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13

구름 위에 떠있는 거대한 땅덩어리. 
그 위에 온갖 비행 몬스터들이 어우러지며 함께 있었다. 
“지도에 있던 이상한 지점이... 여기였구나. 아니, 오히려 의도적으로 비행 몬스터들의 활동 영역이 겹쳐진 구간을 축소한 거였어.” 
진수는 부유하고 있는 땅 위로 올라가 공허룡 코트를 입고 [투명화]를 사용했다. 
그러자 그를 노려보던 비행 몬스터들이 시선을 돌린다. 
‘이게 말이 되나...?’ 
물론 몬스터들이 무조건 서로 싸우는 것은 아니다. 
오크와 고블린처럼 종족 자체에 새겨진 적대관계인 경우도 있지만 또 서로 갈등 없이 지내는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렇게 다수의 몬스터들이 마치 한 가족처럼 지내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육식 동물들이 서로 먹이 경쟁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런 환경이 만들어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몬스터들이 먹이 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 풍족한 환경. 
여러 몬스터들을 아우를 수 있는 강력한 보스. 
그리고 그 보스 몬스터가 다스리는 필드의 몬스터들이 서로 싸우지 않길 바랄 것. 
‘이 조건들은 두 번째 빼고는 성립되기가 쉽지 않지.’ 
-텅 
평화로운 비행 몬스터들 사이로 돌아다니던 진수의 발에 웬 철판이 차였다. 
‘... 인간의 개입이 없다면 말이야.’ 
진수는 발에 걸린 철판을 보았다. 
고기 썩은 냄새가 나는 철판은 누가 봐도 몬스터들이 만든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사용했다는 건 알 수 있었는데, 군데군데 부리로 찍은 흔적이나 이빨 자국 따위가 보였기 때문이다. 
‘대신 이 손잡이는 사람이 썼겠지.’ 
주변을 더 살펴본다. 
비행 몬스터들의 배설물들, 죽은 짐승의 뼛조각, 사람의 것이었으리라 예상되는 시체 잔해도 보인다. 
그냥 보면 난장판이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자세히 살피면 은근히 구분이 있었다. 
배설물을 한 데 모아놓고 한 쪽엔 식사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 놨다. 
사이사이에 인간의 발자국도 보인다. 
-띵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녹화를 시작했다. 
비행 몬스터들이 함께 지내는 장면. 
사람 발자국이나 먹이를 준 것으로 보이는 철판. 
인간의 시체로 보이는 것들. 
‘얼씨구, 이건....’ 
심증만 있던 상황에 물증이 잡혔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은 바로, 마석으로 만든 탄. 
주변을 더 살펴보니 총알을 몇 개 더 찾을 수 있었다. 
탄두와 탄피도 돌아다닌다. 
이런 물건을 쓰는 단체는 흔하지 않다. 
그것까지 영상에 담은 진수. 
녹화를 마치고 탄을 주머니에 챙겼다. 
“이 정도로 해서 기관에 신고하면 알아서 조사하고 털어주겠지. 이 미친 자식들... 몬스터를 이런 식으로 이용해먹어?” 
바닥에 돌아다니는 해골과 눈이 마주친다. 
그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여기 보스 몬스터를 조지면 더 이상 개짓거리는 못 하겠지.’ 
진수는 [차원 전이]의 임무를 받았다. 
대개 강력한 필드 보스, 특히 전이시킨 적 없는 녀석이면 임무가 놓칠 리가 없다. 
가까이 있다면 놈의 정체를, 멀리 있다면 위치를 알려줄 것이다. 
-임무 : 불새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스카이피아] 무리의 급성장 
“불새...?” 
임무를 받은 진수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불새는 비행 몬스터들 중에서도 굉장히 악명이 높은 녀석이었으니까. 
-화르륵 
진수가 임무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그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높은 지대임에도 공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진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어 위를 살폈다. 
온몸이 불로 뒤덮인 거대한 새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특수임무 발생.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불새와 눈이 마주친 순간, 진수에게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왜 또...?” 
필드 보스 몬스터인 불새를 처치하라는 임무는 이미 받았다. 
그럼 대체 왜 특수임무가 나타난다는 것인가? 
진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특수임무를 수락했다. 
-특수임무 : 섀도우 호크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기술 [망자의 손길] 강화 
‘아... 그러고 보니 불새한테 그림자라니 말이 안 되는구나...!’ 
불새의 그림자라고 생각했던 어둠이 눈을 뜬다. 
맹금류 특유의 매서운 눈이 진수를 꿰뚫듯 쏘아본다. 
넓은 천안 지역의 비행 몬스터들을 다스리는 필드 보스 몬스터는 두 마리였던 것이다. 
“끼아아악!” 
“....!” 
불새가 찢어질 듯 커다란 울음을 터트린다. 
섀도우 호크도 부리를 벌리고 무언가 소리를 질렀지만 인간의 귀에 들리는 음역대는 아닌 모양이었다. 
-파드득 
-파드드득 
물론 진수가 듣지 못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그가 들으라고 낸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공중에 있는 땅에서 쉬고 있던 수많은 비행 몬스터들이 일시에 날갯짓을 시작했다. 
-휘이이잉! 후우우웅! 
생물들의 힘으로 태풍과도 같은 엄청난 바람을 만들어냈다. 
진수는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의 광풍에 공허룡 코트를 [차원의 틈]에 집어넣었다. 
전투에 도움이 되는 장비도 아닐뿐더러 어차피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면 냄새나 소리를 감출 이유는 없었으니까. 
-위이이잉! 
전기톱이 맹렬히 돌아간다. 
한 손에는 도끼가 그 날을 번뜩인다. 
아주 잠시간의 대치. 
참을성 없는 비행 몬스터들이 노도와 같이 덤벼들었다. 
-콰드드득! 
방어구의 마력 회로에 마력을 쏟아붓고 전기톱을 단단히 움켜쥔다. 
물살을 가르듯 회전하는 톱날을 앞세우며 도끼를 부지런히 휘둘렀다. 
-블러드 레이븐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블러드 레이븐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블러드 레이븐, 하피, 스팅 웜 등의 비행 몬스터들이 부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진수의 전기톱과 도끼 앞에 썰려나가는 놈들이 많았지만 그보다 많은 녀석들이 진수를 할퀴고 지나갔다. 
-콰득! 
-부욱! 
[탄성체질]과 [불곰]으로 강화된 피부, 그리고 진은이 내장된 방어구를 입었지만 바위도 낙숫물에 구멍이 뚫리는 법이다. 
그저 붉은 자국만 남기던 공격들이 지나가고 또 쏟아지고, 그 충격이 가시기 전에 다시 쌓이니 대미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퍽! 콰득! 
물 반 고기 반 아니, 공기 반 몬스터 반이다. 
무기를 어디로 휘둘러도 온갖 비행 몬스터들이 걸리고 또 공격을 해온다. 
‘이거 이대로 가다간 끝이 없겠는데?’ 
상처를 입어도 [상급 재생력]이 있기에 회복은 된다. 
하지만 충격이 누적되기 시작하면 특성에도 한계가 있다. 
무한한 힘이 아니기에 결국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회복은 더뎌지고 위기가 올 것이다. 
게다가 이놈들은 잔챙이일 뿐. 
필드 보스인 불새와 섀도우 호크는 전투는커녕 공중에 떠서 이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보스급이 아닌 놈들도 아직 많고...!’ 
개체수가 많지 않지만 치명적인 비행 몬스터들도 아직 남아있다. 
약한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힘이 빠지면 빈틈으로 발톱과 부리, 이빨을 쑤셔 박을 태세를 하고 있는 놈들. 
진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 꺼져 이 새끼들아!” 
-뿌우우우! 
마력을 가득 담아 [전장의 뿔나팔]을 사용한다. 
“끼에엑!” 
“캬악!”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위압감에 놀란 비행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새와 섀도우 호크가 다시 지시를 내리듯 울자 진수를 향해 짓쳐들었다. 
그 모습에 진수는 바로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파드득, 파드드득! 
하늘을 채우는 엄청난 양의 비행 몬스터들, 그리고 놈들의 앞에서 달리고 있는 인간. 
일견 우스꽝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 직접 놓여있는 진수. 
몬스터들이 노린다는 공포에 정신이라도 놓아버린 것일까? 
바람생성기까지 사용하며 빠르게 내달리던 그는 허공에 떠있는 땅의 끝에서 그대로 몸을 던졌다. 
-휘익! 
바닥을 등지며 추락한다. 
그의 뒤를 따라서 비행 몬스터들이 빠르게 하강했다. 
어떤 놈은 아예 날개를 접고 공기를 가르며 떨어져 내린다. 
진수를 잡겠다는 의지가 대단해보였다. 
그 모습을 본 진수는 양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다 덤벼라 이 새대가리들아!” 
그의 도발이 먹혀든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비행 몬스터들의 추격이 더욱 뜨거워진 것 같기도 했다. 
힐끔 땅바닥과의 거리를 가늠해보는 진수. 
이제 십 수 초 안에 지면과의 대면을 할 상황이다. 
-후우웅! 
그 순간 바람생성기에서 강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급격하게 줄어드는 낙하 속도. 
그와 동시에 진수의 눈에서 강한 빛이 쏟아졌다. 
변종 코카트리스 키키에게 받은 기술, [석화의 시선]이었다. 
‘돌이 될 정도로 쓸 필요도 없지.’ 
딱 몸이 십 초 정도만 굳을 정도로 마력을 담아 사용한다. 
최대한 많은 녀석들에게 기술을 걸어야 했기에 효율이 중요했다. 
일부러 더 빠르게 떨어지려고 용을 쓰던 놈들이다. 
마무리는 중력이 해줄 것이다. 
-후두둑 후두두둑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몬스터의 비가. 
-코아틀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코아틀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데스 크로우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데스 크로우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그리폰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그리폰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헬뱃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헬뱃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진수의 눈앞에도 비가 내렸다. 
안내 메시지의 비가. 
-피슉! 피슉! 
안전하게 착지한 진수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강철 거미줄]을 사용해 아직 숨통이 붙어있는 녀석들을 포박해야 했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는 두 녀석과의 전투가 남아있었으니까.
불닭 찜닭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진다. 
평소라면 별 신경도 쓰지 않았을 이 말이 절실하게 체감되었다. 
-쾅! 쾅! 쾅! 
-휘리릭! 휘익! 
강렬한 화염 폭발이 한 차례 휩쓸고 나면 그 뒤로 시커먼 그림자의 채찍이 후려친다. 
커다란 불꽃이 만들어내는 빛은 온갖 사물에 그림자를 만들었고, 섀도우 호크는 그림자를 마치 제 수족처럼 움직였다. 
적은 하늘에 떠있는데 공격은 위아래에서 동시에 쏟아지는 것이다. 
“헉, 헉!” 
진수는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성공시키지 못하고 피하기만 하고 있다. 
회피에 전력을 쏟아도 모자라 이미 군데군데 상처가 생겼다가 아물기를 반복한다. 
-후우욱- 
주변의 공기가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감을 느낀다. 
진수는 일시적으로 진공이 되는 것 같은 감각을 알아채고는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징조는 불새의 공격이 이루어질 거라는 신호였으니까. 
-화르륵! 
하늘에서 엄청난 열기가 쏟아진다. 
바닥에 널브러진 부하 몬스터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지 무자비한 공격이었다. 
이미 수많은 비행 몬스터들은 재가 되었고, 놈들의 사체는 울퉁불퉁 그림자를 만들어 섀도우 호크의 무기로 화했다. 
-휘릭! 퍽! 
“큭!” 
불새의 공격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진수에게는 [상급 화염 내성]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불길이 치솟는 걸 감지하자마자 움직인 건 이어질 그림자 공격 때문이었다.
물리력과 마력의 힘이 섞인 공격은 몸에 대미지를 누적시켰다. 
단순한 타격보다 회복에 훨씬 부담을 준다. 
‘어떻게 한 놈만 해치우면...!’ 
진수는 이를 악물었다. 
전투가 꽤 오래 지속되었지만 아직까지 타개책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 자식들은 저런 괴물들을 어떻게 길들인 거야?”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듯 말을 씹어뱉었다. 
비행몬스터사냥협회의 인간들을 많이 만나본 건 아니지만 비각성자와 함께 활동하는 것으로 봐서 그들 자체적으로 엄청난 무력을 지닌 건 아닐 듯했다. 
그렇다는 것은 저 필드 보스 몬스터들이 아직 장성하기 전에 뭔가 수를 썼다는 의미다. 
‘서커스단의 사자가 채찍을 무서워하게 만드는 것처럼, 조련을 위한 약점을 만들었을 거야. 그것도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아!’ 
진수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단서가 스쳤다. 
하늘 위에 떠있는 땅에서 발견했던 총알들. 
실수로 떨어트린 것도 있겠지만 몇 개는 발포를 했던 흔적이 보였다. 
‘몬스터를 처치할 수도 있을 만큼 위력적인 무기를 왜 썼을까? 기껏 조련한 놈들을 죽이기 위해서?’ 
아닐 것이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진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챙겨둔 총알을 꺼냈다. 
-탕! 
화염 폭발과 그림자 채찍이 휘둘러지는 소리를 찢으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마치 최면술사의 주문을 들은 것처럼 두 녀석의 몸이 경직됐다. 
쉼 없이 쏟아지던 공격도 멈췄다. 
비행 몬스터들이 있는 곳에서 총을 쏜 이유. 
