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al 5

갔다.
그곳에는 부직포로 만든 수트케이스가 걸려 있었다.
정장을 걸도록 만들어진 길쭉한 검은색 케이스.
수호는 그 가운데를 따라 세로로 달린 지퍼를 죽 내렸다.
한데 그때.
[차원 【DITOD-0624B】를 발견하셨습니다.]
놀라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26화 비버니? 비바니!(1)
콰르르르-
갈라진 수트 케이스 지퍼 아래로 폭포수 같은 물이 쏟아져 내린다.
“으억!”
수호가 깜짝 놀라 지퍼를 다시 올렸다.
그리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아, 물이 흐를 리 없지!”
냉동실 속 드워프 세상이 그렇듯, 저쪽에서 물이 흐른다고 이쪽에 쏟아지지는 않는다.
수호는 곧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지퍼 올리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들을 살폈다.
[차원 【DITOD-0624B】를 발견하셨습니다.]
[새로운 대상 【비바니】를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대상 【비바니】와 교류를 시작합니다.]
“비바니?”
드워프와 달리, 이름만으로는 정체를 알아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차원 패널에 뭐라도 나오겠지.’
수호는 차원 패널을 확인했다.
●차원 패널
──────────
[교류 차원 수 : 2]
[교류 대상 목록]
▶ESKHJ-0702L
┗ 붉은 망치 드워프
┗ 광룡 발랑카르
┗ 잿빛 가죽 드워프
▶DITOD-0624B
┗ 비바니
*대상의 이름을 응시하면,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류 등급 : 일반]
*교류 횟수 및 대상이 늘어날수록 등급이 상승합니다.
*등급 상승 시 교류 차원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집니다.
[차원 임무 : 2]
──────────
예상대로 차원 패널에 변화가 보였다.
“완전히 다른 차원이야.”
교류 차원 수가 2개로 늘었다.
차원의 이름도 다르다.
드워프가 있는 곳과는 다른 세상이 분명했다.
『비바니』
- 소속 차원 : DITOD-0624B
- 구성원 수 : 10
- 만족도 : 5/100
“수는 얼마 안 되네.”
처음 드워프를 만났을 때보다도 적다.
이번에도 이주민이려나?
수호는 곧 만족도 항목에 눈길이 갔다.
“만족도가 바닥이야.”
비바니란 종족이 뭔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문제를 파악해서 차원 임무를 받으면 되겠네.”
임무를 해결함으로써, 친목도 다지고 보상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 전에 인사부터 해야겠지?”
수호가 책상 서랍을 뒤졌다.
볼펜을 찾아낸 뒤, 티슈를 뽑아 그 끝에 매달았다.
“이러면 손 집어넣는 것보다는 좀 덜 놀랄 거야.”
드워프 때처럼 상대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깃발(?)을 만든 수호가 수트 케이스로 다가갔다.
콸콸콸-
지퍼를 내리자, 다시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폭포는 아니고, 강을 막아 놓은 것 같은데… 댐인가?’
나무와 진흙 등으로 만든 댐이 보였다.
댐의 높이가 충분하지 않아 그 위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수호는 댐 너머를 살폈다.
저수지처럼 변한 강 가운데, 섬이 떠 있었다.
‘섬? 일반적인 섬은 아니야. 나무나 지푸라기를 쌓아둔 것처럼도 보이고.’
나뭇잎과 나뭇가지 등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둔덕 같은 모습.
‘근데 그 비바니란 종족은 왜 안 보이지?’
불러 볼까?
수호가 깃발을 수트 케이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후 살살 흔들며 속삭였다.
“안녕하세요, 비바니 여러분. 저는 지구에 사는 원수호라고 합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수호는 목소리를 약간 더 높였다.
“비바니 여러분, 안 계세요? 해치지 않아요. 문제가 있으면 돕고 싶습니다.”
깃발도 좀 더 활기차게 흔들어 보았다.
잠시 후 반응이 왔다.
퐁-
수면이 일렁이더니 동그란 것이 튀어나왔다.
어떤 생명체의 머리였다.
‘비버잖아!’
이름이 비바니일 때부터 싸하더라니.
나타난 것은 정말 ‘비버’의 머리였다.
수호가 놀라고 있는 사이.
갈색 머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허공에 뜬 깃발을 발견했다.
“학! 저게 뭐집?”
그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상한 말투로 외쳤다.
비바니의 귀여운 외모에 심장 폭행을 당할 뻔한 수호가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비바니 님. 저는 원수호라고 합니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어요.”
수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으하압-”
퐁당.
괴상한 비명을 내지른 비바니가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오래 걸리겠는데.”
그나마 손부터 들이밀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지.
수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비바니 님, 해치지 않아요. 저는 여러분을 돕고 싶습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퐁-
물속에서 머리가 올라왔다.
“누구냡? 어디 있는 거집?”
머리만 내민 비바니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수호는 깃발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쪽이에요, 비바니 님.”
“학! 깃발이 말을 한답!”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비바니.
수호는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이건 그냥 깃발이고요, 저는 사람입니다.”
“깃발이 말하는 게 아니었납?”
“네, 제가 사는 세상과 비바니 님의 세상이 연결되었습니다. 제가 그쪽에서 보기에 좀 크기 때문에 놀라실 것 같아 깃발부터 보여 드린 거고요.”
“크다고?”
“손을 한번 보여 드릴게요.”
수호가 깃발을 회수하고 손가락을 살짝 보여 줬다.
“학! 거, 거인이답! 잡아먹으려는 거냡?”
“아니에요. 저는 비바니 님을 도와 드리려고 온 사람입니다. 거인처럼 보이는 건, 두 세상이 연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부작용이고요.”
“부작용? 그게 뭐집? 근데 정말 안 잡아 먹납?”
“네, 이쪽 세상에는 먹을 게 넘쳐요. 굳이 비바니 님을 잡아먹을 이유가 없어요. 먹을 게 없어도 안 잡아먹겠지만요.”
“정말?”
“네, 정말이에요.”
비바니가 둔덕으로 올라섰다.
‘진짜 비버처럼 생겼네. 저 납작한 꼬리까지.’
넙데데한 꼬리, 둥실한 몸뚱이.
동글한 얼굴과 튀어나온 앞니.
모든 것이 비버와 똑 닮았다.
한 가지만 빼면.
‘두 발로 걸어 다니니까, 좀 이상하네.’
귀엽기는 하다만.
수호는 2족 보행을 하는 비버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고, 힘들답.”
비바니는 한숨을 폭 쉬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바비답. 바비라고 불러랍.”
“네, 바비 님이셨군요. 전 원수호라고 합니다.”
“알았답. 원수홉.”
털썩.
그때 바비가 바닥에 누워 버렸다.
배를 발라당 깐 자세로.
‘갑자기 뭐 하는 거지?’
종잡을 수 없는 태도에 어이없어 하는 것도 잠깐.
수호는 바비의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털이 푸석푸석해. 꼭 영양실조라도 걸린 것처럼.’
드문드문 털이 빠진 곳도 보였다.
심지어 곳곳에 뼈가 보일 정도로 말랐다.
얼굴도 초췌했다.
‘설마 어디 아픈 건가?’
수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차원 임무 【비바니 활력 충전!】을 획득하셨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첫 임무가 발생했다.
* * *
『비바니 활력 충전!』
- 어떤 이유에선지 비바니들은 기력이 전혀 없다. 비바니들이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운을 북돋워 주자.
- 보상 : 비바니 만족도.
차원 임무 내용을 살핀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활력 충전? 정보가 너무 부족한데.’
임무 내용에서도, 바비와 나눴던 대화에서도.
해결의 단서랄 만한 게 별로 없었다.
‘식량 문제면 식량을 주라는 임무가 떴을 테고.’
아픈 거면 치료하라는 임무가 떴어야 한다.
드워프의 사례를 비춰 보면 그랬다.
한데 이번엔 영 추상적이다.
수호가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좌의 치킨을 등한시하면서 한다는 짓이 저런 설치류 관찰인가?』
발룡이었다.
치킨 주문을 미뤄 둔 터라, 잔뜩 골이 나 보였다.
“일단 이것만 좀 해결하고 시켜 줄게. 잠깐만 기다려 봐.”
『이익! 인간, 신의를 잃은 자는 살아갈 가치가 없다.』
“뭔 헛소리야.”
수호는 발룡이에게 신경을 끄고 바비를 살폈다. 분명 힌트가 있을 것이다.
『기어이 본좌의 갈릭 치킨을 뒤로 미룰 생각이더냐!』
“아직 밥때도 안 됐잖아. 잠깐만 기다려 봐.”
파닥파닥-
발룡이는 주변을 정신 사납게 날아다녔다.
수호가 끝까지 시선을 주지 않자, 축 처진 표정으로 침대에 내려앉았다.
『본좌보다 마력 고갈로 다 죽어 가는 설치류 따위가 먼저라니. 배은망덕한 인간 놈 같으니!』
한데 좌절하여 내뱉은 말이 수호의 귀를 간지럽혔다.
“방금 뭐라고 했지?”
『아, 아니다. 본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한 말 다시 해 봐. 어서!”
『너, 너는 요즘 보기 드물게도, 은혜를 아는 훌륭한 인간이다.』
“아니, 그거 말고. 그 전에 한 말.”
『그 전? 저 설치류가 마력 고갈로 다 죽어 간다는 말?』
“그래, 그거!”
수호는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발룡이에게 수호가 물었다.
“저기 저 비바니가 마력이 고갈됐단 말이지? 그래서 저렇게 무력한 거고?”
『그래, 그 정도는 척 보면 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활력을 줄 수 있을까?”
『…….』
발룡이가 묵비권을 행사했다.
치킨을 시키기 전에는 말하지 않을 모양.
수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후, 스마트폰을 꺼내 치킨을 주문했다.
“갈릭 1마리 주문했다. 일만 잘 해결되면,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흡혈귀 치킨 3단계를 먹여 주지.”
묵비권의 대가다, 이놈아.
마지막 말을 생략한 수호가 스마트폰을 흔들어 보였다.
『오, 정말이냐? 선풍적인 인기? 그렇게 맛있단 말이지? 3단계? 4단계는 없는 것이냐?』
“없어, 3단계가 끝이야. 어쨌든 그건 이따 이야기하고, 마력 고갈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마력이 담긴 음식을 먹이면 된다. 단, 저 설치류가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음, 지금 저놈의 상태를 보니, 마력이 과도하게 담긴 건 또 안 좋을 것 같군. 뭐든 고갈되기 직전에 너무 과하게 들이부으면 탈이 나는 법이거든.』
흡혈귀 치킨 3단계가 흡족했던지, 웬일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발룡이었다.
설명을 듣는 순간, 수호는 떠오르는 물건이 있었다.
차원 보따리에서 그것을 꺼내 들었다.
“활력수로 될까?”
활력수.
손님에게 서비스로 내어놓는 피로 회복 드링크.
도매상 주인 영감님에게 얻어 온 물건이다.
