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9

빠른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사신의 감각].
단단한 외골격을 부술 수 있는 아이템 도끼까지.
진수는 괴물 벌의 완벽한 천적이었다.
“사, 살려줘...!”
이제는 날지도 못하고 파르르 떨리는 몸을 질질 끌며 뒷걸음질 치는 녀석.
어눌한 말투로 목숨을 빌었다.
“살려줄까?”
그 모습에 진수가 가슴 아프다는 듯, 안타까운 목소리로 물었다.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는 녀석.
-퍽!
진수는 놈의 고개가 들리는 순간 도끼를 휘둘러 목을 쳐버렸다.
-농혈지옥충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농혈지옥충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여기서 살려주긴 힘들고... 저쪽 가서 열심히 살아라. 흐흐.”
벌의 머리가 채 땅에 떨어지기 전에 사체가 사라졌다.
“허억...!”
도끼를 빙글 돌리며 덩치 큰 사내를 돌아보는 진수.
호랑이 가면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낮은 웃음소리로 그가 웃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덩치는 그 모습을 보며 공포에 젖었다.
“이제 우리 차분하게 대화를 좀 해볼까?”
천천히 다가가는 진수.
“이, 이러지 마시오...!”
진수가 그의 멱살을 잡는 순간, 파삭하며 말라비틀어진 나무 인형으로 변해버렸다.
그러자 [사신의 감각]에 느껴지는 생명 반응도 없어졌다.
‘생명력까지 흉내를 내는 기술이라는 거지.... 꽤나 까다롭네.’
비록 덩치 큰 사내의 본체를 잡지는 못했지만 수확은 있었다.
분신 같은 것을 만드는 덩치의 능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고, 새로운 전이자도 얻었다.
반면에 진수 자신에 대한 흔적은 남기지 않았으니 충분한 이득이었다.
‘무엇보다... 세 명이나 구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지.’
진수는 손과 팔을 잃은 헌터들을 보았다.
헌터 생활을 하면서 죽거나 다치는 건 흔한 일이다.
다만 그건 몬스터를 상대할 때의 이야기고, 이렇게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아 큰 부상을 입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헌터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일어나서는 진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언젠가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한 손이 잘린 리더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또 뵐 날이 오길 바라죠.”
진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무기를 쓰던 손을 잃어버린 헌터가 일선에서 버텨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수가 미래를 기약한 것은 그가 절망에 빠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살아가는 동기가 꼭 거창한 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
진수는 이내 나무 인형을 들고 던전을 나섰다.
다시 한 번 박철준에게 연락을 하니 이번엔 그가 직접 오겠다고 답이 왔다.
‘수사관님 오기 전에 이놈 이름이나 지어주자.’
상태창을 열어보니 벌 모양 그림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독침붕으로 할까.”
-농혈지옥충 [독침붕]이 [갓 오브 워] 무리에 합류합니다.
-변종 자이언트 호크 [매형]이 [뉴트럴바이오 친구들] 무리에 합류합니다.
-[뉴트럴바이오 친구들]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체력 +1, 골드 +10
“오, 골드가 꽤 쌓였네. 언제 또 상점 한 번 이용해야겠다.”
뉴트럴바이오 친구들 무리에 얼마 전에 임병옥이 합류하고 지금 다시 매형이 들어가면서 무리 성장 보상을 받았다.
어느새 골드가 70까지 쌓여 있었다.
-끼익
“김진수 헌터.”
그가 전이자들을 살피는 사이 박철준 수사관이 도착했다.
그의 얼굴에 다크서클이 더욱 짙어진 것으로 보아 굉장히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아, 수사관님. 여기 이게 말씀드렸던 겁니다.”
진수는 나무 인형을 그에게 건넸다.
“여기 중앙에 부적 같은 거 보이시죠? 지난번에는 이게 뭔가 하고 꺼내봤었는데, 감식반에서 아예 전체적인 모양새를 보고 판단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이번엔 그냥 뒀어요.”
그가 처음 붙잡았을 때 상태 그대로 박철준에게 넘긴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 건도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수사를 진행하겠습니다. 후, 안 그래도 요즘 일이 많은데 별 이상한 놈들까지 설치는군요.”
“요즘 헌터 범죄가 좀 많이 생겼나요?”
진수의 물음에 박철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큰 사고가 터지고 난 뒤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굉장히 어수선한 건 알고 계시죠? 이 기회를 틈타서 움직이는 벌레 같은 놈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는 한데... 대규모 균열 사태 때 워낙 저희 팀에 결원이 많이 생겨서 일손이 부족하네요.”
사람은 부족한데 일은 늘어난 상황.
피로에 전 박철준의 모습이 이해가 갔다.
‘평상시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인데 이런 상황이면 오죽하겠어.’
“그래도 김진수 헌터 같이 헌터 범죄를 막는 데에 손을 거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숨이라도 돌릴 수 있네요. 나중에 헌터 생활 접게 되면 헌터범죄전담기관으로 들어오는 것도 꼭 고려해보세요.”
박철준은 진수에게 언제든 연락만 주라는 듯한 뉘앙스로 말을 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참, B급으로 진급할 수 있게 다 처리 해뒀습니다. 시간 괜찮을 때 헌터 협회로 가서 진급하시면 됩니다.”
그는 창문을 내려서 한 마디 덧붙인 뒤에 떠나갔다.
“휴우. 이제 기관에서 움직인다고 하니까 안심해도 되겠지. 보자... 오늘은 협회 영업시간이 지났으니까 내일 B급으로 진급이나 해야겠다.”
드워프 던전
“힘 38, 민첩 34, 체력 44, 내구 42, 마력 48로 능력치 총합 206이시네요.”
헌터 협회의 안내원이 검증석에 나타난 내용을 확인하며 말했다.
“원래는 기준 능력치 250에 미달되기 때문에 능력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헌터 협회와 헌터범죄전담기관 두 곳에서 인증을 받으셔서 검증 절차를 진행할 필요는 없겠네요.”
안내원은 빠른 속도로 타이핑을 했다.
이내 뒤에 있는 인쇄기가 요란하게 작동한다.
“B급 헌터 라이센스입니다. 축하드려요. 제가 헌터 협회에서 일하면서 이렇게 빠르게 B급까지 오른 분은 거의 못 봤는데 대단하시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진수는 라이센스를 받으며 웃었다.
벌써 B급이다.
B급 헌터가 되면 헌터로서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제한이 되는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혼자 던전 공략 권한을 얻어서 던전을 들어갈 수도 있고 균열 사태에서도 원하는 지역을 방어할 수 있다.
‘그런 등급이라 검증 절차가 상당히 빡센데 특성이나 기술을 밝히지 않고도 진급을 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지.’
“협회에서 볼일은 다 봤고... 임무나 받아볼까.”
헌터 협회에 온 김에 기술 자문을 해주던 조민준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었는데 오늘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혹시 [워 크라이] 기술 활용법이나 팁을 들을 수 있을까 은근히 기대했지만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임무 : 드워프 3 개체 차원 전이시키기 !
-보상 : 드워프 [헤파이스토스]의 지식
‘드워프를...? 유물 복원하던 거에 뭐 일이 생겼나?’
[차원 전이]의 임무를 받은 진수.
드워프의 유물을 복원하던 헤파이스토스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느낌표를 눌러 추가 설명을 확인했다.
-드워프 [헤파이스토스]가 잊힌 드워프의 유물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도움을 받아 마력공학을 이해하며 작업을 하던 중 일손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같은 [공방] 무리에 있는 보석사 [데메테르]와 헬하운드 [초코]가 그를 돕고 싶어 하지만 손이 없어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유물 복원을 거들어줄 드워프 3 개체를 차원 전이시키십시오.
헤파이스토스가 있는 무리의 구성원은 확실히 기술적인 일을 할 전이자가 부족했다.
특히 입에서 침 대신 불을 뿜는 헬하운드는 잘못하면 작업을 망칠 우려도 있을 것이다.
진수는 왠지 데메테르와 초코의 기가 죽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드워프는 개체수가 워낙 적어서... 던전 공략 권한 사다가 세 마리나 전이를 시키면 손해긴 하지만, 그래도 보내줘야겠지.’
드워프는 서식 필드가 따로 있지 않았다.
균열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편이고 던전에서도 소수만 등장할 뿐이다.
그래서 처음 헤파이스토스를 차원 전이시킬 때 진수가 놀랐던 것이다.
하지만 임무가 걸려 있으니 어느 정도 비용의 손해는 감수할 수 있다.
‘드워프 던전은 경쟁이 그리 세지가 않아서 공략 권한 사는 데에 그렇게 비싸지도 않고.’
특히 드워프 유물 복원은 차원의 축이라는 것과도 연관된 일이었다.
[차원 전이]가 원하는 요소이니 적극 협조를 해주는 게 좋을 것이다.
-띠링
[아이템다봤으니가져가요·]
진수가 던전 정보를 찾아보려고 핸드폰을 꺼내는데 김건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동묘 들렀다가 드워프 던전 가봐야겠다.’
그는 핸드폰으로 던전 목록을 훑으며 헌터 협회 건물을 나섰다.
‘언제 전기톱 한 번 맡겨주쇼. 그 아이템 분석해보니까 전기톱에 적용된 기술이랑 연계될 부분들이 있네. 아마 좀 더 개선을 시킬 수 있을 거 같수.’
동묘 공방의 김건에게 아이템을 돌려받으며 들은 말이었다.
지금은 김건이 만든 전기톱을 드워프인 헤파이스토스가 한 번 더 손본 상태다.
그런데 아이템을 연구한 뒤에 전기톱을 더 개선할 수 있겠다 말하는 김건.
‘이 아이템에 드워프 기술이 적용되어 있는 건가?’
진수는 금속으로 된 아이템을 몇 번 위아래로 던졌다 받았다 했다.
김건에게 돌려받은 아이템은 처음 상태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테스트 삼아서 요즘의 마력공학 기술을 결합해보려고 했는데 별 성과는 없었다고 한다.
아이템에 몇 가지 금속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그대로 판다고 해도 가치에 악영향은 주지 않을 거라고 했다.
“어차피 뭐 값이 많이 나가는 종류는 아니라고 했으니까.... 일단 임무부터 해치우자.”
이내 아이템을 공간압축 주머니에 던져 넣고 던전으로 향한다.
던전의 문 앞에는 이미 일당 헌터 팀들이 있었다.
진수에게 다가오는 현장반장.
“어이구~ 우리 진수 왔네! 다른 헌터들은? 이번엔 이상한 사람들 안 들어가게 해야지. 하하.”
그는 지난 번 최지원과 클리어하던 던전에 무단 침입자가 있었던 걸 아직 마음에 담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 더 올 일 없어요. 오늘은 저 혼자 들어갈 거예요.”
진수의 대답에 현장반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혼자 던전에 들어간다는 말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으니까.
“버, 벌써 B급이 됐다는 말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밑에서 몬스터 사체 갈무리나 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사고 한 번 터진 이후로 보이지 않더니 순식간에 B급 헌터까지 커버린 것이다.
현장반장은 술자리에서 자랑할 거리가 또 생겼구나 속으로 좋아했다.
“역시, 진수 넌 크게 될 줄 알았어. 하하하! 오늘은 던전에 아무도 못 들어가게 잘 막을 테니까 안심하고 돌라고.”
그는 진수의 등을 몇 번 두드렸다.
진수는 일당 헌터로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른 현장반장의 태도가 떨떠름하긴 했지만 그냥 가볍게 미소를 지어주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몰랐지만 던전에 입장하는 순간, 던전 입구와 그의 상태창이 잠시 공명했다.
-끼이익 쿵!
육중한 문이 닫히고 던전의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 던전은 상당히 깔끔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건축물의 내부처럼 평평한 벽면과 중간중간 보이는 기둥들.
기하학적인 패턴이 새겨져 있는데 돌로 된 벽을 아주 섬세하게 깎아낸 것이 상당한 손재주였다.
‘재료도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고....’
헤파이스토스의 지식 덕분에 석재에 대해서는 빠삭하다.
지금까지 던전 벽에서는 거칠게 써놓은 고블린 문자 정도나 봐왔는데 수준이 다른 세공을 보니 드워프의 던전에 왔음이 실감났다.
-피슝!
진수가 걸음을 옮기는데 벽 한 쪽에서 엄청난 속도로 화살이 날아왔다.
벽에 새겨진 무늬 중 일부가 화살촉이 되었다.
‘이게 드워프 던전을 헌터들이 선호하지 않는 이유지.’
일반적으로 던전은 위험할수록 돈이 된다.
던전의 위협이라고 하면 보통 몬스터였으니까.
하지만 드워프 던전은 함정 때문에 위험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나오는 몬스터의 개체 수는 적다.
그나마 아이템이나 도구 같은 것들이 수익을 내주는데, 이놈의 드워프들은 자기들이 만들었을 것 같은 물건들을 되레 파괴하곤 했다.
‘던전에 들어오면서 머리가 나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이런 걸 보면 균열이나 던전 같은 현상이랑 [차원 전이]가 좀 연관이 된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진수가 전이시킨 몬스터들은 차원 전이가 된 후로 왠지 평균적으로 수준이 더 높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비록 특제 영양제를 줬다고 해도 인간들 사이에서 검투장 챔피언이 된 고돌이.
