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12

-[특성 랜덤 박스] 구입으로 특성 [상급 목청]을 얻었습니다.
[빠른 발]은 고돌이에게, [하급 근력]은 똘기, [공기 친화]는 키키, [하급 유연성]은 떵이, [숙면]은 강다리, [상급 목청]은 몽치에게 주었다.
그리고 [중급 탭댄스 숙련]은 마초에게 주었다.
‘켄타우로스가 추는 탭댄스라니...! 와, 발이 네 개!’
나름 각자의 특성에 맞춰서 숙고하여 특성을 준 것이다.
-[몽치]가 더욱 크게 당신의 이름을 부르짖습니다.
[몽치] - 현재 상황 : “징크스님!”
다만 세상일은 뜻대로만 풀리지는 않는 법이었다.
[상급 목청] 덕분에 징크스라는 이름이 더욱 빠르게 퍼지게 됐다.
-[고돌]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체력 +1, 골드 +10
-[꾸러기 수비대]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민첩 +2, 마력 +4, 골드 +20
특성을 보내준 대가로 다시 골드와 능력치를 받는다.
엄청나게 남는 장사였다.
-띠링
상태창을 살피던 진수의 핸드폰에 알림 소리가 났다.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 메시지.
[진수씨. 나 주선생이에요. 내일 저희 본사로 오시겠어요? 부탁할 게 좀 있어서요.]
‘주선생이 왜...?’
이러면 좀 복잡해지는데...?
“어서 와요. 난데없이 부탁할 게 있다고 해서 조금 놀랐죠?”
주선생에게 연락을 받고 다음날 RD 본사에 방문한 진수.
그곳엔 주선생과 알유가 있었다.
알유는 굉장히 심통이 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주선생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이번에 운송로를 구축하려고 몇 팀이 동시에 출발을 했죠. 대부분 운송로를 뚫는 데 성공했지만... 알유는 아쉽게도 고배를 마시고 돌아왔어요.”
“나찰조도 실패했고, 복해 형님도 중간에 돌아오셨는데요.”
작게 툴툴거리는 알유.
그의 태도에 주선생은 피식거리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유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상황 설명을 하고자 하는 거잖아? 너무 그렇게 심술 낼 필요 없어.”
“네, 누님....”
주선생의 말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비 맞은 개처럼 처량한 모습이었다.
“어쨌든, 알유가 맡았던 루트는 화성시로 향하는 운송로였어요.”
“아...! 물가에서 고생하셨죠?”
그녀의 말을 듣던 진수가 아는 체를 했다.
그의 말에 눈이 동그래진 알유.
“어떻게 알았어요?”
“거기 꽤 유명한 필드 보스가 있거든요. 화성시면 그래도 서울에서 거기까지 길이 꽤 잘 뚫려있는데 그런데도 고립이 된 게 그놈 때문이란 말이 많아요.”
화성시와 수도권을 가로지르는 물길이 있다.
시화호에서 시작된 얕은 시내였는데, 어느 날부터 수심이 깊어지더니 웬 괴물이 생겨났다.
때문에 화성시를 가려면 그 시내를 아주 빠르게 통과하거나 용인 쪽을 통하여 이동해야 한다.
“아, 역시 보통 놈이 아니었단 말이죠? 거봐요 누님. 제가 약한 게 아니라니깐요?”
진수의 말에 알유의 기분이 좋아졌다.
꼬리가 있었으면 살랑살랑 흔들렸을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모양인지 앉은 자리에서 주선생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알유.
주선생은 피식 웃으며 답해줬다.
“그래, 처음부터 널 탓하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여기 진수씨는 그냥 네가 쉽게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부른 거야.”
“네, 누님.”
“어쨌든, 진수씨가 들어본 몬스터라면 말이 더 쉽겠네요. 알유가 주장하기로는 몬스터 위치만 파악해주면 충분히 해치울 수 있다고 해요.”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에요.”
“...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주장하네요. 진수씨가 몬스터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으니까 그것만 알유를 도와줬으면 해요.”
주선생이 진수를 부른 것은 지난 이천시 운송로를 뚫을 때 보여준 능력 때문이었다.
[사신의 감각]을 이용해 몬스터들을 감지하는 걸 보고 알유에게 붙여주면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진수는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속내는 조금 달랐지만.
‘한번 필드 보스한테 실패했던 놈이니까 잡아먹어도 되겠네.’
알유는 오늘까진 재정비 및 회복을 하고 다음날 출발할 것이라 얘기했다.
“이번에도 저만 따라가는 건가요?”
“아마 다른 헌터들 두셋 정도 더 데리고 갈 거예요. 아무래도 전투 스타일이 저랑은 달라서 일손이 더 필요할 거거든요.”
주선생은 굉장히 알유를 존중해주는 태도로 말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알유.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죠.”
* * *
RD 본사에서 나온 진수는 조민준의 개인 연구실로 향했다.
빨리 새로운 기술을 보고 싶었던 것인지 벌써 석판에 대한 분석을 마쳤다고 연락을 준 것이다.
“도깨비! 빨리 와요.”
잔뜩 흥분한 상태로 재촉하는 조민준.
그는 작업대 쪽으로 진수를 불렀다.
작업대 위에는 진수가 가져왔던 석판과 금속판 몇 개가 함께 올라와 있었다.
금속판은 석판의 주술진에 마력회로가 섞인 모습이었다.
“부탁한대로 이 석판이랑 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을 만들어봤어요. 근데 좀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아~ 그래서 마력회로로 마력을 끌어 모으는 기능을 추가하셨구나.”
“오, 맞아요. 맞아. 물론 완전히 혼자 운용이 되는 건 아니지만, 만약에 오랜 시간 마력 공급을 못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게끔 만들었어요.”
진수가 바로 알아보자 박수를 치면서 신나게 설명한다.
“여기 도면 있어요. 이 도면에 맞춰서 만들고, 부적에 들어가는 경면주사를 채워 넣으면 주술진이 발동할 거예요. 제가 생산을 하는 설비는 없어서 이 이상은 힘들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하는 표정으로 진수를 보는 조민준.
빨리 [전장의 뿔나팔]을 보여 달라는 얼굴이었다.
‘양산은 김건 사장님한테 부탁하면 되겠다. 마력 효율을 높이는 방법도 알고 계시니까 잘하면 한 차례 더 개선을 할 수도 있겠어. 일이 술술 풀리네.’
진수는 조민준에게서 주술진의 도면을 받아서 [차원의 틈]에 집어넣었다.
-고블린 샤먼 [키약트르]가 주술진 도면에 흥미를 보입니다.
‘어?’
주술을 사용하는 녀석이라 그런지 키약트르가 도면에 관심을 보였다.
“[전장의 뿔나팔] 보여드리기 전에, 도면 좀 복사할 수 있을까요? 이거 줘야할 곳이 한 군데 더 생겨서....”
“아, 그럼요, 그럼요. 복사 말고 다시 인쇄해서 줄 테니까 일단 기술 분석하는 곳으로 가요.”
원본은 따로 두고 있는지 조민준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했다.
진수는 그 모습에 지금 [차원의 틈]에 넣어둔 도면을 키약트르에게 넘겼다.
상태창을 열어서 보니 녀석의 그림이 종이를 들고 살피는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 * *
-뿌우우우!
커다란 굉음과 함께 수천의 군대가 전진하는 듯한 압박감이 터져 나온다.
[전장의 뿔나팔]을 사용한 진수 자신에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과 신체 강화, 정신 보호의 힘을 주었다.
“오, [워 크라이]랑은 아예 결이 다르네. 혼자서도 여럿의 기척을 낸다 이거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하는 조민준.
입을 헤 벌리고 있었지만 손과 눈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비각성자이지만 눈에 쓰고 있는 것은 기술 분석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인 듯한 고글.
마력의 흐름이나 작용 따위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엔 몬스터 앞에서 써볼게요!”
우리에 가둬놓은 고블린을 기술 분석실에 투입한다.
다시 한 번 [전장의 뿔나팔]을 사용한다.
“키에엑!”
두려움에 귀를 뒤로 젖히고 머리를 가랑이 사이에 처박는 녀석.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오줌을 지려버렸는지 지린내가 진동을 한다.
“약한 몬스터한테는 공포감도 유발하고... 순간적으로 약하지만 물리력도 있는 것 같네.”
이 외에도 오크, 웨어울프 등의 꽤 강한 몬스터나 언데드 몬스터에게 사용하는 테스트.
물리력의 수준을 파악하는 실험.
사용자에게 어느 정도의 강화가 생기는지 확인하는 과정 등을 거쳤다.
“버프류 기술들 중에선 굉장히 수준 높은 기술이네요. 햐, 진짜 좋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어요. 이건 혼자 써도 좋겠지만, 다수와 함께 썼을 때 더 빛을 발하겠는데요. 사용자의 적아구분에 따라서 적용이 다르게 된다는 점도 신기했고요. 기술이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서 좀 더 다양하게 볼 수 있겠다는 근거가 됐어요.”
잔뜩 흥분해 떠드는 조민준.
진수에게도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되는 테스트였다.
‘특히, 기습적으로 썼을 때 효과가 좋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흐흐흐.’
조민준은 [전장의 뿔나팔]이 보여준 새로운 이론에 들떴다.
그리고 진수는 그 중에서도 비겁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가슴이 뛰었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회를 목전에 두고 있었으니까.
“다음에 또 새로운 기술 생기면 꼭 와요!”
진수는 조민준의 환대를 받으며 연구실을 떠났다.
그에게는 내일 운송로 구축을 대비하기 위해 몇 가지 더 준비할 게 있었다.
* * *
“안녕하세요.”
펑퍼짐한 검은 후드티셔츠를 입은 진수가 RD 본사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헌터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 예.”
“....”
알유와 화성시 운송로를 뚫기 위해 모인 이들.
왜소한 사내와 수염이 거칠게 난 남성이었다.
진수의 인사에 수염 난 자는 퉁명스럽게 받고 마른 헌터는 표현도 인색한지 작게 목례를 하고 만다.
‘일만 바짝 하면서 가겠네.’
데면데면한 둘의 모습에 진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인사를 하긴 했지만 그도 딱히 일하면서 쓸데없는 소릴 하는 데에 취미는 없었으니까.
조금 머쓱한 심정을 숨기기 위해서 후드를 덮어쓴다.
‘근데 저쪽은 좀 묘하네.’
진수의 시선은 왜소한 남자에게로 향했다.
분명 인간은 맞는 것 같은데 요괴형 몬스터들과 비슷한 느낌을 줬다.
냄새, 생김새, 기운 그 어떤 것을 봐도 몬스터라는 증거는 없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주의를 할 필요는 있겠어.’
진수가 그를 살피는 사이, 알유가 도착했다.
그는 한 번 졌던 녀석에게 앙갚음을 할 거라는 사실에 꽤 흥분한 듯 보였다.
“자, 다들 오셨네요! 바로 출발합시다. 뭐 빼먹은 거는 다들 없죠?”
“예.”
“에-”
“...”
멀쩡한 대답을 하는 건 진수뿐.
수염 난 남자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일당 헌터들 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종류였다.
적당히 하고 돈이나 벌어가자는 태도.
그래도 뭐라도 대답을 한 건 양반이었다.
다른 한 명은 거의 보이지도 않게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으니까.
“갑시다!”
하지만 알유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듯했다.
기운차게 출발하자고 말하는 그.
빠르게 앞장서서 움직였다.
-콰득!
주선생 앞에서 애완견처럼 인정받으려 하던 모습과는 달리 RD의 간부다운 위용을 보여주는 알유.
몬스터가 나타나면 빠르게 접근해 박투술로 해치웠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용맹했다.
다만 주선생의 설명대로 전투 스타일이 1:1에 특화되어 있어서 여러 마리를 상대할 때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진수를 비롯한 다른 헌터들이 함께 정리하지 않았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듯했다.
“누님 말대로 김진수 헌터랑 같이 오길 잘 했네요!”
알유가 씨익 웃으며 말한다.
아직 필드 보스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진수의 몬스터 감지 능력을 충분히 맛보고 있었다.
“하하, 저도 여기 같이 와서 성과도 내고 좋네요.”
마주 웃으며 답하는 진수.
그가 말하는 성과가 무얼 의미하는지는 그만이 알겠지만 말이다.
“그때 이천시에 갔을 때는 식량 창고들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기다리고 있던데, 화성시에도 그렇게 연결된 거래처가 있는 건가요?”
“아, 화성시는 조금 복잡해요. 수상 몬스터들을 가공해서 만든 물건들이랑 의약품 쪽으로 주로 계약할 예정이거든요.”
알유는 우선 화성시에서 만나기로 한 거래처들을 쭉 이야기했다.
바닷가 쪽과 산업단지 몇 군데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근데 어차피 화성시까지 길 뚫고 나서 제가 알아서 할 거니까 굳이 알고 있을 필요는 없어요.”
“그렇죠? 하하. 화성시 분위기는 또 어떨지 궁금하네요.”
진수는 그냥 말이나 나누기 위함이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다른 잡담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전투와 잡담을 반복하며 이동하다가 알유가 멈춰 섰다.
