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20

여러 질문들을 던지던 행인은 순순히 도시 내에서 숙박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사실상 건물 안에서 하는 노숙 같은 개념이지만.’ 
청더시는 허름하게나마 건물만 겨우 남아있는 상태였다. 
딱히 경제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면 된다고 했다. 
이미 누군가 자리를 잡지 않은 건물들을 알려준 사내는 제법 괜찮은 집으로 안내를 해준 뒤 사라졌다. 
주인 없는 건물에 당연히 안락한 침대나 이불 따위는 없었다. 
벽마저도 곳곳이 허물어져 바람이 통하고 있다. 
하지만 진수에겐 크게 문제될 일이 아니었다. 
밤이 깊어져 어둠이 내려앉으니 뱀파이어 로드의 망토가 [달의 심장]에 반응하며 그의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역시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는 다 믿을 게 아니라니까.’ 
위키에선 그래도 청더시가 도시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되어 있었다. 
이렇게 어디선가 도망쳐온 사람들이 모여든 지역이라는 내용은 없었다. 
‘뭔가 근래에 사정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진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냐면 자신이 자리 잡은 건물 주위로 다수의 사람들이 접근하는 게 감지되었으니까. 
‘그래, 역시 현지인의 말을 좀 들어보는 것도 좋겠지.’ 
그는 보란 듯이 팔베개를 한 채로 누웠다. 
다리도 척하고 꼬는 게 굉장히 여유로워보였다. 
* * *
건물의 천장 위에 복면을 쓴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한 사람이 천장의 구멍 사이로 무언가를 살피고 있다. 
“이제 누웠으니까 잠들면 덮치자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주위에 있는 인물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뭐 기다려?” 
그런 그들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자그마한 존재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뽀옹 
-뽀옹 
조그만 송곳을 든 그것은 계속해서 수를 늘려나가고 있었으니까.
청더시
“자, 잠깐! 잠깐만! 으아아악!” 
-휘익 
작은 진수들이 천장 위에 있던 사람들을 하나씩 붙잡아 건물 아래로 집어던졌다. 
[강철 거미줄]에 돌돌 말린 그들은 사지를 꼼짝도 못한 채 자유낙하를 경험할 수 있었다.
높이 계산을 칼같이 해서 머리가 땅바닥에 처박히기 직전에 멈춘다. 
그들도 나름 각성자로 제법 강한 축에 속했다. 
하지만 강력한 마력으로 뽑아낸 거미줄은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목이 부러질 뻔한 경험은 그들에게 굉장한 공포감을 주었다.
-끼익 
천장 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떨어진 뒤, 건물 1층의 문이 열렸다. 
느릿한 발걸음으로 누군가가 그들의 뒤에서 다가오는 게 느껴진다. 
-후욱 
이어 무형의 압력이 전신을 감싼다. 
이미 한 차례 두려움을 맛본 그들을 [드래곤 피어]가 덮치니 몇몇 인물은 거꾸로 매달린 채로 소변을 지리기까지 했다. 
-킁킁 
‘으.... [중급 후각] 때문에 머리가 다 아프네.’ 
건물에서 나온 진수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지린내가 상당한 고역이었지만, 자신의 의도대로 저들의 정신을 흔들어놨다는 증거였기에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자, 우리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 
평소라면 대화수단으로 전기톱을 먼저 꺼냈을 테지만 오늘은 순서가 좀 달랐다. 
골목 사이로 손을 뻗어 움켜쥐는 시늉을 한다. 
그러자 그림자가 뭉쳐 허공을 붙들었다. 
“헉!”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놀라는 소리가 났다. 
진수는 그림자가 솟구친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하는 짓이 좀 수상해야지.” 
그가 다가가면서 [죽음의 그림자]를 더욱 조였다. 
그러자 흐릿하게 사람의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진수에게 쉴 수 있는 건물을 안내해줬던 행인이었다. 
“몇 점이야?” 
진수가 뜬금없이 점수를 묻는다. 
“무, 무슨...?” 
“아이, 열 받게 할래? 저 사람들 보내서 시험해봤잖아.” 
손가락으로 [강철 거미줄]에 묶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내가 먼저 알아차리고 습격을 했는데 공격에 적의도, 살기도 없지. 구석에는 누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고. 얼씨구, 심지어 보고 있는 사람은 아까 나랑 말 섞었던 사람이네?” 
애초에 진수가 그에게 말을 걸었던 것도 유독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눈초리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숙박시설을 물었는데 이상한 것들을 되물어온다. 
이후 단순히 관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각성자들을 보내서 전투를 벌이려 하기까지. 
‘제압 아니면 시험이지. 근데 제압이라기엔 싸우는 태도가 너무 순하고.’ 
그래서 진수가 내린 결론은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파악해보려 한다는 것이었다. 
“뻔히 다 들켰는데 자꾸 말 돌리지 말고. 내 점수는?” 
“만점... 두말할 것 없이 만점이다.” 
그가 체념한 듯 말했다. 
열둘이나 되는 각성자들을 간단하게 제압. 
무력으로 꺾은 것뿐 아니라 의지까지 꺾어버렸다. 
게다가 기술을 사용해 숨어있던 자신도 발견했다. 
추가로 그들의 의도마저 파악했으니 점수로 치자면 만점에 추가점수까지 챙겨줄 수 있는 수준이다. 
“흐음~” 
대답을 들은 진수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근데, 내가 아까 한 말들이 거짓말이었으면 어쩌려고 이랬어? 사실은 내가 중국 정부의 개일 수도 있잖아.” 
진수는 그들이 자신을 시험한 이유도 짐작하고 있었다. 
청더시에 도착해 대화를 나눈 것은 눈앞의 남자가 전부다. 
그 때 이야기한 것이라곤 중국 정부에 좋은 감정이 없다는 것. 
그리고 베이징에 있는 자들과 마찰을 빚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내 실력을 테스트해봤다는 거는 써먹을만한가 궁금했단 뜻이겠지.’ 
서로 비슷하거나 같은 목표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베이징에 있는, 예를 들면 정부나 운명파 같은 녀석들을 적으로 삼고 있을 것이다. 
정부의 개라는 과격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봤을 땐 반정부 세력일 듯했다. 
다만, 그렇게 큰 세력을 상대하려고 하는데 겨우 말 몇 마디로 진의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허술하다. 
“나한테 [거짓 간파] 특성이 있다.” 
“오.... 그런데 용케도 사지 멀쩡하게 반정부 활동을 하고 있네?” 
[거짓 간파]는 굉장히 보기 드문 특성이었다.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려 들 때 그것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음모를 저지하기에 아주 유용한 능력이었기에 국가의 수장들이 곁에 두고 싶어 하는 특성 중 하나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느 나라에서는 팔다리를 잘라놓고 악세사리처럼 데리고 다닌다지....’ 
진수의 물음에 사내가 씁쓸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흐.... 이 능력 덕분에 반정부 활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됐지.” 
몹시 사연이 있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내 얘기가 궁금한 건 아닐 테고.... 당신도 우릴 해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평화롭게 이야기를 해보자고.” 
진수는 [죽음의 그림자]를 해제하여 그를 풀어주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거미줄에서 해방시켜줬다. 
[거짓 간파] 특성을 가진 사내가 오래 매달려 있었던 탓에 저린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나는 진가구라고 한다. 예상한대로 반정부 세력에 몸담고 있지. [거짓 간파] 외에 특출 난 특성이나 기술은 가지고 있지 않아. 헌터 등급 B 정도라고 보면 된다.” 
‘별다른 특성이나 기술이 없는데도 B급 헌터 수준이라고...? 그게 더 대단한데.’ 
진가구를 제외한 인물들도 B급 헌터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실력의 B급 헌터들이었기에 어지간한 A급 헌터는 간단하게 상대할 수 있는 인력이었다. 
그런데 진수는 그들을 완전히 압도해버렸으니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한국에 S급 헌터가... 한 명뿐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혹시...?” 
“A급이야. A급 된 지 1년도 안 됐는데 무슨.” 
“아니, 1년차 A급 헌터가 이렇게 강하다고? 한국은 승급 기준이 더 까다롭나?” 
진가구는 굉장히 놀랐다. 
옥상에서 B급 헌터들을 제압하는 것이나 엄청난 위압감을 뿌리는 것, 그림자를 이용하는 기술까지 무엇 하나 약한 게 없었다. 
‘하나하나가 다 A급 헌터의 주력 능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데 이제 겨우 1년차라니....’ 
“내가 대단한 거지 한국이 특별한 건 아냐.” 
“....” 
“뭘 봐.” 
“아,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 간단히 소개를 마친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진수는 운명파에 관한 것. 
진가구는 중국 정부에 관한 이야기였다. 
“운명파라... 그렇다면 역시 우리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진수가 자신의 목표는 운명파라고 알리자 진가구는 현재 중국에서 운명파의 입지를 알려주었다. 
“게이트 사태 이후로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 말살정책을 더욱 강하게 펼쳤다. 중원 지역에 속한 인간들은 여전히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 어떤 특성이나 기술보다 강력한 능력이 되었지.” 
오직 정부, 그리고 기득권을 위한 나라가 되어갔다. 
각성자들이 나타나 반발을 할수록 더욱 강압적으로 통제를 했고, 결국 한 차례 반란이 일어났다. 
그 결과가 얼마 전까지의 중국 상황이었다. 
정부는 중원 지역만 통제하고 있었고 그 외의 지역은 성이나 자치구 단위로 패권이 나뉘어졌다. 
“그런 분위기에서 운명파가 나타났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 시작된 녀석들은 무서운 속도로 세를 불리기 시작했지.” 
처음 운명파는 중국 정부에 맞설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특히 박대 받는 소수민족, 조선족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그 당시에 연변을 포함한 지린성의 패권을 쥐고 있던 것이 적룡파. 
하지만 정부의 눈치를 살피던 그들은 조선족들에게 외면을 받게 되었다. 
“적룡파는 그때 해외 진출을 한다는 변명을 하면서 자취를 감췄지. 하지만 다들 알았어. 운명파한테 밀려서 도망쳤다는 걸.” 
‘그래서 뉴트럴바이오의 요청을 받고 한국으로 왔던 거구나. 이미 운명파랑 싸워서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고.’ 
진수는 RD의 상황이 이제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지린성을 차지한 다음부터는 아주 파죽지세였어.” 
성 단위로 몸집을 키우자 순식간에 인접한 헤이룽장성과 랴오닝성까지 차지한 것이다. 
운명파를 지지하던 이들은 그들의 다음 행보를 주목했다. 
바로 허베이성을 뚫고 들어가 정부를 무너트릴 것인가. 
네이멍구 자치구까지 일통하며 더욱 힘을 키울 것인가. 
“놈들은 바로 허베이성으로 향하더군. 우리는 그 모습에 큰 기대를 했어. 근데... 그 자식들이 그대로 정부에다가 지린성, 헤이룽장성, 랴오닝성을 다 갖다 바칠 줄은 아무도 몰랐지. 크흐흐....” 
진가구는 그 당시가 떠올랐는지 어처구니없어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을 믿었던 이들을 모조리 배신하고는 오히려 정부를 도와 다른 성들을 차지하는 데에 힘을 보탰다. 
몽골족들이 있는 네이멍구 자치구, 남쪽의 후베이성이나 장쑤성, 서쪽의 닝샤 후이족 자치구가 정부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게다가 지금도 계속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민우혁이 했던 말이랑 조금 다른 부분도 있긴 하지만... 외부에서 본 관점은 이게 맞겠지. 결과적으로 운명파랑 중국 정부가 합쳐졌다는 건 동일하니까.’ 
민우혁은 진수가 중국 정부보다 더 방해물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운명파가 중국 정부에게 복속된 게 아니라 반대로 중국 정부를 차지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놈들의 영역이 넓어진 만큼 고통 받는 사람들도 많아졌어. 저절로 반정부 활동을 하는 세력도 늘어났지.” 
진가구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정부를 없앨 거다. 소수민족은 소수민족끼리, 각 지역의 성들은 성들끼리 새로운 중국을 만들겠지. 하나의 중국보다 나라의 힘은 약할지언정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나라가 될 거야.” 
그들의 목표를 들은 진수는 그 이야기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정부를 없애려면 운명파를 없애야한다. 
또한, 중국의 국력이 약해지는 것은 한국인 입장에서 상당히 반가운 일이었다. 
“근데 무작정 없애고 싶다고 생각만 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 계획이 있어?” 
“물론이지. 전국에 우리와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다.” 
진가구는 그들이 계획하고 있는 것들을 진수에게 말해주었다. 
생각보다 반정부 세력의 규모가 컸다. 
성 하나의 패권을 지닌 집단도 있었고, 여러 소수민족들, 중국 정부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다수였다. 
“베이징과 그 근처에 있다가 떠나온 사람들이 흘러서 여기 청더시에 모인 거고.” 
진수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청더시는 버려진 도시였다. 
균열 등으로 인해 비각성자가 지낼 수 없는 곳이 되었으니까. 
지금은 베이징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반정부 세력의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다. 
