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3
“사람이 말을 하면 들…!”
짜악-!
“어때, 좆같아?”
“…그래 좆같다 이 미친년아!”
4번만에 만족할 만한 답이 나왔다.
이 정도면 분노로 눈이 가려진 상태치고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이전의 훈련생들 중, 크리스에게 10번이 넘게 맞은 사람도 있었으니까.
“게임 하나 할까?”
“꺼져!”
“킥킥. 닥치고 들어. 여기서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전투직 끼리 불화가 생기면…”
땡그랑!
크리스가 던진 단검 하나가 바닥을 굴렀다.
‘도축용으로 쓰던 단검이기에 날을 소중히 다뤄야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얌전히 두 손으로 넘겨주는 것도 우습지.’
리 샤오린은 단검을 내려다본 뒤, 크리스를 쏘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뭐 어쩌란 거야?’라고 쓰여있는 것만 같았다.
“대부분 둘 중 하나는 죽어. 누가 말리기 전에 시체가 나오거든.”
“서…설마…”
“뭘 상상하는지는 알만한데, 내가 애새끼도 아니고 병아리 짓밟는 취미는 없거든. 설마 너보고 나와 싸우라고 하겠어?”
“그럼 뭔데!”
“잠깐! 그전에, 너는 아직 전투직이 아닌 훈련생이니까… 교관의 권한으로 너를 임시 전투직으로 임명하지. 이걸로 너와 나는 동등해졌어. 오케이? 네가 나를 죽이든 강간을 하든 아무런 문제 없단 거야.”
“아니, 문제가 많지.”
“넌 닥치고 있어봐 브랙.”
“죽인다니… 무슨…”
“그 칼을 주워서 내 목을 찔러. 피하지도, 막지도 않을게.”
크리스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에 주변 훈련생들은 경악에 찼다.
크리스가 보통 미친년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이 정도로 미친년인 줄은 몰랐단 눈치다.
그러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브랙 교관님이 막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찔리기 직전에 피하겠지.’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훈련생들 역시 크리스의 신체능력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평범한 사람이 내지르는 칼날을 피하는 건 크리스에겐 손쉬운 일이다.
숲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고, 몬스터들이 습격하는 세계.
자연스럽게 무력의 중요성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다.
그렇다면 그 새싹을 키우는 ‘교관’이 얼마나 중책인지,
얼마나 엘리트 중 엘리트만 맡을 수 있는지는…
길게 말하면 입만 아플 뿐이다.
크리스 베넷은 명실상부한 초인이다.
주먹으로 바위를 부수고, 범인이 겨우 눈에 쫓을 속도로 몸을 움직이는.
리 샤오린이 기습적으로 칼을 내지르더라도 우습게 막아낼 수 있다.
‘…피하지는 않을 거지만.’
리 샤오린은 미약하게 망설이고 있다.
그녀가 벌써 포기해서야 계획이 어그러진다.
행동을 유도해야 했다.
그녀의 언행을 살펴보면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살짝 긁어 볼까?
“내가 좆같다고 했지? 그럼 죽여서 치우면 돼.”
“…못할 것 같아?! 나 할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
“해봐. 할 수 있으면.”
“이익! 네가 시킨 거야! 네가 시켰으니까! 후회하지 마!”
리 샤오린은 허리를 숙여 단검을 주워들었다.
“읏…”
그녀가 단검을 든 채 잠시 멈칫했다.
의외로 단검이 묵직해 약간 놀랐기 때문이다.
칼이란 물건을 처음 쥐어본 사람은 다들 저럴 수밖에 없었다.
철 덩어리는 생각보다 무거웠으니까.
손을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무게감이 리 샤오린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생하게 떠오르게끔 했다.
칼이 그녀의 앞에 선 교관의 목에 박혀 피를 뿜는 광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가 칼을 쥔 채 크리스에게 내지르는 장면 정도는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유도한 크리스 또한 리 샤오린의 머릿속을 속속히 꿰뚫고 있었다.
‘현대인은 감당 못한다. 감성적이게 되지만 않으면.’
그러니 감성적이게 되지 않게, 현실감을 더더욱 주어야 한다.
크리스는 리 샤오린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리 샤오린의 손에 들린 칼이 그녀에게 겨누어 진다.
동공은 흔들렸고, 숨은 거칠었다.
손과 다리는 미세하게 떨고 있다.
말 그대로 감성적인 인간의 표본이었다.
‘어이쿠, 진짜 찌르겠네?’
크리스는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터벅! 터벅!
“뭣! 뭐야!”
크리스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리 샤오린의 앞으로 걸어간다.
그 후, 리 샤오린이 꽉 쥐고 있는 칼자루 위에 크리스의 손이 겹쳐 올려졌다.
크리스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리 샤오린의 손가락이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윽…”
리 샤오린은 손가락에 느껴지는 고통에 가까운 압박에 흥분이 가시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일부러 고개를 틀어 무방비하게 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힘을 줘 칼자루를 끌어 칼날을 스스로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살짝 피부를 파고들어 피가 맺힐 정도로 가까이.
“게임이라고 했지? 만약 네가 찌르지 못하면 내가 너를 한번 찌를게.”
칼날은 차가웠다.
왜 한겨울의 찬 바람을 ‘칼날 같다.’로 비유하는지 공감 갈 정도로.
그와 반대로 리 샤오린의 날숨은 따스했다.
거리가 가까웠기에 크리스는 그녀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칼날이 목에 닿은 아슬아슬한 상황.
크리스가 뱉은 말에 리 샤오린은 당황한 표정을 만들어 내었다.
아니면 스스로 칼날을 목에 가져다 댄 미친 행동 때문에 당황한 걸까?
크리스는 깊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크리스와 리 샤오린의 키는 비슷했다.
그러나 크리스가 목을 무방비하게 보여주기 위해 고개를 위로 틀어 아래로 내려다보는 형태가 되었다.
일부러 유도한 구도였다.
리 샤오린에게 압박을 주기 위해서.
“이익!… 할 거야… 할 수 있어…”
크리스의 미친년이라는 이미지.
초인적인 신체능력.
교관과 훈련생이라는 상하관계.
모두 리 샤오린을 압박하는 재료가 되었다.
한땀 한땀 쌓은 계획적인 행동이 모여 리 샤오린에게 큰 압박으로 돌아왔다.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저 새빨간 동공.
그녀의 등이 식은땀으로 젖는다.
리 샤오린은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피해 눈동자가 도망친 곳은…
칼날이 닿은 크리스의 목덜미였다.
‘리 샤오린. 봤군.’
별로 좋지 못한 판단이었다.
“흉터가…”
크리스의 목덜미에는 흉터가 있었다.
피부가 찢긴듯한 흉터만 십수 개.
바로 지금처럼 칼날이 피부만을 뚫었을 때 생길만한 상처들이다.
리 샤오린은 잠시 망설이다, 힘겹게 말을 꺼냈다.
“…너… 이런 정신 나간 ‘게임’을 몇 번이나 한 거야…”
“글쎄, 양손으로 다 못 세길래 잊었지. 네가 대신 상처 한번 세어봐.”
크리스는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 이전에 이런 식으로 목덜미에 칼날을 드리운 병아리들 십수 명이 있었고, 모두 실패했다. 과연 너라고 다를까?’
크리스가 조소를 담은 눈빛으로 리 샤오린을 내려다본다.
정확히는 남들이 볼 때 조소를 담은 눈으로 보이도록 표정을 지어냈다.
“나는 달라! 나는…”
“힘들어 보이네. 도와줄까?”
“뭐? 그게 무슨…!?”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정말로 찌르게 되면 크리스 본인이 곤란해지니까.
크리스는 칼자루를 잡은 리 샤오린의 손등 위에 올린 손에 힘을 주워, 스스로의 목을 향해 칼날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접 칼자루를 잡고 있는 리 샤오린은 칼날이 크리스의 목을 파고드는 감촉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주르륵
살짝 맺혀있는 정도의 피가 칼날이 파고들며 점점 출혈이 심해진다.
뜨거운 피가 목을 타고 흐른다.
“미친! 지금 뭐하는…!”
“도와주고 있잖아?”
“그만둬! 해도 내가 할거야! 아직 마음의 준비가…!”
리 샤오린은 화들짝 놀라 칼자루에 힘을 주었다.
우스운 일이다.
찔러야 할 그녀가 정작 칼날이 크리스의 목으로 들어오는 걸 막고 있다.
찌르는 힘을 아주 약하게 주었기에 리 샤오린이 막은 정도로 칼날이 파고드는 건 멈추었다.
크리스는 리 샤오린을 내려다 보았다.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
리 샤오린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독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눈앞에 다가온 살인의 무게에 완벽히 겁먹은 표정이다.
크리스는 입을 다문 채 칼자루에 힘을 주었다.
물론 스스로의 목을 찌르는 방향으로.
“아!… 그만!…”
점점 크리스의 당기는 힘은 강해졌고, 그와 똑같이 리 샤오린이 칼날을 막아서는 힘 또한 강해졌다.
한 손으로 막기에는 힘이 부쳤나 보다.
리 샤오린은 다른 손을 크리스의 손등에 올려 칼날의 진행을 최대한 막았다.
‘스스로도 도대체 자신이 왜 막아서는지 모르겠지.’
그러나 그것도 금방 힘에 부쳤다.
크리스의 근력은 일반인을 초월했으니 당연하다.
일반 여성의 양손 근력 정도로는 초인의 한 손조차 막지 못한다.
크리스가 리 샤오린의 표정을 보더니, 이 정도가 그녀의 힘의 한계인 것을 알아챘다.
리 샤오린은 젖먹던 힘을 다했기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칼날의 끝 역시 미친 듯이 흔들렸다.
‘…따갑네.’
크리스가 노린 대로 흔들리는 칼끝이 그녀의 피부를 헤집는 것은 물론이었고.
그러나 크리스는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
“칼로 내 목을 찔러. 안 그러면 네 왼쪽 눈은 파인다. 이 단검으로.”
크리스는 여태까지 방정맞던 말투를 그만두고 무게감 있게 말을 지어 내었다.
이럴 때까지 가벼움을 연기하는 것은 도움되지 않는다.
항상 가벼운 분위기의 사람이 갑작스레 무겁고 진중한 목소리를 내면…
상대방은 진심이라 받아들인다.
크리스는 이러한 심리적 압박 요소를 이용해 리 샤오린의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단검이라는 단어에 유독 힘이 주어져 있었다.
단순히 ‘죽인다’가 아닌, ‘왼쪽’ ‘눈’을 파버린다며 상세한 부위를 지목하는 것 또한 의도된 행동이다.
누가 자신이 죽는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까?
그러나 한쪽 눈이 파이는 것 정도는 상상할 수 있다.
샛붉은 피의 비린내가 코를 간질이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힘을!… 풀어!… 내가!… 내 의지로!…”
“너야말로 힘을 풀어. 찌르지 않아도, 힘만 풀면 네가 이기는 거야.”
“으윽!…”
‘지금! 눌러야 한다!’
“힘 풀어.”
살기가 끌어올려 진다.
눈에 크게 치켜뜨고, 동공과 동공을 마주한다.
목의 상처에서 나온 피가 칼을 타고 손을 적신다.
피는 상온보다 훨씬 따뜻했다.
손가락이 따스해졌다.
비릿함이 코에 맴돈다.
1초, 2초, 3초.
최후의 수로…
크리스가 자신의 손에 힘을 더 주려는 그때.
“…못하… 못하겠어요… 잘못 했습니다… 흐윽…”
리 샤오린이 완전히 꺾였다.
그렇게 독기를 담았던 눈에서 눈물만이 흘러나온다.
그녀는 크리스에게 굴복했다.
펑펑 눈물을 흘리며 백기를 들었다.
땡그랑!
“흐으윽… 흑…”
크리스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손에 힘을 풀었다.
그녀가 손을 뗀 순간 단검은 바닥에 떨어졌다.
리 샤오린이 단검을 던지듯 내버렸기 때문이다.
크리스의 몸에 한껏 끌어올린 긴장이 풀어진다.
긴장을 했던 이유?
