리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리사의 표정이 영 시원찮다.
그녀는 사람을 내려다보듯 거만하게 모니카를 바라봤다.
“너, 김리안 좋아해?”
“네? 그, 그럴리가요.”
“왜 자꾸 붙어다녀?”
“오해마세요!”
모니카는 두 손을 저었다.
“일로 만나는 사이일 뿐이에요. 하하하…… 회장 님한테 아무 생각없어요.”
“그래? 잘하고 있네.”
“뭐해 두 사람? 빨리 가자.”
리안이 손짓했다.
그는 옆구리에 항아리를 끼고 곧장 텅빈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리사와 모니카도 그를 뒤따랐다.
안에 들어서자 리안이 말했다.
“두 사람한테 미리 말해두는데, 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 마음 단단히 먹고 있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절대 위험하지 않아. 어떤게 나와도 당황하지마. 내가 알아서할테니까 차분하게 지켜보도록 해.”
당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리안을 바라보는 두 아가씨.
모니카가 물었다.
“항아리에서 무서운게 나오는거야?”
“아니.”
리사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어서 해봐.”
“응.”
리안은 두 아가씨로부터 다섯 발자국 떨어져서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든 악마의 기운을 바닥에 약간 쏟아내고 도로 뚜껑을 닫았다.
바닥에 떨어진 악마의 기운은 둥글게 번져나갔다.
이내 퍼지는게 멈췄다.
악마의 기운을 주먹만큼 쏟았을뿐인데 대략 2평 정도의 범위가 악마의 기운으로 물들었다.
“준비해. 시작할게.”
리안은 반지를 끼고 속으로 외쳤다.
‘라카제트!’
잠시 잠잠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서 라카제트와 우마족 소녀가 천천히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리안은 두 주먹을 쥐며 쾌재를 불렀다.
“성공이야, 성공!”
모니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뭔일 있어?”
리사도 의아하게 쳐다봤다.
“왜 그래?”
“두 사람 혹시…… 저들이 안보여?”
“안보이는데?”
“안보여.”
아참 그렇지.
라카제트는 평범한 인간에게는 안보인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아…… 그럼 할 수 없네. 일단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
이윽고 지상 위로 올라온 라카제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늘은 낮에 부르셨군요. 여긴 어디입니까?”
“웨르타뉴 제국의 수도 한가운데야. 자는데 방해한건 아니지?”
“호오라. 제국의 수도군요.”
라카제트는 턱을 어루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잠을 자지 않습니다. 상인에게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누구랑 말하는거야?”
모니카가 리안의 정면을 바라보며 갸웃거렸다.
리안이 앞을 손짓했다.
“지금 내 앞에 악마 상인이 있어.”
“악마 상인? 그게 뭔데? 진짜 악마를 말하는거야?”
“응.”
“숙녀분들을 굳이 초대하신 이유가?”
“앞으로 당신을 부를때 공간제약 안받고 편할 것 같아서.”
“음. 그러시다면.”
라카제트는 즉각 마법을 해제하며 리사와 모니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에 남색빛이 감도는 라카제트와 귀엽고 통통하게 생긴 우마족 소녀가 불쑥 나타나자 리사와 모니카가 흠칫 거렸다.
“저, 저게 뭐야!?”
모니카가 당황한 눈빛으로 펄쩍 뛰었다.
반면에 리사는 피식 웃었다.
“재밌네.”
라카제트는 그런 리사와 모니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다 모니카에게 시선이 멈췄다.
“숙녀분께는 왠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이 듭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녀를 향해 정중히 인사를 건네며 덧붙였다.
“옷 입고 계신 모습은 처음 보는군요.”
모니카가 화들짝 놀란다.
“옷 입고 계신 모습……? 야! 언제 훔쳐봤어! 당신 누구야?”
“안심해주시길, 모포를 덮고 주무시는 모습만 봐왔습니다.”
“모, 모포? 어디서?”
리안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자자, 한가하게 잡담할때가 아니야. 빨리 끝내자고.”
“가만 있어봐. 이놈이 내 알몸을 봤다잖아! 난 저놈을 본적이 없는데!”
“아냐, 아냐. 그런거 아니야. 내가 이따가 다 설명해줄게 잠시 조용해봐.”
