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ipse 8

“쫓아왔다… 꺼지라고 했다… 김철수 신도의 말을 되뇌어보면 마치 처음이 아닌 것 같더군요.”
이런 종교 집단을 마주한 것이.
김철수의 이마를 타고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그의 눈이 세차게 요동치는 것을 주시하며 부드럽게 그를 다독였다.
“왜 그렇게 떠십니까. 저는 김철수 신도를 추궁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궁금할 뿐이죠. 그대를 위협한 사이비 종교가.”
“죄, 죄송합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무서워서….”
그래, 눈이 훼까닥 돌아서 막무가내로 도끼를 휘두르던 놈이 논리정연하게 설명할거란 기대도 안했다.
딱―!
가볍게 손가락을 부딪치며 김철수의 시선을 잡았다.
그의 눈길이 내 손가락을 따라 천장으로 향한다.
어둠을 밝히는 전등과 그 위에 굳건하게 퍼져있을 천상의 보호막.
“어제와 오늘을 혼동하지 마세요. 제 말을 기억하세요. 그대의 오른손에 무엇이 보이십니까?”
“아아아― 교주님―”
김철수가 멍한 눈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마치 정말로 무언가를 쥐고 있듯이.
그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한 김철수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믿음의 검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대에게 나의 검이 있는데, 그 무엇이 무섭습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주 편하게.”
부드러운 타이름에 김철수의 동공이 점차 안정되는 것이 보였다.
그제서야 진정된 김철수가 천천히 자신들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김철수의 가족은 보호소 대피령이 떨어진 이후에도 자신들의 아파트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인터넷과 뉴스에서는 대피소에 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전대미문의 재앙 앞에서 정부가 ‘진압’이 아닌 ‘대피’를 권하는 모습 자체에서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낀 것이다.
그런 그들은 냉장고와 자신의 집에 있는 식량을 나눠서 버티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선택이 주효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에 이르러서 하는 말이며, 그때의 그들은 점점 줄어드는 식량과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상당히 후회했다고 한다.
그 자책의 감정은 인터넷과 TV가 끊기고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게 되는 순간 절정을 찍었다.
굶어죽으나, 좀비에게 죽으나 둘 다 죽는 것인데.
차라리 아무 것도 안하고 이렇게 죽으니 차라리 대피소에라도 가볼 걸.
점점 홀쭉해지는 자신의 아내와 딸을 보며 머리를 잡아뜯던 그날.
아파트에 홀연히 외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순환을 받아들이세요! 순환을 받아들이세요!”
정말로 오랜만에 듣는 사람의 목소리.
깜작 놀란 김철수가 아파트의 베란다로 튀어나갔다.
“진리를 받아들이세요! 진리를 받아들이세요!”
아파트 길목의 정중앙에 서있는 한 여자가 두 문장을 반복해서 소리치고 있었다.
“순환을 받아들이세요! 순환을 받아들이세요!”
김철수는 그 목소리에 서서히 올라오는 닭살을 느꼈다.
“진리를 받아들이세요! 진리를 받아들이세요!”
아무런 감정이 없는 기계같이 무기질적인 목소리.
단지 ‘말한다’라는 목적에만 너무나도 충실한 행동.
“순환을 받아들이세요! 순환을 받아들이세요!”
“쉬, 쉬이이이잇!”
일단 저 여자를 저렇게 방치할 수는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김철수가 그녀를 보며 조용히하라며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댔다.
그리고 뱀처럼 쉬잇거리는 소리에 그 여자가 반응했다.
인형처럼 정면만을 응시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아파트 고층에 있던 김철수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웃는다.
아니, ‘웃는다’는 행동을 이행한다.
“진리를 받아들이세요! 진리를 받아들이세요!”
마치 라디오처럼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그녀를 보며 김철수의 몸이 점점 떨려오기 시작했다.
“여, 여보? 무슨 일이에요?”
“아, 아니야! 나오지마! 절대로 나오지마!”
안에서 들리는 걱정스러운 아내의 물음에도 김철수의 눈은 그녀에게 떠나가질 못했다.
조금이라도 눈을 떼는 순간 그녀가 귀신처럼 자신 앞에 있을 것만 같았다
그 텅 비어버린 눈깔이 자신의 동공 바로 앞까지 다가올 것만 같았다.
“순환을 받아들이세요! 순환을 받아들이세요!”
그녀가 걷는다.
어, 어디로?
김철수의 눈이 바로 아래로 향했다.
그녀가 자신의 동 입구로 걷기 시작했다.
얼굴은 자신을 주시하며 앞으로 걷는 모양새가 마치 인형과 같아서 소름이 끼쳐왔다.
“미, 미친 년이잖아….”
“진리를 받아들이세요! 진리를 받아들이세요!”
“오, 오지마! 오지말라고 이 쌍년아!”
여자의 행동에 점점 뒷걸음질치는 와중에 당연히 들려야할 괴성이 울부짖었다.
“끼에에에에에엑―!”
특유의 성대 긁는 하울링에 뒤로 가던 김철수의 몸이 다시 앞으로 향했다.
아무리 미친년이라도, 아무리 정신 나간 여자라고 해도.
“도, 도망쳐어어어!”
“끼에에에에엑―!”
조용했던 아파트에 김철수의 고함과 하울링이 메아리친다.
그리고 그 여자는.
“순환을 받아들이세요! 순환을 받아들이세요!”
묵묵히 자신의 행동을 반복했다.
김철수의 눈에 그 여자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는 좀비들이 보였다.
그런데도 그녀의 고개는 자신에게서 떠나가질 않았다.
마치, 처음 들은 목소리에만 반응하는 것처럼.
“왜… 왜… 오, 오지말라고! 오지말라고오오오오!”
그녀가 자신에게로 걷는다.
느린 속도로.
좀비들이 그녀에게로 달린다.
아주 빠른 속도로.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좀비들이 몸을 날리는 것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진리를 받아들이세요! 진리를 받아들이…”
“끼에에에에엑―!”
끊기지 않을 것만 같던 그녀의 목소리가 끊겼다.
좀비들이 그녀를 넘어뜨려 식사를 시작했다.
놈들이 고개를 흔들때마다 붉은 핏물이 허공을 비산했다.
까드득― 까드득―
뼈까지 씹어먹어먹히는 그로테스크한 상황에 김철수의 머리가 멍해졌다.
아파트 현관 앞에 쓰러진 그녀의 눈은 끝까지 자신을 향해있었다.
고장이 난 것처럼 열렸다 닫히던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순환.”
김철수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거실로 들어간 그가 베란다 문을 잠그고 커튼을 쳤다.
“여보… 무슨 일이에요…”
“이, 이리로 와! 빨리!”
자신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다가온 아내의 귀를 막으며 웅크렸다.
아내가 자연스럽게 딸의 귀를 막는다.
그리고 무사히 이 시간이 지나가길 기도했다.
까드득― 까드드득―
좀비들의 식사가 끝나기를.
“순환 그리고 진리라.”
김철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요 키워드를 되짚었다.
김철수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아주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여자.
텅 비어버린 듯 공허한 눈동자.
인형같이 삐걱거리는 몸짓.
……잠깐만.
이거 세뇌잖아?
스킬 생성권을 사용할 스킬을 고민할 때 내 마음 속 1픽이 세뇌였던 사람으로써 저건 100% 세뇌와 관련되어있었다.
“그,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건 사이비에 미친 년들 뿐입니다! 그 여자는 자기 목숨을 불태우면서까지 이상한 말만 끝까지 반복했습니다!”
확실히, 김철수의 말이 맞았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시 생각할수록 눈살이 찌푸려졌다.
세뇌를 사용하는 놈이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하고 있었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회용 확성기로 사용한 것이다.
“확실히… 빼도박도 못하는 사이비들이군요.”
“그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사이비새끼들은 전부 지옥에 가버려야하는데 말입니다!”
왠지 모르게 뜨끔했지만,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을 소모시키는 사이비 집단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거주하시던 아파트 주소가 어떻게 되시죠?”
“네? 아…! 대, 대구시…”
“잠깐만…. 뭐라고요? 대구?”
“네, 네. 그렇습니다.”
다시 자리에 앉으며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내가 왜 그놈들이 인천에 있다고 생각했을까.
구원의 문은 구원을 바라는 자에게 열리는 문인데.
김철수의 거주지는 인천이 아니라 대구였다.
그 말은, 세뇌 능력자가 있는 곳도 인천이 아닌 대구라는 뜻이었고.
인천에서 대구까지의 거리를 가늠했다.
경기도와 경상북도.
아직 인천도 완벽히 점령하지 못한 내가 그들을 처리하러 가기에는 너무 단계를 뛰어넘은 급발진이었다.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아주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제 말이… 오히려 교주님의 심기를…”
“하하, 전혀 아닙니다. 이제 들어가셔서 내일 환한 미소와 함께 다시 보시죠.”
내 축객령에 공손하게 몸을 숙인 김철수가 간부실을 떠났다.
끼이이익― 턱―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다시 보름달이 보이던 창문으로 걸었다.
대구… 대구라.
“과연 고담대구. 마계인천에 질 수 없다 이거냐?”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 세상은 일시 정지를 누른 RPG 게임이 아니다.
아포칼립스 속 종교 집단이라는 아이디어를 나만 떠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옛날부터 세상에 암흑이 도래했을 때 사람들은 양극단으로 나뉜다.
신에게 매달리는 자와 신을 저주하는 자.
그 중 애타게 신을 찾는 자들을 이용하는 놈들의 역사는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역사가 보증하는 사업 아이템이라는 것이지.
잡념과 함께 창틀에 도착한 나는 창문을 열었다.
휘이이잉―
밤이 깊었음을 대변하는 싸늘한 바람과 함께 아까 보던 보름달을 응시했다.
대한민국을 밝힐 두 개의 빛.
보름달과 성역.
아니, 구원의 태양과 성역만이 이 어둠을 몰아낼 것이다.
“그대로 거기 있어라. 구원의 빛이 네놈들을 태울것이니.”
아주 조금만 기다려라.
순환과 진리를 울부짖는 사이비.
세뇌로 대구에 암약하는…
“이단자(異端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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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0 믿음의 검 (1)
믿음의 검 (1)― 한마음 구원교 3층
한마음 구원교의 아침이 밝았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구원교의 성녀와 문지기 그리고 부교주로 일컬어지는 간부들은 3층에 모여야 한다.
한구원식 ‘신비주의’에 입각하여, 그들은 간부실에서 푸짐한 아침 식사를 즐긴 뒤에 이제는 없어선 안되는 후식으로 아침 식사를 마무리한다.
난 이후에 1층에서 평신도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했기에 그녀들이 접시 위에 예쁘게 깎인 과일들을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세 명이라는 인원답게 먹는 방법도 다양했다.
윤아영은 어제 뜨거운 밤을 보낸 ‘힐링’ 덕분인지 미소가 떠나지 않는 얼굴로 사과 한 조각을 꼭꼭 씹어먹고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사과 한 조각을 오물거리는 모습에서 초창기에 내가 선물했던 떡볶이를 먹던 그녀가 떠올랐다.
“맛있어?”
“네에― 헤헤―”
내게 방긋 웃어주는 윤아영의 맞은편에 있는 주주혜는 또 달랐다.
그녀는― 뭐랄까.
그냥 빨랐다.
입에 든 과일을 삼키지도 않은 채로 은색 포크가 접시로 날아들었다.
방울 토마토 하나를 빠르게 찍은 포크가 이미 볼이 빵빵한 그녀의 입으로 직행했다.
냠냠냠―
과즙터지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귀여운 소리에 목까지 올라왔던 잔소리를 겨우 참았다.
“…맛있니?”
“으음, 너무 맛있어요! 아빠도 빨리 드세요!”
“아니야. 너 다 먹어. 더 있어.”
“히히히―”
그래,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된거지.
가벼운 한숨과 함께 마지막 간부인 성가을을 응시했다.
스륵―
종이 넘기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읽어내리는 그녀의 눈이 분주했다.
후식은커녕, 아침 식사 조차도 자신이 정해놓은 적정선에서 칼같이 멈추는 ‘소식(小食)’의 아이콘.
자신을 관찰하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성가을의 입이 열렸다.
“그러니까… 대구에도 너랑 비슷한 각성자가 있다는 말이지?”
“그런 셈이지. 직업과 스킬은 모르겠지만, 범주는 비슷하지.”
어젯밤 김철수와 나눴던 대화를 식사 도중에 그녀들에게 말했었다.
굳이 감출만한 사실도 아니었고, 나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 대책을 생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니까.
여전히 시선은 종이에 집중하고 있는 성가을이 내 말에 대답했다.
“어쨌든 정말 옳은 판단이었어. 그 순간 천둥벌거숭이처럼 대구로 날아갔어도 별로 놀라진 않았을 테지만.”
“…사람을 어떻게 보는 거야.”
