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16
나오시죠
솜털이 일어서며 온몸에 적절한 긴장감이 생긴다.
[야성] 특성이 더욱 강화되었음을 느낀다.
손끝에서 전투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마치 오랜 기간 목숨을 건 싸움터에서 살아온 사람처럼 감각이 예리해졌다.
‘고돌이다.’
진수는 [빙의]를 통해 자신에게 힘을 빌려준 존재가 누구인지 직감했다.
그에게 [야성] 특성을 준 녀석.
최초로 [차원 전이]를 통해서 전이가 되었던 몬스터.
카토 검투장의 챔피언.
종족을 초월한 행보를 걷고 있는 고블린.
그는 조민준의 연구실 한 구석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섰다.
몸 위로 익숙한 고블린의 형상이 희끗하게 덧씌워져 있었다.
‘[접신]이니 [신의 축복]이니 나한테 그런 것들은 다 필요 없는 거였어.’
진수는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괴물들이 살고 있다.
이렇게 자신과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들이 또 어디 있을까.
“여기 혹시 맘껏 힘 써볼 수 있는 공간이 있나요?”
그는 새로 깨달은 [빙의]의 사용법을 테스트 해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 * *
연구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방.
벽면에 충격과 마력을 흡수하는 소재가 겹겹이 둘러져 있어서 파괴력이 강한 기술들을 테스트하는 데에 사용하는 곳이다.
특수 소재로 된 창문을 통해 그 내부를 보고 있는 조민준.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빙의]가 생겼다던 진수가 상상 이상의 능력들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샤악!
커다란 헬 그림리퍼의 오러가 낫을 휘두른다.
몇 겹이나 되는 보호 소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곧 오러의 형상은 드레이크로 변하더니 브레스를 뿜었다.
돌연 불새의 모습이 되어 방을 화염으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온갖 몬스터의 형태를 가지는 오러.
조민준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빙의된 게 혹시 메타모.... 아,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그는 혼자 보랏빛의 무표정한 몬스터를 떠올렸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햐, 대박이다....”
[빙의]로 여러 전이자들의 힘을 사용해본 진수의 감상이었다.
어찌나 몰입해서 테스트를 해봤는지 마력이 거의 고갈될 지경이었다.
그의 현재 마력 능력치는 153.
어지간해서는 마력이 모두 소진되기 힘든 정도였다.
다시 말하면, [빙의]에 사용되는 마력 소모량이 상당하다는 의미도 됐다.
‘앞으로 마력 능력치가 더 중요하겠어. 내 마력이 높을수록 전이자들의 힘도 더 많이 끌어다 쓸 수 있으니까.’
조민준의 연구실에서 [빙의]를 수없이 사용해본 그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전이자 목록에 있다고 해서 모든 힘을 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이를 시킨 지 기간이 오래된 녀석들일수록 더욱 많은 힘을 주었다.
추가로 진수의 종교를 받아들인 무리에 속한 경우 [빙의]가 더욱 수월했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힘으로 꿀릴 일은 없겠어.’
진수가 방에서 나오자 조민준이 쪼르르 달려왔다.
“도깨비! 진짜 도깨비인 거 아니에요? [빙의]랑 관련된 다른 특성이나 기술이 없다면서요?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뭔가 다른 특성이 적용되는 게 있던가요? 느낌은 어때요? 어떤 종류의 존재들이 힘을 빌려준 거죠?”
쉴 틈 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궁금해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
진수는 그를 보며 답했다.
“조민준씨 말대로 조상님이 도우셨나 봐요. 하하. 그냥 [빙의]를 사용해보니까 되던데요?”
“그게 말이 되나...?”
벙찐 표정을 짓고 있는 조민준에게 씨익 웃어 보인 진수는 연구실을 떠났다.
그의 환한 미소는 오래도록 유지됐다.
‘이제 더 이상 숨어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
* * *
-딸랑
강남의 한 카페.
문이 열리면서 작은 종이 울렸다.
꽤 큰 카페였지만 안에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문 열리는 소리가 나자 실내에 있던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음, 내가 먼저 왔나?”
진수는 장내를 한 번 쓱 훑어보았다.
유재찬과 심선우를 만나기로 했는데 카페에 있는 사람들 중엔 없었다.
“어? 언제 왔어?”
그가 카페 안을 살펴보는데 곧이어 유재찬이 등장했다.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빼입고 있었다.
“방금. 근데 그 복장은 뭐야? 멋있는데.”
“아, 오늘 우뢰매가 함께 하기로 한 헌터들도 데려온다고 그래서. 어때? 사무장 뭐 그런 느낌이 나나?”
옷에 먼지를 터는 시늉을 하며 잰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아직 D급이잖냐. 그래서 헌터 대 헌터로 이야기하기엔 좀 면이 안 서더라고. 조만간 C급 진급 심사도 볼 거야. 균열 방어를 꽤 다녔으니까... 잘하면 붙을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래, 아무래도 헌터들 사이에서는 등급이 기준이 되니까.”
진수는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F급 헌터로 3년을 지냈는데 헌터들의 습성을 모를 리가 없었다.
진수와 유재찬이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선우가 나타났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세 명의 헌터들과 함께, 총 넷이 왔다.
“어?”
“저 사람은....”
진수와 유재찬 모두 심선우와 함께 온 인물을 알아봤다.
커다란 근육과 튼튼한 방어구를 갖춘 전투 헌터.
이천시에서 본 적 있는 A급 헌터 이종학이었다.
헌터넷에서는 바위곰이라고 불리는.
“어이구, 여기서 보네요?”
이종학도 진수를 기억하는지 아는 체를 했다.
이에 심선우는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이종학씨, 진수씨를 어떻게 아시네요?”
“아아, 이천시에 있을 때 만난 적이 있어요. 헌터넷에 떠도는 것처럼 다투거나 했던 건 아니고....”
“다퉈요? 두 분이 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거예요?”
헌터넷에서 한 때 진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이종학과 싸워서 이겼다는 소문도 퍼졌었다.
악수에서 밀린 이야기가 와전되었던 것인데 은근히 마음에 담고 있었던 듯했다.
그 탓에 헌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심선우에게까지 오해를 받게 생겼다.
“아뇨, 안 좋은 일은요. 그냥 남일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이 헛소리 한 거죠.”
진수가 나서서 부인하자 심선우는 아 그렇구나 하며 수긍했다.
같은 A급 헌터 중에서도 더 강한 것으로 알려진 그가 진수의 말에 순순히 납득하자 이종학은 의문이 들었다.
‘저 김진수란 녀석은 B급 헌터인데 왜 심선우가 고분고분하지?’
그가 아는 우뢰매는 선하지만 남에게 휘둘리는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선한 가치관을 밀어붙이는 경향이 컸다.
“그런데 심선우씨는 여기 이 친구를 어떻게...?”
“아아, 제가 오늘 소개해드린다고 했던 분이 진수씨예요. 앞으로 우리가 함께 일할 단체의 대표님이기도 하고요.”
심선우의 말에 그와 함께 온 세 명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종학과 그의 공략조원 둘.
이천시에서 악수를 통해 그가 예사 인물이 아님은 알았지만 결국 구름거인을 해치운 건 주선생이라고 알려졌다.
“종학이 형, 우리가 겨우 저런 녀석 밑에 있자고 온 건 아니잖아요.”
“솔직히 심선우가 따른다길래 적어도 A급이거나 S급은 될 줄 알았는데.... B급이라뇨. 이건 좀 오반데....”
이종학의 뒤에 있던 둘이 구시렁거렸다.
‘이 녀석들 말도 일리가 있지. 심선우를 혹하게 만든 게 뭔지도 궁금하고....’
조원들의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이 짐짓 화난 것처럼 변했다.
“심선우씨. 진심입니까?”
이종학의 태도가 변하자 심선우는 재밌다는 듯 눈을 빛냈다.
사람의 내면을 얕게나마 훑을 수 있는 [천둥새] 특징을 가진 그.
그의 눈에는 지금의 상황이 꽤나 흥미롭게 보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싱글거리며 되묻는다.
이에 이종학의 얼굴이 더 굳었다.
“우리는 A급 헌터인 심선우씨의 말만 믿고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B급 헌터를 대표로 모시라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아요?”
언성이 조금씩 높아진다.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카페에 먼저 와있던 이들도 모두 심선우가 부른 헌터들이었다.
그가 카페를 통째로 대여했기에 손님이 얼마 없었던 것이다.
“결국 제가 못미덥다는 이야기인 거죠?”
이종학의 물음에 반응한 것은 진수였다.
“정확히 이해했네요.”
“이번엔 악수 정도로 넘어갈 것도 아니고요.”
“손아귀 힘이 몬스터를 잡아주는 건 아니니까.”
당연한 소릴 하냐는 듯한 이종학.
“나오시죠.”
진수는 짧은 답을 한 뒤 먼저 카페 밖으로 나섰다.
그의 뒤로 유재찬이 따라 붙으면서 안절부절 못했다.
“야, 어쩌려고 그래? 바위곰이야, 바위곰! A급 헌터라고. 중요한 날인데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하지만 막상 장본인인 진수의 얼굴은 그저 평온하기만 하다.
오히려 씨익 웃어 보이는 여유까지.
그런 그들의 뒤로 이종학과 그의 공략조원들, 심선우 그리고 카페에 있던 모든 헌터들이 따라서 나왔다.
근처 한적한 공원으로 향한 그들.
진수와 이종학이 마주보고 있고 다른 헌터들이 크게 원형을 그리며 구경했다.
“그냥 실력 검증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가볍게 내기라도 할까요?”
A급 헌터 이종학은 꽤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B급 헌터인 진수는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았다.
아예 내기를 하자고 나선다.
이종학은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날 너무 얕보시네.”
“그런 건 아니고요. 최근에 발전이 좀 있어서.... 하하. 어쨌든, 내기에 응하시겠어요?”
“그래, 중요한 걸 건다면 좀 진지하게 나오겠지. 내가 한 팔만 사용할 테니 날 이겨 봐요. 만약 내가 이긴다면 단체의 대표 자리를 가져가죠.”
이종학이 한쪽 손으로 뒷짐을 진다.
그의 모습에 진수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제가 한손만 쓸게요. 이종학 헌터님은 두 손 모두 쓰시고, 대신 제가 이기면 종신 계약 맺는 걸로.”
진수가 한 손을 내밀어 도발하듯이 까딱거렸다.
“젊은 친구가 너무 건방지네. 정 객기를 부리겠다면 받아주죠.”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이종학은 바로 온몸에 마력을 둘렀다.
과연 바위곰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아주 흉폭하면서도 단단한 기세였다.
이어 체구도 커지고 양팔이 길어졌다.
정말 곰이 연상되는 외형으로 변했다.
“크하앗!”
네 발로 빠르게 돌진하는 이종학.
순식간에 진수의 코앞까지 내달렸다.
그대로 몸을 둥글게 말며 회전하기 시작한다.
이종학의 메인 공격 기술 [롤링 대시]였다.
-콰드드득!
굉장한 속도로 회전하며 몸 전체가 하나의 공처럼 변했다.
짓쳐들던 힘을 그대로 받아 기술에 녹여내니 훨씬 강력해졌다.
평범한 사람은 풍압만으로도 피부가 찢어질 정도의 위력.
이종학은 전력으로 진수에게 부딪혀갔다.
‘팔다리 하나 정도는 부러트려주지!’
[롤링 대시]로 사지 중 하나를 부러트린 뒤 곧바로 자신의 장기인 힘으로 제압한다.
이종학에겐 그럴 듯한 계획이 있었다.
-쾅!
진수에게 얻어맞기 전까지는.
진수는 자신의 공약대로 오직 한 팔에만 희끗한 오러를 두른 뒤 달려드는 이종학을 후려갈겼다.
단 한 방.
공격 한 번에 힘과 내구로 A급 헌터까지 오른 바위곰을 기절시켜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수많은 헌터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상대가 한 손만 쓰겠다고 했으면 의심을 했어야지.’
사실 그가 한 손만 사용하겠다고 한 것 자체가 트릭이었다.
[빙의]를 한 곳에 집중하면 더욱 많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러 상대방을 도발하기 위해 조건을 내건 것이다.
그의 속임수에 제대로 걸린 이종학은 정면으로 달려들었고, 오른손에 집중된 평천대성 [흑우]의 힘에 곧장 혼절해버렸다.
-우두둑
덕분에 진수의 오른팔도 완전히 산산조각 났지만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어차피 [상급 재생력]이 회복을 시켜줄 테니까.
지금 주변에 있는 헌터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길 필요가 있었다.
그의 계산은 적중했고, 당연히 이종학의 압승을 예상하던 헌터들의 머릿속에 김진수라는 인물이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사실 이종학의 의도와도 부합한 결과였다.
정말로 그가 정말로 불쾌감을 느껴서 시비를 걸었던 게 아니라 심선우가 진수를 신뢰하는 이유를 확인하고 따를만한 인물인지 시험을 해보려던 것이었다.
이러한 의도를 알아차린 심선우도 둘이 맞붙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다만 진수가 그들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강했기에 지금의 상황이 되었다.
“또 제 등급에 불만이나 의심을 갖고 있는 분 계신가요?”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른 이들을 둘러본다.
