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17
한동안 잊고 있었던 죽음의 공포가 시시각각 다가왔다.
진수의 손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크흐흐.... 이제 끝이다, 징크스!”
낫에 묻은 진수의 피를 엄지손가락으로 스윽 닦아내는 사내.
진수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이제 나한테 남아있는 건 뭐지?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나?’
능력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파투스교도에게 밀리는 수준이다.
[차원의 틈]이 막혀 장비를 더 꺼낼 수도 없었다.
도끼와 방어구, [투명화]를 사용할 수 있는 목걸이가 전부.
-화르륵!
진수는 마력을 쏟아 부어 [도깨비불]을 다수 만들었다.
“마지막 발악을 하는군!”
사내는 시야를 가릴 정도로 날아오는 [도깨비불]을 낫을 돌리며 막았다.
마력을 휘감은 낫에 푸른 귀화들은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흩어졌다.
-펑!
마지막 불꽃을 터트린 그는 곧장 진수를 반으로 갈라버릴 기세로 무기를 고쳐 쥐었다.
“이 비겁한 자식! 어디 갔느냐!”
하지만 어느새 진수는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버렸다.
사내가 [도깨비불]을 막는 사이에 [투명화]를 사용해서 숨은 것이다.
“징크스 이놈! 내가 차원을 넘어서까지 널 찾아왔는데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는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파투스시여! 저주받을 징크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소서!”
낫을 붙잡은 채로 양손을 모아 기도하는 사내.
그러자 그의 발 아래에서 보랏빛 기운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슈우욱
기도를 마친 그는 진수의 위치를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어?”
진수는 그의 뒤쪽에서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쾅! 쾅! 우르르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몸을 돌린 사내는 바로 뒤쪽에 있는 자동차 공장의 벽면이 터지듯 허물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뒤이어 단단한 장갑으로 무장된 트럭이 벽을 뚫고 나오는 것까지도.
-쿵!
그대로 트럭에 치인 사내.
하지만 신체 능력이 뛰어나 부상을 입은 상태로 살아있었다.
그는 운전석에 앉아 웃고 있는 진수를 보았다.
“아, 악신 징크스...!”
“너네 차원엔 이런 거 없지? 우리 세계에선 이런 걸 환생 트럭이라고 해.”
트럭은 그를 들이받은 채 내달려 블루 오아시스 공장에 처박혔다.
잽싸게 운전석에서 도망 나온 진수.
공장은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럭이 폭발했다.
초록빛 마석 불꽃이 터지고 땅이 울리는 충격이 일어났다.
-계약자 [볼렌테] 차원 전이 성공.
겨우 트럭에서 탈출하며 바닥을 구르는 진수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헉, 헉...! 살았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온몸에 기운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비활성화 되었던 능력들이 돌아온 것이다.
진수는 살아남았다는 게 실감났다.
바닥에 누운 상태로 웃음을 터트렸다.
‘근데 이놈도 계약자라니. 계약자라는 게 대체 어떤 기준인 거야? 여기도 계약자, 저기도 계약자네.’
임병옥을 전이시킬 때는 균열을 일으키는 과정에 어떤 계약이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전춘성을 전이시키면서는 몬스터를 이쪽 세상에 불러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유추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자도 계약자라고 분류가 됐다.
‘도무지 가늠이 안 되네.’
진수는 상태창의 전이자 목록을 훑어보다 이내 창을 닫았다.
계약자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차원 전이]와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가 [차원 전이]를 활용하다보면 언젠가 또 계약자와 엮이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계약자의 의미도 저절로 알게 되리라.
“혼자 고민해서 답이 나올 일도 아니니까.”
그는 던져둔 민우혁과 여성 연구자에게 갔다.
그들은 꽁꽁 묶인 채로 공장들 사이 구석에 처박혀 있어서 어떤 상황이었는지 전혀 보지 못했다.
“해, 해치웠나?”
진수를 본 민우혁이 말했다.
“시끄러워. 그런 멘트 쳐도 못 돌아올 정도로 완전히 조졌으니까 희망은 버려라.”
그는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두 사람을 다시 둘러멨다.
“어이!”
그 순간, 뒤에서 상당히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박이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로 돌아본 진수.
거기엔 웬 중년인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적은 아니다.
적이었다면 부르는 게 아니라 공격을 했을 테니까.
만약 적의나 살기를 가진 자는 다시 회복된 [야성]이 단박에 파악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에 따로 연고도 없으니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무슨 일은 무슨 일. 남의 트럭으로 공장도 박살내고 차도 터트려놨으면 미안한 기색이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니요?”
죽음의 문턱을 넘어갈 뻔 했기에 아주 기본적인 걸 잊었다.
일단 살자고 [투명화]로 도망쳐서 트럭을 몰고 왔지만 일단 도둑질을 한 게 맞았다.
진수의 얼굴에 미안한 감정이 나타났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큰일 날 뻔해서... 어떻게 보상을 해드리면 될까요?”
“큰일은 내 알 바 아니고, 돈을 줘야지.”
중년인은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말했다.
그가 요구한 금액은 한화로 대략 100억 원 정도였다.
‘큰 금액이긴 하지만 내 목숨 값인데 이 정도면 괜찮지.’
“생산 설비는 별로 안 건드리고 벽들 허문 거랑 차고지에 있는 차들만 부숴놔서 이 정도지, 핵심 기계가 망가졌으면 몇 배는 더 물어냈어야 할 거요.”
진수가 그대로 도망갈 기색은 보이지 않았기에 그의 말투가 조금 더 점잖아졌다.
“호, 혹시 나눠서 비용을 드려도 될까요...?”
“나누면 제대로 줄 능력은 있으시고?”
그가 약한 소리를 하니 다시 중년인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제가 이래봬도 A급 헌터거든요. 아이템을 좀 먹으면 금방 물어드릴 수 있을 거예요.”
“하, 그럼 헌터 라이센스를 담보로 맡기고 가쇼. 그리고 계약서도 쓰고, 계약금으로 얼마까지 줄 수 있는데?”
“아... 라이센스를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눈대중으로만 견적을 잡으신 거니까 정식으로 피해 금액 산정해서 영수증이랑 견적서도 부탁드릴게요.”
진수는 입맛이 좀 썼다.
자신이 손해를 끼쳤기에 응당 물어주는 것에 이의는 없었다.
다만 헌터가 헌터 라이센스를 담보 맡긴다는 것 자체가 헌터로서는 끝장을 봤다는 의미에 가까웠기에 상황이 씁쓸했던 것이다.
‘A급 헌터나 됐는데 돈이 부족해서 이렇게 되네.’
중년인의 요구대로 계약금을 얼마나 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핸드폰으로 은행 어플을 실행했다.
어쩌면 이 공장장이 흡족할 만큼 돈이 안 된다면 신체포기각서까지 써야 할지도 몰랐다.
‘응?’
핸드폰 화면을 보던 진수는 눈을 끔뻑거렸다.
손으로 몇 번 눈을 비벼보기도 했다.
[동물적인 신체] 특성이 시력도 강화시켜주기에 뭔가를 잘못 볼 가능성은 없었다.
“왜 이렇게 돈이 많지?”
“돈 많으면 피해보상 비용 다 내고 가시든지.”
진수의 혼잣말에 중년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전화 한 통만 하고 그렇게 할게요. 잠시만요.”
그는 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진수야. 중국에 갔던 일은 잘 해결됐냐?
전화를 받은 것은 유재찬이었다.
진수는 그의 말에 거미줄로 포박해둔 두 사람을 힐끗 보았다.
어디로 도망갈 생각도 않고 가만히 바닥에 누워있다.
“어어, 그건 얼추 잘 풀렸는데, 내 통장에 말이야....”
-통장에?
“로켓몬스터에서 입금이 좀 많이 되어 있더라고?”
진수의 통장에 수백억 원의 잔고가 찍혀 있었다.
평생 그런 돈을 만져본 적이 없던 그이기에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던 것이다.
-아아, 그거~ 이번에 전국에서 동시에 거래처를 뚫었잖아? 계약금이랑 뭐랑 해서 이번에만 바짝 들어왔어. 우리야 원래 RD가 만들어놓은 길을 거의 그대로 쓰다보니까 지금 돈 들어가는 거는 거의 인건비밖에 없잖아. 그래서 순수익이 좀 많이 남은 거지. 아마 다음 분기까지는 그렇게 확 들어오는 일은 없을 거야.
“대박이네....”
진수가 자기도 모르게 진심을 뱉었다.
전국 단위로 이루어지는 사업이었기에 자금 규모부터가 달랐다.
-그럼, 대박이지. RD 놈들한테 고맙다고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할 판이라니까? 아마 사업 더 안정화 되고 거래처 더 많이 뚫으면 수익은 더 늘어날걸? 지금 일하는 사람들도 빡세긴 하지만 다 싱글벙글하면서 일하고 있어. 아마 너 사무실 오면 직원들이 앞구르기 열 번 하면서 큰절 박을 거다. 하하하.
유재찬도 목소리에서부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며칠 뒤면 한국 돌아갈 건데 그때 사무실 들를게. 고생이 많다.”
잔고의 출처를 확인한 진수는 통화를 마쳤다.
그는 고개를 돌려 헌터용 자동차 공장장을 보았다.
통장에 돈이 충만하다는 걸 알고 나니 태도에도 자신감이 붙는다.
“말씀하신 비용 보내드릴게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견적서 같은 거 처리해서 이쪽 메일로 보내주시고요. 차액은 그 이후에 다시 이야기 하는 걸로 하죠. 서류들은 일주일 내로 정리 부탁드릴게요. 저로서도 큰 금액이 오가는 일이니까요.”
사실 제대로 처리하려면 공장에서 든 보험도 확인하고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그의 상황이 그리 여유를 부릴 정도는 아니었다.
운명파가 운영하는 지역에서 그들의 마약 공장을 터트려버렸다.
돈에 충분히 여유가 있는데 괜히 발목이 잡히는 것보다는 빠르게 일처리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운명파 헌터들이 쏟아져 올 법도 한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볼렌테라는 녀석과의 싸움이 그리 짧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운명파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진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의아한 일이었다.
‘어쨌든 빨리 자리를 떠야 돼.’
그는 중년인에게 연락처를 넘기고 바로 창춘시에서 벗어났다.
도시를 벗어날 때까지도 별다른 방해는 없었다.
“아까 그놈이랑은 무슨 대화를 나눈 거야?”
창춘시에서 꽤 떨어진 후 진수는 민우혁과 여성 연구자의 두 손만 [강철 거미줄]로 묶은 뒤 스스로 걷게 만들었다.
완전히 포박하여 들고 다닌다고 해서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아니었다.
이미 그 정도 힘을 쓰는 게 부담스러운 신체 능력은 벗어났으니까.
하지만 누가 봐도 납치를 하는 모양새였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 너무 띈다는 문제가 있었다.
둘 다 생각보다 군말 없이 순순히 따라왔는데, 민우혁은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알 거 없어. 너네 애도 아니라면서?”
“생각해보니까 우리 쪽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럴 리가 없었다.
애초에 사는 세상이 다른 인물이었으니까.
“응 아니야. 헛소리 하지 말고 부지런히 걷기나 해.”
“파투... 스? 뭐 어쩌구 저쩌구 하던데.... 무슨 말이었어?”
“아, 왜 이렇게 질척거려? 아예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니까 그러네. 신경 꺼. 지금 상황파악이 안 돼?”
진수가 짜증스럽게 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른 차원의 존재 이야기였으니까.
그러자 입을 다무는 민우혁.
-부스럭
그렇게 소란이 줄어드는 것 같았는데, 진수의 귀에 작은 소음이 잡혔다.
아주 은밀한 소리였지만 [중급 청각] 특성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저런 애들이 너네 사람이지.”
그는 의미 불명의 말을 했다.
그러고는 바로 양손을 뻗어 앞으로 향했다.
-우수수
“어, 어어...?”
“이게 뭐야!”
진수와 민우혁, 연구원의 앞쪽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대신 그 모양새가 조금 이상했는데, 무언가에 잡아 당겨진 듯 어정쩡한 자세로 나왔다.
기습을 하려는 이들을 [죽음의 그림자]로 끌어당긴 것이다.
“이, 이런...! 죽여!”
그들 중 한 명이 지시를 내리자 무기를 고쳐 잡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볼렌테와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나니 이 정도 수준의 살수들은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진수는 순식간에 그들을 처치하고 길을 떠났다.
‘내가 제대로 잡아온 게 맞긴 맞는 거 같은데....’
중국 땅에서 이동하는 내내 살막의 살수들이 덤볐다.
상당히 필사적으로 공격했기에 민우혁과 연구원이 운명파에게 중요한 인물들인 것 같긴 했다.
다만 살막이라는 녀석들의 수준이 묘하게 떨어졌기에 조금 찝찝했을 뿐.
일주일이 걸려서 진수와 두 사람은 한국에 도착했다.
의정부 쪽에 도착하자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보낸 호송 차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진수 헌터. 고생 많았습니다.”
박철준 수사관이 그를 맞이했다.
“수사관님. 연락을 드리긴 했지만 이렇게 호송까지 오시고.... 그 사이에 뭔가 상황이 좀 달라졌나요?”
여러 의미가 담긴 질문이었다.
인력 부족으로 괴로워하던 헌터범죄전담기관이다.
그런데 중국의 마약 제조 건으로 호송 차량을 보낼 정도로 여유가 생겼냐는 물음.
