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28

-18세
-보유 마력량: 6등급
-키 170cm
“응?”
뭐지?
분명히 다른 사진을 펼쳤는데 왜 이름이 같은 거지?
뭐, 동명이인일 수도 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사진을 닫고 또 다른 사진을 집어 들지만.
[제니퍼]
또다시 제니퍼였고.
[제니퍼]
[제니퍼]
[제니퍼]
내가 확인한 모든 사진의 이름은 전부 제니퍼였다.
내 의문을 자아내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름만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 적혀있는 신상 정보들까지 같은 사람들이 여럿 존재했기 때문이다.
키, 마력량, 이름, 심지어 외모까지.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차이는 사진에서 취하고 있는 포즈의 차이와 아주 미세한 디테일들 뿐이었다.
무언가 공장에서 만들어진 마네킹들을 카탈로그를 둘러보며 비교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뭔가 차이점이 있는 사람은 없나?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사진들을 찾아보던 그때, 처음으로 지금껏 봤던 제니퍼들과 다른 외모의 사진을 하나 찾아냈다.
드워프라도 되는 걸까?
엄청 키가 작네.
그런 생각으로 사진을 펼쳤지만, 사진에 적혀있는 내용은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는 듯했다.
[제니퍼]
-13세
-보유 마력량 10등급
-키 130cm
13살?
드워프처럼 선천적으로 키가 작은 게 아니야?
무언가 불쾌한 감각이 느껴져 나는 더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사진을 닫았다.
또 다른 사진에 손을 뻗으려던 그때, 나는 사진의 외부에 무언가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진들에도 전부 달려있는 걸 봐선 원래 버튼을 눌러야 하는 걸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버튼을 누르려던 그때.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잉간?”
“어, 어?”
어느새 돌아온 클라인이 아리스를 등에 태우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다.
“그게 그렇게 좋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일단 클라인이 준 거니까…….”
그 누가 자신의 연인이 다른 이성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걸 좋아하겠는가.
나는 황급히 그런 뜻이 아니었다 항변하려 했지만, 당연히 그런 내 변론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내가 허둥거리며 블랑카와 아리스의 눈총에서 벗어나려고 하던 그 순간, 나는 우연히 사진에 적혀있는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그러자.
“우왓?!”
번쩍, 하고 사진에서 빛이 터져 나오더니 사진에 찍혀있던 여자가 허공에서 나타난 것이다.
유령으로 느껴질 정도로 창백한 털과 피부를 지닌 켄타우로스였다.
갑작스러운 일에 놀란 블랑카와 아리스는 멈칫하고 이쪽을 바라봤다.
나 또한 갑작스럽게 나타난 켄타우로스에 놀랐기에 두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그때, 창백한 켄타우로스의 눈이 살포시 떠지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잠깐, 뭐 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블랑카가 눈살을 찌푸리며 켄타우로스를 막아서려 하지만, 켄타우로스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내 앞에서 뒤로 돌아 뒷발을 바닥에 붙였다.
그리고는 마치 타라는 듯 자신의 등을 툭툭 건드리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블랑카는 새빨개진 얼굴로 마력창을 생성해냈다.
“지금 도대체 뭐 하는……!”
블랑카가 금방이라도 마력창을 휘두를 것같이 흉흉한 눈빛으로 창백한 켄타우로스를 노려본 그때.
콰득.
무언가 깨물리는 소리가 나더니 켄타우로스의 모습이 형체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크르르…….”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에포나가 입에 갈가리 찢어진 사진 조각을 물고 내 앞에 종종걸음으로 걸어왔다.
찌릿, 내 얼굴을 쏘아보며 에포나는 바닥에 사진 조각을 뱉어두고 다시 종종걸음으로 집 안으로 사라졌다.
뭔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방금. 뭐였지……?”
“잉간.”
“어?”
하지만 블랑카는 모든 상황이 종료됐음에도 입을 삐죽 내밀고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단번에 나를 자신의 등 위로 끌어올려 태우고는 삐죽한 목소리로 내게 질문했다.
“아까, 좋았어?”
“좋았다니, 뭘…….”
“아. 그 여자애가 들이대니까 좋았냐고!”
“아니, 방금 그건 진짜 사람이 아니라 아마도…….”
“좋았어?”
나는 지금 이 순간, 다른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본능으로 직감하고 멋쩍게 웃으며 블랑카의 질문에 대답했어.
“아냐.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
“흐응.”
그렇지만 블랑카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나를 등에 태운 채로 종종걸음으로 사진이 든 상자로 다가가더니 아까 출현했던 여자와 비슷한 외모의 사진을 들고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털 색도 시체를 연상시키는 색이고, 키도 내가 더 크네.”
“어, 음. 그렇지.”
“그리고. 사이즈도 내가 더 크고…….”
“그럼. 당연하지.”
“잉간은 혹시 작은 게 더 좋은 거야?”
“누구든지 커다란 걸 더 좋아할걸?”
갑자기 시작된 품평회에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쓰게 웃으며 블랑카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누구든지 블랑카가 더 이쁘다고 생각할걸?”
“흥. 당연하지. 내가 바로 켄토르의 블랑카인데.”
내 정성 어린 대답에 기분이 좋아진 듯 보이는 블랑카는 나를 등 위에서 내리고 내게 찌릿 눈총을 보냈다.
“남은 건 죄다 버려버려. 알겠지?”
“물론이지. 응.”
나도 저걸 더 가지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저건 어디다가 써먹을 곳도 없잖아?
파랑이에게 먹이로 던져줄까?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
클라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클라인의 촉수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사진이 들어있는 상자를 꺼내려는 듯 상자에 촉수를 휘감기 시작했다.
“클라인.”
도대체 저걸 뭔 생각으로 준 건지 묻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라디오는 고장 난 상태다.
양 손을 클라인의 촉수를 향해 흔들며 인사를 건네자, 클라인의 촉수는 잠깐 멈칫하더니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고 상자를 들고 사라져 버렸다.
저렇게 다시 가져갈 거면 뭐하러 내게 선물한 걸까?
그리고 도대체 나에게 뭘 원하던 거였을까?
오늘은 도무지 클라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날이었다.
* * *
“수작이 뻔히 보이네요. 죄다.”
“다들 필사적이니까요.”
브리더들이 잉간이의 짝으로 생각하고 있는 인간들의 명단을 보자 클라인은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평범한 인간종은 아주 극소수, 전부 다 켄타우로스, 하피, 라미아들이다.
그래, 잉간이의 룸메이트들과 같은 품종들이다.
잉간이에게 매력적인 외형이 이미 검증된 상태니 그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걸까?
그런데 어째 브리더들이 준비한 품종들이 다 비슷해 보이네.
하긴, 브리더들이 사육하는 품종들이 다 거기서 거기니 당연한 걸까?
스노우 화이트, 선플라워, 블랙 펄…….
다들 애완인간 시장에서 언제나 인기 순위 1위를 다투는 품종들이다.
하긴, 거금을 들여서 비인기 품종을 개량하는 것보다 인기 품종을 개량하는 게 당연한 거겠지.
“다들 퀄리티가 엄청 높은데, 이 정도면 잉간이도 좋아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클라인은 잉간이가 이 아이들에 반응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만약 잉간이가 이 인간들에 반응한다면…….
그때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옆에서 잉간이에게 건네줄 마운팅 돌을 준비하고 있는 리퀴드 직원은 한 개체의 상세 정보를 확인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퀄리티 10이네요? 대박, 이 정도면 거의 드래곤 한 마리급 가격인데…….”
직원이 보고 감탄한 개체는 몇 안 되는 평범한 순수인간형 개체들 중 하나였다.
“거기에다가 이제 막 가임기에 접어든 개체네요. 나이가 적을수록 번식 확률이 높다던데, 완전 진심으로 참여하네요. 다들.”
짝을 짓는 과정에서 모체가 다쳐서 퀄리티의 하락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다들 어마어마한 결심을 한 셈이다.
저 정도의 퀄리티라면 시간 동결로 영구 보존하고 싶어질 정도일 텐데.
“평범한 인간형을 가져온 이유가 있네요…….”
“그런가 봐요.”
옆에서 직원이 들뜬 목소리로 뭐라 외치지만 클라인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간간이 맞장구만 칠 뿐이었다.
어차피 잉간이가 반응하지 않을 게 뻔한데 이게 무슨 시간 낭비야.
“자, 다 끝났어요.”
메이팅 돌의 준비가 끝난 걸까?
직원은 클라인에게 메이팅 돌들이 든 상자를 전달했고, 클라인은 한숨을 내쉬며 상자를 차원항 안으로 집어넣었다.
자고 있는 건지 잉간이는 바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잉간이가 나타났다.
처음 보는 물건에 흥미를 느낀 걸까?
잉간이와 룸메이트들은 상자에 든 내용물을 살피기 시작했다.
클라인은 긴장된 표정으로 잉간이의 반응을 주시했고, 잉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자 안의 사진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일정 이상 성적 흥분을 하거나, 표면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마운팅 돌이 출현할 텐데, 잉간이가 사진을 살펴보는 동안 단 한 번도 마운팅 돌이 출현하지 않았다.
직원이 관찰하고 있는 잉간이의 감정 변화에서도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그대로만 하면 돼.
잉간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클라인은 주먹을 불끈 쥐며 속으로 기뻐했다.
그때, 잉간이가 실수인지 사진 표면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대로 메이팅 돌이 나타나 잉간이에게 성적 유혹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수컷은 저렇게 직접적인 자극을 주면 어쩔 수 없이 반응을 할 텐데…….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유의미한 감정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 됐는데도 아무 변화가 없는 걸 보면 더 해도 아무 소용 없지 않을까요?”
“1분만 더 지켜보면…….”
“이미 약속한 시간은 모두 지났잖아요?”
“네…….”
직원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클라인의 말에 수긍했고, 클라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메이팅 돌을 회수하고자 촉수를 차원항 안으로 집어넣었다.
잉간이가 클라인의 촉수를 발견하고 클라인에게 반갑게 손을 흔든다.
클라인은 피식 웃으며 조심스럽게 잉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메이팅 돌들을 담은 상자를 꺼내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직원이 아직 전원을 끄지 않은 감지기에 반응이 들어왔다.
“어라?”
메이팅 돌들을 봐도 반응이 없던 것이, 잉간이가 클라인을 보자 바로 반응한 것이다.
물론, 급격한 감정 변화를 감지할 뿐이니 저게 잉간이가 클라인에게 성적 흥분을 느낀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단순히 클라인을 만나서 놀란 거겠지.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촉수를 빼냈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는 도저히 떨어질 줄을 몰랐다.
클라인은 당최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195화 [브라더즈] 브라더즈 채널을 소개합니다!
안녕.
좋아.
싫어.
지금까지 내가 확실하게 익혔다고 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다른 단어들은 아직은 헷갈리는 상태다.
조금 더 공부한다면 확실하게 익혔다고 할 수 있는 단어가 더 늘어나겠지만, 최근 클라인은 나와 대화할 시간도 없다는 듯 바빠 보였다.
얼마나 바쁜지 청소를 할 시간도 없는 걸까?
내가 보기에도 차원항 바깥의 공간에 먼지들이 가득 쌓이기 시작할 정도였다.
고원지대 말고도 다른 곳들을 탐험하기 시작하며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차원항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늘었는데, 그럴 때마다 클라인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밖으로 외출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돌아온 클라인을 마중 나가주고 싶지만, 하루 종일 차원항 바깥에서 클라인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대체 요즘 무슨 일을 하길래 이렇게 바쁜 걸까?
“흐음.”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먼지가 쌓일 때까지 방 안을 내버려 두다니.
좋아, 이렇게 방 안이 더러운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클라인이 바쁘니 내가 청소를 해주는 수밖에.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이 깨끗해져 있으면 좀 힘이 나지 않겠어?
정보 조작 연습을 하는 겸, 주위의 먼지들을 치워보자.
사방에 굴러다니는 먼지들을 잘 압축해서 벽돌 모양으로 가공해 한곳에 모아둔다.
원래는 이렇게 한 곳에만 모아둘 생각이었지만, 먼지 벽돌들이 가지런히 쌓여있는 모습을 보니 그냥 가만히 놔둘 수가 없다.
저걸로 차원문 주변에 건물을 만들면 꽤 그럴싸한 풍경이 되지 않을까?
환경미화가 꼭 쓰레기를 치우는 일인 건 아니니까.
