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14

-쿠르르릉! 
잠시 잠잠해진 것 같던 포항 광산에 다시 엄청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광산 앞에서 추이를 살피던 사람들은 여진인 줄 알고 출입구에서 멀리 떨어졌다. 
수많은 이들이 혹시라도 광산이 완전 무너지는 게 아닌가 걱정을 가득 안고 대기했다. 
“어? 안에서 뭐가 나오는 거 같은데...?” 
계속되는 진동에 흙먼지가 피어올라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갱도. 
그 안에서 인간의 형태로 보이는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푸후우! 어후, 먼지 지독하네.” 
손부채질을 하며 나온 인물은 진수였다. 
머리나 옷 위로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처음에 입고 들어갔던 옷에도 꽤 전투의 흔적이 보였다. 
지금까지 진동 때문에 광산 내부를 못 들어가고 있던 사람들은 안에서 나온 진수를 신기한 듯 보았다. 
“뭐야, 여기 왜 이렇게들 모여 있지?” 
진수도 마찬가지로 광산 앞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진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광산 내부는 지금 어때요? 지진 피해가 좀 있나요?” 
“지진이요? 지진 같은 건 느낀 적이 없는데.” 
그가 광산 안에서 진동을 느꼈을 리가 없었다. 
그와 마인 가드가 싸운 여파 때문에 사람들이 지진이 발생했다고 오해한 것이니까. 
“광산 안에 있었으면서 그걸 못 느꼈다고? 김건이 보냈다더니 광산에 또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냐!” 
진수의 말에 다시 되물은 것은 아이언피스트의 노인이었다. 
그 또한 광산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리나케 작업을 내려놓고 달려왔다. 
김건이 보냈다는 사내가 광산에 들어가고 다시 이상 현상이 나타난 것이었으니까. 
“김건? 그 광산 막았다는 그 사람 아니야?” 
“포항 조질 뻔했던 일이잖아.” 
“뭐야.... 이번에도 뭐 터트린 건가?”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진수는 가만히 그들의 반응을 살피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뭔가 오해들이 있으신 거 같은데요. 그럴 줄 알고 제가 준비한 게 있습니다.” 
그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그려졌다.
진화의 돌이냐고
아이언피스트의 수장 형주홍은 핸드폰에 담긴 영상을 다시 한 번 돌려봤다.
광산 내부를 가로막고 있던 빌어먹을 흙벽이 한 데 뭉치는 모습.
그것이 커다란 드워프의 형상으로 변하는 장면.
영상을 종료하느라 핸드폰을 조작하려는 진수의 얼굴까지.
“건이 그놈 때문에 광산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고?”
형주홍은 처음 진수가 아이언피스트에 찾아갔을 때 역정을 냈던 그 노인이었다.
그는 진수가 내민 핸드폰의 영상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길드장님! 정말 광산 안에 막혔던 길이 뚫려있습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넓어진 거 같은데요?”
그가 광산 안을 살피라고 보냈던 아이언피스트 길드원이 돌아왔다.
그것도 굉장히 밝은 얼굴로.
“아마 그 당시에 우연의 일치로 영상에 보이는 몬스터가 나타났던 거 같아요. 나름 광산의 필드 보스였던 거죠. 제가 안에서 봤던 광경과 김건 사장님이 기억하던 모습도 차이가 많았고요.”
“허허.... 그랬었나. 건이 그녀석이 진작 연락만 줬어도 그런 오해는 하지 않았을 건데...! 우린 녀석이 앙심을 품고 보복을 했다고 생각했었지.”
어떻게 보면 다른 장인들도 총을 만드는 데에 일조를 한 셈이다.
그런데 막상 쫓겨난 것은 김건뿐.
그에 대한 죄책감과 기묘한 상황, 자기합리화 등이 합쳐지며 김건을 원망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미안하게 됐어. 괜한 오해를 해서 친구의 손님을 위험하게 만들었구만.”
진수의 온몸에 격렬한 전투의 흔적들이 보였다.
실은 전투의 흔적이 아니고 복구된 광산 내부에서 곡괭이질을 하느라 생긴 것들이었지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진수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 모습에 광산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뭐야? 뭐야? 저 콧대 높은 영감님이 왜 저 사람한테 조아리는 거야?”
“광산 막혔던 걸 저 사람이 뚫었다는데?”
“와씨, 그럼 거의 포항의 은인 아니냐? 지금 장인들 수준에 희귀광물 생산까지 더해지면 시너지 장난 아니겠는데.”
포항의 최대 규모 장인 길드 아이언피스트.
그런 단체를 이끄는 길드장이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장면은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몰라요. 서울에서 온 헌터라는 거 같던데....”
“저분 저희 팀장님이에요! 얼마 전에 천안에서도 한 건 하시더니 포항에서도 장난 아니시네.”
진수의 정체를 궁금해 하던 사람들에게 대답을 한 것은 RD에서 함께 온 헌터, 장우종이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업적이라도 되는 양 천안에서 비행몬스터사냥협회를 털었던 일, 진수의 전투 실력 등을 자랑했다.
“지금 B급이시라는데 제가 봤을 때 능력은 무조건 A급 이상이에요. 두고 보세요. 조만간 한국에 새로운 A급 헌터가 나왔다고 기사 뜰 걸요?”
장우종의 설레발에 포항의 장인들과 헌터들 사이에서 진수의 이름이 퍼졌다.
하지만 그건 비단 그의 입방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네가 제작 의뢰를 주면 우리 아이언피스트에선 무조건적으로 받지. 친구와의 오해를 풀어주고 더 나아가 우리의 고민까지 해결해주었으니 자네도 아이언피스트의 친구야!”
아이언피스트의 적극적인 호감 표시.
이는 포항 전체가 진수를 우호적으로 대할 것이란 뜻과 진배없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김건 사장님한테도 꼭 오해가 풀렸다고, 미안하다고 해주세요.”
‘그래야 내가 김건 사장님한테 생색을 팍팍 내니까.’
“음, 그래야지....”
진수의 말에 형주홍의 얼굴엔 미안함이 가득 떠올랐다.
“자, 그러면 이제 장비 제작 의뢰를 좀 하겠습니다.”
얼추 아이언피스트와 김건 사이의 문제는 풀린 듯 보였다.
진수는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후두두둑
공간압축주머니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희귀 광물들.
금속 주괴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뿐이지 광석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처리는 다 했다고 할 정도로 깔끔한 상태였다.
[특급 공구 숙련]과 [도구 일체화]에다 헤파이스토스의 석재 지식까지 합쳐져 완벽에 가까운 곡괭이질을 한 덕분이었다.
“아니, 이렇게 많은 광물을 캐왔다고...? 그 짧은 사이에 필드 보스까지 해치우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형주홍.
진수는 별 거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 * *
마인 가드에게 라퓨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보상을 받은 직후.
진수는 신기한 광경을 마주했다.
마인 가드가 가로막고 있던 구역이 일시적으로 붕괴되는 듯하더니 몬스터를 차원 전이시킬 때와 비슷한 감각이 느껴졌다.
광산 내부에 광범위한 변화가 나타났다.
곳곳에 희귀 광물들의 광맥이 생긴 것이다.
‘아, 여기도 다른 차원의 공간이 넘어온 경우였구나.’
던전도 아닌데 던전산 광물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의아했는데 그 비밀이 풀렸다.
-특수임무 발생
-특수임무 : 안내하는 물건을 마굴에 있는 전이자에게 전달하기
-보상 : [올림포스] 무리 성장
그와 함께 나타난 안내 메시지.
진수는 두말할 것 없이 특수임무를 수락했다.
‘근데... 가리키는 방향의 상태가...?’
임무를 받고 나니 지하를 향해 안내를 하고 있었다.
곡괭이를 단단히 틀어쥐는 진수.
어차피 희귀 광물들을 좀 캐갈 생각이었으니 겸사겸사 임무도 해치우자는 마음으로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파지지직!
상당한 시간동안 땅을 파고든 결과, 진수는 스파크가 튀는 돌을 하나 발견했다.
임무가 가리키는 물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김건 사장님한테 갖다 드리면 좋아할만한 돌멩이긴 한데.... 임무가 우선이지.’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올림포스] 무리 성장
-[올림포스]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민첩 +2, 체력 +2, 내구 +2, 마력 +3
‘무슨 진화의 돌이냐고.’
5골드를 써서 코볼트 소서러 제우스에게 전기가 감도는 돌을 전달했다.
왠지 모르게 상태창에 있는 제우스의 그림 주위로 전기 스파크가 더 많아진 듯 보였다.
-[올림포스] 무리가 마굴에서 회복중인 차원의 축을 발견했습니다.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민첩 +2, 체력 +1, 내구 +3, 마력 +3, 골드 +10
‘그것은 나를 위한 진화의 돌이었고요.’
보상을 받은 진수의 얼굴엔 만족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포항의 광산은 저쪽 차원의 마굴이라는 곳과 연결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는 임무도 달성을 했고, 땅을 파는 와중에 상당한 양의 광물도 얻었으니 광산 밖으로 향했다.
* * *
잠시 광물을 캐낸 과정을 회상하던 진수는 꺼내놓은 광물들을 모두 형주홍에게 내밀었다.
거기에 더해서 주선생에게 받은 묵직한 금속까지.
거무튀튀한 금속을 보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 형주홍.
“이거, 요철이군. 흔히 볼 수 있는 쇠가 아닌데....”
그는 요철이라 부른 금속에서 눈을 떼고 진수를 보았다.
“마력을 담으면 더욱 단단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 근데... 리스크가 상당한 요물이기도 해. 이건 누가 줬어?”
“리스크요?”
“헌터용 장비에 쓰기 아주 좋은 쇠는 맞는데, 이걸 오래 사용하면 자기도 모르게 정신이 조금씩 이 요철에 잡아먹히게 돼. 그 상태에서 누군가가 정신 지배 계통의 기술을 쓰면 저항할 수 없다고 하더군.”
형주홍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놈들이고 요괴놈들이고 선물이라면서 멀쩡한 것을 주는 자식들이 없네.’
순수한 호의로 주는 것처럼 얘기하던 주선생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진수에게 [특급 정신 보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특급 정도 되는 특성이 기껏 쇳덩이에 무너질 리는 없었다.
“아, 그냥 운 좋게 얻었습니다. 하하. 혹시 제작하실 때에도 이게 뭔가 악영향을 주나요?”
형주홍은 진수의 질문에 고개를 가볍게 가로젓는다.
“이걸 이용해서 물건을 만들 때는 전혀 영향이 없어. 쓰는 사람이 문제지.”
“아, 그럼 그냥 부담 없이 제작해주세요. 문제없게끔 쓸 방법이 있거든요.”
“알겠네. 그럼 들어가서 어떤 물건을 만들 것인지 좀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자고.”
아이언피스트의 공방으로 향한 진수와 형주홍은 요철과 온갖 희귀광물을 이용해 만들 장비에 대해서 논의했다.
진수가 원한 것은 망치였다.
일명 오함마라고 불리는 슬레지 해머.
기왕이면 양손으로 묵직하게 휘두를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한 손으로 쓰기도 용이한 길이를 요청했다.
“요철만 해도 무게가 보통이 아닌데 괜찮겠어?”
손잡이까지 금속으로 만들 예정이었기에 형주홍은 우려를 표했다.
물론 그 걱정은 공방에 있는 모루를 진수가 한 손으로 들어 보이며 단박에 종식시켰다.
이미 진수의 완력은 인간의 한계를 한참 벗어나있었다.
“망치 머리의 한쪽은 뾰족하게 만들어서 다양하게 쓸 수 있게 하면 되겠군. 자잘한 재료들은 우리 아이언피스트가 가진 최고급으로 사용할 테니까 걱정 말라고!”
형주홍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김건에게 작별 선물로 공허룡의 날개 피막을 준 곳이다.
절대 싸구려 재료를 사용할 리는 없었다.
“기간은 어느 정도로 잡으면 될까요?”
“다른 작업은 모두 미루고 제일 우선적으로 만들 거니까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릴 게야. 요철을 달구는 게 가장 문젠데. 마석으로 가열하면 한 3일이면 충분히 불을 멕일 수 있을 거고... 한 일주일이면 되겠어.”
“어휴, 달구는 데만 3일이요?”
“요철이란 놈이 달구고 괴롭힐수록 단단해지는 놈이라 그렇지. 어쨌든 일주일이면 충분할 테니까 그쯤 와!”
진수는 알겠다 대답하고 공방을 나왔다.
* * *
일주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포항의 거래처들과 이야기를 하는 데에만 하루를 꼬박 잡아먹었다.
진수가 아이언피스트의 친구라는 이야기가 이미 포항 전역에 퍼졌는지 별 문제는 없었다.
‘나중에 운송로 뺏을 때도 포항은 아무 걱정 없겠다.’
우호적인 포항 사람들의 태도에 진수는 안심했다.
거래처를 돈 뒤로는 포항 운송로 경로에 있는 몬스터를 사냥했다.
-아이언랫 [미키]가 [올림포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메탈고블린 [고메]가 [아틀란티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어스 엘리멘탈 [꼬마돌]이 [뉴트럴바이오 친구들] 무리에 합류합니다.
‘역시 철의 도시답게 쇠나 돌 같은 몬스터들이 꽤 많네.’
진수는 맨손으로 어스 엘리멘탈을 깨부쉈다.
돌로 이루어진 몸이었지만 그의 주먹질에 박살이 나버렸다.
“역시, 김진수 팀장님! 솔직히 팀장님 혼자 오셨어도 운송로 구축 작업에 전혀 지장 없었을 거 같네요.”
“맞아, 맞아.”
“싸우시는 거 보면 누가 몬스터인지 모르겠다니까요? 하하.”
장우종이 칭찬을 하니 다른 팀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의를 한다.