드워프어를 익히고 잊힌 드워프의 유물을 복구하기 시작한 헤파이스토스.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 아틀란티스 무리의 포세이돈이나 키약트르도.
균열이나 던전, 필드에서 보이는 몬스터 정도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업적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차원 전이]가 주는 임무를 달성하고 전이자들이 계속 활동을 하다보면 언젠가 알게 되겠지. 어쨌든 나한텐 지금 당장이 제일 중요한 일이고.’
그는 이미 함정에서 발사된 화살을 일찌감치 피했다.
아주 교묘하게 만든 함정이라고 해도 드워프의 석재 지식을 지니고 있는 진수에게 돌로 된 함정은 통할 리가 없었다.
“맵핵을 킨 셈이라는 거지.”
진수는 온갖 위험천만한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는 던전을 안방 드나들 듯 유유자적하게 움직였다.
“캬악!”
그가 바닥에 있는 함정을 피해서 코너를 도는 순간 드워프 하나가 망치를 들고 달려들었다.
이번 던전에서 처음 만나는 몬스터였다.
-캉!
허리춤에서 도끼를 빼내 녀석의 공격을 받아친 진수.
[사신의 감각]이 있으니 이런 기습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
-콰각! 캉!
순식간에 십 수 번의 공격이 오갔다.
진수가 가지고 있는 [특급 공구 숙련] 특성은 헤파이스토스에게 받은 것.
눈앞의 드워프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는 뜻이었다.
녀석은 짤막한 팔과 자그마한 손으로도 놀랍게 망치를 움직였다.
도구를 다루는 실력은 엇비슷한 상태.
하지만 드워프와 진수에겐 큰 차이가 있었다.
-쾅!
완급조절을 하다가 돌연 전력으로 도끼를 휘두른다.
그러자 드워프의 손목이 꺾여버렸다.
“컨트롤 수준이 비슷하면 딜로 찍어 누르면 되지.”
녀석과 진수는 능력치에서 이미 격차가 컸던 것이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드워프를 단숨에 해치웠다.
이내 사라지는 녀석의 사체.
바닥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망치만이 드워프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 그래도 이건 돈 좀 되겠다.”
살펴봤을 때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봐서 아이템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던전에서 나온 물건은 값이 나간다.
망치 머리가 만약 특별한 금속으로 이루어졌다면 일당 헌터 팀을 부른 비용은 가볍게 충당할 수 있다.
‘이건 그나마 다행이네.’
망치를 챙겨 넣은 뒤 다시 던전을 뒤졌다.
온갖 함정들을 피해서 탐색을 하는데 드워프의 수가 유독 적었다.
‘반면에 함정은 굉장히 많고. 이거 일당 헌터 팀이 굳이 들어올 필요도 없겠는데....’
드워프는 값비싼 부산물이 나오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냥 새로운 생명체로서 연구를 할 가치를 지녔을 뿐.
그렇기에 놈들의 사체는 큰돈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차원 전이를 시켜서 사체 자체도 거의 없고 함정만 가득한 던전이라면 괜히 일당 헌터 팀을 들여보냈다가 사상자를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크억!”
꽤나 오래 던전을 돌아다닌 끝에 세 번째 드워프를 해치웠다.
전이된 드워프들은 작은 그림이 되어 헤파이스토스의 그림 옆에 자리 잡았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드워프 [헤파이스토스]의 지식
진수의 손에 죽은 드워프가 사라지면서 임무 달성 메시지가 나타난다.
지식 종류의 보상을 받고는 바로 어떤 지식을 받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보상을 받음과 동시에 대략 어떤 지식을 얻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 함정이 물리적으로 감지해서 발동하는 것도 있지만, 움직임을 파악하는 종류도 있는 거였구나. 어쩐지 예상보다 빠르게 작동하는 것들도 있더라.’
던전 내부에 보이는 함정, 특히 마력 회로를 사용하는 것들의 파악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차라리 김건 사장님이 얻었으면 좋았을 보상이네.”
보상으로 받은 지식만으로 새로운 걸 만들 수준은 못 되고 보이는 걸 이해하는 정도의 지식이었다.
덕분에 드워프 던전을 클리어하는 시간이 굉장히 단축되었다.
아주 교묘하게 숨겨놓은 마력 회로들을 파악해서 함정을 위치뿐 아니라 숨어있는 몬스터도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
거침없이 던전을 깨나간 덕분에 진수는 순식간에 보스 몬스터가 있는 방까지 도착했다.
“빨리 해치우고 다른 돈 되는 몬스터 잡으러 가자!”
자신만만하게 보스방의 문을 열어젖힌다.
“어...? 잠깐, 이건 반칙 아니야?”
-위이이잉!
보스방 안에는 낡은 전신 갑옷을 입은 드워프가 있었다.
한 손에 마력포를 장착한.
밸런스 붕괴 아니야...? (무료 마지막 편입니다)
-피슝- 콰과광!
마력을 뭉친 광선이 지면을 훑는다.
뒤이어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며 진수의 뒤를 쫓았다.
“으아아! 드워프들은 활이나 방패 같은 거나 만드는 거 아니었냐고!”
드워프들은 몬스터치고 도구를 만들고 활용할 줄 아는 몬스터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도라는 게 있다.
던전에서 마주친 녀석들처럼 망치나 도끼, 칼 같은 냉병기를 사용하고, 직접 만드는 도구는 수준이 낮은 편이었다.
이렇게 마력을 사용하는 장비를 쓰는 경우는 지금까지 알려진 적이 없다.
-후웅!
‘그나마 장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다행이지.’
보스 드워프가 허공에 오른쪽 팔을 휘둘렀다.
놈은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였는데, 왼쪽 손등에 달린 마력포로 공격을 하고 나면 꼭 오른팔에 달린 커다란 칼날로 횡베기를 했다.
전신 갑옷의 마력포와 칼날 사이에 마력 회로가 연결되어 있다.
녀석은 마력 회로로 인해 움직이는 것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는 듯했다.
‘저런 장비는 금수저 헌터들이나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력을 바탕으로 신체능력을 강화하거나 공격을 하는 장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보통의 헌터들이 사용하기에는 그 유지비를 감당할 수가 없을 뿐.
애초에 돈이 많은데 각성을 한 자들 중에서 부족한 능력을 장비로 채우는 경우가 있긴 있었다.
돈으로 높은 등급의 헌터라는 위치를 산 셈이다.
-펑!
“근데 왜 그런 물건을 몬스터가 쓰고 있는 거야?”
진수는 재빠르게 앞구르기를 하며 마력탄을 피했다.
놈의 공격은 확실히 매서웠다.
하지만 임무를 달성하며 받은 헤파이스토스의 지식은 녀석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에도 적용이 됐다.
움직이기 전에 마력 회로가 작동하는 것을 인지하고 한 박자 빠르게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철컹, 철컹
묵직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녀석.
보스 드워프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모두 위협적이었다.
마력 광선이나 마력탄 모두 적중 당하면 상당히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았다.
마력포를 사용하고 나면 반드시 휘두르는 칼날도 위압감이 대단했다.
‘그래도 전혀 이기지 못할 건 아니야.’
녀석이 오른팔을 움직이는 순간 빠르게 접근했다.
[유연체질]의 효과로 폭발적인 움직임이었다.
“여기가 약점...! 헉!”
마력회로가 지나가는 위치로 도끼를 내지르던 진수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전신 갑옷의 옆구리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톱날이 튀어나온 것이다.
기계적인 움직임이었기에 [야성]에도 감지가 되지 않았다.
헤파이스토스의 지식으로 기계장치의 작동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머리가 쪼개질 뻔했다.
“어우씨, 명색이 보스라 이거지?”
녀석에게서 거리를 벌린 진수.
놈의 모습은 마치 팔이 네 개 달린 것 같았다.
마력포를 달고 있는 왼팔, 칼날을 달고 있는 오른팔, 회전하는 톱날이 달린 팔이 양 옆구리에 하나씩.
“나도 전기톱이 있지. 너보다 크고 아름다운 걸로 말이야.”
들고 있던 도끼를 왼손으로 옮긴 그는 전기톱을 꺼내들었다.
전기톱을 작동시킨 뒤 몇 차례 도끼를 던지며 녀석의 신경을 건드렸다.
갑옷과 칼날로 막아내던 드워프가 왼쪽 팔로 진수를 겨눴다.
‘이 때다!’
그 모습에 진수가 전기톱을 앞세우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피슝!
마력 광선이 그를 정확히 노리고 발사됐다.
진수는 전기톱으로 한 차례 막아내며 빠르게 앞구르기를 했다.
-펑!
마력 광선을 막았던 부분에 폭발이 일어나며 파손이 생겼다.
하지만 [도구 일체화]로 [중급 재생력] 효과를 적용받은 전기톱은 이내 수복됐다.
진수가 한 바퀴 굴러 보스 드워프의 앞에 도착했을 때, 놈은 패턴대로 오른팔로 횡베기를 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몸에 박힌 습관인지 진수가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보면서도 큰 동작으로 칼날을 휘두른다.
진수는 그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위이잉!
[도깨비불]이 붙은 전기톱이 매섭게 돌아갔다.
톱날이 낡은 갑옷을 파고든다.
-드드드득!
생각보다도 더 단단한 갑옷은 쉽게 뚫리지 않았다.
하지만 톱날이 움직일 때마다 [도깨비불]이 중첩해서 달라붙었다.
물리적으로는 완전히 관통할 수 없었지만, 마력회로에 푸른 귀화를 점화시키는 데에는 충분했다.
-화륵!
푸른 불꽃이 번지기 시작하는 걸 발견한 진수는 잽싸게 뒤로 빠졌다.
보스 드워프는 그 뒤를 쫓으려 했지만 육중한 몸체는 기동성이 떨어졌다.
마력회로를 따라서 [도깨비불]이 활활 타오른다.
“오, 지옥불 스킨.”
진수가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윽고 당황한 드워프가 전신 갑옷의 앞부분을 열고 벗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펑! 퍼벙!
놈의 장비가 폭발해버렸다.
-드워프 엔지니어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드워프 엔지니어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화려한 연쇄 폭발과 함께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
‘슈트 같은 걸 입고 있었으니... 토니라고 짓자.’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가 [공방] 무리에 합류합니다.
진수가 녀석에게 왠지 기계를 잘 만질 것 같은 이름을 지어주자 바로 헤파이스토스가 있는 무리로 들어간다.
“휴, 근데 이번 던전에선 진짜 수확이 거의 없네.”
그는 난장판이 된 보스방을 살펴보았다.
보스가 입고 있던 장비는 폭파되어 파편들만 남았다.
던전에서 나온 드워프의 수도 적었기에 일당 헌터를 부를 필요가 있는지도 모호한 상황.
진수는 눈물을 머금고 전신 갑옷의 잔해들을 공간압축 주머니에 담았다.
‘전기톱이 제대로 박히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금속이니까.... 조각들이라도 김건 사장님한테 갖다 주면 뭔가 만들지 않을까.’
사방에 흩어져있는 금속 조각들.
보스방의 구석까지 훑으며 하나하나 줍던 진수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교묘하게 숨겨진 마력회로였다.
“음? 뭐야 이거.”
진수는 발견한 마력회로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방의 이곳저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
헤파이스토스의 지식대로면 함정을 위한 설계는 아니었다.
“함정보다는... 은폐용이지.”
그는 천장에 있는 조명 중 하나를 향해 [강철 거미줄]을 쐈다.
-철컥!
그러자 기계 장치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조명이 천장 안으로 쏙 들어갔다.
곧이어 방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벽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무늬에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온다.
이내 한쪽 벽이 착착 접히며 문을 만들었다.
“오... 숨겨진 방?”
진수는 언제든 방비할 수 있게 도끼를 쥔 상태로 문에 들어갔다.
짧은 통로를 지나자 나타난 작은 방.
“와.... 대박이네. 저건 진은인 것 같은데? 햐, 이 귀한 걸 여기서 다 보는구나.”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수많은 마석들과 형형색색의 금속들.
잘 정련된 형태의 금속들은 가공하기에도 수월해보였다.
“일단 내가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기고 나머지는 일당 헌터 팀한테 꺼내달라고 해야겠다.”
진수는 공간압축 주머니를 열어 값비싼 것들부터 집어넣었다.
최대한 꾹꾹 눌러 담으려는데 주머니 한 구석에서 아이템을 발견했다.
김건이 연구하고 돌려준 물건이었다.
“잠깐... 이거 어차피 팔아도 비싸진 않다는데 그냥 헤파이스토스한테 넘겨줄까...? 나름 현대의 마력공학이 적용된 물건인데 연구해서 성과를 얻을 수도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는 상점을 열어 아이템 전송을 구입했다.
-아이템을 전송받을 전이자를 선택하십시오.
‘헤파이스토스한테 보내줘.’
-슈슉
진수의 손에 들려있던 아이템이 사라졌다.
‘짬 처리... 아니, 보은이지. 보은. 덕분에 비밀 방을 찾아냈으니까.’