집에 돌아온 클라인이 놀라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 * *
잉간이를 종마로 사용하겠다는 브리더들의 계획은 클라인이 브리더들의 요청을 거절하며 수포로 돌아갔다.
대부분의 브리더들은 타협하고 마력이 적은 인간들을 이용해서 교배를 진행시켰다.
그때처럼 억지스러운 수단을 사용해서 잉간이를 뺏으려 들진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클라인으로서는 매우 안심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클라인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나 싶었지만, 소란이 가라앉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너 때문이니까, 오늘은 네가 쏴라.”
“어?”
오랜만에 파인만의 호출을 받고 식당으로 간 클라인은 다짜고짜 자신 탓을 하는 파인만의 말에 당황했다.
나 때문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나?
“도대체 지구산 인간이 뭐라고 그렇게 난리인지, 원.”
클라인은 파인만의 투덜거림을 듣고 나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하긴, 클라인에게 퇴짜맞은 브리더들이 파인만에게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까진 지구산 인간을 채집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사람이니 말이다.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며 클라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 괜히 불똥이 튀게 했네.”
“네가 미안할 게 뭐 있냐? 대신 맛있는 거 사줄 텐데.”
“그래.”
클라인은 너스레를 떠는 파인만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파인만은 오늘 작정을 한 듯 클라인에게 투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애초에 정보 전쟁 때문에 못 간다고 해도 말을 듣지를 않더라. 덕분에 요 며칠간 전화만 받느라 의뢰도 못 받았어.”
“그 정도야?”
“전화를 꺼두면 직접 찾아오더라. 하, 승급이 코 앞인데…….”
“벌써 승급이야? 지금 네가 몇 급이지?”
“너랑 같은 4등급. 너도 3등급 권한을 얻을 수 있지 않냐? 지금 네 수입이면 걍 쌩마력으로 살 수 있을 텐데?”
“지금 이대로도 괜찮으니까. 굳이 무리해서 올리진 않으려고.”
“그러냐? 아무튼,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전화를 꺼두면 직접 찾아온다고?”
“그래. 그 사람들, 사람을 무슨 살육 병기로 생각한다니까? 다들 내가 무슨 전쟁터 한복판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아니야?”
“아니지! 애초에 네 의뢰를 받고 채집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쟁이 나서 가능했던 거지, 그 난리통을 뚫고 지나간 게 아니라고.”
파인만의 외침에 클라인은 자신이 처음으로 파인만에게 의뢰를 맡겼던 시점을 떠올렸다.
그땐 그냥 마력이 없는 인간형 생물이 서식한다는 최신 기사를 보고 파인만에게 부탁했을 뿐이었다.
파인만 또한 근방의 행성계들에 생명이 없나 조사하는 김에 지구산 인간 채집 의뢰를 맡은 것이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던 클라인은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저기. 근데 잉간이는 어떻게 데려온 거야?”
“응? 갑자기 그건 왜?”
“그냥. 궁금해져서.”
“그냥 언제나처럼 관측 간섭을 이용해서 데려왔지. 뭐. 마력하고 정보가 극도로 적어서 중간에 살짝 실수하긴 했지만.”
“실수?”
“원래 채집했던 건 50명 가까이 되거든. 근데, 중간에 실수로 관측 정보를 혼동해서…….”
그렇게 50명이 10명이 되었고, 그 10명 중 한 사람만 살아남아 내 곁에 왔다.
만약 그때 살아남은 게 잉간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클라인은 잠시 머리를 굴려보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잡념을 날려 보냈다.
잉간이가 잉간이었기에 잉간이가 되었다.
그런 가정은 아무 의미 없는 가정이다.
“아무튼. 그 사람들 쉽사리 포기할 생각은 아닌 모양이더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라도 지구산 인간을 구할 생각인 것 같던데?”
“다른 사람?”
“뭐, 마력하고 포인트만 많이 준다면 전쟁터 한복판을 뚫고 지나갈 사람은 많으니까. 실력만 됐다면 나도 의뢰를 받았을걸?”
지구산 인간을 확보하기 위해 말 그대로 마력 지랄을 할 생각이구나.
“생각해보니까, 지구인은 보호종이어서 모험가들이 채집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아?”
“그래서 지구까지 의뢰주를 호위해야 하더라. 나 혼자라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한데, 두 사람은 무리지.”
“아…….”
자기가 직접 가서 채집할 생각이란 거구나?
진짜 말 그대로 목숨을 지구산 인간에 건 셈이네.
“정보 전쟁이 곧 끝난다는 소식도 들려오던데, 내가 보기엔 브리더들이 힘을 쓴 거일걸?”
“에이, 설마?”
“원래는 한 반년 정도 더 운동화의 색이 뭔지 가지고 지랄을 더 떨었을 텐데 벌써 끝난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걸 봐선 100%지.”
“허어…… 근데, 그럼 결론이 어떻게 나는 거야? 그래서 그 운동화 색이 뭐래?”
“청금으로 결정될 분위기던데?”
“난 흰검인 줄 알았는데.”
자기 때문에 고생한 친구에게 맛있는 밥을 사고, 클라인은 곧장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정말로 다시 집순이가 되는 거야.
클라인은 그렇게 다짐했지만, 또다시 누군가가 클라인을 불러냈다.
이번에는 리퀴드였다.
리퀴드가 다급하게 회의를 요청한 만큼 무시할 수도 없어 클라인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리퀴드를 만나러 갔다.
“무슨 일이길래 전화로는 안 된다고 한 거예요?”
“클라인 님, 혹시 쥬튜브에 새로 개설된 채널 하나 보셨어요?”
“뭔데요?”
“브라더즈라고, 아세요?”
“아뇨. 처음 들어봐요.”
하루에 쥬튜브에 새로 올라오는 영상과 채널이 얼마나 되는데 그걸 다 알겠는가?
클라인이 고개를 내저으며 모른다고 하자, 직원은 굳은 표정으로 클라인에게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이건…….”
영상의 내용은 흔해 빠진 평범한 인간 관찰기와 다를 바 없었다.
도대체 이 영상이 어떻길래 리퀴드가 이렇게 난리를 피우는 거지?
클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깐 의문을 품었지만, 이내 영상의 이상한 점을 하나 깨달았다.
“마력이…….”
“없죠?”
영상에 나오는 인간에게선 마력이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잉간이처럼 말이다.
“설마, 지구산 인간인 거에요?”
“거의 100%죠. 마력이 없는 인간이 그렇게 흔할 리가요.”
클라인은 지구산 인간을 키우는 사람이 벌써 나타났다는 것에 살짝 놀라움을 느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지구의 위치는 모두에게 알려져 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나 지구산 인간을 채집할 수 있으니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닌데?
어째서 직접 얼굴을 보고 회의하자는 거지?
“근데, 이게 그렇게 큰일인 거에요? 제 영상을 베낀 것도 아닌데…….”
“이것도 한번 보시죠.”
직원이 또다시 재생한 영상은 채널의 소개 영상으로 보였다.
두 개의 머리를 지닌 마키나가 양손을 카메라를 향해 흔들며 인사한다.
아주 모범적이고, 별 이상할 게 없는 내용.
하지만 클라인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 하나 섞여 있었다.
“이 인간들은 지구산 인간이 아닌, 제가 직접 교배를 통해 만들어낸 인간들입니다!”
지구산 인간이 아니라 교배를 통해서 만들어낸 인간이라고?
그게 가능한 거야?
“품종명은…… 그래요. 헉슬리는 어떨까요?”
브라더즈가 자신이 만들어냈다 주장하는 인간들의 품종명을 명명하는 부분에서 영상이 멈추고, 직원은 진지한 눈빛으로 클라인을 바라보며 클라인의 의견을 물었다.
“저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리 봐도 지구산 인간인데…….”
마력이 없는 생물을 마력이 있는 생물들끼리 교배해서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물고기를 품종개량으로 만들어냈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클라인은 브라더즈가 직접 만들어낸 품종이라는 설명을 믿지 않았다.
그때, 클라인은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어째서 지구산 인간을 자기가 만들어낸 품종이라고 속이는 거지?
그런 짓을 한다고 얻는 이득이 뭐가 있다고?
클라인의 그런 의문은 브라더즈의 채널에 올라온 영상들을 보자 바로 해소되었다.
브라더즈의 채널의 영상 대부분은 마력이 없는 인간을 학대하다시피 다루거나, 여러 명의 인간들이 출현하는 영상이었기 때문이다.
보호종 지정을 받은 지구산 인간으로는 도저히 촬영할 수 없는 영상들.
하지만 지구산 인간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촬영해도 상관없는 영상들이다.
“일단 클라인 님은 지구산 인간이 맞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렇죠. 근데, 저 채널이 저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 거예요? 저 채널이 생겨서 제 구독자들이 전부 제 채널을 구독 취소하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같이 구독을 하면 했지, 내 채널을 더 보지 않는 일은 없을 거다.
클라인의 의문에 직원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살포시 진짜 이유를 털어놨다.
“어, 그게 말이죠. 클라인 님보다는 저희 본사하고 관련된 내용이어서…….”
“본사요?”
“우주 유일무이의 무마력 생물? 그런 느낌으로 캐릭터 상품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리고 그거 말고도 또…….”
“…….”
아하.
지금까지 만들어둔 굿즈를 전부 바꿔야 할 수도 있다, 뭐 그런 건가?
아냐, 그것만으로는 저 정도로 다급하진 않을 텐데…….
문득 클라인의 머릿속에 리퀴드 사가 최근에 했던 일이 하나 떠오르고, 클라인은 차가운 눈으로 직원을 찌릿 바라보며 질문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요, 잉간이 맞선권을 2차까지 팔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그게요. 일단 사업부의 판단으로는 향후 50년은…….”
“2차 맞선권을 팔았는데, 저 사람이 등장하니 전부 환불할 것 같아서 걱정이다. 이거죠?”
“……네.”
“하아. 그냥 환불 해주면 되잖아요?”
“저, 저희 부서가 지금까지 거둔 수익 중 가장 컸단 말이에요! 간신히 고개 좀 피나 했는데 없던 게 되어버리면 곤란하단 말이에요! 잘못하면 아예 사업 철수할 수도 있어요!”
솔직히 내 의견을 듣지도 않고 멋대로 맞선권을 판 게 쌤통이긴 한데, 그렇다고 아예 망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저한테 원하는 게 뭐에요?”
“아, 일단은 그냥 지구산 인간 같다고 말씀해주시기만 해도 괜찮아요.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거면 되는 거죠?”
“네. 따로 영상을 찍거나 그럴 필요는 없어요.”
이렇게 말하니 정말 안심하고 집에 돌아가도 괜찮은 거겠지.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 일에서 신경을 완전히 꺼버리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브라더즈가 합방 요청을 해왔기 때문이다.
196화 [브라더즈] 브리더 쥬튜버 최고 미녀를 제 농장에 초대했습니다!
“합방 요청이라고요?”
“네. 자기 스튜디오에서 함께 영상을 찍자는 제안이 왔어요.”
리퀴드에게서 브라더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리퀴드는 클라인에게 브라더즈가 합방 요청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둘 다 지구산 인간이 영상의 주된 요소니 구독자들을 빨아먹기 좋겠다고 생각한 거겠죠.”
“저쪽에선 지구산 인간이 아니라고 하지만요.”
어제, 리퀴드에게서 브라더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그럴까?
클라인은 이번 합방 제안이 그렇게 당기지 않았다.
평소의 클라인이라면 맨 처음 쥬튜브를 시작했을 때의 자신이 생각나 합방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브라더즈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상, 그냥 합방을 받아들이기엔 꺼려지는 게 많다.
평소에 브라더즈가 올리는 영상도 클라인의 성향이랑 잘 맞지 않는 것도 있고.
클라인은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리퀴드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클라인 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만, 저희는 일단 합방을 했으면 좋긴 하죠.”
“어째서요?”
“그냥 영상으로 본 거 하고,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말하는 것하곤 꽤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제가 할 일은 없다면서요?”
“꼭 하셔야 된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하셨으면 좋겠다~ 그 정도예요. 하하…….”
일단 리퀴드는 내가 직접 브라더즈의 인간들을 관찰하길 원하는 모양이네.
클라인은 최대한 머릿속에서 어제 전해 들은 이야기를 배제하고 브라더즈의 제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 했다.
