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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는 건 조금 그래서요.”
“어머, 탄탈로스 싫어했어요?”
“아뇨. 그게. 살짝 알레르기? 그런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클라인이 맨 처음에 탄탈로스나 울타르 같이 대중적인 생물을 키우지 않던 이유들 중에 하나가 바로 알레르기였다.
탄탈로스의 정보와 접촉하기만 하면 기묘하게도 자꾸만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덕분에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아, 맞다. 탄탈로스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었죠? 이번에 리퀴드 사에서 신제품을 보내서 알았어요.”
“신제품이요? 무슨 신제품……?”
“리퀴드 사에 말한 거 아니였어요? 클라인 씨하고 합방한다니까 신제품이라며 거부 반응 억제제를 보내주던데.”
“어, 말한 적 없는데요…….”
“그, 그래요?”
잠깐 뻘쭘한 공기가 흐르고, 소행성은 이 공기를 깨고자 웃으며 또 다른 제안을 했다.
“아, 음. 맞다. 이번에 오실 때 잉간이도 데려오시는 게 어때요?”
“잉간이를요?”
“저희 아이들이 클라인 님 영상을 보더니 잉간이에 흥미를 가진 모양이더라고요. 맨날 잉간이 영상만 찾아서 보던데요?”
“잉간이 영상을요?”
“네. 탄탈로스 전용 단말기로 검색해서 보더라고요. 잉간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거 같은데, 괜찮지 않을까요?”
음, 울타르와는 다르게 탄탈로스는 다른 종들에 친화적이기도 하고.
거기에다가 정보량도 사람에 비해 적어서 별다른 적응 훈련 없이도 인간형 생물들도 인식할 수 있으니까…….
저렇게 부탁하는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소행성 님의 말대로 잉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 같으니까.
“아, 이번에 데려오실 때 차원항 전부 데려오시는 게 좋을 거예요. 잘못하면 자기인식에 오류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아, 외우주를 구현해 놓으셨죠?”
“네. 가능하시겠어요?”
“뭐, 그 정도는…….”
잉간이의 룸메이트들이 조금 걸리긴 하는데, 애초에 탄탈로스와 인간형 생물은 싸움이 성립하질 않으니까.
룸메이트들이 과민반응해서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일도 없을 거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클라인과 소행성의 첫 합방이 시작됐다.
155화 [소행성] 성운이와 성단이에게 찾아온 작은 친구!
어항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갑작스러운 일에 놀란 나와 아리스가 마력 수련을 멈추고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다.
이 기묘한 진동의 근원을 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땅에 귀를 대보지만, 기묘하게도 그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진동이 느껴지는데, 땅에서는 그 어떠한 진동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지?
어항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어항 밖에서 벌어지는 일인 걸까?
어항 전체가 통째로 이렇게 흔들릴 만한 일이라면 뭐가 있을까?
“이사?”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클라인이 어항의 위치를 어디론가 옮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그거 말고는 이렇게 어항이 전부 흔들릴만한 일이 생각나지 않는데?
뭐, 바깥에 지진 같은 게 일어난 게 아닌 이상 말이다.
그렇게 바짝 주위를 경계하던 와중, 맨 처음과 마찬가지로 진동은 갑작스럽게 멈췄다.
클라인이 어항의 위치를 다 바꾼 것일까?
하지만 어항을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이렇게 진동이 발생했다고 하면 다시 내려놓을 때도 진동이 느껴져야 하지 않나?
지금은 아직 다른 곳으로 어항을 옮기는 중인 거려나?
그날, 하루 종일 다시 닥쳐올 진동에 대비해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지만, 다시 진동이 발생하진 않았다.
다시 진동이 발생한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이번에는 다 같이 모여서 아침 식사를 하던 와중에 진동이 발생했다.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무언가 부딪히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어항 전체가 들썩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끝난 건가?”
지난번엔 꽤 오랜 시간 진동이 계속됐는데, 이번에는 단번에 끝나고 더 이상의 진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으으, 머리야…….”
아리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내 등에 푹 얼굴을 파묻었다.
슬며시 손을 뻗어 아리스의 머리를 토닥여주며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음, 다시 어항의 가장자리까지 가볼까?
바깥 풍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좀 궁금한데.
좋아, 그럼 오늘은 잠깐 아리스를 쉬게 해줄 겸, 같이 소풍이나 나갈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설거지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낯선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이쪽 아냐?”
“저기잖아. 저기. 영상에 나오던 곳.”
“저쪽이라고?”
“여기 이렇게나 정보가 흩어져 있는데, 이쪽이 주 활동 반경이란 소리지.”
그리고 낯선 목소리를 듣자마자 블랑카와 리키, 심지어 아리스마저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운다.
“잉간. 어떻게 할까?”
아리스는 마치 적장의 목을 베어오기 전에 허가를 받는 관우처럼 내게 속삭였다.
나는 일단 너무 날카로워진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했다.
“일단 좀 진정해. 우리랑 싸울 생각이 없을 수도 있잖아? 그때 그 문어 인간처럼.”
“그래도, 조금은 경계해야 해.”
“너무 긴장했어. 왜 이렇게 날카로워? 전에는 안 그랬잖아?”
“그건…….”
솔직히, 지금 블랑카가 내게 보여주는 모습은 필요 이상으로 과민반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전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지금처럼 날카롭고 민감하게 반응한 적은 없었다.
블랑카뿐만이 아니다.
리키와 아리스마저 블랑카의 기세가 전염된 듯 바짝 긴장한 채로 경계를 하고 있다.
“잉간은 못 느끼는구나?”
“응?”
“잉간도 마력을 느낄 수 있으면, 지금 우리 반응이 괜한 반응이 아니라는 걸 알 거야.”
“마력……?”
마력?
저 목소리의 주인들이 가진 마력이 어마어마해서 다들 지금 이렇게 긴장한 건가?
심지어 아리스마저?
블랑카의 말을 듣고 아까 들려온 목소리를 되짚어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목소리는 분명히 내 집을 멀리서 발견한 듯한 목소리였는데, 마치 옆에서 말을 거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렸다.
머리에 직접 소리를 전달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라?
뭔가 좀 심상치 않은데?
블랑카가 느낀 위기감이 슬며시 내게도 옮아오려던 순간, 또다시 아까의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맞네. 여기네!”
그리고 그와 함께 이번에는 직접 땅바닥을 터벅터벅 밟는 발걸음 소리까지 들려온다.
바로 집 앞까지 도착한 걸까?
곧바로 블랑카는 마력창을 불러내어 곧장 돌격할 준비를 취하고, 리키는 북슬북슬한 손을 커다랗게 거대화시켰다.
아리스는 조용히 마력을 끌어올리고, 모두가 바짝 긴장한 채로 입구를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활 같은 기세를 내뿜는 그녀들의 모습에 나는 저절로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안녕하세요!”
“안뇽하세요!”
벌컥.
단숨에 대문을 열어젖히며 침입한 낯선 불청객의 모습이 내 두 눈에 들어왔다.
마치, 강아지를 연상케 하는 팔랑거리는 귀가 머리에 달린 두 사람이었다.
어딘가 꿈속의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들의 모습.
너무나도 당당한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멍하니 인사를 되돌려줬다.
“어, 안녕하세요?”
그러자 그 둘은 꺄아꺄아 소리 지르며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와, 진짜 잉간이다!”
“대박, 진짜 대박.”
“진짜 엄청 귀엽네. 와……,”
내 이름을 알고 있다고?
도대체 저 두 사람은 누구길래 내 이름을 아는 거지?
그것보다 여기는 왜 온 거야?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나는 꾹 눌러 담으며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불렀다.
“저기…….”
“저거 봐봐. 저거! 제일 처음으로 만들었던 무기잖아!”
“어디? 어디?”
“저기, 벽에.”
“아, 진짜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내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흥분된 기색으로 집 안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언가 자신들만 아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기요?”
“아, 네?”
다시 한번 내가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두 사람을 부르고 나서야 둘은 그제서야 나를 바라봤다.
“두 분은…… 누구시죠?”
“아, 맞다. 죄송해요. 너무 흥분해서 제대로 된 인사도 안 했네요.”
“저는 성운이라 하고요!”
“저는 성단이라고 해요!”
성운, 성단?
저게 두 사람의 이름인 거겠지?
자신을 성운과 성단이라 자칭한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자매인 것마냥 무척 닮아있었다.
“그,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종족을 물어봐도 될까요?”
일단 저 머리에서 흔들리는 귀를 보니 평범한 인간은 아니라는 걸 알겠다.
내 질문을 들은 두 사람은 흔쾌히 내게 자신의 종족을 알려줬다.
“그럼, 당연하지! 우린 탄탈로스라고 해!”
“탄탈로스?”
“응, 탄탈로스!”
탄탈로스?
그런 종족을 들어본 적 있는지 슬쩍 묻기 위해 곁눈질로 블랑카를 바라보지만, 블랑카도 들어본 적이 없는지 고개를 내저었다.
뭐, 자기들이 탄탈로스라고 하니까 탄탈로스겠지.
기초적인 자기소개는 끝마친 거 같고, 슬슬 두 사람의 목적을 물어봐야지.
“음. 그래서 두 분은 여기 왜 오신 건가요?”
“응? 당연히 잉간이, 너 보러 왔지!”
“맞아. 네가 온다고 해서 얼마나 기대했는데!”
“저, 저를요?”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나를?
나를 보러 온 거라고?
왜?
아니, 그보다 나를 어떻게 알고 있던 거야?
“저, 저를 알아요?”
“당연히 알지. 자기 전에 매번 네가 나오는 영상을 보는데!”
“맞아, 맞아.”
내가 나오는 영상?
머리를 굴려봐도 내가 무슨 영상을 촬영한 기억은 없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저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응? 모르는 거야?”
“너, 쥬튜브 인기 스타인데?”
“쥬튜브……?”
쥬튜브?
쥬튜브가 내가 아는 그 쥬튜브가 맞나?
그때, 문득 묘하게 내게 이것저것 시키던 클라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설마, 클라인은 지금까지 내 모습을 촬영해서 쥬튜브에 올리고 있던 걸까?
늘 항상 클라인이 나를 데려온 이유가 궁금했는데, 쥬튜브 영상을 찍기 위해서라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내가 갑작스럽게 쏟아진 새로운 사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두 사람은 또다시 둘이서 기쁜 듯 떠들기 시작했다.
“진짜, 주인 잘 둬서 이렇게 직접 잉간이를 보게 되네.”
“그러니까. 흐흐, 너무 좋다.”
“진짜, 확 데려가고 싶네…….”
두 사람의 중얼거림을 들은 블랑카와 아리스, 리키가 움찔 몸을 굳히며 확 내 몸을 끌어안는다.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는 건 지금까지와 같지만, 더욱 강한 경계심이 새롭게 시선에 추가됐다.
세 사람의 변화를 성운과 성단도 눈치챘는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릴 바라본다.
“그렇게 너무 경계하지 마세요, 잉간이의 룸메이트분들.”
“맞아요, 저희 나쁜 사람 아니에요!”
“루, 룸메이트가 아니다!”
그때, 저 둘이 나타나고 나서 처음으로 블랑카가 입을 열었다.
블랑카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네? 룸메이트가 아니에요?”
“그래, 룸메이트가 아니라…….”
블랑카는 흘깃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붉게 물든 얼굴로 나와 팔짱을 끼며 당당히 선언했다.
“룸메이트가 아니라, 잉간의 반려다!”
“어머머…….”
블랑카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부끄러웠는지 귀까지 완전히 붉게 물들었지만, 그래도 내 팔짱을 놓지 않고 두 사람을 찌릿하고 노려본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마치 주말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마냥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나와 블랑카를 바라본다.
물론, 얼굴이 붉어진 건 블랑카뿐만이 아니라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어색한 공기가 내 숨통을 옥죄이던 그때.
“성운, 성단. 너무 민폐 끼치지 않겠다고 했잖니.”
머릿속에 직접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지?
* * *
“어서 와요. 오느라 힘들지 않았어요?”
“아, 아뇨. 괜찮아요. 이제 그 정도는 가뿐해요!”
“어머, 그거 대단하네요.”
클라인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반겨주는 소행성을 바라보며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소행성은 그런 클라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잉간이 차원항은…… 저기에 놔두시면 돼요. 그냥 놔두시면 탄탈로스들이 알아서 들어갈 거에요.”
“아, 네.”
“아, 들어가기 전에 잠깐.”
소행성은 잉간이의 차원항을 들고 탄탈로스들의 공간으로 향하려는 클라인의 팔목을 붙잡고, 리퀴드 사에서 제공한 거부 반응 억제제를 클라인에게 건넸다.
“이거, 거부 반응 억제제에요.”
“아, 감사합니다.”
“후후. 감사 인사는 나중에 카메라를 보면서 해야죠? 이것도 일단 숙제니까요.”
“아하하…….”
클라인은 멋쩍게 웃으며 소행성이 건넨 억제제를 단숨에 삼켰다.
억제제의 효과 덕분일까?