-[헤파이스토스]의 놀라운 발견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전이자에게 [향상된 마력 공학 지식] 전달
-[헤파이스토스]의 유물 복원 작업 속도가 빨라집니다.
-[헤파이스토스]가 유물을 개선합니다.
아이템을 전송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수에게 나타난 안내 메시지들.
그가 기대했던 대로 아이템에 적용된 김건의 마력공학 기술들이 헤파이스토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와, 물건을 받자마자 파악할 정도면 헤파이스토스도 보통이 아니네.”
진수는 즉각 나오는 반응에 감탄을 했다.
‘좋아, 이제 물건 챙겨서 나가볼까.’
공간압축 주머니를 마저 채운 진수.
그가 알기로 가치가 높은 물건들 위주로 챙겼다.
‘아재들 일하면서 작은 거 한두 개씩 슬쩍 하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던전 앞에 일당 헌터들이 있음에도 그가 굳이 공간압축 주머니에 금속 덩어리들을 챙긴 이유였다.
묵직해진 주머니를 들고 던전 밖으로 나오자 현장반장이 그를 반겼다.
“어이구, 안쪽 정리는 끝났어?”
“네. 뭐 별 일 없었죠?”
진수가 주변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현장반장.
“그럼. 또 이상한 놈들 오면 혼쭐을 내주려고 했는데, 오늘은 잠잠하네.”
“다행이네요. 안쪽에 옮겨야 할 게 좀 있는데 함정이 많거든요. 제가 한 번 길 안내를 할게요. 몬스터 갈무리할 건 거의 없으니까 인원들 다 같이 한 번만 힘쓰면 될 거 같아요.”
“그래? 몬스터가 별로 없었나봐?”
현장반장의 표정이 미묘하게 어두워졌다.
던전 뒤처리를 하면 던전에서 갈무리한 전리품의 일부를 받는다.
진수가 위험하더라도 일당 헌터 일을 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마석이 필요했으니까.
“대신에 돈 될 만한 건 충분히 나왔어요.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현장반장의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진수는 그를 안심시켰다.
진수가 값비싼 것들을 미리 어느 정도 갈무리 했다고 해도 보통 수준은 훨씬 상회하는 물건들이 남아있었다.
“아유, 나는 그냥 우리 진수가 허탕을 쳤을까봐 그랬지~”
진수의 말에 표정이 금방 풀린 현장반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한 번만 옮기면 된다고?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겠네. 자자, 그만들 쉬고 힘 좀 씁시다! 오늘은 일찍 마칠 수 있겠어!”
그는 박수를 치며 던전 앞에 앉아있던 일당 헌터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들을 인솔하여 보스방에 있는 비밀 공간까지 이동한 진수.
그곳에 있는 금속이나 마석 따위를 보자 일당 헌터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들이 보기에도 엄청난 양이었으니까.
“반장님. 제가 안내한 길 말고는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여기가 함정이 좀 많더라고요. 그리고 몬스터 사체도 얼마 없어서 금방 붕괴될 거예요. 작업 빨리 마무리되게 신경 써주세요.”
진수는 현장반장에게 간단히 주의점을 이야기한 뒤에 던전에서 나왔다.
일당 헌터 팀이 던전 뒤처리를 마치면 절차대로 헌터 협회에 물건들을 옮겨놓을 것이다.
‘어차피 중요한 것들은 가지고 왔으니까, 바로 김건 사장님한테 가야지.’
그가 서두른 이유는 김건이 전기톱을 강화시켜주겠다고 했던 것 때문이었다.
헌터들만큼 자기 장비가 업그레이드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다.
‘그것도 무기 강화라니!’
때마침 훌륭한 재료까지 손에 넣었으니 진수의 가슴이 뛰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당장 동묘를 향해 달려갈 기세인 진수.
-[공방] 무리가 잊힌 드워프 유물을 복원했습니다.
그런 그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첫 유물 복원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유물 복원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드워프의 개선된 유물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곧이어 쏟아지는 메시지들.
진수는 상태창을 열어 헤파이스토스와 그 무리들을 보았다.
드워프 다섯 마리와 헬하운드, 보석사 그림의 주위로 음표들이 물결친다.
둠칫둠칫 춤을 추는 녀석들.
그리고 그들의 중앙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뭐야, 유물이 이 정도면 밸런스 붕괴 아니야...?”
진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눈치 챙겨
드워프들이 복구한 유물.
그건 일종의 탑승 로봇 같은 종류였다.
드워프를 닮아 3등신 정도의 신체 비율을 지닌 유물은 팔짱을 낀 채로 나타났다.
“아직 헌터들 중에서도 전투용 로봇을 타는 경우가 없는데....”
물론 효율이나 비용 따위의 문제도 있겠지만 거대 로봇은 그런 걸 뛰어넘는 문제다.
누군가 로망을 실현할 법도 한데 아직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아직 도달하지 못한 한계라는 말이었다.
다시 말해 저쪽 차원의 드워프들의 기술력이 엄청나다는 뜻도 되었다.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의 성능을 구현해내지 못하는 거랑 비슷한가?’
기술과 아이템 등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다.
마력공학이 발전하고 있지만 그래도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이 비싼 이유였다.
“유물 이름은... 그랑조로 하자.”
진수는 드워프의 유물 이름으로 유서 깊은 전투 로봇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생긴 것도 왠지 비슷해서 꽤나 잘 어울렸다.
-골드 +50
-[공방] 무리에게 물건 제작 혹은 강화를 1회 요청할 수 있습니다. 최대 중량은 10kg으로 제한됩니다. 강화를 요청하는 경우 제작보다 더 높은 성능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유물의 복원으로 받은 보상은 예전 임무 보상과 비슷했다.
그 당시엔 전기톱의 강화를 받았었다.
하지만 이번엔 기대치 자체가 다르다.
거대 로봇을 본 뒤였으니까.
“중량 제한이 아쉽네.... 맘 같아선 나도 그랑조 같은 거 하나 만들어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차원을 넘는 것의 한계인지 몇 가지 제한들이 아쉬웠다.
제작보다 강화를 할 경우 성능이 더 뛰어나다는 것으로 보아 넘겨주는 물건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의 한계가 있는 듯했다.
‘이번에 재료는 많이 생겼으니까, 김건 사장님한테 메인이 될 물건을 만들어달라고 하고 그걸 강화해야겠다.’
[공방] - 거주 영역 : 이동 중
[헤파이스토스] [데메테르] [초코] [토니]
유물 복원 보상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고 상태창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그랑조는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공방 무리는 불의 산에서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의 산에 잊힌 유물이랑 같이 있던 게 차원의 축 조각이었지.... 다른 조각을 찾으러 가는 건가?’
상태창에 전이자들의 상태가 아주 세세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기에 진수로서는 그저 추측을 하는 게 전부였다.
공방 무리를 보던 진수는 이내 상태창을 닫았다.
‘얘네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도 할 일을 해야지.’
그는 전이자들을 보며 동기 부여가 된 듯 가방을 고쳐 메고 동묘를 향해 출발했다.
* * *
-쿵!
“허, 이게 다 뭐요...?”
김건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진수가 공방에 가져온 물건들 때문이었다.
드워프 던전의 비밀 공간에서 귀해 보이는 것들만 추려왔으니 놀랄 만도 했다.
“진은이 이만큼이나....”
그 중에서 김건의 마음을 빼앗은 건 진은이라고 하는 금속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은과는 다른 금속이었지만 은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더 강하게 지니고 있어서 진은이라고 불린다.
사이한 것들을 퇴치하는 힘을 지녀 언데드, 라이칸스로프 계열의 몬스터에게 효과적이다.
독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은보다 훨씬 단단하다.
또, 주변에 몬스터가 있으면 소유자에게 알려준다고 한다.
“뭘 만들어드릴까?”
김건은 공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버렸다.
활활 불타는 그의 눈동자.
소재를 워낙 잘 활용하는 인물이다 보니 귀한 재료를 보고 열정이 샘솟은 듯했다.
“지난번에 말씀해주신 대로 전기톱을 좀 개선하고. 방어구를 만들었으면 해요.”
진수가 현재 입고 다니는 것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전투 헌터용 내구 강화 보호의였다.
하지만 조금 튼튼하다 뿐이지 전투 중에 제 역할을 해서 치명상을 방어해준 적은 없었다.
“음... 방어구라.... 진은이 꽤 많으니까 몬스터 가죽 안에 덧대면 충분히 가능하겠네. 기동성을 챙기려면... 잠깐만 기다려보쇼.”
김건은 진수의 요청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연필을 꺼내 도면을 슥슥 그려냈다.
목까지 올라오는 방어구.
마력회로 설계까지 들어간 것으로 보아 방어 외에도 기능성을 추가하려는 듯싶었다.
“이렇게 하면, 움직임 보조도 해주면서 급소도 지켜줄 거 같은데. 어떠쇼?”
순식간에 나온 도면.
헤파이스토스에게 받은 지식이 도면의 마력회로 설계를 분석했다.
“신체 강화에 자가 복구 기능도 들어가나 봐요?”
“어이구, 마력공학 쪽으로도 견식이 있으셨네. 맞수. 이번에 아이템 분석하면서 마력 활용 쪽으로 좀 재미를 봐서, 그걸 적용해봤수다.”
김건의 설명에 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면을 더 살펴봤다.
“여기 이쪽은 왜 이렇게 들어간 거예요? 더 간결하게 할 방법이... 이 위로 합치는 건 안 되나요?”
마력회로 구성은 대체로 훌륭했다.
다만 몇 군데 의아한 부분들이 있다고 느껴졌다.
명확히 뭐가 이상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더 개선이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그런 부분들을 짚어낸 진수.
그의 말에 김건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 됐다.
“허허, 그렇네. 거기가 문제였어.”
스스로도 묘하게 거슬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진수가 딱딱 찾아낸 것이다.
정확한 원인을 알려준 것은 아니었지만 김건은 이 정도 단서만으로도 충분히 개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고맙수. 이 정도 식견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헌터 일을 하면서도 대단하시구만.”
그는 진수가 따로 마력공학 쪽으로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연신 감탄을 했다.
“이건 전기톱을 강화하려고 설계해놓은 건데 이것도 한 번 봐주쇼.”
김건은 적극적으로 진수의 조언을 구했다.
그 정도 되는 기술자라면 자존심 때문에 고집을 부릴 법도 한데, 전혀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허허허! 그런 방법이 있었구만?”
“이야! 이거였어!”
“이런 방법은 어떻겠수?”
오히려 몰랐던 걸 알게 되어서 즐거워 보였다.
진수는 김건과 한참 장비 개선에 대해서 논의를 한 뒤, 전기톱을 맡기고 공방을 나섰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울리는 전화기.
누구 전화인가 보니 유재찬이었다.
“여보세요?”
-어, 진수야. 잘 지내지?
“나야 뭐 별 일 없지. 왜? 뭔 일 있어?”
-뭔 일 있는 건 아닌데... 뭐 좀 부탁하려고.
유재찬은 자신이 이번에 던전을 클리어하는 단체 같은 곳에 들어가려고 한다고 했다.
공략조는 아니고 그보다 더 규모가 큰 집단 같은 거라는 설명.
“그거 뭐 다단계처럼 위험한 거 아니야?”
그의 요상한 설명에 진수는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여기가 요즘 구직글로 헌터넷에서도 상당히 이슈가 되고 있는 곳이거든. 또, 헌터들 모아놓고 설명회 같은 거 한다고 해서 나도 좀 알아보고 확정하려고 그러는데.... 여기 좀 같이 가줄 수 없을까?
“이거 꼭 사이비나 다단계 끌어들이는 수법 같은데....”
-아, 진짜. 내가 주변에 믿을만한 헌터 친구가 없어서 그래. 정 이상하면 헌터넷에 RD라는 곳 찾아봐. 요즘 진짜 헌터들 사이에서 핫하다니까.
유재찬이 사정하듯 말했다.
그가 알고 있는 헌터들 중에선 진수가 가장 강했다.
만약 RD의 설명회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잽싸게 도망쳐야 하는데, 그러려면 진수 정도 되는 헌터를 대동해야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알겠어. 그 설명회라는 건 언제 하는데?”
유재찬이 똥줄 타는 듯 말하자 진수는 못 이기는 척 도와주기로 했다.
-내일 점심쯤에 한대. 그거 듣고 같이 밥이나 먹으면 되겠다. 그치? 내가 점심은 쏠게.
진수의 대답을 듣고 안심이 되었는지 유재찬은 신난 목소리로 떠들었다.
진수는 유재찬과 내일 오전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RD라는 곳이 뭐하는 곳이길래 그러지? 요즘 헌터넷을 통 안 들어갔더니 소식이 느리네.’
그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핸드폰으로 헌터넷에 접속했다.
유재찬의 말대로 헌터넷 게시판에 RD와 관련된 글이 많았다.
낮은 등급 헌터들의 희망이라거나, 헌터 생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식의 이야기들이었다.
“RD에서 던전 공략 권한을 얻고 그걸 RD 소속 헌터들이 분배해서 클리어 하는 방식이라.... 공략조 없는 헌터들한테는 좋은 방법이겠네.”
설명해놓은 것만 보면 확실히 꽤 괜찮은 곳인 것 같았다.