솔직히 말해서 클라인은 브라더즈의 영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간의 인식이 그렇다는 건 알지만, 브라더즈의 영상 대부분은 인간들을 마치 장난감처럼 대하는 영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클라인이 지금까지 찍은 영상이 차원항에 들어온 인간들의 반응을 찍는 영상이라면, 브라더즈의 영상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인간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일부러 인간들끼리 싸우는 상황을 연출해서 누가 가장 강한지 겨룬다거나,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을 인간들에게 준다거나 하는 영상들 말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클라인의 마음을 쿡쿡 찔러대는 것은.
[마력이 없는 인간을 대하는 인간들의 반응은?]
[죽은 척하는 인간을 동료 인간들이 대하는 법(충격 주의)]
브라더즈의 영상이 과거 클라인의 영상을 연상시키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브라더즈의 영상은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인간을 죽이는 영상을 올린다거나, 아무 이유 없이 인간을 괴롭히는 영상을 올리는 게 아니니까.
단지 인간을 너무 가볍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 클라인에게 거부감을 제공할 뿐이었다.
인간이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건 클라인을 비롯한 극소수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아무 문제 없이 받아들여지는 행동이 클라인에겐 불편했다.
그러기에 클라인은 소리쳐야 했다.
네 행동이 불편하다고.
더는 가만히 참는 게 아니라 소리를 높이기로 결심했으니까.
브라더즈가 일부러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단지 모를 뿐이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기에 알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것일 뿐.
그러니까 클라인이 알려줘야 한다.
억지로 강요는 하지 않는다.
그저 조심스럽게 사실을 알려줄 뿐.
사실이란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가장 강력한 정보니까.
그저 사실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브라더즈의 행동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잉간이를 만나기 전까진 클라인 자신도 브라더즈와 다를 게 없지 않았는가?
“……일단 합방은 할게요.”
“정말요?”
“네. 다만, 서로 사육 노하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하자고 해요. 잉간이를 데려가진 않을 거예요.”
정말로 브라더즈가 지구산 인간을 키우는 게 맞다면 잉간이와 만나게 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
분명, 잉간이가 알아서 좋은 풍경은 아닐 테니 말이다.
“네. 그럼 그렇게 답장하도록 할게요.”
브라더즈의 답장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바로 클라인의 제안을 수락한 브라더즈는 적극적으로 합방 일정을 잡았다.
바로 다음 날 합방을 하자는 브라더즈의 제안을 클라인은 받아들였다.
리퀴드와 브라더즈와의 회의를 끝마친 클라인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리만.
클라인은 리만을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리만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리만이 죽고, 그동안 리만이 하던 일들이 모조리 중단되어서일까?
클라인은 요즘 들어 자신이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느꼈다.
나 대신 목소리를 내주던 사람이 없으니 소리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니까.
주변인들을 억지로 자신의 목표로 끌고 가긴 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리만과 같은 목표를 가진다면 순식간에 목표와 가까워지게 만들 힘이 있었으니까.
리만이 싫었지만, 리만이 사라진 지금 클라인은 리만의 빈자리를 느꼈다.
클라인은 문득 자신이 리만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리만에게 느끼던 불편함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니 리만은 클라인이 느끼는 불편함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실제로, 클라인이 리만에게 그 인간의 이야기를 하자 리만은 클라인의 부탁을 들어주려 했잖는가?
만약 내가 좀 더 일찍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냈다면, 리만이 맞이할 결말이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리만은 도착지 근처까지 순식간에 밀고 나가긴 해도, 주위를 살피지 않아서 골인 지점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리만에게 주위의 이야기를 해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리만이 죽은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클라인은 여전히 그녀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리만의 죽음을 떠올릴수록 해야 했던 일들이 잔뜩 떠오르니까.
할 수 있었어도 하지 않았던 일들이 많았으니까.
어쩌면 리만에게 주위를 살피지 않는다고 욕을 할 때가 아니지 않을까?
주위를 살피지 않은 건 나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클라인은 여전히 고민을 끝낼 수 없었다.
결심했다 생각해도.
답을 내렸다고 생각해도.
자꾸만 후회되고 새로운 고민이 생겨난다.
자신이 더 고민하지 않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모르겠다.
잉간이와 제대로 대화할 수 있게 되면 이런 고민을 더 하지 않아도 될까?
침대에 누워 끊임없이 고민하던 클라인은 지쳐 잠들었고, 다음날이 되었다.
“후우…….”
브라더즈의 촬영 스튜디오는 브라더즈가 보유한 농장 안에 위치해 있었다.
쥬스농장의 농장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에 클라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브라더즈가 보내준 지도를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 안녕하세요!”
조심스럽게 스튜디오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으며 인사를 건네자 기계의 형태가 강하게 드러나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마키나가 반갑게 클라인을 맞이했다.
“아, 오셨군요! 합방 요청을 그렇게 흔쾌히 받아주실 줄은 몰랐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제 옛날 모습이 생각나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어요.”
“오늘 정말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꾸벅.
브라더즈는 클라인에게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을 지켜본 클라인은 내심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 생각보다 쉽게 자신의 말을 받아들일지 모르겠다고.
“일단 먼저 농장부터 구경하시죠.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 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 리퀴드에게 부탁받은 것도 있으니 클라인은 브라더즈의 농장을 날카롭게 살피기 시작했다.
“사육항이 기본적이네요?”
“네. 인공 교배로 태어난 개체들이어서 사육항에 별 거부감이 없거든요.”
브라더즈의 설명대로 지금 클라인의 눈앞에서 움직이는 인간들은 사육항 출신이 확실해 보였다.
야생 개체 특유의 묘한 거부감도 느껴지지 않고, 인공 교배로 태어난 개체들답게 보유 정보량도 일정해 보였다.
아직까진 별로 이상할 건 없네.
“저 아이들 이름이 뭐라고 했죠?”
“헉슬리. 라고 제가 지었습니다.”
“맞다. 헉슬리. 저…… 헉슬리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건가요?”
클라인은 슬쩍 브라더즈에게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을 던졌고, 브라더즈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사실, 클라인 님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저 덕분에요? 그게 무슨 소리죠?”
“마력이 아예 없는 인간형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클라인 님 덕분에 알게 됐거든요. 자연적으로 저런 생물이 탄생할 수 있다면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단 소리잖아요?”
“그렇죠.”
“그런 확신을 가지고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품종을 개량하다 보니 이렇게, 헉슬리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죠.”
“대단하시네요.”
브라더즈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이 사람은 진짜 대단한 업적을 이뤄낸 셈이다.
평범한 인간과 다른 게 오직 마력밖에 없는 인간을 품종개량으로 만들어내다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마력이 없는 생명체를 만들 수는 있지만, 마력이 없는 지적 생명체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일정 이상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개량은 오로지 품종교배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품종교배로만 가능하다고 그게 쉽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물고기에게서 아가미를 빼앗고, 새에게서 날개를 빼앗는 일과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어때요? 클라인 님이 보시기엔…….”
“솔직히 제 눈에는 지구산 인간하고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요? 오늘 잉간이를 데려왔어도 잉간이도 별 차이를 못 느꼈을 거 같아요.”
“아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슬쩍 찔러봐도 능청스럽게 대처하고, 도무지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네.
지구산 인간이라면 지니고 있을 차원 파괴자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브라더즈가 자신의 힘으로 헉슬리를 만들어낸 것일까?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야생 인간이 아니라고 저게 꼭 지구산 인간이 아닌 건 아니니까.
인간형 생물의 번식이 꽤 빠르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쯤이면 지구산 인간을 잡아 와서 인공 교배를 시키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자, 다음은 번식장입니다. 따라오시죠.”
그래.
번식장을 확인하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조금 감이 잡히겠지.
저들이 정말 지구산 인간이라면 최초의 모체는 어쩔 수 없이 야생 인간을 사용했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품고 클라인은 브라더즈의 뒤를 따라 번식장으로 들어섰다.
“자연 번식이 아니라, 인공 번식으로 번식을 시키고 있어요. 마력이 없는 덕분에 유전정보의 채취도 쉽고, 인공 번식도 더 쉬운 편이에요.”
하지만 그런 클라인의 기대를 배신하듯 번식장에 있는 것은 모체가 아니라 인공 자궁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번식장이라기보단 식물을 키우는 수경 농장 같은 모습.
그리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으, 이렇게 되면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릴 수가 없는데.
클라인이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혀를 찬 순간, 마지막 기회가 다가왔다.
“이번에는 제가 제일 아끼는 아이들을 보여드릴게요.”
“제일 아끼는 아이들이요?”
“네. 제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아이들이거든요.”
최초의 개체라니, 이건 정체를 확인할 최고의 기회다.
클라인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브라더즈가 최초의 개체들을 꺼내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자, 이 두 아이가 최초의 아이들이에요!”
클라인은 최초의 개체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클라인은 당혹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 아이들이 지구산 인간이라고 확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진짜로 품종개량으로 헉슬리를 만들어낸 걸까?
197화 [브라더즈] 단독 사육? 단체 사육? 각 사육방식의 장단점은?
정말로 브라더즈가 순수한 품종개량만으로 헉슬리를 만들어낸 것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것들로는 정말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
아직 클라인은 제대로 헉슬리를 살펴본 것도 아니니까.
클라인은 그런 속내를 감추고 흥미롭다는 듯이 헉슬리들을 빤히 바라봤다.
브라더즈가 최초의 헉슬리들이라고 소개한 인간들은 클라인이 보기에 다른 헉슬리들처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물론 평범한 지구산 인간들과도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우와……. 이 아이들은 어떻게 태어난 거죠? 인공으로, 아니면 자연으로?”
“자연으로 번식하면 마력이 적어서 그런지 태아가 자꾸 모체에 흡수되는 일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인공 번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군요…….”
여기서 교배에 사용한 품종을 묻는 건 거의 영업비밀을 물어보는 꼴이니 질문해봤자 알려주지 않을 게 뻔하겠지?
클라인이 그런 고민을 하며 헉슬리들을 바라보고 있자, 그런 클라인의 모습을 어찌 생각했는지 브라더즈가 웃으며 클라인에게 말을 걸었다.
“만져보시고 싶으면 만지셔도 괜찮아요.”
“네? 그래도 괜찮아요?”
“저 아이들은 핸들링 훈련이 다 끝난 상태니까요. 마키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핸들링할 수 있어요.”
“그, 그래요?”
클라인은 딱히 핸들링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저 두 인간의 정보를 조금이나마 파악하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촉수를 뻗었다.
클라인의 촉수가 가까이 다가오는데도 두 인간은 아무런 저항감을 보이지 않고 가만히 클라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잉간이도 클라인의 촉수가 다가오면 살짝 놀라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 두 인간은 왜 이러는 걸까?
단순히 핸들링 훈련이 잘 되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데.
그런 의문을 느끼던 클라인은 이내 두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감각이 어디선가 많이 접해본 감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먹이용 인간.
혹시나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정보가 제거된 인간들에게서 느껴지는 감각이다.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그 느낌이 헉슬리들에게서도 느껴지고 있던 것이다.
그런 클라인의 생각이 무색하게 헉슬리들은 싱긋 웃으며 클라인의 촉수에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잘 프로그래밍이 된 로봇을 보는 것 같아서 클라인은 살짝 소름이 끼쳤다.
감정이 없고, 그저 자극에 대한 반응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클라인은 무언가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듯했다.
브라더즈가 헉슬리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것이다.
클라인이 헉슬리의 정보를 읽었을 때, 헉슬리들에게서는 지구의 정보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브라더즈가 지구산 인간의 정보를 깡그리 지워버린 것이다.
외부 정보나 내부 정보는 물론이고, 핵심 정보들까지 자신의 마음대로 지워버리고 바꿔버린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게 브리더라면 더욱더 말이다.
정보 조작을 통한 새로운 종의 탄생.
그것이 브라더즈가 행한 일의 정체다.
기존에 있던 생물에 정보 조작을 가해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일은 불법이 아니다.
기존의 생물이 보호종이어도, 정보를 조작당한 생물은 아예 다른 종이 되어 더는 보호종이 아니게 되니까.
최초의 조작은 야생 생물을 붙잡아야 하지만, 그 이후는 이미 조작한 생물을 번식시키기만 하면 될 뿐이다.
보호종의 정보를 조작하는 건, 자격을 가진 사람이 허가를 받기만 하면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브라더즈는 그 어떠한 불법적인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헉슬리를 만들 때마다 지구산 인간을 새로 잡아다 조작을 가하는 것이 아닌 이상 말이다.
“어떤가요? 엄청 순하죠?”
