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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인간이 되었다 1-227完 ⓒ제스키위
"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준비한 건 지구산 인간이에요!"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초월자의 애완인간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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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쥬튜브 첫 공개! 지구산 인간의 모습은?
퇴근길에, 화장실에서, 자기 전에.
다들 한 번쯤은 쥬튜브를 봤었을 것이다.
나도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전에 쥬튜브 영상을 보는 게 취미고, 일과였다.
“아…… 고양이 키우고 싶다.”
한가로운 시골에서 고양이들을 어루만지는 V로그 영상.
나는 옛날부터 이런 꼬물꼬물한 동물들이 좋았다.
직접 동물을 키우기에는 영 상황이 좋지 않아서 이렇게 영상으로나마 대리 만족 하는 것이다.
냥냥거리는 고양이들의 영상으로 힐링을 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뭔가 이상한 영상이 내 눈에 들어왔다.
“차원항 제작?”
[신규 무개입 차원항 제작! 이번 차원항의 주인은 바로 누구?]
무환수 민물항이나, 무환수 해수항이라는 단어는 들어 봤어도 무개입 차원항이라는 단어는 처음 본다.
아니, 그보다 저 영상을 올린 채널을 처음 본다.
차원항 장인 클라인?
구독자 1,602만?
저런 채널이 있었다고?
나는 의아해하며 영상을 재생했다.
도대체 저 무개입 차원항이라는 게 뭔지 좀 들어나 보자.
영상을 재생하자 화면에는 어딘가 이상한 여자가 나타났다.
무언가 근본적인 부분에서 혐오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사람이 아닌 듯한 위화감이 느껴지는 여자의 얼굴.
이상한 불쾌감이 들었지만 나는 일단은 꾹 참고 영상을 시청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무개입 차원항 장인 클라인이에요!”
자신을 클라인이라 칭한 여자가 화면 속에서 방긋 웃으며 자신의 방송을 보고 있을 시청자들에게 인사한다.
“지난번 영상에서는 무개입 오크 차원항을 보여 드렸죠?”
무개입 오크 차원항?
그건 또 뭔 소리야?
오크가 내가 아는 그 오크인가?
아니면 오크 나무의 오크인가?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상에 내가 의아해하고 있자, 화면이 바뀐다.
난생처음 보는 대륙의 모습이 떠오르더니, 눈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화면이 대륙의 한 지점으로 축소되더니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보던 초록 오크들이 서로 싸우며 전쟁을 벌이는 모습이 펼쳐진 것이다.
“오크들은 지금 네 부족으로 나뉘어서 영역 싸움을 펼치고 있어요! 오크 차원항의 소식은 다음 영상에서 더 자세하게 알려 드릴게요.”
도대체 이게 뭔 영상일까?
게임?
영화?
무슨 게임이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영상인 걸까?
워낙 퀄리티가 뛰어난 덕분에 나는 희미한 불쾌감을 참으며 영상을 계속해서 시청했다.
“그럼. 제가 오늘 준비한 콘텐츠는 무엇이냐! 쟈자잔~.”
화면이 바뀌고, 16배속은 되어 보이는 속도로 한 세상이 만들어진다.
산이 솟아오르고, 바다가 차오른다.
나무들이 자라나고, 동굴이 입을 벌린다.
“네. 보다시피 새로운 무개입 차원항의 준비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들던 차원항은 좀 넓이가 컸죠? 이번 차원항은 대륙 사이즈는 부담되시는 분들을 위해서 크기를 많이 줄였어요.”
와, 진짜 콘셉트 하나는 제대로네.
이 영상이 끝나면 구독해야겠다.
“이번 차원항의 콘셉트는 바로 생존! 낯선 환경에 떨어진 생물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하는 게 목표예요. 물론 생물 학대는 아닙니다. 멸종하지 않을 정도로 개입해 줄 거예요.”
이제 슬슬 이 영상의 콘셉트가 이해 간다.
만약 신이 어항을 만든다면?
그런 상상을 실제로 영상으로 옮긴 것 같다.
캬, 진짜 요즘 CG 기술 하나는 끝장나게 발전했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이번에 조금 특별한 생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많이 보지 못하셨을걸요?”
특별한 생물?
뭐, 외계인이라도 나오려나?
“그건 바로~ 두구두구두구~ 인간입니다!”
인간?
아하, 이제 이 영상의 내용을 알겠다.
신들의 어항에 붙잡힌 인간의 생존극을 다룬 내용이려나?
“아, 여러분들. 인간은 너무 흔한 게 아니냐는 생각 들었죠? 걱정 마세요. 제가 이번에 준비한 인간은 리우테스 행성 출신이 아니거든요.”
아, 이젠 SF까지 섞었어?
너무 장르가 섞이면 별로던데.
“제가 이번에 준비한 인간은 바로, 지구 출신입니다! 지구 출신 인간은요. 리우테스나 다른 행성 출신과는 달리 신체가 무척이나 연약해요. 심지어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도 죽어 버리는걸요? 마법도 쓰지 못하니, 인간 중에선 최약체라고 할 수 있죠.”
인간이 마법을 쓰는 게 당연한 거였어?
저 세계관은 참 파면 팔수록 새로운 게 나오네.
“하지만 그만큼 탈출 가능성은 적어서 인간 사육 초보자들에게 추천하는 종류이기도 해요. 하지만 구하기가 어렵다는 게 단점이에요. 사실은 저도 지구산 인간 사육은 처음입니다!”
이제 슬슬 주인공이 등장할 때가 됐는데.
슬슬 저 신에게 납치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하지 않나?
“제가 지금 당장 인간을 보여 드리고 싶지만, 아쉽게도 아직 지구산 인간이 배송되지 않아서 말이에요. 그래도 이 영상이 업로드될 즈음에는 검역 차원에 도착했을 겁니다!”
검역 차원?
아, 검역항을 말하는 건가?
끝까지 콘셉트에 충실하네.
“그럼 여러분. 앞으로 시작될 지구산 인간의 생존 서바이벌. 기대해 주세요! 이만 저 클라인의…….”
내가 피식 웃으며 영상을 지켜보던 도중, 갑자기 영상이 끊긴다.
뭐야, 와이파이가 고장 났나?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와이파이의 상태를 확인하려 한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졌다.
윽, 뭐야?
이거.
심상치 않은데.
지끈거리는 통증이 점점 내 머리를 침식해 갔고, 결국 나는 정신을 잃고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뭐야. X발.”
나는 사방이 희뿌연 안개로 휩싸인 정체불명의 공간에 와 있었다.
1화 지구산 인간이 왔어요! 검역 차원에서의 첫 모습!
온갖 차원항들이 잔뜩 모여 있는 한 방 안.
“안녕하세요, 클라인입니다!”
클라인은 새롭게 구매한 카메라 앞에 서서 방긋 웃음을 지으며 오늘의 촬영을 시작했다.
“오늘 제가 보여 드릴 건, 자쟈잔~ 지난번에 이야기한 지구산 인간입니다!”
클라인이 자신의 발성기관으로 소리 내며 카메라 앞에 차원항 하나를 들어 올려 보인다.
클라인이 들어 올린 차원항 안에는 인간형의 생명체 하나가 들어 있었다.
클라인은 차원항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고생을 알아 달라는 듯 카메라를 향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야, 구하느라 힘들었어요. 지구가 워낙 변두리여서 텔레포트 배달도 이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만큼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어요!”
짝.
한바탕 투정한 클라인은 박수를 쳐 주의를 돌리고, 마치 강의를 하듯 지구산 인간의 정보를 읊기 시작했다.
“지구산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역시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몸 안에 마력을 축적하는 기관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초보자들은 사육할 때 시스템의 보조를 받는 게 좋아요.”
그리고 클라인은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차원항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차원항 안으로 카메라를 들이밀며 클라인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자, 설명은 충분히 들으셨으니 이제 실물을 보고 싶으시죠? 쥬튜브 최초로 소개합니다! 지구산 인간입니다~! 자쟈잔~!”
클라인이 차원항의 뚜껑을 열자, 흠칫 몸을 굳히는 한 인간 남성의 모습이 엿보였다.
만약 클라인이 인간의 얼굴을 보고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었다면 인간의 얼굴에 새겨진 감정이 공포라는 것을 알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클라인은 인간 따위의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공포에 휩싸인 인간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클라인은 인간의 모습을 보며 새된 감탄사를 터트렸다.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게 엄청 신기하죠? 이렇게 지구산 인간은 마력이 존재하지 않아서 무속성 마력을 지닌 생물들처럼 사용할 수 있어요. 대표적으로 생먹이 급여나 메이팅에 쓰는 방식으로요. 거기에 한 가지 더! 마력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들도 쉽게 키우실 수 있어요. 거기에 순한 편에 속하는 성격 때문에 핸들링하기도 쉽고요.”
계속해서 지구산 인간을 설명하던 클라인은, 숨을 몰아쉬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는 듯 외쳤다.
“우와, 방금 보셨어요? 저한테 반응한 것 같은데요? 민감하다, 민감하다 하더니. 이건 거의 드래곤급인데요? 마력이 아예 없어서 그런가?”
본래 차원항의 뚜껑을 여는 것만으로는 차원항 안의 생물들은 사육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드래곤이나 몇몇 감각이 특출 나게 발달한 생명체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데 감각이 발달한 것도 아닌, 단순한 인간형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를 느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일까?
클라인은 계속해서 인간의 모습을 살피며 연신 감탄사를 흘려 댔다.
“입고 있는 의복과 체모의 색으로 봐서는 아마 20살에서 30살 사이의 인간인 것 같네요. 지구산 인간 기준으로는 성숙한 개체예요. 성별은 아마 수컷? 으로 보이는데 이건 조금 있다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인간은 외모와 성별이 가끔씩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반드시 생식기를 확인해 봐야 하거든요.”
클라인은 겁에 질린 인간의 반응을 어떻게 봤는지 몰라도, 또다시 신음을 흘렸다.
“으아, 저 꼬물거리는 거 보세요. 너무 귀엽지 않아요?”
클라인은 당장이라도 만지고 싶다는 듯 손을 차원항 안으로 더 넣으려 했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손을 거뒀다.
“쩝, 지금 당장 핸들링하는 건 무리일 것 같네요. 더 이상 스트레스를 주지 않게끔 잠시 놔두겠습니다.”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차원항의 뚜껑을 닫은 클라인은 곧장 카메라를 들고 다른 차원항의 뚜껑을 열고 작업을 시작했다.
“앞으로 지구산 인간은 검역 차원에서 3일간 머무를 건데요. 그동안 인간이 머무를 차원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쟈자쟌~.”
* * *
뭔데?
뭔데 이거?
나는 희뿌연 안개 속을 헤매며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한 기분에 잠겨 있었다.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자고 일어났더니 이런 공간에 떨어졌다는 것보단 꿈이라는 게 맞겠지.
하지만 지끈거리는 머리와 생생히 느껴지는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이 모든 게 꿈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주장해 온다.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반신반의하고 있던 나를 안개 속에서 끄집어낸 것은 거대한 압박감이었다.
“우욱?”
심장이 두근거리고.
공기가 굳어진 것처럼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한다.
무언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무언가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인가가 나를 짓누르려는 듯 더욱 압박을 가해 오고.
고개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압박감에 짓눌려 숨을 몰아쉬던 그때.
“허억, 허억……!”
나를 짓누르던 압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가 압박감의 근원지를 뚜껑으로 덮은 듯한 변화.
그제야 나는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고.
그곳엔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꿈도 환각도 아니라는 것이다.
꿈도 환각도 아니라면 이건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어째서 내가 이런 장소에 떨어지게 된 거지?
나는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저 하염없이 계속해서 안개 속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안개 속을 정처 없이 헤맸을까?
내 앞에 나타난 것은 무척이나 이 장소와 동떨어진 것이었다.
내가 이 정체불명의 안개 속에서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건 많았다.
내가 널 납치했다면서 자신의 목적을 주절주절 설명해 주는 친절한 납치범.
아니면 무표정한 표정의 연구원.
그것도 아니라면 기괴한 생명체.
이것 말고도 꽤 많은 후보들이 안개 속을 걷는 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지만.
안개 속에서 푹신한 침대와 어째서인지 잘 작동되는 냉장고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뭔데?
침대하고 냉장고?
도대체 뭐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안개 속을 노려보지만, 저 침대와 냉장고 외의 다른 물체나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뭐지?
너무 대놓고 이질적이어서, 엄청나게 수상하다.
주위의 수상한 안개들 사이에 무척 평범한 물건이 있다는 게 이렇게 수상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진짜 뭐냐고?
문득 슬쩍 침대에 누워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어 그 생각을 날려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저런 수상한 침대에 누워?
문득 어제 자기 전에 쥬튜브에서 봤던 영상이 떠올랐다.
미치광이 과학자의 실험에 잡혀 와서 온갖 실험을 당하는 남자를 다룬 영화.
