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8
“알겠어, 알겠어. 거 분위기를 모른다니까.”
몸서리를 치는 진수의 모습에 정유현이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분위기는 무슨. 이따가 실수나 하지 마세요.”
진수와 정유현은 지하철역에서 나와 한강으로 향했다.
약속한 장소에 도착한 그들.
진수는 [사신의 감각]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감지됨을 느낄 수 있었다.
“요구한대로 진수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제 선영이는 괜찮은 겁니까?”
진수가 주변을 살피는 사이, 정유현은 고블린사육사, 나두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흐흐흐. 우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라.
나두경은 정유현에게 그저 가만히 있으란 말 외에 추가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진수를 보는 정유현.
진수는 허공을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얘가 왜 이러지?’
“흐흐, 정말로 김진수를 데리고 왔군.”
정유현이 진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는데 한쪽에서 한 중년의 사내가 나타났다.
세련된 맞춤 정장에 정돈된 머리.
점잖은 얼굴은 역시 학자나 연구원에 어울리는 생김새였다.
그는 한쪽 손에는 상당히 긴 칼을, 다른 손에는 채찍을 하나 들고 있었다.
나두경은 천천히 진수와 정유현에게 다가왔다.
-휙! 챙그랑
“어이구!”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들고 있던 칼을 그들에게 던지는 나두경.
정유현은 그가 칼로 자신을 맞추려는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놀랄 건 없어. 오히려 떨어야 되는 건 당신이 아니고 김진수니까.”
“음?”
진수는 나두경의 말에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정유현. 딸을 무사히 보고 싶다면 그 칼로 김진수를 죽여. 뭐 죽이는 게 영 힘들다면 깊게 찌르기만 해도... 이해해주지.”
나두경은 마치 케이크를 자르라는 정도의 무게감으로 이야기를 했다.
“아, 아니... 어떻게....”
정유현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말을 더듬었다.
“힘들다면 뭐, 어여쁜 따님이 우리 실험에 적극 참여해주는 걸로 대체가 되겠지. 뉴스에서 봤을 거야. 그렇지?”
뉴스라는 말을 뱉으며 진수의 얼굴을 노려본다.
진수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조용히 있었다.
“어떻게 하겠어? 딸의 목숨이냐, 생판 남의 목숨이냐인데. 고민할 가치나 있는 질문인가?”
-스릉...
나두경의 말에 정유현이 천천히 칼을 집어 들었다.
“김씨....”
“아저씨. 괜찮아요.”
진수는 죽음을 직감했는지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두경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며 박수를 쳤다.
“이야, 아주 대단하네. 김진수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빨리 결단을 내리라고.”
“크흣...!”
정유현은 이내 결심을 했는지 칼을 휘둘러 진수의 목을 베었다.
-서걱! 툭...
눈을 감은 진수의 머리가 땅에 떨어진다.
그의 몸은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흐흐흐.... 정유현씨. 이제 가도 좋아.”
생각보다 결단력 있는 모습에 흠칫하긴 했지만 이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나두경.
그는 천천히 걸어가 진수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올렸다.
정유현은 그 모습을 보고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더니 이내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그러게 왜 분수도 모르고 설쳤어. 제 모가지가 떨어질 줄은 모르고. 헌터 협회 놈들은 말단 헌터나 연구원은 신경도 쓰지 않고, 언제든지 내칠 수 있는 놈들인데 말이야.”
그는 자신이 예전에 헌터 협회 소속이었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진수의 머리를 자신의 눈높이까지 들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진수의 머리.
‘근데 아깐 눈을 감고 있지 않았나...?’
나두경이 이상함을 느끼는 순간 진수의 입이 열리며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후워어억!”
“끄윽!”
[워 크라이]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소음에 깜짝 놀라며 진수의 머리를 바닥에 떨어트린 나두경.
그의 눈앞에선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닥을 구르고 있는 머리에서 작은 크기의 진수가 튀어나오더니 머리를 양손으로 들고는 잽싸게 뛰기 시작했다.
“어...?”
작은 인간이 향하는 곳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진수의 몸.
녀석은 잘린 단면을 서로 갖다 대었다.
-스스슷
머리와 몸이 만나자 잘린 상처가 [중급 재생력]의 힘으로 아물었다.
절단면이 완전히 붙은 후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진수.
그의 얼굴엔 섬뜩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모가지가 떨어질 줄 왜 몰랐겠어. 흐흐흐. 일부러 목을 자르라고 한 건데.”
진수가 정유현과 짰던 작전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을 죽이라고 한다면 꼭 목을 베기로 한 것이었다.
지난 번 조민준과 [분열] 실험을 하던 중, 분신의 목이 잘려도 죽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머리 분리] 특성의 능력이었다.
-푸슉!
진수는 경악하며 뒷걸음질 치는 나두경을 [강철 거미줄]로 붙잡았다.
그 순간, 나두경의 입에서 괴상한 울음소리가 나왔다.
“키아아악!”
“끼악!”
“캬아아!”
뒤이어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괴성들.
다양한 몸집을 하고 있는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두경이 내지른 소리는 놈들을 부르는 고블린어였다.
“김진수. 날 붙잡았다고 해서 안심할 순 없을 거다. 내가 애지중지 키운 고블린들은 보통이 아니거든. 너도 알고 있잖아? 특제 영양제를 3개씩 먹은 고블린이 얼마나 강한지.”
나두경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아무래도 고블린들이 진수를 해치울 수 있을 것이라고 단단히 믿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에 진수는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키킥, 크흐흐! 하하하하!”
무엇이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한동안 웃은 진수.
“그래, 가는 길에 도움이라도 돼야지.”
진수는 조금 전에 정유현이 나두경에게 전화를 하는 사이 나타났던 안내 메시지를 떠올렸다.
-특수임무 : [아틀란티스] 무리의 일꾼이 될 고블린족 20마리 차원 전이시키기 !
-보상 : 전이시킨 고블린족의 능력에 따라 [아틀란티스] 무리 성장
-[아틀란티스] 무리의 확장을 위해 말을 잘 듣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아틀란티스]의 책사인 고블린 샤먼 [키약트르]가 쉽게 제어할 수 있는 고블린족을 차원 전이시키십시오. 동일한 개체도 전이가 가능합니다.
예전에 변종 보팔 래빗 새초미에게 부하 10마리를 보내줬을 때와 유사한 임무였다.
“저 놈들 하나하나가 고돌이급이라는 말이지?”
입맛을 다시며 전기톱을 꺼내드는 진수.
나두경은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눈치 챘다.
발악
-콰드드득!
“일곱 마리!”
진수는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막 변종 고블린 하나의 목을 전기톱으로 딴 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두경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데려온 변종 고블린들은 보통의 고블린이 아니었다.
뉴트럴바이오가 특성과 기술을 사람에게 주입시키기 전에 테스트를 했던 녀석들.
특히 테스트를 잘 견디게 하기 위해서 특제 영양제를 먹여 강화까지 시킨 고블린이었다.
“캬아아악!”
하지만 진수는 양떼 속에 들어간 늑대처럼 고블린을 학살했다.
무시무시한 전기톱은 푸른 불꽃을 튀기고, 강철보다도 단단한 고블린의 손, 발톱을 그대로 갈아버렸다.
[야성] 특성을 지닌 녀석들마저도 겁을 먹고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고돌이 좀 닮아봐라!”
고블린들이 덤비길 주저하자 오히려 진수가 돌진한다.
그의 맹렬한 공격에 또 한 녀석이 목숨을 잃었다.
“여덟!”
한 마리를 처치할 때마다 스포츠 경기에서 스코어를 세듯이 숫자를 외친다.
나두경은 그런 모습을 보며 미친놈을 잘못 건드렸구나 깨달았다.
‘저런 수준의 능력이라니...! 정말 저게 특성 주입으로 만들 수 있는 게 맞는가...?’
전율에 휩싸인 나두경.
진수와 고블린들은 수준 자체가 달랐다.
-서걱! 스르륵
고블린의 날카로운 손톱에 진수의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져나갔다.
하지만 이내 차오르는 새살들.
반면에 진수의 공격에 부상을 입은 고블린들은 힘겹게 회복을 했다.
속도부터 차이가 났고, 동일하게 살덩이가 뜯긴 경우에는 신체 능력이 상당히 소실됐다.
자체 회복력을 끌어올리는 [회복력] 특성과 세포 자체를 다시 되살리는 [재생력]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퉷!”
-치이익!
한 고블린이 맹독을 뱉어냈다.
방어 장비를 녹여낼 정도로 강력한 독성.
진수의 얼굴에 불쾌감이 맴돌았다.
“이 자식이 침을 뱉어?”
불쾌감의 원인은 독이 아니라 침을 뱉는 행위 때문이었다.
만티코어의 독도 버티는 그였다.
특성 주입으로 만든 독 따위에 중독될 리가 없었다.
-콱!
“케엑!”
독액을 뱉은 고블린의 목을 틀어쥔 진수.
전기톱으로 녀석을 후려갈겼다.
톱날을 돌리지 않았기에 묵직한 몽둥이나 다름이 없었다.
-퍽! 퍽! 퍽!
“흐흐흐, 아홉!”
[광전사]의 효과로 그의 눈에 광기가 맺혔다.
입가엔 전투의 흥분이 미소로 드러났다.
-쉬이익- 팡!
“캬아아악!”
주춤하는 고블린들에게 채찍질이 가해졌다.
어느새 [강철 거미줄] 포박에서 빠져나온 나두경이 들고 있던 채찍을 휘두르며 고블린어를 뱉은 것이다.
그의 괴성에는 주술적인 힘이 담겼는지 공포에 젖어있던 놈들의 눈빛에 흉흉한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다.
“크르르...!”
“캬악!”
[광전사]의 효과와 비슷한 현상이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완력이 더욱 강해진 고블린들이 진수에게 덤벼든다.
사방으로 짓쳐드는 놈들.
진수는 허리춤에서 도끼를 꺼내들었다.
이내 톱날 회전 속도를 최대로 올린 채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방어를 도외시한 채 공격 일변도.
오로지 [야성]이 주는 본능적인 감각만으로 치명상을 피하며 싸웠다.
‘괴물...!’
나두경의 눈에 진수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이제 물러설 수 없다.
아무리 강력한 진수일지라도 본질은 생물이다.
질로 안 된다면 양으로 찍어 누르면 언젠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되어있다.
“캬아아악!”
변종 고블린들을 더 불러내는 나두경.
뉴트럴바이오가 몬스터와 특성,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참여해온 그였다.
임병옥이 헌터를 적대시하기 전부터 이미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 때는 포획하기 수월한 고블린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오랜 기간 축적된 고블린 실험체의 수는 엄청났다.
‘혹시 몰라 조금 약한 녀석들까지 모두 데리고 오길 잘 했군....’
소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강한 실험체를 먼저 내보냈지만, 진수를 제압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기에 작전을 바꿔 인해전술, 아니 고해전술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이미 진수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광전사] 효과로 체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고 있지만 곧 방전될 것이 뻔했다.
“헉, 헉, 헉...! 뭐야. 또 있어?”
거친 숨을 몰아쉬는 진수.
‘이 놈들 고돌이 급은 아니지만 확실히 세긴 세네.’
그는 두 번째 고블린 떼가 다가오기 전에 최대한 많은 변종 고블린들을 해치웠다.
전기톱에 썰려나간 고블린의 사체가 이제 사라지지 않았다.
-투둑
그 모습을 본 나두경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뭔가 변화가 생겼군. 실험체들을 사라지게 만들던 능력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지친 게 분명해.’
“흐흐흐.”
승리를 예감하며 웃음 짓는 나두경.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아틀란티스] 무리 성장
-[아틀란티스]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3, 민첩 +1, 체력 +4, 내구 +2, 마력 +2
-변종 고블린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변종 고블린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특수임무로 전이된 변종 고블린들은 따로 이름이 지정되지 않고 작은 그림이 되어 상태창에 자리 잡았다.
새초미의 부하들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임무가 달성된 직후 처치한 한 마리만 평소와 같이 차원 전이가 되었다.
보상은 상당히 강한 고블린들을 보낸 덕분인지 보통의 무리 성장이 주던 능력치보다 훨씬 많은 양의 능력치를 올려줬다.
특히 체력이 많이 증가하며 지쳐있던 진수의 몸을 회복시켰다.
-우우웅!
전기톱을 한층 더 세차게 움직이며 빙글빙글 도는 진수.
헐떡이던 숨은 이미 가라앉았고, 얼굴에서도 전혀 피로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휠윈드 맛 좀 봐라!”
