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3
특수임무를 받고 나니 진수의 머릿속으로 특정 방향을 가리키는 감각이 느껴졌다.
평소에 느끼는 오감과는 별개로 한 위치를 향해 영혼을 당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력 능력치가 5를 넘었을 때 체험했던 육감과도 비슷했다.
이것이 특수임무 내용이 적혀있던 안내의 정체였다.
진수는 이 특이한 감각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팔 래빗 [새초미]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내구 +1
-코볼트 [돈다발]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3
이동하는 중에도 전이자들이 보상을 보내온다.
전이시킨 몬스터가 이제 벌써 12 마리나 되다보니 진수의 성장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진짜 사기급 특성이라니까. [차원 전이]를 잘 활용하면 우리나라 최상위 헌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야.’
진수는 빠르게 성장하는 자신의 상황을 보며 감탄했다.
숨만 쉬어도 강해진다는 게 이런 것이리라.
소위 말하는 재능충이 된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물론 국내의 정상에 있는 헌터들은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A급 헌터들만 해도 국가적 단위의 재난을 막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런 성장세라면 진수 자신도 언젠간 그런 수준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상급 헌터들이 괴물이라고 하지만 내 상태창에도 수많은 괴물들이 있으니까!’
보상도 받고 마주치는 오크들도 처치하며 움직이다 보니 앞쪽에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문.
던전이었다.
‘아... 저 던전에 들어가라는 건가...?’
특수임무의 안내대로라면 저들이 던전에 들어갈 때 같이 입장을 해야 했다.
‘이제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진수는 투명화 두건을 만지작거렸다.
한 차례 직접 사용해보니 아이템을 사용한 투명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투명화를 한 상태에서 물리적인 접촉이 생기면 그 충격량에 따라서 마력 소비가 더 커진다.
그래서 투명인간처럼 숨어서 싸우기엔 적합하지 않은 물건이다.
두건에 새겨진 마력회로가 붉게 노출되어 완전 투명화가 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몰래 숨어드는 데엔 이만한 물건이 없지. 그렇게 내키지는 않지만... 일단 같이 들어가서 상황을 지켜보자.’
진수는 들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던전 앞의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눈치로 봐서 그들이 공략조인 듯했다.
아주 멀리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그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헌터 등급이 높은 것 같지는 않았다.
‘요즘엔 일당 헌터를 나중에 부르는 게 트렌드인가? 여기도 공략조가 우선 들어가려는 것 같네.’
던전으로 금방이라도 들어갈 것 같은 이들.
진수는 두건을 우선 머리에 썼다.
-쿠르릉!
던전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굉음과 동시에 진수는 투명화를 사용하고 내달렸다.
공략조 헌터들이 한 명씩 던전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다리에 더욱 힘을 주는 진수.
저들은 이미 던전 돌입에 익숙한지 빠르게 안으로 사라졌다.
-쿠르릉 쿵!
마지막 사람이 들어가고 던전 문이 다시 단단히 닫혔다.
“자, 빠르게 공략을 해볼까요? 길이 좀 복잡하게 꼬여있는 던전인 거 같으니까 후방 경계하는 분이 신경을 많이 써주셔야겠어요. 이동하죠.”
공략조의 리더로 보이는 여성이 던전의 초입을 살피고는 간단히 지시를 한 뒤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방을 충분히 경계하며 나아가는 헌터들.
특히 후방 경계를 하는 헌터는 매서운 눈빛으로 던전 문 쪽을 유심 깊게 살폈다.
“... 잘못 봤나?”
그는 던전에 들어오며 붉은색 무언가가 빠르게 접근하는 걸 본 것 같아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이내 신경을 끊고 앞서가는 동료들의 뒤로 따라붙었다.
‘휴우, 조금만 더 늦어졌으면 걸릴 뻔 했네.’
몇 초 뒤, 한 구석 어둠 속에서 흐릿한 형체가 나타났다.
투명화를 사용했던 진수였다.
달리느라 바닥을 강하게 딛는 것도 투명화의 마력 소비를 늘려 지속시간을 줄인다는 걸 몰랐다.
덕분에 그는 투명화가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슴을 졸이며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좋아, 우선은 들어온 김에 잡몹들 한두 마리 정도는 몰래 잡아도 되겠지...?”
특수임무의 안내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은 사실 명백했다.
그리고 진수 자신도 그쪽으로 가면 아마 던전의 보스 몬스터와 조우하게 되리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무작정 남의 던전 보스를 도둑질하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던전에서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가장 값어치가 있는 게 바로 보스 몬스터였으니까.
‘보스몹은 우선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고, 던전에서 전이자 목록이나 좀 채워보자.’
진수는 공략조 헌터들이 향한 길이 아닌 샛길로 움직였다.
다행히 던전은 한 길만 나있는 구조가 아니었기에 그가 몰래 활동하기에 충분했다.
-놀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놀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트윈 헤드 하이에나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트윈 헤드 하이에나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던전에서는 놀과 트윈 헤드 하이에나가 등장했다.
둘 다 한국에는 서식 필드가 없는 놈들이었기에 진수는 반가운 마음에 한 마리씩 처치한 뒤에 투명화를 사용해 몸을 피했다.
사체도 남지 않았고, 나머지 몬스터들도 그대로 뒀으니 공략조 외의 누군가가 있다고 들킬 염려는 없었다.
‘놀은 쉔지, 트윈 헤드 하이에나는 초갈이라고 하자.’
두 몬스터의 이름을 외형과 특징에 맞게 적당히 지어주었다.
-코볼트 소서러 [제우스]와 오크 워리어 [고블린]과 놀 [쉔지]가 무리를 이룹니다.
-[제우스] [고블린] [쉔지]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쉔지가 마굴로 차원 전이 되더니 마굴에 갔던 녀석들 셋이 모두 모인 듯했다.
‘제우스면 역시 올림포스지.’
진수는 제우스가 있는 무리의 이름을 올림포스라고 지었다.
다만 조금 걱정되는 것은 제우스는 코볼트 소서러, 이름이 고블린인 녀석은 오크 워리어라는 점이었다.
‘잘못하면 제우스가 고블린한테 두들겨 맞는 상황이 되겠는데....’
던전 보스 몬스터 근처에서 잠시 전이자 목록을 보던 진수는 다수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공략조 헌터들이었다.
몬스터들을 모두 처치하고 이제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러 오는 모양이었다.
‘놀이랑 트윈 헤드 하이에나 여럿을 무난히 잡을 정도면 큰 문제없이 보스도 해치울 수 있겠어.’
진수는 조금 아쉬운 마음은 들었지만 그들이 해결 가능하다면 굳이 보스 몬스터를 훔쳐 잡지는 않으려 했다.
그가 먼저 와서 확인해보니 보스 몬스터는 놀 치곤 꽤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알비노 놀이었다.
얼룩 하나 없는 흰 털이 온몸을 덮고 있는 모습은 얼핏 보면 늑대인간 같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본질은 놀.
던전 공략에 나선 헌터들이 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지켜보자.’
그는 몸을 숨기고 공략조 사람들이 알비노 놀과 전투를 벌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탱커와 딜러, 힐러, 서포터의 균형이 잘 맞는 구성이었다.
메인 탱커가 커다란 방패를 앞세우며 보스 몬스터의 공격을 유도하며 싸움이 시작됐다.
-쾅!
폭탄이라도 터진 듯 커다란 소리가 탱커의 방패로부터 퍼져 나왔다.
알비노 놀의 돌진이 만들어낸 굉음이었다.
“와악!”
“끼엑!”
놈이 공격하자 크게 고함을 치는 탱커.
그 고함에 공격을 유도하는 힘이 담겼는지 보스 몬스터가 마주 소리를 지르고는 연달아 손톱을 휘둘렀다.
탱커가 어그로를 끄는 사이 서포터가 딜러와 탱커에게 버프를 건다.
뒤쪽에서는 화살과 마법으로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꾸르륵!”
공격에 적중 당하자 분한 듯 울음소리를 내는 놀.
하지만 탱커가 집중하여 가로막아 딜러를 공격할 수가 없었다.
-펑!
-쉬익! 팍!
딜러의 원거리 공격과 탱커의 방패 공격으로 일방적으로 밀리던 보스 몬스터.
놈은 잠시 뒤로 자리를 피하더니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저, 저거 왜 저러지?”
“조심하세요! 보스몹 마력이 들끓고 있어요!”
마치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떨어대던 녀석은 이내 눈동자가 사라지고 눈까지도 온통 희게 변했다.
‘왠지 좀 추워진 거 같은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진수는 몸이 으슬으슬하고 공기가 싸늘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쩌저적!
보스 몬스터의 떨림이 멈추는 순간.
녀석을 중심으로 바닥에 빠르게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어어...!”
공략조 파티원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발목까지 얼음에 묶이게 되었다.
오직 후방에 있던 활잡이 헌터 한 명만이 얼음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한 명은 빠져나와서 다행이네. 딜러니까 얼음이 녹을 때까지 어그로를 잘 끌어주면.... 어? 왜 가만히 있지?’
활을 사용하던 헌터는 알비노 놀이 다른 공략조원들에게 다가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 장면을 관찰하는 것처럼.
보스 몬스터는 기동력이 사라진 헌터들의 사이로 날뛰며 그들을 유린했다.
“으윽!”
“컥!”
이어지는 공격에 하나둘씩 바닥에 몸을 누이는 헌터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발목이 얼어붙지 않은 헌터는 녀석이 공격하지 않는다는 부분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진수가 나서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갈등하고 있는데, 녀석이 힐러의 복부에 손톱을 깊게 박아 넣었다.
이어서 완전히 목숨을 앗아가려는 듯 손을 치켜드는 순간 후방에 있던 헌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보스 몬스터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자 신기하게도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마치 리모콘으로 조종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다 기절했네. 이 정도면 충분히 됐겠지.”
영문 모를 혼잣말을 한 그는 알비노 놀을 자신의 앞으로 불러들였다.
“이제 빠져나가기만 하면.... 컥!”
보스 몬스터를 데리고 가려던 그를 진수가 습격했다.
투명화를 하고 있었기에 단방에 턱을 후려쳐 기절시킬 수 있었다.
-휘익! 퍽!
그리고 연달아 도끼를 휘둘러 보스 몬스터의 머리를 날린다.
놈이 정신을 차리면 번거로워질 수 있었기에 사내를 기절시킴과 동시에 공격한 것이다.
-알비노 놀 [백설공주] 차원 전이 성공.
보스 몬스터가 사라지며 진수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난다.
‘이런 놈한테 백설공주라니 작명센스가 어떻게 된 거야...?’
진수가 자신의 작명센스는 돌아보지 못하고 속으로 경악했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10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전이자에게 [지식 랜덤 박스] 전달
그리고 연이어 임무 달성 메시지와 함께 랜덤 박스가 열리는 이펙트가 나타났다.
-[지식 랜덤 박스] 사용으로 지식 [고대 드워프 언어]를 얻었습니다.
-상품을 전달할 전이자를 선택하십시오.
‘그 괴팍한 두더지 같은 놈들한테 고대 언어가 있다고...?’
진수는 [지식 랜덤 박스]에서 나온 결과물을 보며 깜짝 놀랐다.
물론 몬스터들도 제들끼리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미 고블린의 언어를 얻어서 [도깨비불]을 습득한 적도 있었고.
‘근데 앞에 고대라는 단어가 붙으면 왠지 뭔가 더 있어 보이잖아.’
진수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고대 드워프 언어]를 받을 전이자를 선택했다.
당연하게도 그 대상은 헤파이스토스였다.
하지만 이 뻔한 선택은 뻔하지 않은 결과를 내었다.
-드워프 [헤파이스토스]가 잊힌 드워프의 유물을 발견했습니다.
-[헤파이스토스]가 차원의 축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바라는 것
-드워프 [헤파이스토스]의 업적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30
-차원의 축 조각 발견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5, [헤파이스토스]의 특성 중 하나
-전이자의 첫 업적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무작위 특성 하나 강화
-전이자의 첫 차원의 축 조각 발견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마력 +3, 체력 +3
“허억!”
진수는 갑자기 몰아친 미증유의 힘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골격이 재구성이라도 되는 듯 온몸에서 뿌드득거리는 소리가 나고 기운이 넘쳐났다.
그렇게 급성장이 몇 분이나 지속됐을까?
몸의 변화가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아...!”
온몸에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충분히 만끽한 진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제야 떠오른 수많은 안내 메시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눈에 업적이나 차원의 축 조각 같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보였다.
저것들이 뭘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었다.
‘[차원 전이]가 내게, 그리고 전이자들한테 바라는 것이라는 점이지.’
지금까지의 보상들보다 훨씬 뛰어난 보상을 준다.
다시 말해 [차원 전이]의 요구를 정확히 들어준 답례인 것이다.