『딱 알맞겠구나. 그걸 먹이면 기본적인 기력은 회복할 것이다. 다만.』
“다만?”
『저 설치류가 저렇게 되었을 때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터.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지금 상태로 돌아오게 되겠지.』
수호는 잠시 고민하다 그만뒀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일단은 차원 임무부터 해결하자.’
결심한 수호가 수트 케이스로 바짝 다가갔다.
“바비 님! 바비 님!”
한참을 불렀다.
바비가 발라당 누운 채 대답했다.
“왜 부르납? 말할 기운이 없답.”
“이것 좀 마셔 보세요. 기운이 좀 날 겁니다.”
수호는 교역 스킬로 활력수를 전했다.
바비의 배 위에 활력수 병이 생겨났다.
“학! 이게 뭐집? 갑자기 어디서 생겨난 거집?”
“제가 보내 드린 겁니다. 마개 열고 마셔 보세요. 몸에 기운이 날 거예요.”
갑자기 나타난 활력수 탓인지, 바비는 몸을 일으킨 상태였다.
“일어난 김에 마셔 보겠답.”
너무도 기력이 없었다.
하지만 바비는 액체를 마셔 보리라 결심했다.
아까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신비한 일에서, 왠지 희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어차피 아이들을 지킬 수 없으니깝.’
이윽고 바비가 활력수를 들이켰다.
그러더니,
“우왑-!”
소리 지르며 펄쩍 뛰어올랐다.
퐁당-
바비의 모습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뭐라 말이라도 좀 하고 가지.”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퐁.
수호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바비가 둔덕으로 다시 올라왔다.
퐁- 포포포포퐁-
바비의 뒤를 따라 작은 비바니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징그러운 것들. 많이도 나타났군.』
발룡이의 말을 흘려들으며 수호는 비바니들의 수를 세었다.
‘열, 전부 나왔구나.’
둔덕 위에 비바니들이 옹기종기 올라섰다.
바비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짧은 앞다리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더니.
착!
합장하며 말했다.
“더 주세욥!”
* * *
[차원 임무 【비바니 활력 충전!】을 완수했습니다.]
[비바니의 만족도가 10 상승합니다.]
수호가 박스째 건넨 활력수를 비바니들이 나눠 마셨을 때.
차원 임무가 완수되었다.
“아빠, 아빠. 이거 마싯땁! 기운 난답!”
“또 마셔도 됍?”
“힘은 나지만, 배는 아직 고프답.”
비바니들이 강물 위를 헤엄치며 떠든다.
원래라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을 수호지만 지금은 표정이 편치 않다.
‘만족도가 10밖에 안 올랐어.’
바비는 활력수를 받고 기뻐했다.
거듭 감사 인사를 전해 왔다.
어린 비바니들도 기운을 되찾았다.
그럼에도 오른 만족도는 10뿐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거야.’
활력을 북돋는 것으로 해결이 안 되는 원인이 있다.
그렇기에 비바니의 만족도가 크게 오르지 않는 것이다.
결국 수호가 할 일은 하나였다.
“바비, 바비.”
수호는 바비를 불렀다.
바비가 물 위로 고개를 퐁- 내밀었다.
“왜 불렀납?”
활력수를 얻어먹더니 태도가 아주 친근해졌다. 수호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왜 그렇게 기력이 없었던 거야?”
바비가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더니, 둔덕으로 올라섰다.
“그게 말이답, 어떻게 된 거냐면…….”
바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호는 그 순간 예감이 들었다.
‘이거, 임무다!’
다음 차원 임무가 뜰 거라는 강한 예감이.
27화 비버니? 비바니!(2)
“그러니까 계속 굶었단 말이야?”
바비의 이야기를 들은 수호가 질문을 던졌다.
“그랩. 우리는 저기 철 나무만 먹을 수 있는데, 어느 날부턴가 철 나무가 갑자기 딱딱해졌답. 저기 댐을 봐랍. 썩어서 색이 좀 짙어졌지만, 원래 철 나무의 색깔은 저렇답.”
바비가 댐을 만든 나무를 가리켰다.
물을 먹어 어둑했지만, 평범한 나무의 색깔이었다.
“근데 저렇게 변했답.”
뒤이어 강변에 늘어선 수풀을 가리켰다.
온통 시커멓고 광택 도는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강변에 저 시커먼 숲이 전부 철 나무야?”
“그렇답. 원래보다 색이 엄청 진해졌답. 그 뒤로 너무 딱딱해졌답.”
“소화를 못 시키는 거야?”
“아니답. 삼키면 소화는 시킬 수 있답. 근데 우리 이빨로 갉아 낼 수가 없답. 자르지 못하니 먹을 수도 없답.”
말과 함께 바비가 입을 벌렸다.
두 개의 기다란 앞니 중, 하나가 중동에서 뚝 부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자르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지?’
수호가 해결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 임무 【먹어야 산다】를 획득하셨습니다.]
수호는 서둘러 차원 임무의 내용을 확인했다.
『먹어야 산다』
- 어느 날 비바니의 주식인 철 나무가 단단하게 변했다. 철 나무를 자를 방법을 마련하여, 비바니를 굶주림에서 구하자.
- 보상 : 비바니 만족도. 바비의 보답.
‘바비의 보답!’
수호는 보상 항목을 보고 눈을 빛냈다.
‘보답이란 문구가 있었을 때, 보상으로 받은 게 불꽃수였지?’
차원 임무 보상으로 ‘타룽가의 보답’이 떴을 때, 수호는 불꽃수를 얻었다.
덕분에 감각과 화염 저항 스탯이 생겼고.
그것은 수호가 가진 힘의 원천이 되었다.
‘꼭 성공해 내야 해.’
수호는 임무를 꼭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각오 덕분인지, 머릿속에 퍼뜩 생각이 떠올랐다.
“바비, 내가 저 철 나무를 한번 잘라 볼게.”
“할 수 있겠냡? 엄청 단단하답.”
“한번 시도라도 해 보게. 잠깐만 기다려.”
수호는 책상을 뒤져 가위를 찾았다.
드워프 마을에서 했던 일을 다시 한번 해 보려는 것이다.
그사이 바비가 어린 비바니들을 물속으로 돌려보냈다.
“이제 됐답. 해 봐랍.”
수호가 가위를 가느다란 철 나무 가지에 가져다 댔다.
‘잘려라.’
가위를 쥔 수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데 가위가 좀처럼 다물리지 않는다.
‘빡빡하네.’
수호가 손아귀에 힘을 더 줬다.
팅-
가위 날이 부러졌다.
“이런…….”
“역시 안 되는 거였납? 우리에게 미래는 없는 거였답.”
바비의 꼬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수호가 서둘러 이야기했다.
“아직 방법이 더 있어. 잠깐만 기다려 봐.”
수호가 화염 포마검을 뽑아 들었다.
“우왑! 붉은 칼이답! 날카롭게 생겼답!”
“이거로 한번 잘라볼게.”
화염 포마검에는 【중급 절삭력 강화】가 달렸다. 내구도도 450이나 된다.
이거라면 가능성이 있다.
수호가 철 나무를 향해 칼을 뻗었다.
칼이 나무에 닿는 순간.
끼이이이이이익-!!
“끄압! 귀가, 귀가 아프답!”
바비가 절규하더니 물속으로 퐁당 사라졌다.
수호도 인상이 찌푸려졌다.
‘칠판 긁는 소리보다 몇 배는 심하네.’
수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저항은 있었지만 칼날이 나무를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된다.’
몇 번을 톱질하듯 칼을 움직이자, 드디어 나뭇가지가 베어져 나왔다.
식은땀을 닦은 수호가 화염 포마검을 갈무리했다.
“바비! 좀 나와 봐. 다 끝났어.”
퐁-
몇 번을 부르니 바비가 물 밖으로 올라왔다.
“실팬갑? 이제 다 망한 건갑?”
“아니야, 저기 봐. 잘라놨어.”
“압! 진짜답! 진짜로 철 나무를 잘랐답!”
“응, 저거 좀 주워다 내 쪽으로 건네줄 수 있을까. 나한테 보낸다는 생각으로 내밀면 돼.”
“알았답! 기다려랍!”
희망을 느낀 바비는 재빨리 가지를 수호에게 건넸다.
곧 수호의 앞에 팔뚝만 한 나뭇가지가 생겨났다.
“미쳤네. 이게 나무라고?”
철 나무의 설명을 확인한 수호의 입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깡- 깡-
뚱땅뚱땅-
드워프들이 부서진 성벽을 보수하고 있었다.
잿빛 가죽 드워프 족장 달콩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성벽이라…….”
지난 몬스터 침공으로 인해 달콩은 확신했다.
이곳이야말로 세상에 남은 유일한 안전지대임을.
그렇기에 보수 중인 성벽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자라. 이곳만으로는 다 함께 살기 너무 좁아.”
마을은 붉은 망치 부족 2천 명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
그렇기에 잿빛 가죽 부족까지 함께하기엔 너무 좁았다.
“달콩,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나?”
어느새 타룽가가 다가와 있었다.
달콩은 내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곳 요새만으로는 우리 잿빛 가죽까지 함께 살 수가 없네. 너무 협소해.”
“으음. 우리 부족이 아직 다 안 와서 여유 공간이 있어. 그때까지 함께 살면서 다른 수를 강구해 보세나.”
침음하던 타룽가가 달콩을 다독였다.
하지만 달콩의 근심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오우거를 보고 깨달았네. 일반적인 성벽으로는 버틸 수 없어. 저기 부서진 부분은 거인님이 주신 재료로 만든 벽이라며? 그럼에도 부서져 버렸네. 한데 지금 우리에겐 그 재료마저 없네. 쓸 수 있는 거래야, 통나무 정도뿐이지 않나. 그거로는 안 돼.”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거인님이 급속 경화 시멘트라는 걸 더 구해 보겠다고 하셨다네. 그러니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게. 저번에는 성급히 만드느라 목책에 시멘트를 부었단 말일세. 제대로 만들면 훨씬 더 견고해질 거야.”
한동안 말이 없던 달콩이 겨우 입을 열었다.
“몬스터가 끝이 아니니 문제네.”
“…마물 말인가?”
“그래, 마물. 저 산 아래, 온 세상에 마물이 퍼지고 있어. 그놈들이 저 밑을 완전히 장악하면, 그 뒤에는 어디로 가겠나?”
대답하지 않았지만 타룽가도 알고 있었다.
마물은 사람을 증오한다.
제 목숨이 끊기는 걸 마다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려 드는 것이 마물이다.
그러니 이곳에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마물은 분명히 침공해 올 터였다.
하지만 심각한 상상에도 불구하고, 타룽가는 왠지 두렵지 않았다.
“나는 말일세, 언젠가부터는 무섭지 않다네.”
드래곤도, 오우거도.
설사 마물이라도 말일세.
왜일 것 같나?
“아……!”
타룽가가 덧붙인 말에 달콩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러니 자네도 믿게. 마을이 좁아? 성벽을 만들 재료가 부족해? 걱정하지 말게.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그뿐일세.”