“네…… 그렇네요.”
브라더즈의 뒤를 따라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며 클라인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만약 클라인이 생각한 것이 사실이라면, 브라더즈를 그냥 놔두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손해를 보는 건 리퀴드 사지, 헉슬리가 지구산 인간의 위치를 차지하면 역으로 지구산 인간을 채집하려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오히려 지구산 인간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보 조작으로 만들어진 헉슬리들은 지구산 인간이 아니니까.
아니, 애초에 클라인 자신이 브라더즈를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독 사육은 진행하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단독이나 소규모 사육 시에 주의할 점이 있을까요?”
“어……. 일단 마력을 쓰지 못하니 먹잇감에 역으로 다치는 일이 없게 주의하는 게 좋아요.”
“아, 하긴. 클라인 님 초기 영상에서도 사냥에 실패하는 모습이 자주 나왔죠!”
“네. 그러니 생 먹이를 투여할 때는 미리 다칠 수 있는 요소를 모두 제거하는 게 좋아요.”
“확실히 그게 좋겠네요.”
스튜디오로 돌아와 클라인과 인터뷰 비슷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브라더즈는 먼저 질문을 던져가며 적극적으로 클라인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보였다.
마치 쥬스농장과 합방하던 시기의 클라인 자기 자신을 보는 듯했다.
“확실히 지구산 인간은 단독 사육보단 단체사육이 더 편하긴 하네요.”
“그렇긴 하죠. 아무래도 단독 사육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더라고요.”
“클라인 님은 다른 품종을 함께 합사하시던데, 별다른 거부 반응은 없었나요?”
“초기에는 조금 싸우더니, 서열이 확립되니 그런 일은 아예 없더라고요.”
“지구산 인간은 아종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가 보죠? 아, 마력이 적은 인간들이 말이에요.”
“아마도 상대의 마력을 느끼지 못하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브라더즈는 질문하는 내내 마치 자신도 지구산 인간을 키우는 것 같은 질문을 던지다 자신의 말실수를 눈치채고 황급히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클라인은 브라더즈의 말실수를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아무 말 없이 그저 웃을 뿐이었다.
“다른 인간들처럼 일처다부나 일부다처가 기본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처일부를 선택하는 확률이 꽤 높더라고요.”
“그건 좀 신기하네요.”
“아마 마력을 사용하지 못해서 생기는 체력적 한계 때문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클라인은 슬슬 이야기의 끝이 다가옴을 느꼈다.
한 가지 의외인 점은 브라더즈가 리퀴드와 함께하는 것에 은근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브라더즈는 이야기하는 내내 리퀴드와의 계약조건을 대략적으로 듣길 원한다거나, 리퀴드가 도와주는 것들을 듣길 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서로가 궁금한 대부분의 이야기를 다 끝마치고, 클라인은 슬그머니 브라더즈에게 가장 전하고 싶던 사실을 전하려 했다.
“저기. 그, 브라더즈 씨. 어쩌면 조금 제가 오지랖을 부리는 거일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네?”
“인간형 생물. 그러니까, 마력이 없는 인간형 생물은 마력이 없어서 그런가, 다른 인간들에 비해 지적 능력이 더 뛰어난 경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마음 같아선 모든 인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지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거부감이 심하겠지.
마력이 없는 인간에 한정해서 말해주는 것이 최대한 브라더즈의 거부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지적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요?”
“네. 그게, 거의 탄탈로스 수준으로요. 어쩌면 사람에 가까운 수준까지요. 정보 조작 능력도 사람과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에요. 후천적인 학습이 필요하지만요.”
“그러니까. 클라인 님이 하고픈 말씀은…….”
“그냥. 음. 브라더즈 님이 영상을 만들 때 한 번만 더 생각하고 영상을 찍었으면 하는 생각? 그런 느낌이에요. 농장 관리도 마찬가지고요.”
“……합방을 수락하신 게 이 말을 하시려는 거였어요?”
“아하하…… 다른 것도 있지만, 부정할 수는 없네요.”
이건 브라더즈의 면전에 대고 너는 틀렸다고 외치는 꼴이다.
클라인은 브라더즈가 불쾌하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브라더즈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객관적으로 보자면, 브라더즈의 영상은 탄탈로스가 주체로 바뀐다면 애호 단체에서 뭐라 비판할 수도 있는 내용이다.
심지어는 뉴스에 출현할 수도 있을 정도다.
탄탈로스들끼리 싸움을 붙이고, 죽은 탄탈로스를 다른 탄탈로스에게 먹이로 제공하는 식의 영상들이니 말이다.
클라인은, 그리고 리만은 인간들의 위치를 못 해도 탄탈로스 수준까지 올리고 싶었다.
그렇기에 리만은 일반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홍보를 펼친 것이다.
하지만 지금 클라인은 리만이 무엇을 놓쳤는지 알 것 같았다.
리만이 바꿔야 했던 것은 대중의 인식이 아니라 같은 사육자들의 인식이었다.
사육자들부터 인간을 탄탈로스와 동급으로 보지 않는데, 대중들에게 몇 번이고 말해봐야 그게 효과가 있겠는가?
클라인의 말을 들은 브라더즈는 가만히 무언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단, 영상 내용에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직접 찾아오셔서 말해주신 성의도 감사하고요.”
“그럼…….”
“하지만. 농장 관리는 안 됩니다. 클라인 님, 저는 브리덥니다. 모든 인간 하나하나에 일반 사육자만큼 정을 쏟을 수 없어요.”
“그런가요?”
“네. 저는 이걸로 마력을 벌어야 합니다. 마력이 없는 인간에서 마력을 추출할 수도 없으니까요. 설마 클라인 님도 생물로 돈을 버는 게 잘못됐다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그건. 아니에요. 충분히 이해해요.”
이해는 한다.
하지만 동의하진 못한다.
클라인도, 브라더즈도 상대방의 의견에 같은 생각을 했을 뿐이다.
“마력이 없는 인간들이 마력을 지닌 인간들에 비해서 지능이나 정보 조직력이 높다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확실히 그렇다면 적정선을 지켜서 사육하긴 해야겠죠. 하지만, 저는 지금도 충분히 제가 적정선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알아요. 정말 많이 노력하시는 게 보여요.”
브라더즈의 농장은 무척 깔끔하고 인간들의 대우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것이 정에서 나오는 대우가 아니라, 상품에 손상을 입히지 않기 위한 대우일 뿐이다.
클라인은 더 이상 브라더즈에게 뭐라 하지 않고 웃으며 브라더즈의 농장을 떠났다.
브라더즈 또한 웃으며 클라인을 배웅했다.
전에 내가 뭐라고 말했더라?
진실은 세상에서 두 번째로 강한 정보라고.
진실은 이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정보는 진실이 아니라 주관이다.
주관이 끼어든다면, 진실은 주관보다 빈약한 정보가 된다.
그렇기에 클라인은 진실을 알려줬음에도 브라더즈의 행동을 크게 바꾸지 못했다.
브라더즈 또한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정보는 주관이지만 가장 강인한 정보는 주관이 아니다.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 어떠한 정보가 끼어들어도, 심지어 주관이 개입해도.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은 주관을 바꿀 수 있다.
언젠간 말이다.
오늘 클라인이 브라더즈의 행동을 살짝 바꾼 것처럼 말이다.
브라더즈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클라인은 지구산 인간들을 떠올렸다.
증거를 잡진 못했지만, 브라더즈가 단 두 명만 지구에서 데려온 것은 아닐 것이다.
정보 조작은 쉽지 않은 일, 적어도 10명 정도는 여유분으로 데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브리더 한 사람이 채취할 수 있는 지구산 인간은 단 한 쌍뿐.
그러니까 이게 뭘 뜻하냐면.
지금도 누군가가 지구에서 밀렵을 하고 있을 것이란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헉슬리들이 시장에 퍼져나가면 지구산 인간의 수요도 줄어들어 밀렵꾼들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구하기 힘든 것일수록 더 인기가 늘어나니까.
그러니 밀렵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클라인은 잉간이의 친구들이 밀렵 당하는 것을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마음 한편이 조금 불편했으니까.
그렇다면 어찌해야 밀렵꾼들을 막을 수 있을까?
정부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마력도 없는 인간종들에겐 가치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니까.
정부가 나서기에는 더 가까운 곳에 더 시급한 일들이 많다.
나선다고 해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뒷일 것이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남는 건 단 하나.
클라인이 직접 나서서 밀렵꾼들을 방해하는 것이다.
직접 자경단을 차려서 지구를 감시한다면 밀렵꾼들을 막을 수 있겠지.
하지만.
굳이 그래야 해?
고작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고 전쟁터를 뚫고 우주의 끝을 넘어 목숨의 위험을 감내하며 밀수꾼들과 직접 싸워야 할까?
답은 하나였다.
그건 바로…….
“다녀왔어~”
클라인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클라인은 어느덧 집에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복귀 인사를 건네며 클라인은 잉간이가 있을 소파 위를 바라봤고.
“사랑해!”
잉간이의 대답을 듣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 귀여운 오해를 굳이 정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클라인은 무언가 달라진 소파 위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잉간이가 한 짓일까?
최근 바빠서 청소하지 못한 소파 위의 먼지가 말끔하게 한데 모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잉간이는 먼지들을 가지고 일종의 건물을 지은 것으로 보였다.
설마, 잉간이가 소파 위를 청소한 걸까?
“좋아!”
마치 자신에게 자랑하듯 잉간이는 먼지 뭉치들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었다.
피식.
클라인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음을 터트리고 사랑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도 좋아해. 응.”
아까, 고작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며 행동해야 하냐고 물어봤는가?
그 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렇다.
잉간이에게 부끄러운 짓을 할 바에는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좋았다.
잉간이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잘 행동해주고 있으니까.
적어도 잉간이만큼은 움직여야지.
198화 *공지* 앞으로 일주일 정도 여행을 떠날 생각이에요!
내가 해야만 한다.
마력을 주고 다른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건 내가 직접 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불안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나도 잉간이만큼은 움직여야 하니까.
그리 큰 이유는 아니지만, 상당히 중요한 이유다.
그렇게 정했으니 이제 지구로 가야 하는데, 나 혼자서 지구로 향할 수 있을까?
정보 전쟁이 곧 끝난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정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지구에 들러야 하는 게 아닐까?
정보 전쟁이 끝난다면 지구로 향하는 난이도가 쉬워지니, 밀렵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는 너무 늦는다.
미리 자리를 잡고 밀렵꾼들을 막기 위한 대책을 세워 놓지 않는다면 힘든 싸움을 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준비도 없이 지구로 향한다고 지구에 도착할 수 있을 만큼 지구로 가는 여정이 쉽진 않을 것이다.
일단 그 정보 전쟁의 한복판을 지나쳐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사람이라면 큰일이 생겨도 죽진 않을 정도의 부상 수준에서 끝나겠지만, 잉간이에겐 다를 것이다.
잉간이를 그냥 집에 놔두고 지구에 다녀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잉간이와 함께 잉간이의 고향을 방문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다가 괜히 잉간이가 다친다면 다 헛짓거리일 뿐인데.
어떻게 안전하게 지구로 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이 답일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무언가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하기 싫은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고 했잖아.”
“어? 무, 무슨 소리야?”
“지구까지 안전하게 호위할 자신이 없다고. 나는.”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클라인은 파인만을 찾았지만, 파인만은 클라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한숨을 내뱉으며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아직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가 할 말을 알고 있던 거지?
“표정만 봐도 무슨 부탁을 하러 온 건지 다 답이 나오는데, 뭐.”
“으으. 부탁이야. 상당히 중요한 일인데…….”
이미 클라인이 무슨 이유로 찾아왔는지 다 아는 것 같으니, 클라인은 곧장 파인만에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지금 당장 클라인이 아는 모험가들 중 실력이 좋으며, 의뢰를 넣을 수 있는 모험가가 바로 파인만이다.
친구여서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인은 파인만의 실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파인만은 자기에겐 어려운 일이라고 엄살을 부리고 있지만, 클라인이 보기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다른 브리더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파인만에게 잔뜩 의뢰를 맡기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지금 파인만이 투덜거리는 건 진심이 아니라 엄살이란 것이다.
클라인이 물러서지 않고 파인만의 손을 꼭 붙잡고 부탁하자, 파인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혹시라도 나 때문에 친구를 위험하게 만들긴 싫단 말이야.”
“괜찮아. 다 각오한 거니까…….”