모 게임의 야만전사가 된 기분으로 기술을 따라하며 고블린들을 토막 낸다.
지쳐가던 진수가 갑자기 멀쩡해지자 나두경은 깜짝 놀랐다.
“궁지에 몰린 척 연기한 것이었나...!”
특수임무의 보상으로 체력이 회복되었다는 걸 알 리가 없는 그는 속았다는 생각에 이를 갈았다.
“캬아악!”
사방에서 몰려오는 고블린 실험체들에게 광폭화 주문을 거는 나두경.
앞선 변종 고블린들보다는 약한 개체들이었지만 수는 훨씬 많았다.
“페이즈 2다 이거지?”
진수는 도끼를 허리춤에 다시 매어놓고 전기톱을 바닥에 꽂았다.
그리곤 이내 빠르게 돌진해오는 고블린들을 향해 비어있는 양손을 뻗었다.
-푸슉! 푸슈슉!
그의 손에서 무수히 많은 [강철 거미줄]이 뽑혀 나왔다.
거미줄들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고블린들을 꿰뚫었다.
하지만 얇은 거미줄은 관통력은 있어도 저지력은 충분치 않았다.
줄줄이 꿰이면서도 진수에게 달려드는 녀석들.
진수는 대부분의 고블린 실험체가 거미줄에 엮였다는 걸 보고는 씨익 웃었다.
“후워어억!”
진수의 입에서 굉음이 터진다.
[워 크라이]였다.
고블린 실험체들은 광폭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에 깊게 새겨진 두려움이 떠올랐다.
진수를 중심으로 우뚝 멈춰선 고블린들.
진수는 놈들을 꿴 [강철 거미줄]을 한 손에 그러쥐었다.
-화르륵!
사방으로 뻗어나간 거미줄을 도화선 삼아 [도깨비불]이 번져나간다.
거미줄에 관통당한 몸이 타오르는 고통.
[워 크라이]가 주는 공포.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동족의 사체들.
녀석들은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졌다.
“크흐흐흐...!”
-위이이이잉!
그 모습을 본 진수는 전기톱을 다시 들어 가동시켰다.
마치 개 목줄을 쥔 듯 거미줄을 잡고 톱날을 움직이고 있는 그.
고블린들은 진수가 마귀처럼 보였다.
‘이야.... [워 크라이] 한 번에 이렇게 정신을 흔들어놓는데 오크 워리어를 이겼다고...? 고돌이가 진짜 장난 아니구나.’
진수는 자신이 만들어낸 광경을 보며 고돌이에 대한 감탄을 했다.
종족의 본능을 넘어섰다는 뜻이었으니까.
“자, 이제 친구들 만나러 갈 시간이다.”
-휙!
한쪽 손에 잡고 있던 거미줄을 거칠게 잡아당긴다.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녀석들은 큰 저항을 하지 못하고 진수에게 끌려왔다.
이때부터는 일방적인 학살의 시간이었다.
나두경은 고블린들이 다시 싸우게 하려고 채찍질도 하고 고블린어로 소리도 쳐봤지만 정신을 차리는 것은 일부.
진수는 앞선 변종 고블린들보다도 약한 실험체들이 몇 덤빈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툭
마지막 실험체 고블린의 목이 바닥에 떨어진다.
진수는 전기톱을 세차게 털어 톱날 사이사이에 낀 핏덩이와 살점 따위를 떼어냈다.
“자, 이제... 이야기를 좀 해볼까?”
섬뜩한 시선을 보내는 진수.
나두경은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아, 아직 끝이 아니야...!”
그는 품에서 어린아이의 정강이뼈로 만든 막대기를 꺼내들었다.
정해진 공식대로 마력을 흘려 넣는 나두경.
막대기로 고블린들의 사체를 겨눴다.
마력은 음울한 기운이 되어 흩뿌려졌다.
-스으으...
진수는 재밌다는 듯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다시 한 번 휘둘러봐도 고블린들은 꿈쩍을 하지 않는다.
사령술이 전혀 듣지 않는 것이다.
“최유석한테 못 들었어? 내가 죽인 몬스터는 언데드화가 안 된다고.”
“뭐, 뭣...?”
나두경이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나름 비장의 수라고 생각했던 언데드화가 전혀 작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언데드 퓨전이라도...!’
사체에서 영혼을 뽑아내 언데드 퓨전을 일으키는 사령술을 사용한다.
양태규를 귀신으로 만드는 실험의 결과로 얻어낸 것이었다.
정확한 작동 원리는 영혼이 아닌 죽은 자의 기운, 사기를 매개로 언데드 바인더를 소환하는 것이었지만, 뉴트럴바이오에선 그것까지 알지는 못했다.
실험의 근거는 그들이 직접 알아낸 게 아닌, 공동 연구를 하던 곳에서 전달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으으...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언데드화와는 달리, 사체가 널려있는 환경 덕분에 언데드 바인더가 나타났다.
‘근데 이걸 어쩌나. 언데드가 없는데.’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까?”
-화르륵!
진수는 [도깨비불]을 사용해 손위에 불꽃을 띄웠다.
그리고 곧장 육체를 만들지 못하고 방황하는 언데드 바인더에게 던졌다.
비명을 지르며 타오르는 녀석.
“헉!”
진수는 [사신의 감각]이 있었기에 언데드 바인더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두경은 그저 음산한 기운이 나타났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던 상태.
허공에서 푸른 불이 타오르며 절규하는 무언가가 드러나자 화들짝 놀랐다.
“준비한 건 이게 끝이야? 얼레, 뭐가 또 있나?”
언데드 바인더가 완전히 연소되자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그러나 나두경이 준비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아, 안 돼...!”
그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릴 하더니 돌연 진수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스스로에게 광폭화 주문을 걸었는지 눈에 광기가 돌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채찍을 바닥에 집어던지고는 거칠게 주먹을 날리는 나두경.
-퍽!
진수는 그를 적당히 제압하기 위해 마주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주먹질 정도로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광폭화의 효과였다.
“크아악!”
나두경은 곧 완전히 이성을 잃고 덤볐다.
판단력이 사라지는 대신 신체 능력이 폭증했는지 포박하려는 [강철 거미줄]도 끊어버린다.
“이런...!”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그.
진수는 결국 도끼를 꺼내들었다.
-퍼억!
진수의 도끼가 섬광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쇠도 자르는 도끼날에 나두경의 목이 쩌억 갈라진다.
이내 그의 머리는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 바닥에 굴렀다.
안타깝게도 그는 [머리 분리] 특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
‘...!’
완전히 숨통이 끊어진 나두경.
진수의 눈에 순간적으로 그의 시체가 흐릿해지는 듯 보였다.
난장판
‘설마 사람도 [차원 전이]가...?’
-스으으
나두경의 시체가 잠시 투명해지는 듯 보였다.
그러다 [저승사자] 특성이 작용할 때처럼 그의 몸에서 희끗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털썩
제자리에 무너지듯 쓰러지는 그의 죽은 몸.
진수는 이제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뚝, 뚝
오직 도끼날에 맺힌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온다.
게이트 사태가 있은 후로 죽음에는 익숙해졌다.
다만 죽임은 처음이었기에 심경이 조금 복잡했다.
“하하, 하.... 사람이 전이될 리가 없지.”
진수는 일부러 소리 내어 말을 뱉었다.
그는 나두경의 시체에서 눈을 돌리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수많은 고블린들의 사체가 널브러져있다.
고블린이나 사람이나, 별다를 게 없었다.
-띠링
때마침 진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균열 징조 발생]
“광진구면 여기서 꽤 가까운데...?”
-띠링
그가 여기 정리는 박철준에게 맡기고 균열 방어를 도우러 갈까 고민하는데 다시 메시지 알림이 뜬다.
-띠링
-띠링
-띠링
.
.
.
“어...?”
마치 전화라도 오는 것처럼 균열 안내 메시지가 연달아 울렸다.
서울만 해도 10군데가 넘고, 점점 범위가 넓어져 경기도까지 무수히 많은 균열 징조가 나타났다.
진수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여전히 먹물이 칠해진 듯 검게 물들어 있었다.
-위잉, 위잉, 위잉, 위잉
잠실종합운동장 쪽에서부터 요란한 사이렌이 울려 퍼진다.
핸드폰도 요란하게 알람 소리를 냈다.
균열 안내 메시지가 아닌, 재난 안내 메시지였다.
[수도권 전역에 다수의 균열 발생. 비각성자는 대피소로 대피하십시오. 수도권에 전투가 가능한 각성자 및 헌터들은 가까이 있는 주민센터로 이동하여 대규모 균열 방어에 참여해주십시오.]
게이트 사태 이후로 사회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서 이런 재난 안내 메시지는 처음이었다.
균열 근방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피 및 균열 동원은 했지만 수도권에 있는 모두에게 안내하는 내용.
말 그대로 재난이었다.
진수는 나두경의 시체를 공간압축 주머니에 집어넣고 가까이에 있는 잠실7동 주민센터로 향했다.
“탐색 쪽 특성이나 기술 가진 헌터 있습니까? 아파트 단지에 아직 대피 안 한 인원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열 감지] 특성 있습니다!”
“탐색 계열은 아니지만 [신속] 기술로 도울 수 있어요!”
잠실7동 주민센터 건물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전례가 없는 사태였기에 제대로 된 통제는 되지 않았지만 헌터들은 꽤나 적극적으로 호응을 했다.
“저도 [중급 후각]이랑 [중급 청각] 있어요!”
진수는 아파트 단지에서 비각성자들을 대피시키는 역할에 자원했다.
지원을 한 헌터들은 즉각 아파트 단지를 지정 받고 출발했다.
상황이 급박했기에 서로 활동하는 범위가 겹치지만 않게끔 조정을 하고 바로 보낸 것이다.
“아직 대피소로 이동하지 않은 분들은 바로 나와서 피하세요!”
“긴급 상황입니다! 위험하니까 대피하십시오!”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자마자 크게 소리를 지르며 각자 맡은 아파트로 움직인다.
진수도 그 모습을 보고는 담당한 아파트 건물로 향했다.
-뽀옹 뽀옹
두 명의 분신을 만들어낸 진수.
아파트의 중앙과 양쪽 끝에서 동시에 올라가며 [사신의 감각]을 사용해 아파트에 남아있는 사람을 파악하기로 했다.
‘다들 대피했나...?’
아파트 외벽을 [강철 거미줄]로 타고 오르며 생명체를 감지해봤다.
하지만 느껴지는 것은 거의 반려동물이나 벌레 따위의 작은 생명 반응뿐.
분신들도 [분열]을 해제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대피하지 않은 사람은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음?”
그렇게 아파트를 오르는데 인간 정도 크기의 생명 반응이 느껴졌다.
위치는 옥상.
분신들도 옥상에 다다라서 한 명의 기척을 감지했는지 [분열]을 해제하며 기억을 공유했다.
-턱
아파트 옥상에 올라온 진수는 주변을 한 번 쓰윽 훑어보았다.
시야에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스슥, 스스슥
[중급 청각]에 옷이 난간과 마찰하는 소리가 감지됐다.
-저벅, 저벅, 저벅
한쪽 구석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진수.
그는 허공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기술 풀어.”
강한 어조로 입을 연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퍽!
“커억!”
진수가 허공에 손을 뻗자 갑자기 그의 손아귀에 누군가 나타났다.
정확히 목을 잡힌 청년.
아니, 청년이라고 하기에도 앳된 얼굴이었다.
그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고 카메라 어플리케이션이 구동되고 있었다.
“전투에 참여할 각성자면 동원 요청에 응하고 참여하지 않을 거면 대피를 하라는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크헉, 헤엑...! 이, 이거 좀...!”
목줄을 틀어쥔 진수의 손을 툭툭 치며 애원하는 소년.
진수는 그를 싸늘한 눈초리로 보았다.
-툭
강하게 붙잡고 있던 손이 풀리자 그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몇 차례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고는 숨을 가쁘게 쉰다.
“숨 고르는 척 하면서 눈치 보지 말고 빨리 대답부터 해.”
진수의 말대로 과장되게 헉헉 거리던 녀석은 흠칫 하더니 슬그머니 진수를 올려다보았다.
고아원에서 애들은 많이 겪어봤다.
이정도 연기는 그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게... 균열 터지는 거 찍어서 제 채널에 올리려고....”
“하아....”
“이런 거 올리면 구독자 떡상한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죽으면 니 인생 떡락하는 건 생각 안 하지?”
