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al 1

1화 프롤로그
“가게가 왜 이리 후덥지근해? 에어컨 안 켰어? 이러니 손님이 없지.”
아니다.
그 반대다.
손님이 하도 없어서 에어컨을 끈 것이다.
“네, 어둑해서 껐더니 아직 좀 덥네요. 하하.”
적당히 웃으며 대답했다.
저기서 투덜대는 영감님은 건물주고 나는 세입자다.
“손님이 들락거려야 건물도 살고, 자네도 먹고살 만할 텐데, 쯧쯧. 물건도 좀 참신한 거로 들이고 해 봐. 어째 하급 치유 물약이랑 화살밖에 없어?”
“그게 제일 기본이라…….”
“에휴, 그래 젊은 사람이 알아서 잘하겠지. 참, 내일 월세 날인 건 알지? 늦지 말고 보내.”
아까부터 미적거리더니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구만.
“예, 안 늦게 보내겠습니다.”
“하도 장사가 안 되니까, 걱정돼서 그렇지.”
영감님이 돌아갔다.
마음은 이해한다만 좀 섭섭하긴 하네.
6년 동안 월세 늦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하긴 요 며칠 장사가 안 돼도 더럽게 안 되긴 했지.
“슬슬 가게를 접어야 하나.”
진열대와 낡은 벽걸이 티브이.
그게 전부인 자그마한 아이템 잡화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내게 물려주신 것이다.
부모님을 던전 브레이크로 여읜 뒤.
할아버지는 내겐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그 추억을 놓기 싫어 붙잡고 있었는데, 이제 그것도 끝이 보인다.
『…5등급 던전을 무사히 공략해 낼 수 있었습니다. 보스 몬스터인 후오룬은 식물형 몬스터로 가시 달린 기다란 가지를 촉수처럼 휘둘러…….』
영감님이 가고 나니, 틀어놓은 티브이 소리에 귀가 간다.
국내 최초 5성 던전 공략 뉴스.
요 며칠 채널마다 저 소식뿐이다.
철갑을 온몸에 두른 건장한 남자.
그는 땀 한 방울 안 흘리며, 자신이 속한 길드의 위대함을 설파했다.
“부럽네.”
나도 헌터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저들의 부와 명예도.
이 더위에 땀 한 방울 안 흘리는 초인적인 신체 능력도.
부럽다.
보고 있으려니 속이 답답하다.
나는 티브이를 끄려고 리모컨을 눌렀다.
안 꺼진다.
뭐지? 리모컨 고장인가?
누를 때마다 LED에 불은 잘 들어오는데.
톡톡.
티브이를 손끝으로 살짝 두드렸다.
파스스-
티브이에서 연기가 올라온다.
나는 재빨리 플러그를 뽑았다.
“거참, 재수도 좋지.”
속이 절절 끓는다.
나는 가게 밖으로 나섰다.
바깥바람이 그나마 좀 낫겠지.
“…바람도 안 부네.”
그래도 좀 걷자.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동네를 무작정 걸었다.
멀리 헌터 협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휘황한 간판을 빛내는 대형 아이템 쇼핑몰도 보인다.
내 가게에 파리만 날리게 만든 원흉이다.
보고 있자니, 두피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그냥 돌아가야겠다.
“나온 김에 우유라도 사 갈까.”
몇 년째, 아침은 시리얼.
우유가 떨어지면, 내일 아침은 굶어야 한다.
나는 슈퍼마켓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고, 시원한 바람을 잠깐 맞았다.
주인이 눈치채기 전에 우유를 집어 들었다.
계산대로 향하는데,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초특가 세일! 맥주 6캔 1팩 단돈 5천 원!】
매직으로 써 붙여 놓은 문구.
뒤편 매대에 맥주가 수북이 쌓였다.
엄청 싸네. 미끼 상품인가.
“7천 9백 원이요.”
기어이 맥주도 사고 말았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는데, 오늘따라 끌렸다. 늦더위 탓이겠지.
돌아오는 길은 더 빨랐다.
찬물에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나 마시고 자자.
나는 가게 뒤에 딸린 방으로 향했다.
침대, 책상, 컴퓨터.
그리고 구석에 놓인 낡은 투 도어 냉장고.
그게 내 세간살이 전부다.
냉장실에 우유를 넣었다.
맥주도 넣으려고 종이 포장을 벗겼다.
“미지근하네.”
매대에 놓인 거라 안 시원했다.
쯧, 이 생각을 못 했구만.
혀를 차다가 궁여지책을 떠올렸다.
“냉동실에 넣어 놓자.”
샤워하고 나오면, 살얼음이 살짝 껴 있겠지?
나는 냉동실을 열었다.
툭-
맥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앞에 연출된 놀라운 장면 때문이다.
깡깡-
뚱땅뚱땅-
“도대체…….”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작은 생명체.
그것들이 냉동실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게 뭐… 헉!”
그리고 의문을 채 표하기도 전에 나는 말문이 틀어 막혔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클래스 【차원 여행자】를 각성하셨습니다.]
[차원 【ESKHJ-0702L】를 발견하셨습니다.]
[고유 스킬 【소통】을 획득합니다.]
2화 기후를 조절하는 대마법사
깡깡-
뚱땅뚱땅-
요란한 소리가 울린다.
원수호는 홀린 듯 냉동실 안을 바라봤다.
산등성이, 설원, 침엽수림.
냉동실 내부와 겹쳐, 산속 풍경이 보인다.
냉동실 안에 빔프로젝터를 쏜 것처럼 기이한 모습.
심지어 그 경계는 냉동실 벽을 지나서까지 뻗어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이상한 것은 냉동실 안을 돌아다니는 작은 사람들이었다.
“기둥 똑바로 세워. 기울었잖아!”
“아니야, 땅이 경사져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야.”
“땅 누가 다졌어? 왜 이 모양이야!”
“나무 넘어간다! 피해에-”
작은 사람들은 분주했다.
나무를 베고 터를 다지고, 집을 짓고.
‘이주민인가? 근데 생김새가…….’
수호는 작은 사람들의 모습을 꼼꼼히 살폈다.
벌어진 어깨. 작은 키. 짧은 팔다리.
얼굴을 반쯤 가린 덥수룩한 수염까지.
‘딱 드워프 같은데.’
영화 속 드워프와 꼭 같은 외모였다.
“바람이 너무 부는걸. 화로는 무사하겠지?”
“당연하지, 망치와 모루의 신께서 축복을 내리신 화로잖아.”
“아이스 드래곤이 브레스라도 뿜지 않는 한 화로는 문제없어. 걱정 말고 일이나 해!”
드워프들은 마을을 지어 가면서도 연신 떠들었다. 노동요 대신인가?
‘한국어를 하는 건 아닐 텐데, 말이 다 이해되네.’
가만 보니, 입 모양도 한국어와 다르다.
‘각성한 덕분이겠지?’
각성.
헌터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
‘시스템’의 지원을 받아 초능력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차원 여행자라.’
모든 헌터는 각성 순간, 클래스를 얻는다.
클래스는 헌터가 앞으로 성장해 나갈 방향을 나타내는 단어였다.
수호의 클래스는 차원 여행자.
거창해 보이지만, 좀 더 살펴봐야 한다.
클래스가 ‘거지’여서 무시당하던 헌터가 인생 역전한 후, 클래스를 사전적 정의에 따라 판단하는 기조는 사라졌다.
‘아무래도 말이 통하는 건 고유 스킬 때문인 것 같고.’
고유 스킬.
클래스와 관련되어 얻는 특별한 스킬.
해당 클래스를 각성하지 않은 이상 절대로 얻을 수 없다.
스킬 룬, 아이템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일반 스킬’과 반대 개념으로 쓰이는 용어다.
수호가 얻은 고유 스킬은 【소통】.
척 보기에도 드워프의 말을 알아듣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어?’
생각을 잇던 수호의 입에서 탄성이 흘렀다.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차원 패널이 활성화됩니다.]
[차원 패널을 불러 상태를 확인하세요.]
‘차원 패널?’
상태창은 들어 봤어도, 차원 패널은 금시초문인데.
의문을 강하게 떠올리는 순간, 눈앞에 차원 패널이 나타났다.
화이트보드처럼 생긴 반투명한 스크린.
그 위에 각종 항목이 떠올라 있었다.
●차원 패널
──────────
[교류 차원 수 : 1]
[교류 대상 목록]
▶ESKHJ-0702L
┗ 붉은 망치 드워프
*대상의 이름을 응시하면,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류 등급 : 하급]
*교류 횟수 및 대상이 늘어날수록 등급이 상승합니다.
*등급 상승 시 교류 차원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집니다.
[차원 임무 : 0]
────────
시뮬레이션 게임의 한 장면 같은 창이 떠올랐다. 수호는 그곳에서 작은 사람들의 정체를 알아냈다.
‘저 작은 사람들은 진짜로 드워프였네.’
붉은 망치 드워프라고 명시되어 있다.
‘교류 대상 목록이 있는 걸 보니, 다른 종족이 더 나타날 수도 있는 건가?’
냉동실 안 풍경은 어딘가의 산맥이었다.
시야 밖에도 땅이 펼쳐져 있을 터.
누군가 더 나타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교류 차원 수 항목이 있으니, 아예 다른 차원이 나타날 수도 있을 테고.’
그 외에 등급, 영향력, 임무 등도 궁금하긴 한데…….
‘일단은 저 붉은 망치 드워프라는 사람들부터 좀 살펴보자.’
수호는 붉은 망치 드워프 항목을 응시했다. 상세 항목이 떠올랐다.
『붉은 망치 드워프』
- 소속 차원 : ESKHJ-0702L
- 구성원 수 : 23
- 만족도 : 15/100
구성원 수와 만족도가 눈에 띈다.
‘진짜 게임 같네.’
영주나 시장이 되어 시민을 다스리고 도시를 부흥시키는 게임이 있다. 그런 게임을 간략화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저 만족도를 높여야 하는 걸까?’
그럼 뭔가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데.
구성원의 수가 늘어난다든가.
혹은 드워프가 세금을 바친다든가.
수호가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을 때, 드워프들의 움직임이 줄어들었다. 목소리도 기어들었다.
“해가 지니까, 너무 추워. 일을 못 하겠어.”
“젠장! 이 추위에 밖에서 자다가는 동사할 거야.”
“술이라도 마시면 좀 나을 텐데, 급히 움직이느라 술 한 동이 못 가지고 오다니.”
“술만 문제야? 서두르느라 공구만 챙겼지, 무기도 죄다 두고 왔잖아.”
“진짜 큰일이네. 어쩌려고 발랑카 산맥으로 왔을까.”
“신탁이 내려왔다잖아. 못 들었어?”
의미심장한 단어가 들려왔다.
‘신탁?’
그것을 기억해 두고, 수호는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듣긴 했는데, 도통 믿기지가 않아서 그렇지. 게다가 여긴 그 미친 드래곤의 영토란 말이야.”
