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al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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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수호는 던전 앞에 도착했다.
“원수호 헌터님, 곧바로 진입하십시오.”
협회 소속 진행 요원이 말했다.
몬스터가 없는 탓에 브리핑은 내부에서 진행된다.
수호는 망설임 없이 게이트에 몸을 던졌다.
* * *
“원수호 헌터, 오셨군요.”
신성현이 수호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직접 오셨네요.”
“예,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이번 던전의 책임자이자, 헌터 파티의 리더는 신성현이었다.
협회로서도 강수를 둔 셈.
수호는 신성현 뒤에 있는 헌터들을 살폈다.
신성현을 제외하면 총 11명.
한데 특이한 외형의 사람이 보였다.
‘금발? 외국인인가.’
수호가 궁금함을 느끼고 있을 때, 신성현이 뒤편을 가리켰다.
“일행과 인사 나누시죠. 협회 소속 4성 헌터들입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짧은 인사가 오갔다.
신성현이 멀찌감치 서 있는 두 서양인을 눈짓했다.
“저분은 영국의 마탑에서 오신 디노조 님입니다. 옆에는 호위로 따라오신 마샬 님이고요.”
4성 만렙 마법 계열 헌터 디노조와 전투 계열 마샬이었다.
“아, 외국에 문의하셨다더니.”
수호가 속삭였다.
신성현이 작게 대답했다.
“예, 마법진 때문에요. 영국의 마탑이 그쪽 방면에 가장 능통하니까요.”
마탑.
영국 소속 길드다.
초창기부터 뛰어난 마법 계열 헌터를 보유한 덕분에 유명세를 탔다.
전 세계에서 마법 계열 헌터들이 몰려들면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길드가 되었다.
수호가 마탑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고 있을 때, 신성현이 말을 이었다.
“드래곤이 마법진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해서 방문을 취소하려 했는데, 저쪽에서 꼭 오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먼저 요청한 터라, 강제로 막을 명분이 부족했어요.”
“그렇군요.”
웬 외국인인가 했더니.
사연이 있었구만.
“후방에서 화력 지원을 해 주기로 했습니다. 뛰어난 전력이 합류한 셈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동료가 많아서 나쁠 것은 없지.’
그때 마탑 소속 헌터가 다가왔다.
마법사인 디노조는 뒤로 빠지고, 마샬이 앞으로 나섰다.
마샬의 입에서 괜찮은 솜씨의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이분이 드래곤의 주인이신가요?”
신성현이 나서며 수호를 소개했다.
“예, 이분이 드래곤을 부리시는 원수호 헌터님입니다.”
수호도 인사를 건넸다.
“원수호입니다.”
“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마샬입니다. 이 친구는 디노조고요. 아, 제가 통역입니다. 디노조는 한국어를 못 하거든요.”
이탈리아 출신이라, 영어도 별로지만요.
마샬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군요.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수호가 대답하자, 마샬이 넌지시 물었다.
“근데 드래곤은 어디 있나요? 따로 소환해야 나타나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녀석이 워낙 자유분방한 편이라, 주변 어딘가에서 쉬고 있을 거예요. 필요하면 나타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발룡이는 투명화한 채 옆에 있었지만, 수호는 적당히 거짓을 섞어 대답했다.
맡은 일은 마법진의 해제뿐.
발룡이를 구경거리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런가요? 아쉽네요.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일이 시작되면 자연히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마탑의 두 헌터가 멀어져 갔다.
한데 수호의 예리한 감각에 디노조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무능한 애송이가 소환수를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군. 하긴 분수에 안 맞는 보물을 손에 넣었으니, 당연한 일인가.”
이탈리아어였다.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거란 생각에 한 말.
하나 【소통】 스킬을 보유한 수호에게는 그 뜻이 전해졌다.
아울러 시스템의 페널티로 인해, ‘소환수’ 취급을 받고 있는 발룡이 또한 마찬가지.
『저 하찮은 것들은 뭐지? 무례한 짓을 왜 그냥 두고 보는 것이냐?』
발룡이가 물었다.
은은한 분노가 느껴진다.
수호가 【차원 전음】으로 대답했다.
- 일만 잘하면 되지, 뭐. 해코지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무시해.
괜히 티 내면 협회 입장도 난감해질 테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수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일만 잘하면 되지만… 저렇게 무례한 놈들치고, 일을 제대로 하는 놈이 드문데 말이지.’
무례의 대가를 직접 받아 내지 않아도 되게, 부디 맡은 일이라도 똑바로 하기를.
수호의 염원과 함께 던전 공략이 시작됐다.
* * *
짧은 브리핑 후.
일행이 바위 앞에 모였다.
“그럼 시작해 주십시오, 원수호 헌터.”
“알겠습니다.”
신성현의 지시에 수호가 앞으로 나섰다.
발룡이가 투명화를 풀고 나타났다.
“오- 저게 드래곤이군.”
“블랙 드래곤이야.”
“정말 마법을 해제할 수 있으려나?”
“멋있어. 근데 표정이 원래 저렇게 근엄한 건가?”
헌터들이 웅성거리는 순간, 발룡이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열려라!』
우우우웅-
바위가 떨리나 싶더니.
파스스.
바위에 새겨진 문양이 바스러졌다.
『됐느니라.』
수호가 바위에 손을 댔다.
구구궁.
바위가 밀려났다.
끝을 알 수 없는 시커먼 구멍이 입을 벌렸다.
88화 거인의 정원 (2)
동굴 내부는 넓었다.
웬만한 건물을 통째로 집어넣어도 될 정도.
“진입 준비.”
신성현이 명령했다.
척후를 위해 레인저 클래스 헌터가 앞으로 나섰다.
몸 주변에 희뿌연 안개가 어려 있다.
적의 감지를 무력화하고 기척을 죽이는 【탐지 방해】 스킬이었다.
“진입.”
일행이 천천히 동굴로 들어섰다.
선두는 레인저.
멀찍이 떨어진 뒤편, 근거리 헌터들이 따랐다.
궁수와 마법사 그리고 힐러가 신성현과 함께 그 뒤에 위치했다.
‘신성현 헌터는 일부러 후방에 쳐진 건가.’
검을 쓰는 신성현이었지만, 지휘를 위해 비교적 후방에 위치한 것이다.
마탑 소속 두 헌터는 그 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뒤따르는 것이 수호였다.
통로가 한 갈래일 경우를 대비해 미리 약속한 진형이었다.
“전진한다.”
신성현이 말했다.
일행이 천천히 전진해 나아갔다.
『몬스터다.』
어느 순간, 발룡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호의 감각에도 걸렸다.
- 썩 강한 것 같지는 않은데, 수가 많네.
개체마다 강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한데 수가 10마리를 넘었다.
‘4성 던전치고, 이 정도면 무난한가?’
일행에게 따로 알리지는 않았다.
레인저가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상은 맞았다.
잠시 후, 레인저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정지.”
멀찍이 뒤따르던 일행도 진형을 유지한 채 멈춰 섰다.
레인저가 돌아와 신성현에게 보고했다.
“소형차 크기의 곤충형 몬스터입니다. 수는 열, 몸통이 둥글고 6개의 짧은 다리가 있습니다. 생김새만 봐서는 기동력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꽁무니 쪽에 검은 진액이 맺혀 있는데, 독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 외에…….”
짧은 순간, 포착한 정보를 읊는 레인저.
‘4성 만렙으로 이뤄진 파티라 그런가, 역시 다들 한가락 하는구만.’
수호가 일행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는 사이, 보고를 다 들은 신성현이 명령을 내렸다.
“적이 다수다. 처음 상대하는 적이니 돌발 상황에 주의할 것.”
헌터들에게 명한 신성현이 뒤편을 돌아봤다.
“디노조 님도 화력 지원 부탁합니다.”
“그러겠답니다.”
마샬이 대신 대답했다.
신성현이 수호를 쳐다봤다.
수호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뒤에서 관망하기로 미리 약속한 상태.
별다른 지시는 없었다.
곧 전투가 시작됐다.
* * *
쎄에엑-
선공은 궁수 클래스 헌터의 화살로 시작됐다.
푹-
화살이 몬스터에게 명중했다.
화살촉이 몬스터의 거죽을 쉽게 뚫고 들어갔다.
‘방어력이 약해.’
부르르.
공격당한 몬스터의 몸이 떨리더니, 복어처럼 부풀어 올랐다.
크기가 2배로 커지고 몸은 더 둥글어진다.
스르륵-
달팽이의 움직임을 빠르게 재생한 듯.
몬스터가 바닥을 미끄러지며 다가왔다.
스르륵- 스르륵-
주변의 다른 놈들도 몸을 부풀리고, 미끄러져 다가온다.
“원거리! 쏴!”
신성현의 목소리에 원거리 공격 수단이 있는 헌터들이 화력을 쏟아부었다.
꾸에에엑-
[풍선 진딧물을 처치하셨습니다.]
몬스터 하나가 죽었다.
한데 죽은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팡-
풍선처럼 폭발하는 몬스터의 사체.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독이다!”
누군가 외쳤다.
다행히 아직 거리가 멀다. 독이 헌터들을 덮치지는 않았다.
“물러나! 거리 유지하면서 싸운다!”
헌터들이 뒷걸음질 치면서 원거리 공격을 날렸다.
수호도 조금씩 뒤편으로 물러났다.
그때쯤 디노조의 화력 지원이 시작됐다.
“얼음 소나기!”
허공에서 수십 개의 고드름이 떨어져 내린다.
풍선 진딧물 무리가 얼음 비에 뒤덮였다.
저저적.
고드름에 맞은 풍선 진딧물의 몸이 얼어붙었다.
죽은 놈도 있고, 살아남은 놈도 있다.
공통점은 터지지 않았다는 것.
‘호- 일부러 얼린 건가? 나름 한 수가 있었어.’
수호는 감탄했다.
무례한 인간이지만, 실력까지 없지는 않았다.
협회에서 합류를 마다하지 못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원거리, 쏴!”
다시 명령한 신성현이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칼에 맺힌 푸른 기운이 발사됐다.
서거걱-
허공을 가른 검기가 얼어붙은 풍선 진딧물을 가르고 지나갔다.
