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ão 8
직자만 아니었다면 노예로 한두마리 정도 샀을텐데.
"엘시는 다른 수인 노예들을 지키고자 하기 때문에 제가 떠나라고 해도 안떠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 노예들도 제가 전부 사서 해방하겠습니다. 어차피 엘시를 써먹으려고 놔둔다면 밥만 축내는 존재들 아닙니까?"
수인들은 강하고 조건 부로 말을 잘듣는 대신 위험성도 가격도 높아서 생각보다 수요가 많진 않았다. 노예 사냥꾼들이 평범한 인어 정도는 쉽게 사냥하지만 수인들한테 똑같은 방식으로 대했다가 저승가는 경우도 빈번했다. 수인이 노예로 끌려오는 경우는 두가지였다. 전쟁에서 졌거나 빡대가리라서 속았거나.
내 기억으로 엘시는 패전 노예였다.
에버딘 영주는 내가 수인들을 전부 해방해주겠다는 말에 놀란 모양이었다. 우리는 벌써 인간 노예 시장의 통로에 접어들어가고 있었다. 그곳은 애완동물 가게를 크게 부풀린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길의 양옆으로 철창에 갇힌 인간들이 우리를 보면서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노예들은 이곳의 주인인 에버딘 영주를 잘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놀랍군요."
에버딘 영주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철창들을 둘러보다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 들어있는 철창을 발견했다. 자매가 서로 껴안은 채 오들오들 떨고있었다. 그녀들은 나를 쳐다본 채 증오에 가득찬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누구지? 누구길래 나를 이딴식으로 쳐다보는 거지?
"아, 얼마전에 창관에서 쫓겨난 노예들입니다. 말도 못하고, 손발에 힘줄도 잘려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죠. 해방하시더라도 자기들끼리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안타깝네요. 누가 그런 잔인한 짓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그 말에 갑자기 두 자매가 발작을 일으키며 내게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미친년들이 분명한 것 같아서 나는 빠르게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참 불쌍한 사람들이군요."
"죄송합니다. 사제장. 제가 나중에 교육을 따로 시키도록 하죠."
에버딘 영주는 내게 그 자매를 아주 확실하게 교육할 것을 약속했다. 나는 그 자매가 혹독한 교육을 받고 무사히 살아남길 기원했다. 내게 비명을 지른 정도로 죽으면 좀 미안하니까. 살다보면 반드시 볕들날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분명히 그녀들도 새로운 삶을 찾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 철창들을 지나서 인간 노예 철창과 수인 노예 철창에 중간 지점에 도달했다. 그곳엔 엘시가 서있었다. 엘시. 그녀는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와 꾹 다문 입술, 그리고 배를 훤히 드러낸 핫팬츠 차림으로 우리를 맞이 했다. 단단한 복근과 구릿빛 피부, 그리고 쫑긋거리는 고양이 귀와 짧게 단발로 친 흑발.
그야말로 꼴릿하게 생긴 고양이 도적의 전형이었다. 나는 엘시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엘시
종족: 마림바 부족 고양이 수인
레벨: 30
힘 : 56
민첩 : 96
지능: 3
행운 : 18
특성
날카로운 발톱
갑옷을 입지 않은 상대에게 가하는 공격은
전부 치명타가 됩니다.
평야의 지배자
초원에서 이동속도가 두배로 올라갑니다.
칼부림
상대하는 적의 숫자 X 10% 만큼 스텟이 상승합니다.
적을 죽이거나, 적이 추가되어도
전투가 진행중이라면 스택이 누적됩니다.
"엘시. 너에게 손님이다."
"손님? 난 모른다. 난 인간 손님 같은 거 없다."
나는 일단 에버딘 영주에게 자리를 비워줄 것을 요청했다. 저정도 스텟이면 내가 못이길 수준은 아니었다. 칼부림은 내 쪽 쪽수가 많을 때나 쓸모있는 스텟이지, 이런 상황에선 내가 엘시를 일방적으로 줘팰 수 있었다.
에버딘 영주가 말했다.
"그럼 적당히 이야기하고 나오십시오. 엘시. 귀한 손님이니까 다치지 않게 주의해라."
"나도 보면 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나보다 강하다. 너처럼."
나는 생각난 김에 에버딘 영주의 스텟을 확인했다.
이름: 에버딘 마크
직업: 에버딘 영지의 영주
레벨: 38
힘: 110
민첩: 34
지능: 40
행운: 24
특성
중장기병
말타고 돌격할 때 200%의 추가 데미지를 줍니다.
노예 사냥꾼
상대를 공격했을 때 사망하지 않고 기절할 확률이 늘어납니다.
살육자
전투가 지속될수록 스텟이 상승합니다. 최대 50% 스텟이 상승합니다.
생각보다 존나 쌨다. 역시 저 정도는 되어야 수인들 상대로 무쌍을 찍는건가. 내가 감탄하면서 에버딘 영주의 등판을 바라보고 있자 엘시가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무뚝뚝하고 감정이 절제된 목소리였다.
"그래서 성직자. 용건이 뭐냐. 난 당신 같은 사람 모른다."
나는 일단 아모리가 가지고 있던 하트 목걸이를 꺼내보여줬다. 엘시는 그 목걸이를 보자 매우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되물었다.
"사랑교의 목걸이는 내게 왜 보여주지."
"사랑교?"
"모르나? 성직자라면 알 줄 알았는데, 노예 해방을 부르짖는 종교다. 우리 같은 수인들을 노예사냥꾼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주거나 자기네 신도로 삼는다."
"그런 종교가 있었다구요?"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이 동부 지방에서만 유명한 종교인듯 했다. 대천신교는 기본적으로 다른 종교활동에 크게 간섭 안했기 때문에 지방마다 이런 소규모 종교단체가 하나씩은 있었다.
"그래. 그런 종교가 있다. 그 목걸이가 궁금한거라면 이제 설명은 됐나? 난 다시 일이나 하겠다. 성직자."
"당신은 왜 사랑교에 가입 안했죠?"
"에버딘 영지에는 사랑교가 들어오지 못한다."
하기야 동부 최대의 노예 시장을 가진 영지에서 그딴 걸 허용할 리 없었다. 대충 들어보니까 나처럼 노예를 사서 해방하는 거 같지도 않았고. 나는 에버딘 영주에게 목걸이를 보여주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목걸이는 당신의 어머니가 들고있던 거에요."
"내 엄마?"
엘시는 엄마라는 말에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인들은 가족애와 동지애가 매우 끈끈하다. 가족이란 말에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킬수밖에 없었다. 나는 말했다.
"이름이 아모리. 라고 하던데....."
"엄마는 어떻게 됐지? 사랑교에 들어간건가? 너는 사랑교의 성직자가 아닌데 어떻게 우리 엄마를 알지? 혹시 너는 사랑교의....."
"당신의 어머니는 죽었습니다."
그 말에 엘시가 입을 다물었다. 입을 우물거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을 참으려는 듯 애쓰던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을 했다. 내 앞에서 울기는 싫었던 모양이었다. 한참동안 그렇게 어깨를 떨며 감정을 추스리던 그녀가 말했다.
"어쩌다가 죽었지."
"제 영지로 도망쳐 온 것을 제가 발견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아모리를 살려보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죠. 아모리는 제게 당신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나를. 부탁해?"
엘시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을 해방하러 왔습니다. 아모리."
"혼자 갈수는 없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신경쓰는 아이들..... 그러니까 같은 부족 친구들이 3명 있다고 하던데, 그 친구들도 전부 해방시켜 줄겁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주지?"
엘시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엘시를 따먹기 위해.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순 없었으니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어머니와 약속했으니까요."
"우리 엄마와..... 알았다."
엘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거래는 성립이었다. 기본적으로 대천신교의 성직자는 노예를 매매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동부 대천신교의 사제장을 불러서 이에 대해 인가를 받아내야 했다. 사제장은 내가 '해방' 목적으로 노예를 구입하려 한다고 하자. 구입하는 그 자리에 자신이 동석하고 즉석에서 노예 매매문서를 불태우는 조건으로 매매를 허가했다.
그렇게 에버딘 영주와 동부 사제장이 공증인으로 참석한 가운데, 나는 내 영지에서 대금을 치루는 조건으로 엘시를 비롯한 수인 노예 4명을 구입할 수 있었다. 물론 노예 문서는 구입 즉시 폐기됐으며 에버딘 영주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엘시는 자신의 목에 채워졌던 족쇄와 사슬이 벗겨지자 어색한 듯 했다. 그녀는 목 주위를 매만지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하지만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아주 기분 좋아보였다.
"이상하다."
에버딘 영주가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영지 주변으로 쳐들어오지 마라."
"사냥하려면 어쩔 수 없다."
"너희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면 영지로 들짐승들이 몰려온단 말이다. 그리고 인간들의 땅을 너희 영역이라 우기지 마라."
"인간들은 강하다. 멧돼지도 못이길리 없다. 그리고 그 땅은 우리 땅이다."
에버딘 영주는 고개를 젓다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루시우스 사제장. 만일 여기 엘시나 다른 수인들이 동부 평야에서 우리와 싸우다가 노예로 잡힌다면, 그 때는 해방해주지 않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난 분명히 약속대로 풀어줬으니까. 동부 평야 지대의 수인과 인간의 갈등은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서로 공존하자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엘시. 그럼 이대로 동부 평야로 돌아갈건가요?"
"모르겠다."
엘시는 에버딘 영주에겐 말을 강하게 했지만 아직 여러모로 고민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갈등하고 있자 그녀가 지켜주던 수인 중 하나가 소리쳤다.
"엘시 누나는 우리랑 같이 다시 평야로 간다! 우린 마림바 부족이니까!"
이제 20대 초반 쯤 됐을까?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청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게이 만화에 등장하는 동물 귀 코스프레 남자를 보는 것 같아서 정말 불쾌하게 생겼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로이. 조용히한다."
엘시가 로이의 입을 다물게 했다. 로이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나와 엘시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로이는 아주 불만이 가득해보였다. 나는 엘시에게 제안했다.
"당신은 부족에 대한 소속감은 없는건가요?"
"모르겠다. 나는 이미 졌고, 패배한 전사는 마림바 부족에 어울리지 않는다. 솔직히 무슨 낯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다 같이 돌아가면 부족장도 기뻐해줄거다! 엘시! 돌아가자!"
로이는 다급한 어조로 엘시에게 외쳤다. 그는 엘시가 나를 따라 가는 걸 경계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가 소리를 지를 때 마다 귀가 아파서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로이의 외침을 무시하고 엘시에게 제안했다.
"엘시. 그럼 우리 영지로 오지 않겠어요? 물론 선택은 자유에요. 이대로 평야 지대로 돌아가도 좋지만, 당신이 우리 영지로 와준다면 참 좋겠어요. 당신을 노예로 삼지도 않을 것이고 숙식도 제공하죠. 당신 어머니의 무덤도 제 영지에 있거든요."
"엘시! 인간을 믿으면 안된다! 마림바 부족으로 가자!"
로이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젊은 나이답게 목소리에 치기가 어려 있어서 매우 듣기 싫었다. 떼쓰는 톤으로 말하는 고양이 귀 남자를 본 적 있는가? 내가 본 바 매우 불쾌한 광경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엘시도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로이. 자꾸 귀찮게 소음을 넣는다. 좀 짜증나니까 조용히 한다. 성직자. 여기 다른 수인들도 가도 좋은가?"
"상관없습니다. 제가 신분을 보장해주죠."
"너희들은 어떤가.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내 엄마의 무덤도 이 성직자의 영지에 있으니 그 곳으로 가고싶다. 너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도 말리지 않을 것이고, 나를 따라와도 괜찮을 것 같다."
다른 수인들은 전부 고향으로 가고 싶은 눈치였다. 엘시는 조금 아쉬운 듯 했다. 아직 로이는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노려보더니 엘시에게 말했다.
"나도! 나도 간다!"
"괜찮은가? 로이. 너 고향에 가고 싶어 했다."
"엘시 누나는 내가 지켜야 한다!"
"누가 누구를 지킨다는 건지 모르겠다."
엘시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퀴어 페스티벌 참가자 같이 생긴 놈이 내 영지에 들어오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나는 자신 있었으니까. 대충 봐도 로이는 나보다 약했고, 생긴것도 게이같이 생겼으며 억지나 부리는 비호감 남캐였다.
하프 엘프 금발 거근 영주의 손에서 사랑하는 누나가 농락당하는 걸 지켜나 보라구. NTR은 나쁘지만 NTL은 취향인 법이니까.
영지 복귀는 아주 순조로웠다. 어디 출장갈 때 아무 일도 없이 돌아오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나는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화에 몸을 맡겼다. 일이 뜻대로 마무리되면 사는 게 즐거운 법이니까.
"성직자. 우리는 가면 무슨 일을 하지?"
"글쎄요. 일단 가서 생각해봐야죠."
"엄마의 무덤은 어디에 있나. 기왕이면 그 근처에서 지내고 싶다."
"좋은 생각이에요. 아모리도 그 말에 기뻐하겠군요."
"성직자. 우리 엄마랑 친했나?"
"네?"
"왜 자꾸 우리 엄마를 이름으로 부르지?"
엘시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로이도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지금 한 마차 안에 같이 타고 있었다. 마차의 움직임에 따라서 엘시와 로이의 귀와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였다. 나는 그 움직임에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글쎄요. 저는 나름대로 친근감을 느꼈지만, 아모리 입장에선 어땠을지 모르겠네요. 우리는 아시다시피 만난지 얼마되지 않았었고, 제 미숙함으로 인해 아모리는 죽고 말았죠."
원작에서 엘시의 부모가 누구인지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엘시는 가족이나 동지들을 매우 아끼는 캐릭터이며, 원작 퀘스트에서도 영주가 인질로 삼은 3명의 수인들을 전부 구입해서 해방하거나 탈출시켜주지 않으면 동료로 들어오지 않았다.