지난 일주일동안 사냥한 몬스터의 수로 봤을 때 전혀 근거 없는 칭찬은 아니었다.
팀원들이 위험하지 않게 솔선수범하며 전투에 참여한 진수.
다른 사람들이 사냥한 것보다 진수가 해치운 몬스터가 배는 많았다.
‘결국 사냥한 몬스터는 다 내 몫이기도 하고, 나중에 RD를 무너트리고 다 인력으로 흡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좋은 인식 만들어놓는 게 좋겠지.’
물론 다 꿍꿍이속이 있는 행동이었다.
“자, 오늘은 이만 마치고 숙소로 돌아갈까요? 이제 하루 이틀만 더 사냥하면 포항 운송로 작업도 마무리 되겠네요.”
마지막 몬스터를 처치한 뒤 진수는 가볍게 박수를 치며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오늘은 아이언피스트에 의뢰한 망치가 완성되는 날이기도 했기에 일찍 마감을 한 것이다.
-[공방] 무리가 [올림포스] 무리의 거주 영역에 들어왔습니다.
-두 무리가 서로 경계합니다.
‘얘들은 또 왜...?’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쭉 펴려던 진수의 눈앞에 예상치 못한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아주 쓸 만한 녀석이 나왔어
-코볼트 소서러 [제우스]와 드워프 [헤파이스토스]가 대화를 나눕니다.
올림포스와 공방, 두 무리의 수장이 만났다.
무언가 활발하게 말이 오가고 있는지, 코볼트 소서러의 그림과 드워프 그림 사이에 말풍선이 빠르게 왔다 갔다 했다.
그러는 와중에 포항 광산에서 전이를 시켰던 마인 가드, 라퓨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방 무리에서 올림포스 무리 쪽으로 향하는 녀석.
-마인 가드 [라퓨타]가 마굴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라퓨타]의 움직임에 [올림포스] 무리와 [공방] 무리의 우호도가 증가합니다.
‘아, 얘네가 애초에 마굴로 움직인 게 유물 때문이었구나.’
첫 번째 유물이었던 탑승 로봇, 그랑조를 복원시키고 두 번째 유물인 마인 가드를 찾기 위해서 마굴로 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쪽 차원으로 전이가 된 줄도 모르고.
-[올림포스] 무리와 [공방] 무리가 교류합니다.
-무리의 첫 교류로 보상을 받습니다.
-웨어울프 [볼코프]의 특성 중 하나
-[융합]의 효과로 [불곰]과 [동물적인 신체]가 합쳐집니다.
-[야수체질] 특성이 생겼습니다.
두 무리가 서로 우호적으로 변하면서 구성원들이 뒤섞여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진수도 보상을 받으며 새로운 특성을 얻었다.
‘와, [융합]이랑 [체질 확장] 덕분에 단순히 특성 하나 얻은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은데?’
체질이라는 단어가 붙은 특성을 강화시켜주는 [체질 확장].
[불곰] 특성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 [야수체질] 특성으로 변한 뒤 능력이 더욱 강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흐흐흐, 요 귀여운 놈들.”
진수는 상태창에서 꼬물대고 있는 올림포스, 공방 무리를 살폈다.
여전히 제우스와 헤파이스토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헬 하운드 초코는 같은 개과라고 웨어울프 볼코프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와 드워프들은 스톤 골렘 피그말리온을 살피고 있는데, 그 옆에는 마인 가드 라퓨타도 함께였다.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가 스톤 골렘 [피그말리온]에게 드워프의 기술을 적용합니다.
-헬 하운드 [초코]와 웨어울프 [볼코프]와 웨어타이거 [호치]가 서로의 움직임을 배웁니다.
-[올림포스]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민첩 +3, 체력 +2, 내구 +1, 마력 +1
-[공방]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체력 +1, 내구 +3, 골드 +15
진수는 전이자들이 그저 같이 모여서 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굉장히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공방]이 당신의 종교를 받아들입니다.
-제사장 [헤파이스토스]가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신탁을 내리십시오.
이윽고 제우스에게 진수의 종교를 전도 받은 헤파이스토스.
공방 무리의 제사장 우두머리이자 제사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내 2번째 연구소나 다름이 없는 녀석들이지.’
첫 번째 연구소는 물론 김건의 공방이다.
“부지런히 연구하고 공부해라.”
아무리 학창시절에 공부를 안 했던 사람도 자식은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하기 마련이다.
진수도 지식을 얻는 데에는 담을 쌓고 지내는 인물이었지만 드워프들에게는 바라는 바가 달랐다.
-[헤파이스토스]가 당신의 신탁을 받듭니다.
[헤파이스토스] - 현재 상황 : 신탁을 널리 알림 “쉬지 말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자!”
-신탁의 효과로 당신을 믿는 이들의 학습 속도가 빨라집니다.
안내 메시지와 함께 여러 전이자들의 머리 위로 여러 수식 같은 시각 효과가 나타났다.
모두에게 나타난 것은 아니고, 헬 하운드나 스톤 골렘 같은 종류의 몬스터들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공부할 수 있는 머리가 있는 애들만 통하나보네.’
녀석들은 그저 천진난만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올림포스] 무리가 마굴의 차원의 축을 수호합니다.
-[공방] 무리가 다음 잊힌 드워프의 유물을 복원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두 무리는 각자 할 일을 정했는지 합쳐지지 않고 이내 헤어졌다.
* * *
-화르륵!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용광로에선 시뻘건 쇳물이 흘러나온다.
쇠를 녹이는 열기와 그 쇠를 두드리는 열정이 장내를 달구고 있는 아이언피스트 길드의 공방.
진수는 포항 시내로 돌아와 형주홍을 찾았다.
흰 머리에 주름 가득한 얼굴.
누가 봐도 노인인 그는 공방의 그 어떤 젊은이보다도 열정적으로 망치를 휘둘렀다.
‘내가 부탁한 건 다 만드신 거 같은데 그새 또 새로 작업을 들어가셨나 보네.’
노인의 모루 옆에 기다란 양손 망치가 하나 놓여있었다.
거무튀튀한 머리는 한쪽은 평평하고 한쪽은 뾰족하다.
손잡이 부분도 모두 금속으로 되어 있었고 손잡이의 끝에는 가죽으로 된 고리가 달려 있었다.
“흠, 흠!”
형주홍이 한참을 옆에 서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탓에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낸다.
그제야 노인은 진수를 발견했다.
대단한 집중력이었다.
“아, 왔는가? 왔으면 나를 부르지 뭘 우두커니 서있었어?”
괜히 미안한 마음에 툴툴거리며 말하는 그.
김건도 그렇고 제작 실력에 비해서 아주 초라한 말재간이다.
“너무 열중하고 계신 거 같아서요. 하하. 이게 제가 부탁드린 물건인가요?”
형주홍은 진수의 말에 망치를 들어올렸다.
“그래. 아주 쓸 만한 녀석이 나왔어.”
마치 소중한 자식을 보는 듯 애틋한 눈빛으로 망치를 본다.
노인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퍽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는 워낙 까다롭고 기준이 높은 장인이었기에 자신이 만든 장비에도 표현이 인색한 인물이다.
그런데 상당히 아끼는 듯한 태도에 말로 직접 표현까지.
아이언피스트의 사람들도 자주 듣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부웅- 붕!
형주홍에게 망치를 건네받은 진수는 허공에 몇 차례 휘둘러보며 그의 말을 체감했다.
양손으로 휘둘러도, 한손으로 움직여도 완벽한 무게중심.
일반적인 슬레지 해머보다는 조금 짧은 감이 있지만 그가 요구했던 조건에 부합했다.
‘아이템도 아니고 튼튼함이 생명인 오함마에 길이 조절까지 넣어달라고 할 수는 없지.’
손에 잡는 순간 이미 만족감이 차오른 상태.
그런데 형주홍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길이가 좀 아쉽지?”
진수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한 말이었다.
“예? 아니에요. 이 정도면 훌륭하죠.”
“그 정도면 훌륭하단 소리에 만족할 생각 없어. 손잡이 끝에 있는 가죽을 한 번 써먹어봐.”
진수의 대답에 코웃음을 친 그는 망치 끝에 달린 가죽 고리를 가리켰다.
고리를 손목에 거는 순간, 진수는 깨달았다.
이건 망치를 놓치지 않게 해주는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이 고리 자체가 손잡이의 연장이네요?”
“흐흐, 보는 눈이 있네.”
[특급 공구 숙련] 덕분에 본능적으로 공구류 장비는 귀신같이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특성을 떠나서 재질도, 원리도 알 수 없었지만 고리가 망치 다루는 걸 보조해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한 번 써보면 사용 방법을 이해할 수 있게 설계된 것이다.
“와, 이래서 장비는 포항에 와서 맞추라고 하는 거네요.”
“포항에서도 아이언피스트로 오는 게 제일이지!”
자부심 가득한 형주홍의 목소리.진수는 그의 태도가 분명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노인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고 공방을 나왔다.
그가 바로 향한 곳은 바로 포항 광산이었다.
‘새로 생긴 장비 성능 테스트 좀 해보자!’
-쾅!
광산에 들어간 진수는 몬스터가 나타나기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망치를 휘둘렀다.
때로는 한 손으로, 때로는 양손으로 사용했는데, 망치 머리에 쓰인 요철이 워낙 단단했기에 스톤 골렘이나 머드 마이너 등의 돌로 된 몬스터는 거의 한 방에 으스러졌다.
“이야, 마력을 넣으면 더 단단해진다더니. 장난 아니네.”
여러 희귀 광물들의 합금으로 만들어진 손잡이는 요철로 마력을 불어넣는 데에 전혀 방해를 하지 않았다.
마력으로 강화된 망치 머리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몬스터를 잡는 것뿐만 아니라 벽을 후려쳐 광맥을 찾는 데에도 용이했다.
덕분에 진수는 수많은 희귀 광석들을 손쉽게 채집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김건 사장님한테 갖다 드리면 좋아하시겠지?’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성능 테스트였다.
* * *
“오, 팀장님. 새로 맞춘 무기 진짜 좋네요.”
장우종이 진수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대략 이틀까지도 잡았던 일정이 하루로 단축이 됐다.
예상보다 몬스터가 덜 나타난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진수의 활약 덕분이 컸다.
오늘 사냥을 마지막으로 서울의 RD 본사로 복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도 팀장님 덕분에 아이언피스트에서 맞춘 장비 진짜 맘에 들더라고요. 그쵸?”
그는 다른 팀원들의 동의를 구했다.
상당히 사교성이 좋은 그는 포항까지 오는 데에 1주일, 포항에서 1주일, 도합 2주 동안에 다른 팀원들과 굉장히 친해졌다.
진수는 그 모습을 보며 일부러 아이언피스트에 이야기를 해서 장우종을 비롯한 팀원들의 장비 제작을 지원해줬다.
큰일을 한 것은 아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재로 아이언피스트 장인들에게 제작 의뢰를 할 수 있게 해준 정도다.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도움이 됐다고 하니까 뭐....’
원래도 진수의 팬 수준으로 따르던 장우종이다.
저 정도 사교성이라면 RD 본사로 가서 다른 헌터들 사이에서도 진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복귀하기 전에 제작이 다 끝났네요. 오늘 마지막으로 포항에서 휴식하면서 볼일 보고 내일 서울로 돌아가죠.”
-띠링
운송로 정리 작업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진수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왔다.
[주선생 : 진수씨, 통화 가능할 때 연락 줘요.]
‘주선생이 왜...?’
진수는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진수씨, 작업 중인 거 아니에요?
“조금 전에 다 마무리 됐습니다. 오늘 쉬고 내일 인원들이랑 복귀하려고요.”
-정말요? 잘 됐네요. 진수씨 간 곳이 포항이죠?
진수의 말에 주선생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예. 포항 운송로 작업 왔어요.”
-그러면 다른 인원들은 서울로 복귀하라고 하고, 진수씨는 부산으로 좀 가줄래요?
“예? 갑자기 부산이요?”
생각지도 못한 요청에 진수는 놀라서 되물었다.
-좀 갑작스럽죠? 미안해요. 그런데 이게 좀 사정이 있어서....
그녀는 진수에게 미안하다는 말투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부산으로 통하는 운송로 구축 작업에 복해라는 요괴 간부가 참여했다고 한다.
지난번에 씨 서펜트를 잡겠다고 작업을 이탈했던 자였다.
워낙에 자유분방하던 녀석이 이번에는 부산이 한국의 최대 규모 바닷가 도시라는 말을 듣고는 운송로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근데, 부산의 헌터들이랑 마찰이 좀 생긴 모양이에요. 복해 오라버님이 원래도 좀 그렇게 사교성이 좋은 편이 아니라.... 가서 문제를 좀 수습해줘요. 사무직 간부 중에서 허원화 노인도 함께 갔다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전혀 보탬이 안 된다고 하네요.
요괴 간부와 사이가 안 좋은 허원화가 함께 부산으로 향했다.
진수는 왠지 중간에서 수를 쓸 수 있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그는 뾰족한 이빨을 가지고 있던 요괴, 복해를 떠올렸다.
‘그 뾰족한 강냉이 다 털러 간다. 이빨 딱 대. 흐흐흐.’
아주 쓸 만한 녀석이 나왔어
-코볼트 소서러 [제우스]와 드워프 [헤파이스토스]가 대화를 나눕니다.
올림포스와 공방, 두 무리의 수장이 만났다.
무언가 활발하게 말이 오가고 있는지, 코볼트 소서러의 그림과 드워프 그림 사이에 말풍선이 빠르게 왔다 갔다 했다.
그러는 와중에 포항 광산에서 전이를 시켰던 마인 가드, 라퓨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방 무리에서 올림포스 무리 쪽으로 향하는 녀석.