동시에 블루 오아시스 문제의 중요도가 달라졌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국제형사경찰기구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전 세계에 이미 블루 오아시스가 많이 퍼져서 골머리를 앓는 문제가 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벌써 중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 약이 퍼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로 여러 나라들에서 국제형사경찰기구를 다시 재건하기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 호송 차량도 헌터범죄전담기관 소속이 아니라 국제형사경찰기구에서 보낸 겁니다.”
어느새 두 사람은 호송 차량 뒷좌석에 타고 있었다.
그들을 데리고 출발하는 차.
박철준은 진수에게 자신이 몰고 온 차량에 탈 것을 권했다.
“김진수 헌터가 데려온 두 사람은 국제 마약 사범으로 조사를 받게 될 겁니다. 그리고 김진수 헌터는 중요 참고인으로, 블루 오아시스 범죄에 대해서 진술을 해주시면 됩니다.”
진수가 차에 타자 박철준은 호송 차량을 따라서 이동했다.
차들은 헌터범죄전담기관으로 향했다.
“김진수 헌터가 지금까지 수집한 증거, 그리고 봐온 사실들 등등을 제시해주시면 그걸 바탕으로 더 깊게 수사가 들어갈 겁니다. 이번에 민우혁을 잡는 과정에서 찍은 영상이 아주 중요한 증거가 되겠네요.”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꾸준히 박철준 수사관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블루 오아시스 공장에서 민우혁과 연구자가 마약 제조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찍었으니 최소한 그 둘은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헌터범죄전담기관에 국제형사경찰기구의 인원들이 와있으니 올라가서 같이 보시죠.”
엘리베이터에 호송 차량을 타고 온 민우혁과 여성, 진수와 박철준 등이 모두 탔다.
연구원은 초조한지 식은땀을 흘리고 다리를 떨고 있었다.
반면에 민우혁은 상당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간덩이가 부은 건지... 원래 담대한 성격인 건지 모르겠네.’
그들을 데리고 국제형사경찰기구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는 방으로 향했다.
박철준이 앞장서서 민우혁과 여성을 안으로 들였다.
“그 사람들이 블루 오아시스를 만들었다는 자들인가요?”
안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굉장히 익숙한.
진수는 뒤이어 방으로 들어갔다.
실내엔 네 사람이 앉아있었다.
백인 두 명과 흑인 한 명 그리고 동양인 한 명.
그는 시선을 돌려 동양인의 얼굴을 보았다.
‘뭐야, 설마 한국 대표자가...?’
진수의 얼굴에 곤란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제의
“뭐야, 하루살이. 니가 왜 여기 있어?”
국제형사경찰기구에서 왔다는 네 사람 중 유일한 동양인.
그는 바로 박종대였다.
“너야말로 왜 여기에.... 헌터대전 경기 뛰느라 바쁜 거 아냐? 뭐 불법 약물 쓰다가 적발됐냐?”
진수에게 그는 헌터 같지도 않은 헌터였다.
각성한 힘으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헌터끼리 싸우며 자기 인기와 잇속만 챙기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진수에게 보이는 이유 모를 적의까지.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였다.
“이 몸은 정식으로 국제형사경찰기구 소속으로 왔지. 하루살이 너처럼 할 일 없어서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는 줄 알아?”
여전히 진수를 하루살이라고 부른다.
“이 자식이... 내가 일당 헌터 그만둔 지가 언젠데.... 그리고 직업이 어떻든 사람한테 하루살이가 뭐냐? 싸가지 없는 놈.”
“당연히 사람한텐 그런 소리 안 하지.”
박종대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말한다.
아주 능글맞은 태도였다.
“이놈 이거 어쩌다 이렇게 됐지? 후우.... 그나저나, 그럼 니가 국제형사경찰기구에 한국 대표로 들어간 거야?”
“아니? 난 중국에서 파견된 건데?”
“뭐, 중국? 아니, 중국에서 인기가 좋다는 건 들었는데 이런 기관에 대표자로 보낼 정도라고?”
진수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국제형사경찰기구면 단순히 인기가 많다고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다 능력이 있으니까 보냈겠지. 너 같은 하루살이. 영향력 없는 허접한 헌터랑 나는 살아가는 세상이 다르거든.”
그가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래, 차라리 한국 대표가 아닌 게 다행이지. 중국이야 워낙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이상한 짓 하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우리나라에서 저놈을 대표로 보냈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진짜 충격적인 일이다.’
그나마 중국에서 허튼 짓을 했다고 하니 내심 안심이 되었다.
그쪽은 원래도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곤 했으니까.
“야, 중국 정부가 제일 눈에 불을 켜고 취급하는 게 마약 범죄야. 이번 건은 아주 엄중하게 다뤄줄 테니까 걱정 말고 넘기라고. 흐흐.”
진수가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박종대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마도 자신이 잘 나가는 것에 눌려서 말문이 막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휴.... 그래, 다른 분들도 같이 협조해서 수사할 테니까.... 방해나 하지 마라. 싸울 일 있으면 제일 앞장서서 나서고. 너 쌈박질은 나름 잘 하잖아?”
어차피 더 자세히 캐서 블루 오아시스의 뿌리를 뽑는 것은 진수가 할 일이 아니었다.
박종대 같은 녀석이 끼어 있는 게 좀 불안하긴 했지만 다른 파견 인원들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리라 믿기로 했다.
“박종대씨, 이쪽은?”
진수와 박종대가 대화를 나누는데 한 백인 헌터가 다가왔다.
붉은 기가 도는 혈색, 파란 눈동자에 금발의 머리까지.
전형적인 서양인 상이었다.
“아, 피터. 여긴 원 데이.... 아, 아니다. 김진수. 헌터. 별로 중요한 사람은 아니다.”
박종대는 짧은 영어로 피터라 불린 사내에게 진수에 대해 설명했다.
웬일로 하루살이가 아니라 헌터라고 소개했는데 하루살이가 영어로 뭔지 모르는 듯했다.
진수는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뭐, 뭐. 불만 있냐?”
박종대가 괜히 민망한지 진수에게 큰소리를 내었다.
“그냥, 보기 참~ 좋아서. 풋.”
“너는 니가 직접 소개를 해. 어차피 뭐 렛 미 인트로듀스 이 지랄 하겠지. 콱씨.”
고아원이 망하기 전까지 진수나 박종대나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었다.
박종대는 당연히 진수도 피터라는 헌터와 영어로 대화가 안 되리라 확신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박종대가 소개한대로 제 이름은 김진수입니다. 현재 A급 헌터고요. 이번에 블루 오아시스 제조에 관련된 인물들을 중국에서 잡아오기도 했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박종대의 기대는 무참히 부서졌다.
진수가 원어민이나 다름없는 영어 회화 실력을 뽐냈으니까.
박종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이번에 블루 오아시스 사건 수사가 시작될 수 있게 했다는 헌터분이시군요. 한국의 헌터범죄전담기관 박철준씨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피터, 피터 켄트라고 합니다. 미국의 패트리어트에서 작은 자리를 맡고 있죠.”
“패트리어트요? 패트리어트의 피터 켄트라면... 제가 알고 있는 그 헌터가 맞나요? S급의....”
진수가 깜짝 놀라 묻자 피터는 쑥스러워 하며 웃었다.
“하하, 아마... 맞을 겁니다. 과장된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요. 저도 뭐 그냥 평범한 헌터 중 하나입니다.”
미국 최고의 헌터 연합인 패트리어트.
게이트 사태가 터졌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힘을 유지해주는 큰 축 중 하나가 바로 패트리어트 연합이다.
엄청난 자본과 인력을 지니고 있으며 헌터들이 모인 집단 중에서는 특이하게도 국가에 충성도가 대단한 곳이었다.
‘그런 패트리어트에서도 피터 켄트라니....’
한때, 슈퍼맨이 코믹스를 찢고 나와 미국을 구하러 왔다는 우습지도 않은 루머가 퍼진 적 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괴력으로 몬스터들을 박살내는 헌터의 등장.
그 루머 아닌 루머의 주인공이 바로 피터 켄트였다.
전 세계에서도 얼마 되지 않는 S급 헌터면서 성정도 바르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헌터에 대한 조사에서 항상 1등을 놓치지 않는 인물이었다.
진수의 마음속에서 박종대로 인해 추락했던 국제형사경찰기구의 이미지가 다시 회복되었다.
‘피터 켄트 정도면 나라 망신을 안 시키기 위해서라도 일처리를 제대로 하겠지.’
“김진수씨는 다행히 소통이 원활하네요. 여기 박종대씨는 언어의 한계가 좀... 하하. 뭐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제가 한국어를 못 하는 것과 마찬가지겠지만, 업무를 하는 데에는 제한사항이 좀 있었거든요.”
“아유, 제가 다 죄송하네요. 저런 기본 소양도 안 되는 녀석이 국제형사경찰기구에 들어갔다니.... 한국에서 파견 보낸 것은 아니지만요.”
진수와 피터가 꽤 빠르게 대화를 나누니 박종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는 진수의 옆으로 와 옆구리를 쿡 찌르며 귓속말 했다.
“야, 뭐 내 이름이 나온 거 같은데 무슨 얘기들 하고 있는 거야?”
역시나 둘의 이야기를 거의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니가 있어서 든든하대.”
“하하! 그럼, 당연하지. 오우, 피터. 돈 워리. 걱정하지 마. 문제가 생기면 내가 다 해결해줄게.”
현재 피터에게 가장 문제인 박종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모습에 피터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진수씨 A급 헌터라고 했죠? 헌터 생활을 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피터는 진수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눈을 빛내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는데 주로 그의 능력에 관한 부분들이었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말도 안 돼! 제가 느끼기에는 A급 헌터들 중에서도 수준급인데요? 게다가 혼자 저 사람들을 찾고, 데려오기까지 했다면서요? 그건 단순히 전투 능력만 갖춘 게 아니라는 뜻인데....”
“제법 고생을 하긴 했죠.”
피터가 진수에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기 시작하니 박종대는 완전 찬밥 신세가 되었다.
말이 안 통하니 이야기에 끼어들 수도 없고, 딱히 그와 관련된 대화 주제가 나오지도 않았으니까.
박종대는 슬그머니 민우혁과 여성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두 어깨가 잔뜩 처진 채로.
진수는 그 모습을 보며 입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김진수씨. 아니, 김진수 헌터. 말 돌리지 않고 물어볼게요. 패트리어트에 들어올 생각 없나요?”
그의 말에 진수는 깜짝 놀랐다.
패트리어트는 전 세계에서도 대단한 위상을 지닌 연합이다.
그만큼 들어가기 쉽지 않은 곳인데 오늘 처음 본 자신에게 스카웃 제의를 한 게 신기했던 것이다.
“패트리어트에 소속된다면 미국 시민권도 얻을 수 있어요. 미국에서 헌터 활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죠. 아이템 및 마력공학 물품들의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소속된 헌터들에게 얼마나 잘 하는지는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왜죠? 왜 저한테 이런 제안을....”
“김진수 헌터. S급 헌터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를 거라고 생각해요?”
진수의 물음에 피터가 싱긋 웃으며 되물었다.
물론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그가 바로 이어서 입을 열었으니까.
“셀 수도 없을 만큼 크고 작은 싸움을 해야만 했죠. 그 과정에서 얻은 게 있다면 상대방의 전력을 파악하는 능력이에요. 물론 [감정] 기술 같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기세, 마력의 흐름, 자세, 태도 등등을 종합해서 어느 정도는 알아낼 수 있죠. 아마 저 말고 다른 S급 헌터들도 각자 나름의 노하우가 있을 거예요.”
그 말에 진수도 동의했다.
그도 [사신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생명력의 크기, 상대방의 기운 등으로 얼추 상대의 강함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S급 헌터의 감각이 당신을 친구로 삼으라고 말하고 있어요. 무슨 뜻인지 알겠죠?”
진수의 광대뼈가 움찔댄다.
무려 피터 켄트의 인정이다.
어떻게 보면 A급 헌터 라이센스보다 더 큰 가치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미소를 숨기지 못하는 진수.
그는 코를 벌름거리며 답했다.
“제의는 감사하지만, 제가 패트리어트에 들어가는 것은 좀 어렵겠네요.”
그의 표정에서 스카웃 성공을 예상했던 피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몇 가지가 있는데요. 우선, 제가 이끌고 있는 단체가 있어요. 그렇다보니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네요. 그리고 전 좀 더 자유롭게 헌터 활동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사실 두 번째 이유의 비중이 더 컸다.
진수가 지닌 힘의 원천은 [차원 전이].
패트리어트에 들어가 활동하게 되면 [차원 전이]를 활용하는 데에 제한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 발목을 잡는 꼴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렇군요.... 아쉽네요. 하지만 스카웃을 거절했다고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없는 건 아니죠?”
피터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의 손을 마주 잡는다.
물론 RD 때처럼 악력 대결을 펼치지는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줄 뻔 했지만....’
진수는 그가 중국에서 수집한 증거들과 그가 봤던 것들을 진술한 뒤 방에서 나왔다.
그의 기분은 유쾌함 반, 아쉬움 반이었다.
패트리어트에 들어가는 것은 수많은 헌터들이 바라 마지않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너희들이 정말 열심히 해줘야 된다고.”
상태창을 열어 전이자 목록을 본다.
수많은 전이자들이 제각각 열심히 살고 있었다.
-계약자 [볼렌테]가 [올림포스] 무리와 조우합니다.
-[볼렌테]가 당신의 종교를 따르는 [올림포스] 무리를 거부합니다.
‘이야, 이 녀석 믿음이 정말 대단하구나.’
