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12

그러고 보니 잉간이는 켄토르와 하르피아 둘 중 누구를 더 마음에 들어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클라인은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지?
클라인은 자신의 그 감정이 정말 유치한 독점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이게 뭐람.
잉간이 마음속에서 내가 최고이길 바란다니, 진짜 유치하네. 나.
클라인은 그렇게 한탄하며 가만히 잉간이가 잠든 모습을 바라봤다.
그래도 뭐, 반려 생물과 자신의 마음이 일치하길 바라는 건 정상적인 생각이 아닐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잠자는 잉간이를 바라봤다.
언제나처럼 호의를 가득 담아서.
72화 하르피아와 함께 목욕하는 잉간이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블랑카가 가장 먼저 선택한 일은.
“어, 정말 그거 부숴도 되는 거야?”
“응. 이젠 필요 없으니까.”
방긋 웃으며 집 주위 광장에 널린 이교의 의식처럼 보이는 제단들을 박살 내는 것이었다.
“이걸 만들었을 땐, 내가 잠깐 어떻게 됐었나 봐. 참.”
블랑카는 방긋 웃으며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도 없이 집 주위의 제단을 박살 내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머릿속에 문득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블랑카는 저 제단을 만들던 때의 자신을 흑역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뭐, 이건 단순한 추측이긴 하지만 아닌 척하면서도 부들부들 떨리는 블랑카의 입가를 보면 꽤 합당한 추측 같기도 하다.
블랑카가 자신의 흑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모조리 없애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듯하다.
그사이, 아리스가 슬며시 내게 다가와 슬쩍 블랑카의 눈치를 보며 말을 걸었다.
“저기, 잉간.”
“응?”
“목욕. 하고 싶어.”
“목욕?”
그러고 보니 새들은 어떻게 목욕을 하더라?
모래를 준비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호수로 가면 되는 걸까?
아, 호수에 모래하고 물 둘 다 있으니 그냥 호수로 가면 되나?
내가 잠깐 그런 생각을 하며 침묵하는 동안, 아리스는 그런 내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불안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안 돼?”
“되지. 되는데, 하르피아들은 목욕을 어떻게 하나 해서.”
“목욕? 뜨거운 모래에 몸을 지지고, 그다음에 물속에 들어갔어!”
그런 얼굴을 보여 주는데 어떻게 아리스의 제안을 거부하겠어.
그나저나 둘 다 하는 거였구나.
하긴, 하나만 하는 것보단 둘 다 하는 게 더 기분 좋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창고에서 비누 한 덩어리를 가지고 내 손을 잡아끄는 아리스에게 이끌려 호수로 향했다.
아리스는 곧장 모래사장에 몸을 파묻고 날개를 파바바박 털어 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모래가 흩날리고, 아리스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족해!”
“부족해? 뭐가?”
“음. 뜨거움? 뭔가 모래가 더 뜨거우면 좋을 거 같은데…….”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눈을 반짝거렸고, 나는 조용히 아리스를 제지했다.
“그, 거기서처럼 불을 만들어 낼 생각이라면 그만둬.”
“어, 어? 당연히 아닌데?”
정곡을 찔렸는지 아리스는 내 눈길을 피했고, 나는 아리스를 가만히 타일렀다.
“아직 완벽하게 마력을 제어할 수는 없잖아? 블랑카가 마력의 제어법을 알려 준다고 했으니 블랑카에게 확언을 받을 정도가 아니면 함부로 마력을 사용하지는 마. 특히 그게 불에 관련된 거라면.”
“응. 알겠어.”
블랑카는 그렇게 말하며 모래사장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럼, 이제 같이 목욕하자!”
“어, 어?”
그리고 나는 곧장 아리스에게 떠밀려서 호수 안으로 들어갔고, 아리스는 나를 호수 안으로 집어넣고 내 뒤를 따라서 호수에 뛰어들었다.
모래 목욕보단 역시 물 목욕이 더 기분 좋은 걸까?
아리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호수를 둥둥 떠다녔고.
나는 조심스럽게 비누에 물을 묻혀서 머리에 거품을 냈다.
이곳에 오고 처음으로 비누를 사용하자, 기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이야, 역시 비누를 사용하지 않으면 씻어도 제대로 씻은 게 아니지.
아리스는 비누를 처음 보는지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잉간, 그건 또 뭐야?”
“비누라는 건데, 너도 써 볼래? 거품을 내서 몸을 닦는 데 쓰는 거야.”
“헤에…….”
아리스는 흥미 가득한 손길로 내게서 비누를 받아 갔지만, 손이 날개이다 보니 제대로 비누칠을 하기 힘든 것 같다.
아리스는 울상이 된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봤고, 나는 피식 웃으며 아리스에게 다가갔다.
“이리 줘 봐. 내가 비누칠해 줄게.”
“진짜?”
아리스는 쪼르르 내게 몸을 맡겼고, 나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리스의 깃털에 비누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직접 손으로 만져 보니 엄청나게 가볍네.
30kg, 어쩌면 그보다 낮은 20kg대가 아닐까?
나는 정성스럽게 아리스의 날개에 거품을 묻혔고, 아리스는 신기하다는 듯 거품을 반대편 날개로 터트리며 장난을 쳤다.
“어때? 좀 시원해?”
“음, 잘 모르겠어! 그래도 엄청 재밌어 보이긴 해!”
혹시나 비누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러진 않은 모양이다.
역시 비눗방울은 남녀노소 모두 다 좋아하는 게 맞다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리스의 날개에 거품칠을 끝냈고, 이제 아리스의 몸에 거품을 내는 일만 남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리스의 등판에 비누를 문질렀고, 아리스는 내가 등까지 건드릴 줄 몰랐는지 말 그대로 새된 목소리를 냈다.
“흐햣?”
“조금만 참아 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발버둥 치는 아리스의 몸이 빠져나가지 않게끔 아리스를 꽉 껴안았고, 아리스의 체온이 깃털 너머로 전해져 왔다.
따끈따끈한 체온과, 깃털 너머로 느껴지는 얇디얇은 아리스의 몸.
그리고 조금씩 느껴지는 아리스의 여성스러운 윤곽.
나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계속 비누칠만 계속했지만,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라,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객관적으로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 아리스의 뒤에서 아리스를 꽉 껴안고 몸을 막 더듬는 상황인데.
지금 이 상황, 남들이 보기엔 굉장히 위험한 상황 아니야?
딱히 누가 이 상황을 볼 리도 없지만,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고, 그와 함께 살짝 야릇한 기분도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잉간…….”
“어, 응?”
내 손이 멈추자 아리스는 교태가 섞였다고 느껴지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고.
“그, 앞은 안 씻겨 주는 거야?”
“씻겨 줘야지, 어. 그렇지.”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아리스의 말을 수긍했고.
아리스는 꼼지락거리며 자신의 몸을 내게 더 밀착시켰다.
꿀꺽.
목울대가 저절로 움직이고, 나는 조심스럽게 아리스의 몸 앞에도 손을 가져다 댔다.
깃털에 가려져 있고, 아리스의 등 뒤에 내가 있어서 앞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물에 젖은 깃털 덕분에 슬며시 드러난 아리스의 몸의 라인은 내게 자연스럽게 앞부분을 연상시키게 했고.
나는 최대한 참아 보려 했지만, 도저히 망상을 멈출 수 없었다.
“흐흣.”
나는 부드러운 아리스의 몸을 느끼며 기분 좋은 듯 작게 콧노래를 부르는 아리스의 목소리를 들었고.
이성이 간당간당해질 즈음, 나는 아리스의 몸에서 손을 떼어 냈다.
“잉간, 아직 아래가 남았는데…….”
“거기는, 어. 스스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그렇게 변명하듯 말하며 새빨개진 얼굴을 숨기고자 서둘러 아리스의 몸에서 시선을 떼어 놨지만, 아리스가 내게 몸을 돌리며 엿보인 형태는 내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항상 깃털에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커다랗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수준은 아닌 무언가가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흐응, 그래?”
아리스는 불만족스럽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며 내가 건넨 비누를 발로 받아 들고 능숙하게 자신의 하반신에 거품을 냈다.
나는 그사이 서둘러 호수 물에 머리를 담그고 거품을 씻어 내며 머리를 감았고.
아리스 또한 스스로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거품들을 씻어 냈다.
내가 서둘러 호수를 나가려 하자, 아리스가 슬쩍 내게 다가오며 질문을 던졌다.
“잉간. 잉간은 왜 몸은 안 씻어?”
“어? 밤에 한 번 더 씻을 생각이어서…….”
“그럼 안 되지! 청결은 중요한 거야! 내가 씻겨 줄게!”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아직 거품이 남아 있는 날개를 내게 들이밀었고.
“잠깐, 잠깐만…….”
나는 저항해 보려 했지만, 신묘한 솜씨로 내 티셔츠를 발톱으로 벗겨 내는 아리스를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옷 벗기는 거. 재밌다. 히히.”
윗도리를 잃어버린 나는 바지만이라도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아리스도 일단은 바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자, 내가 씻겨 줄게!”
아리스는 당당하게 그렇게 외치며 거품을 묻힌 자신의 날개로 나를 뒤에서 와락 껴안았다.
“우와…….”
“어때? 기분 좋아?”
아리스의 날개의 감촉은 저절로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올 정도였다.
부드러운 보디 타월로 몸을 닦는 것 같은 감촉.
아리스가 날개로 내 몸을 감싸느라 등에 닿는 무언가의 감촉과 날개의 감촉 두 개의 공격으로 나는 입에서 감탄사를 내뱉지 않게 주의하는 게 한계였다.
“좋아. 다 했어!”
“어. 고마워…….”
고통스러우면서 즐거운 시간이 끝나고 아리스는 해맑게 웃으며 내게서 떨어졌고.
나는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려 호수에 몸을 푹 담갔다.
아리스는 내가 그러는 사이 호수를 빠져나와 깃털을 부풀리고 몸에서 물기를 털어 냈고.
나는 가만히 얼굴의 열기뿐만이 아니라 아래쪽의 열기도 식히고 나서 호수를 빠져나왔다.
옷이 축축하긴 하지만, 이 정도는 대충 돌아가서 모닥불에 말리면 금방 마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냥 아리스와 함께 돌아가려 했지만, 아리스는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아리스?”
“바람이여, 내 명을 따르라!”
무언가 이런 상황에 쓰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 듯한 주문이 아리스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그대로 따듯한 바람이 내 몸을 감싸며 내 몸에서 물기를 제거했다.
“어때? 어때? 이 정도는 확실하게 할 줄 알아!”
“뭐…… 이 정도는 괜찮네. 그래도 불에 관련된 마법은 절대 안 돼. 알겠지?”
“응, 알겠어.”
나는 다시 한번 아리스가 함부로 불에 관련된 마법을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주고, 뽀송해진 몸으로 아리스와 함께 집으로 복귀했다.
“목욕은 즐거웠어?”
“어, 뭐…….”
“응! 엄청!”
무언가 뼈 있는 듯한 블랑카의 질문을 받고 나는 슬쩍 헛웃음을 흘렸지만 아리스는 방긋 웃으며 블랑카의 질문에 대답했고.
블랑카는 코를 킁킁거리며 잠깐 냄새를 맡더니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직 하진 않았네?”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뭐, 거의 성인이니까 딱히 상관없잖아? 아리스도 딱히 거부감은 없어 보이는데.”
“아리스가 어른이 되기 전까진 안 해! 아무튼 그래!”
“얼마 안 남았네. 그럼.”
블랑카는 고개를 으쓱거렸고, 나는 또다시 뜨거워진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나는 사냥하고 올게!”
“어, 응…….”
블랑카는 그대로 오늘 일용할 양식을 사냥하기 위해 훌쩍 집을 떠났고.
나는 하품을 하는 에포나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오늘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일단 아리스가 사용할 몫의 식기도 만들자.
아, 이왕 식기를 만드는 김에 지금 사용하는 그릇들도 죄다 무점토로 바꿔 버릴까?
철 그릇은 뭔가 중금속 같은 게 나와서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으니까.
그리고 음, 시간이 남으면 목욕탕도 만들어 보자.
비누도 만들었는데, 이왕이면 뜨거운 물에서 목욕하는 게 좋잖아?
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시 수확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 앞에 펼쳐진 꽤 넓은 밭을 바라봤고.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뱀넝쿨들과, 화르륵 불타는 불꽃콩, 그리고 주위에 이상한 안개를 흩뿌리는 붉은 후추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 저것들을 이제 어떻게 수확한담?
* * *
“감사합니다. 리만 협회장님. 입양자를 찾아 주신다고 하니, 안심이에요.”
“협회장이 아니라 아주머니라고 불러 달라고 했잖아요?”
“네…… 리만 아주머님…….”
“별거 아니에요. 클라인 양이 정성껏 보살핀 덕분에 입양자를 찾기도 쉬웠답니다. 이게 다 반려 인간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클라인 양의 준비인데 당연히 도와줘야죠.”
“하하하…….”
클라인은 화상 통화를 하며 조용히 쓴웃음을 흘렸다.
반려 인간의 인식을 높인다라.
클라인은 그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을 알았다.
지금 당장 쥬튜브에 그냥 인간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린 스킨들로 사일런트 그린 비스킷을 만들어서 여동생에게 먹여 봤다?]
[최강의 인간형 생명체를 찾아서! 제1편, 켄토르 VS 하르피아!]
