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7

치에 눌러앉은 사람이 보였다.
‘주사 맞는 주기가 바뀌니까 박종대 대신 저 사람을 보네.’
마석정제주사를 맞을 수 있는 병원이 얼마 없다보니 같은 마석증을 앓는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익히기도 했다.
‘민...우혁이라고 했나?’
가끔 마주칠 때 나눴던 대화대로면 중국 쪽에서 많이 움직이고 가끔 한국에 들어온다고 했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면서 혼란의 시대가 왔을 때.
북한은 체제가 무너지고 무법지대가 되었다.
덕분에 게이트 사태 이전에 비해 중국과 한국 사이의 육로가 뚫린 셈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한들, 몬스터보다 위험한 인간들이 숨어 지내는 곳이라 갈 일은 없지.’
무법지대는 말 그대로 법이 없는 땅.
소리 소문 없이 사람이 죽어나가고, 온갖 범죄자들이 몸을 피하는 곳이다.
몬스터 서식 필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험지역이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여기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낸다니, 대단하다 대단해.’
진수는 속으로 민우혁에게 존경을 표했다.
-여기는 노원구 석계역 인근의 균열 발생 현장입니다. 지금도 몬스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요. 저기 앞에 보시면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보입니다. 지금은 안쪽이 녹아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막 현장에 도착했던 기자들에 따르면 A급 헌터 박가은의 모습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이에 그녀가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균열 사태 이후로 박가은 헌터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화면은 전환되며 한 민간인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뭐 자기가 A급 헌터라고 건물에 있는 사람들 다 나와서 어디 가라고 하더라고. 근데 막상 피했다가 돌아오니까 우리 사무실 벽면이 허물어져 있는 거 아니겠어요? 몬스터 잡아서 돈 버는 건 헌터들이고, 피해는 우리만 봐야 해요? 게다가 요즘에는 균열 막으라고 하면 잘 오지도 않드만.
불만이 가득한 모습.
화면은 박가은이 만티코어의 앞발에 맞고 날아가 박힌 건물의 외관을 비췄다.
-잦아드는 균열. 그리고 헌터들의 실수에서 비롯한 피해에 고통 받는 시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니, 만티코어가 나올 줄 알았겠냐고. 저걸 헌터들의 실수라고 말을 하네?’
진수는 뉴스 보도에서 굉장히 악의적인 단어를 선택했다고 느꼈다.
-다음 소식입니다. 국내의 제약회사 뉴트럴바이오에서 특성과 기술을 직접 주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뉴트럴바이오 대표 이사의 인터뷰를 들어보시죠.
-띠리리링 띠리리링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진수의 핸드폰에 벨이 울린다.
박철준 수사관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김진수 헌터. 어제 줬던 자료들, 정황 증거들을 종합해봤을 때, 유추할 수 있는 세력은 한 곳이에요. 뉴트럴바이오라는 제약회사입니다. 연구 시설, 인력, 그리고 원한관계까지. 아직 정확한 물증을 잡지는 못 했지만 유력합니다.
진수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박철준의 말에 순간 멍해졌다.
그의 시선은 병원 로비에 틀어져있는 텔레비전으로 향해있었다.
-우리는 헌터들의 이기적인 변명에 지쳤습니다. 저희 뉴트럴바이오에서는 앞으로 헌터가 없는 세상, 누구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아갈 것입니다.
헌터들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자신들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득 담아 열변을 토하고 있는 뉴트럴바이오의 대표.
진수는 화면에 나오고 있는 사람과 일면식이 있었다.
분위기
-헌터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오직 힘뿐입니다. 여러분은 총을 든 어린아이에게 목숨을 맡길 수 있습니까? 칼 든 양아치에게 보호를 바랄 수 있나요? 저는 미래에 헌터가 되겠다는 자들에게 아들을 잃었습니다. 우리의 안전, 우리의 미래는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지킬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강한 어조로,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며 말하는 자.
뉴트럴바이오의 대표라고 하는 인물은 바로 임병옥이었다.
용산에 있는 고아원에서 오래 봉사를 했다던.
‘고아원 근처에 있던 몬스터끼리 싸우던 흔적...!’
진수는 그 당시 기억을 되짚어봤다.
균열이 터지기 전에 급히 떠나던 그녀.
고아원을 지킨 듯한 흔적의 몬스터 사체들.
어쩌면 그날 대규모 균열도 뉴트럴바이오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의심까지 들었다.
-... 뉴트럴바이오의 대표인 임병옥은 양태규, 배혜지, 정용 이 셋에게 원한이.... 김진수 헌터? 듣고 있습니까?
충격을 받은 진수는 순간적으로 박철준의 말을 놓치고 있었다.
“아, 말씀하세요.”
-뉴트럴바이오 대표 임병옥이 양태규, 배혜지, 정용 세 사람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한이요?”
진수가 집을 살 때 만났던 귀신, 양태규.
정효원이 만티코어로 노리던 B급 헌터, 배혜지.
그리고 누군지 처음 들어보는 인물, 정용.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들이었는데 박철준은 임병옥이 그들에게 원한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양태규 시체 안주머니에 뉴트럴바이오 영양제가 있었지.’
-세 사람은 헌터 아카데미 동기들입니다. 또, 임병옥의 아들 송이섭도 동기생이었죠. 세 사람은 송이섭을 따돌린 주동자들로, 이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송이섭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양태규... 학교에서 사고 친 게 미안하다는 말이 이거였구나...? 이거 아주 개새끼구만!’
임병옥이 고아원에서 보여줬던 헌터에 대한 묘한 적개심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그런 인간들이 능력만 되면 헌터가 될 수 있다는 현실에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말 그대로 헌터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을 것이고.
‘그래도 아이들을 희생양 삼는 건 아니지.’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고 악행까지 이해해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정황상의 증거로는 확실하지만, 아직 완전한 물증이 없습니다. 이게 문제죠. 이 타이밍에 의도적으로 언론에 스스로를 노출시켰어요. 사람들의 이목이 임병옥과 뉴트럴바이오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저들에게 유리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기에 함부로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움직이면 보복성 수사라는 오해를 받을 겁니다. 굉장히 영리한 인간이군요.
“제가 찾았던 남양주의 연구소나 정효원, 최유석 같은 사람들로도 증거가 부족한가요?”
-실질적으로 그들이 뉴트럴바이오와 연결되는 것이 없어요. 그들끼리의 연결점은 찾을 수 있었지만... 임병옥을 잡을 증거는 안 됩니다.
“흠... 알겠습니다. 우선 다른 증거들을 찾으면서 반격을 준비해보죠. 몇 군데 살펴볼 곳들도 떠오르는 게 있고요. 아, 가능하다면 용산에 있는 보영고아원을 좀 조사해주시겠어요? 임병옥이 거기서 자주 자원봉사를 했었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수는 우선 박철준과의 통화를 마쳤다.
-곧 누구나 특성과 기술을 얻을 수 있는 제품이 발매될 겁니다. 절대로 미래의 안전을 담보로 돈벌이를 하는, 그런 헌터들과 같은 행보를 걷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텔레비전에서도 임병옥의 인터뷰가 마무리 되고 있었다.
“어이구, 사람이 참 됐네, 됐어.”
“맞아, 요즘 균열은 늘어나는데 균열 막는 헌터들은 줄었어.”
병원 로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의 말에 동조하는 이야기들이 웅성웅성 퍼졌다.
진수는 그런 사람들을 반응을 한 번 잠자코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 * *
만티코어에 의해 건물 벽이 무너졌다는 민간인과 뉴트럴바이오 대표 임병옥의 인터뷰가 뉴스에 나온 이후로 헌터들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에서 헌터에 의해 피해를 봤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덮어놓고 헌터를 욕하는 반응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제목 : 헌터의 미래
작성자 : 회귀자
본문 :
추천:32 반대:17
댓글(156)
-? 본문 내용이 없는데
ㄴ헌터의 미래가 없다고 ㅋㅋㅋㅋㅋ
ㄴㄹㅇㅋㅋ
ㄴㄹㅇㅋㅋ
-헌터들 부들부들하죠? 근데 아무 것도 못하죠?
-작성자 닉 회귀자 ㅇㅈㄹ ㅋㅋㅋㅋ 근데 ㄹㅇ루다가 헌터들 다 망한 거 아니냐
-뉴트럴바이오 주식 엄청 올랐던데, 안티헌터코인 오지게 탔네
-내가 봤을 때 뉴트럴바이오 그거 다 뻥카다. 행복회로 그만 돌리고 자기 일이나 열심히 해라.
ㄴ네 다음 퇴물
ㄴ너야말로 되도 않는 소리 하지 말고 은퇴 준비나 해라
ㄴ응 아니야~ 행복회로는 너만 돌리고 있어
-헌터라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던 인간들 다 일자리 알아봐야 할 각임 ㅋㅋ
ㄴㄹㅇ 칼밥 먹고 살던 놈들 어디에서 뽑아주냐 ㅋㅋㅋ
-얘들아 아직 뉴트럴바이오에서 만들 거라는 게 시판도 안 됐는데 일단 중립 기어 박아라
.
.
.
헌터들의 커뮤니티인 헌터넷에도 이런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었다.
온라인 반응만 봐서는 모두가 헌터의 몰락을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온라인 여론 만드는 알바라도 돌리는 거 아닌가...?’
진수는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헌터넷을 살피면서 정말 이런 반응이 대세인가 고민했다.
누구나 능력이 생기면 목숨 걸고 싸우길 바랄까?
헌터들 중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이면 몬스터와는 싸우지 않고 헌터대전이나 연예계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균열을 막고, 던전을 클리어하는 과정 중에서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데 누구나 원하는 직업이라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차라리 뉴트럴바이오에서 만든다는 약이 나와서 직접들 경험을 해보면 반응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
-이번 역은 석계, 석계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진수는 지하철을 타고 다시 석계역에 방문했다.
벌써 상당 부분 파괴되었던 거리가 복구되어 있었다.
헌터 협회에서 하는 역할 중 하나였다.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를 처분하고 생긴 돈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아 몬스터나 헌터에 의해 생긴 피해를 복구하는 것이다.
‘저 건물도 거의 다 고쳐졌네.’
박가은이 날아가 박히며 벽을 허물었던 건물.
헌터 협회에서 벌써 복구 작업을 해두었다.
‘벽이 무너져서 잠시 불편할 순 있지만 무조건적으로 피해만 봤다는 식으로 인터뷰를 한 건 뭔가 좀 부자연스러웠어.’
진수는 애초에 인터뷰를 했던 그 사내가 벽이 무너진 건물에 사무실을 갖고 있었는지부터 의심을 하고 있었다.
“음? 뭐지?”
해당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행색으로 봐서는 헌터들은 아니었다.
“저쪽 건물이 무너졌다고 해서 구경하러 갔죠. 그런데 보고 오니 우리 사무실이 무너진 거예요. 보자마자 눈물이 났어요.”
사람들 가운데에 있는 남자는 몹시 슬프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라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다.
위로나 공감 따위를 해주러 온 사람은 없었다.
그저 이야깃거리를 찾아 온 것이다.
개중에는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로 남자의 이야기를 찍는 이들도 있었다.
‘저런 사람들이 또 온라인에 올리고, 다시 확산시키는 거겠지.’
적극적으로 말을 하고 있는 사내가 바로 진수가 찾던 그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한테 열심히 헌터들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니는 듯했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고 나니 레파토리가 동났는지 한 말을 또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균열 때문에 사무실 벽이 무너졌다는 것뿐이니 더 오래 이야기를 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이내 사람들은 흥미를 잃고 흩어졌다.
‘이제 넌 어디로 가냐.’
진수는 홀로 남은 사내를 지켜보았다.
과연 그가 주장하는 대로 벽이 무너졌던 건물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디론가 떠날 것인지.
그는 쭈뼛거리더니 건물 안 쪽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이 입구가 어딘지 잘 못 찾는 듯 어색한 태도였다.
사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나자 진수가 움직였다.
[투명화]를 사용해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갔다.
“어휴, 이것도 영 힘드네.”
새로 복구된 벽 안쪽에서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온다.
진수는 [유체화]까지 사용해 안쪽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 안은 평범한 사무실처럼 되어 있었고, 컴퓨터가 놓인 자리가 네 곳이었다.
‘근데 왜 사람은 한 명뿐이지?’
밖에서 열심히 떠들던 사내만이 사무실에 앉아있다.
그것도 굉장히 어색한 모습으로.
컴퓨터도 켜져 있지 않았고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 남자.
마치 자신이 원래 있던 사무실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임병옥의 발표가 폭발적인 반응을 냈던 건 사실 그 앞에 이 사람의 인터뷰가 있었기 때문이지. 근데... 그 내용이 좀 부자연스러운 게 있었어.’
진수가 이 건물을 가장 먼저 찾아온 이유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내의 인터뷰부터가 뉴트럴바이오의 계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 건물에 인터뷰를 했던 남자가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고 왔다.
그런데 의외로 실제 벽이 무너진 사무실에 사내가 들어오긴 했다.
그 모습이 어색해보일 뿐.
‘혹시 여론 만들겠다고 이 사무실을 사버렸나?’
진수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유체화]를 풀고 박철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석계역에 인터뷰 했던 사람 사무실 계약이 언제 됐는지 좀 알아봐주세요.]
