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24
뭐, 은하는 그걸 주인의 흑역사로 생각하지 않고 재밌는 에피소드로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글쎄?
은하의 주인이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얼굴을 붉히며 당장 이불에 얼굴을 파묻지 않을까?
은하와 내가 그렇게 떠드는 사이, 녹음벨 훈련이 끝났는지 거대한 녹음벨들이 하늘로 다시 올라간다.
슬슬 녹음벨 훈련이 다 끝난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은하의 차례가 왔을 뿐인 것 같다.
“어머나, 오늘 기분이 좋은 모양이네.”
하늘에서부터 기묘한 안개처럼 보이는 구름 덩어리가 조심스럽게 은하에게 다가오고, 은하는 피식 웃으며 구름 덩어리에 손을 올렸다.
“ඝ”
그러자 작게 억제된 들뜬 감정이 슬쩍 전달되어왔다.
은하가 왜 자기의 주인을 귀엽게 여기는지 알겠네.
감정을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저렇게 다 주변에 드러나는 모습이 조금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은하가 구름 덩어리 위에 손을 올린 다음에는, 구름 덩어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은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 늙은이를 이렇게 부려먹네.”
은하는 그렇게 투덜거리긴 했지만,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은하는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입에 리모컨처럼 생긴 물건을 들고 나타났고, 그걸 구름 덩어리에 건넸다.
“ෂ”
그러자 또다시 작게 억제된 감정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뭐, 방금 한 건 손, 이라던가 신문을 가져오는 훈련 같은 거려나?
내가 피식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때, 하늘에서 익숙한 클라인의 손이 내려왔다.
“:-*”
약간 부끄러워하는 듯한 클라인의 감정이 느껴지고, 나는 클라인이 내게 뭘 요구하는지 깨달았다.
뭐야, 너도 이런 걸 하고 싶은 거야?
뭐, 이 정도는 기꺼이 어울려주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클라인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리자, 숨기지 않고 뛸 듯이 기뻐하는 클라인의 감정이 느껴졌다.
이어서, 이번에는 지난번에 내게 줬었던 것과 비슷한 사이즈의 녹음벨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지난번에는 녹음벨 하나만 내려왔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꽤 종류가 다양하다.
일단 하나씩 흔들어 보면서 클라인의 반응을 좀 살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흘낏 은하를 바라보며 슬쩍 도움을 구해봤다.
“여기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아시죠?”
“물론, 당연하지.”
“그럼. 여기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좀…….”
“어머, 그건 좀 재미없잖니? 직접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야지.”
“으, 그렇겠죠.”
역시나 내게 그냥 녹음벨에서 나는 소리를 통역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일단, 가장 앞에 있는 이 초록색 종부터 울려보자.
내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종에서 울려 퍼지고, 조심스럽게 하늘에서 익숙한 젤리가 내려왔다.
이 초록색 종은 간식에 관련된 종이려나?
그렇다면 옆의 붉은색 종은 뭘까?
나는 조심스럽게 붉은색 종을 흔들었고, 그러자 클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건, 클라인을 호출하는 종이려나?
그렇다면 이 옆의 보라색 종은?
종을 흔들자 기다렸다는 듯 클라인의 촉수가 내게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뭐, 이건 안아줘, 이런 느낌의 종이겠지?
나는 몇 번인가 쥬튜브에서 봤던 강아지 훈련 영상을 떠올리며 각 색상 종들의 목적을 추리했다.
하지만 종을 흔들어도 더 이상의 반응이 없는 종들이 내 예상보다 더 많았고, 더 이상의 추리는 무리라고 느껴졌다.
슬쩍 은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은하는 그저 웃으며 내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생각보다 어렵지?”
“조금, 그렇네요.”
“성운과 성단이도 처음에는 엄청 헤맸단다. 잘 노력해보렴.”
아니, 그래도 조금씩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야지.
갑자기 이렇게 대량의 종을 들이밀면 누구나 힘들어하지 않을까?
나를 믿어주는 건 고마운데, 초보자는 초보자에 맞는 난이도의 문제를 출제해줘야지.
그렇게 내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자, 갑자기 하늘에서 또다시 새로운 무언가가 내려왔다.
“음?”
이번에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물로 추정되는 투명한 액체가 담겨있는 그릇이었다.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아봐도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는데, 아무리 봐도 그냥 물인데?
내가 물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클라인의 촉수가 조심스럽게 내 앞에 녹음벨을 가져다 놓았다.
이것도 녹음벨과 관련된 걸까?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럽게 녹음벨을 흔들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뭐지? 이게 아닌가?
나는 의아해하면서 계속해서 다른 녹음벨들을 흔들었고, 계속해서 다른 녹음벨들을 흔들던 그때, 회색 녹음벨을 흔들자 클라인의 반응이 돌아왔다.
“:-)”
클라인은 기쁜 모습으로 내게 다시 젤리를 던져줬고, 나는 어째서 클라인이 내게 젤리를 줬는지 고민했다.
간식에 관련된 건 초록색 종인데, 그게 아니었나?
아니, 다르게 생각해보자.
클라인이 내게 젤리를 주는 건 보통 일종의 보상 개념으로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내가 이 종을 흔들었을 때 보상을 받을만한 행동을 했다는 건데, 그게 뭘까?
내가 고민하는 사이 클라인은 물이 담긴 그릇을 다시 하늘로 가져갔다.
그 다음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나무 파편으로 보이는 물체들이었다.
이건 또 뭘까?
일단, 이번에도 마구잡이로 녹음벨을 흔들어보자.
일단 먼저 아까의 회색 녹음벨부터 흔들어보자고.
그렇지만 회색 녹음벨을 흔들어도 젤리는 돌아오지 않았고, 회색 녹음벨이 아까의 행동과 관련 있지 않다는 것을 난 깨달았다.
다시 계속해서 녹음벨들을 흔들던 중, 흰색 녹음벨을 내가 흔들자 클라인이 기뻐하며 또다시 내게 젤리를 주었다.
두 번째로 젤리를 받으니까, 뭔가 알 것 같기도 한데?
그리고 다시 나무 조각이 하늘로 올라갔고, 이번에는 조금 다른 형태의 훈련이 시작됐다.
지금껏 내 앞에 나타난 건 실체를 가지고 있던 물체였지만, 이젠 클라인의 감정이 강렬하게 쏟아져 내려온다.
“:-)”
강렬한 호의의 감정을 받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고, 일단 다시 한번 녹음벨을 흔들어보았다.
이번에 클라인이 반응한 것은 분홍색 녹음벨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이 훈련의 목적을 깨달았다.
이건, 내게 일종의 단어들을 가르치기 위한 훈련이다.
아마 추측이지만 저 회색 녹음벨에는 물과 연관된 단어가 녹음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흰색 녹음벨에는 나무와 관련된 단어가 녹음되어 있을 것이고, 분홍색 녹음벨에는 아마 호감이나 호의와 관련된 단어가 들어있을 것이다.
좋아. 이런 단어가 녹음되어 있는 게 아닐까?
자, 이제 감은 다 잡았다.
다음 단어는 뭐가 떨어지려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이어진 것은 내 예상 밖의 일이었다.
갑자기 슬픈 듯 보이는 클라인의 감정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클라인의 슬픔에 나는 순간 당황하기 시작했고, 클라인의 감정은 옅어지긴 커녕 오히려 강해지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하지?
클라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내가 순간 이 모든 게 다 일종의 훈련이라는 걸 잊어먹을 정도로 강렬한 감정이었고, 나는 당황하며 어떻게든 클라인을 위로할 방법을 떠올렸다.
손을 뻗어서 클라인과 교감을 나누기엔 클라인의 손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클라인이 더 마음 상하기 전에 위로해주고 싶은데, 어쩌지?
당황하던 내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르고, 나는 서둘러 분홍색 종을 열심히 흔들었다.
뭐가 됐든 호감의 뜻이 담긴 녹음벨이니 힘내라는 격려의 뜻이 전달되지 않을까?
나는 당황한 모습으로 서둘러 분홍빛 벨을 계속해서 흔들었다.
그러자 강렬한 슬픔이 서서히 옅어지더니, 서서히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이 담긴 긍정적인 감정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음, 이 정도면 괜찮으려나?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며 종을 내려놨고, 내가 종을 내려놓자마자 마치 부끄럽다는 듯 클라인의 촉수가 재빨리 녹음벨을 회수해갔다.
일단 클라인이 다시 괜찮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옆을 돌아봤고, 왜인지 무척이나 기묘한 표정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은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그래요?”
“아니, 푸흡. 그냥, 조금 상황이 재밌어서.”
“네?”
“그렇게 열정적으로 말을 걸어주니, 네 주인은 참 행복하겠구나. 싶어서 말이지.”
“네?”
“네가 주인을 아끼는 마음은 모두가 잘 알았을 거야. 큭큭.”
진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그렇게 내게 의문만 남긴 채로 갑자기 시작된 녹음벨 훈련은 시작했을 때처럼 갑작스럽게 끝났다.
아니, 도대체 마지막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63화 [소행성] 너 사람 맞다니까?
무슨 일인 건지 여전히 모르는 채로 어느덧 녹음벨 훈련은 흐지부지 끝났다.
진짜 마지막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클라인의 기분이 꽤 좋아진 거 같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탄탈로스들에 익숙해진 블랑카와 함께 적당히 은하와 이것저것 대화를 나눠본다.
블랑카는 나 이상으로 탄탈로스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은하에게 여러 가지를 질문해온다.
블랑카가 제일 먼저 은하에게 질문한 것은 리베리아를 아느냐는 질문이었다.
“리베리아를 아느냐고? 글쎄, 몇 번인가 영상 속에서 이름이 등장하는 걸 봤지만 그렇게 자세하겐 모른단다. 아마, 비교적 최근에 이름이 붙어졌을 테니 말이야.”
은하는 그렇게 말했지만, 블랑카는 행성이나 세계의 이름을 물어본 것이 아닌 모양이다.
“아뇨. 제가 묻고 싶은 건 저의 고향의 이름이 아닙니다.”
“응? 그럼…….”
“제가 묻고 싶은 건, 제가 신앙하는 신. 저의 동료가 신앙하던 신. 리베리아라는 존재입니다. 지금껏 저희가 라이베리아 님이 행했다 믿은 일의 대부분은 높은 곳의 자들이 행한 일이라는 걸 이젠 압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지금껏 제가 신앙하던 존재는 정말 존재하던 겁니까?”
아, 그러고 보니 블랑카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겠구나.
내가 클라인에 대해 알아가던 것처럼 블랑카 또한 클라인과 리베리아에 대해서 깨달았을 테니까.
블랑카의 질문을 들은 은하는 잠깐 놀랍다는 듯 눈썹을 올렸다가, 정체 모를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는걸?”
“네?”
“나는 네가 신앙하던 존재를 직접 관측한 적이 없고, 그것을 믿지도 않으니까. 관측한 적도, 믿지도 않은 존재의 존재를 내가 논할 수 있겠니?”
“……그런가요?”
블랑카는 그런 은하의 대답을 자신도 모른다는 대답으로 받아들인 것 같지만, 저렇게 은하가 미소짓는 걸 보니 무언가 다른 뜻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그것의 존재를 논하는 건 그걸 신앙하고 관측한 적 있는 존재만이 가능한 일 아닐까?”
“……그렇겠죠.”
“잉간에게도 말한 거지만, 믿음이란 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 때로는 믿는 것만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그건, 저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아직 잉간이 보는 풍경을 공유하는 것조차 불가능한걸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네?”
무언가 선문답 같은 대화가 이어지고, 은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부정한 블랑카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다른 사람을 믿는 건, 누구나 가능한 일이잖니? 그리고 그 믿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바꿔놓지. 자, 이게 현실이 바뀐 게 아니면 뭐겠니?”
“그건…….”
“현실을 바꾸는 건 누구든지 할 수 있단다. 당장 너만 해도 네가 서 있는 것만으로 주위의 현실을 바꾸고 있잖니? 너의 들숨과 날숨이 주위 분자들의 위치를 바꾸고, 에너지의 형태를 바꾸지. 믿음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이지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힘이란다. 그러니 네 믿음에 의심을 품지 말렴.”
은하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무릎 위에 딱 달라붙어 있는 에포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믿음이 얼마나 강력한진, 저 아이가 그 누구보다 잘 보여주잖니.”
그렇지만 블랑카는 은하의 시선이 내게 향한 것으로 생각했는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지었다.
“네. 그렇네요.”
딱히 내가 보여준 건 별로 없는 거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렇지만 블랑카는 은하의 그런 이야기만으로 납득했는지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바꿨다.
