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el 1
상태창에 괴물이 나타났다
“던전에 들어가셔서 몬스터 사체와 마석은 개별로 갈무리하시되 아이템은....”
현장반장이 던전에 들어가기 앞서 주의할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
김진수는 현장반장의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리며 핸드폰 게임에 집중했다.
물론 집중한다고 해도 그가 하는 것은 자동사냥 버튼을 눌러놓고 캐릭터가 성장하는 걸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렇게 가만히 내버려둬도 강해지면 얼마나 좋아?’
핸드폰 속의 캐릭터는 제 스스로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괴물을 때려잡고 능력치가 오르고 스킬까지 알아서 습득했다.
심지어 퀘스트도 저절로 받아서 깨고 있으니 이건 게임이라기보다는 그냥 영상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
“자자, 잔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던전 입장합시다. 구호준비!”
현장반장은 어느새 주의할 것들, 지시사항을 모두 이야기하고는 양손을 허리춤에 착 올렸다.
“염병, 맨날 던전 들어가는데 구호는 무슨 얼어 죽을 구호야.”
김진수의 옆에 있던 정유현이 작게 투덜거렸다.
입으론 싫다고 했지만 몸으론 착실히 구호 자세를 취했다.
왼손은 허리에,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얼굴 옆으로.
“안전제일!”
“좋아! 좋아! 좋아!”
현장반장의 선창에 따라서 모여 있던 헌터들이 외친다.
-짝짝짝짝
구호 후 다들 건성으로 박수를 치며 조회를 마쳤다.
모여 있는 대다수가 피로에 절어있는 얼굴이다.
일당을 받고 던전에 들어가는 헌터들의 수준이라고 해봐야 뻔한 정도.
특별한 기술도, 능력도 없고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일을 찾아 흘러 들어온 자들이 주를 이룬다.
“안전제일 백날 외쳐봐야 몬스터 칼침 하나 막아주는 것도 없는데 웃기지도 않아. 안 그래 김씨?”
“정씨 아저씨 지난번에 함정 처리 대충 하다가 죽을 뻔하시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김진수가 핸드폰에서 잠시 눈을 떼 정유현을 보며 말했다.
까슬까슬하게 자란 수염, 희끗한 새치들이 보이는 머리.
손이며 얼굴이며 자잘한 흉터들이 거칠게 자리 잡혀 있고 표정에는 권태로움이 가득하다.
특히나 정유현의 눈빛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그게 내 잘못인가? 그때는 던전 공략조가 앞에서 일처리를 똑바로 안 해놔서 그랬던 거지. 그리고 뭐 뒈지면 뒈지는 거지. 잘나신 공략조님들 시간 뺏기는 것보다 우리 같은 일당 헌터들 목숨이 싸잖아?”
그는 자조적인 어조로 말했다.
“염병, 같은 헌터인데도 대우가 이렇게 다르네. 김씨는 젊으니까 이 일당 헌터짓 오래 하지 말어. 던전에서 아이템을 삥땅치든 빨리 돈 모아서 헌터짓을 때려 치든 벗어나야지. 여기 오래 있으면 사람이 속에서부터 썩는 거야.”
“하하... 저도 그러고 싶네요.”
김진수가 씁쓸하게 웃었다.
하루 일당이나 받고 던전 공략조가 지나가고 난 뒤를 정리하는 일당 헌터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아마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가 제일일 것이다.
문제는 능력이 없다는 것.
빼어난 특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아서 좋은 아이템을 구입할 수도 없다.
그나마 일당 헌터나마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인 정도였다.
[김진수]
힘:2 민첩:4 체력:5 내구:1 마력:1
특성 : [하급 근력] [하급 내구력]
기술 : 없음
‘그래도 던전에 들어가면 마석을 구할 수 있으니까.’
진수는 자신의 상태창을 보며 왼쪽 어깨를 문질렀다.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왼쪽 어깨에는 검붉은 반점이 자리 잡고 있다.
희귀병인 마석증의 증상이다.
마석을 정제하여 주사해야 살 수 있는 병.
그가 일당 헌터로 던전에 들어가는 이유였다.
‘강한 몬스터한테 나오는 마석을 쓰면 치료가 될 지도 모른다고 했지....’
그는 의사가 확신 없는 목소리로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약한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마석의 가격도 작지 않다.
게다가 주사를 위해 정제하는 금액도 일당 헌터의 벌이로는 허덕일 수밖에 없는 수준.
이 지독한 병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요원해보였다.
“공략조 나옵니다!”
던전의 안쪽에서 한 사내가 외쳤다.
“이번 던전은 잡몹이 많아서 짜증났네. 퉤!”
“빨리 나가서 씻고 싶다. 으~ 던전은 공기부터 기분 나빠.”
“아이템이 두 개나 나와서 다행이군.”
“형! 오늘 득템도 했는데 한잔 콜? 파티 회식 한 번 때려야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네 명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들의 장비에 묻어있는 몬스터의 피와 잔해만 봐도 꽤나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힘들다거나 괴로움이 아니라 그냥 찝찝함, 귀찮음 정도였다.
이 정도 던전에서는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반장님!”
“아, 예!”
공략조 중 매서운 눈매를 한 사내가 현장반장을 불렀다.
이에 잽싸게 반응하는 반장.
“고블린 던전이에요. 뭐 최대한 털긴 했는데 워낙에 존만한 놈들이라. 안에 알아서 잘 정리해주세요. 그리고 얼추 규모는 파악하고 있으니까 너무 해먹지 마시고.”
20대 초반이나 될 것 같은 사내가 40대는 되어 보이는 현장반장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하지만 명백한 갑과 을의 관계.
반장은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해먹다뇨. 저희랑 오래 일하셨으니까 아시잖아요? 정직하게 정산한다는 거. 하하.”
“알죠. 그래도 사람일은 모르는 거고. 여기 어중이떠중이들 모이는 것도 잘 알고 있는데요. 갑니다. 정리 다 되면 연락 주세요.”
그는 깔보는 눈빛으로 좌중을 훑어본 뒤 다른 공략조 헌터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빌어먹을 놈이. 옛날에 내 밑에서 같이 뛰던 놈이 갑자기 웬 기술 하나 얻고는 올챙이적 생각을 못 하네.”
현장반장은 공략조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표정을 구기며 욕을 뱉었다.
“점마가 반장님 밑에 있었어요?”
참견하기 좋아하는 정유현이 반장의 말에 반응했다.
“어, 옛날에 일당 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전투 기술이 생겼다면서 안 나오더라고? 그게 어느 던전인가 뒷정리 하고 난 다음날부터였는데... 아이템이라도 몰래 숨겼던 건지도 모르지. 스캐너에 안 잡히게 수를 썼으면 증거도 없으니까.”
“저, 저 우리더러 해먹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는 걸 보니까 지가 하던 버릇이 있어서 그랬나보네.”
정유현이 공략조가 사라진 방향으로 손가락질을 했다.
“이제 공략조도 나왔으니까 들어들 갑시다. 빨리 시마이 하고 일찍 퇴근해야지.”
현장반장이 박수를 치며 헌터들을 던전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의 지시에 따라 느릿느릿 걸어 들어가는 헌터들.
안전장구는 대충 걸치고 손에는 몬스터 해체 장비를 설렁설렁 챙겨 움직였다.
“아저씨. 던전에서 아이템 챙겨서 기술이나 특성 같은 게 생기는 경우도 있어요?”
진수는 하품을 쩍쩍 해대며 걸어가는 정유현의 옆에 따라 붙었다.
“어? 뭐 그런 소문은 있는데 내가 한 10년 구르는 동안에 직접 본 적은 없었어. 염병, 반장 그 양반이 그냥 객쩍은 소리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말어. 던전에서는 그냥 내 한 몸 건사하고 일당이나 제대로 받으면 그게 제일이지.”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진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이라고 할까?
‘혹시 던전에서 숨겨진 아이템이라도 찾는 거 아니야?’
마석증을 치료한다는 목표가 아니더라도 뛰어난 헌터가 되는 것은 가져볼만한 꿈이다.
지금껏 누려보지 못한 부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관심과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었으니까.
진수는 근거 없는 기대감을 가슴에 품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기대대로 던전 속에 숨어있던 것을 만나게 되었다.
“끄아아악!”
“사, 살려줘!”
“누구 싸울 수 있는 사람 없어?”
“시팔! 몹이 남아있다는 소린 안 했잖아!”
공략조를 피해 숨어있던 몬스터를 말이다.
“키에엑!”
녹이 잔뜩 슨 칼을 든 고블린은 바위 틈새에 숨어 있다가 일당 헌터들을 습격했다.
놈은 본능적으로 인간의 급소를 노려 칼을 쑤셔 박았다.
처음 공격당한 사람은 단말마의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고 연달아 그 옆에 있던 사람까지 공격해 발목을 끊어냈다.
이가 나가고 녹슨 칼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힘으로 거의 뜯어내듯 발목을 잘랐다.
분명 생긴 것은 평범한 고블린이었지만 녀석은 뭔가 달랐다.
더 강하고, 잔인했다.
“시, 시벌. 공략조 이 개자식들 일을 이따위로 해?”
정유현이 몬스터의 사체에서 마석을 긁어내는 작은 칼을 꺼내 들고는 진수의 앞을 막아섰다.
칼을 들고 있는 그의 손은 발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날붙이를 꺼내든 것이 오히려 악수였을까?
고블린의 시선이 정유현에게로 향했다.
헌터라는 인간들은 놈에게서 거리를 벌린 채로 둘러싸고 있고 정유현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고블린의 시선을 받았다.
놈은 마치 양떼 속에 들어온 늑대처럼 여유를 부렸다.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이 인간들은 그저 자신이 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키키킥!”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던 녀석이 정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쌔액!
고블린의 칼이 매섭게 공기를 가른다.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이빨처럼 정유현의 목을 노리는 흉기.
그 순간, 진수가 안전모를 방패처럼 들고 놈의 칼을 막았다.
-콰직!
안전모가 쪼개지며 칼날이 팔뚝에 박혔다.
하지만 기세가 줄어든 칼은 진수의 뼈에 걸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퍼억!
엄청난 고통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지만 진수는 이를 악물고 고블린을 걷어찼다.
“켁!”
놈은 작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고, 진수는 팔에 박힌 칼을 뽑아들고는 그대로 도망쳤다.
왼팔의 뼈가 보일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으니 고블린을 제압하는 데에 도움이 안 될 것이 분명한 상황.
괜히 얼쩡대다가 무기를 다시 뺏기느니 몸을 피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무기를 뺏었으니까 이제 다른 사람들이 해치울 수 있겠지?’
“크아아아!”
그건 진수의 착각이었다.
공격을 받은 고블린은 분노에 차서 다시 그에게로 달려들었고 놈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은 어어? 하면서 몸을 피할 뿐이었다.
지독한 권태로움에 젖은 일당 헌터들은 그저 지금 피해를 입는 게 자신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오직 정유현만이 단검을 휘두르며 막아섰지만 고블린은 그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 팔을 휘둘러 무력화시켰다.
-퍽!
“끄윽!”
덩치에 비해 엄청난 힘을 가진 고블린은 정유현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는 자신을 처음으로 공격했던 진수를 향해 덤볐다.
진수는 자신을 쫓아오는 놈을 보고 전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던전의 안으로, 안으로.
차분히 길을 살필 여유 따윈 없었다.
“헉, 헉, 헉!”
정신없이 달리던 진수의 눈에 절망감이 서렸다.
점차 좁아지던 길의 끝은 절벽이었으니까.
“크르르르!”
앞은 절벽 뒤는 고블린.
다친 팔에서 피가 많이 흘러 현기증이 핑 돈다.
진수는 녹슨 칼을 들고 놈을 노려보았다.
“꺼, 꺼져!”
칼을 휘둘러 위협해보았지만 놈에게 겁을 주기는커녕 팔에서 피만 왈칵 터져 나왔다.
핏방울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렇게 가는 건가? 누구는 헌터라고 떵떵거리고 사는데 능력이 없으니까 같은 헌터여도 이렇게 죽는구나. 나한테도 능력이 있었으면...!’
진수의 눈빛에서 전의가 꺾이는 걸 읽어낸 고블린이 그에게 덤벼들었다.
놈의 돌진에 칼을 크게 휘두른다.
뻔하다는 듯이 몸을 깊게 숙이며 피하는 고블린.
하지만 녀석이 이런 허술한 공격을 피할 거라는 건 진수도 예상하고 있었다.
칼을 휘두른 힘을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면서 왼손에 몰래 들고 있던 갈무리용 단검을 찔러 넣는다.
“키에엑?”
“그래도 혼자 가지는 않는다. 개자식아. 다음 생엔 착한 고블린으로 태어나라.”
비록 기지를 발휘해 고블린의 목에 단검을 박아 넣었지만 놈의 손톱도 진수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둘은 그렇게 뒤엉킨 채로 절벽에서 떨어졌다.
끝없이 추락하는 중에 진수는 절벽의 지독한 어둠 때문인지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시야가 흐려짐을 느꼈다.
-휘이익!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리며 무언가가 자신의 가슴팍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낀 진수.