-마인 가드 [라퓨타]가 마굴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라퓨타]의 움직임에 [올림포스] 무리와 [공방] 무리의 우호도가 증가합니다.
‘아, 얘네가 애초에 마굴로 움직인 게 유물 때문이었구나.’
첫 번째 유물이었던 탑승 로봇, 그랑조를 복원시키고 두 번째 유물인 마인 가드를 찾기 위해서 마굴로 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쪽 차원으로 전이가 된 줄도 모르고.
-[올림포스] 무리와 [공방] 무리가 교류합니다.
-무리의 첫 교류로 보상을 받습니다.
-웨어울프 [볼코프]의 특성 중 하나
-[융합]의 효과로 [불곰]과 [동물적인 신체]가 합쳐집니다.
-[야수체질] 특성이 생겼습니다.
두 무리가 서로 우호적으로 변하면서 구성원들이 뒤섞여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진수도 보상을 받으며 새로운 특성을 얻었다.
‘와, [융합]이랑 [체질 확장] 덕분에 단순히 특성 하나 얻은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은데?’
체질이라는 단어가 붙은 특성을 강화시켜주는 [체질 확장].
[불곰] 특성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 [야수체질] 특성으로 변한 뒤 능력이 더욱 강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흐흐흐, 요 귀여운 놈들.”
진수는 상태창에서 꼬물대고 있는 올림포스, 공방 무리를 살폈다.
여전히 제우스와 헤파이스토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헬 하운드 초코는 같은 개과라고 웨어울프 볼코프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와 드워프들은 스톤 골렘 피그말리온을 살피고 있는데, 그 옆에는 마인 가드 라퓨타도 함께였다.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가 스톤 골렘 [피그말리온]에게 드워프의 기술을 적용합니다.
-헬 하운드 [초코]와 웨어울프 [볼코프]와 웨어타이거 [호치]가 서로의 움직임을 배웁니다.
-[올림포스]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민첩 +3, 체력 +2, 내구 +1, 마력 +1
-[공방]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체력 +1, 내구 +3, 골드 +15
진수는 전이자들이 그저 같이 모여서 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굉장히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공방]이 당신의 종교를 받아들입니다.
-제사장 [헤파이스토스]가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신탁을 내리십시오.
이윽고 제우스에게 진수의 종교를 전도 받은 헤파이스토스.
공방 무리의 제사장 우두머리이자 제사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내 2번째 연구소나 다름이 없는 녀석들이지.’
첫 번째 연구소는 물론 김건의 공방이다.
“부지런히 연구하고 공부해라.”
아무리 학창시절에 공부를 안 했던 사람도 자식은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하기 마련이다.
진수도 지식을 얻는 데에는 담을 쌓고 지내는 인물이었지만 드워프들에게는 바라는 바가 달랐다.
-[헤파이스토스]가 당신의 신탁을 받듭니다.
[헤파이스토스] - 현재 상황 : 신탁을 널리 알림 “쉬지 말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자!”
-신탁의 효과로 당신을 믿는 이들의 학습 속도가 빨라집니다.
안내 메시지와 함께 여러 전이자들의 머리 위로 여러 수식 같은 시각 효과가 나타났다.
모두에게 나타난 것은 아니고, 헬 하운드나 스톤 골렘 같은 종류의 몬스터들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공부할 수 있는 머리가 있는 애들만 통하나보네.’
녀석들은 그저 천진난만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올림포스] 무리가 마굴의 차원의 축을 수호합니다.
-[공방] 무리가 다음 잊힌 드워프의 유물을 복원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두 무리는 각자 할 일을 정했는지 합쳐지지 않고 이내 헤어졌다.
* * *
-화르륵!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용광로에선 시뻘건 쇳물이 흘러나온다.
쇠를 녹이는 열기와 그 쇠를 두드리는 열정이 장내를 달구고 있는 아이언피스트 길드의 공방.
진수는 포항 시내로 돌아와 형주홍을 찾았다.
흰 머리에 주름 가득한 얼굴.
누가 봐도 노인인 그는 공방의 그 어떤 젊은이보다도 열정적으로 망치를 휘둘렀다.
‘내가 부탁한 건 다 만드신 거 같은데 그새 또 새로 작업을 들어가셨나 보네.’
노인의 모루 옆에 기다란 양손 망치가 하나 놓여있었다.
거무튀튀한 머리는 한쪽은 평평하고 한쪽은 뾰족하다.
손잡이 부분도 모두 금속으로 되어 있었고 손잡이의 끝에는 가죽으로 된 고리가 달려 있었다.
“흠, 흠!”
형주홍이 한참을 옆에 서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탓에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낸다.
그제야 노인은 진수를 발견했다.
대단한 집중력이었다.
“아, 왔는가? 왔으면 나를 부르지 뭘 우두커니 서있었어?”
괜히 미안한 마음에 툴툴거리며 말하는 그.
김건도 그렇고 제작 실력에 비해서 아주 초라한 말재간이다.
“너무 열중하고 계신 거 같아서요. 하하. 이게 제가 부탁드린 물건인가요?”
형주홍은 진수의 말에 망치를 들어올렸다.
“그래. 아주 쓸 만한 녀석이 나왔어.”
마치 소중한 자식을 보는 듯 애틋한 눈빛으로 망치를 본다.
노인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퍽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는 워낙 까다롭고 기준이 높은 장인이었기에 자신이 만든 장비에도 표현이 인색한 인물이다.
그런데 상당히 아끼는 듯한 태도에 말로 직접 표현까지.
아이언피스트의 사람들도 자주 듣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부웅- 붕!
형주홍에게 망치를 건네받은 진수는 허공에 몇 차례 휘둘러보며 그의 말을 체감했다.
양손으로 휘둘러도, 한손으로 움직여도 완벽한 무게중심.
일반적인 슬레지 해머보다는 조금 짧은 감이 있지만 그가 요구했던 조건에 부합했다.
‘아이템도 아니고 튼튼함이 생명인 오함마에 길이 조절까지 넣어달라고 할 수는 없지.’
손에 잡는 순간 이미 만족감이 차오른 상태.
그런데 형주홍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길이가 좀 아쉽지?”
진수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한 말이었다.
“예? 아니에요. 이 정도면 훌륭하죠.”
“그 정도면 훌륭하단 소리에 만족할 생각 없어. 손잡이 끝에 있는 가죽을 한 번 써먹어봐.”
진수의 대답에 코웃음을 친 그는 망치 끝에 달린 가죽 고리를 가리켰다.
고리를 손목에 거는 순간, 진수는 깨달았다.
이건 망치를 놓치지 않게 해주는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이 고리 자체가 손잡이의 연장이네요?”
“흐흐, 보는 눈이 있네.”
[특급 공구 숙련] 덕분에 본능적으로 공구류 장비는 귀신같이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특성을 떠나서 재질도, 원리도 알 수 없었지만 고리가 망치 다루는 걸 보조해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한 번 써보면 사용 방법을 이해할 수 있게 설계된 것이다.
“와, 이래서 장비는 포항에 와서 맞추라고 하는 거네요.”
“포항에서도 아이언피스트로 오는 게 제일이지!”
자부심 가득한 형주홍의 목소리.
진수는 그의 태도가 분명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노인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고 공방을 나왔다.
그가 바로 향한 곳은 바로 포항 광산이었다.
‘새로 생긴 장비 성능 테스트 좀 해보자!’
-쾅!
광산에 들어간 진수는 몬스터가 나타나기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망치를 휘둘렀다.
때로는 한 손으로, 때로는 양손으로 사용했는데, 망치 머리에 쓰인 요철이 워낙 단단했기에 스톤 골렘이나 머드 마이너 등의 돌로 된 몬스터는 거의 한 방에 으스러졌다.
“이야, 마력을 넣으면 더 단단해진다더니. 장난 아니네.”
여러 희귀 광물들의 합금으로 만들어진 손잡이는 요철로 마력을 불어넣는 데에 전혀 방해를 하지 않았다.
마력으로 강화된 망치 머리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몬스터를 잡는 것뿐만 아니라 벽을 후려쳐 광맥을 찾는 데에도 용이했다.
덕분에 진수는 수많은 희귀 광석들을 손쉽게 채집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김건 사장님한테 갖다 드리면 좋아하시겠지?’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성능 테스트였다.
* * *
“오, 팀장님. 새로 맞춘 무기 진짜 좋네요.”
장우종이 진수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대략 이틀까지도 잡았던 일정이 하루로 단축이 됐다.
예상보다 몬스터가 덜 나타난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진수의 활약 덕분이 컸다.
오늘 사냥을 마지막으로 서울의 RD 본사로 복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도 팀장님 덕분에 아이언피스트에서 맞춘 장비 진짜 맘에 들더라고요. 그쵸?”
그는 다른 팀원들의 동의를 구했다.
상당히 사교성이 좋은 그는 포항까지 오는 데에 1주일, 포항에서 1주일, 도합 2주 동안에 다른 팀원들과 굉장히 친해졌다.
진수는 그 모습을 보며 일부러 아이언피스트에 이야기를 해서 장우종을 비롯한 팀원들의 장비 제작을 지원해줬다.
큰일을 한 것은 아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재로 아이언피스트 장인들에게 제작 의뢰를 할 수 있게 해준 정도다.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도움이 됐다고 하니까 뭐....’
원래도 진수의 팬 수준으로 따르던 장우종이다.
저 정도 사교성이라면 RD 본사로 가서 다른 헌터들 사이에서도 진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복귀하기 전에 제작이 다 끝났네요. 오늘 마지막으로 포항에서 휴식하면서 볼일 보고 내일 서울로 돌아가죠.”
-띠링
운송로 정리 작업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진수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왔다.
[주선생 : 진수씨, 통화 가능할 때 연락 줘요.]
‘주선생이 왜...?’
진수는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진수씨, 작업 중인 거 아니에요?
“조금 전에 다 마무리 됐습니다. 오늘 쉬고 내일 인원들이랑 복귀하려고요.”
-정말요? 잘 됐네요. 진수씨 간 곳이 포항이죠?
진수의 말에 주선생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예. 포항 운송로 작업 왔어요.”
-그러면 다른 인원들은 서울로 복귀하라고 하고, 진수씨는 부산으로 좀 가줄래요?
“예? 갑자기 부산이요?”
생각지도 못한 요청에 진수는 놀라서 되물었다.
-좀 갑작스럽죠? 미안해요. 그런데 이게 좀 사정이 있어서....
그녀는 진수에게 미안하다는 말투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부산으로 통하는 운송로 구축 작업에 복해라는 요괴 간부가 참여했다고 한다.
지난번에 씨 서펜트를 잡겠다고 작업을 이탈했던 자였다.
워낙에 자유분방하던 녀석이 이번에는 부산이 한국의 최대 규모 바닷가 도시라는 말을 듣고는 운송로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근데, 부산의 헌터들이랑 마찰이 좀 생긴 모양이에요. 복해 오라버님이 원래도 좀 그렇게 사교성이 좋은 편이 아니라.... 가서 문제를 좀 수습해줘요. 사무직 간부 중에서 허원화 노인도 함께 갔다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전혀 보탬이 안 된다고 하네요.
요괴 간부와 사이가 안 좋은 허원화가 함께 부산으로 향했다.
진수는 왠지 중간에서 수를 쓸 수 있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그는 뾰족한 이빨을 가지고 있던 요괴, 복해를 떠올렸다.
‘그 뾰족한 강냉이 다 털러 간다. 이빨 딱 대. 흐흐흐.’
부산
-퍽! 퍼억!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사내. 
그의 앞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곤죽이 되어버렸다. 
사체마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기이한 상황. 
그는 제법 덩치가 큰 오크 두 마리를 상대로도 거의 지체하지 않았다. 
“크읍...!” 
몬스터는 사내를 건드리지도 못했지만 그는 왼쪽 어깨를 부여잡으며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1주일, 운송로 구축에도 1주일. 원래 계획은 서울로 복귀하는 길에 마석주사를 맞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부산으로 향하게 돼서 스케쥴이 좀 꼬였네.’ 
몬스터들을 도륙하며 내달리고 있는 사내는 진수였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마석정제주사를 맞았지만 어느새 다시 주사를 맞을 주기가 됐다. 
점점 왼쪽 어깨의 통증이 잦아지는 걸 느낀 그는 이동에 박차를 가했다. 
어차피 동행자도 없고 운송로 구축을 위해서 몬스터를 정리할 필요도 없다. 
옛 동해고속도로 길을 전속력으로 달리면 대략 100km. 
그는 종종 나타나는 몬스터들까지 해치우며 긴 거리를 하루 만에 주파했다. 
“이 맛을 모르고 살았네...!” 
[차원 전이] 특성이 생기기 전에는 하루하루 던전 뒤처리를 하면서 몬스터를 만날까 두려워했었다. 
조금씩 전이자들을 늘려가며 강해지는 과정에서는 충분히 강하지도 않았고 여러 상황들이 얽히며 자유로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바로 어제까지도 RD의 간부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제 힘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고 망치로 몬스터들을 처치했었다. 
그런데 혼자서 온힘을 다해 질주하며 괴물들을 처치하고 나니 순간적으로 모든 걱정이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몬스터를 잡는데 스트레스가 풀리는 날이 올 줄이야....’ 
진수는 감회가 새로움을 느끼며 부산에 당도했다. 
급하게 움직이느라 온몸에 몬스터들의 피와 체액 따위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모습. 
방어구와 무기들을 [차원의 틈]에 집어넣어놨다고 해도 한눈에 헌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디보자....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으니까 먼저 병원에 가도 상관없겠지.” 
핸드폰을 꺼내 마석정제주사를 다루는 병원을 찾았다. 
서울과 엇비슷한 규모의 도시, 부산. 
