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4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력 남았으면 저 분한테 버프 몰아줘요!”
헌터들의 마지막 승부수는 진수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었다.
서포터 계열 헌터들은 마력을 모두 쏟아 그에게 버프를 걸었다.
신체 능력 강화부터 무기의 성능을 높이는 인챈트 등 온갖 종류의 버프가 중첩되었다.
가진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헌터들은 제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마력 탈진 증상이었다.
-위이잉!
“켕!”
진수의 전기톱이 다시 한 번 위용을 뽐낸다.
황소만 한 지옥의 개들이 속절없이 토막 났다.
-헬하운드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헬하운드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이 개자식들, 오늘 보신탕 한 번 먹어보자!”
[울프헤딘]의 광폭화와 전투의 고양감, 버프로 인한 흥분 효과가 진수를 뒤덮었다.
반쯤 이성을 잃은 그는 마치 개장수처럼 헬하운드들을 무차별적으로 때려잡았다.
“와, 장난 아니다...!”
헬하운드들의 공격을 겨우겨우 버티는 와중에도 한 헌터가 감탄사를 뱉었다.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한 본능적인 감탄이었다.
그만큼이나 진수의 싸움은 대단했다.
“케엥....”
이윽고 마지막 헬하운드가 비명을 지르며 몸이 두 동강 났다.
진수는 무아지경에서 벗어나며 비로소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시산혈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몬스터의 사체가 산을 이루었고 바닥엔 놈들에게서 나온 여러 색의 피가 한 데 뒤섞여 흥건했다.
몬스터뿐만 아니라 헌터들의 시체도 꽤나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헬하운드도 다 죽었는데 왜 하늘이 안 풀리지...?”
누군가가 의문을 품었다.
헬하운드를 모두 처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늘엔 불길한 먹구름이 가득했던 것이다.
-콰르릉!
온통 시커먼 하늘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뒤이어 온몸의 털이 곤두서게 만드는 귀곡성이 들려왔다.
“저거... 뭐죠?”
누군가가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향한 곳에는 거대한 무언가가 구름 속에 숨어 있었다.
-쿠르릉... 쾅!
천지를 울리는 천둥과 함께 번개가 번쩍인다.
그 빛이 먹구름이라는 장막 속에 있던 존재를 드러내주었다.
흔히 생각하는 사신의 원형처럼 생긴 괴물이 모습을 보였다.
시커먼 로브는 군데군데 닳아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놈의 흉물스러운 뼈마디를 제대로 가려주지 않는 것이다.
후드 속에는 해골이 안광을 번뜩이고 있다.
마치 죽음으로 이끌 대상을 찾는 것처럼.
앙상한 뼈만 남은 손에는 생명을 수확하는 거대한 낫이 쥐어져 있었다.
A급 헌터조차 상대하기 힘들다는 언데드 계열 몬스터, 그림리퍼였다.
“아아...! 우린 이제 끝났어...!”
“헬하운드에 이어서 그림리퍼라니....”
“이렇게 죽는 건가...?”
헌터들은 구체화된 죽음 앞에서 주저앉았다.
지금껏 몬스터들을 막아온 진수도 도통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적당히 좀 하라고....’
그저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
-특수임무 발생.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정신이 혼미해질 것만 같은 상황에서 갑자기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임무 : 그림리퍼 차원 전이
-보상 : 그림리퍼의 특성 중 하나
‘... 너도 적당히 좀 해라.’
특수임무는 눈치도 없이 그림리퍼를 차원 전이 시키라고 하고 있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배 터진다
-후우웅
그림리퍼의 거대한 낫이 대기를 가른다.
헌터들은 저마다 방패든 무기든 치켜들며 방어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놈의 낫은 분명 눈앞에 존재했지만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의 장비를 통과해버렸다.
-슈우우우
사람들의 방어를 유유히 통과한 낫은 그들의 영혼을 거두어갔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몸에서 영혼을 뽑아버린 것이다.
그림리퍼의 낫에 걸린 이들은 반투명한 형체로 끌어당겨졌다.
“사, 살려줘...!”
그 모습을 본 헌터들은 패닉에 빠졌다.
공격을 막을 수도 없고 한 번 적중당하면 바로 생명을 잃는다.
그들의 눈에 그림리퍼는 정말 사신으로 보이는 것이다.
“으아아!”
이윽고 한 명이 등을 돌려 도망쳤다.
그 한 명의 움직임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살아남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이런...!”
진수는 불길한 느낌에 그림리퍼를 올려다보았다.
놈은 표정을 지을 수 없는 해골의 얼굴이었지만 묘하게 웃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이 점점 멀어짐에도 불구하고 느릿하게 손을 들어 올리는 녀석.
-화르륵!
그림리퍼의 손바닥 위로 초록색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록색 불꽃에서 희끄무레한 형체들이 분수처럼 튀어나왔다.
그것들은 빠르게 날아가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사체에 아무렇게나 들어갔다.
“그으어....”
“흐으윽...!”
인간과 몬스터를 가리지 않고 사체들이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도망치는 헌터들의 몸을 붙잡았다.
공포에 젖은 이들은 되살아난 사체의 손아귀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후우웅!
이미 어장에 갇힌 물고기를 잡듯이 유유자적하게 움직이며 한 명 한 명 목숨을 앗아가는 그림리퍼.
등장 자체로 재앙이라고 불리는 몬스터다운 모습이었다.
-카가가강!
그러한 항거할 수 없는 천재지변에 제동이 걸렸다.
물리적인 물질들을 통과해버리던 그림리퍼의 낫이 푸른 귀화가 감도는 전기톱에 가로막힌 것이다.
“역시...!”
앞서 스펙터를 상대하면서 유체화를 사용하는 몬스터에게 [도깨비불]이 통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보다 훨씬 급이 높은 그림리퍼지만 물질을 통과하는 이유는 같을 거라는 유추가 들어맞은 것이다.
진수는 힘겹게 낫을 밀어냈다.
“빨리 피해요!”
그는 방금 전에 목숨을 잃을 뻔한 헌터에게 소리를 질렀다.
비록 [도깨비불]로 낫을 막아낼 수 있다고 해도 상대는 A급도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몬스터.
진수의 힘으로 완전히 대적하기는 어려웠다.
겨우 공격을 방해할 수 있는 정도일 뿐.
“으으으!”
절망과 공포에 휩싸여 사체에 붙잡혀 있던 헌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싸늘한 촉감에 몸서리치며 거칠게 뿌리쳤다.
그림리퍼가 부리는 사체들은 그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그저 놈이 뿌리는 공포의 기운과 합쳐지며 사람들이 대항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어어...!”
-퍼억!
진수에게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 헌터는 사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다른 헌터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눈에서 공포의 기색은 많이 가셔 있었다.
절망의 늪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명은 다시 희망의 불씨를 들고 다른 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미약한 변화이긴 했지만 오로지 죽음의 공포만이 감돌던 상황이 바뀌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후웅!
그림리퍼는 이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 진수임을 알아차렸다.
도무지 감정과 표정을 읽어낼 수 없는 얼굴이었지만 놈이 진수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거대한 낫이 진수를 향해 곧장 날아왔으니까.
-팅!
진수는 전기톱에 귀화를 둘러 낫을 맞받아쳤다.
낫에 담긴 거력을 이용해서 오히려 몸을 날린다.
그가 살려준 헌터가 다른 이들을 돕고 있었지만 그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어차피 저 놈을 해치울 수는 없어. 그러면 사람이라도 최대한 많이 구하자!’
진수는 그림리퍼의 공격을 막으면서 동시에 여전히 패닉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림리퍼를 처치하고 싶었지만 [도깨비불]로 놈의 공격을 막는 것만 해도 마력이 쭉쭉 빠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는 목숨을 건지는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특수임무가 아쉽긴 해도 할 수 있는 일을 줘야지.’
그림리퍼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면 뭘 받더라도 보통의 능력은 아닐 것이다.
진수로서도 욕심이 나긴 했지만 그것도 우선 숨이 붙어 있어야 소용이 있는 일.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것이었다.
“으악!”
몇 차례 진수가 공격을 막아내고 잽싸게 피하자 그림리퍼의 타겟이 바뀌었다.
사체들을 진수에게로 보내고 다른 헌터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되자 진수의 상황은 더 힘들어졌다.
헌터들은 이제 세 명밖에 남아있지 않고 되살아난 사체들 탓에 움직이는 것이 방해를 받는다.
모든 이들이 죽고 나면 저 천재지변이나 다름이 없는 그림리퍼를 혼자 상대해야 할 상황이 온다.
그렇다고 몸을 피하면 그림리퍼는 후암동을 넘어 용산에 있는 모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게 될 것.
‘그건 절대 안 돼...!’
진수의 머릿속에 5년 전 고아원이 초토화되었던 악몽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진수가 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
상태창을 살펴보아도 압도적으로 강한 그림리퍼를 처치할 수 있는 능력은 보이지 않았다.
-꽈르릉...!
그 때, 멀리서부터 웅장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림리퍼가 처음 나타날 때 들렸던 음험한 소리와는 다른.
그 강렬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존재감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끼아아악!”
우레 소리가 섞인 맹금류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가득 채운다.
온통 검던 하늘에 밝은 빛이 채워졌다.
쏜살같이 날아온 것은 바로 번개로 된 거대한 새였다.
‘우뢰매...!’
A급 헌터 심선우의 등장.
구닥다리 냄새가 나서 별로 좋아하는 별칭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영웅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쿠르릉! 쾅! 콰앙!
그는 그림리퍼의 맞은편까지 날아오자마자 수많은 낙뢰를 쏟아냈다.
강력한 벼락이 진수를 가로막고 있는 사체들만 정확하게 맞췄다.
새카만 재가 되어버린 놈들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을 피하세요!”
심선우는 진수를 비롯한 헌터들에게 급히 외쳤다.
그림리퍼는 그 자신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정도의 상대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른 헌터들을 챙기는 것은 그의 타고난 정의감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빨리 움직여요!”
진수는 심선우의 표정에서 난처함을 읽고 헌터들을 급히 대피시켰다.
그도 그림리퍼와 승부를 쉽게 점칠 수 없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어차피 남아있는다고 해도 보탬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전투에 지장을 주지 않게 사라지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져온 저렴한 포션을 먹여가면서 사람들을 보냈다.
‘가능한 한 이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게 만들어야 돼...!’
헌터들을 보내고 주변을 살피며 전투의 양상을 지켜본다.
그림리퍼와 심선우의 싸움은 그야말로 격이 다른 수준이었다.
거대한 뇌조의 중심에 선 심선우는 크고 작은 번개를 내지르며 빠르게 치고 빠졌다.
그 작은 번개마저도 사방의 자동차를 터트리고 나무를 불살라버릴 정도로 위력이 엄청났다.
그에 맞서는 그림리퍼도 전혀 밀림이 없었다.
놈은 한 손으로 거대한 낫을 휘두르며 남은 손에는 초록색의 불을 뿜었는데, 불꽃에서는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가 아닌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마치 영혼을 태워 만든 불꽃같았다.
‘저 정도는 돼야 A급 헌터구나...!’
진수는 그들의 싸움을 숨어서 지켜봤다.
다른 헌터들을 모두 대피시켰음에도 그가 남아있는 이유는 단 하나.
특수임무 때문이었다.
‘아까는 전혀 가능성이 없었지만... 심선우가 있다면 이야기는 좀 다르지.’
그가 끼어들 틈이 전혀 없어 보이는 엄청난 전투였지만 나름대로 노림수가 있었다.
-파지지직!
심선우가 날린 번개가 녹색의 불꽃을 꿰뚫으며 그림리퍼의 머리에 명중했다.
그 전력이 어찌나 강한지 그림리퍼의 머리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파각!
이윽고 깨져버린 해골.
‘해치웠나?’
그림리퍼의 거체가 그대로 뒤로 고꾸라진다.
놈의 머리는 완전히 떨어져나갔고 주변을 가득 채운 위압감도 가시는 듯했다.
심선우는 가까스로 그림리퍼를 해치웠다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저 불길한 먹구름은 왜 그대로 남아있지?’
진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마찬가지로 그림리퍼를 처치했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불안한 점은 놈이 천천히 추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여전히 검다는 것이었다.
“무슨...!”
그림리퍼의 아래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그의 눈에 믿기 힘든 광경이 들어왔다.
바닥에 쌓여있는 사체들로부터 음울한 기운들이 뽑혀 놈의 머리 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마치 담배 연기처럼 탁한 기운은 점점 해골의 형상을 갖춰나갔다.
-화르륵!
그림리퍼가 완전히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놈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불이 타올랐다.
아주 불길하고 역한 초록색의 불이.
-고오오오오...!
짐승이 으르렁 거리는 것 같은 길고 낮은 소리가 퍼진다.
추락하던 녀석의 몸이 허공에 멈춰 섰다.
이윽고 뒤로 누웠던 그림리퍼가 천천히 일어났다.
녹색으로 불타오르는 새로운 머리를 가진 채.
“...!”
그 모습을 본 심선우는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다.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더욱 강대해지고 포악해졌으니까.
-콰르르릉!
그는 양손을 모아 굵은 번개줄기를 날렸다.
