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19

-고블린 메카닉 [고메], 고블린 슈터 [고슈], 고블린 창병 [고창]이 [아틀란티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뱀파이어 퀸 [뱀피렐라], 검은 죽음 [흑산도지렁이]가 [망자 군단] 무리에 합류합니다.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는 고블린 무리였다. 
조악하지만 발사가 되는 자동 새총 같은 무기를 사용하는 녀석들이 포함된. 
간단하게 처리하고 이름을 지어주니 고블린 전이자가 대다수 속해있는 아틀란티스로 합류했다. 
-특수임무 발생. 
-특수임무 : [아틀란티스] 무리에 자원 전달하기 ! 
-보상 : [아틀란티스] 무리가 국가로 성장 
이어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 
‘국가로 성장이라고?’ 
진수는 특수임무의 상세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슬라임 [포세이돈]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아틀란티스] 무리가 세를 넓게 확장했습니다. [아틀란티스] 무리의 참모인 고블린 샤먼 [키약트르]는 커진 규모에 걸맞게 종족을 초월한 국가를 세우고자 합니다. 국가의 중심이 될 수도 건설을 위해 자원을 전달하십시오. 
고돌이 다음으로 전이를 시켰던 포세이돈. 
슬라임과 고블린 종족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불리더니 어느덧 국가를 세우는 수준까지 된 것이다. 
‘아, 포세이돈이 왕 된다는데 힘 좀 써줘야지. 어차피 민우혁 때문에 한국 돌아가야 하는데 괜찮은 자원들 좀 보내줘야겠다.’ 
안내 메시지를 닫은 진수는 뱀파이어들이 붙잡은 동양인을 보았다. 
꽤 거칠게 저항을 했는지 온몸에 생채기가 가득했다. 
“여기서 뭘 하려던 거지?” 
진수의 입에서 유창한 중국어가 나왔다. 
이에 동양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주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곧 입에서 시커멓게 죽은피를 한 사발 뱉어내더니 그대로 절명했다. 
“이런....” 
[사신의 감각]에 그의 생명력이 완전히 사라졌음이 느껴졌다. 
입을 벌려보니 지독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독약을 삼킨 듯했다. 
‘인장반지가 내 말을 저절로 중국어로 통역했어. 그리고 내가 중국어를 사용하는 걸 듣고는 바로 자살했지. 이 사람, 운명파 소속이다.’ 
진수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시베리아에서 균열을 일으키던 자가 운명파의 인물일 것이라 유추했다. 
동시에 블루 오아시스의 공정을 바꾼 숨은 목적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민우혁과 함께 잡았던 연구원의 말대로 중독성을 올리기 위함이 아니라. 
* * *
“아니, 그게 말이 되나요? 민우혁이 풀려났다니요!” 
거의 한 달에 걸쳐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서울로 돌아온 진수는 터무니없는 말을 들었다.
중국 정부에게 송환된 민우혁이 풀려났다는 것이다. 
“우리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석방을 해주었고, 자국의 문제이니 간섭하지 말라는 태도를 취하더군요.” 
“러시아에까지 블루 오아시스를 퍼트린 거는요? 다른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면 이건 단순히 중국에만 한정된 범죄가 아니라 국제적인 범죄인 거잖아요!” 
진수의 말에 박철준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제가 러시아 건에 대해서 전달한 국제형사경찰기구의 인원이... 사망했다더군요. 그에게 러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요.” 
‘운명파라는 놈들이 이미 국제형사경찰기구에 침투해서 작업을 치고 있구나.’ 
단순히 한 두 국가에서 주도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 
그렇기에 보다 공정하게 일처리가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잠깐, 박종대 이 자식이 중국 대표로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어? 혹시...?’ 
진수는 바로 박종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냐, 하루살이. 
이번에는 전화를 받았다. 
“야, 너 국제형사경찰기구에 누가 넣어준 거냐?” 
최대한 뭔가 의심한다는 기색 없이, 평소의 말투와 비슷하게 말하려 애썼다. 
-아이씨, 안 그래도 거기서 잘려가지고 기분 조졌는데 전화로 또 빡치게 하네. 
다만 박종대에게 돌아온 말은 예상 밖의 답변이었다. 
“뭔 말이야?” 
-아니 필요할 때는 내가 들어가는 게 그림이 좋겠다 그딴 소리 하더니 갑자기 딴 놈한테 자리를 내주라잖아, 엿 같게. 내가 뭐 지들 꼬붕인 줄 아나. 
그는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들어보니 중국의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은 박종대를 잠깐 국제형사경찰기구에 넣으면서 이미지 메이킹을 노렸던 것 같았다. 
“그래서 누가 들어가라고 하고 누가 나오라고 했는데?” 
-나도 중국 쪽 매니지먼트에서 전해줘서 모르지. 뭐 정부 쪽 높은 양반 아니겠냐. 이딴 식으로 통수를 치네. 역시 착짱죽짱이야. 이건 왜 물어보는데? 너도 뭐 한 자리 받아보고 싶어서? 꿈 깨라. 너 같은 하루살이는 그냥 쥐 죽은 것처럼 짱박혀서 사는 게 어울리지. 
박종대는 짜증을 내면서도 진수의 신경을 긁는 소릴 했다. 
“이 자식은 말 하는 꼬라지가.... 너 헌터 대전에만 신경 쓰느라 모르겠지만, 이제 니가 쉽게 볼 수준 아니다.” 
-지랄. 니가 아무리 강해져도 나한텐 못 이겨. 쓸데없는 헛소리만 할 거면 꺼져라. 
이내 전화 연결이 끊어졌다. 
‘매니지먼트에서 연결을 해줬다는 거지. 중국으로 가면 운명파 쫓으면서 이 자식 매니지먼트도 한 번 훑어봐야겠어.’ 
진수는 핸드폰으로 박종대의 위키 문서를 훑어보며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나왔다. 
이어 그가 향한 곳은 마석정제주사 처치를 해주는 병원이었다. 
“아, 김진수씨. 캡슐로 마석정제액 넣는 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서요? 특이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추후에 비슷한 환자가 생기면 활용할 방법이 있겠네요.” 
진수의 방문에 의사가 반기며 맞이했다. 
그가 병원에 찾아온 이유는 민우혁의 반점 문양을 보기 위함이었다. 
“민우혁이 중국으로 송환되기 전에는 여기서 마석정제주사 처치를 받았죠. 다행히 동영상으로 반점의 변화를 촬영해두었어요.” 
의사가 반가운 이야기를 했다. 
그는 민우혁이 마석정제주사를 맞을 때 찍어둔 영상을 보여줬다. 
주사를 맞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석증 반점이 줄어든다. 
이어 모양이 변하는 순간 영상을 멈췄다. 
진수의 것과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어...?” 
“같은... 모양이네요.” 
진수의 마석증 반점과 민우혁의 것은 마석정제액이 들어간 후 같은 모양을 만든 뒤 이내 작게 줄어들었다. 
“이거 신기한 일이군요. 학계에 보고하고 전 세계에 있는 마석증 환자들의 마석증 모양을 비교분석해볼 가치가 있겠어요.” 
의사는 상당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지? 같은 한국인이라 똑같은 건가?’ 
“선생님, 혹시 박종대 영상도 갖고 계세요?” 
진수는 그에게 물었지만 이내 멍청한 질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박종대씨의 경우에는 문신 때문에 반점을 확인할 수가 없었어요.” 
“아... 그렇네요. 이렇게 반점이 특정 모양으로 변한다는 게 밝혀지기 전에 문신으로 덮었으니까 그 전에 찍어둔 것도 없겠고요. 음... 알겠습니다.” 
박종대는 고아원이 사라진 뒤 바로 양팔을 문신으로 채웠다.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혹은 헌터 대전에서 더욱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여러모로 도움이 안 된다니까.’ 
진수는 가볍게 혀를 찼다. 
“참, 선생님. 마지막으로 하나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수혈용 피도 보관 기한 같은 거 있지 않나요?” 
“수혈용 피요? 아마 한 달 정도 보관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상 지난 피는 폐기처분을 하고요.” 
“아... 그렇군요.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어요. 하하.” 
그는 의사의 답변이 뭔가 마음에 들었는지 가볍게 웃어보였다. 
* * *
“와...! 이런 건 언제 만들었대?” 
로켓몬스터에 방문하겠다는 진수의 말에 유재찬은 과천의 한 주소를 보내왔다. 
관악산의 아래쪽, 도로에 인접한 공간. 
주소의 위치에 도착한 진수의 입이 벌어졌다. 
그곳엔 큼지막한 창고가 지어져 있었고, 벽면엔 로켓몬스터라고 적혀있었으니까. 
“우리 사장님께서 해외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사이에 우리는 국내에서 완전 자리를 잡았지.” 
자랑스럽게 말하는 유재찬. 
그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했다. 
기존 RD의 운송로를 고스란히 흡수한 것으로 모자라 도시와 도시 사이에 좀 더 긴밀한 연결로를 만들었다. 
또한 끊임없이 거래처를 뚫고 거래처끼리 연계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특히 포항이랑 천안에서 모든 제안에 긍정적으로 나와 줘서 어려울 게 없었어. 김진수 사장님 영향력이 자리를 비워도 엄청나더라니까?” 
진수에게 큰 도움을 받았던 도시에서 로켓몬스터의 일이라면 소매를 걷고 나서준 것이다. 
“이번에 니가 자원들 필요하다고 하니까 각지에서 아주 창고가 터지도록 보내왔어. 들어가서 한 번 봐봐.” 
유재찬의 말대로 창고 안에 온갖 물건들이 가득했다. 
포항에서 온 것이 분명한 금속 주괴들. 
나무형 몬스터의 사체를 다듬은 목재. 
거대한 뼈, 뿔 따위의 자원도 쌓여있다. 
“이 중에서 내가 써도 되는 게 어느 정도야?” 
진수가 유재찬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창고에 있는 거 모두.” 
그의 대답은 심플했다. 
창고 가득 채워진 온갖 고급 재료들이 오롯이 진수를 위해 준비된 것이다. 
이에 그는 몸을 돌려 창고 내부로 눈을 돌렸다. 
-자원을 전달하시겠습니까? 
곧 창고 안에 있는 것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특수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아틀란티스] 무리가 국가로 성장 
-첫 건국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안내 메시지와 함께 진수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건국
커다란 호수 앞에 여러 마리의 몬스터들이 모여 있다. 
왕관을 쓰고 있는 슬라임과 고블린 샤먼을 중심으로 서있는 녀석들. 
고블린들과 슬라임들, 그 외에 트롤, 오우거 등 한 데에 모이기 힘든 종족들이 나름의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워낙에 통제가 쉽지 않은 생물들이라 완벽하게 오와 열을 맞추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는 각자 자리를 잡고 있다. 
“모두 주목!” 
슬라임의 옆에 서있던 고블린 샤먼이 소리친다. 
이에 모든 몬스터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징크스님의 은총으로 아틀란티스국의 수도를 짓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단순한 슬라임 무리, 고블린 무리가 아닌 모두가 하나 되어 살아갈 나라가 되었다. 거창한 건국식을 진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여기까지 함께 해준 개국공신들과 작지만 뜻 깊은 시간을 가지려 이렇게 모였다.” 
고블린 샤먼, 키약트르가 잠시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몬스터들의 면면을 보았다. 
“이어서 포세이돈 국왕 전하께서 건국 축사를 해주실 것이다.” 
키약트르가 한 걸음 뒤로 빠지며 슬라임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틀란티스의 수장, 이제는 국왕이 된 포세이돈이 앞으로 나왔다. 
마치 젤리 같은 몸을 꿀렁이며 무언가를 표현한다. 
두 눈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몇몇을 향해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꾸르륵 
“하하하!” 
“맞습니다, 맞아요!” 
몬스터들은 그 몸짓과 눈짓의 언어를 용케 알아듣고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소리 없는 축사가 이어졌다. 
-꿀렁꿀렁 
“그렇습니다. 징크스님께서도 필히 이 자리를 보고 계실 겁니다.” 
아틀란티스국의 책사이자 제사장인 키약트르가 포세이돈에게 말했다. 
슬라임식 언어로 징크스님께서 이 자리에 함께 하실 것이다 이야기한 듯했다. 
‘아니, 저걸 어떻게 알아듣는 거지? 그냥 사회생활 하느라 맞춰주는 건가....’ 
그리고 정말로 진수는 아틀란티스 건국식을 보고 있었다. 
특수임무를 달성한 뒤 정신이 아득해지더니 이 곳, 차원 너머로 온 것이다. 
몸은 없이 정신만 넘어온 듯했다. 
‘저게 요정의 호수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전이자가 아닌 구성원이 되게 많네.’ 
주변을 살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시야가 넓어졌다. 
커다란 호수가 있고 그 주위로 숲과 들판이 자리하고 있다. 
아틀란티스국의 구성원들은 진수가 보내준 자원을 가지고 몬스터들이 건물을 짓고 있었다. 
트롤, 오우거 따위의 힘 좋은 녀석들은 목재를 번쩍번쩍 들어서 나르고 고블린, 그렘린, 드워프 등의 종족은 디테일한 작업에 투입됐다. 
슬라임들은 건축에 쓰이는 접착제를 만들거나 잡초를 제거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여러 종족들이 서로 반목 없이 사이좋게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인간들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하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장점을 살려 일하는 모습을 보니 감탄이 나왔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하게 된 것은 모두 징크스님의 은혜다. 항상 징크스님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도록 하자.” 
