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al 14
광기에 휩싸인 제사장이 세쿼이아를 향해 다가갔다.
『이런 변태 같은 잡놈의 새끼가 은혜도 모르고!』
세쿼이아의 욕설에도 제사장은 멈추지 않았다.
“먹는다. 크흐흐흐, 먹어 버릴 거야.”
제사장의 촉수가 세쿼이아의 가지에 닿으려던 순간이었다.
덥썩.
허공에서 나타난 거대한 손이 제사장을 움켜쥐었다.
“크르르- 뭐야? 이, 이 괴물은 뭐야?”
“괴물은 너지.”
대답한 수호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우저적.
제사장의 하체에서 땅과 연결된 부분이 뜯겨 나갔다.
“크아아악-”
비명과 함께 제사장이 허공에 떴다.
수호가 제사장을 땅에 내리찍었다.
꽈아아앙-!
온 도시가 쩌렁쩌렁 울렸다.
“오셨다! 으히히, 정령님이 오셨어!”
“이제 됐다. 여러분,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위대하신 세계수의 정령님께서 다 처리해 주실 거거든요.”
그사이 국영수 트리오가 호들갑을 떨며 엘프들을 진정시켰다.
콰아앙-!
재차 굉음이 울렸다.
수호가 제사장을 다시 바닥에 내리찍은 것이다.
“크윽- 도대체 네놈은 뭐냐?”
괴물은 죽지 않았다.
신음만 흘릴 뿐.
풀로 이뤄진 육체와 폭주한 마기가 놈의 내구력을 극단적으로 끌어 올렸다.
쾅쾅쾅!
몇 번을 반복했음에도 괴물은 살아남았다.
“뭐가 이렇게 질겨.”
촤촤촤촤-
도리어 바닥에서 돋아난 잡초가 뻗어와 수호의 손을 찌르려 들었다.
수호가 손을 들어 잡초를 피했다.
“어쩔 수 없지. 도시에 나무가 많아서 안 하려고 했는데.”
화염 강격도 좋겠지만, 둘러갈 필요 없지.
바닥에 돋은 잡초까지 한 방에 해결할 방법이 있으니까.
수호가 옆을 향해 말했다.
“발룡아, 그거 한 번만 하자.”
『또 본좌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냐? 위대한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뭐라는 거야? 됐고, 끝나면 좋은 거 사 줄 테니까 협조해.”
『좋은 거?』
“만족할 거야. 그러니까 좀 하자.”
『크큭- 본좌를 속였다가는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한마디를 남긴 발룡이가 파닥 날아올랐다.
수호가 거머쥐기 딱 좋은 위치였다.
덥석.
발룡킬라가 레드우드 하늘에 나타났다.
“으헉! 저, 저건 또 뭐야?”
“드, 드, 드 드래곤이다!”
“미, 미친 갑자기 드래곤이라니! 도, 도망쳐!”
패닉에 빠진 레드우드 엘프들.
그들을 말리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괜찮다니까요, 저건 정령님이 키우는 애완동물이에요.”
“맞아요. 식탐이 많아서 그렇지 착해요.”
“말투는 이상하지만, 해롭지는 않더라고요.”
태연한 국영수 트리오 덕분에 혼란이 약간 가라앉는다 싶은 순간.
턱.
수호가 괴물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외쳤다.
“쏴!”
발룡이가 입을 벌렸다.
콰르르르르르-
브레스가 뿜어져 나갔다.
괴물과 그 주변에 솟아난 잡초를 향해.
파치지직-
잡초가 불탄다.
브레스의 정순한 열기에 마기도 녹아내렸다.
“끄어아아아아아악-”
제사장의 몸도 불덩이가 되었다.
얼마 후.
한참이나 계속되던 비명이 끝나고.
파스스.
레드우드의 23대 제사장이자, 마족의 종복이었던 엘프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멍청한 것 같으니.』
세쿼이아의 목소리를 끝으로 싸움이 마무리됐다.
수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 임무 【의혹의 레드우드】를 완수하셨습니다.]
[레드우드 엘프와 교류를 시작합니다.]
[레드우드 엘프 만족도가 70 상승합니다.]
[차원 임무 【의혹의 레드우드】가 【세계수 원정대 III】로 연계됩니다.]
[차원 임무 【망자의 부탁】을 완수하셨습니다.]
* * *
소란이 있고 하루가 지났다.
시장이 사건을 수습하는 사이, 수호는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 날.
수호는 다시 레드우드로 향했다.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제 보상을 받을 차롄가.’
『세계수 원정대 III』
- 당신은 레드우드 시민의 의혹을 풀고, 그들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시장과 만나 세계수의 위기에 대처할 방안을 의논하라.
- 보상 : 레드우드 시장 선예의 보답.
연계 임무는 완수 조건이 간단했다.
그저 상황을 전달하고 의논하는 것으로 끝.
그러면 ‘보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수호는 임무 완수를 위해 시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주변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앗! 정령님이다!”
“레드우드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정령님!”
사방에서 인사가 쏟아졌다.
수호는 적당히 손을 흔들어 주며 발길을 재촉했다.
잠시 후, 시장의 공관 앞에 도착했다.
예상치 못한 광경이 연출되어 있었다.
“오셨다! 시작!”
누군가의 구령이 들려왔다.
공관 정문 양쪽에 두 줄로 도열한 경비병들이 창을 들어 올렸다.
“레드우드와 어머니 나무의 수호자!”
쿵쿵쿵-
창이 바닥을 내리찍었다.
“세계수의 정령님께 영광을!”
쿵쿵쿵-
“세계수의 정령님께 영광을!”
쿵쿵쿵-
들어갈 때까지 반복할 기세.
‘고맙긴 하다만.’
멋쩍고 낯부끄럽다.
하나 그만두라 하기도 뭣한 상황.
수호는 경비병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크- 우리 정령님 대박 멋지시다!”
“이런 장면은 그림으로 그려 둬야 하는데. 두고두고 보게 말이야.”
“잊지 마. 내가 생각해 낸 거니까.”
때마침 국영수 트리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수호는 범인을 파악했다.
‘국진이 놈 짓이었구만.’
후일을 기약하며, 수호가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후, 수호는 시장과 마주했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레드우드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장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인사는 충분히 받았습니다. 오늘은 의논할 일이 있잖아요? 전해 드릴 이야기도 남았고.”
인사는 사건이 끝난 순간에 여러 차례 받았다. 이제 세계수의 변고를 전하고,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네, 베풀어 주신 은혜는 언제든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앉아서 이야기 나누실까요?”
곧 시장과 회의가 진행됐다.
“…제사장이 그 마족의 종복이었단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제사장은 마족의 종복이 보이는 전형적인 행태를 보였습니다. 결국, 잡초는 마족이 세상을 차지하기 위해 부린 수작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사장은 그 앞잡이고요. 세계수가 말하지 않는 것도 이번 일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수호가 마족과 종복에 대해 설명했다.
떡갈나무에게 들은 세계수 이야기.
그리고 제사장에 대해 윌슨과 의논한 내용도 더했다.
“그럴 수가.”
망연자실한 시장의 음성에 겹쳐,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계수께서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다 했더니! 빌어먹을 제사장 놈, 죽어서도 문제구나. 세계수께서 무사하신지 하루빨리 확인해야 해요. 수호 님, 시장에게 조사대를 꾸리라고 전해 주세요.』
바로 회의의 세 번째 참여자.
세쿼이아였다.
“세쿼이아 님이 즉시 조사대를 꾸리라고 하시네요. 제 생각도 같고요.”
수호가 시장에게 말을 전했다.
제사장은 물론 제자까지 죽었다.
새 제사장을 키워야 하는 상황.
[제사장의 반지]가 있더라도 뛰어난 재능이 필요하기에,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는 없었다.
결국, 통역은 수호의 몫이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사단을 꾸리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시장에게 수호가 물었다.
“제가 더 도와드릴 일은 없겠습니까?”
“조사단은 시민들로 충분합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까지 정령님께 손을 내밀 수는 없지요. 다만, 제초제를 더 얻을 수 있을까요? 주변 마을과 도시에도 잡초가 퍼져 있는 상황이라.”
2천 명의 엘프가 사는 레드우드다.
수호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주변으로 소식과 제초제를 전할 역량이 있었다.
“물론입니다. 제초제는 걱정하지 마세요.”
수호가 대답했다.
시장이 멋쩍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성약도 조금만 더 얻을 수 있을까요? 시민들이 극성이라.”
세쿼이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엘프의 몸도 곧 회복될 터.
며칠만 지나면 약이 더 필요하지도 않겠지.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얼마든지 더 보내 드리겠습니다.”
수호는 이번에도 흔쾌히 대답했다.
그것이 불러올 여파는 생각지도 못하고.
“감사합니다, 정령님. 레드우드는 정령님의 영원한 우방이 될 것입니다. 언제든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 주십시오.”
『저도 마찬가지예요. 정말 고마워요, 수호 님.』
시장과 어머니 나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수호가 마주 인사했다.
[차원 임무 【세계수 원정대 III】을 완수하셨습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더 이상 연계되는 임무는 없었다.
* * *
지구, 수호의 가게 안.
공간 결계로 생성된 벽 뒤편.
수호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 3개의 물건이 놓였다.
주먹만 한 보석.
호두알만 한 씨앗.
고풍스러운 테두리에 둘러싸인 전신 거울.
앞의 둘은 세쿼이아에게.
나머지는 시장에게 받아 온 ‘보답’이다.
“한번 살펴볼까.”
수호가 세 개의 아이템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시작은 노란색 보석부터였다.
[정령 호박석]
- 오랜 세월을 살며 영성을 얻은 어머니 나무의 수액이 굳어 만들어진 보석. 강한 마력과 세쿼이아 특유의 기운이 담겨 있다.
- 재료 아이템
- 아이템 등급 : 영웅
- 내구도 : 450
“이건 드워프에게 주면 되겠고.”
무려 영웅 등급의 재료 아이템.
드워프에게 보내면 훌륭한 장비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신비한 어머니 나무 씨앗]
- 레드우드의 어머니 나무, 세쿼이아가 자신의 기운을 담아 만든 씨앗이다. 세계수의 기운이 희미하게 이어져 있지만, 어떤 식물이 싹 틔울지 자라기 전에는 알 수 없다.
- 아이템 등급 : 영웅
- 소모 아이템
“이건 도대체 뭐가 될지 모르겠어.”