다행히 주사를 맞을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있었다. 
‘근데 길 상태가...?’ 
지도를 봐도 쉽게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도로 자체가 좀 복잡하다고 해야 할까. 
비슷한 위치를 몇 차례 돌던 진수는 결국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기요, 길 좀 여쭤보려고 하는데요.” 
그가 말을 걸자 경계하는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어봤다. 
‘아, 사냥한 흔적들 때문에 그러나?’ 
“뭐, 헌터신가보네. 어디 길드에요? 이 근처에선 못 보던 양반인데.” 
“제가 서울에서 활동해서, 헌터 길드엔 따로 소속되어 있지 않....” 
진수가 대답을 하는데 상대방이 말을 끊었다. 
“서울에서 왔다고요? 그럼 거기서나 활동하지 뭐한다고 부산까지 왔대?” 
그는 꽤나 거친 어투로 말했다. 
화라도 난 듯이.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여기 뭐 오면 안 되나요?” 
“누가 뭐 안 된다했습니까? 근데 서울 헌터들 보면 죄- 여기 사냥감만 쓸어가고 홱 하고 돌아가드만. 별로 맘에 안 들어.” 
아무래도 그도 헌터인지 혀를 차며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진수는 왜 복해라는 요괴가 부산에서 문제가 생겼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고만 했는데 이런 반응을 보이니까 문제가 생겼겠지. 요괴들 자존심도 센데... 벌써 치고받고 싸웠을지도 모르겠어.’ 
그는 마석정제주사를 맞고 빨리 복해와 허원화를 찾아야겠다 생각했다. 
“아까 뭐 길 묻는다고 안 했어요? 어디 가려고 하는지나 빨리 말해요.” 
부산의 헌터는 틱틱거리는 말투로 답을 하면서도 할 건 다 해줬다. 
길을 알려줄 때는 혹시 헷갈릴 수도 있는 위치까지 짚어주면서 상당히 친절한 모습이었다. 
“이러면 됐죠? 빨리 갈 길 가쇼.” 
‘말하는 톤만 들어보면 화를 내는 것 같은데 묘하게 친절하네. 츤데레인가?’ 
진수는 복잡한 기분으로 그가 알려준 길대로 이동했다. 
* * *
-팅-! 
주사바늘이 피부를 뚫지 못하고 부러져버렸다. 
“허, 이게....” 
당황한 의사가 의료기록을 살펴봤다. 
아무리 상대가 전투 헌터라고 해도 던전산 금속으로 만든 바늘이 부러지는 경험은 자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진수는 익숙한 상황에 기시감을 느꼈다. 
‘아, 바늘 튼튼한 걸로 준비하라고 말하는 걸 깜빡했네.’ 
의료기록을 보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의사. 
“이상하네요. 마지막에 기록된 주사 바늘보다 조금 강도가 약한 걸로 쓰긴 했지만.... 그래도 기록상으로 봤을 땐 부러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의사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지만 진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야수체질]과 [체질 확장]으로 인해서 몸의 내구도가 올라간 탓이리라. 
“최근에 능력이 좀 성장해서요. 그럼 기록된 것보다 더 높은 등급의 바늘을 써주시겠어요?” 
“보기보다 등급이 높은 헌터셨나보네. 알겠습니다.” 
의사가 꽤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늘을 바꿔왔다. 
“거, 꽤 높은 등급의 헌터신 거 같아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요즘에 마석증 관련해서 소문이 좀 돌더라고요.” 
“소문이요?” 
“요즘 외국에서 특이한 몬스터를 만난 뒤로 마석증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좀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그 몬스터를 찾으면 마석증 발병 원인이나 치료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소문이죠.” 
의사는 상당히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했다. 
보기 드물었던 마석증 환자가 최근에 늘어났으며, 새로 발생한 환자들은 일반적인 녀석들과는 다른 종류의 몬스터와 만났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특이한 몬스터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없다는 것. 
“상황을 봐도 참 특이한 게, 횡설수설하는 사람들 중에서 계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람들이 몇 있었다는 거죠. 무슨 악마와의 계약도 아니고....” 
‘계약...?’ 
진수에게 낯선 단어는 아니었다. 
뉴트럴바이오의 임병옥을 전이시킬 때 계약자를 전이시켰다고 했었다. 
‘어쩌면... 이 마석증이라는 게 단순한 희귀병이 아닐지도....’ 
“물론 이게 아직 학계에 정식으로 보고된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마석증을 앓고 계시니... 알고나 계시면 좋지 않겠어요? 하하. 아마 서울에서 마석주사 처치를 해주시는 선생님도 들은 소문일 거예요.” 
진수는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 부산의 사람들이 약간 서울에서 온 자신을 외국인 대하듯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경계를 하면서도 친절을 베푸는 묘한 관계 정도. 
‘길 알려준 그 헌터도 조금 그런 태도였지.’ 
의사는 잡다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이 마석정제주사를 주입했다. 
온몸에 도는 화끈하면서도 서늘한 기운. 
진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병원 로비에 앉았다. 
-와아아! 
-중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종대 선수! 최근에 더욱 기량이 향상됐죠? 
-저 동물적인 몸놀림을 보세요! 헌터대전을 뛰면서도 이렇게 성장하는 선수는 정말 보기가 힘들어요. 
병원 로비의 텔레비전에서는 헌터대전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마침 진수와 같은 고아원 출신인 박종대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여전히 근육질의 몸에 양팔엔 문신이 가득하다. 
‘나도 마석증 반점 위에다가 문신이나 박을까...?’ 
박종대가 문신을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위치로 봤을 때 마석증을 가리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또, 웃옷을 벗고 경기를 뛰기에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진수는 왼쪽 팔뚝에 문신을 새긴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가 이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저 탄력적인 움직임! 예전에는 아주 단단하지만 근육이 경직된 느낌이었다면, 요즘엔 관절에 스프링이라도 넣은 것 같아요? 
-맞습니다! 저 꿈틀대는 근육을 좀 보세요! 힘에 순발력까지 갖춘 박종대 선수. 이제 명실상부 챔피언에 도전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계 선수권에서도 충분히 통할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선수입니다! 
경기를 중계하는 캐스터들은 아주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에서 상당히 인지도가 높은 선수를 박종대가 일방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둔할 수도 있을 근육질인데 굉장히 민첩하게 움직인다. 
때로는 상대방의 공격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듯 엄청난 속도로 반응하기도 했다. 
“몬스터 사냥을 안 하는 헌터대전 선수들은 성장하는 맛이 없는데 박종대는 좀 다르다니까?” 
“요즘 들어서 엄청 큰 거 같아.” 
“무슨 소리야. 예전에도 헌터대전 활동하는 한국인 중에서는 수준급이었는데.” 
헌터대전 영상을 보던 사람들이 가벼운 논쟁을 펼쳤다. 
어찌됐든 모두가 헌터대전에, 그리고 박종대에게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진수가 많은 발전을 한 것처럼 박종대도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짜식, 잘 나가네.’ 
아무리 자신과 사이가 틀어졌다고 해도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사람이 잘 되고 있다는 건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 * *
병원에서 나온 진수는 복해를 찾아 나섰다. 
주선생의 말에 따르면 따로 핸드폰은 지니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럼 대체 서로는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는 거지?’ 
의문이 들긴 했지만 요괴들 사이에 소통하는 창구가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주선생이 복해에게 마지막으로 연락을 받은 것은 해운대 바닷가였다고 했다. 
진수는 일단 해운대로 향했다. 
“해변에서 며칠 동안 있을 리는 없겠고... 여기 없으면 어딜 찾아봐야 할까? 생긴 걸로 봐서는 상어나 뭐 그런 계열인 것 같은데.... 바다 속에 들어간 거면 어떡하지?” 
여러 가지 걱정을 하며 모래사장을 살피는데 멀리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원형으로 서서 무언가를 구경하는 듯 보인다. 
-퍽! 퍽! 
“잘한다!” 
“죽여버려!” 
잔뜩 흥분한 채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그들의 중심이 되는 곳에서 익숙한 생명반응이 느껴졌다. 
RD 본사에서 만났던 적 있는 요괴의 기운이다. 
‘이런...!’ 
모여 있는 사람들의 행색을 보니 대부분 전투 헌터들이었다. 
그리고 소리치는 음성 사이로 들리는 무언가 때리는 소리. 
누군가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상황을 종합해본 진수는 복해가 저들 중앙에서 싸우고 있다고 판단했다. 
“자, 잠시만요!” 
급하게 사람으로 된 벽을 헤치고 들어간다. 
복해가 부산에서 헌터들에게 해를 당하면 RD의 요괴 간부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그놈들의 분노는 RD의 인간 간부들한테 쏟아져야 된다고!’ 
겨우 그들 사이를 파고든 진수는 생각지 못한 광경을 마주했다. 
-퍽! 퍽! 
“크하하하! 이게 또 별미라니까! 어? 이놈 주선생이 아끼던 녀석 아니야?” 
헌터들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에는 그의 예상대로 복해가 있었다. 
다만 상황은 생각과 달랐다. 
복해는 즐거운 표정으로 거대한 크라켄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당장 조리를 할 수 있게 도마와 휴대용 버너, 라면 봉지 따위가 보였다. 
“이게 대체?” 
진수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데 옆에 있던 부산의 헌터 한 명이 말을 걸었다. 
“마! 니 복해 햄 아나?” 
‘복해 햄...?’ 
진수는 복해와 그를 둘러싼 이들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노인과 바다
-서걱 서걱
예리한 회칼이 화려하게 움직이며 살결을 가른다.
능숙한 솜씨로 날붙이를 다루는 복해.
-턱
“라면 끓기 전에 회부터 몇 점씩 먹어라!”
거대 크라켄이 얇게 저며져 접시에 담겼다.
그 옆에는 커다란 냄비에 물이 끓고 있었다.
크라켄의 다리 하나가 담긴 채로.
‘크라켄으로 회를 뜨고 라면을 끓인다고...?’
바다에서 만나면 공포스러운 몬스터가 바로 크라켄이다.
문어를 닮았지만 빨판이 가득한 놈의 다리에 붙잡히면 물귀신이 되기 딱 좋다.
그런데 이 복해라는 녀석은 크라켄을 뭍으로 끌고 와서는 주먹으로 두들겨 패더니 요리 재료로 쓰고 있는 것이다.
“와~ 쥑이네요!”
“마 이거도 같이 쓰까 무봐라!”
복해를 둘러싸고 있던 부산의 헌터들은 아무렇지 않게 몬스터를 먹고 있다.
물론 몬스터를 먹는 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흔한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몬스터를 조리하고 있는 녀석도 몬스터인 상황은 정말 보기 힘든 광경이다.
‘부산에서 문제가 생겼다더니.... 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복해는 부산의 헌터들과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
복해 햄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호칭으로 불리며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 있다.
마치 의형제라도 되는 것처럼 즐거워 보인다.
“마! 니는 안 묵나? 이거 살결이 쫄깃~쫄깃~한 게 아주 별미다.”
크라켄 회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하는 사내.
아주 얇게 썰었어도 굉장히 질긴 듯 한참을 씹고 있었지만 쫄깃쫄깃하다고 표현을 한다.
수염도 덥수룩하고 상당히 거친 스타일의 남성이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인물들이 터프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하하, 저한테는 좀 질기네요.”
“임마는 서울에서 왔다드마 아주 여리여리하네! 크하하! 내는 바다에서 지내다 보니까 이 정도는 뭐 두부 같다이가!”
마치 인생을 살아보니 소주가 달달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 근데 바다에서 지낸다는 거 보니까....’
“부산갈매기 길드분들이세요?”
파티 단위로 활동하는 서울과는 달리 부산에서는 헌터들이 길드 단위로 움직였다.
몇몇이 모인 자잘한 길드도 있었지만 백 단위로 큰 영향력을 지닌 길드도 있다.
그 중 한 예가 바로 부산갈매기 길드였다.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나! 부산하면 마 우리 부산갈매기 아이가! 으이? 크하하하!”
‘말을 해줘야 알지....’
부산 사투리를 강하게 쓰는 인물이 호탕하게 웃었다.
“태준 형님. 서울에서 왔는데 뭐 우리 길드 알겠습니까?”
“아 맞나. 그래도 부산 바다를 꽉 잡고 있는데 알 수도 있제.”
진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고 있는 사내가 바로 부산갈매기 길드의 길드장, 조태준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들의 말대로 부산갈매기 길드는 부산의 바다에서 활동하는 헌터 단체였다.
바다를 무대로 삼는 헌터들이 많지 않았기에 헌터넷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편이다.
‘일본으로 넘어가는 거의 유일한 배편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해상에서는 헌터들이 힘을 잘 쓰지 못한다.
덕분에 바다에는 몬스터들이 점점 쌓이고 바다를 건너는 일은 더욱 위험해졌다.
그런 환경에서 활동을 하는 헌터들이니 아무래도 거친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복해 햄 이거 진짜로 맛있네요!”
“마! 아들도 챙겨주면서 무라!”
거친 말투에 비해서 행동은 은근히 세심하고 친절했지만 말이다.
“근데 복해님이랑은 어떻게 친해지신 거죠...?”
진수는 조태준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햄이 바다에서 우리 구해줬다이가. 크라켄이랑 씨 서펜트랑 막 바다에 균열이 터졌는데 복해 햄이 나서서 싹 다 정리해주셨거든. 우리가 또 빚지는 거는 못 참는다. 그날로 행님 하시고, 우리가 아우 하기로 했제.”
그는 그날을 회상하는지 눈빛이 잠잠해지더니 그 당시를 설명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바다.
이미 자연 자체가 위협적인 상황에서 균열마저 발생했다.