건국식은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키약트르는 제사장답게 진수에 대한 찬미로 마무리를 지어가고 있었다. 
-[아틀란티스] 국에서 당신을 칭송합니다. 
-당신의 종교가 [아틀란티스] 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일시로 상점의 상품 가격이 50% 감소합니다. 
-건국식에 축복을 내리십시오. 
‘아니 신의 축복에 왜 자본주의가 섞였어?’ 
상점을 반값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엄청난 혜택이었다. 
하지만 건국식에 축복을 내린다는 명분을 붙이니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어쨌든 우리 애들이 나라를 세웠는데 돈 좀 써줘야지.’ 
지금까지 모은 골드가 무려 250이나 된다. 
[기술 랜덤 박스]나 [특성 랜덤 박스]를 50개나 구입할 수 있는 골드다. 
하지만 진수는 기술, 특성 카테고리를 보지 않았다. 
‘바벨탑 전설에서도 언어가 달라지니까 사람들이 흩어졌다고 했지. 여러 종족들이 하나의 나라를 만들려면 공통된 언어를 주면 좋지 않을까?’ 
그는 상점 목록에서 한글과 한국어 지식을 찾았다. 
50% 할인된 값인데도 50골드씩이나 됐다. 
둘 다 구입하면 100골드. 
이쪽 차원에 아예 없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기에 가격이 더 비쌌던 것이다. 
‘그래도 국뽕은 못 참지. 나라를 빨리 키워서 이쪽 세상에선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게 만들어라. 흐흐.’ 
필수교육과정을 들은 사람들은 한 번쯤 했을 상상. 
한국어와 한글만으로 세계 어디에서나 편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진수의 차원에서는 어림도 없지만 이쪽 차원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국어] 지식과 [한글] 지식을 전달할 전이자를 선택하십시오. 
그는 키약트르를 지정했다. 
이내 고블린 샤먼의 머리 위로 빛줄기가 내려왔다. 
“오오...! 징크스님께서 하나 될 우리를 위한 언어를 내려주셨다!” 
정말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고블린 샤먼의 입에서 갑자기 새로운 언어가 튀어나왔다. 
지식을 막 전달받았기에 고블린어와 한국어가 섞여서 나왔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면 지식이 완전히 습득되고 다른 몬스터들에게도 가르칠 정도가 될 것이다. 
-[키약트르]가 당신의 은총에 감동합니다. 
-신탁을 내리십시오. 
‘나랏말싸미... 아니, 대화와 소통이 관계의 기본이야. 서로 이야기들 많이 하라고.’ 
진수는 지금 몸이 없기에 생각으로 신탁 내용을 전했다. 
“징크스님께 영광을...! 징크스님께서 이르시되, 대화와 소통에 힘쓰라고 하신다!” 
키약트르가 진수의 말을 전하자 따스한 빛이 퍼져 나왔다. 
빛은 다른 몬스터들에게 빠르게 확산되었다. 
-신탁의 효과로 당신을 믿는 이들의 언어 능력이 향상됩니다. 
빛을 받은 녀석들의 말솜씨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게 보였다. 
언어 능력이 향상되니 전반적으로 지능도 올라간 듯했다. 
“감사합니다!” 
“징크스님의 은혜에 탄복합니다!” 
그리고 말이 트인 녀석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진수에게 감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진수의 입 꼬리가 귀에 걸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이, 기본이다! 100골드 더 쓰자!’ 
그는 상점에서 100골드짜리 [행운의 축복]이라는 상품을 구입했다. 
50% 할인이 되었으니 원래는 200골드의 값을 지녔을 것이다. 
‘200골드짜리를 100골드에 샀으니까 100골드 번 셈이지.’ 
상당히 큰 지출이었지만 진수는 스스로 위안을 했다. 
-당신의 종교를 믿는 이에게 [행운의 축복]이 적용됩니다. 
한 전이자가 아닌 진수의 종교를 믿는 모든 존재들에게 적용되는 상품이었다. 
[행운의 축복]은 말 그대로 운이 좋아지는 축복. 
앞으로 모든 일에서 행운이 따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진가는 바로 드러났다. 
-[아틀란티스] 국의 수도 건축 중에 행운이 작용합니다. 
-건축물들의 배치가 적절하여 도시의 활동이 증가합니다. 
-도시의 건물 터를 닦는 과정 중에 광맥을 발견했습니다. 
-[아틀란티스] 국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3, 민첩 +10, 체력 +11, 내구 +14, 마력 +13, 골드 +50 
언어 능력이 향상된 몬스터들은 서로 빠르게 소통하며 건설 속도를 촉진시켰다. 
시시각각 수도의 건물이 지어지는 모습을 살피던 진수의 정신이 다시 아득해졌다. 
-첫 건국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250 
로켓몬스터의 창고로 돌아온 진수를 반긴 것은 보상 안내 메시지였다. 
아틀란티스 건국식에서 사용한 골드보다 더 많은 골드를 받았다. 
골드도 더 늘고 능력치도 61이나 올랐으니 굉장히 큰 이득을 본 셈이다. 
“야, 근데 이 많은 걸 다 어디에 쓰려고.... 어라? 여기에 있던 거 다 어디 갔어?” 
진수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유재찬이 돌아왔다. 
그가 놀라는 것으로 보아 저쪽 차원에 다녀오는 사이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은 듯했다. 
“아, 좋은 일에 썼어.” 
“벌써 그걸 다 썼다고? 이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우리 김진수 사장님 아주 신비한 데가 있다니까.” 
유재찬은 이제 그냥 진수의 말이라면 더 파헤치지 않고 그대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가 어떤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해도 종국엔 그의 말대로 됐으니까. 
균열의 방어, RD의 몬스터들, 로켓몬스터 설립 등등. 
“그나저나, 로켓몬스터 지금 인력이나 업무 여유가 어떻게 돼?” 
“지금은 완전히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도 좋을 만큼 여유롭지.” 
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럼 우리 해외진출하자.” 
진수는 유재찬에게 무법지대에 안정적인 길을 뚫어 중국과 러시아로 사업을 확장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안 그래도 러시아 쪽에서는 연락이 많이 왔어. 니가 워낙에 러시아에서 이름을 떨쳐가지고.... 거의 국민영웅 취급이던데?” 
블라고베셴스크에서 화이트 드래곤을 처치한 덕분에 러시아에서 진수의 위상이 상당했다. 
최소한 로켓몬스터의 러시아 진출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말했듯이 국내 상황은 많이 안정이 됐으니까 해외진출, 충분히 될 거 같은데? 근데 좀 걸리는 게 있어.” 
“걸리는 거?” 
“우리 소속인 A급 헌터가 둘이잖아. 심선우씨랑 이종학씨. 둘 중 한 명은 한국에 남아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을 해줘야겠고.... 러시아나 중국 같이 큰 나라랑 거래하는데 A급 헌터 한 명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유재찬의 걱정은 타당했다. 
당장 무법지대를 뚫는 것부터 손이 부족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진수는 믿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걱정하지 마. 내 부탁을 절대 거절 못 할 사람이 있으니까. 그것도 추운 환경에 딱 적절한.” 
“아니, 우뢰매 말고 또 누가 있어?” 
유재찬은 처음에 우뢰매 심선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놀랐다. 
그는 진수가 D급 헌터일 때부터 알고 지냈고 전투 헌터 활동을 한 기간이 길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진수의 인맥이 까도까도 끝이 없는 양파처럼 계속 나오니 놀랄 수밖에. 
* * *
“야, 야. 어, 얼음 여왕이 왜 니 부탁을 들어줘?” 
창고에 방문하고 며칠 뒤, 진수는 유재찬에게 무법지대 운송로를 구축할 헌터를 소개했다. 
얼음 여왕 박가은. 
A급 헌터이며 얼음을 다루는 각성자다. 
높은 등급의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균열 방어에 많이 참여하기에 인지도가 굉장히 높은 인물이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건강하시죠?” 
“진수씨 덕분에요.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죠. 균열도 막고... 봉사활동도 하고요.” 
그녀의 딸 배혜지가 뉴트럴바이오 사태의 원흉 중 하나였다. 
진수는 박가은의 생명의 은인이자 배혜지로 인해 생긴 사건을 해결해준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절대 진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예전에 RD에서 가져온 무법지대 쪽 이동 경로랑 해서 어떻게 움직일지 설명 드려줘.” 
진수는 스타급 헌터 앞에서 얼어있는 유재찬에게 북쪽으로 진출할 계획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그는 중국의 운명파를 쫓아서 중국으로 가야 했다. 
운명파도 워낙 거대한 단체였기에 홀몸으로 맞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로켓몬스터를 중국과 러시아로 진출시키는 게 중요하다. 
‘로켓몬스터가 무법지대를 뚫는 동안 나는 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지.’ 
진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재찬과 박가은을 두고 어디론가 향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뱀파이어 퀸 [뱀피렐라]가 혈액팩을 섭취하여 성장합니다. 
-마력 +1 
“그래, 유통기한 지난 거 좀 먹어도 안 죽어. 흐흐.” 
진수는 눈앞에 나타난 안내 메시지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가 있는 곳은 서울의 한 혈액원. 
상당한 양의 혈액팩들을 앞에 두고 있었다. 
‘아직까지 제도적인 구멍들이 은근히 많다니까.’ 
지난 번 민우혁의 마석증 반점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방문했다.그는 의사에게 혈액의 보관기간을 물으며 사람의 피를 얻을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환자에게 수혈하기에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오래된 혈액, 상온에 노출된 피 등은 폐기 처리가 된다. 
진수는 폐기된 혈액이 어떻게 되는지에 집중했다. 
게이트 사태 이전이라면 적절한 절차가 있었겠지만 다시 재건된 사회에서 혈액의 폐기까지는 아직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가 폐기된 혈액들을 가져가도 문제가 없는 상태. 
‘오히려 폐기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좋아했지.’ 
이러한 구조를 파악한 그는 혈액원에 폐기 처리를 담당하겠다고 제안했다. 
혈액원에서는 돈을 내야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지불할 폐기 비용이 얼마인지 물어왔다. 
‘지금까지의 처리 비용의 반만 받겠습니다.’ 
진수는 사업을 따내기 위해 선심을 쓴다는 듯 말했다. 
혈액 폐기 담당자가 좋아한 것은 당연지사. 
아주 수월하게 혈액원의 모든 혈액 폐기를 맡을 수 있었고, 돈까지 벌게 되었다. 
계약까지 체결한 뒤 [차원의 틈]에 보관기한이 지난 혈액팩을 넣자 뱀피렐라가 바로 섭취를 한 것이다. 
‘뭐, 잘 숙성된 선지...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지.’ 
뱀파이어 퀸이 섭취하고 성장한다면 시베리아에 보내놓은 뱀파이어들에게도 분명 효과가 있으리라. 
그의 의도대로 일이 잘 풀렸다. 
진수는 유재찬에게 연락해서 혈액원의 혈액 폐기 건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사장님 노릇을 안 하는 줄 알았더니 이런 사업을 또 따냈네. 전국에 우리 유통망이 있으니까 이렇게 정기적으로 일감이 있으면 유지비 충당하는 데에 아주 좋지! 
서울의 창고에 냉장 시설을 설치하고 전국의 혈액원에서 폐기 혈액팩을 수거해 모아둔다. 
일정량을 상시로 두고 나머지는 [차원의 틈]에 집어넣으면 추가로 비용이 들지도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피는 계속해서 소비할 곳이 있으니까.’ 
진수는 우선 폐기 혈액팩을 모두 [차원의 틈]에 집어넣고 어딘가로 향했다. 
* * *
“로드님께서 주신 혈액의 맛...!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뱀파이어가 혈액팩을 빨아먹으며 감동의 눈물을 글썽인다. 
긍지 높은 혈족이 하등한 몬스터의 피를 먹는다는 데에 상당한 굴욕감을 느끼는 차였다.
그런데 인간인 진수가 자신들을 위해 동족의 피를 가져다주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버리는 거 갖다 주는 거라곤 절대 말 못하지.’ 
최후의 한 방울까지 마치 값비싼 한약이라도 먹듯이 쪽쪽 빨아먹는 녀석들을 보며 진수는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야말로 침묵은 금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인간들이 안 나타난다고?” 
그는 뱀파이어들이 피를 거의 다 먹었을 즈음 질문을 던졌다. 
진수가 러시아에서 떠난 이후부터 쭉 시베리아에 상주하던 그들. 
로드의 명령대로 시베리아에 나타나 균열을 일으키는 인간들은 모두 처치했다. 
처음에는 나름의 방비를 하고 왔지만 상당한 힘을 지닌 뱀파이어들의 합공에는 당해내지 못했다. 
“맞습니다, 로드시여. 십 수 차례 실패한 후부터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우아한 손짓으로 입가를 닦은 뱀파이어가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 
이전보다도 더욱 예의를 갖추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아마 시베리아에서 수작을 부리는 건 포기한 모양이다.” 
“그런 듯합니다. 역시 로드께선 판단력이 출중하십니다.” 
진수의 말에 얼른 탄복하는 말을 덧붙이는 녀석. 
아첨을 하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의 말에 감탄하는 얼굴이었다. 
‘으...! 낯간지러워서 못 살겠네.’ 
다만 진수는 칭찬을 듣는 것에 그리 익숙지 않았다. 