달콩의 안색이 조금이나마 펴졌다.
타룽가는 그런 달콩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그때.
“타룽가 님! 달콩 님! 안 바쁘시면 저 좀 봐요!”
거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보게나. 껄껄.”
타룽가가 마을 한쪽, 허공이 일렁이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달콩도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
.
.
[강철 나무]
- 단단하기 그지없는 철 나무가 모종의 성분을 흡수해 더 강하게 진화했다. 식물임에도 광물을 웃도는 강도와 경도를 가지고 있다. 연성이 떨어져 가공이 힘들고, 장비의 재료로는 부적합하다.
- 재료 아이템
- 아이템 등급 : 희귀
- 【중급 내구도 증가】
- 내구도 999
“허허, 정말 대단한 나뭇가지군요, 거인님.”
“이건 도저히 식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강도입니다.”
나뭇가지를 받아 든 타룽가와 달콩이 감탄을 터트렸다.
수호도 그들의 말에 백번 공감했다.
“저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단단하더라고요.”
“근데 이걸 저희에게 보여 주신 이유가 뭔지요?”
“혹시 그걸 갉아 낼 수 있는 도구를 만들 수 있을까요?”
“도구 말씀입니까? 어떤 형태를 원하시는지.”
못 만들 것 같다는 태도는 아니었다.
수호는 희망을 느끼며, 한 번 더 물건을 전달했다.
“일단 그것도 한번 살펴보세요.”
곧 타룽가의 발치에 나뭇조각 몇 개가 떨어져 내렸다.
타룽가가 그중 하나를 주워 들었다.
“이건 강철 나무가 아니군요. 그냥 평범한 나뭇조각 아닙니까?”
“여기 뭔가 찍힌 자국이 있네요. 짐승이 깨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타룽가와 달콩이 나뭇조각을 보며 말했다.
“맞아요. 그건 누가 깨문 자국입니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물건은… 틀니예요. 그 자국에 꼭 맞는 틀니요.”
“틀니요?”
“네, 강철 나무를 갉아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틀니가 필요합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타룽가가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강철에 몇 가지 재료를 섞으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누가 착용할 물건입니까?”
“비바니라고, 다람쥐 비슷하게 생긴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강철 나무를 갉아 낼 수 있도록 끼워 줘야 해요.”
그때 달콩이 말했다.
“착용 부위는 금속으로 하는 것보다, 특별하게 가공한 가죽을 덧대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저도 한 손 거들게 해 주십시오.”
갑옷 만들 때 합을 맞추더니, 재미 붙였나?
마다할 이유가 없지.
“달콩 님까지 협력해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수호가 흔쾌히 허락했다.
한데 그때, 달콩이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강철 나뭇가지의 크기를 보니, 원래는 훨씬 크겠지요?”
“네, 달콩 님 키의 몇 배는 될걸요.”
“혹시 가능하시다면, 이 강철 나무를 좀 얻을 수 없겠습니까? 저희 부족이 머물 공간을 만들려면 성벽을 증축해야 하는데, 마땅한 재료를 구할 길이 없습니다.”
달콩의 말을 듣는 순간, 수호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또 차원 임무를 받을 수 있을지도?’
수호의 생각을 증명하듯,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 임무 【성벽 재료 조달】을 획득하셨습니다.]
수호는 서둘러 임무를 확인했다.
『성벽 재료 조달』
- 잿빛 가죽 부족의 합류로 드워프 마을이 비좁다. 성벽을 증축하는 것이 해결책. 하지만 드워프 마을 근처에는 성벽으로 쓸 마땅한 재료가 없다. 드워프에게 튼튼하고 견고한 재료를 공급해 주자.
- 보상 : 잿빛 가죽 부족 만족도.
임무를 확인한 수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한번 구해 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이렇게 흔쾌히…….”
“괜찮아요. 그럼 틀니 잘 부탁드릴게요.”
수호가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 * *
끼이이이이익-
“아우, 진짜.”
끼이이이이익-
“으으…….”
끼이이이이익-
“마지막이다.”
끼이이이이익-
“하… 됐다.”
수호가 화염 포마검을 거뒀다.
비바니의 입에 쏙 들어갈 크기로 잘린 강철 나무 조각이 강둑에 쌓였다.
“이 소리는 진짜,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되네.”
【화염 강격】을 시전하면 절단이 조금 쉬워진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강철 나무를 토막 내지도 못했을 터였다.
포옹-!
수호가 한숨 돌리고 있는데, 강물에서 머리가 솟았다.
“수호! 수호! 다 됐납?”
“응, 다 됐어. 가져가서 먹어. 아기들도 먹이고.”
“으압-! 고맙답! 이 은혜는 꼭 갚겠답!”
바비가 다시 물속으로 쏙 들어갔다.
잠시 후.
퐁-포포포포퐁-
수면으로 동그란 머리통 10개가 줄 지어 나타났다.
“으압- 밥이답!”
“맛있겠답!”
“난 두 개 먹을랩!”
“수호가 잘라 줬답! 인사하고 먹어야 착한 비바니답!”
바비의 호통에 아기 비바니들이 앞다투어 인사했다.
“수호 아저씨, 고마워욥!”
“나무 잘라 줘서 고마워욥!”
“잘 먹을게욥! 아저씨, 최고에욥!”
나무 자르느라 고통받은 귀가 단박에 힐링되는 느낌.
흐뭇한 표정으로 비바니들의 식사를 지켜보던 수호가 생각에 잠겼다.
‘역시 이런 식으로는 임무가 완수되지 않아.’
직접 철 나무를 잘라 주는 것은 미봉책밖에 되지 않는다.
‘어서 틀니가 완성되어야 할 텐데.’
수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거인님! 거인니이임-!”
타룽가의 목소리였다.
“드디어!”
수호가 서둘러 냉동실로 향했다.
비바니에게 새 이빨을 달아 줄 때가 왔다.
28화 비버니? 비바니!(3)
『비바니용 모조 앞니』
- 뛰어난 장인이 만든 틀니. 재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성 들여 만들었다. 단, 재료의 기운을 모조리 절삭력 강화와 착용감에 쏟아부은 탓에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 아이템 등급 : 희귀
- 물리 공격력 100
- 【고급 절삭력 강화】
- 내구도 100
“송구합니다, 거인님. 내구도가 형편없는 물건이 나와 버렸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괜찮습니다. 나중에 더 좋은 재료 구해서 다시 만들면 되죠.”
“예, 차후에 꼭 다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타룽가는 하루 만에 틀니를 뚝딱 완성해 내었다.
그의 말대로 내구도가 살짝 낮은 감이 있었지만 상관없다.
‘일단 밥만 먹게 해 주면 돼.’
비바니들이 당장 굶어 죽지 않도록 하는 게 시급하니까.
‘부서지면 다시 만들어 주면 되고.’
여차해서 차원 임무가 또 뜨면, 그건 그거대로 나쁠 것 없다.
수호는 생각을 정리하고, 수트 케이스로 다가갔다.
“아빠, 수호 아죠씨가 이빨 주는 거얍?”
“수호 아죠씨가 어떻게 이빨을 줩?”
“이빨이 많은갑?”
아기 비바니들이 바비를 둘러싸고 빙글빙글 헤엄친다.
“모른답. 하지만 거짓말을 할 친구가 아니답. 믿고 조금만 기다려랍.”
바비가 애들을 달랬다.
표정이 곤혹스럽다.
수호는 서둘러 말을 걸었다.
“바비, 이빨 가져왔어.”
“뭡? 정말이냡!”
바비가 돌고래처럼 솟구쳐 오르며 소리쳤다.
“보내 줄게. 한번 껴 봐.”
수호는 차원 보따리에 넣어 둔 모조 이빨을 바비에게 전송했다.
바비의 앞에 모조 이빨이 나타났다.
바비가 서둘러 이빨을 쥐고는 이리저리 살폈다.
“오옵- 굉장히 날카롭답. 조심해야겠답.”
“그래, 어서 껴 봐. 착용감 이상하면 수리해야 하니까.”
고개를 끄덕인 바비가 모조 앞니를 입으로 가져갔다.
앞니는 그림처럼 바비의 입에 찰싹 달라붙었다.
“오옵-! 완전 쾌적하답! 이건 부러지기 전에 내 이빨이랑 똑같압!”
퐁-퐁-
신나서 수면 위아래를 오가는 바비.
수호는 그런 바비에게 권했다.
“기분은 이따 내고, 어서 나무부터 잘라 봐.”
“아압! 맞답! 나무 자를 거답!”
바비가 강변으로 다가갔다.
강철 나무 한 그루를 선택하더니, 앞니를 들이댔다.
사각-사각-
갉는 소리가 잠시 들린다 싶더니.
저저적-
강철 나무가 강물 속으로 쓰러졌다.
“이거 정말 끝내준답! 고맙답! 이제 옛날처럼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답!”
“잘 됐어, 축하해.”
“다 수호랑 만난 덕분이답. 기운도 나게 해 주고, 이빨까지. 이 은혜는 꼭 갚겠답.”
바비의 대답이 들려오는 순간,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 임무 【먹어야 산다】를 완수했습니다.]
[비바니의 만족도가 70 상승합니다.]
‘만족도는 올랐고, 이제 보답을 받을 차례인가.’
수호는 바비가 줄 보답을 기대했다.
“아빠, 나도 이빨!”
“나도, 내 것도 있업?”
“나도 껴 볼랩!”
그 전에 아기 비바니들부터 좀 달래 놓고.
“바비, 여기 아이들용 앞니도 줄게. 끼워 주도록 해.”
“아압! 애들 것까지? 너무 고맙답!”
수호는 아이들용 모조 앞니도 보내 줬다.
“아빠, 이제 철 나무 자를 수 있업?”
“아빠, 나 철 나무 먹어도 됍?”
“이거 왜 이렇게 내 입에 꼭 맞집?”
떠들썩한 아이들에게 바비가 소리쳤다.
“가서 마음껏 먹어랍! 수호에게 인사부터 하곱!”
아기 비바니들이 수호를 향해 꼬리를 팽팽 흔들었다.
“아죠씨, 고마워욥!”
“이빨 고마워욥!”
그렇게 아이들이 몰려가고 난 후.
바비가 수호 쪽으로 다가왔다.
“수호, 잠깐만 기다려랍. 내가 널 위해 준비한 게 있답.”
“어, 다녀와.”
수호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바비가 물속으로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받아랍. 이건 이빨에 대한 보답이답. 정말 귀한 거니깝, 혼자 먹어야 햅.”
말이 끝나는 순간, 수호의 눈앞에 물고기 한 마리가 생겨났다.
* * *
‘물고기라니…….’
설마하니 생선을 보답으로 받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때깔이 심상치 않아 기대된다.
수호는 서둘러 물고기를 집어 들었다.
설명이 떠올랐다.
[황금 잉어]
- 마력의 호수에서 태어난 잉어 중 극히 드문 확률로 탄생하는 황금빛 잉어. 특별한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어, 먹으면 몸에 몹시 이롭다.
