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ipse 6
다.
은근한 미소와 함께 팔을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내 품 안을 파고들었다.
“헤헤헤― 오빠아아, 저 잘했죠오?”
“그럼, 그럼. 우리 아영이 없이는 정말 하루도 못 산다니깐?”
“헤헤헤헤―”
하얀 신도복 위로 툭 튀어나온 젖꼭지를 가볍게 꼬집으며 그녀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흐으응― 하앗―”
달콤한 신음과 함께 윤아영이 더 내게 밀착하며 몸을 비볐다.
그 부드러운 육체를 맛있게 맛보는 와중에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중요한 이야기 좀 해도 돼?”
“아! 당연하지. 내가 우리 부교주님 말씀을 안 들으면 누구 말을 듣겠어? 안 그래, 아영아?”
“헤헤헤― 맞아요. 오빠 말이 다 맞아요.”
내 눈길을 읽은 성가을이 다시 특유의 당당한 표정을 회복하며 말소리를 높혔다.
“확실히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종교라는 토대는 세운 것 같아. 뼈대는 만들었다는 말이지.”
그녀가 계획서 중 하나를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게 많아. 구원교의 교리서나 법도, 구원교를 확실히 나타내는 표식이 없는것도 문제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야.”
확실히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은 인구로는 종교라고 명함을 내밀기도 창피한 일이었다.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유입 루트가 필요한데 구원교에는 그런 루트가 전무하다는 게 문제야.”
그녀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성역을 둘러싼 주황색 보호막과 그 아래 개미처럼 깔린 좀비들.
“앞으로도 신도들을 일일이 네가 데리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흐음, 맞는 말이야. 그걸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겠지.”
윤아영을 쓰다듬던 손으로 천천히 턱을 매만졌다.
신도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루트라.
일단 내 신앙 생산량을 체크했다.
[보유 신앙 : 3660 (610/H)]
300 가량에서 두 배는 늘어난 신양 생산량.
늘어난 신도와 점점 더 확고해지는 그들의 믿음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 동안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한다고 느낄 시간이 없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하루에 15,000에 가까운 신앙을 생산할 수 있었다.
“슬슬 필요한 것들은 전부 샀으니까 이제 교주 석상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5,000 신앙 포인트로 천상의 보호막이라는 사기 스킬을 시전한 구원교의 자랑스러운 첫 번째 성물.
이제 하루만 얌전하게 버틴다면 3레벨 능력을 해금할 수 있었다.
“일단, 교주 석상의 레벨부터 올려보자. 신도 수급에 관한 능력이 안 나온다면 백화점처럼 내가 발로 뛰어다녀야지, 뭐.”
“그래, 어쩔 수 없…”
“교, 교주님!”
성가을의 말을 끊고 간부실 밖에서 서태산이 나를 불렀다.
다급함이 물씬 풍기는 음성에 간부실 문을 여니 몸을 바짝 엎드린 서태산이 떨리는 음색으로 말했다.
“성역 바깥에 누군가가 온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요?”
“제가 보는 창 밖으로 어떤 무리들이 건물을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서태산이 엎드려있는 문 뒤에 창문을 바라봤다.
그 창 너머로 보이는 고층 건물에 유심히 시선을 집중했다.
‘건물 안에 들어간 건가? 내 눈엔 안 보이는데.’
일단, 좀 더 높은 곳에서 살펴봐야겠다.
“음, 모두 절 따라오세요. 옥상으로 가봐야 겠습니다.”
“네, 교주님!”
나는 간부들을 이끌고 옥상에서 그 고층 건물을 관찰했다.
맑은 눈을 빛내며 건물을 살피던 성가을이 내게 속삭였다.
“뭐라도 보여?”
“아직은 안 보이는데.”
“혹시라도 서태산의 말이 진짜라면 두 번째 포교 활동인 셈이네.”
“글쎄, 아직 정확… 오!”
짧은 감탄과 함께 건물 옥상에 도착한 놈들의 면상이 보였다.
성역의 보호막을 보며 지들끼리 무언가를 속닥거리던 놈들 중 한 놈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먼 거리였지만 서로를 인식하자마자 그가 다른 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탕― 탕―
“끼에에에에엑!”
공기를 찢는 발포음에 성역을 배회하던 좀비들이 일제히 고층 건물로 고개를 돌렸다.
“초, 총이잖아!”
“그럼, 좀비에게 물총을 쏠 수는 없잖아.”
“이, 이런 상황인데도 너는 농담이 나와?!”
발끈하는 성가을에게 어깨를 으쓱이는 와중에 그쪽에서 무언가를 꺼내 높이 들었다.
[우리는 정부가 보낸 구조대다!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누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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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 불신자들의 낮 (2)
불신자들의 낮 (2) ― 한마음 구원교 옥상
“자기들이 정부가 보낸 구조대라는군. 책임자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데?”
“뭐어어? 말도 안 돼. 대피소까지 무너진 마당에 무슨….”
당당하게 치켜 든 스케치북에 쓰인 조잡한 글씨체.
누가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았다.
“함정이야. 일단 포교든 뭐든 무시하는 게 좋겠어.”
“우리 부교주는 담이 참 작군요.”
이제는 완벽하게 숙달된 자세로 허공을 부유했다.
“서태산 신도는 신도분들이 동요하지 않게 분위기를 잘 추스르고 있으세요.”
“말씀 받들겠습니다! 교주님!”
90도로 몸을 숙여 인사한 서태산이 옥상을 빠져나갔다.
“금방 갔다 올테니까,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지.”
탕―! 탕―!
나를 재촉하는 듯한 2연발의 총성에 그녀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놈들이 있는 곳으로 날았다.
“끼에에에에엑!”
소음의 근원지로 달리기 시작한 좀비들을 가볍게 제치고 놈들이 있는 건물 옥상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탁―
“아, 바, 반갑습니다! 비행 스킬까지 가지고 계셨군요!”
땅에 내려서자마자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의 놈들이 환한 웃음과 함께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네, 반갑습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누며 놈들을 탐색했다.
손을 흔드는 동안에 놈들도 나를 탐색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 9명, 총으로 무장.’
내 주위를 둘러싼 놈들이 어깨에 검은 묵빛의 소총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K2. 그런데 군복은 왜 안 입고 있는 거지?’
군대의 소총과 정부의 구조대라는 말과 달리 그들의 옷차림은 상당히 자유분방했다.
어떤 놈은 남색 체크 남방, 그 옆에 놈은 회색 운동복.
나와 악수를 나눴던 놈은 검은색 트레이닝 복을 위아래로 맞춰 입고 있었다.
“하하하, 장하십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잘 버텨주셨습니다! 이제 안심하세요!”
“정부에서 오셨다구요?”
“그렇습니다. 민간인이 총을 들고 다니는 걸 보셨습니까?”
놈이 아주 당당하게 웃으며 총을 툭툭 두드렸다.
글쎄다, 이런 순간에도 총기 소유에 민간인과 군인을 따지는 놈이 더 이상한 것 같은데.
“이렇게나 멀리 떨어졌는데도 저 방어막 스킬은 아주 굳건하네요. 스킬 레벨이 많이 높으신가봅니다.”
대놓고 이어지는 호구조사에 가볍게 웃어주었다.
조금만 더 장단에 어울려 줄 생각이었다.
“그렇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레벨에 운이 어디있겠습니까, 전부 각성자님의 실력이지요. 복장을 보니, 혹시 목사님이셨습니까?”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아, 역시 그러셨군요. 아멘―”
“아멘―”
끼에에에에에엑!
어느새 우리들이 있는 건물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좀비들의 하울링이 울렸다.
유일하게 총으로 무장하지 않은 형광색 운동복이 나와 대화하고 있던 검정 트레이닝복에게 눈짓했다.
고개를 끄덕인 놈이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새로 내려온 지침과 구조해야 하는 인원에 관해서 조금 길게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은데 잠시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좀비들이 저렇게나 몰려오는데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저희가 한 두 번 해본 줄 아십니까. 저희는 구조의 프로입니다. 프로.”
자기 할 말만 마치고 놈이 옥상 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놈을 따라 움직이는 일행과 내 뒤에 있던 남은 놈들이 소총을 매만지며 은근히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재밌네.’
놈들의 의도에 맞춰서 천천히 건물 안에 들어섰다.
옥상 한 층 아래에 있던 오피스텔의 문이 잔뜩 찌그러진 체로 열려있었다.
손을 가볍게 털고 있는 형광색 운동복이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놈의 건방진 눈동자를 [결핍 파악]이 꿰뚫었다.
[100% : 어제 따먹은 그년과 눈 앞에 있는 병신]
결핍 파악을 얻은 이후로 이 만큼 음욕과 살기로 번들거리는 결핍은 본 적이 없었다.
끼기기긱―
천천히 오피스텔 안에 진입하자 철이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억지로 닫혔다.
“자!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지요.”
짝다리를 짚은 채 문 앞을 지키는 형광색 운동복과 함께 검은 트레이닝 복이 소파로 나를 안내했다.
얌전히 소파에 앉아주자 검은 트레이닝 복이 묘하게 웃으며 손을 비볐다.
와장창―
검은 트레이닝 복과 형광색 운동복을 제외한 놈들이 오피스텔을 부수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문을 발로 차며 필요 없어보이는 물품은 땅바닥에 그대로 던지는데 한 두 번해서는 나오지 않는 바이브로 가득차 있었다.
“예수쟁이 새끼가 이렇게나 세상 물정을 몰라요.”
호탕하고 자신감 넘치던 목소리는 어디갔는지 검은 트레이닝 복이 음습한 목소리로 K2의 개머리판을 바닥에 쿵쿵 찍었다.
“봐 봐, 아직도 신같은 걸 믿는 호구 새끼니까 구해준다니깐 개처럼 혓바닥 내밀고 달려오잖아. 에라이 씨발, 스킬이 아깝다, 새끼야!”
키키키키킥―
본색을 드러낸 놈과 함께 오피스텔 안이 노골적인 비웃음으로 가득 찼다.
대충 수색이 끝났는지 나를 둥글게 둘러싸는 놈들과 함께 검정 트레이닝 복이 침을 바닥에 찍하고 뱉었다.
“확실히 프로들이긴 하신가 봅니다. 이런 짓을 한 두 번 해본 게 아니시군요.”
“새끼가 침착한 척하고 있네, 똥구멍은 벌렁벌렁거릴거면서.”
“일단, 아주 중요한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실실대는 놈들에게 손가락 하나를 폈다.
“첫째로, 저는 예수쟁이가 아닙니다. 한마음 구원교의 교주이지요.”
“이야, 교주님이시란다! 새끼들아! 박수!”
푸하하하―
한껏 웃는 놈들에게 자애로운 미소로 답했다.
“이런 개 사이비새끼… 와… 형님, 이 새끼 웃는데요?”
검정 트레이닝복의 말에 문 앞을 지키던 형광색 운동복이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놔둬, 뒤지기 전에 좋은 꿈이라도 꾸나보지. 어이 형씨! 편하게 뒤지고 싶으면 일단 가지고 있는 포인트나 불러 봐.”
“아, 왜 저를 바로 안 죽이는지 궁금했는데, 그런 큰 뜻이 있었군요!”
각성자를 처치하면 인벤토리는 인계되지만 원래 각성자가 들고 있었던 포인트는 허공에 날라가게 된다.
놈들은 지금 내 포인트를 자기들이 필요한 것들로 바꿔 먹은 후에 나를 죽일 생각인거다.
“옳지! 편하네, 한번 말해도 알아듣고. 우리 사이비 교주 친구는 그런 대가리가 있었으면 보호막에서 나오지 않는 게 어땠을까요?”
푸하하하―
음, 이쯤 되면 슬슬 더 나올 것도 없겠는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놈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야! 교주님이 일어나셨다! 교주님이 자리에서 벌떡! 벌떡! 아주 지랄 벌떡!”
아, 씨발!
이러니까 개그 콘서트가 망했지!
“푸하하하하하하하하!”
놈들의 웃음이 잦아들고 내 웃음 소리가 오피스텔을 가득 매웠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와 함께 놈들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점점 굳어가는 표정과 함께 놈들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야! 형광색!”
“…엉? 나?”
“그래, 이 새끼야! 너는 얼마나 있는데?”
“뭐가?”
“뭐기는, 포인트 말이야.”
놈의 건들거리던 다리가 천천히 멈췄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응시하는 놈의 입이 꽉 다물어졌다.
“이 새끼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건가? 어이! 이런 밀폐된 공간에서는 비행 능력도 아무 짝에 쓸모없는 거 몰라?”
형광색의 표정이 진지해지자 눈치를 보던 검정 트레이닝복이 나에게 일갈했다.
오, 비행 능력을 제한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자 한거구나!
와, 똑똑하다! 너무 똑똑해!
“왜 내가 비행 능력 밖에 없다고 확신하는데?”
“그걸 말이라고 처하냐? 그런 보조 스킬에 포인트를 쏟아부었으니까 당연히 전투 스킬이 없겠지, 저기 계신 저 각성자 형님은 너 따위는…”
“아아, 괜찮아, 괜찮아. 그냥 처맞으면 알아서 질질 짜면서 빌게 되있어.”
검정 트레이닝복을 만류한 형광색이 천천히 내게로 걸어왔다.
[누군가가 당신을 ‘사냥감’으로 지정했습니다!]
[‘사냥감’을 사냥하는 동안 ‘사냥꾼’의 모든 능력치가 2배 상승합니다.]
처음 보는 시스템 메시지를 줄줄 읽고 있으니 내 표정을 착각한 놈이 실실 웃었다.
“그래, 이제 좀 무섭냐? 그러니까…”
찌지지지직―
[각성자를 처지하셨습니다.]
[1000 신앙을 획득합니다.]
[처치한 각성자의 인벤토리를 흡수합니다!]
쿵―
“……어?”