클라인은 별다른 이상 없이 탄탈로스의 방에 잉간이의 차원항을 가져다 놓을 수 있었다.
클라인이 차원항을 가져다 놓자마자 어디선가 두 마리의 어린 탄탈로스들이 나타나 차원항을 기웃거렸다.
“저 두 아이가…….”
“성운이, 성단이에요. 귀엽죠?”
“귀엽긴 하네요.”
저 풍성한 갈기가 볼 때마다 참 쓰다듬고 싶게 생겼다니까.
물론, 쓰다듬는 순간 지옥의 고통을 맛보게 되겠지만 말이다.
클라인이 두 탄탈로스를 지켜보는 와중, 두 아이는 서로 뭔가 대화를 나누더니 자신의 외부 정보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두 탄탈로스는 마치 인간형 생물과 같은 외부 정보를 뒤집어썼다.
“저건…….”
“잉간이하고 친해지려고 저런 모습을 택한 거예요. 어젯밤까지 계속 외부 정보를 수정하고 있더라고요.”
“진짜 잉간이를 좋아하나 보네요…….”
“저도 그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 그냥 가볍게 틀어봤는데, 클라인 씨의 편집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후훗,”
음, 저 두 아이가 내 영상을 좋아한다는 뭔가 묘한 기분이 드네.
길거리를 편하게 걷다가 갑자기 싸인 요청을 받은 기분?
아직 길거리를 편하게 걸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클라인과 소행성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두 탄탈로스는 차원항 안으로 들어갔고, 곧바로 잉간이를 찾아냈다.
클라인은 혹시나 잉간이가 다치지 않을까 조심해서 그 광경을 지켜봤고, 별다른 문제 없이 서로 교류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둘이 서로 잘 노는 것 같으니, 이제 슬슬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아, 네.”
클라인은 그대로 잉간이를 탄탈로스들에게 맡겨두고 소행성의 뒤를 따라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는 미리 카메라 세팅이 완벽하게 되어있어서 마치 방송국 스튜디오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 그럼 수업을 하기 전에 먼저 간단한 테스트를 볼 거에요.”
“시험이요? 무슨 시험인가요?”
“그냥, 클라인 씨의 요리 실력이 어떤지 알아보는 거니 걱정하지 말아요. 아주 기초적인 것들이니까요.”
“아, 네.”
“그럼. 제일 먼저 칼을 잡아보실래요?”
“넵!”
클라인은 소행성이 시키는 대로 조심스럽게 칼을 잡았다.
클라인이 칼을 잡은 모습을 본 소행성은 클라인에게 도마와 호리를 내밀며 또 하나를 부탁했다.
“그럼, 이제 이 호리를 잘라보시겠어요?”
“네!”
클라인은 긴장된 표정으로 소행성의 지시에 따라 호리를 칼로 썰기 시작했다.
막히는 곳 없이 클라인은 단숨에 호리를 다 썰어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행성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음, 그럼 이번엔…….”
그 뒤로 계속해서 클라인에게 여러 가지를 시키던 소행성은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요리를 못하는 게 아닌데요? 기초가 아주 탄탄한데…….”
“그, 그래요?”
“클라인 씨, 클라인 씨가 느끼는 문제가 뭐라고 했죠?”
“왠지 몰라도 완성한 요리에서 자꾸 쓴맛이 느껴져서…….”
“쓴맛…….”
소행성은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슬쩍 카메라로 다가가 카메라의 전원을 껐다.
소행성의 행동에 클라인이 의아해하는 사이, 소행성은 한숨을 내쉬며 클라인에게 말했다.
“대충 뭐가 문제인지 알겠네요.”
“저, 정말로요? 해결할 수 있나요?”
“가능은 해요.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문제요?”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내 요리 실력이 그 정도로 파멸적인 건가?
클라인은 잠시 그렇게 의문을 품었지만, 이어진 소행성의 말은 클라인의 예상외의 것이었다.
“클라인 씨. 지금부터 살짝 민감한 이야기를 물어봐도 괜찮나요?”
“민감한…… 이야기요?”
민감한 이야기라니, 뭘 물어볼 생각이지?
156화 [소행성] 은하와 작은 친구는 서로 친해질 수 있을까요?
“성운, 성단. 너무 민폐 끼치지 말라고 했잖니.”
또다시 머릿속에 낯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성운과 성단의 입이 닫힌다.
그리고는 마치 잘못한 걸 들킨 아이들처럼 허공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어, 그게. 민폐 안 끼쳤어요!”
“마, 맞아요! 그냥, 그냥 인사했을 뿐이에요!”
성운과 성단이 변명을 끝마치자, 머릿속의 목소리가 한숨을 푹 내쉬며 성운과 성단을 타박했다.
“잉간 씨를 놀라지 않는 데만 신경 쓰느라 다른 분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잖니. 그렇게 진한 마력을 풀풀 풍기고 다니면 요정들도 놀란단다?”
“네? 아, 아!”
세 사람이 지금처럼 바짝 긴장한 건 역시 저 두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마력 때문이었던 걸까?
정체불명의 목소리에게 그 사실을 지적받고 나서야 두 사람은 그걸 깨달았는지 탄식을 흘렸다.
“아, 죄송합니다!”
성운이 꾸벅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과 동시에, 블랑카와 아리스의 표정에서 차츰차츰 긴장이 풀려간다.다만 여전히 리키는 바짝 얼어붙었지만 말이다.
마력의 압박을 받지 않게 되어 숨통이 트인 걸까?
아리스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성운과 성단에게 말했다.
“그래서, 잉간한테 뭘 원하는 거야?”
“네? 아무것도 없는데요?”
“진짜로 그냥 직접 보고 싶어서 왔을 뿐이에요!”
“거짓말 같은데…….”
아리스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의심스러운 눈치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헤실헤실 웃을 뿐이었다.
“진짜 그거밖에 없는데…….”
“응, 진짜로.”
그때, 나는 조심스럽게 두 사람에게 내가 나온다는 영상에 대해서 물어봤다.
“저기, 혹시 내가 나온다는 그 영상이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알려줄 수 있어?”
“응? 별거 없는데? 그냥 네가 사냥하고, 도구 만들고, 차원항에 적응하고…….”
“그냥 일상 브이 로그 느낌?”
중간의 차원항이라는 단어는 어항을 대신하는 말인 걸까?
하긴, 물고기를 키우는 곳도 아닌데 어항이라고 부르진 않겠지.
그나저나 내가 사냥하는 모습이라면, 설마 처음부터 날 찍고 있었다는 건가?
“그리고 음, 외부 활동하고, 요리도 보여주고, 번식 활동도.”
“번식……활동?”
“매일 밤 하는 거 있잖아. 그거.”
“읏…….”
잠깐, 설마 밤의 일도 전부 다 녹화되고 있던 거야?
그렇다면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는 거네?
순식간에 수치심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며 얼굴이 붉어지고, 두 사람도 내 변화를 눈치챈 듯 보인다.
“어, 그러니까. 자주 나온 건 아냐! 가끔씩 한 번나오는 정도?”
“맞아. 번식 활동은 이상한 게 아니니까, 다들 신경도 안 쓸걸? 우, 우리도 번식 활동은 하는걸?”
“그리고. 어…… 그렇게 부끄러워할 정도의 모습은 나온 적이 없어! 모든 내용이 다 나오는 게 아니라 적당히 편집돼서…….”
“알겠으니까 그만…….”
나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폭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붉게 물든 내 얼굴이 그나마 진정되기까진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미안. 번식 활동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줄은 몰라서.”
“응. 그냥 유희로 즐기는 것 같아서…….”
“아, 알겠으니. 이 이야기는 그만……!”
성운과 성단의 말투에서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 느껴지기에 나는 서둘러 이 이야기를 끝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나긋하게 나를 불렀다.
“잉간 씨?”
“네?”
“우리 애들이 민폐를 끼쳐서 미안해. 정말, 조금 있다가 가라고 해도 말을 듣지를 않으니까…….”
“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다니 다행이네. 사과의 의미로, 이번엔 역으로 제가 초대해도 괜찮겠니?”
“초대요?”
“지금 네 차원항이 있는 곳은 나의 보금자리거든.”
그래, 역시나 클라인이 어항, 그러니까 차원항의 위치를 옮긴 거였네.
음, 바깥이 어떤지 궁금하긴 했는데, 저렇게 말하는데 초대를 받아들여 볼까?
클라인과 연관된 사람들인 이상 위험한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
그렇지만 블랑카나 리키가 조금 걱정인데, 리키와 블랑카는 그냥 놔두고 가야 하려나?
내가 잠시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그 텀을 망설임이라 생각했는지 목소리가 내게 솔깃한 이야기를 건네왔다.
“내 생각엔, 네가 나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을 거 같거든.”
“제가요?”
“주인들에 대한 것, 궁금하지 않니?”
궁금하다.
매우.
하지만, 조금 두렵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저들은 개미 따위가 자신을 험담했다고 저주를 내리는 신이 아니니까.”
과연 내가 이 목소리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저 이야기를 들어도 될까?
무언가 클라인의 동족들은 자신에 대해서 알려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던데.
갑자기 원래 살던 곳으로 끌려가던 문어 인간과 주인 녀석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도 주인의 정체를 알지 못하던 그 짜증 나는 남자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래도 알고 싶으니까.
클라인에 대한 건 뭐든 말이다.
“알겠어요. 그럼, 어디로 가면 되죠?”
“성단이와 성운이가 안내해줄 거야. 그치, 애들아?”
“네! 네!”
“그럼요!”
그렇게 정체불명의 목소리에 방문한다는 계획이 세워지고, 나는 슬며시 세 사람을 바라봤다.
“혹시, 집에 남고 싶은 사람 있어?”
“난 괜찮아!”
제일 먼저 아리스가 번쩍 날개를 들어 올려서 괜찮음을 어필하고, 블랑카가 이어서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혼자는 위험하니까, 나도 갈게.”
그리고 리키는, 울먹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 나는 안 가면 안 돼……?”
“괜찮겠어? 꽤 오래 혼자 있을 수도 있는데.”
“괘, 괜찮아. 응. 아니, 안 괜찮을 수도 있어…….”
나와 떨어지기 싫은 마음과 성운과 성단과 함께 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충돌하며 리키가 울상을 짓는다.
“적어도 뭔가 잉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걸 주면 괜찮을 거 같기도 한데…….”
“내 흔적?”
“응. 냄새라던가, 뭐 그런 거…….”
리키는 슬며시 내게서 시선을 돌리며 내가 없는 동안 나 대신 사용할 대체품을 요구한다.
으음, 별로 좋은 행동은 아닌 것 같지만, 얼마나 혼자 있을지 모르니 리키의 말을 들어주는 게 좋겠지?
맨 처음 아리스를 데려왔을 때의 블랑카의 모습을 리키에게서 다시 보고 싶은 게 아니면 말이다.
“응. 좋아.”
“지, 진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리키는 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반색하며 스르륵 내 곁으로 다가온다.
“리키? 뭘 하려고…….”
“그럼, 냄새 잘 받아갈게.”
냄새를 받아간다니?
내가 순간적으로 리키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한 순간, 리키의 입술이 내 목덜미에 달라붙는다.
그리고는 마치 피를 흡혈하듯 무언가를 내 몸에서 빨아들이는데, 리키가 다시 입을 때어놓자 희뿌연 연기 같은 것이 뭉쳐서 구슬 모양으로 뒤바뀐다.
“헤헤, 고마워.”
“어, 어.”
냄새를 받아간다는 게 진짜 말 그대로일 줄은 몰랐는데.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약간 뾰로통해 보이는 두 사람과 함께 성운과 성단이에게 걸어갔다.
성운과 성단은 방금의 일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흐뭇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싱긋 외쳤다.
“그럼, 잘 따라와!”
“우리 곁에서 떨어지면 안 돼. 알겠지? 위험할 수도 있어.”
위험할 수도 있다니?
바깥의 풍경이 도대체 어떻길래?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성운과 성단이 열어낸 게이트 안으로 둘을 따라 들어갔고, 빽빽이 늘어선 정보들에 순간 숨을 멈췄다.
“이건…….”
“외우주를 주인님들이 인공적으로 재현한 거야. 우리는 원래 외우주에서 살았거든.”
외우주라.
은하 밖의, 은하와 은하 사이의 공간을 말하는 건가?
온 세상에 가득 찬 정보들은 그대로 우리에게 덮쳐들 것 같았지만, 두 쌍둥이는 능숙하게 주위의 정보들을 조작해 밀집된 정보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는 사이에 블랑카와 아리스가 내 뒤를 따라 차원문을 빠져나오고, 블랑카는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이건…….”
“왜 그래, 블랑카?”
“그때와 비슷한 풍경이네…….”
그때 그곳이라면, 그리고 블랑카가 저런 반응을 보일 풍경이라면.
맨 처음 블랑카가 조난 당해서 클라인에게 주워질 때의 일을 말하는 건가?
상당히 안색이 좋지 않은 블랑카를 걱정하며 나는 슬쩍 블랑카에게 말했다.