꼼짝없이 죽었구나 생각하는 순간, 어디선가 사람 한 명이 나타났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헤엄쳐 다가오더니 균열에서 나온 온갖 몬스터들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바다가 잠시 붉게 물들고 몬스터 사체들이 둥둥 떠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 위로 고개를 내민 것이 바로 복해.
그는 주변에 있는 부산갈매기 길드원들을 보며 이런 말을 했다.‘어? 너네 사냥감이었어? 미안하다, 야. 내가 먹음직스러운 놈들만 보면 눈이 돌아가서.’
“캬~ 우리한테 부담 안 주시려고 그런 이야기까지! 이러면 우리가 반하나 안 반하나? 으이?”
박수를 치며 감탄을 아끼지 않는 조태준.
‘이 양반들이 잘못 생각해도 단단히 잘못 생각하는 거 같은데...?’
진수가 알기로 복해라는 녀석은 정말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보면 눈이 돌아가는 요괴였다.
운송로 구축 작업을 하다가도 시 서펜트를 발견했다고 다 때려치우고 바다로 달려드는 그런 성격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날로 햄이랑 우리는 같이 바다 생활 하면서 이렇게 맛있는 것도 묵고, 몬스터도 때려잡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 뭐 서울에서 부산으로 왜 오셨는지는 모르겠는데 햄 정도면 자유롭게 지내셔도 되겠지.”
복해가 서울에서 내려온 게 일주일 전.
운송로 구축 작업이 다 그렇듯이 도시에 도착하면 거래처들도 돌아야 하고 운송로 경로의 몬스터도 처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일주일 내내 부산갈매기 길드원들이랑 놀고 있었다는 소리다.
‘주선생이 문제가 생겼다고 했었는데...? 그건 뭐지?’
조태준의 말에 의문이 생긴 진수는 복해에게 다가갔다.
그는 삶은 크라켄을 넣어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저, 복해님.”
“어? 왜, 회 좀 더 쳐줄까?”
부산의 헌터들과 지내는 게 즐거운지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으며 답한다.
“주선생님이 복해님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여기 오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혹시 어떤 문제인가 해서요.”
“잉? 문제없는데? 그치, 얘들아?”
“예~ 햄! 하하하!”
“아무 문제 없슴다!”
복해의 말에 부산갈매기 길드원들이 대답하며 웃었다.
그들은 어느새 술도 꺼내서 부어라 마셔라 즐기고 있었다.
복해도 요리를 하면서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아... 이게 문제였구나. 일을 안 하는 거.’
진수는 주선생이 그를 부산으로 보낸 이유를 깨달았다.
무력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면 다른 팀원들도 함께 가라고 했을 것이다.
RD에서 진수의 이미지는 일처리를 똑 부러지게 하는 인물이니 도시에서의 업무들을 처리하길 바랐던 듯했다.
‘바라는 대로 해드려야지. 대신 삯으로 상어 한 마리 잡아먹고.’
복해를 음흉한 눈빛으로 보던 그는 문득 든 생각에 주변을 살펴봤다.
복해의 주위에는 온통 처음 보는 부산의 헌터들뿐.
도인 차림을 한 허원화는 보이지 않았다.
“저기 복해님. 허원화님이 같이 왔다고 들었는데 어디 갔나요?”
까탈스러운 허원화가 함께 있었다면 이렇게 마음 놓고 놀고 있지만은 못 했을 것이다.
진수의 물음에 복해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 영감? 여기 처음에 도착했을 때 무슨 섬에 볼일 있다고 해서 데려다줬지.”
“그리고요?”
“그리고는 무슨 그리고. 그러고 끝이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는 복해.
그가 데려다줬다면 쉽게 들어갈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섬일 가능성이 높았다.
현재까지 그 섬에 갇혀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예? 아니,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안 될 게 뭐가 있어? 배고프면 거기 있는 몬스터들 좀 잡아먹고 하면서 지내면 되지.”
복해는 지극히 요괴의 측면에서 생각하며 말했다.
“역시 형님, 상남자 스타일이시네요!”
“크으!”
그리고 옆에서는 본질을 알지 못한 채 복해를 추켜세우는 이들이 있었다.
진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 * *
-촤아아!
푸른 바다를 가르며 작은 배 한 척이 나아가고 있었다.
자그마한 몸체에 어울리는 소형 모터가 동력원이었는데 그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바람의 씨앗으로 만든 바람생성기가 이래저래 쓸 만하네.’
배의 후미에 앉아있는 진수는 방향을 살피며 다시 한 번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배 뒤편에서 강한 바람이 뿜어 나오며 추진력을 만들었다.
‘오륙도인가 하는 섬 몇 개가 모여 있는 곳에다가 데려다 줬지. 그 중에서 굴섬이라는 곳에 볼일이 있다고 했던 거 같아.’
복해는 허원화를 어느 섬에 데려다줬냐는 질문에 설렁설렁 답했다.
오륙도라는 이름이 나오자 부산갈매기 길드원들이 놀란 것은 덤이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해양 몬스터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땅에서 제법 가까운 섬인데도 불구하고 방문하기는 어려운 곳이 됐다고.
“흐흐, 그렇다면 이건 기회지.”
진수는 부산갈매기 길드에게 작은 배를 한 척 빌렸다.
그는 혼자 가기 위험하다며 만류하는 그들을 안심시키고 출발했다.
-푸드드득! 푸드득!
잔잔하던 바닷물 속에서 갑작스럽게 자그마한 물고기들이 튀어나왔다.
몸의 거의 절반이 쩍 벌어진 입이었고 안에는 톱날보다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하다.
영화에서 나올법한 괴물 피라냐의 형상이었다.
창졸간에 생긴 일이었지만 진수는 한쪽 팔로는 목을 감싸고 나머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콰득! 퍽!
놈들이 만든 그림자가 손으로 변하더니 짓쳐드는 괴물 피라냐들을 배의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어 백색의 귀화가 녀석들을 불살랐다.
-시 스케빈저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시 스케빈저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바다에 노릇노릇 생선 굽는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음, 근처에 있는 놈들이 다 덤비겠네. 그래, 혼자 외롭게 있는 시 서펜트 가족이나 만들어주자.”
진수가 타고 있는 배를 중심으로 시커먼 형체들이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사신의 감각]으로 느끼기에도 보통 기운들이 아니다.
그는 [차원의 틈]에서 네일건과 저주받은 신의 창, 마력공학 장갑 총을 꺼냈다.
‘[강철 거미줄]로 창을 묶으면 이게 작살이지.’
배 위에 서서 물속 아무 곳이나 조준한 채로 창을 쏜다.
-피슉!
-켈피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켈피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얼굴 한 번 못 본 녀석이 전이되었다.
저주받은 신의 창이 명중했다는 말이다.
배 아래는 지금 물 반 고기 반인 상태.
어딜 쏴도 월척감이다.
-슈슉
진수가 네일건과 [강철 거미줄]을 [차원의 틈]에 집어넣었다.
곧장 다시 소환하니 네일건에 저주받은 신의 창이 장전된 채였다.
거미줄이 연결된 덕분에 저주받은 신의 창까지 [차원의 틈]에 들어간 것이었다.
‘계획대로네. 흐흐.’
진수는 배 위에서 네일건을 쏘고 해양 몬스터들의 부산물로 마력 총을 발사하며 전투를 벌였다.
그 혼자만의 『노인과 바다』요, 『백경』이었다.
* * *
-질겅질겅-
“퉤! 도저히 맛으로 먹을 건 못 되네.”
작은 배 위에 앉아 나아가고 있는 진수.
조금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배 위에 여러 몬스터들의 사체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대부분의 몬스터 사체를 [차원의 틈]에 집어넣었지만 그나마 해산물을 닮은 녀석들은 배 위에 두고 조금씩 맛을 보고 있었다.
-시 서펜트 [풍천장어]와 시 스케빈저 [캐스터네츠]가 무리를 이룹니다.
-[풍천장어] [캐스터네츠]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이미 아틀란티스는 있으니까... 바다의 왕자로 하자.”
진수는 옛날 바닷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무리명을 지어주었다.
-켈피 [쏘드라]가 [바다의 왕자] 무리에 합류합니다.
-자이언트 크랩 [게맛살]이 [바다의 왕자] 무리에 합류합니다.
-크라켄 [로터스]가 [바다의 왕자] 무리에 합류합니다.
-[바다의 왕자]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민첩 +2, 체력 +1, 내구 +3, 마력 +1
“캬, 드디어 마지막 내구 능력치까지 100을 넘었구나. 이젠 주선생한테도 비벼볼 만하겠어.”
진수는 흐뭇하게 웃으며 앞을 보았다.
드디어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네 개의 섬.
저기에 있는 허원화를 이용한다면 복해의 힘을 가늠하면서 전이자 목록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배는 빠르게 오륙도 중 굴섬을 향해 다가갔다.
망부석
-우적우적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 체면도 다 버리고 해양 몬스터의 사체를 뜯어먹고 있다.
볼품없이 자란 수염은 제대로 다듬지도 못해서 더욱 추레하다.
“다, 다른 건 더 먹을 게 없느냐...!”
잔뜩 헤진 도복을 입은 노인, 허원화가 진수에게 물었다.
예전이라면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일주일동안 제대로 먹은 게 거의 없어 혼절할 지경일 때 진수가 나타나 구해줬으니까.
일말의 자존심이 남아 반쯤 명령조의 말투를 썼지만 그에겐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라면 좀 끓여드릴까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진수.
허원화의 눈이 커질 대로 커진다.
“라, 라면이 있어...?”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크흐흐.... 식품공학의 진수인데 이걸 어떻게 참겠어?’
“근데 여긴 무슨 일로 오셨던 거예요? 이 고생을 하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라면 이야기에서 슬쩍 말을 돌린다.
허원화의 동공이 떨렸다.
“내 여기에 강한 귀신이 있다고 해서 잡으러 왔지. 그런데 라면은 어디에.... 내, 내가 일단 라면 물 좀 받아올까?”
안절부절못하는 노인.
“강한 귀신이요? 그럼 그놈을 잡으신 거예요?”
“내, 내 그놈을 불러놓고 냄비에 물을 받아올 테니 충분히 구경하고 라면 좀 준비해주거라!”
마음이 급해진 그는 품에서 누런 종이를 꺼내 주술진을 휘갈겼다.
금세 만들어진 부적에 초록빛의 불을 붙이고는 진수가 건넨 냄비를 들고 사라졌다.
한 방향으로 향하는 것으로 봐서는 섬에 담수가 있는 곳이 있는 듯했다.
‘실은 내가 생수도 갖고 있지만....’
하지만 굳이 자리를 비워준다는 허원화를 말리지는 않았다.
-투둑, 투둑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돌끼리 부딪히는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
-특수임무 발생.
-특수임무 : 망부석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건예자 [아담]의 특성 중 하나
“망부...석...?”
안내 메시지를 닫으며 다가온 존재를 본 진수는 순간 흠칫했다.
그의 앞에는 돌로 된 여인이 서있었기 때문이다.
뼈와 가죽밖에 안 남은 듯 빼빼 마른 여인의 형상.
두 눈의 아래에는 깊게 눈물 자국이 파여 있다.
‘돌로 된 몬스터인데 언데드라.... 특이하네.’
하데스의 지식과 [사신의 감각]이 전해주는 느낌대로면 이 망부석이란 몬스터는 언데드 몬스터였다.
임무 보상에 나온 건예자도 진흙으로 된 언데드 몬스터였으니 둘이 비슷한 종류인 듯하다.
“그나저나... 언데드 몬스터면 시켜볼 게 있지. 흐흐흐.”
* * *
냄비에 물을 받아온 허원화는 자신이 불러낸 망부석이 제자리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근데 왜 저런 자세를 하고 있지?’
원래대로면 자연스럽게 두 손을 내리고 차렷 자세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녀석은 두 손을 위로 뻗어 몸과 함께 Y자 형상을 만들고 있었다.
“어떠냐! 원한이 강한 귀신이라서 생명력도 대단한 녀석이지.”
허원화가 냄비를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올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 확실히 좀비나 스켈레톤 같은 허접한 언데드랑은 다르네요.”
그의 질문에 순순히 답하는 진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내 공간압축주머니에서 라면을 꺼냈다.
허원화는 라면에 정신이 팔려서 미처 그의 얼굴을 살피지 못했다.
“크으~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노인은 라면 두 봉을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배를 두드리던 그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김진수라는 녀석이 왜 여기에 있지?’
생존의 위기를 넘기고 나니 그제야 정상적인 사고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네 녀석은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았더냐?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게야?”
“주선생이 부산 쪽에 문제가 좀 생긴 거 같다고 가보라고 메시지를 보냈거든요. 와보니까 복해는 바닷가에 있는데 허원화님이 안 보여서 이렇게 찾게 됐습니다.”
“흐음... 그래, 주선생이 그래도 그 괴물놈들.... 음!”
무언가 말을 하려던 노인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시선을 진수의 손으로 옮겼다.
당연하지만 여전히 그의 손에 있는 주해응의 인장 반지.
잠시 뜸을 들이던 허원화는 짧은 고민 끝에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 괴물 같은 현장직 놈들 중에서는 주선생이 그나마 제일 낫지. 흠흠.”
‘아직 나한테 놈들의 정체가 몬스터라는 건 숨기려는 것 같네.’
진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던 것인지 다 알았지만 모르는 척 넘어갔다.
RD 인간 간부들이 자신을 아직은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걸 그 한마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전화기가 안 터지니까 이상함을 알아차렸겠지.”
진수가 생각하기에 주선생은 그냥 운송로 구축 작업이 진행되지 않아서 보낸 것 같지만 일단 허원화가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내버려뒀다.
“그나저나, 복해 그놈은 어찌 하고 있느냐?”
말실수를 했던 노인은 머쓱했는지 말을 돌렸다.