- 아이템 등급 : 희귀
- 복용 시 스킬 【수중 호흡】 획득.
- 【재생】 5 증가.
“대박!”
설명을 확인한 수호가 탄성을 터트렸다.
성능이 너무 좋다.
“확장 스탯이 붙었잖아!”
【재생】 5 증가란 문구.
저것이 나타내는 바는 명확했다.
【감각】을 얻을 때도 같았으니까.
“게다가 스킬도 있어.”
【수중 호흡】
- 마력을 소모해 물속에서 숨 쉰다.
당장 전력을 강화해 주는 종류는 아니었지만, 이것도 배워 두면 언제든 쓸 날이 올 터.
“역시! 보답이라고 적힌 임무가 대박이었어.”
예상대로 보상 항목에 ‘보답’이라고 적힌 임무야말로 노다지였다.
“일단 먹자.”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성능 좋은 잉어도 먹어야 도움이 될 터.
수호가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
.
.
“잘 먹었다.”
먹고 나니, 재생 스탯의 효력을 금세 체감할 수 있었다.
“역시 재생은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스탯이었어.”
재생 스탯은 부상 회복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아울러 운동 능력 상승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테고.
“확장 스탯인 만큼… 기대해도 되겠지?”
감각 스탯의 효과를 떠올려 본 수호가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수호는 수트 케이스로 다가갔다.
그사이 비바니들도 모처럼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철 나무 맛있답!”
“역시 싱싱할 때 먹어야 제맛이얍!”
어린 비바니들이 나뭇가지를 하나씩 껴안고 물에 동동 떠 있었다.
‘노는 건지, 먹는 건지 구분이 안 되네.’
귀여운 모습을 잠시 감상하던 수호가 바비를 불렀다.
“바비!”
“수호, 황금 잉어 먹었냡?”
“응, 방금 먹고 왔어. 네 말대로 맛도 있고, 몸에도 정말 좋더라. 고마워.”
“엣햄, 더는 못 구한답. 놈은 이 강에 사는 수많은 물고기의 우두머리, 딱 한 마리밖에 없었답. 이곳의 잉어들이 영양가가 높지만, 황금 잉어야말로 최고의 보물이답. 다른 잉어와는 비교도 안 된답.”
짐승들이 놈만 보면 침을 질질 흘렸답.
바비가 덧붙였다.
아쉽구만.
입맛을 다시던 수호가 바비를 부른 용건을 꺼냈다.
“고마워, 바비. 정말 잘 먹었어. 근데 혹시 부탁 좀 해도 될까?”
“부탁? 뭐집?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 주겠답.”
“강철 나무 좀 얻을 수 있을까?”
“으합-! 서, 설마 우리에게서 강철 나무를 빼앗아 갈려는 거냡? 우리를 다시 굶기려는 거냡?”
“아니, 그게 아니고. 주변에 강철 나무가 아주 많더라고. 너희 먹고 남으면 좀 잘라서 나눠 주면 안 될까 하고 물었지.”
주변은 모조리 강철 나무로 뒤덮여 있다.
강변뿐 아니라, 수호의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강철 나무가 빼곡했다.
“우리 먹을 것만 안 뺏으면 문제 없답. 얼마든지 가져가랍. 강철 나무는 며칠이면 다 자라기 때문에 많이 가져가도 괜찮답!”
“오, 그렇구나. 고마워, 바비.”
“그럼 언제 줄깝? 지금?”
“그럼 좋지.”
이쪽 문제를 해결했으니, 슬슬 저쪽도 해결해 볼까?
* * *
철퍽-
거대한 숟가락이 시멘트를 섞는다.
철퍽-
이번에는 급속 경화 시멘트는 아니었다.
“급속 경화 시멘트 물량이 없어서 아쉽네.”
정현수에게 다시 연락해 봤지만, 더는 구할 수 없었다.
재료가 되는 몬스터 부산물 생산량이 몹시 적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엔 뼈대가 훨씬 단단하니까.”
이번에는 목책에 시멘트를 붓지 않는다.
강철 나무를 철근 삼아, 드워프들의 공법으로 훨씬 공들여 준비했다.
“한결 더 단단한 성벽이 되겠지.”
철퍽-
몇 번 더 뒤섞자, 엄청난 양의 시멘트 반죽이 완성되었다.
“자, 이제 공사 시작!”
수호가 신호했다.
“시멘트를 바르자!”
“듬뿍!”
“왕창!”
“치덕치덕!”
드워프들이 반죽이 된 시멘트를 들고 성벽으로 달려갔다.
달콩은 수호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거인님!”
털썩.
달콩이 수호를 향해 무릎 꿇었다.
“달콩 님, 좀 일어나세요. 왜 자꾸 무릎을 꿇고 그러세요.”
“너무 고마워서 그렇습니다. 처음에 거인님을 의심한 저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요.”
“괜찮다니까요. 어서 가서 다른 분들 독려나 하세요. 잘 만드나 지켜도 보시고요. 기왕 만들 거 꼼꼼하게 만들어야죠.”
“암요, 거인님이 구해다 주신 귀한 재료인데, 허투루 써서는 안 될 일이지요.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달콩이 성벽으로 달려갔다.
수호는 좀 전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차원 임무 【성벽 재료를 확보하라】를 완수했습니다.]
[잿빛 가죽 드워프의 만족도가 20 상승합니다.]
애초에 높은 만족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상승 폭이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호는 흐뭇했다.
“붉은 망치와 잿빛 가죽 모두 만족도가 90선을 넘었어.”
비바니는 80선.
전반적으로 다들 만족하고 있다는 소리니, 수호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하지만 마냥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중을 생각하면… 돈을 더 벌어 둬야 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드워프가 합류할지 모른다.
먹고살 만할 때, 돈을 꾸준히 모아 둬야 한다.
“좀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서 팔아야 하나?”
이래저래 걸리는 게 있었지만, 당장에는 그 방법뿐이다.
고민하던 수호가 헌터 앱을 실행했다.
모처럼 상품 반응도 체크할 겸, 새 제품을 팔아도 될지 살필 겸 해서다.
수호가 주기적으로 올린 거래 게시물에는, 여전히 댓글이 활발하게 달리고 있었다.
┗ 어머 이건 꼭 사야 해.
┗ 아직도 이거 안 사고, 대형 몰 가서 눈탱이 맞는 흑우 없제?
┗ 이거 진짜 가성비 짱. 협회에서 사장님 상 줘야 함.
┗ 왜 사장을 줘? 이거 만든 장인한테 줘야지.
┗ 사장님이 만든 거 아닌가요?
┗ 아닐 듯. 만나 보니까 대장장이는 아닌 것 같았음.
┗ 대장장이는 이마에 써 붙이고 다녀요? 어떻게 확신해요?
┗ 뭔가 훈훈한 게, 대장장이는 아니었음. 하여튼 아님. 하악-
┗ 갑분 하악 뭐임?
┗ 저번에 서큐버스 줍고 싶다던 그 닉인데, 혹시?
┗ 사장님 등짝 조심해야 할 듯.
댓글은 어느새 고인물 집합소처럼 변해 있었다.
수호는 잠시 실소를 터트리다가 아래를 더 살폈다.
┗ 난 친구랑 사촌 동생 거까지 다 샀는데, 그래서 아쉬움.
┗ 왜요?
┗ 사장님도 훈훈하고 단검도 좋아서 오다가다 들르는데, 더 살 물건이 없음. 단검 빼고는 솔직히… 하여튼 그럼.
┗ 맞아, 맞아. 나머진 그냥 하급 양산품이라, 굳이 거기서 살 이유가…….
┗ 신제품 출시 안 하나? 창도 좀 팔지. 단검 정도로 뽑아내면, 진짜 잘 팔릴 건데.
┗ 창이라니 무슨 소리? 검부터 만들어야지. 사장님, 보고 있으면 검 좀 만들어 줘요. 롱소드로!
┗ 검? 그딴 비효율적인 걸 누가 씀? 동일 옵션이면 창이 훨씬 쓰기 좋지.
┗ 멍청한 놈들, 검방이 최고시다.
┗ 여긴 맨날 잘 나가다가 개판 나더라ㅋㅋㅋㅋㅋ
몇몇 댓글이 수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신제품이라…….”
단검 수준의 물건은 만들자면 언제든 만들 수 있다.
드워프에게 의뢰하면 되니까.
“흐음, 단검 살 사람은 다 산 것 같고.”
주 무기가 아니라도, 단검 한 자루 정도는 필수다. 그래서 단검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수요가 좀 줄어드는 느낌이다.
“여러 종류의 물건을 만들어서 요일별로 팔아 볼까?”
댓글에 나타난 것처럼 롱소드나 창 등도 수요가 있다.
“물량만 적당히 조절하면, 쓸데없는 의심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잠시 고민하던 수호의 눈에 한 댓글이 들어왔다.
┗ 사장님, 단검 너무 잘 쓰고 있어서 다른 물건도 팔아 드리고 싶은데 살 게 없어요. 장비 구하기 힘들면, 물약이라도 좀 상급으로 떼다 놓으세요.
“물약. 물약. 잠깐만.”
수호가 문득 붙박이장 쪽을 돌아봤다.
“강에 잉어가 그렇게 많다고?”
바비가 그랬지?
황금 잉어가 가장 영양가 높다고.
그럼 나머지 잉어도 제법 영양이 있긴 있다는 소리 아닌가?
“바비! 바비! 궁금한 게 있는데.”
수호가 수트 케이스로 다가갔다.
29화 의뢰(1)
파다파다닥-
아이스박스 안에 가득 찬 잉어들이 지느러미를 파닥인다.
흐뭇하게 바라보던 수호가 입을 열었다.
“바비, 고마워.”
“그 정도는 아무 때나 말만 해랍. 널린 게 잉어답.”
“그래, 그럼 내일 또 부탁할게.”
“알았답. 내일 아침에 또 잡아 주겠답. 난 이제 댐 보수하러 가야 한답. 필요하면 불러랍.”
“응, 일 봐.”
바비가 헤엄쳐 사라졌다.
수호는 아이스박스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럼 즙을 한번 만들어 볼까?”
부엌에는 찜통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찜통에 물을 받은 수호가 잉어를 찌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잉어가 푹 익었다.
수호가 주걱으로 잉어살을 저었다.
‘익으니까 잘 으깨지는구만. 다행이네.’
연금술 스킬이 있다면, 재료를 액화하거나 농축할 수 있다.
하나 수호에게 그런 스킬이 있을 리 만무.
‘내가 할 수 있는 건, 곱게 만들어서 활력수에 섞는 방법밖에 없으니.’
바비에게 얻은 잉어는 ‘아이템’으로 판정받았다.
그 자체로 이미 완성품이란 소리였다.
수호는 그저 먹기 편하게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다행히도 스킬이 관련되지 않으면, 적당히 훼손하는 정도로는 효과가 사라지지 않으니까.’
일단 아이템 판정을 받으면, 웬만큼 손을 데서는 효과가 바뀌지 않는다.