수인들을 전부 해방해주면, 부족에겐 패배한 전사는 필요없다며 동료로 들어온다. 지금처럼 로이라는 남정네가 끼어드는 일은 없었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모리가 나타나는 건 예상 외의 사건이었다. 어찌보면 아모리가 죽은게 내게 잘된 것일수도 있었다. 로이와 엘시의 관계에선 엘시에게 주도권이 있으므로 그가 떠난다고 엘시를 보채더라도 설득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아모리는 엘시의 엄마였다. 그녀가 갑자기 바람이 들어서 어딘가로 떠나자고 하거나, 부족에 한 번 가보자고 말하면 엘시는 그대로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수인들은 단순해서 이런 점에서 믿을 만 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성격이 매우 평화롭다고 알려진 인어 중 최고의 싸이코 둘을 만난 이후로 이런 종족적 편견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아모리가 살아있다면 언제든지 엘시를 떠나게 만들 수 있으며 나를 귀찮게 할수도 있다. 하지만 아모리가 무덤에 있다면 엘시는 무덤을 지키느라 영지를 떠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아모리가 어떻게 죽었는 지는 나 밖에 모르니까. 내가 엘시를 잘 보살펴주면 하늘에 있는 아모리도 나를 굽어 살펴주지 않을까?
"다 왔네요."
멀리 우리 영지로 향하는 경계 사무소가 보였다. 경비병은 내가 수인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에 놀란 것 같았다. 나는 놀라는 경비병에게 인사를 한 번 해주고 다시 마차를 몰게끔 했다. 저택에 닿을 때까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수인들을 보고 놀라는 기색이 만연했다.
이 지역에서 수인은 보통 노예로만 만날 수 있는데 내가 사제장이다 보니 우리 영지에는 노예가 없었다. 노예가 없다보니 노예들 중에서도 보기 힘든 수인을 볼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웅성대는 군중들 저 편에서 이브와 시에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이브는 다리를 살짝 비틀거리면서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택에서 이제 영주 대리의 역할을 나름대로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던 이브는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저택에서 뛰어내린 듯 했다. 왜냐면 옆에서 시에리가 이브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이브 씨. 아무리 그래도, 저택 2층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리시면 안돼요. 그러다 다치시면....."
"아니....뭐....난 안다치는데......"
이브도 시에리에게 욕을 박을 순 없었는 지 뻘쭘한 표정으로 시선만 돌리고 있었다. 나는 마차 창문 너머로 그런 둘의 만담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셀루가 수영장 너머에서 얼굴만 쏙 내밀고 나를 쳐다본 뒤 손을 흔들었다.
"뭐지. 여기."
엘시가 창문 너머로 저택 풍경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내게 물었다. 인어랑 인간이 같이 다니고 있으니 저택의 풍경이 묘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그녀는 한참동안 저택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내게 물었다.
"엄마의 무덤은 어딨나."
"안내해드리세요. 로빈."
나는 마침 나를 맞이하러 나온 로빈에게 엘시와 로이를 맡겼다. 아모리의 무덤은 저택 바깥에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죽은 사람 무덤을 저택 안에 놓는 건 좀 그랬으니까. 그러다가 귀신이라도 붙으면 무섭잖아.
로빈은 마차 안에서 수인족이 튀어나오자 매우 신기한 모양이었다. 내가 노예를 안데리고 다니는 대천신교 사제장이다 보니 이 영지에서 이종족 보기란 아주 힘든 일이었다.
로빈은 어색한 얼굴로 엘시와 로이를 안내하기 위해 데리고 사라졌고, 수인족 둘이 사라지자마자 이브가 내게 물었다.
"뭐야 저것들? 뭐 수인 딸을 데려온다고 하더니, 하나는 네가 그....뭐 한다고 치고. 나머지 남정네 하나는 뭐냐? 씨발 너 그딴 취향도 있었냐?"
"씨발 뭐?"
이브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나도 이브를 질색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대꾸했다. 셀루가 물었다.
"저번에 데려왔던 그 수인이랑 관계있어?"
"네. 그 수인 딸이에요."
"헤흐.... 재밌네."
셀루는 머리가 잘돌아가는 편이었다. 엘시 앞에서 아모리로 빨래를 했다던가 내가 아모리를 죽였다던가 같은 귀찮은 이야기를 할 타입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따로 이 점에 대해 당부하지 않았다.
시에리는 수인까지 저택에 데려오자 좀 당황한 듯 했다. 인어로 끝이라고 생각한게 분명한 듯 입을 우물거리며 할말을 찾고 있었다. 나는 시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충 넘어갔다. 앞으로 몇명이나 더 데려오냐는 등의 귀찮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물어보면 대답할 말이 없었다.
한신이 유방에게 말했듯 이런 문제는 다다익선이니까.
엘시의 거처는 무덤 근처에 있는 빈 집으로 정해졌다. 애초에 엘시를 그곳에 넣을 생각으로 무덤을 그쪽에 둔 것이었다. 로이는 엘시와 같이 살고 싶다고 했지만, 엘시는 언제부터 우리가 같이 사는 식구였냐고 매몰차게 거절했다.
생각보다 존나 철벽이었다. 게임에서 용사에겐 나름대로 오픈 마인드였던 것 같았는데 다른 남자에게 가차없었다. 거처가 정해진 뒤 엘시와 로이는 다시 내 저택으로 돌아왔다. 엘시는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셀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수영하고 싶으세요?"
"아니. 저 인어는 노예인가?"
"자유민입니다. 이야기는 좀 복잡하니 다음에 해드릴게요."
해적섬에서 부터 사면받고 재판받은 이야기까지 다 하자면 끝이 없었다. 엘시는 내가 셀루를 자유민이라고 하자 살짝 감탄한 눈치였다. 알게모르게 그녀의 호감도가 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헛기침을 해서 화제를 끊고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엘시 당신과. 로이. 두 사람의 일을 배분해드리겠어요. 로이. 당신은 농사 지어본 적 있나요?"
"농사? 지어본 적 없다."
이름: 로이
종족: 마림바 부족 고양이 수인
레벨: 13
스텟
힘: 18
민첩 : 43
지능: 2
행운: 0
인간이라면 평균 기준 높은 스텟이었지만, 수인치고는 매우 병신같은 스텟이었다. 병사로 쓴다면 우리 병사중에 에이스가 되겠지만, 부관이나 기사로 쓰기엔 모자랐다. 인간은 기본적인 평균치가 낮은 대신, 수련을 마친 기사나 네임드들의 스텟은 정말 끝도없이 올라갔으니까.
이 수인이 기사나 경비대장의 통제에 잘 따라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농사나 시키기로 했다.
"당신에게 농사일을 좀 가르치려고 하거든요."
"싫다!"
로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엘시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엘시 앞에서 농사나 지으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럼 어떤 일을 원하나요?"
"전사! 싸우는 일을 원한다! 성직자. 나한테 전사같은 일을 준다!"
"당신에게 기사같은 직급을 달라는 이야기인가요?"
"그렇다!"
개소리다. 수인을 기사로 삼은 전례도 없었고, 내 영지 기사들의 반발이 이만저만 아닐터였다. 애초에 로이는 기사가 되기에는 너무 허약했다. 나는 로빈을 불렀다.
"로빈!"
로빈이 한쪽에서 기사들과 잡담을 하고 있다가 내 부름에 달려왔다. 로빈은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완전 무장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로이는 이미 로빈을 한 번 만나본 상태라 기죽거나 낯설어하는 기색은 없었다.
"당신이 로빈을 이긴다면, 일단 병사 생활부터 시작하는 걸 고려해보죠."
"병사? 나는 바로 전사가 될 자격이 있다!"
"로빈. 상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로빈이 허리를 피고 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로이가 그 모습을 보고 따졌다.
"인간 전사. 왜 무기를 뽑지 않는다?"
"뽑으면 네가 죽기 때문이란다."
로빈은 아주 친절한 어투로 그렇게 말한 뒤 온 몸에 힘을 주었다. 그냥 월급 받아먹는 것에 만족하는 무기력한 샐러리맨 같은 얼굴에 짐승같은 안광이 번뜩였다. 그리고 축 늘어져있던 전신에 힘이 빡 들어가더니 근육이 갑옷을 터뜨릴듯이 부풀어 올랐다.
로빈이 눈을 빛내며 기합성을 내질렀다.
"으랴아아아!"
"으, 아아..."
로이가 그 모습에 위축되어 뒷걸음질을 쳤다. 그모습에 엘시가 호통을 쳤다.
"로이! 전사가 되고싶다면서 왜 도망가나!"
"이, 이익....으....!"
로이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로빈을 노려보았다. 아니, 노려보려고 했다. 로이가 한 눈을 판 사이, 로빈은 어느새 로이의 시야 사각으로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로이는 로빈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하지만 로이가 로빈을 찾는 것보다, 로빈의 주먹이 로이의 배에 한 방 먹이는 것이 더 빨랐다.
팡!
공기터지는 소리와 함께 로이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커흑!"
로이는 허공으로 날아서 몇바퀴 구르고 바닥에 널부러졌다. 엘시는 그런 로이를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엘시가 로이에게 말했다.
"너는 아직 전사가 될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지켜준다."
"흐흑.....흑....."
로이가 그 말을 듣고 흐느끼는 것인지 신음을 흘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로빈은 손을 털며 내게 말했다.
"기사나 병사로 쓸만한 재목은 아닙니다."
"그렇군요. 고생했어요."
역시 우리 로빈. 기사단장은 노름으로 딴게 아니었다. 로빈은 다시 칼을 집어들고 기사들에게로 돌아갔다. 기사들이 로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고, 로빈이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나는 엘시를 쳐다봤다. 엘시가 물었다.
"나는 저런 시험을 보지 않나?"
"시험, 보시겠어요? 그럼 다시 로빈을....."
"아니."
엘시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너에게 시험 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될 것도 없었다.
"괜찮으시겠어요?"
"문제없다. 혹시 성직자. 너에게 문제가 있다면 안싸운다."
"저는 문제가 없죠."
나는 메이스를 꺼내들었다. 엘시는 강하다. 괜히 맨손으로 싸운다고 깝치다가 병신같이 지면 얼굴을 들고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성검은 너무 위험하니까 꺼낼 수 없었고 메이스 정도가 적당했다. 엘시가 말했다.
"잘 부탁한다. 내 실력 잘 봐줬으면 한다."
기사들과 대화 중이던 로빈이 급히 달려와서 안절부절못하는 발걸음 탭댄스를 선보이며 내게 말했다.
"영주님. 제가 싸우겠습니다. 시험보는 것 정도는....."
"아니요. 저를 지명했잖아요. 제가 맞서 싸워줘야 맞죠."
나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로빈은 그 웃음도 무서운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내가 다치는 건 기사단장으로서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겠지. 로빈의 이 기특한 충성심은 내가 로빈을 아끼는 이유 중 하나였다.
"괜찮아요. 로빈."
나는 로빈을 안심시키고 메이스를 들어올렸다. 엘시는 그에 맞춰 허리를 살짝 비틀더니, 한 발을 뒤로 빼고 허리를 숙였다. 내가 말했다.
"그럼 시작하죠."
그 말과 동시에 엘시가 바닥을 박차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번개같은 속도로 내 사각을 선점한 엘시가 손톱을 세워서 내게 크게 휘둘러왔다. 하얀 궤적이 아슬아슬하게 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급하게 몸을 돌린 나는 메이스를 고쳐쥐고 엘시에게 휘둘렀다.
엘시는 공중에 떠오른 상태로 급하게 몸을 돌렸다. 팽이처럼 핑그르르 회전하여 아슬아슬하게 내 메이스를 피해냈다. 내가 다시 고개를 돌리면 엘시는 바닥에 손을 짚은 채 납작 엎드려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손톱을 세운 채 내게 달려들었다. 매우 직선적인 공격. 나는 정면에서 막기 위해 가드를 세웠고, 그 순간 똑바로 달려오던 엘시가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사라졌다.
다시 한 번 엘시는 내 사각을 노렸다. 나는 이번 일격을 피하긴 힘들다고 판단해서 메이스로 맞부딪혔다. 철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며 엘시가 튕겨나갔다. 볼링공을 메이스로 쳐낸 듯한 뻐근함이 느껴졌다.
엘시는 손을 털어내며 손톱의 상태를 확인했다. 메이스에 직격으로 맞아도 안부서지는 손톱이라니. 나는 수인들의 내구성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서지지 않은 건 손톱일 뿐, 엘시는 방금 전 일격으로 꽤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엘시는 조금 뒤로 물러나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메이스를 내리고 말했다.
"그만."
"성직자. 왜 그만한다?"
"당신이 더 싸울 수 없으니까요. 실력을 보는 건 이 정도로 충분해요."
잠시 자신의 손으로 바닥을 살살 긁어보던 엘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찌푸렸다.
"분하지만 성직자 말이 옳다. 이 상태로 더 싸우긴 힘들다. 몽둥이에 얻어맞아서 충격이 심하다. 인정하겠다. 내가 졌다."
"대단한 실력이네요. 엘시. 솔직히 조금 놀랐어요."
나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스텟에 비해서 정말 대단한 전투실력인건 확실했다. 엘시가 물었다.
"그럼 나도 전사가 될 수 있는건가?"
"미안하지만, 수인을 기사로 서임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저라도 엘시 당신을 기사단에 넣어줄수는 없어요."
참고로 기사단원을 영주가 따먹은 전례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엘시를 기사단에 넣고싶지 않았다. 얼마전에 이브를 영주 부인으로 삼았는데, 이번에 기사단원으로 수인을 넣는다면 영지 이미지가 아주 작살이 날 것 같아서 사리는 것도 있었다.
"그런가. 그럼 난 병사로 들어가나?"
이런 인재를 병사로 넣는 것도 아쉬웠다. 수인종은 자기보다 약한 놈의 말은 잘 듣지 않는다. 엘시 정도면 지금 우리 영지의 어지간한 기사들보다도 강했다. 나는 말했다.
"그래서 엘시 당신은 제 개인 호위병으로 쓸까하는 데. 어떤가요?"
"호위병? 노예 시장에서 하던 그런 건가?"
"네. 비슷한거죠. 대신 당신이 이 역할을 안한다고 해서 제가 뭐 이상한 짓을 하거나, 영지에서 쫒아내진 않을거에요. 싫다면 거절해도 됩니다. 그냥 농사를 지으셔도 상관은 없지만, 일단 제가 당신을 기사로 서임하려면, 여러모로 고려해야할게 많아서요. 제가 그냥 성직자가 아니라 영주기 때문에....."
내가 말끝을 흐렸다. 엘시는 딱히 불쾌한 기색이 아니었다.