목이 떨어진 형광색의 몸이 피분수를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끝난 놈들의 바보같은 물음을 들으며 형광색의 머리를 검정 트레이닝 복 앞에서 흔들었다.
“교주님이 스킬을 쓰셨다! 교주님이 스킬을 쓰셨다! 뭔데, 왜 내 말에는 호응을 안해주는데!”
염력으로 형광색의 입꼬리를 길게 찢었다.
“이렇게 웃는 상으로 하면 대답해주냐?”
“히, 히이이이이이익!”
바닥에 주저앉는 검정 트레이닝 복과 동시에 나를 포위했던 놈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투다다다다다다―
대기를 무참하게 찢는 발포음과 함께 총탄이 빛살과 같이 내게 빗발쳤다.
난 천천히 손을 들었다.
총알 하나 하나에 부여된 염력이 총알의 운동량을 모두 빼앗았다.
“으, 으아아아아!”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둥둥 떠있는 총알을 보며 놈들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끼기기기기긱―
연사로 잔뜩 뜨거워진 총신이 내 손짓에 따라 꽈배기처럼 꼬였다.
이제는 자신들을 향한 총구에 놈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얌전히 비무장 상태가 된 놈들의 대가리를 모두 찢어버릴려다가 성가을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아무리 쓸모없는 쓰레기같은 놈들이라도 쓸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네놈들은 우리 한마음 구원교의 자랑스러운 예비 신도들이다. 불만이 있는 놈은 지금 손을 들어라! 그 손을 바로 목구멍에 처박아줄테니까!”
“으, 으으으으으!”
교주님이 말씀을 하거나 말거나 놈들이 눈을 감고는 표정을 잔뜩 찡그리며 신음했다.
이 새끼들이 아직 바깥물이 다 안 빠졌네.
시체쇼라도 해서 오줌이라도 질질 흐르게 해야하나?
바닥에 던져놨던 형광색의 대가리를 다시 드는 순간에 내 눈에 파란 빛무리가 번뜩였다.
바닥에 주저앉아서 끙끙거리는 놈들의 전신을 푸른 마나가 뒤덮는 것이 보였다.
“씨발!”
서둘러 팔을 내밀어 놈들의 머리에 염동력을 쑤셔 박았다.
그대로 머리부터 땅끝까지 압사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푸른 마나가 사라지며 놈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순간이동 각성자?’
씨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저새끼들 중에 분명 남은 각성자는 없었는데!
내가 괜히 그 새끼들이 입을 터는 걸 방관했던 게 아니였다.
형광색 말고는 내가 살펴본 바로는 놈들에게 각성자는 없었다.
‘각성자가 아니라면, 순간이동을 가능케하는 아이템이나 뭔가를 놈들이 들고 있었다는 말인데….’
서둘러 인계받은 형광색의 인벤토리를 뒤졌다.
잡다한 음식과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특이한 물건이 집혔다.
‘별빛교회 십일조 헌금’
교회의 헌금 봉투였다.
꾸리꾸리한 냄새가 나는 봉투의 겉면에 유성 매직으로 대충 휘갈린 글씨를 읽었다.
[서효주, 단발머리, 가슴에 점이 개꼴림.]
봉투를 열자 하얀 뭔가가 덕지덕지 발린 붉은 색 팬티가 나왔다.
“이런 개 씨발!”
이런 봉투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강혜인, 보지 존나 잘 조임.]
온갖 천박한 말투가 적힌 봉투들에는 전부 자신의 정액이 묻은 누군가의 팬티가 보관되어 있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타이밍 좋게 소리를 쫓아온 좀비들이 찌그러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제야 놈들의 계획을 전부 알 것 같았다.
일단 각성자를 부름과 동시에 보호막 주변에 있던 좀비들을 총성으로 전부 빼돌린다.
각성자와 접촉한 놈들은 강제로 포인트를 전부 소모시켜서 자신들의 물품으로 바꾼 후에 각성자를 죽이고.
그 각성자가 죽음으로써 보호막이 사라진 성역을 가볍게 케이크처럼 먹는다.
여기서, 가장 큰 오류점은 만약 내가 비행 능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들과 접촉하냐는 것이다.
내가 비행 능력으로 옥상에 내려서자 당황하던 놈들이 떠올랐다.
‘원래 계획은 그게 아니었구나, 지금처럼 사라진 능력을 통해서 따로 어딘가로 갈 수 있었던 거야.’
지금까지 이어졌던 이 과정은 철저하게 놈들의 임기응변으로 이루어졌다는 거군.
‘그래, 어쩐지 조금 어설픈 면이 있더라.’
추측하자면,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자기들이 완벽하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곳에서 내 포인트를 소모시키고 죽였겠지.
그러니 이 곳에 몰리는 좀비는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었겠네.
각성자가 아닌 새끼들도 어딘가로 이동시키는 능력이라.
“지금 우리 구원교에 딱 필요한 능력인데?”
교세를 확장하는데 아주 딱 맞는 능력일 가능성이 높았다.
문을 깨부수고 오피스텔로 쏟아지는 좀비들을 무시하고는 창문을 열어 몸을 띄웠다.
내 몸과 같이 부유하는 봉투를 다시 읽었다.
‘별빛교회 십일조 헌금’
굳이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몰아쳐야 했다.
“끼에에에에엑!”
펑―!
순식간에 창문에 손을 뻗는 놈들을 따돌리고 고도를 높혔다.
인천 광역시청 남서쪽에 거대한 현대식 건물 꼭대기에 달린 빨간 십자가를 포착했다.
콰앙―!
전력을 다한 염력이 몸을 중력과 함께 지상으로 다시 끌어당겼다.
유성우가 별빛 교회 옥상을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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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불신자들의 낮 (3)
불신자들의 낮 (3) ― 별빛교회 3층 ‘대성전’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제발…”
기적을 바라는 자들의 웅얼거림으로 가득한 예배실.
모두가 기도하고 있는 공간에서 유일하게 기도하지 않는 여자가 있었다.
단정하면서도 뚜렷한 이목구비와 한껏 뒤로 모은 허리까지 닿는 머리카락.
고통에 신음하는 자들의 곁에서 그저 눈만 감고 있던 주주혜가 눈을 떴다.
그녀의 눈 앞에 있는 거대한 십자가.
거룩함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짙은 원망에 그녀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털썩―
이제는 더럽게 익숙한 소리에 그녀는 자신의 옆에 있던 촛대를 들었다.
미약한 주황 불빛이 쓰러진 할머니를 밝혔다.
“할머니. 할머니. 괜찮으세요?”
“…….”
주주혜는 서둘러 할머니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었다.
아주 미약한 숨결이 그녀의 손가락을 간지럽혔다.
“하아….”
작은 안도와 함께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이 예비 감염자라고 멸시당할 때 앞서서 변호해주시던 그 얼굴을.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 자기 늦둥이 딸 같아서 그랬다는 그때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은 지나칠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할머니….”
정말로 뼈밖에 남지 않은 몸을 천천히 주물렀다.
그래도 저번 주까지는 식은 땀과 함께 배고프다는 말을 중얼거리셨는데….
이제는 한계가 온 것일까.
할머니의 사지가 마치 삐적마른 고목처럼 딱딱했다.
“조금만 더 버티시면 돼요. 이제 곧 배급날이잖아요.”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김중사 그 새끼는 한계의 한계까지 와서야 적선하듯이 식량을 보급할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할머니가 그때까지 버티기를 기도하는 것 뿐.
‘기도.’
마음 속에 울리는 물음에 그녀는 쓴 웃음을 내뱉었다.
‘이젠 뭘 기도해야 하지?’
할머니에게 먹을 걸 달라고?
할머니는 살려달라고?
그런 것을 간절하게 빌 바에는 차라리 김 중사에게 무릎을 꿇고 간청하는 게 더 빠르고 확실했다.
‘그래, 차라리 김 중사에게 말해보자.’
쓰러진 할머니에게 모포를 덮어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과거의 성세를 나타내듯이 쓸데없이 거대한 대성전.
온누리의 빛은커녕, 예배실의 빛조차 충만하지 않은 공간에서 칠흑에 잠긴 십자가.
‘당신은 정말 어디에 있습니까?’
정말 힘들고 죽고 싶었던 순간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함께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며 나지막히 속삭이셨다.
‘지금 우리 딸이 겪는 고통은 전부 다 견딜 수 있는 것들이야. 신이 주신 시련은 너를 위한 신의 뜻이란다.’
신의 뜻.
울렁거리는 속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그날의 조각들을 쏟아낸다.
그 어떤 교회 사람들보다 신실하시며 부지런하셨던 당신의 일꾼들이.
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좀비들에게 잡아먹힌 것도 당신의 뜻입니까?
그것이 제가 이겨내야할 시련이며 선물입니까?
북받쳐오른 감정에 주주혜는 중지 손가락을 들어 십자가에게 보냈다.
서둘러 대성전을 빠져나가는 그녀의 발목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주, 주혜야! 여기 있었구나!”
“신 권사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큰일 났어! 혜원이가! 혜원이가!”
혜원이라면 신 권사의 딸이었다.
주주혜는 신 권사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다급해보이는 그녀를 진정시켰다.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그, 그놈이 우리 혜원이를 끌고 갔어! 내, 내가 끝까지 막았는데 그놈이! 그놈이 내 딸을!”
그녀의 횡설수설한 말만으로도 주주혜는 상황을 이해했다.
‘박영진, 이 개새끼!’
또 식량을 미끼 삼아서 자기 더러운 성욕을 채우고 있겠지.
대충 어디에 있는지도 예상이 갔다.
“제가 일단 알아볼 테니까 조그만 진정하고 계세요.”
“아아, 이젠 정말 너밖에 없구나. 그동안 의심해서 미안했어… 너는 예비 감염자가 아니라 신이 보내주신 천사야… 정말 고마워….”
천사.
주주혜 또한 그녀가 바라는 천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혜원이를 데리고 나올 자신이 없는 주주혜는 그저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본 신 권사는 눈물을 닦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딸을 빼앗긴 어미는 비틀거리며 주주혜가 나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어둠 속에 스며든 그녀가 의자에 앉아 두손을 맞잡았다.
“주님! 제발 제 딸 혜원이를…”
이루어질리 없는 기도를 뒤로하고 주주혜는 대성전의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낡은 문 소리와 함께 별빛 교회의 3층이 그녀를 반겼다.
촛불에 의지하는 대성전과는 달리 햇빛으로 시야가 확보되는 공간을 걸으며 계단을 올랐다.
“으으읏― 으읏― 읏―”
5층에 오르자마자 들리는 울음 섞인 신음.
그 소름끼치는 소리에 주주혜는 표정을 찌푸렸다.
“뒤지기 싫으면 눈물 닦아라. 내가 강제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식권도 챙겨준다니까!”
“으으읏― 읏― 제, 제발….”
살짝 열려있는 대학청년실에서 풍기는 음란하고 더러운 냄새.
그리고 역겹기 그지 없는 상황에 주주혜는 서둘러 대학청년실 앞까지 달렸다.
“아, 와꾸가 진짜 마이너스네! 봉지라도 씌우고 해야하나? 야! 너 주주혜는 잘 따라하냐?”
빠르게 손잡이로 전진하던 손이 턱하고 멈췄다.
두려움과 분노로 덜덜 떨리는 손을 꽉 쥐고는 다시 문을 벌컥 열어제꼈다.
쾅―
“야! 박영진!”
“씨발, 깜짝이야!”
역겁게 허리를 움직이던 박영진이 덜컥 멈췄다.
그 밑에 깔려있는 혜원을 발견한 주주혜의 눈이 뒤집혔다.
“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아, 서로 마음이 맞아서 섹스 조금 할 수도 있지, 별걸로 다 유난이네. 대줄 거 아니면 꺼져.”
짜증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던 놈이 설렁설렁 손을 흔들었다.
다시 허리를 움직이려던 놈의 못덜미를 움켜쥐자 그가 손가락을 총모양으로 만든 뒤에 주주혜를 겨눴다.
“아, 씨발! 진짜 왜 그렇게 나대는 거냐? 각성자라고 오냐오냐해주니까 이젠 같은 급으로 보여?”
박영진의 검지에 모이는 푸르스름한 마나에 주주혜의 몸이 뒷걸음질쳤다.
그 동안 계속해서 봐왔던 그의 능력에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주주혜는 물러서지 않았다.
“너나 나대지마, 찌질이 새끼야! 네가 날 죽일 수 있었으면 진작에 따먹고 죽였겠지. 아니야?”
“아닌데? 지금이라도 대가리에 구멍 한 번 뚫려볼래?”
그가 남은 손도 총모양으로 만들곤 그녀를 겨눴다.
두 개의 검지에서 넘실거리는 푸른 빛에 그녀의 등에 식은 땀이 흘렀다.
자신으로서는 이 정신 나간 찌질이를 제어하지 못했다.
결국 주주혜는 최후의 수단을 거론할 수 밖에 없었다.
“날 죽이면 김 중사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하아… 또 이럴 때만 김 중사, 김 중사.”
그리고 오늘도 저 녀석의 유일한 약점은 통했다.
서서히 사그라드는 푸른 빛과 함께 놈이 총 모양 손을 거뒀다.
대충 겉옷을 챙겨 입은 박영진이 쓰러져있는 혜원에게 가래침을 뱉었다.
퉷―
그녀의 젖가슴에 뿌려진 가래침에도 그녀는 어떠한 말도 없이 가녀린 몸을 계속해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제대로 안 쌌으니까 약속했던 식권은 없어. 원망하려거든 저 젊은 꼰대년한테 하던가.”
끝까지 뭐같은 말만 내뱉고 떠나는 그를 보며 주주혜는 서둘러 옆에 있던 모포를 혜원에게 덮었다.
“괜찮아?”
“어, 언니… 가, 감사해요.”
“내가 웬만하면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
“오, 오줌이 너무 마려워서… 화장실은 이미….”
단수와 단전이 찾아온 다음부터 가장 곤욕스러운 일이 바로 배설물 처리 문제였다.