애완 인간에 대한 영상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영상들을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만약, 사람들이 자주 반려 생물로 맞이하는 탄탈로스나 울타르로 저런 영상을 찍었다고 생각해 봐라.
당장 채널에 악의적인 콘텐츠니, 생물 학대니 하면서 온갖 악플들이 달릴 거다.
하지만 인간형 생명체들은 모두가 저렇게 대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워낙 인간형 생명체들이 식용 생물이나 상업 생물로 많이 이용되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간형 생명체들이 겪는 고통이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잘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워낙 인간형 생명체들의 크기가 작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클라인은 도저히 이 방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해 낼 수 없었고,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쥬튜브를 바라봤다.
“미니멀리즘이 또 요즘 유행이네…….”
클라인은 그렇게 멍하니 대세 콘텐츠를 담은 영상들을 보다가, 짝 하고 자신의 볼을 두드렸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반려 인간의 인식을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으면, 일단 지금처럼 하자.
잉간이의 매력을 담은 영상을 지금처럼 업로드하다 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잉간이의 매력을 알아주지 않겠는가?
이미 잉간이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도 존재하고 말이다.
“반려 생물 등록은…… 다음 주 중으로 하며 되겠지……?”
클라인은 그렇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되새기며 잉간이의 차원항 앞으로 갔다.
지금쯤 잉간이는 뭘 하고 있으려나?
뭔가 내가 직접적으로 도와줄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클라인의 눈에, 켄토르가 만들어 놓은 밭에 들어가는 잉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잉간이는 쥬스농장에게 끌려가기 전부터 농사에 흥미를 보였었지?
생각해 보니 이번 수확이 잉간이 입장에선 첫 수확이 아닌가?
이 기념적인 풍경을 빨리 영상으로 남겨야겠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카메라를 들어 올렸고, 문득 뒤바뀐 자신의 마음가짐을 생각하며 피식 미소 지었다.
전에는 영상을 뽑기 위해서 잉간이를 관찰했다면, 지금은 잉간이를 관찰하다 보니 영상으로 남기고 싶어진다.
뭐, 그리 나쁜 변화는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이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언제나처럼 호의를 가득 담아서 차원항 안을 들여다봤다.
73화 잉간이에게 선물을 받았어요!
촉수에는 상당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솔직히 요즘 들어 촉수 하면 떠오르는 건 불쾌함보다는 뭐랄까, 좋은 생각이지만.
눈앞에서 뱀처럼 꾸물거리는 저 굵디굵은 촉수를 보면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온다.
진짜 뱀넝쿨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네.
다른 작물들도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뱀넝쿨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유일하게 얌전하게 자라난 쌀들은 펭귄 녀석들이 다 파먹어서 수확해 봤자 한 움큼의 양밖에 나오지 않고.
나는 블랑카가 많이도 심어 둔 어마어마한 양의 뱀넝쿨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진짜, 저걸 어떻게 채취하지?
“잉간, 그냥 박살 내면 되는 거 아냐?”
“그러면 작물이 상하잖아. 일단 나는 저걸 써먹으려고 키운 거니까.”
아리스는 그냥 마법으로 날려 버리면 되는 게 아니냐 물어 왔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특히나 저 뱀넝쿨들은 섬유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
이왕이면 별로 상하게 하지 않고 채취하고 싶은데.
[뱀넝쿨꽃]
-리우테스를 원산지로 하는 덩굴식물. 질긴 생명력 덕분에 생태계 교란 위험종으로 지정되었으며, 보호종이 서식하는 구역에 반입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쉽게 뱀넝쿨을 채취하는 법이 나와 있지 않나 오랜만에 만능 사전에 검색해 봐도, 그러한 정보는 나오질 않았다.
단지 지금처럼 활기차게 꿈틀거릴 때 채취하는 게 품질이 좋다는 설명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래, 한번 해 보자.
저게 만약 사람을 잡아먹는 종류의 식물이었다면 식물이 아니라 몬스터로 분류되어 있었겠지.
만능 사전은 저걸 엄연히 재배 작물로 분류하고 있다.
사람을 다치게 할 수는 있어도, 죽이는 종류의 식물은 아니라는 거다.
푸른 점액.
그러니까, 청색점균류는 평상시에는 내게 거의 위험이 안 되지만 그때처럼 거대해지면 거의 살아 있는 재앙 수준으로 변한다.
그 때문인지 청색점균류는 만능 사전에서 몬스터로 분류되어 있다.
그 외에도 식물형 몬스터로 분류된 식물들을 살펴보면.
[만드라고라]
-주위의 마력에 맞춰서 다양하게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다른 식물로 위장해서 다른 생명체가 자신을 섭취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못하더라도 사람에게 해가 된다면 몬스터 분류가 붙어 있다.
이 만드라고라는 몬스터/재배식물로 분류되어 있고, 뱀넝쿨꽃은 단순한 재배식물로만 분류되어 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면.
설마 주인 놈이 내가 수확할 수도 없는 걸 키우라고 줬겠냐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쓰던 반달돌칼로 저걸 자르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이니까,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봐도 숲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SF스러운 기계 앞에 서서 낫의 날 부분을 뽑아낸다.
그대로 나뭇가지와 합치자 굳이 힘들게 두드리지 않아도 쓸 만해 보이는 강철 낫이 탄생했고.
나는 곧장 강철 낫을 들고 뱀넝쿨들을 향해 걸어갔다.
꿈틀, 꿈틀.
한참 꿈틀거리던 뱀넝쿨들은 내가 가까이 접근한 것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내 몸에 달려들었고.
“우왓……!”
나는 반사적으로 낫을 휘둘러 뱀넝쿨 하나를 잘라 냈지만, 다른 넝쿨들은 그대로 내 몸에 휘감겼다.
진짜 뱀이었다면 여기서 내 몸을 꽈악 조였겠지만, 뱀넝쿨은 그냥 내 몸을 휘감는 것에서 멈췄다.
역시, 모습이 좀 기괴해 보여도 뱀넝쿨이 꿈틀거리는 건 사냥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
그저 단순히 주위에 잡고 지지할 무언가를 찾는 행동일 뿐이다.
잠깐, 그렇다면 굳이 이렇게 몸을 들이밀지 말고 뭔가 나뭇가지 같은 걸 던져 줘서 그걸 붙잡게 하면 쉽게 채취할 수 있던 게 아닐까?
나는 왜 이 방법을 먼저 떠올리지 못했을까?
일단 그 방법을 사용하려고 해도 우선 내 몸을 휘감은 넝쿨들부터 채취해야 하는데.
“으윽…….”
워낙 뱀넝쿨들이 잔뜩 내 몸을 휘감고 있어서 팔을 휘두르는 것도 어렵다.
낑낑거리며 낫으로 우선 팔을 감싼 넝쿨부터 끊어 내려 해 본다.
“잉간, 도와줄까?”
“아냐, 괜찮아……!”
저 멀리에서 얼마 남지 않은 쌀들을 수확하던 아리스가 내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고.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아리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 정도는 나 혼자서 할 수 있겠지.
쌀을 수확하던 아리스가 쌀들을 다 수확해서 그릇에 담고, 에포나와 나를 지켜보며 응원을 시작할 즈음.
나는 간신히 내 몸을 묶어 버린 뱀넝쿨들을 모조리 베어 낼 수 있었다.
“흐하……!”
나는 한숨을 내쉬며 화풀이를 하듯 베어 낸 뱀넝쿨들을 다른 뱀넝쿨들을 향해 집어 던졌고.
다른 뱀넝쿨들은 그대로 자신들에게 던져진 뱀넝쿨들을 휘감고 움직임을 멈췄다.
이거, 다음번부턴 키울 때부터 지지대를 설치하거나 수확하기 전에는 이런 식으로 움직임을 멈춰야겠다.
“아리스. 창 말고도 칼은 만들 수 있지?”
“응, 가능해!”
“그럼 그걸로 뱀넝쿨을 수확해. 다른 마법은 쓰지 말고.”
“응!”
움직임이 멈춘 뱀넝쿨들을 수확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냥 칡넝쿨을 잘라 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뱀넝쿨을 수확하는 손을 멈추지 않으며 마력으로 만든 검으로 넝쿨들을 잘라 내는 아리스를 보며 생각한다.
아리스한테 마법을 알려 줘야 할 텐데, 솔직히 블랑카는 신체 강화 쪽으로는 믿음직해도 다른 방면은 잘 모를 거란 말이지.
어떻게 아리스에게 마법을 가르쳐 줄 방법이 없나?
지난번에 블랑카가 신나게 읽던 책은 단순한 무공책이고.
문득 이곳에 온 초창기 때에 불 피우는 법을 검색했더니 화염 마법을 쓰는 법이 나왔던 것이 기억났다.
제대로 된 수업은 아니겠지만, 만능 사전을 이용한 교육을 하는 수밖에 없으려나?
마력이 있지도 않은 사람이 마력이 넘쳐 나는 사람을 가르치게 생겼네.
나는 피식 웃으면서 계속해서 뱀넝쿨들을 베었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즈음 모든 뱀넝쿨들을 베어 낼 수 있었다.
나는 뱀넝쿨을 베려면 여러 번 힘을 담아 내리쳐야 했지만, 아리스는 단순히 마력으로 만든 칼을 가져다 대면 되어서 나의 몇 배는 되는 양의 넝쿨들을 수확했다.
아리스와 함께 베어 낸 넝쿨들을 한데 모아서 일단 창고 안에 집어넣었다.
일단 섬유를 뽑아내기 위한 용도로 있는 건데, 제대로 된 섬유를 뽑아낼 방직기를 만들기 전까지는 일단 방치다.
자, 가장 큰 관문은 넘겼으니 이제 불꽃콩들과 붉은 후추들인데.
불꽃콩은 말 그대로 씨앗이 들어 있는 꼬투리가 불타고 있었고, 붉은 후추들 주위에는 정체불명의 붉은 안개가 감돈다.
조심스럽게 불꽃콩의 꼬투리에 손을 가져다 대자, 신기하게도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더욱 기묘하게도 불꽃콩에 나뭇가지를 가져다 대자 나뭇가지가 불타기 시작했다.
열기는 느껴지지 않는데, 접촉하면 불이 붙는다니.
일단 저 꼬투리들을 그냥 떼어 내면 되나?
땅에 떨어진다고 뭐 폭발 같은 걸 하지는 않겠지?
“아리스. 하나만 좀 잘라 내 봐.”
“응!”
조심스럽게 아리스가 마력검으로 꼬투리를 만지지 않고 불꽃콩을 잘라 내서 바닥에 떨어지자.
화르륵.
불꽃콩이 닿은 바닥이 불타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미리 준비해 둔 물을 바닥에 뿌렸고.
순식간에 일어나던 불꽃은 사그라들며 불타던 꼬투리 또한 불길이 멈췄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꼬투리가 열리며 그 안에 들어 있던 붉은 콩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우와…… 식겁했네.”
이건 진짜 키우기가 위험해 보이는데?
미리 만능 사전에서 물의 마력을 주입하라는 말을 보고 물을 준비해 놓지 않았으면 커다란 불이 일어날 뻔했다.
그, 지구에서도 일부러 불을 일으키고 번식하는 나무가 있다는데 이것도 그것과 비슷한 종류의 번식법을 가지고 있던 걸까?
저걸 키운다면, 아예 주위 땅을 물로 채워서 불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키워야 할 것 같다.
아리스가 떨어트린 꼬투리에 내가 물을 부어서 불을 끄며 붉은 콩의 수확도 모두 끝마쳤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붉은 후추 하나뿐인데.
저 안개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네.
붉은 후추의 생김새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고추와 무척 흡사했는데.
만약 저게 내가 아는 고추와 비슷한 맛을 가지고 있다면 저 안개는 설마 하지만…….
조심스럽게 안개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본다.
그러자 손에 무언가 입자들이 달라붙는 기분이 들고,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꺼내서 혀로 맨손을 핥아 봤다.
그러자, 매콤한 매운맛이 손에 묻은 알갱이들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 안개는, 말 그대로 매운맛의 알갱이들인 걸까?
만약 뜬 눈으로 저 안에 성큼성큼 걸어간다고 생각하면, 눈 안에 저 알갱이들이 들어가면서.
어우, 야.
그 이후 느껴질 지옥의 고통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잉간, 좀 더 오른쪽!”
“오른쪽?”
“아니, 더 오른쪽! 너무 짧아!”
“여기?”
“응! 거기!”
뭐, 그걸 제외하면 평범한 고추와 같아서 눈을 질끈 감고 코를 티셔츠로 막은 채로 아리스의 안내를 들으며 수확하는 방식으로 쉽게 수확을 끝마칠 수 있었다.
물론, 고추들을 따고 난 뒤에 잊지 않고 호수로 달려가서 몸에 붙은 매운 알갱이들을 털어 내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으아, 다 끝냈다!”
그렇게 샤워까지 끝마치고 나자, 나는 탄성을 내지르며 뿌듯한 마음으로 오늘의 수확물들을 바라봤다.
뭐, 지금까지 가꾼 건 블랑카긴 해도 처음으로 심은 건 나였잖아?
나도 이런 기분을 느낄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달맞이풀들도 적당히 수확해서 오늘의 수확물 옆에 늘어놓고 나니, 무언가 묘한 기분이 든다.
쌀에, 고추에, 배추에, 콩이라.