혹시나 리 샤오린이 단검에 쥔 손에 힘을 풀면, 크리스의 반사신경만으로 단검을 멈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가능했지만, 칼날과의 거리가 거리인 만큼 적당한 긴장은 필요했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도저히 못 해먹겠네.’
아…
미친년 연기해야 하지?
그럼…
“카악 퉷!”
크리스가 손바닥에 걸쭉한 침을 뱉었다.
더럽지만, 꺼림직 하지만, 표정과 몸짓은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광기가 느껴지는 미소를 의식적으로 끌어 올리며, 목의 상처에 침을 치덕치덕 발라 지혈한다.
아니나다를까 훈련생들은 크리스를 질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후…’
…크리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강렬한 첫인상에 더불어 계속되는 비정상적인 행동.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제멋대로인 성격 하며 천박하기 그지없는 말투.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미친년이란 이미지는 굳어졌겠지…’
그녀의 머릿속에는 빠르게 이 일을 마무리하고 방에 들어가서 제대로 지혈이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연기는 그녀의 기력을 빼앗았다.
“네가 졌어. 리 샤오린.”
“으흑…”
크리스가 주저앉아있는 리 샤오린에게 다가갔다.
피에 젖은 단검을 주워 장난스레 흔들며.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역시 네 눈 예쁜데? 보석 같아. 이곳에는 악세서리는 없거든. 그래서 하나 가지고 싶었어.”
정말로 눈을 파버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진짜 미친년도 아니고…’
훈련소에 들어온 이상 크리스는 이들의 스승이고, 이들은 크리스의 제자다.
크리스는 그 점을 꽤 중요시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이 미친 짓을 하는 목적이 훈련생의 생존률을 위해서인데, 그런 그녀가 훈련생을 위협할 리 없다.
그러나 그냥 용서해 버려서야 크리스의 ‘이미지’가 망가진다.
지금껏 몸서리쳐지는 연기를 해가며 쌓아온 미친년 이미지가.
상식적으로 미친년이 이런 일을 곱게 넘어가겠는가?
“눈… 제발 눈은 안돼요… 흐윽… 제발…”
리 샤오린은 크리스의 피로 젖은 팔로 최대한 눈을 가렸다.
주저앉은 채로 다리를 휘적여 가며 크리스와 거리를 벌린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리 멀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정말로 크리스가 눈을 파버릴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 애처로워 보여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독한 사람이라도 한숨 한번 내쉬고 넘어갈 정도로.
크리스는 슬슬 뒤에 지켜보고 있던 브랙에게 남모르게 신호를 보냈다.
사전에 합의한 대로, 크리스의 신호를 본 브랙이 그녀를 말렸다.
“이봐. 그쯤 하지.”
“앙? 또 왜!”
“그녀는 훈련생이다. 그건 체벌의 수준을 넘었어.”
“흐윽… 흑…”
리 샤오린은 매달리는 눈으로 브랙을 올려보았다.
눈동자 속 공포와 절망 사이 희망이 자리 잡았다.
누구라도 눈이 파이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겠지.
“아까 이년이랑 한 대화 못 들었어? 얘 지금 임시로 전투직이라니까?”
“임시 전투직 임명 권한은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야.”
“어쨌든 전투직 맞잖아? 나랑 동등한!”
“틀렸어. 임시 전투직이면 훈련생과 전투직 두 신분 모두를 가지고 있다. 어느 쪽이 우선이냐면, 훈련생이 우선이지. 하극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젠장. 그래서, 안된다고?”
“그래.”
훈련생들이 모두 똑똑히 들을 수 있게끔 이유를 설명한다.
크리스가 그녀의 눈을 파지 못하는 이유를.
물론 브랙과의 대화는 전부 짜고 치는 말이었다.
그러나 크리스는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뱉었다.
누가 봐도 안타까워 보이도록.
‘내가 지랄하고, 브랙이 나를 통제한다.’
앞으로도 반복해서 훈련생들에게 보여줄 패턴이다.
‘착한 경찰과 나쁜 경찰’의 극단적인 활용법이다.
“존나 재미없네… 하…”
“감사… 감사합니다… 브랙 교관님… 흐윽…”
리 샤오린은 안심했는지 울면서 계속해 브랙에게 감사를 했다.
이것으로 주동자가 굴복하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이 교관에게 온 이유조차 듣지 않고 주동자를 굴복시킨 치사하기 그지없는 방법이지만, 이게 크리스로서는 가능한 최선의 수였다.
오늘의 일 이후, 앞으로 단체 반항은 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14화 >
훈련생들의 봉기는 실패했다.
게임을 했다는 것 외에 정확히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모른다.
원작 소설에서도 리 샤오린과 광년이 사이에 대한 묘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광년이와 정신 나간 게임을 했다’ 정도로만 알고 있다.
생각해 보면 너무 깔끔하게 훈련생들의 반항이 진압되었다.
사실 훈련생들의 요구는 비합리적인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 정도로 훈련의 강도는 높았으니까.
그러나 광년이는 ‘합리적인 요구’를 듣지 않고, 훈련생들의 반항 의지 자체를 눌러 꺾어버렸다.
만약 그녀가 논리적으로 훈련생들과 대화를 시도했다면 도저히 이렇게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협상해서 합의하든, 아니면 폭력으로 묵살하든 무조건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광년이가 미친년처럼 행동한 게 교관들 입장에선 이득이 된 것이다.
“당연히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참 대단한 우연이야. 원작이 소설이라서 그런가?”
사실 광년이의 행동들은 그다지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행동이 많기에 ‘게임’의 내용은 그닥 궁금하지 않았다.
나야 변수 없이 원작의 흐름 그대로만 가면 어찌 되든 상관없으니까.
리 샤오린은 광년이에게 패배했고, 원작대로라면 앞으로 그녀가 교관들에게 반항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누구도 리 샤오린을 욕하지 않았다.
그녀 대신 누가 나서더라도 그런 정신 나간 게임에서 꺾이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점심식사가 끝났음에도 훈련생들은 의욕을 잃은듯한 표정이었다.
“오늘은 개인의 체력검증이 목표였다. 어느 정도 확인이 끝난 것 같으니 첫날은 이쯤 하도록 하지. 오후는 자유시간이다.”
교관들은 의욕을 잃은 훈련생들을 더욱 굴리기보다는 반나절의 휴식을 주는 선택을 했다.
아침처럼 서로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그룹은 적었다.
각자 상념에 잠겨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나 또한 잡담보다는 모처럼 주어진 자유시간에 퀘스트를 깨는 것에 집중했다.
띠링!
* * *
[퀘스트] <완료>
내용: 5분간 교관의 지시에 반항하지 않고 따르기.
보상: 300 카르마.
실패 패널티: 클리어 전까지 이 퀘스트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 * *
‘다행히 이강인과 둘이 토사물을 치운 것으로 퀘스트 클리어가 됐네.’
띠링!
퀘스트창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퀘스트가 나왔다.
앞선 퀘스트 내용들과 마찬가지로 초·중학생에게 방학숙제로 나올법한 유치한 난이도였다.
물론 불만 따위는 전혀 없었다.
* * *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운다.
퀘스트가 갱신되는 시간이 랜덤이라 그 사이의 공백을 걱정했지만, 다행히 클리어하는 즉시 바로바로 올라왔다.
덕분에 생각한 것보다 많은 카르마를 얻는 데 성공했다.
내용은 별것 없었다.
몇 m을 뛰어라, 스쿼트를 몇 회 해라, 윗몸일으키기를 몇 회 해라 등등의 간단한 퀘스트가 대부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모처럼 얻은 휴식시간에 운동하는 별종 취급을 받기는 했지만,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는 않았다.
앞으로 이럴 일이 무척이나 많을 테니까.
“대단합니다! 보이는 것보다 훨씬 체력이 뛰어나시네요?”
100미터를 구보하듯 뛰느라 흘린 땀을 손으로 흩으며 옆을 쳐다보았다.
육즙이 줄줄 흐르는 수육을 떠올리게 하는 나와 달리 상큼한 미남이 보였다.
‘이야… 같이 땀 흘렸는데 얘는 땀 냄새가 아니라 풋풋한 과일 향이 날 것 같냐…’
이강인은 자유시간 내내 옆에 붙어서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오전에 한 대화의 약발이 너무 과하게 먹힌 것 같다.
물론 나도 이강인과 친해지면 좋긴 한데…
‘이제 좀 가라… 얻은 카르마 좀 쓰자…’
도저히 상태창을 불러낼 수가 없다.
퀘스트 완료 창만 손을 휘저으며 갱신을 확인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휘젓는 행동은 의심을 살만한 행동일까?
‘그럴 리가 없지. 제정신인 사람이면 허공에 손을 휘젓는 것을 보고, ‘엇! 저 사람 설마 판타지 소설 속에 나오는 상태창을 사용하고 있나?’라고 의심하겠어?’
그냥 날벌레를 쫓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곳은 근처에 수풀과 나무가 많기 때문에 실제로 날벌레가 많다.
그러나 직접 입으로 ‘상태창!’이라고 하는 것은 다르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면 충분히 의심 갈만한 행동이지.
“대단한 건 강인씨죠. 강인씨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걸요. 전혀 지쳐 보이지 않으시네요.”
“아뇨아뇨. 그나저나 전에 운동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스쿼트같은 전신운동의 자세가 상당히 정확하네요?”
“하하. 평소 관심이 있어서 인터넷에서 영상이나 강의를 찾아봤죠.”
존나 날카롭네…
순간 섬뜩해서 말을 더듬을 뻔했다.
전혀 생각해 놓지 않은 곳에서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강인이 아는 나는 운동에 익숙지 않은 인간이다.
이강인과의 첫 만남에 나에 대해 그렇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전혀 달랐다.
나는 나름 헬스에 조예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표정관리 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강인도 별로 의심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와… 과거에 본 영상만으로 정확한 자세가 가능하다니, 재능 있는 것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물론 내가 박찬영이 아닌 백하민일 때 개인 트레이너에게 교정받은 자세들이다.
이제는 몸에 완벽히 익어 자연스레 자세가 나오는 것이고.
그와 별개로 이강인은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네가 안 간다면… 내가 가야지.’
이제 슬슬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온다.
솔직히 밤에 카르마를 사용해도 상관없지만,
아니… 오히려 그게 더 안전하지만,
지금 당장 사용하고 싶어 몸이 달아오른다.
지금까지 카르마를 사용한 것은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키 크는 약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키에 대한 대비가 되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169cm, 근 170cm가 되는 것이다!
가장 급한 불은 자동으로 꺼질 테니, 다음으로 필요한 건 뭘까?
바로 스텟이다.
평균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저질적인 스텟.
‘당장 카르마를 올려서 변화를 체감해 보고 싶어!’
설레여서 가슴이 떨린다.
그러나 상태창을 불러내기 위해선 이강인과 떨어져야 한다.
“강인씨는 더 훈련하실 건가요?”
“그만하시게요?”
“네. 저녁 식사 전에 목욕하려고요.”
“엇? 자기 전에 목욕하는 것이 개운하지 않나요?”
“그때는 사람이 미어터질 게 분명하니까요… 저는 혼자서 목욕하며 사색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과연! 그럼 저도 같이…”
끈질기네.
“아하하… 그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혼자서 목욕하고 싶어 일부러 지금 시각에 들어가는 거라서…”
나는 의도적으로 굉장히 미안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잘생긴 이강인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여자 무리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남자 둘이서만 목욕하러 들어가는 것은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라는 의미의 눈짓이다.
이강인도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는지 깔끔하게 포기했다.
“아! 제가 생각이 거기까지 닿지 않았네요. 죄송합니다.”
“저야말로 죄송해요. 제 몇 없는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라… 이따 저녁에 식사라도 같이 하시죠.”
“네! 그럼 이따 식사시간 때 뵙죠!”
* * *
풍덩!
간단한 샤워시설만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다르게 의외로 몸을 담글만한 욕탕까지 있었다.
높은 대우가 예정된 예비 전투생이라 그런가?
훈련소에는 쉘터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일단 아침과 점심으로 나온 밥부터가 그러했다.
“먹어줄 만했었지?”
자극적인 MSG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혀도 나름 만족했다.
무엇보다 근육과 몸을 키워야 해서 양도 많고, 치킨의 고기가 반드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녁이 기대되었다.