“음, 흠. 이제 시베리아에는 한둘만 남아서 지키고 나머지는 다른 지역들을 살펴보자.” 
“다른 지역이라 하심은...?” 
운명파가 시베리아를 포기했다고 꾸미고 있던 음모를 완전히 포기했을 리는 없었다. 
분명 다른 곳에서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진수 혼자 뛰어다녔다면 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에겐 로켓몬스터와 뱀파이어들이 있다. 
“러시아 전역과 유럽, 중국 쪽을 살펴봐줘.” 
그는 개통된 핸드폰을 뱀파이어들에게 나눠주었다. 
연락이야 혈족의 텔레파시를 이용하면 된다. 
그가 핸드폰을 준 이유는 연락 때문이 아니었다. 
‘지도부터 정보 확인에 나 외에 다른 사람들과 소통까지.... 핸드폰은 꼭 필요하지.’ 
요즘 같은 세상에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고 하면 어떤 측면에서라도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될 것이었다. 
“혈액팩은 로켓몬스터 쪽으로 신청을 하면 러시아, 중국 쪽에서는 받을 수 있을 거야. 우선 공간압축가방이랑 혈액팩을 많이 가지고 왔으니까 충분히들 챙겨가.” 
로켓몬스터를 북쪽으로 진출시킨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혈액의 공급이었다. 
뱀파이어들은 피에 대한 갈증이 없어졌으니 완벽한 공작원들이 되어줄 것이다. 
뱀파이어 퀸의 경우처럼 매혹을 사용할 수 있고 서로 텔레파시가 통한다. 
각자 지닌 무력도 A급 헌터 수준이니 만약 탄로 난다고 해도 제 한 몸을 빼내기엔 충분하다. 
“알겠습니다. 기필코 로드께서 필요로 하시는 정보를 찾아내겠습니다.” 
뱀파이어들이 우아한 동작으로 진수에게 예를 취했다. 
그러고 나서는 [차원의 틈]에서 꺼낸 혈액팩 더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진수에게 말할 때 보인 절제된 행동과는 달리 할인 행사에서 물건을 집어 드는 사람들 같은 모습이었다. 
‘아...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이구나.’ 
그가 뱀파이어들을 짠하게 보는데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모여라 꿈동산] 무리가 인간들과 격돌합니다. 
-오크 워리어 [고블린]이 인간 기사와 대결합니다. 
-대결 결과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비전이자와의 대결에서 패배할 경우 전이자가 사망할 수 있습니다. 
진수의 종교를 더 퍼트리겠다고 나선 녀석들이 모여라 꿈동산 무리였다. 
가끔씩 상태창으로 봤을 때는 다른 몬스터들에게 포교 활동을 하는 듯했는데 기어코 사람들과 마찰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아... 인간 기사라고...? 저쪽 차원의 인간은 수준이 어느 정도지?’ 
마지막에 나타난 메시지 때문에 문득 불안해졌다. 
물론 보통의 오크 워리어에서 블루 오아시스나 무리 성장 등으로 강해진 고블린이기에 쉽게 패배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혹시나 잘못해서 패배할 경우 상태창에 있는 비석의 숫자가 늘어나게 된다. 
‘아틀란티스 건국으로 골드도 많이 벌었는데 뭐라도 보내줘야겠다.’ 
그는 재빨리 상점을 열었다. 
특성 목록에서 눈에 들어오는 상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결투의 대가] 특성. 
헌터들 중에서도 소지한 경우가 있어서 정보가 꽤 알려진 정보였다. 
1:1 싸움에서 비약적인 능력 향상을 주는 특성이다. 
‘40골드면 상당히 비싸지만... 고블린 목숨 값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지.’ 
진수는 대결 중에 위험한 상황이라도 생길까 무서워 빠르게 상품을 전달했다. 
-[고블린]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3, 민첩 +3, 체력 +3, 내구 +1 
고블린의 그림 뒤로 불타는 듯한 효과가 나타났다. 
특성이 제대로 전달된 듯했다. 
-대결이 종료되었습니다. 
-[고블린] 승리 
-인간들 사이에서 규격 외로 강한 고블린에 대한 소문이 퍼집니다. 
-보상을 받습니다. 
-인간들에게 당신의 종교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영향력이 강해짐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우두머리] 특성 
고블린이 대결에서 이기면서 진수의 종교를 인간들에게 전파했다. 
두들겨 패서 전도하는 게 맞는 건지 판단은 잘 서지 않았다. 
그러나 몬스터뿐이던 신도들에 인간이 추가되었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이 특성.... 장난 아닌데?’ 
[우두머리] 특성을 얻고 나니 전반적인 능력이 향상되었음을 느꼈다. 
상태창의 능력치에 합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진수를 따르는 자가 많을수록 강해지는 듯했다. 
그에게는 상태창에 있는 전이자들, 징크스를 믿는 신도들, 로켓몬스터 사람들, 뱀파이어들까지 굉장히 많은 부하들이 있었다. 
[우두머리] 특성에 굉장히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좋았어.... 운명파란 놈들이 뭘 꾸미고 있더라도 다 박살낼 수 있을 거 같다.” 
온몸에 힘이 넘쳤고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치솟았다. 
진수는 바로 중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여기는 뭐 중국어를 몰라도 그냥 다닐 수 있겠는데.” 
거리에 한글과 중문이 함께 쓰여 있는 곳. 
진수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연길시에 도착했다. 
“그래도 나름 한국인이라고 이쪽 매니지먼트에서 접촉을 했었나보네.” 
그는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며 걷고 있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양팔에 문신을 채워 넣은 근육질의 사내. 
바로 박종대의 사진이었다. 
‘요즘에는 조금만 유명해져도 이렇게 온라인에 박제가 되어버리네. 항상 말조심 하고 다녀야겠어.’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박종대의 위키 문서였다. 
박종대가 매니지먼트로부터 국제형사경찰기구에 들어가고 나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국제형사경찰기구 내에 누군가가 운명파와 결탁한 정황이 있으니 분명 그의 매니지먼트를 파헤치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진수는 그 매니지먼트 회사가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위키 문서를 참고하고 있었다. 
‘혹시 나도 위키 문서가 있나?’ 
그는 원래도 종종 자신의 이름을 검색 엔진에서 찾아보곤 했었다. 
최근에는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확인을 못 했는데 생각난 김에 검색을 해봤다. 
“어, 있다, 있다.” 
-김진수 
대한민국의 A급 전투 헌터이자 유통 회사 로켓몬스터의 대표. 
다른 A급 헌터들과는 달리 과거의 행적이 뚜렷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활동한 기간에 비해 활약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대규모 균열 사태에서 활약한 영상(기미태 영상 링크), 천안 비행몬스터사냥협회 해산(기사 링크), 포항 광산 부활 사건(기사 링크) 등 짧은 기간 동안 국내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했다. 
러시아에서도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데, 각성자부터 비각성자까지 한국인에 대한 우호도를 높여준 인물이다. 
전투 능력은 A급 헌터들 중에서도 중간 이상으로 보인다. 
바위곰 이종학과의 전투 영상(영상 링크)을 보면 A급 헌터와의 전투에서 아주 여유롭게 승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후 로켓몬스터에 심선우와 이종학 모두 김진수의 아래 직급을 가진 것으로 보아 이 둘보다 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루머가 있다. 
“심선우씨한테는 미안하지만, 일단 상성상 내가 무조건 이기지.” 
D등급일 때 이미 심선우의 최고 출력을 몸으로 받아낸 적 있다. 
[절연체] 특성을 지니고 있으니 전기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심선우는 진수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하긴 뭐, 선우씨랑 싸울 일은 없으니까. 지금 내가 싸울 거는 저 매니지먼트 사장이겠지.” 
진수는 어느새 박종대의 매니지먼트 회사 건물에 도착했다. 
현재 시각은 오후 네 시. 
곧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투명화]를 쓴 채로 건물에 들어가서 사장의 동태를 살핀 뒤 혼자 있을 때를 노리면 될 것이다. 
-쾅! 
그가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위층에서 커다란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진수는 [유체화]와 [투명화]를 사용해서 재빨리 건물을 올랐다.
나한테 소질이 있는 건가...?
“내 짬이 얼만데 그딴 허접이랑 붙여놓는 거야? 이따위로 나오면 나도 헌터 대전을 굳이 중국 쪽에서 할 이유가 없지!” 
층 전체를 울리는 분노한 목소리. 
중국 땅이지만 화내는 이는 또렷한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조, 종대씨. 이번에는 이벤트 매치잖소. 너무 그리 성내지 마오. 내 다음에는 꼭 훌륭한 상대와 맞춰줄 테니까....” 
그리고 그 앞에서 그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자 역시 한국어를 쓰고는 있지만, 조선족들이 쓰는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쾅! 
다시 한 번 충격음이 울려 퍼진다. 
층 전체에 작은 진동이 생기고 자잘한 집기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화를 내고 있는 사내, 박종대가 무언가를 내려친 듯했다. 
“처음부터 훌륭한 상대를 가져왔어야지! 내가 왜 여기서 활동하는지 몰라?” 
“아, 알고 있소. 그런데 일개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헌터 대전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겠소? 일이라는 게 하나를 받으려면 하나를 줘야....” 
“그딴 설교는 집어치우고. 이번 이벤트 매치는 우선 넘어갈 테니까 다음부턴 조심하라고. 안 그래도 지금 인기를 끌어올리는 게 중요해졌는데.... 쯧!” 
박종대는 매니지먼트 사장에게 혀를 차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하여간 저 자식 성격 더러운 거는.... 근데 회사 소속 헌터 대전 선수가 소속사 사장한테 저렇게 막나가도 되는 거야?’ 
진수는 [사신의 감각]과 [중급 청각] 등으로 건물 바깥에서 내부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갑을관계가 역전된 듯했다. 
일반적인 회사와 구성원의 대화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 
‘박종대가 중국에서 인기가 많다더니.... 역시 사람은 능력이 있고 봐야 돼.’ 
헌터 대전에서 연전연승을 하고 있는 박종대.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주는 그는 중국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들의 위에 서려는 중국의 가치관과 상당히 부합하는 인물이었으니까. 
또한 헌터 대전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몇 안 되는 동양인이라는 점도 그의 인기에 한 몫 했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거 젊은 사람이 위아래도 모르고....” 
“아무리 완전히 우리 소속이 아니라고 해도 이건 너무 경우가 없구만 그래.” 
박종대가 떠나간 뒤 매니지먼트의 직원들이 사장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그들은 한 마디씩 던지며 바닥에 떨어진 집기들을 치우려 했다. 
‘중국 활동에 대한 관리만 해주는 곳이라서 이렇게 깽판을 친 건가?’ 
진수는 박종대가 왜 이렇게 배짱을 부렸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괜찮으니 나가서 일들 보게. 여긴 내가 치우겠어.” 
사장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직원들을 내보냈다. 
“후....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그가 집무실을 천천히 치우고 있는데 뒤쪽에서 다시 인기척이 느껴졌다. 
“허허,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안 괜찮아.” 
직원 중 하나가 돌아온 줄 알고 한 말이었는데 난생 처음 듣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누, 누구...! 읍!” 
그가 놀라며 괴한의 정체를 물으려 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짓쳐든 이가 사장의 입을 틀어막으며 눈을 맞췄다. 
그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이더니 사장이 굳어버렸다. 
‘비각성자라 그런지 [석화의 시선]이 엄청 잘 듣네.’ 
진수는 몸이 마비된 그를 소파에 앉혔다. 
“목숨이 아깝다면 경거망동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유창한 중국어가 나왔다. 
상대가 조선족이지만,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니 인장반지가 저절로 중국어로 통역을 한 것이다. 
‘사실상 중국인이 맞기도 하니까 통역이 되는 거겠지만.’ 
사장은 그의 경고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눈빛이 가라앉았다. 
딱히 소란을 일으킬 기색이 없었기에 [석화의 시선]을 거둬들였다. 
“내가 묻고 싶은 건 별 거 아니야.” 
진수는 제법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운명파랑은 어떤 관계이신가?” 
하지만 그 질문을 들은 사장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만큼 지린성에서 운명파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무거웠던 것이다. 
“지린성에서 영업을 하는 기업체 중에서 우, 운명파와 관련 없는 곳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저희도 그저 운명파의 그늘 아래에서 보호를 받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직접적인 명령을 받기도 하시던데.... 내가 너무 평화롭게 물어서 이러시나?” 
-콰드득! 
진수의 손이 집무실의 벽면을 파고들었다. 
육체를 이용하는 전투 헌터라면 건물 벽을 부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손아귀 힘으로 천천히 짓뭉개는 것은 차원이 다른 능력이다. 
게다가 그가 벽에서 뽑아낸 것을 보며 사장은 반항하기를 포기했다. 
“기회가 닿으면 이런 녀석들을 써먹으려고 했겠지만... 나한테는 안 통해. 그러니까 마음을 접고 묻는 데에 대답이나 잘 하라고.” 
손 안에 딱 들어갈 크기의 황금색 구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인지 진수의 손에 잡힌 채 빠르게 진동하고 있었다. 
-푸욱! 
그것은 몇 차례 빠르게 떨리면서 벗어나보려 했다. 
하지만 힘이 부족하여 빠져나가지 못하니 이내 몸체에서 가시를 뽑아냈다. 
