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11

오히려 명확하게 느껴지는 달달한 향기.
하수도의 악취 속에서도 가릴 수 없는 매혹적인 내음이다.
가국은 코를 벌름거리며 벽을 따라 주변을 훑는다.
“여기에 숨겨놨구나, 이놈!”
하수도 벽에 거의 코를 박은 채로 냄새를 맡던 놈이 한 구석의 벽돌을 끄집어냈다.
느슨하게 박혀있는 벽돌 뒤로 달콤한 푸른 가루의 냄새가 짙어졌기 때문이다.
-철컥! 푸욱!
“캬악!”
녀석이 벽돌을 뽑아내자마자 기계 장치가 작동되면서 기다란 무언가가 쏘아져 나왔다.
잽싸게 피해봤지만 워낙 근접한 거리였고, 발사 장치도 굉장히 힘이 좋아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왔다.
결국 기다란 물건은 가국의 목을 깊게 찌른 뒤 그대로 날아가 반대편 벽에 박혔다.
-푸확!
상처가 쩌억 갈라지면서 피가 솟구친다.
가까스로 큰 혈관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양의 출혈이었다.
“케엑... 이게 무슨...?”
한쪽 손으로 목에 생긴 상처를 누르며 지혈을 하려고 애쓴다.
엄청난 신체 능력과 회복력을 지닌 본체지만 피는 쉽사리 멎지 않았다.
안 그래도 블루 오아시스 과다복용으로 이지가 흐트러진 녀석이었는데, 상당히 많은 피가 빠져나가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덜컹!
그때, 공동과 지상으로 연결되는 통로에서 맨홀 뚜껑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다.
“헤엑...! 아, 알유인가...?”
-철벅!
하수도로 내려온 인물.
주변이 워낙 어두운 탓에 성인 남성 정도 덩치의 사람이라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국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이니 더더욱 지금 내려온 게 누구인지 분간이 안 됐다.
“알유는 무슨 알유. 알 유 오케이냐, 원숭아?”
가국에게 다가온 자는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온몸에 검은 잠입복을 입고 얼굴엔 호랑이 가면을 쓴 자.
진수였다.
“뭐야, 원숭이를 잡으러 왔는데 웬 돼지가 있어?”
진수가 발견한 가국의 모습은 처음에 봤던 원숭이의 형상이 아니었다.
굉장히 후덕하게 살이 찐 상태.
그도 그럴 것이, 진수가 장난을 친다고 넣어놨던 헌터 전투 식량의 열량은 그야말로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열량 소모가 큰 헌터들인데, 비상시에 먹을 오로지 열량에 집중한 식량이 얼마나 높은 칼로리를 지녔을까.
그런 전투 식량을 거의 한 박스 먹어치웠으니 살이 찔 수밖에 없었다.
“키에에... 헤엑, 헥!”
한손으로 피가 쏟아지는 목을 붙잡고 송곳니를 드러내는 가국.
하지만 이미 눈이 반쯤 풀려있었다.
“너어...! 너 누구야!”
“야, 이 멍청한 놈아. 그걸 알려줄 거였으면 내가 이런 가면을 쓰고 있겠냐?”
진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고작 이 정도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너 같은 인간놈들은 한 트럭이 와도 안 무섭다!”
놈의 말이 허장성세는 아니었다.
억누르지 않고 뿜어내는 기운은 만티코어 이상.
진수는 예상보다도 훨씬 강대한 힘에 마른침을 삼켰다.
“니가 멀쩡한 상태였으면 이기기 힘들었을 것 같네. 그건 인정.”
-슈슉
그가 입고 있던 잠입복 위로 방어구가 나타난다.
어둠 속에서 마력회로가 은은하게 타올랐다.
“하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너... 너!”
진은의 냄새가 진동하는 방어구.
이런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이 흔할 리가 없었다.
가국은 진수를 가리키며 말을 더듬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야, 눈치가 없냐. 그러면 이제 내가 널 절대 살려줄 수가 없잖아.”
‘물론 애초에 살려줄 생각도 없었지만.’
진수는 망치를 손에 단단히 쥐었다.
놈을 상대하는 데에 가장 좋은 건 전기톱이겠지만, 그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선 목 외에는 출혈 부위를 만들지 않는 게 좋았다.
-퍼엉!
방어구에 마력을 흘려보낸다.
푸른 마력회로가 어두운 하수도를 밝혔다.
“함부로 어깨빵을 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아, 설마 그 일 때문에 쩨쩨하게... 켁!”
가국이 입을 여는 순간을 노려서 망치가 날아든다.
그 일격에 놈의 눈에 절망감이 돌았다.
힘, 속도, 기술 그 어느 것도 지금의 상태에서 이길 수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국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과연 RD의 몬스터들 중에서도 간부급다운 힘.
야성적인 움직임에 하마터면 진수도 위험할 뻔한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역시 진수였다.
가국은 팔다리가 완전히 부러지고 과다출혈로 정신을 거의 잃기 직전이 되었다.
“헉, 헉....”
진수는 격렬한 싸움에 가빠진 호흡을 고르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기계 장치에서 쏘아져 나와 벽에 꽂힌 저주받은 신의 창을 회수한다.
다시 돌아온 그는 곤죽이 된 가국의 목을 잡아 들어올렸다.
“좋아, 이제 거의 다 됐다.”
가국의 숨통을 틀어쥔 그는 이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놈의 온몸을 포박한다.
그 다음 진은이 섞인 방어구를 [차원에 틈]에 들여보냈다.
이어 출혈의 저주로 인해 피가 멈추지 않고 있는 가국의 상처에 임시 지혈도구를 쑤셔 넣었다.
혈액과 닿으면 부피가 팽창하면서 물리적으로 출혈을 틀어막는 물건이었다.
“끄아아악!”
신속하게 외부로 나오는 피를 막는 대신 엄청난 고통을 선사해준다.
진수는 비명을 지르는 가국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으으읍! 으읍!”
그대로 공동의 위로 뻗어있는 통로를 타고 올라가는 진수.
그의 한쪽 손에는 축 늘어진 채 신음소리만 내는 가국이 들려 있었다.
-덜컹
살짝 열린 맨홀 뚜껑.
신선한 공기가 흘러 들어온다.
반대로 하수도의 냄새도 주변에 퍼질 것이다.
-스륵
마치 마술처럼 진수의 손 위로 블루 오아시스가 조금 나타났다.
고통마저 잊게 해주는 향기에 가국의 눈이 번쩍 뜨인다.
놈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호랑이 가면 뒤로 웃음 짓는 두 눈.
그리고 이내 코와 눈을 덮는 손바닥이었다.
“읍? 으읍! 으으읍!”
입을 완전히 틀어막는 재갈과 콧구멍을 가득 채운 블루 오아시스.
가국은 코 점막을 통해 녹아드는 마약의 황홀함과 산소 부족이 주는 미칠 듯한 괴로움을 동시에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이정도면 됐겠지?”
진수는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는지 몇 초 뒤에 맨홀 뚜껑을 닫은 뒤 가국의 숨통을 끊었다.
뿅 가 죽네!
-가국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가국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가국은 이름이 아니라, 몬스터 종족명이었다.
‘인간 형님. 이렇게 불리는 꼴이었네. 호랑이 형님 같은 느낌인가?’
진수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가국의 이름을 몽치라고 지어야 할지, 찡찡이라고 지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상태창에 들어간 그림은 원숭이를 닮았기에 결국 몽치로 결정했다.
-가국 [몽치]가 [꾸러기 수비대] 무리에 합류합니다.
가국을 전이시키고 나니 하수도엔 큰 흔적이 남지 않았다.
꽤나 격렬한 전투가 있었지만 워낙 오래된 하수도라 긁히고 파손된 자국은 별 티도 안 났다.
진수는 혹시 빼놓은 게 없는지 점검해본 뒤 자리를 떴다.
* * *
“우웨엑!”
한편, 알유는 치솟는 욕지기에 헛구역질을 연발했다.
신선한 공기를 수차례 들이마셔도 가시지 않는 역한 냄새.
가국보다도 후각이 뛰어났기에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어떤 자식이 이런 짓을 했지?’
블루 오아시스의 옅은 향기를 쫓아 움직인 알유.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에 더욱 속도를 냈다.
이윽고 블루 오아시스를 들고 있는 녀석의 꼬리를 잡았다.
“이건 뭐야?”
그가 발견한 것은 블루 오아시스를 가지고 있는 난쟁이.
놈은 거미줄 같은 것으로 온몸을 칭칭 감은 채였다.
“주선생 누님이 쓰는 거미줄이랑 냄새가 비슷하네.”
이내 난쟁이를 향해 손을 뻗는 알유.
그 순간, 놈의 주변에 누런 살덩이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왈칵!
땅에 떨어지자마자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액체를 뿜어낸다.
“크악!”
코를 찌르는 악취에 비명을 내지르는 알유.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그것은 바로 오크의 분비샘이었다.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의 분비샘이 갑자기 허공에서 툭, 툭 튀어나왔다.
게다가 난쟁이 놈이 분비샘을 발로 차거나 집어던지면서 냄새가 더 많이 나게 유도하는 것이 아닌가.
-퍽!
심지어 알유의 얼굴에 집어던지기까지.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돌았다.
코가 마비되는 것 같은 괴로움에 난쟁이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놈은 요상한 움직임으로 알유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마치 유령 같은 움직임이었다.
“이놈 죽인다...! 어?”
-슈슉 슈슉
분노가 차오른 알유가 살심을 품자 난쟁이는 기세를 읽었는지 순간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 나서 오크의 분비샘들이 처음에 나타났을 때처럼 하나씩 사라졌다.
점점 옅어지는 악취.
마지막으로 난쟁이까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킁 킁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알유는 놈이 어디로 간 것인지 찾기 위해 후각을 동원했다.
하지만 오크의 분비샘 때문에 순간적으로 코가 마비되어 버렸다.
냄새를 맡으려 애쓴 탓에 역한 냄새가 다시 한 번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우웨엑! 후우....”
구토감을 참아가며 여러 번 심호흡을 한다.
시간이 흐르니 다행히 후각이 돌아왔다.
“으.... 지독하네. 가국 그놈 쪽에도 이런 게 있으려나?”
알유는 가국이 향한 방향으로 신경을 돌렸다.
녀석의 체취가 아주 약하게 맡아졌다.
“어? 물건을 발견한 건가?”
가국의 냄새와 함께 블루 오아시스의 향이 같이 난다.
이내 조금씩 녹아 없어지듯 사라지는 블루 오아시스의 달콤한 내음.
‘이 미친 원숭이가 또...? 하, 진짜 못 말리겠네.’
알유는 가국의 체취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의 냄새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쉬는 알유.
“후.... 평천 형님께 우선 보고를 해야겠네.”
그는 RD 본사로 다시 돌아갔다.
* * *
“가국은 어쩌고 혼자 돌아왔느냐?”
평천의 첫 마디였다.
알유는 머릿속으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고민 끝에 정직하게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아마도... 평천 형님께 또 혼날까봐 숨은 거 같습니다.”
“흥, 또 혼날 짓을 했나보지?”
무심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는 평천.
알유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게... 물건 냄새를 뒤쫓다 보니 가국이 놈이랑 떨어지게 됐습니다. 근데 아마도 녀석 쪽에서 먼저 물건을 찾은 것 같더라고요. 근데....”
“근데?”
평천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나간다.
“가국 그놈이 또 못 참고 물건을 다 흡입한 거 같았습니다. 블루 오아시스의 향내와 가국의 체취가 함께 느껴졌는데, 블루 오아시스의 향이... 금방 사라졌거든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알유.
평천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어차피 이번 물건들은 샘플 수준이었다. 더 많은 양이 본토에서 들어올 예정이지. 그저 이 땅의 인간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을지를 가늠하지 못한다는 게 아쉽군.”
농축된 블루 오아시스 한 상자도 희석하여 상품화하면 상당한 양이었다.
하지만 이후로 더 많은 양의 마약을 들여올 것이라 말하는 평천.
“안정적으로 물건을 운송하려면 서둘러 운송로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인간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걸 줄이더라도 운송로를 개척하는 데에 좀 더 공을 들여야겠군.”
“저... 그럼 가국은 어떻게 할까요?”
아무리 평소에 다퉈도 결국 가국을 챙기는 건 알유였다.
“제 놈이 반성을 하고 정신 차리면 기어들어오겠지. 그딴 녀석한테 정신 쏟지 말고 과업을 달성하는 데에나 신경 쓰거라. 어차피 A급 이상 되는 헌터도 얼마 안 되는 조그만 나라에서 가국 그놈이 위험할 일은 없을 테니.”
평천은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 투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RD의 간부급 몬스터들은 A급 헌터도 힘겨워할 정도의 괴물들이다.
아무리 블루 오아시스에 취해 있는 상태라고 해도 어지간해서는 당하기 힘들다.
평천의 머릿속에 가국이 해를 당할 경우의 수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또한 당연하게 블루 오아시스를 훔쳐간 범인과 마주쳤다면 간단히 처단했으리라 생각했다.
“예,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가국과 만난다면 약을 완전히 끊은 뒤에 나타나라고 전해라! 또 약에 취해 한심한 꼴을 하고 있으면 정말로 명을 끊어버리겠다고.”