공기마저 찢어버릴 것 같은 엄청난 위력이었다.
-끄아아악! 끼이익!
한쪽 손을 들어 회색의 방어막을 치는 그림리퍼.
회색의 막에는 절규하는 영혼들이 보였다.
“흐아앗!”
심선우의 공격은 놈의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조금씩 전진하는 그림리퍼.
심선우는 공중에 떠있는 힘까지 모두 쏟아 붓는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전기 공격은 점점 강맹해졌지만 더욱 강해진 그림리퍼를 처치하는 것은 역부족인 듯했다.
‘이 때다...!’
눈이 하얗게 뒤집히며 전력을 다하는 심선우.
진수는 그 앞으로 달려 나갔다.
-파지지직!
A급 헌터가 온힘을 다 쏟아낸 공격이 진수의 몸에 적중했다.
심선우는 이내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주 심각한 마력 탈진 상태로 보였다.
하지만 진수는 지금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예상보다도 훨씬 엄청난 에너지가 전신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 죽어버려!”
금방이라도 진수의 온몸을 찢어버릴 것 같던 전격의 기운이 그의 손바닥을 통해 쏘아졌다.
그 위력은 심선우에게서 나왔을 때보다 2배는 더 강해진 듯했다.
-파지지직!
귀곡성을 내는 그림리퍼의 방어막이 다시 펼쳐진다.
회색의 막은 옅어졌다 진해졌다를 반복하더니 이내 갈가리 찢어졌다.
-꽈앙!
맨몸이 된 그림리퍼의 몸에 어마어마한 힘의 급류가 몰아쳤다.
심선우가 동귀어진의 수로 사용한 기술과 진수의 [증폭기] 특성이 합쳐진 공격.
아마 [절연체]와 [중급 재생력]을 가지지 못했다면 전기를 다시 뿜어내기도 전에 온몸이 터져버렸을 위력이었다.
-파스스스...!
이윽고 놈의 몸이 천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잿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그림리퍼.
A급 헌터도 상대하기가 힘들다는 괴물이 진수의 손에 처치됐다.
-헬 그림리퍼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헬 그림리퍼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그림리퍼는 수많은 사체들로부터 영혼을 모아 헬 그림리퍼가 되었던 것이다.
‘아, 이건 무조건 하데스지.’
진수는 헬 그림리퍼의 이름을 하데스로 지어주었다.
‘처음으로 이름에 걸맞은 몬스터를 전이시킨 거 같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헬 그림리퍼의 특성 중 하나
그림리퍼가 헬 그림리퍼가 되면서 특수임무의 보상도 달라졌다.
하지만 진수는 보상을 확인할 틈도 없이 졸도해버렸다.
윈-윈
-[융합]의 효과로 [저승사자]와 [울프헤딘]이 합쳐집니다.
-[발키리] 특성이 생겼습니다.
-강철거미 [아라크네]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7
-빙결강철거미 [막야]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마력 +1
-보석사 [데메테르]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내구 +1
정신 차린 진수를 반기는 것은 여러 개의 안내 메시지들이었다.
[융합]의 결과를 알려주는 내용부터 [차원 전이]의 보상까지.
아마 마력과 내구 능력치가 올라간 덕분에 회복이 어느 정도 된 듯했다.
“으으... 머리 아파 죽겠네.”
그는 숙취라도 앓는 것처럼 끙끙거리며 일어났다.
A급 헌터의 전력을 몸으로 버텨냈으니 그만한 독주가 없었을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지옥도도 이런 지옥도가 없었다.
바닥에는 몬스터와 헌터들의 사체가 즐비했다.
되살아나 움직였던 사체들은 심선우가 쏟아낸 벼락에 새카맣게 타버렸고, 그림리퍼의 낫에 영혼을 빼앗긴 사체들은 외상은 없었지만 얼굴에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막타를 내가 먹긴 했지만, 나 아니었으면 둘 다 죽는 거였으니까 불만은 없겠지.’
진수는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는 우뢰매 심선우를 보았다.
그의 옆으로 가 호흡을 살펴보니 다행히 마력 탈진에서 회복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과호흡 증세도 없고 몸속에서 마력 폭주도 느껴지지 않았다.
“휴우... 다행이네. 그래도 유일하게 이 구역까지 돌아봐준 착한 양반인데.”
그는 쓰러져있는 심선우를 바로 눕혀준 뒤에 전화기를 꺼냈다.
하늘도 맑아졌고 몬스터도 더 보이지 않는다.
헌터 협회로 전화를 해서 균열 발생 지역의 정리를 요청해야 했다.
“으음.... 헉! 그림리퍼는?”
진수가 헌터 협회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심선우가 정신을 차렸다.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전력을 쏟은 공격이 헬 그림리퍼에게 가로막히는 모습이었을 테니 식겁했을 만도 했다.
“아, 예, 예. 뒤처리 해주실 분들 보내주시고요. 저희가 구역을 완벽히 소탕할 정도로 우세한 상황이 아니었어서요.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몬스터 해치울 수 있는 분들도 오셔야 할 거 같아요. 네. 네~ 부탁드립니다.”
진수는 그 모습을 보고 급히 헌터 협회와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두뇌 회전을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림리퍼가 사라진 걸 뭐라고 하지? 내가 죽였다고 할 수도 없고. 사체도 안 남아있고. 하, 변명할 말이 뭐가 있을까.’
“아, 저기....”
“여기 마무리 해주신 분이신거죠? 사람들 대피시켜주시는 거 봤어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심선우가 양손으로 그의 손을 잡으며 위아래로 흔들었다.
“제가 마지막에 쏜 공격에 그림리퍼 사체까지 홀라당 타버렸나 봐요.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그거 정산 나오면 헌터님께도 많이 갔을 텐데.”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진수는 순간적으로 이런 반응이 왜 나오는 것인지 파악을 해봤다.
항상 압도적인 힘으로 몬스터를 죽여오던 A급 헌터.
말하는 걸로 봐서는 가끔은 출력 조절을 못 해서 사체까지 태워먹은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자신이 지금껏 써본 적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
그 이후의 기억은 없고 그림리퍼도 없다.
결론은?
“아.... 네. 그러게요.”
진수가 입만 다물면 모든 일이 만사형통이라는 뜻이 되겠다.
‘게다가 이 잔뜩 올라간 눈썹이 나한테 얼마나 미안한지 보여주고 있지. 잘하면 A급 헌터한테 빚까지 지울 수 있는 상황이야.’
사실은 그가 고마워해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진수가 심선우의 착각에 동의만 해주면 심선우는 자신이 모두를 지켰다는 생각에 좋고, 자신은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서 좋다.
‘그야말로 윈-윈이라는 말이지. 흐흐흐.’
“그래도 목숨 건진 게 어디에요? 저는 괜찮습니다. 하하.”
진수는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그에게 연기의 재능은 없었다.
오히려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어색한 말투와 억지웃음이 튀어나왔다.
“역시... 말로만 죄송하다고 하는 건 좀 그렇죠...?”
심선우는 그의 답변을 보고 속으로 화를 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자신의 입장이라고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날아갔으면 아쉬운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자신이 처치하기 전까지 막아내고 있었던 건 이 사내.
균열 동원 규칙에 따르면 분명 이 사람한테 지분이 꽤 있다.
게다가 그림리퍼면 전 세계적으로도 나타난 적이 거의 없는 몬스터.
특정한 부위만 사고파는 흔한 몬스터와는 다르게 사체 전부가 연구용으로 가치가 있었기에 그 가격을 산정하기도 어려웠다.
“제가 나중에 꼭 보상을 할게요! 연락처를 좀 주시겠어요?”
“네...?”
얘가 또 왜 이러나 하는 표정의 진수.
그리고 의아해하는 진수를 의아해하는 심선우.
그는 이내 알았다는 듯 입을 벌리더니 제멋대로 이해를 했다.
“아아, 저 막 헌터 등급 높다고 갑질하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 그래도 또 불안하실 수도 있겠구나. 여기 제 명함이거든요. 꼭 한번 연락주세요. 제가 정말 보답할게요.”
심선우는 자신의 명함을 진수의 손에 꼭 쥐어주고는 떠났다.
날아 가버리기 전에 다시 한 번 뒤돌아보며 반드시 연락 달라는 말을 남긴 뒤에.
‘저거 저... A급 정도로 세서 다행이지, 어정쩡하게 C급이나 B급이었으면 주변에 이용당하기 딱 좋은 양반이네.’
진수는 심선우의 명함을 잠시 살펴보고는 주머니에 고이 넣었다.
무려 A급 헌터의 명함.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 날이 올 것이다.
“아, 고아원은 괜찮은가 가봐야지.”
헌터 협회에 뒤처리 요청도 했고, 골칫거리였던 심선우도 잘 해치웠다.
다음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고아원이었다.
고아원 건물 앞에는 그가 대피시킨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형님! 역시, 살아계셨네요!”
진수가 나타나자 손을 흔들며 반기는 유재찬.
아마 대피하던 헌터들을 고아원 앞에 모아놓은 게 그인 듯했다.
“이야, 소리를 들어보니까 난리도 아니던데. 역시~ 대단하십니다. 하하!”
그는 진수가 남은 몬스터들을 다 쓸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리 심선우가 와서 해치웠다고 말을 해줘도 듣지 않고 양손의 엄지를 쉬지 않고 흔들었다.
“형님, 이 주변은 뭐 아주 안전합니다. 또 제가 혹시 몰라서 여기 헌터들을 다 모아놨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예. 잘 하셨네요. 몬스터가 더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고요?”
“씁- 저 뒤쪽에 몬스터 사체가 좀 쌓여있기는 한데요. 뭐 제가 어떻게 한 건 아니고....”
진수는 유재찬의 말을 듣고 고아원 건물 뒤쪽으로 가봤다.
그의 이야기대로 몬스터 사체들이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곳에는 헌터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몬스터들끼리 서로 싸운 듯한 모습들.
몬스터의 종류는 고블린처럼 이번 균열에서 많이 보였던 놈들도 있었고 놀이나 강철거미도 있었다.
‘몬스터를 소환하거나 테이밍하는 기술도 있다고 하던데... 그런 류의 기술을 쓰는 헌터가 왔던 건가?’
진수는 일단 살아있는 몬스터는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할 수 있었다.
5년 전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었음에, 그리고 이제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 기뻤다.
‘이게 다 [차원 전이] 덕분이지. 아참, 아라크네가 죽었다고 한 거 같았는데...?’
급한 상황이 정리되고 나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봤던 안내 메시지들이 생각났다.
[R.I.P.] - 사망자 수 : 2
[고돌] - 현재 상황 : 검투 시합 중
[포세이돈] - 현재 상황 : 그린 슬라임과 교류 중
[올림포스] - 거주 영역 : 마굴
[제우스] [고블린] [쉔지]
[새초미 무리] 거주 영역 : 녹색 숲
[새초미] [모르모트]
[헤파이스토스] - 현재 상황 : 불의 산 동굴에서 잊힌 드워프의 유물 재건 중
[간장막야] 거주 영역 : 죽음의 산맥
[간장] [막야]
[갓 오브 워] 거주 영역 : 사르 평야
[아레스] [돈다발] [초갈]
[백설공주] - 수정 산맥 탐색 중
[롱스톤] - 현재 상황 : 황금바다에서 휴식 중
[데메테르] - 현재 상황 : 불의 산 탐색 중
고블린 샤먼 [이름 없음] - 현재 상황 : 요정의 호수로 차원 전이
웨어울프 [이름 없음] - 현재 상황 : 마굴로 차원 전이
스펙터 [이름 없음] - 현재 상황 : 망자의 통로로 차원 전이
가고일 [이름 없음] - 현재 상황 : 저주받은 성지로 차원 전이
헬하운드 [이름 없음] - 현재 상황 : 불의 산으로 차원 전이
[하데스] - 현재 상황 : 망자의 통로로 차원 전이
-임무 : 없음
[상점]
전이자 목록을 보니 정말 아라크네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비석 옆에 올라간 사망자 수.
정말 사망한 것이다.
‘아라크네가 가긴 했지만 또 뉴페이스들이 많아졌네.’
급하게 싸우느라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녀석들이 다섯 마리나 된다.
진수는 우선 녀석들의 작명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고블린 샤먼은 예전에 던전에서 본 고블린 문자에서 따와 키약트르로, 웨어울프는 볼코프, 스펙터는 캐스퍼, 가고일은 휴고, 헬하운드는 초코라고 지어주었다.
‘키약트르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그쪽 차원에 가서는 고블린 대마법사라도 돼봐라.’
작명을 마친 진수는 비어있는 임무 목록을 보았다.
고아원 봉사도 끝났고 이제 임무를 받아서 더욱 강해져야 한다.
‘그림리퍼 같은 놈들을 손쉽게 이길 수 있을 정도가 돼야지.’
이번에는 심선우 덕분에 고아원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 또 요행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진수는 [차원 전이]를 통해서 다시는 힘이 없어서 괴로운 일을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응.’
-임무 : [하데스]를 도와 망자의 통로에 생긴 인간들의 관광지를 파괴하고 망자 군단을 재건하기 !