제법 예리한 가시의 끝에서는 치명적인 독액까지 나왔다. 
-치이익 
피부를 타고 흐른 독액이 바닥에 떨어지자 매캐한 냄새와 함께 대리석 바닥을 태운다. 
이토록 강한 독성에도 불구하고 진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온몸에 가시를 두른 황금빛 구체는 그의 피부를 채 뚫지도 못했고, 독은 [상급 독 내성]을 넘어서지 못했으니까. 
-꽈드드득 
진수는 가시 돋친 구체를 그대로 짓뭉갰다. 
-킬러볼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킬러볼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손 지압볼처럼 생긴 그것은 의외로 몬스터였다. 
생명체인 덕분에 [사신의 감각]으로 감지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매니지먼트 사장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준비했던 녀석이었다. 
비록 제 역할을 못하고 진수의 상태창에 들어가 버렸지만. 
“자, 다시 허튼 소리 하면 다음은 당신이야.” 
킬러볼을 찌그러트린 손이 사장의 머리를 잡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각성자인 사장의 머리는 킬러볼보다 연약했다. 
다행히 실제로도 그런지 확인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 * *
-띠리리링 띵 띵 띵! 
“잭팟이다!” 
-촤르르르- 
슬롯머신이 화려한 불빛과 함께 수많은 코인을 뱉어낸다. 
환호하는 사람을 향해 주변의 이목이 집중됐다. 
부러워하는 이. 
질투하는 자. 
순수하게 축하하는 사람. 
재밌어 하는 부류 등등. 
희망과 흥분을 화려함이라는 포장으로 덮어 파는 이곳은 장춘시의 카지노였다. 
‘내가 손대야 하는 건 저런 기계 도박이 아니지.’ 
진수는 한껏 흥분해서 환호성을 지르는 사내를 뒤로 하고 카드 게임을 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박종대의 매니지먼트 사장에게서 얻은 정보대로면 여기에 운명파의 간부가 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바로 국제형사경찰기구에 박종대를 대신해서 들어간 인물. 
‘도박을 워낙 좋아해서 그자를 위해 창춘시에 카지노까지 세웠다고 그랬지.’ 
옛날에는 중국에서 카지노가 불법이었을지 몰라도, 게이트 사태 이후로는 조금 달라졌다. 
몬스터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헌터들에게 평상시에도 어느 정도의 자극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중국에서는 카지노를 합법으로 만들었다. 
헌터들이 있는 모든 도시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 보기 드문 경우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단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불법이지.’ 
한국에서는 중국처럼 카지노에 관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찍부터 일당 헌터 생활을 시작한 진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다시 말해, 카드 게임에 능숙한 도박꾼들에게 그는 걸어 다니는 지갑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어차피 돈은 로켓몬스터로 넘쳐나게 벌고 있어. 돈 몇 푼으로 월척을 낚으면 나한텐 훨씬 이득이지.’ 
진수가 도박 쪽으로는 아주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카지노에 방문한 것은 다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돈보다는 운명파의 간부를 잡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었다. 
“베트(Bet).” 
“다이(Die).” 
“다이.” 
“다이.” 
테이블에서 베팅이 돌아간다. 
포커 룰만 겨우 익힌 진수는 게임은 실전으로 배우는 것이라며 바로 테이블에서 게임에 참여했다. 
“어...?”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칩은 줄어들지를 않았다. 
낮은 패를 들고 있을 때 배짱 베팅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포기한다. 
좋은 패가 손에 들어오면 베팅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생각보다 나한테 소질이 있는 건가...?’ 
그는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신뢰] 특성부터 [중급 동체시력], [야성] 등의 특성이 도박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달이 차오른 한밤, [달의 심장]이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진수는 게임을 배우는 겸 카지노에 적응하기 위해서 시작했다가 신나게 돈을 따게 되었다. 
‘이야, 이 맛에 카드 치는 거구나! 아, 아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도박이 아니라 계획을 위한 과정이지.’ 
도박이 주는 자극에 푹 빠져들고 있을 즈음, 조금씩 그에게 집중하는 시선들이 늘어났다. 
갑자기 나타나 테이블을 휩쓸고 있는 인물. 
비록 베팅 기술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 큰돈을 따지는 못했다. 
하지만 돈보다 승부 그 자체를 즐기는 도박꾼들에게 연전연승을 하는 진수는 흥미로운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손님?” 
또 다시 포커에서 칩을 따고 다음 게임에 들어가려는데 카지노의 가드가 진수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시다면 자리를 옮기시겠습니까? 같이 게임을 즐기고 싶다고 하시는 분이 계셔서요.” 
상당히 공손한 태도로 그에게 자리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진수는 함께 게임을 하던 테이블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신 승리만 하던 그가 이탈하는 것에 불만을 품을 법도 하지만 아무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진수에게 돈을 따낼 자신이 없기도 했고 창춘시 카지노에서 가드가 와서 초청한다는 일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그를 안내하는 가드는 카드 게임이 진행되는 테이블이 모여 있는 공간을 벗어났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방문할 일이 없을 듯한 위치에 엘리베이터가 하나 있었다. 
“이 엘리베이터를 타시면 됩니다.” 
가드는 몇 층을 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승강기에 몸을 실은 진수는 왜 층수를 알려주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는 버튼이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계획대로...!’ 
오직 한 층을 위한 엘리베이터. 
이게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창춘시 카지노의 한 층을 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는 것. 
-띵 
승강기가 목적지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진수의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단순한 카지노가 아니었다. 
평범한 카드 게임을 할 수 있는 테이블부터 피딱지가 엉겨 붙어 있는 철창, 용도를 알 수 없는 원형 금속판 등이 설치된 곳이었다. 
한 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기에 굉장히 넓었지만 시설을 이용하는 인원은 단 다섯 명 뿐이었다. 
테이블에 둘러 앉아 카드 게임을 하고 있던 이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다섯 명의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표정을 지었다. 
-퍽! 
그중 가장 덩치가 큰 인물이 한 남자의 손목을 내리쳐 끊어버렸다. 
“끄아아악!” 
“이런, 다음 주자가 오기 전까지 이기질 못했네. 약속은 약속이니까, 빚진 돈은 모두 탕감해주지. 가봐.” 
바로 옆에서 사람의 손이 잘려나갔는데 권태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인물. 
그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튄 피를 닦았다. 
이어서 진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 어서 와요. 그쪽을 위해서 한 자리를 막 비운 참이에요.” 
진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를 향해 걸어갔다. 
‘쫄 거 없지. 난 손목보다 더 큰 걸 가져올 거니까.’
내기
“아이고~ 이거 져버렸네. 크흐흐.” 
운명파 간부, 고진이 능글맞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말대로 직전의 게임에서 진수가 이겼다. 
몇 개 되지 않는 칩들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오는 진수. 
그 많던 칩들이 어느새 거의 다 동이 난 상태였다. 
‘흐흐, 이게 진짜 꾼의 실력이지. 이놈 기세랑 운은 좋지만 실력은 아주 초짜네. 일반인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수준이야.’ 
고진은 진수를 살피며 생각했다. 
도박장에서 연전연승을 한다고 하길래 게임 중에 수작을 부리는 놈이 온 것인가 의심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붙어보니 의심을 확실하게 씻을 수 있었다. 
‘다른 잔머리 굴리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운과 포커페이스로 밀어붙이는 타입이야. 우리 쪽 딜러가 카드를 주고 있는데도 패가 썩 잘 붙는 게 오늘 운빨이 좋은 날인 거 같고. 상당히 낭만이 있는 녀석이네.’ 
그는 진수를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상당히 호감이 생겼다. 
오랜만에 승부사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자였으니까. 
‘그래도 봐줄 생각은 없지만.’ 
진수가 이 자리에 온 이후로 이긴 판과 진 판의 비율은 얼추 비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진 칩을 대부분 잃은 이유는 단순했다. 
자잘한 판에서 이기다가 분위기가 달아올라 판돈이 커지면 패배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근소한 차이로. 
“아... 알겠다.” 
다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던 와중에 진수가 혼잣말을 했다. 
뭔가 깨달은 듯한 목소리였다. 
‘알아차렸나?’ 
고진이 진수의 눈치를 보며 게임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결과는.... 
“올인.” 
진수가 남아있는 모든 칩을 걸었다. 
‘음?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 
고진이 자신의 패를 보았다. 
그리고 앞선 판, 딜러가 패를 섞은 순서와 횟수 등을 계산했다. 
진수가 가진 모든 걸 걸었지만 승부수를 던질만한 패가 아니었다. 
“다이.” 
“다이.” 
“콜.” 
테이블에 있던 다른 두 명이 베팅에서 빠졌다. 
하지만 고진은 진수의 승부에 응했다. 
“아~ 이게 안 되네.” 
진수가 머쓱한 표정으로 패를 공개했다. 
고진이 가지고 있는 패보다 훨씬 안 좋은 패였다. 
아니, 테이블에 있는 그 누구의 패보다도 급이 낮았다. 
‘허풍으로 어떻게 연명을 해보려고 했나보네. 대체 뭘 알았다고 했던 거야. 참나....’ 
비각성자들 사이에서는 [신뢰] 특성 덕분에 어느 정도 허풍과 포커페이스로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이들은 모두 도박의 베테랑들. 
게다가 모두 각성자였기에 그 수는 통하지 않았다. 
진수는 기어코 모든 칩을 잃었다. 
“아~ 그래도 꽤 기대를 했었는데 완전 잔챙이였네.” 
고진이 실망감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원체 내기와 승부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도박 중독이라고 해도 좋은 자였지만 도박 실력이 좋아 여간해서 지는 법이 없었다. 
항상 이기기만 하니까 최근에는 자극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창춘시 카지노에서 실력이 좋은 사람들을 자신만의 프라이빗 도박장에 데려와서 도박을 했다. 
“이 전에 있던 양반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영 재미가 없네.” 
이 전에 있던 양반은 진수가 도착했을 때 손목이 잘린 사람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는 기대를 한 만큼 실망이 큰 듯했다. 
고진의 말에 진수가 눈을 빛냈다. 
‘좋아,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볼까.’ 
창춘시 카지노에서 고진의 관심을 끌어 이 자리에 오는 것이 첫 번째 계획이었다. 
원래는 계속 칩을 바꿔가며 큰돈을 쓰는 방법을 사용하려고 했다. 
예상 외로 게임이 잘 풀려서 1차 계획과 좀 다른 방법으로 불려왔지만 어쨌든 성공이었다. 
‘이제 장르를 바꿔봐야지. 전통적인 도박 게임에서 나한테 승률은 0이라고 해도 무방하니까.’ 
모든 칩이 사라진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다. 
진수는 테이블에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펴봤다. 
“도망은 못 치니까 허튼 생각 하지 마쇼.” 
고진은 진수가 도주하려는 줄 알고 으름장을 놓았다. 
돈이 모두 떨어진 인물들이 으레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였으니까. 
“아, 그럼요, 그럼요.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하하.” 
“그러면 다행이고. 자, 이제 칩은 다 쓰신 거 같은데 어쩌나? 뭐 다른 걸 걸고 하셔도 되고.” 
지금부터 고진이 정말 좋아하는 순간이다. 
돈이라는 방어막이 사라진 이후부터 사람들이 하는 선택은 정말 다양하다. 
그걸 구경하고, 빼앗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무너져 내리면서 동시에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잠깐이나마 신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될 까요...?” 
진수가 조심스럽게 되묻는다. 
계속해서 내기에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보인 것이다. 
고진의 입 꼬리가 씰룩였다. 
“물론이지.” 
“근데, 쓰읍.... 제가 카드 게임이 영 적응이 안 되네요. 종목을 좀 바꿔도 될까요?” 
“흐흐흐.” 
고진이 웃음을 터트린다. 
이 또한 익숙한 제안이다. 
카드 게임이라 졌다고 생각하는 인간들. 
오히려 짓밟기 더 좋은 부류다. 
“여기에 있는 거라면 뭐든.” 
어차피 이 층에 있는 모든 내기 도구들은 자신에게 맞춘 물건들이다. 
뭘 골라도 자신이 있었다. 
“그럼... 저건 어때요? 1:1로. 가볍게.” 
진수가 구석 자리에 놓여있는 기계를 가리켰다. 
* * *
-쾅! 쾅! 
고진이 앉아있던 의자를 들어 바닥에 연달아 내리쳤다. 
“아 게임 진짜 뭣 같이 하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는 진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고함쳤다. 
‘극찬까지 뽑아냈네. 이 맛에 게임하지. 크흐흐.’ 
반면에 진수의 얼굴은 아주 평온했다. 
아니, 오히려 만족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대전 격투 게임. 
대전 게임에서 상대방이 하는 욕은 그야말로 최상의 칭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기서 굳이 약한 기술로만 이긴다고? 감히 날 봐주면서 해?” 
게임기의 화면에는 진수의 캐릭터가 아주 실낱같은 체력만을 남기고 있었다. 
까딱 잘못하면 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견제용으로 사용하는 기술로 고진의 체력을 다 깎은 것이다. 
그가 불같이 화를 내는 이유는 졌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승부에서 상대방이 봐준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국인한테 게임으로 덤비면 안 되지.’ 
일당 헌터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모바일 게임을 하던 진수였다. 
학창시절 웬만한 게임은 다 섭렵을 했고, 지금 하는 대전 격투 게임 시리즈는 완전히 통달을 했다고 할 정도의 실력이었다. 