“그래도 신께서 말씀하셨다잖아. 이곳으로 가야, 마기에서 안전할 수 있다고. 버텼어도 마물 때문에 좋은 꼴은 못 봤을걸?”
“어쩔 수 없다는 건 나도 알아. 그냥 불안해서 그러지.”
“맞아. 하다못해 이 빌어먹을 추위라도 좀 가시면 좋겠어.”
“으으, 추우니까 일하기 싫다.”
드워프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추위 때문이구나.’
어느새 냉동실 안에 어스름이 깔렸다.
해가 저문 탓에 기온이 더 내려간 것이다.
‘추위를 해결해 주면 만족도가 오르려나?’
수호가 생각하는 찰나, 뜻밖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 임무 【추위를 물리쳐라】를 획득하셨습니다.]
[차원 패널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 * *
『추위를 물리쳐라』
- 발랑카 산맥으로 이주한 붉은 망치 드워프들은 혹독한 추위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붉은 망치 드워프가 이주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추위를 막아 주자.
- 보상 : 붉은 망치 드워프 만족도. 고유 스킬.
수호는 차원 임무를 확인했다.
차원 임무의 역할과 획득 방식이 궁금했는데 궁금증이 풀렸다.
‘드워프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파악하면, 임무가 뜨는 거였구나.’
어쨌든 임무를 얻었으니 해결해야 한다.
보상이 무려 ‘고유 스킬’이니까.
수호는 궁리했다.
‘추위를 어떻게 해결하지?’
핫팩이라도 넣어 줘?
아니면 드라이기로 따뜻한 바람을 불어 줄까?
잠깐.
‘쉬운 방법이 있잖아!’
구식 냉장고답게 냉동실 구석에 냉기 조절 레버가 보였다.
‘냉기를 조절하면 덜 추워지지 않겠어?’
수호가 레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헉! 뭐야?”
“괴, 괴물이다! 전투 준비!”
“미친! 크기를 봐, 다 죽을 거야. 튀어!”
“도망쳐! 으악-! 도망치라고!”
드워프들이 혼비백산.
사방으로 날뛰었다.
수호도 화들짝 놀라며 손을 거뒀다.
“아, 드워프 입장에선 완전 거인 침공이구나.”
문득 학창 시절 본 만화가 떠오른다.
거인이 사람을 잡아먹는 내용이었지.
난감하다.
놀라도 너무 놀라니까, 레버를 조절할 엄두가 안 난다.
수호가 고민하고 있을 때, 뜻밖의 행동을 보인 드워프가 있었다.
덩치가 가장 크고, 수염이 배꼽까지 내려온 드워프.
그가 냉동실 문 쪽으로 다가오며 소리쳤다.
“나는 붉은 망치 부족의 족장 타룽가요. 당신은 누구요!”
지금 말 거는 거지?
알아들을 수 있으니, 어쩌면 대화도 가능하겠어.
해답을 찾은 듯한 느낌.
수호가 얼른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원수호라고 합니다. 인간이고요.”
“인간? 혹시 거인족입니까?”
“그냥 인간입니다.”
“…….”
타룽가의 말문이 막혔다.
거대한 손을 봤는데, 그냥 인간이라고 하니 그럴 수밖에.
수호는 굳어 있는 드워프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당신이 사는 세상과 제 세상이 어쩌다 보니 이어진 것 같습니다.”
“세상이 이어졌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게 특별한 능력이 생기는 바람에……. 어쨌든 저는 당신들을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 도와 드리려고 한 일이 당신들을 놀라게 한 것 같네요.”
스킬에 대해 늘어놓으려다가 그만뒀다. 적의가 없음을 알리는 게 먼저였다.
“저희를 돕는다고요? 어떻게 도와주신다는 말인지…….”
타룽가가 말꼬리를 흐렸다.
어떻게 돕는다는 걸까.
꼭 잡아먹으려는 것 같았는데.
“추위를 좀 가시게 해 드리겠습니다.”
“……!”
타룽가가 깜짝 놀랐다.
추위를 가시게 하다니!
설마 저 거인은 기후를 조절하는 대마법사라도 된다는 말인가?
“왜 그러십니까?”
수호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차원 임무 때문이라도 드워프와 사이가 틀어지면 안 됐다.
타룽가가 한결 정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설마 이곳 발랑카 산맥의 날씨를 조절하실 생각이십니까?”
“어… 음, 그렇죠. 장담은 못 하겠지만, 어쨌든 덜 추워질 확률이 있어요.”
정 안 되면 드라이기라도 틀어 주지 뭐.
“그러시군요. 아까 손을 내민 것도 대마법을 사용하기 위함이셨군요.”
“대마법은 아닌데. 어쨌든 다시 시도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저희는 옆으로 물러나 있겠습니다.”
타룽가가 드워프들을 인솔해 구석으로 물러났다.
“그럼 할게요. 너무 놀라지 마세요.”
수호가 냉동실 안으로 손을 뻗었다.
냉기 조절 레버를 가장 낮은 곳으로 돌렸다.
냉기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어? 칼바람이 멎었어.”
“지, 진짜잖아! 한결 덜 추워!”
“우와! 거인님이 추위를 물리쳤어.”
“설마 진짜로 대마법사인 건가? 기후 조절이라니!”
드워프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정말 됐잖아!’
수호도 놀람 반, 기쁨 반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 임무 【추위를 물리쳐라】를 완수했습니다.]
[붉은 망치 드워프의 만족도가 30 상승합니다.]
[고유 스킬 【교역】을 획득합니다]
3화 아이템 수준이?
고유 스킬을 얻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특정 몬스터를 사냥하며 얻고, 누군가는 레벨 업을 통해 얻는다. 아이템을 사용하여 얻는 경우도 있다.
단, 모든 헌터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부분이 있다.
헌터의 성장에 고유 스킬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말 고유 스킬을 또 얻었어!’
그래서 수호는 놀랐다.
차원 임무.
그것을 해결하는 것만으로 고유 스킬을 얻다니.
‘교역? 무슨 성능이지?’
수호가 서둘러 새 스킬을 확인했다.
【교역】
- 교류 중인 타 차원의 종족과 물품을 주고받는다.
‘이제 드워프들과 거래할 수 있는 건가?’
이거 좋은데.
드워프하면 대장장이!
지금은 이주하느라 바쁘지만, 좀 있으면 뭔가 만들겠지?
명색이 드워프인데, 설마 품질이 떨어질까.
수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따뜻해! 이제 열심히 일할 수 있어.”
“오 정말 신기해. 저기 좀 봐. 눈이 녹고 있잖아!”
“정말 장관이야. 술 한잔 생각나는구먼!”
신난 드워프들을 헤치고, 타룽가가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거인님.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니라니요. 제 생에 이런 광경을 볼 줄이야. 정말 대단하십니다. 껄껄.”
타룽가는 호탕하게 웃었다.
처음 거대한 손이 나타났을 때, 이렇게 일족이 멸망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거인은 괴물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구원자였다.
‘신탁에서 이곳으로 가라고 한 이유가 혹시 거인님 때문인 건가?’
타룽가의 눈빛에 호감이 깃들었다.
드워프 족장이 생각에 잠긴 사이, 수호는 그를 관찰했다.
‘저 타룽가란 드워프, 시선이 묘하게 어긋나 있어.’
이쪽이 안 보이는 건가?
수호는 바로 질문했다.
“근데 타룽가 님, 혹시 제 모습이 보이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거인님이 계시는 쪽의 허공이 희미하게 일렁거릴 뿐입니다.”
타룽가가 대답했다.
태도가 몹시 공손하다.
기후를 조절하는 대마법사.
게다가 신탁의 뜻이 닿은 존재 아닌가.
수호는 수호대로 조심스러웠다.
사소한 바람을 이뤄 주는 것으로 고유 스킬을 얻었다. 함부로 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시군요. 근데 혹시 뭐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자꾸 거인님을 귀찮게 해 드려서야 되겠습니까? 날씨가 따뜻하니, 이제 더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껄껄.”
타룽가가 대답했다.
‘이러면 차원 임무가 더 안 뜨려나? 아쉽네.’
수호가 입맛을 다실 때, 타룽가의 옆으로 누군가 튀어나왔다.
정수리와 눈빛이 유독 반짝이는 드워프였다.
그가 천진한 말투로 외쳤다.
“거인님! 술이 마시고 싶어요. 거인 나라 술을 맛보여 주세요!”
수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 임무 【근로 의욕 고취】를 획득하셨습니다.]
[차원 패널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임무다!’
수호가 눈을 번뜩였다.
재빨리 차원 패널을 열어 임무를 확인했다.
『근로 의욕 고취』
- 마을 건설을 위해 강한 육체 노동에 시달리는 드워프들. 그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위문품을 전달하라.
- 보상 : 붉은 망치 드워프 만족도. 타룽가의 보답.
제목 그대로 드워프들을 북돋워 주라는 임무였다.
갑자기 끼어든 드워프의 말을 떠올려 보면 뜻하는 바가 명확했다.
‘술 달라는 거네.’
수호가 임무를 살피는 사이, 타룽가가 놀란 목소리로 호통쳤다.
“볼드! 이게 갑자기 무슨 짓이냐. 거인님께 무례를 범하지 마라!”
“거인님! 미안해요, 화내지 마세요. 그래도 술이 너무 마시고 싶어요.”
“볼드 이놈! 그래도 계속!”
이쯤 되면 드워프를 힘내게 하는 게 뭔지 물을 필요도 없다.
수호는 재빨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타룽가 님, 그분을 나무라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추위를 물리쳐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큰 빚을 졌는데…….”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거 한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수호는 여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맥주 캔을 집어 들었다.
맥주캔이 냉동실로 들어가는 순간.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지더니.
[해당 물품을 붉은 망치 드워프와 교역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런 식이구나.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수호는 재빨리 거절해 보았다.
그럼에도 맥주캔은 냉동실로 들어갔다.
‘아! 거절하면 서로 인식을 못 하는구나.’
냉동실 한편에 맥주캔이 놓였다.
빔프로젝터로 쏜 영상처럼 맥주캔과 드워프 세상이 겹쳤다.
그런데 드워프들은 맥주캔을 인식하지 못했다.
수호는 맥주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이번에도 같은 메시지가 떴다.
‘수락! 교역한다.’
수호가 대답하자 타룽가의 발 앞에 맥주캔이 나타났다.
한데 수호의 눈을 잡아끄는 부분이 있었다.
‘크기가 줄었어!’
맥주캔의 크기가 드워프에게 맞게 줄어든 것이다.
‘교역으로 물건을 주고받으면 저쪽 세상에 맞춰 크기가 변하는구나.’
수호는 【교역】의 기능을 이해했다.
그때 족장 타룽가가 놀라 물었다.
“헉! 거인님. 이게 무엇입니까?”
“술이에요. 윗부분에 손잡이를 젖히면, 뚜껑이 열리고 술을 마실 수 있습니다.”
“오- 신기한 방식이군요.”
역시 드워프.
간단한 설명만으로 구조를 파악, 금세 뚜껑을 따는 데 성공했다.