놈들을 위협하고 주눅 들게 만들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발포 소리를 일종의 트라우마로 만들어 놈들을 조종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놈들 반응을 보면 내가 세운 가설이 얼추 들어맞은 것 같고.’ 
진수는 씨익 웃으며 불새를 향해 내달렸다. 
겨우 만들어낸 기회를 허무하게 놓칠 수는 없다. 
아직 뻣뻣하게 움직이는 녀석에게 힘껏 도약한다. 
-후우웅! 
바람생성기를 이용해 몸을 띄우니 불새의 발을 붙잡을 수 있었다. 
-치이익! 
온통 불로 이루어진 녀석. 
맨손으로 잡으니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났다. 
[상급 화염 내성]이 있음에도 고통이 전해진다. 
피부에 있는 수분이 끓어서 말라비틀어지고 살이 쩍쩍 갈라졌지만 개의치 않는다. 
“흐읏, 죽인다...!” 
이놈을 해치워야 살 수 있다는 집념으로 불새의 몸 위로 올라탔다. 
불꽃으로 된 깃털들은 진수의 손이 닿을 때마다 거세게 타올랐다. 
이윽고 녀석의 목덜미 위에 자리 잡은 그. 
[차원의 틈]에 넣어놨던 전기톱을 다시 꺼낸다. 
-위이이잉! 
톱의 엔진이 거친 굉음을 토해낸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불새는 정신을 차린 듯했다. 
“끼에엑!” 
위기를 눈치 챘을까? 
울부짖으며 거친 비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진수의 전기톱이 놈의 목을 천천히 파고들었다. 
녀석의 내부는 더욱 뜨거운지 진수의 능력치와 특성을 함께 적용받는 전기톱의 날들이 열기에 뭉개졌다 회복하기를 반복하며 움직였다. 
-화르륵! 
톱날에 [백년 도깨비불]이 피어오른다. 
붉은 불꽃에 하얀 불꽃이 엉겨 붙으며 거세게 타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새는 피 대신 마지막 화염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불새 [불닭] 차원 전이 성공. 
-[불닭]이 [스카이피아] 무리에 합류합니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스카이피아] 무리의 급성장 
-힘 +2, 민첩 +7, 체력 +4, 내구 +2, 마력 +11, 골드 +15 
불새를 처치하고 나니 임무 달성과 함께 막대한 양의 능력치가 올랐다. 
전투 중에 잃었던 체력 이상으로 회복이 되었다. 
-휘리릭- 팍!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진다. 
그 말인즉, 빛이 약해지면 그림자도 옅어진다는 소리다. 
불새의 밝은 빛이 사라지니 섀도우 호크의 그림자 공격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진수는 섀도우 호크를 붙잡아 놈의 부리에 [백년 도깨비불]을 붙인 거미줄 뭉치를 먹여주었다. 
그림자로 이루어진 몸에 빛이 들어가니 순식간에 약화되더니 이내 사라졌다. 
-섀도우 호크 [찜닭] 차원 전이 성공.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기술 [망자의 손길] 강화 
비행몬스터사냥협회에서 두 녀석에게 지어줬던 이름이 불닭과 찜닭이었나 보다. 
진수는 상태창을 열어 변화를 살펴봤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스카이피아 무리의 규모가 벌써 10마리나 됐다. 
[망자의 손길]은 [죽음의 그림자]라는 기술로 바뀌어 있었다. 
‘조민준씨 한 번 또 찾아가야겠네.’ 
진수는 거미줄에 뒤엉킨 채 바닥에 널브러진 비행 몬스터들을 보며 [죽음의 그림자]를 사용해봤다. 
놈들의 그림자를 움직여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망자의 손길] 때보다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거미줄로 잡아놓은 비행 몬스터들을 한 데 모으는 그. 
“아, 안 돼!” 
어디선가 절규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 
최제영이었다. 
RD에서 함께 온 헌터들이 그를 불러온 것이다. 
‘시간은 꽤 많이 걸렸지만....’ 
바닥에 비행 몬스터들의 사체가 한 가득이다. 
하나하나가 다 비행몬스터사냥협회의 비공식적 자산이기에 그의 속에선 피눈물이 흐르고 있을 듯했다. 
진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죠?” 
“다, 당신이 비행 몬스터를 다 잡아버리면 다른 헌터들은 어떡하라고!” 
기껏 생각한 변명이 꽤 조악했다. 
“비각성자들은 평화를 되찾고 헌터들은 다른 지역처럼 필드에 나오는 몬스터나 던전, 균열을 처리해야겠죠?” 
“그런....” 
최제영은 이내 말문이 막혔다. 
더 이야기를 나눠봤자 바뀌는 건 없을 테니까. 
“호, 혹시 다른 놈들은 없었어요?” 
주위를 살피던 그는 불새와 섀도우 호크의 사체는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른 놈들이요? 이 근처에 날아다니던 놈들은 다 잡은 건데....” 
“아아, 그렇군요.”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조금 돌았다. 
‘불닭과 찜닭 녀석들만 살아있으면 다시 재기할 수 있지.’ 
그는 피해가 막심했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저는 왜 부른 거죠?” 
“아, 혹시 레서 와이번 같은 녀석들 잡는 요령도 알려주실 수 있나 여쭤보려고 했어요. 근데 보시다시피, 이제 별 필요는 없겠네요.” 
진수는 싱긋 웃으며 그를 돌려보냈다. 
* * *
“이런 젠장. 아주 탈탈 털렸구만. 이 새새끼들은 대체 어딜 간 거야? 지네 둥지가 이렇게 박살이 났는데.”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어두운 밤. 
최제영은 공중에 떠있는 땅을 찾았다. 
비행 몬스터들이 몇 돌아와 졸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불새와 섀도우 호크는 보이지 않았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고기를 배식판에 담아 흔들어본다. 
하피 몇 마리와 블러드 레이븐이 머리를 주억거리며 걸어올 뿐, 그가 기다리는 녀석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새대가리들아! 누가 너희가 처먹으래?” 
-탕! 
하늘을 향해 엽총을 쏘자 다가오던 놈들이 화들짝 놀라 날아간다. 
총 소리가 울려 퍼지고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기척이 없자 최제영의 얼굴엔 점점 초조함이 떠올랐다.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신가?” 
“아씨! 뭐야?” 
혹시라도 날갯짓 소리가 들릴까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도는 최제영. 
그가 몸을 돌리는 순간 뒤에 있던 괴한이 잽싸게 엽총을 빼앗았다. 
“우선 이건 압수.” 
수중에서 엽총이 빠지자마자 마술처럼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안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와서 증거를 만들어주셨네.”-스윽 
괴한의 얼굴을 보려는 최제영의 눈 위로 그림자가 덮친다. 
시야가 가로막힌 상태로 온몸엔 얇은 실 같은 것이 칭칭 감겼다. 
그는 순식간에 제압당해 무릎이 꿇렸다. 
“휴, 여기는 이제 얼추 정리가 됐고, 박철준 수사관님한테 마무리를 부탁하면 되겠지?” 
최제영을 습격한 괴한은 진수였다. 
녹화가 되고 있던 핸드폰의 카메라 어플리케이션을 종료한다. 
비행 몬스터 사이에서 총알을 발견하긴 했지만 증거가 조금 빈약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일부러 [차원 전이]로 사체가 남지 않은 두 필드 보스가 살아있는 것처럼 속였다. 
예상대로 최제영이 공중에 떠있는 땅으로 찾아온 덕분에 헌터범죄전담기관이 관여할 확실한 증거가 생겼다. 
-특수임무 발생.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어?” 
이곳에 있던 비행 몬스터들은 종류별로 전이를 시켰다. 
필드 보스 몬스터도 두 마리나 처치했다. 
특수임무가 발생할 만한 요소가 없는 듯했는데 안내 메시지가 나타난 것이다. 
-특수임무 : 안내하는 물건을 공중 신전에 있는 전이자에게 전달하기 
-보상 : 골드 +50 
“와 골드를 50이나?” 
처음 받아본 종류의 임무였다. 
지정하는 몬스터를 보낸다거나 저쪽 차원의 전이자를 돕는 물건을 보낸 적은 있었지만 이쪽 차원의 물건을 지정한 것은 전례가 없었다. 
‘대체 뭐길래 그러지?’ 
진수는 임무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움직여봤다. 
부유하고 있는 땅 위를 거침없이 내딛는다. 
덤벼드는 자잘한 비행 몬스터는 가볍게 목을 꺾어 [차원의 틈]에 집어넣었다. 
“에잉? 이게 뭔데?” 
임무가 가리키는 물건은 꽤 커다란 돌덩이였다. 
위에 비행 몬스터들의 배설물이 잔뜩 묻어 있어서 정체를 알기가 힘들었다. 
진수는 [백년 도깨비불]을 붙여 배설물들을 한 차례 태우고 [죽음의 그림자]로 재를 털어냈다. 
‘이런 기술들로 새똥이나 닦는 헌터는 나밖에 없을 거야.’ 
대충 닦아내고 보니 돌덩이는 커다란 조각상의 일부분이었다. 
왼쪽 광대부터 정수리까지 떨어져 나온 듯한 모습. 
‘소재는... 던전산인가? 지구에는 없는 암석으로 만들어졌네.’ 
헤파이스토스의 석재 지식으로 봤을 때, 지구의 물질이 아니었다. 
진수는 상점에서 5골드를 써 비아이템 전송을 하려고 했다. 
-비아이템이 아닙니다. 
하지만 보내지지 않는 조각상 조각. 
비아이템이 아니라면 아이템이라는 소리였다. 
‘아, 어쩐지 이렇게 쉬운 임무에 50골드나 준다 싶었어.’ 
왠지 모르게 속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30골드를 써도 20골드의 이득. 
아이템 전송으로 물건을 섀도우 호크, 찜닭에게 보내주었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50 
특수임무가 달성되며 보상이 주어졌다. 
하지만 안내 메시지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찜닭]이 공중 신전의 수호자를 복원했습니다. 
-보상을 받습니다. 
‘이쪽 차원에서 물건을 보냈는데 복원이 됐다는 건.... 애초에 저쪽 차원의 물건이었단 소리 아니야?’
양다리
-[스카이피아] 무리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민첩 +7, 체력 +3, 내구 +3, 마력 +6, 골드 +10 
조각상을 보내주어 공중 신전의 수호자가 복원된 보상으로 스카이피아 무리가 급성장을 했다. 
진수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특히 마력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전투에서 [유체화]를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어.’ 
-스르륵 
[유체화]를 몇 번 사용했다 풀었다 반복해본다. 
1분을 채 유지하기 힘들었던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상당히 긴 시간동안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아이템은 던전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어?” 
진수는 조금 전의 상황을 되짚어봤다. 
물론 공중에 떠있는 땅덩어리 자체가 일반적인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던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던전은 던전 문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다른 세상,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개념. 
반면에 이 땅덩어리는 이쪽 세상에 다른 차원의 땅이 와있는 셈이었다.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이런 곳들이 더 있는 거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일이다. 
도리어 오직 이곳만이 특별하리라 생각하는 게 더 비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런 데를 더 찾아보는 것도 좋겠어. 나한테는 [차원 전이]의 임무가 있으니까 남들보다 뭐라도 더 얻겠지.’ 
이번만 해도 남들에게는 그냥 돌덩이일 뿐인 물건으로 20이 넘는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다. 
전투 헌터들이 능력치 하나 올리겠다고 엄청난 비용을 쏟아붓는 것에 비하면 아주 날로 먹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 비행몬스터협회한테 뜯어낼 건 다 얻은 것 같으니까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다.’ 
진수는 묶인 채 바닥에 처박혀있는 최제영을 손에 들고 지상을 향해 뛰어내렸다. 
* * *
천안의 헌터범죄전담기관 건물 앞은 유례없이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비행몬스터사냥협회의 사람들이 포박당한 채로 이송당하는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다. 
“저놈들이 비행 몬스터를 키우고 있었다면서?” 
“그러면서 보호 명목으로 돈을 받아 처먹은 거야?” 
“어쩐지 외지 헌터들이 오면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라....” 
천안의 비각성자 및 비행몬스터사냥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각성자들은 그들을 비난했다. 
서울에서 온 헌터범죄전담기관의 수사로 드러난 진실은 뻔하지만 추악했다. 
천안 지역에 유독 많은 비행 몬스터를 잡아주는 대신에 지역에서 돈을 받고 있던 비행몬스터사냥협회. 
일부러 인간을 먹이로 주지는 않았지만 주기적으로 먹이를 적게 주어 사람들을 습격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천안 지역의 사람들의 위협하게 만들고 나서 성공적으로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외지에서 비행 몬스터를 사냥하러 헌터들이 오면 협회에 가입시키거나 그들의 능력을 파악한 뒤 상대하기 힘든 몬스터를 보내 사냥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자식들은 RD보다 더한 놈들이네. 요괴들은 돈이라도 쥐어주면서 자기들 욕심을 채우는데... 이놈들은 돈도 뺏고 사람들도 괴롭혔구나.’ 
이런 행동을 하고도 단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헌터범죄전담기관 천안 담당 수사관 중 몇과 결탁을 한 덕분이었다. 
뇌물을 받아먹고 묵인해준 수사관들은 비행몬스터사냥협회의 사람들과 함께 쇠고랑을 차게 됐다. 
불법 단체와 총기류를 눈감아준 대가였다. 
“이번에 서울에서 온 헌터가 저놈들 조진 거라면서?” 