무언가 머릿속에 뭉실뭉실 떠오르는 게 있는데.
창고 안에서 잠자고 있는 소금들까지 이것과 합치면, 딱 그거잖아?
빨갛고, 매콤하고, 짭조름하고, 한국인들의 영혼의 단짝.
바로…….
“이걸 보니 이치믹이 생각나네.”
“뭐? 이치믹?”
아니, 이치믹은 또 뭐야?
어느새 집에 돌아온 블랑카가 오늘의 수확물들을 바닥에 턱 내려 둔다.
예전에 봤었던 표범들인데, 거기에 무언가 기묘한 변화가 일어난 모습이다.
마치 놀들의 털 색깔이 표범들에게 합쳐진 듯한 모습인데.
그것보단, 이치믹은 도대체 뭐야?
“이치믹이라는 게 뭔데?”
“아, 넌 모르겠구나? 그, 고향에서 먹던 전통 음식인데…….”
블랑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고향에서 먹던 이치믹의 모양과 만드는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달맞이풀을 소금으로 절여서 다른 향신료와 함께 버무려서 숙성시키는 음식이라고?
그거, 김치 아냐?
“그래, 잉간! 내가 이치믹 만들어 줄게. 너도 한번 먹어 봐, 맛있을 거야!”
“네가 만들 수 있다고?”
“응, 엄청 간단하거든. 자, 봐 봐…….”
블랑카는 그렇게 말하며 익숙한 모습으로 소금과 달맞이풀을 버무리고, 거기에 고추를 잘라서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알갱이들을 들이부어 한데 버무렸다.
진짜, 아무리 봐도 겉절이 김치인데?
나는 능숙하게 이치믹이라고 주장하는 김치를 만드는 블랑카를 보며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른 건 다 못하더니, 이건 할 줄 아나 보지?”
“이치믹을 만드는 건 중대 문제니까. 이치믹을 만드는 법을 모르면 리베리아인이 아니야.”
“그건 또 무슨…….”
그렇게 내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블랑카가 이치믹을 만들어서 내게 들이밀었다.
“자, 한번 잡숴 봐! 엄청 맛있을 거야!”
“아니, 음…….”
“자, 츄라이. 츄라이!”
붉은 알갱이의 매움을 알고 있는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이치믹을 바라봤지만, 블랑카는 기어코 내게 이치믹이라는 걸 먹일 생각인 모양이다.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이치믹을 한 입 먹는 수밖에 없었고, 예상대로 입안에서 감돌기 시작한 매운맛에 인상을 찌푸렸다.
“켁, 케헥. 이거, 너무 매운데…….”
“맵긴 무슨! 딱 이게 좋은 건데…….”
블랑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알뜰히 빨아 먹었다.
아니, 저거 그냥 고춧가루에 소금을 친 것뿐인데 저렇게 먹어도 되는 거야?
블랑카가 내게 준 이치믹의 맛은 말 그대로 배추김치의 맛이었다.
고춧가루를 너무 많이 넣은 배추 겉절이의 맛.
“나도, 나도 먹을래!”
“아, 너무 매울 거 같은데…….”
아리스도 슬쩍 끼어들어 한 입을 요구했고, 나는 아리스가 먹기에는 너무 매운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아삭해서 맛있어!”
아리스는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이치믹을 맛있게 먹어 치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블랑카는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자, 그럼 어디 보자.
오늘 할 일은 대충 다 끝난 것 같으니 슬슬 씻고 잘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두워지는 밖으로 나갔고.
바로 그 순간.
“:-)”
하늘에서 주인 녀석의 촉수가 내려와 내 앞에서 하늘하늘 흔들렸다.
나는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고, 도대체 주인이 내게 뭘 원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다가.
조심스럽게 주인의 촉수에 내 손을 올려놨다.
마치 악수를 하듯 촉수를 붙잡고 위아래로 흔들자, 기쁘다는 듯이 촉수가 꿈틀거렸고.
내게 주인의 기쁨의 감정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냥 악수를 한 것뿐인데 이게 그렇게나 좋나?
나는 도대체 주인 녀석이 뭐에 그렇게 기뻐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인에게 나의 생각을 전하고자 주인의 촉수를 꽉 붙잡았다.
그때, 주인과 마음이 통했던 것처럼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전하고자.
나는 당신을 믿고 있고, 당신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요.
그 빌어먹을 사이비 감옥에서 나와 아리스를 꺼내 와 줬으니 이 정도는 말해 줘야지.
과연 내 마음은 주인에게 잘 전달됐을까?
제대로 확신이 들지 않은 나는 어떻게 해야 내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래, 선물.
선물은 어떨까?
역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에는 선물이 최고지.
하지만 어떤 선물을 주지?
내가 주인에게 줄 만한 선물이 있나?
그때, 문득 블랑카가 만든 이치믹이 떠오르고 나는 잠깐 주인의 촉수를 향해 손을 세워 보이고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 블랑카에게서 이치믹을 받아 왔다.
“이거, 줄게.”
나는 갸웃거리는 촉수에게 이치믹을 내밀었고.
촉수는 이치믹을 툭툭 건드리며 갸웃거렸고, 나는 다시금 촉수에게 이치믹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제야 내 의도를 깨달았는지 주인의 촉수가 이치믹을 조심스럽게 가져갔고.
나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촉수가 조심스럽게 어항 밖으로 이치믹을 가지고 나가고, 어마어마한 양의 젤리들을 후두둑 바닥에 떨어트렸다.
“시, 신님이 내가 만든 이치믹을 받으셨어…….”
블랑카는 그 모습을 보며 황홀하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나는 가만히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과연 내가 전하고 싶은 바는 잘 전달됐을까?
* * *
“에, 어? 선물? 선물 맞죠? 이거?”
클라인은 잉간이가 자신에게 선물을 건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잉간이에게서 감사 인사를 받은 것만 해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데, 선물까지 받다니?
클라인은 떨리는 손으로 잉간이에게 받은 선물을 차원항 밖으로 꺼냈다.
이, 일단 보답으로 뭘 해 주지?
사료?
일단 사료를 주는 게 맞겠지?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차원항 안으로 사료를 투입했고.
가만히 자신의 촉수 위에 들린 작은 그릇에 담긴 것들을 살펴봤다.
으, 너무 정보가 적기도 하고 크기도 작아서 제대로 살펴보기 힘들어.
일단 이번에 수확한 작물들로 만든 일종의 음식 같은데.
이렇게 작으면 먹어도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으…… 이대로 시간 동결해서 전시해 두고 싶지만. 마력이 부족하네…….”
마력이 보충될 때까지 이 음식을 놔둘 수는 없고, 결국 먹어야 한다는 건데.
잉간이가 처음으로 준 선물을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하고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한탄스럽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던 클라인의 눈에, 쥬튜브 영상 하나가 들어왔다.
미니멀리즘에 관한 영상이었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본 클라인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반려 인간에 대한 인식을 올릴 수도 있고, 지금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말이다.
“미니멀리즘……!”
그래.
답은 미니멀리즘이었다.
74화 미니멀리즘 라이프에 딱 맞는 반려 생물이 있다……?
부글부글부글.
냄비 안에 담긴 물이 끓으며 향긋한 쌀밥의 냄새를 풍겨 댄다.
더 참지 못하고 냄비 뚜껑을 열자, 윤기가 자르르 흐르지는 않지만, 분명한 쌀밥의 모습이 드러났다.
다음 농사를 위해 그리 많은 양을 밥으로 지을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이게 그 밥이라는 거야?”
“응. 어때? 꽤 괜찮지?”
“음, 뭐. 나쁘진 않네.”
쌀농사가 제 궤도에 오르기만 한다면, 더 이상 블랑카가 매일같이 사냥을 나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블랑카와 아리스 또한 쌀밥에 그리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잘 주워 먹는 걸 보니 기분이 좋네.
블랑카의 말에 따르면, 6달 동안 이곳의 날씨가 바뀐 적은 없다고 하니 쌀농사를 망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고.
하지만 그렇다는 게 당장 사냥을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 다녀올게!”
“잘 다녀와!”
아리스와 함께 블랑카를 배웅하고 오늘 할 일을 떠올린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우선 뱀넝쿨에서 섬유를 짜내는 일인데.
이건 뭐,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다.
일단 오늘은 뱀넝쿨들을 물속에 담가 두는 정도만 하고.
무점토를 이용해서 새롭게 그릇도 만들고 그 김에 가락바퀴도 만들어 볼까?
“잉간, 지금 뭘 하려는 거야?”
“지금? 새롭게 그릇을 만들려고. 네가 왔으니 식기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그릇도 만들어? 어떻게?”
“흙을 빚어서 뜨겁게 달구면 되는 거야.”
나는 호기심이 넘쳐 보이는 아리스와 에포나를 이끌고 조심스럽게 지난번에 봐 뒀던 무오의 서식지로 향했다.
그때처럼 무오들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나는 바로 점액을 채취하지 않고 슬며시 무오들이 무엇을 먹는지 관찰하기 시작했다.
진짜 뭐든지 다 주워 먹네.
땅에서 자라나는 풀때기, 단순한 돌멩이, 나무껍질.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입이 닿는 범위에 있는 모든 걸 다 주워 먹지만, 먹는 속도가 느려서 그런지 그렇게 많은 음식을 먹어 치우는 것 같지는 않다.
뭐, 여기까진 예상했던 거고.
나는 무오의 점액을 채취해 그릇에 담으며 조심스럽게 무오들이 번식하고 있을 은신처를 찾아봤다.
자가 복제를 하는 게 아닌 이상 분명히 어딘가에 번식의 흔적은 남아 있을 텐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평소에는 잘 눈길을 주지 않던 땅바닥과 나무들을 샅샅이 살폈고.
나는 결국 땅에서 무오들의 알로 추정되는 물체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달팽이를 닮은 외모답게 번식도 달팽이처럼 그냥 알을 아무 곳에나 낳는 방식으로 이뤄지나 보다.
“잉간, 그거 알이야? 알?”
“어, 아마도? 아마 알 같은데…….”
“우와아…….”
본능적으로 알을 닮은 물체에 흥미를 느끼는 걸까?
아리스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게서 무오의 알을 받아 내 관찰하기 시작했다.
“동글동글해서 참 이뻐! 아, 나도 빨리 알을 낳고 싶은데…….”
“알을 낳고 싶어?”
“응. 알을 낳는다는 건, 어른이 됐다는 뜻이잖아?”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헛기침을 하며 애써 아리스의 시선을 피했다.
블랑카에게 한 소리를 들은 뒤로 아리스는 내게 적극적으로 달라붙진 않았지만, 내가 손을 대는 걸 기다린다는 듯 묘한 분위기를 풍겨 왔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손을 댄다는 건 아니지만.
뭐가 됐든 그, 말 못 할 일은 아리스가 다 크고 나서다.
아리스는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볼을 부풀리며 중얼거렸다.
“블랑카 언니가 더 참을성이 강한지, 잉간이 더 참을성이 강한지 승부라도 하는 거야, 뭐야?”
“아니, 나는 그냥 상식적으로…….”
“그러면 빨리 블랑카 언니라도 안아 주든가! 블랑카 언니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아니.
나도 당연히 블랑카가 아리스를 위해서 엄청 참고 있다는 건 알지.
하지만, 뭔가 좀 두려운걸.
잘 생각해 보면 블랑카는 6개월어치의 욕망을 참고 있는 셈이잖아?
그러니까, 그.
웬만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확정인걸.
그렇다고 계속 미루기에는 내 이성도, 블랑카의 이성도 참지 못할 거다.
으윽, 블랑카가 똑바로 나를 마주 봐 줬으니 나도 블랑카를 마주 봐야 하지만.
그건 나에겐 너무 힘든 일인걸.
조금만, 조금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쓴웃음을 짓고, 바닥에서 무오 알 몇 개를 더 파내서 바구니에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잉간, 그건 먹을 거야?”
“몇 개는 먹어 보고, 몇 개는 키워 보려고.”
“키워? 저걸? 왜?”
아리스는 내가 왜 무오를 키우겠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무점토를 만들려면 무오의 점액이 많이 필요하거든. 그리고 일종의 비상식량 역할도 해 줄 수 있고.”
내가 구상하는 것은 달맞이풀을 먹이로 무오를 키우고, 무오를 죽여서 그 사체로 달맞이풀을 키우는 시스템이다.
알이 만약 식용으로 적합하다면 알까지 식량으로 써먹을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점심 때 사용할 재료들을 모아 둔 바구니에 무오의 알들을 놔뒀고, 이어서 점토를 채취하기 위해 호숫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점토를 채취하는 와중, 내 눈에 호숫가의 모래들이 들어왔다.
음, 아리스를 위한 모래 목욕장도 하나 만들어 줄까?
아래에 불을 지펴서 뜨끈하게 데울 수 있도록 말이야.
어차피 간이 목욕탕도 만들 생각이었고, 목욕탕을 만드는 김에 모래 목욕장 정도는 쉽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점토를 집에 놔두고 다시 모래를 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고, 잔뜩 긴장한 듯한 아리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리스, 무슨 일이야?”
“잉간, 저거. 저거 도대체 뭐야……?”
아리스가 떨리는 발톱으로 가리킨 것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고양이의 모습이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고양이는 신기하다는 듯 집 안 이곳저곳을 겁도 없이 돌아다녔고.
아리스는 그런 고양이의 모습이 조금 무서웠는지 내 뒤에 찰싹 달라붙었다.