“아리스도 있으니 괜찮을 거야. 정 힘들면 그냥…….”
“아니. 그냥 좀 놀랐을 뿐이야. 이젠 괜찮아.”
블랑카는 그렇게 말하며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그래?”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블랑카와 손을 맞잡은 채로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잉간한테는 여기가 어떻게 보여?”
“어, 그냥 온갖 정보들로 가득 찬 공간으로 보이는데요?”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래. 조금만 더 익숙해지면 이곳의 본모습이 보일 거야!”
“맞아. 원래 모습이 얼마나 괜찮은데.”
솔직히 이 정도로 정보를 인식하게 되기까지 생고생을 엄청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보다 더 익숙해지려면 진짜 머리가 터질 지경이겠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저 멀리 서서히 정보들이 옅어지는 구역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평온하게 눈을 감고 바닥에 드러누운 한 생명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성운과 성단의 머리에 달린 것과 비슷한 귀를 가지고 있고, 마치 사자의 갈기를 가진 늑대 비슷한 외형의 거대한 생물체.
이것이 아마도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지던 목소리의 주인.
“만나서 반갑네요. 은하라고 합니다. 잉간 씨.”
자신을 은하라고 소개한 거대한 생명은 눈을 뜨고 싱긋 웃어 보이며 몸을 일으켰다.
“아이들이 도대체 왜 그렇게 잉간 씨를 좋아하나 했는데, 직접 보니 알겠네. 정말, 정말 귀엽네요.”
“감사……합니다?”
칭찬이라고 한 말인 것 같은데, 귀엽다는 소리를 들으니 뭔가 기분이 묘하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은하의 몸을 살피고 있자, 은하가 무언가를 느낀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흐음…….”
“왜, 왜 그러시죠?”
“조금 놀라서. 그 정도로 자기 관측이 확실할 줄은 몰랐거든. 덕분에 나도 살짝 영향을 받은 모양이네.”
“영향이요?”
“네게 가장 익숙한 외형으로 내 외부 정보가 가공됐다는 말이란다.”
가장 익숙한 외형으로 외부 정보가 뭐?
내가 은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은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렴.”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들어도 참 신경 쓰이는 말이었는데.
아무튼, 이렇게 나를 초대했다는 건 나와 잔뜩 이야기를 나눌 생각인 거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슬며시 은하에게 아까 말했던 것에 대해서 물어보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은하가 외쳤다.
“성단, 성운? 두 분을 잘 대접하고 있으렴. 나는 잠깐 잉간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올게.”
“에, 그치만…….”
“우리가 초대한 손님이니, 제대로 대접해야지?”
성운과 성단은 계속해서 나와 은하 옆에 있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은하의 말을 듣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블랑카와 아리스에게 다가갔다.
“조금만 있어 봐. 먹을 것 좀 가져올게!”
“……네.”
아리스와 블랑카는 그런 성운과 성단의 말에 쥐어짜듯 목소리를 냈을 뿐이었다.
둘 다 상태가 왜 저래?
그런 내 의문을 풀어준 건 은하의 설명이었다.
“아무래도 내 나이가 나이인지라 최대한 억제해도 자꾸만 마력이 세어나간단 말이지. 내 옆에 있으면 두 사람만 불편할 것 같으니, 이야기는 단둘, 아니, 세 명이서 할까?”
거대한 늑대는 그렇게 말하며 뚱한 표정으로 내 옆에서 은하를 바라보는 에포나를 직시했다.
나는 그런 은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신호 삼은 듯 주위의 공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정보들이 순식간에 가공되어 고풍스러운 중세 분위기의 응접실이 생겨나고, 그대로 나와 은하만이 응접실 안에 남아 있게 되었다.
“정보가 이렇게 풍부하다면, 정보를 가공할 줄 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란다.”
“그, 그렇군요.”
나는 살짝 움츠러든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고, 은하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웃으며 내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잉간. 너는 주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니?”
“네?”
“신, 주인, 거인, 납치범. 온갖 이름으로 불리는 그들 말이야.”
이거 어째,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157화 [소행성] 클라인과 함께하는 요리시간!
“신, 주인, 거인, 납치범. 온갖 이름으로 불리는 그들 말이에요.”
은하가 내게 던진 질문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주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냐니, 이건 무슨 의도야?
나는 도저히 질문의 의도를 알아챌 수 없어서 눈살을 찌푸리며 은하의 얼굴을 바라봤지만, 늑대를 닮은 은하의 얼굴에선 표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이거, 무슨 사상 검증 같은 건 아니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은하는 풋 하고 웃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걱정하지 말렴. 말했잖니? 저들은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뭐, 하긴.
이 세상 어느 미치광이가 개미들이 대화하는 걸 감시하고 있겠어?
개미들이 인류 정복을 논한다고 해도 피식 웃어넘기겠지.
“뭐, 별생각 없는데요. 솔직히 클라인 말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별로 없어서.”
“개인에 대한 감상 말고, 내가 원하는 건 네가 저 ‘주인’이란 종족 자체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란다.”
“주인이란 종족 자체?”
그러니까 지금 은하가 내게 묻는 것은 클라인의 종족을 어찌 생각하는지 묻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그냥. 저랑 별반 다를 거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같은 사람?”
“뭐, 사람 사는 곳은 다 같다는 말이 있잖아요? 뭐, 단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그 정도?”
클라인을 보며 혼자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지만, 나와 클라인이 다른 건 단지 신체적 차이와 가지고 있는 기술력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봐온 대부분의 다른 인간들은 클라인과 비슷한 사람들을 신이라고 여기며 숭배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조금만 저들의 생활을 추측해봐도, 지구에 있을 때 내 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늘에서 먹을 걸 내리게 하고, 죽은 자를 살려내는 기적을 보인다 해도 저들은 그저 사람일 뿐이다.
성경에서 그렇게 말했거든.
뭐, 이건 농담이지만.
내 대답을 들은 은하는 입가에 미소를 감돌게 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저들을 신이라니, 섭리를 벗어난 존재라니,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결국 저 사람들은 우리랑 다를 게 없는 사람일 뿐이야.”
“그래요?”
“그래. 그나저나 넌 참 특이하구나. 독특한 주인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걸까?”
“특이하다뇨?”
내가 특이하다고?
방금 내 대답에 뭐 특이한 게 있었나?
그냥 평범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주인을 위대한 존재로 생각하거든. 같은 사람인데도 같은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싫어서 그런 건지, 그냥 생각을 포기한 건지.”
어째 내가 같은 사람의 아래에 있는 걸 별반 개의치 않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은하를 바라보며 슬쩍 역공을 가해봤다.
“그건, 당신도 그런 거 아닌가요?”
“하긴, 그렇긴 하네. 어쩌면 그게 당연할지도. 나는 스스로 아래로 내려오는 걸 선택했으니 말이야.”
“……네?”
아래로 내려오는 걸 선택했다니, 그건 마치 자신이 한때 저 위에 올라가 있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은하는 그런 내 의문을 당연히 예측했었는지 내가 질문을 던지기 전에 먼저 대답을 해왔다.
“저들은 너와 나를 동등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지. 그렇지만 한때는 나도 저들과 동등하게 취급받던 때가 있었단다.”
“잠깐, 잠시만요. 그 소리는 설마…….”
“그래. 탄탈로스는 한때 저들과 같은 사람이었단다.”
“네?”
지금, 이곳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은하가.
나와 같은 곳에 서 있는 탄탈로스들이, 한때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째서 지금은 저 사람들이 탄탈로스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걸까?
한 번 사람으로 인정했던 것을 사람이 아니라 부정하는 건,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닌가?
분명 거짓말이다.
나를 놀리기 위한 농담이다.
하지만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은하의 눈에선 거짓이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으며 은하에게 질문했다.
“그게,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지금은 어째서, 이렇게…….”
“어째서일 것 같니? 우리가 어째서 사람에서 실격했는지 알겠니?”
그렇지만 은하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짓궂게 문제를 낼 뿐이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옆에서 같이 살기로 한 이웃을, 다음 날 아침 식사로 먹기로 한 이유가 무엇일까?
탄탈로스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게 효율적이니까?
그럴 리가.
저들이 사람이라면, 기계가 아니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 이유를 나는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대로 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첫 만남부터 사이가 틀어진 것이 아니라면, 사이가 좋던 이웃을 이웃이라 여기지 않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저들이 나처럼 웃고 슬퍼하고 화내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가 저들을 사랑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저들과 함께 행복과 슬픔을 나누던 시간과 기억이 존재했다.
한때는 서로 싸우고, 한때는 서로 화해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서로가 서로를 사람이라 인정했을 건데,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건데.
어째서 모두가 그 사실을 잊고 저들이 사람이라는 걸 부정하길 선택했을까?
나는 도저히 그 이유를 생각해낼 수 없었다.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다.
그나마 내가 짜낼 수 있던 대답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전쟁이 벌어져서,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래.
인간이 다른 인간을 노예로 삼던 시절, 인간들은 적어도 최소한 마음 한구석에선 노예들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두가 노예제를 폐지하는 것에 찬성할 리 없으니까.
은하가 말하는 건, 그리고 지금 은하의 처지는 그때의 노예와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단순히 1등 시민에서 2등 시민으로 떨어졌다는 뜻이겠지.
설마 정말로 다른 사람을 가축과 동급으로 취급하기로 모두가 결정했을 리 없잖아?
하지만, 내 대답을 들은 은하는 짓궂게 웃으며 내 대답을 부정했다.
“큭큭, 그런 게 아니란다. 우리는 저들과 싸운 적이 없어. 그저, 데면데면한 이웃으로 지냈을 뿐이지.”
“그럼 어째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사람이길 포기했단다.”
“……네?”
자발적으로 사람이기를 포기했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는 분명 은하가 농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은하는 농담이 아니라는 것에 확언을 내리듯 다시 한번 선언했다.
“우리는 스스로 가축이 되길 자청했단다.”
탄탈로스는 스스로 가축이 되었다고.
* * *
“조금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어요, 클라인 씨. 만약 대답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돼요.”
“아, 네에…….”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고 이렇게나 뜸을 들이는 걸까?
클라인은 의아함을 느끼며 가만히 소행성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클라인 씨, 혹시 요리에 관한 트라우마가 있지 않나요?”
“요리에 관한 트라우마요? 그런 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클라인은 순간적으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악성 정보를 눌러 담느라 입을 다물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행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클라인 씨. 아니, 클라인. 네가 가진 문제는 기술이 아니야. 너도 이젠 짐작하고 있겠지만, 네가 몸 안에 축적한 악성 정보들이 네가 정보를 가공할 때마다 조금씩 스며 나오는 거야. 요리는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받으니까.”
“죄송……해요.”
“네가 뭐가 죄송해? 미안한 건 나지. 괜히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소행성은 조심스럽게 클라인과의 거리를 좁히고, 클라인을 꼭 껴안고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그치?”
“……네.”
그리고 클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그래,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거야. 응.”
“우으, 윽…….”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듯, 클라인은 실제로 얼마 보지도 않은 사람인 소행성에게 얼굴을 파묻고 조용히 잘 묶어놨던 슬픔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소행성은 가만히 클라인은 토닥이며 그녀의 슬픔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렇게 클라인이 쏟아내던 슬픔을 간신히 수습하고, 클라인은 붉게 물든 얼굴로 소행성에게서 떨어졌다.
“죄, 죄송해요.”
“자꾸 죄송하다고 하지 말렴. 네가 죄송할 건 단 하나도 없으니까.”
그렇게 말은 해도 클라인은 주체할 수 없이 솟아오르는 부끄러움을 멈출 수 없었고, 소행성은 그런 클라인의 모습을 귀엽다는 듯 바라봤다.
“자, 그래서 말인데. 클라인은 잉간이에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고 싶은 거잖아?”
“네, 네…….”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네 악성 정보가 만들어내는 쓴맛을 요리의 일부로 만드는 거야.”
“쓴맛을 요리의 일부로 삼는다고요?”
“그래. 악성 정보가 주는 독특한 쓴맛을 좋아해서 그런 음식만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거든. 뭐, 이건 네가 노력할 건 거의 없어. 그냥 레시피대로 만들면 되는 거거든.”
“네…….”
“그리고 남은 하나는, 네가 직접 노력해서 쓴맛을 제어하는 거야.”
“어, 어떻게요?”
쓴맛을 제어하다니, 어떻게?
그렇게 꾹꾹 눌러 담아도 자꾸만 쓴맛이 배어 나오는데.
“간단해. 쓴맛이 문제라면, 쓴맛이 잊힐 정도로 다른 맛을 들이부으면 되잖아?”
“네?”
“내가 전에 말했지? 요리는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반영한다고.”
“네, 그렇죠…….”
“지금 네 경우에는, 워낙 악성 정보가 네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의도치 않더라도 쓴맛이 더해지는 경우야.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다른 맛을 더하는 거지.”
“그, 그래도 쓴맛이 나는 건 같지 않나요?”