“그렇다던데. B급 헌터라더라고.” 
이번 일로 진수에 대한 이야기도 돌기 시작했다. 
천안의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헌터넷을 통해 김진수라는 헌터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졌다. 
아주 미미한 정도긴 했지만. 
‘흐흐, 내 이름을 검색하니까 이제 인터넷에 기사 같은 것도 좀 나오네.’ 
진수는 자기 이름을 검색 포탈에서 찾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검색 결과는 대부분 좋은 내용들이었다. 
[천안의 불법 단체 적발, 그 이면엔 B급 헌터가 있었다.] 
[김진수 B급 맞음? 기사 내용만 보면 A급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내가 봤는데 이천에서 바위곰이랑 싸워서 김진수가 이김] 
심지어 이천시에서 A급 헌터 이종학, 일명 바위곰과 악수를 했던 일까지 와전되어 퍼지고 있었다. 
진수는 그 글에 좋아요를 한 번 눌러주었다. 
‘악수에서 이긴 것도 이긴 거지. 흐흐.’ 
그가 핸드폰으로 인터넷 글들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김진수 헌터. 고생 많았습니다. 서울에서 보고를 받을 때는 단순한 모임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네요.” 
박철준 수사관이었다. 
진수의 신고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그는 천안의 헌터범죄전담기관을 뒤집어 놨다. 
몇몇 정황들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비행몬스터사냥협회와 붙어먹은 수사관들을 추려낸 것이다. 
분명 받았던 명함에는 수사관이라고만 적혀있었는데 천안 헌터범죄전담기관의 그 누구도 박철준을 거스르지 못했다. 
“할 일을 한 건데요. 하하.” 
진수는 한 차례 겸양을 떨고는 반지를 [차원의 틈]에 집어넣었다. 
“수사관님. 지금 RD에서 여러 도시 사이에 유통망을 만들고 있는 거 알고 계시죠?” 
“김진수 헌터가 지난번 블루 오아시스 건을 제보해준 이후로 계속 주시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빠르게 확장을 하고 있더군요.” 
“맞아요. 제가 천안에 머물고 있는 사이에 경기도, 강원도, 충청북도까지 얼추 운송로를 구축할 거 같더라고요. 이놈들이 유통망을 갖춘 이후에는 아마 중국에서 블루 오아시스를 들여와서 전국에 유통하려고 할 것 같아요.” 
그의 말에 박철준의 얼굴이 꽤나 심각해졌다. 
“그렇게 되면 순식간에 블루 오아시스가 퍼질 수 있겠군요. 그런데 이놈들이 지금은 먼지 하나 나오지 않게끔 잘 위장을 하고 있어서요. 확인해보니 뉴트럴바이오의 자본을 RD가 흡수했더군요. RD의 전신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적룡파로 보입니다.” 
‘그래서 주해응이 적룡, 적룡 그랬구나.’ 
진수는 지난번 주해응 대표와 이야기를 나눌 때 의아했던 부분이 조금 해소됐다. 
“적룡파는 뉴트럴바이오랑 무슨 관계인 거죠?” 
“아마도 김진수 헌터가 뉴트럴바이오와 대립을 하면서 그들의 세력이 줄어드니 무력적으로 도움을 받으려고 불렀던 모양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멸망을 앞당기는 일이 될 줄도 모르고요.” 
‘아... RD놈들은 더더욱 가만히 두면 안 되겠구나. 이놈들이 한국에 들어온 게 나랑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진수는 기필코 RD의 계획을 망치고 놈들을 없애버려야겠다 다짐했다. 
“제가 지금 RD 내부에서 운송로 작업에 참여하면서 간부급들의 활동을 살피고 있거든요.” 
“아... 김진수 헌터는 확실히 다른 헌터들과는 좀 다르군요.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한 이들이 대부분인데....” 
박철준이 감탄을 하며 본다. 
사실 뉴트럴바이오 때도, RD의 경우도 진수에게는 사리사욕을 위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론 공익적인 일이 되었다. 
“하하.... 어쨌든 그래서 이놈들이 블루 오아시스를 본격적으로 들여오려고 하는 시점에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해줄 수 있다면 정말 고맙겠네요. 그 전에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도울 일은 뭐가 있겠습니까?” 
사실상 헌터범죄전담기관이 해야 할 일들이었지만 그들은 대규모 균열 사태 이후로 범죄를 일으키는 헌터들에 대응하는 것도 벅찬 상황이었다. 
RD 건처럼 복잡한 사건을 진수가 어느 정도 파악하며 정보를 공유해주는 게 몹시 고마웠다. 
그 칼 같은 박철준 수사관도 진수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형량을 가볍게 해주고 싶을 정도로. 
“그....” 
박철준 수사관의 말에 진수가 눈치를 보며 운을 뗐다. 
명백히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편하게 말해보시죠. 불법적인 일만 아니면 협조해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RD 내부에서 보니까 이 운송로 사업이라는 게 단순 사업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 이득이 되는 일인 것 같더라고요.” 
“그건 그렇죠. 도시끼리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면 생길 수 있는 장점은 한둘이 아닐 테니....” 
박철준 수사관이 긍정적으로 답하자 진수의 눈이 빛났다. 
“그래서 RD의 운송로 사업을 빼앗을 계획을 좀 세우고 있거든요.” 
진수는 그에게 자신의 계획들을 공유했다. 
RD의 내부에서 정보를 빼돌리는 것. 
유통망을 갖춘 뒤 블루 오아시스를 들여오려고 할 때 놈들을 처단하려는 생각. 
RD가 박살이 나면 심선우와 함께 만든 단체에서 그들이 만든 운송로를 흡수하려는 것까지. 
박철준은 모든 이야기를 들은 뒤 잠시 고민에 빠졌다. 
“흠....” 
뭔가 묘하게 나쁜 짓 같으면서도 또 선한 일인 것 같은 계획이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일은 없게 하세요.” 
툭 내뱉는 박철준.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답은 아니지만 방해하지도 않겠다는 뜻이었다. 
“당연하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원하는 대답을 얻었기에 진수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꽃폈다. 
* * *
며칠간 천안에서 비행몬스터사냥협회 문제도 해결하고 운송로 구축 작업도 처리한 진수. 
모든 업무를 마치고 RD로 돌아왔다.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그가 떠나있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 사이에 RD 소속의 인간들과 요괴들은 굉장히 싸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냉전 상태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진수씨, 왔네요.” 
진수가 황계문에게 이번 천안행의 결과를 보고한 뒤 나오는데 주선생이 말을 걸었다. 
“아, 주선생님.” 
그녀의 눈이 진수의 손을 훑는다. 
아무것도 없는 손가락에 내심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잠시....” 
주선생이 그를 데리고 구석으로 향한다. 
“지난번에 진수씨가 언질을 준 덕분에 사무직 쪽에서 블루 오아시스에 독을 섞어 들여온 걸 알 수 있었어요. 평천 오라버님이 아주 대노하셨죠.” 
“아... 그래서 지금 분위기가....” 
“맞아요. 그 일로 여러 사업에 대해서 사무직 간부들이 별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는 상황이에요. 평천 오라버님께서 진수씨한테 이걸 갖다 주라고 하시더군요. 선물이라고요.” 
그녀는 거무튀튀한 쇳덩이를 하나 건넸다.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받아든 진수는 깜짝 놀랐다. 
주먹만 한 금속덩이가 그의 전기톱보다도 무거웠으니까. 
“호호, 우리 고향에서 나오는 쇠예요. 아주 단단하고 마력을 증폭시키는 특징이 있으니까 망치로 만들면 지금 쓰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물건이 나올 거예요.” 
주선생은 눈이 화등잔이 된 진수를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럼 또 연락주세요.” 
진한 미소를 짓고 떠나는 그녀. 
진수는 쇳덩이를 [차원의 틈]에 집어넣었다. 
-띠링 
[주해응 : 김진수 팀장. 천안에서 복귀했다는 이야기 들었네. 제일 위층에 있는 내 집무실에서 잠시 보지.] 
핸드폰에 주해응 대표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띄어쓰기에 마침표까지 칼같이 찍어서 보내는 게, 오히려 한국인 같지 않은 문자 메시지였다. 
진수는 알겠다는 답장을 보낸 뒤 [차원의 틈]에서 반지를 꺼내 착용했다. 
“왔군. 자리에 앉게.” 
RD 본사 건물의 최상층에 있는 주해응 대표의 집무실. 
주해응은 심각한 표정으로 진수를 맞이했다.
결백
“김진수 팀장. 천안으로 가기 전에 요청했던 업무 말이네....” 
굳은 표정으로 화두를 던지는 주해응 대표. 
그는 진수가 블루 오아시스를 운반한 일을 언급했다. 
“네.”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지만 그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내가 손 댄 걸 눈치 챘나?’ 
[유체화]를 사용해 상자에 걸린 봉인 주술도 건드리지 않았고, [차원의 틈]으로 블루 오아시스를 옮겼기에 어디 흔적을 남겼을 리도 없었다. 
눈치를 살피는 진수. 
“일처리를 아주 제대로 했더군. 깐깐한 허형이 아무런 꼬투리도 잡지 않았어.” 
그의 걱정과는 달리 주해응의 입에선 칭찬이 나왔다. 
여전히 표정은 심각한 게, 그를 걱정하게 만드는 요인은 진수와 관계있는 것이 아닌 듯했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고마움은 말로만 해선 안 되겠지. 이거 받게.” 
비타민 음료 상자 정도 크기의 쇼핑백이었다. 
붉은 색에 금빛의 용 문양이 찍힌 화려한 쇼핑백. 
내용물은 더욱 빛이 났다. 
현금 다발이 채워져 있었으니까. 
“많지는 않네. 적당한 성의 표시라고 봐주게.” 
‘와, 원하는 물건을 못 받았는데도 이 만큼 돈을 준다고? 배포가 남다르긴 하구나.’ 
진수는 속으로 감탄했다. 
얼핏 살펴도 수천 만 원은 되어 보이는 돈뭉치다. 
잃어버린 블루 오아시스의 가격도 있을 것이고, 요괴들과 사이가 틀어진 문제도 생겼는데 일단 일을 완수했다는 이유로 이런 수준의 보상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진심을 담은 감사 인사가 절로 나왔다. 
“자네가 천안에 다녀온 사이 적룡의 공기가 좀 달라졌을 거야.” 
쇼핑백을 끌어당기는 진수를 보며 주해응이 말을 이었다. 
“내부적으로 일이 좀 있어서... 현장직의 입김이 좀 세졌네.” 
일이라는 건 아무래도 블루 오아시스에 섞인 독을 발각당한 것을 말하는 듯했다. 
주해응의 얼굴이 펴질 줄 모르는 이유이기도 하고. 
“적룡을 운영하는 대표인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좀 의아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의구심은 잠시 접어두고 내 말을 들어보게.” 
그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입을 열었다. 
평천을 필두로 인간 간부들에게 불만을 표출한 요괴들. 
그들은 한동안 운송로 구축 작업에서 빠지고 한국의 헌터들과 던전 활동을 하겠다고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RD의 사업 자금을 다시 채우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헌터들의 생명력을 흡수하고 제멋대로 움직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운송로 작업도 늦어지고 한국 헌터들 위주로 움직이기에 사상자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해서, 현장직들이 우리의 소행인지는 알아차리지 못하게 그들의 던전 활동을 방해했으면 하네. 단체의 운영 차원에서 한쪽의 힘이 너무 강해지는 것도 곤란하거든. 외부에서 조금 깨지고 나면 그들의 입지도 다시 줄어들겠지.” 
“음, 사무직분들이 방해하려고 한다는 걸 들키지 않는 선에서 어떤 방법이든 사용하면 되는 건가요?” 
진수의 물음에 마음에 든다는 듯 웃음을 보이는 주해응. 
“바로 알아듣는군! 뭐... 그들이 조금 다치는 일이 생기더라도 어쩔 수 없지. 회사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대가니까.” 
물리적인 충돌도 염두에 두라는 이야기였다. 
“예, 가능하면 너무 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신들 차릴 수 있게 해보겠습니다.” 
“아니.” 
주해응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심하지 않을 필요 없네. 뜨거운 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 
“아.... 예,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진수도 진지하게 답했다. 
‘뜨거운 맛 좋지. 아주 속이 불탈 정도로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겠네.’ 
“이건 현장직의 던전 활동 현황을 보여주는 자료일세.” 
주해응이 작은 기기 하나를 건넸다. 
화면에는 던전 위치, 던전 난이도, 참여하는 인원 등이 표로 정리되어 나타났다. 
내용이 변하는 것으로 보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가 되는 듯 보였다. 
* * *
-[공방]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체력 +2, 내구 +1 
‘어이구, 힘내라고 이런 걸 다 보내주네.’ 
-퍽! 
눈과 입만 뚫린 두건을 머리에 뒤집어쓴 진수는 묘하게 사마귀를 닮은 사람을 걷어찼다.
“아, 꺼지라고. 여긴 내가 먼저 침 발라뒀으니까.” 
던전에 무작정 난입해 행패를 부린다. 
반발을 해보지만 진수의 압도적인 힘에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RD의 하급 요괴. 
그는 며칠간 놈들을 방해하고 다녔다. 
적당히 두들겨 패기도 하고 같이 공략조에 들어가 내부에서 이간질을 해 파토가 나게 하기도 했다. 
‘주해응 그 양반도 은근히 뒷공작을 잘 한다니까.’ 