평천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살기를 느낀 알유는 바짝 고개를 숙였다.
* * *
-가국 [몽치]가 블루 오아시스를 섭취하여 성장합니다.
-[몽치]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진수의 상태창에 들어온 가국, 몽치는 [차원의 틈]에 남아있던 블루 오아시스를 모조리 섭취했다.
-[몽치] - 현재 상황 : 블루 오아시스를 흡입하고 행복해함 “뿅 가 죽네!”
녀석의 눈 쪽에 소용돌이치는 모양이 생기고 헤롱헤롱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래, 약 때문에 죽었는데 거기 가서라도 즐겨라.’
상태창을 닫은 진수는 동묘의 김건에게 갔다.
이번에 RD에 침투하고 가국을 사냥하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걸 알게 되었다.
“사장님. 방어구랑 잠입복 위에 입을 수 있는 걸 좀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그건 바로, 냄새에 대한 대비였다.
잠입복은 통기성이 부족해서 땀 냄새가 쉽게 난다.
방어구는 진은이 섞여서 진은에 예민한 요괴형 몬스터들이 쉽게 냄새를 맡았다.
이걸 보완할 수 있을 장비를 만들고자 공방에 방문한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은 김건.
그는 잠시 진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왜... 그러세요?”
“옷 위에 또 옷을 입어서 냄새를 덮겠단 말이우?”
“예. 냄새가 안 빠져나가게 꽁꽁 싸매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거 뭐 향수로 악취를 덮는 수준의 발상이군....”
김건은 눈을 질끈 감으며 이마를 두드렸다.
뭐가 문제인지 전혀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진수.
그가 끔뻑거리고 있는데, 이내 김건이 다시 눈을 번쩍 떴다.
“근데, 의외로 방법이 될 수도 있겠어.”
그는 영문 모를 소릴 하더니 창고로 들어갔다.
무언가를 뒤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커먼 종잇장 같은 것을 들고 나온다.
“이게...?”
“옛날에 알던 친구한테 받았던 선물이우. 영 어떻게 써야 할지 가늠을 못 하고 있었는데, 이참에 써먹지 뭐.”
김건의 손에 들려있는 재료는 굉장히 특이한 모습이었다.
얼핏 보면 완전히 시커멓게 보이다가도 또 어떻게 보면 불투명한 재질처럼 보이기도 했다.
종이 같지만 만져보면 종이보다는 가죽의 질감이다.
게다가 이리저리 만져보고 뒤집어도 전혀 소음이 발생하지 않았다.
심지어 손으로 비벼도 마찰음조차 나지 않는다.
“이건 무슨 재료에요? 엄청 신기하네.”
“그... 뭐랬더라. 공허룡인가? 아무튼 뭔 드래곤 날개 피막이라고 했수. 근데 워낙에 까다로운 재료라서 써먹질 못하고 있었지.”
공허룡.
나름 헌터넷도 많이 이용하고 일당 헌터 생활을 하면서 견문을 넓혔던 진수에게도 생소한 몬스터 이름이었다.
하지만 김건이 거짓말이나 허풍을 떠는 성격은 아니니, 분명 존재하는 드래곤일 것이다.
드래곤의 위험도는 상상초월.
최소 S급 헌터들이나 돼야 사냥을 시도해볼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 부산물들의 가격도 엄청난 수준이라는 말이다.
“헉, 사장님. 이런 걸 갖고 계셨으면 팔아서 공방 운영에 보태시지 왜....”
“무슨 소리요? 이런 재료 써먹으려고 공방을 차렸는데.”
진수와 김건은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빛이나 소리 같은 걸 잡아먹는 효과가 있수. 근데, 냄새까지는 완전히 잡지 못 하더라고. 그래서 일종의 공기 커튼 같은 걸 만들어주는 재료가 필요한데....”
“그걸 제가 구해오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건.
“어떤 재료인데요?”
“거, 포천시 쪽에 운악산이라고 있수. 거기에 나오는 몬스터가 있는데 그놈들 정수가 몇 개면 되겠네.”
“아... 실프 말씀이시구나.”
실프는 제법 유명한 몬스터다.
바람의 정령이라고도 불리는데, 흐릿한 몸체에 바람을 이용한 공격을 한다.
놈들을 사냥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오직 마석과 정수뿐.
실프의 정수는 소지하고 있으면 미풍이 계속 나오기에 여름에는 상당히 인기가 있다.
‘물론 활용 방법이 별로 없는 건지 가격이 별로 안 높아서 매물도 적다는 게 문제지.’
시중에서 구입하기 쉽지 않은 재료이기에 직접 구하러 가야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차피 새로운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은 진수에게 무조건 이득이었다.
보상을 뽑아내는 전이자는 다다익선이니까.
‘바람의 정령이면 풍력발전소나 다름이 없지.’
* * *
-실프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새초미 무리] 무리가 숨겨진 차원의 축을 발견했습니다.
-차원의 축 발견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변종 보팔 래빗 [새초미]의 특성 중 하나
포천의 운악산에 도착해 실프 사냥을 시작한 진수.
그는 전이된 실프의 이름을 전령의 신, 헤르메스로 지어주었다.
헤르메스는 새초미 무리로 합류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진수에게 놀라운 보상을 안겨주었다.
보상으로 받은 특성은 바로 [왕성한 번식].
“잠깐... 이걸 어떻게 쓰라고...? 그, 그리고 이런 거 없어도 자신 있거든!”
상태창에 생긴 특성을 보고 잠시 멍해진 진수.
이내 버럭한다.
원래 사람은 약점을 지적받으면 화를 낸다고 한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진 그의 눈앞에 새로운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융합]의 효과로 [왕성한 번식] 특성이 [분열] 기술에 적용됩니다.
바람의 씨앗
-뽀옹 뽀옹
[분열]을 사용하자 작은 진수 둘이 나온다.
동시에 두 개체가 만들어진 분신들은 기존 분신보다 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뭐 저글링도 아니고....’
[왕성한 번식]이 적용된 [분열]은 몇 가지 기능이 향상되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한 번에 분신 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
대신 이 분신들은 더 작고 지능도 떨어졌다.
정말로 왕성하게 분신을 뽑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효율이 좋아져서 은근 쓸 만하긴 하겠네.”
단순히 동시에 두 개체를 생성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다.
기존에는 정확히 본체가 10% 감소하고 0.1 진수가 나왔다면 지금은 한 7% 감소하고 0.06 진수 둘을 뽑을 수 있게 됐다.
거의 두 배의 효율이 된 셈이다.
물론 원한다면 이전과 같이 10% 수준의 분신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본체가 줄어드는 정도가 감소해 효율이 좋아졌다.
‘필요에 따라서 다양한 전법을 쓸 수 있게 됐으니 훌륭하지.’
-스스슥
“아, 찾았다!”
분신을 만들었다 해제했다를 반복하던 진수가 어딘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적으로 몸이 커지는 것으로 봐선 분신 하나가 [분열]을 해제한 모양이었다.
분신의 기억이 알려주는 곳으로 달려가는 그.
그런데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본체의 크기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강화된 [분열]의 제일 좋은 점은 이거인 거 같네.’
그의 몸집이 변할 때마다 달려가는 방향을 조금씩 튼다.
이윽고 도착한 계곡.
그곳엔 흐릿한 바람의 정령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작은 진수.
-뽀옹
“아, 왔다.”
“아, 왔다.”
분신은 또 다시 분신을 만들고 있던 참이었다.
아마 최종 목적지를 알려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았다.
-스스슥
도착한 본체를 보고는 방금 만들어진 작은 진수가 [분열]을 해제한다.
[왕성한 번식]이 적용된 [분열]의 마지막 변화.
바로 분신이 또 [분열]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젠 중간중간 상황보고를 받을 수 있게 됐지.’
[분열]의 분신이 돌아와야만 기억을 전달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신으로 지속적으로 동태를 살피는 데에는 제한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분열]을 새로 사용한 뒤에 감시하던 분신이 돌아가면 된다.
‘덕분에 신출귀몰한 실프의 본거지를 찾아낼 수 있었고.’
포천시에 위치한 운악산의 한 계곡.
유독 바람이 많이 부는 이 계곡에 수많은 바람의 정령들이 모여 있었다.
크고 작은 정령들은 엄지손가락만 한 녀석부터 주먹 크기나 강아지 정도의 몸집을 지닌 녀석까지도 다양했다.
자그마한 날개가 달린 귀여운 외형.
계곡 안에서 장난을 치며 까부는 그들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한다.
-휘이익!
계곡 사이를 완전히 덮을 정도로 커다란 그물 같은 것이 떨어져 내렸다.
그물의 끝자락에는 작은 인간 같은 게 달려 있었는데 손끝에서 거미줄을 쏘며 움직였다.
실프들을 거의 놓치지 않고 그물로 덮어버린다.
-휘이잉!
거센 바람이 계곡을 메웠지만 그물을 무력화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애초에 그물의 모양새가 바람이 밀어내기 힘든 형태이기도 했고, 그물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 은근히 묵직했던 것이다.
“크하하하! 게다가 [강철 거미줄]은 마력으로 이루어져서 함부로 빠져나가기 힘들지!”
계곡 입구에 나타난 사내가 악랄한 웃음을 터트린다.
진수였다.
[강철 거미줄]로 만든 그물에 깔린 바람의 정령들은 애처로운 몸짓으로 발버둥을 친다.
그 모습을 보며 그물의 끝을 잡고 있는 작은 진수들은 [분열]을 사용하며 그 수를 늘렸다.
“크흐흐...! 점화해!”
영락없는 악당의 미소와 함께 진수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여럿으로 나뉜 분신들이 동시에 [백년 도깨비불]을 사용했다.
일시에 불이 붙은 거미줄 그물.
한 곳도 빠짐없이 하얀 귀화가 타올랐다.
-후우우웅!
-휘이잉!
칼날 같은 바람들이 마치 비명소리처럼 터져 나온다.
-슈슉!
진수의 몸 위로 방어구가 나타나 예리한 바람을 막았다.
-실피드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실피드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하나둘씩 놈들이 생명을 잃고 바닥에 정수와 마석을 남겼다.
실프의 어린 개체인 실피드부터 명을 달리한다.
“호, 어린놈들도 있었네.”
녀석들이 일으킨 바람에 힘입어 도깨비불은 더욱 활활 타올랐다.
정령 계열 몬스터는 마력으로 구성된 몸체를 가지고 있었기에 놈들에게 [백년 도깨비불]은 치명적이었다.
‘이 정령이란 놈들도 신기하단 말이지. 마력으로 몸을 만들고... 느껴지는 기운은 보통의 몬스터랑은 또 달라. 어떻게 보면 RD의 요괴형 몬스터들이랑 비슷한 느낌도 들고 말이야.’
손쉽게 학살을 자행하던 진수는 실프의 정수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쿠르릉!
대다수의 실피드와 실프가 사라져갈 즈음, 멀리서 광폭한 기운이 빠르게 다가왔다.
우레 같기도 하고, 제트기가 만든다는 소닉붐 소리 같기도 한 굉음과 함께.
“뭐야, 여기에 필드 보스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하늘 위로 날아오는 존재는 성인 남성과 비슷한 몸집을 지닌 바람의 정령이었다.
놈은 굉장히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쟤 입장에선 웬 괴한이 자기 집에 쳐들어온 셈이니까.’
자그마한 정령들은 표정이 잘 분간이 가지 않았는데, 지금 나타난 녀석은 명백히 감정과 지능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입모양을 봐도 뭐라고 떠들고 있는 것 같았는데 정작 진수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라는 거야.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해야지. 건방진 자식아.”
진수는 우선 그물 안쪽에 있는 실프, 실피드의 마석과 정수를 모두 [차원의 틈]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본 필드 보스가 다시 한 번 성을 낸다.
-펑!
매서운 바람이 터져 나오며 그를 압박했다.
진수는 잽싸게 몸을 피한 뒤 [강철 거미줄]을 날렸지만 놈의 주위에 휘날리는 강풍 때문에 닿지 않았다.
놈은 진수에게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다는 걸 눈치 챘는지 공중에서 내려오지 않고 바람을 쏘아냈다.
다만 녀석의 바람 공격도 진수의 방어구를 뚫지 못하는 상황.
서로 큰 대미지를 입히지 못하는 대치가 이어졌다.
-스으으
“!”
대장 바람의 정령이 진수에게 바람 칼날을 날리는데 순간적으로 몸이 휘청거렸다.
놈의 발목을 잡고 있는 희미한 손.
[망자의 손길]이었다.
“아, 이 애매하게 나쁜 놈들. 누굴 죽이지는 않았다 이거지?”
실프 사냥을 많이 안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람들한테 적당한 피해만 준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을 정도로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꽤나 광범위하게 재산 피해를 일으킨다.
실프의 서식지 근처에는 주기적으로 태풍이 발생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망자의 손길]도 안 먹히면 저걸 뭘로 잡지...?’
원래 의도는 놈을 완전히 끌어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죽음의 기운이 별로 없는 곳이다 보니 녀석이 잠깐 휘청거리게 하는 게 전부였다.
진수는 바람을 막아내며 잠시 고민했다.
‘아! 바람에 거미줄이 날아가는 거면, 바람으로 못 날리게 하면 되지.’
