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ão 3
그리고 나는 이 사내 역시 누군지 알고 있었다.
엘프는 엘프 왕국의 공주 에리나였고 저 남자는 용사였다. 이 게임의 마왕을 물리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바로 그 용사. 최대 15인까지 하렘을 만들수 있는 진성 난봉꾼.
"에리나!"
"무례한 놈! 우리가 누군지 알고 공격을 가하느냐! 역시 네놈들도 마왕의 한 패....."
"에리나 진정해! 영주님이시잖아!"
나는 용사의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엘프 공주인 에리나는 나를 못알아보는 데 저 놈이 날 알아본다고? 용사는 정식으로 무릎을 꿇고 인사를 건넸다.
"무례를 저질러 죄송합니다. 영주님. 저희는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중입니다. 저는 미천한 용사 에이에이고, 이쪽은 엘프 에리나입니다."
"....이름이 뭐라구요?"
"에이에이입니다."
"에이에이? 그 건전지 부를 때 쓰는 그 AA?"
"건전지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제 이름은 에이에이가 맞습니다."
이 새끼 아버지는 뭐하는 새끼길래 애 이름을 에이에이라 지은 거지? 내가 용사의 기괴한 이름에 잠시 뇌정지가 온 틈을 타, 에리나는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로 내게 말했다.
"네 놈! 내 신분을 알면, 빨리 무릎을 꿇어라. 비천한 하프 엘프 놈이 공주를 보고도 어찌 인사를 건네지 않느냐?"
한결같이 띠꺼운 년이었다. 엘프 에리나는 원작 게임에서도 싸가지가 없기로 유명한 히로인이었다. 시나리오 초반에 만나면서 떡씬도 가장 늦게 풀리고, 호감도가 일정치 이하라면 하렘도 불가능했다.
거기다 연인 이벤트 해금 조건이 게임 초반 '엘프의 숲 초입에서 몬스터에게 쫓기는 그녀를 구해준다.'기 때문에 현재 내가 공략하는 게 불가능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어디서 용사가 뒤지면 몰라도.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래서 나는 에리나를 깔끔하게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저 여자가 엘프 왕국의 공주가 아니라 여왕 그 자체라도 나한테 해코지하는 건 불가능했고, 내가 비위를 맞춰준다고 해서 다리를 벌려줄 가능성도 없었다.
"나를 무시하는 거냐! 이 건방진 하프엘프 놈 같으니!"
이 세계관의 엘프들이 하프엘프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에리나만 이랬다. 에리나는 어릴 때 부터 순수혈통 하이엘프들만 보고 자라서 하프 엘프는 더럽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 때문에 원래 루시우스를 대면할 때 에리나를 데리고가면 에리나가 무례한 발언을 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물론 루시우스는 그것도 봐준다.
나는 에리나를 슬쩍 보고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아힐데른 에리나
레벨 : 30
직업 : 아힐데른의 공주
힘 : 68
민첩 : 120
지능 : 70
행운 : 57
특성
엘프의 적응력
숲, 늪, 산, 평야에서 행동이 빨라집니다.
바다에서 패널티를 받습니다.
고압적 태도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상대는
[공포] 상태에 걸립니다.
바람의 궁수
화살을 쏠 때 실프의 힘을 빌어 작은 마법 화살을 추가로 날립니다.
이 화살의 데미지는 민첩에 비례합니다.
에리나에게 한가지 유감스러운 상황이 있다면, 나는 그 착한 '루시우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매우, 불쾌한 발언을 하시네요."
내가 메이스를 까딱이며 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너 마침 잘걸렸다고.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이 세계의 엘프들은 노예 생활을 했던게 아닌 이상,대체로 인간을 싫어하지 않는다. 에리나도 딱히 인간을 싫어하진 않는다. 주인공에게 다리를 벌려준다는 걸 생각해보면, 오히려 인간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근데 왜 인간과 엘프가 떡쳐서 낳았을게 분명한 하프 엘프는 싫어하는 거지? 책임없는 쾌락을 추구하는 년인가?
"네가 불쾌하면 어쩔테냐? 우리는 용사 일행이고 나는 엘프 왕국의 공주다. 네 녀석이 어찌할 존재가 아니다!"
"맞는 말씀을 하시네요. 에리나 공주님.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죠?"
일단 그래도 나는 다짜고짜 결투신청을 하는 건 참아주기로 했다. 스텟도 만만치않고 정령도 다루는 년이다. 만전의 상태라면 몰라도 지금같이 톡하면 뒤질거 같은 상태일때 싸우면 필패였다.
이길 수 있는 상대한테 억울하게 지는 것 만큼 화나는 일이 없다. 이 녀석들은 잠깐 들렀다가 도망치는 나그네가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여기 온 목적이야 뻔했다. 원작 게임에서 용사 일행은 이 곳에 전대 용사의 성물을 가져가기 위해 찾아온다. 참고로 그 전대 용사의 성물은 내 저택 창고에 고이 모셔져 있으며 [용사만 착용 가능]이라고 툴팁에 적혀있기 때문에 내가 쓸 수 없는 물건이었다.
"우리는 전대 용사가 썼다던 [성물]을 받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성물을요?"
나는 몰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척을 했다. 에리나는 옆에서 추임새를 넣었다.
"그래. 알아들었다면 빨리 성물을 내와라 비천한 하프엘프 같으니."
"에리나!"
용사가 엄한 얼굴로 에리나를 질책하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입단속을 시킬테니...."
"사과하지 마라 에이에이! 나는...."
"성물을 드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셨으면 하는데요."
"부탁말인가요?"
"이...읍! 읍!"
에리나가 부탁이라는 말에 한 번 더 발작하려고 하자 에이에이가 입을 틀어막았다. 에리나가 품 속에서 날뛰자 더욱 꽉 끌어안은채 내게 말했다.
"그.... 부탁이란게 무엇인가요? 들어드릴 수 있는거라면...뭐든지... 에리나! 좀 가만히 있어!"
저래서야 엘프 공주가 아니라 미친년이다. 평생을 왕국에서 호의호식하며 떠받들어지며 살던 에리나는 세상물정을 아예 모르는 싸가지없는 캐릭터였다. 혹자는 도적들이나 악당들에게도 거침없이 막말을 내뱉는 에리나를 사이다 머신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건 게임할 때 이야기고.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바로 코 앞에서 정신병자 왈가닥 아가씨의 수발을 들어주고 있는 에이에이의 모습을 보니 가슴 한 켠이 미어지는 듯 했다. 내가 아무리 여자에 미쳤어도 이런 미친년은 데리고 살 생각이 없었다.
에이에이. 그 년이랑 꼭 백년해로해라. 그래서 에리나 년이 수명의 차이를 느끼고 절망하다 자살했으면 좋겠다. 씨발년.
"뭐 그리 어려운 건 아니구요. 보시다시피 지금 저희 영지는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판국이라 한 사람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거든요."
우리 영지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건 에리나도 동감하는 지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놈들도 아마 몬스터들을 뚫고 오느라 온갖 수라장을 겪었으리라.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이 미친 공주에게도 최소한의 공감능력은 존재하는 듯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하고픈 말을 꺼내들었다.
"그래서 제가 체력이 회복되도록 며칠만 저희 왕국의 방비를 도와주셨으면 하는데요."
여기서 예상 질문 하나. 시간에 따라 마왕이 강해지는데 여기서 갑자기 며칠이나 질질 끌게 만든다고? 그러면 마왕이 강해지니까 손해 아닌가? 차라리 에리나랑 용사가 먼저가서 마왕을 물리치는 게 좋지 않나?
전에 말했듯 이 게임은 마왕을 물리치기 전에 최대 16명까지 하렘 파티를 만들 수 있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그렇게 풀 스토리를 즐기면서 깨면 게임 내 시간으로 대략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내가 있는 이 페타 루시우스 영지는 게임 내 중후반부 스토리를 담당하는 영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 이 미친 고인물 용사 새끼는 그 거리를 한달만에 주파하고 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며칠 있더라도 게임 진행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마왕은 부활 예언 발생 후 3개월 뒤에 부활하니까. 통상적인 4인파티를 만들면 딱 3개월 정도 걸린다. 지금쯤 마왕은 이제 알에서 다리 하나 정도 내밀었거나, 제물을 가져오라고 칭얼대고 있을게 분명했다.
"음.... 저희가 마왕을 물리치러 빨리 가야해서....."
제 아무리 용사라도 이런 부탁은 좀 난감했던 것일까. 입이 틀어막혀있는 에리나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부탁해보기로 했다.
"어떻게 안될까요?"
힘들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당장 몬스터가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길 수 있는 놈들한테 지는 것만큼 억울한 일이 없다. 나는 지금 쉬어야 했고, 내가 없는 사이에 몬스터들이 내 영지를 유린하기라도 하면 난 제대로 잠들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죠."
"읍! 으읍! 읍읍!!!"
에리나가 눈을 부릅뜨고 용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미 꽉 붙잡힌 상태의 그녀는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리나는 보통 스킨쉽하면 존나 싫어하는 히로인인데 저렇게 붙잡아도 가만히 있다니, 호감도가 꽤 높은 모양이었다.
"그럼 잠시동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렇게말하고 자세한 사항은 로빈에게 전해들으라 한 뒤 바로 저택으로 향했다. 에리나를 데리고 있고 스테이터스 상으로도 용사라고 나와있으니 사기치거나 일을 대충할리는 없었다. 로빈이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에리나와 용사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영주님!"
아이라가 나를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푹식한 감촉이 얼굴에 와닿으며 이게 천국이라는 걸 체감하게끔 했다. 풍만한 가슴에 파묻힌 채, 나는 아찔한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이라는 나를 봐서 반가운 것인지 일주일 동안 섹스를 못하다 상대를 만나서 흥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이라. 제가 좀 피곤하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라는 남들이 듣지 못하게 조용히 속삭였다.
"누워만 계시면 제가 해드릴게요. 네? 네?"
뒤질거 같긴 했는데. 설마 한 발 뽑는다고 뒤지겠어. 그렇게 나는 아이라를 데리고 방으로 올라갔다.
"아흑! 흐읏...! 하앙! 하앙! 좋아...흐응...!"
야속하다. 빳빳하게 선 저 욕망의 덩어리가 야속하다. 난잡한 교접음과 쩌억쩌억 달라붙는 도톰한 엉덩이가 야속했다. 그 광경을 스스로 절경이라 생각하면서도 이 상황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자신이 야속했다.
아이라는 뒤로 돌아서 내 위에서 연신 방아를 찧고 있었다. 커다란 내 자지를 뿌리채 삼킬 때 마다 온 몸을 감전된 듯이 떨며 그녀는 턱을 치켜 들었다. 이마에 맺힌 구슬땀이 그녀가 겪는 쾌감의 수준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이라는 한 번 허리를 들썩일 때 마다 신음성을 내질렀다.
"아하...하앗! 여, 영주님... 저... 저 이제....!"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치 뱀과 같이 유연한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엉덩이가 내 골반에 부딪힐 때 마다 크게 출렁거렸다. 뿌리채 내 좆을 삼킨 그녀의 질은 아이라가 앞으로 허리를 숙일 때 마다 그 음란한 자태를 슬쩍 슬쩍 엿보이며 끈적한 액체를 뿜어내고 있었다.
"으응! 하아! 좋아....! 좋아...! 아아아! 아아아앗!"
아이라가 내 양물을 뽑아먹을 듯 새차게 허리를 내리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무아지경에 달한듯한 허리 놀림에 나는 진짜 뽑혀서 죽는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쾌감은 끝내줬지만 더 하면 내 인생도 같이 끝날 것 같았다.
"끄윽....!"
나는 괴상한 신음을 내며 힘차게 사정했다. 아이라는 몸속을 꾸역꾸역 파고드는 진한 사정에 몸을 떨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일주일 동안 사정하지 못한 내 성기는 사정을 멈추지 않고 줄기차게 정액을 뿜어냈다.
"허어...허어...."
나는 섹스하다가 죽는게 포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아니었다. 이건 지옥이다. 생명력이 그대로 쭉 빨려나가는 탈력감과 무력감이 괴로울 정도였다. 나는 몸을 돌려 내 정면을 바라본 아이라를 쳐다봤다.
그녀는 쾌감에 푹 젖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아이라는 내 젖꼭지를 살살 핥으며 말했다.
"영주님... 일주일 동안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이런 거 해주면, 해주면 어디 안가신다고 하셨잖아요...."
아이라는 나와 입을 맞추더니 혀를 밀어넣고 내 입천장부터 구석구석을 핥아오기 시작했다. 그 강렬한 자극에 내 성기가 다시 반응했다. 아이라는 자신의 몸 안에서 천천히 발기하는 성기의 존재감을 느끼고 눈을 감은 채 가볍게 허리를 흔들었다.
"으읏....!"
내가 묘한 신음을 내고 아이라는 다시 한 번 허리를 들어 움직이려고 했다. 이건 죽는다. 더 하면 진짜 죽었다. 흡성대법에 당하는 무림고수들이 이런 느낌으로 뒤지는구나. 나는 아이라의 허벅지를 붙잡고 말했다.
"자, 잠깐만! 잠깐만 아이라!"
"왜, 왜그러세요? 설마 제가 싫어진..."
"아니. 아니. 잠깐만!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여기서 그만하죠? 네?"
"영주님... 한 번만 더요? 네?"
"....아이라. 혼나요?"
"....아...."
아이라는 그 말에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 내게서 슥 물러났다. 벌벌 떨면서 침대 구석에 박혀있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방금 진짜로 뽑혀먹힐뻔 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아이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곱게 타일렀다. 아쉽지만 더 하면 정말 내가 죽을 것 같았으니까.
"아이라. 저도 아이라와 같이 있으면 좋지만, 저는 지금 일주일 동안이나 몬스터를 잡았잖아요. 지금 너무 피곤한데, 다음에 하는 게 어떨까요?"
".....네."
아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라가 다시 옷을 입기 시작했다. 허리를 숙일 때 드러난 그녀의 음문을 바라보면 하얀 액체가 맺혀있었다. 다시 성욕이 돋아서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숨기고 고개를 돌렸다.
내 하반신을 보면 다시 액체 범벅이었다. 잠들기 전에 다시 또 씻어야 한다는 것에 짜증이 밀려왔다.나는 한숨을 쉬고 수건과 옷가지를 가지고 목욕탕으로 갈 준비를 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영주님. 저에요. 시에리."