-보상 : [하데스]의 특성 중 하나
‘아니, 지역명이 망자의 통로인데 무슨 관광지야...? 뒤지니랜드 같은 건가....’
지난번에 받았던 임무와 마찬가지로 설명이 좀 필요한 임무였다.
진수는 임무 끝부분에 있는 느낌표를 터치해보았다.
-망자 군단을 해치운 인간들은 죽음을 정복했다는 오만에 빠져 망자의 통로에 관광지를 세웠습니다. 음의 기운이 뭉쳐야 하는 곳에 양의 감각이 뒤섞이며 차원의 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데스]에게 단죄의 칼을 쥐어주어 오만한 인간들에게 섭리를 가르치고자 합니다. 망자 군단의 장군이 될 언데드 몬스터 넷을 차원 전이시켜 [하데스]의 위업을 도우십시오.
모든 내용을 확인해본 진수는 이번 임무로 얻을 게 보상만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파이스토스도 차원의 축 조각이라는 걸 발견하면서 추가 보상을 줬다.
마찬가지로 망자의 통로에도 차원의 축이 연관되어 있으니 분명 그에게 달콤한 열매를 주리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 기왕이면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있는 제일 쓸 만한 놈들로 보내주마.’
저승사자
-후우욱!
언데드 몬스터 구울의 몸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빠져나가더니 이내 몸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마치 그림리퍼가 사람들의 영혼을 뽑아낼 때 같은 모습이었다.
‘그림리퍼한테 얻은 [저승사자] 특성이 이런 능력이었나 보네. 확실히 언데드 몬스터 잡을 때 무진장 좋구나.’
진수는 구울의 마석과 부산물을 갈무리하며 생각했다.
이젠 [울프헤딘]과 합쳐져 [발키리]가 된 [저승사자] 특성.
이름만 들어서는 정확히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언데드 몬스터를 사냥해보니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언데드 몬스터는 헌터들이 그리 선호하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언데드 계열은 죽이기가 쉽지 않다.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몸이 반 토막이 나도 기어온다.
개중에는 머리가 박살나더라도 몸이 살아있어 계속해서 공격을 하는 놈들도 있었다.
그런데 진수의 손에 큰 타격을 입은 놈들은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 희끗한 무언가가 나오고 나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덕분에 손쉽게 임무 목표를 하나 채웠지.’
진수는 조금 전에 차원 전이 시킨 구울의 이름을 도살자로 지어주었다.
[발키리]의 효과로 영혼이 빠져나가는 비주얼과 사체가 사라지는 [차원 전이]가 합쳐지니 정말로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스펙터 [캐스퍼]와 헬 그림리퍼 [하데스]와 구울 [도살자]가 무리를 이룹니다.
-[캐스퍼] [하데스] [도살자]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망자의 통로로 갔던 전이자들이 드디어 무리를 이루었다.
이번 임무에서의 핵심이 되는 녀석들이기에 진수는 안내 메시지가 몹시 반가웠다.
‘이건 당연히 망자 군단이지.’
진수는 무리의 이름을 간단하게 지어줬다.
무리를 이루면 더 강해지고 성장도 빨라진다.
망자의 통로에서 인간들을 몰아내고 차원의 축이라는 것을 되살리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니까 내가 무슨 마왕 포지션인 것 같기도 하지만, 차원의 축이 잘못되면 차원이 아예 멸망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의 행동은 거시적으로는 차원의 구원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키, 구울을 보냈으니까 다른 언데드 몬스터를 찾으러 한 번 가볼까...? 오래 있어봐야 기분 좋은 곳도 아니고.”
언데드 몬스터는 주로 음기, 사기가 많은 곳에 필드를 형성한다.
그래서 사체가 많은 곳이나 그늘진 위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울도 마찬가지로 공동묘지에 서식 필드가 있었다.
“어? 저 사람... 그 누구더라. 현장반장님 밑에 있던 사람인데?”
꿈자리가 뒤숭숭해질까봐 금방 자리를 뜨려던 진수는 공동묘지 구석에 돌아다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강철거미 던전을 함께 돌았던 정효원이었다.
그리 반가울 것도 없지만 헌터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몇 안 되는 사람이었기에 인사나 하고 가기로 했다.
“여기서 뵙네요?”
정효원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 진수.
“아.... 예, 안녕하세요.”
정효원은 예전의 껄렁껄렁한 태도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긴장을 한 듯한 모습.
굉장히 난처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데드 몬스터는 헌터들이 잡으러 잘 안 오던데 이런 데서 아는 얼굴 볼 줄은 몰랐네요. 하하.”
진수가 조금 더 말을 덧붙이자 왠지 모르게 정효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미간을 조금 찌푸리더니 돌연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를 했다.
“제, 제가 가봐야 할 일이 있어서요. 반가웠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진수의 대꾸도 듣지 않고 서둘러 사라졌다.
‘얼레... 되게 아는 체 많이 하고 건방 떠는 성격인 것 같았는데 이상하네. 여기서 엄청 뒤적거리더니 뭘 찾았나?’
진수는 벌써 멀찍이 가버리고 있는 정효원의 뒷모습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정효원에게 진수와 엮이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걸 알 리가 없었기에 진수의 의문은 해소될 수가 없었다.
그저 정효원이 살펴보던 위치를 한 번 쓱 둘러볼 뿐.
“엥? 저게 뭐지?”
가벼운 마음으로 공동묘지의 묘비들을 살펴봤는데 한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묘비들과 같이 돌로 되어 있고, 김봉식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외형적으로 봤을 때 그리 특이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바로 묘비의 재료가 되는 돌이었다.
‘이 돌로 된 묘비라고...?’
헤파이스토스의 지식에 따르면 진수의 차원엔 존재하지 않던 석재였다.
그리고 이 공동묘지는 게이트 사태 이후로는 구울 서식 필드가 되었기 때문에 공동묘지로 사용되지 않는 공간.
게이트 사태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물질로 된 비석이 게이트 사태 이전의 공동묘지에 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스윽
진수는 김봉식의 비석을 가볍게 손으로 쓸어보았다.
-특수임무 발생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그 순간, 진수의 앞에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
그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승낙했다.
‘특수임무는 못 먹어도 고지.’
-임무 : 현재 필드의 필드 보스 몬스터 차원 전이
-보상 : 전이자에게 필드 보스 몬스터의 지식 중 하나 전달
특수임무의 내용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나왔던 던전 보스 몬스터를 전이 시키거나 말도 안 되는 그림리퍼를 전이 시키라는 목표보다는 훨씬 현실성이 있다고 할 수도 있는 정도.
‘문제는 구울 서식 필드에 필드 보스가 나온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거겠지....’
모든 몬스터 서식 필드에 필드 보스 몬스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일반 몬스터만 있는 경우도 꽤 많았다.
그리고 구울 서식 필드도 그러한 케이스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잠깐. 다른 차원의 소재로 만들어진 비석을 만지니까 특수임무가 나왔단 말이지...?’
문득 진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의심.
지금까지 구울 서식 필드의 보스 몬스터가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김봉식의 비석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겉보기에는 일반적인 형태다.
하지만 비석의 한 귀퉁이가 교묘하게 다른 석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의도가 다분했다.
‘하지만 내 눈은 못 속이지.’
진수는 비석의 귀퉁이를 이리저리 건드려봤다.
디귿자로 서로 맞물려있는 모양으로 살짝 들어 올리면서 당기자 철컥 소리와 함께 돌이 분리된다.
-쿠구구궁...!
그와 동시에 비석의 앞쪽 땅이 들리면서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문이 나타났다.
‘이 안에 필드 보스가 있다 이거지.’
특수임무가 나타난 타이밍부터 그 내용까지 모든 것이 지금 등장한 통로로 들어가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진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비석 앞에 나타난 통로는 예상보다 상당히 길었다.
특별한 광원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보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다.
[중급 후각]에는 퀴퀴한 냄새가 잡혔다.
언데드 몬스터 특유의 불쾌한 악취였다.
‘어쨌든 새로운 언데드 몬스터를 최소한 하나 더 전이시킬 수 있겠네.’
맡기 좋은 냄새는 아니었지만 반가운 소식은 맞았다.
한국에 언데드 몬스터 서식 필드는 그리 흔하지 않았으니까.
한참 걷다보니 상당한 크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벽에는 내부를 파내서 시체를 안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놨고 그 안에 말라붙은 시체들이 누워있다.
양쪽 벽에 여덟 구의 시체가 놓여있었고 정면에 커다란 의자가 있다.
의자 위에는 목이 없는 기사가 앉아 있었다.
기사의 머리는 의자 옆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투구를 쓴 채로 올려져 있었다.
-후두두둑!
진수가 공동에 들어서자 그가 들어왔던 문에 진흙이 쏟아지며 메워졌다.
“그어어어...!”
“그르르르....”
그리고 문이 사라짐과 동시에 양쪽 벽면에 있던 시체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창백한 시체들은 진수를 발견하고 곧장 달려들었다.
몸이 말라붙어 홀쭉한 언데드 몬스터가 기다란 팔을 뻗으며 덤비는 모습은 가히 공포스러웠다.
-위이이잉!
물론 손에 전기톱을 들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만 말이다.
진수의 전기톱이 푸른 귀화를 튀기며 다가오는 시체들을 뎅강뎅강 썰어버렸다.
앞서 달려든 몬스터들이 너무나 손쉽게 처치되자 당황한 듯 멈춰 선다.
하지만 진수는 멈추지 않았다.
“맨몸으로 전기톱에 달려든다고? 이건 못 참지! 크크크...!”
놈들의 몸은 확실히 일반 도검류로는 해치우기 어려울 정도로 튼튼했다.
하지만 마력공학과 헤파이스토스의 강화, 진수의 능력치까지 적용받는 전기톱 앞에서는 썩은 나무토막처럼 분쇄 되었다.
생전에 본 적 없는 신문물에 몸통박치기를 한 결과는 처참했다.
-드라우그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드라우그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이 공간에 있던 언데드 몬스터의 정체는 드라우그였다.
진수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이름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치 않은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이자 종류가 많은 건 무조건 이득이니까.’
순식간에 드라우그 여덟 마리를 해치운 진수.
다음 타겟인 의자에 앉아 있는 머리 없는 기사를 보았다.
녀석은 어느새 눈을 떠 진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건... 아무리 봐도 듀라한이네.’
자신의 머리를 옆구리에 들고 천천히 일어나는 듀라한.
나머지 한 손에는 화려한 장식의 도끼를 들고 있었다.
-붕! 부웅!
도끼를 세차게 휘두르며 자신의 힘을 뽐낸다.
그 모습을 본 진수는 얼굴이 조금씩 굳었다.
“아....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특급 공구 숙련] 특성으로 도끼는 그의 전문분야가 됐다.
그런 탓에 어설프게 움직이는 듀라한의 모습이 영 보기 불편했던 것이다.
진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도끼를 꺼내 들었다.
듀라한이 휘두른 궤적과 유사하게 도끼를 움직인다.
마치 한 수 알려주겠다는 듯한 모습.
진수의 태도에 듀라한은 나름 자존심이 상했는지 거친 기세로 달려들었다.
-휘익! 쾅! 쾅!
놈의 도끼엔 거력이 담겨있어 도끼질 한 번에 돌로 된 벽이며 바닥이 푹푹 패였다.
진수는 그 움직임을 읽으며 교묘하게 공격을 피하거나 흘려냈다.
살벌한 공격이 이어졌지만 진수의 몸에 닿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도끼 그렇게 쓰는 거 아니라고 했지?”
순간 지금까지 수세에 밀리는 듯 보였던 진수의 기세가 달라졌다.
왼손에 도끼를 들고 화려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빈틈을 파고들고는 폭발적인 힘으로 찍는다.
듀라한은 그의 공격에 반격하기 위해서 힘차게 맞받아쳤다.
-스르륵!
기다렸다는 듯이 도끼날의 아래 부분으로 듀라한의 도끼 목을 걸어 당기는 진수.
놈이 거세게 휘두른 힘을 이용해서 도끼를 바닥에 찍어 눌렀다.
-위이이잉!
곧바로 무방비가 된 상체를 향해 다가오는 전기톱.
듀라한의 옆구리에 끼어 있던 머리에서 이거 반칙 아니냐는 듯한 눈빛이 쏘아졌다.
“뭐. 꼬우면 너도 쓰던지.”
진수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는 놈의 가슴팍에 [도깨비불]이 타오르는 전기톱을 쑤셔 박았다.
-듀라한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듀라한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전이자에게 필드 보스 몬스터의 지식 중 하나 전달
듀라한은 손에 든 머리에 억울한 표정을 띄우며 차원 전이 되었다.
인맥
-특수임무 보상으로 [기사단 전술 지식]을 전달합니다.
-지식을 전달할 전이자를 선택하십시오.
듀라한이 기사였기 때문인지 보상으로는 전술 지식이 나왔다.
진수는 큰 고민 없이 하데스를 선택했다.
‘이제 곧 전술이 필요할 테니까.’
구울과 드라우그, 듀라한을 차원 전이 시키면서 이제 언데드 몬스터 한 마리만 남았다.
망자 군단의 장군 자리가 다 차면 이제 망자의 통로를 되찾기 위한 전투를 할 터.
