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ão 1

"씨발."
푹신한 침실에 누워있던 내가 잠에서 깨서 뱉은 첫마디였다. 상황은 그만큼 황당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호화로운 침대에 푹 파묻혀 있었으니까. 어젯밤 술을 진탕 퍼마신 이후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근황을 서로 물었다. 그리고 고기도 구워먹으면서 서로 농담을 하다가 술자리가 길어지고, 택시를 불러준다는 친구의 호의를 사양하고 밤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 다음에 편의점에 들려서 숙취해소제를 하나 샀었는데, 그 다음부터 영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대체 어제 무슨 짓을 저지른거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길래 이런 호화로운 저택의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단 말인가? 동네 가구 백화점에라도 들어왔나?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면 화려한 침대에 비해 삭막한 방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옷장은 조그만한 것이 관물대처럼 구석에 박혀 있었고, 벽에는 전신 거울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냥 봐도 가구 매장은 아니었으며 차라리 납치 당했다고 해도 믿을만큼 삭막한 비주얼이었다.
침대 바로 정면에는 이상한 문양이 그려진 제단이 있었고 바로 옆에는 옷걸이에 새하얀 로브 같은 것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저 문양도 어디서 본 문양이고 로브도 어디서 많이 본 디자인이었지만, 난 그걸 진지하게 생각할 경황이 없었다. 이 장소가 대체 뭐하는 곳인지 알아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뭐야 씨발."
나는 이 이교도 제단 본부 뺨치게 생긴 방 풍경이 묘하게 익숙했다. 예전에 이사했던 자취방도 아니고 예비군 숙소도 아닌 것이 묘하게 익숙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분명히 어떤 매체를 통해서 접했던게 분명했다.
나는 방을 살피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묘하게 시야가 낮고 몸이 가뿐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키가 10cm 정도는 더 작아졌으며 폐에선 가래 끓는 소리가 사라졌다.
어제까지의 나는 술병과 과로에 찌들어 움직이는 매 순간이 비명의 연속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고등학교 시절만큼이나 몸에 활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시험삼아 허리를 쭉 펴보면 뚜둑 소리를 냈던 허리가 유연하게 뒤로 돌아갔다.
이해할 수가 없는 사실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펴보면 거칠거칠한 손도 매끈하게 변해있었고, 축 늘어졌던 피부도 탱탱하게 윤기가 흘렀다. 팔은 얇지만 탄탄했고, 하반신에서 묵직한 질감이 느껴졌다. 거기다 온 몸에 힘이 넘쳐흘러서 3일 밤낮으로 상하차를 뛰더라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나는 정신없이 방에 걸려있는 거울로 달려갔다. 그 안에는 금발에 붉은 눈을 가진 미소년이 서있었다. 여자가 아닐까 싶을만큼 가녀린 외모에 반곱슬로 귀족적인 인상을 강조한 금발. 그리고 살짝 뾰족한 귀까지, 나는 이 미소년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볼수 있었다.
이 새끼 게임 캐릭터였으니까.
일본에서 출시한 판타지 RPG 야겜 [히로인 전설]에는 그 컨셉이 지나쳐서 밈으로 진화한 캐릭터가 있다. 페타 루시우스. 전대 용사 일행의 성직자인 페타 시리우스의 아들로 강력한 물리 딜러임과 동시에 뛰어난 버프 능력으로 성능충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다.
하지만 이 새끼는 성능과 별개로 스토리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가슴을 뒤흔드는 설정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극단적인 호구 새끼라는 것이다.
일단 페타 루시우스는 본래 성품이 검소하고 소박한데다가 엘프 혼혈로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아도 사는 몸이기 때문에, 타 영지에 비해서 소작료를 절반만 받는다. 그런데 이 소작농들은 루시우스가 착하다는 걸 이용해서, 안그래도 낮은 소작료를 흉년이라는 핑계로 더욱 적게 내고 있었다. 덕분에 루시우스의 영지는 용사 일행이 올 때까지 매 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재밌는 건 루시우스 본인이 대천신교의 성직자이기 때문에 매 년 흉년이 반복될 때 마다 땅을 비옥하게 해주시옵사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이 덕분에 루시우스의 영지는 제국 내에서 가장 소작료가 낮으면서 가장 비옥한 농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루시우스의 영지에 들어오면 배가 뚱뚱한 소작농들이 다른 노예들을 고용해서 농산물을 착복하며 루시우스와 대천신교의 은덕을 찬양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단순히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것 만으로도 무능하고 호구같은 놈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루시우스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부패 현장을 목격한 용사 일행이 이를 목격하고 루시우스에게 알려줘도 루시우스는
"소작물에 대해 소작농들이 조금 욕심을 부리더라도 저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며 용사 일행과 플레이어의 복장을 터지게 만든다.
여기에 루시우스의 영지 바로 옆에는 사악한 금발 뚱보 태닝 NTR 영주가 빌런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루시우스의 대천신교 수련생 시절 소꿉친구인 시에리는 이 NTR 영주의 땅에서 수녀로 일하고 있었다.
영주는 시에리에게 가족의 빚을 갚아주고 기부금을 많이 내겠다며 자신의 첩으로 들어오길 종용한다. 시에리는 교회의 운영권을 쥐고 있는거나 다름 없는 영주를 거절하지 못하고 루시우스의 허락을 받아야한다고 완곡하게 돌려말한다.
그리고 루시우스는 둘의 사랑이 영원하길 기원한다며 허락도 하고 축복도 해준다.
여기에 절망한 시에리는 진짜로 뚱보 영주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고, 용사 일행이 처음 옆동네 영주에게 가게되면 죽은 눈으로 영주 옆에 앉아있는 시에리를 볼 수 있다.
결국엔 이 사건은 용사일행도 건드리려고 한 사악한 NTR충 영주를 주인공이 잔인하게 살해하면서 해결이 되긴 하지만, 자기 좋다는 여자도 뚱땡이 영주한테 내주는 병신같은 모습에 게거품을 문 유저들이 참 많았다.
아무튼 이 모든 호구짓을 다 용사 일행이 해결해주고나면 용사 일행은 페타 가문이 가지고 있던 용사의 성물만 이전해서 받거나 루시우스를 같이 데려갈 수 있게 되는 데, 나는 얘 호구짓이 너무 마음에 안들어서 성물만 받고 팽해버린 기억이 있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하렘파티에 남캐를 끼우는 것도 이상하기도 했고.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내가 이 호구 영주의 몸으로 들어왔다는 것.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에 빠졌다.
내가 이 호구 영주의 몸에 들어왔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가?
잠시 고민해보던 나는 이게 이세계 전생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어차피 판타지 세상으로 넘어왔는데 못할게 뭐 있을까. 나는 허공에 손을 올리고 이렇게 외쳐보았다.
"상태창."
이름 : 페타 루시우스
직업 : 대천신교 남부 사제장
레벨 : 36
스텟
힘 : 89
민첩: 78
지능: 124
행운 : 88
특성
돌격병
단단한 구조물, 물체에 대해 두배의 피해를 입힙니다.