"무슨 일인가요?"
"혹시 자기 전에 그...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까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라 이 좆같은 년.
엘프들은 강한자를 남편으로 삼는다. 엘프 왕국의 공주 에리나는 마왕을 물리친 용사를 자신의 남편으로 고려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왕국을 뛰쳐나간다. 마왕을 잡을 용사의 씨를 품고 돌아오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너무 천박한 핑계 아니냐고? 야겜이라서 그렇다. 물론 이 정신나간 핑계는 말 그대로 핑계일 뿐이었고 실상은 자신이 마왕을 잡아서 결혼 이야기를 못꺼내게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에리나는 숲을 나서자마자 못된 몬스터들에게 쫓기게 되고, 여기서 용사의 도움을 받게되며 용사 일행에 합류한다. 그리고 엔딩에서 용사가 에리나를 선택하게 되면, 에리나는 이렇게 말한다.
"어, 어쩔 수 없구나. 마왕을 물리친 용사는 네녀석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와 결혼하면 네 녀석은 좋아하는 모험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엘프가 아니니 왕위에 오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느냐?"
이른 아침부터 에리나의 스토리를 생각하던 나는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을 했다. 에리나가 용사의 자식을 받는다는 명분으로 숲을 뛰쳐나왔다면, 내가 마왕을 쓰러트리면 에리나랑 섹스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명분이고 자시고 에리나는 야겜 속 엘프 왕국의 공주다. 아무리 자주적이고 싸가지없는 년이라도, 공주는 대를 이어야 했다. 용사가 인간이라면 하프엘프가 나오지만, 하프엘프라면 그냥 엘프가 나온다. 즉, 엘프 왕국 입장에서도 나와 에리나가 섹스하는 게 더 좋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생각을 가다듬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에리나 대신 용사와 함께 마왕을 물리친 다음 지쳐있는 용사의 뚝배기를 깨버리면, 용사가 마왕한테 죽었는 지 나한테 죽었는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나는 그냥 용사 시체를 가지고 애도하는 표정 좀 지어주고 장례식 후하게 치뤄주면 된다. 그렇게되면 마왕을 물리친 용사는 나 밖에 안남는거고, 나는 에리나한테 섹스를 강요할 수 있었다. 물론 에리나와의 사이는 원만하지 못하겠지만, 그게 뭐 어떤가.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하는 엘프 공주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버러지같이 쳐다보던 하프 엘프한테 깔려서 앙앙대는 에리나. 생각해보니까 꼴린다. 걸리는 점이 있다면 이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에리나가 빠지고 내가 대신 파티에 들어가야 하며, 용사가 뒤져야 했으며 내가 떠난 동안 영지를 맡아줄 대리인이 있어야 했다.
옆동네 사는 영주는 대리인으로 쓸 수 없었다. 이 운좋은 NTR충은 우리 영지가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차라리 이럴 때 병사라도 보내줬으면 도움이 됐을텐데, 내가 망하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것처럼 단 한명의 병사도 보내지 않았다.
언젠가 꼭 죽인다 진짜.
내가 섹스에 대해서 고민하는 동안 바깥에선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간간히 로빈이 보내는 보고에 따르면 에리나와 용사는 아주 훌륭한 솜씨로 몬스터를 격퇴하고 있다고 했다. 마왕이 부활하는 시점이 다가오다보니, 몬스터들이 부활 장소로 모이는 모양이었다. 내 영지는 하필이면 그 길목에 있는 것이고.
그렇게 3일이 지났다. 나는 한결 멀쩡하고 개운해진 모습으로 저택 마당에 나왔다. 그곳엔 피곤에 쩔어있는 에리나와 용사 에이에이가 있었다. 용사는 특유의 호빠머리가 다 헝클어진 상태였고 에리나는 하얀 피부가 흙투성이였다. 나는 그들의 스테이터스를 보고 살짝 놀랐다.
3일 사이에 레벨이 몇단계씩 상승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희는... 할만큼 했다고 봅니다만...."
용사 에이에이가 내게 말했다. 그 말대로 에이에이는 아주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줬다. 내가 여기서 더 끌 명분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 나는 창고를 개방하라 이르고 에이에이와 에리나를 따라오게 했다.
오랜 시간 관리를 안한 창고가 아주 더럽혀져 있었다. 나는 그 잡동사니들 맨 위에 마치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올라가 있는 투구를 집어서 내려왔다. 에리나도 에이에이도 기가막힌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성물을 저따위로 보관했다고?"
"오랜 시간 쓸 일이 없었으니까요."
원작에서는 그냥 [용사는 루시우스에게 성물을(를) 받았다!]라고만 나오기 때문에 어떻게 보관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전생한 후 따로 위치 정리를 한 적이 없으니 원래 루시우스가 이따위로 보관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게 아닐까? 나도 루시우스가 왜 성물을 이 따위로 보관하고 있었는지 조금 의문이었다. 얘 성물 싫어하나?
"대단한 놈이구나. 실력이 미천하여, 마을의 방위는 우리에게 맡기지 않나...."
엘프들 특유의 꼰대 기질을 발휘하며 에리나가 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좋은 상황이었다. 에리나 NTR 섹스를 즐기려면 이년이 여기서 폭주해줘야 했다. 나는 장갑을 벗으며 타이밍을 기다렸다.
"에리나!"
용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에리나는 그런 용사의 만류에도 지지않겠다는 듯 입을 놀리고 있었다.
"성물의 보관도 개판으로 하는데다 손님 대접도 엉망이야. 그래서야 어디 페타 시리우스의 핏줄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의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더냐? 마왕을 잡고 돌아가신 네 아버지도 저승에서 네 모습을 보고 통곡하실거다."
"에리나! 그만해! 나 화낼거야!"
용사가 열심히 말리곤 있었지만, 다행히 입은 틀어막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눈을 찌푸리며 화난 척을 했다. 루시우스는 원래 부모님을 들먹이는 걸 매우 싫어했다. 근데 가만 생각하니까 이 새끼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면서 나한테 이 따위로 대한건가? 쌍년도 이런 쌍년이 없었다.
"하여튼 이래서 하프...읍!"
내가 내던진 장갑에 얼굴을 얻어맞고 에리나가 기가막히단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모욕을 도저히 들어넘길 수 없군요. 용사 일행의 파티가 이리도 저열한 엘프라니. 저 역시 엘프 왕국의 공주인 당신에게 환멸했습니다. 결투를 신청합니다."
하프 엘프를 증오하는 인종차별주의자 새끼. 내 분노를 받아라.
에리나는 바닥에 떨어진 장갑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엘프 공주의 프라이드가 자신이 받은 대접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같았다. 에이에이가 사태 수습을 위해 나와 에리나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자, 영주님. 저희 공주가 무례를...."
"대신 사과하지 마세요. 용사. 엘프 왕국의 공주라면 무릇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특히 자식 앞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들먹이며 모욕했다면 그 책임을 확실하게 지겠다는 의미겠지요."
에리나는 자신이 질거란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확실히 에리나는 엘프 기준으로도, 이 세계관 내부 기준으로도 강했으니까. 문제는 그녀보다 내가 더 쎄다는 것이고, 에리나는 그걸 시각적으로 확인한 상태창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 어디 마음대로 해보거라. 네가 이기면 어떻게할테냐? 뭐, 무릎이라도 꿇어주랴?"
이건 내게 굴복 펠라를 해주겠다는 뜻인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꽤 괜찮았지만, 나는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다.
"제가 이기면 당신은 용사 일행에서 빠져야겠습니다."
"뭐?"
에리나도 에이에이도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말했다.
"당신같은 엘프가 마왕을 물리칠 전력이 될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전대 용사 일행을 아버지로 둔 몸. 부족하게나마 신성력과 무술을 익혔습니다. 제가 당신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한다면, 당신이 굳이 일행에 끼어있을 필요가 없을텐데요."
"잠깐만, 잠깐만, 그러면 난 어떻게 하란 말이냐? 내가 빠지면 난 어디로 가냐는 말이다."
"제가 일행으로 가는 동안 영지의 대리인을 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엘프 공주면 영지 대리인으로 아주 차고 넘치는 인물이다. 엘프 왕국과 인간 왕국은 서로 땅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아주 유했다. 하프 엘프인 내가 영주인것만으로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애초에 이 나라 영지법상 '영지 대리인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남작 이상의 직위, 혹은 사제장 이상의 직위를 가진 귀족 및 상위층.'으로 한도를 정하고 있다. 인간이어야 된단 말이 없었다. 예외적으로 부인이나 직계 가족이 있을 경우 대리인으로 쓸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이 부분은 내가 미혼이기에 중요하지 않았다.
에이에이가 어떻게 사태를 수습하고자 했지만, 에리나는 그런 에이에이를 말리며 말했다.
"상관없다. 오히려 여기서 내가 널 두들겨 패면 여기 기사들이 나한테 해코지하는 거 아니더냐? 응?"
"그럴리가요. 저는 뱉은 말은 지킵니다. 오히려 당신이야 말로 꽁무니 빼는게 아닌가요?"
에리나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하프 엘프 주제에 날 이긴다고? 어디 마음대로 해보거라. 그래 영지 대리인을 해달랬지? 얼마든지 해주겠다! 대신 내가 이기면 너는 내 앞에서 발가벗고 머리 박은채 사죄해야 겠구나! 전 영지민들을 전부 불러서, 내 앞에서 알몸으로 머리 박고 사죄하란 말이다. 알겠느냐?"
여기서 알몸 도게자를 걸 줄이야. 사제장에다가 나름대로 인기많은 영주인 내 입장에서 이건 거의 캐삭빵급 제안이었다. 알몸으로 대가리 박고 사과하면 더 이상 사제장 겸 영주로서 위엄을 세울 수 없게 된다. 나는 그 말에 잠간 망설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몸 도게자 VS 엘프 NTR 섹스 빌드업 잡기면 당연히 후자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충분히 내 명예를 걸고 도전할 가치가 있었다. 그런 말도 있지 않던가. 도전하는 인생이 아름답다고. 나는 이기기로 결심했다. 메이스를 쥐고 에이에이에게 말했다."결투의 공증인을 하세요. 용사."
에이에이는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었다. 당연하지 이런 희대의 캐삭빵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을테니까. 마당으로 나오자 로빈이 갑작스럽게 흉흉한 분위기를 내뿜는 우리 일행을 바라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로빈에게 말했다.
"로빈. 사람들이 이 주변으로 못오게 하세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지금부터 엘프 공주 아힐데른 엘리나와 영주인 저 페타 루시우스가 결투를 벌일겁니다."
잠깐 눈을 깜빡거리던 로빈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네?"
"저 엘프랑 싸운다구요."
"네?"
"결투 한다고요. 로빈.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결투요. 결투. 결.투."
"아.....그.... 왜 결투를 하는 지....."
"그냥 알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에 제 명령에 따르세요. 로빈."
".....알겠습니다."
로빈은 돌아서서 인원 통제를 위한 인원들을 차출했다. 나는 몸을 풀면서 에리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벌써부터 화살을 활시위에 매고 있었다. 자, 희대의 캐삭빵 시작이다.
"승부 조건을 확실하게 정하도록 하죠."
본격적으로 머리를 깨버리기 앞서 나는 에리나와 나 사이의 결투를 어떻게 끝맺을 지 정해두기로 했다. 나중에 딴말하면 곤란하기도 했고, 애매하게 정하면 판정이 곤란해지기도 했으니까.
에리나는 하나하나 세심하게 정하려는 내가 좀스러워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승부 조건을 정한다는 말에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말했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이기는 건 나일텐데."
"그럼 이렇게하죠. '졌다.'라고 말하거나 의식을 잃은 쪽이 지는 겁니다."
"그래. 어디 해보자! 밥도 제대로 못먹는 얼굴로 만들어줄테니."
나와 에리나는 동시에 용사 에이에이를 쳐다봤다. 에이에이는 잠시 주춤거리다가 한숨을 쉬고 손을 들어올렸다. 피할 수 없는 승부라면 순응하는게 도리인 법. 용사 에이에이는 그 세상의 진리를 제대로 깨우친 인간이었다. 그는 더 이상 에리나를 말리는 걸 포기한게 분명했다.
"그럼 엘프 공주 아힐데른 에리나와 페타 영지의 영주 페타 루시우스의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에이에이가 손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에리나가 시위에 매긴 화살로 내 팔을 겨누어 쏘았다.몸을 틀어 화살을 피하자, 뒤이어 투명한 화살이 한 발 더 방금 쏘아진 위치로 날아들었다. 에리나의 등 뒤로 바람의 정령의 모습이 슬쩍 보였다.
결투에서도 정령을 불러오다니 여간 졸렬한 년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메이스를 고쳐쥐고 앞으로 달려들며 외쳤다.
"블레스."
[블레스]
대상의 체력 공격력 방어력 속도를 증가시킵니다.
루시우스의 직업은 사제. 사제는 물리공격과 버프에 뛰어난 인재로 쉽게 말하자면 존나 쌘 알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버프를 부여받은 내 몸이 한결 가볍게 앞으로 나아갔다. 갑작스러운 속도 변화에 놀란 에리나가 황급히 다음 화살을 매겨서 쏘아내며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내 메이스가 가볍게 화살을 튕겨내고, 뒤이어 바람의 화살이 시위를 매기는 걸 보자마자 나는 몸을 틀었다. 화살은 여전히 방금 전 에리나가 날린 방향으로 날아갔다. 바람의 정령이 스스로 각도를 조정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에리나 코 앞까지 다가와있었다. 에리나는 다시 화살을 뽑으려 했지만 내 메이스가 더 빨랐다. 활을 쥔 손을 메이스로 냅다 후려갈기자 육중한 금속 파괴음이 울리며 에리나가 활을 놓쳤다.
손이 활이랑 같이 으깨졌어야 정상인 위력이었는데, 역시 방어막 같은 게 있었다. 팔을 때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묵직한 타격음이 들렸다. 나는 활을 놓친 에리나가 주저앉아 다시 한 번 메이스를 후려갈겼다. 에리나는 손을 들어 다시 한 번 방어했다.
쾅!
손에 닿지 않았지만, 강한 타격음이 울리며 에리나가 주저앉았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에리나를 위해 다시 한 번 메이스를 있는 힘껏 후려갈겼다.
쨍그랑!
그리고 유리가 박살나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에리나가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손목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손목에 반짝반짝 빛나는 팔찌가 있음을, 그리고 그 팔찌가 빛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실프!"