오랜만에 해서 적응의 시간이 조금 필요했지만 높아진 능력치로 인한 신체 능력과 [중급 동체시력] 등의 특성이 한창 때보다 더 게임을 잘 하게 도와주었다. 
“아쉬우시면 다시 해볼까요?” 
진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고진은 다시 한 번 열불이 터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하자는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직전 판에서 거의 이길 뻔 했으니까. 
‘아주 좋은 걸 배웠어.’ 
테이블에서 카드 게임에 연달아 질 때, 알겠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요소였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계속 내기, 승부에 응하게 만드는 방법. 
아깝게 졌다는 느낌을 주는 것. 
그리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그걸 종목을 바꿔서 고스란히 되돌려 주기 시작했다. 
‘점점 판을 키우는 것까지 배운 대로 써먹어야지. 흐흐흐.’ 
몇 번을 다시 해도 고진은 격투 게임에서 이기지 못했다. 
진수는 잃었던 칩을 모두 되찾아올 수 있었다. 
“아... 게임은 좀 시시하네요. 아까 카드 칠 때 이런 기분이셨나 봐요?” 
그는 속으로 화를 삭이고 있는 고진에게 말했다. 
“격투 게임 말고 다른 걸 해볼까요? 대신 돈 말고 다른 걸 걸자고요.” 
“다른 거?” 
“저한테 [영혼의 약속] 기술이 있거든요. 어떤 기술인지는 알고 계시죠? 이걸로 능력치나 특성, 기술 같은 것도 걸 수가 있는데.... 어때요? 훨씬 더 재밌지 않겠어요?” 
고진은 아무 말 없이 진수를 노려보았다. 
칩을 모두 잃은 사람들과 추가 내기를 해서 손가락이나 손목 등을 받아내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던 그다. 
반대로 비슷한 제안을 받아보니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다. 
“좋아.... 그럼 종목을 또 바꿔야겠지? 이번엔 좀 더 몸을 쓰는 쪽으로 해보자고.” 
도박판에 있어서 그 힘을 볼 기회가 없었지만 그는 일단 운명파의 간부였다. 
박종대를 대신해 국제형사경찰기구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자. 
헌터로서의 능력도 상당할 것이다. 
“저도 좋습니다. 뭐 다른 분들의 힘을 좀 빌리셔도 되고요.” 
진수는 그의 성질을 돋우는 말을 덧붙였다. 
‘어차피 나도 힘을 빌려서 상대해줄 거니까. 흐흐흐.’ 
내기의 종목은 다양했다. 
팔씨름이나 달리기 따위의 단순한 신체 능력으로 승부를 보는 종류. 
룰렛 등 운에 기대는 종류. 
몬스터들끼리 대결을 시켜 베팅을 하는 종류. 
다양한 내기를 했다. 
시작은 능력치 몇 개 정도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특성을 내걸기까지 했다. 
“[약점 파악] 특성 잘~ 받아갑니다.” 
-슈우욱 
몬스터 투기에서 이긴 진수가 기쁜 마음으로 고진의 특성을 빼앗았다. 
“이, 이럴 수가...!” 
고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내기의 대가가 바뀐 후로 승부는 엎치락뒤치락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힘 30, 민첩 30, 체력 20, 내구 20, 마력 30의 능력치와 [고속 투척] 기술, [약점 파악] 특성을 잃었다. 
카드 게임에서 진수의 돈을 땄던 방식 그대로 당한 것이다. 
‘[빙의]로 수많은 전이자들 능력을 빌려왔는데 내가 질 수가 없지.’ 
확실히 고진은 강했다. 
능력치와 특성, 기술을 가져오기 전에는 진수보다 셌을지도 모른다. 
팔씨름을 할 때는 평천대성 흑우의 힘을, 달리기에선 켄타우로스 마초의 각력을 빌리는 식으로 겨우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운명파의 간부 자리조차 위태로워졌다. 
“어떻게... 마지막 한 판 해서 묻고 더블로 가실래요? 이번 내기에서 지면 제 칩들이랑 가져온 능력치, 특성, 기술 다 돌려드리고 저한테 원하는 것도 하나 드리죠.” 
구석에 몰린 고진에게 진수가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 
“... 종목은?” 
“양쪽 모두 공평하게 동전 던지기로 하죠. 클래식하고, 완전 운에 맡기는 종목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동전은 직접 던지시는 걸로.” 
그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고진은 잠시 그 동전을 바라보았다. 
이내 이를 악물더니 동전을 받아들었다. 
그의 손에 느껴지는 감촉으로 봤을 때 어느 한 면이 더 무겁게 처리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동전 던지기라.... 솔직히 힘 조절을 하면 충분히 내가 원하는 면을 위로 오게 만들 수 있지....’ 
고진은 동전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그래, 그 제안 받아들이겠어. 내가 이긴다면 네 팔을 하나 내놔.” 
“좋습니다. 제가 이기면 제 질문에 대답을 해주시는 걸로. 앞면, 뒷면 중 어디로 하실래요?” 
“앞면.” 
그의 대답을 들은 진수는 [영혼의 약속] 기술을 사용했다. 
서로 합의된 내용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내 각자의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팅 
고진은 기술이 적용된 것을 느끼고 바로 동전을 던졌다. 
동전의 체공 시간이 유독 긴 것 같았다. 
동전이 그의 손등으로 떨어짐과 동시에 반대쪽 손으로 위를 덮었다. 
앞면과 뒷면 어느 쪽이 나왔는지 알 수 없도록. 
“확인해봅시다.” 
진수가 그를 재촉했다. 
아무래도 팔 하나가 걸렸으니 긴장이 된 모양이었다. 
고진은 동전을 덮었던 손을 들어올렸다. 
“....” 
결과를 확인한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숫자가 쓰여 있는 뒷면이 위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고진은 조용히 패배를 받아들였다. 
힘 조절을 하지 않은 데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질 뻔했네.’ 
반면에 진수는 식은땀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중급 동체시력]으로 봤을 때 동전은 앞면이 위로 향하는 듯했다. 
동전이 고진의 손에 닿기 직전, 아주 빠르게 동전을 [차원의 틈]에 넣었다가 다시 빼냈다.
그렇게 동전을 한 바퀴 더 돌려 승리를 만들었다. 
“자~ 이제 약속을 이행하실까요? 제가 물어볼 거는요.”
민우혁
“그때 그 살막이라는 놈들이랑 같이 있다 이거지.” 
진수는 창춘시에서 남서쪽에 있는 산을 타고 움직였다. 
고진과의 내기에서 이긴 그는 민우혁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승부에서 졌다고 생각한 고진은 순순히 민우혁에 대한 정보를 내놓았다. 
‘그때 살수들 수준을 보니까 그렇게 믿음직스럽지는 않던데....’ 
지난 번 민우혁을 잡으러 갔을 때 진수를 습격했던 살수들이 살막 소속이었다. 
그 당시에 운명파라는 거대한 조직이 일을 맡기기에는 조금 부족한 곳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영혼의 약속]이 강제했으니까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야. 어쨌든 가서 민우혁을 털면 또 다음 단서를 찾을 수 있겠지.” 
진수는 잡다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특수임무 발생. 
-특수임무 : 고블린 [고돌]에게 [정신 보호] 특성 전달하기 ! 
-보상 : 망자의 통로에 있는 차원의 축 회복 
-망자의 통로에 있는 차원의 축에 이끌린 [고돌]. 망자의 통로로 진입하려는데 [망자 군단]이 지닌 막대한 사기(死氣)로 인해 정신적인 충격이 예상됩니다. [고돌]을 보호하기 위해 [정신 보호] 특성을 전달하십시오. 
다른 전이자 무리들에게 가서 종교도 전하고 교류도 하던 고돌이가 망자의 통로에 도착한 듯했다. 
망자 군단에 소속된 언데드 몬스터만 22마리다. 
아틀란티스 때와 마찬가지로 현지에 있는 다른 언데드 몬스터들도 합류했다면 더욱 거대한 규모일 것이다. 
고블린에게는 그 자체로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그만큼 망자 군단 애들이 강해졌다는 뜻이니까 좋은 일이지. 그나저나, 고돌이 얘는 전이자 무리한테 가는 줄 알았더니 차원의 축에 이끌리는 거였어? 어쩌다 일이 그렇게 됐지.’ 
진수가 알기로 고돌이는 뉴트럴바이오에서 실험하던 고블린일 뿐이었다. 
차원의 축과는 관련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모르는 일이 있었나보다. 
“우선, 우리 고돌이한테는 좋은 특성을 보내줘야지.” 
상점을 열어 [특급 정신 보호] 특성을 보내줬다. 
40골드나 하지만 지금 골드 여유는 충분하다. 
-[고돌]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2, 골드 +10 
-특수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망자의 통로에 있는 차원의 축 회복 
상태창에 있는 고돌이의 그림이 밝게 빛났다. 
이내 검은 기운이 고돌이를 감쌌고 빛과 어둠이 한 데 뒤섞이더니 고돌이에게 흡수되었다. 
-[고돌]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민첩 +3, 체력 +2, 내구 +1, 마력 +4 
조금 전에 나타난 현상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돌이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 것은 확실했다. 
‘이 자식 뭘 하고 다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줘서 나한텐 참 좋네.’ 
고돌이 덕분에 생긴 보상을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고돌]이 [망자 군단] 무리와 조우합니다. 
-[고돌]이 [망자 군단] 무리에게 당신의 종교를 전합니다. 
-제사장 뱀파이어 퀸 [뱀피렐라]가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신탁을 내리십시오. 
‘언데드 몬스터도 신을 믿을 수 있는 거야...?’ 
좀비와 스켈레톤, 귀신 등으로 이루어진 녀석들이 기도하는 모습이 좀체 그려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뱀피렐라는 로드의 일이라고 앞장서서 제사장이 된 듯했다. 
“한 곳에 박혀만 있지 말고 좀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래.” 
진수가 봤을 때 망자 군단은 망자의 통로를 벗어나지를 않는 것 같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잔소리 같은 신탁을 내려주었다. 
-[뱀피렐라]가 당신의 신탁을 받듭니다. 
[뱀피렐라] - 현재 상황 : 신탁을 널리 알림 “안주하지 말고 부지런히 징크스님을 알리자!” 
-신탁의 효과로 당신을 믿는 이들은 전도에 대한 욕망이 강해집니다. 
‘앗, 돌아다니면서 포교활동 하라고 눈치 준 게 아닌데....’ 
로드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뱀피렐라가 그의 신탁을 곡해한 듯했다. 
하지만 신탁을 물릴 수도 없고 어쨌든 교도가 늘어나면 [우두머리] 특성의 효과로 더 강해지니 그냥 두기로 했다. 
이 이후로 망자의 통로 주변을 지나가면 죽은 자가 붙잡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 * *
-스으윽 
살막의 본거지에 도착한 진수는 [유체화]와 [투명화]를 사용하여 내부에 침투했다. 
[중급 후각] 덕분에 민우혁이 지내고 있는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민우혁.” 
“아니...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그는 갑자기 나타난 진수를 보고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지난번 블루 오아시스 공장에서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다 방법이 있지. 어차피 여기 살막이라는 놈들이 전부 덤벼도 날 못 막는 건 알고 있지? 서로 귀찮은 일은 만들지 말자고. 나도 잔챙이들 처리하다가 어떻게 실수를 하게 될지 모르니까.” 
진수의 말에 민우혁은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확실히 그렇네. 당신도 참 대단한 인간이야.” 
그는 의자에 앉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일부러 실력이 떨어지는 놈들을 골랐는데... 나름의 심리전이 전혀 안 먹혔군.” 
운명파가 살막에게 진수의 암살을 의뢰했던 것은 그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민우혁을 지키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렇게 하면 민우혁을 국제형사경찰기구에 넘긴 다음 블루 오아시스에 대한 조사를 멈추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에 퍼트리고 있는 블루 오아시스도 알아내고 숨은 민우혁을 다시 찾아냈다. 
“중국 정부보다도 오히려 일개 헌터 하나가 더 큰 방해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큭큭.” 
그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너희들 대체 블루 오아시스로 뭘 하려고 그러는 거야?” 
마약으로써의 블루 오아시스에 대해 묻는 게 아니었다. 
마약을 몬스터를 강화시키는 약물로 만든 저의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 세상에서 몬스터를 없애기 위해서지.” 
“그게 무슨 헛소리야? 몬스터를 없애려고 몬스터를 강화시키다니.” 
선문답 같은 대답에 진수가 짜증을 냈다. 
“우리의 큰 뜻을 당신이 어떻게 알겠어? 지금은 그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생기고 있는 것뿐이야.” 
“소? 니네가 뭔데 멋대로 남을 희생시켜? 무슨 기준으로 소를 정하고?”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야. 그냥 현상이 정하는 것뿐이지. 태풍이 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환경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피해를 입는 사람도 나오는 것처럼.” 
민우혁은 얼마 전에 만났던 오세라는 존재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다만 다른 점은 분명 인간에 불과한 운명파가 자신들의 행보를 자연 현상에 비교한다는 것이다. 
“이미 운명의 수레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했어. 운명파는 중원으로 진출했고, 중국 정부도 막지 못하지. 이제 너 혼자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뉴트럴바이오 때도, RD도, 러시아에서도 개인이 쉽게 해낼 수 있는 일들은 아니었어. 니들이 뭘 꾸미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장담하듯 말하지는 않는 게 좋을 걸.” 