전술 지식을 알고 있으면 분명 전투에서 유리할 것이다.
“우선 이름부터 지어야겠다.”
진수는 드라우그에겐 각다귀, 듀라한에게는 묘비에 적힌 이름인 김봉식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드라우그 [각다귀], 듀라한 [김봉식]이 [망자 군단] 무리에 합류합니다.
-웨어울프 [볼코프]가 [올림포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이제 점점 무리가 자리를 잡으면서 전이자들의 소속이 생겼다.
진수는 차츰 규모가 커지는 무리들을 보니 내심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오크 워리어 [고블린]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무리가 커지면 소속된 전이자들도 빠르게 성장하면서 진수에게 보상을 줄 테니까.
-띠링
[균열 동원에 대한 정산 및 보상 산정이 완료 되었습니다. 지정된 헌터 협회 지회에서 수령하시기 바랍니다.]
진수가 듀라한의 무덤에서 나오자 핸드폰에 알람이 떴다.
균열을 막았던 보상과 몬스터를 정리한 정산금, 마석을 받으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흐흐, 얼마나 나왔을지 기대되는데...?’
이번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는 거의 진수가 독점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비록 제일 몸값이 비싼 헬 그림리퍼는 저 멀리 사라졌지만 C급 헌터들이 사냥하는 가고일만 하더라도 마석 가격이 상당했다.
게다가 놈들은 석상의 형태를 하고 있기에 머리나 몸통 따위를 수집하는 경우도 있어 꽤나 돈이 된다.
“어차피 이제 언데드 몬스터 필드는 다 먼 곳에밖에 없으니까 우선 돈부터 받자.”
진수는 비석의 귀퉁이를 다시 원상복구 시킨 뒤에 구울 서식 필드에서 떠났다.
* * *
“요청하신대로 부산물들은 모두 경매를 통해 판매했고요. 마석만 별도로 챙겨두었습니다. 부산물 판매 대금과 균열 동원 보상금까지 합하여 대략 6억 원 정도 나왔습니다. 정확한 금액과 세부 내역은 정산서에 기입되어 있으니 확인하시면 됩니다.”
“헉, 6억이요...?”
진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정산서를 받아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억 단위.
“이번 균열은 정말 규모가 컸는데 김진수 헌터님 덕분에 큰 인명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뒤처리 하는 팀에서도 현장을 보고는 정말 대단하다고 이야기들 하더라고요.”
헌터 협회의 접수원은 진수의 활약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암동뿐만 아니라 용산 주변으로 다수의 균열이 나타났다.
그런데 헌터 몇 명 정도의 희생으로 막아낸 곳은 진수가 고군분투한 구역이 유일했다.
헌터들 사이에서도 이번 균열에서 두각을 나타낸 헌터가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을 정도.
물론 지금 진수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 이야기였다.
‘이 돈으로 뭘 하지...?’
갑자기 생긴 큰돈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까.
“마석 보관은 협회에서 30일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양이 꽤 많으니 보관하실 곳을 지정해주시면 바로 배송해드리겠습니다.”
접수원이 창구 안 쪽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상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블린부터 가고일까지 워낙에 처치한 몬스터가 많았기에 마석만 해도 그 부피가 장난이 아니었다.
‘집을 사야겠구나.’
그 모습을 본 진수는 이번에 번 돈을 어디에 쓸지 결정했다.
지금 생활하는 곳은 좁디좁은 옥탑방이었다.
헌터 장비들을 두기만 해도 공간이 여의치 않은 수준이었기에 마석들을 보관할 자리가 나오지 않는 것.
이제까지는 열흘마다 마석정제주사를 맞고, 일당 헌터 생활에 필요한 장비를 정비하는 등 고정비가 수입과 엇비슷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지...!’
단순히 운이 좋아서 단발성으로 많은 돈을 번 게 아니었다.
이제는 충분히 강한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도 있고 균열에서 활약할 능력이 생긴 것이다.
집을 사더라도 무리 없이 유지가 가능해졌다는 뜻이었다.
“아, 예. 조만간 어디로 보내주시면 될지 연락드릴게요.”
진수는 접수원에게 답하고 협회 건물에서 떠나려고 했다.
아직 언데드 몬스터 한 마리를 더 전이시켜야 하니까.
“어? [도깨비불]!”
그런 그의 뒤에서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다닥 뛰어오는 방정맞은 발소리.
“오늘도 진급 하러 왔어요? 기술 검증은 안 해요? 기술은 뭐 달라진 건 없어요?”
헌터 협회의 기술 검증원, 조민준이었다.
그는 진수를 아예 [도깨비불]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인사조차 없이 자기의 관심사만 드러내는 외골수였다.
“안녕하세요. 진급하러 온 건 아니고요. 균열 보상 받을 게 있어서 왔습니다.”
진수는 그를 꽤나 반갑게 맞이했다.
지난번에 전기톱을 생각해내는데 도움 받은 후로 인터넷에 조민준에 대해서 검색해본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단순 기술 덕후 그 이상이었지....’
조민준은 헌터 기술 분야에서는 상당한 권위자였다.
그에게 기술 관련하여 조언을 얻고자 하는 헌터들도 굉장히 많았지만 조민준은 자신의 흥미를 끄는 기술에만 움직인다.
그는 어지간한 기술은 이미 꿰고 있기에 새로운 정보에 목말라 있는 상태였다.
진수로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게 없는 인물.
대단한 인맥이 될 수 있을뿐더러 자료가 많지 않은 진수의 기술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떡밥을 한 번 풀어볼까?’
마침 그의 관심을 끌 수 있을 새로운 기술이 생긴 참이었다.
“아, 새로운 기술이 하나 생기긴 했는데....”
진수가 넌지시 흘린 말에 조민준이 즉각 반응했다.
“새로운 기술? 무슨 기술이에요? 이번에도 [도깨비불]처럼 흔치 않은 종류? 기술명이 뭐죠?”
눈을 반짝이며 물어오는 조민준.
말이 몹시 빨라졌다.
“[강철 거미줄]이라고... 아세요?”
“[강철 거미줄]! 세상에. 그것도 몬스터한테만 있는 기술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거 좀 보여줄 수 있어요? 아니, 아니. 여기서 말고... 내 개인 연구실에서요.”
얼굴이 상기된 채로 잔뜩 흥분하기 시작한다.
“저도 시간이 그렇게 넉넉한 건 아닌데....”
“내가 꼭 보답할게요! 절대로 시간 낭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할 만큼 해줄 테니까 제발 한 번만!”
이제는 아주 애원을 했다.
그에게 희귀한 기술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진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렇게까지 이야기 하신다면... 잠시 도와드리죠.”
진수가 선심 쓴다는 듯이 이야기 했지만 조민준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 보였다.
“지금 당장 가요!”
진수와 조민준은 즉시 그의 개인 연구실로 이동했다.
분명 근무시간인 것 같은데도 아랑곳 않고 콧노래를 부르며 간다.
‘이래도 되는 거야...?’
기술 검증원이라는 자리는 헌터 협회에서 부탁해가며 겨우 조민준을 앉혀놓은 것.
이 정도 자유는 그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자, 우선 [강철 거미줄]부터!”
연구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강철 거미줄] 사용을 요구하는 조민준.
그는 너저분하게 연구실 곳곳에 놓여있는 사물 아무거나 맞춰보라고 했다.
-쉬익!
진수의 손끝에서 아주 얇은 거미줄이 뽑혀 나온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실이었지만 강화 플라스틱으로 된 방패를 가볍게 꿰뚫었다.
“오오! 그대로 가만히 있어 봐요. 이제 [도깨비불]이 아니라 도깨비라고 해야겠네. 몬스터 기술을 뚝딱하고 쓰니까.”
한껏 흥분한 그는 진수의 손에 집중했다.
“오... 이건 일종의 소환술이라고 봐야겠어. 대체 어디서부터 나오는 거지? 거미줄의 구조는 확실한 물리력이 있네. 물질로도 남아있고. 마력이 거미줄과 섞인 형태인데....”
기술을 분석하는 특성이나 기술이 있는 것인지 조민준은 따로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품에서 수첩을 꺼내서 내용을 채워 넣는다.
거미줄을 손으로 튕겨보기도 하고 어느 정도 힘에 끊어지는지 실험도 해봤다.
기술을 관찰하는 순서를 미리 정해놓았는지 테스트가 끊이지 않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진수로서도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다양한 환경에서 [강철 거미줄]을 사용해봄으로서 활용 방법부터 한계점까지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그의 [강철 거미줄] 이해도가 대폭 상승했다.
“이야. 이거 신기한데. 강철거미들이 거미줄을 쏘는 게 종족 자체의 생물학적 특성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어.”
[강철 거미줄] 기술을 신이 나서 검사해본 조민준은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좋아. 이제 [도깨비불]을 써봅시다!”
생각보다 빨리 끝난 [강철 거미줄]의 관찰.
진수로서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않아서 만족스러웠다.
-화르륵!
손 위에 푸른 불꽃을 피워 올린다.
의외로 조민준은 시큰둥한 눈빛이다.
“이미 봤던 거는 됐고. 싸울 땐 어떻게 써요?”
‘이 사람 평소엔 좀 얼이 빠진 것 같은데 기술만 보면 분위기가 달라지네.’
진수는 그의 물음에 전기톱을 꺼냈다.
“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확실히 [도깨비불]의 특징에 딱 어울리는 무기네!”
예상 밖의 무기가 나오자 감탄이 터졌다.
사실 진수가 양손 무기로 보이는 것을 들고 다니기에 조언을 해주려고 했었다.
보다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무기와 상성이 좋다는 것을.
그런데 전기톱이라면 톱날이 움직이면서 순식간에 [도깨비불]을 중첩시킬 수 있다.
기술에 더없이 잘 맞는 무기인 셈이다.
“[도깨비불] 쓰고 작동하면 톱날이 돌아갈 때마다 스택이 쌓여요? 간격이 아무리 짧아도 다 적용이 되는 건가? [특급 공구 숙련] 특성이랑 맞물려서 효과를 내려나? 잠깐만 기다려 봐요! 테스트 해볼 거 하나 가지고 올 테니까!”
조민준의 열의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전신이 제압당한 스켈레톤형 몬스터를 하나 가져왔다.
‘뭐야. 이거 용아병 아니야...?’
용아병은 드라우그처럼 언데드 몬스터들 중에서 보기 힘든 종류였다.
게다가 용의 이빨로 만들어졌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내구를 지닌 녀석.
물리력으로 봤을 땐 듀라한과도 견줄 수 있는 몬스터다.
“이, 이거 용아병이에요?”
“아, 맞아요. [도깨비불] 타격 실험에 쓰려고 구해놨어요.”
진수는 그의 실험에 협조하겠다는 말을 오늘에서야 했는데 이미 [도깨비불]을 관찰하기 위해서 용아병을 구해놨다는 조민준.
아주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도깨비불]에 대한 테스트는 30분 정도 뒤에 끝이 났다.
주로 직접 사용하는 환경에 대한 것들이었는데 진수도 얻은 게 많았다.
이렇게 다양한 경우의 수를 체크해가며 기술을 사용해볼 경험은 흔치 않았으니까.
[도깨비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가 됐다.
“잘 봤어요! 귀한 데이터를 많이 얻었네요. 흐흐. 나중에 또 재밌는 기술 얻으면 연락해요. 제가 제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답할 테니까.”
조민준은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진수에게도 굉장히 우호적인 태도가 되었는데 진수의 노림수가 제대로 먹힌 것이다.
“아, 혹시.... 저 용아병 제가 받을 수 있을까요?”
진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물어봤다.
사실 포획된 용아병 정도면 그 값을 매기기가 힘들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돈으로 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었을 것이다.
겨우 한 시간 남짓한 실험에 협조한 대가로는 과분한 게 사실.
하지만 진수로서는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임무 목표를 위해서 언데드 몬스터를 하나 더 전이시켜야 하는 상황.
대한민국 땅에서 당장 처치할 수 있는 언데드 몬스터는 스켈레톤이나 좀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만약 용아병을 차원 전이시킬 수 있다면 임무도 달성되고 망자 군단 무리에도 든든한 탱커가 생기는 것이었다.
“저거요? 그래요. 쓰려던 건 다 썼으니까.”
조민준은 예상보다도 훨씬 흔쾌히 수락했다.
진수의 전기톱에 사지가 잘려나간 용아병.
언데드 몬스터였기에 시간을 두면 다시 회복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조민준은 자신이 원하는 용도로 다 이용하고 나니 용아병을 짐짝 취급을 해버렸다.
“어떻게 가져갈래요?”
“살아있는 채로 가져가기만 하면 되는데....”
“아, 그러면 잠깐만 기다려 봐요.”
조민준은 용아병의 팔다리와 몸통을 모아서 어디론가 가져갔다.
“....”
잠시 후, 조민준이 손에 들고 온 것을 보고 진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마치 명절 선물용 사골처럼 스티로폼과 비닐로 용아병을 포장해온 것이다.
“왜요?”
뭐가 문제냐는 얼굴.
진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어차피 상식이 통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용아병을 챙겨서 조민준의 개인 연구실에서 나왔다.
“명색이 악명 높은 언데드인데 이런 꼴로 보내서 미안하다 야.”