물론 작정하고 대구로 간다면 갈 순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모든 상황이 불확실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도박을 굳이 무리해서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나저나 세뇌라니 대단하네. 우리처럼 심혈을 기울이지 않아도 말 한마디에 신도가 뚝딱 생기는 거잖아.”
“이보세요, 부교주. 세뇌라는 게 그렇게 말처럼 좋기만한 능력은 아니에요.”
대구에 있는 세뇌 각성자가 인간을 ‘소모’시키는 방식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세뇌라는 스킬이 정말로 그 인간 자체의 인격을 주무를수 있었다면 여자를 그런 방식으로 버리진 않았겠지.
분명히 뚜렷한 제약과 리스크가 존재할 것이다.
게다가.
“세뇌 원툴인 놈들은 상대법이 아주 무궁무진하다고. 놈들의 본거지를 파악한 뒤에 그 건물 자체를 염력으로 무너트릴 거야. 아주 저항도 못하고 압사하는 거지.”
건물이 아니더라도 상관 없었다.
땅 자체를 무너트리는 것도 가능하니까.
어찌됐든 놈의 결말은 딱 하나였다.
자신의 인형들과 함께 압사.
“…정말 쌈박질 하나는 기가막히게 생각해내는구나.”
성가을의 감탄에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세뇌 각성자가 나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에 가까웠다.
유일한 방법은 바로 나를 세뇌하는 거지만, 글쎄.
최선두의 탑랭커를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세뇌시킬 수 있는 능력을 시스템이 방관했을까.
스킬 작성권으로 ‘완전 회복’ 하나도 밸런스에 맞지 않다고 반려하는 그 짠돌이놈이.
그나저나 오늘따라 유독 성가을의 말투에 가시가 있었다.
딱 봐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는거다.
“부교주는 지금 신성모독을 아주 숨쉬듯이 하고 있어요. 알고 계십니까?”
“돗자리 깔아봐. 오늘 그 신성모독 한 번 제대로 해볼라니까.”
내 장난스런 물음에 태연하게 맞받아친 그녀가 자신이 읽던 문서를 내게 건넸다.
썰매 타듯이 테이블을 미끄러지는 문서를 염력이 붙잡아서 내 앞에 띄웠다.
[구원교의 급한 문제점들을 알아보자]
저번에 받았던 교주 가이드처럼 성가을 특유의 정갈한 글씨체는 아니었다.
검은 잉크가 찍은 바탕체의 글씨.
아마 워드 프로그램으로 쓴 글을 인쇄한 듯했다.
간부들에게는 전자제품의 사용을 허가했으니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뭐예요! 우리도 보고 싶은데 왜 하나만 줘요?!”
“잉크 아까워서. 너희는 듣기만 해도 괜찮아.”
간부실에 배치된 화이트 보드까지 걸어간 성가을이 주주혜의 물음에 답했다.
시스템과 비슷한 짠순이가 구원교에도 있었다.
잔뜩 볼을 부풀린 주주혜와 안절부절하는 윤아영에게 손짓했다.
“괜찮아, 나랑 같이 보면 되지. 둘 다 이리와.”
“아! 맞아, 그러면 되겠네요!”
화악 밝아진 얼굴의 주주혜가 내 왼쪽 허벅지에 앉았다.
“여기는 내 자리!”
“아영아 너도 빨리 와.”
“네, 네에―”
쭈뻣거리던 윤아영까지 오른쪽 허벅지에 착석하자 달콤한 두 개의 향기가 내 코를 즐겁게 했다.
내가 성가을의 향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남은 두 명도 자신만의 시그니처 향기를 만든다고 난리였던 것이 기억났다.
“으음― 너무 향기로운데? 이거이거, 내 양 손에 꽃이 있었네.”
“히힛― 맞아요! 주혜는 아빠만의 꽃이에요!”
“저, 저도….”
내게 향기를 퍼트리기 위해 비비적거리는 여체들을 맛보고 있는 와중에 노골적인 비아냥이 들려왔다.
“……어떻게, 한 두시간 뒤에 올까요?”
“아니야, 아니야. 딱 봐도 중요한 문제 같은데 바로 시작하자.”
집중하겠다는 표시로 한껏 기댔던 허리를 곧추세웠다.
염력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에 성가을이 수성펜을 들었다.
[교주에게만 의존해야하는 무력]
“어떻게보면 이게 가장 큰 문제야. 호위라고 뒤에 세운 서태산 마저도 막상 보면 어떠한 무장도 하고 있지 않잖아. 철저한 장식품인거지.”
첫 번째 안건부터 머리를 아프게 하는 문제였다.
절찬리에 우상향중인 구원교에도 미처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들이 많다는 뜻이겠지.
이런 문제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으니 우리 가을이의 기분이 저기압이었지.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녀의 의견에 동조했다.
“맞아. 아무리 ‘천상의 보호막’ 안에 있어도 만일의 사태는 대비해야 하니까.”
“거기서 이어지는 문제점인데 구원교 내부의 각성자들 또한 문제야.”
성가을의 말에 내 양쪽 허벅지에 올라탄 두 명이 움찔했다.
“예언? 좋지. 하지만 왜 더 성장하질 않을까? 두 번째 스킬이 언제 열린다는 기약이 없잖아.”
성가을의 표적이된 성녀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안심하라는 의미로 그녀의 생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기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문지기도 그래. 아까 주주혜에게 물어보니 마나는 충분한데 구원의 문에 탄 사람이 없다잖아. 생각보다 ‘구원의 문’이 요구하는 구원이 까다롭다는 거지.”
정말인가?
확인의 의미로 주주혜에게 눈짓하자 그녀가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제 레벨 2인가? 3인가?
그 정도 스킬이 너무 사기적이면 말이 안 되긴 했다.
“여기서 또 이어지는 문제. 구원의 문이 대구에서도 열렸다며. 그럼 외국도 가능한 거 아니야? 만약 외국인 신도가 오면 의사소통은 누가해?”
“어…….”
이건, 진짜 생각 안 해봤는데.
윤아영과 주주혜도 내 눈빛을 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희망으로 응시한 성가을 또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영어는 가능해도 일본어나 중국어는 무리야.”
“…홀리 쉣트.”
지금까지 들었던 말만 해도 관자놀이가 땡기기 시작했다.
“자, 이 문제들의 해결점을 나름 생각해봤는데 그건 마지막에 말하기로 하고.”
성가을이 화이트 보드를 지우고는 두 번째 문제점을 적었다.
[의료 시스템의 부재]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야. 여태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막상 일어난다면 교주의 절대성을 훼손할 수도 있어.”
그녀의 말에 간단한 상황을 연상했다.
성역의 신도 중 누군가가 갑자기 쓰러진다.
그럼, 신도들은 당연히 나를 찾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치료에 관련된 능력이 전무했다.
상점창에서도 게임에서 그 흔한 ‘체력 회복 물약’도 팔지 않는 것을 이미 확인한 후다.
“여태까지 운이 좋았군.”
“확실히.”
성가을이 수성펜으로 화이트보드를 툭툭 두드리며 다시 말했다.
“병원이나 약국을 파밍하는 걸로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우린 그걸 전문적으로 다루는 직업군이 아니었잖아.”
“전문적인 인력이나 아니면 치료 능력을 각성한 자가 필요하겠네.”
“아니면 아이템이나. 이것도 마지막으로 이어져.”
그녀는 지치지도 않고 다음 문제점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집단을 이루는 것엔 신경써야 할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내 목표는 이런 작은 구역의 지배자가 아니었기에 하루라도 빨리 보완해야할 문제들이었다.
[시스템과 종교 시설 그리고 보상]
“이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로 모이는 거야. 성녀가 되기 위해서는 성녀원이 필요하다고 시스템이 언급했잖아. 하지만 성역 관리 탭에서 보이지도 않아.”
성녀에 관련된 시설일것이 분명한 성녀원.
사도에 관련된 수호원.
직책을 임명하는 교법원과 종교 상점에 관련되었던 진흥원.
그 무엇도 지금 내 종교시설 탭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교나 대학교 같은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마구잡이로 짓는다고 바빴지만, 그 시설들의 공통점이 있어. 초반 기초를 닦을 때 필요한 시설들이라는 거지.”
성가을의 말에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짐작하였고 이후의 갱신은 신도들의 증가 등의 직업 자체의 성장과 연관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이제 80명에 가까워진 신도수였지만, 윤아영 1명을 받았던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직업, 스킬, 상점, 관리 탭.
어느 구간에서도 시스템의 보상은 없었다.
“이상하잖아. 게임의 룰에 철저하게 따르는 형식인데 먹을 것 위주인 상점창과 아주 소량의 종교 물품들. 그리고 왜 게임의 형식인데 ‘아이템’이 없어?”
그녀가 화이트 보드에 지도를 올렸다.
딱― 딱―
자석 네 개가 지도의 가장자리에 붙으며 떨어지지 않게 고정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도에서 인천의 ‘중앙도서관’을 찍는다.붉은색 동그라미를 지나 오른쪽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상태창을 보여줘, 스킬이 있어, 상점이 있어. RPG의 방식을 철저하게 따르면서 왜?”
인천에서 올라간 손가락이 한 곳에서 멈춘다.
“왜 퀘스트와 아이템은 없을까? 마치 그 부분만 똑 떼어내서 어딘가에 따로 둔 것처럼.”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아포칼립스의 시작과 함께 펼쳐진 정체불명의 막.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인구와 인프라가 집중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이곳에 답이 있어.”
시스템이 보여줬던 영상에서 기자가 장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서울에 펼쳐지고 있는 정체불명의 막.
그룹채팅에서 모든 연락이 두절된 서울로 함께 갈 사람을 모집하는 제목도.
한마음 아파트를 떠나기 전에 옥상에서 보았던 서울의 전경도.
퉁―!
테이블을 살짝 내리치며 시선을 모았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다.
“좋아. 구원교의 확장 방향은 인천 전체의 점령보다는 서울로 가는 길을 먼저 확보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그 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지금 바로 해결한다.”
내 손짓에 따라 성가을의 손에 들려있던 수성펜이 비행했다.
“제일 간단한 신도들의 무장부터 해결하지.”
유려하게 날아오른 수성펜이 인천의 한 구역을 툭 눌렀다.
제일 쉽게 강력하고 효율적인 무기들을 얻을 수 있는 곳.
대규모 좀비 웨이브에 무너진 군대들의 무덤.
국가공인 좀비 대피소.
“숭의아레나부터 탈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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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1 믿음의 검 (2)
믿음의 검 (2) ― 인천광역시 중구 참외전로 246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난 밍기적거리지 않았다.
휘이이이잉―
소맷자락이 맹렬한 바람에 펄럭이는 인천의 상공.
순식간에 도달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숭의 아레나 파크’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경기장은 폐허를 방불케하는 참혹함으로 나를 반겼다.
초록색 잔디밭과 관중석 복도를 가득 채운 텐트들.
조금의 빈 공간도 없이 촘촘히 박혀있는 텐트들 중에 멀쩡한 텐트가 단 하나도 없었다.
구겨지고 무너진 텐트를 붉게 물들인 혈흔이 대피소가 무너진 날을 상상케 했다.
대기를 찢는 총성과 포성, 그 사이로 계속해서 울리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 모든 소리를 하찮게 만들어버릴…
‘끼에에에에엑!’
좀비들의 하울링까지.
이리저리 바람에 흩날리며 춤추는 쓰레기들.
그 바람에 스며든 배설물과 시체의 악취.
여기저기 무너진 구조물과 그을린 자국들, 마구잡이로 흩어진 탄피들과 박살난 전차.
“…지옥이 따로 없네.”
현세의 지옥이 바로 여기 있었다.
잔디밭에서 가만히 멈춰서서 흔들흔들거리는 좀비 무리를 응시했다.
밖에 이 정도 무리가 있다면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놈들의 특성 상 경기장 안쪽은 더 어마어마하겠군.
그 중에 ‘변종’들이 있을 확률도 아주 농후했다.
특히나, 육군의 전차를 장난감 가지고 놀 듯이 구기던 그 변종의 출현이 가장 경계됐다.
분명 [모방 성체]의 레벨이 그리 높지 않은 순간에 조우했었지만, 그래도 죽이지 못해 도망친 변종은 그 변종이 유일했다.
빠르게 굴러가는 눈이 지상을 배회하는 좀비들의 머릿수를 헤아렸다.
40마리에서, 50마리….
아직 반의 반도 세지 않았는데 근 백 마리에 달하는 숫자에 고개를 내저었다.
‘일일이 염력으로 처치하기에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알맞은 방법을 궁리하던 내 머리에 별빛 교회에서의 전투가 뇌리를 스쳤다.
“…그래. 그 쥐새끼같던 손가락총잡이.”
놈의 비참한 최후를 떠올리며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드드드드드―
지진이라도 난듯이 세차게 진동하는 경기장에 좀비들이 반응했다.
“끼에에에엑―!”
흔들흔들거리던 행동을 즉각 멈추고 빠르게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그들을 덮친 지진의 원인을 파악하려 했다.
키이이이이잉―
마나가 맹렬하게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전신에 백광이 피어오른다.