진수의 [중급 후각]에 물비린내가 느껴졌다.
“모두 잠시 대기.”
알유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두 분은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음... 아, 저기. 저쪽 그늘에서 쉬고 계시면 되겠네요.”
그는 길가에 있는 큰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김진수 헌터는 저랑 같이 가죠. 가서 놈의 본체가 어느 쪽에 있는지만 알려주시고 저쪽으로 가서 합류하시면 돼요.”
그의 지시에 수염 난 사내는 벌써 나무 아래로 이동해 자릴 잡고 누웠다.
왜소한 남자는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알유와 진수를 잠깐 보더니 움직인다.
그들이 커다란 나무쪽으로 향하는 걸 보고는 알유도 걸음을 옮겼다.
물비린내가 풍기는 방향으로.
‘음, 이쯤에서 임무를 받으면 필드 보스를 잡으라고 하겠지?’
진수는 알유의 뒤를 따라가면서 임무를 받았다.
하지만 임무 내용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임무 : 알유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갓 오브 워] 무리 성장
[차원 전이]는 필드 보스보다 알유를 더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으로 판단한 것이다.
덕분에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인지도 미리 점칠 수 있었다.
‘본체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졌다는 말이 사실이었네.’
진수가 [사신의 감각]으로 필드 보스의 위치를 알려주면 둘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알유가 이기겠지만 완전히 지쳐있을 테니 그 때를 노리면 된다.
진수는 그의 계획을 다시 한 번 점검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
-특수임무 발생.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아... 이러면 좀 복잡해지는데...?’
-특수임무 : 안내가 지시하는 몬스터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전이시킨 대상의 특성 중 하나
특수임무가 안내하는 것.
그건 명백히 필드 보스였다.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역한 물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시냇물치고는 상당히 깊은 수심.
탁하고 끈적해 보이는 물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
무언가 부패하여 가스가 발생하는지 간헐적으로 물방울이 퐁퐁 터진다.
“그 자식, 근처에 있어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물길을 내려다보는 두 사람.
진수와 알유였다.
알유는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후각이 뛰어난 그에게 물 썩은 냄새를 맡는 것은 상당한 고역일 것이다.
“저쪽에서 느껴지네요.”
진수가 꽤나 멀찍이 떨어진 위치를 가리켰다.
그의 말에 감탄하는 알유.
저렇게나 먼 곳까지 몬스터를 감지할 수 있다면 대단한 능력이었으니까.
‘이건 [사신의 감각]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차원 전이] 임무가 알려주고 있는 거지만....’
진수가 가리킨 곳에 도착하고 나니 알유가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오히려 냄새가 덜한 곳에 이 자식이 있는 거구나! 계속 움직이고 다니니까 오히려 악취가 덜한 거였어.”
필드 보스의 본체를 파악하는 요령을 알아차린 알유는 진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마워요! 이제 아까 다른 헌터들이 있던 곳에 가서 쉬고 있어요. 저놈만 해치우고 갈게요.”
“예. 조심하시고요.”
“본체 위치를 알았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요.”
자신만만한 표정의 알유.
진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자리를 떴다.
-킁, 킁
알유는 진수가 떠나고 한동안 서서 코를 벌름거렸다.
‘완전히 갔군.’
그는 냄새가 점점 멀어져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끼고는 인간화를 풀었다.
온몸에 짧은 털이 자라났는데 너구리 같은 무늬가 있었다.
머리 위에 뿔이 솟아오르고 얼굴은 주둥이가 튀어나오며 개의 형상이 되었다.
두 발로 서있던 몸은 자연스럽게 네 발로 선 모습으로 변한다.
발톱은 날카롭기 그지없고 커다란 주둥이 안에는 뾰족한 이빨이 가득하다.
“크르륵! 이 역겨운 자식. 오늘은 본때를 보여주마!”
-콰드득 콰드득
변이가 끝난 알유가 앞발로 땅을 몇 번 긁더니 그대로 시내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쏜살같이 빠른 돌진.
수십 미터는 족히 되는 거리를 한달음에 뛰어넘었다.
-쿠르르르 촤아-
알유가 접근하는 것을 알아차린 필드 보스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끈적한 물이 그대로 솟구치는 듯한 외형.
미끄덩한 촉수가 물속에서 튀어나왔다.
그것도 수십 개 이상이.
화성시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는 악명 높은 필드 보스, 그레이트 텐타클의 등장이다.
-휘리릭! 쾅! 쾅!
하나하나가 다리의 기둥 두께인 촉수들이 알유를 향해 짓쳐들었다.
휘둘러지는 공격이 땅을 후려칠 때마다 돌이 깨지고 땅이 패었다.
하지만 알유는 더욱 가속하면서도 놈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캬악!”
바로 옆의 후려치는 촉수를 재빨리 물어서 잡아당기는 알유.
본체를 뭍으로 꺼내려고 했지만 그레이트 텐타클이 물린 촉수를 스스로 끊어버렸다.
-퍽!
그 사이에 다른 촉수가 알유의 등을 내려찍는다.
순간 휘청거린 알유는 바닥을 구르며 후속타를 피했다.
‘빌어먹을... 쉽게 끌려 나오진 않는다 이거지?’
알유는 싸움이 꽤 길어지리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 * *
-터벅터벅
펑퍼짐한 검은색 후드티셔츠를 뒤집어쓴 인물이 휘적휘적 걸어왔다.
후드를 깊게 눌러써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알유와 함께 떠났던 진수의 옷차림이다.
커다란 나무 아래 수염을 기른 사내는 한바탕 오침을 취하고 있다.
빼빼한 남성은 그늘에 앉은 채로 알유가 향한 방향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잠시 흐느적거리며 걸어오는 진수에게로 향했다.
“알유....”
장갑을 끼고 있는 손을 들어 올리며 잠시 말을 끄는 진수.
순간 호칭을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팀...장님이 보스 몬스터 잡을 때까지 대기하라고 하시네요. 하하.”
적당한 호칭을 찾아낸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왜소한 사내의 눈빛이 꽤나 따가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옷차림도, 목소리도, 느껴지는 기운도 진수의 것이었기에 이내 관심을 거둔다.
진수는 괜히 머쓱해져 고개를 더 푹 숙이고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수염 난 사람과 같이 오침을 취하는지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엎드렸다.
-후두둑
그가 엎드리고 나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
마른 사내의 퀭한 시선이 다시 진수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더 이상 요란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알유가 전투를 치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뭔가가 보이는 듯이, 감시를 하는 것처럼.
* * *
“케헥! 헥, 헥, 헥....”
알유가 입을 활짝 벌린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쉰다.
혓바닥까지 내밀고 있는 것이 완전히 지친 모습이었다.
그레이트 텐타클도 어느새 시냇물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끈거리는 촉수다발로 이루어진 몸.
그 중앙에 붉은 빛이 점멸했는데 그게 녀석의 본체인 것 같았다.
수십 가닥의 촉수 중에서 이제 남은 것은 십 수 가닥뿐.
처음의 기운찬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헥, 헥.... 흐읍!”
-쾅!
숨을 고르던 알유가 순간적으로 숨을 참고 다시 달려든다.
녀석의 온몸을 마력이 감싸고 그 자체가 하나의 마력탄이 되어 돌진했다.
-콰드득! 퍽!
땅이 파이고 흙먼지가 비산한다.
공격해오는 알유를 막기 위해 촉수를 뻗는 그레이트 텐타클.
몇 남지 않은 촉수 중 하나가 터져나갔지만 덕분에 돌진 경로를 조금 틀 수 있었다.
-텅-!
탄력 있는 몸체가 알유의 공격에 튕겨져 뒤로 날아간다.
알유는 기습적인 공격이 무산되자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점점 지쳐가는 상황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혹시 전투가 늦어져서 다른 헌터들이 오면 골치 아픈데..... 다 죽여 버릴 수도 있겠지만 김진수란 헌터는 주선생 누님이 꽤 맘에 들어 하는 눈치였고.’
다행히 후각으로 판단해봤을 때 아직까진 그들이 접근하고 있지 않는 듯했다.
그의 코에 맡아지는 건 온통 역겨운 물비린내뿐.
“저놈만 빨리 해치우면 된다는 거....”
-뿌우우우!
다시 한 번 그레이트 텐타클에게 돌진하고자 마력을 끌어올리던 알유.
갑자기 등 뒤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에 마력이 흩어져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기술의 강제 취소에 마력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커헉!”
사지가 바들바들 떨려온다.
바로 뒤에 엄청난 군세가 그를 노리는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그건 그레이트 텐타클도 마찬가지인지 유연하게 흐느적거리던 촉수들이 모두 경직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알유는 정말 자신의 뒤에 굉장한 수의 적들이 나타났다고 여겼다.
감히 뒤로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
-휘이익!
알유의 뒤편에서 창 한 자루가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다.
그레이트 텐타클의 본체를 그대로 꿰뚫는 창.
“끼에에엑!”
촉수다발이 초록색 피를 울컥 울컥 쏟아내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닥에 떨어져있던 촉수들도 그대로 증발한 것처럼 없어졌다.
한바탕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몽롱한 기분이 들며 살며시 등 뒤의 위압감이 감소한다.
‘방금 그 창이 날 노렸다면...?’
-꿀꺽
알유가 마른침을 삼킨다.
공포가 마음을 뒤덮지만 살고자 하는 욕망과 옅어지는 압박에 고개를 조금씩 돌렸다.
그 순간.
-뿌우우우!
다시 한 번 강력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깨갱!”
걷어차인 개처럼 비명을 지르며 몸을 들썩이는 녀석.
꼬리를 다리 사이에 숨기고 귀를 완전히 뒤로 젖힌 상태에서 앞으로 몇 바퀴 굴렀다.
-위이이잉!
앞발로 두 눈을 가리고 구르던 알유의 귀에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모터가 거칠게 돌아가는 듯한 소리였다.
“무슨...?”
앞발을 슬며시 내린 녀석의 눈앞에 거세게 돌아가는 톱날이 보였다.
-콰드드득!
“케엑!”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오른쪽 눈부터 주둥이까지 전기톱의 먹이가 되었다.
엄청난 고통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아, 발버둥 쳐봤자 고통만 길어질 뿐이야. 친구 곁으로 보내줄 테니까 가만히 목 내밀어라.”
알유는 하나 남은 왼쪽 눈으로 적들을 확인했다.
“혼자야...?”
분명히 적어도 수천은 되는 군세가 느껴졌는데 막상 눈으로 보고 나니 적은 한 명이었다.
검은색 방어구에 코트를 걸치고 얼굴엔 괴상한 호랑이 가면을 쓴.
이상한 점은 바로 코앞에 있음에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혼자라니, 내 상태창에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 하면 실례지.”
괴한은 아무래도 정신이 온전치 않은 듯했다.
“인간 따위가 감히 사술 따위로 날 우롱하다니...!”
잔뜩 성이 난 알유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적이 하나뿐인 걸 알았으니 직전의 굉음은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인다!”
알유는 매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
그 힘을 받아 도약하며 날카로운 앞발을 세차게 휘둘렀다.
-터엉!
자신의 앞발이 놈을 짓뭉개버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됐다.
마치 고무로 된 얌체공을 후려친 것처럼 강한 탄성이 느껴졌다.
알유의 앞발에 맞고 튕겨져 나간 그는 허공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어...?”
냄새도 나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 당황한 알유.
“이 정도 거리에서도 냄새를 못 맡는구나? 오케이.”
전기톱에 당해 시야가 가려진 오른쪽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콰득!
갑자기 도끼가 날아와 다시 알유의 오른쪽 상처를 찍는다.
그대로 우악스럽게 끌어당기더니 귀에 입을 가져다 대는 적.
-뿌우우우!
직전보다 더욱 강하고 커다란 소리가 귀를 통해 들어와 뇌를 울렸다.
가까이에서 터져 나온 탓도 있겠지만 대비하고 있던 것보다 더욱 큰 마력이 담겨있었다.
-우드득!
지근거리에서 터진 [전장의 뿔나팔]에 알유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진수가 놈의 목을 부러트려버렸다.
-알유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알유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갓 오브 워] 무리 성장
-[갓 오브 워]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2, 민첩 +3, 내구 +1, 마력 +2
그레이트 텐타클과 싸우던 알유를 습격한 건 진수였다.
공허룡 코트를 입으니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왔음에도 알유가 냄새를 맡지 못하는 걸 확인했다.
그 모습을 보고 싸움 중간에 난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레이트 텐타클의 [탄성 신체] 특성이랑 마력이 안 올랐으면 위험할 뻔했어.’
먼저 그레이트 텐타클을 처치하면서 임무 보상을 받았다.
덕분에 알유의 앞발 후리기를 맞고도 충격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장의 뿔나팔]을 강화해준 건 주술진을 보고 성장한 키약트르가 보내준 마력.
아주 근소하지만 직전보다 강하게 기술을 사용했기에 알유를 완전히 패닉 상태로 만들었다.
“알유 이름은... 강다리는 이미 야구자한테 줬고. 털이 너구리 같았으니까... 너굴맨 정도로 하자.”