그 영화의 과학자처럼 나를 납치한 누군가도 나를 지켜보며 깔깔거리고 있을까?
어찌 됐든, 저 침대와 냉장고는 너무 수상하다.
왜, 원래 공포 영화에서 제일 먼저 죽는 놈들은 그런 놈들이잖아?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는 녀석들.
나는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슬쩍 침대와 냉장고를 지나쳐 안개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안개 속을 다시 헤매고 다녔을까?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아, 미쳐 버리겠네.”
아까 봤었던 침대와 냉장고였다.
거기에 작은 탁자와 의자가 더해져서 말이다.
내가 아까 왔었던 장소로 돌아온 걸까, 아니면 내 앞에 새롭게 나타난 걸까?
이번에도 나는 침대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발을 움직였고.
자그마한 칵테일 잔.
변기와 욕조.
마지막으로 작은 곰 인형까지.
제발 자기들을 좀 써 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젠장, 아무리 걸어도 벽이나 뭐 다른 사람들은 나오질 않고.
하도 걷다 보니 발이 아파 죽겠고.
내가 왜 이딴 곳에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하다못해 스마트폰이라도 있었으면 괜찮겠는데, 그것도 없고.
그냥 침대에서 쉬고 싶고.
저게 함정이든 뭐든 알 게 뭐야?
지금 함정에 걸려 뒈지나 여기서 굶어 죽나 똑같이 죽는 건데.
차라리 그럴 거면 저게 함정인지 아닌지는 알고 죽자.
그런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나는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난 침대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고.
“X발…….”
지금까지의 내 노력이 무색하게끔 푹신한 침대는 편안하게 나를 맞이했다.
나는 지금까지 도대체 어떤 싸움을 하고 있던 걸까?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냉장고를 열어 보자, 정체불명의 팩이 들어 있었다.
슬쩍 팩 안의 내용물을 확인해 보자 일종의 젤리들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건 나보고 먹으라고 가져다 놓은 건가?
침대가 그냥 침대인 걸 봐선, 아마도 이 냉장고나 변기 같은 것들도 내 편의를 위한 물건들일 것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각오를 다지고, 팩 안에 든 젤리를 입안으로 넣었다.
우물우물.
어디선가 많이 먹어 본 단맛이 입안에 퍼지고.
나는 금세 젤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마X구미?”
어째서인지 몰라도, 어린 시절 많이도 먹었던 간식의 맛이 젤리에서 느껴졌다.
색상은 보라색도 아니고, 투명한 젤리인데.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일부러일까?
어찌 됐든 지금까지 품고 있던 경계심이 너무나 어이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팩 안에 든 젤리를 우물우물 삼켰다.
식사 아닌 식사를 끝마치자 잔뜩 걸어 다닌 피로가 몰려오는 걸까?
아니면 낯선 장소에 떨어진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 침대 때문일까?
갑자기 밀려오기 시작한 수마에 나는 기꺼이 몸을 맡기고 곰 인형을 꼭 껴안은 채로 잠들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을 땐, 주위의 안개가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런 해가 없어 보이는 회색빛 안개는, 이제 불길해 보이는 붉은빛을 띠며 표독하게 흐르고 있었다.
저건 도대체 뭘까?
독성 물질?
아니면 일종의 신호?
뭐가 어찌 됐건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인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다시 냉장고에 보충된 젤리를 한 움큼 베어 물고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안개 속을 헤매었다.
별다른 소득은 없었고, 그저 어제처럼 다시 침대로 돌아오게 될 뿐이었다.
여전히 내 마음은 불안과 혼돈으로 가득했고.
나는 가만히 침대에 누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공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대로 계속 여기서 살아가게 되는 걸까?
아니면 이곳에 왔을 때처럼 갑자기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안개 속을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았다.
내가 가능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쓸모없는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내가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며 침대에 눕고.
다시 눈을 뜨자.
“뭐야, X발?”
나는 뭔 사바나 초원 같은 장소에서 깨어났다.
2화 차원항 제작! 차원항을 본 지구산 인간의 반응은?
“이번에 제가 만들 차원항은 최대한 지구와 흡사하게 구성할 거예요.”
클라인은 차원항 안에 작업실 근처에서 가져온 바닥재로 사용할 소행성들을 파쇄기에 집어넣으며 이번에 만들 차원항의 콘셉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콰득, 콰드득.
60,000Hz의 듣기 좋은 소음이 배경음악처럼 클라인의 작업실 안에 울려 퍼진다.
클라인은 소행성들이 박살 나는 소리를 반주 삼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작업을 이어 나갔다.
“뭐, 지구라고 해도 솔직히 지구에 대해서 알려진 게 거의 없으니 그대로 재현하는 건 무리죠.”
지구는 클라인이 위치한 48b-112호 우주로부터 무려 600광년 이상 떨어진 변두리의 행성.
그 때문에 클라인이 지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라곤 지구의 인간들이 이제 막 철기 시대에 진입했을 것이라는 사실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구가 다른 인간형 종족들이 거주하는 행성과 다른 점이 거의 없다고 하니까, 리베리아 행성을 참고해서 만들어 봤어요. 아, 사이즈는 평범한 50큐브예요.”
지구와 정말 흡사하게 생긴 다른 행성의 사진이 카메라 앞에 떠오르고, 클라인은 곱게 간 소행성 가루를 차원항 안에 집어넣으며 압력을 가했다.
소행성 가루가 붉게 달아오르며 뭉근하게 합쳐지고, 클라인은 이어서 ‘리베리아산’이라고 써진 포대의 포장을 개봉했다.
“사실 직접 차원을 조각내서 가져오는 방법도 있었는데, 그 방식은 추천드리지 않아요.”
클라인은 잠시 작업실 한편에 진열된 차원항들을 카메라에 비췄다.
잘 진열되어 있는 차원항들엔 [리베리아], [오르트], [65b-112]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자칫하면 차원의 조각에 차원 파괴자가 달라붙어 올 수도 있거든요. 기껏 만든 차원항이 박살 나는 건 보고 싶지 않으시죠?”
몇 번인가 경험해 봤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클라인.
클라인은 포대 안에 든 리베리아산 지표면을 차원항 안에 전부 부어 넣으며 카메라를 향해 윙크했다.
“그래서 이렇게 처음부터 하나씩 만드는 게 어렵긴 해도 더 안전하답니다. 그리고 더 재밌기도 하고요.”
클라인의 손에서 차원항이 점차 그럴싸한 모습으로 바뀌어 나간다.
검게 굳은 대지가 광활한 평야로 뒤바뀌고.
리베리아산 식물들이 차원항에서 자라나며 드넓은 숲을 만들어 낸다.
클라인은 자신의 작업물을 감각기관으로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리베리아의 시르바나 지역을 모티브로 만들었어요. 꽤 그럴싸하죠?”
클라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차원항을 가득 메운 숲의 일부를 들어내 공터를 만들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면 공터가 아니라 거의 초원에 가까운 크기였지만 말이다.
“숲만 있으면 움직이기 힘들 테니 적당히 뛰놀 수 있게 공터도 만들어 주고~.”
공터에 이어서 클라인은 차원항의 지형을 뒤바꾸기 시작했다.
“인간을 사육할 때엔 절대 물을 빼먹으면 안 됩니다. 자, 여기서 여러분들께 드리는 팁 하나. 수원을 배치하기 어렵다면 이렇게 높은 산을 만들고…….”
클라인이 손짓하자 그것만으로 숲 한가운데에 거대한 바위산이 솟아오른다.
이어서 클라인은 산 정상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거대한 폭포를 만들어 냈다.
거대한 바위산에서 폭포가 흘러내리며 주위의 지형을 바꾸고, 한눈에 봐도 무척 장관인 풍경을 만들어 냈다.
“자쟈쟌~ 어때요? 꽤 그럴싸한 호수가 완성됐죠?”
클라인은 이어서 폭포 때문에 만들어진 호수 근처에 작은 은신처를 만들어 냈다.
“그럼 이제 호수 근처에 인간이 휴식할 만한 공간을 꾸며 주면…… 자쟌~.”
클라인이 만든 은신처는 마치 바위산과 연결된 동굴처럼 보여 주위와 위화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때요? 꽤 이쁘죠?”
대충 차원항을 꾸미는 작업도 마무리했겠다, 클라인은 이어서 차원항을 관리할 장치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은 아직 설치 안 했고요, 기후변화 마법진과 지열 발생 장치만 설치했습니다. 둘 다 차원항엔 필수 장치죠?”
보조 장치까지 모두 설치한 클라인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전체적인 차원항의 모습을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음. 근데 뭔가 하나 부족한 게 있는 거 같은데요. 뭐가 부족하냐면…….”
번쩍.
클라인의 몸이 말 그대로 반짝거렸고 클라인은 방 한구석에 전시되어 있던 피규어를 카메라 앞으로 가져오며 외쳤다.
“역시 차원항엔 피규어가 빠지면 안 되죠! 피규어를 넣어야 차원항을 만든 기분이 든다니까요.”
클라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피규어를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인간도 제가 만든 차원항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네요!”
* * *
“진짜 미쳐 버리겠네, X발.”
자기 전까지만 해도 뭔 안개가 넘쳐흐르는 기묘한 장소에 있었는데.
눈을 떠 보니 뭔 사바나 초원이다.
이제 또 3일 후엔 뭔 툰드라로 이동하는 건 아니지?
또다시 완전히 바뀌어 버린 주위 환경에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방긋거리며 나를 맞이한 것은 잡티 하나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었다.
너무 잡티가 없어서 심지어 태양마저 보이지 않는다.
이건 또 뭔데?
아무리 하늘을 두리번거려 봐도 태양은 보이지 않고, 태양이 없는데 낮이라는 기괴한 모습이다.
나는 내 삶이 희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빌어먹을 이세계 전이물이었던 거야?
안개 속으로 납치당하고 진짜 온갖 시나리오를 상상하던 탓인지 이 기묘한 상황이 혼란스럽진 않았다.
그냥 어이가 없을 뿐.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멍하니 주위를 둘러본다.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드넓은 초원과.
초원 저편에 솟아오른 붉은 산과 산에서 내려오는 멋들어진 폭포가 보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폭포 주위로 거대한 숲이 이루어져 있었다.
지평선 전체를 전부 숲이 잡아먹은 듯한 난생처음 보는 풍경.
이런 빌어먹을 상황만 아니었다면 감탄이 절로 나왔을 풍경이었다.
지금 나를 가지고 놀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는 내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도 찍는 걸 원하는 걸까?
내가 황량하게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이, 쨍하니 내리쬐는 정체불명의 빛은 한여름의 태양 빛처럼 꾸준히 내 체력을 앗아 가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야 해.
그 안개 속에서처럼 먹을 게 무상으로 제공되고, 안락한 침대가 이곳 어딘가에 있을 거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새끼가 미치광이 사이코패스 새끼지, 성녀 그 자체의 인성을 가지고 있을 리 없잖은가?
이 서바이벌 생활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떠올려 보자.
어디 보자.
곰돌이 형은 제일 먼저 뭘 해야 한다고 했었지?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건 물과 음식, 그리고 안전하게 휴식할 수 있는 은신처라고 했었나?
뭐든 다 먹는 곰돌이 형의 영상 내용을 떠올리며 나는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봤다.
주위엔 내 허리께까지 자라난 노랗게 물든 풀들만 가득한 벌판뿐, 물이나 음식을 도저히 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이나 음식을 구하려면 저 앞에 펼쳐진 숲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거기에다가 숲속으로 들어가면 지금처럼 덥지도 않을 테니까.
하지만 조금 무서운 게 있다면 도대체 저 숲 안에서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는 건데…….
막말로 이세계물이라고 막 나가면 갑자기 몬스터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거다.
애초에 몬스터가 아닌 그냥 야생동물이어도 나 같은 연약한 현대인은 절대 이기지 못한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가긴 가야 하는데.
적어도 해가 지기 전까지는 숲에 도착해야 한다.
날이 어두워지면 음식을 발견하는 것도 힘들어질 거다.
나는 각오를 단단히 가지고 천천히 풀숲을 헤치며 지평선을 가린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런 내 각오를 비웃는 것처럼 초원은 내 다리를 붙잡았다.
풀숲을 헤쳐 나가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인 줄 처음 알았다.
마치 거센 물살 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체력이 순식간에 소진된다.
풀숲이 팔에 스칠 때마다 쓰라린 고통이 느껴진다.
도대체 언제쯤 이 초원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체감상 몇 시간은 걸은 것 같은데도 아직도 숲과의 거리는 한참 이상 남은 것 같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달음박질친다.
입고 있던 옷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 무거워진 지 오래고,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겁다.
당장이라도 그냥 바닥에 쓰러져 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늘이라고는 없는 이 벌판에서 그냥 쓰러졌다간 100% 열사병으로 죽고 말 거다.
아니, 어쩌면 이미 열사병에 걸린 거 같기는 한데.
어떻게든 지평선에서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는 숲을 향해 걸어가려 했지만.