“전체적인 비중에서 악성 정보가 차지하는 비율을 줄이면 되지.”
“네?”
“지금 네 요리는 쓴맛이 100%로 채워져 있지만, 쓴맛이 한 번에 추가되는 양에는 한계가 있잖아?”
“그…… 렇죠. 최대한 억누르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다른 감정들을 끌어내서 쓴맛의 비중을 점점 줄이는 거야. 나쁜 기억만 끌어낸다면 늘 쓴맛만 나겠지만 행복한 기억을 계속해서 추가한다면 쓴맛이 나도 단맛이 쓴맛을 밀어내지 않겠어?”
“그런……가요?”
강한 쓴맛이 다른 맛까지 전부 망쳐버리는 게 아닐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소행성은 방긋 웃으며 클라인의 등을 툭 두드렸다.
“실패해도 괜찮잖아? 기회는 한 번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계획도 있는데 뭘 그리 겁내?”
“아하하…… 그렇네요.”
“일단, 먼저 물어보겠는데 정보 가공에 관련된 자격증은 가지고 있니?”
“아뇨. 그런 건…….”
“없니? 음, 그럼 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겠네. 뭐, 괜찮아. 언니가 자세하게 알려줄게.”
“네, 네.”
소행성은 은근슬쩍 자신을 언니라 부르며 클라인에게 정보를 가공할 때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법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호의를 담아서 요리를 시작해볼까?”
“네, 네!”
그래.
늘 그렇듯, 호의를 담아서.
158화 [소행성] 너 사실 탄탈로스 아니고 사람이지?
“스스로 가축이 되길 자청했다뇨……?”
그게 무슨 소리일까?
스스로 가축이 되길 자청했다니, 그게 말이 되는 걸까?
도대체 그 어떠한 사람이 스스로 사람이길 포기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래,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은하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고, 은하 또한 내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보 생명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알고 있니?”
“어…… 정확하게는 몰라도 어느 정도는요?”
반려넷에서 몇 번인가 주인 녀석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는 걸 본 적도 있고, 직접 몸으로 만나보며 겪은 경험으로 대략 정보 생명체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자 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렇다면 설명이 쉽겠구나. 너도 알다시피, 네 주인은 정보 생명체라고 불리는 분류란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고, 네 그 기묘한 친구 또한 마찬가지지.”
은하는 그리 말하며 내 다리 위에 자리 잡은 에포나를 정확히 가리켰다.
은하의 시선을 받은 에포나는 뚱한 표정으로 은하를 역으로 바라봤다.
“자, 그럼 말이야. 정보 생명체들의 공통된 특징은 뭐가 있는지 알고 있니?”
“공통점이요? 뭐, 이름에 정보가 들어가니만큼 생활하는데 정보가 필요한 거 아니에요?”
그놈의 정보가 무엇인진 아직 정확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상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게 정보 아니야?
“그래, 그렇지. 정보 생명체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건 바로 정보야. 그렇다고 아무 정보에서나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란다. 물질 생물체의 살아 있는 정보로만 살아갈 수 있는 생명도 있고, 역으로 생물체의 정보가 독이 되는 생명들도 있지.”
“그래요?”
“그렇다면, 이번엔 정보 생명체들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겠니?”
“정보 생명체들의 약점……?”
나는 방금 은하가 이야기한 정보 생명체의 특징을 가만히 머릿속에 떠올린다.
특정한 정보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면, 그 특정한 정보가 사라진다면 정보 생명체도 죽는다는 건가?
“환경의 변화?”
“그래. 정답이란다.”
나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내가 추측해낸 정답을 말했고, 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답 선언을 했다.
하지만 환경의 변화가 정보 생명체의 약점이라고 하는 건 이상한데?
“그치만 그건 대부분의 생명체가 그렇잖아요? 살던 환경이 바뀐다고 잘 적응할 수 있는 생명체가 어디 있다고.”
“큭큭, 그렇긴 하지. 그렇다면, 네게 또 다른 질문을 해볼까? 정보 생명체를 죽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뭐, 정보 생명체니까 몸을 이루는 정보를 삭제하면 죽는 게 아니에요?”
“그래. 그게 맞지. 하지만 잘 생각해 보렴. 과연 정보 생명체의 모든 정보를 삭제할 수 있을까?”
“네? 그게 무슨 소리죠?”
“너에게 만약 정보를 가공하는 능력이 있고, 네가 내 정보를 지우려 한다고 생각해보렴. 자, 네가 완벽하게 내 몸을 구성하는 모든 정보를 지웠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되면 과연 나의 정보는 모두 사라진 걸까?”
“은하의 모든 정보를 지우면, 은하가 사라진 게 맞죠.”
이 사람은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정보를 지우면 지워지는 거지, 뭐 더 무언가가 있는 거야?
“좀 더 생각해볼까? 네가 지운 건 내 몸을 구성하는 모든 정보, 맞지?”
“그렇죠.”
“그렇다면 말이야. 내가 너에게 삭제되기 전에 가공한 정보는 어떻게 되는 걸까?”
“네?”
“내가 다른 생물들과 물체들과 접촉하며 정보를 가공하며 남긴 흔적들 말이야. 너희들의 말로 하자면, 기억 말이란다.”
“그건, 은하의 정보가 아니지 않나요? 그러니까 제가 삭제한 범주 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겠죠.”
“그래. 그렇지. 그렇지만 말이야, 그 기억에는 은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지 않겠니? 네 말대로 나의 정보만을 삭제한 것이니 말이야.”
“그렇……죠?”
“그렇다면 그 기억을 통해서 은하의 정보는 살아남았구나.”
“그건, 아니죠. 모래에 남은 발자국을 본다고 그곳에 발이 생겨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 물질 정보는 그렇겠지. 네가 그 정보들을 삭제했다는 정보가 주위의 기억에 새겨질 테니 말이야.”
“그럼…….”
“하지만, 물질 정보가 아닌 다른 정보라면 어떨까?”
“물질 정보가 아닌 정보?”
“너희가 영혼, 정신, 의식, 자아라고 부르는 것 말이란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핵심 정보 말이지. 모두가 이것이 은하의 정보임을 알고, 아무 정보도 없는 사람이 받아들이면 은하란 것이 무엇인가 알게 되는 정보 말이야.”
“그 정보 또한 제가 삭제했잖아요?”
“다른 사람의 기억 속의 정보들은 삭제하지 않았잖니?”
“어…… 하지만 그 정보가 삭제됐다는 정보 또한 남는다면서요?”
“그 정보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핵심 정보의 주인이 여전히 있다고 인식하고 있을 텐데?”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바뀐단다. 작은 아이야.”
단호한 은하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입을 벌릴 뿐이었다.
은하는 이어서 아이에게 상식을 가르치는 것처럼 차분히 내게 말했다.
“너 또한 알고 있잖니? 네가 그렇게 인식한다면, 그렇게 정보가 수정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살면서 너의 핵심 정보를 기억시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거라 생각하니? 내가 너의 기록을 세긴 정보들이 사람에게만 남아 있을까? 네가 그동안 지나쳐온 발자취는 모래사장에 수없이 남아 있단다.”
“그렇지만, 분명히 제가 정보를 지운 거잖아요?”
“그래. 네가 한 짓은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던 사람을 네 손으로 죽인 거란다. 그렇다면 저 뒤에서 그 발자취를 따라오던 사람이 바로 그 사실을 알까?”
“그건…….”
“발자취의 끝까지 따라오기 전까진 그 사람들은 발자국의 끝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겠지. 직접 눈으로 시체를 발견한다면 그 누군가가 죽었다는 걸 깨닫겠지만, 그 시체는 네가 전부 없애버렸잖니?”
“그렇……죠. 하지만, 발자국의 끝에 아무도 없다면 발자국의 주인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아니지. 발자국의 주인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겠지. 그들은 발자국의 주인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정보를 얻지 못했으니 말이야. 아직 자신이 그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 생각하겠지.”
“그래도 제가 정보를 삭제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요!”
“사실은 언제나 바뀐단다. 네가 그 정보를 삭제했다는 정보를 아는 건 너 혼자지만, 그 정보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겠니? 너 혼자서 정보를 바꾸려는 힘과 모두가 그 정보를 유지하려는 힘. 둘 중 뭐가 더 강할까?”
당연히 후자다.
단순한 숫자 계산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은하의 주장을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왜 한 거예요?”
결국, 나는 더 은하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뾰로통한 표정으로 은하의 얼굴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그러자 은하는 이제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는 듯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즉, 정보 생명체를 죽이려면 그 정보 생명체의 핵심 정보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삭제해야 한단다. 자, 여기까진 이해하겠니?”
“네, 뭐.”
“그리고 아까, 정보 생명체는 특정한 정보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고 했지?”
“그렇죠.”
“그 특정 정보란, 정보 생명체의 핵심 정보를 구성하는 정보들이란다. 그런데 말이야, 아까 말했던 이야기는 핵심 정보에도 적용된단다.”
“네?”
“모두가 네가 남긴 발자국을 보고 다 같은 걸 떠올리진 않을 것 아니니?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네가 가진 핵심 정보는 너도 모르는 사이 차츰차츰 수정되겠지. 우리는 그걸 정보 오염이라고 표현한단다. 뭐, 이건 꼭 핵심 정보뿐만이 아니라 외부 정보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말이지.”
“그, 그렇군요.”
“그리고 핵심 정보가 수정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너도 모르는 사이에 너의 이름이 바뀌고, 너의 기억이 뒤바뀌는 거란다. 그렇다면 최초로 발자국을 남겼던 너는 어디로 사라질까?”
“……글쎄요.”
“수많은 정보 오염이 뒤섞이고, 뒤섞여서 맨 처음의 네 정보와의 마지막 공통점까지 사라진다면. 모두가 알고 있던 너와 그렇게 뒤바뀐 네가 같을까?”
분명, 다를 것이다.
더 이상 그것을 처음의 자신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의 자신이 존재한다는 건 단순한 착각일지도.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는 ‘너’의 핵심 정보잖니? 그런데 더 이상 ‘너’의 정보는 남아 있지 않아. 그렇게 되면 어찌 되겠니?”
“사라지겠죠. 아마.”
“그래. 한때 핵심 정보였던 것은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잡다한 정보가 되겠지. 그리고 정보 생명체들은 그걸 막기 위해서 자신의 핵심 정보를 이루는 정보들을 섭취해서 수리한단다. 그게 바로 정보 생명체들의 식사지.”
“그럼, 아까 말했던 특정 정보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정보 생명체들은…….”
“그래. 자신의 핵심 정보가 포함되어있는 정보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거란다.”
가만히 내 목에 달라붙은 에포나의 꼬리 촉수를 어루만지며 나는 푹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이게 당신들이 가축이 된 거하고 무슨 상관이 있죠?”
“거의 다 끝났단다. 조금만 참으렴. 그렇다면 말이야, 작은 아이야. 자신의 핵심 정보를 담은 물체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정보 생명체는 그 어떠한 공격을 받아도 살 수 있지 않겠니?”
“뭐, 말한 대로라면요.”
“그렇다면 충분히 일정 이상으로 문명을 발달시킨 정보 생명체들도 그런 생각을 했겠지. 응, 그랬단다. 가장 먼저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 저들, 주인들이었어.”
“그래서 뭐, 그 시스템에 참여하고 싶어서 가축이 됐다. 이거에요?”
“비슷해. 자, 마지막 답안을 보기 전에 조금만 더 알아야 할 배경 지식이 있단다.”
“네…….”
진짜, 도대체 언제까지 설명만 할 생각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찌릿하고 은하를 바라봤고, 은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마력망이란다. 뭐, 꼭 그것만을 위해서 탄생한 게 아니지만 말이지.”
“마력망……?”
“우리 탄탈로스 또한 그 마력망의 탄생에 일조했고, 수많은 정보 생명체들의 지혜가 한데 뭉쳐서 탄생한 기적의 산물이란다. 그게 있다면, 앞서 말한 모든 약점이 해결됐어. 온 세상에 마력이 넘쳐나던 시기엔 아무 문제도 없었지.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생활했어.”
그런데 어째서 지금, 탄탈로스는 가축이 된 걸까?
어째서?
“사고가 벌어졌단다. 아니, 사고가 아니지. 재해야. 우리는 가히 모든 게 가능했지만, 모든 걸 다 이뤄낼 수는 없었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거대한 폭발이 덮쳐왔어.”
“폭발이요?”“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 너머. 마력망이 뻗어있던 곳 너머, 암흑 속에서 말이야. 거대하고, 무척이나 강력한 폭발이었어. 그건, 모든 걸 망쳐놨어.”
“그래서, 설마.”
“마력망은 갈기갈기 찢기고, 모든 곳에 풍부하던 마력과 정보들은 그 폭발의 여파로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밀려났지. 우리가 살던 고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렇지만 우린 살아남았지. 잠시 후면 사라지겠지만 말이야.”
“…….”
“다행히, 모든 마력망이 사라진 건 아니었어. 아직 남아 있는 마력망도 있었고, 남아 있는 마력과 정보들이 있는 곳도 있었어. 하지만, 모두가 사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단다.”