[풍선 진딧물을 처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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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가 줄줄이 떠올랐다.
‘역시 저 양반도 보통이 아니구만.’
괜히 협회장의 오른팔이 아니겠지.
수호가 편안한 마음으로 전투를 구경했다.
[풍선 진딧물을 처치하셨습니다.]
머잖아 마지막 풍선 진딧물이 처치됐다.
첫 번째 전투가 사상자 없이 끝났다.
짧게 정비한 후, 일행은 다시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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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전투와 이동이 반복됐다.
헌터 한 명이 독에 당한 것을 제외하면 큰 사고는 없었다. 독은 치료 계열 헌터의 스킬로 해독할 수 있었다.
무탈히 전진하던 일행의 발길을 막아 세우는 것이 있었다.
“막혔어.”
“또 바위야.”
“이번에도 문양이 그려져 있군.”
통로가 벽으로 막혔다.
벽 아래쪽.
처음 동굴을 막았던 것과 비슷한 바위가 박혀 있다.
신성현이 수호에게 다가왔다.
“열 수 있겠습니까?”
수호가 발룡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발룡이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잠시 후에 부탁하겠습니다.”
신성현은 뒤이어 일행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잠시 쉰 후에 문을 열고 넘어간다. 휴식!”
막힌 벽 앞.
일행이 삼삼오오 자리 잡았다.
수호도 한구석에 앉았다.
싸우지 않았기에 피로하지 않다.
굳이 휴식에 집중할 필요가 없는 상황.
수호의 시선이 주변으로 향했다.
“근거리 헌터들의 화력이 낭비되는 탓에 전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독이 문제인데, 주요 부위에만 맞지 않으면 치명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그렇다고 근접전은 위험합니다. 좀 늦어도 지금처럼…….”
“마탑 마법사의 얼음 마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형태…….”
신성현과 헌터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휴식 시간을 이용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훌륭하네.’
4성 만렙쯤 되면 저 정도는 기본인가.
파티 플레이 경험이 적은 수호에게는 배울 만한 점이 있었다.
오가는 내용도 수호의 감상과 비슷했다.
‘마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형태라는 건 알고 있군.’
수호의 시선이 외따로 자리 잡은 마탑 헌터에게 향했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수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왜 마탑 헌터들의 이야기만 안 들리는 거지?’
수호의 생각을 읽은 발룡이가 해답을 읊었다.
『저 무례한 놈이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썼느니라.』
- 그렇구만. 뭐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본좌의 앞에서 불가능을 입에 담다니!』
왜 발끈하고 그러냐?
꼭 들어야 할 이유도 없는데.
하지만 발룡이가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니 물어 주는 게 도리.
- 들을 방법은 있고?
수호가 은근슬쩍 도발했다.
『크큭- 본좌가 보지 못하는 것은 세상에 없는 것이고, 본좌가 듣지 못하는 것은 누구도 말하지 않는 소리뿐.』
어, 그래.
수호가 실소를 참는 사이, 발룡이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디노조를 향해 은밀하게 뻗어 갔다.
곧 마탑 헌터들의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런 개자식들이!’
수호의 인상이 소태라도 씹은 듯 일그러졌다.
* * *
구구궁-
“오- 열렸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마법진인데, 순식간에 해제해 버리는군.”
“수호 씨, 정말 대단해.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낼까?”
“협회에 들어오는 건 어때? 레벨을 조금만 더 올리면, 우리 파티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것 같은데.”
휴식 덕분에 긴장이 풀린 덕일까.
발룡이가 두 번째 바위 문을 열자, 헌터들이 너스레를 떤다.
“문이 있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도록!”
신성현이 헌터들을 다잡았다.
실제로 던전에서 문을 넘어서면, 난이도가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신성현의 지적은 적절했다.
잠시 후 들려온 목소리가 그것을 증명했다.
“몬스터, 서른 이상, 들켰습니다. 접근 중!”
레인저가 급히 돌아오며 보고했다.
“전투 준비!”
신성현이 소리쳤다.
“몬스터 종류가 다릅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더 작고 몸통이 날렵합니다.”
레인저가 덧붙인 설명과 함께 전투가 시작됐다.
노련한 헌터들답게 대응은 기민했다.
방패를 든 탱커가 앞으로 나섰다.
그 뒤를 근거리 전투 계열 헌터들이 막아선다.
쎄에엑-
뒤편에서 화살이 날았다.
적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날린 화살이었다.
푹-
푸푹-
[총알 진딧물을 처치하셨습니다.]
[총알 진딧물을 처치하셨습니다.]
견제를 위한 화살에 처치 메시지가 떴다.
‘맷집이 약해.’
수호가 몬스터를 가늠하고 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푸콰아앙-
화살에 스친 총알 진딧물의 꽁무니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놈이 가속했다.
스팟-
잔상을 남기고, 놈이 직선으로 쏘아졌다.
콰아아앙-!
“크헉-!”
폭음과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
“제길, 탱커가 당했다. 힐러!”
뾰족한 총알 진딧물의 대가리가 탱커의 방패를 꿰뚫었다. 그 끝이 탱커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간신히 즉사는 면한 상태.
옆에 있던 헌터가 치유 물약을 먹이고, 치유 계열 헌터가 치유 스킬을 시전했다.
“단번에 숨통을 끊어! 어설프게 살려 두면 빨라진다!”
그사이 신성현이 외침이 통로를 울렸다.
헌터들이 화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총알 진딧물을 처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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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치 메시지가 연이어 떠올랐다.
‘아직 많이 남았어.’
한동안 격전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많은 진딧물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때 디노조가 스킬을 시전했다.
“얼음 소나기!”
얼음 칼날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총알 진딧물을 처치하셨습니다.]
[총알 진딧물을 처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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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공격 스킬에 맞은 몬스터가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이런!”
하지만 그 장면을 본 신성현은 혀를 찼다.
광역 공격이 가진 필연적인 약점.
모든 공격이 적의 목숨을 끊을 수는 없다.
푸콰아앙-
푸콰아앙-
푸콰아앙-
살아남은 총알 진딧물이 한꺼번에 가속했다.
목표는 잔뜩 주의를 끈 디노조.
마샬이 앞에서 열심히 칼을 휘두르며 총알 진딧물을 쳐낸다.
하나 다 막는 것은 무리.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둘만 알아볼 수 있는 신호가 짧게 오가고.
“피해!”
마치 더는 힘이 없다는 듯, 몸을 날리며 소리치는 마샬.
총알 진딧물이 디노조를 덮친다.
“헉!”
디노조가 놀란 척 눈을 치떴다.
깜빡-
그의 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곧이어 10미터쯤 떨어진 곳에 다시 나타났다.
회피기인 【프롬프트】 스킬이었다.
“원수호 헌터!”
신성현이 기겁하여 소리쳤다.
피해 버린 디노조 탓에 목표를 잃은 진딧물.
관성에 의해 진딧물이 향하는 곳에는 수호가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수호에게 향했다.
늦었어. 구할 수 없어.
3성 헌터가 버텨 낼 수 있는 공격이 아니야.
드래곤의 주인이 죽으면 던전은 어떻게 되는 거지?
찰나지간.
일행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쳤다.
단둘을 제외한 모두가 안타까움에 탄식했다.
‘그럴 줄 알았다.’
하나 탄식의 대상이 된 수호는 당황하지도 겁먹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망치를 뽑아 들었고.
스킬을 시전했을 뿐.
‘헤이스트!’
[거인의 격노]가 움직였다.
퍽- 퍼퍼퍼퍼퍼퍼퍽-
비행기 게임에서 폭탄이라도 쓴 것처럼.
빼곡하던 진딧물이 지워져 나간다.
헌터들의 눈앞에 소낙비처럼 메시지가 쏟아져 내렸다.
[총알 진딧물을 처치하셨습니다.]
[총알 진딧물을 처치하셨습니다.]
[총알 진딧물을 처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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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수놓은 메시지를 뚫고.
쯔아아아아아아아아악-
뒤늦게 헌터들의 귓가로 소리가 들려왔다.
[거인의 격노]가 바람을 찢어발기는 소리였다.
“살아있어! 총알 진딧물을 모두 박살 내 버렸다고!”
“미친! 갓 3성을 단 헌터가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드래곤이 한 건가?”
“무슨 소리야, 수호 씨가 망치로 다 때려잡았잖아. 못 봤어?”
“못 봤어. 안 보이더라고. 자네 눈엔 망치의 움직임이 보였어?”
“그건 아니지만… 젠장! 어쨌든 살아서 정말 다행이야.”
어느새 전투가 끝나 버린 전장.
헌터들이 경악한 눈빛으로 수호를 바라봤다.
수호가 고개를 돌렸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죽은 사람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디노조가 시야에 걸렸다.
손에 쥔 망치의 이름처럼.
수호의 눈에 강한 노여움이 어리기 시작했다.
89화 거인의 정원 (3)
“디노조, 저 드래곤의 주인이란 애송이를 해치워 버리자는 말이야?”
“그래. 직접 죽일 수는 없으니, 기회를 봐서 몬스터를 슬쩍 붙여 버리면 되겠지. 기껏해야 3성이라잖아.”
“마탑주님이 드래곤에 관해 조사해 오라고 하셨잖아. 괜찮겠어?”
“그러기 위해서라도 몬스터를 붙여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드래곤의 능력도 파악할 겸 말이야. 혹시나 저놈이 불운하게 죽어 버리면… 드래곤은 주인을 잃게 되겠군. 어쩌면 새 주인을 원하지 않을까?”
“너무 희망적인 예측 아니야?”
드래곤이 그냥 제 갈 길 갈 것 같은데?
마샬의 물음에 디노조가 비릿하게 웃었다.
맞다.
지나친 희망이며 억측이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뭐 괜찮잖아. 어차피 우리한테 손해가 될 일은 없으니까.”
애초에 동양의 작은 나라 따위에 파견 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마탑주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왔지만, 어차피 이곳까지 마탑주의 눈이 닿지는 않는다.
‘욕심 많은 마탑주 영감도 여기서 일어난 일까지 알 리는 없으니.’