화장실은 이젠 사람이 갈 수 없을만큼 지독한 냄새로 가득 찼기에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외곽에서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들이 남자놈들이 여자들을 사냥하기 제일 좋은 타이밍이었다.
“빨리 대성전에 사람들이랑 모여 있어. 나는 김 중사한테 가야하니까.”
“어, 언니랑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미안해. 나 장로님이 또 쓰러지셨어.”
“아아아― 이번엔 정말 위험할지도 모르겠네요.”
자신이 여자로서는 참기 힘든 일을 당했는데도 다른 사람을 걱정해줄 수 있다니.
이런 착한 아이를….
“어쨌든 박영진이 돌아오기 전에 빨리 돌아가.”
천천히 혜원의 머리를 쓰다듬던 주주혜가 청년실을 나서며 덧붙였다.
그녀는 청년실이 있는 5층을 넘어 별빛 교회의 최상층인 6층에 이르렀다.
조리실과 식당인 하모니홀을 지나서 가장 왼쪽 구석에 있는 장로실 앞에 멈춰섰다.
똑― 똑―
“들어와라.”
무뚝뚝한 중년 남성의 음성.
주주혜는 천천히 장로실의 문을 열었다.
탁자에서 무언가를 유심히 보던 김 중사와 주주혜의 눈이 마주쳤다.
각이 잡힌 군복과 차가움이 깃든 눈을 가진 군인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정찰조 얘들이 조금 늦는군.”
“나 장로님이 쓰러지셨어요. 식량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풀어주세요.”
“정말 하루도 빼먹지를 않는군. 이젠 조금 지겹지도 않나?”
그게 뭐가 문제냐는 눈빛이 주주혜를 쓸었다.
그의 군복에 적힌 이름 김주형.
자신을 김 중사라고 편하게 부르라던 이 냉혹한 지배자는 부서진 군용 차량과 함께 우리에게 홀연히 나타났다.
부하도 동료도 없이 홀로 도망쳤다는 그는 정말 순식간에 교회에 녹아들었다.
자신들에게만 쏟아지는 굳은 일과 미비한 보상에 불만이던 남자들과 예비 감염자라고 오해받던 사람들을 포섭한 그는 도망칠 때 들고 왔다던 여러 정의 총을 무기 삼아 순식간에 교회의 지배자로 우뚝 섰다.
그리고 김 중사의 냉혹한 폭정이 시작됐다.
모두에게 균등히 분배되던 보급이 끊기고 남자들이 제일 처음 그리고 훨씬 많이 식량을 보급 받기 시작했다.
그는 김 중사를 향한 남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교회 주변으로 빠르게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거기다가 그는 이미 각성자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예비 감염자라고 멸칭받던 각성자들을 특별하게 우대하며 그들의 호감을 샀다.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모든 좀비의 사살은 전부 각성자의 손에 쥐어진 총으로 이루어졌다.
김 중사의 총으로 빠르게 포인트를 불린 각성자들은 김 중사의 가장 강력한 검이 되었고, 김 중사의 나라의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귀족들이 되었다.
서로 기도하며 이 지옥을 겨우 버티던 교회는 이제 없었다.
김 중사가 왕이고 각성자들이 귀족인 광기의 나라만이 있을 뿐이었다.
“조리실에 산처럼 쌓여있는 것중에 일부잖아요! 정말 조금만 풀어도 되잖아요!”
“포인트 상점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사는데 몇 포인트나 드는 줄 모르나? 50 포인트는 줘야 식사 다운 식사를 할 수 있지. 지금 교회 안에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삼 시 세끼 다 챙겨주라는 건가? 여기가 무슨 호텔인 줄 알어?!”
“제가 무슨 포인트로 사서 달라는 말을 했나요? 조리실에 있는것만이라도….”
“그건 아껴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아껴야지!”
김 중사가 들고 있던 막대기가 주주혜의 어깨를 찔렀다.
그가 찌를때마다 뒤로 밀려가는 그녀를 보며 김중사가 다시 말했다.
“더 이상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건가? 그때는 사람을 살린다고, 식량을 산다고 귀한 포인트를 전부 낭비할 텐가? 그럼 각성자들이 성장은 어떻게 하고, 좀비는 어떻게 잡아!”
그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주주혜에게 물었다.
“각성자인 네가 더 잘 알잖아? 우리가 너한테 벌어 준 포인트는 벌써 잊은 거냐!”
김 중사의 말에 주주혜는 떠올렸다.
총 소리에 몰려드는 좀비와 김 중사가 쥐어준 수류탄을 그곳으로 던지는 자신.
“그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는 거다. 그걸 명심해라, 주주혜.”
“…그럼 제가 여태까지 협조했던 것에 대한 보상을 주세요. 저는 그럴 자격이 있잖아요.”
그녀는 알고 있었다.
김 중사의 부하들과 각성자들이 저렇게까지 천둥벌거숭이처럼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이유.
그 이유 중 팔 할이 자신의 스킬 덕분이라는 걸.
스킬 [바라는 자의 귀환]
시전자가 설정한 ‘키워드’를 되뇌인 자를 일정량의 마나를 소비해서 시전자의 곁으로 이동시키는 귀환 스킬.
이 스킬의 무지막지한 효용성 덕분에 그녀는 남자들의 놀이동산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보상을 주시지 않는다면 앞으로 중사님과 ‘키워드’를 공유하지 않겠어요.”
“흠, 그래. 오늘 ‘작전명’은 뭐였지?”
작전명이 아니라 키워드라고 항상 말해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자신의 협박에도 태연한 김 중사를 보며 그녀는 침으로 마른 목을 축였다.
“…‘은혜로움이 가득한 세상’.”
“오, 누가 기독교 집안 아니랄까봐, 작전명에서도 티를 내는군.”
기독교 집안을 티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이제 저런 키워드를 생각할 사람이 없기에 설정한 것이다.
“…말 돌리지 마세요. 보상을 주실 건가요? 저는 웬만하면 식량이면 좋겠네요.”
“흐음….”
김 중사가 주주혜 앞에 종이를 흔들었다.
자신의 능력치가 세세하게 적힌 종이를 보며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너는 지금 충분히 보상받고 있는데… 혹시 느끼지 못했나?”
조용하면서도 소름끼치는 그 말에 주주혜는 배고픔에 쓰러진 나 장로님과 겁탈당한 혜원이를 떠올렸다.
김 중사가 그녀에게 내보인 무언가가 이미 세차게 흔들리는 그녀에게 파문을 더했다.
“남아 있는 유일한 가족들도 내가 특별히 경호해주고 있는데 말이야.”
할머니의 십자가 귀걸이가 김 중사의 손에서 작게 흔들렸다.
주주혜의 능력이 밝혀진 후부터 그녀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들인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떨어져야 했다.
혹시나 주주혜가 가족들과 키워드를 공유하고 도망치는 것을 대비한 것이다.
“주혜. 주님의 은혜라고 지은 이름이라며 잘 좀 부탁한다고 할머님이 내 손을 잡으시더군.”
“…개새끼.”
자신에게 다른 대안만 있었더라도.
다른 숨구멍만 있었더라도 저런 개새끼에게 내 스킬을 쓰지 않아도 될텐데.
부들부들 떨리는 몸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주주혜의 몸이 파랗게 빛나며 그녀의 주변에서 수색조 인원들이 나타났다.
“으으으으! 주, 중사니이이임!”
귀환한 수색조들의 상태가 이상했다.
눈을 감은 채로 끙끙 앓던 놈들이 김 중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의 바짓가랭이를 붙잡았다.
그들의 살피던 김 중사의 눈이 번뜩였다.
“진현이가 없군.”
“중, 중사님! 도망가야 합니다! 지금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해요!”
그 모습을 바라본 주주혜의 얼굴에 놀람이 깃들었다.
매일 껄렁거리며 여자들을 희롱하던 놈들의 얼굴이 그야말로 하얗게 질려서 분칠을 해놓은 것만 같았다.
“부, 북쪽으로 가면 안 됐어요!”
“형님도 그냥 한 방에 죽었어요! 이, 이 총 좀 보세요!”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는 그들의 어깨에 걸린 총을 김 중사가 들었다.
미증류의 힘에 의해 잔뜩 휘어진 K2 소총.
김 중사의 목소리가 뱀처럼 가늘어졌다.
“누구지?”
김 중사의 눈이 빠르게 수색조를 훑었다.
눈을 잔뜩 굴리던 수색조 중 한명이 발작을 하듯이 내뱉었다.
“교, 교주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구원교인지 뭔지의 교주라고 했던 놈이…!”
쿠우우웅―
놈의 말이 끝나지도 전에 천장이 뒤흔들렸다.
옥상에 뭔가 커다란 충격이 일어난 듯 보였다.
“히, 히이이이이익! 왔다, 왔어! 그가 왔어요! 중사님! 여, 영진이 어딨습니까? 빨리 영진이라도!”
언제나 냉철하던 김 중사가 흔들리는 천장을 보며 입을 벌렸다.
삭막하던 그의 왕국에 처음으로 일어난 파문이었다.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던 주주혜의 눈이 작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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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불신자들의 낮 (4)불신자들의 낮 (4) ― 별빛교회 6층 ‘모세장로실’
“주, 중사님! 뭘 그렇게 멍하게 보세요! 빨리 도망가야 한다니깐요!”
옥상을 뒤흔든 충돌 이후로 안 그래도 패닉에 빠졌었던 수색조가 더 호들갑을 떨었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던 김 중사가 천천히 그들 앞에 다가갔다.
수색조의 휘어진 소총 한 정을 쥐더니 그대로 개머리판으로 그들을 내려찍기 시작했다.
퍽! 퍼억―! 퍽―!
살벌한 타격음에 주주혜는 눈을 질끔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비정한 처벌에 수색조들의 우는 소리도 소름끼칠만큼 조용해졌다.
“진현이는 어떻게 죽었나?”
“크, 크흑… 그냥 그 놈한테 하, 한방에….”
“‘어떻게’ 죽었나.”
“그, 그 놈한테 다가가는 순간에 모, 목이 찢겨졌습니다아!”
주주혜는 그들의 비명섞인 대답에 목이 분리된 김진현을 상상했다.
재수없이 반짝거리던 형광 운동복과 매번 여자들을 노려보던 음욕에 가득찬 찢어진 눈매.
그 놈에게 몸과 속옷을 빼앗긴 또래 여자들을 보며 얼마나 분노에 몸을 떨었던가.
“다른 특별한 점은 없었나?”
“귀, 귀환하려는 순간에 그 놈이 우리한테 손을 뻗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엄청 아팠습니다!”
“다가가는 순간에 죽었다, 손을 뻗는데 머리쪽에 고통을 느꼈다라….”
턱을 매만지던 김 중사의 냉철한 눈이 반짝였다.
“대충 알 것 같군. 성철아, 가서 영진이를 데리고 와라. 오면서 있는 무장이란 무장은 전부 들고 온다.”
“네, 네에? 영진이는 그….”
검은 트레이닝 복을 입은 조성철이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주주혜를 곁눈질했다.
박영진, 그 새끼는 무기고를 지키고 있는 김 중사의 최대 전력.
거기다가 그 곳엔 주주혜의 가족까지 인질로 붙잡아 두고 있는 곳이었다.
“괜찮으니 빨리 출발해.”
“네, 넵! 중사님!”
헐레벌떡 뛰쳐나가는 조성철과 함께 패닉을 추스린 수색조의 눈빛이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김 중사가 주주혜에게 말했다.
“보상을 바란다고? 가족과의 만남을 허용해주지. 그들과 함께 어딘가로 도망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오히려 그 말이 자신보고 도망가라는 말로 들리는 건 왜일까?
“…마치 도망을 가라는 말로 들리네요.”
“역시 똘똘하구나. 도망가거라. 네가 다른 곳에 숨어야 우리에게 숨구멍이 생기지 않겠나?”
김 중사는 자신을 다른 곳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 했다.
그러다 자신이 배신하면 어쩌려고?
배신은 개뿔.
스스로의 물음에 주주혜의 내면에서 헛웃음이 샜다.
김 중사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혹시나 허튼 마음을 품어도 상관 없다. 너도 함께 해봤으니 알겠지. 이런 세상에서 사람은 결국 흔적을 남길 수 밖에 없고, 우리는 그런 흔적을 쫓는 사냥의 프로라는 걸.”
그의 말대로였다.
아무리 숨는다 해도 사람은 결국 흔적을 남겼고, 김 중사의 수색조들은 그런 이들의 식량을 강탈해가며 세를 불렸다.
‘김진현이 죽어도 아직 박영진이 남아있어….’
반항하는 사람들을 농락하던 총 모양의 손가락….
그의 왼팔인 사냥꾼은 죽었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오른팔이 곧 사냥꾼의 복수를 할 것이다.
그에게 반항했던 모든 이들은 결국 김 중사의 검에 무릎을 꿇었었다.
아마, 이번에도….
다르지 않겠지.
자포자기의 마음이 반짝였던 주주혜의 눈을 죽였다.
나 장로님이 쓰러졌다는 분노도, 누군가가 왔다는 희망도 잊은 주주혜가 김 중사에게 물었다.
“키워드는 뭘로 바꾸죠?”
그녀의 말에 김 중사는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첫 충격 후, 정적에 물든 그곳을 보며 그는 말했다.
“사이비 사냥.”
* * *
“아, 롯데마트처럼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별빛 교회의 옥탑층에 작게 조성되어있는 잔디밭이 내 ‘히어로 랜딩’에 엉망이 되었다.
움푹 패인 잔디밭과 잔뜩 피어오른 흙구름에 걱정이 먼저 들었다.
일단, 최대한 빠르게 온다고 오긴 했는데… 이러다가 건물이 무너지면 말짱 꽝인데….
“쩝, 가을이가 말한 임팩트라는 게 이런 건 아닐텐데….”
