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5

비록 주사기 값을 물어야 해서 비용이 올라갔지만 전투 능력이 향상됐다는 증명은 언제나 기쁜 일이었다.
“흐흐흐.”
진수는 마석정제주사 특유의 싸한 감각을 가라앉히기 위해 병원 로비의 벤치에 앉았다.
로비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헌터대전이 나오고 있었다.
박종대가 다른 헌터와 최근에 가진 시합이었다.
-쾅! 쾅!
-휘익- 펑!
화면엔 화려한 움직임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서로 막상막하의 싸움을 벌이는 듯 보이는 장면.
하지만 진수의 눈에는 박종대가 상대방을 확실히 봐주고 있다는 게 보였다.
일부러 약한 공격에 맞아주고 큼지막한 기술은 귀신같이 피하는 모습들.
‘확실히 쇼맨십이 있어.’
수세에 밀리는 듯 회피와 방어만 하던 박종대가 코너에 몰린다.
그 순간 상의를 벗어 던지고 근육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의 시그니처 기술이 나오려는 것이다.
사실 옷을 벗는다던지 근육에 과도하게 힘을 주는 것은 기술 사용에 필수적인 게 아니었다.
그저 이 모든 쇼를 달구기 위한 장치였을 뿐.
-주먹난타!
자신의 기술명을 크게 외치며 주먹을 휘두른다.
우락부락한 근육들이 요동치며 순식간에 수십 번의 주먹질이 나갔다.
‘어우, 예전보다 더 강해진 거 같은데?’
진수는 화면을 보며 짧게 감탄을 뱉었다.
박종대의 힘과 속도가 확실히 더 발전했다.
그가 과거에 능력을 일부러 감춘 것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과시하기 좋아하는 저 놈이 그렇게까지 실력을 숨긴다는 게 말이 안 되고.... 저 놈도 나처럼 성장이 빠른 케이스인가?’
-아~ 박종대 선수 요즘 피치가 많이 올랐어요!
-요즘 장안의 화제죠? 특히 저 남성미 넘치는 모습 덕분에 온라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박종대의 성장은 비단 진수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헌터대전 해설위원들도 요즘 그의 실력이 많이 좋아졌음을 떠들어댔다.
그와 함께 헌터대전 외에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활약을 하고 있다던가 하는 잡다한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 경기는 박종대의 KO 승리.
그는 쓰러진 상대방에게 특유의 시원시원한 미소와 함께 손을 내미는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여간 이미지 메이킹 하는 건 선수야, 선수.’
박종대를 오래 봐온 진수는 알 수 있었다.
그의 진심이 담긴 미소는 그렇게 입을 활짝 벌리며 시원시원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저건 그냥 화면에 그럴듯하게 담기기 위한 거짓 웃음이었다.
-삑!
-다음 소식입니다.
진수의 못마땅한 심정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누군가가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렸다.
화면이 바뀌자 나오는 것은 뉴스였다.
뉴스에서는 균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균열 발생이 비정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관련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텔레비전에 보이는 것은 진수가 참여했던 대규모 균열 사태의 모습.
한 번 열렸던 균열에서 몬스터들이 다시 한 번 쏟아지는 장면이었다.
진수는 그 당시에 가고일이 뒤늦게 나타났었던 걸 떠올렸다.
-방금 보여드린 화면은 얼마 전 있었던 대규모 균열 발생 현장입니다. 보시다시피 균열이 생기면 한 무리의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기존의 정설과 다르게 한 번 몬스터가 발생한 뒤 또다시 몬스터 무리가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상한 점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것은 중부지방의 지도였다.
거기에는 몇 개의 표식이 되어 있었는데, 균열이 발생한 구역을 표시한 것으로 보였다.
-용산에서 대규모 균열이 나타난 이후에 잦은 빈도로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그 규모는 매번 달랐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여기, 과천 부근에 많은 균열이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발적으로 균열이 발생하는 것은 특이성이 없지만 이렇게 특정 구역에서 연달아 생기는 일은 굉장히 드뭅니다. 특히 이 서울랜드를 중심으로 마치 용산 때의 균열 사태처럼 크고 작은 균열들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수는 뉴스를 듣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용산, 과천 서울랜드.
둘 다 그가 있던 위치였다.
게다가 시기까지도 얼추 비슷한 상황.
‘와, 무슨 나 쫓아오는 것처럼 균열이 터졌었네. 한동안 균열은 안 생길 줄 알고 필드 도는 동안엔 동원 문자 안 받았더니.... 이젠 균열 동원 문자 항상 켜놔야겠다.’
진수는 핸드폰을 꺼내서 헌터 협회 및 정부에서 보내는 메시지 설정을 변경했다.
그는 전투 헌터가 된 후로 가능하다면 균열을 막는 데에 최대한 보탬이 되고 싶었다.
가족과도 같은 고아원 사람들을 균열로 인해 잃어봤으니까.
-띠링
[박철준 수사관 : 지난번에 양태규 부모 연락처 물었죠? 그쪽에서도 마침 김진수 헌터를 보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진수가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메시지가 왔다.
헌터범죄전담기관의 박철준이었다.
지난번 양태규의 시체를 넘기면서 그에게 양태규 부모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었다.
양태규와 약속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은 지켜야지.’
진수는 박철준에게 그들을 만나겠다 답했다.
[박철준 수사관 : 내일 낮 12시에 강남역에서. 괜찮습니까?]
서로 연락처를 넘겨주고 끝낼 줄 알았던 박철준이 의외로 중간에서 말을 전달해줬다.
진수는 그가 전한대로 내일 12시에 양태규의 부모를 보기로 했다.
* * *
다음 날 11시 50분.
진수는 가벼운 차림으로 강남역에 나왔다.
“어이구, 10분 일찍 왔는데 이미 와있으시네.”
그는 강남역 출구 옆에 서있는 박철준 수사관과 중년인 둘을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벌써 오셨네요.”
인사를 하며 다가가는 진수.
그런데 중년인들의 얼굴이 꽤 낯이 익다.
‘헌터 협회 간부라고 티비에서 몇 번 본 사람들 같은데...?’
진수는 이제야 박철준이 계속 신경을 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헌터 협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라서 기관에서도 성의를 보인 것이었다.
박철준의 의지는 아닌 듯 그의 표정이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 왔군요. 부장님, 이쪽이 김진수 헌터입니다.”
박철준 수사관은 헌터 협회의 간부 앞에서도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진수를 소개했다.
적당히 서로 인사를 나누는 걸 본 그는 사건 정리할 게 있다는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떴다.
“저 친구, 일중독이야. 일중독.”
부장이라고 불린 중년 남성이 떠나가는 박철준의 뒤를 보며 안타깝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이는? 박 수사관이 누구 소개시켜주는 사람도 아닌데 여기까지 와준 게 고마운 거죠.”
그의 옆에 있던 중년 여성이 부장의 말을 나무랐다.
“음, 그래요. 김진수 군이라고 했죠? 우리가 진수 군을 보자고 한 건 태규의....”
양태규의 아버지 양민우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던 그의 아내 정윤아가 대신 이야기를 꺼냈다.
“태규의 시체를 찾았을 때. 그 때... 상황을 좀 듣고 싶어서요.”
아마 그들에게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도 진수가 이야기 했던 내용을 모두 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로 만난 것은 무언가 다른 내용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으리라.
“아마 전반적인 이야기는 기관에서 전달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따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게 있습니다.”
진수는 그들을 보며 양태규의 마지막 말을 전했다.
사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냥, 먼저 떠나가서 미안하다.
생각보다 고통스럽지 않더라.
자신의 죽음으로 부모님까지 괴로움 속에 살지 않았으면 한다.
학교에서 사고 쳤던 것 죄송하다.
이 내용이 전부였다.
진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반신반의하며 듣던 양민우와 정윤아는 마지막 말에서 무언가 와 닿는 게 있었는지 눈물을 터트렸다.
아마도 그들과 양태규 사이에서 있었던, 그들만 알 만한 내용이었던 모양이었다.
‘뭔가 학교에서 사고 쳤던 거 때문에 반쯤 쫓겨나 지냈었나보네.’
진수는 슬퍼하는 그들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기 조금 힘들어 시선을 잠시 돌렸다.
먼 하늘을 보던 진수는 조금 곤란한 얼굴이 됐다.
“어.... 저기요. 조금 이따가 우셔야 될 것 같은데요.”
나 때는 말이야
구름이 빠르게 움직여 한 데 뭉쳤다.
그 중심에는 작고 검은 점이 하나 박혀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구멍처럼 보이는 점.
균열의 징조였다.
‘강남역이라 헌터들이 많긴 하겠지만....’
높은 등급의 헌터들은 소위 말하는 고소득자들이다.
그렇기에 강남역 인근에도 한국의 헌터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아무리 고등급 헌터들이 균열 동원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의 집을 지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래서 몇몇 동네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별명을 가지기도 했다.
‘근데... 수가 너무 많아.’
하늘 위에 떠있는 점은 무려 세 개였다.
“자리를 피하시죠. 저는 남아서 균열 막는 데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진수는 양태규의 부모에게 대피를 권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돌연 진수에게 질문을 던지는 양민우.
“진수 군. 헌터 협회 간부가 되려면 뭘 해야 하는지 아나?”
“무슨...?”
“몬스터를 엄청나게 쳐 죽이면 된다네.”
그의 말을 받듯이 정윤아가 손에 들고 있던 핸드백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가방보다도 긴 지팡이었다.
마력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선 아이템인 듯했다.
그녀에게 지팡이를 받아든 양민우.
주변으로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 때는 말이야. 균열 동원이라는 것도 없이 그냥 맞닥뜨리면 싸우는 거였다 이 말이야. 그렇지?”
“옛날 생각이 나네요. 기분도 좋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힘을 좀 써봐야겠어요.”
어느새 정윤아도 커다란 칼을 두 자루나 꺼내서 양손에 들고 있었다.
‘이건 마술이야, 마법이야?’
“그래도 시절이 바뀌었으니까 도움을 받을 건 받아야겠지.”
양민우가 전화기를 꺼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가 몇 마디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진수의 전화가 울렸다.
-삐-삐-삐-삐-
균열 동원 메시지였다.
헌터 협회 간부답게 직통으로 균열 동원 요청을 한 것이다.
사방에 경고음이 들리더니 금방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대피했다.
갑작스러운 균열 발생으로 대피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아마 주변에 있는 헌터들이 올 테지만, 그들이 오기 전까지 같이 최대한 힘써보세.”
구름이 잔뜩 몰린 하늘은 이내 거뭇거뭇하게 변했다.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변모하는 하늘.
곧이어 검은 점이 커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균열이 빨리 열렸지?’
이상한 현상이었다.
일반적인 균열보다 훨씬 빠르게 몬스터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이었으면 아직 몬스터가 나올 시간이 아니었다.
“휩쓸리지 않게 조심하게!”
-쿵!
양손으로 지팡이를 잡아 바닥에 거세게 내려찍는 양민우.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매서운 광풍이 불었다.
“키야악!”
“크르륵!”
바람은 한 올 한 올 예리한 칼날이 되어 몬스터들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거친 바람은 놈들의 사체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짓이겨놨는데, 요즘 헌터들 사이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었다.
살상력은 높지만 부산물까지 파괴되어 돈벌이가 안 되었으니까.
구세대, 돈보다는 목숨을 구하던 시절의 헌터라는 느낌이 확 와 닿았다.
-퍼억! 퍽! 쾅!
정윤아 쪽도 만만치 않았다.
대화만 나눌 때는 굉장히 교양 있는 귀부인 스타일이었는데, 전투에 들어가니 완전 버서커다.
양손에 든 칼의 크기도 상당했는데 몬스터의 살점과 피가 튀는 것은 아랑곳 않고 거칠게 휘둘렀다.
마치 인간 믹서기 같은 모습이었다.
‘나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양민우와 정윤아의 활약을 보던 진수는 눈앞에 나타난 몬스터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리자드맨과 드라코니아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망치랑 도끼는 챙겨 와서 다행이네.’
그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석사를 잡을 때 썼던 망치와 도끼를 꺼냈다.
오늘 사냥을 할 일정이 없었기에 간단하게만 챙겨두었던 것이 아쉬웠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휘리릭! 퍽!
-리자드맨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리자드맨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진수가 던진 도끼에 리자드맨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졌다.
이제 그도 리자드맨, 드라코니아 정도 되는 몬스터들은 가볍게 쓸어버릴 수 있을 수준의 헌터였다.
“한놈 더!”
-드라코니아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드라코니아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이번엔 망치로 드라코니아의 머리를 깨부수었다.
[유연체질]이 주는 근육의 탄성 덕분에 폭발적인 순발력을 낼 수 있었다.
진수는 B급 헌터인 정윤아에 못지않은 전투 실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리자드맨과 드라코니아 정도의 몬스터로 정확한 수준을 보기는 힘든 일이었지만 말이다.
