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ipse 7

아주 부드럽게 [종속의 액]을 주입하기 직전에 그녀가 내 손길을 뿌리쳤다.
“흐윽― 하악― 하악―”
격한 운동이라도 한 듯이 간드러지는 숨결과 함께 그녀가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또 도망치니?”
아까처럼.
“……,”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쫓기듯이 기도실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조용히 닫히는 기도실 문 사이로 비틀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가 보였다.
“…각성자라서 그런가. 고집이 센 년이라 그런가.”
역시 한 번에 모든 일을 끝낼 수는 없었다.
그저 자신의 세계가 전부인 전형적인 어린 여자의 스트레오 타입같았다.
하지만, 별로 걱정하진 않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니깐.
고결한 척은 다 하지만 김 중사의 나라에서 특별한 취급을 받는 것도 까먹은 나약한 계집년.
지금부터 그녀의 세계를 내가 부술 것이다.
* * *
나는 다음날 아침을 먹은 뒤에 주주혜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간부실에 불렀다.
“오, 오늘 정말로 제 봉사가 필요 없으세요?”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잠시만 얌전히 앉아있어 달라는 거지.”
곧 있으면 3층 간부실로 그들이 올 것이다.
그들에게 윤아영이 내 자지를 펠라치오하는 광경을 보여주는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는 마이너스였다.
잔뜩 상처입은 표정의 윤아영을 적당히 달래며 그들이 적은 설문지를 살폈다.
“가을아, 준비하라는 건?”
“이미 테이블 위에 올려놨잖아. 혹시 부족하면 밑에서 더 챙겨오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주주혜의 할아버지의 이름은 주요셉.
할아버지때부터 이미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나보군.
주주혜의 할머니는 권미숙.
이쪽은 평범한 이름이시네.
그들의 이름을 외우며 설문지에 적힌 것들을 하나하나 유심하게 읽었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서태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주님, 말씀하셨던 신도들이 문 앞에 와있습니다.”
“아, 들어오라하세요.”
설문지를 성가을에게 건네며 눈짓으로 윤아영을 체크했다.
그녀 또한 분위기에 맞춰서 정결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끼이이익―
“아, 어서오세요! 아침은 어떻게 입에 맞으셨습니까?”
“아이고, 당연합니다, 교주님. 정말 감사하게 먹었습니다.”
정겹게 인사를 나누며 그들을 자리로 손짓했다.
하얀 신도복을 입은 그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간부실 테이블에 앉았다.
그들이 좀처럼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옷차림새를 매만졌다.
나는 아주 약간의 뜸을 들였다.
이 거대한 간부실이 그들을 충분히 압박할 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에 입을 열었다.
“옷이 불편하시진 않으시죠? 주요셉 신도.”
“아이고, 물론입니다. 오히려 옷까지 챙겨주시고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하하, 이제 우리는 한 가족이나 다름 없지 않습니까? 부족한 게 있으시면 기탄없이 말하세요.”
“하하하… 저, 저희가 어찌 감히….”
아무리 다정하게 말해도 그들의 잔뜩 움츠려든 어깨는 펴질 줄을 몰랐다.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아침 식사시간에 대놓고 주주혜와 그 가족들을 배척하던 신도들이 떠올랐다.
물론, 나의 암묵적인 허락 하에 일어난 매우 조직적인 따돌림이었다.
그 무거운 분위기와 상황이 그들을 더욱 작아지게 만들고 있겠지.
“제가 아무리 주의를 줘도 신도들 마음 하나하나를 어찌 강제할 수 있겠습니까? 신도분들의 두려움에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
“아이고, 맞습니다. 저희가 너무 죄송하지요….”
난 가볍게 웃으며 테이블 위에 잔뜩 쌓인 물품들을 손짓했다.
종류별로 쌓인 담배와 고급 와인들.
그리고 뜨개질 도구와 털실들이었다.
“마음을 푸시라는 의미에서 제가 아주 작은 선물을 준비했는데, 받아주시겠습니까?”
“이, 이건….”
잔뜩 휘둥그래진 눈으로 그걸 바라보고 있는 주요셉의 손에 담배 한 갑을 쥐어주었다.
“이런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분들이 바로 애연가분들이시죠.”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교주님.”
“하하하,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에 부끄러울 것이 어딨겠습니까. 자, 제 성의를 받아주시죠.”
타이밍 좋게 옆에 있던 성가을이 주요셉의 앞으로 차곡차곡 담배갑의 산을 쌓았다.
그걸 보고 있는 주요셉의 눈이 황홀로 가득찬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모두 금연을 하는건 아니였구나.’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나는 주요셉의 옆에있던 귄미숙에게 준비했던 뜨개질 도구와 털실을 건넸다.
“안그래도 적적하신데 평소에 자주하시던 뜨개질도 못하셔서 심심하셨죠?”
“아…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교주님.”
“괜찮습니다. 제 성의를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재앙의 시대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
어쩌면 황금의 산보다 더 귀한 선물의 산에 그들의 눈이 감동으로 젖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들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흠… 주주혜 신도 말입니다.”
“아, 예, 예.”
자신들의 혈육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들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긴장이 깃든 눈을 마주치며 은근히 그들의 대답을 유도했다.
“아주 놀랐습니다. 기도실에서 그런 거친 행동이라니… 특별한 징후가 있었을까요?”
“아, 아닙니다! 원래 전혀 그렇지 않은 착한 아이였는데….”
“흠… 그렇군요.”
턱을 쓰다듬으며 긴 침음을 흘렸다.
“원래 그렇지는 않았다는 거죠?”
“예, 예. 맞습니다, 교주님.”
나는 확신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 후 말했다.
“제 생각에는 주주혜 양이 김 중사, 그 악마들에게 오염된 것 같습니다.”
“예에에에?!”
감짝 놀라 동요하는 그들에게 되물었다.
“혹시 신도분들과 주주혜 양이 떨어진 순간이 있었나요?”
“그, 그놈들이 우리 주혜가 허튼 짓하지 못하게 저희를 다른 곳에 가둔 채로 방치했었습니다.”
“…역시.”
일부러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더 궁금해하라고.
그들의 목울대가 끊임없이 울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조금의 텀을 둔 뒤 다시 그들에게 말했다.
“제 생각에는 김 중사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주주혜 양이 그들에게 감염된 것 같습니다. 악이 전염된 것이지요.”
타이밍에 맞춰서 마나를 가속시켰다.
전신에 불타오르는 백광과 함께 공명하는 그들과 나를 잇는 믿음의 증명.
눈부신 빛에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그들에게 선언했다.
“저에게는 보입니다. 주주혜 양을 괴롭히는 마귀의 형상이. 제가 김 중사를 죽이는 순간에 그에게서 옮겨왔군요!”
“아이고! 아이고! 우리 주혜는 어떻게 합니까, 교주님!”
발을 동동 구르는 그들을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진정시켰다.
“진정하세요. 이 곳은 마귀들의 금지인 성역입니다. 저와 신도분들의 선함을 버티지 못하고 곧 본색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때,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아이고, 교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발치에서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는 그들을 성가을이 밖으로 안내했다.
내가 준 선물을 소중하게 안으며 문 밖을 나서는 그들에게 조용히 경고했다.
“마귀는 눈치가 아주 빠릅니다. 제가 나서기 전에는 주주혜 양도 이 사실을 몰라야 합니다.”
“명, 명심하겠습니다, 교주님.”
그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들도 알고 나도 안다.
가족이라는 것은, 가족을 생각하는 누군가의 마음은, 이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미니맵으로 빠르게 주요셉과 권미숙이 1층 거주 구역으로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에 들리지도 않고 바로 주주혜의 방으로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대면한 세 명의 가족.
딱― 딱―
성공의 의미로 가볍게 손가락을 부딪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가 무르익기까지 조금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참 신사적이네?”
“응? 언제는 강간마가 아니라 교주가 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참나, 언제 그렇게 내 말을 잘 들었다고….”
투덜거리는 성가을에게 작게 웃어준 후에 문을 열었다.
반짝이는 햇살과 함께 문 옆을 지키던 서태산이 공손하게 몸을 숙였다.
“서태산 신도. 종교 재판을 준비하세요.”
“예, 교주님.”
주주혜의 몸 속에 깃든 마귀를 정화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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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3 주주혜 (4)
주주혜 (4) ― 한마음 구원교 1층
서태산의 발 빠른 지시로 남자 신도들이 1층 거주구역 앞에 모였다.
그런 상황을 꿈에도 모르는 주주혜의 가족들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도돌이표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 우리 주혜 이제 어떡하니? 정말로 악마가 들어온 거니? 아이고….”
“갑자기 오셔서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각성자인 내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지만 정작 중요한 신도들은 ‘신도의 방’의 철저한 방음 덕에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끼이이익―
내 염력이 혼란에 가득찬 주주혜의 방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교주님이 다 말씀하셨어! 아이고… 우리 잘못이야, 우리 잘못. 우리 때문에 그 김 중사 악독한 것과 함께 있다가….”
“제발 진정 좀 하시고 차근차근 말씀해주세요! 김 중사, 그놈은 사이비 교주가 죽였는데 갑자기 김 중사 얘기가 왜 나와요?”
“교주님한테 사이비라니이이이!”
주요셉의 노호성이 열린 문틈으로 신도들 전부에게 전달됐다.
“그렇게 세상 착하신 분한테 사이비라니! 주혜야 너 정말 악마에게 씌인 거냐….”
“…악마? 그 교주가 저한테 그래요?”
“아이고, 아이고, 주혜야….”
“…그리고 두 분 다 그걸 믿어서 저한테 오신 거구요?”
주주혜의 목소리가 세차게 떨리기 시작했다.
슬슬 시작되는 클라이막스에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금 네가 입은 옷을 봐라. 주혜야, 왜 깨끗한 새 옷을 두고 계속해서 그 더러운 옷을 입는 거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저걸 입은 순간부터 사이비의 말에 굴복한 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는 두 분은 왜 그걸 입고 계신 거예요!”
“이렇게 늙은이들 적적할까 봐 선물도 챙겨주시는 분한테 사이비라니! 정말 안 보던 사이에 왜 그렇게 거칠어졌니!”
“할머니! 지, 지금 몇 십년을 함께 산 가족보다 고작 하루 만난 그 사이비 말을 더 믿으시는 거예요?!”
“믿는 게 아니라, 네가 그렇게 행동을 하고 있잖니!”
“제에에에발 정신 좀 차리세요오오오오오오!”
울분과 억울함이 가득 담긴 고함이 성역을 흔들었다.
그녀에게는 참다 참다 폭발한 감정의 편린이겠지만, 신도들에게는 소름끼치는 악의 울음소리였다.
“악이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서둘러서 신도들을 보호하세요.”
“네, 교주님!”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남성 신도들이 주주혜의 방을 급습했다.
“이 악마년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서태산의 고함과 함께 우당탕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뭐, 뭐야아아!”
“아이고, 아이고 형제님들!”
깜짝 놀란 주주혜의 비명과 올 것이 왔다는 투의 주요셉과 권미숙의 한 숨.
거칠게 저항하며 끌려나오는 주주혜가 나를 보더니 발광하기 시작했다.
“이, 이 개자식아아아! 왜 우리 가족까지 건드려! 왜애애애애!”
이성과 침착이 모두 날아간 처절한 분노와 혐오.
그녀가 자신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었다.
서태산과 정신우를 뿌리치려고 난리였지만 지원계 각성자라 그런지 남성 두명을 뿌리치는 것은 상당히 무리로 보였다.
뭐, 뿌리친다고 해도 그 다음은 염력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이고, 교주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주주혜와 함께 나온 그녀의 가족들이 내 발치에 엎드려서 연거푸 사죄하기 시작했다.
“하마테면 정말 큰일날 뻔 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교주님.”
“괜찮습니다. 주주혜 신도를 생각하는 여러분들의 마음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엎드린 그들을 손수 일으키자 그들의 눈이 감동으로 글썽였다.
난 자애롭게 웃으며 그들의 손을 맞잡아주었다.
“하지만 성급한 행동으로 성역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주의해주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를 표하는 그들을 지나쳐 주주혜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의미없는 저항을 멈추고는 표독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그녀.
“마귀가 보이는 군요. 불신을 전하는 악마의 나팔수.”
히이이익―
잔뜩 놀라는 신도들을 진정시키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놈이 여린 주주혜 신도를 좀먹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군요.”
내가 선사한 각성 신도복이 아닌 더럽고 헤진 옷을 입은 건방진 계집년.
네년은 그 고결한 신념을 위해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을까?
“종교 재판을 거행하겠습니다.”
나는 냉혹한 음성으로 신도들에게 선언했다.
* * *
한마음 구원교의 1층 로비.
평소라면 석상 밑으로 식사 테이블이 줄지어 이어졌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로비 중앙에 억센 밧줄에 꽁꽁 묶인 주주혜가 무릎 꿇려 있었다.
그 주위를 빙 둘러싼 구원교 신도 전원과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의 가족들.
구속된 죄인을 내려다 보는듯한 석상과 바로 밑에 준비된 거대한 세 개의 의자.
간부들이 모두 자리에 앉는 것으로 종교 재판의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난 오른쪽에 앉은 성가을에게 눈짓함으로써 종교 재판의 시작을 알렸다.
“수 차례에 걸친 난동을 부린 한 신도가 있습니다.”
성가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신도들을 향해 말했다.
“이 어린 예비 신도는 성스러운 기도를 방해했으며, 오롯이 저희를 굽어살피시는 교주님을 모욕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교주님을 믿지말라며 악랄한 협박까지 했습니다.”