가입을 하면 회비를 일정 금액 내고, RD에서 권한을 얻은 던전을 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추후에는 필드 사냥, 도시 간 물량 운송 등의 사업으로 확장할 계획도 있다는 내용도 볼 수 있었다.
‘일종의 헌터 인력 사무소 같은 느낌이네.’
진수 자신은 이제 B급 헌터이기 때문에 굳이 이런 단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D급 헌터인 유재찬에게는 유용한 단체일 듯했다.
‘내일 설명회까지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
* * *
다음날, 진수는 유재찬과 만나 RD의 설명회에 참석했다.
“근데 RD가 뭔 뜻이야?”
진수의 물음에 유재찬은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RD. Red Dragon을 줄인 말이지. 내가 어제 하루 종일 RD 관련해서 찾아봤거든. 보니까 여기가 재정도 아주 빠방하고 규모도 크고 그렇더라고.”
“Red Dragon...? 붉은 용...? 뭔가 되게 중국스러운 이름이네.”
“중국이든 미국이든 당장 나한테 도움만 되면 됐지.”
유재찬은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말했다.
“하긴.”
설명회에 찾아온 헌터들만 수백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이 정도 관심이라면 이름이 RD든 DDR이든 큰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사업이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뜻일 테니까.
“진수야, 이제 시작하나보다.”
진수가 주변을 살펴보는데 유재찬이 그를 불렀다.
단상에 진행자가 나와서 마이크를 점검한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오늘 저희 RD의 설명회에 찾아주신 분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곧 설명회가 시작될 예정이오니 편하신 자리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커다란 강당에 마련된 의자들.
어느새 앞쪽 좌석은 다 찼고 진수와 유재찬은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자에 앉자 단상 뒤쪽으로 문이 열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와, 저 사람들은 되게 등급 높은 헌터들인가보다. 기세가 장난이 아니네.”
RD의 간부들인지 굉장히 개성적으로 생긴 인물들이 정장을 입고 들어왔다.
원숭이처럼 팔이 긴 자.
몸집이 크고 이마가 돌출된 자.
예리한 치아를 드러내며 섬뜩한 미소를 짓는 자 등등.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은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폭한 기운을 감추지 않았다.
오만한 시선으로 좌중을 훑으니 등급이 낮은 헌터들은 오금이 저려왔다.
진수는 이와 비슷한 기운을 느껴본 적 있었다.
던전에 무단 침입해서 다른 헌터들을 공격하던 놈들.
그 중에 괴물로 변하던 녀석들이 내뿜던 기운이었다.
-꿀꺽
진수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만큼 놈들이 주는 위압감은 엄청났다.
-특수임무 발생.
‘야, 좀... 눈치 챙겨...!’
전력 강화
“진수야, 설명 들어보니까 이거 꽤 그럴듯하지 않냐?”
유재찬이 진수를 보며 말했다.
그는 이미 반쯤 RD에 넘어간 듯 보였다.
하지만 진수는 지금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특수임무 : 야구자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기술 [도깨비불] 강화
그의 눈앞에 나타난 임무 메시지 때문이었다.
‘[도깨비불] 강화라고...?’
기술이 강화된다는 건 굉장히 생소한 이야기였다.
능력치나 특성의 영향을 받아서 기술의 위력이 강해지는 경우야 흔한 일이지만 기술 자체가 강화됐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공격 기술이 아쉬운 진수로서는 굉장히 군침이 도는 보상이었다.
‘근데... 상대가 만만치 않아....’
단상 위에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독특한 외형을 지닌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진수가 걱정하는 이유는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들.
일부러 더 과시하듯이 뿜어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문제는 녀석들이 인간의 형태라는 점이다.
그의 경험상 놈들이 괴물의 모습으로 변하면 기운과 힘이 더욱 강해졌다.
‘그나저나... 야구자가 뭔데? 야쿠자도 아니고....’
진수는 핸드폰을 꺼내서 몰래 검색을 해봤다.
인간의 몸에 개의 머리를 갖고 있는 몬스터.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주로 나타나는 괴물이라고 했다.
‘확실히 개같이 생긴 놈이 있긴 하네.’
단상 위에 있는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어떤 놈이 야구자인지 알 수 있었다.
눈망울이 크고 입이 묘하게 튀어나온 자.
진수는 그의 얼굴을 기억에 담아두었다.
지금 당장 노릴 수는 없지만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RD의 계획에 낮은 등급의 헌터를 위한 안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행자는 전면 스크린에 떠오른 화면을 조작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화면에 비친 내용은 RD가 앞으로 진행하려고 하는 사업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그 중에서 비중을 크게 둔 것이 운송사업이었다.
현재 몬스터들의 출몰, 개별로 활동하는 헌터들로 인해서 주된 인프라가 도시를 중심으로 뭉쳐있다.
그런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줄 대규모 운송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저 북쪽 땅을 뚫고 대륙과의 육로를 잇는 것이 저희의 포부입니다!”
‘대륙...? 말본새가 조금... 냄새가 나는데. 중국에서 활동하는 몬스터가 둔갑하기도 했고....’
하지만 유재찬을 포함한 좌중은 이미 앞선 발표 내용으로 인해 RD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단상 위의 사람들이 높은 등급을 지닌 헌터들처럼 보였으니까.
이게 녀석들이 일부러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이유였다.
“이 목표를 위해선 더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특히 높은 등급의 헌터들은 사업의 초기에 참여할 경우 더욱 우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변하는 화면.
그곳엔 B등급부터 A등급, S등급의 헌터들이 RD에 들어올 경우 받게 될 혜택을 정리해두었다.
“높은 등급의 헌터들은 RD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능력은 그저 던전을 돌고 몬스터를 잡고 일차원적인 수익을 얻는 데에만 사용할 것이 아닙니다. 보다 큰 계획 안에서 미래를 꿈꾸십시오! 지금의 1년은 남들의 3년, 5년보다 값지게 변할 것입니다!”
진행자의 말은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의 이야기대로면 B급 헌터인 진수가 RD에 가입하게 되면 현재보다 위험한 일은 반절로 줄고 수익은 두 배가 된다.
헌터들이 단체로 움직이게 되면서 일당 헌터들이나 헌터 협회로 들어갈 비용을 아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그게 되면 진작에 그렇게들 해먹고 있겠지.’
진수는 주변의 열기에 동조되지 않았다.
일단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들을 앞세워 떠들고 있음에 선입견을 갖고 이야기를 들은 덕이었다.
“어때? 와보길 잘 했지? 진수 너는 B급이니까 지금 가입하면 나중에 나보다 훨씬 높은 직급 되겠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하는 유재찬.
그는 당장이라도 RD에 가입할 기세였다.
“나는... 글쎄. 일단 좀 더 고민을 해보자.”
“왜?”
유재찬은 줘도 못 먹냐는 표정을 지었다.
흉흉한 기운을 드러내고 있는 녀석들과 RD의 설명에 감화된 사람들.
그 사이에서 유재찬에게 앞에 서있는 놈들이 몬스터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럴 이유가 있으니까 이따가 나가서....”
진수가 유재찬을 만류하려는데 진행자가 다시 한 번 마이크를 잡았다.
“설명회에 찾아주신 분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혜택이 있습니다. 저희의 사업에 대해서 의문을 품으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서 오늘 연락처를 남겨주신 분들에 한해서 가입 전 던전 공략에 3회 참여하실 수 있도록 지원을 하겠습니다!”
-짝짝짝
진행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분위기만 봐서는 설명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청을 할 것 같았다.
유재찬은 그 모습에 애가 탔는지 진수와 다른 사람들을 번갈아봤다.
“야, 무슨 이윤데 그래...? 이러다가 뒤쳐지면 어떡하지?”
불안해 보이는 유재찬.
진수는 가만히 그를 보았다.
“그러면, 오늘 저거 신청하고 내 부탁 좀 들어줘. 그리고 RD에 가입하는 건 내 얘기도 듣고 저 던전 3번 도는 것까지 한 다음에 결정하는 걸로. 어때?”
진수의 말에 유재찬의 눈동자가 위로 올라갔다.
무언가 열심히 생각을 해보고 있는 듯했다.
“그래. 니가 뭐 나 안 좋은 일 일부러 할 리도 없고.”
균열이 터졌을 때 앞장서서 방어에 나섰던 진수다.
유재찬은 그 이후로 진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그 자신도 균열을 막기 위해서 항상 나서고 있지만 등급이 높아지고도 꾸준히 균열 동원에 참여하는 헌터는 흔치 않았다.
“그럼 너도 같이 신청하는 거지?”
“아니. 난 신청 안 할 거야. 내가 신청하면 위험할 수도 있어.”
“위험...? 니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의 유재찬.
“아니.”
그는 더더욱 알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럼... 내가? 야, 그게 무슨 말이야?”
* * *
“야이씨, 미친!”
설명회가 끝나고 주변 식당으로 온 진수와 유재찬.
진수는 유재찬에게 그가 만류했던 이유를 이야기해주었다.
단상 위에 있었던 인간들 중에 몬스터가 섞여있다는 것.
인터넷에서 등급이 낮은 공략조를 습격한 조선족 2인조와 그들이 일당인 듯 보인다는 것.
사람을 먹는 놈을 본 적도 있다는 것까지.
모든 이야기를 들은 유재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 그럼 나도 이제 큰일 난 거 아니야?”
“당장은 아닐 거야.”
“당장은?”
“이렇게 대대적으로 움직이는데 모여든 사람들을 티 나게 해치지는 않을 거 같아.”
“않을 거 같다 말고 않을 거야라고 해주면 안 되냐.”
유재찬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그래. 않을 거야.”
진수가 뒤늦게 말을 바꿨지만 그의 표정은 딱히 풀리지 않았다.
“근데 그 자식들이 몬스터인 건 어떻게 알았어?”
“아, 그게....”
‘호랑이 가면 쓰고 다니면서 변신하는 놈들 [차원 전이]시키다 보니 알게 됐다...고는 말 못 하지.’
“진은 알지? 몬스터 주변에 있으면 반응하는 거. 내가 얼마 전에 던전에서 진은을 좀 얻었는데 그게 신호를 주더라고.”
물론 그가 얻은 진은은 모두 동묘의 김건에게 건네주었지만.
‘선의의 거짓말이지. 선의의 거짓말이란 게 이럴 때 쓰는 말이 맞나...?’
“와씨.... 조졌네.”
진수의 설명에 절망감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유재찬.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말하는 대로만 잘 따라주면 위험할 일 없을 거야.”
진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준비할 게 좀 있는데, 그게 다 될 때까진 저쪽에서 던전에 가자고 해도 좀 미뤄줘.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자신의 계획을 공유한 진수.
유재찬은 진수의 계획을 들었음에도 영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왜? 뭐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니가 어련히 잘 하겠지만... 괴물들 아가리에 머리통 집어넣는 거 같아서....”
“안 들키게 연기만 잘 하면 돼. 이게 다른 사람들도 구하는 거라니까?”
“휴우, 알겠어.”
진수가 유재찬의 정의감을 건드리자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아무도 지원 안 하는 균열 방어를 나설 정도의 인물이었기에 타인을 구한다는 명목에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내가 준비할 거 다 되면 다시 연락할게.”
진수는 유재찬과 헤어지고 동묘로 향했다.
김건에게서 작업이 다 되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됐네. 어차피 또 제작해달라고 할 게 있었는데 잘 됐다.’
김건의 공방은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헌터가 아닌 사람들이 감사 인사를 몇 번 한 이후로는 굳이 마력공학 장비들을 만드는 공방에 방문할 이유가 없으니까.
물론 대규모 균열 이전보다는 손님이 늘어나긴 했다.
비각성자들이 지인들에게 소개해준 영향인 듯했다.
“왔수?”
진수가 공방에 들어서자 김건은 간단히 아는 체를 하고는 물건들을 꺼내왔다.
그가 맡긴 전기톱과 검은색 가죽으로 된 방어구.
그리고 작은 도구들이 꽂혀있는 벨트가 있었다.
“이건...?”
진수는 자신이 요청했던 게 아닌 물건을 보고 질문을 던졌다.
“진은이 조금 남길래 만들어봤수. 송곳 같은 건데, 간단히 찌르거나 던져서 쓰기 괜찮을 거요.”
김건의 설명에 진수는 밝게 웃었다.
그가 추가로 제작을 부탁하려고 했던 물건과 상당히 부합하는 것이었으니까.
“하하, 좋네요. 그런데 손잡이를 조금 더 얇게 만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진은으로 만든 송곳을 쥐어본 진수가 손에서 몇 번 돌려본 뒤에 김건에게 물었다.
“이거보다 얇게? 지금이 딱 손에 들어오지 않수? 보기보다 손이 작은 편인가?”
“음... 손이 작아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하. 휴대성도 좀 더 높이고요.”
어차피 [특급 공구 숙련]이 있기에 손잡이가 좀 더 작아진다고 해도 그가 사용하기엔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그가 생각하고 있는 사용 방법이라면 손잡이가 더 작은 게 좋았다.
“그리고 한 이만한 가방을 좀 만들어주시겠어요? 대충 이런 구조면 될 것 같은데요.”
진수가 투박하게 그려온 도면을 본 김건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것들 보고 계쇼. 금방 해줄 테니.”