‘움직인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다시 벽을 타고 내려가려는데 [사신의 감각]에 사내가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건물 뒷문으로 나온 그는 주변 눈치를 살피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태도.
진수는 눈을 빛내며 그 뒤를 쫓아갔다.
골목골목으로 움직이던 그는 하천 쪽으로 향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하천가로 내려가더니 물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속도로 봐서는 그도 신체 능력이 뛰어난 헌터인 듯했다.
‘아니, 자기도 헌터면서 헌터 까는 인터뷰를 했단 말이야? 점점 냄새가 심해지는데.’
달리기라면 진수도 어디서 밀리지 않는다.
사내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로 조심스럽게 뒤를 쫓았다.
대략 5분 정도 달리니 작은 산이 하나 나왔다.
그는 하천가에서 벗어나 산으로 들어갔다.
‘여기에 뭔가 있나?’
진수는 [강철 거미줄]을 사용해 얼굴을 가릴 가면을 만들어냈다.
바삐 만들었더니 목공용 풀을 대충 굳혀 만든 것 같은 가면이 나왔다.
‘무슨 얼굴 피부가 녹아내린 것 같은 비주얼이네.’
자신이 만든 가면에 대한 짧은 감상을 떠올린 그는 가면을 쓰고 산에 올랐다.
“누구냐 너?”
산의 중턱에 멈춰선 사내.
진수가 더 이상 기척을 감추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자 그가 물어왔다.
“거짓말 하는 놈 잡으러 온 귀신이다.”
진수는 능글맞게 웃으며 답했다.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코웃음 치는 사내.
그는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파스스
-타닥, 타닥, 타닥
“그런 가면이나 쓰고 있는 놈이 제대로 답해줄 리가 없지. 맞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남자는 상당히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자신감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진수와 그를 중심으로 몬스터 네 마리가 나타났으니까.
하나같이 흉흉한 눈빛을 보이는 녀석들.
아마도 모종의 실험이 진행된 변종 몬스터인 것 같았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준비했어? 고맙게.”
진수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득템?
-변종 어스웜 [요롱이] 차원 전이 성공.
-변종 석사 [대학원생] 차원 전이 성공.
-변종 모래거미 [아라크네] 차원 전이 성공.
-[요롱이]와 [대학원생]과 [아라크네]가 무리를 이룹니다.
-[요롱이] [대학원생] [아라크네]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뉴트럴바이오가 준비해놓은 변종 몬스터 세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차원 전이가 되자마자 무리를 이루는 녀석들.
나머지 한 마리는 변종 코볼트였기에 사체가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
“잘~ 먹고 갑니다.”
진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뉴트럴바이오랑 엮이면 은근히 쏠쏠하게 전이시킬 수 있다니까? 맘 같아서는 연구실 하나에 연구원들 몰아넣고 몬스터들 변종을 뽑아내게 만들고 싶을 정도야.’
그는 뉴트럴바이오의 연구원들이 소름 돋아할 생각을 했다.
‘무리명은 출신이 출신이니까, 뉴트럴바이오 친구들로 할까.’
-석사 [롱스톤]과 만티코어 [웰시코기]가 [뉴트럴바이오 친구들] 무리에 합류합니다.
지금 차원 전이시킨 세 마리의 몬스터는 모두 황금바다라는 곳으로 전이됐다.
여기에 같은 곳에 있던 롱스톤과 웰시코기가 합류하며 아틀란티스와 망자 군단 다음으로 큰 무리가 만들어졌다.
“그나저나, 요즘 뉴트럴바이오 건 때문에 영 차원 전이 된 애들한텐 신경을 못 썼네. 임무도 전혀 못 받고.”
진수는 상태창을 한 번 쭉 훑어봤다.
어차피 그에게 보이는 정보는 굉장히 한정적이었기에 특별히 이상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고돌이가 올림포스 무리가 있는 마굴로 향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특이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혹시 몬스터 몇 마리 전이시키는 그런 임무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받아나 놔볼까?’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무를 받아본다.
-임무 : 슬라임 [포세이돈]의 위엄을 세워줄 물건 전송하기 !
-보상 : 물건의 효과에 비례한 [아틀란티스] 무리의 성장
“아~ 이걸 안 맞춰주네.”
진수는 아쉬움에 탄식을 냈다.
‘슬라임 위엄을 뭘 어떻게 세워주라는 거야? 왕관이라도 만들어서 보내줘야 하나.’
도저히 감이 잘 잡히지 않는 임무 내용.
우선 느낌표를 눌러 상세 설명을 읽어보기로 했다.
-[아틀란티스]가 요정의 호수를 넘어 세력을 확장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주변의 몬스터들은 슬라임이 이끄는 [아틀란티스] 무리를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주변 몬스터들에게 슬라임 [포세이돈]의 위엄을 세울 수 있는 물건을 전송하십시오. 전송한 물건이 얼마나 효과적이냐에 따라 [아틀란티스] 무리의 성장 정도가 달라집니다.
‘확실히 슬라임이 이끄는 집단이라고 하면 우습게 보일 순 있지. 슬라임이 마법을 쓰고 변신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진수는 임무 내용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신이 생각해도 주변의 몬스터라는 녀석들의 생각이 납득 갔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좀 기다려줘야겠다. 눈앞의 일들이 더 급하니까.’
아쉬운 표정으로 임무 안내 메시지를 닫는다.
그리고 한 나무 옆에 고이 기절해있는 사내를 보았다.
변종 몬스터들이 등장함과 동시에 진수는 남자부터 제압했다.
확실하게 뉴트럴바이오와 상관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조심스럽게 행동할 필요가 없었다.
제법 신체 능력이 뛰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진수에게 미치진 못했다.
[강철 거미줄]로 다리를 묶고 당황한 사이에 턱을 두세 대 때려주니 바로 기절.
‘뒤통수를 쳐서 한방에 기절시키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그도 손쉽게 기절을 시키고 싶었지만 그게 통하지 않아서 기절할 때까지 때렸던 것이다.
덕분에 두들겨 맞은 사내는 진수의 부족한 제압 솜씨와 자신의 튼튼한 신체능력이 한스러웠다.
-스르르
진수는 거미줄을 뽑아 남자의 사지를 묶은 뒤 박철준에게 연락을 했다.
박철준 수사관은 금방 도착했다.
헌터 협회와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도 뉴트럴바이오와 연관된 이 건에 상당히 무게를 두고 있었다.
이번 일로 헌터들에 대한 여론이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박철준은 오자마자 턱으로 사내를 가리키며 진수에게 물었다.
그로서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뉴스 보도에서 민간인이라고 나왔던 인물을 제압했다니.
자칫하면 정말로 보복성 수사, 과잉 진압과 같은 안 좋은 꼬리표가 붙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아, 석계역 균열 때 벽이 부서진 건물을 알고 있어서, 확인 차 들렀었거든요.”
“그랬죠. 저한테는 계약 알아봐달라고도 했고요. 확인해보니 계약일이 일 년 전이더군요.”
“일 년 전이요?”
진수는 예상과는 조금 다른 박철준의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의 생각엔 균열이 일어난 뒤에 사무실 계약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 전에 이미 구입을 했던 것이다.
“그건 조금... 이상하네요. 왜냐면 저기 저 사람은 분명히 뉴트럴바이오랑 상관이 있거든요.”
뉴트럴바이오의 실험체를 데리고 있는 자가 그들과 연관이 없을 리는 없었다.
“저희도 그래서 조금 더 확인을 해봤죠. 나름 머리를 썼더군요. 그 사무실을 소유하고 있는 법인의 대표가 얼마 전에 바뀌었습니다. 안건후라는 사람으로.”
박철준의 말에 진수가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 상황을 이어서 말해주시죠.”
진수는 박철준의 물음에 입을 열었다.
건물로 가보니 사내가 사무실에 어색하게 있었다는 것.
이내 밖으로 나와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는 것.
하천을 따라서 이동했는데 그 속도가 민간인의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
이 산으로 들어와서 뒤따라 왔더니 변종 몬스터로 자신을 공격했다는 것까지.
“다행히 손쉽게 처치할 수 있는 정도였어요.”
진수가 손으로 변종 코볼트를 가리켰다.
한 마리가 변종 코볼트가 아니었다면 하나를 살려뒀어야 할 뻔했다.
“음, 몬스터를 이용해서 공격을 했다는 것 자체로 일단 수사에 들어가도 되겠군요.”
“여기 이거. 몬스터들한테 공격을 지시할 때 이걸 쓰더라고요.”
진수가 그를 제압하면서 빼앗은 작은 막대기 같은 것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감식반에 넘겨서 어떤 물건인지 확인해보겠습니다.”
막대기를 받아 든 박철준은 포박되어 있는 사내를 둘러메고 산 아래에 있는 차로 향했다.
진수는 변종 코볼트를 들고 그 뒤를 쫓았다.
“일단 김진수 헌터가 신고자이니 함께 가시죠.”
차의 보조석을 열며 말하는 박철준.
그의 말에 진수는 변종 코볼트를 차에 싣고 보조석에 앉았다.
* * *
“다, 당신들! 이거 내가 안 좋게 인터뷰 했다고 복수하는 거 아니야? 나 이런 대우 받고는 못 참아! 당신들 다 고소할 거고, 언론에도 이번 일 다 퍼트려서 공론화시킬 거야. 두고 봐! 내가 하는지 못 하는지!”
기절했다가 깨어난 사내, 안건후는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마치 헌터범죄전담기관에 잡히면 이렇게 하라고 교육이라도 받은 듯 똑같은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
보복 수사 아니냐, 고소할 거다, 담당자가 누구냐, 민원 넣을 것이다, 헌터가 민간인을 핍박한다.
한참 그 모습을 보던 박철준이 이윽고 취조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안건후씨. 담당자 찾으셨다고요.”
박철준이 특유의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자 안건후는 순간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는 다시 소리를 빽 내질렀다.
“그래! 당신! 소속이랑 이름이 뭐야! 나 같은 민간인 데려다가 뭐 하는 짓들이야!”
아마도 헌터범죄전담기관이 헌터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강압적으로 대하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시킨 모양이었다.
게다가 공무원이니 민원에도 취약할 거란 생각이었다.
“말씀 잘 하셨네요. 안건후씨, 각성자 등록이 안 되어 있더군요. 각성 여부 검사에서도 비각성으로 나왔고요.”
하지만 박철준의 태도는 전혀 누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싸늘해진 눈빛.
주눅 드는 건 반대로 안건후였다.
“그, 그래요. 무슨 문제 있습니까?”
“문제, 있죠. 안건후씨... 확실히 비각성자 맞습니까?”
“당연, 당연하죠. 각성 여부 검사 결과에 나와 있잖아요...!”
-쿵!
안건후의 대답에 박철준이 테이블 위로 무언가 묵직한 걸 올려놨다.
안건후는 자신의 손이라도 내려치는 줄 알고 화들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분홍빛이 감도는 동그란 보석.
겉면에는 금색으로 작은 글씨들이 새겨진 물건, 감정석이었다.
헌터의 능력치 및 특성과 기술 따위의 정보를 확인하는.
“비각성자시라면 감정석에 반응이 나타나지 않겠군요.”
안건후의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진수에게 이미 그가 각성자임을 전해 들었기에 감정석을 챙겨온 것이다.
“각성자가 각성 신고를 안 하면 그것만으로 이미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수사를 할 대상입니다. 알고 계시죠? 우리가 이거 알리겠다고 한 달에 예산을 얼마나 많이 잡는데.”
박철준은 안건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감정석을 다시 내려놨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원래 자신이 그 사무실의 주인이 아니었다는 내용, 평소에 헌터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다는 진술이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캐물어 봐도 뉴트럴바이오나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흠, 이 정도로는 지금 사람들 여론을 뒤집기는 힘들겠는데요.”
취조실 밖으로 나온 박철준이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안건후가 뉴트럴바이오와 연관이 되었다는 정도의 결과가 아니라면 지금의 반헌터 여론에 큰 영향을 주긴 어려울 것이다.
언론에서도 이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진 않을 것이 자명했다.
큰 이슈가 되지 않으면 관심 갖지 않는 이들이니.
“그럼 큰 이슈가 되게 만들어보죠.”
* * *
나날이 안 좋아지던 헌터들에 대한 인식.
그런데 어느 날, 헌터넷에서부터 음모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인터뷰를 했던 안건후가 원래 그 사무실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헌터들의 이미지를 망치기 위한 의도적인 움직임이었다는 이야기가 돈 것이다.
이는 헌터넷을 벗어나 동영상 플랫폼이나 다른 커뮤니티에까지 퍼져나갔다.
“유재찬이 헌터넷 네임드였을 줄이야....”
이러한 음모론의 시작점은 진수였다.
원래 의도는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안건후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려 공론화 시키는 과정을 거치려고 했다.
‘유재찬이 용산 대규모 균열 사태 때 심선우를 우뢰매라고 불렀으니까 일단 무조건 헌터넷은 하는 거 같았어.’
유재찬에게 연락을 했던 것은 그가 헌터넷에 글을 올리면 동조하는 댓글이나 추천수 따위를 올려달라고 부탁하려던 것이다.
‘헌터넷? 이야~ 내가 또 헌터넷에선 또 인지도가 좀 있지.’
자신만만한 태도.