-알유 [너굴맨]이 [갓 오브 워] 무리에 합류합니다.
‘친했던 강다리 곁으로 못 보내줘서 미안하네. 그나저나 그레이트 텐타클은 이름을 뭐로 지어주지?’
진수는 상태창을 열어 그레이트 텐타클의 그림을 보았다.
촉수다발 중앙에 붉은 빛.
그림으로 보니 붉은 눈까지 그려져 있었다.
본체 위치에 눈 역할을 하는 기관도 함께 있는 듯했다.
다른 전이자들은 몬스터였어도 그림이 되면 귀여운 모습으로 변했는데 그레이트 텐타클은 어떻게 커버가 되지 않았다.
여전히 징그러운 형태.
‘차라리... 얘 이름을 아프로디테라고 지어줄까?’
진수의 뒤틀린 위트가 다시 발동했다.
* * *
“아주 잘 했어요! 진수씨를 보낸 이유가 그게 아니었는데.... 정말 역할 이상으로 잘 해줬고, 정말 미안해요.”
RD로 돌아온 진수를 보며 주선생이 말했다.
감사 인사와 사과를 전하는 그녀를 보며 그는 속으로 음흉한 웃음을 터트렸다.
‘크흐흐흐.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겉으로 가식적인 미소를 짓는 진수.
RD로 복귀하기 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고-[융합]의 효과로 [울버린]과 [상급 악력]과 [상급 화염 내성]이 합쳐집니다.
-[불곰] 특성이 생겼습니다.
-[융합]의 효과로 [유연체질]과 [탄성 신체]가 합쳐집니다.
-[탄성체질] 특성이 생겼습니다.
알유를 처치하고 나니 [융합] 특성이 작용하며 몇몇 특성들을 합쳐주었다.
신체능력이 월등히 증가한 게 느껴진다.
‘이제는 뼈까지 휘네...?’
많이는 아니지만 힘을 주니 곧게 뻗은 뼈가 살짝 살짝 휘었다.
신체부위 전체에 탄성이 생긴 듯했다.
충격에 훨씬 강해지고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는 데에 유리해진 것이다.
또한 [불곰] 특성으로 근력도 더 강해지고 몸 자체는 내구성도 올라갔다.
‘지금이라면 알유나 가국이랑 다른 꼼수 없이 맞붙어도 이길지도 모르겠다.’
“참,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돌아가야겠다.”
새로운 힘을 만끽하던 진수는 시간이 상당히 흘렀음을 깨달았다.
그의 계획은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알유를 해친 게 자신이라는 걸 들킬 수도 있는 상황.
의심받지 않게끔 뒤처리를 해야 했다.
공허룡 코트를 단단히 여미고 다른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
‘아직 분신이 해제되지 않은 걸로 봐선 안 들킨 모양이야.’
알유를 습격하기 전, 그레이트 텐타클의 위치를 알려준 진수는 멀찍이 떨어져서 [분열]을 네 번 사용했다.
그러고 전날 조민준과 헤어진 뒤 준비한 특수 마네킹 위에 옷을 입혔다.
일부러 입고 온 펑퍼짐한 후드티셔츠.
덕분에 체형이 조금 바뀐 게 드러나지 않았다.
분신들이 특수 마네킹을 조종해서 두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게 만들었다.
‘걷는 꼴이 조금 우습지만... 다들 예민한 편은 아닌 것 같으니 괜찮겠지.’
휘적휘적 걸어간 마네킹 진수는 나무 아래 도착하자마자 엎드렸고, 동향을 파악할 분신 하나만 남겨놓고 모두 [분열]을 해제한 것이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마네킹과 바꿔치기를 할 차례.
진수는 멀리서 나무 아래를 살펴봤다.
“아, 저 양반은 왜 일어서 있는 거야?”
왜소한 남성이 인상을 쓴 채로 서있었다.
알유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이제는 마력 능력치가 65나 되니까... 잘하면 가능하겠다.’
진수는 하는 수 없이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투명화]를 사용했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내달려 엎어져있는 분신에게 달려갔다.
빼빼한 사내에게 들키지 않고 접근한 그는 두뇌를 풀가동했다.
[유체화]를 사용해 마네킹과 겹쳐지는 동시에 [분열]을 해제하고 마네킹과 방어구, 공허룡 코트를 [차원의 틈]에 집어넣는다.
-슈슉!
순간적으로 들리는 소리에 마른 남자가 뒤를 돌아본다.
그의 눈에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키는 진수가 보였다.
“어휴, 너무 잤더니 몸이 찌뿌둥하네요. 알유 팀장님은 아직 안 오셨어요?”
자연스럽게 너스레를 떠는 그.
왜소한 헌터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진수를 의심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휴, 안 들켰네. 근데 이 사람은 어떻게 입을 한 번도 안 여냐. 혹시 말을 못 하는데 내가 오해를 하고 있나?’
이쯤 되니 무뚝뚝한 사람이 아니라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한번 어떻게 되고 있나 잠깐 보러 갔다 오실래요? 위치는 제가 아니까.”
진수의 제안에 그는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자고 있는 수염 헌터를 잠시 두고 두 사람은 알유가 싸우던 위치로 향했다.
“어, 뭐지?”
격렬한 전투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
땅에 파이고 긁힌 자국이 가득하다.
하지만 알유도, 그레이트 텐타클도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전후사정을 모두 아는 진수는 몹시 어색한 연기를 펼쳤지만 빼빼한 사내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주변을 계속해서 살필 뿐이었다.
“아, 이거 곤란하네. 전 이번 운송로 구축 작업에서 공 좀 세워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없어져버리면 어떡하라고....”
진수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알유 팀장님 좀 기다려봤다가 안 오면 그냥 우리끼리 운송로 뚫을까요? 솔직히 여기 보스 제외하면 이제 빡센 몬스터는 안 나올 텐데....”
마른 헌터가 진수를 지그시 바라본다.
그의 눈빛은 굉장히 무미건조했다.
눈이 아니라 무슨 카메라 렌즈 같은 느낌이다.
다시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
“그래요. 그럼 일단 돌아가서 기다려봅시다.”
두 사람은 다시 대기하던 나무로 돌아갔다.
* * *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도 안 오네요. 그냥 출발하죠.”
진수가 다른 헌터들에게 말했다.
“에- 그럽시다. 괜히 길 못 뚫으면 그거 핑계 대고 돈 안 줄 수도 있으니까.”
수염 난 헌터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의 관심사는 그저 RD에게 활동 장려금을 받는 것뿐인 듯 보였다.
“....”
빼빼한 사내도 동의하는 고갯짓을 한다.
만장일치로 더 이상 알유를 기다리지 않기로 결정됐다.
진수는 자연스럽게 선두로 나서며 그들을 이끌었다.
이미 운송로 뚫을 경로를 파악하고 왔으니 빠르게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진수의 지시하에 알유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일이 진척됐다.
“휴우. 고생들 하셨습니다.”
이윽고 화성시에 도착한 그들.
“거, 수고했어요.”
수염 난 헌터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쉬러 갔다.
“알유 팀장님한테 들어보니까 화성시 도착해서 미리 만나기로 한 거래처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RD 소속으로 온 거니까 마무리까진 지어봐야겠네요.”
진수는 이동 중에 알유에게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거래처에 얼굴도장까지 찍기로 했다.
당장 RD에 인정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추후 운송로 사업을 빼앗았을 때 보다 쉽게 거래처를 뚫기 위해서였다.
“....”
빼빼 마른 사내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어... 같이 가신다는 건가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
진수로서는 같이 움직이면서 증인이 되어줄 인물이 있으면 좋았기에 순순히 동의했다.
그들은 화성시에서 RD와 거래하기로 한 곳들을 함께 돌아다녔다.
‘근데 이 사람... 은근히 거래처 위치를 꿰고 있는 거 같은데...?’
이천시와 다르게 화성시는 들러야 하는 곳이 여러 군데였다.
알유에게 말로만 들었던 진수가 빼먹거나 헷갈려할 때면 왜소한 헌터가 넌지시 알려주었다.
분명 알유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가 경청하는 기색은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화성시에서 알유가 했어야 하는 업무까지 모두 처리한 두 사람.
그들은 긴 하루를 마치고 잡아둔 숙소로 향했다.
* * *
RD 본사로 돌아온 진수.
출발할 땐 넷이었는데 돌아올 땐 혼자 복귀했다.
알유는 사라졌고 나머지 둘은 화성시에서 알아서들 움직이겠다고 헤어진 것이다.
그가 도착하자 주선생이 마중을 나왔다.
“진수씨! 이야기는 들었어요. 알유가 갑자기 없어져서 고생했다면서요? 부탁한 내가 면목이 없네요.”
아마도 다른 두 헌터 중 한 명이 먼저 복귀해서 보고를 한 듯했다.
‘그 마른 양반인 거 같은데....’
수염 헌터는 진수가 출발할 때까지 숙소에서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다.
왜소한 사내는 문자 메시지를 남겨놓고 사라졌으니 진수보다 먼저 도착해 RD에 이야기를 한 게 누구인지는 자명했다.
“기왕 맡은 건 끝장을 봐야죠, 하하. 근데 제가 괜시리 나서서 거래처에 뭐 실수한 건 없는지 모르겠네요.”
진수가 맘에도 없는 겸양을 떨었다.
겸손하지만 일을 잘 한다는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이다.
“아주 잘 했어요! 진수씨를 보낸 이유가 그게 아니었는데.... 정말 역할 이상으로 잘 해줬고, 정말 미안해요.”
그녀의 말에 진수는 가볍게 미소를 짓는다.
“에이, 그냥 할 일을 한 건데요. 너무 추켜세우시지 않으셔도 돼요.”
사실 진수로서는 자신이 RD의 일에 최대한 협조한다는 이미지와 증인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의심이나 피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좀 반응이 과한 것 같기도 한데.... 뭐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 * *
-쾅!
“알유가 없어진 현장에 고(蠱)를 붙였었다?”
평천이 회의실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잔뜩 성이 났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벌레를 주술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고(蠱).
RD에서는 주로 인간에게 고를 넣어 조종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진정하시오. 지금 중요한 건 알유 형님이 사라졌다는 사실 아니오?”
“가국이놈도 제멋대로 숨었다고 했지.”
평천의 말에 답하는 이들.
앞서 던전에서 요괴들을 데리고 다니던 덩치 큰 사내, 전춘성과 전투 테스트를 보던 도사 차림의 노인 허원화였다.
둘은 강력한 기세를 숨기지 않고 내뿜는 평천의 앞에서도 태연자약했다.
“요즘 형님들 실수가 잦아요. 우리 입장에서 당연히 사태 파악에 힘써야 하지 않겠소?”
전춘성이 능글맞게 말했다.
“애초에 누구 덕분에 인간들 사이에서 활개치고 다닐 수 있는지 항상 기억을 해야지. 꼬리에 불 붙은 망아지처럼 날뛰어서야.... 쯧쯧.”
초라한 수염을 검지와 엄지로 비벼 모양새를 다듬던 허원화가 혀를 찼다.
그는 애초에 요괴형 몬스터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을 반기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렇게 말하는 네놈들은 뭘 하고 있었나. 본토에서 도망치듯 이 작은 땅덩어리로 몰린 주제에... 다시 예전의 세를 되찾을 생각을 해야지!”
“에잉! 무식한 소리. 멍청한 계집년으로 시선을 돌리고 여기 한국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만든 공이 누구한테 있는데? 아무리 너희 요괴놈들이 강하다 해도 이 나라 전체가 적대시하면 당해낼 수 없다는 걸 생각해야지. 지금 설치고 다닐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나 알아?”
평천과 허원화가 서로 으르렁거렸다.
“자자, 이렇게들 싸워봤자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자, 고가 보고 느낀 것을 같이 보시고 우선 상황 파악부터 해봅시다.”
전춘성을 과열되는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그의 말에 허원화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을 한 번 딸랑, 흔들었다.
그러자 회의실 문을 열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말이 없던 왜소한 헌터였다.
“좋아, 네가 본 것을 한 번 같이 보자꾸나.”
허원화는 품에서 누런 종이를 꺼내더니 붓으로 슥슥 주술진을 그려냈다.
총 네 장의 부적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한 장은 빼빼 마른 사내의 이마에, 나머지는 평천과 허원화, 전춘성의 이마에 붙었다.
-화륵!
네 부적에 먹빛 불꽃이 동시에 타올랐다.
왜소한 헌터는 입을 활짝 벌렸는데, 그의 목구멍 속에 커다란 벌레가 얼핏 보였다.
몇 분이 지나고, 부적이 잿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흥!”
“음....”
“이런...!”
셋의 표정이 제각기 달라졌다.
이미 고를 통해서 한 차례 상황을 봤던 허원화는 코웃음을 친다.
전춘성은 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평천은 더욱 화가 난 듯했다.
“알유가 사라질 때....”
분노를 꾹 누르며 입을 여는 평천.
“마치, 계약이 해지되어 돌아가는 것 같지 않았나?”
“아... 저도 사실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굳이 알유 형님의 계약을 끊어버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순순히 돌아갈 분도 아니고요.”
전춘성이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말한다.