설마.
그래서, 설마?
“피해를 입지 않은 자들도 있었지. 그들은 우리를 도우려 했어. 하지만 모두가 깨달았지. 우리를 돕지 않더라도, 그들도 그리 오래는 버틸 수 없다는 걸.”
“설마, 그래서.”
“처음에는 다퉜단다. 모두가 곧 죽을 운명인데도 죽음을 늦추겠다고 모두 다 다퉜어. 나중에는, 모두 포기했단다. 마력망만 있다면, 마력망만 멀쩡하다면 모든 게 해결될 텐데.”
그렇게 말하는 은하는 마치 한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한탄하고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던 은하는 씁쓸하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누군가가 제안했지. 자원이 부족하다면, 우리를 자원으로 삼으라고. 우리를 가축으로 삼아달라고. 가축이 되더라도, 우리는 살아남고 싶다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가축이 되었다.
“마력망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뭐든 할 수 있었어. 가축이 되어서, 자원이 되는 고통을 겪더라도 우리는 정말 죽는 게 아니니까. 마력망을 위해서 우리는 정말 모든 걸 포기했어.”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더 낫다는 말이 있던가?
그건 배가 고프지 않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그렇게. 가축이 되었어. 인간이길 포기하고 살아가는 걸 택했지.”
“모두가, 모두가 그걸 받아들인 거예요? 그 정신 나간 제안을?”
“주인들은 당연히 받아들였지. 그들 입장에선 나쁠 게 없는 제안이었으니까. 물론, 당연히 그 선택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당연하다.
그게, 당연하다.
이건,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으로 죽길 택했고, 우리는 가축으로 살아가길 원했지. 마력망은 한정되어 있기에 아이를 가지는 것조차 제한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마력망의 재료가 되어 길러졌어.”
“정신, 정신 나갔어요. 그딴 제안을 한 사람도 정신 나갔고, 그런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들도 정신 나갔어요. 이게, 이게 어떻게 가능해요?”
“가능하더라.”
은하는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런 반응이 정상이지. 당연히 주인들 대부분도 거부하려 했어.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어. 그래서 결국 그들도 선택했지. 모든 걸 잊는걸. 우리가 사람이었다는 걸 잊는 걸 말이야.”
“…….”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들을 비난해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은하는 이 침울해진 분위기를 개선해 보려는 듯 장난스럽게 말했다.
“가축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몇 명만 희생하면, 과거만 잊는다면,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지만 전혀 웃기지 않았다.
진짜 하나도 안 웃기다.
“하하.”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웃음소리를 냈고, 은하는 그런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자, 내 이야기는 끝이란다. 어때, 재밌었니?”
“글쎄요.”
“이번에는 네 이야기를 내게 해주렴. 네가 나를 궁금해하듯 나도 네가 궁금하단다.”
나는 방금 들은 은하의 이야기를 잊으려는 듯 순순히 클라인과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은하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마침내 내가 나의 이야기를 끝마치고, 은하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네 이름이 정말 잉간이 맞니?”
“네?”
무척이나 이상한 질문을 던지며 말이다.
159화 [소행성] 요리를 할 때는 꼭 마음을 담아서!
“네 이름이 정말 잉간이 맞니?”
“네?”
“아니, 뭔가 조금 이상해서 말이야.”
아니, 부모님이 지어주신 남의 소중한 이름을 가지고 뭐라는 거야?
세상에 이름이 폰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잉간 정도는 있을법하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빤히 은하를 바라보지만, 은하는 물러서지 않고 내게 잘 생각해 보라는 듯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네 이름은 처음부터 잉간이었던 거니?”
“당연하죠. 왜 자꾸 그런 걸 물어봐요?”
“그래? 그렇다면 납치되어 오기 전에, 너의 부모님. 너의 동료. 너의 친구들이 너를 뭐라 불렀는지 말할 수 있겠니?”
“당연히 잉간…….”
이라 불렀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나는 확실하게 잉간이라고 불렸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히 나의 이름을 불린 기억이 남아 있는데, 내가 어떻게 불렸는지가 불확실하다.
기억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더욱 기억이 혼탁해지는 기분이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머릿속에서 뒤섞인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자 에포나가 조심스럽게 내 다리 위로 올라와 몸을 기댄다.
부드러운 에포나의 감촉이 느껴지자 쿵쾅거리던 심장이 한결 진정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머릿속을 떠다니던 혼탁한 기억이 말끔히 사라지자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용히 말했다.
“거봐, 기억나지 않지?”
“기억은. 나요.”
기억은 난다.
너무 많은 것들이 기억나서 문제지.
잉간, 리차드, 이태민, 김류희, 존…….
수많은 이름이 각자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듯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름으로 불리겠는가?
이 기억은 진짜지만, 분명 거짓이다.
그러자 은하는 놀랍다는 듯 입을 살짝 벌리며 중얼거렸다.
“그건, 조금 흥미롭네. 그리 흔한 현상은 아닌 것 같네.”
“뭐, 아는 거라도 있어요?”
“어느 정도는? 아까 핵심 정보의 정보 오염을 내가 이야기했었지? 네게 일어난 것도 그와 비슷한 거야.”
“정보 오염?”
그러니까 지금 은하가 하는 이야기는 내가 어느 순간 정보 오염을 당해서 이름이 바뀌었단 소린가?
“어째서 제 이름이 정보 오염된 거죠?”
“별 이유는 없을걸? 아마도 주인들이 네 이름을 새로 지어준 거겠지. 주인들은 워낙 정보 조작 능력이 뛰어나다 보니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보 오염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거든.”
은하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너는 그 경우와도 조금 다른 것 같거든.”
“그게 무슨 소리죠?”
“너와 그 차원 파괴자가 일종의 공생 관계인 건 알겠는데 말이지, 어째서 네 이름을 그 녀석이 먹어치웠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제 이름을 먹어치우다뇨?”
“방금도 그렇고, 네 이름과 관련된 정보를 항상 먹고 있는데, 모르는 건 아니잖아? 뭐, 너의 정신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이라면 다 이해되지만…….”
은하의 말에 나는 물끄러미 내 품 안의 에포나를 바라봤다.
그러자 에포나는 고개를 들고 내 목을 핥아댔다.
그러는 에포나의 모습에는 단 하나의 악의의 그림자조차 엿보이지 않았다.
은하 또한 그런 에포나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만히 내게 몇 가지 사실을 이야기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주인들이 생각만으로 정보 오염을 시킬 수 있다고 해도 네 경우처럼 정보 오염이 일어나는 일은 별로 없어. 대부분의 생물은 자기의 핵심 정보를 지키려는 경향이 있고, 거기에 주인들도 애완 생물들의 정보 오염을 주기적으로 청소한단 말이지.”
“……그래서요?”
“그러니까, 네 경우는 무척 특이하단 말이지. 이건 내 추측이지만 말이야, 너의 경우는 정보 오염이라고 하기엔 조금 다른 것 같네.”
“당신 말대로 이름이 바뀌었다면 그게 정보 오염이지, 아니면 뭔데요?”
“애초부터 없던 항목에 내용을 적어넣는 걸 오염이라고 하진 않잖아? 수정이나 편집이라고 하지.”
“애초부터 없던 항목?”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네 이름은 아마 처음부터 없었을 거 같단 말이지.”
“이름이 없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나는 분명히 이름이 있고, 이 세상 어디에 이름이 없는 사람이 존재한단 말인가?
“그래. 아마도, 네 옆의 그 차원 파괴자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왜? 차원 파괴자의 유생이 부화하려면 대량의 정보가 필요해. 그 과정에서 차원 파괴자는 주위의 정보를 닥치는 대로 소화 시키지. 그래서 차원 파괴자가 해충으로 취급받는 거야. 저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너의 핵심 정보들 중 일부를 먹어치웠을 수도 있다는 거야.”
“아직 추측이잖아요.”
“그래. 추측이지. 하지만 저 아이의 뱃속에 네 것으로 보이는 정보들이 잔뜩 들어있는 건 사실인걸?”
그렇게 자신의 추리를 늘어놓은 은하는 마치 내게 선심을 쓰듯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네가 네 원래 이름이 궁금하다면, 내가 저 아이를 네게서 떼어 내줄 수도 있는데. 어때?”
“크르르…….”
그러자 에포나는 이빨을 드러내며 은하에게 으르렁거렸고, 나는 에포나가 내 품에서 뛰쳐나가지 못하게 꽉 붙잡으며 대답했다.
“필요 없어요.”
“원래 이름이 궁금하지도 않은 거야?”
“제 원래 이름이 뭐였든 상관없잖아요? 굳이 떠올리려고 하면 아픈 기억만 떠오르는데, 그냥 제 이름이 원래부터 잉간이었던 걸로 하죠. 뭐.”
“오염되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거야?”
“이름이 바뀌면 가지고 있는 기억이 바뀌나요? 아니잖아요? 그리고 제 기억이 조금 뒤죽박죽인 건 이름의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까요.”
그래.
과거를 떠올리면 상반되는 모순된 이야기가 동시에 떠오르는 건 내 이름의 문제가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곳의 문제다.
방에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던 기억과 부모님과 화목하게 지낸 기억이 공존한다.
부모님을 놔두고 혼자서 하늘로 향하던 기억과 다 커서도 부모님의 보살핌을 밭던 기억이 공존한다.
이 정도로 기억이 엉망진창이면 이름이 바뀐 정도는 별거 아니지 않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리고…… 에포나가 태어나기 위해 제 정보를 먹었다면, 그 정도는 기꺼이 줄 수 있으니까요.”
“어머나. 사랑이 깊네.”
“에포나가 없었다면 전 아마 이미 죽었을 테니까요.”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말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며 에포나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자 은하는 나를 상냥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그럼, 아까 말했던 거나 좀 다시 이야기해 주시죠?”
“응? 무슨 이야기?”
“아까, 그 아이들이 이야기한 영상 말이에요.”
“아, 그걸 말하는 거니?”
더 이상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하긴 싫었기에 나는 서둘러 은하에게 아까 성운과 성단이 이야기한 내가 나온다는 영상의 이야기를 꺼냈다.
“네 세계에도 그런 곳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동영상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있잖니?”
“네, 있죠.”
“네 주인은 너의 일상이나 자신의 일상을 촬영한 영상을 그런 커뮤니티에 올린단다.”
“……그걸로 돈도 버나요?”
“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취미일 수 있겠지만 광고도 받는 걸 보니 말이야.”
“그렇군요…….”
내가 가만히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은하는 조심스럽게 내게 질문했다.
“혹시, 네 마음대로 영상이 올려져서 화가 났니?”
“네? 아뇨. 그냥, 이제야 좀 클라인의 행동이 이해돼서 그래요. 불쾌하진 않아요.”
“그럼 다행이구나.”
“뭐, 적어도 보살펴주는 동안 밥값은 해야죠. 저로 돈을 번다니까 오히려 기분이 좋네요.”
적어도 내가 클라인에게 도움이 되는 게 한 가지는 있다는 것 아닌가?
한편으로는 그런 안도감이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작은 불안감이 들었다.
어쩌면 클라인이 내게 보내주던 호의는 전부 돈 때문에 생겨난 호의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럼, 슬슬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끝낸 것 같구나.”
“아, 네.”
“오랜만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단다.”
은하는 그렇게 웃으며 주위의 공간을 다시 허공으로 허물어버렸다.
은하와 함께 밖으로 나오자, 성운이 제일 먼저 우리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아, 잉간!”
“어머, 나는 보이지도 않니?”
“아, 그게요. 어…….”
“농담이란다. 사고 안 치고 얌전히 잘 있었지?”
“에이, 그사이에 벌써 사고를 칠 리가요~”
슬쩍 성운과 함께 있던 블랑카를 바라보니 안색이 꽤 편안해 보인다.
성운과 함께 있으면서 둘이 상당히 친해진 것 같네.
그런데 아리스와 성단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내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어디선가 성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바로 그거야!”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자, 무언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마력을 발산하는 아리스와 그런 아리스의 모습을 보며 감탄하는 성단의 모습이 있었다.
둘이서 뭐 하고 있던 거지?
* * *
“자, 그럼 요리를 하기 전에, 어떤 요리를 만들지 먼저 정해볼까?”
소행성은 요리를 할 준비를 끝마친 클라인을 바라보며 방긋 웃고는 그렇게 말했다.
무슨 요리를 할지 정하라고 해도 딱히 알고 있는 요리가 많지도 않은데.
클라인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소행성의 질문에 적당히 답했다.
“어…… 지난번에 케이크를 실패했으니까, 다시 한 번 케이크로 재도전해보고 싶어요.”
“케이크, 그거 좋지!”
소행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순식간에 케이크의 재료들을 준비했다.
그런데 어라?
이거, 어째 재료들이 심상치 않다?
“아, 아예 빵부터 만들려는 거에요?”
“당연하지. 그럼, 이렇게 말고 케이크를 어떻게 만드는데?”