그때만 해도 그의 게시글 하나로 온 커뮤니티가 불탈 줄은 진수도 예상치 못했다.
유재찬이 진수에게 받은 자료를 토대로 글을 올리니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것이다.
그 이후로는 그들이 따로 손대지 않아도 될 만큼 확산이 됐다.
안건후를 이전에 알던 사람들의 증언부터 그들이 전혀 언급하지 않은, 뉴트럴바이오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
헌터들을 비난하는 여론과 옹호하는 여론이 서로 뒤엉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그 모습을 본 진수는 온라인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띠리리링
헌터넷과 유티비 등의 채널에서 반응을 살피던 진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박철준이었다.
“네, 수사관님.”
-김진수 헌터. 지난번에 안건후 잡을 때 넘겨준 물건, 감식반에서 확인을 마쳤습니다.
“아~ 뭐라고 하던가요?”
-마력 회로에 마력을 주입하면 주변 몬스터들에게 특수한 자극을 준다고 하는군요. 테스트를 해본 결과 보통의 몬스터한테는 공포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것 같고, 특정 처리가 된 몬스터에겐 명령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다만 사용법을 익혀야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다는군요.
“공포감이요?”
-예. 심한 정도는 아니고 그냥 압박을 준다 정도로 실제 전투에서는 크게 쓸모가 없을 정도라네요. 그리고 정효원에 대해서 이야기할 게 있으니 이쪽으로 방문해주시죠.
몬스터와 실제 싸움에선 큰 도움이 안 된다는 박철준의 말.
하지만 진수의 얼굴엔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이 드러났다.
“음... 알겠습니다. 뭔가 더 확인되면 말씀해주세요. 기관엔 이따 오후에 들르겠습니다.”
박철준과 통화를 마치고 공간압축 주머니에 손이 들어간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바로 박철준 수사관에게 넘겼던 것과 같은 막대기.
안건후를 잡았을 때 그의 소지품을 뒤져보니 예비용인지 같은 것이 하나 더 나온 것이다.
“흐흐흐.... 공포나 압박이나 위엄이나 한 끗 차이 아니겠어?”
진수는 상점에서 비아이템 전송을 구입했다.
-물건을 전송할 전이자를 선택하십시오.
‘두 말 할 것 없이 포세이돈이지!’
분열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아틀란티스] 무리의 급성장
-전이자 무리의 첫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3, 민첩 +1, 체력 +3, 내구 +3, 마력 +2
-[아틀란티스] 무리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4, 민첩 +2, 체력 +5, 내구 +4, 마력 +4, 고블린 샤먼 [키약트르]의 지식, 거대 슬라임 [물탱크]의 기술 중 하나
포세이돈에게 물건을 전송시키자마자 보상 메시지가 쏟아졌다.
무려 무리의 급성장이다.
지금까지 받았던 보상들보다 훨씬 많은 능력치의 증가에 지식, 기술까지 얻을 수 있었다.
고작 5골드와 몬스터에게 공포를 주는 도구 하나를 쓴 대가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수준.
“이야, 생각해보니 애초에 이 물건을 노렸던 거 같네.”
진수가 안건후에게서 몬스터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얻고 나서 받은 임무였다.
그는 임무가 지금 상황에 안 맞춰줬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물건을 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주 답정너구만.’
하지만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키약트르]의 지식은 지식류 보상들이 으레 그렇듯 어떤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물탱크]의 기술은 [분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뽀옹
[분열]을 사용하자 마치 물방울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잠시 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뭐지?”
“뭐지?”
평생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지나갔다.
진수는 아무런 일도 일어난 것 같지 않아서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그와 똑같은 말이 바로 아래에서 들려왔다.
“뭐야 이거!”
“뭐야 이거!”
바닥에 그를 똑 닮은 난쟁이가 있었다.
크기는 대략 1/10 정도.
옷가지는 하나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분열이라는 게... 이런 기술이었구나. 무슨 상태창에 있는 몬스터들처럼 코딱지만 하네.’
“내 능력치가 왜 이래!”
작은 진수가 상태창을 열어보더니 방방 뛰었다.
그 소릴 들은 진수도 상태창을 열어봤다.
[김진수]
힘:29(32) 민첩:27(30) 체력:33(37) 내구:32(36) 마력:36(40)
특성 : [차원 전이] [중급 재생력] [융합] [특급 공구 숙련] [도구 일체화] [증폭기] [발키리] [사신의 감각] [신뢰] [유연체질] [머리 분리] [울버린] [체질 확장]
기술 : [도깨비불] [강철 거미줄] [유체화] [분열]
골드 : 40
능력치가 10%씩 내려가 있었다.
[분열] 기술은 크기도 10%, 능력치도 10%를 떼어내서 분신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크기도 조금 작아진 것 같아.’
진수는 지금 입고 있는 옷이 헐렁해졌음을 느꼈다.
‘[분열]을 해제하면 어떻게 되지?’
그가 기술을 해제하니 이내 작은 진수가 사라졌다.
-스르륵
옷이 다시 몸에 딱 맞아진다.
그리고 머릿속에 작은 진수가 보고 느꼈던 것들이 들어왔다.
생생한 기억까지는 아니고 옛날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불완전했다.
그의 기억력이나 지능까지도 10%를 떼어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분열]을 동시에 많이 쓰면 말 그대로 능지처참이 되겠네. 잘못하면 기술을 되돌릴 생각도 못 하게 될지도....’
진수는 절대 [분열]을 동시에 5번 넘게는 쓰지 않아야겠다 마음먹었다.
‘기관에는 오후에 방문하기로 했으니까 그 전에 조민준씨한테 들러서 기술 테스트 좀 부탁해야겠다.’
그는 바로 기술 연구원 조민준에게 연락했다.
새로운 기술이라는 말에 조민준은 만사를 제치고 자신의 개인 연구실로 달려왔다.
“[분열]이라니! 슬라임이나 갖고 있는 기술인데! 이런 호강을 할 줄이야!”
그는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열성적인 태도로 [분열]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한 조민준.
진수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분신이 눈앞에서 불타고 목이 잘리고 기술을 쓰고 특성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았다.
덕분에 [분열]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던 특성들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더 알 수 있게 됐다.
“대박, 대박이네요. 도깨비씨 진짜 대박 났어.”
온갖 테스트를 마친 조민준이 양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진수는 그 모습을 보며 퀭한 표정으로 힘없이 웃었다.
그의 말대로 [분열]은 대박이라고 할 만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분신이 당한 고통이 희석되었다곤 하지만 머릿속에 받아들인 진수는 지금 죽을 맛이었다.
조금만 더 테스트가 진행 되었다면 그가 먼저 포기하고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능력치는 나누어지지만 일부 특성은 그대로 유지되다니. 잘 활용하면 정말 엄청나겠어요. 태생이 슬라임이 아니다보니까 그 힘을 100% 발휘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네요.”
조민준이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분열]도 [유체화]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가 가진 한계가 있었다.
슬라임이 [분열]을 사용해 똑같은 슬라임 둘로 나누어지는 것과는 달리 진수는 10% 힘을 지닌 분신을 만들고 본체도 10% 능력이 감소한다.
하지만 특성을 잘 활용한다면 분신과 본체의 합은 10% + 90%로 100%가 되는 게 아니라 110%, 120%도 충분히 될 수 있었다.
‘전투가 아닌 여러 활용 방법들도 있고 말이야.’
진수는 스스로 써먹기에 따라서는 사기적인 기술을 얻었다고 느꼈다.
“또 새 기술 생기면 연락 줘요. 언제든지 협조할 테니까.”
조민준은 흡족한 얼굴로 인사했다.
진수도 만족스러운 마음을 안고 연구실을 나섰다.
‘분신이 쓸 만한 것들을 좀 사서 기관으로 가야겠다.’
진수는 작은 옷가지나 자잘한 도구들을 쇼핑한 뒤 헌터범죄전담기관으로 향했다.
“아, 왔습니까.”
박철준은 헌터범죄전담기관에 도착한 진수를 바로 한 취조실 앞으로 데리고 갔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으로 보아 꽤 마음이 급해 보였다.
“무슨 일이죠?”
“정효원이 자신을 내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박철준.
“그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런 놈들 헛소리 하는 거야 그냥 무시해버리면 되잖아요.”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린 채 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냈다.
“이 사람, 본 적 있습니까?”
박철준이 내민 사진에는 진수의 또래로 보이는 청년이 있었다.
그리고 진수의 기억 속에 분명 어디선가 봤던 인물이었다.
“흠... 이 사람이....”
진수가 기억을 더듬는 것을 차분히 기다리는 박철준.
‘바로 얼마 전에 나랑 비슷한 나이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
“생각났습니까?”
정유현을 일당 헌터 팀에서 빼내려 했을 때, 던전에서 나오던 공략조 인원 중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진수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던 남자.
바로 그 사람이었다.
“네. 정효원이 조장으로 있는 공략조랑 같이 활동하는 걸 봤어요.”
“으음....”
진수의 대답에 박철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그러시죠?”
“이 사람이 정용입니다. 뉴트럴바이오의 임병옥 대표가 원한을 갖고 있는 세 사람 중 하나죠.”
“아...!”
진수는 순간 왜 박철준의 표정이 안 좋아졌는지 알 수 있었다.
“정효원이 말하길, 자신이 내일까지 나가지 않으면 정용을 포함한 공략조 인원들이 지정된 던전 공략에 들어갈 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던전에서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는 모르지 않겠냐고요. 무슨 의도인지는 명확하죠.”
그의 공략조 인원 중 몇 명이나 뉴트럴바이오의 끄나풀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단 최소한 정용 한 명은 놈들의 수하가 아니다.
“문제는 정효원을 풀어준다고 해서 정용을 해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는 거죠.”
박철준이 골치 아프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 대로였다.
뉴트럴바이오의 목적 중 하나는 임병옥의 복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외부에 노출된 상황에서 정용을 공략조에 넣어두기만 하는 게 어떤 이득을 낼 수 있을까.
어쩌면 잡아두었던 정효원만 놓아주고 정용은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게 박철준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였다.
“보내주죠.”
박철준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진수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간단한 답을 내놨다.
“뭐라고요?”
“까짓 거 보내주자고요. 정효원을 안 보내주면 정용은 무조건 죽는 거고, 보내주면 살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요?”
“그렇...긴 하죠.”
탐탁지 않은 표정의 박철준.
그의 얼굴을 보며 진수가 말을 이었다.
“일단 저희는 단서를 더 모아야 하는 상황이고, 정효원이 계속 모르쇠로 나오면 그냥 정효원 개인을 처벌하는 것밖에 수가 없죠. 차라리 정효원을 풀어주고 다시 움직이는 걸 파악해서 더 증거를 끌어 모으는 편이 수사에 진척이 있지 않을까요?”
진수의 말에 박철준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하긴 뉴트럴바이오도 이미 외부에 노출이 됐으니 숨거나 도망치지는 못하겠군요.”
“맞아요. 혹시 기관에 추적 장치 같은 게 있으면 정효원이 기관에서 나갈 때 달아놓으시고요.”
진수가 덧붙인 말에 박철준이 뭘 당연한 소릴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이쪽 스페셜리스트들이었지. 국가 기관이라 제한이 있는 것만 아니었으면 벌써 다 잡아넣었을지도....’
박철준의 태도에 진수가 순간 이곳이 헌터범죄전담기관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끼익
논의를 마친 박철준은 취조실 안 쪽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정효원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박철준이 그가 요구한대로 풀어주기로 했다는 말을 전하니 그럴 줄 알았다는 미소를 짓는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두 손을 내밀어 수갑을 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표정의 변화 없이 다가가 수갑을 푸는 박철준.
이내 정효원을 일으켜 세워서 취조실 바깥으로 데리고 나왔다.
‘음, 저런 방식으로 추적기를 붙이는구나?’
그 모습을 보는 진수의 눈에 박철준의 손이 재빨리 움직이는 것이 들어왔다.
자그마한 장치를 그의 손이 닿은 상의에 하나, 바지 쪽으로 떨어트리면서 하나, 신발에 하나 총 세 개를 붙였다.
장치 자체에 흡착하는 기능이 있는지 적당히 흩뿌렸는데도 옷에 정확히 달라붙었다.
“거, 어차피 풀어줄 건데 뭘 이렇게 시간을 끄셨어요~ 이러다가 늦어지면 그 친구 목숨만 날아가는 건데. 흐흐.”
다시 껄렁거리는 모습으로 돌아온 정효원.
취조실에서 나오며 진수와 눈이 마주쳤다.
“어이, 김진수씨. 두고 보자고. 사람 잘못 건드렸으니까.”
그는 두 눈으로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더니 비웃음을 던지며 떠나갔다.
박철준은 그런 그를 데리고 헌터범죄전담기관 건물 밖까지 나갔다가 다시 진수에게로 돌아왔다.
“정말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추적기를 옷에 부착한다고 해도... 사실 저 사람이 조금만 조심하면 소용이 없어질 텐데.”
그는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반면에 진수는 그다지 걱정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풀리지 않겠습니까? 뭐, 추적기가 떨어져도 대한민국 땅덩이가 이렇게 작은데 금방 다시 찾을 수 있겠죠.”
진수는 낙관적인 말을 하고는 자리를 떴다.
‘사실상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 저러는 건지.... 그나저나, 김진수 헌터가 원래 저렇게 작았나?’