“고양이?”
어째서 고양이가 여기 있는 거지?
그때, 그 포메라니안과 비슷한 경우인 걸까?
슬쩍 하늘을 바라보지만 주인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압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인진 몰라도, 저 고양이에게서 기묘한 압박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왕……?”
에포나 또한 자신의 거처에 침입한 불청객을 발견했는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고양이는 에포나의 위협을 눈치채거나 에포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펄쩍 에포나의 집이었던 제단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왕! 왕! 왕왕!”
에포나는 그런 고양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양이 주위를 뛰어다니며 으르렁거린다.
아니,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은신을 해제하면 될 거 아냐?
나는 피식 웃으며 창고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야-옹.”
쭈뼛.
최대한 고양이를 자극하지 않으려 허리를 낮추고 다가갔음에도 푸른 고양이는 내 접근에 놀랐는지 털을 곤두세웠고.
“힉!”
아리스는 그 모습에 놀랐는지 자신도 깃털을 잔뜩 부풀리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아이고, 어디서 이렇게 왔을까.”
나는 헤실헤실 웃으며 슬쩍 고양이를 지나쳐 근처에 놔둔 그릇에서 육포 하나를 꺼내서 고양이에게 내밀었고.
고양이는 킁킁거리며 육포의 냄새를 맡더니, 관심 없다는 듯 육포에서 고개를 돌리고 내 손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뭐야, 이 고양이. 엄청 사람을 잘 따르잖아?
이 정도라면 거의 개냥이라고 불러도 될 수준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슬그머니 고양이를 품 안에 안아 들었고.
고양이는 깜짝 놀란 듯 잠깐 발버둥을 쳤지만 내 품을 벗어나진 않았다.
오히려 진정된 후에는 혀를 할짝거리며 내 볼을 핥아 올 정도였다.
그런데 이 고양이, 울음소리를 낼 만도 한데 전혀 내질 않네.
고양이의 매력의 30% 정도는 고양이 특유의 울음소리에서 오는데, 무슨 짓을 해도 울음소리를 내지 않을까?
갑자기 그런 궁금증이 든 나는 조심스럽게 고양이의 목을 긁어 주었고, 고양이는 기분 좋은 듯 내게 배를 보였지만 끝까지 골골대는 목소리는 내지 않았다.
오기가 생긴 나는 계속해서 고양이를 쓰다듬었지만, 고양이는 끝까지 울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잉간.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아?”
“왕!”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리스와 에포나는 질투심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제야 고양이를 놓아주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야지. 응.”
나는 이제 고양이가 알아서 갈 길을 갈 줄 알았지만, 고양이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졸졸 따라다녔다.
에포나는 계속해서 이를 드러내며 고양이를 견제하려 했지만, 에포나가 은신을 계속 유지하는 한 별다른 효과는 보지 못할 것 같다.
무점토를 만들고, 무점토로 새로운 식기를 만드는 와중에도 고양이는 그게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고.
아리스가 내게 그릇을 만드는 법을 배우며 발로 그릇을 만든다는 신묘한 묘기를 보여 줄 때도 내게 딱 달라붙어 있었다.
원래 다른 사람에게 키워지다 이 녀석도 납치당한 거려나?
정말 오랜만에 보는 지구 생물이었기에 나는 이 고양이에게 친밀한 기분이 들었고.
이왕 그릇을 만드는 김에, 고양이를 위한 밥그릇도 하나 만들었다.
무점토로 만든 그릇들은 내 예상대로 빠르게 굳어지며 전에 쓰던 그릇보다도 단단한 내구도를 선보였다.
나는 흡족한 마음을 가지며 블랑카가 돌아오기 전에 오늘의 식사를 준비하려 했다.
블랑카가 좋아하는 김치가 아닌 이치믹도 준비하고, 적당히 고기를 구워서 식사를 준비했고.
고양이 몫의 식사를 따로 떼어서 고양이를 위해 선물하려 했지만.
“아리스, 고양이 못 봤어?”
“고양이? 모르겠어!”
어느새 고양이는 허공으로 증발한 것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슬슬 밤이 되어서 자기가 찾아낸 은신처로 돌아간 걸까?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양이 몫의 음식을 집 밖에 놔뒀고.
다음 날, 아침.
고양이 몫의 음식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어디선가 다급한 듯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애옹!”
나는 도대체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둘러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야, 요즘 쥬튜브를 둘러보니까 미니멀리즘이 또 대세더라고요.”
클라인은 정말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각을 잡고 앉아서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오늘 클라인이 촬영하는 영상은 요즘 쥬튜브에 들불처럼 번져 나간 미니멀리즘에 관련된 영상.
클라인은 우선 자신의 영상으로 처음 미니멀리즘이란 개념을 접할 시청자를 위해 미니멀리즘이란 무엇인가 설명을 시작했다.
“자, 미니멀리즘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해서, 작게 살아가는 거예요. 생활 습관뿐만이 아니라, 육체의 크기까지 줄이는 거죠.”
클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카메라 앞에 손가락을 가져다 접으며 놀랍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러분, 이거 아시나요? 만약 지금의 크기의 3분의 1로 줄어든 채로 생활을 한다면 1년에 소비되는 마력을 무려 70%나 절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의 크기가 줄어들면 몸을 유지하는 데 소모되는 마력도 줄어들고, 생활용품들의 크기도 줄어드니 그만큼 더 소모하는 마력도 줄어든다.
“네. 몸의 크기를 3분의 1로 줄였다고 마력을 70%나 더 절약할 수 있는 거예요! 저처럼 통장이 간당간당한 사람들에게 딱 알맞은 생활 방식이죠.”
그렇게 너스레를 떤 클라인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저도 요즘 대세에 탑승해서 미니멀리즘 라이프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클라인은 조용히 카메라 앞에 미니멀리즘 라이프의 규칙이 담긴 종이를 가져다 비치며 선서를 시작했다.
방에서 필요 없는 것들을 골라서 정리할 것.
과도한 소비와 지출을 피할 것.
공공장소에선 제대로 규정 크기를 준수할 것.
건강에 이상이 발생할 시 곧바로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멈출 것.
그 외 기타 등등 온갖 규칙들을 외운 클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서를 끝마쳤다.
“신체를 축소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죠? 커팅과 압축! 커팅은 말 그대로 자신의 몸을 이루는 정보를 잘라 내서 크기를 줄이는 방법이고 압축은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정보들을 최대한 압축해서 크기를 줄이는 방식이죠.”
클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카메라 앞에 종이를 가져다 대며 간단하게 커팅과 압축 방식을 설명했다.
종이를 꽉 구겨서 크기를 줄이는 것이 압축식, 가위로 종이를 잘라 내서 크기를 줄이는 것이 커팅.
커팅은 손쉽게 몸의 크기를 줄일 수 있어도, 건강에 이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원래의 크기로 돌아가기 쉽지도 않고 말이다.
그 반면, 압축은 성공하기 어렵지만, 성공만 한다면 별다른 부작용이 없는 방식이다.
다만, 커팅에 비해서 몸 크기를 줄이는 데 제한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저는 좀 무서워서,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압축식 방법을 선택하겠습니다!”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정보들을 압축하기 시작하며, 클라인은 슬쩍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여러분. 왜 저 같은 생물 쥬튜버가 미니멀리즘 라이프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뭐, 제목을 보신 분들이면 이미 알겠지만.”
쟈쟈잔~ 클라인은 그렇게 외치며 잉간이가 들어 있는 차원항을 손으로 가리켰다.
“네. 그렇습니다! 미니멀리즘 라이프에 가장 어울리는 반려 생물, 그건 바로 인간형 생명체예요!”
그렇게 말한 클라인은 천천히 카메라를 향해 인간형 생물들을 반려 생물로 입양했을 때의 장점들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인간형 생물들은 그야말로 미니멀리즘 라이프의 단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기존의 울타르나 탄탈로스는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할 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잖아요?”
탄탈로스나 울타르는 원래 일종의 차원 파괴자들이었다.
오랜 세월을 거친 품종 개량을 통해서 야생성이 극도로 억제당했지만, 몸 크기가 작아진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한다.
실제로 그런 사고가 몇 번인가 발생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형 생물들은 다르답니다? 워낙 크기가 작기 때문에 몸 크기를 줄여야 간신히 기존의 울타르나 탄탈로스급의 크기가 된답니다. 반려 생물에게 공격받을 걱정도 없고, 기존의 단점이던 교감이 힘들다는 것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어요.”
그 외에도 인간형 생물이 만들어 내는 도구와 음식을 맛보거나 사용할 수도 있거나.
혹시 모르게 인간형 생물에게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상황을 방지할 수도 있다는 등.
그렇게 인간형 생물이 왜 미니멀리즘 라이프에 완벽한 생물인지 설파하던 클라인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 압축이 다 끝났네요. 윽, 더 이상은 한계인 것 같은데…….”
클라인의 원래 목표는 30% 수준까지 크기를 줄이는 것이었지만, 클라인은 60% 정도까지 크기를 줄이는 것이 한계였다.
윽, 이렇게 되면 잉간이와 교감이 더 쉬워지긴 해도 마음대로 교감을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데.
하지만 괜찮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리퀴드사에서 지원받은 제품이 있다.
“하지만 간혹! 저처럼 이렇게 압축에 실패해서 30% 수준까지 내려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 있답니다?”
클라인이 조심스럽게 꺼내 든 것은, 마키나의 생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생체 로봇.
사용자의 의식을 옮겨 담을 수 있는 일종의 ‘아바타’였다.
“이걸 사용한다면, 30% 수준이 아니라 10% 수준. 어쩌면 그 이하까지도 크기를 줄인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잉간이와 교감하기 더 쉬워지겠죠?”
클라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점토 상태로 도착한 아바타에 리만에게서 받아 온 정보를 입력했다.
지금까지 클라인과 잉간이의 교감이 잘 이루어지지 않던 것은 클라인의 모습이 잉간이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가장 클 것이다.
그렇기에 클라인이 이번에 선택한 것은 리만이 잉간이의 기억을 읽고, 잉간이에게 가장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지구산 인간의 모습은 아니다.
지구산 인간의 모습으로 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바타의 외형을 설정했고, 아바타는 곧바로 네발 달린 짐승의 모습으로 형태를 바꿨다.
“아바타 안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차원항 안의 시간으로 최대 3일! 그 전에 아바타가 심한 충격을 받거나 고장 난다면 자동으로 원래 육체로 돌아오게 된답니다.”
음,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작긴 한데, 이 정도면 괜찮겠지?
뭐, 몸 크기가 작아진 정도로 별일이 있겠어?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차원항 안으로 아바타를 내려보냈고, 곧바로 아바타를 작동시켰다.
“그럼, 제가 직접 한번 아바타를 시연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클라인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아바타 안으로 자신의 의식을 이동시켰다.
늘 그렇듯, 호의 100%를 함께 가득 담아서 말이다.
75화 아바타로 바라본 차원항 속의 풍경! 잉간이가 거인처럼 느껴지는데?
호의 100%와 함께, 클라인의 의식은 차원항 속 아바타 안으로 이동되었다.
팟.
물질 육체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이 덮쳐 오자, 클라인은 고개를 흔들며 아찔해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으아, 정말 기분이 묘하네요.
클라인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문득 자신이 이 육체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히 자신은 마키나가 아니니 아바타에 무턱대고 빙의하기보단 빙의하기 전에 공부를 했었어야 하는 일인데.
지금이라도 당장 빙의를 해제하고 돌아가서 이 몸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공부할까?
그 정도는 충분히 편집으로 어떻게 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아바타를 작동시킬 때 소모한 마력이 너무 아깝다.
적어도 아바타가 마력이 다해서 사라질 때까지는 뽕을 뽑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
이렇게 물질 육체를 움직이는 법을 배워 나가는 것도 아바타를 사용하는 재미겠지.
클라인은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우선 몸을 일으키려 애를 썼다.
몸이 바들바들 떨리며 간신히 일어섰지만, 한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 다리가 엉키며 다시 바닥에 넘어진다.
으으, 젠장.
자꾸 촉수를 움직이는 감각으로 다리를 움직이게 된다.
움직일 수 있는 기관이 적어진다고 해서 더 몸을 다루기 쉬워지는 건 아니구나.
클라인은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며 다시 낑낑거리며 일어났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자, 클라인은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늘 느껴지던 정보들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고, 그 무엇보다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량이 너무나도 적다.
만약 아직 발달기를 벗어나지 못한 아이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자기 인식에 실패할 정도로 너무나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가 적다.
폴짝.
클라인은 이제 적당히 뛰어오를 수 있을 정도로 육체를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알아내진 못했다.
뭐, 차원항 안을 구경하는 데 목소리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니까 상관없겠지.
툭툭.
클라인은 살포시 차원항 바닥을 자그만 발바닥으로 눌러 본다.
푹신하고, 축축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세월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고, 약간의 마력만이 느껴질 뿐이다.
그것도 본질적인 마력이 아니라, 겉으로 느껴지는 마력뿐이다.
지구산 생물은 지금껏 이런 감각 속에서 생활했던 걸까?
잉간이도 이런 감각을 언제나 느끼던 걸까?
살랑살랑.
무엇에 쓰는지 모르던 기관인 볼에 달린 수염이 흔들리며 주위의 정보들을 긁어모은다.