“세력을 조금만 더 모으면 계획을 실행할 수 있어. 특히 몽골족만 어떻게 설득하면 부족할 게 없겠는데.... 워낙 힘도 세고 자존심도 센 사람들이라....” 
진가구가 안타까워 하며 말했다. 
이에 진수는 자신의 손바닥에 새겨진 녹색 용 문신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지기
“그게 정말인가?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몽골족이 당신을 따를 거라고?” 
진가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며시 떨리는 음성에서 놀라움이 전해졌다. 
그만큼이나 대단한 일이었다. 
중국 정부가 네이멍구 자치구를 차지하고 몽골족을 복속시키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수많은 몽골족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은 끝까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게 츠펑시에서 만난 몽골족이 한족이라고 하면 일단 싫어했던 이유였다. 
게이트 사태 이후에 태어난 몽골족은 특이하게도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괴력을 지녔다. 
덕분에 몽골족은 수가 적어도 무력 수준이 높았다. 
결국 중국 정부에서도 그들에게 목줄 채우는 일을 포기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거짓 간파]로 알 수 있잖아?” 
진수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의 말대로 진가구는 이미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그저 진위여부를 떠나서 엄청난 일이었기에 저절로 의심이 들었을 뿐이다. 
“홍갈락 영감님한테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어. 무슨 일이 있어도 협조해줄 거야.” 
몽골족의 큰 어른인 홍갈락의 이름까지 나왔다. 
진가구는 정말 운이 좋았다는 걸 깨달았다. 
‘자칫 잘못해서 적으로 돌렸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실력 테스트를 하겠다고 귀인을 놓칠 수도 있었다. 
몽골족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하나로 적어도 3년에서 5년의 시간은 번 셈이다. 
반면 진수는 진가구의 반응에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유비무환이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몽골족을 섭외해둔 거였는데 이렇게까지 놀랄 일이었나?’ 
그는 몽골족의 성격을 많이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바로 계획을 실행해도 좋겠군. 중국 정부를 몰아내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하려는 일은 몬스터를 하나 베이징에서 떼어놓는 거다.” 
“몬스터를 떼어놓는다고...? 처치하는 게 아니라?” 
진수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발언에 되물었다. 
떼어놔야 할 정도로 중요한 몬스터면 그냥 죽여 버리면 되는 게 아닌가. 
“후.... 그게 가능하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 
진가구의 얼굴이 수심에 잠겼다. 
“무슨 몬스터길래? 전설 속의 용이라도 돼?” 
이제 중국에 드래곤이 아닌 용이 산다고 해도 충분히 믿을 수가 있다. 
진수 자신이 일단 [녹룡의 화신] 특성을 지니고 있었으니. 
녹옥룡으로 하여금 그렇게 강력한 능력을 지니게 만든 용이라면 처치할 엄두가 안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이 지금의 정부를 돕지는 않겠지. 우리가 처리해야 할 몬스터는 무지기라는 녀석이다.” 
무지기. 
중국의 전설에도 등장하는 물의 요괴다. 
대단한 신통력을 지니고 있으며 불로불사에 가까운 생명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자금성 서쪽에 있는 중난하이에 있지. 원래는 허난성 쪽 강에서 살던 녀석을 운명파가 찾아내 중난하이로 옮겼다. 특이한 건 보통 요괴형 몬스터들은 적룡파가 불러내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무지기는 소환된 게 아니야.” 
진가구의 말 대로면 무지기는 균열을 통해 나왔거나 아니면 전설처럼 옛날부터 존재하던 녀석이라는 이야기였다. 
진수는 문득 오세라고 하는 신적인 존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지구에 이미 게이트 사태가 한 번 있었다는 것. 
전설이나 신화에 기록된 괴물들이 그 당시의 몬스터라는 이야기. 
‘아... 어쩌면 먼 옛날부터 쭉 살아온 괴물일지도 모르겠네.’ 
그토록 오랜 기간 살아남았다면 분명히 평범한 수준의 몬스터는 아닐 것이다. 
“운명파 놈들이 이 무지기를 주석한테 바쳤다. 친교의 조건이었는지, 뇌물의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계약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주석의 근처에 있으면 주석을 해치울 수가 없어. 예전에 한 차례 주석을 암살했었는데, 무지기에게 생명력을 받아서 죽지 않고 살아났다고 하더군.” 
반정부 세력이 무지기를 베이징에서 떼어내려는 이유는 주석을 해치우기 위해서였다. 
무지기가 생명력을 나눠주는 것은 거리의 제한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녀석을 죽이기는 어렵더라도 주석에게서 떨어트린 다음 바로 암살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음... 그 무지기라는 몬스터, 안 죽는다는 게 어떤 식인 거야? 아무리 피해를 입어도 목숨이 붙어있는 건가? 아니면, 엄청 빠르게 회복을 한다던지....” 
“놈은 주술 같은 걸 사용한다. 힘 자체도 굉장히 강하지만 바람과 번개를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마찬가지로 죽지 않는 것도 주술적인 능력인 것 같다. 치명상을 입히면 분명 죽는 것 같은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멀쩡한 상태로 돌아온다.” 
‘죽는데 다시 멀쩡하게 돌아온다라....’ 
진수는 진가구의 말을 잠시 곱씹어봤다. 
“그래서 무지기를 중난하이에서 끄집어내서....” 
“잠깐. 내가 그 계획을 좀 더 개선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수는 이어서 설명하는 진가구의 말을 멈췄다. 
* * *
중국의 중심이라고 하는 중원. 
그리고 그 중원 지역에 있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 
진수는 진가구와 함께 베이징에 도착했다. 
“와... 여긴 다른 도시들이랑 장르가 좀 다르네.” 
과연 수도라 그런 것일까? 
베이징은 굉장히 발달된 도시였다. 
건물들은 몬스터의 부산물을 통해 개발된 신소재로 지어져 있다. 
도로에는 마석으로 움직이는 이동수단들이 돌아다닌다. 
균열로 인해 언제든 위협을 받는 시대이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엔 평화로움이 가득하다. 
‘서울보다 더 삐까뻔쩍한데?’ 
음식점이나 카페 따위의 생활 시설도 몹시 잘 갖춰진 게 보인다. 
무법지대랑 별반 다를 게 없었던 지안시. 
차는 많이 돌아다녔지만 자동차 공장을 제외한 시설들은 조악했던 창춘시. 
초원에서 말을 키우고 건물들은 옛 수준에 머물고 있던 츠펑시. 
앞서 가봤던 그 어떤 도시들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화려하지. 여기야말로 지금 중국의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진수의 옆에서 진가구가 말했다. 
발전된 도시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건물과 건물 사이, 어둡고 잘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땟구정물이 흐르는 걸인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안들이 와서 걸인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 
“중국에서는 돈 없고 능력 없으면 인간 취급을 못 받아. 가진 게 없다면 이미 많이 가진 돼지들의 노예가 될 뿐이지. 그리고 결국 돼지들의 배만 불려주다가 죽어나가게 되는 거야.” 
진가구의 표정이 굉장히 어두워졌다. 
“그래서 나라 전체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 앞서 나가는 게 능사라는 인식이 퍼져 있어. 남의 것을 도둑질이라도 해서 이기면 된다는 식이지. 당장 눈앞의 문제는 해결이 될지 모르지만 미래가 없는 의식이야. 그리고 결국 이 모든 것들이 기득권에게 힘을 주게 돼. 악순환은 반복되고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 거지.” 
말을 이어가던 그는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보았다. 
몹시 매서운 눈빛이었다. 
‘자금성....’ 
지금의 중국 정부는 자금성을 행정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게이트 사태 이후로 국가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지만 사실상 제국을 꿈꾸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죽창을 들고 왔잖아. 이 죽창은 성능이 확실하다고.” 
진수가 옆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중국 반정부 세력이 성공하면 여러모로 좋지. 당장 나는 임무를 깰 수 있어서 좋고, 멀리 보면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 우리나라와의 악연에서도 우리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고....’ 
베이징에 도착한 그는 바로 [차원 전이]의 임무부터 받았다. 
자금성 옆에 대단한 몬스터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임무를 받으면 십중팔구 원하는 임무가 나왔다. 
-임무 : 무지기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체력 +20, 마력 +10 
‘능력치 30이라니.... 화이트 드래곤을 보낼 때랑 보상 수준이 비슷하네.’ 
대량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보상. 
과연 생명력이 엄청난 몬스터라더니 체력을 20이나 올려준다고 한다.반갑지만 달갑지만은 않다. 
‘보상이 이러면 화이트 드래곤만큼이나 강하다는 거 아니야....’ 
지금까지의 경험에 미루어 봤을 때, 무지기라는 녀석과의 싸움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음.... 그래, 서둘러서 움직여야겠군.” 
진수의 말에 진가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자금성 서쪽에 있는 중난하이로 향했다. 
성의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규모의 호수. 
중해와 남해 두 개의 호수로 구성된 것이 바로 중난하이(中南海)였다. 
‘와.... 마력도 물론 상당한 수준인데, [사신의 감각]에 느껴지는 생명력이 장난 아니네.’ 
물속에서 커다란 생명 반응이 느껴졌다. 
그게 무지기라는 녀석이라는 건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시작하자.” 
진가구가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다수의 사람들이 나타나 중난하이를 둘러쌌다. 
-깡! 깡! 
그들은 돌연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품에서 쇠사슬과 망치를 꺼내더니 요란하게 두들긴 것이다. 
호수 주변에 쇠사슬과 망치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 찼다. 
‘올라온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진수는 호수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오는 걸 느꼈다. 
-펑! 
수면 위로 튀어나온 존재는 굉장히 특이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원숭이와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덩치는 트럭 만했다. 
푸른 털을 지닌 녀석은 금빛의 눈으로 사방을 쏘아봤다. 
유독 특징적인 부분은 목이 굉장히 길었는데, 몸통과 비슷할 정도의 길이였다. 
기다란 목에는 굵은 쇠사슬이 겹겹이 묶여 있었다. 
쇠사슬은 호수 속에서부터 이어졌다. 
그러나 묵직하게 옥죄는 쇠사슬에도 불구하고 녀성의 운신은 퍽 자유로워보였다. 
“자, 이제 다들 물러서시고.” 
무지기가 완전히 호수 위로 올라오자 진수가 앞으로 나섰다. 
온몸에 검은 방어구를 착용하고 뱀파이어 로드의 망토도 둘렀다. 
마력 회로를 가동하여 신체능력을 최고조로 올렸다. 
‘달은... 아직이네.’ 
밤이 완전히 깊진 않았다. 
최고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자란 것도 아니다. 
진수는 [차원의 틈]에서 전기톱을 꺼냈다. 
무지기는 그를 경계하며 싸울 태세를 갖췄다. 
-콰르릉! 
선공은 무지기로부터 시작됐다. 
손에서부터 굵은 전기 줄기를 쏘아냈다. 
천지를 울릴 정도로 엄청난 번개 공격이었다. 
번쩍한 뒤에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다. 
“이거 참, 안타깝네. 하필 전기를 쓰냐. 크흐흐.” 
진수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슈우욱 
이어 그의 몸 위로 검은 오러가 덧씌워진다. 
마치 사신의 가호를 받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위이이잉! 
전기톱이 맹렬히 돌아가며 무지기의 가죽을 난도질했다. 
“키엑!” 
녀석은 가죽에 느껴지는 고통보다 생명력이 뭉텅이로 감소함에 놀랐다. 
[저승사자] 특성에 헬 그림리퍼 하데스의 힘까지 합쳐진 결과였다. 
서로 공격을 한 번씩 주고받은 둘은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무슨 게임 핵이라도 쓴 것 같잖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가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아주 건방지구나
-콰드득! 
전기톱이 거칠게 움직이며 무지기의 살갗을 헤집었다. 
동시에 생명력을 앗아가니 거대한 괴물 원숭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생명력을 모았다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크다는 의미였다. 
[빙의]로 빌려온 하데스의 힘은 죽음의 또 다른 형태였다. 
“끼에엑!” 
진수와 무지기가 서로 대등하게 싸우는 것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전투력을 수치로 비교해본다면 무지기가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나랑 상성이 안 맞았지.’ 
바람을 다스리는 능력은 그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번개를 뿌려봐야 [절연체] 특성 앞에서 무력하다. 
육체적인 전투에서는 확실히 원숭이 요괴가 진수를 압도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녀석의 정신이 온전할 때. 
소중히 모은 생명력이 올이 풀린 실밥처럼 흩어져버리자 놈은 접근 자체를 두려워했다. 
이후부터는 술래잡기나 다름이 없는 모습이 되었다. 
-위이이잉! 
“크흐흐흐!” 
인간이 전기톱을 휘두르며 쫓으면 몬스터가 질겁하며 도망친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노라면 희극 무대나 다름이 없었다. 
“세상에... 우린 겨우 도시에서 끌어낼 생각만 하던 괴물인데.... 저놈을 갖고 논다니.... 저 사람은 대체....” 
진가구는 입이 쩍 벌어졌다. 
하지만 아직 결말이 난 것은 아니다. 