진수는 철없는 소리를 하는 녀석을 보며 깊은 한숨을 뱉었다.
“이상한 데에 목숨 걸지 말고 빨리 대피소로 들어가. 다른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균열 막겠다고 하고 있어.”
“아, 저도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쿠르릉!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소년, 이기태가 반발하며 입을 여는 순간 하늘에서 폭탄이 터진 듯 굉음이 들려왔다.
“시발.... 시작됐다.”
시커먼 하늘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괴물들.
-꿀꺽
이기태는 그 광경에 침을 삼켰다.
“대박...!”
핸드폰 카메라를 들어 올리며 그 장면들을 담는다.
진수는 옥상 위에서 주변을 살피며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은 균열이 한쪽에서만 활성화 되고 있네. 한강 방향은 아직 잠잠해. 이놈을 동쪽 대피소에 던져주고 그대로 몬스터들 나오는 곳으로 가면 되겠어.’
몬스터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장면을 정신없이 영상에 담고 있는 이기태.
진수는 그의 뒤로 가 허리띠를 거칠게 잡았다.
“어? 어어?”
그대로 아파트 옥상에 뛰어내리는 진수.
이기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비명을 꽥 내질렀다.
-쾅!
바닥에 닿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녀석을 가볍게 위로 던지고 주저앉으며 충격을 분산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충격량이었지만 [유연체질]과 [체질 확장], [중급 재생력]으로 상쇄시킬 수 있었다.
“헉...!”
순식간에 옥상에서 아래까지 내려온 이기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실감을 못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핸드폰은 소중히 붙잡고 있는 게,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니었던 듯했다.
다시 그를 한 손에 들고 달리기 시작하는 진수.
어느새 나머지 손에는 도끼를 꺼내들고 있었다.
-휘익! 퍽!
곳곳에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몬스터들에게 도끼를 투척한다.
다행히 몬스터가 밀집된 곳은 아니었기에 그 정도로도 움직이는 데에 큰 방해는 되지 않았다.
“와씨, 지리네.”
진수의 손에 붙잡혀있는 이기태는 마치 헬리캠이라도 된 것처럼 주변의 상황을 열심히 찍었다.
몬스터가 나타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도끼를 던져 처치하고, 사람을 들고 있음에도 엄청난 속도로 내달린다.
이기태가 찍은 영상을 보면 연출된 상황이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쿵, 쿵!
“후워억!”
대피소의 금속 문을 두드리는 커다란 오크.
사람들이 대피할 때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대피소는 몬스터의 공격을 방어하는 역할도 있지만 그보다 앞서 몬스터가 그 안에 사람들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이 컸다.
아무리 튼튼하게 짓는다고 해도 다수의 몬스터가 공격하면 버티기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쿠워어어!”
주먹질 정도로는 꿈쩍도 않자 포효를 하며 거리를 벌리는 오크.
녀석들 특유의 돌진을 하려는 듯했다.
“야, 오크!”
“쿠웍?”
그런 놈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찌를게.”
-위이이이잉!
뒤로 돌아본 오크의 시야에 검고 굵은 전기톱이 들어왔다.
맹렬히 돌아가며 배를 관통하는 톱날.
피가 사방에 튀고 내장 조각이 튀어나왔다.
“우웨에엑!”
그 모습을 본 이기태가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토사물을 뱉어냈다.
“엄살 부리지 마라. 너 계속 옥상에 있었으면 니가 직접 장기자랑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
진수는 싸늘하게 말한 뒤에 대피소로 향했다.
헌터 라이센스를 갖다 대고 대피소의 코드를 누르자 금속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 안에 이기태를 집어던진 진수.
“영상 찍는 데에 목숨을 걸 거면 목숨을 건 가치가 있게끔 만들어. 남한테 피해 주지도 말고.”
다시 대피소의 문에 헌터 라이센스를 갖다 대 문을 닫는다.
완전히 밀폐된 것을 확인한 그는 방금 죽인 오크의 사체에 갈무리용 단검을 쑤셔 넣었다.
몇 번 슥슥 도려내니 누런 주머니 같은 것이 나왔다.
오크의 분비샘이었다.
진수는 칼로 분비샘의 한쪽을 잘라냈다.그러자 걸쭉한 액체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으, 지독하구만.”
대피소 주변에 액체를 흩뿌려놓는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의 냄새를 덮을 수 있기에 몬스터가 대피소를 공격할 확률을 줄여줄 것이다.
-탁, 탁
오크의 분비샘에서 나온 액체를 충분히 뿌리고 나서 손을 털어낸 진수는 [사신의 감각]으로 몬스터들이 있는 방향을 파악했다.
사실상 어디로 향하나 몬스터가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한손엔 전기톱, 다른 손엔 도끼를 틀어쥐고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미 수많은 헌터들이 전투를 하고 있었다.
진수도 전선에 합류하여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둘렀다.
* * *
게이트 사태 때가 이랬을까?
끝없이 몰려오는 몬스터들과 그걸 막고자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몬스터 사냥에 익숙한 헌터들이 놈들을 학살에 가까울 정도로 해치웠지만 균열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점점 지쳐가는 헌터들.
사상자가 늘어나면서 헌터 한 명당 맡아야 하는 몬스터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뭔가 이상해.’
진수는 쉼 없이 괴물들을 처치하면서 생각했다.
몬스터들과 전투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전선이 생겨났다.
드물게 대규모 균열이 발생하더라도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었다.
왜냐면 진열의 뒤쪽에서 균열이 발생하면 바로 포위를 당하는 형국이 되니까.
그런데 오랜 전투가 이어지면서 저절로 진열이 형성된다는 것은 균열이 발생하는 데에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파트 옥상에서 봤을 때... 균열이 한강 쪽에선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
진수는 이기태를 붙잡으러 올라갔다가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검은 하늘에서 한쪽은 몬스터가 쏟아지고 한쪽은 잠잠했던 모습.
‘아, 안 돼...!’
검게 물드는 하늘을 보며 사색이 되었던 나두경의 모습도 생각이 난다.
“설마...?”
-휘리릭! 퍽!
“키엑!”
진수는 도끼를 던져 고블린 하나를 처치하고는 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후회
꽤 오래 연결음이 울리고 나서 전화가 연결됐다.
“수사관님.”
-아, 김진수 헌터. 무슨 일입니까?
진수가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박철준 수사관이었다.
그도 균열을 막는 데에 애쓰고 있는지 사소한 말은 생략하고 바로 용건을 물었다.
그의 주변에선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부탁 드렸던 한강, 탄천 쪽에 뭐 좀 확인된 게 있었나요?”
-그거 말인가요? 봉은교 근처에서 트럭이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 중요한 일입니까?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 박철준.
그의 입장에서는 당장 균열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막는 것도 벅찬 일이었기에 진수의 질문을 이상하게 여겼다.
“어쩌면요. 확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수는 그와의 통화를 끊었다.
“찌익!”
-콰득
핸드폰을 집어넣는데 웬 랫맨 하나가 달려들었다.
급히 팔을 들어 놈의 공격을 막는다.
진수의 팔을 씹어 먹을 기세로 물어뜯는 랫맨.
진수는 녀석의 꼬리를 붙잡아 뽑아버릴 기세로 강하게 휘둘렀다.
-우두두둑!
관절이 연달아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대로 절명해버린다.
-랫맨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랫맨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눈앞에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를 치워버리는 진수.
여전히 몬스터는 지천에 널려 있고, 전투는 끝나지 않는다.
한가롭게 전이자의 이름을 짓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봉은교 근처라....’
균열에서 쏟아지고 있는 몬스터들을 계속해서 상대하고 있지만 진수의 머릿속은 굉장히 복잡했다.
지금 그가 자리를 이탈한다면 다른 헌터들에게 큰 부담을 떠넘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책 없이 균열을 막기만 한다면 결국 파멸로 치달을 게 분명했다.
균열의 끝은 보이지가 않았으니까.
‘만약에 내가 생각한 게 틀렸다면? 정말 이 상황이 전적으로 게이트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손 쓸 수 없는 재앙이라면?’
진수가 주저하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었다.
“끄아악!”
또 한 명의 헌터가 부상을 입는다.
“누가 잠시만 시간 좀 벌어줘요!”
힐러 계열의 헌터가 도움을 요청했다.
진수는 재빨리 부상을 입은 헌터 쪽으로 가서 도끼와 [강철 거미줄]을 뿌려가며 그를 보호했다.
부상 입은 헌터를 치료하는 힐러 각성자.
진수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그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우우웅!
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게 생긴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고맙습니다. 휴우... 이제 마력도 다 떨어져 가는데 균열은 더 늘어나네요. 살아서 해 뜨는 걸 볼 수 있을까요?”
그의 얼굴에 나타난 극심한 피로도와 절망감.
눈빛에서는 희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 모습을 본 진수의 머릿속에 결단이 섰다.
“버텨봅시다. 살아남아야죠. 할 수 있을 거예요.”
진수는 그 길로 즉시 서쪽에 있는 탄천을 향해 달려갔다.
핸드폰으로 봉은교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다.
‘저쪽 방향으로 1km만 더 가면 돼.’
균열 사태 때문에 도로에 차들이 다니지 않아 이동하는 데에는 수월했다.
탄천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몬스터의 등장은 줄어들었다.
진수는 점차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맞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윽고 봉은교에 도착한 진수.
‘저긴가...?’
봉은교 근처는 마력이 요동치고 있었다.
다리 아래, 하천가의 한 쪽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게 느껴진다.
그 마력은 사방으로 뻗어 나갔는데, 저 멀리 균열들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진수는 마력의 흐름을 쫓아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쿠르릉...!
마치 천둥소리 같은 울림이 가득 채운 공동.
동묘 창고나 연안 창고와 비슷한 던전이었다.
대신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뉜 것이 차이점이었다.
내부는 아주 엉망진창이었는데, 종적을 감췄던 뉴트럴바이오의 핵심 인물들이 여기서 숨어 지냈던 것으로 보였다.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집기 등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마력의 폭주로 인한 흔적이라기보다는 습격이라도 당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쪽 구석엔 익숙한 구체가 내동댕이쳐져 있는 게 보인다.
드레이크의 알이었다.
인큐베이터에서 상당히 떨어진 위치에 있었는데, 아마도 부화하지 않는 탓에 누군가가 집어던진 듯했다.
‘이건 좀 미안하네. 나름 애지중지 하면서 여기까지 일부러 챙겨왔을 텐데.’
-쾅!
그가 내부를 살피는데 던전의 안쪽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진수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들어갔다.
“이런...!”
던전의 깊숙한 곳.
그곳엔 커다란 몬스터가 있었다.
여러 종류의 괴물들이 뒤섞인 모습을 한.
만티코어의 몸통을 베이스로 꼬리엔 석사가, 등에는 고블린이나 코볼트, 오크 따위의 몬스터들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머리가 있을 위치엔....
“임병옥...!”
뉴트럴바이오의 대표, 임병옥의 상반신이 있었다.
그녀의 상반신에는 아이들의 뼈로 만든 막대기가 십 수 개 꽂혀 있었다.
던전 내부에 휘몰아치는 마력의 근원지가 바로 그 막대기들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휘익! 쾅!
진수를 발견한 그것은 명백한 적개심을 드러내며 덤벼들었다.
순식간에 접근하여 앞발을 휘둘렀다.
동시에 등에 박힌 코볼트의 손에서 번개 줄기를 쏘아낸다.
“후워어억!”
진수가 잽싸게 옆으로 구르며 피하자 이번엔 오크가 [워 크라이]를 터트렸다.
순간적으로 울컥하며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낀다.
-후웅!
그가 [워 크라이]의 영향을 받고 멈칫하는 사이, 석사가 묵직하게 짓쳐들었다.
-쾅!
하지만 진수에게 석사를 휘두르는 건 급소를 들이미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
진수는 전기톱을 꺼내어 석사의 돌로 된 몸체를 깨부숴버렸다.
“캬아악!”
“으악!”
“쿠워억!”
녀석의 몸에 박혀있는 모든 괴물들과 임병옥이 동시에 비명을 지른다.
그 모습이 기괴하여 [워 크라이]보다도 더욱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다.
-위이잉!
전기톱을 구동하는 진수.
그의 눈빛은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완전한 괴물이 되었구나.... 이렇게 해서 이룬 게 뭐야?’
진수는 전기톱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쿠르릉!
그런 와중에도 뼈로 된 막대기는 마력을 뿜으며 균열을 일으켰다.