창춘시에서 만났던 파투스교도 볼렌테.
[차원 전이]로 인해서 다른 전이자들과 사이가 좋아지도록 어느 정도 강제될 텐데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지조를 지키는 듯했다.
-[올림포스] 무리가 당신을 모독하는 [볼렌테]와 대치합니다.
볼렌테와 올림포스 무리가 맞붙을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특히나 오크 워리어, 고블린의 그림 뒤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효과가 생겼다.
[고블린] - 현재 상황 : 이교도에게 분개함 “신성 모독이다!”
-[올림포스] 무리와 [볼렌테]가 대결합니다.
-승부의 결과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이윽고 전이자들의 싸움이 시작됐다.
모여라 꿈동산
[볼렌테] - 현재 상황 : 기도를 올림 “파투스시여!”
올림포스 무리와 격돌하기 직전, 볼렌테가 파투스를 찾는다.
전이자들의 그림 뒤로 불타는 효과가 나타나고 상태창에는 그들의 현재 상황이 시시각각 변했다.
상당히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는 듯했다.
‘확실히 저 볼렌테란 자식이 보통 놈은 아니었어.’
[차원 전이]의 힘을 무효화 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진수에겐 아주 치명적인 적이었다.
-계약자 [볼렌테]와 [올림포스] 무리의 대결이 종료되었습니다.
-[올림포스] 무리 승리
-[볼렌테]가 [올림포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올림포스 무리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 올림포스 무리는 여덟 개체나 되며 [차원 전이]로 얻은 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들 자체가 성장하며 진수에게 보상을 보내준 것도 많았다.
강력한 몬스터들에게 덤볐다가 흠씬 두들겨 맞은 셈이다.
-대결 보상을 받습니다.
-[올림포스] 무리의 급성장
-[올림포스] 무리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3, 민첩 +4, 체력 +3, 내구 +2, 마력 +2, 골드 +30
파투스의 신도 덕분에 진수의 능력치가 올라갔다.
볼렌테의 그림은 두 눈이 X자로 변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게 보였다.
[제우스] - 현재 상황 : 제사장으로서 당신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중
코볼트 소서러 제우스가 볼렌테에게 진수의 종교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볼렌테의 그림 뒤로 오크 워리어의 그림이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고블린] - 현재 상황 : 교육을 시도하는 중(물리)
얼마 지나지 않아 진수의 눈앞에 새로운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볼렌테]가 당신의 종교를 따릅니다.
[볼렌테] - 현재 상황 : 기도를 올림 “징크스시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 볼렌테의 그림.
그 눈물이 참회의 눈물인지 고통의 눈물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야, 근데 아무리 물리 치료가 들어갔다고 해도 이렇게 금방 종교를 바꿔버리네.... [차원 전이]로 보내면 강제로 정신을 차리게 하는 힘이 있는 게 분명해.’
아예 진수를 죽이겠다고 나섰던 녀석이 징크스를 부르짖는 걸 보니 확신이 섰다.
사람의 신념을 돌릴 정도의 능력이라면 정말 신의 힘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크 워리어 [고블린]이 웨어울프 [볼코프], 웨어타이거 [호치], 계약자 [볼렌테]와 함께 새로운 무리를 이룹니다.
-[고블린], [볼코프], [호치]. [볼렌테]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첫 무리 분화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민첩 +1, 체력 +2, 내구 +1, 마력 +1
‘무리 분화...? 얘네들은 또 왜 이래?’
올림포스 무리에서 일부 전이자들이 떨어져 나와 새로운 무리를 이뤘다.
진수는 그 중심에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고블린의 상태를 확인했다.
[고블린] - 현재 상황 : 당신의 종교를 보다 적극적으로 퍼트리고자 함
‘아니, 이놈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니야...?’
몬스터가 종교를 퍼트리고 다닌다고 하니 굉장히 파괴적인 이미지가 떠올랐다.
하물며 이름이 고블린이지만 실상은 포악한 오크 워리어다.
진수는 가급적 녀석들이 평화적으로 돌아다니길 바라며 부드러운 느낌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모여라 꿈동산] - 영역 : 이동 중
[고블린] [볼코프] [호치] [볼렌테]
모여라 꿈동산이라는 무리 이름을 받고 진수의 종교를 포교하기 위해 출발한 녀석들.
‘그래도 기특하긴 하네. 뭐라도 줄 게 없을까...?’
진수는 전이자들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것보단 차라리 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언제 쓰이게 될지 모르는 골드를 소모하는 건 조금 꺼려졌다.
그러다 중국에서 대량으로 확보한 블루 오아시스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 이거라도 먹고 열심히들 해라.”
[모여라 꿈동산] 무리에게 [차원의 틈]에서 블루 오아시스를 일부 가져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자 빠르게 섭취하며 성장하는 녀석들.
진수에게도 다시 보상으로 돌아와 힘 3, 체력 4, 마력 5를 올려주었다.
‘아니 잠깐만.... 근데 무리 이름이 모여라 꿈동산인데 마약에 취해 있으면... 꿈동산의 의미가 좀 달라지는 거 아니야?’
그는 그제야 뭔가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 * *
중국에 다녀온 뒤로 몇 주가 흘렀다.
진수는 유례없이 평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로켓몬스터는 나날이 거래처를 늘려갔고 특별히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목숨 걱정도, 돈 걱정도 없는 무탈한 나날들.
지금까지 고생하며 살아온 데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았다.
-[바다의 왕자] 무리가 칼날바다의 잠긴 도시에서 차원의 축을 발견했습니다.
-보상을 받습니다.
-복해대성 [드라고]의 특성 중 하나
전이된 녀석들이 간 곳마다 차원의 축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거의 들어맞고 있었다.
조금 전에 바다의 왕자 무리가 칼날바다에서 차원의 축을 찾아낸 것을 비롯해 갓 오브 워 무리도 사르 평야에서 차원의 축을 찾아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받은 드라고의 특성 [수중 호흡]에 [질긴 힘줄] 특성.
능력치는 힘 12, 민첩 13, 체력 11, 내구 10, 마력 14가 증가했다.
다른 헌터들은 헌터 생활이 이어질수록 성장이 더뎌진다고 하는 데에 반해 진수는 꾸준히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흡...! 이놈의 마석증만 없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말이야.”
왼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시간은 흘러 다시 마석정제주사를 맞아야 하는 시기가 돌아왔다.
제아무리 강한 헌터라고 해도 주사를 맞지 못 한다면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생활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그가 헌터 생활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뭔 놈의 병이 치료 방법이 나올 기미도 안 보이냐....’
진수는 한숨을 쉬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늘 보던 의사가 주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위이잉
그는 진료실에서 전기톱을 꺼내 작동시켰다.
매섭게 회전하는 톱날.
일말의 주저도 없이 전기톱을 휘두른다.
-콰드득!
전기톱은 섬세하게 진수의 피부를 가르고 붉은 피가 울컥 솟았다.
상처가 난 직후 빠르게 아물기 시작하는 피부.
의사는 잽싸게 상처에 바늘을 꽂았다.
“휴우. 됐네요.”
의사가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내구 능력치에 온갖 특성 때문에 일반적인 바늘로 주사를 놓기가 어려워졌다.
때문에 지난 번 방문 이후부터는 진수가 피부를 가르고 낫기 전에 빠르게 주사를 놓는 방식으로 처치를 하고 있었다.
“으음....”
마석정제주사액이 온몸을 흐르며 불쾌한 감각을 선사한다.
언제나 적응이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선생님, 이게 꼭 주사로 놔야만 하는 건 아니죠? 저 액체가 혈관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전기톱으로 스스로의 팔을 가르는 게 우스운 꼴이라 생각한 진수가 의사에게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의사.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사가 아니면 혈액에 바로 주입할 방법이 없으니....”
“혹시 핏속에서 저절로 녹는 캡슐 같은 건 없나요?”
진수는 한 가지 꾀를 냈다.
마석정제주사액을 캡슐에 넣고 [유체화]를 사용해서 혈관에 직접 집어넣는 것이다.
“그런 기술을 가졌다면 가능하겠네요. 마석정제액을 혈관 투여용 캡슐에 담아서 드리겠습니다. 혹시라도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사용해보시고, 다음 주사 주기 때 말씀하신 방법대로 해보죠.”
이론상으로는 전혀 문제될 소지가 없다는 게 의사의 소견이었다.
그는 마석정제주사액이 담긴 캡슐들을 진수에게 주었다.
혈관 크기에 맞게 얇고 기다란 형태였다.
“참, 이야기 들으셨나 모르겠는데 외국에서 새로 마석증에 걸린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그는 진수가 부산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특이한 몬스터들을 만난 사람들에게 마석증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새로 마석증에 걸린 사람들이 계약이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
“주로 유럽 쪽에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하는데요. 그 중에 한 헌터가 러시아로 갔다고 합니다. 저랑 종종 학술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의사가 담당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러시아요?”
진수의 귀가 솔깃해졌다.
“예. 러시아 극동의 블라고베셴스크라는 도시에서 몬스터 생태를 연구하고 있다고 그래요.”
“블라... 뭐요?”
“블라고베셴스크. 중국이랑 꽤 가까운 위치에 있는 곳이에요.”
“그 러시아에 있는 의사분은 마석증에 대해서 뭐 새로운 정보라도 알아내셨다고 하나요?”
진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하지만 의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원래 마석증 쪽으로는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서요. 그냥 그런 케이스의 환자를 데리고 있다는 말만 전해 들었습니다.”
의사의 말에 몹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혹시 마석증 치료에 대한 단서가 있을까 기대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이다.
“참, 그런데 이상한 걸 봤다고는 했습니다.”
“이상한 거요?”
“마석증의 반점이 커져 마석정제주사를 놓았을 때, 일시적으로 특이한 문양이 보이는 것 같다고요. 워낙 짧게 나타나서 미처 자료로 남기지는 못 했다고 합니다. 다음 주기에 촬영을 시도해보겠다고 하니 기다려 봐도 좋겠네요.”
마석증 반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커지다가 일정 크기 이상 되었을 때 마석정제주사를 놓으면 다시 줄어든다.
이 주기를 놓쳐서 주사를 못 맞으면 온몸이 굳어서 죽는 것이다.
마석증 반점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형태는 말 그대로 반점이라서 어떤 문양 같은 게 전혀 유추되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마석정제주사를 놔서 크기가 줄어드는 순간에 특이한 문양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혹시 조금 전에 저 주사 맞고 난 직후 모양은... 보셨나요?”
진수가 의사에게 물었다.
“안 그래도 일부러 주사 맞는 과정을 녹화해뒀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특별한 형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한 번 보시죠.”
그가 진료실 내부에 설치된 CCTV의 녹화 파일을 가지고 왔다.
전기톱으로 팔에 상처를 내고 마석정제주사를 꽂는다.
그 직후 마석증 반점이 줄어드는 것이 보인다.
“어? 모양이 좀 바뀌었다가 줄어드는 거 같지 않아요?”
영상을 천천히 돌려보니 커다란 반점이 마치 표범 무늬처럼 동글동글한 원형 여러 개로 나뉘더니 작게 줄어들었다.
표범 무늬 같은 모양이 드러나는 것은 채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기에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인지하기도 어려운 정도였다.
“그렇네요. 그런데 이게 뭔가 특정한 문양이라고 하기엔....”
의사의 말에는 진수도 동의했다.
그냥 자연스럽게 생기는 모양처럼 보였으니까.
“그 러시아에 있는 헌터가 다음에 주사 맞는 건 언제쯤이라고 하나요?”
“얼마 전에 발견한 거니까... 아직 2주 정도는 남았겠네요.”
“음.... 그 도시, 육로로는 어떻게 가죠?”
잠시 고민을 하던 진수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중국도 다녀왔는데 좀 더 북쪽으로 못 올라갈 이유도 없잖아? [상급 냉기 저항]도 있는데.’
한동안 편하게 지내던 진수는 러시아행을 결심했다.
마석증 반점, 특이한 몬스터, 계약.
그는 왠지 여러 요소들이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러시아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뭔가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차원 전이]의 안내 메시지가 진수를 반겼으니까.
-특수임무 발생
“뭐야, 이 임무는?”
추위
“어우, 춥다. 이게 말이 되나?”
중국의 지린성을 지나 북쪽으로 헤이룽장성을 넘어 올라가면 아무르 강이라는 엄청난 길이의 강이 나온다.
중국과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강이다.
진수는 이 아무르 강을 건넌 후부터 한기를 느꼈다.
[상급 냉기 저항] 특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위가 느껴진다는 것은 생명체가 쉬이 살아가지 못할 환경이라는 뜻이었다.
‘그 마석증 걸린 헌터가 이런 곳에서 몬스터 생태를 연구한다고? 몬스터도 다 얼어 죽었겠다!’
급히 [차원의 틈]에서 옷가지를 꺼내 겹쳐 입었다.
그걸로 모자라 [백년 도깨비불]을 사용해 온기를 얻기까지.
산행에서 광원을 들고 다니는 건 몬스터의 습격을 받기 딱 좋은 일이었지만 진수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좋지. 이 이상한 임무를 깰 수 있을 테니까.’
그가 러시아에 넘어오자마자 나타난 특수 임무.
-특수 임무 : 변온동물 몬스터 다섯 마리 차원 전이시키기 !
-보상 : 인면지주 [엘리스]의 지식
변온동물이라 함은 보통 어류, 양서류, 파충류의 동물들이다.
