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18

“그런데 말이에요, 어째서 제가 집 안에 미끼를 놔두는 걸까요?”
클라인은 미끼를 놔두기 위해 카메라로부터 등을 돌린 채로 설명을 계속했다.
“지난번에도 보셨겠지만, 잉간이에게 집은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에요. 잉간이에게는 거의 차원항 내부의 공간만큼 넓은 공간이라고 느껴질걸요? 그래서 제대로 목표를 정해 주지 않으면 쉽게 바깥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외부 적응 훈련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요.”
카메라는 설명을 계속하며 씰룩씰룩 흥겨운 듯 움직이는 클라인의 촉수를 가만히 화면에 잡았다.
“이런 식으로, 잉간이에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하나씩 제시하는 거죠. 보상이 있으면 더 열심히 움직이는 법이니까요!”
미끼의 설치를 모두 끝낸 클라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방 안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잉간이의 차원항이 있는 방 안으로 이동했다.
“일단, 잉간이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게 거실의 크기를 줄여 두고…….”
마력망으로 거실의 크기를 단번에 줄인 클라인은 이어서 잉간이의 차원항과 거실을 잇는 차원 문을 열었다.
“이렇게 차원 문을 열면 되는데.”
이번에도 잉간이가 차원항 밖의 세상에 흥미를 가져 줄까?
잉간이의 행동을 관찰했을 때 차원항 바깥의 세상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 같지는 않던데.
다행히도, 이번에도 잉간이는 차원항 너머의 세상을 탐험할 준비를 곧장 시작했다.
갑자기 차원 문이 생겨나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던 눈치더니, 곧바로 식량과 잉간이 나름대로 탐험에 필요한 도구들을 준비했다.
클라인은 말없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살짝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전에는 뭔가 하나를 하기 위해서 여러 도구를 만드는 모습이 참 귀여웠는데 말이죠. 지금은 이미 도구들을 다 만들어 놔서 그런 모습을 못 보네요.”
뭐, 지금은 그 대신 여러 요리를 시도하기도 하고, 자잘한 도구들 대신 뭔가 대형 시설을 건축하니까, 그 모습도 보기 좋다.
요즘엔 보니까 또 뭔가를 만들려고 하던데, 잉간이가 뭘 만들지 참 기대된다.
그래도 역시 작은 도구들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긴 한데.
잉간이가 만들어 둔 도구들을 다 가져가면 다시 도구들을 만들려나?
잠시 동안 그렇게 생각한 클라인은 문득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당황하며 촉수로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건 생물 학대나 다름없는 짓이지.
그렇지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떻게 하는가.
차원항 안의 환경이 변해서 지금의 잉간이의 저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없다면, 예전처럼 차원항 안의 상태를 돌려놓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정말 아주 가끔씩 하는 생각이지만.
잉간이와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면, 잉간이를 지적 생명체로 인정받지 못하게 하고 싶다는 음습한 욕망.
자주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고, 정말 가끔씩 하는 생각일 뿐이다.
정말로.
“아, 음. 네, 이번에는 하르피아가 아니라 켄토르하고 같이 외출할 것 같네요?”
클라인은 서둘러 차원항 안으로 신경을 집중하며 머릿속에서 방금의 상상을 날려 버렸다.
예전에 애완 인간들을 키울 때 인간들의 문명이 발전해서 전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더라도 이런 생각은 한 적이 없었는데.
어째서 잉간이한테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아, 머리가 또 복잡해지려고 한다.
더 이상한 생각을 하기 전에 촬영에만 집중하자, 집중.
“아마도 켄토르의 빠른 발로 많은 거리를 탐험하려는 모양이죠? 하르피아는 정보 오염 때문에 쉽게 날아다닐 수 없으니까요.”
클라인이 잉간이의 심리를 예상해서 시청자들에게 설명하는 사이, 잉간이는 차원 문을 지나 거실 바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하지만, 그 모습 또한 미리 거실에 설치해 둔 카메라에 잡히고 있었다.
마루로 나온 잉간이는 지난번과 달라진 주위 환경에 많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아예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것 같은데 여기서 이정표를 제시해 줘야겠지?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발광형 미끼를 작동시켰다.
빛줄기가 천장으로 솟아오르며 모두에게 보일 수 있게끔 빛나며 잉간이에게 손짓한다.
클라인의 의도를 알아차린 걸까?
잉간이는 켄토르의 등에 올라타서 곧장 빛줄기를 향해 달려 나갔다.
“오오, 잘한다!”
클라인은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봤고, 빠른 속도로 빛줄기를 향해 나아가던 잉간이는 갑작스럽게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아이고, 정보 오염이 상당히 진행됐네요.”
미리 최대한 청소를 하긴 했어도, 클라인의 집 안은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온 잉여 정보들로 가득한 상태다.
뭐, 정보 조작 능력이 뛰어난 생물들은 이 정도의 정보 오염은 가볍게 무시하겠지만 리베리아산 켄토르는 그 정도로 정보 조작이 뛰어나지 않다.
지금 켄토르에게 일어난 정보 오염은 관측을 통한 정보의 변질이 아니라, 쓸모없는 잉여 정보가 달라붙은 형태의 오염.
이걸 차원 생물의 생태로 설명하자면, 쉽게 말해서 살이 찐 것과 다름없다.
지금 보아하니, 적어도 자신의 몸무게가 하나 더 얹힌 정도까지 오염이 진행된 것 같은데.
“여기서 슬슬, 정보 오염을 씻어 내기 위해서…….”
클라인은 정보 오염을 제거해 주기 위해서 과밀 정보를 부어 주려고 했지만, 무언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말을 멈췄다.
“어머, 어머나?”
잉간이가 켄토르의 몸에 달라붙은 잉여 정보들을 씻어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구산 인간이 다른 인간들보다 정보 조작에 능숙할 거라고는 예상했어도, 별다른 훈련이나 도움 없이 스스로 저 정도까지 정보를 조작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평생 모르던 자식의 특이한 특기를 발견한 부모님의 마음이 이럴까?
클라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진짜, 우리 잉간이 좀 봐 봐요. 천재 아니에요? 와, 보니까 차원 파괴자의 도움도 받지 않은 것 같은데…….”
늘 잉간이에게 달라붙어 있는 그 불쾌한 차원 파괴자도 지금은 저 멀리서 정보 생명체들을 상대하느라 바쁘다.
잉간이가 정보 조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짬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이 정보 조작은 온전히 잉간이의 힘으로 이뤄 낸 쾌거라는 소리다.
“이 정도로 정보 조작에 능숙하면, 외부 적응 훈련도 금방 끝나겠는데요?”
외우주의 환경에 적응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적응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
클라인이 그렇게 생각하며 흐뭇하게 잉간이를 바라보는 사이, 잉간이는 다시 미끼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잉간이는 도중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잉간이의 앞을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제1관문! 지옥의 암흑수라나찰 장벽, 줄여서 소파입니다! 잉간이는 과연 소파를 지나갈 수 있을까요?”
클라인에게 있어선 몇 걸음으로 지나갈 수 있는 소파지만, 잉간이에게 있어서는 거대한 절벽처럼 느껴지겠지.
“제가 잉간이를 위해서, 조금만 우회하면 손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만들어 놨거든요? 언제 계단을 찾아낼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클라인은 잉간이가 맨몸으로 소파를 올라가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서 소파 양쪽에 소파를 올라갈 수 있는 작은 계단을 설치해 놨다.
물론 그냥 찾을 수 있게 하면 아쉬우니까, 살짝 인식 저해를 걸어 놓은 상태다.
잉간이의 감이라면 근처를 지나면 위화감을 느낄 정도?
클라인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잉간이를 관찰했지만, 또다시 클라인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아까 잉여 정보들을 조작하는 것으로 정보 조작 방법을 깨달은 것일까?
잉간이는 소파의 벽면에 달라붙은 잉여 정보들을 조작해서 계단을 만들어 벽면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저 정도면 거의 드래곤급 아니에요? 와, 대박.”
당연하게도 클라인은 그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보며 잔뜩 탄성을 질렀고, 잉간이가 마침내 소파 위에 올라오는 데 성공하자 박수를 보냈다.
“자, 큰 고비를 하나 넘었으니 보상을 줘야겠죠?”
잉간이가 소파 위에서 벗어나기 전에 빨리 가야 한다.
클라인은 후다닥 거실로 뛰어가며 잉간이를 반겼다.
“수고했어~.”
클라인은 조심스럽게 촉수를 뻗어 잉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잉간이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클라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헤헤헤…….”
헤실헤실.
그런 잉간이의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클라인은 계속해서 잉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마침내 잉간이가 살짝 짜증을 부리며 클라인의 촉수를 피했다.
“히잉…….”
잉간이가 자신의 손길을 피하자 클라인은 축 처졌지만, 곧바로 본래의 목적을 떠올렸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잉간이에게, 안락한 캠핑 세트를 선물!”
클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잉간이의 앞에 애완 인간용 은신처를 내려놨다.
이제 슬슬 잉간이가 휴식할 타이밍이니 그 안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가져 주길 바라며 말이다.
지난번에 바깥 탐험을 할 때 그냥 맨바닥에서 잠을 자는 모습이 참 귀여우면서도 짠했다.
이어서 클라인은 슬쩍 오늘 잉간이를 밖에 꺼낸 가장 큰 목적을 가져왔다.
“자, 그럼! 잉간이가 밖에 나온 김에 전부터 준비했던 훈련을 하나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면, 중앙정부의 감시에 걸리지 않고 잉간이와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해 보기 위해서.
“쨔잔~ 쥬튜브를 많이 보신 분들은 다들 아시죠? 애완생물용 녹음 벨입니다!”
글자를 쓰거나, 말을 할 수 없다면 둘 다 안 하면 되잖아?
117화 요즘 쥬튜브에서 핫하다는 녹음 벨 훈련, 잉간이에겐 너무 쉬웠습니다.
애완 생물용 녹음 벨.
주로 탄탈로스나 울타르에게 사용되지만, 종을 울릴 지능이 있는 다른 생물들도 사용할 수 있다.
녹음 벨의 기능은 별거 없다.
단순히 미리 녹음해서 저장해 둔 소리를 종을 울리기만 하면 녹음된 소리가 재생될 뿐이다.
사실 중요한 건 이 녹음 벨의 기능이 아니다.
중요한 건, 이 녹음 벨을 통해서 차원 생물들을 훈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종치기 훈련과 비슷하지만, 종의 종류에 따라서 보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학습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훈련받은 차원 생물들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녹음 벨을 치면 녹음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마치 차원 생물들과 대화하는 것 같아서 녹음 벨을 사용한 차원 생물 훈련은 쥬튜버들 사이에서 꽤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는 좀 더 빨리 훈련을 시키고 싶었는데요, 차원항 안에서 녹음 벨을 사용하는 건 차원항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아서 지금까지 꾹 참았습니다.”
녹음 벨에 녹음된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
그저 손을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는 차원항 안에서 녹음 벨을 사용하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다.
거기에다가, 녹음된 목소리이기 때문에 감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민감한 생물들에겐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렇게 차원항 밖에 꺼내 놓고 격리한 상태에서 훈련을 진행하는 것이 사육자와 반려 생물 모두에게 이로운 길이다.
어쨌든, 이제 잉간이도 바깥에 꽤 적응한 것 같으니 훈련을 진행해도 되겠지?
“시작부터 바로 여러 개의 종을 건네주면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차근차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첫 번째로 가르칠 단어는 바로 ‘배고파’입니다!”
일단 밥에 관련된 건 가르치기도 쉽고, 반려 생물이 흥미를 가지기도 쉽다.
여러모로 녹음 벨 훈련의 첫 번째 대상으로 삼기 좋은 단어다.
“자, 녹음 벨의 정보를 압축해서 크기를 줄이고…….”
클라인은 녹음 벨의 크기를 잉간이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까지 압축한 다음, 조심스럽게 잉간이 앞에 놔뒀다.
“잉간이가 흥미를 가져 줄까요?”
잉간이가 별다른 흥미가 없으면 조금 힘들어지는데.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잉간이의 손을 예의 주시했고, 이윽고 잉간이는 녹음 벨에 손을 뻗었다.
녹음 벨의 정체가 궁금했던 걸까?
잉간이는 곧장 녹음 벨을 흔들었고, 자극을 받은 녹음 벨에서 클라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배고파!”
그렇지만 잉간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금 종을 흔들었다.
“으음,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아서 목소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걸까요?”
평상시 보면 놀랄 만큼 인기척에 민감하면서도, 이런 걸 보면 참 둔감하단 말이야.
옆에 있는 켄토르는 클라인의 목소리가 잡음으로나마 들리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잉간이의 손에 들린 벨을 바라본다.
저걸 봐선 인간형 생물이 사람의 목소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건 아닌데, 지구산 인간의 가청 영역을 벗어난 거려나?
하지만 사람의 목소리는 대부분의 인간형 생물들의 가청 영역에 포함되는데?
“어쩌면, 전파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사람과 같은 정보 생명체들의 목소리는 전파의 형태로 허공을 떠도는데, 만약 전파를 인지하지 못하는 차원 생물이라면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물론, 사람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전달되어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은 인식하지만 말이다.
다른 인간형 생물들 중에서도 전파를 인식하지 못하는 생물들이 있으니, 아마 잉간이도 그런 게 아닐까?