에리나가 비통한 목소리로 실프를 외쳤다. 이 반응으로 미루어 보아 더 이상 이 년에겐 방어 수단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그 말인 즉 지금부터 체벌을 할 시간이란 뜻이었다.
나는 전의를 잃은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에리나는 머리채를 붙잡은 내 손을 때어내기 위해 손을 위로 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텅 빈 복부를 향해 나는 주먹을 있는 힘껏 내질렀다.
쾅!
"꺼으윽...."
"에리나!"
용사 에이에이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에리나가 신음하는 목소리가 그 밑에 깔려있었다.
묵직한 타격감이 전신을 떨게 만들었다. 힘주어 내지른 한방에 나는 에리나의 내장이 뭉게지는 감각을 느꼈다. 에리나는 헛구역질을 하며 무릎을 꿇었다. 나는 에리나를 가리키며 힐을 사용했다.
아릿한 고통만 남아있을 뿐. 방금 전 입은 내상은 이걸로 말끔하게 치유되었다. 에리나는 정신이 혼미한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쳐다보다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는 다시 머리채를 붙잡아 들어올렸다. 똑같이 에리나는 머리채를 잡은 내 손을 떼어내기 위해 손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
쾅!
"끄억....컥...커흑...."
에리나의 배가 다시 한번 주먹질에 뭉개졌다. 아마 배를 까보면 새파랗게 멍이 들었으리라 다시 한 번 강렬한 구토감을 느낀 그녀가 무릎을 꿇었다. 꺼억 꺼억거리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모습에 나는 다시 한 번 힐을 외웠다.
에리나는 고통에 제대로 설 수도 없는 것 같았다. 치료는 하더라도 고통은 잔여물으로 계속해서 남는다. 그 고통이 누적될수록 사람은 망가진다. 에리나는 슬슬 위험하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잘못된 도발로 자신이 뒤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게 분명했다. 손을 내저으며 나를 말리려 들었다. 도도한 엘프 공주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죽음 앞에서 자존심은 아무것도 아닌 법. 에리나는 다급한 얼굴로 내게 외쳤다.
"내, 내가...."
"사일런스."
[사일런스]
상대를 [침묵] 시킵니다.
"읍...으읍? 읍?“
게임의 [침묵] 상태이상이 어떻게 구현되나 궁금했었다. 내가 주문을 외우자 마자 에리나의 입술이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에리나가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입술을 부여잡고 발버둥쳤다. 나는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 해도 항복을 외치지 않으시다니. 어쩔 수 없네요. 결투는 신성한 법. 당신이 항복을 외치지 않는 그 정신을 존중하여 더욱 더 큰 고통을 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으읍! 읍읍!"
에리나가 고개를 저으며 필사적으로 반항하려고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주먹을 쥐고 에리나의 눈앞에서 흔들어보였다. 그리고 방금 전 일격보다 조금 약한 정도로 다시 한 번 배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끄으으으읍!"
에리나가 무릎을 꿇고 배를 움켜쥔 채 바닥을 굴렀다. 나는 에리나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다시 한 번 몸을 일으킨 후 한 방을 더 꽂아넣었다. 뱃속 깊숙이 파고든 주먹이 짜릿했다.
빵!
"꺼으으읍....으읍....끕...."
에리나가 눈을 거의 까뒤집고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힐을 외워서 에리나의 몸에 지장이 없도록 했다. 이 세상의 힐러는 거의 만능이다. 뒤지지만 않았고 팔다리만 제대로 붙어있다면 거의 완벽하게 정상인으로 살릴 수 있었다.
"에리나. 아직 살아있나요?"
"꺼흑...크....읍...."
에리나가 고개를 들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아직 기절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만하세요 영주님!"
에이에이가 보다못해서 나를 말리기 위해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는 매우 불쾌한 얼굴로 에이에이를 쳐다봤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저 새끼가 날 밥도 못먹게 안면을 씹창내고 있었으면 이 새끼가 말렸을까? 아마 장애인으로 만든 다음에야 말렸겠지.
"뭘 그만하라는 건가요. 용사. 우리는 지금 신성한 결투중입니다."
"결투의 승패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여자를 이런 식으로...."
왜 안중요해 씨발 알몸 도게자가 걸렸는데. 이래서 일본 야겜 주인공은 좆같은 새끼들 밖에 없다. 틈만나면 여자는 싸워선 안돼! 여자를 때려선 안돼! 라고 외치면서 지들은 여자들로 하렘을 만드는 진정한 성차별주의자 새끼들.
"당신은 결투의 명예를 더럽힐 생각입니까? 용사. 지금 여기서 흐지부지 끝내버리면 저와 공주 사이에는 앙금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게 당신이 원하는 방식인가요? 제가 이기고 있는 결투에 끼어들어서, 당신의 도덕을 강요하는 게 당신의 방식입니까?"
"그건...."
"나오세요. 용사. 결투에 참여한 전사의 긍지를 모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으읍! 읍!"
에리나가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활을 주워 들려는 걸 내가 걷어차고, 에리나의 멱살을 잡아서 바닥에 패대기 쳤다. 에이에이가 나를 막으려다가 망설였다. 더 때리면 진짜로 용사 에이에이가 '용사답게' 날 막을 것 같으니 슬슬 끝내야 했다.
내가 바닥에 눕히고 주먹을 치켜들자, 에리나가 반사적으로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에리나는 아직 학습이 덜 된 모양이었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니까 복부가 비었고, 복부가 비었으니 나는 배에다가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꽝!
흙먼지가 풀썩 잃었다. 얼굴을 가린 채 온몸을 비틀며 에리나가 발작하기 시작했다. 사일러스로 비명을 내지를 수도 없고 내가 몸을 구속하고 있으니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숨넘어갈듯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한참동안 몸을 비틀던 에리나는 마침내 온몸을 축 늘어트리며 기절했다.
그리고
"기절했군요. 제 승리입니다."
에리나의 가랑이가 축축하게 젖어들어가고 있었지만 난 아무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에이에이가 쓰러진 에리나의 상태를 살폈고, 나는 에리나에게 힐을 걸어줬다. 싸우면서 내게 생긴 자잘한 생채기는 치료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상처뿐인 승리란 건가?
에리나는 다음 날이 되서야 겨우 깨어났다. 의외로 그녀는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깔끔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에리나가 그 성격대로 '운이 좋아서 이긴거다.' '비겁한 수를 썼다.' 같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너무 담백하게 반응해서 오히려 내가 놀랄 지경이었다.
"진건 진거지. 무례를 사과하겠다. 아힐데른 왕국의 공주 이름을 걸었으니, 어떤 결과도 납득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이름 값이니까. 그리고 약속대로 용사 일행에서 빠지고 당분간 그대 영지의 대리인으로서 일하겠다."
"제대로 하실 수 있겠어요?"
에리나는 내 말에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왕국의 공주를 뭘로 보는 게냐? 그대야말로 마왕한테 이길 수 있겠느냐? 에이에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에리나는 품 속에서 작은 약병을 하나 꺼냈다. 유리로 된 병 안에 무지개색 액체가 담겨있었다. 보기만해도 건강에 나쁠 것 같은 그 약을 가리키며 에리나가 말했다.
"우리 왕국에서 전해지는 비전의 약이다. 나올 때 딱 한 병 훔쳐왔지. 어떤 상처도 치유해주는데, 남자한테 더 효과가 좋다고 하더구나."
"이걸 왜 저에게...."
"에이에이가 다치면 혼자서 이걸 쓸 수 있을리 없잖느냐. 네가 사제기도 하고."
나는 상태창을 열어서 약의 내용을 보았다.
[금단의 약]
금단의 비기가 농축된 회복약
남자에게 더 효과가 좋다.
그렇게 에리나는 내게 금단의 약을 넘겼다. 그리고 내 손에 들어온 이상 에이에이가 이걸 쓸 일은 없다고 봐도 됐다. 근데 이거 무슨 약이지. 게임할 땐 이런 약 없었는데.
마왕을 잡기 위한 가장 빠른 루트는 이웃에 붙어있는 금발 NTR 충의 영지를 가로질러가는 길이다. 이 길은 분기에 따라 갈 수 있고 없고가 나뉘는데, 만일 마왕 부활 예언 후 4개월 정도 방치하면 이 영지 전체에 독기가 퍼져서 주인공 일행은 길을 뺑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3개월 내로 루시우스의 영지에 다다르면 NTR 영주의 영지는 아직 마왕의 독기에 영향을 받지 않아서 푸른 초목과 녹색 고블린이 우거진 꿀 파밍지대로 자리잡게 된다. 여기서 여캐를 하나 이상 데리고 NTR 영주의 영지에 들어가면, NTR 시도 이벤트를 볼 수 있다.
캐릭터에 따라 반응은 다르지만 결론은 영주가 저승가는 이벤트로, 나는 이 이벤트로 자연스럽게 영주를 죽여버리기 위해 시에리를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마왕 잡으러 가는 길에 레벨 10짜리 수녀를 데리고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 결과 NTR 금발 뚱땡이는 나와 용사만 여행가는 것을 보고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되도않는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루시우스 영주님. 혹시 영지 대리인은 제대로 세우셨습니까?"
"물론이죠. ......영주."
나는 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얼버무렸다. 상태창을 열어서 읽는것도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금발 NTR 태닝 영주는 그 말에 호들갑스럽게 말을 건넸다.
"아이고. 혹시 기사단장이나 시에리를 대리인으로 내세우신 건 아니시겠죠? 그래선 안됩니다. 영주 법상. 영주의 대리인은 남작 이상의 작위를 받은....."
"아힐데른의 공주 아힐데른 에리나께서 저 대신 영지의 대리인을 맡고 있습니다. 걱정은 고맙습니다만, 제 영지에 대한 관심이 다소 과하시군요."
그 말에 금발 돼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이 영지를 벗어나서 마왕을 잡으러 가고 싶었다. 용사 에이에이는 영지를 가로지르며 내 까칠한 반응을 나무랐다.
"그래도 사제님 당신을 걱정해서 한 말인데, 너무 심하지 않았나요? 그런 식으로....."
"용사님. 겉으로 보이는 선의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된답니다. 사람들이 전부 선의를 품고 살아간다면 대천신교같은 종교는 있지도 않았겠죠."
"그래도 저는 사람을 믿어요. 사제님. 너무 냉정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믿다간 뒤통수 맞기 마련이에요. 아픈 척, 슬픈 척, 불쌍한 척을 하는 인간들이 다 착한 건 아니죠. 용사님이야 말로 너무 타인을 믿지 않도록 하세요."
"끝이 나지 않겠네요. 잠깐 쉬었다 갈까요?"
해가 지고 있었다. 밤낮으로 빡세게 달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해가 지면 숙소에서 쉬는 게 나았다. 영지에서 가장 좋은 말을 타고 가는 것이니 사흘에서 나흘 내로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는 방 2개를 잡으려고 했지만 에이에이는 이런데에서는 돈을 아껴야 한다며 방 한개를 쓰는게 낫지 않냐고 제안했다. 내 직위가 뭔지 잊어버린듯한 그의 제안에 고개를 저으며, 나는 방 2개를 달라고 했다. 계산서는 내 영지 영주성에 달아두라고 하고서.
에이에이가 그 모습에 이렇게 말했다.
"사제님. 저는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잔다고 어색하거나 불편한게....."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나는 꼬추 새끼랑 같이 자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주인공인 용사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돈을 절약하는 게 몸에 밴 인간이었다. 그래서 절약하려는 모습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었다. 근데 남자 둘이 방 하나는 선 넘었지.
나는 잠시 그 모습을 상상해봤다. 침대 하나에 남자 둘이 자다가 몸이 살짝 닿으면 존나 어색하게
"어이구, 죄송합니다."
"아니요. 제가 더 죄송하죠."
이 지랄을 하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나는 혼자 자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이불 속에 몸을 파묻었다.
다음 날도, 그렇게 다음 날도 우리는 각방을 쓰고 매우 데면데면하게 여행을 계속해나갔다. 아직 이 영지에는 괴물들이 생기지 않은 것인지 가는 길에 몬스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 만큼 어색한 상태로 종반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직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각. 내 기억으로는 이 때 쯤 마왕의 레벨은 대략 30 정도로 레벨 20대의 파티원 3명이 두들겨패면 무난히 잡을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리고 나와 용사의 레벨은 현재 40대 중반에 이르러 있었다. 이정도면 마왕이 아니라 마왕 할애비가 와도 때려죽일 수 있었다.
근데 문제가 이렇게되다 보니 나는 한가지 고민에 부딪혔다. 이거, 내가 용사 뒤통수를 깐다고 죽일 수 있나? 용사에게 준 [성물]은 게임 시스템 상으로는 용사의 스텟을 강화 시켜준다.
이 강화치가 꽤 높아서 원래 게임 캐릭터 중위권에 위치했던 용사는 이 이벤트 한 번에 게임 내 최강의 물리 딜러로 변신한다. 그리고 현재 용사의 스텟창을 보면
이름 : 에이에이
직업 : 용사
레벨: 46
스텟
힘 : 160
민첩 : 138
지능 : 98
행운 : 120
특성
용사의 의지
행동불능 상태일 시 80% 확률로 해당 효과를 무효화합니다.
불굴의 의지
기력이 다하더라도 단 한 번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악즉참
카운터 시 3배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현재 내 레벨이 46. 힘이 120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현재 내가 용사를 정면 승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원래는 그냥 마왕이랑 싸우고 나서 지쳤을 때 뒤통수치면 되겠구나, 하고 막연하게 짠 계획이었는데 막상 생각해보니 그러기엔 마왕이 너무 약했다.
잘못 후려치면 용사는 특성 발동해서 안죽고, 뒤이어 날아온 용사의 반격에 나만 루시/우스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마왕의 부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용사는 성물을 얻은 시점에 마왕의 부활 장소를 탐지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용사를 따라서 계속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내가 메이스로 애들을 패려고하면, 용사가 먼저 나서서 질풍과 같은 검 솜씨로 몬스터들을 베어 죽였다.
"괜찮으십니까?"
"용사님이야 말로?"