모니카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모두에게 라카제트를 간단히 소개했다.
“…이상 사연은 대충 이래. 라카제트는 마족이지만 인간에게 악의 없는 그저 상인일뿐이야.”
리안은 설명을 끝마치고 나서 라카제트를 돌아봤다.
“소금 가져왔지?”
“물론입니다. 이 안에 두면 되겠습니까?”
“응.”
리안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금 200kg씩 총 240포대.
현재 15골드 밖에 없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다 줄까?
리안은 내심 큰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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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뭐했지
80회
*경고*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조아라에서 지원하는 정상적인 경로의 뷰어가 아닙니다.해당 방식으로 조아라에서 제공하는 작품을 무단으로 추출하는 것에 사용하거나 협조할 경우, 저작권법에 위배되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실 수 있으니,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작품감상을 부탁드립니다.(5년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밭농사 준비, 농지 구매의 시간***
에스메랄다 신전.
새벽에 잠을 자는 바람에 리안을 놓쳐버린 안네로제는 실의에 빠져 신전으로 돌아왔다.
걸신들린 사람처럼 식사를 마치고,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후 방에서 짧게 휴식을 취했다.
“이만 나가볼까.”
적당히 쉬었다 생각하고 방을 나서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성녀 님, 튀르난 입니다.”
“무슨 일이죠?”
“황실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안네로제는 문을 열어주었다.
튀르난 대사제가 웃으며 편지를 건넸다.
“내일 행사가 있는 모양입니다.”
“행사요?”
안네로제는 편지를 받으며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잠시라도 시선을 뗐다가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마왕 김리안을 철저히 감시해야할때에 발목을 붙잡는 기분이었다.
“하필 이때……”
“곤란한 사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아무튼 알겠습니다.”
“참석하시게 되면 저희도 준비를 해야하니 보시고 말씀 부탁드립니다.”
“네.”
튀르난 대사제가 돌아간 후 안네로제는 편지를 뜯어서 읽어보았다.
내일 황후의 주최로 퀸즈가든에서 기사 작위 수여식이 열리니, 성녀도 참석해서 신입 기사에게 축복을 내려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읽어내려가던 안네로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황후께서 기, 김리안한테 기사 작위를 수여하신다니?”
맙소사!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황후께서 어찌하여 김리안을?
훅스 가, 아스트리드 가에 이어 그 다음엔 황후라니!
이 정도면 마왕 김리안이 어디까지 마수를 뻗쳤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설마 황족들마저……?”
성녀는 현실을 부정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안돼…… 황족들까지 마왕에게 조종당하면 이 나라에 희망이 없어져…… 안돼……!”
절망감.
기운이 쭉 빠졌다.
황족들이 마왕과 한편이라면 현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황족들이 마음만 먹으면 성녀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최악의 상황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성녀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일쯤이야 정치와 모략이 난무하는 세계에 사는 그들에게는 일도 아닐터.
“에스메랄다 님이시여, 저를 가여이 여겨 이 위기를 극복할 힘을 주소서.”
창밖을 보며 기도하는 와중에 재차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안네로제 님.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그녀가 이끄는 에스메랄다 성기사단 소속의 기사였다.
문을 열어주자 그가 복도에 서서 말했다.
“일전에 시키신대로 김리안 상회의 동태를 살펴보는 중입니다. 최근 사람을 모집하는 것 같더군요.”
그가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광장 게시판에 붙여놨길래 떼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시지요.”
“수고하셨습니다. 여신님의 가호가 있길.”
“편히 쉬십시오.”
기사가 돌아간 후 안네로제는 책상에 앉아 종이를 읽어보았다.
구인공고문이었다.
-김리안 상회에서 성실히 일하실 2기 점원을 모집합니다!
채용인원 : 2명
자격: 남녀불문하고 낫질 잘하는 분, 체력이 좋은 분, 나물 다듬기에 일가견이 있는 분.
‘낫질?’
낫질 하니까 괜스레 오래전에 싸웠던 악령 레이스의 거대한 사슬낫이 떠올랐다.
안네로제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어쩌면…… 평범한 구인공고를 가장한 암호문일지도 몰라.”
난 속지 않아.
모든걸 다 알고 있다 마왕아.