자세한 건 지구산 인간의 생태를 더 연구해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잉간이에 대해서 많이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르는 게 참 많구나.
잉간이에게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 조금 뼈아픈데.
“으음, 이렇게 되면 다른 녹음 벨들은 색이나 형태를 바꿔서 잉간이가 구분할 수 있게 해야겠네요,”
잘하면 잉간이가 녹음 벨에서 반복되는 목소리를 듣고 언어를 익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역시 그런 건 불가능하겠네.
클라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켄토르가 잉간이에게 뭐라고 한 것일까?
잉간이는 종을 바닥에 내려놓고 켄토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으음, 켄토르가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다.
이거, 최대한 빠르게 훈련을 진행하고 돌려보내 줘야겠다.
“자, 잉간아! 봐 봐, 잘 봐 봐……!”
잉간이가 멀찍이 녹음 벨에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자 클라인은 서둘러 잉간이 앞에서 종을 울렸다.
잉간이는 그런 클라인의 모습을 의아한 듯이 바라봤고, 클라인은 이어서 잉간이에게 사료를 물려 줬다.
이어서 클라인은 다시 잉간이에게 종을 건넸고, 잉간이는 클라인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으아, 고개 갸웃하는 거 봐…….”
그 귀여운 모습에 클라인의 입에서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클라인은 긴장된 표정으로 계속 잉간이를 관찰했다.
과연 한 번 만에 내 뜻을 이해해 줄까?
“배고파!”
그런 클라인의 걱정은 기우였다고 말하는 듯 잉간이는 단번에 다시 종을 울렸다.
“좋아, 잘했어!”
클라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잉간이에게 먹을 걸 물려 주고 슬쩍 물러섰다.
켄토르에게 더 스트레스를 주는 건 사양해야 하니까, 오늘은 이만 여기까지 할까?
“진짜, 우리 잉간이 좀 보세요. 천재 아니에요, 천재? 한번 보여 준 걸 바로 따라 하는데요?”
사실, 이 정도의 훈련을 가지고 천재라고 부르는 건 부끄럽지만 딱히 상관없다.
왜냐하면 잉간이는 천재가 맞으니까.
천재를 천재라고 부르는 게 뭐 잘못됐어?
“자, 그럼 다음 차례로 다른 목소리가 녹음된 녹음 벨을…….”
클라인은 한바탕 카메라를 향해 잉간이의 칭찬을 늘어놓은 뒤, 다음 훈련을 진행하려고 했다.
“응?”
하지만, 클라인의 움직임은 잉간이의 시선에 의해서 멈췄다.
잉간이가 무언가를 생각하듯 골똘히 클라인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니?”
아, 정말로 잉간이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고 싶다.
대화를 나누고, 교감하며 대화해서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그리고.
친구 다음은?
클라인의 안에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의문이 슬쩍 피어올랐지만, 그 의문은 금방 다른 생각들에 의해서 묻혀 버렸다.
“뭘 말하고 싶은 거니……?”
클라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별생각 없이 잉간이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예전이었다면 겁먹고 도망쳤겠지만, 잉간이는 가만히 자신의 손가락 끝에 손을 올리더니 이마를 기대 왔다.
지금까지 내가 잉간이에게 보냈던 호의가 잉간이에게 신뢰감을 쌓아 준 거겠지?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또다시 클라인을 당황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 어……?”
잉간이의 감정이, 클라인에게 밀려들어 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평소에도 잉간이의 감정이 클라인에게 전달되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감정이 느껴지는 수준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건.
거의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클라인에게 밀려들어 온다.
잉간이가 정보를 조작하는 방법을 깨달아서일까?
잉간이의 호의가, 평소에 클라인이 호의를 쏟던 것처럼 클라인에게 밀려들어 온다.
잉간이의 감정이 클라인의 정보와 섞이고, 클라인의 감정이 잉간이에게 저절로 흘러들어 간다.
사실, 이 정도의 감정의 교류는 그렇게 이상한 게 아니다.
사람과 사람끼리 대화하며 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누구나 몇 번씩 겪게 되는 수준의 교류.
연인이나 가족 간의 교류보단 몇 단계나 뒤떨어진 레벨이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클라인에겐 너무나도 자극적인 자극이었다.
지금까지 계속 방 안에 틀어박혀 남들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애완 생물들과만 교류하던 집순이에게는, 너무 강렬한 자극이었다.
“어, 어, 으…….”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클라인은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잉간이의 호의에 쩔쩔맸고.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한 걸까?
클라인은 잽싸게 손을 되돌리고 시뻘게진 얼굴로 입을 뻐끔거리며 잉간이를 바라봤다.
“그, 그러니까. 그러니까…….”
클라인은 시뻘게진 얼굴을 식히려는 듯 끊임없이 손부채질을 하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다른 사람의 호의를 이렇게 온전히 느끼는 게 이렇게 자극이 심할 줄은 몰랐다.
나쁜 기분은 아니고, 오히려 좋은 기분이지만, 너무 기분이 좋아도 뭔가 무서워질 때가 있지 않은가?
지금 클라인의 상황이 딱 그 모습이었다.
“어, 어, 음. 잉간이가! 많이 피곤해 보이니까 일단은 집에 돌려보내겠습니다!”
일단, 일단 지금은 잉간이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어째서 자신이 지금 잉간이를 피하는가?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클라인은 서둘러 잉간이의 앞에 차원 문을 열었고, 후다닥 달려서 거실을 벗어났다.
카메라 밖으로 빠져나오고 클라인은 심호흡을 하며 거칠어진 호흡을 정돈하려 했다.
“흐읏, 흣. 흐읍, 흡…….”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행위가 이렇게나 자극적일 줄은 몰랐다.
간신히 두근대는 가슴을 가라앉힌 클라인은 촉수를 꼼지락거리며 털썩 의자에 걸터앉았다.
아, 진짜 뭐 하는 거야?
무슨 발달기의 꼬맹이도 아니고 고작 감정을 나누는 것만으로 이렇게 되다니.
한심해서 울음이 나올 지경이다.
고작 감정을 나눌 때도 이렇게 허둥대는데, 나중에 정보를 나눌 땐 어떻게 할 건데?
아니, 그건 결혼하고 나서 생각할 일이잖아?
“후우…….”
그렇게 속으로 스스로에게 쏘아붙이며 클라인은 어떻게든 간신히 평정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기분 좋네.”
응, 남과 교류하는 건 역시 좋은 일이야.
앞으로도 힘내서, 집 밖으로 나가자.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각오를 다졌고, 비틀비틀 일어나던 클라인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냥 감정을 얕게 나누는 것도 이렇게 기분 좋은데, 정보와 감정을 깊게 나누는 건 얼마나 기분 좋은 거지?
“어으…….”
그 생각을 떠올린 클라인의 얼굴은 다시 새빨개졌고, 클라인이 다시 카메라 앞으로 돌아올 때까진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오늘 영상은 못 쓰겠네…….”
촬영 중간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뛰쳐나간 걸 그대로 올릴 수는 없지.
적당히 첫 번째 훈련 장면에서 끊고, 편집으로 두 번째 훈련 장면을 삽입해야겠다.
잉간이는 그사이 클라인이 열어 둔 차원 문으로 차원항에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잉간이의 얼굴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클라인은 정체불명의 안도감을 느끼며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으, 뭔가 피곤하네.
조금만 쉴까?
클라인이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마력망을 통해 클라인에게 새로운 메시지가 전달됐다.
“생명도감 님?”
[생명도감]
-합방 날짜가 정해졌어요. 이동은 다 같이 모여서 할 테니, 중앙 구역으로 와 주세요! 아, 그날은 잉간이는 데려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생명도감이 보낸 메시지는 자신과의 합방 일정이 확정됐다는 내용이었다.
클라인은 메시지를 읽으며 푹 한숨을 내쉬더니 스스로에게 말하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힘내자.”
이건 모두 잉간이를 위한 일이니까.
응, 힘내야지.
그렇게 생각한 클라인은 주섬주섬 합방에 필요한 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합방의 날이 밝아 왔다.
118화 [생명 도감] 스노우 스톤에 가다.
“좋아, 감마선 차단제도 발랐고. 준비물도 다 챙겼어!”
클라인은 불끈 주먹을 쥐며 당당하게 허공을 향해 외쳤다.
오늘은 드디어 생명도감과의 합방이 있는 날.
중앙 구역의 터미널에서 모이기로 했으니 서둘러야 한다.
“후우,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준비물을 확인한 클라인은 심호흡을 하고, 가만히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다녀올게!”
비록, 지금 잉간이의 차원항은 시간 동결을 해 놔서 잉간이가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인사를 해 보고 싶었다.
곧바로 클라인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 밖으로 나섰고, 주섬주섬 허리춤에서 카메라를 꺼내 촉수로 붙잡았다.
담당자님이 찍으라는 V로그? 그걸 지금 한번 찍어 볼 생각이다.
그냥 일상을 찍으면 아무도 보지 않을 테니, 생명도감과 합방을 하러 이동하는 모습을 찍어 두는 거다.
“좋아, 세팅 완료.”
클라인은 카메라의 전원을 넣고, 텔레포트 터미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으, 그나저나 이렇게 촬영을 하면서 거리를 걸으니 기분이 묘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진 않겠지?
어딘가 불안해진 클라인은 촉수로 카메라를 둘둘 말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게 은닉하며 계속 길을 나아갔다.
야외 촬영에 익숙해질 무렵, 클라인은 텔레포트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예전과 다르게 완벽한 모습으로 터미널을 통과했다.
역무원을 부르지도 않았고, 뭔가 실수를 저지르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성장 그 자체다.
별것 아닌 행동이지만, 무언가를 해낸 것 같은 성취감을 느낀 클라인은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카메라를 자신의 얼굴 앞으로 가져왔다.
“히히, 이번에는 실수 안 했어요!”
클라인은 카메라를 향해 방긋 웃으며 자신이 이뤄 낸 위업을 자랑했고, 곧바로 텔레포트 터미널 안에 착석했다.
“좋아, 출발……!”
그 이후, 별다른 일 없이 클라인은 중앙 구역까지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
“중앙 구역에 도착했습니다~ 와아아~!”
중앙 터미널에서 내린 클라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소곤소곤 카메라에 속삭이며 박수쳤다.
약속 시간까진 5분 정도 남았네.
좋아, 시간에 딱 맞춰 왔어.
다른 사람들도 지금쯤 도착했겠지?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생명도감의 모습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고, 클라인이 생명도감을 발견하는 것보다 먼저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예요, 여기!”
“아, 넵! 안녕하세요!”
클라인은 서둘러 목소리를 향해 꾸벅 인사하며 쪼르르 다가갔고, 생명도감은 허실허실 웃으며 클라인을 반겼다.
“아이고,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잉간이는 어때요? 잘 지내죠?”
“네, 너무 잘 지내요. 그, 최근에는 알아서 막 정보 조작을 익혔다니까요?”
이미 한번 친해진 상대여서 그런지 클라인은 그다지 긴장하지 않고 웃으며 생명도감과 대화를 나눴다.
“아, 지금 촬영하고 계신 거예요?”
“어. 네. 그, 담당자님이 V로그도 찍어 보라고 하셔서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찍어 봤어요.”
“텔레포트 터미널 V로그네요?”
“뭐, 그런 셈이죠.”
클라인이 촉수로 들고 있는 카메라를 발견한 걸까?
생명도감은 방긋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제가 준비하라고 했던 건 다 챙기셨죠?”
“네. 그런데요, 보니까 뭔가 채집하시려는 것 같은데, 이번에 우리가 가는 곳은 국립공원 아닌가요?”
생명도감이 클라인에게 챙기라고 한 물건들은 하나같이 간이 사육항이나 채집통 같은 채집용품이었다.
국립공원에선 채집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생명도감이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생명도감은 그런 클라인의 의문을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허가는 이미 받아 놨어요. 그리고, 이번에 우리가 잡으려는 건 조금 특수한 생물이어서 말이에요.”
“특수한 생물요? 그게 뭔데요?”
“그건, 갔을 때의 즐거움으로 남겨 두죠.”
뭐지?
생명도감이 클라인을 부른 이유는 인간형 생물 때문이었는데, 이번에 가려는 스노우 스톤 국립공원은 인간형 생물이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스노우 스톤 국립공원에서 뭐 새로운 인간형 생물이 발견되기라도 한 걸까?
클라인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은은한 미소를 짓는 생명도감은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 가 보면 뭘 잡으러 왔는지 알게 되겠지.
“자, 그러면 오프닝을 촬영해야 하니까, 이쪽으로 와 주세요.”
“아, 네.”
생명도감은 그렇게 말하며 클라인과 함께 중앙 터미널 간판 앞에 가서 섰고, 생명도감은 자신의 몸에서 촬영용 카메라를 꺼내서 촬영 구도를 잡기 시작했다.
“여기가…… 딱…… 좋겠네. 좋아.”
그렇게 생명도감이 카메라를 조정하는 동안, 클라인은 생명도감이 방금 나눠 준 대본을 보며 오프닝 멘트를 외우고 있었다.
뭔가 진짜로 공식 방송을 촬영하는 것 같은 느낌이네.
쥬튜브 방송도 이렇게까지 준비할 수 있구나.
클라인이 그렇게 대본을 외우는 사이 생명도감의 세팅이 모두 끝났는지 클라인을 향해 손짓을 했다.