몇 차례 하급 요괴들이 던전 활동에 실패를 하자 주선생을 비롯한 요괴 간부들이 나서려 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 것이다. 
그 때, 주해응 대표와 인간 간부 측에서 하급 요괴들의 무능함을 꼬집었다. 
요괴 간부들이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사무직의 지시를 받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압박했다. 
‘덕분에 이놈들 엉덩이는 좀 걷어차줄 수 있었지만... 전이자를 못 늘렸지.’ 
앞서 전이시킨 녀석들이 꾸준히 성장을 하며 능력치를 제법 올려주긴 했다. 
대략 일주일 정도 되는 기간 동안 힘 11, 민첩 9, 체력 8, 내구 10, 마력 8이 올랐다. 
‘슬슬 다른 방식을 좀 찾아봐야겠어. 주해응이 뜨거운 맛을 좀 보여주라고 했으니까. 넉넉잡아 서너 마리는 해치워줘야지.’ 
진수는 사마귀를 닮은 녀석을 쫓아낸 뒤 동묘의 공방으로 향했다. 
“이거 여기서는 가공 못 해요.” 
김건은 진수가 가져온 쇳덩이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밀도가 얼마나 높은지 어마어마한 무게를 지닌 금속. 
분명 어떤 물건이든지 만든다면 대단한 무언가가 나올 것 같았지만 김건의 대답은 불가였다. 
“이런 공방 수준에서 뭘 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우. 저어기 포항에 대형 용광로 같은 게 있어야 돼.” 
그의 말에 진수는 새로운 망치를 만드는 걸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 물건은 만들 수 있을까요?” 
작업대 위에 있는 노트에 자신이 구상한 물건을 그리는 진수. 
그는 그게 어떤 기능을 하고 어디에 쓸 것인지 설명을 했다. 
“크기가 조금 걸리긴 하는데... 그때 그 창을 껴서 쓰려는 거요?” 
“네, 맞아요.” 
“음... 알겠수. 한 번 해보지 뭐.” 
김건은 진수가 그린 그림 옆에 자신이 재구상한 설계도를 뚝딱 그렸다. 
“참, 그리고 혹시라도 그 금속을 가공하려고 포항에 가거든 아이언피스트라고 있수. 거기로 가서 내 이름 대면 섭섭지 않게 도와줄 거요.” 
“아이언피스트요? 네, 잘 기억해놨다가 혹시 갈 일 있으면 거기로 갈게요.” 
* * *
“진수씨. 무슨 일이죠?” 
며칠 뒤, 진수는 RD 본사에서 주선생을 찾았다. 
평소 온화한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최근 언짢은 일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주해응 대표님께서 요청하신 일이 있어요.” 
“대표님이요?” 
그의 말은 주선생의 주의를 끌기 충분했다. 
최근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 
그 뒤에 주해응이 있으리란 의심을 품고 있었으니까. 
“예. 대표님께서 현장직 분들께 주도권이 돌아간 것을 탐탁지 않아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흥! 그렇겠죠. 그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우리 소속 동생들에게 훼방을 놓으라고요?” 
표독스러운 표정을 짓는 주선생. 
요즘 하급 요괴들이 던전 활동을 나갔다가 공격을 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데 그 원흉을 찾으려고 하면 인간 간부들이 매번 방해를 했기 때문에 몹시 불쾌한 상태였다. 
“맞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지시를 들은 게 저뿐만이 아닌 거 같아서요.” 
“진수씨한테만 시킨 게 아니다?” 
그녀의 표정에서 적의가 줄어들고 궁금함이 늘어났다. 
“예. 요즘에 현장직 분들 분위기가 안 좋더라고요. 물론 사무직 분들이랑 사이가 안 좋다는 건 느끼고 있었는데요. 뭔가 현장직 분들이 직접적인 공격을 당한 것 같은 분위기여서요.” 
“평소였다면 진수씨의 말을 그대로 믿었겠지만, 요즘 상황에서는... 사실 쉽게 믿어지지 않네요. 지금 하는 말은, 진수씨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우리 동생들이 누군가한테 당한 것 같다는 이야기잖아요?” 
오히려 더욱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노려보는 주선생. 
“진수씨가 우리의 호의를 바탕으로 양쪽에 접촉하고 있다거나, 대표님 편에 서서 우리가 헷갈리도록 만드는 거라는 의심을 해봄직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여기실 수도 있겠네요.”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해서 얻을 이득이 없잖아요? 그렇게까지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주해응 대표님께 충성을 바칠 이유도 없고요.” 
주선생도 속으로 그의 말에 동의했다. 
인간들의 행동을 보면 결국 자신의 이익과 직결된다. 
그녀는 진수를 제법 영리한 인물로 보고 있었기에 지금 하고 있는 의심이 억측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두고 봐야....” 
-띠리리링 띠리리링 
새침한 표정으로 답하던 그녀의 전화벨이 울린다. 
“잠시만요.” 
중요한 전화인지 이야기를 하던 주선생이 즉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디에 있느냐! 인간놈들이 드디어 일을 벌였다! 
수화기 너머로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 커다란 목소리 덕분에 누구의 전화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라버님. 여기 김진수씨도 있으니 목소리를 조금....” 
-그 자가 거기 있다고? 
벽력과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 평천이 놀란 듯 말했다. 
-그놈이 일을 낸 게 아니었구나! 방금 전에 돌원숭이 중 한 녀석이 당했다! 
“예? 당했다는 게....” 
-죽었다는 거지...! 
“정말요?” 
-요즘 수작질을 부리는 놈들이 있는 거 같아서 던전에 다니는 녀석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한 놈이 죽는 걸 확인했다! 
평천의 말을 들은 주선생이 진수를 보았다. 
이에 진수는 그것 보라는 표정을 지으며 화답했다. 
그녀의 눈에 미안한 기색이 맴돈다. 
“알겠어요. 일단 찾아뵐게요.” 
통화를 마친 주선생. 
그녀는 진수를 복잡한 눈빛으로 보았다. 
“통화 내용은... 들었죠?” 
스피커폰이 아님에도 평천의 목소리가 워낙 커 못 들었을 리가 없다. 
진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수씨 말대로, 대표님이 또 누군가한테 사주를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이야....” 
그녀는 꽤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던전 활동을 하면서 하급 요괴들이 죽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 엄청나게 강한 녀석들이 아닐뿐더러 수도 많다. 
중국에서 활동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녀석들이 목숨을 잃었기에 하급 요괴들 하나하나에 대해서 보는 관점 자체가 달랐다. 
‘그렇지만,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자에게 당하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 
신뢰 관계가 무너지는 일이었다. 
단순히 하급 요괴가 죽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진수씨, 아까 그 이야기... 괜찮다면 평천 오라버님께도 다시 해줄 수 있어요?” 
“그럼요. 전 결백하니까요.”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진수. 
그의 태도와 [신뢰] 특성의 작용으로 주선생은 의심을 거두었다. 
능청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안내 메시지를 없애며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진수. 
-돌원숭이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돌원숭이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물론 정말로 그가 결백한 건 아니었다.
조직
“네 말대로라면, 지금 우리 아우가 죽은 게 형님의 뜻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냐...!” 
평천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평온한 것 같은 음성이었지만 오히려 평소와 전혀 다른 태도 때문인지 더 큰 분노가 느껴지는 듯했다. 
“일단 제가 주해응 대표님께 현장직 분들의 활동을 방해하라는 지시를 받은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정황상 그 시기부터 던전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공격을 받은 것 같고요.” 
“다른 놈들이 멋대로 움직인 거라고 생각했는데... 형님이 원한 일이라 이거지. 크흐흐.... 우습군. 우스워.”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 평천. 
다만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알겠다. 놈들을 주시해야겠군.” 
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분위기상 더 나눌 이야기가 없는 듯해 일어나는 진수. 
“아, 평천님!” 
자리를 뜨려던 그는 무언가 생각난 듯 평천을 불렀다. 
그 말투가 조금 어색했는데, 마치 지금 마주친 사람을 부르는 것 같았다. 
“이번에 천안 운송로 작업을 다녀왔는데, 비행 몬스터 부산물을 꽤 얻었거든요. 혹시 필요하신 거 있으신가요?” 
“음... 말은 고맙지만 필요 없다.” 
평천은 조금 뜬금없는 진수의 말에 조금 의아했지만 적당히 대답을 했다. 
나름 호의를 내비치는 말이었으니까.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또 뵙죠.” 
진수는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뗐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주해응의 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오케이, 주해응한테도 내 알리바이가 전달 됐고.... 당분간은 최대한 이곳저곳 얼굴 도장 찍으면서 의심을 피하는 작업을 해야겠다.’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자리를 뜬다. 
* * *
-드워프 [헤파이스토스]가 마석 총알을 통해 발명을 하며 성장합니다. 
-[헤파이스토스]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가 조잡한 엽총에 관심을 보입니다. 
-돌원숭이 [오공]이 [새초미 무리] 무리에 합류합니다. 
-블러드 레이븐 [혈새]가... 
-코아틀 [우로보로스]가... 
-데스 크로우 [브랜든]이... 
-그리폰 [그리핀도르]가... 
-헬뱃 [주뱃]이... 
-철당랑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철당랑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평천과 마주친 이후로 며칠 동안 진수는 RD 본사 내부에서 자주 얼굴을 내비쳤다. 
주해응이 요구한 요괴들을 방해하는 업무도 충실히 이행을 했고, 새로 차원 전이가 된 전이자들은 [차원의 틈]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챙기며 보상을 보내왔다. 
덕분에 그의 능력치도 힘 8, 민첩 6, 체력 10, 내구 9, 마력 4가 올라갔다. 
진수는 마지막으로 나타난 안내 메시지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스라크....” 
“뭐라고 했나?” 
“아, 아닙니다.” 
난데없는 소리에 진수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주해응이 되물었다. 
-띠링 
그 순간, 주해응의 핸드폰에 무언가 메시지가 들어온다. 
손을 들어 진수에게 양해를 구한 뒤 내용을 확인하는 그. 
표정이 꽤나 심각해 보였다. 
핸드폰을 살피다 힐끔 진수를 본다. 
‘스라크 아니, 철당랑이 죽었단 보고를 받았나보네.’ 
진수는 눈치껏 방금 주해응이 받은 메시지를 유추했다. 
하지만 표정은 태연한 얼굴을 유지한다. 
“김 팀장. 지난 1~2주간 요청한 업무를 잘 해치워주었네. 그런데, 현장직 쪽에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고집을 피우는군.” 
“아... 예.” 
경청하고 있다는 듯 대답하는 진수. 
“현장직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이 정도로 해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지. 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주해응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수가 요괴들을 방해하면 그들을 타일러서 다시 말을 듣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웬 놈이 하급 요괴들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그 원흉에 대한 분노가 인간 간부들에게 향하게 되었다. 
이대로 던전 활동까지 방해한다면 갈등의 골이 깊어지다 못해 아예 갈라서게 될 수도 있다. 
“네, 알겠습니다.” 
“김 팀장, 조만간 다시 운송로 작업에 투입될 걸세. 혹시 원하는 지역은 있나? 그동안 운송로 구축 작업에 상당히 진척이 있었어. 이제....” 
잠시 뜸을 들이며 자료를 훑어보는 주해응. 
“전라북도와 경상북도 쪽에서 고르면 원하는 곳으로 가게 배치하지.” 
진수가 하급 요괴들을 괴롭히는 대략 2주 정도의 기간 동안 운송로 구축 작업이 굉장히 많이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이제 심선우씨랑 본격적으로 단체 만들 준비를 해야겠네.’ 
벌써 전라북도, 경상북도를 향해 간다는 말에 그의 마음이 급해졌다. 
“경상북도면... 포항 쪽도 이번 작업에 포함됩니까?” 
“포항도 해당이 되네. 그쪽을 원하는가?”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흔쾌히 수용하는 주해응의 답을 듣고 밖으로 나온 진수. 
그는 바로 심선우와 유재찬에게 연락을 했다. 
* * *
“야, 내가 또 그동안 계약서를 준비해왔다는 거 아니냐. 그때 얘기 나눈 내용 그대로 만들어봤는데 한 번 확인해봐.” 
오랜만에 만난 유재찬은 서류뭉치를 들고 왔다. 
지난번 심선우까지 셋이서 만나서 정한 것들을 바탕으로 계약서를 만들어 온 것이다. 
“와, 좋네. 계약서까지 준비할 시간이 없었는데 이런 거까지 다 챙겨줘서 고마워.” 
“에이~ 솔직히 사무 처리를 나 아니면 누가 하겠냐? 우리 김진수 대표님이 할 수도 없고, 우뢰매한테 넘길 수도 없잖아. 눈치껏 내가 해야지.” 
너스레를 떠는 유재찬. 
의외로 이쪽에도 지식이 있었는지 꽤 그럴듯한 계약서를 가지고 왔다. 
“그래, 든든하네. 이제 진짜로 일을 벌이기 시작해야 돼. 조금 있으면... 아, 심선우씨 왔다.” 
심선우도 합류하면서 그들은 본격적으로 단체를 설립하고 운영할 방법을 논의했다. 
“전투 헌터는 제가 같이 활동했던 분들한테 부탁하면 상주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종종 도와주실 수 있을 거예요.” 
심선우는 등급도 높고 워낙 선행을 많이 하는 인물이었기에 전투 헌터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었다. 