진수의 뒷모습을 보던 박철준은 문득 그가 유독 작다고 느꼈다.
준비(수정)
-스르륵, 스륵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나온 정효원.
한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속옷까지 모두 벗어 던지고 온몸을 손으로 훑은 그는 골목 구석에 놓인 검은 비닐 봉투를 거칠게 잡아 뜯었다.
그 안에는 미리 준비된 옷가지들이 들어있었다.
“흥, 기관놈들, 수작질 부리는 걸 모를 줄 알고?”
정효원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는 봉투 안에서 작은 돌멩이를 꺼냈다.
돌멩이에 마력을 운용하자 마력 회로가 타오르며 그의 눈 위로 붉은 불꽃이 나타났다.
‘음, 예상외로 안일하게 나오는데? 미행은 없네.’
그가 사용한 돌멩이는 1회용 아이템으로, 마력을 운용하면 주변의 생명체를 감지하는 도구였다.
생명체의 크기에 따라서 느껴지는 게 달라지는데, 정효원이 사용해보니 주변에 사람 크기의 생명체는 감지되지 않았다.
“음, 저건 뭐지?”
생명체 감지에 조금 큼지막한 생명체가 잡혀서 자세히 살펴보니 고양이만한 생명체 둘이 뒤엉켜 있는 것이었다.
“뭐라도 따라붙은 줄 알았네.”
옷을 다 갈아입은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스윽
정효원이 사라지자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캬아악!”
그건 길고양이에게 헤드락을 걸고 있는 작은 진수였다.
‘하마터면 들킬 뻔 했네.’
분신이어도 [사신의 감각] 특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정효원이 사용한 돌멩이는 [사신의 감각] 하위 호환 정도의 능력.
그가 생명체를 감지한다는 사실을 눈치 챈 작은 진수는 자신을 향해 하악질을 하고 있는 길고양이의 입을 급히 틀어막은 것이다.
“캬울!”
작은 진수는 정효원이 떠나는 것을 보고 고양이의 엉덩이를 걷어차 준 뒤 급히 정효원을 쫓았다.
그의 다음 행선지는 한 던전 앞이었다.
던전 안 쪽으로 들어가는 정효원.
진수의 분신은 그걸 보고 [분열]을 해제했다.
‘음, 왔다!’
[분열]이 해제되는 순간, 진수의 본체로 정효원의 위치가 공유됐다.
후각에 의지해 분신을 쫓고 있었기에 그의 위치는 던전과 그리 멀지 않았다.
정효원의 소재가 파악되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 진수.
5분 만에 던전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냄새로 봐서는 아직 밖으로 나오진 않았네.’
진수는 [분열]을 다시 사용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분신에게 옷가지와 여러 장비들을 들려주었다.
헌터범죄전담기관에 들르기 전에 구입한 것이었다.
‘예상보다 일찍 쓰게 됐네.’
이게 그가 정효원을 흔쾌히 놔주자고 한 이유였다.
보다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우우웅
진수가 [분열]을 사용하고 정효원을 쫓을 채비를 차리고 있는데 멀리서부터 묵직한 배기음이 들려왔다.
분신을 데리고 몸을 숨긴 그는 던전 앞의 상황을 지켜봤다.
“자, 정효원 팀장님 나오기 전까지 후딱 마력 회로 그려놓읍시다.”
던전 앞에 트럭 두 대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네 사람은 이미 익숙한 일인지 손발을 착착 맞춰 던전 주변에 마력 회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진수가 동묘 던전 주변에서 봤던 것과 유사한 형태였다.
‘저걸로 던전이 붕괴되지 않게 제어했었나보다.’
그들이 마력 회로를 거의 다 그려갈 즈음, 던전 안에서 정효원이 나왔다.
그의 온몸엔 몬스터의 피와 살점이 들러붙어 있었다.
“아, 왔어? 안쪽에 몬스터 다 죽였으니까 우선 데리고 온 녀석들부터 집어넣어 놓고 마저 작업해. 기관놈들 때문에 늦어졌으니까 서두르자고.”
정효원은 적당히 몸에 붙은 몬스터의 흔적들을 털어내며 지시했다.
“이번 놈들은 특별히 위험하니까 조심들 하고. 할 거 다 했으니까 나 먼저 간다?”
“옙.”
“들어가십시오.”
그는 뒤늦게 도착한 자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리를 떴다.
진수는 그 모습을 보고 분신을 집어 들었다.
“잘 부탁한다.”
“정확히 던지기나 해.”
서로를 보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진수와 작은 진수.
진수는 이내 정효원이 향한 방향으로 분신을 집어던졌다.
-쌔애액!
힘 능력치와 [유연체질], [울버린] 등이 종합하여 강화된 근력으로 던지니 분신이 정말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펄럭!
허공에 날아오른 분신은 연으로 만들어진 글라이더를 펼쳤다.
그리고 [사신의 감각]을 사용해 정효원을 감지하고 그 뒤를 쫓았다.
분신이 성공적으로 정효원을 추적하는 것을 확인한 진수는 이내 던전 안 쪽으로 눈을 돌렸다.
‘흐흐흐. 또 이렇게 별미를 차려놨는데 그냥 지나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진수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흔적은 확실히 지우고 왔겠죠?”
어둠 속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 물론입니다. 이전에 잡힌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인간한테....”
“제가 누누이 얘기하지 않았나요? 구차한 변명은 안 하느니만 못 하다고.”
쩔쩔매는 정효원.
그리고 그를 쏘아붙이는 건, 뉴트럴바이오 대표 임병옥이었다.
“추적기를 붙일만한 옷은 다 버리고 왔습니다. 옷 갈아입을 때 한 번,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한 번. 총 두 번 생명 감지 도구를 써서 미행을 확인했고요.”
“흐음.”
임병옥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영 못미덥다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정효원을 더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 해보세요.”
“저희 계획대로 배혜지 모녀가 사는 노원구에서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들은 균열을 막으러 나왔고요. 헌터들이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들에 집중하는 사이에 저는 만티코어들을 소환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김진수 그 놈이 나타난 겁니다.”
그의 말에 임병옥이 등받이에서 몸을 떨어트렸다.
“김진수가요? 다른 이들은 없었나요?”
“네, 혼자였습니다. 제 생각에 김진수의 뒤에 헌터 협회가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하긴, 강남역에서 양민우, 정윤아를 습격했을 때도 김진수가 있었다고 했죠. 최근에 협회 방문이 잦다는 것 같더라니....”
임병옥은 강남역 균열 사태를 습격이라고 표현했다.
그들이 의도한 것이라는 듯.
“일부러 그들에게 다른 헌터들이 지원을 가지 못하게 막고, 언데드화까지 시켰는데 어처구니없이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죠. 김진수... 헌터 협회에서 키우는 비장의 무기 같은 존재일까요? 김진수 이후로 [재생력] 특성을 가졌거나 급격히 성장한 헌터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선 그저 운 좋게 성공한 케이스인 것 같네요. 무식한 헌터들이 그러면 그렇지.”
임병옥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용산 사고 이후에 운 좋게 중국 쪽이랑 기술 교류로 균열을 제어할 수 있게 됐을 때만 해도... 일사천리로 계획을 성공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많은 변수가 생겼어요.”
그녀는 언짢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래도 박가은은 해치울 수 있었죠.”
임병옥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는 정효원.
그 말에 정효원이 의도한대로 임병옥은 기분이 좀 나아진 듯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죠. 배혜지 그것도 이제 가족을 잃은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테니.”
임병옥의 입에서 배혜지라는 이름이 나올 때 그녀의 눈에선 살기가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손해도 무척 컸죠. 만티코어를 만드는 데에 [체질 확장] 특성을 가진 개체가 필수로 들어가니까. 이젠 한동안 만들 수 없게 됐어요.”
“이번에 정용만 처리하고 나면 당분간 강한 실험체는 꼭 필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이번 일은 제대로 해치우겠습니다.”
정효원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기관에 정용 건을 말하고 나왔다면서요. 그쪽이 막아설 가능성은요?”
“정용 그놈 빼고는 공략조 인원이 다 우리 사람이라서 들킬 일이 없습니다. 미리 기관 쪽에서 연락을 하지 못하게 전화기 신호도 막아두었고요. 흐흐. 놈은 뭣도 모르고 같이 숙소에서 있다가 호랑이 굴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정효원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최유권, 최유석이 멍청하게 굴어서 모든 게 꼬였어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임병옥.
정효원은 그녀가 언급하진 않았지만 멍청하게 굴었다는 말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아직 특성과 기술을 발현시키는 약이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무리를 해서.... 아마 당분간은 기관도 우릴 대대적으로 건드리지는 못 할 테니 그동안 최대한 개발에 몰두해야 돼요. 남양주 연구소에서도 몬스터 변이 실험은 멈추고 신약 개발에 동참시키세요.”
“알겠습니다!”
“참, 드레이크 알은 어떻게 됐죠?”
“인큐베이터에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일자로 따져보면... 아마 곧 부화할 겁니다.”
정효원이 손가락을 접으며 날짜를 계산했다.
“만티코어도 만들 수가 없고, 연구소도 신약 개발에 집중할 테니까 드레이크가 우리의 비장의 수가 되어줄 거예요. 문제 생기지 않게 유의하세요.”
“넵.”
임병옥은 보고 받을 내용을 얼추 듣고 앞으로의 방향이 정해지고 나자 기분이 좀 풀어진 듯 보였다.
다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보니 김진수 그 자... 참 괘씸하네요. 겨우 헌터 협회 따윌 등에 업고 우릴 방해했다는 말이죠?”
불쾌하다는 듯이 말하는 임병옥.
그녀는 아들의 죽음 이후로 지속적으로 헌터 협회를 염탐해왔다.
그리고 헌터 협회의 활동,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수준이 낮은 집단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그냥 이참에 해치워버릴까요?”
그들은 아직 만티코어를 해치운 주체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진수가 만티코어 두 마리와 싸우고 있을 때, 정효원은 포박당한 채로 건물 옥상에 있었으니까.
“크게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손을 쓰세요. 또 꼬리 밟히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저희 공략조와 거래하고 있는 일당 헌터 팀에 놈과 친하게 지내는 일당 헌터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자를 이용하면 김진수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흐흐흐.”
정효원은 아주 기대가 된다는 듯 비열하게 웃었다.
* * *
[수사관님. 아마 정효원이 제가 이 일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걸 보고하고 나서 정유현이라는 헌터를 노릴 겁니다. 저랑 친분이 있는 분이거든요. 딸도 한 명 있고요. 기관에서 이 두 사람을 좀 보호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뉴트럴바이오의 사람들이 던전에 작업을 하는 동안 진수는 박철준 수사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정효원이 나랑 정씨 아저씨가 친하게 이야기 하는 모습을 봤었지. 혹시 모를 일은 미연에 방지하자.’
-띠링
[박철준 수사관 :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보호 조치 들어가도록 하죠. 그쪽으론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박철준 수사관의 믿음직스러운 대답.
진수는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고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던전 안에서 뉴트럴바이오의 사람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고생들 했어요.”
그들은 마지막으로 던전 주변에 그려진 마력 회로 위에 마석 조각들을 흩뿌린 뒤 위장용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러자 마력 회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무리까지 짓고 나자 타고 온 차량을 타고 사라지는 그들.
진수는 두 트럭이 시야에서 완전히 없어지고 나서 던전으로 향했다.
‘최대한 흔적은 남기지 말아야지.’
-스르륵
그는 [유체화]를 사용한 채로 던전에 들어갔다.
던전 내부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다.
다만 원래 던전의 주인이었던 코볼트들은 모두 죽어서 트럭에 실려 나갔고, 웨어타이거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임무 줘.’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응.’
-임무 : 안내에 따라 이동하여 몬스터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올림포스] 무리의 성장
‘역시!’
진수가 임무를 받자 던전의 한 쪽을 가리키는 느낌이 들었다.
뉴트럴바이오가 준비한 강한 몬스터다.
[차원 전이]가 놓칠 리가 없었다.
그는 [유체화]와 [투명화]를 사용한 채로 곧장 안내의 지시대로 달려 나갔다.
덕분에 던전 내부는 그 누구도 들어온 흔적이 남지 않았다.
-스르륵
임무가 안내에 따라 이동한 그는 이윽고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마주할 수 있었다.
“호치 어서 오고.”
진수는 거대한 덩치의 웨어타이거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호랑이굴
-퍼억! 퍽!
“케엑!”
던전에서 젊은 남성이 연달아 손발을 뻗어 웨어타이거를 공격했다.
물이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움직임에 놈은 발톱 한 번 뽑아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후.”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는지 웨어타이거가 쓰러지자 깊은 숨을 들이마시는 사내.
“이야~ 우리 용이씨 뽑길 잘 했어. 그치?”
그 뒤에서 정효원이 박수를 치며 그를 칭찬했다.
다른 공략조 인원들은 정효원의 말에 동의하며 저마다 정용을 칭찬했다.
“별 거 아닙니다.”
그런 공략조원들의 반응에도 정용은 무미건조한 대답을 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던전에서 수입을 얻는 것이지 돈도 안 되는 칭찬은 필요가 없었으니까.
“어.... 그래요. 이제 곧 던전 보스 나올 테니까 간단히 정비하고 출발합시다.”