하얗게 빛나는 오른손이 지휘를 하듯이 살짝 흔들렸다.
투두두둑―
오른손의 지휘에 따라 잔디밭이 잘게 부서지며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부서진 텐트, 쓰레기 봉지, 콘크리트와 흙뭉치가 허공을 부유했다.
둥실둥실 떠오르던 부유물들이 일정 높이까지 오른 뒤에 정지했다.
“…….”
소름끼치는 적막과 함께 한순간에 축구경기장이 우주로 변모했다.
그곳에서 중력의 지배를 받는 것은 바보같은 좀비 무리들뿐이었다.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하는 오른손을 꽉 쥐었다.
키이이이잉―
마나의 가속과 함께 염력의 지배에 놓인 부유물들이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천천히 공전하는 부유물이 점점 가속도를 얻는다.
아주 섬세하게 가중시키는 염력에 따라 부유물들이 바람의 길을 만들어냈다.
바닥을 갉아먹던 바람이 부유물이 만든 길을 타고 올랐다.
크그그그극―
이제는 형체를 살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회전하는 회오리.
알록달록한 텐트들의 색상과 초록색 잔디밭, 아스팔트들이 모두 섞여 묵빛의 인위적인 토네이도를 생성했다.
카가가가가각―
손가락총잡이 각성자를 죽였을때보다 훨씬 더 큰 회오리가 계속해서 내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평소처럼 가벼운 농담도 지르지 못하고 염력의 컨트롤에 집중하는 나였지만, 뿌듯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역시 초능력의 1티어라 하면, 자연계지.
인위적으로 옭아맨 바람의 결집에 좀비들이 빨려들어갔다.
바둥바둥거리면서도 폭풍에 잡아먹힌 놈들이 폭풍 안에 스며든 무수한 조각들에 갈갈이 찢겨나가는 것이 보였다.
“끼에에에에엑―!”
놈들의 우렁찬 비명에 경기장 안 쪽에 도사리던 좀비들이 바퀴벌레처럼 튀어나왔다.
카가가가각―
회오리가 땅을 갉아먹는 소리에 무작정 달려드는 놈들의 꼴이 마치 개미지옥에 빠지는 개미같았다.
역시, 이 방법이 정답이었다.
물론 회오리를 만들면서 상당한 마나가 빠져나간 것은 사실이었다.
허나, 한번 회오리를 만들어낸 다음에는 일정량의 유지비만 계속해서 부여한다면…
“끼에에에엑―!”
충실하게 좀비들을 갈아버리는 믹서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출입구를 통해 쏟아져나오는 좀비들의 자살러쉬를 구경하며 다음 단계를 기다렸다.
일반 좀비들은 에티파이저에 불과했다.
쿵― 쿵― 쿵―!
건물을 흔드는 육중한 굉음.
“크롸아아아아아―!”
익숙한 변종새끼의 하울링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기다렸던 메인 디쉬의 등장이다.
놈의 고함이 들렸던 1번 출입구가 변종의 발구름에 흔들렸다.
격렬한 전투로 구멍이 송송 뚫린 출입구가 흙먼지를 내뱉었다.
그르르르륵―
무언가를 질질 끄는 소리와 함께 변종이 흙먼지를 헤치며 등장했다.
햇빛을 따라 놈의 징그러운 근육이 꿈틀거렸다.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놈이 공중에 떠있는 나를 발견하더니 작게 미소지었다.
‘웃어?’
“크롸아아아아―!”
커다란 괴음과 함께 놈이 투포환을 던지듯이 몸을 회전시켰다.
회전하는 놈의 큼지막한 다리가 잔디밭을 부수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부웅― 부웅―
근육덩어리 변종의 손에 들린 초록빛 쇳덩어리가 살벌한 파공음을 내지르며 놈의 손을 떠나고 있었다.
쐐애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초록 유성이 정확히 나에게로 쏘아졌다.
난 빠르게 왼팔을 들어 놈이 던진 물체에 염력을 집중시켰다.
이미 하얗게 물든 전신이 더 환한 빛을 내뿜으며 초록빛 유성의 돌격을 저지했다.
‘씨발! 미친놈이 탱크를 던졌잖아!’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 물체를 확인하니 잔뜩 찌그러진 전차가 공중을 부유하고 있었다.
저 미친 근육덩어리가 나에게 탱크를 던진 것이다.
“크롸아아아아―!”
자신의 회심의 공격이 불발된 것을 확인한 변종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놈도 내가 만든 회오리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순 없었는지 계속해서 몸을 고정시키기 위해 다리를 땅에 박아넣고 있었다.
놈이 다음 행동을 개시하기도 전에 내 왼손의 손가락들이 부드럽게 춤췄다.
아직도 충분히 여유가 있는 염력의 분배로 공중에서 저지시킨 탱크를 가볍게 분해했다.
끄드드드득―
전차 하나가 갈래 갈래 찢어지며 날카로운 수십 개의 송곳을 탄생시켰다.
중력에 이끌리듯 세차게 떨려오던 송곳들이 내 손짓에 호응하며 지상을 폭격했다.
놈이 나에게 하나의 유성을 던졌다면, 나는 놈에게 강철의 비를 내릴 것이다.
투콰콰쾅―!
“크롸아아아―!”
맹렬하게 이어지는 폭격에 놈이 한층 독기가 빠진 고함을 내질렀다.
아니, 비명을 내질렀다.
놈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근육 범벅인 팔을 교차해서 얼굴을 막는 것 뿐이었다.
‘흠, 저렇게 단단해도 머리 자체가 약점인 것은 변하지 않았나보네.’
그 필사적인 방어 덕분 인지 송곳이 놈의 피부를 찢어발겼지만, 놈을 거꾸러트릴 유효타가 터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기를 쓰며 굳이 저 견고한 방패를 비집고 머리를 타격할 생각은 없었다.
더 마음에 맞는 공략법이 떠올랐으니까.
폭격을 끝마치고 잔디밭 깊숙이 박혀있던 초록 송곳들이 다시 내 손짓에 호응했다.
차곡차곡 뭉친 초록 송곳이 거대한 공성추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폭격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변종의 등에 들이박혔다.
쿠웅―!
길고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근육 덩어리의 몸이 흔들렸다.
공성추는 쉬지도 않고 더 크게 반동을 주며 놈의 등을 향해 날아들었다.
쿠우웅―!
“크롸아아―!”
놈이 당황하여 팔을 뒤쪽으로 내뻗지만 보통의 근육충들이 그러하듯 등 뒤의 타격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몸을 돌려세우기에는 회오리에 저항할 지지대를 잃게 된다.
진퇴양난에 빠진 근육 덩어리에게 또 다시 공성추가 날아든다.
쿠우웅―!
잔디밭에 깊게 파고들었던 놈의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지대를 잃은 놈이 분노의 하울링을 내질렀다.
“크, 크롸아아아아―!”
앞에는 거대한 회오리, 뒤에는 놈을 마무리하기 위해 크게 젖혀진 공성추.
놈이 선택한 최적의 수는 몸을 잔뜩 웅크리는 것이었다.
초반에 전차를 질질 끌고 와서는 썩소를 지었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추한 모습.
그렇게 비굴해진다고 내가 놈을 살려줄 것도 아니었다.
쿠우우웅―!
마지막 공성추의 일격이 놈의 엉덩이를 들이박았다.
좀 더 앞으로 밀려난 놈이 회오리의 영향권에 들었는지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크, 크롸아아아아아―!”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으려고 잔디에 손가락을 박아넣으며 버티지만, 역부족이었다.
카가가가가각―!
회오리가 놈을 삼키고 무언가 갈려가는 소리가 시작됐다.
놈이 아무리 방어력이 뛰어나도 모든 방면에서 날아드는 칼날을 피할 수는 없겠지.
원체 단단한 방어력 덕분인지 한참이나 갈려가던 중 회오리 안에서 터지는 검은 핏물이 보였다.
놈이 믹서기에 갈리듯이 죽었다.
[변종을 처치하셨습니다.]
[2000 신앙을 획득합니다.]
[변종에 관한 지식을 획득합니다!]
[변종 ‘스테로이드’]
[‘스테로이드’의 폭발적인 근육은 놈에게 흉측한 파괴력과 방어력을 제공합니다. 근거리에서 놈에게 잡히지 마세요.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마세요. 높은 정확도의 투척까지 구사하는 놈의 유일한 약점은 아주 작은 머리입니다.]
스테로이드의 지식을 읽어내리며 깨달았다.
변종에게도 당연히 급이 존재했다.
사운드 스토커나 장산 좀비를 죽일 때 얻었던 신앙은 마리당 500 신앙.
이 놈은 딱 한 마리를 잡았을 뿐인데 2,000 신앙이 들어왔다.
솔직한 말로는 이놈 하나를 잡느니, 사운드 스토커 4마리를 잡는 게 더 가성비가 맞았다.
“후우….”
끝까지 나를 괴롭히던 ‘스테로이드’의 죽음을 끝으로 더 이상 경기장에 남아있는 좀비는 존재치 않았다.
가벼운 한숨을 내뱉으며 염력을 부여하던 양손을 거두었다.
서서히 잦아드는 회오리와 잘게 부서진 육편과 검붉은 핏물이 꽃처럼 휘날렸다.
처참하게 갈려있는 잔디밭 사이사이에 눈처럼 내려앉는 살색 덩어리들을 구경하며 혹시 미처 나오지 못한 좀비놈들을 기다렸다.
다리가 짤렸거나, 허리가 잘린 좀비가 기어오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
한참동안이나 만약의 사태를 기다려도 하반신 실종 좀비는 기어나오지 않았다.
작게 고개를 주억거림과 동시에 공중에 떠있던 몸을 축구 경기장의 하프라인에 가볍게 착륙시켰다.
툭―
잔디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위에서 파악했던 경기장의 전경을 되새겼다.
경기장을 크게 둘러친 바리케이드와 곳곳에 배치되어있던 경기관총.
찢겨진 전차들과 사방에 방치된 군용 차량들.
물론 모두 다 탐났지만, 제일 먼저 확보해야할 것은 탄약이다.
탄약이 없는 총은 그야말로 있으나마나한 장난감일뿐이니까.
신도들에게 착검된 총을 건네며 믿음으로 총검술을 펼치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난 2차 세계대전의 군국주의자가 아니다.
“분명히 무기고를 새로 만들었을 텐데….”
만약 내가 대피소를 방어해야하는 지휘관이라면 무기고를 어디에 배치했을까?
일단, 시민들을 최대한 안전한 잔디밭에 모아놓고,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배치했겠지.
유사 시에 일어날 폭동 또한 대비해야하니까.
축구경기장에서 위쪽이라….
난 내가 착지한 하프라인에서 천천히 관람석을 둘러보았다.
초록색과 푸른색의 좌석들 위에 암막 커튼이 쳐진 스카이 라운지가 눈에 들었다.
‘스카이 라운지에 굳이 암막커튼을?’
딱 보자마자 감이 왔다.
내가 지금 서있는 필드를 1층이라 친다면 스카이 라운지는… 3층.
이제는 자동으로 손전등을 머리 위에서 돌리며 선수들이 입장하는 게이트를 반대로 가로질렀다.
어둠을 가로지르며 3층으로 가는 계단을 찾았다.
끼이이익―
검붉은 피가 문신처럼 새겨진 문을 염력으로 열었다.
어두운 계단의 전경을 플래시 라이트가 천천히 비췄다.
빛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격전의 흔적이 가득했다.
총탄이 찢어놓은 좀비의 육편이 썩어가는 냄새와 계속해서 발치에 걸리는 작은 탄피들.
마지막으로 썩은 내가 지워내지 못할 만큼 건물에 스며든 피비린내.
입안에서 묘한 떫은 맛까지 느껴지는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3층을 가로막는 문은 1층에서 봤던 문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총탄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모습이 그날의 급박함을 내게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민간인이 넘치던 1층보다 3층에서 더 격전이 일어났다….”
민간인을 지키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3층에 잠들어 있었다는 말이지.
슬슬 내 판단에 확신을 더해주는 증거들을 되짚으며 부드럽게 3층을 가로질렀다.
이제는 식상하기까지한 검붉은 피와 시체들을 지나서 잠금장치가 요란한 문이 나를 반겼다.
끄드드드드득―
그냥 문 자체를 찌그러트리며 스카이 라운지에 들어섰다.
어둠에 젖어든 내부를 손전등이 가로지르며 암막 커튼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바로 염력을 발동해서 암막커튼을 모두 젖혀버렸다.
촤아아악―!
먼지바람과 함께 햇빛이 스카이 라운지를 밝혔다.
손전등도 필요없이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스카이 라운지를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오!”
원래라면 의자들과 뷔페 음식들로 가득해야할 공간에 가득 들어찬 무기들.
차곡차곡 쌓인 탄약상자들과 묵빛의 소총, 경기관총, 수류탄 등.