치유 물약을 반만 마셔도.
혹은 물에 희석해도.
딱 그만큼의 효과가 발휘되는 것처럼.
‘잘돼야 할 텐데.’
수호가 염원하며 국자를 젓고 있을 때.
『뭐 하는 거지?』
궁금증이 동했는지 발룡이가 다가왔다.
녀석은 요즘 들어 수호의 행동에 부쩍 관심을 보였다.
특히 스마트폰에!
“즙 짜서 팔려고. 아!”
『……?』“잘됐네. 너도 좀 도와.”
『본좌는 지금 바쁘다.』
“헛소리하지 말고, 돕는 편이 좋을걸? 대가를 줄 거거든.”
『대가?』
발룡이가 솔깃한 눈빛으로 물었다.
발룡킬라 사건 때 벌어 놓은 치킨은 진작 먹어 치운 상태.
치킨이 궁하니 혹하는 게 당연했다.
“하루에 치킨 한 마리 정도는 보장해 주지.”
『보장! 매일 준다는 말인가?』
“그래, 일이 잘 풀리면. 그리고 네가 열심히 도울 경우에 한해서.”
『좋다. 본좌가 뭘 하면 되지?』
씩 웃은 수호가 차원 보따리에서 박스를 꺼냈다. 활력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잉어 죽을 활력수에 섞을 거야.”
수호는 대야에 활력수를 붓고, 잉어 죽을 한 주걱 떠내 뒤섞었다.
그 후 그것을 다시 병에 담았다.
수호가 병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과일 잉어즙]
- 풍부한 마력과 영양소를 함유한 과일 잉어가 듬뿍 들어간 즙. 먹으면 건강해지는 느낌이 물씬 든다. 상큼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 아이템 등급 : 일반
- 복용 시 10분간 체력 +3 근력 +3
- 중복 사용 불가
“됐다!”
예상대로 과일 잉어의 효과가 즙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성능도 딱 알맞아.’
너무 뛰어나도 문제고, 너무 나쁘면 안 팔린다.
저 정도 효과면 저렙이 부담 없이 쓰기 딱 좋다.
쾌재를 부른 수호가 서둘러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발룡아, 활력수 전부 따서 대야에 부어. 이제부터 이거랑 똑같은 걸 계속 만드는 거야.”
『그런 하찮은 작업을 일일이 손으로 할 생각이냐?』
발룡이가 마력을 뿜어냈다.
차르르르르-
잉어 죽과 활력수가 솟아올라 허공에서 섞이더니, 나뉘어 병 속으로 들어갔다.
『보았느냐,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
“…굳이 그 말을 했어야만 했냐?”
헛소리만 안 붙였으면, 약간 멋있을 뻔했는데.
『…….』
“어쨌든 큰일 했네, 발룡이. 앞으로 아침마다 네가 즙을 만드는 거야. 그럼 매일 치킨 1마리씩 줄게.”
『큭, 본좌가 즙 따위나 짜야 한다니.』
“그래도 다른 즙을 짜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수호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불길하군. 거절하면 불행이 닥칠 것 같은 느낌이야.』
중얼거린 발룡이가 곧바로 덧붙였다.
『좋다, 즙은 본좌가 만들겠다. 단, 약속은 꼭 지켜라!』
“딜.”
발룡이와 거래를 마친 수호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신제품이 나왔으니, 홍보를 해야겠지?”
수호는 거래 게시판을 띄워 게시물을 작성했다.
[믿고 사는 【수호 아이템&잡화】 신제품 버프 물약 출시!]
- 안녕하세요, 고객 여러분! 드디어 저희 가게에 신제품을 런칭하게 되어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이번에 소개할 상품은 바로 과일 잉어즙! 복용 시 10분간 체력과…….
- 한 병에 단돈 30만 원! 하루 200병 한정!
- 1인당 10병까지만 구매 가능한 점 양해해 주세요!
게시물을 작성한 후, 수호는 쇼윈도에 [신제품 출시] 문구를 써 붙이고 돌아왔다.
게시물에는 그새 댓글이 달려 있었다.
┗ 오옷- 신제품이다! 드디어! 근데 이번에도 성능 좋다!
┗ 진짜 싸고 좋아 보이네.
┗ 이 집 진짜 가성비 맛집임ㅋㅋㅋ
┗ 가는 중. 하악!
┗ 지속 시간 10분짜리가 뭐가 좋다고 난리?
┗ 멍청하기는. 어차피 저렙용인데 보스전 때만 딱 빨고 치우는 거지. 내내 달고 살기에는 주머니 사정도 팍팍할 테고.
┗ 이거 마따. 그냥 1성 때는 저 정도만 해도 충분함. 사장님 이번에도 시장 파악 잘하신 듯.
수호가 댓글을 살피고 있을 때, 가게 문이 열렸다.
“사장님!”
“아! 어서 오세요.”
들어선 것은 쌍 단검을 허리에 맨 헌터.
양수정이었다.
단검의 첫 고객인 그녀는 그 후, 종종 가게에 들러 물건을 팔아 주고는 했다.
“포션 나왔다면서요?”
“네, 드릴까요?”
“당연하죠!”
수호가 포션을 꺼내 계산대에 올렸다.
“시음용으로 한 병 드릴게요.”
리뷰도 써 주고, 매출에 도움이 많이 됐으니까.
“앗, 고마워요. 사장님!”
양수정이 포션을 마셨다.
“하악-”
“…손님?”
“마, 맛있어!”
“네?”
“맛있네요. 진짜!”
“…그렇군요.”
수호가 당황을 감추는 사이, 양수정이 소리쳤다.
“주세요! 10병!”
잠시 후, 계산을 마친 양수정이 잉어즙을 들고 가게를 빠져나갔다.
“폭풍 같구만.”
정신이 없었지만, 괜찮았다.
단검 때부터 고마운 손님이니까.
그런데 머잖아 수호의 눈이 커졌다.
┗ 방금 포션 사 먹어 봄. 대박. 완전 맛있음. 수박 맛 나요!
┗ 구라 ㄴㄴ 내가 3백만 원짜리 버프 포션 먹어 봤는데, 썩은 고등어 맛 났음.
┗ 나도 비싼 거 먹어 본 적 있는데, 양말 맛 나던데.
┗ 썩은 고등어랑 양말 먹어 본 거 실화냐ㅋㅋ
┗ 진짜 내가 먹어 보고, 바로 10병 사 왔어요. 곧 리뷰 쓸 거임ㅋㅋㅋ 사장님 이번에도 물건 진짜 제대로 골라 오심.
┗ 진짠가? 버프 물약 맛없기로 유명한데.
┗ 신기하네. 단검도 그렇더니, 어디서 저렇게 좋은 물건을 가지고 온 거지?
┗ 저번에 드워프 주웠냐는 말 나오던데, 이번엔 그럼 어디서 마녀라도 주웠나?
┗ 그딴 건 관심 없고, 나는 지금 사러 간다. 한 병 30이면, 필요할 때마다 팍팍 빨아도 부담 없겠네. 맛도 좋으니 먹기도 편할 테고.
.
.
.
┗ 갑자기 댓글 안 달리는 거 뭐임? 다 사러 간 거?
댓글 반응에 수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버프 포션이 원래 맛이 없었나?”
먹어 본 적이 있어야 알지.
과일 잉어는 바비에게 받았을 때부터 수박 향을 솔솔 풍겼다.
비린내라고는 전혀 없었고.
그러니 그걸로 만든 포션도 맛이 좋은 게 당연했다.
“맛있어서 잘 팔리면 나야 좋지.”
앞으로 이주해 올 드워프를 생각하면, 바짝 벌어 둬야 하니까.
수호는 장사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댓글을 남겼다.
┗ 사장입니다. 머잖아 장비류 신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단검 수준의 다양한 장비를 만들어, 요일마다 종류별로 팔 생각이었다.
┗ 오- 드디어! 사장님, 창 좀! 창 좀 떼오세요.
┗ 난 롱소드. 젭알!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에 수호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우리 아들, 어쩜 이리 기특해. 그죠, 여보?”
“맞아. 제 생일 선물로 부모한테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니. 허허.”
“그러니까요. 다른 애들 같았으면, 게임기다 옷이다, 그런 거 사 달라고 졸랐을 텐데.”
자가용 앞자리에서 부모님의 대화가 들려온다.
나도 뭔가 대답을 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 예매까지 해 놓을 줄 누가 알았겠소. 근데 이거 어쩌나? 나 회사 가서 끝도 없이 자랑하다가 욕먹을 것 같은데. 껄껄.”
왜 그랬을까.
왜 영화 따위 예매해 버렸을까.
차라리 게임기를 사 달라고 졸랐어야 했는데.
“이이도 참. 우리 착한 아들, 엄마가 이 영화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고 딱 맞춰서 예매했대?”
멍청했다.
2시간 뒤에 시작하는 블록버스터를 골랐어야 했는데.
잔잔한 가족 영화 따위, 개나 주라지.
내 마음과 상관없이 행복한 기운이 차 안에 가득 찬다.
주말 오후 교통 체증에도 아버지는 짜증 한번 안 내셨다.
어머니는 귤을 까서 아버지 입에 넣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야.’
나는 생각했다.
‘중간 과정은 건너뛰어 줘서.’
트라우마 때문인지, 고맙게도 이 장면부터는 중간 과정이 스킵된다.
.
.
.
“우리 아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말했다.
아버지는 찢어진 배를 움켜쥔 채, 몬스터를 유인해 간 지 오래다.
던전 브레이크.
부서진 건물에 깔린 자동차.
찌그러진 차체에 다리가 끼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나.
“착하게 살아야 해.”
차창 너머, 엄마의 마지막 말이 들려왔다.
이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모르겠다.
그냥 이제 제발 좀 끝나 줬으면.
엄마가 달려가고, 그 뒤를 흉악하게 생긴 것이 뒤쫓는다.
꿈속의 내가 눈을 질끈 감았다.
* * *
“허억-”
수호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계산대에 엎드려 잠시 졸았던 모양이다.
“…오랜만이네.”
수호는 모처럼 꾼 ‘그날’의 꿈 때문에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왜 안 축축하지? 땀이 안 났나?”
그럴 리가 없는데.
식은땀에 푹 절어야 정상인데.
옆에서 시선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그러고 보니, 몸 주변에 청량한 기운도 느껴진다.
“네가 식혀 줬어?”
『……?』
발룡이는 모르쇠다.
뭔가 마법을 부린 게 분명한데.
멋쩍은 모양이다.
수호가 발룡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쥐어박거나 목을 움켜쥔 적은 있어도 쓰다듬은 건 처음이다.
‘감촉 좋네.’
맨들맨들, 생각보다 기분 좋은 촉감이 느껴졌다.
『무, 무슨 짓이냐! 감히 위대한 본좌의 머리에!』
발룡이가 뭐라 떠들려는 순간.
딸랑-
가게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들어섰다.
“어서 오세… 요.”