그의 눈앞에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성 [차원 전이] 발현.
-고블린 [고돌] 차원 전이 성공.
-첫 전이 성공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1, [고돌]의 특성 중 하나
수많은 안내 메시지.
그리고 2등신으로 그려진 고블린 그림이 그의 상태창에 나타났다.
서로 알아가는 단계
진수가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뭐지? 난 그때 분명히 절벽 아래로....’
정신을 차린 그는 상황을 먼저 파악해보려 애썼다.
뼈가 보일 정도로 갈라졌던 팔도, 뚫렸던 복부도 멀쩡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벽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한 군데 부러진 곳이 없었다.
‘서, 설마 기절한 사이에 포션이라도 먹인 건 아니겠지? 이번 달 주사 맞을 돈도 빠듯한데!’
아픈 곳이 없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먼저 떠올랐다.
“김씨! 아이구, 일어났네. 다행이야. 다행!”
진수가 불안에 떨고 있는데 병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정유현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진수는 유현에게 자신이 정신을 잃은 사이 일어났던 일들을 전해 들었다.
그가 던전 안 쪽으로 도망친 사이 외부에 요청하여 전투가 가능한 헌터를 불렀다는 것.
던전 안에 진수가 쓰러져 있었고 고블린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는 것.
또한 진수의 몸에 상처가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까지.
“고맙네, 고마워. 김씨 아니었으면 아마 난 죽었을 거야.”
유현은 진수의 손을 붙잡고 계속해서 감사를 표했다.
“맨몸으로 고블린을 해치우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거지. 김씨, 일당 헌터 하느라 시간 낭비 하지 말고 전투 헌터로 눈을 돌려봐도 좋겠어.”
비록 고블린의 사체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정유현은 진수가 고블린을 죽였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그의 말대로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일반인이 맨손으로 맹수를 때려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게다가 던전에서 나왔던 고블린은 보통의 놈들과는 달랐다.
일당 헌터 경력이 많은 유현이 느끼기에 놈은 E급은커녕 D급 헌터들도 상대하기 힘들어 할 것 같은 수준이었다.
F급 헌터인 진수가 해치운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여기 이건 이번 던전 일당이야. 내가 대신 받아왔으니까 걱정하지 말어.”
정유현이 마석 조각과 현금을 전해주고는 푹 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병실을 나가면서도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한 것은 덤이었다.
‘상처가 없었다고...?’
진수는 한바탕 지독한 악몽이라도 꾼 것 같았다.
“도무지 뭔 일인지 모르겠네.”
그가 복잡한 심정에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순간, 그의 눈앞에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전이자의 첫 사냥 성공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뭐?”
진수는 급히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김진수]
힘:2 민첩:5 체력:6 내구:1 마력:1
특성 : [하급 근력] [하급 내구력] [차원 전이] [야성]
기술 : 없음
그의 상태창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방금 메시지대로 민첩이 올랐고, 체력도 늘어 있었다.
게다가 [야성], [차원 전이] 특성까지.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뭐야, 이거?”
상태창의 기술 아래 빈 공간에 2등신으로 그려진 고블린 그림이 있었다.
옛날 디지털몬스터나 주머니괴물 게임처럼 픽셀 아트로 그려진 괴물.
“무슨 다마고찌도 아니고....”
듣도 보도 못한 상황에 진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차원 전이라는 게 3차원에서 2차원으로 전이시킨다는 말이야...?”
진수는 상태창에 있는 고블린을 손가락으로 건드려봤다.
[고돌] - 현재 상황 : 뿔토끼 섭취 중
그러자 녀석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글자와 함께 현재 상황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고돌] - 현재 상황 : 뿔토끼 마력 흡수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 상황의 내용이 바뀌었다.
그리고....
-전이자의 첫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마력 +1
다시 한 번 나타난 안내 메시지.
그리고 진수는 자신의 마력 능력치가 올라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찰싹, 찰싹
자신의 뺨을 가볍게 몇 차례 때려보는 진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꿈이... 아니야...? 내 상태창에 괴물이 산다니!’
한동안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넋을 놓고 있던 진수는 병실을 더 이용하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는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던전에 들어갈 때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는 지금 상황을 정리해봤다.
첫째, 자신이 죽인 고블린이 상태창으로 들어왔다.
둘째, 고블린의 활동에 따라 보상이 생긴다.
셋째, 보상의 종류는 현재까지 능력치와 특성을 받았다.
넷째, 상태창의 괴물에게 영향을 끼치진 못한다.
다섯째, 상태창에 빈 공간은 아직 많다.
‘어쩌면 다섯 번째가 가장 중요할지도 몰라.’
진수는 자신의 상태창을 보며 생각했다.
이 빈 공간에 고블린들을 가득 채운다면?
그 고블린들이 보상을 계속해서 보내온다면?
던전 공략대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헌터의 최정상에 오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진수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기회다! 하늘이 내려준 둘도 없는 기회!’
그는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몬스터 사냥을 위한 장비를 구입했다.
고블린 서식 필드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균열과 던전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이 자기네가 살기 좋은 환경으로 모여들면서 필드라는 게 만들어졌다.
몬스터의 서식지인 필드는 이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된 것이다.
-[고돌]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힘 +1
사냥 준비를 마치고 고블린 서식 필드로 도착한 진수는 보상을 받았다.
전투에 꼭 필요한 힘 능력치의 증가.
보상 덕분인지 온몸에 힘이 넘치고 자신감이 차올랐다.
-꿀꺽!
“할 수 있다!”
수풀이 우거진 밀림지역에 들어서기 전에 진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던전에서 자신을 쫓아오던 고블린의 악귀 같은 얼굴이 떠오른다.
‘그랬던 고블린이 지금은 내 상태창에서 자고 있지.’
이내 진수는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 * *
“쿠와아악!”
숲속에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진다.
곧이어 고블린들이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져 달렸다.
그러한 녀석들 중 하나의 뒤로 그림자가 따라 붙었다.
“쿠워어!”
고블린이 방향을 틀려고 할 때마다 괴성이 나오며 놈을 일정한 곳으로 유인했다.
-철컥! 파스스스!
이윽고 고블린이 나무뿌리를 넘어 발을 딛는 순간, 올가미가 놈의 발목을 잡아챈다.
정교한 덫이 나뭇잎 사이로 드러나며 고블린을 거꾸로 매달았다.
“키에엑! 캬악!”
당황하며 소리를 지르는 고블린.
“크크크... 또 한 놈 잡았다.”
함정에 걸린 고블린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사내.
고블린 서식 필드로 온지 일주일이 된 김진수였다.
그의 손에는 괴상하게 생긴 피리가 들려 있었는데, 바로 오크의 성대를 본 따 만든 도구였다.
고블린의 천적인 오크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고블린들로 하여금 겁에 질려 도망가게 한다.
“너까지 잡으면 이제 열 마리 째다. 이제 전이가 될 때도 되지 않았냐?”
진수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물론 고블린은 그의 말에 답하기는커녕 함정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만 칠뿐이었다.
-푸욱!
진수의 검이 고블린의 목을 꿰뚫는다.
이제는 익숙해져 어떻게 해야 일격에 숨통을 끊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처음에 온갖 도구들을 챙겨서 왔을 때는 고블린을 함정에 빠트리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피리를 잘못 불어서 오히려 들키기도 해보고 덫에 매달린 고블린을 빨리 죽이지 못해서 덫만 망가지고 놓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간 갖은 고생을 하고 나니 고블린을 처치하는 데에 굉장히 익숙해졌다.
가끔은 함정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놈들과 마주쳐서 전투를 벌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다.
고블린은 바닥에 피웅덩이를 만들며 죽었을 뿐 차원 전이가 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또 꽝이야...? 하긴, 그 때 상대했던 고블린은 뭔가 이상하긴 했어.”
항간에 알려지기로 고블린은 일반인도 뭉치면 충분히 죽일 수 있는 정도의 몬스터였다.
그런데 던전에서 진수가 죽인 녀석은 힘도 셀뿐더러 특유의 야수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더욱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오직 정유현과 진수만이 그 특이한 고블린에게 대적했던 것이다.
실제로 고블린 서식 필드로 와보니 고블린들의 힘은 상당히 약했다.
물론 1:1로 싸우기에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오크 모방 피리와 함정을 이용해서 사냥했지만 일주일동안 보상으로 받은 능력치 덕분에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다.
문제는 아무리 고블린을 죽여 봐도 차원 전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
‘이러면 나가린데....’
아무리 고블린 [고돌]이 보상을 보내온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점점 보상을 주는 주기가 길어지고 있는 상황.
진수는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김진수]
힘:4 민첩:6 체력:6 내구:2 마력:2
특성 : [하급 근력] [하급 내구력] [차원 전이] [야성]
기술 : 없음
[고돌] - 현재 상황 : 녹색 숲에서 이동 중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고블린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함정을 파고 쫓아다닌 게 7일이다.
열 마리나 되는 놈들을 죽였는데 아직까지 차원 전이가 한 마리도 되지 않았다는 건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처음에 전이자라고 했고, 고블린도 고블린이 아니라 이름을 붙여서 부르고 있어.’
생각을 정리한 진수는 우선 사냥한 고블린의 사체에서 마석과 부산물들을 갈무리하고 사용했던 덫을 정리했다.
‘고블린 서식 필드를 뜬다. 어쩌면 고블린을 죽이러 온 게 잘못이었을 수도....’
고블린 서식 필드를 떠나는 그.
아직 [차원 전이]라는 특성이 어떤 능력인지 알지 못했기에 시도하는 모든 것이 도박일 수밖에 없었다.
벌써 보상으로 받은 것이 힘 2, 민첩 2, 체력 1, 내구 1, 마력 1에 [야성] 재능까지.
이 정도면 E급 헌터 정도는 충분히 됐다.
겨우 일주일 만에 등급을 하나 뛰어넘을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알면 사기라고 하겠네.”
노력과 재능 그리고 재수가 따르지 않으면 평생 F등급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헌터들도 많다.
쭉 일당 헌터로 살거나 헌터를 그만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능력치 상승 정도로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헌터가 될 순 없어. 애초에 지난 일주일간 번 돈이 일당 헌터 일주일 뛰는 것보다 번 돈이 적으니까... 오히려 평소보다 마이너스지.’
진수는 고블린 서식 필드와 맞물려있는 코볼트 서식 필드로 향했다.
코볼트는 통상적으로 고블린보다 조금 더 상위 개체로 인식되는 몬스터.
도구를 활용하는 것도 더 능숙하고 개중엔 전기 마법을 쓰는 놈들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하여 헌터들도 사냥하기를 선호하는 몬스터는 아니다.
‘빠르게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만 확인하고 뜨자. 마석 주사 맞아야 하는 날짜가 오고 있으니까.’
고블린 필드에서 가까우면서 고블린과 비슷한 수준의 강함을 보이는 건 코볼트 뿐이다.
진수는 그저 특이한 개체를 만나지 않기만을 빌며 걸음을 바삐 옮겼다.
숲에서 이어지는 산악 지형.
이 곳이 코볼트들이 서식하는 필드다.
고블린에 비해서 비교적 덜 호전적이기에 코볼트가 아닌 다른 몬스터들도 종종 발견되기도 했다.
-물컹! 치이익!
지금처럼.
“으악, 뭐야! 내 신발!”
진수는 무심코 밟은 물컹한 무언가가 자신의 신발을 태운 것을 알아차렸다.
산성의 액체형 몬스터, 슬라임이었다.
던전 작업용 안전화여서 망정이지 보통 신발이었으면 발을 다쳤을 것이다.
-꿀렁, 꿀렁
진수가 잽싸게 몸을 뒤로 빼자 슬라임이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왔다.
크기가 크지 않은 것이 어린 개체인 듯했다.
“여기서 슬라임을 볼 줄이야.... 그래, 잘 만났다!”
진수는 주변에 보이는 커다란 돌이며 바위를 들어 슬라임을 향해 던졌다.
슬라임의 몸체는 강산성이기 때문에 하나뿐인 검으로 공격하는 것은 스스로 무장해제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
산성에 파괴되지 않는 돌과 바위를 이용하여 몸체 안에 숨어있는 핵을 깨부숴야 했다.
-쿠웅! 파삭!
충수가 자신의 머리통만한 돌을 슬라임에게 던지는 순간, 액체로 된 몸체의 일부가 흩어졌다.
아주 잠깐 드러난 슬라임의 핵.
진수는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슬라임의 핵을 찔렀다.
마치 짐승이 먹잇감을 잡아채는 듯한 반응속도였다.
특성 [야성]의 효과가 발휘된 것이다.
-파스스스...
핵이 검에 찔리자 남아있던 나머지 몸체도 완전히 흩어져버렸다.
그리고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
-슬라임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슬라임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어... 슬라임의 이름을 지으라고...?”
예상대로 차원 전이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처음 보는 메시지에 진수는 의문을 던졌다.
‘고돌이는 처음부터 이름이 있더니 이놈은 왜 이름을 나한테 지으라고 그러지?’
“리무ㄹ... 아니야. 포세이돈. 포세이돈으로 하자. 강력해 보이는 이름으로 지어주면 금방 크겠지.”