-퍼억! 퍽!
-콰드득!
-쿵! 쿠웅!
진수와 양민우, 정윤아가 제각기 세 방향에 사체를 쌓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터들의 지원이 오지 않았다.
아직 힘이 부치거나 몬스터들에게 밀리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피로도가 쌓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대체 왜 아무도... 이건 또 뭐야?”
양민우가 지속되는 전투에 의문을 품는데 갑자기 사체더미에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곧장 그의 손목을 잡아챈다.
끊어짐이 없이 이어지던 양민우의 바람이 헉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전세가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크르르...!”
사방에 산재해 있는 사체들이 들썩거리더니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퍽!
양민우가 주먹을 휘둘러 손목을 빼냈다.
사체에서 멀어진 그는 다시 기술을 사용했다.
반 토막이 난 채로 기어오는 리자드맨.
팔만 남았는데도 움직이는 드라코니아.
살점들은 슬금슬금 이동해 주변의 사체 아무 데나 달라붙어 몸을 일으켰다.
마치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건... 언데드잖아! 보통의 몬스터가 언데드화 된다는 이야기는 내 헌터 경력을 통틀어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낭패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는 양민우.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정윤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무기 또한 언데드에게 그리 유리하지 않은 날붙이였다.
언데드 몬스터의 가장 대표적인 공략법은 둔기로 육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놈들은 가진 마력이 다할 때까지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칼 따위로 베는 상처는 무시하고 움직이거나 금방 회복하기에 살을 짓뭉개고 뼈를 조각조각 부수는 둔기로 공격하는 것이 좋다.
-펑!
양민우는 공기로 대포를 쏘듯 묵직하게 공격하는 방법으로 꾀를 냈다.
하지만 원래 사용하던 방식이 아니다보니 속도나 마력 소모 차원에서 제 실력을 내기 힘들었다.
-파악! 퍽!
칼에 마력을 담아 옆면으로 후려치는 정윤아.
마치 중식도로 마늘을 빻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양민우와 정윤아 모두 경험이 많은 헌터들이었기에 나름의 해결방안을 찾아 대응했다.
그러나 임기응변은 한계가 명확했다.
여전히 균열에서 몬스터들이 보충되고 있고 놈들을 쓰러트리면 다시 언데드로 일어선다.
언데드 몬스터는 처치하는 데에 훨씬 힘이 들었기에 말끔했던 그들의 모습은 조금씩 망가져갔다.
“크윽!”
팔다리부터 시작해 차츰 상처가 늘어가고, 이어지는 전투에 체력적으로도 점차 힘들어진다.
조금씩, 조금씩, 뒤로 밀리며 서로 가까워졌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진수가 있는 쪽에는 사체가 언데드화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얼마 안 남았다...! 이 놈들만 정리하면 도우러 갈 수 있어!’
진수도 답답한 건 매한가지였다.
고전하고 있는 양민우와 정윤아를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균열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는 D급 헌터 혼자 막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 진수의 자리에 다른 D급 헌터가 있었다면 이미 리자드맨과 드라코니아의 맛있는 영양 간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건 B급 헌터인 두 사람이 힘겨워 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콰드득!
-쾅!
자신이 맡았던 쪽의 마지막 남은 드라코니아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린 진수.
다급한 마음에 놈의 필사적인 반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손톱이 진수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탱그렁!
“으윽...!”
진수는 순간적으로 도끼를 놓치며 작게 신음을 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은 상처였다.
‘이런...! 저쪽을 도와야 하는데 어깨가....’
그가 양민우와 정윤아를 보며 탄식을 했다.
그런데 어깨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음?”
이젠 아픔보다 오히려 간질간질한 느낌이 났다.
진수는 의아함에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보았다.
“헛!”
화들짝 놀라는 진수.
깊게 났던 상처가 꾸물거리며 아물고 있었다.
그것도 회복되는 과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바로 [중급 재생력]의 힘이었다.
[회복력] 계열은 잘 쉬고 약을 바르면 몸의 자체 회복을 도와주는 정도의 특성이었다.
진수는 [재생력]도 마찬가지의 능력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지금 이 상황을 보고 놀란 것이다.
용산 균열 사태 때 한 차례 [중급 재생력]의 덕을 본 적 있었지만 그날은 워낙 정신없는 상황이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가진 사기적인 재생 능력을 알게 되었다.
“흐흐흐. 다 뒤졌다.”
분명 위기의 상황이었는데 진수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자신이 가진 특성 [발키리]에는 [광전사] 특성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몸을 사리느라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큰 부상만 피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 순간.
진수는 자신을 제한하던 벽을 하나 허물었다.
“흐아아앗!”
그는 우선 양민우를 돕기로 했다.
양민우는 애초에 육체 계열 능력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지근거리에 언데드 몬스터가 위협을 가하는 이 상황에서 훨씬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도와서 몬스터들과 거리를 만들어준다면 전반적인 상황을 뒤집어줄 수 있을 것이다.
“조심하게! 이 놈들, 언데드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어! 자네가 나설 수준이....”
양민우는 달려오는 진수를 보며 경고했다.
그가 박철준 수사관에게 듣기로 진수의 등급은 D급.
리자드맨과 드라코니아에게는 어떻게 통했을지 몰라도 언데드화된 몬스터들한테는 위험하다.
-쾅!
“크억!”
...고 생각했다.
언데드들은 진수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에게 큰 피해를 입은 놈들은 희끄무레한 연기 같은 것을 뿜어내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순식간에 양민우의 곁으로 와 언데드 몬스터 여럿을 때려잡은 진수.
워낙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떤 언데드 몬스터는 사체조차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리자드맨 좀비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리자드맨 좀비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드라코니아 좀비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드라코니아 좀비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드라코니아 스켈레톤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드라코니아 스켈레톤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와! 얘네들 다 따로따로 분류가 되는 거야? 이거 완전 뼈다귀 맛집이잖아?’
진수는 차원 전이 되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양민우는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언데드 몬스터를 처치하는 진수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언데드
전투는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각자 몬스터를 해치우는 방식에서 서로 보완을 하는 모습으로.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활약을 하는 것은 단연 진수였다.
-퍼억! 퍽!
헌터 협회 간부인 두 사람의 발목을 잡던 언데드 몬스터들을 홀로 박살내버린다.
덕분에 남은 둘이 그의 보조를 하며 균열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을 처치할 수 있었다.
D급 헌터가 B급 헌터를 구해주는 기묘한 상황이 된 것이다.
“끝이 보입니다! 조금만 힘내세요!”
“알겠네. 자네 정말... 대단하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듯 과격한 공격으로 언데드 몬스터들을 초토화시키는 진수.
그 모습에 양민우가 혀를 내둘렀다.
비슷한 전투 스타일을 지닌 정윤아의 현역 시절에도 이 정도로 공격적인 움직임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수의 몸에는 큰 상처 하나 없으니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는 능력도 충분하다는 의미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균열이 몬스터를 간헐적으로 토해내기 시작하고 그 끝을 보이는 듯했다.
아직 주변에 언데드 몬스터가 많았지만 양민우와 정윤아가 진수를 지키면서 싸우면 가뿐히 해결이 가능한 정도.
세 사람 모두 마음을 어느 정도 놓고 있었는데 돌연 그들 주변의 공간이 울리는 듯한 묵직한 진동음이 들려왔다.
“이게 뭐죠...?”
정윤아가 자신의 방향에 있던 마지막 드라코니아의 목을 떨어트리고 진수의 곁으로 왔다.
불길한 울림에 진수를 지키려 온 것이다.
“이런, 사체가...!”
보다 멀리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양민우가 탄식을 내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기괴한 장면이었다.
-콰드득! 뿌드드득!
언데드 몬스터들의 몸이 뒤틀리더니 뼈가 뽑혀져 나온다.
놈들의 뼈는 한 데에 모여 새로운 골격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주 거대한 괴물의 형상을.
“후오오오오...!”
다리가 여섯 개 달린 짐승이 육중한 울음소리를 낸다.
뼈로만 이루어진 놈의 겉으로 주변에 흩어져 있는 살점들이 달라붙었다.
초등학생의 지점토 인형처럼 울퉁불퉁한 모양새.
살이 붙으니 그 덩치는 더욱 커져 2층 건물 크기가 되었다.
“언데드 퓨전이라니....”
양민우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한창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다닐 때, 한 번 언데드 퓨전을 경험해본 적 있었다.
허접한 좀비들이 하나로 뭉쳐져 거인처럼 되었는데 뭉치기 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강대한 힘을 지녔었다.
썩어 문드러지던 하급 좀비가 합쳐져도 그런데 하물며 리자드맨과 드라코니아의 사체로 된 언데드 퓨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미친...?”
언데드 몬스터들을 학살하다시피 처치하던 진수로서도 몹시 당황스러웠다.
[발키리]의 효과로 놈들을 쓰러트리려면 일단 큰 타격을 줘야한다.
그런데 이렇게 본체 자체가 강력한 녀석이라면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특수임무 발생.
-임무 : 언데드 바인더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하데스]의 기술 중 하나
‘이런 상황에서 저걸 보내달라니 제정신이냐....’
위기 상황이면 놓치지 않고 차원 전이를 시켜달라고 하는 특수임무가 나타난다.
언데드 바인더는 언데드 몬스터가 뭉친 저 몬스터를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언데드를 묶었다고 해서 언데드 바인더인가.... 어?’
특수임무 안내 메시지를 읽으며 언데드 바인더라는 단어를 곱씹어보던 진수.
순간 머릿속에 어떤 정보들이 떠올랐다.
“이거 잘하면...?”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뱉었다.
“진수 군. 저건 전사형 헌터가 덤벼서 될 일이 아니네. 허튼 생각 말고 다른 헌터들이 올 때까지 버틸 방법을 모색해보세.”
“맞아요. 지금까지 해준 것도 정말 대단한 거예요. 언데드 퓨전으로 나온 괴물은 B급 헌터들이 팀을 이뤄서 공략해야 겨우 해치울 수 있는 수준이에요.”
지금껏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로 수월하게 이겨온 진수.
양민우와 정윤아는 진수가 여태까지의 경험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젊은 헌터들이 그렇게 상황 판단에서 실수를 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사고를 당하는 걸 숱하게 봐왔다.
‘언데드 퓨전...이라고 하는 걸 보니 아직 언데드 바인더의 존재가 헌터 협회에도 알려지진 않았나보네.’
진수는 그를 만류하는 두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언데드 바인더라는 몬스터에 대해서 떠오른 것은 하데스가 넘긴 지식 중 일부였다.
영혼 계열의 몬스터라서 영혼을 다루는 지식에 함께 포함이 되었던 모양이다.
언데드 바인더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괴물이다.
주변에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하나로 엮어 자신의 몸을 만드는 놈으로, 헌터들은 이것을 현상으로 보아 언데드 퓨전이라고 명명했다.
‘확실히 언데드 바인더가 몸을 만들면 강력하지. 그렇지만 확실한 약점도 있어.’
언데드 바인더는 어느새 몸을 모두 구축해 양민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셋 중에 가장 마력이 강한 인물이었기에 제일 위협적인 존재로 판단한 듯했다.
-부웅!
단순한 앞발 후리기지만 위압감이 엄청나다.
자칫 회피에 늦어 스치기만 해도 골절은 기본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의 위력.
양민우는 몸에 바람을 둘러 급히 피했다.
“두 분이 좌우를 맡아서 견제해주세요! 제가 후미에서 신경을 분산시킬게요!”
언데드 바인더를 해치우는 건 포기한 것일까.
처치하려면 셋이 한 곳에 집중해도 부족할 판인데 각자 다른 방향에서 놈을 상대하자고 말하는 진수.
그의 말에 두 사람이 마음을 놓으며 그렇게 하겠다 답했다.
-쾅!
정윤아가 칼 두 개를 동시에 휘둘러 좌측을 강하게 공격한다.
-콰가가각!
언데드 바인더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리면 양민우의 칼날바람이 놈의 우측을 갉아놓았다.
“후오오!”
약이 오르는지 괴성을 지르는 녀석.
그 때를 틈타 진수가 뒷다리 하나를 강하게 후려쳤다.
-퍽
나름 세차게 휘두른 도끼였지만 겉에 붙어있는 살점에 흔적만 조금 남길 뿐이었다.
양민우와 정윤아가 공격할 때는 매섭게 노려보던 언데드 바인더가 진수의 공격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 자식이... 두고 보자. 아주 엉덩이를 걷어 차줄 테니까.”
진수가 뒤에서 이를 갈든 말든 전투는 양민우 부부와 언데드 바인더의 중심으로 일어났다.
둘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덕에 서로가 신호를 주지 않아도 귀신같은 완급 조절로 언데드 바인더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양민우가 바람으로 한쪽 발을 묶으면 정윤아는 마력을 가득 실은 칼질을 날린다.