저녁이 가장 푸짐하고 퀄리티가 좋은 것은 만국 공통이었으니까.
“상태창!”
띠링!
* * *
[이름] 박찬영
[직업] -
[힘] 4 [민첩] 1
[체력] 2 [지능] 5
[기교] 1 [매력] -23
[특성] 『자연치유』
보유 카르마: 1680
* * *
“흐흐흐…”
암산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4자리가 넘는 카르마를 보니 만족스러운 웃음이 흘러나온다.
언제 오늘처럼 자유시간을 줄지 모르기 때문에 아주 귀중히 사용해야 한다.
외모 편집?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살을 빼기 전에는 아무리 연예인급 미모를 가지고 있어봐야 쓸모가 없다.
그렇다고 살을 빼는데 카르마를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이곳에 구르다 보면 자연히 빠질 살인데,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차피 현실은 시간이 흐르지 않고 있으니 느긋하게, 장기적인 시야를 가져야 한다.
1000이 넘는 카르마를 보니 자동으로 괜찮은 스킬을 구입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아무리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스킬을 사용하는 것은 내 육체다.
이렇게 평균보다 한참 못 미치는 신체는 절대 스킬의 제 효율을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강인 정도…
하다못해 꾸준히 운동해온 일반인 수준의 신체능력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
나는 우선 스텟 하나를 올리는데 어느정도의 카르마가 사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 삼아 터치했다.
띠링!
* * *
[민첩]
1 → 2
[필요 카르마] 100
* * *
[취소되었습니다.]
* * *
[힘]
4 → 5
[필요 카르마] 100
* * *
[취소되었습니다.]
스텟 한 개에 고정적으로 100인가?
그럴 리가 없지…
아주아주 높은 확률로 스텟의 십의 자릿수가 바뀔 때마다 필요 카르마가 올라갈 것이 눈에 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텟을 올릴 때마다 저렇게 일일이 필요 카르마 수치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
“한 스텟에 몰아넣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초반에는 능력을 골고루 올리는 것이 맞겠지.”
그나저나 기교와 지능, 매력은 어디에 쓰는 것이지?
힘, 민첩, 체력은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에 딱 봐도 스텟을 올리면 내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기교와 지능은 대충 알긴 했지만, 게임이나 소설마다 세세한 상세 영향이 다르기에 헷갈렸다.
“이거 뭐 도움말 없나? 도움창! HELP! 가이드북!”
띠링!
* * *
[기교]
물리력, 행동 관련된 스킬이 크게 영향받습니다.
그 외,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일에 추가 효과가 붙습니다.
[지능]
마법, 마나 관련 스킬이 크게 영향받습니다.
그 외, 정신력과 습득력에 추가 효과가 붙습니다.
[매력]
카리스마, 스타성, 목소리, 분위기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매력을 상승시킵니다.
첫인상에 추가 호감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투자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 * *
내 의지를 알아들었는지 딱 원하는 내용의 가이드북이 나왔다.
천천히 읽어 본 결과 3가지 모두 투자하지 않기로 했다.
기교와 지능은 스킬에 관련되었고, 매력은…
‘나중에.’
어련히 때가 오지 않을까 싶다.
엇?
그러고 보니 매력이 -23인데, 마이너스 스텟은 올리는데 훨씬 적게 들 가능성도 있다.
1개 올리는데 5 카르마나 10 카르마 정도면 조금 고민을 해줄 수도 있다.
띠링!
* * *
[매력]
-23 → -22
[필요 카르마] 150
* * *
“아니 평균보다 훨씬 낮은데 왜 필요한 카르마는 더 드는 거야!”
[취소되었습니다.]
에라이, 틀었다.
그냥 얌전히 힘민체나 올리도록 하자.
“가이드 북.”
혹시 내가 알고 있는 힘민체의 효능과 시스템의 효능이 차이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가이드 북을 불러와 모든 스텟의 설명을 확인해 보았다.
말 그대로 과한 걱정이지만, 카르마의 소모는 되돌릴 수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큰 차이는 없었다.
나는 기대감을 가지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띠링!
.
* * *
[이름] 박찬영
[직업] -
[힘] 4 → 9 [민첩] 1 → 9
[체력] 2 → 5 [지능] 5
[기교] 1 [매력] -23
[특성] 『자연치유』
보유 카르마: 80
* * *
체력은 5까지만 올렸다.
특성의 덕에 2였을 때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
5 정도면 충분히 평균 이상의 효율을 보여줄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진짜 특성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어디 보자… 진짜 아무도 없겠지?”
20명정도는 여유롭게 수용 가능한 목욕탕을 슬쩍 둘러보았다.
입장 당시 확인했다시피 아무도 없었다.
나는 욕탕에서 슬쩍 일어나서 간단한 체조를 하며 신체를 점검해보기 시작했다.
“오? 오! 확실히 엄청나게 편해졌어!”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정말 편해졌다.
어마어마한 무게의 살덩이에 짓눌려 운동 자체를 수월하게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무릎을 바닥에 대지 않아도 팔굽혀 펴기가 가능했다.
‘딱 1번밖에 못했지만…’
빠르게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내게는 그 1번을 성공할 힘이 가장 중요했다.
게다가 1포인트에서 9포인트로…
무려 9배가 된 민첩 스텟의 덕인가?
몸 자체가 상당히 유연해진 느낌이다.
“으윽!… 역시 이 자세는 안되네.”
유연해 졌다고 한들, 관절부위에도 빠지지 않고 들러붙은 살 덕에 크게 유연해지지는 않았다.
9포인트면 충분히 평균 이상인데…
역시 살을 빼는 것 또한 중요하다.
* * *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봐요?”
“엇? 그렇게 보이나요?”
“네. 확실히 목욕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나 보네요. 훨씬 밝아졌습니다.”
그건 스텟을 올리며 겪은 신체 능력 상승의 체감 때문이 분명하다.
실제로 나는 지금 완전히 의욕이 넘쳤다.
수근수근-
음…
역시 이렇게 이강인과 같이 밥을 먹으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존잘남과 존못남이 한 자리에 있으니 당연한가?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국 말고 다른 나라에도 그런 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평범한 남자도 이강인의 옆에 있으면 못생겨 보인다.
그런 그의 옆에 내가 있으니 오죽 못나 보일까.
부럽다.
분명 훈련 생활 도중 엄청나게 대쉬 받겠지?
대쉬가 뭐야, 사실 저 정도 외모면 모르는 여자가 대놓고 유혹하더라도 개연성이 있을 정도다.
‘섹스하고 싶다.’
나는 아마 외모를 전체적으로 뜯어고치기 전에는 떡 못 칠 거야…
박찬영으로 바뀌기 직전, 헌팅에 실패해 떡각을 놓친 기억이 괜스레 떠오른다.
그때 혼자서라도 헌팅을 했었어야 했는데!
사무치게 후회된다.
‘어?…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도 손해는 아니지만, 잊으면 안 되는 중요한 걸 잊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뭐지?
뭘까?
“어엇!”
벌떡!
내가 갑작스럽게 일어나자, 밥을 먹던 이강인이 나를 의문서래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내게 없었다.
원작인 소설에선 단 몇 줄만 나오고 지나갔지만, 이걸 이용한다면…
‘섹스… 할 수 있겠는데?’
< 15화 >
누군가는 내게 여자를 너무 밝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물을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을 하자면…
맞다.
나는 여자를 밝힌다.
애초에 여자를 밝히기 때문에 몸을 만들고, 피부를 관리하고, 브랜드를 입는 것이다.
그러나 나 스스로가 뇌가 좆에 달린 성욕의 화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성욕이 좀 강하고, 스스로의 욕망에 솔직할 뿐이다.
솔직히 다른 남자들 전부 여자 좋아하는 것은 마찬가지일걸?
대놓고 밝히면 남 보기 추해 보이니 말로만 아니라고 할 뿐.
나도 겉보기에는 여자를 밝히지 않았다.
물론 그조차 ‘여자를 자주 갈아치우는 남자와 하고 싶어 하는 여자는 없다.’라는 이유 때문이다.
‘겉으론 매너 있고 친절한 훈남이어야 인기가 많지.’
머릿속으론 무얼 생각해도 티 나지 않는다.
가령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할 때 ‘이 여자의 보지 색은 무슨 색일까?’ 따위의 고민을 한들 여자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겉으로만 손수건을 건네고, 듣기 좋은 중저음으로 쓸데없는 대화를 이어 가면 된다.
이건 절대 여자에 대한 비하가 아니다.
장담코 세상에 나만큼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없을 텐데, 왜 내가 여자를 비하하겠는가?
더럽기 그지없는 남자를 깎아내렸으면 깎아내렸지.
물론 ‘더럽고 음습한 남자’에는 내가 포함되어 있다.
본론을 이야기하자면, 나의 행동의 중심에는 섹스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꿀꺽…”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난 뒤, 룸메이트 모두가 목욕하러 갔을 때.
나는 홀로 침대에 앉아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을 하고 있었다.
실행할까?
아니, 너무 도박이야…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걸? 나는 미래를 알고 있잖아?
변수가 너무 많아. 실패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봤지?
“실패했을 때의 패널티라… 젠장… 확실히… 그걸 생각하니 도저히…”
아니!
관점을 전환하자.
어차피 이강인을 제외한 훈련생 모두는 나를 경멸의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
만일 실패한다고 한들, 이미 나는 잃을 것이 없다.
한 푼도 없는 거지에게 돈을 훔칠 수는 없지 않은가?
“좋아… 최악… 최악의 경우는 시간을 돌릴 수도 있으니… 하자!”
나는 결심했다.
블랑의 말이 옳았다.
용기 있는 자만이 떡을 칠 수 있다.
조금 다르게 말했던 것 같았지만, 아무튼.
두려워만 해서는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다.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불구하고 실패에 겁먹고 포기해 버리는 건 너무 찐따 같지 않은가.
한번 정했으면 뒤 돌지 않는다.
바로 몇 시간 뒤 실행이다.
* * *
“블랑? 마음 좀 추슬렀어?”
“으악… 되새기게 하지 마… 내 인생 최악의 경험이었어…”
“그래도 오전보다 훨씬 괜찮아 보이네.”
오전의 블랑이 겪은 일은 충격적이었지만, 정오의 리 샤오린과의 사건이 더욱더 충격이었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묻혔다고 한다.
블랑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인 이야기였다.
그 덕인지 훨씬 안색이 밝아져 있었다.
아직 조금 괴로워하고 있긴 해도…
“그쯤 되니 궁금하네. 도대체 교관과 리 샤오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 그러고 보니 너는 없었구나! 이게 또 말하자면 긴데…”
나는 신나서 설명을 시작하려는 블랑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멈춰 세웠다.
안타깝지만 나에겐 중요한 계획이 있기에 그의 말을 오래 들어줄 수는 없었다.
나는 블랑에게 사정이 있다며, 내용의 요약을 부탁했다.
.
“…와… 미친년이네…”
“그치? 완전 또라이라니까!”
어찌 보면 리 샤오린도 블랑과 같이 광년이에게 희생당한 희생자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동질감을 느끼는지 블랑은 리 샤오린에게 연민을 표했다.
“그나저나, 교관님 말인데… 그러니까 여자 쪽.”
“광년이라 불러. 자기가 그리 부르라고 했는데 뭘.”
“음… 광년이 교관님 말이야… 우연히 내가 그 사건을 제일 앞줄에서 봤거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녀는 완전…”
나는 뒤에 이어질 그의 말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광년이가 벌이는 광기의 게임을 바로 눈앞에서 보다니…
절대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다.
완전 역겨웠다? 완전 혐오스러웠다?
대충 이와 비슷한 단어가 나오겠지.
“완전 섹시했어…”
“그래 완전 섹시… 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도저히 표정 관리가 안 되네.
나는 ‘진심이야?’라는 표정으로 블랑을 쳐다보았다.
나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따로 쉬고 있던 룸메이트 3명이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바로 달려왔다.
“오… 세상에! 얘 오전의 일이 생각보다 큰 트라우마였나봐! 블랑, 괜찮아. 정신병도 꾸준히 약 먹고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
“근데 여기에는 정신 병원이 없잖아!? 이런 젠장! 광년이가 내 친구 한 명을 망쳤어!”
