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ipse 1
EP.1 프롤로그
프롤로그 ―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주안 8동 한마음 아파트
세상은 불공평하다.
멀리서 볼 때도 불공평하지만….
⦁[단독] 국회의원 수억 단위 불법 뇌물 정황 포착… 수사 가속화.
⦁전직 의원 자녀 부정 입학 및 성적 특혜 의혹!
가까이서 본다면 더한 코미디다.
오늘도 뉴스란을 가득 채운 ‘윗분’들의 잔재 중 가장 상단의 뉴스를 클릭했다.
[단독] 국회의원 수억 단위 불법 뇌물 정황 포착… 수사 가속화.
[아 ㅋㅋ 이번에는 또 얼마를 쳐드신 거냐? ㄹㅇ?]
[딱 10%만 주면 모터 돌아가듯이 발바닥 핥기 가능요 ㅋㅋㅋ]
└ ??? 자존심이 있지 ㅆㅂ 난 1%만 줘도 가능요 ㅋㅋㅋㅋ
이미 1위에 랭크된 기사인 만큼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댓글들이 가득했다.
사회의 정의를 울부짖기보다는 시기와 질투가 담긴 댓글.
승자들이 새긴 이기적인 경계선.
아무리 용을 써도 들어갈 수 없는 이상향.
그곳에 초대받지 못한 우리는 그들에게는 일절 피해도 없을 키보드로 짖기만 할 뿐이다.
[아 ㅋㅋ 좀비 아포칼립스 뭐하냐고 ㅋㅋㅋ 사람들 기다리는 거 안 보이냐? ㅋㅋㅋ]
└ 저 잠시만요. 국회의사당에 게이트 열리는 게 먼저인데요? ㅋㅋㅋㅋㅋ
└ “그날… 게이트가 열렸다.”
└ 상태창! 상태에에에에창!!! ㅋㅋㅋㅋ
차라리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
물론 지극히 이기적으로 ‘폴아웃’같은 정말 끝장인 멸망이 아니라.
좀비 아포칼립스처럼 인프라와 기반이 조금씩은 남은 소프트한 멸망.
‘씨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스스로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오는 생각이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생각하는 건 내 자유잖아?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눈이 살짝 찡그려졌다.
아침 햇살이 자꾸만 모니터를 바라보는 내 눈을 방해했다.
벌써 자야 할 시간이었다.
돈과 인생을 꼬라박은 RPG 게임의 숙제를 전부 돌렸더니 뭐 한 게 있다고 새벽을 다 샜다.
‘…다른 날이라고 다를 건 없지만.’
머리를 긁적거리며 컴퓨터를 끈 채로 침대에 누웠다.
충전된 스마트폰을 들어, 오늘 갱신된 웹소설들을 몰아보는 와중에 슬슬 눈이 감기는 것이 느껴졌다.
스마트폰에 설정된 알람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베개 옆에 두고는 눈을 감았다.
아직 열심히 읽던 활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뇌가 형형색색의 상상들을 검은 여백에 채워 넣고 있었다.
아카데미, 아포칼립스, 판타지, 무협.
내일이 흥미진진한 주인공들을 일대기.
나는 잠에서 깨어나면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무슨 일이 기다리긴, 교대 시간 10분 전에 안 왔다고 얼굴 찌푸리고 있는 오크년 면상 보는 일만 있지.’
편의점 알바, 귀가 후 게임.
또다시 편의점 알바, 귀가 후 게임.
내일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멸망만이 나에게 구원이지 않을까?
어떻게 본다면 막장드라마에서나 나오던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부술 힘도 능력도 없었다.
뭘 부숴버리니 마니 하는 망상 속에서 정말 뜬금없지만, 토목학과에는 두 번의 부흥이 있다며 실실 웃던 군대 선임이 생각났다.
하나는 6.25 전후.
그리고 또 하나는 언젠가 일어날 다음 전쟁의 후.
서울이 부서지던, 혹은 평양이 무너지던.
토목학과에는 그게 ‘붐’이 아니겠냐던 우스갯소리.
지나친 비약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않냐며 큰소리치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내 귀에 울렸다.
지잡대 다니면서 별소리를 다 한다고 마음속으로 비웃던 내가 있지만.
사실 난 알고 있다.
그가 나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는 걸.
내가 제대 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임만 할 동안 그는 공부하고, 졸업한 뒤, 회사에 취업했다.
간간이 보던 카카오톡 프로필에서의 자랑스럽게 찍힌 사원증이 그걸 증명했다.
난 그걸 본 뒤에도 태연하게 마우스를 잡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흔히 말하는 루저들은 자기들의 ‘주제 파악’이 덜 되었다고.
하지만 난.
나에 관해서 누구보다 잘 알았다.
27살의.
온종일 게임이나 하는.
그러면서도 하루가 평범하지 않길 바라는 평범한 찐따.
“아, 그래서 진짜 아포칼립스 언제 오냐고….”
뒤틀린 소망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바라던 재앙이 온다 해도 내가 살아남을 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도 아주 잘.
막상 그런 세상에서도 위아래는 반드시 존재할 것이고, 지금보다 더 뚜렷하게 낙인 찍힐 거라는 걸.
그리고 그런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있을 자들은 지금 쌓아둔 기반을 바탕으로 올라갈 거란 것도.
그런데 어쩌라고?
막말로 내가 그 세상이 오라고 염불을 외워도 그런 세상이 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는 거다. 생각만.
‘먼저 무기 확보 후 식량과 식수 확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여자 확보.’
단지 내 하루의 사이클일 뿐이다.
조금 음습하고 어두운.
한번 잠에 빠지는 순간, 알람을 여러 번 중첩해야 하는 체질 때문인지, 혹은 음습한 상상에 대한 누군가의 복수인지 모르겠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스마트폰에 무수히 울리기 시작하는 재난 문자를 듣지 못한 것이.
* * *
쿵- 쿵- 쿵-
“아… 씨발, …뭐야?”
둔탁한 충격음에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마구 비볐다.
아직도 밝은 방을 보니 늦어야 오후인 듯했다.
아, 별로 자지도 못했잖아.
씨발, 도대체 뭐야?
택배인가?
애초에 내 택배일 리는 없었다.
게임의 데이터 조각들에 올인하는 내게 현실 아이템 따위는 사치일 뿐이다.
웬만한 생필품들도 알바하던 편의점에서 충당했었다.
그렇다고 옆집의 택배일 리도 없었다.
‘당연하지, 1년 동안 비어 있었는데. 택배는 무슨 씨, 뭐야?’
쿵― 쿵― 쿵―
잡생각에 빠진 나를 다시 일깨우기라도 하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충격음.
둔탁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소리인 것을 보니 아마 철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인터폰은 어디 놔두고 문을 두드리나?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정확히 몇 시인지 확인하려 배게 옆에 둔 스마트폰을 켰다.
“…어?”
켜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검은 화면만을 보이는 스마트폰.
다시 한 번 전원 버튼을 꾹 눌려보고 조금 세게 때려봤는데도 반투명한 검은 화면은 내 얼굴만을 계속해서 투영했다.
그때서야 기묘한 소름이 전신을 내달렸다.
조용했다.
아니, 조용했다고 하기엔 소음으로 잠에서 깬 것이 웃기지만, 정말로 조용했다.
쿵― 쿵― 쿵―
지금 울리는 이 일정한 간격의 충격음 빼고는 소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방음 덕분에 오후마다 들려왔던 아줌마들의 수다 소리.
주차공간에 들어오는 자동차들의 엔진과 경적 소리.
그밖에 세상을 채우는 사회가 굴러가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몸 상태도 이상했다.
깨어난 직후라 미처 느끼지 못했었지만, 몸이 무겁고 찌뿌둥했다.
그리고 난 이 느낌이 어떨 때 생기는지 잘 알고 있다.
“설마… 하루를 통으로 잔 건가?”
쿵― 쿵― 쿵―
뭐가 되었든 일단 저 사람부터 처리하자.
택배 기사든, 우체국 기사든 지나칠 정도로 인내심과 끈기가 좋았다.
“저기요! 저 택배 시킨 거 없어요! 싸인 받으셔야 할 것도 없고요!”
쾅― 쾅― 쾅―
크게 소리쳐서 말하니 그에 맞춰 철문을 두드리는 강도 또한 강해졌다.
“…어?”
이쯤 되면 이상한 걸 느끼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좀비 아포칼립스 발생 후 7일경과]
[인류가 일정 수 이상 감소 된 것을 확인합니다.]
[‘각성’을 실행합니다.]
그와 동시에 내 눈앞에 반투명하게 뜬 세 문장.
그것들을 이해하자마자 서둘러 부엌으로 달렸다.
이 전개. 이 상황.
너무나도 이질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익숙했다.
좁은 부엌에서 하나뿐인 식칼을 들고 서둘러 화장실 안에 대충 세워둔 밀대 자루를 찾았다.
쾅― 쾅― 쾅― 쾅―
끼에에에엑!
상황을 인식한 뒤에야 충격음 뒤에 도사리던 성대 긁는 소리가 명확하게 들렸다.
굳어 있을 타이밍 따위는 없었다.
신발장 서랍에 있는 초록 테이프로 식칼과 밀대 자루가 분리되지 않게 강하게 접착하기 시작했다.
치이익― 치이익―
쾅― 쾅― 쾅―
불협화음의 하모니 속에서 대충 테이프를 이빨로 끊으며 급조로 만든 ‘창’을 제일 편한 자세로 손에 쥐었다.
급하게 운동화를 신은 뒤,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몇 번 들었다고 벌써 익숙해진 충격음의 리듬에서 내가 원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머리가 되었든, 손이 되었든 철문을 두드리고 뒤로 빠지는―
쾅― 쾅―
지금.
쾅―
누군가가 계속해서 내던 소리와 똑같은 소리.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건 내가 낸 소리라는 거다.
살짝 연 문을 강하게 차버리며 문 앞을 튀어나갔다.
퍽―
살이 뭉개지는 소리와 함께 철퍼덕거리며 쓰러지는 한 사람.
“끼에에에엑!”
아니, 한 좀비.
전혀 일면식이 없는, 정장 차림의 중년의 아저씨였다.
문 조금 강하게 두드렸다고 누군가를 문으로 걷어차 버린 상황.
파먹힌 오른쪽 볼살과 계속해서 철문을 두드린 탓에 썩은 피가 줄줄 흐르는 이마만 아니었다면 당연히 내가 당장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게, 내가 살아온 사회를 이룬 암묵적인 바탕이었다.
“씨발! 뭘 봐!”
두려움과 희열이 반쯤 섞인 욕설과 함께 삐거덕거리며 대가리를 나에게로 향하는 아저씨의 가슴을 발로 밟았다.
아직, 힘이 얼마나 센지, 달릴 수는 있는지, 어떻게 감염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지만 딱 하나 중요한 것이 있었다.
넘어진 후에 선공권은 나에게 있다는 것.
왼발로 발광하려는 아저씨의 가슴팍을 밟아 고정한 후에 극도로 저항의 반경을 줄인 대가리를 창으로 찍어버렸다.
캉―
식칼이 두부 자르듯 대가리를 통과해 시멘트에 튕기는 소리.
생선처럼 팔딱이던 움직임이 한순간에 멈춰버린 좀비를 바라보다가 서둘러 반투명한 창을 떠올렸다.
어째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처음으로 죽인 것이 사람인지, 혹은 좀비인지.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전개와 내가 실행한 행동에서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최초 업적! 최초 업적 떴냐!”
[좀비 살해. (이후 똑같은 메시지가 반복되지 않습니다.)]
[5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후 똑같은 메시지가 반복되지 않습니다.)]
띠링!
[최초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각성자로서 좀비 퍼스트 킬’]
[100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스킬 작성권을 획득합니다.]
“야스! 야스! 야스! 씨발! 됐다!”
꽉 쥔 주먹과 함께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상태창!”
[성명 : 한구원]
[성별∘나이 : 남∘27세]
[직업 : 각성자]
[힘 : 1] [민첩 : 1] [지능 : 1] [마력 : 1]
[보유 포인트 : 105]
* 팁 : 포인트를 분배하세요! 1~10까지는 1 포인트로 스탯을 올릴 수 있습니다!
* 최초 업적 달성자 특별 팁: 스킬 작성권을 사용하세요! 단, 밸런스를 과하게 해치는 스킬은 자동 조절되니 주의하세요!
키에에에엑―
상태창을 훑어보는 와중에 들리는 또 다른 포효.
난간 밑을 보니 내가 낸 소음에 반응하듯 가까이 있던 좀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하긴, 소리도 치고 별 지랄을 다 했는데 조용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좀비 아포칼립스인데 말이야.
출입구를 가득 채운 좀비들과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그 대열에 합류하는 좀비들.
그중에 당연하게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태양이 중앙에 걸린 대낮.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리던 햇살도 이제는 어떤 존재와의 투쟁으로 얻어야 하는 보상이 된 걸까?
“씨발, 저게 다 몇 포인트냐?”
더는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 만물의 영장이 아닌 세계.
세상의 종말이자.