성가을의 말이 끝나자 충격에 젖은 신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남자 신도들의 확답이 신도들 사이로 번져나갔다.
“교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녀의 몸에 누군가에게서 옮겨온 악이 머무른다고!”
평화로웠던 성역 내에서 처음으로 교주가 선언한 악.
주주혜를 보는 신도들의 눈에 공포가 깃든다.
“신도들의 평온한 생활을 위해 교주님이 극비리에 처리하시려했지만, 가족이란 이름의 사랑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아아아―
작은 탄식이 흐르는 가운데 주요셉과 권미숙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발각당한 것을 눈치 챈 악마가 성역을 더럽히려했지만, 보이시는데로 교주님을 이기지 못해 여기 그분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주혜는 어떠한 반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반항스러운 눈빛으로 나만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의 죄를 알겠느냐, 나의 딸아.”
“퉷―!”
그녀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나를 향해 침을 뱉었다.
길게 날아든 침이 내게 닿지 못하고 바닥에 흩뿌려졌다.
“저, 저런!”
신도들의 눈에 슬금슬금 올라오는 살기들을 보며 나는 윤아영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왼쪽에 앉아있던 윤아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각성 신도복이 뽐내는 백색의 휘광과 함께 그녀가 정결한 표정으로 주주혜를 향해 걸었다.
또각― 또각―
깨끗한 단화소리와 함께 구원교의 성녀가 주주혜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당황한 주주혜에게 따뜻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제 말이 들리시나요? 악에게 밀린 순수한 주주혜 씨의 영혼님.”
평소의 윤아영에게는 기대할 수 없었던 정결하면서도 순수한 음성에 신도들이 젖어간다.
“춥고 무섭겠지만, 아주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교주님이 당신의 모든 슬픔과 아픔을 기꺼이 떠안으실 겁니다.”
“아아아아―”
감동에 젖은 신도들과는 다르게 주주혜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입을 아주 단단히 막고 있는 외압에 그녀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아니지, 아직 네가 발광할 타이밍은 아니야.’
염력으로 그녀의 입을 막고 있는 와중에 성녀는 아주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직 제가 너무 부족한 탓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바깥에서 너무 강한 악에 전염되셨어요.”
성녀가 내게로 돌아오는 동시에 신도들이 별빛 교회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전염병을 피하듯이 필사적으로 벌어지는 그들의 간격.
짝―!
서서히 도망치던 신도들도, 아무런 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던 별빛 교회 사람들도 모두 내 박수에 시선을 집중했다.
“새로 들어온 우리의 가족들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그들 모두가 악에 빠진 것이 아니다! 그 증거로 새로 온 신도 중 한 명이 악마 앞에서 그녀의 믿음을 간증할 것이다!”
내 손짓에 따라 한 여인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염력이 풀린 주주혜의 입이 멍하니 그녀를 불렀다.
“…혜원아?”
서혜원은 주주혜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굳건한 믿음에 화답하듯이 웃어주며 물었다.
“나의 딸아, 너의 이름을 말하라.”
“서혜원입니다, 교주님.”
“그래, 너는 저 악마와 오랜 시간 알고 지냈다지?”
“그렇습니다. 그녀는 오염되기 전에는 저의 절친한 언니였습니다.”
나와 서혜원의 문답에 주주혜의 입이 염력으로 봉하지도 않았는데 열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어버버버거리는 입이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너는 나에게 주주혜가 악마의 하수인이라는 유력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맞느냐?”
“네, 그렇습니다, 교주님.”
“그렇다면 말해보거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전부.”
내 말에 서혜원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 속에 넘실거리는 믿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어젯밤이었습니다. 저를 괴롭히던 불면증을 이기지 못한 저는 2층 기도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침 그곳에 계시던 교주님이 저를 치유해주시며 저는 진정한 광명을 되찾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서혜원이 허망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주주혜를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분명히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한 주주혜가 그 순간 기도실을 들이닥쳤습니다. 저를 부르며 제가 찾아가던 마음의 안정을 방해했습니다! 그년이 어떻게 저를 찾을 수 있었을까요!”
서혜원이 목소리가 높아짐에따라 주주혜의 눈은 비례하듯이 흔들렸다.
“그것은 악마가 조종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악마가 저의 구원을 방해하라고 그녀에게 속삭인 겁니다! 이것보다 더한 증거가 세상에 어디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자매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신도들이 주먹을 쥐며 서혜원의 목소리에 동조했다.
고장난 기계처럼 혜원아―만 되풀이하는 주주혜의 눈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이 순간 철저하게 혼자였다.
“큰 용기를 냈구나, 아주 장하다, 나의 딸아.”
“아아아― 교주님.”
“그거면 되었다. 자리로 돌아가 나에게 모든 것을 맡겨라. 항상 그러했듯이.”
“네, 네에. 알겠습니다, 교주님.”
천천히 자리로 돌아가는 서혜원을 일별한 뒤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도들 모두와 눈을 맞췄다.
“사랑하는 나의 자식들아! 이 재판은 새로운 세상에서 열린 첫 번째 심판이다!”
검사의 정식 기소로 이루어지는 재판이 아니다.
신의 대리인이 참석한 재판도 아니다.
종교의 신이 직접 주재하는 그의 말이 곧 법인 재판.
아니, ‘심판’이었다.
“저 여인의 얼굴을 보아라!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힐 악은 저렇게나 아름다운 얼굴로 우리를 혼란케 할 것이다!”
악은 특별하지 않다.
악은 바로 우리의 곁에서 저렇게나 아름다운 얼굴로 우릴 속일 것이다.
“그대들은 무엇을 바라는가! 저 고운 얼굴과 목소리로 변장한 악을 어떻게 하길 바라는가!”
죽여야 합니다―!
찢어버려야 합니다―!
뜨거운 솥에 밀어버려야 합니다―!
온갖 죽음을 표상하는 단어들이 섞이고 섞여서 신도들이 하나의 단어만을 외치기 시작했다.
“구원! 구원! 구원!”
그 아우성의 중앙에 방치된 주주혜가 자신의 가족들을 찾았다.
그 떨리는 눈이 담은 주요셉과 권미숙이 감히 그들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하, 하지마. 제발, 제발….”
주주혜가 잔뜩 쉰 목소리로 애원했다.
허나, 나에게 닿지 않았다.
“고문하고! 정화하여! 성역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는가!”
“구원! 구원! 구원!”
모두가 주주혜의 죽음을 바란다.
허나, 그녀는 나의 충실한 종이 되어야지 내 심판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구원이 아니다! 나의 자식들아!”
잔뜩 과열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차갑게 내려앉은 정적 속에 아주 작은 목소리가 그들을 일깨운다.
“정화는 결국 정화이며, 구제는 곧 구제일뿐!”
“또, 또…. 하, 하지마…. 하지말라고!”
모두가 조용한 이 순간, 무언가를 눈치챈 주주혜가 애타게 나를 불렀다.
“악마를 죽여도 그 검은 핏방울이 그대들을 더럽힐 것이다!”
“죽여! 그냥 날 죽이라고! 이 사이비 새끼야아아아!”
주주혜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주먹을 쥐고는 높이 들었다.
주먹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빛이 신도들과 연결된 링크를 따라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대들의 마음에 티끌 한 점의 악도 머물게 하지않겠다! 이는 그대들의 어버이로서 하는 말이니!”
“아아아아악―! 이 사탄 마귀야! 제발 그만해애애애애애!”
그녀는 너무나도 절절하게 깨닫고 있었다.
고집과 아집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저 비명을 지른다고 교주의 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악이 나를 사탄이라 불러도 그대들을 구원하리라!”
“아아아아―!”
“악이 나를 마귀라 불러도 그대들을 구원하리라!”
“아아아아아―!”
그녀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상대는 사이비로 치부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전신을 흔들었다.위로 올라간 눈동자와 계속해서 흔드는 고개.
끊길 줄 모르는 눈물과 입에서 줄줄 흐르는 침.
믿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신도들을 두고 그가 손을 내젖고는 소리쳤다.
“재판을 끝낸다! 악마의 주괴, 성역을 더럽힌 탕녀에게 내릴 형벌은…!”
“아아아― 아아아아―”
바보같이 옹알이를 내뱉는 주주혜와 한구원의 눈이 마주친다.
그녀를 향해 잔인하게 웃은 그가 말했다.
성역의 신이 말했다.
“…용서다.”
“구원! 구원! 구원! 구원!”
그것이 그녀에게 가장 괴로울 구원이기에.
“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백색 돌 사이에서 유일한 검은 돌이 울부짖었다.
고통에 가득찬 비명이 신도들의 환희에 갇혀 밖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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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4 주주혜 (5)
주주혜 (5) ― 한마음 구원교 외부 정원
“제가 구시대에서는 나름 잘나가던 변호사였습니다.”
“오, 확실히 형제님에게 그런 이미지가 남아있으시군요.”
“과거에는 정말 어리석게 살았죠.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살아남는 건 줄 알았습니다.”
“아아, 형제님.”
“하지만 교주님의 말씀에 한없이 위로받는 자신을 보며 느꼈습니다. 진정 이기는 것은 믿음과 순종이였더군요.”
“그 말씀이 백번 맞습니다. 자, 기도하실까요?”
교주님― 오늘도 저희에게―
광신도들의 기도소리가 들린다.
아니, 이제는 광신도인지 아닌지도 솔직히 헷갈렸다.
주주혜는 녹음이 풍성한 정원에서 홀로 엎드려 있었다.
주위에는 삼삼오오 모인 신도들이 이야기꽃을 나누기 바빴지만, 그녀는 향긋한 향이 풍기는 나무테이블에 얼굴을 묻고는 어둠속을 유영했다.
용서라는 처벌을 받은 지 이제 겨우 3일이 지났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그 3일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버티기 힘든 지옥이었다.
재판 이후로 신도들은 자신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별빛 교회 사람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혜원이 마저 자신을 외면하는 것이 너무나도 슬펐지만, 그것 또한 금방 담담해졌다.
아니, 이미 부서질대로 부서진 도자기에는 그 정도 상처는 상처도 아니었다.
이미 충분히 밑바닥인 그녀를 더 나락으로 잡아당기는 것은…
‘형, 형제님들, 자매님들….’
‘죄송합니다, 주요셉 신도. 당신과 함께 있다가 제 믿음이 의심받을까 두렵습니다.’
‘아닙니다. 저, 저희는….’
신도들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가족들을 보는 일이었다.
식사 시간에 자신의 옆을 지켜주셨단 이유만으로 자신의 가족들 또한 자신과 똑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
‘우린… 괜찮단다, 주혜야.’
그러면서도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가족들의 표정에 그녀의 가슴속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아닌데.
저것이 자신이 그토록 지키려고 발버둥치던 가족들의 표정이 아니었는데.
이제, 이제 자신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지켜드렸어야 했는데….
이제 내가… 이 집안의 가장이었는데.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슬픔과는 전혀 상관없이 세상은 빌어먹을정도로 평화로웠다.
내리쬐는 햇살과 함께 유려한 초록색 수채화로 채운듯한 그림과 같은 정원.
그 속에서 너무나도 걱정없이 웃는 하얀 신도들.
자신은 저곳에 속해있지 않았다.
“끼에에에에엑―!”
이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보호막 바깥의 좀비들.
그들만이 자신과 함께 울부짖고 있었다.
홀로였다.
자신은 이 곳에서 정말 철저하게 혼자였다.
절망스러울정도로 처절한 외로움이 눈가에서 삐죽 튀어나왔다.
“흐, 흐아아아아앙―”
그녀는 아이같이 울었다.
틀렸다고 말하던 자신이 정말로 틀렸던 걸까?
“엉엉엉― 흐끅―”
이젠 그녀도 무엇이 진짜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아니, 포기했다.
한참을 아이같이 울던 그녀가 팔로 눈물을 지우며 입술을 슬며시 깨물었다.
그리곤 곧은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선 그녀가 필사적으로 외면하던 옷을 응시한다.
닫힌 문에 계속해서 걸려있던 백색의 신도복.
스륵― 툭―
낡고 헤진 옷이 살을 스치며 바닥에 내려앉는다.
알몸이 된 주주혜가 문에 걸린 각성 신도복을 천천히 입었다.
성녀가 입었던 것과 동일한 의상.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신도복이 내뿜는 성스러움과 정결함이 물씬 풍겼다.
머리를 묶어주던 고무줄 또한 풀었다.
스르륵―
순식간에 허리 밑으로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다시 한데 모아서 정성스럽게 묶었다.
탁―
고무줄이 살짝 팅기며 자신이 알던 익숙한 말총머리로 돌아온 그녀가 신발장에 있는 단화를 신었다.
검은 때가 묻은 운동화는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깨끗한 백색 단화와 함께 방을 나온 그녀가 주거 구역을 가볍게 통과했다.
중앙계단에 도착한 그녀가 위를 쳐다봤다.
그녀의 목적지는 4층에 있는 교주의 침실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
또각― 또각―
밝은 햇살과 함께 낮은 굽소리가 천천히 계단을 울렸다.
정결한 처녀가 순백의 계단을 올랐다.
* * *
똑― 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
미니맵을 확인하고 기다리고 있던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들어오세요.”
끼이익―
아주 천천히 열리는 문과 함께 각성 신도복을 입은 주주혜가 쭈뼛대며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인내하고 기다려왔던가.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충분히 잘 영글어진 열매가 이제 툭하며 스스로 떨어질 것이다.
그녀가 넓은 방의 중앙으로 걸어왔다.
적당히 달라붙은 각성 신도복으로 보이는 슬림한 몸매가 나를 자극했다.