수호는 씨앗을 건넬 때, 세쿼이아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흙에 심은 후에 수호 님의 마력을 꾸준히 흘려 넣어주면, 싹을 틔울 거예요. 당신의 기운이 자라날 아이의 성질에 영향을 미칠 거랍니다. 세계수의 핏줄을 이었으니 수호 님께도 분명히 도움이 될 거예요. 소중히 키워 주세요.』
“뭐, 따지고 보면 세계수의 손자뻘이니까. 뭐든 도움이 되겠지.”
수호가 화분에 씨앗을 심고, 마력을 흘려 넣었다.
씨앗이 마력을 빨아들였다.
잠시 후.
“마력을 무한정 받아 먹지는 않네.”
어느 순간 씨앗이 마력을 더 흡수하지 않았다.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하자.”
시간 날 때마다 하다 보면, 언젠가 자라나겠지.
수호는 화분을 치워 놓고, 마지막 보상을 확인했다.
[시험의 거울]
- 우연히 레드우드에 흘러들어온 후,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온 도시의 보물. 수많은 전사가 거울의 시험을 거쳐 높은 경지에 올랐다. 시험에 통과할 때마다 대상에게 알맞은 스킬을 부여한다. 단, 실패에는 대가가 따르니, 과욕은 금물.
- 아이템 등급 : 영웅
- 내구도 500
“스킬을 얻을 수 있다니!”
무려 스킬이다.
비록 조건이 따르지만 확정적으로 스킬을 얻는다.
“이거야말로 대박이구만.”
하루 휴식한 덕분에 컨디션도 훌륭하고.
굳이 미룰 필요는 없겠지?
수호가 거울을 벽에 기대 세웠다.
거울에 마력을 주입했다.
지이잉-
거울이 떨린다.
곧이어 푸르스름한 광채가 어리더니, 거울 표면이 변했다.
“투기장?”
조금 전까지 수호의 얼굴이 비치던 거울.
그 속에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원형 투기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호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거울 속을 관찰하고 있을 때.
[차원 【AUDEKD-001】을 발견하셨습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이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한데 놀람도 잠시.
수호는 곧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아무도 없어?”
거울 속에서는 그 어떤 생명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차원 발견 후 늘 이어지던 교류 대상 발견 메시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83화 시험의 거울 (1)
수호는 레드우드 시장에게 거울을 받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먼 옛날 도시가 세워지기 전, 이곳에는 많은 몬스터가 존재했습니다. 어머니 나무의 힘이 강해지고, 성벽을 세우고, 주변 몬스터를 소탕하기까지, 수많은 전사의 피가 흘렀지요. 그때 자신을 구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사들은 그 거울을 이용했습니다. 거울의 시련을 통과한 자들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레드우드 엘프는 이제 거울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머니 나무의 영향력이 강해졌고, 주변 몬스터 토벌도 끝났다.
목숨 걸고 시련에 도전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거울을 활성화한 후, 표면에 손을 뻗으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저희는 그곳을 시련의 탑이라고 불렀습니다만, 사실 정확한 명칭은 모릅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죠.”
.
.
.
“시련은 여러 단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한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거울에서 탈출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정령님이라면 1단계는 무난하게 통과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2단계부터는 신중하셔야 합니다. 레드우드의 오랜 역사에도 2단계를 넘어선 전사의 기록은 드무니까요.”
시장의 말을 되새긴 수호는 거울로 손을 뻗었다.
‘새로운 차원이라는 메시지를 들은 이상, 탐색은 해 봐야지.’
교류 대상이 없는 이유도 알아봐야 한다.
꼭 실험해야 하는 것도 있고.
팟-
집에서 수호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안개가 잔뜩 낀 듯, 희뿌연 시야.
모호한 기운의 흐름.
거울 속 세상은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수호는 서둘러 스킬을 시전했다.
‘차원 여행!’
잠시 후, 수호가 탄성을 터트렸다.
“역시 가능해!”
시장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한데 수호에게는 달랐다.
“이러면 언제든 탈출할 수 있다는 말인데.”
차원 여행 스킬을 통해 수호만은 언제고 거울에서 나갈 수 있었다.
엘프 전사들보다 훨씬 안전하게 시험에 임할 수 있는 셈.
“망설일 이유가 없어.”
수호가 성큼 나아갔다.
시야가 밝아졌다.
밖에서 보던 투기장의 모습이 눈앞에 구현됐다.
눈앞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홀로그램?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니, 마법적인 장치인가?’
반투명한 두 개의 패널.
하나에는 칼이, 나머지에는 문이 그려져 있다.
그때 귓가로 소리가 들려왔다.
『도전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기계음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칼을 선택하면 시련을 진행하고, 문을 선택하면 밖으로 내보내 준다고 했지?’
수호는 가부를 결정하는 대신 질문했다.
“여기는 어디고 당신은 누구십니까?”
엘프들은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지만 【소통】 스킬이 있는 수호는 다르다.
알아들을 수 있으니,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것이 수호의 생각이었다.
『이곳은 최후의 보루이자 마지막 가능성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명확하지 않은 내용에 수호가 되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친절하지 않았다.
『시련을 통과한 만큼 얻게 될 것입니다.』
『도전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이곳을 만든 사람은 누구입니까? 시련은 몇 단계까지 있나요?”
수호가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도전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더 이상 대화는 없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
‘통과한 만큼 얻는다고 했으니, 1단계를 깨면 대답도 더 해 주려나?’
잠시 생각한 수호는 목소리에 대답했다.
“도전한다.”
동시에 칼 모양의 홀로그램을 터치했다.
번쩍-
순간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밖에서 본 투기장이야.’
어느새 눈앞에 콜로세움의 모습이 구현됐다.
『1단계를 시작합니다.』
『플라마의 종복, 폴크를 해치우세요.』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복?’
종복이란 단어에 수호가 깜짝 놀라는 사이.
맞은편에서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흐흐히히-”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등장한 적.
붉은 피부에 털이 전혀 없는 오랑우탄을 연상시키는 괴물이었다.
“저게 마족의 종복이란 말이야?”
수호가 적을 살피는 사이.
폴크는 원을 그리며 수호의 주위를 돌았다.
“크흐흐, 인간이구나.”
놈의 입에서 비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도 하는군. 단순히 전투력만 재현한 게 아니란 건가?”
눈앞의 적이 진짜로 마족이 종복은 아닐 터.
말을 한다는 것은 지능까지 구현했다는 소리와 같았다.
실제로도 폴크는 종복다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크흐흐, 약해 빠진 인간 따위, 단숨에 태워 죽여 주마.’
마인이야말로 우월하다.
플라마의 권능을 나눠 받은 자신은 그중에서도 선택받은 존재.
나약한 인간 따위는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다.
화르르르.
벌거숭이 몸에서 사자의 갈기 같은 불길이 솟아오르고.
바직-
폴크가 땅을 짓이기며 달렸다.
“죽어라!”
툭 치면 부서질 것 같은 인간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쾅!
주먹이 땅에 부딪혔다.
노렸던 수호는 그 자리에 없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폴크가 연이어 주먹을 내질렀다.
쾅, 쾅, 쾅, 쾅-
애꿎은 바닥이 박살 났다.
폴크의 주먹은 한 차례도 수호의 몸에 닿지 않았다.
툭-
대신 화염 포마검의 검면이 폴크의 뺨을 치고 지나갔다.
도발이었다.
“감히! 죽여 버리겠다!”
분노한 폴크가 고함을 내질렀다.
화르르르르-
몸에서 불길이 확 치솟았다.
이전의 두 배는 됨 직한 화력.
쾅! 콰콰쾅!
몇 차례 폭음이 이어졌다.
여전히 폴크는 수호에게 공격을 적중시키지 못했다.
수호가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이만하면 탐색전은 충분하고.”
일부러 도발했다.
처음 겪는 시험.
언제든 탈출할 수 있기에, 승리보다 적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속도, 파워, 화염의 화력까지.
적의 힘을 모두 파악했다.
“이제 끝내 볼까.”
쾅!
다시 휘둘러진 폴크의 주먹을 피하며 수호가 전진했다.
땅을 찍은 팔 아래.
텅 빈 공간.
‘헤이스트!’
스킬을 시전하며 수호가 달렸다.
깜짝 놀란 폴크가 주먹을 회수한다.
하지만 늦다.
이미 가슴이 훤히 열렸다.
공격을 위해 반대편 주먹도 잔뜩 당겨진 상태.
방어할 방법이 없다.
‘근력 폭발!’
‘무기 강화!’
수호가 화력을 끌어올렸다.
가까워진 거리 탓에 화기가 피부를 그을린다.
‘화염은 버틸 만해.’
문제없다.
화염은 수호의 화염 저항을 뚫지 못했다.
약간의 작열감을 참으며 수호가 칼을 휘둘렀다.
화염 포마검이 폴크의 아래턱을 후려쳤다.
콰직.
턱뼈가 부러져 어긋난다.
인간이라면 뇌가 흔들려 실신할 상황.
폴크의 마기가 정신을 부여잡았다.
“크윽- 죽어라, 인간!”
폴크가 끌어당겼던 손을 내질렀다.
‘느려.’
하나 헤이스트까지 사용한 수호를 맞힐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화염 포마검이 섬전처럼 움직였다.
콰콰콰콰쾅!
부서진 턱에 연달아 공격이 적중했다.
털썩.
머리통이 사라진 폴크가 무너져 내렸다.
* * *
협회 던전 대응팀 소속 윤창현.
4성 만렙 헌터이자, 파티의 리더인 그는 지금 난생처음 보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얼마 전 ‘제2차 격변’이라 명명된 현상이 시작된 후.
던전에 여러 가지 변화가 발생했다.
레벨 제한 던전의 잦은 발생이 그 대표적인 예다.
“도대체 몬스터가 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
지금 윤창현이 있는 곳은 한술 더 떴다.
이곳은 웬만한 도시의 ‘구’만 한 넓이의 4성 던전이다.
한데 마주친 몬스터가 고작 20마리뿐.
그렇다고 개체마다 아주 강력한 것도 아니었고.
“그러게요. 대충 다 훑은 것 같은데, 도대체 왜 더 없는 걸까요?”
“누가 먼저 들어온 건 아니겠지?”
“브레이크가 얼마 안 남은 던전이라, 협회에서 집중 마크 하고 있었잖아요. 누가 들어왔을 리가 없죠.”
“맞아, 설사 누가 먼저 몬스터를 잡았으면, 최소한 던전 코어가 노출되기라도 해야지.”
“그러게. 진짜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파티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윤창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브레이크까지 1달밖에 남지 않은 던전이야. 어떻게든 비밀을 밝혀내야 해.’
윤창현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계속 정찰한다.”
거듭된 탐색으로 피로가 쌓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윤창현의 파티가 다시 움직였다.