-슬라임 [이름 없음]의 이름을 [포세이돈]으로 지으시겠습니까?
“그래.”
-첫 전이자 작명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포세이돈]의 특성 중 하나
‘특성!’
[김진수]
힘:4 민첩:6 체력:6 내구:2 마력:2
특성 : [하급 근력] [하급 내구력] [차원 전이] [야성] [절연체]
기술 : 없음
[고돌] - 현재 상황 : 도망 중
[포세이돈] - 현재 상황 : 요정의 호수에 전이
[2/5]
상태창을 열어보니 특성에 [절연체]가 생겨 있었다.
그리고 고블린 그림 옆에는 마찬가지로 픽셀 아트로 그려진 초록색 슬라임이 보였다.
‘어... 생각했던 것처럼 대단한 특성은 아니긴 하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근데 몬스터들 아래에 저 숫자는 뭐지? 이놈은 왜 도망치고 있고?’
“헛?”
상태창을 보며 의문을 가지던 진수의 본능적인 감각에 무언가 걸리는 걸 느꼈다.
급하게 상태창을 닫으며 자세를 낮춘 진수.
-파지지직!
그의 머리 위로 번개로 이루어진 화살 마법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만나고 싶지 않았던 특수 개체인 코볼트 마법사였다.
그리고 놈의 옆에는 조악한 단창을 들고 있는 코볼트까지 한 마리 더 있었다.
사망
-파지직!
다시 한 번 지팡이를 들어 올려 번개로 된 화살을 만들어내는 코볼트 마법사.
그 옆에는 단창을 앞세운 녀석이 슬금슬금 전진하기 시작했다.
“꾸륵!”
마법사 쪽에서 작게 신호를 보낸다.
코볼트들의 의사소통 방법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 신호가 의미하는 건 하나뿐일 것이다.
“꾸루룩!”
창을 내밀고 달려들기 시작하는 코볼트.
진수는 검으로 놈을 겨누면서 마법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휘익!
거리가 가까워지자 코볼트는 창을 크게 휘둘렀다.
그 궤적이 은근히 진수의 시야를 가렸는데 그와 동시에 지직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놈은 연계를 위해서 일부러 비효율적인 공격을 한 것이었다.
‘이 놈들 손발을 맞춰본 솜씨가 상당한데!’
진수는 짐짓 모르는 척 움직였다.
과장된 공격의 빈틈을 향해 빠르게 짓쳐들며 검을 찔러 넣는다.
-파지지직!
그러자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라이트닝 애로우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아랑곳 않고 그대로 공격을 이어가는 진수.
상황이 이렇게 되니 급해진 것은 창을 들고 있는 코볼트였다.
“꾸르르!”
휘두른 창을 회수하며 검을 막으려는 녀석.
생각보다 움직임이 빨라 진수의 이번 공격은 무위로 돌아갈 판이었다.
-고블린 [고돌]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민첩 +1
‘고돌이 나이스!’
그 순간 고돌이 성장하며 진수의 민첩 능력치를 올려줬다.
진수는 지금까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한층 가속된 찌르기가 코볼트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꾸에엑!”
비명을 지르며 단창을 떨어트리는 코볼트.
진수는 연이어 검을 휘둘러 놈의 다리를 베었다.
-휙! 파지직!
진수가 눈앞의 코볼트를 무력화시키는 사이, 전기로 된 화살이 그의 머리에 적중했다..
-지지지직!
화살의 형태가 깨지며 그 안에 담긴 전류가 피부를 타고 흐른다.
지렁이처럼 굵직한 전기 줄기가 위협적으로 꿈틀댔다.
“꾸루룩! 꿁!”
마법을 맞춘 코볼트 마법사가 즐거운 듯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지팡이를 흔들며 곧 춤이라도 출 듯한 모습이었다.
“기다려, 이제 니 차례니까.”
하지만 그런 태도는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진수가 마법 화살에 맞은 자리를 가볍게 툭툭 털며 녀석을 노려봤기 때문이다.
분명히 마법이 제대로 꽂혔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은 기색이었다.
“꾸루룩?”
전혀 경계심이 보이지 않는 진수의 태도에 코볼트 마법사는 당황하며 다시 라이트닝 애로우를 날렸다.
-챙! 지지직!
마치 설탕공예로 만든 화살처럼 진수의 몸에 닿자 깨져버리며 전류를 흘린다.
코볼트 마법사는 점점 다가오는 그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꾸르르륵!”
양손으로 지팡이를 잡고는 굵은 전기줄기를 쏘아내는 코볼트 마법사.
온힘을 다한 공격이었는지 한 1초 정도 짧게 뿜어내고는 탈진한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녀석의 전기는 [절연체] 특성 앞에선 무력했다.
“임마, 그렇게 최선을 다하면 내가 좀 미안하잖아. 차원 전이 된 후로도 그렇게 열심히 좀 해줘라.”
진수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코볼트 마법사에게 검을 휘둘렀다.
-팍!
일격에 목이 날아가는 코볼트.
하지만 피 한 방울 튀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코볼트 소서러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코볼트 소서러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역시!”
슬라임에 이어서 코볼트까지 전이시키며 진수는 자신이 생각했던 가설이 맞는 거라고 확신했다.
“이름은 일단 이놈부터 마무리 하고 지어야겠다.”
그는 팔다리가 베인 채로 쓰러져있는 코볼트를 돌아봤다.
녀석은 너무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기절한 듯했다.
-푸욱!
검이 목을 깊게 찔렀다.
이렇게 하면 척추가 끊어져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바로 절명하게 된다.
진수 나름의 자비였다.
“사체에서 돈 될 만한 부산물을 상하게 하지도 않고 말이지...? 어?”
좀 더 강한 코볼트 마법사를 차원 전이 시키고 일반 코볼트에게선 마석과 부산물을 얻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진수의 눈앞에 예상치 못한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코볼트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코볼트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그리고 사라져버린 돈뭉치 아니, 코볼트.
이건 진수가 전혀 상정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생각했던 가설은 몬스터 종류에 따라서 한 마리만 전이시킬 수 있다는 거였는데.... 코볼트는 왜 두 마리가 전이되는 거지?’
진수는 상태창을 열어봤다.
[김진수]
힘:4 민첩:7 체력:6 내구:2 마력:2
특성 : [하급 근력] [하급 내구력] [차원 전이] [야성] [절연체]
기술 : 없음
[고돌] - 현재 상황 : 인간과 대치 중
[포세이돈] - 현재 상황 : 요정이끼 소화 중
코볼트 소서러 [이름 없음] - 현재 상황 : 마굴로 차원 전이
코볼트 [이름 없음] - 현재 상황 : 늪지대로 차원 전이
[4/5]
상태창 아래에 생겨난 코볼트 두 마리.
그런데 둘이 조금 생긴 게 다르다.
‘코볼트 소서러와 코볼트.... 같은 종족이라도 특이 개체는 전이가 또 가능한 건가...?’
진수는 상태창을 보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이 놈들 이름부터 지어주자. 코볼트 소서러는 일단 전기를 쓰니까... 제우스...? 이러다 올림포스 신들 다 모으겠네.”
-코볼트 소서러 [이름 없음]의 이름을 [제우스]로 지으시겠습니까?
“응. 다음은 그냥 코볼트인데... 얜 또 뭐라고 지어줘야 하나.... 고블린이 고돌이었으니까 코돌이...? 아니야.... 코붕이...? 무슨 코와붕가도 아니고.... 하, 내가 아이디 짓기 귀찮아서 온라인 게임도 잘 안 하는데.”
특징 없는 코볼트의 이름을 지으려고 하니 머리에 쥐가 나려고 했다.
“젠장, 잡아다가 돈이나 벌까 했는데 차원 전이가 되어가지고. 내 돈뭉치... 아! 그래, 코볼트 이름은 돈뭉치라고 하자.”
-코볼트 [이름 없음]의 이름을 [돈뭉치]로 지으시겠습니까?
“그래!”
진수는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이 얼른 대답했다.
상태창을 다시 확인해보니 그가 작명한대로 코볼트 소서러 그리고 코볼트의 이름이 각각 [제우스]와 [돈뭉치]로 지정되어 있었다.
[고돌] - 현재 상황 : 인간과 대치 중
[포세이돈] - 현재 상황 : 요정이끼 소화 중
[제우스] - 현재 상황 : 마굴 탐색 중
[돈뭉치] - 현재 상황 : 늪리자드맨과 대치 중
[4/5]
‘제우스랑 돈뭉치는 온도차가 너무 심한 것 같기도 하고.... 다리가 잘렸으니까 아킬레우스 이런 걸로 해줄 걸 그랬나?’
막상 지르고 보니 조금 미안함이 생기는 진수였다.
-코볼트 [돈뭉치]의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5
-첫 전이자 사망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상점 해금
코볼트들의 이름을 정한 후 상태창을 닫으려던 그의 눈앞에 새로운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돈뭉치가 벌써 보상을 보냈네...? 아니, 잠깐. 사망?’
방금 전에 차원 전이를 시켰던 코볼트, 돈뭉치의 사망 소식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의미를 다 알 수 없는 메시지들의 연속.
‘골드는 뭐고 상점은 뭐야? 얜 또 왜 갑자기 죽었어? 전이가 되어버리자마자 죽어버렸네....’
진수는 다시 머리가 아파옴을 느꼈다.
첫 전이자 사망.
그렇다면 다른 몬스터들도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진수]
힘:4 민첩:7 체력:6 내구:2 마력:2
특성 : [하급 근력] [하급 내구력] [차원 전이] [야성] [절연체]
기술 : 없음
골드 : 5
[R.I.P.] - 사망자 수 : 1
[고돌] - 현재 상황 : 인간들에게 포획됨
[포세이돈] - 현재 상황 : 요정의 호수에서 휴식 중
[제우스] - 현재 상황 : 마굴 탐색 중
[3/5]
[상점]
그 잠깐 사이에 상태창 화면이 많이 바뀌었다.
먼저, 코볼트 그림이 있던 자리에는 R.I.P.라고 적혀있는 비석이 놓여있었다.
터치를 해보니 사망자 수가 나온다.
골드라는 항목의 추가와 제일 하단에 상점 버튼의 등장.
‘점점 상태창이 방치형 게임 화면처럼 되어가는 것 같은데....’
진수는 자신이 평소에 즐기던 모바일 게임을 떠올리고는 상점 버튼을 눌러보았다.
몬스터도 터치하면 현재 상황을 보여주니 상점도 마찬가지겠지 생각이었다.
그러자 상태창 위로 팝업이 하나 나타났는데 작은 아이콘과 함께 상품 이름과 가격이 나열된 목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상품 목록을 확인한 진수의 눈이 화등잔처럼 되었다.
‘말도 안 돼! 이, 이런 걸 판단 말이야? 상점이라고 하길래 대충 포션이나 팔겠거니 했는데....’
심장이 벌렁거리는지 왼손으론 가슴을 부여잡고 오른손으로 화면을 위아래로 움직여가며 상점을 살펴봤다.
상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카테고리는 능력치, 특성, 기술부터 시작해서 아이템이나 정보, 지식에 이르기까지 거의 없는 게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워낙 카테고리도 많고 카테고리 별 상품 종류도 많아서 다 살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단 3골드만 사용해도 능력치를 하나 올릴 수 있다는 것으로 그 효용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근데 이 능력치들은... 뭐지?’
능력치 항목에는 보통 헌터들이 가지고 있는 힘, 민첩, 체력, 내구, 마력 다섯 가지에 종족력이나 마성 등과 같은 특이한 상품도 보였다.
몬스터들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이었다.
‘하긴, 이상한 거 살 돈으로 검증된 상품을 사는 게 낫지. 능력치만 꾸준히 올려도 그게 어디야?’
흔히 말하길 능력치 총합이 30을 넘어가게 되면 D급 헌터로도 넘어갈 수가 있다고 한다.
그 상태에서 나쁘지 않은 기술을 지닌다면 C급 헌터.
맨몸으로 코끼리도 수월하게 때려잡을 수 있다고 하는 초인에 가까운 단계가 된다.
‘기, 기술! 기술을 보자! 그때 현장반장 아래에서 일하던 사람도 좋은 기술 하나 얻어서 바로 전투 헌터로 넘어갔다고 했어.’
진수는 흥분되는 마음으로 기술 카테고리로 넘어갔다.
확실히 기술 쪽은 가격대가 굉장히 높았다.
최소 10골드부터 시작했는데, 제일 값이 싼 기술들은 고기 굽기라거나 라이트, 몸통박치기와 같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진수의 눈에 한 줄기 희망 같은 상품이 들어왔다.
‘역시 상점이면 이게 있어야지.’
흔히 운빨존망게임이라고 불리는 모바일 게임을 즐기던 진수에게 익숙한 것.
기술 카테고리 제일 상단에 있는 5골드짜리 기술 랜덤 박스였다.
공교롭게도 그의 수중에는 딱 5골드가 있었다.
“돈뭉치가 정말 돈뭉치가 됐어!”
진수는 돈뭉치의 사망으로 받은 5골드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기술 랜덤 박스]를 구입하시겠습니까?
“응.”