수호는 남자의 얼굴을 알아봤다.
헌터 협회장의 비서, 신성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원수호 헌터.”
“네. 물건 사러 오신 건 아닌 듯한데,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수호는 약간의 경계심을 담아 질문했다.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러죠.”
가게 문을 걸어 잠갔다.
태도를 보니, 그냥 갈 것 같지 않아서였다.
잠시 후, 수호와 신성현이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았다.
신성현이 입을 열었다.
“오늘 찾아온 용건은 원수호 헌터에게 의뢰를 하기 위함입니다.”
“의뢰요? 저한테요?”
굳이?
대단한 헌터들이 많을 텐데, 왜 나를?
그런 수호의 마음을 읽었을까.
신성현이 곧바로 설명을 이었다.
“특이한 던전이 발견됐습니다. 일종의 이레귤러 던전이라고 봐야겠군요.”
“……?”
“1성 던전이고, 20레벨 이하의 헌터만 입장이 가능한 던전입니다.”
“그런 곳이 있었던가요? 설사 그렇더라도 굳이 저한테 찾아오신 건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신성현이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미 협회 소속 헌터들이 시도했습니다만, 한 명을 제외하면 생환조차 못 했습니다. 생환자도 던전 밖에서 유명을 달리했고요.”
“…위험한 곳이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수호는 두렵지 않았다.
어떤 곳이든 1성 던전이라면, 이겨 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예, 그래서 대형 길드에 협조 요청을 해 둔 상태입니다만… 협회장님께서 원수호 헌터가 합류하시길 원하십니다. 원수호 헌터의 재능을 정말 높게 평가하신 모양이에요.”
미간을 찌푸린 채, 신성현이 첨언했다.
“던전 브레이크까지 이틀 남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할 시간을 오래 드릴 수가 없어요. 하필 던전 위치가 도심이라, 브레이크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합니다.”
1성 던전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는 현대 화기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하나 위치 탓에 주변에 발생할 피해가 문제였다.
그 말에 수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필 꿈을 꾼 날, 던전 브레이크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니, 쯧.’
착하게 살라던 엄마의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
짧게 한숨을 내쉰 수호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제가 얻는 건 뭡니까?”
할 때 하더라도, 자원 봉사할 생각은 없다.
신성현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스킬 룬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협회에 소장 중인 스킬 룬 중, 원하는 것으로 아무거나 고르셔도 좋다고요.”
솔직히 저는 협회장님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1성 던전에 내걸 만한 보상이 아닌데…….
신성현이 그렇게 덧붙였다.
수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하죠. 언제 갑니까?”
30화 의뢰(2)
[견고한 강철 방패]
- 손에 들거나 팔뚝에 장착해 사용할 수 있는 둥근 형태의 방패. 훌륭한 장인이 질 낮은 재료로 서둘러 만들었다.
- 아이템 등급 : 고급
- 물리 방어력 500
- 【중급 충격 완화】
- 체력 +10
- 내구도 550
[튼튼한 가죽 바지]
- 짐승 가죽으로 만든 바지. 훌륭한 장인의 솜씨로 만들어져 뛰어난 활동성을 자랑한다. 재료의 질이 장인의 솜씨에 못 미쳐 품질이 낮다.
- 아이템 등급 : 고급
- 물리 방어력 250
- 【하급 충격 완화】
- 민첩 +5
- 내구도 200
수호는 새 장비를 살폈다.
타룽가와 달콩에게 부탁해 급히 만든 물건이다.
‘성능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적회색 수호자나 화염 포마검과는 달리, 마력을 품은 재료가 없다 보니 성능이 특출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솥뚜껑이 아닌 게 어딘가.
이제 최소한 겉보기에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바지까지 하면, 이제 장비한 아이템이 5개인가?’
헌터가 장착할 수 있는 아이템의 수는 7개다.
그 이상을 착용하면 아이템의 능력치가 발휘되지 않는다.
그저 단단하고 질긴 의류로 취급받는 것이다.
‘거미줄 팔찌는 언제든 벗으면 그만이지만, 슬슬 조합을 생각해야겠어.’
액세서리까지 생각하면 7개는 결코 많지 않은 숫자다.
조합을 잘 맞춰야 한다.
그나마 적회색 수호자가 머리와 몸통, 두 군데를 책임져 줘서 여유가 있는 편.
‘뭐, 배부른 걱정일지도 모르겠지만.’
값싼 장비 여럿과 비싼 장비 하나.
헌터들은 늘 전자와 후자를 두고 갈등한다.
정답은 없지만 더 많은 헌터가 선택하는 것은 후자다.
자주 바꿔야 하는 싼 장비보다, 비싼 걸 사서 오래 쓰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때문에 장비 슬롯이 다 차서 걱정하는 헌터는 드물다.
‘그건 차차 생각하고, 슬슬 나가 볼까?’
수호는 나머지 장비를 착용한 뒤, 용달차에서 내렸다.
신촌 H 백화점 뒤편.
늘 인파로 붐비던 곳이 한산하기 그지없다.
대신 자리한 것은 거대한 차단막과 주변을 둘러싼 군인.
그리고 헌터 협회의 직원들과 고렙 헌터들이었다.
‘혹시라도 던전이 터졌다가는 난리가 날 테니까.’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게이트가 깨어진다.
동시에 몬스터가 주변 수백 미터 범위에서 우후죽순 나타난다.
‘철통 경계를 하는 건 당연하지. 그래 봐야 진짜 터지면, 피해가 만만치 않겠지만.’
심지어 이때 등장하는 몬스터는 던전 내부에 존재하던 것보다 훨씬 많다.
던전 코어가 가진 몬스터 재생 능력마저, 오롯이 브레이크에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능한 한, 던전은 내부에서 처리하는 편이 좋다.
“원수호입니다. 오늘 협회 의뢰로 던전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고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수호는 협회 직원의 안내를 받아 차단막 안으로 들어갔다.
저 앞에 던전에 함께 들어갈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
빛무리 하나에 둘러싸인 던전 게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한데 그때, 옆에서 발룡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기다!』
* * *
“여기서 뵙는군요. 역시 그때 어떻게든 원수호 헌터를 잡았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오성 길드 스카우트 이정욱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무리한 요구에도 끝까지 명함을 건네고 갔을 정도로, 수호를 탐냈던 인물이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스카우트가 굳이 있을 곳은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는 수호에게 대답이 들려왔다.
“1성 던전을 졸업하지 않은 루키들의 매니지먼트까지 제가 총괄하고 있어서요.”
제가 아끼는 녀석입니다.
이정욱이 옆에 선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소녀.
트레이닝복 차림에 장검을 매고 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데, 눈매가 제법 호전적이다.
“그러시군요.”
“여긴 윤미래라고, 이번에 원수호 헌터와 함께 들어갈 녀석입니다.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미래야, 너도 인사드리렴.”
곧 윤미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아저씨한테 날 부탁한다고요? 흠… 아저씨 저보다 잘 싸워요?”
인상이 앙칼지다 했더니.
“어허, 또 그렇게 막 던지고 본다. 원수호 헌터, 우리 미래가 말투가 좀 공격적이어서 그렇지, 착한 아이입니다. 실력도 괜찮고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야죠. 미래 양, 잘 부탁해.”
“으익, 아저씨 말투.”
수호는 씩 웃고 말았다.
이정욱의 말처럼 윤미래에게서 딱히 악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또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저는 백호 길드에서 온 김진성입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부위별로 잘 갖춰 입은 장비.
절도 있는 자세.
신입을 잘 키우기로 유명한 백호의 루키답다고나 할까.
“아, 네. 안녕하세요. 원수호입니다.”
“서로 피해 주지 말고, 잘해 봅시다.”
“…그러죠.”
수호가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찰나,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인사들 나누고 계시네. 저도 이번에 함께 갈 서현석이라고 합니다.”
푸근한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좌중의 시선에 멋쩍게 웃은 서현석이 말을 이었다.
“협회 소속이고요, 제가 1선에서 물러난 지는 좀 됐지만, 그래도 레인저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 피해 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하.”
너스레 떨며 말하는 품새가 부드럽다.
여유도 엿보이고,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화술이 느껴졌다.
“정욱 아저씨, 혹시 저 아저씨한테도 잘 부탁해야 해?”
“미래야, 좀.”
윤미래와 이정욱이 투덕거리고 있을 때, 서현석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 여기 들어갔다 살아 돌아 온… 돌아왔던 친구의 유언을 들은 게 접니다. 이 던전, 꼭 클리어하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윤미래도 대화를 멈추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때쯤 협회장의 비서인 신성현이 나타났다.
“아시다시피, 이곳은 이미 한 번 공략에 실패했던 던전입니다. 던전의 정보는 그때 탈출했던 길태식 헌터의 유언에 의해 밝혀진 내용이고요.”
사람들이 묵묵히 신성현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던전 브레이크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부디 여러분께서 무사히 던전을 클리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던전의 정보에 대해 다시 한번 브리핑하겠습니다.”
신성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머잖아 브리핑이 끝나고, 일행이 게이트에 입장했다.
* * *
옛 로마의 콜로세움을 떠올리게 하는 투기장.
그것이 이번 던전의 지형이었다.
투기장 벽에는 수십 개의 문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구궁-
그중 4개가 위로 밀려 올라갔다.
“브리핑 때 들은 것처럼 입장한 헌터의 수만큼 몬스터가 등장합니다.”
이번 파티의 리더를 맡은 서현석이 재빨리 속삭였다.
이것이 협회에서 헌터를 대규모로 파견하지 못한 이유다.
헌터 수가 많을수록 몬스터의 수가 늘어나니, 소수 정예로 오는 것이 피해를 줄이고 던전을 클리어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약속한 대로, 첫 단계는 각자 하나씩 맡아서 빠르게 처리합시다.”
서현석이 지시를 마쳤다.
문이 완전히 열리며 몬스터의 모습이 드러났다.
돌로 만들어진 검투사.
맨손이라는 것을 빼면, 로마 시대의 검투사를 빼다 박았다.
저벅.
그런 검투사 넷이 일행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수호는 그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다행이네. 발룡이가 인원으로 취급되지 않아서.’
몬스터가 하나 더 나오면, 곤란할 뻔했는데.
진짜 소환수 취급인가?
수호가 발룡이를 흘끔 쳐다봤다.
『왠지 무례한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이군.』
수호는 발룡이의 말을 무시하고, 몬스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몬스터는 약해. 저 정도에 헌터들이 전부 당했을 리는…….’
수호가 생각하는 사이.
윤미래는 이미 장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는 몬스터가 등장하기 전부터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1성 중에는 최고 수준이란 말이지?’
협회는 길드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구했다.
던전의 특성상, 1성 최고의 실력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구성된 것이 지금의 파티다.
백호 길드의 유망주.
협회의 노련한 레인저.
사람을 보내지 않은 이카루스를 빼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동급에서 최고임이 틀림없다.
‘정욱 아저씨가 날 부탁한다고 했으니, 저 무소속 아저씨도 보통은 아닐 테고.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검도 선수로 활동해 온 윤미래다.