"이해한다. 인간들은 우리를 싫어한다. 네가 어떤 생각을 가졌든 눈치볼 수 밖에 없다."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엘시."
내가 말하자 엘시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 호위병은 무슨 일을 하지?"
"제가 어디를 갈때 저를 따라서 가면돼요. 제가 위험한 일이나 싸울 일이 생기면 같이 싸워줘야 하구요."
"집에서는 무엇을 하지?"
"기본적으로는 저택 경비를 하죠. 저택에서 지내시면서,야간에 시종들이 도움을 청하면 도와주면 됩니다."
원래 우리 저택의 경비 구조는 시종과 시녀들이 번갈아가면서 저택을 순찰하고, 수상한 점이 있으면 즉시 상주하는 경비대원에게 보고하는 구조였다. 나는 여기서 엘시를 저택 경비 전담으로 밀어넣을 예정이었다.
이러면 경비대원들을 몇 명씩 경비대에서 차출할 필요도 없었고 인수인계도 이리저리 귀찮게 할 필요가 없어서 여러모로 효율이 좋았다.
"엘시. 그럼 일단 집무실로 올라갈까요? 너무 밖에서만 이야기하는 게 좋진 않군요."
로빈은 빨리 내 몸상태를 물어보고 싶은 듯 했다. 내가 메이스를 집어넣자마자 로빈이 물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네. 저는 괜찮아요. 로빈. 엘시의 실력은 어떤가요?"
"상당한 실력자군요. 저희 기사들이랑 붙여도 승리를 장담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아쉽네요. 기사로 넣는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저도 수인이 기사단에 들어온다면 다른 기사단원들의 반발을 억누를 자신이 없습니다."
로빈도 착잡해보이는 표정이었다. 수인과 인어는 인간이 아니다. 기사단원들 중 몇몇은 이브를 보면서도 상당히 미묘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내가 수인을 기사로 넣기까지 한다면 영주가 사실은 이상성욕자라는 소문이 돌게 뻔했다. 난 멀쩡한 사람인데. 엘시는 로이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로이는 방금 전 내 실력을 보면서도 엘시를 호위병으로 임명한다는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엘시! 저 성직자는 수상하다! 믿으면 안된다!"
"로이. 자꾸 믿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이유가 뭔지 말해라."
"성직자보다 엘시가 약한데, 엘시보고 호위하라고 한다! 수상하다!"
"우리 족장도 부하들 데리고 다닌다. 우리 족장도 이상한 사람이었나?"
"족장이랑은 다르다!"
"족장보다 나은 점도 있다. 족장은 한 번 싸우면 끝장을 본다. 내가 부족에 있었을 때, 족장에게 도전한 사람은 말 그대로 걸레가 됐다. 저 성직자는 적어도 내가 못싸우는 시점에서 싸움을 멈췄다. 우리를 괴롭히려고 한다는 생각은 안든다. 애초에 선택권도 줬다. 로이. 그렇게 이 영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 혼자 고향으로 돌아가라."
"안 돌아간다!"
"그럼 입 다물고 있어라. 로이. 너도 이제 성인식을 치뤘다. 왜 계속 애처럼 징징대는 지 난 모르겠다."
"그건....."
로이가 얼굴을 붉혔다. 씨발. 여기까지 와서 얼굴 붉히는 남자를 봐야한다니. 엘시가 로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황급히 로이의 말을 끊었다. 여기서 고백이라도 하면 상황이 좆같아진다.
"자! 엘시. 빨리 올라가죠."
"알겠다."
로이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엘시가 나를 쳐다보지 않는 틈을 타서 씩 웃어줬다. 로이가 인상을 찌푸린 채 화를 삭였다. 의외로 인내심이 좀 있는 놈이었다.
그렇게 집무실로 올라온 나는 엘시에게 물었다.
"엘시. 에반젤린에 대해 아나요?"
아모리는 에반젤린에 대해 안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암시인지 금제인지에 걸려서 에반젤린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하지 못했다. 혹시 엘시는 다르지 않을까? 애초에 지금 나는 에반젤린이 건 금제의 조건도 모르는 판국이었다. 에반젤린을 알 법한 사람들한테 전부 물어봐서 금제가 안걸렸길 기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누구냐 그게. 도망간 네 부인? 아니면 대천신교의 신 이름인가?"
엘시는 대천신교 교인이 들으면 불경죄라고 거품을 물 헛소리를 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인간들이 쫓고있는 아주 사악한 마녀에요. 마왕을 불러서 이 땅에 재앙을 가져올거라고 하죠. 족장에게 들은 적 없나요? 가면을 쓰고 후드를 뒤집어쓴 여성."
"족장에게 이야기들은 적은 없지만, 그런 여성이라면 본적 있다."
"본적 있다고요?"
나는 자세를 바로했다. 본 적 있다고? 족장에게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데 봤다고?
"전에 몇 번 노예를 사러 왔었다. 인간 노예들을 중점으로 마법 실험을 한다고 했다."
"확실한가요? 후드에 가면을 쓴 여성."
"맞다. 후드에 가면을 쓴 여성."
"무슨 가면이었나요?"
나는 여기서 잠시 숨을 죽였다. 엘시가 제대로 설명을 할지 못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브나 셀루는 가면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물었어도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솔직히 이제 슬슬 말할 수 없다. 말고 다른 반응이 나와줬으면 했다.
"모르겠다. 엄청 이상하게 생긴 가면이었다. 인간의 얼굴이랑 똑같이 생긴 가면이었는데, 색깔을 얼룩덜룩하게 칠했다."
"어라?"
엘시는 순순히 가면의 색깔을 말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긴가민가할수밖에 없었다. 뭐지? 암시에 안걸린건가? 아니면 그냥 코스프레 취미가 있는 마법사가 가면쓰고 다니는 건가?
"그.... 마법사한테 뭐 특별히 이상한 이야기 들은 적 없나요?"
"나한테 여기서 나가고싶은 생각없냐고 물었다. 에버딘 영지를 다 쓸어버릴 힘을 준다고도 했다."
"승낙했나요?"
"거절했다. 마법사는 믿으면 안된다."
"잘했어요."
이상했다. 패턴을 보면 에반젤린이 맞는데, 엘시는 암시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엘시 잘 생각해보세요. 에반젤린에 대해 더 아는 게 없나요? 목소리 목소리는 어땠어요?"
엘시가 눈을 찌푸렸다.
"말할 수 없다."
엘시는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말하고 놀란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소리내어 말했다.
"목소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나는 그제서야 에반젤린이 건 금제를 알 것 같았다. 에반젤린을 만난 대상은 어떠한 작용으로 인해 에반젤린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나는 확인을 위해 다시 한 번 엘시에게 물었다.
"엘시. 하지만 가면에 대해선 말할 수 있잖아요."
"그렇다. 그 마법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가면은 말할 수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에반젤린은 엘시에게 '에반젤린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금제를 걸었다. 근데 엘시가 존나 단순한 년이라서 금제를 잘못 이해하고 진짜 '에반젤린'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 것이다. 가면은 에반젤린이 아니니까.
금제의 조건이 본인의 이해도에 따라 달라지는 듯 했다. 그렇다면 이게 말이 됐다. 나는 도화지 한 장을 주고 엘시에게 가면을 그려보도록 시켰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이게 뭐죠?"
나는 엘시가 가면을 그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엘시가 그린 걸 가면이라고 봐야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시의 그림실력은 그만큼 절망적이었다. 삐뚤빼뚤하게 그려진 가면은 가면보다는 7살짜리 꼬마가 그린 전위적인 엄마 초상화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가면이다. 이렇게 생긴 가면을 쓰고 있었다."
"진짜로 이렇게 생긴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요?"
나는 다시 한 번 그림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그림에 비하자면 피카소의 우는 여인은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눈,코,입이 게르니카를 모사한 것 처럼 사방팔방에 흩어져 있었고, 가장 중요한 가면의 형태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다.
거기다 그 흩어진 이목구비에는 엄마 화장품으로 장난친 것 같이 기묘한 색조합이 늘어져 있었다. 나는 엘시가 색맹이나 공간 지각에 문제가 있는 부류가 아닐까 고민했다.
“이거 무슨 색이에요?”
“빨간색.”
색맹은 아니었다. 그러면 진짜로 이런 색깔의 가면을 쓰고 다녔다는 건데, 대체 뭔 가면이지? 얼굴에 빨간색이 가득했고, 눈코입으로 추정되는 부위만 검은색이나 노란색을 칠했다.
혹시나 진짜로 이런 가면을 쓰고 있던건 아닐까? 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야 했다. 내가 얼굴을 숨기기 위해서 가면을 쓴다면 이렇게 기억에 남는 가면은 안쓰고 다닐테니까. 엘시의 손이 고양이 장갑을 낀것처럼 털이 북실북실 나있고, 또 그림에 재능이 없어서 벌어진 비극이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일단 알겠어요."
나는 그 그림을 고이접어서 서랍 아래에 집어넣었다. 일단 엘시 덕분에 에반젤린에 대해 가장 중요한 두가지 단서를 얻은 시점이었다. 첫째, 에반젤린은 자신이 '마법 실험 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단 내 생각에는 에반젤린이 실제로 마법사일 확률은 매우 낮았다. 지금까지 행적을 보자면 마법사라는 직위에 비해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하고 다녔으니까.
게다가 엘시의 증언대로라면 최근에도 노예를 사러 왔다고 했다. 이미 왕궁 전체에 에반젤린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마법사가 그런 복장을 하고 다닌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었다.
왜냐면 마법사는 국가 등록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북서부 지역 드워프 왕국 바로 옆에 마법사들을 위한 마탑 도시가 세워져 있었다. 모든 마법사들은 마탑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등록해야 하고 마탑에 실험실을 두어야 했다. 그런 곳에서 이 정도로 이상한 가면을 쓰고 다닌다?
내 추측에 따르자면 에반젤린은 국가에 등록되지 않은 마법사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건 추측일 뿐. 나는 일단 엘시가 그린 그림을 흉내내어 몇장 그린 다음 하나는 드워프 왕국 옆 마탑 도시에 보내고, 나머지 하나는 에버딘 영지에 보냈다. 그리고 원본은 내가 보관하기로 했다.
"엘시. 그럼 당신은 이 저택에 상주하면서 경비 일을 하면 돼요. 아시겠어요?"
"알겠다. 그럼 어디서 지내면 되지?"
나는 아이라를 시켜서 엘시의 방을 안내해주게끔 했다. 저택에 아직 빈 방은 많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널찍한 방을 줄 수 있었다.그리고 나는 그림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브와 셀루가 한창 대화중이었다. 나는 그림을 뒤로 숨긴 채 천천히 다가가서 물었다.
"무슨 이야기해요?"
"헤흐.... 그냥 잡담중이었어. 너도 낄래?"
셀루도 이브도 딱히 당황한 기색없이 내 질문을 받아넘겼다. 내가 물었다.
"무슨 이야기 중이었는데요?"
"너랑 이브랑 관계해서 애가 나오면 대체 뭐가 나올까?"
의외로 나도 상당히 궁금한 질문이었다. 쿼터 엘프, 쿼터 인어 반 인간인데 대체 뭐가 나오는 거지? 기본적으로 하프엘프와 인간, 하프엘프와 엘프와의 관계에서 애가 나오면 그냥 엘프랑 인간으로 쳐줬다. 쿼터는 특징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다른게 있다면 평범한 인간보다는 조금 오래살고 예쁜게 쿼터 엘프였고 평범한 엘프보다 조금 빨리 죽는 게 쿼터 인간이었다. 근데 이따위로 피가 섞이면 대체 뭐가 나오는 거지? 대충 예상을 해보자면 귀가 뾰족하고 수영을 조금 잘하고 오래사는 인간 정도가 될 법한데, 이렇게 생각하니까 되게 좋은 거 같았다.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니 이브가 소리를 질렀다.
"뭘 상상하는 거야. 용건이나 말해."
"아, 그래. 이브. 셀루. 이게 뭔지 알겠어요?"
셀루랑 이브가 같이 그림을 들여다 봤다. 두 사람은 매우 미묘한 표정으로 그림과 나를 번갈아서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동안 그림을 바라보던 셀루가 내게 물었다.
"요즘 힘들어?"
"네?"
"이거 그거 아니야? 정신적으로 힘들 때 그리는 그런 거. 우리가 배에 있을 때 선원들 몇명이 도화지에다가 이런 그림 그렸었는데."
"그 선원들은 어떻게 됐어요?"
"죽여버렸지. 우리 배는 정신병원이 아니니까. 헤흐...."
역시 성격파탄자 인어다운 행보였다. 나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종이를 앞으로 내밀어 이브와 셀루가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만들며 말했다.
"에반젤린의 가면이래요. 셀루. 잘 생각해봐요. 이렇게 생긴 가면 본 적 없어요?"
"......이게 그거라고? 진짜로?"
셀루도 이브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두 사람다 가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는 데 아직 금제에 걸리지 않았다. 이브가 말했다.
"아니야. 에반젤린의 가면은 좀 더.....말할 수 없어. 이 씨발!"
이브가 말하다 말고 쌍욕을 하며 물을 걷어찼다. 물보라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떨어졌다. 나는 그림이 젖지 않도록 급하게 그림을 빼서 옆으로 치웠다가 다시 보여줬다. 역시 금제는 여전히 발동하고 있었다. 셀루가 물을 피해 물 속으로 쏙 들어갔다가 튀어나오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할 수 없어."
셀루도 금제가 기분 나쁜 듯 짜증을 냈다. 인상을 쓰면서 볼을 부풀리는 모습이 꼭 햄스터 같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아예 달라요?"
이브와 셀루가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주 애매모호한 반응이었다. 일단 이브랑 셀루가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한 걸 보면 엘시가 그림을 개좆같이 그렸거나 에반젤린이 가면을 여러개 들고 다니거나 둘 중 하나인게 분명했다.