“후후, 그래. 행운을 빌어주지. 이제 난 또 다시 국제형사경찰기구에 넘어가는 건가?” 
민우혁이 수갑을 채우라는 듯 두 손목을 맞댄 채 앞으로 내밀었다. 
“일단 처분하기 전에, 뭐 하나만 묻고 싶은데.” 
“음...?” 
“당신, 혹시 마석증이 어쩌다 생겼는지 기억해?” 
진수가 그를 쫓아온 이유는 블루 오아시스도 있겠지만 마석증에 대한 궁금증도 컸다. 
왜 아무 연관이 없는 것 같은 민우혁과 자신의 마석증 문양이 같은지에 대한 의문. 
“허, 이상한 질문이군. 뭐 대답을 못해줄 질문도 아니지만.” 
그는 과거 자신에게 마석증이 생기게 됐던 계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억이 겨우 남아있을 정도로 어렸을 때, 균열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각성조차 하지 않은 어린 소년에게 몬스터는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아직 충분히 자라지 못한 연약한 다리로 부지런히 도망을 쳐봤지만 죽음의 손아귀는 시시각각 그의 숨통을 조여 왔다. 
-살고 싶은가? 
사방에 짐승형 몬스터들이 득시글대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귀를 통해 듣는 목소리 따위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직접 전하는 메시지였다. 
소년은 앞뒤 재지 않고 맹목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와 계약을 하자. 네게 힘을 주마. 
그는 여전히 고개를 빠르게 주억거릴 뿐이었다. 
-슈우욱 
살고 싶은 마음에 미지의 존재의 제안을 받아들인 소년.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온몸에 힘이 넘쳐흘렀다. 
반대로 그를 둘러싸고 있던 몬스터들은 갑자기 덩치도 작아지고 기운이 빠졌다. 
마치 녀석들의 힘을 빼앗아 소년에게 준 것처럼. 
“숨겨진 것들을 찾을 수 있게 됐다거나 한 게 아니고?” 
이야기를 듣던 진수는 디에고의 경우와 유사점과 차이점이 같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건 없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각성자가 되어서 주위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있었지. [야성]이나 [발톱 강화] 같은 몬스터들의 특성이 생겨있었고 말이야.” 
그가 느낀 대로라면 미지의 존재와 계약을 한 이후에 몬스터들의 특성과 기술을 훔쳐온 듯했다. 
‘나랑은 경우가 너무 다른데.... 마석증 문양은 그냥 랜덤한 게 아닐까?’ 
민우혁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마석증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 했지만 전혀 유추되는 바가 없었다. 
“별 도움은 안 되네. 일단은 지금처럼 자유롭게 지내게 할 순 없으니... 감방 가서 좀 더 생각나는 게 없는지 보자.” 
진수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슈우욱 
누군가가 그와 민우혁 사이에 불쑥 나타나기 전까지. 
“뭐야?” 
가면을 쓴 괴한이 천장 위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마치 [유체화]를 사용한 것 같았다. 
‘조민준씨가 [유체화]는 인간의 몸으로 쓰기 적합한 기술이 아니라고 했는데...? 쓰는 사람은 나밖에 못 봤다고도 했고....’ 
진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깐 당황을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괴한을 공격했다. 
민우혁을 지키기 위해서 온 것이리라 생각한 것이다. 
“아, 아니... 당신...!” 
그런데 민우혁의 반응이 이상했다. 
괴한에게서부터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마치 위협적인 존재를 마주한 것처럼. 
-퍽!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했다. 
괴한은 진수의 공격을 피하면서 바로 민우혁에게 주먹을 날렸다. 
진수는 몸을 던져 그 주먹질을 막았다. 
“컥!” 
주먹 한 방에 속이 진탕이 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바위곰 이종학의 기술보다도 훨씬 강한 타격이었다. 
“너 뭐하는 놈이야!” 
진수는 [차원의 틈]에서 전기톱을 꺼내 휘둘렀다. 
놈은 위협적으로 움직이는 톱날을 부드럽게 피하곤 민우혁에게 달려들었다. 
습격의 목표는 오로지 민우혁을 해치우는 것인 듯했다. 
“니 맘대로는 안 되지...!” 
도끼를 소환해 놈의 등판을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고진에게 받아낸 [고속 투척] 기술이었다. 
하지만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는지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몸을 낮춰 도끼를 피해낸다. 
“니 맘대로는 안 된다니까.” 
괴한에게 공격을 적중시키지 못했지만 진수의 시도가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날아간 도끼는 민우혁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계약자 [민우혁] 차원 전이 성공. 
그가 진수의 상태창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전이되어버리자 괴한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돌려 진수를 보았다.
홍산
“쯧.” 
가면을 쓴 괴한은 가볍게 혀를 찼다. 
신기해하거나 놀라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저 한발 늦었다는 듯한 반응. 
‘[차원 전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순간이동을 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오해했다거나....’ 
진수는 의외로 침착한 모습에 도리어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 괴한이 적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궁금한 부분은 붙잡은 뒤에 캐물으면 된다. 
-푸슉! 
의문을 뒤로한 채 곧장 [강철 거미줄]을 쐈다. 
그 짧은 사이에 [빙의]로 인면지주 엘리스의 힘을 빌려 거미줄을 강화시켰다. 
쏜살같이 뻗어나가는 거미줄. 
-스르륵 
끈끈한 거미줄이 정확히 괴한의 몸통을 파고들었다. 
‘어? 파고들어...?’ 
놈은 처음에 나타났을 때처럼 몸이 흐릿한 상태가 되었다. 
[유체화]를 사용한 듯했다. 
[강철 거미줄]은 마력으로 구성된 기술이라 [유체화]로 통과시키면 엄청난 마력 소모가 생긴다. 
그런데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니 마력량이 상당한 것 같았다. 
거미줄은 녀석을 지나 벽면에 부착되었다. 
“흥!” 
진수는 [강철 거미줄]을 당기며 빠르게 돌진했다. 
하지만 괴한은 코웃음을 친 뒤에 그대로 천장 위로 도약했다. 
-스르륵 
진수도 [유체화]를 사용해 그 뒤를 쫓았다. 
그러나 건물 위로 올라가자 괴한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사신의 감각]을 사용해 봐도 주변엔 온통 살막의 인물들만 감지될 뿐이었다. 
‘[유체화]를 쓰는 인간이 또 있단 말이야...?’ 
다시 보니 확실히 [유체화]가 맞았다. 
진수의 경우엔 [차원 전이]를 통해서 몬스터에게 받은 기술.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이 얻기 힘든 능력이다. 
처음엔 사용하는 것조차 어려워 마력 탈진으로 위험을 겪었다. 
각성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자신만 사용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또 다른 사용자를 만난 것이다. 
“흠.... 일단 운명파를 더 파헤치다 보면 또 만날 일이 있겠지.” 
괴한이 운명파에서 보낸 인물인지, 혹은 운명파의 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민우혁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으로 봤을 때 어찌됐든 운명파와 관련된 자라는 것은 분명했다. 
‘본의 아니게 민우혁을 전이시켜버렸지만 수확이 없는 건 아니야.’ 
우선, 블루 오아시스로 몬스터들을 강화시키려 한다는 걸 확인했다. 
또한 국제형사경찰기구에서 블루 오아시스를 근절시키지 못했으리란 유추도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최종적으로 운명파의 중심을 파고들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운명파는 중원으로 진출했고, 중국 정부도 막지 못하지.’ 
민우혁이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진수가 향해야 하는 곳은 정해졌다. 
* * *
사막과 초원이 공존한 기묘한 지역. 
풀이 자라는 평원에는 말들이 뛰놀고 있다. 
-두두두두 
십 수 마리에 달하는 말들이 힘차게 내달린다. 
진수는 멀리서 질주하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몬스터가 판을 치는 세상인데 용케도 말들이 살아남았네. 인간이 키우는 놈들인가? 잠깐... 말들의 상태가...?’ 
말들은 공기를 타고 날아온 그의 냄새를 맡았는지, 서로 아무런 신호도 주고받지 않았는데 일시에 달리는 방향을 틀었다.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인간을 향해. 
몹시 빠른 속도로 짓쳐드는데 진수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고 비벼보기도 했다. 
원근감이 잘못 된 것 같은 거대한 덩치 때문이었다. 
말이 아니라 작은 코끼리 같은 크기였다. 
-두두두두! 
한 마리 한 마리가 마치 탱크처럼 육중한 놈들이 떼로 달려드니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진수는 황급히 [차원의 틈]에서 장갑 총을 꺼냈다. 
바닥에서 돌을 하나 주워 마력을 운용한다. 
-후우웅- 피융! 
가장 선두에 달려오던 괴물 말의 머리에 돌이 명중했다. 
-자이언트 에쿠스 [토야] 차원 전이 성공. 
한 방에 거구를 날려버린다. 
머리가 터져나간 녀석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말들은 멈추지 않았다. 
전혀 기세를 줄이지 않은 채 달려드는 놈들. 
진수는 뒷걸음질을 치면서 다시 공격할 준비를 했다. 
-특수임무 발생.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지만 급박한 상황에 얼른 닫았다. 
“히히히힝!” 
금방이라도 커다란 발굽으로 그를 짓뭉갤 듯 다가왔다. 
겨우 한 두 걸음 거리가 남았을 때, 어디선가 우레와 같은 호통이 들려왔다. 
“이놈들! 그만! 홍산으로는 가지 말라고 했지!” 
-두두두두 
다른 자이언트 에쿠스들보다 1.5배는 커 보이는 녀석이 빠르게 달려온다. 
그 위에는 굉장한 덩치의 여인이 타고 있었다. 
살이 쪘다기 보단 그냥 골격이 컸다. 
그녀의 외침에 곧 진수를 짓밟을 것 같던 말 떼가 뿔뿔이 흩어져 돌아갔다. 
[차원의 틈]에서 무기를 꺼내려던 진수는 장갑 총을 집어넣고 상황을 관망했다. 
-툭툭 
여인은 진수의 근처까지 와 말을 세웠다. 
거칠게 고삐를 틀어쥐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고 발로 가볍게 두어 번 치니 자연스럽게 멈춘다. 
신묘한 기마술이었다. 
“이봐요. 여기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홍산 근처에 있으면 어떡해요! 빨리 나와요.” 
그녀는 진수를 향해 대뜸 소리를 질렀다. 
덩치에 걸맞게 우렁찬 목소리였다. 
그녀가 말하는 홍산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앞으로 몇 걸음 옮겼다. 
“벙어리예요? 몸도 비실비실한 게 이 근처에 이렇게 다니면 위험할 거 같은데....” 
여인은 걱정스럽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길거리에서 울고 있는 미아를 대하는 것 같았다. 
진수가 발끈해서 한 마디 하려고 하는데 그녀가 말 위에서 손을 내밀었다. 
“잡아요. 내가 츠펑시까지 태워다 줄게.” 
츠펑시라면 그가 가려던 도시의 이름이었다. 
초원에서 지도를 보며 찾아가려니 꽤나 귀찮은 일이었는데 도움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진수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휘익 
“어이구.” 
여성은 커다란 체구대로 힘이 굉장히 좋았다. 
한 손으로 진수를 번쩍 들어 자신의 앞에 앉혔다. 
“뭐야, 벙어리는 아니었네? 츠펑시로 가는 거 맞아요?” 
그가 순간 내지른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들은 그녀가 말을 걸었다. 
“아, 예. 맞아요. 태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하....” 
거의 품에 안기듯 말을 타고 있으니 몹시 어색했다. 
“어차피 나도 도시로 돌아가야 하니까 잘 됐네요.” 
그녀는 호쾌하게 미소를 지었다. 
말 머리를 천천히 돌린다. 
동시에 흩어진 자이언트 에쿠스들을 쭉 훑어보았는데, 아무래도 그녀가 키우는 녀석들인 듯했다. 
‘말 몬스터도 가축처럼 키울 수 있는 거였구나.’ 
상태창에서 몬스터를 키우는 사람의 생각이었다. 
“어? 근데 토야가 안 보이는 거 같은데....‘ 
말들을 살펴보던 여성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진수는 땀이 삐질 나왔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잠시 토야를 찾는 동안 그는 아까 나타났던 특수임무를 수락했다. 
-특수임무 : 안내하는 몬스터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전이시킨 대상의 특성 중 하나 
임무가 시작되자 특유의 감각이 다시 작동한다. 
한 지점을 향해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 
진수는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원에 붉은 돌산 하나가 외로이 솟아있다. 
“멋지죠? 홍산.” 
여인이 말을 걸었다. 
“츠펑시를 지켜주는 수호산이에요. 홍산의 비호 덕분에 게이트 사태에서도 우리 도시가 살아남을 수 있었죠. 지금도 다른 곳들에 비해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고요.” 
진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녀의 말에 동의를 한다기보다는 존중의 의미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구체적으로 홍산이라고 하는 저 돌산이 뭘 해줬는지 말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기보다는 마음의 안정, 정신적인 의지가 되어주는 역할에 그쳤다고 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저기에 뭔가가 살고 있는 건 분명하고.’ 
특수임무가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비범한 몬스터가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저기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는 건 왜 그러는 거예요?” 
“마을의 어른들이 홍산에는 용이 잠들어 있다고 그랬어요. 용의 신비한 힘이 츠펑시를 지켜주는 거라고. 홍산 근처에 접근했다가 용을 깨우게 되면 필히 무서운 벌을 받게 된다고요.” 