무지기가 두려워하며 도망치고 있지만 상황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저 괴물 원숭이가 무서운 점은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는 거니까....’ 
진수에 의해 무지기가 죽은 뒤 다시 부활한다면 그땐 두려움을 떨치고 반격할지도 모른다. 
진가구는 언제든 처음 계획대로 원숭이 요괴를 유인할 준비를 해두었다. 
-화르륵! 
전기톱을 피해 도약하는 무지기의 다리에 흰색 불꽃이 달라붙었다. 
마력으로 바람을 일으켜 추진력을 얻으려던 게 무산되었다. 
거구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쿵! 
“캬악!” 
무지기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소중한 생명력은 물 새듯 줄어들고 있고 마력은 괴상한 불꽃이 태워버린다. 
아프다. 
뜨겁다. 
괴롭다. 
이 수많은 고통을 준 대상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달려들고 있다.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 절박한 마음을 짓밟으며 날붙이를 든 인간이 덤볐다. 
-푸욱, 콰드드득 
진수의 전기톱이 무지기의 가슴팍 깊숙이 박혔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톱날이 돌아간다. 
놈이 모아둔 생명력과 신체의 기능이 모두 소실되었다. 
커다란 원숭이 요괴의 손이 파르르 떨리며 들렸다가 이내 툭- 하고 떨어졌다. 
‘주술. 살아난다...!’ 
무지기는 생명의 불꽃이 꺼져감을 느꼈다. 
하지만 스스로 걸어둔 부활의 주술이 있다. 
비록 생명력이 많이 줄어들어 평소보다 부활했을 때 약화가 되겠지만 인간이 방심했을 때 도망치면 된다. 
눈이 감긴다. 
‘멍청한 인간. 내가 이긴다!’ 
잠깐의 어둠만 참아내면 된다. 
아주 잠깐.... 
“키엑!” 
무지기는 곧 눈을 번쩍 뜨며 부활했다.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도망을 치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캬우...?” 
하지만 주위에는 인간이 보이지 않았다. 
녀석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한창 지어지고 있는 건물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몬스터들. 
그리고 여유롭게 산책을 하고 있는 슬라임 하나. 
녀석은 건방지게 슬라임 주제에 왕관을 쓰고 있었다. 
-무지기 [피주머니] 차원 전이 성공.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20, 마력 +10 
진수는 눈앞에 나타난 안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역시, 부활하기 전에 [차원 전이]가 채갔네. 흐흐흐.’ 
그가 무지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각했던 대로 일이 잘 풀렸다.
진수는 무지기가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말에 집중했다.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것과 죽었는데 부활하는 것은 그에게 천지차이였다. 
일단 한 번 죽이면 차원 단위로 끌고 가는 [차원 전이]가 그 어떤 주술이나 마법, 기술 따위보다도 우위에 있었으니까. 
“이봐, 방금 그놈 웃었는데?” 
“냅둬, 기분 좋은 꿈이라도 꿨나보지.” 
진가구는 무지기가 사라져버린 뒤 진수에게 다가왔다. 
괴물 원숭이는 죽어가는 와중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떤 꿍꿍이속이 있었을까? 
하지만 녀석은 부활하지 못했고 무슨 이유로 웃었는지 알 길은 없어졌다. 
-무지기 [피주머니]가 슬라임 [포세이돈]과 대결합니다. 
-대결 결과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무지기는 요정의 호수로 전이가 되었다. 
그곳에서 아틀란티스의 왕 포세이돈과 만난 듯했다. 
‘포세이돈 짬이 있는데.... 참교육 한 번 해주나?’ 
진수가 두 번째로 전이를 시켰던 녀석이 바로 포세이돈이다. 
온갖 몬스터들의 왕이 될 정도이니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포세이돈]의 승리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3, 민첩 +3, 체력 +5, 골드 +20 
-[피주머니]가 [아틀란티스]국에 합류합니다. 
이내 대결은 포세이돈이 이기며 끝이 났다. 
덕분에 다시 한 번 능력치가 올라갔다. 
임무와 대결로 체력 능력치가 대폭 오르니 온몸에 기운이 넘쳐났다. 
“흐흐흐.” 
진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정말 대단하군.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정말로 무지기를 처치할 줄이야....” 
진가구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의 표정에는 존경심마저 드러날 정도였다. 
-철컥, 텅! 텅! 텅! 
그들이 계획 성공의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갑자기 사방에서 장치 작동음이 들려왔다. 
이어 환한 스포트라이트가 이곳저곳을 비추더니 이내 진수와 진가구를 향해 집중되었다. 
“이 반란종자들! 네놈들은 포위되었다!”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로 밝은 빛 뒤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 반응이 [사신의 감각]에 감지된다. 
‘대규모 순간이동이나 생명력을 감추는 기술이 있었나본데...!’ 
진수는 환한 빛 때문에 표정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의 입매는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거 봐. 내가 분명히 뒤통수 맞을 거라고 그랬지?” 
그는 진가구를 향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진가구는 다시 한 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돼.... 무슨 게임 핵이라도 쓴 것 같잖아.’ 
비단 전투 능력뿐만이 아니다. 
베이징에서 무지기를 처치하기 위한 계획을 짤 때, 진수가 호언장담을 한 게 있었다. 
분명히 반정부 세력 내에서 정보가 새어나갈 것이라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원숭이 요괴를 잡는 중이든 잡고 난 뒤든 습격을 당할 걸 상정해두고 움직이라는 말을 했었다. 
진수는 국제형사경찰기구의 일로 한 번 당해봤기에 예상을 했던 것이다. 
-촤르륵 
호수 주변에서 쇠사슬과 망치를 들고 있던 자들이 일시에 쇠사슬들을 내려놓았다. 
밝은 빛 아래에서 보니 그 동작들이 상당히 어색했다. 
마치 로봇 같다고 할까. 
그들은 동시에 뒤를 돌아보더니 포위망을 향해 돌진했다. 
-쾅! 쾅! 
원거리 공격 기술들이 화려하게 날아든다. 
쇠사슬을 들고 있던 자들은 허망하게 몸이 산산조각 났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상당히 희한했다. 
조각난 파편이 속이 빈 도자기 인형 같았으니까. 
그들은 공격을 받음과 동시에 몸이 터지면서 연막을 내뿜었다. 
“자, 저 꼭두각시들이 잠깐 시간 벌어줬으니까 당신도 그 귀환석인가 뭔가 써서 돌아가. 나도 금방 합류할게.” 
진수가 여유롭게 말하자 진가구는 품에서 큼지막한 마석과 마법진이 그려진 돌멩이를 꺼냈다. 
그는 귀환석을 사용하기 전에 눈앞에 있는 진수를 보았다. 
‘부족한 세력도, 처치하기 힘든 강적도, 함정까지도 해결을 해주다니. 이 사람 도움을 받으면 이번엔 정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 능력이면 이 상황도 큰일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조심해.” 
갑자기 나타난 인물이지만 반정부 세력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어버렸다. 
진가구 입장에서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걱정할 거 없으니까 빨리 가기나 해.” 
진수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거짓 간파]가 그의 말이 허세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진가구는 일말의 걱정도 털어버리고 바로 귀환석을 사용해 자리를 벗어났다. 
‘나도 이제 도망을 가보실까나.’ 
-스으윽 
그의 몸 위로 드래곤의 형상이 떠올랐다. 
이어 엄청난 양의 마력이 집중되었다. 
-푸화악! 
곧장 터지는 냉기 브레스! 
한 바퀴 돌며 사방 360도에 모두 브레스를 날려주었다. 
“허, 헉...! 마력을 끌어올려라! 후방에서는 천라지망을 펼쳐!” 
폭풍처럼 몰려오는 냉기에 지휘관이 기함하며 소리를 질렀다. 
진수는 그 사이에 [차원의 틈]에서 공허룡 코트와 뱀파이어 로드의 망토를 꺼내 착용했다. 
[유체화]와 [투명화]까지 사용하여 빠른 속도로 자리를 벗어났다. 
‘흐흐, [사신의 감각]이나 다른 생명 감지 능력을 가지고 오지 않는 한 절대 잡힐 리가 없지.’ 
천라지망이라는 말에 걸맞게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겹겹이 벽을 세웠다. 
그중에는 후각이나 청각, 시각 등으로 감지를 하는 각성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군데군데에서 각자 자신들의 특기인 감각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진수가 은신을 위해 갖춘 것들 중에서 무엇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필히 걸렸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돼.’ 
십여 분을 전력으로 움직이고 나니 천라지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굉장한 거리를 주파했다. 
-스르륵 
“휴우, 잠시 체력이랑 마력 좀 회복하자.” 
진수는 [유체화]와 [투명화]를 해제했다. 
워낙 능력치가 높았기에 빠른 속도로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몇 분만 지나면 완전한 컨디션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팍! 
갑자기 날아온 공격만 아니었다면. 
“누구야!” 
[야성]으로 살기를 감지한 진수가 급히 몸을 피했다. 
그가 있던 자리에 송곳 같은 게 날아와 꽂혔다. 
땅에 박힌 뒤에도 손잡이가 흔들리는 것이, 굉장한 힘이 실렸다는 걸 보여주었다. 
“후, 맞출 거라고 기대는 안 했지만 아쉽네.” 
공격이 날아온 방향에서 누군가가 달려왔다. 
자금성 쪽에서부터 쭉 진수의 뒤를 쫓은 듯했다. 
그는 상당히 체구가 있는 인물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후드와 가면, 옷으로 가려져 정체를 완전히 숨기고 있었다. 
“중국 정부에도 인물이 없진 않았네.” 
천라지망을 펼친 자들 중에서는 아무도 진수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 자는 홀로 그를 감지하고 뒤쫓은 것이다. 
“고작 널 찾아냈다고 인물이라 말한다고? 아주 건방지구나,” 
가면을 쓴 자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김진수.” 
“뭐...?” 
그는 진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우리가 널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어? 사사건건 그렇게 방해를 하는데 말이야.” 
‘중국 정부가 아니라 운명파 쪽 인간이구나. 그때... [유체화]를 썼던 그놈이야.’ 
가면을 쓴 자의 말을 통해 그의 소속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널 그냥 봐주고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근데, 이제 그냥 두면 안 되겠어.” 
가면을 쓴 자가 살기를 뿜어냈다. 
상당히 강한 기운이었다. 
하지만 진수도 이제 힘으로 어디서 꿀리지는 않았다. 
“가만히 안 둘 능력은 되고?” 
진수도 전투태세를 갖췄다. 
[빙의]로 평천대성 흑우의 힘을 빌려온다. 
마력 능력치가 증가한 만큼 미증유의 거력이 온몸에 넘친다. 
“건방진 게 누군지 알려줄게. 겸사겸사 물어볼 것도 있고.”
몬스터를 죽여야 돼
‘허, 희한하네....’ 
가면을 쓴 괴한과의 싸움이 이어지면서 진수의 머릿속엔 같은 생각이 반복됐다. 
-팍! 
동시에 복부를 걷어차며 멀리 떨어지는 둘. 
서로 큰 타격은 없는 듯 보였다. 
‘거울을 보면서 싸우는 것 같아... 정말 희한하네.’ 
싸우는 스타일이나 기술 같은 것은 분명 달랐다. 
그런데 묘하게 신체능력, 특성 따위의 것들이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내가 [빙의]를 안 쓰면 살짝 떨어져. 확실히 자신만만한 근거가 있었네.’ 
신체 스펙이 비슷하지만 모든 면에서 진수가 조금 더 부족했다. 
심지어 팔다리의 길이까지도. 
대신 진수는 [빙의]를 사용해서 그 간격을 줄이고 있었다. 
흑우의 괴력을 빌려오면 완력에선 앞설 수 있다. 
민첩성이 필요할 땐 몽치의 몸놀림을 빌린다. 
타격을 입게 되면 아프로디테의 탄성이나 피주머니의 생명력을 이용했다. 
그렇게 겨우 균형을 맞추며 전투를 이어나갔다. 
“후우.... 뭐냐, 너. 어떻게 그런 능력을 쓸 수 있는 거지?” 
잠시 거리가 벌어지며 생긴 여유. 
사내가 진수를 보며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마치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처럼. 
‘나야말로 묻고 싶은 심정인데. 어떻게 이렇게 모든 면에서 스펙이 비슷한 것 같지.... 심지어 [탄성체질]이나 [야수체질]이 주는 능력까지 똑같은 것 같은 느낌이야.’ 
“왜, 내가 세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아, 아니다. 네깟 놈이 뭘 알겠냐.” 
놈은 진수를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저놈 저거 말 한번 기분 나쁘게 하네.... 근데 목소리가 뭔가 변조된 것 같은데...? 나중에 목소리로 찾아낼 순 없겠어.’ 
S급 헌터 수준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강한 인물이다. 
어쩌면 국제형사경찰기구나 나라에서 대표적인 헌터로 내세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목소리를 기억해두려 했는데 유의해서 들어보니 묘한 기계음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나중에 나도 김건 사장님한테 목소리 변조 장치 만들어달라고 해야겠다.’ 