나는 일단 마탑과 에버딘 영지에 편지를 보내고 답변이 오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직접 돌아다니기엔 최근에 너무 자주 영지를 비워서 조금 눈치보였다. 에반젤린이고 자시고, 확실한 단서라기도 애매했으니 대충 답변이 오는 대로 진로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수인들이 들끓는 동부 에버딘 영지보단, 비교적 조용한 북서부 드워프 왕국 방향에서 조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마탑에서 할 수 있는 퀘스트 목표는 사천왕 중 하나인 [흘러내리는 팔키오스]고 얘는 마왕 토벌 때 용사한테 두 쪽이 나서 뒤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재 마탑 쪽에는 나를 귀찮게할 요소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금제를 기다리는 것과 동시에, 나는 다른 방향으로 작업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엘시를 따먹는 계획. 아무리 수인족이 빡대가리라고 해도, 내가 쌩으로 강간할수는 없었다. 자기 주장이 매우 강한 종족이기 때문에 설득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라와 이브, 셀루를 전부 집무실로 불렀다. 이 시간에 엘시는 자기 방에서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집무실에 불려온 세 사람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한 지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시에리는 교회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따로 불러서 이야기할 예정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본 다음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자, 여러분. 지금부터 엘시 꼬시기에 협력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진짜 발정난 새끼."
이브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대충 예상을 하고 있던게 분명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셀루는 그런 이브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옆에서 거들었다.
"원래 미남은 미인을 끌어들이는거야 이브. 질투해?"
"아니, 엄마. 말이 꼬시는 거지. 이 인간이 제대로 꼬시겠어? 약 먹이고 따먹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이브. 영주 부인으로서 고급스러운 단어를 쓰라니까요?"
"씨발 영주로서 좀 고급스럽게 행동해봐! 뭔 대천신교 남부 사제장이란 놈이 부인 불러놓고 다른 여자 따먹는 이야기밖에 안해!"
이브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브를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이브. 저는 그런 저급한 방법을 쓰지 않을거에요. 오로지 말에 의한 설득으로, 엘시가 자발적으로 제게 몸을 바치게 만들거라고요."
"들으니까 더 악질같네."
이브는 그래도 엘시가 '자발적으로' 바치게 만든다니까 좀 흥미가 생기는 것 같았다. 이브가 아닌 척해도 얘도 근본이 싸이코 살인마였다. 이상한 짓거리에는 흥미가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제가 뭘 해도 제게서 최고는 이브인거 알죠? 오늘 진짜 죽여줄게요."
".....진짜 아주 개새끼야 개새끼. 그래서 뭐할건데."
나는 아이라와 이브, 그리고 셀루를 전부 불러서 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계획을 끝까지 들은 이브가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셀루는 재밌어하고 있었지만 그녀 역시 이번 계획은 영 못미덥다는 표정이었다. 아이라는 일단 내가 한다니까 하겠다는 자세였고.
셀루가 말했다.
"헤흐.... 아무리 그래도 수인이 그렇게 멍청할까 싶은데."
"맞아. 일단 대화가 가능한 시점에서 그딴 계획이 통하긴 해? 씨발 세상에 그 정도로 빡대가리 새끼들이 있다고?"
다른 건 몰라도 이종족이면서 수인을 무시한다니, 나는 이런 비상식적이고 차별적인 언행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정중하게 이브와 셀루에게 경고했다.
"그거 수인 혐오에요. 아시겠어요?"
"뭐래 씨발. 그딴 계획을 세운 시점에서 니가 수인 혐오자지."
물론 이브에게는 씨알도 안먹히는 경고였다. 나는 이브가 이렇게 나오니까 할 말이 없어서 이야기를 돌렸다.
"그럼 제가 시킨대로 잘 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아이라가 제일 먼저 소리쳤다. 의욕 만땅인게 아주 보기 좋았다. 내가 대대장이었다면 아이라에게 상점 3점을 줬을거야.
이브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셀루는 이러든 저러든 상관없다는 얼굴이었고. 이브가 물었다.
"근데 시에리한테도 말했어?"
"교회에 있으니 이따가 따로 불러서 이야기해야죠. 그럼 제가 말한대로 해주세요."
내가 해산령을 내리자 이브는 셀루를 들고 사라졌고, 아이라는 우물쭈물하다가 내게 물었다.
"영주님. 잠깐 시간되세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라는 살짝 치맛자락을 들어올렸다. 이러면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지.
"엘시.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엘시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침부터 자신을 찾는 이는 이 저택의 시녀 중 하나인 아이라였다. 소문으로 듣기론 원래 도둑질을 하던 아이였으나 영주에게 감화되어 지금은 대천신교의 예비 수녀이자 저택의 시녀로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짐을 나르고 있었다. 복도에는 작은 화분들이 여러개 놓여 있었고, 그 중에는 아이라가 들 수 없을만큼 묵직하고 거대한 화분도 있었다. 엘시는 인간들이 이런 화분을 키우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했다. 먹을 수도 없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화분을 대체 왜 키운단 말인가?
아이라는 자기 몸통만한 화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 좀 옮겨주세요."
"그래. 무거워보이니 도와주겠다."
보통 인간들에겐 아주 묵직한 화분이지만, 엘시에겐 그냥 아령을 드는 것 같은 무게감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화분을 들어서 마당에 가져다 놓았다. 아이라는 엘시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너무 무거워서 곤란했거든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에 부탁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말해라."
아이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엘시를 훑어보았다. 여전히 노출도 높은 배꼽티와 핫팬츠 차림은 저택 안 사람들의 시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수인들에게 성욕을 느끼는 사람은 많이 없지만, 그래도 낯뜨거운 차림은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이건 원숭이에게 성욕을 느끼지 않더라도 발기한 성기를 드러내고 다니면 사람들이 민망해하는 것과 같았다.
엘시는 아이라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물었다.
"할말이 있으면 빨리 해라."
"아뇨. 할말은 없구, 그..... 엘시는 엄청 강하구나 해서요."
"우리들은 전부 이만큼 강하다. 나는 오히려 인간들이 이렇게 나약한게 신기하다. 전쟁에선 우리를 이기는데, 평범한 사람들은 우리보다 나약하다."
"그러게요. 저도 빨리 강해져야 하는 데....."
"수련한다면 내가 도와주겠다."
"아니요. 일단은 우리 영주님이 그.... 마사지를 하시는 데, 그걸 받으면 좀 몸이 튼튼해진다고 하더라고요."
"마사지? 그게 뭐지?"
"몸을 이렇게 막 주물러서 근육을 이완하고, 마지막엔 영주님이 직접 힘을 주입해서 몸 전체에 힘을 흘려넣는다고 해요."
"힘을 흘려넣어? 이상한 소리다. 그렇게해서 강해지는 건 일시적일 뿐이다. 마법사도 마법도 믿어선 안된다. 성직자의 마법도 마찬가지다."
"에이, 그래도 한 번 받아보려구요. 우리 영주 부인도 매일 그 마사지를 받는다고 하셨거든요."
"영주 부인? 아, 그 인어를 말하는 건가?"
"네, 네. 그 분이요. 그 분은 매일같이 받았더니 엄청 강해지셨어요."
"그런가, 알겠다."
엘시는 그 이야기를 그냥 흘러넘겼다. 마사지로 강해진다는 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아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이었다. 수인들에게 강함이란 육체적인 단련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마법이란 육체적 단련을 방해하는 현혹술이자 치사한 금술에 불과했다.엘시는 그래서 마법사를 매우 싫어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엘시는 자기 문을 두드리는 아이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라는 말했다.
"엘시! 저 좀 봐보세요! 잠깐만 와서 봐주세요!"
엘시는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고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아침부터 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이라를 따라 밖으로 나오자 아이라는 며칠 전에 옮겼던 그 화분 앞에 서있었다. 엘시가 말했다.
"성직자가 다시 옮기라고 한건가. 내가....."
아이라는 엘시가 손을 뻗는 걸 가로막고, 기세등등한 얼굴로 화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라의 표정은 어쩐지 매우 들떠보였다.
"자, 엘시 보세요. 마사지의 힘을!"
아이라는 그렇게 말하더니 화분의 양끝을 붙잡고 심호흡을 했다. 엘시는 혹시나 아이라가 다칠까봐 말했다.
"그만둬라. 그러다가 다치면...."
"으랏차!"
엘시는 말을 하다말고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아이라가 힘차게 기합성을 내지르며 화분을 들어올렸기 때문이다. 엘시는 직접 들어봐서 화분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저 화분은 평범한 인간여자가 저렇게 기세좋게 들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아이라는 화분을 자기 머리 위까지 번쩍 들어올린 다음에 다시 천천히 내려놓았다. 허리를 살짝 주무르면서 아이라가 웃어보였다.
"어때요? 마사지 대단하죠?"
엘시는 두 눈으로 보고도 그 효과를 믿을 수 없었다. 아이라는 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루시우스에게 엄지 손가락을 척 내밀며 씩 웃어보였다. 엘시는 그 동안 혹시 화분의 무게가 가벼워진게 아닌지, 직접 화분을 들어보고, 또 이리저리 살펴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무게는 그대로 였다. 여전히 묵직한 무게감이 엘시의 손에 감겨왔다.
"대단하다. 며칠 사이에 이렇게 강해졌다니."
잠시 고민하던 엘시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복도를 걷고 있던 이브를 보자마자 엘시는 말했다.
"대련을 요청한다."
"뭐? 대련?"
이브는 갑작스럽게 엘시가 도련을 요청하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말했다.
"지금 말고 조금 이따는 안되냐, 나 지금 좀 바쁜데."
이브는 손에 들려있는 서류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엘시는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그럼 밖에서 기다릴테니까 빨리 일 처리하고 나와라. 대련하고 싶다."
수인들에 비해 인어들은 육체적으로 나약했다. 대부분의 인어들은 걸을 수도 없었고, 육지에서는 무기력하게 굴기까지 했다. 그래서 엘시는 이브가 대체 얼마나 강한지 궁금했다. 자주봐서 대충만 봐도 강함을 알 수 있는 인간들과 달리, 인어는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어서 가늠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엘시는 저택 마당에 나와서 돌을 발로차며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자리 수영장에서 헤엄치던 셀루가 엘시에게 물었다.
"뭐해?"
"대련을 요청했다. 그..... 배타 부인? 에게"
"페타 부인이지. 이름은 이브고."
엘시는 잠깐 고민하다가 셀루를 쳐다보고 물었다.
"인어. 마사지에 대해 알고 있나?"
셀루는 그 말에 입꼬리를 움찔움찔하더니 겨우 숨을 고르고 말했다.
"어...음...그렇....지, 알고 있지. 마사지. 아주 효과 좋아! 우리 이브...푸흡...가 그거 받고 엄청나게 강해햏...졌지! 그렇지!"
엘시는 셀루가 항상 히죽대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웃으면서 말하는 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엘시는 그 말을 듣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인어들 사이에서도 루시우스의 마사지는 정평이 난 것 같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브는 평소에 입고다니던 드레스가 아니라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브는 한 손에 곡도를 들고 느긋하게 걸어나왔다. 그녀는 엘시에게 말했다.
"야, 난 우리 신랑처럼 안봐준다?"
이브는 묘하게 불쾌해보였다. 엘시는 자신이 얕보여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브의 도발에도 가볍게 대응했다.
"봐주지마라. 성직자도 안봐줬다. 최선을 다해라. 나도 최선 다한다."
이브는 엘시가 무덤덤하게 자신의 도발을 흘려넘기자 더욱 더 기분이 나빠보였다. 그녀는 곡도로 엘시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씨발 빨리 덤벼. 나 바쁘니까."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엘시가 이브에게 달려들었다. 저번의 패배를 교훈 삼아서, 이번엔 아주 속전속결로 끝내고자 처음부터 전속력으로 이브에게 돌진했다. 이브는 생각보다 빠른 엘시의 속도에 놀라면서도 곡도를 크게 휘둘러 엘시가 다가오는 각도를 좁혔다.
하얀 궤적이 그어지는 곳을 피해서 엘시가 이브에게 접근했다. 엘시의 눈에는 이브의 복부가 텅 빈것이 보였다. 엘시는 날카로운 손톱을 드러내고, 이브에게 손을 뻗었다.
"어딜!"
이브가 아슬아슬하게 엘시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셔츠가 주욱 찢어지며 속옷과 맨살이 드러났다. 엘시는 재빠르게 몸을 낮춰서 자세를 잡고 다시 용수철처럼 튀어서 이브에게 달려들었다. 이브는 바닥에 곡도를 꽂더니 바닥을 긁어서 먼지를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시야가 가려진 엘시가 뒤로 물러났다.
엘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브의 전투센스는 상당했다. 마치 수없이 사선을 넘나들며 사람을 죽여온 듯한 침착함이 그녀에게 있었다. 엘시는 이브의 옷을 찢은 순간, 그녀가 당황할 것이라 여겼다.
흙먼지 틈에서 곡도가 날아왔다. 엘시는 곡도를 피해내고 그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날아간 방향이나 속도를 봤을 때, 지금 들어간다면 분명 빈틈을 잡을 수 있었다. 엘시의 손이 흙먼지를 갈랐다.
"잡았다 이 좆같은 고양이 새끼!"
하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엘시의 옆으로 허공을 날아가는 곡도가 보였다. 이브는 엘시의 사각에서 자세를 잡고 있었다. 흙먼지로 시야를 가린다음, 곡도만 던지고 다른 곳으로 빠르게 움직인 것이었다. 엘시가 공중에 붕 떠오른 그 순간, 이브는 엘시를 허공에서 낚아챈 뒤 바닥에 찍어눌렀다.
"큭....!"
흙바닥에 얼굴이 처박힌 엘시가 발버둥쳤다. 하지만 완력으로 이브를 이길수가 없었다. 이브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승리에 대한 만족감으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이겼지?"
".....패배를 인정하겠다."
이곳에 와서 2패. 엘시는 마림바 부족의 수인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결과에 마음이 착잡했다. 이브는 찢어진 옷을 대충 여미고 바닥에 떨어진 곡도를 집어들었다. 엘시는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이브에게 물었다.
"네 강함은 그 마사지 때문인가?"
"어? 어어.....어. 그렇지. 마사지. 우리 신랑의 훌륭한 마사지를 매일....매일....그...받...았더니...몸도...크흡...건강해지고....그...."
이브가 입꼬리를 실룩실룩거리며 마사지에 대해 칭찬했다. 수영장에서 대련을 지켜보던 셀루도 물 속에 얼굴을 쳐박고 거품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깨가 들썩들썩거리는 게 심각하게 웃고있는 게 분명했다.
"우리 신랑 마사지를 받으면....수련에도...또...도움이 되고...그러거든? 응?"