그 광경을 보고 진수는 보다 서둘러서 임병옥을 공격했다.
-캉!
전기톱과 녀석의 발톱이 부딪히며 불똥을 튀긴다.
인간일 때의 의식도 어느 정도는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몬스터의 본능이 섞인 것인지 기괴한 움직임을 보였다.
뒤로 텀블링을 하며 뒷발로 진수를 올려 찬다.
공중에서 다시 천장을 박차고 돌진.
-콰앙!
튼튼한 몸체를 앞세운 공격에 맞고 진수가 나가 떨어졌다.
“컥!”
묵직한 충격에 내부가 진탕이 됐다.
[중급 재생력]이 작용하며 빠르게 회복을 했지만 그 고통의 여파가 진하게 남았다.
“키엑...!”
“으윽!”
그러나 임병옥도 전혀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돌진하는 순간 그 힘을 이용해 왼쪽 어깨에 전기톱을 찔러 넣었다.
아무리 가죽이 질기다고 해도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힘을 받아 공격했기에 어깨가 너덜너덜해졌다.
‘기회다!’
빠르게 접근해서 왼쪽 앞다리를 쳐낸다.
괴로워하며 움츠려드는 괴물.
진수는 그 기세를 몰아 연달아 공격을 이어 나갔다.
-퍽!
놈의 왼쪽 어깨를 더욱 깊게 후려쳐 관절을 끊어버린다.
이에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괴물.
“캬악!”
넘어지는 와중에도 녀석의 등에 붙어 있는 몬스터들이 진수를 공격했다.
진수는 전기톱을 휘둘러 덤벼드는 오크와 코볼트를 동시에 잘라버렸다.
-후두둑
무자비하게 움직이는 전기톱.
만티코어 몸체의 허리를 그대로 두 동강낸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녀석의 몸체를 다지듯 썰어버렸다.
-파스스스...
그렇게 순식간에 토막이 난 괴물의 몸은 이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임병옥의 하반신과 함께.
상체만 남은 그녀는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눈빛이 돌아왔다.
“여긴...! 흐윽!”
엄습하는 고통에 신음소리를 내는 그녀.
이내 자신의 온몸에 박힌 막대기들을 발견하고는 착잡한 얼굴이 되었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스스로의 의지로 행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 이렇게 되었나....”
진수는 그런 임병옥에게 다가가 몸에 박힌 막대기들을 뽑으려 했다.
“흐으윽!”
하지만 오히려 그런 행동에 반발하는지 막대는 임병옥의 몸에 더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력 폭풍.
금방이라도 새로운 균열을 일으킬 것 같았다.
“소용없어. 이미 내 생명을 잠식해서 작동하고 있으니까....”
임병옥이 입을 열었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흐읍... 하.... 바깥은 지금 어떻지?”
심호흡을 하며 질문을 던진다.
순간적으로 던전 내부에 들끓던 마력이 잠잠해졌다.
임병옥이 직접 마력을 제어한 것 같았다.
“당신이 만든 지옥을 다 같이 힘을 모아서 막고 있지.”
“지옥... 다 같이... 그렇게 됐나.... 흐읏....”
진수의 말을 들은 임병옥의 눈빛은 굉장히 복잡해 보였다.
“왜 이렇게 됐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됐지? 이런 결말을 바랐던 건 아닌데....”
그녀의 목소리에서 후회가 뚝뚝 묻어 나왔다.
하지만 뭘 후회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하, 헌터가 모두 나쁜 게 아니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어.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을 뿐이지.”
-꾸드드득...!
천천히 말하는 그녀의 몸속으로 점점 뼛조각들이 파고들었다.
아직 마력을 제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는지 마력의 흐름은 잠잠했다.
“크윽...! 눈을 돌릴수록 상황은 나빠져만 갔지. 분노와 복수의 방향이 틀어진 순간부터, 괴물은, 악마는 나였던 거야.... 커헉!”
피를 토하는 임병옥.
“흐, 흐흐.... 핑계 대는 거 싫어한다 말버릇처럼 하고 다녔으면서 결국 나도 똑같구나.”
그녀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진수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임병옥. 이제 다 소용없다는 걸 알잖아? 균열을 멈춰.”
그의 말에 올려다보는 그녀.
그녀의 눈엔 슬픈 것인지, 괴로운 것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엿보였다.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고 싶지만, 내 힘으로 멈출 수가... 없어. 이 도구들에 담긴 생명력과 사기, 내 마력과 생명력을 매개로 계약한 거라 내 멋대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괴로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너도 이제 바라지 않잖아!”
진수의 물음에 임병옥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심장 위치를 쿡 찍었다.
“날 죽여. 그러면 끝이 나.”
그녀는 바닥에 누운 채로 눈을 감았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래.... 다음 생엔 복수할 일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라.”
진수는 전기톱을 움직여 임병옥의 심장을 꿰뚫었다.
솟구치는 피분수.
진수의 눈앞에 붉은 액체가 가득 채우...는 듯하다가 이내 사라졌다.
-휘이익!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며 증발해버린 임병옥의 시체.
그리고 이내 진수의 상태창에 2등신으로 그려진 그녀의 그림이 나타났다.
-계약자 [임병옥] 차원 전이 성공.
-첫 계약자의 차원 전이로 보상을 받습니다.
‘뭣...? 왜 [차원 전이]가...!’
선 넘네?
-계약자 [임병옥]의 특성 중 하나
-[임병옥]이 [뉴트럴바이오 친구들] 무리에 합류합니다.
진수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들.
임병옥을 차원 전이시킨 것이 잘못 보거나 착각을 한 게 아님을 알려준다.
‘고블린사육사 죽였을 땐 전이되지 않더니 왜 임병옥은...?’
그녀의 흔적이 씻은 듯이 사라졌기에 무언가 유추를 해볼 수 있는 단서도 없었다.
진수는 씁쓸한 표정으로 던전 내부를 훑었다.
-쿠르릉...!
곧이어 던전의 붕괴가 시작됐다.
진수는 재빨리 밖으로 피신했다.
-콰르릉!
완전히 무너진 뒤 사라져버리는 던전.
밖으로 나와 보니 하늘은 맑게 갠 상태였다.
아직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들이 남아있는지 전투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결국 사람들은 괴물들을 모두 처치할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으니까.
‘그나저나... 하데스의 지식대로라면, 임병옥은 죽어서도 아들과 마주칠 수가 없게 됐구나.’
차원을 넘어갔기 때문에 그녀의 영혼은 다시 이쪽 차원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물론 [차원 전이] 같은 어떤 계기가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뒤틀린 방식으로 아들의 복수를 하려던 여인은 죽어서도 아들과 만나지 못하게 됐다.
‘근데 대규모 균열을 일으킨 건 그다지 자기 의지로 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뉴트럴바이오와 관련된 일이 모두 마무리 된 듯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우선 몬스터 잡는 것부터 돕자.”
진수는 고민해봤자 답이 안 나오는 문제는 내려놓고 눈앞의 일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 * *
수도권에 발생한 대규모 균열 사태.
한국에서 게이트 사태 이후로 가장 균열이 많이 발생한 날이었다.
그나마 다수의 헌터들이 밀집되어 있던 수도권이었기에 무자비한 학살이 일어나진 않았다.
그러나 많은 시설이 파괴되었고 헌터들 중에 사상자도 다수가 생겼다.
일시적이지만 한국 헌터들의 침체기가 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균열 사태의 원인이 뉴트럴바이오였다는 말입니까...?”
헌터범죄전담기관의 한 사무실.
박철준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제게 탄천 쪽 일을 물어봤던 게...?”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진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뉴트럴바이오 쪽에서 균열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봤을 때 의심스러운 것들이 있어서....”
“하마터면 수도권 전역이 망가질 뻔 했군요. 김진수 헌터 정말 큰일을 해줬습니다.”
박철준이 감탄을 한 듯한 표정으로 진수를 보았다.
“이번 균열 사태를 뉴트럴바이오가 일으켰다는 거는 가능하면 외부에 노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왜죠? 그렇게 되면 김진수 헌터가 균열을 막았다는 것도 그냥 묻히게 될 텐데요.”
진수의 말에 박철준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게 알려지면 강제로 균열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걸 공표하는 꼴이잖아요. 그럼 또 누가 악의적으로 균열을 이용하기 위해서 연구를 할 수도 있을 거고요.”
뉴트럴바이오가 균열을 일으키는 데에는 아이들의 생명이 필수적으로 들어갔다.
누군가가 다시 균열을 발생시키려고 한다면 또 죄 없는 아이들이 죽어나갈 것이다.
“아... 역시....”
‘이 때의 사내라면 스스로를 내세우고자 하는 욕심이 많을 텐데. 그릇이 다르구나, 달라.’
박철준은 다시 놀랍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의 머릿속에 진수의 이미지는 이제 공명심을 초월한 훌륭한 청년으로 자리 잡았다.
“알겠습니다. 김진수 헌터. 지금 C급이죠?”
“아, 네. 아직 능력치가 좀 부족해서....”
그의 현재 능력치 총합은 202였다.
B급 진급을 위해서는 능력치 총합 250이 넘거나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능력 검증 절차가 꽤 까다롭기에 능력치가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 헌터 협회 가까운 지회로 방문해서 진급 신청을 하세요. 여러 사건들을 처리한 공로와 제가 직접 확인한 전투 능력이 있으니 B급으로 올라갈 수 있게끔 처리해놓겠습니다. 협회의 양민우 부장님과 정윤아 차장님도 함께 인증을 해주실 겁니다. 처리가 되면 연락드리죠.”
“아... 네. 감사합니다.”
진수는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 되었지만 사양하지 않기로 했다.
그 자신도 고생을 한 만큼 어느 정도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B급 헌터가 되면 공략조가 없어도 던전 공략 권한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러면 앞으로 보다 다양한 몬스터들을 차원 전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변종 고블린 [고변]이 [아틀란티스] 무리에 합류했습니다.
-웨어타이거 [호랭총각]과 랫맨 [에비츄]가 [새초미 무리]에 합류했습니다.
그가 B급 헌터가 되었을 때를 기대하는데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최근에 차원 전이를 시켰던 녀석들이 무리에 합류한 것이다.
변종 고블린은 나두경이 함정을 팠을 때, 랫맨은 대규모 균열 사태 때 전이를 시켰던 몬스터들이다.
‘고변은 좀 심하지 않았나 싶긴 한데... 전통을 지켜야 하니까....’
진수는 상태창에서 시선을 돌리며 애써 고변이에 대한 미안함을 외면했다.
“정효원이나 최유권에게서 추가적으로 더 정보가 나오거나, 처벌이 확정되면 다시 연락드리죠. 고생 많았습니다.”
박철준이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권했다.
진수는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단단히 쥐는 박철준의 손에서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길었다면 길었던 뉴트럴바이오와의 갈등이 끝났다는 느낌.
그리고 고생했던 그간의 일들을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일로는 이제 뵐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또 뵌다면... 뭐, 형님 정도로...? 하하하.”
“훗, 그래요. 언제 술자리나 한 번 갖죠.”
박철준이 가볍게 웃었다.워낙 냉철하고 시니컬한 인물이었기에 이런 모습은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물론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진수는 꾸벅 인사를 하고 헌터범죄전담기관을 나섰다.
-위이이잉!
-쿵, 쿵!
거리에 나오니 온통 균열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갔으니 다시 평상시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도 오랜만에 임무나 받아볼까.”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응.’
뉴트럴바이오가 숨겨놓은 실험체를 찾는 데에 임무를 활용하긴 했지만 아무런 의도 없이 임무를 받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임무 : 강철거미 5마리 차원 전이시키기 !
-보상 : 드레이크 [후라이]의 성장
‘강철거미를 보내라고...? 간장이랑 막야도 이제 슬슬 영역을 넓히려고 하는 건가?’
임무 내용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이내 느낌표를 눌러 상세 내용을 확인해본 진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끅끅거리며 웃었다.
-강철거미는 드레이크가 좋아하는 먹이입니다. 하지만 화염강철거미 [간장]과 빙결강철거미 [막야]를 부모로 삼고 있는 드레이크 [후라이]는 차마 강철거미를 먹이로 달라고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철거미 딱 다섯 마리만 먹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새끼 드레이크의 염원을 이루어주십시오. 몰래 별식을 먹은 [후라이]는 무럭무럭 자랄 것입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후라이는 간장과 막야를 보면서 항상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
별미를 탐하는 본능.
‘아... 근데 하필 강철거미네.’
강철거미는 한국에 서식 필드가 없다.