“그럼, 신들의 전장에 대해서 아시는 건 있으신가요?”
“신들의 전장? 네 세계에서 전해지는 전승의 이름이니?”
“네. 뛰어난 활약을 펼친 전사가 신들에게 선택되어 영원한 전투를 펼친다는 장소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그 전승이 높은 자들과 연관된 게 아닌가 생각되어서…….”
“으음, 나는 잘 모르겠구나. 성운과 성단이 보던 영상에서 가끔 비슷한 영상이 나오긴 했어도, 너무 종류가 많아서 말이지…….”
“아닙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도움이 됐습니다.”
주인들의 사회에 그것과 유사한 콘텐츠가 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는지 블랑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은하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다 된 모양이다.
근처에 차원항으로 돌아가는 차원문이 생겨나고, 슬쩍 클라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이제 슬슬 작별할 시간이구나.
탄탈로스들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성운과 성단이 아쉬운 듯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슬쩍 은하에게 성운에게 줄 사인이 적힌 종이를 내민다.
그러자 은하는 피식 미소지으며 내게 마지막으로 덕담 비슷한 조언을 해준다.
“개인적으로는. 네가 이대로만 있었으면 좋겠구나.”
“네?”
“너와 네 주인의 관계가 어디까지 갈지 계속 지켜보고 싶구나. 저 아이들이 왜 그렇게 빠졌는지 몰랐는데, 직접 보니 이렇게 응원하게 되는구나.”
은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미소지으며 우리를 배웅했다.
그렇게 잠깐의 짧은 외출이 끝났다.
“으으, 잉간!”
다행히 밖에서 내가 경험한 시간과 차원항 내부의 시간의 흐름은 동일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리키가 외로워하기엔 충분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보이지 않게 돼서 깜짝 놀랐잖아…….”
침대 위에서 나를 꽉 껴안고 투정 부리는 리키를 다독이며 나는 조용히 뭔가 바빴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부턴 다시 일상의 시작이다.
언제나처럼.
* * *
“저거 봐봐. 성운이가 자기 간식 꺼내와서 나눠준다?”
“어머, 진짜네요.”
“진짜 기특하지?”
소행성은 그렇게 말하며 흐뭇하게 탄탈로스와 잉간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소행성의 모습을 클라인은 살며시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클라인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소행성은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이미 쥬튜브 영상으로 저런 팔불출 같은 모습은 잔뜩 보여줘 놓고선 왜 갑자기 이미지 관리를 하려는 걸까?
뭐, 그런 모습도 뭔가 귀여우니까 상관없지만.
어느덧 마음이 놓인 클라인은 소행성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 그럼 슬슬 가져올게. 녹화 버튼, 나 대신 눌러줄 수 있어?”
“아, 네.”
그렇게 표정을 가다듬은 소행성은 서둘러 훈련용 녹음벨을 가져왔고, 소행성은 클라인이 녹화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탄탈로스들에게 녹음벨을 던져줬다.
그러자 성운과 성단은 익숙한 모습으로 녹음벨 가까이 다가가 녹음벨을 조작하려 했다.
하지만, 성운과 성단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푸흡. 자기 몸이 작아졌다는 걸 잊어버렸나 보네.”
“그러게요.”
평소와는 달리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녹음벨에 당황한 것인지 성운과 성단은 한동안 녹음벨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행성은 그런 탄탈로스들의 허당끼 넘치는 모습을 보며 미소지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다 보니 자주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게 진짜 귀여운 거 있지.”
“아, 맞아요. 뭔가 살짝 하찮은? 멍청한? 그런 모습을 보여줄 때 엄청 귀엽잖아요.”
“그치, 그치.”
클라인은 그런 소행성의 감상에 동의하며 슬며시 잉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뭐, 잉간이는 그런 모습 말고도 평상시의 모습도 전부 귀엽지만 말이다.
그렇게 클라인과 소행성이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이, 성운과 성단은 원인을 알아차렸는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단번에 자신들이 원하는 목소리가 담긴 녹음벨을 작동시켰다.
“간식 줘!”
낭랑한 소행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소행성은 방긋 웃으며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흘렸다.
“흐흣.”
소행성은 웃는 얼굴로 간식을 달라 졸라대는 성운과 성단에게 간식을 제공했고, 두 아이는 들뜬 표정으로 간식을 먹어치웠다.
간식 외에도 탄탈로스들은 주인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지 녹음벨을 두드리며 소행성에게 말을 걸었다.
소행성은 웃으며 두 아이들을 보살피며 슬쩍 추억 이야기를 꺼냈다.
“이 아이들은 사실 처음엔 데려올 생각이 없었어.”
“성운이하고 성단이요?”
“응. 은하하고 같이 도시를 산책하는데, 갑자기 혼자서 뛰쳐나가더니 쓰레기통 근처에서 이 아이들을 데려온 거 있지?”
“어머나.”
“다시 버릴 수도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데려와서 검사해보니 허가를 받지 않고 태어난 아이들이어서 주인이 어쩔 수 없이 버린 모양이더라.”
“그런……”
“뭐, 네 마리의 탄탈로스를 키우는 건 허가를 받기도 어렵고, 키우기도 어려운 일이니까 이해는 해. 법을 어길 수는 없으니까.”
“그렇죠.”
그래.
아무리 차원 생물들이 귀엽고 불쌍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원 생물보단 사람과 법을 우선시한다.
그게 당연한 거니까.
“나도 그때는 자격증이 없던 상태여서, 일단은 브리더들한테 잠시 위탁을 맡겼지. 그리고 자격증을 딴 이후에 다시 데려왔어.”
“그냥 분양 보내도 되지 않았어요?”
“그치만, 이미 정을 붙였는데 어떻게 그래요? 저 귀여운 아이들을. 주웠으면 제가 끝까지 책임져야지. 뭐, 내가 주워온 건 아니지만.”
“그렇죠. 책임져야죠.”
그렇지만, 클라인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한 생명을 맡았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리고 그 책임에는 법을 어겨서 처벌을 받는 것도, 법을 어기지 않고 책임질 의무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법을 어기기 싫다고 책임을 포기하는 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법을 어기기 싫다면, 스스로 법을 바꾸거나 자격을 얻을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것이 클라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데려와서 책임지지 않는 건, 버려진 아이가 너무 힘들잖아요.”
클라인은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조용히 그렇게 중얼거렸고, 소행성은 그런 클라인을 슬픈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래. 그렇지…….”
소행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만히 클라인의 손을 꼭 붙잡았고, 클라인은 소행성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슬쩍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손뼉을 치며 클라인에게 은하의 이야기를 꺼냈다.
“맞다. 너, 우리 은하 장기 좀 볼래?”
“장기요?”
이미 단체 합방을 진행했을 때 소행성의 영상에서 봤지만, 클라인은 소행성이 은하를 자랑하고 싶은 것이겠거니 하고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궁금하네요.”
“그래. 자, 봐봐. 내가 이렇게 은하를 부르면…… 은하야~”
소행성이 은하를 부르자 잉간이 근처에 있던 은하는 고개를 들고 소행성의 부름에 반응했고, 소행성은 조심스럽게 손을 은하 가까이 내밀며 외쳤다.
“손!”
그러자 은하는 단번에 소행성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뒀고, 소행성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클라인을 바라봤다.
“엄청 대단하죠?”
“사람 말을 알아듣는 거 같네요.”
“후후, 여기서 놀라시면 안 되는데. 자, 은하. 리모컨!”
소행성은 뽐내듯 웃으며 슬쩍 손 모양을 바꿔서 은하에게 지시를 내렸고, 은하는 슬쩍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리모컨을 들고 나타났다.
은하에게서 리모컨을 건네받은 은하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 가끔씩 사람이 탄탈로스 흉내를 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니까.”
“……하하. 그러게요.”
그렇지만 클라인은 리만 협회장에게서 전해 들은 사실이 떠올라 소행성을 따라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은하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해온 친구야. 부모님 말씀으로는 나보다도 더 나이가 많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정말로요?”
“응. 아마 그래서 저렇게 똑똑한 거라고 생각해. 어렸을 때부터 내 말을 다 알아들었다니까?”
“와, 그거 신기하네요.”
“그러니까. 다른 언니들도 있었는데, 내가 가장 잘 챙겨줘서인지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니까?”
“부럽네요.”
“막, 내가 화장실에 가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고. 막 그랬지. 내가 은하랑 살게 된 것도 은하가 나랑 헤어지기 싫어해서야. 진짜, 참 응석꾸러기라니까.”
은하 이야기로 한바탕 즐겁게 떠든 소행성은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잉간이도 사용할 수 있는 사이즈의 녹음벨들을 가져왔다.
“맞다. 잉간이도 녹음벨 훈련 진행한 적이 있었지?”
“네. 그땐 녹음벨을 누르면 보상이 생긴다. 그 정도면 했거든요.”
“내가 보기엔, 좀 단계를 확확 뛰어넘어도 돼. 잉간이 엄청 똑똑한 거 같은걸?”
“그, 그래도 될까요?”
“뭐, 힘들어하면 다시 전으로 돌아가면 되잖아. 그리고 내가 보기엔, 잉간이는 지능이 거의 탄탈로스급이야.”소행성은 그렇게 말하며 클라인에게 녹음벨들을 건네줬고, 클라인은 우선 조심스럽게 잉간이가 놀라지 않게끔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손.”
무심코 자신도 모르게 아까 은하가 소행성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려두던 광경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말이다.
그러자 마치 클라인의 말을 알아들은 것마냥 클라인의 손 위에 잉간이가 손을 얹어왔고, 그 모습을 본 소행성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외쳤다.
“저것 봐봐. 아까 은하가 손, 하던 거 보고 바로 익힌 거라니까?”
“에헤헤…… 그, 그러게요.”
자신의 생각을 읽은 듯한 잉간이의 행동에 클라인은 웃으며 잉간이에게 여러 색상의 녹음벨들을 건네주었다.
잉간이는 녹음벨을 바라보며 이게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아내려는 듯 귀여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자, 지금부터 잉간이에게 단어를 알려줄 거야.”
“단어를요?”
“응. 간식. 좋아. 물. 배고파. 이런 단어들. 뭐, 정확히는 그런 음성이 나오는 종을 건드리면 주인에게 그런 뜻을 전할 수 있다고 인식시키는 거지만.”
클라인은 소행성에게 대략적인 훈련의 개요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정도면 잉간이가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훈련이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소행성의 지시대로 잉간이가 녹음벨을 건드릴 때까지 기다렸다.
잉간이가 제일 먼저 건드린 종은 ‘배고파’라고 말하는 종이었다.
클라인은 서둘러 잉간이에게 사료를 건네줬고, 사료를 받은 잉간이는 무언가를 추리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다음으로 잉간이가 건드린 종은 ‘주인님’이라는 단어.
소행성의 목소리로 주인님이란 단어가 울려 퍼지자, 클라인은 무언가 잉간이가 자신을 부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 여기서는 주인님이란 단어는 나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클라인은 서둘러 잉간이의 이름을 부르며 잉간이의 반응을 살폈다.
“잉간아!”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먹을 게 나오지 않아서 이상했던 걸까?
잉간이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으로 잉간이가 건드린 종은, ‘쓰다듬어 줘.’
곧바로 클라인은 잉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잉간이는 의문을 품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클라인의 손길을 즐겼다.
“좋아. 이제 녹음벨을 건드리면 주인의 행동이 바뀐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단어를 알려줄 차례야. 자, 시작은 물부터!”
“넵!”
클라인은 다시 소행성의 지시에 따라 잉간이 근처에 물을 놔두고 잉간이가 녹음벨을 건드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클라인의 반응이 없자 잉간이가 다시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잉간이는 규칙을 찾듯이 녹음벨을 이것저것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잉간이가 마침내 ‘물’ 녹음벨을 건드렸고.
“잘했어!”
클라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잉간이에게 사료를 건네주었다.
그 이후로도 클라인은 계속해서 단어들을 바꿔가며 잉간이가 제대로 된 종을 누를 때마다 사료를 선물했다.
잉간이도 슬슬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체와 자신이 종을 건드리는 행위가 관련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모습이었다.
“내가 보기엔 이미 잉간이는 저희 의도를 눈치챘거든? 그러니까 이제 슬슬 감정으로 넘어가자.”
“감정이요?”
“네. 좋아. 싫어. 졸려. 이런 감정들 말이야. 차원 생물들과 교감하는 것과 비슷한 거야. 네가 감정을 보내면, 잉간이가 그에 반응해서 그 감정을 담은 녹음벨을 건드리는 거지.”
“아, 네…….”