.
.
.
몇 시간 후.
“와, 진짜 없네.”
“그러게, 이만큼 헤맸는데, 한 마리도 안 보여.”
“여기 원래부터 그냥 몬스터가 적은 곳 아닐까? 2차 격변 이후로 별 이상한 던전이 다 생기잖아.”
파티원들이 넋두리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윤창현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저기, 뭐가 있어.’
윤창현의 스킬, 【지형 파악】이 멀리 보이는 바위에서 이질적인 부분을 감지한 것이다.
“조용, 저쪽으로 간다.”
윤창현이 조심스럽게 앞장섰다.
파티원들이 뒤따랐다.
잠시 후, 그들은 바위 앞에 도착했다.
윤창현은 무엇이 이상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바위에 뭔가 그려져 있어.”
바위 표면.
가느다란 선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다.
“글자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하고. 신기한 문양이네.”
“마력도 희미하게 느껴져.”
“몬스터가 그냥 없을 리가 없지. 분명 이것과 관계가 있을 거야.”
윤창현은 【함정 감지】 스킬을 시전했다.
특별한 위험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바위를 살짝 건드려 보았다.
예상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가만, 혹시 이거 문 아닌가?”
그때 한 파티원이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바위 밑에 문을 감춰 뒀을 수도 있잖아요. 저 선이 잠금이나 은폐 마법의 일종이고요.”
아쉽게도 마법에 능한 파티원은 없었다.
“리더, 내가 한번 봐도 될까요?”
도적 클래스의 헌터가 나섰다.
그에게는 【잠금 해제】 스킬이 있다.
“해 봐. 혹시 모르니 조심하고.”
윤창현이 허락했다.
도적 헌터가 스킬을 발동했다.
우웅.
손에 마력이 모이고, 그가 바위를 건드렸다.
하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다.
“안 됩니다. 웬만한 문은 다 열 수 있는 스킬인데…….”
윤창현도 안다.
함께하는 동안 도적 헌터가 못 열었던 문이 없었으니.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면, 여기 뭐가 있는 게 분명한데.”
그 뒤로 여러 가지 방법이 시도됐다.
아무리 고민하고 실험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윤창현은 결정을 내렸다.
“돌아간다. 우리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야.”
협회 수뇌부에서 나서야 한다.
직접 해결하든, 따로 전문가를 초빙하든.
“서두르자.”
브레이크까지 한 달.
복귀하는 윤창현의 파티만큼이나 협회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 * *
수호는 쓰러진 폴크를 보며 숨을 골랐다.
“마기의 본체가 다른 숙주를 찾는 것까지 구현하지는 않았나 보네.”
머리통이 사라진 폴크는 그것으로 끝.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폴크의 사체가 바닥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1단계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도전자에게 알맞은 보상이 지급됩니다.』
콜로세움 한구석에 상자가 하나 생겨났다.
‘보상도 좋지만.’
수호가 상자를 향해 걸어가며 생각했다.
‘질문을 더 받아 주면 좋겠는데.’
굳이 시도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수호는 상자 앞에서 물었다.
“이곳은 어디지? 이곳의 목적은?”
1단계를 통과했기 때문일까.
대답이 들려왔다.
『멸망을 예견한 자들의 유품. 세상을 갈아 넣어 마련한 희망의 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면 안 될까?”
『시련의 끝에 다다른 자.』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안배를 얻을 것이다.』
그 뒤로도 몇 번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은 없었다.
“결국, 끝까지 가 보는 수밖에 없으려나.”
대강의 의미야 짐작이 간다마는.
구체적인 정보는 없다.
수호가 생각을 갈무리하고, 상자를 열었다.
익숙한 모양의 구슬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보상은 스킬 룬이었군.”
예상할 수 있던 일이다.
수호가 차분하게 룬을 집어 들었다.
[스킬 룬 【5연격】을 획득하셨습니다.]
【5연격】
- 전체 마력의 30%를 소모하여 200%의 힘으로 5번 연이어 가격한다.
“대박인데?”
마력 소모가 무진장 크다.
그럼에도 수호는 스킬에 크게 만족했다.
순간 화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스킬.
수호의 전투 스타일에 딱 들어맞는다.
게다가 재사용 대기 시간도 없다.
“도전자에게 알맞은 스킬을 준다더니, 진짜였어.”
갈수록 상대하는 적이 강해졌다.
화염 강격만으로 부족한 느낌이 들던 참.
꼭 필요한 스킬이 나온 셈이었다.
게다가 성능 자체도 좋다.
수호의 안목으로는 랭커들의 스킬에도 뒤지지 않는 것 같다.
정확한 위력은 차차 알아봐야겠지만 말이다.
‘어? 뭐가 더 있어?’
흡족해하던 수호의 시야에 뭔가 걸렸다.
상자 바닥.
손바닥만 한 석판이 떨어져 있다.
언뜻 태블릿 pc를 연상시키는 모양.
수호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아이템이 아닌지 시스템 창이 뜨지 않았다.
‘꼭 태블릿처럼 생겼어.’
터치하면 작동하려나?
수호는 손가락으로 석판을 건드려 보았다.
석판 표면에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플라마의 종복은 몸에서 강한 화염을 내뿜는다. 근력도 강하다. 화기에 내성이 없고 회피에 능하지 않을 경우, 접근전을 피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글자는 계속 이어졌다.
“정보?”
그것은 방금 해치운 적에 대한 정보였다.
잠시 후, 플라마의 종복에 대한 정보를 모두 토해 낸 글자가 멈췄다.
“전투 대상의 정보를 전하는 건가?”
지구에서든 타차원에서든.
언제고 마족의 종복과 다시 싸우게 될 터.
“잘 챙겨 둬야겠네.”
수호가 석판을 갈무리하려 했다.
한데 그때 글자가 이어졌다.
『마족 플라마는 강한 화기를 다룬다. 추정치는 종복이 발하는 화력의 1,000배. 종복의 화기를 감당할 수 있다고 해서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편이 좋다. 대적에는 수(水)계, 혹은 빙(氷)계의 마법사가 필수다. 강한 화기를 쏟아붓는 화력전을 선호하기에, 놈의 성향을 이용해 미리 화기를 제어할 수 있는 함정을 파고 끌어들이는 방법이…….』
맙소사!
수호가 탄성을 질렀다.
“이거 마족에 관한 정보잖아!”
석판에는 마족에 대한 자료가 담겨 있었다.
발룡이도 윌슨도 모르는 천금 같은 자료가.
84화 시험의 거울 (2)
발룡이는 마족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각각의 마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윌슨은 마족에게 멸망한 세상의 생존자.
몇몇 마족을 직접, 혹은 영상으로 접했다.
정보도 있다.
하나 윌슨이 알고 있는 정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마족의 정보와 대응 방법까지 알려 주다니.”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 엘프들은 몰랐지만, [시험의 거울]의 가치는 스킬 룬을 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수호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여긴 누가 만든 거지?”
대답이 들려왔다.
수호가 원하던 내용은 아니었다.
『다음 단계에 도전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칼과 문 모양 홀로그램도 다시 떠올라 있었다.
‘도전해야지.’
도전해야 할 이유?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좀 전의 싸움이 크게 힘들지 않았기에 체력도 문제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야.’
그럼에도 수호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언제든 도전할 수 있으니 헐레벌떡 달려들 필요는 없다.
‘최소한 스킬 쿨타임은 돌아와야 뭘 하든 하지.’
헤이스트를 비롯해 여러 스킬이 재사용 대기 시간에 걸렸다.
전력을 낼 수 없는데, 무리하게 도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돌아가자.’
결정한 수호가 문 모양의 홀로그램을 터치했다.
번쩍.
눈앞이 환하게 빛나더니, 수호는 어느새 지구로 돌아와 있었다.
* * *
수호는 소파에 앉았다.
2단계에 도전하기 전에 쉬어 둘 필요가 있었다.
“예전에 어디서 비슷한 스킬을 본 것 같은데…….”
한 번의 공격으로 5번의 충격을 가하는 새 스킬, 5연격.
수호는 언젠가 그와 비슷한 스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수호가 휴대폰을 들었다.
“쉬는 김에 한번 찾아볼까.”
스킬에는 등급이 표시되지 않는다.
때문에 스킬 룬만으로는 값어치를 매길 수 없다.
비슷한 스킬을 살펴보면 【5연격】의 가치를 알 수 있을 터.
스킬 쿨타임이 돌 때까지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을 것이다.
“정보가 나오려나 모르겠네.”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메인 화면에 기사가 줄줄이 떠 있었다.
『제2차 격변! 이대로 좋은가?』
『【격변을 말한다. 제2편】 현재 밝혀진 새로운 형태의 던전을 알아보자.』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던전 브레이크 발생! 사상자 2천 명 넘어.』
『한국은 안전한가? 헌터 협회 관계자 “인력이 부족하다. 대형 길드와 헌터 개인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모두 한 가지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제2차 격변.
레벨 제한 던전이 등장한 것이 시작이었다.
수호도 그와 관련해 협회 의뢰를 받은 적이 있다.
그 후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음에도 사태는 심각해져 있었다.
‘난리구만, 쯧.’
세계적으로 던전의 발생 빈도가 크게 증가했다.
던전 브레이크 확률도 올랐고, 이상한 구조의 던전도 자주 발견되었다.
세계적으로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
미간을 찌푸린 채, 기사를 훑던 수호는 곧 본래의 목적을 떠올렸다.
‘내가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스킬이나 찾아보자.’
수호가 스킬을 검색했다.
‘5연격은 없고, 그럼 연격, 이것도 없고. 흐음, 다중 공격 스킬?’
수호는 단어를 바꿔 가며 검색을 계속했다.
한참을 뒤진 후에야 비슷한 스킬을 찾아냈다.
‘트리플 어택! 맞아, 이거였어.’
언젠가 보았던 스킬은 트리플 어택이었다.
관련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미국 4성 던전에서 드롭된 【트리플 어택】 스킬 룬, 결국 경매에 부쳐진다!』
『【트리플 어택】, 3천만 불에 낙찰!』
『【트리플 어택】의 새로운 주인, 바니 스틴슨은 누구?』
‘역시 유명한 스킬이 맞았어. 그러니 내가 기억하고 있었겠지.’
4성 던전 돌파 과정에서 스킬 룬이 나왔는데, 아쉽게도 해당 파티의 근접 계열이 모두 사망했다.
결국, 스킬 룬은 경매장행.
한동안 세간이 떠들썩했다.
수호의 기억에 남은 이유였다.
‘스킬 옵션이 나와 있겠지?’