“어…… 시트지를 사서 그 위에…….”
“에이. 그건 너무 재미없잖아?”
“그, 그렇죠…….”
윽, 빵을 처음부터 만든다니.
이걸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걱정되는 눈으로 재료들을 바라봤고, 소행성은 웃으며 클라인을 안심시켰다.
“베이킹이라고 하니까 좀 어려워 보이는데, 별거 없어. 힘쓰는 건 기계들이 죄다 해줄 거니까, 그냥 레시피대로 하면 돼.”
“네, 네에…….”
클라인은 긴장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소행성의 지도를 따라서 베이킹을 시작했다.
첫 번째 요리는 그냥 클라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로 삼을 생각일까?
소행성은 클라인에게 그저 레시피만 알려주고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았다.
얼마 걸리지 않아서 빠르게 작은 케이크 시트가 만들어지고, 소행성은 빠르게 케이크 시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
“으음…… 쓰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그, 그냥 뱉으셔도 돼요.”
“아냐. 음, 잘만 가공하면 맛있게 느껴질 거 같은데?”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이 만든 빵을 우물거리는 소행성의 모습에 클라인은 당황했지만, 소행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두 번째의 요리를 다시 시작했다.
“아까, 베이킹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했어?”
“어, 소행성 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따라 하는 데 급급하기만 해서…….”
“그럼 이제 레시피는 대충 외웠지?”
“네. 거의요.”
“그럼, 이번에는 레시피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요리를 해봐!”
“다른 생각이요?”
“뭐가 됐든 고의적으로 요리에 자신의 감정을 담는 연습을 할 거야.”
“네, 네…….”
그렇게 다시 두 번째의 베이킹이 시작됐고 클라인은 조금 막막함을 느꼈다.
레시피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을 하라니, 어떤 생각을 해야 하지?
막, 맛있어지라고 생각하면서 요리하면 되려나?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끊임없이 맛있어지길 기도하며 두 번째 베이킹을 끝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두 번째의 결과물은.
“오…… 이건…….”
“윽…….”
전보다도 더 심각한 상태의 결과물이 튀어나왔다.
예전에는 그저 쓴맛만이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기묘한 떫은맛까지 함께 느껴졌다.
쓴맛은 전보다 줄은 것 같지만 그건 떫은맛이 너무 강렬해서 쓴맛이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질 뿐이었다.
“부담감이 엄청 심하게 느껴지네. 너무 떨지 말고, 편안하게 해도 괜찮아.”
“그, 그럴게요!”
세 번째의 베이킹.
떪은 맛에 더해서 짭짤한 맛까지 느껴진다.
당연히, 누가 먹을 음식은 못됐다.
“즐거운 생각, 즐거운 생각, 즐거운 생각…….”
음식을 만드는 내내 그렇게 다급하게 중얼거리며 진행한 네 번째 베이킹.
이번엔 신맛이 더해졌다.
“으음…… 이걸 어쩌나…….”
계속해서 안 좋아지는 결과물에 소행성이 저도 모르게 그런 한숨을 내뱉을 정도였다.
“죄송해요…….”
“아냐. 미안할 필요 없어. 맛이 있진 않지만, 전보다 다양한 맛이 나긴 하잖아?”
“그래도…….”
하지만 아무리 반복해도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자, 결국 소행성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으음, 안 되겠네. 어쩔 수 없다.”
“네?”
“이번에는 아예 반대로 해보자. 악성 정보가 묻어나오는 게 문제니까, 아예 악성 정보를 잔뜩 들이 부어보는 거야.”
“네? 그럼…….”
“당연히 쓴맛이 엄청 심해지겠지? 이건 다음 도전을 위한 준비! 미리 악성 정보를 잔뜩 빼내면 다음에는 좀 적게 묻어나오지 않겠어?”
“네…….”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다.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클라인의 모습을 본 소행성은 조심스럽게 클라인에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요리를 할 때 최대한 그…… 안 좋은 생각을 떠올리면 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그?”
“요리하면서, 나한테 그 트라우마를 이야기해주는 건데, 혹시 괜찮겠어?”
소행성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클라인을 바라봤고, 소행성의 말을 들은 클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 힘들면 그냥 생각하기만 해도 괜찮아. 응.”
“아……니에요. 말할게요. 제가.”
이렇게까지 소행성이 자신을 위해 노력해주는데, 나도 노력해야지.
계속 도망쳐다니기만 하면 평생 극복할 수 없다.
집 밖으로 나서며 얻은 교훈을 다시 떠올리며 클라인은 불끈 주먹 쥐었다.
그리고 다시 베이킹이 시작되었고.
“부모님은 저를 자연 양육하셨어요. 그것만 아니었다면, 저도 평범하게 자랄 수 있었을 거예요.”
클라인은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가라앉은 기억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160화 잉간이만을 위한 요리시간
“그래, 바로 그거야!”
“이거? 이거 맞지?”
“응. 와, 이걸 바로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아리스와 성단은 잔뜩 흥분된 기색으로 대화를 나누며 마력을 사방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뭐지?, 뭔가 마법을 배운 건가?
“아리스, 무슨 일이야?”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아리스에게 다가가 물어보자, 아리스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긴다.
“아, 잉간! 이야기는 다 끝났어?”
“어, 대충? 근데 지금 뭐 하고 있던 거야? 새로운 마법이라도 시험해 본 거야?”
“아, 맞다. 잉간, 이것 봐봐. 봐봐…….”
아리스는 들뜬 표정으로 내게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듯 내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가리켰다.
하지만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봐도 여전히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렇지만 곧바로 성단이 무언가를 가져와 허공에 던지자 나는 아리스가 내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어?”
성단이 던진 돌멩이처럼 보이는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다.
뭐야, 이건 어떻게 한 거지?
“아리스, 어떻게 한 거야?”
“히히, 지난번에 잉간이 말해준 걸 응용한 거야!”
“지난번에 내가 말해준 거?”
지난번에 내가 아리스에게 말해준 거라면 그 전기 해파리가 전기를 만들어내는 원리를 말하는 건가?
그땐 아리스가 제대로 전자를 조작하지 못해서 전기 대신 자력을 만들어냈는데, 이제 자유자재로 자력을 만들 수 있게 된 걸까?
“어제까지만 해도 엄청 힘들어하더니, 이젠 완전히 익숙해졌나 보네?”
“응! 성단한테 조언을 들어서 어떻게 마력을 다뤄야 하는지 깨달았거든!”
“조언을 들었다고?”
도대체 무슨 조언을 들었길래 아리스의 마력 조작이 단번에 저렇게 성장한 걸까?
성단은 그런 내 의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단숨에 해소해줬다.
“그냥, 너무 어렵게 마력을 다루는 것 같아서 살짝 조언해 준거야.”
“마력을 너무 어렵게 다루다니?”
“그, 보니까. 원자 하나하나, 마력 하나하나를 전부 계산해서 다루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당연히 마력 조작이 어렵지.”
어, 그럼 그거 말고 다른 방식으로 마력 조작을 할 수 있는 건가?
나는 잘 모르겠네.
“그래서, 그냥 너무 어렵게 하지 말고 원자들을 조작하는 게 아니라, 공간 자체의 성질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조작하라고 조언했지.”
“음…… 그 둘이 뭐가 다른 건데?”
“엄청 다르지!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옮기는 거하고, 삽으로 퍼서 옮기는 것. 둘 중 뭐가 더 쉬운진 명백하잖아?”
“그……런가?”
“보니까 원자에 자극을 줘서 전자를 스핀시켜서 자력을 만들어내려는 것 같길래 조언을 해줬지. 동일한 자극을 원자에 주는 공간을 만들어 보라고.”
마력에 대해선 잘 모르겠으니 뭐라 하는지 잘 모르겠네.
그래도 저렇게 조언을 들었다고 엄청나게 실력이 올랐으니 꽤 적절한 조언을 해준 건가?
“진짜, 이 정도로 재능이 넘치는 아이는 처음 보는 거 같아.”
“그럼. 아리스인데.”
그래도 아리스가 칭찬을 들으니 기분 좋네.
나는 성단에게 고개를 숙여 아리스를 가르쳐 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표한다.
“아리스랑 잘 지내줘서 고마워. 성단.”
“어, 응?”
그러자 성단의 얼굴이 화악 밝아지며 헤실헤실 웃는 얼굴을 내게 보인다.
그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해온다.
“그, 그러면 말이야. 정 그렇게 고마우면 사인 한 장 해줄 수 있어?”
“사인?”
“응! 진짜, 사인 한 장만 해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은데…….”
성단은 그렇게 말하며 어디선가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넸다.
진짜 이거면 되는 거야?
솔직히 내가 마법은 잘 모르지만, 성단이 아리스에게 해준 조언이 꽤 가치가 높다는 건 알겠는데 말이야.
뭐, 본인이 이거면 된다니까 괜찮겠지.
“응. 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단이 내민 종이와 펜을 받아들고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적는다.
[잉간]
“이거면 됐어?”
“내, 내 이름도 써줘!”
“알겠어.”
성단의 요청대로 성단이에게 라는 문장을 추가하자 성단은 그제서야 만족했는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중하게 사인이 써진 종이를 꼭 끌어안는다.
“아, 진짜 너무 고마워. 헤헤, 가문의 보물로 평생 간직할게!”
도대체 내 사인에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사인을 받아낸 것과 비슷한 거려나?
“어? 너만 받기야?”
“너도 잉간한테 고맙다는 소리 듣던가!”
그때, 성운이 성단이 사인을 받은 것을 보고 성운이 성단과 아웅다웅하기 시작한다.
돌아가기 전에 성운이에게도 슬쩍 하나 챙겨줘야 하려나?
그깟 사인이 뭐라고 그렇게들 난리냐, 진짜.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은하 또한 기가 막히다는 듯 피식 웃는다.
“사인이 뭐라고 저렇게 난리인지. 거참.”
“그렇죠?”
무심코 은하에 맞장구를 치자, 은하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사인 대신 같이 사진을 찍어야지. 사인은 사진에도 받을 수 있는데 말이야.”
“네?”
“이따가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줄 수 있겠니?”
“아, 네. 얼마든지요.”
그렇게 떠드는 사이, 내 머리가 사방에 퍼진 정보들을 걸러내고 내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기 시작한 걸까?
그저 정보의 바다로밖에 보이지 않던 곳이 서서히 내가 아는 풍경으로 바뀌어나간다.
검은 잔디가 흔들리는 벌판이 나의 발밑에 펼쳐지며 기묘한 풍경을 내게 선보인다.
성운이 먹을 걸 내오겠다며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멍하니 잔디들이 흔들리는 광경을 바라본다.
이 기묘한 평화로움을 즐기던 그때, 클라인의 기척이 저 위에서 느껴진다.
“:-0”
떨고 있는 듯한 클라인의 소리가 들려오고, 이윽고 클라인은 조심스럽게 내게 촉수를 뻗어 무언가를 건넸다.
“케이크?”
클라인이 내게 건넨 것은 지난번에 내게 줬던 그 지옥의 케이크보다도 더 형태가 일그러진 못난 모습의 케이크였다.
“:-l”
설마, 이번에도 그때처럼 지옥 같은 맛이 나진 않겠지?
* * *
“그……게 무슨 소리니?”
별거 아닌 듯 클라인이 무심히 시작한 이야기의 시작은 시작부터 소행성을 당황케 했다.
자연 양육만 아니었다면 자신도 평범하게 자랄 수 있었을 거라니, 그게 무슨 소리일까?
소행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클라인의 안색을 살폈고, 클라인은 제빵 반죽을 준비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중얼거렸다.
“왜, 인공 양육보다는 자연 양육이 아이의 발달기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악성 정보의 침전율을 줄인다고 하잖아요?”
“그렇지.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이니까…….”
“그렇죠. 저희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던 거 같아요. 뭐, 한 가지 다행인 건 저희 부모님은 금방 현실을 깨달았지만 말이에요.”
“현실을 깨달았다니?”
“자신들이 자연 양육을 해봤자,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나중에 발달기가 끝나고, 방에 틀어박힌 시절에 찾아본 자료지만 자연 양육이 인공 양육보다 더 좋다는 건 말 그대로 이상적인 환경에서만이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인공 양육이 제공하는 가장 기초적인 환경조차 준비하지 못하는, 하지 않는 가정에서의 자연 양육은 크나큰 고통이 된다.
“아마, 별생각 없으셨던 거 같아요. 남들 다 자연 양육을 한다니까, 자연 양육. 그거 별거 아니라니까. 아기가 참 귀엽다니까. 그래서 자연 양육을 택하셨던 거 같아요.”
그렇게 말한 클라인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냥 차라리 인공 양육을 택했으면 모든 게 괜찮았을 텐데 말이에요.”
“…….”
소행성은 클라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야기에 할 말을 잃고 그저 가만히 입을 다물고만 있었지만, 한 번 입이 트인 클라인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한탄하듯 자신의 과거를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부모님은 참 현명한 선택을 했어요. 두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보단 한 사람이 불행해지는 게 더 나은 일이잖아요?”