마탑주가 궁금해하는 것은 드래곤의 존재와 가치뿐.
디노조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는 관심조차 없을 터였다.
‘마샬만 입을 다물면 끝이야.’
때마침 마샬과는 오랜 친구 사이.
마샬의 입을 다물게 할 방법은 차고 넘친다.
“하긴 우리와 상관없는 문제긴 해. 흐흐.”
마샬이 디노조를 따라 웃었다.
디노조와는 주고받는 게 분명한 사이.
원하는 대로 따라 주면, 뭐든 콩고물이 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디노조 말대로 던전 공략에 실패해도, 마샬에게는 피해가 없다.
그저 이 나라에서 사람이 몇 명쯤 죽어 나갈 뿐.
“저런 어설픈 놈이 드래곤을 부리는 꼴을 계속 보고 싶지도 않잖아. 그지?”
디노조가 본심을 내뱉었다.
수호를 본 순간부터 느낀. 그리고 드래곤이 마법진을 가볍게 해제할 때마다 커진 감정이다.
“크크, 뭐 좋으실 대로. 나야 어차피 네 보조로 따라온 거니까.”
“흐흐흐, 이래서 내가 널 좋아한다니까.”
* * *
수호는 휴식 중에 들은 두 이방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생각만 하는 건 죄가 아니지.’
수호는 저들이 생각만으로 끝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저들은 직접 움직였다.
‘생각을 실행한 이상… 이젠 적이다.’
수호의 눈에 서늘한 기운이 맺혔다.
그때 벼락처럼 달려온 사람이 있었다.
“원수호 헌터, 다친 곳은 없습니까?”
신성현이었다.
주변에 더 이상 몬스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수호에게 달려온 것이다.
“예, 괜찮습니다.”
신성현이 수호의 몸을 살폈다.
공격당했다는 흔적조차 없다.
‘3성에 갓 오른 헌터가, 4성 몬스터 떼를 처리해 내다니.’
생체기도 없이!
일반적인 기준으로 수호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은 알았다.
하나 방금 보여준 모습은 신성현의 예측을 아득히 넘어섰다.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어처구니없을 정도였군.’
게다가 어디 보통 상황이었나?
앞에 있던 디노조가 피하면서 생긴 돌발 상황.
대처가 몇 배는 어려웠을 터였다.
생각이 거기에 미쳤을 때, 신성현은 시선을 디노조에게 돌렸다.
“디노조 님, 갑자기 피해 버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가 따져 물었다.
마샬이 대신 입을 열었다.
“총알 진딧물이 갑작스럽게 덮쳐 오는 바람에 디노조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앞에서 쳐내려고 해 봤지만, 혼자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던지라…….”
“애초부터 광역 공격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네네, 디노조도 이제 깨달았을 겁니다. 앞으로는 주의한다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친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말을 잇는 마샬.
디노조는 뒤에서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 있다.
‘애초에 이들을 합류시키지 않았어야 했나.’
신성현이 후회했다.
애초에 마법진에 대해 마탑에 문의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이제 와 돌이킬 수 없었다.
신성현의 시선이 수호에게 향했다.
수호 또한 표정은 평온했다.
하지만 신성현은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 * *
『화가 났으면서, 왜 참는 거지? 처치해 버리지 그러느냐?』
발룡이가 물었다.
함께 지낸 시간이 길었기에, 발룡이는 수호의 기분을 눈치채고 있었다.
수호가 【차원 전음】으로 대답했다.
- 할 거야. 대놓고 하기가 좀 그래서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
헌터로 각성한 후, 수호에게는 여러 적이 있었다.
박동식을 시작으로, 머더러, 마인 등.
그들은 대부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함부로 칼을 휘두르지 않을 뿐.
수호는 적의가 확실한 적에게까지 관용을 베풀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직접 저들을 공격할 수 없었다.
『대놓고 하기가 그렇다니?』
- 협회 헌터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안타깝게도 마탑 헌터가 벌인 짓에 대한 증거는 없다.
수호가 엿들은 대화 내용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 받은 대로 돌려줘야지.
수호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발룡이가 괜스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건이 수습되고, 일행은 다시 통로를 전진했다.
총알 진딧물이 몇 차례 나타났지만, 문제없이 처치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 무렵.
“막혔다. 벽이야.”
“또 마법진이야.”
“도대체 몇 단계까지 있는 거야?”
일행의 앞을 또다시 바위가 가로막았다.
신성현이 마법진의 해제를 부탁했다.
“원수호 헌터, 부탁합니다.”
수호가 앞으로 나섰다.
발룡이에게 해제를 맡기려던 수호가 일순 멈칫했다.
『가축의 피가 주인을 부를 것이다 Ħ』
바위 위에 새겨진 마법진 아래쪽.
어느 세상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소통】 스킬을 익힌 수호만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왜 글자가…….’
이제까지 없던 일.
갑자기 새로운 일이 생긴 이유가 뭘까.
고민하던 수호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마법진 근처에 규칙에 대한 힌트가 있다고 했었지!’
발룡이가 마법진을 쉽게 해제할 수 있다.
그래서 굳이 힌트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한데 만약, 눈앞의 글자가 일종의 힌트라면?
‘뭘 위한 힌트일까?’
눈앞의 문장은 마법진을 해제하는 힌트는 아니었다.
안다고 바위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다음 단계에 뭔가 있을 거야.’
바위 너머 저편.
문장과 관계된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수호가 발룡이에게 신호했다.
- 발룡아, 마법진 해제해.
곧 바위가 열리고, 뒤편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거 참, 이제까지 걸어온 통로도 엄청났는데, 여긴 더 넓어.”
“천장이 잘 안 보일 정도군.”
“까마득하구먼.”
새로이 나타난 통로는 이제까지의 것보다 몇 배는 더 넓었다.
“진입한다.”
신성현의 명과 함께 일행이 통로로 전진했다.
* * *
저벅저벅.
텅 빈 통로 안.
일행의 옅은 발자국 소리만 울린다.
‘30분은 걸은 것 같아.’
그동안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노련한 헌터들일수록, 이럴 때 뭔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단계를 뚫었으니, 슬슬 보스가 나올 때도 됐는데.”
누군가 중얼거린 소리가 일행의 귓속에 틀어박혔다.
일행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다행이었다.
우르르.
벽을 무너트리며 나타난 몬스터의 습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나왔다!”
“크다!”
“생김새는 비슷해! 꽁무니의 독액 조심해!”
헌터들이 대형을 갖춘다.
동시에 관찰한 것을 서로에게 전했다.
‘저놈도 진딧물이군.’
전체적인 모양이 비슷했지만, 크기는 3배쯤 더 크다.
느껴지는 마력도 훨씬 강했다.
아마도 진딧물 우두머리쯤 되지 않을까.
‘문장과 뭔가 관련이 있을 텐데.’
수호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눈에 띄는 것은 없다.
관찰을 그만두고 수호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전투의 여파가 미치지 않는 경계.
아울러 디노조 일행이 수작을 부려도 대처할 수 있는 위치였다.
흘끔.
디노조와 마샬의 시선이 수호를 훑고 지나갔다.
둘이 고개를 미세하게 가로 젓는다.
‘그래, 이번에도 수작을 부리기는 힘들 거야.’
수호가 위치를 잘 잡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신성현이 경고를 했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의심을 살 터.
게다가 적은 보스 몬스터로 추정되는 상황.
괜한 수작은 자신의 목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디노조와 마샬은 수호에게 수작을 부리지 못했다.
“막아!”
“전에 나왔던 놈들이 쓰던 기술을 모조리 쓴다!”
“꽁무니 조심해! 흩뿌린다!”
전방에서는 이미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지는 중.
수호는 계속 자리를 옮겨 가며, 전투를 관찰했다.
디노조 일행을 눈 안에 담아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끼에에에에엑-”
한동안 격렬한 전투가 반복됐다.
근거리 헌터 2명이 중상을 입고 뒤로 빠지기도 했다.
하나 전황은 갈수록 유리해져 갔다.
후우웅-
신성현의 검기가 지면을 따라 쏘아졌다.
서걱-
진딧물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됐다! 한쪽 다리를 모조리 잘랐어.”
“이제 돌진은 못 할 거야.”
“오케이. 천천히 마무리하자고.”
슬슬 전투가 종국으로 접어든다.
노련한 헌터들은 상처 입은 적의 숨통을 조금씩 조여 갔다.
10분쯤 더 지났을 무렵.
촤아아악-
신성현이 진딧물의 몸통에 큰 상처를 냈다.
그곳으로 온갖 스킬이 쏟아져 들어갔다.
쿵.
기어이 진딧물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끝났다.”
누군가 소리쳤다.
하나 수호의 생각은 달랐다.
‘뭔가 더 있어.’
아직 처치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수호는 진딧물의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기운을 감지했다.
뭔가를 시도할 만한, 딱 한 줌의 기운을.
부르르.
진딧물의 배가 떨린 것은 그때였다.
“물러나!”
“터진다! 자폭이야!”
“젠장, 독 조심해!”
헌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보스 몬스터 우두머리 진딧물을 처치하셨습니다.]
메시지가 들려오더니.
푸콰악-!
진딧물의 등이 폭발했다.
그곳으로부터 한 줄기 초록색 체액이 하늘로 치솟았다.
철퍽-
까마득하게 솟은 체액이 천정에 부딪혔다.
흩어진 체액이 가랑비처럼 온 통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독이 있을 거야!”
“젠장! 막아! 뭐든 집어 들고 막으라고!”
“방패! 갑옷이라도 벗어 들어!”
헌터들이 체액의 비를 막으려 분주히 움직였다.
수호는 가만히 서 있었다.
늘 적용 중인 【상급 상태 이상 면역】을 믿기 때문이다.
대신 눈만은 바쁘게 움직이며 주변을 파악해 나갔다.
‘체액! 피야!’
가축의 피가 주인을 부른다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힌트가 가리킨 상황이다.
그렇다면 분명 뭔가 이변이 발생할 터.
수호의 시선이 빠르게 사방을 훑는다.
‘저기다! 천장!’
수호의 눈에 찾던 것이 들어왔다.
까마득한 천장.