“내가 안 괜찮아. 내가.”
파인만은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더욱 깊은 한숨을 내쉬며 클라인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어 클라인의 이마를 툭 건드렸다.
“어차피 내가 거절하면 혼자서라도 갈 생각이지?”
“어? 음…….”
“맞나 보네. 에휴.”
“딱히 혼자서 갈 생각은 아니었는데…….”
“괜히 실력도 모르는 이상한 녀석들에게 널 맡기는 것보단 차라리 내가 도와주는 게 더 났지.”
“파인만…….”
뭔가 더 설득해야 할 걸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쉽게 부탁을 들어주다니?
클라인은 파인만의 반응이 다소 의외였다.
클라인이 감동이라는 듯 파인만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파인만은 또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네가 잉간이 관련된 일에선 절대 물러서지 않는 걸 아니까.”
“고마워!”
클라인은 방긋 웃으며 파인만에게 감사를 표했고, 파인만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천천히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지구에 갈 때 잉간이도 데려갈 거야?”
“응. 그래야지.”
“그럼 자기 인식이 중요한데, 인간 전용 장비가 있나?”
“찾아봤는데 없더라. 있더라도 탄탈로스 전용이어서 잉간이에겐 써먹질 못하겠어.”
“흠. 그럼 따로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잉간이를 지구로 데려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잉간이의 자기 인식이다.
사람들과 접촉해도 괜찮을 정도로 자기 인식이 뛰어난 잉간이지만, 그건 평범한 일상적인 접촉일 뿐이다.
사람도 위험할 정도의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여파라면 잉간이의 자기 인식이 뒤흔들리는 것은 간단할 것이다.
“음……. 잉간이가 어떻게 자기 인식을 하고 있더라? 차원 파괴자하고 공생 관계였었지, 아마?”
“그렇지.”
한참 동안 잉간이의 자기 인식을 보조할 방법을 생각하던 파인만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고개를 번쩍 들고 클라인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클라인이 고개를 끄덕여 파인만의 질문에 대답하자 파인만은 그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거다.”
“그거라니?”
“그거. 차원 파괴자하고 잉간이가 공생한다며? 그 관계를 모방하는 거야.”
차원 파괴자와 잉간이의 관계를 모방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클라인이 파인만의 제안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자 파인만은 클라인에게 자신이 떠올린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차원 파괴자가 잉간이의 자기 인식을 보조해 주잖아?”
“응. 그렇지.”
“그렇다면 네가 직접 잉간이의 자기 인식을 보조해 주면 그 효과가 2배가 되지 않겠어? 기존의 차원 파괴자의 보조까지 합쳐져서 말이야.”
“내가 잉간이의 자기 인식을 보조해 준다고?”
“인간 전용 보호 장비의 역할을 네가 해주는 거지. 네가 직접 보조해 주면 보호 장비보다 더 효율이 좋을걸? 너만큼 잉간이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래.”
“그건…… 그렇지.”
하긴, 잉간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단 내가 도와주는 게 더 효과가 좋겠지.
그렇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잉간이의 자기 인식에 지나치게 간섭하면 자기 인식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나에 의해서 정보 오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냥 지금 이 상태라면 그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100% 그런 일이 발생할 텐데…….
파인만도 클라인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침음성을 흘리며 문제점을 중얼거렸다.
“근데, 너무 출력이 강해도 문제겠네. 잉간이에게 미리 시험을 해볼 수도 없고…….”
“출력이 너무 강하다라…….”
출력이 너무 강한 게 문제라면 출력을 줄이면 되는 게 아닐까?
파인만의 중얼거림에 클라인의 머릿속을 스치는 게 하나 있었다.
미니멀리즘.
잉간이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클라인이 시도하던 그것.
지금도 적당한 한계까지 미니멀리즘을 통해 자신의 정보를 압축한 상태인데, 지금보다 더 정보들을 압축한다면?
잉간이의 정보를 오염시키지 않을 정도로 출력을 떨어트리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보다 더 정보를 압축하면 정보의 변질이나 손상이 발생해서 건강이 위험할 수도 있다.
지금보다 더 정보를 압축하는 게 조금 꺼려졌지만, 클라인은 잉간이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잉간이도 스스로의 건강을 해칠 위험을 겪으면서 나와 소통하려 했다.
그럼 적어도 나도 잉간이만큼은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정보를 압축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잉간이와 함께한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내야 건강에 위험이 생긴다.
그러니까 나도 이 정도 위험 정도는 감수해야 되지 않겠어?
그렇게 결심한 클라인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몸을 이루는 정보를 더욱 압축하고자 시도해본다.
“어, 어? 잠깐, 클라인?”
눈앞에서 클라인의 몸이 바뀌기 시작하자 깜짝 놀란 듯 파인만이 클라인을 부르지만, 클라인은 그런 파인만의 반응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됐다!”
마침내 클라인은 자신이 압축할 수 있는 한계까지 자신의 몸을 압축해냈고, 클라인은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헤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지 않아?”
클라인은 그렇게 외치며 파인만을 바라봤지만, 자신의 예상보다 높아진 탁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파인만을 보고서야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
“어, 어라?”
파인만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무언가 불길해진 클라인이 서둘러 근처의 거울로 달려가 자신의 상태를 확인 해본다.
그러자 클라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꼭 닮은 작은 꼬마아이의 모습이었다.
어째, 정보를 압축해도 너무 압축해버린 것 같다.
* * *
“충분해.”
피바다.
말 그대로 피가 바다를 이룬 한복판에서 남자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자신의 힘을 그렇게 평가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개자식들을 죽일 수 있다.
그들은 생각보다 나약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과거의 자신이 그들에게 처음으로 상처를 냈을 때 깨달은 사실이다.
남자가 얻은 힘은 혼자서 개자식 하나를 죽이기엔 충분했다.
그 미친 여자를 죽이고 난 뒤 몇 번의 더 실험을 거친 뒤에 완전히 확신하게 된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 혼자서 그 개자식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기엔 부족한 힘이었다.
남자는 혼자였고, 그들은 많았으니까.
아니.
엄밀히 말해 자신 또한 혼자는 아니지만, 그들은 자신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그렇기에 남자는 다른 이들을 필요로 했다.
자신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자신과 함께 싸워줄 이들을.
그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지만, 힘이 없어서 포기했던 자들을.
그들에게 남자는 힘을 주고자 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가진 것과 동등한 힘을 나눠줄 수 없었지만, 이젠 가능하다.
남자는 지금, 그의 동료들이 만들어낸 바다에 있었다.
자신의 분노를 풀어내는 그들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남자는 문득 지난번의 일이 떠올랐다.
저들에게 완전한 힘을 나눠줄 방법을 떠올리게 됐던 계기가 됐던 그때의 일.
뿌득.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째서 그 자식은 증오하고, 분노하지 않는 걸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친구들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그는 모르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 개자식들과 그자가 다를 게 무엇인가?
남자는 도저히 그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자에 더욱 분노했다.
물론 그에게서 힌트를 얻은 건 고맙게 생각지만, 화가 나는 것은 화가 나는 것이다.
“지구. 라…….”
그때 얻은 수확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녀석에게 붙어있던 기괴한 기생충.
그것과 잠깐 접촉해서 얻어낸 몇 개의 정보들.
그것에서 그는 그자의 고향을 알아낼 수 있었다.
자신과 같은 인간이지만, 동일한 인간은 아닌 자들.
그자가, 자신이 겪은 고통을 겪지 않고도 그 개자식들을 인식할 수 있었던 원인.
아직, 이 세상의 고통을 모르는 자들.
그들이 살아가는 장소.
그들이 만약 남자를 도와준다면 남자에게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들은 아직 모르기에, 남자를 돕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지구의 위치를 아는 것은 남자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개자식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들의 적을 늘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들의 적을 알게 된 지금이라면.
그들도 남자를 도와주겠지.
모든 것은 인류를 위해.
복수를 위해선 그들도 함께해야 한다.
인류 해방 전선에 합류하라.
지구의 인간들이여.
제 199화
199화 잉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 위한 준비!
요즘 들어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게 무엇이냐?
생각보다 청소가 재밌다는 것이다.
뭐, 청소라고 해도 사실상 찰흙 반죽 비슷한 무언가여서 재밌다고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차원항 바깥의 먼지들을 치우는 일에 꽤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꽤나 빠르게 고산지대의 먼지들을 치워나갈 수 있었고, 이대로라면 이곳의 청소를 끝마치는 것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던 그때.
오랜만에 클라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청소를 하지도 못할 정도로 바빴던 일은 모두 다 끝난 걸까?
오랜만에 돌아온 클라인의 모습에 내가 반갑게 인사를 하자, 클라인 또한 반갑게 내 인사를 받아줬다.
“:-)”
그동안 클라인을 바쁘게 했던 일들이 잘 해결됐는지 클라인에게서는 더 이상 침울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잘 해결된 것 같으니 다행이다.
피식 웃으며 클라인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청소를 마무리하려던 그때, 클라인의 모습이 조금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응?”
클라인의 몸이 뭔가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인데?
내가 착각한 걸까?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클라인의 몸이 전보다 작아진 게 맞다.
평소의 배경보다 더 낮은 곳에 클라인의 얼굴이 있다.
자기 몸의 크기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걸까?
지금 보니 입고 있는 옷도 헐렁헐렁하게 소매가 늘어진 것 같은 모습인데?
클라인에 대해 몰랐던 새로운 사실에 내가 감탄하던 그때, 클라인이 무언갈 조작하듯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러자 클라인의 몸이 더욱 줄어들기 시작한다.
아니, 그게 아닌데?
자세히 보니 배경과 비교하면 클라인의 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그런데 내 눈에는 클라인의 몸이 작아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클라인과 그 주위의 공간이 진짜로 작아지는 것이던가.
아니면 내 몸이 커지는 것이던가.
하지만 내 몸에 별다른 변화는 느끼지 못하겠는데?
그렇지만 나는 주위의 풍경을 보고 나서 무언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안개 너머의 풍경이 내 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클라인의 몸이 작아지는 크기가 점점 빨라지더니 이윽고 클라인은 나와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할 크기까지 축소된다.
여전히 아직 내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하던 그때, 클라인의 몸은 더더욱 크기가 줄어들더니 결국 나보다도 더 작게 변해버린다.
아리스보다도 더 작은 몸집으로 변해버린 클라인.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기도 전에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크기로 변한 클라인은 해맑게 웃으며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
“클라인?”
이게 진짜 클라인일까?
지금까지 지속된 소통으로 인해 클라인의 몸은 내 눈에 대부분 멀쩡하게 보였다.
단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곳이 있다면, 바로 클라인의 얼굴뿐.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라고 할 수 있지만, 아직 클라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건 아직 내가 클라인과 완전한 대화를 하지 못해서일까?
클라인이 이렇게까지 나보다도 작은 크기로 작아질 줄 몰랐던 나는 잠시 멍하니 클라인을 바라보다 재빠르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조심스럽게 손을 흔들며 클라인에게 인사를 건네자, 클라인의 촉수가 하늘하늘 흔들린다.
“:-)”
내가 인사를 건넨 것이 그렇게 좋은 걸까?
클라인이 히죽히죽 웃으며 기분 좋다는 듯 몸을 흔든다.
그나저나 클라인은 도대체 왜 몸 크기를 이렇게나 줄였을까?
아마도 나와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내 예상대로 클라인이 내게 무언가 말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라디오를 작동시키지 않아서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잠깐만 기다려 봐.”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라디오를 가지러 다녀와 먼저 인사말을 재생하고 가만히 클라인의 반응을 기다린다.
“:-*”
클라인의 얼굴은 글자로 이루어져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아무튼, 클라인은 잠시 부끄러워하더니 내게 뭐라 말을 건넨다.
“으음…….”
하지만 내가 아직 익히지 못한 단어들이 잔뜩 튀어나오는 덕분에 나는 클라인이 뭐라 말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클라인 또한 내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클라인은 잠깐 침울해져 있었지만 이내 기운을 차리고 내 곁으로 쪼르르 다가오더니 내게 뭐라 뭐라 말한다.
“?”
클라인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여전히 나는 클라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자 클라인은 확 하고 내 손을 자신의 자그마한 손으로 붙잡았다.
클라인에게서 작다는 느낌을 느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또다시 이런 느낌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처음으로 클라인과 손을 맞잡은 느낌은 평범한 여자아이와 손을 잡는 느낌이어서 뭔가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갑작스러운 클라인의 행동에 당황하는 사이 클라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 데려가기 시작했다.