그렇게 싸우다보니 우리는 전우애 비슷한게 쌓이는 것 같았다. 금발 NTR 영주의 땅에서 벗어나자마자 수많은 몬스터들이 우리를 반겨줬고, 우리는 그 몬스터 장벽을 힘을 뚫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야영을 하며 잠시 잡담을 하고, 또 교대로 휴식을 하며 잠이 들었다. 제법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모험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뒤를 봐주고, 다시 앞으로 나가며 몬스터를 물리치고 있으니, 나는 우리 둘 사이에 어떤 유대감이 생겼다고 느꼈다.
빼곡히 널브러진 몬스터들의 숫자는 우리가 점점 마왕의 부활 장소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왕성에 가까이갈수록 용사가 베어죽이는 마물의 숫자는 많아졌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경험치가 쌓여서 용사는 더 강해지고 있었다. 마왕성 입구까지 도달한 결과, 나와 용사의 레벨은 50에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용사 에이에이는 마왕의 부활 장소인 [짓무른 영지 저택]에 이르러 내게 말했다.
"이 앞에서 마왕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정비를 하고 가시죠."
그렇게 나와 용사의 마지막 야영이 시작되었다. 나는 용사 에이에이에게 물었다.
"이제 마왕을 물리치면 끝이군요. 마왕을 물리치신 다음엔, 에리나 공주님과 결혼하실 건가요?"
"네.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엘프 왕국에 인간이 부마가 된 전례가 없습니다. 왕위에 오르진 못하실텐데요."
"괜찮습니다. 전 에리나를 사랑하니까요."
정말 사람 찔리게 만드는 발언이었다. 생각해보면 원래 용사는 하렘충이지만, 얘는 진짜 에리나 하나만 데리고 다른 여자들한테는 눈길도 안주고 마왕을 잡으러 온 상남자였다.
에리나를 통제하는 방법도 알았고, 성격도 나쁘지 않았다. 돈에 좀 궁색하게 군다는 거야 내가 신경쓸 문제도 아니었고, 솔직히 같이 여행하는 내내 아주 든든한 파티원으로 일해주고 있었다. 근데 이런 놈을 내가 죽여야 되나?
막상 생각해보면, 얘를 죽이고 NTR각을 잡는다쳐도, 그 다음부턴 너무 바빠질게 분명했다. 마왕을 물리친 용사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바빠진다. 거기다 마왕을 물리친 용사니까, 여기저기 행사도 참여해야 한다. 그럴 바에는 그냥 에리나는 깔끔하게 배빵친걸로 만족하고 얘한테 주는 게 낫지 않나?
어차피 세상에 여자는 많고, 얘가 에리나 하나만 데리고 가는 대신 나는 다른 여자들을 다 접수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 용사는 살려주자. 굳이 죽일 필요까진 없다. 죽이기에는 너무 그랬다. 용사는 좋은 놈이었으니까.
"사제님."
그 때, 용사 에이에이가 칼을 뽑아들고 주변을 경계했다. 나 역시 바닥에서 새어나오는 어두운 기운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흐헤헤헤헤헤!"
그림자 속에서 새까만 인영이 타르에 흠뻑젖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튀어나왔다. 그는 자신의 몸에 흘러내리는 진득한 액체를 닦아내며 새빨간 눈을 부릅떴다.
"네놈이... 네놈이 용사냐? 어?"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몸과 붉은 눈동자. 나는 이 놈이 뭔지 알고 있었다. 마왕의 영지 앞에 도착하면 마왕의 부활을 느끼고, 사천왕 중 한명이 랜덤으로 등장한다. 그중 이 [흘러내리는 팔키오스]는 물리 공격에 엄청난 저항력을 가지는 대 용사 카운터였다.
"나는 마왕군의 사천왕 중 하나인 흘러내리는 팔키오스.... 마왕님의 부활을 방해하는 네놈들의....."
서걱!
"으럇!"
"흐하하하하하... 이 정도 공격은...."
용사가 크게 검을 휘둘렀다. 팔키오스의 머리가 두쪽이 났다. 마치 유리면과 같이 매끄러운 단면이 보였다. 얼굴의 절반이 잘려나간 팔키오스가 용사를 비웃었다. 여기선 내가 성속성 마법을 써서 팔키오스를 두들겨패는 게 정석 공략법이었다. 어차피 이 놈도 레벨이 낮아서....
"공격은.... 안통해야...되는...어...? 어라...?"
팔키오스가 잘려나간 얼굴 반쪽을 매만지며 이상한 소리를 하더니 당황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에서 걸쭉한 핏물을 토해내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메이스를 내려놓고 용사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마, 마왕님.....부ㅡ, 불충한 저를....끄으으윽....."
그렇게 사천왕 흘러내리는 팔키오스는 정말 흘러내려서 기름덩이로 변하고 말았다.
나는 용사의 뒷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애초에 내가 못죽이는 놈이구나. 나는 용사 죽이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잡생각을 거두고 마왕이나 잡기로 했다. 이제 마왕이 코 앞에 있었으니까.
왜 이렇게 용사가 강해졌을까? 나는 짓무른 영지를 통과하면서 이 점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우리가 전투를 너무 많이 했다는 거. 원작의 레벨 20~30대 공략법은 몹들과의 전투를 피하고 보스만 패는 효율 중시 공략이었다.
애초에 게임 플레이 때는 괜히 시간 제한이 있다는 압박감 때문에 중후반에는 마왕잡는 최저 레벨만 맞추고 전투를 전부 피해서 도달하는 게 정석 공략법이기도 했다. 왜냐면 빨리 오면 올수록 사천왕과 마왕의 레벨은 떨어지지만 이 지역의 몬스터 레벨은 그대로 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용사가 최단 루트를 뚫고 이곳에 20레벨에 온다고 한들 몬스터들도 20레벨에 맞춰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우리 용사는 우직하게 모든 몬스터들을 맨몸으로 뚫고 영지에 도착했고, 영지에서 마왕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몬스터를 도륙내면서 왔다.
평균 레벨 30~40대 몬스터를 이런식으로 수백마리 죽이고 다니면 강해질 수 밖에 없다.
몬스터를 피해다니자고 제안하지 않은 내 실수였다.
"누, 누구냐!"
영지 저택에 경비병들이 보였다. 그들은 이미 악마의 기운에 침식된 듯 온 몸에 어두운 기운을 스멀스멀 내뿜고 있었다. 용사는 지체없이 칼을 뽑아들고 오른쪽에 서있는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왼쪽에 있는 놈을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단숨에 사지를 분해해버린 우리는 철문을 박차고 저택 내부로 진입했다.
저택에 들어선 용사는 그 잔인한 광경에 몸을 떨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흠칫하며 한발짝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저택 내부에는 시체들이 가득했다. 마치 인간의 살점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동굴을 보는 듯 했다. 바닥에는 팔 다리가 널려있었고, 벽에는 피묻은 손자국이 가득했다. 질질 끌려간 핏자국과, 내장 조각, 그리고 고약한 피 비린내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빨리가죠."
"네."
정신을 다잡은 내가 충격받은 용사를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원작에서도 최종 보스룸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긴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그 비주얼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와 용사는 성물의 힘을 빌어 더욱 더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걸음을 옮길 때 마다 피에 젖은 바닥에 질퍽거리는 소리를 내서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다. 마왕의 부활은 저택 최상층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간간히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를 놀래켰지만, 이미 강제적으로 이뤄진 노가다로 강해져버린 용사를 막을만한 놈은 없었다.
나는 칼질 한방으로 몬스터를 두루치기로 만들어버리는 용사를 보며, RPG 게임 쩔받는 뉴비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최상층의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누가 와도 느낄 수 있을 법한 사악한 기운이 문 너머에서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도 용사도 여기까지 오니까 긴장되기 마련. 아무리 한 방에 죽을 놈이라지만, 이런 사악한 기운을 목도하고 있으니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갑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가 문을 걷어차자 문짝이 산산조각이 나며 방안의 정경이 드러났다. 퀭한 얼굴의 영주가 우리를 보고 외쳤다.
"웬 놈들이냐! 밖에 경비가 있을텐데 어떻게 들어왔지?"
영주의 뒤에는 마왕이 담겨있는 거대한 알이 있었다. 알에는 비루한 양팔이 튀어나와서 디지몬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 상태가 마왕 레벨 30일 때 상태고, 저기서 다리까지 튀어나오면 레벨 40. 머리가 튀어나오면 완전부활하여 레벨 50이 된다.
나는 용사에게 말했다.
"마왕을 부탁합니다."
레벨 차이가 저 지경이 나면 마왕도 원킬이다. 나는 그 사이에 영주를 족치기 위해 앞으로 달려들었다.
"히에에에엑! 오지마!"
영주가 팔을 붕붕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이 새끼는 레벨이 고작 20 정도에 불과한 잔챙이에 맨몸일 뿐이었다. 나는 주먹질을 여유롭게 피하며 영주의 멱살을 붙잡아 바닥에 패대기 쳤다. 영주가 개구리 죽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내가 메이스를 들어올리자 영주가 바닥에 엎드리고 손바닥을 마주한채 파리처럼 빌기 시작했다.
"쿨럭....사, 살려줘! 살려달라고! 다... 다 마왕이 시킨거야...! 나한테, 나한테..... 왕이 될 권세를 주겠다고 했어...."
- 인간이여! 나를 배신하는가! 나는 그대를 믿었거늘!
용사와 상대하던 마왕이 분통을 터뜨렸다. 나는 영주를 다시 쳐다봤다. 영주가 비쩍 마른 얼굴로 헤헤 하고 바보처럼 웃어보였다. 나는 망설임없이 메이스를 휘둘렀다. 영주의 얼굴이 메이스에 부딪히며 오꼬노미야키같이 납작하게 박살났다.
"끄억....."
이 놈에게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왕이 되고싶단 욕심에 마왕을 부른 비루한 놈에 불과했으니까. 마왕을 부른 것도 자기 의사였고, 마왕 부활에 필요한 재료도 자기 영지민들로 충당한 쓰레기 새끼였다. 나는 혹시나 부활하지 못하도록 팔 다리도 전부 으깨버린 다음에 용사를 쳐다봤다.
용사는 마왕의 양팔을 자른 채 그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 끄아아아아아아! 부활에.... 부활에 실패하다니.....!
"편히 잠들어라 마왕!"
-이럴 순 없다....! 나는, 악마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낙원을 만들어야 한다! 에반젤린... 나는 그녀와 약속했단 말이다....!
매우 감상적인 사연을 내뱉은 마왕의 알거죽을 용사의 검이 무자비하게 꿰뚫었다. 새까만 피가 이차돈이 처형당하는 것처럼 하늘로 팍 치솟아 올랐다.천장을 적신 핏물이 다시 바닥에 떨어지며 새까만 웅덩이를 만들었다. 는 왠지 찝찝해서 용사를 뒤로 당겨 그 피를 맞지 않도록 했다.
-끄으으.... 원통하다....! 나는....나는 혼자 죽지 않는다.....! 용사여! 그 쪽이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인가?"
"뭐요 씨발?"
나는 루시우스 코스프레도 잊고 욕을 내뱉었다. 이 새끼 악마 새끼라 그런가 편견이 없었다. 마왕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몽실몽실 뭉치더니 마왕이 외쳤다.
- 죽어라! 너희들은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향해 새까만 죽음의 기운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내가 막아내려는 순간, 용사가 나를 밀어내며 외쳤다.
"위험해!"
뭐가 위험하다는 거지. 기껏해야 레벨 30짜리 파괴광선인데. 나는 튕겨나가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고, 밀리는 것과 동시에 용사에게 프로텍트를 걸었다.
[프로텍트]
방어력 및 마법저항력이 상승합니다.
파지직!
"끄아아아악!"
용사가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검은 기운은 용사를 꿰뚫고 지나갔다.뭔가 이상하다. 이게 30레벨짜리 파괴광선이라고?
- 크헤헤헤..... 고통에...몸부림...치다.. 죽어라....용사여....나는...에반젤린....에게...
나는 황급히 쓰러진 용사에게 다가갔다. 용사의 배에 새까만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마왕이 죽으면서, 주변에 사악한 기운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지만, 용사의 몸에는 오히려 사악한 기운이 넘실대고 있었다.
"힐."
나는 일단 용사를 살리기 위해 힐을 사용했다. 상처가 회복되는 듯 하다가 다시 구멍이 벌어지며 내장이 새까맣게 썩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끔찍한 마법이었다.
"끄억....커헉...큭...."
씨발. 내가 NTR각을 보긴 했는데, 이런 식으로 용사가 죽으면 너무 뒷맛이 찝찝했다. 아무래도 최후의 발악인 즉사 패턴인듯 했다. 용사는 말도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가고 있었다. 흘러나온 피도 시꺼멓게 물들었고, 용사의 얼굴도 새하얗게 질려갔다.
이대로 용사를 두고가면 자연스럽게 NTR 각을 볼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를 구해준 것도 구해준 거지만, 복도에 마왕의 잔당들이 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왕이 죽었다고 영지의 몬스터들이 갑자기 사라지진 않는다. 지금까지 몬스터를 도륙냈던 길을 생각하자면, 어떻게든 용사를 살려서 2명이서 돌아가야 했다. 혼자서는 습격에 대처하기 힘들었다.
힐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영지를 혼자서 빠져나가는 것도 힘들었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금단의 약을 꺼냈다. 이게 복용인지 바르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마 둘 다 효과가 있겠지.
나는 절반은 상처에다가 뿌리고 절반은 계속해서 새까만 피를 토해내는 입에다가 쑤셔넣었다.
"끄읍..! 읍! 으읍!"
용사는 약을 거부하는 듯 도리질을 하다가 어떻게 받아넘기기 시작했다. 나는 메이스를 꺼내들고 다가오는 잔당들을 노려봤다. 이제 시간을 끌어야 했다.
치이이이익!
고기굽는듯한 소리가 나며 뒤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끄르륽...! 끄윽! 끄아아아아!"
용사가 불로 몸을 지지는 듯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나는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용사는 한방에 죽엿지만, 나는 저 잔당들 하나당 두대는 때려야 했다.옆구리를 후려쳐서 엘리트 고블린의 갈비뼈를 뭉게고, 아래로 내려찍어서 아크 좀비의 골통을 부쉈다.
그렇게 몇명의 대가리를 부쉈을까.
"끄아아아아아아!!"
용사가 단말마같은 비명을 지르고 조용해졌다. 나는 용사가 죽었나 싶어서 뒤를 돌아봤다. 그는 큰 대자로 누워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 남은 잔당을 다짐육으로 만들어줬다.