체액이 부딪힌 그 자리.
힌트의 끝에 그려져 있던 기묘한 문양이 떠올라 있었다.
『뭔가 온다!』
발룡이의 경고가 들려왔다.
수호의 감각에도 강한 기운이 걸려들었다.
‘천장을 뚫고 뭔가 다가오고 있어.’
어마어마한 기운을 품은 거대한 형체.
우두머리 진딧물을 ‘가축’이라 칭할 만한, 압도적인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사이.
상황을 모르는 헌터들은 오히려 안심했다.
“독이 아니야.”
“그냥 피였어.”
“괜히 호들갑 떨었구먼.”
진딧물의 체액에 독성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도하는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저저적-
천장이 부서졌다.
전봇대를 확대해 놓은 듯한, 거대한 원통형 다리가 천장을 뚫고 나타났다.
듬성듬성 돋은 털이 흉측하다.
“미, 미친! 저게 뭐야!”
“발이다! 곤충의 발이야!”
“제길! 도대체 얼마나 큰 거야!”
“전투 준비! 정신 차려! 대형 갖춰!”
신성현이 고래고래 외치며 헌터들을 추스르는 사이.
우저저저적.
발이 휘젓듯 움직여 구멍을 넓혀 간다.
잠시 후면 놈의 모습이 드러날 터.
『수호, 조심해라.』
발룡이가 재차 경고했다.
그만큼 위협적인 적이었다.
하지만 수호의 눈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강적을 상대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지.’
내부의 적.
싸움 중에 언제 등을 찌를지 모를 배신자를 내버려 둔 채, 큰 싸움에 임할 수는 없는 법.
수호의 손이 차원 보따리로 들어갔다.
눈으로는 디노조와 마샬을 훑는다.
‘때마침 둘이 딱 붙어 있군.’
잘 됐어.
차원 보따리를 뒤적인 수호의 손에 [도발용 마력탄]이 들려 나오고.
뭉클-
한 줌의 마력이 그것을 활성화한다.
‘잘 가라.’
데구르르.
도발탄이 디노조의 발치로 굴러갔다.
90화 거인의 정원 (4)
가축의 피가 주인을 부를 것이다.
바위 속 문장의 가축이 뜻하는 것은 우두머리 진딧물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주인은?
‘진딧물이 나왔을 때 혹시나 했더니.’
수호는 까마득한 천장을 뚫고, 머리를 들이민 몬스터를 쳐다봤다.
“미, 미친! 개미야. 거대한 개미!”
“제기랄! 너무 크잖아. 저걸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빌어먹을. 너무 술술 풀린다 했어!”
헌터들이 당황하여 소리친다.
수호는 시선을 돌렸다.
‘도발탄은 잘 먹혔어.’
천장이 뚫리기 시작할 때 던진 [도발용 마력탄]은 제대로 작동했다.
마탑 소속 두 헌터의 몸에 고루 발렸다.
‘개미는 마탑 놈들을 가장 먼저 노릴 거야.’
그러니 근처에 있어서는 안 된다.
- 발룡아, 가자.
모두의 시선이 위를 향하고 있을 때, 수호는 은밀하고 신속하게 위치를 바꿨다.
우두머리 진딧물이 죽은 곳 근처.
협회 소속 헌터들의 뒤편으로.
후미의 수호가 최전방으로 이동한 셈.
수호 앞에 있던 마탑 헌터들은 이제 일행에서 외따로 떨어진 상태가 되었다.
“끼리릭-”
천장에서 괴이한 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그때였다.
개미의 눈이 은은한 보랏빛으로 물들더니.
“끼리리리릭-”
재차 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장내 모두가 느꼈다.
‘화내고 있어.’
개미가 무언가에 자극받아, 기분 나빠 하고 있음을.
이유는 물론 도발탄 때문이었다.
“벽으로 붙는다! 대형 갖춰!”
신성현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협회 헌터들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개미가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전봇대를 서른 배쯤 확대해 놓은 듯한 다리가 허공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목표는 마탑 소속 두 헌터.
콰직.
마샬이 즉사했다.
순식간에 짓이겨진 바람에 비명조차 없다.
“씨, 씨발!”
반사적으로 【프롬프트】를 쓴 디노조는 살아남았다.
구구궁-
진동을 일으키며 개미의 다리가 다시 올라간다.
【프롬프트】는 대기 시간에 걸려 쓸 수 없다.
디노조가 절망에 찬 눈으로 시선을 든다.
거대한 보랏빛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씨바아알! 구해! 날 구하라고! 내가 죽으면, 너희도 무사할 줄 알아!”
마탑에서 가만히 있을 줄 아냐고!
디노조가 발악했다.
근거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마탑이 한국 협회에 항의할 명분이 없는 상황이다.
“싸워! 날 지키라고, 개새끼들아!”
그럼에도 디노조의 고함은 멈추지 않았다.
신성현은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저쪽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공격한다.”
천장의 구멍은 차츰 넓어지고 있다.
개미의 몸통이 이쪽으로 점점 넘어온다.
크기를 생각하면, 도망치기도 힘들 터.
디노조가 시간을 끄는 사이, 어떻게든 대미지를 가한다.
그것이 신성현의 판단이었다.
‘좋은 선택이야.’
수호도 동감했다.
하나 수호는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제기랄! 얼음의 길!”
디노조가 스킬을 사용했다.
저저적.
바닥이 길게 얼어붙었다.
원래 적을 미끄러트리는 스킬이지만, 급할 땐 이동기로도 사용된다.
디노조가 빙판을 미끄러지며 다가온다.
‘쯧, 곱게 죽을 것이지.’
혀를 찬 수호가 【차원 전음】을 시전했다.
- 발룡아.
『크큭- 기다리고 있었다.』
곧 발룡이의 입이 열리고.
『넘어져라!』
그리스(GREASE)마법이 시전됐다.
안 그래도 미끄러운 빙판에 기름이 뒤덮인다.
바닥이 극도로 미끄러워졌다.
수호가 스킬을 더했다.
‘염동력!’
타차원에 사용하기 위해 익힌 【하급 염동력】이었다.
염동력이 디노조의 무릎을 밀었다.
툭.
하급답게 충격이 미약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꽈당.
디노조가 넘어졌다.
“이런 개씨발!”
하늘에서 개미의 다리가 떨어져 내린다.
그림자가 얼굴을 뒤덮는다.
그 순간, 디노조의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받은 건 돌려줄게. 내가 빚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어째서일까.
디노조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았다.
얼음 길은 갑자기 왜 더 미끄러워진 것인지.
무릎에 가해진 충격은 뭔지.
그리고 저 빌어먹을 개미가 자신만 집요하게 노리는 이유까지도.
“씨바아알!”
욕설을 내뱉은 디노조의 시선이 움직였다.
미처 수호를 눈에 담기도 전.
콰직.
개미의 발이 디노조를 짓밟았다.
* * *
디노조가 죽었다.
흔적도 없이 짓이겨졌다.
신성현은 마음이 급했다.
디노조의 죽음 때문은 아니었다.
‘이대로는 몰살당한다.’
푸쾅-
콰콰콰쾅-!
헌터들이 쏘아 대는 스킬이 거대 개미의 다리에 명중, 폭음을 일으킨다.
하나 기껏해야 긁힌 상처뿐.
제대로 된 타격은 없다.
‘저놈은 못 죽여. 그렇다면…….’
신성현은 거대 개미와의 승부를 포기했다.
남은 방법은 하나.
“던전 코어를 찾아!”
던전의 보스는 우두머리 진딧물이었다.
메시지로 떠올랐으니, 틀림없는 사실이다.
“맞아! 아까 진딧물이 보스였어!”
“코어! 코어를 찾아!”
“저놈을 죽이는 건 불가능해. 코어를 부숴야 해!”
“코어를 부수면 살 수 있어!”
보스가 죽었으니, 주변 어딘가 분명히 코어가 생성되었을 터.
코어를 부수면 던전이 클리어된다.
그것을 깨달은 헌터들이 사방을 수색했다.
한데 그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다.
“젠장! 공격해 온다!”
“피해!”
콰아아앙-!
거대한 개미의 발이 헌터들을 짓밟기 위해 떨어져 내린다는 것.
“버프 걸어! 모두!”
신성현이 외쳤다.
그는 이미 개미의 정면으로 달리고 있었다.
“제길!”
누군가 욕설을 내뱉으며 신성현에게 버프를 걸었다.
신성현의 의도를 깨달은 것이다.
“젠장, 파티장이 탱킹한다.”
“빨리 코어 찾아!”
각종 버프가 신성현의 몸에 집중되었다.
신성현이 달리는 자세 그대로 칼을 휘둘렀다.
지이이잉-
길쭉한 검기가 돋아나더니, 이내 쏘아졌다.
그것은 개미의 머리통으로 날아갔다.
가가각.
검기가 개미의 턱을 긁고 지나갔다.
밭고랑 같은 홈이 파였다.
하나 그것은 인간의 기준.
개미에게는 손톱에 긁힌 상처도 되지 않는다.
‘치명상을 못 입힌다는 건 알고 있었다.’
신성현은 좌절하지 않았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코어를 찾는 동안 개미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것이니까.
그의 의도는 훌륭히 성공했다.
“끼리리릭-”
개미의 눈이 보랏빛으로 빛났다.
다리가 신성현을 집중적으로 노리기 시작한다.
쾅-!
쾅-!
쾅-!
신성현이 몸을 날려 다리를 피했다.
공격당할 거란 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버프 스킬을 잔뜩 두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콰아아앙-!
유독 거친 공격이 지나간 후.
“끼리리리릭-”
개미가 다시 눈빛을 빛냈다.
짧은 틈.
신성현은 칼을 휘둘렀다.
‘천참만륙!’
후와아아앙-!
신성현의 필살기가 시전됐다.
칼끝에서 쏘아진 검기가 허공에서 두 가닥으로 갈라진다.
그것은 찰나 간에 넷, 여덟이 되더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면(面)을 이루었다.
검기의 면.
그것이 개미의 대가리를 향해 뻗어 갔다.
까아아아아아아앙-
쇠를 가는 듯한 소음이 퍼졌다.