클라인에게 이끌리는 사이 나는 주위의 풍경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대한 고원으로 느껴지던 곳은 조금 커다란 소파 정도의 크기로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차원문의 크기는 나 하나 정도는 가뿐하게 집어삼킬 정도로 전과 같았지만, 내가 만든 건물들은 미니어처 모형 같은 크기로 남아있었다.
그렇게만 넓게만 느껴지던 공간이 지금은 단순한 가정집 넓이로 느껴진다.
뭐, 클라인의 입장에선 이게 당연한 거지만 말이다.
클라인은 마치 나에게 자신의 집을 소개해주려는 듯 나를 데리고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다시금 클라인이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너무나도 평범한 가정집.
그것이 클라인의 집이다.
그나저나 고작 소파 위를 청소하고 뿌듯해하던 내가 조금 우습게 느껴진다.
클라인의 집은 완전히 청소되지 않았는지 군데군데 먼지들이 잔뜩 쌓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클라인이 가끔 뭐라 말하며 촉수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리키는데, 뭔가 내게 알려주는 걸까?
하지만 아무리 바라봐도 내 눈에는 클라인이 뭘 바라보는지 보이지 않았다.
뭔가 마력으로 이루어진 걸까?
마력에 관련된 건 내가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클라인의 집을 돌아다니며 내가 받은 느낌은 하나였다.
집이 좀, 관리가 잘 안 되어 있네.
청소가 이렇게 개판인데, 밥은 잘 먹고 다닐까?
그런 의문을 품고 클라인을 바라보자 클라인은 내 시선을 느낀 듯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금까지 내가 봐온 클라인의 모습으론 그렇게 성실한 성격은 아닌데.
이렇게 방 정리가 잘 되어있지 않는 것도 그렇고, 혹시 클라인은 흔히 말하는 백수 같은 게 아닐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제대로 된 식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도 그런 내 추리에 한몫했다.
좋아.
하루아침에 클라인의 집을 청소하긴 힘들 것 같으니, 이렇게 된 거 클라인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하자.
내가 잘못 손댔다가 자칫하면 클라인의 집을 더 어지럽힐 수도 있으니 간단한 도시락 정도를 챙겨주는 게 클라인에게 더 좋겠지.
“음. 잠시만 기다려 봐.”
“:-0?”
때마침 클라인의 안내도 다 끝난 것 같겠다, 나는 클라인의 손을 조심스럽게 뿌리치고 차원문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무오 알로 만든 달걀 프라이와 사냥한 고기들로 만든 베이컨으로 만든 일종의 서양식 아침 식사 비슷한 것을 빠르게 만든다.
솔직히 동물성 단백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 아냐?
“좋아, 완성.”
미리 저장해둔 베이컨과 무오 알을 굽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요리여서 얼마 걸리지 않아 나는 요리를 완성해서 밖으로 나왔다.
“:-0!”
내가 요리를 가지고 나오자 클라인이 반갑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반기고, 나는 근처의 탁자 위에 요리를 놔뒀다.
클라인은 내가 뭘 가져왔는지 궁금한지 탁자 위의 요리를 빤히 바라봤다.
“음. 배고플 때 먹어?”
내 말을 알아듣진 못하겠지만 적당히 뉘앙스라도 느껴지게 나는 중얼거렸다.
클라인은 내가 만든 요리를 빤히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아 내가 만든 요리를 바라봤다.
“:-)”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웃음소리를 잠깐 흘리고, 뭐라 외치며 자신의 촉수로 내가 만든 요리를 입에 집어넣었다.
다행히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클라인은 내가 만든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먹어치웠다.
그리고 내게 고맙다는 듯 꾸벅 고개를 숙이는 클라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지었다.
꼬마 같은 모습이어서 그럴까?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자꾸만 입에서 미소가 새어 나온다.
밥을 다 먹은 클라인은 폴짝 의자에서 뛰어내리더니 총총걸음으로 뭔가 가방 같은 것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클라인은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내 앞으로 걸어왔다.
“……응?”
클라인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본 내 입에서는 당황스러운 중얼거림만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클라인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
우리가 흔히 세간에서 ‘개목걸이’라고 부르는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 * *
“으, 거추장스러워.”
클라인은 팔랑거리는 소맷자락을 툭툭 털어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핵심 정보들을 압축하느라 외부 정보엔 손을 대지 않아서일까?
외부 정보가 몸에 맞지 않고 축 늘어져서 아무렇게나 펄럭거린다.
외부 정보도 줄여야겠지만, 그건 너무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지금 몸 사이즈에 맞는 정보를 주문하기 전까지는 이 상태로 다녀야 한다.
“에휴…….”
거추장스러운 감촉에 클라인은 한숨을 내쉬며 현관문을 붙잡았다.
이 상태로 잉간이와의 상대적 크기를 맞출 수 있다면 파인만이 제안한 차원 파괴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잉간이의 자기인식을 돕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전하게 잉간이를 지구까지 데려갈 수 있겠지.
“다녀왔어~”
현관문을 열며 잉간이에게 인사를 건네자 잉간이가 손을 흔들며 내게 인사를 되돌려준다.
최근 들어서 익숙하진 일련의 응답이다.
저렇게 잉간이가 인사를 해줄 때마다 없던 기운도 솟아나는 기분이다.
이렇게 잉간이가 때마침 밖으로 나와 있으니 크기 조절을 금방 끝마칠 수 있겠다.
클라인이 자신의 크기를 어린아이 수준으로 줄였다고 해도 여전히 잉간이에 비해서 거대하다.
그러니 관리 시스템에 기본 탑재된 상대적 크기 조절 기능을 이용해 잉간이와 나의 크기를 맞추는 것이다.
내 원래 크기라면 크기가 너무 차이 나서 불가능하겠지만, 이 정도로 압축을 해놨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선 먼저 내 크기를 잉간이에 맞춰서 조정하고, 그다음엔 잉간이의 크기를 내 크기에 맞추는 것이다.
“됐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잉간이와 내 크기를 맞추는 일은 아주 손쉽게 끝났다.
그런데 내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내가 너무 정보를 압축하다 보니 오히려 내 크기가 잉간이보다도 더 작아지게 된 것이다.
뭐, 이렇게 되면 잉간이에게 악영향이 갈 일은 없으니 더 났다고 봐야 하려나?
크기가 작아진 기념으로 잉간이에게 다시금 인사를 하고 클라인이 히죽히죽 웃던 그때, 잉간이가 무언갈 찾으려는 듯 차원문으로 뛰어간다.
아, 잉간이가 나와 대화할 때 사용하던 그 기계를 가지러 가는 걸까?
클라인의 예상대로 잉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기계를 가지고 돌아왔다.
“사랑해!”
“읏…….”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비슷한 크기에서 잉간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평소에는 그저 간질간질하고, 흐뭇하게만 느껴지던 잉간이의 귀여운 오해가 지금 와선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얼굴이 화끈화끈하고, 가슴이 콩닥거린다.
“어. 음. 그러니까…….”
클라인은 쿵쾅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손과 촉수를 휘저으며 아무 말이나 중얼거렸다.
으, 앞으로 계속 이런 크기로 생활할 텐데 지금이라도 잉간이의 오해를 바로잡아야 하나?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내 심장이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
잉간이가 지금 내 표정이 무슨 표정인지 이해하고 있을까?
부디 그러지 않길 바란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 내 표정은 참 남에게 보여주지 못할 얼굴이니까.
클라인은 잉간이의 오해를 바로잡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지금의 이 느낌이 그리 싫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더 좋다고 할까?
공포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느낌일까?
클라인은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을 어째서 좋아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아직은 말이다.
200화 잉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 위한 준비! (2)
클라인이 웃으며 내게 내민 물건은 아무리 봐도 그것이었다.
우리가 개목걸이라고 부르는 그것.
어, 그게.
클라인의 입장에선 내가 개나 다름없으니 이런 걸 내미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아무리 대양과 같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 해도 개목걸이를 착용하는 건 너무 꺼려지는 일이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클라인의 손에 들린 개목걸이를 바라보자, 클라인은 잠시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네가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클라인은 깨달았다는 듯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으며 개목걸이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설정을 바꾸기라도 하는 걸까?
진지한 표정으로 개목걸이를 붙잡고 낑낑거리던 클라인은 마침내 개목걸이의 외형을 변경했다.
아까까진 평범한 개목걸이였다면, 이번에는 카우보이들이 들고 다니는 올가미 같은 흉흉한 외형이다.
차라리 그냥 개목걸이를 쓰는 게 더 났겠다.
무슨 교수형에 처하는 죄수도 아니고, 이거 흉흉해서 되겠나. 원.
내가 손을 내저으며 분명한 거절의 의사를 밝히자, 클라인은 침음성을 흘리며 목걸이의 외형을 다시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의 모습은 내가 봐도 꽤 멋들어진 디자인의 초커였지만, 여전히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어서 가시가 달린 목걸이, 보석으로 장식된 목걸이…….
정말 다양한 형태의 목걸이가 등장했지만, 그 모든 형태에 내가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 모든 모습에 죄다 목줄이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목줄만 없으면 참 좋은데 말이야.
한참을 클라인과 씨름을 하며 목걸이의 외형을 바꿔나가던 중, 마침내 클라인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깨달은 걸까?
처음으로 목걸이 형태가 아닌 다른 형태를 내 앞에 선보인다.
“:-0?”
“음…….”
클라인이 만들어낸 형태는 기존의 것에서 매우 축소된 형태였다.
그래, 마치 손가락에 끼는 반지처럼 말이다.
여전히 줄이 매달려 있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솔직히 목줄이 달린 목걸이는 좀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클라인에게 긍정의 신호를 보내며 조심스럽게 클라인이 내민 줄 달린 반지를 잡았다.
내가 드디어 클라인의 선물을 받자 클라인은 방긋 웃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도 함께 피식 미소지으며 반지를 손가락에 끼려 했지만, 클라인이 너무 사이즈를 줄인 탓일까?
검지나 중지 손가락에 반지가 잘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반지가 들어가는 곳은 약지 손가락밖에 없었다.
“어…….”
클라인의 문명에도 약지에 반지를 끼는 게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럴 리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클라인이 불편하지 않게끔 왼손이 아닌 오른손에 끼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클라인이 건넨 반지를 오른손 약지에 꼈고, 그러자 클라인의 손가락에도 내가 낀 것과 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나타났다.
당연하게도, 나와 같은 오른손 약지에 말이다.
반지에 연결되어 있던 줄은 스르르 허공에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클라인의 손에 반지가 나타나는 것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0”
클라인은 잠깐 자신의 손에 나타난 반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옆으로 도리도리 저었다.
진짜 클라인의 문화에서도 약지 반지에 뭐 특별한 뜻이 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그래도 오른손인데 괜찮겠지?
어째서인지 나는 묘한 긴장감을 가지고 클라인을 바라봤고, 한참을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던 클라인은 조심스럽게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뭐지?
하이파이브라도 하자는 건가?
나는 자연스럽게 자그마한 클라인의 손에 내 손을 맞췄다.
짝, 하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는지 클라인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손을 뗐다.
이어서 클라인은 반지를 매만지며 뭔갈 확인하더니, 분주하게 뭔갈 준비하기 시작했다.
쪼르르 방으로 뛰어가서 옷도 바꿔입고, 이것저것 뭔가 꺼내와서 주섬주섬 챙긴다.
어딘가 외출하려는 걸까?
내가 흥미롭게 클라인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자, 마침내 준비를 다 끝마친 것인지 클라인이 주먹을 불끈 쥔다.
“:-o!”
그리고 클라인은 내 손을 꽉 붙잡고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려 하는데, 그 모습이 퍽 귀여워 살짝 장난기가 동한다.
슬쩍 몸에 힘을 주고 버텨보자 클라인은 낑낑거리며 나를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넣는다.
하지만 몸 크기가 비슷해진 탓일까?
클라인의 근력은 나를 질질 끌고 갈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
슬슬 즐길 만큼 즐겼겠다, 클라인이 울상짓기 전에 클라인의 손길에 이끌린다.
클라인이 나를 데려간 곳은 다름이 아니라 현관으로 보이는 장소였다.
아까 클라인이 내게 개목걸이를 들이밀던 것과 현관이 합쳐지며 클라인이 나와 무슨 짓을 할 생각인지 단수에 깨닫는다.
“……산책?”
