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6
딱히 의심스러운 파일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근데 규모에 비해서 아이들 사진이 되게 많네. 옛날 사진들도 다 모아놓은 건가...?’
사무실의 한쪽 벽면에 아이들의 사진이 가득히 붙어있는 게시판을 발견한 진수.
사진들을 쭉 살펴봤다.
“어?”
그 사진들 속에서 발견한 두 사람.
어린 시절의 최유석 그리고 그와 똑 닮은 인물, 최유권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이 둘이 쌍둥이...?’
진수가 혹시 다른 사진이 더 없나 찾아보려는데, 멀리서 사무실을 향해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저벅, 저벅, 저벅 철컥
곧장 사무실로 다가와 문을 여는 인물.
최유석이었다.
“아니, 여기서 뭘...!”
파악
“여기서 대체 어떻게 더 결과를 내라는 말씀이십니까?”
최유석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이쪽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관련된 특성이나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쪽에서 요구하시는 방법대로 했는데도 안 되는데 뭘 더 할 수가 있습니까?”
그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진수는 [유체화]로 사무실에서 빠져나가 내부의 소리를 훔쳐들었다.
[중급 청각]이 있기에 벽 하나 정도는 전혀 방해가 되지 못했다.
“네, 압니다. 그런데 제가 보내드린 영상만 봐도 알려주신 방법대로 했는데 언데드화가 안 되지 않았습니까.”
‘몬스터를 언데드로 만들려는 게 최유석이 원한 게 아니었어?’
최유석과 최유권이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범죄 헌터라고 생각했던 진수는 좀 더 최유석의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언데드화 시키고 영상을 찍어서 보내주는 거. 이게 이쪽에서 할 일인 거고, 문제가 생기면 분석해서 대표님께 보고하는 건 그쪽에서 할 거잖습니까. 얼렁뚱땅 일 떠넘기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하세요. 일선에서 움직이는 입장에 얼마나 불안한지 압니까? 형도 그쪽에서 과도한 요구를 안 했으면 기관에 걸리는 일 없었을 겁니다. 기관에서 저까지 찾아내면 물건 공급량이 확 줄어든다는 거 기억하세요. 끊습니다.”
최유석은 언짢은 목소리로 쏘아붙이고는 통화를 마쳤다.
‘이거 뭔가 범죄자 헌터 한두 명이 움직이는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들어보니 최유권도 같은 소속인 모양이고. 물건 공급은 또 무슨 소리야?’
최유권은 던전에서 몬스터를 조종하는 실험을 했었다.
그리고 그 동생 최유석은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를 언데드화 시키는 테스트를 한다.
그것도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와, 지난번에 과장을 보탰다고 생각했던 게 진짜였네. 정말 배후세력이 있을 줄이야. 이거는 익명 신고로 될 일이 아니겠는데....’
진수는 혹시 더 단서가 될 이야기가 나올까 해서 청각을 집중해보았다.
-철컥, 철컥 끼익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 안쪽에서 잠금장치 같은 것을 조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뭘 하는 거지?’
사무실 안쪽에서 사르륵 사르륵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청각만으로는 내부 상황이 파악되지 않자 진수는 [투명화]와 [유체화]를 사용해 머리만 슬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파일들이 정리되어 있는 책장 앞에서 어떤 문서를 읽고 있는 최유석.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종이를 앞뒤로 넘겨가며 무언가를 대조해보고 있었다.
‘저런 곳에 비밀 금고를 뒀구나?’
진수의 시선은 최유석의 발치로 향했다.
책장의 바로 앞 바닥이 열려있었는데 얼핏 훑어보았을 때 서류뭉치가 몇 개 들어있는 듯했다.
-스윽
사무실 바깥에서 [투명화]를 풀고 잠시 대기하는 진수.
그는 최유석이 사무실에서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금장치를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갔군.’
진수는 최유석이 떠나는 소릴 듣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목표는 명확했다.
최유석이 서류를 꺼냈던 비밀금고.
“와, 근데 이거 진짜 정교하게 만들었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바닥의 일부가 열려있었는데 다시 보니 감쪽같이 감춰져 있었다.
이곳에 비밀금고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정도였다.
게다가 정교한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지 아무리 건드려 봐도 빈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열쇠 같은 것이 없다면 절대 열지 못할 것 같은 금고였다.
‘그런데, 짜잔! 절대라는 건 없지. 흐흐.’
물질을 통과할 수 있는 [유체화] 앞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자물쇠도 소용이 없었다.
진수는 바닥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아마 누군가가 그의 모습을 보았다면 경악을 했을 것이다.
“뭐야, 이거? [유체화]를 쓰고 있는데도 따끔따끔하네. 으, 빨리 물건 꺼내야겠다.”
비밀금고는 대략 신발상자 정도의 크기였다.
그 안에는 뿌연 연기가 가득 차 있었는데 피부에 닿으니 상당히 거슬리는 통증을 주었다.
‘독인가? 뭐, [상급 독 내성]이 있으니까 별 소용없겠지만.’
고블린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를 모두 아틀란티스에 보내주고 받았던 보상 중 하나가 바로 [상급 독 내성]이었다.
독성 슬라임 [플러버]의 특성 중 하나가 바로 그것.
무려 상급의 특성이었기에 어지간한 독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수가 따끔함을 느끼게 만든 가스는 정말 대단한 극독이라는 의미였다.
‘그 정도로 중요한 서류라는 거겠지.’
진수는 문서들을 바닥에서 뽑아냈다.
[유체화]를 풀고 혹시 모를 가스도 탈탈 털어낸 그.
서류는 두 종류였다.
하나는 [물품 공급 내역서].
다른 하나는 [창고관리일지]였다.
이름만 봐서는 굉장히 평범한 내용인 것 같았다.
‘통화 내용을 듣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자신이 잡히면 물건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던 최유석.
분명히 이 문서들은 언데드화 실험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당장 [물품 공급 내역서]에는 3일 전에도 무언가 물품을 하나 공급했다고 적혀있었다.
‘물품 공급이라는 게 테스트를 말하는 건가? 일종의 암호일 수도 있겠어.’
진수는 [물품 공급 내역서]를 공간압축 주머니에 넣고 [창고관리일지]를 살폈다.
마찬가지로 표가 있고 창고에 저장된 것들이 어디로 갔고, 뭐가 들어왔는지 적혀있는 서류였다.
“쓰읍. 이것만 가지고서는 뭔가를 알 수가 없겠는데...?”
[창고관리일지]의 품목 번호는 그나마 일관성이 있었다.
연안창고 U-35 입고라거나 동묘창고 U-6 입고 등 U와 숫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름이었다.
‘무슨 U보트도 아니고.... 잠깐. 동묘?’
진수는 [창고관리일지]의 내용을 천천히 살펴봤다.
동묘창고에 최종적으로 입고된 항목은 총 7개.
그의 기억이 맞다면 동묘 던전에서 차원 전이시킨 언데드 몬스터가 약 7마리 정도 되었다.
“게다가... U로 시작하는 이름들.... 내가 전이시킨 녀석들도 U-2호, U-14호 막 이랬던 거 같은데...?”
지역과 품목의 이름이 겹친다.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만한 상황이었다.
그는 [창고관리일지]의 다른 내용들을 살펴봤다.
특히 창고가 몇 군데나 있는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보았다.
‘동묘를 포함해서 5군데, 그런데 한 곳은 입·출고가 안 된지 꽤 됐네. 실질적으로 3군데가 운영되고 있다고 봐야겠어.’
진수는 [창고관리일지]를 공간압축 주머니에 넣고 사무실에서 빠져나갔다.
이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은 듯했으니 이제 성심성의껏 봉사활동을 하면서 알리바이를 만들 차례였다.
그가 고아원 창고로 돌아가고 얼마 뒤 최유석이 정리가 얼마나 되었는지 점검하러 왔다.
“굉장히 빨리 끝내셨네요. 점심 식사 전까지 아이들과 계시겠어요? 오후에는 식당 청소를 좀 부탁드릴게요.”
최유석의 안내를 받아 5~7살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애들은 처음 만난 진수를 보고 쭈뼛거리더니 이내 금방 적응을 했다.
‘역시 애들은 몇 번 업어주고 던져주면 끝이지.’
고아원 봉사활동을 꽤 많이 다녀본 진수에게 이 정도 나이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처럼 체력 능력치가 많이 오르기 전에는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있었지만, 이제는 하루 종일 균열도 막을 수 있는 체력이다.
-[초코]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1
조금 피곤해지려다가도 체력 능력치 보상이라도 받으면 또 다시 쌩쌩해지기도 했고 말이다.
“아저씨!”
“아저씨 아니야.”
“아저씨, 얼마 전에 영준이 아빠 생겨서 아빠한테 갔다요?”
“그래? 잘 됐네.”
“민지도, 봉규도 갔어요.”
‘이 고아원이 영업이라도 하고 다니는 건가...? 입양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생기는 일이 아닌데.... 나쁜 짓을 하고 다니더라도 애들한텐 좋은 일 하고 있네.’
진수는 구김살 없는 모습으로 친구들이 떠나갔음을 말하는 아이를 보았다.
게이트 사태 이후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많이 생긴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으레 그늘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곳의 애들은 다들 밝았다.
그래도 애들한텐 정말 잘 해주는 듯했다.
“아저씨! 붕붕 해주세요!”
꼬마는 할 말을 다 했는지 두 팔을 높이 들며 진수에게 들러붙었다.
아이가 말하는 붕붕이란 건 공중에 던졌다가 받아주는 놀이였다.
일방적으로 던져주는 사람만 힘든 놀이였지만 C급 헌터의 신체 능력으론 식은 죽 먹기.
하지만 진수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 아니야.”
그의 대답에 꼬마는 참 맞춰주기 피곤하다는 듯한 얼굴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에휴... 그래요, 형. 붕붕 해주세요.”
그 말에 진수는 동전이 들어간 오락기처럼 당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붕- 붕-
붕붕이라는 말에 어울리도록 꼬맹이를 공중에 집어던진다.
꺄르륵 웃음이 터지는 아이.
그 모습에 다른 애들도 달려들어 자신들도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진수의 앞에 줄을 서서 던져지는 아이들.
붕붕놀이는 애들이 천장에 닿을락 말락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한 최유석이 뛰어와 말릴 때까지 이어졌다.
* * *
“여기 균열 정산 내역서입니다. 마석은 어디로 보내드리면 될까요?”
고아원 봉사를 다녀온 다음 날, 진수는 헌터 협회를 찾았다.
강남역 균열과 은평구 균열에 대한 정산을 받으러 온 것이다.
“아 여기 이 주소로 보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은평구 균열은 정말 큰일 날 뻔 했어요. 김진수 헌터님 아니었으면 아마 인명 피해가 수십 명은 됐을 거예요. 항상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헌터 협회의 접수원이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우연히 근처에 있는 균열을 막는 일은 종종 있지만, 진수처럼 일부러 균열 동원 메시지를 더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히 C급 헌터쯤 되면 주로 던전을 돌거나 방송 쪽으로 눈을 돌리는 일이 많았다.
그렇기에 더욱 진수가 훌륭하게 보였던 것이다.
“하하, 아닙니다.”
진수는 접수원의 인사를 가볍게 받고는 건물 위층으로 향했다.
오늘 헌터 협회에 방문한 것은 균열 정산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 진수 군 왔어요?”
그는 헌터 협회 간부인 정윤아에게 연락을 했다.
“네, 안녕하세요.”
“진수 군이 물어본 거, 확인을 해봤어요. 동묘 던전 터, 헌터 협회에서 쭉 관리를 하다가, 2년 전에 어딘가로 관리 권한이 넘어갔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데이터가 모두 삭제된 상태예요.”
진수가 정윤아에게 부탁한 것은 동묘 던전이 있던 자리에 관한 것이었다.
누가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이상한 현상이나 반응은 없었는지 등.
‘헌터 협회 간부 인맥을 이럴 때 써먹어야지.’
“이 부분은 제가 좀 더 알아볼게요. 자료가 삭제된 게 있었는데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니 문제가 있네요. 별로 도움이 못 된 거 같아 미안해요.”
“아니에요. 혹시 확인하시는 김에 청계, 남한산, 남양주 이쪽에 비슷한 던전이 있는지도 알아봐주실 수 있으실까요?”
진수는 [창고관리일지]에 적혀있던 다른 창고의 이름을 확인해보았다.
동묘창고, 청계창고, 남한산창고, 남양주창고, 연안창고.
이렇게 다섯 군데가 적혀 있었고 동묘는 확인이 되었다.
연안창고는 짐작 가는 곳이 있었기에 남은 세 곳의 확인을 부탁한 것이다.
“알겠어요. 근데 청계는 정확히 어딜 말하는 거죠? 청계산? 청계천? 청계동?”
“저도 그것까진.... 어디서 흘러가듯 들은 거라서요.”
“그래요, 일단은 확인해볼게요.”