특히나 미처 다 쓰지도 못하고 쌓아 놓은 탄약상자를 보며 미소지었다.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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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믿음의 검 (3)
믿음의 검 (3) ―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스카이라운지
무기고 전체에 염력이 깃든다.
두둥실 떠오른 무기고 전체의 무기들이 염력의 지휘에 따라 질서있게 줄을 잇는다.
그리고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난 아주 편하게 오른손만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손에 닿은 무기들을 차례차례 인벤토리에 흡수했다.
아공간에 차곡차곡 쌓이는 무기들을 구경하는 내 눈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주한 꼬마처럼 반짝였다.
내가 아닌 신도들이 주로 쓰게 될 것들이지만 상관없었다.
모든 남자에게 ‘무기’라는 것은 묘한 울림을 주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그렇다고 굳이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상자를 하나씩 개봉해보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다.
아직, 파밍해야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남자라면 또 탑승물에 환장하지.”
무기를 파밍했다면, 이제 차량들을 파밍할 시간이었다.
지역을 방어하는데 큰 쓸모가 없는 차량들이 바리케이드 용도로 밖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텅텅 비어 먼지만 휘날리게 된 무기고를 벗어나며 밖을 향해 걸었다.
지나가는 길에 바닥에 버려진 총기들을 염력으로 모조리 쓸어담았다.
아마 군인들이 좀비로 감염되며 방치된 총기들로 추정됐다.
“…….”
혹은 자살을 돕고 버려졌거나.
한 눈에 봐도 부패가 오래 진행된 군인 옆에 쓰러져있는 총을 끌어당겼다.
벽에 기대어 경직된 몸.
총알이 뚫고 지나간 턱과 정수리에 보이는 구멍.
“…미련한 건지, 현명한 건지.”
공포에 물든 채로 박제되어있는 군인의 눈을 염력으로 감겨주었다.
자살한 군인의 앳된 얼굴을 보며 느끼는 연민과 불쌍함.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스치는 다른 생각들.
“그러고보니 좀비 치료제도 있는 마당에 부활이나 엘릭서도 있겠지?”
저 자리에 박제된 군인이 내 이상형에 부합한 미녀라고 생각해봤다.
바로 손이 덜덜 떨리고 머리가 띵해지기 시작했다.
“…서울을 가야한다. 진짜로 빨리 가야해.”
서울.
분명히 그곳에 답이 있을 것이다.
이 지옥같은 세상이 지금도 절찬리에 없애버리고 있을 미녀들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보폭이 넓어졌다.
뚜벅― 뚜벅―
가속도가 붙은 발소리와 함께 경기장 외곽에 도착했다.
웨애애애앵―
이젠 짜증날 정도로 익숙한 파리떼들의 앵앵거림과 그곳에 산처럼 쌓여있는 시체들의 산.
“좀비 새끼들은 죽어서도 일을 만드는 구나.”
이미 썩은 육체가 다시 썩어들어가며 흐르는 진액과 악취.
좀비 시체 사이사이에 숭숭 뚫린 구멍들과 그곳에 꾸덕거리는 구더기들.
“개 씨발, 언제나 봐도 좆같네, 진짜.”
불, 시체 소각이 절실했다.
‘천상의 보호막’ 안에 있었기에 모르던 사실들이 이곳에 오니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였다.
아마 초반에 신앙 포인트를 모을 작정으로 내가 죽였던 시체들도 저렇게 되어있지 않을까?
그래도 그 놈들은 바로 그 자리를 채우려는 다음 순번의 좀비들에게 밟히고 찌그러지던데 어떻게 잘 부서지지 않았을까?
아니다. 너무 희망만 가득한 가정이다.
시체를 아주 잘 소각하는 능력을 가진 각성자도 죽이지 말고 파밍해야겠네.
코가 아닌 입으로 숨을 내쉬며 주인을 잃고 침묵하는 경기관총들과 소총들을 파밍했다.
이제 경기장 외곽까지 나온 이유인 바리케이드 용도로 이어져있는 군용차량들을 찬찬히 살폈다.
“흠… 생각보다 상태가 좋은 게 없는데?”
애초에 이곳은 이미 좀비들에게 함락된 패전지였다.
그런 곳에서 활용하던 바리케이드들이 멀쩡한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좀비들이 밟고 지나가며 움푹 패인 외부.
고폭탄과 대인산탄에 휘말린 흔적들.
펑―! 펑―!
발로 차보니 바람이 들어찬 타이어가 오히려 더 드물었다.
문짝이 박살난 차량의 운전석과 조수석에 스며든 시꺼먼 핏자국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이건 줘도 안 먹지.”
이래서 중고차는 꼼꼼히 살피라는 말이 있었던가.
가볍게 혀를 차며 이번엔 부서진 전차들을 살펴보았다.
“포신을 꺽어놓는 게 스테로이드들 유행이냐?”
이쪽은 군용차량이 비빌수도 없을만큼 처참했다.
아마 변종들의 최우선 파괴 목표로 찍힌 탓이겠지.
종이접기라도 한듯이 찢어지고 접힌 몰골에 자연스럽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니 뭐 들고 갈만한 게 하나도 없냐.”
투덜거림과 함께 다음 출입구로 걸어가던 내 눈이 반짝였다.
한눈에 봐도 파손 상태가 덜한 위장색의 군용차.
‘군토나’라고도 불리는 지휘관용 차량이었다.
군토나를 둘러싸고 누워있는 좀비들의 사체와 그들에게 뚫려 있는 총상.
그리고 군토나의 지근거리에 박혀있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눈에 띄었다.
“스테로이드한테 딱 걸렸구만.”
콘크리트에 깔린 군인들의 계급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궁화와 별들의 향연.
높은 분들이 패색이 짙어지니 도망치려다가 죽었네.
쯧쯧, 제대로 지키지도 못했으면 도망이라도 잘 칠 것이지.
그래도 고맙네.
그 도망 덕분에 좋은 차량 하나는 건지고 갑니다.
빵빵하게 기름이 풀로 차있는 계기판과 꽂혀 있는 자동차 키를 확인하고는 군토나에 손을 올렸다.
인벤토리에 넣는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나를 덮치는 턱―하며 걸리는 감각.
[각성자의 인벤토리 적재 무게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인벤토리를 더 흡수한 후에 다시 시도해주세요.]
“…이건 또 뭐야?”
그대로 남아있는 군토나와 생전 처음보는 메시지.
백화점에서 마구잡이로 물건을 쓸어올 때도 본 적 없던 메시지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시스템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정독했다.
‘인벤토리 무게? 더 흡수하라고?’
골똘히 생각을 이어나가니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시스템 메시지가 생각냈다.
[각성자를 처지하셨습니다.]
[처치한 각성자의 인벤토리를 흡수합니다!]
여태까지 난 이 문구를 각성자가 가진 아이템을 노획하는 의미로 생각했었는데, 더 넓은 의미가 숨어 있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인벤토리 자체를 흡수한다는 의미였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한번 트인 생각의 물꼬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지금 내 인벤토리에 가득찬 무기들의 무게와 백화점에서 쓸어담았던 것들의 무게.
비교할 것도 없이 이곳에서 쓸어담은 것들이 훨씬 무거웠다.
그래서 백화점에서는 보지 못한 메시지를 여기서 처음 보게 되는 구나.
더군다나 내가 죽이고 흡수한 각성자의 숫자도 2명이나 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충실히 넓혀가고 있었던 인벤토리에 중량이 큰 무기들과 차량을 동시에 담으려했기에 알 수 있었던 사실이다.
아마 다른 각성자들은 진즉에 깨닫고 무게를 생각하며 인벤토리에 담고 있었겠지.
“하… 내가 너무 잘나서 일어난 일이네.”
오히려 최선두의 각성자이기에 일어난 정보 불균형.
난 가벼운 웃음으로 군토나를 툭툭 두드리곤 다시 경기장 내부로 들어섰다.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뭣하면 백화점에서 하던 것과 비슷하게 여러 번 오가면 될 일이고.
물론 그때는 중량때문이 아니라 성가을의 까다로운 취향 탓이었지만.
어쨌든 차량이 지금 우리 구원교에 절실한 자원도 아니었다.
“무기, 차량, 식량.”
이곳에 오기 전부터 생각했던 세가지 파밍 목표였다.
무기와 차량을 확인했으니 이젠 내 신앙 포인트를 아껴줄 식량들을 파밍할 시간이다.
내가 처리하기 전까지 개미처럼 바글바글했던 좀비들을 생각한다면 좀비에게 함락된 이후에 이곳에 도달한 각성자는 내가 최초일 것이다.
그럼, 대피소의 시민들과 군인들이 먹었던 식량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이야기였다.
“일단 확인은 해보고 양이 너무 많으면 군토나 가지러 올 때 담아야겠다.”
대충 어디에 있는지는 확신이 갔다.
이왕 무기를 지키기 위해서 3층에 인원을 배치했다면, 아주 당연하게도 식량 또한 거기서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겠지.
굳이 인원을 분리할 필요가 없으니까.
아마 3층에 위치한 ‘스카이 박스’쪽에 식량들을 몰아넣고 관리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왔던 길을 쉽게 되짚으며 스카이 라운지의 반대쪽으로 걸었다.
무기고와 비슷하게 암막 커튼에 가려진 유리 창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드드득―
가볍게 염력으로 철문을 열고선 관람석쪽의 암막커튼을 젖혔다.
쨍쨍한 햇빛이 들어서며 어두운 스카이박스를 밝혔다.
“빙…”
텅 빈 스카이박스와 부패한 좀비 사체들.
“…고?”
사체들 옆에 널브러진 봉지 하나를 염력으로 끌어당겼다.
[즉각 취식형 쇠고기 고추장 비빔밥]
“…식량이 맞는데.”
차분하게 다음 스카이박스를 살폈다.
끄드드드득―
모든 스카이박스를 다 확인해도 식량은커녕 건빵 한 봉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분명 식량이 있었던 흔적은 있는데… 없다라.”
그럼, 누가 가져간 거네.
내가 첫 번째 손님이 아니었다 이거지?
다시 처음 열었던 스카이박스로 들어가서 죽은 좀비놈들을 염력으로 뒤적거렸다.
놈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
여태까지의 대피소 안에 있던 좀비들이 훈장처럼 들고 있던 총상과는 전혀 다른 흔적.
“…둔기로 머리 자체를 찌그러트렸군.”
얼굴의 반절 이상이 찌그러진 모습에 확신했다.
이건 일반 남성의 근력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짓이다.
“…각성자.”
나보다 먼저 온 각성자가 식량만 쏙 넣고는 도망쳤다.
분명 좀비들은 아직 경기장에 남아 있었다.
소음이 별로 크지 않은 방법으로 이곳을 오갔다는 건데.
어떻게 왔을까? 나처럼 비행을 가능케하는 스킬을 가졌나?
자전거? 그냥 걸어서?
천천히 고민을 이어가는 내 눈에 복도에 죽어있는 좀비새끼가 눈에 띄였다.
‘저 새끼도 머리가 찌그러졌잖아.’
스카이 박스 안에 두 마리.
지금 보이는 복도에 한 마리.
사체를 보는 눈이 번쩍이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쥐새끼가 빵조각을 흘렸네.”
난 헨젤과 그레텔이 흘린 빵조각을 추격했다.
복도에 드문드문 이어지는 좀비들의 사체와 머리가 패인 자국들.
그 흔적이 놈이 어떻게 이곳까지 도달했는지를 상상하게 했다.
좀비들이 하울링을 지를 새도 없이 강력하게 뒤통수에 박히는 한 방.
‘강하면서도 민첩하다. 이건 무조건 육체 능력 각성자다.’
놈이 흘린 빵조각이 경기장 외곽의 북서쪽 도로에서 턱하니 끊어졌다.
그래, 실내의 흔적들 또한 어쩔 수 없는 기습들 뿐.
전투를 극단적으로 지양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놈이 외부에서 굳이 어그로를 끌 행동은 하지 않았겠지.
천천히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 진짜 쥐새끼였네.’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나름의 꾀도 있는 것 같고.
“그런 놈이 식량만 쏙 빼갔다. 즉, 식량이 급했다. 고로…”
식량을 많이 소모하는 ‘집단’을 이루며 생활하고 있다.
가늘게 번지는 웃음과 함께 몸을 염력으로 띄웠다.
놈은 나름 철두철미하게 행동했다.
흔적 또한 녀석의 마지막 빵조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조각.
허나 그 작은 조각으로도 충분했다.
고도가 높아지며 매서운 바람과 함께 건물들이 점처럼 작아졌다.
난 놈이 왔을 것이라 추정되는 인천의 북서쪽을 중점으로 눈을 굴렸다.
[모방 성체]는 신체의 전반적인 능력 또한 함께 상승시킨다.
동체 시력은 당연하게도 이에 포함된다.
극에 달한 집중력이 북서쪽에 위치한 건물을 하나하나 파악한다.
솔직히 얼마 살피지도 않았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의 바로 위쪽에 위치한 두 개의 건물.
공성중학교와 공성고등학교.