‘가을에몽’의 잔소리가 또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야! 마트를 무너트리긴 왜 무너트려! 네가 철거반이야?’
‘아니, 내가 사람들 있는 곳에 그런것도 아니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눈을 감고 사실만 말해봐! 만약에 너한테 깝치는 놈들이 생겼다, 그런데 그 놈들의 본거지를 찾았다. 넌 어떻게 할건데?’
‘뭘 어떻게 해! 그냥 바로 쳐들어가서…’
‘이거 봐! 이거 봐! 네가 인간 도살자야?! 넌 교주라고, 교주! 명심해. 사람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이 첫 만남 때 완성된단 말야. 딱 처음 보자 마자, 아, 이 새끼 뭔가 범상치 않다! 라고 느끼게 임팩트를 주는 거야, 알겠어?!’
“으으으윽! 내 머리에서 나가! 성가으으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더니 자동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성가을의 말이 맞겠지.
성가을의 말을 들어서 손해본 적은 없잖아.
참교육의 명목으로 건물 자체를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을 절절한 심정으로 참았다.
난 인간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포교와 전도를 하러 온 것이다.
온화한 종교인의 마음가짐으로 뒷 짐을 지곤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 차아아암 맑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치이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옥탑층에 있던 스피커가 울렸다.
―그대가 구원교주라는 사람인가?
예상하기론 중년의 남성 목소리였다.
자기 구역인데도 건방지게 스피커로 물어보는 놈에게 마나를 가득 담은 말을 내뱉었다.
방송보다 더 큰 목소리가 건물 자체를 울렸다.
“그렇다. 그대가 성역을 위협한 무리의 우두머리인가?”
―위협은 모르겠으나 이 곳의 책임자는 맞다. 김 중사라고 불러라.
김 중사.
이름 그대로 군인인 걸까?
그렇다면 껄렁거리던 놈들이 지들 분수에 넘치는 무장을 하고 있던 것도 얼추 들어맞았다.
김 중사의 목소리를 내뱉는 스피커를 주시했다.
‘아직 전기가 남아 있다라….’
마나가 담긴 목소리가 다시 한번 건물을 울린다.
“굳이 스피커를 통해 얘기할 필요가 있나? 아까운 전기를 낭비하지 말고 내 앞에 나와라.”
―…탐색은 이만하도록 하지. 그대는 우리의 구역에 지금 무단으로 침입했다. 속히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길 권고하지.
스피커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 냉혹함이 깃든 경고.
그 경고에 나는 오히려 웃었다.
진한 웃음의 끝에 다시 울리는 웅혼한 외침이 건물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이들에게 닿았다.
“그럴 순 없다! 나는 보았다! 이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을 바라는 가련한 영혼을!”
―개꿈이라도 꿨나보군. 이 곳은 아주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는 이 재앙을 함께 이겨내고 있다. 그대같은 사이비가 전도하는 공간이 아니란 말이다!
점차 그라데이션처럼 격앙되는 놈의 음성.
―네놈이 뭘 안다고 고통과 구원을 쉽게 입에 담아! 네놈이 진정한 지옥을 겪었나? 난 그 지옥을 빠져나온 산 증인이야! 이놈이나 저놈이나, 보급 달라고 징징거리던 새끼들! 빨갱이나 다름 없는 새끼들!
이건 날 욕하는 거야? 아니면 갑자기 생각난 다른 사람들을 욕하는 거야?
놈은 애초의 목적도 잊은 듯이 마음 속에 있던 말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았나?
―울타리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인 걸 모르는 돼지…
“그 정도면 시간은 충분히 끌었소?”
―…….
치지직거리던 전자음이 끊기며 스피커가 침묵했다.
짧은 적막을 뚫고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초록색 물체가 옥상 바닥에 내던져졌다.
푸쉬이이이익―
‘연막.’
순식간에 옥상 전체를 메우기 시작하는 하얀 연기에 몸을 띄웠다.
‘나쁘지 않네.’
역시, 한 번 내 능력을 봤던 놈들이라 그런지 대처가 매끄러웠다.
염력은 결국 물체에 간섭하는 힘.
간섭한다는 것은 결국 ‘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직접 눈으로 보든지, 성역 안에서 작동하는 미니맵을 보든지.
연막은 내 시야, 즉 내 능력을 제한하겠다는 말과 동일했다.
‘능력을 제한했으면 반격이 올 차례!’
그 생각과 동시에 옥상 한 쪽에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내 손짓에 따라 그곳의 하얀 연기가 걷힌다.
쥐새끼같이 생긴 놈이 공중에 부유하는 나를 보며 견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견착 자세를 취한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놈의 팔에서 피어난 청색 빛이 소총의 테두리를 연상케했다.
푸른 빛무리가 소총의 총구에 모이며 놈의 눈이 번쩍였다.
타다다다다다다―
푸른 총알의 쇄도에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눈이 빠르게 굴러가며 빛살을 가르는 탄들을 하나하나 인식했다.
‘…씨발!’
하지만 마나로 이루어진 총알은 내 염력의 제어에서 자유로웠다.
퍽―! 퍼퍼퍼퍼퍽―!
능력을 각성하고 처음으로 당하는 유효타였다.
사방을 점거한 마탄이 내 전신을 난타했다.
번쩍거리는 섬광이 다음을 생각하는 나를 방해했다.
얼굴을 보호하는 두 팔과 함께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허공을 부유하던 몸이 다시 아래로 낙하하며 연막 아래에 몸을 숨겼다.
“크하하하하하! 씨발, 폼이란 폼은 다 잡더니, 좆밥새끼가 나대고 있어!”
비열하게 찢어진 목소리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타격은 있지만, 치명타는 없다.’
몸 상태를 빠르게 정비하며 주변을 가리던 연막을 살짝 치웠다.
투다다다다다―
“뒤져! 병신 사이비 새끼야!”
난사한 마탄이 연막 전체를 꿰뚫었다.
하얀 연기에 둥글게 퍼지는 원을 따라서 푸른 마나가 쏘아진다.
그 작은 구멍으로 보이는 쥐새끼의 눈빛이 퍼렇게 빛났다.
“넌 절대 곱게는 못 뒤진다.”
놈들은 직접적인 염력 행사를 제한했을 뿐이다.
오히려 염력의 진면목은 간접적인 간섭에서 드러난다.
끄드드드득―!
내 몸에 피어난 백광을 따라 별빛 교회가 비명을 질렀다.
철근이 우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지진이 난 듯이 건물이 흔들렸다.
옥상을 이루던 콘크리트 덩어리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마탄의 충격량을 그대로 흡수했다.
퍼버버퍽―
잘게 부서지는 콘크리트의 뒤로 수많은 돌덩이들이 서서히 공중을 부유했다.
그리고 회전했다.
쉬이이이익―!
중력이 소멸된 우주를 떠도는 행성처럼 내 주위를 공전하는 돌덩이들이 점점 속도를 높혔다.
옥상을 가리던 하얀 연기가 그 대열에 빨려들어갔다.
카가가가가각―!
시야의 제한 없이 탁 트인 공간과 함께 옥상의 바닥이 무참하게 갈렸다.
인위적으로 만든 회색 폭풍이 별빛 교회의 옥상을 헤집기 시작했다.
“씨, 씨바아아아알!”
그 폭발적인 마나의 흐름을 각성자가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살육의 흥분에 젖었던 쥐새끼의 눈빛에 다급함이 서렸다.
놈이 서둘러 한 쪽 무릎을 땅에 딛고는 둥근 무언가를 잡는 시늉을 했다.
“…오!”
푸른 테두리가 드러나지 않아도 무슨 짓을 할지 예상이 갔다.
“알라 후 아크바르다, 이 새끼야아아아!”
푸콰아아아아앙―!
마나가 만든 알라의 요술봉이 교회 옥상에서 사이비 교주를 향해 날아들었다.
소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커다란 마탄이 내가 만든 폭풍을 파고들었다.
투두두두두두―
작은 돌덩이들이 거대한 염력의 흐름에 따라 놈의 마탄을 세차게 두들겼다.
점차 형태가 일그러지는 푸른 마탄에 놈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딱 봐도 상당량의 마나를 투자한 공격이었지만, 내게 흠집도 내지 못했다.
“이런 개…!”
다시 일어서려는 놈에게 팔을 내뻗었다.
옥상 아래에 잠들어있던 철근들이 내 염력에 따라 뱀처럼 놈에게 쏘아졌다.
“커허어어어억!”
쥐 새끼의 전신을 바닥을 뚫고 나온 철근이 파고들었다.
손아귀를 강하게 쥘수록 놈의 전신을 감싼 철근이 그의 몸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커흐으으으윽! 이, 이런 개 씨이이이바아아알!”
유일하게 자유를 허용받은 아가리만 열심히인 놈의 몸이 나에게 박제되었다.
이리저리 급하게 몸을 뒤틀수록 철근은 오히려 더 깊숙이 놈의 몸을 파고들었다.
“끄으으으으으윽!”
터질 듯이 붉어진 놈의 얼굴을 보며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내 손짓에 따라 콘크리트와 하얀 연기의 결합으로 진회색처럼 보이는 용권풍이 천천히 전진했다.
“으, 으으으으! 싫어! 씨발 치워! 치우라고!”
용권풍이 헤집는 바닥에서 튕기는 작은 돌조각이 세차게 놈의 얼굴을 때렸다.
빼액거리는 놈의 아가리에 쏟아지는 돌조각에 쥐새끼가 켁켁거리며 눈물을 쏟았다.
“으으으으! 사, 살려주세요! 씨발, 씨이발! 죄, 죄송했습니다! 죄송했습니다아아아!”
“손버릇이 나쁜 신도는 필요 없어, 새끼야.”
“끄아아아아아악!”
진회색 폭풍이 쥐새끼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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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 불신자들의 낮 (5)
불신자들의 낮 (5) ― 별빛 교회 옥탑층
믹서기 돌아가듯이 갈려가는 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각성자를 처지하셨습니다.]
[1000 신앙을 획득합니다.]
[처치한 각성자의 인벤토리를 흡수합니다!]
확실한 사살 메시지를 확인하고나서야 염력의 제어를 풀었다.
조용히 사그라드는 용권풍과 함께 쥐새끼의 최후가 드러났다.
거대한 회전날에 전신이 갈린 모습과 함께 몸통의 오른쪽에 가득 박혀 있는 돌조각들.
놈의 오른쪽 면상에 슝슝 뚫려 있는 작은 구멍들에 눈살을 찌푸렸다.
“으으으, 환 공포증 걸릴 것 같네.”
역시, 그냥 깔끔하게 목을 찢는게 놈에게도 나에게도 더 나은 결말 아니었을까?
어두컴컴하지만 인기척이 더럽게 많이 느껴지는 건물 안쪽에 대고 말했다.
“뭐 더 준비한 거 있나?”
그 말과 동시에 다시 초록색 빛살이 옥상으로 날아왔다.
허, 아까처럼 기습도 아니고 대놓고 날아오는 물체를 가볍게 정지시켰다.
놈들도 이제 나에게 통하는 저항 수단이 바닥났다는 의미겠지.
내 염력 덕에 허공에 멈춘 수류탄들이 그대로 폭발했다.
푸콰아아아앙―
대기를 찢는 폭음과 함께 사방에서 비산하던 파편들이 그대로 허공에서 멈췄다.
수류탄들을 향해 뻗었던 손을 가볍게 말아쥐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이 멈춰있던 파편들이 천천히 모여들었다.
모인 파편들이 다시 수류탄의 형태를 띄고는 날아온 공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악!”
시간을 뒤감긴 듯한 이능에 안쪽에서 비명과 고함이 요동쳤다.
서둘러 폭발을 피해 옥상으로 튀어나오는 놈들을 주시했다.
각 잡힌 군복을 입은 한 놈과 내가 놓쳤던 놈들이 그대로 세트처럼 내 앞에 쏟아졌다.
일단 처음 보는 군복 놈의 명찰을 읽었다.
‘김주형.’
저 놈이 스피커를 통해 말했던 이 구역의 우두머리, 김 중사인 듯 했다.
“자, 다들 수류탄에 대가리 날아가기 싫으면 그대로 움직이지 마라.”
내 말과 함께 실내에 들어갔던 수류탄이 다시 떠올라서 그들의 머리 바로 옆에 부유했다.
구름처럼 둥실거리는 수류탄을 곁눈질하는 놈들의 얼굴이 공포에 물든 것이 아주 확연히 보였다.
“네가 아까 나와 대화하던 김 중사군?”
수류탄이 놈의 면상 바로 앞에서 둥실거렸다.
놈의 태연한 얼굴로 나를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중사라는 새끼가 복명복창을 안 해?”
“…그렇다. 내가 김 중사다.”
“어이구, 반말 까지?”
나름 리더라고 태연한 척 하지만, 내 눈에는 다 보였다.
놈의 등허리를 차갑게 식히고 있을 땀방울과 소총을 붙잡고 있는 하얗게 질린 손.
쥐 새끼가 어떻게 죽었는지 봤다면 절대 침착할 수가 없지.
“이번엔 순간 이동으로 안 도망가냐? 안 그래도 내가 찾아가는 포교를 해야해서 어차피 인천 한바퀴를 다 돌아야 하거든.”
놈들이 도망가더라도 상관 없었다.
이곳의 인프라를 모두 버리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을 테니까.
도망쳐봐야 인천일 것이고, 난 어차피 구석구석을 뒤지며 녀석의 보물인 순간이동 각성자를 찾아야했다.
내 말과 동시에 놈들의 눈이 감겼다.
그때처럼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김 중사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뭔가 차질이 생겼군.’
놈의 목울대가 작게 꿀렁이더니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협상을 바란다.”
찌지지직―
“히, 히이이이이익!”
놈의 바로 오른쪽에 있던 놈의 머리가 찢어졌다.
잔뜩 뭉쳐있는 놈들의 얼굴을 죽은 놈의 피가 세차게 때렸다.