“걱정 마… 흐윽… 블랑… 꼭 내가 복수해줄게… 꼭… 블랑 널 잊지 않을… 흐으윽…”
“오늘 우리는 소중한 친구 한 명을 잃었다. 너희들이 친구를 아끼는 사나이라면, 이 자리에서 교관에 대한 복수를 맹세…”
“나 아직 살아있고, 정신도 멀쩡한데?…”
아니, 미안하지만 너는 도무지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게 지독한 짓을 당해놓고 광년이가 섹시하다고?
물론 걔는 육체만 보면 섹시하긴 하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네 입으로 나올만한 단어는 아닌 것 같다.
“나 지금 진지해. 설마… 나 그녀에게 반한 것은 아니겠지?”
세상에…
[이미 반했을 때 아닌 척하며 하는 대사] 2위가 블랑의 입에서 나왔다.
사설이지만, 1위는 ‘와… 나 방금 너한테 반할 뻔했어.’이다.
블랑은 자신이 말처럼 무척이나 진지해 보였다.
이건 흔들다리 효과를 넘어서 추락하는 다리 효과라고 보아야 할까?
보통 두려운 것이 아니라 존나게 무서워서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던가…
그러나 이어진 3명의 룸메이트의 말이 나의 이성을 심각하게 깎아내렸다.
자연치유고 뭐고 소용이 없어질 정도로.
“…사실 나도 노리고 있었어.”
“…사…사실 나도…”
“크…크흠…”
정신 나갈 것 같아!!
나는 나 스스로가 남들보다 유달리 성욕이 강하다고 생각해왔다.
근데 이 되다만 사람들을 보니 내 자신감이 뚝뚝 떨어진다.
그걸 보고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진다고?
물론 나도 광년이 정도면 씹가능, 주면 절하면서 먹는다.
근데 성욕과 사랑은 별개의 이야기다.
그녀를 애인으로 삼기에는 너무… 너무…
웰케 웰케 아닌가?
“하지만 교관님… 매력 있잖아?”
“그건 맞긴 해. 그녀를 얻는 길은 가시밭길이겠지만… 사나이라면 도전하고 싶어지지.”
음…
이들이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은 나와 같은 성욕이 아닌 풋풋한 순정에 가까웠다.
‘시발… 나도 모르겠다…’
성욕과 사랑은 별개다.
이들은 그저 특이한 이상형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남자들인 것이다.
…그냥 그런 거로 하자.
아무리 고민을 한다고 한들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들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
“찬영. 너는 어때?”
“나? 나는 뭐… 하하. 잘 모르겠어.”
“하긴… 너는 여자친구가 있었던 적이 없었을 것 같고… 아? 비꼬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니 오해 마라?”
잘생긴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하면 기만이다.
하지만 블랑은 멋들어진 이름에 비하면 좀…
많이 못생긴 축에 속했다.
그러니 이정도 수위의 말은 못생긴 사람끼리 하는 평범한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봐도 내 육체는 모솔아다처럼 보였기에 할 말이 없기도 했고.
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시간이 되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계획을 실행할 시간이.
“뭐야, 찬영 나가게?”
“이 시간에? 설마 여자랑 약속 잡은 건 아니겠지?”
“…그건 전혀 믿기지 않는데.”
“농담이었는데 진지하게 받기 있어? 이 세계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여자랑 친해질 시간도 부족…”
“외박 할 수도 있으니까 안 들어오면 먼저 자. 그럼 난 간다?”
툭 던진 내 말에 4명의 인원 모두 벙쪄서 나를 쳐다보았다.
입을 벌린 그들에게 가볍게 웃어준 뒤, 문을 열어 밖을 나섰다.
끼이익-
“농담… 이겠지?”
“설마 진짜?”
내가 나가자 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닐지.
* * *
슬쩍-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살짝 살펴보았다.
다들 피곤해 일찍 잠이 들었는지 다행히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2층을 향하는 계단에 발을 올려 이동했다.
끼익… 끼익…
2층.
왼쪽 끝에서 3번째 방.
바로 광년이의 방이다.
나는 문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원작 소설에 분명히 있었어. 오늘 밤, 광년이와 함께 잠을 잘 뻔했다고 한 사람이.’
원작 속 엑스트라가 광년이와 정말로 동침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로 의외인 점이, 그 남자는 다음날 나무 기둥에 매달리지 않았다.
게다가 본인의 말대로라면 광년이가 불쾌해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화기애애 해졌다고 한다.
즉,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는 말이 되고…
그렇다면 내가 조금만 더 입을 잘 털면 원나잇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비결?
어처구니없게도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냥 이대로 노크한 뒤, 대놓고 요구하면 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째선지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고…
이름도 나오지 않은 엑스트라의 잡담이 흘러가듯 나온 짧은 대화였지만, 확실하게 기억났다.
“흐읍!”
이 도박에 실패하면, 내일 아침 딱밤식의 희생자가 한 명 더 나올 것이다.
하지만 쫄지 않는다.
‘결정했으면, 단숨에!’
똑똑똑!
고요한 복도에 노크 소리가 울린다.
생각보다 크게 울렸기에 살짝 놀랐지만, 얼굴에 티 내지는 않았다.
편안하게 미소 지은 얼굴로 방의 주인이 나오길 기다렸다.
끼이익…
“뭐야?”
술 냄새.
당연하지만 방에서 나온 사람은 광년이가 맞았다.
방안에서 지독한 술 냄새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원작의 남자가 기둥에 매달리지 않았던 이유는 광년이가 취해 있었기 때문인가?
술의 힘 덕에 기분이 좋아져 동침 요구 따위는 유쾌하게 넘길 수 있어서…?
…아니, 그렇다기엔 그녀의 표정은 너무 멀쩡해 보였다.
“훈련생? 나 퇴근했는데. 이 야밤엔 무슨 일로 오셨을까?”
“전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뭐?”
“하고 싶은 사람. 밤에 찾아오라고.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아무리 광년이라도 당당한 내 말에 벙찐듯 했다.
그 모습이 방금 1층에서 본 블랑의 얼굴과 똑 닮았기에 웃음이 나왔지만, 억눌렀다.
광년이의 표정이 점점 괴상해졌다.
딱 별종을 보는 얼굴이었다.
“너 오늘 오전 그거 안 봤어? 어제 나 찾아온 애들 어떻게 됐는지? 아니, 그 이전에 너 새벽에 나 땅 파는 거 돕지 않았냐? 그러면…”
“당연히 봤습니다.”
“…와… 너 진짜 미친놈이구나?”
표정이 바뀌었다.
별종을 보는 눈에서 미친놈을 보는 눈으로.
…이런 시선도 섹스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이야…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존나게 비범한 새끼네?”
“감사합니다.”
“이름이 뭐야?”
“박찬영입니다.”
내 이름을 들은 광년이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뭐야… 내 이름이 왜…?
사실 나도 내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
일주일 전만 해도 내 이름은 박찬영이 아니었으니까.
새로운 이름에 도무지 정이 안 간다.
“한국인? 그렇네… 한국인은 대부분 이름이 세글자니까…”
작게 중얼거리던 광년이는 몸을 휙 하고 돌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응?’
…나는?
방 안쪽에 물건을 가지러 들어간 건가?
나는 얌전히 열려있는 문 앞에서 기다렸다.
“뭐해? 안 들어와?”
“예? 아. 네.”
끼이익- 철컥.
적어도 들어오라는 손짓이라도 하던가…
아무 말 없이 혼자 들어가길래 당황했네.
당황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원작 속 이름 모를 엑스트라는 광년이의 방 안에 들어간 것 같지는 않았다.
계속 문 앞에서 대화를 나눈 것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나는 광년이의 방에 초대받았다.
상황 자체는 환영이다.
여자의 방 안에 들어온 이상 90% 이상 성공이라 해도 마찬가지니까.
‘설마 했는데 소설 속 묘사가 맞았네… 이걸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고? 그보다 나는 입털기를 시작도 안 했는데 왜 방에 초대받았지? 사람만 달라졌을 뿐, 원작 속 엑스트라와 똑같이 행동 했을 텐데…?’
나는 좋게 굴러가는 흐름에 굳이 브레이크를 넣을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중요한 의문도 아니었고.
별다른 신경은 쓰지 않기로 했다.
당연하지만, 여성의 방을 티 나게 둘러보는 건 매너가 아니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의 이동만으로 방의 구조를 파악했다.
이대로 3초 이상 입을 닫고 있으면 분위기가 어색해지니 눈으로 빠르게 화젯거리를 흩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닥에 나뒹구는 술병.
“이 세계에도 술이 있네요.”
“…아. 이 세계는 계급이 있으니까.”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온다고 한들, 고위층의 사치를 위한 곡물은 항상 있다는 뜻인가요?”
“킥킥. 너 의외로 말을 잘 들어 먹네?”
꿀꺽!
광년이는 마시다 만 술병을 들어 마시며 말을 했다.
반쯤 들어찬 술병이 올려져 있던 책상 위의 종이 몇 장…
시력이 좋아 큰 글씨로 적힌 내용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11구역 관리소장 발행 ⊂ 북부 훈련소 출신 사망자 명단?’
북부 훈련소는 우리가 있는 이 훈련소다.
즉, 저 서류의 내용과 굴러다니는 술을 엮어 유추해 본다면…
‘광년이가 가르친 제자들이 전투 중 죽었고, 그에 슬퍼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잘못 해석한 것이겠지.
저 미친년이 제자에게 정 같은 것을 붙일 리가 없다.
저 서류들은 사무처리를 위한 업무의 일환이고, 술은 그냥 꼴려서 마시고 있었을 뿐.
그녀가 보여준 성격을 생각하면 이게 더욱 납득이 간다.
아차! 너무 오래 생각을 이어갔다.
다음 화제를…
“아! 그러고 보니…”
“야. 됐고, 불 꺼.”
“예?”
“떡 치러 왔잖아. 치자고. 떡.”
…화끈하시네.
전혀 반항하고 싶지 않은 명령이다.
나는 얌전히 방의 불을 껐다.
탁!
건물의 위치가 숲의 근처라서 그런지 불을 끈 것만으로 방이 엄청나게 어두워졌다.
곧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며 주위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광년이는…
스윽… 스윽…
침대 앞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옷을 벗고 있었다.
…엄청 적극적인데?
남녀 사이의 첫날밤에 스스로 옷을 벗는 여자는 나조차도 몇 번 보지 못했다.
몸에 걸치는 것 하나 없는 새하얀 나신.
안타깝게도 어둠에 눈이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았기에 중심 부위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서 있는 곳과 침대 사이의 거리가 꽤 된 탓도 있고.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어둠에 가려졌기에, 오히려 더더욱 관능적으로 보였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나신을 전부 보고 싶은 초조함과 조급함이 차오른다.
나는 그 감정을 천천히 음미하며 즐겼다.
“뭐해? 벗고 침대로 와.”
스윽…
나는 그녀의 말대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침대 위에서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주어질지 명확한 상황이다.
허락을 구한 자와 허락을 해준 자.
가르치는 교관과 가르침 받는 학생.
무력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웬만한 사람은 광년이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평범히 생각한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침대 위에서의 주도권을 단 한 번도 놓쳐 본 적이 없다.
< 16화[19] >
‘마음에 안 들어…’
크리스 베넷은 오늘이라는 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 완전히 취해버릴 때까지 마실 정도의 술이 없는 것도,
그녀가 술에 강한 체질을 타고 나 마셔도 마셔도 술에 잘 취하지 않는 것도.
‘아니야… 나는 취했어. 취해서 이러는 거야.’
그녀가 마지막에 웃는 얼굴로 떠나보낸 제자들이 서류 한 장으로 돌아왔다.
그것까지는 흔히 있었던 일이었기에 크리스 베넷의 마음을 심각하게 뒤흔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마지막이 11구역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기억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 밤, 그녀를 방문한 방문자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너무나도 기분이 우울했는데, 그의 행동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무식한 건지 용기 있는 건지…’
피식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했으나,
속이 조약돌로 채워진 듯 꽉 막힌 마음이 잠깐이나마 풀어진 것을 느꼈다.
여기까지라면 훈련생을 방에 들일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을 크리스 베넷이었지만…
어째서일까?