인장반지는 그녀의 말에서 용을 드래곤이 아니라 용(龍)이라고 통역했다. 
일반적으로 몬스터의 일종으로 여겨지는 종류가 아니라 신성한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비룡종 와이번이 날아다니고 하늘에서 괴수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천진한 소리다. 
“토야는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놀고 있나 봐요. 항상 무리에서 앞장서는 녀석인데 희한하네요.” 
그녀는 보이지 않는 자이언트 에쿠스 찾는 일을 멈추고는 어딘가로 향했다. 
진수는 여인의 앞에 앉은 채 도시로 가는 길을 꼼꼼히 살폈다. 
“츠펑시에는 질 좋은 광물이 많이 나와요. 자이언트 에쿠스나 일각우 같은 몬스터도 유명하고요.” 
그를 태워준 여성의 이름은 자야라고 했다. 
자야는 골격이 큰 몸에 비해서 입이 제법 가벼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이를테면 츠펑시는 내몽골자치구에 속하지만 몽골족보다는 한족이 더 많다거나 몽골족 사람들은 중국 정부와 한족에게 상당히 악감정을 품고 있다는 등의 얘기들이다. 
“츠펑시에 딱히 연고가 없으면 통갈락 영감님네에 가 봐요. 한족만 아니면 반겨줄 거예요.” 
그녀는 츠펑시까지 태워준 뒤에 통갈락이라는 사람의 집을 알려주었다. 
움직이는 내내 쉬지 않고 하던 얘기 중에 종종 나왔던 이름이었다. 
츠펑시 몽골족 사회에서 제법 인지도가 있는 노인인 듯했다. 
진수는 자야에게 인사를 하고 그녀가 알려준 집으로 향했다. 
“어이, 무슨 일이요?” 
다만, 자야가 말한 것처럼 우호적인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 
통갈락의 집 앞에는 마찬가지로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서있었는데, 문을 두드리려는 진수의 어깨를 잡았다. 
“한족인 거 같은데... 또 영감님한테 시비 걸러 온 거 아니요?” 
확실히 내몽골자치주에서 한국인은 몽골족보단 한족에 더 가깝게 생겼다. 
오해를 받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 자야씨한테 소개 받아서 왔는데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괜한 소란이 생길까 싶어 재빨리 자야의 이름을 꺼냈다. 
그러자 사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자야가? 흐음.... 날 밀치고 들어가라. 그럼 인정해주지.” 
‘아니, 무슨 집에 들어가는데 인정을 해주고 말고 할 게 있어....’ 
진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굳이 피하지는 않았다. 
-꽈드득 
처음에는 순수한 본신의 힘으로만 밀어보았다. 
덩치 큰 사내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물론 이마가 축축하게 젖기 시작하는 것은 숨기지 못했지만. 
‘확실히 여기 사람들 힘이 좋긴 좋구나.’ 
진수의 힘 능력치는 230이나 된다. 
그런데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는 몽골족 사내가 힘으로 그와 맞서고 있는 것이다. 
-슈우욱 
결국 [빙의]를 사용했다. 
평천대성 흑우의 힘을 빌려온다. 
온몸에 주체하기 힘들 정도의 기운이 샘솟았다. 
“으읏...!” 
사내가 완강히 버텨보지만 흙먼지만 일으킬 뿐이었다. 
진수는 아주 수월하게 그를 옆으로 밀었다. 
힘 대 힘으로 완벽하게 이긴 것이다. 
“이제 들어가도 될까요?” 
“흠! 그, 그래!” 
그는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작은 진수에게 밀렸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 같았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자야나 문 앞의 사내와는 달리 상당히 왜소한 노인이 있었다. 
“허허, 미안해요. 바타르가 자야의 일이라면 저렇게 예민해진다오. 표현은 안 하지만 동생을 많이 아끼는 녀석이지요.” 
문 앞에 있던 덩치 큰 사내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노인, 통갈락은 진수를 아주 우호적으로 대했다. 
츠펑시에 지내는 동안은 그의 집에서 편히 지내도 된다고 했다. 
“게이트 사태 이후의 아이들은 용의 가호를 입어서 저렇게들 건강하다오. 튼튼해서 좋긴 하지만 사실 함께 지내기에 부담스럽기도 해요. 허허허.” 
자야의 경우에도 그렇고 통갈락도 마음 속 깊숙이 용의 존재를 믿고 있는 듯한 말을 했다. 
방 내부에도 초록색 용 그림이나 나무에 음각된 용 따위가 많이 보였다. 
‘용이라....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까지 말을 한다면 뭔가 근거가 있는 모양인데...?’ 
진수는 창문 밖, 임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곧 츠펑시 몽골족이 믿는 용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아니, 저게 용이야? 아니, 용이 맞긴 맞는데....”
위대한 존재
-크르르릉... 크르르릉... 
진수는 [투명화]와 [유체화]를 사용한 채로 홍산에 올랐다. 
당장 느껴지는 것은 없었지만 몽골족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유가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공허룡 코트에 뱀파이어 로드의 망토까지 두르니 [사신의 감각]을 지니지 않는 이상 그를 인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산 자체가 코를 고는 것 같네.’ 
홍산 근처에 도착했을 때부터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산 중턱에 있는 동굴 앞에 섰을 때는 산의 콧구멍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동굴 속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소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면 목표하는 몬스터가 존재한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크르르릉 
소리를 쫓아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뱀파이어 로드의 망토 덕분에 감각이 더 예민해졌다. 
임무가 가리키는 방향과도 정확히 일치했다. 
동굴의 끝에는 커다란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똬리를 틀고 있는 존재. 
“아니, 저게 용이야? 아니, 용이 맞긴 맞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주 거대한 용이었다. 
뱀의 형상에 가까운 동양의 용. 
다만 그 몸을 이루는 재질이 생명체라고 하기 어려웠다. 
‘녹룡...이라고 해야 하나? 옥룡...?’ 
옥으로 빚은 듯 매끈한 비늘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온몸이 옥으로 구성된 용이다. 
[사신의 감각]에 생명 반응이 느껴지긴 하지만 생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잘 깎은 조각상 같은 느낌이었다. 
“용이라길래 드래곤이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이건 잡을 수 있겠다.‘ 
화이트 드래곤 흰둥이의 경우에는 워낙 노쇠하여 기운이 빠지고 있던 케이스였다. 
진수가 아무리 강해졌다 해도 아직 보통 상태의 드래곤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 이유로 [유체화]부터 망토까지 두르며 조심스럽게 홍산에 오른 것이다. 
‘근데 막상 있는 건 옥덩이네.’ 
분명 엄청난 마력량은 위협적이다. 
하지만 옥도 결국 석재. 
드워프의 석재 지식은 앞에 보이는 옥으로 된 용의 약점을 훤히 보여주고 있었다. 
-위이잉 
진수는 즉시 [차원의 틈]에서 장갑 총을 꺼냈다. 
포항에서 챙겼던 광석 중 특히 단단한 것을 장전해 마력을 운용한다. 
그의 강대한 마력이 집중되니 광석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했다. 
‘쏘아내는 광석의 경도가 옥을 상회하니까 한방에 처치할 수도...?’ 
-후우웅- 피융! 
맹렬히 회전하는 광석이 곧게 쏘아져 나간다. 
태산도 무너뜨릴 듯한 기운이 몰아쳤다. 
“크르르...!” 
발사체가 옥으로 된 비늘을 짓뭉개려는 순간, 용의 눈이 번쩍 뜨였다. 
-팡! 
광택이 도는 비늘 사이로 녹색의 기운이 퍼져 나왔다. 
동시에 몸을 보호하며 광석을 막아냈다. 
뒤늦게 방어를 했기에 타격이 완전히 무마된 것은 아니었다. 
용이 괴로운 듯 몸을 휘청거렸다. 
“쿠워어어!” 
녀석이 포효하자 온몸에 짙은 녹색의 기운이 연기처럼 새어나온다. 
마력만 놓고 봤을 때는 드래곤 못지않은 수준인 것 같았다. 
‘이야, 이거 쉽지 않겠는데....’ 
용이 전투태세를 갖추니 비로소 위험성이 실감되었다. 
진수의 두 눈이 빠르게 움직이며 놈의 온몸을 훑었다. 
머리부터 발끝가지 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헤파이스토스의 지식 덕분에 어디를 공략하더라도 취약점을 만들 수 있다. 
‘앞발바닥에 용 문양이라니... 사람 손바닥에 사람 문신 새겨놓은 꼴 아닌가...?’ 
용의 왼쪽 앞발에 초록색 용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놈이 내뿜는 녹색의 기운이 그 문양에서 기인한 것 같았다. 
“좋아.... 옥장판 한 번 만들어보자.” 
한 차례 몬스터를 훑어본 진수는 장갑 총을 집어넣고 포항에서 만든 양손 망치를 꺼냈다. 
놈을 어떻게 공략하면 될지 파악한 것이다. 
-펑 
뱀파이어 로드의 망토를 몸에 두르고 보호구에 있는 마력회로를 가동시킨다. 
온몸에 힘이 넘쳐났다. 
‘그래도 정면승부는 힘들지.’ 
신체능력을 강화시킨 목적은 기동력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진수는 [빙의]를 통해 제천대성 손오공에게 힘을 빌렸다. 
그의 몸 위로 장난기 많은 원숭이의 오러가 덧입혀진다. 
“작업 시작이다!” 
양손 망치를 든 진수가 정면으로 치고 나가며 [분열]을 사용했다. 
분신술의 대가인 손오공의 힘을 빌리니 삽시간에 십 수 개체의 작은 진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방으로 산개한 녀석들은 동굴 곳곳에 [강철 거미줄]을 사용해 산개했다. 
일부는 용의 시야를 가리고 일부는 옥의 취약한 부분을 두드린다. 
“쿠오오오!” 
-콰과광! 
분개한 녀석이 거칠게 꼬리를 휘두르고 발을 내저었다. 
-퍼벙 퍼벙 
작은 진수들은 나름 잽싸게 공격을 피했지만 그래봤자 본체의 힘의 일부밖에 받지 못한 녀석들이다. 
아이템을 갖추지도 못한 상태였기에 강력한 용의 공격을 완전히 피해내기는 어려웠다. 
회피에 실패한 분신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손오공의 분신술이 섞인 영향이었다. 
-뽀옹 뽀옹 
하지만 진수의 마력은 300이 넘는다. 
[분열]을 수없이 사용해도 마력의 회복이 더 빠른 정도였다. 
게다가 [왕성한 번식] 특성 덕분에 분신이 또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분신들 하나하나가 큰 힘을 지니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옥으로 이루어진 몸체를 부수는 정도는 충분하다. 
작은 진수들은 마치 커다란 동물을 갉아먹는 개미떼처럼 용의 몸을 파괴해나갔다. 
“쿠워억!” 
옥으로 된 용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놈도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푸화악 펑! 퍼엉! 
비늘 사이사이로 나오던 기운이 폭발한다. 
용에게 달라붙어 있던 분신들이 일시에 사라져버렸다. 
동굴 내부에 온통 먼지가 가득 찼다. 
-후욱- 
망치 머리가 먼지를 뚫고 나왔다. 
분신이 없어지며 신체 능력이 최고조로 돌아온 진수의 본체가 약화된 용을 공격한 것이다. 
-콰드득! 
겉 부분만 깨작깨작 부수던 작은 진수들과는 다르다. 
강력한 망치질이 휩쓸고 간 자리는 뭉텅뭉텅 옥이 깨져나갔다. 
순식간에 놈의 앞발 하나가 사라져버렸다. 
-스으으... 
진수가 노린 것은 용 문양이 새겨진 발. 
‘역시, 그 문양이 마력의 원천이었어.’ 
거대한 몸체에서 겨우 앞발 하나 사라진 것이지만 녀석의 기세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향로에서 연기가 나오듯 뿜어지던 초록색 마력이 노인의 오줌발처럼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마력만 없으면 게임 끝이지.” 
그의 손에 들린 망치가 맹공을 퍼부었다. 
마치 얼음 조각을 하는 조각사처럼, 대리석 격파를 하는 차력사처럼 옥을 무참히 깨부쉈다. 
-녹옥룡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녹옥룡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이윽고 용이 전이되었다. 
“후, 제법 힘 좀 썼네.” 
진수는 쉼 없이 망치를 휘둘러 뻐근한 어깨를 풀어주었다. 
-킬러볼 [스니치]가 [스카이피아] 무리에 합류합니다. 
-자이언트 에쿠스 [토야]가 [꾸러기 수비대] 무리에 합류합니다. 
-녹옥룡 [옥장판]이 [그린스킨] 무리에 합류합니다. 
옥으로 된 용의 이름은 옥장판이 되었다. 
앞서 전이시켰던 녀석들을 비롯하여 각자 전이된 곳에 있는 무리에 합류했다. 
-특수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옥장판]의 특성 중 하나 
녀석에게 이름까지 지어주고 나니 임무가 달성됐다. 
곧이어 진수의 온몸에서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어어...?” 
오른손에서부터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더니 녹색으로 타오르는 마력이 전신으로 퍼진다. 
녹옥룡이 사용하던 기운이었다. 
진수는 손바닥을 뒤집어 확인해보았다. 
그곳엔 녹색의 용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임무 보상이... [녹룡의 기운]...?’ 