날씨에 따라서 체온이 변하는 녀석들이기에 기온이 낮은 환경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근데 [상급 냉기 저항]이 있어도 추운 곳에서 변온동물 몬스터를 보내달라고? 야이.... 당신의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후우....’
진수가 깊은 한숨을 쉬니 입김이 금세 서리가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도무지 특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
그는 특수 임무의 목적이 뭔지나 알아보기로 했다.
임무 내용 옆에 있는 느낌표를 눌러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인면지주 [엘리스]가 텅텅 빈 드래곤의 레어에서 깊은 전투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엘리스]는 자신이 가진 주술로 이 웅장하고 전설적인 싸움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드래곤과 유사한 종족의 생명을 이용하면 땅에 스며든 드래곤의 피를 통해 과거를 잠시 불러낼 수 있습니다. 변온동물 몬스터 다섯 마리를 차원 전이시키십시오.
특수 임무의 상세 정보를 확인한 진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아니, 겨우 쟤 호기심 채워주겠다고 날 부려먹는 거였어?’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
지금까지 [차원 전이]가 임무를 주는 것 중에서 진수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이번 임무도 숨겨진 목적이 있는지도 모른다.
“임무야 뭐 겸사겸사 하면 좋지만 이건 겸사겸사가... 맞을 수도 있겠네.”
가볍게 투덜거리던 진수의 [사신의 감각]에 생명체들이 다수 느껴졌다.
지하 쪽에서 여러 생물들이 돌아다니는 게 파악된다.
생명 반응을 쭉 따라서 이동해보니 자그마한 굴이 하나 나왔다.
기온이 아주 낮은 곳에서 변온동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몇 없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지열이 올라오는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
‘작은 굴이라.... 옛날에 새초미 잡을 때 생각이 나네.’
좁디좁은 토끼 굴에서 [광폭화] 때문에 몸이 끼어 고생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지. 흐흐.”
-뽀옹 뽀옹
진수는 [분열]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분신을 다섯 개체 만들었다.
일렬로 서서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 작은 진수들.
녀석들은 큰 진수를 올려다보며 명령을 기다렸다.
“들어가서 싹 다 조져버려.”
“조져버려!”
“다 작살내자!”
진수의 명에 곧장 굴로 쏟아져 들어간다.
손에는 [차원의 틈]에서 진은으로 만든 송곳을 하나씩 꺼내서 들고 있었다.
‘금방 끝나겠지.’
지하에서 느껴지는 생명 반응은 분명 몬스터들이었다.
하지만 진수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
작은 진수들 하나하나가 적어도 C급 헌터 이상의 무력을 지녔으니까.
게다가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진수의 마력이 허락하는 한 [마트료시카]와 [왕성한 번식] 특성으로 계속해서 분신을 새로 만들 수 있다.
‘지금 내 마력 능력치는 200. 어지간해서는 [분열] 정도로 마력이 바닥날 일은 없지. 그야말로 잡몹 쓸어버리기엔 최적화 되어있다 이 말이야. 흐흐흐.’
자신만만한 그의 태도대로 굴에 들어간 작은 진수들은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전이시켰다.
-베놈 게코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베놈 게코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리퀴드 스네이크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
.
.
-바늘도마뱀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도마뱀, 뱀 종류의 몬스터 네 마리와 벌레 몬스터 두 마리를 전이시켰다.
한참 기다려도 더 전이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굴속에 있는 모든 종류를 처치한 듯했다.
“뭐, 하나 정도는 다시 찾아낼 수 있겠지.”
진수는 [분열]을 해제한 뒤 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면서 벌레 몬스터 두 녀석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목괴 [춘리]가 [뉴트럴바이오 친구들] 무리에 합류합니다.
-땅거미 [샬롯]이 [간장막야] 무리에 합류합니다.
변온동물 계열의 몬스터들에게는 따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퍽!
“어차피 이제 곧 갈 녀석들이니까.”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면서 블라고베셴스크로 향하던 진수가 눈 더미 속으로 돌을 집어던졌다.
-빙혈사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빙혈사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이어서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
-특수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인면지주 [엘리스]의 지식
임무가 달성되면서 상태창의 비석 모양 옆 숫자가 올라간다.
-베놈 게코 [이름 없음]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
.
.
-마력 +1
전이자들의 사망 보상으로 힘 1, 민첩 2, 체력 1, 마력 1이 올랐다.
특수 임무 상세 내용대로 변온동물 몬스터의 생명을 매개로 주술을 사용한 것이다.
‘이놈들은 두 번 죽은 셈이네.’
진수가 안내 메시지를 보며 잡념을 떠올렸다.
뒤이어 그의 머릿속에 생생한 기억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이게... 특수 임무 보상이구나.’
엘리스가 몬스터 다섯 마리를 제물로 삼아 확인한 전투 장면이었다.
인간들이 드래곤 레어로 몰려와 싸움을 걸었다.
적의 전력을 확실하게 파악해 정확한 전략을 세운 듯했다.
레어에 들이닥치자마자 일부는 레어를 지키는 가디언들을, 나머지는 곧장 드래곤에게로 달려들었다.
-쿠워어어!
결점 하나 보이지 않는 새하얀 비늘.
총기가 감도는 푸른 눈.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과 그에 걸맞은 커다란 몸체.
적을 맞이하며 펼친 두 쌍의 날개에서는 녀석의 비늘처럼 하얀 서릿발이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으윽...! 드래곤 피어를 물리쳐!
-파투스시여!
드래곤을 에워싼 인간들 중 몇몇이 기도를 올린다.
보랏빛 기운이 은은하게 퍼지며 공포심에 빠진 인간들을 깨웠다.
두려움에 찬 눈빛을 투지의 열기로 뒤덮는 방식이었다.
-죽여!
-파투스님께서 함께하신다!
죽음조차 겁내지 않고 돌격하는 인간들.
각자가 상당한 강자였는지, 드래곤의 공격을 뚫으며 나아갔다.
피가 얼어붙을 것 같은 냉기를 헤치며, 드래곤의 강력한 육탄돌격을 넘은 그들은 이윽고 녀석에게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팅 팅
어지간한 공격은 흰 대리석처럼 무결한 비늘에 막혀 튕겨 나간다.
하지만 인간들은 조각상을 깎듯이 인내심을 갖고 무기를 휘둘렀다.
온통 하얗던 드래곤의 비늘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순수한 흰색에 붉은 물감이 번져 나온다.
-이놈들...!
드래곤에게서 분노와 고통이 뒤섞인 감정이 전해진다.
감히, 감히 하찮은 인간 따위가.
드래곤은 그가 가진 최고의 권능을 사용하기로 했다.
생물이 가진 기본적인 권리이자 드래곤에게 주어진 능력.
숨.
-브레스를 사용한다!
-준비해!
드래곤이 심장으로부터 마력을 끌어올린다.
호흡기만이 아니라 전신으로 들숨을 마셨다.
이윽고 그의 입이 벌어지며 천지를 뒤흔드는 마력 파동이 일어났다.
-파투스님께 영광을!
그 순간, 인간들이 드래곤의 입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정확히 브레스를 사용하길 노린 듯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냉기의 날숨으로 뒤바뀌었지만 목숨을 건 돌진에 방해를 받아 완전치 못한 브레스가 되었다.
달려든 이들은 그 자리에서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지만 무가치한 희생은 아니었다.
드래곤이 한껏 들이마신 마력이 그의 온몸으로 휘돌았다.
브레스로 소진하지 못한 힘을 온몸의 비늘을 살짝 열어 뿜어낸다.
-이때다!
남은 인간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팅 팅!
-푸욱!
대부분의 공격들이 앞선 상황과 마찬가지로 가로막혔다.
하지만 단 하나의 찌르기는 달랐다.
꼬리의 아래쪽,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두 뒷다리의 사이에 정확히 틀어박힌 기다란 창.
빛으로 이루어진 창이 드래곤의 뒤를 꿰뚫었다.
“으악, 안 돼!”
전투 회상을 살피던 진수가 순간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너무도 아찔한 광경이었으니까.
왠지 모르게 아랫배가 시큰해지는 느낌이었다.
-크으윽! 인간들...! 네놈들을 저주하겠다...!
목소리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살기가 쏟아진다.
드래곤은 언령의 힘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그의 아랫배에 박힌 빛으로 된 창이 빛을 잃었다.
-나의 피를 맛본 이 쇠붙이는 네놈들의 피를 뽑아내는 도구가 되리라!
드래곤이 꼬리로 창을 뽑더니 전투 지휘를 내리던 자에게 던졌다.
일격에 관통당한 그는 엄청난 양의 피를 쏟으며 즉사했다.
하지만 드래곤도 치명상을 입은 상황.
남은 인간들은 대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잘 훈련된 합공을 펼쳐 드래곤을 처치했다.
-멍청한 놈들...! 오만함에 눈이 멀어 속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구나...!
허물어지듯 쓰러지는 드래곤.
인간들은 드래곤이 죽은 뒤에도 무기를 휘둘렀다.
사체가 완전히 짓뭉개진 후에야 공격을 멈춘 그들은 가슴팍을 후벼 파 심장을 꺼냈다.
특수 임무 보상으로 전달된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꺼낸 드래곤의 심장으로 차원의 축을 망가트린 거겠지.’
비록 뒤의 내용을 전달받지 못 했더라도 진수는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고 있었다.
드래곤이 지키던 차원의 축이 약화되었고 저주받은 신의 창은 이쪽 차원으로 넘어왔다.
“아니, 근데 이걸 왜 나한테 보여 주냐고. 드래곤이 나오면 S급들이 모여서 잡으러 가겠지. 내가 드래곤이랑 싸울 일이 뭐가 있다고....”
아주 인상적인 전투 장면이었지만 진수에게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나마 전이자들의 사망 보상으로 능력치가 다섯 개 올랐다는 게 이번 특수 임무로 얻은 이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휴, 나한테는 그 하얀 드래곤이 쏘는 브레스보다 이 지긋지긋한 추위가 더 무섭다.”
진수는 옷을 단단히 여미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남쪽엔 아무르 강이, 동쪽에는 제야 강이 흐르는 도시, 블라고베셴스크.
진수는 서울에서 출발한 지 대략 2주 만에 블라고베셴스크에 도착했다.
“근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꽤 번화한 도시 곳곳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칼바람이 불고 있는 길가에 미동조차 않고 널브러져 있는 이들.
진수는 그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이럴 수가...!’
그는 쓰러진 사람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블라고베셴스크
“이 날씨에 술을 먹고 고주망태가 되어 있다고?”
러시아 사람들의 술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긴 했다.
오죽하면 술이 떨어져 메탄올을 마시다가 죽는 사람도 나올 정도일까.
하지만 이렇게 추운 날씨에 술에 취해 가벼운 옷차림으로 길바닥에 누워있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어후, 술 냄새.... 어? 근데 술 냄새만 있는 게 아닌 거 같은데...?”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 사이에 익숙한 향이 섞여 있었다.
자꾸 맡고 싶어지는 감미로운 향취.
후각을 통해 들어와 뇌를 직접 건드리는 것 같은 자극이다.
‘이거 블루 오아시스 냄새잖아! 중국 정부가 엄중하게 다루겠다고 했는데 이게 왜 러시아에 퍼져 있지?’
진수는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 사내를 깨웠다.
이대로 두면 목숨이 위험할 것 같기도 했고 블루 오아시스를 어떻게 구했는지도 묻기 위해서였다.
“이봐요 아저씨! 일어나세요.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입 돌아가요.”
수염이 덥수룩해서 이미 입이 돌아갔어도 알 수 없을 외모긴 했다.
“그으.... 뭐야.... 어흐, 이 빌어먹을 추위.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아직 춥네. 몇 잔 더 마셔야겠어.”
사내는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로 겨우 실눈을 떴다.
눈이 부었는지 혹은 아직도 취기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지 눈을 뜨는 게 퍽 괴로워 보였다.
‘아니, 추워서 술을 마신 거라고...? 무슨 곰탱이들이냐....’
진수는 그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가 깨운 사내 외에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중급 후각]에 집중해보니 모두들 술과 블루 오아시스에 취한 상태인 듯했다.
남자는 술을 더 마셔야겠다고 중얼거리다가 다시 잠들었다.
비몽사몽간에도 술을 찾은 것이다.
‘별 어이가 없는 동네네.... 일단 체온이나 [사신의 감각]에 느껴지는 생명 반응은 멀쩡하니까 이 사람이나 다시 깨워서 상황을 들어봐야겠어.’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사내를 다시 흔들어 깨워본다.
깊게 잠들기 전에 재차 깨운 덕분인지 이번엔 제법 멀쩡해졌다.
“아이구... 머리야. 물... 물 좀 줘봐....”
허공에 손을 뻗으며 물을 찾는 그에게 [차원의 틈]에서 생수를 한 병 꺼내서 건넸다.“크으.... 이제야 좀 살겠다. 아이, 뭐야? 마누라가 아니네? 어쩐지 군말 없이 물을 주더라.”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사내가 진수를 보며 깜짝 놀랐다.
자신이 길바닥에 앉아있는 것보다 모르는 사람한테 물을 받은 게 더 신기한 일인 듯 보였다.
“벌써 낮이네. 망할. 거, 무슨 일이요?”
이제야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된 사내.
진수는 먼저 블라고베셴세크의 사람들이 이렇게 취한 채로 지내는 이유를 물었다.
“요즘 들어서 날씨가 엄청나게 추워졌어. 돌아다니는 몬스터는 점점 더 강해지고, 수가 늘었지. 마석으로 난방을 뗄 수 없으니까 별 수 있나? 도무지 술을 안 마시고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요.”