내 구원의 시작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04. 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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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각성 (1)
각성 (1) ― 한마음 아파트 10층 복도
끼에에에엑―
스무 마리는 족히 넘는 좀비들의 가래 끓는 소리.
괴음이 공명을 거듭하며 뇌를 울리는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이질적인 소음.
마치 군대에서 들었던 고라니 소리와 필적할만한 좆같음이었다.
쾅― 쾅―
좀비들의 허우적대는 팔이 1층 출입구의 유리창을 쉴 새 없이 내리쳤다.
보안을 목적으로 한 두꺼운 유리창이지만 부서지는 것은 아마 순식간일 것이다.
일단 얻은 포인트를 스탯에 분배하자.
“어… 그런데 어떻게 분배해야 하지? 터치식인가?”
[각성자의 선호 방식에 따라 음성 인식, 지문 인식, 의지 인식 등의 방식으로 커스텀 하실 수 있습니다.]
“…의지 인식이란 게 혹시 생각하면 바로 스탯으로 찍힌다는 의미야?”
[그렇습니다.]
“그럼 당연히 의지인식으로 하지. 비효율적인 음성인식으로 하는 병신이 어딨어?”
[시스템은 각성자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혹시 지금 음성인식 같은 거로 설정한 병신이 있어?”
[…….]
흠, 살짝 떠봤는데 역시나 묵묵부답이다.
분명히 아까 스킬 작성권 팁에서 밸런스를 과도하게 해치는 스킬은 자동 조정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밸런스에 최소한의 신경은 쓰겠다는 말이구나.
도움은 주지만 밸런스에 영향이 가는 질문은 대답하지 않겠다는 거군.
혹시나 나와 선두경쟁 중인 각성자가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분명히 시스템은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일단 스스로 유추해보자면, 내가 얻은 최초 업적이 ‘각성자로 좀비 퍼스트 킬’이었다.
시스템의 가장 큰 구조는 좀비를 죽이는 것으로 포인트를 얻고 그 포인트로 다시 자신을 강화하는 전형적인 RPG 게임의 방식일 것이다.
그러면 아마 높은 확률로 지금 포인트를 얻은 각성자는 퍼스트 킬을 한 나뿐이라는 이야기고.
이 타이밍에 포인트를 소모하는 것도 나뿐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러한 K-웹소설식 데스게임의 특징이라면 가장 대표적인 특징.
최초로 달려간 사람이 다음 최초를 얻기가 더 수월하다는 것.
전형적이지만 그래서 더 피 튀기는 경쟁을 유발하는 ‘승자독식(Winner take all)’의 구조.
[36 포인트를 소모하여 힘, 민첩, 지능, 마력에 각각 9씩 부여합니다.]
[알 수 없는 힘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상태창의 메시지와 함께 내 몸에 하얀빛이 스며들었다.
그 빛이 사그라듦과 동시에 전신에 알 수 없는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다.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태까지의 나와 전혀 다른 내가 되었음을.
가볍게 원 투 펀치로 지른 주먹질에 일어난 바람이 앞머리를 흔들었다.
거기다가 전신에 퍼진 익숙하지 않은 기운.
그 기운이 주는 활력에 왠지 모를 고양감이 치솟고 있었다.
웹소설 애독자로서 당연히 짐작해야 할 감각이었다.
초인이 되기 위한 알파이자 오메가.
상태창과 항상 함께하는 영혼의 듀오.
“…마나.”
정말로 상태창이 말하는 ‘각성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치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능은….
99 곱하기 29는?
‘…….’
엥, 뭐야? 왜 암산이 안 돼?
이거 씨발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상태창아! 지능이 올랐는데 체감이 안 돼? …설마 지능을 9 올려도 저거 하나 암산 못 하는 빡대가리라는 건 아니지?”
…아니지, 시스템아?
[최초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각성자로서 힘 스탯 첫 상승’]
[추가로 힘 스탯을 10 부여합니다.]
[최초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각성자로서 민첩 스탯 첫 상승’]
[추가로 민첩 스탯을 10 부여합니다.]
[최초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각성자로서 지능 스탯 첫 상승’]
[추가로 지능 스탯을 10 부여합니다.]
[알 수 없는 대량의 힘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또다시 몸이 번쩍임과 동시에 지나치게 긴 상태창이 내 눈을 어지럽혔다.
“아, 쉣! 이게 뭐야! 앞으로 반복적인 건 짧게 정리해서 보여줘.”
[알겠습니다.]
일단 최초 보상을 얻었으니 다시 한 번 해보자.
99 곱하기 29는?
‘9 곱하기 9니까 일단 81에서… 어… 이런 개 씨발!’
[2871입니다.]
“이런 썅! 누구 놀려? 지능을 올렸는데 왜 작동을 안 하는 거야? 이거 사기 치는 거 아냐?”
[…….]
이런 개 같은 시스템 새끼.
또 대답을 처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내 물음에 답하는 게 밸런스 쪽을 건드린다는 건가?
…아니면 지능이 20이나 올랐는데도 저걸 암산할만한 지능이 안 되는 거던가.
아니다, 그렇겐 생각하지 말자.
기분만 더러워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속으로 상태창을 되뇌었다.
[성명 : 한구원]
[성별∘나이 : 남∘27세]
[직업 : 각성자]
[힘 : 20] [민첩 : 20] [지능 : 20] [마력 : 10]
[보유 포인트 : 69]
그러고 보니 왜 마력은 최초 보상을 못 얻었지?
‘뭐야! 어떤 미친놈이!’
아니다, 참자. 참자, 구원아.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화를 내다보면 끝이 없었다.
“…일단 초반 스탯쪽 최초 보상은 거의 내가 다 먹었고.”
상태창을 보며 계속해서 이상했던 점은 RPG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캐릭터 레벨이 없다는 것이었다.
몬스터를 죽이고 경험치를 얻어서 레벨을 올린다.
레벨 상승의 보상으로 얻은 보너스 스탯으로 스탯을 올린다.
이게 대표적인 RPG 게임의 골조지만 여기서는 그냥 포인트를 얻고 그 포인트를 그대로 스탯에 투자하는 방식.
그렇다는 건 포인트가 경험치이자 스탯이자 또한 화폐의 기능 또한 하지 않을까?
“…상점창.”
띠링―
(원하시는 상품을 검색하세요!)
[대충 만든 에너지바 : 1p]
[많이 뿌연 흙탕물 : 3p]
[영양 듬뿍 육개장 사발면 : 10p]
[에비앙보다 조금 못한 생수 : 30p]
[보조 배터리(10시간 충전 가능) : 100p]
……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는 스크롤.
대부분이 음식과 기본 의식주에 관련된 상품들이었다.
일단 실험을 겸해서 가볍게 1 포인트만 소모하기로 했다.
‘대충 만든 에너지바’를 사겠다 마음먹은 순간 안내 메시지가 날아왔다.
[인벤토리에 보관하시겠습니까?]
역시 상태창하면 인벤토리는 당연히 따라와야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바로 또 다른 알림창이 떠올랐다.
1. 스킬 작성권 x1
2. 대충 만든 에너지바x1
에너지바를 꺼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내 왼손에 에너지바가 자연스럽게 집혔다.
‘넣는 것도 당연히 되겠지?’
생각과 동시에 아까 좀비를 죽이기 위해 급하게 만든 ‘창’이 순식간에 인벤토리로 사라졌다.
1. 스킬 작성권 x1
2. 급조 식칼창 x1
다시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내는 찰나에 내심 기다리던 메시지가 팝업처럼 떠올랐다.
[최초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포인트 상점 최초 이용’]
[상점 무료 이용권을 획득합니다.]
“야스! 야스! 이거지! 클리셰대로 하란 말이야!”
당연히 상점창 최초 보상도 존재해야지!
쩌적―
1층 보안 유리를 두드리던 둔탁한 소음이 길게 찢어졌다.
밑을 내려다보니 출입구 쪽에 있던 좀비들이 방금 내가 지른 환호성 때문인지 더더욱 발광하고 있었다.
쩌저저적―
대략적인 시스템을 파악하는 동안 굳건히 버텨주던 유리창이 단말마를 내질렀다.
슬슬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무장을 재정비했다.
뭐, 무장이라고 해봤자 ‘급조 식칼창’ 하나였지만.
스탯이 골고루 분배된 육체가 계속해서 활력을 불어넣었다.
저 정도 무리의 좀비라면 좁은 지형을 활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물론 숫자가 더 늘어나는 것은 곤란했다.
여태까지의 반응으로 보건대 좀비들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정도 무리의 좀비들과 푸닥거리면 어쩔 수 없이 소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예상보다 조금 더 힘들고 긴 전투가 될지도 몰랐다.
일단 계단을 내려가며 첫 번째 ‘최초 업적 보상’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스킬 작성권을 사용합니다.]
[원하시는 스킬을 연상해주세요.]
메시지를 본 후에 가장 처음으로 든 생각은 나 자신의 안전이었다.
‘좀비들의 최대 강점인 감염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
대표적인 클리셰로 물리는 것 혹은 혈액이나 타액으로 인한 감염이 있었다.
‘근접한 좀비들을 효과적으로 퇴치하는 스킬.’
“그냥 물려도 바로 회복하는 ‘완전 회복’ 비슷한 거 없어?”
[불가능합니다.]
“이런 썅! 기다려봐!”
강화된 육체만큼 빨라진 속도로 내가 있던 10층에서 1층으로 순식간에 내려왔다.
내 몸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심각한 상황인데도 신기하게 웃음이 나왔다.
‘이게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인가 그거냐?’
끼에에에에엑!
1층에 내려온 나를 발견한 좀비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렸다.
“……와.”
유리창 너머로 선명하게 보이는 시체들의 무리.
어딘가 신체 한 부위가 결손나지 않은 좀비를 찾는 것이 더 어려웠다.
좀비들은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쉼 없이 유리창에 몸을 밀어 넣었다.
선두에 있는 좀비들은 뒤에 있는 좀비에게 밀려 몸이 찌그러지는 것까지도 보였다.
기이한 형태로 몸이 꺾이면서도 소름 끼칠 만큼 형형한 눈빛들이 나에게 정확히 고정되어 있었다.
쩌저저저적―
검붉게 썩은 피가 한계에 도달한 유리창이 그리는 거미줄을 따라 넓게 퍼졌다.
유리를 덮은 썩은 피 때문에 시야가 전부 가려질 정도였다.
“…후우.”
짧은 심호흡과 동시에 내려왔던 계단을 한 층 다시 올라왔다.
좁은 계단과 적절한 상위 포지션이 전투를 더욱더 효율적으로 도와줄 것이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엑!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좀비들의 포효가 더욱 거세졌다.
마치 눈앞에 있던 도시락이 사라진 것에 분노를 표하는 것 같았다.
퍼억―
“끼에에에에엑!”
유리가 파괴된 거라기엔 다소 둔탁한 소음 뒤에 확연히 생생해진 좀비들의 하울링이 현관을 가득 채웠다.
예상보다 훨씬 오래 좀비와 나 사이를 막아주던 보안 문이 박살남과 동시에 좀비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소리였다.
마치 봇물이 터지듯이 쏟아지는 좀비들.
계속해서 열심히 내던 성대 긁는 하울링 덕분인지 눈대중으로만 확인해도 내가 인식했던 숫자보다 배는 많은 수의 무리였다.
터덩텅―
선두의 좀비들이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엘리베이터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전력으로 질주할 신체 능력은 있지만, 그 속력을 제어할 지능이 사라진 걸까?
“븅신.”
1층을 가득 채운 좀비들의 고개가 동시에 나에게로 향했다.
“끼에에에엑!”
“얼씨구.”
질서와 도덕이 사라진 계단 문화가 바로 저런 걸까?
우측보행이라는 배려가 사라진 좁은 계단은 그야말로 한국식 헬게이트의 재림이었다.
첫 번째로 계단을 오르던 좀비들이 그 뒤에 있던 좀비들에게 밟히고 또 그 좀비들은 뒤에 있던 좀비들에게 밟혔다.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거리를 좁혀오는 살덩이들이 마치 나에게로 내려온 레드카펫 같았다.
‘첫 좀비 킬’의 흥분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좀비들의 물결, ‘좀비 웨이브’를 바라보니 확실히 세상이 좆됐다는 걸 실감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당장 병원이 급한 치명상에도 전혀 이상 없는 저 팔팔한 몸짓.
소름 끼치는 눈에 담긴 비정상적으로 비대한 나를 향한 적의, 혹은 식욕.
“케에에엑!”
정면까지 도달한 좀비의 아가리 속에 끊어치듯이 창을 꽂았다 빼며 당장 내게 필요한 스킬을 연상했다.
“제에발 한국 사람이라면 우측보행합시다! 씨발새끼들아!”
[스킬 작성권을 사용하셨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04. 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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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각성 (2)
각성 (2) - 한마음 아파트 1층 계단
이 상황에서 정확한 정답은 없었다.
효과적인 스킬은 다양했고, 그것을 선택하는 건 개개인의 취향이었다.
일단 고백하자면, 내가 제일 가지고 싶은 능력은 ‘세뇌’였다.