‘[고대 드워프 언어]를 다른 몬스터한테 줬으면 얻지 못했겠지. 역시 솔잎은 송충이한테 줘야 돼!’
진수는 어딘가 앞뒤가 다른 소리를 하며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칭찬했다.
[김진수]
힘:12 민첩:10 체력:14 내구:8 마력:10
특성 : [차원 전이] [절연체] [중급 재생력] [융합] [상급 전사의 신체] [울프헤딘] [특급 공구 숙련] [중급 후각] [도구 일체화]
기술 : [도깨비불]
골드 : 48
[R.I.P.] - 사망자 수 : 1
[고돌] - 현재 상황 : 검투 시합 승리 보상 받는 중
[포세이돈] - 현재 상황 : 요정의 호수에서 휴식 중
[올림포스] - 거주 영역 : 마굴
[제우스] [고블린] [쉔지]
[새초미 무리] 거주 영역 : 녹색 숲
[새초미] [모르모트]
[헤파이스토스] - 현재 상황 : 불의 산 동굴에서 잊힌 드워프의 유물 발견
[돈다발] - 현재 상황 : 사르 평야에서 휴식 중
[아라크네] - 현재 상황 : 숲 전갈과 대치 중
[간장막야] 거주 영역 : 죽음의 산맥
[간장] [막야]
[아레스] - 현재 상황 : 사르 평야로 차원 전이
[초갈] - 현재 상황 : 사르 평야로 차원 전이
[백설공주] - 수정 산맥으로 차원 전이
-임무 : 없음
[상점]
진수는 스스로 엄청난 성장을 느낄 수 있었지만 상태창을 열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능력치의 총합은 이제 54.
[하급 전사의 신체]는 [상급 전사의 신체]로 강화되었다.
여기에 [도구 일체화] 특성까지.
D급 헌터가 된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조만간 C급 헌터 진급도 노려봄직한 수준이다.
서로 허세를 부리며 자랑하기 바쁜 헌터넷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장 속도였다.
‘골드가 무려 48씩이나...! 상점에서 꽤 그럴듯한 기술을 하나 사줄 수도 있는 돈이네.’
상태창을 보던 진수는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특수임무와 임무, 여기에 [헤파이스토스]의 활약까지 행운이 연달아 쏟아졌다.
그의 지금 심정은 로또 1등에 당첨된 것보다 기뻤다.
“흐흐, 이렇게 행운이 따라올 때 다음 임무를 받아볼까?”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그럼!”
-임무 : [헤파이스토스]가 잊힌 드워프의 유물을 재건하도록 돕기 !
-보상 : [헤파이스토스]에게 물건 제작 혹은 강화 요청
새로운 임무를 확인한 진수는 왜 유물 발견 보상이 30 골드였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상점에서 아이템 전달의 가격이 30 골드다.
무언가를 헤파이스토스에게 전달하여 잊힌 드워프의 유물이라는 것을 재건하게 도우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게 아이템이었으면 하는 뜻이겠지. 근데 이 느낌표는 뭐야?’
진수는 임무 내용 끝에 있는 느낌표를 발견했다.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요소다.
-잊힌 드워프의 유물은 마력공학의 산물입니다. 마력공학이 적용된 물건을 [헤파이스토스]에게 전달하면 스스로 분석하여 유물 재건에 활용할 것입니다. 전달된 물건의 수준에 따라 유물 재건 속도가 달라집니다.
그가 느낌표를 터치하자 이러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임무 달성 방법이 직관적이지 못하다보니 가이드를 제공해준 듯했다.
‘근데 대체 이런 안내 메시지 같은 건 누가 보내는 거야?’
지금까지 성장하는 맛에 취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임무라거나, 여러 안내 메시지들.
은근히 친절한 시스템.
분명 일반적인 특성이 가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임무, 특수임무는 내 상황에 딱 딱 알맞게 주는 느낌이야.’
새초미를 전이시키고 나니 그 부하들을 같이 보내라고 하고, 간장과 막야를 전이시킬 때도 그랬다.
이번 특수임무도 진수가 두건을 얻으며 던전에 침투할 수 있게 된 데다 특이한 보스 몬스터가 있는 아주 적절한 상황.
‘우연이 아니었다고 해도 어쨌든 나한테는 아주 좋은 일이긴 하지. 그냥 어쩌다 아다리가 맞았을 수도 있고.’
현재 상황에 적절한 임무가 나오는 게 그에겐 전혀 나쁠 게 없었다.
전이자들의 성장 보상만 기다리는 것보단 임무를 통해 보상을 받거나 전이자를 밀어주는 게 훨씬 얻는 게 많았으니까.
어차피 헌터 생활을 한다면 몬스터의 사냥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처음 잡아보는 몬스터 한 마리가 사라진다는 것뿐 그 외에 진수가 손해 보는 것은 없는 것이다.
“후, 잡생각은 이 정도로 하고, 이놈을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해보자.”
진수는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활을 사용하는 헌터를 보았다.
알비노 놀을 조종하는 듯 보였던 인물.
그리고 다른 헌터들을 이용해서 무언가 테스트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악질적인 놈들은 콩밥을 좀 먹어야 되는데....’
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헌터범죄전담기관에 넘기는 것이었다.
아주 칼 같은 처벌로 이름이 높은 기관이었으니 데려다가 조사를 해서 처분을 내릴 것이다.
‘문제는 내가 여기에 들어와 있었던 게 해명이 안 된다는 거지.’
던전을 스틸하는 것은 헌터 사회에서 금기시 되는 일이었다.
법적으로도 어떻게 엮으면 걸려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헌터넷에서 본 것 같았다.
정의구현을 하려다가 진수 자신까지 콩밥 맛을 볼 수도 있는 상황.
“그렇다고 그냥 보내면 또 애꿎은 헌터들 이용해먹을 거고.... 내가 알아서 수사할 능력은 안 되고.... 개인적으로 어디 높은 분이라도 알면 비밀리에 넘길 텐데... 아!”
활쟁이 헌터의 처리를 고민하던 진수의 머리에 문뜩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지난번 보팔 래빗을 잡으러 갔을 때 악질 헌터들을 잡아갔던 수사관, 박철준.
“내가~ 그 사람 명함을~ 어디에~ 두었더라~?”
골머리 앓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떠오른 진수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래서 인맥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야. 흐흐흐.’
박철준의 명함을 찾은 그는 다음으로 바닥에 쓰러진 헌터의 몸을 수색했다.
가장 먼저 라이센스를 확인했다.
“최유권씨. 인생 똑바로 사세요~ 콩밥 맛있게 드시고.”
그의 이름은 최유권.
D급 헌터였다.
진수는 이어서 최유권의 핸드폰을 꺼냈다.
“어휴, 지문 잠금 손가락은 엄지손가락이 국룰이지.”
-삑
기절해있는 최유권의 엄지를 핸드폰에 가져다대자 잠금이 해제되었다.
진수는 전화기로 박철준 수사관에게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자신은 익명의 제보자라는 것.
몬스터를 이용하여 무언가 범죄를 획책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이러한 정황을 파악하여 뒤를 쫓아왔더니 D급 헌터 최유권이라는 자가 보스 몬스터로 동료들을 공격하게 하고 몬스터를 조종했다는 것.
오크 서식 필드에 있는 던전 문 앞에다가 최유권을 포박하여 놓고 가겠다는 것까지.
마지막으로 배후에 존재하는 단체까지 꼭 찾아내서 뿌리를 뽑아달라는 부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뭐, 배후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에 MSG를 좀 쳐줘야 더 열심히 수사를 하겠지.”
진수는 자신도 모르게 정곡을 찔렀다는 사실도 모른 채 박철준에게 메시지를 발송했다.
‘이렇게 하면 내 흔적도 안 남고 범죄자도 소탕하고 일석이조지.’
이어 최유권을 단단히 묶은 뒤에 던전을 빠져나왔다.
아마도 처음부터 보스 몬스터로 공략조 사람들을 처리하려고 했는지 던전 앞에는 일당 헌터들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거지? 기술 같은 게 있나.’
잠시 묶여있는 최유권을 노려보던 그는 아주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배기가스 냄새를 맡았다.
벌써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오고 있는 것이다.
몬스터 조종의 비밀이 궁금하긴 하지만 어차피 안다고 해서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자리를 떠났다.
진수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프로드용 차량 한 대가 나타났다.
바퀴가 커다랗고 얼핏 보면 군용 차량처럼 보이기도 하는 아주 튼튼한 차였다.
-턱
차에서 내린 것은 피곤에 절어 보이는 표정의 수사관, 박철준이었다.
그는 던전 문 앞에 포박되어 있는 최유권을 발견했다.
“제보 내용대로 던전 앞에 용의자가 있다. 아마 내부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을 테니 의무조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그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흠, 바로 뒤에 쫓아 들어갔는데 발견을 못 했다라.... 요즘 오크 필드에 도는 소문이랑도 관련이 있는 건가?”
던전 주변의 흔적들을 살피는 박철준.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은 진수가 떠난 방향을 향했다.
“몬스터 스틸이나 헌터 범죄랑은 크게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는 마치 한참 떨어져 서울로 돌아가고 있는 진수의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말했다.
“일단 물증은 없으니까.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면 언젠가 다시 보게 되겠지.”
박철준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마른세수를 한 차례 했다.
눈이 피곤한지 눈꺼풀 위로 마사지까지 한 뒤에 한 손으로 최유권을 들어 차량 뒷좌석에 던져 넣었다.
* * *
마석정제주사를 맞을 시기가 되어 서울의 병원을 찾은 진수.
역시나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미처 예약을 하지 못했다.
‘지난번처럼 또 재수 없는 얼굴은 안 마주쳤으면 좋겠네.’
같은 고아원 출신인 박종대와 마석정제주사를 맞는 주기가 같다 보니 병원에서 꽤나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박종대가 진수를 깔보는 언행을 했기에 그로서는 유쾌한 만남이 아니었다.
“어이, 하루살이.”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다.
느릿하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기 전부터 진한 나무향의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 진짜. 그냥 좀 지나가는 법이 없네. 너 나 좋아하냐?”
항상 대화를 하면 좋은 소리를 하는 법이 없는 녀석이 진수를 발견하면 꼭 말을 걸어왔다.
진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박종대는 그런 진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너 대체 요즘 뭐하고 돌아다니는 거냐?”
만남
“뭐?”
진수는 박종대의 말에 반문했다.
그의 말대로 요즘 꽤나 많은 일들을 하고 다녔다.
그중에는 남들에게 알려지길 바라지 않았던 것들도 있는 게 사실.
혹시라도 뭘 알고 있는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보니까 요즘 하루살이 짓도 안 하는 거 같던데.”
그가 말하는 하루살이 짓은 일당 헌터 활동이었다.
진수가 일당 헌터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얕잡아 부르고 있었다.
“일당 헌터들 없으면 공략조가 일일이 던전 수습해야 하는 건 생각 못하고 그따위로 떠들지? 그리고 남이사 뭘 하고 다니든 무슨 상관이야?”
“상관은 없지. 그냥 헛짓거리 하고 다니다가 나랑 마주치지 않게 하루살이 인생으로 처박혀 살았으면 해서.”
“엿이나 먹어라.”
진수는 그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짓을 표정의 변화 없이 쳐다보던 박종대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좀 강해졌다고 헌터대전 같은 데에 얼씬거릴 생각은 하지도 말고. 거기서 나 만나면 뒈지는 줄 알아라.”
“지랄.”
진수는 남아있던 손의 중지도 이어서 치켜들었다.
하려던 말을 마친 박종대는 더 이상 용건이 없는지 몸을 돌려 병원을 떠났다.
‘좀 강해졌다고라....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나한테 감시라도 붙여놨나....’
그는 박종대의 말을 잠시 곱씹어봤다.
하지만 녀석이 그 자신을 감시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같은 헌터라고 해도 지향점이 달랐던 것이다.
진수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에 주력을 하는 헌터라면 박종대는 방금 이야기한 헌터대전 등과 같은 스포츠, 연예 쪽으로 활동을 하는 헌터였다.
박종대는 대중 앞에서 끼를 발산하는 데에 꽤나 재능이 있는지 상당한 팬층을 보유한 편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몬스터 사냥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헌터가 몬스터 사냥을 해야지. 쯧.”
진수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병원 안내에 따라 마석정제주사를 맞으러 들어갔다.
“어휴, 죽겠네. 이놈의 후유증은 익숙해지질 않아.”
온몸을 도는 화끈하고 싸늘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떠는 진수.
병원 로비에 앉아 잠시 괴로움이 가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 이번 영상은 요즘 아주 뜨거운 선수죠? 박종대 선수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모아봤습니다!
그가 쉬고 있는 병원 로비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헌터대전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헌터대전은 일종의 스포츠로, 헌터들끼리 맞붙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일반인들이 치고받는 이종격투기보다 훨씬 볼거리가 화려하기 때문에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박종대는 꾸준히 이런 헌터 대전 스포츠의 문을 두드려왔고, 최근 1~2년 사이에 떠오르는 스타로 부상했다.