무조건 던전이나 균열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몬스터인 것이다.
‘B급 진급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 하나?’
-띠리리링
진수가 고민하고 있는데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진수씨? 지금 퍼지고 있는 영상, 진수씨 맞죠?
무심코 전화를 받은 진수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에 핸드폰 액정을 확인해봤다.
[최지원 헌터]
‘최지...원...?’
진수는 순간 최지원이 누구인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가물가물한 머릿속에서 화끈한 통증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손이 매웠던....’
예전에 정효원과 던전을 클리어할 때 같이 공략조에 있었던 불을 쓰는 프리랜서 헌터.
파티 사냥할 때 자리 채울 일 있으면 연락하기로 하며 전화번호를 교환했었다.
-저 기억 못하고 있죠?
그가 잠시 대답을 않자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최지원.
“아, 아뇨. 무슨 영상 말씀하시는 건가 해서요.”
-지금 난리도 아니던데요. 대규모 균열 사태 때 영상인데 몬스터 쏟아지는 것부터 해서 거리에서 도끼로 몬스터들 처리하는 영상. 도끼 던지는 거 보니까 딱 진수씨던데?
“아.... 한 번 확인해봐야 될 거 같은데요?”
진수는 그 영상이 뭔지 얼추 알 것 같았다.
아마 아파트 옥상에서 영상을 찍던 소년이 올린 것이리라.
-그 영상 보고 사람들 반응 장난 아니에요! 헌터들 멋있다고, 고생 많다고. 뭐 어쨌든. 요즘 어떻게 지내요?
“그냥 뭐 필드 사냥 하고 균열 막고 그런 정도죠.”
-음, 던전은 안 돌아요?
“지금 따로 공략조에 몸담고 있지는 않아요.”
-와 잘 됐다. 저 이번에 B급으로 진급했거든요. 던전을 좀 가보려고 하는데, 처음부터 혼자 가기는 좀 그래서... 혹시 던전 한 번 가실 생각 없으세요? 진수씨 실력 좋은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최지원은 상당히 기쁜 목소리였다.
“아, 공략조에 들어가기는 좀....”
‘잠깐. 어차피 강철거미를 잡아야 하잖아.’
“혹시 던전 종류는 제가 골라도 되나요?”
거절을 하려던 진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그렇게 해요. 저도 딱히 가고 싶은 던전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근데 어떤 던전을 가려고 그러는데요?
“강철거미가 나오는 던전이요.”
그의 말에 최지원이 잠시 머뭇거렸다.
-아... 그건 좀.... 그날 이후로 강철거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요. 진수씨는 되게 별나네. 그런 일을 겪었는데 강철거미 던전을 찾아요? 아니, 오히려 강박적으로 강철거미를 싫어하게 됐나? 하긴 누구는 고블린한테 당한 후로 고블린만 죽어라 쫓아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런 건 아니고요. 강철거미 던전 가시는 게 힘들면 뭐 어쩔 수 없죠.”
어차피 곧 진수도 B급 헌터가 된다.
후라이가 좀 기다린다고 해도 며칠 뒤에 가도 충분할 것이다.
-으... 알겠어요. 강철거미 나오는 던전으로 찾아볼게요. 대신 강철거미는 진수씨가 다 해치우셔야 돼요?
바라던 바였다.
며칠 뒤, 진수는 한 던전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던전 앞에는 그 외에도 일당 헌터 팀이 있었는데, 진수가 몸 담았던 팀이었다.
“진수씨! 일찍 왔네요?”
적갈색의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를 착용한 최지원.
손에는 아이템인지 붉은 보석이 박힌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아, 오랜만입니다.”
-착!
“윽!”
진수의 팔뚝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친다.
“가끔 안부 연락 하라니까 어떻게 문자 한 번 없어요?”
그녀는 여전히 손이 매웠다.
‘힘 능력치도 상당히 높은 거 아닐까....’
“뭐, 이리저리 바빴어요. 최지원씨도 B급까지 오른 정도면 꽤 바쁘게 활동하셨을 거 같은데요.”
“그냥 성 빼고 이름으로 불러도 돼요. 운 좋게 화염 능력 강화시켜주는 특성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좀 빨리 진급할 수 있었죠. 진수씨는 지금...?”
“C급이에요.”
“와, 진수씨 등급 오른 거에 비하면 전 느린 편이네~ 그때만 해도 F급이었잖아요?”
확실히 일반적인 헌터들에 비해서 진수의 진급 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게다가 곧 B급으로 확실히 올라갈 수 있는 상태.
최지원이 충분히 놀랄만한 정도였다.
“여기 던전은 강철거미랑 어스웜이 같이 나오는 곳이라고 해요. 제가 몬스터 접근 감지하는 아이템 가지고 왔으니까 바닥에서 어스웜 튀어나오는 것만 조심하면 될 것 같아요.”
그녀는 B급 헌터답게 던전에 맞는 도구를 챙겨서 왔다.
물론 [사신의 감각]이 있는 진수에게는 불필요한 도구였지만.
“네, 저도 탐색 쪽 능력이 있으니까 강철거미는 제가 최대한 해치울게요.”
진수와 최지원은 던전에 들어가 어떻게 전투를 진행할 것인지 간단히 짰다.
헌터 협회에서 평가한 던전의 위험도는 D에서 C급 정도.
B급 헌터와 C급 헌터 둘이 들어가서 위험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들어가죠.”
진수가 앞장서서 던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던전 내부는 전형적인 동굴의 모습이었다.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있고 통로는 복잡하게 뻗은 형태.
-스스스슥!
진수의 귀에 강철거미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대로 왔네.’
-저벅, 저벅
강철거미의 위치를 파악하려 청각에 더욱 집중을 하는데, 조심스럽게 걷는 사람의 발소리가 잡혔다.
‘음...?’
“지원씨. 혹시 누구 더 올 사람 있어요?”
진수가 뒤로 돌아 최지원에게 물었다.
뉴트럴바이오에 하도 시달렸더니 이제 같이 온 그녀부터 의심이 갔다.
하지만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
“아뇨? 왜요? 앞에 누가 있어요?”
앞이 아니라 뒤였다.
-특수임무 발생.
‘특수임무...?’
-특수임무 : 안내에 따라 이동하여 안내하는 대상을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골드 +10
특수임무를 받자 조금 전 발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안내가 시작됐다.
‘그냥 걸어 다니는 종류의 몬스터였나?’
강철거미와 어스웜이 나오는 던전이라서 자신이 오해를 했나보다 생각한 진수.
“뒤쪽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한 번 확인하고 올게요.”
그는 최지원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에 특수임무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거기엔 두 사람이 있었다.
커다란 덩치의 사내와 쥐상의 인물.
안내는 쥐를 닮은 자를 향하고 있었다.
‘야, 일부러 사람을 보낼 순 없지.... 이게 사람 맛을 보더니 선 넘네? 물론 쥐... 자리가 하나 남긴 하는데....’
별 꼴이네
“무슨 일입니까?”
진수는 던전에 무단으로 들어온 두 사람의 앞으로 나섰다.
던전 공략 권한은 최지원이 취득했고 그녀의 말대로라면 더 이상 올 사람은 없다.
일단 그들이 여기 있을 명분은 없는 셈이었다.
“아~ 이 앞에 지나가는데, 던전이 있길래 좀 도와드릴까 해서 왔소.”
‘말투가...?’
덩치 큰 사내가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는 약간 어눌한 한국말을 사용했다.
북한이나 조선족의 어투 같았다.
“도움 필요 없습니다.”
“너무 팍팍하게 이러지 마시오. 동포끼리 돕는 거 아니겠소?”
한 걸음 다가서는 덩치.
그 순간 진수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뿌드득
임병옥을 차원 전이시키고 받은 특성이 바로 [중급 악력].
진수의 힘 능력치 자체도 상당했기에 사내는 순간적으로 팔을 쥐어짜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아, 아아!”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던전에 무단으로 침입하면 힘으로 막아도 정당방위야.”
덩치 큰 사내가 괴로워하자 그의 뒤에 있던 쥐상의 남자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의 허리춤엔 단검이 몇 자루 매여 있었다.
“자신 있으면 그 칼 뽑아.”
진수가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 경고에도 아랑곳 않고 쥐를 닮은 사내는 손을 움직였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포한 기운.
마치 맹수 같은 기세였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진수씨, 무슨 일이에요?”
팽팽하던 분위기는 최지원의 등장으로 풀어졌다.
금방이라도 단검을 뽑을 것 같던 남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세를 되돌렸다.
진수에게 팔이 잡힌 덩치는 다시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도와줄 필요가 없었네. 실례했소. 하하. 형님, 나갑시다.”
그의 말에 진수를 한 번 노려보고 자리를 뜨는 쥐상의 사내.
“어우씨, 누가 보면 내가 잘못한 줄 알겠네.”
진수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뭐에요? 저 사람들?”
“모르겠어요. 지나가다가 던전 깨는 걸 도와주려고 했다나 뭐라나....”
“별 꼴이네요.”
“그러게요.”
진수는 그들이 나간 방향을 잠시 노려보았다.
“저희 던전이나 빨리 깨죠.”
이내 시선을 거둔 그는 최지원과 함께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 * *
“아, 그러니까 제가 오히려 소수인 놈들이 더 빡세다고 했잖습니까.”
덩치 큰 사내가 투덜거렸다.
쥐상인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
“제 팔 잡았던 그 놈 힘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나타난 여자도 마력이 엄청난 거 못 느끼셨습니까.”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쥐상.
“허접한 놈들끼리 모여 있는 곳으로 다시 노려봅시다. 뭐 이 주변엔 아무도 없는 거 같은데 형님 불편하시면 잠깐 원래 모습으로 하고 계십시오.”
덩치는 핸드폰을 꺼내 주변의 던전 정보들을 찾으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쥐를 닮은 사내는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뿌드드득!
입이 튀어나오고 눈이 가로로 길게 찢어진다.
입 주위에 수염이 나온 뒤 곧이어 온몸에 흰 털이 자라났다.
샛노란 눈과 길고 뾰족한 이빨.
“크르르르...!”
그의 모습은 마치 랫맨처럼 변했다.
-화르륵!
대신 입안에서 불꽃이 넘실거렸는데, 침 대신 흐르는 것인지 자신의 팔을 슬쩍 핥으니 불길이 치솟았다.
불이 닿았던 털은 잠시간 붉은색이 되었다가 금방 다시 흰색으로 돌아왔다.
“뒤에 있던 인간.... 불 냄새가 났어. 싸웠으면, 이겼을지도.”
“아이! 전 일단 그 남자를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다른 던전도 많으니까 너무 미련 갖지 마십시다.”
핸드폰을 몇 번 슥슥 만지던 그가 꽤 마음에 드는 정보를 찾았는지 자세히 살펴봤다.
“형님, 괜찮은 곳 찾았소. 다시 모습 바꾸고 갑시다.”
“알겠다.”
쥐 인간은 무뚝뚝하게 답하고는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빠르게 변한 그와 덩치는 주변을 살피고는 자리를 떴다.
“와씨, 저게 뭐지? 인간이 아니야...?”
그리고 그 모습들을 진수의 분신이 모두 보고 있었다.
“일단 쫓아가고 다른 던전에 들어가면 [분열] 해제해야겠다.”
작은 진수는 둘의 뒤를 급히 쫓았다.
* * *
-파삭!
진수의 도끼가 강철거미의 머리를 부숴버렸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드레이크 [후라이]의 성장
-[후라이]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마력 +2
던전 공략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최지원에게 강철거미 기척이 느껴진다고 한 뒤 먼저 뛰어와 해치우면 끝.
간간히 [강철 거미줄]을 사용해서 흔적을 남겨놓고 여기 있었는데 도망친 것 같다고 하면 의심받을 일도 없었다.
-[후라이] - 현재 상황 : 몰래 숨어서 강철거미 먹는 중
새끼 드레이크 그림이 무언가를 맛있게 먹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그 뒤로 하트 모양들이 샘솟는 효과가 나타난다.
꼬리를 파닥거리는 후라이.
‘진짜 어지간히 좋아하는 먹이였나 보다.’
진수는 잠시 간장과 막야를 걱정했다.
하지만 다양한 종족의 몬스터들이 [차원 전이]로 인해 넘어가고 나서는 무리를 이루고 잘 지내고 있다.
아마 전이가 된 녀석들은 서로 잘 지내게 되는 강제성 같은 게 있는 것이 아닐까 유추해볼 수 있었다.