경기를 일으키는 놈들과 당황한 표정의 김 중사를 보며 말했다.
“이제 슬슬 그렇게 건방지면 곤란한데….”
“…너는 미쳤군.”
무심한 눈길이 그들을 쓸었다.
저 무리 속에 남은 각성자는 없었다.
‘실내에 잔류했거나, 도망갔거나.’
난 어떻게든 무리 속에 파고들어 내 시선을 피하는 검은 트레이닝 복을 지목했다.
“안녕! 다시 보니 너무 반갑다?”
“으, 으으읏. 죄, 죄송합니다!”
“새끼, 죄송한 것도 알고 벌써 사람 새끼 다 됐네?”
역시, 좆같은 놈들은 피맛을 봐야 정신을 차려요.
파리같이 개 눈깔을 빠르게 돌리는 놈의 머리를 살짝 잡아당겼다.
“흐, 흐이이이이이이익! 죄, 죄송합니다아아!”
“자! 살고 싶으면 우리 검둥이는 지금 빨리 이 곳에 남아있는 생존자들을 모두 이곳에 데리고 온다. 할 수 있지?”
“예, 예에에에에! 무,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아아!”
“좋아, 좋아! 지금 바로 출바알!”
염력을 놓아주자마자 놈이 뒤도 안 보고 안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아악!”
놈이 어둠에 사라지기 전에 엉덩이를 염력으로 콕 집으니 아주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아니였다.
‘아, 엉덩이 찌르니까 뭔가 기분이 더럽네.’
앞으로 남자새끼의 엉덩이는 건들지 말아야 겠다.
검정 트레이닝 복이 사라진 후 정적이 내려앉은 무리를 염력으로 묶었다.
정체 모를 외압에 빠르게 굴러가는 놈들의 눈알을 보며 그들을 살짝 진정시켰다.
“얌전히 기다려.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까.”
그들의 진정한 쓸모는 이 다음에 있었다.
* * *
“아이고, 주혜야. 어디 보자, 어디 다친 곳은 없지? 응?”
“지금 제 걱정 하실 때에요? 그 새끼들이 식사는 제때 줬어요?”
“아이고, 영감이랑 나는 걱정덜 하질 말아. 우리는 다 괜찮아. 주님이 우릴 굽어 살피실 거야.”
주주혜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런 자신의 어깨를 토닥이는 무뚝뚝한 할아버지의 손길을 느끼며 글썽이는 눈물을 참았다.
그녀는 김 중사의 지시대로 별빛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키워드도 자신만 아는 암호로 변경했다.
커다란 음성이 건물 전체를 뒤흔드는 순간부터.
별빛 교회를 점거하던 핵심 인원들이 위로 올라간 그 순간부터 그녀는 말 그대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어차피 김 중사는 절대로 자신을 죽일 수 없고.
새로운 침입자도 이 효용성 넘치는 스킬을 탐낼 것이다.
이 곳을 벗어난다고 막연한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바깥은 이미 한 발자국도 맘 놓고 내딛지 못하는 지옥이었다.
“아이고, 우리 교회 사람들은 다 무사한 거지?”
“…….”
그들의 주변에 몰려있던 대성전의 사람들의 입이 일제히 다물어졌다.
지금의 상태로는 빈말로도 무사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흑, 흐으윽―”
서혜원의 울음 소리에 주주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의자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나 장로님의 미약한 숨결만이 그 울음에 화음을 넣었다.
“아이고… 아이고, 주님….”
모든 상황을 이해한 할머니의 허망한 기도가 대성전에 흘렀다.
“…슬슬 정리된 것 같구나.”
그런 할머니를 가볍게 안아주시는 할아버지가 나지막하게 말하셨다.
지나치게 얇아진 할아버지의 팔뚝을 보던 그녀도 천장을 올려다봤다.
방금 전까지 건물을 뒤흔들던 살벌한 굉음.
그 굉음이 뚝하고 끊겨버린 지금이 마치 폭풍 전야인 듯 조용했다.
끼이이이익―
“헤엑― 헤엑― 주주혜 이 개 같은 년!”
대성전의 문이 열리며 숨을 헐떡이는 조성철이 들어왔다.
어두운 대성전 안에서도 빛나는 놈의 눈이 분노로 가득했다.
“으으으― 진짜! 진짜 넌! 으으으으으으!”
자기 혼자 발광을 하던 놈이 화를 삭히듯이 심호흡을 했다.
시뻘겋게 푸들거리는 볼살이 가라앉는 동시에 놈이 소리쳤다.
“혹시라도 지금 밖에 있는 사람 있어? 없지? 지금부터 전부 옥상으로 올라간다! 서둘러어!”
사람들을 쫓아내듯이 손짓하던 조성철이 주주혜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빨리 도망가라. 네가 여기 있으면 우린 진짜 다 죽는다고!”
“내가 도망가더라도 비겁하게 너희 수색조만 도망칠거잖아!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나보고 혼자 도망가라는 거야!”
“이, 이 고집만 센 년아! 이번엔 진짜 다르다고! 지, 진짜 미친놈이야! 올라가는 순간부터 더 이상 기회는 없다니깐!”
주주혜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으로 날뛰는 놈을 무시했다.
이미 자신이 대성전 안에 발을 들이고 이들과 함께 있는 순간부터 달리는 호랑이 등에 탄 것이다.
자신에겐 수색조와 이 대성전에 있는 30명을 모두 옮길만한 마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으으으으! 이, 일단! 일단 올라가자! 빠, 빨리 가야 돼!”
“잠깐만. 나 장로님은 두고 가면 안 돼?”
“씨발! 다 데리고 오라고 했단 말이야! 그 새끼가 알게 되면! 아, 몰라! 무조건 전부 데리고 오라고!”
조성철이 자기 할 말만 마치고 다시 옥상으로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대성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했다.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자신의 가족들의 손길을 느끼며 그녀는 무거운 책임감에 몸서리쳤다.
이젠,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로 나아가야 했다.
그녀는 쓰러진 나 장로님을 등에 업고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이익―
그녀를 선두로 대성전에 있던 일행들이 옥상을 올랐다.
다소 어두운 실내를 지나 옥상 앞에 환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눈이 감겼다.
“왔구나, 나의 자식들아.”
그녀가 옥상의 전경을 훑었다.
그녀의 바로 옆에 몸이 굳은 듯 하얗게 질려있는 수색조와 김 중사.
그리고 잔뜩 갈라지고 패인 잔디밭에 내동댕이쳐진 박영진의 시신.
그 사체 위에 오롯이 부유하는 누군가.
공중에 떠 있는 그는 햇살의 광채에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없었다.
단지, 백광을 토하는 눈빛만이 선명하게 그들을 내려다봤다.
그 광채 나는 눈빛이 깊은 우물처럼 그들을 빨아들였다.
“그대들의 기도를 들었다.”
따스한 목소리가 다치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스며들었다.
“그대들의 울음을 들었다. 안정, 희망 그리고 구원을 바라는 자들아.”
그자의 새하얀 백의가 바람에 펄럭거렸다.
공중에 떠 있는 그의 옆에 보이는 거대한 십자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한 존재로 인하여 주주혜의 눈이 일렁였다.
“아아아―”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주주혜뿐만이 아니었다.
일행들의 입은 작은 탄성을 내뱉고, 눈에는 작은 경탄을 담았다.
“누군가는 원치 않은 강압적인 관계에 절망하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미래에 떨고 있구나.”
“흐윽― 흑― 흑―”
그의 말에 서혜원이 울음과 함께 몸을 잘게 떨었다.
보이지 않는 미래….
마치 자신의 갈망을 정확히 내려다본 듯한 느낌에 주주혜의 몸 또한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지독한 아픔 속에서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겠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아, 아멘―”
작게 속삭이는 화답에 그가 작게 웃었다.
주주혜에게는 이상하게도 그것이 비웃음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하겠지.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편을 돌려대라고.”
“아, 아….”
아멘이라는 말이 끝맺기도 전에 그가 소리쳤다.
뇌성처럼 울리는 분노가 옥상을 흔들었다.
“그 어떤 비정한 자가! 감히 내 아들, 딸들을 때리고 그 이상을 요구하는가!”
끄드드드득―
하늘과 연결되듯이 솟아있던 십자가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으아아악―!
강한 힘에 뜯겨져 나온 십자가가 허공을 부유하자 비명과 고함이 빗발쳤다.
“영혼의 눈을 가리던 검은 장막을 들춰라! 더러운 귀를 씻어내고 크게 뜬 눈으로 나를 보라!”
거대한 십자가가 그들에게 내리쬐던 햇빛을 막았다.
그제야 온전한 얼굴로 그들의 위에 선 자가 소리쳤다.
“내가 그대들이 바라던 메시아가 맞는가!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자가 맞는가!”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자는 어디에 있는가! 밑바닥에서 신음하는 그대들에게 왜 손을 내밀지 않는가! 똑똑히 봐라! 나의 자식들아! 그대들의 기도를 들은 자는 누구인가!”
그가 두 손을 넓게 펼쳤다.
그 순간 주주혜의 바로 옆에 있던 수색조가 인형처럼 삐걱거리며 자신들의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으으읏! 으으으으읏! 으으읏!”
누군가 강제로 입을 막은 듯이 그들이 웅얼거리면서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위에 선 자가 그 중 김 중사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대들은 억압하고 괴롭힌 자들을 보라! 사악한 뱀의 얼굴로 그대들과 나의 만남을 막았지만, 결국 운명은 도래하였고, 결국 그대들 앞에 나는 임하였다!”
수색조가 긴 직선과 짧은 직선을 완성했다.
십자가.
인간으로 만든 십자가를 가리키며 그가 소리쳤다.
“저 뱀들과 함께 골고타에 오를 이가 남아있는가! 저들에게 정말로 용서와 이해를 나눌 위선자가 있다면!”
크그그그극―
하늘에 부유하던 거대한 십자가가 수색조가 만든 십자가 위에 정확히 맞춰졌다.
“어서 나와 뱀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워라.”
주주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듣는 모두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로 그의말을 듣고 있었다.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동조하고 있었다.
“기쁘도다! 거짓의 때를 벗긴 나의 자식들아! 그대들이 바라는 걸 나에게 말하라!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진정한 열망을 내게 기도하라!”
털썩―
땅이 무릎에 닿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처절하게 소리쳤다.
“죽여주세요! 저, 저 쓰레기같은 놈들을 제발! 제발 죽여주세요!”
서혜원의 한이 서린 울음에 주주혜의 동공이 흔들렸다.
서혜원의 눈에서 서서히 번져가는 광기가 그녀 자체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으으으으! 사, 살려줘! 살려줘, 혜원아! 내가 잘 못 했어! 나, 나는 영진이랑 다르게 진짜 식권도 줬잖아!”
“죄, 죄송합니다! 저, 저는 교주님이 시키신 심부름도 다 했잖아요오오오! 살려주세요!”
“아, 아무나 이거 좀 제발 풀어봐! 몸이 안 움직여지잖아아아아!”
봉인이 풀린 듯이 쏟아지는 수색조들의 비명을 들으며 고통받던 이들은 소름에 몸을 떨었다.
그제야 그들은 알게 되었다.
그들이 고통받으며 울며 기다리던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는 것을.
그놈들의 최후가, 정당한 권선징악이 이제는 펼쳐지리라는 것을.
“처, 천벌 받을 놈들이에요! 저 놈들은 정말로 죽어도 마땅한 놈들입니다!”
“마, 맞습니다! 죽여주세요! 제발 저놈들을 죽여주세요오옷!”
고통받았던 자들이 서혜원처럼 무릎을 꿇으며 간청했다.
살려달라는 고함과 죽여달라는 고함이 아우성쳤다.
그 광기의 현장에서 주주혜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오른 손을 가볍게 쥐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다시 없을 지옥의 난장판에서 백의의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그대들의 기도를 들었다.”
퍼어어억―!
거대한 십자가가 그대로 수색조의 전부를 압사시켰다.
사방을 비산하는 핏물과 함께 붉은 십자가에 더 붉은 피가 덧칠됐다.
“아아아아아―!”
“주, 죽었어요! 정말로 죽어버렸어요!”
사람이 죽었는데 누군가가 기뻐한다.
비명과 울음이 아니라 환희와 웃음이 가득찬 이 곳에서 죄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핏물이 초록색 잔디를 거쳐 그들에게 흘렀다.
죄악의 피가 그들에게 번지기 전에 환희하던 이들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백의의 구원자가 성자처럼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거짓된 신의 계획은 무너지고 진실된 구원이 임하였나니!”
그 티끌 하나 없는 미소를 보며 주주혜는 생각했다.
김 중사와는 차원이 다른 광기가 자신들을 덮쳤다고.
“낙원이 그대들을 기다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쓰다보니까 조금 오래 걸렸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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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주주혜 (1)
주주혜 (1) ― 인천 상공
‘도대체 스킬 레벨이 얼마나 높은 거야….’
주주혜는 30명의 인원이 안정적으로 날고 있는 광경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자신으로서는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기적이었다.
‘내게… 내게도 저런 능력이 있었다면….’
바보같이 기도나 하면서 대성전 안에 틀어박혀 있진 않았을 텐데….
허탈함에 뒤로 젖힌 고개가 하늘을 응시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던 푸른 하늘이 손에 잡힐 듯 했다.
그런 하늘을 더 신비롭게 장식하는 하얀 구름들.
정말로 오랜만에 그녀는 땅보다 하늘을 보고 있었다.
혹시 내 발소리가 좀비들에게 들리진 않았을까?
남은 탄창이 몇 개더라?
살벌한 생각으로 걷던 지옥이 아니라, 자연을 ‘감상’하던 때가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흐윽― 흑― 흑―”
하늘을 나는 순간에도 서혜원은 울음을 그치질 못 했다.
아까의 넘실거리던 광기가 모두 사라진 죄책감에 빠져있는 눈빛.