타룽가가 이내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한데 표정이 애매하다.
수호는 내심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혹시 입에 안 맞으세요?”
생긴 것만 보면 보드카를 들이붓게 생긴 드워프들이다. 맥주는 좀 싱겁지 않을까?
“괜찮습니다. 충분히 훌륭한 맛입니다.”
타룽가가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했다.
한데 볼드가 맥주캔을 빼앗아 들이켜더니 소리쳤다.
“거인님! 이거 물이에요? 왜 이렇게 싱거워요?”
“어허, 볼드 이놈. 또!”
그러면 그렇지.
수호는 얼른 입을 열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금방 다른 걸 드리겠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그만둘 수야 없지.
차원 임무가 달려 있는데.
‘얼른 술 먹이고 보상받아야지.’
이번 보상은 전과 달리 고유 스킬은 없다.
하지만 ‘타룽가의 보답’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무려 드워프 족장의 보답이다.
‘술 사러 가자.’
수호가 서둘러 외투를 집어 들었다.
* * *
됫병으로 30병.
수호는 슈퍼마켓에서 소주를 사다 날랐다.
“껄껄, 이거 목 넘김이 시원하니, 좋군.”
“요건 안 싱겁고 맛있네, 히힛.”
“자자, 이제 힘내서 후딱 마무리하자고!”
드워프들이 술병을 들고 신나서 소리쳤다.
그러더니 1.8리터짜리 패트병을 허리춤에 매달았다.
땅땅- 뚝딱뚝딱-
작업 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끔 소주병을 들어 한 모금씩 마시는 장면도 보였다.
‘이거 괜히 뿌듯하네.’
드워프들이 신난 모습에 수호도 기분이 좋았다.
물론 기분만 좋은 건 아니었다.
『붉은 망치 드워프』
- 소속 차원 : ESKHJ-0702L
- 구성원 수 : 23
- 만족도 : 70/100
‘술 가져다준 게 만족도가 25나 오르다니.’
기후 조절 때 30이 올랐는데, 술이랑 별 차이가 없다.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수호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도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은데.’
임무를 완수하는 순간, 타룽가가 수호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 당장은 거인님께 드릴 만한 게 불꽃수밖에 없습니다.
- 저희 부족 비전의 방식으로 만드는 물건으로, 아이들이 성인식을 치를 때 마시는 약수입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내민 것은 손톱만 한 구슬.
안에는 붉은 액체가 찰랑였다.
수호의 눈이 [불꽃수]를 응시했다.
설명이 떠올랐다.
[불꽃수]
- 붉은 망치 드워프가 성인식을 치를 때 마시는 약수藥水. 불에 대한 저항력을 크게 높이고,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다.
- 아이템 등급 : 희귀
- 복용 시 근력 +20, 민첩 +5, 체력 +20, 마나 +3.
- 【화염 저항】 +50
- 【감각】 +10
- 중복 사용 불가.
아이템의 성능을 확인한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 기억이 잘못됐나?’
며칠 전, 한국 최초로 5성 던전이 공략됐다.
보스 몬스터가 드랍한 아이템이 연일 화제였다.
덕분에 수호도 아이템의 성능을 대충 기억하고 있었다.
‘불꽃수랑 5성 던전 드랍템이랑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확인해 봐야겠어.
수호는 불꽃수를 침대 위에 모셔 두고 휴대폰을 들었다.
관련 기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카루스 길드. 5성 던전을 클리어하다!』
- 대한민국 3대 길드의 하나인 이카루스 길드가 강원도 정선에 등장한 5성 던전을 클리어했다. 이카루스의 길드 마스터인 헌터 강민제는…….
기사가 이어졌다.
하단에 채찍을 들고 있는 남성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 던전 보스 몬스터를 잡고 얻은 [가시 채찍]은 이례적으로 옵션이 공개된 상태. 길드 내에 사용자가 없어, 경매에 부칠 거란 말이 돌고 있으며…….
기사 말미에 아이템의 옵션이 공개되어 있었다.
[가시 채찍]
- 절망의 수목원 보스 몬스터, 후오른의 가지로 만든 채찍. 돋아난 가시로 피격 대상에게 강한 출혈을 일으킨다. 특유의 독성으로 인해 지속적인 대미지를 입힌다.
- 아이템 등급 : 희귀
- 물리 공격력 320
- 【중급 출혈】 【하급 중독】
- 근력 20, 민첩 20 증가.
- 내구도 250
기사에는 댓글이 수천 개나 달려 있었다.
┗ 희귀 등급에 스킬도 두 개나 붙었네. 저게 도대체 얼마짜리냐?
┗ 와, 미친! 저거 스탯 붙은 거 좀 봐. 저 정도면 역대급인 것 같은데.
┗ ㄴㄴ역대급 아님. 희귀 위에 영웅급도 있는 판에. 랭커들이 공개를 안 해서 그렇지, 해외에는 상위 아이템 널렸음.
하급POOR
일반COMMON
고급UNCOMMON
희귀RARE
여기까지가 대중에게 공개된 아이템의 등급.
그 위에 영웅 등급이 존재한다는 루머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 아는 형이 랭컨데, 저 정도면 희귀 등급 중에 최상급 맞대. 쓰는 사람 드문 채찍만 아니었어도, 애초에 공개할 일 자체가 없다고 했음.
┗ 아는 형 나왔고요, 자 다음 지인?
┗ 근데 채찍이 내 몸뚱이보다 훨씬 강함ㅜ
┗ 22222
┗ 33333
수호는 댓글을 살피다가 스마트 폰을 내려놨다.
“진짜로… 불꽃수가 5성 던전 보스템 못지않잖아!”
수호는 감탄했다.
무려 국내 최초로 공략된 5성 던전이다.
한데 그 보스의 드랍템과 불꽃수가 같은 등급.
심지어 능력치도 꿀리지 않는다.
“무기와 비약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비약은 마셔서 능력치를 올려 주는 아이템.
한번 소비하면 끝이다.
되팔 수도 양도할 수도 없으니, 스탯만으로 가치를 책정할 수는 없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사긴데?”
수호는 다짐했다.
드워프들과 친하게 지내자.
차원 임무도 빠짐없이 수행하자.
* * *
● 상태창
──────────
▶ 이름 : 원수호
▶ 클래스 : 차원 여행자
▶ 레벨 : 1
▶ 고유 스킬
- 【소통】【교역】
▶ 일반 스킬
- 없음
▶ 스테이터스
- [근력 1][민첩 1][체력 1][마력 1]
──────────
수호는 헌터로 각성하고도 상태창을 열어 보지 않았다.
“어차피 초기 스테이터스는 모두 똑같으니까 됐고.”
사람마다 신체 능력이 다름에도 각성 초기 스탯은 모두 1이다. 시스템에 의해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일어날 변화였다.
“불꽃수나 먹자.”
수호는 불꽃수를 먹기로 결심했다.
팔면 엄청난 돈을 거머쥐겠지만, 돈 주고도 못 살 물건을 팔 수야 없다.
성능이 너무 뛰어나, 팔았다가 괜한 의심을 살지도 모르고.
결정한 수호가 불꽃수를 삼켰다.
화끈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곧 불꽃수가 모두 흡수되었다.
수호는 상태창의 스테이터스 항목을 살폈다.
▶ 스테이터스
- [근력 21][민첩 6][체력 21][마력 4]
- [감각 10] [화염 저항 50]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와- 스탯 대박.”
1레벨의 상태창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치.
“확장 스탯도 두 가지나 얻다니.”
확장 스탯.
근민체마, 네 가지 기본 스탯과 달리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얻을 수 있는 능력치.
얻는 방법은 물론 그 효용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
한데 불꽃수에는 [감각]과 [화염 저항]이라는 두 가지 확장 스탯이 붙어 있었다.
“확실한 쓰임새는 좀 지나 봐야 알겠지만.”
[화염 저항]이야 말 그대로 불에 저항하는 능력이겠지.
하지만 [감각] 쪽은 좀 애매하다.
오감이 예민해진 것 같기는 한데…….
확장 스탯은 유독 알려진 바가 적어 알아볼 수가 없다. 가진 자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말이다.
이유야 뻔하다.
“그만큼 대단하기 때문이겠지.”
확장 스탯에 굉장한 가치가 있기에 숨기는 것이다.
수호가 기대 어린 눈빛으로 냉동실을 바라봤다.
땅땅-
뚝딱뚝딱-
늦은 저녁. 드워프들의 열띤 작업 소리가 들려왔다.
“드워프를 좀 더 살펴야겠어.”
혹시 또 아는가.
차원 임무라도 하나 더 얻을 수 있을지.
4화 MSG의 힘
“어제는 차원 임무를 더 못 얻어서 좀 아쉬웠어.”
수호가 침대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새벽이 되도록 새로운 임무는 없었다.
하지만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
날이 밝았으니 새 임무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드워프들 뭐 하고 있나 한번 볼까?”
이러다 관음증 생기려나.
수호가 피식 웃으며 냉장고 앞으로 향했다.
작동을 멈춰 둔 냉동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으어어- 딱딱해. 아침부터 육포를 씹어야 한다니.”
드워프들이 일어났는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일어났나 보네. 만족도는 괜찮겠지?’
수호가 차원 패널을 열었다.
『붉은 망치 드워프』
- 소속 차원 : ESKHJ-0702L
- 구성원 수 : 23
- 만족도 : 65/100
‘만족도가 떨어졌어.’
왜지?
자기 전까지 분명 70이었는데.
수호는 드워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쩔 수 없잖아. 식량이라고는 육포밖에 없는데. 그냥 먹어. 그것도 얼마 안 남았어.”
“턱이 빠질 것 같아서 그래.”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다. 누가 물이라도 좀 끓여 봐.”
“맹물 끓여서 뭐 하게?”
“없는 것보단 낫잖아. 아, 국물.”
드워프들의 탄식이 들려왔다.
수호의 눈이 번뜩였다.
‘먹는 게 부실해서 그렇구나.’
어쩌면 또 임무가 뜰지도?
수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예상대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 임무 【드워프의 식량 사정(지속)】를 획득하셨습니다.]
[차원 패널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그런데 이전과는 차이가 있었다.
‘지속?’
수호는 서둘러 차원 패널을 열었다.
『드워프의 식량 사정』
- 급박한 이주로 인해 드워프들의 식량 사정이 몹시 궁핍하다. 드워프들의 건강을 위해 그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라.
*지속형 임무입니다. 상황이 완전히 개선될 때까지 반복해서 수행할 수 있습니다.
- 보상 : 붉은 망치 드워프 만족도.
‘여러 번 수행할 수 있는 임무였구나.’
아무래도 드워프에게 먹을 걸 갖다 줘야 할 모양이다. 그것도 계속. 그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을 때까지.
‘일단 국물을 원하는 것 같으니까.’
수호는 재빨리 슈퍼마켓으로 달렸다.
* * *
“포장을 벗기면 건조된 면과 작은 봉투가 나올 거예요.”