세뇌를 얻게 된다면 택시 기사를 세뇌한 뒤 서울에 도착해서는 연예인, 모델, 아이돌 할 거 없는 주지육림을 만들겠다는 자세한 계획까지 꿈꿨을 정도로 ‘세뇌’를 좋아했다.
“끼에에에엑!”
하지만 옆에 있던 좀비가 꼬챙이에 찔려 죽든 말든 내게 덤벼오는 좀비 새끼들을 보면 지금 상황에서 세뇌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
저 새끼들 헤벌레하게 만들어서 어디 써먹을 거야?
지금 상황에 적절하면서도 내가 바랬던 능력은 당연히 ‘염력’이지.
[스킬 작성권을 사용하셨습니다.]
[염력 Lv.1]
[의지를 통해 물체에 간섭합니다. 스킬 레벨과 영향을 끼치는 스탯이 증가할수록 더 많은 물체를 더 강하게 간섭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스킬의 사용법을 알 수 있었다.
안 쓰던 세 번째 손이 생겼지만, 언제든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끼에에에엑!”
바로 앞까지 온 좀비에게 ‘염력’을 사용했다.
먼저, 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자원.
육체에 머물던 마나 중 일부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 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대상.
갈망하는 눈빛과 함께 크게 도약해 나에게 날아오는 좀비.
마지막으로, 그로 인해 나타난 결과.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멈춘 좀비의 육체.
콧등에서 고작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멈춘 놈의 이빨이 딱딱거리며 아쉬움을 표하고 있었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목에 시선을 집중했다.
찌지직―
종이 찢기듯이 찢어지는 좀비의 목과 함께 서둘러 다음 계단으로 위치를 옮겼다.
끼에에에에에엑!―
아직도 복도가 떨릴 만큼 공명하는 하울링.
저 많은 수의 좀비들을 하나하나 ‘염력’으로 처리하기에는 아직 스킬 레벨과 마나가 너무나 모자랐다.
효율, 효율이 중요했다.
다음 층에 올라온 지 얼마나 됐다고 순식간에 다음 층 복도가 좀비들로 가득 찼다.
마치 팬싸인장에 온 아이돌이 된 기분이었다.
단지 여자들의 꾀꼬리 같은 비명이 아니라.
“끼에에에에엑!”
뭔가 잘못된 건 확실히 알 수 있는 비명으로 나를 반기지만 말이다.
다시 나를 향해 쇄도하는 좀비들의 물결.
그중에 가장 선두에서 달리던 좀비들에게 일제히 염력을 가했다.
아까처럼 완벽하게 상황을 통제하지 않고 적당히 밀친다는 생각으로 다리 쪽에 제동을 걸었다.
우당탕탕―
선두의 좀비들이 무너지며 좀비 웨이브의 진로를 방해했다.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좀비들을 밟으며 놈들이 전진을 이어갔다.
“끼에에에에엑!”
계단을 기어서라도 내 발목을 잡으려는 좀비 놈들의 대가리에 창을 꽂아넣고는 곧바로 다음 층으로 이동했다.
‘지금까지 몇 마리 죽였지?’
[포인트 : 109]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포인트가 69 포인트.
좀비 새끼 한 마리 죽일 때마다 5 포인트씩 얻으니까.
‘8마리 정도 잡았네.’
1층에서 3층으로 올라오는 동안 8마리라.
눈대중으로 다시 올라오기 시작하는 좀비 무리를 계산했다.
아직도 두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바글바글했다.
‘최소 50마리는 남았다.’
우리 아파트가 15층이 꼭대기 층이었으니 이 사이클대로 처리한다면 여유는 충분했다.
거기다가 생각보다 쏠쏠하게 들어오는 포인트까지.
역시 RPG는 사냥.
닥치고 사냥이 왕도였다.
슬슬 포인트를 찍어줘야겠다.
일단 스킬….
‘…잠깐만.’
내가 스킬 관련해서 최초 업적 보상을 받았던가?
“시스템아! 왜 스킬 최초 업적은 안 주는 거냐?”
[…….]
침묵하는 시스템을 보며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 일었다.
이 씨발!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스킬쪽 최초 업적을 수행한 듯했다.
‘어떻게!’
최초 업적으로 받은 스킬 작성권으로 스킬을 만들었는데 왜! 내가 최초 업적 달성자가 아닌 건데?
이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분노!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전신을 내달렸다.
어떤 루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스탯과 상점 쪽 최초 업적을 달성할 때 동안 누군가 마나도 모자라서 스킬 쪽 보상까지 빼앗았다.
“누구야! 씨발 어떤 개새끼가! 씨이이이이발 내 꽃길이!”
“끼에에에에엑!”
“닥쳐! 이 포인트싸개들아!”
퍽― 퍽―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좀비를 사냥한 후에 다시 다음 층으로 이동하며 스킬창을 띄웠다.
[염력 Lv.1 -> 염력 Lv.2]
[100 포인트를 지불하시겠습니까?]
“이런 개 씨이이이발! 개 비싸아아아아아!”
초반 보상을 거의 독식한 나에게도 전 재산을 털어야 레벨 하나를 올릴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받은 스탯 보상 또한 그렇게 작게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킬을 보고 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씨발, 별수 있나.
일단 아끼면 똥이 된다는 금언에 철저히 따를 수밖에.
[100 포인트를 지불하셨습니다.]
[염력이 Lv.2로 상승합니다.]
[알 수 없는 힘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앞으로 저 알 수 없는 힘이니 뭐니 저거 좀 그만 띄워. 정신 사나우니까!”[…….]
“아까 내가 분명히 간략하게 보여달라고 했는데, 명색에 상태창이 이런 거 하나하나 다 말해줘야 해? 엉?”
[…….]
“꼽냐? 꼽냐고! 씨발! 이럴 거면 스킬 작성권인지 뭔지가 왜 필요해! 그것도 ‘퍼스트 킬’같은 주요업적에서 나온 보상인데 왜 유니크하지가 않냐는 말이야!”
[…인간에게는 태생부터 주어진 재능들이 존재합니다. 시스템은 그것들 또한 ‘스킬’이라 명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스킬을 원래 가지고 있던 인간들이 있었다는 거야?”
[꼭 ‘염력’같은 초능력만이 ‘스킬’의 범주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난 왜 스킬이 하나도 없었는데?”
[…….]
끼에에에엑!
“닥쳐봐! 이 새끼들아! 중요한 얘기 중이잖아!”
9층에서 한 사이클을 더 돌리고 다음 층으로 이동하며 생각했다.
아니, 그래.
내가 뭐 인간 중에서 열등해서 스킬이라 할 만한 기술이 없었다고 치자.
그럼 도대체 스킬쪽의 최초 업적 보상은 누가 받는 건데?
각성자들은 동시에 깨어난 거 아니었어?
뭔 각성인지 뭔 지랄인지를 시작한다며!
“대답해! 내가 속으로 지껄여도 넌 다 알잖아!”
[…….]
“대답.”
[…….]
“대애애애애답! 이 새꺄!”
[……합당한 의문이라 판단. 답변합니다. 범주 ‘스킬’쪽의 최초 업적은 존재치 않습니다. 각성자님이 짐작하셨던 대로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럼, 아직도 내가 최선두라는 이야기잖아.
“휴우, 깜짝 놀랐네.”
열불이 치솟아 올랐던 머리가 순식간에 제 온도를 되찾았다.
기왕 앞선 선두를 누구에게 양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최초 업적을 반쯤 독식하고 있는 와중이라면 더더욱.
간신히 찾아온 나만의 낙원이었다.
이 낙원을 유지하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다.
‘스파이더맨’의 명대사 중에 유명한 말이 있다.
‘힘에는 크나큰 책임이 따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개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던 말이다.
난 다르게 생각했다.
‘힘에는 크나큰 쾌락이 따른다.’
힘이 있어야만 즐거울 수 있었다.
단지 그 힘이라는 것이 이 세상이 오기 전까지는 돈이었던 것이고.
지금은 이 ‘시스템’인 것이다.
봐라, 이 시스템으로 얻은 스탯과 스킬 덕분에 좀비를 죽이는 이 싸이클이 너무나도 수월했다.
단지 걱정되는 건, 꽤 단시간에 이루어진 혹사로 ‘급조 식칼창’의 테이프 부분이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원래도 날이 바짝 서지 않았던 식칼을 무식하게 써서 그런지 이제는 칼날이 아니라 내 손목의 힘으로 무식하게 찌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내 알짜배기 포인트를 가져간 스킬이 얼마나 센지 한번 볼까?”
고작 한 계단 올리는데 벌써 100 포인트.
레벨이 어디까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포인트를 요구하겠지.
[염력 Lv.2 -> 염력 Lv.3]
[200 포인트를 지불하시겠습니까?]
‘역시.’
필요 포인트가 배로 뛰기 시작한다.
그만큼 올리기 빡세다면, 올렸을 때의 리턴도 커야지.
11층 계단에 도달했을 땐 좀비의 수가 많이 준 것이 눈에 확 보였다.
이제는 10마리가 조금 안 되어 보이는 무리의 좀비만이 기나긴 추격전에서 낙오하지 않고 날 따르고 있었다.
“씨발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우에하라 아이라도 된 것 같네.”
잡히면 따먹히는 게 아니라 먹힌다는 게 문제지만.
굳이 꼭대기 층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여기서 끝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창을 든 오른손을 뒤로 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투창하듯이 내질렀다.
일자형 계단.
위에서 아래로 찍는 포지션에서의 투창.
똥구멍으로 던져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쌔애애액―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내 손에서 떠난 창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퍼억―
좀비의 이마 한가운데에 박힌 창에 다시 염력을 집중했다.
아까보다 훨씬 적은 양의 마나가 사라졌지만, 더 강하게 물체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다.
자동으로 머리에 박힌 창이 튀어나오더니 바로 옆에서 달려오던 좀비의 머리에 정확하게 박혔다.
그리고 핏물을 튀기며 삐져나온 창이 다시 그 뒤에 있는 좀비에게 박히기를 반복했다.
내가 해야 했던 일은 꾸준히 창에 염력을 불어넣으며 좀비가 다가올때마다 그만큼 멀어지기만 하면 됐다.
챙그랑―
더 이상 찌를 표적을 잃은 식칼창이 땅에 내려옴과 동시에 나의 첫 소규모 좀비 웨이브가 끝을 맺었다.
…솔직히 그렇게 처절한 싸움까지는 아니었다.
최초 보상을 싹쓸이한 스탯과 Lv.2의 염력 덕분인 것도 있지만.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싸웠던 것이 가장 컸다.
이제는 명확하게 느껴지는 여분의 마나를 짐작하니 대략 10%가 남은 것 같았다.
만약 이런 일자형이 아니라 넓은 공간에서 저런 미친 새끼들과 만났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접착력이 다 떨어져 나가 덜렁이는 식칼창에서 식칼만을 염력으로 머리맡에 띄웠다.
이 정도는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마나로도 충당 가능한 정도의 퍼포먼스였다.
식칼이 떨어진 밀대 자루를 손에 들고 내가 만든 참상을 조용히 관찰했다.
혹시나 완벽하게 죽이지 못한 좀비가 다시 일어나는 상황은 대비해야 했다.
뚫린 구멍에서 썩은 피를 뿜어내고 있는 좀비들을 1분 정도 바라본 후에야 놈들이 확실히 죽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후, 완벽하게 두 번 뒤지셨네.”
설마 세 번 살아나지는 않겠지?
가벼운 한숨과 함께 첫 사냥이 끝났다.
사냥이 끝난 뒤에는 당연히―
“즐거운 파밍 시간이지!”
수확의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04. 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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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각성 (3)
각성 (3) - 한마음 아파트 11층 복도
파밍이라고 해봤자 그렇게 거창한 일은 아니었다.
여기에 뭐, 히든 던전이 있을 것도 아니었고 사람이 모두 사라진 을씨년스러운 아파트에서 뭐 얻을 게 있겠는가.
그래도 음식과 갈아입을 옷은 넘치도록 있겠지.
‘아, 쓸만한 무기도 챙겨야지.’
손에 든 밀대 자루와 머리맡에 부유하는 식칼로는 성에 안 찼다.
하다못해 집마다 분명히 있을 식칼들이라도 더 챙겨야 했다.
포인트 상점에서 의식주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이른 사치라고 생각했다.
‘방금 스킬 올린 포인트만 생각해도 머리가 띵하고 손발이 벌벌 떨리는데….’
한 층에 4가구씩 들어선 15층 아파트.
꼭대기 층부터 1층까지 꼼꼼하게 필요한 것들을 파밍할 생각이었다.
나는 여유롭게 계단을 올라 15층의 가장 안쪽 집에 도착했다.
‘1504 호.’
문을 열 방법은 다양했다.
넘치는 힘으로 강제로 열어 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 무식하고 무엇보다 소음이 큰 방식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염력을 스킬로 생성한 것은 너무나 엑설런트한 선택이었다.
위력은 둘째치고 능력의 범용성이 너무나도 다양했다.