그 누구도 진수를 의심하는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진수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는 유재찬을 보며 말했다.
“이번에 진급 신청할 거라고 그랬지? 같이 가자. 진급하러.”
‘중국에 넘어가기 전에 먼저 여기 교통정리를 좀 해놓고 가야겠어.’
A급
“와, 미쳤다, 미쳤어. 햐.... 이게 말이 되나? 나, 다시 형님이라고 불러야 될 것 같은데...?”
유재찬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는 진수가 어제 이종학과의 대결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 뒤부터 쭉 엄청나게 흥분한 상태였다.
“아, 형님은 무슨 형님이야. 나이 많아 보이게.”
“막 중국 사람들이 따거, 따거 하는 것처럼, 응?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거지.”
“그런 이야기면 더더욱 접어줄래? 안 그래도 그놈의 따거들한테 아주 질리도록 시달렸었거든.”
RD의 인원들이 윗사람을 부르던 호칭이 형님, 오라버님이었다.
그게 사실은 따거라고 부르는 것을 번역기 돌린 것처럼 한국어로 형님이라 말했던 것이다.
‘이 인장 반지를 착용한 뒤에 알아차릴 수 있었지.’
진수는 자신의 손에 자리 잡고 있는 주해응의 인장 반지를 보았다.
통역 기능이 있고 소리를 내는 종류의 기술을 강화시켜준다.
게다가 원 주인에게 착용자가 말하고 듣는 언어를 전해주는 비밀 기능까지 가지고 있는 물건.
이제 주해응이 죽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말소리가 들어갈까 봐 [차원의 틈]에 넣어둘 필요가 없어졌다.
“캬~ 그러면 나는 더 좋지! A급 헌터랑 친구를 먹다니! 그것도, 거의 중고 신인급 아닌가? 심사 과정 보니까 그냥 막 막힘없이 해치우더만.”
유재찬은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니, 예전에 같이 균열 막을 때는 그 정도가 아니었잖아? 이젠 아주 힘만 가지고도 A급 올라갈 수 있겠던데. 곧 S급 진급 하겠다 그러는 거 아냐?”
“아, 오버 좀 하지 마. 흐흐.”
낯간지럽다는 듯 말하지만 웃음이 저절로 새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A급 진급 심사 과정은 일사천리로 흘러갔으니까.
A급 수준에 맞춘 여러 과정들을 전혀 어려움 없이 통과했다.
그 모습에 같이 갔던 유재찬은 턱이 빠질 뻔했다.
비록 그의 C급 진급은 탈락했지만 말이다.
“거기다 힘뿐인가요? 실질적인 전투 능력은 더 대단하던데요.”
심선우가 다가오며 유재찬의 말을 이어 받았다.
동시에 오른손 엄지를 추켜세운다.
과연 한국의 A급 헌터 중에서도 S급 후보로 거론되는 이의 칭찬은 무게감이 달랐다.
하지만 누구라도 진수의 심사 과정을 봤다면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줬으니까.
“제가 진수씨를 믿었던 건 싸움 실력 때문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더 신뢰가 가네요. 이제 진급도 했으니까 이종학씨 때처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애초에 이종학씨도 진심으로 불만을 가졌던 건 아니었지만요.”
어제 대결 후 정신을 차린 이종학은 진수에게 깊이 사과했다.
자신이 일부러 그의 실력을 보기 위해서 일을 키웠음을 밝히고 내기대로 종신 계약까지 약속했다.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던 심선우도 옆에서 이종학의 사과를 거들어 큰 마찰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충분하진 않아.’
이종학과의 대결 후 나머지 헌터들과 모여서 대화를 나누었다.
워낙 엄청난 광경을 본 뒤라 그 누구도 진수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수가 기억하는 것은 대결 이전의 눈빛들.
겨우 B급 헌터가 오래도록 A급을 유지하던 헌터에게 덤비는 걸 그저 흥밋거리 정도로 보던 모습들이 깊게 남았다.
“이제 우리 단체가 정식으로 오픈을 하고 세상에 선보여야 돼요. 그런데 절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증명을 하기엔... 너무 비효율적이죠. 별로 유쾌한 일도 아니고요.”
말을 이어나가던 그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데... 심선우씨, 저 좀 도와주실래요? 이종학씨도 필요한데, 그분은 어차피 당분간은 제 말을 거절할 수가 없겠네요. 흐흐.”
진수는 번뜩이며 떠오른 생각을 구체화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 * *
헌터넷의 한 게시판.
하루에도 수많은 게시글이 올라오는 곳에 글이 업로드 됐다.
제목 : 키미태 이번 영상 레전드인듯;
작성자 : 헌터의진수
키미태 처음에 이슈 됏던 컨셉 그대로 찍었더라 ㅋㅋ
대신 날것 같던 영상에서 영상미까지 챙김
이번에 다시 한 번 떡상 가능할듯?
심지어 이번엔 우뢰매까지 나옴 ㄷㄷ
ㅁㅊㄷㅁㅊㅇ
-됏X 됐O
-ㄹㅇ? 요즘엔 옛날처럼 핸드헬드 방식으로 안 찍던데
-키미태 바이럴이네;
ㄴ뭐만 하면 바이럴 ㅇㅈㄹ; 키미태 구독자가 100만 넘긴지가 언젠데 바이럴 하겠냐 ㅋㅋ
ㄴ구독자 100만 넘으면 이제 200만 찍고 싶겠지 빡머갈 인증인가
-와씨 우뢰매가 저렇게 개인 채널에 나온 적 없지 않음? 인맥 지리네;
ㄴㄹㅇㅋㅋ
ㄴㄹㅇㅋㅋ2222
ㄴ우뢰매도 우뢰매인데 영상에 메인으로 잡히는 헌터 옛날 영상에 나왔던 그 사람 아님?
ㄴ무기나 싸우는 방식이 똑같은데
-추억팔이는 못 참지 ㅋ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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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업로드 플랫폼에 올라온 영상에 관한 글이 한두 개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헌터넷이 키미태라는 채널에 대한 이야기로 달아올랐다.
그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정도로 커다란 키미태 채널.
그 채널을 처음 일으켜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상과 비슷한 스타일의 신규 동영상.
인기 A급 헌터, 심선우의 출연.
초기 영상에서 나와서 한참 누구인지 궁금증을 유발했던 인물의 등장.
하나하나가 이슈가 될 법한 내용이었는데 한 동영상에 모두 포함되었던 것이다.
“흐흐흐. 그래 더 활활 불타라.”
진수는 핸드폰으로 헌터넷의 여론을 살펴봤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영상이나 다시 한 번 봐볼까?’
진수는 헌터넷을 닫고 키미태라는 영상 채널로 들어갔다.
이번에 흥한 영상은, 균열을 막는 헌터의 모습이었다.
마치 드론이나 헬리캠을 이용해서 찍은 것처럼 몬스터와 싸우는 이의 근처에서 카메라가 돌아갔다.
몬스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도끼를 던져가며 괴물들을 학살하는 모습.
뒤이어 심선우까지 나타나며 벼락으로 놈들을 쓸어버린다.
단 둘이서 균열 하나를 완벽하게 막아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상당한 임팩트를 주었다.
“저, 저기 김진수 헌터님. 이제 곧 라이브 돌아가요.”
동영상을 보던 진수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쭈뼛거리는 태도.
여리여리한 체구의 소년은 키미태 채널의 주인, 이기태였다.
대규모 균열 사태 때 아파트 옥상에서 동영상을 찍으려다 진수에게 걸렸던.
“아, 그래. 근데 그 이후로 영상도 많이 찍고 말도 잘 하던데 왜 이렇게 얼었어?”
진수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핸드헬드 기법처럼 흔들리는 영상에 수없이 달렸던 댓글이 ‘다 좋은데 키미퉤가 필요하다’.
이 멀미약 이름인 키미퉤와 원래 닉네임인 기태가 합쳐지며 지금의 키미태가 됐다.
그리고 정말 사명감을 갖고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 한 결과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큰 채널로 성장했다.
이제는 프로 방송인이라고 해도 좋을 이기태가 진수 앞에서 굉장히 긴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목숨의 은인이시고... 제, 제 채널을 있게 만들어준 분이신데요.”
그날은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객기를 부렸지만 지나고 나니 자신이 얼마나 폐를 끼쳤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게다가 나중에 숨었던 아파트를 찾아가보니 완전히 허물어져 흔적만 남아있는 걸 발견했다.
진수의 말대로 채널 떡상은커녕 인생이 떡락할 뻔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가 진수의 앞에서 설설 기는 것이 당연했다.
“자연스럽게 해야 나한테도 도움 되는 거야. 그렇게 어색하게 생방 나가면 내가 뭐 협박해서 찍은 것 같아 보일 거 아냐. 이건 서로 윈-윈인 건데.”
한 번 동영상 플랫폼의 위력을 맛봤던 진수.
이번엔 직접 의도해서 그 효과를 보고자 했다.
이기태에게 메일을 보내서 연락을 하고 동영상을 하나 기획했다.
균열이 발생하면 헌터 협회에 협조를 얻어 진수와 심선우 둘이서 막아내기로.
보통 A급 헌터 혼자서도 충분한데 둘이 함께 하겠다니 헌터 협회에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을 때, 영상의 그 헌터! 이러면서 어그로를 딱! 특별 게스트 우뢰매와 바위곰으로 검색 키워드까지 파박! 영상 조회수 아마 폭발할 걸?”
“마, 맞아요.”
“그러면 난 인터뷰로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어서 좋고. 넌 다시 한 번 채널 떡상할 수 있어서 좋고. 근데 헌터인 난 이렇게 편안~한데 방송 주체인 니가 굳으면 돼? 안 돼?”
진수가 이기태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흔들리던 그의 눈빛이 점점 또렷해지는 게 보인다.
“안 되죠.”
이윽고 완전히 정신을 가다듬었는지 태도가 딴판이 되었다.
“... 감사합니다.”
“별 거 아니지. 시작할까?”
“예. 라이브 돌릴게요. 5... 4....”
이기태가 무언가를 조작하자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카메라가 진수와 이기태를 향해 있고, 실시간으로 보이는 채팅창이 세팅된 노트북이 준비되어 있다.
벌써부터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키하
-키하!
-우뢰매 보러 왔는데 키하가 뭐임?
-키미태 하이란 뜻임
--틀-
-틀,, 아니다,, 이눔들아~!~!
-ㅁㅊ 라이브 시작도 안 했는데 시청자 만 명 실화냐 ㅋㅋ
.
.
.
진수의 [중급 동체 시력]이 채팅 내용들을 빠르게 훑는다.
워낙 겪어본 적 없는 일이라 특성이 있음에도 다 읽기가 쉽지 않았다.
“2... 1.... 안녕하세요! 키미태입니다!”
이기태가 귀 아래쪽을 가볍게 두드리며 인사했다.
진수의 말 덕분인지 자연스러운 모습이 영락없는 방송인이었다.
“예~ 키하! 하하. 순무님 안녕하세요. 아, 용용이님. 구독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방송을 킨 거는요. 이미 공지를 해서 아시겠지만, 특별한 분과 인터뷰를 잡았습니다.”
이기태는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들이 다 보이는 건지 몇몇 채팅들에 반응을 해주었다.
‘[특급 동체 시력]이라도 갖고 있나? 어휴, 난 이런 방송 할 생각도 말아야겠다.’
진수가 다시 눈을 부릅뜨며 채팅창을 본다.
하지만 여전히 적응이 쉽지 않았다.
조금씩 채팅 내용이 보이려는 찰나,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뉴트럴바이오 친구들] 무리가 황금바다에서 차원의 축을 발견했습니다.
‘오, 차원의 축! 또 보상 받겠네.’
아직 이기태가 진수를 소개하기 전.
진수는 차원의 축 발견 보상을 잠자코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는 예상과 조금 달랐다.
-파투스교가 황금바다에 있는 차원의 축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뉴트럴바이오 친구들]과 파투스교가 대립합니다.
-특수임무 발생.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아니, 왜 하필 지금이야? 이제 곧 라이브 방송 시작될 텐데!’
진수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카메라를 보며 멘트를 치고 있는 이기태를 본다.
마침 그도 고개를 돌리며 진수와 눈이 마주쳤다.
이제 곧 진수를 소개할 거라는 신호였다.
동시에 지금은 화면에서 가려져있는 진수를 노출시킬 거란 의미.
진수는 잽싸게 상태창을 열었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A급 헌터 김진수씨입니다!”
이윽고 이기태가 진수를 소개하며 방송 프로그램을 만졌다.
진수가 있는 부분을 가리던 모자이크를 치운 것이다.
“어?”
-뭐임?
-???
-이건 무슨 연출?
.
.
.
모자이크를 없애자마자 이기태와 시청자 모두가 의문을 던졌다.
화면에 이상한 게 잡히고 있었으니까.
아, 방금 좀 멋있었다
-[뉴트럴바이오 친구들] 무리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3, 민첩 +3, 체력 +2, 내구 +3, 마력 +4, 변종 모래거미 [아라크네]의 기술 중 하나
라이브 방송은 시작되려 하고 전이자들은 파투스교와 대립하고 있다.