-뽀옹
진수가 손에서 분신을 하나 만들어냈다.
분신을 이내 대장 실프에게 던져본다.
-펑!
하지만 분신에게는 방어구가 없었기에 놈이 쏘아낸 풍압에 터져버렸다.
“크윽!”
분신이 죽으며 느낀 고통이 진수에게 전해진다.
하지만 다시 분신을 만들어 던진다.
또 풍압이 날아왔지만 이번엔 [강철 거미줄]로 방패를 만들어 막아내는 분신.
그러나 바람에 날려 녀석에게 닿는 데에는 실패했다.
“흐흐, 됐다.”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진수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한 번 더 분신을 만들었다.
이번엔 처음부터 거미줄 방패를 만든 채로 던진다.
대장 실프가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강풍을 쐈다.
-펑!
-뽀옹
분신이 풍압을 거미줄 방패로 막음과 동시에 공중에서 [분열]을 사용했다.
새로 나타난 작은 진수는 거미줄 방패를 발판 삼아 도약했다.
분신의 손에는 거미줄 방패와 연결된 [강철 거미줄]이 쥐여 있었다.
“!”
예상치 못한 번식에 놀란 녀석.
다시 한 번 바람을 쏘려 했지만 분신이 한발 빨랐다.
놈의 바람 장막을 찢고 들어가 [강철 거미줄]을 감기 시작했다.
거미줄은 추락하고 있는 분신과 연결된 상황.
대장 실프는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었다.
-슈욱!
거미줄 방패를 들고 있는 분신에게 [강철 거미줄]을 쏜 진수.
결과적으로 필드 보스와 연결이 된 거미줄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놈은 바람의 힘으로 벗어나려 했지만 [상급 악력] 특성을 지닌 진수와 그의 분신들을 떼어내긴 역부족이었다.
결국 거미줄에 똘똘 묶여 바닥에 떨어진 녀석.
“흐흐, 드디어 같은 눈높이로 만나네. 서로 대화가 안 통하니까 새로운 대화수단이 필요하겠지?”
“?”
진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지 인상을 쓴다.
-위이이잉!
“!”
하지만 곧이어 나타난 전기톱을 보자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이해한 듯했다.
“아, 전기톱! 훌륭한 대화수단이지!”
진은이 섞인 톱날이 대장 실프의 몸을 헤집었다.
-진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진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이내 녀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 얘가 진이었어?”
상급 바람의 정령이라고 하는 몬스터, 진.
국내에서는 발견된 사례가 없다고 했는데 운악산에 실프 서식 필드가 생기면서 나타났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풍력발전소가 됐지.’
진수는 이번에 전이시킨 실피드와 진의 이름을 간단히 지어줬다.
-실피드 [나우시카]가 알비노 놀 [백설공주]와 무리를 이룹니다.
-[나우시카]와 [백설공주]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진 [카자마]가 [간장막야] 무리에 합류합니다.
“뭐야, 이름을 또 지어야 되네. 나우시카와 백설공주라.... 둘 다 공주니까.... 괴물왕녀 무리로 하자.”
또다시 괴상한 작명센스를 뽐낸 진수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상태창을 닫았다.
-진 [카자마]가 실프의 정수를 애틋하게 봅니다.
-실프 [헤르메스]가 실프의 정수를 바랍니다.
-실피드 [나우시카]가 실프의 정수 냄새를 맡습니다.
-드워프 [헤파이스토스]가 실피드의 정수를 보며 고민에 빠집니다.
[차원의 틈]에 들어간 대량의 바람의 정령 정수들.
바람의 정령 전이자들과 헤파이스토스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놈은 근데 왜 실프가 아니라 실피드 정수를....’
어차피 이번에 얻은 수량이 상당히 많았기에 관심을 보이는 전이자들이 정수를 가져갈 수 있게 허용해주었다.
이내 민첩 능력치 3개와 마력 능력치 1개가 올라갔다.
-[헤파이스토스]가 실피드의 정수에서 바람의 씨앗을 발견하며 성장합니다.
-[헤파이스토스]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마력 +1
‘바람의 씨앗...? 김건 사장님한테 실프의 정수만 넘기려고 했는데 실피드의 정수도 좀 연구해보시라고 해야겠네.’
진수는 안내 메시지에서 실피드의 정수를 활용할 수 있을만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운악산에서의 볼일을 모두 마친 그는 동묘의 공방으로 돌아갔다.
-후두둑 후두두둑
김건의 작업대 위로 정수들을 쏟아 붓는 진수.
거의 실프 서식 필드를 쓸어 담았으니 그 양이 엄청났다.
“아니, 정수 몇 개...라고 했더니 몇 부대를 가져왔네.”
김건의 입이 벌어졌다.
“다다익선이죠. 흐흐. 참, 사장님. 혹시 실피드의 정수 다뤄보신 적 있으세요?”
“실피드? 아 그 쪼매난 놈들 말이우? 그건 따로 건드려본 적 없수.”
“제가 어디서 들은 건데요. 실피드의 정수에 바람의 씨앗이라는 게 있다고 하는데... 한 번 살펴보시겠어요? 어차피 실피드 정수는 별로 값도 안 나가니까 여기 있는 거 다 맘대로 쓰셔도 돼요.”
진수의 말에 김건의 얼굴이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확실한 거요?”
“아, 그럼요. 근데 바람의 씨앗이라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그건 알아보면 되겠지.”
진수가 마력회로를 보는 지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안 뒤로 김건은 그의 말을 상당히 신뢰했다.
그냥 돈과 소재만 넘기는 고객을 넘어서 동료에 가까운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조금만 주쇼. 내 기가 막힌 물건을 만들어 줄 테니.”
김건의 눈이 의욕으로 활활 불탔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가 의욕을 불태울 때 실망스러운 물건을 만든 적은 없었다.
* * *
‘김건 사장님이 정체 숨길 수 있는 물건 완성할 때까지 당분간은 좀 자중을 해야겠고.... RD 던전 활동이나 좀 하면서 착실한 이미지나 쌓아볼까.’
공방에서 나온 진수는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RD의 요괴형 몬스터들을 전이시키고, 놈들의 마약을 빼돌린다.
이게 현재의 목표였다.
‘더 많은 정보를 빼내려면 RD에서도 인정을 받는 게 좋겠지.’
진수는 핸드폰으로 RD에서 요청사항이나 공지 따위를 올리는 어플리케이션을 켰다.
“엥? 이게 무슨 소리야?”
RD에서 모든 소속 헌터들을 대상으로 공지사항을 하나 올려놓았다.
네트워크
“던전 활동을 축소한다고?”
RD에서 올린 공지사항의 내용은 꽤 간단했다.
지금까지 주요 수익 모델이었던 던전 활동을 줄이고 다음 목표였던 운송로를 구축하는 데에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운송로 작업에 투입돼도 던전 활동 때에 비교해서 수익이 줄어들지 않도록 활동 장려금을 충분히 지급하겠다고 한다.
‘오히려 나한텐 좋은 일인가?’
수도권에 있는 필드 몬스터는 거의 다 [차원 전이]를 시켰다.
물론 새로운 기능과 아이템, 전이자들의 활동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전이자들의 양적 성장은 조금 정체되고 있는 상황.
차라리 운송로 개척을 하면서 다른 지역에 있는 몬스터들을 전이시키면 [차원 전이]를 얻었던 초기처럼 빠르게 목록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활발하게 참여하면 RD에서 금방 인정을 받을 수도 있겠고.’
여러모로 계산을 해봐도 괜찮은 계획이었다.
공지사항을 다시 한 번 살펴본 진수.
“그럼 내일 RD 본사에 가서 운송로 팀 배정을 받아야겠다. 가국이 없어진 거에 대해서 뭔가 눈치를 챘는지 분위기도 살필 겸.”
* * *
RD 본사에 방문한 진수.
그는 몬스터들이나 조선족 인물들보다 한국 헌터들이 더 많이 와있는 것을 처음 봤다.
각자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RD에 들어온 헌터들은 대부분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왔으니, 빨리 운송로 작업에 들어가서 장려금을 받으려는 것이었다.
‘팀 배정 받으려면 한참 걸리겠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운송로 팀을 배정 받으려고 몸부림치는 헌터들.
진수는 한 발짝 떨어져 그 모습을 보았다.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지니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헌터들이 북적거리는 로비.
그리고 2층 난간에 서서 그들을 보고 있는 RD의 간부 몬스터들.
‘던전 활동도 저놈들이 함께 다녔으니까 운송로 작업에도 투입될 가능성이 높지. 가국도 그때 데스 트렌트를 잡으러 왔었고.’
그는 헌터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자들 중에서 주선생을 찾았다.
얼마 전에 함께 사냥을 하자고 말했던 게 떠오른 것이다.
‘빈말이었든 아니든 철판 깔고 필요한 건 써먹어야지.’
로비에서 앞 다투어 배정을 받으려고 하는 이들을 지나쳐 2층으로 올라간다.
“돈이 좋긴 좋네요. 인간들을 이리 쉽게 부릴 수 있으니까요.”
“크흐흐, 인간들 스스로 목줄을 찬 셈이지.”
“글쎄요. 결국 생존에 목숨 거는 건 다 똑같은 거 아닌가요?”
헌터들을 보며 떠들고 있는 RD의 간부 몬스터들.
“흥, 짐승들이 사람을 구경하는 꼴이라니.”
“그러다 듣겠어요.”
“들어봤자 어쩌겠어. 전형과 계약해서 우리한테는 어차피 해코지를 못 할 텐데.”
그리고 그 간부 몬스터들을 흉보고 있는 RD 소속 인간들.
진수는 그 기묘한 분위기를 잠시 훑어보다가 이내 주선생 쪽으로 향했다.
2층에 나타난 헌터에 편하게 떠들던 녀석들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여러 쌍의 시선들이 진수에게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주선생님.”
“아, 진수씨.”
주선생은 어느새 호칭을 한층 편하게 바꿔서 불렀다.
“무슨 일이에요?”
“이제 운송로 작업에 집중을 한다고 하잖아요? 지난번에 주선생님이 같이 사냥 한번 가자고 하셨던 게 생각나서요. 운송로 작업은 시간이 꽤 오래 걸리니까.... 약속도 지킬 겸 주선생님이랑 같은 팀으로 움직이면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하하.”
넉살 좋게 웃으며 말하는 진수.
주선생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진수씨 보기보다 눈치가 좋네요?”
빠르게 운송로 작업 팀을 배정받으려는 그의 속셈을 간파한 주선생.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머리를 굴리는 인물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여러모로 주선생은 네트워크를 좋아하는 편이었으니까.
“좋아요. 전 원래 혼자 활동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같이 가죠.”
주선생이 싱긋 웃으며 답한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해결됐네.’
“오늘 오후에 바로 출발할 예정인데, 괜찮죠?”
“그럼요.”
주선생이 맡은 운송로는 이천시와 수도권을 잇는 길이다.
식량 생산을 많이 하는 이천시였기에 원래도 왕래가 많다.
RD에서 안정적으로 운송로를 뚫는다면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다.
‘제대로 구축만 되면 식량 물가는 상당히 내려가겠네. 이놈들 목적이야 국내 유통망을 만들어서 마약을 팔아먹으려는 속셈이겠지만.... 이거 어쩌면 괜찮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어.’
진수는 주선생과 이동 경로를 논의하면서 다른 팀들의 경로도 슬쩍 보았다.
전국으로 뻗어있는 청사진.
지금은 먼저 수도권에서 충청도, 강원도로 향하는 길목을 뚫는 계획이지만 최종적으론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각 도시 사이사이까지 이어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이들의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면 각성자와 헌터를 중심으로만 도시를 왕래하고 있는 현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비각성자들한테 지지도 많이 받겠는데?’
뉴트럴바이오 때도 느꼈지만 한국 사회엔 비각성자와 헌터들 사이에 묘한 대립이 있다.
RD가 의도적으로 노렸는지는 몰라도 그 틈을 파고들며 중간자 자리를 차지하려 하는 것이다.
“이동하면서 몬스터는 가급적 각자 알아서 잡는 걸로 해요. 지난번 실력 테스트 보니까 필드에서 진수씨를 걱정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더라고요.”
주선생이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아, 네. 저도 좋아요.”
진수에게도 나쁠 게 없는 제안이었다.
“몬스터 사체는 그럼 어떻게...?”
“그것도 알아서요. 챙기고 싶으면 챙기고 그냥 버리고 싶으면 버리고요. 움직이는데 지장만 없게 하면 돼요. 알겠죠?”
주선생은 굉장히 쿨한 태도였다.
“아마 2박3일 정도 일정이 될 거예요. 마지막 하루는 이천시에서 돌아오는 길일 테니까 이틀 정도 움직이면서 필요한 것들 준비를 해서 한 시간 뒤에 봐요.”
진수는 주선생과 헤어져 운송로 구축 작업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다.
RD 지하 창고에서 전투식량을 보급 받고 [차원의 틈]에 보관중인 물품을 점검한다.
준비를 마친 그는 RD 본사 내부를 돌아다녔다.
‘가국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는 내 계획이 통한 것 같네.’
RD 소속인 자들의 분위기가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공격을 받았다고 느끼거나 경계를 하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는 흡족한 마음으로 주선생과 만나기로 한 위치로 향했다.