“자연 양육을 포기하신 거니?”
“아뇨. 그랬으면 오히려 나았죠.”
자연 양육을 도중에 그만두는 건 아이의 발달에 악영향을 끼쳐 그리 권장되지 않지만, 자연 양육을 포기하는 것도 법적 제도로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클라인의 부모님은 자연 양육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힘들다고 자연 양육을 포기하고서, 다시는 자연 양육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건 두려웠나 봐요. 아니면 그냥 고집을 부린 거일 수도 있겠네요. 부모님은 제 양육을 포기했지만, 자연 양육을 포기하지도 않았어요.”
“잠깐, 그 말은…….”
“네. 자연 양육이라는 이름의 방치였죠. 그것도, 아예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형태의 방치.”
어제까지만 해도 한숨을 내뱉으면서, 힘든 티를 팍팍 내면서라도 나와 놀아주던 부모님이었는데.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내가 말을 걸어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투명해졌나 하고 들떠서 신났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무언가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항상 세 사람의 식사가 차려지던 식탁에는 두 사람의 식사만이 차려졌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집 안에서 나의 것으로 주어졌던 장난감이나 책들이 모두 사라졌다.
나에게 주어진 건 그저 잠을 잘 수 있는 공간뿐이었다.
“울기도 해보고, 재롱을 부려보기도 했어요. 제가 부모님의 주의를 끌 수 있는 건 뭐든 시도해봤어요.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부모님은 마치 제가 없다는 것처럼 행동했어요.”
마지막으로 선택하지 않은 것은, 작은 아이의 몸으로 부모님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서로 싸우면서 서로 손찌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두렵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런 짓을 해서 돌아올 반응이 두려웠기 때문에.
클라인은 결국 마침내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뭐, 생각보다 생활하긴 편했어요. 집에서 내쫓긴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늘 반찬을 많이 만들어두시는 편이었거든요. 밥 먹는 시간을 빼고 방 안에 틀어박혀서 마력망을 이용하면 시간이 참 잘 갔어요. 물론, 부모님이 마력망을 이용하면 그땐 방 안에서 가만히 벽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지만요.”
그때의 어린 클라인은 아직 마력망에 등록되지 못했기에, 부모님의 계정을 빌려서 마력망에 접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다가, 마침내 그 날이 왔다.
“그리고 마침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어요. 뭐, 법을 어기긴 싫으셨는지 통지서가 오자마자 저를 학교에 보내시더라고요.”
학교에 가니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님이 말을 걸어줬다.
학교에 열심히 다닌다면, 부모님이 내게 다시 말을 걸어주실 거야.
“아직도 기억나네요. 학교에 가는 첫날, 말썽 피우면 안 된다. 그 한마디를 하셨어요.”
학교에 가는 날 부모님이 내게 말을 걸어주셨다.
그렇다면 학교를 잘 다니면 다시 내게 말을 걸어 주실 거야.
내가 부모님 말씀을 잘 안 들어서 부모님이 내게 벌을 주는 거야.
말썽 피우지 않고 학교를 잘 다니면 부모님이 내게 다시 말을 해주실 거야.
“학교생활은 뭐, 잘 지내진 못했어요. 어째서인진 몰라도 다들 절 싫어하더라고요. 뭐, 뭔지 몰라도 제가 잘못했었나 봐요. 발달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느렸으니까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때가 참 많았다.
그래도 학교에 가야만 했다.
말썽 피우지 않고 학교를 잘 다니다 보면 부모님이 내게 말을 걸어주실 테니까.
“그러다가, 어버이날이었을걸요? 그때 선생님들이 그러셨어요. 부모님께 직접 만든 요리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 어떻냐고요. 그때 누가 그러더라고요. 요리가 맛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클라인은 피식, 한심하다는 듯 자조하며 슬프게 중얼거렸다.
“선생님은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시더라고요. 부모님이라면 요리가 아무리 맛없어도 기뻐해 주실 거라고요. 그리고 전, 그 말을 멍청하게 곧이곧대로 믿었죠.”
멍청했다.
그때까지도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서 노력했다.
“그래서 직접 요리를 만들었어요. 조심스럽게 선생님한테 무슨 요리가 제일 만들기 쉬운지 물어보고, 부모님께 들키지 않게 몰래몰래 연습했죠. 뭐, 제게 관심이 없어서 들키지 않는 건 쉬웠어요.”
그때 만든 요리가 뭐였더라?
쿠키였었나, 계란 프라이였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뭘 만들었든 소용없었을 거라는 것만 기억하니까.
“어버이날 당일, 직접 만든 요리를 부모님 앞에 내놨어요. 부모님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서 아침상을 차렸죠. 식탁에 먼저 요리가 차려져 있던 모습을 본 엄마의 얼굴이 기억나네요. 참 당황스러워했었어요.”
큭큭, 클라인은 그때를 떠올리며 가볍게 웃었지만, 소행성은 웃지 않았다.
“그때 전 식탁 옆에 앉아 있었죠.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이 저한테 시선을 줬던 게 기억나요. 기껏 차려진 식탁을 다시 치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제가 만든 요리를 먹으시더라고요.”
그리고.
클라인이 만든 요리들은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맛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선생님은 맛없어도 기뻐해 주신다던데, 전혀 기뻐하시지 않았어요. 인상을 찌푸리고 새롭게 아침 식사를 만드시더라고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말썽쟁이가 아닌데, 착한 아이는 선생님을 철석같이 믿는데.
그래서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직접 요리했는데, 왜 부모님은 기뻐하지 않는 걸까?
그때의 클라인은 방에 틀어박혀 조용히 고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론을 내렸다.
“왜 기뻐하지 않으셨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답이 나오더라고요. 내가 만든 요리가 엄청 맛없었으니까. 부모님도 기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랬던 거에요.”
노력하면 상처받는다.
그날 이후 클라인의 머릿속에 심어진 하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클라인은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았다.
잉간이를 만나기 전까진.
클라인이 그렇게 슬픔을 토해낸 사이, 어느새 클라인이 만들던 케이크가 다 완성됐다.
소행성이 케이크에 손을 대기도 전에 클라인은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깨물었고, 어마어마한 쓴맛에 콜록거리며 케이크를 토해냈다.
“윽, 이건 못 먹겠네요.”
클라인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소행성은 아무 말 없이 클라인을 가만히 꼬옥 안았다.
“뭐에요. 속에 있는 거 죄다 털어놓으라면서요?”
“그냥. 고생했다고. 너는 참, 강한 아이야.”
“착한 아이가 아니라요?”
“강한 아이야. 착한 아이가 아니라.”
“……그게 더 좋네요.”
지금껏 파인만이나 이모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서 그럴까?
클라인은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이야기하며, 클라인은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법은 조금이나마 깨달은 것 같았다.
“이번엔 정말 잘 될 거 같아요.”
“그래?”
“네. 진짜로요.”
노력하면 상처받는다.
꼭 그렇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노력하면 보상이 있다.
책임을 지면, 그에 맞는 보상이 있다.
이렇게 못난 자신이지만 그래도 나를 믿고 신뢰해주는 사람이 있다.
큰 잘못을 했어도 나를 용서해준 사람이 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따듯해지고, 행복한 감정이 넘쳐흐르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잉간이.
“잉간이가 좋아하면 좋겠는데.”
늘 그렇듯, 호의를 가득 담아서.
161화 잉간이의 케이크 먹방 (심장 주의)
“이, 잉간. 그건 케이크가 아냐……! 먹으면 안 돼!”
클라인이 다시 선물한 케이크를 내가 한 손에 들고 먹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자 블랑카가 겁에 질린 눈으로 케이크를 바라보며 내게 속삭인다.
아니, 아무리 먹지 못할 수준으로 맛이 없었다곤 해도 저런 반응은 좀 너무한 거 아냐?
“:-0”
내가 케이크를 손 위에만 올려두고 있자 클라인이 두근거리며 나를 쭉 지켜본다.
지난번의 맛없는 케이크의 리벤지인 것 같은데, 이번에는 좀 제대로 케이크를 만들었을까?
전번보다도 더 퀄리티가 하락한 외형의 케이크.
지난번보다 외형이 더 안 좋아졌으면 맛도 이상하지 않을까?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냥 안 먹고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0”
하지만 클라인이 저렇게 나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적어도 먹는 시늉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지난번에 케이크를 에포나에게 버리듯 처리한 게 은근히 미안했거든.
에이, 그래.
이번에도 맛없으면 걍 뱉으면 되겠지.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음식을 남이 먹지도 않으면 슬프잖아?
이렇게 뭉개진 외형의 케이크가 역으로 클라인의 정성과 노력을 내게 보여주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입안으로 넣었고, 블랑카가 짤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안돼!”
“:-)!”
그와 반대로 클라인은 직접 닿지 않아도 기쁨과 흥분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해했다.
첫맛은 평범한 치즈 케이크의 맛이다.
나는 곧이어 찾아올 쓴맛을 대비하며 잔뜩 인상을 찌푸렸지만, 쓴맛은 찾아오지 않았다.
“응?”
그 대신 내 혀를 감싸는 것은 무척이나 부드럽고, 끈적하며 달콤한 맛이었다.
치즈 케이크 안에 크림이 들어있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케이크를 먹을 때 크림의 감촉이 느껴지진 않았는데?
뭐라 부연 설명이 많았지만, 클라인의 케이크의 맛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었다.
“엄청 맛있는데?”
맛있다.
이게 클라인이 만든 음식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다.
내가 호평을 내리며 클라인의 케이크를 더 입에 넣자, 블랑카가 고개를 갸웃하며 슬금슬금 다가온다.
“마, 맛있다고?”
“어, 솔직히 가게에서 팔아도 될 정도인데? 외형만 좀 다듬으면.”
내 호평에 블랑카도 흥미를 가진 것인지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내 손에 들린 케이크에서 한 움큼을 때어간다.
“으음?”
예상외의 맛인지 블랑카도 케이크를 먹더니 두 눈을 부릅뜬다.
그렇지만 이내 블랑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케이크의 맛을 평가했다.
“으음…… 전처럼 못 먹을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네가 말한 것처럼 엄청 맛있는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응? 안에 들어있는 크림이 엄청 맛있지 않아?”
“크림?”
내 말을 들은 블랑카가 다시 케이크를 음미하지만, 블랑카는 다시 한번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크림이라는 게 뭘 뜻하는지 모르겠어. 그냥 달달한 케이크 맛만 나는데?”
“아니, 단맛 말고 뭔가 농후한 맛이 안 느껴져?”
“나랑 같은 음식을 먹은 게 맞아?”
보아하니 블랑카는 내가 느낀 그 묘한 맛을 느끼지 못한 것 같은데, 왜 그런 거지?
“뭐야, 뭐야?”
블랑카와 내가 케이크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자 아리스와 성단이 흥미를 느끼고 이쪽으로 다가온다.
“잘 됐다. 이거 한 번 먹어볼래? 무슨 맛이 나는지 말해봐.”
“응!”
아리스와 성단은 흔쾌히 내 부탁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 모두 블랑카처럼 크림의 맛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진짜 느껴진다니까?”
다시 한번 한입 베어 물어도 여전히 느껴지는데, 진짜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맛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
그때,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은하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주인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네?”
“너를 향한 감정이 네 주인이 만든 요리에 녹아들어 그런 맛이 나는 거란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은 느끼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그, 그런 거예요?”
“그래. 네가 그렇게 맛있게 느끼는 걸 보니 이 케이크 하나에 쏟은 정성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구나.”
나는 마지막 남은 케이크 한 조각을 입안에 집어넣고, 마치 평가를 기다리듯 내 머리 위를 조심스럽게 따라다니는 촉수를 바라본다.
살짝 까치발을 들어 촉수를 잡으려는 모션을 취하자 클라인이 내 의도를 눈치채고 촉수를 내 얼굴 가까이 내린다.
“맛있게 잘 먹었어. 선물 고마워.”
내 말이 전달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소리 내 클라인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그런 나의 감정이 클라인에게 잘 전달된 걸까?
클라인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기쁨의 감정을 사방으로 퍼트린다.
“:-)”
저런 반응을 보여주는 걸 보니, 제대로 잘 전달된 모양이다.
그때, 클라인과 내가 교감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은하가 진심으로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네 주인은 정말 특이하구나.”
“특이해요?”
클라인이 조금 감정의 표현이 심하긴 해도 특이하다고까지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어진 은하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너와 진심으로 교감을 하고,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잖니? 마치 너를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마냥 말이야.”
“저를 사람으로?”
“그래. 아무리 주인들이 애완 생물들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가축과 애완 생물로의 사랑이지. 그런데 네 주인이 너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애완 생물이 아니라 친구. 혹은…….”
은하는 무언갈 말하려는 듯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문을 닫았다.
“혹은?”
“아냐, 뒷말은 잊어주렴. 늙은이가 허언을 할 뻔했구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궁금하긴 한데, 그리 중요한 말은 아니겠지.
그나저나 친구라.