반대의 경우에는 얕지만 빠른 칼질로 견제할 때 묵직한 송곳 바람을 쏘는 식이었다.
“후우우!”
-콰아앙!
그렇다고 언데드 바인더의 공격이 무른 것은 아니었다.
놈은 거대한 몸을 이용한 강력한 육탄돌격에 입으로 쏘는 마력탄을 섞어가며 두 사람을 압박했다.
-팍, 팍, 팍
그리고 진수는 언데드 바인더의 꽁무니를 쫓으며 열심히 자잘한 공격을 꽂았다.
‘휴, 다행히 진수 군에게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군. 이대로 집사람이랑 시간을 끌면 되겠어.’
양민우가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좀비와 스켈레톤들 사이에서 활약을 했다고 해도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 증례로 눈앞의 괴물에게는 전혀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후우우웁!”
그가 잠시 진수를 보는 사이, 언데드 바인더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피해!”
놈의 주둥이에 마력이 응축되는 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강력한 마력탄을 날리려는 듯했다.
양민우는 바람으로 마력탄의 궤도에 있는 정윤아를 대피시키고 자신도 몸을 뺐다.
뒤이어 두터운 바람막을 펼쳐 이어질 충격에 대비했다.
“후아아악!”
이윽고 터져 나오는 언데드 바인더의 포효.
잔뜩 끌어 모은 마력을 쏘아내는 소리이리라.
“흡!”
바람으로 된 보호막을 더욱 견고히 하는 양민우.
“...?”
-쿵!
하지만 그가 예상했던 엄청난 충격은 없었다.
그저 묵직한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을 뿐.
“이게 대체...?”
바람을 거두고 언데드 바인더를 보았다.
거기엔 반쯤 분해된 사체와 그 사체의 엉덩이에 도끼를 박아 넣은 진수가 있었다.
“진수 군, 괜찮아요?”
양민우가 상황 파악이 안 돼 멍하니 있는 반면에 정윤아는 진수를 챙긴다.
“예. 괜찮습니다. 이 놈은 해치웠으니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언데드 바인더의 뒤에서 콩콩 자잘한 공격을 날리던 진수가 놈을 처치한 것이다.
녀석은 몸이 붕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움직일 기색이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생명을 잃은 모습이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
양민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상당한 규모의 균열 세 개를 세 명이서 막았다.
거기에 몬스터가 언데드화 되는 이상 현상, 몬스터 퓨전까지.
그의 상식선에서 B급 둘과 D급 한 명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 모든 상황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특이 요소라고 한다면 오직 하나.
진수뿐이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자네 헌터 협회에서 일 해볼 생각 없나?”
그는 진수의 등을 두드리며 연신 칭찬을 쏟아냈다.
“이 사람은? 그렇게 다짜고짜 말하면 어떡해요?”
그런 양민우가 못마땅했는지 정윤아가 한소리 했다.
“진수 군. 저쪽으로 가봐야 별 빛을 못 봐요. 우리 부서는 헌범기관이랑 자주 공조하기도 하거든요. 입지로 보나 활동으로 보나 우리 쪽이 맞을 거예요. 헌협에 올 거면 우리 부서로 와요.”
그녀가 못마땅했던 것은 양민우가 진수를 그의 부서로 데려가려 한다는 부분이었다.
“하하. 제안 감사합니다. 제가 아직은 헌터 생활이 더 좋아서요.”
난데없이 펼쳐진 스카우트 경쟁에 진수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거절했다.
그가 비록 헌터 협회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해도 협회 간부가 금칠을 하며 제안하는데 기분이 좋은 건 당연했다.
“아쉽네요. 나중에라도 생각 있으면 꼭 좀 연락 줘요. 그리고 덕분에 목숨도 건지고 면도 섰으니 뭐라도 보답을 해야겠는데....”
“여보. 가방에 있는 공간압축 주머니. 그거 주는 게 어때?”
양민우가 보상을 고민하는 정윤아에게 말했다.
그녀는 좋은 생각이라며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던 그녀의 손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까 우리 무기 꺼내는 거 봤죠? 대략 가로, 세로, 높이 2미터 정도 공간이 압축된 주머니예요.”
‘아. 마술이 아니라 기술이었네.’
진수는 핸드백에서 지팡이부터 커다란 칼까지 나오던 걸 보고 놀란 기억을 떠올렸다.
“감사합니다!”
그는 정윤아에게서 공간압축 주머니를 받았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언데드 바인더를 잡기는커녕 오히려 목숨이 위태로웠을 수도 있으니 겸양 떨 필요가 없었다.
‘하데스 덕분에 특수임무도 달성하고, 하데스는 내 덕분에 강력한 부하가 생긴 셈이지.’
진수가 언데드 바인더를 처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데스의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데드 바인더는 주변에 있는 언데드 몬스터를 하나로 뭉쳐 자신의 몸으로 사용할 수 있다.
몸의 중앙에 합친 언데드들의 마력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녀석의 진짜 본체는 바깥쪽에서 돌아다닌다.
본체의 위치는 계속해서 바꿀 수 있기에 처치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진수가 지속적으로 놈의 뒤에서 자잘한 공격을 했던 것이다.
앞쪽에서 양민우와 정윤아가 강력한 타격을 주고 뒤에서는 별 거 아닌 수준의 충격이 들어오니 자연스럽게 본체를 뒤로 옮기게 된다.
놈이 강력한 공격을 쓰기 위해서 뒤가 무방비 상태가 되었을 때 본체의 위치를 [도깨비불]로 때려주면 끝.
다만 그 위치가 위치인지라 진수는 본의 아니게 도끼로 녀석의 엉덩이를 쪼개는 꼴이 되었지만 말이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헬 그림리퍼 [하데스]의 기술 중 하나
‘오! 무슨 기술인지 볼까...?’
특수임무가 달성되면서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에 상태창을 열어 기술을 확인하려던 진수를 양민우와 정윤아가 불렀다.
“지, 진수 군...!”
“진수 군 몸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는 그들.
진수는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그들의 반응에 의아해하며 스스로의 몸을 보았다.
“뭐야 이거?”
그의 몸이 정말 유령처럼 흐릿하게 변해있었다.
심지어 바닥 아래로 살짝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마력 탈진
‘요즘 언데드 몬스터랑 많이 엮였다고 귀신 된 건 아니지?’
몸이 불투명하게 변하고 주변 사물을 통과하는 상태가 된 진수.
게다가 점점 시야도 흐릿해지고 현기증이 느껴졌다.
“진수 군. 정신 차리고 마력을 끊어 봐요. 마력 흐름이 느껴지는 게, 기술이나 아이템 작용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잘못하면 마력 탈진 증상으로 위험할 수 있어요!”
정윤아가 진수를 보며 외쳤다.
그의 몸속에서 마력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진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몸속에 들끓고 있는 마력을 멈추었다.
-스르륵
장막이 벗겨지는 것처럼 그의 몸이 점차 명확히 보이게 되었다.
정체불명의 현상이 해결된 것이다.
“헉, 헉, 헉....”
진수는 급격하게 소모된 마력 때문인지 호흡을 가쁘게 내쉬었다.
-언데드 바인더 [이름 없음]이 [망자 군단] 무리에 합류합니다.
-[망자 군단]의 규모가 10 개체가 되었습니다.
-첫 무리 확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마력 +2, 듀라한 [김봉식]의 특성 중 하나
조금 전에 차원 전이시킨 언데드 바인더가 망자 군단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덕분에 마력 능력치가 오르며 바닥을 보이던 마력이 일부 회복되었다.
“휴우....”
금세 컨디션이 되돌아온 진수.
그 모습을 보는 양민우 부부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마력 탈진 직전까지 갔던 사람이 이렇게 금방 회복되는 경우는 드물었으니까.
그들은 속으로 평가했던 진수의 수준을 더욱 높게 책정했다.
“이제 좀 괜찮아요?”
“네. 덕분에 살았습니다. 하하.”
진수가 정윤아의 걱정에 염려 말라는 듯이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굳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마력을 쓸 수가 없다....’
갑작스러운 현상에 마력을 가두었는데, 다시 평상시처럼 마력을 운용해보려 하니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마력을 움직이면 또다시 폭주할 것만 같은 느낌.
손이 하나 묶인 것처럼 답답한 감정이 들었다.
“진수 군. 억지로 괜찮다고 할 것 없네. 자네는 태규의 마지막 말을 전해줬을 뿐 아니라 균열에서 우리를 살려주기도 했어.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도와줄 테니 문제가 있다면 말을 해봐.”
진수의 표정을 읽은 양민우가 나섰다.
“우선... 제가 지금 제 상황이 다 파악이 안 된 상태여서요. 잠시만 시간을 주시겠어요?”
진수는 그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김진수]
힘:20 민첩:18 체력:21 내구:20 마력:22
특성 : [차원 전이] [중급 재생력] [융합] [상급 전사의 신체] [특급 공구 숙련] [도구 일체화] [증폭기] [발키리] [사신의 감각] [신뢰] [유연체질] [머리 분리]
기술 : [도깨비불] [강철 거미줄] [유체화]
골드 : 30
바뀐 것은 세 가지였다.
우선 능력치.
총합이 이제 100을 넘어서 C급 헌터로 진급이 가능해졌다.
‘협회 가면 진급 신청 해야겠네.’
다음은 특성.
[머리 분리]라는 특성이 보였다.
한눈에 듀라한 김봉식이 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머리 분리]라니.... 정말 이러다가 언데드 몬스터가 되는 건 아니겠지...? 아니 무엇보다 대체 뭔 능력이야?’
진수는 몰래 볼을 감싸는 척 하면서 머리를 들어보았다.
당연히 머리가 분리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은 기술이다.
[유체화].
이름만 봐도 지금 사태의 원인이라는 느낌을 팍팍 풍겼다.
‘[유체화] 기술이라니.... 헌터넷을 그렇게 오래 이용했어도 헌터들 중에 이런 기술을 쓴다는 경우는 소문으로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는 머리가 아파옴을 느꼈다.
정체불명의 기술.
심지어 정보도 없다.
문제는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마력이 묶여 아예 그 어떤 기술도 사용할 수가 없는 상황.
‘아, 그래. 새로운 기술이라면 환장하는 사람이 있잖아?’
진수는 불현듯 마력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떠올랐다.
“헌터 협회까지 좀 데려다주시겠어요?”
양민우 부부는 그의 부탁에 흔쾌히 응했다.
덕분에 강남역의 한 유료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차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진수가 향한 곳은 기술 검증실.
그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오, 도깨비!”
검증실 안에는 조민준이 이상하게 생긴 기계를 만지고 있었다.
그는 진수를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저 좀 도와줘요.”
“무슨...?”
진수는 조민준에게 다짜고짜 도움을 요청했다.
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조민준.
평소에 일단 자기 할 말만 던지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조민준 자신이었다.
그런데 반대의 입장이 되어보니 보통 답답한 일이 아니었다.
뭐라고 한 소리 하려던 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와.... 이건... [유체화]? 맞죠? [유체화]?”
진수가 마력을 풀고 [유체화] 기술을 다시 활성화시킨 것이다.
그 모습에 넋을 잃고 관찰하는 조민준.
“마력 반응이 심상치 않네. 기술에 적합한 신체 구성이 아닌 게 문제인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사용은 할 수 있는 거지? 물리적인 저항이 사라진 걸로 봐서는 제대로 활성화 됐어. 이 상태면 5초 안에 혼절 할 거 같은데....”
“이거 좀 해결....”
진수는 조민준에게 한 마디를 남기고 쓰러졌다.
이건 그가 조민준의 기술에 대한 열의를 믿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민준은 절대로 소중한 연구 대상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위험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매번 새롭고 놀라운 기술을 가져오는 진수라면?
숨이 끊어져도 다시 살려낼지도 모른다.
* * *
진수가 정신을 차린 곳은 헌터 협회의 기술 검증실이 아니었다.
한 번 와본 적 있는 조민준의 개인 연구실.
지난번 용아병이 묶였던 침상에서 눈을 떴다.
“으음...!”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고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엇?”
조민준이 어떻게든 [유체화]를 풀어놓고 해결 방법을 내놓았을 거라 생각했던 그의 예상과는 달리 진수는 여전히 희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신 마력이 끓어오르는 것 같은 감각은 없었고 온몸에 작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그 간지러움의 근원지가 무엇인가 살펴보니 양손에 푸른 불빛이 도는 집게가 집혀있었다.
집게를 통해 마력이 몸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일어났네요?”
양손에 온갖 실험 도구를 들고 오는 조민준.
그는 한껏 신이 난 얼굴이었다.
“이번엔 [유체화]를 가지고 오다니! 진짜 화수분이라니까? 역시 도깨비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흐흐흐.”
그는 진수의 옆에 있는 디스플레이를 확인하며 말했다.