내 두뇌는 더 이상 햇빛에 익어 가는 걸 버티지 못한 모양이다.
풀썩.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 * *
“어? 어? 뭐야?”
쥬튜브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인간을 관찰하던 클라인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
들뜬 마음으로 인간을 공터에 풀어 주고 인간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자니, 갑작스럽게 인간이 쓰러지고 만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무언가 간섭을 가한 것도 아니다.
인간이 깨어나고, 잠시 꾸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며 발걸음을 옮기더니, 3초도 지나지 않아서 쓰러졌던 것이었다.
어째서 인간이 쓰러진 걸까?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 왔던 인간들과는 다른 지구산 인간의 연약함에 놀란 것도 잠시, 클라인은 서둘러 인간의 상태를 살폈다.
“아, 체온이 너무 높아진 상태여서 그런 거네?”
자신이 기억하기로 지구의 환경은 리베리아와 별반 다를 게 없었을 텐데?
지금까지 밝혀진 정보에 따르면 지구의 기후는 리베리아의 사르바나 지방과 비슷하다고 한다.
대략 연평균 기온이 40도 정도라고 해서 자신도 기후를 그렇게 설정했을 뿐인데.
어째서 지구산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는 다르게 쓰러져 버린 걸까?
클라인은 고민에 빠졌지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지구산 인간이 클라인의 예상보다도 더욱 허약한 것이었다.
애초에 마력조차 쓰지 못하는 종족이 빅뱅을 견디고 살아 있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마력조차 쓰지 못하고, 신체마저 다른 종족들에 비해 열악하다.
같은 인간종인 리베리아산 인간과 비교하면 지구산 인간이 얼마나 약해 빠졌는지를 알 수 있다.
어찌 됐건 간에, 클라인은 서둘러 지구산 인간에게 응급처치를 실시했다.
어떻게 구한 지구산 인간인데 이렇게 간단히 잃어버릴 수는 없다.
이미 지구산 인간을 키우겠다고 한 예고편의 영상만으로도 조회 수가 1억 뷰 이상 나왔다.
황금을 불러오는 토템을 스스로 박살 내는 바보는 없지 않은가?
클라인은 서둘러 응급처치를 끝마쳤지만 인간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편이 더 좋다.
이렇게 허약한 생물체가 만약 자신의 모습을 직접 느낀다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서 도움을 주기 어려웠을 테니까.
간이 응급 키트에 집어넣은 지구산 인간의 상태가 안정되는 것을 확인한 클라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클라인은 서둘러 지구산 인간을 숲 어귀에 내려놓고 다시 녹화를 재개했다.
3화 지구산 인간이 제일 처음으로 만든 도구는?? 도구 제작 ASMR 1시간!
전복이 해삼이랑 함께 낙지를 괴롭히는 꿈을 꾼 거 같은데.
나는 도대체 무슨 꿈을 꾼 거지?
초원을 걸어가다 열사병으로 쓰러지고 난 뒤, 내가 다시 깨어난 장소는 숲의 입구였다.
“허억, 헉?”
당연히 내가 쓰러진 장소와 깨어난 장소가 바뀌었다는 것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렇지만 워낙 최근 며칠간 자주 겪은 일이어서 빠르게 정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분명 이건 나를 납치한 그 미치광이의 짓이 틀림없겠지.
아직 본격적으로 서바이벌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죽는 건 곤란하다는 걸까?
아니면 좀 더 가지고 놀고 싶다는 생각인 걸까?
둘 중 뭐가 됐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무력함을 또다시 상기시키기엔 충분했다.
“후…… 정신 차리자. 정신…….”
짝.
스스로의 뺨을 때리며 정신을 다잡는다.
아까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일은 더 없어야 한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더라도 너무 섣부르게 행동한 것 같다.
아까 같은 상황이 또다시 일어났을 때 그 사이코패스가 이번에는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면?
그대로 데드 엔딩 확정이다.
혹시나 위기에 빠져도 누군가가 또다시 도와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어찌 됐든 일단 첫 번째 목적지였던 숲에 도착하는 데는 성공했다.
가까이서 본 숲의 모습은 꽤나 음산해 보였다.
아마존처럼 정글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잔뜩 자라난 나무들이 빛을 가려 어딘가 음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조심스럽게 숲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기분 좋은 냉기가 온몸을 감쌌다.
그저 햇빛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이렇게나 체감온도가 달라지는 걸까?
한결 숨쉬기도, 움직이기도 편해진 상태로 숲 안을 탐색한다.
제일 먼저 찾아야 할 건 역시 물이겠지.
아까 초원에서 봤을 때, 바위산에서 내려오는 폭포가 있던 것을 떠올렸다.
폭포가 있다면 근처에 강도 있고, 호수도 있겠지.
좋아.
지금부터 폭포를 찾자.
적당히 폭포 소리를 따라가면 되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고 폭포 소리를 집중해서 찾아본다.
쏴아아아.
다행히 근처에 폭포가 있었던 걸까?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폭포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폭포 소리를 따라가면서도 계속해서 주위를 살핀다.
주위에 자라난 나무들은 지구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데.
어째서인지 몰라도 숲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정체불명의 위화감이 느껴졌다.
분명히 내가 아는 지구의 나무들과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이 달라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숲 안을 계속해서 걷는 동안 같은 종류의 나무들만 보여서일까?
아니면.
숲이라면 응당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일까?
그 사실을 눈치챈 순간 등골이 오싹, 하고 떨려 오는 기분이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동물들의 발소리, 어디선가 꿈틀거릴 벌레들의 움직임, 그 외 기타 등등…….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숲의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단지 바람이 가끔씩 불며 잎사귀를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폭포가 쏟아지는 소리뿐.
마치 이 숲에서 움직이는 생명체라고는 나밖에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숲과는 다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순식간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평범한 나무로 보이던 나무들이 기괴한 외계의 생명체들로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괴생명체가 튀어나와 나를 덮칠 것 같다.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어디로?
집으로?
나에겐 이제 도망칠 장소라는 건 없는데?
자신은 아무리 두렵더라도 도망치는 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그와 함께 턱 밑까지 차오르는 공포감.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살아남는 것뿐이었으니까.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공포감을 이겨 내고 나는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괴물의 습격도, 정체불명의 함정도 나타나는 일도 없이 나는 마침내 호수에 도착했고.
“오우…….”
이곳에 끌려오고 나서 처음으로 순수한 감탄사를 흘렸다.
지금까지 숲에서 느끼던 불쾌함과 위화감을 모조리 날려 버릴 만큼 장엄한 풍경.
거대한 바위산에서, 거대한 폭포가 흘러내린다는 풍경은 정말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저거, 나이아가라 폭포보다도 더 커다란 거 아냐?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넓은 폭포와 그런 폭포에 걸맞게 거의 바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드넓은 호수.
거기에 호수 바닥이 그대로 비쳐 보일 정도로 맑은 수질까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이다.
한바탕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고 나니,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눈앞에 둔 몸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주위를 살피는 것도 잊어먹고 나는 곧장 모래사장을 달려 나가 호수를 향해 몸을 던졌다.
풍덩.
시원한 물이 뜨겁게 달아오른 내 체온을 식혀 주고, 나는 적당히 호수에 몸을 맡기고 휴식을 한껏 만끽했다.
“키야…….”
갈증에 타들어 가기 시작한 목에도 물을 축이고 나서야 나는 겨우 호숫가 주위를 살필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원래 호숫가라는 건, 가장 생명체가 많은 장소다.
물을 마시러 호수를 방문하는 들짐승들, 그런 들짐승들을 잡아먹으려 하는 포식자, 호수 안에 몸을 숨기는 다양한 수생생물들.
이렇게 거대한 호수라면 하다못해 물고기나 벌레라도 보여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렇지만 호수 또한 다른 장소와 마찬가지로 다른 생명체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한껏 들떠 올랐던 기분이 푹 가라앉는 기분이다.
주위에서 움직이는 동물이 나밖에 없다는 건 정말 익숙해질 수 없는 느낌이다.
호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서서히 해가 저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늘에 태양이 없어서 정확히 어떤 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까보다 더 어둑어둑해진 것 같다.
기온도 좀 더 낮아진 것 같고.
도대체 언제 해가 질지 알 수 없으니 더 무리해서 숲을 탐색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
일단 물은 확보했고, 이제 남은 건 음식과 은신처인가?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살펴봐도 내가 먹을 수 있는 무언가가 발견되진 않는다.
고기를 먹는 건 원하지도 않는다.
하다못해 나물이나 과일 같은 식물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이곳에서 자라는 건 초원의 풀때기들과 정체불명의 나무뿐이다.
그마저도 나무엔 열매가 열려 있지도 않고.
내가 호숫가 주위를 잠깐 둘러보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 날이 더욱더 어둑해졌다.
어쩔 수 없다.
오늘은 굶고 내일부터 먹을 걸 찾아보는 수밖에.
“에취!”
으스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기온 또한 함께 내려가기 시작한 걸까?
호수 물로 젖은 몸을 바람이 흝고 지나가자 재채기가 나온다.
뭔가 적당히 바람을 피할 만한 장소는 어디에 없을까?
불을 피워서 몸을 말린다는 선택지는 제외다.
내가 뭔 곰돌이 형도 아니고, 라이터도 없고 부싯돌도 없는데 어떻게 불을 만들어?
우드 드릴인가? 그런 방법으로 불을 피우는 모습은 몇 번 동영상으로 봤지만 연약한 집돌이였던 내가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어떻게 불을 피웠다고 해도 주위에 먹을 게 없는 이상 소모한 체력을 보충할 방법도 없다.
다행히 기온이 떨어졌다고 해도 그렇게 크게 떨어진 건 아니어서 바람만 잘 피한다면 모닥불이 없어도 하룻밤은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바람을 피할 장소를 찾던 중, 내 눈에 바위산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돌덩이들이 들어왔다.
바위산의 일부가 붕괴하기라도 했던 걸까?
오오, 저기가 좋아 보인다.
거대한 바위들이 뭉쳐 있어 자연적으로 바람을 막아 주는 차폐벽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듯 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바윗덩어리들 사이로 몸을 집어넣자, 꽤나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면 마음 편히 잘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바위가 바람을 전부 다 막지 못하는지 어디론가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윽, 추워.
좁은 틈새로 바람이 불어와서인지 더욱 거세진 기분이 든다.
틈을 막아 두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잠은 잘 수 없겠는데.
간이 은신처를 만드는 수준도 아니고, 단순히 돌 틈새를 막는 정도면 그리 재료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을 거다.
근처의 나무들에서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대충 엮어 일종의 가림막을 만들어 본다.
엄청난 걸 만들었다거나, 튼튼하다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딴 곳에 떨어져서 처음으로 내 손으로 이뤄 낸 것이기에 가림막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영차.
음, 솔직히 이 정도면 훌륭하지.
내일은 부디 뭔가 먹을 만한 걸 찾을 수 있길.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위 틈새에 몸을 낑겨 넣고 불편한 잠을 이뤘다.
* * *
“이야, 인간은 역시 저런 게 귀엽죠.”
바위 틈새에 몸을 집어넣고 잠을 청하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며 클라인은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저렇게 원시적인 도구를 만드는 거, 너무 귀엽지 않아요?”
클라인의 종족에선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기에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걸까?
클라인은 근처의 다른 차원항을 가져오며 살짝 불평을 털어놨다.
“솔직히 인간형 생물을 사육하는 의의가 뭐겠어요? 저렇게 도구를 만드는 걸 보려고 사육하는 게 가장 크죠. 그런데 마력이 많은 인간의 단점이 도구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클라인은 마치 두 차원항을 서로 비교하듯 옆에 놔두고 불평을 계속했다.
“방금 리베리아산 인간이 지구산 인간 같은 상황이었어 봐요. 그냥 마법으로 불을 피우거나 벽을 만들어서 은신처를 세웠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지구산 인간은 참 관찰하는 맛이 좋네요.”
그렇게 말하며 인간을 관찰하던 그때, 클라인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어라? 근데 지금 인간이 있는 위치가…….”
푸흡.
클라인의 발성기관에서 폭소가 터져 나오고, 클라인의 몸이 번쩍번쩍 발광하기 시작한다.
“푸하하, 푸핫! 크하하…… 아, 너무 웃겨. 진짜,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요? 우리 인간?”
클라인이 어째서 그렇게 폭소했는가.
그것은 무척 간단한 이유였다.
지구산 인간이 가림막까지 만들어 가며 잠자리에 든 장소가 클라인이 만든 은신처의 코앞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거겠죠? 아, 진짜 귀엽네요. 뭔가 허당 같다고 해야 하나? 다른 인간형 생명들에게선 만나 볼 수 없는 귀여움이에요. 와…… 진짜 너무 귀엽다…….”
이것만으로도 지구산 인간을 사 올 때 치른 값이 아깝지 않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구산 인간을 위해 준비해 온 새로운 선물들을 차원항 안에 풀어놓을 준비를 마친다.