수호는 기사를 터치했다.
예상대로 기사 속에 스킬 정보가 표시되어 있었다.
【트리플 어택】
- 전체 마력의 30%를 소모해, 150%의 파괴력으로 3번의 공격을 가한다.
스크롤을 내려 댓글을 살펴보았다.
└ 와씨, 데미지 뻥튀기 보소. 눈 호강 제대로 하네.
└ 설명 보니까 즉발형에 쿨탐도 없는 것 같은데, 저러면 사기 아님?
└ 마력 소모가 심하니까, 얼추 밸런스는 맞을 듯?
└ 하아, 갖고 싶다.
└ 22
└ 333
└ ㅋㅋㅋㅋ3천만 불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
└ 용돈 몇 달 모아야겠네.
└ └만수르 아들임?
이게 이 정도로 평가가 좋다고?
수호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5연격의 하위 호환인데.’
트리플 어택은 어떻게 봐도 5연격보다 못하다.
한데 평가는 엄청났고, 가격은 무려 3천만 달러였다.
‘사용 후기 같은 건 없나?’
수호는 기사에서 빠져나왔다.
여러 웹사이트를 전전하던 수호는 위키 사이트와 연결된 링크를 터치했다.
스킬의 설명 아래, 주석이 달려 있었다.
- 미국의 4성 던전에서 드롭된 스킬 룬. 랭커인 바니 스틴슨이 획득했다. 바니 스틴슨은 현재 5성 던전에서 활동 중이며, 트리플 어택은 여전히 그의 주력 스킬로 사용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해당 스킬은 5성을 넘어 그보다 상위 던전에서도 통용될 것으로 추정되며…….
이쯤 되면 확신해도 된다.
【5연격】은 대박 스킬이다.
‘시장한테 고마워해야겠는걸.’
[시험의 거울]은 소유 즉시 수호에게 이득을 주는 아이템은 아니었다.
긴 엘프 차원 임무의 보상으로 그것을 받았을 때, 조금이나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한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족의 정보를 꾸준히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대박인데, 스킬 룬까지 이렇게 고급이라면 말이야.’
게다가 스킬 룬 획득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을 테니…….
레드우드에 들르면 시장에게 좀 더 친절하게 대해 줘야겠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5연격은 절대로 공개하면 안 되겠다.”
발룡이를 공개한 후, 안 그래도 이목이 우려되는 상황.
5연격으로 기름을 끼얹을 필요는 없겠지.
수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든 좋은 스킬을 얻었으니, 썩히면 안 되겠지?”
그새 스킬 쿨타임도 돌았다.
그러니 당장 실험해 보자.
2단계에서!
“가자.”
수호가 거울을 향해 다가갔다.
* * *
『2단계를 시작합니다.』
『코아틀의 종복, 비틀쥬스를 해치우세요.』
2단계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호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바로 때려잡지 말고, 차분히 상대하자.’
5연격의 파괴력을 실험해야 한다.
다른 스킬과 연계를 통한 시너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사삭-
저편에서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곤충형인가?”
비틀쥬스.
수호의 용달차를 2배쯤 키워 놓은 듯한 크기.
검은색 갑각으로 둘러싸인 몸통이 마기로 번들거린다.
커다란 딱정벌레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몸통 아래, 지네처럼 수십 개의 다리가 달렸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징그럽게 생겼구만, 크기도 크고. 뭐, 어떻게 생겼든 칼만 박히면 상관없지.”
이미 거대한 몬스터들과 여러 차례 교전 경험이 있다.
크다고 딱히 문제 될 것은 없다.
수호는 여전히 자신 있었다.
“그럼 한번 잡아 보실까?”
사사사사삭-
비틀쥬스가 징그러운 소리를 내며 돌진했다.
수호도 마주 쇄도해 나갔다.
.
.
.
【5연격】이 시전됐다.
카카카카캉-!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비틀쥬스의 거대한 덩치가 주르륵 밀려났다.
동시에 화염 포마검도 튕겨 났다.
“뭐야?”
수호가 깜짝 놀라 외쳤다.
비틀쥬스의 몸통을 살폈다.
“미친! 생채기도 안 났잖아.”
놈은 멀쩡했다.
공격이 적중한 부분에는 긁힌 자국조차 없었다.
‘스킬은 문제없어.’
【5연격】의 성능은 기대 대로 훌륭했다.
거대한 비틀쥬스를 멀찌감치 날려 버릴 정도로 위력적이었으니까.
문제는 비틀쥬스의 갑각이 너무 단단하다는 점이었다.
사사삭-
비틀쥬스가 브레이크 고장 난 덤프트럭처럼 덮쳐 왔다.
수호가 몸을 피했다.
비틀쥬스는 투기장 벽을 들이받았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투기장이 부르르 떨렸다.
벽에 처박혔던 것도 잠시.
비틀쥬스가 수많은 발을 기민하게 움직여 고개를 돌렸다.
“먹는다. 인간. 먹이. 잡아먹는다.”
비틀쥬스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곤충처럼 생겼지만, 마족의 종복.
어느 정도의 지성은 유지하고 있었다.
“젠장.”
수호는 묘한 압박감에 욕설을 내뱉고는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먹는다. 먹이. 죽이고 먹는다.”
다시 돌진하는 비틀쥬스를 보며, 수호도 스킬을 실험할 때가 아님을 인정했다.
“그래, 한번 해 보자. 벌레 자식아.”
마음을 다잡은 수호가 비틀쥬스에게 맞서 달려갔다.
.
.
.
얼마 후.
챙-!
화염 포마검의 비명이 투기장을 울렸다.
“이런 빌어먹을!”
수호의 욕설이 뒤따랐다.
“먹는다. 먹이.”
한결같은 비틀쥬스의 목소리도 들린다.
“뭐 이딴 경우가…….”
허탈한 목소리와 함께 수호가 뒤로 훌쩍 물러났다.
【헤이스트】가 적용되고 있는 상태.
수호는 비틀쥬스를 쉽게 떨쳐 냈다.
멀찍이 물러난 수호가 손을 들어 올렸다.
칼끝이 뚝 부러져 뭉툭해진 화염 포마검이 보인다.
“칼이 부서지다니, 이게 말이 돼?”
몸통이 칼보다 단단한 게 말이 되냐고.
웬만한 공격으로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한 수호는 조금 전 승부수를 띄웠다.
모든 버프 스킬을 걸고 【5연격】을 날린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화염 포마검의 파괴.
반면 비틀쥬스의 갑각에는 약간의 긁힌 자국만 남았다.
“먹이. 도망친다. 죽인다. 먹는다.”
사사삭-
지치지도 않고 달려드는 비틀쥬스.
화염 포마검의 손잡이가 땀에 젖어 들었다.
“허허…….”
수호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포기해야 할 때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 *
털썩.
지구로 돌아온 수호가 침대에 몸을 뉘었다.
“너무 만만히 봤어.”
1단계가 쉬웠다.
그래서 거울의 시련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시장이 경고도 했었는데 말이지.”
레드우드의 시장은 말했었다.
역사상 1단계를 통과한 엘프는 많아도 2단계부터는 극히 드물다고.
“아무리 봐도, 1단계는 의도적으로 상성상 유리한 적을 내보낸 것 같아.”
플라마의 종복은 화염을 주력 기술로 사용했다.
속도도 느렸다.
수호가 요리하기에 딱 알맞은 상대.
도전자의 성향에 맞추어 상대하기 쉬운 적을 내보낸 것 같았다.
그러나 2단계는 달랐다.
“한 단계 올랐다고 갑자기 칼이 안 박히다니.”
근력 폭발, 무기 강화 등 버프 스킬을 다 쓰고 덤볐음에도, 비틀쥬스의 갑각을 부수지 못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5연격】 자체는 훌륭했다는 점.
원하는 순간 즉시 발동되며, 대미지 또한 찰나의 순간에 중첩되어 들어간다.
5방이지만 1방 같은 타격.
첫 한 방만 맞추면 나머지 타격은 모두 적중한다.
마력 소모를 빼면 흠잡을 데 없는 스킬이었다.
그럼에도 비틀쥬스의 갑각을 뚫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화염 포마검이야.”
이제껏 정말 잘 사용해 오던 무기다.
하지만 적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오히려 부서져 버렸다.스탯이나 레벨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
결론은 하나였다.
“더 강한 무기가 필요해.”
다행히 세쿼이아에게 받아온 [정령 호박석]이 있다.
드워프에게 맡기면, 훌륭한 무기를 만들어 줄 터.
희망적인 생각을 하던 수호는 곧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장비를 하나 더 만들고 있다고 말했었지?”
드워프 마을로 쳐들어온 ‘웜’을 잡은 후.
타룽가는 웜의 재료를 이용하면 2개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중 하나는 [광룡의 발톱]으로, 진작에 받았다.
나머지 하나가 감감무소식이다.
“이렇게 오래 걸린 적이 없는데, 혹시 깜빡한 건가?”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수호가 몸을 일으켰다.
“가서 물어보자.”
굳이 앉아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정령 호박석]을 전하고 화염 포마검도 수리해야 하니까.
수호가 냉장고를 향해 다가갔다.
85화 시험의 거울 (3)
드워프 마을 성벽 위.
세 드워프 족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타룽가, 어쩌자고 또 그런 결정을 내렸단 말인가?”
“맞네, 거인님 얼굴은 어떻게 뵈려고 그러나?”
달콩과 블톤이 추궁했다.
“하지만 자네들도 보지 않았나. 이대로는… 이대로는 너무 아쉽단 말일세. 분명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어.”
타룽가가 호소하듯 외쳤다.
진심 어린 목소리에 나머지 달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네. 재료가 조금만 더 있다면, 확실히 한 단계 더 높은 물건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블톤도 공감하는 표정.
하나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그렇다고 자꾸 재료를 다시 녹여 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이미 몇 달이 흘렀어. 이대로면 정말 거인님 볼 면목이 없잖은가.”
블톤의 대답을 들은 타룽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도 한번 다시 녹였지 않나? 달콩 저 친구도 이미 전적이 있고 말일세.”
“크흠, 그, 그거야 그때 윌슨 님과 상의하다 보니 뭔가 깨달은 바가 있어서…….”
“나, 나는 그때 새 재료가 들어와서 그런 걸세. 자네도 알지 않나? 거인님이 상왕련이란 곳에서 제법 질 좋은 재료를 받아다 주시는 바람에…….”
달콩과 블톤이 연이어 변명했다.
그랬다.
그들은 수호에게 주려고 만들던 장비를 계속 녹여 버리고 있었다.