“혜원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잖아.”
“흐윽, 알아요. 아, 아는데….”
그래, 저런 모습이 자신이 알고 있던 미련할만큼 착했던 혜원이의 모습이었다.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다시 한번 그녀에게 말했다.
“죄책감 가질 필요가 전혀 없어. 저 사람은 그저 널 이용한 거야.”
그래, 정말로 나쁜 사람은 지금 이 대화를 분명히 듣고 있을 저 사람이었다.
혜원이는 단지 저 사람의 냉혹한 설계에 걸려든 것이다.
그녀의 가장 약하고 여린 면을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였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 그를 가장 정확히 표현한 단어가 떠올랐다.
사이비(似而非).
‘내가 왜 네 딸인데? 나는 우리 엄마, 아빠의 딸이야.’
함부로 구원을 논하는 나르시스트.
살인을 하는 걸 넘어 살육을 즐기는 싸이코패스.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이 휘감겨서 하나의 그림으로 번졌다.
수색조에게서 흐르는 피가 십자가를 넘어 공중을 부유하는 그 남자에게까지 번졌다.
도화지 전체를 새빨갛게 물들인 적색.
‘적 그리스도’.
목사님의 침을 분사하는 열변을 심드렁하게 듣던 자신이지만 알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적. 거짓 예언자.’
악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우, 우와아―”
일행들 사이에서 감탄이 흘렀다.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난 주주혜가 서둘러 옆에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주, 주혜야. 저것 좀 보렴.”
할머니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그녀의 눈 또한 일행과 똑같은 감탄이 스쳤다.
그들의 바로 밑에 거대한 주황색 막이 보였다.
특별한 힘이 넘실거리는 그 막은 한 눈에 봐도 무슨 목적으로 펼쳐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보호막 바깥에 있는 무수한 좀비들이 어떻게든 보호막 안을 들어서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보였다.
마치 감상할 시간이라도 주듯이 가만히 멈춰있던 일행들이 천천히 아래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깃털처럼 떨어지는 그들이 부드럽게 보호막을 통과했다.
“오오오―”
성역에 도착한 일행들의 눈이 황홀경에 젖었다.
보호막 아래 자리 잡은 성스러운 백색의 신전.
웅장함과 함께 묘하게 현대적인 색깔이 묻어나오는 세련된 건축물 밖에 보이는 생명력 넘치는 잔디밭과 나무들.
그 정결한 백색과 싱싱한 초록색의 향연에 그들이 내려앉았다.
푹신하게 그들을 반기는 잔디밭.
벤치에 앉아 이야기하던 백색 옷의 무리가 그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 좋은 오후입니다, 교주님!”
무리에 있던 한 남자의 인사에 정원 곳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웃으며 교주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네, 좋은 오후입니다. 다들 점심은 드셨습니까?”
“이런, 교주님이 안 계신데 저희가 어떻게 감히…”
“하하하, 표정에서 다 보입니다, 이경민 신도. 부교주가 제가 오기 전에는 식사가 없다고 했군요?”
“아뿔사―! 들켜버렸습니다, 여러분!”
“하하하하! 제가 눈치있게 조금 더 빨리 올 걸 그랬습니다!”
하하하하―
순식간에 그들에게서 번지는 웃음꽃.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평화로운 분위기에 주주혜는 고개를 돌렸다.
방어막 밖에서 자신들을 보며 눈을 부릅뜨고 있는 좀비들.
“끼에에에에에엑!”
탕― 탕― 탕― 그녀의 귓속에서 자동으로 들리는 환청.
지금까지 그녀를 이루던 ‘일상’과.
“하하하하― 오늘 점심이 삼겹살이던가요?”
“교주님이 서태산 형제의 얼굴을 보셨어야 합니다. 식사를 준비하는데 침이 턱에서 질질 흐르더군요.”
“하하하― 말만 들어도 바로 알겠군요.”
그들이 영위하는 ‘일상’을 번갈아 쳐다봤다.
한참동안 웃으며 대화하던 그가 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하실 새로운 가족분들이십니다. 부교주에게 식탁을 더 많이 준비하라고 말씀해주세요.”
“아아아― 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어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그와 주로 대화를 이어가던 안경 쓴 신도가 건물 안으로 달려갔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주주혜의 청력에 작은 소리들이 잡혔다.
치이이이익―
그저 듣기만 했는데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뜨거운 불판에 오른 고기와 탁탁 튀는 작은 육즙들.
하얗게 불판 위를 춤추는 고기 굽는 연기.
그녀의 상상과 동시에 건물 밖으로 하얀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그들을 향해 흘러들었다.
그 연기 안에 담긴 익숙한 냄새.
꼬르르륵―
일행 중 누군가가 낸 부끄러운 소리에 모두의 얼굴에 홍조가 일었다.
짝―!
작은 박수소리가 일행의 시선을 모았다.
그들을 이곳까지 인도한 백색의 남성이 환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낯선 공간에 낯선 사람들. 지금 여러분들을 지배하고 있을 당황스러움과 불안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까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사근사근한 목소리.
“모든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드릴 테지만 그것보다 먼저… 갑자기 이런 말이 떠오르는 군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아, 너무 뜬금없었나요?”
저 사람의 말 하나 하나가 사람들을 홀리기 위해 계산된 것들이다.
주주혜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히 느끼고 있는데도….
“자! 일단 밥부터 먹을까요?”
건물을 가리키며 선하게 웃는 그를 보며 마음이 풀어지는 그녀가 있었다.
잔뜩 경계하는 그녀가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볼 것도 없었다.
잔뜩 풀어진 얼굴로 남자의 안내에 따라 건물로 이동하는 별빛 교회 사람들.
그녀는 다짐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가족들의 팔을 꽉 붙잡았다.
치이이이익―
건물 안으로 들어갈수록 선명해지는 맛있는 소리.
환하게 빛나는 백색 복도와 중앙에 자리잡은 거대한 석상.
그 석상을 중심으로 길게 이어진 식탁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행들을 보며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짝―
“와~ 반가워요!”
“환영합니다! 모두들 환영해요!”
너무나도 살가운 환영과 함께 그들 중 일부가 일어나서 일행들을 식탁으로 안내했다.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식탁에 앉는 일행들의 눈에 보이는 불판과 그 위에 노릇하게 육즙을 흘리는 삼겹살.
그 연한 갈색이 상상하게 하는 식감에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끼이익―
어느새 상석에 앉아있던 교주가 의자를 끌며 일어섰다.
그의 양 옆에 앉아있던 다른 신도들보다 더 고급진 백의를 입은 여성과 오피스룩을 입은 여성.
그 둘이 양 손을 잡고 그를 올려다봤다.
그와 동시에 주주혜와 그의 가족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이 동시에 손을 맞잡았다.
기독교 집안인 그녀에겐 너무나도 익숙했지만 또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정말로 어떤 분이실까요?”
그가 대중을 천천히 훑었다.
“도대체 어떤 분의 성실한 기도가 부교주가 저에게 신도분들을 위해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야 한다고 바가지를 긁게 만들었을까요?”
하하하하―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동시에 울리는 웃음과 함께 그가 자신의 양 옆을 손짓했다.
“오늘은 너무나도 기쁜 날입니다. 새로운 가족분들도 오셨고, 여러분들의 한층 더 선명해진 믿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같은 축제에 부교주와 성녀도 함께 해도 괜찮겠죠?”
“물론입니다! 환영합니다!”
정원에서 봤던 안경 쓴 남자 옆에 있던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그 남자의 대답에 교주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물었다.
“삼겹살을 환영한다는 겁니까? 간부들을 환영한다는 겁니까?”
“둘 다 입니다!”
하하하하하―
또 다시 울리는 웃음과 함께 교주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자! 고기는 넘치도록 많으니 모두 부담 없이 마음껏 드십시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 많은 젓가락들이 불판을 향했다.
왁자지껄한 잡담과 함께 시작된 즐거운 식사.
“주혜야, 너도 얼른 먹어.”
“…아, 괜찮아요. 할아버지 먼저 드세요.”
하얀 쌀밥 위에 올려진 삼겹살에 살짝 웃은 주주혜가 1층의 오른쪽 구석을 응시했다.
자율배식대에 넘치도록 쌓여있는 삼겹살들.
‘포인트 상점에서 못 해도 1인분에 100 포인트는 줘야 할텐데….’
저 곳에 쌓여있는 포인트만 해도 그녀가 좀비를 죽이며 파밍했던 포인트보다 많았다.
그녀는 오피스룩을 입은 여성과 작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교주를 곁눈질했다.
‘정말로… 무슨 속셈인거지, 당신?’
작은 한 숨과 함께 그녀의 옆에서 밥만 깨작거리는 서혜원의 밥 위에 잘 구운 고기를 올려주었다.
“어, 언니 먼저 드세요….”
“아니야. 너도 부담없이 팍팍 먹어. 저 사람들이 맘껏 먹으라잖아.”
고민만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굳이 베풀어주는 선의를 무시할 이유도 없었다.
그녀는 접시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삼겹살을 불판에 올리며 집게를 들었다.
‘내가 저 괴물을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체념과 동시에 즐거운 축제가 이어졌다.
산처럼 쌓여있던 삼겹살이 점점 줄어들며 사람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배를 쓰다듬었다.
허기를 벗은 별빛 교회 사람들의 얼굴이 오랜만에 매끄럽게 빛났다.
그런 그들에게 신도복을 입은 자들이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한마음 구원교 예비신도 설문지]
“한마음 구원교….”
역시 이놈들… 전부 사이비였구나.
별빛 교회 일행들이 모두 설문지를 받자 교주 오른쪽에 있던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마음 구원교의 부교주.’
쫙 달라붙는 오피스룩에 도도하면서도 새침한 얼굴.
자신도 대학 동기들에게 카톡 잘 씹게 생겼다고 우스갯소리를 당했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저 여자가 더 그 이미지에 맞았다.
“반갑습니다. 예비 신도 여러분. 지구 상에서 유일한 좀비 안전 구역. 한마음 구원교에 도착하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신뢰감을 주는 또렷한 음성으로 그녀가 설명을 시작했다.
“무서워하실 것 없습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의 그 어떤 것도 강제로 빼앗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희는 여러분과 행복과 풍족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손에 들린 설문지를 위로 들었다.
반대쪽 손에 들린 볼펜으로 설문지의 문항을 하나씩 짚으며 말했다.
“저희 구원교에서는 여러분들에게 각자 1인 1실의 주거 공간을 배정하고자 합니다. 이에 동의하시면 동그라미 후 다음 문항을, 만약 특별히 함께 거주하고 싶은 분이 있으시다면 이름을 적어주세요. 그리고…”
특별하게 원하는 편의 시설과 음식.
씻거나 화장을 하는데 필요한 물품 등을 적는 문항이 이어진다.
전혀 사이비스럽지 않은, 너무 호구스럽기까지 한 문항들에 주주혜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 그래. 원래 사이비들은 설문조사는 다 정상적인 걸로 보여주잖아.’
그녀가 마음을 잡고 있는 와중에 그녀의 할아버지가 손을 살짝 올렸다.
식탁마다 배정되어있던 신도복을 입은 사람이 서둘러서 할아버지에게 다가왔다.
“네, 무엇이 궁금하시죠?”
안경을 쓴 이지적인 미모의 여성이었다.
“아, 그… 저희가 가족인데 말입니다.”
“네, 네.”
“가족이라도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따로 방을 쓸 수 있을까요?”
“하, 할아버지이!”
주주혜는 깜짝 놀라 소리를 크게 높혔다.
이런 사이비들의 공간에서 함께 뭉쳐도 모자랄 판에 방을 따로 쓴다니!
그러고보니 독실하시기론 둘째라면 서러우시던 분이 자신보다 더 조용한 것이 이상했다.
“허허허, 주혜야. 다 큰 처녀가 아직도 그렇게 우리랑 같이 자고 싶은거냐?”
“그,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여성 신도 몰래 허벅지를 콕콕 찔러도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 없이 웃으며 맞은편에 앉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네 할머니 손을 봐라. 그 곱던 손이…. 내가 평생 고생만 시키면서 살았어. 은퇴하면 정말로 편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라도 혼자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
두 분의 눈이 눈물로 글썽거렸다.
커다란 크루즈를 타고 할머니의 소원이던 세계 일주를 가겠다던 할아버지와 돈도 없는데 주책이라며 할아버지의 등을 때리던 할머니.
그런 그들에게 펼쳐졌던 세상은 자신들보다 먼저 떠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녀를 억압하는 목줄이 된 채로 죽지 못해 살던 나날들.
“주혜야. 우리가 여태까지 잘못 살아왔던 거야. 잘못된 신에게 빌어서 벌을 받았던 거야.”
“…….”
그녀는 처음으로 보는 할아버지의 약한 모습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분의 고통과 고뇌, 그리고 신실함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할아…”
“이해합니다. 형제님. 저 또한 잘못된 길을 확신에 차서 걸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오, 그래요?”
그녀의 말보다 안경을 쓴 여성 신도의 말이 더 빨랐다.
따스한 동질감에 할아버지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지금 제 마음속에는 티끌 한 점의 미혹도 없답니다.”
“오오오― 어떻게…?”
“교주님이 말씀하셨어요.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용기를 낸 것이라고. 모든 생각과 마음을 모두 그분에게 맡기고 그저 기도하는 것만으로 저는 완전해질 수 있었어요.”
“……기도.”
그것은 한 평생 할아버지가 해오던 것들이었다.
전혀 보답받지 못한 일평생의 노고.
그 노고가 깃든 손을 여성 신도가 부드럽게 맞잡는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죠. 형제님의 그 충만하셨던 믿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시는 것만으로 충분히 구원받으실 거예요.”
“…방향. 그렇군요, 방향이 중요했군요.”
여성 신도의 고개가 중앙으로 향했다.
상석에서 인자한 웃음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 백색의 남자.
할아버지가 몸을 돌려 그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그런 것이었군요. 자매님.”