* * *
-쿠궁...!
진수와 주선생은 중부고속도로 흔적을 따라서 이동했다.
처음에 이야기한대로 각자 몬스터가 나타나면 여유가 되는 쪽이 사냥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진수는 그녀의 쿨함이 어디서 왔는지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이쪽을 상대하려면 가국보다 훨씬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겠는데....’
멀리 떨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땅이 울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일으킨다.
진수는 그녀의 전투 스타일이 궁금해 분신을 하나 보내보았다.
[분열]이 해제된 뒤 전달된 주선생의 전투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학살.
무심하게 마력 구체 같은 것을 던지면 정리 끝이었다.
그 뒤, 몬스터의 사체에 손톱을 쑤셔 박고 체액을 빨아먹는 모습까지.
‘으으, 역시 요괴는 요괴구나.’
주선생은 지금까지 진수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기에 나쁘지 않은 이미지였지만 전투 후 체액을 빨아먹는 것을 보니 소름이 끼쳤다.
특히 분신의 마지막 기억은 휙 돌아보는 그녀의 모습.
매서운 눈빛에 놀라서 [분열]을 해제한 것이다.
-펑거스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펑거스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진수는 고개를 가볍게 저은 후 눈앞의 몬스터를 처치했다.
주선생의 전투가 거의 끝났으니 곧 중부고속도로가 있던 이 길로 돌아올 것이었다.
‘이름은 주황버섯이라고 짓자.’
주황색 갓에 토실토실한 몸체를 지닌 버섯형 몬스터, 펑거스.
외형 그대로 정직한 이름을 지어주었다.
-펑거스 [주황버섯]이 [새초미 무리] 무리에 합류합니다.
펑거스의 사체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선생이 나타났다.
아무런 전투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깔끔한 모습이었다.
-피슉! 피슉!
주변의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온 그녀는 운송로 길목에 거미줄을 쏴 표시를 해두었다.
거미줄은 굉장히 낯익은 형태, 익숙한 냄새를 지녔다.
‘[강철 거미줄]인가...?’
진수는 주선생이 자신에게 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거미줄을 사용하는 요괴형 몬스터.
그녀의 본신은 아마도 거미에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진수가 같은 [강철 거미줄]을 사용하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게 아닐까싶었다.
‘거미라고 생각하니까 또 느낌이 확 다르네.’
주선생의 얼굴을 힐끔 본다.
그녀의 얼굴에 쓰인 커다랗고 동그란 안경이 마치 거미의 눈처럼 느껴졌다.
“왜 그래요?”
진수의 시선을 느낀 주선생이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아, 아니에요.”
“싱겁기는. 계속 움직이죠.”
그의 대답을 듣고 피식 웃은 주선생은 다시 운송로 경로에 맞춰서 이동했다.
진수와 주선생이 몬스터를 처치하고 거미줄로 표시를 해두면 후발대가 안전하게 길을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으레 선발대가 몬스터를 토벌하는 과정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예상외로 일은 쉽게 풀렸다.
-그렘린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그렘린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스켈레톤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스켈레톤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좀비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좀비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그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수준의 몬스터는 일절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파죽지세로 길을 뚫어나가는 그들.
“진수씨 덕분에 일정이 훨씬 앞당겨지겠는데요?”
주선생이 꽤나 기쁜 표정으로 진수를 칭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신의 감각]을 이용하여 경로에 숨어있는 몬스터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몬스터를 처치하는 속도도 B급 헌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능숙했다.
그녀는 RD 본사로 돌아가면 진수에 대한 평가를 좋게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진수의 표정은 그렇게 기뻐 보이지 않았다.
어색한 미소를 짓는 그.
눈동자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뭐가 있길래 임무가....’
자잘한 몬스터들을 처치하며 나아가던 진수는 [차원 전이]의 임무를 받았다.
기왕 움직이는 거, 임무 보상까지 챙기면 더욱 좋을 테니까.
-임무 : 안내하는 몬스터 차원 전이시키기
-보상 : 기술 [워 크라이] 강화
그렇게 받은 임무 내용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문제는 임무의 안내가 평소와 달랐다는 것이다.
진수와 주선생이 향하고 있는 이천시 방향의 하늘을 향하고 있는 안내.
정확히는 하늘 전체를 가리키는 듯 광범위한 영역을 지시하고 있었다.
-쿠르릉!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천둥이 친다.
그리고 앞서 걸어가던 주선생의 걸음이 멈췄다.
고개를 들어 위를 노려보는 그녀.
“이거 재밌네...?”
주선생이 아랫입술을 핥으며 허공을 응시했다.
구름 괴물
2박3일이었던 일정이 훨씬 더 앞당겨져 하루 만에 이천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큰 원인은 두 가지였다.
첫째가 진수의 활약.
둘째가 주선생의 의욕.
애초에 일정을 계산한 것은 주선생 혼자 움직이는 것을 상정한 계획이었다.
진수가 참여하면서 전투뿐만 아니라 몬스터의 감지, 주변 정리 등 역할을 톡톡히 해낸 덕분에 진행이 굉장히 빨라졌다.
또한 하늘 위에 있는 무언가를 감지한 주선생이 의욕적으로 전진하기 시작한 것도 영향이 컸다.
별미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전투가 끝나고 나서 몬스터의 체액을 섭취하는 것도 멈춘 그녀.
그 뒤를 쫓는 진수는 몬스터들의 사체를 날로 먹을 수 있었다.
‘돈도 돈이고, 마석 주사에 쓸 마석도 쏠쏠하게 챙겼네.’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중간중간 하늘 위를 바라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진수는 임무가 가리키고 있는 것과 주선생이 노리는 몬스터가 같은 존재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주기적으로 입맛을 다시는 그녀를 보며 진수는 문득 불안해졌다.
‘아, 이거 잘못하면 임무 달성을 못 할 수도 있겠는데? 지금 내가 주선생이랑 붙어서 이길 수가 있나...?’
가국과의 전투에서 느꼈지만, RD의 간부급 몬스터들은 A급 헌터도 힘겨운 수준의 괴물들이다.
철저한 준비 없이 맞붙으면 필패.
주선생은 하늘을, 진수는 주선생을 살피며 이천시의 식량 창고촌에 들어섰다.
-쿠르릉!
시커먼 하늘이 우렁찬 포효를 한다.
거뭇거뭇한 구름 사이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흐음, 도시 근처도 활동 범위인가보네.”
주선생이 혼잣말을 하는 사이, 누군가가 나와 진수와 그녀를 반겼다.
“RD에서 오신 분들인가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
걸치고 있는 옷가지들은 먼지가 많이 묻어있지만 목과 손목 등에는 금붙이가 제법 둘러져 있었다.
다만 얼굴은 상당히 근심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이천시는 식량이 풍족해서 미식을 즐기는 헌터들 덕분에 꽤나 살만한 동네라고 들었는데...? 그냥 개인적으로 우환이 있나....’
진수가 한 발 빠져 그를 살피고 있는 사이, 주선생과 사내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식량 창고들을 관리하는 관리자.
RD에서 대대적으로 운송로를 구축하고 거래를 뚫으려 한다는 말에 쌍수를 들고 반기는 입장이었다.
“고정적으로 운반을 해주는 헌터가 잘 없으니까... 운송료는 비싸고 일정은 안 맞고... RD에서 이렇게 큰일을 해준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허허.”
“별 말씀을요. 우선 여기까지 이동하는 길 자체는 한 차례 뚫었고, 후발대가 안전한 길로 만드는 작업을 할 겁니다.”
주선생의 말에 창고관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이구, 두 분이서요? 대단하시네요. 아주 등급이 높은 헌터분들이신가봅니다.”
“뭐, 어디 가서 꿀릴 정도는 아니죠. 그런데... 이천시에 대해서 제가 들은 거랑 좀 차이가 있네요?”
진수가 의문을 품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무언가 근심거리가 있는지 묻는 주선생.
그녀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관리자의 한탄이 터져 나왔다.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얼마 전부터 괴상한 몬스터가 나타났는데, 이걸 해치우지도 못하고, 쫓아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저 하늘에 먹구름 보이시죠? 햇빛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돕니다. 어휴....”
대략 한두 달 전에 암운을 몰고 찾아온 거대한 몬스터.
놈은 이천시를 뒤덮는 두터운 구름을 만들고는 간헐적으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식량 생산도 방해하고, 습도도 높여 식량이 쉽게 썩도록 만든다.
게다가 대적하기도 힘든 모습의 괴물이라 아주 골머리를 앓게 하고 있다고 했다.
“대적하기 힘든 모습이라는 게...?”
“커다란 구름 형태의 몬스터인데 실체를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짙은 안개랑 같이 나타나서 어떤 게 몬스터고 어떤 게 안개인지 구분하지를 못한다고들 합니다. 지금까지 이천시에 상주하고 있는 헌터들한테 개별 의뢰도 넣었는데 한 번 맞붙고 포기하거나 목숨을 잃은 자들도 많았습니다.”
식량 창고를 관리하고 있는 입장에서 몬스터보다 무서운 게 습기일 것이다.
게다가 구름이 계속 해를 가린다면 짧은 사이에 빠르게 작물을 키워야 하는 지금의 농업에 큰 지장을 준다.
식량 생산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이천시 전반적으로 큰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 놈이 활보하고 다닌다 이거지....’
진수는 창고 관리자와 주선생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그 몬스터를 해치울 수가 없어서 두고 있다는 거죠?”
그의 말에 작게 한숨을 쉬며 답하는 관리자.
“어휴, 해치우기는커녕 하늘에서 운석이라도 떨어져서 저 망할 놈이 죽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희가 돕죠. 어차피 운송로를 뚫고 계약을 맺으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거잖아요?”
진수가 관리자의 말을 받아서 주선생에게 이야기했다.
진수의 말에 주선생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흐흥.... 맞는 말이네요. 좋아요. RD와 계약을 맺는 게 앞으로도 좋은 일이라는 걸 직접 보여드리는 게 좋겠죠.”
어차피 하늘 위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는 녀석을 잡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이토록 군침이 도는 먹잇감을 그냥 내버려두는 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진수의 말 한마디 덕분에 단순한 사냥이 RD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선행으로 탈바꿈됐다.
‘보면 볼수록 여기 인간들 중에서 단연 마음에 드는 인간이네.’
근래에 RD 내부에서 한국 현지의 인물을 기용하는 안건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주선생은 그 자리에 추천할만한 후보자로 진수를 염두에 두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제가 놈과 싸워본 헌터들과의 자리를 마련해보겠습니다. 특징이나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들으실 수 있게요.”
“그럴 필요....”
창고 관리자의 제안을 거절하려는 주선생.
진수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다가 잽싸게 말을 가로막았다.
“아이고, 저흴 생각해서 그렇게까지. 그렇다면 도움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전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로.
진수가 이렇게 말하자 주선생도 납득을 하는 눈치였다.
‘좋았어. 일단 어떻게 하면 주선생한테서 몬스터를 빼먹을 수 있을지 고민할 시간이 생겼다.’
물론 그의 속셈은 RD의 이익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창고 관리자는 주선생과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추가로 나누었다.
그 사이 진수는 운송로를 구축하며 전이시킨 몬스터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번 녀석들은 대부분 무난했지.’
그렘린의 이름은 기즈모.
스켈레톤은 레오릭.
좀비에게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스켈레톤 [레오릭]과 좀비 [프랑켄슈타인]이 [망자 군단] 무리에 합류합니다.
-[망자 군단] 무리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체력 +1, 내구 +3, 마력 +2
-[망자 군단] 무리가 망자의 통로에서 인간들을 몰아냈습니다.
-[망자 군단] 무리의 업적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50
공교롭게도 레오릭과 프랑켄슈타인이 망자 군단에 합류함과 동시에 인간들을 몰아냈다.
‘저쪽 인간들한테도 이름에 걸맞은 악명이 쌓이겠는데...?’
-띠링
진수가 [차원 전이]의 보상들을 받고 있는데 창고 관리자의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났다.
“아, 구름 괴물과 전투를 치러봤던 헌터들이 근처 카페에 왔다고 합니다. 자리 옮기시죠.”
그는 각성자로 보이지 않았음에도 꽤나 영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메시지 한 번으로 상당한 수준의 헌터들을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보니.
창고 관리자의 안내를 받으며 진수와 주선생은 한 카페로 향했다.
그곳엔 한 팀으로 보이는 헌터 네 명이 있었다.
“아, 대표님.”
창고 관리자에게 대표라고 부르는 남성.
커다란 덩치와 방어구 위로 드러나 보이는 근육들이 상당히 위압감을 준다.
아마도 그가 모여 있는 헌터들의 리더인 듯했다.
“아아, 이종학씨. 이쪽이 서울의 RD에서 오신헌터분들. 이쪽은 이천시에서 활동 중인 A급 헌터, 이종학씨랑 또 같이 활동하는 헌터분들이에요.”
창고 관리자가 양쪽을 소개했다.
“바위곰...?”
이종학은 헌터넷에서 제법 익숙하게 들었던 이름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의 헌터넷 별명을 뱉은 진수.
그의 언급에 이종학이 허허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맞습니다. 그렇게도 불리고 있죠. 허허.”