“오- 있어요, 있어! 그다음엔 어떻게 해요, 거인님?”
수호가 사 온 라면 박스 앞.
드워프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대표로 나선 것은 볼드.
오늘도 눈빛과 정수리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물을 끓이세요. 라면 하나당 아까 드린 물병 하나 정도로요.”
수호는 라면 2박스와 함께 건넨 500밀리 생수병을 가리켰다.
“토드, 빅터, 너희 둘이 가서 물 좀 떠와! 어서!”
“으히히, 알았어. 국물이다, 국물!”
드워프 둘이 물을 뜨러 달려갔다.
수호가 설명을 이었다.
“물이 끓으면 작은 봉투를 찢어서 안에 든 가루를 넣으세요. 그다음에 면을 넣고…….”
물은 곧 준비되었다.
잠시 후 냉동실 안에서 라면 냄새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먹음직스러워.”
“침 넘어간다.”
“언제 먹지? 먹어도 될 것 같은데.”
“거인님, 지금 먹으면 안 돼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솥 주변에 들러붙은 드워프들 엉덩이가 들썩였다. 수호는 그 장면을 즐겁게 감상했다.
‘드워프나 사람이나.’
MSG는 통했다.
“이제 대충 다 익었을 거예요. 드세요.”
수호가 신호했다.
드워프들이 솥으로 달려들었다.
“오, 이런 맛이!”
“이, 이거 뭐야? 매워, 매운데 계속 먹게 돼!”
“으흐흐, 국물이 정말 얼큰해.”
“거인님! 국물이 끝내줘요!”
라면 냄새 때문에 수호도 배가 고팠다.
수호는 시리얼을 먹으며 드워프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머지않아 드워프의 식사가 끝나는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원 임무 【드워프의 식량 사정(지속)】을 완수했습니다.]
[붉은 망치 드워프의 만족도가 15 상승합니다.]
라면 두 박스에 만족도 15다.
보상으로 오르는 만족도는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 같다.
‘이번에도 뭘 주려나?’
만족도 말고는 따로 언급된 보상은 없었다.
그래도 저렇게 즐겁게 먹었으니, 뭔가 줄지도?
기대하던 수호가 이내 고심에 잠겼다.
‘그나저나 이대로는 힘들어.’
통장에 잔액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제 소주 30병, 오늘도 라면 두 박스.
게다가 앞으로도 돈이 계속 들어갈 모양새다.
‘돈을 벌어야 해. 최대한 빨리.’
수호는 돈 벌 방법을 궁리했다.
보편적인 방법이 있긴 있다.
‘던전에 가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야.’
세상이 게임처럼 변한 지 20년.
인간은 던전과 몬스터에 적응했다.
몬스터 사체에서 나오는 재료는 산업 전반에 안 쓰이는 분야가 없다.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면, 드워프 식비는 충당하고도 남는다.
‘그래, 던전에 가자.’
수호는 던전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 전에 헌터 등록부터 해야겠지만.
수호가 생각을 마쳤을 즈음, 누군가 냉동실 문가로 다가왔다.
족장 타룽가였다.
“거인님.”
표정이 밝지 않다.
좀 전까지 신나서 라면 국물을 들이켜고 있었는데.
“예,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물론입니다. 정말, 제 120년 삶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는 식사였습니다.”
족장 아저씨 보기보다 나이 많네.
드워프 수명이 꽤 긴가 보다.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이네요.”
“하하…….”
타룽가가 어색하게 웃었다.
“혹시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그것이… 은혜를 입었으면 갚는 게 도리인데, 저희 사정이 궁핍해서 당장은 드릴 것이 없습니다.”
아, 그런 거였나.
하긴 먹거리도 제대로 없는데 뭔들 있겠어.
그래도 포기하긴 이르다.
드워프와 지구의 아이템 수준 차를 생각하면, 솥뚜껑으로 총알을 막을지도 모른다.
뭐든 받고 보자.
“밥 한 끼에 대단한 걸 바랄 수야 있나요. 안 쓰는 물건 버린다 생각하고 주시면 됩니다. 뭐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도 어찌…….”
“진짜 아무거나 주셔도 좋아요. 제가 잡동사니 모으는 취미가 있습니다. 오래된 물건, 손때 탄 물건 다 좋습니다. 하하.”
이거 어째 고물상 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인데.
수호의 말에도 타룽가는 망설였다.
못내 미안했기 때문이다.
한데 그때 볼드가 튀어나왔다.
“거인님, 정말 아무거나 괜찮아요? 좀 부서진 것도?”
“볼드! 너 또 거인님께 무례하게!”
수호는 재빨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예, 아무거나 좋습니다. 완전히 박살 나지만 않았으면요.”
마음에 안 들면, 다음에 다른 걸 달라고 해야지. 지속형 임무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럼 이거라도 가지실래요? 제가 쓰다가 약간 부서진 건데.”
볼드가 허리춤에 매단 것을 끌렀다.
“장도리군요.”
“네, 요기 뒤통수에 노루발이 깨졌어요. 히히, 제가 망치질이 좀 서툴러서.”
“허어- 이놈 볼드야. 붉은 망치 일족으로서 부끄럽지도 않으냐.”
“그래도 제가 요리는 잘하잖아요. 그리고 이거, 노루발은 부서졌어도 아직 사용할 수는 있어요. 머리 부분은 멀쩡하니까요.”
“그렇다고 어찌 부서진 물건을 거인님께…….”
연신 한숨 쉬는 타룽가.
하지만 수호는 장도리가 기대됐다.
“좋습니다. 감사히 받도록 하죠.”
수호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볼드가 장도리를 쭉 내밀었다.
[붉은 망치 드워프와 교역하시겠습니까?]
[수락/거절]
‘수락!’
냉동실이 살짝 빛나더니, 발치에 장도리가 생겨났다.
수호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부서진 장도리]
- 훌륭한 장인의 솜씨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장도리. 못을 빼는 노루발 부분이 부서지는 바람에 성능과 내구도가 하락했다.
- 아이템 등급 : 고급
- 물리 공격력 120
- 【하급 충격 증폭】
- 근력 +5
- 내구도 100
‘헉!’
장도리의 등급이 ‘고급’이다.
공격력도 웬만한 무기 뺨친다. 심지어 충격량을 증가시키는 스킬도 달렸다.
‘미쳤네, 미쳤어. 부서진 게 이 정도면, 멀쩡한 건 도대체…….’
아니, 애초에 무기도 아니잖아!
제대로 된 무기는 어떻다는 소리야?
어이없는 것도 잠시.
‘미쳤으면 어때, 나야 좋지.’
앞으로도 드워프와 교류할 텐데.
수호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 * *
‘장도리를 팔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장도리의 아이템 등급은 무려 고급.
심지어 옵션도 좋다.
무기로 쓰기에 좀 짧지만, 팔면 천만 원은 족히 받을 터였다.
‘그렇다고 당장 내다 팔기는 위험해.’
헌터 등록도 안 한 각성자가 높은 등급 아이템.
그것도 독특한 형태의 물건을 팔다가는 괜한 의심을 살지 모른다.
‘차라리 내가 사용하자.’
이 정도 성능이면 던전에서도 유용할 터.
그편이 괜한 의심을 사지도 않고, 돈도 벌 방법이다.
그래서 수호는 헌터 협회로 향했다.
던전에 입장하려면 먼저 헌터로 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오셨나요?”
협회 직원이 물었다.
“헌터 등록하려고요.”
“각성하셨군요. 축하드려요. 여기 서류부터 작성해 주세요.”
“네.”
수호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서류를 작성했다.
그 후 간단한 검사를 통해 각성 사실을 증명했다.
“여기 임시 헌터증입니다. 정식 등록하려면 연수받으셔야 하는 거 아시죠? 그전에는 던전 출입이 불가능해요. 연수를 6개월 이상 미루면 과태료 부과되니 조심하시고요.”
수호는 미룰 생각이 없었다.
“연수는 언제 받을 수 있나요?”
“잠시만요……. 내일 바로 시작하는 일정이 있고요. 그 뒤는 다음 달 초에나 가능하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바로 신청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럼 내일 일정으로 신청해 주세요.”
“네. 연수는 이틀간 진행됩니다. 개인 장비 착용이 가능하니 준비하셔도 되고요. 자세한 사항은 메시지로 다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곧바로 연수 일정을 잡았다.
‘빨리 해결하고 던전이랑 드워프에 집중하자.’
던전을 돌아 헌터로서 성장하고 돈을 번다.
차원 임무를 수행하며 드워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한다.
두 가지 당면 과제를 되새기며 수호는 협회를 나섰다.
머잖아 집에 도착했다.
‘잘들 있나?’
습관적으로 냉동실 문을 열었다.
땅땅- 뚝딱뚝딱-
드워프들은 여전히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한데 묘하게 위화감이 든다.
‘왠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뭐지?
수호가 열심히 드워프들을 관찰했다.
도통 차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분명 어딘가 다른데. 아, 차원 패널을 열어 보자.’
뭐가 있으면 차원 패널에 나타나겠지.
『붉은 망치 드워프』
- 소속 차원 : ESKHJ-0702L
- 구성원 수 : 40
- 만족도 : 60/100예상대로 차원 패널이 변했다.
‘수가 늘었어.’
23명이었던 드워프가 어느새 40명이 되어 있었다.
만족도도 떨어졌다.
* * *
“흩어져 살아서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저희가 원래 2천 명쯤 될걸요? 마을 터 잡으려고 일부만 먼저 출발한 거죠, 히힛. 나머지는 앞으로 계속 이동해 올 거예요.”
숫자가 늘어난 원인은 볼드에게 들을 수 있었다.
‘난 또 그새 아기라도 태어난 줄 알고 깜짝 놀랐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다.
“아이나 여자는 안 보이는데. 그분들도 뒤따라오나요?”
“네, 족장님이랑 남자 몇 명만 먼저 출발했죠. 이제 사람이 늘어나면, 마을 건설 속도도 빨라질 거예요.”
잘됐군.
근데…….
‘밥값이 더 들겠네.’
산등성이에 당장 농사를 지을 수는 없고.
그럼 남은 방법은 사냥 아니면 채집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먹고살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수호가 도와야 한다.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고, 연수받는 동안 먹을 식량이라도 좀 사다 주자.’
그사이 굶어서 만족도가 바닥나면 곤란하니까.
수호는 마트로 가 라면을 20박스 샀다.
이제 정말 통장이 텅텅 비려 한다.
* * *
다음 날.
“고맙습니다, 거인님.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거인님, 라면 잘 먹을게요. 히힛. 잘 갔다 오세요.”
“잘 다녀오십시오.”
드워프들이 수호를 배웅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이틀 후에 뵐게요.”
수호도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 수호의 등에 시커먼 쇳덩이가 매달려 있었다.
5화 연수원(1)
던전 브레이크.
속에 품은 몬스터를 제때 처치하지 않으면, 던전이 몬스터를 토해 내는 현상.
부모님은 그 던전 브레이크로 돌아가셨다.