긴박한 상황에서 진수의 선택은 간단했다.
‘돈으로 찍어 누른다! 당장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기술이니까....’
이기태가 카운트다운을 세는 사이에 상점을 열어 [기술 랜덤 박스]를 구입했다.
뉴트럴바이오 친구들 무리에 속한 전이자 수는 총 여덟.
두당 2개씩 돌아가도록 16개를 80골드 주고 샀다.
-[기술 랜덤 박스] 구입으로...
.
.
.
수업이 나오는 안내 메시지를 확인할 겨를이 없다.
진수는 일단 잡히는 대로 전이자들에게 기술을 분배했다.
[화염방사], [몸통박치기] 등의 전투에 쓸 만한 기술들도 나왔고 [산들바람], [침 뱉기]처럼 당장은 쓸 일이 없어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할당된 기술들은 이랬다.
석사 [롱스톤] - [몸통박치기], [앞 구르기]
만티코어 [웰시코기] - [맹공], [침 뱉기]
변종 어스웜 [요롱이] - [이 갈이], [그리스]
변종 석사 [대학원생] - [라이트], [시력 강화]
변종 모래거미 [아라크네] - [죽은 척 하기], [벌레 퇴치]
계약자 [임병옥] - [네 발 뛰기], [버서크]
변종 자이언트 호크 [매형] - [샤이닝 클로], [산들바람]
어스 엘리멘탈 [꼬마돌] - [화염방사], [은신]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대학원생한텐 시력 강화가 필요하지 같은 소릴 하며 낄낄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특유의 뒤틀린 위트를 발휘할 여유가 없었다.
서둘러 기술을 분배해주고, 뉴트럴바이오 친구들 무리의 급성장 보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즉시 진수의 온몸에서 모래 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파스스스
그 타이밍이 얄궂게도 화면에서 모자이크를 치우는 순간이었다.
화면이 희뿌옇게 변하며 진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 당황해서 받은 기술을 바로 써버렸네.’
보상으로 받은 기술이 바로 [모래 연막].
상황이 정신없이 흘러가니 자기도 모르게 기술을 시전 했다.
진수는 [차원의 틈]에서 바람 생성기들을 꺼냈다.
-후우웅
강한 바람이 진수의 주변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모래 안개가 걷히며 그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썩 그럴듯했다.
미세하게 반짝이는 모래 알갱이들과 부드럽게 휘날리는 머리칼.
마치 영화의 한 순간처럼 임팩트가 있었다.
실수로 일으킨 일이 오히려 멋있는 등장 연출이 되어버린 것이다.
‘후우, 어떻게든 수습했다. 몇 십 골드나 때려 박았으니까 뒤는 너희들한테 맡긴다.’
진수는 상태창과 안내 메시지를 닫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안녕하세요, A급 헌터 김진수입니다.”
태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진수를 보며 이기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전에 논의되지 않은 연출에 놀라기도 했고 꽤 멋있어 보이기도 했으니까.
-와 ㅋㅋ 헌터가 아니라 마술사인 줄
-등장신 쩔었다
-썸네일 각 잡혔고요
-헌터도 간지 챙겨야지
-ㄹㅇㅋㅋ
-ㄹㅇㅋㅋ
채팅창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여유를 되찾은 진수는 이기태를 보며 눈썹을 들어 올린다.
진행 하라는 의미로.
“아, 아. 예, 김진수 헌터님 반갑습니다. 사실 저희 채널에 나오신 게 처음이 아니시죠?”
“지난 번 영상을 찍을 때 한 번 제 오른손이 등장했었죠. 하하.”
초반에 잠시 예상을 벗어난 일이 있었지만 이내 부드럽게 인터뷰가 진행됐다.
예전에 찍었던 영상에 대한 이야기.
얼마 전에 A급으로 진급을 했다는 것.
그 밖에 천안에서 활약을 했던 내용도 언급이 되었다.
-아 이 김진수가 그 김진수구나
-? 유명한 사람임?
-유명까진 아니고 예전에 천안 뒤집어진 적 있음
-헌터넷에선 꽤 말 많이 나왔지
-이번에 중국놈들 턴 것도 얘라던데?
-그 RD인가 뭔가 하는 ㅅㄲ들?
-ㅇㅇ
-걔들이랑 한패인 거 아님? ㅋㅋ
-ㄴㄴ 들어보니까 헌범기관이랑 같이 공조해서 작업 친 거라더라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점점 진수의 행적이 드러났다.
그것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역시 헌터넷에서 단련된 어그로 실력이구나.’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아이디가 있었는데, 유재찬의 닉네임이었다.
그가 은근슬쩍 여론을 좋게 만들어낸 것이다.
“자, 그럼 함께 온 분들도 소개를 안 할 수 없겠죠?”
“예, 이번에 저랑 같이 활동하기로 한 대단한 분들이 계시거든요.”
진수가 질문을 받은 뒤 자연스럽게 답했다.
한쪽을 보며 손을 뻗자 두 사람이 카메라 화면으로 들어왔다.
A급 헌터인 심선우와 이종학의 등장이다.
-와 이 그림 뭐임?
-이 둘이 왜 여기서 나와?
-공지 다 돌렸는데 모르는 척은 ㅋㅋ
-우뢰매 그는 신이야! 번개 펀치! 번개 펀치!
-번개 펀치!
-번개 펀치!
-우뢰매 옆에 있으니까 바위곰 초라해 보이네 ㅋㅋㅋ
-바위곰이 우뢰매하곤 비비기 힘들지 ㄹㅇ
-와 A급들은 A급끼리 노는구나
과연 유명 헌터들이라 반응이 남달랐다.
진수가 등장할 때는 채팅창에 ‘?’가 많이 보이고 둘 특히 심선우의 등장에선 ‘!’가 많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심선우입니다.”
“A급 헌터 이종학입니다.”
여유롭게 미소를 머금고 인사하는 심선우와 뻣뻣한 기색의 이종학.
상당히 대비되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제가 이렇게 두 분을 소개해드린 것은....”
심선우와 이종학이 나왔음에도 대화를 주도하는 것은 진수였다.
한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강자면서 동시에 유명인인 둘이 자리하고 있음에도 인터뷰를 이끌어가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오늘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심선우에 버금가는 인물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이 둘한테 꿇릴 건 없지.’
RD와의 갈등을 거친 이후로 진수에겐 정말 많은 성장이 있었다.
까마득히 높게만 보였던 심선우에게도 이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그런 자신감이 저절로 태도에 녹아나왔다.
애초에 심선우와 이종학을 들러리 역할로 부른 것도 그의 의도였지만 말이다.
“... 그래서 저희는 많은 분들과 함께 일을 해보려고 해요. 저희로 인해서 각성자와 비각성자 모두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으면 하고요. 인도를 보면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게이트 사태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도약했잖아요? 우리나라도 절대 맨파워로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가 하는 일이 단순히 도시와 도시 사이에 물건을 옮기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서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될 겁니다.”
인터뷰는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그들이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전국의 운송로를 운영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채팅창을 훑어보니 긍정적인 반응들이 나온다.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의 여론은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 참고는 해도 되겠지.’
“와, 되게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단체 이름을 시원하게 알려주시죠.”
이기태가 질문을 던진다.
이에 진수는 심선우, 이종학과 눈을 한 번 맞춘 뒤에 답했다.
“저희 단체는 로켓몬스터라고 합니다. 몬스터 사이를 뚫고 로켓처럼 운반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에요. 하하.”
[차원 전이]를 얻은 후부터 진수에게 몬스터라는 존재는 굉장히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고통을 주는 한편 고맙기도 한 이율배반적인 존재.
그래서 단체명에 몬스터라는 단어를 넣어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디어에 다른 구성원들의 의견이 더해지며 나온 것이 로켓몬스터라는 이름이다.
“그렇군요. 앞으로 로켓몬스터의 이름을 자주 듣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으로 오늘 인터뷰는....”
이기태의 상투적인 마무리 멘트가 나오면서 방송은 종료되었다.
하지만 방송 이후에 온갖 짤부터 영상 요약본, 개인들의 의견을 담은 게시글까지 후폭풍이 엄청났다.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지만 대부분 좋은 반응들이었다.
특히나 진수는 이번 방송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었다.
-[뉴트럴바이오 친구들] 무리가 황금바다에서 파투스교를 몰아냈습니다.
-차원의 축을 지켰습니다.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민첩 +1, 체력 +1, 내구 +1, 마력 +10, 골드 +20
그리고 전이자들을 통해 실질적인 이득까지도 챙길 수 있었다.
‘역시 골드를 많이 모아놓길 잘 했어. 게다가 마력 10이라니. [빙의]를 더 활용할 수 있겠네. 흐흐.’
진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저 파투스교라는 놈들은 뭐지? 저주받은 성지 때도 덤벼들더니....’
전이자 무리와 두 번이나 마주친 녀석들.
하지만 진수가 저쪽 차원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기에 정보를 더 얻고 싶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놈들이 노리는 게 차원의 축이라면 앞으로 다시 마주칠 날이 올 것이다.
“이야! 키미태 방송에 나가는 거 완전 굿 아이디어였어! 인터넷 방송 쪽으로도 인맥이 있을 줄은 몰랐네.”
유재찬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우연히 알게 됐어. 그리고 다들 도와준 덕분에 제대로 효과를 본 거지.”
그의 말대로 심선우, 이종학의 출연, 유재찬의 뒷공작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큰 호응을 얻지는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진수가 쌓아놓은 게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야, 솔직히 이 정도 성과면 겸손 그만 떨어도 되지. 흐흐, 도시마다 RD에서 뚫어놨던 거래처들 대부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연락 왔다. 이제 뭐 로켓몬스터는 거의 완성 단계라고 할 수 있지.”
원래도 운송 사업에 대해 호의적인 거래처들이었다.
RD가 사라지면서 김이 샐 뻔 했는데 새로운 단체가 이어 받겠다고 하니 그들로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을 것이다.
다만 걸리는 부분은 신생 단체를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였다.
그 의구심을 이기태의 방송을 출연함으로 종식시켜버렸다.
유명 A급 헌터인 심선우와 이종학의 지지.
떠오르는 신성, A급 헌터 진수가 대표.
게다가 천안과 포항, 부산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할 의지를 밝혔다.
이것만 해도 이미 사업의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다.
이걸 알아본 다른 지역에서도 거래를 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사무 처리하는 건?”
“그것도 문제없지. 니가 가져온 자료들 바탕으로 운영에 지장 없도록 만들고 있어.”
유재찬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의 재능은 의외로 전투 헌터가 아니라 사무, 행정 처리 쪽에 있었다.
진수가 큰 틀을 운영할 수 있게끔 짜면 세세한 것들을 그가 도맡아 해결했다.
덕분에 사업의 형태가 제대로 갖춰졌다.
“수익 배분은 전에 이야기한 대로 실무자들이 많이 가져갈 수 있게 해줘.”
전에 함께 일하던 현장반장과 그가 데려온 일당헌터들이 주된 운반 업무를 맡기로 했다.
현재 RD의 자료를 토대로 운송로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 위험도를 파악한 상태.
로켓몬스터에서는 성과에 따라서 공평하고 정확하게 임금을 지급할 계획이었다.
진수는 자신이 대표라고 해서 수익을 독차지할 생각이 없었다.
“야, 그래도 니가 다 만든 일이나 다름이 없는데 조금 더 욕심 부려도 되지 않아?”
유재찬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진수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된 분배. 그게 오히려 미래에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 거야.”
‘아, 방금 좀 멋있었다.’
자아도취가 좀 있는 듯했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실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단체에 돈을 벌어오고 그들을 제대로 대우하는 것이 사업성장의 원동력이 될 거라고 믿는 것이다.
‘내가 이 사업에 신경을 쓸 여력이 부족하니까. 일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가지게 하는 데에는 역시 돈 만한 게 없지.’
-띠링
[박철준 수사관 : 김진수 헌터. 헌터범죄전담기관으로 와주세요. RD의 황계문이 민우혁에 대해서 진술한 게 있습니다.]
진수가 유재찬과 로켓몬스터 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할 즈음, 박철준에게 메시지가 왔다.
뉴트럴바이오에게 균열을 일으키는 방법을 전해주었다는 민우혁에 관한 단서였다.
‘어? 잠깐만. 근데 민우혁이 RD랑도 관계가 있다고?’
불길한 생각
“민우혁? 이 사람 이름이 민우혁인가요?”
헌터범죄전담기관의 취조실에 앉아있는 황계문이 사진을 보며 물었다.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몇 번 물건, 그러니까 블루 오아시스를 받으러 가면 공급처에서 본 게 전부입니다. 이름은 몰랐는데.... 한국인인가보네요.”
그는 정말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진수는 취조실 바깥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 블루 오아시스? 그럼 그 때 약을 들고 왔던 사람이랑 비슷한 타이밍에 마주쳤던 게 우연이 아니었나본데.’
RD의 황계문이 민우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했을 때, 진수가 예상했던 것은 조금 다른 방향이었다.
요괴형 몬스터를 소환하는 것과 인위적으로 균열을 일으키는 게 비슷한 개념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균열과 관련된 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블루 오아시스가 연결점이었다.