“그건 알 수 없지. 너희 인간들이 우리를 은연중에 경계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평천과 전춘성의 반응을 보며 허원화는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가 보기엔 그냥 알유가 전투를 마치고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듯했다.
“보십시오. 제가 감히 그랬다면 지금 이 자리를 만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허둥대는 전춘성.
그가 보기에도 알유가 사라지면서 느껴진 것은 소환문을 거쳐 요괴들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과 유사점이 많았다.
“너희들이 날 우롱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애초에 알유에게 고를 동행시켰다는 건, 다른 아우들에게도 감시를 붙였을 수 있다는 말이지 않나.”
RD 내부의 인간들과 요괴들 사이 깊은 알력의 역사.
그 덕분에 알유가 사라지는 현장에 진수가 있었음은 의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알유의 공백을 최선을 다해 채웠기에 RD의 간부들에게 호의를 사는 기회가 됐다.
“일단 이번 일은 증거가 없으니 차차 더 알아보는 걸로 하지. 그리고, 예전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한국의 헌터를 간부급으로 기용하자는 안건. 좀 더 빠르게 도입해야겠어.”
평천은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쏘아봤다.
동시에 그는 오른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마치 악수를 했던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이.
좋은 소식
“키엑!”
진수가 망치를 휘둘러 고블린을 처치했다.
그는 화성시에 다녀온 이후로 며칠간 운송로 안정화 작업에 투입되었다.
운송로 주변의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설치된 석판이 자리 잡을 때까지 지키는 등의 업무였다.
‘이런 간단한 일을 하는 데도 활동 장려금을 두둑하게 챙겨주네.... 운송로 구축 사업에 돈을 엄청 쏟아붓는구나.’
주변에서 함께 고블린을 사냥하고 있는 헌터들을 훑어본다.
등급에 따라 차등은 있겠지만 지금까지 뚫은 모든 운송로에 이 정도 인력이 투입되었다면 진수가 작업에 참여한 기간만 해도 억 단위의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흐흐, 군침이 싹 도네.’
이렇게 많은 투자가 들어간 사업을 날로 먹을 생각에 진수는 절로 신이 났다.
RD의 입장에서는 운송로 사업과 마약 유통까지 할 생각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
이 길이 잘 만들어지면 엄청난 수익이 나리라 예상할 수 있었다.
“이봐요, 김씨! 멍때리지 말고 빨리 정리합시다!”
“아, 하하. 예.”
진수는 상념을 거두고 망치를 휘둘렀다.
이제 고블린 처치하는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잠깐 주춤했었지만 이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몬스터들을 해치웠다.
-띠링
[주선생 : 진수씨, 요즘 운송로 작업에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들었어요. 좋은 소식이 있으니까 내일 본사로 방문해줘요.]
삽시간에 몬스터들을 정리한 진수는 핸드폰에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좋은 소식...?’
RD의 내부 정보를 파악할 기회를 노리고자 운송로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던 그.
의도한대로 RD에서 신임을 얻기 시작한 듯했다.
진수는 씨익 웃으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뭔가 중요한 일을 맡기려고 하나? 기대되는데.’
* * *
“... 진수씨를 그냥 운송로 안정화 작업이나 던전 활동으로 돌리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저희 간부진의 직속으로 직급을 올리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거든요. 진수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RD 본사에 찾아온 진수는 주선생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설명은, 진수를 준간부급으로 진급시키고 RD 간부들이 직접 지시하는 업무를 보게 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좋은 제안이었다.
‘지난번 알유한테 붙여서 보낸 것처럼 한 번 특별한 업무나 시키려는 줄 알았더니....’
화성시에 다녀오고 활동 장려금을 3천만 원이나 받았었다.
그래서 비슷한 일을 시키면서 좋은 소식이라고 표현한다고 여겼는데 정말 좋은 소식이었던 것이다.
“저야 감사하죠. 하하. RD에 뼈를 묻을 각오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게 내 뼈는 아니겠지만.’
기쁜 듯한 웃음을 지으며 답하는 진수.
그의 대답에 주선생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좋아요. 그러면 상부에 그렇게 의견을 올릴게요. 아마 금방 연락이 갈 테니까 당분간은 운송로 작업에 참여하지 말고 대기하세요.”
그녀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작성했다.
화면에다가 서명까지 하는 걸로 봐선 전자 결재 같은 것을 하는 듯했다.
‘여기도 시스템이 점점 갖춰지고 있구나.’
처음 던전 활동을 주력으로 움직일 때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이 되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슬슬 회사 같은 절차가 생기고 있었다.
아직 미흡한 부분도 많긴 하지만 헌터 업무를 보는 단체 중에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RD 정도만 해도 상당히 앞선 운영 틀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진급하는 경우는 진수씨가 처음이에요. 다른 헌터들에게 시범 사례가 될 테니까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선생은 가볍게 악수를 한 뒤 자리를 떠났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 직후 울리는 전화벨.
핸드폰 화면에 표시된 번호는 저장되어 있지 않은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김진수 헌터. 저 황계문입니다. 면접 때 봤었던.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면접 때와 화성시에 다녀왔을 때 봤던 황계문이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주선생 누님이 제안한 진급, 수락하셨죠?
“네, 방금이요.”
주선생이 막 떠나간 참인데 벌써 파악이 된 모양이다.
-저희 간부 분들이 김진수 헌터를 좀 보고 싶다고 하시네요. 4층으로 올라오시겠어요?
그렇게 하겠다 답한 뒤 전화를 끊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띵
4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황계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갑작스러웠죠? 죄송해요. 사정이 조금 있어서.... 이동하시죠.”
황계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하고는 조금 앞장서서 걸었다.
4층에 있는 회의실로 가는 줄 알았더니 계단 통로로 향한다.
그대로 계단을 올라 5층으로 가서는 한 방에 들어갔다.
“이 녀석이었군?”
진수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좌중을 슬쩍 훑어보는 진수.
제법 큰 집무실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두 명은 이미 진수가 본 적 있는 인물들이다.
“반갑소. 나는 초면이네.”
조선족 말투가 꽤 강한 사내.
나무로 된 분신을 만들어 요괴형 몬스터들과 던전을 돌던 전춘성이 인사를 했다.
그가 입을 열 때 진수의 등줄기엔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다.
혹시라도 그가 자신을 알아볼까 긴장이 되었던 것이다.
‘하긴 그때 난 가면을 쓰고 있었지.’
“진급시키는 걸 좀 더 고민해볼 걸 그랬어!”
전춘성의 옆에서 입을 삐죽 내미는 노인은 허원화였다.
누런 도복을 입고 있는 그는 여전히 긴 수염과 볼품없는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전투 테스트 때 그가 귀신형 몬스터들을 해치웠던 걸 아직 마음에 담고 있는 듯 보였다.
“저 친구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조선족 말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남성이 입을 열었다.
작은 키, 둥글둥글한 몸매.
이마는 제법 넓고 M자 탈모가 진행 중인 것처럼 보였다.
가느다란 모발을 깔끔하게 빗어 넘겨 말총머리로 묶은 모습이다.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별 일은 아니오. 내가 애써 만든 작품들을 죄다 망가트려놔서....”
허원화의 말에 키 작은 사내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허형의 작품에 손을 쓸 정도면 능력은 확실히 괜찮다는 거군요. 허형 도술은 일품이니. 허허.”
은근히 노인을 치켜세우는 그.
그 말에 허원화는 기분이 좀 풀린 듯했다.
“그 말은 맞지요. 흠흠.”
가볍게 헛기침을 하는 허원화의 모습을 보고는 키 작은 남성이 시선을 다시 진수에게로 돌렸다.
“사람을 세워놓고 너무 우리끼리만 이야기를 했군. 앉으시게. 계문이도 같이 앉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꽤 고루한 말투를 썼다.
“나는 적룡의 대표 주해응이라고 하네.”
“아, 네. 김진수입니다.”
“난 전춘성이요.”
“귓구멍이 뚫렸으면 내 이름은 들었겠지!”
서로 통성명을 한다.
“먼저, 일선에서 많은 수고를 해줬다고 들었네.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주해응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항상 고마움이라는 건 말로만 표해선 안 되지. 어디 보자....”
그는 집무실을 살펴보다가 깜빡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아, 여기가 내 집무실이 아니었군.”
‘뭐야? 이 아저씨 쇼맨십이 좀 과하시네.’
뭐라도 줄 것처럼 이야기를 하던 주해응이 미안하다는 듯 웃는다.
진수는 기대를 했다가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뭐, 사람이 항상 말한 걸 다 지킬 순 없죠.”
진수가 살짝 심사가 꼬인 말투로 이야기했다.
말한 의미는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었지만 담은 의도는 말을 해놓고 지키지도 못하냐 책망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주해응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살짝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하고, 흥미로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진수의 발언에 생각이 달라진 건 분명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주해응이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뺐다.
“대표님, 그걸 주시려고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전춘성이 놀라서 묻는다.
“그래. 어쩌면 우리 적룡의 큰 인물이 될 수도 있는데 이 정도를 아까워할 건 없지.”
“하지만 그건 좀 과한....”
“그만.”
만류하려는 전춘성을 한 마디로 일축하는 주해응.
그는 반지를 진수에게 내밀었다.
“김진수라고 했지? 이거 받게.”
그의 손 위에서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은빛 광택을 발하는 반지.
꽤나 두꺼운 형태에 일반적으로 보석이 있는 자리에는 큼지막한 용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감사....”
“그 전에. 하나 알아둬야 하네. 이 반지를 가지고 있는 의미를.”
진수가 반지를 받으려고 하는데 주해응이 손을 오므리고는 말을 덧붙였다.
“이건 내 인장반지야. 이걸 소지하고 있는 자는 나, 주해응의 사람이라는 뜻이지. 그건 적룡의 모두가 알고 있을 게야. 이 반지를 가지고 있으면 그 순간부터 듣고 말하는 모든 것이 내 귀로 들어온다는 태도로 지내야 할 걸세.”
주해응이 뜨거운 눈빛으로 진수를 쏘아봤다.
말 자체는 질문이 아니지만 그 속에 숨의 의미는 자신의 사람이 되겠냐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은, 요괴들이랑 사람들 사이의 알력 때문이겠지.’
진수는 이 상황을 통해서 RD의 인간 간부들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아차렸다.
다시 슬그머니 손을 풀어 반지를 드러내는 주해응.
그의 눈빛을 받으며 진수는 반지를 취했다.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오른쪽 검지에 낀다.
“훗.”
주저 없는 진수의 행동이 주해응은 꽤 마음에 들었다.
“좋군. 그 반지는 언어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네. 외국어 통역 기능부터 언어와 관련된 기술을 강화시켜주는 기능이 있지. 앞으로 외국에 나갈 일도 생길 수 있으니까 유용하게 사용하게.”
하급 요괴들에게 나눠주던 부적의 통역 기능이 바로 이 반지의 능력을 본떠서 만든 것이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진수는 왼손으로 슬쩍 반지를 쓰다듬었다.
‘통역 기능만 붙어도 가치가 엄청 높은 아이템인데.... 이런 걸 선뜻 내놓네.’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이득을 봤다.
그냥 돈이라도 몇 푼 줬으면 하는 마음에 살짝 비꼬아봤는데 아이템을 꺼낸 것이다.
“감사는 충분히 표한 것 같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지금 적룡의 상황은 퍽 복잡해.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장직의 간부들과 사무직 간부들 사이에 갈등이 있어.”
‘현장직은 요괴들, 사무직은 인간들을 뜻하는 거겠지.’
RD의 인간 간부들이 진수를 부른 이유에 대해서 꽤 길게 이야기를 했다.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현장직에 가까운 일을 하겠지만 인간들 편에서 일하라는 거네.’
거기에 가능하다면 요괴들의 신임을 얻어 몰래 감시하는 역할까지.
“잘 알겠습니다. 맡겨주신 역할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진수는 그들에게 믿음직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방에서 나왔다.
‘일이 잘 풀리고 있네. 흐흐. 그나저나 이건 왜 안 빠져?’
씨익 웃으며 밖으로 나온 진수는 오른손 검지에 낀 반지를 당겨보았다.
하지만 빠지지 않는 반지.
‘역시.... 아무 조건 없이 좋은 물건을 넘겼을 리가 없지.’무언가 제약이 걸려있는 물건임이 분명했다.
-슈슉!
[상급 악력]의 힘으로도 뺄 수 없던 반지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차원의 틈]에 집어넣으니 간단하게 착용이 해제된 것이다.
‘아이템에 걸린 제약이 차원 단위의 힘을 거스를 순 없지.’
-슈슉!
손바닥 위로 다시 주해응의 반지를 불러낸다.
진수는 [차원의 틈]을 활용하면 제약은 최대한 피하고 원하는 기능만 빼먹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진수씨, 여기 있었네요.”
반지를 살피고 있는 그를 주선생이 발견했다.
찾고 있었다는 듯 이야기하는 그녀.
“지금 시간 괜찮아요?”
“예, 별 일은 없는데 무슨 일이세요?”
“평천 오라버님을 비롯해서 몇 분이 진수씨를 좀 보고 싶다고 해서요.”