이건 좀 마음에 드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리저리 몸을 쭉쭉 늘려 보며 이 네발짐승의 육체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 가늠해 본다.
상당히 몸이 유연한 게, 꽤 많은 일이 가능할 것 같다.
좋아,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이제 거의 다 파악한 것 같고.
클라인은 조심스럽게 주위의 나무들과 자신의 시야를 비교하며 자신의 몸이 어느 정도 크기일지 파악했다.
이건 생각보다도 더 작은 것 같은데?
잉간 정도의 크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잉간이보다도 더 작은 것 같다.
하긴, 그러니까 이 모습이 잉간이에게 위협을 주지 않는 모습인 게 아닐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잉간이가 어디 있을지 주위를 돌아보며 파악하려 애썼다.
이대로 차원항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지만, 본래 목적은 잉간이를 만나러 온 거니까.
후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잉간이와 교감을 하고 말겠어.
그리고 그때, 클라인의 수염과 코에 비릿한 냄새가 감지됐다.
피와 내장의 냄새라고 해야 할까?
거기에 더해서 따듯한 불의 냄새까지 감지된다.
이 차원항 안에서 불을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잉간이와 그 친구들뿐이다.
이 냄새를 따라가면 잉간이의 은신처가 나올 거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들뜬 모습으로 냄새를 따라 힘차게 뛰쳐나갔다.
작은 네발짐승의 눈으로 보게 된 잉간이의 은신처는 참 거대했다.
원래의 눈으로 봤을 때는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사이즈였던 은신처가 지금은 거대한 동굴같이 느껴진다.킁킁.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잉간이의 은신처를 살펴본다.
한 걸음마다 작아진 몸에는 살짝 부담이 갈 정도의 정보들이 쏟아진다.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선명하게 은신처 전체에 배어 있는 옅은 피 냄새.
바닥에 떨어진 하르피아의 깃털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사박사박 흔들리며 클라인의 귓가를 간지럽힌다.
더욱 은신처 안으로 들어가자 켄토르의 것으로 보이는 마력의 흔적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집 안에서 잔뜩 마력을 발산한 것 같은 느낌인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뿐사뿐 바닥을 걸어 다니다 클라인은 전에 자신이 잉간이에게 선물했던 침대를 발견했다.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잉간이의 냄새가 한가득 침대 전체에서 느껴졌고.
클라인은 무심코 침대 위로 뛰어올라서 잉간이의 정보를 잔뜩 받아들였다.
으,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원래의 몸으로 잉간이와 핸들링을 하면 아무리 민감하게 잉간이의 정보를 받아들여도 잉간이의 정보량이 너무 적어서 정보를 느끼기 너무 힘든데.
지금과 같이 작은 몸으로 잉간이의 정보를 받아들이니 무척 잉간이의 정보가 민감하게 느껴진다.
클라인은 잠시 동안 잉간이의 침대 위에서 몸을 뒹굴었고, 다시 폴짝 침대에서 뛰어내려 잉간이의 은신처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몸 단장용으로 놔둔 걸까?
잉간이의 침대 근처에는 물을 담아 둔 토기가 있었고.
집 한가운데에 타닥거리며 불타오르는 모닥불의 온기가 따스하게 느껴졌다.
아, 이건 내가 준 사료네.
오오, 이게 잉간이가 수확한 농작물들인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잉간이의 은신처를 잔뜩 탐험하던 그때.
클라인은 누군가가 잉간이의 은신처에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땅바닥에서 떨어진 깃털에서 나는 것과 흡사한 냄새에, 깃털들이 사르락거리며 스치는 소리.
이건 하르피아인가?
쓱 고개를 돌리자 하르피아가 조금 겁을 먹은 것 같은 표정으로 은신처를 돌아다니는 클라인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하르피아는 대부분의 시간을 잉간이와 함께 보내던데, 그렇다는 것은 잉간이가 곧 온다는 것일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하르피아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하르피아에게 관심 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며 은신처 안을 돌아다녔고.
“(0ヘ0?)”
잉간이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은신처 밖에서 들려왔다.
잉간이가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최대한 관심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해서 괜한 경계심을 사지 않도록 하자.
클라인은 그렇게 작전을 세우고 잉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딴청을 부리며 은신처 안을 돌아다녔다.
그런 클라인의 노력이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진 걸까?
잉간이는 방긋 웃으며 클라인에게 말을 걸었다.
“(0‿0)”
비록 클라인이 잉간이의 언어가 무슨 뜻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워낙 이 몸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적다 보니 잉간이의 정보가 흘러들어 오며 클라인에게 잉간이의 감정을 전달했다.
잉간이가 클라인을 무서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좋아, 교감의 가장 큰 장해물이 제거됐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번 잉간이와의 교감에 성공할 때다.
그렇게 생각하던 클라인의 몸으로 잉간이의 정보가 예상하던 것보다 더 흘러들어 왔고.
이 작은 몸이 처리하기 힘들 정도의 정보량에 클라인은 잠깐 몸서리를 쳤다.
그걸 배고픔의 신호로 이해한 것일까?
잉간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클라인에게 작은 고기 한 점을 내밀었다.
하지만 클라인의 몸은 아바타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먹을 필요는 없었고, 클라인은 고기 대신 잉간이의 손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윽, 너무 몸이 작은 탓인지 잉간이의 정보만이 일방적으로 전해져 오고, 내 정보는 잉간이에게 잘 전해지지 않는다.
클라인이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툴툴거리던 때, 잉간이가 조심스럽게 클라인의 몸을 안아 들었다.
잉간이의 정보가 클라인의 몸을 모두 감싸며 사방에서 흘러들어 온다.
마치, 온 세상이 잉간이로 가득 찬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어서 잉간이는 클라인의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고, 클라인은 자신에게 전해지는 잉간이의 호의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내가 주인인데, 반려 인간에게 이렇게 쓰다듬을 받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나에게 핸들링을 받던 잉간이도 이런 기분이었던 걸까?
지금껏 느껴 본 그 누군가보다도 더 순수한 잉간이의 호의.
클라인은 처음에는 살짝 거부감을 가지고 잉간이의 품을 벗어나려 했지만.
이내 결국 거부감을 없애고 얌전히 잉간이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뭔가, 중독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가만히 쓰다듬을 받는 것도 나쁘진 않네.
무언가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었던 것 같지만, 뭐 어떤가?
클라인은 잉간이를 진심으로 자신의 반려 생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 이 정도는 반려 인간에게 받을 수도 있는 거잖아?
이것도 일종의 교감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응, 그런 거야.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전력으로 잉간이의 손길을 즐겼고.
잉간이가 자신을 내려놨을 때 아쉬움을 느꼈다.
잉간이는 슬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르피아와 함께하기 시작했고.
클라인은 잉간이가 하는 일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정말 인간형 생명체들이 저렇게 도구를 만들고, 그 도구로 새로운 도구를 만드는 모습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클라인은 질리지도 않게 계속해서 잉간이를 관찰했지만, 잉간이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다 끝냈는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고.
클라인은 슬그머니 잉간이의 은신처를 빠져나왔다.
하루 종일 잉간이만 구경하고 싶지만, 잉간이가 만들어 둔 밭도 구경하고 싶고 구경하고 싶은 건 참 많다.
아바타의 원본에 영향을 받기라도 한 걸까?
클라인은 천진난만하게 차원항 안을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했다.
클라인이 집어넣은 생명체들이 차원항 안에서 어떻게 실제로 살아가는지도 관찰하고.
차원항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없는지 직접 체험하며 개선점을 생각하며 다니다 보니, 서서히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슬슬 다시 잉간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잉간이의 냄새로 되돌아가려 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왕!”
이전, 지구에서 클라인이 데려온 개를 닮은 생명체가 클라인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어째서 개가 이곳에 있는 거지?
클라인은 분명 그 이후로 개를 지구에서 가져온 적도 없는데.
그렇다고 개가 그 짧은 시간에 번식했을 리도 없다.
그렇다면, 저건.
잉간이에게 기생하고 있다는 차원 파괴자.
그것 말고는 저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원래 차원 파괴자는 최대한 다른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텐데, 어째서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걸까?
“크르르…….”
그런 클라인의 의문은 클라인에게 이빨을 드러낸 차원 파괴자의 행동으로 말끔히 해소됐다.
지금의 클라인은 아바타 안에 의식을 집어넣은 상황.
그 때문에 차원 파괴자가 클라인이 무척 약화된 상태라고 착각을 한 것이 아닐까?
사람이 유일한 차원 파괴자의 천적이어서 그런지, 차원 파괴자들은 약한 상태의 사람에게 겁 없이 덤벼드는 습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괜찮다.
지금 클라인의 몸은 아바타.
아바타가 파괴되어도 클라인의 몸에 별다른 영향은 가지 않는다.
그 때문에 아바타 상태로 발휘할 수 있는 힘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되긴 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역시 잉간이와 차원 파괴자는 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다.
잉간이가 다칠 위험을 감수하면 차원 파괴자를 뿌리 뽑을 수는 있겠지만.
차원 파괴자는 잉간이에게 악영향을 끼치진 않으니 그냥 놔두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래도 여기서 아바타가 박살 나는 건 조금 아까운데.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차원 파괴자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고.
이윽고, 차원 파괴자의 공격이 자신에게 별 피해를 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외형대로, 아니 어쩌면 외형보다 더 약하다.
역시, 리만 협회장님의 공격이 꽤나 큰 대미지를 준 모양이다.
차원 파괴자는 화풀이를 하듯 클라인의 몸을 계속해서 공격했지만, 그 공격은 클라인의 털가죽을 뚫지도 못했다.
자꾸 이렇게 맞고만 있으니 좀 화나네?
그때도 그렇고, 왜 이 녀석은 자꾸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걸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반격에 나섰다.
반격이라고 해도 아바타의 성능이 빈약해서 단순히 할퀴거나 펀치를 날리는 정도지만, 그래야만 좀 속이 풀릴 것 같다.
클라인은 그렇게 차원 파괴자와 필사적이지만, 필사적이지 않은 싸움을 벌였고.
그 싸움은 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계속됐다.
그렇게나 계속 싸웠는데도 클라인과 차원 파괴자는 서로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주지 못했고.
클라인이 다시 한번 차원 파괴자에게 펀치를 날리려던 그때.
“왕! 왕왕!”
차원 파괴자가 어둠 속 너머를 향해 짖고는 먼저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핫하, 내가 이긴 거야!
그 모습을 본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기분이 좋아졌지만.
좋아진 기분은 다시 급격하게 하락했다.
고작 차원 파괴자한테 나는 진지하게 싸움을 건 건가?
클라인이 그렇게 자괴감에 몸부림치는 사이, 무언가가 클라인에게 접근했다.
“크르르르……!”
클라인이 잉간이의 먹이로 넣어 놨던 검표가 클라인을 사냥하고자 덤벼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원래는 그냥 귀엽게 여겨지던 검표를 이렇게 작아진 상태에서 마주하니 귀여움보단 공포가 먼저 앞선다.
윽, 여기서 아바타를 잃기는 싫어!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바타의 원본의 본능에 몸을 맡긴 채로 숲속을 달려 나갔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나무를 기어올랐다.
검표는 나무를 기어오르려 했지만, 잠시 냄새를 맡더니 꽁지를 내리고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잉간이의 냄새를 맡고 검표가 도망치기 시작한 걸까?
어찌 됐든 아바타를 무사하게 지켜 냈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다시 잉간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나무를 내려가려 했다.
그렇지만 클라인은 어떻게 나무를 내려가야 할지 몰랐고, 생각보다 높은 나무의 높이에 다시금 공포에 질렸다.
원래도 높은 곳은 좀 별로였는데, 몸까지 작아지니 더욱더 공포스럽다.
어떻게 하지?
공포에 질린 클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아바타의 본능대로 목을 움직였고.
“애옹! 애옹! 애옹!”
클라인의 공포감은 아바타의 목소리가 되어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어떻게 하지?
여기, 어떻게 내려가지?
그렇게 계속 클라인이 울부짖으며 당황하던 그때.
“(0o0!)”
클라인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인지 잉간이가 한걸음에 클라인이 올라가 있는 나무 앞까지 달려왔다.
잉간이는 뭐라 중얼거리더니, 클라인을 향해 손을 뻗어 보였다.
이건, 자기를 향해 뛰어내리라는 걸까?
클라인은 여전히 바닥을 내려다보는 것조차 두려웠지만 두 눈을 꽉 감고 선택을 내렸다.
폴짝.
클라인은 잉간이를 믿고 나무에서 폴짝 뛰어내려 잉간이의 품 안에 안겼고.
클라인은 가만히 잉간이의 체온과 정보들을 느끼며 안정을 취했다.
뭔가 주종이 역전된 것 같지만, 상관없다.
지금 클라인은 아바타의 몸이고, 클라인은 아바타 상태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클라인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잉간이의 품에 안겨 잉간이의 은신처로 돌아왔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잉간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자신을 받아 줘서 고맙다고.
그때, 돌아가지 않고 자신을 선택해 줘서 고맙다고.
그때, 자신을 위로해 줘서 고맙다고.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잉간이에게 달라붙었고.
클라인의 감정이 잉간이에게 전달된 걸까?
잉간이가 놀란 표정으로 클라인을 바라본 순간.
스르르.
클라인의 아바타에 깃든 마력이 모두 소진되며 아바타가 허공으로 증발하기 시작했다.
어라, 원래 지금 시간이 끝나진 않을 텐데?