산책?
산책 나가자는 거지, 이거?
하긴, 자기가 키우는 애완동물과 같이 산책을 나가는 건 다들 꿈꾸는 일들 중 하나니까.
클라인과 몸 크기가 비슷해지며 정보의 압박에선 벗어났지만, 그건 클라인의 집에 한정된 것이다.
과연 내가 집 밖으로 나가도 정보에 짓눌리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딱 봐도 클라인의 집보다 몇 배는 되는 정보량이 덮쳐올 텐데.
내가 밖으로 나가는 것에 그리 내키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자 클라인은 내 소매를 쭉쭉 잡아당기며 내게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0!”
밖에 나가자고 나를 설득하는 걸까?
아니, 나도 물론 밖에 나가보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밖에 나가도 안전할지가 문제다.
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고민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래, 위험했다면 클라인이 나에게 제안하지도 않았겠지.
이렇게 나와 자기 크기를 맞춘 대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클라인의 손길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집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낯선 외부의 공기가 나를 반긴다.
클라인과 함께 집 밖으로 나오게 된 나는, 집 밖의 세상을 처음으로 똑똑히 바라보게 되었다.
늘 내 눈을 가리던 희뿌연 안개 따위는 단 하나도 없는 채로 말이다.
깨끗한 바깥의 모습을 보고 내가 제일 먼저 가진 감정은.
실망이었다.
* * *
“먹으라는…… 거지?”
“좋아!”
클라인은 잉간이가 자신에게 건넨 음식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잉간이가 갑자기 차원항 안으로 되돌아갔을 때는 조금 놀랐는데, 이렇게 음식을 선물하려는 거였구나.
근데, 왜 갑자기 음식을 내게 선물하는 거지?
내가 배고파 보였나?
클라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잉간이가 자신에게 먹을 것을 선물한 이유를 생각해보려 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호감의 표시로 먹을 걸 선물했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맛있네…….”
클라인은 잉간이가 가져온 음식을 우물거리며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별다른 조리를 하지 않은 간단한 식사인데도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요리보다 몇 배는 더 맛있다.
잉간이가 만든 요리를 우물거리던 클라인은 조심스럽게 잉간이를 살폈다.
자신보다 더 커진 잉간이는 클라인의 집이 신기한지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며 집 안을 살피고 있었다.
자기가 만든 건축물의 크기를 보고 지금 자신의 크기와 비교해보려는 듯 손가락을 뻗기도 하고, 뭔가 살피는 듯 가구들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기도 했다.
아까 집안 구경을 시켜준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클라인은 문득 자신이 잉간이의 크기를 키운 진짜 목적을 떠올렸다.
아이고, 너무 놀고만 있었다.
잉간이가 차려준 밥도 다 먹었겠다, 클라인은 폴짝 의자에서 뛰어내려 미리 준비해둔 그것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디 보자, 이쯤에다가 놔뒀을 텐데?
가방을 뒤적거리던 클라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원하던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클라인이 가방에서 꺼낸 것의 정체는 바로 상대적-크기 변환기.
애완 생물을 집 밖으로 데려가려는 사람들의 필수품이다.
인간용은 팔지 않았지만, 이게 그렇게 섬세한 기계는 아니니 괜찮겠지.
상대적 크기 변환기가 무엇이냐?
간단히 말해서 주인과 애완 생물의 크기를 하나로 묶는 기계다.
시민들 누구나 마음대로 자신의 정보의 크기를 늘리고 줄일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공공장소에서 마음대로 그러다간 상당히 혼잡스러운 풍경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중앙 정부에서는 외출 시에 바꿀 수 있는 최소 크기와 최대 크기를 법률로 정해두고 있다.
그 때문에 집 안에서 주인과 크기를 동기화시킨 애완 생물들이 외출할 때, 최소 크기나 최대 크기를 어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 상대적 크기 변환기는 그런 일을 막아주기 위한 기계.
주인과 애완 생물이 서로 장착하면 상대적인 크기의 변동을 서로에 맞출 수 있다.
물론, 너무 크기가 차이 난다면 사용할 수 없지만 말이다.
“자, 잉간아. 이거!”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별생각 없이 잉간이에게 변환기를 내밀었지만 돌아온 잉간이의 반응은 썩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어라?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
잉간이의 반응을 본 클라인은 자신의 손에 들린 변환기를 바라봤고,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았다.
“아~”
목줄의 형태를 닮아서 잉간이가 거부감을 느끼는 걸까?
그럼 모습을 바꿔주면 되겠지.
음, 이건 괜찮으려나?
클라인은 최대한 간소한 형태로 변환기의 겉모습을 바꿨지만, 잉간이는 여전히 변환기를 착용하는 것을 내켜 하지 않았다.
너무 간소한 게 문제인가?
그럼 이번에는 좀 장식을 추가해주면 괜찮으려나?
클라인은 잉간이가 거부할 때마다 계속해서 변환기의 모양을 바꿔봤지만, 잉간이는 좀처럼 변환기를 착용할 생각을 해주지 않았다.
으, 좀 봐줘라. 잉간아.
이게 없으면 아예 외출을 할 수가 없단 말이야.
하지만 클라인이 자신의 머릿속에 든 디자인을 모두 시험해봐도 잉간이는 변환기를 착용하는 것을 거부했다.
아, 이걸 어떻게 하지?
클라인이 잉간이에게 변환기를 어찌 입혀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클라인은 좋은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목걸이형을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다른 형태로 바꿔보는 게 어떨까?
디자인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목걸이 형태인 게 문제가 아닐까?
아예 형태를 바꾸는 건 좀 귀찮고 힘드니 크기를 줄이기만 해도 만들 수 있는 형태인 반지형은 어떨까?
좋아, 한 번 해보자.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대충 눈대중으로 잉간이의 손가락 사이즈에 맞는 반지 형태로 변환기를 변형시켰다.
클라인의 추리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걸까?
잉간이는 클라인이 내민 반지형 변환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헤헤, 다행이다.
클라인은 그런 잉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변환기의 동기화 기능을 작동시켰다.
잉간이가 변환기를 붙인 부위에 맞게 클라인의 신체에도 변환기가 나타난다.
그런데 어째, 잉간이가 변환기를 낀 부위가 조금 이상한데?
“응?”
잉간이가 변환기를 낀 곳은 다름이 아니라 오른손 약지였다.
반지를 끼는 손가락에 따라 여러 의미가 있는데, 오른쪽 약지는 여러 뜻이 있지만 가장 대중적인 뜻은.
그, 뭐냐.
약혼반지나 결혼반지로 자주 쓰인다.
아니, 당연히 잉간이가 그걸 알고 오른손에 반지를 낀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크기가 비슷해지고, 어. 그리고 또 더 거리가 가까워지다 보니.
아무 의미 없는 행동임에도 자꾸만 의미를 부여해서 가슴이 콩닥거린다.
오른쪽에 자리 잡은 심장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심장에 사랑을 맹세한다는, 뭐 그런 의미라고는 하는데.
사실 잉간이는 심장이 오른쪽에 있는 게 아니라 중앙, 그리고 왼쪽에 치우쳐진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잉간이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약지에 반지를 낀 것이겠지만.
“으아. 아. 으아…….”
자꾸만 얼굴이 화끈해지는 걸 주체할 수가 없다.
얼굴을 흔들며 열을 식히려고 해도 자꾸만 달아오르는데, 그래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들고 클라인은 잉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잉간이와 동기화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잉간이는 클라인의 의도를 알아채고 바로 손바닥을 부딪쳐주었다.
그와 함께 어째서인지 몰라도 또다시 심장이 덜컥하는 기분이 든 클라인이였다.
클라인은 이 달아오른 기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빨리 밖에 나가서 차가운 공기를 쐬고 싶었다.
“산책…… 가자…….”
클라인은 잉간이와 함께 집 밖으로 나가려 잉간이를 잡아끌었지만, 잉간이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운 것인지 클라인의 손길을 거부했다.
자신보다 덩치가 더 커져서인지 클라인은 잉간이를 데려가는 데 쩔쩔맸다.
“산책, 가자. 재밌을 거야. 응?”
한참을 잉간이와 씨름하던 클라인은 잉간이가 드디어 그 발을 떼는 것으로 간신히 잉간이를 집 밖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드디어 잉간이와 함께 처음으로 외출한다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고개를 들고 바깥을 구경하는 잉간이의 모습을 보며 클라인은 궁금한 것이 생겼다.
지금 잉간이는 도시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01화 잉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가요!
바깥.
그러니까 클라인이 거주하는 도시, 혹은 마을.
그곳의 풍경을 처음으로 두 눈에 담고 난 뒤에 내가 받은 느낌은 실망감이었다.
아니, 왜.
외계인들의 도시하면 다들 떠올리는 모습이 있잖아?
막 SF틱한 고층 건물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뭐 이런 모습 말이다.
내심 속으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밖으로 나왔더니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평범 그 자체였다.
지구의 한 도시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아무 특색 없는 평범한 네모반듯한 건물들의 향연.
내가 생각하던 외계 도시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나는 저절로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에휴, 그래.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은 거겠지.
아니면 그 떡볶이 때와 마찬가지로 내게 가장 익숙한 형태로 보이는 거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곤 해도 진짜, 진짜 지구의 도시와 다른 부분을 찾아볼 수 없는 건 너무 실망스러운데.
아무리 생각해도 참 재미없는 도시다.
“:-)”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도시를 바라보고 있자 클라인이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살피며 내 손을 잡아당겼다.
집 안을 안내해줬듯이 내게 이 도시를 안내해주려는 걸까?
나는 클라인의 손길에 이끌려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도시를 구경했다.
첫인상은 평범한 도시였지만, 클라인의 뒤를 따라가며 주위를 구경하자 내가 아는 도시와의 차이점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찾아낸 차이점은 도시에 차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예 차도 같은 개념이 없이 전부 다 인도처럼 보이는데.
자동차나 그 비슷한 교통수단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직접 탑승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교통수단들이 존재하는 걸까?
차이점이 한 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계속해서 다른 차이점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작은 카메라처럼 생긴 일종의 드론들이 거리를 둥둥 떠다니고 있다거나, 눈앞에서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을 보면 좀 SF틱한 분위기가 나기는 하는데, 우주적인 분위기하고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보였다.
우주시대가 아니라 근미래적 SF 같은 느낌?
기대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에 내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던 그때, 클라인이 나를 어디론가 인도했다.
“응?”
여긴, 뭐지?
뭔가 일종의 공원 같은 곳일까?
도시 한복판에 텅 빈 공터 같은 곳인데, 마치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반짝거리는 불빛들이 가득하다.
이야, 이건 좀 멋지네.
마치 밤하늘에 뿌려진 별들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불빛들의 모습에 내가 감탄하며 공터를 바라보던 그때, 나는 불빛들이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단순한 조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자세히 살펴보니 저건 조명이 아니다.
전부 한창 불타오르고 있는 하나의 불덩어리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렇게 반딧불이의 불빛만 한 크기로 보일 만한 것이 절대 아닌데.
하지만 집중해서 불빛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내 머릿속엔 한 가지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별, 태양, 항성, 기타 등등.
공터에서 반짝이고 있는 불빛들은 전부 우주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거대한, 아니 자그마한 별들이었다.
도대체 저 별들이 저렇게 작은 크기로 보일 정도면, 이 도시의 크기는 얼마나.
아니, 그보다 클라인과 이 도시의 거주민들의 크기는.
그럼 클라인과 비슷한 크기인 지금 나의 크기는?
이게 가능한 일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갑작스러운 크기 변화에 내가 당황하며 제자리에 멈춰선다.
무언가 머릿속이 뒤죽박죽 어지럽혀지는 불쾌한 기분.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 불쾌감에 저항하려 한다.
그러자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에서 빛이 흘러나온다.
반지에서 빛이 흘러나오자 머릿속을 더럽히던 불쾌감이 사라진다.
이 반지, 단순한 반지가 아닌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클라인을 바라보자 클라인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안심하라는 의미로 슬쩍 클라인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그때, 내 눈에 또 하나의 특이점이 보인다.
마치 벌레들처럼 공터에서 꾸물꾸물 움직이는 작은 존재들.
그리고 그들은 클라인과 비슷한 동족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인간으로 보였다.
“■■■■■!”
그들은 뭐라 소리치고 있었는데, 나는 그들이 뭐라 외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한 번도 듣지 못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잘 작동하던 자동번역은 클라인의 집 밖에서는 작용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저들이 자동번역의 범위를 벗어난 언어를 사용하는 걸까?