“강철거미가 나오는 던전이라서 여길 골랐는데 생각보다 수가 많지 않은가 봐요. 이번에도 없는 걸 보니까.”
그가 상태창을 보는 사이 뒤따라온 최지원이 미안하다는 투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강철거미를 후라이에게 보내줬으니 그 사체가 남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거미줄이 있는 걸 보니까 분명 근처에 있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는 진수가 미리 뿌려놓은 [강철 거미줄]을 지팡이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건 사실 내가 만든 거미줄이지만.... 이제부터 나오는 놈들은 전이되지 않을 테니까.’
이 이후에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습격하는 게 가장 위협적인 몬스터인 강철거미와 어스웜.
하지만 진수의 [사신의 감각]과 최지원이 가져온 몬스터 감지 아이템 덕분에 위기는 생기지 않았다.
“키에에엑!”
보스 몬스터는 커다란 어스웜이었다.
다만 그냥 일반 어스웜들보다 조금 더 힘이 강한 개체였는지 전이가 되지는 않았다.
“휴, 끝났네요. 아쉽게도 아이템은 안 나왔지만.”
최지원은 꽤나 섭섭한 듯 보였다.
던전에서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희박하긴 하지만 나오면 일단 마석이나 몬스터 부산물보다는 훨씬 값이 나가니 아쉬울 만도 했다.
‘확실히 아이템이 좋긴 좋으니까....’
[투명화] 아이템과 자동 회수 도끼를 써본 진수로서는 아이템의 인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선 나가볼까요? 현장반장님한테 아까 그 사람들 들어올 때 별 일 없었는지도 물어봐야겠네요.”
“그래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었어요. 생긴 건 꼭 만화 같은 데에 나오는 2인조처럼 생겨가지고....”
진수는 그녀의 표현에 피식 웃었다.
덩치 큰 인물과 쥐처럼 생긴 자의 조합.
확실히 익숙한 2인조의 모습이었다.
“아이구, 그 사람들이 일행이라고 하길래 우리 진수랑 같은 공략조인 줄 알았지. 나중에 합류하는 경우도 왕왕 있잖아?”
현장반장의 말이었다.
공략조 측에서 인원이 몇이다 그런 정보까지 일당 헌터 팀과 공유를 하지는 않으니 그들이 던전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을 근거는 없었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던전에 무단으로 침입했다간 헌터 범죄로 취급되어 헌터범죄전담기관에 넘어갈 수도 있기에 어지간해선 임자 있는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다.
‘근데 말하는 걸로 봐서는 한국 사람들이 아닌 것 같긴 했는데....’
“그 사람들 금방 나오던데 뭐 문제 있었어?”
“무단 침입자들이었어요. 근데 진수씨가 딱- 막아서더라고요.”
진수의 눈치를 보며 묻는 현장반장.
그의 물음에 최지원이 도리어 신나서 자랑하듯 말했다.
“아~ 역시 우리 진수. 예전에 우리 팀에서 일할 때도 아주 똑 부러져서 어딜 가도 걱정할 게 없겠다 싶었어. 하하하!”
현장반장이 과장되게 엄지를 치켜들며 웃었다.
‘똑 부러지기는... 처음 일 하던 날에 갈무리용 단검 부러트렸다고 엄청 혼냈으면서....’
진수가 속으로 투덜대는데 최지원과 현장반장만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말요? 어쩐지 던전 안에서도 되게 잘 하더라고요~”
“그럼요, 진수가 워낙 솜씨가 좋습니다. 하하!”
“무기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힘이 얼마나 좋은지!”
이런 별 영양가 없는 말들이었다.
그들이 떠들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진수의 덩치가 커졌다.
자연스러운 변화였기에 누구도 눈치를 채지는 못했다.
‘어? 진수씨 키가 갑자기 커 보이는데...?’
그저 최지원의 눈길을 잠시 끌었을 뿐.
‘뭐야, 이거. 쥐 인간...?’
진수는 분신이 [분열]을 해제하며 전해온 기억을 되짚으며 놀랐다.
하얀 털을 지닌 쥐 모습으로 변하는 사내.
다른 던전을 물색하는 인물.
이내 인간 형태로 되돌아와서는 출발한다.
둘은 진수 때와 마찬가지로 이미 일당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는 던전으로 향했다.
능글맞게 공략조원이라면서 던전으로 들어간다.
일당 헌터들은 자신들과 별 관계가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내버려두는 모습이었다.
‘그런 식으로 한다 이거지.... 근데 남들이 이미 들어간 던전을 왜 노리는 거지?’
분신이 전해준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시간상으로는 진수가 던전을 클리어한 시점과 그리 차이나지 않았다.
방향은 임무가 계속해서 안내를 해주고 있으니 굳이 분신의 기억을 되짚을 필요도 없는 상황.
“지원씨.”
“네?”
“제가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그런데, 여기 정산 같은 것 좀 부탁해도 될까요?”
“아... 그래요? 알겠어요. 근데 꼭 지금 바로 가야 되는 거예요?”
“네. 미안해요. 다음에 밥이라도 한 번 살게요.”
남의 던전으로 들어간 그들이 뭘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진수는 최지원의 표정이 뾰로통해지는 것은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급히 인사를 하고 떠났다.
‘한 10분 전력질주 하면 도착하겠다.’
진수는 임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적당한 높이의 건물 정도는 [강철 거미줄]을 활용해 뛰어넘을 수 있으니 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아, 근데 던전 안에 다른 사람들도 있을 텐데 어떡하지...?’
달려가던 진수의 머릿속에 한 가지 걱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진 생각은 정효원을 잡을 때 썼던 조잡한 호랑이 가면.
그때 공간압축 주머니 안에 대충 던져놨었던 게 생각난다.
“흐흐흐... 쥐 잡는 타이거 마스크다 이 말이지.”
진수의 얼굴에 다시 장난기가 돌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진 그는 순식간에 던전 근처에 도착했다.
아직 일당 헌터들이 문 앞에 있는 것으로 보아 공략조가 나오진 않은 모양.
호랑이 가면을 쓴 진수는 [투명화]와 [유체화]를 사용해 일당 헌터들 몰래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챙! 챙!
안쪽에서 들려오는 병기 부딪히는 소리.
몬스터들 중에서도 무기를 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진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들려오는 소리가 몬스터와 싸우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쥐를 잡자
-휙휙! 휘휙!
쥐를 닮은 사내가 양손에 단검을 쥔 채 매섭게 휘둘렀다.
화려한 동작에 그를 상대하는 헌터는 이미 자잘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가까스로 급소만 방어했다.
-팅!
뒤쪽에서 날아온 화살.
의표를 찌른 기습이었지만 쥐상의 남자는 가볍게 단검을 들어 막아냈다.
폭이 좁은 검날로 화살을 막는 것은 묘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거 아이템 하나만 가져간다는데 왜 그리 성이 났소?”
덩치가 큰 사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뒤에서 관전하며 입만 나불대고 있었다.
싸우고 있는 인원은 총 다섯.
쥐를 닮은 사내와 그를 상대하는 네 명의 공략조원들.
하지만 쥐상은 수적 열세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크크큭!”
오히려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압박할 정도.
이미 공략조원 중 두 명은 꽤 심한 부상을 입고 쓰러져있었다.
“당신들, 무단 침입으로 신고할 거야!”
“신고? 지금 협박하는 거요? 그러면 우리도 순순히는 못 보내주지.”
“크히히!”
혀를 날름거리며 즐거워하는 쥐를 닮은 자.
그는 공략조원 중 활을 사용하는 여성 헌터를 지그시 보았다.
그 눈빛이 마치 사냥감을 보는 짐승 같았다.
“으으...!”
“이 개자식들이!”
쥐상과 칼을 맞대고 있던 헌터가 분개하며 달려들었다.
아마 활을 사용하는 헌터와는 연인 관계인 듯했다.
-챙!
흥분해서 덤비는 그의 칼을 단검 두 개로 겹쳐 잡더니 거세게 당긴다.
그러자 헌터의 손목이 비틀리면서 칼을 놓쳤다.
-쌔액!
쥐 인간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연달아 그의 복부에 단검을 찔러 들어갔다.
그 순간, 바로 옆의 벽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수욱, 퍽!
금방이라도 단검이 헌터의 배를 쑤시려는 찰나에 날아온 드롭킥.
“켁!”
쥐상의 사내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혀를 빼물며 날아갔다.
“정의의 타이거 마스크 등장!”
갑자기 나타난 자는 어설픈 호랑이 가면을 쓴 남자였다.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낀 채로 쥐를 닮은 사내를 내려 본다.
“뭐야, 저 미친놈은?”
관람이라도 하듯 뒤에서 보던 덩치 큰 사내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뭐긴 뭐야, 쥐새끼 잡아먹으러 온 호랑이지.”
호랑이 가면을 쓴 진수는 뒤쪽에 있는 헌터들을 힐끔 보았다.
“저기요. 갑작스러워서 정신없으시겠지만 저기 저놈 도망 못 치게 해주세요.”
“네? 아, 예.”
그들의 대답을 들은 진수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야, 쥐새끼. 사람인 척 그만 해도 돼 임마.”
쥐상의 사내가 진수의 말에 그를 노려봤다.
예상치 못한 변수를 보며 표독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이내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헉! 저게 뭐야?”
“몬스터였어...?”
공략조 헌터들이 경악했다.
쥐를 닮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사람을 닮은 쥐였으니까.
놈은 금방 흰털을 지닌 쥐의 모습이 되었다.
입에서는 붉은 불길이 넘실댔고, 노란 눈빛은 맹수의 그것 같았다.
-팡! 팡!
기분이 상당히 불쾌한 듯 기다란 꼬리는 바닥을 연신 두드렸다.
“건방진 인간. 먹어치운다.”
인간 형태일 때는 한 마디도 안 하던 말을 괴물 형태가 되니 짧게나마 뱉었다.
-챙그랑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바닥에 던진다.
대신 녀석의 손톱이 길고 날카롭게 변하더니 단검보다 더욱 위협적인 모습이 됐다.
“캬아악!”
놈은 네 발로 달려 순식간에 짓쳐들었다.
낮은 자세로 빠르게 한 바퀴 돌며 꼬리로 발목을 노린다.
-스윽
“...?”
하지만 녀석의 꼬리가 닿으려는 순간 [유체화]를 사용해 피해버리는 진수.
놈은 졸지에 수확도 없이 등을 내준 꼴이 됐다.
-퍽!
진수는 있는 힘껏 놈을 걷어찼다.
몸이 활처럼 휘며 튕겨나가는 쥐 인간.
바닥을 몇 차례 구른 뒤에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지만 얼굴에는 고통이 잔뜩 묻어 있었다.
“죽여 버린다!”
독이 잔뜩 오른 녀석이 불을 뿜으며 분개했다.
-쉬익! 쉬익!
양손을 빠르게 휘저으며 공격해 들어온다.
마치 중국 무술처럼 꽤나 체계가 잡힌 동작들이었기에 상대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예리한 손톱은 전투 헌터용 내구 강화 보호의를 종잇장처럼 잘라냈다.
“핫!”
거친 물살처럼 빠르고 강하게 몰아치는 공격들.
진수는 그 사이에 빈틈을 발견하고는 주먹을 뻗어 놈의 주둥이를 노렸다.
하지만 이내 손을 거둬야 했다.
-화르륵!
놈의 입에서 시뻘건 화염이 치솟았으니까.
‘맨손으로 상대하는 건 안 되겠네.’
타이거 마스크라는 컨셉에 충실하고 싶었지만 상대는 설렁설렁 싸워도 될 수준이 아니었다.
-퍽!
불길을 잽싸게 피한 다음 어퍼컷으로 턱을 올려친 진수.
연달아 손날로 목젖을 후려치고 손바닥으로 명치를 내지른다.
그 동작이 전반적으로 레슬링 선수의 모습 같았다.
“크흐흐...! 솜주먹. 실컷 쳐봐!”
하지만 두터운 쥐 인간의 가죽에 타격이 별로 없는지 놈은 실실 웃었다.
이어 과감한 반격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진수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지 않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푹!
이윽고 놈의 날카로운 손톱이 진수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진수의 얼굴에 고통이 물들었다.
“으...!”
왼손으로 자신의 옆구리를 뚫은 손을 붙잡은 진수.
“타이거 찹(Chop)!”
레슬링 기술명이라도 외치듯 소리를 지르며 오른손을 뻗는다.
하지만 쥐 인간의 얼굴은 태연자약했다.