성녀는 한동안 책상에 앉아서 구인공고문속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려 애를 썼다.
그러나 속뜻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포기했다.
“암호문이 아니라면…… 선량한 사람을 모집해서 악에 물들게 하려는 수작……?”
아아.
이제야 알겠다.
이런식으로 세력을 넓히려는 속셈이구나.
“만약 그런거라면 막아야해.”
성녀는 거듭 고심한 결과 이윽고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전에 누가 그랬던가.
사자를 잡으려면 사자 소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세상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성녀 안네로제는 본인이 직접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김리안 상회에 취직해서 그들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샅샅이 염탐해봐야겠어.”
그럴려면 정체를 숨기는 것이 필수.
그들에게 얼굴이 알려져서는 결코 안된다.
따라서 김리안의 기사 작위 수여식에는 불참으로 결정.
“빛은 어둠에 지지 않아.”
안네로제는 새삼 각오를 다지며 구인공고문에 적힌 김리안 상회의 주소를 옮겨적었다.
그날 오후, 에스메랄다 신전측에서는 황궁으로 성녀의 불참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안네로제는 평민으로 보이기 위해 일반인 옷을 사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 * *
라카제트에게 소금을 받은 이후 리안은 기사 작위 수여식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틀간 맨몸으로 황궁에 들어가 작위 수여식을 대비해 수없이 예행 연습을 하고, 수여식 전 황후와의 면담을 위해 궁중 예절까지 머리에서 쥐가 날 정도로 배웠다.
단기간에 많은걸 익히는게 무척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황궁을 드나드는 귀족들 구경하는 재미라든지, 화려한 건물을 보는 재미, 그리고 겨우 이틀이지만 이틀동안 황궁을 제집 드나들듯 하니까 마치 고위 귀족이라도 된듯한 착각속에서 아주 우쭐한 기분으로 다니는 것도 나름 즐거웠다.
그리하여 마침내 수여식 당일이 되었다.
훅스 가는 새벽부터 부산스러웠다.
메건 부인 치장하랴, 모니카는 평소에 입지도 않던 드레스를 챙겨 입느라 부산을 떨어댔다.
그러한 와중에 리안은 어떠한 준비도 없이 바로, 자다 일어난 모습 그대로 황실 마차를 타고 황궁으로 향했다.
오늘 그의 치장은 황실에서 도맡아줄 계획이었다.
‘후, 긴장돼.’
리안이 궁으로 들어간지 세 시간쯤 지났을 무렵, 황후가 머무는 퀸즈가든 앞은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메건 부인은 절친한 헬렌 부인, 안젤라 부인과 함께 오늘 수여식이 열리는 퀸즈 그랜드 홀에 들어섰다.
퀸즈 그랜드 홀은 퀸즈 가든 내에서 가장 큰 홀로 황후가 주최하는 공식 행사가 열리는 장소다.
낭송회가 열리는 무대형식의 퀸즈 홀보다 무려 세 배나 컸다.
안젤라 부인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탄성을 자아냈다.
“정말 오도가도 못 할정도로 붐비네요. 굉장해!”
헬렌 부인도 들뜬 기색으로 말했다.
“내가 방금 누구를 봤는줄 알아요? 황태자께서도 오셨어요!”
“혼자 오셨나요?”
“태자비도 같이 왔더군요.”
“버리고 오시지.”
“누가 들어요. 호호호, 웃겨라.”
아버지가 고령임에도 황제직을 유지하다보니 황태자의 나이가 어느새 중년을 넘어 노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 부인들 보다 나이가 조금 위, 비슷한 나이대다 보니 부인들은 어렸을때부터 지켜봐온 황태자가 반갑기 그지 없었다.
“옛날에는 더욱 멋지셨는데.”
“그때는 젊은 사람들중에서 최고의 미남이셨죠.”
헬렌 부인과 안젤라 부인이 옆에서 떠들어대는 동안 메건 부인은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헬렌 부인이 물었다.
“부인. 이 기쁜 날에 우울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러자 메건 부인이 작게 웃어보였다.
“잠을 잘 못 잤어요.”
“오늘 이것 때문에요?”
“제가 괜히 설레더군요.”
“그 마음 이해해요. 저도 그랬거든요.”