나는 몬스터 시체 한가운데에 주저앉아서 숨을 골랐다. 잠시 쉬고 나서 용사에게 걸어가서 손을 내밀었다. 용사는 그 손을 쳐다보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아....네... 괜찮습니다...."
방금 전 파괴광선에 맞았던 부위를 보니 상처가 말끔하게 사라져있었다. 확실히 금단의 약이라고 할만했다. 썩어버린 몸도 치유할 정도였으니까.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리나 공주님이 주신 약 덕분이죠."
용사가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이 새끼 왜 갑자기 계집애 목소리로 말하지?
"용사님?"
"네?"
나는 용사의 얼굴을 억지로 들게해서 이곳저곳을 바라봤다. 이상하다. 확실히 예뻐졌다. 본판은 잘생긴 얼굴이었는데, 이상하게 예뻐졌다. 호스트 스럽던 헤어스타일도 짧은 단발로 바뀌어 있었다.
"상태창."
이름 : 에이에이
직업 : 용사
레벨: 47
스텟
힘 : 162
민첩 : 139
지능 : 98
행운 : 120
특성
용사의 의지
행동불능 상태일 시 80% 확률로 해당 효과를 무효화합니다.
불굴의 의지
기력이 다하더라도 단 한 번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악즉참
카운터 시 3배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성별 전환
어떠한 부작용으로 인해 성별이 바뀌었습니다.
"씨발?"
"사제님?"
용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나도 용사를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이거.
"용사님. 뭐 이상한 거 없으세요?"
"예? 뭐가....어? 어라? 어....? 어, 어라?"
용사 에이에이는 내 질문에 의문을 표하다가 뒤늦게 자신도 이상한 점을 눈치챈 듯 했다. 자기 얼굴을 더듬어보던 그녀는 어라? 어라? 라는 말만 내뱉으면서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있었다.
"그, 근육이......"
에이에이는 자신의 팔을 만져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탄탄했던 복근과 대흉근이 말랑말랑해진 걸 보고 다시 한 번 탄식했고, 자신의 가랑이를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바지를 들춰 안을 바라봤다.
"아....."
물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을테지. 내가 상태창으로 여자가 됐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용사 에이에이는 그렇게 절망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절망에 공감해줄 시간이 없었다. 지금도 저택 여기저기선 마물들이 튀어나오고 있었고, 우리는 마왕을 퇴치한 증거를 들고 이 저택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나는 용사 에이에이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일단 나가죠 용사님.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구요."
".....네. 그렇죠. 제가 어설펐네요. 일단 나가고 생각하죠."
용사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도 까먹은 듯이 금방 기운을 차리고 내 손을 붙잡았다. 평소 용사가 지닌 느낌과 다른 부드러운 질감이 내 손을 폭 감쌌다. 그렇게 나와 용사는 서서히 몬스터들의 소굴로 변해가는 저택을 빠져나왔다.
저택을 빠져나오니 마왕의 기운을 느끼고 모여들었던 몬스터들이 서서히 물러가는 게 보였다. 용사는 전투 태세를 취하다가 몬스터들이 도망가는 걸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부턴 좀 여유롭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가는 길은 가는 길보다 훨씬 느긋하고 여유롭게 진행되었다. 마왕을 잡으러 갈 때가 생과 사의 혈전을 반복하는 매일이었다면, 지금은 겸사 겸사 몬스터 구경하는 사파리 테마 파크와 비슷했다.
“오, 용사님. 저기 보세요. 고블린이네요.”
“그러네요.”
내가 이렇게말하면 용사도 심드렁하게 칼자루에 손을 올리고 고블린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고블린이 알아서 도망치거나 우리한테 돌만 몇 번 던져보고 사라졌다. 대충 이런 식으로 느슨한 긴장감이 유지되는 행보였다.
에이에이는 걷는 내내 고민에 빠져있었다. 생각해보니 이건 에이에이에게 상당히 중대한 문제였다. 에이에이가 여자가 되면 엘프 공주인 에리나와 결혼할 수 없었으니까. 엘프들이 동성애를 혐오하냐 안하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에리나는 '공주'다. 대를 이어야하는 왕족이 같은 성별과 결혼할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러고보면, 에리나 공주님과 결혼은 못하시겠네요."
"네. 그렇.....네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아니요. 마음 써준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사제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에이에이도 그 점을 생각한듯 울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지금 타이밍에 한 번 대달라고 하면 대줄까? 나는 에이에이의 잘빠진 골반라인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성직자 겸 친절한 사람 이미지는 개판 나겠지만, 그걸 감수하고 시도해볼 만큼 에이에이의 다리라인은 예쁘고 섹시했다. 가슴이 좀 작으면 어떤가. 다리가 예쁜데.
착 달라붙은 가죽바지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냥 남자 용사였을 때는 되게 부담스럽다고 느껴진 옷이었는데, 막상 에이에이가 여자가 되고 나니 이렇게 섹시한 의상이 없었다. 나는 에이에이가 말하는 동안에도 계속 접혀진 무릎이나 단단한 허벅지, 그리고 다리 사이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제 에리나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면목이 없네요.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는데....."
"몸이라도 무사히 돌아왔으니 에리나 공주님도 기뻐하실거에요."
"하지만, 결혼을 하지 못하잖아요."
에이에이는 반쯤 울먹이는 얼굴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여자가 되서 감수성이 예민해진걸까. 아니면 정말 결혼을 못한단 사실에 충격을 받은 걸까. 에이에이의 심정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었다. 나도 지금 당장 갑자기 고자가 되버린다면 절망하다 못해 미쳐버릴 자신이 있었다.
시에리랑 섹스도 못해봤는데 그건 억울하지.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해도 방법이 없었다. 방법이 없는 문제에 울먹인다고 바뀌는 것도 없었다. 나는 에이에이에게 뭐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용사가 중얼거렸다.
"하다못해 애만 낳을 수 있었다면...."
애? 나는 거기서 정신나간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평소에 꺼냈으면 용사가 나한테 칼침을 박았겠지만, 내가 생명도 살려주고 이것저것 열심히 도와줬는데 지금이라면 한 번 비벼볼만 하지 않을까? 나는 물었다.
"그러면, 에이나 공주님께서 누군가 아주 강한 사람의 애를 밴다면, 결혼하실 수 있는건가요?"
"그렇....지만, 그런 건 말도 안돼요. 에리나가 남의 아이를 밴다니..... 전 그런 걸 용납할 수 없어요."
에이에이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거기서 이야기를 더 진행시키지 않기로 했다. 살짝 에리나를 따먹을 각을 봤었는데, 아무래도 '남편이 허락하는 ntr 섹스 플레이'는 안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더 캐물으면 괜히 경계심만 샀다.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전우를 배신하는 건 뼈아프지만, 내가 용사 목숨을 살려줬으니 용사도 나한테 반쪽 정도는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나와 에이에이는 몬스터들이 가득한 영지를 뚫고 다시 이웃 영지에 도착했다. 이웃 영지의 영주는 여전히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새끼가 내가 멀쩡한 걸 보고 매우 아쉬워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영주는 내 옆에 있는 용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내게 물었다.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제 여동생이에요."
나는 설명하기 귀찮아서 대충 둘러댔다. 용사가 마왕한테 맞아서 내가 금단의 약 어쩌구 하는 것보단 훨씬 깔끔한 설명이었다. 영주는 그 말에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다시 물었다.
"그.... 용사 분이랑 같이 가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 친구는 고향으로 갔어요."
용사도 내 연극에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는 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라고 불러줬으면 금상첨화였을텐데, 차마 사내의 자존심으로 그런 발칙한 발언은 하지 못하는 듯 했다. 사실 나도 그다지 오빠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여동생이라고 말한 것도 충동적인거고.
"아, 그렇군요. 바로 지나가실 겁니까 아니면 하루 묵어가시겠습니까? 저희가 대접을 잘 해드릴테니, 어떻게 아무쪼록 묵어가시는 게 어떠신지....."
나는 영주가 양손을 비비며 기분나쁘게 웃는 것을 쳗아보고, 다시 용사를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면, 이웃 영주의 ntr 이벤트는 주인공이 '여자'랑 같이 가면 일어나는 이벤트였다. 영주 주변 고용인들 반응을 들어보면 하루 이틀 벌인 일도 아니었고.
나는 이번 기회에 이 새끼도 죽여버리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영지 내에서 소문이 박살난 영주라서 내가 때려죽이더라도 부담이 덜했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이웃 영주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리고 빨리 돌아가고 싶어하는 용사에게 속삭였다.
"그래도 기왕 돌아가는 거 좀 깔끔하게 돌아가야 에리나 공주님이 충격을 덜받지 않겠어요? 오늘 하루 푹 쉬면서 여독을 풀고, 우리 말끔하게 돌아가도록 해요."
"그렇군요. 그 생각을 못했네요. 그렇게 하죠. 사제님."
그렇게 우리는 저택에서 여독을 풀었다. 영주는 정말 융숭한 대접을 해주고 있었다. 본래 내 저택에서는 먹지 않는 온갖 호화로운 음식들이 나왔고, 밥을 먹으면 시종들이 우리를 안마까지 해줬다. 혹시 차나 음식에 독이 들어있나 몇번이나 상태창을 열어봤지만, 그런 낌새도 없었다.
영주는 그냥 우리에게 잘보이고 싶은 기색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맞았다. 아무리 금발 NTR 영주가 정신 나갔어도 옆집 뚝배기 브레이커 여동생을 건드릴 생각은 못한다. 물론 그런 건 내 알바 아니었다.
오늘 금발 뚱땡이 태닝 영주는 내 '여동생'을 덮치려했다는 죄목으로 우발적 살해를 당할 예정이었으니까.
밤 늦은 시각. 나는 조심스레 일어나서 메이스를 집었다. 영주의 저택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복도를 살금 살금 걸어서 영주의 집무실로 다가갔다. 집무실에 놓인 간이 침대에서 영주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영주에게 다가가서 잠이 깊이 들었는 지 확인했다. 고르게 오르내리는 가슴과 안정적인 숨소리가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영주가 깊이 잠들었다는 걸 확인한 나는 영주의 목덜미를 잡고 조심스럽게 집무실에서 끌고나가기 시작했다. 만일 지나가는 길에 사람을 만났다면 몇 명 더 죽여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운 좋게도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응? 에응? 누, 누구....읍...."
나는 영주가 잠에서 깨자마자 가볍게 머리를 후려쳐서 기절시켰다. 다시 혀를 쭉 내밀고 기절한 그를 용사의 방 바로 앞까지 끌고온 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영주의 바지와 속옷을 한번에 벗긴 뒤 영주의 목덜미를 잡아 용사가 있는 방 문짝에다가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쾅!
"우와아아악!"
충격으로 깨어난 영주가 바닥을 구르며 괴성을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용사가 머리맡에 놓아든 칼을 뽑아들고 영주를 겨누었다. 영주는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끄악!"
"감히 무고한 여인을 덮치려 해?"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일단 되는대로 뱉어봤는데, 진짜로 그런 적이 있는 것인지 영주는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일단 빌기 시작했다. 역시 영주다운 눈치를 가진 놈이라 할 수 있었다. 용사가 나와 영주를 번갈아보다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사제님?"
"이 자는 당신을 범하려 했습니다. 문 앞에 있던 걸 제가 발견했죠."
그 말에 바짝 엎드려있던 영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영주가 이상한 말을 하기 전에 나는 영주 대가리에 메이스를 박아넣었다.
"꾸엑!"
영주가 돼지가 죽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니 뭉개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영주는 머리가 몸통에 푹 파고들어가 꿀단지같은 모습으로 변했으니까. 나는 고깃덩이로 변해버린 영주를 냅두고 용사에게 다가갔다. 용사는 영주의 참단한 모습을 보며 내게 말했다.
"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는데...... 감사합니다. 사제님."
"이제 여인의 몸이지 않습니까. 조심하셔야죠."
나는 내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며 그렇게 말했다. 용사는 여인의 몸이라는 그 말이 어색한지 헤헤하고 웃었다. 웃는 것도 제법 귀엽네.
살면서 이렇게 애도받지 못하는 죽음은 처음 보았다. 히틀러가 자살했을 때도 이 새끼보단 동정하는 사람이 많았을거다. 아무리 이유가 있다지만, 엄연히 남의 영지에서 영주를 때려죽인 이 극악무도한 상황.
영지의 기사단은 참치캔처럼 납작하게 찌그러진 영주를 매우 혐오스럽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영주가 죽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고용인들도, 사건 경위를 조사하는 기사단장도 모두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그런 무도한 짓을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기사단장은 조사 중에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생각도 아닌 듯 했다. 증거도 용사의 증언도 없었지만, 기사단장은 그냥 그럴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 평소에 뭔 짓을 하고 다닌거지? 이 정도면 내가 그냥 웃는게 기분나쁘다고 죽였어도 '그럼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라고 말하며 넘어가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일을 이렇게 설렁설렁 처리해버리니 진작에 죽여버릴걸, 이라는 후회가 뒤늦게 몰려왔다. 용사는 처음으로 기사급 단위의 조사를 받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사는 최종적인 보고서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이 소식을 왕궁으로 보내야하기 때문에, 전송은 못해드릴 것 같습니다."
영주가 어떤 사고로 인해 사망하고, 그 후계자가 없을경우 왕궁에서는 따로 영지가 없는 귀족을 골라서 영지를 양도한다. 나는 다음에 영주는 좀 멀쩡한 놈이길 바라며 그렇게 이웃 영지를 떠났다.
용사는 페타 영지에 다다를수록 긴장하고 있었다. 나 역시 대체 에리나가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놀랄까? 덤덤하게 반응할까? 페타 영지 경계면에 돌입하자, 순찰을 돌던 경비병이 빠르게 영지 대리인 아힐데른 에리나 공주에게 보고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렇게 우리가 영지를 가로질러 저택에 도착할 무렵. 에리나 역시 저택 문을 박차고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근 일주일 동안 보지못한 연인을 재회한다는 기쁨에 표정이 한 껏 풀어져 있었다. 울먹이는 새침한 표정으로 다짜고짜 용사를 끌어안은 그녀는 하소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늦은게냐! 진짜... 진짜, 난 네가 어떻게 된 줄 알고... 마왕은? 마왕은 죽였겠지? 어디 다친데는 또 없고? 괜찮은 게지? 이제 나랑 같이 왕국으로 가야하는 데 어디 문제 있으면 가만 안둘테다... 그리고... 또....어라?"