두 개의 건물 중 고등학교의 옥상에 올라와있는 한 놈이 보였다.
잔뜩 때가 탄 교복과 놈의 손에 들린 망원경.
놈이 공중에 뜬 나를 확인하지 못하고 인천경기장쪽을 열심히 망원경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하긴, 인공적인 회오리를 만들며 그 난리를 폈는데 옆에 있던 집단으로서 궁금해 미칠 것 같겠지.
‘어쨌든…’
계속 두리번거리며 경기장을 염탐하는 쥐새끼를 보며 웃었다.
감히 내 신도들이 먹을 귀중한 식량을 빼앗은 쥐새끼들.
“찾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즘 일러스트때문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와중에 친구 한 명이 단톡에서 말하더군요.
비트코인으로 1분에 3만원을 벌었다고.
1분에 3만원이면 10분이면? 아니 1시간이면?!
그럼 그냥 아무런 걱정 없이 히로인 당 1장씩 전부 뽑을 수 있잖아!
눈이 돌아간 제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들어가도 좋은 상품이 뭐냐고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친구가 말하더군요.
그냥 내려가있는 걸 들어가라고요.
일단 텀도 없이 대답하는 것에서 기분이 싸했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물었습니다.
들어가는 근거와 빼는 타이밍이 있을 것 아니냐고요.
그러니 그냥 내려가면 사고 오르면 팔라더군요.
일단 그 말에 심오한 뜻이 숨겨져 있을까 생각해서 1분 정도 그 말을 곱씹었습니다.
전혀 없는것 같아서 다시 물었습니다.
돈을 넣는 이유와 빼는 이유가 있을거 아니냐고.
그러니 친구가 그러더군요.
굳이 이유가 필요하냐고. 그냥 내려갔으니 사고 올라갔으니 팔아라.
그 말에 깔끔하게 비트코인인지 뭔지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반성했습니다.
나름 아포칼립스라고 쓰고 있었는데 역시 가상은 현실을 이기지 못하네요.
좀비물 작가로서 더 책임감을 가지고 어두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혹시나 비트코인을 하시는 독자님들이 계신다면 여러분들은 꼭 대박나시길 바라겠습니다.
비트코인 안하는 제 운도 끌어다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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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믿음의 검 (4)
믿음의 검 (4) ― 공성고등학교 옥상
단숨에 도착한 공성고 옥상에서 학생을 내려다보았다.
놈이 쉴 때 앉은 듯한 학교 의자와 그 옆에 놓인 생수병과 식량.
그리고 호신용으로 보이는 알루미늄 야구 배트.
“나를 찾나?”
“…히이이익!”
망원경으로 경기장을 살피던 놈이 화들짝 놀라며 망원경을 놓쳤다.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망원경을 염력으로 붙잡았다.
그 순간, 놈은 바닥에 있던 야구 배트를 들고선 빠르게 나와의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누, 누구세요?!”
살짝 때가 타 검게 물든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놈의 앞에 망원경을 가져다줬다.
꺼림칙한 얼굴로 천천히 망원경을 받는 학생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이 자식, ‘사람이 날아다니는 것’과 ‘망원경이 떠다니는 것’에 전혀 놀라지 않는다.
그저 갑자기 다가온 나를 향한 경계심뿐.
가늘게 좁혀진 눈이 놈의 전실을 샅샅히 훑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보이는 마나의 흔적에 미소지었다.
“너는 각성자구나.”
“…네. 아저씨는 누가봐도 각성자시네요.”
“하하, 아저씨라니.”
툭―
호탕하게 웃으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나는 아저씨가 아니라 한마음 구원교의 교주다.”
“……그런 종교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당연하단다. 잿더미에서 이룩한 새로운 진리니까.”
내 대답에 완벽하게 경계모드에 들어선 놈에게 자애롭게 웃었다.
“이름은?”
“……여기 적혀있잖아요.”
놈이 교복에 달린 자신의 명찰을 눈짓했다.
김해일.
명찰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도 방긋― 웃으며 다시 물었다.
“이름은?”
“……김해일인데요.”
“그래, 해일아. 네가 깨우친 능력은 무엇이냐?”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대화에 김해일의 뒷걸음질이 점점 출입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 건 모르는 사람에겐 말하지 않는 게 국룰 아닌가요?”
냉정을 유지하는 듯 차분한 목소리와 전혀 그렇지 못한 눈동자.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불안에 떠는 놈의 눈동자가 깜짝 놀라며 나에게 고정된다.
“…어?”
염력에 전신이 고정된 놈의 육체를 찬찬히 살폈다.
전혀 발달하지 못한 근육과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야구 배트.
좀비들 뒤통수에 일격필살의 둔기질을 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놈은 내가 찾던 그놈이 아니다.
“그래. 그건 너의 자유지.”
가볍게 김해일의 말에 긍정하며 출입문을 향해 걸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내 모습에 파르르 떨고 있는 김해일을 무시하고는 출입문을 열어서 안으로 들어섰다.
그제야 염력이 풀린 김해일이 당황한 눈빛으로 내 뒤를 따랐다.
뚜벅이는 발소리만이 울리는 조용한 복도.
간간히 보이는 핏자국 외에는 아주 잘 정리된 복도의 모습을 보며 김해일에게 말했다.
“육체계 각성자가 아주 깔끔하게 정리했구나.”
“…예?”
“친구들은 어딨니? 저깄니?”
“…예?”
나는 가장 가까운 교실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3-10]
옥상에서 가장 가까운 3학년 10반.
그 안에 느릿하게 이어지는 여러 명의 숨소리가 들렸다.
종잡을 수 없는 대화에 김해일이 야구 배트를 바짝 쥐었다, 펴는 것이 느껴졌다.
한 눈에 봐도 자신으로서는 어쩌지 못하는 각성자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보금자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김해일의 고뇌와는 상관없이 10반의 문을 열었다.
드르르륵―
문 열리는 소리에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였다.
“…누구야?”
벽에 기대어 앉아있던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무기력하게 늘어져있던 10명 가량의 학생들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들의 손에 들린 몽키스패너와 망치 그리고 야구 방망이.
체육 창고와 공구 상자에서 얻은 걸로 추정됐다.
“그… 얘들아. 어… 일단 진정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점점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뒤에 있던 김해일이 서둘러 나섰다.
김해일을 본 그들의 눈이 아주 조금 누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해일아. 저 사람 뭐야?”
“그… 어…, 모, 목사님?”
“……뭐?”
“어, 그러니까…… 아, 미치겠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미친 각성자라는 것을 부드럽게 풀어내고 있는 김해일을 보며 태연하게 교실을 둘러봤다.
한 번도 정리하지 않은 듯 더러운 바닥과 굴러다니는 쓰레기들.
구석에 박아놓은 책걸상들과 그 옆에 수북히 쌓여있는 식량들.
[즉각 취식형 쇠고기 고추장 비빔밥]
그리고 은색 봉지에 적힌 익숙한 문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단 저 목사님의 요구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잠깐만, 잠깐만. …뭐라고? 경기장에 회오리? 날아다닌다고? 몸이 멈춰?”
답답해하는 김해일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며 오른손을 들었다.
김해일의 설명을 조금 도와줄 요량이었다.
“…어?”
놈들이 꽉 쥐고 있던 무기들이 모조리 교실의 중앙에 모였다.
끄드드득―
그리고 서서히 뭉치며 구(球)의 형상을 이뤘다.
내 지휘에 따라 살랑살랑 공중을 비행하는 철의 행성.
멍하니 입을 벌린 채로 그 광경을 바라보는 학생들을 보며 왼손을 까딱였다.
야구 방망이 하나가 교실을 공전하던 행성에 충돌했다.
툭―
미약한 충돌음과 함께 행성이 분해되며 다시 원래의 주인들에게 날아갔다.
끄드드드득―
흩어지는 무기들이 괴음을 내지르며 학생들의 손에 안착했다.
잔뜩 구겨진 자국이 선명한 무기들을 보는 학생들이 삐걱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보는 눈빛에 가득해진 공포에 천천히 웃었다.
“과학실에서 황이나 염산은 안 챙겼니? 그것도 나름 쓸만할 텐데?”
“누가 그래요? 그런 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요. 물론…”
무의미한 대치를 끝낸 학생들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자신들의 무기를 손짓했다.
“이것도 그냥… 장난감일 뿐이예요.”
할 말만 마치고 그냥 바닥에 드러누워버리는 학생들.
자신들의 은신처에 이방인이 들어온 이후의 대처라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물론 약간의 장난을 통해 기를 죽여놓기는 했는데, 정말 그것만으로 그들이 이렇게 된 걸까?
다시 한 번 교실을 둘러보았다.
아직은 풍족하게 쌓여있는 식량과 여태까지 봐왔던 생존자들에 비해 토실토실하게 올라와 있는 살.
전혀 배고픔을 겪지 않는 이들이건만, 공기가 무거웠다.
검게 물든 얼굴에 살짝 벌린 입과 멍한 눈동자.
더러움보다 소름이 먼저 끼쳐오는 광경이었다.
어떠한 대화소리도 없이 다시 기묘한 침묵이 교실을 찾았다.
그 전경을 어색한 표정으로 보고있는 김해일에게 물었다.
“…여학생은 한 명도 없구나.”
“그걸 왜 물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희 학교는 남녀공학이 아닌데요. 물론 대피소에서는 여자들도 함께 뭉쳐있었지만….”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는 김해일의 대답을 끊으며 다시 물었다.
“대피소에 있었다고?”
“어… 당연하죠. 대피소가 바로 앞에 있는데 학교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저희가 군인들에게 제일 먼저 구조됐어요.”
군인들에게 제일 먼저 구조된 이들이 다시 학교에 틀어박혔다.
대충 상황이 그려졌지만, 살짝 웃으며 김해일에게 되물었다.
“함께 뭉쳐 있었지만?”
내 말에 답하려던 김해일이 숨을 들이키며 경기장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대피소가 무너지던 날을 떠올렸다.
경기장에 울려퍼지는 총성과 군인들의 고함소리.
헉헉거리며 뛰는 일행들과 점점 가까워지는 좀비들의 하울링.
‘끼에에에엑―!’
그리고 대피소를 함께 빠져나온 여자들의 비명소리.
‘꺄아아아악―! 얘들아 살려줘어어―!’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로 뛰어갔다.
점점 멀어지는 좀비들의 괴음에 작게 번지는 안도감.
그 안도감을 겨우 부정하며 그들은 이유를 만들었다.
그녀들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
“달리기가 느린 사람들은 모두 잡아먹혔죠, 뭐.”
뇌까리는 음성과 김해일의 얼굴에 핀 쓴웃음.
그 웃음을 마주하며 머리에 섬광이 튀었다.
불쑥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인벤토리를 뒤졌다.
그들은 배가 고팠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인벤토리에 가득 들어찬 무기들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인벤토리에 들었던 음식들을 다 비우고 성역을 떠났던 것이 기억났다.
빠르게 상점창을 뒤져서 눈에 띄는 음식들을 모두 결제했다.
족발, 돈까스, 치킨, 짜장면, 탕수육….
순식간에 교실에 퍼지는 맛있는 냄새에 학생들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음식과 나를 번갈아쳐다봤다.
“그렇게 불쌍하게 안 쳐다봐도 괜찮단다. 자, 다들 이리로 모이렴.”
“…와, 대박.”
그대로 자리에 앉으며 계속해서 상점창에 보이는 모든 음식들을 결제했다.
바닥에 음식들이 추가될수록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이곳에 온 뒤로 처음으로 그들의 눈이 살아났다.
“와! 아저씨, 진짜 개쩌시네요.”
“치킨! 저거 70포인트나 한다고 진헌이가 절대로 안 된다고 했었는데!”
때가 가득 낀 손으로 치킨 다리를 집는 학생이 흘린 이름.
난 뒤쪽에 있는 식량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식량을 들고온 친구가 진헌이구나?”
“어….”
실수했다는 듯이 말문이 막힌 학생과 가라앉는 분위기.
입과 손을 멈추고 눈깔만 굴리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치킨을 꺼내며 환하게 웃었다.
“너희를 어떻게 해 볼 작정이었다면 나한테 더 쉬운 방법이 있었을 것 같은데. 안 그러니?”
“…그, 그렇죠!”
처음 진헌이라는 이름을 언급한 학생에게 닭다리를 내밀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검은 손으로 그걸 집은 학생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맞아요! 진헌이가 아저씨같은 좀 치는 각성자에요. 물론, 아저씨한테는 안 될 것 같지만.”
“음, 그 친구도 음식은 같이 먹어야 되지 않겠니?”
“어… 지금 여기 없어요.”
…없다?
“어디 갔는데?”
“식량이 점점 떨어지니까 영종도로 가본다고 했어요.”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섬이었다.
“그곳엔 왜?”
“그쪽이 아직도 총성이 울리는 유일한 곳이거든요.”
총성이 울린다.
즉, 무장한 집단이 아직 활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진헌이라는 학생은 그 집단에게 도움을 청해볼 작정인 듯했다.