메이스 숙련자
메이스 사용시 명중률 패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이단심문관
상대를 악, 어둠 속성으로 선언할 수 있습니다.
악, 어둠 속성 대상에 대해 2배의 피해를 입히며 절반의 피해만 받습니다.
"뭐야 진짜 나오네."
진짜로 상태창이 나온다는 것에 놀란 나는 상태창에 떠오른 내용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히로인 전설] 기준으로 봤을 때, 현재 루시우스의 스테이터스는 강캐 반열에 들기 충분한 수준이었다. [히로인 전설]에서 성인 남성 정도의 힘이 4 에서 5 정도다. 애초에 20만 넘어도 성인의 4배의 힘을 내는 초인인데 루시우스 이 새끼는 시작부터 성인 남성의 18배의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수치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지, 실제로 가면 더 강하거나 조금 더 약할 가능성이 있었다.
거기다가 이 [이단심문관]이라는 특성을 보자. [히로인 전설]에서 루시우스가 그렇게 호구짓을 하고 다녀도 아무도 영주 자리를 노리지 않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루시우스는 존나 쌘데다가 지가 정한 선을 넘으면 가차 없었기 때문이다. 루시우스의 선은 자신과 가문의 재산보다는 아버지가 물려준 영주 자리와 아버지의 명예에 관련된 부분에서 매우 엄격했다.
마왕을 퇴치하다 죽은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어찌나 지극한지 영주 자리를 넘보거나, 자기 아버지를 모욕하는 인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다진 고기로 만들어버렸다.
루시우스 컷신에서도 호구 영주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도적이 루시우스의 아버지를 모욕하며 도발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말을 들은 루시우스는 이성을 잃고 메이스를 휘둘러서 도적들을 모두 죽여버린다.
루시우스가 마냥 호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넣은 장면 같지만, 이 정도로 강한 놈이 그냥 당하고만 살기 때문에 유저들은 더 답답해 죽을 맛이었다.
"영주님. 일어나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문 너머에서 어떤 여인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루시우스는 하인들에게 존칭을 하던가? 그런 건 가물가물해서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루시우스라면 존댓말을 썼겠지 싶어서 일단 존대로 밀고나가기로 했다. 내가 갑자기 평소처럼 반말을 하고 갑질을 한다면 사람들이 전부 수상하게 볼테니까.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풍만한 가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주근깨가 살짝 난 귀여운 인상의 얼굴이 들어왔다. 복장은 전형적인 귀족 집안 메이드였으나, 몸매나 얼굴이 이런 곳에서 일할만한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얘도 상태창이 보일까 싶어서, 마음 속으로 이 아이의 상태창을 보고싶다고 생각해 봤다.
이름: 아이라
직업 : 사기꾼
호감도: 12
레벨 : 6
스텟
힘 : 4
민첩: 8
지능: 12
행운 : 3
특성
회계사
오랜 세월 금전이 오가는 일에 종사한 결과
회계업무에 아주 능숙해졌습니다.
영지의 운영비용을 자동적으로 정리합니다.
연기
다른 직업을 연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연기중인 직업 : 메이드
숙련된 도둑질
자신의 현재 레벨 이하의 잠긴 문을 전부 열 수 있습니다.
이 수치는 도구에 따라 추가 보정을 받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이 메이드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아이라라는 이름은 몰라도 루시우스 휘하에 있던 사기꾼이라면 제법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 알 수 밖에 없었다. 초반부에 루시우스가 회계장부를 맡겼던 아이가 돈을 챙겨서 도망쳤다며 한탄하는 장면이 분명히 있었다. 이 장면은 루시우스가 호구라는 것을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복선이기도 했다.
회계 능력과, 사기꾼이란 직업.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거, 이 새끼가 범인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아이라의 가슴을 바라봤다. 양손을 앞으로 모아서 더더욱 부각된 가슴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운이 좋군."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벌써부터 이 년을 붙잡아 조리돌림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는 나였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추론과 심증만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예상한 상황이 모두 들어맞고 사람들이 전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준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아이라를 잡는 일도 그랬다. 나는 아이라가 최대한 빨리 수상한 짓을 해서 내게 증거를 내보이는 걸 원했다.
하지만 아이라가 사기꾼이라는 증거는 상태창 뿐이었다. 실제로 아이라가 무언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아이라를 조리돌림 하는 건 아직 요원한 일이었다. 내가 아이라에게 '너 사기꾼이지!'라고 말한들 아이라가 '예! 그렇습니다!' 라고 곱게 대답해줄리 없으니까.
막무가내로 그녀가 사기꾼이 아니냐고 밀고나가면 오히려 의심을 사서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었다. 내부에 잠입한 사기꾼은 잡기 쉽지만, 한 번 도둑으로 변해버리면 잡기 귀찮아졌다.
게임 내에서 아이라가 루시우스를 통수치는 건 용사 일행이 오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되어 몇가지 알아본 결과 아이라는 최근에 저택에서 일하게 된 메이드이며 그 업무 능력이 좋아서 영주의 시중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지. 아무리 루시우스가 호구라도 갑자기 모르는 메이드한테 회계 업무를 맡기지는 않았을테니까.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아이라는 영주 옆에서 일하며 신임을 받았던 게 틀림없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정확히 지금이 게임 내에서 어느 순간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현재 내게 주어진 가장 급한 일은 세가지 정도가 있는데 하나가 아이라 조지기. 다른 하나가 NTR충 원천차단,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왕 퇴치였다.
이 세가지는 서로 엮여있는데, 시에리가 NTR충과 강제 결혼하는 이벤트는 용사 일행이 오기 대략 한달 전 ~ 일주일 전에 일어나는 이벤트고, 돈먹고 도주하는 이벤트 역시 대략 일주일 전 쯤 시기에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마왕 부활은 평균적인 4인 파티 용사 일행이 루시우스 영지에 온 시점에서 절반 정도 완성된다.
왜 평균적인 4인 파티 기준으로 마왕 부활이 절반쯤 완성되는 거냐고? [히로인 전설]은 파티원의 숫자로 게임의 난이도가 정해지는 게임이었다. 동료를 영입할 때 마다 제법 긴 이벤트를 봐야해서 게임 상의 날짜가 쭉쭉 지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인공이 아무 이벤트도 안보고 아무 동료도 영입하지 않고 곧장 마왕성으로 달리면, 마왕이 부활은 커녕 이제 막 마왕 부활 의식에 필요한 제물을 모으려던 참에 주인공이 들이닥쳐서 흑막이고 뭐고 다 죽여버린다.
역으로 주인공이 온갖 동료들을 전부 퀘스트를 해결해서 모은 뒤에 가면, 그 사이에 힘을 기른 헬창 마왕과 피튀기는 혈전을 벌여야 한다.