헌터들이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면서 마석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금 수준의 추위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몬스터들도 늘어나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기상청에서도 이상 현상이라고 하더라고.”
일기예보랑 너무 다른 날씨에 화가 난 몇몇이 블라고베셴세크가 속한 아무르 주의 기상청으로 쫓아가 난장판을 피우면서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
진수는 아무래도 그 몇몇이라는 사람들 중에 눈앞의 사내가 포함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기상청을 박살내던 현장을 너무 상세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아...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술 마실 때 더 금방 취하게 하거나, 기분 좋아지는 물건...을 구할 수 있을까요?”
블루 오아시스에 대한 질문을 넌지시 던졌다.
직접적으로 캐묻기보다는 동류인 척 하면 경계를 덜 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에 사내는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며 진수의 얼굴을 살폈다.
“커흠...! 이거 자꾸 말하려니까 목이 마른데.... 궁금한 게 많으면 목을 좀 적시면서 이야기해도 되지 않나?”
방금 생수 한 병을 비우고 또 물을 달라는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술이 있는 곳으로 가자는 신호였다.
진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싱글벙글하며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꽤 오래된 듯 보이는 드루지바라는 이름의 주점.
“안드레이! 오늘 아침까지 퍼마시더니 벌써 일어났어? 또 한 잔 해야지!”
주점의 주인은 사내를 반겼다.
아마도 안드레이라 불린 남자는 이 가게의 단골인 듯했다.
“크흐흐! 좋지! 보드카 한 병 줘!”
제 집에 온 듯 안드레이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의 주문에 주점 주인이 창문가로 향했다.
‘술을 달라는데 왜 저쪽으로 가지?’
창문을 여니 창틀에 술병들이 쭉 세워져 있었다.
잠깐 열린 창문 틈으로 세찬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요즘엔 날이 추워서 보드카 맛이 좋다니까! 크하하!”
얼음장처럼 차가운 술병과 유리잔 두 잔을 받아든 사내가 호쾌하게 웃었다.
“참, 물도 한 병 주고. 요즘 이상하게 물맛이 좋아.”
그가 주점 주인에게 추가로 주문을 했다.
놀랍지도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빈 술병에 수돗물을 채워서 가져온다.
-턱
“드루지바 특제 물 대령이오. 크흐흐.”
뻔히 수돗물 채우는 걸 다 봤지만 능글맞게 농담을 던진다.
안드레이는 껄껄 웃으며 물을 받아서 컵에 채웠다.
‘어?’
그 순간, 진수의 동공이 확장됐다.
물에서 블루 오아시스의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기 때문이다.
“저도 물 한 잔만 주세요.”
그는 안드레이에게 컵을 내밀었다.
별 일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물을 따라준다.
수돗물이 담긴 컵.
색은 그냥 투명하다.
물에 딱히 침전물 따위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옅게 달큰한 향이 난다.
-꿀꺽
한 모금 마셔보니 아주 묘하게 청량음료를 마시는 것처럼 기분이 상쾌해졌다.
혀끝에 단 맛이 감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몸속에서 이어지는 작용들.
마력이 블루 오아시스에 반응했다.
체온이 살짝 오르고 일시적으로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몬스터한테는 이 반응이 영구적으로 이루어지는 거겠지.’
아주 잠깐, 진수가 집중을 하고 있었기에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이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왔다.
굉장히 미량의 블루 오아시스를 섭취했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었지만 지속적으로 체내에 들어가면 결국 중독이 될 것이다.
“잠시 싱크대 좀 쓸게요.”
진수는 주점 주인에게 말한 뒤 수돗물을 틀었다.
손을 씻는 척 하면서 냄새를 맡아보니 수돗물에 블루 오아시스가 녹아있는 게 분명했다.
‘약을 유통하는 게 아니라 아주 수돗물에 풀었다고? 마약을 많이 팔아먹으려고 이렇게까지?’
“저기, 사장님. 여기는 상수도 처리하는 곳이 어디에요?”
그가 묻자 주점 주인의 얼굴에 경계하는 기색이 나타났다.
“뭐요. 외국인인 줄 알았더니, 정부 사람인가? 우리는 법 잘 지키면서 장사하고 있소.”
“정부 사람 아니고요. 그냥 동네 수돗물이 되게 좋아서, 제가 온 나라에 적용할 방법이 있을까 보고 싶은 거예요. 하하.”
진수가 은근히 도시에 대한 칭찬을 섞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주점 주인은 금방 표정이 풀렸다.
“흐흐, 요즘 유독 수돗물 맛이 좋더라고. 상수도 처리하는 시설은 제야 강 근처로 가면 있어요. 뭐, 외국인이 갑자기 찾아간다고 문을 열어줄 지는 모르겠지만.”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기 안드레이씨 보드카 값은 제가 내고 갈게요.”
진수는 마석을 하나 꺼내 술값을 계산했다.
마석은 세계 어디를 가도 공용 화폐처럼 쓸 수 있으니까.
게다가 지금의 블라고베셴스크엔 마석이 정말 귀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오늘 안드레이 저 친구 횡재했네!”
급격히 공손해지는 주점 주인을 뒤로 하고 진수는 밖으로 나왔다.
‘그 새로운 마석증 환자가 처치 받는다는 병원은 내일 가더라도 우선 여기 수돗물에 뭔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봐야겠어.’
지도를 보며 제야 강을 향해 움직인다.
이동하는 중간에 박종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제형사경찰기구에 중국 대표로 들어가 있으니 블루 오아시스 수사에 대해서 뭐라도 알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고아원이 없어진 이후로 전화는 처음 거네.’
-뚜루루루 뚜루루루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하지만 전화 연결은 되지 않았다.
“이 망할 자식은 진짜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구나.”
전화번호가 연결된 메신저로 확인해보니 번호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야 블루 오아시스 수사 관련해서 물어보려고 전화 걸었는데 받질 않냐 메시지 보면 답해라]
진수는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낸 뒤 박철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 김진수 헌터 무슨 일입니까?
“수사관님. 제가 지금 개인적인 일로 러시아에 와 있는데 여기에 블루 오아시스가 도는 거 같아서요. 혹시 그 국제경찰... 인터폴인가 하는 곳이랑 연결 되시면 관련해서 알고 있는지 좀 확인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러시아에요? 흠, 알겠습니다. 한 번 알아보죠.
박철준과 통화를 마친 진수는 어느새 제야 강에 도착했다.
강변을 따라 쭉 시선을 옮기다 보니 한눈에 수도 관련된 처리를 하는 걸로 보이는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파이프로 강물을 빨아들이고 일부는 강에 흘려보내고 있는 곳.
지체하지 않고 바로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외국인한테 함부로 문을 열어주진 않겠지.’
주점 주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 진수는 정식으로 수도 시설에 방문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차원의 틈]에서 공허룡 코트와 호랑이 가면을 꺼냈다.
-스르륵
[유체화]와 [투명화]를 사용한 그는 곧장 시설 내부로 들어갔다.
원래 계획은 상수도로 물을 보내는 쪽을 먼저 훑어보고 그 다음에 창고 같은 데를 뒤질 생각이었다.
‘근데 아예 그럴 필요가 없는데...?’
상수도 처리 시설 안에 들어온 직후부터 블루 오아시스 냄새가 진동을 했다.
전혀 숨길 생각이 없는지 향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가면 됐다.
진수는 주변에 CCTV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는지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차원의 틈]을 사용하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냄새가 가까운 상태에서는 무조건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급할 것도 없었다.
이윽고 약들이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안에 사람 한 명밖에 없네.’
진수는 [투명화]를 유지한 채로 방 내부를 살펴보았다.
한 남자가 수도관에 블루 오아시스를 붓고 있었다.
‘카메라 녹화를 틀어놓고 덮쳐야겠다.’
방 밖에서 핸드폰으로 녹화를 시작한 뒤 [유체화]로 방 안에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블루 오아시스를 수돗물에 타는 게 충분히 찍힌 것을 확인한 진수는 곧바로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이 자식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블루 오아시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팔을 꺾어 제압한다.
물에 약을 타던 범인은 각성자가 아닌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붙잡혔다.
“예, 예...? 여기, 여, 여기는 블라고베셴스크의 상수 처리 시설로 제야 강의 물에서 석회질이랑 유해한 미생물을 걸러내고 음용 가능한 수돗물로....”
새하얗게 질린 남자는 덜덜 떨면서 설명을 했다.
마치 견학 온 사람들한테 하는 멘트 같았다.
“아니 지금 그딴 걸 묻는 게 아니잖아! 그 음용 가능한 수돗물에 뭘 타고 있는 거냐고!”
진수가 블루 오아시스를 가리키자 그제야 질문의 의도를 알아챈 듯 입을 벌린다.
“아아! 저거는요. 우리 도시 사람들이 추위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해서....”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답을 하는 사내.
도리어 어리둥절해진 것은 진수였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악마
블라고베셴스크 상수 처리 시설의 유일한 직원인 파벨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갑자기 웬 괴한이 벽을 뚫고 나타나서는 자신을 제압한 뒤 이상한 질문을 던져댔기 때문이다.
그는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각성자면서 거친 러시아 남자들 중에서는 체구가 작고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자동화가 되어 사람들과 별로 마주할 일이 없는 상수 처리 시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변을 당한 것이다.
“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흑...!”
결국 그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울음을 터트린 파벨을 보며 진수는 몹시 당황했다.
“뭐, 뭐야. 왜 울어? 이러면 내가 나쁜 사람인 거 같잖아. 환장하겠네...!”
진수는 혹시 몰라 그의 손을 [강철 거미줄]로 묶은 뒤 잠시 안정을 시켰다.
파벨이 울음을 그친 뒤 겁먹은 눈빛으로 자신을 습격한 자를 보았다.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후우... 일단 하나씩 의문을 풀어보자고. 당신 누구야?”
진수의 입장에서 파벨은 수돗물에 마약을 푼 극악무도한 악당이었다.
반대로 파벨은 진수가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괴한.
이 상황에서 주도권을 쥔 진수가 질문을 던졌다.
“저, 저는 여기서 일하는 파벨이라고 하고요.”
꽤 긴 시간동안 혼자서 일해 왔던 파벨은 그간 상당히 외로웠는지 말을 하기 시작하니 굳이 할 필요 없는 이야기까지 줄줄 쏟아냈다.
“... 그래서 여기서 저 혼자 일하고 있는 거예요. 가끔 말을 하게 되는 거라곤 외부에서 견학을 왔을 때 설명하는 정도? 아까 처음에 시설에 대한 설명을 빨리 할 수 있었던 거예요. 하하. 아, 이걸 물어보시는 게 아니구나. 어쨌든 정식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 근무자가 맞아요.”
누구냐는 질문 하나로 거의 십 분을 혼자 떠들었다.
뭐 더 물어볼 게 있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진수를 보는 그.
고문이라도 해서 캐물으려고 했던 진수로서는 상정 외의 상황이었다.
“음.... 그, 그래. 근데 수돗물에 저 약은 왜 타고 있었던 거지?”
우선 파벨이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고 해도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도시 전체에 공급되는 수돗물에 마약이라니.
하지만 여전히 파벨은 전혀 잘못을 자각하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요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잖아요? 저걸 먹으면 추위를 덜 타게 되거든요. 아.... 다른 도시에서 저 약이 뭔지 궁금해서 오신 분이시구나?”
그는 또 다른 오해를 하기 시작한 듯했다.
블루 오아시스를 처음 접한 것은 동네의 한 양아치에게서 였다고 한다.
마력이 강화돼서 추위를 덜 타게 해주는 약이라는 말과 함께 소량을 제공 받았다.
“처음에는 저도 의심스러웠거든요. 근데 흡입을 해보니까 진짜로 덜 추워지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겠지.... 처음엔 진짜 일시적으로 마력이 강화되고 나중에는 약에 취해서 추위가 덜 느껴졌을 테니까.
스스로의 몸으로 성능을 검증한 파벨은 다시 그 양아치에게 주변 사람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꽤나 많은 양을 받았다고 했다.
이에 도시 사람들 모두한테 나누고 싶었던 그는 양아치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에이, 러시아 인간들이 춥다고 약을 먹겠냐? 니가 그러니까 사회에 적응도 못하고 혼자서만 일하고 있는 거야. 도시 사람들한테 나눠주려면 뭐 공중에서 뿌리든 물에 타서 몰래 먹이든 그런 방법밖에 없을 걸?’
돌아온 건 비웃음이 섞인 대답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파벨은 그 말에서 답을 찾았다.
물에 타서 몰래 먹이는 방법.
상수도 처리 시설에서 일하는 그는 수돗물에 이 따듯해지는 약을 타기로 한 것이다.
‘일부러 얘한테 접근해서 작업을 쳤구나.’
이 이야기를 들으며 진수는 블루 오아시스의 공급책이 파벨에게 약을 건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착한 심성에 적당한 멍청함, 아주 딱 좋은 직장.
이 삼박자가 정확히 들어맞으니 노린 것이 분명했다.
자세히 보니 파벨의 눈은 상당히 충혈이 되어있었다.
‘농축된 블루 오아시스 가루가 바로 앞에 있고, 실제로 흡입까지 했으면 분명 중독이 된 상태일 거야. 그런데 사람들한테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자기가 흡입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 거겠지. 참, 모자라지만 착한 놈이구나.’
“혹시, 이 약 부작용 같은 건 없나?”