머쓱해진 정효원은 잽싸게 말을 돌렸다.
“조장님, 웨어타이거들 수가 별로 없는데 이번 던전 수익은 얼마나 나올까요?”
정용이 손에 착용한 건틀렛을 조이며 물었다.
그는 굉장히 걱정된다는 표정이었다.
“이놈들이 쪽수는 적어도 부산물이나 마석 값이 꽤 나가니까 그렇게 적지는 않을 걸? 걱정되면 내가 일당 헌터팀 부르는 값은 낼게요.”
정효원의 말에 정용은 칭찬을 들을 때보다 훨씬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여가며 감사를 표하는 정용.
그를 내려다보는 정효원의 얼굴엔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여간 돈은 오지게 밝힌다니까. 실력만 가지고 헌터 아카데미 들어간 놈답게 능력도 출중하고.... 써먹기 참 좋아. 그것도 오늘까지지만.’
정효원은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뒤에 던전의 보스를 향해 움직였다.
그들이 준비해놓은 보스 몬스터는 변종 웨어타이거다.
웨어타이거 자체도 상당한 괴력을 지닌 놈들이지만 정용의 선에서 정리가 됐다.
하지만 덩치만 조금 더 커 보이는 변종 웨어타이거의 위험성은 보기와는 다르게 일반적인 녀석들의 몇 배는 된다.
아마 뭣도 모르고 덤벼드는 정용을 한 방에 두 토막 내줄 것이다.
“이쪽만 돌면 이제 보스가.... 응?”
시야를 가득 채우는 웨어타이거를 기대하고 있던 정효원.
그런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어설프게 만든 호랑이 가면을 쓰고 앉아있는 사내였다.
가면은 뭘로 만들었는지 희끄무레한 게 힘겹게 호랑이를 본 따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어, 왔어? 아참, 이게 아니지.”
가벼운 태도로 손을 들며 그들을 맞이하는 사내.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더니 몸을 일으켰다.
“어흥.”
어색하게 호랑이 울음소리를 낸다.
“보스는...?”
그 모습을 보고 정용이 울컥하며 나섰다.
아이템이 나오지 않은 던전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보스 몬스터다.
안 그래도 이번 던전에서 돈이 얼마 안 나올 것 같아 불안했는데 웬 놈이 시답잖은 장난을 치니 짜증이 났다.
“보면 몰라? 내가 보스잖아.”
“이 자식이...!”
장난스러운 괴한의 태도에 정용이 달려들었다.
“자, 잠깐...!”
정효원은 가면을 쓰고 있는 이가 누군지 알아챘는지 정용을 말리려 했다.
하지만 성격이 급한 정용은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파앙! 팡!
양손에 제법 묵직한 건틀렛을 착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펀치가 파공음을 만들었다.
하지만....
-스르륵
괴한은 순간적으로 몸이 불투명해지더니 귀신같이 정용의 공격을 피해냈다.
아니, 피한 것인지 그냥 맞지 않은 것인지 모호할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휘익, 퍽!
정용이 잠시 당황하는 사이 사내는 몸을 빠르게 반 바퀴 돌려서 뒤차기로 정용의 복부를 걷어찼다.
“커억!”
-쾅!
호기롭게 나섰지만 한 방에 나가떨어진 정용.
벽으로 곧장 날아가 박힌 그는 정신을 잃은 듯 보였다.
“김진수!”
정효원이 사내를 향해 소릴 질렀다.
“아무래도 가면 하나로는 숨기기가 힘들지?”
진수가 [강철 거미줄]로 만든 호랑이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 가득한 장난기.
드레이크의 알에 거미줄을 채우던 표정과 같았다.
똑같이 적의 계획도 망치고, 차원 전이도 시키고, 장난기도 충족시키는 아주 알찬 상황이었으니까.
하루 일찍 던전에 들어온 진수는 곧장 보스 몬스터를 잡으러 왔다.
변종 웨어타이거는 만티코어보다는 약했지만, 고돌의 지식으로 익힌 야수의 움직임과는 조금 궤를 달리하는 전투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꽤나 고전을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차원 전이].
-변종 웨어타이거 [호치] 차원 전이 성공.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올림포스] 무리 성장
-[올림포스]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민첩 +2, 내구 +1, 마력 +2, 골드 +5
임무는 무리를 성장시키고 무리의 성장은 진수에게 보상을 준다.
‘이게 선순환이지.’
흐뭇하게 상태창을 확인한 진수.
호치는 곧장 올림포스에 합류했다.
-변종 코볼트 [코붕]이 [올림포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뒤이어 코붕이도 올림포스에 합류.
올림포스를 이끌고 있는 제우스가 코볼트 소서러이니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니까 오늘 당장 올 것 같지는 않고... 몰래 웨어타이거 하나만 더 잡아야겠다.”
보스 몬스터가 변종이니 보통 웨어타이거도 분명 차원 전이를 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진수는 [유체화]를 사용해서 근방에 있는 몬스터를 습격해 처치했다.
-웨어타이거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웨어타이거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역시. 흐흐. 두 발로 걸어 다니는 호랑이라... 이름은 호랭총각으로 해줄까.”
그렇게 웨어타이거까지 전이시킨 진수는 다음날 정효원의 공략조가 올 때까지 보스몬스터의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심심한 나머지 호랑이 가면을 만들면서.
“여긴 또 어떻게 알아냈지...? 아니, 넌 도대체 어떻게 우리 계획을 다 알고서 훼방을 놓는 거야!”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정효원.
그의 입장에서는 신출귀몰하며 비밀리에 진행하던 일들을 망치는 진수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너네가 잘난 탓이지 뭐.”
진수는 나름대로 진심을 이야기했다.
그들이 제대로 실험체를 생산해 우수한 몬스터를 만들었기에 [차원 전이]가 반응을 한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차원 전이]는 강한 몬스터, 다양한 종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뉴트럴바이오에서 엉망인 몬스터이지만 조종만 가능한 녀석들을 만들었다면 진수는 지금쯤 그냥 필드나 균열을 막으며 차근차근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개자식이...!”
하지만 정효원에겐 그것이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너희들의 수준이 그 정도인 탓이다.
그걸 발견한 나는 잘났다.
이런 의미로 받아들인 정효원.
자신의 뒤에 있는 공략조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스르릉
각자 자신의 무기를 꺼내든다.
통상적인 냉병기인 검부터 손에서 스파크가 튀는 이까지.
‘전기톱을 쓰기엔 좀 그렇겠네.’
진수도 그들의 태세를 마주하며 도끼와 망치를 꺼내들었다.
정효원의 지시에 따라 바로 사람을 상대로 공격 준비를 하는 것으로 봐서 정용을 제외한 모두가 뉴트럴바이오의 소속으로 보였다.
‘정용 저놈은 그냥 성격이 더러운 놈인 거 같고.’
싸움은 검을 쓰는 헌터의 공격으로 시작됐다.
바로 가슴팍으로 찔러 들어오는 일격.
제압이 아닌 제거가 목적이라는 게 분명한 공격이었다.
-콰칭!
진수는 도끼날의 아래쪽으로 검을 걸어 옆으로 제꼈다.
동시에 망치가 놈의 머리로 날아든다.
-파지지직!
망치가 동료의 머리를 깨부수지 못하게 강렬한 전기를 내뿜는 여성.
“으...!”
-퍽!
“시원~하다!”
진수는 등목이라도 한 것처럼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든 헌터의 머리를 후려쳤다.
‘앞으로 저주파 안마기 같은 거는 쓸 수가 없겠네.’
[유연체질]에 포함된 [절연체] 특성 덕분에 죽이려고 마음먹은 전기 공격도 물리치료를 받은 정도의 느낌만 들었다.
-꾸드득!
전기 공격은 통하지 않는 듯하고 물리력으로 싸우는 조원들은 다 기절.
정효원은 이를 악물더니 변이를 시작했다.
예전에 강철거미 던전에서는 오른팔만 짐승처럼 변하더니 지금은 온몸에 털이 자라나면서 덩치가 커졌다.
“죽여주마!”
거칠게 돌진하는 정효원.
진수는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 너무 무식하게 싸우네.”
정작 자신도 도끼와 망치를 휘두르고 있었지만 본디 스스로를 잘 돌아보는 편은 아니었다.
-쾅!
빠르게 진수에게 접근하여 몸통박치기를 한다.
하지만 진수는 거미줄을 사용해 그의 위로 넘어갔다.
공중에서 바로 도끼를 던져 전기를 사용하는 헌터의 어깨를 맞췄다.
“으악!”
한쪽 팔이 너덜너덜해지는 고통에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을 보고도 전혀 아랑곳 않고 도끼를 회수하는 진수.
상처를 다시 한 번 헤집으며 뽑혀 나오는 도끼에 여성 헌터는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쿵! 지이잉
마지막으로 남은 공략조원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러자 지팡이의 끝에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와 정효원에게 쏘아졌다.
“흐아아아!”
마력 덩어리로 보이는 보랏빛이 그를 감싸자 힘이 넘치는지 포효를 한다.
“아, 저쪽이 버퍼였어? 순서를 잘못 노렸네.”
진수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끼를 들고 나머지 한 명을 노려보았다.
“헉...!”
그 모습에 기겁을 하는 헌터.
하지만 진수는 곧 시선을 거둬야 했다.
-후웅!
힘이 넘치는 정효원이 진수에게 달려들었으니까.
그는 거의 만티코어에 육박하는 속도로 움직였다.
-퍽!
게다가 본능적인 움직임을 취하는 만티코어와는 달리 정효원은 인간이었다.
숙련된 전투기술을 사용하는 헌터다보니 그의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화르륵!
하지만 진수도 그저 당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정효원의 공격이 닿는 순간에 [도깨비불]을 붙였다.
버프로 마력이 들끓고 있는 상태였기에 [도깨비불]이 아주 활활 타올랐다.
“이 놈이...!”
진수는 정효원의 검만 조심하면서 신체부위로 하는 공격은 그냥 허용했다.
들어오는 타격보다 [중급 재생력]으로 회복하는 것이 더욱 빨랐고, 반대로 정효원에게 [도깨비불]을 붙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으니까.
“헉, 헉...!”
시간이 흐를수록 정효원은 금방 지쳐갔다.
온몸에 넘치던 마력은 오히려 독이 되어 푸른 귀화를 키운다.
전신에서 타오르고 있는 [도깨비불]이 신경을 갉아먹는 것 같은 고통을 주었다.
정신적인 괴로움과 육체적인 괴로움이 동시에 오며 더욱 빠르게 지쳐간다.
-스르르...
이내 변이까지 풀려버리는 정효원.
진수는 그 모습을 보고는 바로 버프를 사용하던 공략조원을 제압했다.
역시나 단번에 기절시키는 방법은 모르니 기절할 때까지 망치로 후려치는 방식으로.
“이 개자식아! 동작 그만!”
진수가 망치를 휘두르고 있는데 등 뒤에서 정효원이 소리쳤다.
얻어맞던 헌터가 기절한 것을 확인한 진수는 뒤로 돌아봤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검으로 정용의 목을 겨누고 있는 정효원이었다.
의기양양한 표정.
인질을 잡았으니 이제 다 해결이 될 거라는 얼굴이었다.
“더, 더 설치면 이 자식 머리만 가져갈 줄 알아.”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말하는 정효원.
진수는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봤다.
“내가 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있어. 안 그러면 이놈 죽여 버릴 거니까.”
“죽여.”
엄포를 놓는 그에게 진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정효원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눈을 크게 떴다.
“죽이라고. 걔 죽든 말든 나랑은 상관이 없어. 들어보니까 그쪽도 뭐 인간 말종이더라고? 내가 이렇게 움직이는 건 너희를 방해하려는 거지, 그 친구를 구하려는 게 아니거든.”
진수는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다 녹화되고 있어. 저 구석에 카메라 보이지? 내가 그냥 아무런 준비 없이 여기에 있었는 줄 알아? 임병옥이 이렇게 대놓고 살인을 저지른 널 과연 도와줄까? 지금 뉴트럴바이오가 깨끗한 척 이미지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데 말이야.”
진수의 한쪽 입 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반면에 정효원의 표정은 똥 씹은 듯했다.
“으아아아!”
정용을 진수에게 집어던지고 곧장 달려드는 정효원.
진수의 시야를 가리려는 목적이었겠지만, [사신의 감각]은 시력뿐만 아니라 생명체 자체를 감지할 수 있다.
그 정도 기습은 통할 리가 없었다.
-퍽!
날아오는 정용의 몸을 옆으로 젖히면서 바로 망치를 휘두른다.
그 공격에 정확히 관자놀이를 얻어맞은 정효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휴, 우선 이놈 건은 일단락 됐네.”
진수는 던전 내부를 한번 쭉 훑었다.
다섯 명의 헌터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고블린 [고돌]과 오크 워리어 [고블린]이 결투를 합니다.
-전이자들의 첫 결투로 보상을 받습니다.
-결투의 승자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뭐?”
진수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하나 나타났다.
마굴로 향한 고돌이가 올림포스 무리와 갈등을 일으킨 듯했다.
싸우지들 말어
‘고돌이는 그래도 태생이 고블린이고, 고블린은 이름이 이래도 오크 워리어인데 상대가 되나?’
진수는 상태창의 그림들을 보며 걱정했다.
솔직히 마음이 더 기우는 것은 고돌이였다.