“슬슬 인간도 차원항에 적응했을 거 같고. 이제 배도 고플 테니 밥을 먹겠죠? 마음 같아서는 핸들링으로 먹이를 주고 싶지만…….”
삐빅.
퀴즈 쇼에서 오답을 표시하듯 클라인은 카메라를 향해 □ 자를 만들어 내며 설명을 시작했다.
“차원항에 익숙해지거나, 핸들링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직접 먹이를 급여하지 않는 게 좋아요. 워낙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탈출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시청자들을 향해 설명을 끝마친 클라인은 그대로 다양한 생물들이 들어 있는 보따리로 감각기관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자, 그럼 지구산 인간에게 먹이를 한번 줘 보도록 하겠습니다!”
4화 지구산 인간의 첫 사냥! 과연 그 결과는?
“자쟈잔~ 여러분, 이젠 하도 봐서 익숙하죠? 소개합니다, 언제나 듬직한 우리의 친구, 무오예요!”
클라인은 방긋 웃으며 아공간 안에 들어 있던 생명체들을 카메라 앞에 들이민다.
카메라 앞에서 무오 하고 느긋하게 우는, 소와 달팽이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생명체, 무오.
원산지는 오르트 먼지구름.
따로 먹이를 챙겨 줄 필요도 없고 웬만한 환경에서도 알아서 살아남는 생존력 때문에 먹이생물로서 절찬 애용되는 중이다.
굳이 먹이생물로서 이용되지 않더라도 특유의 생김새와 느긋한 성격 덕분에 애완동물로도 자주 사육되는 종이다.
“무개입 차원항을 만들려면 제일 먼저 생태계를 구축해야 해요. 생산자 포지션은 채워 넣었으니, 이제 소비자를 채워 넣을 차례!”
뿅.
무오의 옆에 다른 생명체들이 들어 있는 아공간들이 나타나고, 클라인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1차 소비자. 그러니까 초식동물의 위치는 무오가 해 줄 거고요. 2차 소비자. 그러니까 포식자의 위치는 우리 지구산 인간이 해 줄 거예요. 기본적인 차원항이라면 이 정도로만 해도 충분하지만…….”
씨익.
클라인의 얼굴에 짓궂은 표정이 나타나고, 클라인은 또 다른 생명체들을 카메라에 비췄다.
“솔직히 무오하고 인간 둘만 있는 차원항은 노잼이잖아요? 그래서 적당히 다른 생명체들을 추가했습니다!”
점박이무늬토끼, 청색점균류, 폭탄꼬리새우, 바위폭포고기, 뚜벅나무버섯…….
다종다양한 생명체들이 카메라에 비치고 클라인은 무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설명했다.
“전부 제가 사전에 지구산 인간과 어울릴지 조사하고 선정한 생명체들이에요. 차원항의 환경에 어울릴지도 고민하고 선정했고요!”
쥬튜브 댓글에 달릴 지적을 미리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부연 설명을 붙이는 클라인.
“자, 이 생명체들이 차원항의 생태계를 이룰 거예요. 아, 상상만 해도 기대되네요. 인간이 처음으로 사냥하는 장면은 어떤 모습일까요? 창을 만들어서? 아니면 맨주먹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지도 않고 클라인은 방긋 웃으며 지구산 인간이 잠자고 있는 차원항 안으로 생명체들을 투입했다.
“인간도 제가 준비한 먹이들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네요!”
* * *
“으어어억…….”
으윽.
돌 사이에 몸을 낑겨 넣고 잠을 잤더니 온몸이 욱신거린다.
입에서 저절로 지옥의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다행히도 또다시 눈을 떴을 때 완전히 다른 곳에 왔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원래 있었던 장소의 모습이 완전히 뒤바뀌었을 뿐.
“……?”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던 숲에서 온갖 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작은 폭발음.
자그마한 무언가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무언가 웅덩이에서 첨벙거리는 소리.
어제의 아무것도 없이 죽어 버린 것 같은 숲과는 달리, 생명력으로 가득한 숲의 모습이다.
도대체 내가 자고 있던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주위를 둘러보지만 다른 생명체들이 생겨났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나를 납치해 온 사이코패스가 나 말고도 다른 생명체들도 더 납치해 왔다는 것.
잠을 그렇게 깊게 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좀 이상하지만.
뭐, 어쩔 수 있나.
그냥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아무튼, 이렇게 다양한 생명체들이 늘어났다는 건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는 거잖아?
실제로 그냥 나무들만 널려 있던 숲에도 무언가 열매가 열린 것처럼 보이는 수풀들이 여럿 생겨났다.
마치 산딸기처럼 붉게 빛나는 열매가 매달린 덤불.
과연 내가 이 열매를 먹고도 괜찮을까?
한참 동안 열매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봐도 도저히 열매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다.
원래는 이런 정체도 모르는 열매를 그냥 막 먹으면 안 되겠지만.
꼬르르륵.
하루 종일 쫄쫄 굶은 배가 굶주림을 호소하며 요동친다.
언제쯤 다른 음식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상당히 안전해 보이는데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으음…….”
아니, 그래도 독이 들었으면 위험하니까.
냄새를 맡아 보기도 하고, 벌레의 흔적을 확인해 봐도 도저히 모르겠네.
몇 알가량만 먹어 보는 정도는 괜찮겠지?
조금 입에 대고 별다른 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면 먹어도 괜찮을 거다.
쥬튜브에서 그랬거든,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조금 먹어 보고 몸의 상태를 살펴서 섭취하라고.
그렇게 납득하며 산딸기 같은 열매를 입에 가져다 대자, 새콤함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맛은 완전 딸기인데, 새콤하다는 게 불길하네.
보통 독은 시거나 쓰다는 편견이 있으니까.
그래도 시큼한 수준이 아니라 새콤한 정도니 괜찮으려나?
머릿속에 열매들이 열린 위치를 기억해 두고 나는 서둘러 호수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약 독이 정말 있더라도 호수 물로 중화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호숫가로 발걸음을 옮기자, 어디선가 들려오던 폭발음이 더욱 커졌다.
뭐지?
의아해하며 호숫가로 나오자, 나는 곧바로 폭발음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펑. 따닥. 따닥.
갈색 새우들이 꼬리를 튕겨 가며 물 위로 튀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우들이 꼬리를 튕길 때마다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폭음이 들려오고, 새우는 그 힘을 추진력 삼아 이동하고 있었다.
호수에는 갈색 새우 말고도 다양한 수생생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파리 같은 일종의 날벌레, 물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애벌레들, 살포시 새싹을 피우며 자라나는 수초들.
하지만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면, 벌레나 새우는 많이 보여도 물고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일단 새우는 넘쳐 나는 것 같으니 앞으로 먹을 게 부족할 것 같진 않다.
일단 음식 문제는 해결된 건가?
음식과 물 문제는 해결됐으니, 이제 남은 건 은신처뿐.
이왕 날이 밝은 김에 호수 주위의 지형을 대략적으로 둘러보자.
우선은 내가 잠잤던 바위 근처부터 살펴볼까?
뭔가 바위산 근처고, 뭔가 있을 법한 지형이다.
딱 봐도 주위와는 뭔가 다르게 생긴 지형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어제 내가 잠들었던 바위 근처를 살펴보던 나는 예상보다 일찍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
내가 어제 쭈그려 잠들었던 바위들 사이에서, 나무로 가려진 동굴이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내가 잠들었던 장소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음.
어.
괜찮아!
비록 내가 어제 만든 가림막은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지만, 좋은 경험이었잖아?
뭔가 이것저것 만드는 거, 싫어하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며 허탈한 마음을 감춰 보려 했지만.
그런 내 생각은 동굴 안의 모습을 보고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하……!”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동굴 안의 풍경.
마치 누군가의 손으로 빚어낸 것처럼 멋지게 꾸며진 공간이었다.
일단 당연히 동굴이니 바람이 부는 일은 없이 따스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동굴 안에는 샘물이 흐르며 작은 호수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은신처의 표본.
나는 어째서 이런 장소를 놔두고 길바닥에서 노숙을 한 걸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며 조금 우울해졌지만, 이제라도 발견했으니 됐다.
앞으로는 여길 거점으로 삼고 생활하면 되겠지.
툭툭.
그렇지만 여기 또한 바닥이 맨바닥이라는 건 변함없어서 이대로 잠들면 또다시 매번 일어날 때마다 온몸이 욱신거릴 거다.
적당히 이불 역할을 할 수 있는 걸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초원에서 잔뜩 잔디 같은 풀들이 자라고 있었지?
대충 베어서 말리면 괜찮은 침대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마구간에 놔둔 짚더미 같은 비주얼이 되겠지만.
뭐, 어때.
적당히 쓸 만하기만 하면 됐지.
그럼 이제 재료를 모아 볼까?
은신처의 위치를 머릿속에 단단히 박아 넣고 나는 재료를 모으기 위해 다시 초원으로 향했다.
초원으로 가기 위해 숲을 지나가던 중, 나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들과 마주쳤다.
갉작갉작갉작갉작-
나무 밑에 모여서 무언가를 갉아 먹고 있는 자그마한 털 뭉치들.
갈색 바탕의 털에 검은 점박이 무늬가 눈에 띄는 모습이다.
내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눈치챈 걸까?
훽, 하고 털 뭉치들의 얼굴이 내게 돌아갔다.
“으엑…….”
그러자 내 입에서 터져 나온 건 감탄사도, 호기심 섞인 중얼거림도 아닌 당혹스러운 질색이었다.
“치이잇? 치이이잇?”
생김새는 내가 알고 있는 토끼의 몸에 무늬가 더해진 모습이지만.
그 토끼들의 얼굴에는 붉은 피와 누군지 모를 생물의 내장이 잔뜩 붙어 있었다.
거의 B급 스릴러 영화에서 나올 법한 장면.
내가 토끼들의 잔혹한 모습을 보고 멈칫거린 사이, 토끼들 또한 나를 바라보며 몸을 잔뜩 움츠렸다.
어쩌지?
일단 저 토끼들, 하는 짓을 봐선 평범한 토끼가 아니다.
저 녀석들, 100% 육식동물이다.
그럼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단 하나.
저 녀석들은 자기 몸집보다 큰 상대들에게도 덤벼드냐는 것이다.
천천히 토끼들이 먹어 치우던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토끼들이 먹어 치우던 건 토끼의 몇 배는 되는 크기의 정체불명의 고깃덩어리였다.
고깃덩어리는 원래 어떻게 생긴 생명체인지는 도저히 알 수 없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뭐지?
저 토끼들이 사냥한 걸까?
아니면 다른 녀석이 사냥하고 버린 걸 주워 먹는 걸까?
도저히 모르겠네.
제대로 된 무기도 없고, 야생동물이랑 싸우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싶은데.
잘못 물려서 파상풍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해.
그리고 아픈 건 싫고.
그렇게 생각하며 토끼들을 자극하지 않고 지나치려 한 순간.
“치이잇! 치잇! 칫칫칫칫!!”
갑자기 토끼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내게 달려들었다.
“우, 우와악!!”
갑작스러운 일에 나는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고, 그 덕분에 토끼들은 내 발치에 떨어졌다.
“치잇…… 칫!”
토끼들은 내 발치에서 신음 소리 비슷한 걸 흘리며 굴러다녔고.
나는 그 틈을 타 서둘러 토끼들을 피해 초원으로 달려 나갔다.
야생동물은 역시 동영상으로 보기만 하고 싶다.
직접 마주하는 건 좀 무서워.
숨을 헉헉거리며 숲을 빠져나와 초원에 도착하자, 다행히 다른 생물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한숨 돌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도대체 뭔데, 진짜.
진짜로 날 납치해 온 사람은 뭘 원하는 거야?
진짜로 내가 이런 야생에서 서바이벌 다큐를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자연에 내동댕이쳐져 보니, 차라리 웹 소설처럼 무슨 요정이 나타나서 켈켈거리며 튜토리얼을 시작해 줬으면 좋겠다.
그럼 적어도 이렇게 뭘 해야 할지 모르진 않을 텐데.
“집에 가고 싶다…….”
다시 기분이 울적해졌다.
빨리 이불로 쓸 풀이나 모아서 돌아가자.
나는 적당히 초원에서 자라는 풀들을 채취해서 은신처로 돌아갔다.
적당히 은신처 앞에 짚을 쌓아 두고 슬슬 먹을 걸 구하려 하던 찰나.
“무오오-.”
갑자기 동굴 안에서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기괴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이건 도대체 뭔 소리야?
깜짝 놀란 내가 동굴 입구를 바라봤지만,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무언가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침입해 온 걸까?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동굴 안의 상태를 확인해 본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동굴 안에 자리를 잡고 한가롭게 울어 대고 있는 정체불명의 달팽이? 소? 그런 괴생명체였다.
아니, 뭔데 저거?