“여기 한국 땅에 온 뒤에 본 적은 없어요. 블루 오아시스 공급책인지, 아니면 저희처럼 물건을 받으려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 어쩌면 운명파 쪽 인물일 수도 있어요.”
“운명파?”
박철준이 다시 묻는다.
“예. 적룡과 세력 싸움을 하던 곳이거든요. 지린성을 차지하고 랴오닝성을 통해서 중원 쪽을 노리고 있다는 거 같더라고요. 한국으로 온 뒤로는 적룡을 다시 일으키는 데에 집중하느라 최근의 소식은 모르겠네요.”
황계문은 자신이 아는 것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조선족 어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그는 사실 적룡파에 크게 충성을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애초에 한국인인 아버지와 조선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그는 돈 때문에 적룡파와 RD에서 일했다.
그는 각성자가 아니었기에 수사에 협조하면 형량을 줄여주기로 약속을 받았다.
보기보다 생존 의지가 강한 그는 적극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모조리 이야기했다.
자청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진 등도 보여주다가 민우혁이 찍힌 사진을 박철준이 보게 되어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다.
“음, 중국에서 요즘 무섭게 세를 불리고 있다는 그 조직인가 보군요. 알겠습니다.”
박철준은 황계문을 취조실 안에 두고 밖으로 나왔다.
“들었겠지만, 민우혁이 RD와도 연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블루 오아시스의 공급하는 세력이었다면 다시 한국에 유통을 하려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진수는 그의 말을 듣고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사람을 이용해서 사람을 강화시키는 뉴트럴바이오의 기술. 몬스터 사체를 이용해서 몬스터를 강화시키는 블루 오아시스. 민우혁이 뉴트럴바이오랑 기술 교류를 가졌다고 했는데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혹시 지난번 감식반에서 블루 오아시스 분석한 분한테 뭐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감식반에 말입니까?”
“예. 뉴트럴바이오에서 가져왔던 자료들 중에서 기술, 특성 만드는 약 관련된 내용이랑 블루 오아시스의 유사성이 있는지 좀 알아봤으면 해서요.”
진수의 말에 박철준의 눈이 빛났다.
그가 무슨 의도로 말하는 것인지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한번 이야기 해보죠.”
진수와 박철준은 서둘러 감식반으로 향했다.
“저기요? 더 물어보실 거 없나요?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되는 거예요? 저기요~?”
황계문이 아직 취조실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 * *
“이거 재밌네요.”
헌터범죄전담기관의 감식관이 두 문서를 동시에 넘기면서 훑었다.
“한 때는 인류의 희망이니 뭐니 떠들었던 약이랑 몬스터로 만든 마약이 서로 비슷할 줄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 했어요.”
그 또한 감식관이기에 앞서서 학자이며 연구자였다.
그는 두 약에 공통적으로 적용된 기술들에서 큰 흥미를 느꼈다.
‘아무래도 블루 오아시스랑 뉴트럴바이오의 연결점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비교 분석을 해볼 생각도 못 하고 있었겠지.’
진수는 그의 반응을 통해 민우혁이 블루 오아시스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세력에 속해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블루 오아시스라는 마약이 중국에서는 유통된 지 꽤 오래 되지 않았습니까?”
박철준이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예전에 알려진 블루 오아시스랑 지금 유통되고 있는 블루 오아시스는 조금 다른 점이 있어요. 옛날 버전은 몬스터 사체로 만든다는 것은 동일했지만, 몬스터를 더 강하게 만드는 효과는 밝혀진 게 없었거든요. 그런데 뒤늦게 블루 오아시스가 몬스터 강화 기능이 있다고 보고가 들어온 거죠. 그게 참 이상하다 싶었는데... 뭔가 변화가 있었나 봅니다.”
“사람한테 파는 마약인데... 굳이 몬스터 강화 효과를 추가했다는 말입니까?”
“아마 다른 변화도 있었겠죠. 예컨대 제조과정을 단순화시킬 수 있다거나, 원가를 낮추는 등의 경제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자료만 가지고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한정적이거든요.”
감식관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이에 박철준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혹시 블루 오아시스를 섭취한 사람을 몬스터가 먹으면요?”
둘의 이야기를 듣던 진수가 물었다.
머릿속에 굉장히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약이라는 게 으레 섭취하고 나면 성분의 일부든 대부분이든 몸에 남기 마련이죠. 이 자료대로면 블루 오아시스에 중독된 사람을 몬스터가 잡아먹으면 강화 효과가 있을 것 같네요. 걸어 다니는 산삼이 되는 셈이죠. 하하.”
감식관이 섬뜩한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진수는 전혀 웃을 수 없었다.
‘강제로 균열을 일으켜서 몬스터를 불러내는 기술. 먹으면 몬스터가 강화되는 약. 심지어 마약으로 유통시켜서 사람들을 중독 시키고 있다라.... 이 자식들 설마...?’
“수사관님.”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군요.”
박철준 수사관도 같은 결론에 도달한 듯했다.
그의 표정이 더없이 무거워졌다.
“지금 유통되는 블루 오아시스가 어디에 얼마나 퍼지고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겠어요. 동시에 제조를 하고 있는 자들을 소탕해야 하고요.”
“맞습니다. 다만 그들이 지금 중국에 위치하고 있다는 게 문제군요. 일부러 정부의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곳으로 간 모양입니다.”
한국이야 헌터범죄전담기관이 있다지만 중국은 그렇지가 못하다.
지역마다 패권이 나누어진 상황이었고 정부는 중원이라고 불리는 몇 개의 성들을 제외하곤 무능에 가까웠다.
만약 블루 오아시스를 제조하는 이들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저는 민우혁을 쫓을 생각입니다. 그 사람이 꼬리든 중역이든 일단 뭐라도 단서가 되어주겠죠. 혹시 국제적으로 헌터 범죄를 억제하는 기관 같은 것은 없나요?”
“허울뿐인 기구가 남아있긴 합니다. 옛날의 인터폴이 전신인 국제형사경찰기구죠. 다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지 꽤 됐습니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락을 해봐야겠군요. 어쩌면 이 일로 재건될 수도 있고요.”
진수가 떠올린 최악의 시나리오.
중국에서부터 블루 오아시스가 전 세계에 퍼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블루 오아시스에 중독된 사람들이 늘어났을 때 대규모 균열 사태가 일어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몬스터.
사람들의 힘은 한계가 있고, 몬스터들은 사람을 먹고 점점 강해질 것이다.
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제2의 게이트 사태가 발생할 게 자명했다.
‘물론 감식관의 말대로 블루 오아시스의 제조 효율을 위해서 성분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아직 이 가설에는 부실한 부분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대규모 균열을 일으켜 학살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그저 위험한 일의 가능성만 보일 뿐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야말로 천재지변이나 다름이 없는 일.
누군가가 수혜를 보기 힘든 문제였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선 눈앞의 일을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보자.’
진수는 고민을 멈추고 사고를 단순화했다.
“그러면 박철준 수사관님께서 그 국제형사경찰기구와 접촉을 해주세요. 저는 저 나름대로 움직이면서 계속 연락을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 일을 조사하겠습니다. 부디 그저 과민반응이었던 것으로 결론이 났으면 좋겠군요.”
박철준과의 이야기를 마친 진수는 헌터범죄전담기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어? 팀장님 아니세요?”
건물 앞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아는 체를 했다.
“아, 장우종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
RD에서 함께 천안과 포항에 갔던 장우종이었다.
“RD 관련해서 조사를 받으러 왔어요. RD에서 일했던 헌터들은 다 한 번씩 불려왔거든요. 팀장님께서는 기관이랑 공조 수사 하셨던 거라면서요?”
진수의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이미 한국의 헌터 사회에서는 그에 대한 수많은 소문이 퍼졌다.
“뭐, 비슷하죠.”
“역시... 보통 분이 아닌 거 같았어. 하하. 저는 RD가 몬스터 소굴인 줄 꿈에도 몰랐거든요. 전 나름대로 괜찮은 일자리가 생겼다고 좋아했었는데.... 이제 또 꼼짝없이 던전이나 돌게 생겼네요.”
장우종이 못내 아쉬운 듯 말했다.
그의 입장에선 하루아침에 직장이 없어진 꼴이었으니 당황스럽고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진수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빛냈다.
“우종씨 혹시 RD에서도 운송로 작업 끝나면 운반 업무도 할 생각이 있으셨어요?”
“그럼요. 이미 몇 번 왔다갔다 해봤으니까 안전한 것도 알고 있고... 길도 익숙하고... 그만한 일감이 없잖아요?”
장우종의 대답에 진수가 미소를 베어 물었다.
“저랑 일 하나 하시죠.”
“일이요?”
진수는 로켓몬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물건 운반은 현장반장과 일당 헌터였던 사람들이 주로 하겠지만 운송로에서 안전을 담당할 전투 헌터들도 부족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굳이 장우종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아 정말요? 저야 좋죠! 참, RD에서 운송로 뚫던 사람들도 같이 할 수 있을까요? 아직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 있거든요.”
‘흐흐, 이러려고 미리 씨를 뿌려놨던 거지.’
장우종은 RD 내부의 헌터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다.
RD가 무너진 뒤 그를 통해서 운송로 작업을 하던 헌터들과 연결이 될 수 있으리라 예상했었다.
“물론이죠. 여기 이게 저희 사무장님 연락처거든요. 제가 미리 전해놓을 테니까 그 번호로 연락하시면 돼요.”
진수는 유재찬의 연락처를 그에게 주었다.
이제 운반 사업에 필요한 모든 구색이 갖춰졌다.
운송로 구축부터 실무 인력, 사무 시스템 및 인지도, 거래처까지.
자잘한 문제들은 유재찬과 심선우, 이종학이 해결해줄 것이다.
“중국에 가기 전에 김건 사장님 공방에 들러서 장비 좀 정비해야겠다.”
이제 앞으로 힘 쓸 일이 많을 것이다.
‘중국은 약육강식, 강자존의 세상이니까....’
이제 어디에서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진수지만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한국의 거의 100배에 달하는 넓은 중국 땅.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곰순이
-고획조 [맘스터치]가 [스카이피아] 무리에 합류합니다.
-교 [개뿔], 맥 [맥], 도철 [도날드]가 [휴고보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인면지주 [엘리스]가 [간장막야] 무리에 합류합니다.
-[간장막야]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2, 마력 +4
-제천대성 [손오공], 평천대성 [흑우]가 [갓 오브 워] 무리에 합류합니다.
-[갓 오브 워]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5, 민첩 +5
-계약자 [전춘성]이 [괴물왕녀] 무리에 합류합니다.
-[괴물왕녀]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마력 +1, 골드 +15
“자기네 고향 땅 밟았다고 이렇게들 반응을 하나?”
무법지대를 거쳐 지안시에 도착한 진수의 눈앞에 수많은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RD의 요괴들과 계약자 전춘성이 각자 무리에 합류한 것이다.
과연 간부급들은 힘이 강했기에 합류한 것만으로 무리 성장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녀석들을 전이시킨 건 단순히 보상으로 조금 더 강해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지만.’
[빙의]로 전이자들의 힘을 직접 빌릴 수 있으니 강한 몬스터, 그리고 독특한 능력을 지닌 녀석들은 많이 전이시킬수록 좋다.
‘일단 RD랑 블루 오아시스 사이의 연결점부터 파헤쳐보자.’
진수는 몇 차례 블루 오아시스를 받으러 갔던 건물로 향했다.
그가 접근하자 한 사내가 나와서 맞이한다.
지난 번 저강렵과 왔을 때 물건을 내어주던 자였다.
“어유, 오셨습니까. 먼저 연락도 없이 어쩐 일로...?”
그는 블루 오아시스를 받으러 몇 차례 왔던 진수가 보여 나오긴 했지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아, 아직 RD가 망한 줄 모르는 모양인데?’
진수는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물건이 필요한 시기가 좀 앞당겨져서요. 저희 본사에서 받으러 가라고 하던데 연락을 못 받으셨어요? 양은 평소랑 똑같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에 뒤통수를 긁적거리던 남자는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 중간에 뭔가 실수가 있었나봅니다. 하하. 조금 급작스럽기는 하지만 금방 준비해서 내드리겠습니다. 안에 들어와서 좀 기다리시죠.”
웃으며 건물 안 쪽으로 손을 뻗는다.
진수는 그의 안내를 따라서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안이 더 넓네.’
겉으로 보기에는 보통의 주택 정도 크기의 건물이었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오니 면적이 엄청났다.
구조를 교묘하게 짜서 들어가면서 은근슬쩍 지하로 내려가게끔 만들어진 듯했다.
“여기 창고에서 잠시 기다리고 계시면 금방 가지고 오겠습니다. 원래 여기가 블루 오아시스를 보관하는 곳인데 지금은 물량이 거의 나가서 말이죠. 제조하는 쪽에 바로 포장을 지시하겠습니다. 참, 마실 거라도 좀 드릴까요?”
사내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 예. 한 잔 부탁드립니다.”
그는 진수에게 탄산음료가 채워진 잔을 하나 갖다 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킁, 킁.”
건물에 들어왔을 때부터 건물 전체에서 블루 오아시스의 달콤한 향내가 은은하게 나고 있었다.