그는 전기톱과 가죽 방어구를 툭툭 치고는 송곳들을 들고 작업대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진수는 먼저 전기톱을 들어올렸다.
-위이잉
먼저 천천히 날을 움직여본다.
기존보다 훨씬 적은 힘으로도 빠르게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에너지 효율이 좋아진 것 같은데...?’
-화르륵!
톱날에 [도깨비불]을 붙여보니 불꽃이 더욱 크게 타올랐다.
마력을 증폭시켜주는 기술이 적용된 게 분명했다.
‘이것만으로도 공격력이 거의 1.5배는 늘었다고 봐도 되겠네.’
전기톱은 톱날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돌아가는지에 따라서 절삭력과 공격력이 증가한다.
거기에 진수가 사용하는 [도깨비불]을 적용하면 더 빠르게 화력을 중첩시킬 수 있으니 그에겐 딱 알맞게 개선된 셈이었다.
“톱날에 진은을 좀 섞었수. 아마 언데드나 라이칸스로프 계열 몬스터들한텐 훨씬 위력적일 거요.”
김건이 전기톱을 확인하는 진수를 슬쩍 보고는 말을 툭 뱉었다.
“아, 그러네요. 날에 은빛이 좀 돈다 싶더라니. 진짜 맘에 드네요, 사장님.”
흡족해하는 진수.
“그거보다 옷이 더 맘에 들 거요.”
하지만 진짜는 아직 남아있었다.
야구자
가죽 방어구는 전반적으로 검은 물이 들어 있었다.
중간 중간 마력회로가 새겨져 있었고, 기능을 위해서인지 금속으로 된 부속품이 달린 모습이었다.
목까지 올라오는 방어구는 만져봤을 때 상당히 탄탄하면서도 은근히 신축성이 있었다.
“미세하게 절개하고 사이에 고무질 몬스터의 부속을 연결했수.”
진수가 살짝 당기면서 어떻게 된 건가 살피고 있자 김건이 슬쩍 답해줬다.
그 나름의 자신 있는 포인트였던 모양이다.
“아마 입어보면 더 놀랄 거요.”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
진수는 김건의 모습에 일단 방어구를 입어보고 파악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입어본 전투 헌터용 방어구들이랑은 차원이 다른데?’
마치 스웨터를 입는 것처럼 편하게 입을 수 있었다.
온몸을 감싸는 방어구는 활동을 하는 데에 전혀 방해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탄력 있게 근육을 잡아줘 힘을 쓰기에 더 좋았다.
-휙, 휙!
팔다리를 움직이고 제자리에서 몇 차례 뛰어보기도 한다.
활동성은 우선 합격이었다.
아니, 합격을 넘어 흡족한 수준이었다.
“가만히 계쇼!”
진수가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있는데 김건의 외침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시선을 돌렸는데 도끼 한 자루가 날아왔다.
-턱!
상당히 빠르게 날아온 도끼는 복부 쪽에 부딪힌 후 추락했다.
소리는 꽤나 묵직했지만 진수에게 들어온 대미지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가죽 위에 약간 긁힌 생채기를 남긴 정도.
이만큼 묵직한 무기에 맞았으면 충격이 전해질 법도 한데 딱히 느낌이 없다.
날붙이에 대한 방어도, 타격에 대한 방어도 모두 훌륭하다는 뜻이었다.
“이야.... 역시 사장님!”
“거, 예선전 그만 보고 이제 본 게임이나 확인해보쇼. 뻔히 다 알면서 능청 떨기는.”
진수가 김건을 추켜올리려 하자 이내 제지한다.
그의 말대로 이 방어구의 가치는 물리적인 방어력, 활동성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마력회로를 훑어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파악한 진수.
실은 그도 마력회로가 일으키는 효과가 어떤지 빨리 보고 싶었다.
그저 재료 활용 수준도 굉장히 높았기에 김건의 실력에 대해서 한 차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
“흠, 흠. 그럼 한 번 테스트를 해볼까요?”
진수는 마력회로에 마력을 살짝 흘려 넣었다.
그러자 가죽 아래에 덧대어진 진은이 잘게 떨었다.
-스스슥
방어구에 마력이 돌자 복부에 생겼던 긁힌 자국이 사라졌다.
자가 복구 기능이었다.
“음.”
진수는 만족스러운 듯 복구된 위치를 몇 번 쓰다듬었다.
‘신체 강화도 되는 것 같은데....’
그는 공방의 작업 공간에 있는 모루를 슬쩍 들어보았다.
상당히 묵직하긴 했지만 진수의 손에 육중한 쇳덩어리가 들렸다.
“와, 사장님. 이 정도면 엄청 비싸게 팔 수 있겠는데요? 아이템들 중에서도 이만한 물건 잘 없잖아요?”
“다 재료가 좋아서 그렇지. 진은을 그만치 갖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수?”
김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진은이 워낙 던전에서 소량 발견되는 금속이라 진수의 방어구에 쓰인 것처럼 대량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재료가 좋다고 해도 그걸 구현할 능력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진수가 입고 있는 것은 좋은 재료와 훌륭한 솜씨의 합작이었다.
“하여간 사장님 칭찬은 진짜 못 들으신다니까. 이거 대금은 제가 조만간에 치를게요. 돈이랑 재료 섞어서 드려도 되죠?”
진수는 드워프 던전에서 얻은 금속들을 떠올렸다.
가장 귀한 것들을 우선 챙겨왔지만 던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금속들이 다량 있으니 김건의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당연한 소릴. 또 말도 안 되게 비싸게 값 치를 생각하지 말고 적당히 작업비만 챙겨주쇼. 또 그러면 나 일 안 해!”
매번 다량의 마석이나 웃돈을 쥐어주는 진수에게 으름장을 놓는 김건.
진수는 그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예~ 제가 생각하는 적당한 수준으로 드릴게요. 이거 다 된 거죠? 저 이만 갑니다!”
작업 테이블에서 가방과 진은 송곳들을 챙긴 진수는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나오자마자 바로 방어구를 벗었다.
‘이 정도 물건을 강화하면 대체 뭐가 나오는 거야?’
방어구를 손에 들고 유물 복원으로 받은 보상을 떠올린다.
-[공방] 무리에게 강화를 요청하시겠습니까?
‘응.’
진수가 속으로 답하자 손위에 있던 방어구가 사라졌다.
드워프들에게 전송이 된 것이다.
“햐,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는 드워프들에 의해 강화된 방어구의 성능을 기대하며 걸음을 옮겼다.
* * *
“야, 여기 되게 정직하게 일하는 거 같은데? 니가 뭘 잘못 안 거 아니야?”
유재찬이 진수를 보며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진수는 김건의 공방에서 물건들을 받아온 뒤 유재찬과 만났다.
그는 공방에서 받은 가방을 유재찬에게 건네주며 그걸 메고 RD 쪽 헌터들과 함께 던전에 가라고 전했다.
그렇게 두 번의 던전을 클리어한 유재찬.
“이 정도면 그냥 RD 가입해도 되는 거 아닐까? 어쩌면 니가 봤던 놈들이랑 RD에 그 몬스터들이랑 관련이 없는 걸 수도 있잖아.”
‘진짜 그런가...?’
진수가 RD를 안 좋게 보는 이유는 앞서 던전에 무단 침입한 2인조의 경우를 봤기 때문이었다.
유재찬의 말대로 그들과 RD가 상관이 없고 그저 비슷한 방식으로 몬스터를 인간의 모습으로 바꾼 거라면?
그냥 몬스터를 던전 공략에 활용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내가 두 번 같이 다녀보니까 적법하게 던전 공략 권한 구입해서 던전을 깨고 있거든. 매번 니가 몬스터라고 말했던 놈들이 같이 가는데 딱히 이상한 것도 없고. 오히려 앞장서서 싸워줘서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은 지겨워 보이더라.”
“흠... 알겠어. 그러면 이번에 한 번만 더 가보고 생각해보자. 다음 던전 공략일 정해지면 말해줘.”
* * *
며칠 뒤, 유재찬은 세 번째 RD와의 던전 공략을 가게 되었다.
앞선 경우와 마찬가지로 진수에게 가방을 전해 받았다.
‘오늘따라 가방이 더 무거운 거 같은데....’
묘하게 묵직한 가방.
하지만 그는 아주 소중히 메고 다녔다.
진수에게 이걸 가지고 있으면 위험할 일은 없을 거라고 들었으니까.
“오늘도 두 명씩 움직입니다. 위험하면 무리하지 마세요.”
RD에서 나온 담당자는 강아지상의 헌터.
그는 항상 두 명씩 짝을 지어서 던전 공략을 하게 했다.
두 명씩 흩어져 빠르게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다.
던전의 난이도가 높지 않았기에 확실히 괜찮은 방식이었다.
‘저 RD 쪽 헌터랑 움직이는 사람은 하품이라도 쏟을 표정이네. 하긴 저렇게 센 헌터랑 다니면 손 쓸 일이나 있겠어?’
유재찬은 자신의 짝과 출발하며 강아지상의 헌터를 힐끔 보았다.
‘근데 가방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은데...?’
던전 안쪽으로 움직이는데 문득 진수가 준 가방의 무게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가방을 열지도 않았는데 뭔가가 변했을 리는 만무했다.
그는 자신이 착각했을 거라 생각하고 던전을 돌았다.
한편, 강아지상의 헌터 쪽은 기이한 풍경이었다.
던전에서 몬스터가 나오면 순식간에 정리가 된다.
헌터 한 명은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걷고, RD의 헌터가 전투를 하는 것이다.
“크흐흐.”
그들이 온 방향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 RD의 헌터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함께 온 헌터의 뒤로 가더니 머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푹!
곧장 입에서 혀를 길게 뽑아 뒤통수에 꽂는다.
몇 차례 힘차게 빨아들이는 녀석.
함께 왔던 헌터는 이제 입을 헤 벌리고 있다.
“쯧, 바꿔야겠군.”
강아지상, 야구자는 혀를 가볍게 찼다.
놈은 던전 구조상 중간에서 한번 모이게 되어 있으니 적당히 한 명을 교체하면 되겠다 생각했다.
“가자!”
놈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헌터를 툭 쳤다.
그러자 말은 알아듣는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싸우다가 머리를 다쳤습니다. 그쪽이 좀 돌봐주세요.”
던전 중간에 모인 헌터들.
야구자는 그들 중 유재찬과 짝이었던 헌터를 지목했다.
“예, 그럼 분배는 어떻게...?”
그의 말에 야구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공평하게 나눌 테니까 걱정 마세요.”
짜증스럽게 말하는 녀석.
반면에 지목 받은 헌터는 싱글벙글 웃었다.
몬스터와 상대하지 않아도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으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그럼 제가 함께 가나요?”
유재찬이 야구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아이구,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나도 잘 부탁합니다.”
야구자는 유재찬을 보며 씨익 웃었다.
“빨리 출발합시다.”
잠깐의 정비 시간을 가진 후 다시 던전 공략을 이어나간다.
유재찬은 야구자의 뒤를 쫓으며 편하게 움직였다.
놈은 강맹한 기운을 드러내는 만큼 전투 실력도 훌륭했다.
아무 것도 들지 않은 맨손인데도 몬스터들을 간단하게 처치했다.
“키엑!”
“이야, 대단하시네요!”
눈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모두 처치하자 유재찬이 박수를 치며 야구자를 칭찬했다.
하지만 놈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봐요. 저기 구석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좀 확인해보세요.”
칭찬에 대해서 대꾸는 없이 한쪽 벽을 가리킨다.
“저쪽에요?”
아무런 의심 없이 야구자가 가리킨 벽으로 향하는 유재찬.
그는 무방비로 뒤를 내주었다.
유재찬의 뒤를 보며 혀를 날름거리는 야구자.
녀석은 천천히 유재찬의 뒤로 따라붙었다.
-스윽
놈의 양손이 유재찬의 머리를 붙잡으려고 하는 순간.
그가 메고 있던 가방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푹!
순식간에 도약해 야구자의 가슴팍을 콕 찌르고 사라진다.
-탱그렁!
녀석의 가죽을 깊게 관통하지 못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건.
그건 은빛으로 빛나는 꼬챙이였다.
야구자는 살짝 찔린 곳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크윽...! 키엑!”
이내 화끈거림은 전신으로 번졌다.
인간의 모습에서 천천히 괴물의 형상으로 변하는 야구자.
덩치가 커지고 온몸에 털이 자라난다.
머리는 개의 그것과 유사한데 유독 혀가 길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빨은 의외로 작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놈의 복부엔 작은 부적이 붙어있었다.
“어... 어?”
바로 뒤에서 살이 뒤틀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돌아본 유재찬.
그의 눈에 괴물이 들어왔다.
‘아, 이게 진수가 말했던 그 상황이구나!’
진수가 이상한 가방을 넘기면서 함께 말해주었던 계획이 있다.
그는 RD의 헌터가 몬스터로 변하는 순간이 오면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모, 몬스터야!”
유재찬은 전속력으로 달려 던전 중간에 남았던 헌터들에게 갔다.
최대한 요란스럽게 이상한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알리면서.
야구자는 변신을 마치고 뒤늦게 유재찬을 쫓았다.