클라인은 그런 생명도감의 손짓에 촉수를 동그랗게 마는 것으로 화답했고, 생명도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촬영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생명도감입니다! 오늘은 스노우 스톤 국립공원에 생태계 탐사를 나갈 예정인데요, 오늘 좀 특별한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바로~.”
“바, 반갑습니다! 차원항 장인 클라인이라고 합니다!”
클라인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살포시 생명도감과 합을 맞추며 촬영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클라인 님, 같이 이렇게 합방을 또 하게 될 줄 아셨어요?”
“아뇨. 그, 지난번 합방 때 같이 합방하자고 말씀하신 것도 의례상 말씀하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원래는 제가 첫 번째로 클라인 님하고 합방을 하고 싶었는데요, 아쉽게 속삭이는혼돈한테 빼앗겼지 뭐예요.”
적당히 클라인을 소개하는 멘트를 던진 생명도감은 손바닥을 짝 하고 마주치며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 그래서 클라인 님. 우리가 오늘 스노우 스톤 국립공원에 탐사를 나갈 예정인데요, 스노우 스톤 국립공원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나요?”
“어…… 엄청 춥고, 눈이 많다? 그리고 또…….”
클라인은 생명도감의 질문에 여기 오기 전 조사해 온 스노우 스톤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스노우 스톤 국립공원은 항성이 존재하지 않는 굉장히 기형적인 행성계다.
항성은 몇백 년 전에 이미 폭발해 사라졌고, 항성 주위를 돌던 행성들은 초신성 폭발의 충격으로 박살 나 단순한 암석 덩어리로 돌아가 버렸다.
당연하게도, 그런 장소에 생명체가 존재할 리 없지만, 스노우 스톤은 달랐다.
우연히도.
정말 우주의 기적이라고 할 만한 확률로, 스노우 스톤엔 생명이 서식하게 되었다.
우선 그 첫 번째는, 행성이었던 것의 잔해들인 소행성들 내부에서 마력과 방사성 물질이 뒤섞이며 핵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핵분열로 발생한 열은 소행성 파편들에서 생명이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온도를 제공했다.
다음으로 두 번째는, 스노우 스톤 근처에 우주 최대의 자연 마력 가속로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마력 덩어리들이 뭉쳐져 자연적으로 탄생한 가속로는 주기적으로 어마어마하게 가속된 혜성들을 뱉어 냈는데, 우연히도 스노우 스톤이 가속로가 뱉어 내는 혜성들의 경로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력 가속로를 거치며 마력이 잔뜩 쌓인 혜성들은 자신들의 그 막대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스노우 스톤 근방에서 무너져 내리며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은 모습을 자아냈고.
혜성들의 파편은 스노우 스톤의 소행성들에 생명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력들을 공급했다.
그렇게 해서, 스노우 스톤엔 생명들이 살아가기 시작했다.
아주 작고, 지성조차 발달하지 않은 하등 차원 생물들이긴 하지만, 생명은 생명이었다.
그런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탄생한 환경 덕분에 스노우 스톤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받을 수 있게 되었고, 하늘에서 마력의 눈이 내리는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관광지가 되었다.
라는 것이 클라인의 설명이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생명도감은 쓴웃음을 지었다.
“네, 아주 잘 알고 계시네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스노우 스톤에 가서 뭘 할 것 같나요?”
“음…… 간이 사육항하고 채집통을 가져오라고 하셨으니까, 뭔가를 채집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오늘은 스노우 스톤에서 외래종들을 채집할 생각입니다!”
“외, 외래종요?”
스노우 스톤에서 외래종들을 채집한다고?
그 황무지에서 살아갈 수 있는 외래종들이 있나?
기껏해야 얼음 정령 같은 정령형 생물들일 텐데, 그런 정령형 생물들도 스노우 스톤이 발사하는 방사능에 오래 버티지 못한다.
무슨 드래곤이 정착했나? 아니면 샌드 엔젤?
클라인은 스노우 스톤의 외래종의 정체를 이것저것 추측해 봤지만, 확 하고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런 클라인의 모습을 지켜보던 생명도감은 진중한 표정으로 클라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스노우 스톤에 외래종이 있을 수 있나, 그렇게 생각하셨죠?”
“아, 네.”
“지금 이 영상을 보시는 시청자분들도 그러실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놀라지 마세요. 요즘 스노우 스톤은 외래종 문제가 아주 심각하답니다.”
“그 정도나 된다고요?”
“네, 원래 스노우 스톤에서 마력 가속로에 버려진 외래종들이 발견되기는 했어도, 그곳에서 오래 살아남지는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다릅니다. 아예 그곳에 눌러앉아서 주변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의 외래종이 나타났습니다.”
스노우 스톤 주위에 도시가 생겨나고,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이 근처의 자연 마력 가속로에 쓰레기나 살아 있는 생물체들을 버리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긴 했다.
대부분의 생물체들은 마력 가속로 안에서 살아남지 못하지만, 몇몇 강인한 생물들은 살아남아 스노우 스톤까지 흘러 들어가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대부분 금세 죽어 버려서 생태계를 위협하지 않고 오히려 영양분이 될 뿐이었는데, 도대체 뭐가 침입한 걸까?
그 튼튼한 무오마저 얼마 버티지 못하는 곳인데.
“자, 그럼. 스노우 스톤에 나타난 외래종이 뭔지 찾으러 가 볼까요?”
클라인이 그런 의문을 품는 사이, 생명도감은 마무리 멘트를 치며 오프닝 촬영을 종료했다.
“수고했어요. 다음 촬영은 스노우 스톤에 가서 할 테니, 푹 쉬고 있어요.”
“아, 네. 근데요, 정말 스노우 스톤에 외래종 문제가 심각한가요? 그런 뉴스는 못 봤던 것 같은데…….”
“뭐, 외래종 문제는 여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국립공원들도 전부 심각하니 말이죠. 거기에다가, 최근에 이슈 하나가 있었잖아요?”
“이슈요?”
“네, 그. 인간형 생물 사육자들만 노린 연쇄살인범.”
“아, 아. 맞다. 그런 게 있었죠!”
“평소에 뉴스를 보긴 하는 거예요?”
“제, 제가 마력망 방송을 잘 안 봐서…….”
클라인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변명하자 생명도감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인간형 생물 사육자 연쇄살인범이라고 하면 분명 그거였지?
인간형 생물 동호회를 통해서 혼자 사는 독신들을 알아낸 다음, 침입해서 강도 살인을 벌인 사건.
최근에 체포됐다는 뉴스가 들려왔던 거 같은데.
“아무튼, 연쇄살인범이 나타난 시기하고 여기서 외래종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가 딱 맞물려서 말이에요. 다들 그쪽에만 관심을 쏟아서 이 이슈는 잘 알려지지 않았죠.”
“그랬구나…….”
하긴, 외래종이 국립공원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뉴스보단 연쇄 살인범에 관한 뉴스가 더 흥미로울 테니까, 당연한 일이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생명도감의 우주선에 올라탔고, 조용히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클라인은 스노우 스톤의 외래종의 정체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클라인이 스노우 스톤의 외래종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스노우 스톤에 도착한 직후였다.
“네, 보이시나요? 이 녀석들입니다. 원래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들이죠.”
“어, 어?”
클라인은 생명도감이 잡아 온 스노우 스톤의 외래종을 보며 그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노우 스톤의 외래종은 바로.
“스노우 스톤엔 이 인간들을 위협할 생물이 없어서, 이 귀여운 인간들이 스노우 스톤의 최강 포식자가 되었습니다.”
인간형 생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클라인은 생명도감이 자신을 데려온 이유를 깨달았다.
“그럼, 지금부터 채집을 시작해 볼까요?”
인간 채집을 하기 위해서.
119화 [생명도감] 스노우 스톤의 골칫거리를 만나다.
스노우 스톤에 도착한 클라인은 생명도감의 우주선의 창문을 통해 바깥을 관측하며 탄성을 내뱉었다.
“우와…….”
몇 번인가 스노우 스톤의 풍경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체험한 적은 있지만, 역시 직접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새하얀 마력의 조각들로 뒤덮인 소행성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이, 유리 조각들을 보는 것 같다.
생명도감은 스노우 스톤의 모습을 보며 감탄하는 클라인 옆으로 다가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죠? 저 풍경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게 참 안타까워요.”
“그러네요. 진짜, 사라지기엔 아까운 곳이에요.”
스노우 스톤은 애초에 소행성의 핵분열이 발생시키는 미약한 열로 유지되고 있는 생태계다.
소행성들이 완전히 차갑게 식는 그날이 스노우 스톤의 종말일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스노우 스톤을 유지시키는 것 또한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감마선 차단제는 바르셨죠? 외부 정보가 손상되면 복구하기 힘들 거예요.”
“네, 다 발랐어요.”
“그럼, 3차원 진입합니다.”
생명도감이 그렇게 선언하고, 우주선은 4차원을 빠져나와 3차원 우주에 진입했다.
3차원 우주에 진입하자, 중앙정부의 시스템이 우주선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수많은 경고 창들이 떠오르며 우주선의 움직임을 막는 동시에, 클라인과 생명도감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2명의 시민이 인식되었습니다.]
[시민 클라인] [시민 케플러]
[접촉 권한 확인 중…….]
[확인되었습니다. 스노우 스톤 국립공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마력망을 통해 시스템이 클라인과 생명도감의 몸을 스캔하고, 미리 받아 둔 권한을 확인했는지 진입 허가를 내렸다.
[제2종 접촉 권한 확인됨.]
[상대적 크기 조정 중…….]
[조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세요.]
우주선의 움직임을 가로막던 경고 창이 사라지고, 클라인과 생명도감은 드디어 국립공원 내부로 진입했다.
크기 조정 전에는 스노우 스톤의 소행성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던 크기의 우주선이, 크기 조정을 거치자 4형 우주선 크기까지 줄어들었다.
지금 클라인과 생명도감의 크기는 아마 저 스노우 스톤의 토착 생명체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컷 촬영은 저쪽에서 할까요?”
“아, 네.”
생명도감은 미리 점찍어 둔 위치가 있었는지 능숙하게 우주선을 스노우 스톤 구석의 한 소행성으로 몰아갔다.
소행성에 도착한 생명도감은 카메라를 꺼내 주위를 담으며 촬영을 시작했다.
“자, 스노우 스톤에 도착했습니다! 저희는 이 근방에서 유해종들을 찾아볼 건데요, 그렇게 찾는 게 어렵진 않을 겁니다!”
“어, 와아아아!”
클라인은 그 옆에서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생명도감은 그런 클라인에게 손짓하며 거침없이 소행성 표면을 나아갔다.
“자, 이쪽으로!”
“영, 차!”
클라인은 생명도감에게 이끌려 채집통을 품 안에 꼭 끌어안고 스노우 스톤 표면을 걸었다.
바닥에 쌓인 새하얀 마력 결정들이 마치 눈을 보는 것 같아서 아름답다.
클라인이 그 웅대한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사이, 생명도감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짧게 탄성을 질렀다.
“어!”
“왜요? 뭐 찾았어요?”
“보세요. 저기, 스노우 플레이크예요!”
생명도감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새하얀 털로 감싸인 몽실몽실해 보이는 무언가가 바닥에 잔뜩 굴러다니고 있었다.
“스노우 플레이크는 이 스노우 스톤의 생명체의 7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흔한데요. 저 스노우 플레이크는 스노우 스톤의 생명체들의 주된 식량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보기에는 그냥 솜털 덩어리처럼 생겼네요.”
“그렇죠? 그렇지만 이 녀석 또한 엄연한 생물이랍니다. 보세요, 저기 솜털들이 흔들리는 게 보이죠? 이곳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데, 어떻게 솜털이 흔들리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
스노우 스톤에는 대기가 없어서 바람이 불지 않는데, 어떻게 솜털이 흔들리는 거지?
“저 솜털이 흔들리는 건, 스노우 플레이크가 호흡을 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스노우 플레이크는 이 스노우 스톤에 떨어지는 혜성의 파편들에서 마력을 흡수하고, 그 마력을 다른 생명들이 소화할 수 있는 영양분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답니다.”
대충 다른 행성들에 존재하는 식물형 생물들의 역할을 하는 거려나?
클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생명도감의 설명을 집중하며 들었다.
“자, 그럼 밟지 않게 조심해서 가죠. 우리가 지금 차단막 안에 들어가 있다고는 해도, 직접적으로 접촉하면 정보 오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아, 네!”
클라인과 생명도감은 다시 탐사를 시작했지만, 가도 가도 스노우 플레이크들밖에 보이질 않았다.
이곳에 외래종이 있는 게 맞아?
그런 생각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를 만큼 스노우 플레이크들의 수는 많았다.
생명도감은 지치지도 않는지 스노우 플레이크 하나를 잡아서 카메라 앞에 들이밀며 더 자세한 생태를 시청자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클라인이 무료한 눈으로 적당히 스노우 플레이크 밭에서 고개를 돌려 근처의 낮은 언덕을 바라봤을 때, 무언가가 클라인의 눈에 들어왔다.
“어!”
“왜요, 뭐 발견했나요?”
“저쪽 언덕 위에, 뭔가가 있어요!”
“어디, 어디요?”
이번에는 클라인이 생명도감에게 손가락으로 무언가가 있는 위치를 알려 줬고, 생명도감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스노우맨이네요! 스노우 스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스노우 스톤 최대의 포식자네요. 시작부터 바로 스노우맨을 볼 수 있다니, 이거 운이 좋네요.”