주선생이 몇 분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필히 요괴 쪽 간부들이라는 뜻이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용한 헌터.
인간과 요괴 그 어떤 쪽에도 아직 속하지 않은 중립적인 위치.
양쪽에서 굉장히 탐낼 이유가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인간들한텐 반지를 받았고... 저기는 미끼로 뭘 주나 볼까?’
진수는 순순히 주선생의 요청에 응해 그녀를 따라갔다.
정신승리
“주해응 대표님을 만났군요.”
주선생이 진수의 손에 들려있는 반지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적룡, 즉 RD 소속인 자들은 반지만 봐도 주해응과 관련되었다고 알 거라는 말 대로였다.
“예, 이걸 주시더라고요. 대표님께서 자신을 따를 생각이 있으면 끼라고요.”
진수는 인간 측 간부들과 나눈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내용으로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요?”
그녀가 아직 착용하지 않은 반지를 보며 묻는다.
“그게 참 고민이에요. 제가 하는 일은 현장직에 가까운데 말이죠.”
반지의 구멍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건드린다.
그 모습에 주선생이 움찔거렸다.
“우선 지금 가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듣고 선택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주선생은 그와 주해응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을지 짐작이 되는 듯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그 반지를 착용하게 된다면 항상 말조심을 하는 게 좋아요.”
“말조심이요?”
“반지를 낀 사람이 듣고 말한 것들은 모두 본래의 주인에게 들어가게 되거든요. 믿음의 증표라고 주는 물건에 감시를 하는 기능이 있다니. 참 재밌죠?”
그녀는 고소를 머금었다.
‘한 번 끼면 벗겨지지 않고 말하고 듣는 걸 도청한다.... 아주 더러운 수작이었네. 역시 주선생한테 보여주길 잘 했어.’
진수는 손에 들고 있던 반지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이미 [사신의 감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반지를 꺼내들고 있었던 이유가 있다.
아직 인간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
하지만 주해응이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표시.
자신에게 호의적인 주선생을 통해 혹시 반지의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나 더. 그 반지는 분명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데, 그걸 받은 사람들은 여럿이었어요. 진수씨는 머리가 좋으니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죠? 그럼 잡담은 여기까지만 하고 빨리 가죠.”
주선생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이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진수가 처음 RD 면접을 봤던 회의실.
그곳에 총 여섯 명의 인물들이 앉아있다.
진수와 RD의 요괴 간부 다섯.
주선생과 평천은 이미 몇 번 대화까지 나눠본 사이였고, 그 외에도 사업 설명회에서 얼굴을 봤던 이들이다.
“주선생이 그렇게 칭찬을 한 것 치고는 꽤 평범해 보이는데?”
외형적으로는 어떤 형태의 요괴인지 알아보기 힘든 자가 진수를 보고 말했다.
그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진수를 살폈다.
‘이쪽은 생긴 건 평범한데 기운이 무시무시하네....’
평천과 견주어 봐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능력적인 부분은 그리 걱정 안 해도 된다, 제천.”
그의 말에 답한 것은 평천이었다.
“의견을 낸 것은 주선생이지만 나도 인정을 한 사안이니까.”
“아, 평천 형님이 그렇다고 하시면 의심의 여지가 없네요!”
제천이라 불린 자가 말하니 다른 두 인물도 고개를 주억거린다.
하나는 뾰족한 이빨이 촘촘히 난 사내였고 하나는 후덕한 인상의 남성이었다.
“네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RD 내부는 꽤나 복잡한 관계가 얽혀있다.”
이견이 없어지자 평천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인간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요괴와 인간들 사이의 갈등 구조를 두루뭉술하게나마 설명하려고 했다.
“평천 오라버님. 주해응 대표님이 이미 진수씨를 만났다고 해요. 그리고 정황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를 설명한 것 같아요.”
주선생이 설명을 시작하려는 평천을 저지했다.
아 그렇군 하는 표정이 되는 평천.
“그리고, 인장 반지를 주었더라고요.”
“뭣?”
그녀의 말에 표정이 굳으며 진수의 손을 살핀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에는 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본토에 있을 때처럼 선택을 당장 강요하지는 않은 모양이에요. 대표님도 그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죠. 상황 설명을 하고 반지를 건네줬다고 하네요.”
진수는 그녀의 말이 신빙성을 얻도록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다.
“역시 형님이군. 항상 행동이 빨라.”
평천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형님...? 아무리 주해응이 대표라고 해도 평천 스스로 아래를 자처할 정도였나?’
진수는 내심 놀랐지만 표정을 숨겼다.
“그나저나.... 이미 뇌물을 먹여놓으셨다 이거지. 우리도 미리 준비를 해놔서 다행이군.”
-쿵!
평천이 뾰족한 이빨을 지닌 이에게 눈치를 주자 커다란 알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이게...?”
“여기 복해 녀석이 바닷가에서 운송로를 뚫다가 시 서펜트를 발견하고 눈이 돌아가서 이탈을 했었거든. 거기서 이 알을 찾아냈다고 하더군. 인간들 사이에서는 큰돈이 된다고 들었다. 난 누구처럼 속 좁게 선택을 하고 말고에 관계없이 그냥 선물로 주지.”
정말 시 서펜트의 알이라면 그 값이 몇 억 원은 나간다.
그리고 몬스터의 알이라면 진수에게는 금액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그런 것을 그냥 선물로 주겠다는 것이다.
“제게 어떤 걸 바라시는 건가요?”
진수는 평천을 보며 물었다.
“이번에 화성시로 향할 때 알유와 동행했다지?”
순간 뜨끔한 진수.
이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알유가 사라진 것처럼 가국도 종적을 감췄다. 물론 저 인간들이 우릴 해칠 이유는 없지만, 이 일로 우리 입지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지. 내가 큰 걸 바라는 건 아니다. 형님한테 받은 반지를 껴도 상관이 없어. 그저 만약 그들이 우리를 적대하는 정황이 보인다면 신호만 주거라. 어차피 너도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평천이 보는 한국의 헌터들은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RD에 들어온 인물들은 더더욱.
그렇기에 진수도 마찬가지로 돈으로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툭, 툭
“그러면 앞으로도 이런 선물을 자주 받을 수 있을 거다.”
그는 손바닥으로 시 서펜트의 알을 몇 번 두드린 후에 진수에게 건넸다.
“알겠습니다. 저도 소속된 단체 분들이 모두 평화롭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진수는 평천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듯 웃으며 시 서펜트의 알을 챙겼다.
‘이거 잘하면.... 중간에서 술수 좀 부릴 수 있겠는데?’
인간 쪽 간부들과 만났을 때, 처음으로 임무를 하나 받았다.
현장직, 즉 요괴들에게는 알리지 말라는 말과 함께.
진수의 머릿속에 이번 일을 이용할 방법들이 떠올랐다.
* * *
-시 서펜트 [풍천장어]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1
요괴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진수는 먼저 시 서펜트 알을 부쉈다.
알 형태로 전이된 녀석의 이름은 풍천장어라고 지어줬다.
드레이크 후라이의 경우에는 간장과 막야가 돌봐줄 수 있었지만 풍천장어는 다른 전이자가 없는 칼날바다라는 곳으로 전이가 됐다.
그래서 50골드를 사용해 [성장촉진] 특성을 보내준 결과, 빠르게 성장하며 보상을 보내오고 있었다.
‘50골드를 써서 능력치만 거의 스무 개 가까이 오르고 골드도 10골드 회수했으니 완전 남는 장사지.’
풍천장어는 금방 알에서 부화하더니 두 번의 탈피를 거쳐 이제는 거의 성체의 모습이 됐다.
‘이 정도면 이제 신경 그만 써도 되겠다.’
진수는 상태창을 닫은 후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밤 11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휴식을 취할 즈음 그는 집 밖으로 나섰다.
RD의 인간 간부들이 시킨 업무 때문이었다.
“아무리 비밀스러운 일이라고 해도 굳이 밤에 할 필요가 있나?”
툴툴거리며 이동하는 그.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의정부 쪽에서 어떤 물건을 받아오는 것이다.
진수는 지하철을 타고 의정부로 향했다.
거의 막차다보니 사람도 별로 없고 한산하다.
‘간만에 핸드폰 게임이라도 할까.’
무료함에 핸드폰을 꺼내던 그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고돌]과 [꾸러기 수비대]가 도시 카토를 점령했습니다.
메시지엔 게임보다도 흥미진진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도시 카토에 거주하던 인간들 사이에서 징크스의 악명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하하.... 내 이름은 징크스가 아니라 타격이 없는데...?”
물론 진수의 얼굴은 전혀 타격 없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어서 여러 안내 메시지가 나타난다.
-[고돌]의 주도하에 카토 검투장에 있던 여러 종족들을 해방합니다.
-자유를 되찾은 종족들이 당신을 칭송합니다.
-다양한 종족들이 징크스를 외칩니다.
-신탁을 내리십시오.
진수는 굉장히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쌓이는데 인간이 아닌 종족들한테는 칭송을 받는다.
좋아할 일인 것인지 기분 나빠할 일인지 모호했다.
‘지성을 지닌 종족들을 멋대로 갖고 논 인간들이니까.... 잘한 일이라고 정신승리 해보자.’
그는 검투장을 운영한 인간들이 나쁜 것이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법이니까 항상 희망을 안고 살자.”
생각을 정리한 진수는 검투장에서 풀려난 종족들에게 보탬이 될 것 같은 이야기를 해줬다.
-[몽치]가 당신의 신탁을 받듭니다.
-신탁의 효과로 당신을 믿는 이들의 정신력이 강해집니다.
-전이자가 아닌 이들에게 당신의 종교가 전파됩니다.
-보상을 받습니다.
-[특급 정신 보호] 특성
[특급 공구 숙련] 이후로 첫 특급 특성이다.
‘근데, 내가 정신승리 했다고 [특급 정신 보호]를 준 건 아니겠지...?’
턱을 긁적인 진수는 이내 상태창을 닫았다.
종착역인 녹양역에 도착한 것이다.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는 완전히 어두운 밤 시간.
물건을 받기로 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거의 최초로 운송로를 통해 운반한 물건이 되겠네.’
녹양역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
이번에 구축한 동두천시 운송로 중간에서 물건을 받기로 했다.
시간 여유를 충분히 두고 왔기에 그는 [사신의 감각]을 넓게 퍼트려 혹시 몬스터가 없는지 감지하며 움직였다.
자잘한 녀석이라도 잡으면 다 돈이고 혹시 전이시킨 적 없는 놈을 만나면 더욱 좋은 일이었으니까.
‘음...? 이건 사람의 기척인데?’
운송로의 옆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필드 사냥을 하는 헌터라기엔 길의 근처에서 움직였고, 운반을 하는 사람이라기엔 운송로에서 떨어져있다.
진수는 호기심에 [투명화]를 사용한 채 그 사람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스슥, 스스슥
수풀을 헤치며 상당히 빠르게 다가온다.
‘어? 저 사람이 여기 왜 있지?’
빠른 속도로 남하하고 있는 인물은 진수가 아는 사람이었다.
마석정제주사를 맞으러 가면 가끔씩 마주치는 전투 헌터, 민우혁.
주로 중국 쪽에서 활동을 한다고 하더니 오랜만에 한국으로 내려온 모양이었다.
‘뭐, 굳이... [투명화]를 풀고 인사를 할 필욘 없겠지. 그 정도로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까 박종대도 요즘 헌터대전 때문에 중국으로 넘어갔다고 하는 거 같고.... 은근 중국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네.’
진수는 지나가는 민우혁을 그냥 보내고 다시 운송로로 돌아왔다.
“아, 적룡에서 오신 분이요?”
때마침 물건을 가져온 사람도 비슷한 타이밍에 도착했다.
RD를 적룡이라고 말하는 사내.
앞서 주해응에게 적룡이란 말을 듣지 않았다면 순간 아니라고 할 뻔했다.
“예, 맞습니다.”
진수는 오른손 검지에 낀 반지를 내밀어 보여줬다.
그러자 군말 없이 상자를 넘기고 사라진다.
운동화 상자 정도 크기의 상자.
‘얼씨구, 이 자식들 봐라...?’
[유체화]를 사용해 상자 내부를 살펴본 진수가 코웃음을 쳤다.
파티
상자 안에는 주머니 하나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주머니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전에 진수의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
바로 상자 내부에 그려진 주술진.
‘일을 시킴과 동시에 날 시험하는 도구였다 이거지.’
상자 안쪽에 있는 주술진은 굉장히 단순한 기능이었다.
아주 약한 봉인인데, 상자를 열 때 힘을 좀 많이 주면 쉽게 해제가 되는 수준이었다.
대신 굉장히 원시적인 주술이었기에 봉인이 풀리고 나면 다시 복구를 시킬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상자를 열면 무조건 흔적이 남게 된다는 뜻이다.
진수가 상자를 받아서 열어보는지 시험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이게 왜 읽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진수는 기억을 못 하고 있지만 포세이돈에게 공포의 막대기를 전달했을 때 받았던 키약트르의 지식.
그게 바로 원시적인 주술에 대한 지식이었다.