아까 차원 파괴자와 싸우며 마력을 낭비해서 그런 건가?
이윽고 클라인은 원래의 육체에서 깨어났고, 자신이 차원항 안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리며 얼굴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바닥을 뒹굴었다.
“악! 악! 나는 뭔 짓을 한 거야! 악!”
진짜, 잉간이에게 역으로 쓰다듬을 받고 좋아하다니, 말이 되는 일이냐고 이게.
하지만.
어.
좋긴 했었지. 잉간이의 손길.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입 밖으로 본심을 내뱉었다.
“나중에 한 번 더 해 볼까……?”
잉간이를 쓰다듬는 것도 좋지만, 잉간이에게 쓰다듬받는 것도 좀 좋은 것 같다.
* * *
“어, 아…….”
고양이가.
간신히 나무 위에서 받아 낸 고양이가.
이름도 지어 주려고 하고, 밥그릇까지 만든 고양이가.
‘고마워.’
나를 향해 방긋 웃으며 그렇게 속삭이더니, 빛의 입자가 되어 허공으로 증발했다.
나는 당연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충격을 받았고, 조심스럽게 고양이에게 지어 주고자 했던 이름을 중얼거렸다.
“클라인…….”
어째서인지 몰라도, 저 고양이의 이름은 그렇게 지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널 기억할게, 클라인.
짧은 만남이었지만 너는 내 친구였어.
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내며 클라인을 위한 무덤을 만들러 발걸음을 옮겼다.
76화 치유 마법을 쓰지 못할 때 집에서 인간형 생물을 응급처치하는 방법!
물에 충분히 불린 뱀넝쿨들을 냄비에 집어넣고 펄펄 끓인다.
이대로 12시간이 지날 때까지 뱀넝쿨들을 뭉근하게 끓이면, 손으로도 해체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워질 것이다.
모닥불이 쉽게 꺼지지 않도록 나뭇가지를 더 집어넣고, 나는 블랑카와 아리스와 함께 아침 식사를 끝마쳤다,
무오의 알은 그 빌어먹을 고기와는 달리 계란과 비슷한 맛이었다.
이 정도면 알을 얻기 위한 용도로만 무오를 키워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식사를 끝마치고 조용히 집 근처 숲 어귀에 만든 무덤으로 가서 조용히 눈을 감고 클라인의 명복을 빌어 줬다.
고양이의 명복을 빌어 주는 것을 끝마치고, 나는 가만히 오늘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뱀넝쿨은 좀 더 끓게 놔둬야 하고.
무오의 알은 언제 어떻게 부화할지 알 수 없어서 일단 땅속에 파묻어 둔 상태다.
씨앗은 일단 쌀들만 대충 뿌려 둔 상태고.
그럼, 오늘은 목욕탕이나 만들어 볼까?
블랑카도 들어갈 수 있게 하려면 어느 크기로 만들어야 하려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 근처 땅을 돌아다니며 어디에 목욕탕을 만들지 고민했고, 그사이 블랑카는 언제나처럼 사냥을 나섰고 아리스는 바위산으로 포로롱 날아갔다.
“잠깐 다녀올게!”
펭귄 녀석들이랑 노는 게 썩 재밌는지 아리스는 요즘 펭귄들을 만나러 바위산에 자주 들른다.
바위산엔 위험한 게 살지 않는다는 걸 알기도 하고, 그 석상을 보지 않게 단단히 주의를 주기도 했으니 괜찮을 거다.
거기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에포나가 졸졸 쫓아다니고도 있으니까 위험한 일이 벌어져도 안심이다.
그럼, 오늘은 목욕탕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목욕탕이 아니라 사우나다.
사우나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사우나란 뭐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우나란 뜨거운 습기가 가득 찬 작은 방인데.
제일 중요한 건 습기를 떨어트리지 않고 유지하는 방법이겠지.
일단 어제 만들고 남은 무점토로 실을 짜낼 때 사용할 가락고리를 만들어 내며 어떻게 해야 사우나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만능 사전에는 나와 있으려나?
가락고리를 만들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자, 일단 모래 목욕탕을 만들 방법은 떠올랐다.
적당히 돌멩이를 모닥불에 집어넣고 달궈서 모래 속에 집어넣으면, 돌멩이의 온기가 모래를 적당히 달궈 주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모래 목욕장의 설계를 떠올렸지만, 생각해 보니 또 온갖 도구가 필요하다.
일단 삽은 이번에 하나 만들 필요가 있고, 슬슬 나무도 다 떨어져 가니 나무도 조금 벨 필요가 있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낫다.
오랜만에 에포나도 없이 완전히 나 혼자서 나무를 베러 마수정 도끼를 집어 들었다.
적당한 양의 나무를 베서 집 수분을 말릴 겸 바닥에 놔두고, 적당한 나뭇가지를 베어 내서 삽의 몸대로 삼는다.
블랑카가 모아 둔 돌뱀의 껍질을 용광로에 집어넣고 삽날을 만들어 나뭇가지와 합쳐 삽을 만든다.
미리 봐 둔 적당한 곳의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그 안에 모래를 들이붓는다.
일단 이것으로 모래 목욕탕은 완성.
나중에 필요할 때마다 돌을 달궈서 집어넣어서 적당히 온도를 올리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한숨을 돌리며 휴식을 취하던 와중, 아리스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잉간, 뭐 만들어?”
“목욕탕. 저 정도면 어때?”
에포나와 함께 돌아온 아리스는 내가 만든 모래 목욕탕에 발을 푹 집어넣어 깊이를 재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아니, 엄청 좋아!”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날개를 활짝 펼쳤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
내 눈에 아리스의 깃털 일부분이 듬성듬성 빠진 것이 들어왔다.
“잠깐, 아리스?”
“응?”
“날개하고, 목에 깃털이…….”
내가 아리스의 몸을 살펴보는 와중에도 아리스의 몸에서 깃털이 툭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진다.
뭐지? 뭔가 병인가?
아니면 누구한테 맞기라도 한 건가?
나는 아리스의 몸에서 깃털이 빠지는 것을 심각하게 여겼지만, 아리스는 깃털이 빠지는 걸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 이거? 요즘 들어서 자꾸 깃털이 빠지더라고.”
“뭐, 누구한테 맞고 다닌 건 아니지?”
“아하하. 그럴 리가!”
일종의 털갈이가 일어나는 건가?
자세히 보니 아리스의 깃털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고 불균형한 모습이다.
막 새롭게 자라나는 깃털들과 오래된 깃털들이 서로 뒤섞인 상태다.
새롭게 자라난 깃털들은 기존의 아리스의 깃털보다 더욱 색이 진하고 더 풍성해 보였다.
뭐, 아리스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이다.
오히려 잘 성장하고 있다는 뜻인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리스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만들고, 만능 사전을 뒤져 가며 사우나를 만들 계획을 짰다.
이어서 블랑카가 오늘의 수확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혹시 몰라서 아리스의 이야기를 블랑카에게 꺼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블랑카는 피식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며 내 등을 두드렸다.
“단순한 털갈이니까, 걱정하지 마.”
“단순한 털갈이 맞지? 혹시나 해서. 원래 살던 곳하고 환경이 달라서 그런 거일 수도 있으니까…….”
“아주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나저나, 털갈이를 시작해서 참 다행이네.”
“다행? 왜?”
“그야. 계절이 바뀌지도 않았는데 털갈이를 시작했다는 건, 딱 하나밖에 없잖아? 다 컸다는 거.”
“그게 왜…….”
턱.
블랑카의 손이 내 어깨를 꽉 붙잡고, 블랑카의 눈동자 속에 숨겨진 번들거리는 정욕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아리스가 다 컸다는 건, 네가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어졌다는 거잖아?”
“일부러 거절하려는 건 아니고. 내 입장에선 당연한…….”
“시끄러워. 지금 당장이라도 입 맞추고 싶은데 그랬다간 참지 못할 거 같아서 아예 아무것도 안 하는 내 심정을 알아?”
“미안…….”
“미안하면 빨리. 빨리 마사지나 해 줘.”
그렇게 하루 종일 고생한 블랑카를 마사지하고, 자기 전에 에포나와 살짝 놀아 준 뒤 허공에서 내려온 촉수와 서로의 정보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다음 날 아침, 블랑카를 숲으로 보내고 아리스와 나 단둘이 집에 남았고.
나는 밤 동안 잘 삶아진 뱀넝쿨을 냄비에서 꺼내려고 했지만.
“잉간…….”
“아리스? 왜 그래? 어디 아파?”
“나, 배가. 배가 아파…….”
아리스가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내게 비척비척 걸어왔다.
낯빛이 완전히 창백해지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게 딱 봐도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다.
배가 아프다니, 뭔가 잘못 먹었나?
하지만 어제 먹은 음식은 진짜 뭐 잘못된 게 없었는데?
음식이 잘못됐으면 블랑카와 나까지 배가 아파야 할 텐데.
“배가, 배가 어떻게 아픈데?”
“뭔가. 뭔가가 막힌 거 같아……. 막, 뭐가 나오려고 하는데 나오질 않아…….”
일단 나는 서둘러 아리스를 침대 위에 눕혔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살펴보려 했다.
아리스의 배는 깃털에 가려져 있어서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 보려면 일단 직접 촉진을 하는 수밖에 없겠는데.
“아리스. 만졌을 때 아프면 말해?”
“으응…….”
조심스럽게 깃털을 헤치고 아리스의 배를 만지자, 무언가가 딱딱하게 만져진다.
아리스의 뼈가 있을 위치는 아니고, 그렇다면 이게 아리스의 고통의 원인이라는 건데.
조심스럽게 단단한 무언가를 더듬자, 아리스의 배 안에 둥그런 무언가가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알?
설마 하지만, 아리스의 배 속에 들어 있는 건 무정란인 건가?
“아파, 아파파…….”
“미안. 어, 그러니까…….”
원래 하르피아들은 알을 낳을 때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게 정상인 걸까?
인간도 아기를 낳을 때 고통스러워하니까.
아니면 지금 이건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인 걸까?
내가 기억하기론 새들이나 파충류들에게 알 막힘이라는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경우에는 알을 인위적으로 배출시켜 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마, 만능 사전으로 찾아봐?
난생처음 겪어 보는 일에 내가 공황 상태에 놓이려던 그 순간.
툭툭.
누군가가 집을 강하게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밖에 생각나지 않았기에 나는 서둘러 집 밖으로 뛰쳐나갔고.
“:-0”
나처럼 다급해 보이는 주인의 촉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촉수의 끝에는 부드러운 수건과 따듯한 물이 담긴 병이 매달려 있었고, 촉수는 내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듯 까딱거렸다.
주인 녀석도 아리스의 현재 상태를 알고 있는 건가?
주인의 촉수는 내게 무언가를 가져오라는 듯 계속해서 까닥거렸고, 나는 그것이 주인이 내게 아리스를 가져오라는 뜻임을 깨달았다.
주인에게 아리스를 맡겨도 될까?
만약 주인의 저 손짓이 아리스를 치료해 주겠다는 뜻이 아니라면?
아리스가 다쳤으니, 그냥 버릴 생각을 하는 거라면 어쩌지?
온갖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서 오고 갔지만.
나는 주인을 믿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주인의 모습이라면 아리스를 그냥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나는 서둘러 집 안으로 돌아가 아리스를 품에 껴안고 주인의 촉수에게 달려갔고.
촉수는 아리스를 자신의 위에 올려놓고, 내게 무언가가 적힌 쪽지를 전달했다.
[알 막힘 발생 시의 응급처치]
쪽지의 내용은 알 막힘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였다.
왜 나에게 이걸 건네주는 거지?
주인이 아리스를 치료해 줄 생각이 아닌 걸까?
스르륵.
주인의 촉수가 아리스의 몸을 단단히 구속해 다리를 벌리고.
나를 재촉하듯 툭툭 건드렸다.
설마, 주인은 알 막힘을 직접 치료하기 힘든 건가?
그래서 나에게 알 막힘을 치료하는 법을 알려 주려는 것이고.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잉간…….”
두려움이 서서히 내 몸을 감싸 안았지만, 아리스의 힘없는 목소리가 나를 강하게 끌어냈다.
그래,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
나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쪽지에 적힌 내용대로 일단 뜨거운 물을 수건에 묻혀서 아리스의 배를 문질렀고.
천천히 쪽지의 내용대로 손을 움직였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지 그리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정말 이렇게 하는 게 맞아?
아리스는 괜찮겠지?
온갖 미혹이 서서히 내 눈을 가리며 내 손을 둔하게 만들던 그 순간.
스르르.
주인의 촉수가 안심하라는 듯 내 어깨를 붙잡았고.
그 어떠한 말도 촉수에게서 듣지 못했지만 그 행동 하나만으로 나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 주인 녀석은 나를 믿으니까 내게 이걸 맡긴 거일 거야.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꽉 악물자.
“어?”
무언가가, 이어졌다.
누군가의 지식이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오고.
나는 그 지식이 내 것이 된 것처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흐윽, 흐으읏…….”
처음에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던 아리스였지만.
“괜찮아. 숨 들이마시고, 내쉬어.”
“흐읍…….”
내 손이 아리스의 복부를 어루만지며 마사지하자, 아리스의 몸이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알을 몸 밖으로 내보내려 애쓴다.
아리스의 작은 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배가 불룩 부풀어 오른다.