승부욕은 그녀에게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던전에 들어온 지금도, 그녀는 다른 모든 이를 이기고 싶었다.
‘내가 제일 강해. 내가 제일 빨리 잡는 거야.’
나는 최고니까.
대회에 나갈 때마다 주문처럼 되뇌던 말을 중얼거리며, 윤미래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투쾅.
검투사가 바닥을 박차고 덤벼들었다.
순식간에 날아드는 돌주먹.
‘흥!’
윤미래는 코웃음을 치며 무릎을 굽혔다.
후웅-
파공음과 함께 검투사의 주먹이 머리 위를 지나치는 순간.
스카각-
윤미래의 장검이 검투사의 팔을 베었다.
툭, 팔이 떨어졌다.
윤미래는 멈추지 않았다.
타다닥-
재빠르게 스탭을 밟으며 검투사의 등 뒤로 우회.
장검을 번개처럼 휘둘렀다.
츠카카카카칵-
잔영을 남기는 빠른 검격이 쏟아지고.
후두둑-
검투사의 몸이 돌 부스러기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석투사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후우-”
메시지를 확인하며 윤미래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이보다 빠를 수는 없어.’
그녀는 자신했다.
검투사가 딱 한 번 주먹을 내지르는 시간.
그사이 그녀는 10번을 베었고, 그것으로 검투사를 쓰러트렸다.
누구도 그녀보다 빠를 수는 없는 것이다.
힐끔.
윤미래가 백호에서 온 김진성을 살폈다.
거의 다 잡아 가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협회에서 온 아저씨도 마찬가지.
입꼬리를 끌어 올린 윤미래가 마지막으로 수호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수호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데 싸움의 여파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박살 난 검투사의 잔해가 수호 앞에 떨어져 있을 뿐.
‘움직인 것 같지도 않잖아! 뭘 어떻게 한 거야, 진짜!’
놀람만큼이나 궁금증이 치솟았다.
윤미래는 기어이 수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어떻게 한 거예요?”
그때쯤 김진성과 서현석도 싸움을 끝냈다.
수호의 시선이 윤미래에게 향했다.
“뭘?”
“저거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잡았냐고요.”
윤미래가 바닥의 잔해를 가리키며 물었다.
수호는 있는 그대로 대답해 줬다.
“그냥 툭 치니까 죽던데.”
사실이었다.
굳이 피할 필요도 없다.
정면으로 쳐라.
그러면 부서질 것이다.
감각 스탯이 전해 온 대로, 화염 강격을 일으켜 쳤을 뿐이다.
그 결과 검투사가 자갈로 화했을 뿐이고.
“말도 안 돼. 보지도 못했는데.”
윤미래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구궁-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나타난 것도 돌로 만들어진 검투사.
단, 손에 칼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꼭 먼저 잡을 거야!’
윤미래의 승부욕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타닷.
윤미래는 문이 다 열리는 타이밍에 맞춰 검투사에게 쇄도했다.
쎄에엑-
막 문에서 걸어 나온 검투사가 검을 휘둘렀다.
윤미래는 주춤 멈춰 서며 검을 코끝으로 흘렸다.
‘한 방에 끝내는 거야.’
그리고 저 아저씨가 어떻게 몬스터를 잡았는지 지켜보겠어!
‘참철연격!’
윤미래가 스킬을 시전했다.
검 끝이 벌새의 날개처럼 파르르 떨렸다.
푸른 검기가 검날에 맺히는가 싶더니, 검투사의 몸으로 쏘아졌다.
츠차차차차차차차찻-
검, 방패, 몸통.
수십 가닥의 검기에 검투사의 모든 것이 난자되어 흩어졌다.
“하악, 이번엔 내가 더 빨랐… 뭐!”
거친 호흡을 정리하며 윤미래는 수호를 돌아봤다.
“말도 안 돼!”
그리고 경악성을 터트렸다.
수호의 앞에 박살 난 검투사의 잔해가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아저씨 진짜 어떻게 한 거예요?”
윤미래가 수호에게 후다닥 달려가 물었다.
“그냥 때려잡았다니까.”
수호는 적당히 대답하고 시선을 돌렸다.
윤미래의 질문보다 훨씬 더 궁금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쯤 본색을 드러내시려나.’
수호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31화 의뢰(3)
쿵.
철갑으로 몸을 감싼 금속 검투사가 쓰러졌다.
[철갑 투사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수호가 메시지를 일별하고 옆으로 달렸다.
“나 혼자 처리할 수 있… 큭-!”
김진성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수호가 화염 강격을 날렸다.
콰아아앙-!
등을 가격당한 철갑 투사가 상반신이 반파되어 쓰러졌다.
수호는 반대편을 살폈다.
“이겼다. 하아… 진짜 뭐가 이렇게 빡세. 우왓! 저 아저씨 벌써 다 잡았어!”
서현석과 힘을 합쳐 철갑 투사 하나를 처치한 윤미래.
그녀가 수호를 보며 너스레를 떤다.
수호의 실력을 완전히 인정했기에, 전처럼 과한 승부욕은 보이지 않았다.
“이거로 이번 단계도 끝인가 봅니다.”
서현석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는 벽 한쪽을 눈짓했다.
구구궁-
거대한 문이 위로 올라가며, 새로운 통로가 나타났다.
“그러게요, 이번 단계도 3번 이기면 통과하네요.”
1단계, 석투사가 나오는 곳에서도 3번을 싸웠다.
그때까지는 각자 1마리씩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었다.
하나 2단계부터는 상황이 달랐다.
“진짜 수호 씨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허허.”
“맞아요. 저 아저씨 진짜 이상할 정도로 강하다니까. 우리 오성으로 왔으면 좋았을 텐데.”
2단계부터는 수호만이 몬스터를 빠르게 처치할 수 있었다.
세 명이 2마리를 상대하는 동안, 수호가 나머지를 죽이는 것이 작전이었다.
한데 자기 몫을 처리하고, 김진성의 것까지 잡았으니.
공치사가 따라오는 게 당연했다.
‘덕분에 나야 레벨도 잘 오르고 좋긴 하다만.’
그 사이 레벨 2가 올라 수호는 18레벨이 됐다.
압도적인 기여도 덕분이었다.
“다들 좀 앉아서 쉽시다.”
서현석이 먼저 자리 잡고 앉았다.
다음 단계로 향하기 전에 체력을 비축해야 했다.
“몇 단계까지 있을지 모르니, 충분히 쉬었다 가죠.”
수호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멀찍이 떨어져 앉는 김진성과는 달리, 윤미래는 수호 옆에 다가왔다.
“아저씨, 왜 그렇게 강해요? 진짜 1성 맞아요?”
“여기 20레벨 넘으면 못 들어오는 던전이잖아. 당연히 나도 20렙 아래지.”
“이상해, 정말. 동렙에서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은 처음이란 말이에요. 진짜 어떻게 그렇게 움직이는 거지? 부러워, 칫.”
수호는 여고생의 투정을 웃으며 들어 넘겼다. 윤미래 나름의 친근감 표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수호는 시선을 통로 저편으로 돌렸다.
‘슬슬 끝이 보여.’
머잖아 일이 벌어질 것이다.
수호의 생각을 뒷받침하듯, 발룡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로 너머에서 더러운 마기가 느껴진다. 저 정도 기운이면, 분명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음침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지.’
던전 밖에서 발룡이가 감지한 마기를 수호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느껴졌다.
통로 저편의 마기는 그만큼 노골적이고 진했다.
『마기에 물든 것들은 끈질기다. 육체의 파괴로는 잘 죽지 않아. 존재를 말살해 버린다는 생각으로 혼을 담아 공격해라.』
‘혼을 담아 공격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건데?’
눈빛 텔레파시를 보냈지만, 발룡이는 알아듣지 못했다.
저놈의 중2병.
‘그냥 최대한 박살 내 버리는 수밖에.’
적당히 시간이 흐르고, 일행의 체력이 차올랐다.
수호는 품에 손을 넣는 척하며, 차원 보따리를 열었다.
“이거 한 병씩 마시고 가죠.”
수호가 잉어즙을 꺼내 일행에게 건넸다.
“이거 뭐예요, 아저씨?”
“잉어즙.”
“윽, 비린 거 아니에요? 저 비위 약해서 못 먹는데.”
“수박 맛이야.”
“…개그예요?”
“아니야, 진짜 수박 맛이야.”
수호가 먼저 잉어즙을 먹었다.
그리고 빈 병을 윤미래의 코앞에 흔들었다.
“어? 진짜?”
그제야 윤미래가 잉어즙을 마셨다.
서현석은 진작에 병을 비웠다.
“수호 씨, 센스도 좋습니다. 이런 것까지 다 챙겨오시고. 무사히 나가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일단 무사히 나가는 거부터 생각하죠.”
김진성은 말없이 잉어즙을 비운 뒤, 수호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와, 잉어즙에서 이런 맛이? 이거 어디서 샀어요?”
“우리 가게.”
“가게? 아저씨 가게 주인이에요?”
고개를 끄덕이며, 수호가 일어섰다.
“가죠. 잉어즙 지속 시간 끝나기 전에.”
수호가 통로로 향했다.
나머지 일행도 수호의 뒤를 쫓았다.
* * *
마지막 단계도 방식은 비슷했다.
콜로세움.
일행의 수에 맞춰 나타나는 적.
『더러운 기운이군.』
발룡이의 경고를 들으며, 수호는 칼을 뽑아 들었다.
구구궁.
벽이 올라가며 4마리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저씨, 보라돌이예요!”
그것은 보라색 피부를 한 검투사였다.
지금껏 나타났던 것들 중에 가장 사람에 가까웠지만 가장 꺼림칙했다.
“크르르르-”
문이 열리고 보라색 검투사가 총알처럼 달려 나왔다.
그보다 더 빨리 수호가 전진했다.
‘화염 강격!’
수호는 망설이지 않고 검을 내질렀다.
검투사의 철퇴가 미처 들어 올려지기도 전.
콰아아아앙-!
불꽃에 휩싸인 화염 포마검이 검투사의 가슴에 명중했다.
검투사는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가슴이 완전히 함몰되어 있었다.
“크르르르-”
나머지 검투사들이 괴성과 함께 수호에게 밀려들었다.
눈에 띄는 행동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김진성이 한 마리의 옆구리로 파고들며 검을 내질렀다.
‘참철 연격!’
윤미래도 스킬을 발동하여 한 놈을 공격해 갔다.
서현석의 비수도 날카롭게 쏘아졌다.
『수호, 뒤다!』
발룡이의 경고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기다리고 있었다.’
수호가 대비하고 있던 순간이기도 했다.
빙글 몸을 반전한 수호가 벼락처럼 칼을 휘둘렀다.
서걱.
잘린 팔뚝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으앗! 아저씨, 뭐한 거예요?”
검투사와 드잡이 중이던 윤미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나 수호의 눈은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어떻게 눈치챘지?”
서현석.