-슈슉
상자 속에 있는 주머니와 손에 낀 반지를 모두 [차원의 틈]에 집어넣는다.
그 후 주머니만 다시 바깥으로 꺼내왔다.
봉인 주술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내용물을 빼낸 것이다.
“어디, 뭐~가~ 들었나 볼까요~”
가볍게 흥얼거리며 주머니를 열어본다.
“어이구, 공간압축주머니였네.”
진수가 가진 것과 비슷한 크기, 대략 2 세제곱미터의 공간을 지닌 공간압축주머니다.
그 안에는 블루 오아시스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달달한 향내가 코를 유혹한다.
하지만 [특급 정신 보호] 덕분인지 처음 맡았을 때처럼 정신이 혼미해지진 않았다.
‘이걸 갖고 오라 했다 이거지. 아무리 알유랑 가국이 없다고 해도 분명히 냄새를 잘 맡는 녀석들이 있을 텐데.... 아주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작정을 했구만?’
그가 몰래 숨겨서 들고 간다고 해도 개과나 원숭이과 요괴들은 냄새를 파악할 것이다.
그렇다면 덜미를 잡히게 될 것이고, 진수가 인간 간부들을 위해서 일한다는 사실이 RD 내부에 퍼질 수밖에 없다.
“뭐... 블루 오아시스를 들여왔다는 걸 알리고 싶으시다면 도와드려야지. 원래 일 잘하는 사람은 시킨 거 이상으로 해내는 거 아니겠어? 크흐흐.”
그의 얼굴에 장난기가 퍼진다.
공간압축주머니에서 포장된 블루 오아시스 뭉치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그리곤 내용물에 장난질을 치기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예민한 후각을 지닌 이들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이걸 받을 인간들은 전혀 눈치를 못 채겠지만 말이야.’
작업을 마친 진수는 파란 가루가 든 뭉치들을 다시 공간압축주머니에 넣은 뒤 [차원의 틈]을 사용해 상자에 집어넣었다.
그 후 상자를 통째로 [차원의 틈]에 넣는다.
[중급 후각]에 블루 오아시스의 냄새가 전혀 맡아지지 않았다.
아니, 중급이 아니라 특급, 가장 높은 등급의 특성인 [완벽 후각]을 지녔다고 해도 맡을 수 없을 것이다.
* * *
큼지막한 가방을 메고 RD 본사에 도착한 진수.
그는 바로 황계문에게 연락을 했다.
“여보세요? 그때 자리에서 요청하셨던 물건 가지고 왔는데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예, 4층에 제 집무실로 오시겠어요?
4층으로 올라가 황계문의 집무실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집무실의 주인인 황계문과 도복을 입은 노인, 허원화.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인데 허원화님도 계셨네요.”
밤중에 물건을 받아 바로 RD 본사로 왔다.
깊은 새벽인데도 그가 와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잘 됐지. 이 할아버지는 요괴들이랑 유독 사이가 안 좋아 보였으니까.’
진수는 속내를 숨기고 가방에서 상자를 꺼냈다.
정확히는 [차원의 틈]에서 가방 속으로 소환하고 그 후에 상자를 뺀 것이었지만.
물건을 받아든 황계문이 허원화에게 전달한다.
허원화는 시시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보더니 버럭 소릴 질렀다.
“뭘 멀뚱멀뚱 보고 있어? 일 다 했으면 이만 가봐!”
“아, 예. 그럼 가보겠습니다.”
“에잉, 재미없는 놈. 저런 놈을 왜들 좋게 보는지....”
괴팍한 노인은 진수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탐탁지 않은 듯 말했다.
“김진수 헌터, 고생했어요. 대표님께 일처리 잘 하셨다고 보고 올릴게요.”
황계문은 그런 허원화의 태도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을 듣고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는 진수.
“허원화님, 대표님께서 김진수 헌터한테 잘 해주라고 하신 거 기억 안 나세요?”
문이 닫히고 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황계문이 허원화를 나무랐다.
“그냥 저놈을 보면 기분이 안 좋은 걸 어떡하란 말이냐? 보니까 시킨 대로 물건도 열어보지 않고 가져왔네.”
허원화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상자의 봉인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상자 전체에 옅게 흐르는 마력이 주술진이 건재함을 알려주었다.
“믿을만한 놈은 맞는 것 같은데.... 왠지 마음에 안 들어.”
상자를 거칠게 여는 노인.
봉인이 해제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확실히 진수가 상자를 열어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부에 그려진 주술진을 살펴봐도 손 댄 흔적이 없다.
“확실하네. 대표님한테 아무 이상 없다고 보고 드려라.”
뭔가 진수가 실수한 게 있을까 기대했지만 훌륭한 일처리에 김이 샌 듯 보인다.
그는 툴툴거리며 집무실을 나서려 했다.
-스윽
문 앞에 서있는 자를 발견하기 전까진.
“늙은이,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야?”
황계문의 집무실 앞에는 제천이라고 불리었던 요괴 간부가 서있었다.
그는 문 쪽으로 코를 들이대고 벌름거리는 중이었다.
“뭐, 뭐냐? 넌 여기서 뭘 하는 게야?”
“여기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아주 구린 냄새가.”
눈을 가늘게 뜨는 제천.
그의 말에 허원화는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아아, 그 녀석이 흘린 냄새를 맡고 따라왔나 보군.”
“흘리다니 무슨 소리야?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악취가 퍼지기 시작해서 온 건데.”
허원화는 진수가 가방에 상자를 넣어왔다고 생각해 지레짐작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제천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비켜. 너희 인간들이 요즘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꿍꿍이속이 있었구만?”
진수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없이 허원화를 밀치며 방에 들어왔다.
그대로 공간압축주머니로 향해 손을 뻗는다.
“제, 제천 형님. 왜 이러십니까? 저희가 블루 오아시스를 들여올 때마다 알려드려야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황계문이 제천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뭐? 블루 오아시스?”
-턱!
“커헉!”
제천이 코웃음을 치며 황계문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숨통을 조여 오는 압력에 그의 얼굴은 금방 새파랗게 질렸다.
“내가 지금 그깟 가루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한 손으로는 황계문을 제압하고 다른 손으로 주머니를 집어 드는 제천.
-슈우욱!
어디선가 희끄무레한 기운이 모여들어 그의 손을 재차 방해했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어디라고 난동을 피우는 게냐!”
허원화의 도술이었다.
-파악!
하지만 제천의 힘을 가로막는 것도 잠깐.
녀석이 순간적으로 주먹을 강하게 쥐며 팔만 인간화를 풀었다.
갈색 털이 자라나며 강철과도 같은 근육이 꿈틀댄다.
그 완력으로 단번에 도술을 파해하는 제천.
“평천 형님의 당부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틀니 압수당했을 늙은이가....”
-휘익- 퍽!
“크윽!”
한손에 들고 있던 황계문을 던져 허원화를 무력화시킨다.
그 후 공간압축주머니를 들어 찢어버렸다.
-후두둑
바닥에 쏟아지는 뭉치들.
겉으로 봐서는 블루 오아시스를 포장해놓은 것으로만 보였다.
“그, 그것 봐라! 무슨 오해를 하고 왔는지는 몰라도....”
-펑!
허원화의 말에도 무심한 표정을 짓던 제천이 포장된 뭉치 중 하나를 발로 밟아 터트렸다.
공기 중에 흩날리는 가루들.
“헙!”
허원화와 황계문이 급히 코와 입을 막는다.
농축된 블루 오아시스에 중독되면 그 끝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흥!”
그들의 행동을 보며 코웃음을 친 제천은 바닥에 흩뿌려진 가루를 한 움큼 쥐어서 허원화의 얼굴에 집어던졌다.
“이게 무슨 짓...!”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던 노인의 표정이 변했다.
강렬하게 들어오리라 생각했던 블루 오아시스의 향이 생각보다 연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어째서긴 어째서야. 니놈들이 블루 오아시스 속에 숨겨서 개수작을 부리려고 했으니까 그렇겠지.”
자세히 보니 푸른 가루 사이에 청록색 알갱이가 섞여있는 게 보인다.
“너희의 그 조악한 감각으로는 생각지도 못했을 거야. 하등한 족속들.”
“오, 오해가.... 우린 정말 블루 오아시스만을 들여오려고 했네.”
허원화의 말투가 조금 공손해졌다.
핏대 세우며 싸울 상황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오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난 이 일을 평천 형님께 보고할 거야.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해명할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걸?”
블루 오아시스 사이에 섞인 물질은 요괴형 몬스터들에게 치명적인 극독이었다.
색깔이 청록색이라 파란 가루 형태인 블루 오아시스 속에 들어가면 잘 구분하기 힘들다.
하지만 후각이 발달한 몬스터는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속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허튼 수작들 부리지 말라고.”
제천이 포장되어 있는 뭉치 하나를 들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허원화는 수염이며 눈썹에 붙은 가루들을 털어낼 생각도 못하고 망연자실하게 앉아있었다.
“분명히 블루 오아시스만 들여온다고 그랬는데.... 황계문이. 이거 공급처에 연락한 게 전춘성인가?”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전춘성 형님 아니면 대표님께서 신청했을 겁니다.”
“상자를 손댄 흔적은 전혀 없었어. 애초에 공급처에서 개짓거리를 했거나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그는 마른세수를 하듯 얼굴을 대충 털고는 상자와 찢어진 주머니, 가루 뭉치 몇 개를 챙겼다.
“요괴놈들이 난리를 치기 전에 상황을 좀 파악해야겠어. 이 빌어먹을 약들이 왜 바뀐 거야? 당분간은 요괴들 일 시키지 말고, 운송로 구축 작업은 한국 헌터들 시켜서 뚫으라고 그래.”
허원화는 황급히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 * *
[몽치] - 현재 상황 : 도시 카토에 있는 종족들에게 블루 오아시스를 나눠줌 “징크스님의 은혜다!”
-도시 카토에 블루 오아시스가 퍼집니다.
-도시 카토에서 당신의 종교 신도들이 늘어납니다.
‘약으로 신도를 매수하는 거냐고.’
[차원의 틈]에 빼돌린 블루 오아시스를 넣어놨더니 몽치가 잔뜩 챙겨갔다.
또 약에 취해서 해롱거릴 줄 알았더니 포교의 도구로 삼은 것이다.
-블루 오아시스를 섭취한 당신의 종교 신도들이 성장합니다.
-보상을 받습니다.
-힘 +10, 민첩 +3, 체력 +1, 내구 +3, 마력 +7, 변종 코카트리스 [키키]의 기술 중 하나
몽치는 한바탕 마약 파티를 했는지 엄청난 양의 보상을 보내왔다.
진수는 왠지 모를 배덕감과 기쁨이 뒤섞인 기분이 되었다.
‘그래도 보상으로 받은 [석화의 시선]은 좋네.’
키키에게 받은 기술이 바로 [석화의 시선].
마력 소비량에 따라서 정말 돌로 굳혀버릴 수도 있지만, 순간적으로 멈칫하게 만드는 정도로 쓰기에도 좋았다.
‘앞으로 눈싸움에서 질 일은 없겠어.’
상태창을 닫으며 주변으로 시선을 돌린다.
주변을 경계하며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헌터들이 보였다.
진수는 천안으로 향하는 운송로 구축팀의 팀장 역할을 맡게 됐다.
‘천안하면 호두과자.... 그리고 비행 몬스터가 유명하지.’
그는 바람의 씨앗으로 만든 장치를 써먹어볼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협회
“끼아악!”
인간의 상체에 새의 팔다리를 한 몬스터, 하피 떼가 진수 무리를 습격했다.
-퍽! 퍼억!
진수는 다가오는 녀석들을 향해 부지런히 망치를 휘둘러 처치했다.
정신을 흔들어놓는 괴성을 지르며 습격하는 하피는 꽤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다.
하지만 [특급 정신 보호] 특성이 있는 진수에게는 그저 달려드는 비둘기 정도.
게다가 [중급 동체시력]을 가지고 있기에 빠르게 날아드는 녀석들의 목을 비트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헌터들이지. 아니, 비행 몬스터 위주로 나오는 곳에 초짜들을 보내?’
RD에서 배정한 헌터들은 대부분 근접 전투를 하는 자들이었다.
진수 자신도 근접 전투를 주력으로 삼고 있기에 거기까진 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날아다니는 몬스터가 나오자 거의 무력화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힘을 못 쓰는 것을 보고 탄식이 절로 나왔다.
천안에 간다는데 아무런 방비도 없이, 대책도 없는 헌터들을 보낸 것이었다.
‘블루 오아시스 건 이후로 내부적으로 좀 정신이 없어 보이긴 했는데....’
진수가 블루 오아시스 운반에 장난질을 한 덕분에 RD의 인간들과 요괴들 사이는 상당히 아슬아슬해졌다.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인지 RD에서는 한국 헌터들로 운송로 작업을 진행했고, 덕분에 일단 인원수만 맞춰 일을 내보내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 결과가 지금의 인원들이었다.
E~D급 헌터들에 B급 헌터인 진수를 섞어서 천안으로 보낸 것이다.