따라서 적당한 수준의 파티로 마왕을 무찌를 것이냐, 아니면 최대한 여유를 부리다가 진짜 이악물고 싸워서 이길것이냐로 갈리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독자적으로 조사해본 결과, 아직 용사를 지명하는 예언은 나오지도 않았으며 히로인 중 한 명으로서 성에서 마왕을 잡기 위해 가출한 뒤 용사와 만나는 엘프 공주도 자기 숲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아이라가 통수치는 것이나 NTR 충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나 제법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는 건데, 이럴거면 내가 마왕을 직접 잡아도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친것이다.
왜냐면 용사가 아무 이벤트 없이 단독으로 흑막의 저택에 들어가면 레벨이 20 정도가 되는 데, 흑막은 그냥 야심을 가진 영주에 불과하기 때문에 칼질 한방에 사지가 분해된다.
20레벨인데도. 최종보스를 원킬 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근데 루시우스는 현재 36레벨이고, 심지어 직업도 마왕 퇴치 전문인 사제고, 나는 게임을 해봤기 때문에 흑막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다. 심지어 이 흑막의 영지는 정상적으로 플레이하면 간부들 때문에 막혀서 그렇지 루시우스의 영지와 존나 가까웠다.
말타고 달리면 왕복으로 일주일 정도? 가기 쉽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가기 어려운 수준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용사를 지명하는 예언이 안나왔으니, 마왕 부활의 준비는 커녕 그럴 낌새도 없다는 뜻이고 내가 다짜고짜 흑막의 집에 쳐들어가서 일가족을 참살하면 그건 그냥 미치광이 살인마로 낙인찍힌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루시우스가 인망이 높다고 해도 이런 짓을 벌이면 이 인망은 '그럴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어요.'라고 주민들이 인터뷰할 때 써먹힐 뿐 내 행동에 변호가 되진 않는다. 영주라도 남의 영지민을 함부로 죽이면 당장 영지전이나 재판이 걸리는 사안이었다. 재판이 걸리면 여러모로 골치아파졌다.
정리하자면 이랬다. 내가 시간 내로 해결해야할 일들은 아이라 조리돌림, NTR충 차단, 마왕 퇴치인데. 마왕 퇴치를 하려면 멀리 나가야 한다. 그리고 마왕 퇴치를 시작하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일단 내부의 불안 요소인 아이라를 증거를 잡아서 족친다.
왜 그냥 안자르냐고? 이런 애들을 자르면 다음에는 변장한 도둑으로 달려든다. 그럼 괜히 신경쓰이니까 확실하게 증거를 잡아서 저택 내에서 붙잡은 다음. 실컷 괴롭혀줄 생각이었다.
가슴도 크고 얼굴도 예쁘잖아. 야겜에 들어왔으면 그런 애랑 뭘해야겠어?
그래서 나는 아이라를 조질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저 쪽에서 낌새를 내비치지 않는다면 내가 억지로 이끌어내는 수 밖에 없었다. 아이라가 진짜로 사기를 칠 때까지 넋놓고 기다릴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계획에 앞서 나는 아이라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분홍머리에 주근깨가 인상적인 아이라는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해서 내 안부를 묻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준다. 그 뒤 다른 메이드들과 함께 건물 내 이곳저곳을 청소한 뒤 영지 내 기사단 인원들이 훈련 후 나온 부산물들을 청소한다.
참고로 기사단들은 루시우스의 아버지인 시리우스 때 부터 충성을 바치던 애들이라 믿을만한 애들이다. 게임에서도 '루시우스 영주'에 대한 걱정이나 충성심을 표현하는 말 말고는 일체 다른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훈련 부산물 청소까지 끝나면 점심시간. 아이라는 다른 메이드들과 함께 점심을 먹은 뒤 곧바로 영주의 업무를 보조한다. 영지 크기 자체가 작다보니 사업을 벌리는 것도 없고, 큰 돈 들어갈 일도 없어서 내 일은 널널했다.
오히려 내가 일할 때 옆에 서있는 아이라가 더 힘들어보였다. 아이라는 영주의 업무 시간 동안 옆에 서있었으며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가져다 줬다.
"물 좀 떠와 주겠어요?"
"네."
대충 내 업무 시간까지 아이라의 업무를 감시한 감상을 말하자면, 아이라 정말 빡세게 일했다. 업무 시간이 끝나면 저녁 식사 후 저녁 청소 시간 동안 다시 한 번 저택을 청소하고, 밤 중에는 하인과 메이드들이 순번을 정해서 저택을 한 번씩 순찰했다.
그리고 다시 6시에 기상해서 일과 반복. 일과가 아침 6시 부터 시작되는데 불침번도 있는 미친 직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주의 저택이니만큼 월급은 제법 잘 주는 편이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상당히 힘든 근무 조건이 너무 빡빡했다. 혹시 아이라는 원래부터 사기꾼이었던게 아니라 가혹한 노동 조건에 못이겨서 탈출할 결심을 한게 아닐까?
"아이라. 일은 힘들지 않나요?"
"네?"
그래서 내가 아이라를 떠보듯 물어보면,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눈가에 피로가 가득했지만 내색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그 놀란 연기며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다급하게 고개를 젓는 폼이 정말 연기일까 싶을 정도로 기가 막혔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저을 때 마다 흔들리는 가슴도 기가 막혔다. 빨간머리 앤처럼 묶어내린 분홍색 머리도 같이 흔들렸는 데, 저 머리스타일 때문인지 순수한 시골처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영주님. 영주님에게 더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제가 부족해서......"
물론 아이라의 신들린 연기는, 저 지나친 아부 한 방에 가면이 벗겨졌다. 이 가혹한 근무 조건에서 저런 말을 뱉는 인간은 머리에 총을 맞은 놈이거나 무엇인가 목적이 있는 놈이 틀림없다. '괜찮습니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로 끝냈어야지. 지나친 아부는 의심을 사기 마련이었다.
그 날 저녁. 나는 본격적으로 아이라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뒤를 캐는 일은 내가 총애하고 게임에서도 루시우스에게 충성을 다 바치는 기사단장 로빈에게 맡기기로 했다. 기사단장한테 너무 귀찮은 일을 맡기는 거 아니냐고? 이 조그만한 영지에 기사가 다해봐야 10명 뿐이라 기사단장은 영지에서 정말 한가한 직책이었다.
덕분에 기사단장 로빈이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메이드나 시종들은 아 로빈이 또 '로빈'하는 구나. 하는 반응일 뿐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사단장으로서 이런 이미지가 맞나 싶었지만 나름대로 일을 할 때는 열심히 하는 인간이었기에 터치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로빈에게 아이라 감시 업무를 맡긴지 일주일. 로빈의 보고서가 한 장 책상 위로 날아들어왔다. 로빈은 매우 눈치 빠르게도 옆에 아이라가 있다는 걸 의식하여 '기사단 정기 순찰 보고서'라고 말하며 종이를 건넸고 나 역시 매우 태연하게 아이라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물 좀 떠와줄래요?"
아이라의 업무 중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 바로 이 물 떠오기라 할 수 있었다. 이 세계관에 정수기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1층 부엌에서 물을 떠와야 했는데, 내 집무실은 3층에 있었다.
아이라가 사라진 뒤 나는 로빈에게 말했다.