잠시 후, 개미의 모습이 드러났다.
턱과 안면부에 수많은 상처가 생기고 체액이 흘렀다.
하나 목숨을 위협할 상처는 아니었다.
“역시 무린가.”
혼신의 힘을 담은 공격이었지만, 적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없다는 사실만 증명했다.
신성현이 탄식하는 사이, 개미의 입이 열렸다.
가래 끓는 소리가 나더니.
푸쾃-
황갈색 액체가 뿜어졌다.
신성현이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액체를 뒤집어쓰는 것은 피해 냈지만 팔에 몇 방울 튀었다.
치이익-
옷이 녹고, 팔에도 상처가 생겼다.
빗나간 액체가 바닥을 깊게 녹였다.
“산성 침을 뱉는다. 조심해!”
그 와중에도 파티원들에게 소리친 신성현.
하나 개미의 공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푸쾃-
푸쾃-
연이어 발사되는 침.
신성현의 몸 곳곳에 열상이 생겨났다.
“제길.”
“파티장 죽겠어. 빨리 찾아!”
헌터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이 코어를 찾는 것보다, 신성현의 한계가 먼저였다.
덜컥.
황급히 움직이던 신성현이 비틀거렸다.
침에 녹은 구덩이에 발이 걸린 것이다.
“끼리리릭-”
득의의 웃음이라도 짓는 듯, 소리가 들려오더니.
푸쾃-
산성 침이 신성현을 덮쳤다.
* * *
수호가 외쳤다.
- 발룡아!
『쳇, 꼭 구해야 하는 것이냐.』
툴툴거렸지만 발룡이는 나섰다.
고오오-
발룡이의 몸에서 마력이 움직였다.
『보호하라!』
넘어진 신성현 앞에 실드 마법이 펼쳐졌다.
치이익-
산성 침이 실드에 막혔다.
실드가 제 역할을 마치고 사라졌다.
“고맙습니다.”
신성현이 인사하며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끼리리릭-!”
다시 들려온 개미의 울음소리.
이번에는 분노가 담겨 있다.
한데 분노의 대상이 옮겨 갔다.
신성현에서, 다 잡은 기회를 무산시킨 검은 드래곤에게로.
발룡이 또한 기분이 상했다.
『하찮은 벌레 따위가! 감히 누구에게 이를 드러내는 것이냐!』
고오오오오-
가공할 마력이 요동치고.
발룡이의 몸이 커진다.
푸콰아앗-
그때 산성 침이 날아들었다.
발룡이도 마주 입을 벌렸다.
콰르르르르르르-
브레스가 뿜어졌다.
산성 침을 대번에 녹여 버리고, 그대로 개미의 입을 향해 밀고 나갔다.
탁.
개미가 입을 닫았다.
고개를 요동친다.
그만큼 브레스의 화기가 위협적이었던 것이다.
『제길. 본좌가 힘의 1할만 되찾았어도…….』
하나 크기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턱을 반의반쯤 녹여 버린 브레스였지만, 개미를 죽이는 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 적당히 시선만 끌어. 힘 빼지 말고.
발룡이가 탄식할 때 수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다다닷-
수호는 달리고 있었다.
승리의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입속!’
분노한 개미가 강하게 침을 뱉을 때 수호는 발견했다. 입 안 깊숙한 곳에 있는 보랏빛 광물을.
‘코어가 입천장에 있어!’
던전 코어의 위치를 파악한 것이다.
물론, 위치를 안다고 부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개미 아가리에 뛰어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수호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타타타타탁-
속도를 끌어 올리며 수호가 스킬을 시전했다.
‘거대화!’
[거인의 격노]가 마력을 빨아들인다.
수호의 몸이 커진다.
“수호 씨, 어디 가는 거야?”
“조심해!”
“어? 커진다! 수호 씨가 커졌어!”
코어를 찾느라 바쁘던 헌터들이 수호의 움직임에 반응했다.
수호는 계속 달렸다.
몸도 갈수록 커져 이제는 키가 전봇대만 해졌다.
‘이제 그만.’
수호는 [거인의 격노]로 향하는 마력을 멈추었다.
싸울 힘은 남겨 둬야 했기 때문이다.
‘헤이스트!’
‘근력 폭발!’
신체 능력을 끌어 올린 수호가 바닥을 박찼다.
몸이 솟구쳐 올랐다.
목표는 개미의 목덜미.
하나 닿기엔 너무 높다.
‘드래곤 스탭!’
팡-
수호의 발이 공기를 짓밟는다.
몸이 한 번 더 솟구친다.
그럼에도 아직 닿지 않는다.
‘닿아라!’
수호의 손에서 석화비도가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개미의 몸에 돋아난 융털에 감겼다.
철컹- 비도의 미늘이 융털을 단단히 옭아맨다.
수호가 사슬을 잡아당겼다.
몸이 빨려 올라간다.
덥석.
수호의 손이 드디어 융털을 움켜쥐었다.
팔 근육이 꿈틀거리더니, 수호가 개미의 몸 위로 훌쩍 올라섰다.
‘대가리다.’
던전 코어는 대가리에 들었다.
감각 스탯이 알려 주는 개미의 약점 또한 대가리다.
그곳에 가장 농후한 마력이 모여 있다.
타타탓-
수호가 개미의 몸 위를 달린다.
개미는 그제야 수호를 눈치챘다.
몸을 뒤튼다.
『어딜 신경 쓰는 것이냐!』
발룡이가 고함을 내질렀다.
콰르르르-
재차 브레스가 쏘아졌다.
첫 방보다 약해졌지만 개미의 시선을 끌 정도는 되었다.
“끼리리리리릭-!”
개미가 앞발을 발룡이에게 휘둘렀다.
파다닥. 발룡이가 현란하게 비행하며 공격을 피했다.
그때, 수호가 개미의 대가리 위에 도착했다.
‘무기 강화!’
마지막 버프까지 건 후.
수호가 [거인의 격노]를 양손으로 움켜쥔다.
망치 대가리가 수호의 머리 위로 치솟고.
‘5연격!’
마력이 뭉텅 빠져나간다.
동시에 망치가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쾅-!
강한 충격이 개미의 정수리를 두드렸다.
개미 대가리가 위아래로 요동친다.
천장에 반쯤 걸쳤던 몸도 아래로 흘러내린다.
하지만 안 죽었다.
정수리에도 금이 갔을 뿐, 완파되지 않았다.
‘한 방 더 남았다. 5연격!’
수호가 마지막 마력을 쥐어짜 스킬을 시전했다.
콰콰콰쾅-
4번의 충격이 울리고.
거의 동시에 마지막 한 방이 개미의 정수리를 내리친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두 번의 【5연격】을 통해 완성된 【십격필살】.
그 10번째 공격이 개미의 머리를 가격했다.
압도적인 충격.
개미의 대가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갑각은 박살 났고, 정수리에 구멍이 움푹 파였다.
‘뭐가 이렇게 질겨!’
그럼에도 개미는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코어도 안 부서졌다.
찰캉.
망치 손잡이에서 창날이 솟았다.
수호가 그것을 거꾸로 쥐고, 움푹 파인 정수리에 내리찍었다.
푹-
갑각이 부서진 덕분에 구멍이 쉽게 뚫렸다.
푹푹푹-
연이은 창질.
우물을 파듯 수호가 한 자리에 창날을 박아 넣었다.
변수가 생긴 것은 그때였다.
좋지 않은 쪽으로.
‘젠장, 마력이 동났어.’
【거대화】에 이은 두 번의 【5연격】은 마력을 크게 소모했다.
수호의 마력이 말라 버렸다.
스스스스-
몸이 줄어든다.
거인의 격노도 작아진다.
‘그래, 기왕 작아진 거.’
너 죽고 나 죽자.
배수의 진을 친 수호가 훌쩍 몸을 던졌다.
창날이 뚫어 놓은 구멍 사이로.
후우웅-
무저갱처럼 어두운 개미의 몸 안.
수호가 떨어져 내린다.
‘갈 데까지 가 보자!’
수호는 차원 보따리에서 2개의 물건을 꺼냈다.
그중 하나를 작동시켰다.
화륵.
불꽃이 피어오른 순간.
수호가 그것, [마력 백린탄]을 머리 위로 집어 던졌다.
화르르르르르-
개미의 대가리 속, 농후한 마력에 반응한 백린탄이 거세게 불타올랐다.
떨어지는 수호를 집어삼킬 기세로 불길이 쫓아온다.
수호가 나머지 물건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이걸 여기서 쓰네.’
협회에서 받은 물건으로 협회 헌터들 목숨을 구한 셈인가.
찌이익-
짧은 상념과 함께 [블링크 스크롤]이 사용됐다.
스팟-
수호의 몸이 통로 어딘가로 전송됐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호는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끼리리리리리릭-!”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개미가 꿈틀거렸다.
하나 그것도 잠시뿐.
비명은 오래지 않아 그치고, 수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네임드 몬스터 대왕 병정개미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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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거인의 정원 (5)
“내가 꿈을 꾼 건가?”
“우리 혹시 던전에 들어와서, 단체로 독버섯이라도 주워 먹은 건 아니지?”
“아무리 2차 격변 후에 이상한 일투성이라지만, 이건 너무 이상해. 아니, 신비로울 정도야.”
“어떻게 막 3성에 오른 헌터가 4성 보스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이레귤러를 잡을 수 있는 거지?”
헌터들의 수군거림 사이.
수호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마력이 바닥난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이레귤러라…….’
대왕 병정개미는 이레귤러였다.
보스보다 강한 이레귤러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이번 경우는 해도 너무 했다.
‘2차 격변 때문에 말이 많더라니.’
직접 겪어 보니, 상황이 심각하다.
하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당장은 그저 쉬고 싶을 따름이었다.
“신기하다느니 이상하다느니 할 힘이 있으면 감사부터 해. 자식들아.”
누군가 말했다.
모두의 표정에 부끄러움이 깃들었다.
“이거 참, 너무 놀라운 일을 보는 바람에 근본 없는 짓을 할 뻔했네. 수호 씨,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이고, 인사부터 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수호 씨. 다시는 처자식 얼굴 못 보는 줄 알았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요. 마누라 과부 만드는 줄 알고 얼마나 무섭던지. 이번 일은 죽을 때까지 안 잊겠습니다.”