그는 별명대로 둔한 성격처럼 보였다.
“그런데... 구름 괴물을 잡기엔 조금....”
진수와 주선생을 번갈아가며 보는 이종학.
뒤의 말을 생략했지만 별로 못미더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선생은 일부러 기세를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다.
진수도 그녀가 싸우는 모습이나 가국이 존대하는 것을 못 봤다면 주선생을 가국, 알유보다 아래로 봤을 것이다.
‘나도 뭐... 겉보기에 특출난 건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A급이나 되는 양반이 외형만 보고 판단을 하네.’
조금 빈정이 상한 진수.
그렇지만 주선생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그건 붙어봐야 아는 거겠죠? 우선 그 구름 괴물이라는 녀석이랑 어떻게 싸우셨는지부터 들어보면 좋겠는데요.”
얕잡아 보는 말을 했음에도 도리어 웃으며 말하는 주선생의 태도에 이종학은 퍽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자세를 고쳐 잡고 구름 괴물과의 전투 당시를 설명했다.
주선생은 신중하게 들으며 몇 가지 질문들을 했다.
“물리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고요?”
“마력이 담긴 기술 같은 것은요?”
“힘은 어느 정도 되죠?”
“타격에 대해서 어느 정도나 버티는 것 같던가요?”
그 옆에서 이종학의 팀과 주선생이 대화하는 것을 듣는 진수.
그녀의 질문에 왠지 특정한 방향성이 있다고 느꼈다.
단순히 사냥에 성공하기 위함이 아닌 속으로 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내용들.
“그렇군요. 많은 도움이 됐어요. 고마워요.”
“별 것 아닌데요. 허허. 그놈 잡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헌터들 중에서 거의 반은 못 돌아왔어요. 그러니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여전히 이종학은 그들이 구름 괴물 사냥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선생은 그의 말에 가볍게 목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주 일어나는 이종학.
그리고 진수도 목례를 하며 가볍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하하.”
“다들 그렇게 말했죠.”
이종학의 입꼬리가 묘하게 한쪽만 올라갔다.
진수의 손을 맞잡는 그.
-뿌드득!
그 순간, 아주 작게 뼈마디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진수와 이종학 그 둘만 느낄 정도로 작게.
‘RD식 전투력 과시다 이 말이야.’
면접에서 평천에게 배운 짓거리를 선보인다.
분명 근력과 내구로 A급 헌터가 된 이종학에게 능력치는 뒤진다.
하지만 진수에게는 [상급 악력]과 [스톤 스킨]이 있다.
악수에서는 아주 놀랄만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
A급 헌터 바위곰, 이종학의 눈이 번쩍 떠졌다.
“확실히... 제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군요.”
악수를 풀며 말하는 그의 손엔 벌겋게 자국이 남았다.
“평천 오라버님이 아주 좋아하시겠네요.”
카페에서 나온 주선생이 즐거운 기색으로 말했다.
진수가 악수를 하면서 손을 쓴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하하, 그냥 조금 장난을 쳐봤습니다.”
“잘 했어요. 남한테 무시 받고 다니면 안 되죠.”
“예. 그나저나 구름 괴물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제가 뭘 도와드리면....”
진수가 묻는데 주선생이 손을 들어 올리며 그의 말을 끊는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번 건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대신, 며칠 걸릴 거예요.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줘요.”
“그게 무슨....”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별미가 뭔 줄 알아요? 바로 산 채로 먹는 거예요. 호호.”
그녀는 이미 사냥에 성공을 한 것처럼 들떠 보였다.
혼자 동문서답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
그 덕에 바로 앞에서 진수가 음흉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보다 더 맛있는 건 날로 먹는 거지. 흐흐흐.’
진수는 주선생이 혼자 떠드는 모습을 보며 구름 괴물을 가로챌 궁리를 해냈다.
돼!
-쿠르릉! 쾅!
먹구름이 땅으로 내려온 듯, 짙은 안개와 시커먼 구름이 뒤섞여 시야를 가린다.
구름 사이로 굵은 전기 줄기가 기어 다니고 요란한 천둥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앞에 서있는 여성.
등 뒤로 마디가 나눠진 벌레의 다리 네 개가 튀어나와 있다.
희뿌연 안개 뒤로 거대한 존재가 슬쩍 슬쩍 내비치며 위압감을 주었지만 여성의 태도는 의연했다.
-슈우욱- 피융!
그녀의 손 위로 마력이 구형으로 뭉친다.
이내 빛이 터져 나오며 마력 광선을 쏟아냈다.
안개를 헤치며 나아가는 광선.
시야가 가로막힘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적을 타격한 듯했다.
“쿠워어어억!”
온 공기를 울리는 비명소리가 이어졌으니까.
-휘이이잉!
공격에 적중당한 구름 괴물이 분노하기 시작한다.
광풍이 불며 안개가 일렁거렸다.
구름으로 이루어진 주먹이 불쑥 튀어나와 주선생을 내려찍는다.
-후우웅- 쾅!
주먹의 힘에 수증기의 압력이 더해진다.
놈의 움직임을 뒤따라오는 구름덩이가 한 차례 더 그녀를 후려쳤다.
땅바닥이 패일 정도로 강력한 공격.
주선생은 양팔로 공격을 막는다.
무릎이 살짝 휘청거렸지만 저항하지 못할 정도의 타격은 아니다.
등 뒤의 거미다리로 놈의 주먹을 단단히 붙들더니 순식간에 그 위로 올라탔다.
-스스슥, 스스슥
빠른 움직임으로 주먹에서부터 손목, 팔뚝으로 기어 올라간다.
괴물의 팔뚝을 빙빙 돌며 올라가는데, 놈이 순간적으로 손을 빼내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강철 거미줄]이 녀석의 손목을 감싸고 있었다.
팔뚝을 빠른 속도로 감고 있는 주선생.
“쿠우우우...!”
-투둑, 투두둑!
하지만 구름 괴물의 거력에 거미줄은 서서히 끊어졌다.
이윽고 손목을 옥죄던 거미줄을 끊은 녀석이 팔을 휘둘러 주선생을 패대기쳤다.
-휘익!
놈의 팔뚝에 매달려 있다가 바닥을 향해 빠르게 추락하는 그녀.
하지만 비행 능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땅바닥에 짓뭉개지기 전, 공중에 멈춰 선다.
그리곤 거미다리들을 서둘러 움직이며 허공에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두 다리로 달리는 듯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
-피슉!
그녀는 움직이면서도 손이나 거미다리를 계속해서 놀렸다.
안개의 수증기가 허공에 조금씩 맺혀 이슬이 된다.
덕분에 허공에 촘촘히 거미줄이 쳐져있는 것이 보였다.
주선생은 구름 괴물을 맞이하며 미리 자신만의 거미집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아주 얇게 펼쳐진 거미줄들은 대기의 흐름, 지면의 떨림 따위의 정보를 한 데 모아서 그녀에게 전달해주었고, 그걸 바탕으로 안개 속에 숨어있는 녀석의 위치를 파악했다.
-후우웅!
구름 괴물이 계속해서 몸에 걸리는 거미줄들이 짜증났는지 거칠게 팔을 휘저었다.
-투두둑!
상당한 범위의 거미집이 뜯겨져나간다.
하지만 주선생의 얼굴에 당황이나 걱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꾸준하게 거미줄을 쏘아 새로운 거미집을 만들 뿐.
‘근데 어떻게 [강철 거미줄]을 저렇게 멀리 날릴 수 있는 거지?’
몰래 숨어서 주선생과 구름 괴물의 전투를 살피던 진수는 자신의 [강철 거미줄]과 주선생의 것이 차이난다는 걸 깨달았다.
실프를 잡으러 갔을 때, 진과의 전투에서 강한 바람 때문에 거미줄을 제대로 날리지 못했다.
그런데 주선생은 구름 괴물이 일으키는 광풍에도 원하는 위치에 거미줄을 흩뿌리고 있다.
진수는 그녀가 [강철 거미줄]을 사용하는 걸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피슉!
굉장히 빠르게 쏘아져 나가는 거미줄.
그 끝에 아주 작게 마력탄이 부착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아... 발사형 기술이랑 혼합하는 거구나. [강철 거미줄]이 마력으로 구성이 되니까.... 나도 [망자의 손길]이랑 섞어서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다.’
-쿠웅!
진수가 거미줄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전투의 양상이 달라졌다.
허공에 흩뿌려진 거미줄과 사투하던 구름 괴물의 모습이 점점 드러난 것이다.
놈의 신체가 거미집을 부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오히려 거미집이 그물이 되어 녀석의 몸을 구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놈의 온몸을 붙든다.
움직임이 제한된 녀석의 한쪽 무릎이 꿇려졌다.
“쿠우우!”
거미줄에 칭칭 감긴 녀석이 소릴 지른다.
그럼에도 주선생은 차분히 놈을 무력화시키는 데에만 집중했다.
구름 괴물의 크기는 키가 50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그런 거체를 조금씩 조금씩 거미줄로 묶어 단단히 통제한다.
-후욱! 쾅!
놈이 기습적으로 움직인다.
입을 쩌억 벌려 주선생을 한 입에 삼키려했다.
하지만 녀석의 마지막 발악은 그녀의 손짓 한 번에 무위로 돌아갔다.
거미줄을 제어하는 기술이 있는지 놈의 사지를 뒤틀어 버린 것이다.
입을 벌린 채로 머리를 바닥에 처박아버린 녀석.
전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천시에 있는 높은 등급의 헌터들이 나서도 처리하지 못했던 괴물을 주선생 홀로 해치웠다.
-꿀꺽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진수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로서는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앞으로 RD와 대적하다보면 언젠가 맞붙게 될 상대였기 때문이다.
‘우선 지금은... 계획대로만 움직이자.’
완전히 제압당한 구름 괴물의 위에 걸터앉은 주선생.
그녀는 거미다리 네 개를 모두 놈의 몸에 박아 넣고 체액을 빨아먹었다.
천하일미를 먹는 것처럼 즐겁게 음미하는 모습이다.
진수는 그 모습을 보며 분신 하나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 * *
사흘간 꼼짝 않고 구름 괴물의 체액을 빨아먹은 주선생.
그녀는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강철 거미줄]을 사용해 아예 돔을 만들어 주변과 격리했다.
아무리 맛있는 별미라도 3일을 내리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미동조차 없던 그녀가 조금씩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때다!’
[유체화]를 사용해 거미줄 돔 안쪽으로 들어왔던 진수의 분신이 그녀의 변화를 확인했다.
활동을 시작한 작은 진수.
먼저 [분열]을 수차례 사용해 수를 늘렸다.
돔의 안쪽에도 거미줄이 쳐져있어 함부로 움직이면 들키기 쉬운 상황.
분신들은 [강철 거미줄]을 사용해 온몸을 둘둘 감쌌다.
거미줄에 닿아도 같은 거미줄이었기에 들통 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먹이를 먹는 데에 정신을 쏟고 있네. 다행이다.’
거대한 몬스터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접근하는 작은 진수들.
현재는 적수공권이지만 녀석에게 접근하는 순간 [차원의 틈]에 있는 무기를 꺼내 습격할 계획이었다.
-슈슉!
바로 손이 닿을 위치에 도착한 분신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냈다.
데스 트렌트에게 죽었던 헌터들이 사용한 갖가지 물건들이었다.
“어디 감히 내 먹이를 노려!”
그 순간, 주선생의 앙칼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항상 차분한 말투로 이야기하던 평소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슈우욱!
그녀의 양손에 마력이 모여 구체를 이룬다.
마력 광선을 날리려는 것이다.
그 모습에 분신들이 산개하여 공격에 대비했다.
각자 무기들을 [차원의 틈]에 다시 집어넣고 빠르게 움직였다.
-피융!
이윽고 마력 광선이 발사 되었다.
하지만 워낙 작은 분신들이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에 첫발은 명중하지 못했다.
“이것들이...!”
분개하는 주선생.
-꾸드득...!
그녀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쓰고 있던 동그란 안경이 그대로 얼굴에 박히면서 커다란 눈이 됐다.
입에는 큼지막한 송곳니, 아니 곤충의 턱 같은 것이 돋아났다.
커다란 눈이 빠르게 움직이며 분신들의 움직임을 쫓는다.
-피융!
다시 한 번 쏘아지는 마력 광선.
이번엔 움직이고 있던 분신의 동선을 정확히 계산하여 맞췄다.
-수욱- 퍽!
순간적으로 마력 광선이 작은 진수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더니 궤도가 굴절된다.
덕분에 바로 뒤에 있던 분신까지 터져나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아, 두 놈을 꿰뚫으려고 했는데 이게 왜 이러지?”
주선생이 짜증 섞인 불만을 터트렸다.
-피융! 피융!
이번엔 양손에 하나씩 두 줄기의 광선을 뿜어낸다.
동시에 분신 둘이 적중당해 사라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수가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더 늘어난 거 같은데...?’
분명 세 놈이나 해치웠지만 여전히 여럿이 뽈뽈거리며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그 모습에 신경질적으로 마력 광선을 날리는 주선생.
마력탄을 폭발시키면 한 번에 몰살시키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껏 잡은 사냥감도 휩쓸리게 된다.