"보고하세요."
"네. 메이드 아이라는 현재, 주변에 자신이 회계 업무에 능통하다는 사실을 꾸준히 알리고 있으며, 메이드장에게 자신의 능력이 영주님께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기적으로 꺼내고 있다고 합니다."
예상 가능한 범위 내의 일이었다. 지금 당장 회계 장부를 맡는 건 어렵겠지만, 저렇게 꾸준히 어필하면서 성실함을 보여주다보면 그 깐깐한 메이드장도 내게 아이라에게 회계 업무를 시키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물어오겠지.
그렇게 회계 업무를 맡게되면, 조금씩 큰 돈 만질일이 생기고 그렇게 하나하나 장악하다 보면 어느 순간 거금을 들고 도망치기 쉬웠다. 나는 그렇게 오래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경비병 카를과 만남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그래요?"
이거, 잘하면 재밌는 계획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아이라가 처녀든 아니든 신경쓰지 않았다. 근본이 사기꾼인 년인데 어디서든 헤프게 썼겠지.
"로빈. 계획이 하나 있어요."
"말씀하시죠. 영주님."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아이라는 요즘 페타 루시우스가 참 이상하다고 느꼈다. 원래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꼈지만 요즘들어서 더욱 그랬다. 원래 페타 루시우스가 비정상적이라서 이상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페타 루시우스는 다소 정상적으로 변하고 있기에 이상했다.
그녀가 알고있던 페타 루시우스는 하늘에서 성인(聖人)이란 존재를 그대로 똑 떼서 만들어놓은 듯한 인간이었다. 물욕에 일체 관심이 없었으며,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기도와 미사, 그리고 영지 업무 뿐이었다.
이건 최근 두달 동안 루시우스와 함께 일했던 아이라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는 사람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결한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뜯어먹기 좋았지만.
하지만 최근 루시우스의 행동은 조금 이상했다. 흐트러진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그가 옷을 조금 비뚤게 입거나,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업무를 보는 모습이 계속해서 목격되고 있었다.
여기에다가 생전 한 번도 묻지 않던 안부까지 자신에게 물어보니 아이라는 이 영주가 드디어 미친건가 싶을 지경이었다. 아니면 드디어 제정신으로 돌아왔거나.
"일이 힘들진 않나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영주님. 영주님에게 더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제가 부족해서......"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20살 평생을 사기만 쳐왔던 아이라의 직감이, 지금 루시우스는 아주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쫑긋한 귀도 붉고 투명한 눈동자도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도 전부 그대로였지만, 지금 루시우스는 어딘가 이상했다. 자신을 훑어보는 눈동자도 이상했고, 일하는 중간중간 멍하니 공상에 빠지는 모습도 수상했다.
"뭐 이상할게 있겠어? 너한테 반한거 아니야?"
경비병 카를은 이런 이야기를 전한 아이라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봐온 루시우스는 그 누구보다 호구였으며 앞으로도 호구일거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빚쟁이인 자신을 거둬주었던 영주에 대한 고마움은 조금도 없는 뻔뻔한 모습이었다.
"아니야. 진짜 느낌이 이상하단 말이야. 그 새끼 눈치깐거 아니야?"
"에이. 절대 모른다니까? 애초에 네가 루시우스한테 회계 업무 맡겨달라는 이야기 꺼낸 적 있어?"
"메이드장한테만. 회계업무 맡겨달라고는 안했고 자신있다고만 했어."
"봐봐. 네가 수상하다고 생각했으면 그냥 다른 업무 맡기면 그만인데 왜 붙잡고 있겠어?"
"그런가?"
아이라는 카를의 낙관론을 긍정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병사 카를. 도박빚 2골드 때문에 영주를 팔아먹자고 제안한 부패한 병사. 카를은 아이라에게 자신과 함께 멀리 도망치자며 구혼했지만 아이라는 영주의 돈만 빼먹고 혼자 도망칠 계획이었다. 도박에 빠진 인간은 사기꾼보다 더 신뢰할 수 없다. 특히 월급이 10실버인데 도박빚이 2골드인 인간은 더 신뢰할 수 없었다.
"우리, 신혼집은 어디에 차릴까? 통크게 수도로 갈까?"
"그것도 괜찮겠다."
아이라는 카를의 품에 폭 안기며 다시 한 번 이 경비병의 멍청함을 비웃었다. 전대 용사 일행 가문의 영지를 털고 수도에서 살자는 정신나간 소리라니. 이런 판단력이니까 아직까지 경비병이나 하고 있는거겠지. 아이라는 돈을 들고 최대한 멀리 도망갈 생각이었다.
카를의 역할은 영지 메이드로 일할 추천장을 써준 시점에서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아이라가 아직까지 그를 내치지 않는 건, 그가 밀고하면 둘 다 끝장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라는 그 뒤 매일같이 메이드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는 데다가 밤 중에 30분 씩 순찰까지 도니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영주의 재산을 꿀꺽할 생각을 하고나면 금방 기운이 났다. 페타 루시우스는 돈이 많은 편이었으니 조금만 자신과 나눠도 화내지 않을게 분명했다. 자신이 금고를 털어가고 나서도 허허 웃고마는 루시우스를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메이드 일은 힘들었다. 하지만 건수도 아이라가 지금까지 해왔던 건 중에 가장 큰 건이었다. 이번 한번만 성공하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부자로 살면서 하고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라에게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어느 날, 창고 앞에서 고민하고 있던 로빈이 아이라를 콕 집어서 부른 것이다. 로빈은 아무런 경계심없이 창고의 문을 열고, 창고 내부에 있던 가구를 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이걸 좀 같이 옮겨주면 좋겠군."
"네. 알겠습니다."
아이라는 왜 남자 시종이 아니라 자신에게 시키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창고로 들어가서 가구를 밀었다. 밀면서 주변을 살핀 결과 창고 내에는 값비싸 보이는 골동품이 제법 많이 있었다.
중앙에는 보석이 달려있는 커다란 항아리가 있었고 항아리를 중심으로 각종 장신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이라가 생각했을 때, 항아리에 저 장신구들을 모조리 쓸어담아서 들고가면 깔끔하게 털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부 쓸어담은 뒤, 장물 가게에 팔고 오겠다고 카를을 따돌린다. 그 다음 혼자서 물건을 처분하고 도망가면 거기서 끝. 아이라는 벌써부터 큰 돈 만질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로빈 앞에서 헤픈 웃음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책상을 들어올렸다.
크기에 비해 매우 가벼운 책상은 아이라도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창고에서 책상을 빼낸 뒤에 로빈은 아이라에게 변명하듯 설명했다.
"수고했네. 기사단장 집무실에 책상을 바꿔야하는 데, 창고 턱에 걸려서 망가지면 안됐거든."
"네. 그렇군요."
로빈은 다시 자물쇠를 채웠다. 아직 자물쇠 위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비밀번호를 아이라는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되면 굳이 회계 업무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회계 업무로 돈 빼돌릴 기회를 노리는 것보단 이 창고를 한 번에 터는 게 더 벌이가 좋을 게 분명했다. 마침 내일 새벽에 자신의 야간 순찰 시간이 있었고, 카를이 그 날 쉬는 날이었다.