“그런데, 운반 사업에 핵심이 운반을 맡을 인원인데 그쪽이 문제네요. 물건을 옮길 인원들, 운송로를 정비할 사람들 등등 절대적으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필요할 테니까요.” 
심각한 표정을 짓는 심선우. 
콧대 높은 전투 헌터들한테 짐을 나르는 것까지 맡기기는 조금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운반이라... 아! 그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의 말을 받은 건 진수였다. 
머릿속에 순간 묘수가 떠오른 것이다.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낸 그. 
-띠링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몇 차례 메시지를 주고받고는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운반 인력도 해결 완료. 흐흐.” 
“뭐야? 어디 조직이라도 숨겨놨어? 무슨 문자 몇 통으로 인력을 해결해?” 
그 모습에 유재찬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진수가 연락을 한 것은 바로 일당 헌터 시절 같이 일했던 현장 반장이었다. 
RD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그가 앓는 소리를 했던 게 생각난 것이다. 
최근에 다시 요괴들이 던전을 헤집고 다녔다. 
그렇다면 저절로 원래의 일당 헌터들의 일감이 없어졌을 테니 돈 될 일이라면 무조건 수용하리라 생각했다. 
[현장 반장님 : 아이고 우리진수가 날 살려주네! 아니 여기 일하는친구들 다 살려주는거지! 뭐든 시켜주면 열심히 할게]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연신 고맙다는 메시지에 핸드폰이 계속 울렸다. 
“이야, 이제 진짜 거의 준비가 다 됐네!” 
유재찬이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말했다. 
어떻게 주먹구구식이긴 하지만 운영의 틀이 갖춰지고 있었다. 
막상 단체가 만들어지면 또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삐걱대겠지만 그때 가서 다시 해결을 해나가면 된다. 
‘운영 관련해서는 헌터 협회의 두 분한테도 좀 자문을 구해야겠다.’ 
진수는 헌터 협회의 간부인 양민우와 정윤아를 떠올렸다. 
그가 전투 헌터로 활동을 한 이후로 이어진 인연들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자잘한 업무를 맡아준 유재찬부터, 인지도를 빌려주는 심선우, 기술적으로 도움을 준 조민준과 김건, 인력 부족을 해결해준 현장 반장까지. 
또, 헌터범죄전담기관의 박철준의 묵인이 없었다면 RD와의 연결 관계를 의심받으며 사업 자체를 시작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이 바로 진수였다. 
-리자드맨 [도룡일]과 그레이트 텐타클 [아프로디테]와 오크 샤먼 [스랄]이 무리를 이룹니다. 
-[도룡일] [아프로디테] [스랄]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그리고 [차원 전이]의 덕도 정말 많이 봤지.’ 
진수는 스랄이 있는 무리의 이름을 [그린스킨]이라고 지어줬다. 
공교롭게도 세 녀석 모두 초록색 피부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이제 얼추 정리가 된 것 같네. 우선 제가 위임장 받아서 사업자 등록을 할 테니까 그 이후에 우뢰... 아니 심선우 헌터한테 연락을 드릴게요. 그러면 전투 헌터분들한테 알려주시면 될 것 같아요.” 
사무 처리를 하기로 한 유재찬이 말을 꺼냈다. 
“아, 그리고 심선우씨한테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요.” 
진수가 그의 말을 이어서 심선우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의 부탁이라는 것은, 자신이 포항으로 떠난 사이에 RD의 요괴들을 한두 마리 정도 처치해달라는 것이었다. 
진수가 서울을 떠나자마자 놈들을 죽이던 게 멈추면 아무래도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제가 어느 던전에 가면 되는지는 메시지로 알려드릴게요. 아마 심선우씨가 보면 바로 누굴 해치워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천둥새] 특성으로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심선우. 
인간으로 둔갑한 요괴는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진수는 자리를 파하고 동묘로 향했다. 
‘석판 대신 쓸 금속판 양산도 슬슬 시작해야지.’ 
몬스터의 접근을 막는 금속판은 RD의 운송로를 훔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번에 가는 도시가 포항이기도 했으니 겸사겸사 김건을 보러 온 것이다.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가 조잡한 엽총에 관심을 보입니다. 
-[토니]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1 
-특수임무 발생 
동묘앞역에 도착한 진수에게 메시지가 나타났다. 
‘어...? 특수임무?’ 
-임무 :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에게 마력공학이 적용된 총기 전달 
-보상 : 총기를 통해 얻은 기술이 적용된 물건 
‘야이, 여기 한국이야. 총을 어디서 구하라고.’ 
비행몬스터사냥협회의 최제영에게 뺏은 엽총 맛을 본 토니가 더 발전된 형태의 총을 갖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비행몬스터사냥협회에서 가지고 있던 총기는 모두 헌터범죄전담기관이 수거해갔고,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총을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고 보니까 이놈, 던전에서도 마력포를 썼었지?’ 
진수는 드워프 엔지니어와 싸웠던 때를 떠올렸다. 
강화 슈트 같은 걸 입고 있었으니 새로운 개념의 무기에 눈이 돌아갈 만도 하다. 
‘특수임무는 어디 외국 나갈 때까지 쭉 묶어두게 생겼네.’ 
아쉬운 마음으로 메시지를 닫고 공방에 들어선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어, 왔수? 거 지난번에 가져간 타카는 쓸 만한가?” 
김건이 진수를 맞이하며 묻는다. 
저번에 부탁했던 물건이 바로 타카, 네일건이었으니까. 
자신이 만든 장비를 잘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예, 아주 좋더라고요. 두 번 정도 썼는데 필요한 수준으로 팍팍 잘 나가네요.” 
진수가 주선생과 주해응 앞에 있으면서도 하급 요괴들을 처치할 수 있었던 비법이었다. 
“타카가 아니라 총이라고 해도 되겠어요. 하하. 사장님 총은 안 만드시죠?” 
진수는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한국에서 허용되지 않은 총을 만들면 헌터범죄전담기관에 당장 구속된다. 
‘당연히 서울 한복판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이 총을 만들 리가....’ 
김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포항
-나찰조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나찰조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싸늘한 표정을 짓는 김건을 마주하고 있는 진수. 
그런 진수의 눈앞에 [차원 전이]의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덩치가 조금 커졌다. 
‘아, 진짜 총 만들던 솜씨로 만든 타카라서 이렇게 센 거였나?’ 
진수의 머릿속으로 공유되는 분신의 기억. 
[유체화]로 던전에 침투해서 하급 요괴의 뒤를 쫓는다. 
놈이 다른 헌터를 노리는 순간, [차원의 틈]에서 저주받은 신의 창과 네일건을 꺼낸다. 
김건에게 특별히 주문해 분신이 쓰기 좋은 크기로 만든 물건. 
못 대신 창을 쏜다는 점에서 작살총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특급 공구 숙련]의 적용을 받으니 네일건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특급 공구 숙련] 덕분에 능숙하게 창을 발사하는 작은 진수. 
앞서 스라크나 오공도 본체에서 따로 나온 분신을 이용해 처치를 했었다. 
-팍! 
요괴의 몸을 관통하고도 힘이 남아 바닥에 깊게 박히는 저주받은 신의 창. 
[유체화]와 [투명화]를 사용해 창에 다가가 회수까지 한 뒤 [분열]을 해제하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완전 범죄를 이룬 것이다. 
마력 능력치가 100을 넘었기에 분신으로도 이렇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번에 타카를 의뢰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진수가 잠시 분신의 기억을 살피는 동안 김건은 수심에 빠져 있었다. 
동묘 시장 구석진 곳에서 공방을 운영하는데 찾아와 좋은 대우를 하는 것에서 의심을 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헌범기관 쪽 사람이우? 하... 여기까지 도망쳤는데 찾아낼 줄이야....” 
혼자 오해에 오해를 거듭하고 있는 김건. 
그는 굉장히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수는 김건의 특이한 반응에 난처해졌다. 
“예...? 아닌데요?” 
서로가 서로를 이상하게 보는 괴이한 상황. 
“총 만든 거 때문에 나한테 접근한 게 아니었수?” 
“허... 사장님 진짜 총을 만들었었어요?” 
오히려 더 놀라며 되묻는 진수의 표정에 김건은 이마를 감싸 쥐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총 만드냐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범죄를 시인한 셈이 된 것이다. 
“후우.... 이거 또 공방을 옮기게 생겼네.” 
깊은 한숨을 쉬는 그. 
뭔가 사연이 많아 보였다. 
“사장님, 제가 입을 다물면 되는 거잖아요? 제가 앞으로 사장님한테 부탁드릴 게 얼마나 많은데 신고를 할 리가 없죠.” 
진수는 필사적으로 김건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제 금속판을 양산하기 시작해야 하고, 앞으로 장비를 만들 일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김건 정도의 장인과 지금처럼 직계약 수준으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였다. 
진수의 입장에서도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일이었다. 
“허허, 내가 포항에 있었다고 이야기 했었수?” 
“예, 지난번에 이야기 해주셨었죠.” 
“내가 터를 잡았던 곳에서 떠나온 게 다 그 총 때문이었지.” 
열성적인 진수의 설득에 일단 상황을 알려줘야겠다 싶었는지, 김건이 입을 열었다. 
포항의 아이언피스트라는 장인 조합에 소속되었던 그. 
재료 가공에서는 이미 수준급 실력을 지녔고 마력공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헌터들을 위한 냉병기 위주의 작업을 하던 그는 보다 발전된 무구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거, 내가 뭐 법을 어기겠다, 테러라도 하겠다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는 거요.” 
김건은 처음엔 진수의 전기톱처럼 마력을 동력 삼아 움직이고 강화되는 장비를 제작했다. 
하지만 실험적인 장비는 만들어도 제대로 된 위력을 지닌 물건이 나오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잠시 기분도 낼 겸, 재미로 간단한 총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석을 장약 삼아 발포하는 방식으로 총을 만들었는데, 이게 은근히 위력이 좋았던 것이다. 
“이 재미로 시작된 제작에 다른 장인들도 붙으면서 일이 커진 거요.” 
자신의 설계대로 만든 물건이 상당한 힘을 발휘하니까 신이 났던 것이다. 
다른 장인들의 조언도 듣고 서로 기술 교류도 하다 보니 은근히 입소문도 퍼지기 시작했다. 
헌터란 족속들은 생존과 사냥에 도움이 되는 장비라면 환장을 한다. 
그러니 소문을 듣고 김건에게 총기를 만들어달라 요구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주셨어요? 그럼 빼도 박도 못하고 현행범으로 잡혀갈 사안인데....” 
“그럴 리가. 나도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이우.” 
오히려 신고를 당한 것은 그가 총을 만들어주지 않은 탓이었다. 
몇몇 헌터들이 불만을 품고 헌터범죄전담기관에 김건을 신고한 것이다. 
그가 재미를 위해서든 연구를 위해서든 총을 만든 것은 사실. 
공방의 비밀 창고에 그동안 만든 총들이 보관되어 있었기에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수색하기 시작하면 무조건 걸리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포항을 떠나오게 된 거요. 다행히 다른 친구들은 엮이지 않아서 만들어놨던 것들을 숨겨놓고 도망쳐왔수.” 
씁쓸한 표정을 짓는 김건. 
“그런.... 제가 몹쓸 소리를 했네요. 총의 치읓만 들어도 치가 떨리실 텐데....” 
“총을 만들어달라거나 만든 적 있냐는 얘기만 나오면 조금 경계하게 되긴 하우.” 
그는 괜찮다는 듯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근데 갑자기 총은 왜 찾은 거요?” 
“아, 그냥 네일건을 써보니까 좋아서 농담 삼아 드린 말씀이었어요. 근데 진짜로 만드셨던 게 있으실 줄은 몰랐죠.” 
진수는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것들 때문에 지금도 불안해 죽겠수. 맘 같아서는 포항으로 내려가서 다 처분하고 싶은데, 그러면 또 헌범기관에 걸릴까봐 무섭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지.” 
한탄하는 말투로 말하는 그의 모습에 진수가 눈을 빛냈다. 
“사장님.” 
“음?” 
“제가 그 총들 다 없애드릴까요?” 
“그쪽이?” 
김건의 눈이 동그래졌다. 
포항이 워낙 먼 곳이다 보니 어지간해선 갈 생각도 못 하는 곳이었으니까. 
“예, 제가 이번에 일 때문에 포항에 가게 됐거든요. 그래서 사장님 생각이 나서 이렇게 찾아왔는데... 제가 도와드릴 수 있다면 돕고 싶어서요.” 
“허허... 진짜로 헌범기관 사람인 거 아니우?”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본다. 
하지만 그 태도가 진짜로 의심을 한다기보다는 장난기가 섞인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에 의심을 완전히 버리기로 한 듯했다. 
“그렇게 해준다면야 고맙지. 항상 가슴 속에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답답했는데, 그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수.” 
김건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이미 마음의 짐을 반쯤 벗어던진 것 같았다. 
‘운이 좋았어. 김건 사장님 아니었으면 총을 구하기 진짜 힘들었을 텐데.’ 
이번 일은 진수에게도 김건에게도 서로 좋은 일이었다. 
헌터라고 해도 한국에서 총을 손에 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오히려 게이트 사태 이전이 총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더 많았을 것이다. 
“핸드폰 꺼내보쇼. 내 위치 표시해줄 테니.” 
김건은 자신이 총을 숨겨놓은 곳을 알려주었다. 
광산에서 우연히 발견한 비밀 공간이라고 했다. 