아니면 아예 그 집단에 합류해서 식량을 얻거나.
“떠난지 얼마나 됐니?”
“어… 일주일 됐나?”
“병신아, 5일밖에 안 지났어.”
“뭐래, 씨발 잠만 자던 새끼가.”
말이 격해지는 두 학생에게 닭다리를 쥐어주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1차적인 목표였던 진헌이라는 각성자는 파밍하지 못하겠군.
언제 이곳에 돌아올지에 대한 기약이 없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똘똘해보여서 마음에 들었는데.
그래도 교실에 아직도 남아있는 식량과 10명의 젊은 남학생들을 얻었으니 전혀 손해보는 짓이 아니었다.
거기에 능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각성자인 김해일도 있었고.
“와! 진짜 짜장면 개 오랜만이다.”
“아저씨, 그 젓가락은 없어요?”
“미친… 지랄하지마 새꺄, 이미 우리 손에 다 더러워졌는데 뭔. 그냥 내가 다 처먹어야지~”
“아이 씨발 막국수에 그 더러운 손 넣지마!”
게걸스럽게 내가 준 음식들을 먹어치우는 학생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들은 배가 고팠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들에게 [결핍 파악]을 시전했다.
그런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결핍.
육체적이지 않은, 매우 정신적인 배고픔.
“배가 아주 많이 고팠구나?”
“아, 헤헤― 그렇죠?”
“그렇게 먹는다고 너희들의 배고픔은 전혀 채워지지 않는단다.”
누구나 어릴적엔 특별한 자신을 꿈꾼다.
자신만은 다를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은 남들과 다른 길을 걸을거라 자신한다.
그런 그들에게 재난이 덮쳤고, 그들은 도망쳐야했다.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구석에 숨고, 쪽팔리게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그런 모습은 자신들이 꿈꾸던 내가 아니겠지.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히는 자괴감을 이기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곤 좀비에게 대적하지만.
“…장난감으론 좀비를 죽일 수 없었겠지.”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그들의 무기.
그들은 이미 전투의지를 상실한 피난민이었다.
그런 그들과 다른 정말로 특별한 사람.
만화나 영화에서나 보던.
상상으로만 공상하던 능력을 가진 각성자.
그들을 보며 느끼는 자괴감과 부러움.
그리고 질투.
“각성자들이 무서우면서도 또 미치도록 부러웠겠지. 난 전부 볼 수 있단다. 나만이 너희를 이해한단다.”
처음 학교에서 패배하고, 그 다음 대피소에서, 그리고 또 학교에서 패배한 도망자들의 공통된 열망.
[각성]
“학교에서 죽어라 가르친 것은 사회에서 성공하는 법이지, 멸망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아니야.”
그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준비하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높은 성적이 아니라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게 해줄 진짜 힘.
내가 채워줘야할 그들의 진짜 결핍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쓰는 와중에 너무 오래 걸려서 일단 한 편 올립니다! 아마 오늘 와중에 한 편 더 올릴 것 같아요!
다음화 보기―――――――――――――――――――――
EP.64 믿음의 검 (5)
믿음의 검 (5) ― 공성고등학교 3학번 10반 교실
내 손짓에 따라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온 소총과 탄약상자가 춤췄다.
탁― 탁― 탁―
탄약 상자를 열고 나온 총알이 부드럽게 탄창에 박힌다.
총알로 다 채워진 탄창이 묵빛의 소총에 부착되고 멍하니 보던 학생들의 손에 쥐어쥔다.
딸깍―
조정간이 연발로 이동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은 무기를 얻었다.
허나 그들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아저씨. 총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이들은 군인들이 세운 대피소가 무너지는 것을 본 목격자들이다.
총이라는 무기는 자신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자들이다.
그리고, 난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총이 아니란다.”
“…예?”
“그것은 검이란다. 믿음이라는 불꽃이 없다면 그저 침묵할 뿐이지.”
학생들의 눈이 짜게 식는다.
전해지는 깊은 실망감에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은 단 두가지란다.”
난 손가락 하나를 들고 까딱거렸다.
“난 목사가 아니라 한마음 구원교의 교주다.”
그리고 두 번째.
“내가 너희를 필요로 하듯이, 너희 또한 나를 필요로 할 것이다.”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빛의 학생들에게 다시 말했다.
“나는 내 힘을 나눠줄 특별한 이들을 찾고 있다.”
“…그럼 번지 수를 잘못 찾으셨어요. 진헌이는 아까도 말했지만 영종도에 갔구요. 해일이는 진헌이처럼…”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군. 나는 자네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중이야. 이 세상 누구보다 특별해질 그대들이.”
특별하다.
지금의 자신들과 완벽히 대비되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난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에게 특별함을 말했다.
지금 그들의 눈에 난 어떤 모습일까?
성가을이 요구한대로 정말로 나만의 아우라가 번지고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이제 하나는 확실히 안다.
나부터 그리 믿어야만, 그렇게 행할 수 있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보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웃었다.
남들과는 다른.
긍정적인 그리고 절망스런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자네들의 특별함을 내가 증명해주지.”
할 말을 마친 나는 빠르게 교실을 나섰다.
천천히 나를 뒤따르는 학생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궁금증이란 피리에 작은 쥐들이 내 뒤를 따랐다.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벗어나 옥상에 도달한 나와 함께 공중을 날았다.
“우, 우와아아아―!”
“뭐, 뭐야! 진짜로 나는데?!”
생전 처음 겪는 비행에 학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깜짝 놀라 소총을 움켜진 학생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우, 우아악! 이 미친 놈아!”
깜짝 놀라는 학생들 앞에 격발된 총알이 천천히 부유하며 자신들과 함께 날았다.
방아쇠를 당긴 학생이 총알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나를 보며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아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은은하게 웃으며 비행을 계속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점점 시대가 발전해도.
학생들은 여전히 학생들이다.
집과 학교를 쳇바퀴처럼 돌며 성적이 세상의 전부인.
그리고.
“이 미친놈아! 총 간수 좀 잘해!”
“미, 미안하다고! 아저씨도 괜찮다고 하셨잖아!”
“하여간 게임에서 샷발 쓰레기일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야이 개새끼야! 그게 여기서 왜 나와!”
또래집단이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인.
너무나도 좁은 세상을 가진 아이들.
그렇게 좁은 세상만을 향유했기에…
“와―”
“저, 저게 뭐에요, 아저씨?”
새로운 세상에 쉽게 빠져든다.
주황색 보호막이 내뿜는 신비로움에 그들의 눈이 반짝였다.
좀비가 덮치지 않은 과거에서도 겪지 못한 일탈.
아니, 이건 그들이 그렇게나 동경하던 모험이었다.
“우리의 집 그리고 낙원.”
의뭉스런 대답과 함께 보호막을 통과했다.
주황빛 보호막이 감추고 있던 새로운 세계가 드러난다.
‘천상의 보호막’에 호들갑 떨던 그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했다.
새로 들어온 이들에게 최대한의 신비로움과 경외심을 심어주기 위해 성가을과 밤을 지새우며 설계한 성역이니.
성역의 정원이 내뿜는 녹음의 생명력.
하얗고 거대하며 또 우뚝 선 건물의 웅장함.
내가 도착한 것을 목격한 신도 한 명이 안으로 달려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학생들을 살폈다.
새로운 세계에 잔뜩 얼어붙은 몸과 주변을 살핀다고 바쁜 두 눈.
그러면서도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는 소총을 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이정욱.”
“…예, 예!”
실수로 방아쇠를 당겼던 학생의 이름을 불렀다.
“이곳이 어디로 보이느냐?”
“…어, 그… 집이랑 낙원이시라고….”
“김해일.”
“…네, 네!”
“이곳이 어디로 보이느냐?”
“…집이랑 낙원이라고 말하셨는데요.”
난 10명의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호명하며 이곳에 관해 물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이 대답했다.
집과 낙원.
사실 그들은 지금 이 말이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일 먼저 대답한 이정욱이 집과 낙원이라 답했고, 내가 아무런 부정을 하지 않았기에 이렇게 된 거겠지.
이정욱의 대답이 정답같아 보였으니까.
그게 학교와 사회가 요구하며 또 가르치던 능력이며 또래 집단의 위력이었다.
친구의 정답을 모두가 따른다.
10명의 동일한 대답을 듣던 와중에 뒤쪽이 시끄러웠다.
어느새 구원교의 신도들이 모두 나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교주님.”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는 성가을을 보며 웃어주었다.
이로서, 성인식의 준비가 모두 끝났다.
“오늘! 구시대의 어른들이 방치한 열 명의 아이들을 찾았습니다!”
마나를 가득 담은 나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공성고의 학생들에게로 향한다.
“그저 그들의 가르침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답하기만 요구하던 세상이 버린 새시대의 새싹들을 환영합시다!”
짝― 짝― 짝―!
와아아아―!
환영합니다! 환영해요, 여러분!
말 끝과 동시에 터진 박수와 환호성에 학생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우리 새싹들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함께 믿음으로 살아남는 법! 함께 믿음으로 이겨내는 법!”
“아아아아―!”
탄식을 내뱉는 신도들과 조용히 나를 응시하는 학생들.
난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흔들었다.
그리고 더없이 절절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방치된 이들을 보며 저는 무너지는 가슴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아아아아― 교주니이이임!”
비통한 목소리에 무너지는 신도들 중에 한 명을 불렀다.
“김철수 신도!”
“네! 교주님!”
내 부름에 서둘러 일어선 김철수를 가리키며 물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김철수 신도의 숭고한 노력을 기억합니다. 난 그대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고, 사랑합니다!”
“아아아아―!”
“그러한 김철수 신도의 아주 깊숙한 곳에 숨겨진 마음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대는 좀비들을 마주하는 순간 순간마다 어떠한 감정으로 임했습니까!”
“아아아아―!”
그날을 회상하는 김철수의 눈이 떨렸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구세주를 찾았다.
구원에 화답하는 은은한 미소에 눈물과 함께 김철수가 고백했다.
“무서웠습니다! 너무너무 무섭고 끔찍했습니다!”
“김철수 신도에게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연륜이 있었고, 너무나도 소중한 아내와 딸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강하게하는 수 많은 것들을 가졌지만, 그는 결국 무너졌습니다!”
그런 그조차 좀비들을 눈 앞에 두곤 구원을 바랬다.
“하지만 무너진 그가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는 이 세계의 유일한 정답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아아아!”
신도들의 목소리가 성역을 메아리쳤다.
“구시대가 감추고 또 감췄던 진실된 힘! 믿음과 순종으로 태어난 구원을 마주한 이들이여!”
아아아― 믿습니다아아아!
“그런 그대들조차 세상이 가린 장막에 신음하였다! 구시대가 무너져내리고 나서야 진실된 눈으로 나를 목도하였다!”
“아아아아아―!”
교주는 학생들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혔다.
“어른들 또한 그러할진데, 아이들에게는 어떠한가! 구시대의 억압에 무너진 새싹을 보아라! 나는 그들을 보듬어 성역의 거대한 나무로서 보호하리라!”
“믿습니다아아아! 믿습니다아아아!”
교주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몸을 흔들며 또 비틀며 믿음을 증명하는 신도들을 보며 교주는 아래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김해일!”
“네!”
“이정욱!”
“네!”
……
교주는 10명의 새싹들을 모두 한 차례 호명했다.
교주의 물음에 대답하는 학생들의 눈빛이 몽롱하고 또 뜨거웠다.
그 괴리의 눈빛에 일일이 답한 교주는 성역 밖을 가리켰다.
그저 바깥에 모인 먹이를 보며 손을 뻗는 좀비들.
“그대들을 괴롭혔던 악몽이 여기있다! 진실로 바랬던 힘이 여기있다!”
그들의 손에 들린 소총이 무형의 힘에 의해 세워졌다.
완벽하게 성역 밖의 좀비들을 조준하는 소총을 보며 교주는 말했다.
“그대들이 말했지! 그건 패배한 자들의 유실물일 뿐이라고!”
“끼에에에에에엑―!”
대피소가 무너지던 그날을 되새기듯이 울려퍼지는 놈들의 하울링.
“내가 말했도다! 믿음이라는 불꽃이 필요한 그대들의 검이라고!”
그의 목소리에는 마력이 있었다.
끝까지 듣고, 기대하고 또 이행할 수밖에 없게 하는 마력이.
“힘을 원하는가! 특별해지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대들 앞에 있는 검을 잡아라!”
학생들의 눈이 소총으로 향했다.
모든 준비가 끝난 묵빛의 무기.
그저 방아쇠만 당기면 불꽃을 튀기며 탄약을 격발할 패배의 유실물.
허나, 그는 검이라 칭했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검을 잡았다.
어설픈 견착자세와 함께 교주의 말이 나지막이 흘렀다.
“그대들을 괴롭힌 악몽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지금 그대들에겐 내가 있고. 그대들의 손엔 나의 검이 있다.”
내가 말했었지. 그대들의 특별함을 증명하겠다고.