한참동안 질문을 퍼부으며 붙어있던 에리나가 몸을 떼어내곤 눈을 일그러트렸다. 녹색 눈을 찡그리고 용사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용사가 어색하게 말했다.
"에, 에리나......그게......"
"누, 누구....?"
에리나는 뒤늦게 자신이 껴안은 게 처음보는 얼굴이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용사는 이 사태를 설명해야 했다. 내가 옆에서 거들었다.
"에리나 공주님. 이 쪽이 용사님이에요."
"뭐? 무슨 개소리냐? 에이에이가 여자가 돼? 내가 바보로 보이나? 에이에이는? 어? 설마 죽은....건 아니겠지? 어?"
에리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최악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용사 에이에이는 패닉에 빠지려드는 에리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에리나. 내가 에이에이야. 봐봐. 우리가 처음만날 때, 고블린 세마리와 오크 두마리가 너를 쫓고 있었잖아? 그 때 너는 화살이 떨어져서 몸을 빼고 있었고, 나는 숲길을 걸어가고 있었어."
에이에이는 자신이 에리나를 구해줬을 때 이야기나 에리나와 에이에이만 알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에리나는 처음에는 이상한 눈길로 에이에이를 쳐다보다가 차츰 그녀가 용사가 맞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한숨을 푹 쉰 그녀가 말했다.
"왜, 왜 이렇게 된거냐?"
"에리나 공주 당신이 줬던 약을 써야 했거든요."
"그 약에 그딴 효과가 있다고?"
에리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아무래도 에리나도 모르고 줬던 것 같았다. 그나저나 진짜 용사 안주고 나한테 썼으면 좆될 뻔 했다는 걸 생각하니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에이에이가 에리나에게 물었다.
"에리나. 혹시 엘프 왕국에 원래대로 돌리는 약 같은 건 없어?"
"모른다. 우리 엄마는 알지도 모르는 데.... 아마 없을 거다.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약을 대체 누가 연구한다고."
그게 맞다. 이 게임이 남성향 야겜이라는 건 고려해봤을 때, 남자를 여자로 변신시키는 약은 몰라도 여자가 남자로 변하는 좆같은 약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었다. 에이에이는 그 말에 낙담한 표정이었다. 우리가 저택 앞에 서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멈춰선 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지 근황도 들어야 했고, 다시 인수인계도 받아야 했으니 나는 일단 저택에 들어가기로 했다.
저택 집무실에 와서, 에이에이는 여전히 고민에 빠져있었다. 인계된 서류를 보면 에리나는 정말 충실하게 일을 잘해줬다. 시에리는 평소처럼 회계 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하고 있었고, 아이라는 저택 안에 내가 들어오자마자 나를 껴안고 얼굴을 비벼댔다.
나는 아이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다시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녀와 시에리를 내보냈다. 에리나가 말했다.
"페타 루시우스.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다. 마왕은 물리쳤지만, 내가 에이에이와 결혼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단 말이다."
에이에이는 한참 동안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에리나. 잠깐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어?"
나도 에리나도 고개를 들고 용사를 쳐다봤다. 그가 뱉은 말에 에리나는 경악했다.
"무슨 말이냐 에이에이! 나를 버리겠단 것이냐?"
"그게 아니야. 에리나. 너는 엘프 왕국으로 돌아가서 남자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나는 여기 대륙을 떠돌면서 남자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 나도 에리나 너와 결혼하고 싶으니까."
"그, 그런....."
에리나는 에이에이와 또다시 떨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에 빠진 것 같았다. 에이에이가 다시 한 번 에리나를 설득했다.
"에리나. 우리 같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자고 했잖아.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약이 있다면, 그 반대도 있을거라고 생각해."
"그, 그래도...나는...나는 너와 떨어지면..... 네가 마왕을 잡으러 갔을 때 내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아느냐? 매일 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제 또 기약 없는 이별을 하자고?"
"기약 없는 이별이 아니야 에리나. 난 너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만, 하지만 네가 공주로서 책임을 버리는 것도 원하지 않아."
"에이에이....."
확실히 후사는 중요한 문제다. 에이에이는 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사제님. 혹시 저와 에리나가 이 영지에서 주기적으로 만나도 괜찮을까요?"
"손님으로 오시는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죠."
내 허락에 에이에이는 다시 에리나에게 말했다.
"그럼 에리나. 3개월에 한 번씩. 우리 여기서 만나는 걸로 하자."
엘프 왕국에서 공주랑 둘이 밀회를 즐길수는 없을테니까. 내 저택을 모텔처럼 이용하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나는 그 꼴을 눈뜨고 볼 생각은 없었다. 에이에이가 덧붙였다.
"딱 1년. 1년만 이렇게 해보고 다음을 생각해보자."
"....알겠다."
에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수심은 누구나 눈치챌 수 있는 것이었다. 에이에이가 에리나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그럼... 가볼께."
"뭐?"
에리나도 나도 당황한 얼굴로 에이에이를 쳐다보았다. 에이에이가 말했다.
"한시가 급하잖아. 나는 빨리 방법을 찾고 싶어."
"그, 그래도 며칠만 있다가 가는게."
"아니야. 그.... 나중에 보자."
에이에이도 괜찮은 척 하지만 초조한게 분명했다. 빨리 남자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우를 범하고 있었다. 이런 고지식함은 여자를 다루는데에 좋지않다. 에이에이가 집무실 문을 열고 사라지자 에리나는 울적한 얼굴로 닫힌 방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리나는 말없이 서있다가 나에게 말했다.
"......며칠만 신세를 지겠다."
"그러세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답했다. 이거 각이 보인다. 내가 용사에게 칼침 맞을지도 모르지만, 각이 보였다는 말이었다.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에리나는 저택 왼편 마지막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녀는 에이에이가 여자가 되었다는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접니다. 루시우스."
".....들어와라."
에리나는 수심에 가득차 있어도 여전히 예뻤다. 긴 금발머리와 영롱한 녹색 눈, 그리고 터질듯한 가슴과 그에 못지않게 탄력 있는 엉덩이. 남자의 음심을 자극하는 음란한 외모였다.
"무슨 일이지?"
"여전히 용사님과의 일로 걱정이 많으신 것 같던데요."
"네가 상관할 바 아니지 않느냐?"
"아니요. 제게 괜찮은 생각이 있어서요."
"괜찮은 생각?"
에리나는 그 말에 흥미가 동한 듯 나를 쳐다봤다.
"예컨데, 아이만 있다면 공주님이 누구랑 결혼하든 상관없는 문제가 아닌가요?"
"그렇지. 그런....."
에리나는 말을 거기까지만 하고 나를 쳐다봤다. 이 공주. 묘하게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고 나를 쳐다봤다.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나보고 에이에이말고 다른 남자를 품으라고?"
"용사님이 남자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차피 누군가를 품어야 하실겁니다. 공주는 후사를 낳아야 하니까요."
"그건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 그리고 에이에이가 그 이야기를 납득할 것 같으냐?"
"그럼 언제까지 기약없는 기다림을 하실 생각이시죠? 용사님이 정말 1년만 하고 포기할 것 같나요?"
"그건....."
내가 게임을 해본 바 주인공은 포기를 모르는 새끼다. 1년으로 안되면 다시 1년. 그렇게 다시 1년. 정말 방법을 찾을 때까지 질질 늘어질수도 있었다. 에리나도 내 말에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그리고, 이 대륙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죠. 마왕을 물리쳤던 건, 어디까지나 마왕이 아직 완벽하게 부활하지 않은 덕분이었어요. 먼 지역에서 용사님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그 다음에 공주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그, 그런 가정은 하지 마라! 말도 안되는....."
"왜 말도 안되는 가정인가요? 남자가 되는 약이 있다는 소문에 이끌려서 말도 안되는 사기를 당할수도 있고, 어쩌면 어이없는 방식으로 죽을지도 모르죠."
"그만! 죽는다는 말은 그만해라! 에이에이는 죽지 않을테니까!"
"만일 그렇게 죽는다면, 그 책임은 공주님에게 있는 것 아닌가요?"
"뭐, 뭐?"
"공주님이 눈을 딱 감고 다른 남자를 한 번만 받아들인다면, 그래서 아이를 품는다면 용사님은 위험천만한 모험을 할 필요도 없고 왕실도 후사를 고민할 필요가 없죠. 공주님은 용사님이 죽고나서 후회하실 생각인가 보군요.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남자를 품어야 할겁니다."
"아직 모르는 일이지 않느냐! 성별을 바꾸는 약이 어딘가에 존재할수도...."
"그래서 정말 이 기약없는 기다림을 계속하시겠다구요?"
"그...."
"정말 3개월마다 한번씩 만나서 뽀뽀 정도만 하고, 다시 정보만 교환하고 헤어지는 여행을 1년 동안 반복 하시겠다구요? 1년은 긴 시간이에요 공주님. 3개월 동안 타지를 돌아다니는 용사님이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없다고, 정말 단언하실 수 있나요?"
"그러니까....."
"정확히 3개월만에 못돌아올수도 있죠. 중간에 아주 결정적인 실마리를 잡았다 생각해서, 6개월 만에 돌아올수도 있고, 재수없는 상황에 처해서 몇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어요. 공주님은 정말 그 외로움과 초조함을 견딜 수 있나요?"
몰아붙여야 한다. 에리나가 이성을 되찾지 못하도록. 몰아붙여야 한다.
"정말 감내할 자신이 있으신가요? 약간의 굴욕과 거짓말이면, 용사님을 다시 볼 수 있어요. 용사님과 서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그래서 둘이 애정을 가지고 키운다면 애는 누구애든 상관없지 않나요? 용사님만 모르면 되잖아요."
"그.....아....."
"누가 생각해도, 아이를 가지는 편이 더 쉬운 길 아닌가요?"
에리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에 빠졌다. 한참 동안 신음하며 끙끙 앓던 그녀가 나를 슬쩍 올려다 보며 말했다.
"....나더러..."
"네?"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나는 생각했다. 에이에이의 고지식함이 행운을 가져다줬다고.
"생각할 시간을 주면 좋겠다. 내가.... 내가 바로 결정하기엔 너무.... 그런 일이지 않느냐?"
에리나가 쥐어짜내듯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여기서 너무 밀어붙이면 또 역효과를 불러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은 내 편이다. 나는 시에리의 질을 열심히 개발하는 한편, 아이라의 욕구에 응하는 충실하고도 음란한 나날을 보내며 에리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사실 에리나가 나한테 대주지 않더라도 아쉬울게 없었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칼침을 맞는 법. 옆에 미녀가 둘만 있어도 인생은 아주 행복한 법이니까. 하지만 에리나는 이렇게 용사가 계속 오지 않으면 점점 더 초조해지기 마련이었다. 용사 에이에이는 원래 상남자 스타일의 캐릭터다. 가까이 있으면 스윗하지만, 편지를 보내는 일 따윈 없다.
아무 소식도 없이 타지에 간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세상이 위험투성이라면 떠나는 연인을 무슨 짓을 해서든 붙잡고 싶은게 사람의 마음이다. 설령 그 방법이 아주 그릇되었다고 해도.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집무실에서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아이라가 그 옆에서 나를 보조했다. 아이라는 일하고 있는 내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영주님. 바다에 놀러가는 건 어떠세요?"
"아이라 당신은 밖에 못나가잖아요."
아이라는 여전히 저택 밖에 나가면 심각한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나도 굳이 고칠 이유가 없어서 따로 고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아이라가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안가더라도 영주님은 가실 수 있잖아요. 엘프 공주님도 있는데 다녀오시면 안될까요. 저 가지고 싶은게 있는데....."
"안돼요."
아이라가 아니라 시에리가 다리 벌리면서 부탁해도 바다는 안된다. 이번 생에서 가장 피해야 하는 곳은 왕궁이나 드래곤 산맥같은 곳이 아니라 바다였다. 아이라가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바쁘신데 실례였을까요?"
"아뇨. 바다에는 미친 레즈 강간마가 살거든요."
존나 쌘 미치광이 레즈 강간마가 살기 때문에 바다에는 가면 안된다. 그 새끼는 여자는 겁탈하고 남자는 죽이는 미친년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원작 게임에서 그 레즈강간살인마를 만난 뒤 일주일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아이라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바다에 뭐 특별한게 있나요?"
"실은....."
아이라가 영주성에 날아온 신문을 보여주었다. 바다의 조개껍질을 세공해서 만든 보석함이 인기라는 기사였다. 가격도 보니 그리 비싼건 아닌데 생긴게 상당히 예뻤다.
"오."
나는 감탄을 내지르며 그림을 쳐다봤다. 정말 이 그림대로 나온다면 하나 두개 선물로 정도는 살만했다. 하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아무리 디자인이 예쁘고, 아무리 가격이 싸더라도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바다는 안돼요."
엄밀히 따지자면, ‘바다 위’에만 안가면 만날 일이 없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최대한 그 지역에서 떨어지고 싶었다. 아이라는 단호한 거절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날 안마를 멈추지 않았다. 회계 업무는 안시키고 안마와 청소만 주구장창 시킨 결과, 사기꾼이었던 아이라는 청소와 안마 특성이 새로 개방되었다.
계산도 적당히 잘하고, 나에 대해 순종하고 청소 안마 다 잘하는데다가 대주기까지하니, 이제 아이라는 사실상 내 전용 메이드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었다. 아이라의 손 끝이 슬쩍 내 맨살에 닿았다. 내가 고개를 들자 아이라가 묘한 웃음을 흘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주인을 내려다보는 메이드에겐 벌을 줘야 했다. 몽둥이로 아주 큰 벌을.
똑. 똑. 똑.
"누구세요?"
아이라가 아쉬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문 너머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누구세요?"
".....나다."
"아, 에리나 공주님. 들어오세요."
에리나는 우물쭈물 얼굴을 붉히며 문을 열었다. 에리나가 가져온 용건이 무엇인지는 알기 쉬웠다. 일주일 동안 불안감에 시달려왔으니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인지 이제 확실히 이해한 것이겠지. 에리나는 아이라를 쳐다보고 말했다.
"영주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나는 아이라를 내보냈다. 아이라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문을 열고 나섰다. 나는 서류를 정리해서 한켠에 놓고 에리나에게 물었다.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나요?"
"네 제안을 생각해봤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하셨죠?"
"임...임신을 하려면, 보통 얼마나 해야하지?"
"노력하기에 달렸죠."
에리나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속삭이는 목소리에 다시 한 번 흥분했다.