“은혜 꼭 갚을게요.”
줄줄이 들려오는 감사 인사 속, 신성현이 다가왔다.
지친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그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고맙습니다, 원수호 헌터.”
짧지만, 진심이 담긴 말.
수호도 앉은 채, 마주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원수호 헌터야말로 안 다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개미 머릿속으로 떨어질 때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 보고 계셨군요.”
“그럼요. 눈을 뗄 수가 없는 광경이었으니까요.”
거대화에 이은 【5연격】.
【십격필살】이 터지는 순간의 충격은 온 던전을 쩌렁쩌렁 울렸다.
신성현뿐만 아니라 모든 헌터의 눈길이 수호에게 가 있었다.
“하하. 그랬나요.”
수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신성현이 말을 이었다.
“전에도 한번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협회장님의 안목이 저보다 훨씬 낫군요.”
“아…….”
협회장이 수호를 눈여겨보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던 신성현.
하지만 나중에 수호의 재능을 알고는 위와 같은 말을 했었다.
한데 이번에는 말이 남아 있었다.
“근데 협회장님 안목도 완전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무슨?”
“원수호 헌터의 가치를 정확히 알아봤다면, 바짓가랑이를 잡아서라도 협회 소속으로 끌어들였어야 했거든요.”
하긴, 이 정도일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신성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수호도 멋쩍게 미소 지었다.
고함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대박! 아이템이다! 개미가 아이템을 드랍했어!”
* * *
수호와 신성현이 그곳으로 다가가자, 헌터들이 비켜서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크네. 생긴 건 꼭 폐차장에서 압축해 놓은 차 같고.’
아이템은 금속 재질이었다.
누가 손으로 꾹 쥐기라도 한 듯, 불규칙하게 뭉개진 형태.
크기가 책상만 하다는 점만 빼면 특별한 점은 없었다.
수호가 아이템에 손을 얹고 성능을 살폈다.
[부서진 ?????]
- 알 수 없는 이유로 망가진 특별한 물건의 일부. 상당한 마력을 품고 있지만, 부서져 용도를 알아볼 수 없다. 잘 펼치면, 원래의 모습을 찾을지도…….
- 아이템 등급 : 희귀
- 내구도 : 300
아이템을 확인한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름이 물음표야?’
뭐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부서지기까지.
“이게 무슨…….”
수호가 황당해하고 있으려니, 신성현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최근 들어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차 격변 후에 변수가 너무 많아졌어요. 요즘은 그렇게 성능을 알아볼 수 없는 아이템도 나오곤 합니다.”
“이런 일이 종종 있나 보네요?”
“그렇습니다. 그나마 이번 건 좀 낫군요.”
“낫다고요?”
“아이템 설명에 단서가 있지 않습니까?”
“펼치면 고쳐질 수도 있다는 말이요?”
“네, 바로 그겁니다.”
“그런 식이었군요.”
“늘 그런 식이면 ‘낫다’는 말도 안 했겠죠. 이건 확실히 괜찮은 편에 속하는 물건입니다.”
신성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표정이 씁쓸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렇군요.”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현이 면목없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기왕이면 멀쩡한 아이템이 나왔어야, 원수호 헌터한테 조금이나마 덜 미안했을 텐데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옆에 있던 중년 헌터가 끼어들었다.
“뭐긴 뭐야, 이 사람아. 아이템이 더 좋았으면, 수호 씨 활약에 대한 보상이 되었을 텐데. 그게 아니라서 아쉽다는 소리지.”
“나도 그래. 더 좋은 아이템이 나왔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아이템도 이레귤러라니.”
저런 특이한 아이템을 이레귤러라고 부르나 보다.
고개를 끄덕이던 수호가 문득 되물었다.
“혹시 저 아이템을 저한테 주신다는 말인가요?”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협상했었다.
아이템은 전원 균등하게 분배.
수호는 거기에 미리 약속한 마정석을 얹어 받는다.
전투에 가담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제법 후한 보상이다.
한데 오가는 이야기가 약속과 다르다.
병정개미의 아이템을 수호에게 준다는 말처럼 들렸다.
“당연하지. 수호 씨가 다 잡았는데, 수호 씨 거지.”
“다른 길드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는 그런 욕심 안 부려요, 수호 씨.”
“목숨까지 빚진 마당에 아이템에 욕심내면 쓰나.”
“맞아. 그리고 하필이면 이상한 아이템이 나왔으니, 우리 목숨값은 따로 쳐줘야 해.”
“협회장님이 뭐라도 더 챙겨 주시지 않을까?”
일이 잘 마무리되었기 때문일까.
헌터들이 유쾌하게 소란을 떤다.
수호는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확신했다.
“정말 제게 줄 생각이군요.”
“당연합니다, 원수호 헌터.”
신성현이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당연한 일이지요. 그리고 개미 사체도… 음, 어떻게든 수습해서 따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신성현이 대왕 병정개미의 사체를 일별하며 말했다.
백린탄 때문에 거의 다 타 버렸다.
“네, 잘 부탁합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신성현이 크게 외쳤다.
“다들 퇴각 준비!”
헌터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얼마 후.
던전 앞, 임시 휴게실.
신성현이 수호에게 상자를 건넸다.
“약속했던 마정석입니다.”
모두 4성 던전 이상에서 나온 것으로 수도 20개나 되었다.
“감사합니다. 수가 많네요.”
상왕련에서 긁어 온 것이 10개였는데.
협회 창고가 생각보다 실한 모양.
“자주 쓰지 않다 보니, 제법 쌓였지요. 게다가 요즘 들어 던전 처리 횟수가 급증한 탓에… 아! 피곤하실 텐데, 이런 이야기나 나눌 때는 아니군요. 어서 돌아가서 푹 쉬십시오.”
신성현이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아직 쉴 때가 아닌 듯 보였다.
‘신성현 헌터는 이래저래 할 일이 남았겠지. 마탑 쪽 일도 수습해야 할 테고.’
이레귤러가 발생했지만, 어쨌든 외국 소속 헌터가 사망한 사건.
수습을 위해 심력이 소모될 터다.
“고생하십시오.”
수호는 신성현의 평안을 빌며 휴게실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얻은 게 많은걸.’
마정석에 아이템까지.
두둑한 주머니 덕분에 기분이 좋다.
‘찌그러진 아이템이야, 드워프에게 맡기면 해결될 테고.’
철판 펴는 것쯤이야, 드워프에게는 일도 아닐 터.
수호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서둘러라! 본좌는 어서 저녁을 먹어야 하느니라.』
“왜, 현기증이라도 나?”
가벼운 투닥거림과 함께 수호와 발룡이가 용달차에 올랐다.
* * *
“어이, 다다노리. 이야기 들었나?”
수화기 건너에서 방정맞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족 헤즈루의 종복이자, 육경환에게 ‘어르신’으로 불리는 노인.
무토 다다노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이야기를 말하는 거지?”
“신탁! 위대한 분들의 신께서 말씀을 내렸다네. 아직 못 들었나?”
“들었다.”
어젯밤 헤즈루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대적자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 찾아서 죽여라!
짧은 두 문장.
해석도 설명도 없었지만, 다다노리는 그것을 머릿속에 깊이 각인했다.
그것이 ‘종복’의 올바른 태도였기 때문이다.
“호오- 벌써 들었다고? 아주 총애를 받으시는군, 크흐흐.”
다다노리의 미간에 골이 깊어졌다.
“마탑에 처박혀서 소식도 없더니, 갑자기 왜 연락한 거지? 우리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닐 텐데.”
“흐흐흐, 그냥 그 근처에 흥미 있는 일이 생긴 바람에 한번 해 봤지. 신탁을 어떻게 할지도 물어볼 겸.”
“어떻게 하다니, 무슨 뜻이지?”
“뜬금없이 대적자니 뭐니, 도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뭔 소린지 모르겠으니, 그냥 넘어갈까 하고.”
다다노리가 노한 음성으로 물었다.
“감히 위대한 분의 말씀을 무시하겠다는 건가?”
“뭔지 알아야 어떻게 하든 할 것 아닌가? 자네 같은 충견이야, 없는 대적자라도 만들어서 물어뜯으려 들겠지만 말이야.”
“닥쳐라!”
“어이쿠, 이거 더 통화해 봐야 욕만 먹겠군. 혹시 단서라도 찾으면 내게도 알려 주게. 우리가 비록 경쟁하는 처지지만, 크게 보면 협력 관계 아닌가? 흐흐흐.”
뚝.
멋대로 걸려온 통화는 멋대로 끊겼다.
다다노리의 노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콰직.
손 안에서 호두가 부서져 나갔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다다노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한국에서 연락이 늦는군.’
실험체 건에 관해 진작에 연락이 왔어야 한다.
한데 감감무소식이다.
육경환이 그를 무시하여 연락을 안 할 리는 없으니, 문제가 생겼을 확률이 높다.
다다노리가 책상 위의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예, 회장님.”
“한국 쪽 소식을 알아봐야겠다.”
“준비하겠습니다.”
다다노리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대적자라…….’
그가 신탁의 내용을 뇌까렸다.
* * *
“크윽-”
뾰족 투구 드워프 족장 바순이 무릎을 꿇었다.
볼이 홀쭉하게 파였고 눈도 퀭하다.
몸에서는 땀이 비처럼 흐른다.
땡그랑.
바순의 손에서 망치가 떨어졌다.
드워프가, 그것도 한 부족의 족장이 망치를 떨어트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순으로서도 키가 다 자란 후에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하나 어쩔 수 없었다.
벌써 몇 달째,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망치질만 했으니.
몸이 성할 리 없다.
하지만 바순은 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게으름 부리지 마라.”
마인.
마기에 잠식당해, 더는 인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바순의 작업을 감시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마인 놈들을 위해 무기를 만드는 꼴이라니.’
바순을 비롯한 부족장들은 마인을 위해 무기를 만들고 있었다.
물론 옆에 있는 마인이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드워프들이 인질로 잡혀있기 때문이었다.