좀 더 세심한 컨트롤을 위해 오른손을 현관문 손잡이에 올렸다.
마나가 조금 빠져나가는 동시에 현관문 안쪽 손잡이가 염력에 잡혔다.
그대로 문을 열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어떠한 소음도 없이 1504호에 무혈입성할 수 있었다.
“와― 개판이구만.”
현관에 난잡한 신발들과 과자부스러기처럼 거실에 흩어져있는 옷들.
누가 봐도 급하게 집을 떠난 듯한 모양새였다.
밀대 자루를 벽에 툭툭 치며 혹시나 있을 사람을 불렸다.
“헬로우! 누구 계세요?”
여전히 조용한 집안.
갑작스럽게 끼에에엑거리며 덤벼올 좀비는 일단 없는 것 같았다.
“오케이! 잠시 실례 좀 할게요.”
혹시 모르니 계속해서 소음을 흘리며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 중앙으로 이동했다.
“…오!”
중앙으로 오자마자 보이는 큼지막한 웨딩 사진.
젊은 선남선녀가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남자 새끼 얼굴은 내가 알 바 아니었고.
웨딩 사진이라 화장을 빡세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의 얼굴이 특히나 볼만했다.
청순한 얼굴이 딱 합격인데 말이야.
“저 정도 외모면 오다가다 분명히 기억했을 텐데….”
하긴 집을 다니던, 편의점을 가던 땅만 보고 다니던 찌질이가 사람 얼굴을 자세히 볼 시간이 있어야지.
그리고 합격이면 뭐해, 이미 어딘가로 튀었는데.
“저기요! 여성분! 구조대가 왔습니다! 안심하고 나오세요!”
이리저리 방문과 화장실 문을 열며 소리를 쳐도 작은 메아리만 울릴 뿐이었다.
사람이 자리를 비운 생기가 사라진 집.
내가 일어나지 못한 날들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지?
부엌의 냉장고를 열었다.
전기가 나갔는지 전혀 냉기 없는 미지근한 바람과 함께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반찬만 몇 가지 굴러다니고 있었다.
“엌― 씨발, 뭔 냄새야!”
손바람으로 냄새를 없애며 부엌 수납장을 하나씩 전부 열어보기 시작했다.
라면, 건조식품, 스팸 같은 아포칼립스 생존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식량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에도 생수 한 병조차 없었던 것이 떠올랐다.
“씨발― 이거 작정하고 어딘가로 갔는데?”
집안 곳곳에 남은 흔적들은 분명히 급하게 떠난 기색이 역력한데도 식량은 있는 대로 모두 긁어서 챙겼다?
밖은 좀비 사태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식탐이 많아서?
“개소리지.”
급하지만 식량을 챙길 여유는 있었다.
즉, 상황의 급박함은 인지하고 있지만, 목적지와 생존지침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는 좀비 사태 발발 후 초반에 생각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었다.
사방이 좀비 떼로 가득한데 어디로 이동한다는 말인가.
“사태 파악이 전부 끝난 후에도 자신들의 생명줄인 식량을 전부 들고 급하게 도착해야만 하는 장소.”
딱― 딱―
손가락을 부딪치며 가장 확률이 높은 장소를 되뇌었다.
“…대피소.”
그것도 사람들이 불안하지만, 집 밖을 나와 그곳까지 갈 결정을 할 만큼 힘이 있는 집단의 대피소.
정부의 보호 아래 있는 대피소, 혹은 쉘터가 있다는 거구나.
“이거… 설마 금방 지나갈 재난 같은 건 아니겠지?”
좀비 아포칼립스.
아포칼립스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가장 벌어지기 힘든 멸망이 좀비 아포칼립스였다.
머릿수와 치악력 그리고 질긴 생존력밖에 가지지 못한 좀비가 어떻게 인류를 대적한다는 말인가?
고작 좀비들이 어떻게 인간을 향한 효율적인 살상의 집대성인 군대를 저지할 텐가.
사실상 탱크나 폭격기 하나에도 사태는 진정될 확률이 높았다.
군대가 작정하고 보호하는 대피소를 좀비들이 그 무지막지한 화망을 뚫고 점령한다고?
씨발 그럴 수 있었다면 이미 지구는 치타와 사자 무리에게 지배당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좀비들의 신체 스펙이 각성자인 내게도 조금은 버거웠던 것은 인정한다.
그래도 군대를 이기는 건 좀….
“씨발… 이게 아닌데….”
내가 꿈꿔왔던 해피 라이프는 공권력이 살아있으면 꿈도 못 꾸는 것들인데….
적당히… 적당히는 망해야 좀비 아포칼립스지 씨발.
폭격기 부수는 좀비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고.
한계도 모른 채로 발기했던 자지가 죽는 것처럼 현자타임이 급작스럽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보인다 보여. 정부에게 개같이 굴려지는 공무원 같은 각성자들의 말로가….”
안녕, 좀비들아.
일주일만 더 지나면 너희는 아마 바퀴벌레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될 거야.
띠링―
그런 내 모습에 답변이라도 하듯이 시스템이 영상을 투영했다.
그것은 좀비라는 존재로 인하여 사회가 파괴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시작은 내가 잠들었던 일주일 전의 아침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이 보였다.
모두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시선을 집중하거나 졸고 있었지만, 쿵―하는 소리와 함께 한 여자가 쓰러지며 그곳에 시선이 몰렸다.
“…어?”
“괜찮으세요?”
점점 쓰러진 여자에게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양팔을 걷어붙인 남자 한명이 튀어나와 여성의 가슴 쪽에 귀를 기울이며 심정지를 확인했다.
“저기! 단발머리 여성분! 네! 네, 당신 맞습니다, 여성분! 119에 연락 좀 부탁합니다!”
“…어, 네, 넵!”
서둘러 119를 누르던 여성의 스마트폰이 크게 진동하며 경보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긴급 재난 상황 발생. 04일 오전 07시 30분 기준 국가 재난 경보. 갑작스러운 기절 혹은 공격성 표출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즉시 격리 조치 요망. 전원 귀가 조치 및 안전한 실내에서 TV와 라디오의 안전수칙을 따를 것.]
“……어?”
삐이이익―
곧이어 지하철의 모든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경보음과 함께 지하철 방송이 잇따른다.
[승객 여러분, 본 열차는 다음 정류장인 ‘동춘’역에서 정차할 예정입니다. 방금 내려온 정부 지침에 따라 열차는 다음 역으로 운행하지 않으니 승객 여러분은 모두 질서…]
“끄아아아악!”
안내방송을 듣기 위해 조금 위로 향해 있던 고개가 비명을 쫓았다.
쓰러진 여성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던 남성의 목이 피 분수를 일으키며 열차 천장까지 닿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에엑!”
물론 그 남성을 물어뜯고 있는 사람은 쓰러진 여성이었다.
“씨, 씨발! 저, 저게 뭐야아아아!”
순식간에 패닉이 온 열차 안이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으로 가득 찼다.
어떻게든 저 미친 여자와 거리를 벌리려는 군중과 마치 ‘식사’라도 하듯이 남성을 물어뜯고 있는 여자 사이로 흥건한 피가 경계선처럼 새겨졌다.
“씨발! 문! 문! 문 열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남성들이 문을 뻥뻥 차기 시작했다.
쨍그랑―
“아아악! 씨발 내 눈! 씨이발!”
유리창을 탈출용 망치로 깨던 남성이 그대로 눈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한 여성은 기관사와 연락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처음 119에 연락하기를 부탁받았던 단발머리 여성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어떻게든 움직여 다음 칸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꼬리칸에 있었기에 볼 수 없었던 ‘물결’을.
“…저, 저….”
“씨발! 비켜, 쌍년아! 정신 놓고 뭘….”
끼에에에에에엑!
텅―! 텅―! 텅―!
여자를 밀치고 다음 칸으로 가려 했던 남성이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텅―!
‘무엇인가’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니, 부딪치고 있었다.
텅―!
계속해서 머리를 부딪치는 괴물 뒤에 그놈과 비슷한 수십 명의 괴물이 문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끼긱―
전혀 고통이 없다는 듯이 이어지는 몸통박치기에 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씨발 저게 도대체 뭐야아아아!”
광, 광견병인가? 아니, 무슨 단체 마약 파티라도 한 거야?
다른 건 전부 억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이해하지 못하지만 억지로라도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저 눈.
같은 사람이지만 전혀 다른 것을 쳐다보듯 형형한 저 눈이 사람의 얼을 계속해서 빼놓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씨발, 제발! 이 쌍년 좀 떼… 씨발 좀 제바아아아아아알!”
뒤에는 식사를 마친 여자가 또 다른 희생자에게 달라붙었다.
성인 남성이 필사적으로 밀치는데도 작은 체구의 여성은 미동도 없이 그 남자의 팔을 씹어먹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남성의 비명과 함께 여성이 문 팔에서 살점이 뜯겨 나간다.
사방으로 튀는 피 분수와 함께 여성의 얼굴이 빨간빛으로 물들었다.
“비, 비켜보세요!”
그제야 한 남성이 소화기를 든 채로 그녀의 머리통을 내려찍었다.
퍼걱―
멀리서도 보일 만큼 머리 한쪽이 움푹 팬 여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기를 든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아아아아아악!
더 공포스러운 것은….
분명 죽었어야 할 처음 희생자가.
쓰러진 여성에게 바로 달려가 응급조치를 하던 정의감 넘치던 남성이 펄떡거리며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펄떡거리며 괴기스러운 뒤틀림이 이어졌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비틀거리며 일어난 남성이 물려 뜯긴 팔을 쥔 채로 엉엉 울고 있는 남성을 다시 한 번 덮친다.
“아악! 아파! 아프다고오오오!”
몇 분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지하철은 붉은 피로 가득 찼다.
저 정체 모를 괴물들과 함께.
[♩~ ♪~ ♬]
도착 안내 음성과 함께 지하철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제 이 지하철에 남은 인간은 단발머리와 그 옆에 있던 남성뿐이었다.
[스크린 도어가 열립니다.]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맑은 목소리와 함께 단발머리 여성과 남성은 눈빛을 교환했다.
살려면, 도망치려면 지금뿐이었다.
하지만 문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저 소름 끼치는 괴물들을 뚫어야 했다.
분명 같은 생각을 했지만 행동하는 방식은 달랐다.
거기에다 움직이는 것까지도 남성이 더 빨랐다.
“미, 미안!”
“꺄아아악!”
크게 밀려난 여성이 그대로 넘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넘어진 여성에게로 4명의 남자가 햄버거 게임을 하듯이 덮치기 시작했다.
“왜 밀친거야아아아아!”
살아야 해. 어떻게든 일단 살아야 해.
남성은 그 말만을 반복하며 여성의 비명을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출입문을 향해 달리려던 남성의 발목을 무언가가 붙잡았다.
“꺼억… 꺼어어어억.”
남성에 의해 넘어진 단발머리였다.
온몸이 괴물들에게 먹히고 있는 와중에 두 눈이 찢어질 대로 커진 채로 남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씨이이발 노, 놓으라고!”
이제 ‘식량’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보였다.
모두 다 괴물이 되었고 남은 식량은 이 ‘여자’뿐.
이 여자가 먹히면 다음은….
“놔! 놔! 놔! 놔! 놔! 놔! 이 씨발! 놔아아아아아아아!”
필사적으로 여성이 붙잡고 있는 손을 찍듯이 밟기 시작했다.
분명 뒤져가기 직전일 텐데, 분명히 이 더러운 손이 떨어져야 할 텐데….
“이 개 씨발년아! 진짜 뒤지고 싶어?!!!!!”
“………끼에에에에.”
여성의 입에서 성대 긁는 소리가 나오며 동공에 핏물이 번졌다.
쾅―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남성은 고개를 뒤로 돌리기 싫었다.
딱딱거리며 턱이 무수한 진동을 내뱉었다.
삐걱거리며 돌린 시선에서 오른팔이 탈골된 채로 자신에게로 돌진하는 괴물이 보였다.
끼에에에에엑!
“…엄마.”
멸망의 시작이었다.
비명이 가득한 지하철이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출입문이 닫힙니다. ♩~ ♪~ ♬. 출입문이 닫힙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04. 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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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각성 (4)
각성 (4) - 한마음 아파트 1504호
지옥이 된 열차 영상을 끝으로 시스템은 다음 영상을 재생했다.
무수히 터지는 플래시와 요란한 셔터음 소리.
방호복과 마스크를 쓴 노년의 남성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2021년 3월 4일 오전부터 시작된 대규모 폭력 소요사태에 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금일 오전부터 시작된 대규모 폭력 및 묻지마 살해 사태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하였으나, 모든 인력을 총동원하여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태의 범위는 서울, 인천, 부산을 비롯한 전국으로 예상되며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침으로 목을 축인 남성이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생수를 들이켰다.
그사이에도 수많은 플래시가 찰칵거리며 노인의 얼굴을 빛냈다.
“대, 대통령님은 즉시 모든 경찰력과 군사력을 집중하라는 말씀과 함께 빠르게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전히 격리된 집에 머무시며 상황이 안전해질 때까지 정부의 지침에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탕― 탕― 타탕―
브리핑실에서도 들을 수 있을 만큼의 크나큰 총성이 울렸다.