“그럼, 다음으로 잉간이에게 가르칠 단어는…….”
소행성은 클라인과 잉간이를 번갈아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씨익 웃었다.
“그래. 이건 어때?”
“뭐, 뭐죠?”
“사랑해.”
그렇게 다음 단어를 지정하는 소행성의 얼굴엔 장난꾸러기 같은 짓궂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164화 자, 따라 해봐. “사랑해”
“자, 따라 해봐. ‘사랑해.’”
“사, 사랑해요?”
“응. 원래 이렇게 말초적인 감정이 이해하거나 외우기 쉽거든.”
“그, 그건 아는데…….”
클라인은 우물쭈물하면서 얼굴을 붉혔고, 소행성은 클라인을 귀엽게 바라보며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자기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닌걸?”
“아니, 그게 아니라요!”
클라인은 소행성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삐죽 입을 내밀며 소행성을 바라봤다.
치, 자기도 남들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면서.
그래, 소행성의 말이 맞다.
이런 말초적인 감정들은 잉간이가 익히기 쉬울 테니까.
클라인은 헛기침하며 가슴을 진정시키고 조심스럽게 잉간이를 바라보며 감정을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클라인이 잉간이에게 보여줘야 하는 감정은 순수한 호의로 뭉친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잉간이를 앞에 둔 클라인에게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얼마 걸리지도 않고 클라인은 잉간이에 대한 호의를 풀어내며 가만히 잉간이를 바라봤다.
“잉간아…….”
클라인은 늘 잉간이가 고마웠다.
자신에게 용기를 주었기에, 자신이 버틸 수 있던 지짐대가 되어주었기에, 자신을 믿고 따라주기에.
그 모든 것이 고맙고.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원래라면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배워야 할 여러 감정들.
파인만과 헤론이 그녀를 챙겨주긴 했지만, 클라인이 마음을 닫고 있던 것도 있어서 부모만큼 친밀한 관계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잉간이는 클라인이 직접 마음을 연 상태에서 만났기에, 클라인이 성인으로서 배워야 했을 기초적인 감정을 잉간이와의 교감으로 배울 수 있었다.
고맙고, 사랑스럽고, 행복하고, 좋고, 흡족했다.
아직, 아직 클라인은 부족한 것이 많기에 자신이 잉간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지조차 못했다.
클라인은 그저 잉간이가 좋다.
그 사실만을 알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잉간이를 향한 호의의 감정을 듬뿍 실은 목소리가 클라인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잉간이는 클라인의 감정에 반응한 듯 고개를 갸웃하며 클라인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금세 이것 또한 녹음벨을 울리라는 신호인 것을 알아채고 이것저것 녹음벨들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잉간이의 손길이 점차 정답에 가까워지고, 클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며 잉간이가 정답을 고르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해!”
소행성의 목소리가 튀어나왔고, 클라인은 방긋 웃으며 잉간이에게 포상을 줬다.
“잘했어, 잉간아.”
찌르르.
정체불명의 감각이 클라인의 온몸을 짜릿하게 훑고 지나간다.
소행성의 목소리지만 잉간이가 직접 말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감각.
만약 잉간이가 스스로의 목소리로 나와 대화를 나눈다면 이 감각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을까?
그건, 정말 행복한 일이겠지.
잉간이를 처음으로 데려왔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잉간이와 언젠간 제대로 소통을 하며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클라인은 벌써부터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클라인의 모습을 바라보면 소행성은 피식 웃으며 다음 지시를 내렸다.
“좋아. 그럼 다음은 싫어. 이걸 가르쳐보자.”
“싫어요?”
“응. 긍정을 배웠으면 이제 부정을 배워야지? 지금 한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보여주면 돼.”
“부정적인 감정…….”
클라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부정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잉간이의 반응이 아직도 머리에 아로새겨져 있어서 그럴까?
클라인은 쉽사리 부정적인 감정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잉간이만 바라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클라인은 끙끙거리며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내려 애썼지만, 잉간이의 귀여운 모습을 보는 순간 모든 걸 잊어버리고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클라인. 잉간이가 귀여운 건 나도 알지만. 이건 훈련이니까…….”
“아, 네. 으음…….”
소행성의 지적을 받고 클라인은 어떻게든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내려 했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클라인은 과거의 흑역사를 떠올려보지만, 그것마저 아주 옅은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낼 뿐이었다.
그 정도로 잉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클라인은 잔뜩 들떠 있었다.
슬픈 생각, 슬픈 생각.
슬픈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더라?
클라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헤매고 있자 소행성이 슬며시 조언을 하나 던졌다.
“으음, 정 힘들면 잉간이가 사라진다고 상상해보는 건 어때?”
“잉간이가 사라진다고요?”
그런 소행성의 조언은 효과가 확실했다.
잉간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자마자 클라인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잉간이가 사라진다고?
안돼, 잉간이는 나랑 함께 있을 거야.
하지만 잉간이가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잉간이가 내가 싫다고 한다면?
사실 내 억지로 잉간이를 붙잡고 있는 거라면?
나 때문에 잉간이가 고통받고 있는 거라면?
순식간에 온갖 생각이 클라인의 머릿속에서 몰아치며 클라인의 감정을 극대화시켰다.
“으윽, 훌쩍. 잉간, 아…….”
클라인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폭발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까지 보이며 훌쩍거리며 잉간이의 이름을 불렀다.
싫어, 잉간이가 사라지는 건 싫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고칠게.
먹을 것도 맛있는 거 사주고, 환경도 더 좋게 바꿔줄게.
그렇게까지 말해도 잉간이가 괜찮다고, 필요한 게 없다고 말하면 어쩌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슬플 거다.
그러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완벽한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잉간이가 내게 원하는 게 생기면서 나를 떠나려 하지 않을까?
클라인의 생각이 조금 위험한 단계까지 미친 와중, 소행성은 클라인이 울음까지 터트릴 줄 몰랐는지 당황하며 클라인을 살피고 있었다.
“어, 어? 클라인? 괜찮아?”
“우으, 잉간아…….”
물론, 온갖 생각이 폭발하고 있는 클라인은 소행성의 조심스러운 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 클라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은 오로지 잉간이기에.
나는 잉간이가 좋은데, 잉간이가 나를 싫어한다면 나는 정말 슬플 거야.
클라인을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자신이 직접 잉간이의 마음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잉간이의 마음을 추측했던 것이 전부 클라인의 망상으로 밝혀진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기분이다.
그렇게 클라인이 우울한 기분에 빠져있던 그 순간.
“……응?”
클라인을 망상에서 깨어나게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잉간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분홍빛 녹음벨을 잔뜩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자연스럽게 녹음벨에 기록된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클라인을 두드렸고, 클라인은 그 목소리가 마치 잉간이가 직접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클라인이 원하는 것은 잉간이가 싫어라고 말하는 것이었으니 아무런 반응을 보이면 안 됐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잉간이가 사랑한다 말할 뿐인데 조금 전까지 클라인의 머리를 뒤덮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그저 클라인은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멈추려 표정을 기묘하게 일그러트릴 뿐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자기가 클라인을 싫어할 일은 절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잉간이는 끊임없이 녹음벨을 눌러댔다.
부정적인 감정의 파도에서 빠져나오자, 클라인은 잉간이가 어째서 이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 잉간이가 자신을 위로해주기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닐까?
“잉간아, 고마워…….”
클라인은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잉간이는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녹음벨을 두드렸다.
“으으…….”
처음에는 흐뭇하게 잉간이의 목소리를 즐기던 클라인이었지만 계속해서 저런 소리가 들려오자 차츰차츰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아직 누군가에게 고백 같은 걸 들어본 적도, 해본 적도 없지만 열렬한 사랑 고백을 듣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호의를 전달해오는 잉간이를 보자 클라인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열렬한 사랑 고백을 해오는 사람을 만난 느낌?
“이, 잉간아. 이제 괜찮아.”
클라인이 괜찮다고 말해도 잉간이는 계속.
“사랑해!”
클라인을 사랑한다 말했다.
쿵쾅, 쿵쾅.
클라인의 심장이 거세게 뛰고, 클라인은 입가를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뭐하는 거지. 나?
잉간이가 사랑한다 말한다고 두근거리는 건가?
아니, 잉간이는 인간이잖아!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되지.
하지만, 잉간이는 사람인데?
같은 사람한테 이런 두근거림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 아냐?
아니, 그래도……!
“클라인?”
“네헷?”
“괜찮아? 네가 울 정도로 슬퍼할 줄은 몰라서…….”
“아, 괘. 괜찮아요! 잉간이…… 덕분에. 이젠 괜찮아요.”
“그래? 눈이 붉은데, 괜찮지?”
클라인의 눈이 붉은 건, 울음보다는 사실 잉간이의 목소리 때문이었지만 클라인은 별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클라인의 모습이 걱정스러웠는지 소행성은 조심스럽게 녹음벨 훈련의 종료를 제안했다.
“일단, 오늘 훈련은 여기서 마칠까?”
“네, 네! 잉간이도 좀 힘들어 보이니까…….”
클라인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소행성의 제안을 수락했다.
뭔가, 더 잉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 소행성에게 숨기지 못할 정도로 심장이 쿵쾅거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클라인은 부랴부랴 촬영을 마무리했고,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게 소행성과의 합방이 마무리됐다.
“오늘 합방. 즐거웠어. 다음에 또 보자?”
“아, 네…….”
“후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네…….”
클라인은 멍하게 소행성과 헤어지고 나서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게 비몽사몽 집으로 돌아왔다.
조심스럽게 잉간이의 차원항을 원래 있던 위치에 놔두고 클라인은 침대에 푹 얼굴을 파묻고 몸부림쳤다.
“으아아아아…….”
내가 진짜 미쳤지.
잉간이를 보면서 그, 그런 생각을 해?
그렇지만 솔직히 오늘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중얼거린 셈인데, 솔직히 그건 반칙이잖아?
그렇게 중얼거린다면 그 어떠한 감정이 없는 사람도 두근거릴 것이다.
아니, 내가 막 두근거린 건 아니다.
응, 그런 거야.
맞아.
내가 잉간이를 좋아하는 건 말 그대로 좋아하는 거지, 사랑이 아냐.
아니, 애초에 반려생물을 상대로 사랑을 논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지!
내가 진짜 미친 걸까?
하지만 잉간이는 사람인데……?
아니!
내가 오늘 두근거린 건 잉간이가 나를 위로해줘서다.
응, 그런 거야.
그렇게 슬픈 기분이 든 것도 잉간이가 사라진다 생각해서라는 사실에서 눈을 돌린 채 클라인은 붉게 물든 얼굴로 천장을 바라봤다.
자꾸만 가슴에서 근질근질한 기분이 드는데 이게 무슨 기분인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클라인은 그 기분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아무리 클라인이 여러 감정에 무지하다 해도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항상 떠들어대는 감정이니까.
하지만.
클라인은 그 감정을 인정하기 두려웠다.
그 감정을 인정한다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기에.
잉간이의 의사를 무시하더라도 잉간이를 자기 곁에 두고 싶을 것 같기에.
클라인은 참았다.
나중에.
나중에 잉간이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이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을 거라며 자신을 속이며 말이다.
이미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는 건데 말이다.
“후우…….”
클라인이 그렇게 달뜬 숨을 진정시키며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때.
딩동-
누군가가 찾아왔음을 알리는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파인만?
유리?
아니면 이모?
세 사람 전부 다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올 사람은 아닌데.
거기까지 생각한 클라인의 머리에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쳤다.
설마.
아니겠지?
클라인은 불길하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고.
“안에 들어가도 되죠, 클라인 양?”
“네, 네에…….”
최근, 그리 반갑지 않은 손님이 클라인의 집에 찾아왔다.
리만 협회장 말이다.
165화 [브리더 협회 공식] 유기 생물 보호 센터가 여러분께 찾아갑니다
“으음…….”
막 잡아 온 살아있는 해파리들을 담은 나무 그릇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파직.
슬쩍 그릇 안으로 고기를 떨어트리자 잠깐 짧은 방전이 일어난다.
전에 봤던 해파리가 내뿜던 전기에 비해서 무척이나 미약하게 느껴진다.
아마, 그때 내가 봤던 그 해파리는 다른 괴물들을 잡아먹고 성장하여 내가 봤던 수준의 전기를 뿜어냈던 것이겠지.
그때 그 수준까지 해파리를 키운다면 2~3마리로도 내가 원하는 수준의 전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 상태의 해파리들로는 몇 마리가 있어도 부족해 보인다.
뭐, 이 해파리들을 양식하면서 그 푸른 점액에게 하던 것처럼 마석을 주면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자라나겠지만, 글쎄?