마치 금방이라도 아리스의 몸이 터질 것 같은 풍경이다.
나는 주인의 인도대로 손을 움직이며 아리스의 출산을 도왔다.
그래, 잘하고 있어.
이대로만 해.
그러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속삭여지는 것 같았고.
“아리스, 놀라지 마.”
“으응?”
“숨, 참아!”
“흐읏……?”
충분히 알이 나올 만큼 나왔다고 판단한 나는 직접적으로 아리스의 알을 배출하기 위해 손을 집어넣었다.
단단한 무언가가 손끝에 닿고, 나는 조심스럽게 아리스의 몸 안과 밖을 동시에 자극하며 근육에 힘을 불어 넣었고.
“흐극, 흐읏…… 흣…….”
아리스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오는 것과 함께.
퐁.
다소 힘 빠지는 소리와 함께 아리스의 몸 안에 들어 있던 알이 데구르르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리스는 힘이 다 빠져나갔는지 축 처진 몸으로 내게 안겼고.
“아리스. 아리스. 괜찮아?”
“응…… 괜찮아.”
나는 서둘러 아리스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고.
주인은 서둘러 가라는 듯 내게 촉수를 흔들어 보이며 어항을 빠져나갔다.
다시 아리스를 침대에 눕히고 물을 먹이며 아리스의 상태를 살핀다.
다행히 알을 빼낸 것으로 괜찮아졌는지 안색도 원래대로 돌아오고, 깃털도 다시 윤기가 자르르 돈다.
위험한 순간은 넘겼다고 판단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과는 반대로, 아리스는 어째서인지 기쁘다는 듯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이상한 나는 어째서인지 아리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리스, 뭐가 그렇게 좋아?”
“응? 알을 낳았으니까, 기분이 좋아!”
“그게 그렇게나 기분이 좋은 일이야?”
“응. 알을 낳았다는 건, 이제 어른이 됐다는 증거잖아!”
“……어?”
그러고 보니까, 그렇긴 하네?
아리스가 알을 낳았다는 건, 아리스가 완전히 성숙한 성인이 됐다는 거고.
“저기, 잉간. 전에 말했던 거, 거짓말은 아니지?”
“전에…… 내가 뭐라고 말했는데?”
“성인이 되면. 그때 상대해 주겠다고. 그랬잖아?”
“그렇긴 한데.”
“나, 잉간이 계속 만지작거려서 엄청 힘들었거든? 그러니까, 응……?”
아까 전까지는 순수하게 웃고 있던 아리스의 미소의 성질이 순식간에 뒤바뀐다.
아리스는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며 웃었고, 침대 위를 기어서 천천히 나와의 거리를 좁혀 왔다.
“나. 이제 다 컸는데.”
“아니, 저기. 오늘은 지쳤을 테니까. 지금은 말고…….”
“잉간이 힘써 주면 되는 거잖아?”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명백한 포식자의 눈으로 내게 달려들었고.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아리스를 거부할 명분과 힘이 없어진 나는.
그대로 아리스의 몸보신을 위해서 맛있게 잡아먹히는 수밖에 없었다.
* * *
“후아…….”
클라인은 잉간이가 무사히 하르피아의 알 막힘을 해결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치유 마법을 사용할 마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잉간이에게 물리적으로 응급처치를 시키게 했는데, 다행히 잉간이가 자신의 지시를 잘 따라 줬다.
잉간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잉간이다.
그 때문일까?
클라인은 잠시나마 잉간이와 교감에 성공할 수 있었고, 그것은 클라인에게 기쁨을 가져다줬다.
지금까지 클라인이 잉간이와 감정만을 교감했다면, 이번에 클라인은 잉간이와 지식을 나눌 수 있었다.
이것은 잉간이가 클라인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증거.
그리고, 클라인 또한 잉간이를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 정도까지 클라인과 잉간이가 교감을 나눌 수 있으니, 이만하면 잉간이를 차원항 밖으로 꺼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 슬슬 잉간이도 반려 생물 등록을 할 때가 되긴 했지.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 차원항 안을 들여다봤고.
“어머, 어머…….”
클라인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후드를 푹 내릴 수밖에 없었다.
잉간이의 마사지로 인위적으로 발정이 유발된 걸까?
차원항 안에서는 상당히 탐욕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고, 클라인은 가만히 그 모습에서 눈을 떼어 놓지 못했다.
“우와…… 저렇게나 나오는구나…….”
이건 어디까지나 잉간이를 더 알기 위한 행동이라고 합리화하며 말이다.
77화 구독자 100억 돌파, 감사합니다!
“뱀넝쿨. 다듬어야 하는데…….”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아리스의 호기심은 무척이나 강렬해서, 내가 슬며시 벗어나려고 해도 끝까지 나를 붙들고 놔주질 않았다.
결국 그날은 해가 질 때까지 아리스의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어울리게 되었다.
아니, 나도 내가 그렇게나 힘낼 수 있을 줄은 처음 알았다.
아리스도 처음에는 어색한 손길이었지만, 내 반응을 보며 점점 익숙해지더니 나중에는 말 그대로 나를 쥐어짰다.
얼마나 짜였는지 이젠 아리스의 날개만 봐도 살짝 위험해질 지경이다.
부드러우면서 자극적인 날개의 감촉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최대한 지우며 나는 축 늘어진 몸을 가다듬었다.
아니, 나도 힘내려고 했거든?
하지만 젊음에서 나오는 체력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간신히 아리스의 호기심이 다 충족될 무렵엔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리스는 어느새 몸을 씻으려 호수로 포로롱 날아간 상태였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의 참상을 살핀다.
우와, 이거 어떻게 청소하지?
그 어느 때보다 피곤하지만 맑아진 머리로 이 끔찍한 풍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그때.
침대 위에 묻은 온갖 액체들이 저절로 증발하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침대는 그 어떤 액체도 묻지 않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와, 이런 기능도 있었어?
어쩐지 6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침대 혼자만 멀쩡하더니 이런 비밀이 있었구나.
일단, 나도 씻어야지. 응.
그렇게 생각하며 호수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 어느새 목욕을 끝마친 아리스와 마주쳤다.
“아. 잉간. 이제 좀 괜찮아?”
“응, 뭐. 좀 쉬었더니 괜찮아졌네.”
“에헤헤, 그런 것 같긴 하네.”
물기로 젖어서 윤곽이 드러난 아리스의 몸을 보자 다시 힘이 솟아나기 시작한 것을 보며 아리스는 배시시 미소 지었다.
윽, 빨리 섬유를 만들어서 아리스에게 일단 옷을 입혀야겠다.
한번 아리스의 몸을 알게 된 이상 자꾸 아리스의 맨몸이 생각나서 제대로 움직이질 못하겠다.
“오늘 저녁은 내가 만들게! 잉간은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어, 만들 수 있겠어?”
“응. 가능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아리스는 눈을 반짝이며 내게 자신이 저녁을 만들겠다는 제안을 했다.
아리스가 요리를 잘할 수 있을까?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전에 만들어 둔 요리도 조금 남긴 했고, 정말 최악의 경우엔 젤리들이 남아 있으니까 괜찮겠지?
무엇보다 내가 도저히 요리까진 하지 못하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호수로 돌아가 몸을 씻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땐 꽤나 괜찮은 요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왔어?”
아리스는 마력을 조작해서 요리를 하던 것인지 허공에 내가 만들어 둔 프라이팬을 둥둥 띄우며 나를 반겼다.
나는 주섬주섬 뱀넝쿨들을 지금이라도 냄비에서 꺼내 바깥에 늘어놓으며 곁눈질로 아리스의 요리를 살폈다.
이치믹에, 적당히 달맞이풀과 고기들을 하나로 볶은 것, 그리고 꽤 커다란 크기의 계란 프라이 하나.
계란 프라이?
아무리 봐도 무오의 알로 만들 수 있는 사이즈는 아닌데.
설마 하지만 저건.
“아리스, 저건 혹시…….”
“응! 내 알이야!”
“어…… 괜찮은 거야?”
“뭐가?”
음.
뭐, 무정란이니까 딱히 상관없으려나?
새들도 무정란은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자신이 깨트려서 먹는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이것도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뱀넝쿨들을 밖에 다 늘어놓자, 블랑카가 오늘의 수확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오늘은 돌뱀이 좀 많네.
초원에 가서 달리고 오기라도 한 걸까?
“뭐야, 오늘은 아리스가 요리하는 거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슬쩍 불안한 눈길을 내 침대에 향했다.
목욕도 했고, 침대에 묻은 채액들도 다 사라졌으니 들키진 않겠지?
오늘 다시 쥐어짜이기엔 도저히 내 체력이 버티질 못할 것 같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돌뱀들을 바닥에 내려 둔 블랑카의 눈길이 아리스가 만든 계란 프라이에 향했다.
“알? 뭐야, 아리스가 무정란이라도 낳은 거야?”
“응! 맞아!”
“어머, 그럼 드디어 어른이 됐다는 뜻이네?”
블랑카는 아리스에게 따듯한 축하의 말을 건넸고, 아리스는 방긋 헤실헤실 웃는 것으로 블랑카의 축하에 화답했다.
“자, 잉간! 이거 먹어!”
“어? 이건 네가 먹어야 하는 게…….”
“아냐. 괜찮아. 잉간이 먹어야 해!”
헤실헤실 웃던 아리스는 슬쩍 내 앞에 달걀이 담긴 접시를 가져다 놨고.
나는 당황해하며 아리스에게 양보하려 했지만, 아리스는 물러서지 않고 내게 강권했다.
결국 나는 조심스럽게 아리스의 알을 입안에 넣었고, 아리스는 방긋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리스의 알의 맛은 뭐, 딱히 계란과 별다르지 않았다.
알이 알이지 뭐, 다른 게 있겠어?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블랑카는 흐뭇하다는 듯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른이 되자마자, 바로 해 버린 모양이네?”
푸흡.
먹던 음식을 뱉어 버릴 뻔했지만, 간신히 참는다.
어떻게, 어떻게 안 거지?
최대한 흔적은 전부 지웠을 텐데?
그런 내 의문을 알고 있다는 듯 블랑카는 피식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하르피아는 자기 무정란을 배우자나 가족한테만 먹이거든.”
윽, 아리스와 내 태도가 바뀐 걸 보고 눈치챘다는 건가?
“그리고 뭐…… 나는 코가 무척 좋거든. 응.”
블랑카는 그렇게 말하며 느물느물 내 손을 잡아 왔고, 나는 아리스에게 도움을 청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 봤지만.
아리스는 입술을 삐죽 내밀기만 하고 블랑카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내가 긴장된 기색으로 블랑카의 손길을 받아들이자, 블랑카는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정말, 그렇게 긴장하지 마. 나는 한번 쥐어짜인 걸레를 다시 쥐어짤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
“그, 그래?”
“응. 그러니까…… 다음 차례는 나라는 것만 잊지 않으면 돼. 알겠지……?”
블랑카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아리스를 바라봤고, 아리스는 살며시 그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에포나는 가만히 내 침대에 드러누워 그 모습을 관망하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블랑카의 시선을 받으며 멋쩍은 웃음만을 흘리던 그때.
갑자기 제단에서 번쩍 빛이 나더니, 무언가의 액체가 담긴 약병이 나타났다.
조심스럽게 약병을 집어 들고 이게 무엇인가 살펴보니.
[정력 증진제]
[:-)]
딱히 필요 없는 주인의 배려였다.
그래도 뭐, 줬으니까 필요 없다고 거절할 수도 없고.
잘 생각해 보니까, 필요할 것 같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정력제를 받아 챙겼다.
다음 날, 나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것처럼 아리스와 함께 열심히 뱀넝쿨을 다듬었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다듬는 건 아니었다.
“히히히.”
뱀넝쿨의 껍질을 벗겨 내며 아리스의 날개와 내 손이 맞닿으면 아리스는 히죽거리며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는 아리스가 그런 미소를 지을 대마다 슬쩍 아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마법이라는 거 진짜 편리하네.
나같이 마법을 모르는 사람이 만능 사전만 보고 마법을 알려 줘도 되나 싶어서 아예 아리스에게 만능 사전을 쥐여 줬더니, 자기 전에 만능 사전을 보면서 이것저것 독학한다.
그러더니 지금은 이렇게 손을 쓰지 않고도 뱀넝쿨의 껍질을 벗겨 낼 정도로 마법을 익혔다.
뭐, 내가 생각하는 주문을 외우는 마법을 쓸 단계는 아니지만 이 정도만 돼도 엄청 천재인 게 아닐까?
아리스가 나를 도와주는 덕분에 며칠은 걸릴 줄 알았던 뱀넝쿨의 껍질을 분리하고 말리는 작업을 해가 지기 전에 끝마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이걸 물에 넣고 불린 다음에 손톱으로 섬유질을 분리하는 작업뿐인데.
그걸 하고도 분리한 섬유질을 다시 말리고, 가락고리를 이용해서 실을 다듬고, 실을 천으로 만들 장치도 만들어야 한다.
와, 진짜 엄청나게 복잡해 죽겠네.
그렇지만 그만큼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장난이 아닐 것 같다.
이걸로 섬유를 만들게 된다면 옷뿐만이 아니라 생활 전반이 더 나아질 거다.
그물이나 밧줄 같은 것도 만들 수 있게 될 거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붕대 같은 것도 만들어 둘 수 있을 거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그때.
쾅.