만약 진수가 보통의 B급 헌터였다면 이미 이들 중 반 이상은 까마귀 밥이 되었으리라.
“다들 괜찮아요?”
한바탕 쏟아지는 하피들을 상대한 진수가 다른 인원들을 챙긴다.
놈들의 울음소리에 반쯤 정신을 놓았다가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이들이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 팀장님. 예, 예. 이제 좀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하피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그들의 말에 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뭐 어쩔 수 없죠. 공중 몬스터는 제가 최대한 막아볼 테니까 지상을 신경 써줘요.”
꽤 믿음직한 소릴 하는 그.
말을 하면서 슬쩍 자신의 검지에 자리 잡은 반지를 봤다.
‘이런 얘기들도 다 듣고 있겠지?’
주해응 대표가 듣고 있다는 걸 의식한 말이었다.
어차피 공중 몬스터를 선제적으로 상대하는 게 진수에게도 좋았다.
차원 전이를 시키는 걸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을 수 있으니까.
-하피 [닭둘기]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아직은 여럿이서 덤비는 하피만 나왔기에 몰래 전이를 시킬 수 있었다.
“도시까지 빠르게 움직이죠. 어차피 이번에 운송로 구축 작업은 꽤 오래 머물러야 하니까 한 번에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욕심 부릴 필요가 없어요.”
천안은 RD 본사와 상당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운송로 작업의 양상이 조금 달랐다.
후발대가 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동안 천안에 자리를 잡고 몬스터들을 처치해야 한다.
‘천안에 도착하면 적당히 지상 몬스터들이나 상대하라고 하고 나는 비행 몬스터로 전이자 목록을 좀 채워봐야지.’
유독 날아다니는 몬스터가 많이 나오는 천안.
아직까지 그 원인은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저 어딘가에 자리를 잡아서 번식을 하는 게 아니냐 하는 가설이 있을 뿐.
* * *
천안에 도착한 진수 일행.
진수를 제외한 헌터들은 하나같이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모습.
“고생들 하셨습니다. 며칠간 머물면서 몬스터를 사냥해야 되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저는 우선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서 계약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올 테니까 숙소를 좀 잡아주세요.”
“넵.”
여기까지 오면서 진수의 활약을 봐왔기에 헌터들은 그를 깍듯이 대했다.
“숙소 정해지면 메시지로 알려주시고요.”
헌터들과 헤어져 거래처를 돌기 시작한 진수.
그가 느끼기에 천안의 헌터들은 꽤나 예민한 듯 보였다.
길을 묻기 위해 말을 걸어도 경계하는 기색이 강했다.
-띠링
[팀장님 이쪽으로 잠시 와주셔야 될 거 같아요]
거래처를 거의 돌았는데 팀원 헌터 중 한 명에게 메시지가 왔다.
메시지엔 한 숙박시설의 위치가 함께 적혀 있었다.
“왜들 이래요?”
“여기서 활동을 하려면 협회에 신고를 하시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예요?”
진수가 메시지에 표시된 위치에 도착했을 때, RD에서 함께 온 헌터들이 몇 명의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여기 헌터팀 팀장인데요. 무슨 일이시죠?”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끼어든 진수.
가장 앞장서서 언성을 높이던 자가 갑자기 나타난 그를 훑어봤다.
“아, 그래. 외지에서 왔다면서요? 여기선 헌터 활동을 할 때 협회에 먼저 신고, 등록을 해야 된다고요. 근데 자꾸 말귀를 못 알아듣잖아요.”
“저희 모두 헌터 협회에 등록된 헌터들인데요? 라이센스도 있고요.”
“아니~ 헌터 협회를 말하는 게 아니고. 천안에서는 비행몬스터사냥협회에도 승인을 받아야 돼. 거, 깝깝하네 정말.”
짜증난다는 듯 말하는 남자.
진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헌터 협회를 제외하고는 헌터 활동에 대한 제한을 할 수 없지 않나요? 이거 합법적인 거 맞아요?”
그러자 사내는 피식 조소를 머금는다.
“아, 그러면 여기 헌범기관 가서 잘잘못을 따져보시던가.”
그가 꽤 멀리 떨어져있는 한 건물을 가리켰다.
아마도 천안을 담당하는 헌터범죄전담기관의 건물인 듯했다.
자신만만한 태도.
허장성세인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헌협이랑 기관에서 그냥 둘 리가 없는 일인데 이상하네.’
“그래요. 가봅시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던 진수는 그의 말을 승낙했다.
하지만 사내의 얼굴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 * *
“아~ 비행몬스터사냥협회? 여기 지역이 좀 특이해서요. 등록해서 활동을 하시는 게 좋아요~”
헌터범죄전담기관의 수사관 중 한 명이 나와서는 허허 웃으며 말한다.
‘좋아요? 해야 된다는 뜻은 아니고. 적당히 어물쩍 넘어가려는 거 같은데....’
진수는 그의 태도에서 미심쩍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뭐라고 했어? 거, 말을 정말 못 알아듣네. 여기는 다 그렇게 하시는 거라고요.”
헌터범죄전담기관의 수사관이 인정하는 듯한 말을 하자 시비를 걸던 사내가 기고만장해졌다.
하지만 진수는 그의 말은 무시하고 수사관에게 물었다.
“저기, 수사관님 이름이랑 소속이 어떻게 되시죠?”
“네? 제 소속이랑 이름은 왜 그럽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는 수사관.
“아, 아닙니다. 잠깐만 통화 좀요.”
진수는 바로 박철준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예. 수사관님. 잘 지내셨나요? 제가 지금 천안에 와있는데, 여기서 좀 이상한 이야기를 들어서요.”
천안에 왔더니 이상한 협회 이름을 대면서 거기에 등록을 해야 헌터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알고 있기로는 헌터 협회가 아닌 이상 그런 제한을 둘 수 없을 텐데 천안의 헌터범죄전담기관 수사관이 동의를 하더라.
이게 헌터 협회와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천안엔 특별 케이스로 둔 것이 맞냐.
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저, 누구랑 통화....”
“아, 여기 그 말을 한 수사관분 계시니까 바꿔드릴게요.”
진수가 수화기에 대고 현재 상황 설명을 하자 눈이 동그래진 천안의 수사관.
그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여보세요?”
두 눈에 의문을 가득 담고 전화를 받는다.
“아, 넵! 안녕하십니까! 예? 아, 천안의 서윤형 수사관입니다.”
전화를 받으면서도 바짝 긴장해서 차렷 자세를 취하는 서윤형 수사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아, 아닙니다! 이게, 지역 사회적인 뭐 그런 문제가.... 예, 옙! 죄송합니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삐질삐질 흐르기 시작했다.
“예, 처, 처리 잘 해서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넵! 넵!”
깍듯이 전화를 받는 수사관의 태도에 처음 시비를 걸었던 사내는 좌불안석이 되었다.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무슨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지 파악하려고 했다.
“전화 여기 있습니다.”
진수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는 서윤형.
진수는 전화를 다시 받았다.
“네, 수사관님.”
-김진수 헌터, 아마도 조금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요즘 바쁘다 보니까 이런 경우가 다 있네요. 곤란하지 않게 서윤형 수사관이 수습을 할 겁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헌터범죄를 다루는 집단에서 이런 일을 하다니 그저 미안할 따름이죠. 혹시라도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주세요.
전화를 끊은 진수는 서윤형을 보았다.
고개를 숙인 채로 눈치를 보는 그.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진수는 헌터범죄전담기관으로 오면서 [차원의 틈]에 넣어놨던 반지를 슬쩍 소환했다.
여기부터는 주해응 대표가 들어도 상관이 없는 대화였으니까.
“아아, 여기 비행몬스터사냥협회에서 말하는 거는 반드시 등록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니고, 아무래도 익숙지 않은 몬스터니까 협회 차원에서 가입을 하면 돕겠다는 거였을 겁니다. 하하. 그렇죠?”
서윤형 수사관의 말에 시비를 걸던 남자는 못마땅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 무슨....”
“최제영씨. 비행몬스터사냥협회가 불법 단체로 분류되면 곤란하잖아요. 그쵸?”
계속 고집을 부리면 불법 단체가 될 것이라는 은근한 경고였다.
그 말에 최제영이라고 불린 사내는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예, 하하. 그렇죠. 비행 몬스터 사냥 요령도 좀 알려주고~ 또 위험한 녀석들도 피할 수 있게 해주고~ 그런 이유에서였죠.”
어색한 웃음을 짓는 그.
‘꼭 얻어맞아야 똑바로 굴러간다니까.’
진수는 우습지도 않은 연기들에 조소를 머금었다.
“그럼 이제 가봐도 될까요?”
“아, 예, 예. 그렇게 하세요.”
서윤형 수사관은 오래 마주하고 싶지 않은 듯 가보겠다는 진수의 말을 반겼다.
“저기, 미안하게 됐습니다.”
천안의 헌터범죄전담기관을 나선 진수와 헌터들.
최제영이란 사내는 진수에게 쭈뼛거리며 와서는 사과를 건넸다.
“말로만요?”
진수는 수작질을 부린 그에게 적당히 사과만 받을 생각이 없었다.
“예? 그게 무슨....”
“사람 시간 뺏고, 귀찮게 하고, 자칫하면 금전적 손해도 볼 수 있었던 상황인데요. 말만 가지고 넘어갈 수 있으면 너무 편한 거 아닌가요?”
그의 목소리에 은근한 압력이 실렸다.
주해응의 인장 반지가 언어에 마력을 담아준 것이다.
수사관에게는 좋게좋게 넘어가는 듯 보였기에 적당히 사과만 하려고 했던 최제영.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했다.
“아, 아니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보상을....”
“그러면 아까 말했던, 위험한 녀석들. 그리고 비행 몬스터 잡는 요령도 좀 들어보면 좋겠네요.”
“아.... 그건....”
“왜요? 안 돼요?”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진수.
이미 기세에서 눌린 최제영은 그의 말을 거스르지 못했다.
“아닙니다. 우선은 오늘 시간이 좀 늦었으니까, 내일 사냥 나가실 때 같이 동행해서 알려드릴게요. 밤에는 시야가 제한돼서 비행 몬스터 사냥을 안 하시는 게 좋거든요.”
진수는 최제영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다음날 비행 몬스터 사냥에 대한 정보와 위험한 몬스터들의 영역 지도를 받기로 했다.
‘천안 근처에 있는 필드 보스들은 워낙 자유분방해서 찾기 힘들다고 그랬지. 저놈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줘서 손쉽게 센 놈들을 전이시킬 수 있겠어.’
진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숙소로 향했다.
얼씨구? 이것 봐라?
‘아주 골때리는 곳이었네?’ 
진수는 헌터넷에서 떠도는 천안에 대한 내용을 검색해봤다. 
[새 잡으러 천안 갔다가 나만 새된 썰 푼다] 
[외지헌터는 천안가지마라....진심이다... 
ㄴ왜 
ㄴ그냥 가지마 이 ㅆㅂ새끼야] 
[비행 몬스터 부산물 구하는 방법 : 1.돈을 벌어서 산다 2.다른 방법은 생각하지 않는다 
ㄴ직접 가서 구하는건? 
ㄴㅊㅇ 얘기하는 거면 차라리 가까운 필드에서 사냥하는 게 빠르다는 것만 알아둬라] 
이런 내용들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천안 운송로 작업이 배정된 후로 인터넷에 몬스터 관련해서만 검색해서 미처 몰랐었다. 
그런데 여기의 폐쇄적인 구조는 헌터넷에서 상당히 퍼져있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일단 그 비행협횐지 뭔지한테 꿀 좀 뽑아먹고 나서 털든 해야겠다.’ 
진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숙소를 나섰다. 
오늘 팀원들과 함께 비행 몬스터들을 잡으러 가기로 했으니까. 
“하하, 안녕하세요.” 
모이기로 한 곳에 나가자 어제 봤던 비행몬스터사냥협회의 최제영이 나와 있었다. 
그의 옆에는 한 명이 더 동행하고 있었는데 행색이 상당히 특이했다.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전혀 없었고, 비행사 고글 같은 걸 쓰고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총?’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조잡하게 만들어진 엽총 같은 물건. 
한국은 분명 총기를 소지하는 게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긴 막대기 끝에는 구멍이 있고 손잡이와 방아쇠가 달려있는 것이 총이 아니면 뭘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아, 이상하게 보실 거 없습니다. 그냥 조금 강한 장난감 총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하하.” 
진수의 시선을 의식한 최제영이 손을 내두르며 변명을 했다. 
그가 헌터범죄전담기관에 연이 닿아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온 반응이었다. 
“총기 규제에 걸리지 않는 물건이거든요. 호신용 도구 같은 거죠.” 
게이트 사태 이후로 한국은 각성자, 지금은 헌터라고 불리는 자들을 주축으로 사회가 복구되었다. 
원래도 총기 소지가 불법이었던 나라였고, 헌터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 했다. 
꽤나 복잡한 정치, 사회적 이슈들을 거쳐서 한국은 여전히 총기가 규제되고 있는 상태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총을 쓰는 비각성자 헌터도 가끔 보인다고는 하던데....’ 