사흘 동안 그녀에게 체액이 빨려 약해질 대로 약해져있는 상태이기에 자칫하다간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이것들이...!”
이어 몇 번이나 작은 것들을 처치했으나 분신들은 [분열]을 사용하며 수를 유지했다.
주선생은 이내 짜증이 치밀어 올랐는지 구름 괴물의 위에서 도약해 허공에 섰다.
“감히 내 구역에서 나를 도발하다니...!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거미줄로 된 돔 내부는 미세한 강철 거미줄이 곳곳에 쳐져있는 상태였다.
분신들이 제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도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그녀를 따라오진 못했다.
-펑! 펑!
[분열] 후 거미줄로 겉을 감싸는 속도보다 빠르게 분신을 터트려나가는 주선생.
어느새 그녀는 구름 괴물에게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남아있는 분신은 이제 넷.
그 중 한 녀석을 향해 마력 광선을 날렸다.
-피융! 펑!
분신 하나를 터트리며 궤도가 굴절된다.
그 위력도 상당히 감소된 것처럼 보였다.
“엇?”
그런데 갑자기 한 녀석이 약화된 마력 광선을 향해 몸을 던진다.
-수욱... 펑!
다시 하나를 터트리며 약화되는 광선.
궤도가 다시 한 번 틀어진다.
그 방향은, 바닥에 포박당한 구름 괴물의 근처를 향하고 있었다.
완전하게 궤도를 변경하려고 하는지 또 한 녀석이 광선을 향해 뛰어든다.
“아, 안 돼!”
주선생이 당황하며 마력 광선을 날렸다.
“돼!”
마지막 남은 분신 둘 중 하나가 소리치며 몸으로 막아선다.
이윽고 약화된 마력 광선이 작은 진수에게 닿았다.
-수욱
분신의 몸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간 광선.
앞서서 두 차례 분신들을 터트렸기에 이번에는 분신을 죽이지 못했다.
-피융-!
이내 분신의 등 뒤로 훨씬 강대해진 마력 광선이 터져 나왔다.
분신이 죽지 않았기에 [증폭기] 특성이 발동된 것이다.
에너지형 공격의 위력을 증폭시켜주는 효과.
이제 광선의 궤도는 완전히 구름 괴물을 향하고 있다.
주선생이 [강철 거미줄]을 쏘아 막아보려 했지만 그녀 자신도 안다.
거미줄 정도로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콰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마력 광선이 구름 괴물에게 적중했다.
칭칭 감긴 거미줄 사이로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찜통 속에 들어온 것처럼 거미줄 돔 내부를 가득 채우는 안개.
-스르륵
주선생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거미줄 돔을 해체했다.
수증기가 모두 빠져나가고 나니 구름 괴물과 작은 존재들 또한 홀연히 사라져있었다.
하늘 위엔 먹구름이 걷히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왔다.
이천시를 한동안 괴롭히던 몬스터가 처치된 것이다.
-구름거인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구름거인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기술 [워 크라이] 강화
진수는 눈앞에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주선생의 기척을 감지했다.
작당모의
-슈우욱!
구름거인을 상대했던 탑골산에서부터 식량 창고들이 모여 있는 옛 이천휴게소 근처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주선생.
그녀는 창고 관리자 용민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진수를 발견했다.
이내 매서운 기세를 거두고 속도를 줄인다.
“아! 드디어 해치우셨군요! 여기 김진수씨랑 같이 얼마나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하!”
용민수는 다가오는 주선생을 밝은 표정으로 맞이했다.
“같이요?”
“네. 싸우러 가신 3일 내내 여기 김진수씨가 자주 찾아오면서 다른 헌터들은 싸우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뭔가 큰 기술을 쓸 때 멀리서 느껴지는 징조는 없었는지 어찌나 걱정을 하던지요.”
실제로 진수는 분신으로 주선생의 동태를 살피고 본체로는 이리저리 이천시를 돌아다니며 얼굴을 내비쳤다.
덕분에 RD에서 온 헌터가 구름거인을 상대하고 있다는 소문도 많이 퍼졌다.
“뭐, 주선생님이 어떻게 될 리는 없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가 괜한 노파심에 또... 하하하. 여기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있었습니다.”
쑥스럽다는 듯이 인중을 긁는 진수.
주선생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괜한 의심이었나. 하긴 이 자가 내 먹잇감을 훔쳐갈 이유가 없지. 여기 헌터들 중에서 놈을 노리던 인간이 있었던 걸까? 운송로 구축이 된 다음에 누굴 보내서 알아보라고 해야겠네.’
그녀는 진수에 대한 의심을 거둬들였다.
구름거인을 빼돌린 작은 생물들에게서 어렴풋이 진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지만 그게 뭐라고 특정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알리바이가 확실한 상대를 괜히 의심할 필요가 없다.
‘몇 안 되는 쓸 만한 인간인데.’
이내 가볍게 웃어 보이는 주선생.
“이천시에 워낙 괜찮은 식당이 많다던데, 지역 특색을 잘 즐기고 있었나보군요.”
“고생하고 계신데 저 혼자 호강한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가고일 [휴고]와 변종 랫맨 [라따뚜이]와 구름거인 [미미]가 무리를 이룹니다.
-[휴고] [라따뚜이] [미미] 무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진수는 눈앞에 뜨는 안내 메시지를 닫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고생은 주선생이 하고 자신은 손쉽게 임무를 달성할 수 있었으니까.
‘이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거지. 임무 달성으로 강화된 기술도 빨리 확인하고 싶네. 흐흐흐.’
구름거인 자체도 진수가 과연 상대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의 괴물이었다.
비록 지금은 온몸에 두른 구름이 양털같이 생겼다고 미미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임무 목표가 이 정도라면 그 보상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기술 목록에서 [워 크라이]가 [전장의 뿔나팔]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만 확인한 진수.
직접 사용도 해보고 싶었지만 [워 크라이]만 해도 괴성을 지르는 기술이니 도심에서 사용하기엔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우선 저주받은 성지에 자리 잡은 휴고, 라따뚜이, 미미의 무리명을 [휴고보스]라고 지어주고 상태창을 닫았다.
‘일단 휴고가 제일 짬을 많이 먹었으니까....’
과연 구름거인이 함께 있는데 가고일인 휴고가 보스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 * *
서울로 복귀하는 길은 이천시로 갈 때보다 훨씬 쉽고 편했다.
운송로를 구축하는 길목에 표시해둔 거미줄에 어떤 처리를 했는지 몬스터들이 별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중간쯤에는 운송로에 몬스터를 방비하는 작업을 하는 RD 작업자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들은 몬스터의 접근을 막는 주술진 같은 게 그려진 석판을 설치하고 있었다.
“와, 이거는 두면 영구적으로 작동하는 건가요?”
“아주 영구적인 건 아니라고 그럽니다. 거 운송로 다니는 사람들이 왕래할 때 마력을 조금씩 불어넣어줘야 한다고 그래요.”
“아~ 그렇구나....”
-슈슉
그는 질문을 하는 척 하면서 석판 하나를 슬쩍했다.
[유체화]를 이용해 빼낸 뒤 [차원의 틈]으로 집어넣으니 감쪽같이 빼돌릴 수 있었다.
작업자들과 마주친 이후는 더욱 복귀가 빨라졌다.
정말로 석판이 설치된 운송로 근처에서는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진수와 주선생은 반나절이 채 지나기 전에 RD 본사로 복귀했다.
“진수씨, 이번에 고생 많았어요. 덕분에 정말 빨리 일처리를 할 수 있었네요. 고마워요.”
밝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주선생.
진수는 순간 흠칫했다.
“호호, 저는 평천 오라버님 같이 무식한 행동은 안 하니 걱정 하지 않아도 돼요.”
그녀의 말에 안심하고 손을 맞잡는다.
“내가 뭐 어떻다고?”
주선생과 악수를 하는데 멀리서부터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몸집에 상체를 잔뜩 부풀려 성큼성큼 걷는 남성.
평천이었다.
“귀가 참 밝으시네요.”
“일부러 들으라고 한 소리 아니었나?”
“그런 것도 없지 않죠. 면접 때마다 난리가 나는데도 행동을 고수하시니....”
주선생이 장난 반 책망 반의 눈빛으로 평천을 노려본다.
하지만 평천은 전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넘긴다.
이어 그의 시선은 진수에게로 향했다.
“그때 면접 봤던 헌터군. 꽤 인상이 깊어서 기억이 나. 푸흐흐.”
그의 악수를 수월하게 받아낸 인간이 많지 않았기에 진수를 머릿속에 담아뒀었다.
“주선생 마음에도 꽤 들었나봐? 악수를 다 권하는 걸 보니까.”
“이번에 같이 운송로 구축 작업을 다녀왔는데, 능력이 좋더라고요. 특히 무식하게 힘만 쓰는 타입이 아니라서요.”
“그렇군. 앞으로 자주 볼 일이 있으면 좋겠어! 하하하!”
-툭툭
평천은 진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뒤 떠나갔다.
격려 차원에서의 터치였지만 그의 거력이 어느 정도 느껴졌다.
‘역시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야.’
면접을 보면서 악수를 할 때 그가 힘을 조절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는 이만 올라가서 운송로 구축 작업 보고도 하고 다른 팀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네요. 그럼 이만....”
작별 인사를 고하려는 주선생.
진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얼른 입을 열었다.
“저도 같이 올라가 봐도 될까요? 저희가 얼마나 빨리 움직인 건지 궁금해서요. 기왕이면 빨리 끝낸 편이면 좋겠는데요.”
그녀는 진수의 말에 잠시 고민을 했다.
별 문제는 없겠다는 판단이 섰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둘은 RD 본사 건물에 들어섰다.
항상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던 건물이었는데 몬스터의 피나 먼지, 흙 따위를 묻힌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운송로 구축 작업이 진행되며 RD에 가입한 헌터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듯했다.
-띵
엘리베이터가 운송로 구축 담당 사무실이 있는 층에 도착한다.
이곳엔 한국의 헌터가 몇 보이지 않았다.
“아, 주선생 누님 오셨습니까. 김진수 헌터도 같이 왔네요.”
주선생을 반기는 것은 면접 때 봤던 황계문이었다.
그는 조선족 말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편이다.
“이천시로 가는 운송로 뚫고 왔어.”
주선생이 운송로 구축 작업에 대한 내용을 황계문에게 전달했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는 진수.
이천시에서는 계약에 우호적이라는 이야기, 현재 RD에서 진행하고 있는 운송로 작업들에 대한 내용들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춘천시, 이천시, 용인시로 가는 운송로는 모두 뚫렸습니다.”
“춘천시는 계약 문제가 좀 걸려 있네요.”
“아, 이쪽 운송로는 알유 형님 담당입니다. 아직 복귀 안 하셨네요.”
“수도권 주변으로 한 차례 뚫고 나면 그거 바탕으로 계약을 좀 더 확실하게 잡고 더 먼 도시들이랑 연결해야죠.”
RD의 운송로 구축 사업은 생각 이상으로 잘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다가 금방 우리나라 운송로 구축은 끝나고 중국에서 마약을 들여오기 시작하겠는데...?’
진수는 이러한 내용들을 들으며 뭔가 방법을 강구해봐야겠다 생각했다.
운송로 사업 자체는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을 일이다.
RD를 저지하겠다고 구축한 운송로를 막아버리면 많은 이들에게 반발을 살 게 자명했다.
-띠링
RD 본사에서 나오던 진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유재찬 : 야 RD 들어간 후로는 통 연락이 없냐 잡아먹힘?]
유재찬이었다.
아마 몬스터들이 득실대는 곳에 들어온 후로 아무 말이 없으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이래저래 좀 바빴어 골치 아픈 일도 있고 해서...]
[유재찬 : 뭔 일인데 그래? 안 바쁘면 얼굴이나 보면서 얘기하자]
잠시 고민하던 진수는 이내 그렇게 하자고 답장을 보냈다.
어차피 지금 혼자 생각한다고 RD를 어떻게 막을지 떠오르진 않을 테니까.
* * *
“오, 이천시는 어때? 난 여기 말고 다른 도시는 가본 적이 없는데... 신기하네.”
진수는 유재찬과 만나 RD에 들어가서 있었던 일들을 대략적으로 이야기 해줬다.
이천시에 운송로를 뚫으러 갔었다는 말을 하자 눈을 빛내는 유재찬.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혼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
그래서 등급이 낮은 헌터들은 거의 자신이 지내는 곳을 벗어나지 않는 편이었다.
“뭐,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지. 확실히 맛있는 건 많더라.”
“이야... 운송로인가 다 만들어지면 서울에서도 밥값 좀 내려가겠다. RD 몬스터 쉐끼들, 마냥 욕할 수가 없네.”
“맞아, 그게 문제야.”
진수가 유재찬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왜?”
“분명히 운송로 구축하는 거 자체는 좋은 일이거든. 근데 그 속내가 실은 이놈들이 마약을 가져와서 쉽게 뿌리려고 하는 거라서....”
“왐마. 마약? 그거 기관에서 단속하면 엿 되는 거 아니야? 야 너도 거기 있다가 엮여 들어가면 어떡해.”
유재찬이 호들갑을 떨었다.