-스윽 
진수는 일시적으로 찾아온 소강상태를 놓치지 않고 [빙의] 대상을 피주머니로 바꿨다. 
짧은 사이라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몸 위로 씌워진 오러의 형태가 무지기의 모습이 되었다. 
“아.... [빙의] 차이였나.” 
오러가 변하는 것을 보며 사내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너, 스토커냐...?” 
그의 말에 진수는 소름이 돋았다. 
[빙의]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준 적이 없다. 
심지어 A급 진급 심사 때도 특성과 기술 목록은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비슷한 기술들을 제쳐놓고 [빙의]를 언급한 것이다. 
“왜? 나름 비장의 수였나 보지?” 
사내가 이죽거린다. 
“흥, 어떻게 [빙의]를 활용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위험하겠어.” 
가면 뒤의 눈빛이 한층 더 살벌해졌다. 
그는 품에서 장갑을 꺼내 착용했다. 
-후우욱 
“놀아주는 건 여기까지다. 이만 죽어라.” 
장갑을 끼고 나니 사내의 기세가 달라졌다. 
장갑의 손등 부위에서 하얀 불이 타오르면서 그 열기를 힘으로 치환하는 것처럼 보였다. 
‘템빨로 찍어 누르겠다 이건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나 특성 수준이 비슷하다면 분명 더 좋은 장비를 가진 자가 유리하다. 
괴한이 꺼낸 장갑은 확실히 대단한 아이템인 듯했다. 
비슷하던 힘의 균형을 깨버렸으니까. 
“너만 좋은 거 갖고 있는 건 아니야.” 
-뿌우우우! 
진수는 빠르게 짓쳐드는 그를 보며 [전장의 뿔나팔]을 사용했다. 
주해응의 인장반지가 강화시켜주며 더욱 강한 효과를 냈다. 
-펑! 
이어 방어구에 있는 마력 회로를 가동시켰다. 
신체능력 전반이 향상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달까지.’ 
무지기를 상대할 때는 달이 완전히 뜨기 전이었다. 
녀석과 싸우고 천라지망을 피해 도망치고 괴한과 싸우기까지 하면서 달이 하늘 중앙에 걸렸다. 
[달의 심장]이 힘을 주고 뱀파이어 로드의 망토가 반응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강했어도 확실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은 모조리 가져온 것 같은데 확실하게 승기를 가져오기는 힘들었다. 
다시 수십 여 차례 공방이 오갔다. 
“아직도 숨기고 있는 게 있었다고? 내가 널 얕보긴 얕봤나 보다. 흐아앗!” 
사내는 기합을 질렀다. 
그러자 전신에 보랏빛 마력이 휘돌았다. 
‘아, 이건 위험하겠는데...?’ 
-퍽! 
그의 주먹이 총알처럼 날아와 꽂혔다. 
진수는 겨우 몸통을 틀어 급소를 피했다. 
“흡!” 
굉장한 타격력이었다. 
[탄성체질]을 활용해 충격에 몸을 맡기며 뒤로 빠진다. 
하지만 사내는 기세를 몰아 연달아 주먹을 휘두르며 들어왔다. 
‘어떻게 해야 하지?’ 
괴한이 보라색의 기운을 사용한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수세에 몰리고 있다. 
진수도 방어구의 마력 회로를 최고 출력으로 올리면 다시 균형을 맞출 수 있겠지만, 지속시간이 짧다. 
심지어 지속시간이 끝난 뒤에는 일시적으로 마력 회로가 비활성화 되기에 위험 부담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사내가 사용하는 보랏빛 기운도 제한이 있을지 모른다. 
진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의 선택에 따라 승패가 갈라질 것이다. 
‘안 되겠다...!’ 
연이어 공격에 적중당한 진수는 슬슬 위태로움을 느꼈다. 
자칫하다 아무런 수도 못 쓰고 목숨을 잃을 것 같았다. 
결국 마력 회로를 최고 출력으로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후우욱 
방어구에 마력을 밀어 넣는다. 
마력 회로가 더욱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한 차례 더 폭발음을 내며 출력을 높이려는 순간, 진수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스팟! 
난데없이 빼빼 마른 남성이 뛰어와서는 가면을 쓴 사내에게 손날을 휘두른 것이다. 
그 속도가 엄청나 회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풍압으로 옷의 일부가 갈라졌다. 
‘이 사람... 어디서 봤지?’ 
진수는 갑자기 난입한 그가 왠지 모르게 구면인 것 같았다. 
“아아, 압록강!” 
RD에서 일할 때 블루 오아시스를 가지러 갔다 복귀하는 길에 압록강에서 짧게 마주쳤던 사람이다. 
찰나였지만 쇠꼬챙이 같은 모습이 워낙 인상이 깊었다. 
“이런, 너무 여유를 부렸나. 동료가 또 있는 줄은 몰랐는데....” 
진수가 갑자기 나타난 인물을 보며 아는 체를 하자 사내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팡! 팡! 
빼빼 마른 남자는 어디에서 그렇게 힘이 솟는지 엄청난 기세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보랏빛 기운을 몸에 두른 사내도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게 되었다. 
“김진수, 오늘은 운이 좋았네. 다음에 만나면 그날이 제삿날인 줄 알고 있어라.” 
가면을 쓴 남자는 [유체화]를 사용하더니 잽싸게 몸을 피했다. 
쇠꼬챙이 같은 사내는 자신의 공격이 허공을 가르자 순간 당황한 듯했다. 
그 덕에 운명파의 괴한은 무리 없이 도망칠 수 있었다. 
“참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일단 다음에 저놈을 만나면 이길 방법을 좀 강구해야겠네.” 
진수는 가면 쓴 자가 떠나가자 한 시름 놓았다. 
“휴, 덕분에 그래도 위기를 면했네요. 감사합니다.” 
이어 자신을 도운 사내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몬스터... 고약한 냄새가 나....” 
그는 코를 벌름거리며 이상한 소리를 했다. 
허공의 냄새를 맡더니 이내 진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몬스터는... 모두 죽여야 돼....” 
사내의 눈에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어...?” 
-츠팟! 
남자가 손날을 횡으로 그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진수는 급히 몸을 뒤로 빼며 회피했다. 
“왜, 왜 이래요?” 
“나, 나는 용사.... 세상을 구해야, 몬스터를 죽여야 돼...! 몬스터!” 
그의 눈은 어느새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몬스터를 죽여야 된다고 반복적으로 말을 한다. 
그리고 지금 그 몬스터가 누굴 지칭하는 것인지는 명백했다. 
당장 찢어 죽일 기세로 진수에게 공격을 날리고 있었으니까. 
“하, 미치겠네. 왜 자꾸 이상한 놈들이 꼬이는 거야!” 
진수는 몇 차례 대화로 오해를 풀어보려 했다. 
하지만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쇠꼬챙이 같은 사내는 몇 가지 말들을 번갈아가며 이야기했다. 
세상이 멸망했다. 
그놈을 믿는 게 아니었다. 
몬스터는 죽여야 된다. 
나는 용사다. 
“파투스교를 막아야 해...!” 
“뭐?” 
그리고 또 다시 들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단어가 나왔다. 
“모두 속았어. 몬스터를 죽여야 돼....” 
-퍽! 
순간적으로 당황한 진수의 복부에 사내의 손이 박혔다. 
아무 것도 쥐고 있지 않은 맨손이었는데 방어구를 관통하며 상당히 깊은 상처를 냈다. 
“크윽...!” 
스스로 용사라 칭하는 사람답게 전신이 잘 벼려진 칼 같았다. 
진수는 실프 헤르메스의 힘을 빌려 사내를 멀리 날려 보냈다. 
하지만 그는 날아갔다가 발이 땅에 닿자마자 다시 진수에게 돌진했다. 
기필코 죽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몬스터, 죽여...!” 
“아이씨.... 일단 말이 통할 때까지 두들겨 패보자. 미친놈한텐 매가 약이라 그랬어.” 
진수는 옛 성현들의 말씀에 따라 약을 처방하기로 했다. 
[차원의 틈]에서 망치 두 개를 꺼냈다. 
긴 망치는 오른손에, 짧은 망치는 왼손에 든다. 
‘온몸이 칼 같으면 망치로 다 짓뭉개버리면 되겠지.’ 
-퍽! 
빠르게 접근하는 사내에게 묵직한 망치가 꽂혔다. 
얼굴이 고통으로 물들었지만 비명은 전혀 지르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몬스터를 죽여야 된다는 말뿐. 
이제는 일종의 주문 같기도 했다. 
-후웅! 
진수가 호기롭게 두들겨 패겠다고 했지만, 남자의 실력은 상당했다. 
[특급 공구 숙련]을 가지고 있는 진수의 망치질은 신들린 수준이다. 
높디높은 능력치와 결합되어 소나기처럼 공격을 몰아치는데 맨손으로 꽤 대응을 잘 했다. 
미친 인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공격을 흘리고 힘을 역이용하거나 템포를 조절하면서 진수에게 틈을 만들었다. 
“흐으으.... 역겨운 몬스터...!” 
‘잠깐... 이 사람 미친 게 아닐지도 몰라.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가 강제로 미치게 만든 것 같은데...?’ 
계속해서 싸우는 와중에 진수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사내가 마력을 끌어올릴 때마다 머리 쪽에 기이한 마력이 느껴졌다. 
남자가 원래 지닌 마력과는 결이 전혀 다른 마력이었다. 
‘이 사람 혹시 저주에 걸린 건 아닐까?’ 
저주 중에서는 사람의 사고를 마비시키거나 미치게 만드는 종류도 있었다. 
머리에 이질적인 마력이 자리 잡고 있다면 충분히 저주를 의심해봄직했다. 
-푸욱! 
사내의 손이 다시 한 번 진수의 복부를 헤집었다. 
방어구의 자가 수복 기능이 작동하기 전에 같은 곳을 또 노린 것이다. 
‘물론 내가 일부러 유도를 한 것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복부 쪽에 빈틈을 보였다. 
다만 그 빈틈을 알아차리고 재빠르게 같은 곳을 노린 것은 순전히 이 사람의 실력이 맞았다. 
진수는 배를 꿰뚫은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스으윽 
그리고 잽싸게 [빙의] 대상을 징크스의 성지를 지키고 있는 휴고로 바꿨다. 
“[성창 소환], [저주 해제]!” 
이어 빛의 성창을 소환함과 동시에 휴고가 가지고 있는 [저주 해제] 기술을 사용했다. 
환한 빛이 성창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사내에게 쏟아졌다. 
광기가 가득했던 눈에 조금씩 이성이 돌아온다. 
“아, 아아.... 분명 세상이 멸망... 했는데...?” 
그의 동공이 떨리며 주변을 살핀다. 
이어서 자신의 손을 보았다. 
웬 처음 보는 남자의 배를 꿰뚫고 있었다.
이름 없음
“미안하게 되었네.” 
사내가 수척한 얼굴로 사과했다. 
두 눈엔 총기가 돌았지만 호흡이 힘겨워 보였다. 
[저주 해제]로 광증이 옅어지면서 광기로 덮어두었던 몸의 문제가 드러난 듯했다. 
그는 피로 뒤덮인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했다. 
“괜찮아. 어차피 다 나았으니까.” 
진수가 구멍 난 방어구를 들추며 복부를 보여주었다. 
[상급 재생력]이 이미 상처를 완전히 회복시켰다. 
“음... 회복이 되었다고 한들, 내가 그대를 공격한 것은 변함이 없으니.... 뭔가 보답을 할 방법도 없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 
저주가 풀린 사내는 굉장히 예의를 차리는 인물이었다. 
“보답을 할 게 없기는 왜 없어?” 
“내가 뭔가 도울 게 있는가?” 
진수의 말에 남자의 눈이 빛났다. 
기본적으로 정의감과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이었기에 뭐라도 사죄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몇 가지 좀 궁금한 게 있는데, 그것만 답해줘.” 
“무엇이든 물어보게. 내 아는 한에선 모두 대답하겠네. 다만... 내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 서두르는 것이 좋을 걸세.” 
[저주 해제]로 잠시 음울한 마력을 몰아냈지만, 다시 그의 머리로 마력이 뭉치는 게 느껴졌다. 
“알겠어. 그럼 먼저, 당신은 누구야?” 
“나는....” 
멸망한 제국의 황자. 
세계의 용사. 
한때 성검의 주인이자 그 자체로 성검이었던 자. 
몬스터를 학살하는 영웅. 
“그리고 지금은... 모르겠네. 난... 뭐지?” 
사내가 허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눈에 담기는 것은 그 무엇 하나 익숙하지 않은, 다른 세상이다. 
그가 지키려 애썼던 곳은 온데간데없고 몸뚱이 하나, 온전치 않은 정신으로 헤맬 뿐이었다. 
“이름은?” 
“그런 것은 사라진 지 오래일세. 노네임이라고 해주게.” 
‘노네임이라... 이름 없음. 상당히 아이러니하네.’ 
진수는 그의 대답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몬스터를 처치하여 차원 전이를 시키면 [이름 없음]으로 표기가 된다. 