“저는 무엇보다 우리 가문에서 지내는 분이 잘 돼서 제 일처럼 기뻤답니다.”
“리안 씨 덕분에 훅스 가문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고 하더군요. 훅스 가문의 기운이 좋다면서.”
“어쩌다보니 덕을 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훅스 가에 손님으로 들어가면 인생이 핀다는 소문이 파다하겠어요. 당장 내일부터 수도의 모든 귀족들이 손님으로 들어오겠다고 난리치는거 아니에요?”
메건 부인이 손을 가리며 웃었다.
“아무도 안받아줄겁니다.”
안젤라 부인이 끼어들었다.
“리안 씨가 뭐랍디까? 기사 작위를 받는다니까 기뻐하든가요?”
“어제 저녁에 잠깐 같이 술을 마셨는데 무척 좋아라 하더군요. 대단히 기뻐보였습니다.”
헬렌 부인이 부러움 가득한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어머…… 나도 리안 씨 같은 멋진 남자랑 살고 싶어라. 매일 얼굴도 보고 얼마나 좋아.”
“벗은 몸도 자주 보고요!”
안젤라 부인의 말에 헬렌 부인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축제 같은 날이라 그런지 두 부인은 상당히 들떠보였다.
평소에는 하지도 않을 말들이 서슴없이 흘러나왔다.
“부인, 리안 씨의 알몸은 이미 봤겠죠? 우연히 지나치다 잠깐이라도 봤을거 아니에요?”
“무심코 방문을 열었더니 알몸으로 있었다든지? 풉! 몸이 어떻든가요?”
“못 봤습니다. 볼 생각도 없고요.”
메건 부인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며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나와 리안 씨를 가지고 무슨 상상들을 하는거야.’
그녀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리안 씨는 누가봐도 멋진 남자죠. 기사가 되었으니 그와 결혼하려는 레이디들이 많아질거예요. 어쩌면 곧 우리 훅스 가문을 떠날지도 모르고요.”
“아리따운 과부에게는 흥미가 없다든가요?”
“세상에나!”
헬렌 부인의 짓궂은 농담에 안젤라 부인이 깜짝 놀라는 척을 하더니 이내 깔깔 웃는다.
“리안 씨 힘 좋아 보이던데 만약 애인이면……! 어머머, 밤에 어떨지……!”
“그런 소리들 말아요.”
메건 부인이 다그치듯 말했다.
“리안 씨는 집안의 손님일뿐입니다. 이상한 말들은 하지마세요.”
그녀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으나 얼굴이 화끈 거렸다.
붉어진 얼굴을 보이기 싫어 손에 쥐고 있는 부채를 펼쳤다.
얼굴을 가리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원 이렇게 더워서야……”
홀안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그 시각, 김리안 상회의 임직원들도 퀸즈가든에 총출동해 있었다.
모니카를 필두로 야네트, 히메나 및 베라, 케이로스 부부와 그들의 두 아이들까지 모두 잘 차려입고 퀸즈 그랜드 홀로 향하는 길이었다.
“치마 밟지마 씨발년아 더러워지잖아.”
“니가 자꾸 옆으로 오니까 밟히잖아. 멀리 좀 꺼져.”
사람이 북적대는 정원을 거닐던 야네트와 히메나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모니카가 낄낄 웃어댔다.
“아이구 촌년들, 드레스 못 입어본 티 팍팍내내.”
히메나가 코웃음을 쳤다.
“너는 언제 입어나 봤냐? 맨날 바지나 쳐입고 다니는 년이.”
“그래도 내가 니들보다 낫다. 어디서 싸구려 드레스나 빌려입고들 온 주제에.”
“넌 그 드레스 니꺼야?”
“당연하지. 왜? 비싸보여?”
“조금.”
모니카는 제자리에서 한바퀴 빙글 돌며 드레스 자태를 뽐냈다.
“부럽냐 썅년들아?”
“돈 많다고 자랑하네 씨발년.”
“어차피 회장님 자지 빨아서 샀겠지.”
“내 돈으로 산거거든?”
옆에서 베라는 아이들을 교육시키느라 열심이었다.
“저 언니들 말은 귀담아 들으면 안돼. 욕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야.”
“엄마 팅구들 아니야?”