지금까지 봤던 괴생명체들은 내가 알던 생명체에서 색상이나 모습이 조금씩 다른 정도였다면.
지금 내 앞에서 울어 대는 저 녀석들은 소와 달팽이를 합성한 것 같은 기괴한 생김새다.
저 녀석, 뭔가 산성 물질을 뿜어낸다거나 하진 않겠지?
뭔가 저런 달팽이 형태의 괴물들은 굉장히 강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내가 난생처음 보는 괴물의 모습에 굳어서 입구에서 괴물을 관찰하는 와중에도.
저…… 소-달팽이? 소팽이?
소팽이는 느긋한 모습으로 그저 나직이 울어 젖힐 뿐이었다.
“무오오오~.”
유, 육식동물은 아닌 건가?만약 맹수같이 위험한 동물이었으면 진작에 덤벼들었겠지.
아무튼, 당장 저 녀석을 여기서 내보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저 소팽이는 이 동굴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저기, 좀 나가 줄래?”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말을 걸어 보지만, 당연히 소팽이는 반응하지 않았고.
“좀. 나가……!”
혹시나 점액에 독이 있을 가능성을 대비해 멀리서 발로 툭툭 건드리며 소팽이를 쫓아내려 해도.
“무오~.”
소팽이는 나지막이 짜증 나는 울음소리를 흘릴 뿐이었다.
발로 차고.
손으로 밀어도 보고.
나뭇가지로 쿡쿡 찔러 봐도.
도저히 이 소팽이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X발, 나가. 나가라고. 나가……!”
아무리 애써 봐도 움직이지 않는 소팽이의 모습에 나는 울상을 지었지만.
“무오~.”
소팽이는 그런 나를 비웃듯 내게서 등을 돌려서 입구에 자라난 잡초를 우물우물 뜯어 먹을 뿐이었다.
“나가…… 나가라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소에 납치당하고.
영문을 알 수 없이 이런 야생에 내던져지고.
간신히 집을 구했다 싶었는데 난데없이 뭔 괴물에게 집을 빼앗겨서 지금까지 쌓인 설움이 폭발해서일까?
“개 같은 놈들…….”
나는 새삼 추하게 바닥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어 젖히기 시작했다.
“나가, 나가라고……. 여긴 내 집이라고. 내 집이라고……. 나가아…… 나가라고…….”
* * *
“진짜? 진짜로?”
지구산 인간을 관찰하던 클라인은 예상치 못한 지구산 인간의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니, 지금 무오한테 겁먹고 저러는 거예요?”
먹이로 넣어 준 먹이동물에 지레 겁먹고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객관적으로 봤을 땐 무척이나 추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은 클라인에겐 조금 다르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와, 진짜 너무 허당인 거 아니에요? 진짜 어떻게 야생에서 살아남았죠?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어떻게 야생에서 살아남았을까요?”
먹으라고 넣어 준 열매도 잔뜩 경계하며 먹지도 않고.
인간에게 피해를 줄 수 없을 육식 토끼에 겁먹고 먼저 도망치고.
무오에 겁먹고 엉엉 울어 대는데 어떻게 지구의 야생에서 살아남았을지 클라인은 진심으로 의문을 품었다.
뭐, 그 점이 클라인에게 있어선 지구산 인간의 매력으로 다가왔지만 말이다.
“제가요, 진짜 웬만해선 이런 말 안 하는데요. 진짜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요? 진짜 멸종할 정도로 귀엽네요. 와…….”
하지만 이대로라면 지구산 인간이 차원항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게 분명한 상황.
클라인은 한숨을 내쉬며 지구산 인간에게 사소한 도움을 주기로 결정했다.
“제가 웬만해선 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건 어쩔 수 없겠네요.”
5화 시스템을 얻은 인간의 반응은? 무오 VS 인간 2!
“시스템. 이게 참 말이 많단 말이에요. 과연 이게 애완 생명들에게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 설치한다면 어떤 시스템이 좋느냐…….”
클라인은 자신의 영상 댓글 창에서 한참 벌어졌던 다툼을 떠올렸다.
고작 어떤 시스템을 설치하는 게 더 좋냐는 토론에서 시작된 다툼은 결국 전쟁으로까지 번졌었지.
진짜, 무슨 쥬튜브 댓글 창에서 정보 오염을 살포하는 사람이 있어?
그때 이후로 얼마나 댓글 창에서의 싸움을 차단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는데, 또다시 댓글 창에서 전쟁이 벌어지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클라인은 최대한 별문제가 되지 않을 말을 골라 가며 설명을 계속했다.
“뭐, 여러 말이 많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죠. 인간형 생물. 그것도 ‘인간’한테는 시스템을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클라인은 지금까지 시스템을 잘못 사용해서 일어났던 사건 사고들을 화면에 띄웠다.
“잘못된 시스템 사용은 사육 생물들뿐만이 아니라 사육자도 위험할 수 있어요. 다들 아시죠? 불법 시스템 사용으로 시공간 붕괴가 발생했던 사건은?”
클라인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생물을 사육하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던 쥬튜버, 크로노.
크로노는 지금 클라인이 하는 것처럼 콘셉트를 잡고 시스템을 사용한 차원항을 꾸몄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회귀자’였다.
1회 차, 2회 차, 3회 차…….
횟수를 거듭하면서 달라지는 인간의 행동을 시리즈물로 만들며 많은 구독자를 확보한 크로노였지만.
그 끝은 961,123회 차를 겪는 동안 차원항을 탈출할 방법을 찾아낸 인간에 의해서 크로노가 중태에 빠지며 끝이 났다.
경찰의 조사 결과, 크로노가 사용하던 시스템은 정식으로 허가받은 게 아닌 불법적으로 개조된 시스템이었던 것이 드러났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시스템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정품을 쓰셔야 해요. 자, 잡설이 길었고, 시스템을 인간에게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하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클라인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의 습성을 설명했다.
“이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인간들 중에는 시스템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어서 주의해서 사용해야 해요.”
가끔 그런 인간들이 있다.
시스템을 설치하면 시스템에 경기를 일으키는 인간들.
그런 인간들은 보통 시스템뿐만이 아니라 회귀, 환생, 빙의 시스템에도 거부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덜 받으라고 설치한 시스템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 인간들이 나타난다.
“그래서 시스템은 주의해서 사용해야 해요. 지구산 인간이 시스템에 거부감을 드러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주의하는 게 나쁘지는 않겠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클라인이 수많은 시스템 중에서 한참을 고른 시스템.
비록 지구산 인간은 사람이 아닌 애완 생물이지만, 클라인은 마치 데이트 때 연인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 제가 고른 시스템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네요!”
* * *
“내가! 왜! 여기서! 이 지랄을 해야 하는데!!”
지금껏 쌓여 온 울분이 폭발한 탓일까?
무오 앞에서 추하게 울어 젖히던 나는 이제 평화롭게 우는 무오에게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이딴 곳에 사람을 던져 둘 거면! 뭐라도 쥐여 주든가! 어!!”
그래.
예를 들어 상태 창이라든가.
상태 창이라든가.
상태 창이라든가.
웹 소설의 정석이잖아?
어?
“상태 창! 빌어먹을 상태 창! 스테이터스 창! 스테이터스 오픈! 상! 태! 창!”
분노를 담아 상태 창을 잔뜩 불러 보지만 당연히 상태 창이 내 눈앞에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젠장, 가지고 놀 거면 적어도 뭐라도 좀 쥐여 달라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가지고 놀아도 재미없을 거 아냐?
짜증을 가득 담아 퍽, 하고 소팽이를 걷어차 보지만 소팽이는 무오, 하고 울어 댈 뿐 도저히 움직일 것 같지 않았다.
“상태 창 내놔!!”
억지와 분노를 가득 담아 허공에 소리친 바로 그 순간.
퐁.
허공에서 무척 낯익은 형상의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흔히 우리가 태블릿 PC라고 부르는 그거.
바닥에 떨어진 태블릿은 부드럽게 바닥에 튕기더니, 내 앞에 떨어진 상태로 전원이 켜졌다.
이건 도대체 뭐야?
의아해하며 태블릿을 주워 들고 태블릿의 화면을 확인해 본다.
[Liquid 시스템 Ver.1.05.1]
-서바이벌 가이드-
서바이벌 가이드?
태블릿에 쓰인 글씨를 읽은 내 입에서 저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계속 속으로 뭔 서바이벌 다큐를 찍게 할 생각이냐고 욕했는데, 진짜로 그럴 생각이었던 거야?
아니, 그런 짓을 할 거면 나 같은 방구석 백수 새끼 말고 다른 사람을 납치하라고.
찐따가 발버둥 치는 모습은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텐데.
아니, 그것보다 이제 와서 갑자기 이런 걸 쥐여 주는 건 도대체 뭔데?
그래도 이제라도 이런 걸 줬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서바이벌 가이드라.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는 거지?
태블릿의 표면을 터치하자 화면에 가상 키보드가 떠오르며 검색창이 떠올랐다.
[검색 : ]
검색창 말고는 다른 메뉴가 보이지 않는데.
키워드를 입력해서 정보를 검색하는 방식인 걸까?
시험 삼아 검색창에 ‘물’이라고 입력을 해 봤다.
그러자 태블릿 PC 화면에 나타난 건.
[물]
-대부분의 인간형 생명체*들의 생존에 필요한 액체. 하지만 몇몇 생명체*에겐 극독으로 작용한다.
대략 단편적인 정보와 함께 쭉 이어지는 온갖 정보들.
물의 화학식이니, 물이 특산품인 행성이니, 대부분 나에겐 쓸모없는 정보였다.
그런데 여기 이 각주는 뭐지?
의아해하며 인간형 생명체에 쳐진 각주를 클릭하자.
[생존에 물이 필요한 인간형 생명체 목록]
거의 스크롤바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 항목이 튀어나왔다.
아, 뭔지 알겠다.
나X위키구나?
이게 도대체 어떤 식의 장치인지 대충 이해한 것 같다.
잠깐, 그럼 검색어는 정확한 이름을 입력해야만 검색되는 건가?
한번 시험해 볼까?
[검색 : 물을 구할 수 있는 장소]
적당히 이렇게 검색하면 호수나 강으로 리다이렉트되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검색어를 입력했지만, 결과물은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은 것이었다.
[가장 가까운 담수지]
화면에 나타난 것은 근처에 호수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는 나침반이었다.
오오.
이거 편리한데?
그냥 적당히 내가 원하는 걸 검색만 하면 알아낼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이다.
“그래. 이런 거라도 줘야지, 진짜.”
투덜거리며 태블릿을 들어 올리자, 동굴 안에서 뒤척거리는 소팽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는 모습을 보니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내 모습을 보던 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저걸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끌어내지?
태블릿, 그러니까 만능 사전에 나와 있으려나?
으음…… 그러니까…….
[검색 :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덩어리 끌어내는 법]
-검색 결과 없음
음.
당연히 이런 식의 검색어로는 나오지 않겠지.
그럼 뭐 어떻게 해야…….
“응?”
만능 사전을 만지작거리던 내 손가락에 볼록 튀어나온 장치가 느껴졌다.
이건 카메라?
뭐, 태블릿 PC면 당연히 달려 있겠지만.
잠깐, 카메라가 있다면 이걸로 촬영도 할 수 있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검색창의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렸더니.
“오, 켜졌다!”
갑작스럽게 카메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검색 모드]
그래, 역시 이런 기능이 있을 줄 알았다.
찰칵.
카메라로 소팽이의 모습을 촬영하자 곧바로 만능 사전에 검색 결과가 나타났다.
[무오]
-오르트 먼지구름이 원산지인 생명체. 애완 생물들의 먹이생물로 자주 이용된다.
오르트 먼지구름은 또 어디야?
어디 보자.
식성은 채식이고, 알을 낳아서 번식한다고?
진짜 달팽이였네, 이거.
몸에서 분비되는 점액은 척추 디스크 치료제로 쓰이고.
대중 매체 속의 무오?
이건 또 뭐야?
이런 건 필요 없고, 약점이나 내놔.
어딜 찌르면 저 달팽이 녀석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는지나 알려 달라고.
뭔가 쓰여 있는 정보는 엄청나게 많은데, 실질적으로 내게 도움이 되는 정보는 거의 없는 기분이다.
아, 찾았다.
어디 보자.
무오 사냥은 갓 성인이 된 인간도 손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점액을 두르고 있지만, 마력을 실은 공격으로 손쉽게 돌파 가능한 수준이다.
잠깐.
마력?
마력이란 단어가 튀어나오고, 그 이후의 서술은 전부 마력을 가진 인간을 기준으로 작성된 듯 보였다.
아니, 잠깐만.
마력이 뭔데?
그거 어떻게 쓰는 건데?
내가 아는 그 마력이 맞아?
마력을 이용한 공격이니, 화염 마법이니, 그런 거 못 쓴다고.
무오 챌린지는 또 뭔데?
무오를 다양한 방식으로 죽이는 게 리베리아 행성에서 유행했다는 건 내가 알 바 아니고요.