두루뭉술한 답이었지만 아들의 마지막 말을 전해준 진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신뢰] 특성의 작용으로 정윤아는 더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
헌터 협회에서 볼일을 모두 마친 진수는 바로 인천으로 움직였다.
‘수도권에서 연안이라고 하면... 연안부두 쪽밖에 없지.’
그는 연안창고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아직 알지 못했지만 진수 나름의 노림수가 있었다.
‘여기에도 비슷한 창고가 있다면 [차원 전이]가 지나칠 수 없을 거야. 임무 줘!’
진수는 [차원 전이]의 임무에게 미끼를 던졌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납치
-임무 : 안내에 따라 이동하여 던전 클리어 하기
-보상 : [아틀란티스] 무리 구성원의 특성 중 하나
“역시!”
진수는 눈앞에 나타난 안내 메시지를 보고 쾌재를 질렀다.
그가 의도한대로 [차원 전이]는 가까이에 있는 매력적인 창고를 찾아냈다.
머릿속에 어디론가 끌어당기는 감각이 느껴진다.
“음, 부둣가에 있는 건가?”
임무가 이끄는 방향으로 움직여보니 연안부두 한 구석에 자그맣게 뚫려있는 던전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진수는 주저 없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동묘 던전 때와 마찬가지로 지하로 깊게 들어가는 통로.
그 끝에는 언데드 몬스터 두 마리와 살덩이 변종 몬스터 둘이 있었다.
‘던전 크기가 작으니 보관하고 있는 몬스터도 적구나.’
그는 바로 전기톱을 꺼내 빠르게 휘둘렀다.
변종 어인, 변종 크라켄, 어인 좀비, 보팔 래빗 스켈레톤.
이렇게 네 마리의 몬스터를 차원 전이시킨 진수.
그는 전기톱을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기다렸다.
-쿵!
“찌-익!”
[사신의 감각]에 무언가가 천장에서 내려오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커다란 그림자가 쑤욱 하고 천장의 구멍에서 떨어졌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앞니.
지저분한 회색의 털이 뒤덮인 몸.
털이 없는 징그러운 꼬리.
이족보행을 하는 쥐 인간, 랫맨이었다.
그런데 이제 거대한 덩치를 곁들인.
-쿵쿵쿵쿵
녀석은 진수를 발견하고는 즉각 달려들었다.
광분을 하며 이빨을 딱딱거리는 모습이 공포스러울 정도.
-드드드득!
진수의 머리를 뜯어먹으려는지 우악스럽게 벌린 주둥이에 전기톱을 쑤셔 넣었다.
입천장을 뚫어버릴 심산이었지만 놈의 기다란 앞니에 걸려 실패했다.
“찍!”
이빨이 갈리는 고통에 랫맨이 짧게 소릴 지른다.
진수는 몸을 한 바퀴 돌려 이번엔 전기톱으로 몸통을 노렸다.
-휘익!
“어?”
하지만 랫맨이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놈은 손과 주둥이로 공격하는 척 하면서 시선을 뺏은 뒤에 꼬리를 이용해 진수의 발목을 잡아챘다.
불시의 공격에 진수는 그대로 몸이 거꾸로 뒤집혔다.
‘내가 예전이었으면 고생을 했겠지만... 이제는 제법 유연하다고!’
-위이이잉!
“끼에엑!”
진수는 허리를 굽히며 전기톱으로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꼬리를 잘라버렸다.
랫맨은 제법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지르며 쾅쾅 뛴다.
바닥에 떨어진 진수.
몸이 땅에 닿자마자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유연체질]의 힘이었다.
일어나는 힘을 받아 그대로 폭발적으로 돌진한다.
“죽어라!”
전기톱이 거대한 랫맨의 목을 뚫고 들어간다.
톱날에 녀석의 척추가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쿵...!
-변종 랫맨 [라따뚜이] 차원 전이 성공.
거구가 육중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그리고 이내 사라지는 사체.
“휴우. 이 정도는 이제 식은 죽 먹기지.”
-변종 어인 [L-22호]가 [아틀란티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변종 크라켄 [F-73호]가 [아틀란티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보팔 래빗 스켈레톤 [U-4호]가 [망자 군단] 무리에 합류합니다.
-어인 좀비 [U-31호]가 [망자 군단] 무리에 합류합니다.
진수가 변종 랫맨을 처리하고 나니 연안창고에서 차원 전이시킨 몬스터들이 아틀란티스와 망자 군단으로 들어갔다.
‘[창고관리일지]에 적혀있는 입고 품목이랑 전이시킨 언데드 몬스터의 이름이 정확히 일치해. 그렇다는 것은, 지금까지 이름이 있던 특이한 몬스터들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녀석들일 가능성이 높겠지.’
고돌이 때부터 이 연안부두의 던전을 찾을 때까지.
일반적이지 않은 현상들의 퍼즐이 맞춰진다.
“세상에, 대체 어디까지 손을 대고 있는 거야?”
최유석, 최유권의 뒤에 있는 자들은 던전부터 균열, 필드에 이르기까지 그 마수를 뻗고 있는 것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일당 헌터로 그날그날 몬스터 사체 갈무리가 편하길 바라며 지냈던 진수.
이 엄청난 스케일에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 미친놈들 이러다가 나중엔 균열도 직접 일으키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대체 뭘 위해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진수는 던전 내부를 훑어보았다.
딱히 단서가 될 법한 것은 보이지 않는 휑한 공간.
창고라고 명명한대로 오로지 실험체 몬스터들을 보관하기 위한 곳인 듯했다.
벽면에는 동묘 때와 마찬가지로 마력 회로 같은 것이 있었고, 천장 쪽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구멍들은 위를 향한 것이 땅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는데, 몇몇 개는 꺼멓게 탄 흔적과 함께 얕은 구덩이만 파인 것도 있었다.
“어? 저건 뭐지...?”
그렇게 천장의 구멍들을 살피던 진수의 눈에 웬 천 조각이 들어왔다.
무슨 모자의 챙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일단 몬스터가 가지고 있을만한 것은 아니었다.
-쿠르릉...!
천 조각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하는데 던전의 붕괴가 시작됐다.
“잠깐... 저 모자...? 후우, 일단 나가자. 나가서 생각을 정리해보자.”
진수는 던전의 바깥으로 빠르게 탈출했다.
클리어 되어 붕괴된 던전은 그가 나오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거대 늑대 [늑돌]의 특성 중 하나
던전이 클리어되자 임무가 달성되며 보상 메시지가 나타났다.
-[융합]의 효과로 [상급 전사의 신체]와 [상급 독 내성]과 [중급 청각]과 [중급 치악력]이 합쳐집니다.
-[울버린] 특성이 생겼습니다.
무려 네 개의 특성이 합쳐지며 새로운 특성이 생겼다.
‘울버린이라니, 왠지 발톱을 뽑아야 될 것 같은 이름이네.’
진수는 특성의 개수는 확 줄어들었지만 몸은 오히려 가뿐해졌음을 느꼈다.
‘그나저나 아까 그 모자.... 분명히 고아원 앞에서 최유석이랑 같이 차를 타던 꼬마가 쓰고 있던 모자였어.’
기쁜 표정을 지으며 차에 타던 아이.
아마도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생각에 차에 올랐을 것이다.
‘얼마 전에 영준이 아빠 생겨서 아빠한테 갔다요? 민지도, 봉규도 갔어요.’
진수에게 놀아달라고 떼를 쓰던 아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개자식들이 진짜...!”
그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욕을 뱉었다.
‘안 되겠어. 당장 최유석한테 간다. 협박을 하든 두들겨 패든 고문을 하든 이 미친놈들이 뭘 하고 있는 건지 알아내야겠어.’
진수는 바로 은평구의 애중원으로 향했다.
[투명화]를 이용해서 수월하게 고아원에 잠입한 그.
우선은 사무실로 향했다.
애중원의 아이들 명단을 먼저 찾은 진수.
[물품 공급 내역서]와 날짜를 대조해봤다.
‘하루의 차이를 두고 시기가 정확히 일치해. 이게 물품 공급이라니, 제정신이 박힌 새끼들이냐...?’
진수는 다시 한 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온다...!’
서류를 살펴보고 있는데 [사신의 감각]에 멀리서부터 한 생명체가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최유석의 냄새였다.
진수는 일부러 보고 있던 서류를 사무실 벽면에 걸어놓고 [유체화]를 사용해 벽 너머로 나갔다.
-끼이익
“음? 저게 왜 저기에...?”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의아하다는 듯 말하는 최유석.
그는 벽으로 다가가 서류를 집어 들었다.
-쑤욱
그 순간, 진수가 [유체화]를 사용하여 벽을 뚫고 나왔다.
“헉!”
그대로 최유석의 멱살을 잡고 다시 벽 너머로 나간다.
-퍽!
하지만 다른 생명체에까지 [유체화]가 적용되지는 않는지 최유석의 앞섶만 뜯겨나가고 최유석은 벽에 머리를 박으며 자빠졌다.
“아, 이게 안 되네.”
다시 벽을 통과하며 나타나는 진수.
일부러 [투명화]는 사용하지 않았다.
몇 차례 사용하다보니 [유체화]와 [투명화]를 분리해서 사용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여전히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어야 마력 폭주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귀, 귀신...?”
-퍼억!
불투명한 몸을 가진 진수의 모습에 최유석이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 모습에 진수는 발로 머리를 걷어찼다.
“그래, 귀신은 뭐하나 저놈 안 잡아가고에서 말하는 그 귀신이다. 귀신 무서운 줄 아는 새끼가 이딴 짓을 해?”
최유석은 몇 차례 더 맞은 뒤에 시선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정신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귀신의 손에서 무언가 나와 자신의 몸을 굳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이게 가위에 눌리는 건가...?’
그는 굉장히 적극적인 가위 눌림에 당황하며 이내 기절했다.
-우우우우웅...
최유석은 마치 귓가에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불쾌하고 간질간질한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굴려 주변을 보니 고아원 근처 산속인 듯했다.
움찔하는 움직임에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어- 어- 조심해. 고흐 된다, 고흐.”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슬쩍 눈을 돌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았다.
그곳엔 살벌한 전기톱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두고 침을 바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번엔 눈을 굴려 그에게 말을 건 이를 보았다.
전기톱을 들고 있는 사내.
얼굴엔 희끗한 실로 만든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고아원 직원한테 얻을 게 뭐가 있다고 이런 짓을...!”
최유석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일품이었다.
“어이구, 그 양반 연기 잘 하시네.”
가면의 사내, 진수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냥 고아원 직원이면 내가 당신을 이렇게 데려왔겠어? 다 알고 왔으니까 서로 피곤하게 굴지 말자고.”
그의 말에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는 최유석.
“다 알고 왔다고...? 그런데도 날 이따위 줄로 묶어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최유석의 몸이 순간적으로 불어나며 털이 자라났다.
마치 괴물의 몸처럼 변하기 시작하는 그.
-우드득!
[강철 거미줄]이 뒤틀리면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크흐흐흐흐...!”
거대해진 근육이 다시 압축되는 것일까?
울끈불끈 변하던 최유석의 몸이 이내 다시 줄어들었다.
“제대로 생각했군.”
근육이 압축되는 게 아니라 그냥 거미줄을 끊지 못해서 변신을 푼 것이었다.
그는 거미줄이 감겨있는 곳이 썰린 것처럼 쓰라림을 느꼈다.
“이제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겠지? 내가 묻는 말에만 제대로 답하면 살려는 드릴게.”
진수는 한바탕 헛짓거리를 마친 최유석의 목에 톱날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의 살려준다는 말에 최유석의 눈이 빛났다.
“고아원에서 나간 아이들. 어디로 갔어?”
“연구실로 보냈다. 어차피 희망이 없는 생인데 과학 발전에 이바지 했으니 의미 있는 삶이 되었지. 크흐흐.”
최유석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희망이 없는 생이라는 말에서 왠지 모르게 씁쓸함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푹
“끄아아악!”
“쓸데없는 사족 붙이지 말고. 희망이 있고 없고를 왜 니가 멋대로 판단해?”
진수가 몬스터 갈무리용 단검으로 놈의 허벅지를 찔렀다.
“다음, 연구실은 어디에 있는데?”
“크윽... 모른다. 창고에다가 보내놓으면 연구실 쪽에서 알아서 챙겨가....”
-푹
“끄으윽!”
진수는 다시 한 번 허벅지를 찔렀다.
“정말 모른다고!”
핏대를 세우며 토로하는 최유석.
진수는 그 모습을 냉정히 살펴보았다.
‘첫 번째 질문에 순순히 답한 걸 봐서는 진짜 모르는 거 같기도 한데.... 일단 다른 걸 물어보자.’
“그럼, 아이들을 데리고 무슨 실험을 하는 거지?”
“물건 종류에 따라....”
-푹
“끄으으!”
“이 미친놈이 아주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게 당연하네?”
“끄흑... 아이...의 특징에 따라 달라. 특성이나 기술을 뽑아내서 이식하는 연구나 언데드화와 관련된 실험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 모든 일들을 하는 게 어디야? 단체 이름이나 연구소 같은 게 있을 거 아니야.”