특히 진수를 데려온 이 창고는 평소에 약을 보관하는 곳이라더니 정말 그 냄새가 더 진했다.
‘음.... 워낙 만드는 양이 많아서 그런가? 자칫하면 여기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중독이 되겠는데....’
[중급 후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진수였기에 블루 오아시스가 공기 중에 퍼져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약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그냥 묘하게 기분이 좋고 붕 뜨는 느낌이 든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차차 약에 중독이 되었으리라.
‘여기 사람들은 다 중독이 된 상태인 건가? 아님 뭐 내성이 생겼을 수도 있긴 하겠지.’
[차원의 틈]에서 바람 생성기를 꺼내 호흡기 주변에 바람을 일으켰다.
미세한 블루 오아시스 입자들이 흩어지고 깨끗한 공기만 들이킬 수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꽤 오래 지나도 사내가 나타나지 않았다.
상당히 무료했던 진수는 그가 준비해준 음료를 한 모금 입에 댔다.
‘그나저나 여긴 무슨 탄산음료를 손님 접대에 내놔?’
톡 쏘는 탄산이 목을 넘어 들어가니 따끔따끔했다.
그렇게 음료를 상당히 마시며 기다리고 있는데 창고 사방에서 갑자기 쇠창살이 내려왔다.
-쾅! 쾅! 쾅!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모두 가로막아버린 쇠창살들.
진수는 빠르게 사방을 훑어보았다.
“가오리방쯔! 우리를 아주 얼간이로 봤구나!”
쇠창살 너머로 사내가 나타났다.
“무슨...?”
“적룡이 어떻게 당했는지 설마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그는 굉장히 분노한 기색이었다.
자신들을 얕봤다고 여겼는지 심히 불쾌한 듯했다.
“그, 그걸 어떻게....”
진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흐흐흐.... 우리 운명파의 눈은 비단 대륙에만 있지 않다. 한국 같은 소국의 일은 손쉽게 알 수 있지!”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내.
그는 정말 자신과 눈앞의 한국인은 격부터 다르다고 여기고 있었다.
“네놈이 오늘 여기서 죽는 것은 그 멍청함과 분수를 모르는 자만심 때문이라는 걸 명심해라! 크흐흐.”
그가 벽면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한쪽의 쇠창살이 올라갔다.
-쿵... 쿵.... 쿵...
열린 통로의 안 쪽에서 묵직한 울림이 퍼져 나왔다.
흡사 코끼리의 발걸음 소리 같았다.
“쿠워어어억!”
-쾅!
이내 거대한 포효가 터져 나오더니 좁은 출입구를 부숴버리며 커다란 몸집의 무언가가 불쑥 나타났다.
마치 돌처럼 거친 가죽, 두 발로 섰지만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팔, 우락부락한 근육들.
엄청난 괴력으로 유명한 대형 몬스터, 오우거였다.
놈의 눈빛에 광기가 돌고 있었는데, 아마 블루 오아시스를 잔뜩 먹인 녀석인 것 같았다.
“오우거... 오우야.”
진수가 오우거의 눈치를 살피며 팔다리를 풀자 사내는 다시 한 번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크흐흐.... 그 정도로 놀라긴 이르지.”
-철컹! 드르르륵
쇠창살이 두 군데 더 열린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형 몬스터 트롤과 아울베어가 연이어 등장했다.
입에서는 걸쭉한 침이 주르륵 흘러나오고 코를 벌름거리는 것이 꽤 굶주려 보였다.
“방쯔! 지옥을 맛봐라!”
그의 외침과 함께 거대한 몬스터 세 마리가 진수를 향해 눈을 돌렸다.
진수를 먹잇감으로 인식한 것이다.
“크흐흐흐... 잘 먹겠습니다!”
괴물들이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며 덤벼드는데 오히려 실실 웃는다.
마약 공급책은 진수가 공포감에 실성을 했다고 생각했다.
몬스터들과 진수가 격돌하기 전까지는.
“힘에는 힘이지!”
진수의 몸 위로 희끗한 오러가 덧씌워졌다.
소의 머리를 지닌 근육질의 존재.
그는 맨몸으로 오우거를 마주했다.
진수를 찢어버리려 하는 양손을 맞잡는다.
이어지는 힘 싸움.
상대는 게이트 사태 때 탱크를 공깃돌 집어던지듯 갖고 놀던 괴물이다.
-뿌드득
관절이 꺾이고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우득! 파악!
이내 뭔가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쿠워억!”
오우거의 팔에 관절이 하나 더 생겼는지 이상한 각도로 꺾였다.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는 녀석.
놈은 약에 취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의를 상실했다.
팔이 덜렁거리고 있지만 진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뒷걸음질 쳤다.
-콰직!
진수가 오우거를 마무리 하려고 하는데 트롤이 그의 등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몸통 깊숙이 쑤셔 넣은 손톱에 피가 왈칵 쏟아졌다.
“야, 너 때문에 니 친구만 더 오래 아프잖아.”
등에서부터 복부까지 뚫렸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트롤을 나무란다.
“넌 좀만 기다려.”
트롤에게 [석화의 시선]을 사용해 몸을 굳힌 그는 다시 오우거를 보았다.
진수가 공격당하며 손을 놓친 탓에 놈은 자기가 나왔던 통로를 향해 도망칠 수 있었다.
-철컥!
녀석이 정신없이 내달려 통로 안으로 몸을 숨기려는 찰나, 어느새 [차원의 틈]에서 나온 네일건이 빛의 성창을 발사했다.
-오우거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오우거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환한 빛과 함께 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 아니...?”
예상과는 정반대의 상황에 남자는 동공이 떨렸다.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발견한 진수가 [분열]을 사용했다.
-휘익!
작은 진수 둘이 [유체화]로 쇠창살을 통과해 날아갔다.
빠르게 사내의 앞을 가로막는 분신들.
“히히히 못 가!”
녀석들은 요철로 만든 양손 망치와 도끼를 꺼내들고 그가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그때, 진수는 트롤과의 싸움을 진행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몸에 팔을 박아 넣고 있는 기괴한 상황.
회복력의 대명사인 트롤과 똑같이 회복력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회복하는 수준은 엇비슷한 거 같은데... 이걸 어쩌나. 몸의 내구도는 내가 앞서네?”
둘이 동시에 상대의 몸에서 오른손을 뽑아서 다시 찔러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엔 양상이 조금 달랐다.
진수의 오른손이 트롤의 오른손과 맞부딪혔다.
-콰드득!
인간의 몇 배나 되는 커다란 괴물과 보통 성인 남성 정도의 진수의 손이 충돌했다.
진수의 야무진 손이 트롤의 손가락을 뭉개버리며 그대로 나아간다.
손을 완전히 부숴버리고 그대로 심장에 틀어박히는 주먹.
트롤의 괴물 같은 회복력도 결국 심장이 터지면 작동하지 않았다.
-트롤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트롤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자, 이제 디저트를 먹어보실까?”
올빼미와 곰을 섞어놓은 듯한 모습의 아울베어는 이미 겁에 질린 상태였다.
진수와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킁, 킁! 윽, 이게 무슨 냄새야!”
진수의 코에 진한 지린내가 맡아졌다.
“그래, 무섭지? 안 아프게 보내줄게.”
진수는 아울베어의 정수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의 주먹질 한 방에 아울베어의 단단한 두개골이 으스러지며 목숨을 잃었다.
-아울베어 [곰순이] 차원 전이 성공.
이내 사라지는 아울베어.
녀석에게는 아울베어한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있었다.
“아, 안 돼!”
그 모습을 본 사내가 절규했다.
그런데 그 태도가 진수를 처치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닌 듯했다.
‘호오, 이놈 봐라?’
진수의 눈빛이 묘하게 달라졌다.
-우지직!
쇠창살을 맨손으로 뽑으며 창고에서 나오는 진수.
“내가 설마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왔겠어? 그냥 장단도 맞춰주고 어떻게 나오나 본 거지.”
‘물론 운명파가 직접 블루 오아시스 제조에 관여하고 있는 줄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는 사내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건물에 들어와 블루 오아시스가 퍼져있는 것만으로 진수는 이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블루 오아시스를 다루는 곳에서 그 중독성을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그런 약이 공기 중에 퍼지게 둔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날 중독 시키려고 일부러 은은하게 퍼트렸겠지. 탄산음료도 독을 숨기려고 수작을 부린 거였겠지만.... 나한텐 [상급 독 내성]이 있고. 흐흐.’
“자, 그럼 우리 이제 대화를 좀 나눠볼까?”
진수가 전기톱을 꺼내 들며 말했다.
하지만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
죽는 한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겠단 의지가 보였다.
“그래, 그렇게 나올 줄 알고 더 준비한 게 있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잇는 진수의 모습에 사내의 표정이 달라졌다.
“뭐 너는 충성심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겠지만 과연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뭐, 뭣?”
“내가 말했지. 다 알고 왔다고. 그럼 심문하기 전에 입을 열게 할 방법도 찾아오지 않았을까?”
진수가 아주 비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거, 거짓말 하지 마라! 그런 말에 넘어갈 줄 아느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부정했다.
“그래, 아주 매정한 분이시라 이거지. 그래서 곰순이를 그냥 죽게 내놓으셨나?”
능청스럽게 조금 전에 전이시키며 본 아울베어의 이름을 댄다.
진수의 입에서 나온 곰순이라는 이름에 남성의 동공이 확장됐다.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가족만은!”
결국 사내의 입이 열렸다.
물론 진수는 그의 가족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어떻게 딱
사내가 진수의 앞에 무릎 꿇은 채 애원하듯 말했다.
“제가 아는 건 다 말씀드렸으니 부디....”
“그래, 가족까지는 안 건드릴게.”
진수의 답이 나옴과 동시에 남자의 얼굴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커헉...! 고... 맙....”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절명해버린다.
진수는 거무죽죽한 피를 울컥 토해내며 쓰러진 그를 봤다.
‘스스로 죽어버린다고...? 그냥 어디 도망쳐서 살 수도 있는 거 아니었나?’
그가 가족들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내.
진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최대한 약속은 지켜줘야겠네.”
진수는 남성의 시체를 건물 안에 둔 채 [백년 도깨비불]로 불태웠다.
건물이 통째로 타오른다.
‘운명파인지 하는 놈들이 건물이랑 같이 뼈가 남아있는 걸 보면 지조를 지키고 죽은 줄 알겠지....’
갑작스러운 화재에 주변에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 혼란 속에서 조용히 몸을 뺐다.
* * *
지안시의 북쪽에 나있는 길을 따라 움직이는 진수.
그의 행선지는 지린성의 북쪽에 있는 공업 단지였다.
지안시에서 전투를 벌였던 곳은 사실 블루 오아시스 제조가 이루어지는 곳은 아니었다.
그저 진수를 붙잡아두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던 것.
사내는 외부에서 물건을 받아와 포장을 하는 곳에 불과하다고 했다.
‘저, 저는 말단이라서 제조 기술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대신 물건 받아오는 곳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는 진수의 핸드폰에 한 위치를 찍어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작은 진수들이 건물의 구석구석을 뒤졌고,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아냈다.
“망할 땅 덩어리, 넓긴 겁나게 넓네.”
지도를 다시 한 번 본 진수는 하루 이틀은 족히 걸릴 거리에 혀를 내둘렀다.
블루 오아시스의 생산 공장이 있다는 곳은 지린성의 북쪽, 내몽골 자치구, 랴오닝 성과 가까이 있는 창춘시였다.
‘마약 공장을 털고 나면 운명파의 좀 더 윗대가리랑 만날 수 있겠지.’
앞으로의 이동 경로를 정리한 뒤 걸음을 옮기던 진수의 눈에 기이한 흔적이 보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움직이던 누군가가 갑자기 한쪽 방향으로 쭉 밀고 지나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산 지형이었기에 온갖 수풀과 굵직한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걸 다 짓뭉개며 우직하게 나아간 것이다.
“와, 불도저라도 밀고 지나갔나? 저쪽으론 가지 말아야겠다.”
그 흔적에는 비단 풀떼기만 눌려있는 게 아니었다.
산산조각 난 생물의 사체들도 나뒹굴고 있었다.
방향으로 봤을 때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진수의 행선지와는 아주 겹치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서는 임무도 받지 말아야지. 저 불도저 같은 거 잡으라고 할까 무섭네.’
흔적을 만든 것이 몬스터인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수준이었다.
진수는 눈을 돌리고 원래 그가 가려던 길을 따라서 쭉 북쪽으로 올라갔다.
‘이쯤이면 되겠네. 이동 거리도 꽤 되는데 임무도 좀 받으면서 움직이자.’
-임무 : [냉기 저항] 특성을 지닌 몬스터 3마리 전이시키기 !
-보상 : [상급 냉기 저항] 특성
오랜만에 [차원 전이]의 임무를 받았다.
‘특정 특성을 가진 몬스터 보내달라는 건 헤파이스토스 이후로 거의 처음인 거 같은데.... [냉기 저항]이면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겠네.’
그가 향하고 있는 창춘시는 상당히 추운 기후였다.
따라서 [냉기 저항]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 필드가 있으리라 기대할 만했다.