제작이 진행되는 중에 자꾸 새로운 재료가 생겼기 때문이다.
뛰어난 대장장이인 그들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훨씬 대단한 물건이 나올 거란 사실을 알았다.
재료를 조금씩 더해 갈수록 그런 마음은 커졌다.
결국, 재료를 정련하고 다시 녹이는 과정만 반복하고 있던 셈.
“크흠. 어쨌든 이미 녹였으니, 너무 타박하지 말게나.”
“그래, 녹인 건 녹인 거니 그렇다 치고,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달콩의 물음에 타룽가가 입을 뗐다.
“내 생각해 둔 바가 있네. 일단 성벽과 주거 공간의 공사는 얼추 끝난 상황 아닌가.”
“그렇지.”
“곧 일손이 남을 거란 말이네.”
“성벽 쪽 인력은 벌써 남고 있네. 지하 몬스터 방비 작업만 빼면 다 끝났는데, 그쪽은 우리 힘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상황 아닌가.”
‘웜’의 침공 후, 지하 몬스터에 방비 공사를 시작했다.
그 핵심 부품은 전격 충격기.
바로 윌슨의 발명품이다.
한데 윌슨은 아직 광활한 드워프 성벽을 아우를 만큼 큰 전격 충격기를 만들 수 없었다.
“알고 있네, 윌슨 님의 설비가 덜 완비됐으니까. 내 생각대로만 일이 풀리면, 그 문제까지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을 걸세. 껄껄.”
“그래서 그 생각이란 게 뭔가?”
“어서 털어놓아 보게.”
두 족장의 재촉에 타룽가가 입을 열었다.
“정찰대를 보내세.”
“정찰대?”
“그렇네. 거인님의 장비를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완성하려면 뭐가 필요한가? 윌슨 님의 설비 마련을 도우려면 필요한 것은 또 뭐고?”
“거인님 장비를 완성하려면, 재료가 필요하지.”
“윌슨 님의 설비에는 마정석이 들어간다고 했었네.”
타룽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걸세. 그동안 살아남기에 바빠, 근처를 제대로 탐색한 적이 없네. 기껏해야 광맥 정도나 찾아봤지 않나. 그러니 이참에 주변을 탐색할 겸, 몬스터 사냥을 나서자는 말일세. 어차피 일손도 남지 않나.”
“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이제 우리가 쓸 장비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됐으니, 웬만한 몬스터는 무서울 것 없지.”
달콩이 반색하며 대답했다.
“그렇네, 매번 거인님께 손을 벌리는 것도 부끄러운 일 아니겠는가. 윌슨 님께도 이참에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고. 껄껄.”
타룽가와 달콩이 기분 좋은 대화를 이어 갔다.
블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것 외에도 혹시 다른 목적이 있지 않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미뤄 뒀던 일.
블톤이 덧붙였다.
타룽가가 블톤을 바라봤다.
그의 입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왠지 자네는 눈치챌 것 같더라니. 맞네. 다른 뜻도 있네.”
“그게 뭔가?”
달콩이 물었다.
“블톤 저 친구의 부족이 합류한 후 몇 달이 흘렀네. 그런데 다른 부족의 소식이 없어.”
“아!”
“저번에 웜이 나타났을 때, 거인님께서 마인을 처치하셨었지? 내 생각에는 나머지 부족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그 마인과 연관이 있을 것 같네.”
침중한 분위기 속에서 블톤이 입을 열었다.
“발랑카 산맥을 벗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의 종적을 찾아내야 하네.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파악해야 해.”
“맞네. 우리끼리 잘 산다고 다가 아니지.”
“그래, 신탁은 이곳이야말로 드워프들이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땅이라고 했었지. 신탁이 말한 드워프가 우리 세 부족만을 뜻하지는 않을 터. 어쩌면 먼저 도착한 우리의 사명은 그들을 이곳으로 인도하는 것일 수도 있어.”
세 드워프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결의를 다진 후, 타룽가가 입을 열었다.
“어쨌든 거인님께서 재촉하시기 전에 어서 재료를 구해 보세나.”
“그러세. 어서 정찰대도 보내고, 몬스터 사냥도 시작하세.”
“굳이 미룰 필요가 없지. 당장 시작하세나.”
세 드워프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때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하세요?”
움찔.
세 드워프의 몸이 굳었다.
* * *
냉동실 문을 연 수호는 드워프 마을의 전경을 살폈다.
‘공사가 거의 끝나가는구나.’
타룽가를 처음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번듯한 성채가 들어서 있었다.
상전벽해란 말이 딱 들어맞았다.
‘구경도 할 겸, 직접 찾아볼까?’
매번 목소리를 내면, 타룽가를 비롯한 족장들이 부리나케 달려오곤 했다.
오늘은 완성에 가까운 마을을 구경할 겸, 그들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수호가 시야를 움직여 나갔다.
잠시 후, 수호는 성벽 한곳에 모여 있는 세 족장을 발견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하세요?”
움찔.
무심코 던진 질문에, 왠지 세 족장의 태도가 평소와 다르다.
“거, 거인님! 부르시지 않고 여기까지 오셨군요!”
타룽가가 대표로 인사했다.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딘지 머뭇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저한테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부탁이라도 하려나?
나쁠 것 없지. 지속형을 빼면 차원 임무도 다 해결했으니 여유도 있고.
수호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타룽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털썩.
타룽가가 무릎 꿇었다.
털썩, 털썩.
달콩과 블톤이 뒤따랐다.
“아니, 뭐 하세요? 왜 그러세요?”
갑작스러운 상황.
수호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들은 고개만 조아렸다.
“일단 일어나시고요. 자꾸 그러지 마시고, 무슨 일인지 어서 말씀해 보세요.”
수호의 단호한 목소리에 세 족장이 일어났다.
타룽가가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게 된 겁니다. 죄송합니다. 거인님께 장비를 만들어 드리기로 약속해 놓고, 저희의 욕심 때문에 그만… 또다시 시간이 걸리게 생겼으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수호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진작에 만들 수 있었는데, 계속 녹여 버리고 있었다고요? 더 좋은 걸 만들기 위해서?”
하긴 그동안 몇 번이나 새 재료를 가져다줬다.
웜을 잡았을 때도 그랬고, 그 후 던전을 돌 때마다 틈틈이 새로운 재료가 생겼으니까.
상왕련에서 마정석을 받았을 때, 함께 가져온 재료도 드워프에게 넘겼었고.
“…예.”
“죄송합니다.”
“저희가 그만 욕심에 눈이 멀어서.”
세 족장이 나란히 사과했다.
수호는 장비가 늦어진 이유를 들었을 때보다 더 어이가 없었다.
“그게 저한테 사과하실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어쨌든 제가 쓸 장비를 더 좋게 만들려다 보니 생긴 일이잖아요.”
더 좋은 장비를 만들면, 결국 수호가 사용한다.
수호 좋으라고 심혈을 기울였으면서, 이제 사과까지 하다니…….
게다가 그 재료를 마련하려고, 직접 몬스터를 사냥하려고 계획 중이었다지 않나.
수호가 화낼 일도, 사과받을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약속한 날짜가 한참이나 지났으니, 사죄를 드림이 마땅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거인님.”
“맞습니다. 그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목숨을 갈아 넣어서라도 장비를 완성했어야 하는데.”
“저희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자꾸만 사과하는 세 족장.
수호는 이야기를 돌릴 필요성을 느꼈다.
“그만! 사과는 됐고요. 일단 이것부터 좀 봐 주세요.”
수호가 영웅 등급 재료 아이템인 [정령 호박석]을 전송했다.
“오- 이것은!”
“어떤가요? 그 정도 재료면, 그 새로운 장비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물론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며칠 내로 무조건 완성할 수 있습니다.”
“충분합니다!”
“확실합니다!”
호언장담하는 세 족장이었다.
“그럼 그걸 보태서 새 아이템을 완성해 주세요. 아참.”
“……?”
“이것도 좀 봐 주세요. 쓰다 부러져 버렸는데. 고칠 수 있을까요?”
수호가 화염 포마검을 전송했다.
“당연히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 살핀 타룽가.
한데 말꼬리를 늘인다.
“뭔가 더 하실 말씀이라도?”
“혹시 이 칼, 꼭 필요하신가요?”
“……?”
“새로이 만들 물건 또한 무기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꼭 쓸 생각이 없으시면, 이 칼도 재료로 사용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음, 재료가 더 필요한 거였어요?”
“그것은 아닙니다. 다만, 화염 포마검은 거인님께서 가장 오래 쓰신 장비지요. 거인님의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것을 함께 녹이면.”
“녹이면요?”
“만들어지는 물건이 어쩌면 거인님께 좀 더 어울리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의 경우.
그것이 완성된 후 어떤 성능을 발휘할지는 대장장이도 확신할 수 없다.
사용자가 오래 쓴 장비를 재료에 포함하면, 때때로 사용자에게 꼭 맞는 완성품이 나오기도 하는데…….
타룽가가 덧붙인 설명을 들은 수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것도 재료로 쓰세요. 어차피 며칠 내로 새 무기를 만들어 주신다면서요?”
“예! 물론입니다!”
“그럼 믿고 맡길게요.”
“무조건 1주일 안으로 새 장비를 완성해 보이겠습니다!”
장비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
하지만 수호는 궁금한 것이 남았다.
“근데 정찰대를 꾸리신다고요?”
“예, 몬스터 분포도 살피고, 다른 드워프들의 현황도 알아볼 생각입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어요?”
어쩌면 차원 임무가 뜨지 않을까?
수호의 기대대로 되지는 않았다.
“괜찮습니다. 지하 몬스터 방비를 제외하면, 건설 작업이 대부분 완료되었습니다. 일손이 남으니 일단 저희끼리 해 보겠습니다. 매번 거인님의 손을 빌릴 수는 없으니까요.”
“알았어요. 대신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필요하면 꼭 저한테 말씀하시고요.”
“껄껄, 거인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턱 놓이는군요. 감사합니다.”
* * *
헌터 협회 최상층, 협회장실.
협회장의 비서, 신성현이 협회장실로 들어서며 말했다.
“협회장님,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하나?”
“그쪽에서도 처음 보는 형태라고 합니다. 그림만 보고는 해결 방법을 알 수 없다고……”
“으음, 곤란하군.”
협회장이 침음했다.
며칠 전 발견한 4성 던전.
‘제2차 격변’에 걸맞게도 그것은 이상한 형태.
던전 안에 몬스터가 거의 없고, 던전 코어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브레이크까지 임박한 상태.