그 후 진수가 이름을 지어주면 비로소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차원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사내는 [이름 없음]인 채로 이곳을 방황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나?’ 
“그러면, 살고 있던 세상에 대해서 좀 얘기해줘. 너무 단편적인 말들만 해서....” 
노네임에 대한 연민의 감정은 접어두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싸우는 중에 들었던 이야기. 
세상의 멸망, 파투스교, 그놈을 믿는 게 아니었다는 내용들이다. 
“아.... 그래. 시작은 몬스터들의 득세였다. 어느 순간부터 몬스터들의 수와 힘이 급속도로 강해졌어.” 
노네임이 살던 세상은 원래 몬스터가 존재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대신 인간들도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서로 견제를 하면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난생 처음 보는 몬스터가 등장하기도 하고, 기존의 몬스터가 강해지기도 했네. 제국에서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 
인간들의 힘이 집중된 제국.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애썼다. 
몬스터들을 연구하고, 위험한 지역은 토벌을 하면서 조금씩 국력을 소진했다. 
‘저쪽에도 게이트 사태 같은 게 생겼던 건가?’ 
“외부의 문제가 생기고 나니 나라의 내부에서도 사건이 터지기 시작했어. 몇몇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거나 반란을 획책하는 자들이 나타났네. 안팎으로 여러 갈등이 생겼어. 황제께서는 연일 괴로운 나날을 보내셨지....” 
노네임의 눈에 슬픔이 드러났다. 
“그러던 중, 파투스교라는 종교가 나타났네. 그들은 혼란스러운 민중의 마음을 빠르게 사로잡으며 세력을 키웠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이름은 황제 폐하의 귀에까지 들어갔지.” 
황제는 파투스교의 교주를 황궁으로 초청했다. 
과연 그들이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는지, 올바른 종교인지 보고자 했던 것이다. 
일개 신흥 종교라고 하기엔 그들의 규모가 너무 빠르게 커졌기에 황제가 직접 나섰다. 
“그들은 뱀의 혓바닥으로 황제 폐하를 속였어...! 파투스가 실재한다는 증거라며 신성력을 사용했지. 그 역겹고 악취 나는 마력을! 눈앞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벙어리에게 말을 돌려주는 이적을 행하였으니 당장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네...!” 
황제가 파투스교를 정식 종교로 인정했다. 
그것으로 그들은 날개를 단 셈이었다. 
제국에서 시작하여 온 땅에 파투스교가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언제 몬스터의 습격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종교에 매달렸다. 
“멸망은 사소한 데에서부터 시작됐지. 반란을 일으킨 자들 중 일부가 파투스교의 교도였던 게야. 보통은 반란에 연루된 종교가 타격을 입어야 하겠지만....” 
오히려 파투스교를 광적으로 믿는 이들이 종교 탄압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안 그래도 내외로 위태로운 상황에 파투스교도들이 들고 일어나니 나라의 뿌리가 흔들렸다. 
“제국이 무너지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네. 거대한 나라가 산산조각이 나고, 그 빈틈을 이용해 파투스교가 득세를 했어. 찬란했던 인간들의 문명이 오히려 역행을 했지.” 
들끓는 몬스터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던, 제국이라는 방패가 사라졌다. 
덕분에 전투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수없이 목숨을 잃었다. 
인간들의 영역을 침범한 괴물들은 파죽지세로 몰려들었다. 
“몬스터에게 재산을 잃고 가족을 잃은 자들은 뒤늦게 피눈물을 흘리며 제국을 찾았네. 하지만 이미 일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됐지.” 
인간에게 암흑기가 찾아왔다. 
몬스터를 피해 뿔뿔이 흩어져 쥐죽은 듯 살아야만 했다. 
“그때, 파투스교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내더군. 몬스터들을 몰아내겠다며 나섰어. 놈들 때문에 제국이 망했지만 실질적으로 놈들이 직접 손을 썼던 것은 아니니....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지. 게다가 그들은 묘한 마력을 사용하며 몬스터를 처치하기 시작했으니 다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수밖에 없었네.” 
파투스교는 몬스터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며 권력과 인기를 모았다. 
불길한 보랏빛 마력을 앞세워 괴물을 해치우는 모습에, 모두가 신뢰를 보냈다. 
“찬란했던 제국의 영광을 놈들이 훔쳐갔지.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어. 사람들을 지켜주고 제국이 못다 한 역할을 해주었으니까. 황자로서의 원통함은 참아낼 수 있었네.... 심지어 그들의 청에 따라 나는 용사의 역할까지 했었으니.... 크흐흐....” 
노네임이 비통한 웃음을 지었다. 
강하게 악문 어금니가 뿌드득 갈렸다. 
“그들은 몬스터의 둥지라는 것을 파괴하면 세상에서 몬스터를 몰아낼 수 있다고 했네. 그것을 위해 신비한 검과 [용사]의 힘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지.” 
몬스터의 둥지. 
지난 번 파투스교도이자 계약자인 볼렌테가 얘기했던 것이다. 
그는 차원의 축을 몬스터의 둥지라고 칭했었다. 
파투스교도들은 정말로 그게 몬스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하다. 
“정말로 몬스터의 둥지 근처에는 굉장한 수의 몬스터들이 있었네. 드래곤이나 피닉스 같은 강력한 몬스터까지 말일세.” 
파투스교와 노네임은 힘을 합쳐 몬스터의 둥지를 지키고 있는 몬스터들과 싸웠다. 
기나긴 전쟁이 이어졌다. 
괴물들을 죽이고 또 죽여도 계속해서 엄청난 양의 몬스터가 쏟아졌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몬스터의 둥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몬스터의 둥지라는 게 뭔지 파악할 겨를도 없이 봉인하거나 파괴했다. 
“마지막 몬스터의 둥지를 검으로 파괴하는 순간, 세상이 무너졌네. 말 그대로 무너져 내렸어. 공간 자체가 유리 깨지듯이 조각나고 허물어졌네. 그와 함께 난 정신을 잃었고, 눈을 뜨니 이 세상이었지.” 
노네임은 반쯤 이지를 상실한 채로 방황하고 다녔다고 했다. 
본능에 각인되다시피 한 몬스터에 대한 혐오를 안고. 
식음을 전폐하고 오로지 몬스터만 죽이고 다닌 것이다. 
쇠꼬챙이처럼 마른 몸은 계속해서 에너지를 끌어다 쓴 결과였다. 
“음.... 다 알겠는데... 나한테 몬스터라고 한 건 왜...?” 
“그건.... 그대에게서 몬스터 특유의 냄새가 나서 그랬네. 특히 그 팔에서....” 
노네임이 진수의 팔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마석증 반점을 지목한 것이다. 
‘이거 때문에 나를 몬스터라고 착각했다라.... 그럼 아까 그 가면 쓴 놈도 마석증을 앓고 있었던 건가?’ 
그는 진수보다 먼저 가면을 쓴 사내를 공격했다. 
오직 몬스터만 죽이고 다녔다는 것은 그자도 몬스터라고 인식했다는 의미였다. 
“흐으으.... 오랜만에 사람과 대화를 해서 좋았네. 이제... 시간이 됐나보군....” 
노네임이 낮은 신음을 냈다. 
그의 머리에 마력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진수는 다시 한 번 [빙의]로 휴고를 불러 [저주 해제]를 사용해봤지만 영 신통치 않았다. 
한 번 저주를 약화시키는 게 최선이었던 모양이다. 
“염치가 없지만...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미간이 있는 대로 찌푸려진 것이, 굉장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죽여주게. 오직 본능에만 충실한 짐승으로 삶을 이어나가고 싶진 않아.” 
노네임의 손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담담히 말했지만 역시나 죽음이 두려운 듯했다. 
“... 그래.” 
진수는 고개를 끄덕인 뒤 흑우의 힘을 빌려왔다. 
최대한 고통 없이 일격에 마무리를 지어주기 위해서였다. 
-후욱! 퍽! 
도끼를 휘둘러 노네임의 목을 친다. 
도끼날이 목에 닿기 직전 그의 눈에 다시 광기가 서렸지만 몸을 움직이기 전에 바로 목이 잘렸다. 
적의와 감사함이 섞인 묘한 눈빛을 한 머리가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가 추락한다. 
하지만 그의 머리가 땅에 처박히는 일은 없었다. 
-계약자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노네임의 시체가 사라지더니 전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노네임...이 정말로 이름 없음이었네.’ 
그의 이름 자체가 이름 없음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름 없음]이 [공방] 무리에 합류합니다. 
-[이름 없음]이 당신의 종교를 받아들입니다. 
[이름 없음] - 현재 상황 : 당신의 은혜에 감동함 “고향땅을 밟게 해주고, 저주마저 씻어주다니....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름 없음은 헤파이스토스가 이끄는 공방 무리에 합류했다. 
전이가 되면서 저주가 해제되었는지 멀쩡해진 듯했다. 
-[공방] 무리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4, 민첩 +11, 체력 +3, 내구 +5, 마력 +10 
상당히 강했던 이름 없음이 합류하며 급성장 보상까지 보내왔다. 
예상치 못한 이득이었다. 
‘모두 다 해피엔딩이 됐네. 흐흐.’ 
진수는 능력치가 오르며 체력과 마력이 모두 회복되었음을 느꼈다. 
[차원의 틈]에서 바람생성기를 꺼낸 그는 진가구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왔군. 시간이 꽤 지나도 안 와서 무슨 일이 생겼나 했어.” 
진가구가 진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의 표정은 하루 사이에 몹시 밝아졌다. 
“우리가 무지기를 처치한 뒤, 암살조가 주석을 죽이는 데에 성공했다.” 
그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정부의 중심이 되던 자를 해치웠으니 우리 계획이 거의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지.” 
반정부 세력의 계획. 
중국의 주석을 처치한 뒤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전국 각지에서 세력을 일으킨다. 
각 지역별로 패권을 차지한다.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한 나라 중 하나가 여럿으로 나뉘게 될 것이다. 
‘그 사이에 난 운명파 놈들을 턴다.’ 
중국이라는 제국이 불탈 준비가 되었다.
아무개
“아니, 왜 아무런 소식이 없지?” 
중국 정부의 가장 큰 권력자가 죽었다. 
그것도 암살에 의해. 
범인을 찾든 은폐를 하든 새로운 주석을 세우든 뭔가 반응이 있어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마치 연예인이 죽었다는 듯이 나오는군....” 
진가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 대로였다. 
뉴스에서 주석이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중국의 사람들은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냥 일상적인 나날이 흘러갈 뿐이었다. 
“정부 내부에서 혼란이 생기면 그 틈을 이용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주석을 암살한 의미가 없어.” 
베이징에 침투해 중국 정부의 동태를 살피는 쪽에서도 변화가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이거 곤란한데. 반정부 세력 계획이 성공해야 나도 운명파를 치지.’ 
진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대로라면 중국 일대에서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나야했다. 
그리고 진수는 움직이는 운명파를 쫓아 블루 오아시스의 생산지를 찾고 뭘 노리는지 캐내려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정부 측에서 혼란이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정이 되어가는 듯하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직접 가봐야겠어. 베이징에.” 
이대로 가다간 기껏 고생한 일들이 무위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진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보기로 했다. 
“베이징에 있다는 반정부 세력과 어떻게 접촉할 수 있는지 알려줘. 들어가서 상황을 보고 여차하면 다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지.” 
진가구는 그의 말에 다시 한 번 탄복했다. 
‘우리는 정부쪽으로 침투할 능력이 안 돼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외부인이면서도 일을 끝까지 해내려 하는구나...! 능력을 떠나 그 뜻이 정말 대단하다.’ 
“훌륭하군. 정부에게 핍박 받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에게 감사해할 거야.” 
진수를 향해 뜨거운 눈빛을 쏟아낸다. 
“베이징에서 우리 동료들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진수는 진가구에게 베이징의 반정부 세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어떻게 위장을 하고 있는지, 같은 편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 등이었다. 
* * *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평화로웠다. 
지금도 언제 균열이 일어날지 모르는 환경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가판대에 걸린 신문에는 죽은 주석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있고 그의 사망 소식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지금 길거리를 다니는 누구도 그 소식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박종대 경기 이야기가 더 흥미를 끄네.’ 
커다란 디스플레이에서 뉴스나 영상 따위가 나오고 있다. 
거기에 박종대의 헌터 대전 영상이 재생되자 사람들의 발길이 멈춰 섰다. 
당장 삶에 영향을 주지 않고 있는 주석의 사망보다 바로 즐거움을 주는 스포츠 경기가 더 관심이 가는 듯했다. 
‘이렇게 만든 것도 다 그놈들의 노림수일 확률이 높지만....’ 
중국 정부는 주석의 죽음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다. 
마치 자연스러운 일이 생겼다는 듯한 태도로 혼란을 막은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엔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을 게 자명했다. 
“이 거지새끼가!” 
-퍽! 
세련된 도시에 거친 음성이 울려 퍼진다. 
동시에 있는 힘껏 사람을 때리는 타격음도 들렸다. 
하지만 도시의 사람들은 그조차도 관심이 없었다. 