아이라는 사실 이 지긋지긋한 메이드 업무에 지쳐가고 있는 참이었다. 카를도 도박빚에 초조한 기색을 매일같이 드러내고 있으니 이 일을 하자고하면 두말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아이라의 생각과 다르게, 카를에게 창고를 털자고 말하자 그는 매우 꺼림칙한 기색을 보였다. 지금까지 아이라가 본 카를의 모습 중 가장 소심하고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왜 그래?"
"거기있는 거. 영주 아버님의 유품일걸."
"그런데?"
"루시우스 영주가 그 부분에 엄청 민감한 걸 모르나본데, 맨날 영지에 돈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것들은 안건드리는 거 보면 모르겠어? 영주한텐 영지보다 그 물건들이 중요한거야."
"아껴두면 무슨 소용이야? 우리가 잘 쓰면 영주네 아버지도 하늘에서 좋아하지 않겠어?"
"야, 야. 잘생각해야돼. 이거 잘못 빼돌리면 우리 다 죽는다니까?"
"들어봐 카를. 이번만한 기회가 없어. 내일 새벽 세시에 내가 3층 야간 순찰을 맡았고, 너는 그 날 쉬잖아.내가 창고를 열어서 너한테 물건을 빼돌린 다음에, 다음 근무자한테 이상없다고 인계하고나면 아무도 모른다니까?"
"그래도....."
"내가 일하면서 그 창고 열리는 걸 오늘 처음 봤어. 영주가 그 창고를 열어보는 것도 못봤다고. 창고 안에는 먼지가 가득했고, 그 불쌍한 패물들은 먼지에 파묻혀있었어. 이 정도면 영주도 창고에 대해 모른다고 봐도 되는 게 아닐까? 응?"
"좋아. 알았어."
카를은 결국 아이라의 설득에 넘어갔다. 아이라는 자신의 계획이 완벽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운 좋게도 카를의 근무가 조정되어 자신의 새벽 순찰과 겹칠 줄이야. 이런 행운이 자신과 함께하리라고 누가 믿었을까? 마치 누군가 자신의 행동을 전부 지켜보며 도둑질을 종용하는 것 같았다.
약속 시간. 영주가 잠자고 있는 걸 확인한 아이라는 문을 열어 카를을 맞이했다. 1층과 2층을 순찰하는 건 다른 메이드의 몫이었지만, 새벽에 애인을 숙소에 들이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었기에 순찰 메이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라에게 조용히 움직이라는 듯 입술에 검지를 대고 쉿 소리를 냈다.
아이라는 웃으면서 카를 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순찰 메이드도 적당히 복도를 한바퀴 돌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순찰같은 거 돌지 않아도 이 조막만한 영주 저택을 털 사람이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라는 카를의 손을 잡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창고에는 아무런 보안 장치도 없었다. 조금 큰 영지에는 창고마다 마법 보안 장치를 깔아두었다고 햇는 데, 아이라는 이 영지에서 마법사는 커녕 마법의 흔적조차도 발견한 적 없었다.
아이라는 발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창고에는 새것같이 깔끔한 자물쇠가 달려있었다. 아이라는 달빛에 의지해서 비밀번호를 맞췄고, 자물쇠가 철컥. 하는 큰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열렸다.
심장이 멈출것 같이 놀란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다가 다시 영주의 방을 바라보았다. 영주는 깊이 잠든 모양인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쉰 아이라가 천천히 자물쇠를 빼냈다.
그리고 창고 문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창고의 문틈으로 호화롭게 생긴 그 항아리가 보였다. 그리고 항아리 주변에 놓여있는 아름다운 패물들도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던 아이라와 카를의 눈이 욕심으로 번들거리고, 카를이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창고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깡!
육중한 메이스가 카를의 눈 앞에 날아왔다. 당황한 카를이 반응하기도 전에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카를이 건너편 벽으로 처박혔다. 4번 타자의 타자 폼으로 카를을 날려버린 영주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창고 안에서 나타났다.
아이라는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카를에게 달려가서 그의 상태를 살폇다. 혀를 쭉 내밀고 부들부들 경련하는 폼이 이미 틀린것 같았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아이라가 입을 열었다.
"이, 이 사람이 저를 협박해서....."
"지랄하지마세요. 아이라."
루시우스는 메이스를 휘두르려다 아차, 하고 발길질로 아이라의 머리를 후렸다. 퍽. 하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아이라가 바닥에 쓰러져서 기절했다. 루시우스는 그 다음에야 창고 구석에 자빠져서 자고있던 로빈을 깨웠다.
"로빈. 일어나요."
"아, 아? 영주님! 도둑은? 도둑은 어떻게 됐습니까?"
"저기."
루시우스가 바닥에 널부러져서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키는 카를과 머리를 부여잡은 채 쓰러진 아이라를 가리켰다. 카를은 흰자위를 까뒤집고 게거품을 물며 히죽대고 있었다. 아이라는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 탐스러운 엉덩이를 추켜올리고 있었다.
"영주님. 이 새끼 웃는데요?"
"내버려두세요. 좋은 꿈이라도 꾸나보죠."
루시우스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계획대로다.
이름 : 카를
직업 : 경비병
레벨 : 12
스텟
* 현재 부정적 특성으로 인해
스텟이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특성
백치
최근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특성이 사라지기 전까진
스텟 및 특성 효과를 전부 상실합니다.
특성 해제까지 남은 기한 : * 이 특성은 해제되지 않습니다.
바닥에 널부러진 카를의 상태를 살피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주며 기도를 한 번 올려주니, 그래도 마음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혹시 죽으면 어떻게하나 싶었는데 어중간하게 때려서 죽는 것만도 못한 꼴로 만들고 말았다.
"로빈."
"네. 영주님."
"아이라는 제가 신문할테니 카를을 아래에 가둬두세요."
"네 알겠습니다."
로빈이 바닥에 널부러진 카를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가기 시작했다. 카를은 끌려가면서도 뭐가 그리 행복한지 헤헤 웃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로빈은 카를의 상태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기에 턱에 걸릴 때 마다 카를의 머리가 바닥을 강타했다.
쿵! 쿵!
* 카를의 특성 '백치'가 강화됩니다
* 카를의 특성 '백치'가 강화됩니다.
저 기세로 3층까지 내려가면 대체 어떻게되는 걸까. 나는 카를의 처우에 대해 잊어버리기로 결심했다. 도박빚에 미쳐서 영주를 배신하려드는 놈은 어떻게되는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나는 아이라를 들쳐매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어차피 아침 문안은 아이라가 전담했다. 그 아이라가 지금 여기 자빠져있으니 내 즐거운 아침 시간을 방해할 인간은 없다는 뜻이었다.
이 방구석 폐인 광신자 영주 새끼는 방에 창문도 존나 작게 만들어놔서 문만 잠그면 아이라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원래 감금을 염두에 두고 만든 방인가?