이브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계속해서 입꼬리를 억누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엘시에겐 그런 그녀의 표정이 마치 마사지의 행복한 기분을 떠올리느라 자연스럽게 올라간 입꼬리를 억누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가. 그렇게 대단한 마사지인가."
"어, 어. 그렇지. 마사지 최고. 최고! 씨발 존나 최고!"
텐션을 한 껏 끌어올려서 허공에다가 최고를 연발하던 이브는 갑작스럽게 웃음기를 싹 잃고 머리를 긁적이더니 곡도를 바닥에 내던지며 한숨을 쉬었다.
".....애미 씨발."
"이브는 못하는 말이 없네."
셀루가 볼을 부풀리며 이브에게 따지자 이브는 다시 말했다.
".....애비 씨발."
"그렇지."
셀루가 이브를 칭찬했다. 엘시는 마사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며칠동안 아이라와 셀루, 그리고 이브를 통해 '마사지'에 대한 정보를 흘린 결과가 슬슬 나오는 듯 했다. 엘시는 나를 쳐다보고 할 말이 있는 듯 우물거리다가 다시 자기 일에 열중하는 것을 반복했다. 나는 엘시가 무엇을 바라는 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엘시가 직접 말할 때까지 나는 굳이 마사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노예시장과 마탑에서는 전부 편지가 도착했다. 에반젤린에 대한 문제니 협조하라는 정중한 편지에도 불구하고 에버딘 영주는 이렇게 답했다.
- 노예를 구매한 사람의 신상정보는 규칙상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직원들이 아주 완고하게 '말할 수 없다'고 하고 있으니 이 점 이해부탁드립니다.
추신: 저번에 사제장에게 소리를 질렀던 그 자매가 해당 인물에게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또 한 번 에반젤린이 다녀간 모양이었다. 마탑이 우리 영지보다 멀리 있는데 대체 어떻게 다녀간거지? 텔레포트라도 쓰나?
에버딘 영주의 표현을 보아하니, 노예 상인들에게도 금제는 적용되고 있었다. 내가 에반젤린이라면 금제 걸었다고 좋다고 개인 신상을 뿌리면서 다니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에버딘 영지로 간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마탑에서 온 편지를 확인했다. 마탑에서는 이렇게 답했다.
- 루시우스 사제장은 직접 와서 조사해주기 바람. 마탑은 마법사 개개인의 신상을 파악하고 있지 않음.
마탑은 등록제였다. 등록제라고 해서 모든 마법사들의 이름과 특징, 신상명세를 기록한다는 게 아니었다.
이름 : 루시우스
마법 연구 항목 : 불마법
대충 이런식으로만 기록되고 끝이었다. 게임상에서는 이 때문에 마법사 히로인인 방랑 마법사 소야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서 애먹고 있었다. 마법사란 족속 자체가 자기 연구아니면 남에게 무심하기 때문에 가명을 써서 등록하든 인상착의를 좆같이 하고 다니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도 그딴 가면은 쓰고 있으면 티가 날테니 안쓰고 다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탑 입장에서는 에반젤린이라는 수수께끼의 존재가 마탑 내에 있어도 조사할 방법이 없었다. 마법사들은 죄다 수상한 새끼들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수천명의 마법사 중에서 골방에 틀어박혀 얼굴 한 번 내보이지 않는 폐인들이 반은 넘을 것이고, 자기 이름이 아닌 가명을 대고 있는 새끼들의 비율도 2할은 될 것이고, 좆같은 복장은 입은 컨셉충도 2할 정도는 될 것이었다.
이런짓 저런짓 하다가 폐인이 되거나 이름만 등록해놓고 잠적해버린 마법사들까지 생각한다면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새끼들을 하나하나 뒤져가면서 에반젤린인지 알아보는 게 얼마나 병신같은 조사방법인지는 나도 마탑도 아주 잘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탑은 그 귀찮은 조사과정을 나에게 떠넘긴 것이다. 내가 아무리 시간 많은 영주라고 해도 마탑에 죽치고 앉아서 그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건 잠깐 에버딘 영지에 들르는 것과 차원이 다른 시간 낭비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어차피 결정적인 증거나 에반젤린 본인을 마탑에서 잡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주 미약한 단서라도 찾으면 좋았던 것이다. 나는 페타 루시우스의 이름으로 용병을 모집하기로 했다.
"용병을 모집할거면 내가 가겠다."
"마탑에서는 수인족들을 실험용 쥐로밖에 생각안해요."
엘시가 대신 가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죄다 괴짜에 성격파탄자라서 [인간에게 실험해선 안된다.]는 윤리 강령을 제외한 모든 짓을 다하고 다녔다. 그런 곳에 수인이나 인어를 데리고 마탑으로 가는 건 납치 유발행위에 가까웠다.
마탑 마법사 새끼들이 내 부인이든 호위병이든 그딴 걸 따질 리가 없다. 그 새끼들은 내일 대가리가 박살나도 오늘 실험을 해야하는 씹사이코 새끼들이니까. 엘시 소식이 끊겨서 찾아가 보면 키 3M 근육량 600KG의 헬창 엘시나 [엘시였던 것]의 묘지를 발견하게 될수도 있었다. 나는 기껏 내 걸로 만든 수인을 그런 식으로 죽여버리기 싫었다.
엘시는 내가 마탑에서 벌어지는 실험들에 설명해주자 경악을 하며 꼬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바짝 세운 꼬리털이 마치 정전기가 일어나는 듯이 파르르 솟았다가 다시 수그러들었다.
"아주 끔찍한 곳이다! 어떻게 우리를 데리고 실험할 생각을 하지.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지 성직자는 알고 있나?"
"저도 몰라요. 그냥 실험을 한다고만 들었지."
아무래도 인체 개조를 하는 게 더 많은 데이터를 얻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내가 마법사가 아니니 그 불타는 학구열의 이유를 알 길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용병 모집서를 작성한 뒤 주변 영지와 용병길드에 공문을 돌렸다.
이 세계관에서 용병들은 아주 믿을만한 친구들이었다. 용병 길드에 의해서 아주 철저하게 관리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용병들을 고용해서 에반젤린에 대해 조사시킨 후, 어떤 방식으로든 에반젤린의 단서를 찾으면 내게 보고하게끔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나는 그 때 마탑에 잠깐 들러서 단서들을 챙기고, 이를 바탕으로 에반젤린을 다시 추적하면 됐다.
덧붙여서 용병들과 함께 남부 사제장의 권한으로 사제들을 몇명 붙여서 보낼 생각이었다. 사제들은 용병들과 마법사들이 시비가 붙지 않게 해주고, 에반젤린이 혹시나 내뿜을 수 있는 사악한 기운을 추적하는 데 도움을 줄게 분명했다. 그렇게 대충 10명 정도의 인원을 추려서 모집 공고를 용병길드에 위임했다.
그 동안 내 마사지 홍보는 엘시에게 아주 잘 먹혀들어가는 듯 했다. 엘시가 주기적으로 마사지나, 강해지는 법에 대한 질문을 해댄다고 아이라가 보고해왔다. 나는 진짜로 아이라가 강해졌다고 엘시가 믿어야 했기에, 요즘엔 매일 같이 아이라에게 팔굽혀펴기를 비롯한 근육 트레이닝을 시키고 있었다.
"이러다가 근육만 많아지면 어떻게해요?"
"이브랑 엘시도 멀쩡하니까 걱정말고 하나 더하세요."
"아, 네에에....."
조만간 진짜로 강해지는 게 아닐까 싶을만큼 아이라에게 수련을 시키고, 나는 엘시가 하루빨리 내게 마사지에 대해 물어보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용병 길드에 공문을 보내고 이틀 뒤, 엘시가 내게 찾아와서 말했던 것이다.
"성직자. 마사지를 보고싶다."
"마사지를 보고싶다고요?"
"아이라도, 그 인어도 다 마사지를 받고 강해졌다고 했다. 실제로 둘 다 매일 조금씩 강해지는 것 같다. 나는 그 마사지가 어떤 것인지 보고 싶다."
"음..... 이건 비밀스러운 마사지라 보여주기 곤란한데....."
"그럼 됐다."
내가 뜸을 들이자 엘시는 쿨하게 포기했다. 이러니 오히려 내가 황급히 엘시를 말렸다.
"아니요. 엘시. 곤란하지만, 엘시라면 보여주겠다는 뜻이었어요. 돌아오세요."
내가 엘시의 어깨를 붙잡고 다시 집무실로 몸을 돌리게끔 했다. 엘시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라면?"
"네. 엘시는 아주 소중한 우리 가족이니까요."
"가족? 성직자랑 내가 가족인가?"
"같이 살면 가족이죠."
"그런가."
엘시의 꼬리가 살랑살랑 기분좋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가족이라는 말에 제법 기분이 좋은 게 분명했다. 수인들은 소속감을 매우 중요시한다. 엘시가 말했다.
"그럼 어디서 언제 볼 수 있지?"
"오늘 밤에 보여드리죠."
"그럼 기다린다."
엘시가 방에서 나오고, 나는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용병들 고용할 예산도 빼야했고, 마탑으로 파견나갈 사제들도 선별해야 했다. 그렇게 예산 편성을 다 하고 나니 저녁이 되었다. 아이라에게 최종적인 정리를 맡기고 나는 시에리를 불렀다. 마침 교회에서 퇴근한 시에리는 내 부름에 쪼르르 달려와서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나는 집무실 의자에 앉은 채 손짓했다. 시에리가 달려와서 내 품에 조심스럽게 안겼다. 나는 시에리를 백허그한 자세로 껴안은 채 어깨를 천천히 주물렀다. 시에리는 그 손짓에도 야릇한 감정을 느끼고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여, 영주님....벌써부터...."
"시에리. 오늘 제가 부탁 좀 해도 될까요?"
"부, 부탁이요?"
나는 시에리의 어깨를 꾹꾹 누르며 뭉친 곳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여도 전생에선 나름 마사지를 잘한다고 정평이 난 사람이었다. 루시우스의 근력으로 적당히 뭉친 곳을 꾹꾹 눌러주자 시에리가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하으....흐으....무, 무슨 부탁이신데요....."
"엘시가 보는 앞에서 섹스했으면 하는 데....."
"네.....?"
시에리는 그 말에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탁이라 그랬겠지. 시에리에게는 대충 내가 '마사지'를 해주면 강해지냐고 엘시가 물어보면 그렇다고 장단만 맞춰달라고 말해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엘시 앞에서 섹스를 하라니. 시에리는 내 온갖 플레이를 다 받아줬지만, 남이 지켜보는 앞에서 섹스하는 건 좀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시에리가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그건 좀....."
"이미 이브랑 같이 3P도 했잖아요. 네?"
"그건 그렇지만....."
시에리가 발을 움직일 때 마다 엉덩이가 내 좆과 맞닿은 채 이리저리 쓸어내고 있었다. 부드러운 계곡 사이에 파묻힌 내 육봉이 조금씩 조금씩 커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시에리의 허리를 붙잡고 조금 몸을 위로 끌어올렸다. 시에리의 보지와 내 자지가 옷을 사이에 두고 맞닿은 게 느껴졌다.
"아아....응....."
시에리가 눈을 감고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시에리의 허리를 붙잡고 천천히 성기끼리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에리에게 속삭였다.
"시에리. 해줄거죠?"
"아...아.....네에....응...."
"시에리. 그리고 또 부탁할게 있어요."
"아응....뭔데요.....영주님...."
"루시우스. 루시우스라고 불러야죠. 단 둘이니까."
"루시우스...읏...뭐, 뭔데...요....응...."
"엘시한테 섹스가 마사지라고 속이려고 하는 데, 장단을 맞춰주세요."
"....흐응....속을까요?"
시에리는 이제 남을 속인다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내가 속이자니까 따르는 건가? 나는 시에리의 바짝 선 유두를 옷 위로 살살 매만지며 혀로 귓볼을 빨았다.
"하응!"
"속아야죠. 제가 하는 섹스는 아주 신성한거라서 그런 효과가 있다고 하면 믿을거에요. 그리고 꼭 외쳐줬으면 하는 말이 있는데...."
나는 한참동안 시에리를 주무르다가 놓아줬다. 거사는 밤에 치뤄야한다. 나는 우뚝 솟아오른 양물을 숨기느라 허리를 숙인 채 내 방으로 돌아갔다.
마피아 사회자처럼 말해보자면, 밤이 되었습니다. 깊은 밤 나는 시에리와 엘시를 불렀다. 엘시는 벌써부터 마사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단 생각에 몸이 달아오른 것 같았다. 시에리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엘시와 나를 번갈아 훑어보고 있었다. 손으로 옷자락을 꼭 쥐며 안쓰러운 눈망울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나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엘시는 나를 쳐다보며 재촉했다.
"나는 준비됐다. 빨리 보여준다. 성직자."
엘시가 재촉을 하니 나는 시에리의 허벅지를 문지르며 은근한 눈길을 보냈다. 시에리는 한숨을 쉬고 가랑이를 비비적대며 나를 쳐다봤다. 그 애타는 눈길을 무시할 수 없던 나는 시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침대로 이끌었다. 그리고 천천히 시에리의 옷을 벗겨나가기 시작했다. 엘시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물었다.
"꼭 옷을 벗어야 하는 건가?"
"네."
"신기하다. 꼭 교미하는 것 같다."
이 미친 수인년들은 섹스하는 것도 교미라고 표현하는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진짜 말할 줄 아는 짐승이 아닐까?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수인들한테 개처럼 박는다는 욕일까?
"엘시는 교미를 해본적이 있나요?"
"없다. 성인식을 치뤘지만 아직 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지는 알고 있나요?"
나는 시에리의 엉덩이와 가슴을 주무르며 물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바지를 벗으며 커다란 내 좆이 드러났다. 시에리는 들뜬 목소리로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엘시는 나와 시에리의 모습을 보다가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알고는 있다."
"그럼 지금 시에리랑 저랑 무슨 일을 하려는 지 알겠군요."
"마사지가 아닌가?"
나는 시에리의 보지를 손가락으로 훑어내렸다. 균열을 애무하는 것에 따라서 시에리가 약하게 신음을 흘리며 살짝 다리를 벌렸다. 그 음란한 모습에 엘시가 시선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나 같아도 옆집 새댁이 내 앞에서 남편이랑 이러고있으면 민망해서 제대로 못쳐다볼거다.