하지만 이미 소란을 피워 함께 던전에 들어온 모든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무기를 빼들고 달려오는 녀석을 겨눴다.
“크흐흐. 버러지 같은 놈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모두 살인멸구 해주마!”
놈은 헌터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쾅!
지면을 박차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놈의 움직임은 빠를 뿐만 아니라 종잡을 수 없는 형태를 지녔다.
돌진을 해도 예상되는 방향에서 묘하게 비껴난 위치로 움직이는 것이다.
-퍽! 퍼억!
애초에 야구자의 속도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헌터들.
그들은 모두 E~D급 헌터들이었다.
전투 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
대치는 얼마 유지되지 못하고 야구자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캬악!”
녀석의 날카로운 손톱이 한 헌터의 목줄을 끊으려는데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그리곤 코를 벌름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누구냐!”
허공에 소리를 지르는 야구자.
“역시 냄새를 개같이 잘 맡는구나?”
천장 위에서 쑤욱 튀어나오는 인영.
그는 조잡한 호랑이 가면을 쓰고 전기톱을 들고 있었다.
-위이잉!
야구자는 전기톱을 경계했다.
정확히는 톱날에 섞인 진은을 경계한 것이다.
그리고 이내 유재찬을 노려본다.
그를 뒤쫓았을 때 자신의 가슴팍을 찌른 물건.
그게 바로 진은으로 된 송곳이었다.
진은이 가진 제마의 힘에 변신이 풀렸던 것이다.
“헉!”
유재찬은 야구자가 그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자 흠칫하며 뒷걸음질 쳤다.
“어딜 봐? 지금은 나한테 집중해도 부족하지 않아?”
호랑이 가면, 진수의 말에 코웃음 치는 녀석.
“헛소리.”
인간 형태에서도 말을 곧잘 하던 놈의 말이 짧아졌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복부에 붙어있는 부적이 조금씩 변색되고 있었다.
“캬악!”
먼저 달려들기 시작한 야구자.
놈은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으로 진수를 압박했다.
녀석의 속도는 앞서 다른 헌터들과 싸울 때보다도 더욱 빨라졌다.
순식간에 진수의 팔다리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수십 개 생겼다.
전기톱이 있는 쪽으로는 다가오지 않았기에 치명적인 부상은 없었지만 진수는 아직 녀석에게 한 번도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이놈 생각보다 강한데...?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이랑은 급이 달라.’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헌터들도 진수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걸 보니 눈빛에 절망이 서리기 시작했다.
“건방진 놈!”
-퍽!
야구자가 진수의 오금을 걷어찬다.
순간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굽힌 진수.
그의 앞에 갑자기 환한 빛과 함께 검은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표정이 밝아지는 그.
“야, 잠깐만! 변신할 땐 공격 안 하는 게 룰이야.”
호랑이를 잡으려면
-휙! 휙! 퍽!
“아, 좀만 기다리라고!”
진수가 신축성 좋은 방어구를 착용하는 사이 야구자가 덤벼들어 공격을 했다.
바지에 다리를 넣고 낑낑거리던 그는 온몸을 비틀어 피해본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공격은 맞을 수밖에 없었다.
뒤로 구르며 바지를 완전히 입었다.
-퍽! 퍽!
이어 상의를 뒤집어쓰는 순간, 야구자의 무차별 공격이 쏟아졌다.
살벌한 손톱을 꺼내 찌르고 그었지만 방어구를 완전히 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조금씩 너덜너덜해지는 가죽들.
진수는 순식간에 양쪽 팔을 끼고 몸통까진 내렸지만 목까지 올라오는 방어구라 머리가 끼었다.
이내 목 부분을 아래로 당기며 머리를 쑤욱 내민다.
“푸하- 넌 진짜 죽었다.”
-펑-!
착용을 마침과 동시에 마력회로에 마력을 밀어 넣는다.
고출력 엔진이 작동하듯 마력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어구 전신에 새겨진 마력회로가 옅게 빛났다.
이어 야구자의 공격에 파손되었던 부위가 순식간에 복구된다.
-휘익!
“크르르르...!”
위험을 감지한 것일까?
신나게 공격하던 야구자가 순식간에 몸을 뒤로 뺐다.
놈의 복부에 붙어있던 부적은 완전이 색이 바래져 떨어져나갔다.
그러자 녀석은 이지를 상실한 듯 짐승의 소리만 내었다.
“얼씨구? 이제 와서 짐승인 척을 한다고? 그래도 안 봐줘.”
-위이잉!
방어구에 이어 전기톱을 더 빠르게 가동시키는 진수.
야구자는 바닥에 낮게 엎드려 으르렁거렸다.
전기톱을 굉장히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쾅!
대치 상태를 먼저 깬 것은 진수였다.
돌바닥을 거의 깨부술 듯 박차고 나아간 그는 엄청난 속도로 돌진했다.
-부웅!
번개처럼 접근해 전기톱을 내질렀지만 이미 야구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놈은 기묘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냈다.
마치 뱀처럼 움직인다고 해야 할지, 연기와 같다고 할지 굉장히 독특한 모습이었다.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순간이동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오른쪽에 서있는 식이었다.
“생긴 건 갠데 하는 짓은 미꾸라지네?”
드워프들이 강화해준 방어구 덕분에 힘이 끓어오른다.
당장 적과 맞부딪히며 테스트를 하고 싶은데 의외로 야구자가 민첩형 몬스터였다.
진수는 자신을 중심에 두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녀석을 눈으로 쫓았다.
-부웅!
놈이 접근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전기톱을 휘두른다.
하지만 신기루처럼 흩어지며 피하는 야구자.
어느새 반대편에 나타나 진수의 손을 긁고 도망쳤다.
손이 거의 반절 가까이 잘렸다가 빠르게 회복됐다.
“후우.... 기술 같은 건가.”
분명히 가까이 왔을 때 [사신의 감각]으로 생명 반응을 느끼며 공격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이 닿으려는 찰나에 반대편으로 옮겨간 것이다.
“크르르...! 컹! 컹!”
야구자가 주위를 돌며 짖는다.
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는데, 진수가 자신을 맞추지 못한다는 걸 파악한 것 같았다.
있는 줄도 몰랐던 꼬리가 어느새 나와 살랑살랑 흔들렸다.
-휙, 퍽! 휙, 퍽! 퍽!
놈이 공격하는 박자가 점점 빨라진다.
방어구를 입지 않은 부위를 노리다가 순식간에 손이나 얼굴 등을 공격했다.
“이 개자식이... 요상한 기술로 깝죽대는 놈은...!”
진수는 전기톱으로 녀석의 공격을 막으며 이를 악물었다.
-펑-! 펑-!
마력 폭발이 연달아 터진다.
방어구에 그려진 마력회로가 더욱 밝아졌다.
“피지컬로 조지는 거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짓쳐든 야구자.
진수가 공격하자 유유자적하게 빠져나갔다.
-팍!
“켕!”
하지만 진수는 놈의 회피 기술을 뒤쫓아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야말로 벼락과도 같은 속도였다.
방어구에 마력을 쏟아 부으니 신체능력을 엄청나게 끌어올려준 것이다.
대신 지속시간이 길지는 않는지 어느새 방어구의 마력회로는 아주 희미하게 빛이 감소해 있었다.
-위이이잉!
하지만 이미 야구자는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주변을 빙빙 돌다가 달려드는 것으로 보아 회피 기술을 쓰면 한동안 사용하지 못하는 듯했다.
놈이 진수에게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진수는 전기톱을 맹렬히 돌리며 놈에게 들이밀었다.
톱날에 서린 [도깨비불]이 섬뜩함을 한층 더해줬다.
“낑, 낑!”
여느 개들처럼 두려움에 떨며 발톱을 세워 진수의 팔뚝이며 몸을 박박 긁는다.
공포에 젖은 눈빛으로 손을 깨물려고 애쓴다.
다른 헌터들의 머리에 혀를 박아 넣고 음미하던 몬스터여도 죽음은 두려운 법이었다.
-콰드드득! 푸학!
톱날이 놈을 반으로 갈라 죽여 버렸다.
바닥으로 쏟아지는 녀석의 사체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야구자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야구자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기술 [도깨비불] 강화되어 [백년 도깨비불]이 되었습니다.
‘이름은... 역시 강다리밖에 없지.’
-야구자 [강다리]가 [꾸러기 수비대] 무리에 합류합니다.
강다리가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화르륵!
푸른 귀화가 한바탕 타오르더니 하얀빛을 뿜어냈다.
마력만을 태우던 불꽃이 뜨거운 열기를 품었다.
이제는 물리적인 화력까지 갖춘 것이다.
진수는 아름다운 순백의 불꽃을 잠시 홀린 듯 보았다.
“저, 저기...!”
헌터들 중 한 명이 진수를 불렀다.
이내 [백년 도깨비불]을 해제한 그.
대꾸를 하지 않고 그대로 뛰어올라 천장 위로 사라졌다.
“감사... 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진수를 부른 사람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이 난리가 났는데 RD에서 온 담당자는 왜 나타나질 않아요?”
그는 화제를 돌렸다.
“그러게요. 아까 몬스터 잡다가 어디로 가더니 사라졌네요.”
유재찬이 그의 말을 받았다.
미리 진수와 입을 맞춰놓은 내용이었다.
RD의 헌터가 몬스터화 되면 던전에서 나온 녀석인 것처럼 몰아세우는 것.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이 낮은 등급의 헌터들을 내팽개쳤다는 인식을 갖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들을 도운 진수의 존재는 알리되 정체는 특정할 수 없게 하는 것.
“RD만 믿고 왔는데 지원해준다는 헌터는 어디로 도망가고... 보스 몬스터는 해치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참나....”
유재찬이 앞장서서 투덜거리니 나머지 헌터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일단 보스 몬스터가 어떤 놈인지 확인이나 해보죠. 그래도 저도 D급이니까 어지간한 녀석은 힘을 합쳐서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는 남은 헌터들을 이끌고 던전의 끝으로 향했다.
다행히 보스 몬스터는 오크 워리어.
유재찬도 나름 베테랑 D급 헌터였기에 몇 번의 공방 끝에 해치울 수 있었다.
“오늘 건은 RD 쪽에 다 같이 컴플레인 걸자고요! 맘 같아서는 헌터넷에다가도 올리고 싶네.”
“맞아요. 이런 식이면 자기네 소속 헌터만 챙기겠단 거잖아요. 우리도 가입하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고객이나 다름이 없는데!”
“전 헌터인 친구들한테도 이야기 할 겁니다.”
던전에서 나오며 불평을 터트리는 헌터들.
밖엔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안녕하시오. 저 RD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어눌한 한국말을 쓰는 덩치 큰 사내.
그는 함께 들어간 RD 소속 헌터가 어디 있느냐 물었다.
그의 말에 헌터들이 반발하듯 쏘아붙였다.
“위험한 몬스터가 나오니까 꽁무니를 말고 튀던데요?”
“RD 쪽 고등급 헌터는 동료라는 개념이 없습니까?”
“그 사람 어디 갔는지 우리가 제일 알고 싶네요!”
그들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감추고 웃는 얼굴이 되었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우리 소속 헌터 교육이 부족했습니다. 나중에 복귀하면 꼭 징계를 내리겠습니다. 너무 죄송해서 그런데 잠시 이야기 좀 나누시지요?”
그는 헌터들과 개별 면담을 가졌다.
대화가 끝나면 한 명씩 돌아가도록 했다.
마치 서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자리를 뜨는 헌터들의 얼굴엔 불만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꽤 흡족한 듯한 표정이 되어 떠났다.
“아, 유재찬 헌터시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마지막은 유재찬의 차례였다.
* * *
“야, 쉽지 않겠던데?”
진수와 만난 유재찬.
그의 첫마디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던전 다 깨고 나가니까 무슨 조선족 같은 양반이 있더라고....”
그는 진수에게 덩치 큰 사내와 나눈 대화를 전했다.
RD 쪽에서 굉장히 미안해한다는 이야기.
사과를 하고 싶다며 금전적인 보상과 함께 RD에 가입하면 여러 대우를 해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앞서 다른 헌터들도 비슷한 말을 들었기에 한결 밝은 표정이 되어 떠나간 듯 보였다.
“그래서, 보상을 받기로 했어?”
“어? 어... 음....”
“했네, 했어.”
진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유재찬을 봤다.
“야, 거기서 됐다고 하면 괜히 의심 받으니까 그랬지. 하하. 그냥 금전적인 보상만 달라고... 그랬어....”
“... 하하, 그래. 잘 했어.”
그는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진짜 쉽지 않겠는데....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고 위기 대처를 잘 하는 편인 거 같아.’
진수의 계획은 사실 뉴트럴바이오 때와 비슷했다.
온라인에서 RD에 대해서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면서 그들의 목적을 파헤치는 것.
그래서 일부러 유재찬에게 던전에서 나오며 헌터들 분위기를 조성해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몬스터가 사라진 걸 눈치 챈 것인지 RD 쪽에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조선족 같은 양반이라는 게... 혹시 내가 봤던 그 사람인가?’
그는 두 번이나 나무 인형으로 변해버린 덩치 큰 사내를 떠올렸다.