타고난 쇼맨십, 뛰어난 경기력, 눈에 띄는 외모와 수준급의 마이크 워크까지.
이러한 인기를 등에 업고 이제는 예능의 문턱까지 넘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놈이 나는 왜 자꾸 걸고넘어지는 거야?’
마주칠 때마다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이 떠오른 진수는 인상을 쓰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화면에서는 박종대의 활약들을 모아서 편집한 영상이 나왔다.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그의 시그니처 기술인 [주먹난타].
아주 직관적인 기술명으로, 굉장한 속도와 강한 힘으로 주먹을 연달아 날리는 기술이다.
그의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몸과 격렬한 움직임이 합쳐지면서 근육이 엄청나게 자기주장을 하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우와아아아!
[주먹난타]가 펼쳐질 때마다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지금의 박종대가 있게 해준 기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나도 뭔가 제대로 된 주력 무기가 필요한데....’
그 장면을 보던 진수는 고민이 깊어졌다.
박종대처럼 뭔가 인기를 얻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었다.
지금의 도끼와 송곳을 활용한 전투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딱 그 수준이다.
나쁘지 않은 정도.
오크를 넘어서 이제는 점점 거대한 몬스터와도 싸워야 된다.
그런데 중, 대형급 몬스터에게 이쑤시개나 다름이 없는 송곳으로 대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충분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 유일한 기술인 [도깨비불]을 활용할 수 있는 무기를 찾아야 돼.’
[도깨비불]은 타격이 한 번 성공할 때마다 그 효과가 중첩되는 특징이 있다.
빠르게 여러 번 공격하는 방식과 시너지가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가진 특성은 공구 숙련이라는 말이지....’
검이나 창 같은 무기 숙련 특성이었다면 송곳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강한 무기를 빠르게 다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공구라는 것은 일단 전투용이 아니다.
제작이나 공사 등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를 무기로 사용하려니 제한사항이 많았다.
‘도끼처럼 무기면서 공구인 게 또 없을까? 대신 좀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놈으로다가....’
진수가 범죄 헌터 두목에게 빼앗은 도끼는 그 포지션이 굉장히 모호했다.
연타를 날리기에는 꽤나 묵직했고, 큰 타격을 입히기에는 그 크기가 작다.
보조 무기로나 사용하는 것이 적당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삑
-하하하하!
-삑
-헌터가 없어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삑
-쿵! Help me! Please!
진수가 고민에 빠져있는 사이, 헌터대전 재방송이 끝난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볼만한 채널이 없는지 화면을 돌렸다.
그러다 멈춘 채널, 오래된 영화를 틀어주는 채널이었다.
화면에는 한 여성이 부상을 입은 채로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장면이 나왔다.
전형적인 미국 슬래셔 영화였다.
-Aaah!
도망가던 여성이 결국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 도망칠 수 없는 위기에 빠진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나타나는 커다란 덩치의 살인마.
그의 손에는 피와 살점이 묻어있는 흉기가 들려있었다.
“그래, 저거야!”
금방이라도 금발의 미녀가 살인마에게 죽을 것 같은 상황인데 신이 난 듯 쾌재를 내지른 진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사이코패스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어흠, 흠.”
그는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석정제주사의 싸늘함보다 냉랭한 사람들의 눈총을 피해 병원을 나왔다.
그대로 지하철을 타고 동묘앞역으로 이동했다.
“자~ 내구성이 뛰어난 헌터용 티셔츠가 두 장에 십만 원! 헌터용 티셔츠 두 장에 십만 원!”
“볼 것도 없고 손에 잡히는 대로 가져가! 아무 장비든 세 개에 오만 원!”
“마석 삽니다~ 마석 사요!”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는 중고, 골동품, 군장품 따위를 팔던 시장이었지만 오늘날에는 헌터용품을 파는 시장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바닥에 중고 물품을 깔아놓고 염가에 판매하는 좌판 형태도 많이 보인다.
‘저런 데에서 산 물건에 목숨을 거는 건 할 짓이 아니지만.’
진수도 처음 일당 헌터 생활을 시작할 때는 중고 물건을 저렴하게 구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다른 일당 헌터들 중에서 몬스터의 독이 제대로 해독되지 않았거나 내구도가 거의 떨어진 중고품을 사용하다 팔다리를 잃는 것을 보고는 가급적 새 것을 사용하고 있다.
하물며 직접적인 위협과 마주하는 전투 헌터용 장비라면 더더욱 중고는 지양해야 한다.
죽 늘어선 좌판들을 뒤로하고 골목으로 들어가는 진수.
골목 안 쪽으로는 좌판도 있었지만 새 물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직접 물건을 만드는 공방이 섞여 있었다.
‘여기라면 내가 사용할 무기도, 헤파이스토스한테 보낼 아이템도 구할 수 있겠네.’
그는 시장 안에 있는 가게들을 뒤지며 자신이 원하는 물건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돌아다닌 진수.
상당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역시 쇼핑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막상 그의 손에는 아직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상점들에서 판매하고 있는 상품 중에 후보군을 메모해놓고 최종적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사려는 것이었다.
“근데 딱 마음에 드는 게 없네....”
무기로 사용할 물건을 직접 하나하나 살펴보고 휘둘러도 봤는데 이거다 싶은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만큼 돌아다녔으면 동묘 시장의 거의 모든 가게는 다 찾아봤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골라놓은 후보군들 중에서 그나마 제일 괜찮은 것으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핸드폰에 적은 메모들을 살피던 진수는 우연히 좁은 골목에 초록색 불똥이 튀는 것을 발견했다.
마석을 가공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골목에 공방이 있다는 의미.
진수는 진짜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들러보자는 생각을 하며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깡! 깡! 깡!
간판도 없는 허름한 공방.
한 중년인이 망치를 두드리고 있다.
공방 내부는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선반에 제작된 물건들이 대충 널브러져 있었다.
검부터 곡괭이, 갑옷에 안전화까지 물품의 종류도 제각각이다.
“저기, 물건 좀 봐도 될까요?”
진수가 작업을 하고 있는 중년에게 물었다.
그러자 망치질을 계속 하며 그를 힐끔 본다.
“보쇼.”
짧게 한 마디 뱉고는 이내 망치질에 열중한다.
진수는 공방의 안으로 들어갔다.
저렇게 정성을 들여서 만드는 물건들인데도 방치에 가깝게 보관되어 있었다.
“아마 살 건 없을 거요.”
진수가 선반을 살피는데 다시 퉁명스런 말이 날아왔다.
겸양의 말인지, 완벽을 기하는 장인의 정신인지, 혹은 다른 어떤 의미인지 모를 소리.
진수는 우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건을 보았다.
‘어휴, 솜씨가 장난이 아닌데?’
공방의 사내는 재료를 다루는 실력이 굉장히 뛰어난 기술자였다.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특수한 재료들을 재련하여 물건을 만들면 대개 투박한 것이 나온다.
워낙 가공하기 까다로운 것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공방에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아주 깔끔하고 매끄럽게 제작이 되어 있었다.
‘다만... 실험정신이 꽤 투철하시네.’
진수는 중년인이 살 게 없을 거라고 말했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훌륭한 솜씨로 제작된 물건들이었지만 하나같이 미완성인 채였다.
예를 들면 안전모에 안전 안경이 결합된 형태의 물건인데, 안전 안경이 불투명하다.
굉장히 강도가 좋은 재료로 되어서 눈은 확실하게 보호해주겠지만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니 쓸 수가 없는 물건인 셈이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실제 사용하기에 모호한 것들이 깔려있었기에 진수도 선뜻 구매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사장님, 저것 좀 봐도 될까요?”
그러던 차에 한 물건을 발견했다.
선반 가장 위에 놓인 묵빛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전기톱.
‘저거다! 저게 제대로 움직인다면 오늘 시장 돌아다닌 시간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던 거야.’
그가 고전 영화를 보고 영감을 얻은 무기가 바로 전기톱이었다.
공구면서 큰 공격력과 다단 히트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
진수의 필요에 정확히 들어맞는 물건이었다.
“그거, 못 써요.”
가슴이 뛰던 진수에게 중년인이 찬물을 끼얹었다.
“왜, 왜요?”
“마석을 껴서 돌아가게 만들려고 했는데, 안 돼. 그리고 느낌이 와서 만들긴 했는데 세상에 누가 전기톱을 마석 써가면서 돌려요?”
만들고 싶어서 만들어는 봤는데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만들고 나니까 현자 타임이 와서 그냥 방치를 시켜놨다는 이야기.
사실상 던전산 재료로 전기톱을 만들고 값비싼 마석까지 써서 사용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한 번 보기나 해보는 건 괜찮죠?”
“그러쇼, 그럼. 옆에 사다리 있으니까 꺼내요.”
진수는 아쉬운 마음에 구경이나 해보기로 했다.
공방 주인이 가리킨 사다리를 가져다 묵빛의 전기톱을 잡았다.
-턱
그의 손이 전기톱의 손잡이를 감싸는 순간, 익숙한 감각이 진수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도깨비불]을 익혔을 때, 투명화 두건을 썼을 때와 같다.
마치 새로운 신체 기관이 생긴 것과 같은 느낌.
-위잉, 위잉, 위이이잉!
쓸 수 없는 물건이라던 중년인의 말이 무색하게 전기톱은 진수의 손에서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공방 주인은 망치질을 하던 것도 잊어버리고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력공학
“그, 그게 어떻게...?”
공방 주인이 놀란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마석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려고 구조를 만들었지만 설계의 오류로 마석에서 마력을 뽑아내질 못했던 물건이다.
그런데 웬 방문객 손에서 원래 멀쩡했던 것처럼 가열차게 톱날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어이구.”
진수는 진수 나름대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치 자신의 근육을 이용해서 전기톱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도구 일체화] 특성의 효과인건가?’
그는 이 현상이 헤파이스토스에게 받았던 [도구 일체화]의 영향일 거라 짐작했다.
반 정도는 맞는 추측이었다.
[도구 일체화] 덕분에 전기톱과 일체화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간극을 [융합]이 연결시켜준 것이다.
-위이이잉! 우웅... 위이잉!
진수는 전기톱의 속도를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그가 느끼는 것이 맞다면 전기톱의 에너지원은 진수의 체력과 마력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그, 그런 기능을 따로 넣지는 않았는데....”
공방 주인 입장에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작동조차 되지 않던 기계가 설계한 적도 없는 속도 조절까지 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고블린 [고돌]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진수가 전기톱을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있는데 고돌이가 성장 보상을 보내왔다.
-우우우웅!
힘 능력치가 상승하자 순간적으로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더욱 강해졌다.
[도구 일체화]와 [융합]으로 일체화된 도구는 그의 능력치에도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가 성장할수록 함께 강해지는, 이를테면 성장형 무기라고 할 수 있겠다.
“사장님, 이거 아이템이에요...?”
이 놀라운 광경에 진수가 공방 주인에게 물었다.
마찬가지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던 중년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템은 아니지. 따지자면... 뭐, 마석공학? 마력공학? 그런 거라고 할 수 있겠네. 요즘 마력을 쓰는 기술들이 많이 개발되었다고 해서 나름 따라서 해본 거요.”
진수는 그의 대답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력공학이라.... 이거 어디서 들어본 단어인데?’
상태창을 열어 임무에 나타났던 팁을 다시 확인해본다.
-잊힌 드워프의 유물은 마력공학의 산물입니다. 마력공학이 적용된 물건을 [헤파이스토스]에게 전달하면 스스로 분석하여 유물 재건에 활용할 것입니다. 전달된 물건의 수준에 따라 유물 재건 속도가 달라집니다.
임무 가이드에는 정확히 마력공학이 적용된 물건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 이거 잘하면 골드도 아끼고 기똥찬 효과를 낼 수 있겠는데...?’
진수는 이번 임무를 해결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사장님, 이거 얼마에요?”
그렇지만 우선은 전기톱의 구매가 먼저다.
“그냥 재료값만 주쇼. 어차피 재활용도 안 되고, 버린다고 생각했던 거니까.”
물욕을 초월한 표정을 짓는 공방 주인.
그는 진수에게 전기톱의 값으로 50만원을 요구했다.
그 말에 인상을 찡그리는 진수.
“사장님.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물건을 50만원이요?”
“아, 그 값도 못 쳐주겠다 싶으면 그냥 두고 가쇼.”
공방 주인이 마주 인상을 쓰며 답했다.
“여기 돈이랑 마석도 몇 개 받으세요. 거, 기술만 좋지 장사는 영 젬병이시네.”
“이, 이게...?”
진수가 내민 금액은 100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과 마석 세 개였다.