진수는 지체하지 않고 상점에서 기술 랜덤 박스를 구입했다.
그의 대답과 동시에 상점 화면을 밝은 빛이 가득 채웠다.
-두구두구두구
빠른 템포의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지고 빛이 조금씩 옅어졌다.
그리고 나타난 스킬.
-[기술 랜덤 박스] 구입으로 기술 [수룡의 숨결]을 얻었습니다.
“수룡의 숨결!”
어떤 기술인지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일단 이름부터가 빼어난 능력을 지녔을 것 같은 느낌.
진수의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와, 이건 백퍼 대박이다!”
-상품을 전달할 전이자를 선택하십시오.
“엥?”
하늘이라도 날 것 같던 기분이 안내 메시지 하나에 고꾸라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전이자를 선택하라니?”
-상품을 전달할 전이자를 선택하십시오.
진수가 반쯤 정신이 나가 물었지만 안내 메시지는 같은 내용을 보일 뿐이었다.
“나, 내가 쓸 수는 없는 거야?”
-상점의 상품은 전이자에게만 전달 가능합니다.
“하.”
진수는 이마를 짝- 하고 치며 한탄했다.
“어쩐지 너무 운이 좋다 싶었어!”
진수의 눈에 상점에 널려있는 수많은 상품들이 들어왔다.
이름만 들어도 너무나 탐나는 것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허탈할 뿐이었다.
“참나.... 그림의 떡이네. 이럴 거면 드럼 소리니 빛이니 호들갑이나 떨지 말지. 어차피 내 것도 아닌데.... 젠장. 후... 수룡의 숨결이니까... 그래, 포세이돈한테 줘야겠다.”
-[포세이돈]에게 상품을 전달하시겠습니까?
“어.”
진수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슬라임 [포세이돈]에게 [수룡의 숨결]을 전달했습니다.
-전이자의 첫 상품 수령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전이자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그의 눈앞에 연달아 나타난 안내 메시지는 실망감을 뒤집어주기에 충분했다.
모르모트
-슬라임 [포세이돈]에게 [수룡의 숨결]을 전달했습니다.
-전이자의 첫 상품 수령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포세이돈]의 특성 중 하나
-전이자의 급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체력 +2, 마력 +3
포세이돈에게 기술을 전달하자마자 엄청난 수의 안내 메시지가 몰아쳤다.
겨우 슬라임에게 선물 한 번 준 것뿐인데 무려 특성과 능력치 5개를 받았다.
만약 상점에서 직접 5골드를 쓸 수 있다고 해도 능력치 2개를 채 못 올리는데 그걸 생각하면 엄청난 이득인 것이다.
단순 비교를 하기는 그리 적절하지 않지만 보통 성인 남성의 신체 능력을 능력치로 환산해보면 대략 능력치 5개 정도가 된다.
“히야!”
하지만 진수는 지금 안내 메시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력 능력치가 5가 되면서 세상에 퍼져있는 마력 에너지가 비로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감각, 흔히들 육감이라고도 하는 느낌을 만끽했다.
‘아! 차원 전이 특성은 이렇게 사용하는 거구나.’
진수는 자신에게 생긴 특성의 진정한 사용법을 깨달았다.
그가 전이자를 키우면 전이자는 또다시 보상을 보내 그를 성장시킨다.
이런 선순환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시스템인 것이다.
[김진수]
힘:4 민첩:7 체력:8 내구:2 마력:5
특성 : [하급 근력] [하급 내구력] [차원 전이] [야성] [절연체] [중급 재생력]
기술 : 없음
골드 : 0
[R.I.P.] - 사망자 수 : 1
[고돌] - 현재 상황 : 인간들에게 포획됨
[포세이돈] - 현재 상황 : [수룡의 숨결] 습득 중
[제우스] - 현재 상황 : 마굴 탐색 중
[3/5]
[상점]
포세이돈에게 수룡의 숨결을 전달한 보상으로 얻은 특성은 중급 재생력이었다.
‘회복이 아니라 재생...?’
일반적으로 헌터들이 지닌 스스로 회복이 되는 특성은 회복력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진수가 모든 특성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재생이라는 명칭은 상당히 생소했다.
그는 알지 못했지만, 재생력은 회복력과는 차원이 다른 특성이었다.
회복이 원래 신체가 가지고 있던 회복 능력을 향상시켜준다면 재생은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 죽었던 세포를 다시 살리는 수준까지도 가능한 초능력의 영역인 것이다.
“뭐, 일단 중급 특성이니까. 세상에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다니!”
던전에서 차원 전이 특성을 얻고 겨우 일주일.
그 사이에 특성 세 개, 능력치는 13이 생겼다.
그런데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전투 헌터가 되는 것뿐 아니라 최정상급 헌터까지도 노려봄직해!’
진수는 앞으로의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그러려면 우선 다음 목표는 이거다.’
그의 눈에 [3/5]라고 적혀 있는 숫자가 들어왔다.
‘어차피 전이시킨 몬스터가 죽기도 한다는 걸 알았으니 저 5마리를 모두 채워보자. 저게 수량 제한인 것인지, 아니면 내게 요구하는 숫자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윽!”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계산하던 그는 왼쪽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작은 신음을 냈다.
“아, 주사 맞을 기한이 다가오는구나.”
마석증.
전 세계에 걸린 사람이 몇 되지 않는 희귀병이다.
게이트 사태 발생 이후 드물게 나타나는데, 신체 한 부위에 검붉은 반점이 생기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반점이 커진다.
열흘 정도 주기마다 마석정제주사를 맞지 않으면 반점이 자리 잡은 신체부위의 기능이 멈추다가 결국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때에 맞춰서 주사만 잘 맞아주면 별다른 증상은 없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고블린 필드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썼어. 그래도 덕분에 주사 값은 벌었지만.... 코볼트는 다음에 다시 잡으러 와봐야지. 돈뭉치 자리를 다른 코볼트가 채울 수 있는지도 확인해봐야 하니까.’
진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고블린들의 부산물을 팔아서 돈을 마련한 그는 병원에 방문했다.
서울에 마석정제주사를 놓을 수 있는 병원은 딱 한 곳이기에 그에겐 굉장히 익숙한 병원이었다.
“워, 이거 하루살이 아니야?”
병원에서 대기번호를 기다리던 그는 달갑지 않은 목소리를 들었다.
묵직한 중저음에 조금은 느릿한, 어쩌면 조금은 느끼하다고 할 수 있는 톤이다.
“미리미리 예약 좀 하고 그러지... 준비성 없이 이렇게 와서 대기하고 있어?”
그와 같은 고아원 출신인 박종대였다.
“내가 좀 바빠서 예약 없이 올 수도 있지. 너랑 무슨 상관이야?”
진수가 짜증난다는 듯한 말투로 답하며 그를 보았다.
깊게 눌러쓴 모자에 선글라스, 검은색 마스크까지.
얼굴을 완전히 철통보안으로 가려 놨다.
하지만 눈에 안 띄려고 노력한 얼굴과는 대비되게 옷은 굉장히 눈길이 가게 입고 있었다.
거의 타이즈처럼 몸에 달라붙는 반팔 카라티는 그의 근육질인 상체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티셔츠 밖으로 보이는 팔뚝에는 문신들이 가득 차 있었고 손목에는 비싼 금장 시계.
슬림하게 빠지는 검은 바지는 그의 전반적인 실루엣을 역삼각형으로 더욱 도드라지게 해줬다.
“이 자식, 지가 무슨 연예인인줄 아나.”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는 진수.
사실 박종대는 거의 연예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방송에 자주 나오고 있긴 했다.
곱상한 외모에 서글서글한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그는 전투 능력도 뛰어나서 많은 매체에서 집중하고 있는 전투 헌터다.
특히나 일반적으로 헌터들이 잘 키우지 않는 커다란 근육질의 몸매 덕분에 특정 취향의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미 그를 알아보고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을 정도.
“뭐, 연예인은 아니지만 내 수준이면 공인이라고 할 만하지. 너 같은 하루살이랑은 비교가 안 되는 정도?”
얼굴을 완전히 가려놔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진수의 눈에는 그의 깔보는 표정이 훤히 보였다.
“어, 그래. 철두철미하게 예약 받아서 주사 다 맞았으면 빨리 꺼지지 그러냐.”
출구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하는 진수.
“니가 그렇게 말 안 해도 가려고 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얼굴만 봐도 재수가 없다니까. 쯧!”
박종대는 먼저 시비를 걸어온 주제에 오히려 성을 내며 자리를 떴다.
“재수는 누가 없는데. 나 원 참.... 예전엔 안 저랬던 거 같은데 인간이 완전히 갔단 말이지.”
진수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주 어린 시절에 그와 박종대는 굉장히 돈독한 사이였다.
같이 장난을 많이 쳐서 고아원장님에게 혼나기도 하고 무얼 해도 언제나 함께 했었다.
그 당시에는 무얼 하더라도 진수가 더 뛰어났었는데, 어느 날부터 박종대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특성이 나타났다고 하면서 굉장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진수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그저 멀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를 대놓고 적대했다.
‘그런데 어떻게 둘 다 희귀병이라는 마석증에 걸려서 같은 주기로 같은 병원에 주사를 맞으러 오고 있지만.... 마주칠 때마다 유쾌한 만남은 아니네.’
어떻게 보면 같은 추억을 공유한 몇 안 되는 사람인데 이런 관계가 되었다는 데에서 씁쓸함을 느꼈다.
-띵동
과거를 회상하던 그는 자신의 대기번호를 부르는 것을 보고 상념을 지워버렸다.
“으... 이놈의 주사는 맞을 때마다 영 기분이 나쁘다니까.”
진수는 소름끼친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며 나왔다.
마석정제주사를 맞고 나면 온 혈관에 치약이 흐르는 것처럼 시원하면서 뜨거운 감각이 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지나고 나면 마치 마법처럼 이상한 느낌이 싹 사라지고 조금 커졌던 검붉은 반점이 다시 엄지손톱 만하게 줄어드는 것이다.
-코볼트 소서러 [제우스]의 성장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내구 +1
“아, 그래. 지금 이렇게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지.”
병원 벤치에 앉아서 기분 나쁜 감각이 가시기를 기다리던 진수는 눈앞에 나타난 안내 메시지를 보고 번쩍 정신을 차렸다.
어차피 가만히 앉아 있으나 걸어 다니나 지하철을 타나 이 느낌은 1시간 안에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자.’
진수가 잡은 다음 목표는 몬스터를 2마리 더 잡아서 [3/5]라고 되어 있는 숫자를 [5/5]까지 만드는 것.
저 숫자가 의미하는 게 뭔지를 알게 되면 그 다음 목표를 세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서울에서 가깝고... 가장 손쉽게 잡을 수 있는 몬스터라면 역시 그거지.’
병원 벤치에서 목표와 동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진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나서 그가 향한 곳은, 청계산이었다.
‘아무도 생각을 못 했지.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올 거라곤.’
게이트가 열렸던 그 날.
서울대공원은 피바다가 됐다.
물론 전 세계 어디나 학살이 자행되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유독 심했던 곳들이 있었다.
공간의 특성과 몬스터의 종류가 결합되며 나타난 현상들.
‘그리고 동물원에서 나온 놈들은 그대로 여기 청계산으로 숨어들어서 자기네 서식 필드로 만들었고.’
헌터넷에서 찾았던 정보를 떠올리던 진수는 검을 뽑아들고 주변을 경계하며 움직였다.
이런 산악지역은 항상 긴장을 해야 한다.
풀과 나무 때문에 시야가 어지럽고 산짐승도 있어서 감각을 흐트러트리는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바스락, 바스락!
진수의 귀에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 무게가 그리 무거운 편은 아닌 듯했다.
숨 쉬는 소리도 줄여가며 천천히 걷는 진수.
마른 나뭇가지라도 밟을까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그는 왠지 모르게 사방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던 진수.
-파삭!
그의 바로 옆에서 나뭇잎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켁, 콜록! 콜록!”
깜짝 놀라 사례가 들린 진수는 기침을 하는 와중에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칼을 겨눴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작고 하얀 토끼.
똘망똘망한 눈에 자그마한 덩치는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바스락!
-타닥!
처음 등장한 토끼의 뒤로 몇 마리의 토끼들이 더 나타났다.
“젠장.”
진수는 귀여운 토끼들을 보며 비속어를 뱉었다.
왜냐하면 이 토끼들이 바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사람들을 죽였던 일명 만렙 토끼, 보팔 래빗이었으니까.
토끼라는 동물이 가지는 이미지는 빠르다, 귀엽다, 속사(?) 등등이 있겠지만, 역시 약하다는 인식이 있다.
이 이미지 때문에 처음 보팔 래빗이 나타났을 때 필요 이상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수많은 사람들이 긴장감 없이 다가갔다가 목덜미를 뜯겨 피를 쏟아낸 것이다.
-서걱!
“뀌엑!”
이제는 이 자그마한 토끼들이 위험한 몬스터라는 걸 알고 있기에 충분히 대비가 가능했다.