동요하던 남성이 다시 표정을 다잡으며 말을 이었다.
“어,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범죄입니다. 치안에 관해서는 경찰과 군에게 일임해…”
“장관님! 서아일보의 김철하 기자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지금 이 사태가 생화학 테러나 중국에서 일어난 전염병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 분명히 질문은 받지 않는다고…”
“장관님! 방호복과 마스크를 쓰고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 공기감염의 가능성이 있는 겁니까?”
“아직까지 정확한…”
“서울 상공을 뒤덮고 있는 불투명한 막은 무엇입니까? 지금 사태가 흔히 말하는 ‘좀비’와 연관이 깊…”
키에에에에엑!
탕― 타다다다다―
“이, 이상으로 브리핑을 마칩니다.”
“장관님! 장관님!”
화면 끝에서 달려온 군인들이 서둘러 노년의 남성을 호위하며 영상이 끊겼다.
그 다음으로 TV 화면이 보였다.
떡진 머리의 남자 앵커가 피곤한 기색으로 다음 뉴스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다음 소식입니다. 신원미상의 테러집단이 무분별하게 각지의 병원을 불태우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들은 한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들이 병원에서 격리 중인 일명 ‘예비 감염자’들을 방역중이라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예비 감염자’들이 깨어나는 순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며 소극적인 대처를 반복하는 정부를 규탄…”
긴급 방송으로 온종일 진행되던 뉴스가 끊기며 삐이이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지루한 애국가의 1절이 끝나고 대한민국 전도가 송출된다.
대한민국 전역에 새겨진 빨간 빗금.
빨간 빗금은 ‘통제 실패’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비상 계엄령 선포]
커다란 빨간 글씨와 함께 기계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2021년 3월 6일 오전 09시. 대한민국은 헌법 제77조에 따라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의료, 소방, 경찰 및 공공서비스 운영이 무기한 중단됩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각각 안내되는 대피소로 모두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여성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화면이 전환되며 전국에 군대가 설치한 대피소의 위치를 방송했다.
기나긴 대피소 알림 끝에 커다란 빨간 글씨가 다시 나타났다.
[전방위적 정당방위 허용]
[격리하지 못한 감염자에게 전방위적인 정당방위가 허용됩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격리하지 못한 감염자에게 전방위적인 정당방위가 허용됩니다.]
다시 화면이 사라지고 이번엔 유튜브 화면과 함께 남성의 얼굴이 보였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의 소식통, ‘빡철’입니다! 구독과 좋… 아, 이게 아니고. 편집된 영상이 아니라 라이브로 방송하는 건 처음이죠? 어쨌든 저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대전에 지정된 대피소로 이동 중입니다.”
“저기요! 남성분! 카메라로 뭐 아무거나 찍으시면 안 됩니다!”
시민의 무리를 호위하던 군인 중 한 남성이 빡철에게로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하… 씨발.”
작은 욕지거리와 함께 빡철이 다가온 남성을 향해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저 아시죠? ‘빡철’.”
“아… 알긴 알죠. 그런데 지금 이런 거 찍으시면 안 돼요.”
빡철의 눈이 라이브 방송 채팅창으로 향했다.
무수히 터지기 시작하는 후원과 함께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들.
하긴, 이런 상황에 라이브 방송을 키는 또라이는 아마 자신밖엔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침체기였던 자신의 채널에 이만한 활기라니, 이건 기회였다.
‘역시 사람이 그냥 뒤지라는 법은 없지.’
뒤지기 직전에도 반등의 기회는 반드시 오는 법이었다.
빡철은 목소리를 죽이며 군인에게 속삭였다.
“이 시청자분들 좀 보세요. 자그마치 3만 명이에요, 3만 명. 아직 대피 못 한 분들도 알 건 아셔야 하잖아요. 국민의 알 권리, 아시죠?”
“아… 그래도 안 됩니다. 위에서 이상한 영상 많이 올라온다고 아주 난리입니다. 이런 거 하나하나 봐 드리다가 저희만 좆됩니다.”
“에헤이, 이걸로 어떻게 안 되나요? 네?”
주머니에서 혹시나하는 마음에 챙겨온 5만원 뭉치를 조심히 건넸다.
꽤나 많은 액수의 돈을 보는데도 군인의 눈빛은 차가웠다.
‘씨발 이 상황에서 돈은 무슨, 군것질거리나 좀 주던가.’
아니다.
돈이라도 주며 부탁을 하는 것은 차라리 나은 축에 속했다.
좀비들이 사방에서 덮치는 격전의 와중에도.
강아지를 데리고 가지 않는다면 안 간다고 빼액거리던 아줌마.
자신은 집에서 나가지 않는다며 남는 총이나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지르던 할아버지.
공권력이, 정부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그들의 이탈을 반기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지금도 대피소엔 충분히 가득 찬 시민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총알은 유한했고, 구해야 할 사람은 무한했다.
그렇다고 개고생하며 구한 시민들이 통제에 잘 따르는 것도 아니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어린아이들.
갓난아기들의 합창처럼 터지는 울음소리.
그 뒤를 잇는 가족을 잃은 누군가의 곡소리.
어떻게든 배식을 많이 받겠다고 주먹질하며 싸우는 어른들까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짜증을 아무런 말없이 받아줘야 하는 나.
자신에게 죄라면 가기 싫은 군대를 울며 겨자 먹기로 간 죄밖에 없는데 말이다.
키에에에에에엑!
또. 또 그 좆같은 새끼들이 몰려온다.
서둘러 탄창에 잔탄을 확인하며 군인은 빡철에게 당부했다.
“끄세요. 무조건 끄셔야 합니다.”
“아, 넵! 당연하죠!”
방긋 웃던 빡철이 서둘러 전방으로 달려간 군인이 대응사격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자마자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다.
차르르르륵―
대열을 따라오던 K-2 전차를 보며 빡철이 감탄했다.
“와! 저는 군필인데도 탱크를 이렇게 가까이서 처음 봅니다. 어쨌든 형님들 제가 중대한 소식을 들고 왔는데요.”
콰앙―
전차가 살짝 들리며 주포에서 굉음이 터진다.
전방에서 파편이 되어 흩날리는 좀비들.
‘씨발, 19금 걸리면 수익 안 된다.’
서둘러 자신에게로 카메라를 돌린 빡철이 열심히 멘트를 치기 시작했다.
“각종 연예계의 정보를 전해주던 컨텐츠가 무기한 스탑된 상황인 거는 다들 알고 계시죠? 그런 의미로 대피소 VLOG를 시작해보려 하는데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세요? 기대되시죠? 상황이 비교적 심각한 위쪽부터 대피소 이동이 시작됐다는데 아마 제 방송을 보시면 미리 체험하실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
콰앙―
또다시 잇따른 굉음에 빡철의 두 눈이 감겼다.
“오, 오른쪽에 저거 뭐야! 막아! 씨발 막아아아!”
‘아, 이 씨발 멘트 치는데 욕하지 말라고! 노란 딱지 붙는다고!’
안 돼. 철아 너까지 욕하면 안 돼.
웃자.
“아, 잠시 소란이 있었네요. 여러분! 제…”
콰직―
이질적인 파쇄음에 카메라가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반파된 동체 상부와 오른쪽으로 크게 꺾인 포신.
계속해서 궤도가 돌아가고 있지만, 전차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향하지 못하고 있었다.
근육 덩어리.
징그러울 만큼 거대한 근육 덩어리가 전차 앞을 막고 있었다.
“쏴! 병철이랑 찬우 빼고는 다 저 새끼부터 쏴버려!”
타다다다다다―
사방을 견제하던 군인들의 화망이 그놈에게로 집중되지만, 조금의 타격도 없었다.
“씨, 씨발! 꿈쩍도 안 합니다!”
“수류탄! 수류탄이라도 던져!”
“예!”
패닉에 빠져버린 군인들이 안전거리도 준수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수류탄을 던지기 시작했다.
쾅―! 쾅―!
땅이 흔들리며 끊임없이 피분수가 솟구쳐 나왔다.
충격에 발생한 흙먼지가 서서히 걷히자 처참한 광경이 드러났다.
길가에 쓰러진 시민들과 그들의 피로 흥건한 아스팔트.
보호 대상이 오히려 수류탄 파편에 당하는 아이러니에 시민들이 몸서리쳤다.
“아, 아아아아아악!”
“이, 이 씨발새끼들아! 어디로 던져!”
군인에게서 시작된 패닉이 순식간에 시민들에게로 퍼졌다.
간신히 이어지던 호위 대열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으, 으아아아아악!”
그 광경을 모두 찍고 있던 빡철 또한 서둘러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콰직―
그리고 그것이 대형 유튜버 ‘빡철’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근육 덩어리가 다음 타겟으로 선정한 그를 뭉개버렸다.
거대한 주먹이 내려친 아스팔트에 작은 크레이터가 생겼다.
그 구덩이에 흩어져있는 육편이 빡철의 마지막 조각들이었다.
그 충격에도 빡철이 놓쳐버린 스마트폰은 충실히 라이브 방송을 이어가고 있었다.
크롸아아아아아―
괴수의 포효소리가 주위의 비명과 소음을 모두 덮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그리고 놈의 포효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사방에서 좀비들의 하울링이 울려 퍼졌다.
“병, 병장님! 이, 이제 어떻게 합니까?”
“총알도 다 떨어졌습니다!”
“도, 도망쳐야 해. 도, 도망쳐어어어어!”
압도적으로 절망적인 상황.
총을 던지고 달려가는 병장을 보며 상병이 소리쳤다.
“씨바아알! 가지 마, 이 씨발새끼들아! 도망치지 말라고오오오오!”
퍽―! 퍽―!
반항하던 군인들의 머리가 두더지 잡히듯 괴물에게 터졌다.
도망치던 군인과 시민들은 사방에서 몰려든 좀비에게 먹혔다.
순식간에 죽음으로 가득 찬 그곳에 남겨진 것은 스마트폰 하나와 이 참상을 시청한 시청자들.
그리고 이제는 의미 없어진 수천만 원 상당의 후원과 슈퍼채팅뿐이었다.
크롸아아아아아아―
변종의 출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04. 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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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각성 (5)
각성 (5) 한마음 아파트 1504호
화면은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번엔 무척이나 익숙한 장소였다.
내 침대를 위에서 아래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내 머리 옆에 놓인 스마트폰이 계속해서 울음을 토해냈다.
[UN 긴급 안전 보장 이사회 전원 원자력 발전소 등 모든 발전소 가동 중지 협의.]
그 문자를 기점으로 불티나게 울리던 재난문자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금일부로 모든 전기와 상수도가 공급되지 않습니다. 국민 여러분들은 단전과 단수에 대비하여…]
짧은 메시지를 끝으로 내 스마트폰이 검게 물들어 켜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흐르고.
쿵― 쿵― 쿵―
갑자기 시작된 충격음에 표정을 찡그리던 내가 서서히 눈을 떴다.
* * *
“…오.”
1504호의 냉장고 앞에서 기나긴 영상을 관람한 난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이 보여준 영상이 거짓이 아니라면― 아니, 씨발 저게 거짓말일 리가 없지.
저렇게 리얼한 상황이 어떻게 거짓말이야.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특히나 마지막 영상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탱크를 그냥 한 번에 반파해버린 그 근육 덩어리 새끼.
아직 나조차도 그런 퍼포먼스는 도저히 무리였다.
변종.
그래 씨발 각성자가 있는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변종이 없을 리가 있나.
아마 저 새끼 한 종류일 리도 없었다.
다양하고 좆같은 변종들이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넣고 있겠지.
육군의 전투력의 핵심인 전차가 반항도 못 하고 말 그대로 찢겨 나갔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이제 폭격기도 터트려버리는 좀비가 있을지 누가 알겠나?
짝― 짝―
양손으로 내 뺨을 여러 번 쳤다.
씨발, 스킬 하나 배웠다고 뭔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된 것처럼 굴던 내가 있었다.
그냥 정부와 공권력이 너무 살아있지 않기를 바라며 의욕이 죽어있었던 것뿐인데….
좀비 몇 마리 죽였다고 살짝 안일했던 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시스템은 왜 내게 이 영상들을 보여줬을까?
분명히 밸런스에 영향이 가는 행동은 자제하던 것이 보였는데 말이다.
특히나 변종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히 나에게는 상당한 특혜가 아닐 수 없었다.
앞으로의 행동에서 방심이 상당히 줄어들 테니.
[…….]
또다시 침묵을 고수하는 시스템이었기에 괜히 묻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나저나 그 새끼는 이름이 뭐냐? 원래 그런 새끼들은 ‘탱크’나 ‘그라울러’같은 간지나는 이름이 있잖아?”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양 주먹과 근육 그 자체인 몸통.
원래 이런 변종들은 제대로 된 영어 명칭이 있어야 간지가 나는 법인데 말이야.
좀비 게임에서 화염병을 던져 죽이던 그 ‘전차’가 생각났다.