저 인간들이 나와 대화가 통하진 않지만, 분명한 인간이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자연스럽게 나는 그들과 살짝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그들에게 다가갔고, 그들 또한 나의 접근을 눈치챈 듯 나를 향해 뭐라 소리 질렀다.
“어, 안녕하세요?”
그렇지만 나의 인사는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인간들은 분주하게 어디론가 도망쳤다.
이런, 저 사람들이 봐도 지금의 내 몸의 크기는 클라인과 다를 바 없는 걸까?
그렇게 속으로 아차, 하며 혀를 차고 있던 그때 그들이 다시 공터의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응?”
그런데 어째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
막 몸이 흐릿하게 흔들리는 것 같더니, 자유자재로 크기가 바뀐다.
처음보다 더 작아지기도 하고, 지금의 내 크기보다 더 커지기도 하거나 적당한 크기로 변하기도 한다.
딱 봐도 자연스럽게 저 인간들이 제어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0”
내가 인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클라인은 걱정스러운 듯한 목소리를 내며 나를 제지하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는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그러자 인간들은 나를 잔뜩 경계하며 내게 나무 막대기를 겨눴다.
저게 뭐지?
마법 지팡이라도 되나?
뭔가 불길함을 느낀 내가 몸을 뒤로 빼려는 것보다 먼저 인간들이 입술을 달싹이는 것이 빨랐다.
번쩍이는 불빛이 막대기 끝에서 보이더니 무언가가 쏘아져 내 가슴팍을 향해 날라온다.
“읏……!”
“:-0!”
클라인이 다급하게 비명 비슷한 고함을 외치며 내게 다가온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내 가슴팍을 확인했지만, 다행히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크르르…….”
에포나가 내게 공격이 닿기 직전에 방어해준 걸까?
에포나는 이빨을 드러내고 인간들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다시 인간들을 바라보자 인간들은 나를 두려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간들이 도망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위를 맴돌던 카메라 형태의 드론들이 나타나 인간들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며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저들에겐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보였던 걸까?
뭔가 대화를 해보고 싶었는데.
어쩌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저들에겐 나도 클라인의 동족과 비슷하게 보이는 걸까?
그들의 도움을 받고, 그들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문득 그 남자가 내게 말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마치 배신자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가슴에 상처가 나진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가슴이 시큰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 * *
잉간이는 이곳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솔직히 클라인 스스로도 이 도시가 그닥 재미있는 곳이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관광지라고 할만한 곳도 없고, 그냥 대도시 주위에 생겨난 흔해 빠진 위성도시들 중 하나일 뿐이다.
유일하게 특이한 점이라면 리베리아의 존재인데, 잉간이를 데리고 리베리아로 산책을 나갈 수는 없으니까.
거기까지 가는 건 산책이 아니라 여행 수준이잖아?
그래도 클라인은 잉간이가 이 도시를 좋아해 주길 바랐다.
그래도 자신이 살고있는 도시니 말이다.
잉간이도 바깥 풍경이 꽤 흥미로웠는지 클라인이 먼저 안내하지 않아도 먼저 주위를 기웃거리며 도시를 구경하고 있었다.
“여기는 마력 충전소. 마키나들의 식당?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오늘은 별로 없네.”
비록 잉간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클라인은 잉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주위의 건물들을 설명했다.
계속해서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잉간이가 공용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
그런 생각으로 잉간이와 함께 길을 걷던 클라인은 슬쩍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나 이거 가지고 트집 잡히는 일은 없겠지?
주위의 정부의 드론이 없는 걸 봐선 아직 괜찮은 것 같다.
나 혼자서 이렇게 말하는 건 차원 생물과의 대화로 취급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안심하던 클라인은 마지막으로 잉간이를 이끌고 근처의 공터로 향했다.
아직 별이나 다른 물질들을 치워놓지 않은 텅 빈 공터다.
곧 건물이 지어진다고는 하는데, 그런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 걸 봐선 사실상 버려진 공터나 다름없다. 여길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클라인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들인간?”
들인간들.
최근 브리더 협회의 노력으로 유기생물이 많이 줄었다곤 해도 여전히 유기되는 생물은 존재하고, 이미 유기되었던 생물들 또한 존재한다.
지금 클라인의 앞에 나타난 들인간들 또한 예전에 유기되었던 들인간들이다.
너무 과도한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인간형 생물들의 특징 덕분에 현재 도시에서 가장 많이 살아가는 유기동물은 인간형 생물들이라 할 수 있다.
이 공터에 평소에 사람들이 잘 방문하지 않아서 들인간들이 이곳을 은신처로 삼은 걸까?
“음…….”
들인간들이 사람에게 해를 끼칠 일은 없지만, 잉간이한테는 아니다.
아무리 잉간이가 크기 동기화로 들인간들 보다 거대한 크기가 되었다 해도 충분히 위험할 수 있다.
그래, 지금 저것처럼 들인간들이 크기가 고정되지 않은 것도 한 몫한다.
불안해진 클라인은 서둘러 잉간이를 멈춰 세우려 했지만, 잉간이는 같은 인간형 생물을 만나서 신난 건지 소통을 시도해보려는 것 같았다.
“0ㅁ0!”
“앗……!”
클라인이 그런 잉간이를 말리기도 전에 잉간이에 겁을 먹은 듯한 들인간이 잉간이에게 공격을 가해왔다.
잉간이도, 클라인도 화들짝 놀란 사이에 들인간들은 빠르게 도망치려 했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드론들이 들인간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경고, 비시민의 재물 손괴 행위가 감지되었습니다. 경고…….”
멀어져 가는 드론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클라인은 서둘러 잉간이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도 차원 파괴자가 잉간이에게 가해진 공격을 중간에서 차단한 듯, 잉간이의 몸에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동족에게 공격받은 충격 때문인지 다소 뻣뻣하게 굳어있을 뿐이었다.
오늘의 산책은 이만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다.
클라인은 서둘러 잉간이의 손을 붙들고 집으로 돌아갔고, 파인만에게 잉간이의 상태를 보고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 응.”
“그래? 다행이다…….”
파인만에게서 동행해도 된다는 OK 선언이 떨어지자 클라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잉간이의 준비도 끝났으니 이제 진짜 지구로 출발하는 것만 남았다.
클라인이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를 다지던 그때, 파인만의 시선이 클라인의 손가락으로 향했다.
“야, 근데 그거 뭐냐?”
“응? 뭐가?”
“……손가락에 그거. 뭐냐?”
“어?”
파인만은 클라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며 다 알겠다는 듯 눈웃음지으며 클라인을 추궁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냐?”
“아니, 이건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사소한 오해가 생긴 모양이다.
202화 지구로!
나는 배신자 같은 게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나의 목적.
처음엔 단지 살아남는데 급급할 뿐이었다.
그 다음에는.
클라인과 친구가 되고, 클라인과 동등한 자리에 서서 클라인에게 보답하고.
그 다음에는?
아직, 깊이 생각한 적 없었다.
이젠,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두 번째로 세운 목표도 이젠 거의 다 이뤄간다고 느끼니까.
이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목표도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 너머 불가능한 수준의 목표 또한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방황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이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없다.
사실, 이제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은 없다.
전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만이 남았다.
그냥 무시해도 된다.
그냥 살아가도 된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이미 한 번 무시했기에, 어쩌면 두 번 무시한 것일 수도 있기에.
세 번이나 무시하고 싶지 않다.
내게 기회가 주어졌으니 말이다.
뭐, 일단은 클라인과 제대로 대화하는 게 우선이지만 말이다.
“으음. 그러니까 이게…….”
클라인의 목소리를 녹화해둔 걸 재생시키며 단어의 뜻을 추측해본다.
오늘 처음 듣는 단어를 들었는데, 밖으로 나가는 상황에서 새로운 단어가 출현했으니까.
산책이나 그 비슷한 단어인 걸까?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단어를 외우고 있던 그때.
“어?”
클라인의 촉수가 휘적휘적 하늘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클라인은 내게 줬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반지 3개를 건네줬다.
내게 반지를 건네주고 클라인의 촉수는 빠르게 차원항에서 빠져나갔다.
반지?
나는 내 오른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바라본다.
생김새도, 크기도 비슷한데 내 손에 끼워져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는 거겠지?
대충 클라인의 의도가 짐작 간 나는 세 사람이 모두 모이는 저녁 식사 때 슬그머니 반지를 내밀었다.
“음? 잉간, 이건…….”
“음…… 그러니까.”
그냥 반지를 끼워주는 별 것 아닌 행동인데 왜 이렇게 쑥스러운지, 원.
나는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우선 블랑카의 왼손에 반지를 끼워줬다.
이어서 아리스와 리키에게도 왼손 약지에 반지를 모두 끼운다.
아리스와 리카는 그냥 내게 선물을 받은 거로 기뻐하는 것 같았지만, 블랑카는 반지의 의미를 이해했는지 정말, 정말로 기쁜 듯한 웃음을 지었다.
“어…… 지금까지 고마웠고. 그리고 또…… 앞으로도 잘 부탁해?”
뭔가 속마음을 다 들킨 듯한 기분에 머쓱하다.
괜히 말을 더듬으며 내 마음을 전하자 블랑카는 웃으며 나를 뒤에서 껴안는다.
“……물론이지. 고마워. 후훗.”
“무슨 이야기야?”
블랑카와 내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아리스와 리키가 고개를 들이민다.
그러자 블랑카는 아리스와 리키에게 반지의 의미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냐면 말이지…….”
“응, 응.”
블랑카의 설명을 들은 아리스와 리키 또한 기쁜 듯 웃으며 내게 달라붙었고, 붉게 달아오른 내 얼굴이 잠잠해지는 건 다음 날이 되어서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차원항 밖으로 나가는 포탈이 사라졌다.
* * *
“아니, 이건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저거냐?”
“저것도 아냐! 그러니까. 잉간이 때문에…….”
“……뭐? 잉간이 때문에?”
“아니! 그러니까, 그. 이거 그거거든? 그, 상대적 크기 고정기? 다른 게 아니라 그거야!”
“그걸 왜 굳이 반지 형태로……?”
“아니! 잉간이가 목걸이 형태를 너무 싫어해서 어쩔 수 없이…….”
“근데 왜 오른손에 꼈냐?”
“내, 내가 낀 거 아냐!”
“그럼 뭐, 잉간이가 끼웠어?”
“어. 그게. 비슷한데. 정확하게는 그게 아니라…….”
뭔가 해명하려 하면 할수록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에 클라인은 점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당황한 클라인의 모습을 보고 즐기던 파인만은 즐길 만큼 즐겼는지 피식 웃으며 슬슬 클라인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그래. 크기 고정기는 피대상자의 착용 위치에 따라 위치가 바뀌지.”
“응! 맞아! 그래, 그거야!”
“그냥 그렇게 말하면 될 거, 왜 그렇게 부끄러워해?”
진짜 남자하고 엮인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부끄러워하는지, 원.
파인만은 자신의 친구가 정말 이런 쪽으로는 서툴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클라인이 잉간이를 아끼긴 해도 설마 진짜로 그런 감정을 느끼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그렇겠지……?
붉게 달아오른 클라인의 얼굴을 보며 파인만은 클라인이 지금까지 보여주던 태도를 떠올렸다.
클라인이 지금까지 연애다운 연애란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긴 해도, 저런 모습을 보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클라인의 외모를 보고 접근해온 사람 대부분은 파인만이 미리 쳐내기도 했지만, 클라인 스스로도 철벽을 쳤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파인만은 정말 클라인이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건지는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클라인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파인만의 걱정이 정말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면?
“흐음…….”
애완 생물과의 사랑이라.
뭐, 일단 법적으로 문제가 있지는 않지만 당연하게도 사회적으로는 꽤 문제가 있다.
그 외에도 여러 혜택이나 지원을 받을 수 없겠지.
파인만도 잉간이가 단순한 차원 생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클라인의 옆에서 클라인이 말하는 것을 쭉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클라인은 쥬튜버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직업이란 말이다.
만약 클라인이 잉간이에게 품은 감정이 진심으로 드러난다면, 그리 좋은 결과가 나오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애완 생물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어도 온갖 말이 나올 텐데, 그게 애완 생물이다?
어쩌면 클라인은 다시는 쥬튜브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클라인이 그렇게 인간을 지적 생물로 인정받게 하려고 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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