“[유체화]는 원래 유령 같은 몬스터들이 쓰는 기술이거든요. 그 놈들은 몸의 구조 자체가 [유체화]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이 사용하는데, 사람은 그게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생물학적인 한계를 진수씨는 마력을 쏟아 부어서 커버 치고 있는 상황이에요. 재밌죠?”
속사포 같은 말이 조민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진수는 무슨 소린지 다 알아듣지는 못 했지만, 일단 [유체화]를 쓸 수 없는 몸인데 마력을 과하게 소비하며 억지로 활성화 시킨다는 것까지는 이해를 했다.
“그럼 이건...?”
“마력이 부족해서 기술을 못 본다면 마력을 채워주면 되는 거죠. 원래는 몬스터들한테 쓰는 기구인데, 사람한테도 잘 맞네요. 마석을 정제해서 마력을 강제로 집어넣는 장치에요. 하하. 가끔 안 맞는 몬스터들은 폭죽처럼 터지기도 하던데 연구실을 안 치워도 돼서 다행이에요.”
그는 아주 섬뜩한 소리를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몸이 기술을 못 받는 거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음, 사실 나도 처음 보는 기술이라서 확답은 못 하겠어요. 그런데 많은 기술들이 마력 운용 방법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컨트롤을 하는 단계에서는 유사성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뭔가 마력을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기술이나 아이템으로 그 감각을 익히면 [유체화]도 조절이 가능할지도 몰라요. 근데... 제 연구실엔 지금 그런 종류의 아이템이 없어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말하는 조민준.
“그러니까 일단은 마력을 주입 받으면서 [유체화]를 유지하고 있으면 내가 좀 테스트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그 다음에 아이템을 구하러 갔다 오면 된다 이거죠. 히히.”
그는 논리의 비약이 굉장히 심한 소리를 해맑게 뱉고는 딱 봐도 무식하고 위험하게 생긴 칼을 꺼내 들었다.
“자, 잠깐. 두 가지 동의할 수 없는 게 있어요.”
당장 칼을 진수의 반투명한 팔에 찔러 넣으려던 그는 진수의 말에 행동을 멈췄다.
“어떤 게요?”
“하나. 마력을 아예 안 쓸 거면 지금도 [유체화]를 비활성화 시킬 수 있어요.”
-스르륵
진수는 마력을 끊어서 기술을 멈췄다.
“둘. 다행히 저한테는 그런 아이템이 있다는 거죠.”
진수는 주머니에서 투명화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그건...?”
“덕분에 해결의 단초를 찾았네요. 다음에 또 신세 지겠습니다!”
-슉
진수가 두건을 쓰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툭, 툭
그저 그의 손을 잡고 있던 집게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로 침상에서 빠져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쳇. 그래도 기절한 사이에 중요한 실험은 다 했으니까 상관은 없지만... 물질 통과 테스트를 다 끝내지 못한 건 아쉽네.”
조민준은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칼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게 다 뭐야?’
아쉬움이 짙게 남은 조민준과 달리 진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두건을 사용해 투명화를 사용하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융합]의 효과로 [투명화]와 [유체화]가 합쳐집니다.
-[투명화] 아이템을 사용할 경우 [유체화]가 함께 적용됩니다.
두건의 마력 회로가 [유체화]에 필요한 신체 조건을 대신해주는 것인지 마력 소비가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두 기술은 서로 보완을 해주며 두건으로 투명해질 때 남던 빨간 원형이 [유체화]로 인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유체화] 특유의 물질을 통과하는 능력도 그대로.
정말 귀신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신 기술 두 개를 돌리는 거라 마력 소비량이 살인적이긴 하지만.’
오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침투나 도주를 할 때 정말 유용한 능력이 생겼다.
-스르륵
“좋아. 여기까지 온 김에 협회에 가서 승급을 좀 해야겠다. 그리고... 간만에 공방에 가서 이 두건 좀 개선시켜달라고 해야지.”
진수는 헌터 협회로 돌아가 C급 승급 신청을 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쳤는데, 이번엔 기술과 특성은 밝히지 않았다.
‘헌터 협회 간부가 직접 실력을 확인했는데 이거 공개 안 한다고 반려 당하지는 않겠지.’
그도 나름의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노림수는 정확히 적중했다.
진수의 진급 요청 서류가 상부에 올라가자마자 승인이 떨어졌다.
“김진수 헌터님. 여기 C급 헌터 라이센스입니다. 상부에서 균열 동원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드리라고 하네요.”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되네요. 하하.”
“맞아요. 요즘 균열이 정말 이상할 정도로 많이 생긴다고 해요. 그런데 김진수 헌터님처럼 동원에 응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없어서 안타까워요. 그나마 규모에 비해서 민간인의 피해가 아직은 크지 않다고 해서 다행이죠.”
접수원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난번에 듣기로 용산에 균열이 생기고, 그 다음은 서울랜드. 이번에는 강남역에 대규모 균열이 발생했다고 했어. 이거 왠지 균열이 날 따라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진수는 근래에 발생하는 균열의 위치에 의아함이 생겼다.
‘솔직히 망상일 가능성이 높지만, 당분간은 균열을 막는 데에 자주 참여해야겠어.’
그는 양민우에게 연락해 자신이 활동하는 서울 및 경기권에 균열 동원 요청이 들어오면 메시지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균열을 막을 인력이 부족해 골머리를 앓던 양민우로서는 두 손 들고 환영할 이야기였다.
흔쾌히 진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진수에 대한 양민우의 평가가 더욱 높아진 것은 덤이었다.
“좋아. 이제 두건을 좀 강화시키러 가볼까!”
진수는 동묘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공방
동묘.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관우를 받드는 사당이다.
게이트 사태 이후로 동묘에 던전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안전을 위해 높고 튼튼한 방벽이 둘러져 있다.
동묘 시장의 사람들은 이제 익숙해진 나머지 자기네 물건을 걸어두는 거치대 정도로 여기고 있지만 말이다.
“오늘도 사람이 아주 바글바글하네.”
동묘앞역에서 나온 진수는 동묘 시장을 훑어보며 감상을 뱉었다.
출처가 불분명한 아이템, 중고 장비, 마석 따위를 사고파는 모습들.
개중에는 눈길이 가는 화려한 물건들도 분명 존재했다.
‘진품 여부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아무도 보장을 안 해준다는 게 문제지.’
진수는 좌판들을 대충 훑으며 지나갔다.
어차피 그의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기에 굳이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쓸 필요는 없었다.
“사장님! 저 왔습니다.”
동묘 시장 한 구석 골목에 있는 공방.
그가 들어가며 인사를 하니 공방 주인인 김건이 가볍게 턱짓으로 인사를 받았다.
꽤나 불퉁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 정도면 사실 상당히 반갑게 맞이해준 것이다.
“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는데요.”
“볼일이 있으니까 왔겠지. 뭐요?”
“이거 한 번 봐주시겠어요?”
진수는 품에서 투명화 두건을 꺼냈다.
중앙에 붉은 마력 회로가 박혀있는 아이템.
한눈에 심상치 않은 물건임을 알아본 김건의 눈이 빛났다.
그의 약점이 바로 마력 회로에 대한 지식이었다.
이런 아이템을 한 번 다뤄본다면 부족한 부분을 많이 보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었다.
“중간에 있는 게 메인이고, 쭉 둘러서 회로가 있구먼.”
“이거 평소에 항상 착용하고 다닐 수 있게 만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진수의 목적은 이것이었다.
두건 형태로 착용하면 격렬하게 움직이거나 머리를 맞으면 강제로 착용이 해제될 우려가 있다.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형태를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김건을 찾아온 것이다.
김건은 진수의 말을 듣고 두건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봤다.
거칠고 두꺼운 손과 어울리지 않게 아주 조심히 들어올린다.
“흠. 목걸이 어떠쇼? 마력회로 길이가 있어서 반지나 팔찌로는 힘들겠고.... 마력 회로를 목걸이 체인에 이식하면 될 것 같은데.”
“이야, 그게 가능하세요? 역시 사장님, 세공 솜씨도 대단하시네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흠, 흠. 뭘 이 정도로 솜씨니 뭐니.... 잠깐만 기다리쇼. 내 금방 해줄 테니까.”
김건이 부끄러운 기색을 숨기며 잽싸게 두건을 들고 공방 구석으로 갔다.
빨리 아이템을 분해해보고 싶은 마음과 칭찬이 낯간지러운 마음, 그럼에도 기분 좋음이 공존하는 상태였다.
‘하여간 저 아저씨 거친 척은 다 하면서 속내는 말랑말랑하다니까.’
진수는 적당한 립서비스로 김건이 하던 작업도 멈추고 바로 자신의 의뢰를 맡도록 만들었다.
물론 전혀 속에 없는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아이템을 분해해서 기능을 유지하며 목걸이로 다시 만든다는 게 일반적인 공방에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재료 가공에 조예가 깊고 마력공학에 실험적인 도전을 많이 해본 김건 정도나 되니 수락할 수 있는 것.
김건은 아이템을 살펴보고 이미 구조를 파악했는지 거침없이 두건과 마력 회로를 분리시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렇게 바로 할 수 있는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진수가 잠시 공방에 있는 김건의 작업물들을 구경하는 동안 투명화 아이템의 개조가 완료되었다.
묵빛의 체인과 붉은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받아든 진수.
손에 차가운 금속이 닿자마자 아이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던전에서 나온 금속에 펜던트는 마석을 썼으니 어지간한 충격에도 버틸 거요. 기존에 두건은 건드려보니까 곧 찢어질 상태였고. 마력이 도는 동안에 찢어졌으면 큰일 날 뻔 했수.”
“햐, 좋습니다. 사장님 아니었으면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었네요. 하하.”
“뭐, 잘 되는지 작동이나 해보쇼.”
김건은 자신이 개조한 아이템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듯했다.
그의 말에 바로 목걸이를 목에 걸고 마력을 운용해보았다.
-스르륵...
“헉!”
김건의 앞에서 사라지는 진수.
[유체화]가 활성화 되면서 목걸이의 붉은 마력 회로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곳에서라면 육안으로 그를 발견하기 쉽지 않을 듯했다.
그 예로 화들짝 놀라는 김건을 들 수 있겠다.
-스르륵
진수는 이내 투명화를 풀고 환하게 웃었다.
두건일 때보다 오히려 마력 소비가 줄어든 것 같았다.
“이거 회로도 조금 손보신 거예요?”
“그게 천이 낡아서 끊어지려는 부분이 있더라고. 그래서 목걸이에 옮기는 김에 고쳐놨수.”
“흐흐,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현금은 조금 부족하고, 마석으로 값 치러도 될까요?”
“나야 좋지. 던전에서 나온 금속 가공하는 데에 마석이 엄청 들어가니까.”
진수는 마석이라는 말에 화색이 도는 김건에게 마석을 한 움큼 쥐어주었다.
너무 많다며 만류하는 김건에게 억지로 마석을 넘기고 공방을 나섰다.
‘마석은 이제 또 강남역 균열 보상 나오면 많이 생길 거니까. 계속 이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지.’
아무나 할 수 없는 서비스를 받았다면 그에 준하는 값을 치르는 것이 맞다.
지금 당장은 많은 돈이 나가는 것 같지만 훗날 또 더 크게 돌아오게 될 것이었다.
-드워프 [헤파이스토스]와 보석사 [데메테르]와 헬하운드 [초코]가 무리를 이룹니다.
-[헤파이스토스] [데메테르] [초코]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어이구. 그리스 신 이름 붙은 애들이 처음 뭉쳤네.”
불의 산에 있던 세 전이자가 드디어 무리를 이루었다.
진수는 그들의 무리명을 공방이라고 지었다.
‘일단 드워프의 유물을 복원시키는 게 제일 급선무인 무리니까. 아, 그러고 보니 강남역 균열 때 전이시킨 애들 이름도 지어줘야 되는구나.’
그는 전이자 목록을 살펴봤다.
크게 특이한 점은 별로 없었는데, 고돌이의 현재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고블린 [고돌] - 현재 상황 : 요정의 호수로 대피
‘요정의 호수면 포세이돈이랑 다른 슬라임들이 있는 곳이네. 고돌이도 얘네 무리에 합류하려나? 거기엔 고블린 샤먼인 키약트르도 있으니까 이제 고생은 좀 덜겠네.’
진수는 처음 차원 전이시켰던 고돌이가 너무 고생만 하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가끔 골드를 써서 지원해주는 것이 전부.
그렇다고 언제 특수임무가 생길지 모르니 함부로 쓰기도 어렵다.
‘그냥 알아서 잘 살아주길 바라는 수밖에....’
그는 이어 망자 군단에 들어가 있는 언데드들을 보았다.
이름이 없는 녀석들이 네 마리나 있었다.
그 아래에는 또 이름이 없는 리자드맨과 드라코니아까지.