"일단 내 방으로 와라."
나는 벌써부터 힘이들어간 아랫도리를 감추기 위해 허리를 살짝 숙여야 했다. 에리나는 주춤주춤 걸어오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혹시나 누가 볼까 내 손을 붙잡고 강하게 방으로 끌고들어갔다.
문을 걸어잠그고 숨을 한 번 고른 그녀가 나를 노려봤다. 터질듯한 가슴과, 맑은 초록눈. 나는 단단히 발기한 하물을 억지로 손으로 가렸다. 에리나가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그래, 내 제안을 생각해봤다. 확실히 지금 여자가 된 에이에이와 결혼하기 위해선 다른 대안도 생각해두는 게 옳지."
에리나가 다른 남자를 품는다면 선택지는 나밖에 없었다. 마왕을 물리친 용사 일행이자, 엘프를 낳을 수 있는 하프엘프이며, 신분도 확실하다. 엘프왕국이 개방적이라고쳐도 에리나가 아무 씨나 받아온다고 좋아할리 없었다.
"그렇죠. 그래서 제가 종마 역할을 해드린다는 거구요."
"종마라, 왜 네가 종마 역할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용사와 함께 마왕을 물리쳤으며, 전대 용사일행이었던 페타 시리우스가 제 아버지고, 인간 왕국의 영주로서 신분도 확실하니까요. 이 정도의 씨를 받기란 쉽지 않을텐데요. 미래를 위하신다면요."
씨를 받는다는 표현이 매우 저속하게 들렸다. 에리나도 같은 생각을 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천박하군."
"하지만 이게 최선이죠. 에리나 공주님은 더 기다리기 힘들어서 저를 부르신게 아닌가요?"
에리나가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짧은 치마위로 매끈한 허벅지가 도드라졌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내 자지는 폭발할듯이 울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치마를 잡아서 살짝 올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혹시나, 이 방에서 일어난 일을 다른 누구에게 떠벌린다면, 난 너를 죽이고 자결할것이다."
"대천신교의 사제를 너무 문란하게 보시는 군요."
"종마 역할을 자청한 놈이 할 소리는 아닐텐데."
나는 더 뜸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에리나는 놀란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나는 에리나의 가슴을 틀어쥐며 말했다.
"어차피 하기로한거, 더는 뜸들일 필요없잖아요?"
내 얼굴이 가까이 오자 에리나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내 얼굴에 가까이하지 마라.....꺄앗!"
나는 에리나를 침대 위로 휙 던졌다. 하늘로 붕 떠오른 에리나를 실프가 받아서 침대 위에 살포시 떨어트렸다. 에리나는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사제복을 벗어내리고 있었다.
"자, 잠깐! 그렇게 갑자기 벗으면....!"
"저와 조금 더 즐기고 싶으신건가요? 이건 어디까지나 일이잖아요. 에리나 공주님."
"......그, 그렇지. 이건.... 이건 일이다.... 네 말이 맞다."
에리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그리고 천천히 옷을 벗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위에 입은 얇은 조끼를 벗자. 터질듯한 가슴이 꽉끼었던 옷에서 해방되어 튀어나왔다. 예쁜 분홍색 브레지어까지 끌러내리자 선홍빛 유두가 탱글탱글한 자태를 드러냈다.
"....너무 쳐다보지 마라."
에리나는 눈을 꼭 감고 치마까지 벗어던졌다. 분홍색 속옷만을 남겨둔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제 되었....뭐, 뭐냐 그건!"
에리나는 놀란 얼굴로 알몸이 된 나를 쳐다보고 황급히 눈을 가렸다. 내 자지는 확실히 위압적인 크기기는 했다. 에리나는 고개를 돌린 채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빨리 끝내야죠. 에리나 공주님. 부끄러워 할 시간이 어딨나요?"
"그, 그렇지. 빠, 빨리 끝내야지. 일이니까. 이건... 그... 일이니까."
나는 에리나의 팬티를 붙잡아서 한번에 끌어내렸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팬티는 신축성이 좋아서 대충 당겨도 쭉쭉 늘어났다. 완연히 드러난 계곡에 깔끔하게 정돈된 노란색 털이 보였다. 나는 그 위를 가볍게 손으로 쓸었다.
"흐읏....."
에리나가 작게 신음을 뱉으며, 몸을 떨었다.
나는 에리나의 가슴을 가볍게 주무르며 유두를 혀로 희롱하기 시작했다. 혀와 맞닿은 부분이 빳빳하게 굳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더욱 세심하게 혀를 놀렸다.
"하읏....흣...으읏...."
"기분 좋으신가요 공주님?"
"저, 전혀...전혀 기분...좋지 않다....흐읏...."
하지만 에리나의 말과는 다르게 그녀의 계곡에선 맑고 끈적한 액체가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질 주변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계속해서 그녀를 애무했다. 에리나는 시에리같이 작고 왜소한 체구가 아니라 한번에 삽입해도 그리 큰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질벽을 손가락으로 문지를 때 마다, 에리나는 허리를 가볍게 튕기며 신음성을 흘렸다.
"아...아아....읏...."
"기분 좋으시군요 공주님."
"아....아니...으읏...아니다...조금도....기분이...흐읏...."
나는 가슴을 공략하던 손과 혀를 아래로 내렸다. 분홍빛 예쁜 질구 위로 드러난 클리토리스에 살며시 혀를 얹고, 그녀의 질벽을 손가락으로 세심하게 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물장구 소리가 적나라하게 방 안을 울렸다.
"흐응....흥! 으읏...아....아아..! 아앗...! 흣...!"
부드럽게 질벽을 휘저을 때 마다 에리나는 쾌감을 감내하지 못하고 토해냈다. 몸을 비틀며 애액을 마구 뿜어내는 흐트러진 모습은 내가 게임을 플레이할 때 에리나가 보여주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묘한 정복감과 쾌감이 솟아올랐다.
"하으으윽...!"
에리나가 온몸을 떨며 마친내 절정에 도달했다. 억지로 쾌감을 참으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지만, 그녀가 몰려오는 쾌감에 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거칠게 내쉬는 숨과 땀 범벅이 된 얼굴에색기가 넘쳐흘렀다. 나는 에리나의 다리를 벌리고 내 양물을 질구에 슬슬 비비기 시작했다.
한껏 민감해진 에리나의 몸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아...아아...."
"그럼 하겠습니다."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윽....."
균열이 부드럽게 갈라진다. 굵은 육봉이 엘프의 답답한 질벽을 헤집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에리나가 매트리스를 꼭 쥔 채 발버둥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얼굴에는 괴로움과 이질감이 한껏 떠올라있었다.
나는 조금 허리를 뒤로 빼며 잠시 쉴 여유를 주었다. 에리나는 숨을 헐떡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망울이 가학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다..... 들어갔느냐?"
"이제 시작이에요."
나는 다시 허리에 힘을 주어 밀어넣기 시작했다. 따뜻한 질벽에 파고들 때 마다, 나는 내가 에리나에게 잡아먹히는 과정이라고 느껴졌다. 포근하게 내 몸을 감싸는 질벽은 아이라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흐읏...으으....아....아읏....."
에리나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이를 악물었다. 나는 허리를 끝까지 밀어넣고 나서야 겨우 움직임을 멈추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에리나는 연결된 접합 부위를 내려다보기 위해 눈을 힐끔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내저으며 얼굴을 돌렸다.
"기분 좋으신가요?"
"허....헛소리 하지 마라... 네 녀석보다 에이에이가 훨씬 더 크고.....굵고....."
에리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에이에이의 물건을 봤을 지는 몰라도 둘이 섹스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왕과의 최종결전 직전에야 두 사람은 거사를 치르니까. 즉 여기서 에리나가 나한테 에이에이가 더 크니 어쩌니하는 건 그냥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하윽!"
내가 살짝 움직이자 에리나가 귀여운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따져댔다.
"가, 갑자기 움직이면.....히윽!"
다시 한번 허리를 가볍게 들썩였다. 에리나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나는 에리나가 놀라지 않게끔 천천히 허리를 다시 빼기 시작했다. 내 물건을 꼭 물고있던 에리나의 질이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찰싹 달라붙어 나를 자극해왔다.
"아...아아....."
에리나는 내가 성기를 빼자 묘한 신음성을 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에리나가 안정을 되찾는 걸 보고 다시 천천히 안으로 밀어넣기 시작했다.
"흐읏....."
에리나는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배 안쪽을 관통하는 이물감이 장난이 아니겠지. 나는 에리나가 내 움직임에 익숙해지게끔. 천천히 허리를 앞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리나는 내 전용 러브돌이 된듯, 그 움직임에 빳빳하게 누운 채 신음성만 흘리고 있었다.
"흐윽....흣....아....아앗....."
조금씩 조금씩 내 성기를 받아들인 에리나의 속이 부드럽고 매끄럽게 풀어지고 있었다. 질 내에서 흘러내리는 애액이 내 성기를 적시며, 마찰을 최소화했다. 점점 에리나의 얼굴에 홍조가 들더니 신음소리에 달달한 비음이 섞이기 시작했다.
"흐응....음......응....아....."
내가 허리를 움직일 때 마다 음란한 소리가 조금씩 방안을 가득차기 시작했다. 에리나는 얼굴을 붉힌 채 눈을 감고 신음성과 함께 숨을 내뱉었다. 그녀가 내뱉는 숨 한줄기마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하....아읏...응...으응....."
"기분이 좋으신가요?"
"무, 무슨....흥... 소리냐....하응....저, 전혀.....으읏....기분이 좋.....하앙..."
나는 조금씩 조금씩 계속해서 속도를 올려나갔다. 비좁은 에리나의 속은 내 흥분을 최고조에 이르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성을 놔버리고 에리나의 보지에 마구잡이로 쑤셔박고 싶었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최고로 즐기고 싶었다.
나는 지금 남의 여자와 섹스를 하고 있었다. 에리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에이에이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꼭 감은 채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신음성을 내뿜고 있었다.
"용사님과 저 중에 어느 쪽이 더 기분이 좋나요?"
"흐응...그, 그런....아읏.....다, 당연히....에이에.....흐응....쪽이...아...."
또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에이에이랑 한 적 없을텐데, 그녀는 여전히 오기를 부리고 있었다. 쾌감에 질펀하게 녹아내린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고고한 척 하려 애쓰고 있었다. 벌어진 입과 멍한 눈빛은 이미 그녀가 이 섹스에 기분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걸 내게 아주 잘 알려주고 있었다.
이래서 NTR하는 거구나. 나는 금발 태닝 NTR 영주를 이제 마음 속에서 이해해주기로 했다.
나는 에리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허리를 조금 더 세워서 강하게 찔러들어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빨라진 템포에 에리나가 나를 꼭 끌어안은 채 신음을 토해냈다.
"히윽...! 가, 갑자기! 하앗...! 항....아윽....으응...!"
질퍽한 소리가 매트릭스를 적시고, 또 방 안을 가득히 울렸다. 쾌감에 절여진 에리나는 녹아내린 목소리로 어설픈 신음을 토해내며 내 등을 더듬고 있었다.
"그만....흐응....그, 그만....하응....항.....!"
그녀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어려있었다. 이대로 쾌감이 더 선을 넘어서면 돌아올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온 몸을 잠식하는 쾌감에 대한 즐거움. 에리나의 허벅지가 내 피스톤질을 막으려는 듯이 내 좆을 조여왔다.
"우욱!"
나는 겨우 사정할 뻔한 걸 참아내고 허리를 들어올렸다. 그만하라는 듯, 에리나는 다리를 꾹 오므리고 있었다. 그 덕에 에리나의 질 안에 들어간 내 성기는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어디서 이런걸 배우셔서.....공주님..."
"하아....하아...끄, 끝났느냐?"
에리나의 눈가는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건 아픔 때문이 아니었다. 에이에이를 배신했다는 죄책감과 그러면서도 쾌감을 느끼는 자신이 원망스러워 흘리는 눈물이겠지. 아팠으면 진작에 비명지르면서 날 떼어냈을거다.
나는 에리나가 허벅지를 꾹 오므린 대로, 다시 한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극도로 비좁아진 질 내부를 꿰뚫는 쾌감은 이전의 섹스와는 비교할게 아니었다. 에리나는 다시 허리를 움직이는 나에 의해 다리에 힘을 풀고 다시 신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타고나셨나봐요."
"다, 닥쳐라....흐응...."
에이에이는 지금쯤 세상 모르고 여행을 다니고 있겠지. 남자로 돌아갈 방법을 찾으며 열심히 고생하고 있을거다. 하지만 에이에이가 그렇게해서 지키려고 했던 결혼 생활은 이미 내 자지 앞에서 풍비박산이 나고 있었다.
에리나는 눈을 감은 채 쾌감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항....으응....아앗...아!..아앙....좋아...읍?!"
에리나는 저도 모르게 좋다고 말한 뒤 놀라서 입을 가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에리나의 머리를 쓸어올리며 물었다.
"왜 그러시죠 공주님?"
"네....흥...흐응...네 테크닉...아...아앗...형편없다고.,...흐읏...말하는... 것이었....아앙!"
공주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며 그렇게 말했다. 에리나의 이런 표정 하나하나가 나의 가학심과 배덕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슬슬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허리를 격하게 흔들며 에리나의 가슴을 탐하기 시작했다.
"하앙! 항! 아앙! 너무... 너무 빨라...! 하윽! 윽...! 조, 조금만...천천...하앗! 으응!"
에리나는 점점 빨라지는 격정적인 섹스에 미처 따라가지 못한 듯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지르며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유두를 쭉 빨던 머리를 들어서 에리나에게 입을 맞췄다. 신음을 내지르며 벌어진 입을 쭉 맞추고 혀를 밀어넣었다.
"하응! 흐응! 으으읍,....! 흐읍...!"
에리나가 나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쾌감에 완전히 잠겨 이성을 잃은 듯 했다. 신음을 토하며 내가 혀를 희롱하는 대로 타액을 흘려내고 있었다.
"하으.....으응..! 아...아앙.!! 가...가....! 이, 이상해....흐읏...!"
절정에 다다랐다. 나는 있는 힘껏 허리를 찔러넣으며 가쁜 신음을 토해냈다.
"끄으으으.....!"