씹쌔기가 던진 돌덩이에 심장이 내려앉던 잼민이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야.
‘저 새끼도 화염병이 약점인가?’
[해당 변종에 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지식은 변종 처치 시 확률적으로 얻으실 수 있습니다.]
“씨이발, 이게 그 RPG의 ‘알아가는 재미’냐?”
이러니까 RPG가 사장되는 장르지.
뭐 하나 제대로 알려주는 게 없네.
더러운 새끼. 퉷!
“아! 몰라! 파밍이나 마저 할래.”
이미 내게 필요한 것들을 대피소로 다 훔쳐 떠난 1504호의 문을 닫았다.
그래도 부엌에서 다양한 크기의 식칼들을 챙긴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1503호의 문도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열었다.
이후로는 지루한 파밍의 계속이었다.
들어가는 집마다 일부러 소리를 내며 좀비가 있는지 확인한 후에 부엌과 베란다 등을 수색해 먹을 것과 쓸만한 것들이 있는지 탐색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손전등과 샴푸와 린스, 비누… 대충 필요할 것 같은 모든 것들은 바로 인벤토리로 직행했다.
인천에도 구조대의 활동이 있었는지 거의 모든 집이 1504호와 같은 모양으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럼 씨발 날 깨웠어야지, 왜 난 남겨두고 갔던 거야?
당연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문을 열고 사람을 확인하는 놈이 오히려 미친놈이겠지.
생각해보면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다.
내 스타팅 포인트가 대피소였다면 오히려 초반 성장에 상당히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 반드시 존재할 군인들의 통제도 따랐어야 했을 것이고.
“오, 스팸!”
모든 가정이 다 1504호와 같진 않았다.
미처 다 챙기지 못한 스팸과 라면 등 건질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내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보관되고 있었다.
인벤토리의 물품들이 다양해질수록 내 마음도 든든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이거 되팔기도 가능하냐?”
[라면 하나당 0.01코인으로 교환 가능하십니다. 교환하시겠습니까?]
“…아니.”
그냥 대놓고 되팔렘은 안된다는 말이군.
결국, 기나긴 시간이 지나면 보급을 포인트 상점에서밖에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아니면, 흔히 나오는 좀비 영화에서처럼 스스로 농사를 짓거나.
“…혹시 인벤토리에 넣어도 썩진 않지?”
[그렇습니다.]
“휴, 그건 다행이네.”
그나저나 이것도 일이네.
한 집, 한 집 들어가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슬슬 파밍이 지루해지려는 찰나에 작은 소음이 들렸다.
수색하려던 501호 현관문으로 조용히 귀를 가져다 댔다.
―키에에에…
‘좀비.’
마나는 거의 다 회복되어 있었고 손에 밀대 자루와 머리 위에 식칼이 든든하게 부유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인벤토리에 차곡히 정리되어 있을 여분의 식칼들까지.
집 안에서 난교파티를 한 게 아니라면 최대로 있어 봐야 4마리 이하의 좀비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최대한의 가정이었다.
내 귀에 들리는 좀비 소리는 아직까진 정확히 한 마리였다.
철컥―
염력으로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선 신발장 서랍을 강하게 걷어찼다.
콰직―
“FBI! OPEN UP!!!”
와장창창 무너지는 신발장과 함께 내 외침이 집 안을 울렸다.
씨발! 이거 진짜 해보고 싶었다고.
“끼에에에에에엑!”
발광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잇따라 울렸다.
짐작하기엔 좀비 새끼가 어딘가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말미암아…구원을…”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에 경쾌했던 발걸음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한국어였다.
끼에에엑거리는 좀비들의 하울링이 아니라 진짜 사람의 말.
끼에에에엑
쾅― 쾅― 쾅―
머리 위에 떠다니는 식칼에 염력을 집중하며 거실로 들어섰다.
어디서든지 뭐가 튀어나오든 바로 창처럼 쏘아질 것이다.
“천신님이……독생자를……심판하려 하심이…”
기이한 광경이었다.
거실과 베란다를 구분하는 암막 커튼.
그 암막 커튼이 다 가리지 못한 중앙 부분에 햇살이 통과했다.
그 햇살의 경로에 먼지가 나풀거렸다.
마저 빛을 따라가다 보면 거실 왼편, 작은 방이 비췄다.
식탁과 의자에 철저히 가로막힌 방.
그 방안에서는 계속해서 좀비의 하울링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방 앞에 무릎을 꿇고 비는 중년의 여인이 있었다.
“커, 커억!”
염력을 집중해 아줌마를 끌어당겼다.
정확히 식별이 가능할 정도의 거리 정도만.
제일 처음 느꼈던 것은 염력으로 끌어당기는 게 좀비보다 훨씬 난이도가 쉬웠다는 것이다.
지나칠 만큼 야위어진 얼굴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여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천신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천신님이 그 아들, 딸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천신님이…”
“……뭐?”
순간적으로 대답할 말을 잊었다.
지금 자신이 초능력으로 목이 졸리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천신님? 구원?
하나님, 부처님, 알라 님은 아는데… 천신님?
“…사이비?”
“성소에서 오셨나요?”
“…갑자기?”
대화의 방향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헛웃음과 함께 그녀를 조금 끌어당겼다.
확실히 좀비는 아니었다.
왼손에 감은 묵주와 오른손에 든 기도서가 보였다.
얼마나 반복해서 읽었는지 손때가 확연히 보였다.
그리고 눈.
삐쩍 마른 몰골과 대비되는 기이할 정도로 무언가로 충만한 눈.
왠지… 기분이 더러워졌다.
끼에에에엑!
쾅― 쾅―
이미 너덜너덜해진 문에서 좀비의 팔이 튀어나왔다.
어떻게든 나오려는 저 필사적인 몸짓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줌마는 내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그곳에서 왔다면?”
“드디어! 드디어 오셨군요! 아, 들어주셨어요! 제 기도가 천신님에게 닿았어요!”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말과 함께 아줌마가 기도서를 꼭 끌어안았다.
“같이… 같이 기도합시다. 제 딸이 범한 죄가 용서받을 수 있게.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게… 같이 기도해요.”
“…무슨 죄?”
“무슨 죄긴요! 불신의 죄지요. 언젠가 저렇게 될 줄 알았어요! 교주님의 말씀이 맞았어요! 불신이 가장 큰 죄였어요! 하지만 부모니까 어쩌겠어요… 제가 딸의 죄를 대신 용서받아야죠.”
미치겠군.
들었던 여자의 몸을 내팽개치고 딸이 갇혀있는 방을 주시했다.
문을 찢고 나온 팔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팔이 움찔거릴 때마다 앞을 겨우 막고 있던 책상과 의자가 덜컥거렸다.
사실상 부서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천신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천신님이 그 아들, 딸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천신님이…”
“끼에에에에에에엑!”
내팽개쳐진 그대로 여자가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그 기도에 마치 듣기 싫다는 듯이 좀비가 고함치기 시작했다.
촤악―
염력을 이용해 암막 커튼을 좌우로 펼쳤다.
이제야 밝은 햇빛이 들어서며 집 안 전체를 비췄다.
집안을 가득 채운 십자가들과 기괴한 옷을 입은 남자를 중심으로 방긋 웃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
기도서 구절이 적힌 캘라그라피와 액자들.
그 광경을 하나씩 눈에 담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밖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긴 알아?”
“그럼요. 그러니까 더더욱 기도해야죠.”
“지금 당신의 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그럼요. 그러니까 더더욱 기도해야죠.”
“저렇게 되어버리면 절대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
“그럼요. 그러니까 더더욱…”
“그럼요. 그러니까 더더욱 기도해야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대답을 따라 하며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콰직― 콰직―
기이한 열기에 고간에 피가 모이기 시작했다.
저 눈.
저 흔들림 없는 눈이 정말로 이상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지옥이 도래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이 지금 자신을 먹기 위해 육신을 불살라가며 문을 부수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초월적인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을 나라면 때려죽이고 싶을 텐데.
죽여도 또 죽여도 모자랄 텐데….
신을 저주해도 시원찮을 판에 저 여자는 그 신이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가지고 싶었다.
저런 늙어빠진 몸뚱어리에 색욕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저 광신에 미칠듯한 소유욕이 일었다.
“내가 딸을 고칠 수 있다면?”
“……네?”
처음으로 여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상점 창에서 백신을 검색했다.
[좀비 치료제 : 1000p]
[상점 무료 이용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정말인가요?”
“그럼. 당연하지.”
“아아, 은혜로우시군요! 아, 천신님! 감사합니다, 천신님!”
씨발 주는 건 난데 엄한 사람한테 고마워하네.
“그런데 조건이 있어.”
“…뭔가요?”
염력을 이용해 그녀의 기도서를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아줌마는 끄으윽―거리며 필사적으로 기도서를 쥐고 버티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딸이 저렇게 돼서 미쳐버린 걸까?
아니면 미쳤기에 딸이 저렇게 된 걸까?
아니다.
세상이 요지경이 된 게 이 아줌마의 탓도 아니고.
그저… 이 절망의 상황에서도 오지도 않을 누군가를 믿고 있는 이 광경이 너무나도 꼴렸다.
“날 믿어.”
“…네?”
“날 믿으라고. 오지도 않을 그 천신님인지 뭔지 말고. 그럼 딸을 살려줄게.”
이리저리 기도서를 흔들며 대답을 종용하니 그녀의 눈이 기도서에 맞춰 흔들렸다.
“얼마나 좋은 찬스야? 그냥 믿는다고만 해봐. 바로 살려줄 테니까. 아, 천신님 개새끼라고 해봐.”
“증, 증거를 보여주세요! 딸을 살릴 수 있다는 증거!”
“…뭐? 증거?”
푸하하하하하.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 넌 무슨 증거가 있길래.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증거가 없는 신을 찾으면서 날 믿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하다라.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그 증거야?”
계속해서 흔들던 기도서를 염력을 이용해 찢어버렸다.
쫘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광경을 목격한 여자의 눈이 더없이 커지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이 사탄이! 이 마귀 자식아! 당장! 당장 내 집에서 나가아아아아!”
우당당탕―
“끼에에에에에엑!”
그녀의 비명과 함께 방문을 드디어 부순 딸이 비명의 진원지를 날 듯이 덮쳤다.
딸에게 깔리는 와중에도 그녀의 입은 쉬지 않고 나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마귀가! 이 사탄의 자식이! 내 그럴 줄 알았지! 이 사탄이! 사탄! 사탄!”
“끼에에에에에에엑!”
“딸이 듣기 싫다잖아.”
살짝 염력을 이용해 딸이 엄마를 물지 못하게 고개를 고정한 후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봐 봐. 니 눈으로 똑똑히 봐. 저게 당신이 구원해야 할 딸이야.”
“이 사탄이! 마귀! 마귀! 지옥에나 떨어져라!”
“이 광경에 도대체 당신이 찾던 천신님은 어딨는데?”
“아아아아아아아아! 지옥에나 떨어져어어어어!”
“나는 구해줄 수 있다니까? 나는 살려줄 수 있다니까? 그럼 나를 믿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잖아! 이 멍청한 아줌마야!”
아무리 소리쳐도 그녀는 이미 귀를 닫고 사탄과 마귀를 읊조릴 뿐이었다.
하― 뭐가 문제였지?
이 멍청한 아줌마가 끝끝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씨발― 이 정도로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거래가 어디 있다고?
그렇게나 네가 찾던 천신님 곁으로 내가 보내주마.
딸에게 걸었던 염력을 풀 준비를 하며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기도서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적혀 있어?”
“마귀! 마귀! 마귀이이이이이!”
“그렇게나 대단하신 천신님이 왜 이런 세상을 만드셨데?”
“…너 같은 새끼들로 지옥이 가득 찼겠지.”
“씨발― 묘하게 맞는 말을 하네.”
까드득― 까득―
염력이 풀린 딸의 고개가 어머니의 육신에 박혔다.
빠드득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씹던 딸의 고개가 나에게로 향했다.
“끼에에에에에엑!”
자신의 어머니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바로 나에게 달려드는 그녀의 육신을 고정하고 얼굴을 체크했다.
“어… 잘 춰줘야 보통인데?”
이건… 치료제를 써도 포인트 낭비였다.
찌지직―
목이 찢어져 흐물거리며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관심을 거두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전신을 비틀며 서서히 일어나는 그녀.
꺼어― 꺼어억거리는 소리를 반복하더니 잠시 뒤에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끼에에에에에엑!”
며칠간 굶었다는 것이 거짓말이듯 무서운 속도로 내게 질주하는 그녀에게 손을 펴서 강하게 쥐기 시작했다.
염력에 묶인 그녀가 더 반항할수록 내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씨발, 손맛 보소. 이래서 아저씨들이 그렇게 낚시에 환장했었나?”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
“뭐야? 날 기억하는 거야? 다른 좀비들보다 반응이 핫한데?”
어떻게든 나를 먹기 위해 온몸을 비트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서야 내가 아까 받았던 기묘한 감정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이해했다.
…눈이 다르지가 않았다.
처음 목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좀비들의 눈에는 딱 하나만 보였다.