여자치고는 상당히 장신인 170cm를 가볍게 넘긴 체형이 여리여리하고 유려한 느낌을 한층 더 부각시켰다.
‘와, 같은 옷이지만, 아영이랑은 또 느낌이 다르네.’
윤아영이 적당한 키에 우월한 몸매를 지녔다면.
주주혜는 그냥 비율에 스탯이 몰빵된 느낌이었다.
그 유려한 직선이 천천히 접혀간다.
무릎을 꿇은 주주혜가 잘게 떨리는 음성으로 나에게 말했다.
“…살려주세요.”
쿵―
이마가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말총머리가 채찍처럼 흔들렸다.
“…살려주세요, 제발.”
드디어.
드디어 고집 센 년의 무의미한 반항이 끝났다.
사자 앞의 가젤처럼 부르르 떨리는 그녀의 전신을 아주 천천히 훑었다.
내 노골적인 시선에 반응하듯이 그녀의 몸이 더 세차게 떨려왔다.
엎드려 있는 그녀의 잘록한 엉덩이에 서서히 물건에 힘이 들어갔다.
이젠 정말 내 마음대로 그녀를 가지고 놀아도 상관없었다.
도게자하듯이 엎드린 그녀의 머리를 질근질근 밟아서 정복욕을 충족시킬 수도 있었고.
그녀의 다리를 개구리 뒷다리를 잡듯이 잡아당긴채로 삽입하며 굴욕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었다.
‘씨발, 난 이제 과거의 한구원이 아니라고.’
종속의 액만 믿고 바보같이 돌진하던 강간마는 이제 없다.
한마음 구원교의 유일한 지배자만 있을 뿐.
그런 강압적인 행동은 그녀를 얻기위한 완벽한 그림에 전혀 도움이 되는 행동이 아니었다.
굴복의 땀방울보다, 감동의 눈물을.
이젠 나를 대변하는 원칙을 웬만하면 어길 생각이 없었다.
계속해서 두려움에 떨고있는 저 유려한 몸체를 보라.
잘게 뭉개어진 도자기는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재구성해야했다.
엎드린 그녀에게로 걸었다.
조용히 울리는 발소리에 그녀의 몸이 긴장으로 잔뜩 굳어갔다.
“…아.”
예술품을 다루듯 은근한 손길로 그녀를 일으켰다.
마주 서게 된 그녀가 내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난 계속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주주혜를 품에 안았다.
“……!”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그녀의 잔머리에 얼굴을 묻고는 오른 손으로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툭― 툭―
아기를 재우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토닥여오는 리듬에 그녀의 몸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흐물흐물해지는 그녀의 육체가 나에게 완벽히 기댄 것이 느껴졌다.
그녀를 이루던 결핍들.
행복한 미래와 그 미래를 위한 강력한 힘.
여성적이기보다는 상당히 남성적인 바램들이다.
그녀는 왜 그것들을 바라고 갈망하게 됐을까?
주주혜의 시점으로 세상을 돌아봤다.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옥.
자신의 보호자이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라지고,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자신이 부양해야 할 늙은 조부모뿐.
자신이 아닌 타인만을 이동시켜주는 수동적인 능력과 그 능력덕에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상황.
남자들의 음욕에 젖은 시선과 그들에게 희생당한 여자들의 비명소리.
짐승들의 나라에서 자신은 이제 가족들을 지켜야 할 가장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고슴도치.”
“……아.”
“너무나 가엽구나, 우리 주혜.”
가시를 바짝 세우고 있던 그녀의 얼굴을 아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매끄러운 살결을 느끼며 그녀가 모르게 은근히 그녀의 얼굴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흐읍―”
깜짝 놀란 분홍빛 입술을 위로하듯이 톡― 톡― 두드렸다.
오늘 나의 테마는 철저하게 ‘위로’였다.
쪽― 쪽―
“흐으음― 으응―”
부드러운 버드 키스가 이어지자 갑작스런 키스에 바짝 세워진 가시가 천천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나와의 키스에 호응하듯이 그녀의 입이 아주 살짝 열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뱀처럼 살랑거리는 혀가 안쪽에 숨어있던 그녀의 혀를 단숨에 옭아매었다.
“흐으읏― 흐응―”
혀를 섞을수록 아주 천천히 그녀의 혀가 밖으로 나왔다.
달콤한 신음이 이어지며 갈 곳을 잃었던 그녀의 팔이 살며시 내 어깨 위로 올려졌다.
“쪼옥― 쪽― 흐으응―”
어느새 완전히 키스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를 침대까지 이끌었다.
풀썩거리는 매트릭스와 함께 침대에 앉은 내 허벅지에 그녀가 얌전히 놓였다.
계속해서 주입되는 타액이 그녀의 식도를 넘어 내면까지 침투한다.
[종속의 액]에 반응한 그녀의 전신이 뜨거운 열과 함께 은근한 빛무리를 토해냈다.
“…아.”
슬슬 다음 단계를 위해 혀를 갈무리하자 그녀에게 아쉬움이 가득 담긴 탄성이 흘렀다.
그녀의 혀에서 이어지던 기나긴 타액이 얇게 부서지며 흘러내렸다.
그제야 기나긴 꿈에서 깨어난 듯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난 그런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왜 그렇게 부끄러워 해? 혹시 처음이야?”
“처, 처음은 원래 결혼한 사람이랑….”
“…할렐루야.”
혼전순결이라.
오, 주님!
당신이 세상에 내려주셨던 가르침 중에서 정말 제일로 쓸모 있는 것이군요!
내 감탄사에 그녀의 얼굴을 점령했던 붉은 빛이 그녀의 앙증맞은 귓볼에까지 퍼졌다.
얼굴에 있는 피란 피는 모두 모인듯한 귀를 조금씩 애무하면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가시를 모두 눕힌 고슴도치가 부드러운 배를 내게 보였다.
스르륵―
신도복 안으로 들어간 손이 뽀얀 배를 천천히 원을 그리며 어루만졌다.
애무가 아닌 철저한 위로의 손길.
아픔을 치유하는 약손에 그녀의 눈에 천천히 풀려갔다.
서서히 벌려지는 입술과 함께 너무나도 고른 숨이 그녀의 코와 입에서 흘러나왔다.
반쯤 멍해진 그녀의 동공을 [결핍 파악]이 훑는다.
[50% : 가족들이 행복한 미래]
[50% : 구원교 교주가 가진 능력]
소녀가장 주주혜.
구원으로 잉태한 나의 소중한 딸.
“그 모진 세상에서 얼마나 힘들었니.”
염력이 그녀의 각성 신도복을 아주 천천히 벗겼다.
“무거운 책임감이 도리어 네 자신을 짓눌렀구나.”
모든 것을 벗어던진 그녀의 전신이 뽀얗게 빛났다.
그녀의 가슴도, 꽃잎도, 그 어떤 곳도 애무하지 않았다.
“우리 주혜가 안쓰러울만큼 버티던 이유도 다 알고 있단다.”
그녀에게 울리는 이 작은 목소리가.
“너를 잊어버리면 모든게 사라질 것만 같았겠지.”
그녀의 마음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을테니까.
“돌아가셨다 생각하지만, 사실 어딘가에 살아계실길 바라는 아버지와 어머니. 너무나 평화롭고 사랑스러웠던 얼마 전의 세상.”
“흐윽―”
그녀의 눈이 물기에 젖어 반짝거렸다.
“너마저 그 시절의 목소리를 잊어버린다면, 영영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흐윽― 흐으으윽―”
그녀의 눈을 촉촉이 적시던 눈물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동안 너무 수고했어, 우리 딸. 이제 아빠가 전부 해결해줄게.”
“흐으윽― 흐윽― 흐아아아앙―”
장신의 성숙한 미녀에겐 너무나 언밸런스한 아이같은 울음소리.
그야말로 펑펑 우는 그녀를 보며 진득한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나쁜 놈들도 전부 때려잡고, 잃어버린 가족들도 함께 찾아보자. 이제 더 이상 주혜는 혼자가 아니야.”
“흐끅― 흐그극― 흐끅―”
딸국질을 흘리는 그녀의 두 볼을 잡고 시선을 내게 고정시켰다.
뜨거운 열기를 담은 두 명의 눈이 공명했다.
“아빠가 있잖니?”
“…맞아요.”
주주혜가 바보같은 눈웃음과 함께 내 말에 긍정했다.
“…믿음으로 순종하라.”
“옳지. 누굴 닮아서 그렇게 똑똑할까?”
그녀의 몸이 ‘믿음의 증명’으로 하얗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나를 잇는 선이 더 굵게 커지며 박동했다.
“아~ 해야지?”
“아~”
내 말을 따라하며 벌린 입으로 기나긴 타액이 줄을 이어 들어갔다.
진한 [종속의 액]이 그녀의 몸을 더욱 하얗게 빛냈다.
“얌얌.”
“얌얌~”
타액을 꼭꼭 씹어먹는 그녀의 보지를 천천히 쓸었다.
찌걱―
이미 애액으로 흥건한 사타구니가 진득한 소리를 야하게 내뱉었다.
살짝 하얗게 거품이 일어난 손가락을 주주혜의 입에 집어넣었다.
쪽― 쪼옥― 쪽―
아무런 의심없이 맛있게 빨기 시작하는 그녀를 감상하며 주주혜의 길게 뻗은 다리를 내 어깨에 얹었다.
그녀의 다리가 들리며 보이는 앙증맞게 닫혀있는 소음순이 흘러나온 애액으로 반짝였다.
그 중 유독 진득한 애액은 다리가 들릴수록 길게 늘어나며 이불을 적셨다.
이불까지 흘러내린 애액을 귀두에 잔뜩 묻힌 채로 그녀의 소음순에 비볐다.
“으응― 으으으응―”
그것만으로 주주혜는 몸을 비틀며 달콤한 신음을 내질렀다.
“이제 주혜는 영원히 나랑 함께인 거야.”
“…맞아요. 믿음으로 순종하라.”
“그래. 믿음으로서 순종하렴.”
기도실에서부터 반복했던 세뇌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쯔거어억―
“으으응! 으으으읏―!”
귀두가 잔뜩 조이는 질벽을 헤치며 천천히 나아갔다.
생경한 느낌에 잔뜩 몸부림치는 그녀를 편하게 감상하며 자지를 밀어넣었다.
“으으읏― 으큭―”
그녀가 입술을 깨무는 순간과 동시에 그녀의 처녀막이 찢어졌다.
무언가를 찢는 느낌과 함께 잔뜩 조여드는 질벽에도 절대로 강하게 들이박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전진하는 귀두가 느긋하게 질벽을 자극했다.
“좋아?”
“으으응― 좋아여―”
“어디가 좋아?”
“보지― 보지가 좋아여―”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지?”
“가, 감사합니다, 아빠….”
적당히 굴복만 시키려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였다.
종교 재판 당시에 악을 쓰던 표정과 지금의 표정이 겹쳐진다.
그 한계까지 몰린 발악과 분노대신 멍하게 뜬 반달 눈과 침이 줄줄 새는 턱이 나를 반겼다.
보지의 조임보다 상황이 주는 기묘한 충족감에 금방이라도 싸버릴 것처럼 자지가 움찔거렸다.
그녀의 질벽을 더 제대로 긁기 위해서 체위를 변경했다.
어깨 위에 다리를 올린 채로 그녀의 몸과 밀착했다.
“흐그그극― 으아아아앙―”
살짝 들린 허리를 따라 내 귀두가 그녀의 위쪽 질벽을 진하게 긁었다.
쫙 뻗은 주주혜의 발등이 잔뜩 오므려지는 것을 확인하며 허리의 움직임을 가속했다.
“으으응― 으응― 응― 응―”
귀여운 신음소리와 동시에 그녀의 하얀 다리가 양 옆에서 살랑거렸다.
그 다리를 잡고는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강도로 자지를 밀어넣었다.
“흐그그그극―”
자궁까지 밀려든 자지를 울렁거리며 조여대는 좁은 질벽.
쾌감을 버티지 못해 고개를 마구 젖히는 주주혜의 얼굴을 잡고는 [종속의 액]을 다시 주입했다.
“베에에에― 으응― 으으응― 냠냠―”
길게 이어지는 타액을 천천히 받아먹은 그녀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마지막 냠냠이라는 말에 모든 이성이 다 날라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스피드로 그녀를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쯔걱― 쯔걱― 쯔걱―
“아앙― 앙― 응― 응― 응―”
반동을 위해 들린 기둥에 끝까지 따라붙은 주주혜의 속보지가 분홍색으로 번들거렸다.
퍼억― 퍼억― 퍽―
크게 들썩이는 허리와 함께 옆에서 뽀얗게 빛나는 종아리에 계속해서 뽀뽀를 퍼부었다.
쪼옥― 쪽― 쪽―
“흐으응― 간지러워여어어―”
“그렇게 성숙한 얼굴로 왜 그렇게 귀여워?”
“응― 응― 응― 응―”
“응이라고 밖에 못해?”
“응― 응― 응―”
“이런, 밖에 쌀까?”
“아앙― 안 돼! 안대여! 안에― 안에 싸주세여―”
귀엽게 내 자지를 즐기던 주주혜가 다급한 얼굴로 내게 손을 뻗었다.
마음만 급한 그녀가 혓바닥부터 내밀며 내게 키스를 재촉했다.
“가요― 저, 저 갈 것 같아요― 아빠― 아빠아아―”
“크흑―”
나 또한 차오르는 사정감에 그녀의 입술을 잡아먹듯이 집어삼켰다.