“이거 뭐, 그냥 드리는 거 아닙니다. 이거 마석 꽂는 부분 제거하고 전투에 쓰기 좋게 좀 개조하는 값까지 드리는 거예요.”
진수가 말을 덧붙였다.
중년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공방 오래 유지하시고, 저 헌터생활 하면서 필요한 것도 앞으로 좀 잘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진수는 살짝 자세를 낮추면서 공방 주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중년 아저씨의 콧구멍이 조금씩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작전이 통한 것이다.
‘이 정도 기술자인데 500만원이면 아주 싸게 먹히는 거지. 애초에 전기톱 값어치도 나한테는 천만 원짜리 아이템보다 더 좋고.’
일당 헌터 생활을 하면서 아저씨들과 많이 일을 해본 진수.
그는 어떻게 하면 그들의 호의를 얻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신에 대한 인정, 그리고 그들의 작업물에 대한 인정.
이 두 가지면 거의 백이면 백 광대가 뽈록 튀어나오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진수가 동묘 시장에 오면서 쓰려고 했던 금액은 총 600만원이었다.
그 중 500만원이 헤파이스토스에게 보낼 아이템 값.
100만원을 무기 가격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공방에서 골드와 현금을 모두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으니 여러모로 전혀 아까울 게 없는 소비였다.
‘두건이랑 같이 꽁으로 얻은 돈이기도 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지. 흐흐.’
무엇보다 불로소득에 가까운 돈이었기에 그가 이렇게 쉽게 내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돈은 투명화 두건을 사용하던 이명배의 소지품을 처분한 값이었다.
“어떻게 개조해드릴까?”
만들고 있던 물건도 내팽개치고 소매를 걷으며 의욕을 보이는 공방 주인.
진수의 노림수가 완벽히 성공적이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마석을 꽂을 필요가 없으니 이쪽 부피를 줄여주시고....”
“아, 전투에 쓸 거면 가드 쪽을 방패 용도로도 쓸 수 있게....”
“손잡이를 한손과 양손 모두 쓸 수 있게....”
“이건 어때요? ....”
진수는 공방 주인 김건과 전기톱의 개조 방향에 대해서 한참 논의했다.
그가 필요한 요건을 이야기 하면 김건이 현실성 있는 방안을 제안하거나 더 개선할 수 있는 의견을 제시하는 식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진수보다 김건이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진수의 의도대로 단돈 500만원과 말 몇 마디로 열정적인 장인을 얻은 셈이었다.
“그럼 이렇게 해서 개조 해놓는 걸로.”
“네, 좋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뭐, 워낙에 솜씨가 좋으셔서 작살나게 만들어 주시겠지만요. 하하!”
“에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쇼. 다 되면 연락드릴게.”
김건이 손을 내저으며 진수를 공방에서 내보냈다.
귓불이 불그스름해진 게 칭찬에 부끄럼을 타는 듯해 보였다.
“좋아, 무기는 해결이 됐고. 이제 헤파이스토스 건을 좀 해치워볼까?”
진수는 핸드폰을 꺼내 마력공학, 마석공학 따위의 키워드로 검색을 해봤다.
그 자신도 우선은 어떤 개념인지 명확히 알지 못했기에 집단 지성의 힘을 빌려보기로 한 것이다.
“마력공학...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분야. 게이트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에너지원인 마력을 활용한 공학이다. 기계공학과 전기공학의 영역과 겹치는... 아니 그래서 마력공학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던 진수다.
헌터위키에 나와 있는 마력공학에 대한 정의를 읽어나가던 그는 문서를 하나씩 넘어가기 시작했다.
마력공학에서 공학으로, 공학에서 컴퓨터공학, 컴퓨터의 역사를 거쳐 뻗어나간다.
‘내가 지금 왜 계산기 위키 문서를 읽고 있지?’
몇 번을 건너뛰다 보니 처음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글로 들어와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려던 진수의 눈에 문서의 마지막 항목이 들어왔다.
[여담 : 최신의 계산기는 의외로 마력공학의 산물이다. 작은 마석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계산기는 마력반도체 기술과 기본적인 디스플레이, 재료가공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이거다!’
진수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치며 계산기를 파는 곳을 찾았다.
일반적인 문방구에서는 전기를 이용하는 계산기만 팔고 있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닌 끝에 전자제품을 다루는 대형 상점에 가서야 마석이 사용된 계산기를 찾을 수 있었다.
가격은 단돈 5만원.
마석이 정말 쥐꼬리만큼 들어간 듯했다.
“좋았어. 이제 집에 가서 준비를 좀 해볼까?”
그는 두꺼운 노트와 필기도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중에도 전이자들은 열심히 성장을 하면서 보상을 보내줬다.
민첩 2, 내구 1, 마력 1, 총 4의 능력치가 올랐다.
‘의외로 고돌이가 참 효자 노릇을 하네.’
진수는 상태창의 제일 처음에 있는 고블린 그림을 보았다.
[차원 전이] 특성이 생기고 가장 먼저 전이된 녀석.
현재 상황을 한 줄로만 보여주기에 정확한 상황을 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아마도 인간들에게 잡혀가 검투장에서 목숨을 겨우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고돌] - 현재 상황 : 카토 검투장 훈련장에서 훈련 중
처음에는 훈련 받는 중이라고 나타나던 내용이 이제는 훈련 중이다.
제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고돌이 뿐만 아니라 차원 전이가 된 녀석들도 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고 있겠지. 나도 빡세게 움직여야겠다.’
진수는 상태창에서 상점 버튼을 눌렀다.
그가 연 목록은 지식 카테고리.
위쪽에 있는 [고블린 문자 지식]을 구입했다.
-[고블린 문자 지식]을 구입하시겠습니까?
“응.”
-상품을 전달할 전이자를 선택하십시오.
어김없이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
진수는 바로 헤파이스토스를 선택했다.
-드워프 [헤파이스토스]에게 [고블린 문자 지식]을 전달했습니다.
골드가 10 깎이고 이후로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상점을 사용하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속이 조금 쓰려왔다.
‘이건 사전작업이니까.’
진수는 상태창을 닫고 눈앞에 놓인 노트를 보았다.
어렸을 때 학교 다니던 시절 이후로는 처음 보는 공책이다.
“오랜만에 필기 좀 해보자.”
그는 노트에 마석 계산기의 사용 설명서를 옮겨 적기 시작했다.
글씨인지 그림인지 모를 요상한 선들이 공책을 채운다.
‘이야, 어떻게 고블린 문자를 쓰는 건데도 이렇게 악필일 수가 있지?’
진수는 자신이 쓴 글씨를 보며 감탄했다.
글씨를 쓰는 솜씨가 지난번 던전에서 본 고블린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역시 자기는 헌터 생활밖에 답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는 진수.
계산기 설명서를 모두 적은 뒤에는 위키에서 마력반도체나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닥치는 대로 적었다.
아쉬운 점은 고블린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지식이 그리 많지 않다는 부분이었다.
“어휴, 깜지 쓰는 기분이네.”
이윽고 두꺼운 공책을 모두 채운 그.
마석 계산기와 공책을 헤파이스토스에게 전송했다.
물건이 두 개였기에 총 10골드를 소모.
[고블린 문자 지식]에 들어간 골드까지 생각하면 총 20골드를 쓴 셈이다.
-[헤파이스토스]가 전달된 물건을 분석합니다.
-분석이 완료된 후 [헤파이스토스]의 지식수준 향상에 따라 유물 재건 속도와 보상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진수가 물건들을 보내고 나니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과연 자신의 승부수가 효과를 냈을까 걱정이 되는 그.
그 결과는 다음 날 아침에 밝혀졌다.
-[헤파이스토스]의 놀라운 발견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전이자에게 [특성 랜덤 박스] 전달
-전이자의 첫 발견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마력 +2, [헤파이스토스]의 지식
-[헤파이스토스]가 유물의 재건을 넘어 개선의 단초를 얻습니다.
-[헤파이스토스]에게 물건 제작 혹은 강화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아이템을 보내는 게 아닌 개념을 전달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 큰 성과를 낸 것이다.
‘그렇다면 헤파이스토스의 실력도 훨씬 좋아졌겠지?’
이번 임무의 보상은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물건을 만들어주거나 강화를 해주는 것이었다.
녀석의 실력에 따라서 그 효과가 달라지는 보상이다.
-띠링
[김건 : 전기톱개조끝났으니까찾아가요·]
때마침 공방에서 문자가 왔다.
아는 것이 힘
“와, 장난 아니네요.”
진수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묵빛의 전기톱은 처음에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 되어 있었다.
마석을 삽입하는 공간처럼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고 엔진만 남겨두어 몸체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덕분에 손잡이를 변형시킬 수 있었다.
마치 양손검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무게중심을 맞춰서 길죽한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이게 아직도 공구로 인식이 되는 건가?’
이제는 변형된 무기라고 봐도 무방한 모습.
불안한 마음에 잡아보니 본질은 전기톱인 덕분인지 [특급 공구 숙련]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위이이잉! 부웅! 붕!
톱날을 작동시킨 채로 능수능란하게 휘둘러본다.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고 있어서 겁이 날 법도 한데 진수는 아랑곳 않고 움직였다.
마치 대단한 검술의 달인과 같은 모습이었다.
“가드까지 완벽한데요?”
보통 전기톱에는 나무 따위를 자르다가 파편이 튀는 것을 막아주는 가드가 있다.
이 가드의 형태를 엔진 전반을 막아주는 일종의 코등이 모양으로 변경한 것이다.
엔진 자체도 부피가 그렇게 크지 않았기에 멀리서 보면 양손검처럼 볼 수도 있을 정도였다.
“크흠, 뭐 대단한 일이라고....”
김건은 밤을 새서 개조 작업을 마쳤는지 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수의 말에 화색이 도는 모습이었다.
“정말 너무 마음에 듭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진수는 이제부터 자신과 함께 할 무기를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보았다.
앞으로도 이만한 물건은 구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게다가 진수의 능력치에도 영향을 받으니 평생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니 더더욱 최고로 만들어줘야지.’
진수는 상태창을 열어 임무 목록을 확인했다.
아직 지난 임무가 채워져 있는 상태.
아마도 보상을 받아야만 완료가 되는 듯했다.
그는 임무 보상 부분을 터치했다.
-드워프 [헤파이스토스]에게 물건 제작 혹은 강화를 요청하시겠습니까?
‘응, 이걸 강화시켜줘.’
그는 전기톱을 보며 속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진다.
바로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저쪽에서 강화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듯했다.
임무 보상을 받고 나니 임무도 달성이 된 것으로 처리가 되었다.
‘그럼 이제 다음 임무를 받아보실까.’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응.’
-임무 : 석사 차원 전이
-보상 : 골드 +7
석사(石蛇).
한자 그대로 돌로 된 뱀이다.
주로 바위산에서 서식하는 녀석으로 처치하기가 상당히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았다.
바위는 가만히 있으니 쉽게 깰 수 있지만 놈들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다가 내부는 유연하다.
충격을 주어도 그게 다 통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바위덩이 같은 몸체는 그 자체로 엄청난 흉기.
물리적인 힘이 대단해 C급 헌터들한테도 쉽지 않은 몬스터였다.
‘이제 슬슬 난이도를 높인다 이거지?’
“사장님! 혹시 여기 곡괭이도 있나요?”
진수는 돌을 깨부수기 위한 준비를 했다.
* * *
“이야, 빡세다 빡세.”
진수는 설악산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그가 신체적으로 뛰어난 헌터라고 해도 자연의 앞에서 작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석사의 서식 필드는 설악산의 공룡능선이다.
꽤나 고된 산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체력적으로 그리 힘들지는 않겠지만 일단 비주얼에서 오는 위압감이 있으니까.’
가볍게 숨을 고른 그는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일반인은 대략 5시간 정도 걸리는 산길.
하지만 이미 인간 수준을 벗어난 그는 1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근데 아까부터 감각에 걸리는 저것들은 뭐지...?’
동묘 시장에서부터 설악산까지 오면서 계속 진수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들이 있었다.
건물부터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까지.
그의 눈에 잡히면 어딜 치면 어떤 형태로 깨지고, 어떻게 활용하면 좋겠다 이런 정보들이 계속 떠오르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타고난 석공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아, 혹시 이게 헤파이스토스의 지식인 건가...?’
헤파이스토스의 발견으로 받은 보상.
녀석의 지식을 받았었다.
고돌이에게는 고블린의 문자를 받았었는데 아무래도 헤파이스토스에게는 석재에 대한 지식을 받은 모양이다.
돌에 관해서는 척척박사가 된 셈이다.
“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네. 이 지식이면 흔들바위도 추락시킬 수 있겠어.”
매해 만우절이면 한 번씩 추락한다는 흔들바위.
그걸 실현할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만우절이 아니니 괜한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참, 랜덤 박스도 아직 안 깠구나.”