‘부족원들만 아니었어도, 크흑-’
잡힌 부족원들을 떠올리며 바순이 무릎에 힘을 줬다.
그동안 너무 무리한 탓일까.
강철 같은 의지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큭-”
아찔한 느낌과 함께 바순의 시야가 점멸했다.
찰나 지간,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것이다.
다행히 쓰러지지 않은 바순.
한데 그의 표정이 이상했다.
‘모, 목소리!’
정신을 잃었던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한 가닥 목소리가 들려왔다.
- 구원의 손길이 그대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 버텨 내세요.
따뜻한 기운을 품은 음성.
그것은 언젠가 ‘발랑카 산맥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하던 목소리와 똑같았다.
‘망치와 모루의 신께서 신탁을 내리셨어!’
확실하다.
찰나에 불과했고 몸도 정상이 아니었지만 바순은 확신했다.
벌떡.
어디서 힘이 났을까.
바순이 몸을 일으켰다.
‘버틴다. 버티면 돼!’
이제 할 수 있다.
신께서 목소리를 내리셨으니, 버티면 올 것이다.
신이 말한 구원의 손길이!
바순의 눈 속에 의지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92화 은거 기인 (1)
늦은 저녁.
협회 의뢰를 마친 수호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수호, 빨리 돌아왔네. 일이 잘 풀렸나 봐?”
윌슨이 달려오며 인사했다.
“순탄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오늘 안에 끝나긴 했어.”
“그래? 일단 앉아. 내가 차라도 끓여다 줄게.”
“고마워.”
수호는 소파에 앉아 윌슨이 타 주는 묵은 밤차를 음미했다.
던전에서 있었던 일도 이야기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 혹시 마탑에서 너한테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놈들의 죽음이 내 짓이란 것을 모를 테니, 괜찮을 거야.”
애초에 그 두 놈이 이상한 건지, 마탑 전체가 문제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
굳이 미리 호들갑 떨 필요는 없었다.
“나쁜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윌슨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호는 차원 보따리를 뒤졌다.
“윌슨, 마정석 받아 왔어.”
“오- 품질이 좋은걸! 수도 많고 말이야.”
윌슨의 표정이 밝아졌다.
“협회에 비축량이 제법 많았나 보더라고.”
벌떡.
윌슨이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서 설비를 마련하고, 드워프네 방위 시스템도 만들고, 내 몸도 만들고, 하하. 이거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정말 고마워, 수호.”
“잘 됐네. 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강아지 몸으로 1, 2층을 오가며 고생하는 것 같아 영 보기 안쓰러웠는데.
몸을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수호도 기뻤다.
“이 정도면 급한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을 거야. 하하, 난 그럼 가 볼게.”
“어서 가 봐.”
밤이 늦었지만, 기계 몸이니 괜찮으려나?
저렇게 좋아하는데, 말릴 수도 없고.
수호가 생각하는 사이, 윌슨이 2층으로 달려갔다.
조용해진 가게 안.
수호가 주변을 훑었다.
“발룡이는… 빠르네.”
진작에 방으로 틀어박혔는지, 발룡이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열심히 치킨을 고르고 있을 터.
“나도 간단히 저녁을… 아, 그전에 아이템부터 맡기자.”
수호는 대왕 병정개미가 떨어트린 [부서진 ?????]를 떠올렸다.
냉동실로 다가가니 조용한 드워프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타룽가 님, 달콩 님, 블톤 님.”
수호가 드워프 족장들을 불렀다.
잠시 후 저편에서 작은 그림자가 달려왔다.
타룽가였다.
“거인님! 무사히 다녀오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염려해 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껄껄, 저희가 한 일이 뭐 있겠습니까. 모두 훌륭하신 거인님의 공덕이지요.”
타룽가가 너스레를 떨었다.
가벼운 대화가 한동안 오간 뒤, 수호가 물었다.
“근데 나머지 두 분은 왜 안 보이세요?”
“정찰대를 파견할 거란 말씀은 드렸었지요? 달콩과 블톤이 정찰대를 이끌고 출동했습니다.”
“두 분이요? 부족원들은 어쩌고 직접 가셨어요?”
“하아- 그것이… 우리 세 부족은 한 가족이나 다름이 없다고, 모두 저한테 떠맡기고 가 버렸습니다. 저야말로 망치를 휘두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데 말입니다.”
걱정인 줄 알았더니, 안 끼워 줘서 삐친 거였어?
하긴 대장용 연장을 들고도, 오크 머리통을 수박처럼 터트리던 타룽가였으니…….
“그러시군요. 그래도 누구 한 분은 남아 계셔야죠.”
“예, 제가 거인님과 함께한 시간이 가장 길다며 남으라고 하는데, 남지 않을 도리가 없더군요. 하긴 저 아니면 누가 남겠습니까, 껄껄.”
“저도 타룽가 님이 남으셔서 좋네요.”
수호는 타룽가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진심이기도 했고 말이다.
“근데 고단하시지 않습니까? 인사는 내일 하셔도 되었을 텐데. 혹시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지?”
한동안 대화를 나누던 중, 타룽가가 물어 왔다.
“아, 용건이 있었는데, 이야기하느라 깜빡했군요. 이거 좀 봐 주세요.”
수호가 [부서진 ?????]를 전송했다.
타룽가가 쇠뭉치를 이리저리 살폈다.
“망가진 물건이군요. 전체적으로 강한 충격이 가해지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수리할 수 있을까요?”
“수리야 가능합니다만, 흐음-”
웬일로 거장(巨匠)이 한숨을 쉰다.
장비를 눈앞에 두고 저런 적이 없는데.
수호가 덩달아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게 원래 무슨 용도로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습니다. 용도를 알아야 쓰임새에 맞춰 수리할 텐데.”
타룽가가 머릿속에서 아이템의 형태를 되살려 나갔다.
원형은 무언가를 막기 위한 뚜껑 혹은 병마개.
그러나 너무 크고 무겁다.
사람이 쓰기 힘든 규격이다.
‘도통 모르겠군.’
고심에 잠긴 타룽가에게 수호가 말했다.
“펼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어려울까요?”
“그거야 문제없습니다만, 혹시나 귀한 물건을 망칠까 하여 걱정이군요.”
“괜찮아요. 타룽가 님이 보시기에, 가장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만 해 주세요.”
드워프에게 맡겼는데도 망하면, 그냥 운명이려니 하면 된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수리해 보겠습니다.”
타룽가가 아이템을 등에 짊어졌다.
“밤늦게 무리하지 마시고, 내일 천천히 하세요.”
“아닙니다. 금방 고쳐 드리겠습니다.”
구조가 단순해서 잠깐이면 충분합니다.
말을 마친 타룽가가 작업실로 향했다.
* * *
수호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을 무렵.
“거인님! 수리가 끝났습니다.”
때맞춰 타룽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호가 냉동실로 다가갔다.
“고생하셨어요.”
“고생이랄 것 있겠습니까, 껄껄. 다만 고쳐 놓고도, 뭐하는 물건인지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이 죄송스럽군요.”
언뜻 보기엔 커다란 병뚜껑처럼도 보이지만, 그러기엔 담긴 기운이 심상치 않고…….
타룽가가 미간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수호가 시선을 내렸다.
타룽가의 발치에 원형을 되찾은 아이템이 놓여 있다.
침대만 한 크기.
한데 모양이 묘하게 낯익다.
‘양념 병의 뚜껑처럼 생겼어.’
시중에 판매하는 캐첩이나 참기름 병뚜껑.
마개를 위로 들어 내용물을 짜고, 다시 막아 둘 수 있는 그것.
꼭 그런 모양이었다.
수호가 아이템을 관찰하고 있을 때, 타룽가가 말했다.
“용도를 알아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한번 직접 살펴보십시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시스템 창을 통해 용도를 파악할 수도 있다.
수호가 기대와 함께 물건을 건네받았다.
눈앞에 아이템 창이 떠올랐다.
[은거 기인의 신비한 호리병 뚜껑]
- 은거 기인이 절벽 아래 동굴에서 얻은 물건. 은거 기인도 호리병의 용도를 모른다. 한동안 술병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간장을 담는 신세로 전락했다. 어째선지 뚜껑만 떨어져 나온 상태지만, 신비한 기운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 뚜껑을 열면 호리병의 신비한 능력이 발휘될지도……?
- 아이템 등급 : 영웅
- 내구도 300
수호의 얼굴에 황당함이 깃들었다.
“은거 기인은 뭐고, 호리병 뚜껑은 또 뭐야?”
게다가 절벽 아래에서 발견했다니.
이건 뭐, 고릿적 무협 소설도 아니고.
잠시 어이 없어 하던 수호가 병뚜껑을 집어 들어 벽에 기대 세웠다.
“열어 봐야겠어.”
결국은 열어 봐야 결론이 날 물건.
굳이 미룰 필요 없겠지.
수호가 뚜껑의 마개 부분을 들어 올렸다.
뿅.
경쾌한 소리가 났다.
‘뭐지? 아무것도 없는데.’
별달리 변화가 없다.
수호가 뚜껑을 활짝 열어젖혔다.
순간, 수호의 눈앞에 낯익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 【WWWDPRTMFK-99】를 발견하셨습니다.]
“차원!”
놀란 수호가 병뚜껑 안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수호가 막 저쪽 세상을 자세히 살피려던 순간.
무언가 시커먼 것이 눈앞으로 확 덮쳐 왔다.
‘헉! 뭐야?’
깜짝 놀란 수호가 반사적으로 망치를 뽑아 들어 휘둘렀다.
퍽-!
* * *
나무로 된 식기와 테이블.
이곳저곳에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과 손때.
지구의 누군가가 봤다면, ‘무협 영화 속 객잔’을 떠올렸을 공간.
“생각보다 쉽지 않군.”
그곳의 주방.
홀로 선 장년의 남성이 중얼거렸다.
용 같은 눈빛.
호랑이의 같은 기골.
낡은 옷과 몸에 튄 기름도 남자의 비범함을 모두 가리지는 못했다.
“요리라… 너무 쉽게 생각했던가?”
그런 남자의 입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랜 방황 끝에 모든 것을 버리고 선택한 은거였다. 마냥 놀 수는 없어 선택한 것이 객잔이었고.