‘물론 추운 지역이라고 맞춤 몬스터가 균열이나 던전에서 나오는 건 아니지만... [냉기 저항]이 없는 놈들은 살아남기 힘들 테니까.’
오크가 고블린을 죽이는 것처럼 몬스터들에게도 나름의 생태계가 있었다.
대체로 몬스터들은 사람을 습격해서 먹지만, 일반 동물이나 다른 몬스터도 사냥한다.
추운 지역에서는 [냉기 저항]을 가진 녀석들이 필드를 만들기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으... 일단 나도 추워 죽겠다....”
[불곰] 특성 덕분에 일반인에 비해서는 추위에 강한 편이지만 살을 에는 강풍이 불 때면 저절로 몸이 굳었다.
우선 그가 향하고 있는 창춘시, 그리고 이후로 활동할 가능성이 있는 곳들은 꽤 추운 지역이니 [상급 냉기 저항]을 얻는 것은 아주 좋은 보상이었다.
‘근데 [냉기 저항]을 가진 몬스터는 왜 필요로 하는 거야?’
진수는 임무 옆에 있는 느낌표를 선택해 상세 설명을 확인해봤다.
-[괴물왕녀] 무리가 수정 산맥에서 차원의 축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두꺼운 얼음 덩어리에 갇혀 있어 손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디찬 바람이 부는 수정 산맥에 [냉기 저항]을 지닌 동료를 전이시키십시오. 그들을 통해 차원의 축을 얼음 덩어리에서 꺼내야 합니다.
‘아, 수정 산맥이라는 게 얼음이 꽝꽝 얼어있는 곳이라 수정 산맥이었던 건가?’
진수는 그저 수정이 많이 나오는 곳인가 생각했었는데 이름의 의미가 좀 달랐던 모양이다.
다시 보니 수정 산맥으로 전이된 계약자 전춘성의 얼굴이 좀 퍼렇게 질린 것 같기도 했다.
“하, 그래도 소중한 [빙의]를 준 녀석이니까 신경을 좀 써줘야겠지.”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들어 상점을 열어본다.
[냉기 저항] 쪽 특성들을 한 번 살펴봤다.
[중급 냉기 저항]이 15골드.
좀 아깝기도 했지만 그냥 골드를 쾌척하기로 했다.
-계약자 [전춘성]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1, 내구 +1 마력 +2, 골드 +5
특성을 보내주고 나니 작게 그려진 그의 얼굴이 좀 펴진 듯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자비로운 사람이야. 처신 잘 하라고.’
물론 15골드를 써서 능력치 4개와 5골드를 돌려받았으면 진수가 훨씬 더 이득을 본 셈이었다.
하지만 당장 그에겐 사용한 15골드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으... 추워. 우선 빨리 임무 달성하고 특성을 받아야겠는데....”
진수는 [사신의 감각]에 집중하며 주변에 있는 생명 반응을 살펴봤다.
북쪽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더 기온이 내려가고 있었기에 서둘러 [냉기 저항]이 있는 몬스터를 잡고 싶었다.
그 때, 그의 감각에 다수의 생명체가 감지되었다.
‘근데 이건... 사람들인데?’
도로가 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보기보다 생명 반응이 많이 느껴지는 규모의 마을.
그는 그곳으로 가서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의 정보도 묻고 혹시 하룻밤 묵을 수 있을지도 양해를 구해보려 했다.
지안시에서 출발한지도 꽤 되어서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으니까.
“무슨 일입니까?”
진수가 마을에 다가가자 경비를 서고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앞에 서며 물었다.
친절한 인상이지만 꽤 강단 있는 얼굴이었다.
“아, 창춘시로 가는 헌터인데요. 이 주변에 몬스터 필드가 어떻게 되나 좀 여쭤보려고요. 그리고 혹시 숙박시설 같은 것도 있으면 하루 신세도 졌으면 하고요.”
헌터라는 진수의 말에 그가 눈을 빛냈다.
“혼자 산길을 다니실 정도면 꽤 등급이 높은 헌터시겠네요.”
“예, 한국에서 A급 헌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진수는 헌터 라이센스를 꺼내서 보여줬다.
신분증을 대체해주기도 하고, 웬만한 곳에서 높은 등급의 헌터는 대우를 해주니까.
“오...! 정말이시군요. 알겠습니다. 저희 마을에 따로 숙박 시설이 있지는 않지만, 촌장님 댁으로 가면 흔쾌히 방을 하나 내주실 겁니다. 계시는 동안은 마을이 안전하겠네요.”
그의 생각대로 A급 헌터 라이센스의 위력은 훌륭했다.
굉장히 반기며 마을 안으로 안내를 해준다.
작은 마을이라 그가 길을 잃을 리도 없었지만 경비를 서던 자는 촌장의 집까지 함께 움직여주었다.
“허허, A급 헌터시라니. 든든하네요. 얼마든지 묵고 가시죠.”
마을의 촌장도 진수에게 굉장히 우호적이었다.
평범한 촌부처럼 생긴 노인이 양손으로 악수까지 한다.
‘역시 중국에 A급으로 진급하고 오길 잘 했어.’
한국의 헌터 사회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중국은 더욱 높은 등급의 헌터들을 대우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개인의 힘이 곧 권력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진수는 연신 굽신 거리는 촌장에게 주변의 몬스터 필드에 대해서 물었다.
“동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예티가 조금 삽니다. 다행히 저희 마을까지 내려오는 일은 없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으면 아주 골치가 아프겠죠.”
마을의 동쪽엔 예티, 북쪽에는 스노우폭스, 서북쪽에서 서리 코볼트가 서식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자잘한 몬스터 필드에 대한 정보를 들었지만, [냉기 저항] 특성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 녀석들이었다.
‘다행히 딱 3마리네. 오늘 여기서 하루 자고 내일 한 놈씩 처치한 뒤에 창춘시로 가면 되겠어. 운 좋으면 필드 보스나 특이한 개체를 전이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고.’
“허허, 그러면 쉬실 방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진수는 촌장을 따라 2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촌장의 집에서 가장 좋은 방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넓고 쾌적한 곳이었다.
장비들을 해제하지도 않은 채로 침대에 몸을 파묻고 안락함을 만끽했다.
‘운이 좋았어. 어떻게 딱 내가 필요한 것들이 이렇게 구비될 수가 있지?’
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휴식을 취했다.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와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허, 헌터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급박한 목소리로 말한 그는 진수가 답하기도 전에 문을 열었다.
처음에 마을 앞에서 만났던 사람이었다.
그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절박한 눈빛을 보내왔다.
“규, 균열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흴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작은 규모의 마을 근처에 터진 균열이라면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이 없다.
진수는 벌떡 일어나 침대 밖으로 나왔다.
“물론이죠. 어느 방향인가요?”
“이쪽입니다!”
그의 답을 들은 경비는 바로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밖에 나오니 이미 몬스터들의 습격이 시작된 듯 보였다.
사람들은 도망 다니고 있고 마을 건물 사이사이로 덩치 큰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다녔다.
“사, 살려주세요!”
한 쪽에서 여성이 아기를 안고 도망치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 빠르게 짓쳐들고 있는 것은, 흰 털을 지닌 몬스터 예티였다.
진수는 그 모습을 보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다가오는 그에게 여성은 안고 있던 아기를 던졌다.
이미 자신의 뒤에 몬스터의 그림자가 드리웠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절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녀.
-휘익- 털썩
“어...?”
하지만 진수는 아기를 받지 않았다.
그에게 던져진 아이를 그대로 지나쳐 바로 예티의 목을 부러트려버렸다.
-예티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예티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예티의 사체는 사라졌고, 아기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이게 무슨...?”
여인은 동공이 확장된 채로 진수를 보았다.
“아무리 핏덩이 같은 아기라고 해도, 저렇게 피 냄새가 진하게 나는 아기가 어디 있냐? 너희들, 사람 잘못 골랐어.”
그의 말에 쓰러져 숨을 죽이고 있던 아기가 먼지를 탁탁 털며 일어섰다.
아기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인상을 쓰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놈이군. 그래봐야 고통만 길어질 뿐이겠지만.”
분명 A급 헌터 라이센스를 봤음에도 덤벼든 놈들이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수는 스스로를 믿었다.
‘하, 정말 어떻게 딱 내가 필요한 것들이 이렇게 준비되어 있을까?’
그는 사방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웃음 지었다.
이게 겨우 A급이라고...?
놈들은 과연 만만치 않은 실력이었다.
진수가 어쭙잖은 A급 헌터였다면 벌써 목이 떨어져 바닥에 구르고 있었을 것이다.
-펑!
폭발음과 함께 마력이 담긴 살점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칼로 공격을 하는 척 하던 자의 몸이 갑자기 터지면서 스스로 수류탄이 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진수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 목숨을 아주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구나? 그럼 나도 파리 잡는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줘야지.’
처음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서 금품을 갈취하는 강도 집단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명을 빼앗으려 드는 태도로 그들이 전문적인 살인 집단이라는 걸 눈치 챘다.
그리고 애초에 진수를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정면에서 맞붙지 마!”
“도끼 투척 조심해!”
“힘으론 안 된다니까!”
전투 중간 중간 그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듯한 전략을 펼쳤다.
물론 외부에 알려진 정보뿐이었지만.
-피슉!
진수의 힘만 경계하고 있는 녀석들.
[강철 거미줄]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진수는 수월하게 그들의 진형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으악! 이, 이런 기술이 있다는 말은 없었잖아?”
거미줄에 잡혀 끌려온 놈들은 몇 번 칼을 휘두르다가 이내 자폭 공격을 했다.
생명력과 마력을 일시에 터트리는 기술이기에 진수에게도 상당한 대미지를 주었다.
다만 그의 회복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 했다.
“안 되겠다. 몬스터 풀어!”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던 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전투 중에 지속적으로 다른 자들에게 지시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이 무리의 대장인 듯했다.
‘얼굴만 보면 대장급이 맞긴 하네.’
처음에는 순진무구한 아기처럼 보였지만 본색을 드러낸 후부터는 악귀처럼 보인다.
잔뜩 찌그러트린 표정과 자그마한 덩치의 괴리 때문에 더욱 기괴한 모습이 되었다.
-덜컹!
기계 장치가 작동되는 소리와 함께 마을 곳곳의 바닥에 구멍이 열렸다.
뒤이어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
진수가 [사신의 감각]으로 느꼈던 존재들이었다.
‘얼씨구, 이 근처에 필드가 있다고 했던 놈들은 다 여기 모아놨네.’
조금 전에 전이시켰던 예티부터 스노우폭스, 서리 코볼트까지 다수의 몬스터들이 나왔다.
딱 임무에 필요한 녀석들이었다.
“빙결진을 펼쳐라!”
몬스터들을 풀어놓고 뒤로 빠진 인간들은 진수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빙 둘러쌌다.
그 다음 눈을 반개한 채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휘이이잉!
차디찬 밤바람이 매섭게 불어닥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싸늘해졌다.
‘그러고 보니 몬스터 구성이... [냉기 저항]을 가지고 있는 놈들인 이유가 있었구나?’
그들의 전략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일정 범위에 냉기를 집중시켜 대상을 둔화시키고 냉기에 강한 몬스터로 처치하려는 수작이다.
확실히 이런 추위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겐 잘 먹힐 전략이었다.
-휘리릭!
빙결진이 완전히 활성화 되면서 공기 중에 서리가 맺힐 정도로 기온이 내려갔다.
더불어 엄청난 강풍이 불었기에 빙결진 밖에서는 내부의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크흐흐...! 몬스터가 없더라도 얼어 죽을 정도의 주술진이지. 저놈 시체는 우리 조가 가져간다!”
아이의 모습을 한 사내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상당히 신이 난 듯 보였다.
-피융! 퍽!
그의 바로 옆에 있던 조원의 머리가 무언가에 맞아 터져나가기 전까지는.
“어?”
-퍽! 퍽!
그가 어리둥절한 사이에 다시 두 명의 머리가 추가로 박살났다.
그들의 머리는 돌멩이로 대체가 되었다.
-휘우웅...
빙결진을 이루던 인원이 감소하니 저절로 바람도 줄어들었다.
조금씩 드러나는 내부의 모습.
바닥에 온통 몬스터의 사체가 가득했다.
무지막지한 냉기에 피가 흘러나오기도 전에 얼어붙어 깔끔한 상태였다.
그 중앙에서 진수가 오른손을 들어 조준을 하고 있었다.
그의 손바닥 안에 뜬 채로 회전하고 있는 돌멩이.
잠시 후 발사가 되니 빙결진의 바람을 타고 궤적이 묘하게 꺾이면서 정확히 또 다른 조원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아주 절묘한 솜씨였다.
“사격하면 한국이거든.”
진수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스노우폭스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스노우폭스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서리 코볼트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서리 코볼트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상급 냉기 저항] 특성
과연 상급의 특성은 훌륭했다.
멀쩡한 공기 중에 서리가 낄 정도로 대단한 추위도 선선한 가을바람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주었다.
빙결진을 구성하던 인원들 중 다수가 죽으니 진이 유지되지 못했다.
광풍이 멎자 그 때부턴 진수의 일방적인 활약이었다.
그는 분신을 만들어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해버렸다.
“이, 이게 겨우 A급이라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대장.