진수는 파벨이 오해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이용하기로 했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다른 도시에서 블라고베셴스크의 비밀을 캐러 온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사실 한 번에 많이 흡입하면 자꾸 생각나고 더 흡입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근데 물건 준 사람이 조금씩만 쓰면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물에 탄 농도 정도로는 문제가 없다고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여기 사람들이 요즘 덜 추운 거 같다고 하니까.... 확실히 효과를 보고 있는 거 같아요. 하하.”
파벨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음.... 혹시 다음에 또 그 약을 받으러 갈 때 나도 갈 수 있나? 들어보니까 내가 온 곳에도 같은 방법을 쓰면 좋을 것 같은데....”
진수는 파벨을 묶었던 거미줄을 풀어내며 물었다.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오해가 풀리고 다른 지역에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기쁜 듯했다.
“물론이죠. 어디보자... 이번에 약을 받기로 한 게 모레거든요. 제가 미리 이야기를 해놓을게요.”
“아니, 아니. 너무 거창하게 딱 약속을 잡으면 그쪽에서도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냥 얼굴만 비추는 정도로 하자고. 그 다음에는 내가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런가...? 하긴 약도 더 많이 챙겨야 하니까 힘들 수 있겠네요.”
파벨은 금방 납득을 했다.
‘사람이 너무 순진한 거 같기도 하고....’
진수는 이어서 그가 약을 받을 때 함께 가기로 하며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알려주었다.
이어 파벨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곳곳에 위치추적기 및 도청 장치를 부착했다.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사용하던 작은 장치들이다.
혹시라도 파벨의 지금 모습이 거짓이라면 이것들을 통해서 미리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 * *
“닥터 최가 말한 마석증 환자분이군요.”
진수는 다음 날 서울의 의사에게 들었던 병원에 방문했다.
희끗한 머리를 지닌 여의사가 그를 반겼다.
“어제 통화한대로 디에고씨도 조금 뒤에 올 거예요. 오늘이 주사 처치를 하는 날은 아니지만 서로 마석증을 경험한 바를 나누면 뭔가 병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블라고베셴스크 상수도 처리 시설에서 나오고 난 뒤 바로 병원에 전화를 했었다.
시간 상 바로 방문하지는 못했고 다행히 이 의사도, 마석증을 앓게 된 사람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어 오늘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오, 선생님. 안녕하세요.”
진수가 기다리고 있는데 상당히 느끼한 어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왠지 이탈리아어가 생각나는 발음이었다.
“디에고씨, 어서 와요. 여기는 한국에서 온 김진수씨예요.”
“오~ 한국! 언젠가 한 번 꼭 방문해보고 싶은 나라였는데요. 하하! 작은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안정적으로 몬스터에 대한 대비를 갖추고 있다고 들었어요. 반가워요. 저는 몬스터 생태를 연구하는 디에고라고 해요.”
목소리만큼이나 기름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인사하는 사내.
큰 코와 유쾌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예, 한국의 헌터 김진수입니다. 이번에 마석증에 걸리시게 된 경위를 듣고 싶은데요.”
진수는 간단하게 인사를 한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애초에 잡담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고 틈을 주면 디에고의 입이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디에고는 자신이 마석증에 걸리게 된 과정을 이야기 하면서 온갖 소리를 늘어놓았다.
덕분에 그의 어머니가 잘 하는 파스타 레시피까지 들을 수 있었다.
“... 그렇게 저는 루마니아로 갔죠. 오우, 루마니아에서 드라큘라의 전설이 시작된 건 아시나요? 그날은 마치 드라큘라의 망토가 온 거리를 뒤덮은 것처럼 어두운 날이었어요.”
유독 어둠이 짙었던 밤.
루마니아에 몬스터 생태 연구 때문에 방문한 디에고는 이상함을 느꼈다.
비록 치안과 몬스터 습격 때문에 밤길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도심이 쉽게 휑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건물의 불빛도, 지나다니는 사람도 일절 보이지 않았다.
‘악마라도 만날 것 같은 날이네. 하하.’
그는 적막만이 감도는 거리에서 홀로 농담을 길동무 삼아봤다.
마치 그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짧은 헛웃음이 끝나자마자 그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온통 시커먼 그림자로 뒤덮인 모습.
고요한 거리와는 반대로 그 자의 주위엔 마력이 휘몰아쳤다.
디에고의 헌터 본능은 그게 인간이 아님을 직감했다.
“하지만 감히 공격할 생각은 못 했죠. 그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적어도 S급 헌터와 맞먹는 것 같았으니까. 진짜 악마가 나타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독사 앞에 선 생쥐처럼 굳은 그에게 그것은 천천히 다가왔다.
-여기가 녀석의 다음 타겟.... 콩고물을 주워 먹기 전에 나도 재미를 좀 볼까.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뱉는다.
이윽고 괴물은 디에고의 앞에 섰다.
-나와 계약을 하자. 네 목숨을 살려주는 것은 물론 나의 권능을 빌려주지.
놈의 언어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소리조차 아니었다.
그러나 머릿속에 직접 전달되는 말은 그 의미가 명확하게 이해가 되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죠. 그게 다에요. 제가 동의의 표현을 하고 나니 어느새 그 괴물은 없어졌고 제 손등엔 이렇게....”
디에고가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그의 손등에는 마석증의 반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몬스터가 빌려주겠다던 권능은 뭔가요? 마석증이 생긴 이후에 변화가 있어요?”
진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 질문을 던졌다.
“신기하게도 마석증이 생긴 후로 숨겨진 것들, 숨은 존재들을 느낄 수가 있어요. 예를 들면 유부남의 비상금이나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 같은 걸 발견할 수 있게 됐다는 거죠. 그런데 제가 게임의 주인공도 아니고 남의 집에서 숨겨놓은 물건을 챙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큰 도움은 안 되네요. 대신에 몬스터들을 찾아낼 수 있어서 생태 연구에는 나름 유용하게 쓰고 있어요.”
“뭔가 능력이 생기긴 한 거네요. 그게 특성이나 기술 같은 게 나타난 건가요?”
문득 지난번에 [차원 전이]와 마석증 사이에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의심했던 진수였기에 혹시나 하는 물음이었다.
“아뇨, 이건 그런 분류는 아닌 거 같더라고요. 그냥 눈이나 귀처럼 새로운 감각이 생긴 느낌이에요.”
디에고의 답에 김이 샜다.
러시아까지 왔음에도 마석증에 대한 특별한 단서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이다.
“제가 발견한 마석증 반점의 특이 사항은 사흘 뒤에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두 마석증 환자들이 병증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데 여의사가 넌지시 말했다.
뭔가 더 유익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고, 그녀의 시간을 과도하게 뺏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알린 것이다.
“오, 선생님께 폐를 끼쳤네요. 저로서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처음 봐서요. 하하. 이만 자리를 피해야겠네요.”
디에고가 빠르게 눈치를 채고 일어났다.
진수도 의사의 말대로 사흘 뒤에 다시 보기로 기약하려고 했다.
“진수씨는 이번 일 때문에 일부러 러시아로 왔다고 했죠? 제가 재밌는 구경 시켜드릴까요?”
인사를 건네고 떠나려는 그에게 제안하는 디에고.
“재밌는 구경이요?”
어차피 블루 오아시스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까지 비는 시간이 있었다.
러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몬스터들이나 전이시켜볼까 하던 진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제안에 응했다.
* * *
‘이게 재밌다고...?’
디에고와 길을 나선 진수는 눈앞에 보이는 거체에 식은땀이 흘렀다.
동산 하나가 통째로 거친 호흡을 헐떡이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장담하는데, 요즘 들어서 러시아 전역의 기온이 뚝 떨어진 게 저 녀석 때문일 거예요. 마석증 덕분에 생긴 능력으로 찾아냈죠. 하하.”
디에고는 진수의 심정도 모르고 잔뜩 신이 나서 떠들었다.
진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디에고뿐만이 아니었다.
-특수임무 발생
추위의 원흉
“원래 러시아가 워낙 산악지역이 많아서 몬스터들의 천국이긴 했죠. 그런데 요즘엔 이상하리만치 균열이 더 많아졌어요.”
디에고가 고지대에서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사신의 감각]에 온갖 몬스터의 생명 반응이 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람들한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 때문이죠. 워낙 추우니까 균열에서 나온 몬스터들도 제 구실을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산악지역에 수없이 나타난 몬스터들.
맘껏 날뛸 생각으로 나왔는데 녀석들을 반긴 것은 미친 듯한 추위였다.
덕분에 추운 날씨에도 버틸 수 있는 녀석들에게 밀리고 실질적으로 사람들은 몬스터의 수가 늘어났다는 걸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블라고베셴스크 주변의 몬스터들이 유독 강해졌다는 학계 보고를 봤어요. 대체 무슨 일인가 확인해보려고 여기에 온 거예요.”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는 디에고.
하지만 진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수돗물에 블루 오아시스를 타고 있었으니... 몬스터들한테도 어떻게든 영향을 줬겠지. 수돗물이 흘러 들어간 하천이나 강물을 마시기도 하고 중독된 인간을 직접 잡아먹기도 했을 테니까.’
그가 걱정하던 블루 오아시스가 크게 유행했을 때 생길 문제가 블라고베셴스크 주변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게 블라고베셴스크에 왔는데, 저 녀석을 발견한 거죠.”
디에고가 한 계곡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향하고 있는 곳에는 하얗고 아주 커다란 무언가가 있었다.
“제가 장담하는데, 요즘 들어서 러시아 전역의 기온이 뚝 떨어진 게 저 녀석 때문일 거예요. 마석증 덕분에 생긴 능력으로 찾아냈죠. 하하.”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어마어마한 마력이 느껴졌다.
특히 계곡으로부터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특수임무 발생
‘아 제발 좀! 이번엔 안 돼.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압도적인 마력을 뿜어내는 녀석.
[차원 전이]가 순순히 포기할 리가 없었다.
-특수임무 : 안내하는 몬스터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마력 +30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임무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진수는 보상을 보고 입이 벌어졌다.
현재 진수의 마력 능력치는 201.
30이면 대략 15%에 해당하는 수준의 수치다.
‘우, 우선 뭐하는 몬스터인지나 한 번 봐볼까...?’
쉽게 포기하기엔 너무 큰 보상이었다.
“이게 참 딜레마란 말이죠. 저 녀석을 해치우면 추위가 사라지겠지만 블라고베셴스크 주변에 강해진 몬스터들이 늘어날 거고, 그대로 두면 추워서 사람들이 활동을 할 수가 없어요.”
그는 지금의 상황이 진퇴양난의 문제라고 보고 있었다.
냉기를 뿜는 몬스터가 오히려 다른 강한 몬스터들의 억제기가 되어주고 있으니 함부로 손대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자체도 엄청나게 강할 것이라 예상 된다.
괜히 가만히 있는 녀석을 건드렸다가 처치도 못하고 도시로 쳐들어오면 더욱 골치가 아플 수 있다.
‘여기 몬스터들이 강해진 이유가 블루 오아시스 때문이라는 걸 모르니까 그럴 수밖에....’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와 그 주위의 상황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꿰고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온 진수뿐이었다.
“저 커다란 놈은 어떤 몬스터인지 확인했어요?”
“오우, 저런 녀석한테 접근해봤냐고 묻는 거예요? 전 목숨이 하나밖에 없다고요.”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역시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 목숨도 하난데... 이 망할 특수임무.’
분명 거대한 몬스터의 근처는 기온이 더욱 낮을 것이다.
[상급 냉기 저항]으로도 추위를 막을 수 없으니 특급 수준의 특성을 가지거나 다른 대비를 해야 될 듯했다.
“덕분에 진귀한 구경 잘 했어요. 추운데 이만 돌아갈까요?”
진수는 계곡 쪽으로 시선을 한 번 더 돌린 뒤에 디에고와 함께 도시로 돌아갔다.
복귀하는 길에 러시아에서 몬스터 생태 연구를 하는 그에게 방한 도구에 대해서 물었다.
“저는 옷 안에 열선이 깔린 장비를 입고 있어요. 이런 데에서 돌아다니려면 기본이죠. 진수씨는... 맙소사, 두꺼운 옷만 입고 이 날씨를 견뎠다고요? 빨리 헌터 상점에 가서 보온이나 발열 기능 있는 옷을 사요!”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설명을 해줬다.
추천하는 브랜드, 주의할 점 등등을 세세하게 설명해줘서 필요한 물건들을 고민 없이 구입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걸 입고 격렬하게 싸우긴 쉽지 않다는 거지....’
마력 회로가 얼기설기 그려진 방한용품들.
구조를 보니 열을 발생시키는 회로가 충격에 취약한 형태였다.
“잠깐만... 내가 갖고 있는 방어구에 열선 회로만 일부 옮기면 될 거 같은데?”
헤파이스토스와 토니에게서 드워프의 마력 공학 지식을 두 차례나 받은 진수다.
새로 기능을 구현하지는 못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물건 둘을 결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마력 회로와 꽤 오래 씨름한 결과 마력 운용에 따라서 켜고 끌 수 있는 열선을 방어구에 적용할 수 있었다.
‘자, 이제... 특수임무를 깨러 가보자. 여기 도시도 돕고.’
* * *
낮에 왔던 계곡에 다시 찾아온 진수.
특수임무가 지속적으로 안내를 해주고 있었기에 길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휘이이잉!
싸늘한 바람이 몰아치고 피가 그대로 얼어붙을 것만 같은 찬 공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펑
방어구에 새겨진 마력회로에 푸른 불빛이 들어오며 열을 만들었다.
“내가 추가한 기능이지만 아주 쓸 만하네. 흐흐. 자가 수복 기능도 공유하니까 싸우는 중에 망가질 걱정도 없고.”