식욕.
눈앞에 있는 인간을 향한 미칠듯한 식욕.
그게 인간과 좀비를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하지만 이 여자는 인간일 때와 좀비일 때가 다르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좀비의 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머리에 폭죽이 터지는 듯한 쾌감이 퍼졌다.
점점 자지가 발기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저거다.
저 광신이― 나를 향한 일방적인 광신이 미치도록 고팠다.
찌지직―
딸과 똑같이 머리를 뜯어내며 두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자동으로 영상이 떠올랐다.
좀비에게 보호받는 지구에서 유일한 안락한 장소.
그곳에 머물기 위해 몸과 영혼을 바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군림하는 나.
커다란 나만의 낙원.
한계까지 발기한 자지가 손에 쥐지 않아도 느껴졌다.
[당신의 욕망에 시스템이 반응합니다!]
[시스템이 당신에게 직업을 제안합니다!]
[사이비 교주]
처음엔 어떻게든 정상이 되려고만 애썼다.
일단, 정상에 서면 내가 원하는 것은 따라오리라 생각했다.
세상이 망하면서까지 얻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작은 차이 하나에도 예민해진 내가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병신같은 짓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새끼가 더 잘 안다고, 한 번도 정상에 서본 적이 없는 새끼가 뭘 알았을까.
나는 짧은 시간이지만 목적지가 없이 달리는 폭주기관차였을 뿐이다.
목적지를 잃은 기차는 결국 어딘가에서 멈춰야만 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전신에 가득 차는 충만한 빛이 느껴졌다.
[그릇된 신앙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보금자리를 만들고.
사람들을 보호해주며 딱 하나만을 요구하자.
그 사람들의 전부를.
[당신의 직업은 사이비 교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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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조우 (1)
조우 (1) ― 한마음 아파트 501호
[2차 각성으로 시스템이 각성자의 욕망에 맞춰 리뉴얼됩니다!]
[앞으로 모든 포인트는 신앙으로 통합됩니다! 신앙은 당신을 믿는 사람의 수에 따라 수급량이 늘어납니다!]
[좀비 처치 시에 포인트 대신 신앙을 획득합니다!]
[모든 스탯과 스킬이 전용 스킬에 전승됩니다!]
[(힘, 민첩, 지능, 마력, 염력) -> 모방 성체 Lv.4]
[최초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각성자 최초 2차 각성 발현’]
[‘각성자 최초 히든 직업 발아’]
[신앙 수급량이 크게 증가합니다!]
[(1/H) -> (25/H) -> (50/H)]
* * *
[성명 : 한구원]
[성별∘나이 : 남∘27세]
[직업 : 사이비 교주]
[신앙 : 200 (50/H)]
[전용 스킬]
[모방 성체 Lv.4]
[누군가의 광신을 양분 삼아 육신이 신을 모방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전체적인 능력치와 염력이 상승합니다.]
(모방 성체 Lv.4 -> Lv.5 신앙 요구치 : 500)
[결핍 파악 Lv.1]
[당신은 누군가의 결핍 속에 드리우는 그림자입니다. 그들의 빈 곳을 파악해 결국 당신만의 공간으로 만드십시오. 레벨이 오를수록 상대방의 결핍에 관해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결핍 파악 Lv.1 -> Lv.2 신앙 요구치 : 200)
[성역 선포]
[교주에게는 추종하는 자들의 영토가 필요합니다. 종교를 창시하고 성역을 선포하십시오. (주의) 이 스킬은 한 번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 *
“…오.”
상태창이 달라졌다.
그것도 한순간에 너무 많이.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정독하며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했다.
‘2차 각성과 히든 직업이라… 뭐, RPG 게임의 전사, 마법사같이 전직을 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고.’
좀비를 죽여서 얻는 포인트로 스탯과 스킬에 분배하던 전과 달리 이제는 일정 시간, 여기서는 한 시간마다 생산되는 신앙으로 스탯이 아닌 전용 스킬을 강화하면 되는 형식인 것 같았다.
“혹시 상점 창도 바뀌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아직 무료 이용권 한 장 안 쓴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지불해야할 포인트가 신앙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개꿀인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단어.
‘불로소득(不勞所得)’
이제 나는 한 시간마다 아무 짓도 안 해도 좀비 10마리를 잡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자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더 개꿀인 점은 좀비 처치에 관한 보상도 따로 얻는다는 점이었다.
다른 새끼들이 아무리 좆빠지게 사냥을 해도 나는 ‘투배럭’을 돌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씨발 이래서 다클라, 다계정 하던 거구나.”
작업장이 게임 경제를 무너뜨린다며 울부짖던 RPG 유저들이 갑자기 생각났다.
당연하게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혜택을 보는 것이 나라면 말이 달라지지.
이 세계에서 이제 공평한 것은 물리면 좀비가 된다는 명제 하나뿐이었다.
물론 그 명제도 상점에서 좀비 치료제를 살 수 있는 내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다.
찰팍―
까딱거리던 오른발에 끈적한 무언가가 밟혔다.
이미 모녀의 썩은 피로 거실이 흥건한 것이 보였다.
“씨발, 피비린내.”
철 씹는 듯한 쇠 맛이 입을 텁텁하게 만들었다.
서둘러 집을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궁금해졌다.
‘저 죽은 좀비들에게도 정신계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까?’
먼저 딸 좀비에게 ‘결핍 파악’을 시전하니 작은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엄마의 관심.]
어머니의 관심이 결핍되어 있었다라.
그럼 어머니 좀비 쪽은?
[딸 정미희.]
딸이 결핍되었다라.
좀비가 된 이후부터 저렇게 된 건가?
아주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가정이었다.
어머니의 관심을 갈구하던 딸과 그런 딸이 좀비가 돼서야 원했던 엄마.
그 둘이 나란히 좀비가 되어 나에게 목이 따였다.
내가 만든 배드 엔딩을 바라보니, 내가 너무나도 미숙했던 것이 아주 잘 드러났다.
‘무작정 나를 믿으라고 소리친다고 진짜 믿는 새끼가 세상천지에 어딨겠냐고.’
거기다 교주라는 직업을 얻으며 처음 준 ‘스타터 스킬’이 ‘결핍 파악’이라는데서 부랄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의 결핍을 파악하고, 그 결핍을 충족시켜 준다.
포교란 결국 상대방이 거절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시작은 좋았어. 딸을 살려주겠다는 말까지는 좋았다고. 그런데 거기서 급발진을 때린 게 문제였던 거야.’
다시 생각해도 세련되지 못했다.
교주로서, 내가 세울 지엄한 종교의 교주로서 아주 실격인 모양새였다.
“반성, 씨발 또 반성하자.”
공자님 말씀에 사람 세명만 모여도 배울 점이 있다고 하시더니 씨발 좀비에게도 배울 점이 있구나.
서둘러 문을 닫고는 남은 집들을 마저 파밍 하기 시작했다.
층을 내려갈수록 내가 죽였던 좀비 새끼들의 피로 범벅인 계단이 보였다.
웨에에엥―
좀비 시체엔 언제 왔는지 파리들이 득실거리며 난리였다.
씨발, 조금 있으면 구더기 때문에 난리겠구나.
좀비 시체에 꾸덕거리며 헤엄칠 구더기들을 생각하니 먹은 것도 없는데 토악질이 나왔다.
이제 이곳은 오래 머무를 공간이 못 됐다.
하나씩 밖으로 던질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난 여기에 길게 있을 생각이 없었다.
터벅터벅.
내 집으로 돌아오며 집 앞에 죽어있는 아저씨 좀비만 염력을 이용해 밖으로 내던졌다.
퍽―
계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굳이 확인하진 않고 열려있는 현관문을 닫으며 집안에 들어섰다.
침대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들었다.
여전히 켜지지 않는 전원.
충전이 필요했다.
충전기는 사용할 수 없었다.
다른 집을 털 때 이미 확인했던 사실이지만 수도와 전기가 모두 끊겨 있었다.
아마 보조배터리만 있으면 충전할 수 있겠지만 내가 털었던 집에 보조배터리는 없었다.
하긴, 손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벌벌 떠는 시대에 나라도 보조배터리는 라면보다 먼저 챙겼을 것이다.
‘분명히 상점 창에 보조 배터리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보조 배터리(10시간 충전 가능) : 100 신앙]
가격만 봐도 손이 벌벌 떨렸지만 살 수밖에 없었다.
인벤토리에서 보조 배터리를 꺼내 스마트폰에 연결했다.
“정보 파악. 정보 파악이 먼저다.”
세상이 절단나는 와중에도 유튜브 라이브방송을 킨 ‘빡철’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인터넷은 시끌벅적했을 거라는 걸.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폭주했겠지.
강제로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품었을 것이다.
정보의 갈구는 이 상황에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었다.
켜진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 오픈 채팅을 들어갔다.
[같이 서울로 가실 분들 구합니다(무기 보유자 환영!)]
[부산 생존자들 와라(구조 구걸 강퇴)]
[인천 생존자 톡방]
[울산 여고생 구해주실분? (18살, 처녀에요)]
[정부 비판방(알바 바로 강퇴합니다)]
[대전 지하철에 갇혔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같이 병원 테러 가실분 모여라 여기.]
울산 여고생에 손가락이 계속해서 갔지만, 가까스로 인천 생존자 톡방을 터치했다.
울산은 인천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곳이다.
이미 톡은 한참 전에 끊겨서 갱신되지 못하고 있었다.
더는 톡이 올라오지 않는 인천 생존자 톡방.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최근의 톡을 확인했다.
[섹스하자(인천,34,남) : 남아 있는 사람 중에 나랑 섹스할 사람 없음? 시원하게 마지막으로.]
이런 개 씨발 섹스충새끼.
영양가 없는 대화를 무시하며 전에 있던 대화들을 훑기 시작했다.
[세상씨발 : 저희는 아레나파크죠? 대피소가…]
[좆됐다말그대로좆됐다 : ㅇㅇ, 축구경기장으로 가면 된다던데요. 군인들이 돌아다니면서 확성기로 나오라할 때 1분안에 안 나오면 그냥 출발한대요.]
[섹스하자(인천,34,남) : 씨발 이렇게 된 거 그냥 나랑 마지막으로 섹스할 존나 쌕끈한 여자 없음?]
개새끼가 여기서부터 지랄이었네.
[세상씨발 : 방장! 방장님!]
[좆됐다말그대로좆됐다 : 방장님 어제부터 안 보이시던데요. 저 새끼 강퇴 못해요.]
[세상씨발 : 이거 참 큰일이네요. 그런데 지금 톡방에 저희 3명뿐인가요?]
[육변기구함(총있음) : 아니, 나도 있는데]
[섹스하자(인천,34,남) : 오, 씨발 아이디보소 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진짜 총있음?]
[육변기구함(총있음) : ㅇㅇ 경찰 좀비한테서 파밍함. 개쩜? ㅋㅋㅋㅋ]
[섹스하자(인천,34,남) : 미쳤네 ㅋㅋㅋ 아니 지금 밖에 나가지 말라고 지랄하는데 그걸 나갔다고? 군인들이 보이면 다 쏜다던데 밖에 안 위험함?]
[육변기구함(총있음) : 님 여자임?]
[섹스하자(인천,34,남) : 아이디를 봐라 씨발아, 여자겠냐?]
[육변기구함(총있음) : 육변기 아니면 알 갈켜줌]
이후로 육변기와 섹스충새끼의 키보드배틀이 이어졌다.
대충 빠르게 내리니 이상한 사진이 눈에 띄였다.
반투명한 막이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세상씨발 : (사진)]
[세상씨발 : 위에서 찍은 서울 전경이래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ㄷㄷㄷ]
[육변기구함(총있음) : 우리 엄마도 서울에 있는데 연락 안됨. 님들도 슬슬 좆됐다는 걸 알아야함.]
[좆됐다말그대로좆됐다 : 저희 아이디를 보시고 말하세요 ㅡㅡ]
[섹스하자(인천,34,남) : 오 진짜 개 좆됐다. 그지? 그런 의미에서…]
아, 씨발 진짜.
계속해서 대화를 내리기 시작하자 이제야 도움이 되는 정보가 눈에 띄였다.
[육변기구함(총있음) : 원래 이런 좀비 사태에서는 대피소로 가는 게 병신새끼임. ㅇㄱㄹㅇ 가면 무조건 첫빠따로 좀비됨]
[세상씨발 : 영화랑 실제랑 같나요. 군인들이 돌아다니면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니까 대피소에 있는 게 더 안전할 수도 있어요.]
[육변기구함(총있음) : 응, 아니야. 감염자가 감염 된 거 숨겼다가 멸망 각이야~]
[세상씨발 : 그런데 님 왜 계속 반말하세요? 몇 살이신데요?]
[육변기구함(총있음) : 꼬우면 너도 반말하던가 ㅋㅋㅋ 디씨에서는 반말이 디폴트임 ㅋㅋㅋ]
[세상씨발 : 여기 디씨 아니고 오픈채팅인데요?]
아, 이 새끼들은 왜 이렇게 싸워대는 거야?