츄으읍― 츄릅―
끈적하게 얽히는 혀와 함께 마지막으로 가장 깊게 들어간 자지가 그녀의 자궁에 [종속의 액]을 터트렸다.
뷰르륵― 뷰륵―
“흐아아아아―”
“몸에 좋은 건 꼭꼭 씹어먹어야지?”
“네에에―”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질벽이 꽉 조여오며 자지에 남은 잔뇨감을 털어냈다.
자궁에서부터 흡수되는 성액이 그대로 그녀의 몸을 더욱 내게 종속시켰다.
이제는 교주의 침실을 눈부시게 가득채운 빛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한마음 구원교’의 두 번째 각성 신도가 탄생하였습니다!]
[특수업적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달성하셨습니다!]
[두 번째 각성 신도 ‘주주혜’에게 전용 직업과 스킬이 전승됩니다!]
[그녀의 뒤틀린 사랑으로 인해 신앙 수급량이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610/H) -> (760/H)]
시스템 메시지를 차근차근 읽고 있는 나에게 주주혜가 안겨왔다.
“하아아아―”
꽉 껴안은 그녀에게 들리는 달짝지근한 한숨과 내 허리를 잠그는 그녀의 긴 다리가 느껴졌다.
매미처럼 내게 매달린 그녀가 나에게 속삭였다.
“…사랑해요, 아빠.”
다음화 보기―――――――――――――――――――――
EP.55 구원의 문지기 (1)
구원의 문지기(1) ― 인천 영종도 한바위로 ‘롯데마트’ 앞
빵빵― 빠아앙― 빵―
“끼에에에에에엑!”
여러 대의 자동자들이 폭주하듯이 속도를 높이며 클락션을 울렸다.
영종도의 바닷바람이 느껴지는 거리 위.
주위를 울리는 시끄러운 굉음에 거리를 떠돌던 모든 좀비들이 일제히 자동차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몰이조가 몰이에 성공했다.
“흠, 슬슬 진입해도 괜찮겠군.”
영감님의 입에서 매캐한 타르향이 퍼졌다.
스멀스멀 다가오는 담배 연기에 강산은 보란 듯이 팔로 얼굴을 막았다.
귀엽다는 듯이 비웃는 영감님을 무시하곤 유리창이 깨진 출입문을 응시했다.
햇빛마저 모두 삼켜버린 어둠만이 자욱한 내부.
“왜? 막상 들어갈 생각을 하니 오금이 저리나?”
“저는 영감님같은 초인이 아니에요. 당연히 무섭죠.”
강산은 영감님의 짓궂은 질문에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저 툴툴한 물음이 자신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농담인 것을 모르지 않았다.
강산은 심호흡을 하며 하얀 총신이 반짝이는 권총을 다시 점검했다.
탄창 안에 가득 들어찬 노란색 총알에 가슴이 기분 나쁘게 두근거렸다.
반드시 써야하겠지만, 그래도 오늘 이 권총을 쓸 일이 없었다면 좋겠다.
“후우~”
연초를 뿌리 끝까지 빤 영감님이 긴 한숨과 함께 담배 꽁초를 땅으로 튕겼다.
“…영감님.”
“아아, 오늘 하루만 잔소리는 봐주게나. 이것 말고도 신경써야할 일이 투성이잖나?”
“하다못해 발로 밟기라도 해주세요.”
“그래그래. 이래서 난 자네가 좋다니까. 나쁜 놈보다는 그래도 잔소리 많은 착한 놈이 좋아.”
담배 꽁초를 질근질근 밟은 영감님이 조용히 출입문까지 걸어간다.
강산은 그 뒤를 묵묵히 따르며 주위를 살폈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그들의 포메이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괜찮은 그룹에 들어온 것 같아서 입을 너무 털었던 게 아닐까?”
“하하,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잖아요.”
“공익광고에서나 볼 법한 멘트는….”
궁시렁거리던 영감이 스마트폰을 마트 내부로 던졌다.
툭―
미약한 빛이 어둠을 가르며 마트 중앙에 안착했다.
“캬, 저래도 안 꺼지는 거 보게. 이래서 국산, 국산하는거 아니겠나?”
“요즘은 외국 것도 다 좋아요.”
“에라이, 내가 뉴스에서 다 봤는데 뭐! AS도 제대로 안 해줬다더만!”
그들의 시덥잖은 잡담 끝에 설정된 시간이 다가왔다.
미약한 빛을 내뿜던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알람을 내뱉었다.
[에에에엥― 에에에에엥―]
철저하게 소음을 목적으로한 알람이 마트 내부를 뒤흔들었다.
얌전히 동태를 살피던 그들은 조용한 내부의 반응에 천천히 어둠속에 발을 들였다.
한 개씩 장비한 손전등의 플래시 라이트가 그들의 진로를 밝혔다.
바스락―
유리 밟히는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진동하는 스마트폰 앞까지 도달한 영감이 조용히 스마트폰을 챙겼다.
“한 마리도 없다고? 흠… 1층이라 그런가?”
“…모르겠네요. 저희는 바깥 전문이지, 건물 전문이 아니잖아요.”
“크하하, 그거 맞는 말이군.”
호탕한 웃음과 함께 영감이 강산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
강산은 그 유쾌한 반응에 마주 웃으며 영감을 처음 만난 날을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무모하기 그지 없던 도서관에서의 탈주.
경찰의 시체에서 원하던 무기는 손에 넣었지만, 그것으로 나아지는 상황은 아무것도 없었다.
총은 총알을 격발하는 도구.
그 격발은 상당한 소음을 야기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좀비가 끔뻑 죽으며 환장하는 요소 또한 ‘소음’이라는 것에 있었다.
좀비를 처치하는데 있어서 총은 정말로 상당한 애물단지였다.
그렇다고 포기한 채로 도서관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가을이를 그렇게나 매정하게 뿌리쳤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자존심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여동생, 이제 그에게 정말 남은 건 유일한 혈육뿐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자처한 지옥의 고행길에서 강산은 정말 기적처럼 영감님을 만났다.
아마 이 이야기는 책으로 써도 잘 팔릴 것이라 그는 확신했다.
자신처럼 잃어버린 가족을 찾고 있는 멸망한 세계의 유일한 동료.
“이거 하나는 명심하자고. ‘어머니’의 요구는 ‘파밍’이 아니라 ‘수색’이야. 조금만 위험한 낌새가 보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색은 종료야.”
“그 말씀 오늘 정확히 20번 정도 하셨어요.”
“예끼! 어른의 말씀 하나하나가 전부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거여!”
이 드넓은 마트에 자신들의 농담만이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강산의 플래시 라이트가 천장을 꼼꼼하게 훑은 뒤에 바닥을 훑었다.
위이이이잉―
시체 썩은 내와 파리들의 시끄러운 날갯짓.
플래시 라이트에 비친 시체를 꾸덕거리며 전진하는 구더기들에 헛구역질을 겨우 참았다.
“이런 젠장, 이 놈의 파리들은 좀비들한테나 알을 깔 것이지!”
영감님이 상한 음식을 기어다니는 구더기들을 보며 역정을 냈다.
그래도 다행히 이 롯데마트는 1층부터 바로 식품들이 가득했다.
우리의 수색 목표 중 가장 중요한 것도 ‘먹을 수 있는 식품의 존재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건조 식품쪽이나 통조림 쪽으로 이동하죠.”
“그러세나.”
그들이 찐득거리는 검은 피와 유리를 밟으며 좀 더 안쪽으로 이동했다.
“항상 바닥부터 살피고 이동하게. 머리만 남은 새끼가 발목을 진하게 물어버리기 전에.”
“예, 예.”
코너 하나하나를 꼼꼼히 뒤지는 그들의 수색은 자연스럽게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거북이같이 느리지만 확실한 수색에 그들의 얼굴이 땀방울로 가득찼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구먼.”
“돌아갈까요?”
어떤 망설임도 없이 강산이 영감님에게 물었다.
여태까지 그의 직감과 노련함으로 손해를 본 적이 없었다.
깊게 고민하던 영감님이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흠, 아니야. 이대로 이 곳마저 포기한다면 당장 내일의 보급에도 차질이 생기네.”
“…그룹에 애정이 많이 생기신 거 같네요.”
“허허, 자네만 하겠나? 그렇게 노래부르던 동생이랑 주접이란 주접은 다 떨어놓고는.”
얼굴이 새빨개진 강산이 마땅한 대답을 찾기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그룹에 속해있던 여동생과 재회한 후에 엉엉 울어버렸던 자신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그래도 다행이야. 결국엔 정말로 만났잖은가?”
“영감님 가족분들도 반드시 살아계실거예요.”
“……그래야지. 그래야지.”
무거워진 분위기와 함께 그들이 통조림 코너를 꼼꼼히 살폈다.
유통기한이 넉넉하게 남은 통조림들이 영감님의 인벤토리로 모조리 흡수됐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통조림들을 보며 강산의 표정이 경이감으로 가득찼다.
“와― 아직도 안 믿겨요. 각성자라니.”
“에끼, 이건 부가적인 기능이야. 내가 진짜 마술 한 번 보여줘?”
어두웠던 영감님의 표정이 다시 우쭐해졌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영감님을 보며 강산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마세요. 매번 봐도 차력쇼 같아요.”
“이런~ 건방진 놈.”
다시 풀어진 분위기에 강산은 도서관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자신이 각성자라고 주장하던 예비 감염자 ‘윤아영’.
그녀의 말이 전부 다 사실이었다.
‘정말로 다행이야. 그때 내쫓지 않아서.’
사실, 그 또한 마음에 걸려서 반대한 것이지 윤아영의 말을 곧이곧대로 전부 믿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경민의 말에 설득되고 있던 자신이 있었다.
그런 윤아영을 유일하게 변호했던 한 사람.
‘둘이라면 분명 잘해내고 있을거야.’
가을이는 눈빛이 이상한 사람이라 매도했지만, 애초에 가을이는 좋게 평가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 둘이 함께라면 아마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전에 봤던 각성자는 능력이 뭐라던가?”
갑자기 훅― 들어오는 물음에 강산의 상념이 깨졌다.
통조림을 이리저리 살피던 영감님을 보며 강산은 놀란 음색으로 물었다.
“…제가 예전 일을 영감님에게 말했던 가요?”
“이 사람아, 우리가 함께 헤쳐온 역경이 몇 개냐? 눈빛만 봐도 이제 딱 서로를 아는 지경이지. 이런 걸 어려운 말로 ‘지음(知音)’이라고 하는데 요즘 어린 것들은 아나 몰라.”
“영감님. 요즘 애들도 그런 간단한 한자는 다 알아요.”
가볍게 영감님을 타박한 강산이 반대쪽에 배치된 통조림을 영감님에게 던졌다.
민첩하게 받은 영감님의 손에서 통조림이 스륵하고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며 강산이 말을 이었다.
“그 사람 말로는 위기를 감지할 수 있대요.”
“오, 매우 좋은 능력이군. 직업은 가졌다던가? 아, 2차 각성이라고 해야 하나?”
“영감님. 저는 각성자가 아니라서 그런 단어로 말씀하셔도 잘 몰라요.”
강산의 플래시 라이트가 다시 꼼꼼하게 주변을 살폈다.
원래라면 어떠한 소음도 없이 최대한 조용히 건물을 수색해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침묵까지 하게 되면 사람은 정말로 미쳐버린다.
그토록 무거운 상황이 주는 압박감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애초에 흔하지 않았다.
‘애초에 대화소리에 반응할 놈들이면 이미 알람소리에 튀어나왔을 거고.’
이른바 노하우였다.
수 많은 경험 끝에 자동으로 터득한 어둠을 버티는 노하우.
“아쉽군. 2차 각성까지 했다면 그룹에 매우 필요한 인재가 됐겠어.”
“뭐… 그렇죠.”
강산의 눈이 보이지도 않은 먼 곳을 잠시 응시했다.
이번엔 영감님이 또 다시 무거워지려는 분위기를 커트했다.
“젊은 놈이 벌써부터 두 눈에 욕심이 그득그득한 거 보소. 에라이, 이놈아. 네 여동생 말에만 끔벅 죽는 그 각성자 꼬마도 있으면서 욕심은….”
“또 또 꼰대같이 부풀려서 생각하신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야, 이눔아. 그 꼬마 각성자 능력을 보고 ‘어머니’가 벌써부터 싸고돈다고 그룹사람들이 난리더구나. 너는 여동생 줄 하나는 잘 잡은 거여.”
“…오빠로서 매우 부끄럽네요.”
잡담을 하는 사이에 싹 비워진 통조림 코너를 보며 강산이 쓴웃음을 지었다.
툭― 툭―거리는 손짓으로 강산의 어깨를 두드린 영감님이 말했다.
“자넨 다 좋은데 그게 문제야. 내일은 생각하지 말고 오늘만 생각하게. 그 뭐, 영화 대사도 있지 않은가?”
“…그것도 보셨어요?”
“허이구, 나도 나름 얼리 어댑터다, 이말이야!”
“그 영화 10년도 넘었어요.”
“…말 대답만 잘해. 에잉.”
텅 빈 통조림 코너 옆에 있는 건조식품 코너로 이동하려는 그들에게 미약한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어요? 으아아앙― 살려주세요―”
너무나도 어린 아이의 갸날픈 목소리.
강산의 흐릿해진 눈이 어둠 저편을 응시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어린아이를 연상했다.
‘어린 아이. 울고 있다. 구해줘야 해.’
어쩌면, 어른으로서 매우 당연한 생각에 강산의 몸이 자동으로 앞으로 나섰다.