나는 기절한 아이라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볼에 난 약한 주근깨가 도드라지는 귀여운 외모였다. 생각보다 속눈썹이 길었고 축처진 눈가가 순진한 인상을 만들고 있었다. 거기다 가슴이 제법 커서, 펑퍼짐한 메이드복을 입었음에도 두툼하게 강조되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아이라의 뺨을 때려서 깨우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서 상태창을 불러보니, 다행히 아이라는 백치 특성을 먹진 않은 것 같았고, 이름 옆에 상태이상 : 기절만 떠 있었다.
기절 지속시간이 1분 정도 남아있었으므로, 차라리 침대에 눕히고 기다리기로 했다. 침대에 눕힌 뒤 의자에 앉아서 아이라를 지켜보고 있으면, 임종을 맞이한 여친을 바라보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으왁!"
나를 놀래킬 생각이었던걸까? 아이라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한 번 살피더니 몸을 움츠리며 덜덜 떨기 시작했다.
"일어났어요?"
"누, 누구... 아, 여, 영주님! 그.... 여, 여기는...."
"제 방이에요. 많이 와 봤잖아요."
"아, 네.... 그, 그렇긴 한데....."
아이라는 덜덜 떨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침대에 눕혀져 있는 자신. 폐쇄적인 방. 사람 하나는 우습게 죽일 수 있는 영주와 단 둘이 있는 상황. 아이라가 심리적으로 몰리기 완벽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아이라는 잡다한 사기꾼이지 대도가 아니다. 이런 상황 조성만으로도 충분히 겁을 먹는다.
"아이라. 뭘 잘못했는 지 알아요?"
"아, 그.... 저, 정말 카를이.... 카를이 저를 협박해서....."
새빨간 거짓말이다. 아이라가 무고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애초에 아이라가 창고라고 믿고있는 저 방은 그냥 항아리 하나만 있는 빈 방이었다. 최근에 나와 로빈이 짜고 패물을 채워넣은 것 뿐이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이다.
그런 방은 카를이 어떻게 존재하는 지 알았을까? 아이라가 말해줬겠지. 사기꾼이 직업이고, 카를이랑 주기적으로 연락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는 왜 카를한테 이야기를 했을까? 당연히 이 창고를 털려고 그랬겠지.
"제가 왜 그 말을 믿어야하죠? 저는 당신을 믿었는데, 상처 받았어요."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해요.....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저, 저는 정말 무고하고....."
"살려드릴게요."
계속해서 쓸데없는 변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개소리가 듣기 싫어서 말을 잘랐다. 물론 일단은 살려줄 생각이었다. 아이라는 내가 살려준다고 말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당연히 죽일거라 생각했다.
"저, 정말요?"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앙증맞은 손을 떨고있는 모양새가 정말 순진무구하고 귀엽게 보였다. 나는 아이라의 땋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가슴을 훑어봣다. 언제봐도 매력적인 가슴이었다.
아이라는 내 시선을 따라 자신의 가슴을 보더니,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무, 무슨...."
나는 아이라를 따라서 침대 위로 올라왔다. 아이라가 말했다.
"소 소리 지르겠어요."
"지르세요. 영주의 저택에 물건을 털려다가 잡혀서. 교육받는 중이라고. 소리 지르시라구요."
이 세상에 범죄자에 대한 인권은 없다. 내가 카를의 얼굴 가죽을 벗겨서 아이라한테 씌우고 놀아도 도의적 비판은 있을지언정 법적으로 나한테 뭐라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말이다.
애초에 이 영지 범죄를 내가 재판하는 데 누가 부당하다고 하겠는가.
"당신 서, 성직자잖아요!"
그걸 알고있으니 아이라도 내가 사제장이란걸 들먹이며 자신의 몸을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되물었다.
"그래서요?"
"서, 성직자가 이래도 되나요? 이건 강간이라고요!"
"강간이라고요? 아닐텐데."
"뭐, 뭐가 아니에요? 이, 이건....."
내 손이 아이라의 다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치마를 살짝 걷으면, 적당히 살집있는 허벅지가 드러났다. 내 손이 허벅지에 닿자 아이라는 다리를 오므리며 내 손을 밀어내려고 했다.
나는 허벅지를 쓰다듬던 손을 치마 속으로 더욱 깊숙하게 집어넣었다. 아이라의 허벅지 뒷쪽을 쓰다듬으며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탱탱한 엉덩이에 짝 달라붙은 팬티의 접힌 선이 느껴졌다.
부드러운 천의 촉감을 느끼며 나는 말했다.
"이건 처벌이에요. 알겠어요? 영주의 이름을 빌어 내리는 처벌이라고요."
"아...아으....."
아이라가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손을 휘둘렀지만, 이내 붙잡혔다. 아이라를 침대에 넘어뜨린 나는 메이드복 상의를 천천히 벗겨내려가기 시작했다. 단추가 많아서 벗기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제, 제발... 영주님....."
"도둑질할뗀 다르게 불렀을텐데. 이제와서 제게 존중을 표하는 거에요?"
자꾸 아이라가 징징대는 것도, 옷이 잘 벗겨지지 않는 것도 짜증이 났다. 나는 한손으로 옷자락을 붙잡고 강하게 쥐어뜯었다.
"꺄아악!"
아이라가 비명을 지르며 가슴을 가렸다. 단단하게 압박한 브래지어에 숨겨져있던 가슴이 왈칵, 튀어나왔다. 나는 가슴을 가리려드는 아이라의 양 손목을 잡고 넓게 벌렸다. 분홍색 젖꼭지와 탐스러운 가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으...흐흑...."
자꾸만 울먹이는 아이라에게 나는 속삭였다.
"계속 질질짜면 죽여버린다."
컨셉질도 상대가 맞춰줘야 하는거다. 루시우스 흉내가 안먹히면 원래 성격대로 나가는 수 밖에 없다. 협박이 제대로 들어먹혔는 지, 아이라는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입술을 악물었다. 나는 그제서야 평화롭게 체벌에 몰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요.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여기 봐봐요. 여기 보라니까?"
나는 아이라의 얼굴을 억지로 틀어서 나를 보게했다. 아이라의 얼굴은 이미 눈물 범벅이었지만, 그게 귀여운 인상을 가리지는 못했다."웃어요. 영주님이 안죽이고 체벌로 끝내준다는 데, 왜 안웃어?"
아이라는 그 말에 씩 웃었다. 억지로 올라간 입꼬리가, 누가봐도 강요된 웃음이었다. 나는 천천히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반죽을 주무르듯 치대면서, 혀를 살짝 내밀어 가볍게 유륜 주위를 살살 핥아내려갔다.
"흐흡...."
아이라가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참으려고 애썼다. 신음을 참으라고 한 적은 없었지만, 이 쪽이 내 기준에서 더 꼴리니까 내버려두기로 했다.
유륜 주위를 살살핱아내려가던 나는 입술을 쭉 내밀어 유두를 가볍게 빨았다.
"흥!"