표독스런 표정이 빠지니 다시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푹!
“끄아아악!”
그렇다고 해서 연민을 가질 진수는 아니었지만.
진수는 진은으로 만든 송곳으로 놈의 발바닥을 꿰뚫었다.
“누구야? 날 노린 게.”
선 고문 후 질문이다.
“크흐흐.... 순순히 말할 것 같으냐? 의뢰인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건 살수의 제1규칙이다!”
“음, 음.... 그래. 누군가가 의뢰를 한 건 맞다는 거네.”
진수는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중국에서 진수를 지목해 노릴만한 대상은 하나뿐이었다.
운명파라는 녀석들.
“크흐흐.... 우리 살막에게 걸린 이상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우리 조의 실패를 바탕으로 더욱 철저한 수를 준비할 테지. 흐흐, 네놈이 앞으로 마주치는 그 누구나 우리 살막의 일원일 수 있다. 편안한 나날은 끝이라고 생각해라. 심지어 필드에서 만나는 몬스터에게도 안심할 수 없을 거다!”
“허, 몬스터까지 이용한다고...?”
진수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이에 자신의 으름장이 통한다고 생각한 녀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 좀 실감이 나나보지?”
‘이거 아주 딜리버리 서비스 아니야?’
그의 생각과 달리 진수는 별로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야성], [중급 청각], [중급 후각], [사신의 감각] 같은 특성들이 있기에 암살을 피하는 데에는 아주 특화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갖가지 몬스터까지 알아서 데려온다니 [차원 전이]를 가지고 있는 그에겐 오히려 반가운 이야기였다.
“내가 뭐 물어봐도 말해줄 생각은 없지?”
“흥, 죽여라!”
“그래, 운명파가 날 노린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충분해.”
진수는 자신이 유추한 내용을 슬쩍 흘렸다.
아주 미세하게 커지는 동공.
그 정도 단서면 됐다.
-우득!
대장의 목을 부러트려 마무리한다.
아직 진수가 운명파를 제대로 건드린 게 없었다.
지안시의 창고도 그들이 먼저 공격을 해왔고, 살막이란 녀석들에게도 그들이 의뢰를 했다.
굉장히 선제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진수는 운명파가 그만큼 켕기는 게 많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선 피를 좀 많이 보겠네.”
그는 몬스터의 사체들은 [차원의 틈]에 넣고 인간들의 시체는 한 곳에 묻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서 무기나 아이템이 있으면 모조리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확실히 마지막에 살수가 경고한대로 온갖 방법으로 진수를 노려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가 자고 있을 때였다.
“하, 젠장. 본체라고 이런 것까지 시켜도 되는 거야?”
분신으로 불침번을 세워놓고 자는 사이에 암살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작은 진수 선에서 간단히 해결이 됐다.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도와주... 켁!”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사람이 갑자기 공격하려 하기도 했다.
[야성]으로 살기를 미리 알아차리고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쿠워어어!”
서리거인이 나타났을 때는 이게 그냥 몬스터를 만난 것인지 암살의 일환인지 조금 모호하긴 했다.
하지만 놈을 전이시키고 나니 살막이라는 놈들의 수작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돌연변이 서리거인 [예렌] 차원 전이 성공.
‘이름까지 지어준 걸 보니까 꽤 공들여서 키우던 놈이구나.’
돌연변이라 그런지 덩치는 작았지만 제법 강했던 서리거인.
놈을 잡은 것을 기점으로 살막이란 녀석들의 암살 수준이 점점 떨어졌다.
덤비는 인원도 줄어들었고, 몬스터의 수준과 연령도 낮아졌다.
어디서도 안심할 수 없게 끊임없이 괴롭히겠다고 호언장담 했지만 도리어 괴로워진 것은 그들이었다.
-예티 [윌럼프], 스노우폭스 [화이트폭스], 서리 코볼트 [토그왜글], 돌연변이 서리거인 [예렌], 아이스 스켈레톤 [냉동사골]이 [괴물왕녀] 무리에 합류합니다.
-얼음 속에 파묻혀 있던 차원의 축을 발굴합니다.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체력 +3, 내구 +1, 마력 +4, 골드 +15
“살막 친구들 덕분에 아주 살맛나는구나!”
추위에 강한 몬스터들을 전이시키면서 수정 산맥에 있던 차원의 축을 꺼냈다.
그 덕분에 보상으로 체력이 올라 여독까지 풀 수 있었다.
이틀 동안 살막의 습격을 받으며 이동한 결과 창춘시가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제 도착했네. 살막 녀석들이 도시에서 습격하는 건 오히려 상대하기 더 수월하지.’
진수가 걱정하는 것은 살막의 암살시도보다는 운명파에서 그의 행적을 전해 듣고 블루 오아시스 공장을 옮기진 않았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큰 지장은 없다.
운명파라는 커다란 단체가 진수 한 명을 피해서 숨을 리는 없었으니까.
“제일 좋은 건 블루 오아시스를 더 생산하지 못하게 조지고 이상한 짓 꾸미는 놈만 찾아서 해치우는 건데....”
아무리 그가 자신감이 넘치도록 강한 힘을 얻었다고 해도 중국에서 성을 몇 개나 차지할 정도로 힘이 있는 조직을 상대하기는 힘들다.
위험요인만 잡아다가 박철준이 말했던 국제형사경찰기구에 넘기고 평화를 얻는 게 최선일 것이다.
진수는 이내 고민을 접어두고 창춘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부우웅
제법 도로가 잘 놓여있는 도시.
창춘시는 지안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발전된 곳이었다.
‘차는 서울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는 거 같은데?’
게이트 사태 이후로 자동차는 그리 많이 이용되는 이동수단이 아니었다.
물론 도시 내에서는 운용할만했지만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는 몬스터의 습격, 폐기된 도로 등의 이유로 사용하기가 조금 힘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석유가 나지 않는 나라에선 수입의 어려움 때문에 기존에 기름으로 움직이던 차는 부자들의 사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대신해서 마석을 사용하거나 각성자들의 경우엔 자신의 마력을 동력원으로 삼는 자동차가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제한사항 덕분에 한국에서 자동차 산업은 그리 발전한 형태가 아니었다.
‘근데 여긴 뭐 일반 승용차부터 트럭까지 다니네.’
진수는 창춘시의 모습에 꽤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더더욱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발전된 도시를 손에 쥐고 있는 운명파에서 왜 블루 오아시스와 인위적인 균열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일까.
‘곧 알게 되겠지.’
그는 블루 오아시스 공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너 지금 뭐라고...?
블루 오아시스 공장은 창춘시의 자동차 공장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차들이 워낙 많이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물건들을 몰래 옮기기에도 수월한 위치를 잡은 듯했다.
‘창천시가 중국에서 자동차 공업이 발달한 곳이었구나....’
진수는 핸드폰으로 검색한 결과를 읽어봤다.
중국은 나라가 워낙 크기 때문에 헌터용 차량의 수요가 상당하다고 했다.
몬스터에 의해 파괴되는 차가 많은 덕분에 새로운 차는 끊임없이 필요하고 덕분에 자동차 산업의 규모가 꽤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안전한 도시용 차 공장이랑 헌터들을 위한 차 공장은 나오는 연기부터 다르네.’
마석을 가공하면 초록색 불꽃이 튄다.
그 때 발생하는 연기도 검녹색이었기에 연기만 봐도 어디가 헌터용 차량 공장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공장은 앙큼하게 보통 차량 공장이랑 같은 색의 연기를 내고 있단 말이지.”
진수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른 공장들과 비슷하게 생긴 곳.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완성된 차도 왔다 갔다 하고 겉으로 봐서는 차이가 없는 듯했다.
하지만 지안시에서 알아낸 대로면 저 공장이 바로 블루 오아시스 공장이다.
‘오랜만에 공허룡 코트를 입네.’
코트를 목까지 철저하게 잠근 뒤 [유체화]와 [투명화]를 사용해서 공장 내부로 진입했다.
밖에서는 평범한 자동차 공장처럼 보였던 곳이, 들어가서 보니 트럭의 적재공간에 박스들을 싣고 있었다.
일반적인 자동차 공장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일 것이다.
‘지린성을 운명파가 장악하고 있고, 여기도 운명파 소유라고 위장도 대충 한다 이거지.... 그래, 나한텐 좋은 일이야.’
진수는 기척을 숨긴 채 상자들을 갖고 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약 냄새가 퍼지지 않게 차단된 공간에서 파란 가루들을 대량으로 포장하고 있는 모습.
딱히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블루 오아시스 공장인 건 확실하네.’
진수는 공정들을 보면서 약은 어디서 가져오는지 살펴봤다.
포장을 위한 공간으로 작은 엘리베이터 같은 것이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인다.
방향을 보니 지하에서 올라오는 듯했다.
그는 분신을 만들어 [유체화]로 지하에 내려 보냈다.
-스윽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서 고개를 내민 작은 진수.
고개를 끄덕인 뒤 [분열]을 해제했다.
그러자 지하의 상황이 공유되었다.
쌓여있는 몬스터의 사체들.
사체는 차례차례 푸른 용액 안으로 들어갔다.
파이프를 통해 푸른 액체가 흘러 조금씩 떨어지고 급속 건조가 되어 가루 형태로 변한다.
파란 가루는 또다시 어디론가 이동했다.
‘내가 창춘시에 왔다는 걸 전혀 모르는 건가?’
어떤 경계심도 없이 블루 오아시스를 제조하고 있었다.
진수는 다시 [분열]을 사용했다.
이번엔 다섯 개체의 분신을 만들어 조금 전 확인한 모습을 바탕으로 구조를 파악했다.
-슈욱
대략 10분 정도 흐른 뒤, 작아졌던 진수의 몸이 다시 원상복구 됐다.
이어서 전해지는 작은 진수들의 기억.
‘민우혁이 여기에 와있었어?’
한 분신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민우혁의 모습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일이 술술 풀린다.
그는 [유체화]와 [투명화]를 사용해 민우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블루 오아시스 생산은 차질이 없어야 됩니다. 적룡파 쪽 일은 들으셨죠?”
민우혁이 가운을 입고 있는 여성에게 적룡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적룡파와 관련된 사람이 지안시의 창고를 공격했다고 합니다. 저희도 살수들을 고용해서 최대한 막으려고 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새, 새로운 약 제조 공정 기술을 적용까지 했으니까 전 이만 발을 빼도 되지 않나요...?”
그녀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이미 한 배를 탔습니다. 그리고 과연 지금 우리와 떨어진다고 해서 안전할까요?”
민우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묻는다.
이에 여성이 흠칫했다.
“아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저희 운명파가 해코지를 하겠단 말은 아니니까. 이번에 연구해주신 기술 덕분에 약의 중독성이 더욱 강해졌잖아요? 위에서도 그 공로를 아주 높게 치고 있습니다. 선생께 저희는 전혀 서운한 게 없어요.”
그들의 대화를 훔쳐듣던 진수는 민우혁의 말에 놀랐다.
‘중독성 때문에 공정을 바꾼 거였다고...? 내가 생각했던 건 그냥 과잉반응이었나?’
진수가 생각했던 것처럼 세계적인 재앙을 노리던 것은 아닌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중독성의 마약을 유통하는 것은 뿌리를 뽑아야 될 범죄다.
그들의 의도가 예상과 다르다고 해서 그냥 좌시할 사안이라는 건 아니었다.
‘여기를 박살내고, 저 둘을 붙잡아가자. 그러면 약이 유통되는 기간도 늦출 수 있고 잘하면 아주 근절할 수도 있겠지.’
박철준 수사관이 지난 번 이야기한대로 국제형사경찰기구가 다시 작동하도록 한다면 블루 오아시스를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서 확실한 증거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진수는 분신을 보내 블루 오아시스를 만드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고 창고에서 약들을 모조리 [차원의 틈]에 집어넣었다.
이어서 민우혁과 여성이 블루 오아시스 제조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까지 담았다.
‘이제 활동 개시다.’
공장 곳곳에 [백년 도깨비불]로 화재를 일으켰다.
분신들은 블루 오아시스도 일부 같이 태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매캐한 연기와 달큰한 냄새, 뜨거운 열기가 블루 오아시스 공장 내부를 혼란으로 이끌었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화재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리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일부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공장에서 벗어났다.
“갑자기 웬 불이...?”
블루 오아시스를 만드는 것은 열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 작업이다.
기계 자체도 과열될 가능성이 희박했기에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불이 나는 건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민우혁이 주변을 경계했다.
“왜, 왜 그러세요...?”
민우혁과 이야기를 나누던 여인이 겁먹은 목소리로 묻는다.
“아무래도, 방금 전에 이야기했던 사람이 온 거 같습니다. 경비들을 부르죠.”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 실장님. 여기 회의실인데요. 경비 인원들 모두 이곳으로 보내주세요. 아뇨, 불 끄는 것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눈치가 빠르네.”
-스윽
천장에서 진수가 튀어나왔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그의 모습에 여성은 깜짝 놀라 딸꾹질을 했다.
‘일단 저쪽은 전투 헌터가 아니고.... 민우혁은 무법지대를 왕래할 정도니 제법 싸움을 하겠지.’
“... 김진수씨.”
민우혁은 그를 보고도 상당히 침착했다.