보통의 토끼보다 흉폭하고 이빨이 날카롭지만 움직임이 직선적인 녀석들.진수는 일시에 돌진하는 놈들의 공격에 상처를 좀 입었지만 결국 큰 피해 없이 처치할 수 있었다.
마지막 한 녀석만 빼고.
“꾸욹...!”
진수의 공격에 오른쪽 다리를 다친 보팔 래빗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천천히 도망갔다.
도망치는 녀석을 그대로 두고 바닥에 있는 사체를 갈무리하기 시작하는 진수.
“흐흥~”
아주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여유롭게 움직였다.
‘다섯 마리나 만났을 때는 재수 옴 붙었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진수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전투 능력이 보팔 래빗 두세 마리 정도를 상대하는 수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원 전이의 보상으로 얻은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다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다섯 마리와 싸워보니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죽일 수 있는 정도였다.
아무리 움직임이 단순하다고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
한 마리만 도심에 나타나도 살육을 일으킬 수 있는 녀석을 무려 다섯 마리나 해치웠다.
‘그렇다면 그놈까지 노려볼만하지.’
보팔 래빗의 다리를 벤 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공격이었다.
이 녀석들은 강적을 만나면 구역의 대장에게로 도망치는 습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 구역의 대장이라고 한다면 필드 보스 몬스터일 가능성이 높다.
‘코볼트도 특수개체인 코볼트 소서러를 따로 차원 전이 시킬 수 있었어. 그렇다면 필드 보스도 또 보낼 수 있는지 실험해볼 필요가 있어.’
이 모든 게 차원 전이 특성을 알아가기 위한 안배였던 것이다.
보팔 래빗들의 사체를 모두 갈무리한 진수는 차원 전이시킨 보팔 래빗의 이름을 모르모트라고 지었다.
‘허접한 몬스터기도 하고, 차원 전이 특성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 대상이니까.’
보팔 래빗들의 사체부터 전이자 이름까지 다 정리를 마친 진수는 마지막 녀석이 도망간 방향을 보았다.
놈의 다리에서 나온 피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식은 죽 먹기구만!”
진수는 보팔 래빗이 남긴 흔적을 따라서 뒤를 쫓기 시작했다.
입씨름
녀석이 도망간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대략 5분 정도 빠르게 움직이니 얕은 계곡 같은 지형이 나왔는데 거기에 중형견만 한 토끼 한 마리와 진수로부터 도망친 보팔 래빗이 있었다.
계곡 안쪽엔 크고 작은 굴이 파여 있고 먹다 남은 사체와 뼛조각이 보였다.
그 중에는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해골들도 상당히 많았다.
“꾸욹!”
진수가 몸을 숨긴 채로 안을 살피는데 몸집이 큰 보팔 래빗이 코를 킁킁대더니 그가 숨은 방향으로 짖기 시작했다.
‘이런 개 같은.... 토끼도 후각이 예민하다더니....’
어차피 지형이 기습을 하기에는 받쳐주지 않았기에 검을 뽑아들고 놈을 향해 다가갔다.
-콱!
“어, 어? 뭐하는 거야?”
진수가 놈을 경계하며 접근하는데 녀석이 돌연 부상 입은 보팔 래빗의 목을 물어뜯었다.
“키엑!”
바닥에 흩뿌려지는 피.
덩치가 큰 변종 보팔 래빗은 바닥에 웅덩이진 피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더니 눈에 광기가 돌기 시작했다.
온몸의 근육이 울끈불끈 힘이 들어가고 묘하게 덩치도 커진 듯한 모습이었다.
“꾸워억!”
크게 포효를 하는 변종 보팔 래빗.
놈은 이내 멧돼지처럼 돌진했다.
-파박, 파박, 파박!
경쾌한 발소리, 하지만 그 위압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콰앙!
진수가 몸을 날려 피하자 그대로 계곡 벽면에 놈이 부딪혔는데 그 충돌음이 마치 포격이라도 떨어진 것 같았다.
‘저기에 맞으면 내가 차원 이동하게 생겼는데.’
진수의 이마 위로 식은 땀 한 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놈은 그가 들어봤던 보팔 래빗 필드 보스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허세 떨기 좋아하는 헌터넷에서도 이런 만렙 토끼가 있다는 이야기는....’
그는 잡념을 이어가지 못했다.
잔뜩 피어오른 먼지구름 속에서 다시 변종 보팔 래빗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흡!”
진수는 다시 한 번 몸을 피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퍼억
회피와 함께 이루어진 공격이었기에 힘이 많이 실리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기대보다도 훨씬 미미했다.
검이 놈의 두터운 가죽을 겉 부분만 갈라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한 것이다.
‘이 방법으로는 조금 힘들겠는데.’
진수는 자신의 공격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주변을 살펴봤다.
마치 항아리 내부처럼 좁은 입구가 있고 적당한 높이의 벽이 사방을 막고 있는 모양새.
벽면에는 변종 보팔 래빗이 부딪힌 자국으로 가득하다.
진수는 벽면으로 붙어 손으로 가볍게 쓸어보았다.
“꾸욹!”
그새 다시 짓쳐드는 녀석.
진수는 가까스로 놈의 공격을 피했다.
이번에는 멀찍이 피하는 게 아니라 거의 스치듯 움직였다.
자칫하면 한쪽 팔이 으스러질 뻔할 정도로.
-쿠웅...!
지금까지와는 깊이가 다른 묵직한 충돌음.
게다가 흙먼지도 얼마 피어오르지 않았다.
“아프지? 거기, 전체가 바위더라고.”
진수는 계곡 내부에 유독 충돌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위치를 발견하고 손으로 훑어봤다.
겉에 진흙이 좀 묻어 있어서 육안으로 구분은 잘 되지 않지만 촉감으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커다란 바위가 박혀 있다는 것을.
“이제 끝을 보자.”
그는 변종 보팔 래빗에게 달려들어서 검을 찔렀다.
어설픈 베기보다 한 점에 집중되는 찌르기가 확실히 깊이 들어갔다.
“꿱! 꾸엑!”
이제야 대미지를 받는지 녀석의 입에서 처음으로 포효가 아닌 비명이 나왔다.
놈의 하얀 털이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꾸욹!”
연달아 공격을 받던 녀석이 순간적으로 진수의 머리를 향해 튀어 올랐다.
역시 토끼답게 엄청난 속도였다.
-휙!
그 찰나에 진수는 본능적으로 변종 보팔 래빗의 공격을 파악하고 재빠르게 피해냈다.
특성 [야성]의 감각이 발휘된 것이다.
일당 헌터였던 진수가 수월하게 전투를 치를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이 놈이 어딜?”
회피 동작 이후에 마치 의도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녀석의 뒷다리를 잡아챈 진수.
그대로 바닥에 있는 힘껏 패대기쳤다.
-퍽!
“켕!”
변종 보팔 래빗은 흰 눈처럼 하얀 배를 제대로 노출했다.
“어디, 토끼 간 좀 보자.”
-푸욱!
진수의 검이 놈의 복부를 꿰뚫었다.
깊게 들어간 검이 가슴팍까지 파고들었지만 피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녀석의 사체 자체가 이 세상에서 씻은 듯 사라졌으니까.
-변종 보팔 래빗 [새초미] 차원 전이 성공.
-첫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새초미]의 특성 중 하나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골드 +5
차원 전이에 성공했다.
‘뭐야, 이 악취미스러운 이름은.’
마치 요술봉을 휘둘러 변신을 할 것만 같은 이름이었다.
물론 놈이 변신을 하긴 했었다.
‘죽은 보팔 래빗의 피냄새를 맡고 미친 토끼로 변신을 했지....’
[김진수]
힘:4 민첩:7 체력:8 내구:3 마력:5
특성 : [하급 근력] [하급 내구력] [차원 전이] [야성] [절연체] [중급 재생력] [광전사]
기술 : 없음
골드 : 5
[R.I.P.] - 사망자 수 : 1
[고돌] - 현재 상황 : 이송 중
[포세이돈] - 현재 상황 : [수룡의 숨결] 습득 중
[제우스] - 현재 상황 : 마굴에서 휴식 중
[모르모트] - 현재 상황 : 녹색 숲으로 차원 전이
[새초미] - 현재 상황 : 녹색 숲으로 차원 전이
[5/5]
[상점]
진수는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세 마리의 몬스터와 나란히 두 마리의 토끼 그림이 있다.
터치를 해보니 둘 다 녹색 숲으로 차원 전이가 되었다는 문구가 나온다.
“녀석들, 그래도 같은 종족에 같은 지역이니까 둘이 시너지를 내서 잘 살았으면 좋겠네.”
비록 조금 전까지는 서로 목숨을 노렸지만 이제는 소중한 성장 동력.
진수는 진심으로 녀석들이 잘 커가길 빌었다.
‘그나저나 특수 개체나 필드 보스는 일반 몬스터랑은 또 별개로 취급이 되는 게 맞았어. 그렇다면 앞으로 차원 전이를 시킬 수 있는 종류는 정말 무궁무진하지!’
진수는 이번 토끼 사냥을 통해 알게 된 앞으로의 가능성에 기뻐했다.
‘근데, 이 5/5는 뭐길래.... 아까 분명 임무 달성이라는 메시지가 보였던 거 같은데...?’
그가 상태창 하단에 있는 숫자를 노려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지지직하는 노이즈를 발생시키더니 글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
-임무 목록 해금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임무.
전이자를 다섯 마리 채웠을 때도 보였던 단어다.
대체 누가 왜 무슨 임무를 준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임무엔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당연하지!”
-임무 : [새초미]의 토끼굴에서 [새초미]의 부하 보팔 래빗 10마리 차원 전이
-보상 : [특성 랜덤 박스]
진수의 대답이 나오자마자 안내 메시지는 임무 내용을 보여줬다.
이어 그가 내용을 모두 읽으니 상태창으로 임무 내용이 들어갔다.
[5/5]라고 쓰여 있던 자리였다.
‘아, 해금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이제 임무 내용을 알려준다는 소리였구나.’
진수는 바뀐 자신의 상태창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나저나 점점 특성 항목이 길어지고 있네.’
벌써 7개나 되는 특성들.
그가 [하급 근력]과 [하급 내구력]을 얻기까지는 굉장한 노력이 동반됐었다.
그마저도 없던 시절엔 상태창에서 볼 것은 오직 능력치뿐이었고.
근육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마력을 담은 몽둥이질을 버텨가며 겨우 하급 특성을 얻었다.
그런데 [차원 전이]가 생긴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물론 위험하긴 했지만 몬스터 하나 잡았다고 특성이 생기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사기 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만큼 정말 무시무시한 수준이지. 특히 요 [야성]은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정도야.’
능력치만 따져봤을 때, 진수가 코볼트며 보팔 래빗을 사냥할 수 있는 수준이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야성은 본능적으로 적이 어디를 공격할 것인지 그리고 적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알게 해줬다.
한 마디로 포식자가 될 수 있게 해주는 특성인 것이다.
‘어쩌면 [야성] 하나만으로도 D급 헌터들이랑 비벼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하급, 중급 이렇게 나뉘는 특성이 아니라 더 발전할 여지는 없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특성이야.’
이어 그의 시선이 옆에 있는 다른 특성들로 향했다.
[절연체], [중급 재생력]은 이미 봤고 새로운 특성 [광전사]가 눈에 띄었다.
‘변종 토끼 녀석이 피 냄새 맡고 커다래졌던 그건가?’
진수는 새초미가 싸우던 모습을 떠올리며 특성의 능력을 유추해봤다.
고통에 둔감해지고 전반적인 신체 능력이 올라간다.
‘덩치도 더 커졌던 것 같고.... 뭐, 이것도 언젠가 쓸 일이 생기겠지. 또 알아? [절연체]처럼 적절한 순간이 올지.’
그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상태창을 닫았다.
자신의 상황을 한 차례 정리했으니 이제 다시 나아갈 시간이다.
계곡 벽면에 뚫려있는 구멍들.
허리를 숙이면 사람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굴도 있었다.
“그래, 일단 들어갈 수는 있는 구멍으로 들어가야지.”
진수는 검을 빼들고 가장 큰 토끼굴로 들어갔다.
“뀌엑!”
좁디좁은 토끼굴에서 한 시간은 돌아다녔을까?
보팔 래빗이 일반 토끼보다 훨씬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방대한 너비의 토끼굴을 탐색하며 체감할 수 있었다.
진수는 이제 아홉 마리째 보팔 래빗을 처치해 차원 전이를 시켰다.
특이한 점은 처음 차원 전이 시켰던 보팔 래빗과는 달리 임무를 받아서 차원 전이 시킨 녀석들은 상태창에 따로 칸을 차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놈들은 자그마한 토끼 모양이 되어서 새초미의 다리 근처에 그려졌다.
‘종류별로 한 마리씩 차원 전이 시킬 수 있다는 가설이 틀린 게 아니라 이번 경우가 특이 케이스인 것 같네.’
아마도 필드 보스였던 새초미는 부하를 부리는 특성이나 기술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니 임무에서도 새초미의 부하인 보팔 래빗을 차원 전이 시키라고 했고, 전이된 녀석들도 새초미의 그림에 달라붙은 것이리라.