눈덩이 2개가 위아래로 서로 달라붙은 것 같은 생김새의 스노우맨이지만, 저렇게 보여도 이곳 스노우 스톤 생태계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서 찍어 보겠습니다!”
생명도감이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친 순간.
푹.
어디선가 날아온 투창이 스노우맨의 몸을 꿰뚫었다.
“……어?”
예상치 못한 상황에 클라인은 얼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투창?
저건, 도구잖아?
스노우 스톤에는 도구를 사용할 지능이 있는 생명체가 없는 걸로 아는데.
잠깐, 그렇다면 설마 저 투창을 던진 건…….
“아, 나타났네요.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저게 바로 지금 스노우 스톤의 최대 골칫거리예요.”
“어, 어?”
이윽고 언덕 위에 스노우맨을 사냥한 주인공이 나타났고, 클라인은 여전히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엔, 클라인이 평생 볼 수 있을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개합니다. 스노우 스톤의 최대 골칫거리이자, 최강의 포식자. 인간들입니다!”
인간이 최강의 포식자라고 소개되는 날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스노우맨 옆에 나타난 인간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들은,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단순이 외형이 다른 수준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인간형 생물 품종의 특징을 섞은 것처럼 생겼는데, 아무리 봐도 자연적인 인간형 생물들이 아니다.
말의 하체에, 기묘한 생김새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인간도 있었다.
초록색 피부에 뾰족한 귀, 길쭉한 이빨을 가진 인간도 있었다.
마치, 서로 다른 인간형 생물들을 억지로 하나로 만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클라인은 조용히 한 이름을 입에 담았다.
“키메라……?”
“네, 맞습니다. 저 녀석들은 키메라 인간인데요. 쉽게 말해서 인공적으로 탄생한 품종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애완 생물 시장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특이한 애완 생물들을 원했다.
대부분은 특이한 종을 키우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키메라다.
주인의 취향에 맞게 온갖 품종들을 섞어서 인공적으로 애완 생물을 만드는 것인데, 당연하게도 윤리적 문제가 심했다.
그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키메라 생물을 키우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그런 녀석들이 어떻게 이곳에 잔뜩 있는 거지?
“키메라 인간들이 어떻게 여기에 잔뜩 있는 거죠? 분명히 키메라 인간은 법적으로 사육이 금지됐잖아요?”
클라인은 이 이해할 수 없는 풍경에 의아해하며 생명도감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그런 클라인의 질문을 예상했던 듯, 생명도감은 차분히 저 키메라 인간들의 근원을 설명했다.
“클라인 님, 혹시 그 키메라 사육법이 언제 제정되었는지 아시나요?”
“키메라 사육법요? 그건…… 대충, 15년 정도 되지 않았나요?”
“네. 15년 전에 그 법이 제정됐었죠. 브리더가 아닌 사람은 키메라 생물을 키우지 못하는 법이 말이죠.”
“네,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그렇다면 말입니다. 그 전까지 잘 사육되고 있었던 키메라 인간들은 어디로 간 걸까요?”
“그건.”
살처분장.
아니면, 도시의 쓰레기통 안.
“네. 그 당시 가히 대란이라고 할 정도로 키메라 생물들이 사방에 유기됐죠. 저 인간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때 버려졌던 키메라 인간들인 거죠.”
“하지만, 15년 전에 버려졌던 키메라 인간들이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예요? 말도 안 돼요!”
키메라 인간들의 육체는 강인하지만, 억지로 품종을 합쳐 놓은 탓에 온갖 건강상의 문제가 뒤따라온다.
그 때문에 주인의 관리를 받지 않은 키메라는 얼마 지나서 죽게 된다.
그런 키메라들이 이 스노우 스톤에서 15년간 살아 있었다고?
그렇다면, 그동안 왜 아무도 스노우 스톤에 키메라 인간들이 살아 있다는 걸 몰랐지?
“네. 클라인 님의 의문이 다 맞아요. 평범한 키메라들이 주인도 없이 15년간 살아 있을 수는 없죠.”
“그럼 어떻게……?”
“여기서부턴 제 가설입니다만, 정부 쪽에서도 이 가설을 가장 높은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하더라고요.”
“가설요?”
“네, 저 키메라 인간들의 정보를 분석한 결과, 상당히 오랜 시간을 정지장 안에서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정지장 안이라면……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 키메라 인간이 있는 걸 설명하지는 못해요.”
“네. 그래서 본론입니다만, 아마도 저 키메라들이 들어 있던 정지장은 마력 가속로에 버려졌을 겁니다.”
“마력 가속로요?”
“저쪽에서 이곳에 혜성들을 날려 보내는, 그 가속로 말이죠.”
“……설마!”
생명도감의 이야기를 듣던 클라인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번쩍인다.
그리고 그런 클라인의 생각에 쐐기를 박듯 생명도감은 조용히 추리를 이어 나갔다.
“처음에 정지장을 가속로에 버린 사람은 이 키메라들이 그 안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정지장이 생각 외로 튼튼했던 거죠. 그렇게 키메라들이 살아남은 채로 정지장은 계속해서 속력을 얻고 회전했고, 그 결과…….”
“혜성들 사이에 섞여, 이곳에 추락했다?”
“네, 바로 그거예요. 15년 전에 버려졌던 키메라들이 이제야 정지장에서 풀려나 스노우 스톤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거죠.”
확실히 꽤 괜찮은 가설이다.
어째서 15년 전의 키메라들이 이곳에 있는지도 설명하고, 어째서 최근에야 스노우 스톤에서 그 존재가 드러났는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게 있다.
“그런데, 그럼 저 인간들은 어떻게 지금 저렇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거죠? 아무리 키메라여도 스노우 스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사실, 스노우 스톤에 가속로에 투기된 생명체가 유입되는 건 자주는 아니지만 간간이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생명체들 모두가 스노우 스톤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 버렸는데, 아무리 키메라 인간이라고 해도 이 환경을 버텨 낼 수 있을까?
숨 쉴 공기조차 없고, 불은 붙지도 않고, 수분조차 쉽게 찾아낼 수 없다.
땅에서는 방사선이 솟아오르며 생명체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극한의 추위는 무엇이든 얼려 버린다.
이런 환경을 버텨 낼 수 있는 건, 물질적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정보 생명체 정도밖에 없다.
그런데 키메라 인간이 이 스노우 스톤에서 살아남아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 그건요, 저쪽으로 가시면 어째서인지 알 수 있으실 거예요.”
“저쪽요?”
생명도감은 그런 클라인의 의문에도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클라인을 데리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클라인이 마주한 것은.
“인간형 생물도 우리의 이웃입니다, 여러분! 이 아이들이 뭘 잘못했길레 이곳에서 쓸쓸히 죽어 가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 아이들을 살려 주세요!”
잔뜩 모여서 시위 비슷한 것을 하고 있는 극렬 환경주의자들이었다.
[인간과 함께 걷는 삶]
그리고 그 사람들은 아마도.
인간 애호 단체인 듯싶었다.
120화 [생명도감] 야생 생물에게 먹이를 주시는 분들, 이 영상을 봐 주시길 바랍니다.
“저, 저게 도대체 뭐죠?”
이곳에서 저런 풍경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어째서 저 사람들은 이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걸까?
“보다시피. 이곳의 키메라 인간들을 보호하려는 인간 애호 단체 사람들이죠.”
“보호요?”
“저 사람들은 인간들이 이곳의 토착 생명체를 얼마나 해치는지 알기나 할까요?”
생명도감은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클라인을 이끌고 시위대에서 조금 떨어진 구역으로 데려갔다.
“저기, 저기 보이나요? 저쪽, 언덕에서 내려간 구덩이요.”
“어디요? 아, 저기요?”
생명도감이 가리킨 곳은 주위보다 열기가 더 방출되는 일종의 크레이터였다.
그리고 그 크레이터에는, 키메라 인간들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구조물들과 키메라 인간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클라인은 그 풍경을 바라보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곳에는 저런 구조물을 만들 재료도 없을 텐데, 어떻게 저런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거죠?”
그것뿐만이 아니다.
제대로 된 먹이를 구하지도 못해야 할 인간들은, 아무리 봐도 오랫동안 굶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잘 먹어서 포동포동 살이 찐 것처럼 보이는 개체들도 존재할 정도였다.
거기에 방사능 오염의 징조 또한 존재하지 않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간단해요. 아까 그 사람들의 짓이죠.”
“그 사람들요?”
“조금만 기다리면 나타날 텐데……. 아, 나타났네요.”
생명도감의 말대로, 인간 애호 단체 소속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슬며시 인간 거주지에 접근했다.
제대로 된 차단막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접근하는 모습이, 퍽 불안해 보인다.
저러면 정보 오염이 어마어마할 텐데, 정보 세척은 제대로 하고 있으려나?
“자, 우리 귀여운 인간이들. 밥 먹을 시간이에용~.”
그런 클라인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애호 단체는 인간들에게 식량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
오염 방지 처리가 된 수분과, 동일하게 오염 방지 처리가 된 값싼 사료들이다.
그런데 저렇게 그냥 사료만 주는 건가?
저 사료는 제일 값싼 사료여서 탄수화물만 들어 있는 수준일 텐데?
뭐, 영양제를 첨가해서 주지는 않는 걸까?
그렇지만 애호 단체는 흐뭇하게 인간들이 달려들어 식량을 챙겨 가는 모습을 구경하고는 휙 하고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사료들을 담고 있던 포장지를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말이다.
당연하게도, 포장지는 그대로 주위의 정보들을 오염시키며 허공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뭐, 저렇게 된 거예요. 먹을 건 저렇게 꼬박꼬박 챙겨 주고, 집을 지을 재료도 공급해 주고, 사냥 도구도 챙겨 주고, 심지어는 방사능 제거 장치까지 선물해 줬다니까요?”
“방사능 제거 장치를요?”
“뭐, 영구적인 건 아니지만 인간형 생물의 수명을 생각하면 영구적인 장치나 마찬가지죠. 덕분에 지금 저렇게 인간들이 늘어나게 된 겁니다.”
원래라면 이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극소수만이 살아남아야 할 인간들이었지만, 애호 단체의 개입으로 상황이 바뀐 것이다.
의식주는 애호 단체가 해결해 주고, 주위에 인간들을 위협할 대형 포식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엄청나게 규모가 커진 인간 서식지다.
보아하니 약간의 사육자 숭배 현상에 영향을 받은 초기 문명 단계에 진입한 것 같은데?
“초기 문명 단계까지 성장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클라인은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지켜보며 그렇게 중얼거렸고, 생명도감은 그런 클라인의 중얼거림을 거들었다.
“뭐, 아직까진 이 소행성 내부에서 머무르는 단계지만, 이대로 저 인간들이 문명을 발전시켰을 때가 문제죠.”
“문제요?”
“적당히 내우주 항행이 가능한 우주선만 만들 수 있어도, 순식간에 스노우 스톤 전역으로 퍼져 나갈 테니까요.”
“아…….”
그래, 애호 단체의 지원을 받는다면 이 인간 서식지가 내우주 항행이 가능한 수준까지 성장하는 건 시간문제다.
서식지의 상태를 보아하니, 애호 단체들이 마법 지식 또한 가르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서식지의 문명 수준에 맞지 않는 마법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아무튼, 지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 인간 서식지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어요. 간간이 밖으로 나온 녀석들을 채집하는 정도만 가능해서 실질적인 변화는 없죠.”
“왜 직접 손을 대지 못하는 거예요? 국립공원이잖아요? 그냥, 정부에 신고하면…….”
“저 애호 단체가 벌이는 짓이 법적으로 문제 될 건 없으니까요. 일단은 저들도 2형 접촉 자격은 가지고 있고, 국립공원의 생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건 불법이 아니잖아요?”
“그럼, 마법을 가르치고 재료를 선물하는 거는요?”
“마법은 가르치는 현장을 적발하지 않으면 검거하기 힘들고, 여러 자원들은 혜성의 파편에서 나온 거라고 우기고 있거든요. 뭐, 중앙정부에 신고하면 해결되기야 하겠지만, 저쪽도 법적 대응에 나서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게 문제죠. 그리고 그사이에 스노우 스톤의 생태계는 완전히 박살 날 테고요.”
법으로 해결할 수는 있지만, 법으로 해결한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렇다면, 생명도감이 클라인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설마?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클라인은 뻣뻣한 표정으로 생명도감을 바라봤고, 생명도감은 생긋 웃으며 클라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부탁합니다. 클라인 양. 제발 저 애호 단체들을 설득해 주세요.”
“아니, 제, 제가 어떻게 설득해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방구석 은둔자였던 사람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거 아니에요?”
“클라인 양은 인간형 생물 애호인들 사이에서 유명하잖아요? 그만큼 영향력도 클 테니 저들도 클라인 님의 말은 귀담아들을 겁니다! 이제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으으…….”
으…… 그래, 대화를 나눈다고 저쪽이 나를 잡아먹는 것도 아니잖아?
한번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 보자.
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돼!
결국 클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명도감의 제안을 수락했다.
“어…… 그럼, 뭐. 한번 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와, 제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서 엄청 힘들었거든요…….”
생명도감은 그렇게 감사 인사를 하며 클라인에게 애호 단체에게 건네야 할 질문들과 논지들을 설명해 줬다.