굳이 그렇게 귀찮고 어려운 일을 공들여서 해야 할까?
좀 더 쉬울 거로 보이는 다른 방법들이 있는데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해파리들의 몸 가운데에 달라붙은 마석을 떼어내자 해파리들은 단숨에 움직임을 멈췄다.
이걸로 해파리들로 발전기를 만든다는 계획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판명됐다.
이제 남은 건, 아리스가 직접 전기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공방 문을 열고 나오자, 에포나가 놀아달라는 듯 내게 엉겨 붙는다.
피식 웃으며 에포나를 안아 들자 에포나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에포나.”
“왕?”
“내 이름. 잘 기억하고 있냐?”
“왕!”
충직한 파수견처럼 에포나는 자기만 믿으라는 듯 짖지만, 그 작은 체구로 그러니 웃음만 나온다.
에포나를 쓰다듬으며 아리스의 흔적을 찾고 있으니, 어디론가 바삐 날아가는 아리스의 모습이 보인다.
나를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발톱에 무언갈 꽉 움켜쥐고 열심히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모습이 퍽 앙증맞다.
도대체 어디로 그리 바쁘게 날아가는 걸까?
호기심이 생긴 나는 아리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슬며시 아리스의 뒤를 밟았다.
아리스는 하늘을 훨훨 날아 산 중턱으로 날아갔고, 나는 아리스가 사라진 장소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나는 아리스가 들어간 듯한 공간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절벽 위에 작은 동굴처럼 보이는 구멍이 하나 있던 것이다.
걸어서는 접근할 방법이 없어 보이는 것이 정말 비밀기지의 입구처럼 보인다.
저런 곳을 잘도 찾아냈네.
내가 감탄하며 가만히 절벽을 바라보고 있자, 아리스의 얼굴이 빼꼼 동굴에서 튀어나왔다.
아리스는 여기서 나를 만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듯 깜짝 놀라며 입을 벌렸다.
“이, 잉간?”
“뭐야, 비밀기지야?”
“으응. 비슷한 거야.”
“저긴 언제부터 발견한 거야?”
내가 기가 막힌다는 말투로 그리 중얼거리자 아리스는 내 옆으로 날아오며 중얼거렸다.
“얼마 안 됐어. 한 달 정도?”
“한 달? 그 정도면 진짜 얼마 안 된 거네?”
그러고 보니 어느 시점부터 아리스가 산으로 놀러 가는 일이 많아졌지?
아마 그때부터 이 비밀기지를 발견한 것 같네.
“안이 어떤지 궁금한데. 혹시 나도 초대해줄 수 있어?”
“응? 안이?”
“안돼?”
“어. 그게……”
아리스는 누군가를 경계하는 듯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내게 속삭였다.
“블랑카 언니한테는 비밀이야?”
“블랑카?”
“응. 절대 이야기하면 안 돼. 알겠지?”
블랑카에게 말하지 말라는 게 조금 의아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여 아리스의 조건을 수락했다.
“자, 그럼…….”
아리스는 내 어깨를 붙잡고 단번에 비밀기지의 입구까지 데려갔다.
비밀기지 안은 어두컴컴해서 마치 새의 둥지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껏 아리스가 만든 인형이나 장식들이 어디 갔나 했더니, 죄다 이곳에 있던 모양이다.
비밀기지의 벽면은 아리스가 직접 만든 것처럼 보이는 장식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옷에는 별 관심이 없던 녀석이 이런 걸 뭐하러 만드나 했더니, 여기에 쓰려고 만드는 걸까?
거기에 더해 바닥은 기묘한 푹신푹신한 섬유 조각들로 덮여있었다.
“이건 어디서 가져왔어?”
“응? 잉간이 맨날 버리던 건데?”
“내가 맨날 버리던 거?”
“그, 무두질? 하고 나서 맨날 물을 버리잖아. 그 물이 마르니까 이런 알갱이들이 남더라고.”
허어.
그런 게 있는지는 처음 알았네.
아리스의 비밀기지에는 아리스가 직접 만든 인형들 말고도 아리스가 긁어모은 여러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다.
내가 수제 용광로를 만들었을 때 생겨난 반짝거리는 유리질의 알갱이, 아리스 자기 자신의 깃털과 리키의 털로 추정되는 하얀 털들.
무언가의 뼈로 추정되는 작은 뼛조각과 작은 마석들.
도대체 이 잡동사니들에 무슨 규칙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리스는 들뜬 표정으로 내게 잡동사니들을 이것저것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저건 내가 사냥 가서 잡았던 녀석이고. 저건 또…….”
그렇게 들뜬 듯 보이는 아리스가 자신의 수집물들을 다 자랑하는 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든 수집품들을 자랑한 아리스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털썩 바닥에 드러누웠다.
“여기 이렇게 누워 있으면 기분이 좋아.”
“그렇게 보이긴 하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슬쩍 아리스 옆에 누워 아리스를 바라보며 마법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 지난번에 성운이한테 마법을 배웠잖아?”
“아, 응.”
“지금 수준은 그때에 비해서 어느 정도까지 올라갔어? 그냥 전기를 만들어내는 건…….”
“그건 아직 무리. 더 작은 알갱이들을 나눠야 하는데, 지금은 좀 힘들 거 같아.”
“그럼, 지난번에 보여준 자성을 부여하는 수준만 가능해?”
“응. 그런데?”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리스에게 내가 찾아온 정보를 하나 보여준다.
반려넷과 만능사전을 뒤져가며 찾아낸 정보, 바로 마석을 가공해서 미리 준비한 마법을 발동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때, 따라 할 수 있겠어?”
“음, 아마? 그냥 평소에 마력을 움직이던 대로 새겨넣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아리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근처에 굴러다니던 마석을 하나 주워서 마력을 불어넣었고, 마석은 아리스의 마력으로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응. 이거면 됐어.”
“그걸로 끝이야?”
이것만으로 가공이 다 끝났다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주위의 잡동사니들이 마석에 달라붙는 걸 보니 확실한 것 같다.
“그럼, 자력의 범위를 마석으로 한정시킬 수는 없어?”
“마석으로?”
“마석 주위의 물건이 자석이 되는 게 아니라, 마석만 자석이 되게끔 말이야.”
“아, 무슨 소리인 줄 알았어.”
간단한 수정이면 충분했던 걸까?
아리스는 내 요구사항을 아주 가볍게 이뤄냈다.
“마석에 든 마력이 다 소모되기 전까진 계속 유지될 거야!”
“그래. 그 정도면 됐어.”
좋아, 이제 자석을 만들었으니 드디어 발전기를 만들 수 있다.
이곳에는 구리가 없지만, 구리가 효율이 좋은 것이지 꼭 구리로만 전선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거기에다가, 돌뱀의 껍질이 구리보다 더 전선으로 적합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좋아. 그럼 이제 슬슬 돌아갈까?”
“벌써?”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따가 더 놀아줄게.”
“응!”
아리스의 도움을 받아 비밀기지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곧장 용광로를 조작해서 가는 철로 된 선들을 만들게 시킨다.
그냥 구리선으로도 간이 발전기를 만들 수 있었으니 따로 선을 가공할 필요는 없을 거다.
금속 선이 만들어지는 동안 나는 아리스가 만든 마석 자석을 적당한 막대기 가운데에 단단히 묶는다.
그리고는 완성된 금속 선을 둘둘 잘 말고, 미리 준비한 나무 상자 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이제 나무 상자 벽면에 구멍을 내고 마석을 단 막대기를 그 안으로 집어넣는다.
자, 이걸로 기본적인 준비는 다 끝났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전구……?”
전기가 제대로 만들어지는지 확인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전구가 가장 확인하기 좋은 수단일 텐데,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전구를 만들어?
뭐, 필라멘트.
그러니까 저항이 심한 전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좀 더 고민해 보면 만들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다.
그러다가 문득 내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내가 직접 전기를 확인하기 무서운 거니까, 다른 녀석에게 시키면 되지 않아?
물고기를 몇 마리 잡아서 발전기와 수조를 연결해서 물고기의 반응을 보고 확인하면 되는 게 아닐까?
꽤 괜찮은 생각 같다.
바로 즉각적으로 반응이 일어나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지.
물고기 대신 해파리 녀석들을 써도 괜찮겠지?
아직 목숨은 붙어 있는 것 같으니 괜찮을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해파리를 담아둔 그릇을 가져와 발전기에 연결했다.
“잉간, 이게 발전기야?”
“그래. 저걸 돌리면 이제 전기가 만들어질 거야. 아마도?”
그러는 사이 아리스가 와서 신기하다는 듯 발전기를 살핀다.
오는 길에 사냥을 했는지 발톱에 핏자국과 마석을 쥐고 있는 게 보인다.
자, 그럼 이제 돌려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손잡이를 돌리자 기분 탓인지 무언가 징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 어?”
“됐나?”
그리고, 발전기와 연결된 수조의 해파리들이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제대로 전기가 만들어지는 건가?
들뜬 내가 더욱 거세게 손잡이를 돌리며 더욱 전기를 만들어내던 그때.
“응?”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뭐지?
어디서 불이 난 건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던 그 순간.
“이, 잉간! 불!”
아리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발전기를 가리키며 외쳤다.
바로, 발전기에서 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 어?”
당황한 내가 일단 발전기에서 물러나고, 불을 끄기 위해 물을 찾으려 두리번두리번하던 그때.
“에잇!”
아리스가 다급하게 해파리가 들어있던 그릇을 집어 던져서 물을 발전기에 들이부었다.
아리스가 꼭 쥐고 있던 마석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며 물에 젖고, 불타오르던 발전기는 다행히 그것만으로 소화됐다.
“휴…….”
아이고, 역시 제대로 된 전선이 아니면 이렇게 되는 건가?
쩝, 그래도 전기가 만들어진다는 건 확인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던 그때, 내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응?”
물에 젖은 채로 바닥에 나뒹굴며 노란빛을 내는 마석의 존재였다.
저건 갑자기 또 왜 저럴까?
* * *
“오, 오늘은 무슨 일로…….”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요. 제가 늘 무거운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클라인 양?”
생각해보니 어째 매번 무거운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클라인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냥. 브리더 협회장으로서 클라인 양에게 광고 하나를 맡기고 싶어서요.”
“광고요?”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유기 생물 보호 센터. 그거 말이에요.”
“아, 그거……! 벌써 시작한 거예요?”
“정부의 허가를 받기가 어려운 거지, 허가만 받는다면 뭐든지 가능하니까요.”
모든 유기 생물들을 맡아서 키울 보호소라니, 도대체 얼마나 되는 스케일일까?
클라인은 도저히 리만이 이야기하는 보호소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광고라 하면. 그, 공익광고 같은 영상을 찍으면 되나요?”
“뭐, 적당히 탐방기 정도면 괜찮아요. 그게 더 효율적이니까요.”
리만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게요?”
“어머, 저랑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건가요?”
“아, 그게…….”
“후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그건 보호소에서 하도록 하죠. 오늘은 그냥 상태가 어떤지 보고 싶었던 거니까요.”
“상태요?”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리만은 그렇게 말하고는 진짜로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클라인의 집을 떠나갔다.
진짜 뭐 하러 집까지 찾아왔던 걸까?
클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슬쩍 일정을 확인했다.
“그냥 빨리 촬영하는 게 났겠지?”
괜히 뒤로 미루는 것보단 그냥 빠르게 촬영하고 쉬는 게 좋을 거다.
이번에는 잉간이를 데려오라는 말은 없었으니 잉간이는 놔두고 가야지.
괜히 데려갔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리퀴드 사의 연락처를 뒤적거렸다
.
* * *
모르겠군.
이 간단한 걸, 왜 너희는 하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내가 도와주마.
너희가 힘을 가질 수 있게끔.
“히, 히익……!”
“가만히 있어. 널 도우려는 거니까.”
“사, 살려……!”
이런.
버티지 못했군.
그래도 괜찮다.아직 실험대는 많이 남았으니까.
166화 [V-Log] 화제의 유기 생물 보호 센터에 찾아가 봤습니다! *유료 광고 포함*
“우와…….”
클라인은 브리더 협회의 건물 옆에 지어진 보호소를 보며 감탄사를 흘렸다.
공간 압축 기술을 사용했기에 그렇게 거대하진 않았지만, 건물 전체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어마어마하다.
말 그대로 마력을 들이부어서 만든 건물이네, 진짜.
조심스럽게 보호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수많은 모니터가 클라인을 반겼다.
로비에 설치된 모니터들은 각종 생물이 머무르는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보호소 내부를 보여주는 건 신뢰감을 조성하기 위함이겠지만, 잘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겠지.