“이제 하나만 더 잡으면 되는데...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진수가 움직일 수 있는 크기의 통로는 다 뒤져보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보팔 래빗이 보이지 않았다.
남은 것은 겨우 기어서 들어갈 수 있는 구멍들뿐.
‘[야성]이 있으니까 불의의 습격이 있어도 대처가 가능할 거 같긴 한데....’
진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보팔 래빗이 좁은 통로에서 덤비면 한쪽 팔로 목을 감싸 보호하고 나머지 팔로 목숨을 끊는다.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위기 상황에서도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조치를 정해둔 채로 작은 구멍에 들어갔다.
“으... 점점 좁아지는 거 같은데?”
처음엔 팔을 쭉 펼 수 있는 크기였던 통로는 이제 팔꿈치로 기어가야 하는 정도가 됐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지? 라는 생각이 들 즈음, 어두운 굴속에서 붉은 안광을 마주한 진수.
“헛!”
세웠던 계획대로 먼저 목을 한쪽 팔로 감싸며 보호했다.
보팔 래빗은 그를 만나자마자 달려들었고, 그와 동시에 방어에 성공했기에 녀석의 공격은 그의 팔뚝을 갉아먹는 데에 그쳤다.
이어 반격을 하려던 진수의 코로 비릿한 혈향이 파고들었다.
진수는 자신의 내면에서 무언가 흉폭한 자아가 일어나려 하는 것을 느꼈다.
[야성]과는 다른 느낌.
이건....
‘[광전사]다! 자, 잠깐!’
진수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려 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토끼굴에 들어오기 전에 생각했던 [광전사]를 쓰게 되는 순간.
바로 지금이었다.
보팔 래빗은 그런 상황도 모른 채 키싱구라미처럼 진수의 팔뚝과 얼굴을 야금야금 뜯고 있었고 그러한 행동은 [광전사]의 발동을 더욱 가속화했다.
“임마, 그만해! 자꾸 그러면... 커진다고!”
[광전사]의 효과.
정신이 전투에 최적화된다.
근력, 체력, 내구, 민첩 등의 신체 능력이 강화된다.
고통에 둔감해진다.
회복 속도가 빨라진다.
마비 내성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체구가 커진다.
“억!”
진수는 안 그래도 비좁았던 통로 속에서 덩치가 커지면서 완전히 끼어버렸다.
한쪽 팔을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갑자기 불어난 진수의 모습에 보팔 래빗은 말 그대로 토끼눈이 되었다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녀석의 정열적인 입맞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진수는 이를 까드득 악물었다.
“너만 입 달렸냐? 나도 있다, 이 자식아!”
진수는 [야성]의 감각과 [광전사]의 효과로 보팔 래빗이 달려드는 타이밍을 절묘하게 맞춰 놈을 마주 물 수 있었다.
‘싸움 수준 실화냐.... 영장류의 싸움이 맞나? 가슴이 울컥해진다.’
토끼와 서로 치악력 대결을 하던 진수는 녀석의 목덜미를 문 입에 힘을 주어 바닥에 짓눌렀다.
[광전사]의 힘 덕분에 수월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끝이다!’
-쾅! 쾅! 쾅!
마치 헤드뱅잉을 하듯 보팔 래빗을 바닥에 수차례 내려친 진수.
목에 담이 올 것만 같았지만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한 헤드뱅잉 끝에 그는 입안에 물려 있던 녀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차원 전이가 된 것이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특성 랜덤 박스
숨을 헐떡이며 토끼굴에 끼여 있는 진수의 눈앞으로 환한 빛과 함께 특성 랜덤 박스가 오픈되기 시작했다.
“으악! 눈뽕!”
진수는 팔로 눈을 가리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며 특성 랜덤 박스가 열리는 것을 보았다.
토끼와 거북이(수정)
-두구두구두구
예전에 들어봤던 빠른 템포의 드럼 소리와 함께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특성 랜덤 박스] 사용으로 특성 [융합]을 얻었습니다.
‘융합? 무슨 특성인지 감은 잘 안 잡히지만... 제우스가 합체를 좋아할 이름이니까 제우스한테 줘야겠다.’
진수는 전이자 선택창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의 눈앞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뭐야, 왜 누구한테 줄 건지 물어보질 않지?’
그가 의문을 품는 순간, 안내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융합]의 효과로 [하급 근력]과 [하급 내구력]이 합쳐집니다.
-[하급 전사의 신체] 특성이 생겼습니다.
-[융합]의 효과로 [야성]과 [광전사]가 합쳐집니다.
-[울프헤딘] 특성이 생겼습니다.
주르륵 나타난 내용들에 진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성이 합해졌다는 안내 메시지들이 나오고 [광전사]로 인해 커졌던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니, 나한테 주는 거면 미리 말을 해주라고! 내 건줄 알았으면 네 발로 걷는 게 아니라 포복이라도 해서 더 빨리 잡았지.’
그가 속으로 툴툴대자 다시 안내 메시지가 나타났다.
-앞으로 보상에 적용 대상이 표기됩니다.
“뭐, 뭐야. 내 속마음을 읽고 있어?”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진수.
하지만 이 이후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끄응.... 왠지 감시당하는 기분인데. 그런데 특성이 합쳐지다니, 이런 경우가 있나?”
그는 상태창을 열어 확인해보았다.
[김진수]
힘:4 민첩:7 체력:8 내구:3 마력:5
특성 : [차원 전이] [절연체] [중급 재생력] [융합] [하급 전사의 신체] [울프헤딘]
기술 : 없음
골드 : 5
[R.I.P.] - 사망자 수 : 1
[고돌] - 현재 상황 : 이송 중
[포세이돈] - 현재 상황 : 요정 이끼 섭취 중
[제우스] - 현재 상황 : 과일박쥐와 대치 중
[모르모트] - 현재 상황 : 녹색 숲에서 휴식 중
[새초미] - 현재 상황 : 부하들과 영역 확장 중
-임무 : 없음
[상점]
7개였던 특성이 [융합]을 얻었음에도 오히려 6개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힘이 줄어들었냐하면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더 힘이 솟는 것 같은데.’
특성이 합쳐지면서 더 좋은 특성이 된 것 같았다.
[하급 근력]과 [하급 내구]가 [하급 전사의 신체]가 되면서 근력, 내구뿐만 아니라 체력, 민첩 등의 전반적인 능력이 올라간 것 같다고 할까.
“근데 울프헤딘은 뭐야? 이건 영 직관적이지 못한데.”
진수는 몸이 다시 줄어든 덕분에 자유로워진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해봤다.
‘울프...헤...딘.... 늑대인간? 베르세르크?’
검색해서 나온 내용은 늑대인간을 부르는 말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오딘의 광전사, 베르세르크라는 자료도 나왔다.
얼추 종합해보면 광전사와 야수를 합쳐놓은 의미 정도로 유추할 수 있었다.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전사의 신체만 보더라도 더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다운그레이드가 되지는 않는 것 같으니까.’
진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토끼굴에서 빠져나왔다.
-우두둑!
오랫동안 굽히고 있던 허리를 스트레칭 해주니 관절이 비명을 지른다.
“꺄악!”
그리고 어디선가 누군가의 비명도 들려왔다.
이 곳은 보팔 래빗 서식 필드.
몬스터 필드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이 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겠지만.
‘아, 다음 임무 받으려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진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멀리서 작게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팔 래빗의 독기 가득한 울음소리, 무언가 묵직한 무기가 땅을 내려치는 소리 등등.
‘그냥 실수로 한 대 맞은 거였나 보네.’
비명 소리가 더 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싸움이 이어지는 듯하여 그냥 무시하고 임무나 받기로 했다.
‘야, 임무 줘, 임무! 듣고 있지? 임무 받을게!’
진수는 아까 자신의 생각을 읽고 반응을 했던 걸 떠올리며 속으로 말을 걸었다.
-임무를 받으시겠습니까?
그의 생각이 맞았는지 안내 메시지는 진수에게 임무를 받을지 물어왔다.
“어. 이번엔 좀 편하고 보상 좋은 걸로 부탁해.”
진수는 3인분 같은 2인분을 시키는 태도로 대답했다.
-임무 : [손재주] 특성을 지닌 몬스터 차원 전이
-보상 : 차원 전이된 몬스터의 특성 중 하나
곧이어 나타난 임무 내용.
진수는 안내 메시지를 읽으며 묘한 표정과 함께 턱을 긁적거렸다.
임무 내용이 상당히 난해했으니까.
‘아, 빌어먹을. [손재주]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가 뭔지 내가 어떻게 알아.’
핸드폰으로 다시 검색을 해봤지만 몬스터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까지 알고 있는 경우는 없었다.
애초에 몬스터도 헌터들과 같이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
검색 결과에는 몬스터 손재주 수준.jpg 이라던지 그런 손재주면 몬스터라고 봐도 되지 않냐 와 같은 농담조의 내용들뿐이었다.
“하아, 이러면 곤란한데....”
진수는 갑자기 찾아온 난관에 머리를 쓸어 넘겼다.
“꺅!”
그 순간 다시 들려온 비명 소리.
조금 전에 비명이 터져 나온 쪽이었다.
‘곤란한 상황인 건가? 일단 한 번 가보자. 봐서 별 문제 없으면 내버려두지 뭐.’
힘도 생겼고 지금 당장 여유도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 위협을 받고 있는데 모르는 척 할 정도로 그가 삭막한 사람은 아니었다.
‘[차원 전이]가 생기기 전이었다면 눈을 돌렸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선함은 여유로부터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차원 전이를 얻고 능력을 가지게 된 진수는 심적으로 대단한 여유가 생겼다.
그것은 마음가짐에서 시작해 겉으로 보이는 태도, 표정, 아우라로 드러났다.
예전엔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이었는지 지금 그의 모습은 어깨를 펴고 얼굴도 밝았다.
덕분에 소심해보이던 얼굴도 부드러운 미남형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 자신이 인식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휘익- 쿵!
진수가 싸우는 소리가 퍼지고 있는 곳에 도착하니 그곳엔 한 여성과 보팔 래빗 한 마리가 있었다.
여성은 여리여리한 외형에 어울리지 않는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는데, 힘이 부족해서 오히려 도끼에 휘둘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가뜩이나 민첩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 보팔 래빗이다.
양손으로 힘겹게 찍어대는 도끼질에 당할 리가 만무했다.
“꾸욹!”
보팔 래빗은 여성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는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뛰어올랐다.
“어어?”
진수는 도끼를 회수조차 하지 못하고 무방비가 된 그녀를 보며 도우려 했지만 이미 상황은 늦었다.
보팔 래빗이 여성의 목덜미를 깨물어버린 것이다.
“꺅!”
예의 그 비명 소리가 또 나왔다.
하지만 토끼가 떨어져 나온 곳에는 그저 조금 불그스름한 이빨 자국이 났을 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아 있었다.
짐작해보건대, 방어 계열의 특성이나 기술이 있는 것 같았다.
공격은 느려서 몬스터에게 스치지도 않고, 방어력이 좋아서 타격을 입지 않는다.
그야말로 토끼와 거북이의 모양새였다.
-부웅~ 부웅~ 쿵!
그렇게 지루한 전투가 이어졌고, 진수는 이걸 도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암.”
영 결착이 나지 않는 꼴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하품을 해버린 진수.
보팔 래빗은 이 단단한 먹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또 다른 적이 나타난 걸 발견했다.
“꿁!”
여성과 진수를 번갈아 보던 녀석은 짧게 짖고는 미련 없이 뒤로 돌아 도망 가버렸다.
“앗! 어디 가!”
도끼를 든 여성은 한참 싸우던 대상이 꽁무니를 빼버리자 당황하며 외쳤다.
그리고 이내 보팔 래빗이 시선을 돌렸던 쪽을 돌아보았다.
어색한 자세로 서있는 진수를 발견한 그녀.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가를 계산하는 듯했다.
동작대로 생각하는 것도 느릿한지 상황 파악에 시간이 걸리는 모습이었다.
“아!”
몇 초가 더 지나서야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이해를 한 듯 탄성을 낸다.
이내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여성.
그녀는 진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저기요!”
짐짓 화가 난 척을 하며 진수를 불렀다.
뭔가 노리는 것이 있어 보이는 과장된 표정과 몸짓.
진수는 옛날에 고아원에서 같이 있던 동생들이 생각났다.
저렇게 나올 때면 꼭 억지를 부려 간식을 더 달라거나 놀아달라고 칭얼거렸다.
“그쪽 때문에 다 잡은 몬스터 놓쳤잖아요!”
“다 잡은...이요? 보팔 래빗 털 한 가닥 못 건드리는 것 같던데요.”
진수는 일부러 더 짓궂게 대답했다.
왠지 어린 동생을 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여성.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싸우는 걸 보고 있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 아니거든요! 이게 다 방심을 유도하는 계획이었다고요!”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긴 하죠. 얻어맞기 전까지는.”
“누가 얻어맞았다고 그래요? 상처 하나 없잖아요!”
“상처가 안 생겼다고 안 맞은 건 아니잖아요? 그냥 목숨을 건진 것뿐이지.”
“으으....”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치는 진수의 말에 그녀는 결국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제 슬슬 1페이즈가 끝났으니 2페이즈로 넘어갈 타이밍인데.’