“잘 이해하셨죠?”
“네, 뭐. 교과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인데요.”
“하하, 그렇긴 하네요. 자, 그럼 출발해 주세요!”
“네, 넵!”
그래, 별거 아냐.
그냥 이치에 맞게, 논리적으로 대화를 나누면 되는 거잖아?
“어째서 이곳에서 저들이 살아가게 되었습니까?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런 잘못을 저질러 놓고, 저들이 그냥 죽게 내버려 두자고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아닙니다!”
클라인은 긴장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시위대에 접근했고, 시위대에 다가갈수록 그들의 주장이 똑똑히 귀에 들어왔다.
그래, 맞는 말이다.
이곳에 키메라 인간들이 흘러들어 온 건 전부 사람들 때문이다.
하지만, 키메라 인간들이 죽는 것 또한 자연의 이치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들은 죽어서 도태되는 것이 진화의 기본 법칙 아니던가?
키메라 인간들이 아무리 불쌍하더라도 이곳의 생태계를 해치는 이상 이곳에 인간들은 있어선 안 된다.
“저, 저기요…….”
“어째서 저들이 손쉽게 살처분 결정을 내렸겠습니까? 인간형 생물의 목숨을 가볍게 생각해서입니다! 우리는 이 풍조를 바꿔야 합니다!”
“옳습니다!”
“저, 저기요!”
클라인은 조심스럽게 시위대에 끼어들어 목소리를 내 봤지만, 워낙 시위대의 구호가 격렬해서 클라인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묻혔다.
다시금 클라인이 힘을 내서 소리치자, 이번에는 클라인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던 듯 모두가 클라인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저, 저기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클라인은 조심스럽게 그렇게 말해 봤지만, 아무도 클라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불길한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정적이 그치자.
“클라인?”
“클라인 맞지?”
“우와, 진짜 클라인이다.”
“클라인이라고?”
“클라인이 여기에 왔어!”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클라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위대의 맨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던 사람도 마찬가지였는지 반색하며 클라인에게 달려왔다.
“아이고, 클라인 님 아니세요? 여긴 어떻게?”
“저, 저를 아세요?”
“아휴, 당연히 알죠.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클라인 님의 영상을 보고 인간형 생물의 보호에 뛰어든 사람들인데요.”
“제, 제 영상을 보고요?”
“그럼요!”
클라인의 영상을 보고 인간형 생물에 입문했다.
평소라면 아주 기분 좋은 말이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이곳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람들이, 저곳에서 성장하고 있는 인간 번식지가, 파괴되고 있는 스노우 스톤의 생태계가, 모두 자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거야?
“클라인 님,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했죠? 자, 이리 오세요. 마이크 드릴 테니까,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씀해 주세요!”
“네, 네?”
클라인이 잠깐 그런 생각을 하며 멈춰 있던 사이, 사회자는 클라인의 팔을 붙잡고 무대 위로 끌어 올렸다.
“자, 여기요.”
“어, 어…….”
사회자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은 클라인은 무대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보고 아찔함을 느꼈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풍경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걸까?
그래도, 그래도 할 건 해야지.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심호흡을 하며 다시금 용기를 다지고, 입을 떼었다.
“어, 음. 안녕하세요?”
“와아아아!”
클라인이 잠깐 말한 것만으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압도당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제, 제가 오늘 이곳에 온 거는요. 여러분들께 할 말이 있어서예요…….”
“여러분, 클라인 님이 할 말이 있답니다! 인간형 생물들을 박해하는 그들에게 할 말이 있답니다!”
클라인의 옆에서는 사회자가 클라인의 말을 곡해하며 분위기를 점점 띄웠다.
점차 열기에 물들어 가는 사람들을 보며 클라인은 덜컥 겁이 들었다.
여기서 내가 저 사람들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면 큰일이 나는 건 아닐까?
워낙 사람들의 분위기가 뜨거워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그, 여러분들은 이곳에 있는 키메라 생물들을 보호하시고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간 혐오자에 맞서서 인간들을 보호하고 있는 겁니다!”
“제,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부탁이 하나 있어요.”
“클라인 님이 우리에게 부탁이 있답니다!”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해도 아니라고 말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자신들의 주장을 긍정해 달라고, 우리와 한편이 되어 달라고 말하는 듯한 저들의 눈빛이 따갑지만 그래도 말해야 한다.
“이, 이 스노우 스톤의 생태계를 위해서. 더 이상의 보호를 멈춰 주셨으면 해요. 부탁이에요.”
그리고 결국, 클라인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말하고야 말았다.
모두가 그렇다고 하는 곳에서, 당당히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막, 돌멩이 같은 걸 던지진 않겠지?
클라인은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찬찬히 주위의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클라인의 눈에 들어온 사람들의 표정은.
“지금. 그게 무슨 말이시죠, 클라인 씨?”
썩 호의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121화 [생명도감] 외래종 퇴치, 이런 사실은 알고 계셨나요?
“그러니까 지금, 클라인 씨는 이곳의 인간들을 다 잡아 죽여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아뇨,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아까까지 클라인에게 보내던 열광은 싸늘한 적대감으로 바뀌어 사방에서 클라인을 쿡쿡 찔렀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자꾸만, 자꾸만 깊은 곳에 가라앉혀 놨던 악성 정보가 떠오를 것만 같다.
괜찮아, 괜찮아, 내겐 잉간이가 있고, 파인만도 있고, 유리도 있어.
응, 괜찮아.
“클라인 씨, 갑자기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하려나 했는데, 갑자기 뭐예요?”
“여기는 국립공원이고,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생태계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 인간들이 그 생태계를 망치고 있어요. 이곳의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선 더 이상 이곳의 인간들을 보호해선 안 돼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지만, 클라인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붙잡고 또박또박 자신의 주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국립공원 측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인간 서식지 주위의 토착 생물들은 거의 절멸 수준으로 사라졌어요. 이대로라면 토착 생물이 전부 사라지게 될 거예요.”
“그것 또한 자연의 섭리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인간들이 이곳의 환경에 적응해서 점유종이 되는 과정일 뿐인걸요?”
“아뇨, 이건 자연의 섭리가 아니에요. 인간들은 원래 이곳에 적응하지 못해요. 사람이 손을 대서 보호한 덕분에 적응한 거죠. 이건 절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에요.”
사회자는 클라인의 주장에 반박하기로 결심한 것인지 클라인을 노려보며 클라인의 주장에 맞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인간을 위한다면 더 이상의 먹이 급여는 그만해 주세요. 인간 서식지 주변의 상태를 보셨어요? 정보 오염으로 정보 생명체가 생겨나기 직전의 상황이라고요.”
“그 정도는 대부분의 국립공원이랑 비슷한 수준이에요. 이 정도의 정보 오염은 괜찮아요!”
그렇지만 어째, 사회자의 주장은 클라인의 주장에 비해 빈약해 보이는 모양새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모두를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그 생각은 헛된 기대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클라인 씨는 이곳의 인간들을 죄다 죽이자는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같은 인간형 사육자로서 어떻게 그런 소리를 태연히 해요?”
“네?”
갑자기 사회자가 클라인의 말과는 상관없는 말을 꺼내며 대화의 주제를 순식간에 바꿔 버린 것이다.
“아뇨,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국립공원에서 인간들을 없애자는 게 그 뜻이지, 그럼 무슨 뜻인가요? 사람이 멋대로 데려와 놓고, 사람 멋대로 죽여도 된다는 건 너무한 소리 아닌가요?”
순식간에 클라인은 인간형 생물을 모조리 잡아 죽이자는 발언을 한 인간 혐오자가 되어 버렸다.
갑자기 급격히 뒤바뀌는 대화의 흐름에 따라가기 벅찼지만, 클라인은 정신을 다잡으며 차분히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려고 했다.
“국립공원에서 인간을 없애는 방법이 꼭 도살만 있는 건 아니죠. 생물 보호소로 보내는 방법도 있고, 또…….”
“생물 보호소로 보내는 게 도살이랑 뭐가 다른가요? 생물 보호소로 간 인간들은 10주 후에 안락사당하는데요?”
“그건,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이야기고, 10주가 지난다고 꼭 안락사당하는 건 아니에요. 근처의 농장이나 연구실로 보내질 수도 있어요.”
“연구실요? 지금, 인간들로 생체 실험을 하는 걸 옹호하신 건가요?”
“아뇨, 제 말은…….”
하지만 사회자는 계속해서 클라인의 말꼬리를 끊어먹으며 클라인의 발언을 곡해했다.
분명히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장소에서 말하고 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맞을까?
클라인의 마음속에 그런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클라인은 조심스럽게 모두의 반발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 방법을 꺼냈다.
“정 생물 보호소로 보내는 게 싫다면, 우리가 입양하는 방법도 있어요. 네, 우리가 이곳에 데려왔으니, 끝까지 책임져야죠.”
“그건 불가능해요!”
그렇지만 그들은 클라인이 제시한 방법에도 거부감을 표출했다.
어째서 그러는 거지?
이게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닌가?
“법이 문제예요! 저희도 마음 같아선 이곳의 아이들을 모두 입양하고 싶죠! 하지만 법으로 이 아이들을 입양하지 못하게 막아 놨는걸요?”
브리더 자격증이 없는 사람은 키메라를 한 마리만 사육할 수 있게 한 그 법을 말하는 걸까?
하지만, 그 법은 별로 문제가 안 될 텐데?
“만약 이미 키메라를 키우고 있다면, 브리더 자격증을 따면 되잖아요? 브리더 자격증을 따면 그 제한이 없어지는 걸로 아는데.”
“브리더 자격증 시험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고 말하시나요? 브리더 자격증은 쉽게 취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클라인은 브리더 자격증을 따기 힘들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다.
생명을 다루는 자격증인데 당연히 따기 어려운 것이 맞지 않은가?
그리고, 정말로 저 인간들을 구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서든 자격증을 따려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도 잉간이를 위해서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그리고! 야생의 아이들을 억지로 가두는 건 못할 짓 아닌가요? 야생에서 행복하게 살던 아이들이 사람의 손에 키워진다고 행복할까요?”
“그건, 사육 환경과 사육자의 정성에 따라…….”
“인간을 정말 생각한다면! 야생 인간은 야생에 놔둬야 해요!”
그래, 확실히 맞는 말이긴 하다.
행복하게 살던 야생 인간을 애완 인간으로 만든다면 그리 행복하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이곳의 인간들이 행복해 보이던가?
그저 먹고 자고 싸는 것만 반복하고,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하고 방사능의 위협 때문에 좁은 장소에 갇혀 있는데?
이런 위험한 곳에 놔두는 것보단 안전한 사육장에서 제대로 돌봐 주는 게 저 인간들을 위한 길이 아닐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사회자의 주장에 반박하려 했지만, 사회자는 더 이상 클라인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인간 혐오적 발언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인간 쥬튜버라고 할 수 있죠? 지금까지 만든 영상들도 전부 주작 아니에요?”
“네?”
사회자가 그렇게 외치자, 주위의 시위대들이 기다렸다는 듯 소리치며 클라인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인간을 돈으로밖에 안 보죠?”
“전에 키우던 인간들도 그냥 길에 버렸으면서!”
“맞아, 맞아!”
“잉간이가 불쌍하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비난에 클라인은 쉽사리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클라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륵 흘러내리려 했다.
“죄송합니다만, 비켜 주시겠어요?”
하지만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시위대들 사이에서 들려왔다.
“오늘 토론회는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물러나 주세요~.”
“파, 파인만?”
어느새 나타난 파인만이 마력을 몸에 둘둘 감은 채로 시위대를 헤치고 클라인에게 다가왔다.
파인만이 뿜어내는 심상치 않은 마력과 분위기를 느낀 시위대들은 입을 다물고 순순히 길을 터 줬고, 파인만은 슬쩍 클라인에게 겉옷을 둘러 주며 속삭였다.
“대화도 잘 못하면서 무슨 토론을 하겠다고 나섰어?”
“이럴, 이럴 줄은 몰랐지…….”
“자, 일단 돌아가자. 빨리.”
“응…….”
클라인은 파인만의 품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빠르게 시위대를 빠져나와 다시 생명도감의 곁으로 돌아왔다.
“고생하셨어요. 제가 괜한 부탁을 해서…….”
“아뇨, 아니에요. 제가, 제가 너무 직설적이었던 거 같아요.”
생명도감의 곁에 도착한 클라인은 조심스럽게 촉수로 눈을 닦았고, 생명도감은 그런 클라인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그제야 간신히 한숨 돌린 클라인은 자신의 옆에 멀찍이 서 있는 파인만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부터 여기 와 있던 거야?”
“생명도감이 의뢰해서, 대충 주위에서 민원도 수집하고 네 호위도 할 겸 섞여 있었지.”
“민원?”
민원이라니, 그게 여기서 왜 나오는 거지?
클라인이 그렇게 의아해하는 사이, 생명도감이 클라인의 의문을 풀어 줬다.
“이 근처에 도시가 있다고는 말했었죠?”
“네, 그랬어요.”
“클라인 님이 느끼기에 저 집회는 어때 보였나요? 많이 시끄러웠죠?”
“네……. 아, 설마……?”
“네. 주위의 도시까지 들릴 정도로 시끄럽더라고요. 그런 시위를 하루도 아니고 매일같이 하고 있으니 당연히 주민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죠.”
“그럼, 민원을 모아서…….”