전기톱 개조가 다 됐다는 말에 흥분해서 받았던 보상들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공방으로 달려갔었다.
미뤄둘 필요가 없는 일이기에 진수는 산을 오르다 말고 [특성 랜덤 박스]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그가 [특성 랜덤 박스]를 열어보고자 하니 저절로 효과음과 함께 빛이 터져 나오며 상자가 오픈 됐다.
-[특성 랜덤 박스] 사용으로 특성 [뇌신의 축복]을 얻었습니다.
-특성을 전달할 전이자를 선택하십시오.
‘이건 이미 주인이 정해진 특성이네.’
지난 번 [수룡의 호흡] 때와 마찬가지로 무슨 능력을 가진 특성인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름부터 강력해 보이는 특성.
대체로 그럴듯한 특성은 일단 이름값을 하는 편이었다.
‘제우스한테 줘.’
-코볼트 소서러 [제우스]에게 특성을 전달하시겠습니까?
‘응.’
-[제우스]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2, 내구 +1, 마력 +2
“어휴, 이 맛에 애들 키운다니까.”
진수는 능력치의 향상과 함께 찾아오는 쾌감을 만끽했다.
-[제우스]가 [올림포스] 무리의 주도권을 획득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가로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왕좌를 탈환하는 순간이었다.
‘이 전까지는 고블린한테 얻어맞고 있었겠구나....’
안내 메시지에 그런 이야기는 없었지만 진수는 흉포했던 오크 워리어 [고블린]의 모습을 떠올렸다.
절대로 자기보다 약한 코볼트 소서러를 평화적으로 대했을 것 같진 않았다.
‘이제라도 강해졌으니까 괜찮겠지.’
진수는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대략 40분 정도를 더 움직이자 공룡능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위로 된 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안개가 그 사이사이 끼어 신비로움을 더했다.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이런 풍경을 그놈의 몬스터들 때문에 일반인은 볼 수가 없게 됐네.”
공룡능선에 도착하기까지도 고블린이나 보팔 래빗 같은 몬스터가 몇 차례 습격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 정도 몬스터들은 준비운동밖에 되지 않았다.
“흐음.... 딱히 특별한 냄새는 안 나는데....”
본격적으로 석사들이 출몰한다는 공룡능선에 오자마자 진수는 눈을 감고 크게 호흡했다.
공기 중에 몬스터 냄새가 섞여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각으로는 어떤 단서도 잡을 수가 없었다.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눈을 뜬 진수.
온통 암석으로 된 능선을 살폈다.
“아.... 냄새를 맡을 필요가 없겠네.”
그는 괜한 수고를 했다는 듯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돌바닥 위로 아주 미세한 자국들이 눈에 들어온다.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진수는 석재에 한해서는 척척박사인 상태.
돌과 돌이 긁히면서 만든 흔적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른바 석사 잡는 박사다 이거지.’
진수는 공방에서 챙겨온 망치를 꺼내 들었다.
그가 곡괭이를 찾자 곡괭이는 없고 이건 어떠냐며 내놓은 것이 바로 이 망치였다.
실험정신이 강한 김건의 작품답게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망치치고는 너무 가볍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단단하지만 망치 본연의 용도로 쓰기엔 무게가 부족하여 오히려 불편한 물건.
하지만 힘 능력치와 [상급 전사의 신체] 특성으로 근력이 크게 강해진 진수에게는 딱 좋은 도구였다.
‘이것도 챙겨는 놔야겠어.’
진수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바닥에 보이는 흔적을 쫓았다.
움직이다보니 점점 석사의 흔적이 많아졌다.
그 중에서 맨 처음부터 쫓던 녀석을 따라가 보았다.
“여기서... 한 바퀴를 돌고... 여기.”
땅만 보면서 발걸음을 옮기던 그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석사의 흔적이 끊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위치에 있는 것은 허리까지 올라오는 크기의 바위.
진수는 잠시 그 바위를 살피더니 망치를 들어올렸다.
“요놈이 어디서?”
-콰앙!
“키이이익!”
진수의 망치질에 굉음이 터져 나왔다.
-후두둑! 후두두둑!
커다란 돌덩이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진수가 내려친 바위는 그 크기가 점점 커졌다.
아니, 바위처럼 보였던 그것은 석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었다.
그 주변에 다가온 진수가 방심하고 있으면 습격해서 한 입에 꿀꺽 하려던 녀석.
진수는 놈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먼저 선공을 날린 것이다.
‘선빵은 필승이니까. 그나저나 이거 생각보다 훨씬 일이 쉽게 풀리겠는데?’
진수는 자신이 가격한 위치를 보았다.
정확히 석사의 정수리 부분이었는데 그가 후려친 부분의 돌이 깨져서 휑하니 속살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몬스터의 피부라고 해도 돌로 됐으면 다 통하는 거였구나!’
그의 눈에 보이는 바위의 약점들.
진수가 가볍게 공격한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이 깨져서 바닥에 후두둑 떨어진 것이다.
“쉬이익!”
진수를 보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돌뱀.
몹시 화가 난 모습이었다.
“이야, 눈치가 그렇게 없는 걸 보니까 몬스터는 몬스터구나.”
진수는 들고 있던 망치를 가볍게 돌리며 말했다.
-석사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석사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녀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수의 상태창에 똬리를 틀게 됐다.
“어디보자.... 돌덩이니까 데메테르라고 해줄까? 아니... 잠깐만. 혹시 여기에 그놈이 있나?”
석사도 나름 돌로 취급이 되는지, 녀석을 처치하고 나니 헤파이스토스의 지식 중에서 한 정보가 떠올랐다.
석사들의 왕, 보석사.
돌뱀들 사이에서 독특한 보석과 함께 태어나는 녀석이다.
일반적인 녀석들보다 덩치는 1.5배는 족히 더 크고 몸을 이루는 돌도 더 단단하다.
‘보석사가 있으면 데메테르는 무조건 그놈한테 줘야지.’
진수는 방금 전이시킨 석사의 이름을 롱스톤이라고 지어줬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7
롱스톤을 차원 전이 시키자 임무가 달성되면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바로 이어서 임무 받아야지.’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어.’
-임무 : 보석사 차원 전이
-보상 : 보석사의 특성 중 하나
바로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에 진수의 입에 함박 미소가 걸렸다.
임무가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이 지역에 보석사가 있다는 의미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거기에 임무 보상도 무려 특성이다.
재수가 없다면 쓸모없는 종류로 받을 수도 있겠지만 보석사는 나름 필드 보스급 몬스터.
상당히 좋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진수가 쾌재를 부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보석사가 있다는 건 녀석의 탄생석도 함께 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헤파이스토스의 지식대로라면 보석사의 탄생석은 진짜 보물이다...!’
그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증폭
“키이이익!”
“쉬이익!”
-쾅! 쾅!
수많은 석사 떼가 설악산 공룡능선의 한 계곡으로 몰려들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 질주하는 뱀들.
그리고 그 목적지의 앞에는 진수가 망치와 도끼를 꺼내서 신나게 휘두르고 있었다.
“이야~ 이게 웬 횡재냐!”
그의 얼굴엔 100% 진심이 담긴 미소가 가득했다.
석사는 일반적으로 사냥하기 어렵고 찾는 것도 쉽지 않는 몬스터다.
그만큼 희귀한 몬스터다보니 그 부산물의 가격이 B급 헌터들이 사냥하는 몬스터 수준에 육박한다.
진수 입장에서 이놈들을 다 처치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금광을 캐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뜻이다.
무수히 많은 몬스터가 밀고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 행복이 차올라 있는 이유였다.
-쾅!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상처 입히기 어렵다고 소문이 난 돌뱀이 소보로 빵처럼 뭉개졌다.
누군가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최소 B급 헌터가 사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
물론 객관적으로 비교를 해봤을 때는 B급 헌터와 상대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석사를 잡는 데에 한해서는 엄청난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헉, 헉...! 이제 슬슬 빡세네....”
아무리 놈들의 약점을 알아서 망치질 몇 번이면 해치울 수 있다고 해도 적이 워낙 많다.
디펜스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쉼 없이 움직였기에 체력적으로 한계가 올 수밖에 없었다.
‘아직 10분은 족히 남았는데...!’
진수는 자신의 뒤쪽에 있는 투명한 돌을 힐끔 보았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의 발단이 되는 물건이었다.
대략 1시간 전, 바닥에 유독 깊게 남은 석사의 흔적을 찾아낸 진수.
그 자국을 따라가니 보석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놈의 뒤에는 투명한 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보석사의 탄생석이다.
‘따로 찾으러 다닐 필요 없이 둘이 한 자리에 있네.’
보석사와 탄생석이 같이 있는 것을 확인한 진수는 바로 싸움에 돌입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망설이는 표정이 그려져 있었다.
‘1시간...을 쭉 버틸 수 있으려나. 중간에 깨면 좀 아쉬운데.’
그가 고민하는 이유는 보석사의 탄생석이 가진 특징 때문이었다.
저 투명한 돌은 보석사와 함께 나타나지만 꼭 보석사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석사는 탄생석을 지키고, 만약 탄생석을 수호하던 녀석이 죽으면 탄생석에서는 일정한 파장이 나온다.
그 파장을 느낀 주변의 석사들은 홀린 듯이 달려와 탄생석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그 중에서 살아남은 녀석이 다음 대의 보석사가 되는 것이다.
탄생석이 파장을 유지하는 시간이 1시간.
그 동안에 새로운 보석사를 만들지 못하면 탄생석이 깨져버린다.
‘중요한 건 탄생석이 깨질 때까지 버티면 힘을 증폭시켜 준다는 거지.’
헤파이스토스의 지식에 따르면 탄생석이 파괴되는 순간 그 정수를 흡수하면 힘이 증폭된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확실한 건 아니어도 시도해볼 가치가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1시간동안 석사를 쓸어 담으면 그야말로 떼돈 버는 거지.’
관건은 쏟아지는 몬스터를 막아낼 수 있느냐.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여차하면 보석사의 탄생석을 부수고 돈만 챙겨도 남는 장사.
진수는 망치를 꺼내들고 보석사를 향해 덤벼들었다.
-보석사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보석사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데메테르로 할게.”
보석사와의 전투는 금방 끝났다.
거대한 돌뱀의 위압감은 엄청났지만 진수의 손이 닿으면 바스라지는 건 마찬가지.
[울프헤딘]의 뛰어난 감각으로 피해가며 차근차근 공략하니 녀석을 처치하는 데에 큰 수고가 들지 않았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데메테르]의 특성 중 하나
보석사를 차원 전이 시키면서 임무까지 달성된다.
[김진수]
힘:13 민첩:14 체력:14 내구:10 마력:15
특성 : [차원 전이] [절연체] [중급 재생력] [융합] [상급 전사의 신체] [울프헤딘] [특급 공구 숙련] [중급 후각] [도구 일체화] [스톤 스킨]
기술 : [도깨비불]
골드 : 35
[R.I.P.] - 사망자 수 : 1
[고돌] - 현재 상황 : 카토 검투장 훈련장에서 훈련 중
[포세이돈] - 현재 상황 : 그린 슬라임 발견
[올림포스] - 거주 영역 : 마굴
[제우스] [고블린] [쉔지]
[새초미 무리] 거주 영역 : 녹색 숲
[새초미] [모르모트]
[헤파이스토스] - 현재 상황 : 불의 산 동굴에서 잊힌 드워프의 유물 재건 중
[돈다발] - 현재 상황 : 여우 사냥 중
[아라크네] - 현재 상황 : 숲 전갈과 대치 중
[간장막야] 거주 영역 : 죽음의 산맥
[간장] [막야]
[아레스] - 현재 상황 : 사르 평야에서 휴식 중
[초갈] - 현재 상황 : 사르 평야 탐색 중
[백설공주] - 수정 산맥으로 차원 전이
[롱스톤] - 현재 상황 : 황금바다로 차원 전이
[데메테르] - 현재 상황 : 불의 산으로 차원 전이
-임무 : 없음
[상점]
진수는 상태창을 열어 보상을 확인해보았다.
임무로 얻은 특성은 [스톤 스킨].
피부가 돌처럼 단단해지는 흔한 특성이었다.
다행히 석사나 보석사처럼 실제로 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우웅... 우우웅...
상태창을 살펴보는데 낮고 작은 진동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보석사의 탄생석이었다.
“후우, 이제 시작되는구나.”
진수는 오른손에 망치를, 왼손에 도끼를 꺼내들었다.
돌을 깨부수는 데에는 망치가 훨씬 좋았기에 지금까지는 망치만 사용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쿠구구구...!
그가 서있는 계곡의 입구 쪽에서부터 희뿌연 먼지구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커다란 뱀들이 앞 다투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진수는 엄청난 수의 석사들을 상대로 4~50분을 싸웠다.
“헉, 헉, 헉...!”