마력이 없어도 저걸 쉽게 죽이는 방법을 좀 알려 달라고.
그래도 지금까지 써진 서술로 추리를 해 보자면.
타격 공격으로는 제대로 된 대미지를 입힐 수 없고.
마력을 담은 창으로 무오의 머리를 꿰뚫어 몸 안의 심장을 터트리는 게 초보자에게 추천하는 사냥법?
마지막으로 화염 마법에 약하다라.
자!
여기서 판타지 요소를 전부 빼놓고 해석해 보자.
창으로 심장을 찌르면 죽는다.
이건 너무 당연한 말이고.
불에 약하다?
너무 당연한 소리를 써 둔 것 같지만, 이것 말고는 도저히 모르겠다.
슬쩍.
시선을 여전히 빈둥거리는 무오에게 향했다.
정말 기괴하게 생겨서, 도저히 내가 이길 수 없는 미지의 괴물처럼 보인다.
내가 뭘 해 봤자 계속 이 자리에 죽치고 앉아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도 어쩌겠어?
해야만 하니까,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동굴 바깥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창부터 만들어 보는 것이다.
만능 사전에 나무창을 만드는 방법을 검색해서 그대로 따라 해 본다.
그러자 조잡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쓸 만한 나무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좋아, 이대로 이걸 저 녀석의 머리에 꽂아 넣으면 된다 이거지?
무오의 머리에 창을 꽂아 넣는 이유는 무오의 심장이 머리에 있기 때문.
혹시 반격해 오진 않겠지?
아냐, 사전에는 공격을 받아도 반격을 할 능력이 없다고 했잖아.
겁먹지 말고, 침착하게 찌르기만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날백수 생활을 하던 버러지여도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치?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만만하게 무오 앞에 섰지만.
“무오오?”
자신보다 거대한 생물 앞에 선다는 것이 이렇게 위압감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괜찮아, 괜찮아.
무오는 내게서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나는 사전에서 본 사진대로 무오의 머리에 창을 가져다 대고.
푹! 하고 창을 찔러 넣었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어째서 사전에 마력을 담은 공격을 가하라고 쓰여 있었는지였다.
무오의 점액은 질긴 고무 막처럼 쉽사리 나무창을 막아 냈다.
내가 물리법칙에 대해서 잘 알진 못해도 아무튼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듯한 감각.
분명히 뚫려야 할 힘으로 찌르고 있는데도 무오의 피부와 점액은 도저히 뚫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힘이 부족한 건가 싶어서 온 체중을 실어서 무오의 머리를 찔러도.
분명히 제대로 힘이 실리는 감각이 나는데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원래 이 정도로 찔러 대면 창이 부러지든가 머리가 박살 나든가 해야 하는 게 아냐?
무오는 내가 머리를 찔러 대는 와중에도 마치 나를 비웃듯 태평하게 울어 젖힐 뿐이었다.
안 되는 거야?
역시 날백수 생활이나 하던 버러지는 고작 이런 것도 못하는 거야?
평소라면 여기서 포기했을 거다.
이 빌어먹을 곳에 끌려오기 전이라면 이런 짓을 하지도 않았겠지만 했어도 금방 포기했을 거다.
그렇지만.
화난다.
짜증 난다.
지금의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내가 이런 짓을 해야 한다는 상황이.
뭘 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상황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상황이.
간신히 얻은 집을 빼앗기고도 추하게 울기만 했다는 사실이.
사실 그냥 다 짜증 난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 네가 그렇게 질겨?
한판 붙어 보자.
이 자식아.
네가 이기는지, 내가 이기는지.
6화 마력이 없어도 불을 피우는 인간의 기술?! 쥬튜브 최초 공개!
“제발 죽어!!”
“무오~.”
전력을 다해 무오의 피부를 뚫어 보려 했지만, 무오의 피부는 전혀 뚫리지 않았다.
역시 내 힘으로 정면에서 뚫는 건 무리인 걸까?
그렇다고 다른 부위를 공략해 봤자 결과는 똑같다.
무오의 피부와 점액을 뚫지 못하면 상처를 내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렇다면 이제 공략 방법을 바꿔야 할 차례다.
사전에 쓰여 있던 무오의 공략법.
그중에는 화염 마법을 사용하라는 방법이 있었다.
내가 마법을 쓰지 못한다는 건 둘째 치고.
화염 마법으로 잡으라는 말은 무오가 불에 약하다는 뜻과 같은 게 아닐까?
원래 뭐든지 매가 약이라고 했지만, 매가 통하지 않는 상대는 불태우라는 말도 있었다.
그래, 불이다.
대대로부터 내려온 인간이 짐승을 이길 수 있게 해 준 최종 병기를 꺼내는 거다.
그런데 어떻게?
라이터도 없고, 부싯돌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맨손으로 불을 피워야 한다는 건데, 내가 알고 있는 건 단지 나무 막대기와 나무를 서로 비비면 불이 태어난다는 것뿐이다.
거의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하고 물어보는 아이 수준의 지식이네.
하지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나에겐 만능 사전이 있다는 점이다.
불 피우는 법. 검색.
“어?”
불 피우는 법을 사전에 검색하자, 뭔지 모를 문자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뭐야? 이건?
[기초 화염 마법 영창]
뭐야?
화염 마법 영창?
기초 화염 마법 영창이라고 써진 제목 아래로는 각종 문자가 여럿 나열되어 있었다.
-1. 파이어
-2. 파이어 볼트
-3. 화염구
뭐야, 뭐야?
마법 영창이야?
설마 이것대로 외우면 나도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야?
심지어 어떻게 영창을 발음하는지까지 친절하게 잘 설명되어 있다.
그래, 이런 전개가 돼야 독자들이 고구마라고 하지 않지!
아니, 세상에 이세계물인데 마법 하나 쓰지 못하는 놈이 주인공인 소설이 어디 있어?
마법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린다.
좋아, 손을 장작더미에 뻗고 사전에 써진 대로 영창을 외우면.
“이그니스 루버 투 이그니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여, 영창이 잘못된 걸까?
“이그니스 루버 투 이그니스! 이그니스 루버 투 이그니스! 이그니스 루버 투 이그니스?”
뭔가 남에게 보이면 굉장히 부끄러운 광경일 것 같은데.
몇 번을 시도해 봐도 화염 마법은 시전되지 않고 그저 허공에 내 부끄러운 목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래, 이럴 줄 알았어.
나 따위가 무슨 마법을 쓰겠다고.
아, 갑자기 우울해지는데.
아냐.
밝게 생각하자고.
아직 내 삶이 판타지 배틀물이 아니라 일상물이란 증거일 수도 있잖아?
이미 현판은 진작에 벗어난 것 같지만.
그 뒤로 나는 계속해서 만능 사전을 찾아보며 손쉽게 불을 피울 방법을 찾아봤지만.
검색 결과는 죄다 빌어먹을 마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방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크롤을 거의 끝까지 내리고서야 우드 드릴로 불을 피우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근처의 딸기 덤불에 열린 딸기들로 잠시 배를 채우고.
나는 동굴 근처에 마련한 모닥불에 불을 피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적당한 나무판에 대고 나뭇가지를 문지른다는 정말 무식한 방법.
득득득득득.
듣기 힘든 마찰음이 울려 퍼지고, 내 몸에서는 땀이 비 흐르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윗도리를 훌렁 벗어 던지고 나무를 문지르고 있었다.
더 이상은 무리.
이제 그만하고 쉬고 싶어.
이렇게 해서 정말 불이 붙는 거야?
몸이 부들부들 떨려 오며 그만하고 싶다고 투정 부린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둔다면 아마도 난 다시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을 것 같다.
버러지가 뭔갈 해 보겠다고 마음먹는 건 그리 흔히 있는 일이 아니거든.
분노든 뭐든 무언가를 원동력 삼아 뭔가 해 보겠다는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뭔갈 이뤄 내야 한다.
그래야 또다시 뭔갈 하고 싶은 마음이 들 테니까.
벅벅벅벅벅.
그렇게 팔이 떨어질 때까지 나무를 문질러 댄 결과.
“붙었다! 으아아아!”
아주 자그마한 불씨가 퐁, 하고 피어올랐다.
내가 이뤄 낸 성과에 감격할 틈도 없이 나는 서둘러 불씨에 불쏘시개를 먹여 가며 모닥불을 피웠다.
원래, 보통 뭔가 이뤄 내면 마음이 개운해진다는 표현을 자주 쓰잖아?
전혀 아닌데?
내가 왜 이딴 고생을 해야 하나 더 빡치는데?
미리 만들어 둔 나무창을 모닥불에 집어넣고 담금질한다.
그러니까 그 새끼가 문제다.
지금 동굴 안에서 뒹굴거리는 무오 새끼.
그리고 그 무오 새끼를 여기 풀어놓은 정체 모를 사이코패스 새끼.
분명히 지금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걸 보며 처웃고 있을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단단히 독을 머금고 티셔츠의 팔 부분을 찢어서 창끝에 감았다.
화르륵.
모닥불 속에 창끝을 집어넣어 불을 붙이고 무오 앞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방에서 나와, 맞짱 깔 새꺄.”
당연하게도 무오는 내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방 안에서 뒹굴고 있었다.
마치 반격 의지가 없다고 두 팔 벌려 광고하는 듯한 무방비한 모습.
그 모습이 어째서인지 방 안에 있었을 때의 나를 떠올리게 해서.
뭔가 기분이 더 나빠졌다.
창끝을 확실히 겨누고.
노려야 할 곳이 어딘지 제대로 이해한 채로.
무오의 머리를 향해 창끝을 뻗자, 창끝에서 불타던 불씨가 무오의 점액을 순식간에 녹여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주 약한 불꽃인데도 무오를 감싼 피부는 손쉽게 녹아내렸고.
훤히 드러난 연약한 무오의 살점을 나무창이 그대로 파고들어 갔다.
무오는 자신이 죽어 가고 있는데도, 그 누구나 하는 저항조차 하지 않고 그저 바닥에서 뒹굴거릴 뿐이었다.
진짜 어떻게 이런 생명체가 있지?
볼 때마다 화가 다 날 정도네.
그대로 나의 창은 무오의 심장을 꿰뚫고, 무오는 죽음을 맞이했다.
첫 싸움.
첫 사냥은 그렇게 너무나 맥 빠지게 끝이 났지만.
그다지 기분은 좋지 않았다.
* * *
“여러분, 봤어요? 봤죠? 방금 보셨죠?”
최대한 지구산 인간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클라인이 선택한 것은 리퀴드사의 [만능 사전] 시스템이었다.
그 정도라면 간섭을 최소화해서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리라 생각했으니까.
클라인의 생각대로 지구산 인간은 자신이 보내 준 시스템을 보고 그리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
“와, 바로 사용법을 파악했네요? 우와, 이야. 이게 인간을 키우는 맛이죠. 캬~.”
시스템이든 마법이든 뭐든, 인간은 대부분의 것들을 자신의 도구로 삼을 수 있다.
물론 다른 생물들도 도구를 이용하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은 도구의 생물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아무리 클라인이 인간이 이용하지 못할 힘이나 물건이라고 생각해도.
인간들은 언제나 이용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렇게 도구를 이용할 방법을 찾아가는 모습은 마치 클라인의 종족이 태어날 때 거친다는 발달기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 때문에 인간을 좀 징그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클라인은 오히려 그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시장에서는 마력이 높은 인간종이 더욱 비싸게 팔리고 인기도 높지만, 클라인은 인간종의 진가를 보려면 마력이 별로 없는 인간을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지구산 인간의 존재를 알게 되자 무리해 가며 구한 것이고 말이다.
마력이 전혀 없는 인간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행동할지 기대되지 않는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도구를 사용할지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기대대로 지구산 인간은 곧장 도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저거 보여요? 나뭇가지를 꺾어서 일종의…… 창? 꼬챙이? 그런 걸 만드는 거요. 와, 대박. 너무 귀엽다…….”
창을 만들어 낸 인간은 그대로 무오를 향해 덤벼들었다.
클라인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열정적으로 지구산 인간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힘내라! 힘내라! 힘! 오오, 바로 약점을 공략하는데요? 시스템을 사용한 걸까요?”
하지만 그런 클라인의 응원이 무색하게도 지구산 인간은 무오 사냥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
그 누구도 아닌, 무오를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클라인은 탄식하며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저도 이 정도로 지구산 인간의 전투력이 낮을 줄은 몰랐거든요? 저 정도면 전투력이 낮은 걸 넘어서 거의 없는 수준인데요?”
마력이 없어서 그런 거려나?
클라인은 그렇게 나름대로 결론 내리며 시스템을 더 설치해야 할지 고민했다.
원래 보고자 했던 건 마력이 없는 인간이 어떻게든 상황을 헤쳐 나가는 거였는데, 지금 이대로라면 생존은커녕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굶어 죽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마력을 보조해 주는 시스템을 설치해야 하나?