“광산 안에서 운이 좋으면 진은처럼 특수 광물을 얻을 수도 있을 거요. 거기 광산이 좀 뭐랄까... 던전 같다고 해야 하나. 가끔 몬스터도 나오고 하는데 좀 특이한 곳이거든.” 
“아... 시간 되면 한 번 훑어봐야겠네요. 일단 사장님 걱정거리들 다 치우고 나서 바로 연락드릴게요.” 
“고맙수. 허허. 그리고, 지난번에도 얘기 했나 모르겠는데, 포항에서 아이언피스트라고 있수. 내가 몸 담았던 곳인데, 물건 만들 거 있으면 내 이름 대면서 맡기쇼. 잘 해줄 거니까.” 
김건은 진수가 허리춤에 매어둔 망치를 가리켰다. 
망치 손잡이 끝부분에 새겨진 서명. 
그걸 아이언피스트라는 장인 단체에 보여주면 될 거라고 했다. 
“참, 사장님. 이거 좀 봐주시겠어요? 제가 이걸 좀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가능할까 해서요.” 
마지막으로 진수가 공방을 찾았던 용건을 밝혔다. 
몬스터를 쫓는 역할을 하는 금속판. 
아마도 포항에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용할 일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미리 생산을 해놔야 한다. 
“많이? 그럼 아예 틀을 만들어놓고 뽑아낼 수 있게 해야겠네. 알겠수. 준비해두지.”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말하는 김건. 
진수는 그의 모습에 퍽 안심이 되었다. 
항상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하지만 무얼 만들더라도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 * *
서울에서 출발한지 일주일째. 
진수를 비롯한 포항 운송로 구축팀은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거친 생활을 하는 헌터들이라고 해도 주로 도시에 주거지를 두고 주변에서 사냥을 한다.
긴 사냥을 나선다고 해도 일주일씩 노숙을 하는 것은 정신적인 피로를 주는 일이었다. 
“아, 빨리 포항에 도착했으면 좋겠네요.” 
상당히 피폐해진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 
천안 운송로 구축 때 같이 갔던 D급 헌터, 장우종이다. 
그는 우연히 이번 포항행에도 같은 팀이 되었다. 
“팀장님은 근데 B급이신데 B급 같지가 않아요? 체력도 좋아, 전투도 잘 해, 멘탈도 훌륭하시고.” 
천안 때 워낙 도움도 많이 받았기에 거의 진수의 팬이나 다름없는 태도를 보였다. 
“하하, 우종씨 피곤하니까 별 소리를 다 하네요. 이제 저쪽 산만 넘으면 거의 도착이니까 힘내죠.” 
“예, 알겠습니다. 포항... 몬스터들도 손, 발톱에 강철을 코팅하고 다닌다는 철의 도시.... 이번에 가면 저도 장비 좀 업그레이드 해야겠네요.” 
장우종이 기대감 가득 묻어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포항은 특히나 던전산 금속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했다. 
자연스럽게 금속 가공에 실력이 있는 장인들이 모이고, 좋은 장비를 맞추려면 포항으로 가라는 말이 나왔다. 
어정쩡한 던전제 아이템보다 어지간한 포항제 장비가 더 좋았으니까. 
“RD에서 돈을 좀 미리 받아오길 잘 했네.” 
“아 진짜요? 그걸 생각 못 했네요.” 
“여기 오면서 잡은 몬스터 부산물들이라도 팔아서 스펙 업 좀 해야죠.” 
장우종의 말에 다른 팀원들도 한 마디씩 보탰다. 
“하하, 그래요.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그럼 서둘러서 움직여봅시다.” 
진수는 몸을 일으키며 팀원들을 격려했다. 
발걸음을 재촉해 언덕을 오른다. 
새만금포항고속도로 흔적을 쫓아 움직이며 몬스터를 처치하고 표식을 해두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30분 정도 더 움직이자 언덕의 끝이 보였다. 
-쿠궁 쿠궁...! 
멀리서부터 울리는 묵직한 소리. 
거대한 엔진이 움직이는 것 같은 음향이었다. 
그리고 높게 치솟는 거대한 불길. 
상당히 떨어진 위치임에도 열기가 느껴질 것만 같은 화염이 도시 곳곳에 보였다. 
압도적으로 커다란 용광로가 몇 개씩 보이는 도시. 
포항이었다.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네.’ 
철의 도시에서 퍼져 나오는 소리에 맞춰 심장이 뜀을 느낀다. 
그건 비단 엔진음의 영향만은 아닐 것이다. 
‘포항에서 얻어갈 게 많으니까...!’ 
진수는 기대감을 가득 안고 발걸음을 떼었다.
문제의 광산
-깡! 깡! 깡! 깡! 
-위이이잉! 
도시 곳곳에서 망치질 소리, 그라인더 돌아가는 소리 등 장비를 제작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을 돌리면 어디에나 공방이 있고 좌판엔 온갖 희귀한 광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장비를 맡기고자 하는 헌터들, 이제 제작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사람들, 고집 가득한 표정으로 장비를 만드는 장인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서울, 이천, 천안을 다녀봤지만 가장 독특한 분위기의 거리였다. 
“자, 일주일동안 움직이느라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푹 쉬시고 볼일들 보시죠. 운송로 쪽 사냥은 내일부터 시작하자고요.” 
진수는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각자 포항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었기에 그의 말이 몹시 반가웠다. 
미리 잡아둔 숙소에 짐을 풀러 빠르게 사라지는 팀원들. 
‘좋아, 나도 이제 내 볼일을 좀 봐보실까?’ 
그들을 보낸 진수는 먼저 김건이 말했던 아이언피스트라는 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길거리에서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저기, 아이언피스트라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그의 물음에 현지인의 얼굴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마치 간첩이라도 보는 것 같은 눈빛. 
“아니, 포항에 오면서 아이언피스트가 어디 있는지를 몰라요? 내 이런 경우는 처음 보네. 허.” 
헛웃음을 뱉으며 말하는 사내. 
그는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거 눈이 달렸으면 좀 주변도 둘러보고 그러세요.” 
그의 손가락이 지목하는 곳에는 거대한 용광로가 있었다. 
시커먼 연기와 시뻘건 열기를 내뿜는. 
“저게....” 
그리고 용광로의 중앙에는 거친 화풍의 주먹이 새겨져 있었다. 
“포항에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아이언피스트예요. 헌터들에게도 장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라는 거죠. 의미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현지인은 부연설명을 한 뒤에 제 갈 길을 떠났다. 
진수는 멀리 보이는 용광로의 주먹 마크를 잠시 올려다보며 입을 헤 벌렸다. 
김건의 추천만 듣고 왔는데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곳이었던 것이다. 
‘와, 김건 사장님 엄청 잘 나가는 사람이었던 거구나! 앞으로도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어.’ 
물론 서울의 공방에선 제작하는 데에 필요한 기구들이 좀 부족하겠지만 그 정도 기술자와 독점 수준으로 거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행운이다. 
진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김건과의 관계를 유지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 순간 서울에 있는 김건의 몸에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자, 그러면 포항에서도 김건 사장님 덕을 좀 봐볼까나?” 
진수는 김건이 만든 망치를 쓰다듬으며 발걸음을 뗐다. 
포항 최고의 장인들한테 제작 의뢰를 할 생각에 잔뜩 기대한 채로. 
* * *
“김건! 그 망할 놈이 보냈다고? 이제 얼굴에 깔 철판도 만들었나보지?” 
시뻘겋게 달궈진 쇠보다 더욱 붉은 얼굴로 소리치는 한 노인. 
그의 얼굴은 용광로의 열기 때문에 한 차례, 진수의 말을 들은 후 분노로 한 차례 더 붉어졌다. 
“예...?” 
진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당황했다. 
“그놈이 광산에 무슨 개짓거리를 했는지, 놈이 사라진 이후부터 광산의 70%가 막혔어! 제 입으로 광산에 뭔가 하고 간다고 했으니까 그 자식의 소행이 분명하지. 그 후로 한 번 연락도 없다가.... 뭐? 장비를 제작해달라고 사람을 보내?” 
노인이 소리를 치며 소란을 일으키자 주변에서 다른 장인들도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야?” 
“건이놈이 사람을 보냈다는데?” 
“오랜만이네, 그 이름 듣는 것도.” 
“잘 지내고 있나봐.” 
장인들의 반응은 꽤 다양했다. 
노인처럼 화를 내는 자도 있었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하는 인물도 있었다. 
어쨌든 김건이 아이언피스트에 몸담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보였다. 
그리고 그 끝은 김건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듯했고. 
“저, 잠시만요. 서로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통화 좀 잠시 하겠습니다.” 
진수는 즉시 김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쇼? 
“아, 예. 사장님. 저 여기 포항의 아이언피스트에 왔는데요.” 
-아아, 잘 가셨수? 아이언피스트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나? 
“여기는 잘들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요.” 
태연히 안부를 묻는 김건. 
그는 아이언피스트의 장인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분들이 뭔가 좀 오해를....” 
“오해는 무슨 오해! 김건 그놈이야? 이리 줘봐!” 
“아, 사장님. 잠시 여기 분이 바꿔달라고 하시네요.” 
진수는 화를 내는 노인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여보세요! 이 썩을 놈이! 광산에다가 무슨 짓을 하고 간 거야!” 
전화를 받자마자 불같이 성을 내는 그. 
한참동안 용광로의 쇳물보다 뜨겁게 분노를 터트렸다.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김건이 총들을 숨기고 떠난 후부터 광산의 많은 공간이 막혔다고 한다. 
실제로 광산 속 숨겨진 곳에 김건이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덕분에 꽤 오랜 시간동안 포항의 장인들은 고통을 받았다. 
아이언피스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옛날의 포항이 희귀 광물 생산으로 유명했다면, 현재 장비 제작의 메카로 변모한 것은 아이언피스트의 공로였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이언피스트는 포항 최고 규모의 장인 길드가 되었다. 
“우리가 어떤 개고생을 했는데! 그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노인의 말을 들어보니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단순히 광산이 막힌 것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왠지 오랜 기간 함께 했던 김건이 완전히 잠적해버린 데에 대한 서운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제가 연락을 하면... 혹시 헌범기관에서 제 건과 아이언피스트가 연루됐다고 생각할까봐.... 
김건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제는 떠나온 지 많은 시간이 지났고 더 이상 불법 총기 관련하여 자신을 쫓지 않는 듯 했기에 진수를 보냈다. 
또, 이번 일로 다시 연락망을 연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있었다. 
‘그 광산 문제만 해결되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 나올 거 같은데....’ 
이 모든 상황들을 관망하고 있던 진수는 이 꼬여버린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가 광산에 있으리라 직감했다. 
“저기, 말씀 나누시는 중에 죄송한데, 제가 그 광산에 한 번 가봐도 될까요?” 
어차피 특수임무 때문에 총들을 수거하려면 광산에 가야 한다. 
그 김에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 
‘그리고 김건 사장님이 앞으로 내 부탁을 더더욱 거절할 수 없게 되겠지. 흐흐흐.’ 
진수의 말에 노인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수없이 많은 헌터들이 해결해보겠노라 말하며 광산에 다녀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단단히 틀어 막힌 광산을 다시 뚫을 수 없었다. 
“흥! 광산에 출입하는 건 딱히 우리한테 말 안 하고 가도 돼! 어차피 허탕만 치고 올 게 뻔하니까. 어차피 가서 광석이나 몇 개 캐오고 말겠지!” 
코웃음을 치는 노인. 
“혹시 모르는 거니까요. 만약에 제가 광산 문제를 해결하면 김건 사장님도 용서해주세요. 들어보니까 뭔가 악의를 가지고 해를 끼친 건 아닌 것 같은데....” 
“일단 광산 건부터 풀고 말해! 허튼 소리 하지 말고!” 
노인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진수는 이미 그의 마음이 반쯤 풀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냥 당장에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 
‘광산 일이 해결 안 돼도 시간만 좀 지나면 되겠는데.’ 
요란하게 화를 냈지만 눈치로 봐서는 그냥 솔직하지 못한 노인의 심술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됐든 진수는 광산에 가야한다. 
가장 좋은 것은 그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김건에겐 마음의 빚을, 아이언피스트에게는 장비 제작을 받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 * *
복잡하게 뚫려있는 갱도. 
벽면에는 광산과 어울리지 않게 칼자국과 그을음 따위의 전투 흔적들이 가득했다. 
광산 전체가 몬스터 서식 필드인 독특한 공간이었으니까. 
때문에 광부가 아닌 헌터들이 들어와 광석을 채취한다. 
당장 석재 지식이 있는 진수의 눈에 광물이 섞인 돌들이 들어왔다. 
‘이거 아주 노다지네!’ 
움직이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만 챙겨도 그 양이 상당했다. 
아직 몬스터와는 마주치지 않은 상황. 
광산의 지도와 김건이 표시해준 위치를 대조해가며 움직인다. 
“아 혹시 모르니까 임무나 받아놓을까?” 
-임무 : 안내하는 몬스터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의 지식 
임무를 받자 이제는 익숙한 [차원 전이]의 안내가 시작됐다. 
그런데 안내하는 방향이 조금 이상하다. 
‘어...? 전이시킬 몬스터가 여러 마리인 건가?’ 
광범위한 위치를 동시에 가리키는 안내.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일단 안내하는 쪽으로 가서 다 잡아 족치면 되겠지.” 
진수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방향 자체는 그가 가야 하는 쪽이었다. 
김건이 총들을 감춰뒀다는 숨겨진 공간. 