-용아병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용아병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하데스]의 특성 중 하나
“와...!”
임무 보상을 받은 진수가 순간적으로 감탄사를 뱉었다.
사신
-[융합]의 효과로 [중급 후각]과 [중급 동체시력]과 [죽음의 시선]이 합쳐집니다.
-[사신의 감각] 특성이 생겼습니다.
언데드 몬스터 넷을 차원 전이 시킨 보상으로 하데스에게 받은 특성이 [죽음의 시선].
여기에 기존에 있던 감각 관련 특성이 합쳐지면서 새로운 특성이 나타났다.
진수는 오감이 강화되고 특히나 생명체를 감지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생겼음을 느꼈다.
비유하자면 눈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은 감각이었다.
연신 감탄사를 내는 진수.
“이야...! 이 특성이면 기습도 잘 안 당하겠는데?”
사방에 있는 생명체들이 저절로 느껴지니 살아있는 무언가가 습격을 한다고 해도 미리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감각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여전히 후각과 동체시력은 특성의 효과를 얻었을 때만큼 훌륭했다.
‘용아병이 포장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선물세트구나. 니 이름은 이제 스팸이다!’
진수는 몸에 살점 하나 남아있지 않은 용아병에게 명절 선물세트의 최고봉이라는 의미로 스팸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용아병 [스팸]이 [망자 군단]에 합류합니다.
-[망자 군단]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민첩 +2, 체력 +1, 내구 +3, 마력 +3, [하데스]의 지식 중 하나
-첫 무리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15
최종적으로 망자 군단의 장군이 모두 모이자 무리의 성장이 발생했다.
전이자 하나의 성장과는 차원이 다른 보상이 쏟아졌다.
[김진수]
힘:19 민첩:17 체력:21 내구:20 마력:20
특성 : [차원 전이] [절연체] [중급 재생력] [융합] [상급 전사의 신체] [특급 공구 숙련] [도구 일체화] [스톤 스킨] [증폭기] [발키리] [사신의 감각]
기술 : [도깨비불] [강철 거미줄]
골드 : 22
‘이제 능력치 총합이 97. 능력치 합이 100 넘으면 C급으로 진급 신청을 할 수 있으니까... 얼마 안 남았네.’
진수는 굉장히 풍부해진 자신의 상태창을 흐뭇하게 보았다.
특성은 오히려 [사신의 감각]이 생기기 전보다 개수가 줄어들었지만 그 능력은 더 좋아졌다.
‘실전압축근육이다 이거지. 흐흐.’
또 헌터의 실력과 비례하는 것이 바로 수익.
이번 대규모 균열 사태 전에도 오크 필드에서 꽤나 많은 돈을 벌었다.
‘대출 조금만 끼면 서울에 괜찮은 집 한 채 살 수 있겠어.’
진수는 마석을 보관할 공간도 필요했기에 집을 장만하기로 마음먹었다.
헌터라는 직업은 대표적인 불안정한 직군이다.
언제 사망할지 모르고 고정적인 수입도 없는 처지.
이런 이유로 대출에 제한이 많아 그간 집을 구하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6억을 가지고 있으니 교통이 좋은 지역에 집을 사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아니 뭔 놈의 집값이 이렇게 비싸?”
물론 생각과 현실은 조금 차이가 있었다.
게이트 사태가 생기고 사람들은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 도시 위주로 몰리게 되었다.
균열과 던전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람이 많은 곳에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헌터들도 도시에 주로 거주했다.
인구가 밀집되고 몬스터 필드와 균열 등으로 인해서 부동산 공급은 줄어드니 집값이 비싼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저 진수가 이제까지 삶에 치여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집을 구해서들 살고 있는 거야?”
이제 주변에 세워진 수많은 건물들이 신기해보일 정도였다.
진수는 부동산 어플리케이션에서 가격대를 낮춰서 찾아보았다.
그가 원하는 조건에서는 거의 대부분 전세, 월세인 곳들만 보였다.
‘아.... 장비 두고 마석들 쌓고 하려면 개조 같은 것도 해야 하고... 그러면 내 집인 게 좋은데.... 우선은 전세로 먼저 들어가 봐야 하나?’
본격적인 전투 헌터 생활을 하게 되면 일반적인 아파트에서 살기도 쉽지 않다.
물론 헌터 본인의 능력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사냥을 하는 몬스터에 따라서 장비를 바꿔야 할 때도 있고 가끔은 몬스터의 사체를 집에 보관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집을 꽤나 험하게 쓰게 되기 때문에 전투 헌터들에게 세를 주는 것을 꺼리는 풍조도 있었다.
“그나마 여기가... 가격대도 맞고... 지하철이랑도 가깝... 어? 여긴 왜 이렇게 매매가가 싸지?”
그렇게 한동안 정보를 찾아보던 진수의 눈에 한 주택 정보가 들어왔다.
주변 시세의 거의 반값인 매물.
‘이 가격인데 안 팔리고 있는 게 말이 되나? 내가 지금 운 좋게 본 건가 싶기도 하고.... 요 근래 운이 꽤 좋았던 편이니까.... 아니면 미끼로 내놓은 허위 매물인가?’
진수는 상식보다 훨씬 저렴한 매물에 의심을 하면서도 저절로 정보를 올려놓은 부동산에 연락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부동산이죠? 거기 사당역 쪽에 있는 매물 때문에 전화 드렸는데요.”
-아... 거기요.
진수의 말에 공인중개사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일반적으로 미끼용 허위 매물이었다면 이런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 텐데 진수는 의아함을 느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직업이 어떻게 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는 한 술 더 떠서 이상한 질문까지 던졌다.
‘집 사는데 직업을 왜 물어봐?’
진수가 짜증을 섞어 왜 그러냐고 되묻자 공인중개사는 굉장히 난처해하며 괜찮다면 한 번 방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진수는 잠시 고민한 끝에 공인중개사 사무소로 가보기로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진수의 궁금증을 키우기에 충분했으니까.
곤란한데 아쉬우면서 기대를 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값이 무진장 싸고 말이지.’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도착한 진수.
거기엔 대략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진수와 통화했던 공인중개사였다.
“아! 전화 주셨던...?”
그는 진수를 맞이하며 빠르게 위아래로 훑었다.
“네. 사실 오지 말까 고민도 했는데 영 신경이 쓰여서요.”
진수의 말에 공인중개사가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거기가 사실 예전에 어떤 헌터분이 전세로 살던 집이거든요. 근데 작년에 그 분이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고 그 이후부터 이상한 일들이 계속 생겨서요.”
그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작년까지 그 집에서 전세로 살던 사람이 있었다.
꽤나 이름 있는 헌터 아카데미 출신의 전투 헌터였는데 작년 어느 날 행방불명.
헌터들이야 원래 사고가 많은 직종이다 보니 집주인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새로 입주할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는데, 누군가가 집을 보러 오면 집안에 있는 물건이 떨어진다던가 방을 보러 온 사람이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등의 일이 일어났다.
밤에는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까지 나오는 상황.
그래서 이렇게 집주인이 아예 가격을 낮춰서 집을 매매로 내놓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것이다.
“귀신이라.... 진짜 이런 일이 있기는 하네요.”
게이트 사태 이후로 오히려 귀신과 같은 미신은 사람들한테 더욱 영향을 주었다.
실제로 밴시처럼 귀신 형태인 몬스터, 좀비 같은 언데드도 나타났으니 귀신이 실재한다는 증거가 되어줬다.
“예. 그래서 처음에 혹시 직업이 어떻게 되시나 여쭤본 거였습니다. 혹시 헌터시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막 축복 같은 걸 쓰는 헌터도 있다고 하니까 그런 분들은 문제를 해결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고요.”
진수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와.... 이렇게 나한테 딱 맞는 집이 있다고?’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나온 표정이었다.
귀신이 진짜 있든 없든 그에겐 상관이 없었다.
일반인 호흡곤란이 오는 정도의 압력이야 헌터의 압도적인 신체능력으로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집에 가보죠.”
진수의 굳은 표정을 보고 이번에도 불발이겠구나 생각하던 공인중개사는 예상 밖의 말에 놀란 눈치였다.
“네? 아, 네!”
그는 진수가 마음이라도 바꿀까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주택은 이수동산이라는 작은 동산 바로 옆에 있었다.
이 동산에서도 아주 가끔씩 던전이나 균열이 발생하기도 한다며 설명하는 공인중개사.
진수가 전투 헌터다 보니 몬스터가 나오는 게 플러스 요소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의 말에 동산 입구 쪽을 보던 진수는 그 앞에 서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눈이 커졌다.
“저기,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아는 사람이 있어서....”
공인중개사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이수동산의 입구로 달려갔다.
“어휴, 이거 박철준 수사관님 아니십니까? 지난번 청계산 때 이후로 처음 뵙네요.”
진수가 발견한 사람은 바로 헌터범죄전담기관의 박철준 수사관이었다.
저번에 놀 던전에서 알비노 놀을 조종하던 최유권을 신고한 적 있긴 했지만 익명으로 연락했던 것이기에 시치미를 뚝 떼고 인사를 했다.
그 스스로가 헌터 범죄를 할 생각이 없다면 헌터범죄전담기관에 있는 사람과는 친분이 두터워질수록 좋다.
“아. 김... 진수 헌터. 맞죠?”
여전히 염세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그는 진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흠. 우연이 세 번이면 필연이라던데....”
박철준이 낮은 목소리로 묘한 소릴 했다.
“뭐 어쨌든. 여긴 무슨 일로?”
“이 근처에 집을 좀 보러 왔거든요. 얼마 전에 몬스터를 좀 많이 잡아서요.”
“아, 대규모 균열 때 참여했었나보군요.”
전 국민 모두가 알 수밖에 없는 수준의 균열이었기에 박철준도 자연히 진수의 말을 알아들었다.
“네. 수사관님도 여기 어디에 볼일이 있으신가 봐요?”
“사람을 좀 찾고 있습니다. 음, 혹시라도 이런 사람 주변에서 보게 되면 저한테 연락주시죠.”
그는 품에서 사진을 하나 꺼냈다.
고등학생에서 갓 스물 정도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의 남자였다.
“아... 넵. 혹시 범죄자 헌터인가요?”
진수가 누가 듣기라도 할까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아닙니다. 실종된 인물이고 헌터 범죄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있어서 찾고 있는 겁니다. 피해자일 가능성도 있고요.”
“알겠습니다. 혹시 보게 되면 꼭 연락드릴게요. 바쁘실 텐데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하.”
그는 박철준에게 고개를 까딱 인사하고 공인중개사에게 돌아왔다.
바로 원래 가던 집으로 안내를 하는 공인중개사.
몇 분 걸리지 않아 한 주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그럴듯한 집이었다.
바로 뒤에 이수동산과 맞닿아 있었고 집 면적은 20평 정도에 2층 건물이다.
“역에서도 가깝고, 크기도 좋고. 들어가 볼까요?”
진수는 공인중개사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다.
공인중개사는 손이 조금 떨리는 게 두려운 마음이 좀 있는 듯했다.
그의 설명대로면 그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가해진 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집 보러 온 사람이 겁먹는 걸 자주 봤더니 그에게도 공포가 전해진 것 같았다.
-끼이익!
‘문에 경첩은 좀 손봐야겠네.’
문을 자주 쓰지 않아서인지 불쾌한 소리가 나면서 열렸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진수의 감각에 무언가 걸렸다.
이 집에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스으으으...!
아주 작게 가스가 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으스스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소리였다.
“저기, 혹시 이 소리 들리세요?”
“네? 소리요?”
진수의 물음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공인중개사.
그는 이내 또 시작됐구나 하는 얼굴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만 느끼는 현상을 경험하고는 도망치듯 떠났다.
호기롭게 찾아온 이 헌터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허, 저놈 봐라?’
집의 바닥을 뚫고 안구가 있을 자리가 휑한 존재가 스르륵 떠올랐다.
누가 봐도 귀신이요 하는 모습이었다.
양손으로 진수의 목을 조르려 천천히 다가온다.
놈이 가까워질수록 주변 공기가 싸늘해졌다.
-스으으으...!
바람이 부는 것 같기도 하고 뱀이 작게 우는 듯하기도 한 소리가 들린다.
귀신의 손이 진수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
진수가 먼저 손에 [도깨비불]을 두른 채 놈의 목을 잡아챘다.
-케엑! 켁! 서, 선생님! 말로 하시죠, 말로...!
독살시도
“콱씨! 내가 사신 겸 저승사자인데 누굴 해코지하려고.”
진수는 공인중개사를 사무소로 돌아가게 한 뒤에 귀신과 면담의 시간을 가졌다.
신기하게도 귀신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몬스터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마석이 없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식들이 사람의 영혼과 귀신 형상의 몬스터는 다르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망자 군단 무리의 성장으로 받은 하데스의 지식이 아무래도 이런 영혼을 다루는 계통이었던 것 같았다.
-그... 그런데 사신이랑 저승사자랑 뭐가 다른 거죠...?
진수에게 구박받던 귀신이 그의 말에 잠시 의문을 품었다.
“나도 몰라. 그냥 [저승사자] 특성이랑 [사신의 감각] 특성이 있어서 그런갑다 하는 거지. 근데 이 자식이 반성은 안 하고 말대꾸를 해?”