진수는 혹시 최유석이 대답을 거부할까봐 단검을 허벅지에서 사타구니 쪽으로 옮기며 물었다.
그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건.... 으으윽! 끄아아악!”
“뭐, 뭐야? 아직 안 찔렀어!”
갑자기 최유석이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눈을 까뒤집은 채로 바르르 떠는 그.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우우웅-
곧이어 거꾸로 뒤집힌 최유석의 가슴팍에서 불길한 검붉은 원형이 나타났다.
익숙한 마력 회로였다.
‘이건... 창고에서 몬스터가 나올 때 봤던 건데...?’
-화륵!
최유석의 온몸에서 마력이 타올랐다.
그 힘을 매개로 거대한 무언가가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수임무 발생.
‘이야, 아주 이런 상황만 있으면 헐레벌떡 나오는구나?’
진수는 특수임무가 발생하는 것만으로 지금 나타나는 몬스터가 보통 녀석이 아니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꼬리 자르기
-쿵!
“끼아아악!”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
놈은 징과 꽹과리 따위를 있는 힘껏 두들기는 것 같은 괴성을 내뱉었다.
‘미친...!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사자와 같은 몸은 그 크기가 대형 트럭만하다.
네 발에 달린 발톱은 단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날카롭고 살벌했다.
엉덩이엔 기다란 꼬리가 살랑대고 있는데 꼬리의 끝에는 기다란 독침들이 빼곡히 달려 있었다.
얼굴은 기괴하게도 인간과 닮아 있었다.
코 위로는 어린 아이의 형상이었고, 입은 길게 찢어져 톱날 같이 매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서 나타난 선례가 없는 만티코어의 등장이다.
-특수임무 : 만티코어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만티코어의 특성 중 하나
‘야, 이건 안 될 거 같은데...?’
진수는 막막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만티코어는 지금까지의 임무 목표들과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였다.
공격력과 살상력만 놓고 보면 드래곤급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괴물이다.
A급 헌터도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수준.
얼굴이 익히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어린아이의 모습인 것으로 봐선 아직 완전히 큰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함부로 상대하기 어려운 몬스터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튀어야 하나...?’
그는 만티코어의 동정을 살피며 퇴로를 확인해보았다.
-쌔액!
잠시 시선을 돌리는데 파공음과 함께 무언가가 매섭게 날아왔다.
황급히 몸을 날려 피한 진수.
그가 있던 자리에 기다란 독침이 날아와 꽂혔다.
-푸슈욱
곧이어 침의 꽁무니에서 가스가 새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희뿌연 연기 같은 것이 뿜어 나왔는데, 연기를 조금 마신 진수는 순간 핑 도는 게 느껴졌다.
“어우, 취하는 것 같네.”
호흡기가 따끔따끔하고 약간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진수는 그것이 고아원 사무실 비밀금고에 채워진 독가스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상급 독 내성]이 있음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은 정말 강력한 맹독이라는 의미였다.
아마 [중급 재생력]까지 갖고 있지 않았다면 조금씩 중독되어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게 만티코어가 치명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그가 이대로 방치하고 몸을 빼면 가장 먼저 가까이에 있는 고아원을 시작으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생길 게 자명했다.
“이런....”
진수는 아랫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만티코어를 노려봤다.
-부웅!
녀석은 진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득달같이 달려들어 앞발을 휘둘렀다.
재빨리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한 진수는 전기톱을 휘둘렀다.
-티티티팅!
하지만 그의 공격은 만티코어의 꼬리에 저지당했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는지 일부러 사각을 노렸지만 꼬리의 가시들로 전기톱을 수월하게 막아냈다.
-부르르... 피슉! 피슉!
진수의 공격을 막으면서 동시에 공격을 하는 녀석.
꼬리를 잘게 떨더니 독침들을 날렸다.
진수는 왼손엔 도끼, 오른손엔 전기톱을 들고 빠르게 휘두르며 만티코어의 독침을 튕겨냈다.
독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야 이겨낼 수 있었지만 몸에 직접 꽂히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후웅!
양손으로 바삐 독침을 막고 있는데 만티코어가 그 육중한 몸체를 허공에 날렸다.
뒤로 우아하게 텀블링을 하는 것 같더니 진수를 넘어가며 꼬리로 내려친다.
꼬리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내자 곧이어 착지한 녀석의 앞발 공격이 이어졌다.
-팍! 팍!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를 입을 엄청난 힘이었다.
“헉, 헉, 헉...! 역시 만티코어... 더럽게 빡세네.”
진수는 근처에 있는 나무에 거미줄을 날려 몸을 뺐다.
거리가 벌어지니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다시 차분히 만티코어를 살필 수 있게 되자 놈의 움직임에서 익숙함이 느껴졌다.
그를 노려보며 어슬렁어슬렁 걷는 녀석.
전형적인 맹수의 움직임이었다.
‘온다!’
순간적으로 만티코어의 동공이 커지는 걸 발견한 진수.
동시에 몸을 낮추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녀석은 뒷다리에 힘을 주어 폭발적인 속도로 도약했다.
진수가 타이밍을 읽어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면 당했을 것이다.
‘할 수 있겠다...!’
지금 이 순간의 상황에서 진수는 가능성을 보았다.
만티코어를 처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놈의 움직임을 읽었다.
마치 어려운 게임에서 보스의 패턴을 외우고 있는 것처럼.
고돌이에게 [용사] 특성을 보내줬을 때 받은 보상의 능력이었다.
-콰드득!
만티코어가 앞발을 휘두르면 몸통 쪽으로 파고들면서 겨드랑이를 찌른다.
커다란 입으로 물어뜯으려 할 때는 측면으로 피하고 눈가를 노린다.
도약을 하면 바닥으로 구르며 복부를 공격할 수 있다.
검투장에서 사람뿐 아니라 여러 맹수, 몬스터들을 상대한 챔피언 고돌이의 경험이 만티코어에게도 고스란히 적용이 되었다.
“끼아아악!”
연달아 공격에 실패하고 얻어맞기만 하는 만티코어.
놈은 성질이 났는지 온몸의 털을 비죽 세우고 괴성을 내질렀다.
-쾅!
다시 한 번 돌진하는 녀석.
이번엔 자세를 낮춘 질주였다.
진수는 회전하며 몸을 날렸다.
전기톱이 놈의 어깨부터 등판을 가로질러 옆구리까지 베면서 지나간다.
-퍽!
“크윽!”
하지만 진수도 완전히 공격을 피한 것은 아니었다.
돌진과 함께 꼬리를 휘두른 만티코어.
꼬리 공격까지 계산에 넣어 움직였지만 순간적으로 꼬리의 끝이 부풀어 오르며 그의 등판을 때린 것이다.
공중에서 가격당해 바닥에 나자빠진 진수.
-팡! 팡! 쒸익!
기회를 놓치지 않은 만티코어의 공격이 연달아 짓쳐들었다.
빠른 앞발 공격 두 번에 이어 꼬리 찌르기.
날카로운 침이 진수의 목을 거칠게 할퀴고 지나갔다.
“컥!”
목뼈가 살짝 보일 정도로 깊게 들어온 공격.
진수는 급히 목을 감싸 쥐었다.
[중급 재생력] 덕분인지 덜렁거리는 목이 다행히 금방 붙었다.
‘꼬리가 문제야...!’
고돌이도 만티코어와 싸워본 경험은 없었는지,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꼬리에 계속해서 공격을 허용했다.
진수는 문제의 원흉인 꼬리를 제거할 방법을 고민했다.
-후웅!
다시 진수에게로 돌진하는 만티코어.
진수는 근처에 있는 나무 위로 점프해 올라갔다.
-우지끈!
녀석의 무자비한 몸통박치기에 나무 몇 그루가 뿌리째 뽑힌다.
진수는 만티코어가 나무를 들이받는 순간 놈의 뒤로 뛰어내렸다.
곧장 손에서 [강철 거미줄]을 뽑아낸다.
재빨리 만티코어의 꼬리에 거미줄을 칭칭 감는 진수.
-화르륵!
여러 겹으로 감긴 [강철 거미줄]에 [도깨비불]이 붙었다.
거미줄에 담겨있는 마력을 장작삼아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웰시코기 꼬리 자르는 법이다! 불 붙이는 건 보너스고.’
꼬리에 갑작스럽게 큰 고통이 느껴지자 만티코어가 비명을 지르며 광분했다.
사방으로 날뛰며 쿵쾅대는 녀석.
하지만 마력으로 타오르는 [도깨비불]은 물리적으로 꺼지는 불이 아니었다.
거미줄에 붙었던 푸른 귀화가 점점 놈의 마력으로 옮겨 붙으며 파고들었다.
‘이때다!’
-위이이잉!
진수는 전기톱을 맹렬히 돌리며 만티코어의 꼬리를 잘라버렸다.
“키에에엑!”
이제는 꼬리의 흔적만 남아버린 녀석.
몇 차례 펄떡거리며 바닥을 뒹굴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
놈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진수를 노려보았다.
“쯧쯧쯧쯧, 이리 온.”
진수가 왼손을 들어 강아지를 부르듯 까딱거렸다.
예측이 어려운 꼬리가 사라졌으니 이제 녀석의 공략에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쾅!
그의 도발에 만티코어가 달려들었다.
분노에 가득 차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지만 직선적이다.
진수는 더욱 수월하게 녀석을 상대할 수 있었다.
-부드득!
만티코어와 격돌할 때마다 전기톱이 놈을 긁었다.
[도깨비불]로 마력을 태우고 톱날이 가죽을 뜯었지만 녀석은 여전히 건재했다.
원체 강한 몬스터였기에 공격력이 조금 부족했던 것이다.
‘조금만 더 하면 가죽을 완전히 뚫고 내부까지 공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수는 손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아주 약간의 부족함이 있다는 걸 느꼈다.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오히려 진수가 지쳐서 나가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만티코어가 한 번 움직이면 진수는 두세 번 피하고 공격을 해야 했으니까.
놈도 그걸 느꼈는지 점점 더 과감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내 공격이 가죽을 못 뚫는다는 걸 알고 아주 급소까지 내놓으면서 덤비는구나...!’
혈관이 지나가는 목덜미며 복부 등 취약한 부위도 상관 않고 공격 일변도로 나오는 만티코어.
진수는 아쉬움에 탄식을 하며 공격을 피했다.
회피와 동시에 반격을 이어나갔지만 역시나 큰 타격은 없는 상황.
그런 그의 앞에 반전을 일으킬 수 있는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드라코니아 [도마일]이 [갓 오브 워] 무리에 합류합니다.
-돌거북 [레오나르도]가 [아틀란티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망자 군단]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민첩 +1, 체력 +3, 내구 +2, 마력 +1
‘나이스!’
큰 폭의 능력치 증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로 놈의 방어를 뚫지 못하던 상황에서 이 보상은 가득 찬 물 잔에 물 한 방울을 떨어트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캬악!”
만티코어가 상체를 일으키며 양발을 휘둘러온다.
진수는 그에 맞서며 전기톱을 놈의 목에 찔러 넣었다.
-위이이잉... 우우우웅!
톱날이 만티코어의 두터운 살가죽에 닿는 순간, 올라간 힘 능력치와 민첩 능력치를 총동원하여 최대 속도로 움직였다.
-드드드득! 콰득! 콰가가각!
힘겹게 녀석의 가죽을 짓이기던 전기톱이 이내 가죽을 완전히 찢어발기며 뚫고 들어갔다.
살점을 거칠게 뜯어내더니 곧장 목뼈까지 돌파한다.
-파앗!
이윽고 있는 힘껏 휘두른 전기톱이 만티코어의 목에 흐르는 경동맥을 끊어버렸다.
진수의 시선을 가득 채우는 피 분수.
톱날은 결국 목뼈까지 잘라내진 못했지만 녀석의 숨통을 끊기엔 충분히 들어갔다.
-만티코어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만티코어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헉, 헉...! 해치웠다.”
진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해외 헌터 커뮤니티에서는 헌터 킬러라고도 불리는 엄청난 녀석을 처치한 것이다.
실제로 그도 목이 잘려 죽을 뻔 하기도 했고, 그 전에 독도 상당히 위험했다.
“이 개자식, 더럽게 세네. 니 이름은 웰시코기다.”
그는 만티코어의 꼬리를 잘랐던 걸 생각하면서 이름을 지어줬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만티코어 [웰시코기]의 특성 중 하나
절대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특수임무가 완수되며 보상을 준다.
진수는 보상을 받자마자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뭘 줬길래 이러지?’
상태창을 열어서 확인해보니 [체질 확장]이라는 특성이 생겨있었다.
‘원래 만티코어한테도 있는 특성인가?’
[체질 확장]은 헌터들 사이에서도 꽤 흔히 볼 수 있는 특성이었다.