신도와 할아버지의 웃음이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해졌다.
그 일그러진 웃음을 보며 주주혜는 알 수 없는 소름을 느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아아아아! 여러분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선작 1000 돌파라니!!!! 저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저 간악한 '북커버를 준비중입니다.'라는 문구도 제가 서둘러서 없애버리겠습니다!!!!!
수익 발생 후 일주일 뒤부터 돈을 뺄 수 있어서 아직 일러스트 작가님에게 드릴 돈을 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맡기고 싶으신 분이 주문량이 많으시면 주문창을 닫으시더라구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저 이 모든 것이 전부 사악한 사탄 마귀의 작은 방해일 뿐입니다!!! 구원을 믿는 신실함 끝에 얻은 인내의 열매는!!!! 너무나도 달 것임을 알기에!!!
돈이 맞춰지는 순간!!! 바로!!! 일러스트 외주를 맡겨서!!! 예쁜 일러스트로 여러분들을 찾아뵙겠습니다!!!
물론 그 기간이 조금 길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모두 좋은 주말 보내세요!!!!!
다음화 보기―――――――――――――――――――――
EP.51 주주혜 (2)
주주혜 (2) ― 한마음 구원교 2층
“구시대의 잔재들이 그대들에게 무엇을 해줬는가! 그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그대들의 재물을 바랬고, 지원을 바랬고, 희생을 바랬다!”
“아아아아―”
뜨겁다.
기도실을 웅장하게 채우는 저 목소리도.
그 목소리에 감응하는 자들의 눈빛도.
“새로 태어난 나의 자식들아! 이곳에서 그대들이 희생해야 했는가? 재물을 바쳤는가? 그저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대들의 믿음! 열망! 그리고 구원을 향한 순수한 갈망뿐이니라!”
“아아― 믿습니다아아!”
“맞습니다! 전부 다 맞습니다, 교주니이이임!”
대성전에 필적할만한 거대한 기도실이 신도들의 울음으로 가득 찼다.
누군가는 지난날을 후회했고, 누군가는 이제야 찾아온 구원에 안도했다.
그 광경에 주주혜는 급격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멀미라도 온 듯이 두통과 이명이 그녀를 괴롭힌다.
‘미쳤어. 저 교주도, 이곳에 있던 사람들도.’
그녀는 식은땀이 흐르는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기도실에서 어쩔 수 없이 떨어졌던 자신의 가족들을 찾아야 했다.
교주의 손짓 하나하나에 오르가즘이라도 느끼듯이 신도들이 펄럭거린다.
그 하얀 물결에 삼켜진 할아버지와 옆에 앉은 할머니가 보였다.
무력감에 아랫입술을 짓이기며 깨물었다.
떫은 쇠 맛이 몽롱해지던 정신을 일깨웠다.
“흐윽― 흑― 흑―”
자신의 옆에서 들리는 서혜원의 울음소리.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주주혜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서혜원이 두 손을 붙잡고는 간절하게 무언가를 빌고 있었다.
그 뚜렷한 진심에 주주혜는 과거의 그녀를 생각했다.
모두가 알 만큼 열렬하고 독실하시던 그녀의 부모님.
그 부모님을 거역할 수 없는 착한 딸.
설교를 들을 때마다 보이던 다소 어색한 웃음과 기도.
그때와의 확연한 괴리를 목격한 순간 주주혜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아니, 이 상황을 버틸 용기를 모두 소진해버렸다.
“거짓말하지마! 이 사이비 새끼야아아아아아!”
그녀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숨이 허락하는 한계까지 고함을 내질렀다.
“…….”
교주의 말이 끊김과 동시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하아― 하아―
주주혜의 거친 숨소리만이 울리는 적막한 기도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중앙 단상에 서있는 교주를 가리킨다.
그리고 신도들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별빛 교회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다들 정신 좀 차리세요! 저, 저 사람은 그냥 사이비일 뿐이에요! 김 중사보다 더 악독한 놈이라구요!”
“어, 언니….”
서혜원이 그녀의 손을 진정하라는 듯 살짝 흔들었다.
그제야 그녀는 흥분을 떨쳐 낸 또렷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별빛 교회 사람들이 그녀의 외침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함께 시련을 버티던, 미련하리만큼 주님을 향해 기도하던 어린 양들이….
‘장로님이라도 있으셨다면….’
저 사이비들이 극진히 보살피겠다며 데려간 나 장로님이 떠올랐다.
항상 현명하게 의견을 모아주시던 그분이 간절하게 그리웠다.
허망함과 허탈감을 이길 새도 없이 앞줄의 누군가가 일어섰다.
커다란 덩치의 신도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불신자다! 불신자가 신성한 기도를 더럽혔다!”
그의 외침이 산불처럼 기도실에 번지기 시작했다.
“부, 불신자다! 불신자가 성역에 나타났다아아!”
더러운 병균을 보듯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
처음 자신을 매도했던 신도가 성큼성큼 자신에게로 걸어왔다.
“저 더러운 불신자는 지금 당장 정화해야 합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멈추세요, 서태산 신도.”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목소리.
웅성거리던 기도실이 다시 한 번 조용해진다.
모두의 시선이 상석으로 모였다.
교주는 아주 환한 웃음으로 모두에게 말했다.
“믿음이란 아주 커다란 돌과 같습니다. 항상 들고 있기엔 너무 무겁고, 놓고 있기엔 불안하며 두렵죠.”
아니야, 하지마…
제발 그런식으로 말하지마.
“그렇기에 우리는 저 주주혜 신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무거운 돌을 깃털같이 안아든 여러분들이 대단한 것이지, 저 신도가 특별히 나약한 것이 아닙니다.”
“아아아아― 교주님―”
제발… 제발…
“모두들! 아직 영적 단단함이 채워지지 않은 저 여린 신도를 향해 비난의 화살 대신 따뜻한 말 한마디를 보냅시다! 자! 모두 주주혜 신도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교주의 말에 자신을 죽일 듯이 다가오던 서태산의 얼굴이 흐물흐물해졌다.
반죽하듯이 제 형태를 찾아가던 그의 얼굴에 소름끼치는 웃음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사랑합니다, 주주혜 자매님!”
아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주주혜 자매님!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기도실을 메아리쳤다.
기도실에 있는 모두가 자신을 보며 웃으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뒷걸음질쳤지만, 도망칠 공간이 없었다.
그녀의 세차게 떨리는 동공이 이 모든 일의 원흉으로 향했다.
모두가 자신을 보는 이 순간, 하얀 백의의 남자가 입모양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사랑합니다, 자매님.’
도망쳐야 한다. 어디든, 지금 당장.
그녀는 바로 옆에 있는 서혜원의 팔을 잡고는 서둘러 기도실의 문을 향해 뛰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묘한 사랑과 용서가 그녀를 쫓았으나, 그녀는 처절하게 무시했다.
서둘러 기도실의 문을 열고는 밖으로 나와서 문을 닫았다.
“하아― 하아―”
좀비들이 몰려올때도 이렇게 숨이 차지는 않았는데….
그녀는 거대한 백색 문에 기대어 잔뜩 놀란 폐를 달랬다.
“어, 언니…”
“아, 혜원아.”
주주혜는 잔뜩 찡그린 서혜원의 얼굴에 놀라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얼마나 손목을 강하게 쥐고 끌었던지, 붉은 손바닥 자국이 낙인처럼 새겨져있었다.
“왜, 왜 그러셨어요, 언니….”
“왜라니! 너도 방금 그 소름끼치는 광경을 봤잖니!”
주주혜는 고개 숙인 서혜원의 양 어깨를 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그녀는 두려웠다.
혜원이마저 저런 사이비들에게 놀아날까봐.
자신만이 혼자 남을까봐.
“저 사이비들을 봐! 김 중사, 그 미친 놈의 나라에서 살던 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어! 아니, 차원이 다른 미친 놈들이야!”
“…완전히 다른데요.”
“……뭐?”
서혜원의 고개가 들렸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반론했다.
“어차피 이젠 누군가의 나라에서 살아야 하잖아요. 맛있는 밥도 주고, 집도 주고, 마음의 안정까지 주는데 어떻게 김 중사 그 미친 놈과 같을 수가 있어요.”
“혜, 혜원아… 너….”
처음으로 그녀가 자신의 말에 토를 달았다.
“어, 언니 혼자 남기 싫어서 저를 이용하지 마세요. 저는 언니보다 예쁘지도 않고 날씬하지도 않아요. 무엇보다 각성자도 아니에요. 언니에겐 여러 번인 기회가 저에게는 한 번일 수도 있다구요.”
처음으로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의 팔을 서혜원이 조심스레 떼어냈다.
“전 언니처럼 강하지 못 해요. 저같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해요. 절실하게.”
굳어있는 그녀를 뒤로 한 채로 기도실의 문이 열렸다.
서혜원이 다시 기도실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가 주주혜의 앞에 섰다.
“당신이 처음이에요. 기도실 안에서 그런 난동을 피운 사람은.”
“…당신.”
한마음 구원교의 부교주.
이 미친 집단의 간부가 그녀를 무심한 눈빛으로 쓸었다.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한 건가요? 아니면 너무 제대로 한 건가요?”
“당신들… 우리를 데리고 온 목적이 뭐야?”
“이런 세상에서 당신들보다 당신들이 먹은 삼겹살이 더 귀한 걸 몰라요? 너무 자신을 과대평가하지마세요.”
잔뜩 쏘아붙이는 재수 없는 말투였지만 주주혜의 눈이 반짝였다.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들었다.
믿음과 구원같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닌, 가치에 관해 논하는 자를.
“다, 당신! 당신도 저 사이비를 진짜로 믿는 거야?”
“왜 우리 한마음 구원교가 사이비죠?”
“당연히 사이비지!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이 허무맹랑한…”
“이봐요, 주주혜 씨.”
부교주의 말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구시대의 눈으로 현재를 보지 마세요. 진짜가 가짜가 되고 가짜가 진짜가 되는 세상이에요.”
“…나에게 믿음을 강요하지 마.”
“그럼 저희에게도 불신을 강요하지 마세요.”
부교주는 주주혜의 다음 말도 기다리지 않고 복도를 걸었다.
또각― 또각―
정결하게 울리는 하이힐 소리와 함께 부교주가 그녀에게 말했다.
“따라오세요. 당신의 방이 제일 먼저 완성됐으니까.”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던 주주혜가 눈을 질끈 감고는 부교주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어색한 동행은 1층 거주 공간의 가장 바깥쪽에 도달해서야 멈췄다.
[주주혜 예비신도]
자신의 이름이 달려있는 방을 부교주가 천천히 열었다.
“들어가세요. 당분간 당신이 거주할 방이에요.”
백색 문이 열리자 정갈한 인테리어와 침대가 그녀를 반겼다.
조심스레 들어간 안 쪽에는 샤워실과 옷장등 방 안에 있어야 할 것들은 전부 구비되어 있었다.
“식사는 2시간 뒤입니다. 편안하게 쉬고 계세요.”
그 말을 끝으로 부교주가 문을 닫고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문에 걸린 백색의 신도복이 보였다.
주주혜는 그 신도복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부교주 옆에 있던 여성이 입고 있던 고급스러운 신도복.
‘알고 있었구나… 내가 누군지.’
혜원이의 말이 그녀의 뇌리에서 다시 울렸다.
‘남들이 가지지 못 한 여러 번의 기회.’
어쩌면 정말로… 내가 각성자였기에 그런 난리를 피웠어도 살아있는 걸지도 모른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푹신한 매트릭스를 한껏 느끼며 그녀는 자신이 너무나도 모순적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그 남자에게 사이비라 욕하면서도 그가 내려준 음식을 먹고 내려준 방을 대피소 삼아 숨어 있다.
정말로 이 곳에서는 내가 비정상인 걸까?
고뇌에 고뇌를 거듭하는 머리가 터질 듯이 지끈거렸다.
* * *
쿠르르르릉―
짧게 울리는 번개와 건물을 두드리는 빗소리.
“으음―”
주주혜는 작은 신음과 잠에서 깨어났다.
잔뜩 어두워진 천장이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잤는지를 가늠하게 했다.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난 그녀가 불을 켜기 위해 문쪽으로 이동했다.
탈그락―
그런 그녀의 발에 걸리는 무언가.
서둘러 불을 켜서 확인한 그곳에는 작은 밥상과 함께 누군가의 쪽지가 걸려 있었다.
[주무시길래 저녁 식사 간단하게 챙겨 놨어요. 아까 나쁘게 말해서 죄송해요 언니. -혜원이가-]
“혜원아….”
주주혜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래, 혜원이가 그럴 리가 없지.
서혜원의 쪽지를 가슴에 품은 그녀에게 애틋한 감동이 휘몰아쳤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저녁은 챙겨 드셨을까?
혜원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녀의 머리를 채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조용히 밖을 나섰다.
끼이이익―
살금살금 복도를 걷는 그녀가 미약한 달빛을 등불삼아 방 앞에 걸린 명패를 훑었다.
그녀의 방 맞은편에 나란히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방의 문 앞에 조용히 귀를 가져다댔다.
아주 일정하게 들리는 고른 숨소리.
늦은 밤이기에 당연하지만 두 분 다 숙면에 빠지신 듯했다.
[서혜원 일반신도]
서혜원의 방을 찾은 주주혜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나 혜원이가 자고 있지 않다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마음 속에 있었던 응어리를 전부 풀고 싶었다.
조용히 귀를 가져다댄 그녀의 방문 안으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똑― 똑― 똑―
“…혜원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녀의 방.
주주혜의 마음 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쿠르르르릉―
그런 그녀의 불안감을 가속시키는 벼락과 함께 주주혜가 1층 전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로비와 주거 공간 전부를 뒤지는 데도 혜원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다급한 시선이 중앙 계단으로 향했다.
‘2층 기도실!’
일단 그곳을 먼저 확인해야 했다.