한잔 술과 따뜻한 음식.
피로 점철된 남자의 인생에 유일한 즐거움이 그것이었으니.
남자가 택한 직업이 ‘객잔 주인’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곤란하구나.”
한데 남자는 수백 명의 적에게 포위되고도 느낀 적 없던 난감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 구매한 낡은 객잔.
그곳에는 쥐와 바퀴가 바글바글했다.
적당히 몰아내기는 했지만, 천하의 고수라도 밤낮없이 구석을 오가는 해충까지 박멸할 방법은 없었다.
게다가 건물 뒤 텃밭에는 왜 그렇게 개미가 들끓는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눈앞에 놓인 음식이었다.
“왜 이렇게 맛이 없는 거지?”
간장도 넣고 설탕도 쳤다.
익힐 만큼 익혔다.
그럼에도 비리고 맛이 없다.
몇 번을 해 봐도 음식은 나아지지 않았다.
“녀석들은 맛있다고 잘 먹었는데.”
가끔 그가 음식을 할 때면, 맛있게 먹던 부하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해맑게 웃으며 꼬박꼬박 두 그릇씩 비웠었다.
그리움이 뭉클 솟아오른다.
“아니야. 돌아갈 수는 없어.”
남자는 부하들의 모습을 애써 떨쳐냈다.
그리고 다짐했다.
“더 이상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요리사.
나는 이제 요리사다!
남자가 식칼을 불끈 쥐며 결의를 다지던 순간.
퍽-
부엌 한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
동시에 느껴지는 옅은 살기.
남자의 예리한 감각은 그것을 한 톨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팟-
남자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찬장 앞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형환위.
절정의 신법이 발휘된 것이다.
‘쥐?’
남자는 찬장 앞에 서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통이 터져 죽은 쥐 한 마리가 찬장에 엎어져 있었기 때문.
누군가 부엌에 들어왔다면, 남자의 이목을 속일 수는 없다.
한데 쥐는 분명 공격을 받아 죽었다.
‘사람의 솜씨야.’
짐승의 흔적은 아니다.
남자는 쥐의 머리를 부순 것이 둔기의 일종임을 파악했다.
‘내 눈을 피해서 쥐를 죽였다고?’
강호유랑 수십 년.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던 남자다.
마교의 교주도 사파의 지존도 남자의 이목을 속이지 못했다.
“귀신이라도 나타난 건가?”
밑바닥부터 천하제일까지.
은거를 마음먹기까지 겪지 않은 일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옛날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일도 수두룩했다.
그러니 이제 와 귀신쯤 만난다고 놀랄 것도 없다.
남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안녕하세요?”
소리는 머리통이 부서진 쥐가 있는 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쥐가 말을 해?”
남자가 황당무계하다는 듯 뇌까렸다.
* * *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수호는 병뚜껑 속 세상을 보며, 처음 드워프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당황하고 있었다.
다른 차원을 발견했다는 메시지까지는 괜찮았다.
병뚜껑에 그런 기능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한데 막 새로운 세상을 둘러보려던 찰나.
무언가 눈앞으로 확 덮쳐들었다.
반사적으로 휘두른 [거인의 격노]에 그것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그것은 쥐였다.
쥐를 잡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수호는 한층 더 당황했다.
‘쥐가 왜 저렇게 커?’
드워프도 비바니도 온달곰족도.
엘프도 윌슨도.
차원문 너머 모든 존재가 작았다.
【차원 여행】을 통해 직접 넘어가기 전까지, 그 무엇도 크게 느껴진 적이 없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쥐의 주검은 컸다.
온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였다.
한데 수호가 생각을 미처 정리하기도 전.
팟-
미약한 파동이 전해 왔다.
먹구름이 해를 가린 것처럼 사방이 어둑해졌다.
‘뭐야? 뭐가 나타난 거야?’
뭔가 커다란 것이 나타나 빛을 가렸다.
수호가 차원 시야를 움직여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한데 한발 앞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신이라도 나타난 건가?”
곧이어 떠오른 메시지가 현 상왕에 대한 힌트를 담고 있었다.
[새로운 대상 【투왕鬪王 석비룡】을 발견하셨습니다.]
[새로운 대상 【투왕鬪王 석비룡】과 교류를 시작합니다.]
수호는 깨달았다.
‘투왕?’
눈앞의 존재가 ‘투왕’이라 불리는 사람이며, 차원문을 다 가릴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수호가 할 일은 자명했다.
“안녕하세요?”
수호가 인사를 건넸다.
93화 은거 기인(2)
“쥐가 말을 해?”
석비룡이 물었다.
죽은 쥐와 차원문의 위치가 겹쳐 생긴 오해였다.
수호가 서둘러 대답했다.
“쥐가 아니고 사람입니다. 이렇게 다른 세상에 관여하는 게 제 능력이고요.”
대답을 들은 석비룡의 눈빛이 찬장 구석을 훑었다. 정확히 차원문이 열린 그곳을.
‘눈빛 한번 살벌하네.’
차원을 넘어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수호가 긴장했다.
하나 수호는 차원 간 소통의 베테랑.
금세 긴장을 떨치고 할 일을 떠올렸다.
‘먼저 뭐 하는 동네인지부터 살펴보자.’
수호가 차원 시야를 움직였다.
석비룡의 얼굴로 가득 찼던 시야가 트이고, 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주방?’
먼저 눈에 띈 것은 예스러운 느낌의 부엌이었다.
과거 언젠가 지구에 있었을 법한 모습.
수호는 시야를 계속 움직였다.
그제야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식당이었어.’
줄 맞춰 놓여 있는 나무 탁자와 의자.
식당이 분명했다.
‘왠지 낯이 익은데.’
어린 시절 TV에서 본 중국 영화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무림인가?’
하긴 드워프와 엘프가 나왔는데, 무림이라고 나오지 말란 법은 없지.
중요한 것은 누구냐가 아니다.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다.
수호가 여러 차원을 접하며 깨달은 진리를 떠올렸다.
‘좀 더 둘러보자.’
수호가 시야를 움직였다.
식당 끝자락에서 차원 시야의 범위가 끝났다.
크기 차이 때문이었다.
‘반대로 가 보자.’
식당 내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부엌의 반대편이라면 가 볼 수 있을 터.
수호가 차원 시야를 반대로 움직였다.
한데 그 순간.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지?”
석비룡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빛은 정확히 차원 시야가 있는 곳을 응시했다.
‘차원 시야의 움직임을 꿰뚫어 보는 거야?’
당황한 수호에게 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석비룡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우웅-
강력한 기운이 어렸다.
손가락이 허공을 휘저었다.
손끝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공중에 그물을 만들었다.
그물이 차원문 주변을 에워쌌다.
깜짝 놀란 수호가 서둘러 차원 시야를 움직였다.
덜컥-
차원 시야가 그물에 막혀 멈췄다.
‘미친! 차원문이 잡혔잖아!’
이제껏 만난 그 어떤 존재도 하지 못했던 일.
심지어 마족조차 이런 일은 벌이지 못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겠어.”
석비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호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예, 뭐든 물어보십시오.”
* * *
수호는 이제껏 타 차원 사람들을 만나 겪은 일을 축약하여 들려주었다.
석비룡은 흥미로운 눈길로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 후.
이야기가 끝나고, 석비룡이 물었다.
“그러니까 자네가 차원 여행자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요.”
“그렇군. 세상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어.”
석비룡이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이 멈출 때까지 기다린 수호가 입을 열었다.
“저는 원수호라고 합니다. 좀 늦었지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나도 반갑네. 석 대협, 아니, 석 노야라 부르게나.”
노야(老爺)라면, 노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노인처럼 보이진 않는데…….’
석비룡의 모습은 기껏해야 40대 중후반.
많이 봐도 수호의 삼촌뻘이다.
‘고수라서 늙지도 않는 건가.’
무공의 경지가 높아지면, 다시 젊어지기도 한다더니.
영화에서 본 내용을 떠올리며 수호가 그럭저럭 납득했다.
“예, 석 노야라 부르겠습니다.”
“그래, 수호. 이제껏 다른 차원의 사람과 거래를 했었다고?”
“음, 거래라기보다는 부탁을 들어준 셈이지요.”
대부분의 경우, 대가를 받긴 했지만.
어쨌든 거래보다는 부탁 쪽에 훨씬 가깝다.
“그렇군. 그럼 내 부탁도 하나 들어줄 텐가?”
나쁠 것 없다.
상대의 정체를 파악한 후, 수호도 석비룡에게 바라는 것이 생겼으니까.
“말씀하십시오. 가능한 일이면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가게에 바퀴벌레와 쥐가 너무 많아. 저것들을 처리해 줄 수 있겠나?”
“예, 해 보겠습니다.”
대답하는 순간 임무가 생성됐다.
[차원 임무 【부엌을 지켜라】를 획득하셨습니다.]
【부엌을 지켜라】
- 비룡객잔의 주방에 쥐와 바퀴가 들끓는다. 쥐와 바퀴벌레를 구제하여, 비룡객잔의 위생과 식재료를 지켜 내자.
- 보상 : 투왕 석비룡의 만족도.
임무 내용을 확인했을 즈음, 석비룡이 말했다.
“날이 저물었으니, 방법을 고민해 보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세.”
인사를 건네고 물러나려던 수호가 멈췄다.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았기 때문이다.
“노야. 알아볼 것이 있어 그런데, 잠시 도와주시겠습니까?”
“뭔가?”
“제가 물건을 하나 보낼 텐데, 받아 주십시오.”
‘물건도 주고받을 수 있나 보군.’
감탄한 석비룡이 대답했다.
“알겠네. 보내게.”
수호가 차원 보따리에서 잉어즙을 꺼내 전송했다.
잉어즙이 석비룡의 눈앞, 찬장 바닥에 놓였다.
‘작아.’
잉어즙은 석비룡의 속눈썹 길이에도 못 미쳤다. 지구의 크기로 환산하면 쌀알 하나보다 작은 셈.
‘역시 차원 왜곡이 잘못된 게 아니라, 저쪽이 원래 큰 거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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