-화륵!
진수는 작은 [도깨비불]을 피워서 녀석에게 던졌다.
-으악!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몸에 [도깨비불]이 닿자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귀신.
녀석은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살려달라고 빌었다.
“아니야. 넌 아직 잘못을 뉘우치고 있지 않아. 너 임마 내가 아직 귀신 안 돼봤다고 얼굴 바꾼 거 모르는 줄 알고 있나본데. 한 번 해보자 이거지?”
여전히 눈이 있어야 하는 부위는 시커먼 빈 공간만 보이고 전반적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귀신.
하지만 진수는 그 모습이 진짜 형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데스의 지식대로면 죽을 때 당시의 모습이어야 맞다.
-아, 아닙니다! 당장 되돌리겠습니다!
진수의 경고에 서둘러 외형을 바꾸는 귀신.
물감을 엉망진창으로 섞는 것처럼 오묘한 형태가 되더니 갑자기 한 순간에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죽을 때의 형태로 된다던데 외상도 안 보이고... 꽤나 멀쩡하게 죽었나보네. 근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진수는 본래대로 돌아온 귀신을 보며 어딘가 낯이 익다고 느꼈다.
“야, 너 이름이 뭐야?”
-저 야, 양태규입니다!
“쓰읍. 아는 이름도 아닌데....”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양태규를 노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니 얼굴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너 나 본 적 있냐?”
-아뇨.... 초면인 거 같습니다.
양태규는 바로 대답을 했다.
“아! 생각났다!”
진수는 비로소 그가 어디서 귀신의 얼굴을 봤는지 떠올렸다.
박철준 수사관이 보여줬던 사진 속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 앞에서 마주친 게 굉장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더니 그런 게 아니었구만?’
그는 아마도 실종된 양태규에 관해서 조사를 하는 중이었던 모양이었다.
진수는 박철준에게 마음의 빚을 씌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는 아직 양태규가 사망이 아닌 실종 상태라고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가 사망했다는 걸 알려주고 시체까지 찾아준다면 박철준의 수사가 훨씬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언젠가 한 번쯤은 날 도와줄 수 있는 카드가 되겠지.’
진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양태규를 보았다.
그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진수를 보며 따라 웃었다.
“뭘 웃어, 이 자식아.”
-아, 아뇨. 그냥 웃으시길래... 헤헤.
“야, 너 죽었을 때 기억해? 날짜나, 죽기 전에 뭐 했었는지, 누굴 만났는지, 누가 죽였는지 그런 거.”
-우선, 죽은 거는 아마도 누가 독을 제 음료에 타놓은 거 같았어요. 사냥 다녀와서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를 마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신을 잃었거든요. 바로 고통이나 현기증 같은 증상이 있던 건 아니어서 극독은 아니었던 것 같고요.
양태규는 생각보다 자신이 죽었을 당시를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 독에 대해서 꽤나 잘 안다?”
-저도 독 쓰는 전투 헌터였거든요. 아카데미에서도 이쪽에 꽤 소질이 있다고 그랬고요. 근데 독에 당해서 죽을 줄은 몰랐죠. 아, 품에 있던 해독제만 먹었어도 웬만한 독은 해결이 됐을 텐데.
그는 상당히 자부심이 엿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흠. 누가 죽였을지 짐작 가는 사람은? 뭐 평소에 나쁜 짓 하고 다녔던 거 없어?”
-없...어요.
이번엔 좀 떨떠름한 대답이 나왔다.
그래서 진수는 그의 기억을 돕기로 했다.
-화르륵!
“똑바로 말 안 하지?”
-아, 아닙니다. 그게 거짓말을 하려는 게 아니고... 저한테 원한이 있을만한 사람이 있었는데, 저보다 먼저 죽었거든요. 몇 년 됐어요.
“죽었어? 니가 죽인 거야?”
-아뇨. 자기가 투신했어요.
진수는 그 외에도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하지만 딱히 그의 죽음을 규명할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하.... 별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없네. 혹시 너 시체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
-저희 집 바로 뒤에 있는 동산에 묻었더라고요. 정확히 어디인지 바로 안내할 수도 있습니다.
양태규가 굉장히 의욕적으로 답했다.
마치 그의 시체를 찾아주길 바라는 것처럼.
“누가 시체를 옮기고 묻었는지는 봤어?”
-아뇨. 깨어나고 나니까 이미 묻힌 상태였어요.
“음.... 야, 며칠만 더 참아봐. 너 없어지면 집값 다시 오를 수도 있단 말이야. 너 한 풀어준 값은 나도 챙겨야지.”
진수는 집을 싼 가격에 구입한 뒤에 양태규의 시체를 찾기로 했다.
애초에 그가 여기 온 목적이 집을 싸게 사려는 것이었으니까.
머릿속의 지식은 원혼이 가진 욕구를 해소해주면 사라진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양태규가 적극적으로 바라고 있는 시체를 찾는 일이 완료되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야. 근데 지금까지 왜 사람들이 집 사러 오면 그렇게 괴롭힌 거야?”
-그렇게 하면 이 집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고, 귀신이 된 저를 찾기 위해서 주변을 수색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양태규는 나름대로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해서 머리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그가 생각했던 방향으로는 아니지만 진수를 통해 해결될 상황이 되었고.
“그래, 잘 했다. 흐흐. 나 이제 여기 집 계약할 거거든? 서류 준비하고 뭐하고 하면 며칠 걸릴 텐데 혹시라도 나 말고 다른 사람들 오면 지금까지처럼 좀 해줘라. 만약에 내가 이 집 사려는 거 불발 나면 넌 불밭에 구르는 거야. 알겠지?”
-헉. 넵! 저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습니다. 헤헤.
진수는 양태규에게 으름장을 놓은 뒤에 공인중개사 사무소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오자 공인중개사는 얼굴에 궁금증을 가득 띄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 집에 가서 혼자 이렇게 오래 있었던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별 일은 없으셨나요?”
“조금... 싸- 한 느낌이 있긴 하더라고요. 가슴도 좀 답답한 것 같고.”
“아... 역시. 구매는 좀 힘드시겠죠?”
실망하는 표정을 짓는 공인중개사.
“근데 매달 월세 내는 게 더 가슴이 답답할 거 같더라고요. 구매하겠습니다.”
“아, 정말요? 넵. 알겠습니다. 바로 집주인분께 연락드려서 계약 진행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는 진수의 말에 얼굴이 확 밝아졌다.
이 매물이 항상 골칫거리였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털어버릴 수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공인중개사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집주인과 계약 절차를 밟았다.
진수로서도 바라던 바였다.
‘이제 은행에서 대출도 받고 어느 정도 계약이 완전히 체결될 때까지 그 집에 갈 일은 없겠네.’
집 매매 계약을 위해서 서류들도 준비하고, 은행에서 대출 심사도 받아야 한다.
상당히 바쁘게 움직여야 할 테니 한동안 양태규가 있는 집에 가지는 않겠구나 생각을 했다.
다음 날 안내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는.
-특수임무 발생.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계약서 사본과 등본 따위의 서류를 들고 은행에 방문했던 진수에게 특수임무 발생 메시지가 나타났다.
특수임무를 안 받을 이유가 없었기에 바로 승낙한 진수.
-임무 : 고블린 [고돌]의 독살 막기 !
-보상 : [고돌]의 급성장
‘갑자기 독살이라니?’
특수임무 내용은 상당히 뜬금이 없었다.
지금까지 검투장에서 열심히 싸우고 훈련하고 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왜 독살을 당한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진수는 임무 내용 옆의 느낌표를 터치해봤다.
-카토 검투장의 챔피언이 된 고블린 [고돌]. 한낱 몬스터 따위가 챔피언이라는 사실에 그를 시기하는 인간들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고돌]의 다음 경기 전에 독약을 몰래 먹여 독살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고돌]을 도와 그의 억울한 죽음을 막으십시오.
“나 참. 인간이란 작자들이 고블린을 시기해? 못났다 못났어. 아니지. 고돌이가 잘난 건가? 짜식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서도 열심히 살고 있구나!”
특수임무를 보고서 짧은 감상을 뱉은 진수.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니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인간들이 어떤 독을 언제 쓸 줄 알고 막는다는 말인가.
머리가 복잡해진 그는 우선 은행에서 제일 시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건만 해치우고 밖으로 나왔다.
‘독을 방지해주는 아이템을 보낼까? 아, 골드가 30이 안 되는구나. 그럼 아이템이 아닌 종류로 보낼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은수저라도 보내줘야 하나? 독에 당하는 걸 무슨 수로 막아내!’
인터넷에 검색을 해봐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초조하게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데 문득 양태규와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독에 당해서 죽을 줄은 몰랐죠. 아, 품에 있던 해독제만 먹었어도 웬만한 독은 해결이 됐을 텐데.’
그가 죽고 나서 따로 시체의 옷을 벗겨내거나 한 게 아니라면 그대로 같이 묻혀있을 것이다.
진수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바로 택시를 타고 계약이 진행 중인 집으로 향했다.
“양태규!”
아직 집 열쇠를 받은 것은 아니었기에 집 밖에서 마력을 실어 양태규를 불렀다.
-스르륵
문을 뚫고 머리를 내미는 녀석.
-계약은 다 하셨나요?
“아니, 아직인데. 우선 니 시체부터 좀 찾아야겠다.”
-오오! 알겠습니다. 바로 근처니까 가시죠.
양태규는 기뻐하며 바로 안내를 시작했다.
그의 시체가 묻힌 곳은 동산의 산책로와 그의 집 사이.
다행히 낮이지만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위치는 아니었다.
“야. 너 내려가서 시체랑 겹치게 누워봐.”
진수의 지시에 그는 곧장 땅 속으로 들어갔다.
진수가 시체를 감지할 수는 없었지만 귀신의 위치는 느껴진다.
양태규가 아래로 내려가 자리를 잡으니 어느 정도 깊이에 시체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삽을 하나 사가지고 올 걸. 쯧. 없으면 뭐 만들면 되지.”
진수는 [강철 거미줄]을 사용해서 거미줄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3D 프린터처럼 바닥에 삽 형태로 그려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엉성하지만 삽의 모양새를 갖춘 도구가 만들어졌다.
‘조민준한테 기술 관찰을 하게 해준 게 완전 이득이었다니까!’
[강철 거미줄]의 이런 이용 방법은 조민준과의 실험 중에 알게 된 것이었다.
진수는 거미줄로 된 삽을 사용해 땅을 파냈다.
[특급 공구 숙련]이 작동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굴착할 수 있었다.
-여깁니다, 여기!
몇 분 지나지 않아 진수는 시체와 겹쳐져 있는 양태규를 발견했다.
그의 시체는 생각보다 부패가 많이 진행되어 있었다.
-이야, 역시 약속을 지켜주실 줄 알았습니다. 이제 여한이 없네요.
양태규는 정말로 한이 풀렸는지 점점 희미하게 변해갔다.
“잠깐!”
그렇게 사라져가는 양태규를 하데스의 지식을 활용해서 마력으로 붙잡은 진수.
“어떤 게 해독제인지 좀 알려주고 가!”
진수가 조금 일찍 그의 시체를 찾은 이유는 빨리 승천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고돌이에게 보낼 해독제가 필요했을 뿐.
감동에 젖어있던 양태규의 얼굴에 불만이 조금 드러났다.
“아, 해독제만 알려주면 바로 보내줄 테니까 너무 서운해 하지 말고. 그래도 내 덕분에 시체를 찾았잖아? 혹시 가족한테 남기고 싶은 말 있으면 전해줄게.”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양태규도 서운한 표정이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외투 안주머니를 찾아보라고 했다.
거기엔 약이 몇 개 있었는데 정체불명의 알약부터 포션, 영양제도 있었다.
“어이구, 뉴트럴바이오 영양제네. 옛날에 고돌이한테 이거 많이 보내줬었는데.”
진수는 영양제 하나를 보며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 포션 옆에 있는 알약 두 개가 제가 쓰던 만능 해독제예요.
양태규는 여러 개의 약들 중에서 해독제가 무엇인지 알려줬다.
그가 부모님한테 남기는 말까지 전해들은 뒤, 진수는 마력을 해제했다.
그러자 다시 몸이 옅어지더니 이내 사라지는 양태규.
‘그래도 악령으로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진수는 얌전히 사라지는 그를 보며 짧게 생각했다.
그리고 곧장 종이에 고블린 문자로 이 약은 해독제이고, 만약 몸이 괴로우면 바로 먹으라는 내용을 써서 고돌이에게 보내줬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고블린 [고돌]의 급성장
그가 해독제를 보내자마자 임무가 달성됐다.
‘와, 조금만 늦었어도 고돌이 바로 갈 뻔 했네.’
전송된 해독제를 바로 써야하는 상황이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고돌이는 다시 죽음의 위기를 넘었다.
-[고돌]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도움에 대한 보답을 했다.
신뢰
-골드 +15
고돌의 급성장으로 진수는 15골드를 받았다.
해독제와 쪽지를 보내는 대가로 10골드를 써서 급성장과 15골드를 벌었으니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이거 다른 인간들이 독살까지 하려고 하는데 계속 검투장에 있어도 괜찮은 건가?’