진수는 계곡의 위로 올라가 안을 살폈다.
과연 특수임무가 그렇게 바라는 녀석의 정체가 뭔지 확인하기 위해서.
-쿠구궁...
계곡 속의 몬스터도 진수가 왔다는 걸 알아차린 것일까?
거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녀석이 육중한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거체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 진수는 깨달았다.
‘아, 그 특수임무를 준 이유가 이거였구나....’
지금 받은 특수임무를 말하는 게 아니다.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달성했던 변온동물을 전이시키라던 임무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계곡 사이에 누워있던 녀석이 바로 하얀 비늘을 지닌 드래곤이었으니까.
‘미쳤다. 미쳤어.... 나 혼자 저놈을 잡을 수가 있나?’
게이트 사태 이후로 지구에 나타난 몬스터들 중에 가장 위험한 녀석이 뭐냐고 묻는다면 역시나 드래곤이다.
얼마나 그 능력이 강하면 몬스터 하나가 러시아 전역의 기온을 떨어트릴 정도로 영향력을 미칠까.
‘어? 근데 뭔가 좀 이상한데.... 저놈이 굳이 왜 계속 냉기를 뿜는 거지? 드라이아이스도 아니고....’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고 해도 이렇게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이유는 없었다.
진수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인면지주 엘리스의 지식으로 봤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외형이다.
흰 대리석처럼 깨끗한 비늘은 온데간데없고 연한 회색빛의 비늘이 가련하게 붙어 있었다.
그마저도 몇몇 곳은 빠져서 맨 살을 드러내고 있다.
-스으으으...
호흡 소리는 바람이 새는 듯 헐떡인다.
기운 없이 뜬 눈에는 총명함과 아둔함이 섞여 있었다.
‘뭔가 정상이 아니다.’
늙은 것인지, 혹은 어떤 제약이 걸린 상태인지는 모르겠지만 멀쩡한 드래곤이 아니었다.
녀석은 요실금도 아니고 빙기를 질질 흘리는 빙실금에 걸려서 골골대고 있는 것이었다.
-인간... 인가.... 스으으으....
드래곤이 몹시 지친 어조로 말했다.
-피해라.... 내가 지내던 세계의 차원의 축이 없으니, 난 한낱 몬스터에 불과.... 스으으....
바람 새는 호흡을 한숨처럼 뱉은 녀석의 눈빛에서 총명함이 완전히 사라졌다.
-쾅!
놈은 이내 꼬리를 휘둘러 진수가 있던 자리를 후려쳤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그가 재빨리 피하지 않았다면 바로 짓뭉개질 뻔 했다.
‘미친, 저 덩치에 이런 속도라고?’
노화한 듯 보이는 몸이지만 엄청난 빠르기였다.
그는 [빙의]로 섀도우 호크 찜닭의 오러를 몸 위에 덧씌웠다.
-슈슉
드래곤의 공격 범위 밖이 아니라 오히려 안으로 파고든다.
계곡 내부는 온통 그림자의 세상.
찜닭의 힘을 사용하기에 아주 적합했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야. 내 공격은 씨알도 안 먹히고.’
마치 산에다가 주먹질을 하는 것 같았다.
반면에 녀석의 공격은 산사태나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수가 계곡으로 들어가 정면승부를 건 것은 이유가 있었다.
‘공략법을 봤으니까. 심지어 같은 종류의 드래곤이야. 분명히 먹힌다.’
약을 올리듯 비늘이 빠진 곳을 집중해서 때린다.
비록 비늘이 없는 맨 살이라고 해도 진수의 공격은 모기가 무는 것처럼 거의 타격이 없었다.
그렇지만 놈의 신경을 건드리는 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크아아!
좁은 계곡 속에서 포효하며 분개하는 드래곤.
축 늘어져있던 두 쌍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이내 파닥거리며 몸을 띄우기 시작했다.
“어? 뭐야, 왜 날아?”
브레스를 유도했는데 갑자기 드래곤이 비행을 시도한다.
진수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라 [빙의] 대상을 찜닭에서 엘리스로 변경했다.
[강철 거미줄]의 대가이니 드래곤의 힘겨운 날갯짓을 막아줄 수 있으리란 계산이었다.
-푸슉! 푸슉!
과연 인면지주의 힘을 받으니 거미줄이 날아가는 게 다르다.
주선생일 때처럼 거미줄의 끝에 마력탄을 부착해 더 멀리, 더 높이까지 쏘아냈다.
순식간에 [강철 거미줄]이 드래곤의 날개와 뒷다리를 묶었다.
살짝 떠올랐던 거대한 몸뚱이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녀석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강철 거미줄] 따위는 손쉽게 끊어버렸겠지만 지금은 날아오르는 것만도 힘에 부치는 정도였다.
-쿵...!
대가리부터 바닥에 처박으며 떨어진다.
마력의 제어가 더욱 힘들어졌는지 한층 더 강한 냉기가 사방으로 뿜어 나왔다.
눈이 살짝 풀린 드래곤이 고개를 쳐들고 진수를 노려보았다.
-후우웁!
직후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진수의 눈이 빛났다.
그가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슈욱
그의 몸 위로 덧씌워진 거미 형상이 변한다.
이번엔 원숭이의 모습이었다.
-펑 펑 펑
[빙의]로 제천대성 손오공을 불러낸 것이다.
제천대성 특유의 분신술과 [분열]이 [융합]으로 결합되며 다수의 작은 진수들이 나타났다.
녀석들은 한껏 벌린 드래곤의 입속으로 돌진했다.
거의 입이 찢어질 지경으로 가득 찬다.
-콰아아아!
엄청난 충격과 함께 마력 파동이 일어났다.
특수임무 보상으로 전달 받았던 기억보다도 훨씬 강력한 위력이었다.
‘늙어서 마력 제어를 못 하는 거였나 보다.’
드래곤은 나이를 먹을수록 마력이 강해지는 특징이 있다.
이토록 강력한 브레스를 사용하는 녀석이라면 굉장히 나이가 많은 개체임이 분명했다.
너무도 강대한 마력에 비해 제어력이 부족해지니 사방에 냉기를 흘리게 된 것이리라.
‘이렇게 대단한 드래곤도 차원의 축이 없으면 사고력이 몬스터 수준이 된다는 거지....’
진수는 오싹함을 느꼈다.
저쪽 차원에서 보여준 드래곤의 모습과 눈앞의 드래곤이 흘리듯 한 말.
두 가지를 종합해보면 차원의 축이 없으면 종족 자체의 수준과 지능이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단한 수준의 마력공학 장비를 만드는 드워프들도 이쪽 차원에서는 제법 손재주가 좋은 몬스터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 세상에서도 차원의 축이라는 게 없어지면 사람이 몬스터 수준으로 떨어지게 될 지도 모르겠네....’
-푸스스스...
진수가 드래곤의 뒤에 숨어 잡념을 떠올리는 사이 브레스가 멈췄다.
이어 온몸의 비늘을 열어 들이마셨던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후우... 미안하지만, 나도 살아야하니까.”
[성창 소환]으로 빛의 성창을 소환한다.
이어 꼬리 아래쪽, 비늘이 열린 위치에 창을 깊게 찔러 넣었다.
-쿠워어어억!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드래곤.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 나오며 진수의 온몸을 뒤덮었다.
“으윽...!”
진수는 아예 눈을 질끈 감고 창을 더 깊게 밀어 넣었다.
창대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들어갔다.
녀석의 온몸에 휘도는 마력이 빛의 성창에 의해 가로막힌다.
마력의 흐름이 정체되고 거대한 힘이 차곡차곡 쌓였다.
-펑!
이내 브레스로 분출되지 못한 마력이 드래곤의 체내에서 폭발했다.
비늘 안쪽으로 찔러 넣은 공격으로 타격을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화이트 드래곤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화이트 드래곤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특수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마력 +30
마력 폭발로 계곡에 처박힌 진수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하, 하하. 내가 [차원 전이] 덕분에 드래곤을 다 잡아보네.”
그는 전이자 목록에 들어간 화이트 드래곤을 보았다.
“화이트 드래곤이니까 이름은 흰둥이라고 하자.”
화이트 드래곤 흰둥이는 전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쇠한 모습이었다.
회색의 비늘과 기운 없는 표정.
수명 자체가 얼마 안 남은 듯했다.
‘이렇게 고생해서 전이시켜놨는데 밥값은 하게 만들어야지.’
진수는 상점을 열었다.
탈피
‘내가 기억하는 대로면 이걸로 해결이 될 거 같은데....’
진수는 상점 목록에서 원하는 종류의 특성을 찾았다.
다만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핸드폰으로 잠시 검색을 해보았다.
‘아, 역시. 이게 맞네.’
헌터위키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은 그는 지체하지 않고 특성을 구입했다.
-[바닷가재] 특성을 전달할 전이자를 선택하십시오.
무려 50골드를 사용해 구입한 것은 바로 [바닷가재] 특성이었다.
그는 늙은 화이트 드래곤에게 특성을 전달했다.
‘이게 의도한대로 먹혀야 될 텐데.’
바닷가재.
흔히 랍스터라고 부르는 생물이다.
바닷가재에는 아주 신기한 특징이 있는데, 일반적인 생물들과는 노화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영생에 가까운 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를 먹고 탈피를 할수록 힘이 세지고 외피도 더 단단해진다.
몸이 약해지는 노화가 없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무한정 살 수 있다.
다만 점점 외피가 두껍고 단단해져 탈피가 힘들어지는 탓에 결국 탈피에 실패해 자연사를 하는 독특한 녀석이다.
‘드래곤도 파충류 쪽이니까 탈피를 할 거고.... 바닷가재처럼 노화가 사라지면 다시 쌩쌩해지겠지. 저쪽 차원에선 지능도 높고 마력도 빵빵해서 탈피하다 지쳐 죽진 않을 거야.’
현대의 생물학 정보와 [차원 전이]의 상점을 이용할 수 있기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지금껏 [융합]의 영향으로 여러 특성을 얻어 본 결과, [불곰]이나 [발키리] 등의 특성은 이름에 걸맞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진수는 [바닷가재]도 탈피를 하는 몬스터에게 비슷한 효과를 줄 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특수임무 발생
-특수임무 : 몬스터 20마리 차원 전이시키기 !
-보상 : 화이트 드래곤 [흰둥이]의 탈피 성공
특성을 전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수에게 또 다시 특수임무가 나타났다.
아무 몬스터나 20마리를 전이시키라는 내용.
진수는 상세 내용을 안 봐도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느낌표를 눌러 설명을 확인해봤다.
-노화로 인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던 화이트 드래곤 [흰둥이]. 당신의 도움으로 [흰둥이]에게 회춘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한 차례 탈피 과정을 거쳐 늙고 손상된 육신을 되살리려 합니다. 탈피에 필요한 영양 공급을 위해서 종류에 상관없이 먹잇감이 될 몬스터를 전이시키십시오.
‘딱 좋다. 여러모로 좋은 임무를 받았어.’
특수임무의 상세 설명에 적힌 종류에 상관없이라는 말.
몬스터 종류마다 한 개체만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 블라고베셴스크 주변에는 블루 오아시스로 인해서 강화된 몬스터들이 늘어난 상태였다.
늙은 화이트 드래곤이 내뿜던 추위 때문에 잠자코 있던 녀석들이 날뛰기 시작할 것이다.
어차피 도시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면 처리해야 하는 놈들인데 임무 보상까지 받으며 몬스터 사냥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자식들, 목 씻고 기다려라.”
진수는 양손에 도끼와 망치를 꺼내 들었다.
-아이스 슬라임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아이스 슬라임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하얀 불꽃이 얼음 알갱이로 이루어진 슬라임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이것으로 특수임무가 요구한 20마리를 모두 전이시켰다.
“슬라임에 무슨 영양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골고루 먹으면 좋겠지 뭐.”
무기들을 갈무리 하는 그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특수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흰둥이]가 탈피를 시작합니다.
-탈피 과정 중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성공적으로 탈피가 진행됩니다.
‘어? 임무 보상으로 그냥 뿅하고 탈피를 시켜주는 게 아니었어?’
진수가 의아해하는 사이 흰둥이가 전이된 20마리의 몬스터를 게눈 감추듯 빠르게 잡아먹었다.
-큰턱곰 [이름 없음]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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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슬라임 [이름 없음]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내구 +1
녀석이 몬스터들을 섭취한 덕분에 사망 보상을 스무 번이나 받을 수 있었다.
보상의 총합은 힘 +3, 민첩 +2, 체력 +5, 내구 +3, 마력 +1, 골드 +30을 받았다.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니까. 열심히 전이시키길 잘 했어.’
흰둥이가 이내 몸을 둥글게 말더니 온몸에 막 같은 것이 생겨난다.
허물이 생긴 것이다.
-[흰둥이]의 탈피 과정 중에 퍼진 마력을 감지한 몬스터들이 접근합니다.
-탈피 중에 공격을 받으면 탈피에 실패하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상태창에 나타난 그림으로 봐서는 이제야 겨우 코끝부터 허물을 벗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워낙에 나이가 많은 드래곤이었기에 탈피에 큰 힘이 들었다.
[흰둥이] - 현재 상황 : 수정 산맥에서 탈피 중 헬 스케빈저 떼와 대치
‘헬 스케빈저면 뼈부터 배설물까지 가리지 않고 씹어 먹는 몬스터잖아.... 이거 방법이 없나?’