10년 전, 내가 16살 때의 일이었다.
분노.
슬픔과 당황이 약간 가라앉자, 나는 분노에 휩싸였다.
화나고, 억울하고, 원통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분노가 조금 희석되더라.
감정의 방향이 좀 바뀌었다고나 할까.
그때쯤 나는 결심했다.
헌터가 되자.
부모님의 유산과 쥐꼬리만 한 배상금으로 헌터 양성 학원에 등록했다.
훈련을 받았다.
각성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했다. 가진 돈을 다 털어 넣으면서까지.
하지만 실패했다.
나는 각성하지 못했다.
기어이 분노도 오기도 흩어졌고, 나는 실의에 빠졌다.
그저 살아만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나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내 등을 토닥이며 하신 말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제 괜찮다. 그만 화내도 돼.”
그 정도면, 네 부모도 네 마음 충분히 알았을 거야.
나도 울었다.
그렇게 내 방황이 끝났다.
* * *
경기도 용인시 외곽, 신입 헌터 연수원.
낡은 용달차 안에서, 수호는 과거를 회상했다.
‘하고 싶을 때는 안 되더니, 마음을 비우니까 각성을 하네.’
헌터를 열망하던 때도 있었는데…….
연수원 간판을 보니 이제야 각성했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뭐,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쨌든 각성은 했고.
남들보다 스타트가 좋다.
굳이 일일이 비교해 보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제대로 하자. 화끈하게!’
열심히 해서 뛰어난 헌터가 되자.
그래서 옛날에 결심했던 일을 지금이라도 해 보자.
기왕이면 잘 먹고 잘살기도 하고.
‘그편이 드워프를 숨기기도 편할 거야.’
드워프제 아이템이 의심을 사도, 강한 헌터가 되면 넘길 수 있다.
어디 던전이라도 털어서 얻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좋아. 가자.’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잡은 뒤, 수호는 낡은 용달차에서 내렸다.
연수원 로비, 수십 명이 모여 있다.
빈손으로 온 사람.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갑옷으로 몸을 휘감은 사람.
무기만 챙겨 온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흐흐흐, 이 칼이 고급 등급에서도 상위급 무기다. 이번에 내가 각성했다고 아버지가 선물로 주셨지.”
오만한 표정으로 크게 떠드는 남자.
영일 길드 마스터의 아들 박동식이었다.
“오, 길드장님께 선물받으신 거였군요. 어쩐지 때깔이 장난 아니다 했습니다, 형님. 옵션도 끝내주겠지요?”
간사하게 생긴 일행이 옆에서 추임새를 넣었다.
“당연하지, 공격력은 물론이고 다른 옵션도 끝내줘. 흐흐. 여기 있는 놈들이 가져온 허접한 장비 따위 한칼이면 잘라 버릴걸?”
박동식은 안하무인으로 떠들어 댔다.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가지고 살아왔다.
하고자 하는 일은 늘 이뤄졌고, 어디를 가든 주인공이었다.
심지어 때맞춰 각성까지 했다.
그랬기에 박동식은 헌터들의 핀잔 섞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호는 조용히 빈자리로 향했다.
그 모습이 박동식의 눈에 띄었다.
“저건 또 뭐야? 등에 웬 솥뚜껑을 달고 다녀? 설마 저딴 쇠붙이를 방패로 쓸 생각인가?”
병신 아니야?
독백이었지만, 로비에 다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
좌중의 시선이 수호에게 쏠렸다.
‘쯧, 저 사람 때문에 괜히 주목받는구만.’
모욕적인 언사는 신경 쓰지 않았다.
분노를 묻어 두는 데는 익숙하기에.
그리고 등 뒤에 맨 것도 그냥 쇳덩어리는 아니었다.
[견고한 무쇠 솥뚜껑]
- 붉은 망치 부족이 사용하던 무쇠 솥뚜껑. 둥글고 납작하다. 오래 쓰기 위해 두껍게 만들어졌다. 무겁지만 단단해서 방패 대용으로 훌륭할지도?
- 아이템 등급 : 고급
- 물리 방어력 450
- 【중급 충격 완화】
- 체력 +5
- 내구도 500
드워프에게 라면 20박스를 쾌척하고 받은 솥뚜껑이다.
타룽가는 면목 없어 했고, 볼드는 낄낄댔다.
수호는?
‘솥뚜껑 성능이 이 정도라니.’
감탄했다.
라면으로 ‘고급’ 아이템과 바꿨으니, 수지맞는 장사였다.
그러니 저런 멍청이가 지껄이는 말 따윈 웃어 넘길 수 있었다.
그런 수호의 여유가 박동식에게는 거슬렸다.
“장도리도 들고 왔어? 어처구니없네. 여기가 공사판인 줄 아나.”
박동식은 형편없는 꼬락서니를 한 인간이, 자신과 같은 무대에 있는 게 기분 나빴다.
“그러게요, 형님. 진짜 온갖 어중이떠중이 다 모이네요. 그래도 형님이 좀 참으세요. 저런 놈들이야 금세 바닥으로 꺼지잖아요.”
“하긴 나랑은 노는 물이 다르지. 흐흐.”
“맞습니다. 저런 놈은 바닥. 형님은 천상계! 그리고 저는 형님 오른팔! 헤헤헤.”
“그래, 넌 나만 잘 따라오면 돼.”
“감사합니다, 형님.”
찧고 까부는 소리가 이어졌다.
수호는 반응하지 않았다.
곧 조교가 나타났다.
“다들 강당으로 이동하세요.”
조교의 안내에 따라 신입 헌터들이 강당으로 향했다. 오열을 맞추어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헌터들이 착석을 마치자 단상에 선 교관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이번 연수의 교관을 맡은 김진태다. 짧은 기간이지만 여러분의 생명과 미래가 걸린 일이니 잘 따라 주기 바란다.”
김진태는 40대 중반의 노련한 인상의 헌터였다. 소개를 마친 그가 연수에 관해 설명했다.
“연수는 1박 2일에 걸쳐 진행된다. 오늘 오전에는 헌터로서 갖춰야 할 소양 교육이 이뤄지며, 그 뒤에는 기본 전투 기술을 익히는 시간을 갖겠다.”
시작은 정신 교육부터인가?
“그럼 영상을 보면서 설명하겠다.”
단상 뒤 스크린에서 영상이 재생되었다.
던전 내부에서의 행동 방침과 마음가짐을 담은 내용이었다.
영상은 지루할 정도로 길었다.
‘소양 교육은 확실히 할 수밖에 없겠지.’
던전 안에서는 시스템에 의해 ‘아이템’으로 인정되는 물건을 제외하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전자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통신이 차단되고.
던전 내부는 무법 지대가 된다.
그러니 신입 때부터 소양 교육이라도 철저히 해 두어야 한다.
‘얼마나 소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소양 교육이 끝났다.
“이번에는 기본적인 전투법을 배우겠다.”
김진태와 조교들이 냉병기 다루는 법을 시연했다.
간단하고, 기초적인 동작들.
속성으로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수호에게는 이미 익숙한 자세였다.
헌터를 꿈꾸던 옛날, 학원에서 배운 것과 같았으니.
지루할 만도 했지만 수호는 그럴 틈이 없었다.
‘이거 뭐지? 몸이…….’
수호는 깜짝 놀랐다.
몸이 완벽하게 제어됐기 때문이다.
발바닥에서 손끝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움직여지잖아. 굉장해!’
게다가 옆에서 움직이는 다른 헌터의 움직임까지 손금 보듯 읽힌다.
‘이목도 엄청 날카로워진 것 같고… 아!’
수호는 지금 일어난 현상의 원인을 깨달았다.
‘감각 스탯 때문이야!’
불꽃수를 마신 뒤, 오감이 예민해졌다는 생각은 했다.
몸을 격렬히 움직여 보니,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감각 스탯 때문이었다.
‘굉장하잖아.’
신경 쓰지 않아도 저절로 파악되는 주변 정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몸.
수호는 고양감에 휩싸여 전투 동작을 따라 했다. 오전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그 모습을 묘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 * *
오후 수업은 강당 옆, 다른 건물에서 진행되었다.
이번에도 김진태 교관이 설명을 시작했다.
“오후에는 오전에 익힌 전투 기술을 실습한다. 가상 전투 시스템을 통한 실습이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김진태는 마력 강화 유리로 만든 부스를 손짓했다.
“실습실에 들어가면 홀로그램 영상으로 몬스터가 등장한다. 여러분은 그 몬스터와 싸워 이기면 된다.”
승패는 공격과 피격을 센서로 감지해 판정한다.
거기까지 말한 김진태가 뒤편 스크린을 가리켰다.
“여러분이 체험할 몬스터는 렛맨이다. 실습을 진행하기 전, 놈의 습성과 약점에 대해 먼저 배우고 시작하겠다.”
렛맨의 영상이 제공되었다.
사람 허리 정도 신장의 쥐를 닮은 2족 보행 몬스터.
주 무기는 앞발의 손톱과 길게 뻗은 송곳니다.
1성 던전 최하위 수준의 약한 몬스터였다.
“자, 이제 렛맨의 공략 방법은 다 배웠다. 공격을 허용해도 다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고. 미리 사냥을 경험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도록.”
호명하는 순서대로 실습이 진행되었다.
“아, 젠장. 죽었어.”
“저도 죽었어요. 방법을 알아도 실전은 다르네요.”
“그러게요. 특히 손톱이 까다로워요.”
“맞아요, 이빨은 보기보다 덜 위협적인데 손톱이 문제예요.”
탈락자가 속출했다.
하나 렛맨에게 패한다고 해서 헌터 등록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교관의 설명대로 미리 경험해 보는 데 의의가 있었으니.
한데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머저리들. 어떻게 렛맨 따위한테 질 수가 있지? 저런 놈들이 헌터 격을 다 떨어트려 놓는다니까.”
박동식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들으란 듯 떠들었다.
“맞습니다. 형님이라면 한 방에 해치우실 수 있을 겁니다.”
“당연하지.”
박동식은 자신 있었다.
각성 즉시 값비싼 비약을 먹었다.
몸에 걸친 장비도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흐흐흐, 수준 차이를 보여 주지.’
박동식은 화려한 데뷔를 꿈꿨다.
아버지가 영일 길드장이니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온 세상의 주목을 받고 싶었다.
그에겐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 박동식. 실습실로 들어가도록.”
때마침 차례가 왔다.
박동식이 자신만만하게 실습을 시작했다.
“제법 잘하네. 입만 산 줄 알았더니.”
“스탯이 엄청나게 높아 보이는데?”
“쳇, 금수저라 비약이라도 처먹었나 보지.”
“재수 없이 떠들어대길래 확 탈락해 버리라고 빌었는데, 그럴 일은 없겠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머지않아 박동식의 실습이 끝났다.
“10분 걸렸군. 수고했다.”
교관이 박동식을 칭찬했다.
박동식의 전투는 제법 훌륭했다.
“흐흐흐, 이 정도는 기본이죠. 이것도 못 하는 놈들은 헌터 일, 시작도 하면 안 되는 거지.”