“아, 몰라! 어쨌든 그쪽 때문에 놓쳤으니까 책임져요!”
자신의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모습에 진수는 피식 웃었다.
“어어? 왜 웃어요! 아 빨리 도와줘!”
곧 있으면 바닥에 뒹굴 기세로 땡깡을 부리는 그녀.
억지 다음은 땡깡. 2페이즈의 패턴이다.
‘다 큰 어른이 어린애처럼 구는 걸 보는 것도 꽤 곤욕스럽네.’
옛날 생각이 나는 익숙한 행동에 툭툭 건드려봤지만 정말로 나잇값 못하는 모습이 나오니 조금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방방 뛰며 보팔 래빗을 잡는 걸 도와달라고 하는 여성.
진수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보았다.
“그래요, 그래. 알겠으니까 이제 좀 진정해요.”
우선 떼를 쓰는 것부터 멈춰 세웠다.
“보팔 래빗을 왜 잡으려고 하는지, 뭐가 필요한 건지를 먼저 듣고 도와줄게요.”
진수는 그녀를 돕기로 했다.
그건 그녀가 귀염성 있는 예쁘장한 얼굴을 지녔기 때문도, 그녀의 억지 주장에 넘어갔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제는 못 본지 5년은 족히 된 고아원의 동생들이 그녀의 모습에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여성이 이 보팔 래빗 서식 필드에서 능력에 맞지도 않는 도끼를 휘두르며 사냥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보팔 래빗에게 상처조차 나지 않는 방어력이라면 상당히 괜찮은 특성이나 기술이다.
그렇다면 굳이 도끼를 들고 괜한 고생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부러 연약함을 강조할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맞다면... 어쩌면 서로 윈-윈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정말요?”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어떤 헌터가 일면식도 없는 다른 허접한 헌터를 돕겠다고 나설까.
그녀로서도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음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진수가 도와준다고 하자 기쁨 반 걱정 반의 얼굴이 되었다.
“제가 왜 보팔 래빗을 잡으려고 하냐면요....”
자신이 보팔 래빗을 잡으려는 이유를 조잘대기 시작하는 여성.
하지만 진수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말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슬쩍슬쩍 움직일 때 드러나는 팔뚝이나 발목 부근.
그는 옷 아래 감춰진 부위에 보이는 흔적을 아닌 척 하며 살펴보았다.
별주부전(수정)
“와아! 정말로 F급 헌터시라고요?”
도끼를 들고 있던 거북이, 김하연은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그녀가 한참동안 실랑이 했던 보팔 래빗을 진수가 꽤 힘겹지만 큰 부상 없이 처치했기 때문이다.
“E급으로 진급 신청 하셔도 되는 거 아니에요? 저 토끼 엄청 빠르던데 공격도 다 막아내시고....”
물개박수를 치면서 놀라는 그녀의 모습에 진수는 머쓱해졌다.
일부러 힘을 감추면서 천천히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반응을 하니 몇 대 맞기라도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보팔 래빗 간도 챙기셨으니까 목적 달성 하셨죠?”
진수는 김하연에게 보팔 래빗의 간을 건넸다.
그녀가 보팔 래빗을 잡으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 간이었다.
어디서 퍼진 민간요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난폭한 토끼들의 간이 치료제로 사용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하연은 가족의 병을 치료하는 데에 필요해서 집에서 도끼를 챙겨서 나왔다고 했다.
“정말 감사해요! 솔직히 아까는 제가 고집을 부렸어요. 혼자였다면 아마 오늘 내내 도끼를 휘둘렀어도 토끼 한 마리 못 잡았을 거예요.”
그녀는 필요하던 것이 손에 들어오자 솔직해졌다.
“제가 이 은혜는 꼭 갚고 싶은데... 저희 집으로 같이 가시겠어요?”
갑작스러운 제안.
‘처음 보는 남정네를 어떻게 믿고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하는 거지?’
진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녀처럼 굴었다.
“이거 보이시죠? 사실 이 도끼도 아이템이거든요. 저희 집이 꽤 잘 살아요. 같이 가시면 분명히 부모님이 보상 해주실 거예요!”
김하연은 도끼를 들어 보이며 흔들었다.
이내 그 무게를 못 이겨 몸이 휘청거렸지만.
‘저 도끼가 아이템이었단 말이야...?’
아이템이라는 말에 진수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 그러면 집까지 가는 길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데려다드릴까요?”
못 이기는 척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실 부모님은 필요 없다고 하셨는데 제가 이거 몰래 들고 나온 거거든요~”
“아, 배고파! 저녁으로 맛있는 거 먹을까요?”
“도착해서 너무 놀라지 마세요!”
김하연은 진수에 대한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것인지 쉴 새 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 꽤나 멀었기에 별 쓸 데 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는데, 아직 인가가 나오지 않는 청계산 초입에서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
순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멈추지 않던 그녀의 입도 굳게 다물어졌다.
“이야, 그림 좋은데?”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아, 형님! 그게 언제 적 멘트입니까. 저기 가시나 어이없어 하는 거 안 보이십니까?”
곧이어 앞을 가로막는 세 명의 사람들.
그들은 모두 날붙이나 몽둥이 따위를 손에 들고 있었다.
“거, 헌터 친구. 오늘 여기서 번 마석이랑 부산물들 내려놓고 갑시다. 이런 게 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라고.”
형님이라 불린 사내의 말에 진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초짜 헌터들을 털어먹는 놈들이 있다더니....’
청계산은 이제 전투 헌터가 되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 필드다.
보팔 래빗은 움직임이 빠르지만 워낙 패턴이 단조로워서 전투 경험도 쌓고 마석을 얻기도 쉬운 몬스터였으니까.
잔챙이 헌터들이 많이 모이면서 이 근방에는 몬스터를 잡는 헌터만 오는 게 아니었다.
초보 헌터들을 사냥하는 악질 헌터들도 무리를 이루어서 초보 헌터들의 장비, 그들의 수확물을 빼앗기 위해 몰려들었다.
지금 진수를 둘러싼 이들처럼.
-푹
진수가 허리춤의 검에 손을 뻗는 순간, 옆구리로 무언가가 쑤욱 찔러 들어왔다.
“후우....”
크지 않은 통증, 하지만 아니길 바랐던 일이 일어난 안타까움에 진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옆에 있던 김하연이 기다란 침을 찔러 넣은 것이다.
“미, 미안해요! 제가 살려면 어쩔 수가....”
진수가 그녀를 돕겠다고 했을 때, 그녀의 얼굴에 드러났던 걱정스러운 표정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의를 악의로 돌려주게 될 예정이었으니까.
김하연은 양손을 벌벌 떨면서 뒷걸음질 쳤다.
“크하하하! 김하연이,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더니 아주 제대로 찔렀네! 이봐, 친구. 그거 마비침이야. 호랑이도 쓰러지는 물건이라고. 목숨 아까운 줄 알면 반항하지 않는 게 좋을 걸?”
아마도 이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걸걸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진수는 옆구리에 박힌 침을 뽑아냈지만 이미 몸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토끼와 거북이가 아니라 별주부전이었네....’
“겨우... F급 헌터 잡겠다고... 이런 짓까지...?”
진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사람을 속여서 유인하고, 네 명이 포위하는 데다 마비침까지 사용.
그의 말에 악질 헌터들의 대장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안전제일이라고. 흐흐, 그리고 애초에 사람한테 쓰는 용으로만 준비한 것도 아니고 말이지. 몬스터 포획도 상당히 쏠쏠한 돈벌이거든.”
대장은 말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덕분에 진수는 쓰러지기 전에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휴우, 완전히 마비 돼서 쓰러지는 연기까지 할 뻔 했잖아.”
몸이 휘청거리며 위태로워 보이던 그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꼿꼿이 섰다.
살짝 풀린 듯한 눈빛도 명정해진 것이, 처음부터 마비에 걸리지 않았다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광전사]의 능력이 포함된 [울프헤딘] 특성.
마찬가지로 마비 내성 효과가 있었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 사실 이미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지.”
진수는 이미 헌터넷에서 이 근방에 대한 정보를 찾으며 초짜 헌터들에게 장비와 마석 등을 강탈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온라인에는 그 수법부터 조심해야 하는 점까지 많이 퍼져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수가 일부러 김하연의 꾐에 넘어간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요즈음 이들이 몬스터를 생포하여 팔아넘기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는 점.
손쉽게 새로운 차원 전이 대상을 찾아낼 수 있겠다는 기대였다.
두 번째는 김하연에게서 볼 수 있는 폭행의 흔적들이었다.
고아원 동생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는 옷에 가려져 잘 안 보이는 목덜미, 팔뚝 같은 곳에 멍이나 상처가 있었다.
김하연은 그 흔적들이 잘 보이지 않게 하려고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진수는 오히려 그 덕분에 상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동생들이 어디서 다치고 오면 하던 행동과 비슷했으니까.
방어 능력이 있는 그녀에게 상처가 남을 정도면 상당히 수위가 높은 폭력이 자행됐을 것이다.
김하연의 태도나 표정, 몸에 있는 흔적까지 종합해봤을 때, 아마 폭행과 협박 등에 못 이겨 동조를 하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데에서 F, E급 헌터들에게 강도짓을 하는 녀석들의 수준은 끽해야 E급 정도다.
D급만 돼도 이런 자잘한 짓을 하는 것보다 훨씬 큰돈을 만질 수 있으니까.
다시 말해 [야성]을 가지고 있던 때의 진수도 이 정도 헌터들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오늘 모두 손 씻게 해줄게.”
-스릉
진수가 검을 뽑아 들었다.
“마, 마비를 어떻게...? 김하연! 이놈 F급 맞아?”
당황해서 소리치는 사내에게 김하연은 겁먹은 듯 움츠리며 고개를 작게 끄덕여 보였다.
“흐, 흐흐.... 어떻게 [마비 저항] 같은 특성이라도 갖고 있었나보네. 시벌롬이 사람 쫄게 만들고 있어!”
그는 진수의 헌터 등급을 알고 나니 자신감이 생긴 듯했다.
이내 김하연을 향해 손을 뻗자 그녀가 가지고 있던 도끼가 대장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척!
그의 손아귀에 자석처럼 달라붙는 도끼.
아이템이라더니 그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크흐흐. 어이, 애송이. 이게 바로 아이템이라는 거야. 네 몸뚱아리에 두르고 있는 싸구려 장비들이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핫!”
-휘리릭!
대장은 말을 마치자마자 짧은 기합과 함께 도끼를 냅다 던졌다.
도끼는 허공을 가르며 쏜살같이 진수를 향해 날아왔다.
-캉!
진수는 검을 들어 도끼를 막았지만 급히 상체를 숙이며 회피 동작을 취해야 했다.
그의 검이 두 동강 나면서 도끼를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도끼가 가진 능력 중에 날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차원이 다르다고 했지? 그리고 재밌는 걸 보여주지.”
자신의 공격에 진수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듯하자 신이 난 그는 진수의 뒤로 떨어진 도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다시 회수가 되는 도끼.
“나한테 귀속이 돼서 내 손이 잘리지 않는 한 언제든 이렇게 회수할 수가 있다고. 크하하하! 제법 실력이 있다고 우쭐했나본데, 잘못 걸렸어! 얘들아, 조져버려!”
그는 진수의 뒤로 둘러싸고 있던 셋에게 명령했다.
그들은 각자 들고 있는 무기를 진수에게 겨누며 천천히 접근했다.
앞에는 도끼를 든 두목, 뒤에는 잔챙이 셋.
진수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사방을 훑었다.
마치 사냥을 하는 맹수의 눈빛이었다.
“잘못 걸리긴 했네.”
먼저 움직인 것은 진수였다.
그는 슬금슬금 다가오는 부하들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놈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F급을 아득히 넘어서는 속도였다.
그 신속함에 미처 반응하지 못한 녀석의 어깨에 반으로 잘린 검을 내려찍었다.
끝이 뭉뚝해진 덕분에 더욱 큰 고통을 줄 수 있었다.
“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는 사내.
진수는 아랑곳 않고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칼을 빼앗았다.
곧장 비명을 지르는 남자의 허벅지를 찌르고 복부를 차 나머지 부하들을 향해 밀친다.
“으어어.”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료의 모습에 완전히 굳어버린 두 명.
전투가 시작된 후 진수의 분위기는 마치 한 마리의 야수 같았다.
진수는 그들의 모습을 비웃다가 잽싸게 뒤로 한 바퀴 굴렀다.
-휘리릭!
그의 뒤에서 두목이 도끼를 투척한 것이다.
마치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듯 본능적인 감각으로 공격을 피한 진수.
무조건 맞췄다고 생각했던 두목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너, 실수했어.”
짐승이 으르렁대는 것처럼 낮게 읊조린 진수는 곧장 그에게 달려들었다.
급하게 도끼를 향해 손을 뻗어보았지만 그보다 진수가 빨랐다.
-퍽, 퍽!
자신을 막아보려고 내민 손을 먼저 후려치고 뒤이어 도끼를 향해 뻗은 손까지.
두 개의 살덩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으아아악!”