자체적으로는 아무런 힘을 못 쓰지만 [체질]이라는 단어가 붙은 다른 특성이 있다면 그 능력을 더욱 확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진수에게는 [유연체질]이 있었기에 몸이 더욱 가볍고 부드러워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주욱 주욱
자신의 팔과 다리를 잡아당겨보는 진수.
정말 고무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관절이 꽤나 많이 늘어났다.
‘싸울 때 써먹기 괜찮겠는데...?’
팔을 채찍 휘두르듯 튕겨보니 탄력적으로 움직인다.
“그나저나... 이 시체는 어떡하지...?”
진수의 시선은 최유석의 시체로 향했다.
마력이 타올라 비쩍 마른 미이라처럼 변한 모습.
‘어차피 이 주변이 이렇게 난장판이 됐는데 완전히 은폐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 아예 헌터범죄전담기관이 개입하게 만들자.’
가방에서 헌터 시체를 담는 자루를 꺼낸다.
자루에 부착된 신호 장치가 헌터 협회로 이 위치를 전송할 것이다.
이 주변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런 경우엔 헌터 협회에서 헌터범죄전담기관과 공조하여 사건을 파악한다.
‘그럼 필연적으로 기관에서 최유석의 뒤를 캐게 되겠지.’
그가 노리는 것은 헌터범죄전담기관이 최유석의 뒷배를 들쑤셔 진수에게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자신의 흔적을 확인해보고 자리를 정리한 뒤 떠났다.
* * *
“아, 진수 군. 자리에 앉아요.”
정윤아가 자신의 집무실에 찾아온 진수를 반겼다.
“지난번에 부탁한 던전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어요. 대략 1~2년 사이로 몇 곳의 던전 터 관리권한이 개인에게 넘어갔더군요.”
-스윽
그녀는 몇 장의 서류를 진수에게 내밀었다.
“여기, 삭제되었던 자료를 복구한 내용이에요. 협회 내부에서도 파악하지 못했던 일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정윤아가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별 말씀을요. 하하. 저도 헌터인데, 헌터 협회에 보탬이 돼야죠.”
진수는 가볍게 겸양의 말을 한 뒤에 서류를 확인해봤다.
‘뭐...? 이 사람한테 관리 권한이 넘어갔다고?’
우연의 일치
“그러니까... 이 정효원이라는 사람한테 던전 관리 권한이 넘어갔고, 그 이후로 자료가 삭제되었다는 말씀이신 거죠?”
진수가 다시 한 번 확인 차 물어봤다.
“맞아요. 다시 데이터를 복구하고 확인을 해봤을 때 아무런 하자나 문제가 없는 사람인데 왜 삭제가 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음, 알겠습니다. 확인해주셔서 감사해요.”
“이쪽 던전 터에 뭔가 문제가 있나요? 몬스터라도 나왔어요?”
정윤아가 진수에게 묻는다.
“아뇨, 그냥 제가 동묘에 자주 다니는데 방벽 너머에 뭐가 있나 궁금해서 알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거예요. 그래도 헌터 협회에서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전투 능력도 그렇고 이런 정보 캐는 것도 그렇고 역시 우리 부서에서 일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정윤아는 여전히 진수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흔치 않은 인재였으니까.
“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혹시 양민우 부장님, 집무실에 계신가요?”
“그이는 왜요? 그쪽 부서로 가려는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좀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네, 오늘 같이 출근 했으니까 자리에 있을 거예요. 혹시라도 자리 비우고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요. 한소리 할 수 있는 기회니까. 호호.”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래요. 들어가요.”
진수는 정윤아의 집무실에서 나와 예전에 함께 일당 헌터 일을 했던 정유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정씨 아저씨. 통화 괜찮으세요? 아, 네. 일당 헌터 일 오늘 뭐 없으시고요? 이따가 오후에요? 아.... 어디 일인데요?”
수화기 너머로 대답을 들은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음, 아저씨. 현장 반장님한테 이따가 저도 일 뛸 수 있는지 좀 물어봐주시겠어요? 아뇨. 그냥 오늘 사냥 갈 일은 없고, 갈무리 실력도 녹슬지 않게 하려고요.”
정유현이 그러겠노라 답했는지 진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네. 부탁드릴게요. 그럼 이따 봬요!”
전화를 마친 그는 바로 양민우 부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일자리를 마련해달라 부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생겼기에 진수는 걸음을 바삐 옮겼다.
* * *
“어이, 김씨! 여기야!”
경기도 남양주의 오남근린공원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이 어딘가로 손을 흔들며 소릴 지른다.
“아, 정씨 아저씨!”
진수가 통화했던 정유현이었다.
“김씨 오랜만이네. 어떻게 전투 헌터 되더니 얼굴을 통 볼 수가 없어. 흐흐. 아주 비싼 몸이야?”
“그냥 좀 일에 적응하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하하. 조만간에 한잔 하시죠. 제가 시원하게 쏠게요.”
“뭘 쏴 쏘기는. 내가 잘 아는 고기집 있는데 거기로 한 번 가자고.”
“하하, 그러시죠. 근데 오늘 그 현장 반장님 밑에 있었다고 하는 사람네 공략조 일이라고요?”
진수는 적당히 안부 인사를 한 뒤에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어어. 요즘에 그치가 일을 잘 안 가져오더니, 오늘 딱 급건을 신청했더라고?”
“타이밍이 좋았네요.”
그는 정유현의 말에 눈을 빛냈다.
‘정말 운이 좋았지. 예전 고돌이 건도 그렇고 여러모로 정효원도 최유석과 한패인 게 분명해. 뒤를 좀 캐봐야겠어.’
헌터 협회에서 가지고 있던 던전 터 관리 권한.
연구 목적이나 안전상의 이유로 개인이나 단체 등에서 받아가는 경우가 있다.
이 때는 꽤나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데, 일당 헌터 생활을 하던 정효원이 정말 개인적으로 던전 터 관리 권한을 가져갔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진수는 정효원을 캐면 그 뒤에 있는 단체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일부러 일당 헌터 일을 하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최유석처럼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움직여야지.’
그는 최유석이 스스로 죽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하니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 그가 묻는 것에 최대한 답하는 것에서 스스로의 생명을 굉장히 소중히 여긴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 만티코어를 소환한다?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마도 긴급한 상황이거나 소속된 집단에 대해서 밝히려고 하면 목숨을 앗아가는 제약이 있었던 거겠지.’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은 기상천외한 기능을 지닌 것들이 많다.
거기에 마력 공학을 섞으면 그야말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할 정도.
그저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자들이라는 점이 놀라울 뿐이었다.
‘하긴, 고아들을 데리고 실험을 하는 미친놈들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고아원을 헌터범죄전담기관에 신고해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함부로 고아원 하나를 건드렸다가 뒤에 있는 조직이 숨어버리면 앞으로 더 큰 범죄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어이구, 우리 전투 헌터 진수 아니야!”
진수가 씁쓸한 마음을 안고 있는데 현장 반장이 반가운 체를 하며 다가왔다.
“하하, 안녕하세요.”
‘언제 진수, 진수 이름으로 불렀다고 이러시나....’
현장 반장은 전형적인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타입이었다.
자신의 밑에 있던 정효원이 전투 헌터가 되고 공략조를 운영하니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조아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생존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봐야할 수도 있겠지. 당장 고정적인 공략조 거래처 하나만 뚫어놔도 일감이 확 늘어나니까.’
진수는 옆에서 반가운 척 떠드는 현장 반장에게 적당히 대꾸해주며 던전의 문 쪽을 보았다.
이제 슬슬 정효원이 나올 때가 됐다.
‘그리고 현장 반장 성격이라면 분명히 정효원을 그냥 보내지 않겠지.’
그가 딱히 반갑지도 않은 현장 반장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받아주고 있는 이유였다.
-쿠구궁...
이윽고 던전의 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쪽에서 다섯 명의 헌터들이 던전에서 나왔다.
네 명이었던 구성원에서 한 명이 더 늘어났다.
상당히 젊은 사내였는데, 얼핏 봐서는 진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어이구, 조장님.”
현장 반장이 정효원을 향해서 아는 체를 한다.
정효원은 예의 껄렁대는 태도로 현장 반장을 맞이하는데, 그의 바로 옆에 있는 진수를 보고는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 예. 반장님.”
정효원이 진수를 보고 안색이 변하는데 현장 반장이 눈치도 없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소개를 했다.
“아~ 이쪽은 진수라고, 우리 팀에서 일했던 친구에요. 얼마 전에 전투 헌터가 됐는데, 또 팀이랑 인연도 있고 해서 일 도우러 왔어요. 같은 전투 헌터고, 또 어떻게 보면 출신이 같으니까 서로 알고 지내면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는 예전에 강철거미 던전에서 이미 한 차례 진수와 정효원을 봤던 것은 잊어버리고 서로를 인사시켰다.
그런 현장 반장의 말에 돌아온 건 정효원의 싸늘한 대답이었다.
“이미 한 번 본 적 있죠. 같이 일도 해봤고. 그리고, 반장님이랑 일했던 거 뒤에서 어떻게 말하고 다니는지 다 아니까... 그렇게 가식적으로 이야기 안 하셔도 돼요.”
정효원의 냉랭한 태도에 현장 반장은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너무 그러지 마시죠. 하하. 그래도 예전에 같이 일하던 분인데.”
그 모습에 진수가 중재에 나섰다.
“흠. 김진수씨는 여기 무슨 일로...?”
“아, 반장님 말씀대로 오랜만에 일손 좀 도우러 왔죠. 한동안 갈무리를 별로 안 했더니 솜씨가 죽는 거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정효원씨를 만나네요. 하하.”
“이거 참, 엄청난 우연의 일치네요.”
정효원은 안절부절 하는 것 같기도, 불쾌한 것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그러게요. 간만에 봬서 반가웠어요.”
진수는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의 손을 지그시 바라보는 정효원.
그러다 이내 손을 마주 잡았다.
-휙, 휙
정효원이 손을 잡자마자 진수가 양손으로 그의 손을 감싸며 세차게 흔들었다.
“하하, 들어가세요. 저도 이만 던전 뒤처리 하러 가보겠습니다.”
“아... 네.”
진수의 부자연스러운 태도에 무언가 의심스러운지 악수했던 손을 슬며시 보는 정효원.
하지만 그의 손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기우인가?’
미간을 잠시 찌푸린 그는 이내 생각을 털어버리고 던전 앞에서 떠나갔다.
그런 정효원의 뒷모습을 보는 진수의 얼굴엔 음흉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뭐여? 뭐 볼일 있던 거 아니었어?”
정유현이 싱겁게 인사만 하고 마는 그를 보며 물었다.
“하하, 그냥 오랜만에 일당 헌터 일 감 좀 살리러 왔죠. 들어가시죠.”
진수는 별 일 없다는 듯이 정유현을 데리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볼일은 끝냈으니까.’
힘차게 악수를 하던 진수는 슬쩍 정효원의 옷에 소형 추적기를 붙였다.
왼손을 마주 잡으며 흔들 때 거미줄과 함께 쏜 것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연구소든 자신이 속한 집단의 본거지든 돌아갈 것이다.
진수는 그저 그 신호에 따라서 가기만 하면 된다.
‘두 번째 볼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는 구석구석을 살피며 던전에 들어갔다.
“김씨, 뭘 그렇게 봐? 뭐 숨겨진 아이템이라도 있나 기대하는 겨? 요즘 전투 헌터 생활 하기 좀 힘든가봐.”
진수의 모습을 본 정유현이 지레짐작을 하며 말했다.
“그게 아니고....”
진수가 답을 하려는데 던전 한쪽 구석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끄악!”
“누가 좀 도와줘!”
‘아, 역시...!’
구불구불 미로처럼 복잡한 길을 따라서 달려 나간다.
어느 정도 가까워졌는지 진수의 후각에 몬스터의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비릿한 혈향도 함께.
“꾸에엑!”
진수가 도착하고 본 것은 몸집이 성인 남성의 1.5배 정도 되는 코볼트가 일당 헌터들을 위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당 헌터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코볼트에게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제가 처리할게요.”
진수는 몬스터 사체 갈무리용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가 나서자 다른 일당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 뒤로 피했다.
‘이놈도 일반적인 코볼트로 보이지는 않는데, 혹시 임무가 나오려나?’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진수는 덩치가 큰 코볼트를 앞에 두고도 여유롭게 임무를 받았다.
이런 녀석은 손가락 하나로도 처치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오, 운이 좋군.’
-임무 : 변종 코볼트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골드 +5
임무를 확인한 그는 흐흐 웃으며 놈에게 다가갔다.
-휘익!
느릿하게 움직이는 듯하더니 갑자기 폭발적인 속도로 돌진한다.
예상치 못한 엄청난 빠르기에 당황한 코볼트.
진수는 그런 녀석의 어깨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남들 몰래 [강철 거미줄]을 놈의 배에 연결했다.
“꾸욱!”그대로 거미줄을 잡아당기며 던전 안쪽으로 뛰어가는 진수.