그리고 아이언피스트의 노인이 말한 가로막힌 지역. 
“그어어....” 
그가 안내 메시지를 닫고 걸음을 옮기는데, 어두운 통로 너머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에 진흙이 뒤덮인 사람의 모양새. 
머드 마이너라는 몬스터였다. 
행동은 언데드 몬스터 같았지만 실상은 주변의 인간들을 흉내 내는 진흙 덩어리 괴물이다. 
진흙으로 된 몸체였기에 상대하기 꽤나 까다롭다는 평이 많다. 
-화르륵! 퍽! 
[백년 도깨비불]을 사용해 진흙을 마른 흙으로 만들 수 있는 진수에게는 손쉬운 상대였지만 말이다. 
-머드 마이너 [질뻐기]가 [공방] 무리에 합류합니다. 
-노움 [김리]가 [공방] 무리에 합류합니다. 
-스톤 골렘 [피그말리온]이 [올림포스] 무리에 합류합니다. 
광산이라 그런지 땅, 돌과 관련된 몬스터들이 주로 나왔다. 
상대하기 번거로운 녀석들도 제법 있었지만 워낙 강한 몬스터들과 싸워온 진수에게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걸림돌은커녕 진수의 성장에 디딤돌이 되어줄 뿐. 
“어디보자.... 이 근처인 거 같은데....” 
몬스터들을 해치우며 움직인 진수는 지도를 살피며 현재 위치를 파악했다. 
김건이 말했던 숨겨진 공간에 거의 다다른 것 같은데 묘하게 지도와 실제 구조가 다른 부분이 있었다. 
이 곳들은 아이언피스트에서 막혔다고 말했던 것과 일치했다. 
“이쪽 방향을 뚫어보자.” 
진수는 [차원의 틈]에서 미리 챙겨온 곡괭이를 꺼냈다. 
[특수 공구 숙련] 덕분에 수십 년간 광부 생활을 한 사람처럼 능숙하게 벽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후두둑, 후두두둑... 스륵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돌과 흙을 파헤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저절로 복구가 되는 것이다. 
그 속도가 심상치 않았기에 귀신같은 곡괭이 실력을 지닌 진수도 전진을 할 수가 없었다. 
‘이 말이었구나...!’ 
아이언피스트의 노인이 했던 광산의 70%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다른 방향으로 뚫고 들어가 보려 했지만 마찬가지로 빠르게 수복되어버렸다. 
이 상태라면 가로막힌 길 뒤쪽에서는 누구도 광물을 캘 수 없을 것이다. 
‘드워프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말이지.’ 
한 발짝 떨어져 벽면을 살피던 진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자연스러운 동굴 같은 벽. 
하지만 그의 시야에는 몹시 부자연스러운 부분들이 보였다.
흙벽
-스르륵 
벽면 한쪽에 튀어나와 있는 돌을 잡고 마력을 흘려보낸다. 
흙으로 된 벽 사이로 푸른 빛이 흐르더니 이내 문이 열리듯 단단히 뭉친 흙이 무너졌다. 
사람보다 신장이 작은 이를 위해 설계되었는지 작은 구멍이 생긴 것이다. 
진수는 허리를 숙여 내부로 들어갔다. 
‘무슨 드워프의 비밀 기지에 들어가는 느낌인데...?’ 
드워프인 헤파이스토스의 마력회로 지식 덕분에 수월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왜 광산에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벽면에 새겨진 마력회로의 기능은 엄청난 수준의 자가 수복. 
그리고 특정 패턴으로 마력을 넣으면 문을 열어주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드워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구조물에나 있을 것이었다. 
“내부 구조는 그렇게 많이 안 바뀌었네.” 
안으로 들어와서 지도와 대조를 해보니 지형이 크게 변하지는 않은 듯했다. 
‘근데, 임무 안내가 고장이 났나...? 여기 들어오고부터 좀 이상한데....’ 
진수는 거슬리는 감각에 얼굴을 찌푸렸다. 
우선 임무는 차치하고 김건의 총들을 찾기로 했다. 
-후두둑... 후두둑... 
지도를 살피며 걷는데 어디선가 돌무더기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후두둑 후두둑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망치를 꺼내들고 주위를 경계하며 걸음을 뗀다. 
-후두둑! 
앞으로 전진 하던 진수는 소음의 원흉을 찾아냈다. 
돌멩이들이 뭉쳐 몸을 이룬 녀석들. 
이족보행을 하고 있지만 몸이 불안정한 것인지 걸을 때마다 돌덩이들이 몇 개씩 쏟아졌다가 다시 복구되었다. 
‘이놈들이 임무가 가리키는 몬스터인가?’ 
임무의 안내가 지시하는 방향엔 그 돌무더기 괴물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당장 달려들어 놈들의 몸을 후려친다. 
진수의 공격에 무력하게 흩어져버리는 녀석들. 
“해치웠나?” 
완전히 무너져버린 놈들 앞에서 나름 부활의 주문도 외쳐본다. 
하지만 부서진 돌무더기는 다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스톤 골렘이랑도 다른 것 같고... 전이는 안 되고....’ 
진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힘껏 걷어찬 뒤에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정체불명의 돌무더기 괴물들은 심심할 쯤 되면 한 번씩 나타나 진수의 진로를 방해했다.
원체 무력이 약한 놈들이라 큰 방해는 되지 않았다. 
“여기인가본데...?” 
김건이 지도에 표시해준 위치에 도착했다. 
공간 자체도 묘하게 기둥과 벽들 사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드워프의 마력회로가 새겨진 흙더미까지 덮여 발견하기 정말 어려운 조건이 갖춰졌다. 
‘이야, 김건 사장님 처음에 여긴 어떻게 찾으셨대? 근데, 마력회로로 가로막힌 걸로 봐선 진짜 김건 사장님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거였나?’ 
진수는 마력회로를 작동시키며 의문을 품었다. 
진짜로 김건의 잘못이라면 아이언피스트에다가 변명을 할 것이 참 궁색해진다. 
-스르륵 
마력회로가 발동되며 다시 작은 구멍이 열린다. 
허리를 숙여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하지만 제법 쓸 만한 공간이 나타났다. 
내부를 훑어보니 이런저런 마력회로들이 빼곡하다. 
‘저건 마력응집, 여긴 분배.... 흡수랑 관련된 설계도 들어간 것 같고.... 이 공간 자체가 무슨 에너지 공급 장치 같은 역할을 하잖아...?’ 
진수는 화들짝 놀라 전화기를 꺼냈다. 
“사장님! 그때 말씀해주신 곳에 왔는데요.” 
-아, 도착하셨수? 거기 기둥 위쪽에 숨겨놓은 총들도 찾았고? 
“아뇨 아직 총은 안 찾았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여기 수상한 마력회로들이 막 새겨져있는데, 그때 숨기시면서 혹시 이것들 활성화 되는 기색 못 느끼셨어요?” 
그가 의심하던 것이 이것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공간에 마력회로를 잘못 건드려서 작동시킨 게 아닌가 하는. 
그래서 무언가가 발동되어 광산을 막아버린 것인가 싶었다. 
-마력회로? 무슨 소리우. 거기 구석에 잘 안 보이는 공간이라서 들어가긴 했지만 마력회로 같은 건 본 적도 없수. 거기가 벽면이 다 단단한 바위라 마력회로를 넣기도 쉽지 않을 텐데...? 
진수는 김건의 말을 들으며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들어와 있는 공간은 온통 바위가 아닌 흙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 알겠어요. 총들은... 으쌰! 찾았어요. 제가 다 없앨 테니까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하. 근데, 이것들 중에서 어떤 게 제일 최근에 만드신 거예요?” 
숨겨진 공간 중앙에 있는 기둥 위로 손을 뻗으니 은근 수납하기 좋은 곳이 있었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 힘든 위치. 
그 안에 꽁꽁 싸매져 있는 포대자루를 찾아냈다. 
그걸 꺼내서 내용물을 확인한 진수는 김건을 안심시킨 뒤 통화를 마쳤다. 
“하나... 둘... 셋... 넷, 다, 여, 일곱. 이야 많이도 만드셨네.” 
총기는 총 일곱 자루. 
제각기 개성 넘치는 생김새였다. 
어떤 것은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게 생긴 것도 있을 정도. 
‘일단 보내주면 알아서 분석하겠지...?’ 
진수는 김건이 가장 최근에 만들었다는 총을 상점의 비아이템 전송으로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에게 보내주었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가 제작하는 물건 
-전달한 총기에 적용된 기술을 바탕으로 제작 중에 있습니다. 
-제작이 완료되면 보상이 전달됩니다. 
보상은 전기톱, 방어구를 강화할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저쪽 차원에서의 시간이 좀 흘러야 받을 수 있는 종류. 
진수가 그 시간을 당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 이제는 광산의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했다. 
‘이것들은 일단 [차원의 틈]에 넣어놓고 나중에 처리할 방법을 찾아봐야지.’ 
한국에서 헌터 활동을 하게 된다면 어차피 함부로 총을 쓸 수는 없었다. 
소유하고 있으면 애물단지이긴 하지만 [차원의 틈]에 넣어놓는다면 크게 거슬릴 것도 없는 문제. 
남은 여섯 자루 모두 [차원의 틈]에 들어갔다. 
-[토니]가 KG-004에 흥미를 보입니다. 
-[토니]가 KG-011에 관심을 갖습니다. 
-[토니]가 KG-018A를 살펴봅니다. 
그 직후 나타나는 메시지들. 
여러 타입의 총들에 토니가 눈이 돌아간 것이다. 
‘이 자식 욕심 부리는 거 보소? 그래, 다 가져가라 다 가져가.’ 
진수는 어차피 쓸 일도 없는 총들, 토니가 가져가서 연구에 쓰게 두었다. 
-[토니]가 KG-004에서 새로운 기술을 얻어 성장합니다. 
-[토니]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마력 +1 
-[토니]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얼마 지나지 않아 [차원의 틈]에 넣은 총 여섯 자루를 모두 가져간 토니. 
보상으로 총 힘 2, 체력 2, 내구 1, 마력 1을 보내주었다. 
-꽈드득 
이번 보상을 받으면서 힘 능력치가 100을 넘어섰다. 
온몸의 근육이 강하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더니 무언가 한 단계를 넘어섰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력 100을 넘었을 땐 분신들의 기술 사용으로 체감이 되었다. 
힘이 100을 넘으니 근육에 넘치는 힘만으로도 확실히 강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RD의 요괴 간부들이랑 비벼볼 만하지 않을까...?’ 
평천과의 승부까지는 아직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아래급인 녀석들은 이제 맞붙어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항 운송로 구축이 끝나고 나면 이제 경상남도, 전라남도 쪽만 남는다. 
RD 간부들과 직접 싸울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우선 여기 일부터 마무리를 치자. 이놈의 안내는 왜 이 모양이 된 거야?” 
처음 마력회로를 작동시키고 이 공간에 들어온 후부터 임무는 사방으로 안내를 하고 있었다. 
마치 여기 공간 전체를 지목하는 것처럼. 
김건이 총을 숨겨두었던 곳에서 나와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한 진수. 
특이한 것은, 일반적인 몬스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돌멩이들로 이루어진 요상한 녀석들만 등장할 뿐. 
“이놈들은 전이도 안 되고. 마석도 안 나오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놈들인데.... 애초에 몬스터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로봇 같아?” 
로봇청소기처럼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고 진수를 향해 걸어온다. 
처음에는 보이는 족족 때려잡았는데 혹시 몰라 가만히 두니 놈들도 공격을 하긴 했다. 
별로 위력적이지는 못 했지만. 
“아- 이거 참 답답하구만.” 
꽤 오랜 시간동안 돌무더기 괴물들이나 해치우고 진전이 없다. 
임무 안내는 여전히 온 사방을 가리키고 있다. 
무언가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 
진수는 짜증나는 마음을 담아 벽을 후려쳤다. 
-퍽! 
흙으로 된 벽이 잠시 허물어졌다가 마력회로에 의해 다시 복구되었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에 진수의 머리를 스치는 정보가 있었다. 
다시 한 번 벽을 때린다. 
“호오.” 
이번에는 [차원의 틈]에서 곡괭이를 꺼내 무차별적으로 광범위하게 벽을 허물었다. 
“임무의 안내가 고장 난 게 아니었어.... 오히려 아주 잘 작동하고 있는 거였네. 참나, 이걸 뭐 어떻게 하라고 이런 임무를 주나?” 
진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허 웃었다. 
벽을 허물 때 잠깐 느낀 감각. 
흙벽이 없는 곳은 안내가 가리키지 않고 벽이 복구되면 다시 임무의 안내가 향한다. 
다시 말해, 임무는 이 흙벽들이 전이를 시켜야 하는 몬스터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김건 사장님이랑은 관련이 없는 게 맞았고 그냥 우연의 일치로 이 괴상한 몬스터가 광산에 나타났던 건가 보네.’ 
그는 김건에게 괜한 의심을 했다고 생각했다. 
“잠깐, 사장님이 총 숨겨놨던 곳에 있던 마력회로는 좀 달랐지...?” 
김건에 대한 생각은 총을 찾으며 봤던 마력회로에까지 미쳤다. 
흙벽에 보이는 마력회로는 복구를 하고 문을 여는 기능이다. 
결국 동력원은 따로 있다는 의미. 
‘에너지를 공급하는 장치를 없애면 무슨 변화든 일어나겠지.’ 