턱―
함께 소리를 들었던 영감님이 빠르게 강산의 팔을 잡아당겼다.
자신을 방해하는 영감님에게 갑작스레 짜증이 치솟았다.
“저, 저기 아이가 있어요! 지금 당장 구해야 한다고요!”
이리저리 손을 놓기위해 발버둥치지만 영감님의 팔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왼손에 쥔 권총에 자동으로 힘이 들어가는 순간, 영감님의 목소리가 작게 울렸다.
“변종이다.”
“……아.”
순식간에 개운해진 머리와 함께 강산의 플래쉬 라이트가 천장을 훑었다.
저 악마의 목소리를 내는 변종과 세트인 자식들.
샤사사사삭―천장 타일을 긁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강산의 눈빛이 다급해졌다.
“으아아앙― 배고파요. 너무 배고파요오오―”
“으으으― 씨이이이발―!”
또 다시 울리는 어린아이의 울음에 차라리 귀를 떼어내고 싶었다.
영감님이 변종이라했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의심암귀가 튀어나온다.
혹시나, 정말로 낮은 확률이지만 아직까지 버티고 있던 어린아이면 어떡하지?
……확인이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
“…미쳐버리겠군. 점점 똑똑해지고 있어. 이젠 정말 솜씨 좋은 낚시꾼이 다 됐군.”
두 팔을 걷어부친 영감님이 두 손을 천장으로 향했다.
붉게 빛나는 영감님의 전신을 따라 환한 불꽃이 천장까지 분사됐다.
화르르륵―
길게 이어진 불길을 따라 자신들을 조용히 포위하고 있던 놈들이 아른거렸다.
“끼에에에에에엑!”
천장에 박쥐처럼 붙어있는 하얀 변종들.
못해도 40마리는 족히 넘었다.
“이 정도면 나로서는 도저히 무리야. 수색을 종료한다.”
영감님의 말에 강산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아른해지는 정신이 떫은 피 맛과 함께 잠시 되돌아왔다.
그가 서둘러 매대를 발로 밀어버리며 소음을 유도했다.
드르르르륵―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하얀 변종 중 한 마리의 다리가 꿈틀거렸다.
콰아아아앙―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이동하던 매대 자체가 가루가 되버렸다.
작은 크레이터에 주저앉은 하얀 변종이 기괴한 소리를 울부짖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아직 천장에 그득한 변종들이 불길을 뚫으며 자신들에게 전진했다.
작게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영감님의 손이 허공으로 향한다.
“…부족하군!”
[♩~ ♪~ ♬]
영감님의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온 스마트폰이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공중을 날았다.
콰아아앙―
순식간에 침묵하는 스마트폰을 뒤로 한 채로 영감님이 강산을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었다.
상당히 부끄러운 모양새였지만 그걸 신경 쓸 틈은 없었다.
강산은 항상 하던대로 손전등을 입에 물고는 양 손으로 권총을 쥐었다.
쐐애애액―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권총이 천장을 겨눴다.
특유의 타일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그놈들이 자신들의 뒤를 맹추격했다.
“영감님! 오랜만에 차력쇼 한 번 하셔야겠는데요?”
“이미 다 큰 남정네를 더럽게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난 차력쇼를 하고 있다네.”
“꼬우면 일반인이시던지요.”
“…그래. 차라리 건방진 게 질질 짜는 것보다는 괜찮구만.”
끼에에에에에엑!
조용했던 마트가 요동친다.
영감님이 직선으로 돌진하며 방해물을 전부 부수는 소리와 놈들의 하울링이 연달아 들렸다.
‘아…….’
아직 챙겨야할 것이 많은 롯데마트가 처참하게 망가졌다.
자신들이 겨우 챙겼던 통조림으로는 그 많은 그룹원들의 하루 치 식량도 채우지 못 한다.
이 작전을 세우기 위해 소모된 연료들과 인력, 그리고 시간.
너무나 미비한 보상과 쫓기듯이 도망가야하는 자신들.
하얀 잔상들을 겨누는 권총이 세차게 떨려왔다.
“크으윽―!”
자괴감에 떨고 있는 강산에게 영감님이 답지 않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산아. 이기지 못할 시련은 없단다. 단지 너무 강한 시련에 무너지지 말거라. 저건 그냥 요즘 말로 보스 스테이지를 잘못 왔다고 생각하렴.”
“…참 그런 말도 아세요?”
그 다정한 위로에 강산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럼, 내가 얼리 어댑터 아니냐?”
영감님의 유쾌한 웃음과 함께 햇볕이 쨍쨍거리는 외부가 보였다.
샤사사사삭―
놈들이 필사적으로 추격하고 있지만, 오직 도망만을 생각하는 각성자를 따라잡기에는 무리였다.
그들이 반쯤 부서진 유리를 깨부수고 탈출에 성공했다.
잘게 부서지는 유리 조각 사이로 천장에 박혀있는 놈들이 분노에 몸을 떠는 것이 보였다.
마트.
슬리퍼 차림으로 산책가듯이 가던 인간의 편의시설.
“끼에에에에에에엑!”
마트.
이제는 감히 목숨을 걸어야하는 미친 놈들의…
“…마치 둥지같구나.”
둥지.
‘난 지금 널 걱정하고 있는 거잖아! 나가면 죽는다고!’
그 순간 머릿속에 울리는 처절한 울음에 쓴웃음이 맺혔다.
“가을아…….”
너희를 버리고 떠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부디….
안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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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6 구원의 문지기 (2)
구원의 문지기 (2) ― 한마음 구원교 3층
[신도의 방 건설중……(59초 남음)]
드디어 별빛 교회에서 합류한 신도들의 방이 모두 완성되었다.
주거 구역에 마지막 신도의 방이 들어서는 것을 미니맵으로 확인했다.
인계는 1층에서 대기중인 이경민과 정신우가 어련히 잘 할 것이니,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이로서 자식과 함께 지내는 김은별을 제외한 모두가 1인 1실의 주거공간을 가지게 된 한마음 구원교의 총원은 정확히 ‘76’명.
<신도 관리>
[‘한마음 구원교’ 총 신도 : 76명]
(자세히 보기)
1, 한구원(교주)
2. 윤아영 (각성 신도)
3. 주주혜 (각성 신도)
4. 정신우 (일반 신도)
5. 이경민 (일반 신도)
6. 서태산 (일반 신도)
7. 성가을 (일반 신도)
8. 김은별 (일반 신도)
……
초반에 윤아영만 덩그러니 표시된 신도 관리창에 쪽팔려하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었다.
‘그래. 이 정도는 믿어야 교주라는 명함이라도 내밀지.’
뿌듯함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아직도 멀었다.
내 한마음 구원교는 이 정도에 만족할 그런 사이즈는 진작에 뛰어 넘었다.
“난 아직도 배고프다.”
“으응― 뭐가여?”
내 말에 반응하는 달콤한 비음과 함께 산뜻한 샴푸 냄새가 다가왔다.
각성 신도복을 입은 주주혜가 의자에 앉은 나에게 매미처럼 매달려 있었다.
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의 포니테일이 찰랑거리며 내 눈을 유혹했다.
솜털같은 잔머리와 사슴같은 목선 아래 뽀얗게 빛나는 어깨를 강하게 빨아당겼다.
쪼옥―
“으으응―”
환희에 부르르 떨리는 몸을 연주하듯이 계속해서 그녀의 어깨에 키스 마크를 새겼다.
“으으응― 간지러워― 간지러워어어―”
간드러진 비음으로 앙탈을 부리는 동시에 노골적으로 내 몸을 비벼오는 그녀의 긴 다리가 느껴졌다.
슬슬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내 물건을 느낀 주주혜의 표정이 야릇하게 빛났다.
“지금 주혜 따먹을 거야? …아빠?”
“으으으으으― 부, 불경하게 무슨 짓이에요, 주주혜 자매님!”
점점 야릇해지는 분위기에 윤아영의 뾰족한 외침이 터졌다.
푸딩처럼 떨리고 있는 그녀의 가슴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다, 다 큰 여자가 징그럽게 오빠에게 매달려서는 아빠라뇨! 부, 불결해요!”
칫―하는 소리와 함께 윤아영의 외침을 무시한 주주혜가 내 목덜미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킁― 킁― 거리며 내 살냄새를 맡는 그녀의 등을 살살 두드려주자, 애교를 부리듯이 할짝거리며 목덜미를 빨기 시작했다.
간질간질한 쾌감을 느끼면서 가열되는 상황을 잠시 중재했다.
“네가 이해해줘, 아영아. 새롭게 구원교의 사람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 너도 잘 알지?”
“다, 당연하죠! 제, 제가 오빠한테 화낸게 아니라는 거 잘 아시죠?”
화들짝 놀라며 안절부절 못하는 윤아영에게 은은한 미소를 띄운 채로 다시 그녀를 위로했다.
“주혜가 딸이면 우리 아영이가 엄마하면 되겠다!”
“칫― 맞아, 그러면 되겠네. 늙은 엄마~”
“이이이익―!”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외치는 주주혜의 비아냥에 윤아영의 가슴이 다시 푸딩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어…… 이런 식으로 유도한 게 아닌데?
여자의 언어 능력은 상당히 무서운 방향으로 발전했구나.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주주혜를 살짝 떼어낸 뒤에 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내 눈을 계속해서 피하던 그녀의 눈망울이 촉촉해져갔다.
“흐끅― 흐그극―”
내 옷자락을 쥔 채로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는 모습이, 아빠에게 혼나는 전형적인 딸아이의 모습이었다.
“…뭘 잘못했는지 알고 있지?”
“흐끅― 네에에― 잘못했어요.”
귀엽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누가 이 여자가 기도실에서 악에 바친 고함을 지르며 자신을 매도했다고 생각할까?
그야말로 사람 자체의 정신을 개조한 수준이었다.
“자 빨리 사과해야지.”
“…죄송합니다. 윤아영 자매님.”
“어허!”
“…죄송합니다. 성녀님.”
“옳지. 잘했어요, 우리 딸.”
무사히 사과를 마친 그녀를 다시 안아주며 윤아영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아영이는 오늘 밤에도 그렇게 꽁해져 있을 거야?”
“……아! 아,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오빠!”
회의 시간에는 주혜와 있었으니 당연히 밤에는 아영이와 있어야지.
다시 헤헤거리는 윤아영과 내 가슴에 얼굴을 문대며 계속해서 파고드는 주주혜를 보며 가슴이 웅장해질 수밖에 없었다.
재밌었다.
두 미녀의 투닥거림을 구경하며 관람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확실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이런 다툼은 삶을 톡톡 튀게하는 활력소였다.
애초에 이런 충돌들 또한 아주 당연하게 예상했다.
그녀들의 숭배 대상은 정확하게는 ‘나’이지, 그녀들 서로가 아니다.
아마, 셋 뿐인 간부가 더 늘어날수록 더 잦은 충돌이 일어나겠지.
하지만 그녀들이 다투는 것 자체가 그녀들 스스로의 ‘개성’이 살아있다는 소리였다.
일방적인 ‘세뇌’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호사.
오직 나만이 가능한 ‘교주’로서의 특권이었다.
이렇게 살아 숨쉬는 여자들이 모두 내 발 아래에 있다.
내 말에 복종하며 내 사랑을 갈구한다.
‘씨발, 좀비아포칼립스 만세!’
물론 간부들이 많이지는 순간에는 규칙이나 명확한 서열이 필요하겠지만, 그건 굳이 내가 머리를 싸맬 필요는 없다.
내 뜨거운 눈빛을 받은 성가을이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난 저런 유치한 싸움에서 좀 빼줘. 설마 내가 저럴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지?”
“…오.”
저 도도한 얼굴이 잔뜩 홍조에 젖은 체로 내게 매달리는 광경을 상상했다.
살짝 위로 올라간 눈매로 나를 보며 작게 속삭인다.
‘…아빠.’
……이거 개꼴리는데?
상상의 나래에 빠진 나를 보는 성가을의 표정이 더 괴상해졌다.
체념하듯이 긴 한숨을 내쉰 그녀가 자신이 든 종이를 흔들며 물었다.
“슬슬 진지한 얘기 좀 해도 될까?”
“아, 물론이지.”
의자에 한껏 기댄 몸을 살짝 일으켰다.
주주혜 또한 꽉 껴안았던 내 몸을 놓고는 앞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가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로 살랑살랑 다리를 흔드는 광경을 구경하는 와중에 성가을이 말했다.
“신앙 포인트가 너무나도 부족해.”
그녀가 흔드는 종이에 적힌 빼곡한 숫자들.
점점 신도들이 늘어날수록 유지비가 또한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신도의 방과 풍족한 세 끼의 음식.
[소형 발전기로는 현재 ‘성역’을 유지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소형 발전기를 더 배치하시거나 중형 발전기를 설치하세요!]
[배치된 수도관으로는 현재 ‘성역’을 유지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수도관을 더 배치하세요!]
전기 및 청결 유지와 배변 처리 등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제반 시설 등.
[보유 신앙 : 800 (760/H)]
늘어나는 신앙 생산량에 비례하여 줄어드는 보유 신앙.
신도들이 늘어난다고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설치할 수 있는 편의시설은 전부 설치했으니 이제 돈 나갈 구석은 없지만….”
“아직 별빛 교회에서 온 신도들의 신앙 생산량도 최대치는 아니고.”
“그것도 맞아. 그래도… 네 신앙 생산량에는 거품이 조금 있는 것도 사실이야.”
확실히, 그녀의 말이 옳다.
신도의 수가 늘어날수록 신앙 생산량도 상승하지만, 그것에 대한 유지비도 상승한다.