코볼트는 강제로 그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이 광경을 보던 일당 헌터들은 진수가 안전을 위해서 코볼트를 멀리 유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수가 전투 헌터가 됐다더니 사람 좋은 건 그대로야?”
“애가 옛날부터 일도 싹싹하게 잘 했잖어.”
“지난번에 고블린 나왔을 때도 진수가 잡지 않았어?”
“역시 인성이 좋다니까.”
엄지를 치켜들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진수를 칭찬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 누구도 코볼트가 어떻게 되는지 따라가 보는 이는 없었다.
-변종 코볼트 [코붕] 차원 전이 성공.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5
던전의 한 구석에서 여유롭게 변종 코볼트를 차원 전이시킨 진수.
적당히 코볼트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는 곳에서 녀석을 해치웠다.
‘이놈들 작명센스는 그대로구나. 고블린은 고돌이, 코볼트는 코붕이라니.’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야, 진수. 역시 전투 헌터야!”
“등급도 벌써 C급이라면서? 평생 D급도 못 되는 사람도 많다는데 대단해!”
“아까 움직이는 거 봤어? 아유, 나는 눈으로 따라잡지도 못 하겠더라.”
진수가 나타나자 입에 발린 소리들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진수는 그들의 칭찬에 적당히 웃어 보이며 정유현을 찾았다.
“정씨 아저씨, 잠시 저랑 얘기 좀 해요.”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추적
“김씨, 무슨 일이야? 위험한 던전에 불렀다고 화난 겨?”
정유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은 진수가 몬스터와 싸우다 다치기라도 한 건가 걱정되었지만 낯간지러운 소릴 못 하는 탓에 오히려 툴툴대는 말이 나왔다.
“그럴 리가요. 코볼트 정도는 이제 위험한 축에도 못 끼고요.”
진수는 그런 정유현의 성격을 알았기에 먼저 그를 안심시켰다.
“아저씨. 지난번에 고돌, 아니 고블린 나왔을 때 기억나세요?”
“아유, 그럼. 그날을 잊을 수가 있나. 얼마나 놀랐는데.”
“제가 정효원이랑 다음에 강철거미 던전을 돌았을 때도 공략조 사람이 한 명 죽었어요. 지금 같이 다니는 인원 말고 그날 따로 모였던 헌터들 중에서요.”
“음....”
정유현이 잠자코 진수가 하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사족 붙이지 말고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오늘 또 일이 터질 뻔했죠. 제가 봤을 때, 저기 정효원이랑 같이 일하는 건 위험한 것 같아요.”
진수가 바로 정효원을 따라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정유현을 일당 헌터 팀에서 빼내는 것.
또 하나는 혹시 모를 인명 피해를 막는 것이었고.
“아저씨, 지금 있는 팀에서 나오시면 안 돼요?”
그의 말에 정유현이 턱을 긁으며 고민했다.
까슬까슬한 수염이 서걱, 서걱 긁히는 소리가 적막함을 가리려 애썼다.
“김씨도 알다시피 내가 딸아이도 있고... 당장 일을 멈출 수가 없잖아?”
정유현도 걱정은 될 것이다.
공교롭게 정효원이 맡기는 일에서 사건이 자주 터지고 있으니.
하지만 그로서도 쉽게 결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아저씨, 헌터 협회 뒤처리 하는 팀으로 들어가시는 건 어떠세요?”
“협회? 갈 수 있으면 나야 좋지. 근데 나 같은 사람을 뽑겠어?”
그의 대답에 진수가 슬며시 웃었다.
“조만간에 시간 좀 내주세요. 협회 쪽에 형식적으로라도 면접은 봐야 할 테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그쪽에 갈무리 실력이 아주 좋은 분 소개해주기로 했거든요. 혹시나 정씨 아저씨가 안 간다고 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진수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오전에 헌터 협회에서 양민우를 만났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균열이 발생했을 때 파견하는 뒤처리 팀에 정유현의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진수보다 훨씬 오랫동안 일당 헌터 생활을 했기에 그의 몬스터 사체 갈무리 실력은 확실하다.
헌터 협회에서도 꾸준히 뒤처리 팀에 인원을 충원하고 있었기에 양민우는 흔쾌히 수락했다.
오히려 검증된 실력자를 구할 수 있음에 진수에게 고마워했다.
“협회에? 김씨가? 이야, 김씨! 진짜 성공 했구먼 그래? 하하하!”
정유현이 진수의 말에 박장대소했다.
그 자신이 헌터 협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음보다는 진수가 협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는 면에서 기뻐했다.
“오늘같이 좋은 날에 한잔 해야지!”
잔뜩 신이 나서 외치는 정유현.
하지만 진수는 고개를 가볍게 가로 저었다.
“오늘은 사고도 있고 했으니까 다음에요. 제가 또 연락드릴게요.”
“아, 그래? 알겠어. 그럼 조만간 꼭 보자고.”
아쉬워하는 정유현을 뒤로 하고 진수는 던전 밖의 현장 반장에게 향했다.
이미 다른 일당 헌터들에게 안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 받은 현장 반장은 먼저 가보겠다는 진수의 말에 순순히 승인해주었다.
‘좋았어, 여기서 하려던 건 다 끝냈다. 정효원이 나랑 정씨 아저씨가 친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괜히 엮이게 두긴 너무 불안하지.’
진수가 굳이 찾아와서 정유현을 헌터 협회 쪽으로 빼돌린 것은 정유현의 안전을 위한 것도 있지만 진수 자신을 위한 게 더 컸다.
그가 정 붙인 몇 안 되는 사람인데 위험해 처하면 절대 가만히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상대는 사람을 물건으로 생각하는 놈들이니까.’
그는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액정에는 지도가 떠있었고 빨간 점이 지도에 표시되고 있었다.
‘벌써 꽤 많이 움직였네.’
진수의 핸드폰에 나타나고 있는 점은 바로 정효원에게 부착한 추적기의 위치였다.
현재 가리키고 있는 곳은 대략 3km 정도 떨어져있는 계곡 근처.
‘서둘러서 움직이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겠다.’
지도를 보며 방향을 다시 점검한 그는 바로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높은 능력치와 신체를 강화해주는 특성들 덕분에 맨몸으로 달리는 속도인데도 엄청났다.
몇 분이 채 지나기 전에 계곡에 도착한 진수.
굉장한 빠르기로 뛰어왔음에도 지친 기색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어디 보자... 이 근처인데...?”
다시 핸드폰을 꺼내보니 정효원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계곡을 따라 움직이다보면 나오는 펜션과 별장들.
그 중 한 건물 안에 추적기가 멈춰서있었다.
‘실험체를 계곡을 통해서 옮기는 건가? 확실히 사람들 눈에는 잘 안 띄겠어.’
진수는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깊게 눌러썼다.
배낭을 메고 있고 간편한 차림이었기에 겉으로 봐서는 펜션 어디에 놀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여기군.’
추적기의 신호를 쫓아서 천천히 움직이다보니 한 건물 앞에 당도했다.
꽤 규모가 큰 펜션처럼 보였는데 그 내부에서 신호가 나오고 있었다.
-스르륵
[투명화]와 [유체화]를 사용한 진수는 펜션의 안 쪽으로 들어갔다.
외부에서 봤을 땐 건물이 여러 채 모여 있는 모습이었는데 실제로 내부에서 보니 지하를 통해 모든 건물이 연결되어 있었다.
건물에 들어간 곳은 영락없는 숙박시설의 형태지만 지하부터는 굉장히 세련된 인테리어를 보여줬다.
벽면은 상아빛의 벽재로 되어 있었고, 여러 개로 나뉜 방들은 커다란 유리창으로 내부를 볼 수 있게 만들어 놨다.
다행히 CCTV는 대부분 실험이 진행되는 방 안쪽에 설치되어 있었기에 움직이는 데에 큰 지장은 없었다.
‘누가 봐도 연구소입니다 하게 만들었네.’
지하 1층엔 우선 9개의 방이 있었는데, 몬스터가 갇혀있는 곳도 있었고, 아예 비어있는 방도 있었다.
현재 실험이 진행 중인 곳은 없는지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하층이 더 있나보네. 근데, 규모로 봤을 때 여기가 메인이 되는 연구소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저런 실험기구나 몬스터가 보이긴 하지만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를 언데드화 시키는 연구를 한다거나 만티코어를 소환하는 등의 실험이 가능해 보이는 크기가 아니었다.
아마도 보조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실인 듯했다.
‘하긴, 정효원이 이런 단체의 중역까지는 아니겠지.’
진수는 아쉬운 마음을 이내 털어버리고 다른 층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띵
지하 1층을 돌아다니는데 한 귀퉁이에서 벨 울리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곧이어 스르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윤 선생님. 이번 실험체의 활동 데이터 건은 제가 대표님께 직접 말씀드릴 테니까 바로 보고 드리진 말아주세요.”
정효원의 목소리다.
“아, 예. 회의 때 말씀대로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겠네요. 대표님께서도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건 그거고, 실험체는 아쉽습니다. [거력] 특성을 처음 부여해본 녀석이었는데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으니....”
그들은 아래층에서 회의를 하고 온 듯했다.
‘어쩐지 연구실에 아무도 보이지 않더라니....’
진수는 [투명화]를 사용하거나 비어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식으로 정효원과 윤 선생이라는 자의 대화를 엿들었다.
“사실 이제는 오차를 줄이기 위한 테스트 정도였으니까요. 조만간 다시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참, 은평구 쪽은 난리가 났다면서요?”
“최유석 그 친구가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협회와 기관 쪽에서 냄새를 맡고 파헤치고 있다고 그래요. 그런 상황에 비하면 우린 아주 편한 거죠.”
“최유석이면 만티코어를 붙여놨던 사람 아닌가요?”
윤 선생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예, 맞습니다. 만티코어도 소환이 되었다고 하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답니다. 그래서 상부에서는 최소 A급 헌터의 소행일 거라고 생각하고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높은 등급의 헌터들의 동향을 살피고 있어요.”
“아무리 만들어진 녀석이라고 해도 만티코어인데.... 만들기 쉬운 놈들도 아니고.”
“만티코어도 만티코어지만 최유석이 어떤 말을 했을지 모르니까 그게 문제죠. 워낙 충성심도 사명감도 부족한 인간이었으니까.”
정효원이 가볍게 혀를 찼다.
“어쨌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방문할 때까지 새로운 실험체 준비를 좀 부탁드릴게요. 아, 그리고 어제 들여온 거 간수 좀 잘 해주시고요.”
윤 선생에게 당부의 말을 남긴 그는 위층으로 향했다.
진수는 정효원의 뒤를 쫓을지 아래층을 살펴볼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외부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인간이니까 다음에 다시 꼬리를 잡을 수 있겠지. 오늘은 여기를 최대한 살펴보자.’
결국 연구소에서 증거를 수집하기로 한 진수는 지하 1층으로 올라온 사람들을 피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에는 회의실과 자료 보관실, 창고 같은 방들이 있었다.
자료 보관실에 들어가 보니 논문이나 문서 자료들이 있었다.
‘분명 한글로 쓰여 있는데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보겠네.’
온갖 전문적인 용어들이 채워진 자료들은 진수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띠링
‘하지만 누군가는 알아볼 수도 있겠지.’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녹화를 시작했다.
자료들의 목차와 최근에 꺼내본 듯 펼쳐져 있는 자료들을 위주로 촬영했다.
‘[특성의 적출과 인위적인 주입에 관한 연구], [특성과 물건의 결합에 대한 연구] 뭐 이런 걸 보면 굉장히 인류 발전에 힘쓰는 곳 같은데....’
진수는 안타깝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실험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는 [특성과 물건의 결합에 대한 연구]라는 자료를 펼쳐보았다.
‘뭐야 이거?’
글씨는 읽어봐야 별 소용이 없었기에 대충 그래프나 사진 위주로 훑어보던 진수.
그의 눈에 믿을 수 없는 사진이 보였다.
사람의 시체로 물건을 만드는 모습이었다.
[과거 카니발리즘은 주술적인 의미로 행해졌다. 오늘날 과학적인 측면에서 식인과 힘은 연관관계가 없다는 게 명확하다. 하지만, 특정 특성을 지닌 인간의 신체 부위는 그 힘과 특성을 이어받음이 밝혀졌다. 앞선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는 인간의 특성을 물건에 결합하는 방법에 대해...]
‘이 정신 나간 놈들...!’
진수는 핸드폰 카메라에 비인륜적인 연구 자료들을 담았다.
자료 보관실을 얼추 살펴본 그는 옆의 창고로 향했다.
“여긴 뭐가 없네.”
창고엔 거의 실험 도구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뿐이었다.
특별히 이들의 악행을 증명할 자료나 증거 따위가 있지는 않은 듯했다.
“다른 데를 볼까...? 어, 잠깐.”
다시 위층으로 향하려던 진수가 잠시 멈칫했다.
[사신의 감각]에 아주 희미하지만 생명체가 감지된 것이다.
창고를 다시 한 번 쭉 훑어봤다.
“아, 벽 너머구나.”