그가 잘린 팔뚝에서 검은색 피를 뚝뚝 흘리며 물어 왔기 때문이다.
“더러운 기운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데, 모를 수가 있나.”
수호는 대답과 동시에 서현석에게 쇄도했다.
쾅-!
‘막혔어?’
화염 강격이 서현석의 비수에 막혔다.
서현석의 팔뚝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갔지만 분명 막혔다.
서현석은 부상에 개의치 않고 연신 비수를 휘둘렀다.
『마물이다. 잊지 마!』
그래, 쉽게 안 죽는다 그 말이지?
지금도 뒤에서 검투사가 달려오고 있다.
서현석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
‘승부를 걸어야 해.’
수호가 승부수를 띄우려는 순간에도 서현석은 기이하게 웃고 있었다.
눈알은 온통 검게 변했다.
몸에서는 검은 기운이 흘러나온다.
마기에 완전히 잠식된 상태였다.
‘크흐흐흐, 저놈, 저놈을 죽이고 싶다.’
그는 이제 자신이 헌터임을 잊었다.
거슬리는 존재를 죽이고 싶다는 살의만이 남았다.
‘죽일 거야. 으흐흐, 죽일 수 있어.’
살의가 살해에 대한 자신감으로 변했다.
‘이 육체! 부서져도 죽지 않는 이 육체! 저런 하찮은 것들보다 나는 우월해! 하찮은 것들은 먹이가 되어라!’
그리고 마물의 광기로 바뀌었다.
서현석.
아니, 한때 서현석이었던 마물이 외쳤다.
“크흐흐흐흐흐- 모조리 잡아먹어 주마.”
그 순간, 수호도 승부수를 띄웠다.
‘근력 증폭!’
적회색 수호자에서 웅혼한 기운이 솟아났다.
기운이 몸으로 흘러든다.
활화산 같은 힘이 용솟음친다.
쾅!
수호가 바닥을 박찼다.
2배로 증폭된 근력이 수호의 몸을 밀어낸다.
과도한 움직임으로 인한 신체 손상은 재생 스탯이 치유한다.
압도적인 기세!
수호가 검을 휘둘렀다.
“크르르- 컥!”
서현석은 인식하지 못했다.
자신의 가슴에 화염 포마검이 닿을 때까지.
콰아아아아아앙-!
충격파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데구루루-
서현석의 목 아래가 사라졌다.
남겨진 수급이 바닥을 구른다.
여전히 괴성을 흘리던 표정 그대로였다.
‘일단 제일 이상한 놈은 처리했고.’
처음부터 마기를 흘리던 서현석은 처치했다.
수호는 서둘러 나머지 검투사에게 몸을 돌리려 했다.
한데 그때.
『아직이다!』
발룡이의 경고가 들려왔다.
동시에 서현석의 수급이 입을 쩍 벌렸다.
키에엑-
시커먼 덩어리가 수호의 얼굴로 쏘아져 왔다.
‘이건 뭐야?’
수호가 방패를 휘둘렀다.
퍽- 방패에 가격당한 덩어리가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저 덩어리가 본체다! 인간은 숙주에 불과하고, 검투사 몬스터도 마찬가지야. 저걸 소멸시켜야 끝난다.』
저 시커먼 게 마기의 근원이다, 이 말이지?
수호는 벽으로 달려가며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화염 강격이 시커먼 덩어리를 내리찍었다.
‘소멸되지 않았어!’
짓이겨졌지만 덩어리는 여전히 남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완전히 박멸하려면, 몇 번이고 내리쳐야 할 듯했다.
하지만 여유가 없다.
‘검투사부터 처치해야겠어.’
벽에 처박혔던 검투사가 몸을 일으켰다.
등 뒤에서도 하나가 접근 중이고.
‘김진성은 괜찮고.’
끝까지 눈에서 호승심이 사라지지 않더라니.
김진성은 한 수를 감추고 있었다.
늑대인간.
김진성은 키가 3m는 되어 보이는 늑대인간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는 검투사를 상대로 우위를 보이는 중.
‘윤미래는 위험해.’
반면에 윤미래는 아슬아슬했다.
화려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죽는다.
‘지속 시간 안에 끝낸다.’
근력 증폭이 끝나기 전에 마무리한다.
수호가 번개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직- 진각과 함께 바닥이 부서지고.
수호의 신형이 사라졌다.
콰아앙!
한 놈의 상반신이 지워졌다.
곧이어 겹치듯 폭음이 들려오고, 또 한 놈이 박살 나 처박혔다.
이제 남은 건 둘.
윤미래와 김진성이 하나씩 맡고 있다.
‘윤미래부터.’
수호는 윤미래의 곁으로 쇄도했다.
윤미래도 수호의 접근을 눈치챘다.
“아저씨, 토스!”
그녀가 검투사의 공격을 슬쩍 흘리며 수호 쪽으로 밀었다.
‘화염 강격!’
콰아아앙-!
수호는 마다치 않고 놈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이제 마지막 하나.
“크르르- 내가 처리할 수 있어!”
소리친 김진성이 스킬을 사용했다.
‘광폭화!’
눈이 충혈되고, 털이 곤두선다.
김진성이 양손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곧 검투사가 쓰러졌다.
털썩.
김진성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우, 일단 급한 불은 껐고.’
수호가 긴 숨을 내쉬었다.
근력 증폭이 해제되며 허탈감을 느낀 탓이다.
“아저씨, 저 사람 어떻게 된 거예요?”
윤미래가 수호의 옆으로 달려왔다.
서현석의 머리통과 벽에 짓이겨진 검은 덩어리를 손으로 번갈아 가리켰다.
덩어리는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저씨! 도대체 뭘 알고 있는 거예요? 좀 가르쳐 줘요. 저 사람… 아니, 이제 사람인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저 사람 왜 저래요? 아까 저 사람이 뒤에서 아저씨 공격한 거 맞죠? 그리고 저 검은 건 뭐예요? 엄청 불길해!”
윤미래가 다다닥 질문을 던졌다.
수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윤미래의 수다 때문은 아니고.
‘검투사에도 모조리 검은 덩어리가 들어 있구나.’
방금 처리한 검투사들에게서도, 서현석의 것과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잠깐만 물러나 있어.”
수호는 죽은 검투사들의 사체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자 검은 덩어리가 습격해 왔다.
퍽!
수호는 검투사의 사체를 돌며 검은 덩어리를 터트렸다.
‘완전히 소멸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덩어리는 짓이겨졌을 뿐, 여전히 꿈틀거렸다.
‘혼을 담아 공격하란 말이 진짜였어? 근데 어떻게?’
수호가 흘끔 발룡이를 쳐다봤다.
수호의 마음을 눈치챈 발룡이가 대답했다.
『일단 덩어리를 모두 모아라.』
수호는 칼끝으로 덩어리를 한군데로 모았다.
“으익- 아저씨, 뭐 해요. 지저분하게.”
“질문은 그만하고, 너도 좀 도와.”
“으으, 알았어요.”
윤미래는 질색하면서도 수호를 도왔다.
잠시 후, 모든 덩어리가 한곳에 모였다.
‘이제 어떻게 하지?’
수호가 눈빛으로 물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네놈의 화염 강격으로 저것들을 완전히 분해하면 되겠지. 수백 번 내리쳐서.』
지치기도 하고, 마력이 버텨 줄지도 미지수다.
‘다른 방법은?’
『그 외의 방법이라면… 위대한 본좌에게 치킨 세 마리를 조공하는 것이다. 크큭.』
어이없는 마음도 잠시.
수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한 만큼 받아야 일할 맛이 나지.’
『수락인가? 그렇다면 저것들을 향해 손을 뻗어라.』
수호는 발룡이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외쳐라. 심연의 불꽃이여 현신하라!』
뭐?
수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딴 중2병 대사를 여기서 외치라고?’
하나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태다.
“아저씨, 뭐 해요? 손은 왜 들고 있어요?”
윤미래가 눈빛을 빛내며 물어온다.
김진성도 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어서 외쳐라. 그래야 본좌가 힘을 쓸 것이 아니냐.』
집에 가서 두고 보자.
“…심연의 불꽃이여 현신하라.”
말이 떨어지는 순간.
수호의 손등에 내려앉은 발룡이가 입을 벌렸다.
드래곤의 숨결이 뻗어 나갔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악-!
혼백을 쥐어짜는 듯한 괴성이 울리고.
치이익-
브레스에 닿은 덩어리들이 재로 변해 사라졌다.
메시지가 수호의 눈앞을 수놓기 시작했다.
[마기에 물든 검투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마기에 물든 검투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
.
[레벨 업!]
[레벨 업!]
[감각이 1 증가합니다.]
[재생이 1 증가합니다.]
[민첩이 1 증가합니다.]
.
.
.
수많은 메시지가 끝날 때쯤.
구구궁-
던전 클리어를 알리는 던전 코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32화 시끄러운 이웃(1)
던전 밖, 컨테이너 하우스.
임시 휴게실 안에 수호와 김진성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김진성이 호승심 불타는 눈빛으로 말했다.
“다음번엔! 2성에서는 제가 이길 겁니다, 형님.”
이기고 지고는 어떻게 정하는 건지.
근데 갑자기 형님?
‘이거 혹시 친근감 표시인가?’
기승전결이 없어 실소가 나온다.
수호가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했다.
“아, 네.”
“말은 편하게 하십시오. 대신 다음번엔 제가 진짜로 이길 겁니다.”
이건 뭐.
어째 주변에 멀쩡한 캐릭터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인데.
“어, 그래.”
“근데 혹시 마검사이십니까, 형님?”
“아니야!”
“근접 전투력을 생각하면, 그런 대단한 화염 마법을 쓰시는 건 정말 이해가 안 갈 정도입니다.”
“…….”
수호는 대답 대신 발룡이를 흘끔 꼬나봤다.
발룡이는 투명화한 채, 휴게실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발룡이 이 자식. 남한테 흑역사를 만들어 놓고, 팔자 좋게 누워 있어?’
두고 보자.
수호가 복수를 다짐하는 사이, 휴게실 문이 열렸다.
윤미래가 들어왔다.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진술하고 온 것이다.
“어차피 다 똑같이 대답할 텐데, 뭘 나눠서 묻고 그러는지… 아저씨, 그죠?”
방 안에 이상한 캐릭터가 하나 늘어났다.
“어, 그래.”
“근데 아저씨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으면 대답해 주실 거예요?”
“…아니.”
“아저씨, 혹시… 아니에요.”
“왜 질문을 하다 마는 건데?”
“대답 안 하실 거라면서요? 저도 왠지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저씨의 취향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으니까요.”
심연의 불꽃이라니, 풉-
윤미래가 터지려는 웃음을 막았다.
수호는 수치사 할 것 같은 마음을 다스리며 복수심을 곱씹었다.
“근데 아저씨, 진짜 상점 주인이라면서요?”
윤미래가 슬쩍 말을 돌렸다.

Comentários

Postagens mais visitadas deste blog

apocalipse 9

magia 10

magia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