허공에서 무언가가 한가득 들어 있는 상자가 갑자기 나타나 바닥에 떨어졌다.
주인 녀석, 이번에는 도대체 뭘 보낸 거지?
나와 아리스는 긴장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고.
옷 옷옷 옷옷옷옷
옷옷 옷 옷옷 옷옷
옷 옷 “옷?” 옷 옷
옷 옷 옷옷옷옷 옷
옷 옷 옷 옷옷옷옷
상자 안은 ‘옷’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말 그대로, ‘옷’들로 말이다.
* * *
“우와. 우와아…….”
클라인은 지난번 촬영했던 영상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이렇게나 커진다고?
더, 더 커지는 거야?
여기서 더 커진다고? 내가 과연 이 정도를 감당할 수 있을까?
[미니멀리즘 라이프에 딱 맞는 반려 생물이 있다……?]
[차원항 장인 클라인]
[구독자: 105억 5,439만 명]
[조회 수: 10조 76억 명]
10조.
클라인이 지금껏 단 한 번도 달성해 본 적 없는 조회 수다.
정말 가끔씩 1조 조회 수까지 올라간 영상은 있어도 간신히 턱걸이로 걸친 것이지.
이렇게나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적당히 요즘 트랜드대로 만든 건데, 이게 이렇게나 뜰 영상이었나?
설마 하지만, 쥬튜브의 알고리즘에 간택받은 걸까?
지금 이렇게만 조회 수가 올라간다면 100조, 아니. 1,000조 조회 수까지도 노려 볼 만하다.
조회 수가 늘어나는 것에 더불어서 클라인의 구독자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었다.
“우와…….”
이대로 하루 종일 조회 수가 올라가는 것만 구경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빠르게 다음 영상을 올려서 이번에 유입된 시청자들을 붙잡아야 하고. 또 이번에 준비해야 할 서류도 이것저것 작성해야 한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슬며시 시선을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로 옮겼다.
진짜, 반려 생물 하나 등록하려면 뭐 이렇게 서류가 많이 필요한 거야?
뭐, 함부로 반려 생물을 유기하거나 학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건 알겠지만.
솔직히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서류를 하나 뗄 때마다 마력이 소모되는데, 하나라면 모를까 이렇게나 많은 서류를 떼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마력이 소모된다.
서류를 떼느라 안 그래도 없는 살림이 더욱 궁핍해졌다.
뭐, 그래도 다음 달 쥬튜브 수익이 정산되기만 하면 괜찮을 것 같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렇게나 마력을 더 벌어들여도 잉간이를 위해 설계하고 있는 차원항을 만들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클라인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보이저 안에 실린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인공적인 사회.
도시 규모로 작게 만들 생각이어서 마력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사회를 구성하고 제대로 돌아가게 할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니 어마어마한 마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무슨 전 사회 구성원이 간이 통신 기기를 이용하는 사회라니, 이건 인공적으로 마력망을 만드는 것하고 거의 난이도가 똑같은 거 아냐?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푹 한숨을 내쉬었지만, 잉간이를 생각하며 다시금 힘을 내었다.
그래, 내가 고생해야지 잉간이가 편하지.
생각난 김에 지금 잉간이가 뭘 하고 있는지 살펴나 볼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차원항 안을 들여다봤다.
너무 잉간이가 힘들어 보여서 차원 생물용 정력 증강제를 선물해 준 덕분일까?
잉간이의 안색은 꽤 괜찮아 보였다.
하르피아는 완전히 잉간이를 반려로 생각하고 있는지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고 있는데.
저 모습을 보니 클라인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쥬스농장은 잉간이를 이 하르피아와 교배하려고 했는데, 과연 교배가 제대로 이뤄질까?
아무리 생각해도 마력량의 차이 때문에 번식이 잘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데.
거의 잉간이를 쥐어짜 내면서 번식을 시도하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수준으로 교미를 해야 간신히 번식이 될 것 같은데.
클라인으로서는 잉간이가 최대한 늦게 번식을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일단 잉간이 하나 키우는 것도 벅찬데, 지구산 인간을 한 마리 더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새끼를 입양 보내자니, 잉간이의 정신 건강이 우려되고.
클라인은 자신이 잉간이를 제대로 사육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번식이 이뤄지지 않길 빌었다.
그리고 뭐, 뭔가 번식까지 이뤄지면 잉간이의 룸메이트들에게 잉간이를 뺏긴 것 같은 기분도 들 것 같고.
진짜, 차원 생물을 질투하다니, 나도 참 이상해.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후드를 푹 눌러썼고.
문득, 잉간이가 지금 섬유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시, 옷이 더 필요한 걸까?
생각해 보니 하르피아는 아직 옷을 입지도 않은 상태잖아?
깃털 때문에 알몸이 보이지 않을 뿐, 잉간이에게는 꽤나 자극적인 풍경이었을 게 분명하다.
“옷이라…….”
그러고 보니 잉간이가 다른 옷을 입은 모습도 보고 싶은데.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마력망 쇼핑몰에 접속해 잉간이와 그 룸메이트에게 입혀 볼 옷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으, 뭐가 좋을까?
이것도 입히고 싶고, 저것도 입히고 싶은데.
뭐, 고민되면 한꺼번에 전부 다 사 버리면 되는 게 아닐까?
응, 리퀴드사의 상품 홍보 목적이라고 둘러대며 지원받으면 되겠지.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사 준 옷을 입은 귀여운 잉간이의 모습을 생각하며 구매 버튼을 클릭했다.
78화 잉간이와 커플 티를 맞춰 봤어요!
옷옷 옷옷옷옷 옷옷옷옷옷옷 옷옷옷
옷옷옷옷옷 “이건, 옷?” 옷옷옷 옷
옷옷옷 옷옷옷 옷 옷옷옷옷옷옷 옷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대량의 옷들이었다.
이게 도대체 뭘까?
슬며시 옷들에 손을 뻗어 보니 사락거리는 옷감의 감촉은 만져지는데.
내 눈에는 여전히 ‘옷’으로만 보이는 게 문제다.
그렇지만 아리스의 눈에는 이게 다르게 보이는지 아리스는 옷들을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감탄사를 흘렸다.
“우와, 이게 다 옷이야? 엄청 신기해!”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의 반응이 아니라 무언가가 보이는 사람의 반응인데.
나는 슬며시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옷을 하나 꺼내 아리스의 눈앞에 들이밀며 질문했다.
“아리스. 이게 어떻게 보여?”
“옷이잖아! 막, 시커먼데 매끈 반짝한 옷!”
시커멓고 매끈 반짝한 옷이라.
뭐, 턱시도 같은 옷인가?
그런데 어째서 내 눈에는 옷이 옷으로 보이지 않는 거지?
전에 봤었던 그 기괴한 벌레 녀석과 비슷한 케이스인 걸까?
하지만 내가 이 옷을 턱시도 비슷한 형태로 인식했음에도 내 눈에 옷은 형태를 이루지 않았다.
그저 옷으로 보일 뿐.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보이는 거지?
나는 의아해하며 잠깐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 봤지만, 당연히 해답을 내릴 수는 없었고.
내가 그렇게 사색에 빠져 있는 사이, 아리스는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잉간. 여기 뭔가 써져 있어!”
“뭐가 쓰여 있다고?”
아리스의 말대로 상자 안에는 삐뚤빼뚤한 선으로 작은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은 작은 사람이 무언가를 이어서 주섬주섬 입는 듯한 그림으로 이어졌다.
나에게 이건 입는 옷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그린 그림인 걸까?
아리스 또한 그림을 보더니 나와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이건 잉간 옷이야?”
“어, 아마도? 아마 나보고 입으라고 놔둔 거 같은데.”
“……이걸?”
그렇지만 아리스는 옷 하나를 들고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옷이길래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슬쩍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뭐, 주인 녀석의 취미인가 보지.”
“취미가…… 좀 이상하네.”
아리스는 진심을 담아 그렇게 중얼거렸고, 나와 아리스가 그렇게 떠드는 사이 어느새 블랑카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사냥을 다 끝마친 걸까?
평소보다 더 이른 시간대에 돌아오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블랑카를 마중하러 나가자.
“잉간! 신님이 내게 말을 걸어 주셨어!”
잔뜩 흥분한 기색의 블랑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주인 녀석, 이번에는 블랑카에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신님의 선물을 받았다며? 빨리, 빨리 나도 보여 줘!”
“뭐, 그냥 옷들인데.”
“옷?”
잔뜩 흥분한 블랑카와는 반대로 나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옷이 든 상자 안을 보여 줬고, 블랑카는 상자 안의 내용물을 보고 의아해했다.
“이걸, 정말 너한테 선물한 거라고?”
“뭐, 같이 온 쪽지에는 그렇게 그려져 있더라.”
진짜 도대체 무슨 옷들을 보냈길래 블랑카와 아리스의 반응이 이런 거야?
나는 슬쩍 블랑카에게도 옷 하나를 들어 올려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봤다.
“블랑카. 이게 어떻게 보여?”
“음…… 악마의 머리를 닮은 모자가 붙어 있는 천 옷?”
악마의 머리는 또 뭐야, 진짜?
아무튼 일단 선물받은 거니 입어 보긴 해야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충 상자 안에 든 옷들 중 아무거나 집어서 창고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잉간, 지금 그걸 입으려고?”
“입어야지, 뭐. 일단 선물받은 거니까 입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어…… 그렇지. 그렇긴 한데…….”
블랑카는 애매하게 뒷말을 흐렸고, 나는 블랑카의 반응이 좀 의아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창고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여전히 옷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질감과 형태로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어떤 옷인지 파악해 보려 애썼다.
뭔가,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인 옷은 아닌 것 같고.
무언가의 코스프레 같은 게 아닐까?
주인 녀석의 세계에서 유행하는 코스프레 같은 거 말이다.
왜, 지구에서도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이것저것 괴상한 옷을 많이 입히지 않는가?
이것도 그것과 비슷한 것일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들린 옷 한 세트를 입었다.
좋아, 다 입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데?
뭔가, 하반신이 많이 허전한 기분이 든다.
거기에 살짝 하반신 부분의 옷이 팔랑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다 입었어?”
내가 도대체 무슨 옷을 입은 것인가 다시금 생각해 보려 했지만, 그 전에 블랑카와 아리스가 나를 불렀고.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아리스와 블랑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때? 어울리냐?”
머엉.
나는 팔을 벌리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며 블랑카와 아리스에게 내 모습을 보여 줬지만.
블랑카와 아리스는 아무런 말 없이 내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저기?”
“…….”
“저기, 뭐라도 좀 말해 봐. 좀 뻘쭘하니까…….”
“어, 응? 어…… 생각보다 무척이나 어울려서 좀 놀랐어. 응.”
“신기하게 어울려!”
“뭐, 잘 어울린다는 뜻이지?”
“음…… 그렇지?”
으, 왜 너희들만 내 옷이 어떤지 보는데?
사실, 지금 내 눈에는 지금의 내 모습이 알몸으로 ‘옷’ 안에 몸을 숨긴 상태로 보인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적당히 기지개를 켜며 아리스와 블랑카에게 말했다.
“너희도 입을 만한 옷이 있는지 찾아봐. 특히, 아리스 너는 무조건.”
“어째서? 굳이 귀찮게 옷을 입을 필요 없잖아, 나는!”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가슴을 당당하게 앞으로 내밀었고,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아리스에게 말했다.
“그, 옷을 입는 게 위생적으로 더 좋기도 하고. 아무튼 입어.”
“그치만…….”
아리스는 귀찮게 옷을 입기 싫은지 툴툴거렸지만, 그때 블랑카가 슬그머니 아리스를 설득했다.
“아리스. 잉간은 옷을 입은 모습을 더 좋아할걸?”
“에, 어째서?”
“때로는 대놓고 드러내는 것보단, 적당히 가리는 게 더 매력이 있거든.”
“에이, 그럴 리가!”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블랑카는 슬며시 손가락을 내 하반신에 가리켰다.
“저걸 보고도 그렇게 생각해?”
“……옷. 입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잘 생각했어.”
아니, 진짜 도대체 무슨 옷차림이길래 아리스와 블랑카가 저런 반응인 거야?
내가 도대체 무슨 옷을 입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될 즈음, 블랑카는 아리스를 위해 상자 안을 뒤지며 적당한 옷을 찾기 시작했다.
“아리스 너는…… 화려한 옷보단 수수한 옷이 더 어울리겠네.”
“어째서?”
“시선을 한 곳에 집중시키기 위해서야. 그래, 이게 좋겠다. 자, 한번 입어 봐.”
블랑카는 그렇게 말하며 옷을 하나 꺼내 아리스에게 건네줬다.
아리스는 난생처음 옷을 입어서 그런지 입는 데 난항을 겪었고, 블랑카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아리스가 옷을 입는 걸 도와줬다.
“자, 다 입었다.”
“으음…… 답답해.”
아리스는 잠깐 투정을 부리고, 내가 한 것처럼 빙그르르 회전하며 내게 옷을 뽐냈다.
“잉간, 어때? 나, 어울려?”
“아니. 내 눈에는…….”
내 눈에는 옷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바로 그때였다.
아리스의 몸을 감싼 옷이 스멀스멀 형체를 바꾸더니, 스웨터로 만든 조끼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블랑카가 어째서 수수한 옷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했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아리스의 깃털과 비슷한 색상의 감색 조끼가 있는 상체는 전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Comentá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