“처음부터 집회 해산 신청을 해서 강제로 해산시킬 생각이었답니다. 클라인 님이 설득을 하지 못했으면요.”
뭐야, 내가 일을 망친 건 아니었구나.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생명도감은 가만히 클라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클라인 님, 클라인 님이 보기에 저 사람들은 어땠나요?”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증거를 가져와서 합리적인 주장을 해도, 자기들 주장만이 옳다고 우기고. 인간을 위한다고는 하는데, 저럴수록 인간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질 텐데…….”
그렇게 말하던 클라인은 문득 아까의 생각이 떠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저곳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보고 모였다니, 그건 마치…….
“그건 클라인 님 탓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
“최근에 저런 단체들이 나타난 것도, 요즘 인간형 생물들이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클라인 님 탓이 아니니까, 그렇게 자책하지 마세요.”
“그래도, 제가 좀 더 많은 정보를 알려 줬다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인간형 생물이 대중에 알려지며 생기는 부작용이니, 조급해하지 말고 차분히 인식을 개선해 나가면 돼요. 저도 한번 겪어 봤답니다.”
“생명도감 님도요?”
“네. 그거 아세요? 지금 저기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은 제 때도 있었다는 거?”
“네?”
“같은 단체가 이름만 바꿔서 활동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해요.”
“네…….”
생명도감이 클라인을 위로했음에도 클라인은 무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인간형 생물들의 인식을 좋게 바꾸고 싶을 뿐인데, 시작부터 이래서야 언제쯤 가능할까?
그런 클라인의 모습을 지켜보던 생명도감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클라인 님은 좀 특이하네요.”
“네?”
“보통, 자기가 키우는 생물종에 감정을 이입하는 편이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운데, 클라인 님은 객관적 시선을 잘 유지하셔서요.”
“그, 그래요?”
“인간형 생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잉간이를 키우는 거여서 그런가요? 하하.”
“하하…….”
클라인은 생명도감과 함께 웃었지만, 무언가가 마음에 턱 걸리는 느낌이었다.
뭐지?
뭐가 마음에 걸리는 거지?
클라인은 일단 그 텁텁함을 묻어 버리고 웃으며 생명도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잉간이가 필요하다고 하셨던 일은 뭔가요?”
“아, 그거요? 그건…… 여기가 아니라 다른 소행성으로 가야 하거든요.”
생명도감은 그렇게 말하며 우주선의 문을 열었고, 클라인은 파인만과 함께 우주선 안에 탑승했다.
파인만은 클라인의 옆에 착 붙어 안더니, 촉수를 뻗어 클라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 갑자기 뭐야?”
“그냥. 힘냈다고.”
발달기 시절에 파인만이 이렇게 해 줬던 적이 몇 번 있었지.
몇 안 되는 발달기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며 클라인은 가만히 파인만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으음, 근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네.
뭔가, 뭔가가 부족한데…….
클라인의 머릿속에 뭉게뭉게 거칠면서 상냥하게 자신을 쓰다듬던 손이 떠올랐고, 그와 함께 우주선이 멈춰 섰다.
“좋아요, 도착했습니다.”
“흐얏? 네?”
“내리시진 않으셔도 괜찮아요. 모니터에 보여 드릴 테니까요.”
왜인지 클라인은 이상한 걸 들킨 아이처럼 허둥지둥하며 망상에서 깨어났고, 가만히 생명도감이 보내오는 영상을 바라봤다.
“제가 잉간이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저 아이를 생포하는 거예요.”
“저…… 아이를요?”
클라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토착 생명체를 이빨로 찢고 있는 라미아 형태의 키메라 인간이었다.
저걸, 잉간이에게 잡으라고 시킬 거라고?
122화 *구독자들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는 영상입니다.*
라미아형 인간을 기본 베이스로 삼은 걸까?
한참 토착 생명체를 뜯어 먹고 있는 키메라의 하반신은 기다란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순혈 라미아는 아닌 것이 확실한 것이, 뱀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비늘 대신 부드러운 털이 꼬리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머리에는 토끼를 연상시키는 축 처진 귀가 하얀 머리카락 사이에서 흔들린다.
붉은 눈동자를 흉흉하게 빛내며 문제의 키메라 인간은 식사를 모두 끝마치고 배가 불렀는지 스르르 근처의 바위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저걸 잉간이보고 잡으라고 한다고요?”
말도 안 된다.
그냥 인간도 아닌 키메라 인간을 마력도 쓰지 못하는 잉간이가 어떻게 생포하는가?
클라인은 말도 안 된다며 당장 생명도감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지만, 생명도감은 손을 내저으며 클라인의 오해를 풀어 주었다.
“아, 제가 조금 오해하게 말을 했네요. 더 정확히 말하면 잉간이가 저 아이를 생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생포하는 걸 도와주는 거예요.”
“생포하는 걸 도와준다고요?”
“뭐, 영화에서 가끔씩 그런 역할이 나오잖아요? 테러범들에게 투항하라고 협상을 제시하는 사람들. 제가 잉간이에게 맡기려는 건 그런 역할이에요.”
“그러니까, 실제로 싸우게 하진 않는다는 거죠?”
“네, 시스템의 보조를 받을 테니 만약의 사태에도 안전할 테고요.”
으음, 직접 싸우는 게 아니고 대화를 하는 역할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이 방법에도 조금의 문제가 있었다.
“그건 다 좋은데요, 잉간이에게 어떻게 부탁하려고요? 생명도감 님은 잉간이하고 대화를 하실 수 있나요?”
“아뇨, 당연히 저도 불가능하죠.”
“그럼 어떻게……?”
클라인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했고, 생명도감은 어깨를 으쓱하며 클라인에게 대답했다.
“뭐, 세상일에는 모두 예외가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적당히 대가를 지불하고 허가만 얻는다면, 뭐든 불가능하겠어요?”
“네? 그게 무슨…….”
“곧 아시게 될 거예요. 클라인 님이 더 깊은 곳을 파고드신다면요.”
클라인은 그제야 생명도감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고, 꿀꺽 침을 삼키며 슬며시 생명도감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생명도감의 표정은 마키나답게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놀라실 것 없어요. 생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요.”
“그럼, 생명도감 님도.”
“리만 협회장이 과거에 선택했던 파트너가 누굴 것 같아요?”
울타르와 탄탈로스.
한때 지적 생명체였다, 지금은 애완 생물의 위치로 추락한 생명체들.
리만 협회장은 그 생명체들을 다시 지적 생명체로 끌어올리려 하다 모종의 이유로 실패했다.
설마, 생명도감도 그때?
“제가 보기엔, 클라인 님은 지금 꽤 흥분한 것처럼 보여요. 때로는 앞으로만 달려가기보단, 한발 물러서서 주위를 둘러볼 필요도 있답니다.”
“아, 어. 그럼…….”
“어째서 리만은 허가를 받지 못했고, 저만이 허가를 받을 수 있었는가. 잘 생각해 보세요.”
클라인의 머릿속에선 온갖 질문들이 소용돌이쳤다.
리만 협회장의 계획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는지, 그 허가라는 건 뭔지, 도대체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게 참 많은데.
하지만, 클라인은 입을 떼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무엇부터 질문해야 할지 모를 땐, 침묵이 답일 수도 있으니까.
“그럼, 그쪽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다 풀렸나요?”
“네, 네…….”
“잉간이가 할 일은 간단해요. 우선 저 아이와 대화해서 진정 상태로 만든 뒤, 저 아이를 무사히 보호할 수 있게 도와준 다음, 방역대가 올 때까지 최대한 많은 인간들을 모으는 거예요.”
“네? 방역대요?”
“어쩔 수 없어요. 법이 그러니까요.”
클라인이 생명도감을 도운 것은 저 불쌍한 인간들을 죽이지 않고 잘 보호할 거란 믿음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방역대라니?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민원을 접수한 이상, 정부에서도 이곳에 신경을 쓸 거예요. 공무원들이 보는 앞에서 법을 어길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그건…….”
“그래서 잉간이가 필요한 거예요. 최대한 많은 인간들을 방역대가 오기 전에 모아서 보호할 수 있게요.”
“……네.”
클라인은 생명도감의 말에 수긍하는 자신이 무척이나 이상하게 느껴졌다.
분명히 인간들은 우리와 똑같은 지적 생물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목숨을 가지고 떠든다.
내가 과연 정말로 인간형 생물들을 지적 생물로 인정받게 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이런 건 거부해야 하는 게 맞지 않아?
같은 지적 생명체라면, 목숨 하나하나가 사람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거잖아?
하지만 이상하게도, 클라인에겐 생명도감에게 항의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잉간이와 관련된 일이 아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마음 어딘가 한구석에서 다 잘될 거라고 낙관하는 마음이 있는 걸까?
만약, 어쩌면.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죠. 저 시위대가 있으면 해야 할 일도 하지 못하니까요.”
클라인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여러 생각을 갈무리하는 사이, 생명도감은 그렇게 말하고 우주선을 조종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클라인과 생명도감은 일단 국립공원을 빠져나왔고,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찬 클라인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즐거운 나의 집에 왔음에도 클라인은 여전히 즐거운 기분이 들지 않았고, 조용히 마력망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아…….”
역시나 예상대로 오늘 시위대와 있었던 충돌이 인간 관련 커뮤니티에도 알려진 상태였다.
[솔직히 이건 클라인 말이 틀린 거 없지 않냐?]
-일단 희귀 생물이 사는 국립공원에서 엄연한 외래종인 키메라 인간들에게 밥을 주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냐? 만약 키메라 인간이 유해종이었으면 저건 100% 벌금 나오는 행동인데.
[댓글]
-그렇다고 저기까지 겨우 살아온 애들을 죄다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안타깝지만 죽게 내버려 둬야지. 저긴 야생이고, 키메라 인간들이 한때 사육됐다고 해도 유기당한 이상 그때부턴 엄연한 야생 인간이야.
[난 클라인이 저런 말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말로는 잉간이 잉간이 엄청 챙기고, 반려 인간이니 뭐니 했지만, 저게 인간들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다른 사람들하고 다를 게 뭐야?
[댓글]
-이건 저 애호 단체가 선을 넘은 거지. 클라인도 커버 쳐 주지 못할 만큼. 그리고 클라인이 인간들 죄다 잡아 죽이자고 했냐? 야생 인간들이 안타까우면 야생에서 밥 주지 말고 집에 데려가 키우라고까지 했는데.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야생 인간을 데려오면 서로 불행해진다는 게 클라인이 매번 하는 말 아니었냐?
[스노우 플레이크인지 뭔지 그건 문명도 못 만드는 하등 생명체들 아니냐?]
-걔네들 몇 마리 죽인 것 가지고 뭐 이렇게 난리야? 야생 인간이 그럴 수도 있지.
[댓글]
-혹시 선생님은 국립공원의 뜻을 모르십니까?
[아, 나는 누가 잘못했는진 모르겠고, 이 기회에 학대파들 신나서 날뛸 거 생각하면 짜증 난다.]
-건수 생겼다고 신나서 혐오 발언 잔뜩 쏟아 낼 거 생각하면 벌써부터 짜증 나네.
[댓글]
-ㄹㅇ. 그래서 나도 이번엔 클라인이 부주의했다고 생각함.
[클라인 사실 인간 좋아한다는 거 다 콘셉트 아님?]
-솔직히 인간 사육자라면 누구나 저 상황에서 애들 불쌍하게 여겨야 하지 않냐?
[댓글]
-너는 네 집 앞에서 인간이 3달 내내 전파 쏴 대도 화 안 낼 거지?
“하아…….”
커뮤니티에선 클라인의 발언을 가지고 옳니 틀리니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클라인의 말이 옳다고 여기는 분위기였지만, 일부 사람들은 클라인에게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클라인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생명도감도, 협회장님도, 모두가 자신에게 인간에 대한 인식이 바뀌며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잡음이라고 하지만,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밖에 없다.
클라인이라고 저 애호 단체의 주장에 동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인간이 좋고, 인간들의 목숨을 함부로 다뤄선 안 된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나쁜 면만 있는 생물이 없듯이 이 세상에는 좋은 면만 있는 생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지적 생물이고, 우리와 같은 존재니 저들이 끼치는 해악을 눈감아 주자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인간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른 거라는 변명도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만약, 사람이 스노우 스톤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지역의 토착 생명체들을 멸종 직전까지 몰고 갔다고 하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처벌을 받는다.
인간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을 정말 지적 생물로 여기고, 우리와 동등하게 여긴다면 그들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들이 원해서 그곳에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니 이 모든 일을 일어나게 만든 우리가 책임을 지고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는 게 맞는 일이 아닌가?
클라인이 이번 사태에서 인간 애호 단체의 편을 들지 않은 이유는, 애호 단체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생명을 불쌍히 여겨 손을 뻗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애호 단체들은 그 책임을 지기 싫어서 인간들을 국립공원에 방치했다.
자신들에겐 자격이 없다는 핑계로 말이다.
책임을 질 자격이 없으면, 그 자격을 얻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우울한 기분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클라인은 문득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인간형 생물들을 지적 생물로, 우리의 친구로 인정받게 하고 난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던 일이지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인간형 생물을 다루던 시장은 아예 사라질 테고, 수많은 실직자가 발생하고, 기존 사회 시설과 법을 인간들에 맞게 맞추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져 오기에, 클라인은 더 이상의 생각을 포기했다.