그럴 때 마다 아이라는 몸을 비틀며 놀랐다. 살짝 살짝 가볍게 유두를 괴롭히던 나는 허리를 숙여 시야를 더 아래쪽으로 내렸다. 길다란 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다 찢어버린 거 나는 치마도 그냥 찢어버렸다.
하얀색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손으로는 계속 유두 주위를 문지르며 다른 한 손가락으로 팬티 위를 가볍게 쓸었다.
"음...음....."
아이라는 여전히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이라는 마치 재밌는 장난감과 같았다. 팬티 위로 손을 꾹 누르거나 콕콕 찌를 때 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팬티 위로 둔덕을 이리저리 매만지던 나는 점점 속옷에 물기가 어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라의 균열모양이 그대로 팬티 위에 드러나는 것을 보고서 나는 씩 웃었다.
그리고 가슴을 매만지던 손을 아래로 내려 단숨에 팬티를 끌어내렸다.
"....아앗!"
아이라가 반사적으로 손을 내려서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고 했다. 나는 그 손을 다시 들어올리고, 허벅지를 사용해서 꾹 오므린 다리까지 벌리게 했다.
그리고 아이라의 몸매 품평에 들어갔다. 발목까지 오는 양말만 남은 그녀는, 제법 훌륭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가슴은 손바닥 안에서 차고 넘칠만큼 컸고, 허벅지와 골반은 남자를 유혹하기 딱 좋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성기는 분홍빛 음모로 제 모양을 슬쩍 감추고 있었다. 나는 허벅지를 밀어올려서, 아이라의 보지가 제 모양을 그대로 보일 수 있게 활짝 벌렸다.
아이라는 얼굴을 가린 채 시야를 돌리고 있었다.
균열이 뻐끔거리며 조금씩 진득한 액체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균열 주위를 손으로 휘젓다가, 조심스럽게 손가락하나를 집어넣었다.
"흐윽.....읍...!"
아이라가 그 행동에 놀라서 몸을 비틀었다. 그 바람에 손가락이 꾹 조여왔다. 아이라의 행동이 아니었더라도 그녀의 질 안은 답답했다. 천천히 손가락을 앞뒤로 움직이니 그 움직임에 따라서 아이라의 몸이 들썩였다.
"흐음...읍...으읍....읍...."
그러면서도 억지로 신음성을 내는 모습이 너무나 꼴려서, 나는 아이라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울고있지 않다는 걸 어필하려는 듯 억지로나마 씩 웃어보였다.
나는 그 웃음에 화답하기 위해 씩 웃어주고, 손가락으로 질 내부를 이리저리 훑기 시작했다. 본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풀어두어야 했다. 손가락이 질벽 내부를 휘저을 때 마다 아이라는 억지로 신음을 참으며 몸을 꿈틀거렸다.
아이라가 다리를 오므릴 때마다, 계곡을 타고 맑은 애액이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질퍽한 소리가 방 안을 휘감고, 내 침대보를 적실 때 쯤, 아이라는 입을 틀어막은 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미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녀는 언제든지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다리를 오므리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라의 몸 위로 올라타며 바지를 벗어내렸다. 아이라의 눈에 내 커다란 성기가 들어오고, 그녀는 그 모습에 놀란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이 몸으로 전생해서 가장 좋은 게 이 성기였다. 루시우스의 덩치에 비해 진짜 대물이었다. ntr 충과 섹스 대결을 했어도 이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컸다.
나는 아이라의 균열에 내 물건을 맞추고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이라는 그 압박감에 안타까운 신음성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아으...읏....."
그리고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 지 자각하곤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아이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최대한 참아. 알았어?"
아이라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나는 단숨에 균열을 꿰뚫었다.
"아.....읍!"
아이라가 입을 틀어막고 몸을 비틀었다. 갑작스럽게 들어온 크기에 놀라 몸을 크게 비틀어댔다. 빠져나가려는 아이라의 어깨를 꽉 누르고, 나는 천천히 내 성기를 질구에서 빼내기 시작했다.
"으...으읍.....읍...."
아이라가 자신의 몸안에서 내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자 미묘한 신음성을 흘리며 숨을 내뱉었다. 몸 안에 들이닥친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나는 다시 한 번 아이라의 질을 꿰뚫었다.
"으읍!...윽...!"
아이라가 그 반동으로 허리를 들어올리며,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아이라의 몸을 꼭 붙잡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라의 질벽은 마치 살아있는 슬라임같이 요동쳤다. 내가 허리를 크게 흔들면, 그에 맞춰서 크게 요동쳤고, 천천히 흔들면 그게 맞춰서 허리가 흔들렸다.
"음...읍...으읍...읍...! 윽...."
아이라는 내 등을 꼭 끌어안은 채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허리를 천천히 흔들던 나는 그 모습에 조금 오기가 생겼다. 아이라의 허리를 들어올려서 내가 내리찍기 좋은 구도를 만든 다음 다시 한 번 크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팡! 팡!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읍...으읍.... 읍...으...흥...흐응....!"
음란한 소리에 대한 수치심과 몸을 꿰뚫는 쾌감에 드디어 아이라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흑...흑...그,.....그만.....흐윽...앙....!"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쾌감으로 온몸이 달아오르고, 더욱 박차를 가해 아이라의 몸을 내려찍고 있었다.
"아앙! 앙! 으응! 하앙! 그, 그만해....아앙! 주...주...세...아악!....하앙!"
사방으로 물이 튀어올랐다. 나는 아이라의 가슴을 꾹 눌러 주무르며 입으론 아이라의 입술을 탐했다.
"으읍...읍...! 으읍...! 흡!"
아이라가 저도모르게 입을 벌려 내 혀를 받아들였고, 두 사람의 혀가 뒤엉키며, 타액이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입술을 핥으며 아이라를 쳐다보았다. 쾌감에 푹 젖은 얼굴로, 신음성 밖에 외치지 못하는 아이.
"아앙! 아앙! 하아앙! 그, 그만...! 흐응! 아...이, 이상해...으읏..!"
나는 몰려오는 사정감을 토해내기 위해 더더욱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아아아....! 으읏...! 그...가....가앗...!"
쾌감에 잠식된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으읏!"
"아아아아앗!"
꿀럭꿀럭 토해낸 정액이 아이라의 질 내부를 휘젓고 자궁에 스며들었다. 아이라가 나를 끌어안은 채 벌벌 떨며 비명을 내질렀다. 한참동안 정액을 토해낸 나는, 축 늘어진 좆을 빼내며 아이라를 쳐다봤다.
"하아....하아....이, 이제.... 끝인...가요...?"
아이라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책상 옆에있던 수건으로 내 몸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시작이죠. 체벌이 한 번으로 끝나겠어요?"
"하...하하...."
아이라가 실없이 웃으며 기절했다. 일단 다음 체벌까지 지하에 가둬놔야지.
루시우스의 직위는 남부 사제장이다.
이단심문관이나 팔라딘, 전투 사제 같은게 아니라 사제장이라는 뜻이었다.