갑자기 많은 이름을 지으려니 머리가 아파지려는 진수.
단순하게 가기로 했다.
리자드맨 쪽은 도룡일, 도룡이
드라코니아는 도마일, 도마이, 도마삼으로.
언데드 바인더에겐 가오가이거라는 이름을 주었다.
‘다른 이름은 대충 지어도... 합체는 중대사항이지.’
상태창의 전이자 이름을 모두 정리한 진수의 눈에는 임무 칸이 들어왔다.
이제 마력 문제도 해결이 되었고 처리해야 할 일도 없다.
슬슬 사냥을 다시 재개할 때가 되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응.’-임무 : 안내에 따라 이동하여 던전 클리어 하기
-보상 : 던전에서 차원 전이시킨 수에 따라 차등 지급
임무를 받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감각이 느껴졌다.
지난 번 알비노 놀 백설공주를 전이시킬 때 이후로 처음 나오는 임무 방식이었다.
‘뭔가 근처에 바라는 게 있다 이거지?’
진수는 몇 번 임무를 겪어보니 가까이에 원하는 것이 있으면 굉장히 구체적인 임무를 준다는 걸 인지했다.
“그나저나, 차등 지급이라니. 이건 대놓고 혼자 들어가라는 뜻이잖아? 물론 공략조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태지만.”
임무 보상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던전에서 차원 전이를 시킨 수에 따라서 달라지는 보상.
최대한 큰 보상을 얻으려면 던전 공략을 혼자 해야 한다.
진수는 우선 어떤 던전으로 안내를 하는 것인지 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 * *
“여기에 있다고...? 정말...?”
이동은 그리 길지 않았다.
머릿속의 안내가 가리키는 곳은 다름 아닌 동묘를 둘러싼 방벽의 안쪽.
‘한때 여기에 던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이후로는 던전은커녕 균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는데....’
동묘의 모든 부분은 충격 감지 센서가 달린 벽으로 막혀 있다.
문이 달려있기는 하지만 열쇠가 있어야 열 수 있는 상황.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하늘을 날지 않는 이상 던전이 진짜 있는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말이지.’
진수는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신상 장비를 테스트해볼 기회가 생각보다 일찍 왔다.
-스르륵
좌판이 없는 벽면으로 간 그는 마력을 운용했다.
몸이 투명해진다.
전신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유체화]도 활성화가 되었음을 느꼈다.
‘어휴, 마력 회로가 개선됐다고 해도 소비량 자체가 크네.’
진수는 밑 빠진 독처럼 쭉쭉 빠지는 마력에 식겁했다.
바로 손을 동묘 방벽으로 가져다 댔다.
-수욱
아무런 저항 없이 통과되는 손.
몸이 벽을 뚫기 시작할 때부터 마력은 더욱 빠르게 소비됐다.
화들짝 놀라 벽을 순식간에 통과해버린 진수.
벽 너머로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력을 거의 다 사용했음을 느꼈다.
-스르륵
“헉, 헉.... 이것도 어지간해선 전투에 쓸 수는 없겠다. 써도 아주 잠깐 피할 때나 쓰겠어.”
겨우 몇 초 사용했을 뿐인데 살짝 현기증까지 느껴진다.
그래도 세 번째 써봤다고 요령이 조금 생겼다.
조금 더 익숙해진다면 [투명화]와 [유체화]를 따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이건 시간이 해결해줄 거고. 우선 던전을 살펴보자.’
동묘 내부는 상당히 엉망인 상태였다.
오래된 양식의 건물들은 거의 허물어져 있었고, 중앙에 있는 건물만 기둥과 지붕을 유지하고 있었다.
옛날에 던전이 발생했을 때는 게이트 사태 초기라서 던전을 미처 공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던전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와 주변을 파괴했다.
아마 그 흔적을 정리하지 않고 바로 방벽으로 막아둔 모양이었다.
‘근데 이것들은 뭐지?’
중앙에 있는 사당을 향해서 마치 전선이 연결된 것처럼 바닥에 선이 그려져 있었다.
진수의 목걸이에 있는 마력 회로를 확대한 것처럼 선에서는 묘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던전이 발생해서 나타난 건가.”
진수는 바닥의 선을 따라서 사당으로 들어갔다.
임무의 안내가 가리키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했다.
사당의 안에는 커다란 동굴이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몇 차례 경험했던 던전의 입구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의심의 여지없이 던전이었다.
‘들어가 보자. 설마 막 B급 수준의 던전이고 그렇진 않겠지. 그렇다고 해도 [투명화]랑 [유체화]가 있으니 무조건 도망은 칠 수 있어. 무엇보다, 임무가 나를 사지로 몰진 않을 테니까.’
그는 마른침을 꼴딱 삼키고는 던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간이 뒤틀리는 던전답게 동굴은 굉장히 길었다.
특이한 점은 동굴이 지하 방향으로 점점 내려간다는 점.
그리고 지상을 향해 뚫려있는 구멍이 상당히 많았다는 부분이었다.
만약 몬스터들이 빠져나온다면 동묘 근방에 엄청난 인명 피해가 생길 수도 있었다.
“어휴, 이거 잘못하면 큰일 날 뻔했네. 빨리 클리어 해야겠어.”
진수는 더욱 빠르게 던전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이윽고 나타난 몬스터들.
놈들을 발견한 진수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조합이야...?’
동묘
던전의 형태는 굉장히 단순했다.
입구에서 깊고 길게 들어가는 통로.
그 끝에는 커다란 공동이 있었다.
보통의 던전에 으레 존재하는 미로, 복잡한 길, 함정 따위는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부에 보이는 것은 다수의 몬스터들이었다.
‘던전에 몬스터 있는 거야 당연한 거라지만. 이게 정상적인 모습이 아닌 것 같은데....’
진수의 앞에는 두 종류의 괴물이 있었다.
슬라임을 차원 전이시키러 갔을 때 봤던 기괴한 살덩이 몬스터와 갖가지 몬스터의 사체로 된 언데드들.
둘 다 일반적인 케이스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게다가 놈들은 전원이 꺼진 기계처럼 미동조차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여기에 이러고 있는 사정이야 어떻든 나한텐 좋은 일이지.’
이번 임무는 몬스터를 여러 종류 잡을수록 좋다.
지난번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은 거의 서로 다른 종류일 것이다.
더군다나 움직이지도 않고 있으니 식은 죽 먹기나 다름이 없었다.
진수는 공간압축 주머니에서 전기톱과 도끼를 꺼냈다.
-변종 고블린 [L-41호] 차원 전이 성공.
-놀 구울 [U-2호] 차원 전이 성공.
-강철거미 좀비 [U-6호] 차원 전이 성공.
-변종 코볼트 [L-33호] 차원 전이 성공.
-변종 드라코니아 [F-57호] 차원 전이 성공.
진수가 예상한대로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은 서로 다른 종류였다.
그의 전기톱이 지나간 자리엔 피 한 방울 남지 않고 모조리 차원 전이가 일어났다.
“이름이 참 다들 특이하네. 품번도 아니고 말이야.”
그는 차곡차곡 상태창으로 들어오는 몬스터들을 보며 잠시 웅얼거렸다.
던전에서 차원 전이시킨 몬스터는 11마리.
남은 것은 언데드 둘뿐이었다.
-끼기긱
“응?”
진수가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데 남아있던 스켈레톤의 머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 그 옆에 있던 거대 늑대 좀비도 침을 흘리며 그를 응시했다.
“뭘 봐?”
특별히 놈들의 머리는 망치로 깨부숴주었다.
언데드 몬스터들의 해골을 부순 진수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그가 들어온 통로를 돌아보았다.
“얼레? 저 선들이 여기까지 이어져 있었네.”
사당 주변에 뻗어있던 마력 회로들이 통로를 타고 들어와 던전의 내부까지 이어져 있었다.
들어올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불길한 마력 흐름과 함께.
-웅, 웅, 웅, 웅
마력 회로는 보랏빛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빛이 나오는 박자가 점점 빨라지더니 이내 던전 내부의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둠.
하지만 진수는 [사신의 감각] 덕분에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두 마리나.
“크르르르...!”
“우워억!”
다시 밝아진 내부.
진수가 나가려던 출구 앞에 커다란 몬스터 두 마리가 서있다.
무수히 많은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어스웜.
그리고 징그러울 정도로 거대한 근육이 꿈틀대는 초록색 인간형 몬스터.
‘저건... 오우거인가...? 얼굴은 오크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한데.’
둘 다 보통 상태의 몬스터로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 크기부터가 압도적인 수준.
“어휴, 대형 몬스터랑 정면으로 붙는 건 처음이네.”
그림리퍼 때는 심선우의 힘을 빌렸고, 언데드 바인더는 약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롯이 진수 본신의 힘으로만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화르륵!
“선빵필승이지!”
진수는 [도깨비불]을 초록색 몬스터의 얼굴에 던졌다.
동시에 도끼를 투척.
환한 불빛으로 놈의 시야를 가리면서 큰 부상을 노린 것이다.
-툭
하지만 몬스터의 가죽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단단했다.
진수가 있는 힘껏 던진 도끼는 가벼운 생채기만 남기고 튕겨져 나왔다.
-위이이잉!
도끼가 통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진수는 전기톱을 양손으로 들었다.
톱날에 푸른 귀화가 감돈다.
-후웅!
두 몬스터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스웜은 어느새 땅을 파고 들어갔다.
워낙에 크기가 커 놈이 바닥을 헤집고 다니면서 던전 전체에 진동이 퍼졌다.
덕분에 도무지 어디서 튀어나올지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초록색 몬스터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진수는 허리를 숙여 가까스로 피했는데, 그 풍압만으로도 뒷머리가 뜯겨져 나간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드드드득!
톱날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녹색 몬스터의 다리에 푸른 불을 남겼다.
[도깨비불]이 녀석의 마력을 태우며 다리를 좀먹어갔다.
진수는 잽싸게 움직이며 놈의 하체를 위주로 노렸다.
기동력을 먼저 빼앗으면 수월하게 해치울 수 있을 테니까.
“후워어억!”
그런데 갑자기 놈이 엄청난 굉음을 터트렸다.
소리에 실린 압박에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
오크들이 주로 사용하는 [워크라이] 기술이다.
[워크라이]의 효과로 녀석의 몸에 붙었던 [도깨비불]이 사그라들었다.
‘이거 오크였어...? 어쩐지 얼굴이 오크상이더라.’
진수는 문득 과천의 막계천에서 차원 전이시켰던 살덩이 몬스터들이 떠올랐다.
변종 어스웜과 변종 오크라고 했던 녀석들.
그들이 두 녀석들과 관련이 있으리란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게 대체....’
그가 의문을 품는데 바닥을 뚫고 어스웜이 튀어나왔다.
-쾅!
순간적으로 [유체화]를 사용하며 뒤로 피한 진수.
“이런 젠장. 일단 나가서 생각하자.”
[야성]으로 얻은 본능적인 감각이 아니었다면 최소한 한쪽 다리를 잃을 뻔했다.
이 두 마리의 몬스터들은 딴 생각을 하면서 상대할 정도의 놈들이 아니었다.
-콰드득!
뒤로 빠진 직후에 다시 튕기듯 돌진해 어스웜의 주둥이에 전기톱을 쑤셔 넣었다.
이어 톱날을 고속회전 시키자 녀석의 단단한 이빨들과 부딪히며 불꽃이 튄다.
푸른 불과 붉은 불똥이 동시에 터지는 게 아주 장관이었다.
-드드득!
아무래도 바위도 씹어 먹는 어스웜의 이빨이 조금 더 단단했던지 전기톱의 날이 무뎌졌다.
진수의 공세가 약해진 틈을 타 어스웜은 재빨리 땅속으로 숨는다.
-스윽
진수가 톱날을 걱정하며 잠시 살폈는데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전기톱이 저절로 수복되어 날을 다시 날카롭게 만들었다.
[도구 일체화]와 [융합] 특성이 [중급 재생력]을 끌어와 톱날을 회복한 것이다.
“하하, 하.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 내 능력이 어이가 없을 정도다.”
압도적으로 강한 적을 만나거나 그보다 약하고 수만 많은 적을 상대할 땐 미처 알 수 없었던 능력들이 하나씩 체감된다.
진수는 싸우면서 동시에 성장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트윈 헤드 하이에나 [초갈]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심지어 실제로 능력이 성장까지 한다.
그는 한층 더 빨리진 몸놀림으로 오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사신의 감각]으로 어스웜의 위치가 파악된다.
아직 놈은 진수에게서 거리가 있었다.
오크를 처리할 기회였다.
-슉!
진수는 손을 뻗어 놈의 다리에 [강철 거미줄]을 쏘았다.
[도깨비불]에 손상을 입었던 부위를 노려 수월하게 꿰뚫을 수 있었다.
녀석의 다리와 연결된 거미줄을 바닥에 붙여놓는다.