[유체화]를 사용해 창고 벽을 뚫고 지나간다.
창고의 바로 옆은 회의실로 보이는 방이었다.
그곳에는 프로젝터나 컴퓨터 따위가 있었고, 벽에는 인큐베이터처럼 생긴 기계 장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생명체는 바로 그 기계 안에 있었다.
수박만한 알.
희미하게 느껴지던 생명체의 정체다.
‘음... 알도 차원 전이가 되나...?’
A급 헌터
용의 비늘 같은 것으로 싸인 알.
그 안에서는 아주 작은 생명력과 마력이 느껴졌다.
마력이 있다는 것은 일단 몬스터의 알이라는 의미.
진수는 그것을 앞에 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제 들여온 거 간수 좀 잘 해주시고요.’
위층에서 정효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가 말한 어제 들여온 것이라는 게 이 알을 의미한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동영상만 찍어가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진수는 인큐베이터를 열어서 알을 들어올렸다.
허리춤에서 도끼를 꺼내 그대로 쪼개버리려던 그가 순간 손을 멈췄다.
얼굴에 떠오르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
그는 알을 들고 있는 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알의 무게를 가늠했다.
‘어차피 알 상태로 넘어가면 생존할 확률은 희박할 거잖아?’
진수는 [강철 거미줄]을 뾰족하게 뽑아서 알의 아래쪽을 뚫었다.
작은 구멍을 통해서 알의 내용물이 빠져나온다.
그는 알의 내용물을 억세게 쥐어 터트렸다.
-드레이크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드레이크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이야, 드레이크 알을 들여왔던 거였어? 간도 크네.”
진수는 해봐야 바실리스크나 와이번 정도의 몬스터를 생각했는데 실제는 그보다 훨씬 거물이었다.
“나름 용족인데 후라이 하듯이 까버렸네. 어차피 이렇게 안 했어도 전이되고 금방 죽었겠지만....”
인큐베이터째로 보낼 수가 없으니 부화할 수 없는 알이었다.
진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드레이크의 이름을 [후라이]로 지어주었다.
-드레이크 [후라이]가 [간장막야] 무리에 합류합니다.
강철거미 간장과 막야의 무리에 들어간 후라이.
상태창의 전이자 목록을 보니 거미 그림 사이에 알 그림이 추가되었다.
‘짓뭉개진 그림으로 표시할 수는 없어서 이렇게 들어갔나?’
진수는 이내 신경을 끄고 다시 손 위에 있는 알껍데기를 보았다.
작은 구멍이 뚫려있는 것과 무게가 가벼워진 것을 제외하면 전혀 변한 것이 없다.
“흐흐흐.”
껍데기에 뚫린 구멍을 위로 하고 손끝을 갖다 댄다.
-슈르륵
[강철 거미줄]이 비어있는 드레이크의 알을 채우기 시작했다.
거미줄을 채우다 중간에 무게를 가늠해보길 몇 번.
몇 분이 지나고 나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알처럼 보인다.
진수는 작게 뚫린 구멍도 거미줄로 메워버렸다.
약간의 티는 나지만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감쪽같은 모습.
그는 인큐베이터 안에 알을 조심스럽게 돌려놓았다.
“이러면 한동안 눈치 못 채겠지?”
음흉한 미소를 짓는 진수.
그 순간 그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왔다.
[서울 노원구 석계역 인근 균열 징조 관측]
‘노원구?’
진수는 지도를 열어 현재 위치에서 석계역까지의 거리를 재봤다.
소요시간이 20~30분 정도 예상되는 거리.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연구소에서 나왔다.
‘어차피 중요한 증거는 찍어두었고, 나름 엿도 먹였으니 제대로 일망타진할 기회를 노려보자.’
남양주 연구소에서 나와 균열 발생 지역인 석계로 향한 그.
도로 상관하지 않고 산이며 천이며 내달려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쾅! 쾅!
-화르륵!
“키에엑!”
“끄아악!”
석계역 인근에는 벌써 균열이 터졌는지 몬스터들과 헌터들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중에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최전선에서 커다란 얼음을 쏘아내는 여인이었다.
얼음 덩어리가 몬스터의 중앙으로 날아가서는 작은 파편으로 나뉘며 터져버린다.
마치 다이아몬드를 흩뿌린 듯 영롱한 빛이 반짝였다.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면 어느새 몬스터들은 피떡이 되어 있었다.
“쿠웍!”
그녀가 얼음을 조작하는 데에 신경 쓰고 있는 사이, 한 오크가 기습했다.
오크 특유의 돌진에 꼼짝없이 당하는 듯했는데, 어디선가 커다란 화살이 날아와 오크를 저지했다.
-쾅!
그대로 머리가 터져나가는 오크.
화살의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녀석의 단단한 머리뼈를 완전히 꿰뚫고도 더 날아가 땅에 깊숙이 박혔다.
“어머 얘는. 내가 이런 오크 하나 해결 못 할까봐 도와준 거야?”
장난기 다분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얼음 능력자 헌터.
“도와드린 게 아니라 그냥 몹이 있어서 잡은 거거든요?”
그녀의 말에 커다란 활을 들고 있는 여성 헌터가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활시위를 당기며 다음 타겟을 노렸다.
화살 한 방에 최소 한 마리.
붙어 있으면 두세 마리까지도 처치했다.
‘잘 막고 있는데 괜히 왔나? 저기 얼음 쓰는 헌터는 얼음여왕인 거 같은데....’
높은 등급의 헌터이거나 개성이 강한 헌터들은 헌터넷에서 별명으로 불린다.
정의감이 높고 번개를 쓰던 우뢰매 심선우처럼.
얼음여왕 박가은도 헌터넷에서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었다.
A급 헌터에 얼음을 사용하는 능력.
능력에 걸맞은 냉랭한 성격까지.
‘그렇다면 저쪽이 귀궁공주인가...?’
무엇보다 박가은의 특이한 점은 이 바닥에서 드물게 모녀가 함께 다닌다는 것이었다.
단독으로는 귀궁이라 불리지만 얼음여왕과 함께 있을 때면 뒤에 공주가 붙는 별명.
B급 헌터 배혜지였다.
그녀가 사용하는 귀궁이라는 아이템이 별명으로 붙은 케이스로, 그 자신의 궁술 실력도 귀신처럼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슈슉!
-펑!
박가은, 배혜지 두 명이 몰려오는 몬스터들의 대부분을 막고 있고 그 외의 헌터들은 자잘한 적들을 처치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대로라면 무난히 균열을 막을 듯한 모습.
진수는 이미 진형을 짜서 안정적으로 막고 있는 상황에 굳이 끼어들지 않기로 했다.
‘그럼 정효원이 또 어디로 갔는지나 살펴볼까?’
핸드폰을 꺼내 추적기가 어디 있는지를 확인한다.
지도에 우선 현재 진수의 위치가 잡히고, 빨간 점과 함께 추적기가 있는 지점을 보여줄 것이다.
‘근데 왜 움직이질 않지...?’
지도는 여전히 노원구 석계역 근처를 비추고 있다.
화면에서 달라진 것이라면, 빨간 점이 나타났다는 부분이다.
‘이 위치면 저쪽 건물인데?’
진수는 점이 찍혀있는 위치에 자리한 건물을 보았다.
오래된 3층짜리 건물.
아래부터 쭉 훑으며 위로 올려보니 옥상에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건물 벽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기에 맞은편에 있는 고가도로 위로 도약해 올라갔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정효원이 건물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그는 커다란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보였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가만히 두면 안 돼.’
지금까지 확인한 것들만 생각해도 절대 이 상황에 도움이 될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진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바로 건물 옥상으로 점프했다.
-탓!
옥상 위에 사뿐히 착지한 그는 바로 정효원에게 달려들었다.
“헉, 니가 왜 여기에...?”
가방 안쪽에 신경을 쓰던 정효원이 진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다.
그러곤 곧장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멈춰!”
“켁!”
진수가 바로 그를 제압했지만 이미 무언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가방에 들어있던 것은 자그마한 두개골 두 개.
해골 표면에는 복잡한 마력 회로가 그려져 있었고 검붉은 빛이 마력 회로를 따라 채워졌다.
-구구구궁...!
대기가 무겁게 흔들린다.
허공에 떠오른 두개골을 중심으로 짙은 어둠이 뭉쳤다.
-찌지직...! 찌익!
공간을 찢어발기며 낫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모습을 드러낸다.
“끼아아악!”
고막을 찌르는 듯한 괴성과 나타나는 괴물들.
최유석이 죽으면서 소환했던 몬스터, 만티코어다.
심지어 이번엔 두 마리.
놈들이 좁은 통로를 억지로 비집고 나오는 사이, 진수는 정효원을 [강철 거미줄]로 포박하여 두었다.
-쿠웅!
-쿵!
이윽고 두 마리의 만티코어가 완전히 밖으로 나왔다.
“저, 저게 뭐야!”
“만티코어가 갑자기 왜...?”
“균열에서 나온 거야?”
갑작스러운 놈들의 등장에 균열을 막던 헌터들은 패닉에 빠졌다.
겨우 오크나 고블린 따위의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위험등급이 엄청난 몬스터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것도 두 마리나.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차원 전이시켰던 녀석처럼 어린 개체인 것 같다는 거겠지.’
앞서 보았던 만티코어와 마찬가지로 지금 나타난 녀석들도 얼굴이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이 놈들 가시에 독이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가시 근처에도 퍼지는 형태니까 가시를 날린다 싶으면 멀리 피해요!”
진수는 건물 옥상 위에서 헌터들에게 경고를 하고는 바로 한 녀석의 뒤로 뛰어내렸다.
꼬리를 먼저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휘익- 파악!
하지만 한 마리를 상대할 때와 두 마리는 전혀 달랐다.
그가 한 놈을 노리는데 다른 녀석이 간파하고는 꼬리를 휘둘러 때렸다.
그러나 진수도 혼자는 아니었다.
가시가 돋친 만티코어의 꼬리가 진수를 적중시키려는 순간, 커다란 얼음판이 나타나 그를 보호했다.
“조심.”
얼음여왕 박가은이었다.
그녀는 얼음판 위에 몸을 싣고 날아왔다.
“만티코어라니... 곤란하네.”
-팡! 스으으으
박가은은 진수를 보호했던 얼음판을 자신의 앞에 가져와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아주 작은 얼음 알갱이들로 쪼개져 공중에 흩뿌려졌다.
진수는 대기가 싸늘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만티코어의 독연이 퍼지는 걸 늦춰줄 거예요.”
확실히 A급 헌터라 차분함이 달랐다.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보다 인명 피해를 줄이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휘익-
-휘익-
그녀는 다시금 허공에 손을 뻗으며 얼음판을 만들었다.
“만티코어 등장을 알려줘서 고맙군요. 그쪽도 만티코어를 상대하긴 어려울 것 같으니 이만 자리를 피해요.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일당 헌터 장비들을 착용하고 모자를 쓰고 있는 진수.
전투 헌터로는 보이지 않는 행색이다.
그래서 박가은은 진수를 지나가던 일당 헌터 정도로 여긴 듯했다.
그녀는 진수에게 말을 하고서는 조금 더 높이 떠올랐다.
-샤르륵
그녀의 별명인 얼음여왕.
하지만 전투할 때는 장군의 모습에 가까웠다.
얼음을 움직이며 만티코어들을 공격하고 놈들의 반격을 막아낸다.
허공에 뜬 채로 오연히 상황을 내려 보며 차분히 싸워나갔다.
“끼에엑!”
-쒸익!
그러나 만티코어는 절대 수월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녀석들은 독침을 날리며 공중에 있는 박가은을 노렸다.
-티티팅!
얼음판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독침을 막는다.
곧이어 얼음으로 된 칼날과 송곳들이 만티코어의 온몸을 들쑤셨다.
하지만 놈들의 가죽은 어지간한 공격에 뚫리지 않는다.
“캬악!”
한 녀석이 잔뜩 성이 났는지 높이 도약하여 육중한 앞발로 박가은을 후려쳤다.
-팡!
두꺼운 얼음판이 공격을 막았지만 충격을 모두 해소하진 못했다.
그대로 한 건물의 벽에 내리꽂힌 그녀.
“커헉!”
박가은이 입에서 피를 조금 토해냈다.
방금의 타격에 꽤 큰 피해를 입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충격을 입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만티코어들.
놈들은 앞 다투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슝! 피슝!
커다란 화살이 연달아 날아왔다.
한 대 한 대에 담긴 힘이 어찌나 강한지 공기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퍼억! 퍽! 퍽!
돌진하던 만티코어들에게 살벌하게 꽂히는 화살들.
비록 녀석들의 가죽을 뚫지는 못 했지만 한 녀석의 움직임은 막을 수 있었다.
-팟!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기어코 박가은을 향해 뛰어들었다.
놈이 앞발을 매섭게 휘두르려는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이 녀석의 꼬리를 잡아당기기라도 한 듯 쑤욱 하고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쉬익!