충격을 줘 보기도 하고, 대형 길드에 문의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결국, 바위에 새겨진 문양을 베껴 외국에 문의했다.
한데 마법 계열 헌터가 많기로 유명한 영국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림만으로는 분석에 한계가 있다고, 영국 쪽에서 사람을 직접 보낸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음, 그렇게 하게. 아무래도 마법은 그쪽이 조금이라도 더 나을 테니.”
협회장이 대답했다.
표정이 어둡다.
‘확실한 방법이 필요해.’
영국 쪽 헌터가 온다고, 바위의 문양을 해석해 낸다는 보장이 없다.
1달이 지나고도 해결이 안 되면…….
4성 던전이 도심에서 터진다.
협회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 친구처럼 누가 불쑥 나타나서 해결해 주면 좋으련만.”
“그 친구라니,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협회장의 중얼거림에 신성현이 물었다.
“원수호 헌터 말일세. 곤란한 던전을 몇 번이나 해결해 줬지 않나.”
“아! 하긴 원수호 헌터 덕을 여러 차례 보긴 했지요. 저번 상왕련 건도 그렇고.”
거기서 마인을 잡지 못했으면, 얼마나 일이 커졌을지 모른다.
마족과 종복에 대한 정보를 얻은 건 덤.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 친구 도움을 받긴 힘들겠지.”
“마법을 주로 쓰는 헌터는 아니니까요.”
“그래. 어디 그런 헌터 하나 더 툭 튀어나오지 않으려나? 마법사로 말일세.”
신성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안에 고민이 쌓여 갔다.
탁-!
협회장이 손바닥으로 무릎을 내리쳤다.
대오각성이라도 한 듯한 표정.
놀란 신성현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째서 마법 계열 헌터만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제야 떠올리다니!”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마법하면 뭔가?”
“……?”
“드래곤 아닌가!”
“아!”
그제야 신성현도 깨달았다.
마법 계열 헌터보다 훨씬 더 우월한 도우미가 주변에 있었음을.
“전화! 어서 전화하게. 아니지, 내가 직접 하겠네.”
협회장이 전화를 집어 들었다.
* * *
세 드워프 족장과 대화를 마무리한 수호가 냉장고 앞에서 물러났다.
‘무기 완성까지 며칠, 그동안 뭐하지?’
당면한 목표는 시험의 거울 2단계 통과다.
새로운 스킬과 마족의 정보를 얻어야 한다.
시험의 거울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것은 덤.
‘새 무기를 받기 전까지 2단계 도전은 무리인데.’
하나 시험의 거울 2단계를 통과하려면 더 좋은 무기가 필수.
며칠 동안은 도전이 불가능하다.
‘레벨 업이나 할까?’
레드우드 근처를 뒤져 보면, 잡을 만한 몬스터가 있을 터.
가게를 운영하며, 남는 시간에 레벨 업을 하면 된다.
웬만한 몬스터는 대단한 무기가 없어도 상대할 수 있으니까.
겸사겸사 재료도 구할 수 있고 말이다.
생각이 거기에 다다랐을 때.
수호는 드워프와의 대화에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 맞다! 지하 몬스터 방어에 마정석이 더 필요하다고 했었지.”
질 좋은 마정석이 여러 개 더 필요하다고 했다.
한데 상왕련에 다시 부탁할 수는 없다.
“상왕련도 싹싹 긁어 왔다고 했으니, 그쪽은 어렵고.”
보유하고 있던 것은 물론, 시장에 풀린 것을 모조리 사 왔으니.
한동안 상왕련도 마정석을 구하기 힘들 것이다.
그럼 국내에 그 정도 마정석이 남은 곳은…….
“3대 길드나 협회 창고에 좀 있으려나?”
안 되겠네.
3대 길드는 물론이고, 협회 쪽도 편히 부탁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못 된다.
“흐음, 드워프들이 구하도록 놔둬야 하나?”
어쩌면 레벨 업 하는 동안 얻을 수 있을지도…….
수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지이잉-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협회장님?’
화면에 떠오른 것은 협회장 백무진의 이름이었다.
수호가 전화를 받았다.
“원수호 헌터, 내 뭐 하나만 물어볼 수 있겠나?”
단도직입.
급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 드래곤이 마법에도 조예가 있다지?”
상왕련주가 쓰러졌을 때, 협회장과 대화를 나눴다. 그때 수호가 그런 말을 했었다.
“그렇습니다만.”
“이번에 던전을 하나 발견했는데, 좀 문제가 있다네. 무슨 일이냐면…….”
협회장이 사정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수호가 물었다.
“상황이 좋지 않군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바위의 문양을 옮겨 그린 그림이 있네. 그림을 보내 줄 테니, 자네 드래곤에게 물어봐 주겠나?”
“알겠습니다.”
“해결만 되면, 어떻게든 보답하겠네.”
“보답은 그림을 보고 난 뒤에 의논해도 안 늦습니다.”
“그렇군. 바로 보내겠네. 급한 문제니 되도록 빨리 회신해 주게나.”
전화가 끊겼다.
“이거 어쩌면 마정석 구할 방법이 생긴 것 같은데.”
독백한 수호가 방으로 향하며 외쳤다.
“발룡아! 발룡아!”
86화 거인의 격노
수호는 발룡이에게 바위의 문양을 보여주고 조언을 구했다.
『문이다.』
발룡이가 뾰로통한 말투로 대답했다.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은 것이 달갑지 않은 듯했다.
“그러니까 그 바위가 문이라고?”
『그러느니라. 형태를 보아하니, 바위 뒤에 통로가 있을 듯하구나. 그 뒤로 문이 몇 개 더 있을 수도 있고.』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또 막힌 구간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야?”
『그렇다.』
“그럼 어떻게 열어?”
『특정한 규칙에 따라 마력을 불어넣으면, 바위에 새겨진 마법진이 해제되느니라. 그 후에야 바위를 움직일 수 있지.』
보통 근처에 규칙에 대한 힌트가 있는데, 못 찾았나 보군. 한심한 것들 같으니.
발룡이가 닭 날개를 우물거리며 혀를 찼다.
“위대한 흑염룡도 규칙을 모르면 해제하기 힘들겠지?”
『아직도 본좌의 위대함을 모르는구나. 크큭- 저런 간단한 마법진 따위가 본좌의 전능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오케이.
그럼 됐고.
“가서 열어 줄 수 있어?”
『본좌는 요즘 바쁘다.』
“…뭐, 그런 것 같긴 하다만.”
바쁘긴 바빴다.
레드우드의 문제를 해결한 후.
수호는 발룡이에게 ‘좋은 것’을 주기로 약속했다.
수호가 준 것은 포인트였다.
배달 앱에서 현금 대신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충전해 준 것이다. 그것도 무려 20만 포인트나.
덕분에 발룡이는 요 며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
각종 리뷰를 살피랴, 직접 시켜 먹으랴.
심지어 먹고 나서 리뷰도 남겼다.
바쁜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 본좌를 귀찮게 하지 말거라.』
“포인트 얼마나 남았냐?”
『왜 묻는 거지?』
“우리 속담에 강물도 쓰면 준다는 말이 있단다. 지금은 포인트가 많아 보이겠지만, 며칠 못 가 바닥을 보이겠지.”
『그, 그런 불길한 소리는 왜 하는 것이냐.』
“10만! 이번에 시키는 대로 잘해 주면, 10만 포인트 더 충전해 줄게.”
『정말?』
“그래. 그러니까 그 저능안인지 뭔지로 마법진 좀 해제하자.”
『전능안이니라!』
머잖아 발룡이와의 협상이 타결됐다.
포인트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에 협상은 수월했다.
수호는 곧바로 협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룡이에게 들은 내용을 전했다.
잠깐의 대화가 오간 후, 협회장이 물었다.
“도와줄 텐가?”
협회장의 목소리가 무겁다.
바위 뒤에 문이 더 있을 수 있는 상황.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수호가 던전 공략에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
대외적으로 수호는 이제 막 2성을 졸업한 헌터.
4성 던전 공략에 합류한다는 말은 목숨을 건다는 말과 같았다.
“네, 저도 합류하죠.”
이미 3성을 찍고도 레벨을 많이 올린 수호다. 4성 던전이 두렵지 않았다.
“번번이 고맙네. 신세는 꼭 갚겠네.”
“저도 공짜로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뭐 필요한 거라도 있나? 뭐든 말해 보게.”
“혹시 마정석 좀 있습니까? 4성 던전 이상에서 나온 것들로요.”
이럴 때 챙겨야지.
“있네. 얼마나 필요한가?”
“다다익선이죠.”
“알겠네. 싹싹 긁어다 주겠네.”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고맙지. 자세한 일정은 다시 연락하겠네.”
공략팀을 구성해야 하니, 며칠 걸릴 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끝났다.
“며칠이라. 놀고 있으면 안 되겠지?”
처음 가는 4성 던전.
게다가 3성을 아예 건너뛰고 가는 형편이다.
두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필요는 없다.
“레벨 업이라도 해 볼까.”
* * *
협회 의뢰의 정확한 날짜는 1주일 뒤로 잡혔다.
여유 시간 1주일.
수호도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낮에는 가게를 운영하며, 세쿼이아 씨앗에 마력을 흘려 넣는다.
저녁에 가게를 닫은 후에는.
서걱!
레드우드 근처 숲에서 몬스터를 사냥했다.
“깨갱-”
털썩.
[번개 늑대를 처치하셨습니다.]
수호가 [불굴의 마체테]를 검집에 넣었다.
표정이 떨떠름하다.
“경험치가 안 오르네.”
몬스터 처치 메시지가 떴지만,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소리는 없다.
고렙 헌터가 저렙 던전에 들어가면 발생하는 일인데, 수호도 상황이 비슷했다.
“레드우드 근처에서는 이제 경험치를 못 얻는구나.”
엘프들이 오랫동안 주변 몬스터를 토벌해 왔다. 세쿼이아의 영향력도 미친다.
그 탓에 주변에 강한 몬스터가 없었다.
“아쉽네. 3성 만렙이 코앞인데.”
수호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수호의 레벨은 58.
협회 의뢰에 가기 전에, 기왕이면 만렙을 찍으려 했었는데.
그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다 했으면 그만 돌아가자.』
사냥에 함께했던 발룡이가 보챘다.
수호는 물었다.
“발랑카 산맥에는 사냥할 만한 몬스터가 없을까?”
『없다! 거긴 네가 잡을 만한 몬스터는 전혀 없느니라. 그쪽은 생각도 하지 말거라. 차라리 곰탱이들이 사는 숲으로 가 보는 게 어떻겠느냐? 숲이니 분명히 뭔가 있을 것이니라.』
왠지 찜찜한데.