진수는 고돌의 현재 상황을 살펴봤다.
고블린 [고돌] - 현재 상황 : 도주 중
고돌이도 진수와 같은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위협을 피하는 것인지 이미 도주 중이라는 표기가 되어 있었다.
‘너도 참 기구한 생이구나.’
인간들에게 잡혀가서 검투장에서 구르더니 또 인간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비록 작은 그림과 글씨로만 마주하고 있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큰 보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특성 랜덤 박스] 구입으로 특성 [은둔자]를 얻었습니다.
-상품을 전달할 전이자를 선택하십시오.
진수는 상점에서 [특성 랜덤 박스]를 하나 구입했다.
도망치고 있는 고돌이를 미약하게나마 도와주려는 생각이었다.
-[고돌]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3
[은둔자]라는 특성이 그렇게 크게 성장하게 해주는 특성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보상으로 3골드를 받은 진수.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름으로 봐서는 그래도 도주에 전혀 쓸모없는 특성은 아닌 듯했으니까.
-[고돌]이 당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칭송합니다.
-전이자의 첫 칭송으로 보상을 얻습니다.
-[신뢰] 특성
“이야, 고돌이가 그래도 은혜를 아는구나!”
녀석이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적절한 보상을 보내주었다.
고돌이에게 진수는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보상이 되어 진수에게 돌아왔다.
‘[신뢰] 특성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지고 있어서 나쁠 것은 없겠지. 이름부터 그럴듯하잖아?’
진수는 고돌이가 큰 문제없이 잘 도망치길 바라며 상태창을 닫았다.
이제 그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차례다.
‘시체를 찾아냈으니까 범죄전담기관에다가 연락을 해야겠지.... 근데 뭐라고 말을 하면서 알려줘야 하지.’
그의 고민은 그것이었다.
아무리 다양한 특성과 기술을 지닌 헌터들이 있다고 하지만, 귀신이 해주는 말을 듣고 시체를 찾았다?
오히려 용의자가 되기 딱 좋은 소리였다.
‘[도깨비불]로 귀신 멱살 잡고 알아냈다고 할 수도 없고.... 잠깐, [도깨비불]...?’
순간적으로 변명거리를 떠올린 진수.
곧장 핸드폰을 꺼내 박철준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아, 수사관님! 안녕하세요. 하하. 어제 보여주셨던 그 사진 있잖아요? ...”
박철준은 그가 양태규라는 이름을 꺼내며 시체를 찾았다고 하자 바로 오겠다고 했다.
진수는 그에게 위치를 알려준 뒤에 시체를 수습했다.
안주머니에서 꺼냈던 것들을 다시 집어넣고 적절한 핑계를 위해서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찾아두었다.
‘그나마 신분증 사진이 사무관한테 있는 사진이랑 비슷해서 다행이다.’
그가 시체를 구덩이에서 꺼내고 있는데 꽤나 빠르게 달려오는 차 소리가 들렸다.
박철준이 신속하게 온 것이다.
“어휴, 수사관님. 이쪽입니다.”
진수는 동산 아래쪽에서 위치를 살피고 있는 그를 불렀다.
나무와 수풀 따위에 가려져 진수가 잘 보이지 않을 법도 했는데 그의 말소리를 듣고 한 번에 위치를 파악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도착하자마자 진수와 시체를 한 번씩 훑어보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는다.
지금까지의 호의가 담긴 말투와는 사뭇 달랐다.
마치 취조를 하는 듯한, 의심을 하는 기색이 가득한 태도였다.
“아, 그게 말이죠. 요기 바로 아래에 집을 제가 이번에 샀거든요. 그래서 동네를 볼 겸 둘러보는데 여기에 도깨비불 현상이 나타나더라고요. 제가 가진 기술이....”
“[도깨비불]이죠. 압니다.”
박철준은 잡다한 말은 줄이라는 듯이 말을 끊었다.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이미 진수의 기술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승급 때 적어서 낸 정보만 알고 있겠지만.’
진수는 헌터 협회에 제출한 서류를 적당히 속여서 쓰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네. 그래서 그런지 자연적인 도깨비불에도 반응을 하더라고요. 이 위치에 무언가 있다고. 그 느낌대로 땅을 파봤더니 시체가 나온 겁니다.”
그가 나름 머리를 굴려 댄 상황 설정을 듣고 박철준은 잠시 침묵했다.
진수를 지그시 바라보며.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시체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했는데 어떻게 알았죠? 양태규라는 이름은 어디서 들었고.”
박철준의 말이 슬쩍 짧아졌다.
목소리도 더 낮아지고 마치 맹수의 으르렁 거리는 느낌이 든다.
그의 눈빛은 점점 싸늘해졌는데 아무래도 진수를 의심하는 듯한 태도였다.
“지갑이 있더라고요. 여기, 신분증에 보면 보여주셨던 사진이랑 거의 비슷하잖아요?”
진수는 재빨리 미리 꺼내두었던 양태규의 지갑을 펼쳐 보였다.
“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공기마저 얼어붙을 것 같은 냉랭한 기세가 한 순간에 사라졌다.
처음부터 의심 같은 것은 하지 않았던 것처럼.
진수는 그저 자신이 꾸며낸 이유가 그럴듯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조금 달랐다.
반 정도도 먹히지 않은 변명을 [신뢰] 특성이 작용하면서 박철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오늘도 훌륭한 연기였다.’
진수 자신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잠시 시체를 살피겠습니다.”
박철준은 양태규의 시신을 이리저리 보았다.
부패한 정도가 꽤 심했는데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일단 외상은 보이지 않는군요. 사망한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긴 하지만, 부검을 해보면 또 단서를 얻을 수도 있겠네요. 덕분에 수사에 진척이 좀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진수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권했다.
이제 의심하는 눈빛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수사하면서 알게 된 대로면 양태규는 독을 사용하는 헌터.
진수가 외상 없이 살해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게다가 직접 죽여 놓고 이제 와서 시체를 제보할 확률은 더더욱 희박하지.’
시체를 찾게 된 경위는 의문스럽긴 했다.
하지만 [도깨비불]이라는 기술이 워낙 알려진 것이 적었기에 반박을 할 수도 없는 상황.
현재 중요한 것은 실종자의 시체를 찾았다는 점이니 이것을 단서로 수사를 더 진행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김진수는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다행히 뒤에 있는 곳이 범죄 집단은 아닌 것 같으니 우선 두고 보자. 지금 조사하는 곳과 묘하게 대립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니까.’
박철준은 마음 속 인물 분류에서 진수를 선한 쪽으로 카테고리 구분해두었다.
“전 이만 양태규 헌터의 시체를 가지고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도록 하죠. 그리고... 상대하는 쪽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아요. 혹시라도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긴다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돕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는 가져온 시신 운반 도구를 이용해서 양태규의 시체를 감쌌다.
숙련된 솜씨로 처리한 그는 진수에게 알 수 없는 소리를 남기고는 떠났다.
‘뭔 소리야? 상대하는 쪽이라니. 몬스터 사냥이 빡세단 말인가? 뭐 어쨌든 나중에 도와준다는 말까지 들었으니까 목적 달성이네.’
진수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은 가볍게 털어버리고 동산에서 내려왔다.
집 계약을 마무리 하려면 아직 준비해야 할 게 많았으니까.
* * *
“기관에서 양태규의 시체를 찾았다고요?”
어두운 방안.
진한 분노가 묻어있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네, 넵. 오늘 낮에 시체에서 발생하던 신호가 기관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고블린사육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걸 어떻게 찾아냈죠? 우리가 하던 실험은요. 결과가 제대로 나왔어요?”
“그, 시체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유리된 에너지 덩어리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어느 정도 데이터는 모았지만... 결과를 내기엔... 죄송합니다. 기관 쪽에서 외부 인력의 도움을 받은 것 같습니다.”
-톡, 톡, 톡
어둠 속에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아직 우리 연구 분야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대단한 인물을 섭외했나보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영혼에 관여할 수 있는 인물은 정말 한정적이니까요. 그들 중 누구 하나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자는 없고 말입니다.”
“우리가 엮여 있다는 게 들통 날 가능성은요?”
“연구 쪽으로는 증거가 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실험 대상과의 연관성이 조금 걱정이기는 한데....”
고블린사육사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됐어요. 그 부분은 내가 감내해야 하는 거니까. 다른 보고사항은 없나요?”
“구울 필드에서 김진수와 마주쳤습니다.”
고블린사육사의 옆에 가만히 있던 정효원이 입을 열었다.
“구울 필드에요?”
“넵. 저희가 [재생력] 특성 연구 때문에 언데드 필드에 가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놈이 구울 필드에 나타난 것으로 봐서는 확실히 [재생력]은 언데드랑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효원이 자신의 의견을 슬쩍 내밀었다.
“그럴듯하네요. 저쪽에서도 우리 연구가 진행되는 것 같으니 방해를 하려는 모양이에요. 우선은 그들과 부딪히지 않게 언데드 몬스터를 포획해보세요.”
“넵, 알겠습니다! 그리고, 김진수가 다녀간 뒤로 구울 필드에서 발생하던 강한 에너지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정효원의 말에 옆에 있던 고블린사육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저쪽에서도 균열 발생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얼마 전 정효원이 구울 서식 필드로 향했던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재생력] 특성의 연구를 위해.
다른 하나는 용산의 대규모 균열 사태에서 관측된 것과 유사한 형태의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소형 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듀라한의 공간이 만들어낸 현상이었는데 진수가 듀라한을 차원 전이 시키는 바람에 아예 에너지 반응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균열 쪽으로는 우리가 앞서고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아직 저들의 정체가 파악되지 않았으니 이번처럼 선수를 뺏기지 않게 움직이죠.”
“넵, 알겠습니다!”
정효원이 힘차게 대답했다.
“[재생력] 특성 연구도 실마리를 잡았으니 언데드 몬스터들을 최대한 포획해보고요.”
“예. 김진수처럼 언데드로부터 [재생력]을 구현한 결과물을 뽑아내겠습니다.”
고블린사육사가 굳은 표정으로 다짐하듯 말했다.
* * *
-임무 : 슬라임을 세 종류 전이시키기 !
-보상 : 슬라임 [포세이돈]의 특성 중 하나
양태규 덕분에 집도 싸게 사고 박철준의 호의도 얻은 진수.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임무를 받았다.
‘오, 오랜만에 포세이돈한테 특성을 받겠네.’
한참 전, 포세이돈에게 [수룡의 숨결] 기술을 보내줘 [중급 재생력] 특성을 받은 후로는 통 신경을 못 써주고 있었다.
워낙 전이자도 많아지고 특수임무나 균열 같은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상황을 확인했을 때가 그린 슬라임이랑 교류 중이라는 것까지 봤었는데....’
진수는 무엇 때문에 슬라임을 보내달라고 하는 것인지 궁금해 임무 내용에 있는 느낌표를 눌러봤다.
날로 먹는 게 최고야!
-그린 슬라임과 교류를 한 [포세이돈]은 요정의 호수 바닥에 수많은 슬라임들이 아무런 의지 없이 부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요정의 호수에 있는 슬라임들을 규합하여 발전하고자 합니다. [포세이돈]의 위업을 도울 슬라임을 차원 전이 시키십시오. 종의 다양화를 위해 서로 다른 슬라임을 보내야 합니다.
‘세상에, 슬라임 왕국이라니. 그래, 포세이돈이 바다의 지배자니까 호수라도 먹으면 이름값 하는 거지.’
진수는 재밌다는 듯이 낄낄 웃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 꽤 그럴듯하게 들어맞는 것 같았다.
그는 히죽거리며 바로 슬라임이 나타나는 곳을 찾아봤다.
기왕 보내주는 것, 가능하면 쓸 만한 종류의 슬라임으로 전이시키려는 것이다.
슬라임은 정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기본형은 포세이돈처럼 겉이 산성의 액체로 둘러져있고 내부에 핵이 존재하는 모습.
핵이 건재하면 죽지 않는다.
이렇게 기본적인 슬라임으로 시작해서 색이 다르거나, 몸이 액체보다는 고체에 가까운 녀석들도 있었고, 겉에 돌 따위를 두르는 케이스도 있다고 한다.
‘독성 슬라임.... 얜 좀 세 보이는데? 이 녀석부터 잡고.... 이건 뭐야? 독성 슬라임이 나오는 하천 쪽에 이상한 몬스터가 나온다....’
슬라임 특수 개체를 찾아보던 진수의 눈에 들어온 한 글.
뭉그러진 형태의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소문이었다.
조금 더 검색을 해보니 이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 지 꽤나 되었다.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조금 요상한 설명이 많지만 반쯤 액체처럼 흘러 다니고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라면... 슬라임일 가능성도 있겠어. 어차피 독성 슬라임 잡으러 가야 하니까 겸사겸사 알아보자.’
진수는 슬라임을 상대할 무기를 챙겨서 과천으로 향했다.
대개 산성 몸체를 가지고 있는 슬라임에게 금속으로 된 무기를 쓰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새로 가지고 온 것은 돌로 된 슬레지해머, 일명 오함마라 불리는 것이었다.