땅에 곤두박질친 만티코어에게 누군가가 빠르게 접근했다.
날아가듯 움직이는 인영.
진수였다.
그의 손에는 아주 얇은 실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너희들도 꼬리 좀 떼야겠다.”
활약
-휙, 휙
진수의 손에서 나온 [강철 거미줄]이 만티코어의 꼬리에 감겼다.
“캬아악!”
-부웅!
자신의 꼬리를 옭아매는 불쾌한 감각에 만티코어는 성질을 내며 뒷발을 찼다.
하지만 그런 공격은 근육의 움직임만 봐도 눈치 챌 수 있다.
“어허, 가만히 있어!”
녀석의 사나운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오히려 전기톱을 휘둘러 놈의 엉덩이를 후려치기까지.
“저게 대체...?”
박가은은 어이없는 광경에 아픔도 잊고 황당해했다.
추레한 행색에 무기는 웬 듣도 보도 못한 전기톱을 쓰는 사내가 만티코어를 후려패고 있다.
마치 개장수가 맹견을 잡듯 놈의 동작을 정확히 읽으며 대응한다.
-뻑! 뻐억!
한 손엔 가느다란 실 같은 게 만티코어의 꼬리를 감고 있고 다른 손엔 전기톱이 세차게 움직인다.
무언가를 노리는 것인지 톱날을 돌리지는 않고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톱날이 움직이지 않는 전기톱은 그저 둔기처럼 찰진 소리를 낼 뿐이었다.
-화르륵!
이윽고, 꼬리를 칭칭 감던 실에 파란 불이 붙었다.
그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하는 전기톱.
“어, 어?”
박가은은 넋을 놓고 보다가 나머지 한 만티코어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독침을 우수수 쏘아내는 녀석.
A급 헌터인 그녀는 만티코어의 독침이 단순한 발사체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독침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 연기는 그 주변에만 있어도 온몸을 괴사시키는 엄청난 독이다.
그렇기에 만티코어가 나오자마자 작은 얼음조각을 흩뿌렸던 것인데, 저렇게 가까이에서 독무가 터진다면 그녀의 처치는 소용이 없다.
‘저 사람이 죽으면 여긴 끝장이야!’
박가은은 절박한 심정으로 얼음을 쏘아 보냈다.
그녀는 높은 헌터 등급에 걸맞게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얼음을 이용한 공격으로는 만티코어의 가죽을 뚫을 수가 없다.
박가은의 능력은 소수의 강적보다는 다수의 약한 몬스터에게 더 유리했다.
다시 말해 저 전기톱을 쓰는 사내가 없다면 두 마리나 되는 만티코어를 해치우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었다.
-텅, 터텅!
박가은이 날린 얼음에 맞고 독침 몇 개가 튕겨져 나왔다.
그러나 급박하게 만든 얼음이었기에 크기가 충분하지 않았다.
두세 개의 독침이 그대로 얼음을 지나쳐 진수의 근처로 날아갔다.
-푸스스...
진수에게 명중한 것은 아니지만 근처 바닥에 꽂힌 상태로 희뿌연 연기를 뽑아내기 시작하는 독침.
박가은은 그 모습에 절망했다.
“안 돼...!”
전사 타입의 헌터들이 독 내성과 관련된 특성을 왕왕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만티코어의 독은 차원이 다른 수준.
당장 진수도 살짝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어우, 취한다.”
“뭐...?”
진수가 눈을 꿈뻑거리며 말했다.
앞서 그가 경험해봤듯이 [상급 독 내성]과 [중급 재생력]의 힘으로 만티코어의 독은 숙취 정도의 영향밖에 주지 못했다.
그걸 알지 못하는 박가은은 눈이 찢어져라 크게 뜰 뿐이었다.
-위이이잉!
“켕!”
이윽고 전기톱이 만티코어 한 마리의 꼬리를 잘라냈다.
마치 발을 밟힌 강아지처럼 비명을 지르는 만티코어.
“흐흐흐흐....”
진수는 그대로 뒤로 돌아 나머지 한 녀석을 보며 웃었다.
“끼엑....”
만티코어가 꼬리를 가랑이 사이로 숨긴다.
무려 헌터 킬러라는 별명을 가진 그 만티코어가 말이다.
‘대체 정체가 뭐지?’
박가은은 자신이 알고 있거나 들어본 높은 등급의 헌터들을 그와 대조해봤다.
하지만 누구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활동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건데... 대단한 걸.’
그녀는 속으로 진수에 대해 평가를 했다.
-쉬익!
진수가 다음 만티코어의 꼬리를 노리는데 어디선가 커다란 화살이 만티코어에게 날아갔다.
녀석은 이미 한 차례 맞아본 공격이기에 미리 경계를 했다.
치명상을 입을 수준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고통을 준 공격이었으니까.
“끼에엑!”
작게 포효하며 눈알을 굴리는 녀석.
놈은 이내 화살을 날린 인간을 찾아냈다.
“조심해요!”
진수는 놈이 뭘 하려는지 알아차리고 경고했다.
“어...?”
아직 헌터 경험이 미숙한 귀궁 배혜지는 진수의 경고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다음 공격을 위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독침이 날아왔다.
-팅!
다행히 박가은은 진수가 뱉은 경고를 이해하고 배혜지의 곁으로 날아왔다.
얼음 장막을 펼쳐 독침을 막은 그녀는 그대로 얼음으로 독침을 감싸 독 연기가 퍼지지 않도록 가뒀다.
“몬스터와 대치할 때는 공격보단 생존이 먼저라고 했지! 사람들의 생존도, 너 자신의 생존도. 헌터 생활에서 중요한 건 활약이 아니야.”
“알겠어요.”
박가은이 훈계하듯 말하자 조용히 대답하는 배혜지.
그렇지만 표정은 그리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박가은은 다시 한 번 진수를 보았다.
겉으로 보기에 그와 배혜지는 거의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그런데 한 명은 만티코어 둘과 붙어도 자신만만하고 다른 한 명은 자만한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다른 헌터를 돕는다는 건 좋은 일이야.”
그녀는 어떻게든 작은 칭찬거리를 찾아서 배혜지를 격려했다.
“조심하면서 만티코어들을 견제해보자. 놈들은 우리처럼 원거리에서 상대할만한 수준이 아니야. 다행히 저 헌터가 애써주고 있으니 최대한 서포트 해줘야 돼.”
박가은의 말에 배혜지는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요.”
우선 대답은 했지만 그녀는 불만이 가득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무려 A급 헌터이고, 자신도 20살의 어린 나이에 B급 헌터가 됐다.
정체도 모를 후줄근한 헌터의 들러리 신세는 달갑지 않았다.
-팅-
활시위를 당겼다 거칠게 놓는다.
화살의 위력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였다.
그저 자신의 기분이 조금 풀릴 뿐.
-쉬익!
강대한 힘이 실린 화살이 만티코어의 눈두덩을 맞췄다.
덕분에 녀석의 앞발이 헛발질을 했고, 진수는 수월하게 회피할 수 있었다.
‘확실히 보조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편하구나.’
화살과 얼음덩이들이 적절히 견제해주니 만티코어 공략이 굉장히 수월하게 느껴졌다.
[차원 전이]의 특이성 때문에 반 강제로 혼자서만 움직여온 그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이 없었다.
‘국내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종류별로 거의 다 전이시킨 뒤에는 공략조에 들어가서 편하게 헌터 생활을 해도 되지 않을까?’
-위이잉!
“끼에엑!”
이런 딴생각을 하면서 나머지 한 녀석의 꼬리를 자를 수 있을 정도로.
두 놈의 꼬리를 모두 자르고 나니 이후는 탄탄대로였다.
네 발 달린 맹수의 움직임을 쉽게 읽는 진수였기에 만티코어의 공격은 그에게 전혀 닿지 않았고 반대로 진수는 녀석들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그가 스쳐지나갈 때마다 푸른 귀화가 남았고 놈들은 조금씩 약해졌다.
-피융!
만티코어들의 움직임이 점차 둔해지는 것은 배혜지도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그녀의 눈에도 파악이 될 정도로 느려진 녀석들.
어차피 원거리에서 공격할 꼬리도 모두 잘려나갔기에 배혜지는 조금씩 만티코어들에게 가까이 갔다.
활이라는 것이 원래 적과 가까워질수록 파괴력은 늘어났으니까.
-퍽! 퍽!
-드드득!
만티코어들은 그저 죽을 맛이었다.
태생이 포식자인 녀석들인데 꼬리가 잘리고 두들겨 맞고 화살 세례를 당한다.
“마무리 할 수 있겠어요?”
박가은이 진수에게 물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
그녀는 진수의 답에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후우웅...!
이내 그녀의 양손이 각각 만티코어들에게 향했고, 뼛속까지 얼릴 듯한 냉기가 휘몰아쳤다.
-쩌저적
거대한 얼음기둥이 생기며 놈들의 다리와 몸통 일부를 가뒀다.
“끼에엑!”
“끼악!”
만티코어들은 순간적으로 기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곧 다가올 재앙을 직감했는지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우와아아앙-!
진수의 전기톱이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최대 출력으로 톱날을 움직인 것이다.
전기톱이 만티코어 한 녀석의 목을 파고든다.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헉, 헉....”
그 모습을 본 박가은은 안심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력이 거의 소진된 탓이었다.
-핑! 핑! 핑! 핑!
진수가 한 놈을 거의 마무리 지어 가는데 격렬한 소리가 들려왔다.
“혜, 혜지야!”
배혜지가 나머지 녀석을 향해 다가가면서 화살을 쏘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럴수록 만티코어에게 명중한 화살은 점점 묵직한 소릴 냈다.
-푹!
그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만티코어의 꼬리를 넘어서며 날린 화살이 드디어 놈의 가죽을 뚫었다.
배혜지의 얼굴에 자신감이 붙었다.
어차피 놈은 박가은의 얼음에 갇혀있다.
공격이 통한다면 그녀도 만티코어를 처치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 바삐 손을 놀리기 시작하는 그녀.
-우우웅...!
진수 쪽의 만티코어는 피를 한 바가지 쏟아내며 결국 목숨을 잃었다.
진수는 남아있는 녀석을 향해 눈을 돌렸다.
고슴도치 꼴이 되어 죽어가고 있다.
‘저쪽도 이제 끝이 보이네.’
그는 상당히 길어진 전투에 피곤함을 느끼며 만티코어의 사체를 살폈다.
앞서 처치했던 녀석은 전이가 되면서 사체를 남기지 않았기에 그 모습이 상당히 생소했다.
‘근데 이 꼬리가 이렇게 빵빵했었나...?’
마치 바람을 불어넣은 풍선처럼 부풀어올라있는 만티코어의 꼬리.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꼬리 조심해요!”
진수는 녀석의 꼬리를 들어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집어던졌다.
-펑!
이내 터져버리며 독침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하지만 진수의 빠른 대처 덕분에 그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저쪽 꼬리는...?’
진수는 재빨리 배혜지 쪽에 있는 만티코어의 꼬리를 보았다.
이미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당장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배혜지는 만티코어를 마무리 짓기 위해 마력을 동원하는 중이라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안 돼!”
박가은이 그 모습을 보고 비틀거리며 몸을 날렸다.
-펑!
이윽고 만티코어의 꼬리가 폭발하며 사방에 독침을 쏟아냈다.
* * *
“저긴가?”
“아, 저 얼음 덩어리!”
“박가은은?”
균열과 만티코어로 난장판이 된 현장에 소란이 일었다.
하나같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있는 배혜지를 발견했다.
그들은 우르르 몰려오더니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찰칵! 찰칵!
언론사의 기자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누가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 찾아와 사진을 찍어댄다.
“배혜지씨!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여기 이 커다란 얼음은 뭐죠?”
“같이 균열을 막던 헌터들이 대피했다던데 돌발 상황이 생겼나요?”
배혜지는 막무가내로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미는 그들에게 한 마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있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거대한 얼음 기둥.
그 안에는 한 여인의 모습을 한 흔적이 박혀 있었다.
박가은을 닮은.
-부글부글
얼음 안 쪽에는 시커먼 액체가 부글거렸다.
마치 극독이나 강한 산성 용액에 무언가가 녹아내린 듯한 모습.
“이게 박가은인가?”
“그런가본데? 시체도 못 남기고 죽었나봐.”
한 기자가 얼음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다른 자들이 맞장구를 치며 신이 나서 기사거리를 정리했다.
한 사람의 죽음이 그들에게는 그저 먹음직스러운 소재로 보이는 듯했다.
박가은의 배려로 흩뿌려놓은 얼음 알갱이가 아니었다면 벌써 만티코어의 독에 핏덩이가 됐을 인간들이 배려는커녕 카메라를 앞세워 그녀의 죽음을 난도질했다.
‘정효원이 만티코어를 소환한 거... 확실히 박가은을 노린 거였어.’
그 모든 모습들을 건물 위에서 지켜보던 진수는 이 모든 상황이 일어난 경위를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진수의 뒤에서 박가은이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온다.