너무 격렬히 반대하는 거 같단 말이지.
말도 쓸데없이 길고.
“너 혹시 뭐 숨기는 거 있냐?”
『무, 무슨 소리! 본좌는 심연의 주인. 무서운 것이 없으니, 숨기는 것도 없느니라.』
아무리 봐도 뭔가 있는데.
수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발룡이를 압박했다.
발룡이가 꿋꿋이 버텼다.
“됐다. 집에나 가자.”
수호는 곧 추궁을 그만뒀다.
증거가 없으니 계속 다그치기 힘들었다.
근래 들어 발룡이가 잘 협조해 주는 편이라 혼낼 명분도 없었고.
『그래, 본좌는 밤참을 먹어야겠다. 돌아가자.』
밤참까지 아주 꼬박꼬박 챙겨 드시는구만.
실소를 터트린 수호가 차원 여행 스킬을 발동했다.
* * *
가게 안.
수호가 나타났다.
치킨을 고르러 날아간 발룡이를 두고, 수호는 소파에 앉았다.
맞은편에 냉장고가 보인다.
“아직인가?”
며칠 뒤면 협회 의뢰가 시작된다.
그전에 무기를 받았으면 좋겠는데…….
“뭐가?”
수호가 새 무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윌슨이 2층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윌슨, 일은 다 했어?”
“만들 수 있는 설비는 진작에 다 만들었고, 지금은 자잘한 소모품을 개발하고 있어. 의뢰 가기 전까지 완성해 볼게.”
협회 의뢰 건에 관해서는 이미 윌슨에게 말해 두었다. 대가로 마정석을 받기로 했다는 것도.
윌슨도 수호를 돕고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기대할게.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괜찮네, 친구. 이 몸은 기계라 쉽게 지치지 않는다네.”
한 차례 너스레를 떤 윌슨이 물었다.
“근데 ‘아직’이라는 말은 무슨 소리야?”
“드워프들이 새 장비를 만들고 있거든. 몇 달은 족히 지났는데, 아직 완성이 안 됐어. 며칠 전에 곧 완성될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길래, 기다리는 중이야.”
“드워프 솜씨에 몇 달이나 걸렸다면, 대단한 물건을 만드나 본데?”
“기대는 되는데 협회 의뢰가 코앞이라. 도대체 얼마나 굉장한 걸 만들려고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어. 영웅 등급보다 더 대단한 게 나오려나?”
“적회색 수호자도 며칠 만에 만들었다며? 몇 달이 걸렸으면, 최소한 유일 등급이겠는걸.”
응?
수호는 윌슨의 말에서 이질적인 단어를 포착했다.
“유일 등급? 그게 설마 영웅 등급 위의 등급이야?”
“몰랐어?”
내가 이야기 안 했던가?
고개를 갸웃하는 윌슨.
수호는 그제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템 등급에 대해 진작에 물어봤어야 했는데.’
깜빡하고 있었다.
시스템의 개입이 없던 드워프나 엘프 차원과 달리, 노움 차원은 지구와 흡사했다.
시스템 메시지, 아이템 등급, 던전…….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존재했다.
‘마족과 마도 공학에 대해서만 정신이 팔리다 보니, 미처 생각을 못 했어.’
그간 윌슨과 많은 대화를 나눠 왔음에도 중요한 부분을 간과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들어 두어야 한다.
“아이템 등급에 관해서는 이야기한 적이 없어. 설명해 줘.”
“와, 정말 그 이야기를 안 했었구나. 어쩌다 그랬지? 어쨌든 내가 아는 만큼 이야기해 줄게.”
윌슨이 설명을 시작했다.
“영웅 등급 위에는 유일 등급과 전설 등급이 있어. 그 위에 또 뭐가 있는지는 우리도 몰라.”
“와우, 진짜 뭐가 더 있었구만.”
“응, 근데 전설 등급은 노움 세상에도 딱 하나뿐이었어. 마력 위성에 달린 전자포. 전 세계에서 마력을 끌어와야 쓸 수 있는 괴물 같은 무기였는데, 그게 전설 등급이었어.”
“굉장하네.”
“굉장하지. 발사 주기가 길어서 결국 마족에게 파괴당했지만.”
“…….”
“어쨌든 전설은 그렇고, 유일 등급은 몇 개쯤 있었어. 던전에서 얻은 것도 있고, 만든 것도 있고.”
“오, 대단한데. 그 유일 등급은 이름대로 정말 유일한 건가?”
윌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맞아. 근데 유일 등급만 유일한 건 아니야. 네 적회색 수호자도 유일한 장비잖아.”
“그러게.”
“영웅 등급 중에도 유일한 경우가 많지. 그럼에도 유일 등급이 유일 등급인 이유.”
“……?”
“그건 한 차원에서 같은 종류의 아이템이 다시 나오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라는 뜻이 아닐까.”
노움들이 추측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렇구만.”
수호의 시선이 냉동실을 향했다.
“기대되지? 부디 친구에게 딱 맞는 굉장한 물건이 나왔으면 좋겠어, 하하.”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냉동실에서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인님! 거인님! 드디어 완성됐습니다!”
* * *
타룽가의 손에 아이템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워 해머’라 불리는 전투용 망치였다.
두툼한 직육면체 은빛 머리.
단단하게 이어진 자루.
그 끝에 달린 손잡이에는 [정령 호박석]으로 보이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보시다시피, 새 무기는 전투 망치입니다. 거인님께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아, 망치로 만들었습니다.”
거인님께서 무기를 가리지 않는다고도 하셨고요.
타룽가의 말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검을 주로 썼지만, 딱히 더 잘 쓰는 무기는 없다.
무기술이라고는 헌터 양성학원에서 배운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손잡이에 마력을 주입하면.”
철컹-
망치 손잡이 부분에서 송곳처럼 생긴 길쭉한 창날이 솟아 나왔다.
“이렇게 창날이 튀어나옵니다.”
뭔가 꿰뚫을 때를 대비한 기능이었다.
간단히 설명을 마친 타룽가가 망치를 수호에게 전송했다.
“유일 등급!”
받아 든 수호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윌슨의 말대로 무기는 ‘유일 등급’이었다.
수호가 서둘러 아이템의 성능을 살폈다.
[거인의 격노]
- 세 명의 위대한 대장장이가 힘을 합쳐 만든 전투 망치. 수많은 재료를 몇 번이고 다시 녹여 가며,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한 걸작. 사용자에 대한 세 명장의 감사한 마음이 담겼다.
- 아이템 등급 : 유일
- 물리 공격력 1,400
- 【거대화】【십격필살】【마력 흡수】【상급 경직】【파괴 불가】【상급 물리 공격력 강화】
- 근력+50 민첩+50 체력+50 마력+50
- 내구도 4,500
【거대화】
- 사용자의 모든 것이 커진다. 크기는 주입한 마력에 비례한다. 재사용 대기 시간 24시간.
【십격필살十擊必殺】
- 같은 적에게 가하는 10번째 타격은 그전 9번의 충격을 모두 더한 만큼 강해진다.
【마력 흡수】
- 적을 처치한 순간, 적의 주검으로부터 미량의 마력을 흡수한다.
【상급 경직】
- 타격 시, 10%의 확률로 적을 1~5초간 기절 상태로 만든다.
아이템을 살핀 수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거대화라…….’
화염 포마검을 재료로 쓴 덕분일까.
아니면 수호를 거인이라 생각하는 세 드워프 족장의 마음 때문일까.
첫 스킬 【거대화】에 유독 눈길이 갔다.
‘나머지 스킬도 대단해.’
십격필살, 마력 흡수, 상급 경직 모두 좋은 스킬이었다.
물리 공격력을 크게 높이는 【상급 물리 공격력 강화】는 물론, 아이템의 완전한 파괴를 방지하는 【파괴 불가】 또한 훌륭한 옵션.
“고맙습니다. 정말 대단한 물건을 만들어 내셨네요.”
수호가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껄껄,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몇 번 녹여 가며 고심한 보람이 있군요.”
“새 무기가 생겼으니 써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가서 휘둘러 보십시오.”
수호는 블톤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 * *
『2단계를 시작합니다.』
『코아틀의 종복, 비틀쥬스를 해치우세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편에서 거대한 딱정벌레 형태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먹이. 먹이. 먹는다!”
놈이 기이한 목소리를 내며 수호에게 달려들었다.
“잘 만났다, 이 벌레 자식아.”
수호가 싸늘하게 웃었다.
새 무기의 성능 테스트 겸, 복수전의 시작이었다.
사사사사삭-
버팔로 떼가 초원을 달리듯.
비틀쥬스의 수많은 발이 바닥을 두드리며 전진했다.
위압감 또한 버팔로 떼에 버금간다.
수호도 놈을 향해 마주 쇄도했다.
‘일단 부서지나 시험부터.’
화염 포마검은 비틀쥬스의 갑각을 부수지 못했다.
하나 [거인의 격노]는 다를 터.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사사삭-
비틀쥬스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찰나의 순간이면 거대한 몸통에 치여 날아갈 상황.
수호는 침착하게 바닥을 박찼다.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발아래, 비틀쥬스가 지나간다.
‘드래곤 스탭!’
[광룡의 발톱]에 내장된 스킬, 【드래곤 스탭】이 시전됐다.
팡-
공기가 짓밟힌다.
쏘아지던 몸이 허공에서 정지.
반전하여 가속한다.
수호의 아래.
몸을 멈춰 세우려는 비틀쥬스가 보인다.
‘부서져라.’
수호가 [거인의 격노]를 내려찍었다.
목표는 비틀쥬스의 꽁무니.
공격은 적중했다.
콰아앙-
굉음이 울렸다.
비틀쥬스의 꽁무니가 바닥에 처박힌 듯 눌린다.
머리 쪽은 공중으로 들썩였다.
격렬한 움직임 사이로 수호가 눈빛을 빛냈다.
‘됐어, 부서졌다.’
비틀쥬스의 꽁무니.
갑각이 부서져 초록색 체액이 흐르고 있다.
그 아래, 다리도 몇 개쯤 부러졌다.
“끼리리리릭- 아파. 죽인다.”
괴상한 소리를 낸 비틀쥬스가 몸을 반전했다.
겹눈이 초록빛으로 빛난다.
지독한 기운이 비틀쥬스의 몸 주변을 넘실댔다.
사사사사삭.
비틀쥬스가 더 빨라진 속도로 돌진했다.
부러진 뒷발이 바닥에 끌려 괴기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하나 수호는 더 이상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부술 수 있는 걸 확인한 이상, 무서울 것 없지.’