과장을 더하면 한 시간에 1000 포인트를 생산해내지만, 결국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신앙 포인트는 정해져있다는 뜻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부자였지만, 그녀의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었다.
그렇게 비싼 유지비를 들여서 모은 집단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고 싶다는 말이겠지.
“언젠가 반드시 쓸 곳이 있을 거야. 인간들이 괜히 무리 지어 살아온 게 아니잖아. 더군다나… 이제 안정적인 유입 루트까지 생긴 마당에.”
2차 각성을 마친 신도의 포니테일을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신도 관리에서 주주혜를 터치하자 그녀의 상태창이 내게 떠올랐다.
[성명 : 주주혜]
[성별∘나이 : 여∘20세]
[소속 : 한마음 구원교]
[직업 : 구원의 문지기(각성 신도)]
[광신 : 100]
[보유 신앙 : 100]
[전용 스킬]
[구원의 문 Lv.1]
[구원의 문지기는 ‘구원’을 바라는 자들에게 성역으로의 문을 열어줍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더 많은 자들을 성역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윤아영이 성녀로 재탄생했듯이 주주혜 또한 구원교의 문지기로 다시 태어났다.
성녀와 비교한다면 문지기라는 직업이 약간 부족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윤아영의 ‘위기 감지’가 진화한 ‘예언’도 충분히 사기였지만, 주주혜의 스킬 또한 현재의 구원교에 가장 필요한 스킬로 진화해있었다.
[구원의 문].
구원을 바라는 자에게 성역으로의 문을 열어주는 아주 심플한 스킬.
하지만 이 간단한 스킬로 얻을 효과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내가 일일이 사람들을 픽업하지 않아도 일정량의 사람들이 반드시 성역에 들어오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안정적인 유입 루트의 개선.
성가을이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문제점이 문지기의 스킬 하나로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흠… 저걸 어떻게 만렙을 찍어주지?”
저런 유용한 스킬은 바로 20레벨까지 다이렉트로 찍어주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김 중사놈들이 하던 것처럼 총이나 수류탄이라도 쥐여줘야 하나?
그러고보니 아영이의 상태창을 안 본지도 꽤 오래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신도 관리 창에서 주주혜 바로 위에 있는 윤아영을 터치했다.
[성명 : 윤아영]
[성별∘나이 : 여∘20세]
[소속 : 한마음 구원교]
[직업 : 성녀 후보(각성 신도)]
[광신 : 100]
[매력 : 50]
[보유 신앙 : 6,000]
[전용 스킬]
[예언 Lv.1]
[성녀로서의 첫 번째 자질. 다가올 위협과 위험을 감지합니다. 이는 이미 예언의 영역입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위기를 감지합니다.]
“…어?”
윤아영의 상태창에 기록된 신앙이 심상치 않았다.
6,000이라고?
“아영아, 너 신앙 포인트는 어떻게 늘린 거야?”
“네? 에헤헤헤헤―”
잔뜩 쑥스러워하던 그녀가 나를 보며 이죽거렸다.
아니다, 자세히 살피니 그녀의 눈이 내가 아닌 내게 기댄 주주혜에게로 향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하루마다 매일 오빠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식사할때도 기도하고, 자기 전에도 기도하면 돼요!”
“이익―!”
그녀의 의기양양한 목소리에 주주혜의 몸이 사정없이 떨리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보단 기도를 통해 신앙 포인트가 늘어난다는 것이 중요했다.
따로 좀비를 처치하지 않아도 기도하는 것만으로 일정량의 신앙 포인트를 생산한다라….
“아! 가을아! 넌 얼마 정도 생성했냐?”
내 물음에 성가을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여기서 나만 각성자 아닌 거 잊었어?”
아, 맞다.
성가을은 각성자가 아니지.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머리를 살짝 긁적이며 성가을을 살폈다.
바보냐고 묻는 입모양과 머리 옆에서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손.
거의 항상 붙어다니는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녀의 반응이 아닌척하지만 상당히 격해져있다는 것을.
간부실에서 그녀 혼자만 각성자가 아니었다.
“주혜야, 잠깐만.”
“으응?”
내게 기대어 있던 주주혜를 왼쪽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성가을에게 손짓했다.
“…뭐, 뭐야.”
“어허, 교주님이 말씀하시는데 부교주가 안 따르면 되겠어요?”
쭈뼛거리며 다가온 성가을을 의자에 앉히고는 백허그로 끌어안았다.
그녀답지 않게 잔뜩 얼어붙은 몸에서 시원하면서도 달달한 향기가 났다.
롯데백화점을 쓸어 담을 때 나왔던 향수 중에 필요한 것을 가져다 쓰라고 했으니 아마 거기서 나온 향수일 것이다.
그 향기가 그리는 이미지에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풍기는 향기 그 자체로 이미 성가을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풀이 죽으면 어떡해.”
“…안 죽었는데.”
“어허. 딱 보면 다 아는데 거짓말은.”
턱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강하게 비볐다.
“으으으― 비비지 말고 치워!”
질색하듯이 턱을 밀치는 그녀의 손길에 웃으며 다시 말했다.
“내가 유일하게 잘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게 게임이야. 그런 게임에서 특별한 존재가 있으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아이템이 있거든.”
그녀의 몸을 더 꽉 껴안았다.
“그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아이템.”
게임의 방식을 채용한 이 세상에서도 반드시 각성자로 만들어주는 아이템 또한 존재할 것이다.
“아무 걱정 하지 마. 대한민국을 집어삼킬 구원교의 부교주가 평범한 사람이라니, 내가 그렇게 안 만들어.”
말을 마친 뒤,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킁킁거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달짝지근한 향을 마음껏 맡는 동안 미동조차 없던 그녀가 머리를 크게 젖히며 내 가슴을 때렸다.
“이게! 이제는 가르쳐 준 사람한테도 써 먹으려 드네!”
“왜? 그러면 안 돼?”
다시 평소의 성가을로 돌아온 그녀의 틱틱스러운 반응에 그녀를 더 깊게 껴안았다.
“…청출어람도 이런 청출어람이 없네.”
“응? 뭐라고?”
“…됐어. 얘들 다 보는데 쪽팔리게 주책은….”
툴툴거리는 성가을의 정수리를 [결핍 파악]이 훑었다.
[92% : 한구원이 주는 뒤틀린 사랑과 관심]
[08% : 강산이 주는 온전한 사랑과 관심]
10%의 저지선이 무너졌다.
그녀가 순수해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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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7 구원의 문지기 (3)
구원의 문지기 (3) ― 한마음 구원교 3층
“…한 번 받아줬다고 드럽게 느끼하게 쳐다보네.”
“아, 쏴리.”
이 년은 아주 말 하나 하나가 따갑네.
그냥 본 거라고, 그냥.
점점 가늘어지는 성가을의 눈초리를 가볍게 회피하며 자리를 정리했다.
각성 신도들이 얻은 포인트도 분배해야하고, 아직 못 다한 이야기도 많았으나, 오늘 가장 중요한 일은 그것이 아니었다.
“주혜야, 총 몇 명이라고?”
“아! 세 명요!”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던 주주혜가 서둘러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지금은 얌전하게 있어?”
“음… 잠시만요.”
눈을 감은 그녀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무언가를 보듯이.
[구원의 문]
문지기인 그녀의 설명으로는 ‘구원의 문’을 넘은 자들이 곧바로 그녀 주변으로 워프되는 것이 아니었다.
문 안에 특수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공간에서 문지기의 허가가 있어야만 성역에 들어오는 문이 열린다는 설정 같았다.
그녀는 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문지기가 된 이후로 처음 구원의 문을 넘은 자들을 살펴 보고 있었다.
“어… 그냥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어요. 한 가족인 것 같은데… 아주 어린 딸을 엄마가 안고 있고….”
눈을 감은 그녀에게서 새로 들어올 신도에 관한 설명이 쏟아진다.
정말 신기한 광경이었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바보같은 물음은 하지 않았다.
나 또한 누군가가 염력을 어떻게 쓰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으니까.
각성자가 얻은 능력은 이해(理解)가 아니라 직관(直觀)의 영역이었다.
“남자 손에 도끼가 들려있어요.”
“…도끼?”
“네. 피가 덕지덕지 붙은 게 장식용은 아닌 것 같아요.”
흠… 도끼라.
도망만 치던 놈은 아니라는 거군.
“각성자로 보여?”
“아니요. 각성자는 아니에요. 애초에 각성자가 들어왔다면 제 마나가 반응했을 거예요.”
각성자가 아닌데 도끼로 좀비들을 처치했다라….
막상 근접해서 좀비들을 보면 아무리 도끼를 들었다해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상당히 호전적인 타입이던가, 가족을 지키기 위한 가장의 눈물겨운 투쟁이던가.
“음… 내보낼까요?”
“오,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물론이죠! 아빠 마음에 안 드시면 바로 내쫒을 수도 있어요!”
“하하, 괜찮아. 오히려 딱 좋아.”
궁지에 몰린 쥐가 외딴 곳에 온다면 취할 행동은 딱 하나.
그 하나의 행동이 내겐 꼭 필요했다.
칭찬을 바라는 주주혜를 보며 웃어준 후에 간부실의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거대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 앞을 지키던 서태산이 몸을 숙였다.
“오셨습니까, 교주님.”
“아, 그래요. 준비는 끝났나요?”
“예. 모든 신도들이 밑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주 좋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서태산 신도.”
“하하하, 아닙니다. 저보다는 밑에 있는 형제님들이 수고하셨죠.”
서태산의 말처럼 이경민과 정신우가 신도들을 잘 통솔하고 있을 것이다.
그 두 띨띨이들도 이제는 나름 구원교 짬밥을 먹은 선배 신도들이었으니까.
“…교, 교주님.”
잔뜩 떨리는 목소리가 서태산의 뒤에서 들렸다.
그곳을 바라보니 김은별이 황송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김은별 신도가 여긴 어떻게?”
“오, 오늘부터 교주님의 귀하신 말씀을 기록할 서기 신도입니다! 교주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금과 옥조로…”
횡설수설하는 김은별의 손에 들린 종이와 펜이 보였다.
그녀를 굳이 제지하지 않고 성가을을 향해 눈짓했다.
오른쪽에서 내 눈짓을 받은 그녀가 손가락 세 개를 피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종교의 삼 요소.’
종교의 삼 요소.
교조, 교리, 교단.
쉽게 말해 교주, 경전, 신도라는 말이다.
이 요소에 따르면 현재의 ‘한마음 구원교’는 종교가 아니다.
교주인 나, 신도엔 충성스러운 구원교도들이 있지만, 종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경전이 없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구원교만의 ‘성경’이나 ‘코란’이 없다는 뜻이었다.
성가을은 매번 회의때마다 이 사실을 언급하며 관자놀이를 문질렀었다.
아마 김은별을 통한 ‘서기 신도’가 경전을 위한 첫걸음이겠지.
눈짓으로 대강의 뜻을 이해한 나는 김은별에게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아, 교주님―”
횡설수설을 멈춘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남은 손으로 엉덩이를 주물렀다.
탱탱하게 손가락에 감겨오는 촉감을 즐기며 김은별에게 속삭였다.
“왜 그렇게 떨고 계십니까? 누구보다 귀한 일을 맡으실 분이.”
“그, 그 귀한 일을 감히 미천한 제가… 으응―”
약한 소리를 하던 김은별이 달콤한 신음과 함께 몸을 떨었다.
내 손가락이 그녀의 엉덩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와 습기.
짧은 포옹만으로 완벽하게 삽입을 준비하는 그녀의 보지를 느끼며 미소지었다.
철저하게 내게 길들여진 육체였다.
서비스의 형식으로 보지 둔턱을 비비던 손가락을 깊게 찔러넣었다.
“흐으응―”
신음을 참으려는 듯 꽉 깨문 입술 사이로 미처 참지 못한 신음이 흘렀다.
“제가 김은별 신도를 귀하게 여기겠다는데 그 누가 감히 당신을 천하다고 매도합니까?”
“아아아― 교주님―”
“좀 더 자신을 귀하게 여기세요. 이 과업을 성실히 수행할 믿음과 순종을 지닌 신도는 김은별 신도밖에 없습니다.”
“아아― 죄송합니다, 교주님. 제가 너무나도 어리석었습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눈빛에 기쁨이 넘실거렸다.
이제는 스스로 허리를 움직여서 내 손가락에 자신의 보지를 비벼대는 모습에 슬슬 물건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야릇한 재롱을 만끽하며 성가을을 불렀다.
“부교주.”
“네, 교주님.”
“이렇게나 믿음이 깊은 우리 김은별 신도에게 내려줄 보상은 준비하셨나요?”
“……죄송합니다. 그것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부교주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비벼오는 김은별에게 호응하듯이 더 거칠게 보지를 애무했다.
찌걱― 찌걱―
“흐으읏― 흐아앙―”
팬티와 신도복이 흡수하지 못한 애액이 야하게 질척거렸다.
그녀의 신도복의 사타구니쪽이 점점 진한 색으로 문들고 있었다.
“흠… 아! 힘찬이는 지금 뭘 하고 있나요?”
“흐으읏― 아마 지, 지훈이랑 같이 놀고 있을 거에요. 하으으읏―”
쾌락에 몸서리치는 김은별이 힘겹게 답했다.
이런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떠올랐다.
나는 또 다시 성가을을 불렀다.
“그러고보니 학교 건립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준비는 하고 있지만, 아직 논의하는 단계에서 멈춰있습니다.”