진수는 총기 사용에 대해서 격렬하게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기에 일단 그냥 두기로 했다. 
어차피 저 비행몬스터사냥협회라는 양반들이 오래 유지되지는 못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우선 위험한 몬스터들 정보부터 말씀해주시죠.” 
“아, 여기 이게 저희 협회에서 만든 비행 몬스터 활동 지도입니다. 저희도 고생해서 만든 거라... 가능하면 외부 유출은 피해주세요.” 
최제영이 나름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이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진수. 
그는 받아든 지도를 살펴봤다. 
천안 지역의 지도 위에 몬스터 서식 구역과 이동 경로 따위를 표시해두었다. 
이게 정말 들어맞는 내용이라면 비행몬스터사냥협회라는 자들이 돈을 받고 활동을 지원하는 것까지는 인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비행 몬스터들은 워낙 신출귀몰해서 영역을 이렇게 지도화하기 쉽지 않으니까. 근데....’
지도를 보던 진수의 눈에 뭔가 이상한 점이 보였다. 
뭐라고 콕 집어서 말하긴 어렵지만 왠지 몬스터들의 활동 영역이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보였다. 
‘이건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그는 우선 지도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럼, 가보죠.” 
RD에서 온 헌터들과 천안의 비행몬스터사냥협회 인물 둘을 데리고 비행 몬스터들의 영역으로 향했다. 
* * *
“거기서 뒤로 빠져요!” 
-쌔액! 
최제영의 외침에 따라서 RD의 E급 헌터가 백스텝을 밟는다. 
뚝 떨어지며 공격하던 검붉은 색의 거대 까마귀가 허공을 할퀴었다. 
지상의 생명체와는 확실히 다른 패턴의 움직임이었다. 
-휘익- 
다시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검붉은 까마귀, 블러드 레이븐. 
“아, 거기서 바로 빠지면서 공격했으면 잡는 건데....” 
아쉬운 듯 말하는 최제영. 
지도도 그렇고 비행 몬스터를 사냥하는 요령도 그렇고 그들의 능력 자체는 진짜였다. 
“이제 팀원들만 시키지 마시고 팀장님도 한 번 해보시죠. 이게 눈으로만 봐서는 또 연습이 안 되는 부분이라.... 하하.” 
사람 좋은 척 웃고 있지만 그의 눈은 꽤나 날카롭게 빛났다. 
‘수준을 파악하려고 그러는 거겠지.’ 
비행몬스터사냥협회의 둘과 함께 사냥을 나선 이후로 진수는 한 번도 직접 전투를 치르지 않았다. 
함부로 사람들 앞에서 비행 몬스터들을 잡았다가 [차원 전이]를 들킬 수도 있었고, 사냥하는 연습은 팀원들에게 더 필요했으니까. 
무엇보다 계속해서 눈치를 보며 전투를 살피고 있는 최제영이 걸렸다. 
하하 웃고는 있지만 의뭉스러운 인물이었다. 
“음, 그럼 저도 한 번 해볼까요?” 
망치를 들고 나서는 진수. 
때마침 하피 세 마리가 나타났다. 
최제영은 다른 이들에게 옆으로 피하라고 지시했다. 
하피들이 오직 진수만 노리게끔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의 의도대로 진수를 의식한 녀석들이 하늘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끼아아악-!” 
-펑! 
하피의 울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에 손바닥 위로 마력을 모아 박수 치듯 폭발시키는 최제영. 
덕분에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하피의 정신 공격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마력 폭발의 영향은 진수에게 닿지 않았고 하피 세 마리가 동시에 울어대는 소리는 그를 덮쳤다. 
뒤이어 하피들이 짓쳐드는데도 미동조차 않는 진수. 
그 모습에 최제영은 고소를 지었다. 
‘이놈들 수준을 보니까 팀장이란 놈도 뻔하지. 어떻게 빽이 있다고 기고만장하는데... 한 번 당해봐라.’ 
“어어, 움직이세요! 왼쪽 앞으로 움직이면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시커먼 속내를 숨기고 외치는 최제영. 
하피의 울음소리에 당했다면 자신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할 일을 했다는 핑계를 대기 위함이었다. 
-콱!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 최제영의 외침에도 진수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다. 
이윽고 예리한 발톱이 번뜩이며 그의 목덜미와 어깨, 팔뚝을 움켜쥐었다. 
탐욕스럽게 진수를 갈라 먹으려는지 힘찬 날갯짓과 함께 신체부위를 잡아당기는 하피들. 
-퍽! 
진수는 망치를 들어 무심하게 하피들의 머리를 하나씩 하나씩 깨부쉈다. 
녀석들의 발톱이 날카롭지만 [탄성체질]과 [불곰]으로 강화된 피부를 뚫지는 못했다. 
스스로가 미끼가 되어 놈들을 낚은 셈이었다. 
“저, 저...!” 
회심의 미소를 짓던 최제영은 벙찐 표정이 됐다. 
최소한 팔 한 쪽은 날아가리라 생각했는데 너무도 손쉽게 하피를 제압한 것이다. 
어느새 두 마리의 하피가 죽었고 나머지 한 놈은 깜짝 놀라 허공에 몸을 띄웠다. 
-탕! 
그 순간, 조잡한 엽총의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바로 도약해서 하피를 잡으려던 진수는 망치를 들고 있던 자세 그대로 비행몬스터사냥협회의 비각성자를 보았다. 
몬스터를 쳐죽이려던 살기등등한 기세 그대로. 
“허, 헉...! 모, 몹이 도망가려는 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엽총의 위력은 그렇게 조잡하지 않았다. 
불꽃의 색이 초록색인 것으로 봐서는 마석을 활용한 총알을 쓰는 듯했다. 
총알은 하피의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을 찢어놓았다. 
관통을 할 정도의 힘은 아니지만 충분히 살상력은 지닌 것이다. 
“음... 괜찮습니다. 망치로는 못 잡을 수도 있었겠네요.” 
표정을 풀고 웃어 보이는 진수. 
하지만 왠지 모르게 살벌한 미소였다. 
“이제 제가 딱히 전투 요령을 연습하지 않는 이유는 아시겠죠?” 
그의 말에 최제영이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이후로 자잘한 비행 몬스터들의 사냥 요령을 들을 수 있었다. 
피지컬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진수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확실히 전투력이 낮은 헌터들이나 엽총을 쓰는 비각성자에겐 목숨을 구해줄 수 있는 비법들이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된 것 같네요. 하하. 지도에서 위험한 지역만 피하시면 오늘 알려드린 정도로도 충분히 활동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전부터 시작된 동행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이어졌다. 
그의 말대로 E~D급 헌터들이 사냥하기 까다롭다는 비행 몬스터를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게 운송로의 지상 몬스터만 상대하게 하려던 진수의 입장에서는 꽤나 번거로운 일을 덜어낸 셈이다. 
“처음엔 서로 좀 의견이 안 맞았지만, 좋은 경험 할 수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진수는 최제영과 비각성자 사냥꾼에게 웃어보였다. 
이에 마주 웃는 최제영. 
“아유, 아닙니다. 그럼 부디 다치지 않게 사냥하세요.” 
그렇게 사냥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했다. 
팀원들과 다음날부터는 운송로 경로에 나오는 몬스터를 사냥하기로 하고. 
* * *
‘얼씨구? 이것 봐라?’ 
비행몬스터사냥협회의 인물들 없이 사냥을 나선 진수와 헌터들. 
그런데 운송로 쪽에 나타난 놈들은 몬스터 영역 지도의 내용과 달랐다. 
-후우욱- 펑! 
블러드 레이븐, 하피, 자이언트 호크 등의 몬스터들 사냥 요령을 익혀놨더니 레서 와이번이 나타난 것이다. 
놈들은 나름 드래곤 계열의 몬스터라고 화염 브레스를 쏘아댔다. 
모두 근접 전투를 하는 인원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하늘 위에서 원거리 공격을 하는 놈들에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진수 팀의 약점을 정확히 노린 몬스터나 다름이 없었다. 
“티, 팀장님! 어떡하죠?” 
사색이 된 채로 묻는 D급 헌터. 
“다들 시로 돌아가서 어제 같이 움직였던 최제영씨 찾아서 데려오세요. 여기는 제가 어떻게든 하고 있을 테니까요.” 
“하, 하지만....” 
아무리 튼튼하고 힘이 센 진수라고 해도 망치로는 레서 와이번을 잡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팀원들을 지켜준 진수였기에 그를 남겨두고 도망치기가 꺼려졌다. 
“걱정 말고 가보세요. 제가 저런 비행 도마뱀한테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여러분이 빨리 사라져야 차원 전이를 시키지.’ 
믿음직한 미소를 짓는 진수. 
자신감 넘치는 그의 표정과 말에 팀원들은 어쩔 수 없이 천안 시내에 있는 비행몬스터사냥협회로 향했다. 
레서 와이번의 브레스를 피하며 헌터들의 동정을 살핀 그는 그들이 완전히 멀어졌음을 확인했다. 
-슈슉! 
[차원의 틈]에서 도끼를 꺼내자마자 바로 투척한다. 
-퍽! 
꽤나 높이 날고 있는 녀석에게 단번에 명중하는 도끼. 
-레서 와이번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레서 와이번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이 맛이지!’ 
레서 와이번은 이내 사라졌고, 녀석을 처치한 도끼가 추락했다. 
손을 뻗자 부드럽게 제자리를 찾아 복귀하는 도끼. 
‘어디보자... 이놈은 불을 뿜으니까 지포라고 하자.’ 
-하피 [닭둘기]와 레서 와이번 [지포]가 무리를 이룹니다. 
-[닭둘기] [지포]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닭둘기와 지포는 하늘 신전이라는 지역으로 차원 전이가 되었다. 
전이가 되자마자 무리를 이루는 두 녀석. 
그들의 무리명은 [스카이피아]가 되었다. 
“음.... 뭔가 이상한데?” 
레서 와이번을 처치한 진수의 앞에 새로운 비행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예리한 가시를 쏘아 공격하는 스팅 웜이었다. 
이들 또한 지도에 표기된 대로면 이 지역에 나올 놈들이 아니다. 
‘게다가... 근접 전투를 하는 인원들한텐 쥐약이나 다름이 없는 놈들이고.’ 
진수는 [차원의 틈]에 반지를 집어넣고 바람생성기를 꺼내 신발과 몸 이곳저곳에 붙였다. 
“어디, 한 번 뭔 일인지 알아보자.” 
-펑! 
마력을 쓰며 도약하는 진수. 
스팅 웜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달려들었다. 
-스팅 웜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스팅 웜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가장 선두에 있던 녀석을 해치운 그는 입을 크게 벌렸다. 
-뿌우우우! 
강대한 마력을 담아 터트리는 [전장의 뿔나팔]. 
갑자기 쏟아지는 위압감에 스팅 웜들은 혼비백산했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녀석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멀리서 보니 어느 한 방향을 향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 금광이 있는지 없는지 보러 가보실까.’ 
진수는 스팅 웜들의 뒤를 쫓았다.
비-스팅 웜 [이쑤시개]가 [스카이피아] 무리에 합류합니다. 
-[스카이피아]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민첩 +3, 마력 +1, 골드 +5 
도망치는 스팅 웜들을 뒤쫓는 와중에 보상을 받았다. 
민첩과 마력 능력치가 오른 덕분에 더욱 수월하게 쫓아갈 수 있었다. 
‘엇? 저기서부터는 올라가는데....’ 
흩어져서 움직이던 녀석들이 한 지점에서 뭉치며 위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슈슉! 
몸 위로 신체강화 방어구까지 착용한 진수. 
마력을 돌려 달리는 속도를 올렸다. 
-쾅! 
전속력으로 달리는 힘을 받아 도약을 하자 땅이 파이며 굉음을 냈다. 
발바닥과 몸 구석구석에서 동시에 바람을 뿜어내는 장치들. 
잠시지만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르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행을 지속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기에 하늘 위로 오르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피슉! 
스팅 웜들에게 거의 근접한 진수는 [강철 거미줄]을 뽑아냈다. 
“끼에엑!” 
거미줄에 붙잡힌 스팅 웜 한 마리. 
진수의 몸을 완전히 끌어올려줄 만큼 힘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어딘가로 향하는 녀석들은 여럿이다. 
진수는 연달아 [강철 거미줄]을 쏴 스팅 웜들을 붙잡았다. 
끈적끈적한 줄에 잡히자 더욱 발버둥 치며 날갯짓을 한다. 
‘좋아, 올라간다!’ 
십 수 마리의 스팅 웜들과 함께 구름을 뚫고 솟구친다. 
아래를 보니 이제는 나무들이 점으로 보일 정도로 까마득히 높다는 게 실감이 났다. 
-꿀꺽 
추락해도 바람생성기를 사용하면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겠지만 일단 압도적인 높이에서 오는 긴장은 막을 수가 없었다. 
평생을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짐승이었기에 거스를 수 없는 본능이자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위로 올리는 순간, 진수는 당연함에 대한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각성자가 나오고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세상이 됐다지만... 이게 말이 되나?’ 
눈앞에 펼쳐지는 비상식적인 광경에 진수는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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