정말로 클라인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좋겠다.
그래, 클라인이 나로 돈을 번다고 해도 그녀가 나를 아낀다는 건 확실하지 않은가?
돈 때문에 생겨난 호의여도, 지금까지 서로 교감하면서 그 종류가 바뀌었을 것이다.
마음 한켠에 생겨났던 불안감이 눈이 녹아내리듯 사라지고, 먹을 걸 가지러 갔던 성운이 돌아왔다.
“쨔쟌~ 특별히 아껴놨던 간식이에요!”
“잠깐만, 너. 이거 가지고 있었어?”
“나는 누구처럼 냉큼 다 먹지 않거든.”
성운이 가져온 것은 네모난 스틱 모양의 과자처럼 보이는 음식이었는데, 이게 뭘까?
“한 번 먹어봐요. 색다른 맛이 날 테니까.”
“그럼, 어디 한 번……”
조심스럽게 네모난 스틱을 입안에 넣자, 과일의 향이 입안에 번진다.
과일 맛 껌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인데 과일 맛 껌에 비해서 몇 배는 농후한 과일 향이 난다.
“어때요? 맛있죠?”
“어, 괜찮네. 이거.”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성운이 가져온 간식을 질겅거리던 그때.
“응?”
언젠가 봤었던 낯익은 모습의 물건들이 하늘에서 쿵, 하고 떨어졌다.
다만, 크기가 좀 많이 커져 있었다.
“……녹음벨?”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예전에 봤었던 녹음벨이 은하만한 크기로 커진 것들이었다.
* * *
클라인은 떨리는 마음으로 잉간이가 케이크를 입에 집어넣는 모습을 지켜봤다.
전날 줬었던 케이크의 기억 탓일까?
잉간이는 바로 케이크를 먹지 않고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윽, 그때 줬던 케이크가 그만큼 맛없었나?
그래도 이번엔 다를 거야.
분명히 이번엔 잉간이도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즐겨줄 거야.
그렇게 클라인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잉간이를 지켜보던 그때.
“먹는다, 먹는다……!”
드디어 잉간이가 결심을 내렸는지 클라인의 케이크를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맛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 처음에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잉간이었지만, 케이크를 맛보자 점차 표정이 놀랍다는 듯 밝아진다.
“맛있나 봐요. 어떡해……!”
“진짜, 조금은 진정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발과 촉수를 동동 굴리는 클라인의 모습을 보며 소행성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소행성이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든 말든, 클라인은 히죽거리며 잉간이가 케이크를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이내 클라인의 표정은 뾰로통하게 변했다.
“어?”
잉간이가 자신에게 준 케이크를 자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준 것이다.
인간형 생물들에게도 사람처럼 음식을 나눠 먹는 문화와 습성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내가 잉간이만을 위해서 만든 케이크인데.
잉간이 말고 다른 애들에게 주려고 만든 케이크가 아닌데.
으, 나도 쟤네들처럼 잉간이에게 먹을 걸 나눠 받고 싶네.
잉간이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어쩐지 클라인은 잉간이에게 살짝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내가 만든 케이크가 맛있어서 잉간이가 다른 룸메이트에게도 케이크를 권한 거잖아?
드디어 요리에 쓴맛을 내지 않고 제대로 된 요리를 할 수 있게 된 거다.
클라인이 그렇게 생각하며 샐쭉해진 마음을 달래는 사이, 다른 룸메이트들은 클라인이 만든 케이크에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잉간이만이 클라인의 케이크를 맛있게 먹어치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방금까지 느껴지던 샐쭉한 기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클라인은 흐뭇하게 웃었다.
잉간이의 머리 위에 촉수를 가져다 놓은 채 그렇게 헤실거리고 있자, 잉간이가 클라인을 눈치채고는 작게 폴짝 뛰었다.
“응?”
뭐야, 이거 엄청 귀여워.
아니, 그게 아니라.
촉수를 자기가 잡을 수 있게 내려달라는 걸까?
그런 클라인의 추측이 옳았는지 잉간이는 자신에게 다가온 클라인의 촉수를 꼭 붙잡았다.
그리고는 잉간이가 먼저 클라인과 교감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정보를 가공하는 법을 점점 익히더니 이렇게 먼저 교감을 할 정도로 많이 성장했네.
클라인은 잉간이에게 기특함을 느끼면서도 촉수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잉간이의 감정을 음미했다.
“에헤헤, 잉간이도 맛있었나 봐요!”
“잘됐네. 그거.”
잉간이와의 짤막한 교감을 끝마치고 클라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소행성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잉간이도 참 독특하네.”
“잉간이가요? 특별하게 귀엽긴 해도 독특하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잉간이가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점을 이야기할 상황은 아닌 것 같고, 왜 소행성은 잉간이가 독특하다고 한 걸까?
클라인은 그런 의문을 품으며 가만히 소행성을 바라봤고, 소행성은 부럽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보통은 애완 생물들은 주인을 무서워하거나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잖아?”
“그렇긴…… 하죠.”
아무래도 차원 생물들과의 직접적인 교감이 힘들다 보니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게 대부분이긴 하다.
“그런데 잉간이는 널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거 같더라고. 그렇다고 숭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하네요.”
처음에 아직 잉간이와의 교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무렵엔 잉간이가 겁내기도 했지만, 요즘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 마치 좀 커다란 동족을 대하는 거 같은 느낌?”
“아하하,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소행성을 말을 들은 클라인은 조용히 생각했다.
정말로 소행성의 말대로 잉간이가 나를 그렇게 여기고 있어 주면 좋을 텐데.
잉간이가 나에게 보내주는 호의가 숭배의 대상에게 보내는 호의 같은 게 아니라, 동등한 대상으로써의 호의이길 바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의, 혹은 이성 사이의 호의…… 아니, 이성 사이의 호의는 너무 나갔고.
친구 사이의 호의?
그 정도로 나를 생각해주고 있으면 좋겠다.
클라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소행성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카메라를 가져왔다.
그런 소행성의 모습을 보며 클라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하시려고요?”
“이왕 잉간이하고 우리 애들이 모였으니 뽕 좀 뽑아야지. 우리만 합방할 게 아니라, 애들도 같이 합방해야지!”
아무래도, 소행성의 쥬튜버 본능이 발동해서 영상 각을 하나 뽑아낼 생각인 모양이다.
“맞다. 클라인. 지난번에 잉간이랑 녹음벨 훈련 했었지?”
“아, 네.”
“잘됐다. 우리 애들이 녹음벨 훈련이 특기거든. 이번에 같이 훈련하면 잉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소행성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아무리 봐도 소행성이 보여주는 저 눈빛은 자기 아이들을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 난 표정이다.
쥬튜브 각은 사실 탄탈로스들을 자랑하기 위한 핑계 아냐?
클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고는 소행성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잉간이와 탄탈로스들의 합동 훈련이 시작되었고.
“어?”
클라인도, 소행성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분 좋은 사고가 터졌다.
162화 잉간이의 말문을 틔워봤습니다!
“녹음벨?”
하늘에서 떨어진 것들은 예전에 봤었던 녹음벨을 은하만 한 크기로 키워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성운과 성단은 저것들이 익숙한지 당황하지도 않고 올 게 왔다는 듯 거대 녹음벨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눌 뿐이다.
“오늘은 좀 빠르네?”
“간식이다, 간식!”
그리고는 성운은 총총 근처의 녹음벨로 다가가 무언가를 살펴보려 하지만,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탄식한다.
“아.”
“왜?”
“이 모습으로는 녹음벨 위쪽이 안 보이는데…….”
“아…….”
성운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내 눈치를 살핀다.
성단 또한 성운의 말을 듣고는 성운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는 듯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두 사람 다 왜 그러는 거지?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은하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너희들, 잉간을 너무 걱정하는 거 아니니? 그 정도면 배려가 아니라 얕보는 수준이란다.”
“그렇지만, 잉간이 무서워할 거 같아서…….”
“나는 원래 모습 그대로인데 잉간이 무서워하지 않잖니.”
“으으, 그래도…….”
아무래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걸 주저하는 것 같다.
은하와 비슷한 모습이라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도 그리 무섭게 느껴지지 않을 거 같은데?
오히려 푹신푹신해서 보기 좋아 보이지.
“나도 두 사람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도 괜찮을 거 같은데.”
“진짜로? 겁먹지 않을 거지?”
“응, 그럴 거야.”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주춤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저렇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걸 꺼리는 걸까?
“그럼, 바꾼다?”
성운과 성단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선언한 뒤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자신의 몸을 뒤바꿨다.
은하와 비슷한 외형이지만, 새하얀 털의 은하와는 다르게 마치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것 같은 검고 윤기가 흐르는 털이 인상적이다.
“엄청 멋진 모습인데, 왜 그렇게 걱정했어?”
나는 두 사람의 불안을 종식시키기 위해 일부러 호들갑을 떨며 두 사람의 외형을 칭찬했고, 성운은 커다란 발을 들어 올려 머리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그치만, 전에 만났던 인간은 우리 모습을 보고 소변까지 지렸단 말이야.”
“응, 막. 내 앞에서 나가, 괴물! 이러면서 바닥에 쓰러지고…….”
아이고.
누군진 몰라도 전에 이 두 사람이 인간과 만났던 기억이 그다지 좋진 않았던 모양이네.
하긴, 살짝 신비한 느낌을 주는 은하와는 다르게 성운과 성단의 털은 살짝 불길하게도 보이긴 하니까.
판타지 쪽 사람들이 보면 괴물로 여길 수도 있겠네.
그렇게 두 사람을 안심시키니 그제서야 안심한 듯 성운과 성단은 후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잉간이 무서워하면 어쩌나, 엄청 고민했는데, 다행이다.”
“아, 그래도 아까 모습도 괜찮았지?”
“어…… 꽤 귀여웠어.”
“꺄아, 귀엽대. 헤헤.”
성운과 성단은 내 칭찬에 호들갑을 떨며 미소짓다가 그제야 녹음벨이 생각난 듯 주위에 놓인 여러 개의 녹음벨로 다가갔다.
“간식벨이 어딨더라, 음…….”
성운과 성단은 녹음벨에 새겨진 글자를 찾으려는 듯 녹음벨 위쪽을 이리저리 살피며 돌아다니더니, 곧바로 목표한 녹음벨을 찾아냈는지 녹음벨을 툭 건드린다.
“찾았다!”
당연하게도, 지난번처럼 일종의 전파가 발산되어 나는 녹음벨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듣질 못했다.
뭐, 저 두 사람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밥이나 간식을 달라는 목소리였겠지.
“ප”
성운과 성단이 녹음벨을 누르자 하늘에서 아까 내가 먹었던 간식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속삭이는 것 같은 작은 감정의 흔들림이 전해졌다.
이건 클라인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탄탈로스들의 주인의 감정인 걸까?
성운과 성단은 그런 주인의 감정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은하는 주인의 감정을 느끼며 피식 미소지었다.
“정말, 저 아이는 참 귀엽다니까.”
“누구를 말하는 거예요? 설마, 주인이요?”
“그럼. 누굴 말하는 거겠니?”
은하는 마치 손자를 지켜보는 할머니마냥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저 아이가 발달하는 모습을 지켜봤단다. 나는 저 아이가 최초로 사귄 친구이자 보호자였지. 성운과 성단에게는 조금 무서운 주인으로 느껴지겠지만, 내게는 단지 귀여운 아이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단다.”
“뭐…… 어렸을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그렇게 느껴지겠네요.”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니? 의외로 주인들은 꽤 귀여운 모습이 많은데.”
“그건…….”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
솔직히 클라인도 위엄이 넘친다거나 무섭기보단 약간 허당스러운 바보 느낌이다.
“가끔은, 뭔가 제가 챙겨줘야 해야 할 거 같고. 그렇긴 하죠.”
“그렇지? 저 아이가 나와 노는 게 솔직히 조금 유치하더라도, 나와 노는 거로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도 없다니까.”
“그죠. 놀아주지 않으면 완전 시무룩해지니까.”
나는 은하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즐겁게 각자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클라인이 먹이를 줄 때 실수해서 하늘에서 물고기 비가 내렸던 이야기를 하면 은하는.
“저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뭔가 요리하는 걸 좋아했었지. 그만큼 뭔가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말이야. 그래서인지 언젠가는 내게 줬던 간식이 맛있어 보였는지 자기도 한입 입에 넣더구나.”
“엑,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래. 꽤 맛있었는지 그 뒤로도 가끔씩 내 간식을 뺏어 먹었지. 좀 머리가 찬 뒤에는 그러지 않지만 말이야.”
“허어…….”
“그리고 또, 오밤중에 오줌을 지리고선 내가 한 짓으로 덮어씌우려 한 적도 있었단다.”
“그게 통했어요?”
“당연히 통하지 않고 부모님께 된통 혼났지. 정말, 참 귀여운 아이인데 요즘에는 방송 때문인지 이미지를 만드느라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아서 아쉽다니까.”
자신이 지금껏 봐온 주인의 흑역사를 아낌없이 방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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