“야, 근데 이제 같이 던전 가기로 한 3번도 다 끝났고... 어떡하지? 내가 RD 가입해서 오늘처럼 움직여야 하나?”
유재찬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앞서 두 번 던전을 돌 때야 별 일이 없었지만 오늘은 머리에 구멍이 날 뻔했다.
바로 죽는 것은 아닌지 야구자가 혓바닥을 꽂았던 헌터는 멀쩡히 돌아다녔지만 멍청한 표정만 짓는 게, 정신적인 타격을 입은 듯했다.
유재찬의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뭐, 사람들 해치고 다니는 놈들 잡는 일인데 충분히 도울 수는 있지만....”
여전히 입은 살아있었다.
“아냐. 그렇게까지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어. 그냥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어? 무슨 부탁?”
“RD 쪽에 연락 하나만 해줘. 그 보상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다고.”
진수의 말에 유재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RD에 가입하면 대우해주겠다는 거, 혹시 다른 사람한테 양도할 수 있는지 물어봐줘.”
“너...!”
“걱정은 하지 말고. 아까 싸우는 거 못 봤어? 그리고, 헌범기관이랑도 이야기해서 같이 파헤칠 거야.”
진수가 헌터범죄전담기관 이야기까지 하니 유재찬의 표정이 좀 풀렸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유재찬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진수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아냐, 오히려 잘 됐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는 말도 있잖아?”
‘그리고 이놈들 털면 호랑이만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진수의 시선은 전이자 목록으로 향했다.
이게 웬 떡이냐!
-[꾸러기 수비대]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민첩 +1, 체력 +1, 내구 +2, 마력 +1
회의실에 앉아있던 진수에게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늘어나는 힘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상태창을 닫는다.
진수는 지금 RD의 본사 건물에 와있었다.
‘돈이 엄청 많은 거 같은데?’
유재찬을 통해 RD에 연락한 진수.
그들은 진수에게 서초역에 있는 본사 건물로 오라고 요청했다.
이제 헌터들을 모집하고 있는 신생 단체인데 비싼 지역의 건물 한 채를 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RD.
여러모로 의아한 점이 많았다.
‘근데 꽤 오래 기다리게 하네.... 임무나 받아놓을까?’
RD 본사에 도착한 진수에게 B등급 이상 헌터들은 가입 절차가 조금 있다며 회의실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진수는 기다리면서 임무나 받아보기로 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응.’
-임무 : 언데드 몬스터 5개체 차원 전이시키기 !
-보상 : 헬 그림리퍼 [하데스]의 기술 중 하나
‘언데드 몬스터면... 이제 보낼 수 있는 종류가 몇 없는데...? 뉴트럴바이오가 만들던 언데드도 이제 볼 수가 없고.’
국내에 서식 필드가 있는 언데드 몬스터는 이제 보통의 좀비나 스켈레톤 정도가 전부.
진수는 임무 내용을 보며 꽤나 장기적인 임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어 느낌표를 눌러 상세 내용을 살펴봤다.
-망자의 통로에 관광지를 만들어놓은 인간들과 대치하고 있는 [망자 군단] 무리. 차원의 축이 뒤틀려 음기가 줄어든 탓에 싸움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망자 군단] 무리의 전력을 강화시킬 언데드 몬스터를 차원 전이시키십시오. [망자 군단] 무리의 우두머리 [하데스]가 당신의 도움에 감사를 표할 것입니다.
‘와, 헬 그림리퍼가 있는데도 못 이긴다고? 저쪽에 인간들은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양반들이야?’
임무 상세 내용을 본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A급 헌터가 전력을 쏟은 힘에 [증폭기] 특성으로 한 차례 더 증폭한 공격을 쏟아 부어 겨우 쓰러트린 녀석이다.
게다가 언데드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다수에게 더욱 강한 몬스터.
그런 하데스와 다른 언데드 몬스터들을 막아낼 정도면 저쪽 차원에도 헌터와 같은 힘을 지닌 인간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게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이 재앙의 근원이 되지는 않은 듯해서 안심을 하는 한편, 전이자들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니 모호한 심정이었다.
안내 메시지를 보며 여러 생각을 하는데, 멀리서부터 다수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다양한 목소리가 서로 이야기를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 도움이 되니까, 실력이 확실한지만 봐주십시오.”
상당히 깍듯한 태도로 말하는 인물.
“전투는 우리가 있는데 꼭 높은 등급인 인간을 뽑아야 하는지 모르겠군.”
묵직한 중저음으로 자신감 넘치는 자.
“답답한 소리 하지 마세요. 여기 사람들을 모아야 하는 이유는 몇 번이나 설명했잖아요?”
상당히 똑 부러지는 말투로 말하는 여성.
“그리고 던전이나 운송로 뚫는 데에 매번 형님, 누님 손을 빌릴 수는 없잖습니까?”
“그건 뭐 됐고, 여자야?”
마지막으로 얇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하는 남성.
“이번에는 아닙니다.”
“아, 씨. 그럼 셋이서 봐. 난 간다.”
말을 빠르게 하던 사내가 문 바로 앞에서 줄행랑을 쳤다.
소리를 통해 바깥의 상황을 파악하던 진수는 그들의 분위기가 상당히 묘하다고 느꼈다.
제멋대로 구는 자들과 그들을 어르고 달래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인물로 나뉘는 것 같았다.
-끼익
회의실 문이 열리고 드디어 RD의 인물들을 마주하게 됐다.
설명회에서 봤던 자는 하나뿐이었다.
거대한 몸집에 이마가 돌출된 사내.
그때와 마찬가지로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회의실 바깥에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문이 열림과 동시에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진수를 테스트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김진수 헌터 맞으시죠?”
다른 자들에게 깍듯이 대하던 사내가 진수에게 말을 걸었다.
그에게선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네, 맞습니다.”
강대한 기운에 계속 노출되며 상당히 압박감이 있었지만 진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의 태도에 RD의 간부 여성이 눈썹을 움직였다.
예상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쓰고 있던 동그란 안경을 만지며 질문을 던졌다.
“B급 헌터시라고요?”
“예.”
“스스로 생각하기에 B급 중에서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진급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B급 중하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하.”
진수가 슬쩍 겸양을 떨었다.
이미 A급 헌터인 박가은을 구해준 전적이 있는 그는 전투 능력으로 봤을 때 B급 중하위는 확실히 아니었다.
하지만 RD 내부에서 조용히 사태를 파악하려면 너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았다.
‘RD라.... 김진수 헌터가 제보한 곳이니 수사를 들어가긴 하겠지만, 조금 시간이 걸릴 겁니다. 지금 워낙 업무가 몰려있어서 일처리가 늦어지고 있거든요. 뉴트럴바이오 때처럼 깊게 연관되지 않았다면 너무 파헤치지는 마세요.’
RD로 오기 전에 헌터범죄전담기관의 박철준에게 들었던 말이다.
이번 건을 헌터범죄전담기관에게 도움 받으려면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았기에 조심스럽게 정보를 얻기로 한 것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사람들한테 피해가 가는 것도 줄이고... [차원 전이]도 조금....’
“흐음~ 꽤나 겸손한 편인 것 같네요.”
여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꽤나 호의적인 태도였다.
“흥, 말만 들어서는 모르지. 제법 강단은 있어 보이지만.”
반면에 거구의 남성은 못마땅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콧김을 흥 내뿜는 게 근육질의 투우 같이 보였다.
‘소 계통의 몬스터인가...? 미노타우로스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진수는 그런 사내를 잠시 스윽 훑어봤다.
자기도 모르게 마치 정육점에서 고기를 고르는 눈빛이 되었다.
“예의는 별로군.”
사내가 진수를 노려본다.
“아, 워낙 몸이 좋으셔서 저도 모르게.... 하하. 힘이 정말 세실 것 같네요.”
그의 말에 아차 하고 변명을 주워섬긴다.
가능하면 좋은 인상으로 RD에 들어가야 하는데 실수를 한 것 같았다.
“크흠, 보는 눈은 있네. 허허험! 푸힝.”
힘이 셀 것 같다는 말이 포인트였을까?
사내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검은 소 같은 타입이군. 흑우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좋게 좋게 할 거면서 꼭 한 번씩 이상한 고집을 부린다니까?”
여성이 웃으며 말했다.
“전투 스타일은 어떤가요? 몸을 쓰는 타입? 아니면 주술 같은 걸 쓴다던가?”
그녀가 손가락 끝을 슬쩍슬쩍 비비며 묻는다.
“망치를 써서 싸우는 편입니다. 몸을 쓰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진수의 대답에 여성과 우락부락한 사내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 사내라면 응당 육체를 믿고 싸워야지!”
“좋네요. 앞장서서 적을 상대하는 사람은 언제나 환영이죠.”
그들의 모습에 처음 말을 걸었던 남성이 물었다.
“두 분 모두 김진수 헌터가 RD에 들어오는 걸 동의하시는 거죠?”
“음, 그 전에....”
사내가 진수를 뚫어지게 보았다.
“악수 한 번만 하지.”
갑작스러운 악수 요청.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이들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특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남자.
덩치 큰 자에게 귓속말까지 한다.
“평천님. 지난번에 면접 본 헌터 손을 으깨놓으시고는 또 이러시면....”
귓속말을 한 게 무색하게 큰 소리로 답하는 그.
어차피 [중급 청각]을 지닌 진수에게는 귓속말을 해도 다 들렸겠지만.
“그때는 잔기술이나 쓰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렇지!”
진수는 그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하시죠.”
두 남자의 시선이 진수에게로 향한다.
“악수.”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진수가 손을 내밀었다.
-턱!
“크하하하! 맘에 드는군! 악수랑 별개로 일단 난 동의한다!”
굉소를 터트리며 손을 마주 잡는다.
-뿌드드득!
프레스 기계에 손을 넣으면 이런 느낌일까?
마주 잡은 손에 항거할 수 없는 수준의 압력이 밀려 들어왔다.
진수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중급 재생력]의 힘으로 뼈가 부러졌다 회복하기를 반복했다.
-뿌드득, 뿌드득...! 콱!
“호오...!”
반복적으로 골절과 회복을 반복하던 손이 갑자기 평천이라 불린 자의 힘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진수의 힘이 강해진 것은 아니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게 한결 편안해졌다.
그 변화를 느낀 사내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좋군, 좋아! 합격이야!”
평천의 얼굴에 흡족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내 손에서 힘을 푼 그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좋아요. 다만 전투 테스트를 한 번 봤으면 좋겠네요.”
평천에 이어 여성도 동의를 했다.
“예, 바로 이어서 허원화님께 전투 테스트를 부탁하려고 했습니다. 시간 괜찮으시면 참관하시죠.”
“그 영감님 오늘은 자리에 있나보네요? 호호, 좋아요.”
“나도 보고 싶군.”
진수는 우선 가만히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김진수 헌터, 먼저 여기 두 분의 동의로 가입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다음에 전투 테스트 과정이 있습니다. 혹시 사용하시는 무기는 갖고 오셨나요?”
“아, 예. 여기요.”
그는 허리춤에 매어놓은 망치를 툭툭 쳐서 보여주었다.
평소에 도끼를 들고 다니던 위치였다.
‘당분간 전기톱이랑 도끼는 봉인해야겠지. 기껏 김건 사장님한테 전기톱 강화 받았는데 아쉽네.’
진수가 최대 역량을 낼 수 있는 두 무기는 한동안 호랑이 가면을 쓸 때만 사용하게 될 것이다.
RD에서 활동을 할 때는 망치를 사용.
이들에게 호랑이 가면으로 특정되지 않기 위해 나름 꾀를 쓴 방법이었다.
“좋습니다. 지하에 있는 훈련장에 가서 잠시 전투 테스트를 해보죠.”
RD의 인물 셋과 진수는 회의장을 떠나 지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힘에서는 확실히 이 흑우... 아니, 평천이라는 녀석한테 밀려. 하지만 방어구의 신체 강화랑 여러 능력들을 종합해보면 해볼 만할 것 같은데...? 그나저나, 아까 갑자기 왜 상황이 변한거지?’
악수를 하던 중 갑자기 버틸만하게 되었었다.
따로 [차원 전이] 보상을 받았던 것도 아니었고, 힘이 세지지도 않았다.
진수는 상태창을 열어 바뀐 게 있는지 살펴봤다.
[김진수]
힘:40 민첩:35 체력:45 내구:44 마력:49
특성 : [차원 전이] [상급 재생력] [융합] [특급 공구 숙련] [도구 일체화] [증폭기] [발키리] [사신의 감각] [신뢰] [유연체질] [머리 분리] [울버린] [체질 확장] [중급 악력]
기술 : [백년 도깨비불] [강철 거미줄] [유체화] [분열] [워 크라이]
골드 : 90
[중급 재생력]이 [상급 재생력]으로 향상이 되었다.
최근에 회복 속도가 조금 빨라진 것 같더니 특성이 오르려고 하는 단계였던 모양이다.
그간 전투에서 정말 큰 힘이 되어주었던 특성이라 유독 성장이 반가웠다.
‘회복 속도가 빨라져서 힘을 어거지로 버텨낸 거였구나. 그럼 회복 속도가 엄청 빨라졌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 진수.