씨발 진짜 방장이란 새끼는 어디로 간 거지?
[좆됐다말그대로좆됐다 : 육변기? 아 뭐라 불러야 돼지. 진짜 한남 같네. 저 사람이 말한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신 것 같더라구요. 제 동생은 인천 중앙 도서관에 있는데 아직 안전하다고 대피소로 안 간대요. 저도 거기로 오라는 걸 제가 일단 집에 있겠다고 했거든요.]
[섹스하자(인천,34,남) : 한남? 님 여자임? 그럼…]
[좆됐다말그대로좆됐다 : 아, 제발…]
찾았다.
제일 원하던 내용을 찾은 두 눈이 빛났다.
[인천 중앙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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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조우 (2)
조우 (2) - 한마음 아파트 1003호
보조배터리의 몸통 부분에 작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문장이 상당히 길었지만 내 딴에 요약하자면―
스마트폰에 국한되지 않고 커피포트에도 TV에도 충전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괜히 상점에서 100 신앙이나 했던 게 아니란 거지.’
좀비 치료제와 비교하면 다호환 보조배터리는 뭐… 오버테크놀로지 축에도 끼지 못했다.
보조배터리를 스마트폰에서 커피포트로 옮겼다.
충전기 단말 쪽이 부드럽게 커피포트에 연결되며 전원이 켜졌다.
뜨거운 물을 끓이며 네이버 지도 앱을 켰다.
인천 중앙 도서관.
바로 위로는 교육청과 광역시청.
조금만 더 밑으로 이동하면 홈플러스와 롯데마트가 존재하는 중심지 중의 중심지.
유동인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의미는―
“좀비 웨이브에 휩쓸린다면 제일 먼저 휩쓸려야 했던 사람들이란 말인데….”
어떻게 살아남았지?
얼마나 잘 살아남고 있으면 오히려 자신들에게로 오라고 말했을까.
컵라면에 뜨거운 물과 스프를 넣으며 오픈 채팅을 다시 올려 봤다.
국가가 정한 대피소는 ‘인천 축구 전용 경기장’.
도서관이 있는 곳과 정확히 정반대의 위치.
분명히 군대가 이곳을 대피소로 지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니, 병신이 아닌 이상 좀비들이 바글거리는 중심지에 대피소를 짓진 않겠지.
거기다가 축구장보다 방어와 시민 수용에 용이한 장소로 별로 없을 테고.
“흠…….”
중요한 것은 하나였다.
‘중앙 도서관.’
가서 확인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
활발하던 오픈 채팅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뚝 끊겨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라울 것 없는 세상에서 내가 도서관에 도착할 동안 놈들의 안락한 ‘캠프’가 어떻게 무너졌다 해도 전혀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일단 한마음 아파트에서의 거리는 축구장보다 도서관이 훨씬 가까웠다.
내일부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기 전까지 부지런히 움직일 작정이니 도서관을 먼저 확인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좋아. 가보자.”
다 먹은 컵라면을 대충 치운 뒤에 침대에서 익숙한 자세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웹소설 플랫폼에 접속했다.
새로 갱신된 소설은 하나도 없었다.
공지로 휴재 소식을 전하는 글만 간간히 존재했다.
“씨발,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어야지, 작가들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스토리라도 다 말해주고 휴재하던가.
이제 선호작들의 다음 편을 보게 되는 일은 아마 요원할 것이다.
플랫폼을 종료한 뒤 유튜브에 접속했다.
그리고 느꼈던 것은 ‘빡철’ 이 새끼는 선구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미 좀비 아포칼립스 속에서의 유튜브는 언제나 그랬듯이 레드오션이었다.
좀비에 관한 영상들이 실시간 순위에 가득했다.
구해달라며 스케치북에 자신의 주소를 적은 영상들부터.
어, 이거는 최근에 본 영화에서 있던 장면 같은데.
빡철이 뒤지면서까지 남긴 변종 영상은 지금도 상위권에 남아 있었다.
편집된 영상은 보이지 않았다.
알고리즘에 뜬 영상은 대체로 비슷했다.
조용하거나 시끄럽거나.
조용한 영상들은 대부분 속삭이는 목소리로 자신이 죽을뻔한 경험을 말했다.
세기말의 감성이 더해져 고해성사를 내뱉는 영상들도 넘쳤다.
씨발 바람 펴서 미안하다는 걸 아내한테 말할 것이지, 왜 유튜브로 말하고 있어?
그리고 극도로 시끄러운 영상들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었다.
‘사이버 영정 동영상’
검열되지 못한 누군가의 죽음들이 영상에 박제되어 있었다.
졸림에 반개한 눈으로 댓글 창을 둘러봤다.
누군가는 신을 저주했고.
누군가는 정부를 규탄했다.
살려달라는 애원과 갈 곳을 잃은 분노가 눈이 보일 만큼 넘실댔다.
‘끼에에에에엑!’
‘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제는 익숙해진 비명이 ASMR처럼 반복해서 들려왔다.
슬슬 눈이 감겼다. 힘 빠진 손이 베개 옆에 놓인다.
검은 화면에서 자동으로 다음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제발 아무나 저희를 구하러 와주세요. 반드시 사례하겠습니다. 어린 아들이 삼일 동안 굶었습니다. 밖은 좀비로 가득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으아아아앙― 아빠, 배고파아.]
[쉿! 쉿! 후성아, 조용히 해야지. 아빠가 조금 있다가 후성이 좋아하는 왕 꿈틀이 젤리 사줄게.]
[흐끅… 정말?]
[…그럼! 딱 하루만 더 참자. 알겠지? …이 동영상을 봐주시는 여러분, 저희 가족이 건물에 갇혔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지금 저희가 있는 곳의 주소는 부산 용호 1동―]
끼에에에에엑!
쾅― 쾅―
[으아아아아앙― 아빠! 괴물 왔어! 괴물 왔어!]
[쉿! 쉿! 후성아! 쉬이이이잇!]
끼에에에에엑!
퍼걱―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아아아아악! 아빠! 아빠아!]
[안 돼! 안 돼! 이 씨발새끼들아! 후성아! 후성아아아아! 아아아아악!]
누군가의 말이 기억난다.
행복한 가정은 그 모습이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던가.
이제 불행한 가정은.
모두 같은 이유로 불행하다.
* * *
“아으― 몇 시야?”
밝은 햇살에 눈을 비비며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50분.
내가 깨어난 지 이틀째이며, 세상이 망한 지는 일주일하고 하루가 지났다.
눈을 뜨자마자 바로 일어나 떠날 준비를 시작하는 나 자신을 보며, 난 내가 각성자가 된 것을 실감했다.
매일 아침, 천근만치 무거웠던 전신이 깃털이라도 된 듯이 가벼웠다.
인벤토리에 넣어둔 식칼들과 음식들을 다시 체크 한 뒤에 가벼운 운동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아, 신앙은 얼마만큼 올랐으려나?
[신앙 : 950(50/H)]
“오우, 쉣!”
잠든 시간 동안 묵묵히 오른 신앙에 뭘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불러왔다.
자, 이걸 이제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일단 전용 스킬에 전부 투자하자.
[모방 성체 Lv.4 -> Lv.5]
[결핍 파악 Lv.1 -> Lv.2]
[700 신앙이 소모됩니다.]
[그릇된 신앙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몸에서 밝은 빛이 터지며 염력과 신체 능력이 상승한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뭐, 결핍 파악은 이제 만날 사람들한테 써보면 되겠고.
자, 필요한 것은 모두 인벤토리에 넣었고.
이젠 집을 떠날 시간이었다.
집을 나서며 일부러 문을 닫지 않았다.
아마 다시 올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계단 복도로 갈수록 웽웽거리는 소리가 심해졌다.
가까이 가보니 어제보다 더 많은 수의 파리가 시체들 곁에 붙어 있었다.
이거 자세히 보면 구더기라도 보이는 거 아니야?
아, 벌레가 제일 극혐인데.
“씨발! 에프킬라도 챙겨야 했는데!”
투덜거리며 먼지 뭉치처럼 검게 뭉쳐있는 파리떼들을 염력으로 밀어버렸다.
혹시라도 손에 파리 새끼가 닿을까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옥상으로 향했다.
끼이이익―
옥상 문이 삐걱거리며 열림과 동시에 따뜻한 바람이 나를 반겼다.
원래라면 이제 추위가 끝나고 슬슬 따뜻해질 시기였다. 만물이 추위에서 몸을 털고 일어나는 3월은 이제 없다.
옥상 끝으로 이동하며 어제는 보지 못했던 광경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고층이라곤 할 수 없는 15층의 전경에서 본 인천.
어제의 고요가 거짓말이었다는 듯, 연속된 총성이 공기를 찢었다.
귀가 얼얼할 만큼 우렁찬 포성이 울리고 희미하게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내가 바라보는 정면에서 왼쪽.
‘인천 축구 전용 경기장’ 쪽이다.
대피소에 무슨 일이 났구나.
뭐, 나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좀비들의 어그로가 저쪽에 집중된다면 나에게는 매우 땡큐한 상황이었다.
대피소 쪽은 관심을 거두고 내가 가야 할 목표인 오른쪽을 쭉 둘러보았다.
원래라면 서울의 끄트머리라도 흐릿하게 보여야 할 테지만 넓은 막이 서울과 인천을 구별하고 있었다.
“씨발, 뭔 좀비에 저건 또 뭐야? 외계인이냐? …씨발 진짜 좀비 아포칼립스도 오고 국회 의사당에 게이트도 열린 거 아냐?”
저 막은 진짜 뭘까?
그야말로 미스터리 그 자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서울이 아니었다.
인천 중앙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작게 심호흡을 한 뒤에 마지막으로 컨디션을 전체적으로 살폈다.
‘모방 성체’가 Lv.5가 된 탓인지 마나와 염력이 한층 더 풍부하게 느껴졌다.
염력.
물리적 의미에서 거의 만능에 가까운 이 능력은 교주와 매우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자고로 교주라 하면 축지법이나 공중부양은 마스터하고 간판을 내걸어야지.”
공중부양쯤은 가볍게 해야 나 ‘어디 어디 교주요.’ 큰소리치지 않겠는가?
염력이 내 몸 전체를 서서히 덮는 이미지를 연상했다.
그리고 서서히 내 몸을 띄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가볍게 전신이 공중을 부양했다.
“억― 씨발―”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몇 번 중심을 잃을 뻔했지만, 그것 또한 빠른 속도로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리저리 공중에서 움직여 보며 소모되는 마나를 가늠해보았다.
“흠… 1시간?”
대략 1시간 정도는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시간이면 일본에 가서 떡을 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좋아.
이제 진짜 가보자.
고도를 조금씩 높일수록 점이 되어가는 한마음 아파트가 보였다.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는 병신 같던 내 집.
“다신 보지 말자. 쓰레기 아파트.”
바람을 가르며 ‘중앙 도서관’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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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조우 (3)
조우 (3) ― 인천 상공
쐐애애액―
지상과는 전혀 다른 거센 바람이 내 얼굴을 계속해서 때렸다.
옥상에서 보던 것보다 더 넓은 범위까지 내 시야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건물 옥상 곳곳에 보이는 SOS 신호들과 불타는 건물이 뱉어내고 있는 매캐한 연기.
멀리서 봐도 좀비가 득실거리는 병원과 간간히 들리는 폭음과 총성.
조금 더 고도를 높이자 점처럼 보이는 인천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에 확 띄는 점들이 꿈틀거리며 한곳으로 몰리고 있었다.
‘좀비 웨이브’
내가 상대했던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물결이었다.
큰 점들의 이동 경로를 대략적으로 예상하니, 아니 예상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대피소로 가네.”
인천에 있는 모든 좀비가 축구경기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 순간, 순수한 궁금증이 일었다.
어떻게 저렇게 체계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것이지?
뭐, 탱크를 박살 내는 변종을 봤을 때부터 상식이란 것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저 무리의 움직임은 확실히 자연스럽지 않았다.
군대가 방어하는 와중에 발생하는 소음 때문인가?
턱을 쓰다듬으며 웨이브를 관찰하는 와중에 좀비 웨이브 중 하나의 웨이브만 꽉 막힌 듯이 제자리에서 멈춰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을 향해 고도를 낮추니 무슨 상황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끼에에에에엑!”
좀비 웨이브와 그것을 막으려는 군대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크레모아! 지금 당장 크레모아 터트려어!”
콰앙―
땅이 울리며 크레모아에서 터진 파편이 선두에 있던 좀비들을 말 그대로 갈아버렸다.
문제는 그 뒤에 더 많은 좀비가 달려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타다다다다―
“총알 아끼지 마! 그냥 다 쏴버려!”
지휘관의 악에 받친 고함과 함께 맹렬히 달려들던 좀비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크롸아아아아아아―
뒤에서부터 같은 좀비까지 찍어누르며 근육 덩어리 변종이 달려오고 있었다.
변종이 팔을 휘두르자 군대가 바리케이드로 활용하던 버려진 차가 순식간에 그들을 덮쳤다.
“끄아아아악! 병장님! 다, 다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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