다행히 놈들은 진수만 노리는 게 아니었고 제들끼리도 경쟁하느라 물고 뜯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체력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
진수는 지금이라도 보석사의 탄생석을 부숴야 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 같은데...!’
그의 마음속에 미련과 욕심이 차올랐다.
지금까지 고생하며 버틴 시간이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퍼억!
“켁!”
‘아, 안 되겠다.’
바위로 내려치는 것 같은 묵직한 꼬리치기 한 방에 그의 정신이 돌아왔다.
분명 눈으로는 약점을 찔러 꼬리를 부술 방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몸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가볍던 망치가 천근만근처럼 무겁게 느껴져 제대로 반격을 못한 것이다.
머리를 두들겨 맞아보니 자신의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쉽지만...!’
진수는 입술을 깨물며 망치를 양손으로 잡았다.
보석사의 탄생석을 부술 결심이 선 것이다.
-고블린 [고돌]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1
돌을 파괴하기 직전, 진수에게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동시에 괴로움에 비명을 지르던 근육들이 회복되었다.
완전한 상태가 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30분은 족히 더 싸울 수 있을 체력이었다.
“오오...! 고돌이!”
-쾅! 쾅!
설악산 공룡능선에 고돌이의 이름과 돌 깨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웅... 파삭
십여 분이 지나자 작게 울리던 진동 소리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이내 보석사의 탄생석이 불투명하게 변하며 조각조각 깨졌다.
투명한 돌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하던 뱀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흩어졌다.
떠나가는 석사들을 한두 마리라도 더 잡고 싶었지만 진수는 그럴 수가 없었다.
탄생석이 깨지며 희끗한 기운이 공중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집중해서 보고 있지 않았다면 미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희미한 모습이었다.
-스르륵
진수가 손을 뻗어 그 기운을 잡자 마치 실뱀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그의 손을 감쌌다.
곧이어 희미한 기운은 그의 팔뚝을 파고들며 몸속으로 들어갔다.
“흐읍...!”
혈관을 타고 아주 작은 뱀들이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전신의 핏줄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불쾌한 기분.
몸서리 쳐지는 경험은 몇 분간 지속되었다.
“후우....”
괴로운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온몸에 상쾌함이 맴돌았다.
무언가가 변한 것 같은데 명확히 알 수는 없었다.
‘이럴 때는 역시 상태창을 봐야지.’
진수는 상태창을 열어 무언가 바뀐 게 있는지 확인해봤다.
변한 곳은 2군데였다.
내구 능력치가 2개 오르고 [증폭기] 특성이 생겨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증폭]이 아니라 [증폭기]야...? 힘을 증폭시켜준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을 줄은....’
단어 하나의 차이였지만 그 효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증폭]은 자신의 에너지 계열 기술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특성이다.
[증폭기]는 외부의 에너지 출력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특성이다.
문제는 스스로가 매개체가 된다는 점.
예를 들자면 불을 다루는 헌터가 [증폭기]를 가진 사람에게 불덩이를 던지면 불덩이는 [증폭기]를 가진 사람을 통과하면서 더욱 커지고 뜨거워지게 된다.
이렇게 들으면 아주 좋은 특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근데 그 외부 에너지가 통과할 때 열기든 냉기든 전혀 보호를 해주지 않는다는 거지.’
배에 레이저라도 맞으면 레이저가 커지겠지만 진수의 배도 뚫리게 된다는 소리다.
현재 그의 몸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의 에너지 기술에나 사용해봄직한 특성이었다.
‘혹시 모르지. 동귀어진이라도 하게 되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진수는 애써 [증폭기]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냈다.
특성의 종류가 조금 아쉽지만 오늘의 일은 굉장한 수확이었다.
지금 그의 능력치에서 가장 낮은 능력치인 내구가 2개나 증가한 것.
그리고 [차원 전이]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지식으로 능력치와 특성을 얻을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것.
오늘 그는 [차원 전이]에서 더욱 큰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설악산 사냥에서 당장 제일 큰 이득은 이놈들이지!’
그는 바닥에 널려있는 어마어마한 수의 석사 사체들을 보았다.
일당 헌터 생활을 했다면 1년을 족히 일해야 얻을 수 있는 정도의 값어치는 되어 보였다.
그야말로 대박이다.
“와씨, 다 하면 1억은 확실히 넘겠는데.”
그의 갈무리용 단검이 화려하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거의 어깨춤을 추듯 신나게 놈들의 사체를 해체했다.
“이~ 돈을~ 다 어디에다 쓰을까아요오~?”
-휘익 휘익
휘파람까지 불며 요상한 노래를 부르는 진수.
그의 등에는 석사의 속가죽을 묶어서 만든 보자기가 매여 있었다.
직접 챙겨왔던 가방이 부족할 정도로 마석과 부산물이 넘쳐난 것이다.
그 무게가 엄청났지만 그걸 들고 있는 진수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 * *
“저기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싹 다 주세요.”
“이, 이걸 전부다요?”
진수의 말에 판매원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네, 창고에 재고 더 있으면 더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소릴 했다.
그러자 진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판매원.
“저, 저기요, 고객님. 이런 걸로 장난치시면....”
진수의 요청이 부자를 흉내 내는 장난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는 진수를 만류했다.
하지만 단호한 모습의 진수.
“장난 아니면요? 매출 바짝 올릴 기회인데 이렇게 날리실 거예요?”
‘돈을 벌었으면 써야지. 소위 말하는 Flex 한 번 해보자고.’
판매원은 마트 생필품 코너에서 이 사람이 왜 이러나 고민에 빠졌다.
힐링
진수는 대형 마트에 가서 과자, 라면, 생필품 따위를 박스 단위로 쓸어 담았다.
그의 행동에 마트 판매원은 그를 위아래로 훑으며 정신이 멀쩡한 것인지 살펴봤다.
게이트 사태가 있은 후로 가끔씩 강박적으로 생존을 위한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했으니까.
“저기, 배송은 어디로 해드리면 될까요...?”
선택한 물건의 양이 개인의 생존 대비를 위한 수준을 한참 넘어가고 대략 천만 원어치정도 되었을 때, 진수의 소비가 멈췄다.
직접 가져가려면 적어도 소형 트럭이 필요한 양.
판매원은 어디로 배송하면 될지 물어왔다.
“아, 여기...로 보내주시겠어요?”
진수가 핸드폰을 꺼내서 화면을 보여줬다.
“아....”
그러자 반쯤 이상한 사람을 보듯이 보던 판매원의 눈빛이 달라졌다.
경계하는 시선에서 존경심이 담긴 눈이 된 것이다.
“잘 좀 부탁드릴게요.”
“네! 훌륭한 일 하시네요. 하나도 빠짐없이 잘 보내드리겠습니다!”
진수가 결제를 마치자 판매원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의 입장에서 물건을 많이 사간다고 좋을 것은 없었다.
그러니 판매원의 지금 태도는 가식이 아닌 진심일 것이다.
‘요즘에 본인만 챙기는 사람이 많은데, 젊은 사람이 멋지네.’
그는 마트를 나서는 진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 * *
한바탕 돈을 쓴 진수는 지하철을 타고 30분 정도 이동했다.
순식간에 천만 원이 좀 넘는 금액이 사라졌지만 그의 표정에 아쉬움은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요즘에 생활이 꽤 빡빡했지.’
진수가 도착한 곳은 용산의 한 고아원이었다.
고아원 건물 앞에는 진수가 조금 전에 마트에서 샀던 물건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진수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모양이다.
“김진수님?”
그가 물건 내리는 걸 보고 있자 한 초로의 여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미리 듣기로 후원품을 조금 가져오신다고 듣긴 했는데 이건....”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좋아서 후원하는 거니까요.”
보영고아원 원장 정유나는 감동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안쪽으로 들어오시죠. 처음 방문이시니까 우선 자원봉사 기본교육을 들으시고 활동 해주시면 되거든요.”
그녀는 개인이 첫 봉사활동인데도 이렇게 많은 후원품을 후원한 진수를 호의적으로 보았다.
기관에서는 처음부터 많은 후원을 보내주거나 하는 적도 종종 있었다.
그렇지만 개인은 몇 차례 방문하면서 아이들과 어느 정도 정이 쌓이고 나서 후원하는 경우가 대부분.
정유나는 진수가 앞으로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이제 다시 오지 않을 텐데 오늘 애들이 많이 좋아했으면 좋겠네.’
하지만 진수의 생각은 달랐다.
오늘 이후로 아마 이 용산의 고아원에 또 찾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혹은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나 올 생각이었다.
진수는 헌터 생활을 하면서 돈에 여유가 좀 생기면 가끔씩 이렇게 후원 물품을 가지고 고아원에 봉사를 하러 온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특정 고아원을 찾는 것은 아니었다.
항상 새로운 곳을 찾아서 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 자신이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가 딱 좋아.’
그에겐 부모님도 형제도 없었다.
그렇기에 가족의 그리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이 고아원이었다.
이런 봉사활동은 사실상 타인을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힐링인 셈이었다.
‘내가 지내던 고아원은 이제 갈 수가 없으니까.’
어딘가 슬픈 미소를 지은 진수는 정유나 원장의 안내를 받아 봉사활동 교육을 들으러 들어갔다.
자원봉사 기본교육은 고아원에 자주 방문하는 다른 봉사자가 맡아서 했다.
“안녕하세요, 임병옥이라고 해요.”
“네, 김진수입니다.”
“헌터시라고요? 보통 헌터들은 이런 봉사 잘 안 오지 않나요?”
자신을 임병옥이라고 소개한 여성 봉사자는 진수에게 약간 싸늘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뭐... 그래도 헌터들이 균열을 막거나 하는 것도 봉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
“그건 좀 헌터들의 입장이 많이 반영된 말이네요. 어쨌든, 감사하게도 봉사를 하러 오셨으니까 교육 간단히 하고서 활동 시작할게요.”
교육 내용은 다른 고아원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함부로 교육을 하지 않기, 직접 후원금을 주지 말 것, 지금 바로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 금지 등의 내용들이었다.
“지금 당장의 동정심, 알량한 자기만족을 위해서 아이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굉장히 단호한 어조로 강조했다.
“저도 고아원 출신이라 어떤 건지 잘 알고 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하.”
진수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지금껏 경계하는 눈빛이었던 임병옥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아... 미안해요. 제가 모르고 실례를 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아니에요. 얼굴에 적혀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그럴 수 있죠.”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많이 어색해졌지만 오히려 덕분에 그녀의 묘한 적개심이 많이 누그러졌다.
교육이 끝나고 함께 청소나 빨래 등의 봉사를 시작하니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진수가 알아차린 것은 임병옥이 가지고 있던 은근한 적의는 헌터라는 직군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살아있을 때 헌터가 되고 싶어 했어요.”
“그 일만 없었으면 진수씨랑 비슷한 또래겠네요.”
“헌터라는 사람들은....”
아들이 죽고 나서 고아원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는 그녀.
헌터들에 대한 안 좋은 감정과 아들뻘인 고아에게 가지는 안타까움.
진수는 그녀에게 두 감정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뭐, 어차피 또 볼 일은 없는 사람이니까.’
이제 다시 이 고아원에 방문하지 않을 테니 임병옥도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자신을 미워하든 좋게 보든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저 녀석들 엄청 좋아하네.’
진수는 임병옥에 대한 신경을 끄고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가 오늘 가지고 온 엄청난 양의 과자들.
서로 많이 먹겠다고 한바탕 다툼이 생길 정도였다.
“어머, 쟤네들 좀 말려야겠네.”
초등학생쯤 되는 애가 인기가 많은 과자들을 독점하며 동생들을 약 올리자 한두 명씩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진수는 그냥 사소한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임병옥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얘! 너는 형이나 돼가지고 동생들 거를 그렇게 뺏어 가면 어떡하니?”
‘애들한테 함부로 교육을 하면 안 된다더니....’
그래도 훈육을 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얼핏 그냥 보통 가정에서 어머니한테 혼나는 모습처럼 보였으니까.
“변명 하는 거 아주 안 좋은 일이라고 했지? 잘못 했어, 안 했어?”
“잘못했어요....”
결국 아이가 울음보를 터트린 동생들에게 사과를 하며 마무리가 되었다.
비록 뒤에서는 서로 쿡쿡 찌르며 너 때문에 혼이 났네, 형이 치사하네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 모든 것이 훗날 가족의 추억이 될 것이다.
‘박종대 그 놈도 그렇게 엇나가지 않았으면 서로 가족처럼 되었을까?’
문득 이제는 유일하게 마주치는 같은 고아원 출신인 박종대가 떠올랐다.
다른 아이들은 5년 전 고아원 근처에 발생한 균열로 인해 생사조차 모르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진수는 일당 헌터로 연명하며 살아갔고 박종대는 전투 헌터 생활을 하며 서로 완전히 멀어졌다.
진수에게는 정말 아무도 없게 된 것이다.