제법 묵직했지만 높은 힘 능력치와 [특급 공구 숙련]이 있었기에 다루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기 막계천 근처에 독성 슬라임이랑 그 괴상한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거지?”
그는 망치를 빙빙 돌리며 하천 주변을 둘러보았다.
독성 슬라임의 서식 필드였기에 흔적들이 많이 보였다.
특유의 악취가 심했기 때문에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런 데에 몰래 쓰레기 버리는 사람도 많겠구만.”
진수는 표정을 찡그리며 하천을 따라 움직였다.
후각이 예민했기에 독성 슬라임의 악취가 더욱 지독하게 느껴졌다.
“어휴, 빨리 잡고 가야지. 머리가 다 아프네. 엇, 저게 그건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독성 슬라임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소문이 돌고 있던 문제의 그 몬스터.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슬라임인가 싶기도 했다.
검붉은 덩어리가 꿈틀거리면서 움직였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기괴했다.
“으으.... 이건 어떻게 돼먹은 몬스터야? 우선 해치워보면 알겠지.”
우선 망치로 중앙을 내려쳐본 진수.
그의 강력한 공격에 몬스터의 일부가 곤죽이 되었다.
“끼에에엑!”
몬스터는 비명을 지르며 굴러서 도망치려고 했다.
그 비명소리가 상당히 기괴했다.
“비명을 지르는 슬라임...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으, 소름 돋으니까 빠르게 해치워야겠다.”
진수는 몬스터가 반격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도깨비불]과 [강철 거미줄]까지 사용해가며 빠르게 처치했다.
-변종 어스웜 [F-3호] 차원 전이 성공.
“엥, 어스웜?”
몬스터가 차원 전이 되고 나타난 안내 메시지에 진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봐도 어스웜처럼 생긴 구석이 없었던 것이다.
‘어스웜의 겉과 속을 뒤집어 놓으면 그런 모양이 될 수는 있겠네.’
이상한 외형, 수상한 이름.
수많은 몬스터를 차원 전이 시키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물론 이미 이름이 정해져 있는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슬라임 [포세이돈]과 고블린 샤먼 [키약트르]가 무리를 이룹니다.
-[포세이돈] [키약트르]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진수가 께름칙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다시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어이구, 이 둘이 같은 곳에 있었구나. 포세이돈... 포세이돈이면 아틀란티스 정도 해주면 되겠다.”
요정의 호수로 차원 전이 되었던 둘이 만났다.
아무래도 키약트르가 고블린 샤먼으로 꽤 지능이 높은 축에 속하니 포세이돈의 참모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되었다.
“음, 소문 돌았던 몬스터는 슬라임이 아니었으니까 빨리 독성 슬라임 잡고 다른 특수 슬라임 찾아다녀야겠네.”
진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빠르게 움직여 독성 슬라임을 차원 전이 시켰다.
독액을 뿜는 녀석이라 상대하는 것이 꽤 까다로웠지만 못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독성 슬라임의 이름은 플러버라고 지어줬다.
임무와 관련된 몬스터였기에 플러버는 바로 아틀란티스 무리로 합류했다.
“휴우, 좋아. 이제 이 냄새나는 곳을 뜰 수 있겠다.”
편두통에 머리를 감싸는 진수.
이제는 코 감각이 얼얼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얼레? 저게 또 있네. 어스웜 마석도 꽤 비싸니까 잡아볼까.”
막계천에서 떠나려는 그의 앞에 살덩이 몬스터가 나타났다.
이번에 나타난 놈은 아까 봤던 녀석보다 색깔이 거무죽죽한 것 같기도 했다.
생긴 것이 워낙 이상해서 잡는 게 꺼려졌지만 어스웜은 사막 지역에 주로 나타나는 몬스터.
한국에서 보기 힘든 종류라 마석 가격이 상당했다.
‘집 사느라 빚까지 졌으니까 또 빡세게 벌어야지.’
진수는 슬레지해머를 그러쥐었다.
-변종 오크 [L-21호] 차원 전이 성공.
마석을 채취하기 위해 해치운 몬스터는 예상과는 다르게 사체가 사라지며 차원 전이가 되었다.
이번엔 오크였다.
“아니 세상에 저렇게 생긴 오크가 어디 있냐고! 앞에 변종만 붙이면 다 되는 거야?”
진수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투덜댔다.
하지만 이미 몬스터는 사라졌고 되돌릴 수는 없는 일.
그저 앞으로 보상이나 잘 보내왔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L-21호]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F-3호]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5
그의 바람과는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변종 몬스터들은 명을 달리했다.
그나마 사망하면서라도 보상을 줬으니 전혀 가치가 없는 죽음은 아니었다.
‘그래. 그런 이상한 몬스터를 잡았는데도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경우는 나밖에 없지.’
진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올라간 능력치를 보며 마음을 추슬렀다.
두 녀석의 덕분에 그래도 능력치 총합 100을 향해 가고 있었다.
“좋아. 다음은 거대 슬라임을 잡으러 가자.”
악취로부터 도망치듯 막계천에서 벗어난 그는 서울랜드로 향했다.
서울대공원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사람이 찾지 않는 공간이 된 곳.
호수가라서 물과 관련된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필드가 되었다.
그리고 거대 슬라임은 서울랜드의 필드 보스 몬스터였다.
“여기서 꽤 가까워서 다행이야.”
막계천을 따라 쭉 내려가면 서울랜드가 나온다.
원래 소문의 몬스터가 슬라임이라면 마지막으로 전이시킬 대상으로 생각했던 녀석이었다.
혹시나 했던 것이긴 하지만 슬라임은커녕 어스웜과 오크였기에 새로운 슬라임을 물색해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말이다.
진수는 아쉬운 마음은 그만 털어버리고 서울랜드를 향해 움직였다.
높은 능력치 덕분에 강화된 신체로 달리니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휘익! 퍽!
-돌거북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돌거북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서울랜드가 있는 호수에 당도하자마자 새로운 몬스터가 그를 반겼다.
위협이 있으면 돌로 된 등껍질 속으로 숨는 돌거북.
하지만 진수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그의 손에서 쏘아져 나가는 [강철 거미줄]은 등껍질의 구멍 속을 헤집어놓기에 충분히 얇았으니까.
“시작부터 수확이 괜찮네. 여기는 왠지 감이 좋아.”
진수는 바로 새로운 몬스터를 만나서 기분이 좋아졌다.
차원 전이가 된 이들은 언젠가 그에게 보상을 줄 테니까.
돌거북은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을 받고 상태창에 자리를 잡았다.
-쿠웅...! 쿠르릉...!
작명을 마치고 서울랜드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는데 상당히 큰 전투 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쪽에 그렇게 센 몬스터가 흔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진수는 굉음이 들리는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이 정도 소란을 일으킬 몬스터라면 필드 보스인 거대 슬라임일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에 선객이 있다면 눈앞에서 목표를 놓치게 될 수도 있는 상황.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쾅!
-파악!
“이게 뭔 일이래...?”
서울랜드의 놀이기구들이 두 괴물의 싸움에 뭉개지고 있었다.
거대한 크기의 산성액 덩어리.
그리고 덩치는 그리 크지 않지만 위협적인 가시가 돋아 있는 줄무늬 색깔 슬라임의 싸움이었다.
이 지역의 필드 보스인 거대 슬라임은 그 크기가 대형트럭만 했다.
반면에 가시가 달린 슬라임은 성인 남성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는데 기세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푸욱!
같은 슬라임이어서 그런지 거대 슬라임의 산성 몸체에 별 피해를 입지 않는다.
녀석은 가시를 앞세워 거대 슬라임을 압박했고, 거대 슬라임은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마냥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따금씩 가시 슬라임의 위로 거대한 몸집을 내려찍었고 거대 슬라임 자신도 피해를 입었지만 확실히 상대도 타격을 입는 듯했다.
두 녀석의 싸움은 꽤나 길게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타이밍을 잘 노려봐야지. 흐흐흐.’
진수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쾌재를 불렀다.
거대 슬라임은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녀석이다.
보통의 슬라임이야 포세이돈을 잡을 때처럼 돌을 던지거나 해서 핵을 드러나게 하면 되는데, 거대 슬라임은 크기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랜드에 있는 녀석은 유독 덩치가 큰 편이었다.
만약 진수가 직접 상대했다면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근데 몬스터끼리 서로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이건 완전 꿀찬스지! 게다가 상대도 슬라임이라니! 오늘 운빨이 장난 아니구나! 설마 저것도 무슨 변종 뭐시기 하면서 슬라임이 아닌 건 아니겠지.’
어부지리를 노릴 생각에 그의 광대뼈는 하늘로 승천할 듯 튀어나왔다.
곧 미사일처럼 날아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쿠르르르...!
가시 슬라임이 가시 여러 개를 한 곳에 모아 거대 슬라임에게 깊게 찔렀다.
그러자 땅이 울릴 정도의 진동음을 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순간 드러나는 거대 슬라임의 핵.
진수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허리춤에 매어두었던 도끼를 즉시 던진다.
도끼가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 정확히 녀석의 핵을 맞췄다.
-거대 슬라임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거대 슬라임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나이스!”
진수는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쿵! 쿵! 쿵!
하지만 거대 슬라임을 처치한 기쁨을 만끽하는 건 잠시 미뤄둬야 했다.
자신이 상대하던 필드 보스 몬스터가 사라지자 가시 슬라임이 분노하는 듯 제자리에서 쿵쿵 뛰었기 때문이다.
“흐흐흐. 기다려. 너도 곧 친구 곁으로 보내줄게.”
제법 사나운 모양새였지만 진수의 눈에는 신선한 물고기가 파닥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날로 먹는 게 최고야!’
마지막 말
상성이 좋지 않았다.
가시 슬라임과 진수와의 상성이.
거대 슬라임에게 강세를 보이던 녀석은 진수에게 호되게 얻어맞고 있는 중이다.
진수는 뾰족한 가시들을 한 데 모아서 머리채 잡듯 잡았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 세차게 망치질.
산성 몸체를 지닌 거대 슬라임이나 보통의 슬라임한테는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퍼억!
서울랜드의 필드 보스 자리를 두고 싸웠던 몬스터 치고는 수월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가시 슬라임 [쿠파] 차원 전이 성공.
-[쿠파]가 [아틀란티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얼레? 이 주변엔 이름 가진 몬스터가 좀 있네. 이름은 거대 슬라임한테나 지어줘야겠다.’
가시 슬라임은 진수가 작명을 하지도 않았는데 쿠파라는 이름으로 차원 전이가 되었다.
진수는 거대 슬라임의 이름을 물탱크로 정했다.
모든 슬라임의 이름이 정해지니 그의 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슬라임 [포세이돈]의 특성 중 하나
-[융합]의 효과로 [절연체]와 [스톤스킨]과 [리퀴드바디]가 합쳐집니다.
-[유연체질] 특성이 생겼습니다.
“유연체질...?”
무려 세 가지 특성이 합쳐져 새로운 특성이 나타났다.
진수는 특성의 이름으로 능력을 유추해봤다.
먼저 가볍게 스트레칭 동작을 해보니 평소에는 당치도 않던 가동범위까지 관절이 움직였다.
체조선수들의 수준도 아득히 넘는 정도.
‘이거 무슨 고무로 된 인간이라도 된 것 같네.’
재밌다는 듯 웃던 그는 제자리에서 몇 차례 뛰어봤다.
관절과 근육에 묘한 탄성이 느껴졌다.
평소보다 훨씬 폭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진짜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력질주부터 멀리뛰기, 높이뛰기 따위의 실험을 해본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탄력적인 몸이 되었다.
물론 만화 같은 데에 나오는 것처럼 주욱 늘어난다던지 뼈가 꺾이는 등의 움직임은 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관절과 근육은 고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탄성과 유연성이 생겼다.
‘여기에 기존 [절연체]나 [스톤 스킨]의 방어력도 이어졌으면 진짜 장난 아니겠는데...?’
물론 방어력에 대한 실험은 미처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원래 갖고 있던 특성들의 방어력 수준을 파악하고 있지 않았고 스스로 자해를 하기는 좀 거리낌이 생겼던 것이다.
‘원래 맞으면서 싸우는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만약에 방어력이 조금 줄어드는 대신 이런 신체능력이 생겼다고 해도 손해가 아니지.’
어느 정도 [유연체질]에 대해서 파악을 한 진수는 우선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의 목표를 달성하기도 했고 마석정제주사를 맞아야 할 시기이기도 했다.
‘이번엔 좀 여유롭게 예약 하고 가서 박종대 그 놈 안 마주치게 다녀와야지.’
* * *
-팅!
주사바늘이 부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진수도, 의사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헌터에게 놓는 주사바늘은 던전에서 나오는 금속을 사용하기에 상당히 단단했다.
“혹시 최근에 내구 능력치가 많이 올랐습니까?”
의사가 진수에게 물었다.
지난 번 주사를 맞을 때보다 내구 능력치가 좀 오르긴 했지만 비약적인 성장이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짐작 가는 것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유연체질]에 [스톤 스킨]의 방어 능력 그 이상의 강화효과가 포함됐구나!’
마석정제주사를 맞고 나오는 진수의 얼굴이 들어갈 때보다 훨씬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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