첫 전이자이기도 했고 온갖 고생은 다 하고 있는 녀석이라 안타까웠던 것이다.
현재 고돌이와 고블린의 그림 뒤로 불타는 효과가 나타나며 나란히 서있는 상태.
과정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고블린 [고돌]과 오크 워리어 [고블린]의 결투가 종료되었습니다.
두 녀석의 그림 뒤에 불타는 효과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내 고블린 그림의 눈이 X자로 변하며 혀를 내밀었다.
-[고돌] 승리.
“이야! 역시 검투장의 챔피언 고돌이!”
태생의 한계를 넘어 오크, 그것도 특수 개체를 이긴 것이다.
-[고돌]의 승리로 보상을 받습니다.
-[고블린]의 기술 중 하나
-[올림포스] 무리가 당신의 종교를 따릅니다.
-[올림포스] 무리가 당신을 칭송합니다.
-제사장 [제우스]가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신탁을 내리십시오.
고돌이는 이제 진수의 전도사가 된 모양이다.
결투에서 이기며 올림포스에 진수의 종교를 퍼트렸다.
“어? 싸우지들 말어. 서로 친하게 지내야지.”
진수가 갑자기 일어난 결투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제우스]가 당신의 신탁을 기록합니다.
[제우스] - 현재 상황 : 신탁을 널리 알림 “평화를 사랑하고 서로를 아끼라 하셨다.”
-신탁의 효과로 당신의 종교를 믿는 이들의 우호도가 증가하고 성장이 촉진됩니다.
‘뭔가 내 말에 필터가 많이 낀 거 같은데...?’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 할까.
코볼트 소서러 제우스는 진수의 신탁을 상당히 신탁다운 내용으로 바꿔서 퍼트리고 다녔다.
상태창에 있는 아틀란티스 무리와 올림포스 무리, 고돌이의 그림 뒤로 작은 하트들이 뾰로롱 올라가는 효과가 생겼다.
“어이구, 이러다가 진짜 종교처럼 되겠네.”
진수는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변하는 전이자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고돌이가 이긴 덕분에 기술도 받았고....’
오크 특유의 기술인 [워 크라이]를 얻었다.
어그로를 끌거나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약한 버프를 걸어주는 기술이다.
일부 기술들을 상쇄시키는 능력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건 조민준씨가 그렇게 좋아할만한 기술은 아니네.’
오크 특유의 기술이라고는 하지만 헌터들 중에서도 간혹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진수가 처음 고블린 사냥에 나섰을 때 사용한 오크 모방 피리가 이 [워 크라이] 기술을 분석해서 만든 것이다.
고블린들은 [워 크라이]를 들으면 본능적인 공포에 빠진다고 한다.
진수는 상태창을 닫고 장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설치해두었던 카메라들을 가져와 공간압축 주머니에 넣고 기절한 헌터들을 모두 [강철 거미줄]로 묶었다.
정용도 예외 없이 포박해두었는데, 물불 안 가리고 바로 덤벼드는 성격으로 봐서 정신을 차리면 또 달려들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슬슬 뉴트럴바이오 팔다리를 끊어가는 것 같은데.... 거기서 만들겠다던 약 개발하는 곳만 찾아내면 되겠어.’
헌터들을 모두 묶은 그는 바로 박철준에게 연락했다.
-정효원을 다시 잡았다고요? 정용 헌터도 말입니까? 하하, 이것 참. 알겠습니다. 바로 가죠.
놀라움과 어이없음이 섞인 목소리로 답한 박철준.
진수의 예상보다 빠르게 호송 차량들과 함께 던전으로 찾아왔다.
“김진수 헌터 자신만만한 모습에 반신반의하긴 했어요. 이번 건에 별로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뭔가 노리는 게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는 상당히 호의적인 눈빛으로 진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답은 후자였군요.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빠르고 정확히 움직였어요.”
뒤이어 들어온 헌터범죄전담기관의 인원들에게 손짓으로 묶여있는 헌터들을 모두 호송하라고 지시한다.
“정효원이 추적기를 모두 떼어낼 거라곤 예상하고 있었고, 실은 추적 관련 기술을 가진 팀원을 통해서 이 던전에 도착하는 것까진 파악을 해뒀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이 근방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죠.”
박철준을 포함한 헌터범죄전담기관의 사람들이 일찍 도착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아, 그러면 그 다음에 움직인 곳도 알아내셨나요?”
“아뇨. 이동 중에 추적을 방해하는 기술을 사용했는지 쫓을 수가 없더군요.”
아쉬워하는 박철준.
진수도 마찬가지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군요.”
“대신에 김진수 헌터가 언질을 준 용산구 보영고아원 쪽은 조금 수사 성과가 있었습니다.”
뉴트럴바이오 대표가 임병옥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가장 먼저 조사를 요청했던 곳이다.
은평구의 고아원과 마찬가지로 놈들이 건드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설에 비해서 아이들을 상당히 많이 받고 또 많이 내보냈더군요.”
보영고아원에 대해서 말하는 박철준의 표정이 조금 무거워졌다.
“게이트 사태 이후로 워낙 인명 피해가 많고 시스템 정비가 필요한 곳이 늘어나다보니 입양 쪽으로는 행정상의 사각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입양이 되었다는 서류는 있지만 허위로 기재가 된 것들이 많았어요.”
진수도 마찬가지로 얼굴이 굳었다.
그의 말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했으니까.
“고아원에서 나간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정확히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에 보영고아원에서 한 아이가 복지사의 인솔 하에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어요. 남산 쪽으로 이동하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 근방을 확인해보니 보영고아원을 운영하는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이 있더군요.”
“그 재단이랑 뉴트럴바이오는 무슨 연관이 있던가요?”
“아뇨. 여전히 서류상으로나, 합법적으로 파악하기로는 뉴트럴바이오와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건물 주소가 어떻게 되죠?”
진수는 박철준에게 수상한 건물의 위치를 받았다.
남산과 근접해있는 4층짜리 건물이었다.
‘크기는 꽤 작은 거 같은데....’
“고맙습니다.”
진수가 떠나려고 하는데 박철준이 갑작스럽게 인사를 했다.
“네?”
“고맙다고요. 헌터범죄전담기관이 권한을 가진 것도 많지만, 분명 제약도 많습니다. 때문에 정말 작정하고 숨어드는 자들은 오히려 잡아넣기가 쉽지가 않아요. 김진수 헌터 덕분에 많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아이, 뭘 그런 걸 가지고. 별 거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죠. 하하.”
진수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젓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보는 박철준은 대범한 그의 태도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으흐흐. 내가 좀 훌륭하긴 하지.’
박철준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수는 광대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코 밑을 쓱 훔쳤다.
의연한 척 하긴 했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던 것이다.
* * *
“흐음... 뭔가 이상한데....”
남산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있는 허름한 건물.
겉으로 봐서는 주변의 오래된 주택들과 큰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더 멀리서 떨어져 보니 동묘 창고나 웨어타이거가 있던 던전 근처에 그려졌던 마력 회로의 흔적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으음.... 일단 건물을 좀 뒤져보자.”
진수는 [유체화]를 사용해 건물 안 쪽으로 들어가 봤다.
평범한 빌라처럼 생긴 건물.
비어 있는 호가 몇 개 있긴 했지만 특별할 것은 없었다.
남양주 연구소와는 달리 지하로 연결되는 통로도 없는 상황.
그는 일단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분명 저 건물에 연구소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저기로 마력 회로를 그릴 이유가 없... 아니지. 입양된 가정의 집인 척 애들을 데리고 와서 뭔가 처리를 하는 걸지도 몰라.’
의심의 방향을 틀어본다.
‘아이들을 데려갈 곳으로 가는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애들을 속여야 하는 이유가 있나? 분명 무언가를 하고 나서 옮겼을 텐데 그렇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야.’
진수는 희미하게 남아있는 마력 회로를 쫓아서 움직였다.
건물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자국들.
그 중에서 그나마 마력이 남아있는 흔적을 따라갔다.
“아, 여기서 끊기는데...?”
남산 방향으로 이어지던 마력의 잔재들이 도로를 기점으로 끊어졌다.
혹시 몰라 마력을 느껴보려 감각을 곤두세우는 진수.
“어?”
[사신의 감각]에 남산의 지하 쪽에서 다수의 생명체가 느껴졌다.
땅속에서 사는 벌레나 동물들과는 구분 자체가 다른, 인간의 생명 기척이었다.
‘산 아래... 뉴트럴바이오의 마력 흔적이 향하는 방향... 이건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는데?’
진수는 도로를 넘어 남산으로 향했다.
오히려 주변에 생명체가 많은 산이라서 [사신의 감각]에 더 혼선이 생겼다.
분명 지하 어느 곳인가에 인간들이 모여 있는 것은 확실한데 그걸 정확히 알아낼 수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 되었다.
그 순간, 진수의 몸이 조금 커졌다.
‘아, 보냈던 분신이 [분열]을 해제했구나!’
정효원의 뒤를 쫓았던 분신이 그가 생각했던 목적을 달성한 뒤에 스스로 [분열]을 해제한 것이다.
떨어진지 꽤 되었기 때문에 진수에게 돌아온 기억은 상당히 흐릿했다.
하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여기만 해결하고 바로 장비들 회수하러 가야겠네.’
바로, 분신에게 주었던 장비들의 위치.
그가 의도했던 대로 일이 풀렸다면 큰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분신이 상당히 큰 역할을 해주네. 잠깐. 분신?’
진수는 순간 지하에 있는 시설을 찾아낼 방법을 떠올렸다.
* * *
“... 야,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작은 진수가 진수의 손 위에서 올려다보며 말했다.
“더 좋은 방법 있어?”
“... 없지.”
참담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분신.
“그럼 잔말 말고 가라.”
진수는 [분열]로 만든 분신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힘차게 바닥으로 집어던진다.
-스르륵
땅에 처박히기 직전, 작은 진수는 [유체화]를 사용했다.
진수가 던지는 힘을 그대로 받아서 땅속을 파고들었다.
몇 초 뒤, 진수는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끄윽, 여기도 아니네.”
분신의 마력은 진수의 10%.
[유체화]를 쓰고 땅속을 빠르게 헤집고 다니면 순식간에 증발해버리는 것이다.
원래 다른 물체와 겹쳐진 상태에서 [유체화]가 풀리면 자석의 같은 극끼리 맞닿은 것처럼 튕겨져 나온다.
그런데 튕겨 나올 수 없는 땅속이라면?
그대로 짓이겨져 죽어버리는 것이다.
[분열]로 만든 분신은 죽는 순간 [분열]이 해제되면서 진수에게 기억과 함께 죽을 때의 고통을 함께 전달해주었다.
“하, 한번만 더 해보자...!”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도전이었다.
아무리 희석된 고통이라고 해도 상당히 정신을 뒤흔들어 놓는 경험이다.
진수는 파르르 떨리는 손을 들어 다시 한 번 분신을 만들었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거지?”
네 번째 분신은 의외로 차분했다.
아니, 굳은 결심을 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진수는 미안하다는 듯 보며 고개를 위아래로 작게 흔들었다.
“크흡, 날 잊지 말아줘.”
작은 진수가 잡기 좋은 자세를 취했다.
“고맙다...!”
그런 그를 바닥으로 빠르게 던진다.
차렷 자세로 마치 탄환처럼 쏘아져나가는 분신.
결연한 표정이 마치 히어로물에 나오는 영웅 같기도 했다.
분신이 사라지고 진수는 다시 머리를 찌르는 고통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몇 초 뒤, 그의 얼굴엔 고통이 아닌, 싸늘한 분노가 그려졌다.
“이 미친놈들, 만든다는 약이...!”
일망타진
진수는 머릿속에 들어온 분신의 기억을 다시 되짚어봤다.
굉장히 큰 규모의 연구소.
일정 단위로 나뉜 공간들이 있고 그 안에서 연구원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실험을 하고 있었다.
몬스터의 비명소리.
그리고 눈을 감은 채로 누워있는 아이들의 모습.
아이들의 몸에 꽂혀 있는 수많은 튜브들.
마지막으로 분신이 떨어진 곳은 한 아이의 몸에서 뽑아낸 액체를 뭉쳐 알약으로 만드는 기계 위였다.
“하아....”
몇 차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쉬는 진수.
-[뉴트럴바이오 친구들]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체력 +1, 내구 +3, 마력 +2
그런 그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분열]을 사용해 많이 소모되었던 마력이 회복되었다.
‘그래, 힘내서 다 조지라는 거지?’
공교롭게도 뉴트럴바이오 실험체들이 많이 포함된 무리의 성장이었다.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진수는 왠지 그들도 뉴트럴바이오의 멸망을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후우, 다시 해보자.”
[분열]을 다시 사용한다.
조금 전에는 연구소 위로 떨어지리라 예상치 못해서 [유체화]를 제대로 해제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분신을 지하로 침투시킨 뒤에 [유체화]를 풀고 움직이면 출입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간다.”
진수의 손 위에 있는 분신이 그를 보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스르륵
연구시설이 있는 방향의 땅속으로 들어간 분신.
그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몇 분이 지났지만 [분열]이 강제 해제되지 않았다.
진수는 제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기다렸다.
이렇게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부글부글 끓는 속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으니까.