그나마 일당 헌터 생활을 하며 자신을 자식처럼 대해주던 정씨 아저씨, 정유현 정도가 그의 인맥이라고 하겠다.
-코볼트 [돈다발]과 오크 [아레스]와 트윈 헤드 하이에나 [초갈]이 무리를 이룹니다.
-[돈다발] [아레스] [초갈]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진수가 옛 생각에 젖어있는데 갑자기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사르 평야라는 곳으로 차원 전이 되었던 녀석들이 드디어 모두 모인 듯했다.
‘너희도 나름 연을 맺어가는구나. 그래, 다른 차원으로 날아갔으니 같은 출신끼리 가족처럼 뭉쳐야지.’
그는 문득 차원 전이가 된 녀석들도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아레스가 대장이 될 테니까... 전쟁의 신, 갓 오브 워라고 하자.’
진수는 올림포스 무리와 만나선 안 될 것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레스]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무리를 이룬 덕분일까?
아레스가 성장을 하면서 힘 능력치를 올려줬다.
진수는 왠지 그 메시지가 자신에게 힘내라고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한테는 역시 너희들밖에 없다.’
-띠링
진수가 흐뭇하게 웃고 있는데 임병옥의 핸드폰에서 알림 소리가 났다.
굉장히 중요한 내용인지 심각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읽는 그녀.
‘뭐 업무 관련해서 문제가 생겼나...?’
그는 직장에 다녀본 적이 없었기에 이렇게 쉬는 날에 연락이 오는 게 일반적인지 아닌지는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임병옥이 무슨 제약회사인지 연구소인지 어쨌든 꽤나 인텔리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 떠올렸을 뿐이다.
“어휴, 진수씨. 미안한데 아까 빨래 해놓은 거 너는 것만 부탁할게요. 갑자기 좀 일이 생겨서 가봐야겠네요.”
그녀는 몹시 미안한 얼굴로 진수에게 말했다.
표정을 보니 굉장히 급한 일인 듯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잘 널어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가보세요.”
“그래요. 고마워요.”
임병옥은 앞치마 벗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서둘러서 떠났다.
진수는 그 모습을 보고 헌터라는 직업이 목숨을 건다는 것 빼고는 꽤 괜찮다고 생각을 했다.
균열이 터지는 것만 아니라면 저렇게 갑자기 바빠지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다 장단점이 있는 거지. 빨리 빨래 널어놓고 애들이랑 잠깐 놀아줄까.’
진수는 세탁실로 걸음을 옮겼다.
50명이 넘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고아원이기에 세탁물은 항상 넘쳐났다.
‘나도 옛날에 어느 정도 일손을 도울 나이가 되고는 세탁기 엄청나게 돌렸었지....’
-쿠구구궁...
진수가 옛날 생각을 하며 세탁실로 들어가려는데 바닥에서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세탁기 돌아가는 진동이라고 하기엔 그 진원지가 더 멀리에 있는 듯했다.
‘아, 설마...!’
그는 과거에 경험했던 악몽이 되살아났다.
5년 전 그날.
그 때도 세탁실 앞에서 같은 진동을 느꼈다.
창밖의 하늘을 보니 누가 진공청소기라도 틀어놓은 듯 구름이 한 지점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균열의 징조였다.
“이런 씨발!”
진수는 좀처럼 하지 않는 욕설을 뱉으며 건물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구름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니 허공에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검은 점이 하나 떠있었다.
명백히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
‘다행히 아직 초기야. 균열이 발생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있어.’
그는 가장 먼저 고아원장을 찾았다.
게이트 사태 이후로 모든 건물에는 균열에 대비한 대피소가 지어진다.
고아원장 정유나에게 아이들의 대피를 지시하고 곧장 주민센터로 달려갔다.
‘애들 걱정은 한시름 덜었어.’
고아원에서 대략 두어 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후암동 주민센터.
“어떻게 오셨...?”
“균열입니다! 빨리 주변 헌터들한테 균열 동원 메시지 넣으세요!”
진수는 주민센터에 있는 공무원의 말을 끊고 헌터 라이센스를 내밀었다.
지킬 수 있다
“우선 등급에 따라서 지휘 체계 만들겠습니다! 균열 터지기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다들 협조 부탁드립니다!”
진수가 빠르게 균열을 신고한 덕분에 보다 여유롭게 헌터들에게 동원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균열 사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공무원들은 재빨리 움직였다.
‘방어하는 구역을 고아원 쪽으로 받으면 된다.’
주민센터에는 각양각색의 차림새를 한 헌터들이 모였다.
한눈에 봐도 높은 등급의 헌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 젠장할. A, B급 헌터들이 나오면 지역 하나 그냥 땡치는데 더럽게 몸 사리네, 자식들이.”
진수의 옆에 있는 한 사내가 투덜거렸다.
진수와 같은 D급 헌터였기에 함께 분류가 된 것이다.
“어이, 형씨. 그래도 정의감이 살아있네. 요즘 헌터들 보면 쓰벌, 돈 되는 던전에나 들어가려고 하지 균열 막으러는 잘 안 오잖아?”
그는 상당히 말이 많았다.
애초에 이번 균열 사태 최초신고자가 진수임을 알지도 못하고 떠들었다.
하지만 진수는 편제가 어떻게 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에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어유, 과묵한 맛이 있어. 아주 멋있어, 크으~ 그래. 남자가 딱 중심이 묵직해야지.”
진수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은 멈출 줄을 몰랐다.
한쪽 다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 불안한 마음을 나불대는 것으로 중화시키는 성격인 것 같았다.
‘헌터들이 많이 모이긴 했네. 거의 다 D, E급인 게 문제지만.’
주민센터에 균열을 막겠다고 모인 인원은 주로 D급이 많았다.
E급 헌터들은 와봐야 큰 도움이 안 될뿐더러 이제 전투 헌터가 되었기에 잘 참여를 하지 않았다.
C급부터는 적극적으로 던전도 돌 수 있고 헌터 생활로 돈을 많이 벌기 시작하는 등급.
돈이 별로 안 되는 균열 동원에 얼굴을 비추는 이가 많지 않았다.
전투 헌터 경험도 좀 생겨서 자신감도 붙고, 같은 몬스터를 잡는데 정부 보조금까지 나오는 균열을 선호하는 것은 거의 D급 헌터들이었다.
“어유, 저기 우뢰매 왔다. 역시 영웅물 뽕 맞은 양반이라서 이런 데에 참여를 하는구만?”
계속 입을 쉬지 않던 사내가 누군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라이더 자켓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한 헌터.
A급 헌터 심선우였다.
번개로 만든 새를 쏘아내는 기술과 영웅심이 크다는 게 특징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특징 덕분에 헌터넷에서는 우뢰매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안녕하세요. 후암동 지휘를 맡은 C급 박은주라고 합니다.”
D급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에 한 여성 헌터가 찾아왔다.
주민센터에 온 유일한 C급 헌터였다.
그녀는 후암동 지도를 펼쳐서 D급 헌터들이 방어해야 하는 구역들을 설명했다.
정부의 균열 감지 센서에 따르면 균열은 후암동뿐만 아니라 회현동, 청파동 등등 용산 주변으로 다수가 나타났다고 한다.
“담당하실 곳을 제가 말씀드릴 테니 바로 그쪽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혹시 담당하고 싶은 곳을 선택해도 될까요?”
진수는 박은주의 말에 거수하며 물었다.
그녀는 조금 의아해하긴 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을 듯하여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진수는 보영고아원이 있는 구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야, 형씨 나랑 같은 쪽이네. 처음부터 느낌이 좋더라니까.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난 유재찬이라고 해요.”
주민센터에서부터 끊임없이 떠들고 있는 D급 헌터 유재찬과 함께.
고아원으로 움직이는 내내 그는 이런저런 소리를 했다.
“아까 우뢰매랑 B급 한 명 더 온 사람이랑 따로 빼서 보내는 거 봤어요? 그게 저기 돈 많은 동네로 보내는 거라니까.”
“전투 헌터 한지 얼마나 되셨나?”
“균열은 뭐 처음엔 정신없긴 한데, 별 거 없지.”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긴 했지만 뭔가 악의적인 이야길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진수는 가볍게 대꾸해주는 정도로 그를 상대해주었다.
“어유, 여기 고른 게 고아원 때문이었어? 형씨 얼굴이 아주 선하게 생겼다 싶었는데 사람이 됐구만, 됐어. 그래, 애들이 우리나라의 미래지. 같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켜보자고.”
그는 진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같은 지역을 담당하게 된 것은 진수와 유재찬, 그리고 E급 헌터 한 명이었다.
“우선 우리가 막을 균열 발생이 남산 방향이라고 하니까 나랑 형씨가 그쪽으로 지킵시다. 그리고 여기 이 친구는 조금 뒤쪽에서 우리가 혹시 흘릴 수도 있는 몬스터 잡는 걸로.”
유재찬은 나불대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솔선수범 하는 타입이었다.
진수가 전투 헌터가 된지 1년도 되지 않았다는 말에 방어 대형을 어떻게 짤지 먼저 제안했다.
무엇보다 남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몬스터들의 예상 경로를 막겠다고 나섰다.
“내가 균열 동원 몇 번 나와 봤는데, 이게 필드 사냥이랑은 또 다르거든. 몬스터들이 먼저 막 달려드는 상황은 경험이 없으면 당황해서 어버버 하다가 당한다니까?”
진수나 함께 온 E급 헌터 모두 균열을 막아본 경험이 없다는 걸 고려한 것이었다.
“둘 다 처음이니까 잘 보고 배워요. 짜식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겁이 날 수도 있어. 있는데, 그냥 평소에 몹 잡는 것처럼 하나씩 차분히 정리하면 된다 이거야. 알겠죠? 아, 몬스터 새끼들 온다.”
민간인들이 대피한 거리.
정적이 흐르던 골목 끝 쪽에서 초록빛의 무언가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키에엑!”
“크륵!”
시작은 고블린이었다.
놈들은 앞서 나와 있던 진수와 유재찬을 발견하고는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오, 온다. 와. 다들 차분히 하나씩 조지는 거 기, 기억해요.”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에는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던 유재찬은 긴장감에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칼끝이 조금씩 떨리는 게 보였다.
‘음... 일단 도끼랑 망치로 싸워야겠네.’
진수는 바로 근처까지 다가온 고블린들을 보며 먼저 도끼를 꺼내들었다.
“후우, 후우, 후우.... 가까이 있는 놈들부터 차근차근 잡자....”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을 하는 것인지 진수와 E급 헌터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정도로 작게 웅얼거리는 유재찬.
그는 몬스터들을 맞으며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위이이이잉!
바로 옆에서 진수가 쏜살같이 튀어나가기 전까지는.
“헉...?”
진수는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전기톱으로 고블린 세 마리의 목을 따버렸다.
-투두둑!
‘헤파이스토스, 타이밍 죽이네!’
유재찬이 몬스터들을 상대하려는 순간, 진수의 앞에 전기톱이 나타난 것이다.
보내기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무게.
거기에 톱날이 하나 더 붙어 두 배로 빠르게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톱날을 움직이는 데에 필요한 체력 소모는 줄어들고 출력은 오히려 더 커져 괴물 같은 성능을 보였다.
“히끅!”
고블린의 목을 딸기 따듯이 도륙한 진수의 모습을 보며 유재찬이 딸꾹질을 했다.
진수는 엄청나게 강화된 전기톱에 팔렸던 정신을 되찾았다.
“아, 그래요. 하나하나 차분히. 참고할게요.”
유재찬에게 생긋 웃어 보이는 진수.
“아, 아닙니다. 제가 헛소리를 참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반쯤 반말을 섞던 그의 말투가 극존칭으로 바뀌었다.
-고블린 샤먼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고블린 샤먼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웨어울프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웨어울프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스펙터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스펙터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시간이 흐를수록 몬스터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수도 많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D급 헌터 둘과 E급 헌터 하나가 막아내기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균열.
그렇지만 진수의 활약으로 아직까진 버틸 수 있었다.
모두가 정신없이 눈앞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상황.
덕분에 진수의 손에 처치된 몇몇 몬스터들의 사체가 사라지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이야, 형님. 헉헉... 정말 대단하시네요! 스펙터까지 커버가 헤엑... 되시네...! D급... 헉헉...이라는 거 등급 속이신 거 아니에요? 아이구, 죽겠네.”
그렇게 힘들고 숨막히는 상황에서도 유재찬은 틈을 만들어 떠들었다.
‘계속 말을 해야 힘이 생기는 특성이라도 있나...?’
그의 모습에 진수는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말이 많을 뿐이지 유재찬은 진수의 뒤를 받쳐주면서 E급 헌터에게 강한 몬스터가 가지 않도록 잘 조절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처치한 몬스터가 많지는 않았지만 이미 D급 헌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를 내고 있는 셈이었다.