“기관 쪽에다가 내가 먼저 신고를 해놨으니까 그쪽에서도 내가 마약 때문에 RD에 들어가 있다고 보진 않을 거야. 근데 이놈들이 참 교묘하게 걸리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고 있어서 문제지.”
“음... 그 운송로를 다 만들고 나면 어떻게 뺏어먹을 수 없나?”
“이게 전국 단위 규모인 건이라.... 나 혼자서 어떻게 하기는 힘들지....”
“그럼 RD처럼 단체 같은 걸 만들어야겠네. 뭐 진수 옐로우 드래곤 해서 JYD로다가. 킥킥.”
유재찬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이씨. 내가 한 A급 헌터거나 인지도가 높았으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코웃음 치며 핀잔을 주는 진수.
“RD에서 한 것처럼 활동에 따른 수익 배분하고, 비각성자들도 같이 일하고. 사람들한테 다 필요한 일이니까 인식도 좋겠네. 어? 이거 제법 괜찮은데...? 뭔가 딱 얼굴마담이 될 만한 인물만 있으면.... 잠깐....”
그의 머릿속에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 하나 떠올랐다.
헌터 등급도 높고,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능력도 출중한 자.
그것도 진수가 손을 빌릴 수 있는.
“왜? 뭔데?”
진수가 농담을 받다가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자 유재찬이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헤드헌팅도 헌팅이라고 봐야겠지? 흐흐흐.”
생각을 정리한 진수가 유재찬에게 떠오른 계획을 공유했다.
그의 말을 듣고는 보완 사항을 이야기하며 내용을 덧붙인다.
둘은 작당모의를 하며 장난기 반 음흉함 반의 미소를 지었다.
영이 참 맑으시네요
“야, 근데 진짜로 그 사람이 너한테 빚진 게 있다고...? 워낙에 남한테 폐 끼치지 않기로 유명한 양반인데....”
진수와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유재찬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둘이 함께 작당모의 할 때야 신나게 떠들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니 얼떨떨한 것 같았다.
“그렇다니까? 내가 연락하니까 바로 만나러 오겠다고 하는 거 봐봐. 그건 걱정하지 말고, 이따가 얘기 시작하면 잘 꾀어낼 준비나 해둬.”
“그 양반이 원래 바보스러울 만큼 착하기로도 유명해서. 니 말이 사실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을지도 몰라.”
유재찬은 꽤나 태평한 말을 뱉었다.
하지만 내심 긴장이 됐는지 덜덜 떨리는 다리는 감추지 못했다.
약속을 잡은 사람이 오기 전까지 계획했던 이야기들을 계속 말하면서 준비를 하는 그들.
만약 제안을 거절당한다면 앞으로 RD를 상대할 계획들이 많이 어그러지게 되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러면 대표 자리를 넘기는 것ㄷ... 아! 왔다, 왔다.”
유재찬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급히 말을 줄였다.
그의 호들갑에 진수가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인물을 본다.
선글라스를 끼고 라이더 자켓을 입은 젊은 남성.
선한 인상에 기본적으로 표정이 밝은 인물, A급 헌터 심선우였다.
우뢰매라는 별명을 지닌.
헬 그림리퍼를 처치할 때 진수가 손을 빌렸던 헌터다.
‘물론 이쪽은 자기가 막타를 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 김진수 헌터님! 연락 아주 안 주시는 줄 알고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는데요.”
그는 진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분명 그에게 뭔가를 요구하고자 만남을 요청한 것일 텐데도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유재찬이 진수에게 ‘내 말이 맞지?’ 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하, 오랜만이네요. 제가 그 이후로 정신없이 바빠서.”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일이 있긴 했다.
수많은 전투도 거쳤고, 뉴트럴바이오에 지금은 RD까지.
“그러셨던 것 같아요.”
진수를 살펴보는 심선우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때 이후로 정말 몰라보게 달라지셨네요.”
나름 베테랑 A급 헌터인 그의 눈에 진수가 정말 놀라운 발전을 한 게 보였다.
풍기는 기운이며 분위기, 몸 이곳저곳에 보이는 굳은살 등의 흔적까지.
한 눈에 상당히 숙련된 헌터라는 단서가 드러났다.
“자,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이쪽은 유재찬 헌터입니다. 저랑 같이 활동도 하고 친분이 있는....”
“안녕하세요. 유재찬이라고 합니다. 하하.”
“네, 안녕하세요. 심선우입니다.”
유재찬과 심선우가 서로 통성명을 했다.
“바쁘실 텐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어떤 걸 해드리면 될까요? 그때 헬 그림리퍼였죠? 그러면 돈이나 아이템을 드릴까요? 아니면 같이 던전 공략이라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오는 심선우.
진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제가... 구상하고 있는 사업이 좀 있는데요.”
“네.”
경청하고 있다는 듯 대답한다.
“이게 헌터들을 좀 끌어 모아야 되는 일이거든요.”
“절대 뭐 나쁜 일이거나 불법적인 건 아니고요.”
유재찬이 옆에서 말을 거든다.
둘의 이야기에 심선우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일종의 유통업이라고 보시면 돼요. 거기에 헌터들의 평상시 활동도 보조하는?”
RD의 사업 설명회를 떠올리며 추후 RD의 운송로를 탈취했을 때 하게 될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각성자, 비각성자를 떠나서 모두에게 좋은 일이며 안정적으로 운영하게 되면 나라 전반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장황한 이야기.
유재찬이 은근히 사기꾼 기질이 있는지 점점 사업 규모를 원대하게 부풀렸다.
물론 정말 성공적으로 RD의 일을 뺏는다면 거짓은 아니게 될 것이다.
“... 그런데 아무래도 헌터라는 사람들이 등급 높은 헌터를 확실히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렇죠.”
한참 사업과 단체에 대한 설명을 한 뒤에야 심선우에게 직접 부탁하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데, 저희가 하려는 사업에 동참해주실 수 있으실까 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어요. 막 많은 일을 해주실 건 없고 일종의 홍보 모델? 상징? 같은 느낌이 되겠네요.”
“좋습니다.”
“만약에 참여하신다고 하면 대표ㅈ... 네?”
“하겠다고요.”
심선우는 흔쾌히 진수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진수를 지그시 바라보는 맑은 눈.
마치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이 너무 착한 거 아니야...?’
진수는 심선우의 시선을 받으며 마주 보았다.
그에게서 보이는 선함.
하지만 마냥 선함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 뒤 바탕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자신감이었다.
자신의 선택을 믿는 자신감.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스스로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는 진수를 믿는 것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믿기에 선뜻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예전에는 그에게서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다만 변한 것은 심선우가 아닌 진수였다.
강자 앞에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나니 비로소 보지 못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천둥새라고 아세요?”
심선우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우뢰ㅁ....”
“그래요, 그 재밌는 별칭을 만들어준 요인이기도 하죠.”
맑게 웃으며 말하는 그.
“천둥새는 번개를 다루는 권능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영조거든요. 그 덕에 사람을 꿰뚫어보는 눈이 있다고 그래요.”
여전히 진수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제가 가진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천둥새]예요. 제가 이 자리에 있게 해준 특성이기도 하고, 이 자리에 오르고도 사람들한테 치이지 않게 해준 특성이기도 하죠.”
그의 눈동자에 작게 전기가 흐르는 듯하다.
진수를 뚫어지게 보던 심선우가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로 사람의 속내까지 보는 건 물론 아니고요. 다만 그 사람의 심성을 어렴풋이 느끼게는 해주거든요. 김진수 헌터님은 영이 참 맑으시네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 정도인 분은 거의 처음이에요.”
조금 사이비 종교의 영입 멘트 같은 이야기였지만 일단 칭찬이었기에 기분이 썩 괜찮았다.
“하하, 감사....”
“생존 본능에만 충실한 몬스터들 중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라고 할까요?”
덧붙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뭐야, 칭찬을 하는 거야? 욕을 하는 거야?’
“푸흡, 킥! 몬스터.... 크흐흣.”
진수의 표정이 묘해지는 와중에 유재찬만 웃음보가 터졌다.
“하하, 나쁘다는 건 아니고요. 그들도 뭐 자기 나름대로 자연의 이치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녀석들이잖아요?”
진수의 표정이 복잡해지는 걸 읽었는지 심선우가 급하게 말을 정리했다.
진수는 속으로 심선우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 수정했다.
‘여기도 조금 돌아이 기질이 있네....’
“그럼 그 단체의 대표는 김진수 헌터님이 되는 건가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묻는 심선우.
“그런데 제가 한동안은 그 사업에 매진할 여력이 없을 것 같거든요....”
진수는 계속 RD에서 활동하며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운송로를 파악, 탈취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기에 심선우를 단체 대표자로 세우는 방법도 고려했던 것이다.
“그래도 구상하신 분이 대표자가 돼야죠. 저는 무조건 찬성입니다. 그냥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에서 최대한 도와드릴 수 있다는 것에서 만족해요.”
“그래, 진수야. 이렇게까지 말씀해주시는데 너무 빼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유재찬이 바람을 넣었다.
이러라고 데려온 게 아니었는데 심선우를 꼬시는 게 아니라 진수를 꼬드기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건 나중에 일이 진행되면 다시 이야기 해보기로 해요.”
“에이, 나중은 무슨. 김.진.수. 대.표.님! 딱 좋네. 이렇게 하죠.”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하는 유재찬.
그리고 심선우는 그게 마냥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알겠어요. 그러면 대표는 제가 하는 걸로 하고 계획을 짜겠습니다. 저야 좋죠. 나중에 후회하시면 안 돼요?”
“그럴 일 없어요. 김진수 대표님. 하하.”
심선우가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결과적으로 진수가 원하던 방향으로 잘 풀린 것만 아니라 더욱 좋은 결과가 됐다.
RD를 막으면서 운송로를 유지할 수 있길 바랐을 뿐이었는데 잘하면 진수의 차지가 될 수도 있게 된 것이었으니까.
진수와 심선우, 유재찬은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지 간단히 나누고 헤어졌다.
아직은 구상 단계에 있으니 크게 정할 것은 없었다.
‘이 일을 현실화하려면 또 중요한 게 있지.’
RD의 운송로 구축에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몬스터를 쫓는 석판이었다.
이 물건을 양산할 수 없다면 지속적으로 운송로를 지켜야 하는데 인력으로 손쉽게 될 일이었다면 도시 사이의 교류가 진작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예상외로 일이 술술 잘 풀려서 오늘 해결을 할 수도 있겠어.’
진수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 예. 오늘 좀 찾아뵙고 싶은데 자리에 계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거기로 갈게요. 부탁드릴 것도 있고... 여쭤볼 것도 있고 해서요. 네. 이따 뵐게요.”
* * *
진수가 도착한 곳은 조민준의 개인 연구실.
아마 수많은 헌터들이 조민준을 당일 날 연락해서 만난다고 하면 경악을 할 것이다.
워낙에 까다롭고 약속을 잡기 어려운 인물이었으니까.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새로운 기술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 수 있는 게 바로 진수였다.
“어우, 도깨비! 오늘은 또 무슨 일이에요? 새로운 기술?”
싱글벙글 웃으며 진수를 반겨주는 조민준.
진수도 마주 웃으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RD 운송로에 설치되는 석판.
그걸 본 조민준의 표정이 이내 시큰둥해졌다.
“에이, 지난번 가져온 부적이랑 비슷한 거네요. 그건 뭐 충분히 봐서 별로....”
“하하, 그래도 한 번 봐주세요. 지금까지 협조 많이 해드렸잖아요.”
진수는 웃으며 그에게 부탁했다.
“일단 들어와 봐요. 별로 내키진 않지만 어떤 건지는 대강 봐줄 수 있으니까.”
조민준은 급격하게 기운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
연구실 안에 들어와 석판을 살피는 그.
돋보기를 들어 적당히 훑어봤다.
“이것도 저번이랑 뭐 기본적인 매커니즘은 비슷하네요. 특정한 차원의 파장을 일으켜서 몬스터들로 하여금 이게 설치된 구역을 잘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요. 딱히 재밌는 요소는 없네.”
상당히 복잡하고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말투가 워낙 무미건조하니 진수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걸 복제하거나 양산할 수도 있을까요?”
“뭐 이거 잘 아는 사람이 공을 들여서 분석해보면 될 수도요? 뭐 확실하지는 않고요.”
귀찮은 일을 떠맡기 싫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장의 뿔나팔].”
“네?”
진수는 무심하게 한 마디를 뱉었다.
그리고 진수가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조민준.
‘이거면 무조건 먹히겠네.’
기술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미친 듯이 파고드는 조민준이 기술명을 듣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술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술이라면 조민준에게 써먹을 수 있는 최상의 패가 된다.
“아~ 뭐 별 건 아니고요. 제가 이번에 얻은 기술이거든요. 저는 그런 주술진 분석도 그렇고 기술에 관해서도 조민준씨가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네요. 석판이랑 [전장의 뿔나팔]은 잘 아는 사람을 찾아서 보여줘야겠습니다.”
진수의 말에 조민준이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 습니다....”
“네?”
“석판 분석... 열심히... 하겠습니다....”
조민준이 감기약 먹는 어린아이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크흐흐.... 이렇게 순진한 기술자는 다루기 참 쉽다니까?’