“부산의 헌터들이랑 놀고 있던데요. 해산물도 먹고 술도 마시고....”
“이...! 이, 개 같은 뱀 새끼!”
허원화는 진수의 대답을 듣고는 분노를 터트렸다.
‘뱀 새끼...? 상어가 아니었어? 바다뱀 같은 건가....’
“내 돌아가면 그놈을 가만 두지 않을 게야. 으으...!”
치를 떠는 노인의 모습을 보며 진수는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그의 계산대로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너무 화내지 마시고요. 일단 제가 육지로 모시겠습니다. 두 분이 대화로 잘 풀어보세요.”
그는 속내를 숨기고 허원화를 배 위에 태웠다.
* * *
‘이 노인네 제법 능력이 좋긴 좋네.’
작은 배를 타고 육지로 돌아온 진수는 허원화를 다시 봤다.
굴섬에서 출발하기 전에 배에다 부적을 몇 개 붙이던 노인.
그 덕분인지 섬에서 육지로 오는 사이에 몬스터를 한 마리도 마주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몬스터들이 다 도망간 거지.’
[사신의 감각]으로 느꼈을 때, 다가오던 해양 몬스터들이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하면 무언가에 놀란 듯 도망쳐버렸다.
그리고 그건 허원화가 붙인 부적의 힘일 것이다.
“저는 이 배 돌려주고 부산에 있는 거래처들 찾아가보겠습니다. 저기 사람들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복해도 있을 겁니다.”
진수의 말에 노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는 굳은 얼굴로 해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뒤에는 망부석이 뻣뻣한 걸음걸이로 따라갔다.
“복해 이놈!”
왜소한 체구임에도 우렁찬 호통이 터져 나왔다.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이들은 모두 복해를 형님으로 모시는 이들.
안 그래도 거친 헌터들이었기에 인상을 잔뜩 쓴 채로 고개를 돌렸다.
“할배요! 복해 햄한테 볼일 있습니까?”
부산갈매기 길드장 조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허어, 그놈한테 형님 소리 하는 너는 뭐하는 잡놈이냐!”
“마, 제가 그래도 부산갈매기라고 단체를 하나 맡고 있습니다. 잡놈까지는 아닌데요.”
목소리는 꽤나 험악하게 나왔지만 은근히 공손하게 말하는 그.
조태준은 의외로 연장자를 대우해주는 인물이었다.
“부산갈매기? 아니 그런 녀석이 왜 복해를....”
허원화도 기세가 누그러지긴 마찬가지였다.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사전조사를 해본 바, 몇몇 부산의 주요 길드를 알아보고 왔다.
그 중에서 부산갈매기와는 가급적 척을 지지 않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 있었다.
‘나중에 일본에 블루 오아시스를 팔아먹으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지....’
어차피 정말 복해와 치고받고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저 몇 마디 따끔하게 혼을 내고 사과나 받으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어려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해 햄이랑 저희는 뭐 의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감님도 저희를 전혀 모르시진 않는 것 같은데 그냥 좋게좋게 하시죠.”
“크흠, 흠! 뭐 일단! 복해랑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비켜 보거라!”
“아~ 이렇게 막 나오시면 저희도 면이 안 선다 아입니까.”
조태준이 계속해서 가로막는데 부산갈매기 길드원들 사이에서 누군가 나왔다.
“어어, 허영감 왔네?”
자신이 굴섬에 버려놓고 왔다는 걸 잊었는지 아무렇지 않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복해.
그 모습에 허원화는 다시 한 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왔네? 이놈! 네놈이 한 짓이 생각 안 나는 게냐!”
볼품없는 노인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섬에 데려다 달래서 갖다 놨더니 왜 성을 내? 여기서 한 번 붙어볼까?”
하지만 복해의 기세도 딱히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허원화와 한 번 싸우길 바라는 듯 팔을 걷어붙인다.
그 사이에 서있던 조태준이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왜들 이러십니까? 할배요! 여기 복해 햄이 힘 한 번 쓰면 여기 다 작살납니다! 햄, 그래도 여기 어르신한테 너무 그러지 마소!”
양쪽을 막아서는 그.
노인은 조태준의 말에 못이기는 척 화를 누그러트렸다.
“흠흠, 뭐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까지 말려들면 안 되겠지....”
“흥! 어르신은 무슨. 나이로 따지고 보면 내가 위일 수도 있는데....”
허원화가 한 발 물러서려 한다는 걸 눈치 챈 조태준은 복해를 집중 마크했다.
“아~ 행님. 그러면 더더욱 딱~ 넓은 배포를 보여주셔야지 않겠습니까? 저기 자리에 가서 술 한 잔 주고받으시면서! 서로 마음 푸십시다. 예? 하하.”
그의 필사적인 중재 덕분에 분위기가 적당히 부드러워졌다.
그런데 그 순간, 허원화의 뒤에 있던 망부석이 복해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콰드득!
허원화와 같이 자리로 돌아가려던 복해의 등을 크게 긁은 망부석.
그의 상의가 갈가리 찢어졌고 그 안의 피부 위로는 비늘들이 슬쩍 보였다 사라졌다.
“이 미친 노인네가 이렇게 뒤를 노려...?”
복해의 얼굴엔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황한 채 두 손을 흔드는 허원화.
“아,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뒷걸음질을 친다.
조태준과 부산갈매기 길드원들은 조용히 마무리될 것 같던 분위기가 갑자기 뒤집혀 순간적으로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있었다.
“늙은이! 오늘은 그냥 못 넘어간다!”
양손에 손톱을 길게 뽑아내 허원화를 향해 달려드는 복해.
-챙!
그의 공격을 망부석이 나서며 막았다.
이번엔 명백하게 허원화가 조종하는 것이 보였다.
“흥! 이런데도 발뺌을 한다고?”
그 모습을 보고 복해는 자신의 뒤를 친 게 허원화라는 걸 확신한 듯했다.
“이런...! 그래, 이 뱀새끼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 위계질서를 한 번 잡아보자!”
노인도 품에서 부적 몇 장을 꺼내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 * *
“흐흐흐. 어딜 평화롭게 말로 넘어가시려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인물.
진수였다.
망부석을 향해 한손을 뻗은 채로 마력을 쏟아 붓던 그는 이내 마력을 거뒀다.
‘생각보다 마력을 많이 먹네. 섬에서 미리 한 번 테스트를 해봐서 망정이지. 자칫하면 둘이 화해만 시켜줄 뻔했어.’
그는 이어지는 허원화와 복해의 싸움을 지켜봤다.
원하는 걸 빼먹을 기회를 노리면서.
이게 대체 뭐하는 특성이지?
-파지지직!
허공에 떠 일정한 간격으로 스파크를 내뿜는 부적들.
복해는 부적의 전기 공격이 제법 거슬리는지 전격이 쏘아져올 때마다 급히 몸을 피했다.
반면에 망부석의 공격은 아예 무시해버린다.
물리적인 방어력엔 자신이 있는 듯했다.
-팍!
그가 손톱으로 부적 하나를 찢어발기는 사이 허원화는 새로 부적을 흩뿌렸다.
노인은 바로바로 부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전투는 복해에게 불리해보였다.
“마 저 종이쪼가리들 다 조사뿔자!”
조태준을 위시한 부산갈매기 길드원들이 가세하기 전까지는.
그들은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는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허원화의 전투 스타일을 알아차렸고, 그를 직접 공격하지 않아도 복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피융!
-펑!
원거리 공격을 하는 헌터들이 부적을 하나씩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저놈들이... 요괴한테 홀린 줄도 모르고...! 쯧!”
허원화는 그런 부산갈매기 길드가 못마땅한지 혀를 찼다.
그 순간에도 허공에 흩뿌려진 부적은 하나씩 파괴되고 있었다.
“하앗! 컥!”
재차 도약하려던 복해가 순간적으로 작은 신음을 내며 멈칫했다.
어디선가 빠르게 날아온 돌멩이에 왼쪽 다리를 맞은 것이다.
그는 생각 이상의 큰 고통에 사방을 경계했다.
‘뭐지? 고작 돌멩이인데 엄청 아프네. 저 노인네가 쓰는 주술인가?’
조심할 게 부적만이 아니라는 걸 안 뒤로 복해의 행동이 눈에 띄게 신중해졌다.
그 모습에 허원화도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저놈이 갑자기 왜 저러지? 그래도 전춘성이 그 녀석이랑 계약을 맺은 게 있어서 날 봐주려는 건가?’
뛰어난 주술, 도술 실력을 지녔지만 신체 능력은 일반인에 가까운 노인이다.
그는 복해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할 속도의 투석을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
그저 눈앞에 있는 요괴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낄 뿐.
싸움은 오래도록 균형이 유지됐다.
부산갈매기 길드는 허원화를 직접 공격하지 않았고, 허원화는 쉼 없이 부적을 만들고 술법을 사용해 복해의 발을 묶었다.
복해는 중요한 순간마다 날아오는 돌덩이에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하는 상황.
“크아아! 못 참겠다! 네놈의 사지를 찢어 간식 삼아 씹어 먹고 비루한 대가리는 바닷물에 절여 주해응에게 갖다 주마!”
결국 분노를 터트리는 복해.
녀석의 피부 위로 거무튀튀한 비늘이 돋아났다.
온몸이 뒤틀리더니 덩치가 커진다.
목과 몸통이 길게 늘어나고 머리는 마치 상어의 형상처럼 변했다.
손과 발엔 단검처럼 예리한 발톱이 뽑혀 나왔다.
용.
영락없이 전설에나 나오는 용의 모습이다.
근데 이제 상어 머리를 곁들인.
“어, 어...? 뭐고? 몬스터 아이가!”
“길드장님, 일단 피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게 무슨 일이고!”
“그래도 이성이 있는 몹인 거 같은데 저기 저 영감님이랑 일만 해결되면 잠잠해지겠죠.”
“일단 빠지자!”
복해가 몬스터의 형태로 변하자 부산갈매기 길드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더니 이내 도망쳐버렸다.
아무리 형님 대우를 해주었다고 해도 그들의 본질은 헌터.
몬스터까지 형님으로 모실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본 허원화가 혀를 차며 복해를 책망했다.
“네 이놈! 인간들 앞에서 함부로 변하지 않기로 했던 걸 잊었느냐! 하물며 그게 부산갈매기 길드라니.... 다 살인멸구 하기도 어려운 자들이거늘...!”
하지만 복해는 콧방귀를 뀌며 답한다.
“흥! 내가 알 게 뭐야? 평천 형님께 한 번 혼나고 말지 뭐!”
-쿠르릉!
이제 완전히 변신한 복해가 허공에 몸을 띄웠다.
하늘엔 먹구름이 끼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촤아아
바닷물이 솟구치더니 녀석의 몸을 감싸 중국식 갑옷 형태가 되었다.
“감히 물이 있는 곳에서 나에게 덤볐으면 각오가 되어 있겠지? 아니면. 노망이 나서 판단이 흐려졌거나.”
복해가 뾰족한 이빨들을 잔뜩 드러내며 이죽댔다.
그 모습에 허원화도 긴장이 됐는지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그는 이내 품에서 위패처럼 생긴 나무 조각들을 꺼내더니 초록색 불을 붙였다.
나무토막들은 불이 붙은 채로 허공에 떠올랐다.
“내 준비가 되지 않은 곳이라서 아쉽지만 그래도 네놈이 내려다 볼 수준은 아니다!”
-스으으...
위패를 중심으로 반투명한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갑옷과 창 따위로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소위 말하는 신장(神將) 같았다.
“크흐흐, 평천 형님이 아니었으면 벌써 우리 형제들의 밥이 되었을 놈들이....”
변신을 하고 나서 한껏 여유가 생겼는지 허공을 유영하는 복해.
용 특유의 오만한 표정을 짓던 녀석은 이내 자세를 고쳐 잡고는 2차전을 시작했다.
인간 모습일 때는 육탄전 위주로 싸웠지만 용으로 변하고 나선 육탄전과 술법을 함께 사용했다.
주로 바다에서 물을 끌어와 사용하는 식이었다.
-펑!
허원화의 신장들이 일부는 물로 된 공격을 막고 일부는 복해에게 짓쳐들었다.
“끼아아악!”
복해가 꼬리를 휘둘러 신장들을 후려치고 노인에게 달려드는데 그 앞을 망부석이 막아섰다.
입을 벌리고는 찢어지는 비명을 지른다.
정신을 뒤흔들고 심장을 옥죄는 소리.
절절한 슬픔 그 자체를 음성으로 녹여낸 것 같은 기술이었다.
“크윽!”
물리적으로는 무시해도 상관이 없을 정도의 위력을 내던 망부석이 불의의 일격을 날린 것이다.
주춤하는 복해에게 신장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무기를 휘두른다.
공격이 제법 강력한지 검은 비늘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왔다.
“캬아악!”
괴성을 지르며 거칠게 몸을 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신장들은 고통도 느끼지 않는지 쉬지 않고 덤벼들었다.
간간히 망부석도 비명을 터트려준다.
금세 엉망이 된 복해.
하지만 허원화도 그리 멀쩡하지는 않았다.
신장을 부리는 데에 많은 힘이 드는 듯 짧은 사이에 얼굴이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이놈! 이 정도면 누가 위인지 알겠지?”
자신의 다리도 후들거리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고함을 지른다.
허원화는 신장들을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복해도 더 이상 달려들 생각은 않고 있다.
다만 아직 완전히 승복을 하지는 않았는지 슬쩍 슬쩍 이빨을 드러내는 상황.
그 순간, 신장들이 허원화의 사지를 붙잡았다.
“어어...? 이놈들 갑자기 왜...?”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는 노인.
그 모습을 보고는 복해가 그에게 빠르게 짓쳐들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빼곡히 박힌 주둥이를 쩌억 벌린 모습이 상당히 공포스러웠다.