다시 한 번 같은 다리에 거미줄을 쏴 이번엔 팽팽히 당겨 손에 쥐었다.
“쿠워억!”
[강철 거미줄]에 의해서 행동반경이 줄어든 오크.
놈은 분개하며 진수에게 달려들었다.
“어딜!”
진수가 몸을 옆으로 날리면서 거미줄을 당긴다.
그러자 발이 꼬인 녀석은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곧장 오크의 목으로 전기톱이 날아든다.
‘[머리 분리] 특성이 있으니까 한 방에...!’
-카가가각!
아쉽게도 오크를 참수하기엔 절삭력이 부족했다.
‘남의 머리를 분리시키는 능력도 아니었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아니었다.
목을 완전히 잘라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오크의 목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고 있었기에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위이이잉! 드드드득
진수는 고통스러워하는 오크의 목에 전기톱을 들이밀어 마무리를 지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나름의 자비를 베푼 것이다.
‘너도 저쪽으로 넘어가면 내 힘이 되어줄 테니까. 그리고....’
-변종 오크 [슈렉] 차원 전이 성공.
이내 사라지는 오크.
-쾅!
진수가 서있던 바닥에서 어스웜이 튀어나온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놀랄 법도 했지만 그의 눈은 차분한 상태를 유지했다.
‘내가 집중하느라 가만히 있는 척을 해야 이 놈이 튀어나올 거니까!’
그는 어스웜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미끼가 된 것이다.
녀석이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충격에 진수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났다.
어스웜은 아래에서 떨어지는 그를 씹어 먹기 위해 주둥이를 벌리고 있었다.
-슉!
진수는 손에서 거미줄을 쏴 놈의 목구멍을 맞췄다.
그리고 거미줄을 당겨 도리어 놈의 입속으로 더욱 빠르게 들어갔다.
어스웜이 그를 잘근잘근 씹을 겨를도 없게 목구멍을 통과했다.
-쾅! 콰앙! 쾅!
이내 어스웜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땅 위로 올라와 펄떡펄떡 날뛰던 녀석은 곧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우웅...!
놈의 목에서 들리는 낮은 울림.
부들대던 어스웜의 목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퍽! 콰드드득!
녀석의 체액과 함께 툭 튀어나온 톱날이 억센 몸통을 가르며 한 바퀴 돈다.
이윽고 어스웜의 목이 몸과 분리되며 최후를 맞이했다.
-변종 어스웜 [라바] 차원 전이 성공.
“푸하! 이런 놈 처리하는 건 속에서 가르는 게 국룰이지.”
진수는 참았던 숨을 쉬며 개운하게 외쳤다.
어스웜이 차원 전이되면서 녀석의 체액과 점액 따위의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75
“헉! 75골드...?”
임무 보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컸다.
물론 15마리나 되는 몬스터를 차원 전이 시켰으니 따지고 보면 한 마리에 5골드를 받은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이야, 이 맛에 임무 받는 거지. 흐흐. 이 골드를 다 어디다 쓰나?”
진수는 갑자기 늘어난 골드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번 던전의 수확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곧이어 그의 눈앞에 수많은 안내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L-41호]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U-2호]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1
-[U-6호]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
.
.
-[라바]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내구 +1
동묘 던전에서 차원 전이시킨 15마리의 몬스터가 일거에 사망하며 보상을 보내왔다.
도합 힘 2, 민첩 3, 체력 2, 내구 4, 마력 3, 골드 5를 얻을 수 있었다.
“뭐야 대체. 저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쿠르릉...!
진수가 의문을 품으며 상태창을 열려고 했는데, 클리어 된 던전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모든 몬스터를 차원 전이시켜 사체가 남지 않았기에 던전의 붕괴도 앞당겨진 것이다.
“일단 나가서 생각하자.”
그는 들어왔던 통로로 급히 던전에서 탈출했다.
진수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동묘 사당 안에 있던 동굴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 사라졌다.
-띠링
던전에서 나온 진수에게 안내 메시지가 다시 나타났다.
“아... 이래서 이 던전을 클리어 하라고 했구나?”
진수는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블린 균열
-언데드 바인더 [가오가이거]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마력 +5, 골드 +10
던전 밖으로 나온 진수를 반긴 것은 가오가이거의 급성장이었다.
마력 능력치가 5개나 오르면서 30이 되자 온몸에 기운이 충만해짐을 느꼈다.
‘임무가 이상한 던전을 클리어하라고 했던 게 가오가이거 몸을 만들어주려고 했던 거였네.’
언데드 몬스터를 하나로 뭉쳐서 몸을 만드는 언데드 바인더.
넘어간 차원에서 망자의 통로는 인간들이 관광지를 만들 정도로 몬스터가 토벌된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하데스가 이끌고 있는 망자 군단의 전이자들로 몸을 만들 수는 없는 상황.
때마침 진수가 있는 동묘에 언데드 몬스터와 재료가 될 만한 변종 몬스터가 가득한 던전이 있었으니 군침을 흘릴 만했다.
‘그 많은 몬스터들을 하나로 뭉쳤으면 엄청 세졌겠네. 앞으로 기대를 해도 좋겠어.’
진수는 흐뭇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근데... 쓰읍. 이 던전은 뭐였던 거지?”
이상한 이름을 가진 살덩어리 몬스터들.
몬스터가 다시 언데드가 된 녀석들.
변종 몬스터까지.
하나하나가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서로 접점이 없을 것 같은 것들인데 이게 모두 동시에 나왔단 말이지.... 거기다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니? 뭔가 냄새가 난다....’
진수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이상한 몬스터들이 진수에게 딱히 해를 준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능력치가 오를 수 있게 해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가 언데드가 되는 현상은 위험하지. 누군가가 제어하는 상황이라면 막을 필요가 있어.’
균열로 인해서 자신이 있던 고아원이 사라졌다.
진수는 누구보다도 균열로 피해 입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큰 사람이었다.
-삐-삐-삐-삐-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
북한산 쪽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알림 메시지였다.
지난 번 헌터 협회에 방문했을 때 양민우에게 부탁했던 대로 수도권의 균열 동원 메시지가 온 것이다.
‘내가 지금 동묘니까 서둘러서 가면 균열 막는 걸 도울 수 있겠다.’
진수는 던전이 사라진 동묘를 벗어나 북한산으로 향했다.
균열 징조가 나타난 곳은 북한산의 서쪽, 은평구의 아파트 단지 근처다.
헌터가 부족해 몬스터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대량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C급 헌터입니다! 균열 방어 도우러 왔는데 인원 배치는 어떻게 됐죠?”
진관동 주민센터에 도착한 그는 헌터 라이센스를 꺼내며 외쳤다.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주민센터엔 헌터로 보이는 이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C, C급이시라고요? 하, 하하. 살았다...! 동원에 D급 헌터 한 분만 오셔서 균열 발생한 쪽으로 가셨거든요. 지도 보시면 여기 이 위치입니다. 곧 균열 터질 것 같은데 가능하시다면 빨리 이동해주시겠어요?”
주민센터의 공무원은 진수를 구세주 보듯이 보며 급히 균열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이 대피소로 피한다고 해도 몬스터를 처치할 헌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그 지역은 초토화가 된다.
몬스터 토벌이 한참동안 진행되지 않는다면 아예 아파트단지 쪽이 몬스터 서식 필드가 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C급 헌터의 등장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줄만했다.
“D급 한 명이라고요? 알겠습니다.”
진수도 균열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재빠르게 균열 위치로 움직였다.
몇 번 균열을 경험해본 바, D급 헌터 혼자서는 균열을 막을 수가 없다.
물론 진수 자신은 D급일 때 양민우, 정윤아와 함께 균열을 세 개나 막아본 적이 있었지만.
“어, 엇?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진수가 균열 발생 예상 지역에 도착하자 누군가가 큰 소리로 아는 체를 했다.
용산 균열 때 그와 함께 균열을 막았던 D급 헌터 유재찬이었다.
그는 여전히 말이 많고 여전히 균열을 막으려 애쓰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진수는 유재찬을 가볍게 훑어보았다.
그 당시와 크게 변한 게 없는 모습.
용케 혼자서 균열을 막아보겠다고 나섰다.
엄청난 압박과 긴장에 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사람도 참 대단해. 겉보기랑은 다르게 정말 정의로운 헌터 중 하나지.’
그가 유재찬에게 속으로 높은 점수를 줄 때, 유재찬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수 정도면 필드 사냥이나 던전을 다니면 같은 시간에 훨씬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열 동원에 응했다는 것은 이유가 어떻든 사회에 정말 큰 힘이 되는 헌터인 것이다.
“형님, 저 연락처 좀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렇게 다시 본 것도 인연인데 형님 동생 하고 지내시죠. 하하! 아! 물론 전 이미 형님이라고 하고 있지만요. 하하하!”
균열을 앞두고 온몸이 벌벌 떨리는 와중에도 계속 말을 꺼내는 것도 참 능력이다.
진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 모습이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기에 흔쾌히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유재찬 씨라고 하셨죠...?”
“아, 넵! 맞습니다. 하하. 역시 형님, 기억력도 좋으십니다. 하하!”
“하하....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제가 형이 아닌 거 같은데....”
“에이, 뭐 나이가 중요합니까? 헌터 사이에 강하면 형님이시죠! 하하! 저는 22살입니다.”
균열 발생이 시시각각 다가올수록 유재찬은 점점 더 말이 많아지고 행동이 과장되게 변했다.
아마도 그만의 긴장 해소 방법인 듯했다.
‘아니 근데 형 동생 하려면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면 뭐가 중요해...? 게다가 나보다 두 살 많잖아.’
“아, 저보다 두 살 많으시네요. 말씀 편하게 하시죠.”
“그...럴까? 흐흐. 뭐 두 살이면 큰 차이도 아닌데 친구 하자, 친구! 진수 너도 말 편하게 해.”
유재찬은 꽤나 쿨한 태도로 나왔다.
“어, 그래. 근데 어떻게 균열을 혼자 막을 생각을....”
-쿠르릉...!
“키에엑!”
“캬울!”
진수가 유재찬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균열이 터졌다.
허공에 떠있는 검은 구멍에서 초록색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균열의 주된 몬스터는, 고블린들이었다.
“다, 다행이다. 고블린이면 우리 둘이서 그래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겠어. 휴.”
보통 고블린 균열은 D급 헌터 셋 정도가 모이면 막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유재찬은 아직 진수가 C급이 되었다는 것은 몰랐지만 용산 사태 때 활약하는 것을 봤기에 둘이서도 막을 수 있겠다 생각한 것이다.
-위이잉!
몰려오는 고블린들.
진수는 전기톱을 꺼내 녀석들을 맞이했다.
일반 고블린이었기에 차원 전이가 되지는 않았다.
‘능력치는 못 올리지만 그래도 돈은 꽤 벌겠네.’
진수는 아쉬움 반, 안도함 반의 심정이었다.
강한 몬스터들이 나왔다면 둘이서 막아내지 못하거나 방어에 성공한다고 해도 주변이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대신 진수는 전이자 목록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겠지만.
“일반 고블린들이니까 최대한 빠져나가지 않게 서로 떨어져서 막자!”
유재찬은 균열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고블린인 것을 확인하고는 손 떨림이 멈췄다.
떨리던 손엔 어느새 검이 쥐어져 기교 없는 담백한 검격으로 고블린들을 하나하나 베어 넘겼다.
전기톱으로 학살을 벌이고 있는 진수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도움이 되는 실력이었다.
“그래. 내가 전진하면서 싸울 테니까 뒤를 좀 부탁할게!”
진수는 그 모습을 보고는 더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른손엔 전기톱, 왼손엔 도끼를 들고 마치 게임 속 야만전사처럼 손에 걸리는 모든 몬스터를 도륙했다.
그의 눈에는 붉은 안광이 옅게 나왔는데, [광전사] 특성의 효과가 발동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속에서 솟구치는 흥분감이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크하하하!”
흡사 양떼 속에 들어간 늑대의 모습으로 고블린을 해치우던 진수.
그의 눈앞에 갑자기 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자폭 고블린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자폭 고블린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자폭 고블린...?’
녹색의 고블린들 사이에 약간 불긋한 녀석이 있었는데, 그 놈이 자폭 고블린이었던 것이다.
“뒤로 피해!”
진수가 급히 유재찬에게 외쳤다.
-콰아앙!
그리고 이내, 그의 전기톱에 자폭 고블린이 하나 더 목숨을 잃었다.
곧이어 엄청난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그 자신의 생명력과 마력을 터트려 공격한다는 자폭 고블린.
녀석의 자폭은 땅이 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지, 진수야!”
진수의 경고를 듣고 바로 몸을 뒤로 날렸던 유재찬은 폭발과 함께 생긴 먼지구름 속으로 진수를 불렀다.
도무지 사람의 몸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폭발력이었기에 그의 마음엔 걱정이 가득해졌다.