그의 공격은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
그러나 놈의 여유로운 표정은 금방 지워졌다.
진수의 오른손에 도끼가 들려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퍽!
녀석의 왼팔이 자유를 얻어 허공을 날아오른다.
피를 흩뿌리는 모습을 보며 놈은 순간적으로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끼에에엑!”
얼굴에 자신의 피가 뿌려지고 나서야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스르륵
상당히 크게 상처를 입었던 진수는 [중급 재생력]으로 순식간에 회복이 됐다.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이 되었다.
도끼를 휘두르며 위협하는 진수, 그리고 남아있는 한쪽 팔로 상처를 감싸 쥐고 피하는 쥐 인간.
“어어...?”
덩치가 큰 사내는 갑자기 바뀐 상황에 당황한 눈치였다.
슬금슬금 움직이는 사내.
“어딜 가려고!”
진수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강철 거미줄]을 쏴서 발을 묶었다.
그대로 거미줄을 홱 잡아당겨 넘어트리자 다른 헌터들이 그를 제압했다.
-쌔액!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입에서 불을 뱉어 상처를 지진 쥐 인간.
녀석은 남아있는 한쪽 팔로 진수를 공격했다.
상체를 비틀어 피하자 뿜어져 나오는 화염줄기.
처음부터 이걸 위한 공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진수는 [유체화]를 사용하며 앞으로 굴러 놈을 통과해 넘어갔다.
‘으음...!’
불줄기 같은 에너지 덩어리를 통과했더니 마력이 한 뭉텅이 소모되는 것을 느꼈다.
-턱
“이제 끝을 보자.”
쥐 인간의 뒤를 잡은 진수는 녀석의 꼬리를 발로 밟았다.
그의 도끼날이 번뜩인다.
-퍽! 퍽! 퍽!
꼬리를 밟힌 채 등을 내보인 녀석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무차별적으로 내리 찍히는 도끼.
일방적인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놈을 해치우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랫맨 따위의 몬스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녀석이었던 것이다.
-화광수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화광수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10
‘화광수...? 아니 근데 형님, 형님 하더니 이름도 안 지어줬었네.’
이내 쥐 인간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진수는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를 읽으며 의문이 들었다.
화광수라는 몬스터 이름은 처음 듣는데다 같이 다니는 인간과 나름 소통을 하는 듯 보였는데 이름이 없었으니까.
‘이름은 아무래도... 똘기밖에 없지.’
진수는 쥐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변종 미노타우로스 [떵이]와 변종 코카트리스 [키키]와 변종 켄타우로스 [마초]와 화광수 [똘기]가 무리를 이룹니다.
-[떵이] [키키] [마초] [똘기]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카토 평야라는 지역으로 차원 전이가 된 네 녀석들이 한 데 모였다.
‘아, 이렇게 뭉쳤는데 꾸러기 수비대는 못 참지.’
진수는 네 전이자의 무리명을 [꾸러기 수비대]로 지어줬다.
“뭐, 뭐야? 어디 갔어?”
화광수가 사라져버리자 제압당한 채로 보고 있던 덩치 큰 사내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따란- 쥐새끼가 사라지는 마술이었습니다. 이제 니 인생이 사라지는 마술도 보여줄게.”
진수는 순간이동 마술을 성공시킨 마술사처럼 양손을 펼쳐 보였다.
이어 [강철 거미줄]을 연달아 사용해 덩치 큰 사내를 완전히 포박했다.
온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묶은 뒤, 눈까지 가려버렸다.
“저, 저기...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도와주셨는데 어떻게 사례라도....”
진수에게 도움을 받은 공략조 헌터들이 꾸벅 인사를 하며 감사를 전했다.
“하하, 제가 뭐 바라고 온 것도 아닌데요.”
‘정확히는 바라던 건 이미 얻었지.’
그의 목표는 화광수라는 녀석을 전이시켜서 특수임무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원하던 걸 다 챙겼으니 붙잡은 덩치만 헌터범죄전담기관에 넘기면 끝이다.
“어... 잠시만요.”
사례를 사양하는 진수를 보며 그들은 자기네끼리 뭔가 속닥거렸다.
[중급 청각]이 있어 저절로 내용이 들려왔는데, 이걸 드리면 어떻겠냐, 목숨도 구해줬는데 당연히 상관없다 그런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정체를 밝히시는 걸 좀 꺼려하셔서 사례를 안 받으시는 것 같은데, 이거라도 받아주세요.”
그가 내민 것은 주먹만 한 금속이었다.
중앙에 원형의 푸른 금속이 있고 그 주변으로 자잘한 장치 같은 것이 부착된 형태였는데, 겉모습만 봐서는 정체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이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입니다. 보스 몬스터를 잡으니 나왔는데, 저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선 내놓으라고 하더라고요.”
“음... 알겠습니다.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굳이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어쨌든 아이템이면 뭐가 됐든 꽤 비싸게 팔리니까.’
진수는 아이템을 받아 공간압축 주머니에 넣었다.
손에 쥐어도 사용 방법이 저절로 들어오진 않는다.
[투명화] 아이템과는 또 다른 종류의 물건인 듯했다.
* * *
“아, 네. 수사관님. 또 이렇게 연락을 드리네요.”
박철준에게 전화를 건 진수.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에 호송 차량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하죠. 어떻게 사건이 끊이질 않는군요. 특히 대규모 균열 이후로 상황이 어수선해서 그런가... 신고 접수되는 건이 더 늘어났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더욱 피곤에 절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헌터범죄전담기관의 범죄 헌터 호송 차량이 도착했다.
거미줄로 돌돌 감아놓은 채로 뒷좌석에 던져 넣은 진수.
손을 탁탁 털고 놈을 보냈다.
“자~ 이제~ 이 아이템 정체가 뭔지 알.아.볼.까.요~”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머니에 넣어놨던 금속을 꺼내 잠시 살펴봤다.
동묘의 공방 주인인 김건에게 가져가면 아마 식별을 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동묘 시장을 향해 출발하려는데 진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박철준 수사관]
“응? 왜 금방 다시 전화를 하셨지?”
전화를 받아보았다.
-김진수 헌터. 조금 전에 넘겨준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네?”
-완전히 말라붙은 시체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잘 만났다
뜯어진 거미줄 속에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게 말라붙은 시체가 보인다.
아니, 시체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모습이다.
마치 고목나무로 사람의 모양새를 갖춰놓은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박철준 수사관에게 전화를 받고 임시 수감소로 찾아온 진수가 본 것이었다.
세계적으로도 권위 있는 기술 연구자인 조민준이 [강철 거미줄]을 쓰는 사람은 진수 외에 알려진 이가 없다고 했다.
[강철 거미줄]에 둘둘 말린 채로 삐쩍 말라있는 이게 진수가 잡았던 덩치 큰 사내였던 것이라는 뜻이다.
“이 사람을 인계 받고 차에 태운 채로 여기 임시 수감소로 데려왔는데, 차에서 꺼내니 이미 이런 상태였습니다.”
호송 차량을 운전한 헌터범죄전담기관의 사람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잠시....”
진수는 [강철 거미줄]을 풀어헤쳤다.
전신이 드러나자 시체의 정체가 시체가 아님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손이나 발 따위의 말단 부위가 나뭇가지의 형태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건... 부적...?’
나무가 되어버린 시체를 살피던 그의 시야에 누런 종이가 하나 들어왔다.
얼기설기 얽힌 몸통 부분에 끼어있었다.
꺼내서 펼쳐보니 확실히 부적처럼 생긴 종이.
붉은색 안료로 복잡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 둘을 감식반으로 넘겨주시겠어요? 아무래도 기술 같은 걸 쓴 게 아닌가 싶네요.”
진수는 헌터범죄전담기관 호송 차량 운전자에게 부적을 넘겨주었다.
그는 그렇게 하겠다 답하며 나무와 부적을 들고 사라졌다.
‘참 나, 별 일이 다 있네.’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동묘앞역으로 향했다.
“사장님! 잘 계셨어요?”
공방으로 들어서는데 꽤나 낯선 풍경이 보였다.
구석진 위치에 자리 잡아 손님은 거의 진수뿐이었던 공방에 사람들이 많이 와있는 것이다.
‘사장님 실력이 워낙 좋아서 소문이 났나? 근데 차림새로 봐서는 헌터들이 아닌 것 같은데....’
김건이 마력공학을 이용한 다양한 도구를 만들지만, 대개 헌터용 장비에 치중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공방을 채운 사람들은 헌터용 장비를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느껴지는 마력 자체도 대부분 비각성자이거나 마력 능력치가 높지 않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어, 왔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김건이 진수를 발견하곤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무뚝뚝한 그로서는 상당한 감정표현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진수가 반가웠다.
“자,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손님이 와서....”
쭈뼛거리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진수에게 다가오는 김건.
“무슨 일이에요?”
“지난 번 균열들 터졌을 때....”
임병옥에 의해서 대규모 균열 사태가 발생한 날.
김건과 몇몇 동묘 공방 장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장비를 사람들에게 빌려주었다고 한다.
동묘 시장은 상인들과 손님들이 밀집된 형태였기에 대피소가 부족한 환경.
그들 덕분에 비각성자들도 최소한의 자기 방어가 가능했다.
그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연일 공방에 찾아와 감사인사를 전한다는 것이다.
“와... 사장님 멋지시네요.”
진수는 진심을 담아 엄지를 치켜들었다.
“거! 그쪽까지 그렇게 금칠하지 마슈. 낯간지러워 죽겠으니까.”
김건이 턱을 벅벅 긁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물론 내심 흐뭇한 표정은 감추지 못했지만.
“그럼 저 분들이랑 좀 더 이야기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짝들한테 빌려준 장비, 다 덕분에 만든 거요. 나한테 고마워할 일이 아니란 거지.”
그는 진수에게 턱짓을 하며 말했다.
김건 특유의 실험정신 때문에 마진이 안 나와 운영이 힘들던 공방이다.
진수가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웃돈과 마석을 쥐어주며 의뢰를 하지 않았다면 이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못했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김건이 사람들을 제치고 먼저 진수에게 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왔수?”
“이거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인데, 어떤 종류인지 알 수가 없어서요. 좀 확인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진수는 공간압축 주머니에서 금속으로 된 아이템을 꺼냈다.
“이리 줘보쇼.”
김건은 아이템을 건네받고 이리저리 살폈다.
그의 눈가에 미세하게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아마도 식별, 검사하는 계열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흠.”
상당히 복잡한 뉘앙스의 소리를 내는 김건.
진수는 그 모습에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왜 그러세요?”
“아.... 이거 뭐라고 해야 하나? 분명 가치가 있는 물건은 맞는데, 쓸모는 없수.”
“그게 무슨...?”
“이거 자체는 에너지를 받아서 전환해주는 기능을 하는 아이템이오. 근데... 구조 상 그 에너지를 받아주는 짝이 있어야 하는데... 그 짝이 없다보니까 이거 하나만 가지고는 쓸 수가 없단 말이지.”
진수는 그의 부가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다.
“그럼 돈도 별로 안 되겠네요...?”
“뭐, 아이템 연구하거나 하는 쪽에서는 혹시 또 모르지. 나도 일단 아이템에 적용된 기술은 좀 더 파헤쳐보고 싶긴 한데....”
김건이 손에 든 아이템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럼 당분간은 사장님께 맡길게요.”
“그래도 되겠수?”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워낙 다양한 시도를 하는 기술자다보니 새로운 기능, 기술에 대한 작은 단서도 그에겐 상당히 달콤한 먹이였다.
지적 포만감을 채워줄.
“물론이죠. 사장님께서 공부를 해주시면 저한테도 좋은 걸요.”
‘일종의 부속 연구소 같은 개념이라고나 할까...? 흐흐.’
김건의 설명을 들어보니 어차피 진수에게는 돈 몇 푼의 값어치밖에 못 해주는 아이템이었다.
차라리 그 기술을 분석해서 써먹을 수 있는 김건에게 넘기는 게 나았다.
지금 사용하는 전기톱처럼, 수리·개선을 한 [투명화] 아이템처럼 언젠가 그 기술력을 사용할 때가 올 테니까.
“고맙수. 다 살펴보면 연락드릴게.”
김건은 상당히 신이 난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당장이라도 공방 문을 걸어 잠그고 아이템을 연구하고 싶은 눈치였다.
“네, 전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봬요.”
진수는 그런 그를 보고 피식 웃으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나저나, 그때 영상이 생각보다 인기를 끄네.’
공방에서 나온 진수는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플랫폼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했다.