“바쁘신 것은 잘 알지만, 더 빨리 준비해주세요. 아이들에겐 아주 귀중한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네, 교주님.”
우리들의 대화를 들은 김은별의 눈이 황홀경에 이른 듯이 흔들렸다.
“기, 기억해주셨군요, 교주님….”
그녀의 동공에 가득 담긴 내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이 아주 자애롭게 웃으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그럼요. 우리의 소중한 아들이잖습니까?”
“아아아아아아―!”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던 김은별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녀의 신도복 아랫부분이 점점 진한 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서태산 신도. 새로운 신도복을 가져와주세요.”
“네, 교주님.”
오직 달콤한 말과 조금의 애무로 한 여성이 느낄 수 있는 쾌락의 끝에 치닫게 했다.
점점 능숙해지는 기술에 뿌듯한 웃음을 지으며 김은별의 손에 들린 수첩을 바라보았다.
“…‘구원의 서’.”
정갈한 글씨로 적힌 수첩의 제목.
내 목소리에 오르가즘에 헤롱헤롱거리던 김은별이 다급하게 수첩을 품에 안았다.
“이, 이건 그냥 제가 제멋대로 적은 낙서입니다. 괘념치 마세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구원의 서’라.”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괜찮은 제목이었다.
“우리 김은별 신도에게 아주 좋은 재능이 숨어있었군요.”
“아아아― 교주님―”
도서관의 사서라고 모두가 언어적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닐 텐데, 김은별에겐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교주님, 여기있습니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서태산이 가져온 신도복을 주저앉아있는 김은별에게 건네며 웃었다.
얌전히 신도복을 받은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자, ‘구원의 서’의 영광스러운 첫 장을 쓰러 가볼까요?”
* * *
구원교의 1층에 간부들이 들어섰다.
커다란 석상을 기준으로 길게 늘어진 식탁과 평소보다 호화스러운 구성의 음식들.
그리고 이젠 70명이 넘는 대인원이 동시에 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드르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와 함께 얌전히 기립한 신도들을 보며 천천히 상석에 앉았다.
그런 나를 따라 간부들이 배정된 자리에 착석했다.
유사시에 대신 나설 서태산과 기록의 의무가 있는 김은별은 기립하여 내 뒤를 지켰다. 
“아아, 괜찮습니다. 다들 앉으세요.”
내 손길에 신도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평소의 화기애애한 잡담이 모두 끊긴 무거운 분위기.
이경민과 정신우가 내가 주문했던 분위기로 잘 조성해놓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네놈들도 짬이 얼만데.’
아주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들을 살폈다.
불향이 가미된 다양한 육류들과 느끼함을 잡아줄 채소들.
좀비 아포칼립스가 터지기 전에도 흔하지 않은 구성의 요리들. 
“오늘은 매우 기쁘면서도 슬픈 날입니다.”
내 말과 동시에 뒤에 있던 김은별이 ‘구원의 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무거운 정적 속에서 내 말과 사각사각거리는 기록음만이 1층을 울렸다.
“이 세계에서 고통받던 가련한 영혼이 구원받기에 기쁘며.”
이 대화가 구원교의 경전의 첫 장을 기록할 것이다.
태초의 창세기와 같은 이 순간에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아직도 구하지 못한 수많은 자식들을 생각하기에 슬픕니다.”
겨우 70 명 남짓.
지금도 아주 근근히 이 지옥을 버틸 사람들의 수를 생각하면 너무나 미약한 소수.
그 소수만이 성역에서 이 호화로운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선택받은 새로운 세상의 자식들. 믿음의 검과 순종의 방패를 든 선하기 그지없는 나의 전사들.”
그들이 숨도 쉬지 않고 내 말을 경청한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애써 감추고 있는 그 아픔과 슬픔을.”
사람의 감정이란 매우 복잡하면서도 간단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벗어난 표류자들은 안전한 섬을 찾은 순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이 은혜로움을 함께 나눴어야 할 누군가를 생각하고 아파할 그대들을 알고 있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
그들이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조각들.
“성역의 풍요로움조차 닿지 않는 마음 저편의 결핍들.”
옛 세상에서 두고온 자들을 생각하는 신도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좀비가 되어 버린, 혹은 죽어 버린.
결론적으로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할 누군가.
붉어진 그들의 눈을 하나 하나 마주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대들의 기도가 들립니다. 그대들의 애원이 들립니다. 그 안에 담긴 너무나도 어두운 감정들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뚜벅― 뚜벅―
식탁을 가로지르는 나를 쫓던 신도들의 고개가 땅으로 향한다.
“흐으윽―! 흐윽―!”
그들이 참고 참던 눈물을 쏟으며 울기 시작했다.
하얀 바닥을 적실 눈물에는 원망과 후회 그리고 자책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구시대의 잔재를 벗지 못한 어리석고 나약한 자라고 그대들을 매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풍요로움에 배부른 돼지가 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진해지는 그리움에 자책하는 그대들을 알고 있습니다.”
흐으윽―! 흐으으윽―!
내가 문 앞에 도달할때까지도 신도들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한 떨림과 함께 성역의 바닥을 눈물로 적셨다.
쿵―!
발구름과 함께 고개를 숙였던 신도들의 고개가 들린다.
모두의 시선이 성역의 문 앞에 있는 내게로 모였다.
“그것은 그대들의 죄가 아니다!”
절망 속에서 아픈 자들.
그렇기에 자신을 지탱해줄 누군가를 애타게 찾아 헤매던 모든 자들.
“내가 그대들에게 약속했던 선물을 말하라! 믿음과 순종으로 영글어질 열매의 이름을 기억하라!”
신도들의 두 눈이 나에게 소리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그들이 말했다.
구원(救援).
“한마음 구원교의 구원은! 그리고 나의 구원은!”
내 손짓이 성역의 문으로 향한다.
그 손짓에 따라 주주혜의 몸에 백색 빛무리가 퍼진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를 구별하지 않는다! 강한 자와 약한 자를 차별하지도 않고, 아픔과 외로움에 울고 있는 자를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줘야 했다.
자신의 혈육 또한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을 수 있다는 갈망을.
“두 눈으로 목도하라! 그리고 경배하라! 이것이 구원의 거룩한 시작점이니!”
뜨거운 열기에 취한 김은별의 손이 춤췄다.
그녀의 손에 기록될 ‘구원의 서’의 창세기.
“구원의 태양이 이룩할 첫 번째 기적을!”
거대한 빛무리가 성역의 문을 거룩하게 감싼다.
하얀 광채에 물든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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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8 구원의 문지기 (4)
구원의 문지기 (4) ― 한마음 구원교 1층
끼이이이이익―
백색의 도화지를 걸어들어오는 세 개의 검은 점.
구원의 문을 통해 세 명의 불신자가 들어왔다.
도끼를 앞으로 내밀어 잔뜩 우리를 경계하는 남성과 어린 딸을 품에 안은 여성.
그들의 홀쭉한 볼과 잔뜩 헤진 옷이 그들의 상황을 대변했다.
“너, 너희들! 도대체 뭐하는 새끼들이야! 이 곳은 또 어디야!”
얼굴이 숯검둥이처럼 검은 남성이 비명을 지르듯 고함쳤다.
딸과 아내를 등 뒤로 숨긴 채로 가장 앞에 있던 나에게 도끼를 흔들거렸다.
도끼날에 번들거리는 짙은 핏자국.
실핏줄이 터진 듯 붉은 남성의 눈초리에 살의가 넘실거렸다.
그런 그의 눈이 식탁에 올라와있는 음식으로 향했다.
잔뜩 풍겨오는 육향의 향연에 그가 다급하게 외쳤다.
“좋은 말할 때 저 음식들을 내놔! 아니면 다 죽여버리겠어!”
도끼를 든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신도들은 아무런 반응없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왜 가만히 듣기만 하고 있어! 뒤지기 싫으면 당장 저 음식을 가져오라고오오!”
기나긴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낯설었다.
백색의 옷을 입은 자신들과 저기 난동을 피우는 한 남성.
아니, 저 사람이 정말로 인간인가?
기아처럼 홀쭉해진 몸과 검게 칠해진 얼굴.
그리고 불안함에 요동치는 저 동공.
신도들은 지금 그들의 눈에 비친 저 가족이 동물원에서 본 동물들보다 신기했다.
불행의 전시.
나는 저 불쌍한 남자가 잔뜩 들고 온 불행을 신도들에게 충분히 관람시켰다.
“씨바아아알! 진짜, 진짜로 죽는다! 나 사람도 여럿 죽인 놈이야! 내 말 안 들려!”
“여, 여보….”
“가만히 있어 봐! 저, 저것만 있으면 아름이도 괜찮아질거야.”
“엄마. 배고파아아아― 으아아앙―”
아빠가 분노하며 아내는 불안해하고 딸은 울부짖는다.
딸의 재촉같은 울음에 아빠의 발걸음이 전진한다.
부들부들 몸을 떨며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다, 당신이 대장이지?! 음식만 내놔!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니까!”
저 불쌍한 남자가 내가 구원해야할 첫 번째 불신자였다.
“구원의 문을 넘은 첫 번째 아들아.”
“뭐라는 거야! 종교단체였냐!”
엄숙한 선언에 불경한 대답이 뒤따른다.
“종교 단체면 더 말이 통하겠네! 기, 기독교냐? 아니면 불교? 난 둘 다 믿으니까, 같은 신도 끼리 식량 좀 나눔하시지!”
“내가 찾지 못한 시간동안 너무나 아프고 힘들었겠구나, 아들아.”
“뭐, 뭐라는 거야! 내가 왜 네 아들이야! 이, 이새끼들 사이비냐!”
내 앞까지 다가온 놈의 눈깔이 훼까닥 돌아버린 것이 보였다.
놈이 침을 튀기며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이새끼들이 여기까지 우리를 쫒아왔네! 내가, 내가 꺼지라고 했었지이이이이!”
잔뜩 뒤로 젖힌 놈의 도끼가 내 어깨를 내리찍었다.
텅―!
“교주니이이이임―!”
잔뜩 놀란 신도들의 고함이 울리며 몇 명이 벌떡 일어나서 내게 달릴 준비를 했다.
미리 주지를 시켰는데도 움찔거린 서태산과 놀란 그들을 손짓으로 안심시킨 후에 내 어깨를 살폈다.
내 육체에 흠집도 내지 못한 도끼가 허공을 날았다.
[모방 성체]로 강화된 육체의 반동을 이기지 못한 놈이 부르르 떨리는 팔을 잡고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여보오오오!”
“아, 안돼애애! 오지마아아아!”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아내를 막는 그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배고프고 또 불안하고 이제는 무섭구나.”
“으으으으―!”
발을 질질 끌며 뒷걸음질치는 놈을 뒤따랐다.
뚜벅― 뚜벅―
“오, 오지마! 오지말라고! 오지말라고 했잖아아아!”
기겁을 하며 도망치는 놈의 허리가 아내의 발에 부딪쳤다.
다리가 얼어붙은 놈의 아내와 그 아내의 품 안에서 덜덜 떠는 아이가 보였다.
더 이상 도망갈 길을 잃은 놈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으으으으으으―!”
죽음을 직감한 남자가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예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먹거라, 너무 야위었구나.”
금방이라도 자신의 목을 조를 것 같았던 손이 자신의 딸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 손에 가득 담긴 알록달록한 봉지의 군것질들.
딸의 눈이 반짝이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사탕 하나를 집었다.
“가, 감사합니다아―”
“다 가져가도 괜찮단다.”
“저, 정말여?”
깜짝 놀란 딸에게 백색의 교주가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내민 두 손에 그의 손에 담겨있던 간식이 쏟아진다.
“와, 와아아―”
딸의 탄성을 보며 그 남자는 너무나도 자애롭게 웃었다.
그의 팔이 천천히 딸의 볼을 쓰다듬는다.
검은 땟물이 그의 손을 따라 천천히 지워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남성의 눈이 점점 거세게 떨렸다.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에 감히 형용할 수 없는 빛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일어나거라. 너무나도 긴 여행이 아니었는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허리를 일으키는 묘한 힘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기립한 그의 머리를 그 남자가 천천히 쓰다듬었다.
“수고했다. 가족을 위해 가시밭길을 감내한 나의 아들아.”
“크흑―!”
그 따뜻한 음성에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울컥였다.
그의 따뜻한 팔이 자신의 아내의 머리로 향했다.
“잘 버텼도다. 남편을 걱정하며 함께 버틴 나의 딸아.”
“흐으윽―!”
마지막으로 사탕을 소중하게 안고 있는 자신의 딸에게도.
“기특하구나. 그 어린 나이에 가족의 고통을 함께 감내한 것이.”
“흐끅―!”
부드러운 음성에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딸의 동그란 눈망울이 촉촉해진다.
분위기만으로 딸은 알았던 것이다.
그 사내의 진심을.
아주 환하게 웃은 그가 뒤쪽을 가리켰다.
커다란 석상과 길게 이어진 식탁.
그리고 넘칠 듯이 쌓여있는 음식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평화로워보이는 눈빛으로 자신들을 향해 웃어주는 사람들.
“무서워하지 마라. 동요하지도 마라. 그대들이 구원을 바랬기에 문이 열렸고, 이곳에 도달했을 뿐이다.”
더 이상 살 희망을 잃어가는 그들 앞에 마법처럼 나타났던 문.
그 문을 통해 도달한 이곳.
“이곳이 그대들의 집이다.”
“아아아―!”
거리에 산재한 좀비들, 동나버린 식량, 이를 악물고 버티지만 배고픔을 참지 못해 울먹이는 아내와 딸.