“콜록, 콜록! 어휴, 이 자식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장난 아니네.”
먼지가 조금씩 걷히며 진수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그 엄청난 폭발에도 불구하고 생채기 하나 없는 상태였다.
‘[유체화]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네.’
진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야성] 특유의 감각으로 자폭 고블린의 공격을 감지하고 바로 [유체화]를 사용했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게다가 수확도 있었지.’
자폭 고블린의 가슴팍에 고블린 문자로 [크룩타의 노예]라고 문신이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저 놈들 튄다! 어떡해!”
먼지구름이 완전히 걷히자 유재찬이 깜짝 놀라 외쳤다.
균열에서 나온 고블린들이 자폭 고블린으로 진수와 유재찬을 공격하고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강적을 만났을 때의 행동 요령일 것이다.
그대로 놓친다면 저 영악한 악마들은 아파트 단지며 산이며 숨어들어가 사람들을 계속 괴롭힐 게 자명했다.
“야- 이- 겁쟁이 새끼들아! 크룩타가 오크 뒷구멍을 핥아도 그렇게 도망칠 거냐?”
진수는 산개하는 고블린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하지만 한국어를 알 리가 없는 녀석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 녀석을 빼고.
“크룩타!”
그는 더욱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한 덩치 큰 고블린이 움찔한다.
놈은 허리춤에 커다란 뿔나팔을 매달고 있었다.
“진수야 저, 저놈들부터 빨리 막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이상한 소리만 하지 말고....”
진수가 갑자기 괴상한 단어를 뱉자 유재찬은 불안한 마음에 그를 불러보았다.
“흐흐.... 괜찮아. 저놈들 다 돌아오게 만들 수 있겠어.”
하지만 진수에겐 불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얘가 미쳤나...?’
유재찬이 속으로 의심을 하는데, 진수가 갑자기 정면으로 뛰쳐나갔다.
“니가 크룩타구나?”
진수는 크룩타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고블린에게 짓쳐들었다.
그러자 녀석은 사색이 되어 뿔나팔을 불었다.
-뿌우우우-!
“캬아아!”
“크르륵!”
크룩타의 뿔나팔 소리가 들리자 퍼져 나가던 고블린들은 진수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뒤쪽에는 늑대를 타고 있는 고블린 라이더, 고블린 아처 따위의 특수개체들도 있었다.
아주 나름의 틀이 잡힌 고블린 군대인 듯했다.
‘와, 저놈들 종류별로 보내주면 아주 한 부족이 되겠는데? 고돌이가 대장 맡으면 딱이겠다. 고돌이 이름을 고돌이 말고 고브... 아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자신을 중심으로 수많은 고블린 부대가 달려들고 있었지만 진수는 아주 태연한 표정이었다.
아니, 오히려 속으론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예상 밖의 만남
“키에엑!”
“켁!”
진수의 주변에는 초록색 사체 더미들이 쌓이고 있었다.
크룩타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위협하면 충성심 높은 고블린들이 알아서 달려들어 주었다.
그는 그저 신나게 무기를 휘두르면 그만.
[광전사]가 주는 고무감에 진수의 입가엔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웃음 짓게 만드는 건 전투의 흥분만이 아니었다.
-고블린 라이더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고블린 라이더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거대 늑대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거대 늑대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고블린 아처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고블린 아처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
.
.
-고블린 버서커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고블린 버서커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수많은 고블린 특수 개체들이 차곡차곡 상태창으로 들어왔다.
‘슬라임 왕국 다음엔 고블린 부족이지!’
-콰드드득!
결국 크룩타의 몸이 두 동강 나면서 고블린 균열은 마무리가 되었다.
-고블린 커맨더 [크룩타] 차원 전이 성공.
-[크룩타]가 [아틀란티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모든 고블린들은 슬라임 포세이돈이 이끄는 아틀란티스 무리에 들어갔다.
‘고돌이도 아틀란티스 영역인 요정의 호수로 대피했다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합류하겠네.’
-[아틀란티스]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민첩 +1, 체력 +2, 내구 +1, [플러버]의 특성 중 하나
자폭 고블린부터 거대 늑대, 크룩타까지 총 9마리의 몬스터를 전이시켰다.
이 녀석들이 모두 아틀란티스 무리로 들어갔으니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룬 것이다.
“크흐흐. 이 맛에 몬스터 잡지!”
-우우웅!
진수는 보상 메시지에 기분이 좋아져 웃음을 터트렸다.
[도구 일체화] 특성으로 한 몸이 된 전기톱도 함께 돌아간다.
-샤아아...
그가 기쁨을 만끽하는데 어디선가 음울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력이 담겨 있었지만 단순한 에너지의 차원이 아니었다.
[사신의 감각]과 하데스의 지식에 따르면 사체를 되살리려는 시도, 일종의 네크로맨시에 속하는 힘이다.
‘소용이 없을 텐데....’
진수에게 처치당한 몬스터는 [발키리]에 섞인 [저승사자] 특성의 힘 때문에 언데드로 다시 살아날 수가 없다.
이건 강남역 균열 때 진수가 맡은 몬스터들만 언데드가 되지 않은 것으로 이미 증명이 되었다.
-스르르...
역시나 진수의 예상대로 음울한 기운은 고블린의 사체를 뒤덮더니 이내 아무런 현상도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졌다.
강령술을 사용한 인물은 예상과는 다른 상황에 당황하며 조금씩 다가오며 언데드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애초에 문제는 거리가 아닌 영혼.
어느 정도 가까이에서도 사체의 반응이 없자 미지의 인물은 사체를 되살리는 걸 포기한 듯 보였다.
-피슉!
그가 떠나려고 뒤로 돌아 걸음을 떼는 순간.
진수는 그를 향해 [강철 거미줄]을 쏘았다.
먼 거리를 날아간 거미줄은 강령술을 사용한 인물의 바지에 달라붙었다.
멀리 쏘아낸 탓인지 그는 거미줄이 붙었음을 인지하지도 못한 듯 보였다.
“저, 저기... 괜찮은 거지...요?”
진수가 거미줄을 쏜 방향을 신경쓰고 있는데 유재찬이 다가왔다.
다시 존댓말을 쓰기 시작한 그.
진수가 사체가 잔뜩 쌓인 곳에서 실실 웃고, 전기톱을 움직이고, 허공에 손을 휘젓기까지 하니 불안할 만도 했다.
“어? 어. 괜찮아. 그냥 좀 빡세게 싸우고 나면 여운이 남아서....”
“어휴, 난 또 뭐 문제라도 있는 줄 알았잖아. 하하. 나도 뭐 고블린 놈들 슥삭 하느라 흥분이 가라앉질 않네.”
진수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온 듯 보이자 유재찬은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고블린들도 보통이 아니다, 이런 놈들을 쓸어버리다니 역시 대단하다, 나도 나름 선방한 거 같다 등의 이야기였다.
그가 계속해서 말을 꺼냈지만 진수의 신경은 온통 거미줄을 쏜 쪽을 향해 있었다.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를 언데드화 시키는 사람이 있었어.’
강남역 균열에서도 언데드화 때문에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진수에게 [저승사자] 특성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저기 혹시 부탁 좀 해도 될까?”
“전기톱이 아주 고블린들 머리를 똑 똑 따는데.... 어? 부탁? 무슨 부탁?”
신나게 입을 놀리던 유재찬은 갑작스런 요청에 눈이 동그래졌다.
“헌터 협회에 연락해서 여기 뒤처리 좀 신청해줄 수 있어? 내가 잠시 볼일이 생겨서.”
“아, 물론이지. 맡겨만 줘. 정산도 내가 잡은 건 저~ 뒤에 쥐똥만큼이니까 정확하게 처리할게.”
유재찬이 고블린 사체더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널브러진 사체 몇 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냐. 내가 부탁하는 거니까 정산할 때 한 2~30% 떼 가도 돼. 나 빨리 가봐야 해서, 부탁 좀 할게!”
진수는 한사코 사양하려는 유재찬의 말을 끊고 어디론가 급히 향했다.
그가 움직인 방향은 조금 전 [강철 거미줄]을 쏜 쪽이었다.
-킁킁
진수는 그가 있던 자리에 와서 코를 벌렁거렸다.
남아 있는 냄새로 정보를 조금 얻어 보려는 것이었다.
‘음, 어디서 맡아본 냄새 같은데...? [강철 거미줄]에 묻은 내 냄새는 확실하게 나고. 무슨 약 냄새 같은 것도.... 흠. 일단 거미줄을 따라서 가봐야겠다.’
그는 후각과 [강철 거미줄]에 남아 있는 자신의 마력, 생명을 감지하는 감각까지 총동원하여 강령술을 사용한 사람을 쫓았다.
애초에 공격이 아닌 추적을 위해 거미줄을 쏘았던 것이었다.
다행히 상대는 차량을 이용하지는 않았는지 이동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는 게 거의 공원이나 산 같은 곳을 위주로 다니니까 차를 탈 수가 없는 건가...?’
진수가 쫓고 있는 사람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는 것인지 북한산을 타고 도는 듯 하더니 산에서 이어지는 공원 쪽으로 빠졌다.
공원에서도 나무 위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민첩성이 높은 헌터인 것 같았다.
‘민첩 쪽 헌터가 강령술은 어떻게.... 그냥 만능 캐릭터인가?’
뒤를 쫓을수록 진수의 의문은 더해만 갔다.
공원이 끝나고, 이제 인도로 움직이나 했더니 또 금방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공원이 아니라 아예 인적이 거의 없는 산이라면 오히려 좋았다.
진수도 민첩 능력치가 그렇게 낮은 편은 아니었으니까.
특히 [유연체질] 덕분에 빠르게 움직이는 데에 꽤 자신이 있었다.
-팟!
진수는 좀 더 신속하게 내달렸다.
관절의 탄성이 좋고 동체시력이 우수한 그에게 산길은 전문분야나 다름이 없었다.
‘거의 다 따라잡았다...!’
거미줄의 냄새가 점점 진해진다.
조금 더 속도를 내는 진수.
이윽고, 거미줄의 마력도 명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 왜 가만히 있지?’
그가 쫓던 사람이 멈춰 서 있는지 거미줄의 마력이나 냄새가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상당히 가까워졌는데도 생명이 감지되지 않는다.
“아, 이런...!”
목표와 가까워져 걸음을 늦추던 진수는 급히 뛰어갔다.
거미줄이 완전히 느껴지는 위치.
그곳엔 누군가의 옷가지들이 버려져 있었다.
바지에 묻어있는 거미줄은 그 옷의 주인이 진수가 찾는 인물이라는 걸 알려줬다.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다는 소린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못 찾는 건 아니지. 조금 개 같긴 하지만....’
진수는 옷의 안쪽에 코를 박고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콧속으로 여러 냄새들이 들어왔고, 이내 옷을 입고 있던 사람의 냄새를 인식할 수 있었다.
그 냄새는 옷을 갈아입은 그 자가 어디로 향했는지 알려주었다.
“좋아, 이렇게까지 해서 숨기려는 게 뭔지 한 번 보자.”
진수는 다시 코에 의존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여정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고아...원...?”
냄새는 그가 옷을 찾아냈던 산 근처에 있는 고아원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여러 개의 건물들을 사용하고 있는 꽤 시설이 큰 곳이었다.
진수는 우선 담장 너머에서 고아원 내부를 살펴보았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특이한 점이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평범하게 아이들도 돌아다니고 딱히 구김살이 보이지도 않는다.
‘뭐지...?’
한참을 살펴보던 진수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눈이 대문짝만해졌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콩밥 먹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초등학교 저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사내.
그는 알비노 놀 백설공주를 조종하던 헌터, 최유권이었다.
진수가 제압한 뒤에 박철준 수사관에게 넘겼던 자.
당연히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정당한 수사를 하고 처벌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버젓이 밖에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가 처음 맡았던 익숙한 냄새의 정체가 바로 최유권의 냄새였다.
‘뭐야. 헬조선식 엔딩인가...?’
진수가 가지고 있던 헌터범죄전담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박철준 수사관에 대한 믿음도 함께.
‘같은 헌터 동료들한테도 해코지를 하는 인간인데 고아원에서 지내고 있다고? 보아하니까 고아원 복지사나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 같은데....’
최유권은 곧 아이 한 명을 차에 태우고는 고아원을 떠났다.
모자를 쓰고 있는 꼬마는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차에 탔다.
“하, 이걸 어떻게 하지...? 기관에다가 신고해봤자 또 풀려나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고아원 쪽을 바라보던 진수의 머릿속에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그래. 어차피 최유권은 내 얼굴을 본 적이 없잖아? 투명화 된 상태에서 제압했으니까. 그러면 저 고아원에 봉사활동 신청을 한 뒤에 와서 애들 반응도 떠보고 시설도 살펴보자. 던전에서는 같은 공략조원들을 해치고, 균열 몬스터한테는 강령술로 언데드화를 시키는 인간인데 분명 털면 먼지가 나올 거야.’