비릿하게 웃으며 실습실을 빠져나오는 박동식.
“다음 원수호.”
하필 다음 차례가 수호였다.
수호와 박동식이 마주쳤다.
“와나, 솥뚜껑은 진짜 에바 아니냐? 거지새끼도 아니고.”
박동식이 들으란 듯 중얼거렸다.
수호는 피식 웃으며 박동식을 지나쳤다.
“웃어? 내 말이 우습냐?”
박동식이 떠드는 소리를 무시하고, 수호가 실습실로 들어섰다.
“시작!”
교관의 신호로 실습이 시작되었고.
파박-!
곧바로 끝났다.
6화 연수원(2)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몰라, 잠깐 한눈 판 사이에 끝났어.”
“와 씨. 뭐지? 기계 오류인가?”
헌터들이 수군거렸다.
“아냐, 내가 봤어. 저 사람이 고개만 까딱해서 렛맨의 발톱을 피하더니, 약점을 정확히 쳤어.”
“나도 봤어. 머리에 한 방, 옆구리에 한 방. 그거로 끝.”
“진짜 대박이네.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는 거지? 꼭 렛맨 움직임을 미리 아는 것 같던데.”
목격담이 나왔다.
수긍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건 분명 사기야. 반칙이라고! 저따위 놈이 나보다 빠를 리가…….”
박동식이었다.
그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비약을 먹은 자신보다, 솥뚜껑이나 들고 다니는 놈이 더 빠르다니.
“몇 초 걸리지도 않던데, 애초에 말이 안 되지. 저놈이 뭔가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해.”
계속 떠들 기세던 박동식이 곧 입을 다물었다. 교관이 나섰기 때문이다.
“통과 시간 3초! 본 교관이 확인한 바 정상적인 전투였다. 원수호 헌터, 대단하군.”
“감사합니다.”
“5년 전에 이카루스 길드의 강민제 헌터가 세운 15초의 기록이 이렇게 깨지는군.”
강민제는 랭커가 됐지.
김진태 교관이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수호가 교관에게 인사하고 자리로 향했다.
박동식과 수호가 교차했다.
수호는 이번에도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피식.
가볍게 웃어 주었을 뿐.
* * *
그날 수업은 그렇게 끝났다.
수호는 배정된 숙소로 향했다.
2인 1실.
룸메이트는 앳된 얼굴의 청년이었다.
동글동글한 인상이 착해 보였다.
“수호 형 맞으시죠? 저는 정현수라고 해요.”
“아, 네. 근데 제가 형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하하, 저 올해 스무 살이에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생긴 것처럼 성격 좋아 보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수호가 대답했다.
“그럼 말은 편하게 할게. 근데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아까 오후 실습 때 듣고 기억해 뒀죠. 형이 렛맨 처리하는 거 봤거든요. 진짜 끝내줬어요.”
“그래, 고맙다.”
“고맙긴요, 당연한 말을 한 건데. 근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 싸우세요?”
초면에 감각 스탯 때문이라는 말은 할 수 없고.
수호는 적당히 대답했다.
“어쩌다 보니. 전투 연습은 어릴 때도 받아 봤던 거라.”
“역시! 어릴 때부터 천재셨군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노력형 천재?”
“…아니라니까.”
정현수의 너스레 덕분에 분위기가 금세 편해졌다.
“근데 아까 박동식이 형 계속 노려보던데, 조심하세요. 질 안 좋은 놈이에요.”
“아는 놈이야?”
“네, 영일 길드장 아들이잖아요.”
“영일 길드?”
“길드장이 뒷골목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는……. 어쨌든 박동식 그놈, 각성 전부터 헌터 양성 학원에서 유명했어요. 망나니 같은 새끼라고.”
“그렇구만. 혹시 너도 같은 학원 출신?”
“예, 어쩌다 보니. 하하.”
“고생 많았겠네.”
“뭐, 그럭저럭이요.”
뻘쭘하게 웃은 정현수가 말을 이었다.
“근데 형, 혹시 연수 끝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뭘?”
“길드에서 연수원 기록 열람하는 건 아시죠? 형 정도면 서로 데려가려고 줄을 설걸요?”
길드에 들면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길드에 가입하면 던전에 들어가기 편해지겠지만.’
유명 길드는 던전을 소유하고 있다.
덕분에 안전하고 빠른 성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수호 입장에서는 무시 못 할 단점이 존재한다.
‘클래스와 스킬을 알아내려고 들 거야.’
효율적인 성장을 위해 대부분의 길드는 신입 헌터의 클래스와 고유 스킬을 알고자 한다.
수호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다.
그래서 수호가 궁리 끝에 준비한 방법이 있었다.
물론, 초면인 정현수에게 떠들 생각은 없지만.
“그때 가서 조건 보고 생각하려고. 여차하면 혼자 다녀도 되니까. 그리고 괜히 기대만 하다가, 아무도 내게 관심 없을 수도 있잖아.”
“그렇지는 않을 텐데… 하하. 어쨌든 알았어요, 형.”
대답하는 정현수의 눈빛이 빛났다.
* * *
박동식은 숙소에 머물기 싫어 인근 호텔 방을 잡았다.
“형님 덕분에 제가 이런 호텔에서 다 자 보네요. 감사합니다!”
부하인 고민오가 알랑거렸다.
그럼에도 박동식은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제기랄! 그놈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어떻게 렛맨을 순식간에 쓰러트린 거지?
설사 원수호가 자신보다 실력이 낫다고 해도 3초는 너무 빨랐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너 솥뚜껑 자식이 렛맨 잡는 거 봤어?”
“못 봤는데요. 순식간이라.”
“쯧, 도움이 안 돼요. 어쨌든 네 생각에는 그놈이 렛맨을 3초에 처리한 게 말이 되냐?”
“교관이 정상… 이라고 했지만, 분명 놈이 뭔가 수작을 부렸을 겁니다. 그놈이 형님보다 빠르게 렛맨을 잡을 리가 없죠!”
고민오는 박동식의 표정을 보고 말을 바꿨다.
사실 고민오는 그 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
박동식 옆에 붙어서 어떻게 꿀을 좀 빨아 볼까 하는 생각뿐.
“그렇지? X발, 그게 맞지? 하! 그 새끼를 어떻게 조져야 속이 풀릴까?”
박동식은 오만하지만 비위만 잘 맞춰 주면 제법 달콤한 꿀물이 떨어지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고민오는 서둘러 잔머리를 굴렸다.
“저, 형님. 오늘 했던 실습은 가상이잖습니까.”
“근데?”
“센서로 적중과 회피만 판별하지, 대미지까지는 측정을 못 하죠.”
고민오의 말이 맞았다.
정확한 대미지를 계산하려면 스킬과 아이템의 옵션을 알아내야 한다.
실습용 기계에 그런 기능은 없다.
헌터들이 자신의 정보를 공개할 리도 만무하고.
“그래. 아이템 옵션은 제대로 적용이 안 되지.”
“그러니까 말입니다. 진짜 싸우면 형님이 질 리가 없죠. 아이템 옵션이 제대로 적용만 되면요.”
고민오가 박동식의 허리춤에 걸린 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야 당연한 소리고. 그게 뭐?”
“내일은 모의 전투 실습이 있잖습니까. 그때 형님이 놈을 해치워 버리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연수 이튿날은 헌터 간의 모의 대전이 펼쳐진다.
원수호를 때려눕히면 스포트라이트는 모두 자신에게 향할 것이다.
조교 하나 구워삶으면, 조 짜는 건 문제도 아니고.
박동식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내일이 기대됩니다, 형님.”
“그래, 내일 그 자식을 박살 내 버리는 거야. 그럼 정말 대단한 게 누군지 다들 알게 되겠지, 흐흐흐.”
* * *
이튿날 오후.
오전 소양 교육을 마친 헌터들이 강당에 모였다.
교관 김진태가 단상에 올랐다.
“오후에 연수할 과목은 모의 대전. 헌터 간의 전투를 경험해 보는 것이다.”
한 마디로 좌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김진태가 말을 이었다.
“던전 내부는 단절된 공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헌터 활동을 오래 하다 보면, 다른 헌터와 싸우게 될 수도 있다. 특히 범죄자 헌터, 통칭 머더러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심각한 내용에 좌중이 침묵했다.
“이번 모의 대전은 그런 경우를 대비해 최소한의 대인(對人) 전투 경험을 쌓아 주고자 진행되는 과목이다.”
전투 경험보다는, 늘 사람을 조심하라는 경고의 의미가 더 컸지만.
“따라서 전투는 딱 한 번뿐이다. 전투를 거듭해 1등을 뽑지는 않는다. 교관과 조교가 참관하고, 치유 능력자도 대기 중이니 걱정하지 말고 전투에 임하기를 바란다.”
잠시 뜸을 들인 김진태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고의로 상대의 목숨을 빼앗으려 들 경우, 헌터 자격증 발급이 거부됨은 물론 앞으로 헌터 활동에 큰 지장이 생길 것이다.”
경고를 끝으로 김진태가 내려갔다.
“전경모 헌터, 신상훈 헌터. 이쪽으로 오세요.”
두 명씩 호명하며 모의 대전이 시작됐다.
박동식이 비릿하게 웃었다.
‘허접하게도 싸우네. 흐흐, 오늘이야말로 보여 주지. 누가 최고인지.’
그는 자신 있었다.
도저히 지려야 질 수가 없었다.
[약탈자의 검]
- 오랜 세월 양민을 상대로 약탈을 자행하던 강도의 검. 수많은 양민의 피를 먹은 탓에 약자를 상대할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 아이템 등급 : 고급
- 물리 공격력 110
- 【약자학살】
- 근력 +4 민첩 +4
- 내구도 140
바로 이 검 때문이다.
고민오에게는 아버지의 선물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거짓말이고.
사실은 아버지의 금고에서 훔쳐 온 것이다.
【약자학살】
- 다수의 약자를 죽이기 위해 탄생한 스킬. 마력 칼날을 생성해 전방으로 흩뿌린다.
- 스킬 발동 시, 검의 물리 공격력이 2배로 증폭된다.
- 피격 대상의 물리 방어력이 검의 공격력보다 2배 이상 높을 경우, 칼날이 부러진다.
‘약자학살 한 방이면 넌 끝이다. 솥뚜껑 사기꾼 새끼야.’
박동식이 비릿한 눈빛으로 원수호를 노려봤다.
저놈만 꺾으면 이번 연수의 주인공은 자신이다.
그렇게만 되면, 아버지도 검을 훔쳐 온 일로 화내지는 않을 터.
어쩌면 칼을 선물로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박동식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을 때.
“박동식 헌터, 원수호 헌터.”
드디어 조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동식과 수호가 실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흐흐흐, 이 새끼. 넌 오늘 뒈졌다.”
박동식이 수호를 도발했다.
이쯤 되니 수호도 궁금했다.
“초면에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무슨 병이라도 있나?”