클라인이 살짝 입을 벌린 채로 모니터들을 살펴보던 와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와요. 어때요? 꽤 괜찮게 만들어졌죠?”
“아, 협회장님.”
“아주머니라고 부르라고 했죠?”
리만의 넉살에 클라인은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클라인은 리만을 그리 쉽게 부르는 것이 어려웠다.
클라인이 언제나처럼 머리를 긁적이는 사이, 리만은 클라인의 뒤편에 둥둥 떠다니는 카메라를 보며 감탄했다.
“어머, 이게 이번에 리퀴드 사에서 새로 내놓은 제품인가 보죠?”
“네. 자동 추적 기능? 하고 구조 요청 기능이 새로 추가됐다나 봐요.”
“구조 요청이요? 정말,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뭔가 계속 추가되네요.”
“아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클라인도 리만의 투정에 동의하는 바였다.
솔직히 신상품이 나와도 기능 면에서 발전된 것은 없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뿐이니까.
뭐, 그 기능이 달린 제품을 사는 것보다는 더 싸니까 신상품을 사는 게 이득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기능이 늘어난다면 나중에는 결국 제품 하나로 모든 일이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클라인은 잠깐 그런 망상을 하며 리만의 안내를 따라 보호소 탐방을 시작했다.
당연히, 녹화를 켜둔 상태로 말이다.
“전에 이야기를 들었을 땐, 정말 진짜로 만드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적어도 몇 년 이상은 걸릴 줄 알았는데…….”
“뜻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도움을 많이 받은 덕분이에요.”
리만은 그렇게 말하며 카메라에 비치는 방들을 가리켰다.
“덕분에 이렇게 말 그대로 모든 반려 생물들을 위한 보호소를 만들 수 있었죠.”
리만이 자랑스럽게 카메라에 드러내는 방들은 전부 하나같이 다른 풍경이었다.
단순히 초원이나 사막 같은 자연 풍경이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들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 미믹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 탄탈로스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
온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반려 생물들에 맞춘 방들이 보호소 내부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이 보호소에 존재하는 생물종의 수만큼 각기 다른 방들이 존재한다.
“솔직히, 각 생물들에 맞춘 방을 준비한 것도 대단하지만 진짜 말 그대로 모든 생물종을 위한 방을 준비한 거 아니에요?”
“이게 다, 반려생물 등록제 덕분이죠. 등록제로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를 제대로 써먹은 거죠.”
클라인이 그렇게 감탄하자, 리만은 웃으며 반려생물 등록제 이야기를 꺼냈다.
하긴, 그게 없었다면 이 정도나 되는 방대한 생물 데이터베이스를 얻을 수는 없었겠지.
“나중에 새로운 생물종들이 발견되면, 그에 맞춰서 새로운 시설도 만들 생각이에요.”
“여기서 더 업데이트를 한다고요?”
“그럼요. 이 세상에 완벽한 건 없으니까요. 계속 노력해야죠.”
지금도 어마어마한 마력이 들어가고 소비되고 있을 텐데 여기서 더 증축을 할 수도 있다고?
진짜, 말도 안 되는 규모의 사업이다.
클라인은 속으로 그렇게 감탄하며 입을 벌리고 가만히 모니터를 바라봤고, 그런 클라인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리만이 웃으며 클라인에게 제안했다.
“조금 이따가 저 아이들을 만나게 해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어, 네? 직접 만나볼 수도 있어요?”
“물론이죠. 유기 생물들을 입양하고 싶으신 분들은 직접 만나보고 입양할 수도 있고, 발달기의 아이들을 위해 생태 체험장으로도 쓰일 예정이랍니다.”
“아, 네.”
클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리만의 뒤를 따라갔고, 리만은 클라인을 제일 먼저 보호소의 지하로 데려갔다.
“조금 어두우니까, 발밑을 조심해요.”
“네.”
리만을 따라 지하로 내려간 클라인은 조금 전 본 모니터들보다도 더 놀라운 풍경을 목격했다.
“설마, 저게 다?”
“네. 온 우주에서 오는 유기 생물들이랍니다.”
온 우주라는 말이 붙은 만큼 그 수가 엄청날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가히 클라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수치였다.
마치 한창때의 택배 회사처럼 사방의 포탈에서 안전하게 정지된 유기 생물들이 물 밀듯이 밀려든다.
그런 유기 생물들을 마키나의 육체로 보이는 기계들이 분주하게 분류한다.
“보호소로 보내진 유기 생물들은 여기서 저희 직원들이 일차적으로 분류한답니다.”
“다 수작업으로 하는 거예요?”
“그럼요. 마법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생물들도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어요.”
“엄청 힘들어 보이네요…….”
“후후, 클라인 양도 체험해보실래요?”
“네? 아뇨. 전 괜찮은 거 같아요…….”
클라인은 굳이 사서 고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니, 저건 고생 수준이 아니라 거의 노역 수준이다.
그러니 마키나가 저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마키나여도 저 정도나 되는 물량을 하루 종일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보호소의 시스템은 각 지역의 텔레포트 터미널에 설치된 수거함으로 유기 생물들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솔직히 첫날에는 별로 들어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첫날부터 엄청나게 들어오더라고요.”
리만은 그렇게 말하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뭐, 그냥 길거리에 유기하거나 자연에 방생하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그렇긴 하죠…….”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현재 유기 생물들의 약 40%가 저희 보호소로 유입되는 거로 보여요. 생각보다 높은 수치죠?”
“40%나요?”
“아직 그대로 유기하는 사람들이 이것의 두 배나 된다는 소리죠. 저희 목표는 저희가 전체의 80% 정도를 보호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전체 유기 동물의 수도 줄이고요.”
그렇게 목표를 밝힌 리만은, 한 가지 더 덧붙였다.
“아, 그리고. 이건 반려생물 등록제와도 연관되는 이야기인데요. 보호소와 등록제를 하나로 통합하는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랍니다.”
“등록제와 보호소를 하나로 통합한다고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등록제는 제도고, 보호소는 건물인데 둘을 어떻게 통합한단 소리지?
“등록제의 최종 목표는, 반려 생물들에게도 신분증을 발급하는 거랍니다. 이건, 다들 알고 계실 거에요.”
“네. 그렇죠.”
“그리고 저희는 그 신분증에 유기 기능을 따로 추가할 생각이에요.”
“유기 기능이요?”
“신분증에 등록된 주인이 직접 신분증의 버튼을 누르면, 터치 하나만으로 보호소로 유기 생물을 보내는 거죠. 이거라면 터미널까지 가기 귀찮은 사람들도 보호소로 생물을 보내지 않겠어요?”
하긴, 그런 기능이 있다면 귀찮게 밖에 나가서 버리기보단 그냥 버튼 하나로 유기하는 걸 선택하겠지.
애초에 유기는 보호소로 보내거나, 죽이는 것조차 귀찮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선택지니까.
“저희 보호소는 언제나 자원 봉사자를 환영한답니다. 특히 마키나를요.”
“아하하, 그런 식으로 홍보하면 아무도 오지 않을 거 같은데요…….”
“봉사 시간도 충분히 준답니다.”
리만은 그렇게 말하고는 클라인을 데리고 지하의 1차 분류지에서 빠져나왔다.
두 번째로 리만이 클라인을 데려간 곳은 연구소의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여기는 뭐하는 곳일까요?”
“어, 병원? 그런 곳이 아닐까요?”
“비슷하네요. 여기는 2차 분류지랍니다. 여기서 방역 작업과 신체검사가 이루어진답니다.”
리만은 그렇게 말하며 격리실들에 들어있는 유기 생물들을 클라인에게 보여줬다.
격리실에 들어있는 유기 생물들을 대부분 하나같이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그리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치유 마법으로 치유하고 싶지만, 그러다간 바로 파산이 확정이랍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연 치유를 택하고 있어요.”
“자연 치유요? 자연 치유라면, 그건…….”
“네. 몇몇 아이들은 이겨내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답니다. 참 슬픈 일이죠.”
리만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정부에 치유 마법의 사용 허가를 요청하긴 했지만, 언제쯤 수락될지 모르겠네요.”
“아…….”
클라인이 안타까운 탄식을 흘리자, 리만이 웃으며 카메라를 보며 외쳤다.
“여기서도 자원 봉사자를 언제든지 환영한답니다. 특히, 치유 마법을 사용하실 수 있는 분들 말이죠.”
하지만 리만이 저렇게 부탁한다고 해서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차원 생물의 상처보다 더 위급한 환자들이 많고, 그들은 대부분 차원 생물보단 사람을 살리는 걸 선택하니까.
“자, 다음 구역으로 가볼까요?”
“아, 네!”
리만은 살짝 어두워진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밝게 웃으며 클라인에게 그렇게 말했고, 클라인은 서둘러 리만의 뒤를 따라갔다.
“제가 처음에 이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 수많은 우려가 있었어요. 뭐, 마력 문제는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하고, 가장 큰 우려가 그거였어요.”
“그거라뇨?”
“이 보호소의 존재가, 유기 생물을 더 증가시키진 않겠느냐. 이거죠.”
“아…….”
“유기할 때 양심의 가책과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면, 더 많은 유기 생물이 생겨날 거라는 주장이었는데, 확실히 맞는 말일 수도 있어요.”
리만은 그렇게 말하며 클라인에게 쓱 통계 하나를 보여줬다.
“이거 보이시나요?”
“이게, 뭐죠?”
“보호소 첫날, 보호소에 들어온 유기 생물과 평균적인 유기 생물의 일일 발생 수에요. 보호소 쪽이 확연히 높죠?”
“그렇네요…….”
“뭐, 이건 첫날이어서 높은 수치이기도 하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유기를 생각하면 그렇게 차이가 나진 않아요. 다만, 그들의 우려가 어느 정도는 옳았다는 거죠.”
“이 이야기는 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설령 유기 생물이 늘어나더라도 이런 시설이 필요하다는 거랍니다. 그냥 자연에 유기되는 것보단, 이렇게 저희에게 유기하는 게 더 나으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생을 생물들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렇죠. 그건 확실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생을 자신이 키우던 생물에게 더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행한다.
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지금 시장에 유통되는 탄탈로스의 75%가 단 한 번도 자연을 경험한 적 없는 탄탈로스라는 것, 아시나요?”
“75%요? 그 정도나 됐나요?”
“탄탈로스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생물들이 그렇답니다. 밀렵을 막기 위해 브리더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랍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야생에 버려지는 대부분의 생물들은 야생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어요.”
“그렇죠…….”
“생물의 본능으로 자연에서 더 행복하지 않겠느냐,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싫답니다. 지금 사람들에게 키워지는 대부분의 생물들은 야생성을 잃는 방향으로 육성한 결과물들이에요. 그게 더 시장에서 인기가 많고, 잘 팔리니까요. 그런 아이들에게 야생의 본능을 바란다고요?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아뇨. 불가능해요.”
“그렇죠. 차원항과 사육항 논쟁에서 나오는 이야기랑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 같지만, 야생생물은 차원항에서, 양식생물은 사육항에서 키우는 게 더 났다는 결론은 모두 아시잖아요?”
“네. 그런 결론이 나긴 했죠.”
“유기는, 아이들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랍니다. 부디, 그 사실을 다들 아셨으면 해요.”
그렇게 중얼거린 리만은 이어서 클라인을 데리고 유기 생물들의 방으로 데려갔다.
“자, 방금 2차 분류장에서 검역과 치료를 마친 아이들은 이곳에서 생활하게 된답니다. 여기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며 보호소 생활을 하게 되죠. 대부분의 아이들은 기본 시설에 입주하지만 몇몇 아이들은 따로 독방이나 특별 시설이 주어져요.”
“특별 시설이요?”
“사람에게 알레르기가 있듯, 차원 생물들에게도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그리고 개체 간의 성격 차를 고려한 환경을 제공하고요.”
“아…….”
리만의 설명을 들을수록 클라인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 도감이 그렇게 리만을 경계한 것처럼 뭔가 이상한 꿍꿍이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리만은 그저, 유기 생물들을 위한 보호소를 만들었을 뿐이다.
클라인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리만의 안내를 따라 보호소 탐방을 계속했다.
“이쪽은…… 음? 잠시만요.”
“네.”
그렇게 리만이 클라인에게 보호소를 탐방시키던 중, 리만은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만은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한숨을 내쉬며 클라인을 잠깐 돌아봤다.
“잠깐 여기서 대기할 수 있죠? 조금 일이 생겨서…….”
“무슨 일인데요?”
“위급 생물이 생겨서요. 치유 마법이 필요하다네요.”
“아, 네…….”