억지로 고개를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엘시에게 말했다.
"엘시. 이 쪽을 보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다. 교미를 하는 걸 왜 보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간 중에 그런 취향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건가?"
엘시는 어떻게든 나와 시에리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 애썼다. 하지만 시에리가 달콤한 신음을 흘릴 때 마다 꼬리가 움찔 떨리고 귀가 쫑긋거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이게 마사지에요."
"거짓말이다. 내가 바보로 보이는 게 분명하다. 마사지랑 교미가 다르다는 건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존나 바보로 보고있었기 때문에 나는 엘시의 말에 잠깐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수인들을 아주 병신으로 보고 있었건만 그 정도까진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이미 예상하던 바였다.
"맞아요. 엘시. 이건 마사지가 아니라 교미죠. 하지만 저와 교미를 하면 힘이 강해진다는 건 사실이랍니다."
"거짓말이다. 그런 건 들어본 적 없다."
"하지만, 제 주변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강해졌는걸요. 엘시. 이브를 보세요. 그렇게 강한 인어를 본 적 있나요?"
"....그건 그렇다."
엘시는 설득되고 있었다. 왜 이 개같은 논리에 설득되는 지는 사실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시에리도 어이없는 눈길로 엘시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눈빛에는 경멸이나 비난은 담겨있지 않았다 마치
-야, 그게 되면 발가벗고 춤춘다.
라고 말했던 동네 친구가 진짜 발가벗고 나타났을 때나 보낼법한 눈길이랄까. 나는 그런 시에리의 시선을 지워버리기 위해 손가락으로 그녀의 균열을 문질렀다.
"하응...흥..."
엘시는 내가 교미로 강해진다고 말한 걸 믿은 이후 더욱 더 진지한 눈길로 우리들의 섹스를 보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시에리의 보지를 애무하고 있자 엘시가 물었다.
"인간들은 그런식으로 교미하는 건가? 손가락으로?"
"아니요. 물론. 이 물건을 쓰죠."
나는 내 좆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에리를 애무하면서 점점 커진 내 거근은 이제 그 우람한 성욕을 자랑하며 빳빳하게 서있었다. 엘시는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내 물건을 더욱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허리를 숙이면서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는 아랫도리가 더욱 팽창하는 걸 느꼈다.
시에리의 허리를 붙잡고 들어올렸다. 뒤에서 안긴 자세가 된 시에리가 부끄러워하며 발버둥쳤다.
"자, 잠깐만 영주님...이, 이 자세는....!"
그도 그럴 게 이 상태로 들박을 하면, 엘시에게 나와 시에리가 결합하는 장면이 전부 보이게 되었다. 시에리는 얼굴을 가려야 할지 자신의 그곳을 가려야 할지 몰라서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며 떨었다. 엘시는 그 와중에도 표정 변화 없이 우리 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인간들은 이렇게 격렬하게 교미를 하는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아, 아니에요....우, 우리 영주님이.... 하응!...아...아하...."
나는 시에리가 더 입을 열기 전에 그녀의 중심에 내 좆을 박아넣었다. 시에리가 허리를 꺾으며 입을 크게 벌렸다. 나는 시에리의 양 허벅지를 꾹 붙잡아서 다리를 최대한 벌렸다. 그리고 천천히 시에리를 오나홀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으윽....흐윽...흑....으응...!"
시에리가 몸을 떨면서 얼굴을 가렸다. 엘시는 정말 가까운 곳에서 우리 둘의 섹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지켜본다는 사실, 그 사실이 나를 너무나도 흥분시켰다. 엘시는 정말 무표정한 얼굴로 나와 시에리의 섹스를 관찰하고 있었다.
"헤으...흐으...흥...!"
얼굴과 그곳을 가린 채 내 들박을 받아내던 시에리의 손이 천천히 늘어지기 시작했다. 몸 안쪽까지 내려찍는 감각을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앙다물었던 입술이 슬쩍 벌어지고 눈은 풀려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시의 감탄하며 말했다.
"뭔가....뭔가 대단하다."
"하응! 흐응! 응! 조용히! 하응! 해주세....요흥..!"
"기분이 그렇게 좋은가?"
"제...발! 항! 아앙! 조용...히잉! 앙!"
섹스에 몰입하여 엘시의 말을 씹어버리는 시에리를 대신해서 내가 물었다.
"엘시는 교미해본적이 없다고 했죠?"
"아앙! 앙! 하앙! 하앙! 으응! 기, 깊어엇!"
"그렇다."
"아읏! 앗! 아앗! 항! 아아앙! 더, 더어...!"
"직접 해보는 거 말고 본적은요?"
"아앙! 영주...님! 아읏! 좋아! 기분 좋아앗...!"
"......조금은."
엘시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상황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당시 상황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나는 열심히 허리를 올려치며 다시 물었다.
"자, 보세요. 이제. 제 힘을 주입하면 시에리가 강해질거에요."
"아앙! 앙! 좋아! 좋아아앗...! 아윽! 아응!"
그리고 나는 한창 쾌감에 잠식당하고 있는 시에리에게 속삭였다.
"시에리. 준비하세요."
"하응...네? 응...으응...지, 진짜로....으응...!"
"빨리 하세요."
나는 시에리를 재촉하며 허리를 더욱 더 빠르게 움직였다. 급속도로 몰아붙이는 내 허리놀림에 시에리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계속해서 시에리를 재촉했다. 섹스 전에 나랑 시에리랑 하기로 약속했던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에리. 빨리!"
"으응! 응! 하응!
"빨리!"
"하응! 으응! 응!가, 가,가...."
시에리가 입술을 달싹이며 단어를 외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섹스를 보여주는 것보다 한마디를 외치는 게 더 부끄러운 듯 했다. 그녀는 한참동안 얼굴을 가리고 쾌감을 감내하고 있었다. 나는 느긋하게 허리놀림을 바꾸며 시에리를 애태우기 시작했다.
"하으...으응...여, 영주님....빨리...빨리....저, 저 조금만 하면...."
"그럼 외쳐야죠 시에리."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시에리에게 요구했다. 시에리는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저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질 속에서 내 자지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럼, 그만할까요?"
"아, 알았어요... 하, 할게요....!"
"뭘 한다는 거지."
엘시가 궁금해보이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다시 힘차게 시에리의 몸에 좆을 꽂아넣었다. 시에리가 감전된 것처럼 몸을 떨며 혀를 쭉 내밀며 숨을 토해냈다.
"아흑!"
시에리가 그 반발력으로 허리를 가볍게 튕기며 몸을 떨었고, 나는 허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시에리의 귓볼을 빨았다.
"아...아앙...앗..아앗...가, 가, 가...."
"으읏!"
내가 정액을 토해내는 순간 시에리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나는 엘시에게 들리치 않도록 시에리의 등에 손을 올린 뒤 몰래 블레스를 걸었다.
"강해져어어엇....!"
뷰릇뷰릇.
내 정액이 시에리의 안쪽을 가득채우는 게 느껴졌다. 나는 폭발하는 쾌감 후에 찾아온 여운을 즐기기 시작했다. 시에리는 내 품에 안긴 채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더니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주워들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선 몸을 웅크렸다. 베게를 팡팡치는 소리가 났다.
"확실히 섹스를 하고 나서 수녀가 강해진 것 같다."
엘시가 그 모습을 보고 아주 냉정하게 판단했다. 평소의 시에리였다면 섹스 후에 잠시 동안 기력이 쭉 떨어져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블레스를 걸어준 덕분에 시에리는 섹스 후 현자타임 동안 '강해져어어어엇!'이라고 외친 부끄러움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호가 신기하다. 강해져어어엇! 이라고 외쳐야 되는 건가?"
"하지 말아주세요!"
시에리가 이불 속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엘시에게 따졌다. 올해 본 시에리의 모습 중에서 가장 강단있고 단호했으면 분노한 모습이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저 외침을 외치면 그만큼 기합이 들어가요."
"그렇군. 나도 그럼 섹스하고 나서 저렇게 외치면 되는 건가?"
"아니요. 하지 마세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순간 상상했던 것이다. 무뚝뚝한 엘시가 내가 사정하는 것과 동시에 복식호흡으로
-강해졋!
이라고 외치는 모습을. 시에리가 강해져! 라고 외치는 건 외치고 나서 시에리가 부끄러워하니까 좋은거지. 이렇게 수치심이라곤 한터럭만큼도 없는 수인이 외치는 건 발기부전을 불러오는 지름길일 뿐이었다. 지금도 아직 한타임 밖에 안뛰었는데 내 좆이 벌써 수그러들고 있었다.
"그럼 언제가 좋나. 나는 지금도 괜찮다."
"내일하죠. 내일. 내일 이 곳으로 오세요."
"알았다."
엘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시가 나가자마자 나는 시에리에게 말했다.
"시에리. 그럼....."
베게가 날아왔다.
"몰라요!"
시에리는 베게를 집어던지고 이불 속으로 숨어버렸다. 화났나보네.
다음 날 아침. 시에리는 뾰루퉁한 얼굴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시에리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시에리. 화났어요?"
"......"
시에리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슥 돌리며 얼굴을 붉히는 걸 보니 이제 원만하게 화가 풀린 듯 했다. 옷을 갈아입으며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 이제 그런 건 안할거에요."
"안시킬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시에리는 고집이 있는 여자였다. 다음에 또 이상한거 시켜봐야지. 저런 여자일수록 부끄러워 죽으려하는 게 매력이었으니까. 나는 시에리를 출근시키고 오늘자 업무를 보고받았다. 며칠 전부터 열심히 공문을 돌린 결과 용병길드에서 조사를 위해 용병 몇명을 고용했다는 알림이 와 있었다. 또한 남부 각지의 교회에서 사제들을 엄선했다는 보고 역시 들어와 있었다.
다른 일도 아니고 공공의 적인 에반젤린을 찾기 위한 일이다보니 협조가 남달랐다. 나는 사제들 목록을 보며 너무 나이가 많지 않고 사제로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골라서 4명을 추렸다. 그리고 이걸 다시 전령을 시켜 각지 교회에 돌리게끔 했다.
이름으로는 상태창을 볼 수 없는 게 살짝 아쉬운 순간이었다. 용병들은 대충 전사 마법사 레인저로 구성된 3인 파티였다. 내가 사제를 지원해줄거라고 하니 용병길드에선 따로 사제를 충원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이번 일에 대한 고용금액과 자세한 일정을 첨부해서 용병길드에 보냈다. 용병길드에선 마탑 전체를 조사하는 일이라 최소한 한달은 필요할 것이라고 했고, 나는 그 정도면 충분히 기다릴만한 시간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조사건까지 마무리되고 나면 내게 남은 건 엘시와 강해지는 섹스를 하는 것 뿐이었다. 엘시는 빨리 그 효과를 보고싶은 건지 일하는 중간중간 나를 찾아와서 내 물건을 힐끔거리거나 말없이 나를 쳐다보곤 했다.
물론 아무리 나라도 대낮부터 그럼 음탕한 짓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엘시가 그렇게 어필할 때 마다 슬쩍 자리를 피해서 이브나 셀루 옆에 붙어있었다. 이브와 셀루. 생각해보면 셀루는 이브의 엄마였다. 나중에 듣기로는 친엄마는 아니라고 했지만, 어쨌든 둘의 관계는 어느 모녀보다 끈끈했다.
"야."
나는 이브를 불렀다. 수영장에서 발을 담그고 느긋하게 늘어져 있던 이브가 나를 쳐다보며 대꾸했다.
"왜."
"내가 셀루랑도 섹스했잖아."
"그렇지."
이제 이브는 내가 셀루 이름을 막 부르는 것에 대해 신경을 안쓰는 기색이었다. 셀루 본인도 이 점에 대해 별 신경을 안쓰는 것 같았고.
"내가 가임기인 셀루랑 섹스해서 애를 만들면, 걔는 네 동생이네."
"씨발 소름돋는 소리할래?"
이브가 질색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셀루가 그 말에 당연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헤흐, 그렇게 되네."
"뭐가 그렇게 돼! 엄마. 씨발 가임기 때는 얘랑 섹스 금지야. 알았어?"
"뭐야. 이브는 동생이 가지고 싶지 않은거야?"
"씨발 동생도 적당히 개족보여야지. 뭐 그딴 개족보가 있어! 애가 나오면 나중에 가족관계를 어떻게 설명할건데?"
"형부이자 아빠라고 해야지."
"별 씨발....."
이브가 머리를 감싼 채 소리를 질렀다. 개족보가 만들어진 뒤 찾아올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둘 다 내 소유인 이상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으니까. 나는 이브를 달래기 위해 말했다.
"괜찮아. 이브. 나랑 너랑 애를 만들면 셀루는 할머니가 되니까."
"헤흑...."
그 말에 셀루가 딸꾹질을 하더니 물에 잠깐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셀루의 얼굴빛이 창백해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할머니는 싫어. 이브. 너도 애만들기 금지야."
"뭐래. 예비 할머니가."
"너무해. 이브가 나한테 반항해."
셀루는 우는 척을 하며 수영장 가장자리에 있는 내게 다가왔다. 나는 셀루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그녀를 달래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셀루를 달래고 있으니 나는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 꼭 부부끼리 서로 장난치는 거 같네. 근데 내가 셀루랑 부부면 이브는 뭐가 되지?
"야."
나는 다시 이브를 불렀다. 이브는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셀루를 쓰다듬던 손 그대로 이브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빠라고 해봐."
".....진짜 미친새끼."
이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섹스할때 아빠라고 불러주면 진짜 대꼴일거 같은데 어떻게 안되려나? 나는 이브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안되냐? 섹스할 때 만이라도."
"신랑. 내가 신랑한테 이것저것 많이 받아서 화는 안내는데, 아빠는 좀 아닌 것 같아."
이브가 정색하고 나서니 나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그녀로서도 넘을 수 없는 선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노예 출신 인어 혼혈이면 아빠가 대체 뭐하는 인간이니 대충 짐작이 가니까. 그래서 나는 이브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건 포기했다. 나중에 셀루한테 장모님이라 부르면서 장모님 따먹기 플레이나 해야지. 효도하는 법. 아시죠?
이브는 잠시 말없이 있다가 내게 물었다.