“뭐? 이 사기꾼 새끼가, 지금 뭐라고 했냐.”
“질척거리지 말고 네 갈 길 가라고. 그리고 사기꾼은 내가 왜 사기꾼이야?”
“네놈이 사기 친 거 모를 줄 알아!”
“교관님 앞에서 그러던가. 그때는 가만 있더니.”
“이 개X끼가.”
보다 못한 조교가 끼어들었다.
“두 분, 쓸데없는 잡담은 삼가고 준비하세요. 곧 시작합니다.”
박동식이 이를 부득 갈았다.
“넌 질질 짤 준비나 해라. 사기꾼 새끼야.”
마지막으로 비아냥거린 박동식이 칼을 뽑아 들었다. 칼날이 빛을 받아 시퍼렇게 빛났다.
수호도 장도리와 솥뚜껑을 양손에 들었다.
“전투 시작!”
조교의 신호가 울렸다.
박동식이 먼저 움직였다.
칼날이 수호의 머리를 노리고 찔러 왔다.
수호가 비스듬히 한 발 내디뎠다.
후웅-
칼날이 허무하게 빗나갔다.
박동식이 재차 칼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칼은 허공만 벴다.
‘역시, 다 읽혀.’
수호의 감각 스탯이 박동식의 움직임을 모조리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렛맨보다 좀 더 복잡하게 움직여 줘서 좋네.’
렛맨 상대로 감각 스탯의 효과를 확인했지만, 그때는 전투가 너무 빨리 끝났다.
좀 더 실험하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다.
후웅-
아슬아슬 빗나가는 칼날.
태연자약한 수호의 표정.
같은 일이 반복됐다.
박동식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저 개X끼가, 지금 날 가지고 노는 거야?’
감히! 감히 하찮은 거지새끼가!
대 영일 길드의 후계자에게!
박동식의 눈이 돌아갔다.
“개X끼, 죽여 버린다!”
네놈이 자초한 일이다!
박동식이 【약자학살】을 시전했다.
지잉! 칼끝이 떨리는가 싶더니.
촤라라라라락-
새파란 마력 칼날이 부챗살처럼 뻗어나갔다.
‘스킬?’
순간, 수호의 감각 스탯이 경고했다.
서서는 다 못 피한다.
다치지 않으려면 멀리 몸을 날려야 한다.
하지만 수호는 뛰어오르지 않았다.
‘꼭 피할 필요는 없지.’
대신 왼손을 내밀었다.
솥뚜껑이 단단하게 수호의 앞을 막았다.
번개 같은 반응 속도.
덕분에 방어를 완성하고도 시간이 남는다.
수호가 한 발 전진했다.
쿠콰콰콰쾅!
그제야 박동식의 스킬이 솥뚜껑에 부딪쳤다.
약간의 저항감.
그것을 뚫고, 수호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훤히 열린 박동식의 옆구리가 보인다.
수호가 오른손을 횡으로 휘둘렀다.
퍽!
박동식의 옆구리에 장도리가 틀어박혔다.
“커억-”
박동식이 칼을 떨어트렸다.
털썩 무릎 꿇는다.
“구웨에에엑-”
속이 뒤집어진 박동식이 먹은 것을 게워 냈다.
그와 동시에.
채캉-
떨어진 검이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안 돼에-’
박동식의 절규는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칼이 부러지는 장면을 끝으로, 그가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철퍽.
혼절해 쓰러지는 박동식의 얼굴이 토사물에 처박혔다.
* * *
드워프 마을 외곽.
“히힛, 맛있겠다.”
볼드가 까치발로 걷고 있었다.
요리하면서 꿍쳐 둔 라면을 몰래 먹기 위해 마을 옆 산기슭으로 나온 것이다.
‘나 혼자 먹어야지.’
식사 시간에는 다들 서로 먹겠다고 난리였다.
여유롭게 즐길 수가 없었다.
볼드는 한 번이라도 라면을 제대로 음미해 보고 싶었다.
잠시 후, 불을 피운 볼드가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국물 냄새가 코를 살살 간질였다.
“스으으읍- 냄새 좋아. 히힛. 빨리 익어라!”
한 개뿐이니까 천천히 아껴 먹어야지.
볼드는 조바심을 억누르며 라면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볼드의 바람대로 머잖아 면발이 적당히 익었다.
“됐다!”
볼드가 환호하듯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볼드의 눈에 이상한 모습이 보였다.
“어? 저게 뭐야?”
저 멀리 산기슭 아래.
초록색 피부에 흉악한 얼굴을 가진 무리가 능선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볼드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냄비를 보고.
산기슭 아래를 보고.
다시 한번 냄비를 보는가 싶더니.
“하- 인생…….”
포크를 집어던지고 마을로 내달렸다.
7화 긴급 임무(1)
“수호 형, 축하해요.”
정현수가 다가오며 말했다.
“고맙다.”
“박동식 저놈, 아이템도 장난 아닌데. 완전 가지고 노시던데요.”
“운이 좋았어.”
“제가 보기엔 백 퍼센트 실력이던데, 하하. 운은 박동식이 좋았죠. 그 정도로 끝났으니까요.”
스킬까지 쓰던데, 완전 작살을 내 버리시지.
정현수가 웃으며 그렇게 덧붙였다.
“크게 다치면 내가 곤란해질 수도 있잖아.”
“아! 그래서 칼을 깨 버리고 구토 범벅을 만드셨군요. 잘하셨어요.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그건 안 죽을 정도로 치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건데.
‘근데 그놈 칼은 왜 깨졌지? 내구도가 그렇게 약했나?’
비싸 보이던데 안 됐구만.
“이기호 헌터, 정현수 헌터.”
그때 조교의 호명이 들려왔다.
“앗, 제 차례에요, 형. 다녀올게요.”
“그래, 파이팅.”
정현수가 달려갔다.
그 빈자리에 누군가 조용히 다가왔다.
“아, 교관님.”
김진태 교관이었다.
“훌륭한 전투였네. 내가 교관을 맡고 나서 본 연수생의 전투 중 최고였어.”
“감사합니다.”
“랭커인 강민제 헌터도 내 밑에서 연수를 거쳤지. 지금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만 그때부터 대단했어. 강력한 화력, 빠른 몸놀림. 정말 압도적이었거든. 한데 말이야…….”
김진태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난 자네가 더 훌륭했다고 생각하네. 꼭 필요한 힘으로 완벽하게 움직이더군. 감탄했어.”
“너무 과찬이라 부담스럽네요.”
“글쎄. 과찬일지 아닐지는 좀 지나 보면 알게 되겠지.”
김진태가 두고 보란 듯 말했다.
“…하하.”
수호가 멋쩍게 웃고 있으려니.
“이거 받게. 내 명함일세.”
김진태가 명함을 건넸다. 재능 있는 후배와 인연을 만들어 두자는 생각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게. 그리고 충고 한마디 할까 하는데, 들어 보겠나?”
“예, 경청하겠습니다.”
“연수 기록과 영상은 비공식적으로 각 길드에 제공되네. 협회가 헌터의 교육을 완벽히 책임질 수 없는 형편이라 고육지책인 셈이지. 상황이 그렇다 보니, 연수 끝나면 스카우트들이 늘 대기하고 있어. 아마 이번 기수엔 자네한테 많이 몰릴 거야.”
“…….”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네만,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 심사숙고하게. 잘 모르겠으면 내게 연락해도 돼. 못된 계약으로 헌터 부려 먹으려는 놈들이 가끔 있거든.”
“예, 명심하겠습니다.”
“참, 스카우트 면담은 저 아래 건물 회의실에서 하게나. 그러라고 지어 놓은 건물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김진태는 떠났다.
잠시 후, 모의 전투 실습이 끝났다.
정식 헌터 등록증 발급을 끝으로 연수 일정이 마무리됐다.
* * *
수호는 김진태가 말한 회의실에 있었다.
‘이 정도로 몰려들 줄은 몰랐는데.’
내로라하는 길드의 스카우트는 다 왔다.
국내 3대 길드인 오성, 백호, 이카루스는 물론 중형 길드들도 바글바글했다.
“원수호 헌터, 저는 오성에서 나온 이정욱입니다. 조건은 신인 최고 수준으로 무조건 맞춰 드리겠습니다. 따로 원하시는 것도 웬만하면 다 들어 드리고요. 오성으로 오십시오.”
오성의 스카우트가 스타트를 끊었다.
동명의 재벌 그룹을 모기업으로 둔 오성 길드.
자금력만큼은 압도적이었다.
“백호는 신입 헌터들의 체계적인 육성으로 유명합니다. 들어 보셨지요?”
들어 봤다.
신입을 잘 키우기로 유명한 것이 백호니까.
“이카루스에는 강민제 헌터가 있습니다.”
다음은 이카루스 스카우트였다.
최근 승천하는 기세로 성장 중인 이카루스.
아울러 그 중심에 있는 강민제에 대한 자부심 가득한 발언이었다.
“5년! 강민제 님이 대한민국 최고가 된 시간입니다. 연수에서 강민제 님의 기록을 깨셨다고 들었습니다. 원수호 헌터가 가셔야 할 길은 이카루스에 있습니다.”
수호가 일반적인 헌터였다면, 그의 말에 혹했을지도 모른다.
‘내 능력만 안 밝혀도 되면 이카루스도 괜찮겠지만…….’
이카루스 측이 그걸 허락할 것 같지는 않은데.
결국, 미리 생각해 둔 방법을 써야겠어.
생각을 정리한 뒤, 수호가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걸 맞춰 주는 쪽과 계약하죠.”
스카우트들이 수호의 말을 기다렸다.
“먼저 제게 던전을 제공해 주십시오. 한 달에 최소 2번. 1성부터 3성까지, 제 성장에 따라 단계적으로.”
4성부터는 대형 길드라도 제공이 힘들다.
“그리고 던전 활동 중에 발생하는 부차적인 업무를 대행해 주십시오.”
부산물 판매와 파티 구성 등을 말함이다.
대부분의 스카우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업무였기 때문이다.
단, 이카루스의 스카우트만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제 활동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마십시오. 모든 헌터 활동은 제 자의로 결정하겠습니다. 그것 외에는… 제가 요청하는 아이템을 구해 주시면 되겠네요. 시장가에 맞춰 값을 치르겠습니다. 단, 계약이 끝나는 3년 후에요.”
좌중에 동요가 일었다.
이카루스의 스카우트가 입을 열었다.
“원수호 헌터, 지금 혹시……?”
수호는 그의 말을 끊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저는 길드에 입단하지 않습니다. 길드와 저는 동등한 관계에서 계약하는 겁니다. 길드가 제게 투자한 가치는 3년 후, 제가 2배로 정산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길드가 원하는 던전에 저를 2번 빌려 드리지요.”
탕!
이카루스 스카우트가 테이블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그가 격분하는 이유를 수호는 알고 있었다.
이해는 안 됐지만.
‘내가 강민제 따라 했다고 화났나 보네.’
수호의 조건.
그것은 강민제가 신인 때 내건 것과 똑같았다.