상태창을 열어보니 특성 목록에 [녹룡의 기운]이라는 것이 추가되어 있었다. 
손바닥엔 용문신, 용이 지니고 있던 기운까지. 
그의 머릿속에 순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 어쩌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는데.’ 
특성 자체로도 마력을 강화시켜주고 여러 사용법을 가졌지만 단순한 성능 이상의 활용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 * *
“일어나서 아침 식사 들어요.” 
아침이 밝자 통갈락이 진수가 있는 방 문을 두드렸다. 
“아, 예. 좋은 아침입니다. 하하.” 
진수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나왔다. 
그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던 노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음, 음.... 그래요. 좋은 아침이군요.” 
그의 인사를 어색하게 받는 통갈락. 
노인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보는 진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비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나타났다. 
통갈락의 집 앞을 지키던 바타르였다. 
“다시 승부하자! 어제는 내가 봐줬지만 오늘은 전력을 다 하지.” 
다짜고짜 어제 힘 대결을 다시 제안한다. 
그조차도 억지라고 느꼈는지 말이 어색했다.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음이 눈에 보였다. 
진수는 슬쩍 눈길을 돌린다. 
그들의 대화를 아닌 척하며 듣고 있는 통갈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요. 오늘 승부에는 무조건 승복하는 걸로 하시죠.” 
“무, 물론이지!” 
진수와 바타르는 집 밖으로 나갔다. 
서로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거리를 두고 섰다. 
“바로 갑니다.” 
진수가 바타르의 손을 잡으며 힘차게 밀었다. 
이에 바타르도 질세라 마력까지 끌어올리며 대응했다. 
역시나 맨몸으로 근력만으로는 이기기 힘들었다. 
‘이제 한 번 힘을 써보실까.’ 
오른손에서부터 녹색의 마력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팔뚝을 타고 흘러 몸통, 사지로 번져나간다. 
[녹룡의 기운]은 그저 마력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녹옥룡으로 하여금 내구도가 강해지게 한 것처럼 전반적인 신체 능력의 강화 효과도 있었다. 
-화르륵 
마력이 초록빛을 내며 타오르자 바타르의 몸이 점점 뒤로 밀렸다. 
“어, 어...?” 
그가 어제 봤던 것은 검은색의 오러가 몸을 뒤덮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또 새로운 모습으로 강력한 힘을 내고 있었다. 
‘저 비실비실한 몸으로 츠펑시 제일의 장사인 나를 이기다니...! 대체 정체가 뭐지?’ 
어렸을 때부터 힘으로 누군가에게 뒤진 적이 없었던 바타르에게는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보다도 훨씬 놀란 사람이 있었다. 
“허, 허억...!” 
둘이 힘 대결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통갈락의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노인은 불현듯 진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다, 당신은... 위대한 존재십니까...?” 
경외심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 그. 
‘아니, 이게 대체 언제 적 대사야.’ 
진수는 순간적으로 옛날 판타지 소설 대사가 떠올라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의미는 정확히 진수가 의도했던 내용이었다. 
‘혹시나 해서 미끼를 던져봤는데... 이렇게 잘 먹힐 줄은 몰랐네.’ 
그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표정을 굳혔다. 
“위대한 존재라니요? 저는 일개 인간일 뿐입니다.” 
“정말 아니십니까...?” 
통갈락이 재차 진수를 향해 묻는다. 
“....” 
대답을 미루고 노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마치 마음을 읽어내는 것처럼. 
“전 그분께서 보낸 사자입니다.” 
-화악 
진수의 뒤로 용의 형상을 한 오러가 덧씌워졌다. 
그와 동시에 항거할 수 없는 위압감이 터져 나왔다. 
“아아...!” 
통갈락이 감격의 눈물을 한 줄기 흘렸다. 
이에 눈치를 살피던 바타르가 쭈뼛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좋아, 거의 다 구워삶았어.’ 
진수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화신
-후욱 
진수에게서 본능적인 공포를 유발하는 힘이 뿜어져 나왔다. 
처음에는 눈치를 살피던 바타르도 무릎을 꿇고 경외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용의 위엄이나 [드래곤 피어]나 비슷비슷하겠지.’ 
[빙의]로 화이트 드래곤에게 [드래곤 피어]를 빌려온 것이다. 
[녹룡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용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조금의 트릭을 사용했다. 
“아아.... 저희 족속들을 보살피시는 용이시여 부디 저희에게 구원을 주십시오...!” 
통갈락은 자신이 용의 사자라고 하는 진수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듯했다. 
처음엔 손바닥에 새겨진 녹색 용 문신을 보고 반신반의했다. 
그래서 일부러 바타르에게 진수의 힘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 찬란한 녹색의 기운...! 잊을 수 없는 힘!’ 
노인은 과거에 홍산에서 봤던 용을 떠올렸다. 
그 위대한 존재의 앞발에도 같은 용 문양이 있었다. 
게이트 사태로 몽골족이 곤경에 처했을 때, 옥처럼 매끈한 몸을 지닌 용이 몬스터들을 한 차례 쓸어버렸다. 
덕분에 통갈락을 비롯한 가족, 동료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용이 홍산으로 가는 것을 본 후부터 그들에게 용은 수호신이, 홍산은 수호산이 되었다. 
“곧 저를 통해 여러분을 부르실 겁니다. 귀히 사용하실 위대한 계획이 있으니 언제든 그분의 예리한 발톱이 될 태세를 갖추십시오.” 
진수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분위기는 굉장히 엄숙했지만 사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두루뭉술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러나 [신뢰]와 [드래곤 피어], [녹룡의 기운]이 통갈락과 바타르의 사고를 둔하게 만들었다. 
-스으으... 
곧 공간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여러 기술과 마력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두 몽골족 사람들은 숨 쉬기가 한결 편해졌음을 느꼈다. 
“당연하지만, 한족에게는 저에 대해서 함구하십시오.” 
진수가 조용히 말했다. 
‘한족은 아무래도 중국 정부랑 연결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중국 정부가 알게 되면 당연히 운명파도 알게 될 테지.’ 
통갈락은 그의 당부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다시 한 번 감동한 표정을 짓는 노인. 
‘한족의 핍박으로부터 우리 몽골족을 구해주시려는 거구나...! 이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 
“물론입니다. 저를 죽인다고 해도 절대 사자님의 신변에 대해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참, 그리고... 핸드폰 번호 좀 알려주세요. 나중에 연락해야 하니까....” 
용의 사자는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 * *
츠펑시를 떠나온 진수는 베이징의 북동쪽에 있는 청더시로 향했다. 
자야가 초원이 펼쳐져 있는 지역까지 자이언트 에쿠스에 태워주어 굉장히 편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연기하길 잘 했네. 뭐, 나중에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한 일이긴 했지만.’ 
그가 몽골족에게 용의 사자인 척 했던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운명파, 그리고 놈들과 합심한 중국 정부와 싸울 예정이다. 
혹시라도 중국 땅에서 손을 빌려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성원들 하나하나가 모두 힘이 좋고 강한 몽골족을 섭외한 것이다. 
‘몽골족 사람들도 지금 중국 정부를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완전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겠지.’ 
진수는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특수임무 발생 
-특수임무 : 녹옥룡 [옥장판]에게 마석 다량 전달하기 ! 
-보상 : [옥장판]의 급성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옥장판]이 늪지대 깊은 곳에 박혀있는 강력한 무언가를 감지했습니다. 진흙을 걷어내고 감지한 무언가를 꺼내려 하지만 마력이 부족합니다. [옥장판]에게 마석을 다량 전달하여 발굴을 도우십시오. 
옥장판이 여러모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다. 
녀석 덕분에 몽골족을 우호적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임무까지. 
‘늪지대에서 발견한 거라면 역시 그거겠지.’ 
진수는 [차원의 틈]에 넣어놨던 마석들을 옥장판에게 보내줬다. 
-특수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옥장판]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3, 내구 +5, 마력 +5, 골드 +20 
특수임무로 옥장판이 급성장하고 그 보상으로 진수에게 능력치를 준다. 
보상의 보상이라고 하겠다. 
-[그린스킨] 무리가 늪지대에서 차원의 축을 발견했습니다. 
-보상을 받습니다. 
-[옥장판]의 특성 중 하나 
-[융합]의 효과로 [질긴 힘줄]과 [드래곤 스케일]과 [녹룡의 기운]과 [화신]이 합쳐집니다. 
-[녹룡의 화신] 특성이 생겼습니다. 
임무가 달성된 후 한 차례 더 안내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늪지대에서 찾아낸 것은 차원의 축이었다. 
덕분에 녹옥룡이 지니고 있던 [화신] 특성을 받으며 새로운 특성, [녹룡의 화신]이 만들어졌다. 
‘휴, 문신은 그대로 있구나.’ 
[녹룡의 기운]이 없어지면서 혹시 문신이 사라졌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남아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문신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 
“이제 저쪽에서 차원의 축은 거의 다 찾은 거 같네.” 
그가 가정했던대로 전이자들이 전이된 지역에는 거의 차원의 축이 있었다. 
그것들을 발견하고 복구시킨 뒤엔 뭘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진수에게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고돌이도 뭔가 차원의 축에 영향을 받는 거 같고.’ 
진수는 상태창에 있는 전이자들을 한 번 쭉 훑어본 후 창을 닫았다. 
어느새 청더시가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으니까. 
* * *
산과 도시가 합쳐진 듯한 독특한 경관. 
나무가 우거져있고 그 사이사이에 독특하지만 화려한 건축물들이 보인다. 
‘위키에 옛날 황실의 피서산장으로 쓰였던 곳이라고 되어 있더니... 그럴만하네.’ 
도시의 가장 고지대에 있는 커다란 건물이 특히 압권이었다. 
하얀 벽에 빨간 지붕, 창문도 붉은 색이라 굉장히 세련되어 보이는 건축물이었다. 
어떻게 보면 요즘 시대의 호텔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옛 중국의 궁처럼 생긴 듯하기도 했다. 
‘근데 몬스터들한테 엄청 취약한 형태 아닌가?’ 
보기는 좋을지 몰라도 산에서 몬스터가 습격한다면 막아내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건물들이 파괴된 게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는 굉장히 화려한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거의 버려진 듯했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은 아니었다. 
부서진 건물의 벽 너머나 골목 사이로 진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전혀 우호적인 눈길은 아니었다. 
‘일단 사람들 상태가 좀....’ 
청더시에서 본 사람들은 모두 예민하고, 살기등등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말라서 더욱 신경질적인 인상이었다. 
“끄응, 그래도 여기서 하루 정돈 자고 가야하니까.... 저기요!” 
진수는 건물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말을 걸었다. 
그는 몹시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기 혹시 여기에 하루 정도 묵을 수 있는 숙박업소 같은 데가 있나요?” 
“....” 
그의 물음에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곧이어 진수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었다. 
“어디로 가쇼?”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묻는 행인. 
“베이징으로 가려는데, 왜요? 여기서 거기까지 가려면 우선 오늘 밤은 자고 가야 거리가 맞잖아요.” 
진수로서는 별 거 아닌 물음이었다. 
청더시는 일단 기본적으로 도시로 구분이 된다. 
숙박 시설 정도는 있을 법하다고 생각했다. 
“당신....” 
그런데 행인은 그의 대답은 들은 후부터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였다. 
“정부의 개 아니야? 옷차림을 보니까 배때기에 기름 깨나 찬 돼지인 거 같은데 청더시엔 무슨 일이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구경이라도 왔나? 역겨운 자식!” 
그는 단단히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말끔한 옷차림에 중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데에서 진수가 중국인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것도 중국 정부의 주축인 한족이라고 말이다. 
“어우, 진정하세요. 저 한국인입니다. 저도 여기 정부한테 전혀 좋은 감정이 없어요.” 
진수는 양손을 들어 올리며 오해를 풀려 했다. 
“한국인? 흠, 근데 왜 베이징으로 가려고 그러는 거지?” 
숙소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어느새 진수에 대한 심문만 이어졌다. 
진수는 적당히 대꾸하고 그냥 발품을 팔아야겠다 싶었다. 
“거기에 있는 놈들이 우리나라에서 헛짓거리를 좀 했거든요. 그놈들 잡아 족치러 갑니다.” 
“푸흐흐흐... 너 혼자?” 
그는 진수의 대답이 재밌었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보다시피. 뭐 같이 털 사람도 없고....” 
“정말로?” 
행인은 웃음을 멈추고 진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렇다니까 그러시네. 숙소 어디에 있는지 안 알려줄 거면 말아요. 괜히 시간만 버렸네.” 
“아아, 그래. 숙박 시설 같은 게 있냐고 물었지. 내가 안내해줄게.” 
계속 말꼬리만 잡던 사람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숙소로 안내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진수는 갑자기 뒤집힌 태도가 의아했지만 우선 그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어차피 수작질을 부리려고 해도 [사신의 감각]으로 알아차릴 수 있고, 이제 누구한테 당할 수준은 아니니까. 여차하면 [드래곤 브레스] 한 방 때려 박아주면 되지.’ 
[녹룡의 화신] 특성까지 생긴 이후 그는 자신감이 충천한 상태였다. 
지금 마력 능력치에 특성까지 합쳐지면 화이트 드래곤 흰둥이의 힘을 빌려서 청더시의 절반 정도는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다행히 그가 청더시의 반을 부숴버릴 일은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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