그 중 즐겨찾기를 해놓은 영상.
바로 이기태가 진수의 손에 붙잡힌 채로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마치 드론으로 생생한 현장을 담은 듯 독특한 촬영 기법에 분위기에 맞는 편집과 배경음까지.
잘 짜인 영화를 보는 것 같았기에 조회수가 연일 증가하고 있었다.
“흐흐흐... 촬영은 그놈이 했지만 영상 주인공은 나라는 거지.”
동영상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바로 진수.
이기태는 영상 내에서 진수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여지가 있는 부분은 모두 편집을 해두었다.
그렇기에 최지원처럼 진수가 도끼를 투척하며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동영상과 진수를 연관 지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진수는 동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이 정도면 몇 급 헌터임? 도끼 한 방에 몹들 원킬 내는데..? 지린다...]
[팔뚝에 핏줄 ㅗㅜㅑ;; 미쳤다 미쳤어]
[와 ㄹㅇ 작살난다 09:17 도끼 던지고 옆에서 튀어나오는 고블린 한손으로 때려잡는거 개멋있음]
이런 댓글들에는 좋아요를 하나씩 눌렀다.
[싸움 실력에 균열 막으러 나왔으면 인성까지... 헌터니까 돈도 많겠지? 다 가졌네 ㅡㅡ 제발 3센치...!]
‘이건 좀 애매한데?’
진수는 좋아요를 눌러야 하나 순간 멈칫했다.
이내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그.
‘뭐... 자신 있으니까.’
[ㅋㅋ 이거 다 템빨임 나도 아이템 쓰면 저 정도는 함]
[도끼 저렇게 쓰는 거 아닌데 실력 개구리네]
[이딴 ㅅㄲ도 헌터라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겠지? 극혐]
싫어요를 한 번씩 눌러줬다.
‘너무 옹졸한가...?’
잠시 고민하던 그는 댓글에 누른 싫어요를 취소했다.
싫어요가 눌려있는 악플 밑에 달린 대댓글을 본 탓이었다.
[영상 주인공 왔다갔네]
‘아오... 저건 내가 누른 거 아니란 말이야.’
억울한 마음을 누르며 댓글들을 계속 확인해봤다.
영상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게 알려진 건 아니었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으니 괜히 흥분이 되었던 것이다.
“어?”
[저 이 분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얼마 전에 던전에서 도움 받았는데 영상에 나오는 도끼 쓰시더라고요]
[ㄹㅇ? 어떻게 생김?]
[이상하게 생긴 가면 쓰고 있어서 얼굴은 못 봤어요 무슨 조선족 같은 사람들이 던전 무단 침입했는데 이 분이 도와주셨어요]
댓글에 그를 보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마 똘기를 전이시킬 때 있었던 헌터들 중 하나인 듯했다.
[요즘 그 이상한 조선족들 얘기 많던데 뭐하는 놈들이지?]
[나 아는 공략조도 당했다 그러던데 덩치 큰 사람이랑 원숭이 닮은 사람한테]
[천하에,,,쓰레기같은놈들,,,던전에서,,,동포찾으면서덤비는데,,,아이템도둑질당했다,,,]
그 댓글 아래로는 어눌한 말투를 쓰는 2인조에게 당했다는 대댓글이 상당히 많이 달려있었다.
대체로 덩치가 큰 사내는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 같았고, 나머지 한 명에 대한 이야기는 달랐다.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참, 똘기 종족이 화광수라고 그랬지? 이게 뭔지 찾으면 단서가 좀 나올라나.’
진수는 핸드폰으로 화광수를 검색해봤다.
주로 중국에서 나오는 몬스터.
쥐를 닮아 랫맨과 헷갈릴 수 있지만, 불에 내성이 있고 화염을 뱉는다는 차이가 있다.
랫맨보다 훨씬 높은 위험도를 지닌 몬스터로 지능이 높은 편은 아니다.
헌터 위키에는 위와 같이 나와 있었다.
‘중국이라.... 근데 분명히 말도 하고 지능이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는데....’
여러 가지 이상한 점들이 많았다.
중국에서 주로 나타나는 몬스터의 등장.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목격했다는 덩치 큰 사내들.
진수가 제압한 사내는 부적이 붙은 나무인형으로 변했다.
덩치 큰 사내와 이상한 인물들이 나타나는 곳은 대부분 던전이라고 했다.
진수와 최지원이 돌던 던전은 D~C급 난이도의 던전.
‘그때 분명히 덩치가 핸드폰으로 던전 정보들 확인해서 다녔지.’
여러 가지 정보들을 종합해봤을 때, 등급이 높지 않은 던전들만 노리는 이들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좀 알아봐야겠다.”
진수는 핸드폰을 꺼내 헌터 협회에서 제공하는 던전 목록을 살펴봤다.
이미 누군가가 공략 권한을 구입한 던전을 확인한다.
그 중에서도 위험 등급이 낮은 곳들로.
‘우선 이 주변에도 몇 군데 있네. 한 번 살펴나 보자.’
핸드폰을 집어넣은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던전을 향해 움직였다.
몇 군데의 던전 입구들을 다니며 누군가가 뒤늦게 들어가는지 확인해봤지만 연신 허탕만 쳤다.
‘내가 너무 무식하게 찾나...?’
대여섯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전혀 수확을 얻지 못한 진수.
그는 순간적으로 회의감이 들었다.
“진짜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가보자.”
가장 가까이에 있는 D급 던전으로 향한 진수는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가 잡았던 덩치 큰 사내.
그리고 그 옆에는 눈이 크고 얼굴이 세모꼴인 남자가 있었다.
검은자위가 굉장히 큰 인물이었는데, 일단 앞서 전이시킨 화광수와는 다른 녀석이 분명했다.
‘오케이. 잘 만났다.’
진수는 호랑이 가면을 꺼내서 얼굴에 뒤집어썼다.
어디 모기가 무나?
“당신들 뭐야? 여기 공략 권한 구입한 던전이니까 딴 데 알아봐!”
“거 너무 팍팍하게 그러지 마시오. 우리도 엄연히 한국인이요. 서로 돕고 사는 것 아니겠소?”
“이 새끼들 요즘 설치고 다닌다는 그 놈들이네. 잘 만났다. 우리가 그냥 손 풀려고 D급 던전에 들어왔지만 다 C급, B급이야 새끼들아!”
덩치 큰 사내와 얼굴이 세모꼴인 남자.
그리고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세 명의 헌터들.
그들 사이에서 흉흉한 기류가 흘렀다.
“형님.”
덩치 큰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다른 한 명이 머리만 돌려 뒤를 돌아봤다.
“어떻습니까?”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
하지만 세모꼴의 남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한 듯했다.
기계적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그 모습에 덩치가 씨익 웃었다.
“안 그래도 여기 던전에서 아이템은 안 나왔다고 하니까... 간만에 배나 채우십시다.”
그는 한 발짝 뒤로 빠지며 말했다.
은근슬쩍 던전의 통로를 막으면서.
헌터들은 그 모습에 전투태세를 갖췄다.
-뿌드득! 찌지직!
얼굴이 세모꼴이던 남자의 덩치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피부가 찢어지며 그 안에서 매끈한 키틴질의 외골격이 드러난다.
세모꼴인 머리 형태 그대로 빨간 눈을 지닌 곤충의 대가리가 불쑥 나왔다.
“어어...?”
“이 새끼 뭐야?”
헌터들은 그 모습에 당황한 듯 경악성을 뱉었다.
인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붉은 눈을 지닌 커다란 벌 같은 것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부웅!
빠른 날갯짓에 어디 헬기라도 뜬 것 같은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스슥!
“끄아악!”
그와 동시에 사라지는 괴물 벌.
놈은 한 헌터의 뒤에서 나타났다.
곧이어 비명을 지르며 한쪽 팔을 부여잡는 헌터.
그의 팔은 순식간에 거의 1.5배 정도로 부풀어 올랐고 시커멓게 썩어 들어갔다.
-서걱!
“아아악!”
공략조의 리더로 보이는 헌터가 동료 헌터의 팔을 잘랐다.
점점 썩어 들어가는 부위가 넓어졌기 때문이었다.
“미안.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잖아?”
그는 가방에서 약을 꺼내 동료의 절단 부위에 발라주었다.
“뭐하는 새낀진 모르겠지만 스피드형이야. 다들 조심해.”
-부웅-
다시 시작된 날갯짓.
장난이라도 치는 듯 이번엔 바로 공격하지 않고 주변을 빠르게 날아다녔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 놈이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잘~들 해보시오.”
비웃듯이 말하는 덩치.
놈의 말에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찰나, 거대 벌이 사라졌다.
“아악!”
이번엔 리더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는 한쪽 손목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손이 거칠게 뜯겨져 나가 있었다.
무기를 들고 있던 쪽이었다.
-콰득, 콰득
리더의 손은 괴물 벌의 입에 물려 있었다.
놈은 일부러 보이게 하려는 것인지 외부에 드러난 턱으로 고정시키고 이빨로 손가락을 하나씩 끊어서 씹어 먹었다.
“맛있다. 조금 질기다.”
짧은 평을 뱉어내는 녀석.
놈의 눈이 미세하게 휘어 보이는 게, 악랄한 웃음을 짓는 것처럼 보였다.
-부웅!
금세 손 하나를 집어 삼킨 괴물 벌이 다시 날아올랐다.
꽁무니 끝에 달린 침을 까딱거리는 것이, 이번에는 독침을 쏘려는 듯 보였다.
-쌔액-! 퍽!
재차 사라진 놈은 빠르게 짓쳐들어 리더의 등에 독침을 박아 넣었다.
“어디 모기가 무나?”
아니, 박아 넣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천장에서 뚝 떨어진 괴한에게 방해받기 전까지는.
신체가 강화된 헌터의 팔을 순식간에 썩게 만드는 독침을 손바닥으로 막아낸 정체불명의 인물.
괴물 벌이 깜짝 놀라 독침을 빼서 뒤로 빠지자 쏘인 위치에 손톱으로 십자를 꾹꾹 찍었다.
“아이구, 또 만났네?”
투박한 호랑이 가면을 쓴 괴한, 진수였다.
그는 덩치 큰 사내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지난번에 만났던 자와 완전히 똑같이 생겼기에 같은 자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누, 누구시오?”
하지만 놈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완전히 처음 본다는 듯한 태도.
[강철 거미줄]로 만든 호랑이 가면을 쓴 사람이 흔치는 않을 테니 기억을 못 할 리는 없었다.
‘설마 얘네들도 쌍둥이는 아닐 거 아니야.’
진수는 순간 최유권, 최유석 때의 상황이 오버랩 됐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냄새부터 분위기, 생명 반응까지 지난번에 본 자와 동일했다.
‘[분열]...이랑 비슷한 능력인 건가? 대신에 기억을 공유하지는 않고? 저놈도 나무 인형 같은 거일 가능성이 높겠네.’
덩치의 반응을 보며 진수는 그의 능력을 분석했다.
“다친 분들은 몸 추스르시고, 괜찮은 분은 저기 저 덩치 큰 놈 좀 부탁할게요.”
그는 팔이나 손이 잘려나간 공략조 헌터들에게 말을 건넨 뒤, 괴물 벌을 노려본다.
놈은 자신의 독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본 뒤로는 불안한 듯 붕붕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
하지만 진수의 시선은 녀석이 움직이는 것을 정확하게 따라갔다.
[사신의 감각]에는 [중급 동체시력]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빠르게 끝장 보자.”
바로 도끼를 꺼내드는 진수.
-부웅!
그의 손이 잠시 허리춤으로 향하는 사이에 괴물이 달려들었다.
-퍽!
놈의 독침이 진수의 복부를 깊게 관통했다.
하지만 진수는 아랑곳 않고 도끼를 들어올렸다.
“흡!”
단단한 외피를 깨부수며 괴물 벌의 꽁무니에 깊게 박히는 도끼.
녀석은 그 충격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뺐다.
-뿌드득!
도끼질 한방에 너덜너덜해진 꽁무니에서 독침이 뽑혀 나온다.
독침의 뒤로 녀석의 내장 일부가 같이 딸려 나왔다.
“키에엑...!”
진수로부터 거리가 떨어졌지만 이미 놈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말벌인 줄 알았더니 꿀벌이었네.”
배에 박힌 독침을 빼내는 진수.
복부에 생긴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다.
‘요즘 다치는 일이 좀 많아서 그런지,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진 거 같기도 하고....’
어지간한 상처는 쉽게 회복하는 [중급 재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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