"신랑. 이번에 마탑으로 용병들 보낸다고 했잖아."
"그랬지."
"그, 용병들이 사람도 찾아주고 그러나?"
"용병길드에서 수소문해주는 식으로 찾아주지. 전문적으로 누굴 추적해주는 걸 원하면 차라리 도둑길드나 정보길드에 맡겨야 돼."
"그럼 거기 맡겨주면 사람을 찾아줘?"
"왜, 누구 찾을 사람이 있어?"
"아빠 찾게."
이브는 너무도 뜬금없이 아빠를 찾겠다고 말했다. 셀루가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이브. 다 지난 일이잖아. 너무 복수에 매달리는 건 안좋아."
"어떻게 잊어버려 그 씨발년이 친엄마를 죽였는데. 씨발 방금 신랑이 아빠 이야기하니까 또 생각났어. 거의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이브는 머리를 감싸쥔 채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런 이브의 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정보길드에 뭐라고 수소문해줄까?"
"....연결만 해줘. 내가 직접 찾아가서 담가버릴꺼야. 씨발 새끼."
이브는 이를 갈고 있었다. 나는 일단 정보길드에 이브의 친아빠를 수소문해주기로 했다. 이 넓은 땅에서 인상착의만으로 사람을 찾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니까. 아마 오래 걸릴 것이다. 나는 저기압인 이브를 냅두고 다시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정보길드에 연락도 넣어야 하니까.
"어디가. 가지마."
이브가 내게 말했다. 그녀는 내 옷을 꼭 붙잡고 있었다.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짓고 다시 옆에 앉아있었다. 이브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더니 눈을 감으며 말했다.
"잠깐만 이러고 있어."
이브는 예전부터 위생관념 하나는 철저해서 몸에서 항상 비누 냄새가 났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냄새 좋다."
"변태새끼."
"그래도 좋아하지?"
"그래 씨발년아. 존나 좋아해."
이브는 화를 내는 건지 장난치는 건지 알 수 없는 톤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한참동안 수영장의 물결을 쳐다보더니 다시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내가 왜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평생 바닷가에서 여자만 따먹다가 인간들한테 뒤질줄 알았는데."
"다 내가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그 매력에 빠지는 거지."
"지랄하지마."
"헤흐."
이브가 단호하게 욕을 했고 옆에서 셀루가 내 한마디에 어깃장을 놓았다. 나는 그녀가 웃는 의미를 대충 이해했지만, 굳이 셀루에게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이브는 눈을 감고 가만히 내게 기대고 있었으니까.
나는 이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브가 물었다.
"에반젤린이란 놈은 그렇게 위험한 놈일까?"
"아주 위험한 놈이겠지."
"나랑 신랑이랑 저 수인이랑, 그 용사랑 그런 애들이 다 달려들어도 못이길만큼?"
"아마 이기지 않을까?"
그 정도의 드림팀이 구성되면 지는 게 더 힘들 것이다. 물론 용사가 곱게 나랑 파티를 맺어준다는 전제하에서. 이브가 말했다.
"엄마."
"왜 그래?"
셀루가 가장자리로 몸을 일으켰다. 다채로운 색깔로 빛나는 비늘과 쭉 뻗은 척추라인이 내 음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특히 물고기와 사람이 이어지는 부분에 살짝 드러나는 그 엉덩이같이 볼록한 라인이 예술이었다.
"진짜 애 하나 낳을까?"
"동생이 가지고 싶어?"
"씨발. 그 애 말고. 내가 낳는다고."
"헤흐.... 할머니가 되긴 이른 나이라 생각했는데."
셀루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나는 셀루에게 물었다.
"근데 몇살이지. 셀루?"
"서른 셋."
생각보다 존나 젊었다. 확실히 할머니가 되기엔 좀 이른 나이였지만, 어쩌겠는가. 이브가 아이를 낳으면 피할수 없는 결과인데. 나는 다시 이브를 쳐다봤다.
"이브 너는."
"스물 셋이었나."
이브도 많이 젊은 축에 속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나이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누가 내 나이를 옆에서 세준게 아니니까 정확히는 몰라."
이브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쳐다봤다.
"신랑은?"
"몰라. 기억안나."
당연히 모른다. 게임 설정 상에도 루시우스 나이 같은 건 안나와 있으니까. 남캐 조연에게 신경쓸게 없다는 듯이 루시우스에 대해 나와있는 정보는 극히 한정적이었다. 하프 엘프니까 많을거라고 생각하면, 시에리라는 소꿉친구가 걸리고, 그렇다고 어릴 것이라 생각하면 남부 사제장이라는 직위와 전대 용사 일행의 아들이라는 스펙이 걸렸다.
진짜 이 새끼 몇살이지?
"존나 많나보네. 알고보면 막 100살 넘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럴지도."
".....씨발 사기결혼 당했어."
이브가 투덜거렸다. 나는 그런 이브의 등을 가볍게 쓸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이제 엘시랑 기운찬 마사지를 나눌 시간이었다. 벌써 엘시는 내 방 창문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무서운 년.
이브가 창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일은 나랑 해야 된다?"
내일 뒤졌다.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엘시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강해지는 마사지에 대해서 아주 적극적이었다. 내가 들어오자마자 바로 바지 벨트를 풀고 있었으니까. 핫팬츠를 반쯤 벗어내리는 그녀를 보면서 나 역시 옷을 벗기 시작했다. 효과가 확실하니 반응도 좋았다.
엘시의 구릿빛 피부에 11자 모양 복근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녀가 바지를 벗어던지자, 안에 입었던 검은색 팬티가 드러났다. 착달라붙는 재질의 그 팬티는 신축성이 좋아서 쭉쭉 늘어났다. 엘시는 그 팬티까지 벗어던지고 윗도리도 벗었다.
배꼽티를 벗어던진 그녀는 마지막으로 브래지어 대신 착용한 듯 가슴을 압박하고 있는 천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동안 나는 엘시의 알몸을 고스란히 감사할 수 있었다.
쭉 빠지고 잘록한 허리와 탄탄한 복근, 그리고 탄력있고 봉긋한데다가 적당한 크기를 자랑하는 가슴에, 쭉 뻗은 다리까지. 엘시는 육상선수 같은 몸매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쫑긋거리는 귀와 엉덩이 부분에 나있는 꼬리까지 더하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었다.
손과 발이 짐승의 그것과 똑같아서 엘시의 모습은 고양이 장갑과 신발을 끼고 나체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분신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엘시는 알몸이 된 상태로 내 앞에 서더니 슬쩍 자신의 성기와 가슴을 가리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해야 하지."
"제가 잘가르쳐 줄께요. 이리 오세요."
나는 엘시를 침대로 이끌었다. 내 손에 잡힌 엘시의 손은 마치 고양이 털정갑 같았다. 발톱을 넣고 있어서 아주 귀엽게만 보였지만, 엘시가 마음만 먹으면 저 손에서 날카로운 발톱들이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난 알고 있었다.
나는 엘시를 내 옆에 앉히고 그녀의 손을 들어서 내 좆에 가져다댔다. 이건 나에게도 매우 쫄리는 상황이었다. 엘시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발톱이라도 뽑으면 내 좆이 후랑크 소시지처럼 칼집이 날테니까.
엘시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제 그녀가 봤던 마사지에는 이런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녀의 손바닥에 내 좆을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털이 복슬복슬한 손바닥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묘한 감각이 내 좆을 자극하자, 나는 이 쾌감에 중독될것 만 같았다. 털복숭이한테 대딸을 받을 줄이야.
"엘시. 그대로 위 아래로 움직여줘요. 발톱은 세우지 말고."
"이렇게 말이냐."
엘시가 내 성기를 양손으로 살짝 잡고 위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끌어내리며 털들이 내 좆을 간지럽혔다. 이 느낌을 말로 표현하자면 뭐랄까. 테디베어한테 대딸을 받는 기분이라고 할까. 앞 뒤로 천천히 움직이며 내 좆을 압박하던 그녀의 손을 멈추게 했다.
"엘시. 입 벌려볼래요?"
엘시가 입을 쩍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수인종에게 펠라는 무리일듯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엘시를 눕히고, 섹스부터 하기로 했다. 몸이 튼튼하기로 유명한 수인족이다. 냅다 박아도 뒤지거나 몸이 망가지진 않을거라고 믿었다.
나는 엘시를 눕히고 허벅지 사이에 손을 넣어서 다리를 벌리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그녀의 질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처럼 엘시의 보지가 털복숭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보지는 민둥산이었다. 매끄러운 균열 위에 손을 올리자 엘시가 가볍게 허리를 튕기며, 신음을 흘렸다.
"읏...."
"왜 그러나요?"
"뭔가, 이상하다.....간지러우면서.....그 이상한 느낌이 든다...."
"마사지의 효과 때문에 그래요."
나는 그렇게 개소리를 하면서 엘시의 균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손가락을 활용해 주변을 문질러주니 엘시가 미약한 신음성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진득한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말했다.
"머리가....멍하다.....마사지가 이상한 것....같다.....인간들은....이런...걸...매일 하나....?"
"매일 하죠. 기분이 좋거든요. 지금 엘시는 기분 좋은 걸 하고 있는거에요."
"으읏.....모른다....이런 거....매일하면....돌아올 수 없다....무섭...흥...다."
"괜찮아요. 엘시. 그대로 몸을 맡기세요."
짐승 새끼들이 섹스해봐야 얼마나 전문적으로 하겠는가. 엘시는 이런 자극을 겪는 것도 보는 것도 처음일게 분명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장난치는 것을 멈추고 엘시의 비부에 혀를 가져다 댔다.
"하응!"
엘시가 허리를 띄우면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혀를 집어넣고 질벽을 마구 희롱하기 시작했다.
"흐응! 항! 아응! 뭐, 뭔지...모르겠....다! 으응! 이상..하다아...흐응!"
겉표면을 문질러 드러난 클리토리스를 혀로 희롱하며, 나는 본격적으로 균열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엘시는 색다른 자극에 몸둘바를 모르고 있었다.
"성직자..! 흐응! 항!....머, 멈춰라...! 이상하다...! 이상...하읏! 아아앙!"
"가만히 있으세요 엘시."
"....나....나올 것 같다아...! 아읏! 으읏!"
"괜찮아요. 그냥 제게 몸을 맡기세요."
"그럴 수는...! 아앙! 앙! 아흑! 으으응! 없...는....아앙!"
엘시의 아랫쪽에는 이미 홍수가 나고 있었다. 물이 흘러내리는 만큼 엘시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헐떡대고 있었다. 그녀가 쾌감을 느끼는 만큼 허리를 비틀며 자꾸 침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나는 한 손으로 엘시의 허리를 붙잡아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했다.
나는 그녀의 균열을 헤집으며 혀로 계속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공략했다.
"하응! 아앙! 앙! 오, 온다...! 뭔가가...뭔가가 온....으응!"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허리를 크게 띄우며 몸을 벌벌 떨었다. 조수가 분수처럼 솟아나며, 그녀의 허벅지와 내 얼굴을 적셨다. 엘시는 눈을 반쯤 까뒤집고 숨을 헐떡였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내 얼굴을 닦아냈다.
"하으....으...끝...끝났나?"
아직 본게임이 남아있었다. 나는 엘시의 그곳이 적당히 풀어진 것을 느끼고 단숨에 재 좆을 밀어넣었다. 엘시는 갑작스러운 삽입에 놀란 듯 어깨를 떨며 몸을 일으켰다.
"하윽! 자, 잠깐만...!"
경험이 없는 엘시의 보지는 충분히 윤활이 되어있음에도 비좁고 뻑뻑했다. 나는 억지로 몸을 들이밀듯 허리를 밀어서 그녀의 몸 속으로 내 분신을 집어넣었다. 엘시는 내 어깨를 붙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아픔을 견뎌내고 있었다.
"읏....으읍....읏....읍......!"
그녀는 전사였다. 전사다운 태도로 첫삽입의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한계까지 벌어진 그녀의 질이 지금 그녀가 느끼는 아픔을 체감할 수 있게끔 해주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허리를 밀어붙이며 그녀가 내 좆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했다.
마침내 뿌리까지 삽입하자, 엘시가 눈물이 맺힌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끄, 끝인가....?"
나는 엘시의 허리를 붙잡고 다시 눕게끔 했다. 그리고 엘시의 무릎을 붙잡아서 다리를 조금 더 넓게 벌리게 했다. 엘시는 이불을 잡으려는 듯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지만, 수인의 손은 그런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없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으읏.....윽..."
내가 허리를 움직이자, 엘시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었다. 그녀는 신음 소리를 크게 뱉지 않기 위해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나는 그런 엘시를 배려해서 아주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으윽....윽....읏....윽...."
그녀는 땀을 비오듯 흘리며 내 좆을 받아내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질이 내 좆을 수월하게 받아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엘시의 신음소리가 점점 쾌감에 잠식되고 있었다. 나는 허리 놀림을 조금씩 조금씩 더 빠르게 하며 그녀의 표정을 관찰했다.
"응....으읏....아....아응....."
엘시는 내가 얼굴을 조금 가까이하자 자신도 몸을 들어서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입을 맞췄다.
쪽.
엘시가 당황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물었다.
"무, 무슨...."
"꼭 해줘야해요. 입술도 그래야 강화되죠."
"그, 그런가....흐응...."
믿는 건지 믿어주는 건지 알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사방에서 꾹꾹 조여오는 그녀의 압력에 버티기 너무 힘들었다. 원래 운동을 빡세게하던 수인이라 그런지 질의 압력이 엄청났다. 나같이 단련된 인간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서 절단 할수도 있을 것 같은 수준이었다.
나는 힘겹게 허리를 움직여 더욱 더 속도를 높였다. 내가 빠르게 움직일수록 엘시도 신음성을 더욱 높이며 몸을 뒤틀었다.
"하응....으응! 앗....아앙....!"
나는 엘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혀라 잘릴까봐 혀는 밀어넣지 않았다. 신음을 토해내던 그녀가 내 입맞춤을 받아들이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나는 허리를 흔들며 그녀의 가슴을 주물렀다. 하반신에서 나는 음란한 물소리가 방 안의 정경을 음탕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앙! 아앙! 앙! 아앙!"