그의 말을 끝으로 보호막이 열린다.
우리를 향해 계속해서 손을 내뻗던 좀비들이 길이 열렸음을 깨달았다.
“끼에에에에엑―!”
환호와 광기.
두 감정이 불쾌하게 섞인 하울링을 시작으로 그들이 달려온다.
10명의 작은 직선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파도.
대피소를 덮칠 때처럼 괴기했고 또 경이스러운 인체의 물결.
그날의 악몽이 다가온다.
또 도망쳐야하는 절망의 씨앗이 우리들에게…
“…믿음!”
공포에 물들어가는 그들의 머리에 퍼지는 하나의 울림.
그들은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다다다다―!
조금의 반동도 없이 소총이 총탄을 격발했다.
총구에 번쩍이는 화염과 함께 좀비들이 쓰러진다.
빗나갈 것 같던 총알들이 정확하게 좀비들의 머리를 관통한다.
단 한 발의 실수도 없었다.
마치 누군가의 가호처럼.
학생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가 싸우고 있었다.
우리가 이 전투에서의 주인공이었다.
틱― 틱―
총알이 다 떨어진 탄창이 자동으로 벗겨지며 옆에 떠있던 다음 탄창이 부착된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다다다다―
“끼에에에에엑―!”
그들에게 이제 저 하울링은 공포의 시작이 아니었다.
쓰러지는 자들의 비명이었다.
자신이, 매번 도망치기만했던 내가 좀비들을 죽이고 있다.
군인들보다 더 쉽게.
박진헌보다 더 빠르게.
그저 방아쇠를 누르기만 하면 그들이 쓰러진다.
자신의 일상을 빼앗았던 악몽이 쓰러진다.
그 모습에 가슴에 희열이 번졌다.
희열만이 번졌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만에 시체들의 산이 쌓였다.
귀를 찢는 격발음도, 좀비들의 하울링도 모두 들리지 않는 적막이 내려앉는다.
허나 그들은 방아쇠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생각조차 못해본 아쉬움이 그들의 손을 붙잡았다.
“악이 무너졌다! 그대들의 손에! 그대들의 무기로!”
그리고 그대들의 믿음으로!
교주님의 말씀에 새싹들이 방아쇠를 놓았다.
허억― 허억―
숨 쉬는 것도 잊은 채로 집중했던 탓일까.
뒤늦게 가슴이 두근거리며 숨이 가빠왔다.
새싹들이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방울과 함께 전방을 주시했다.
산처럼 뭉쳐있는 사체들의 산.
그들이 만든 좀비들의 죽음.
자신들이 직접 이루어낸 진실된 승리.
“내가 말했지 않느냐? 내가 너희를 필요로 하는 만큼 너희도 나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교주의 말에 모두가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과 함께 구시대의 때를 벗긴 그들의 몸이 새하얗게 빛났다.
“오늘 열 명의 새싹이! 아니! 열 명의 고결한 구원교의 기사들이 우리를 지켰다!”
교주는 그들에게 해야할 일을 알려주었고.
“우리 모두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라! 헌신에 보답하라!”
진짜 기쁨을 알려주었다.
“감사해요! 우리를 지켜주셔서 고마워요!”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구원교의 기사들이 화답하듯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더 거세지는 호응이 뭉쳐서 하나의 단어만을 외치게 했다.
“구원! 구원! 구원! 구원!”
그들의 구원이자, 기사들의 구원.
“고결하고 또 고결하도다! 나의 기사들아!”
기사들의 눈이 하늘로 향했다.
진한 태양빛에 눈이 감겼지만, 눈물과 함께 버티며 그들은 위를 응시했다.
찬란한 태양과 함께하는 교주가 물었다.
“나의 충실한 기사, 이정욱.”
“네, 교주니이이임!”
목에 울대가 요동치는 고함으로 이정욱이 답했다.
“그대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이냐?”
교주의 물음에 이정욱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자신들을 지키지 못했던 군인들의 무기.
허나 이제는 아니다.
확신에 가득찬 이정욱이 고함쳤다.
“믿음의 검입니다아아!”
“그것이 그대를 특별하게 할 나의 힘이며 나의 구원이다!”
“아아아아―!”
환희에 떠는 이정욱을 다음으로 교주가 말했다.
“나의 충실한 기사, 김해일.”
“네, 교주님!”
“그대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이냐?”
“믿음의 검입니다아아!”
교주는 살포시 미소지었다.
친구의 정답을 모두가 따른다.
교주는 천천히 10명의 기사를 불렀고.
모두가 정답을 부르짖었다.
“모두 검을 들어라! 그리고 그대들의 유일한 무기를 말하라!”
“““믿음의 검!”””
교주, 기사, 그리고 그들의 검.
그들이 발하는 백색의 파도와 함께 교주는 소리쳤다.
“성인식이 끝났다! 서약식 또한 끝마쳤다! 믿음으로 순종하며 믿음으로 적을 베어라!”
“와아아아아―!”
그대들의 나의 첫 번째 검이자 방패로다.
침을 튀기며 소리지르는 그들을 보며 교주는 미소지었다.
이것이 성가을이 제시했던 첫 번째 물음에 대한 자신의 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한 편을 두 번 올려서 죄송했습니다!
다음화 보기―――――――――――――――――――――
EP.65 서울로 (1)
서울로 (1) ― 인천 공성고등학교 정문
박진헌이 가벼운 뜀박질로 교문을 둘러싼 바리케이드를 넘었다.
정확히 일주일만에 도착한 모교의 운동장.
그곳을 배회중인 두 마리의 좀비를 보며 작게 혀를 찼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변을 느릿느릿하게 걷는 놈들을 주시하며 옥상을 확인했다.
항상 그곳에서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던 김해일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라면 자신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운동장에 나타난 좀비들 때문에 안으로 숨은 건가?’
확실히 학교에 남은 친구들에겐 소수의 좀비도 위험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김해일의 대처도 나쁘지 않았다.
좀비들에겐 먹이를 찾는 가장 중요한 감각이 시각과 청각이었으니까.
만약 저런 괴물놈들이 후각까지 발달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친구들이 숨어있을 3학년 10반의 교실을 눈짓했다.
지금쯤 친구들이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영종도에서 생각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총성이 들리던 곳으로 가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각성자의 이동은 일반인이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빠르고 효율적이니까.
하지만 영종도에 도착하여 자신이 찾던 집단을 만난 이후가 문제였다.
영종도의 앞바다에 뭉쳐있는 수 십척의 배들.
그 모양새가 인공적인 섬으로까지 보이게하는 거대 집단은 자신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각성자인 자신이 인천 국제 공항 탈환을 돕는다면 충분한 무기와 식량을 건네주겠다는 식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박진헌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했던 놀라운 세상을 목격했다.
그들이 버티며 또 이겨내려는 세상은 자신이 야구 방망이로 좀비 수 십명을 때려 죽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였다.
무너지고 부서진 여객기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인체의 물결.
공항 안에 터를 잡고 좀비들을 원호하는 개같은 변종들.
총성이 빗발치며 이능력이 사방을 물들였다.
단순한 인간들의 전투가 아닌, 인간과 좀비들의 공성전.
그 격전의 현장에서 박진헌은 인공섬 집단에게 자신을 증명했다.
[수확 Lv.8]
자신이 가진 단 하나의 스킬.
그 스킬에 숨어있는 어마어마한 가능성.
[현재 각성자의 수확 스택 : 278]
박진헌이 무언가를 죽일수록 ‘킬 스택’이 쌓인다.
그리고 스택이 쌓여갈수록 전반적인 신체 능력치가 상승한다.
대기만성의 끝판왕이자 왕의 귀환을 대변하는 스킬 구조.
정확하게 자신이 꿈꾸고 열망하던 성장 방향이었다.
그렇기에 인공섬의 리더인 ‘어머니’는 박진헌의 요구를 수용했다.
한창 탈환전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친구들을 인공섬에 입주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이 생겼다.
자신에게도 등을 맡기고 함께 싸울 각성자 전우들이 생겼다.
거기다 국제공항 탈환전에서 쌓은 스택까지.
이곳을 떠나던 때와 완전히 달라진 신체가 모래를 박찼다.
탁―!
작은 모래바람과 함께 박진헌의 몸이 길게 잔상을 늘렸다.
빠르게 축구 골대에 몸을 비비던 좀비의 후방을 점거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꺼낸 야구방망이를 힘차게 휘둘렀다.
퍼어억―!
타격을 허용한 좀비의 뒤통수가 핏물과 함께 터졌다.
[현재 각성자의 수확 스택 : 279]
박진헌은 스택이 오른 것을 확인하면서 마지막 남은 좀비에게 쇄도했다.
탁―! 탁―!
“끼에에에엑―!”
둔탁한 충격음에 자신을 확인한 놈이 괴성을 질렀다.
탈환전에서 느꼈던 공포에 비하면 너무나도 귀여운 수준에 웃음이 나왔다.
발광을 하며 달려오는 좀비의 안면에 야구방망이를 끊어치듯이 내질렀다.
퍼어억―!
그대로 놈의 안면을 꿰뚫은 방망이를 회수하자 좀비의 몸이 허물어졌다.
[현재 각성자의 수확 스택 : 280]
지금의 자신은 아까의 자신보다 강해졌다.
더 빠르고 더 강력하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성장하다보면 자신을 대적할 각성자는 존재하지 않겠지.
그러면…
박진헌은 인공섬의 리더인 ‘어머니’와 간부로 보였던 소녀의 얼굴을 생각하며 헤죽 웃었다.
자신의 밑에 깔릴 그녀들의 얼굴을 생각하니 흥분과 발기를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잠깐 체험한 리더 ‘어머니’는 상당히 이질적인 사람이었다.
그들의 집단에 들어가기 전에는 지나치게 까다롭지만, 일단 들어가기만 한다면 상당히 유해졌다.
그녀가 각성한 스킬처럼 자신의 가족에게는 지나치게 이타적이면서도 정이 많은 여성이었다.
그런 인품과 인성이 그녀를 거대 집단의 리더가 될 수 있게 만들었겠지.
그렇기에 박진헌은 그녀가 만들어갈 인공섬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주적인 집단이 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니 박진헌에게는 똘마니들이 필요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머릿수라고 배웠으니까.
자신에게만 의지하고 자신의 기분을 강아지처럼 살피던 친구들의 눈빛이 아직도 선명했다.
젊은 남자 9명과 좀비 하나 못 죽일만큼 약하지만 그래도 각성자인 1명.
그들을 필두로 박진헌은 인공섬을 집어삼키는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그러니까 내가 귀찮음을 감수하고 다시 온거지.”
박진헌은 살점과 핏물이 덕지덕지 붙은 야구 방망이를 툭툭 털며 3학년 교실이 있는 신관에 진입했다.
중앙 계단을 타고 10반 앞에 선 그가 멈칫했다.
‘…숨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는데?’
거기다 그의 후각에 감지되는 강렬한 냄새들.
음식들이 마구 뒤섞인 냄새에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았다.
드르르륵―
천천히 주변을 경계하며 10반에 들어선 그가 교실을 훑었다.
텅 비어있는 교실과 바닥에 난잡하게 늘어진 음식 접시들.
그 안에 담긴 짜장면, 탕수육, 족발….
이젠 간단하게 맛볼 수 없는 음식들이 버려져 있었다.
답은 간단했다.
“씨발… 어떤 새끼야.”
자신이 없는 틈을 타서 다른 각성자가 똘마니들과 접촉했다.
“음식만 다 합쳐도 1000 포인트가 넘는데…”
그것도 상당히 강력한 각성자가.
“아니 씨발! 도대체 왜?”
놈들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놈들이었다.
자신이 호신용으로 들려준 무기조차도 패배감에 물들어 휘두르지 못하던 놈들인데.
식량만 축내는 잉여 자원들을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아! 식량!”
박진헌이 서둘러 자신이 비축했었던 식량이 있던 공간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경기장에서 힘들게 빼낸 식량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개 씨발! 식량도 들고 간다고 말해놨는데!”
똘마니들도 잃고, 식량도 잃었다.
그것도 전혀 짐작도 못하는 새끼에게!
“씨이발!”
퍽―! 퍽―!
박진헌이 분노의 발길질에 부서지는 교탁을 뒤로하고 식량이 있던 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흔적을 발견했다.
[구원]
쓰레기를 이어 붙인 두 글자.
“아니 뭔 구원이야! 이 도둑놈 새끼가!”
그것 또한 발길질로 시원하게 없애버린 그가 씩씩거렸다.
“콜록! 아이 개씨발!”
격한 움직임에 나풀거리는 먼지들을 손으로 휘젖던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먼지!’
박진헌의 머리에 섬광이 번뜩였다.
그는 서둘러 복도에 나가 안력을 집중했다.
창문을 통과하는 햇빛에 선명하게 보이는 먼지들.
그 먼지들이 수북하게 쌓일 복도 바닥.
그곳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수 많은 발자국들.
“대충 가닥은 잡을 수 있겠지.”