그녀는 눈앞의 못생긴 훈련생에게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
그것은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초인이 되며 얻은 감각적인 무언가였다.
지구에서는 ‘육감’ 같은 건 세상에 없다고 치부하며 살아온 크리스 베넷이다.
하지만 마법이 있는 세계에서도 육감이 과연 없을까?
그것도 마나를 받아들이고, 초인으로 각성한 그녀에게?
그녀가 겪은 수많은 전투 경험을 떠올려 보면, 육감은 존재했다.
육감이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 밤, 그녀가 경험한 적 없는 실수를 저질러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고.
그렇기에 충동적으로 저질러 버렸다.
크리스 베넷은 훈련생을 방 안으로 들였다.
‘역시… 못생겼네.’
크리스 베넷은 살짝 미안한 생각을 하며 작게 안도했다.
그녀는 오히려 이 훈련생이 못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매력이 있게 생겼으면 육감 따윈 무시하고, 절대 같이 잠자리를 허용하지 않았으리라.
특히 동양인은 더더욱.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박찬영입니다.”
“…이름, 마음에 드네.”
한국인. 박찬영.
마음에 든다는 말과 반대로 그녀의 얼굴이 구겨졌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켰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연이지만, 크리스 베넷은 이 이름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대부분은 이름이 3글자로 되어있다.
그 말은 동명이인이 있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건 있을 수 있는 우연이라고, 크리스 베넷은 납득했다.
‘몰라. 모르겠어…’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원래라면 박찬영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내쫓아버렸어야 했다.
그러나 이 이름의 다른 주인과 훈련생의 외모가 너무나 차이 나서일까?
아니면 그녀를 다독이는 이 강렬한 육감 때문에?
그녀는 훈련생을 쫓아내지 않았다.
혹시…
이 모든 것이 아니라면…
‘설마 아직까지도 나는…’
“읏!… 애무는 됐으니까 빨리 넣어.”
부드럽게 몸을 쓰다듬는 훈련생의 손을 막아섰다.
아직 완전히 젖지 않아 넣는다면 무척 아프겠지만, 그녀에겐 도리어 아픔이 필요했다.
크리스 베넷은 쾌락보다는 고통으로 머릿속을 비우고 싶어 했다.
“…왜. 불만 있어?”
그녀의 일방적인 요구에 훈련생이 살짝 곤란해 보인다.
손은 멈추었지만, 그녀가 요구한 대로 넣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섹스할 때 여자 쪽에서 젖지 않으면 남자도 아프다고 했나?’
“이 방의 밖에서 저는 훈련생이고, 당신은 교관이지만…”
“내가 손 멈추라고…”
“침대 위에서는 남자와 여자밖에 없습니다. 동등까지는 바라지 않을게요. 저는 당신을 여자로서 존중할 테니…”
멈춰있던 남자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게도 기회를 주실 수 있나요?”
“…”
남자는 크리스 베넷과 자신 사이의 서열을 넘보려 하지 않을 것임을 말해 주었다.
침대에서의 일을 이 문밖에선 꺼내지 않겠다는 뜻을 암시한 것이다.
크리스 베넷은 방금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다.
저건 배려다.
그녀랑 이 훈련생은 오늘 밤을 끝으로 얼굴을 안 볼 사이가 아니었다.
3개월간은 훈련할 때마다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걸 눈치챈 남자가 ‘동침을 허락해 주었다고 훈련생과 교관 사이의 상하 관계가 흐트러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크리스 베넷의 생각을 배려해 준 것이다.
‘하! 누굴 풋내기 교관으로 보고 있어. …건방지네.’
그녀는 전혀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살짝 놀랐다.
좋은 의미로.
누가 보아도 센스있는, 그녀 쪽에서 꺼내기 어렵지만 상대 쪽에서 꺼내줬으면 하는 말이었다.
훈련생의 어조 또한 신분의 우위를 인정하는 말임에도 전혀 비굴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를 향한 배려심이 섞인 설득하기 위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병아리에게 배려나 받고… 잘하는 짓이다…’
크리스 베넷은 자신과의 잠자리를 기대하고 온 남자의 로망을 전부 이루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에게 있어 그녀는 첫 번째 여자 경험일 수도 있다.
‘아니, 외모를 봤을 때 아주아주 높은 확률로 내가 첫 경험이겠지.’
그녀는 한 사람의 첫 경험 추억을 일부러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좋아. 어디 네 맘대로 해봐. 억지로 반응해 줄 거란 기대는 하지 말고.”
그녀는 저항을 관두고 침대에 편히 누웠다.
훈련생은 크리스 베넷의 말에 충분히 만족했는지 편안하게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가까워졌다.
크리스 베넷은 눈앞의 훈련생이 여자 경험이 많을 것이라 생각 되지 않았다.
애무도 서투를 것 같았고…
그렇다면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냈다.
스으윽…
‘의외로… 섬세하네?’
반감을 거두고 남자의 손길을 받아들인 그녀의 첫인상은 이러했다.
온기가 느껴지는 손바닥이 천천히 피부에 닿았다.
어째서인지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손바닥은 무척이나 느긋하게 이동했다.
팔과 어깨, 쇄골… 마지막으로 가슴.
스륵…
살짝 발기된 유두를 손가락으로 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와 달리 굳은살이 아직 박이지 않은 부드러운 손이었다.
그렇게 몇 분 뒤.
‘으음… 생각 외로…’
손가락에도 살이 쪄서 그런 걸까?
이렇게 한참을 만져대면 부어서 쓰라려야 할 유두가 전혀 그런 낌새 없이 그녀에게 보내주는 쾌감만 점점 강해져 갔다.
한참 ‘이상한데… 슬슬 유두가 아파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크리스 베넷이 쾌감에 눈 돌리고 있을 때,
갑자기 남자의 다른 손이 그녀의 비소를 약하게 흩었다.
“!!…”
‘그…그렇게 갑…자기…’
직접적인 자극에 놀라 약한 신음이 나올 뻔했지만, 눌러 참았다.
방금 전 ‘억지로 반응해 줄 거란 기대는 하지 마라’라고 해놓고 바로 신음을 흘리다니?
쪽팔려서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얼마 가지 못했다.
“흐앗? 흣!…”
신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한번 비소를 흩은 손바닥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올려져만 있길래 방심했다.
오직 손가락만을 이용해 기습처럼 질 입구를 문질렀기에 그녀 스스로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어떻게 제대로 보지도 않았는데 질구를 찾은 거야?’
쪽팔림으로 인해 얼굴이 달궈진다.
크리스는 허둥지둥 얼굴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신음을 들은 그는 방긋방긋 웃고 있다.
그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애무는 크리스의 몸 곳곳에 묻어있던 긴장감을 손쉽게 털어내었고,
그녀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톡톡 튀기듯 짧고 강렬한 쾌감을 만들어 내었다.
한마디로 능숙했다.
“뭐야, 너… 왜 잘해?”
크리스는 다급하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 * *
이건 꿀팁까진 아니고, 누구나 알만한 팁인데…
손으로 애무를 하기 전에 손바닥을 미리 이불이나 살에 데워두면 피부에 손이 처음 닿았을 때 느껴지는 거부감이 훨씬 덜해진다.
수족냉증이 있거나, 여름철 모텔에 펑펑 틀어진 에어컨 때문에 손이 차가워졌을 때 쓰면 유용하다.
특히 이렇게 가득 긴장하고 있는 신체를 애무할 때는 필수 잡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으읏… 핫!”
왜 잘하냐고 물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적다.
경험이 많아서 그렇다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은 채 애무를 계속하는 수밖에.
“앗… 잠…깐…”
애무를 시작할 때 처음부터 혀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수가 적기는 하지만, 경험이 적은 여성들 중 혀를 사용한 애무는 불결하다며 거부감을 느끼는 케이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흥분하기 전의 이야기.
이렇게 달아오르면 혀가 주는 쾌감에 불결함을 느낄 새도 없다.
“너!… 얼굴 안 치워? 나 그거 별로 안 좋아… 흐잇?!”
츄르릅-
막을 틈을 주지 않고 입술을 곧장 보지에 가져다 대었다.
보지는 이미 내 손에 의한 애무에 젖을 대로 젖어 주변 공기까지도 습함이 느껴졌다.
‘드디어! 마음껏 보지를 볼 수 있어!’
보지는 의외로 핑크색으로, 딱 봐도 경험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허락해 주길래 경험 또한 풍부할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첫날에 다 같이 봤던 유두도 분홍색이었지…’
마음 같아서는 코로 공기를 한계까지 들이쉬며 깊게 냄새를 맡아보고 싶어질 만큼 아름다운 모양의 보지였지만, 기겁한 광년이에게 처맞을 게 뻔하니 생각으로만 그쳤다.
지금까지 애액을 묻힌 손가락으로 가볍게 문지르던 음핵을 혀로 애무했다.
아무리 조심스레 애무한다고 한들 클리토리스는 쉽게 쓰라림을 느끼기 때문에 점막이 있는 혀로 애무해 줄 필요가 있다.
물론 손가락은 쉬지 않았다.
두터운 엄지손가락으로 질구 전체를 덮은 채 빙글빙글 돌리며 자극했다.
츄르릅-
“하앗!… 그만!… 흐아…! 이제 충분하니까… 읏… 넣어!”
아직 전혀 충분하지 않다.
나는 그렇게 판단한 뒤, 대답하지 않고 애무에 집중했다.
요구한다고 다 들어주면 그게 섹스야? 딜도랑 다름없지.
“너! 흐읏!… 왜 말 안들…! 으앗?!”
질구에 닿은 엄지손가락을 진동시키며 자극을 주자 내게 말하려던 불만은 이어지지 못했다.
…
계속된 애무로 시간이 조금 흘렀다.
그녀는 아직 간 적은 없다.
내가 그녀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가며, 일부러 가기 직전 최고 흥분도의 상태를 아슬아슬하게 유지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은 이미 충분히 젖어 나의 자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섹스 좀 해본 사람들은 절대 지금 넣지 않는다.
혀와 손가락을 좀 더 빠르게 돌려가며 애무를 가속했다.
“흐앙!! 아흐!! 넣으! 넣으라고!!”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이제 확신했다.
그녀는 질로 절정해 본 경험이 있으리라.
질 입구를 애무했을 때 꽤나 쾌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았고, 실제로 지금 내가 질에 손가락조차 넣지 않자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남자인지라 처녀가 아닌 것은 아쉽긴 했으나, 그런 것을 기대했으면 이렇게 쉽게 섹스를 하지 못했겠지.
츄릅!
질척… 질척…
“하아!! 흐아아!”
나는 일부러 그녀의 질 안쪽을 애무하지 않고 있다.
그녀에게 절정을 주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당연히 손가락으로 질 안쪽 성감대를 자극했으리라.
그러나 내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삽입했을 때. 쌓이고 쌓인, 질 내부를 자극해 줬으면 하는 욕구를 한 번에 폭발시키면…’
지금껏 본 적 없는 쾌감이 그녀를 덮치리라.
그녀에게 절정을 주지 않는 이유는 부차적으로 하나 더 있다.
여성도 절정을 느끼면 지친다.
쾌감에 의한 피로를 느끼는 것이다.
질을 애무하면 쉽게 보내버릴 수 있겠지만, 정작 본게임을 들어갈 때 지쳐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수 있다.
‘…뭐 그녀는 일반인의 체력을 초월한 초인이니 다를 수 있지만, 확실하게 해서 나쁠 것 없지.’
밤은 길다.
한 번만 할 것도 아닌데 조급하게 할 이유가 없다.
애태우면 애태울수록 본게임에서 느끼는 쾌락의 강도는 커질 것이다.
“야아! 너 안 넣게? 흡!… 고자야? 넣으라고! 흐악!!”
“아직입니다.”
내 대답에 그녀의 눈이 표독해졌다.
살짝 눈물까지 맺혀있는 게 아무래도 너무 애태웠나 보다.
…엄청나게 섹스에 굶주렸나 본데?
내 예상보다 훨씬 발정한 얼굴이다.
휘익! 털썩!
“하아… 하아… 네가 안 넣겠다면…”
그녀가 나를 밀쳐서 침대에 눕혔다.