그는 속으로 굳은 다짐을 했다.
다시는 나올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증거를 잡아보기로.
‘어쩌면... 기관의 손을 빌리지 않을 수도 있고.’
진수는 그 자리에서 바로 핸드폰으로 고아원을 검색해 봉사활동 신청을 했다.
날짜는 사흘 뒤.
다시 찾아올 그날을 기약하며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고블린 [고돌]이 [아틀란티스] 무리에 합류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뭐?”
당연히 고블린들이 많은 아틀란티스에 고돌이도 자리를 잡을 거라고 생각했던 진수에게는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처음으로 전이시킨 녀석인데 인간에게 잡혀가고 강제로 검투사가 되는 등 고생만 하는 것이 안타까웠으니까.
진수는 상태창을 열어 고돌의 현재 상황을 살펴보았다.
[고돌] - 현재 상황 : [키약트르]에게 요정의 호수 속 마법의 검을 받음
‘요정의 호수 속 마법의 검...? 뭐야. 고돌이가 아서고 키약트르가 멀린이야?’
그는 굉장히 친숙한 이야기 구조에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그들의 상황이 텍스트로만 전해지고 있지만 고블린들이 검을 전해주면서 영웅의 행보를 걷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꽤 흥미진진했으니까.
[고돌] - 현재 상황 : 요정의 호수 속 마법의 검을 뽑는 것에 실패
얼마 지나지 않아 고돌이의 현재 상황이 바뀌었다.
안타깝게도 고돌이는 아서왕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수임무 발생.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진수가 고돌이의 상황을 보며 안타까워하는데 갑자기 특수임무가 나타났다.
‘잠깐, 지금까지의 경험상 이런 타이밍에 특수임무라면... 누구를 위한 건지 알 것 같은데....’
그는 특수임무를 수락했다.
열심히들 해
-임무 : 고블린 [고돌]에게 [용사] 특성 전달
-보상 : [고돌]에게 [신의 축복] 부여
특수임무의 내용은 지금까지 받았던 임무들과는 사뭇 달랐다.
특정한 특성을 명확히 요구하는 것도 처음이며 [신의 축복]이라는 것도 앞서 본 적이 없는 보상.
기술이나 특성이라는 표기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요소임은 분명했다.
‘이거 완전 고돌이만 좋은 임무잖아?’
안내 메시지를 모두 읽은 진수는 새로움 속에서 맹점을 찾아냈다.
임무 목표도 고돌이에게 특성을 주는 것, 보상도 고돌이에게 축복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일단~ [용사] 특성이 얼만지부터~ 볼까요~”
상점을 열어 특성 카테고리를 확인하는 진수.
“헉...!”
[용사] 특성은 목록에서도 꽤나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가격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100골드...?’
상당히 그럴듯한 이름대로 손이 떨리는 값이다.
진수는 상점을 닫고 다시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해봤다.
[김진수]
힘:23 민첩:23 체력:25 내구:25 마력:30
특성 : [차원 전이] [중급 재생력] [융합] [상급 전사의 신체] [특급 공구 숙련] [도구 일체화] [증폭기] [발키리] [사신의 감각] [신뢰] [유연체질] [머리 분리] [상급 독 내성]
기술 : [도깨비불] [강철 거미줄] [유체화]
골드 : 120
원래 가지고 있던 골드가 30에 동묘 던전에서 얻은 골드가 90.
그 결과 현재 120 골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귀신같이 거의 전액에 달하는 특성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거 아주 동묘 때부터 노리고 보상을 준 거 아니야...?’
진수는 아귀가 딱딱 맞는 상황에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뭔가 특이한 임무엔 느낌표로 설명도 해주었는데 이번 특수임무는 아무런 설명도 없다.
그저 고돌이에게 보상을 주라는 내용 뿐.
마치 ‘야이, 임무 달성해서 언제 손해 본 적 있어? 흐흐.’하고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고 고민하던 진수는 이내 상점을 열었다.
“에라 모르겠다! 골드 털어 그냥!”
-[용사] 특성을 [고돌]에게 전달합니다.
-[고돌]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고돌]의 지식
특성을 전달 받은 고돌이는 급성장을 하며 진수에게 보상을 주었다.
아직까지는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는 지식.
하지만 진수는 분명 유용한 보상이리라 확신했다.
지금까지 받았던 지식들로 이득을 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고돌]에게 [신의 축복] 부여
-[고돌]이 요정의 호수 속 마법의 검을 뽑습니다.
“이야, 고돌이! 엑스칼리버를 뽑았구나!”
마법의 검이 엑스칼리버는 아니겠지만 진수는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상태창에서 고돌이의 현재 상황을 확인해본다.
[고돌] - 현재 상황 : 고블린 샤먼 [키약트르]와 대화 중
‘아마도 키약트르가 아틀란티스의 참모니까 고돌이 같은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겠지.’
[고돌] - 현재 상황 : 요정의 호수를 떠남
하지만 외로운 늑대 고돌이는 키약트르의 회유를 끝내 거절한 듯했다.
“아... 아쉽네. 아틀란티스가 팍팍 클 기회였는데. [은둔자] 특성 때문에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게 됐나? 뭐 어쨌든 고돌이가 좋은 무기도 얻고 성장도 했으니까 임무 보상은 썩 괜찮게 얻은 셈이네.”
진수는 상태창을 닫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특수임무의 여파는 끝난 게 아니었다.
-[아틀란티스] 무리가 당신을 칭송합니다.
“엥?”
갑자기 나타난 안내 메시지.
지난번 고돌이가 진수를 칭송한다고 한 이후로 처음 보는 메시지였다.
정황상 고돌이 아틀란티스에 진수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리고 간 것 같았다.
-다수의 전이자가 당신을 위대한 존재로 모십니다.
-새로운 종교가 탄생합니다.
-종교의 탄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키약트르]의 특성 중 하나
-제사장 [키약트르]가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신탁을 내리십시오.
고돌이에게 직접 진수에 대해 전해 들었기 때문일까?
고블린 샤먼 키약트르가 제사장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진수.
신탁을 내리라는 안내 메시지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 열심히들 해.”
-[키약트르]가 당신의 신탁을 기록합니다.
[키약트르] - 현재 상황 : 신탁을 널리 알림 “열심히 하라신다!”
-신탁의 효과로 당신을 믿는 이들이 무엇이든 열심히 하게 됩니다.
진수의 상태창에 있는 아틀란티스 무리의 몬스터들과 고돌이의 그림 뒤로 잠시 불타는 효과가 나타나더니 몇 차례 폴짝폴짝 뛰었다.
신탁이 적용되는 모습인 듯했다.
따로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키약트르의 현재 상황에 적혀있는 ‘열심히 하라신다!’를 복명복창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첫 신탁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10
신탁에 대한 보상까지 받으며 전이자들의 상황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다.
진수가 혹시나 해서 이런 저런 말을 해보았지만 또 신탁이 내려진다던지 하는 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발생하는 이벤트인 것 같았다.
‘내가 내린 첫 신탁이 열심히 하라는 소리라니.... 이거 완전 꼰대 같잖아...?’
진수는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야 파악이 되었다.
갑작스레 한 마디 하라는 식의 요구를 받았더니 일당 헌터 시절에 하던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온 것이다.
아주 드물게 회식 따위에 참여하게 되면 건배사로 으레 열심히 합시다 같은 소리를 주워섬기곤 했으니까.
물론 결과적으로 전이자들이 더욱 열심히 활동을 하게 되는 현상이 되었으니 좋은 일이긴 했다.
“그래, 모양새는 조금 빠지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는 이미 지나간 일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 * *
“봉사활동 신청하신 김진수 선생님?”
진수는 최유권과 마주하고 있다.
혹시라도 그를 알아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다행히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아, 예.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저희 애중원의 사회복지사 최유석이라고 합니다.”
“네?”
자신의 이름을 최유석이라고 소개하는 남자.
진수는 순간적으로 동공이 흔들렸다.
신탁의 보상으로 [키약트르]에게 받았던 특성이 바로 [중급 청각]이다.
그렇기에 그가 잘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미묘하게 다른 것 같기도 해.’
진수는 눈앞의 사내를 다시 한 번 훑어봤다.
생김새가 거의 비슷하지만 눈매가 조금 덜 매서운 것 같기도 했다.
체취도 그가 헷갈릴 만큼 유사했으나 차이가 있었다.
생김새부터 냄새, 이름까지 거의 흡사하지만 다른 사람이 맞았다.
‘기관을 괜히 의심했네.’
그는 헌터범죄전담기관에 대한 실망을 지웠다.
‘하지만 이 사람이 최유권이 아니라고 해도 균열 현장에서 몬스터를 언데드화 시키려고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좀 살펴봐야겠어.’
“왜 그러시죠?”
진수가 자신을 훑는 듯하자 최유석이 의아한 듯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언제 뵌 것 같기도 해서....”
“그런가요? 저는 완전 초면인 것 같은데요.”
“그렇죠? 하하.”
진수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최유석과 함께 애중원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용산의 보영고아원 때와 마찬가지로 봉사활동에 대한 교육을 먼저 받았다.
‘이건 고아원마다 무슨 매뉴얼을 공유하는 건가...? 내용이 거의 똑같네.’
그는 고아원 봉사를 다닐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내용이었기에 금방 교육을 끝마칠 수 있었다.
“홈페이지에서 보셔서 아시겠지만, 오늘은 대청소를 하는 요일입니다. 창고 쪽 정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하, 맡겨만 주세요.”
교육이 끝나고 최유석의 부탁에 진수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럼, 청소 봉사라는 걸 알고 일부러 날짜를 골랐는데.’
청소를 하다보면 고아원 시설의 구석구석을 청소라는 핑계로 살필 수 있다.
게다가 구석진 곳에서 들키더라도 처음 오는 거라 헷갈렸다고 하면 끝.
진수는 최유석의 안내를 받아 창고로 향하며 건물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여기 창고에 아이들 활동하는 도구들을 정리해주시면 돼요. 각각 위치마다 라벨지가 붙어있으니 그거 보시면서 천천히 하세요.”
창고로 진수를 데려다준 뒤 자리를 뜨는 최유석.
창고 안은 상당히 난장판이었다.
아마도 아이들이 물건들을 대충 집어넣은 듯했다.
‘그래도 봉사를 왔으니까 해야 할 일은 해줘야겠지.’
진수는 가볍게 손을 풀었다.
그리고 이내 창고에 어지러이 널브러진 도구들을 빠르게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휙 휙 휙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잽싸게 움직였지만 도구들은 신기하게도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상급 전사의 신체]의 정확도와 [사신의 감각]이 주는 시력의 힘이었다.
‘청소도 죽여준다 이거야.’
보통의 사람이라면 몇 시간에 걸쳐서 할 정리를 몇 십 분 만에 해치운 진수.
그는 창고의 창문을 통해 바깥을 살펴봤다.
애중원의 구조는 중앙에 운동장 같은 공간이 있고 그 주변으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는 형태다.
그리고 지금 창고 앞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있었다.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는 게 좋겠지?’
-스르륵
진수는 [유체화]를 사용해서 창고의 뒤쪽으로 빠져나왔다.
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사무실이었다.
[사신의 감각]으로 살펴보니 사무실엔 지금 아무런 생명체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잠금장치 따위가 있을지 몰라 다시 [유체화]로 들어갔다.
‘확실히 마력이 30이 넘어가면서 [유체화]를 사용하는 게 좀 여유로워졌어.’
고아원에 봉사활동을 오기 전까지, 그는 필드에서 몬스터를 사냥했다.
추가로 차원 전이를 시키지는 못했지만 꽤 쏠쏠하게 돈을 벌 수 있었다.
그 사이 전이자들은 열심히 성장을 하여 보상을 보내온 것이다.
그 양이 무려 힘 2, 민첩 3, 체력 1, 내구 2, 마력 3, 골드 10.
겨우 3일 동안 많이도 성장했다.
‘자폭 고블린이 이름을 지어주기도 전에 죽으면서 받은 보상도 있지만....’
고블린 균열 때 차원 전이를 시킨 고블린들은 여덟 마리였다.
거기에 거대 늑대까지 하면 총 아홉.
진수는 이름을 짓기가 꽤나 번거로웠던 나머지 고씨 집안으로 만들어줬다.
예를 들면 고블린 라이더는 고라.
고블린 바드는 고바가 된다.
‘그리고 자폭 고블린도 고씨 성을 가졌으면 고ㅈ.... 그래, 이런 이름을 받을까봐 죽음을 택한 것일 수도 있겠어.’
진수는 납득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생각보다 의심이 갈만한 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전형적인 고아원의 사무실처럼 생긴 곳이었다.
컴퓨터가 몇 대 있고 파일에 서류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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