어쩌면 나도, 저 애호 단체들하고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순간의 만족감만을 위해, 이후에 벌어질 일에 책임을 질 생각도 하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게 맞는 걸까? 나는 과연 옳게 행동하고 있는 걸까?
“아, 모르겠다!”
그렇게 고뇌하던 클라인은 다시 한번 한숨을 깊게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비척비척 잉간이에게 다가갔다.
생각할 게 너무 많아서 지쳤다.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잉간이와 행복하게 지내고 싶을 뿐인데.
잉간이와 제대로 소통하고, 교감을 나누고 싶을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해야 하고, 귀찮은 일에 휘말려야 하는 거야?
나는 단순한 일개 쥬튜버인데.
그렇게 생각하던 클라인은 생명도감과 대화하고 나서부터 자신 안에 움튼 무언가 텁텁한 기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완전히 그 정체를 알 수는 없어서, 클라인은 언제나처럼 작은 친구에게 위로를 받기 위해 가만히 차원항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클라인은.
“아.”
지금껏 자신을 괴롭혔던 텁텁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릴 수 있었다.
123화 최근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
클라인은 갑자기 아침부터 왜 이러는 거지?
뭐, 밖에서 맞고 오기라도 한 걸까?
“클라인?”
평소와 달리 무척 우울한 기색에 나는 의뭉스럽게 클라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클라인은 내 부름에 반응한 것인지 힘없이 촉수를 내게 가져왔다.
이런 모습은 별로 보기 안 좋은데.
문득, 나와 클라인이 처음으로 교감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이렇게 잔뜩 상처받은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번에도 그때처럼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그렇지만 어항 속의 존재인 내가 어항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방법은 없기에, 나는 그저 부드럽게 촉수를 쓰다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힘들 때 힘이 되어 주고 싶어서.
클라인이 외로워하고, 슬퍼하지 않게 이곳에 남은 건데.
힘이 되어 주지도, 슬퍼하지 않게 하지도 못했다.
이럴 때 내 목소리를 클라인에게 들려줄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촉수를 쓰다듬고 있자, 어항 안으로 클라인의 손이 조심스럽게 살포시 내려왔다.
나에게 올라타라고 말하는 것처럼 클라인의 손은 내 앞에 가지런히 놓였다.
나는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를 바라보고 있을 클라인의 얼굴을 찾듯 고민을 하고, 조심스럽게 발을 클라인의 손 위로 올려놨다.
조심스럽게 클라인의 손 위에 올라가니 클라인과 나의 차이가 실감이 난다.
여기서 클라인이 주먹을 꼭 쥔다면 나는 그대로 으스러진 토마토 같은 꼴이 되겠지.
예전, 클라인을 신뢰하지 않던 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클라인의 손 위에 올라와 보니, 클라인이 얼마나 나를 배려하고 있는지 알겠다.
“우왁?!”
내가 가만히 그 손 위에 주저앉아 클라인의 호의를 느끼던 그때, 클라인의 손이 조심스럽게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어항 밖을 나가는 건 처음이어서 조금 무섭긴 하네.
천천히라고는 해도, 확실히 빠른 속도로 지상의 풍경이 작아지더니 회색빛 안개가 내 주위를 가리고, 그다음 순간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위치해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없다는 표현은 틀린 표현일 것이다.
오직 나와 클라인만이 이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니 살짝 로맨틱하게 들리는데?
나는 가만히 고개를 들고 클라인의 손 위에서 천천히 텅 빈 세상을 살폈다.
마치 깊은 우주 속에 혼자 버려진 것 같다.
깊은 우주라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닌 것이, 우주에서 별빛이 보이듯 자그마한 정보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살짝살짝 엿보인다.
아니, 저것들은 작은 정보가 아니다.
나의 감각의 한계를 벗어난 정보들이기에, 내가 미처 다 느끼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아마 저것들은 내가 죽을 때까지 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해할 수도, 인식할 수도 없는 정보들이겠지.
그렇다면 클라인은.
지금 내가 서 있고,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그녀는.
지금은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서, 글자 뭉치로 보이는 클라인이지만.
언젠가는 내가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우주적 현상 같은 것이 아니란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죽기 전엔 이해할 수 있지 않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클라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클라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클라인을 걱정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클라인.”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에 반응한 것일까?
클라인은 움찔 몸을 떨며 나를 자신의 얼굴 더욱 가까이 들어 올렸고, 클라인과 더욱 가까워지면서 그녀의 정보들이 내게 한가득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클라인의 정보와 나의 정보를 헷갈릴 것 같다는 수준을 넘어, 아예 서로의 정보가 뒤섞여 하나로 합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어딘가 익숙한 감각이어서일까?
나는 에포나의 도움 없이 나의 정보와 클라인의 정보를 분리해 낼 수 있었고, 조심스럽게 내 감정을 클라인에게 흘려 보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나의 볼품없는 위로가 클라인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다행히 나의 위로가 클라인에게 무사히 전달된 걸까?
“:-)”
클라인은 방긋 웃으며 촉수로 슬며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의 존재가 약간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클라인의 촉수를 쓰다듬던 순간이었다.
깨달음은 불현듯 찾아온다고 했던가?
그 말처럼 나는 어째서 내가 클라인의 곁에 남았는지를 깨달았다.
전처럼 막연하게 클라인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내가 클라인에게 가장 원하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내가 가장 클라인에게 원하는 것.
지금까지 받은 호의를 받은 만큼 클라인에게 돌려주는 것.
그녀에게 호의를 선물할 수 있을 정도로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것.
그러니까, 즉.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다.
“클라인, 내 진짜 이름은…….”
비록 그녀가 내 목소리를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그녀와 동등한 관계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나는 조용히 클라인에게 내 이름을 속삭였다.
에포나가 내 목에 달라붙은 지금 이 순간이 끝나면 나조차 잊어버릴 이름을.
* * *
잉간이의 위로를 받기 위해.
아니, 잉간이가 위로하지 않더라도 클라인 자신이 위안을 얻기 위해 클라인은 차원항 안에 슬며시 촉수를 집어넣었다.
“잉간아…….”
클라인의 존재를 느낀 것인지 잉간이가 슬며시 은신처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클라인의 촉수 곁으로 다가왔다.
클라인의 상태가 평소와는 달리 우울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일까?
먼저 촉수에 다가오는 일이 거의 없던 잉간이가 슬며시 클라인의 촉수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클라인은 모든 것을 잊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 우울한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어서 곧바로 클라인에게 우울감이 찾아들었다.
좀 더, 좀 더 잉간이와 교감을 나누고 싶다.
좀 더, 잉간이에게 위로받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던 클라인은 문득 지난번에 잉간이와 했었던 교감을 떠올렸다.
꿀꺽.
이상한 걸 하려는 것도 아니건만 클라인은 침을 삼키며 긴장된 표정으로 천천히 차원항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잉간이의 앞에 슬며시 손을 펼쳐서 놔두자, 잉간이는 클라인의 의도를 이해한 것인지 쪼르르 손 위로 올라왔다.
손 위에서 잉간이의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진다.
물질적 무게든, 정보량의 무게든 뭐든 클라인에게 한참 뒤떨어지는 잉간이의 몸.
이렇게 잉간이의 정보를 읽으면 읽을수록 잉간이가 이다지도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 느껴진다.
마력도 쓰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거의 동물의 신체나 다름없는데, 어떻게 지성을 갖추게 됐는지 참 미스터리하다.
클라인은 잉간이가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잉간이를 올려놓은 손을 차원항 바깥으로 꺼냈다.
클라인의 손에 올라탄 채로 차원항 밖으로 나온 잉간이는 바깥 풍경이 신기한지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 위를 쪼르르 돌아다닐 때마다 느껴지는 살짝 간지러운 감각이 참 흐뭇하게 느껴진다.
한참을 그렇게 돌아다니던 잉간이는 충분히 구경했는지 손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빤히 클라인의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클라인 또한 아무 생각 없이 잉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때우던 그때.
“읏……?”
클라인은 자신 안의 정보가 누군가에 의해 자극되는 것을 느끼고 몸을 흠칫 떨었다.
방금 그건, 설마 잉간이가 한 건가?
“0^0”
클라인의 예상대로 방금의 정보 조작은 잉간이가 한 것인지 잉간이는 클라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뭔갈 말하려는 듯 보였다.
계속해서 잉간이는 조심스럽게 클라인의 문을 콩콩 두드렸다.
잉간이의 작은 몸에서 나오는 감정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명확한 의지를 가진 감정이 계속해서 클라인의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클라인은 잉간이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보내고 싶었지만, 잉간이가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가만히 잉간이의 감정을 느끼기만 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좀 더 잉간이의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클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잉간이를 점점 더 얼굴 가까이 가져왔다.
당연히 사람의 몸에서 가장 많은 정보들이 응축된 곳에 가까워지며 클라인의 정보가 잉간이의 정보를 덮어씌우듯 잉간이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잉간이의 정보 오염을 생각한다면 당장 잉간이를 바닥에 내려놔야 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감정을 깊숙이 넣는다는 감각은 쉽사리 포기하기 힘들었다.
“0º0!”
하지만 그런 클라인의 걱정이 기우라고 외치는 듯, 잉간이는 다시 한번 자신의 감정을 클라인에게 두드려 넣었다.
전날, 클라인이 첫 교감의 느낌에 당황했을 때보다 강하면 강했지 못하지 않은 감각이 클라인의 몸을 뛰어 돌아다닌다.
이 정도로 순수하고 올곧게 자신만을 걱정해 주는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있었던가?
파인만이 발달기에 울고 있던 클라인을 위로해 줬을 때 말고는 없다.
너는 나를 이렇게나 생각해 주는구나.
잘난 것 없이 매번 실수만 하고 스스로가 하는 일에 확신조차 가지지 못하는 나를.
잉간이의 진심 서린 위로가 클라인에게 똑똑히 전해져서일까?
자꾸만 몸을 지배하던 우울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클라인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그래, 잉간이가 이렇게까지 걱정해 주는데 더 힘내야지.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으며 촉수로 조심스럽게 잉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때, 클라인은 불현듯 자신을 텁텁하게 하던 질문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는 과연 인간형 생물을 좋아하는 것인가?
생명도감이 별생각 없이 던졌던 말에서 시작된 끈적한 의문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클라인의 마음에 달라붙어 있었다.
클라인이 처음에 인간형 생물을 키우기 시작한 건, 그 시기의 클라인이 유일하게 우월감과 자존감을 채울 수 있는 대상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우월감과 자존감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게 인간형 생물이 아니었어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나는 인간형 생물의 매력에 빠져든 게 아니었나?
그래, 빠져들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애완 생물로서의 좋아함이지 그들을 반려 생물로서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상범으로 몰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리만에게 인간형 생물의 비밀을 들을 정도까진 아니었단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협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을까?
어째서 집 밖으로 나가면서까지 브리더 자격증을 따려고 했을까?
나는 어째서 인간형 생물들을 지적 생물로 인정받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게 당연한 거라는 말은 대답이 될 수 없다.
지금까지 클라인은 당연한 일들을 어렵다는 핑계로 해 오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클라인이 바뀌려고 한 이유는.
클라인이 이 세상을 바꾸려고 한 이유는.
지금껏 클라인을 움직여 온 원동력은 무엇일까?
전부 하나였다.
잉간이.
전부 잉간이 때문이었다.
“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클라인은 그제야 그 질문에 대답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인간형 생물들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오로지 잉간이뿐이었다.
잉간이와 친구가 되고 싶고, 잉간이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클라인은 협회장의 제안에 응한 것이다.
인간형 생물을 위해 싸우는 정의의 투사 같은 게 아니다.
그저, 잉간이와 일상을 보내고 싶어서.
잉간이와 함께 지내기 불편한 것들을 없애고 싶어 한 것뿐이다.
묘하게 클라인이 인간형 생물들을 중립적인 위치에서 볼 수 있던 것도.
잉간이와 함께 사는 룸메이트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지 않았던 것도.
모두 잉간이가 아니어서였다.
나는 잉간이를 좋아한다.
인간형 생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인이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잉간이는 클라인을 향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0^0”
“후훗.”
클라인은 그런 잉간이를 보며 미소 짓고, 조심스럽게 잉간이를 다시 차원항 안으로 되돌렸다.
잉간이만 괜찮다면, 다른 인간형 생물들이 어찌 되든 좋다.
다른 인간들은 잉간이가 아니니까.
이런 결론을 내린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가 보면 이기적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나는 이기적이다.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잉간이가 필요하고, 나의 행복을 위해 잉간이의 행복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나는 리만처럼 무언가 대단한 신념을 가진 사회운동가도 아니고, 단순한 쥬튜버다.
나는 인간형 생물들의 행복을 모두 책임질 수 없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건 오로지 잉간이의 행복뿐이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것까지 책임지는 척을 한다면, 스노우 스톤의 인간 애호 단체와 다를 게 없잖아?
생명도감이 그랬던가?
어째서 리만은 허가를 받지 못했고, 자신만이 허가를 받았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
지금이라면 클라인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생명도감은 현실과 타협했고, 리만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사람이니까.
그리고 클라인은 리만보단 생명도감의 성격이 더 마음에 들었다.
오랫동안 달라붙은 질문을 해결해서일까?
클라인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인간형 생물들이 지적 생물로 인정받아야 할 정도의 지능을 가진 것도 맞고, 인간형 생물들의 생명 또한 소중한 것이 맞다.