거대한 턱을 지닌 네 발 짐승 형태의 몬스터다.
일종의 하이에나 같은 녀석으로 식탐이 많고 먹을 수 있는 것은 가리지 않고 모조리 씹어 먹는다.
그만큼 공격성도 강한 녀석들이라 일단 만나면 전투를 피할 수 없었다.
‘수정 산맥이면 괴물왕녀 무리가 있는 지역이지. 나우시카가 실피드니까 바람 정령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술을 찾아봐야겠다.’
상점의 목록을 다시 살펴본다.
비록 화이트 드래곤을 전이시키고 먹잇감을 보내주면서 다수의 능력치가 올랐다고 해도 녀석이 탈피를 마치면 능력치 몇 십 정도는 훨씬 뛰어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진수의 입장에서는 절대 흰둥이가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
-[흰둥이]가 헬 스케빈저 떼와의 전투를 시작합니다.
-탈피 중이므로 능력의 10%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드래곤 브레스]의 사용이 제한됩니다.
-[드래곤 피어]의 사용이 제한됩니다.
-[용언 마법]의 사용이 제한됩니다.
“야이...! 그게 다 제한되면 그냥 덩치 큰 도마뱀이랑 뭐가 달라?”
거의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상태창의 전이자 목록에서 흰둥이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인다.
몸 위로 두꺼운 허물을 달고 둔한 몸놀림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헬 스케빈저들은 전이자가 아니니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흰둥이의 허물에 조금씩 상처가 생기는 것으로 보아 사방에서 할퀴고 물어뜯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다른 전이자들은 뭐 하냐고...!’
속이 끓는 진수의 눈앞에 새로운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고블린 [고돌]이 공격받는 [흰둥이]를 발견했습니다.
-[흰둥이]가 당신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 [고돌]이가 전투를 돕습니다.
무리에 속하지 않은 채 돌아다니던 고돌이가 수정 산맥에 도착한 것이다.
“고돌아! 요 이쁜 것! 혼자 싸우지 말고 다른 애들도 불러라.”
진수는 고돌이의 등장에 소리를 질렀다.
이어 상점에서 10골드로 [바람의 속삭임] 기술을 구입했다.
바람에 의지를 담아 뜻을 전달하는 기술이다.
바람의 정령인 실피드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제격이었다.
-[고돌]이 [바람의 속삭임]을 사용합니다.
-[괴물왕녀] 무리가 [고돌]의 요청에 응합니다.
괴물왕녀 무리에 속한 전이자들에게 불타는 효과가 적용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둥이는 탈피에 전념할 수 있었다.
-[고돌]과 [괴물왕녀] 무리가 헬 스케빈저 떼를 물리칩니다.
-[흰둥이]가 탈피에 성공합니다.
전투가 끝남과 함께 화이트 드래곤의 탈피도 완료되었다.
회색이 도는 비늘은 모두 순백의 깨끗한 비늘로 변했다.
두 눈빛도 또렷하고 서있는 자세도 꼿꼿한 것이 기품이 느껴진다.
-[흰둥이]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5, 민첩 +2, 체력 +4, 내구 +7, 마력 +10, [흰둥이]의 특성 중 하나
용을 돌본 보상은 충분했다.
많은 양의 능력치와 특성까지.
진수는 자신의 피부 위로 마력으로 된 갑옷이 덧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야, 이게 [드래곤 스케일]의 효과인가?’
흰둥이의 급성장으로 받은 특성이 바로 [드래곤 스케일]이었다.
드래곤이 물리 공격과 마력 공격에 모두 큰 내구도를 지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특성이었다.
게다가 기술이 아닌 특성이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항시 유지가 되는 능력이다.
‘[유체화]가 없었으면 마석정제주사 맞는 게 거의 불가능해질 뻔했네.’
진수가 자신의 팔뚝을 꼬집어보며 생각했다.
힘 능력치도 높고 [상급 악력] 특성까지 지닌 자신의 꼬집기에도 별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흰둥이]가 [괴물왕녀] 무리에 합류합니다.
-[고돌]이 [괴물왕녀] 무리에 당신의 종교를 전합니다.
-제사장 [흰둥이]가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신탁을 내리십시오.
죽을 뻔했다가 고돌이 덕분에 살아난 흰둥이였기에 가장 앞장서서 진수의 종교를 받아들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전이시킨 녀석들 중에 가장 강할지도 모르고 제일 나이도 많은 전이자다.
‘몬스터도 꼰대가 있겠지...?’
“흠, 흠. 나이 많다고 유세 떨지 말고 모두 서로 평등하게 잘 지내라.”
진수는 혹시 모를 갈등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신탁을 내렸다.
-[흰둥이]가 당신의 신탁을 받듭니다.
[흰둥이] - 현재 상황 : 신탁을 널리 알림 “징크스님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신탁의 효과로 당신을 믿는 이들은 의식 수준이 높아집니다.
이번 신탁으로는 춤을 춘다던지 불타는 효과가 나타나는 등의 작용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파스텔 톤의 오러가 진수의 종교를 믿는 전이자들에게 퍼져나갔다.
왠지 서로 격식 있는 토론을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휴우.... 어쨌든 모두 다 잘 해결이 됐네.”
상태창을 닫은 진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으로 [빙의]로 흰둥이의 힘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콰아아아!
늙은 화이트 드래곤이 있던 계곡으로 돌아와 [빙의]를 사용한 뒤 흰둥이의 브레스를 날려보았다.
계곡 전체가 얼어붙을 정도로 대단한 위력이었다.
‘이거에 맞았으면 아무리 [상급 재생력]이 있어도 바로 냉동식품 됐겠네.’
진수의 현재 마력 능력치가 242라고 해도 원래의 파워를 따라가지 못했다.
앞으로 마력이 올라갈수록 끌어올 수 있는 힘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도시로 돌아갔다.
* * *
어느새 시간은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해가 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낮보다 기온이 따듯했다.
‘날이 풀렸으니까 내일 블루 오아시스 공급하던 놈 잡고, 수돗물에 약 푸는 걸 멈추게 할 수 있겠네.’
진수의 의도대로 일이 잘 해결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내일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골목에서 나왔다.
“김진수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진수를 부른다.
“놈을 해치웠나보군요.”
그는 진수가 화이트 드래곤을 처치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화이트 드래곤과 싸울 때 [사신의 감각]에는 주변에 아무도 감지되지 않았기에 진수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진수씨 당신, 아주 대단한 양반이야. 이대로 둘 수는 없겠어.”
나 말릴 생각은 하지 말아요
골목에서 진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디에고였다.
“절대 당신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지.”
그는 매서운 눈빛을 쏘아냈다.
“제 주변부터 시작해서 몬스터 생태 연구를 하는 학회, 인터넷 등등 알릴 수 있는 곳에는 다 퍼트리고 다닐 거예요. 세상에, 신이시여. 그 강력한 녀석을 봤음에도 밤에 몰래 나가 해치우는 용기라니.”
정말 신에게 말이라도 거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감탄했는지 그 표정이 나라를 구한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추위가 러시아의 사람들한테 얼마나 큰 고통을 주고 있었는데요? 그걸 몰아낸 사람이 이렇게 조용히 도시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간다? 말도 안 되죠. 그건 못 참지. 만약에 잘못돼서 크게 다치거나 죽는다 해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던 거죠?”
[차원 전이]를 들키지 않으려 몰래 움직인 것을 멋대로 해석한 디에고.
그는 특유의 이탈리아 어조로 호들갑을 떨었다.
“아마 러시아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면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 거예요. 나 말릴 생각은 하지 말아요. 절대로 입 다물 생각 없으니까.”
아주 굳건한 의지를 표정으로 보여주려는 것인지 미간을 힘껏 찡그리며 말했다.
물론 진수는 나서서 자신을 포장해주겠다는 걸 만류할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로켓몬스터가 중국이랑 러시아까지 진출할 수도 있는데 좋은 이미지 만들어놓으면 나야 나이스지.’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디에고는 아주 환하게 웃었다.
러시아 사람도 아닌데 굉장히 진수의 행위에 굉장히 크게 감탄을 했다.
“그런데... 블라고베셴스크 주변의 몬스터들이 점점 강해지는 건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직까지 원인 파악이 안 돼서....”
그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우선 좀 지켜보죠. 제가 주변에 강해진 몬스터들은 먼저 처치했거든요. 어쩌면 추위를 만든 마력에 영향을 받아서 몬스터도 강해졌을지 모르는 거니까요.”
내일 아침이 밝으면 파벨과 함께 블루 오아시스를 제공하던 인물을 만날 것이다.
날씨가 따듯해졌으니 수돗물에 약을 타는 걸 멈추게 할 수 있고, 블루 오아시스의 공급책은 직접 잡을 예정이니 모든 게 해결된다.
“오우, 거기까지 생각을 해두었다니! 대단하네요. 진짜 훌륭해요.”
디에고는 양손을 휘저으며 놀랍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래요. 일단 진수씨 말대로 상황을 더 지켜보죠. 저는 저 나름대로 몬스터들 동태를 지켜볼게요. 물론 아까 말한 대로 진수씨가 이 지긋지긋한 추위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를 열심히 퍼트릴 거고요.”
그는 진수가 자신의 숙소로 가는 내내 따라 붙어서 그에 대한 칭찬을 했다.
이제는 제발 그만 하고 돌아가라고 사정한 끝에야 칭찬 세례를 멈출 수 있었다.
“휴우.... 화이트 드래곤만큼이나 피곤한 상대였어.”
숙소에 들어온 진수는 지친 몸을 뉘였다.
추켜세우는 말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디에고의 말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는지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실제로 화이트 드래곤이 일으킨 추위 때문에 헌터 인력이 충분치 않은 러시아 지역에서는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진수가 말로 하는 칭찬으로 다 보답하기 어려운 일은 해낸 것이 사실이었다.
-[공방] 무리가 [스카이피아] 무리와 조우합니다.
이제 쉬려는데 그의 눈앞에 새로운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드워프의 유물을 찾아다니고 있는 공방 무리가 비행 몬스터들로 이루어진 스카이피아 무리와 만난 것이다.
-드워프 [헤파이스토스]가 당신의 종교를 [스카이피아] 무리에 전합니다.
-불새 [불닭]이 제사장 역할을 맡습니다.
이번엔 다행히 큰 갈등 없이 두 무리가 교류했다.
‘근데 저긴 왜 간 거지? 전도하러 간 건 아닐 거 아니야.’
진수는 잠시 드워프들이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공방 무리의 목적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공방] 무리가 공중 신전에서 드워프의 유물, 공중 신전의 수호자를 발견했습니다.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3, 내구 +7
천안에서 찾았던 석상의 머리.
그걸 전이시키면서 복구됐던 공중 신전의 수호자가 드워프의 세 번째 유물이었던 것이다.
-[공방] 무리의 드워프들이 공중 신전의 수호자를 강화합니다.
난쟁이들이 뚝딱뚝딱 움직인다.
지금까지 이쪽 차원에서 보내준 새로운 지식, 자료를 바탕으로 유물을 더욱 개선시키는 듯했다.
-공중 신전의 수호자가 강화되었습니다.
-공중 신전 전체의 방호 수준이 높아지며 차원의 축이 드러납니다.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50
“와, 골드가 50? 러시아에 와서 이리저리 많이 썼는데 결과적으론 오기 전보다 골드가 더 많아졌네. 역시 오길 잘 했어!”
자려고 누웠던 진수는 보상을 보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나저나 전이자들이 많아져서 그런가, 요즘 부쩍 활동이 늘어나는 거 같네.’
전이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일수록 보상을 주니 진수에겐 나쁜 일이 아니었다.
다만 파투스교라는 놈들이 너무 잠잠한 것이 불안했다.
“골드는 가능하면 최대한 아껴놔야겠어.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그는 상태창을 잠시 살핀 뒤 이내 눈을 감았다.
* * *
블라고베셴스크 상수도 처리 시설에서 일하는 파벨과 만나기 위해 출발한 진수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날이 따뜻해졌기 때문인지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특히 술과 블루 오아시스에 취해 누워있던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었고 헌터들의 활동이 재개된 듯했다.
내심 뿌듯한 마음으로 그들을 보며 걸어가던 진수에게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이 말을 걸었다.
“어이, 동양인. 어디서 왔어? 응? 중국? 한국? 일본?”
상당히 불량스러운 말투.
사내들 중 일부는 머리를 깨끗하게 밀기도 했기에 말로만 듣던 스킨헤드인가 싶었다.
“한국에서 왔는데. 왜?”
진수가 싸늘하게 대꾸했다.
러시아에서 스킨헤드가 인종차별을 일삼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만약 이들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면 주저 않고 참교육을 해주려했다.
“어우, 김진수. 이름이 혹시 김진수야?”
한국 사람이라는 대답에 돌아온 것은 진수의 이름.
생각지도 못한 물음이었기에 그는 얼떨결에 의심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쪽이야! 여기!”
그의 이름이 김진수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내들 중 가장 덩치가 크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 소리쳤다.
덩치에 걸맞은 우렁찬 목청이었다.
블라고베셴스크 거리에 진수를 발견했다는 외침이 퍼지니 전투 헌터뿐만 아니라 가게 주인, 비각성자들까지 우르르 몰려왔다.
“고맙네, 고마워!”
덩치 큰 남자가 진수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를 필두로 달려온 러시아 사람들이 하나같이 감사를 표했다.
몇몇은 진수의 주머니에 몬스터 부산물이나 가공품, 하다못해 빵조각까지 집어넣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소매넣기구나...!’
진수는 대충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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