입맞춤을 마치자마자 엘시가 격한 신음을 토해내며 접합부를 쳐다봤다. 그녀의 보지에 내 우람한 좆이 왔다갔다하고 있는 게 적나라하게 보였다. 엘시는 그 모습을 홀린듯 쳐다보며 계속 신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나는 한계 다다른 것을 느끼고 그녀를 끌어안고 더욱 강하게 허리를 치댔다.
"자, 잠시...으으! 아응! 아앗! 아아....아앙!"
엘시가 소리를 질러대며 내 등을 껴안았다. 발톱을 꺼내지 않은 것 마지막 이성이었다. 나는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걸 느끼며 사정과 동시에 엘시의 몸에 블레스를 걸었다.
"흐으으으으윽....!"
엘시가 몸을 떨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한참동안 쾌감의 여운에 빠져들었던 그녀가 멍한 눈빛으로 천장을 쳐다보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 품에서 빠져나와 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팔다리를 점검해보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진짜로 힘이 넘친다."
"일시적으로 강해지는 거에요. 주기적으로 제게 마사지를 받으면서 수련을 하시면 분명히 강해질거에요."
"그런가! 알겠다! 앞으로 매일 받겠다!"
엘시는 내게 감사인사를 하더니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내가 급히 엘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디가세요?"
"수련하러 가야한다!"
"기다리세요. 오늘은 일단 마사지에 더 적응을 해야죠. 자세가 좀 다양하게 있거든요."
"자세?"
엘시가 내 말에 흥미를 느낀 듯 했다. 나는 엘시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더 기분좋은 자세도 있어요."
"더.....기분 좋은....."
엘시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문과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얌전히 침대로 돌아오며 말했다.
"그럼 믿어보겠다."
병신.
로이와 엘시는 어릴 적 부터 부족에서 함께 자란 사이였다. 로이는 남들에게 말을 안했지만 엘시가 자신의 신부가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함께 자란 아이들은 꼭 부부가 됐으니까. 엘시도 말은 안했지만, 성인식 후에 꼭 자신을 선택해줄거라고 믿고 있었다.
로이의 이런 믿음은, 엘시가 전사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그는 엘시와 교미를 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호기심많던 로이는 교미 천막에서 어른들이 교미하는 모습을 훔쳐본 적이 있었다.
여전사는 기쁨이 가득한 표정으로 신음소리를 뱉고 있었다. 남전사는 그 우람한 근육으로 여전사를 마구 범하고 있었다. 로이는 남전사에 자신을 대입하고, 깔려서 신음하던 여전사에 엘시를 대입해서 상상하곤 했다. 그러면 로이의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고, 로이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대다가 다시 수그러들곤 했다.
그렇게 로이는 엘시에 대한 음탕한 마음과 순수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부족 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엘시가 밑가슴을 살짝 내보일 때나 실수로 옷을 갈아입던 중에 들어가면, 로이의 성기는 다시 한 번 크게 발기했다. 하지만 성인식이 끝나고 나면 꼭 엘시랑 결혼할거라 생각했던 로이의 계획은 전쟁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전사였던 엘시와 같은 순찰대원으로 출발했던 로이는 인간 병사들의 기습에 의해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가장 열심히 싸웠던 엘시는 로이를 비롯한 수인족 몇명이 포로로 잡히자 항복하고 포로로 들어갔다. 에버딘 영주는 훌륭한 실력을 보여줬던 엘시에게 거래를 제안했고, 엘시는 그 거래를 밭아들여서 노예 시장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로이는 그 모습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약해졌다. 차라리 자신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차라리 용감하게 싸우다 죽었다면 엘시가 항복해서 붙잡힐 일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노예 생활을 할 필요도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노예로 잡히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한 굴욕이었다.
그래서 로이는 시간이 날 때 마다 엘시에게 말했다.
"내가 더 강했으면, 잡히지 않았다."
"괜찮다. 네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로이는 그 말마저도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로이는 결심했다. 엘시와 함께 반드시 탈출할 것이라고, 힘을 기르고 길러서 꼭 엘시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그래서 로이는 수련에 매진했다. 철창 안에 갇혀있으면서도 자신을 단련했고, 그런 그를 다른 수인들도 응원했다.
"너무 무리한다. 몸을 아껴라."
엘시도 그런 그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로이에게 그 걱정은 삶의 원동력이자 희망이었다. 로이는 걱정을 원동력 삼아서 더욱 더 열심히 몸을 단련했다. 그렇게, 곧있으면 빠져나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할 때 였다.
"제 영지로 오지 않겠어요?"
인간이 또 다시 엘시를 뺏어가려고 했다. 로이는 그 인간을 증오했다. 금발 머리의 영주는 묘한 미소를 띄우며 엘시를 훑어보았다. 엘시는 그 인간을 믿었다. 하지만 로이는 그 인간을 믿을 수 없었다. 영지로 오라는 말 자체가 너무 수상했다. 로이는 인간이 엘시와 교미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너희들은 어떻게 할거냐."
"나도! 나도 간다!"
그래서 로이는 엘시가 어떻게할지 물었을 때 간다고 대답했다. 그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엘시가 가면 가는 게 확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엘시를 지켜야 한다. 저 사악한 인간 손에서 엘시를 지켜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로이는 인간 전사에게 처참한 패배를 맛보았고, 엘시는 인간들에게 인정받았다. 엘시는 전사가 되기 위해 호위병이 되었고, 로이는 농사를 지으라고 지시했다. 로이에겐 농기구와 제법 넓은 땅이 주어졌다.
엘시를 만날 수도 없다고 했다. 로이는 가끔씩 저택으로 찾아가서 엘시를 보려고 했다. 하지만 낮에는 엘시가 잠들어있었고, 밤에는 저택에 출입 금지였다. 로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과 수행에 매진했다.
농사 교본이며 농사에 필요한 씨앗까지 온갖 물품이 주어졌지만, 로이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수인족이었으니까. 먹을거리는 산에서 돼지를 잡아서 충당했고, 남은 시간은 전부 수련에 매진했다.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서, 엘시를 찾아와야 했다. 엘시가 자신을 다시 보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우연치않게 밖에 나와있던 엘시와 로이는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매우 기분이 좋아보였다.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고 귀가 빳빳하게 서 있었다. 로이는 그 인간이 엘시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한편으로는, 엘시가 이 곳에서의 생활에 만족한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어, 어떻게 지내는 지 궁금했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로이. 너는 어떤지 궁금하다."
엘시가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 로이는 그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났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두 사람은 인연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로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나는 수련하고 있다. 조만간 강해져서. 데리고 떠난다."
"나는 여기서 나가지 않는다. 엄마 무덤도 여기있고, 사람들도 친절하다. 패배한 전사는 부족에 돌아갈 수 없다."
"그건 고집이다. 돌아가자. 돌아가면 모두가 엘시를 환영한다."
"나는 여기서 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엘시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엇으로 강해진다는 말인가? 이 곳엔 제대로된 짐승들도 살지 않았고 목숨을 노리는 인간들도 없었다. 전사의 강함은 평야의 짐승들과 인간들을 사냥함으로서 정해지는 게 아니던가.
"이해할 수 없다. 엘시는 여기서 더 강해질 수 없다."
"아니. 난 여기서 더 강해질 수 있다."
"왜냐.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성직자는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요즘 매일같이 마사지를 받고 있다."
"마사지?"
엘시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전해준 비밀은 로이를 황당하게 만들 뿐이었다. 마사지라니. 대체 마사지가 뭐길래? 마사지가 뭐길래 엘시를 이렇게까지 매달리게 만드는 걸까?
엘시는 말했다.
"마사지를 받으면 몸이 강해진다. 강해진 몸으로 수련을 하면, 더욱 더 효과가 늘어난다. 나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느낀다."
"그런 건 거짓말이다! 엘시가 그랬다! 마법사는 믿으면 안된다! 성직자는 더 믿으면 안된다!"
"성직자는 믿을만한 사람이다. 내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엘시는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로이는 충격받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정말 아름다운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엘시가 이곳에 사는 그 감발의 인간 앞에서 저런 표정을 짓는 다는 것 자체가, 로이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엘시는 바보다. 인간을 믿으면 안되는 데, 믿는다."
"그는 다르다. 우리 엄마의 시체를 장사지내주고, 나를 받아줬다. 믿을만한 인간이다."
"그러니까 바보라는 거다! 고작 그런 걸로 어떻게 믿는지 모르겠다! 바보다! 너무 바보다!"
"로이. 거기서 더 하면 나도 화내겠다."
"이제 엘시같은 건 모른다!"
로이는 집으로 뛰쳐들어갔다. 하지만 로이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엘시가 남아있었다. 밤이 깊도록 로이는 엘시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 사악한 인간이 무슨 짓을 꾸미는 지도 궁금했다.
맑아진 머릿속에 자신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로이는 저택으로 다시 한 번 걸음을 옮겼다. 엘시를 만나서 사과해야 했으니까.
저택 내부의 경비는 허술했다. 로이는 담벼락을 뛰어넘어서 엘시를 찾았다. 복도 여기저기를 돌아보았지만, 어느 곳에도 엘시가 없었다. 창밖 수영장에는 인어 한마리가 둥둥 떠다니면서 잠들어 있었고, 다른 방에서는 여자 두명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엘시의 방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로이는 조심스럽게 복도를 거닐고 2층으로 올라갔다. 때맞춰서 순찰자가 1층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한 층 한층 올라간 로이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엘시의 목소리였다.
"응...으응....하앙....."
엘시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로이는 황급히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그 사악한 인간이 엘시를 고문하는 게 분명했다. 로이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가며 발톱을 세웠다. 방 너머에서 신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찰싹, 찰싹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너무....크다...."
로이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조심스럽게, 기회를 노려야 했으니까. 로이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 틈으로 보인 광경에 로이는 심장이 멈출것만 같았다.
그곳에는 엘시가 알몸으로 앉아있었다. 엘시는 인간 위에 올라탄채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앙...아아앙....아앙...."
"에, 엘시.....저 이제...."
"좋다...흐응...마음껏 싸줬으면....한...아응..."
"으읏!"
인간이 허리를 올려치자, 엘시가 눈을 감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로이는 저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교미였다. 엘시와 인간은 교미를 하고 있었다. 인간의 몸에서 벗어난 엘시의 가랑이 사이에서 하얀 물이 흘러내렸다. 로이는 자신의 눈을 파버리고 싶었다.
엘시는 암컷의 표정을 지으며 인간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엘시. 저 쪽으로 벽을 짚고 서봐요."
엘시는 그 말대로 벽을 짚고 엎드렸다. 엉덩이를 쑥 내민 자세덕분에 탱탱한 가슴이 아래쪽으로 늘어졌다. 그 적나라한 신체에 로이는 훙분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은 자신의 커다란 성기를 문지르며 다가오더니 엘시에게 사정없이 자신의 물건을 꽂아넣었다.
"아앙...!"
엘시가 허리를 떨며 다리를 무너뜨렸다. 인간은 엘시의 가슴을 주무르며 속삭였다.
"예뻐요 엘시."
"아응...! 응..! 그런....말....부끄럽다...아응!"
로이는 깨달았다. 자신은 패배했다는 걸. 더 이상 이곳에 있더라도, 엘시가 자신을 봐줄리 없다는 걸. 로이는 약했고, 저 인간에 비하면 성기도 너무 작았다.
"아앙! 앙! 하응! 응! 으응!"
신음소리가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로이는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담벼락을 넘어섰다. 그는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고향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엘시를 다시 데려올만큼 강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 그런 남자가 되어 당당하게 인간에게 도전하기 위해서.
다음 날 아침. 저택에는 수인 한 명이 사라졌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농사법을 제대로 익혔는 지 확인하러 들어가자 오두막 안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납치나 실종 같지는 않았고 스스로 고향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루시우스는 엘시에게 물었다.
"어떻게, 다시 데려올까요?"
"상관없다.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자기 맘이다."
루시우스는 그 매몰찬 대답에 잠깐이지만 로이를 동정했다.
수인족 로이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여러가지를 지원해줬지만, 그는 밭도 경작하지 않았고 농사 책도 읽어보지 않은 듯 했다. 밭은 개간되지 않았고 호미와 넉가래에는 먼지가 쌓여있었다. 나는 다음에 누가 이주해오는 걸 대비해서 물품들은 그대로 놔두고 종자만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엘시는 로이가 사라진 것에 대해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입으로야 가는 건 자기마음이라고 했지만, 정말로 가버리니 서운한 것이다. 로이의 이야기를 할때 갑자기 멈추는 꼬리나 살짝 늘어지는 귀를 보면 그녀의 심정을 대충 알 수 있었다. 어린 동생이 독립하는 느낌이었겠지.
하지만 그런 아쉬움도 순간일 뿐, 엘시는 다시 내 밑에 깔려 앙앙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녀는 로이를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내 밑에 깔리는 걸 좋아했다. 탄력있는 근육질 몸매에 나도 중독될 것 같았다. 이브나 시에리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고나 할까. 섹스에 익숙해진 시점에서 엘시는 조금 전투적으로 나를 밀어붙여왔다.
내가 사정할 때 마다 블레스를 걸어주니, 내가 사정하는 걸 유도하기 위해 아주 미친듯이 허리를 흔들거나 보지를 쪼여대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어느 정도 자신도 즐기는 감이 있던 이브나 시에리와는 달리 최근 엘시와의 섹스는 내가 일방적으로 쥐어짜내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아마 엘시에게 본인도 몰랐던 사디즘 성향이 있던게 분명했다. 내가 사정하는 걸 보면서 엘시가 살짝 웃는 걸 자주 보게 되었으니까. 그건 쾌감보다는 만족감에 젖은 미소였다.
한달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집무실에 앉아있던 나에게 전령이 편지를 배달했다. 마탑에서 온 편지였다. 나는 내가 엘시와의 섹스에 몰입한 사이 용병들의 조사가 끝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가 보낸 편지인가요?"
아이라가 물었다.
"마탑에서 편지가 왔네요. 저번에 파견 보냈던 내용을 다 마쳤나봐요."
나는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에반젤린 같은 거물이 용병들한테 붙잡힐리도 없었고, 설령 붙잡았다고 해도 이 놈들이 편지로 그 사실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웠다. 내가 노리는 건 딱 하나. 에반젤린이 자신을 찾아온 용병들을 보고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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