“돈이 없으면 굶어 뒈지든지. 내 물건을 훔쳐?” 
“폐, 폐기하는 음식이지 않습니까...? 제가 벌써 일주일 째 굶고 있습니다.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실랑이는 만두 가게 앞에서 벌어졌다. 
오래되어서 버리려 빼둔 만두를 누군가가 훔치다 걸린 듯했다. 
-퍽! 퍽! 
“굶어 뒈지기 싫으면 맞아 죽어야지! 퉤!” 
만두 가게 주인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걸인을 때리기 시작했다. 
두 손을 싹싹 비는 사내. 
하지만 가게 주인은 전혀 봐줄 생각이 없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거지를 걷어차더니 쓰러진 그의 머리를 무차별적으로 밟았다. 
비각성자들의 싸움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잔혹하게 보였다. 
자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일방적인 폭행이 이어졌다. 
상당한 소란이 생겼지만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간혹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 보는 사람만 몇 있을 뿐이었다.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일상적인 광경인 듯했다. 
‘돈이 없으면 인간 취급을 못 받는 곳이라더니....‘ 
살집이 제법 두둑한 만두 가게 주인이 체중을 실어가며 발길질을 한다. 
진수는 잘못하면 송장을 치울 것 같아 나서서 말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한 발 빠르게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어차피 버려질 만두였는데 너무 심하군.”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체구는 작지만 몸이 굉장히 단단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허리춤에 상당히 긴 쇠막대를 매고 있어 한눈에 전투 헌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야, 당신은? 버려질 만두였는지 어디에 쓰려고 했는지 어떻게 알아?” 
“모양새를 신경 안 쓰고 바구니에 대충 던져놓았고, 안 좋은 냄새도 풍기는데 보통은 폐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돼지 먹이로 던져줄 생각이었는데? 뭐하면 돼지 사료 값을 내놓고 가져가던지.” 
만두 가게 주인은 딱히 돼지를 키우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 헌터라면 일반적으로 돈을 꽤 지니고 있을 것이기에 음식물 쓰레기로 얼마라도 돈을 받아내려고 한 것이다. 
“얼마... 정도를 원하는데?” 
“만두 1인분이 4위안이니 2위안씩 해서 총 20위안이면 되겠네.” 
전혀 큰 금액은 아니었다. 
그런데 헌터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크흠.... 우선 내 이름으로 달아놓고 나중에 갚지.” 
그는 외상을 시도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뭐야? 둘이 짜고 치는 거 아니야? 이 거지새끼들이! 안 되겠다. 공안을 불러야겠어.” 
만두 가게 주인이 잔뜩 성을 내며 말했다. 
거지에게 했던 것처럼 헌터에게 달려들지는 못했지만 전혀 사정을 봐줄 태도는 아니었다. 
“20위안 내가 내죠.” 
결국 진수가 나서게 됐다. 
돈을 내겠다는 그의 말에 폭력배처럼 보이던 가게 주인이 서비스직인 본업으로 돌아갔다. 
“아이고~ 손님. 아주 마음이 넓으십니다. 하하!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자비로우시다니요. 분명 복 받으실 겁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자비롭지 못한 그 자신은 복이 없어질 것이다. 
물론 진심으로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니라 당장 돈을 줄 고객에게 아양을 떨기 위한 소리였지만. 
“저희 가게의 만두 맛은 정말 일품이거든요. 저런 거렁뱅이한테는 사치인데... 쯧! 방금 막 쪄낸 만두도 맛 좀 보시죠? 헤헤.” 
“됐어요. 20위안 받고 폐기 만두나 줘요.” 
싸늘한 진수의 태도에 만두 가게 주인은 이내 조용해졌다. 
성품이 여린 인물이라 생각해 만두를 더 팔아먹으려 했는데 예상과는 달랐던 것이다. 
‘무작정 돕는 건 내 취향에 맞지 않지만....’ 
마석정제주사 비용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어가며 일당 헌터 생활을 했던 진수다. 
거지의 상황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사지 멀쩡한데 일하지 않는 입장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가 나서려 했던 것은 물리적으로 폭행당하는 것을 막는 데까지 만이었다. 
‘만두 값을 낸 건 이 헌터 때문이지.’ 
진수보다 먼저 만두 가게 주인을 말렸던 사내. 
그는 20위안을 쾌척하는 진수를 보며 크게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수는 그의 허리춤에 집중했다. 
쇠막대를 고정하고 있는 매듭. 
그런데 특이하게 긴 줄을 다섯 번 일정한 간격으로 묶어두었다. 
“선생은 아주 정의로운 사람이군! 이 홍 아무개는 아주 감탄했소!” 
스스로를 홍 아무개라 칭한 사내는 무협 영화에서 봄직한 포권을 취했다. 
‘이야... 컨셉에 아주 충실하시네.’ 
행동부터 말투까지 아주 무림의 대협 스타일이다. 
“저는 이만 가보겠소. 선생과 또 만날 일이 있으면 좋겠구려. 하하!” 
홍 아무개는 진수에게 인사를 한 뒤 떠나갔다. 
호기롭게 나서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그가 해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만두 가게를 떠나온 홍 아무개는 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굽이굽이 복잡한 도심을 거닐던 그는 갑자기 멈춰 섰다. 
“누구인가? 내 뒤를 쫓아봐야 아무 것도 얻을 건 없을 거다!” 
그의 짙은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우렁찬 호통에 골목 뒤쪽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선생...? 내게 무슨 볼일이 있어 나섰던 거요?” 
홍 아무개를 뒤쫓은 것은 진수였다. 
“아뇨, 오해 말아요. 만두 가게 상황은 나도 유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진수의 대답에 홍 아무개의 실망하는 표정이 좀 누그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진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행동으로 보여준 선생의 의협심은 믿겠소만, 내 뒤를 쫓은 이유는 뭐요?” 
그의 물음에 진수는 쇳조각 하나를 꺼내 보여줌으로 답했다. 
팔각형의 패에는 기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진가구가 보냈어요. 이걸 보여주면 증명이 될 거라고 하던데.” 
“그렇군. 진 선생이 아주 훌륭한 인물을 보냈군.” 
홍 아무개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진수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기 때문인 듯했다. 
‘확실히 특징을 알면 못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이네.’ 
진가구로부터 들은 베이징 내의 반정부 세력을 알아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허리에 매듭을 달고 다니는지 여부였다. 
또, 그들 중에서 유독 무협지에서 나올 법한 사람이 있을 것이란 말도 들었다. 
그게 바로 홍 아무개를 염두에 두고 한 소리였던 것이다. 
“선생이 여기에 찾아온 이유는 진 선생에게 대충 들었소. 정부 내부에 직접 침투하고 싶다고요. 우선 우리 은거지로 가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놈들의 음모를 들어보시오.” 
홍 아무개는 진수를 베이징에 있는 반정부 세력 아지트로 데려갔다. 
맨홀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 하수도를 통해 움직여야 했다. 
“방향이 얼추... 자금성 아래로 가고 있는 거 같은데....” 
“바로 맞혔소. 우리는 놈들의 발 아래에 웅크리고 있지. 하하하!” 
반정부 세력의 아지트는 자금성의 밑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알게 된 사실도 있소.” 
호쾌하게 웃던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주석이 죽은 뒤, 정부에서 굉장히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소. 사람들한테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척을 하면서 말이지. 이쪽으로.” 
홍 아무개가 하수도 한 쪽으로 진수를 데려갔다. 
걸음을 옮기면서 점차 진수의 표정도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자금성에서 나온 사람들이 하수도로 주기적으로 내려오는 걸 발견했소. 처음에는 도망치기 위한 비밀 통로라도 만드는 줄 알았지. 근데....” 
“자기들 퇴로를 만든 게 아니라 오히려 남의 퇴로를 막을 생각을 하고 있었네.” 
진수가 홍 아무개의 말을 가로챘다. 
“... 정확하오.” 
그가 대답할 즈음 두 사람은 한 곳에 도착했다. 
어두운 하수도 내부이지만 진수에겐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진수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작은 탄식을 냈다. 
“하, 이 자식들.... 뭐 동탁도 아니고 이런 짓을 꾸미고 있었다고?”
대체 뭘 노리는 거지?
“캬아악!” 
-퍽! 
“케엑!” 
하수도 내부의 넓은 공간. 
그곳엔 수많은 몬스터들이 서로 다투고 있었다. 
바닥에 사체가 널려있고, 일부 몬스터들은 사체를 뜯어먹으며 주변 눈치를 살피기도 했고 호전적인 몬스터들은 주위에 시비를 걸고 끝없이 싸우다가 죽었다. 
그 모습을 보며 홍 아무개, 홍칠곡이 입을 열었다. 
“주석이 죽은 직후부터 자금성에서 정부의 인물들이 지하로 내려왔소. 몇 명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이내 복귀하더군.” 
그러고 난 뒤 베이징의 하수도에 몬스터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원래도 외부에서 흘러 들어온 몬스터 몇 마리가 나타나긴 했지만 이토록 수가 늘어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뭘 하는 것인지 뒤를 쫓아봤소.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막대기를 몇 번 휘두르니 균열이 나타났소.” 
‘중국 정부 사람들이 아니라 운명파 놈들이었네.’ 
인위적으로 균열을 일으키는 것은 운명파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와 붙어먹은 녀석들이 하수도에 무언가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보다시피 몬스터의 수는 엄청나게 불어나서 서로 싸우기까지 하고 있소. 그래서 그 수가 한정적이겠다 안심을 했었는데... 근래에 나타난 자들이 몬스터의 사체로 언데드를 만드는 걸 발견했소. 예전에 적룡파에서 귀신형 몬스터를 다루거나 강시를 만드는 것은 들어보긴 했지만 별다른 처리 없이 몬스터 사체를 바로 일으키는 건 처음 봤소.” 
언데드 몬스터를 일으키는 것도 한국에서 경험해본 적 있는 기술이었다. 
뉴트럴바이오를 통해 개발하고 실험한 기술들로 운명파만 재미를 보고 있었다. 
“하수도에서 바로 시내로 올라갈 수 있기에 자칫하면 베이징 시가 불바다가 될 수도 있소.” 
홍칠곡의 말대로 하수도에 몬스터가 풀리면 베이징 시에 유리할 게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발을 묶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체 뭘 노리는 거지?’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정부가 우리를 노리기 위해서 일부러 티 나게 몬스터를 푼 것 같소.” 
“반정부 세력을 노리려고요?” 
“그렇소. 우리가 몬스터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움직이면 그 뒤를 치려는 게 아니겠소?” 
홍칠곡이 생각하는 바는 균열을 일으킨 게 반정부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라는 것이었다. 
진수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완전히 납득이 가는 가설은 아니었다. 
‘물론 현재의 체제에 혼선을 주지 않으면서 반정부 세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놈들도 베이징에 있는 반정부 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걸 알 거야.’ 
정말로 반정부 세력을 완전히 근절하고자 한다면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주석이 암살당한 뒤 혼란이 생긴 것처럼 속이고 이에 맞춰 모습을 드러낸 자들을 솎아내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이거 참, 뭐라 판단하기 어렵네요. 우선 은신처로 가서 정부 쪽으로 침투할 방법을 이야기해보죠.” 
진수가 몬스터들이 있는 곳에서 고개를 돌리자 홍칠곡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음, 그, 그러죠.” 
“왜요?” 
그의 반응에서 이상함을 느낀 진수가 반문했다. 
“아, 아니오.” 
“뭐가 아닌데요?” 
“그게... 의협심이 강한 선생께서 그래도 이 몬스터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었소.” 
‘요놈 봐라? 날 꽁으로 부려먹으려고 했다 이건가?’ 
진수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아아, 오해는 마시오. 선생이 저 괴물들을 해치웠으면 한다는 게 아니오. 오히려 그렇게 얘기했다면 내가 말렸을 것이오. 그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반응이 달라서 조금, 그게.... 허허.” 
홍칠곡은 몹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양손을 내저으며 극구 부인하지만 그 모습이 상당히 어색하다. 
분명 진수가 손을 써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았다. 
‘물론 전이자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여기 몬스터들은 잡을 거지만, 언제 처치할 건지는 내가 정할 일이지.’ 
“그렇군요. 하지만 제가 여기서 바로 나선다고 하면 홍칠곡씨 말대로 정부의 역공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 의견을 존중해서 굳이 고집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진수는 속내를 숨기고 말했다. 
굉장히 정의로운 듯한 첫인상을 주었던 홍칠곡이지만 그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진가구가 [거짓 간파]로 봐도 가식이 아니라고 했지만, 왠지 의심스러워. 보통 과도하게 착한 척하고 정의로운 척 하는 인간들은 뒤가 구리기 마련이라....’ 
돈 싫다고 하는 사람 중에 정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성을 볼 때 외모를 안 본다는 사람은 반드시 외모를 본다. 
어떤 가치를 너무 확고하게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인물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렇구려. 내가 오해했군. 하하! 그럼 은신처로 가서 마저 이야기를 합시다.” 
홍칠곡이 머쓱한 듯 과장되게 웃으며 먼저 발걸음을 떼었다. 