그의 얼굴을 보며 진수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상 [전장의 뿔나팔] 기술을 분석 받는 건 그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걸 빌미로 석판을 양산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일단 그 석판의 기능을 양산할 수 있을지 좀 보고 계세요. 다 되면 연락주시고요.”
“그, [전장의 뿔나팔]은....”
“아이, 일 끝나시면 보여드릴게요. 흐흐흐.”
그는 조민준에게 일감을 안겨준 뒤에 동묘로 향했다.
김건이 공허룡의 날개 피막과 실프의 정수로 만든 장비를 완성했다고 연락 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람의 씨앗도 발견했다니.... 선물상자라도 받으러 가는 기분이네.’
진수는 콧노래를 부르며 김건의 공방으로 이동했다.
징크스
“자, 보쇼.”
김건이 검은 코트를 들어올린다.
옷이 서로 마찰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늘이 질 텐데 색도 모두 검은색으로 굴곡이 보이지 않는다.
옷이 있는 공간만 홀로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공허룡의 피막이라더니.... 정말 공허 그 자체네.’
진수는 코트를 이리저리 살피고 코를 박고 냄새도 맡아봤다.
[중급 후각]으로도 아무 냄새를 맡지 못한다.
“이거 냄새는 못 막아준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냄새를 못 막아주는 게 아니고, 그 재료가 닿지 않는 부분에서 확산되는 냄새는 못 잡는단 소리였수. 그래서 실프의 정수가 필요했던 거고. 입어보면 무슨 소린 줄 알 거요.”
그의 설명을 듣고 공허룡 코트를 입어본다.
코트 안쪽에 새겨진 마력회로를 본 진수는 단번에 사용방법을 이해했다.
-스스스...
마력회로에 마력을 주입하니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공기를 빨아들인다.
조금의 소음이 발생했지만, 코트를 여미면 그 소음마저도 공허룡의 날개 피막이 차단한다.
몸 전체와 주변의 공기까지 끌어당겨 냄새를 제거해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걸어 다니는 공기청정기가 됐네.’
“어떻게, 마음에 드쇼?”
“예, 딱 제가 바라던 기능이에요. 하하. 역시 사장님 솜씨는 배신을 안 하네요.”
진수가 김건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턱수염을 벅벅 긁으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 김건.
“거, 뭐 대단한 거라고. 예전에 포항에 있을 때는 쇳덩이 가지고도 그런 물건은 뚝딱 만들었었는데....”
“사장님 포항 쪽에 계셨었어요? 포항에 장인이 많다더니... 귀한 분한테 물건을 받고 있었네요. 흐흐.”
능글맞게 말하는 진수.
“귀하기는 무슨. 그 코트에 들어간 것도 포항 떠나오면서 작별 선물로 받은 거요. 언젠간 그 친구도 보러 갈 날이 있겠지.”
김건의 눈빛이 잠시 착 가라앉았다.
예전 일을 떠올리는 눈치였기에 진수도 잠자코 기다렸다.
“뭐 어쨌든, 이제 이것도 한 번 보쇼. 그 바람의 씨앗인가 뭔가 하는 게 뭔지 한참 살펴봤는데, 아주 재미난 게 있더라고?”
그는 짧은 회상을 마치고 말을 이었다.
흰 모래 알갱이 같은 것을 꺼냈는데, 그냥 보기에는 아무런 특징 없는 모래알 같았다.
“마력을 조금 불어넣어 보쇼. 아주 조금ㅁ....”
-휘이이잉!
진수가 마력을 적당히 흘려보내니 상상 이상의 광풍이 공방 내부에 휘몰아쳤다.
그 작은 알갱이에서 나오리라 생각지도 못한 수준의 바람.
작업대에 놓여있던 물건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가까이에 있던 김건도 뒷걸음질을 쳤다.
-파삭!
한바탕 엄청난 바람을 뽑아낸 알갱이가 바스러지며 소동은 끝이 났다.
“거, 조금만 넣으라니까....”
머리가 아주 까치집이 되어버린 김건이 나무라는 말투로 말했다.
“그게 바람의 씨앗이우. 아주 코딱지만 한 게 굉장한 바람을 품고 있더라고. 대신 마력 조절을 잘 해야 안 깨먹고 쓸 수가 있수.”
확실히 실프의 정수와는 전혀 다른 쓰임이었다.
실프의 정수는 특별히 마력을 불어넣지 않아도 미풍이 나오는 물건.
그런 기본적인 특징이 있기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다른 에너지원에 의해서 더 강한 바람을 만들어내는 것은 구현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예상외로 실피드의 정수에서 답이 나온 것이다.
“아마도 어린 개체다보니까 정수에 방향성이 정해져있지 않은 거겠지. 어쨌든 이걸 바탕으로 장비를 조금 만들어봤수.”
김건이 광풍에 난장판이 된 바닥에서 원판 형태의 물건 몇 개를 가지고 왔다.
그걸 보는 진수의 눈이 빛났다.
“아... 이건 밖에 나가서 써봐야겠네요.”
“음, 제대로 써보려면 그게 낫겠지.”
김건에게서 물건을 받아 공방 앞으로 나온 진수.
원판을 신발 밑창과 몸 이곳저곳에 붙였다.
가볍게 마력을 흘려 넣으니 흡착이 되는 방식으로 달라붙는 물건들.
세차게 발차기를 하고 옷을 털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흐흐, 좋네요.”
우선 견고하게 붙어있는 걸 확인한 그는 다시 한 번 마력을 불어넣었다.
-후우웅!
원판으로부터 세찬 바람이 나오기 시작한다.
진수는 제자리에서 뛰어보기도 하고 왔다갔다 움직여보기도 하면서 테스트를 했다.
기본적으로 몸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준다.
거기에 마력량을 조절하면 2단 점프에 나는 것에 가까운 도약까지.
내려올 때도 이곳저곳에 붙여놓은 원판을 조절하며 안정적으로 착지를 할 수 있었다.
‘이거면 공중에 있는 적도 어느 정도는 상대할 수 있겠는데?’
진과 싸울 때 [강철 거미줄]과 [분열]을 사용해서 어떻게 싸우긴 했지만 답답한 점도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몸을 높이까지 띄울 수 있다면 제한사항이 훨씬 줄어드는 것이다.
“사장님, 이거 진짜 물건이네요!”
그가 함박웃음을 짓자 김건도 뿌듯한지 기쁜 표정이 되었다.
“다 그쪽이 알려준 정보 덕분에 알아낸 건데 뭘. 헌터 생활하기도 바쁠 텐데 어떻게 마력회로나 소재 활용법까지 공부를 하는 거요? 참 대단하구만.”
평생을 헌터 장비 만들고 특별한 재료를 다루는 데에 힘쓰고 있는 김건이다.
그런데 전투 헌터인 진수가 직접 물건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지식 측면에서는 존중할 만큼 많은 것들을 익히고 있으니 놀라울 수밖에.
“에이, 그냥 뭐... 그 정도는 아니죠. 하하”
‘[차원 전이] 덕분에 손쉽게 얻은 지식이니까....’
진수는 그냥 열심히 싸우고 다녔는데 [차원 전이] 덕분에 공부도 열심히 하는 헌터가 된 셈이었다.
“그나저나 지난번에 갖다 드린 아이템은 어떻게 됐어요? 그 보호막 만드는....”
“아, 그거. 그건 복구가 안 될 정도로 망가져 있더라고. 그래서 일단 마력회로 부분을 뜯어봤수. 그 아이템을 그대로 쓰지는 못 할 것 같고, 언제 한 번 방어구 마력회로에 추가 적용할 수 있게 설계를 다시 잡아볼 예정이우.”
“그거면 됐죠 뭐. 사장님 기술이 발전할수록 제가 다 득을 보니까요. 하하.”
따로 아이템을 착용하지 않고 방어구에 적용할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장비 연구는 김건 사장님이 해주시고, 기술 분석은 조민준씨가 해주고, 능력치 향상은 [차원 전이]가 해주고, 나는 꿀을 빨고. 참 훌륭한 분업이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진수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고블린 [고돌]이 [꾸러기 수비대] 무리에게 당신의 종교를 전파합니다.
-[꾸러기 수비대] 무리에 속한 화광수 [똘기]가 [고돌]에게 반발합니다.
-[고돌]과 [똘기]가 결투를 합니다.
-결투의 승자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아니, 그게 싸우면서까지 전파해야 할 일이야...?’
어처구니없는 심정으로 상태창을 열어 전이자 목록을 살핀다.
고돌이와 똘기의 그림 뒤로 불타는 효과가 생겨있고 서로 나란히 서있었다.
‘화광수면 RD 소속 몬스터였으니까... 오크 워리어보다도 훨씬 센데. 큰일이네. 고돌이 괜히 다치는 거 아니야?’
두 녀석이 모두 걱정되긴 했지만 아무래도 고돌이와는 함께 한 세월이 다르다.
고돌이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몬스터 중에서도 약한 종족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고블린이 요괴형 몬스터인 화광수를 상대로 선방을 하기만 해도 아주 훌륭한 성과일 것이다.
-[고돌]과 [똘기]의 결투가 종료되었습니다.
고돌이와 똘기 뒤에 불타는 효과가 제거됐다.
-[고돌] 승리.
“와! 고돌이!”
진수는 자기도 모르게 소릴 질렀다.
“뭐요? 무슨 일 있수?”
공방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진수를 보며 김건이 토끼눈이 되었다.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허공을 보다가 돌발행동을 하니 이상하게 보일만도 했다.
“아, 아니에요. 하하. 사장님, 대금은 제가 조만간 드릴게요. 고생하세요!”
민망해진 진수가 공허룡 코트와 바람생성기들을 챙겨서 공방을 떠났다.
물건들을 대충 [차원의 틈]에 넣어놓고 상태창을 살핀다.
똘기 그림의 눈이 X자로 변하고 혀를 날름 내밀고 있었다.
‘고돌이 얘는 대체 얼마나 세진 거야?’
뉴트럴바이오의 영양제와 블루 오아시스를 먹고 [용사] 특성에 신의 축복, 요정의 호수에 있던 마법의 검까지.
어쩌면 이미 고블린의 영역을 아득히 넘었는지도 모른다.
-[고돌]의 승리로 보상을 받습니다.
-[똘기]의 특성 중 하나
-[꾸러기 수비대] 무리가 당신의 종교를 따릅니다.
-[꾸러기 수비대] 무리가 당신을 칭송합니다.
-제사장 가국 [몽치]가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신탁을 내리십시오.
고돌이가 승리한 덕분에 안내 메시지가 쏟아진다.
똘기에게 받은 특성은 [상급 화염 내성].
또한, 꾸러기 수비대가 진수의 종교를 받아들이며 가국, 몽치가 제사장이 되었다.
‘잠깐... 약쟁이가 제사장이 되면 종교 이미지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진수는 조금 불안했지만 일단 신탁을 내리기로 했다.
고돌이에게 진 똘기를 위로하는 심정으로.
“맞았다고 기 죽지 말고, 다음에 더 잘 하면 되지.”
-[몽치]가 당신의 신탁을 받듭니다.
[몽치] - 현재 상황 : 신탁을 널리 알림 “원한은 반드시 되갚아 주라고 하신다!”
“야, 임마! 약쟁이! 그게 아니지! 복수에 힘쓰라는 말이 아니잖아...!”
몽치는 진수의 신탁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알리기 시작했다.
-신탁의 효과로 당신을 믿는 이들은 복수할 때 더욱 강한 힘을 냅니다.
탄식을 내는 진수.
하지만 신탁은 이미 퍼지기 시작했다.
진수의 종교를 믿는 무리들의 그림 뒤로 불이 타오르는 효과가 나타난다.
진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이마를 쳤다.
‘그래... 우리 애들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것보단 확실하게 복수를 해주는 게 낫긴 하겠지. 뭐 별 일이라도 있겠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체념을 하기로 한다.
하지만 신탁의 여파는 생각보다 일찍 나타났다.
-[고돌]과 [꾸러기 수비대] 무리가 도시 카토를 공격합니다.
도시 카토는 고돌이를 납치해서 검투장에 집어넣었던 곳이다.
신탁이 내려지자마자 바로 고돌이의 복수에 나선 것이다.
[몽치] - 현재 상황 : 도시 카토를 향해 돌격 중 “징크스님을 위하여!”
“으아! 사람들을 치면서 날 징크스라고 부르면 진짜 나쁜 놈이 된 거 같잖아!”
몽치는 진수의 이름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그를 징크스라고 불렀다.
인간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악신 징크스의 탄생이었다.
상태창 너머 차원의 일에 진수가 직접 관여를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다치지나 말라고 5골드씩 7번 써서 [특성 랜덤 박스]를 하나씩 보내주었다.
-[특성 랜덤 박스] 구입으로 특성 [빠른 발]을 얻었습니다.
-[특성 랜덤 박스] 구입으로 특성 [하급 근력]을 얻었습니다.
-[특성 랜덤 박스] 구입으로 특성 [공기 친화]를 얻었습니다.
-[특성 랜덤 박스] 구입으로 특성 [중급 탭댄스 숙련]을 얻었습니다.
-[특성 랜덤 박스] 구입으로 특성 [하급 유연성]을 얻었습니다.
-[특성 랜덤 박스] 구입으로 특성 [숙면]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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