움직이려고 해 봐도 근력의 차이 때문에 전혀 저항할 수 없었다.
“후우… 후우…”
내 위에 올라타서는 손을 뒤로 더듬으며 내 자지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기다리다 못해 자기가 직접 넣으려나 보다.
심지어 자지를 찾는 잠깐의 시간도 못 견디겠는지, 다른 손으로 보지의 입구를 만지작거리며 자위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선정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하반신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여성 상위? …난 역강간이 존나 꼴리더라.’
막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광년이의 얼굴을 보니 내가 목표로 했던 애태움은 한참 넘어섰다.
여기서 더 끌면 오히려 역효과다.
게다가…
‘여자가 가장 느끼기 좋은 체위가 아마 여성 상위였지?… 이렇게 한참을 애태워지다가 그런 체위로 질을 꿰뚫리면…’
“흐아아아악!!♡”
“윽…”
움찔! 움찔!
결국 단단히 세워진 내 자지를 찾아 넣는 데 성공한 광년이는 재빠르게 허리를 내려 삽입 했다.
의외로 훌륭한 내 자지가 질벽을 긁자, 지금까지의 데시벨과 비교도 안 되는 신음을 흘리며 전율했다.
첫 절정.
절정 특유의 질 조임이 강렬하게 내 자지를 자극했다.
‘하아… 내가 이래서 운동하는 여자들을 사랑한다니까…’
하체를 단련하는 여자는 그렇지 않은 여자와 조임의 차이가 생각보다 거대하다.
안 그래도 단단히 조이는데, 절정으로 인해 내가 경험한 누구보다 뛰어난 조임을 자랑했다.
순간적인 쾌감이 어찌나 큰지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고 허리를 흔들어댈 뻔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됐나?
내 위에 올라탄 광년이가 스스로 허리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흐응… 흐아…”
찌걱… 찌걱…
고요한 방 안에 음란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광년이는 이 체위가 상당히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야 삽입된 자지를 이용해 질 안쪽의 자기 취향의 성감대를 스스로 조절해 자극 할 수 있고, 앞뒤로 몸을 흔들며 클리토리스 또한 자극할 수 있으니 싫어하는 여자가 없는 만능 체위다.
…단 하나의 단점만 빼면.
기본적으로 피스톤질이 아니기 때문에 남자가 얻는 쾌감은 크지 않았다.
물론 다른 여자와 비교할 수 없는 강한 조임 덕에 이것만으로 충분히 쾌감은 컸지만…
‘절대 만족 못 하지!’
광년이는 나른한 표정으로 쾌감을 즐기고 있었다.
강렬하고 뾰족한 쾌감보다는 지속적이고 완만한 쾌감 쪽이 취향인가 보다.
그녀의 입장에서 피스톤질은 강렬한 쾌감이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내가 알려줘야겠다.
스윽…
“흐아? 자세 바꾸게? 그냥 이대로 하지? 충분히 좋은데.”
“더 기분좋게 해드릴게요.”
“더 기분… 좋… 아…아주 자신감 넘치네?!”
얼굴이 약간 붉어졌나?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설마 지금 부끄러워한 것은 아니겠지?
왜 이렇게 순진한 반응이야?
살짝 의문스럽게 쳐다보니 알아서 대답을 해줬다.
“나… 엄청 오랜만이라서… 그… 하… 시발! 야! 딱 말한다! 나 격렬한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알아서 해!”
털썩!
그녀가 내 손이 이끄는 대로 침대에 누웠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알겠다.
얼굴이 붉다.
광년이는 자신이 부끄러워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듯했다.
슥…
누워있는 자세에서 자연스레 팔을 올려 팔꿈치를 눈을 가렸다.
다른 사람이 보면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짚은 것처럼 보였지만…
‘누가 봐도 눈 마주치기 부끄러워서 가린 거지…’
방금 한 말의 어조 또한 그런 느낌을 팍팍 주었다.
조심조심 작은 목소리로 말하다가 평소의 당당한 목소리로 내게 요구를 했다.
마치 중간에 ‘팍!’하고 기합을 넣는 효과음이 들린 것 같다.
애초에 팔꿈치로 얼굴을 가린 시점에서 그런 허세는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말로 꺼내 그녀를 민망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원래 느긋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넣을게요.”
< 17화[19] >
찌거억…
“흐으읏…”
정상위.
이제는 나오는 신음을 참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그렇지만 깊게 삽입을 하자 붉은 입술에서 한숨을 토해내듯 신음이 흘러나왔다.
붉은 입술이라…
‘역시 키스는 안 되겠지?’
애초에 커닐링구스는 물론이고 애무 자체를 거부했었다.
기세를 타면 할 수야 있겠지만, 기껏 오른 흥이 팍 식을 수도 있으리라.
내 목적이 키스 그 자체가 아닌, 키스에서 오는 성적 흥분이란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시도할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오늘은.
찌거억… 쯔억…
내 허리 놀림에 따라 물결처럼 흔들리는 가슴이 보인다.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홀린 듯 손을 뻗게 된다.
말캉! 말캉!
‘누워있어서 가슴이 눌리고 있을 텐데도 이렇게 큼직하게 만져진다고?’
역시 평소 보던 것보다 큰 가슴이다.
평소 그녀가 즐겨 입는 캐미솔에 가까운 상의.
아마 스포츠 브라와 같이 큰 움직임에도 가슴의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되어있었나 보다.
남자라면 다들 알 것이다.
스포츠 브라가 얼마나 슴가력을 숨기게 해주는지…
스포츠 브라를 착용하기 전/후는 과히 손●공의 초사이어인 전/후와 비견될 정도의 전투력 차이를 자랑한다.
찌걱…
“하앗… 흐으… 가슴 좋아해? 큽… 애 같네.”
“너무 아름다운 모양이라 질리지 않네요.”
“씨이…발… 오글 거리 는 흐윽… 말 좀…!”
흔들리는 유두를 살짝 굴리듯 애무하며 몸 곳곳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평소라면 간지러울 뿐이겠지만, 온몸 곳곳이 달아오른 지금은 쾌감으로 느껴지겠지.
과연 신경이 밀집된 옆구리나 허벅지 안쪽을 만지니 반응이 왔다.
보지의 조임으로.
“으응… 흐응… 하아…”
“윽… 역시 엄청 조이네요. 기분 좋아요.”
“하아… 닥…닥쳐…”
“부끄러우신가요?”
“제발 입 좀 닫고 허리나 흔들어!… 흑…”
쪽팔린 건 알겠는데 자꾸 이리 반항적이니 심술이 생긴다.
나는 천천히 깊게 찌르던 것을 그만두고, 삽입된 상태에서 질구 근처를 얕게 찌르기 시작했다.
또한 손으로 감질나게 유두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일부로 그녀의 만족을 채워주지 않았다.
“흐으… 하아… 흐아?…”
역시 얼마 안 가 이변을 눈치챘다.
광년이가 팔꿈치를 치우고, 쾌감에 풀어진 눈빛에 더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인정하기 싫은데 방금 조금 귀여웠다.
내가 광년이 보고 귀엽다고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뭐야… 왜…”
“예? 왜 그러십니까?”
“…”
내가 모르는 척 되묻자 상황을 대충 눈치챈 광년이가 나를 째려보았다.
물론 나는 쫄지 않았다.
광년이보다 훨씬 눈매가 사나운 리 샤오린과의 눈싸움에도 쫄지 않은 나다.
“…흥! 네 자지가 너무 작아서 깊게 안 찔려서. 뭐, 어쩔 수 없지. 안 그래?”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귀여운 도발이다.
도발은 도발로 받아쳐야지.
“글쎄요… 이렇게 자지가 작아도 충분히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 이렇게 얕게 찌르는데 나를 보낼 수 있다고? 너랑 내가 속궁합이 좀 맞는 건 인정하는데, 절대 네가 섹스를 잘한다고 착각하지 마.”
“제가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지금 제 자지에 박힌 사람이 너어무 민감하고 굶주린 것 같아서 쉬워 보이길래 한 말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이 새끼가?”
광년이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내 허리는 살짝살짝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숨이 흐트러질 정도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이렇게 생각하겠지.
‘이 정도면 충분히 참을 만한데?’라고.
내가 일부로 성감대를 자극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해봐.”
“정말요? 자신 있나요?”
“단, 나를 못 보내면 네 불알 한 짝 뜯기는 건 각오 하는 게 좋을 거야.”
“…워후… 살짝 쪼그라들 뻔했잖아요.”
“…아니 진짜 뜯겠다는 건 아니고, 그런 각오를 보이라고.”
안 어울리게 마지막에서 약해지네…
내가 아는 광년이는 내가 쫄았다고 하면 신나서 더 천박한 말을 할 텐데.
침대 위에서는 약한 타입?
낮이밤져 여자라니, 꼴린다.
“깊이는 지금 이상 더 넣지 마. 그리고 제한 시간은…”
“재미없게 세세한 룰 정하기에요? 어차피 곧 가버리실 텐데.”
“…넌 건방진 건지 아니면… 흐앗?!”
슬쩍 성감대를 자극하자 깜짝 놀라는 모습이 봐줄 만 했다.
지금 내 자지는 50% 정도 들어가 있다.
그녀의 성감대 대부분이 질구 근처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여자 한 명 보내는 데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 * *
‘시발… 왜 괜히 궁합이 좋아가지고…’
크리스는 스스로를 속였다.
절대 저놈이 잘하는 것도 아니다.
절대 내가 굶주린 것도, 민감한 것도 아니다.
그냥 우연찮게 서로의 궁합이 좋았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할 일이 몇 번 있었지만, 그녀로서는 도무지 받아드리지 못했다.
그녀가 섹스를 바라고 있었단 것, 여자 경험이 많아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것…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전부 술 때문. 궁합 때문이다.
“흐으… 흐아…”
이미 한번 성대하게 가버리며 신음을 흘린 것이 조금 전.
이제 와서 신음을 억지로 참는 것도 도리어 쪽팔리기에, 크리스는 일부러 보란 듯이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입으로 신음을 뱉으면 척추를 흩는 저릿저릿한 쾌감이 올라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 어차피 두 번 다시 할 일도 없을 텐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맘 편히 즐기면 되지!’
크리스는 경험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단 한 명 뿐.
오늘 같은 ‘원나잇’이라 불리는 경험은 완전히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크리스는 다짐했다.
찌거억… 찌걱…
“하으… 흐…”
‘으… 천천히… 기분 좋아… 확실히 장담한 대로… 아까 위로한 것보다 이게 조금 더…’
팔꿈치로 얼굴을 가리자 지켜봐 지고 있단 느낌도 덜해진다.
한줄기 남은 긴장마저 풀어지며 쾌감을 더욱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버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평생 느끼고 싶은 나른하고 기분 좋은 쾌감이다.
심지어 몸을 상냥히 쓰다듬어지는 것조차 무척이나 좋게 느껴졌다.
그녀도 모르게 아래쪽에 힘을 꽉 주어버릴 정도로.
“으응… 흐응… 하아…”
“윽… 역시 엄청 조이네요. 기분 좋아요.”
역시 힘을 줘 조이면 저쪽도 눈치채나?
크리스는 부드러운 손길에 느껴버린 것이 전부 들킨 것 같아 몸이 확 달아올랐다.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쪽팔리다.
성감대도 아니고, 단순히 몸을 쓰다듬는 것만으로 느끼다니…
‘이래선 내가 엄청 야한 것 같잖아!…’
자동으로 대답이 험악해진다.
“하아… 닥…닥쳐…”
“부끄러우신가요?”
“제발 입 좀 닫고 허리나 흔들어!… 흑…”
맞으니까 제발 닥치라고.
왜 물어보는 거야?
그냥 하던 대로 허리나 흔들…어?
“흐으… 하아… 흐아?…”
만족스레 깊숙한 곳까지 찔러주던 그것이 원하는 곳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한 번은 단순히 패턴에 변화를 준 것인 줄 알았지만, 몇 번이고 그녀가 원하는 곳까지 찔러주지 않았다.
잘 즐기고 있었는데…
방금 산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린 어린아이처럼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뭐야… 왜…”
“예? 왜 그러십니까?”
“…”
그의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보니 깨달았다.