그저 진수의 능력이 말도 안 되게 뛰어났을 뿐.
-놀 [쉔지]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1
끝없는 전투에도 불구하고 진수가 쌩쌩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전이자들이었다.
싸우는 중에도 계속 보상을 받아 민첩 1, 체력 2, 내구 3, 마력 1이 증가했다.
“이 빌어먹을 균열은 언제 끝이 나는 거야? 그리고 이 정도 상황이면 쓰벌, 짱박혀 있는 높은 등급 헌터 새끼들도 기어 나와야지!”
유재찬은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에 분개했다.
“이 개자식들 평소에 등급 높다고 호의호식 하면서 정작 이렇게 필요할 땐 몸을 사리네!”
처음에는 고블린 떼였기에 E급 헌터도 제몫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본이 오크.
그 혼자서 한 마리를 처치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쌔애액! 퍼억!
“커헉!”
E급 헌터를 뒤로 물리면서 진수가 좀 더 앞으로 나가 몬스터들을 막으려는 찰나, 몬스터 떼의 후미에서 길쭉한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E급 헌터의 복부를 꿰뚫었다.
“어, 어...? 어!”
갑작스러운 상황에 유재찬은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되었다.
나름 자기가 돌보면서 균열을 막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손 쓸 틈도 없이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흐아앗!”
진수는 왼손으로 도끼를 있는 힘껏 던지고 전기톱을 휘두르며 몬스터들과의 거리를 잠시 벌렸다.
“어떻게 됐어요? 상처가 심각해요?”
잠깐 틈이 생겼다고 해도 계속 몰려오는 놈들을 견제해야 했기 때문에 뒤로 돌아볼 수는 없었다.
반복적으로 도끼를 던지며 유재찬에게 E급 헌터의 상태를 물었다.
“창에 배가 뚫렸어요. 우선 내가 갖고 있는 포션으로 치료를 해볼게요. 근데 품질이 그렇게 좋은 게 아니라서....”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는 말이었다.
‘이런...!’
진수는 지금까지보다 더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잘한 공격은 무시하면서 치명상만 피했다.
그 뒤로 창을 던진 몬스터가 있을 것이기에 위협적인 놈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앞에 있던 오크들을 도륙하며 나아간 진수의 눈앞에 보인 것은 절망적인 광경이었다.
-후욱, 후욱, 후욱!
-후욱, 후욱!
육중한 날개 소리를 내며 낮게 날고 있는 몬스터들.
한손에 돌로 된 창을 든 채 시퍼런 안광을 뿜는 가고일이었다.
아마 조금 전에 E급 헌터를 맞춘 것이 놈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놈들은 유재찬도 상대할 수가 없는 놈들이야. 안 되겠다...!’
진수는 뒤로 돌아 유재찬과 E급 헌터를 향해 전력질주 했다.
“둘이 빨리 고아원 쪽으로 도망쳐요! 혹시라도... 몬스터들이 고아원으로 간다면, 대피소가 들키지 않게... 부탁할게요.”
그가 버티고 있는데 몬스터들이 고아원으로 간다는 게 의미하는 상황은 단 하나였다.
저지하는 인물이 사라지게 되는 것.
“아...!”
그 말 많던 유재찬이 말을 잇지 못했다.
여기에 남아서 진수를 돕겠다고 한들 보탬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니까.
“빨리 가세요.”
진수는 등을 떠밀며 그들을 보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골드를 털어서라도 버틴다. 지금 밀리면 고아원까지 휘말려.’
5년 전에 그가 있던 고아원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그 당시엔 그저 중학생 꼬마였고,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지. 지킬 수 있다.’
진수는 굳은 얼굴로 상점을 열었다.
현재 가진 골드는 35.
그는 주저 없이 화면을 연달아 터치했다.
-[기술 랜덤 박스]를 구입하시겠습니까?
-[기술 랜덤 박스]를 구입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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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은 일곱 번이었지만 대답은 하나였다.
적당히 좀 해라
상점도 급박한 상황인 것을 알았을까?
평소처럼 효과음이나 빛 따위는 나타나지 않고 바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기술 랜덤 박스] 구입으로 기술 [불굴의 의지]를 얻었습니다.
-[기술 랜덤 박스] 구입으로 기술 [단단해지기]를 얻었습니다.
-[기술 랜덤 박스] 구입으로 기술 [파이어 인챈트]를 얻었습니다.
-[기술 랜덤 박스] 구입으로 기술 [워 크라이]를 얻었습니다.
-[기술 랜덤 박스] 구입으로 기술 [과식]을 얻었습니다.
-[기술 랜덤 박스] 구입으로 기술 [변신]을 얻었습니다.
-[기술 랜덤 박스] 구입으로 기술 [땅파기]를 얻었습니다.
우선 이름만 들어봤을 때, 꽝으로 보이는 능력은 두 개.
그 외의 기술들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대박은 아니어도 결과물이 꽤 괜찮네.’
진수는 기술들을 전이자들에게 분배했다.
[불굴의 의지]는 고돌이에게, [단단해지기]는 롱스톤, [파이어 인챈트]는 간장한테, [워 크라이]는 아레스에게, [과식]은 포세이돈, [변신]은 제우스, [땅파기]는 데메테르에게 주었다.
-고블린 [고돌]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고돌]의 특성 중 하나
-석사 [롱스톤]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내구 +1, 힘 +1
-화염강철거미 [간장]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간장]의 기술 중 하나
-오크 [아레스]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체력 +3
바로 강해지는 성격이 아닌 기술들은 그냥 성장도 끌어내지 못했다.
‘그래도 35골드에 이 정도 성과면 만족해야지.’
[김진수]
힘:17 민첩:15 체력:20 내구:16 마력:16
특성 : [차원 전이] [절연체] [중급 재생력] [융합] [상급 전사의 신체] [울프헤딘] [특급 공구 숙련] [중급 후각] [도구 일체화] [스톤 스킨] [증폭기] [중급 동체시력]
기술 : [도깨비불] [강철 거미줄]
모든 보상을 받은 진수는 상태창을 열어 확인을 해봤다.
능력치 총합은 이제 84.
[중급 동체시력] 특성과 [강철 거미줄] 기술이 생겼다.
‘[강철 거미줄]은 던전에서 정효원의 어깨를 뚫었던 그 기술이구나.’
진수는 머릿속에 저절로 새겨지는 기술 사용 방법을 곱씹으며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가고일과의 싸움에서 승산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쌔액!
상태창을 확인하던 진수를 향해 무언가가 날아왔다.
화면을 닫음과 동시에 진수의 눈이 투사체를 파악한다.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그것은 기다란 돌창이었다.
-팍!
진수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창을 손으로 잡아냈다.
[중급 동체시력]의 힘을 확인한 진수.
그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이게 바로 [차원 전이]를 가진 사람이 싸우는 방법이지.”
그는 곧장 돌로 된 창을 가고일에게 되돌려줬다.
대신 그 결과는 전혀 달랐다.
눈으로 확인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쏘아진 창은 가고일의 몸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뒤이어 몰려오던 녀석들은 한 마리가 당하는 것을 보고 비행하는 높이를 높였다.
진수의 무기가 도끼와 전기톱이기에 공중에서는 공격을 받지 않으리라 생각한 듯했다.
“나름 머리들을 썼지만... 이젠 소용없어.”
진수는 야구공을 던지듯 손을 힘차게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서 가느다란 실이 한 가닥 쏘아졌다.
-퍽!
곧게 날아간 실은 보기와는 다르게 둔탁한 소리를 내며 한 가고일의 다리를 꿰었다.
“하앗!”
한 놈이 걸리자마자 진수는 손을 세차게 잡아당겼다.
마치 낚싯줄에 걸린 듯 공중에 날고 있던 가고일이 빠르게 그를 향해 끌어당겨졌다.
-쾅!
진수에게 가까이 온 가고일은 단방에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가고일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가고일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가고일 한 마리를 해치운 이후부터는 진수의 독주 무대였다.
몬스터들은 나름 창을 던지고 급강하 하며 습격을 했지만 진수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게다가 조금 큰 상처를 입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되어 버렸다.
지금껏 크게 다치지 않아 모르고 있던 [중급 재생력]의 힘이었다.
“캬아악!”
“탱커 분들 조금씩 빠지면서 상대하세요!”
“마력 떨어졌으면 마력 탈진 오기 전에 미리 교대합시다!”
“이쪽 누가 잠시... 으윽!”
진수가 가고일들의 수를 줄여나가고 있는데 옆쪽에서 한 무리의 헌터들이 나타났다.
다른 구역으로 갔던 인원들이었다.
“저, 저기! 저쪽에 싸우고 있는 헌터 있어요! 몬스터는 거의 전멸시킨 거 같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진수를 발견하고 소릴 질렀다.
‘이제 이쪽 몬스터를 거의 다 죽여 간다 했더니 이게 무슨...?’
차근차근 가고일들을 낚아서 처치해 이제는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정도만 남았다.
아무리 중간에 보상으로 체력이 오르고 했다지만 진수도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제 거의 끝이 보인다 생각을 했는데 저들이 또 한 무리의 몬스터를 몰고 온 것이다.
“크르룩!”
진수에게 동족이 거의 다 죽어버린 가고일이 멀리서 다가오는 이들을 발견했다.
놈은 이 괴물 같은 인간보다는 저쪽이 훨씬 약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곧장 몸을 틀어 그들에게 향하는 가고일.
-휘익! 퍼억!
“커억!”
진수가 어떻게 반응할 겨를도 없이 바로 부상자가 나왔다.
“뭐, 뭐야! 가고일이었어?”
“저기가 더 위험하잖아!”
예상치 못한 수준의 몬스터가 그들에게 접근하자 헌터들은 경악했다.
분명 주민센터에 모였던 이들 중에서 후암동에 배치된 사람은 C급이 가장 높은 등급이었다.
그 유일한 C급 헌터도 여성이었기에 진수가 D급이라는 건 자연스럽게 유추가 가능했다.
그랬기 때문에 D급 헌터가 수없이 해치우고 있던 몬스터라면 변종 까마귀나 자이언트 모스 따위의 하급 몬스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E, D급 헌터 정도는 한 방에 전투불능으로 만들 수 있는 가고일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런...!”
진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인상을 쓰며 손을 재촉했다.
가고일을 상대하기엔 거추장스러운 전기톱을 배낭에 쑤셔 넣었다.
손에 [강철 거미줄]로 장갑을 씌우고 양손으로 가고일들을 끌어당겨 머리나 심장을 때려 부쉈다.
가고일도 결국 돌로 이루어진 몬스터.
석사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손이 닿는 족족 파괴가 되었다.
“미친...!”
“저분 쪽으로 빨리 갑시다!”
“이제 살았어요!”
진수의 신들린 듯한 무위를 본 헌터들은 퇴각 속도를 높였다.
그들은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가 와서 전투를 이어나갈 수 없는 지경이었다.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하고 덤벼드는 오크나 웨어울프를 채 쓰러트리지도 못하여 힘겹게 반격이나 하는 정도였다.
그러니 가고일을 쿠키 부수듯 손쉽게 처치하는 진수가 구원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진수의 눈에 그들은 짐덩이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다들 잘 버텨요! 일일이 챙기진 못 합니다!”
이윽고 가고일을 모두 제거한 진수는 전기톱을 꺼내들고 새로운 몬스터 무리에게 돌진했다.
그 자신도 무척이나 힘든 상태였지만 그냥 두면 다 죽어나갈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정도로 매정하진 못했다.
‘오늘 돈은 정말 겁나게 벌겠구나!’
-위이이잉!
전기톱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아가기 시작했다.
벌건 불똥이 아닌 푸른 귀화가 튀는 톱날.
진수는 전기톱을 양손으로 잡고 미친 듯이 휘둘렀다.
방어를 도외시한 채 공격 일변도로 나가는 광전사의 싸움이었다.
“무조건 버텨요!”
“뒤쪽에서 포션 남은 거 나눠서 써!”
“탱커들도 잠시 회복할 수 있게 막아줍시다!”
다른 지역에서 온 헌터들은 한 데 뭉쳐서 오로지 생존을 위해 버티기만 했다.
몬스터가 쏟아지는 균열 사태에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진수가 놈들을 학살해준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는 점점 늘어났다.
“저, 저기...! 헬하운드 떼다!”
진수의 활약으로 몬스터의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절망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저 멀리서부터 시뻘건 화염을 뱉어내며 달려오는 개떼.
악마의 사냥개라고도 불리는 악명 높은 몬스터, 헬하운드였다.
가고일보다도 더 강력한 몬스터라고 알려진 놈들이 대량으로 나타나자 헌터들의 눈에 낙망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컹! 컹!”
헬하운드들이 달려오는 속도에 맞춰 하늘엔 먹구름이 덮여왔다.
절망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걸 눈으로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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