-띵!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지하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진수의 미소는 더욱 환하게 만개했다.
‘이게 웬 떡이냐!’
자, 잠깐!
RD의 지하 훈련장에는 기이한 모습의 물건, 인형, 사체 등이 있었다.
바닥에 잡동사니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사신의 감각]으로 보면 영혼 같은 것이 씌어 있는 상태였다.
‘정확히는 유령 타입의 몬스터지. 그것도 종류가 꽤나 다양하게 있네.’
진수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이유였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녀석들은 모두 언데드 몬스터다.
임무의 목표 달성에 보탬이 된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이런 종류는 [저승사자] 같은 특성이 없으면 해치우기 여간 까다로운 놈들이 아니니까. 하데스한테 보내주면 아주 제 몫을 톡톡히 할 거야.’
여러모로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이 몬스터들의 실체는 사체나 인형 따위에 있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해 그가 처치해도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빙의해있는 본체들만 전이가 될 것이다.
차원 전이를 시켜도 들킬 우려가 없다는 뜻이다.
“뭐야!”
진수를 비롯한 네 명이 훈련장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꽹과리처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원화님, 저 황계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전투 테스트 때문에 왔습니다.”
-스르륵
RD의 인물들 중 유일한 인간인 황계문이 허공에 말을 하자 어디선가 누런 도복을 입은 초로의 사내가 나타났다.
그의 외모는 전형적인 도인 같은 모습이었다.
긴 눈썹, 숱이 많지 않아 볼품없는 콧수염.
한 손에는 나무로 만든 검을 하나 들고 있는데, 목검에는 부적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흐흐, 내 작품들의 전투 테스트를 해줄 녀석이란 말이지?”
허원화라고 불린 도인이 진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여기 김진수 헌터의 전투 테스트를 도와주시면 됩니다.”
황계문과 허원화는 서로 미묘하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저것들이랑 싸우기만 하면 되니까.’
진수는 그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래,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되는 건가?”
“예. 따로 준비하셔야 하는 건 없으신가요?”
“저런 놈한테 준비 따윈 필요 없다! 네놈이나 저 옆에 참관실로 서둘러 들어가거라. 역귀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꽤나 위험할 테니까. 킬킬킬. 저기 두 녀석은 괜찮아도 네놈은 순식간에 한줌의 핏물이 될 거다.”
허원화의 으름장에 황계문은 사색이 되어 벽 쪽에 준비된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진수는 슬쩍 평천과 여성 면접관을 보았다.
딱히 자리를 피할 생각이 없는 듯한 둘.
다시 시선을 돌려 허원화란 노인에게 눈길을 주었다.
“녀석. 각오는 되었느냐!”
“시작하시죠.”
진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딸랑- 딸랑-
그의 답을 듣자마자 허원화가 종을 흔들기 시작했다.
바닥을 미끄러지듯 무릎을 굽히지 않은 채 기묘한 움직임으로 훈련실의 끝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훈련실 전체에 종소리가 고르게 퍼졌다.
“그어어...!”
“그으으으....”
호랑이 사체, 황동으로 된 사람 크기의 인형, 뼈만 남은 시체 등이 몸을 일으켰다.
처음 종소리가 울렸을 땐 제자리에서 일어서기만 하더니, 뒤이어 울리는 종소리를 듣곤 진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딸랑-
세 번째 종소리가 퍼지자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진수는 망치를 꺼내들었다.
-휘익!
몸을 일으킬 땐 느릿하게 굼뜨던 녀석들이 달려들기 시작하자 상당히 매서운 기세가 되었다.
진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황동 인형의 머리를 후려쳤다.
-꽝!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놈의 머리가 우그러졌다.
워낙 강한 힘으로 쳤기에 그대로 바닥에 무너지듯 쓰러진다.
-끼이익...!
하지만 이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일어서는 인형.
“크하하하! 웬만해선 해치우기 힘들 것이야! 리빙아머 같은 저급한 것들이랑은 다르거든!”
그 모습이 퍽 재밌는지 허원화가 크게 외쳤다.
그의 목소리엔 자부심이 가득 느껴졌다.
‘그래, 지금을 즐겨둬라.’
허원화는 미처 몰랐다.
진수가 일부러 황동 인형을 먼저 노렸다는 것을.
재료가 재료인지라 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꽤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놈이다.
그리고 본체인 몬스터가 자리 잡고 있는 곳만 피하면 상당히 고전하는 척도 할 수 있다.
-깡! 깡!
몇 차례 망치질을 하자 황동 인형의 사지가 잔뜩 구겨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진수가 황동 인형에 집중하는 사이, 다른 몬스터들이 다가왔다.
되살아난 호랑이 사체가 앞발을 휘둘러오고, 녹색 독연에 휩싸인 해골은 입을 벌려 연기를 뿜어낸다.
-후욱!
짙은 녹연에 시야가 상당히 제한됨에도 불구하고 진수는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야성적인 움직임으로 연달아 날아오는 공격들을 회피해낸다.
그 모습을 평천과 안경을 낀 여성은 꽤 흥미로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화악-! 쾅!
두텁게 낀 연기를 뚫고 나오며 망치로 호랑이 사체의 목덜미를 내려친 진수.
그의 공격에 놈이 혀를 빼물며 쓰러졌다.
그리고는 옴짝달싹도 않고 움직임을 멈췄다.
진수는 그걸 확인하고 바로 다음 타겟을 향해 돌진했다.
-꽝!
황동 인형의 복부를 후려친다.
-후우욱!
망치에 담긴 거력이 황동 인형을 멀리 날려 보냈다.
그대로 내동댕이쳐져 바닥을 구르는 황동 인형.
그것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
허원화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다.
큰 충격을 받아서 빙의된 물건이 망가졌다면 움직임이 멈출 수 있다.
하지만 그와 귀신들의 연결은 유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저 김진수라고 하는 놈의 손에 동작이 멈추면 귀신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닌가.
-창귀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창귀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시귀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시귀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허원화의 귀신들은 이제 그의 손을 떠나 진수의 상태창으로 들어갔다.
“자, 잠깐! 멈춰라!”
-퍽!
다급히 진수를 멈추려 소릴 지르는 허원화.
하지만 진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묘귀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묘귀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이노옴! 당장 멈추래도!”
허원화가 그 특이한 이동 기술을 쓰는 것도 잊은 채 방정맞게 달려왔다.
-파삭!
그 사이에 녹색 연기에 휩싸인 해골의 두개골을 깨부순다.
-역귀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역귀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네 번째 언데드 몬스터를 차원 전이시키고 나서야 진수는 공격을 멈췄다.
아직 주변에 몬스터들이 더 남았지만 전이시킨 녀석들과 같은 종류였다.
“네? 뭐라고요?”
목적을 모두 달성한 뒤 천연덕스럽게 묻는 진수.
[중급 청각]이 있어서 못 들었을 리가 없는데 전혀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대답을 들은 허원화는 분통이 터졌다.
“이, 이런...!”
허원화의 수염이 파들파들 떨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애초에 전투 테스트라고 했고, 평범해 보이는 망치로 B급 헌터가 창귀나 시귀 등의 귀신형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으리라 생각을 못해 대비조차 안 한 것을.
“네, 네놈...! 내 작품들을 어떻게 한 것이냐...!”
“예? 그냥 힘껏 때리니까 쓰러지던데요?”
진수는 모르쇠로 일관하기로 했다.
“크하하하! 맞는 말이지! 이딴 잡스러운 것들이야 힘으로 짓누르면 된다!”
뒤에서 보고 있던 평천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몸놀림이나 힘, 무기를 다루는 실력이 훌륭하네요. 전투 테스트도 이상 없겠어요.”
평천의 옆에 있던 여성도 마찬가지로 마음에 든다는 듯 말했다.
“저, 저 무식한 것들이...! 무슨 일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흥, 굳이 알려줄 필요도 없겠지.”
허원화는 작게 구시렁거리더니 이내 휙 돌아서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진수는 그 모습을 보며 그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알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어쩌면... 꽤 유용하게 이용해먹을 수 있겠는데...?’
그가 떠나고 나서야 황계문은 참관실에서 나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원래 허원화님이 조금 별난 구석이 있으세요. 하하. 가입 절차는 모두 끝났고요. 이제 올라가서 저희 RD에서 맡으실 일들과 조직 구성 같은 것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황계문은 진수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꽤나 마음에 드는 녀석이 들어왔어. 앞으로 자주 보자고! 크흐흐.”
“고생 많았어요. 다음에 또 봐요.”
면접을 봤던 둘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자리를 뜨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황계문.
안경을 쓴 여인은 주선생이라고 불렀다.
‘이름들이 하나같이 독특하네.’
진수는 녀석들의 이름을 듣고 문득 의아해졌다.
‘근데 왜 중국엔 이런 특이한 몬스터들이 나오지? 야구자니 화광수니 하는 요괴들. 지역 특성이라고 할 거면 우리나라에서도 도깨비나 불가사리 이런 게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한국에는 서식 필드가 없고 외국에만 필드가 있는 몬스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균열이나 던전을 통해서는 같은 종류의 몬스터가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중국만 특이한 몬스터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 일본 쪽도 조금 특이한 몬스터들이 나온다고 듣긴 했지.... 뭐 어쨌든 이놈들을 파헤치다 보면 알게 되려나.’
진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 황계문을 보았다.
“... 김진수 헌터의 B급 헌터 라이센스로 던전 공략 권한을 구입한다는 거죠. 그럼 라이센스를 이용한 대가로 던전 수익의 5%를 드리고 있습니다. 김진수 헌터한테는 특별히 6%를 드릴 거고요. 여기까진 이해하셨죠?”
“아, 예.”
RD 소속의 헌터들로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 공략조를 짜 맞추고, 던전 공략 권한을 구입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최대한 이용해서 권한을 많이 확보한다.
B급 이상 헌터들은 라이센스 이용에 대한 수익을 얻고, 던전 공략에 참여하면 또 분배를 받는 방식이었다.
추가로 진수는 유재찬을 통해서 가입을 하게 되면서 20% 더 이득을 보게 되었다.
“여기에 조만간 서울에서 가까운 도시들로 운송로를 뚫는 사업이 시작되면 전투 참여에 대한 보상도 드릴 겁니다. 강제성은 없지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할 테니 지원자가 금방 채워지지 않을까 싶네요.”
황계문은 이어 앞으로 진행될 일들도 간략하게 소개를 해주었다.
‘가능하면 던전을 많이 돌았으면 좋겠지만, 여기서 그래도 자리를 잡으려면 새로 하는 사업에도 협조를 해줘야겠지.’
“... 업무에 관한 건 여기까지고요. 층별로 저희 조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소개를 해드릴게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수를 데리고 RD 본사 건물을 돌아다녔다.
진수는 돌아다니면서 최대한 RD의 구성원들을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비슷하게 생긴 자들이 많이 보였는데, 어떤 기술을 쓴 것인지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으면 비슷하게 생겼어도 지나고 나면 기억에 흐릿하게만 남았다.
진수가 [사신의 감각]과 [중급 후각] 등의 여러 특성을 복합적으로 사용해 기억하지 않았다면 그도 눈치 채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여기 몬스터들도 급이 나뉘어 있구나.’
그가 돌아다니며 느낀 점이었다.
면접에 들어온 평천이나 주선생 같이 강맹한 기운을 지닌 자들은 간부급이었다.
야구자나 화광수, 농혈지옥충 등의 몬스터들은 같은 종류가 여러 놈들이 있는 듯했다.
지나다니며 본 비슷하게 생긴 부류가 이런 몬스터들이었다.
“저쪽은 뭐죠?”
황계문과 돌아다니던 진수는 인간으로 둔갑한 몬스터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저기는...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는 곳입니다. 하하. 아마 활동 하시면서 갈 일이 아예 없을 거예요.”
황계문이 적당히 얼버무렸다.
진수도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내가 따로 알아볼 수 있으니까.’
진수는 슬쩍 주변 눈치를 보고는 천장 위로 뭔가를 집어던졌다.
갑자기 옷이 좀 커졌는지 벨트를 다시 고쳐 매는 그.
-스슥, 스슥
천장 위로 무언가가 돌아다니는 소릴 듣고 씨익 웃었다.
견원지간
“정기 너무 티 나지 않게 빨아먹으시오. 요즘 헌터들한테 들켜서 당하는 경우도 많소. 여기, 부적 가져가시고.”
방 안에 줄을 서서 무언가 수령하는 이들.
비슷한 얼굴이 많이 보였다.
그들에게 종이 쪼가리를 나눠주는 이는 조선족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 장 더 줘. 이번에 부천 쪽으로 가야해서 한 장으론 조금 간당간당 하단 말이야.”
흙빛의 얼굴을 한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부천? 잠깐만 기다려보시오.”
부적을 나눠주는 사내가 컴퓨터에 뭔가를 입력했다.
거리를 계산해보는 듯했다.
“아아, 부천이면 거리가 머네.... 내 아직 여기 지리가 익숙지 않아서. 여기 한 장 더 가져가시오. 잘못해서 떨어트리면 들통 날 수 있으니까 조심하시고.”
“그래도 우리는 부적이 떨어져도 짐승 소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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