탁― 탁―
낡은 운동화가 순백의 계단을 2~3칸씩 빠르게 올랐다.
익숙하게 그녀가 지나왔던 길을 되짚어 갈수록 빗소리에 더 선명해진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읏― 으으읏― 읏―”
그때처럼, 대학청년실처럼 살짝 열려있는 기도실의 문틈 사이로 혜원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혜원아―!”
왜 안 좋은 예감은 항상 틀리질 않는 걸까!
주주혜는 비명을 지르며 살짝 열린 기도실의 문을 강하게 당겼다.
창문 사이로 비치는 작은 달빛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기도실 안으로 흐른다.
기도실의 안 쪽에서 서혜원을 안고 있던 교주와 시선이 마주쳤다.
“혜원아―!”
그녀의 부름에도 서혜원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교주가 부드러운 손길로 서혜원의 뒷머리를 반복해서 쓸어내렸다.
그러더니 그녀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서혜원의 고개가 천천히 주주혜에게로 향했다.
“…아, 언니.”
“이, 이게 지금 무슨….”
“언니, 내가 써놓은 쪽지 봤어? 아까 심하게 말해서 미안해. 교주님이 그건 내가 잘못한 거래, 히힛.”
서혜원의 항상 울상이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서혜원을 안고 있는 교주의 손길이 더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서혜원의 볼과 귓불을 톡톡 건드리던 손길이 그녀의 등허리를 뱀처럼 파고들었다.
“흐으응―”
그녀는 전혀 싫은 기색 없이 오히려 달콤한 신음과 함께 더 깊숙이 교주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 사이비 새끼야!”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군요. 이건 단순히 서혜원 신도의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맞아, 우리 교주님 욕하면 안 돼, 언니.”
나른하면서도 물기에 젖어있는 목소리.
평소의 서혜원에게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질척함이 그녀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하읏― 교주님― 교주님―”
오히려 주주혜를 보란 듯이 교주의 손길이 더 과감해졌다.
하얀 신도복 안으로 들어간 그의 손이 움직일때마다 서혜원이 교주를 부르며 몸을 떨었다.
신도복의 바깥으로 형태만 보이는 손길이 뱀처럼 유영하며 그녀의 아래쪽을 애무했다.
찌걱― 찌걱―
조용한 기도실을 울리는 음란한 소리.
“흐으으응― 하앙― 교주님― 교주님―”
더 격해지는 떨림과 함께 서혜원의 상체가 점점 활처럼 휘었다.
“흐으으읏― 교, 교주니이이이임!”
달콤함을 넘어 요염하기까지한 비명과 함께 서혜원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경련했다.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는 그녀의 아랫도리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똑― 똑―
그녀의 잔뜩 젖은 팬티에서 떨어지는 음란한 분출액.
“어때요? 이제 편히 잘 수 있겠죠?”
“네, 네에에―”
“제 손을 거쳤으니 이제 혜원 신도는 전혀 더럽지 않은 거죠?”
“마, 맞아요. 저는 교주님 덕분에 깨끗해졌여어어―.”
“잘했어요. 이제 아무 걱정 말고 자러가세요.”
“네에에에―”
뚝― 뚝―
서혜원이 교주의 품에서 벗어나 천천히 문을 향해 걸었다.
그녀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작은 물웅덩이가 발자국처럼 새겨졌다.
“언니도, 잘자.”
“혜, 혜원아!”
주주혜가 문을 통과하는 서혜원의 팔을 잡았다.
“…응?”
대성전에서 쉽게 잠이 들지 못하던 그녀가 떠올랐다.
악몽으로 얼굴을 찌푸리던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만큼 편안한 얼굴.
“…괜찮으면 이 팔 좀 놔줄래? 교주님이 빨리 들어가서 자라고 하셨어.”
쿠르르르릉―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벼락이 내려친다.
그 찰나의 섬광이 다소 어두웠던 2층의 복도를 밝혔다.
하얀 빛에 번들거리는 서혜원의 촉촉한 입술.
“…아.”
순간적으로 힘이 빠진 그녀의 팔을 서혜원이 가볍게 뿌리쳤다.
그리고 흐물거리는 발걸음으로 어둠속으로 걸어갔다.
“혜, 혜원아….”
“저한테 용건이 있으신가 봅니다. ”
기도실 중앙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구원교의 교주.
그녀를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가 저 사람을 어떤 눈으로 봐야 하지?
분노? 경멸? 아니면 역겨움과 혐오?
“들어오시려면 들어오시고, 나가시려면 나가주시죠.”
기도실의 경계에 서 있던 주주혜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교주를 향해 전진했다.
끼이이이익―
뒤에서 자동으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교주의 앞에 섰다.
“단 둘이 얘기하는 것은 처음이군요. 주주혜 신도. 아니…”
그가 마지막 말을 끝맺지 않고 말꼬리를 늘렸다.
새하얀 백광을 품은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자신을 위 아래로 훑는 것이 느껴졌다.
전신을 개미가 기어다니는 듯한 역겨움을 겨우 참고 있던 주주혜를 보며 교주가 환하게 웃었다.
“…순간이동 각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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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2 주주혜 (3)
주주혜 (3) ― 한마음 구원교 2층
내 앞에서 결연한 표정을 짓는 주주혜를 꼼꼼하게 훑었다.
군살 하나 없이 길쭉길쭉한 슬렌더 타입의 몸매.
그렇게 풍만하게 느껴지지 않는 B컵 정도의 가슴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으나, 남자의 음심을 자극하는 포니테일의 미녀에게는 아주 작은 옥의 티일 뿐이었다.
‘그리고 저 정도도 대한민국에서는 나름 상위권 아닌가?’
여태까지 내가 취했던 여자들이 특별한 것이지, 그녀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그녀는 무려 순간이동을 가진 각성자였다.
아무리 성역에서 날고 기는 나에게도 어쩔 수 없는 한계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바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다.
내 염력의 공간적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고, 시간은 성역이나 밖이나 상관 없이 무심하게 흐른다.
흔히 전지전능이란 단어로 연상되는 능력이 ‘시간’과 ‘공간’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뼈아픈 사실이었다.
누구보다 절대자에 가까워야할 나에게 필요한 조각들.
그 중에서 그녀는 ‘공간’에 관련된 아주 확실한 퍼즐 조각이었다.
가챠 게임에서 상당한 정성과 공을 들여서 얻어야하는 ‘레전더리 영웅’같은 존재라는 거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예요?”
결국 길게 이어지던 기묘한 침묵을 깬 것은 그녀였다.
간신히 잡은 대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가 속사포처럼 다음 말을 이었다.
“당신이 만든 놀이터에서 신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면 진짜 신이라도 되는 줄 아세요?”
신이라….
살짝 샐쭉이는 입가에서 잔웃음이 새어나왔다.
“당신이 말하는 신이라는 건 뭔가요?”
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는 듯이 숨을 들이켰지만 내가 더 빨랐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대중을 배부르게 한 것?”
난 빵과 물고기보다 더 좋은 육류로 너희를 배부르게 했는데?
“아니면, 파도를 가르면 신인가요?”
너도 알잖아. 그 정도는 이미 나에게 식은 죽 먹기인 걸.
눈과 입이 동시에 그녀에게 사실을 주지시켰다.
그녀는 마땅한 대답을 찾듯이 눈을 굴렸다.
주주혜의 자꾸만 열렸다 닫히던 입이 가까스로 문장을 내뱉었다.
“…그건 당신의 스킬때문이잖아요.”
“오, 그런 말을 같은 각성자에게 들으니 매우 마음이 아프군요.”
나는 연극을 하듯이 가슴을 움켜쥐고 아픈 표정을 지었다.
창 밖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잊을만 하면 들려오는 천둥 소리.
달빛에 의지하는 어두운 기도실에 만난 자신보다 훨씬 강한 적.
그녀는 지금 어떤 심정으로 나를 보고 있을까?
“스킬 또한 그 사람의 일부입니다. 당신은 ‘각성자 주주혜’와 ‘인간 주주혜’를 구별할 수 있습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아시잖아요!”
“아닙니다. 그런 뜻이셨죠. 당신은! 한낱 각성자 따위가 신의 이름을 모욕했어요!”
얇은 목소리로 주주혜를 흉내냈다.
과장스럽게 여리여리한 목소리가 기도실을 웅웅거리며 울렸다.
나는 두 팔을 벌리며 그녀를 내려다봤다.
연설하듯이, 연극을 하듯이.
그녀는 상대 배우가 아니라 그저 내 말을 듣는 관객일 뿐이다.
“미천한 각성자가 주주혜에게 묻습니다.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음… 마굿간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
마지막 말에 그녀의 눈빛이 가늘어진다.
그 눈빛을 담담히 받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신을 생각할때 항상 전지전능함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추앙받는 신들 중에 전지전능을 뽐내는 신은 없습니다.”
언제나 세상은 그들의 말대로 흘러가지 않았으니까.
“악한 자가 있었고, 살인이 있었고, 전쟁이 있었죠.”
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다행했다.
하지만 그 작은 원들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교집합은 존재했다.
‘행복’.
“유구한 시간이 흘러도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은 오지 않았어요. 오히려 믿음은 점점 사그라들었죠. 그럴때마다 누군가는 말했죠. 인간에게 원죄가 있다는 둥, 해탈하지 못했다는 둥….”
그게 왜 지금 우리의 잘못이지?
왜 참는 것만이, 인내하는 것만이 도리어 자유로워지는 길이라는 거야?
인간은 애초에 그런 식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인간은 언제나 가지지 못한 것을 탐냈고, 오르지 못한 곳을 오르고 싶어했어요.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하고 발전하게 한 원동력이죠. 행복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나는 주먹을 쥐고 주주혜 앞에서 흔들었다.
마치 그 주먹이 ‘행복’이라도 되는 양.
주먹을 바라보는 주주혜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행복을 가지지 못한 자는 작은 행복을! 작은 행복을 가진 자는 더 큰 행복을! 그리고 그것의 일환으로 인간들은 신에게 대리했던 겁니다. 행복의 생산을 말이죠! 자신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바쳐서! 하지만 그들이 응답했습니까!”
점점 커져가는 내 목소리에 비례하여 가슴이 뜨거워진다.
마나가 반응하며 전신에 하얀 빛무리를 토해냈다.
빛이 감싼 손가락이 위를 가리킨다, 성역 전체를 가리켰다.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이 시대에서 이 성역 안에서만큼은 모두가 행복합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오직! 당신 뿐이죠.”
오직 주주혜, 너만이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았다.
순종하고 복종하지 않았기에, 너의 마음에 더러운 불신이 자리잡은 것이다.
“이해합니다. 당신은 구시대의 잔재에게 지속적인 세뇌를 당한 것뿐입니다. 그저 축적된 기록과 기나긴 시간이 그들을 신으로 모방케했죠. 하지만 눈을 뜨고 잘 보세요.”
그녀에게 내가 물었었지,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지금 저에게 부족한 것도 오직 그것들 뿐입니다.”
나의 당당한 선언에 주주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확 숙인 고개와 있는 힘껏 들이키는 숨결.
오후에 기도실에서 소리쳤던 장면과 똑같은 전조.
내 이야기를 버틸 인내심과 용기가 바닥이 났다는 거겠지.
“그 분에게는 인간의 죄를 짊어지겠다는 거룩한 뜻이 있었어요! 당신은! 당신의 행동은 그저, 저열한 음욕을 위한 자기만족일 뿐이잖아아아아아!”
하아― 하아―
무언가에 쫓기듯이 거칠어지는 숨소리에 일부러 더 느긋하고 천천히 반론했다.
이 건방진 계집의 한계가 거의 다가오고 있었다.
“자기만족이라, 이 세상에서 대가 없는 행동이 어딨겠습니까? 제 선행과 구원에도 당연히 제 작은 자기 만족이 들어간 거죠. 자기 만족이 뒤따르는 선행이 반드시 나쁜겁니까?”
그녀는 답하지 못했다.
점점 코너에 몰려가는 그녀를 [결핍 파악]이 훑었다.
[99% : 가족들이 행복한 미래]
[01% : 구원교 교주가 가진 능력]
순간이동이라는 사기급 스킬을 가진 그녀의 마음 속에 숨겨진 아주 작은 결핍.
별빛 교회 사람들을 옮기는 순간에 그녀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생각났다.
순수한 부러움과 질투.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처벌하고 이동시키는 힘.
그에 반에 그녀가 가진 힘은….
너무나도 수동적이었다.
그 간극이 그녀는 너무나도 괴롭겠지.
“남들은 날게 하지만 정작 자신은 날지 못하는 새.”
나지막한 음성에 그녀의 몸이 움찔거렸다.
“부러웠구나? 스스로 날아다니는 내가, 누군가를 처벌하는 내가.”
아주 넓은 호수에 채일 듯이 많은 돌덩어리들.
그 중 단 하나의 검은 돌.
하지만 그녀는 알까?
너무나도 눈에 띄이는 검은색이 곧 호수 전체를 요동치게할 파문을 일으킨다는 것을.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05% : 구원교 교주가 가진 능력]
[20% : 구원교 교주가 가진 능력]
[50% : 구원교 교주가 가진 능력]
파문이 호수 전체로 번진다.
소중한 보물을 어루만지듯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고운 콧잔등과 그녀의 눈썹을 가볍게 쓸어넘겼다.
“너는 자신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단다. 너는 새가 아니야. 넌 나의 자식들을 모아줄 양치기란다.”
손가락이 그녀의 말랑말랑한 입술을 스치며 조용히 입안으로 들어갔다.
축축한 입안을 유영하며 그녀의 동공 전체에 나를 담았다.
“내가 너를 완성시키는 열쇠야.”
“…아.”
그녀의 입을 유영하던 손가락이 분홍색 혀를 살포시 집었다.
그리고 천천히 나에게로 잡아 당겼다.
촉촉한 입술을 뚫고나온 순홍색 혀가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흐, 흐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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