-투욱
[울프헤딘]의 영향일까?
진수는 손속에 사정을 일절 두지 않았다.
피가 왈칵 나오는 자신의 두 손목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두목.
그리고 회수되던 도끼는 힘을 잃고 지면으로 추락했다.
“아, 너는 손을 못 씻겠구나.”
진수가 그를 보며 말했다.
* * *
악질 헌터들의 대장을 제압하자 나머지 부하들은 전의를 잃고 항복했다.
진수는 그들 일당을 모두 포박하고 헌터범죄전담기관에 신고했다.
“자, 이제 노력의 결실을 수확해볼까. 너희 포획해놓은 몬스터들 어디 있어?”
그의 가장 큰 목적은 역시 몬스터였다.
헌터범죄전담기관에서 신고를 받고 오기 전에 위치를 파악해둬야 했다.
“저, 저기 큰 나무둥치 뒤쪽으로 굴이 있습니다.”
“야 이 병신아! 그걸 말해주면 어떡해!”
“너처럼 손목 잘리느니 협조 하는 게 낫지, 모자란 새끼야!”
그들은 그리 유대가 끈끈하지는 않았는지 자기네끼리 물어뜯기 시작했다.
진수는 그들이 서로 싸우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부하 한 놈이 말한 굴로 향했다.
거기엔 과연 여러 개의 철창이 있었고 보팔 래빗부터 시작해서 고블린, 코볼트 등의 수준 낮은 몬스터들이 몇 있었다.
‘그래도 코볼트 서식 필드를 다시 갈 필요는 없어졌네.’
굴속을 쭉 살피며 수확이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하던 진수.
시큰둥하게 마지막 우리를 보았는데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니, 얠 어떻게 잡았지?”
그곳엔 진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준의 몬스터가 있었다.
특급이라니
보석과 광물을 좋아하는 난쟁이.
타고난 장인으로 세공부터 대장일까지 잘 하는 이종족.
판타지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존재.
바로 드워프다.
그리고 게이트가 열린 지구에도 드워프가 생겼다.
다만 판타지 세상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조금 다른 놈들이었다.
이종족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지성이 부족하고 육식을 즐긴다.
하지만 스스로 무기를 만들어내고 또 잘 다루었기에 신체 능력에 비해서 상대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
땅딸막한 키에 비해 힘이 강해서 예리한 도구로 수많은 헌터의 발목을 끊어낸 녀석들이다.
“와, 저놈들이 무슨 수로 드워프를 포획했지?”
그런 악명 높은 몬스터가 우리에 갇혀 있었다.
‘하, 이걸 그냥 내다 팔면 돈 깨나 버는 건데....’
진수는 산 채로 그를 노려보는 드워프의 모습에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몬스터 중에서 [손재주] 특성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은 녀석이 뭐냐고 한다면 단연 드워프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임무를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돈이 다 떨어져 가고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진수는 우리 속에 있는 드워프와 코볼트를 처치했다.
-코볼트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코볼트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드워프 [이름 없음] 차원 전이 성공.
-드워프 [이름 없음]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임무 달성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드워프 [이름 없음]의 특성 중 하나
“캬, 이 맛이야!”
진수는 연달아 나타나는 안내 메시지를 보았다.
실질적으로 당장 득이 되는 내용은 하나뿐이었지만 차원 전이를 시킨 몬스터들이 앞으로 계속 보상을 보내올 것이다.
“코볼트는 돈뭉치의 뜻을 이어 받는 느낌으로 돈다발이라고 하자. 드워프는 역시... 헤파이스토스로 해야겠지?”
이제는 수월하게 이름을 짓는다.
올림포스 신들에게서 딴 작명을 이어가려고 하니 큰 어려움이 줄어든 것이다.
[김진수]
힘:4 민첩:7 체력:8 내구:3 마력:5
특성 : [차원 전이] [절연체] [중급 재생력] [융합] [하급 전사의 신체] [울프헤딘] [특급 공구 숙련]
기술 : 없음
골드 : 5
[R.I.P.] - 사망자 수 : 1
[고돌] - 현재 상황 : 도시 카토에 갇힘
[포세이돈] - 현재 상황 : 호수 슬라임과 대치 중
[제우스] - 현재 상황 : 마굴에서 휴식
[모르모트] - 현재 상황 : 녹색 숲 탐색 중
[새초미] - 현재 상황 : 부하들과 영역 확장 중
[헤파이스토스] - 현재 상황 : 불의 산으로 차원 전이
[돈다발] - 현재 상황 : 사르 평야로 차원 전이
-임무 : 없음
[상점]
“헉!”
작명을 끝내고 임무 완수 보상을 확인하려 상태창을 연 진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특성 목록 끝에 있는 [특급 공구 숙련] 때문이었다.
‘특급이라니...?’
[하급 근력]이나 [중급 재생력]과 같은 특성들은 등급이 나눠져 있다.
많이 활용할수록 점차 등급이 올라가긴 하지만 그에 들어가는 노력이 엄청 필요하다.
하급 특성이라면 평생에 걸쳐서 상급까지 올리는 일도 드물 정도.
이 등급 체계는 하급-중급-상급-최상급-특급-완벽 순서로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다.
특급이면 완벽의 바로 아래 단계.
등급의 뒤에 붙은 요소를 거의 귀신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등급이었다.
“근데 왜 하필 공구 숙련이야...!”
검술 혹은 검 숙련이었으면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칼잡이 헌터가 됐을 것이다.
검을 쓰는 헌터는 일단 인기가 많아서 전투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헌터 학원에서 강사로 모시기도 하고 개인 방송으로 검을 사용하는 묘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근력 같은 신체 능력 특성이 특급이었으면 그것 하나로 능력치를 무시하는 강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진수가 얻은 것은 공구 숙련.
삽, 몽키 스패너, 빠루, 망치 등을 잘 다루게 되는 것이다.
‘어디 가서 망치의 신이라고 하면 아주 망신이지....’
분명 특급 특성이면 좋은 것이 맞는데 왠지 모르게 머리가 아파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진수가 잠시 기쁨과 아쉬움 사이에 있는데 바깥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몇 대의 차량이 다가오는 소리였다.
“아, 왔나?”
진수는 굴에서 나가 악질 헌터들을 포박해놓은 곳으로 갔다.
녀석들이 갖고 있던 무기는 모두 한 데 모아놨고, 혹시 몰라서 두목의 양손도 같이 두었다.
두목과 그 부하들은 아직도 서로 으르렁 대고 있었는데 차량들이 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점점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헌터범죄전담기관의 명성 덕분이었다.
등급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는 능력을 지닌 헌터들.
게이트가 발생한 이후로 헌터의 수는 점점 늘어났고, 자연히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헌터도 많아졌다.
이에 대한민국에서는 헌터범죄전담기관을 창설하게 된다.
모두가 헌터로 이루어진 이 기관은 헌터 범죄자들에게 철퇴를 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헌터들이 자신의 능력을 악용하여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 그 여파가 크기 때문이었다.
또한 현 기관장이 공명정대하기로 유명한 헌터였기에 아직까지는 부패와는 거리가 멀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 우체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도 했다.
-끼익!
호송 차량 다섯 대와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달려와 포박되어 있는 헌터들 앞에 멈췄다.
“김진수 헌터?”
승용차에서 내린 젊은 남성이 진수를 향해 다가왔다.
180은 훨씬 넘어 보이는 키, 탄탄해 보이는 몸.
어두운 톤의 피부는 더욱 건강해 보이게 해줄 법도 했지만, 눈 밑의 짙은 다크서클이 그의 전반적인 인상을 피로해보이게 만들었다.
“반갑습니다. 수사관 박철준입니다.”
그는 인상에 맞게 살짝 갈라지는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네, 기관에 신고한 김진수입니다.”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가볍게 통성명을 한 박철준은 오른손을 들어 진수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뭐지?’
그의 모습에 진수가 의문을 품는 사이, 그는 진수와 포박되어 있는 자들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나서 바닥과 주변을 살펴보았는데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마치 흔적들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음, 음. 알겠습니다. 얼추 신고하신 내용과 들어맞는군요.”
박철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같이 온 헌터범죄전담기관의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지시를 내렸다.
“A조는 거기 포박된 사람들 수송 차량에 한 명씩 태우고. B조! 저기 나무둥치 뒤쪽에 뭐 있는지 찾아봐. 이놈들 그쪽에서 기어 나왔네.”
“헛?”
진수는 포획되어 있는 몬스터를 자신이 내다 팔기 위해서 신고할 때 일부러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박철준이라는 사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대략적인 위치를 지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놀란 진수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팀장님! 여기 이 손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딴 것들 챙겨가서 뭐하게? 몬스터 밥 될 수 있으니까 소각해버려.”
진수가 혹시 몰라서 모아뒀던 두목의 양손이 새카만 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모습에 두목은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어 수송 차량에 몸을 실었다.
“김진수 헌터. 등록된 정보를 보니까 F급이네요. 그런데 싸우는 실력은... D급이라고 해도 충분하겠어.”
박철준 수사관은 진수를 보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어조로 말했다.
진수는 그가 대체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특성이나 기술을 더 얻은 모양인데 진급 신청 해봐요. 내가 장담하는데 E급으로 올라가는 건 문제도 아닐 테니까.”
“아, 예.”
“그리고... 범죄자 잡느라 무기도 잃으셨는데 뭐라도 챙기셔야지. 이거 가져가세요.”
-휘익
박철준은 두목의 도끼를 가볍게 들어 진수에게 던졌다.
얼떨결에 받아든 진수.
“이놈들이 요즘 이리저리 초보 헌터들도 건드리고... 어디 연구소랑도 엮여있는 거 같던데 덕분에 일에 진척이 좀 있겠네요. 고맙게 됐어요. 아, 이거 제 명함입니다. 혹시라도 헌터 범죄 관련된 건 있으면 연락주세요.”
그는 그렇게 감사 인사와 명함을 남기고는 인원을 정리해서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진수와 범죄자 헌터 두목의 양손으로 만든 숯뿐이었다.
‘기관 수사관이 다르긴 다르구나...! 특성이나 기술도 아니고 눈썰미로 굴까지 찾아내다니.’
진수가 어안이 벙벙한 상태가 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물론 몬스터들을 잃어서 돈이 날아간 것도 원인 중 하나였지만 말이다.
저 정도 실력이라면 데려간 범죄 헌터들을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헌터들의 범죄는 법도 따로 제정되었고 처벌도 무겁다.
게다가 수사에 온갖 특성과 기술을 활용하기에 사실관계를 철저하게 파악해서 적절한 처벌을 할 것이다.
특히나 협박과 폭력을 써가면서 사람을 부리고, 초보 헌터들에게 강도짓을 한 두목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김하연도... 안타깝지만 자기가 한 일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지. 아무리 강요받았다고 해도 남한테 해를 끼친 건 사실이니까.’
진수는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게 떠나가는 수송 차량들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모든 정황을 확인하고 나면 그래도 적극적으로 범죄에 가담한 이들보다는 적은 처벌을 받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휙, 휙!
상념을 떠올리던 진수는 자신이 스스로도 모르게 도끼를 아주 가볍게, 그리고 능숙하게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하연이 아주 힘겹게 쓰던 도끼였지만 그의 손에서는 마치 장난감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다.
비유하자면 검술의 달인이 검을 자신의 수족처럼 다루는 듯한 모습이었다.
“뭐야? 분명 묵직하긴 한데....”
근력에 의해 편하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익숙함? 요령?
손이 저절로 적절한 무게중심을 찾고 도끼 자체의 무게를 어떻게 활용하면 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진수는 자신의 손에 들린 도끼를 보았다.
장작을 패는 도끼보다는 짧지만 양손으로도 휘두를 수 있는 정도의 크기는 됐다.
두목이 사용했던 것처럼 투척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한손, 양손 모두 활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
하지만 도끼날이 아주 큰 편은 아니었기에 메인 장비로 쓰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헌터용 검을 반으로 갈라버릴 정도의 위력이니까 당분간은 주력 무기로 쓸 수밖에 없겠네.’
도끼의 손잡이를 살펴보던 그는 타원형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을 발견했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에 안에는 복잡한 패턴이 그려져 있었다.
진수는 범죄 헌터 두목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한테 귀속이 돼서 내 손이 잘리지 않는 한 언제든 이렇게 회수할 수가 있다고.’
진수는 그 오목한 위치에 엄지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붉은 빛이 복잡한 패턴을 따라 밝혀지다 이내....
-푹!
작은 침이 나와 그의 엄지손가락에 상처를 냈다.
몇 방울의 피가 송골송골 맺히더니 도끼 손잡이에 있는 패턴에 스며들었다.
-우웅, 우웅
도끼 전체가 두 차례 진동을 하더니 진동도, 빛도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진수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아이템이 자신에게 귀속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쓰기에도 좋고. 맘에 드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부웅 붕-
‘평소에 소지하고 다닐 수 있게 커버 같은 걸 좀 구비해야겠네. 참, 그러고 보니 아직 다음 임무를 안 받았지?’
새로운 무기를 살피고 나자 아직 임무를 받지 않은 상태라는 게 떠오른 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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