* * *
‘내일 아침에 자금성으로 들어간다 이거지.... 확실히 발상의 전환이긴 하네.’ 
베이징의 반정부 세력 아지트에서 자금성에 침투할 계획을 전해 들었다. 
자금성은 예부터 존재하던 궁이다. 
내부에는 온갖 비밀통로가 존재했고, 게이트 사태 이후로 중국 정부에서 행정 건물로 사용하면서 증축, 개축을 해왔기 때문에 구조를 모두 꿰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옛날에 만들어진 비밀통로를 통해 들어간다니, 이거 완전 첩보 영화 같구만.’ 
반정부 세력은 자금성 내부의 비밀통로 몇 곳을 파악해두었다. 
그곳으로 성에 들어갈 것이다. 
굳이 아침으로 잡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그들의 현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역시 근무 시간을 직접 보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이 어쩌면 정부와 운명파가 회의를 하거나 계획을 짜는 것을 엿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 
그리고 도리어 밤에 경계가 삼엄해지니 방심하기 쉬운 아침 시간을 노려보기로 했다. 
“어차피 나도 할 일이 있으니까.” 
-뽀옹 
반정부 세력의 아지트에서 누워있던 진수는 분신을 하나 만들었다. 
작은 진수는 나오자마자 [유체화]를 사용해 방을 떠났다. 
‘운명파 놈들이 하수도에 몬스터를 뿌려놓고 뭘 하려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계획을 좀 망쳐줘야겠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수의 몸이 눈에 띄게 작아졌다. 
분신이 홍칠곡과 함께 봤던 몬스터가 있는 공간에 도착해 [분열]을 사용한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 
-역병쥐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역병쥐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그레이 슬라임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섀도우 하운드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진수의 눈앞에 쏟아져 나오는 안내 메시지들. 
분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워있는 그의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동시에 전황이 머릿속에 공유됐다. 
작은 진수들은 죽음을 두려워 않고 맹렬히 싸우며 수많은 몬스터들을 처치했다. 
[분열]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니 330이나 되는 마력도 뭉텅이로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점점 강제로 [분열]이 해제되는 일이 줄어들었다. 
몬스터를 거의 다 정리해가는 것이다. 
베이징의 하수도에서만 몬스터를 14마리나 전이시킬 수 있었다. 
“이제 소각 작업만 하면 끝이네.” 
분신들은 하수도에 있는 괴물들을 처치하고 나서 바닥에 있는 사체들도 [백년 도깨비불]로 불태워버렸다. 
홍칠곡의 말에 따르면 운명파 녀석들이 언데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었다. 
분신들이 사체를 불태우면 [저승사자] 특성으로 인해 언데드로 되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작은 진수들이 일종의 역병 의사 역할을 한 것이다. 
“후아.... 수가 많으니까 확실히 빡세구나.” 
하수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백년 도깨비불]을 사용하니 엄청난 양의 마력이 소진되었다. 
거의 마력 탈진 현상이 생기기 직전. 
현기증이 도는 진수의 눈앞에 구원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아틀란티스] 국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민첩 +3, 체력 +5, 내구 +1, 마력 +4, 골드 +10 
-[휴고보스]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민첩 +1, 체력 +1, 내구 +3, 마력 +1 
전이된 녀석들이 들어간 아틀란티스국과 휴고보스 무리가 성장을 하면서 보상을 보내왔다. 
고갈되던 마력과 체력이 회복 된다. 
온갖 능력치가 오르면서 회복 수준을 넘어 컨디션이 최고조로 올랐다. 
‘어? 그러고 보니까... 내가 그때 그 가면 쓴 놈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는 게 있었네. 그 자식, 다음에 만나면 진짜 죽었다.’ 
진수는 문득 노네임과 대화를 나누기 전에 싸웠던 운명파의 괴한이 떠올랐다. 
쉽사리 승부를 내지 못했던 인물. 
노네임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전의 상황으로 괴한을 이길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았다. 
“흐흐흐.” 
전이자 목록을 양껏 채우고 능력치 보상을 두둑히 받았다. 
운명파의 계략도 방해했다. 
게다가 난적을 상대할 아이디어까지. 
진수에게는 상당히 기분 좋은 밤이었다. 
* * *
“들어가서 보면 알겠지만, 주석이 죽은 뒤로 정부의 많은 인력이 운명파 소속으로 바뀌었소.”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길에 홍칠곡이 말했다. 
“진가구씨한테 들어간 보고엔 그런 내용이 없었던 거 같은데요?” 
“우리도 확인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정보라서 그렇소. 워낙에 경계가 모호하게 섞여있던 차라 인원이 교체된 게 그렇게 티가 나지 않더군.” 
진수와 홍칠곡은 독특한 구조의 통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지하인 듯 보이며 내부에 특별한 광원은 존재하지 않는데 묘하게 밝았다. 
벽과 천장 쪽이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져 있는 게 어디선가 빛이 들어오면 절묘하게 반사시켜 내부를 비추는 방법을 쓴 듯했다. 
과연 황궁의 비밀통로다운 설계였다. 
“지금 이 위로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 말소리는 위로 안 가는 건가요?” 
[중급 청각]에 통로의 천장 위로 사람들 발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홍칠곡의 모습에 진수가 조용히 귓속말로 물었다. 
“그렇소. 신기하게도 한 방향으로만 방음이 되어 있더군. 아마 도주할 때를 대비한 통로인 듯하오.” 
“그렇군요. 뭔가 일방적으로 도청을 하는 것 같아서 재밌네요.” 
진수는 계속해서 청각에 집중하며 나아갔다. 
발소리 사이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골라 들었다. 
“... 주석이라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굴....” 
“그놈들도 참 유별나....” 
“...도 언제 목이 떨어질지 모르니까 조심해야....” 
“... 하수도 작업은 언제....” 
흘러가는 이야기들 중에서 그의 주의를 끄는 내용이 있었다. 
“잠깐만요.” 
진수는 홍칠곡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들은 목소리가 어느 방향인지 파악했다. 
“... 오늘만 지나면 된다는 거지?” 
하수도 작업이라는 말을 했던 목소리를 다시 찾아냈다. 
진수는 홍칠곡에게 물어 비밀통로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에 가장 가깝게 움직였다. 
그리고 운명파의 계획을 얼추 들을 수 있었다. 
‘이 미친놈들, 이러면 다 죽자는 거밖에 더 되나...?’
자금성
“예, 어제 확인한 하수도에 쌓인 몬스터 양이면 지금 베이징에 침투한 놈들은 다 쓸어버리고도 남을 겁니다.” 
더 직위가 낮은 듯한 여성이 말했다. 
“그래, 그놈들 주석만 처리하면 뭔가 변할 줄 알고 있었는데 아무 일도 없으니까 어리둥절하고 있겠지. 크큭.... 이미 허수아비가 된 줄도 모르고. 오히려 제 놈들이 같은 방식으로 털리게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 했을 거야.” 
운명파는 이미 반정부 세력이 주석을 처치하여 혼란을 야기하려는 계획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석이 죽기 전에 운명파가 정부의 주도권을 차지한 상황. 
허울뿐이던 주석을 노린 반정부 세력의 계획은 실패한 셈이었다. 
오히려 운명파는 인공 균열을 통해 반정부 세력을 몰아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 방법이 너무 무식한 게 문제지. 아니, 자기네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그냥 도구로만 생각하나?’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으니 얼추 사태가 파악되었다. 
“오늘밤에 마지막으로 균열을 열고 바로 도시에 몬스터를 풀라고. 반정부 세력 녀석들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싹쓸이해버려야지.” 
하수도에 쌓인 몬스터들을 베이징 시내에 유입시킨다. 
주석이 죽은 뒤 정부의 동태를 살피느라 집중하고 있는 반정부 세력은 혼선이 생길 것이다. 
그때 기습적으로 중국 전체에 있는 반정부 세력을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정부 활동에 가담한 놈들은 모조리 다 죽여 버려야 돼. 어차피 그렇게 반란을 획책하는 놈들은 나라에 두고 있어봐야 득 될 게 없어.” 
운명파의 계획대로면 중국 전체에 엄청난 피바람이 불게 된다. 
반정부 세력은 정부가 혼란스러울 때 각 지역에 있는 정부 혹은 운명파의 수뇌부만 처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역 내 민간인의 피해는 최소화하며 지역만 분리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운명파는 각성자, 비각성자를 떠나서 학살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홍칠곡씨.” 
심각한 표정으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진수가 입을 열었다. 
그는 무언가 굳은 결심을 한 듯한 얼굴이었다. 
“왜 그러시오, 선생?” 
홍칠곡은 진수의 진지한 목소리에 반응했다. 
그 또한 운명파의 계획을 함께 들었으니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다. 
“자금성 중앙 위치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죠?” 
“자금성 중앙 말이오? 갑자기 그건 왜....” 
“정부의 혼란, 만들어내죠. 원래 계획대로 각 지역에서 반정부 세력이 먼저 움직일 수 있게.” 
동문서답 같은 이야기였지만 홍칠곡은 재차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진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홍칠곡은 비밀 통로를 통해 자금성의 가운데에 해당하는 곳으로 진수를 안내했다. 
“여기가 거의 중간 정도 되오.” 
“고마워요. 이제 먼저 자리를 피해요. 그리고, 진가구씨한테 전하세요. 저놈들이 혼란에 빠지면 계획대로 움직이라고요.” 
“내가 지금 빠져나가면 정부가 혼란에 빠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소...?” 
홍칠곡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진수는 가볍게 웃어보였다. 
“절대 모를 수가 없을 테니까 말이나 잘 전해줘요. 지금 당장, 움직여요.” 
-스윽 
진수는 홍칠곡에게 대답을 해준 뒤 [빙의]를 사용했다. 
그의 몸 위로 드래곤의 형상이 나타난다. 
“헛...!” 
뒷걸음질 치기 시작하는 홍칠곡. 
진수를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마력이 응집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무얼 하려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바로 위에 있는 자금성에 큰 타격을 주려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김진수 선생...! 당신의 의협심은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길이 남을 것이오!”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릴 기세다. 
홍칠곡은 진수가 자신을 희생해서 마력을 터트리려 한다고 생각했다. 
“고맙소! 고맙소! 반드시 이 혁명을 성공시키겠소!” 
그는 이내 비밀 통로를 떠났다. 
‘뭐래는 거야. 자금성만 터트리고 나도 피할 건데.’ 
홍칠곡의 생각처럼 진수가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들을 구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대부분의 마력을 쏟아 부어 [드래곤 브레스]를 날리려는 생각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쏘기 때문에 마력을 집중시키면 다른 민가에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금성에만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차라리 사람들이 덜 죽는 길이야.’ 
운명파의 생각처럼 일이 흘러가면 반정부 세력만 죽는 게 아니다. 
반정부 세력과 싸울 인력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자금성에 있는 운명파와 정부 사람들에게 타격을 입히는 편이 희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범위를 넓게 잡으니 강한 놈들은 브레스 한 방에 죽지 않겠지만... 한동안 활동하지 못할 정도의 피해는 줄 수 있겠지.’ 
사실 화이트 드래곤 흰둥이를 전이시킨 뒤로 최대 출력의 [드래곤 브레스]는 사용해본 적이 없다. 
과연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줄지는 미지수였다. 
-후우욱! 
강대한 마력이 응집된다. 
335나 되는 엄청난 마력 능력치에 주변에 있는 마력까지 끌어 모으기 때문에 양이 대단했다. 
자금성뿐만 아니라 자금성 주변에 있는 모든 각성자들이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무, 무슨 일이야!” 
“아래쪽에서 마력이 엄청 모이는데?” 
“지하에 재해 수준의 몬스터라도 나타난 거 아냐?” 
벌써부터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운명파의 헌터들이 자금성 지하로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진수가 있는 위치는 비밀 통로의 내부. 
아직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더...!’ 
화이트 드래곤이 사용하는 브레스의 단점 중 하나가 출력을 높일수록 준비 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그 특징 덕분에 녀석을 전이시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진수의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됐다. 
“바닥을 깨부수더라도 빨리 찾아내!” 
-쾅! 쾅! 
헌터들이 바닥을 두드린다. 
[사신의 감각]에 시시각각 수많은 사람이 다가오는 게 감지되었다. 
진수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온 마력을 동원하고 있는 이 때는 누군가가 톡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치명적이다. 
“후우...!” 
안색이 파리해진다. 
-쿵! 쿠웅! 
비밀 통로 바로 위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 여기 아래에 빈 공간이 있는 거 같은데!” 
“이 아래는 아무것도 없어야 되잖아?” 
“마력도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통로 위가 뚫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올 것 같았다. 
-후두둑, 후둑 
각성자의 강한 힘이 비밀 통로를 가리고 있던 돌 따위를 빠르게 치워냈다. 
흙먼지가 떨어지며 점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이 자식 이거 뭐야!” 
“여기 누가 있다!” 
“일단 제압해!” 
이윽고 사람 여럿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이 넓어졌다. 
지하에 있던 진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에게로 곧장 운명파의 헌터들이 덤벼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진수의 입가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한 발 늦었어.” 