“히이익! 이놈들아! 왜 이러는 게냐!”
어느새 주술에 사용하는 종까지 꺼내 흔들어보지만 신장들의 손아귀는 풀릴 생각을 않는다.
“커억!”
금방이라도 허원화의 머리를 뜯어먹을 기세였던 복해가 무언가에 얻어맞기라도 한 듯 비명을 지르며 멈췄다.
녀석의 가슴팍이 움푹 들어가 있는 게 보인다.
그때 망부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손톱을 들어 복해의 심장을 노리는 망부석.
“아, 안 돼! 멈춰!”
-딸랑! 딸랑!
종을 흔들며 명령을 내렸지만 망부석의 손은 명령을 거부하고 복해를 꿰뚫었다.
“이런...!”
두 눈에 절망감이 감도는 허원화.
그는 망부석의 손을 짙은 그림자가 감싸고 있는 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먹구름이 사라지고 심장이 관통당한 복해가 씻은 듯 사라져버린다.
-퍽!
그 직후에 망부석도 갑자기 사라졌다.
해운대 바닷가엔 허원화만이 허망한 표정으로 남아있었다.
* * *
-복해대성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복해대성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망부석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망부석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건예자 [아담]의 특성 중 하나
해운대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건물 위.
진수는 현기증이 나 잠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휘유. 까딱하면 마력이 부족할 뻔했어.”
망부석을 이용해서 복해와 허원화의 싸움을 부추긴 것부터 마지막에 마무리까지.
모두 진수의 안배대로 일어난 일이었다.
굴섬에서 허원화가 자리를 비운 사이 망부석에게 [죽음의 그림자]를 사용해본 진수.
[망자의 손길]의 능력인 언데드의 팔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그대로 적용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조종을 받고 있는 놈이라 그런지 마력 소모가 컸지만.’
이를 이용해서 둘이 싸우도록 만들 수 있었다.
전투 중간중간 허원화가 밀리는 듯해 마력 총으로 저격을 해줬다.
이에 화가 난 복해가 변신했을 때는 진수도 깜짝 놀랐다.
“뭐야, 복해가 용이었어...? 드라고 자리를 언제 채우나 했더니 바로 지금이네.”
놀람과 함께 기쁨도 찾아왔다.
싸움이 지속되고 얼추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순간에 마력을 쏟아 부어 신장들로 허원화를 붙잡았다.
그 후 포항에서 캐온 광석을 거의 전력으로 쏴 복해에게 맞춘 것이다.
사실 그 공격으로 끝을 본다는 생각이었지만 위력이 조금 부족했다.
‘오히려 좋아. 허원화의 눈앞에서 망부석으로 막타를 치면 그림이 아주 그럴듯하겠어.’
강력한 반동 때문에 저릿한 팔을 부여잡고 다시 [죽음의 그림자]로 망부석을 조종해 복해의 가슴을 후벼 판다.
진수의 기술로 마지막을 장식했기에 당연히 복해대성을 차원 전이시킬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마력을 쥐어짜 망부석까지 해치웠다.
“후우.”
어지러움에 한숨을 쉬는데 진수의 몸이 조금 커졌다.
어딘가로 보냈던 분신이 [분열]을 해제한 것이다.
‘이걸로 의심받을 여지도 완전히 없앴다.’
작은 진수의 몸통에 주해응의 인장 반지를 끼워주고 도심을 돌아다니게 만들었다.
길을 못 찾는 척 혼잣말도 좀 해주고 길거리의 사람들 말소리도 함께 주해응에게 전달되었다.
누구도 복해의 죽음에 그가 관여되었다고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망부석 [이름 없음]이 [망자 군단] 무리에 합류했습니다.
-복해대성 [이름 없음]이 [바다의 왕자] 무리에 합류했습니다.
-[망자 군단]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체력 +2, 내구 +2, 마력 +2, 골드 +10
[차원 전이]의 보상으로 체력과 마력 능력치가 오르면서 숨통이 좀 트였다.
정신을 차린 진수는 이번에 전이시킨 두 녀석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복해대성은 당연히 드라고로 하고... 망부석은... 손톱도 길고 소리도 지르는 언데드니까... 위치라고 할까.’
새로운 전이자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이어서 임무 보상을 확인한다.
특성 목록에 새로 생긴 [경화외피].
피부 내구도를 올려주는 흔한 특성이다.
“음, 뭐 무난하네.”
보상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남기는데, 다시 진수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융합]의 효과로 [머리 분리]와 [왕성한 번식]과 [특급 정신 보호]와 [경화외피]가 합쳐집니다.
-[마트료시카] 특성이 생겼습니다.
무려 4개나 되는 특성이 합쳐지며 새로운 특성이 나온 것이다.
‘마트료시카면 그 인형 안에서 계속 인형이 나오는 그거 아니야...? 이게 대체 뭐하는 특성이지?’
[머리 분리]가 섞인 특성.
왠지 진수는 목 주변이 근질거리는 듯했다.
성전이다!
마트료시카.
행운을 상징하는 인형 속의 인형.
엄마가 딸들을 품는 것처럼 큰 인형 속에 작은 인형, 그 속에 또 작은 인형들이 들어 있고 맨 마지막에는 아기 인형이 나오도록 만들어졌다.
위아래로 나누면 새로운 인형이 나오는 마트료시카가 사람에게 특성으로 적용된다면 어떤 식으로 될까?
놀랍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컥!”
[분열]로 만든 작은 진수가 반으로 나뉘면서 더 작은 진수가 튀어나온다.
마치 허물을 벗듯 외피를 남기고 새로운 분신이 나오는 것이다.
[특급 정신 보호]가 섞인 덕분인지 반으로 갈라지며 분신이 해제되어도 생각보다 고통스럽지 않았다.
“모습이 좀 기괴하긴 해도 엄청 유용하겠는데.”
[머리 분리]처럼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하면서 기습을 하기에 아주 괜찮은 특성이었다.
또, 공격을 분신으로 막고 바로 반격을 하는 등 써먹을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이거 본체에도 적용이 되는 건가...?’
당연히 특성이 본체에도 적용되긴 하겠지만 실험을 위해서 스스로 몸을 두 동강 낼 용기까지는 없었다.
진수는 [마트료시카] 특성은 분신에게나 사용해야겠다 생각을 하며 상태창을 닫았다.
“이제 빨리 거래처들 돌아야겠네.”
분신으로 길을 못 찾는 척 시간은 벌어놨지만 더 지체했다간 주해응의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진수는 건물과 건물을 뛰어넘으며 지도에 표시된 부산의 거래처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후우....”
부산의 거래처를 살피는 데 이틀, 운송로 경로의 몬스터들을 처치하는 데에 6일이 소요됐다.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허원화의 입에서는 쉼 없이 한숨이 나왔다.
“허원화님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한숨을 쉬세요?”
노인이 왜 그러는지 이미 알고 있는 진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묻는다.
“하아.... 아니다.... 부산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
“내 술법에 뭔가 문제가 있나...? 귀들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이 허원화가?”
복해를 죽인 것보다 자신이 부리던 언데드들이 제멋대로 움직였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노인의 손이 작게 떨리는 게 보였다.
“에이, 허원화님 술법이 잘못되었을 리가 있나요? 뭔가 다른 문제가 있었겠죠.”
모든 사건의 원흉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진수의 말을 들은 허원화가 눈을 들어 그를 잠시 보았다.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말이라도 고맙구나. 네 녀석 덕분에 부산에서의 일처리도 문제없이 해결이 되었어. 본사로 돌아가거든 대표님께 긍정적으로 말씀드리마.”
지금까지 진수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노인의 눈빛에 호의가 맴돌았다.
정신력이 많이 흐트러진 그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보조를 해준 덕이었다.
진수는 허원화가 한 번 긍정적인 이야기를 한 것에 안주하지 않고 서울로 복귀하는 내내 몬스터들도 나서서 모두 해치우고 자잘한 일들도 맡아서 처리했다.
RD 본사에 도착할 즈음엔 노인을 완전히 구워삶아놓을 수 있었다.
“허원화님. 저는 이제 운송로 사업 관리팀에 부산 운송로 관련 보고를 올리러 가보겠습니다. 그간 많이 피곤하셨을 텐데 들어가서 쉬세요.”
“흘흘, 그래. 네 녀석도 고생 많았다.”
‘아주 싸가지 없는 놈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싹싹하고 생각이 박힌 녀석이었군. 이번 복해놈 건으로 저 녀석한테 피해 가지 않게 말을 잘 해줘야겠어. 복해... 그 망할 뱀 새끼!’
“후우....”
좀 나아지던 노인의 기분이 복해를 떠올리며 다시 곤두박질 쳐버렸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허원화는 주해응의 집무실로 향했다.
* * *
“와, 이제 운송로 구축이 거의 끝나가네요?”
RD의 운송로 사업 관리팀 사무실에 도착한 진수는 현황판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서울과 전국의 주요 도시들을 잇는 길이 순조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곧 도시와 도시 사이의 길까지 완성되면 내부 유통망이 구축될 것이다.
‘그럼 블루 오아시스를 우리나라 각지에 퍼트리겠지.’
“김진수 헌터 공이 컸죠.”
부산 운송로 관련 보고를 받은 황계문이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다른 헌터분들은 이렇게 일처리를 제대로 해주는 경우가 드물거든요. 거의 운송로 몬스터들이나 잡고 활동 장려금만 받으면 된다는 식인 분들이 많아서....”
“전국적으로 중요한 일에 참여하는 건데 열심히 해야죠. 하하. 그나저나 운송로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네요.”
현황판을 살펴보는 진수.
아직 구축중인 운송로와 정비가 끝난 길, 계획 중인 경로 등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다.
“최종 완성 단계가 되면 깔끔하게 파악이 될 거예요. 예상도를 출력해놓은 게 여기 어디 있었는데....”
황계문이 책상 위를 이리저리 뒤졌다.
RD의 사무 작업을 도맡아 하는 그였기에 책상 위에도 온갖 서류들이 가득했다.
그가 이런저런 서류들을 들추며 찾고 있는데 진수의 눈에 먼저 운송로 예상 완성도 자료가 들어왔다.
-슈슉!
황계문을 도와서 같이 찾는 척 하며 자료를 [차원의 틈]으로 집어넣는다.
‘좋아, 이걸 바탕으로 나중에 운송로를 빼앗으면 되겠어.’
-띠리리링 띠리리링
진수가 자료를 훔치는 사이, 황계문의 자리로 전화가 왔다.
“예, 운송로 구축 관리팀 황계문입니다. 아,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예. 김진수 헌터요? 예, 지금 여기 있습니다. 바꿔드릴까요? 아아 집무실로요. 알겠습니다. 네, 부산 운송로 작업도 아주 깔끔하게 처리를 했습니다. 예, 들어가십시오.”
주해응이 건 전화인 듯했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황계문이 진수를 본다.
“김진수 헌터. 대표님이 집무실로 좀 올라오라고 하시네요.”
“대표님께서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볼게요.”
진수는 자연스럽게 자료를 훔친 티를 숨기고 사무실을 나왔다.
“김 팀장, 부산까지 가서 아주 고생했네. 그런데... 본사에서는 부산으로 가라고 지시한 적이 없는데 어떤 경위로 포항에서 부산으로 간 건가?”
집무실에 도착한 진수에게 주해응이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내가 허원화한테 말한 걸 다 들었을 텐데... 굉장히 사람 시험하길 좋아하는 양반이네.’
애초에 인장 반지로 도청을 하는 인물이다.
사람을 쉽게 믿을 리가 없었다.
“예, 주선생이 제게 부산에서 문제가 좀 생긴 것 같다고, 포항 일이 마무리 됐으면 가까우니까 들러보라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마침 포항 운송로 구축 작업도 막바지라서 부산에 갈 수 있었죠.”
“주선생은 왜 하필 김 팀장한테 연락을 했을까...?”
주해응이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진수의 안색을 훑는 눈빛.
빈틈을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의심받을 여지는 다 차단했으니까.’
정보에서도 수법에서도 진수가 주해응의 머리 위에 있었다.
속으로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얼굴엔 멍청한 표정을 띄운다.
왜 그런 걸 묻냐는 듯이.
“... 허허, 김 팀장이 워낙 일을 잘 해내니까 그쪽에서도 신뢰를 하는 모양일세.”
진수의 표정이나 태도에서 이상한 기색을 찾지 못한 주해응은 이내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었다.
“김 팀장도 아마 가능하면 현장직과 사무직 모두가 잘 지냈으면 하겠지. 그런데 부산에서 좀 일이 생겼어. 허형이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복해가 부산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네.”
“예? 제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잘 지내고 계셨는데....”
“그래, 김 팀장이 복해 그 친구를 부산에서 만났었던 게 문제야. 현장직 간부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더군. 자네가 의심받기 좋은 상황이라는 말이지.”
‘허원화가 요괴들한테 그런 정보를 말했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내가 굴섬에 가는 사이에 복해가 요괴끼리 통하는 연락 수단으로 이야기를 했거나 주해응이 뭔가 수작질을 부리는 걸 수도 있겠네.’
진수는 일단 잠자코 주해응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문제를 가지고 허형과 이야기를 나눠봤거든. 허형은 자네는 무고하니 괜한 의심 받아서 해를 입지 않게 해달라고 하더군. 허형이 그런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닌데... 아주 이례적인 일이야.”
허원화는 워낙 까칠하고 타인을 잘 배려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수를 보호해주는 말을 했으니 진수가 얼마나 허원화의 마음에 들었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차라리 김 팀장을 현장직 간부들과 함께 움직이게 하면 오히려 의심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네. 지난번에 한 차례 물건을 받아오라고 업무 요청한 적이 있지 않은가?”