그러므로 인간형 생물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만약 잉간이의 행복과 인간형 생물들의 인권을 둘 다 챙길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클라인은 그때 자신이 무슨 선택을 내릴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쥬튜브 계정에 접속해 공지 사항 하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최근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차원항 장인 클라인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여러 논란에 대한 제 입장을 지금 이 자리에서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은지 확실히 안 상태로 말이다.
124화 [공익광고] 안정은 번영을, 변화는 몰락을 의미합니다.
클라인이 나를 손 위에 올려서 차원항 밖으로 꺼내고 며칠이 흘렀을 무렵, 나는 또다시 낯선 천장을 보며 잠에서 깨어났다.
어라,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지난번처럼 어디론가 외출하려는 걸까?
주섬주섬 몸을 뒤져 보자 툭, 하고 반려넷 단말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좋아, 다행히 반려넷이 가능하니 적당히 시간을 때울 수는 있겠네.
전이라면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폈겠지만, 이제 익숙해진 상황에 나는 하품을 하며 뭐 누울 곳이 없나 찾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나 반려넷에 올릴까?
그런 태평한 생각이나 하고 있던 그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응?”
지금껏 단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던 문이 회색 안개 속에 생겨난 것이었다.
뭐야, 언제나의 그 장소가 아니었던 건가?
내가 갑자기 생겨난 문에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이, 허공에 생겨난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나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아주 극히 평범한 외모의 남자였다.
뭐, 귀가 뾰족하다거나 꼬리가 달려 있지도 않았다.
극히 평범한, 보통의 인간의 모습.
그렇지만 어째,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예전, 아리스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 느꼈던 피식자의 감각처럼 자신과 다른 낯선 무언가를 만났을 때 느껴지는 본능적인 감각이다.
불쾌한 골짜기라고 하던가?
인간과 흡사하지만, 살짝 차이점이 느껴지는 것을 봤을 때 불쾌감이 올라간다고 했었지?
그것처럼, 나는 눈앞의 남자를 보며 이유 모를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그러든가 말든가 남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천천히 내게 다가와 툭 내뱉듯 내게 말을 걸었다.
“잉간. 맞지?”
“응?”
“네 이름이 잉간이 맞냐고 물었다.”
“잉간……이 맞긴 한데.”
그건 왜?
라는 뒷말은 나오지 못하고 묻혀 버렸다.
내 대답을 들은 남자가 무심하게 등을 돌리고 내게 손짓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와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지.”
“네?”
나는 너무나 당당한 남자의 태도에 그만 존댓말로 되물었고, 남자는 나와 대화를 더 하는 것이 귀찮은지 한숨을 내쉬며 부연 설명을 붙였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려 주겠다는 거다. 알겠으면 따라와.”
남자는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개 속의 문으로 들어갔고,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슬쩍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뭔가 지금까지처럼 단순히 잠깐 외출하는 게 아닌 것 같지만, 지금 상황에선 저 남자를 따라가는 것밖에 할 일이 없으니까.
안개 속의 문을 지나가자, 그 인간 농장에서 많이 봤었던 재질로 이루어진 통로가 나타났다.
설마 제2의 인간 농장 같은 장소는 아니겠지?
부디 그러질 않길 빈다.
그렇다면 또다시 어떻게 탈출할지에 대한 방법을 찾느라 고생해야 하니까.
말없이 통로를 걷는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저 남자는 내가 할 일을 알려 주겠다고 했지?
내가 할 일이라.
지금까지의 삶과는 꽤 거리가 동떨어져 있는 단어다.
지금까지는 할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을 했으니까.
누군가가 내게 일을 쥐여 주는 건 이곳에 오고 난 뒤로 처음 있는 거 같은데?
클라인이 내게 뭔가 던져 주긴 했어도 그건 대부분 내가 하던 일에 관련된 것이나, 아니더라도 내가 하겠다고 생각해서 직접 행동한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자, 무슨 휴게실로 보이는 것 같은 장소가 나타났다.
남자는 휴게실 가운데에 놓인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았고, 나는 자연스럽게 남자의 반대편에 앉았다.
그러고는 남자는 별다른 말 없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서류들을 내게 건넸다.
“이게 뭔데?”
“읽어 봐라.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내가 할 일?”
도대체 무슨 일을 시키려고 이러는 걸까?
나는 의아해하며 일단 서류를 손에 들고 그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기껏해야 뭔가 만드는 일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서류의 내용은 내가 예상하던 것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는 내용이었다.
“위험 지역의 인간들을 구조?”
여기서 갑자기 예체능 쪽 일이 튀어나오는 건 뭔데?
차분히 서류를 읽어 내려갈수록 내가 해야 한다는 일이라는 것이 참 가관이다.
“그러니까, 내가 방사능이 넘쳐 나고, 얼마 후에 소멸할 예정인 구역의 인간들을 인솔해서…….”
“안전 구역까지 이동시키면 된다. 별거 아닌 일이지.”
“아니, 이게 무슨 별거 아닌 일이야?”
딱 봐도 궂은일 아냐, 이거?
뭐 시스템이라는 걸로 나를 지원해 준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냐?
시작부터 최종 보스가 등장하는 것 같은 난이도인데?
내가 인솔해야 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인간이라면 모른다.
하지만 서류를 읽어 보니 평범한 인간들도 아닌데?
맨손으로 나 같은 사람은 가뿐하게 찢을 것 같은데?
거기에다가, 외부인에게 극도로 적대적?
그런 사람들을 나보고 안전 지역으로 대피시키라니, 말도 안 돼.
심지어 이건 또 뭐냐고?
[최중요 목표]
-하얀 털과 붉은 눈동자를 가진 라미아형 키메라. 마력을 감지해서 반응하는 것인지 서식지 근처에 접근하기만 해도 공격을 가해 오니 주의할 것. 무슨 일이 있어도 확보해야 하는 목표.
집 근처에 접근하기만 해도 공격을 해 온다는 녀석을 내가 어떻게 데려오냐고.
이거, 말이 되는 계획 맞아?
내가 서류를 둘러보며 황당한 계획에 진저리를 치는 사이, 눈앞의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 설명은 이 정도면 충분한가?”
“충분하지. 너무 충분해서 내가 절대로 못하겠다는 걸 알겠는데?”
절대로 이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남자에게 그렇게 쏘아붙이자,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바라봤다.
“네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왜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이게?”
“이 일을 위해서 네가 불린 거니까.”
“나는 하겠다고 동의한 적도 없고, 일방적으로 자고 일어나니 끌려온 거라고.”
나는 팔짱을 끼고 책상 너머의 남자를 노려봤고, 남자 또한 짜증을 얼굴에 나타내며 나를 노려봤다.
“네가 원하든 말든, 이 일은 네가 해야 하는 일이다.”
“왜 난데? 왜 내가 꼭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더 적합할 거 같은데?”
“거신들이 너를 지명했으니까.”
“……거신?”
거신?
거신이라고 하면 설마, 주인 녀석들을 나타내는 다른 말인가?
“네가 할 수 있든 없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거신이 너를 지목했고, 너는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거지.”
주인 녀석들이 나보고 이 일을 하라고 했다고?
클라인이 나에게 이걸 하라고 시킨 거라고?
지금까지 클라인이 내게 보여 주던 모습과 전혀 다른 상황에 나는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니, 상식적으로 클라인이 이런 걸 시킬 리가 없잖아?
지난번 인간 목장에 끌려갔을 때처럼 클라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닐까, 이건?
내가 뜻밖의 사실을 듣고 멈칫한 사이,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나를 설득하려는 듯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네가 임무를 수행하러 가서 다칠 일은 없을 거다. 거신들의 가호가 너를 지킬 테니까. 너는 그냥 가서 목표를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
남자는 내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위험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내게 안전함을 어필했다.
하지만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내가 이 일을 할 이유가 없잖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만약 이걸 해결한다면 보수는…….”
“없다.”
그럴 줄 알았다.
무보수로 노동을 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등받이에 몸을 파묻으며 뻗대기 시작했다.
“안 해. 절대 안 할 거야. 여기에 끌려온 것도 짜증 나는데, 보수도 없이 부려 먹으려고?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 줘!”
“그래. 네가 그걸 원한다면 그렇게 하지.”
그러자 내 예상보다도 더 신속하게 남자는 내 요구를 받아들였다.
뭐야, 말이 잘 통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싱글벙글 웃었지만, 이어진 남자의 말에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면, 즐거운가?”
“뭐?”
“거신들과 동등해질 기회를 포기하고, 가축으로 키워지면 즐겁냐는 말이다.”
누가 봐도 확연히 시비를 건다는 걸 알 수 있는 남자의 말에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남자를 노려봤다.
그렇지만 남자는 내가 노려보는 게 무섭지도 않은지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거신들의 마음에 든 걸 보아하니, 네놈도 거신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었던 게 아닌가?”
“그건.”
“이건, 네가 거신과 동등해질 수 있는 기회다. 거신이 직접 일을 맡기는 건 오직 사람뿐이다. 가축에게 자신이 할 일을 맡기는 주인을 본 적이 있나?”
남자의 말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했다.
클라인의 곁에 서서, 클라인과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다는 나의 마음.
“같은 위치에 서고 싶다면, 같은 위치에 설 만한 자격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
“…….”
분명히 도발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면 편안하게 쉴 수 있음에도.
분하게도 나는 저 남자의 도발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남자의 말이 모두 맞았기 때문이었다.
클라인과 친구가 되려면 클라인에게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친구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니까.
그렇다면 클라인에게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그럴 자격이 있음을 보여 줘야 하는 게 맞잖아?
저 녀석의 말대로 이건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다.
어항 안에선 절대로 이뤄 낼 수 없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기회.
“으아…….”
으, 저 녀석의 말에 홀라당 낚이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쁜데.
그래도 이 기회를 걷어찰 수는 없으니까.
“그래, 알겠어. 할게, 할 테니까…….”
“따라와라. 거신의 가호를 내려 주겠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제안을 수락했고, 남자는 내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리고 나는 푹 한숨을 내쉬며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일하러 가기 위해서.
* * *
클라인은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알았다.
정면 돌파를 선택한 클라인은 커뮤니티에 일어난 논란에 대해서 모조리 쥬튜브 게시판을 통해 해명했다.
사실, 해명이라는 것도 웃긴 것이 클라인이 해명할 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단지, 마력망 커뮤니티가 잠시 떠들썩해졌을 뿐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냥 이 정도 일은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클라인이 실제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클라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클라인의 행동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클라인은 그러지 않았다.
클라인이 올린 해명문은 클라인에게 있어 일종의 선전포고이자 출사표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담은 것이었다.
사상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
어쩌면, 함정 수사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클라인은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굳이 리만이 인간형 생물들의 인식을 바꿀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단, 지금 당장 잉간이와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그걸 택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클라인은 리만의 계획이 성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리만이 실패할 때를 위한 대비책이기도 했다.
그렇게 각오를 끝마친 클라인은 조심스럽게 생명도감의 연락처로 화상 통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린 후, 곧바로 생명도감이 클라인의 전화를 받았다.
“커뮤니티에 올린 글. 잘 봤어요. 참 명문이던데요? 인간형 생물의 인식을 바꾸고 싶다면, 우리부터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 전적으로 동감해요.”
“생명도감 님.”
“네.”
“그 허가라는 건, 일종의 자격증 같은 건가요?”
생명도감은 전화를 받자마자 클라인이 올린 글을 언급했지만, 클라인은 그런 생명도감의 말을 무시하며 본론부터 꺼냈다.
그러자 생명도감은 뜻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클라인을 바라봤다.
“상당히 급한 것 같네요?”
“네. 저는 몰라도, 잉간이의 수명은 무한하지 않으니까요.”
“하긴, 리만의 계획대로라면 잉간이 늙어 죽고도 한참이 더 걸릴 테니까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까지 기다리는 건 잉간이에게는 불가능하다.
리만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있다지만, 클라인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몽상가가 아니었다.
단지, 잉간이와 친구가 되고 싶은 상처 많은 아이일 뿐이었다.
생명도감도 그 점을 알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클라인의 말을 긍정했다.
“뭐, 급하신 것 같으니 저도 본론부터 말하자면. 네, 자격증이 맞아요. 중앙정부에서 허가를 내리는 거죠.”
“그럼…….”
“하지만 그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그건 무슨 소리죠?”
허가를 얻어야만 대화를 할 수 있다면서, 어째서 우리가 허가를 얻을 수 없다는 거지?
클라인은 순간 생명도감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곧바로 생명도감의 말뜻을 알아챘다.
“아, 설마……?”
“네. 이건 사람을 위한 자격증이 아니라, 차원 생물들을 위한 자격증이랍니다.”
사람은 동물과 대화할 수 없다.
사람만이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동물이 대화하려면 동물이 대화할 자격을 얻는 게 더 맞는 게 아닐까?
“중앙정부가 세운 기준에 따라 점수가 부여되고, 일정 점수를 초과하면 허가가 나는 시스템이랍니다.”
“그 기준이라는 건 뭐죠?”
클라인은 서둘러 생명도감에게 잉간이가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을 물었다.
어쩌면, 잉간이라면 의외로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닐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기대감을 가졌지만, 생명도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의 단어였다.
“뭐겠어요? 중앙정부가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을 생각해 봐요.”
“……설마?”
“지금의 사회 체제에 위협이 되는가? 그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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