진수는 총들이 숨겨져 있던 공간으로 향했다. 
여전히 에너지 흡수, 분배 등의 기능이 작동하고 있었다. 
-퍽! 
곡괭이를 휘둘러 복잡한 마력회로를 휘젓는다. 
잠깐 어그러지는 듯하더니 이내 복구가 되었다. 
벽에 있는 자가 수복 기능이 이런 중요한 위치에 빠져있을 리가 없었다. 
“흠... 그렇다면 좀 더 인텔리하게 가보자.” 
진수는 시야를 넓게 퍼트려 마력회로들을 천천히 분석해보았다. 
‘물리적으로 마력회로를 망가트리는 건 다시 원상복구가 되겠지만... 마력회로를 추가하는 건 어떨까?’ 
헤파이스토스의 지식을 바탕으로 기존에 있던 구조에 몇 가지를 추가했다. 
기능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니다. 
다만 어디론가 마력을 분배하던 회로를 현재 그가 있는 공간에 저장하도록 방향을 틀었을 뿐. 
-위이잉 
시간이 흐르자 마력이 한 점에 응집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흙벽에 새겨진 마력회로의 활성도가 낮아졌음을 알아차렸다. 
“좋아, 이제 어떻게 나올 거냐?” 
진수는 기대감을 안은 채로 변화를 기다렸다. 
그가 기다리던 일은 꽤 빠르게 찾아왔다. 
사방에 있던 흙벽이 그를 향해 점점 밀고 들어온 것이다. 
정확히는 벽을 이루던 흙들이 한 곳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날 짓눌러 죽이려고 그러는 건가?” 
흙벽이 다가오는 걸 보고 곡괭이를 고쳐 잡는다. 
그리고 이내 한 방향으로 달려가며 빠르게 휘둘렀다. 
마력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인지 벽이 복구되는 시간이 현저히 느려졌다. 
그 사이 진수는 유유히 흙벽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콰드득 콰드드득 
밖으로 나오니 그의 유추대로 [차원 전이] 임무가 흙들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곳으로 뭉친 흙을 향해 안내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광산의 70%를 가로막고 있던 엄청난 양의 흙들은 하나로 모여 새로운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흙으로 된 거대한 드워프가 나타났다. 
-띵 
“오케이, 화면빨 너무 잘 받고.” 
어느새 핸드폰을 꺼내 흙벽이 뭉쳐 몬스터로 변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던 진수.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녹화를 종료했다. 
이제는 임무를 달성할 차례였으니까.
도대체, 뭘 만든 거야?
-쿠르릉...! 
“빨리 나오세요!” 
“저쪽 무너진다!” 
포항의 광산은 때 아닌 소동에 시끄러웠다. 
광산 내부에서부터 충격음과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도 가끔씩 지진이 발생하는 지역이었기에 평소 매뉴얼대로 광산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쿵, 쿵...! 
“근데 이거 지진이 맞는 거야...? 무슨 공사 하는 소리 같기도 하지 않아?” 
“혹시 모르니까 일단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지진이 아니더라도 이만큼 땅이 울릴 정도 충격이면 어쨌든 광산에 들어가 있기엔 위험하니까.” 
“괜히 객기 부리다가 돌에 깔려 죽기라도 하면 자기만 손해지.” 
밖으로 빠져나온 헌터들, 포항 광산을 관리하는 인원들은 저마다 생각을 뱉었다. 
* * *
“아, 죽겠네 진짜!” 
광산 안쪽에서 싸우고 있는 진수는 정말 천재지변을 만난 기분이었다. 
처음엔 흙이 뭉쳐 만들어진 몬스터와의 전투가 수월하리라 생각했다. 
그는 석재 지식도 가지고 있었고, 마력회로에도 능통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싸움에 들어가니 그 둘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쿠르르르! 
급하게 옆으로 구르며 공격을 피한다. 
방금 전까지 진수가 있던 자리로 엄청난 양의 흙, 자갈들이 쏟아졌다. 
기다란 뱀처럼 달려들었던 흙덩이는 어느새 다시 커다란 드워프의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놈은 곧장 주먹을 뻗어 진수를 공격한다. 
-쾅! 
녀석의 주먹이 광산의 벽을 후려치며 산산조각 났다. 
그 파편 하나하나가 흉기가 되어서 진수에게 짓쳐들었다. 
“큿!” 
팔을 들어 급소만 막아낸다. 
진작 방어구를 소환해 착용하지 않았다면 벌써 곤죽이 되었을 것이다. 
‘저걸 어떻게 해치우지...?’ 
전투가 꽤 오래 지속되었지만 아직까지 놈을 처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물리적인 방어력이 큰 적에게 한몫 톡톡히 하던 [백년 도깨비불]도 통하지 않는다. 
귀화가 붙는 순간 그 부위의 흙을 떨어트려버렸으니까. 
광산 내부에 널린 것이 흙과 자갈, 돌멩이다. 
떼어낸 부위는 금세 복구가 가능하단 뜻이다. 
골렘 계통의 몬스터들처럼 중심이 되는 핵을 부숴야 해치울 수 있을 듯했다. 
“핵은 확실하게 감지가 되는데.... 문제는 핵에 접근을 할 수 없다는 거지.” 
놈은 생김새와 다르게 생명체는 맞는지 [사신의 감각]으로 핵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워낙 빠르게 움직이고 핵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옮기는 탓에 근접 공격 위주의 진수가 핵을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피슉! 
[강철 거미줄]을 날리는 진수. 
사방에 거미줄을 친다. 
주선생의 전투 스타일을 흉내내보려 하는 것이다. 
놈과 싸우고 있는 공간 안에 [강철 거미줄]로 된 그물을 치면 붙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 액체괴물이냐고....” 
하지만 곧이어 녀석이 보여준 장면은 그의 노림수를 완전히 비껴갔다. 
얇은 거미줄들을 무시하며 움직인다. 
마치 칼로 물을 베는 것처럼 통과해버렸다. 
-텅 
그래도 이리저리 거미줄을 연결시켜놓은 것이 전혀 무가치한 일은 아니었다. 
주선생을 따라서 거미줄을 밟으며 기동력을 올릴 수 있었으니까. 
밟고 있던 [강철 거미줄]의 탄성을 이용해 쏘아지듯 나아간다. 
-쾅! 
망치가 흙괴물의 머리 부분을 파괴한다. 
잽싸게 수복하며 주먹을 휘두르는 녀석. 
진수는 옆에 쳐놓은 거미줄을 디디며 놈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간다. 
동시에 왼쪽 다리를 후려치고 완전히 뒤로 넘어간 직후엔 [차원의 틈]에서 도끼를 꺼내 등판을 내려찍었다. 
녀석의 온몸을 짓뭉개며 땅속에 파묻힌 유물을 발굴하듯 핵을 향해 나아갔다. 
“하앗!” 
있는 힘껏 후려치면 놈의 핵까지 파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가능한 빠르고 강하게 망치를 내지른다. 
-후두두둑 
하지만 흙으로 된 몬스터는 붕괴되듯 몸을 허물면서 핵의 위치를 낮췄다. 
동시에 몸체를 뱀처럼 만들어 도망친다. 
“거기 서!” 
-뽀옹 
[분열]로 분신을 만들어 놈의 앞쪽을 향해 집어던졌다. 
빠르게 날아가는 작은 진수가 허공에서 네일건을 소환했다. 
저주받은 신의 창이 장착된 상태다. 
신중하게 조준하여 발사한다. 
-철컥! 텅-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쏜살같이 날아가는 창. 
예리하고 단단한 창날이 놈의 핵을 노렸다. 
위기를 감지한 녀석은 흙을 켜켜이 쌓는다. 
창과 방패의 싸움. 
-드드드득! 
김건이 만든 네일건의 위력도 보통이 아니었기에 엄청난 기세로 놈의 흙 보호막을 한 층씩 파괴해 들어간다. 
하지만 결국 저주받은 신의 창의 돌파는 멈추고 말았다. 
계속해서 핵을 뒤로 빼며 보호막을 쌓는 녀석의 방어력을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 조금만 더 들어갔어도!’ 
진수는 놈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탄식을 금치 못했다. 
벌써 몸을 회복해가고 있는 몬스터. 
이만한 기회를 다시 잡기는 쉽지 않았다. 
그때, 진수의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얇은 장갑의 형태를 하고 있는 물건.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가 마력공학 장갑 총을 전달합니다. 
‘총...?’ 
어떻게 봐도 총이라고 할 수 없는 생김새다. 
검은색 얇은 장갑에 마력회로가 복잡하게 새겨져있다. 
가지고 있던 헤파이스토스의 지식으로도 섣불리 파악하기 힘든 모양새. 
진수는 일단 착용을 해보기로 했다. 
그가 고민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흙괴물은 몸을 수복하고 있었으니까. 
-스윽 
허공에 떠있는 장갑을 잡아 오른손에 착용한다.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상관없이 착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지만 우선 편한 쪽 손에 장착했다. 
장갑을 낌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사용법이 들어온다. 
진수는 재빨리 [차원의 틈]에서 광산에 처음 들어와 캤던 광물을 하나 소환했다. 
-휘리릭 휘리릭! 
손아귀에 광물이 나타나자마자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마력의 작용으로 회전운동을 시키며 공중에 띄웠다. 
아직 몬스터에게 박혀있는 저주받은 신의 창을 향해 손을 내민다. 
-후우웅- 피융- 
맹렬히 돌아가던 광물은 총알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그와 함께 찾아오는 굉장한 수준의 반동. 
[탄성체질], [상급 악력], [체질 확장]에 힘 능력치 100이 넘지 않았다면 제대로 제어하지 못할 뻔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조준에 보정도 되었는지 처음 발사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창대의 뒤쪽을 맞췄다. 
-꽈앙! 
저주받은 신의 창이 다시 동력을 얻어 흙으로 된 보호막을 뚫고 들어간다. 
마력공학 장갑 총의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벌써 상당히 회복된 흙더미를 순식간에 돌파.
몬스터의 핵을 꿰뚫는 것으로도 모자라 창날이 땅에 깊숙이 박히며 창대가 출렁였다. 
-마인 가드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마인 가드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드워프 엔지니어 [토니]의 지식 
포항 광산의 골칫거리가 사라지고 진수의 눈앞에는 안내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메시지를 닫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뭘 만든 거야?” 
토니가 만들어서 보낸 마력공학 장갑 총의 위력에 경악하느라 그 이외의 사고가 정지되어버린 것이다. 
다른 아이템들이 으레 그렇듯, 사용 방법 자체는 착용과 동시에 익혔다. 
손아귀에 들어오는 크기의 물건을 잡는다. 
이는 발사할 탄이 된다. 
이후 마력공학 장갑 총에 마력을 흘려보내 탄을 회전시킨다. 
탄에 충분한 회전운동이 가해지면 2차로 마력을 쏟는다. 
탄이 발사된다. 
2차로 사용한 마력량에 따라서 발사되는 위력이 달라진다. 
‘미리 회전운동을 줘서 총신의 강선을 대체하고, 마력으로 일종의 레일건 같은 발사 원리를 만든 거 같은데....’ 
네일건에서 시작된 일이 레일건까지 왔다. 
위력과는 별개로 총이라고 부르기 굉장히 모호한 물건을 얻게 됐다. 
딱히 기존의 총알을 사용하지도 않고, 흔히 생각하는 총의 외형도 아니다. 
이름만 총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총을 연상할 수도 없는 모양새. 
그래서 문제가 있는가? 
‘아니, 오히려 좋지!’ 
총을 연상할 수 없고 오히려 그가 가진 기술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는 물건이다. 
총기가 불법인 나라에서 대놓고 쓸 수 있는 총인 셈이었다. 
게다가 진수의 부족한 원거리 공격까지 채워주는. 
‘채우기뿐만 아니라 이것만 갖고도 헌터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위력이야.’ 
그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꽃폈다. 
마력공학 장갑 총을 왼손에 장착해본다. 
신기하게도 어떤 손에 껴도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후우웅- 피융- 
왼손으로도 몇 차례 발사 연습을 해봤다. 
처음 사용했을 때 느꼈던 대로 조준에 보정이 되는지 그가 눈으로 표적을 지정하면 명중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좋았어. 진짜 맘에 든다.” 
히죽 히죽 웃으며 저주받은 신의 창을 회수한 진수. 
그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공방] 무리가 잊힌 드워프의 두 번째 유물을 복원했습니다. 
-유물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응? 갑자기 웬 드워프의 유물?’ 
진수는 난데없이 나타난 메시지에 상태창을 열어봤다. 
공방 무리에 있는 드워프들과 헬하운드, 보석사 등이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앙에 있는 것은.... 
“아까 전이시킨 놈이잖아?” 
고군분투 끝에 전이를 시킨 마인 가드라는 몬스터가 드워프 형태를 한 채로 서있었다. 
‘분명 몬스터였는데 유물이라니.... 저쪽 차원의 드워프들은 생체병기도 만들었었나?’ 
천안 때와 마찬가지로 저쪽 차원에서 바로 넘어온 케이스였던 모양이다. 
놀라운 일이었지만 어찌됐든 진수에겐 좋은 일이었다. 
그는 마인 가드에게 라퓨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자체 방어용 로봇 같은 애들도 있고 하니까....’ 
-유물 복원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민첩 +2, 체력 +5, 내구 +3, 마력 +3, 골드 +15 
“오늘 크리스마스인가? 선물이 상당하네.” 
진수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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