기자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는 그녀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목숨 값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만 믿어보세요.”
그의 말에 박가은은 조금 전 있었던 상황을 다시 상기시켰다.
* * *
폭발음과 함께 터져 나온 독침들.
박가은은 마력이 거의 소진되어 가누기도 힘든 몸으로 배혜지에게 달려 나갔다.
맨몸으로라도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 순간, 누군가가 쏜살같이 날아와 두 모녀의 앞을 막아섰다.
-퍼버벅!
독침들이 폭발적으로 달려온 진수의 몸을 꿰뚫는다.
“크윽!”
작은 신음을 뱉은 진수.
그는 재빨리 몸에 박힌 침들을 다 뽑아냈다.
‘[체질 확장]으로 [유연체질]이 강화됐으니까 몸의 내구도 늘어났을 거야. 독이 직접 들어와도 버틸 수 있다. 만약에 무리라고 해도 박가은의 빙결 능력으로 중독을 늦추면 이겨낼 수 있어.’
잠시 고통의 시간이 흐른 뒤, 진수의 안색은 빠르게 회복됐다.
그의 계산대로 만티코어의 독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괘, 괜찮은가요?”
만티코어의 독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던 박가은이 토끼눈이 되어 그를 걱정했다.
“이 정도는 가뿐합니다.”
가볍게 미소 지으며 답하는 진수.
그의 말에 박가은은 한층 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실은 나도 식겁했지만....’
진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현장을 살폈다.
이제 남아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나머지 만티코어는 배혜지의 화살이 마무리를 했고,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도 모두 죽은 상태.
‘근데 지금 다가오고 있는 생명 반응들은 뭐지?’
진수의 [사신의 감각]에 다수의 생명체들이 다가오고 있음이 감지됐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 음모를 꾸민 자가 의도적으로 보낸 사람들일 것이다.
‘만티코어를 여기로 보낸 이유가 있을 거야. 만약 내가 오지 않았다면 생겼을 상황을 가정해보자.’
그가 없었다면 최소한 박가은이나 배혜지 둘 중 한 명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전에 배혜지를 보호하려던 박가은의 모습으로 봐선 박가은이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잠시 이리 좀 와보세요.”
진수는 배혜지와 박가은을 불러서 상황을 꾸미자고 했다.
박가은이 마력을 써서 커다란 얼음을 만들고 안에는 만티코어의 독침에 쏘여 썩어버린 몬스터의 사체를 집어넣었다.
얼음 안 쪽에는 박가은의 형상을 만들어놔 그녀의 시체처럼 보이게 두었다.
배혜지에게는 누가 오더라도 별 말 하지 말고 그냥 충격 받은 표정만 지으라고 지시했다.
그 다음 진수는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고가 도로 위로 도약했다.
그곳에 내려놨던 핸드폰을 챙겨서 정효원을 묶어둔 맞은편 건물 위로 올라왔다.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악랄하구나.’
놈들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눈앞에서 어머니를 잃은 배혜지를 기자들을 이용해 괴롭혔을 것이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참지 못해 민간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언론에 넘어갔을 수도 있다.
심리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그녀를 묻어버릴 수도 있었을 상황.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진수는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네. 여기 노원구 균열 현장인데요. 이쪽으로 오실 수 있으신가요? 바로요.”
드러남
“이 사람인가요.”
박철준 수사관은 진수가 있는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정효원을 보며 말했다.
특유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힘 있게 들린다.
“예. 그 사람이 전화로 말씀드린 사람입니다.”
진수는 박철준 수사관에게 전화로 대략적인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균열이 발생하여 혼란스러운 틈을 타 몬스터를 소환하여 A급 헌터 박가은과 B급 헌터 배혜지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했다는 것.
“저기, 헌범기관에서 나온 분이신가요? 저 정말로 억울하거든요.”
진수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풀어주지 않으면 좋은 꼴 못 볼 거다, 누굴 건드린 건지 알고 있냐는 등 협박을 하던 정효원.
헌터범죄전담기관의 수사관이 나타나자 갑자기 태도를 뒤집었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쪽으로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 협회에 등록한 기록만 열람을 해보셔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몬스터를 소환하다니요. 저는 그런 기술도 특성도 일절 가진 게 없어요.”
표정만 봐서는 정말 너무도 원통해하는 얼굴이었다.
“제가 뭘 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한쪽의 말만 듣고 강제해도 되는 겁니까? 저쪽이 예전에 저랑 알력이 좀 있어서 이렇게 누명을 씌우는 거라니까요? 변호사! 변호사 부르겠습니다. 저 이거 헌범기관에서 결백한 헌터 핍박한다고 죄다 퍼트릴 거예요!”
정효원이 상당히 강경하게 나오자 박철준은 시선을 진수에게로 돌렸다.
이 말에 반박할 증거가 있냐는 듯한 제스처였다.
“여기... 이거 한 번 보시죠.”
진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가 고가 도로 위에 내려놨던 이유.
바로 이런 상황에 대비했던 것이다.
핸드폰 안에는 정효원이 옥상 위에서 가방을 뒤지는 것, 가방에서 나온 두개골들이 만티코어를 소환하는 장면, 진수가 정효원을 제압하여 포박하는 순간까지 영상으로 담겨있었다.
“흠, 만티코어라. 보통 녀석들이 아닌데 용케 상대하겠다고 내려갔네요?”
박철준은 의외로 정효원에 대한 것보다 만티코어에 관심을 보였다.
진수가 정효원에 대해 말한 것은 이미 신뢰하고 있었던 듯했다.
“아... 예. 안 막으면 주변에 피해가 클 거 같아서요.”
적당히 둘러대는 진수.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우선 정효원 헌터를 이송 보내고 잠시 대화를 좀 할까요.”
박철준은 피로에 절은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강렬했다.
“예, 그러시죠. 저도 따로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진수의 말에 놀랍지도 않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박철준.
그는 우선 헌터범죄전담기관의 인원을 불러서 정효원을 보냈다.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박가은 헌터에게 요청한 것은 또 뭐고요.”
박철준은 아직도 녹지 않은 얼음덩어리를 슬쩍 보았다.
“음, 제가 지금까지 알아낸 것들부터 말씀을 드리면요....”
진수는 박철준에게 그가 알아낸 정보들을 말해주었다.
정효원이 던전에 실험체인 몬스터를 풀어서 헌터들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
수도권에 몬스터를 모아두는 창고를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다는 것.
한 연구소에서는 사람의 시체를 이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
몬스터를 언데드화 시키거나 조종하려는 정황도 찾았다는 것까지.
“거기에 이번에 만티코어를 소환해서 A급 헌터를 노렸습니다. 분명히 이건 조직적인....”
“최유권과 최유석도 같은 소속일 겁니다.”
“... 알고 계셨네요.”
말을 이어나가려던 진수는 박철준의 입에서 나온 예상 밖의 이름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최유권은 그가 익명으로 제보했던 자.
최유석은 자루에 담아 헌터 협회에서 조사케 한 인물이었다.
“저는 전화번호를 여러 개 사용하거든요. 그리고 그 중에 김진수 헌터에게 알려준 번호는 공교롭게도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번호로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 유추할 수 있는 대상은 한정적이죠.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도 최유권, 최유석, 정효원의 뒤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김진수 헌터 덕분에 수사에 더욱 속력이 붙고 있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 더 숨길 건 없겠네요. 기왕 이렇게 된 거 모두 말씀드릴게요.”
진수는 최유석과 최유권 그리고 고아원에 대한 내용까지 모두 공유했다.
이야기를 듣던 박철준이 순간 감탄사를 냈다.
“허, 이것들을 다 직접 알아내고 파헤쳤다고요? 믿을 수가 없군요.”
그는 순수하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자들은 일종의 점조직의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알고 있겠지만. 서로 간에 연결점이 거의 없기에 의심은 할 수 있어도 이렇게까지 직접적인 연관을 짓기는 어려웠는데.... 창고나 연구소, 언데드 몬스터들과의 연관성은 어떻게 알아낸 거죠?”
“그냥 감...이죠. 하하.”
‘그냥 전이시키다가 얻어 걸렸다고 말하긴 좀 그렇지.’
사실 몬스터들을 차원 전이시킬 때 [U-2호]니 하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진수도 여러 사건들의 연관성을 유추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또, 특이한 몬스터만 나타나면 군침을 흘리는 [차원 전이]의 임무 덕분에 여러 변종 몬스터를 만드는 놈들의 꼬리를 잡을 수도 있었고 말이다.
“감이라... 하긴. 우리처럼 국가 조직에서 일을 할 때면 감에 의존한 수사엔 제한이 있다는 게 아쉽긴 합니다. 우리 팀에 있는 사람들도 이 정도 감을 갖고 있으면 훨씬 많은 헌터 범죄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요.”
박철준이 참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진수를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보았다.
“기관 소속 헌터가 될 생각은 없죠?”
“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전 그냥 헌터 생활이 더 좋네요.”
“그럴 거 같았습니다. 그래요. 알려준 정보들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해보겠습니다.”
진수는 박철준에게 [물품 공급 내역서]와 [창고관리일지], 그리고 정윤아에게 받았던 창고 던전들에 대한 자료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박가은 헌터는... 사실 그냥 제 추측이지만 저들이 만티코어를 소환하면서까지 노렸던 게 박가은 헌터나 배혜지 헌터를 살해하려는 거라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들이 왔고요.”
“음, 둘 중 한 명을 노렸다....”
박철준이 진수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박가은 헌터가 죽은 것처럼 꾸며서 다음 반응을 보면 저쪽에서 노리는 게 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역으로 이용할 카드도 될 거고요.”
“확실히 카운터를 칠 수 있는 비장의 수가 되겠군요. 그럼 기관에서 박가은 헌터가 잠시 숨어 지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박철준은 박가은에게 가서 잠시 숨어 지내는 동안에 기관에서 제공하는 안전가옥에 있기를 권했다.
그녀를 데리고 떠나며 박철준은 진수에게 어느 정도 수사가 진행되면 연락을 주겠다 말했다.
‘기관에서도 조사하고 있던 내용이 있다고 하니 슬슬 뒤에 숨어서 허튼짓 하던 인간들의 베일이 들춰지겠지. 남의 눈에서 눈물을 빼는 인간들은 언젠가 자신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된다는 걸 알려줘야 돼.’
“윽!”
이를 갈던 진수가 순간 왼쪽 어깨를 감싸며 신음 소릴 냈다.
마석증의 통증이었다.
‘요즘 계속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까 주사 맞을 주기도 잊고 있었네.’
지난번에 마석정제주사를 맞은 뒤로 벌써 열흘이 넘게 지났다.
주사 맞을 주기가 지난 것이다.
‘예약해놓고 내일 당장 주사 맞으러 가야겠다. 벌써 이렇게 깜빡깜빡 한다니까.’
진수는 핸드폰을 조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균열과 만티코어로 난장판이 된 석계역 인근.
사진을 찍던 기자들도 용무를 모두 봤는지 돌아갔다.
그저 배혜지만이 멍하니 서있을 뿐.
‘뭐야,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돼?’
진수가 깜빡한 건 마석정제주사 맞는 주기만이 아니었다.
* * *
“끄응, 이러다 또 바늘 등급을 높여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의사가 마석정제주사를 힘겹게 밀어 넣고는 말했다.
[체질 확장]으로 인해 [유연체질]이 강화되면서 피부의 내구도가 더 늘어난 것이다.
지난번에 더욱 단단한 주사 바늘로 교체를 했는데 그새 또 바늘이 잘 안 들어가자 의사가 신기하다는 듯이 진수를 보았다.
-[간장막야]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체력 +2, 내구 +2, 마력 +1
그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새 바늘 준비해두셔야겠네요.”
“네?”
“아, 혹시 모르는 거니까요. 하하.”
‘다음번에 예약할 때 미리 바늘 준비해두라고 말해놔야겠네.’
진수는 마석정제주사 특유의 으슬으슬한 감각을 느끼며 병원 로비로 나왔다.
‘그나저나 간장막야 무리 성장은 오랜만인 거 같은데?’
상태창을 열어 전이자 목록을 살펴본 그는 깜짝 놀랐다.
드레이크 알인 후라이가 아직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알 모양이 아니라 새끼의 모습으로.
‘어떻게 살았지?’
진수는 알지 못했지만 알껍데기가 없는 채로 전이된 후라이에게 간장과 막야가 [강철 거미줄]을 사용해 껍데기를 만들어줬던 것이다.
실험으로 인해 종에 변이가 생긴 간장과 막야는 직접 알을 낳지 못했기에 후라이를 정성껏 보살폈다.
그렇게 강철거미가 키운 드레이크가 탄생했다.
‘뭐 어찌됐든 살아서 계속 보상을 보내주면 더 좋지.’
그런 사정을 알 수 없었던 진수는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상태창을 닫고 로비 벤치에 몸을 맡긴다.
온몸을 감싸는 싸늘하면서 화끈한 감각에는 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늘어져있는 그의 시야에 같은 자세로 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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