사내의 가슴에 진 응어리가 모두 풀어지며 녹아내렸다.
후련한 감각과 함께 백색의 사내에게서 흘러나오는 빛에 눈을 찌푸렸다.
태양과도 같이 쉽게 바라볼 수 없는 남자.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자신의 바보같은 물음에 남자가 답했다.
“무엇으로 보이느냐?”
작게 미소지은 그의 물음에 남자가 답했다.
울부짖으며 고백했다.
“구세주이십니다! 너무, 너무 감사하신 저희 가족의 구세주이십니다아아아!”
“그래.”
그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미소와 손짓 앞에서 자신은 마치 어릴적의 꼬마로 돌아간 듯했다.
“그것이 믿음이다.”
“아아아아아―!”
감동을 주체할 수 없는 사내가 천천히 무릎 꿇었다.
자신의 가슴에 용솟음치는 이 감정의 범람에 흔들리는 자신에게 그의 음성이 울렸다.
“모두들 보아라! 세상이 결국 더럽히지 못한 이 선한 자를!”
그의 음성은 멀어보이지만 가까웠고.
“이토록 선은 강력하다! 결국! 언제나! 그리고 항상!”
아득했지만 선명했다.
“선은 악을 이겨왔다!”
사람들의 인상에 강하게 남았던 것은 패배한 악이었으나, 그것은 그들이 새긴 흉터때문이지 그들이 승리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을 묵묵히 이겨왔던 것은 언제나 선이었다.
“구시대의 명확했던 악들을 보라! 나치! 일본 제국! 하다못해 해적들과 테러조직까지!”
구시대의 명확했던 악들은 결국 다수의 선에게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것이 역사였으며, 사실이었고, 진리였다.
“그런 구시대를 뛰어넘는 새시대의 선택받은 자들아! 그대들이 그들보다 못한 점이 무엇인가!”
서로를 헐뜯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설 작정만 하던 피라미드의 개미들.
그런 그들조차 악을 이겨왔다.
“우리의 세대에도 결국 명확한 악이 도래하였다!”
좀비(Zombie).
천국도 지옥도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게하는 억지의 굴레, 죄악의 목줄.
“언제나 그렇듯 세상을 악이 물들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가 잠시 말을 멈춘다.
모두가 그의 말에 집중한다, 모두가 그의 말을 기다린다.
공기도 멈춘 듯한 이 공간에서 다시 그의 말이 울렸다.
“…선이 결국 악을 이길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물었다.
“여기서 선은 누구인가! 바깥에서 우리에게 아가리를 들이밀 기회만 노리는 좀비들인가!”
“아닙니다아아아아!”
“그렇다면 누구인가! 아직도 누군가를 착취하며 채찍을 휘두르는 구시대의 인간들인가!”
“아닙니다아아아아!”
그가 양 팔을 크게 벌렸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말하라! 선은 누구인가!”
“우리입니다아아아아! 우리, 우리입니다아아아!”
그들의 아우성이 성역을 뒤흔들었다.
그 간절한 화답에 그 분의 몸이 점점 공중으로 떠올랐다.
하늘의 중앙에 걸린, 감히 볼 수 없는 무언가.
그들의 머릿속에 연상되는 단 한가지.
“잿더미의 세상에서 선의 나라를 세우리라!”
태양(太陽).
“구원의 뜻을 펼치리라! 작은 빛이 한줌, 한줌이 모여 결국 세계를 비추는 태양이 될지니!”
그의 외침에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그에게 기도했다.
하얀 빛의 조각들이 중앙에 떠있는 그에게로 흘렀다.
그에게서 퍼지는 빛의 파도.
“집이 완성됐으니, 문을 열어라! 범람한 악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널리 고하라!”
구역을 넘어 도시를, 도시를 넘어 국가를, 국가를 넘어 세계를.
“지독한 악몽을 깨울 단 하나의 태양이 문 너머에 있다고!”
[‘구원의 서’ 1장.]
1.[문이 열렸고, 그가 도래했다.]
2.[죽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괴물들아, 누군가의 땀방울로 삶을 이어가는 또 다른 괴물들아.]
3.[하늘을 보라.]
4.[더없이 정결한 믿음으로 피어난 단 하나의 태양을 보라.]
5.[그대들을 심판할 오롯한 그가 임하였나니.]
6.[믿음의 검에 울지어다, 순종의 방패에 후회할지어다.]
7.[그리하여 장막 안에서 신음하던 선한 자를 볼지어다.]
8.[괴물에게 신음하는 자여, 그대 앞에 당도한 문을 열어라.]
9.[그곳이 그대의 유일한 집이며, 낙원이니.]
10.[의심하지 말지어다. 믿음으로서 순종하리라.]
11.[문을 연 자에게는 오직 광명뿐이라.]
12.[그대들의 더러워진 육신과 영혼을 깨끗하게하리라.]
13.[그리하여, 그대들을.]
14.[구원의 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죄송합니다! 와! 쓰다보니 너무 오래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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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9 구원의 문지기 (5)
구원의 문지기 (5) ― 한마음 구원교 3층
간부실 창틀에 기대어서 보름달을 감상했다.
살랑거리는 밤바람과 함께 어두운 인천 시를 밝히는 달빛.
그 미약한 달빛에만 의지하는 도시의 밤.
지금쯤 인천 시의 밤을 상공에서 찍는다면 그야말로 암흑 천지인 도시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인천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불빛을 잃은 대한민국.
그 곳에서 유일하게 밝은 두 곳.
보름달과 성역.
짱짱하게 돌아가는 발전기로 인해 밝다못해 눈부신 간부실 천장의 전등을 보며 미소지었다.
“아주 좋군.”
원래 이런 밤에는 전등에 모인 벌레들을 보며 질색하는 것이 포인트였지만, 이곳에선 아니다.
천상의 보호막의 성능은 좀비뿐만 아니라 내가 허용하지 않은 모든 것을 막아주니까.
당연히 벌레 또한 내 성역에는 출입 금지였다.
“아… 슬슬 [결핍 파악]이랑 석상 업그레이드도 해야 하는데….”
성역을 발전시키는 심시티에 열중하느라 내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신도 관리>와 <성역 관리>탭만 오질나게 띄우던 나날이었으니.
거기다가 아직 심시티의 일종인 ‘석상 업그레이드’ 또한 2레벨에서 멈춰있다는 게 중요했다.
벌레의 출입조차 막아주는 ‘천상의 보호막’의 성능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석상 레벨 3의 권능 또한 최대한 빨리 얻어야하는 급선무 과제였다.
그렇다고 개거품을 물며 신앙 포인트 창만 보고 있어야 할 것도 당연히 아니다.
‘한마음 구원교’는 아주 순조로운 항해를 이어가고 있으니까.
오늘 또한 그렇다.
순조롭다 못해 완벽했던 하루였다.
구원의 문으로 인한 안정적인 신도의 수급과 더 굳센 믿음으로 무장하게 된 신도들.
신화적으로 쓰인 ‘구원의 서’의 첫 장과 만족스러웠던 호화로운 만찬.
이제 4층에서 기다릴 윤아영의 품에서 잠에 들면 아주 퍼펙트한 하루의 완성이었지만, 아직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이름… 김철수.”
나는 설문지에 적혀있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구원의 문을 넘은 첫 번째 생존자.
도끼를 들고 가족을 지키던 남편.
그가 나를 보며 발광했던 그 헛소리가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똑― 똑― 똑―
“교주님, 김철수 신도가 도착했습니다.”
“아, 들어오라 하세요.”
때마침 들려오는 서태산의 목소리에 대답해주며 창문을 닫았다.
끼이이익―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하얀 신도복을 입은 김철수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
“하하하, 제가 편히 쉬시는 걸 방해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창문에서 내 자리로 이동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말에 더 공손하게 몸을 숙인 김철수가 답했다.
“아닙니다. 교주님이 부르시는데 당연히 와야죠. 그런 말씀은 거두어주십시오.”
“압니다. 김철수 신도의 믿음은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자, 어서 자리에 앉으시죠.”
상석에 앉은 내 손짓에 따라 그가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의자에 앉았다.
정말 오랜만에 원없는 샤워를 끝냈을 김철수의 얼굴을 응시했다.
숯검둥이같은 얼굴로 고함을 지르던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유해보이는 얼굴.
“김철수 신도의 얼굴이 훤해진 것을 보니 제가 다 기쁩니다.”
“…그저 교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릴뿐입니다.”
내 말이 트리거를 당겼는지 김철수의 말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울먹이는 신도를 보니 이제는 자동으로 손이 나갔다.
덜덜 떨리는 그의 손을 잡으며 아주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독였다.
“이젠 전부 괜찮습니다. 김철수 신도의 뒤엔 항상 제가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맞습니다, 교주님!”
끝내 눈물을 떨구는 김철수에게 테이블 중앙에 놓인 접시에 담겨있던 바나나를 건넸다.
옛날부터 우는 아이에겐 간식이 딱이었다.
“과, 과일이군요. 정말… 너무 오랜만에 보는…”
바나나를 멍하니 보는 그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난 그의 손에 바나나를 건네며 은근하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아내분과 거주 공간을 따로 신청하셨더군요.”
“아… 네. 아내가 이왕 공짜면… 그… 죄송합니다.”
잔뜩 더듬거리는 대답이었지만, 바로 이해했다.
뭐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니까.
“하하, 그게 왜 죄송한 일입니까. 오히려 아주 현명한 아내를 두셨군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또 다시 울먹거리는 김철수가 고개를 숙이는 동시에 미니맵을 관찰했다.
새로 생성한 신도의 방에 떠 있는 두 개의 명찰.
미동도 없는 걸 보니 아마 딸과 함께 숙면에 들어간 듯했다.
‘흠… 김철수의 아내라.’
딸을 안고 덜덜 떨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특색이 없는 무색무취의 이목구비.
높게 쳐줘야 평균에 못 미치는 외모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내 물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급 레스토랑이 바로 4층에서 대기중인데 굳이 불량식품을 먹을 수는 없지.
김철수의 믿음을 흔들면서까지 아내를 취할 메리트가 없었다.
오히려.
“기쁜 날이라고 아내분을 너무 괴롭히진 마세요. 내일 쓰실 힘은 비축하셔야 합니다.”
“…부, 부끄럽습니다, 교주님.”
변종만 알을 까라는 법은 없었다.
한마음 구원교 또한 출산을 장려해야했다.
충성스러운 신도 밑에서 태어날 자녀는 더 충성스러운 신도로 태어날테니까.
애초에 새로 태어난 자녀들은 그들이 자라날 세계 자체가 ‘한마음 구원교’의 성역이었다.
김철수에게 은근하게 언지를 주는 선에서 그치며 다음 화제로 대화를 전환했다.
“아! 김철수 신도는 즐겨하던 실내 운동이 있나요?”
“예? 어… 탁구를 아주 조금…”
“하하, 잘됐군요! 정신우 신도가 아주 좋아하겠습니다.”
“어…….”
어리둥절해하는 김철수를 보며 오히려 놀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더 명확하게 바깥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상인 양.
“아, 아직 1층을 전부 둘러보지 못하셨군요! 아마 내일 날이 밝자마자 정신우 신도가 찾아갈 겁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선배 신도가 후배 신도에게 궁금한 모든 것들을 설명해주며 이끌어주는 것이 우리 구원교의 전통입니다.”
“아, 그런 좋은 전통이…….”
전통이라고 부르기엔 얼마 안 된 규칙이긴하지만 내가 전통이라면 전통이었다.
아마 김철수는 내일 정신우의 안내를 받으면서 깜짝 놀랄 것이다.
문명이 너무나도 잘 유지되어 있는 성역의 모습에.
특히나 백화점에서 쓸어담아왔던 보드게임, 탁구대, 당구대 등이 배치되어있는 휴식 공간을 보면 아마 다른 신도들이 그랬듯이 김철수 또한 자지러질 것이다.
“소개가 모두 끝나면 정신우 신도를 조심하세요. 바로 구원교 내부 탁구 랭킹전을 시작하려들겁니다.”
“아, 그, 그런가요.”
어색해하는 김철수의 표정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내가 내뿜는 분위기에 아주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겠지.
좀비와 사투를 벌이던 어제에서 단 하루만이 지났을 뿐인데 이제는 탁구 랭킹전같은 시덥잖은 것을 조심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당신의 일상이라고 나는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음… 아마 정신우 신도가 탁구 동아리였나? 그랬다더군요. 구원교의 랭킹 1위입니다. 랭킹 1위.”
“저도 탁구는… 나름 자신이 있습니다.”
“오… 내일 아주 흥미진진한 대결이 펼쳐지겠군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하하하―”
“교주님이 보시기에 누가 되지 않는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느새 분위기에 동화되어 함께 웃으며 대화하는 김철수를 보며 미소지었다.
그의 몸에서 피어나는 ‘믿음의 증명’이 더 환해지고 있었다.
이토록 믿음이란 것은 아주 다양한 방면으로 강화할 수 있었다.
잔뜩 풀어진 김철수의 표정을 확인하며 혀를 굴렸다.
믿음을 강화시키는 것도 좋지만, 애초에 그를 부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나는 짐짓 아쉬운 표정으로 간부실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런! 너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서둘러 잠자리에 드셔야할 텐데, 괜히 죄송해지는군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교주님.”
지금부터가 본론이었다.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던 김철수의 그 말.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구원의 문을 넘으신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다, 당연합니다. 죄송합니다, 교주님. 그땐 제가 너무…”
“아아, 괜찮습니다. 신도분을 나무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하셨던 말중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는 나를 따라 김철수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잔뜩 긴장한 그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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