운명파는 이미 진수를 지목해서 살수를 보낼 정도였다.
그가 나타났다고 놀라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민우혁, 그쪽이 중국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할 때만 해도 이런 활동인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진수가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자 민우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활동이라니? 몬스터 부산물을 활용해서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주는 일인데.”
“후... 내가 그런 헛소리나 듣자고 온 건 아니니까, 괜히 말 섞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진수는 작게 한숨을 쉰 뒤 한손 망치를 꺼냈다.
그가 사용하는 무기들 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덜 치명적인 무기였다.
“흐흐, 전투 헌터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렇게 건방을 떠시나?”
-우드득, 우득!
관절이 꺾이는 듯한 소리가 나며 민우혁의 덩치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주둥이가 튀어나오고 예리한 손발톱이 뽑혀 나온다.
눈에 샛노란 빛이 돌고 섬뜩한 짐승의 눈이 되었다.
그의 전투 스타일은 늑대인간으로 화하는 방식이었다.
“크흐흐...! 하룻강아지한테 누가 위인지 알려주마!”
민우혁이 번개처럼 빠르게 짓쳐들었다.
주둥이를 쩌억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민다.
-콰득!
순식간에 왼팔을 물렸다.
진수의 팔에서 시뻘건 피가 콸콸 쏟아졌다.
“아구 힘이 좋네. 꽉 물고 있어.”
“...?”
선공을 당했음에도 굉장히 차분한 목소리.
진수는 물린 팔을 돌려 그대로 놈의 목과 턱 사이 즈음을 붙잡았다.
마치 프레스 기계처럼 엄청난 힘에 민우혁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큰 고통을 느꼈다.
“자, 잠깐! 뭐 하려는...!”
-퍽!
한 손으로 민우혁을 단단히 붙잡고 남은 손으로 망치질을 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빙의]로 평천대성의 힘까지 끌어온 상태.
한 방 한 방에 엄청난 충격이 담겼다.
막기 위해서 손을 뻗으면 손이 부러지고 팔뚝을 내밀면 팔뚝이 덜렁거렸다.
민우혁이 물었던 진수의 팔은 벌써 다 아물었다.
-탁탁탁
진수가 민우혁의 사지를 다 박살내놓고 있는데 문 쪽에서 다수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민우혁 과장님!”
“저, 저놈 뭐야?”
블루 오아시스 공장의 경비 헌터들이었다.
흉흉한 무기들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상당히 살벌했다.
“어우, 마침 쓸 만한 늑대가죽 방패가 생겼는데, 잘 됐네.”
“끄...억...?”
늑대가죽 방패가 신음을 냈다.
-피슉!
진수는 [강철 거미줄]을 사용해서 회의실에 있던 여성을 제압했다.
일부러 그들이 있는 회의실 쪽으론 불길이 천천히 오도록 불을 질렀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이어서 민우혁의 너덜거리는 팔다리도 거미줄로 묶었다.
“간다.”
민우혁을 앞세워 돌진하는 진수.
운명파의 헌터들은 함부로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머뭇거리는 순간 망치가 번뜩인다.
엄청난 괴력으로 쉼 없이 휘두르는 공격에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흐아앗!”
공격을 하지 않으면 당할 수밖에 없음을 직감한 이들이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진수는 의도적으로 모든 공격을 민우혁으로 막아냈다.
오른쪽에서 날아든 공격도 굳이 몸을 돌려 왼쪽으로 받아내는 것이다.
애초에 진수의 전력이 더욱 강했고 선공의 이득까지 취했으니 상황을 마무리 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커헉....”
민우혁의 온몸은 거의 넝마가 되었지만 말이다.
“어차피 늑대인간 되는 기술에 빠른 회복도 포함된 거 다 알아. 엄살 부리지 마라.”
-빡!
진수는 그의 머리를 한 번 후려친 뒤에 회의실에 잡아둔 연구원을 데려왔다.
둘을 함께 [강철 거미줄]로 묶어 공장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공장 전체에 불길이 번져 활활 타올랐다.
‘이제 한국까지 무사히 돌아가면 얼추 끝나겠네.’
일이 너무 원활하게 해결되는 것 같아 불안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을 둘러메고 이동하려고 하는데 그의 앞에 이상한 것이 나타났다.
허공에 떠있는 자그마한 그림.
사람 모양의 그림이었는데, 크기가 점점 커졌다.
-슈우욱!
커지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더니 갑자기 그림에서 보통의 사람으로 변했다.
다부진 몸에 강인한 인상을 지닌 사내다.
“뭐야, 저것도 너네 애냐?”
진수는 민우혁을 보며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 대해서 물었다.
하지만 민우혁의 얼굴도 상당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전혀 모르는 인물인 듯했다.
‘여차하면 조질 수 있게 대비해둬야지.’
진수는 [빙의]를 사용해 평천대성의 힘을 가져왔다.
근력 강화는 어떤 상황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범용성 좋은 능력이었으니까.
“흠!”
그 순간 허공을 응시하던 사내가 무언가 느꼈는지 진수를 노려봤다.
“네놈이 징크스구나...!”
“뭐? 너 지금 뭐라고...?”
“널 죽여 세상을 구하겠다! 파투스님을 위하여!”
그는 진수의 물음에 일절 대답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파투스라는 이름을 외치며.
그 모습을 보며 진수는 민우혁과 여성을 한 구석으로 던져두었다.
‘뭐야, 이놈은 왜 이렇게 쫄았어?’
바닥에 나뒹구는 민우혁의 얼굴엔 상당히 놀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위기
-슈슉!
처음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나타났던 사내의 손에 살벌하게 생긴 낫이 쥐어졌다.
마치 진수가 [차원의 틈]에서 물건을 꺼낼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근데 보통은 옷부터 입지 않나?’
진수는 [차원의 틈]에서 도끼를 꺼내며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살기등등한 그의 태도가 대신 답을 해줬다.
옷가지를 걸치는 것보다 진수를 죽이는 것이 제1과제라고.
-캉!
도끼와 낫이 부딪히며 불똥을 튀겼다.
진수는 자신만만하게 힘으로 사내를 제압하려고 했다.
그 자신의 근력도 강했고 [빙의]까지 합쳐지며 가공할 수준의 완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슈우욱
“어어...?”
하지만 정체불명의 사내와 격돌하는 순간 그것이 오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진수의 몸 위에 씌워진 평천대성의 오러가 조금씩 희미해지더니 곧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거 왜 이래?’
그가 당황한 사이 사내의 낫이 강하게 압박해왔다.
[빙의]가 무효화되니 힘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네놈 때문에 우리 세상에 괴물들이 다시 활개 치기 시작했다! 널 죽이고 세상을 구하겠어!”
사내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의 말과도 달랐지만 주해응의 인장 반지 덕분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챙!
진수는 그의 낫을 세차게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괴물들이 다시 활개 치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전이를 시키기 전에도 몬스터가 들끓은 적 있다는 얘긴데....’
그의 심경은 상당히 복잡했다.
실제로 이쪽의 몬스터들을 저쪽 차원으로 많이 전이시켰으니까.
그것도 상당히 강한 녀석들도 다수.
‘인간들한테 공격당할 때면 특성이랑 기술까지 넣어줬지.... 잠깐, 근데 우리 애들이 먼저 친 건 아니지 않나? 카토인가 하는 곳 빼고는....’
진수가 몬스터를 전이시킨 것은 맞지만 전이자들이 인간을 먼저 공격한 경우는 한 번 뿐이었다.
그 한 번도 사실상 그들이 고돌이를 잡아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놈들이 차원의 축을 조졌냐?”
사내는 진수 때문에 저쪽 세상이 망하는 것처럼 얘기했지만 오히려 전이자들은 인간들이 망가트린 차원의 축을 회복시켰다.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몬스터가 늘어나는 게 세계 멸망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건 시야가 좁아서 그런 것일 뿐이었다.
“이름만 들어봐도 건드렸다간 몬스터뿐만 아니라 차원 전체가 작살날 거 같은 물건 아니야?”
진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이에 사내 또한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무슨 소리냐! 차원의 축이라니?”
“황금바다니 저주받은 성지니 하는 곳에 있는 거 말이야. 너네 파투스교가 노리던 거!”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간악한 혓바닥 그만 놀려라! 몬스터의 둥지를 난데없이 차원의 축이라며 속이려 들다니. 최소한 그럴듯한 소릴 해야 속지 않겠느냐?”
“뭐? 몬스터의 둥지라고?”
“몬스터의 둥지에서 네놈이 보낸 몬스터가 나타났다. 파투스님께서 일러주지 않으셨다면 꼼짝없이 다시 괴물 천지가 될 뻔했지. 그렇게 이용해놓고도 모르쇠로 나오다니.... 비열하고도 뻔뻔한 놈이구나!”
몇 차례 대화를 나눠보니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차원 전이]를 통해서 보낸 전이자들은 차원의 축이 있는 지역으로 전이되었다.
아마도 차원의 축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차원의 축을 발견하고 회복시킬 때마다 진수에게 보상을 주었으니까.
그런데 그걸 보고 차원의 축 근처에서 강한 몬스터가 등장하니 파투스교에서는 몬스터의 둥지라고 속은 모양이었다.
‘애초에 차원의 축을 조진 게 그 파투스란 놈이었겠지.’
진수가 몬스터를 보내기 전에도 괴물들이 날뛰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니 어쩌면 차원의 축을 망가트리기 위해서 파투스라는 존재가 몬스터를 이용했던 것일 수도 있다.
“너희 지금 굉장히 큰 실수하고 있는 거야. 파투슨가 뭔가 하는 놈한테 눈탱이 맞고 있는 거라니까?”
“개소리 마라! 파투스님이 아니었다면 벌써 우리 세상은 괴물들로 뒤덮여 다 죽었을 거다. 모든 몬스터들을 거의 절멸시켜가고 있었는데 네놈 때문에!”
사내는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거 단단히 세뇌가 됐구만. 어차피 말로 어떻게 해결은 안 되겠다.’
가급적 평화롭게 풀어보려고 했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슈슉
진수는 몸 위에 방어구를 소환했다.
말이 안 통하면 무력으로 제압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갑자기 [빙의]가 먹통이 됐지만 내가 가진 능력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지.’
짧은 대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사내가 다시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척까지 다가올 정도로 대단한 속도였다.
-챙! 챙!
연달아 낫을 휘두른다.
진수는 방어구의 마력회로를 활성화하며 공격을 받아쳤다.
순식간에 십 수 번의 공격을 주고받는다.
-퍽!
머리를 노리며 날아오는 낫을 피함과 동시에 사내의 복부를 걷어차 멀리 날렸다.
‘네일건으로 견제를.... 어?’
[차원의 틈]에서 네일건을 꺼내려 했는데 [차원의 틈]이 느껴지지 않았다.
[빙의] 다음은 [차원의 틈].
그리고 전투에 집중하느라 미처 알아채지 못했는데, 싸늘한 공기에 솜털이 곤두서는 것이 느껴졌다.
최근에 얻은 [상급 냉기 저항]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진수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다.
‘[차원 전이]로 얻었던 것들이 하나씩 무효화 되고 있다.’
그의 힘의 원천인 [차원 전이].
그런데 저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와 싸움이 이어질수록 점점 [차원 전이]의 영향력이 옅어지고 있었다.
“흐흐흐. 알아차렸나보군. 파투스님의 은혜로 네놈의 더러운 힘을 차단했다. 그동안 우리 세상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즐겁게 지냈겠지만 더 이상은 안 되지! 넌 오늘 죽을 테니까!”
진수의 얼굴에 긴장감이 도는 걸 발견한 사내가 킬킬 웃었다.
‘아직 능력치들이랑 여러 특성, 기술들이 남았어. 속전속결로 끝내야 내가 살 수 있다.’
-뿌우우우!
진수가 [전장의 뿔나팔]을 사용했다.
자신감이 샘솟고 온몸에 강한 기운이 감돌았다.
곧장 [석화의 시선]을 사용해 놈을 마비시키고 공격하려 했지만 벌써 [석화의 시선]도 막힌 듯했다.
-캉!
“마음이 점점 급해지는 모양이지?”
조급한 태도의 진수와는 반대로 사내는 점점 여유로워졌다.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진수의 적극적인 공세와 사내의 방어로 싸움이 펼쳐졌다.
다행인 점은 놈의 전투 능력이 진수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헉, 헉, 헉...!”
진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전투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이제 그의 손에서는 [강철 거미줄]도 나오지 않았다.
[백년 도깨비불]도 다시 옛날의 푸른 불꽃으로 돌아가 보통의 [도깨비불]로 변했다.
-샤악!
그가 푸른 귀화를 보며 마른침을 삼키는데 날카로운 낫이 짓쳐들었다.
[야성] 특성 덕분에 가까스로 회피에 성공한다.
하지만 완전히 피해낸 것은 아니었다.
턱 쪽으로 기다랗게 상처가 났다.
-주르륵
자상이 회복되지 않고 출혈을 일으킨다.
[중급 재생력]마저 비활성화가 된 것이다.
‘[중급 재생력]이 처음 [차원 전이]의 상점을 이용했을 때 얻은 특성이었지. 이제 곧 [야성]까지 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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