“저쪽에 휴게실이 있으니, 저쪽에서 잠깐 쉬고 있으세요.”
리만은 클라인에게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 어디론가 부리나케 사라졌다.
클라인은 별생각 없이 리만이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이내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여긴 어디지?”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느새 어두컴컴한 막다른 길 끝에 와 있었는데, 여긴 도대체 어딜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휴게실은 절대로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왔던 길이라도 되돌아가려고 한 클라인은 더듬거리며 벽을 만졌고, 클라인의 손끝에 스위치가 만져졌다.
전등 스위치라도 되려나?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별 생각 없이 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고 클라인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이게, 뭐야……?”
불빛이 켜지고.
클라인을 반긴 것은 수많은 차원 생물들의 시체였다.
무언가에 의해서 해부된 것처럼 보이는.
167화 [V-Log] 보호소의 일상
“뭐야, 이건…….”
어째서 보호소의 내부에 이런 시체들이 즐비한 장소가 있는 걸까?
단순한 영안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시체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평범하게 얌전히 눕혀져 있는 시체들은 찾을 수 없고 하나같이 배가 갈라지거나, 팔다리가 잘려나간 상태다.
악질적인 취미를 가진 연쇄 살인범의 아지트에 널려있을 법한 기묘하게 훼손된 상태의 시체들.
더욱이 그런 시체 일부는 무슨 약물에 노출된 것처럼 몸이 녹아내리거나 끔찍한 수포가 잔뜩 돋아오른 모습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이곳에서 차원 생물들로 생체 실험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다.
클라인은 이 끔찍한 참상에 자신도 모르게 압도되어 뒷걸음질을 쳤다.
땡그랑!
“히익?!”
뒤로 물러서며 무언가가 담긴 접시를 건드린 것일까?
갑작스럽게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 클라인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아무리 봐도 이 참상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이는 해부 도구들이었다.
무언가 불길한 정보들이 담겨있는 주사기와 아직도 차원 생물들의 혈액이 묻어있는 작은 메스.
정말로, 여기서 무슨 일을 하던 걸까?
문득, 생명 도감이 리만의 계획을 듣고 그렇게 질색하던 모습이 다시금 클라인의 뇌리에 떠올랐다.
정말로?
하지만 왜?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리만이 무언가 꾸미고 있다면, 내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들켜선 안 된다.
물밀 듯 차오르는 공포에 클라인은 등을 돌리고 서둘러 이곳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길을 잃어서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만큼 쉽게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리 없고, 클라인은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으으…….”
정보 생명체의 발달된 감각에도 그 어떠한 정보도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방 안을 클라인은 벌벌 떨며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무언가 특수한 장치가 되어있는 걸까?
시야로 들어오는 정보들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클라인은 촉각과 청각에 의지한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스락.
“흐윽……?!”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어둠 너머에서 들려오고, 클라인은 움찔 몸을 굳혔다.
이 어둠 너머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이런 소리가 나는 걸까?
클라인은 잔뜩 긴장한 채로 발걸음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이 어둠 속에 완전히 갇혀 버릴 것 같기에.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지만, 계속해서 소리의 근원과 점차 가까워지는 느낌에 클라인은 거의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바스락거리는 소리의 근원이 클라인 앞에 나타났다.
“응?”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사육항 안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인간형 생물이 내던 소리였다.
뭐야, 별거 아니었잖아?
클라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사육항 가까이 다가갔다.
조금이라도 피폐해진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였지만, 클라인은 곧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어?”
인간형 생물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인간 두 명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 같은 외형의 인간이,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누군가의 머리를 갉작거리고 있던 것이다.
등을 서로 맞대고 달라붙은 듯한 기괴한 외형에 클라인은 얼굴을 굳히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탁자처럼 느껴지는 딱딱한 무언가가 느껴지고, 부드러운 생물체의 감촉이 클라인의 촉수에 느껴졌다.
“흐으으윽……?!”
고개를 돌린 클라인의 좁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여러 인간을 하나로 뭉친 것 같은 기괴한 살덩이였다.
그리고 그건, 살아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때마침 클라인의 감각이 이 어둠에도 익숙해진 것일까?
클라인은 원치 않게도 이 방 안에 무엇이 가득한지 깨닫게 되었다.
“뭐야, 이거…….”
전부 인간형 생물들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여러 인간이 하나로 합쳐진 것 같은 기괴한 생물체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뭔지 모르겠어.
보호소에 이런 시설이 있는 이유도 모르겠고, 저게 뭔지도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돌아가고 싶어.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어둠 너머에서 강렬한 정보를 발산하는 존재가 클라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분명히 인간형 생물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 존재에서 느껴지는 정보량은 너무나 방대했다.
차원 생물이 몸에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을 아득히 초월했다.
클라인이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는 동안, 그것은 어디선가 인간 두 명을 질질 끌고 왔다.
도대체 뭘 하려는 생각이지?
클라인이 지켜보는 눈앞에서, 그것은 인간 두 명을 양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심벌즈를 치듯 단번에 부딪혔다.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살과 살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인간들을 부딪쳤다.
처음에 고통에 신음하며 발버둥 치던 인간들이 어느덧 저항할 의지를 잃고 축 늘어진 순간, 그것은 검을 뽑아 들었다.
코스프레를 할 때나 쓸법한 장난감 같은 외형의 칼이었지만, 그것은 진검이라도 되는 양 인간들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리고.
“합쳐져라.”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클라인의 귀에 들려오고.
우득.
콰직.
꾸득.
클라인의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두 인간의 몸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마력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클라인은 저것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두 인간의 정보를 하나로 합친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과격한 수술을 받은 두 사람은 클라인이 봤던 것과 비슷한 모습의 살덩어리가 되어서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또 실패했나?”
그것은 짜증 난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눈치챘다는 듯 홱 눈을 돌려 클라인을 바라봤다.
“윽…….”
기묘하게도, 클라인은 그것을 보며 머릿속에 잉간이를 떠올렸다.
맨 처음 클라인이 잉간이를 봤을 때 느껴지던 것과 비슷한 이유 모를 호기심이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그 호기심보다 더욱 강한 것이 두려움과 공포였다.
자신보다 몇 배나 작은 크기의 생명체지만 클라인은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고, 어딘가의 벽에 털썩 주저앉아 훌쩍이기 시작했다.
“뭐, 뭔데…… 여기 뭔데…… 돌아갈래…….”
내가 리만의 비밀을 밝혀낼 생각도 아니었고, 그냥 휴게실에 가고 싶었던 건데 여기서 왜 이런 걸 봐야 하는 건데.
클라인은 서럽게 훌쩍거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잉간이 보고 싶어…….”
그렇게 클라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린 순간.
벌컥.
클라인이 등을 기대고 있던 벽이 벌컥 열리며 빛이 스며들어왔다.
“아이고, 모습이 안 보인다 했더니 여기 있었네요.”
“리, 리만 협회장님……!”
“아주머니라고 부르라고 했죠?”
클라인은 눈물 맺힌 눈으로 자신도 모르게 리만에게 와락 안겨들었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리만에게 외쳤다.
“저기. 안에. 뭔가. 이상한 게, 잔뜩……!”
“침착해요. 아무것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막, 이상한, 엄청 이상한 게. 인간을, 막 하나로 뭉치는데……!”
공포심을 떨쳐내고자 아무 말이나 뱉어내던 클라인은, 리만이 살짝 입술을 깨무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리만은 평소의 웃는 얼굴로 돌아가며 클라인을 자신에게서 살짝 떨어트려 놨다.
“아무것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헛것을 본 것 같네요.”
“그치만 두 눈으로……!”
“봐봐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리만은 그렇게 말하며 방의 불을 켰고, 리만의 말대로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고통스러워하는 살덩어리들은 존재했지만, 클라인이 목격했던 그 기묘한 생명체의 흔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만들어낸 살덩이도, 사방으로 튀기던 핏방울도 말이다.
클라인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분명히 두 눈으로 봤는데…….”
“보안 장치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 같네요.”
“보안 장치요?”
“아무런 정보도 느껴지지 않았죠? 그거에요.”
클라인은 자신이 헛것을 본 거라는 리만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리만의 말을 수긍했다.
리만은 클라인을 이끌고 진짜 휴게실로 향해서 차 한잔을 내왔다.
리만이 내온 차를 마시며 클라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점차 머리가 식어감에 따라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잠깐만, 리만에게 내가 저 풍경을 봤다는 걸 들킨 거 아냐?
클라인이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움찔거리는 순간, 리만이 피식 웃으며 클라인에게 말했다.
“보호소에서 생체 실험을 하고 있던 거냐고 묻고 싶은 거면, 네. 맞아요. 클라인 양이 본 건 생체 실험의 흔적이랍니다.”
“네, 네?”
클라인은 리만이 이렇게 시원스럽게 먼저 이야기할 줄 몰라 당황했다.
뭐지?
왜 이렇게 당당한 거지?
“생체, 생체 실험이라고요? 그건…….”
“가슴 아픈 이이죠. 하지만 정부의 지시인걸요.”
“정부의 지시라뇨?”
“어째서 이 보호소가 그렇게 빠르게 허가를 받았는지 알겠나요?”
“그건, 설마…….”
“협상의 기본.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
리만은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싱긋 웃으며 보호소의 속사정을 이야기했다.
“정부의 조건은 간단해요. 보호소의 생물들 일부를 생체 실험용으로 제공해라. 이거였거든요.”
“부, 불법적인 일 아니에요?”
“불법적이진 않죠. 홍보 자료에도 대문짝 하게 실려있는걸요?”
“네?”
“보세요. 희귀 생물 연구. 여기 이렇게 실려있잖아요?”
“아니, 하지만. 이건…….”
클라인이 당황한 목소리로 띄엄띄엄 중얼거리자 리만은 웃으며 클라인의 의문을 해소했다.
“당연히 살아있는 아이로 실험을 진행하진 않아요. 정부에서는 그걸 원했지만, 제가 막았거든요. 전부 이송 과정에서 폐사하거나 수명이 다해 죽은 아이들의 시체로만 생체 실험을 하는 거랍니다. 사실은 그것도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어요.”
“……보호소에서 이런 일을 해도 되는 거예요?”
“브리더 협회가 평소에 하는 일인데, 뭘 그렇게 새삼스럽게.”
“그렇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유기 생물 보호소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하곤 뭔가 다르지 않나?
클라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리만은 클라인에게 말했다.
“클라인 양. 정부는 늘 헌신을 요구한답니다. 무언가 정부에 도움이 되어야만, 허가를 내리죠. 지적 생명체 지정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겠죠…… 하지만…….”
클라인이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리만은 자신 몫의 차를 한 모금 삼키더니, 조용히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클라인 양도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과거에 극렬 환경주의자였답니다.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사이가 틀어졌고, 결국 정부에 체포되어 신문을 받게 됐답니다.”
“그, 그래서요?”
“아까 클라인 양이 지하에서 겪었던 감각 기억나시나요?”
지하에서 겪었던 감각이라면, 그 암흑을 이야기하는 건가?
“정부의 심문법은 간단해요. 아까의 그 암흑을 모든 감각으로 넓힌 공간에 사람을 던져놓고, 질문을 계속하죠.”
“네?”
“촉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오로지 할 수 있는 건 생각뿐이랍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들려오는 건 정부의 질문뿐이죠.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도저히 모르겠다.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한다면 질문에 대답할 수도 없이 미쳐버릴 것 같은데.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질문에 미친 듯이 매달리게 되죠. 스스로 그 질문에 대답하고, 시키지 않아도 대답하는 거예요.”
“네, 네에…….”
끔찍한 신문법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지금 나에게 하는 이유가 뭘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고, 리만은 싱긋 웃으며 클라인에게 말했다.
“그때, 저는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답니다.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니 사람이라고.”
“네…….”
“저는 지금 정부와 타협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간을 지적 생명체로 인정받게 하진 못하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조금씩 타협해가며 할 수 있는 걸 한다면, 최종 목표도 언젠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에겐 시간이 많으니까요.”
“그렇……군요…….”
클라인은 떨떠름한 얼굴로 리만의 말을 가만히 경청했다.
그래, 살아있는 생물들로 생체 실험을 하는 건 아니니 리만이 잘못한 것은 없다.
단지 보호소에서 생체 실험을 한다는 것이 꺼림칙할 뿐이다.
클라인은 리만을 옳지 않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상만을 내세우는 것보단, 타협하더라도 저렇게 실천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니까.
“자, 오해는 풀렸나요? 이제 쥬튜브에서 충격 폭로를 보지 않아도 되는 거죠?”