그렇게 클라인이 고민하던 중, 인간이 독특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오와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나뭇조각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뭘 하려는 걸까요? 제가 보기엔 뭔가…… 불쏘시개를 모으는 것 같은데요?”
불쏘시개를 모으는 것은 일정 지성을 만족한 생명체들을 차원항에 풀어놨을 때 공통으로 발생하는 모습.
그렇지만 지구산 인간에겐 마력이 존재하지 않아 불을 피우는 게 불가능할 텐데?
클라인은 의아해하면서 인간의 행동을 쭉 관찰했다.
그러자 지구산 인간은 어디선가 나무판자와 나뭇가지를 가져와 거세게 비비기 시작했다.
“어? 지금 도대체 뭘 하는 거죠?”
불쏘시개를 모았다는 건 불을 피우겠다는 건데, 나무판자와 나뭇가지를 마찰시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걸까?
무슨 종교적 의미를 가진 의식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겠지.
“신을 부르려는 걸까요? 지구에도 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어쩌면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할 뿐, 지구에도 신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클라인은 혹시나 인간이 좌절하지 않도록 자신이 신을 대신할 준비를 하며 계속해서 인간을 관찰했다.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괜히 체력만 낭비하고 있는 거 같은데……?”
클라인이 인간의 행동에 다시 한번 의문을 품은 그 순간, 무언가가 벌어졌다.
화륵.
마법처럼 조그마한 불꽃이 번적이더니 이내 커다란 불길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 어? 저건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마력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지구산 인간이 마법을 사용했을 리도 없다.
그렇다면 저건 순수한 물리현상이라는 건데.
그러고 보니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다.
마찰열을 이용해서 마력을 쓰지 않고 불을 붙이는 방식이었었나?
전에 적당히 쥬튜브를 보다가 그런 영상을 봤었던 기억이 난다.
“저렇게 불을 붙이는 방식을 알고 있었던 걸까요? 대단하네요. 참.”
지구산 인간이 자세한 물리법칙을 이해하고 하는 행동은 아니겠지만, 마찰열을 이용해 불을 붙이는 법을 알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그래, 이런 장면을 보고 싶었던 거였다.
클라인은 지금껏 다른 생물들을 사육하며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흥분했다.
“신기하죠? 마력을 쓰지 않고도 저렇게 불을 피울 수 있다니!”
이 영상을 쥬튜브에 업로드하면 분명 반응이 폭발적일 것이다.
이번 영상으로 돈이 들어오면 인간에게 뭔가 맛있는 거라도 사 줄까?
한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쁠 텐데, 이왕이면 고향 행성에서 인간이 먹던 음식을 구해 줘야겠다.
분명히 이 지구산 인간의 출신지가…… 한국이라는 지역이었나?
7화 인간에게 특식을 넣어 줬어요! 과연 인간의 반응은?
“안녕하세요~ 클라인이에요! 오늘은 우리 지구산 인간을 위해서 제가 특식을 준비했어요. 쟈쟈쟌~.”
쥬튜브에 업로드한 지구산 인간 영상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영상이 올라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벌써 아류 영상들이 나타날 정도였으니까.
뭐, 그래 봤자 아무도 클라인처럼 지구산 인간을 구할 수가 없어서 리베리아산 인간으로 흉내 낸 수준에 그쳤을 뿐이다.
자신처럼 모험가들 쪽에 연줄이 없다면 지구의 정보를 얻는 것조차 불가능한 덕분이다.
그 덕분에 요즘 성장세가 시들시들하던 클라인의 쥬튜브는 그래프가 하늘을 뚫어 버렸다.
“아직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을 인간을 위해서 제가 고향 행성에서 먹던 생물을 준비해 봤어요.”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지구산 인간을 데려오는 데에도 그렇게 큰돈이 들었는데, 당연히 지구산 생물을 데려오는 데도 엄청난 돈이 들었다.
이걸 그냥 먹이생물로 줘 버리기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부담되지만.
지구산 인간이 벌어다 준 금액이 얼마인데, 이 정도는 쓸 수 있다고 생각한 클라인이었다.
지금도 올라가는 영상의 조회 수를 보기만 하면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아도 배가 부른데, 당연한 것 아닌가?
클라인은 카메라 앞에 지구에서 공수해 온 생명체를 들이밀었다.
“쟈잔~ 소개합니다. 지구 고유종, ‘개’예요.”
몸을 잔뜩 움츠리고 낑낑거리는 강아지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클라인은 그런 강아지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솔직히 좀 징그럽다고 해야 하나? 특히 울음소리가 좀 소름 끼치긴 하네요.”
클라인의 감각기관을 교란하는 듯한 날카로운 울음소리.
거기에 전신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냄새.
마치 클라인을 괴롭히려고 만들어진 것처럼 단점만 모아 놓은 것 같은 생명체다.
도저히 클라인이 좋아하려고 해도 좋아할 수가 없는 생명체였다.
분명히 클라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백이면 백 같은 반응을 보이겠지.
“으으, 아무튼. 제가 왜 굳이 이 개를 데려왔냐! 제가 데려온 지구산 인간은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서식하던 인간이라고 하더라고요.”
지구에 대해서 대중에 알려진 정보는 원시적인 문명이 형성되어 있고, 인간이 생태계의 최상위에 있다는 것 정도의 단편적인 지식뿐이다.
이제 막 원시 단계를 통과하는 수준인 것 같다는 이론도 있지만, 글쎄?
클라인은 마력도 쓰지 못하는 인간들이 그렇게 문명을 발전시켰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현재 지구는 학계의 관심을 가득 끌고 있는 행성이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겠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인간들의 사념파를 잠시나마 포착하는 데 성공했으니 과학자들이 완전 관측에 성공한다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그런데 제가 최근에 발표된 학술 자료를 보니! 한국이라는 국가의 인간들은 개라는 생물을 보양식으로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클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핀셋으로 개를 들어 올려 차원항 안으로 집어넣었다.
“인간이 제 선물을 좋아했으면 좋겠네요!”
언제나 그렇듯 호의를 가득 담아서 말이다.
* * *
무오는 소와 달팽이가 합쳐진 듯한 생명체다.
하지만 그 맛은 둘을 섞은 것도 아니고, 둘 중의 하나도 아닌 듯하다.
내가 달팽이를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이런 맛은 아니겠지.
동굴 밖에 피운 모닥불에 적당히 무오의 살점을 구워서 먹어 보자 정말 참 기괴한 맛이 튀어나왔다.
아무리 구워 봤자 고기 자체에 배어 있는 짠기가 빠지지도 않고.
구운 고기가 워낙 질겨서 고무를 씹는 것같이 느껴진다.
굽기 전에는 맨손으로도 파낼 수 있을 정도로 살갗이 부드러웠는데.
이 모든 걸 다 총합해서 무오의 맛을 설명하면.
더럽게 맛없다.
끝.
무오를 쓰러트리고 나는 동굴을 거점 삼아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다.
식사는 남은 무오 고기와 딸기로 적당히 때우고.
다시는 이번처럼 은신처 내부로 다른 생물체가 침입하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 방비를 굳건하게 다졌다.
나뭇가지를 대충 적당히 엮은 부실한 울타리지만 없는 것보단 났겠지.
그렇게 울타리를 만들고 난 뒤 내가 무엇을 했냐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뭔가를 이뤄 내면 성취감이 들고, 그 성취감이 다른 행동을 하게 할 원동력이 된다고 하던데.
성취감이 부족한 건지, 내가 버러지여서인진 몰라도 나는 도저히 뭔가 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솔직히 울타리도 만들고, 불도 피우고 무오도 잡았는데.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잖아?
나는 가끔씩 모닥불이 꺼지지 않도록만 유지하며 적당히 무오의 시체를 파먹으며 동굴에 드러누워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는데 좀 쉬어야지.
사람이 너무 앞만 보고 달리면 번아웃이 온다고.
아무튼 그런 거다.
무오를 잡고 나만의 집을 얻은 지 3일째.
나는 여전히 시간을 낭비하며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충전하고 있었다.
도저히 동굴 밖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다.
밖으로 나가면 별의별 괴생명체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다.
있을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로 돌아다니고 있겠지만.
이번에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건 녀석이 무척 약해 빠진, 말 그대로 세계관 최약체여서 그런 거다.
그런데 난 그런 세계관 최약체와 사투를 벌였다.
세계관 최강자와의 싸움이 아니더라도 일반인 수준을 데려오면 무조건 패배할 자신이 있다.
싸우기 싫다.
계속 이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안전할 거야.
이러고 있다 보면 나를 데려온 사이코패스도 흥미가 떨어져서 집에 돌려보내 주지 않을까?
이젠 싫어.
다 싫어.
먹을 걸 구하는 것도 싫고, 괴물들이랑 얼굴을 맞대는 것도 싫어.
원래부터 싫었지만, 아무튼 모든 게 싫어.
그냥 이대로 죽어 버리는 게 편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3일 전에 호수에서 떠다 온 물을 마시려던 찰나였다.
“왈! 왈! 왈왈!”
어디선가 매우 낯익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떨어지고 다시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짐승의 울음소리.
뭐지? 환청인가?
내가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동굴의 입구를 바라본다.
“왈! 으르르르…… 왈왈!”
내가 멍하니 동굴 입구를 바라보는 와중에도 울음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더욱 선명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가 뭘 할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굳어 있던 순간.
“왈! 왈왈!”
동굴 안으로 갈색의 푹신한 털 뭉치가 뛰어 들어와 내 품에 달려들었다.
몽실몽실.
푹신푹신한 솜사탕 같은 털 폭탄을 지닌 자그마한 강아지.
털 뭉치의 정체는 흔히들 포메라니안이라고 부르는 강아지였다.
아니, 포메라니안이 여기서 왜 나와?
“어, 어…….”
“왈왈! 왈!”
내가 포메라니안의 등장에 당황하고 있는 사이 포메라니안은 미친 듯이 동굴 안을 뛰어다녔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동굴 바깥을 살펴보지만 내가 만든 볼품없는 울타리만 보일 뿐, 다른 누군가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시 그건가?
나를 납치한 그 사이코패스가 뭔 생각인지 몰라도 포메라니안을 던져 준 걸까?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와 털썩 바닥에 주저앉자 동굴을 뛰어다니던 포메라니안이 내게 달려와 내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았다.
“크헥, 끼잉…….”
3일간 씻지도 않고 동굴 안에 틀어박혀 있어서일까?
포메라니안은 재채기하며 내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갔다.
내 몸에서 강아지도 기겁할 만큼 심한 냄새가 나나?
냄새가 나는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정말 씻긴 해야 하나 보다.
그런데 씻으려면 동굴을 나가야 하잖아?
멈칫.
발걸음이 동굴 입구에서 멈춰 섰다.
밖에 나가면 위험할 거 같은데.
아직 괜찮잖아?
아직까진 괜찮아.
먹을 것도 남아 있고.
아직은…….
“왈! 왈왈!”
그렇게 망설이던 나를 마치 타박하듯 포메라니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포메라니안은 나를 지나쳐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문득 얼떨결에 포메라니안의 뒤를 쫓았고.
정말 오랜만에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까도 확인했지만, 동굴 밖에는 정체불명의 괴물도 미치광이 살인마도 없었다.
그저 내가 만들어 낸 울타리와 울타리 안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포메라니안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뭘 하던 걸까?
울타리 안을 뛰어다니던 포메라니안과 눈이 마주치고, 포메라니안은 마치 문을 열라는 듯 울타리를 벅벅 긁어 댔다.
울타리를 치우자마자 포메라니안은 미친 듯이 달려서 숲속으로 사라져 갔다.
포메라니안이 사라지고 남은 건 포메라니안이 남기고 간 대량의 털 뭉치뿐이었다.
일단 씻을까.
나는 동굴 밖에 세워 둔 나무창을 한 손에 단단히 쥐고 호숫가로 이동했다.
호숫가에 도착하자 변함없이 폭음을 일으키며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새우들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겪었던 건 꿈도 망상도 아니다.
모두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 저 포메라니안은 뭘까?
환각?
그런 생각을 하며 적당히 호수에서 몸을 씻는 사이 또다시 포메라니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조금 떨어진 호숫가에서 얌전히 물을 마시는 모습이다.
모든 게 낯선 장소에서 유일하게 낯익은 생명체가 활보하고 있으니 더더욱 현실감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몸을 다 씻고 동굴로 돌아가려 하자, 어느새 다가온 포메라니안이 킁킁거리며 내 냄새를 맡았다.
이번에는 합격점에 들었는지 포메라니안은 나와 몇 발자국 사이를 두고 내 뒤를 따라왔다.
동굴로 돌아와 짚더미에 몸을 뉘고 하품을 하는 포메라니안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이 녀석은 환상도 환각도 아니구나.
환상도 환각도 아니라면, 뭔가를 먹겠지?
무오 고기는 먹으려나?