마무리해 볼까.
사사사삭-
덤프트럭만 한 괴물의 질주.
수호는 달리지도 뛰어오르지도 않았다.
대신 [거인의 격노]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거대화!’
스킬이 시전되고.
[거인의 격노]가 수호의 마력을 빨아들인다.
수호의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죽죽 높아져 간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작아진 것 같아.’
수호는 시야 안 모든 것이 작아진 것을 느꼈다.
덤프트럭만 하던 비틀쥬스가 유모차처럼 보였다.
‘대단한 스킬이야.’
아울러 커진 몸이 가진 강한 힘을 체감했다.
커진 것이 크기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뼈의 경도, 근육의 탄력, 관절의 내구도 등.
큰 몸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모든 부분이 ‘시스템의 보조’로 함께 강해진 것이다.
‘대단한 무기기도 하고.’
수호는 [거인의 격노]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사사사삭-
그동안에도 비틀쥬스는 멈추지 않았다.
마기가 폭주한 놈은 수호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쇄도.
어느새 수호의 발치에 도착했다.
‘멈춰라.’
수호가 발을 들어 올렸다.
발바닥을 내민다.
툭-
돌진하던 유모차, 아니 비틀쥬스가 멈춰 섰다.
“어째서? 뭐지?”
비틀쥬스가 의문을 표하는 순간, 수호가 [거인의 격노]를 들어 올렸다.
‘5연격!’
【5연격】을 머금은 망치가 바람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쾅!
강력한 충격이 비틀쥬스의 대가리에 적중했다.
동시에.
콰콰콰쾅-!
4번의 충격이 연이어 폭발.
비틀쥬스의 대가리를 짓이겼다.
두터운 갑각도.
그 아래 자그마한 뇌도.
아울러 지독한 기운을 품은 마기의 씨앗도.
모든 것이 [거인의 격노]에 담긴 거력巨力에 평등하게 부서져 내렸다.
“아주 가루가 됐구만.”
역시 템발이 최고야.
입가에 미소를 건 채, 수호가 중얼거렸다.
『2단계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그런 수호를 축하하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87화 거인의 정원 (1)
2단계 시험이 완료됐다.
상자가 나타났다.
안에 든 것은 1단계와 같았다.
스킬 룬과 석판.
수호가 먼저 스킬 룬을 집어 들었다.
【차원 전음】
- 마력을 소모해 전해진 대상에게 목소리를 전한다. 차원문, 던전 게이트, 강한 마력 파장 등에도 영향받지 않는다. 단, 지정 대상의 수가 늘어날수록, 소모되는 마력의 양이 커진다.
“오, 이건!”
윌슨이 만든 경보용 팔찌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던전에서도 안 통했고, 목소리를 전할 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차원 전음】이라면 타차원의 문제에 즉각 대처할 수 있다.
투명화 상태의 발룡이와 티 내지 않고 대화할 수도 있을 테고.
“이번에도 모자란 부분을 채워 주는 스킬이야.”
수호는 흡족한 마음으로 스킬 룬을 사용했다.
다음은 석판 차례.
『코아틀의 종복, 비틀쥬스는 대부분의 능력치가 단단한 방어력에 집중되어 있으며…….』
『코아틀은…….』
석판에서는 예상대로 종복과 마족에 관한 정보가 떠올랐다.
‘좋아. 좋긴 한데.’
꼭 필요한 정보고, 언제든 요긴하게 쓰일 것도 자명한 사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긴 대상에 대한 정보만 주면, 정보량이 너무 부족할 것 같은데.’
마족이 몇 놈이나 되는 줄 알고.
짧은 고민 끝에 수호가 추측했다.
“결국, 시험을 완전히 통과하면 정보도 통째로 내놓으려나.”
뜻밖에도 대답이 들려왔다.
『시험의 끝에서, 당신은 모든 유산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군. 근데 언제 끝나는데? 몇 단계가 끝이야?”
『끝날 때, 끝났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니, 진짜!”
뭘 똑바로 말해 주는 법이 없구만.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예언서라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나 수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
“어쩔 수 없지. 일단 좀 쉬었다가 3단계나 뚫어 볼까.”
협회 의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전에 전력을 올려 두는 편이 좋을 터.
그러기엔 시험의 거울만 한 것도 없다.
“2단계를 넉넉히 통과했으니, 3단계도 무리 없겠지?”
수호가 휴식을 위해 지구로 향했다.
.
.
.
얼마 후, 시험의 거울 안.
“장비 성능 무효화?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수호는 다시 한번 시험을 포기하고 돌아 나와야 했다.
* * *
“수호, 표정이 왜 그래?”
때마침 가게에 있던 윌슨이 물었다.
“그게 말이지, 시험의 거울 3단계에서 만난 적이 장비 성능을 무효화시키는 기술을 쓰잖아. 버텨 보려 했는데 무리였어.”
확장 스탯과 장비.
수호의 근간이 되는 두 가지 힘이다.
그중 하나가 무력화되어 버린 상황.
감각 스탯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패배를 시인하고 말았다.
“이런, 자네와는 완전히 상극인걸. 시험이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네.”
“그렇다니까. 일부러 괴롭히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야.”
풀썩.
수호가 짧은 한숨과 함께 소파에 주저앉았다.
윌슨이 마주 앉았다.
“그래도 자네라면 잘 극복해 낼 수 있을 거야, 친구.”
그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수호가 입을 뗐다.
“그동안 승승장구하는 바람에 내 단점을 모르고 있었어. 지금이라도 깨닫게 되어서 다행이야.”
“단점? 장비에 의존한다는 거?”
“그것도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내 전투 기술이 투박하기 때문이야.”
“전투 기술이 투박하다고?”
“응, 내 기술이라고 해 봐야, 헌터 양성학원에서 배운 게 전부니까.”
그 이후에 특별히 배운 기술이 없다.
스승이랄 만한 존재도 없었고.
“음, 도움이 되어 주고 싶지만, 난 몸 쓰는 쪽에는 젬병이라서.”
노움 문화 자체가 그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괜찮아. 네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지.”
“혹시 드워프나 엘프에게 몸 쓰는 기술이 없을까?”
수호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이미 알아도 봤다.
“드워프는 타고난 강골이라 그냥 잘 싸우더라고. 엘프는 ‘병사’용 기술은 있었는데, 각성자와는 안 어울리고.”
레드우드 경비대에 전해지는 기술이 있었는데, 딱히 도움될 것 같지 않았다.
“유감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지.”
“맞아, 친구. 자네는 차원 여행자잖아. 어쩌면 다음번 차원에서 훌륭한 무술 스승을 만날 수도 있지.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그래, 고마워.”
수호를 격려하던 윌슨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협회 의뢰가 내일이라고 했지?”
“맞아. 근데 그건 뭐야?”
“다행이군, 시간을 맞출 수 있어서. 받아.”
수호의 물음에 윌슨이 손에 든 것을 건넸다.
“어? 아이템이잖아.”
그것은 2가지 아이템이었다.
[도발용 마력탄]
- 마력을 주입하면, 터지면서 투명한 액체를 흩뿌린다. 액체가 묻은 곳에서 몬스터를 자극하는 강한 마력 파장이 발산된다.
- 아이템 등급 : 희귀
- 소모 아이템
[마력 백린탄]
- 주변의 마력을 빨아들여 끊임없이 타오르는 폭탄.
- 아이템 등급 : 희귀
- 소모 아이템
“던전에 간다기에 만들어 봤어. 급히 만드느라 성능이 만족스럽지는 않을 거야.”
“아니야, 고마워, 윌슨. 할 일도 많을 텐데, 이런 건 언제 다 만들었어?”
“틈틈이.”
씩 웃은 윌슨이 사용상 주의점을 설명했다.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도발탄의 지속 시간은 길어야 30초야. 기억해 둬. 그리고 백린탄은 사용이 좀 까다로워.”
“마력 주입하고 던지면 되는 거 아냐?”
“맞아. 근데 주변 마력 농도가 옅으면 연소하지 않아. 웬만하면 보스 몬스터에게만 쓰도록 해.”
체내 마력 농도가 옅은 헌터에게는 소용이 없다.
마기로 움직이는 마족에게도 마찬가지.
“몬스터 전용인가 보네.”
“그것도 보스처럼 강한 놈들 전용.”
지능이 높은 놈들은 불붙은 부분을 떼 버리는 수도 있어서, 사실 제한이 많은 물건이야.
윌슨이 멋쩍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래도 고마워, 윌슨.”
“더부살이하는 처지에 밥값은 해야지.”
“너 밥도 안 먹잖아.”
“전기 먹잖아, 전기.”
실없기는.
친구와의 대화를 끝으로 하루가 저물었다.
* * *
협회 의뢰 당일.
『본좌가 꼭 가야 하는 것이냐?』
“당연하지. 너 때문에 나도 가는 건데.”
『쳇, 귀찮군.』
발룡이가 투덜거렸다.
평소 던전 행을 반기던 것을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다.
수호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마력 안 오른다고 너무 툴툴거리지 마.”
이번에 수호가 맡은 일은 바위에 새겨진 마법진을 해제하는 것이다.
전투는 협회 헌터 팀의 몫.
수호가 경험치를 얻을 여지가 없다.
발룡이 또한 마력을 얻지 못한다.
발룡이가 투덜거리는 이유였다.
『본좌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지 않느냐!』
“없긴 뭐가 없어. 내가 포인트 채워 주기로 했잖아.”
『…10만은 너무 적다. 본좌가 고심해 봤는데, 아무래도 20만은 받아야 할 것 같구나.』
차게 식은 눈으로 발룡이를 바라보던 수호가 입을 열었다.
“너 그러다가, 아주 핸드폰 압수당하는 수가 있어.”
이미 약속해 놓고, 당일에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이런 일은 초장에 버릇을 들여 둬야 한다.
모처럼 서늘한 수호의 태도에 발룡이가 움찔했다.
『그, 그렇지만 10만으로는 끽해야 5마리밖에 시킬 수 없느니라.』
“어쨌든 약속은 지켜야지. 너는 위대한 흑염룡으로서 체통도 없냐? 한 입으로 두말이라니, 내가 완전 잘못 봤구만.”
『보, 본좌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 좋다! 이번엔 10만 포인트에 해 주겠다! 가자!』
“그래야 흑염룡답지.”
기특하니 다음번엔 12만쯤 해 주자.
드래곤을 부려 먹는데 12만 원이면 공짜나 다름없다.
말싸움에서 이긴 수호가 용달차에 올랐다.
발룡이가 날개를 늘어뜨리고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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