‘뭐? 총을 든 어린아이? 칼 든 양아치? 미래를 스스로 지켜?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데려다가 생체실험을 하는 미친 자식이 그딴 개소리를 지껄였네.’
임병옥이 텔레비전에 나와 인터뷰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만약 정말로 비각성자들도 각성자처럼 특성, 기술을 얻을 수 있게 된다면 그 기술만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도 균열에 의해서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봤으니까.
임병옥의 발언은 아마 누군가에겐 큰 희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수는 그 희망을 짓뭉개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게 비록 속이 썩어 문드러진 희망이라는 걸 알지라도 기분이 더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스윽
[분열]로 인해 작아졌던 진수의 몸이 다시 원상복구 되었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정보들.
분신이 [강철 거미줄]로 지하 연구소의 천장을 돌아다니며 파악한 내용이었다.
‘출입구가 그쪽이란 말이지...!’
진수는 머릿속이 정리되자마자 박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수사관님. 지금 어디신가요? 뉴트럴바이오 건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맘 같아선 당장 들어가서 다 때려 부수고 싶지만....’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 혼자 쳐들어가서 박멸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분노에 눈이 멀어서 놈들의 핵심이 되는 연구소를 완전히 해치울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진수는 헌터범죄전담기관 건물로 향했다.
* * *
“남산 지하에 연구소가 있다고요?”
“네. 남산3호터널 아래쪽에 상당히 큰 규모로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아마 뉴트럴바이오의 메인 연구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청계산 근처에 있는 작은 연구시설을 찾았습니다. 예전에 보팔 래빗 서식 필드 쪽에서 김진수 헌터가 신고했던 이들 기억합니까?”
“아, 그 사람들이요? 기억하죠. 제가 처음 기관에 신고했던 사람들이니까....”
진수는 허리춤에 매어놓은 도끼를 가볍게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 당시에 놈들의 우두머리 손을 잘라버리고 얻은 것이 떠올랐다.
“그 자들이 몬스터를 포획해서 넘기던 게 바로 뉴트럴바이오의 연구소더군요. 지난번에 주었던 [물품 공급 내역서]를 비교해보면 아마도 이 청계산 연구소와 남양주에 있던 곳, 남산 지하에 있는 세 군데가 뉴트럴바이오가 운영하는 모든 연구소인 것 같네요.”
“그렇다는 건....”
놈들의 창고와 연구소를 모두 찾아냈다.
남은 것은 하나.
“일망타진의 때가 왔다는 거죠.”
박철준이 씨익 웃어보였다.
그는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뉴트럴바이오의 시설들을 일시에 습격할 계획을 짰다.
진수도 뉴트럴바이오와 자주 부딪히며 알게 된 것들을 공유하며 박철준의 계획을 보완해주었다.
“그럼, 내일 남산3호터널에서 뵙죠.”
원래대로라면 헌터범죄전담기관이 작전을 수행하는데 보통의 헌터가 참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몇 가지 상황이 겹쳐져 남산 연구소 진압 작전에 참여하겠다는 진수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우선 창고형 던전들과 고아원, 세 곳의 연구소를 동시에 통제해야 하기에 인력이 부족했던 것.
그리고 진수가 뉴트럴바이오 건의 핵심 제보자라는 점.
남산 연구소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인물이라는 부분까지.
원하던 대로 남산 연구소로 함께 들어갈 수 있게 된 진수는 내일을 기약하며 자리를 떴다.
* * *
다음날, 남산3호터널로 다수의 차량들이 도착했다.
순식간에 터널로 향하는 도로를 통제하고 터널의 양쪽을 막는다.
일부 인원은 남산 위로 향했는데, 이 모든 작업이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여기입니까?”
남산3호터널의 남쪽, 비상연결통로의 한쪽 벽면에 진수가 멈춰 섰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묻는 박철준.
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벽의 이곳저곳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툭툭, 툭툭, 툭, 텅텅
한 지점에서 속이 빈 소리가 들린다.
진수가 뒤를 돌아보며 눈빛을 보냈다.
그의 뒤로는 헌터범죄전담기관 소속의 각성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모두 준비태세를 갖춘 듯 보이자 진수는 바로 벽을 거세게 찼다.
-쾅!
시원하게 뚫리는 벽.
진수는 구멍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벽에 숨겨진 문이 열리고, 아래로 향하는 통로가 나타난다.
진수를 필두로 다수의 인원이 빠르게 돌입했다.
통로는 상당히 길었고, 중간에 갈림길도 나왔지만, 연구소에서 역으로 나오는 길을 확인했기에 지체되는 일은 없었다.
-펑!
“헌터범죄전담기관이다! 모두 동작 그만!”
연구소에 다다르자마자 헌터범죄전담기관의 각성자 한 명이 폭발형 기술을 사용했다.
“뭐, 뭐야!”
“기관이 어떻게 여길?”
“방어 시스템 가동해!”
“이런 젠장!”
연구소에 있던 자들은 제각각의 반응을 보이며 혼란스러운 상황을 야기했다.
깜짝 놀라 도망치는 인물.
각성자인지 기술을 사용하며 덤비는 자.
실험체를 풀어 공격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으아아!”
몇몇 연구원들은 자신들의 몸을 부풀려 덤비기도 했는데, 정효원의 능력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같은 특성이나 기술을 가진 자들만 뉴트럴바이오에 영입하는 것은 아닐 테니 그들이 인위적으로 주입한 능력으로 보였다.
-쾅!
-퍼억
사방에서 전투가 시작되고, 실험체인 몬스터, 뉴트럴바이오 연구원, 헌터범죄전담기관의 각성자들이 한 데 얽혔다.
진수는 그 중에서 주로 강해 보이는 몬스터를 먼저 상대했다.
‘역시.... 일부러 위협적인 몬스터만 상대하다니.’
전반적인 상황을 살피던 박철준은 진수의 모습에 속으로 감탄했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헌터라고 해도 목숨은 하나다.
게다가 지금은 균열도, 던전도 아니고 진압 작전.
처치한 몬스터들은 정산 대상이 아닌 증거로써 그에게 전혀 이득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장서서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이 대단하게 보였다.
박철준은 스스로 사람을 잘 봤구나 생각하며 다른 팀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변종 미노타우로스 [떵이] 차원 전이 성공.
-변종 코카트리스 [키키] 차원 전이 성공.
-변종 켄타우로스 [마초] 차원 전이 성공.
-변종 자이언트 호크 [매형] 차원 전이 성공.
‘얼씨구, 자이언트 호크 이름도 아주 알바트로스로 지어놓지. 연구원 중에서 오로라 공주라도 있는 모양이네.’
박철준의 생각과는 달리 진수가 적극적으로 위험한 실험체를 처치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에게는 놈들 하나하나가 귀중한 능력치로 보였으니까.
지금까지 전이시켰던 변종 몬스터를 제외하고 새로운 녀석들을 골라서 처치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강력한 종들을 위주로 상대하게 된 것이다.
진수가 해치운 몬스터들이 [차원 전이]로 사라졌지만 워낙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아무도 눈치를 채지는 못했다.
“끄윽....”
마지막으로 반항하던 연구원을 제압하며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일부 인원들은 제압한 자들을 포박하여 호송차량으로 옮겼고 일부는 증거를 수집했다.
한바탕 전투로 파손된 것들도 많았지만 뉴트럴바이오를 끌어내릴 수 있는 자료는 충분히 남아있었다.
철창에 갇힌 채로 실험을 당하는 몬스터들.
난리통에도 깨어나지 않고 눈을 감고 있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몸에 연결된 수많은 튜브.
소량 생산되어 있는 알약과 그 데이터를 기록해놓은 자료들.
몬스터와 사람을 뒤섞은 괴물들.
일반 몬스터와는 사뭇 다른 형태를 한 녀석들.
사람의 신체부위로 만든 도구들.
온갖 끔찍하고 해괴한 실험들이 즐비했다.
“허.... 어떻게 인두겁을 쓰고 이런....”
이러한 광경을 보며 박철준은 탄식을 냈다.
“아무리 헌터가 밉고, 복수를 원한다고 해도...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죠.”
“이렇게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언론에 발표를 하면 임병옥 대표도 끝장이겠군요.”
“그러길... 바래야죠.”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남산 연구소의 뒤처리를 하는 것을 보던 진수는 이만 자리를 떴다.
아직 그는 할 일이 남았으니까.
진수는 용산구의 한 고층빌딩 앞에 도착했다.
전쟁기념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
그리고 전쟁기념관 옆에는 헌터 아카데미가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 위에서 헌터 아카데미를 주시하며 분노를 키웠겠지.’
그가 여기로 온 이유는 분신이 남긴 장비들을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처음 정효원의 뒤를 쫓아간 분신의 기억은 이 건물에 임병옥이 있다고 전해주었다.
아마 그녀가 보고를 받을 때는 항상 여기서 모이는 것 같았다.
‘곧바로 올라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지만....’
지금 진수가 임병옥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격이었다.
이제 곧 뉴트럴바이오의 비인도적인 행위들이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언론을 이용해 만들어낸 거짓된 가면을 벗겨내고 제대로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웬 헌터가 나타나 임병옥을 해친다면?
진실은 가려지고 비각성자와 헌터의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
“조금만 기다려라....”
진수는 낮게 읊조리고는 주변의 낮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한 구석에 떨어져있는 검은 비닐 봉투.
옥상 위엔 자잘한 쓰레기들이 많았기에 별로 눈에 띄는 모습은 아니었다.
‘잘 숨겨놨네. 역시 내 분신이야.’
검은 봉지를 집어든 진수.
그 안에는 연으로 만든 글라이더, 작은 옷들 그리고 강아지용 액션캠이 들어있었다.
‘내 분신한테 강아지용 장비를 착용시키는 기분이 꽤 참담하지만... 용도에 딱 맞는 물건이 이거 말곤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진수는 침통한 표정으로 액션캠에 찍힌 영상을 확인했다.
보이스피싱
“균열도 이놈들이 일으킨 거였어?”
강아지용 액션캠에 담긴 영상은 상당히 길었다.
공중에서 정효원의 뒤를 쫓기 시작하는 부분부터 임병옥에게 보고를 하는 장면.
나와서 어디론가 향하는 것까지.
‘이 영상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파괴력이 있겠어. 하지만... 좀 더 확실하게 밟아버려야지.’
진수는 영상의 일부 구간을 몇 차례 더 돌려본 뒤 자리를 떴다.
* * *
다음 날,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뉴트럴바이오의 인체실험 사실을 공개했다.
뉴트럴바이오를 마치 대한민국의 희망처럼 언급하던 언론은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순식간에 바꿔버렸다.
하지만 비각성자들의 여론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태도가 한 순간에 바뀐 언론을 꼬투리 잡아 음모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헌터들이 언론사 사장들을 협박했다더라]
[뉴트럴바이오 죽이기 들어가는구나]
[헌터들 밥그릇 건드리면 기업도 얄짤없네]
혹시나 하던 기대를 꺾는 것보다는 미워할 대상을 찾는 것이 더 쉬운 일이었다.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이러한 음모론에 박차를 가하는 영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각성자들과 헌터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가는데 한 방송국의 뉴스에서 분위기를 뒤집을 인터뷰가 방영되었다.
-균열을 막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만티코어 두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분명 한국에서 서식하지 않는 몬스터였죠. 균열도 오크가 나오는 균열이었기에 만티코어가 나올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A급 헌터 박가은이었다.
그녀는 며칠간 외부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고, 균열 현장에 남은 흔적으로 인해 사망이 유력시 되고 있었다.
박가은은 평소에도 균열 방어에 꽤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높은 등급의 헌터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비각성자들에게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뭐야, 박가은이야?”
“죽은 거 아니었어?”
한 지하철 객실.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더니 이곳저곳에서 박가은이 인터뷰하는 뉴스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그럼 왜 잠적하고 계셨던 겁니까?
-만티코어의 독에 중독됐었습니다. 워낙 강력한 독이라 치료를 하는 데에 상당히 오래 걸렸습니다.
-그랬군요. 그런데, 균열 사태 때 만티코어를 소환한 사람이 있었다고요?
-네.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현장범으로 붙잡은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 입을 열고 있지 않기에 불특정다수를 노린 테러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균열 사태 당시 만티코어를 소환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 제보가 있었습니다. 촬영자의 위치가 주변 고가도로 쪽인 걸로 봐서는 아마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우연히 찍은 것 같네요. 함께 보시죠.
아나운서의 멘트 후에 화면이 전환되었다.
핸드폰 카메라 화질로 찍힌 영상에는 진수의 뒷모습과 그를 보며 놀라는 정효원의 얼굴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내 등장하는 만티코어 두 마리.
만티코어들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떨어져 내리면서 영상은 끊어졌다.
-말씀하신대로 몬스터를 소환하는 사람이 있었군요. 그런데 영상에는 두 사람이 나오네요? 한 명이 나머지 한 사람을 제압하는 것으로 보이던데요.
-예. 만티코어를 처치하고 건물 옥상 위를 확인했을 때, 몬스터를 소환한 사람이 포박된 채로 있었을 뿐, 다른 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그 분께 감사를 꼭 전하고 싶네요.
박가은은 인터뷰에서 진수와 말을 맞춰놓은 대로 이야기했다.
박가은과 배혜지를 노린 만티코어 소환을 불특정다수를 노린 테러로 만든다.