-콰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차디찬 냉기가 솟구친다.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얼린 뒤 잘게 바스라트리는 [드래곤 브레스]. 
과연 사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베이징, 아니 과장을 조금 보태면 중국 어디에서도 보일 정도의 마력 기둥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콰과광! 
자금성이 완전히 지워져버렸다. 
파괴된 잔해, 정신을 잃은 헌터들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그 중앙에서 비틀거리다 이내 주저앉는 진수. 
그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나이트메어 피죤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나이트메어 피죤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에어 엘리멘탈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자금성 위쪽에서 날아다니던 몬스터 몇 마리가 [드래곤 브레스]에 휘말린 듯했다. 
‘상점... 상점을 열어야 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점 목록을 살핀다. 
진수는 상점에서 마력 능력치 5개를 구입해 전이자에게 보내줬다. 
마력 탈진 현상으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기에 목록의 가장 위에 있는 고돌이에게 전부 줄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 [고돌]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마력 +2 
15골드를 쓴 대가로 마력 능력치가 2 상승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우 능력치 2개의 의미가 아니었다.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턱 밑까지 차올랐던 호흡이 회복되었다. 
마력 능력치의 증가로 일부지만 마력이 충전된 것이다. 
“후우.... 살았다.” 
진수가 자신 있게 온 마력을 쏟아서 [드래곤 브레스]를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전이자의 보상을 받아 회복하는 것. 
“저놈이다! 방금 큰 기술을 썼으니까 지금 노려야 돼!” 
그가 급히 상점을 이용하는 사이 자금성 외부에 있었거나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지 않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네. 빨리 자리를 피해야겠다.’ 
진수는 몸을 일으켰다. 
컨디션이 완전하지 않았지만 움직여야만 했다. 
-나이트메어 피죤 [이름 없음]이 [스카이피아] 무리에 합류합니다. 
-[스카이피아]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체력 +1, 마력 +2, 골드 +5 
조금 전에 [드래곤 브레스]로 전이시킨 녀석이 스카이피아 무리로 들어간 덕분에 보상을 받았다. 
체력과 마력이 모두 오르며 한결 더 회복이 됐다. 
‘나이스! 타이밍 좋았고.’ 
진수는 적절하게 보상을 받게 해준 나이트메어 피죤에게 [피죤투]라는 이름을 주었다. 
* * *
자금성이 통째로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중국 각지에서 반정부 세력이 봉기했다. 
세 살짜리 아이라고 해도 두 사건 사이에 연관이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하늘이 천벌을 내렸다. 
중국 정부가 용의 진노를 샀다. 
반정부 세력에 S급 헌터를 넘어서는 강자가 있다. 
온갖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반대로 운명파와 정부 측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테러리스트들이 수도를 폭파시켰다. 
민간인 학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정부가 막았다. 
등의 이야기였다. 
결과적으로 정체불명의 힘에 의해 자금성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 힘의 연원은 반정부 세력에 우호적인 게 분명하다. 
여론은 반정부 세력에 우세하게 흘러갔다. 
진수의 선택이 제대로 통한 것이다. 
-쾅! 
“천벌? 용? 이 무슨 개소리야!” 
한 사내가 벌게진 얼굴로 벽을 후려쳤다. 
특수 금속으로 된 벽이 움푹 들어갔다. 
“진정해. 지금 그렇게 흥분한다고 달라질 거 있어?” 
“진정? 이 새끼가... 그러고 보니 이번에 묘족도 제법 반정부 세력에 가담했지. 저 꼴 난 게 제법 반갑겠다?” 
그를 진정시키려는 말에 오히려 이죽거림으로 돌려준다. 
“... 말 조심해. 나라고 지금 속이 편한 줄 알아? 그래도 WP클랜에 들어오면서 국적은 잊기로 했잖아.” 
WP클랜. 
World Peace 클랜, 말 그대로 세계 평화를 위한다는 오만한 의의를 지닌 집단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WP클랜이 오만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클랜의 기본 가입 조건이 바로 S급 이상의 헌터여야 한다는 것이었으니까. 
“지랄. 말이 그렇단 거지, 여기 자식들 모두 자기 잇속 챙기려고 와있는 거 뻔히 아는데. 너도 모국에서 묘족 위상 높이려고 들어온 거잖아?” 
“....” 
“흥, 제2의 게이트 사태를 대비한답시고 힘 센 놈들 모여서 기득권 차지하려는 거지. 뭐 어쨌든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충분히 세계 평화랑 관계가 있지 않겠어? 이번 일에 WP클랜이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 안건을 내야겠어. 여차하면 나 혼자라도 간다.” 
그는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도끼살인마
“어이, 영감. 자금성 부순 게 용이라는데.... 어떻게 생각해? 너네들 용 좋아하잖아.” 
도끼살인마라는 별명을 지닌 A급 헌터, 임설이 낄낄대며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네이멍구자치구에 파견한 헌터였다. 
몽골족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통갈락을 감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 
통갈락은 평온한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했다. 
예리한 도끼날이 위협적으로 목 근처를 왔다 갔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 재미없기는.” 
호전적인 성격의 임설은 네이멍구자치구에 올 때만 해도 상당히 흥분했었다. 
몽골족의 전투력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들의 성격도 상당히 화끈한 것으로 알려졌기에 분명 물리적인 충돌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연일 조용히 일상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흥! 목줄 채워진 곰탱이들이나 다름이 없구만.” 
임설이 도끼로 통갈락의 수염 일부를 잘랐다. 
그 모습에 바타르와 자야가 움찔했지만 노인의 수신호에 눈을 질끈 감았다. 
성격대로 뒤집어엎고 싶었지만 통갈락의 안위와 동족들이 문제였다. 
눈앞의 헌터가 불량스러운 태도를 하고 있다고 해도 실력만큼은 뛰어났다. 
A급 헌터 중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전투 능력을 지녔기에 바타르와 자야 둘이 상대를 해도 우위를 점치기 어려웠다. 
‘전력에서 우리가 빠지면... 네이멍구자치구에 있는 한족들을 완전히 이길 수가 없어.’ 
비록 몽골족 개개인이 강하다고 해도 한족들에 비해서 수가 적었다. 
그들이 중국 정부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빠르게 수뇌부들을 해치워야했다. 
임설이라는 존재가 그러한 계획을 억제하는 역할을 아주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저~기, 어? 사칭하는 놈이 나왔으니까 너희 용님한테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짝퉁 단속 안 하냐고 말이야. 크크크!” 
잔뜩 비아냥대는 이야기를 애써 무시한다. 
-띠링 
그러던 중 통갈락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왔다. 
노인은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뭐야, 진짜 용한테 전화하는 거냐? 크크큭! 이거 아주 웃기네. 용 한 마리 배달 오라고 그래. 크흐흐흐!” 
최근에 워낙 무료했던 탓인지 사소한 일로도 과장된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데 이번엔 통갈락도 그의 말에 반응했다. 
방긋 웃어주는 것으로. 
“응? 뭘 웃어?” 
다만 노인의 웃음은 유쾌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매는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그대로 임설을 보며 통화했다. 
“예, 바로 오시면 됩니다. 웬 놈이 하나 있지만 별 거 아닙니다.” 
통갈락이 말하는 별 거 아닌 놈은 필히 임설을 칭하는 것이었다. 
임설이 발끈했다. 
“뭐? 별 거 아니야? 지금까지 벌벌 떨면서 고개 처박고 있던 새끼가!” 
노인의 멱살을 단단히 틀어쥐며 도끼를 치켜든다. 
금방이라도 통갈락의 목을 칠 것 같은 기세였다. 
-쾅! 
그 순간 통갈락의 집 벽이 허물어지며 무언가 날아왔다. 
엄청난 힘이 담긴 투사체에 깜짝 놀란 임설이 힘껏 도끼를 내밀어 막았다. 
-챙! 
대단한 완력으로 A급 헌터까지 된 그였지만 순간적으로 몸이 밀릴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그는 뭐가 날아온 것인지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확인해봤다. 
“... 도끼?” 
아주 익숙한 외형의 물건이다.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무기. 
임설은 구멍이 뚫린 벽 쪽을 보며 고함을 쳤다. 
“어떤 자식이 감히 이 도끼살인마 앞에서 연장을 휘둘러!” 
도끼는 그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도끼를 다룬다는 헌터들 중에서 자신의 눈에 차는 인물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누군지는 몰라도 건방지게 자신에게 도끼를 투척한 것이다. 
심지어 그걸 막느라 꽤 힘을 주어야 했다는 데에 자존심마저 상했다. 
-휘리릭! 
바닥에 떨어진 도끼가 갑자기 떠오르더니 날아온 방향으로 돌아갔다. 
상당히 신기한 일이었지만 투척하는 아이템 중에는 왕왕 저런 기능을 지닌 물건이 있었다. 
“도끼살인마? 내가 보기엔 도끼 잡는 법부터 다시 익혀야겠는데.” 
벽을 완전히 허물어버리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조금 전 날아간 도끼를 오른손에 든 채로. 
그의 얼굴엔 가소롭다는 듯 비릿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이 자식이!” 
임설이 곧장 달려들었다. 
그의 도끼날에는 시퍼런 마력이 넘실댔다. 
-캉! 
도끼와 도끼가 서로 맞닿았다. 
도끼날을 감싼 마력의 위력인지, 도끼 자체가 좋은 것인지 임설의 도끼가 상대의 도끼날을 파고들었다. 
‘워, 엄청 날카로운데.’ 
그 모습을 보는 진수는 속으로 살짝 감탄했다. 
자신이 들고 있는 도끼도 명색이 아이템이다. 
튼튼하고 예리한 것으로는 어디에 쉽게 밀리지 않는 물건. 
그런데 그런 자신의 도끼보다 날 면에서는 훨씬 우위에 서고 있는 것이다. 
-스르륵 
하지만 진수에게는 [도구 일체화]가 있다. 
그가 지닌 능력이 사용하는 도구에도 적용이 되면서 도끼날이 조금씩 회복이 되었다. 
“이게 무슨...?” 
조금씩 잘려나가던 도끼가 도리어 회복되는 모습에 임설이 당황했다. 
“템빨도 좋지만,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라 이 말이야.” 
진수는 그의 복부를 힘껏 걷어찬 뒤 도끼를 연달아 휘둘렀다. 
임설은 황급히 연타를 막았다. 
그 자신도 도끼를 다루는 실력에 꽤 자신이 있었지만 오로지 방어에만 신경을 써도 진땀을 빼야 했다. 
-캉! 캉! 
순식간에 수십 번의 공방이 오갔다. 
오직 도끼 한 자루로 A급 헌터가 되었던 임설. 
하지만 진수는 신체 능력부터 도끼 숙련도까지 모든 면에서 그를 압살해버렸다. 
-퍽! 
“끄아아악!” 
이윽고 승부는 끝이 났다. 
임설에게 도끼살인마라는 별명을 만들어준 오른손과 도끼가 함께 허공을 날았다. 
“도끼살인마? 이제 다른 일 알아봐.” 
-치이익! 
비명을 지르는 그의 오른 손목을 붙잡아 [백년 도깨비불]로 상처를 지졌다. 
신체능력이 뛰어난 각성자답게 혼절을 하는 등의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헉... 헉...!” 
그는 사라져버린 자신의 오른손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단순히 신체부위가 사라진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껏 중국 정부의 편에 서서 온갖 패악질을 하고 다녔다. 
오죽하면 헌터의 별명이 도끼살인마일까. 
그의 오른손이 잘렸다는 소문이 난다면 분명 앙심을 품고 있던 이들의 보복을 받을 것이다. 
“가서 전해. 네이멍구자치구는 이제 독립한다고.” 
진수가 임설의 악명을 알고 손목만 자른 건 아니었다. 
일종의 일벌백계를 노린 행동이었는데, 중국 정부가 통갈락에게 보낸 인물이라면 분명 좋든 나쁘든 상당한 명성을 지닌 헌터일 것이다. 
그런 헌터를 불구로 만들어 보내면 단순히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더 소문이 금방 나게 되어 있다. 
그 소문을 통해 네이멍구자치구에 있는 중국 정부에 우호적인 인물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임설처럼 어디 하나 불구가 되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떠나라는. 
“흐윽... 흐....” 
임설이 거의 흐느끼듯 신음소리를 흘리며 떠났다. 
진수는 그 뒷모습을 보다 이내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도끼살인마가 사용하던 악명 높은 도끼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까 보니까 이거 아주 물건이던데....’ 
공교롭게 도끼를 빼앗을 때마다 손목을 자르는 상황이 생겼다. 
물론 모두 악행을 저지르던 인물들이라 미안한 마음은 없다. 
“어우, 역시... 훌륭한데.” 
손에 쥐어보니 확실히 좋은 도끼였다. 
[특급 공구 숙련] 덕분에 공구 계통의 물건은 금방 파악이 된다. 
도끼답지 않은 예리한 날. 
때문에 내구도가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었다. 
임설의 경우에는 그걸 날에 마력을 두르는 기술로 극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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