박진헌이 희미한 발자국들을 뒤따라 걸었다.
아래로 이동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흔적들은 박진헌을 학교 옥상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옥상에서 뚝 끊기는 흔적들.
매서운 바람이 김해일이 항상 애용하던 의자를 흔드는 소리만이 박진헌을 반겼다.
“옥상. 구원.”
그 두 가지 단서만 흘리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친구들도 식량도 그리고 정체불명의 각성자도.
“비행인가? 그런 능력으로 포인트를 물 쓰듯이 썼다고?”
박진헌이 연결되지 않는 단서들을 헤집으며 머리를 헝클어 뜨렸다.
옥상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를 뺀다면 단 하나의 단서만이 남는다.
“…구원.”
박진헌은 마지막 단서를 으르렁거리듯 내뱉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친구들과 식량 없이는 인공섬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니,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큰소리 뻥뻥치면서 나왔는데,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절대로 그렇게 못하지.
넌 반드시 내가 찾는다.
그리고…
“누군지 모르겠지만 넌 뒤졌다.”
내 소중한 스택이 될 것이다.
* * *
끼이이익―
구원교 3층 간부실의 문이 열렸다.
밝게 빛나는 햇살과 함께 나와 간부들이 복도를 걸었다.
복도에서 대기하던 구원교의 기사들이 우리들을 보호하며 함께 걸었다.
기사들의 백색 신도복과 손에 들린 묵빛 소총의 안정적인 조화.
믿음의 검을 장착한 기사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전통의 블랙 앤 화이트!
흐뭇한 미소와 함께 대폭적으로 늘어난 신앙과 생산량 또한 체크했다.
[보유 신앙 : 12,200 (900/H)]
정말 오랜만에 10,000을 넘긴 채로 유지되는 신앙.
거기다가 신앙 생산량 또한 무려 1,000 돌파를 앞두고 있었다.
이러한 폭발적인 신앙 생산량 증가에는 당연히 새로운 각성자 신도가 주효했다.
가장 지근거리에서 나를 호위하고 있는 김해일을 바라보았다.
한마음 구원교의 세 번째 각성 신도.
번번한 스킬 조차 없던 무늬만 각성자인 1차 각성자.
김해일은 스킬이 뭐냐는 내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스킬이 없었다는 김해일의 답변을 듣고 나서야 내가 얻었던 ‘각성자로서 좀비 퍼스트 킬’의 주요 보상이 스킬 생성권이었던 것을 상기했다.
아무런 특기도 선척적인 재능도 없는 각성자.
그러고보니 나 또한 스킬이 없다며 시스템에게 찡찡거렸었지.
아마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김해일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허나 명확한 직업을 가지는 2차 각성이 된다면 말이 달라진다.
직업엔 반드시 그와 어울리는 스킬이 따라오니까.
그리고 구원교의 신도가 된 각성자들에겐 필수적으로 2차 각성이 뒤따랐다.
신도 관리 탭에서 갱신된 김해일의 상태창을 불러왔다.
[성명 : 김해일]
[성별∘나이 : 남∘19세]
[소속 : 한마음 구원교]
[직업 : 구원교 자경단 부단장(각성 신도)]
[보유 신앙 : 100]
[추격 Lv.1]
[당신은 얼굴을 확인한 자들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더 자세한 위치를 파악합니다.]
시스템은 내 의중을 정확히 꿰뚫어서 김해일에서 직업을 제안했다.
자경단 부단장.
단장 자리에 앉을 이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각성자로 만들어주는 아이템이 존재한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서태산을 앉힐 것이고.
아니라면 무력을 책임질 강력한 각성자를 파밍해서 앉힐 생각이었다.
또한 시스템은 아직까지 내 기사들을 기사단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성녀나 사도처럼 그들에게도 필요한 건물과 아이템이 있다는 뜻이겠지.
뭐, 그것말고는 딱히 불만은 없었다.
김해일에게 생성된 추격이라는 스킬이 자경단과 무슨 상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쓸모가 있는 스킬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이처럼 각성자 하나하나는 반드시 내게 큰 힘으로 돌아온다.
“아~ 계속 아쉽네.”
그러니까 박진헌인지 뭔지하는 각성자도 꼭 파밍하고 싶었는데.
일단 군토나랑 식량들 마저 챙기면서 나만의 메시지를 남기긴 했는데 당연히 이해 못하겠지?
하긴 구원 딱 두 글자로 뭘 알겠어?
혹시 방송이나 텔레파시가 가능한 각성자는 어디 없나?
하아… 박진헌 그놈이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 빨리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십니다, 교주님.”
한껏 찌푸린 얼굴에 다가온 성가을이 속삭였다.
다른 신도들이 듣기에 직설적인 말만 못할 뿐이지, 얼굴 좀 펴라는 성가을의 독촉이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학교에서 미처 데리고 오지 못한 박진헌 군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아프군요.”
“아아― 아닙니다, 교주님. 진헌이도 반드시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반드시 만날 것입니다.”
천장을 아련하게 응시하는 나를 보는 기사들의 눈이 뜨거워졌다.
동시에 뒤에서 사락사락거리는 필기음이 더 커졌다.
김은별이 열정적으로 방금 있었던 대화를 써내리고 있을 터였다.
첫 번째 기사들이 탄생하는 장면 또한 어련히 잘 써내려갔겠지.
김은별이 바쳤던 ‘구원의 서’ 1장에 아주 만족했기에 2장 또한 잘 썼을 것이다.
성가을의 말처럼 미약한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10,000 포인트를 모았으니.
드디어 석상 레벨을 올릴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귀찮음을 무릅쓰고 맞춤법과 내용에 관해 지적해주시는 모든 독자님에게 감사합니다.
저 또한 독자의 입장을 알기에 중간중간 틀린 맞춤법과 이름, 그리고 내용으로 리듬이 툭 끊기는 순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몰입하기가 상당히 짜증 나는 것도요.
제가 일일이 답글을 달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여러분들이 귀중한 시간을 들이셔서 써주신 맞춤법 지적과 피드백은 반드시 이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EP.66 서울로 (2)
서울로 (2) ― 한마음 구원교 1층
하하하하―
간부들과 함께 도착한 1층은 이미 웃음꽃이 활짝 핀 축제의 한창이었다.
중앙 계단부터 석상까지 이어지는 붉은 융단과 융단의 가장자리를 예쁘게 장식한 다양한 종류의 백색 꽃잎들.
척―
소총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사들이 붉은 융단에 차례로 도열했다.
“와아아아아아―!”
“교주님이다! 교주님이 오셨어!”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교주님!”
때마침 들려오는 신도들의 환호성과 박수를 시작으로 눈에 익은 두 아이가 총총거리며 달려왔다.
백화점에서 구한 신지훈과 김은별의 아들인 박힘찬이었다.
“하하하― 천천히 오거라. 천천히.”
잔뜩 긴장해서 발을 삐끗한 박힘찬과 옆에서 나란히 걸어온 신지훈을 환하게 웃으며 껴안았다.
품에 안은 아이들을 기특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나에게 흰색의 화사한 꽃목걸이가 걸렸다.
깜짝 놀란 웃음과 함께 아이들의 등을 두드려주자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난 아이들이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늘도 저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주님!”
“우리 찬이가 오늘따라 너무 기특한 말만 골라서하는게 수상한데… 어머님이 가르쳐 주신 말이니?”
“어… 아닙니다! 제 생각입니다!”
“하하하― 서기 신도가 주의를 단단히 주셨군요!”
가볍게 웃으며 김은별을 응시하자 그녀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멋쩍은 웃음을 짓는 박힘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번엔 신지훈을 보며 말했다.
“그래, 지훈이도 잘 지내고 있니?”
“그렇습니다! 저는~ 교주님이~ 주신~ 책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그래. 조만간 학교도 만들고 선생님도 데리고 올 테니 미리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단다. 알겠니?”
“항상 명심하고~ 또 명심하겠습니다~”
“구원교에도 웅변대회를 만들어야 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지훈이한테도 상을 줄텐데요!”
하하하하―
내 너스레에 모든 신도들이 흐뭇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따뜻한 눈빛으로 돌아오는 두 꼬마를 바라보는 신도들이 다시 나를 응시했다.
난 붉은 융단을 천천히 걸으며 석상 앞에 놓인 단상에 올랐다.
그리고 나의 충실한 신도들을 내려봤다.
수 십개의 둥근 테이블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신도들.
테이블을 가득 채운 고급 음식들과 그들의 손에 한 잔씩 들려있는 와인.
나 또한 단상에 준비된 와인을 들어보이며 웃었다.
“와인은 차고 넘치니 다들 너무 빠르게 달리진 마세요! 특히 김철수 신도의 얼굴이 너무 붉어서 걱정이 되는군요.”
“하하하― 죄송합니다, 교주님!”
하하하하―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김철수에게 방긋 웃어주며 말했다.
“저보다는 옆에 있는 분에게 사과하셔야 합니다. 아내분의 눈초리가 무척이나 무섭군요. 김철수 신도, 등을 보호하세요.”
“예? 어, 어이쿠―”
찬바람이 쌩쌩부는 아내의 눈초리를 마주한 김철수가 움찔거렸다.
하하하하하―
그리고 더 크게 웃는 신도들을 보며 와인잔을 더 높이 들었다.
반짝거리는 신도들의 눈을 하나 하나 마주치며 목소리에 마나를 담았다.
“우리에겐 함께 축하할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언제나 성대한 축제를 열 생각입니다. 아― 방금 제 말에 우리 부교주가 머리를 감싸쥐는군요.”
내 말에 맞춰서 성가을이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 미소가 모두에게 번지며 그들 또한 잔을 들며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일 기쁜 일이있다면 내일도 구원교의 축제입니다. 그 다음 날 또한 다를 건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질투하는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매일이 축제라면 그건 축제가 아니지 않냐고. 하지만 저는 그 사람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와인잔을 살짝 흔들었다.
찰랑이는 포도주를 응시하는 신도들의 눈이 함께 흔들렸다.
“왜 매일매일이 축제이면 안 되나요?”
내 장난스런 물음에 신도들이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바깥과는 완전히 괴리된.
지옥을 거니는 자들은 바라지도 못할 웃음의 나날.
내가 선물하고, 구원교만이 열 수 있는 성대한 축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는 것만이 기도일까요? 기도라는 것은 그리 특별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함께 술잔을 나누는 걸로 하겠습니다! 한층 따뜻해진 몸으로 옆사람과 웃으며 대화하세요!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난 마지막 말을 마치며 와인잔에 든 포도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식도를 가로지르는 알싸한 달콤함에 절로 두 눈이 반달을 그렸다.
“자! 기도합시다!”
내 선창에 응답한 신도들이 동시에 들고 있던 포도주를 들이켰다.
단숨에 퍼지는 알싸한 숨결와 뜨거운 열기.
환하게 웃는 신도들의 눈빛이 한층 더 몽롱해졌다.
“그 다음 제가 뭘 하라고 했죠?”
내 말이 끝나는 동시에 테이블 곳곳에서 이야기꽃이 흐드러지게 퍼졌다.
서로의 어깨를 쳐가며 농담을 나누는 정신우와 이경민.
백화점에서 구한 노인들은 서로의 술잔을 채웠다.
무슨 우스갯소리를 하는지 힘차게 웃느라 와인이 잔을 채웠다, 말았다를 반복한다.
별빛교회에서 구한 이들이 웃으며 음식을 나눴다.
오랜만에 본 서혜원이 옆에 있던 아줌마에게 자신이 바른 랍스터 살을 건네고 있었다.
잔소리를 폭탄처럼 받으며 등짝을 후드려맞는 김철수가 붉어터지려는 얼굴로 아내를 껴안았다.
그런 김철수와 못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흔드는 아내의 얼굴이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았다.
모두의 얼굴에 행복이 피어난다.
그 진실된 행복이 그들을, 그리고 나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눈이 부실 정도로 1층을 환하게 빛내는 ‘믿음의 증명’을 확인하며 공중을 날았다.
[교주 석상 Lv.2]
커다란 석상 앞에 도달한 나는 석상의 오른쪽 가슴에 손을 내뻗었다.
백색 빛이 내 오른손을 타고 석상에게 스며들었다.
우우우우웅―
낮게 울리는 공명음에 신도들의 시선이 석상으로 모였다.
다음 레벨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했던 신앙 포인트는 무려 10,000.
상당히 긴 신앙 주입이 끝나는 동시에 석상을 향해 빛의 기둥이 내리꽂혔다.
파아앗―
하얀 대리석이 찰흙처럼 요동쳤다.
단순히 정면을 응시하던 모습의 거대한 석상이 둥근 원모양으로 뭉쳤다.
그리고 다시 늘어지며 전혀 다른 모습로 변모했다.
오오오오오―
한층 더 거룩하고 웅장해진 석상에 신도들이 경탄을 흘렸다.
순백처럼 빛나는 대리석의 내가 공중에 뜬 채로 신도들을 굽어 살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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