‘날 놀리고 있구나? 이 건방진 놈이!’
평소 성격 같으면 당장 방에서 내쫓았을 크리스지만…
그렇기엔 그가 주는 쾌감이 너무나 크리스의 취향이었다.
정말 몇 년 만에 이렇게 느끼는 걸까?
한번 가버린 정도로는 아직 부족했다.
크리스는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흥! 네 자지가 너무 작아서 깊게 안 찔려서. 뭐, 어쩔 수 없지. 안 그래?”
살짝 도발했다.
그녀의 자존심도 챙기고, 쾌락도 챙기기 위해서.
쾌감에 뇌가 노곤하게 풀려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싼 티 나는 도발이긴 하지만…
뇌가 풀려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러한 이유로 크리스는 스스로의 계책에 상당히 만족했다.
그녀가 알기로 모든 남자는 자신의 크기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다고 한다.
‘이런 도발이면 내가 괘씸해서라도 허리를 흔들겠지?’
그러나 이런 크리스의 예상은 멋지게 빗겨나갔다.
“글쎄요… 이렇게 자지가 작아도 당신 정도는 충분히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남자는 자존심도 없을까?
하긴, 오늘 종일 내게 미안할 정도로 시달려 놓고 밤에 찾아온 걸 보면 진짜 없는 걸 수도…
“하! 이렇게 얕게 찌르는데 나를 보낼 수 있다고?”
저 건방진 말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이 훈련생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그러니, 크리스에게는 교육자로서 일깨워 줄 의무가 있으리라.
“너랑 내가 속궁합이 좀 맞는 건 인정하는데, 절대 네가 섹스를 잘한다고 착각하지 마.”
“제가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지금 제게 박힌 사람이 너어무 민감하고 굶주린 것 같아서 쉬워 보이길래 한 말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이 새끼가?”
울컥해버렸다.
남자의 말이 크리스의 속내를 너무 정확하게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가슴 속 깊이 꼭꼭 숨겨둔 시꺼먼 구슬을 화살표로 푹 하고 찔린 느낌이다.
바로 반박하고 싶었지만, 말보다는 행동이다.
크리스는 차분히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지금 남자가 허리를 흔들고 있었음에도 절대 갈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기분이 좋기는 했으나…
가려면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해봐.”
“정말요? 자신 있나요?”
“단, 나를 못 보내면 네 불알 한 짝 뜯기는 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워후… 살짝 쪼그라들 뻔했잖아요.”
“…아니 진짜 뜯겠다는 건 아니고, 그런 각오를 보이라고.”
크리스는 속으로 짧은 욕설을 뱉었다.
브랙이 없으니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불알을 뜯겠다!’라고 해도, 실제로 뜯으려고 들어도 말려줄 브랙이 없는 것이다.
만일 그가 내기에서 진다면 그녀는 정말로 뜯어내야 한다.
정말로 그럴 수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기에 화들짝 놀라 말을 도로 주워 담았다.
‘솔직히 몇 번 이미지 관리에 실패한 것 같기는 한데…’
다행히 아직은 크게 의심을 산 것 같지 않았다.
크리스 스스로도 ‘조심해야지… 조심해야지…’라고 머릿속으로 생각은 하고 있으나, 자꾸 몰려드는 쾌감으로 인해 흐트러졌다.
“깊이는 지금 이상 더 넣지 마. 그리고 제한 시간은…”
“재미없게 세세한 룰 정하기에요? 어차피 곧 가버리실 텐데.”
“…넌 건방진 건지 아니면… 흐앗?!”
뭐야?
방금?…
방금 뭔가 엄청나게 자극적이었던 것 같은데?…
깊이 찌른 건 분명히 아니었는데?
* * *
눈동자에 혼란이 그대로 읽힌다.
“어? 왜? 방금까지만 해도… 우연… 하앗?!”
귀두로 성감대를 슬쩍 긁어주자 또 신음을 참지 못한다.
…사실 아까부터 나도 애매한 자극만 받으니 좀 빠르게 쾌감을 얻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일단 빠르게 보내놓고 생각하자.
나는 유두를 애무하던 손을 떼어내, 손가락을 그녀의 음핵에 두었다.
말 그대로 클리토리스에 가만히 올려두기만 했다.
따로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아도, 왕복 운동을 하는 진동에 의한 약한 자극 정도면 충분히 절정까지의 감초 역할을 할 수 있다.
“잠깐! 그거 반칙! 하윽! 흑!”
“룰 전부 정하지 않고 시작했잖아요.”
“이익! 그건 네 멋대로옷?! 나를 속였! 흐아아앙!! 핫! 하앗!”
더 이상 애태우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내가 파악한 그녀의 성감대를 찌르고, 또 찔렀다.
찌걱! 찌걱! 찌걱!
계속되는 약점 공략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광년이는 신음을 흘리며 겨우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 내 약점…! 전부…!”
“아까 여성 상위 할 때 스스로 찌르며 자극했잖아요? 다 알려줘 놓고 왜 아냐고 물어보시면…”
“개새끼이이이! 흐아아!”
나는 이길 확률이 높은 게임만 하는 타입이다.
지는 게임은 시작조차 안 한다.
“잠깐! 휴식! 타임! 흐아!”
“엄청 조이네요. 곧 갈 건가요?”
찌걱! 찌걱! 찌걱! 찌걱!
허리를 더 빠르게 흔들며 물어보았다.
대답은 보지가 대신했다.
“히익! 흐아아아! 흐아아앙!!!♡”
“크윽…”
두 번째로 경험하는 조임이라도 전혀 익숙지 않을 만큼 대단한 조임이다.
이 조임을 느끼며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면 도대체 얼마나 기분 좋을까?
인내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제가 이겼죠? 아! 그러고 보니 무얼 걸고 내기할지를 말 안했네요…”
“하아… 하아아… 흐아…”
“음… 그러면 그냥 오늘 밤은 제 마음대로 섹스하는 거로.”
“뭐? 그런 게 어딨…”
지금까지는 접대 섹스였다.
나보다 광년이가 기분 좋게 하기 위한 섹스.
그러나 지금부터는 다르다.
‘이젠, 나를 위해 섹스 하겠다.’
전력을 다해 섹스를 즐기겠다.
그런 나의 의지를 읽었을까?
내가 어느 때 보다 깊숙이 찌르기 위한 자세를 잡자, 광년이는 무척 당황해했다.
한창 절정의 여운을 만끽하고 있을 때 무시무시한 사실을 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아…안돼! 지금은 안돼…!”
“괜찮아요. 살살 하겠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괜찮을 거예요.”
“나 방금 간 직후우우우웃?!”
푸우욱!
아까 격렬한 걸 싫어한다고 했지?
오늘부터 좋아하게 될 거다.
나는 크게 허리를 튕겼다.
< 18화[19] >
"흐악! 헤윽!”
타악! 타악! 타악! 타악!
힘 조절은 없었다.
가장 깊숙이 박을 수 있는 자세로, 가장 깊숙이 자지를 넣었다가 빼길 반복했다.
단순히 피스톤 질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넣을 때는 일부러 각도를 틀어 질벽을 짓누르듯 찔렀고,
뺄 때는 귀두에 힘을 단단히 준 채 성감대를 의식하며 긁어내었다.
‘윽… 조임이 너무 강해서 보짓살이 끌려 나올 것 같아…’
애액이 푹 젖다 못해 침대의 시트를 전부 적시고 있을 정도로 많이 나오고 있음에도 상당한 마찰력이다.
할 수만 있다면 한평생 박아넣고 싶을 정도로 박음직한 보지다.
“또!… 또 갔… 헤으엑…!!♡”
“큭…”
찌직…
광년이가 잡고 있던 이불이 약간 찢어졌다.
너무 강렬한 쾌감으로 인해 힘 조절을 하지 못한 그녀가 찢은 것이다.
찌거억… 쯔걱…
나는 절정 도중에 더욱 느낄 수 있게, 자지를 빼지 않은 채 허리를 좌우로 흔들며 보짓속을 휘저어 주었다.
마찰 보다는 질벽 곳곳을 자극해 준다는 느낌으로.
이런 방법은 무척 자극적이면서 여자 쪽에서 느껴지는 부담은 없기에 절정의 쾌감이 훨씬 커진다.
“좋아?”
“흐아…! 조…조하…! 흐에… 하으…♡”
정신을 못 차리고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하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이 내게 오싹오싹한 정신적인 쾌감을 선사했다.
오전에 봤던 기 세고 안하무인 했던 그녀와 동일 인물이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육체적인 쾌락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쾌락까지 상당히 고조된다.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고, 서로의 얼굴을 알게 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서로 정신없이 몸을 섞다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 등골이 저릿하게 울린다.
이게 바로 원나잇이 주는 범죄적인 쾌감이다.
여자도 남자도, 원나잇을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시선으로 보이는지 뻔히 알면서도 한번 맛 들이면 도저히 그만둘 수 없다.
나 또한 그런 여자들을 많이 봤다.
뭐, 아무리 봐도 광년이는 원나잇에 중독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원나잇 중독자라고 하기엔 섹스 자체를 너무 오랜만에 한 느낌이다.
‘오랜만? 아니. 그것보다…’
참 지금 상황과 어긋나는 해석이지만,
역으로 원나잇이란 걸 처음 겪어 보는 눈치다.
“진정 됐어? 다시 시작할게?”
“바안말… 하지마아…”
헐떡거리면서도 자존심을 챙기는 게 귀엽기 그지없다.
말을 놓기 시작한 건 30분도 전이다.
이전까지는 정신이 없어 제지하지 못했다는 듯, 절정의 여운이 가시고 정신이 좀 돌아오자 이제서야 제지했다.
‘그마저도 혀가 풀려 말이 늘어졌네.’
“존댓말 좋아하세요? 연하남이 취향?”
“씨이발… 그게 뭔 상관… 꺼져… 난 연상이… 흐윽?”
또또 말이 험해지기 시작했다.
이럴 땐 다시 허리를 흔들어 주면 된다.
찌걱… 찌걱…
자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곧바로 조용해지며 한숨 섞인 신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너무 내 자지를 좋아해 주니 허리를 흔드는 맛이 난다.
‘진짜 더는 못 참겠다.’
이 정도면 많이 참았다.
아직 나는 한 번도 싸지 않았다.
“저도 슬슬 한계라… 격하게 할 테니 좀 참아주세요?”
“격하게라니… 하으… 방금보다 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광년이의 눈빛이 변했다.
쾌감과 불안함이 뒤섞여 있었지만, 약간의 기대하는 눈빛 또한 있었다.
‘이런 눈빛을 하면서… 뭐? 격렬한 걸 싫어한다고?’
절정 직후다 보니 느긋하게 흔들던 허리에 속도를 높기 시작했다.
보지를 왕복하는 속도가 서서히 높아지더니, 금세 격렬하게 변했다.
퍽! 퍽! 퍽! 퍽!
“히익?! 잠…까아안…!! 읍!!… 으븝!!… 읍!!!”
어느 때보다 신음이 커졌다.
이 정도면 밖에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도 그걸 알았는지, 자신의 팔뚝으로 입을 틀어막아서 새어 나오는 비명을 막았다.
이미 몇 번 절정에 올라 한참 달아오른 광년이는 쉽게 절정할 기세였다.
보지의 조임이 조여졌다, 풀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마치 자신이 곧 절정할 거란 걸 알게 해주었다.
퍼억! 퍼억! 퍼억!
어둠에 완전히 익숙해진 내 두 눈에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었다.
땀에 범벅이 되어, 쾌감과 향락에 지지 않고자 입을 틀어막고 신음을 참는 아름다운 얼굴.
너무 격렬한 피스톤질이었기에 엇박자로 흔들리는 가슴과 시선을 빼앗는 유두.
질구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투명한 애액이 자지에 마찰하며 맺힌 천박한 흰색빛 거품.
그리고 질에 박힌 내 자지로 인해 좌우로 벌어진 변색 하나 안된 분홍빛 소음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지에 피가 몰렸다.
“간…!! 흐아!! 갈 것…! 으븝! 이제 금방!!…”
“저도… 이젠…”
“나 갔어! 가는 도주우웅…!♡ 콜록! 헤윽!!… 켁!!… 머…멈추…♡ 끄흑…!♡”
“으윽! 엄청… 조이는… 큭…”
퍽! 퍽! 퍽!