“친구들이지만 엄마는 욕 안해.”
“아빠능?”
“아빠도 바른 말만 하는 사람이란다.”
남편인 케이로스는 주변을 오가는 젊은 여귀족들을 넋놓고 쳐다보는 중이었다.
‘오오, 저리 아름다울 수가……!’
가는 내내 입이 닫히질 않았다.
뒤를 봐도 앞을 봐도 옆을 봐도 아름다운 여귀족들 천지!
눈이 호강!
그러다 베라한테 등짝을 얻어맞았다.
철썩!
“아야!”
“눈깔 파버리기 전에 애들이나 쳐봐요!”
남매가 울먹거렸다.
“엄마두 욕한다.”
“아빠 눈깔을 파버린데.”
“얘들아!”
무안해진 베라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아주 가끔씩 해. 가끔씩.”
얼마 후, 모니카 일행이 퀸즈 그랜드 홀에 이르렀을즈음 주위를 둘러보던 야네트가 불쑥 말했다.
“저년, 그년 아니야?”
“누구?”
“저쪽에 마차에서 내리는 년.”
모니카는 야네트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우아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중년 여성이 잘생긴 사내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서 내리는 중이었다.
그녀는 바로 업계 1위 대형상회의 주인 카일리 메디나.
모니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년이 왜 왔지?”
“회장 님하고 아는 사이 아냐?”
“둘이 만난적도 없어.”
“그럼 황실에서 초대했나?”
“상인을 뭐하러 초대해? 리안이랑 아무 상관없는데.”
“잘나가는 상인들만 초대했나 보지.”
야네트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모니카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김리안 상회의 축제날인데 다른 상회가 온다는게 말이 안돼. 우리가 초대한거면 몰라도.’
그때 히메나가 불쑥 그녀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말을 꺼냈다.
“혹시, 우리 회장 님이 바지사장이라는거 눈치 깐게 아닐까?”
야네트가 피식 웃었다.
“회장 님을 가로채갈 속셈이라고?”
“요근래 우리가 팔았던 순무랑 상추 맛을 보고 홀딱 반해버린걸지도 모르지. 어떤 놈이 재배한거야? 하면서 놀랐을줄 또 알아?”
“재배한 놈을 조사해봤더니 그게 김리안이라는 농부였다?”
모니카가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
“웃기지 말라고 해. 나한테 계약서가 있는 이상 리안은 아무데도 못가. 저년이 만약 그럴 생각이라면 꿈 깨는게 좋을걸?”
야네트가 히죽 거렸다.
“정신차려 이년아. 요즘 세상에 계약서가 무슨 소용이야. 등뒤에서 칼 꽂아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리면 그만인데.”
친구들이랍시고 있는게 전혀 도움이 안됐다.
히메나는 더욱 걱정될 말을 내뱉었다.
“이러다 모니카가 살해당하면 어쩌지? 쟤들은 돈이 많아서 사람 하나 죽이는건 일도 아닐텐데.”
“안돼. 모니카 죽으면 또 일자리 구해야 되잖아.”
“맞아, 맞아. 간신히 구한 일자리인데 잃으면 큰일나지.”
“니들은 일자리가 중요하냐?”
모니카는 열받아 하면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개년들, 좆같은 말만 씨부리네.”
한편, 그즈음 리안은 호화로운 실내에서 목욕을 끝마쳤다.
황실에서 준비한 예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욕조에서 나와 전신 거울 앞에 섰다.
몸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닦아드리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리안이 공손히 대답하자 이런 사내는 처음봤는지 시녀들이 쿡쿡 웃는다.
두 명의 시녀가 달라붙어서 그의 젖은 알몸을 열심히 닦아주었다.
‘음……’
리안은 남에게 시중을 받는게 참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이 격세지감을 느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농사나 짓던 놈이 황실에서 시녀들의 시중을 받다니…… 놀라워.’
리안은 바르게 선 채로 거울을 응시하며 오드리아를 떠올렸다.
‘좌우지간 공주 님한테 해줄 얘기가 또 하나 생겨서 기뻐. 내가 기사가 됐다는걸 아시면 안어울린다며 크게 웃으실거야.’
리안은 오드리아를 웃겨줄 소재거리가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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