리만은 웃으며 클라인에게 그렇게 물어봤고, 클라인은 멋쩍게 웃으며 마지막으로 하나를 물어봤다.
“그, 그럼. 그 이상한 인간형 생물들은 뭐죠?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주인의 장난 때문에 불운하게 정보 융합을 당한 아이들이죠. 그곳에서 치료를 받는 아이들이에요.”
“그, 그런가요?”
“네. 더 묻고 싶은 건 없나요?”
“아니에요. 제가 좀 오해했나……봐요.”
그래.
내가 오해한 것일 거다.
도대체 리만이 뭘 위해서 인간형 생물들로 생체 실험을 한단 말인가?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리만에 대한 의심을 지웠다.
* * *
클라인을 돌려보내고, 리만은 한숨을 내쉬며 작은 친구를 찾았다.
“도대체 거기에서 뭐 하고 있던 거야? 들킬뻔했잖아?”
“환경이 문제인가 싶어서 새로운 장소에서 시험해봤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두 사람을 하나로 합치려 시도했다.
“쯧, 또 실패했군.”
“진전은 좀 있어?”
“스노우 스톤인가? 그곳에서 쌓인 정보들 덕분에 어느 정도. 다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시킬 방법을 모르겠군.”
“정말 그 방법이 확실한 거야?”
“확실해. 네가 말해줬잖아? 그 특이한 인간 말이야.”
“아, 잉간 말이지?”
“그래. 그 녀석.”
그는, 증오와 분노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빛내며 가만히 리만을 올려다봤다.
“그 녀석을 재현할 수만 있다면, 계획은 성공이야.”
그는 리만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고, 리만 또한 작은 친구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 안 남았단 이야기네?”
“그렇지.”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리만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인간을 좋아한다는 녀석이 이런 시설을 만들어 줄은 몰랐군.”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그래. 대의를 위해서라면.”
남자는 잠시 동안 리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내 리만에게서 눈을 떼고 다시 자신만이 보는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부족하군.”
더 제대로 된 실험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마력이 없는 인간의 사례를 재현해야 한다.
나 자신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스스로도 자신이 기적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 잉간이란 녀석을 산 채로 해부하고 싶은 심정이다.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참혹한 결과를 다시금 만들어냈고, 리만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168화 [생명 도감] 대형 프로젝트가 곧 여러분을 찾아옵니다
바닥에 떨어진 마석은 노란빛으로 환하게 발광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아리스의 마력이 영향을 준거라면 은빛으로 빛나고 있어야 할 텐데.
블랑카는 파란색이고, 리키는 보라색과 붉은색이 섞인 듯한 색인데.
조심스럽게 바닥에서 빛을 발산하는 마석에 손을 가져다 대자, 뜨거운 열기가 확 느껴진다.
“어우.”
그대로 손을 댔다가는 그대로 화상을 입을 것만 같다.
“아리스. 혹시 마법 썼어?”
“아니?”
“그렇지?”
아리스의 마법도 아니라면 내가 마지막으로 의심해볼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발전기.
불을 끄기 위해 아리스가 물을 뿌리면서 발전기의 전기가 방전됐고, 그 과정에서 전기가 마석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내가 그런 추리를 하는 동안 밝게 빛나던 마석은 점차 사그라들며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전기를 흡수한 건가?”
지금으로선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마석은 마력뿐만이 아니라 전기도 저장할 수 있던 게 아닐까?
물론, 확인해보려면 불타버린 발전기를 복구해야겠지만 말이다.
전기가 만들어지는 건 확인했지만, 이대로라면 도저히 써먹을 수가 없다.
일단 나무 말고 다른 재료를 사용해서 불이 나지 않게 하고, 코일도 다른 재료들로 바꿔서 저항을 좀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전기를 돌릴 때마다 불이 날 테니까.
개선할 점이 참 많다.
뭐, 처음부터 완벽한 발전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애써 만든 발전기가 불타버린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오기 마련이다.
“아이고, 이걸 어쩌지.”
한숨을 내쉬며 발전기의 잔해를 수습하고 있자, 아리스가 우물쭈물하며 내게 다가온다.
“미, 미안해.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에…….”
“괜찮아. 너 때문에 고장 난 게 아니야.”
“진짜?”
“응. 오히려 잘했어.”
아리스는 자신이 발전기를 망가트린 게 아닌가 걱정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일단, 오늘 더 이상의 실험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기에 나는 발전기의 잔해를 수습해서 코일을 공방으로 가져다 놓았다.
저녁 식사를 미리 준비해두고 공방에 틀어박혀 조용히 코일의 상태를 살핀다.
코일의 겉은 그을음으로 잔뜩 더럽혀져 있었다.
으음,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전기 저항을 줄이려면, 뭔가 다른 금속이 필요한데 이곳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금속은 오로지 돌뱀의 껍질뿐이다.
클라인에게 다른 금속을 달라고 부탁해 봐?
그건 별로 내키지 않는데.
어떻게든 클라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이 일을 해결하고 싶다.
특히, 이 발전기를 만드는 일은 말이다.
사실, 저항이 높은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저항 때문에 발생하는 열이 문제지.
그렇다면 아예 냉각수를 끼얹으면서 발전기를 작동시켜?
아무리 생각해도 감전당하기 딱 좋아 보이는데?
하지만 감전이 문제지, 이 발상은 꽤 괜찮아 보인다.
수냉식 쿨러를 살짝 원시적인 방식으로 구현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하지만 그냥 얼음물을 가져다 댄다고 과연 발전기의 열을 식힐 수 있을까?
거의 수백도 이상으로 뜨겁게 달아오를 게 뻔한데, 그냥 물이 증발해서 사라지는 거 아냐?
계속해서 물을 꾸준히 공급하려면 호수나 바다에서 발전기를 만들어야 하나?
하지만 그렇게 발전기를 만들어도 다른 장치들에 연결된 전선들 또한 냉각수가 필요한데, 그렇다고 모든 걸 물속에 마련할 수는 없지 않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발전기를 냉각시킬 장치를 내가 고민하던 중, 리키와 블랑카가 사냥을 끝내고 돌아왔다.
“나 왔어~”
블랑카가 노곤한 목소리로 자신의 도착을 알리고, 나는 공방에서 나와 리키와 블랑카를 반겼다.
“수고했어. 오늘 수확은 어때?”
“음, 그럭저럭? 오늘은 리키가 만든 덫을 확인하는 데 집중해서.”
“덫?”
리키가 만든 덫?
리키가 집에서 뭔가 만드는 걸 본 기억이 없는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 등에 딱 달라붙어서 나를 졸졸 따라다닐 뿐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의문을 품자, 리키가 곧바로 내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그, 내 체액으로 주위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덫을 만들 수도 있거든.”
“아, 그거?”
나는 리키가 무엇을 말하는지 떠올렸다.
그 마을의 사람들을 탈출시킬 때 했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흡수하는 독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
“살짝 제한을 걸고, 생물의 체온에서만 활성화하게 해서…….”
확실히 그런 식으로도 써먹을 수 있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외의 활용법에 감탄했고, 그 순간 내 머리를 하나의 아이디어가 번뜩이며 지나갔다.
“어?”
잠깐만, 그냥 리키의 힘을 이용하면 되는 거 아냐?
아리스의 마법을 이용해서도 비슷한 짓이 가능하겠지만, 언제나 아리스에게 발전기를 냉각시키고 있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리키의 에너지 드레인 능력을 독에 부여해서 열을 흡수하게 한다면?
마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열을 빨아들이는 코팅제 완성이다.
“리키!”
“으, 응?!”
“잠깐 따라와 줄래?”
“어? 갑자기?”
생각난 김에 바로 저질러야지.
나는 흥분된 기색으로 리키를 끌고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리키, 그 에너지 드레인으로 열도 흡수할 수 있지?”
“응. 가능하긴 한데…….”
“그럼, 열을 빨아들이는 효과를 가진 독도 만들 수 있겠네?”
“응…….”
좋아, 리키에게 확답도 받았으니 냉각 문제는 해결된 것과 다름없다.
꽤 오랫동안 고민해야 할 줄 알았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된 탓에 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럼, 리키. 이 접시 만큼 그런 독을 만들어 줄 수 있어?”
나는 리키에게 독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지만, 리키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리키?”
내가 의아해하며 리키를 바라보자, 리키는 볼을 부풀린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맨입으로?”
“어?”
“나라고 마음대로 독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이야.”
리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살짝 눈을 치켜떴고, 나를 찌릿 바라보며 명백하게 기분이 상했다는 티를 팍팍 냈다.
그런 리키의 모습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나는 한껏 상승한 기분을 다시 가라앉혔다.
“미안…… 좋은 방법이 떠올라서 순간 주체할 수 없어서. 기분을 상하게 해서 미안해.”
“으, 좀 적극적으로 권하는 건가 싶어서 기대했는데…….”
내 사과를 받은 리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디선가 YES가 그려진 쿠션을 꼬리로 가져와 가슴팍에 꽉 안았다.
요즘 리키뿐만 아니라 아리스나 블랑카에게도 뭔가 도움을 받는 걸 당연시하고 있던 거 같다.
그,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도 적당한 선을 지켜야 하는 건데.
리키는 시무룩해진 내 표정을 보며 피식 웃더니, 스르륵 꼬리를 내 허리에 감아오며 내 볼을 어루만졌다.
“내가 독을 만드는 건, 내 체액을 변형시키는 거여서 자주 쓰면 지친단 말이야.”
“미안…….”
“그러니까, 소비되는 체액만큼 체액을 채워주면 도와줄 용의가 있어.”
“응? 체액을 채워줘? 어떻게?”
뭐 물이라도 먹여달라는 건가?
내가 순간 리키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한 순간, 리키의 눈동자가 포식자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후후, 다 알면서?”
“아.”
다음 날 아침.
나는 리키에게서 물통 2개 분량의 냉각수를 받아낼 수 있었다.
* * *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네…….”
유기 생물 보호소에서 나온 클라인이 제일 먼저 택한 행동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었다.
클라인이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생명 도감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클라인에게서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은 생명 도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정부가 왜 그 사이코에게 허가를 해줬나 했더니, 그런 내막이 있었군요.”
“어, 어쩌는 게 좋을까요?”
“어쩌긴요. 그냥 잊어요. 정부가 허가한 거라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요. 설마 그 여자가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정부의 허가를 날조할까요.”
“으윽…….”
클라인은 지금 당장이라도 보호소의 실체를 폭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명 도감의 말이 맞다.
정부가 허가한 일을 문제시 삼는 건, 사상 범죄자나 할 일이니까.
클라인은 범죄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결국, 클라인은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협회장이 차원 생물들을 위하는 마음은 진짜니까…… 더 이상한 일은 하지 않겠죠.”
그렇지만 생명 도감은 클라인의 자기 위안을 듣고는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하, 그 여자가 차원 생물들을 위한다고요?”
“……아닌가요?”
지금까지 보여온 행보로는 그 마음은 진심으로 보이는데.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생명 도감은 질렸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여자 머릿속에 들어있는 건 오로지 자기 생각밖에 없어요. 차원 생물들을 위한다? 자기 머릿속에 든 계획을 위해서라면, 그 자리에서 탄탈로스를 100마리도 넘게 밟아 죽이는 사람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지금 비유를 하는 거로 들려요?”
“……네?”
클라인은 생명 도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거렸고, 생명 도감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저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여자의 주장에 동의하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죠. 탄탈로스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이었어요.”
“…….설마?”
“예상하다시피, 그건 그 미친 여자의 자작극이었죠. 정말, 이해할 수 업는 할망구예요.”
클라인은 생명 도감이 질렸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들으며 아까 협회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말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는 말과 같다는 걸.
클라인은 협회장이 왜 그랬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단지, 할 수 있기에 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제가 보기엔, 그 여자. 그렇게 지적 생명체 타령을 하는 것도 꿍꿍이가 있어요.”
“꿍꿍이요?”
“뭐, 지적 생물 지정에 노력하면 새롭게 지정된 사람들이 그 사람을 지지할 거 아니에요? 그걸로 뭐, 정부 쪽에 들어갈 생각이라도 하나 보죠.”
“하지만, 그분은 정부를 믿지 않는 눈치던데…….”
“믿지 않으니까, 더 정부에 들어가고 싶은 거겠죠. 그 여자의 생각은 짐작하기도 싫네요. 어휴.”
생명 도감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진저리를 쳤다.
무거운 이야기 때문인지 침묵이 생명 도감과 클라인을 덮쳤고, 그 침묵을 깨고자 생명 도감은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 아무튼 그래서 이번 영상에서 그 부분은 편집할 생각이죠?”
“네. 그럴 생각이에요.”