피가 극도로 몰려서 돌처럼 단단해진 자지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미친 듯이 조여대는 보지.
나는 끊임없이 절정하는 보지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나의 쾌감을 위해서 허리를 흔들어 대었다.
역시 이건 너무 자극적이었는지 광년이의 침이 볼에 질질 흘러나왔다.
나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절정하며 미칠 듯이 조이는 보지에 끊임없이 박아대는 건 내 상상 이상으로 버티기 힘든 쾌락이었다.
‘으… 싼…다…!’
나는 한줄기 남은 이성으로 겨우 자지를 보지 속에서 빼내는 데 성공했다.
아무리 그래도 피임할 방법이 전무한 이 세계에서 질내사정은 꺼려진다.
뷰븃! 뷰뷰뷰븃!!
후두둑-!
범상치 않은 양의 정액이 새하얀 나신에 흩뿌려진다.
정액이 얼마나 힘차게 나가는지 대부분이 가슴 위쪽에 뿌려졌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미친듯한 쾌감이 내 뇌 속을 송두리째 지배해 생각을 이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뷰뷰븃!
“크윽!…”
사정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이렇게 참고 또 참다가 싸게 되면 무너진 댐처럼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드는 쾌감이 몰아친다.
영혼에 공업용 알코올을 통째로 들이붓는 것 마냥 정신이 시원해진다.
“허억… 헉…”
“흐아… 하아…”
나와 광년이는 둘 다 강렬한 쾌감의 여운에 취해있었다.
와… 지금 보니 정액이 얼굴과 머리카락까지 닿아있는 것이 보였다.
멀리도 날아갔네.
주황빛 단발머리에 새하얀 정액이 달라붙어 있는 것이 무척이나 선정적이다.
“흐아… 하… 뭐야, 안에 안 쌌네? 안에 쌌으면 불알을 걷어차 주려고 했는데…”
상당의 놀란 얼굴이다.
하긴, 이런 열락에 이성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여자 쪽에서 밖에 싸라고 말도 안 했는데 알아서 밖에 싸는 남자는 드물긴 하다.
나는 단순히 책임없는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일 뿐이지만.
그러나 이런 쓰레기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다.
좋게좋게 포장해서 말해야지.
“전 제 스스로가 매너가 있는 편이라 생각해 왔는데요.”
“…”
‘뭐야? 왜 화를 안내?’
농담삼아 말을 건넸지만, 기다리던 반박은 돌아오지 않았다.
말로 꺼내지 않았을 뿐, 오히려 내 말을 인정하는 눈치다.
…뭔가 광년이에게 매너 있다고 인정받으니 좀 오묘한 기분이다.
살짝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얘가 뭘 잘못 먹었나?’싶기도 하고…
‘내가 너무 원작 소설 속 광년이의 이미지에 고정관념이 박혀 있었나?’
오죽하면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안하무인하고, 난폭하고, 고집을 꺾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오늘 밤 내가 느낀 그녀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의외로 부끄러움도 많이 탔고, 내게 알게 모르게 져주기도 했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앞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조금 주의하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눈앞의 그녀처럼 내가 모르던 면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으아… 피곤해… 뭐, 같이 뒹굴 만 했어. 너도 만족했지? 그럼 이제…”
“예? 만족했다뇨?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는 아직도 단단히 서 있는 내 자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애액에 젖어 번들번들 광택이 생긴 내 자지는 그렇게 많은 양의 정액을 쌌음에도 전혀 수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뭐?… 남자는 대부분 한번 싸면 수그러든다고 하던데…”
“제가 그 대부분이 아닌가 보죠.”
“아니… 하지만 나 이제…”
“총 6번 가셨죠? 전 아직 한 번밖에 안 쌌는데,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내 잘못은 아니잖아…”
“딱 2번. 더도 덜도 말고 2번만 더 쌀게요. 이번에는 참지 않고 금방 쌀 테니 첫 번째 만큼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한번 싸고 끝이라니, 절대 용납 못 한다.
나는 강력하게 내 주장을 피력했다.
기본으로 3번은 싸야 만족하지.
다행히 이 신체는 괜찮은 정력을 가지고 있는 듯, 앞으로 몇 번은 걱정 없을 것 같다.
아니, 자연치유의 덕인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는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라는 눈을 하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설득했다.
광년이도 단시간에 6번 간 것 치고 상당히 쌩쌩해 보였다.
역시 초인이라 그런지 쉽게 지치지 않는 것 같다.
“뭐… 정 그렇게 부탁한다면 조금 더 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나를 바라보던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가 구석을 향한다.
그녀는 약간 부끄러워하며 흘리듯 작게 말을 꺼내었다.
목소리는 갈수록 점점 작아져 그 끝에는 결국 말이 흐려졌다.
귓볼 또한 붉게 물들여져 있다.
‘…낮이랑 정말로 같은 사람이야?’
꿀꺽.
자꾸 꼴리게 하네.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를 이끌어 침대에 도로 눕혔다.
구차하게 넣어도 되냐고 물어보거나 일일이 허락을 구하는 건 멋 없지 않은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손을 살며시 보지에 가져다 대며 대화하던 동안 약간 마른 보지를 다시금 애무하기 시작했다.
“흐으…♡”
열락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철컥!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밤공기가 방 안에 들어온다.
몇 시간이나 몸을 섞으며 달궈진 공기가 밀려난다.
숲의 맑은 공기를 마시니 알 수 있었다.
이 방에서 꽤나 야한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을.
‘아… 또 섰다…’
냄새뿐만이 아니라 이 방 곳곳에는 열락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대표적으로 땀과 애액, 정액으로 흠뻑 젖은 침대 시트.
“설마 지금 또 선거야?… 여러 의미로 대단하네…”
“하하… 아직 젊으니까요. 그나저나 침대 시트… 어떻게 하실 건가요?”
“…네가 빨아와.”
“예? 제가요?”
“그럼, 내가 해? 넌 훈련생. 난 교관. 알잖아?”
여기서 짬을 때린다고?
아니 분명 내 탓 또한 있기는 하지만…
왜 멀쩡한 세탁 담당 직원을 놔두고 내가 빨아야 해?
‘에휴… 생각해 보니…’
땀과 말 못 할 액체들에 젖어 음란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시트를 남에게 빨게 하기도 좀 그랬다.
눈치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1M 밖에서 냄새만 맡아도 이 시트가 어떤 흔적인지 손쉽게 알아채리라.
이곳에는 세탁기도 없어 손빨래를 할 텐데, 그럼 알아챌 확률이 99%에 가까웠다.
심지어 광년이는 여기가 직장이다.
나처럼 3개월 뒤 떠날 사람이 아닌, 앞으로도 직원들과 같이 얼굴 마주하며 생활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문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다.
아무리 광년이라도 그런 상황은 꺼려지겠지…
도저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기에 땀으로 푹 젖은 시트를 돌돌 말아 들어 올렸다.
“아, 나는 목욕하고 올 거니까 빨래방에서 새로운 시트 한 개 가지고 와서 침대에 깔아둬라?”
“이불도 가져올까요? 이거 찢어졌는데.”
“됐어. 저 정도는 나중에 내가 꿰매면 돼.”
“어… 재봉하실 줄 아세요?”
“왜 시발 불만 있어?”
도리도리.
얘는 또 왜 실컷 즐겨놓고 화가 나 있지?
뭔가 복잡한 얼굴이다.
“혹시 뭐 언짢은 일 있었나요?”
“…아니 걍 네 이름 마음에 안 들어서.”
“네?”
“너 박찬영 하지 마. 넌 앞으로 살 뺄 때까지 이름이 돼지다. 아, 흙 파는 걸 좋아하니 멧돼지인가? 그래. 멧돼지로 하자.”
“…”
아니 시발 섹스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 이름 마음에 들었다면서.
또 히스테릭이 도졌나 보다.
역시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것이 바로 내가 아는 광년이다.
귀엽고 부끄럼 타는 광년이?
그런 게 존재할 리가.
똑똑똑!
그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이 방에 노크했다.
나는 범죄라도 저지르다 들킨 것처럼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불륜도 아니고, 제 발이 저릴 이유는 하나 없는데.
그나저나 누가 이 시간에 그녀의 방을 찾아왔지?
설마 아까 섹스하던 소리가 밖까지 세어 나갔나?
그래서 조용히 좀 해달라고 찾아온 다른 사람?
‘아! 설마!’
원작 소설 대로라면 오늘 광년이의 방에 찾아오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내가 아닌, 원래 광년이와 문 앞에서 대화를 하는 엑스트라가 있다는 뜻이다.
아마 이 밤에 찾아온 사람은 그 사람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남녀 둘이 반나채로 한 방안에 같이 있는데 그걸 남에게 보여 줄 사람은 없다.
광년이가 알아서 자는 척을 하거나, 없는 척을 하며 노크를 무시하겠지.
나는 그냥 숨죽이며 이곳에 없는 척을 하면 된다.
…그러나 그건 아직도 광년이란 사람을 모르고 한 생각이었다.
“뭔데?”
끼이익…
‘잠깐! 지금 우리는 속옷 차림…’
미친! 그걸 열어준다고?
몸이 땀에 전부 젖어 옷을 입기는 꺼림직했기 때문에 나와 광년이는 서로 속옷만 입은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문을 열어버리면!…
“어… 안녕하세요? 교관님?”
노크 소리의 주인은 문 앞의 속옷 차림의 광년이를 보고 놀라 굳어져 어색하게 손을 펴 흔들었다.
그런데 방문자의 얼굴이 많이 낯이 익다.
저 애매하게 못생긴 얼굴은…
‘블랑! 원작에 나온, 광년이보고 섹스를 요구한 상대가 너였어?!’
생각해 보면 블랑은 원작 속 이름도 나오지 않는 엑스트라다.
오늘 밤 광년이와 대화를 한 상대와 블랑을 연관 짓지 못한 건 당연했다.
블랑은 광년이의 옷차림에 당황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방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로 내가 멀뚱히 서 있는 곳을 향해.
“훈련생? 왜 왔어?”
“어… 그… 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끼익! 쿵.
블랑은 문을 닫고 도망치듯 1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내가 좆됐음을 예감했다.
“뭐야? 벨튀?”
방금 전 블랑은 반나체 상대로 있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심지어 나는 팬티를 입고 있었음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발기해 있는 상태였다.
반나체의 남녀가 음란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방 안에 같이 있다라…
보통 사람들은 무슨 상상을 할까?
…제대로 좆됐다.
“아… 망했다…”
“왜? 아는 사람이야?”
“제 룸메이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오늘 여기서 자겠습니다.”
나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이런 건 물어보는 것 보다 이렇게 확정 짓듯 말하는 것이 허락을 얻어낼 가능성이 높다.
‘이 방에서 자도 되나요?’라고 물어보면 99%로 ‘꺼져’라는 답이 돌아올 테니.
광년이는 입을 쩍 벌리고 황당한 얼굴로 내게 물어봤다.
아주 미친놈을 바라보는 표정이다.
“정신 나갔어?”
“아니, 교관님이 문을 열어버려서 룸메이트한테 들켰잖아요. 저 방으로 들어가면 오늘 밤잠도 못 자고 하루종일 시달릴걸요? 책임지세요.”
이왕 뻔뻔해 진 거, 좀 더 뻔뻔하기로 했다.
나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표정과 말투로 그렇게 말을 했다.
과연 넘어올까?
“그렇다고 여기서 자겠다고? 그게 아니꼬우면 식당에서 자던가.”
“살도 섞은 사이인데 침대쯤은 공유 할 수 있죠.”
광년이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역시 이 정도의 억지는 안 통하나…
찬 공기를 마시며 정신 든 광년이는 더는 내게 휘둘리지 않았다.
혀가 풀린 채로 ‘기분조아♡’를 남발하던 1시간 전이 귀여웠는데…
“저는 앞으로 무슨 얼굴로 다니라고요…”
“내 알빤 아니지. 나는 니들 3개월 뒤면 안 볼 사이인데?”
“…”
“킥킥킥! 공짜로 떡 쳤으면 달게 받아! 고생 좀 하고~ 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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