"하응....하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에리나가 허리를 뒤로 꺾으며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내 분신이 백탁액을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자궁을 가득채우고, 질 내부에서 흘러넘쳐 뚝뚝 떨어질만큼, 나는 내 모든 것을 토해냈다. 나는 에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헐떡거리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참 복잡해보였다.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에리나는 나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이, 이제 끝난 것이겠지?"
"뭐가 말인가요?"
"내 뱃속에 네 씨를 받아들였으니 끝난게 아니냐는 말이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 웃음이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 생각했는 지 에리나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왜 그런식으로 웃느냐?"
"공주님. 임신이 됐는지 안됐는지는 다음 생리 때 알 수 있어요."
"그렇지. 주기로 따지면 아직 열흘 정도 남았으니....."
에리나는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봤다. 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에리나는 한참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이번 한 번으로 임신할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
"그러다가 안되면 한달에 한 번 간격으로 이렇게 하실건가요? 일이잖아요. 공주님. 설마 너무 기분이 좋았다거나, 좀 즐기는 것 같아서 용사님에게 미안한가요?"
"헛소리하지마라. 지, 지금까지 내가 해본 섹스 중에서 최악이었다."
"최악이라, 그럼 이 전에도 많이 해보신건가요?"
에리나는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이 엘프는 거짓말을 할 때 남의 눈을 못마주쳤다.
"다, 당연하지! 나는 엘프 왕국에서도 섹스 경험이 많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너, 너는 그 중에서 최악이고!"
이건 무슨 병신같은 소리지. 공주가 걸레라고 엘프 왕국 전체에 소문이 났다고? 이 새끼들은 공주를 돌려먹는 문화라도 있는건가? 아무래도 이 엘프 공주가 자존심 때문에 되도않는 무리수를 두는 게 분명했다. 아무리 야겜이라지만 그딴 설정은 없었으니까.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계속 에리나를 바라보고 있자, 한참 동안 얼굴을 붉히던 에리나가 말했다.
".....거짓말이다. 그, 그래도! 너는 섹스를 못한다! 알겠느냐!"
나는 그냥 에리나의 개소리는 무시하기로 했다.
"네. 네. 그럼 2회차를 해볼까요?"
"뭐, 뭣?"
"2회차요. 하루에 한 번만 해서 어디 임신 하겠나요? 제가 기운이 있을 때 꾸준히 해야 임신 성공확률이 더 높아지죠."
"......음탕한 놈 같으니."
"일이잖아요. 안그런가요?"
".....그렇지. 일이지. 이건 일이다. 그래."
에리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엔 후배위로 해야지
몇 번이나 사정을 했을까. 방 안에 음란한 냄새가 가득했다. 나는 침대에서 기어나와 탁자에 놓인 물병을 집어들었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물병 안에는 맑은 물이 찰랑거렸다. 연거푸 섹스한 탓에 몸 안에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정신없이 물을 들이키니 물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겨우 여유를 가지고 정신을 가다듬은 나는 침대를 돌아봤다.
"헤으....으윽....."
에리나가 침대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베게에 얼굴을 박은 채 엉덩이를 고스란히 노출하며 신음하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서 분홍빛 속살이 음란하게 뻐끔거렸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하얀 액체는 내 작품들이었다.
세번인가? 아니 네번째일 쯤에 에리나는 이성을 잃고 신음만을 토하며 내게 몸을 맡겼다.
"하아....."
에리나가 베게를 붙잡은 채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풀썩 쓰러졌다. 다리에 힘을 주면서 정액이 다시 역류해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다시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나는 지체없이 침대 위로 다시 올라가 에리나의 탱탱한 엉덩이를 붙잡았다. 탄력있는 엉덩이는 내가 만지는 방향대로 모양을 바꾸어 박기 좋은 모양을 만들어냈다. 갈라진 균열이 뻐끔거리며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나는 지체없이 몸을 밀어넣었다.
"아흐....흐으....."
에리나가 몸을 떨면서 가볍게 허리를 들었지만, 그 이상의 저항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할수나 있을까? 지금 나에게 에리나는 오나홀이나 다름없었다. 힘이 완전히 빠진 허리를 억지로 들어서 내 성기 움직임에 맞춰 흔들었다.
"히흑...헥...하흑....하으...읏...앗...아윽...."
에리나가 헐떡거리는 신음을 내며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그녀가 몸을 튕길때 마다 질이 꾹꾹 조여오는 게 느껴졌다. 정말 최상의 명기다. 몇번의 섹스를 통해 민감해질대로 민감해진 내 좆은 금방 사정할 기세 였다. 나는 다시 한 번 허리를 거세게 부딪히며 다시 한 번 에리나의 안쪽에 사정했다.
"아으으....흐윽...아...아앗....."
에리나가 베게에 얼굴을 파묻으며 다 죽어가는 신음소리를 냈다. 매끈한 척추라인이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대로는 안된다. 에리나가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걸 보자 다시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건 정말 사람잡아먹는 요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황급히 몸을 닦아내고 사제복을 다시 입었다. 기절하다시피한 에리나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또 박고 말았을거다. 섹스도 좋지만 건강도 챙겨야 했다.
나는 바로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탕에 몸을 품 담그고 나니, 드디어 에리나를 잡아먹었다는 현실이 실감이 났다. 어젯밤이 아직도 꿈처럼 생생했다. 내가 싫다면서도 몸을 허락하는 얼굴, 끝끝내 신음성을 토하며 내게 매달리는 팔과 다리. 사정할 때 마다 아찔한 소리를 내며 꺾이는 턱선. 나는 목욕탕에서도 가라앉지 않는 내 성기를 식히기 위해 물을 뿌렸다.
냄새를 빼기 위해 한참 동안 욕탕에서 몸을 씻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잠자리에 들수 있었다.
* * *
다음 날 부터 영지는 본격적인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시에리와 아이라는 회계 담당으로서 왕궁에 보낼 복구 작업 지원금 견적을 짜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나 역시 이웃 영지들에서 날아오는 피난민들을 분류하느라 눈코뜰 새가 없었다.
저번에 마왕이 부활하면서 일어난 몬스터 대 습격 때문에 주변 영지들 몇곳이 아예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살 터전도 잃어버리고 심한 곳은 영주까지 죽었기 때문에, 갈 곳을 잃은 영지민들이 꾸역꾸역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경비병들과 기사들은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 혹시나 몰래 마을을 습격하는 무리들이 있나 감시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 경비대원들이 보낸 피난민 서류가 벌써 한뭉텅이였다. 나는 서류를 읽어보면서 필요한 피난민과 필요없는 쓰레기들을 거르는 작업을 했다.
예를 들어 89살 노인 같은 부류는 농사도 못하고 노동력에 도움도 안되는 인간들이니 피난민으로 오더라도 쳐내야 한다. 20살이라면 어디에든 쓸 수 있었으니 일단 받으면 좋았다. 노동을 할 수 있는 영지민들은 한 명 한 명이 재산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기준으로 분류하다보면 약자에게 나눔을 베푸는 대천신교 사제장이라는 위치가 또 발목을 잡았다. 내가 사제장인 이상 너무 노골적으로 늙은이와 장애인을 배척할수는 없는 법. 우리 영지에 이런 인간들이 많이 오는 건 내가 있는 이 영지가 남부 대천신교의 총본산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영지에서는 내쳐질 인간들이, 대천신교의 사제장인 나라면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모조리 내쫓고 젊은 놈들만 받아서 노동력으로 쓴다면 당장 대천신교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미지를 쌓아올리는데에는 10년의 세월이 걸리지만 한 번 조지는데엔 10초면 충분하다.
대천신교 사제장으로서 들어오는 기부금이나 품위유지비가 꽤 쏠쏠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명분과 실리. 둘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이냐의 기로에서 나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 중이었다.
똑 똑 똑
그리고 그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시에리인가 싶었다.
"누구세요."
".....나다."
"아아. 공주님."
의외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전까지 열심히 명분과 실리에 대해 고민중이었던 나는 그 고민을 그만두고 오늘 밤에는 들박을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00이 넘는 근력이면 엘프 하나 정도 들고박는 건 우스웠다.
에리나는 빨개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그러시죠?"
"......천하에 음탕한 놈 같으니."
"공주님도 즐기시지 않았습니까."
"내, 내가 언제 즐겼다는 것이냐?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어, 어떻게 사람을 그리 개, 개처럼...."
"개처럼?"
"마치 개들이 교미하는 것마냥 억지로 엎드리게 해선....."
"분명히 더 세게! 라고 외치셨던걸로 기억하는 데, 아닌가요?"
".....네가 잘못들은게다."
"그렇군요.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침부터 아기 만들기는 조금 곤란한데요."
"내가 너같이 맨날 그런 상스러운 일에만 매달리는 줄 아느냐?"
에리나가 얼굴이 빨개진 채 소리쳤다. 귀 끝까지 빨개져서 저러다가 펑 터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서류를 처리하던 중이라 단호하게 물었다. 침대에서 만나는 거 아니면 에리나는 매우 피곤한 성격이라, 최대한 단호하게 굴어야 했다. 실제로 서류가 많이 쌓여있었기 때문에 에리나가 빨리 사라져줄수록 좋았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나요?"
"그, 그러니까... 그..."
"그?"
"내, 내가 어제 본 것처럼...그리.. 그리...상스러운 사람이 아니며.....그건...그....너무 불쾌해서.... 소리를....지른 것이라고....."
에리나는 아직도 자기 자신이 내 자지에 굴복했단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그 자존심을 무참하게 꺾어놓고 싶었다. 나는 서류를 가다듬으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도 계속해야겠죠?“
그 질문에 에리나가 입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워하는 듯한 입술과 다르게 눈빛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그렇지...."
"일이니까요."
"그래, 맞다.... 일이니까..."
에리나는 불쾌한 기색이 가득했다. 여전히 나같은 하프엘프와 몸을 섞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 선을 넘은 인간은 몇번이고 넘기 마련이니까.
에리나는 돌아가려다가 내가 서류더미에 파묻혀있는 모습이 신기한지 물었다.
"너는 그런데 무슨 일에 그렇게 매달리고 있느냐?"
"요즘 영지에 피난민들이 많이 오고 있거든요. 그들을 분류하고 있어요."
"분류한다니, 선별한다는 뜻이냐?"
"그렇죠. 아무래도 노동력이 없는 인구가 많을수록 영지는 손해를 보니까요."
노동을 못하는 인구는 대체적으로 재산이 적다. 특히 노동을 못하는 피난민은 재산이 극히 적다. 본인이 노동을 못하는 만큼 본인의 힘으로 가져올 수 있는 재산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대천신교의 사제장이 피난민을 선별한다니, 하늘이 웃을 일이구나."
"제 사제장이라는 직위보다는 영주라는 직위가 우선이니까요. 영지가 무너지면 남부 대천신교도 무너집니다. 이미 영지 경계면에 있는 난민들은 영지가 수용할 수 있는 한도를 넘었구요."
"내가 알고 있는 너라는 인간은 이리도 끔찍한 사내는 아니었다."
"저를 알고 계셨나요?"
에리나가 원래 루시우스를 알고 있었다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에리나는 전대용사 일행인 페타 시리우스와도 안면이 있었으니까. 아버지를 알면 아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마련이었다.
"네 아버지를 알고 있으니. 너에 대해서도 알수 밖에 없지 않느냐. 내가 듣던 바로 너는 이렇게 폭력적이고 추잡한 인물까진 아니었다. 뭐가 너를 그렇게 바꾼 것이냐?"
"폭력적이고 추잡하다니요."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에리나는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묻고 있었다. 나도 그 말에 잠시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말대로, 나는 좀 폭력적이었다. 원래 현대에서 살 때도 이랬나 생각해보면, 원래 나는 제법 건실하게 살던 인간이었다.
귀여운 여동생도 하나 있었고, 편의점 알바에 새벽에 신문배달 알바까지 뛰는 건실한 청년이었다. 가끔씩 친구들과 술마시면서 신세한탄은 했지만 남들에게 착하단 소리를 듣던 인간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나도 내 스스로에게 의구심이 들었다.
나 왜 이렇게 폭력적이지?
"뭐, 사람이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만 변하는 것이겠어요? 사소한 이유로도 변할 수 있잖아요. 아침에 마신 커피가 별로라서 하루 종일 기분 나빴던 경험 없으신가요?"
"네 놈의 변화가 고작 그 정도 선에서 설명되는 일이라면 내가 물어봤겠느냐?"
"제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남이 납득하길 바란다면 그것도 욕심이죠."
"됐다. 너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에리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러났다. 방문이 닫히고 나는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적당히 티나지 않게 노인들을 몇명 섞어주면서 영지에 들일 피난민 명단을 완성했다.
그리고 대천신교에는 영지 내 사정으로 피난민들을 전부 받을 수 없을 양해해 달라는 공문을 작성하여 보냈다.이 일은 매우 바쁘게 흘러가서 나는 어느새 내가 왜 폭력적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걸 잊어버렸다.
"이, 이런....음탕한....."
"직접 움직여달라는 게 왜 음탕한 거죠?"
"나보고 허리를 흔들라는 것이냐?"
"여자가 위에서 하는 게 더 깊이 들어가서 임신에 유리하다고 해요. 설마, 아래에서 박히는 게 즐거우신가요?"
"박힌다고 표현하지마라. 후....."
에리나가 우뚝 솟은 물건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허리를 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의 물건과 자신의 비부를 맞춘다. 천천히 루시우스의 성기를 잠식해들어가는 자신의 몸에 아찔한 쾌감을 느낀다. 허리를 흔들 때 마다 터져나오는 신음을, 그녀는 참을 수 없다.
"으읏.....!"
"아, 아아아.....!"
에리나가 몸을 떨며 가볍게 절정을 느낀다. 몸 안을 채우는 따뜻한 액체가 그녀를 전율하게끔 한다. 루시우스의 성기를 몸에 담은 채 그의 가슴에 기댄다. 루시우스는 그녀의 얼굴을 들게 해서 입을 맞춘다. 에리나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읍....뭐하는 것이냐."
"어제는 해주셨잖아요."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그런것이다 나는....으읍....읍...."
"츕....하..... 설마 느끼시고 그런 건 아니시잖아요? 일이잖아요."
"일이라도 이런건....으읍....."
루시우스가 다시 입을 맞춘다. 천천히 허리를 움직여 그녀의 몸을 강하게 올려친다. 에리나는 다시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입을 벌린다. 루시우스의 혀가 입 안을 희롱한다. 그렇게 몇 번이고 루시우스는 다시 에리나의 몸 안에 사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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