“아, 예. 그때 동두천 쪽에 다녀온 거 말씀이시죠?”
진수가 블루 오아시스에 독극물을 섞었던 그날이다.
“맞네. 다만 이번에는 좀 더 북쪽으로 길을 터줬으면 하는데....”
“좀 더 북쪽이라고 하시면...?”
“우리 적룡의 큰 목표는 대륙과의 육로를 뚫는 것이지. 앞으로 대륙과의 교류가 늘어날 걸세.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북쪽의 무법지대에서도 제법 안전한 길을 마련해놓으려고 하네.”
북쪽의 무법지대.
옛날에는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게이트 사태가 터지고 개개인에게 힘이 생기자 더 이상 독재 체제는 유지되지 못했다.
그 어디보다 억압받던 땅이 최소한의 법조차 적용되지 않는 완전한 자유의 땅이 되어버렸다.
몸을 숨기고자 하는 범죄자, 세상에 섞이고 싶지 않은 은둔자, 자유로운 삶을 바라는 방랑자 등등 온갖 사람들이 무법지대를 찾았다.
“너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동행할 현장직 간부들의 무력도 전혀 약하지 않고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면서 위험을 최소화한 길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무법지대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지. 요괴들이 좀 죽어나가도 말이야.’
진수가 흔쾌히 주해응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다 꿍꿍이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곧 국내 운송로 작업이 마무리된다.
그 이후에는 RD의 간부들과 직접적으로 싸우게 될 텐데 그 전에 전력을 줄여놓을 필요가 있었다.
‘동시에 내 힘은 더욱 커질 테고. 흐흐흐.’
[차원 전이] 덕분에 몬스터를 처치할수록 진수에겐 성장의 기회가 된다.
몇 번 무법지대를 들락날락하고 돌아오면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주해응과의 대면을 마친 그는 집무실에서 나왔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
-고블린 [고돌]이 [휴고보스] 무리와 만났습니다.
고돌이가 저주받은 성지에 거주하고 있는 휴고보스 무리와 만났다.
‘이리저리 열심히 돌아다니네. 거기서는 다른 전이자들이랑 싸우지 마라.’
이제 고돌이가 다른 무리들과 교류하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고돌]을 쫓아온 인간들과 저주받은 성지를 노리던 파투스교가 힘을 합칩니다.
-[고돌]과 [휴고보스] 무리가 인간들과의 싸움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인간들의 공격을 함께 막아서는 것은 처음 보는 사건이었다.
-[고돌]이 [휴고보스] 무리에게 당신의 종교를 전파합니다.
-[휴고보스] 무리의 가고일 [휴고]가 제사장이 됩니다.
-[휴고]의 주도 하에 전투가 시작됩니다.
[휴고] - 현재 상황 : 성전이다! 징크스님의 이름으로!
‘야, 임마! 이제 막 종교 받아들였으면서 내 이름 걸고 싸우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특수임무 발생.
성지
-특수임무 : 고블린 [고돌]과 [휴고보스] 무리를 도와 저주받은 성지 지키기 !
-보상 : 저주받은 성지와 관련된 기술
‘이런 보상은 또 처음 보네? 지역 특산물 같은 건가....’
특정 지역으로 물건을 보내거나 하는 임무는 있었지만 그 지역에 관련된 보상은 처음이었다.
진수는 임무 내용 옆의 느낌표를 눌러 상세 설명을 확인해보았다.
-차원을 정화한다는 교리를 가진 파투스교. 자신들이 망가트린 저주받은 성지에 몬스터들이 나타난 것을 알아차리고 그들을 처단하려 합니다. 저주받은 성지에 있는 [고돌]과 [휴고보스] 무리는 고작 넷. 열세에 있는 그들을 도와 저주받은 성지를 지키십시오. 성지의 힘을 활용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특수임무 수행 중에는 [휴고보스] 무리를 선택해 그들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상세 설명의 내용을 보고 상태창에서 휴고보스 무리를 눌러본다.
그러자 새로운 창이 나타났는데, 중앙에는 신전 같은 건물이 있고 고돌이와 휴고보스 무리의 세 전이자들이 보였다.
가고일 휴고, 변종 랫맨 라따뚜이, 구름거인 미미.
‘구름거인이 있으니까 그래도 어지간한 싸움에선 이기지 않을까?’
안이한 생각을 하는 진수.
하지만 조금 뒤에 변한 상황을 보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신전의 사방에서 엄청난 수의 인간들이 나타난 것이다.
고돌이를 쫓아왔다는 인간들과 파투스교라는 녀석들.
당장 보이는 놈들만 수백은 넘었고, 화면 바깥에 아직 보이지 않는 이들도 있는 듯했다.
‘아, 이거 잘못하면 애들 다 죽겠는데.... 성지의 힘을 활용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했지. 저주받은 성지가 아니라 성지의 힘이니까 이게 힌트일 거야.’
진수는 상점을 열어서 기술 목록을 훑어봤다.
몇 번 목록을 내려 보니 그가 원하는 상품이 나타났다.
-[저주 해제] 기술을 구입하시겠습니까?
저주받은 성지에 걸린 저주를 풀면 뭔가 상황이 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저주 해제]를 휴고에게 보내줬다.
‘30골드나 하긴 하지만.... 아직 골드 여유는 꽤 되니까.’
그동안 전이자들의 성장이나 임무로 모아둔 골드가 200이나 된다.
30골드 정도는 흔쾌히 내놓을 수 있다.
기술을 보내준 진수는 무언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사방에서 적들이 접근하기 시작하고 가장 먼저 구름거인 미미가 하늘 위로 올라가 구름들과 동화되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아, 빨리 저주 풀고 성지의 힘 쓰라고. 이런 장난 재미없어.’
시시각각 인간들이 다가오고 있는데 저주받은 성지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미미가 먼저 싸움을 시작했다.
저주받은 성지 전역에 두텁게 낀 먹구름에 몸을 감추고 동분서주하며 인간들을 공격한다.
과연 이천시 전체를 괴롭히던 필드 보스답게 강력한 위용을 보여줬다.
‘아오... 무리 이름을 잘못 지었네. 휴고보스가 아니라 미미월드 그런 걸로 했어야 됐어.’
이어 신전 근처로 인간들이 다가오고 나머지 녀석들도 싸움을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고돌이.
기다란 양손검을 휘두르는데 그 모습이 몹시 용맹했다.
고블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실력으로 전장을 휩쓸었다.
‘그러고 보니 고돌이가 싸우는 걸 보는 건 처음이구나.’
상태창을 통해서 오크 워리어인 고블린이나 가국, 몽치와 결투를 했다는 것은 전해 들었지만 직접 활약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비록 상태창에서 간소화된 형태로 보고 있지만 요정의 호수에서 얻은 검을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이 대단했다.
그 외에도 미미는 말할 것도 없고, 휴고나 라따뚜이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맹렬히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끼리만 수많은 인간들을 막는 것은 역부족으로 보였다.
‘[저주 해제] 작전은 실패했으니까 골드를 써서 랜덤 특성이랑 기술을 하나씩 보내줘야겠다.’
총 40골드를 사용해서 5골드짜리 기술 랜덤 박스를 네 개, 특성 랜덤 박스를 네 개 구입했다.
-[기술 랜덤 박스] 구입으로 기술 [워 크라이]를 얻었습니다.
.
.
.
-[특성 랜덤 박스] 구입으로 기술 [의지 확장]을 얻었습니다.
얻은 기술들은 [워 크라이], [체온조절], [축복의 대지], [물감 소환].
그리고 특성들은 [전투 체력], [꼬리 숙련], [수학 재능], [의지 확장].
‘그래도 전투 관련된 기술, 특성들이 몇 개 나왔으니까 다행이다.’
고돌이에게 [워 크라이], [의지 확장]을 주었다.
[워 크라이]로 아군에겐 버프를, 적들에겐 디버프를 건다.
[의지 확장]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불굴의 의지] 기술과 함께 시너지를 내서 신체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해줬다.
휴고에게는 [축복의 대지]와 [수학 재능]을 전해줘 녀석이 서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다른 전이자들의 체력을 지속적으로 회복시켜줬다.
[물감 소환], [꼬리 숙련]을 받은 라따뚜이는 전투에 꼬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원래도 랫맨 특유의 꼬리 사용을 잘 했는데 이제는 또 하나의 손이 생긴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가장 압도적으로 변한 것은 구름거인 미미였다.
[체온조절]과 [전투 체력]을 받은 미미는 구름에 동화된 몸의 체온을 0도에 가깝게 낮춰버렸다.
전장에 안개처럼 퍼진 구름들의 온도가 뚝 떨어지니 적들의 행동이 둔화되었다.
-[고돌]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체력 +1, 마력 +2
-[휴고보스] 무리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5, 민첩 +4, 체력 +7, 내구 +4, 마력 +3, 골드 +10
골드를 쓴 만큼 다시 보상이 돌아온다.
하지만 지금 진수에게 그 보상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떠오른 안내 메시지를 빠르게 닫고 전투 상황을 살펴본다.
‘우리 쪽 애들 기세가 확실히 달라졌어. 갑자기 성장한 덕분에 인간들도 당황한 것 같고. 그래, 인간들을 다 조져버... 어? 방금 뭔가 사천왕을 응원하는 마왕 같은 멘트였던 거 같은데....’
진수는 순간적으로 자괴감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고돌이와 휴고보스 무리는 조금씩 파투스교라는 인간들을 저주받은 성지에서 몰아내기 시작했다.
전투를 통해 그들 자체도 성장을 하는지 성장 보상도 왕왕 보내왔다.
꽤나 접전을 벌인 끝에 잠시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보상으로는 힘 3, 민첩 2, 체력 4, 내구 4, 마력 3을 더 얻었다.
“캬, 너희들 덕분에 오늘 오른 능력치만 해도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전투에서도 이겨가고 보상도 한껏 받았다.
진수의 기분이 안 좋을래야 안 좋을 수가 없는 상황.
“어? 근데 쟤네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저주받은 성지 외곽 쪽에서 마법진 같은 것을 그리고 주문을 외는 파투스교도들.
불길한 보랏빛 기운이 휘몰아쳤다.
-파투스교 진영에서 악마를 소환합니다.
‘악마? 파투스교면 종교 아니야? 왜 종교인들이 악마를 소환하는 거야!’
마법진의 중앙에서 보라색 피부를 지닌 괴물들이 솟구쳐 나왔다.
지옥에서 바로 올라온 것 같은 외형을 가진 녀석들은 한 눈에 봐도 강하게 생겼다.
거친 피부와 강인한 근육, 쇠도 찢을 것 같은 손발톱과 뿔, 이빨을 지녔다.
이윽고 2차전이 시작됐다.
악마들을 앞세운 인간들과 크게 변하지 않은 몬스터들.
전투의 양상은 1차전과 많이 달랐다.
미미가 기온을 뚝 떨어트렸지만 악마들에겐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워 크라이]을 사용해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고돌이와 휴고보스 무리도 제법 버텨내고 있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 있는 진수에겐 전이자들이 조금씩 밀리고 있는 게 보였다.
[휴고] - 현재 상황 : 의지가 꺾이고 있음 “성물만 있었다면...!”
상태창에서도 패색이 짙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성물?’
진수는 휴고의 말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처음 [차원의 틈]에 저주받은 신의 창을 넣었을 때 휴고가 탐냈었지. 게다가 이름도 비슷해.’
덤으로 산 줄 알았던 물건을 감정까지 받게 된 이유가 바로 휴고였다.
어쩌면 저주받은 신의 창을 원했던 이유가 그저 창을 쓰는 녀석이라서가 아닐 수도 있다.
‘승부수를 띄워볼 만 해.’
진수는 상점에서 30골드를 사용해 저주받은 신의 창을 휴고에게 전송시켰다.
상태창의 휴고 그림 위로 저주받은 신의 창이 나타났다.
두 손으로 공손히 창을 받아드는 휴고.
녀석은 곧이어 [저주 해제] 기술을 사용했다.
-[휴고]가 빛의 성창을 발견했습니다.
‘역시! [저주 해제] 기술을 보낸 게 신의 한 수였어!’
눈앞에 나타난 안내 메시지를 보며 쾌재를 지른다.
-저주받은 성지가 빛의 성창에 반응합니다.
[휴고] - 현재 상황 : 빛의 성창을 떠받듦 “징크스님께서 당신의 힘이 담긴 성창을 내려주셨다!”
“이게 이렇게 와전된다고?”
그냥 갖고 있는 아이템을 보내줬을 뿐인데 마치 진수의 힘 덕분에 저주받은 성지가 반응하는 것처럼 되었다.
이어 빛의 성창을 신전 중앙으로 가져가 바닥에 내리꽂는 휴고.
강렬한 빛이 창으로부터 나와 신전 내부를 가득 채웠다.
빛에 닿은 악마들이 바스러지며 먼지로 화한다.
아직 신전에 발을 들이지 않은 녀석들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악마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저주받은 성지에 걸린 저주가 해제되었습니다.
신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소용이 없었다.
저주받은 성지였던 지역의 모든 땅에서 은은한 빛이 발산된다.
이에 악마들의 몸이 봄볕에 눈이 녹듯 사르르 뭉개지며 사라졌다.
-[휴고]가 성지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저주받은 성지가 징크스의 성지로 변했습니다.
‘땅따먹기 오졌다...!’
저주받은 성지가 원래는 어떤 신의 성지였는지 알 수 없다.
빈집이 된 땅에 진수의 전이자들이 들어가 깃발을 꽂으면서 그의 이름이 붙은 성지로 변했다.
-[고돌]과 [휴고보스]가 파투스교와 인간들을 물리쳤습니다.
-[고돌]과 [휴고보스] 무리가 당신을 칭송합니다.
-제사장 [휴고]가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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