그리고 만티코어를 직접 막아낸 인물로 그녀를 더욱 영웅화시키려는 의도였다.
“와, 균열 막고 있는데 거기다가 몬스터를 뿌려? 쓰레기네.”
“이런 새끼들은 신상을 싹 공개해야 하는데.”
“범죄자 인권은 더럽게 챙기는구나.”
인터뷰를 보던 사람들은 정효원을 향해 비난을 했다.
“그럼 그 때 건물이 부서졌댔나, 뭐 그런 얘기 했던 사람도 얘한테 보상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생각해보면 박가은은 사람들 지킨다고 죽을 뻔한 건데 건물 좀 무너졌다고 징징댄 거네. 인성이....”
일행끼리 인터뷰를 보며 이야기를 하고, 메신저를 통해서 또 말을 전한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그 모습을 보던 진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보다 반응이 좋은 거 같네.’
-이번 역은 사당. 사당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그는 사당역에서 내려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바로 컴퓨터를 켠 그는 액션캠에 저장되었던 영상 중 일부를 익명으로 헌터넷에 업로드했다.
정효원이 임병옥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
그 안에서 임병옥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장면.
냉랭한 표정의 임병옥과 고개를 숙이는 정효원의 모습까지만 편집을 한 동영상이었다.
[헌터넷에 동영상 올렸어]
진수는 유재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띠링
[유재찬 : ㅇㅋ 적당히 어그로 끌린 척 하면서 댓글 달게]
이미 이번 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유재찬과 공유를 해두었던 진수.
그가 헌터넷에 영상을 올리면 영상에 나오는 정효원이 뉴스에서 만티코어를 소환한 사람과 동일인물인 것 같다고 반응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이슈가 생기면 동영상 플랫폼에서 이슈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달려들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흐흐흐, 어쭙잖게 온라인 선동을 하려고 하면 역풍도 맞을 수 있다는 걸 아셔야지.”
50대인 임병옥보다는 20대인 진수가 온라인에 더 익숙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 * *
임병옥이 박가은의 인터뷰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고 있다.
지금까지 보고를 받던 방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그 앞에는 고블린사육사, 나두경이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보았다.
“대표님, 상황이 영 안 좋습니다. 일단 몸을 숨기시는 게....”
나두경은 넋이 나간 듯 영상을 보는 임병옥에게 말했다.
“박가은이 살아있다니요? 이럴 수가....”
임병옥은 한쪽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쥔 채로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끝낼 순 없어요...!”
“하지만 저희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얼마 남지 않은 것 아시잖습니까.”
연구소와 창고를 모두 잃어버린 상황.
그들에게 남은 것은 나두경이 운영하고 있던 초기의 시설뿐이었다.
“중국에 돈만 주면 어떤 일이든 처리해주는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대표님, 그자들은 너무 위험.... 휴우. 알겠습니다.”
나두경은 임병옥을 표정을 보고는 반대 의견을 꺾었다.
그녀가 지금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으니까.
“배혜지, 박가은, 정용, 양민우, 정윤아. 원래대로라면 배혜지만 살아있어야 하죠. 계획이 틀어졌다면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없애겠어요.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임병옥이 잔뜩 충혈된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계획은 연거푸 실패하고 복수는 이루지 못하자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된 듯 보였다.
“... 아마 적룡파는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들어올 기틀을 원하고 있을 겁니다. 적법한 사회적 신분, 사업체 같은 것들이요. 그런 쪽으로 준비해서 접촉해보겠습니다.”
“그래요. 남아있는 자금을 다 쏟아 부어도 좋아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하는 임병옥.
“그리고... 이 영상에 나온 거, 김진수 맞죠?”
그녀는 뉴스에서 잠깐 나왔던 정효원을 제압하는 장면을 가리켰다.
모자를 쓰고 일당 헌터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정확히 식별할 수는 없었지만 체구는 진수와 비슷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나두경은 지금 임병옥이 원하는 대답은 정확한 분석이 아닌 맞장구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정황상으로도 김진수일 확률이 높았다.
“으으... 분명히 정효원을 다시 잡고 영상을 찍은 것도 김진수일 거예요. 생각해보면 일이 틀어지기 시작한 곳에는 항상 그 자가 있었어요. 헌터 협회에서 우리를 노리고 일부러 만들어낸 각성자가 분명해...!”
-뿌드득
임병옥이 의자의 팔걸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분노에 눈이 가려지셨구나.... 김진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대표님이 다시 차분해질 수 있도록 희생양이 되어줘야겠어.’
나두경은 임병옥이 분노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를 못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봐도 전기톱을 휘두르고 다니는 헌터가 몰래 잠입하여 회의실의 영상을 찍어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맞습니다. 적룡파와 협의하는 시간도 벌고 놈들의 힘을 좀 꺾는 셈치고 김진수를 제거해볼까요?”
“가능하겠어요?”
“겨우 C급 헌터입니다. 게다가 정효원이 파악해놓은 데이터로 봐서는 [중급 재생력] 빼고는 조심해야 할 만한 특성이나 기술도 없고요. 제가 데리고 있는 실험체만 가지고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습니다.”
나두경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들로서는 진수가 C급 진급 이후에 얼마나 많은 특성과 능력치, 기술의 증가가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상식선에서 생각해봤을 때, 그저 진급 데이터에서 조금 발전한 정도일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좋아요. 김진수를 처치하기로 하죠. 지난번에 정효원이 보고하기를 일당 헌터 생활을 할 때 친하게 지내던 자가 있다고 했어요. 혹시 모르니 그 자를 이용해서 좀 더 안전하게 움직여보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걱정하시지 않게끔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는 확신에 찬 얼굴로 방을 나섰다.
* * *
-변종 어인 [L-22호]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5
-변종 크라켄 [F-73호]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1
“어유, 얘네들이 생각보다 오래 살아있었네?”
간간이 균열을 막거나 몬스터 서식 필드를 돌아다니던 진수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뉴트럴바이오에서 만든 살덩이 형태의 몬스터들.
아마도 실패한 실험체들이었을 것이다.
전이되어 아틀란티스 무리에 합류하더니 상당히 오래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나마 슬라임이 우두머리라 비슷하게 생겨서 잘 돌봐줬나 보다.’
진수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도출해냈다.
‘음... 근데 이제 죽은 걸로 봐서는... 슬슬 세력을 확장하느라 보살필 여력이 안 되는 건가?’
그가 보내준 막대기 덕분에 위엄을 세운 슬라임 포세이돈.
주변으로 슬슬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띠리리링
진수가 잠시 상태창을 보며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정씨 아저씨네? 무슨 일이지?”
-여, 여보세요? 김씨. 어디서 전화가 왔는데... 우리 딸을 데리고 있다고 하는구먼. 어떻게 해? 어떻게 하면 될까? 우리 딸 잘못되면 안 되는데...!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정유현이 급박한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정씨 아저씨네 딸이...? 분명히 기관에 보호를 요청했는데?’
“아저씨, 침착하게 말씀을 해보세요. 누가 전화를 했는데요?”
-선영이를 데리고 있다고, 김씨한테 고, 고블린사육사라고 하면 누군지 알 거라고 했어.
“아... 이런. 선영이는 전화 안 받아요?”
-어, 어. 전화기가 꺼져있다고 하네.
진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저씨, 제가 잠시 뒤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그쪽에서 뭘 요구하는 건지 한번 차분하게 정리 해두시겠어요?”
그는 정유현과의 통화를 끊고 즉시 박철준에게 전화를 했다.
-아, 김진수 헌터.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중이더군요.
“전화를 주셨었다고요?”
도리어 진수가 말을 하기 전에 이야기를 꺼내는 박철준.
-그래요. 김진수 헌터가 보호 요청을 했던 정선영씨를 납치하려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정말요? 선영이는, 선영인 괜찮나요?”
-핸드폰을 떨어트려서 고장 났다고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놈들은 우리 쪽 팀원들이 잘 제압했고요.
박철준의 대답에 진수의 표정이 풀어지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이 자식들. 보이스피싱도 아니고....’
-그런데,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장난을 좀 쳐놨더군요.
이어지는 박철준의 말에 진수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가는 길
“장난이요?”
진수가 박철준에게 물었다.
-예. 팀원 중에서 모방 계열 특성을 지닌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가 정선영씨 납치를 성공해 신병을 확보했다고 전했답니다. 그래서 혹시나 그쪽이 정유현 헌터나 김진수 헌터한테 연락을 취하지 않을까 싶어서 전화를 돌렸는데 두 사람 모두 통화중이더군요.
진수는 그 말을 듣고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되었다.
고블린사육사는 정유현의 딸을 납치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해서 정유현을 협박.
정유현은 깜짝 놀라 진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박철준은 이 사실을 알리려 먼저 정유현에게 연락을 했지만 고블린사육사와 통화중이라 연결이 안 됐고, 그 다음엔 진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때는 정유현과 통화를 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전말을 알고 보니 그저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잠깐.... 이거 잘하면 고블린사육사도 잡을 수 있는 기회 아니야?’
박가은의 인터뷰가 나오고 곧바로 진수가 올린 영상이 퍼지면서 뉴트럴바이오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면서 임병옥이 자취를 감추었고 헌터범죄전담기관이 그 뒤를 쫓고 있는 상황이다.
수사에 진전이 없던 와중에 뉴트럴바이오 쪽에서 먼저 움직인 것이다.
“알겠습니다. 선영이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씨 아저씨한텐 제가 잘 전할게요. 참, 혹시 모르니까 잘 있는 사진 한 장만 찍어서 전달해주시겠어요? 그리고, 가능하면 그 팀원이라는 분께 계속 선영이를 데리고 있는 것처럼 꾸며달라고도 해주세요.”
진수는 박철준과의 통화를 마치고 다시 정유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이얼이 채 한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는 정유현.
그가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선영이 잘 있대요. 전화는 그냥 핸드폰을 떨어트려서 고장 났다고 그러네요.”
-띠링
정유현과 통화를 하는 중에 박철준에게 정선영의 사진이 왔다.
액정에 금이 간 핸드폰을 들고 헌터범죄전담기관의 요원들과 해맑게 V를 그리며 찍힌 모습이었다.
“사진도 왔네요. 보내드릴 테니까 보시고 안심하세요.”
진수는 통화를 유지한 채로 사진을 정유현에게 보내줬다.
-아이구, 얼마나 심장이 뛰었는지. 다행이네. 다행이야.
“아저씨. 근데 상황을 들어보니까 아저씨한테 전화를 한 놈은 자기 부하들이 선영이를 데리고 있다고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데... 저랑 일 하나 하시죠.”
-일?
“네. 그놈이 아저씨한테 뭘 하라고 하던가요?”
-김씨를 데리고 어디로 오라고. 김씨 말고 다른 사람 데리고 오면 선영이를 죽이겠다고 하더라고.
‘그냥 데리고 오라고 했다라.... 어차피 뉴트럴바이오에 남은 실험체는 얼마 없을 거고, 만티코어도 박가은이 잡은 줄 알 테니까 그리 위험할 일은 없을 거야.’
진수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정유현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해주었다.
“... 해서 위험할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혹시 모르니까 가기 전에 정씨 아저씨 몸 보호할만한 아이템은 하나 사가야겠네요.”
-정말 괜찮은 거여? 영 믿기지 않는 소리만 하니까 원....
“하하, 마술쇼 같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이따가 종합운동장역에서 봬요.”
통화를 마친 진수.
그는 바로 동묘로 향해 보호용 아이템을 몇 개 구입했다.
균열을 몇 차례 막고 상당히 높은 수준의 몬스터 서식 필드도 다닐 수 있게 되었기에 돈이 부족하진 않았다.
‘지난번에 콩이장군 받을 때도 삼성역에서 만나고, 이번에 날 데려오라는 것도 올림픽대로 쪽 한강변이고.... 아무래도 그 근처에 연구소나 창고 같은 게 남아있는 모양인데.’
뉴트럴바이오는 거의 하천이나 계곡, 산 같은 곳에 시설을 갖춰두는 편이었다.
한강 쪽이나 한강에서 이어지는 탄천에 숨겨진 연구소가 있을지도 몰랐다.
[강남구나 송파구 쪽에 혹시 트럭 같은 것들이 여러 대 움직이는 게 있는지 파악 좀 해주시겠어요? 특히 한강이나 탄천 부근에서요. 뉴트럴바이오 잔당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진수는 박철준에게 메시지를 남긴 뒤에 종합운동장역으로 이동했다.
정유현은 이미 역에 도착해있었다.
“기, 김씨. 선영이도 괜찮은데 위험하게 이러는 게 맞을까?”
불안한 눈빛으로 진수를 보는 정유현.
“아저씨.”
“응?”
“만약에 저놈들이 또 선영이 노리면요?”
진수가 묻자 그의 떨리던 눈동자가 멈췄다.
“다음엔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덤비면요? 그래서 선영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요? 괜찮으시겠어요?”
이어지는 진수의 말에 정유현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럴 수는 없지. 어. 그렇게 되면 안 되지.”
“그래서 이렇게까지 하려는 거예요.”
“역시, 김씨밖에 없어. 누가 남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줄까.”
정유현은 거의 눈물을 글썽일 지경으로 진수를 보았다.
“아으, 아저씨 징그럽게 그러지 말고 빨리 가기나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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