수호가 궁리 끝에 생각해 낸 방법.
‘강민제 흉내 내기’였다.
당시 뒤늦게 헌터 산업을 시작하여 자금을 쏟아붓던 오성이 속는 셈 치고 강민제를 물었다.
그리고 대박이 났다.
오성이 3대 길드에 든 데에는 강민제의 ‘2번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원수호 헌터가 배짱이 참 두둑하군요. 그 대단하던 강민제 헌터와 같은 조건을 내걸다니.”
오성 스카우트가 말했다.
“제가 강민제 헌터보다 성적이 더 좋더라고요. 그러니 동급으로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수호가 뻔뻔하게 대답했다.
딱히 꿀릴 게 없으니까.
‘이 조건에도 오케이 하면, 나는 로또 당첨되는 거고.’
나중에 돌려줄 돈과 도움?
그때쯤이면 가볍게 해결할 자신이 있다.
‘아무도 안 낚이면 뭐, 무소속으로 활동하는 수밖에.’
드워프를 들키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수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드르득, 의자 미는 소리가 들리더니.
“저희 이카루스는 포기하겠습니다. 원수호 헌터는 겸손함을 좀 배우셔야겠군요.”
이카루스 스카우트가 회의실을 나갔다.
“흐음, 같은 조건으로 길드에 입단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활동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강민제로 재미 본 오성이 슬쩍 묻는다.
어떻게든 길드와 접점을 만들어 묶어 보려는 수작.
“죄송하지만 저는 조건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백호 길드 스카우트가 입을 열었다.
“하아, 이거 참. 모처럼 괜찮은 루키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더니. 이봐요, 원수호 헌터. 5년 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그런 조건 받을 길드 없어요.”
수호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백호 길드 스카우트도 일어섰다.
“말이 안 통하니 어쩔 수 없네요. 저희 백호도 빠집니다.”
그가 몸을 돌려 회의실 문으로 향할 때였다.
“저랑 계약하죠. 그 조건으로.”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저걸 물어?”
“어느 길드야?”
“누구지? 어려 보이는데?”
스카우트들이 놀라 소리쳤다.
목소리를 낸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수호 형, 그 조건 제가 받을게요. 저랑 계약해요.”
“현수?”
이번에는 수호가 놀랐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정현수였기 때문이다.
“당신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여기 장난치는 자리 아닙니다.”
오성 스카우트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현수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책임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제 아버지 성함이 정, 상자 왕자를 쓰십니다. 이걸로 대답이 됐습니까?”
“…상왕련주의 자제분이셨군. 알겠습니다. 오성도 이만하고 물러나죠.”
그 말을 끝으로 오성 스카우트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나가기 전에 수호에게 명함을 건넸다.
“상왕련과 계약이 틀어지면 연락해 주십시오. 오성에 가입만 하시면, 말씀하신 조건은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 * *
모든 스카우트가 떠난 회의실.
수호가 입을 열었다.
“상왕련이면 비전투 계열 각성자들이 모여서 만든 길드 맞지?”
상왕련商王聯.
장비 제작이나 수리, 포션 제조 등의 스킬을 획득한 헌터들이 있다.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 상왕련이다.
처음에는 장인(匠人) 집단에 가까웠으나, 지금은 아이템 유통업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네, 아버지가 상왕련주예요.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형.”
“사과할 것까지는 없고. 근데 내가 아까 말한 조건으로 정말 계약할 생각이야?”
사실 말이 안 되는 조건이다.
강민제와는 상황이 다르니까.
영상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던 강민제의 압도적인 화력.
때마침 오성이 헌터 업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던 시기란 점.
강민제의 경우, 그런 요소들이 맞아떨어졌기에 성립된 계약이었다.
그럼에도 정현수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예, 전 형이랑 꼭 계약하고 싶어요.”
상왕련은 부(富)에 비해 무력이 터무니없이 약했다.
그 탓에 늘 외부의 입김에 흔들렸고.
정현수는 그 꼴을 어려서부터 보아 왔다.
‘상왕련을 지킬 힘이 필요해.’
상왕련이 굳건히 홀로 설 힘을 갖추는 일.
그것이 정현수의 꿈이었다.
그래서 정현수는 인재를 찾고 있었다.
헌터 양성 학원에서도, 연수원에서도.
그러다가 수호를 발견했다.
정현수가 직접 본 헌터 중에서 단연 최고의 재능이었다.
‘수호 형을 무조건 잡아야 돼.’
내 사람으로 만들기는 힘들다면, 친하게라도 지내야 한다.
정현수가 다짐하고 있을 때, 수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굉장히 일방적인 조건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한테 계약에 관한 권한이 있어?”
정현수가 움찔했다.
원대한 꿈을 품은 청년, 정현수.
하나 그 꿈을 상왕련주에게 허락받은 것은 아니었다.
수호를 놓치기 너무 아까운 나머지, 덥석 물었을 뿐.
심지어 이번 계약은 평소 상왕련의 헌터 영입 체계에 어긋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형. 조율이 필요해요.”
“조율?”
“예. 형한테 제공할 던전이요, 사실은 제가 각성하면 가려고 준비해 둔 것들이라… 혹시 던전 가실 때,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아이템은 어떻게든 구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던전은 곤란했다.
돈이 있다고 무한정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흐음, 파티원이라…….’
현수가 실력은 제법 괜찮던데.
활을 무기로 쓰니, 후방을 맡겨도 괜찮을 테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손해 볼 게 없어. 어차피 나 혼자 다 해결하기는 힘드니까.’
수호는 던전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전투는 학원에서 배운 것으로 때운다고 해도, 던전의 정보와 경험은 혼자서 얻을 수 없다.
‘정현수를 통하면 이쪽 업계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기도 쉬울 테고.’
게다가 상왕련주의 아들이다.
귀한 몸이니, 죽을 만큼 위험한 던전에 밀어넣지는 않겠지.
‘가만 보니까, 진짜 제대로 낚은 것 같은데?’
같은 조건으로 대형 길드와 계약하는 것보다 더 좋다.
“좋아, 어차피 나도 혼자 던전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감사합니다. 아! 근데…….”
“왜? 또 뭐가 있어?”
“당장은 제 용돈으로 해결해야 해서 그런데, 계약금은 5천만 원으로 안 될까요? 대신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 및 부산물은 전부 형님께 드릴게요. 뒤처리도 제가 다 하고요. 그 외에도 필요한 아이템이 있으시면, 제가 최선을 다해 구해 드리겠습니다.”
아, 계약금!
그걸 잊고 있었네.
‘5천만 원이면… 충분하지.’
부족분은 던전 부산물을 다 먹는 거로 벌충하고도 남는다.
결정을 내린 수호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앞으로 잘해 보자.”
* * *
“조만간에 계약서 만들어서 연락할게요, 형.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수호가 용달차에 올랐다.
마음이 가볍다.
“5천이면, 급한 불은 끄겠어.”
드워프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한동안 밥값 걱정은 덜었다.
기분도 좋은데 오늘은 좀 더 좋은 걸 먹여 줄까?
수호가 마트로 차를 몰았다.
* * *
수호네 잡화점 앞.
수호는 용달차에 실린 박스를 가게 안으로 날랐다.
“짜라짜라짜짜짜 짜빠구뤼-”
드워프에게 새로운 음식을 먹일 생각을 하니 괜스레 즐겁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덕분에 박스 옮기기가 금세 끝났다.
수호가 방으로 향했다.
“잘들 지내고 있으려나.”
한데 막 냉장고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긴급 임무 발생!]
[긴급 임무 발생!]
[긴급 임무 발생!]
갑자기 메시지가 쏟아져 내렸다.
[차원 임무 【마을 방어】를 획득하셨습니다.]
[서둘러 임무 내용을 확인해 주세요!]
임무를 확인할 시간도 아깝다.
수호가 바로 냉동실 문을 잡아당겼다.
콰콰쾅-!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들려오는 폭음.
“동쪽 뚫린다, 막아!”
“제기랄! 빌어먹을 오크 놈들. 어디서 이렇게 잔뜩 몰려든 거야!”
“아이들 뒤로 물려! 빨리!”
“으악- 이럴 때 거인님이라도 계셨어야 하는데!”
뒤이어 들려오는 드워프들의 고함.
수호는 급히 상황을 살폈다.
‘몬스터다!’
손가락 세 마디 정도 크기의 괴물이 보였다.
초록색 피부. 근육질 몸. 삐죽 튀어나온 이빨.
오크였다.
드워프들은 짓던 건물을 방벽 삼아 농성하고 있었다.
개체의 강함은 드워프가 우위.
하지만 수는 오크 쪽이 몇 배나 많았다.
게다가 뒤편에는 어린 드워프도 보였다.
연수 기간에 합류한 모양인데, 전투에는 오히려 방해만 되었다.
‘도와야 해.’
이대로면 드워프가 진다.
‘저쪽 세상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드워프들은 【교역】 스킬로 전한 물건을 제외하면 인식하지 못했는데…….
‘돼라, 제발!’
수호가 장도리를 냉동실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휘둘렀다.
퍼억-!
장도리에 맞은 오크가 짓이겨졌다.
‘된다!’
다행히 수호의 손에 들린 물건은 저쪽 세상에 개입할 수 있었다.
수호가 번개처럼 손을 휘둘렀다.
퍼퍽- 퍼퍼퍼퍼퍽-
두더지 잡기 하듯 경쾌한 움직임.
오크들이 퍽퍽 터져 나갔다.
그때쯤 드워프들도 거대한 원군을 발견했다.
“거인님이다! 거인님이 오셨어!”
“됐다! 거인님이 왔다!”
“거봐, 내가 거인님이 도와줄 거라 그랬지? 히힛.”
드워프들이 안도의 목소리를 냈다.
“우리의 친구, 거인님이 오셨다! 망치를 들어라! 부족을 지켜라!”
족장 타룽가가 때맞춰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 죽여라!”
“오크를 죽여라!”
“아이들을 지켜라!”
“라면의 복수닷!”
드워프들의 사기가 치솟았다.
수호도 한숨 돌렸다.
‘됐어.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이 정도면 큰 인명 피해는 면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수호가 오크 몇을 더 쥐포로 만들었을 때였다.
화르르르르-
손톱만큼 거대한 불덩이가 마을로 날아왔다.
8화 긴급 임무(2)
허공을 가로지르는 화염 구체.
“이건 또 뭐야?”
수호가 서둘러 장도리를 휘둘렀다.
콰앙-!
불덩이가 장도리에 맞아 허공에서 폭발했다.
수호는 불덩이가 날아온 쪽을 바라봤다.
‘마법? 저놈이 쏜 건가?’
저 멀리, 오크 진영 최후방.
지팡이 든 오크가 보인다.
‘오크 주술사쯤 되려나.’
그사이 또다시 불덩이가 발사됐다.
수호가 재차 장도리를 휘둘러 불덩이를 터트렸다.

Comentários

Postagens mais visitadas deste blog

apocalipse 9

magia 10

magia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