“그럼, 영상 분량이 생각한 것보다 안 뽑히겠네요?”
“……네?”
클라인은 헛기침을 하는 생명 도감을 보며 뭔가 의아함을 느꼈다.
뭔가 약을 치고 있는 거 같은데……?
“크흠. 아무튼, 생각한 것보다 부족할 거 아니에요?”
“그렇긴……하겠죠?”
“그럼. 부족한 만큼의 콘텐츠가 새로 필요하겠네요? 뭐, 생각은 해두셨어요?”
“네. 조금은…….”
“소재가 없다면, 제가 좀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데……?”
“네?”
“그, 뭐냐. 제가 이번에 좀 대형 프로젝트를 시작하는데. 그걸 도와주시면 앞으로 한동안은 영상을 날먹할 수 있지 않냐……. 그런 말이죠.”
“그러니까, 생명 도감 님이 하고 싶으신 말씀은…… 합방을 하자는 거에요?”
“네, 뭐. 그렇죠.”
클라인은 부끄러워하는 생명 도감의 모습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생명 도감이 합방 제안에 부끄러움을 느낄 리는 없을 텐데?
클라인이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생명 도감은 쿨러를 쌩쌩 돌리며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요. 어, 제가 클라인 님 말고도 같이 할 쥬튜버들을 몇 명 구했거든요? 근데 한 사람은 연락이 닿질 않아서…….”
“누구…… 인데요?”
“그러니까, 클라인 님이 가능하시다면…… 소행성 님께 제안을……해주시면…… 어떨까 해서.”
“제가요? 왜요?”
“그게. 지금은 좀 얼굴 보기가 껄끄럽거든요.”
“네?”
클라인은 생명 도감의 말이 아직도 이해되진 않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럼, 제가 전해드릴게요.”
“아, 고마워요.”
“그런데…… 그 준비하신다는 대형 기획이 뭔데요?”
“아, 그걸 아직 말 안 했네!”
클라인의 질문을 들은 생명 도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씨익 웃으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바로, 인공 행성 만들기입니다.”
“……네?”
말 그대로, 대형 프로젝트였다.
169화 [생명 도감] prologue. 이야기의 시작
“좋아, 이거야!”
리키가 잔뜩 노력해서 이것저것 쥐어짠 결과, 나는 냉매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독을 얻을 수 있었다.
리키 말로는 이것 또한 일정 이상 온도에서만 활성화하니 독이 얼어붙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한다.
냉매독을 발전기 전체에 넓게 펴 바르고, 이번에는 나무 표면에 무점토를 얇게 펴 바른 케이스 안에 발전기를 집어넣고 다시 발전기를 작동시켜본다.
그러자 연기가 난다거나, 붉게 달아오른다거나 하는 일은 없이 발전기는 무사히 작동을 시작했다.
발전기가 잘 작동하니, 이제 어제 있었던 일을 시험해볼 차례다.
내 예상대로 전기를 마석에 저장할 수 있다면 앞으로 전자 제품들을 만들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마석에도 전기가 통하기만 해도 마석으로 전선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발전기의 전선을 빼내어 마석에 동여매고 다시 발전기를 작동시킨다.
이윽고 마석은 어제 내가 목격했던 모습처럼 노란빛으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따로 전구를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인데?
서둘러 발전기의 작동을 중지시키고 아직 분량이 남은 냉매독을 마석 위에 뿌려본다.
마석이 뜨겁게 달아올라서 이런 빛이 나는 건지, 아니면 전기를 흡수한 마석이 온도와는 상관없이 빛을 내는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빛나는 마석에 냉매를 뿌리자 마석이 내는 빛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은은한 노란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냉매를 뿌리기 전이 백열전구 정도의 밝기였다면 지금은 크리스마스 장식용 전구 정도의 밝기다.
냉매를 뿌렸으니 뜨겁진 않겠지?
조심스럽게 마석을 들어 올리고 더 자세한 모습을 관찰해 본다.
“이건…….”
마석 안에서 빛이 나오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빛나는 모습은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다.
아리스나 블랑카가 마석에 마력을 집어넣었을 때, 이런 식으로 마석 가운데에서 각자의 마력이 요동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지금 경우에는 마력 대신 전기가 요동치는 걸까?
내가 가만히 마석을 관찰하고 있자 어제처럼 마석은 전기를 다 소모한 것인지 빛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대충 충전을 한 5분 정도 시켰는데 1분 정도 빛났으니, 건전지 역할로 사용하는 건 무리려나?
“아리스,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응!”
마석에 전기가 통한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 이걸 어찌 써먹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제일 먼저 내가 생각한 건, 마석을 전선으로 써먹는 법.
아리스가 미리 잘게 부숴둔 마석을 가져와서 무점토와 잘 섞는다.
얼마나 마석의 비중이 높아야 연결이 끊어지지 않을지 모르겠으니, 일단 최초의 것은 마석의 비중을 한 6~70%쯤으로 올려둔다.
그렇게 완성한 반죽을 길게 펴서 줄 모양으로 만들고 다른 마석과 연결한다.
잠시 무점토가 굳을 동안 기다리고, 반죽이 완전히 굳자 나는 발전기와 마석 전선을 연결한다.
다시 발전기를 작동시켜서 끝의 마석이 빛나면 제대로 만들어진 거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다.
긴장되는 표정으로 발전기를 돌리자, 마석 전선에 노란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노란빛이 마석 전선을 신나게 달려가고, 마침내 마석 덩어리에 도달한다.
전선 끝의 마석은 게걸스럽게 노란빛을 흡수하며 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성공했네.”
바로 성공한 건 기쁘지만, 아직 기뻐할 때가 아니다.
이번에는 마석의 비율을 더 낮춘 전선을 만들어서 시험해보자.
완전히 마석 99% 정도로 전선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거의 없는 수준으로 만들어 보기도 한다.
가능한 비율을 모조리 테스트해보며 계속해서 마석 전선을 시험하던 와중, 너무 오랫동안 마석을 혹사시킨 탓일까?
“어?”
마석에 금이 가더니, 마석이 공중으로 빛의 입자가 되어 흩어져 사라졌다.
당연하겠지만, 마석의 내구도에도 한계가 있던 모양이다.
그렇게 마석을 혹사해가며 가장 적당한 비율을 찾아낸 결과, 마석을 40%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 제일 좋다는 걸 깨달았다.
마석을 과도하게 너무 집어넣으면 전선의 온도가 너무 올라가기도 하고, 전선의 수명 또한 짧아진다.
그렇다고 마석의 비중을 너무 낮추면 제대로 전기가 통하지 않고 말이다.
전선의 수명을 최대한 늘리면서 전기가 제대로 통하는 한계치가 바로 40%다.
뭐, 정확한 계산은 아니고 눈어림으로 적어낸 수치니 나중에 좀 더 정확하게 확인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그렇게 실험이라는 이름의 반복 노가다를 하는 사이 아리스는 흥미를 잃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찌뿌둥한 몸을 바닥에서 일으키며 기지개를 피자 척추가 비명을 질러댄다.
대충 전선으로 실험할 건 다 실험했다는 느낌이고, 이제 남은 건 이걸 어찌 써먹느냐인데.
전선이라고 해도 줄 형태의 전선이 아니라 점토 형태의 전선이어서 허공에 설치하는 건 불가능하다.
뭐, 회로 같은 걸 만들 때는 줄 형태의 전선보다 더 편리할 거 같긴 하다만.
그런데 어째서 전기가 마석에 저장되는 걸까?
마석은 마력만을 저장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모든 에너지를 저장하는 성질이 있던 걸까?
“흐음…….”
그런 생각을 하던 내 눈에 공방 한켠에 대충 던져둔 전기 해파리의 기관이 보인다.
아리스의 마력을 받았더니 사방의 물건들을 공중으로 던져대던 그 물건이다.
생각해보니 저 기관은 마석에서 마력을 흡수해서 작동하는 방식이었지?
그렇다면 전기가 깃든 마석을 가져와서 연결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문득 궁금해진 나는 조심스럽게 충전된 마석을 전기 해파리의 기관과 연결시켰다.
뜨겁게 달궈진 마석의 온도 때문에 살짝 무언가 타는 냄새가 살짝 피어오르고, 그 외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마력으로 움직이는 녀석에 전기를 집어넣는다고 뭐가 되겠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은 그때.
“어, 어?”
갑자기 해파리의 기관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더니, 전에 아리스의 마력을 받았을 때처럼 발광하며 주위의 물건들을 둥둥 띄우기 시작한 것이다.
진짜로 작동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당황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순간 파직, 하고 스파크가 튀기며 해파리의 기관에서 수증기가 끓어오른다.
그리고는 잠시 후.
펑!
“으엑…….”
해파리의 기관은 물풍선이 터지듯 폭발하여 사방으로 자신의 안에 들어있던 정체불명의 액체들을 튀겨놨다.
으, 얼굴에도 달라붙어서 기분 나빠.
내가 혀를 내두르며 대참사의 흔적을 청소하던 와중, 바닥에 흩어진 액체에서 묘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마석인가?”
아주 작은 마석처럼 보이는 알갱이들이, 정체불명의 기관 안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지난번에 해부할 때도 이런 게 있었었나?
곰곰이 머리를 기울여서 생각해보지만 이런 액체가 기관 안에 들어있던 기억은 없다.
기관을 밖에 놔둔 지 너무 오래되어서 전부 말라버린 걸까?
어쨌든 이 작은 마석 알갱이들이 왜 이 안에 들어있던 걸까?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한번 해파리의 파편을 수거하던 도중, 나는 이 알갱이들이 어디에 붙어있었는지 깨달았다.
이 작은 알갱이들은 기관의 내벽 부위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던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작은 알갱이들은 어떠한 규칙을 따라서 배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복잡한 컴퓨터 회로를 마석으로 재현해 놓은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만능사전에서 이거와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는데?
그래, 마력 회로였나, 마도 회로였나?
아리스가 마석을 자석으로 만든 것처럼 마석을 다듬어서 일종의 마법진을 만드는 거였는데.
“설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지만, 그게 가능할 거라고는 크게 믿지 않았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실제로 시도해보자 내 예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아니, 도대체 왜 마력 회로에 전기를 흘려보내도 마법이 작동되는 건데?
* * *
“인공 행성 만들기요?”
“네. 차원항 만들기를 좀 스케일 크게 하는 거죠. 클라인 씨도 몇 번 만들어 봤잖아요? 행성급 차원항을요.”
“아니, 그건 차원항 내부여서 제 마음대로 물리 법칙을 조종할 수 있으니까 가능했던 거고…….”
아무래도 진짜 우주에 인공 행성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겠느냐.
클라인은 뒷말을 삼켰다.
왜냐하면, 생명 도감이 그 정도는 문제없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의 허가는 다 받아놨어요. 마력망이 아슬아슬하게 닿는 외곽 우주에요.”
“네…….”
“이론상으로는, 마력만 충분하다면 누구나 인공 행성을 만들 수 있어요. 아시죠?”
“알죠. 근데, 실제로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잖아요.”
이론상.
그래, 이론상이라면 그 누구나 인공 행성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론상이란 언제나 이론상의 것.
실제로 인공 행성을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
인공 항성까지 만들 게 아니라면, 자연적으로 위치한 항성을 하나 선택해서 인공 행성을 제작하게 될 텐데, 당연하겠지만 대부분의 항성은 각자 그 특성이 모두 다르다.
그 때문에 인공 행성의 위치를 정하는 것도 어렵고 계산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항성만 계산해야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어디선가 날아드는 소행성과 혜성들.
항성계 내부에 영향을 끼치는 외부의 다른 항성이나 행성들.
계산할 것이 무척이나 많고 힘들지만, 그 모든 계산에서 하나의 실수라도 나오면 기껏 만든 인공 행성이 산산조각나거나 기존의 행성들과 충돌하는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심지어는 행성을 만들다가 한 재채기 때문에 연쇄 충돌이 일어나는 나비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도저히 개인이 시도할 짓이 아니다.
이런 건, 그냥 정부가 하게 내버려 두면 된다.
하지만 생명 도감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그렇죠. 하지만 그 어려운 걸 쥬튜버가 한다는 점에서 좋은 콘텐츠가 아닐까요?”
“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쥬튜브 각이 잡히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그걸 위해서 제가 이번에 또 허가를 받아왔습니다.”
“또 허가를요? 뭐를요?”
“마력망 계산기의 사용 허가를 말이죠.”
마력망 계산기?
클라인은 생명 도감이 이야기하는 마력망 계산기가 무엇인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가, 입을 벌리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네? 설마, 대도서관을 말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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