시험 삼아 무오 고기를 조금 뜯어서 포메라니안에게 줘 본다.
“먹어 볼래?”
포메라니안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 보더니, 잠깐 입에 넣고는 곧바로 뱉어 버렸다.
뭐, 그럴 거 같긴 했다.
솔직히 이건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니다.
진짜 먹을 게 없을 때가 아니면 먹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뭔가 새로운 식량을 구해 와야 하는데.
슬며시 포메라니안의 작은 몸집을 바라본다.
저 몸으로 알아서 먹을 걸 사냥해 올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전에 봤었던 그 육식 토끼들한테도 질 것같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녀석이 먹을 음식도 내가 구해 와야 한다는 건데.
절대로 사냥 같은 위험한 짓은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있나?
해야만 하는데.
“같이 나갈래?”
“왕!”
그렇게 다짐하며 만능 사전과 나무창을 들고 다시 한번 동굴 밖으로 나선다.
숲 안으로 들어갈까?
문득 이빨을 다 드러내고 내게 덤벼들던 토끼의 모습이 떠오른다.
음.
아직 내가 토끼랑 싸워서 이길 것 같진 않으니까, 조금 만만한 녀석들로 하자.
호수에서 딱딱거리며 튀어 오르던 새우들.
지구의 새우 크기가 아니라, 거의 물고기 수준이더니만.
“너 해산물은 좋아하냐?”
“왕?”
뭐, 대충 구우면 먹을 수 있겠지.
생존 쥬튜브에서 가장 많이 하던 말 중의 하나가 뭔지 모르면 일단 구우라는 거였으니까.
그리고 고작 새우인데, 그렇게 잡는 게 어렵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곧바로 새우잡이에 나섰지만.
곧바로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전까지 수면에서 뛰어오르던 건 단순한 장난이었던 걸까?
내가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나무창을 던져 넣으려고 해도, 새우는 내 움직임을 눈치챈 순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역시 이세계.
새우 하나 잡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하지만 괜찮아.
나에게는 뭐든지 알고 있는 만능 사전이 있거든.
새우가 튀어 오르는 타이밍에 맞춰 만능 사전의 카메라 기능을 작동시키자, 만능 사전은 가뿐히 새우의 정체를 찾아냈다.
[폭탄꼬리새우]
-원산지는 리베리아 행성. 주로 담수에 서식하며 꼬리에서 폭발을 일으켜 그 반동으로 헤엄친다.
뭔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아니라, 진짜 꼬리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거였어?
아니, 대중 매체 속의 폭탄꼬리새우는 전혀 궁금하지 않고요.
내가 원하는 건 저걸 손쉽게 잡는 방법이 있냐는 건데.
쭉 만능 사전을 훑어봤지만 내가 마법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면 쓸모없는 내용만 가득하다.
그나마 하나 건진 게 통발로 새우들을 잡는 방식인데.
아무리 봐도 이 주위의 나무들로 사전에서 설명하는 통발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어디 대나무처럼 유연한 나무가 없나?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뭇가지들을 떼어 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보려 해도 도저히 통발이 만들어지지 않고.
진짜 이건 대나무같이 잘 휘어지는 나무가 없으면 답이 없겠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대나무를 검색해 봐도 검색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지?
어떻게 통발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통발 제작법의 글귀가 다른 글씨와 색상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이건.
통발 제작법 글귀를 누르자 만능 사전의 화면에는 마치 서바이벌 게임의 제작 레시피 같은 화면이 떠올랐다.
[뿌리고무나무] - 감지됨
[흔들갈대나무] - 미감지
.
.
.
수많은 나무의 항목들이 제작 레시피로 제시됐지만, 그 많은 나무들 중에서 내가 발견할 수 있는 나무는 단 하나였다.
뿌리고무나무?
이건 또 무슨 나무야?
[뿌리고무나무]
-원산지는 마스르 행성. 부드러운 뿌리로 거친 땅 깊숙이 파고 들어갈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서식지]
-340m
만능 사전이 표시하는 뿌리고무나무의 서식지는 숲 한복판이었다.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는 게 조금 떨렸지만, 나는 각오를 다지며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번과는 달리, 자그마한 네발 생물과 함께 말이다.
8화 개를 선물 받은 인간의 반응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반전!
통통통통.
포메라니안은 무척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숲속을 돌아다녔다.
포메라니안이 잔뜩 신난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해서 만능 사전을 바라보며 목적지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렇게 숲속을 헤쳐 나간 지 몇 분이 흘렀을 무렵.
내 앞에 주위의 다른 나무들과 다른 모습의 나무들이 나타났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와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려 주는 만능 사전.
이게 그 뿌리고무나무인가 하는 뭔가냐?
생김새는 평범한 나무랑 그리 다른 게 없는데.
그냥 나뭇가지나 줄기가 다른 나무들에 비해 가늘다는 정도?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뻗어서 나뭇가지를 쓰다듬어 본다.
고무나무라고 해서 말랑말랑한 질감을 떠올렸지만, 말랑말랑하긴커녕 오히려 거칠거칠하다.
아무리 고무나무의 나뭇가지가 다른 나뭇가지에 비해 얇다곤 해도 이걸로 통발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 만능 사전을 켜자 내가 놓치고 지나갔던 항목이 눈에 띄었다.
“뿌리의 유연성 때문에 공예품을 만들 때 주로 이용됨. 과도한 벌채로 원산 행성에서는 보호종으로 지정…….”
아하.
그러니까 나뭇가지가 아니라 나무뿌리로 통발을 만든단 거지?
적당히 힘을 주면 뽑히겠거니 하며 나는 고무나무를 잡아당겼지만, 고무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마 하지만 설마 여기도?
“고무나무에 무속성 마력을 흘려 넣으면 손쉽게 채취…….”
그럼 그렇지.
이 빌어먹을 사전에서 마력 타령이 왜 안 나오나 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마력 하나 없는 버러지니까.
직접 몸으로 고생해서 채취하는 수밖에 없다.
동굴 밖으로 나오기 전에 미리 든든하게 무오를 챙겨 먹고 나와서 다행이다.
불도 스스로 피웠는데 땅을 파는 정도는 간단하지.
나무창을 마치 삽처럼 활용해서 땅을 파 내려간다.
물론 당연히 나무 삽이 아니라 나무창이니 그리 땅이 손쉽게 파이진 않았지만 원체 땅이 부드러워서인지 적당히 파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 와서 맨바닥에 돌멩이가 굴러다니는 걸 본 적이 없네.
보통은 돌멩이가 섞여 있을 만도 한데 바위산 근처의 땅 말고는 돌멩이를 본 기억이 없다.
그 덕분에 맨손으로도 충분히 땅을 팔 수 있을 만큼 땅이 부드럽긴 하지만.
“왕! 왕왕!”
그런 내 모습이 함께 놀아 주려는 모습으로 보인 걸까?
포메라니안은 내 곁에 다가와 짖더니 나와 함께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나보다 네가 더 낫네. 야.”
“왕?”
그렇게 포메라니안과 함께 땅을 파자, 서로 엉기성기 얽혀 있는 고무나무의 뿌리가 드러났다.
이렇게 꽉 얽혀 있으니 도저히 뽑히지 않지.
이건 동시에 전부 다 뽑아내거나 중간을 잘라 내는 게 아니면 뽑아낼 수 없겠다.
계속해서 땅을 파다 보니, 나무창이 손보다 더 효율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나무창 대신 맨손으로 땅을 파 내려갔다.
포메라니안은 어느새 흥미를 잃었는지 근처에 앉아서 하품만 해 댈 뿐이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내가 두 번의 휴식을 더 취하고 나서야.
“으하, 됐다!”
나는 고무나무의 뿌리를 모두 캐낼 수 있었다.
고무나무의 뿌리는 그리 깊이 지하로 뻗어 있진 않았다.
많아 봐야 한 1m?
사전의 설명과는 달리 지면 얕은 곳에서 뿌리가 머무르고 있었다.
마치 묘목을 사 와서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그런 느낌이다.
그나저나 과연 고무나무의 뿌리는 무슨 느낌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무나무의 뿌리를 만지작거린다.
우와.
이거 좀 신기한데?
분명히 내가 만지고 있는 건 나무뿌리인데 플라스틱 호스를 만지는 듯한 감촉이다.
자, 그럼 이제 남은 건 뿌리를 잘라서 통발로 가공하는 일뿐인데.
잘라서?
손안에 쥐고 있는 나무뿌리를 힘을 주며 끊으려 해 본다.
하지만 부드러운 건 다이아몬드보다 부서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고무나무의 뿌리는 도저히 끊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돌로 적당히 주먹도끼를 만들어서 끊어 내야 하려나?
그럼 일단 동굴로 돌아가야겠네.
그냥 새우 좀 잡아먹겠다는데 왜 이렇게 준비해야 할 게 많은지. 거참.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며 고무나무를 들어 올리자 생각보다 무거운 무게에 숨이 턱 막혔다.
무게가 거의 쌀 한 포대는 되는 거 같은데?
그래도 들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기에 고무나무를 들어 올린 순간, 포메라니안이 숲 한구석을 바라보며 거세게 짖어 댔다.
“왈! 왈왈! 크르르…… 왈왈!!”
나에게 짖던 것과는 달리 명백히 적의가 가득 담긴 울음소리.
갑작스러운 포메라니안의 변모에 나는 표정을 굳히며 조심스럽게 나무창에 손을 뻗었다.
“치이잇? 치이이잇?”
나무창에 손을 뻗자 등장한 것은 이전 나에게 덤벼들었던 식인 토끼들이었다.
으으, 저 녀석들은 좀 그런데.
아직까지도 저 녀석들의 입가에 묻어 있던 내장과 핏물이 잊히지 않는다.
어차피 저 녀석들이 일반 토끼처럼 나무를 갉아 먹는 것도 아니니 나무를 놔두고 도망쳤다 돌아올까?
그렇게 생각하며 한 발 물러서려는 순간.
“크르르, 왈왈! 왈! 왈!!”
포메라니안이 갑자기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토끼들에게 달려 나갔다.
그냥 몸집 차이만으로도 상대가 안 되는데, 오히려 포메라니안이 토끼들에게 덤벼들다니?
내 머릿속에는 포메라니안이 갈기갈기 찢기는 미래만이 재생되고 있었다.
“잠깐……!”
그렇지만 토끼들은 쉽사리 포메라니안에게 덤벼들지 못하고 똘똘 뭉쳐서 포메라니안과 기 싸움을 벌일 뿐이었다.
“치이잇! 칫! 치잇!”
“왈! 왈왈!”
“치이이잇!”
내 예상과는 매우 다른 광경에 나는 넋을 놓고 그 광경을 지켜봤고.
이윽고 포메라니안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내 옆으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문득 포메라니안이 한 성격 하지만 굉장히 영악한 녀석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다른 소형견들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서 아무한테나 시비를 털고 다니는 느낌이라면.
포메라니안은 주인이 있으니 안심하고 시비를 털고 다니는 느낌이라고.
내가 포메라니안을 키워 본 건 아니지만, 쥬튜브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녀석, 지금 나 따위를 믿고 저 토끼들에게 시비를 턴 건가?
속으로 황당해하며 포메라니안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자 너무 뻔뻔하고, 천연덕스러우며 신뢰가 가득한 눈동자가 내 눈과 마주쳤다.
도대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의 뭘 믿고 저러는 걸까?
고작 강아지지만.
고작 강아지여도, 나를 믿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뒤로 물러서던 발걸음이 멈춘다.
발걸음이 멈추고 한 손에 들린 창에 힘이 실리고.
나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치이잇? 치잇!”
토끼들이 털을 곤두세우며 나를 위협해 보지만, 더는 토끼들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토끼들은 혼비백산하며 숲속으로 흩어지며 사라져 갔다.
“왕!”
그러자 포메라니안이 우쭐거리며 토끼들의 뒤통수에 대고 짖는다.
그 모습이 적잖이 귀여워서 한번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올렸다.
앙.
그렇지만 아직 쓰다듬을 허락할 사이는 아니라는 듯 포메라니안이 가벼운 입질로 내 손을 쳐 냈다.
피식.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한 번도 움직인 적 없던 입꼬리가 자연스레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나는 포메라니안과 함께 동굴로 돌아왔다.
곧장 짚 더미로 올라가 앉는 포메라니안 곁에서 고무나무의 뿌리를 다듬어 본다.
적당히 주위를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 서로 부딪쳐 본다.
적당히 부스러지는 것이 주먹도끼를 만들기 적당할 것 같다.
나는 돌들을 서로 부딪쳐 주먹도끼를 만들기 시작했고.
맨 첫날에 불을 피울 때처럼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하지만 그때보다는 더.
아주 조금이나마 체력이 더 나아진 것 같다.
딱딱딱.
한동안 동굴 어귀에는 돌을 부딪치는 소리와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좋아, 완성!”
그렇게 내 기준으로 적당히 쓸 만한 주먹도끼가 탄생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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