사제장은 무엇인가? [히로인 전설]에선 루시우스가 메이스들고 몬스터 골통만 부수기 때문에 사제장의 역할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지방 사제장은 교인 한정으로 해당 지방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다.
사제와 수녀의 인사권 및 지역 이동권을 쥐고 있고, 이들이 제기하는 민원 및 분쟁 조정 권한 역시 가지고 있다. 막말로 뒷일 생각 안한다면 남부 지방에 있는 모든 수녀를 다 따먹을수도 있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꺼내냐고?
그 더러운 NTR충을 차단하는 게 이 권력을 쓰면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라에게 적당한 '체벌'을 가한 다음날, 남부 사제장의 권력을 이용하여 시에리를 내 영지로 호출했다.
이름: 시에리
직업: 대천신교 남부 지부 소속 수녀
호감도: 78
레벨: 10
스텟
힘: 5
민첩: 10
지능: 24
행운: 10
특성
숙련 회계사
오랜세월 한 단체의 재정을 관리해온 인재입니다.
영지의 재정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정리합니다.
목공
목재를 활용하여 도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순진함
종교에 투신한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차근차근 잘 가르쳐주세요.
시에리의 스텟은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다. 혼자서 지부의 재정과 가정의 가계부를 전부 관리하고 있었으니 회계사 특성을 들고있는 건 예상하는 바 였다. 그런데 뜬금없는 목공이라는 공돌이 특성도 들고있고, 개꼴이라고 할 수있는 순진하다는 설정도 붙어있었다.
게다가 나에 대한 호감도도 70이 넘어간다. 이 게임의 호감도 최대가 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린시절 소꿉친구라는 설정이 붙어있는 애한테 78이면 보통 100이 최대겠지.
"아, 안녕하세요. 영주님....."
시에리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올리면서 하얀 발목이 드러났다. 그녀가 단정하게 길러내린 주황색 머리카락이 머리를 숙이니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려왔다. 찰랑거리는 머릿결에 얼굴을 파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나는 영주 답게 자리에 앉아서 시에리의 얼굴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게임 속 NTR 전개 이후 처음 본 시에리는 정말 아름다운 아이였다. 녹색 눈빛의 큰 눈망울은 보호본능을 자극했고, 오밀조밀 모여있는 눈코입은 '난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어필하고 있었다.
가슴이 좀 작은게 흠이긴 하지만, 가슴이 작다는 것도 아이라같은 젖소 가슴에 비해 작은 것이지, 평균적인 성인여성 정도의 크기는 되었다. 엉덩이는 아직 안벗겨봐서 몰랐다. 수녀들 치마는 제법 펑퍼짐하기 때문에 어린애가 입어도 엉덩이 화보 패션 모델처럼 보였다.
"반가워요. 시에리. 요즘은 지낼만 한가요?"
"아... 그.... 네...."
시에리가 망설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낼만 할 리 없을텐데 시에리는 거짓말을 했다. 쟤네 영지 영주는 계속해서 치근덕댈테고, 가족들은 빚더미에 올라있는데 수녀 월급으로 갚기엔 무리가 따랐고, 교회에 기부금도 많이 안모여서 교회 자체도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부 대천신교의 총본산이 바로 옆에 있으니 시에리의 영지 대천신교 교회로 기부금이 들어오지 않았다.
돈 많은 사람들은 사제장인 나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 내가 있는 남부 대천신교 지부로 직통으로 기부금을 보냈고, 돈 없는 사람들은 기부를 해도 돈이 별로 안됐다.
그리고 나는 이 기부금 문제와 시에리의 빚을 전부 해결해줄 수 있었다. 그 첫째로 나는 시에리를 내 저택으로 인사이동 시킬 계획이었다. 영지가 재정난에 시달리면서 직원들을 많이 감축한 관계로 저택에는 빈방이 많았다. 시에리 한 명 정도는 먹여주고 재워주기 쉬웠다.
시에리네 가족들이야 원래 농사짓고 살았으니 땅 조금 떼서 나눠주면 되니까. 어디까지나 서민 기준으로 많은 빚이지 영지 기준으론 별거 아닌 돈이었다.
"사실, 이번에 시에리 당신을 인사 이동 시킬 계획이거든요."
"인사...이동이요?"
"네. 가족분들이랑 같이 우리 영지로 이전하시면 돼요."
"우선 영주님께 허가를 받아야....."
"사제장 명령이니까 그런 건 필요없어요. 시에리. 가족들한테 제가 사람을 보낼테니까 오늘부터 일단 여기서 지내세요."
진짜로 필요없었다. 영주는 사제장의 인사이동에 간섭하지 못했으니까. 괜히 영주가 루시우스한테 결혼 허락을 받기 전에 직접적으로 안건드린게 아니다. 결혼도 안한 수녀를 그냥 건드리면 진짜 법적으로 죽었다.
"네? 아니, 갑자기 그러시면... 게다가 제가 아니면 교회에는 회계를 맡을 사람도 없어요."
지랄이다. 그 넓은 교회에 시에리 한 명만 회계를 할 줄 알리가 있나. 인사 이동 기록을 보면 시에리가 이 쪽으로 온 건 대략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전까진 다른 놈이 맡았다는 건데, 그 놈이 알아서 하겠지. 정 힘들어보인다 싶으면 중앙 본부에 요청해서 회계사 한명 불러다주면 되었다. 어떤 방향으로 바라봐도 회계사가 필요했으면 몰라도 저 영지에 시에리가 필요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시에리의 어깨를 살짝 붙잡았다. 시에리가 흠칫 몸을 떨며 움츠리는 게 느껴졌다.
"시에리. 저 쪽에서 영주가 자꾸 귀찮게 굴었죠?"
"네? 그, 그건...."
아무리 시에리가 순진무구한 아이라고 해도 사회적으로 알건 다 알고 있었다. 여기서 잘못 발언하면 해코지 당하는 게 아닌가 고민하고 있겠지. 소꿉친구였다고 해도 지금은 사제장과 수녀 관계고, 영주와 이웃 영지민 관계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구설수에 오르기 쉬운 관계니 시에리는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다.
"다 알고 있어요. 시에리. 구해주려고 그러는거니까. 걱정하지마요."
"구, 구해주신다고요?"
시에리의 어깨는 선이 얇아서 힘을 조금만 줘도 부러질 것 같았다. 이 어깨를 붙잡고 격렬하게 박으면 기분 쩔겠지. 치맛자락에 옷이 스치면 야릇한 소리가 났다. 나는 시에리의 어깨에서 조심스럽게 손을 때며 거리를 벌렸다.
수녀들이 쓰는 대천신교 향수 냄새가 풍겨서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시에리가 일을 도와줬으면 해요."
"일을 도와준다니, 저는 그렇게 유능한 사람이 아니에요."
시에리가 고개를 저으며 극구 사양했다. 그럴 때 마다 치마가 같이 흔들렸는데,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대천신교 수녀 페티쉬가 생길것 같았다. 발목까지 오는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사실 현재 제 영지에 회계 담당이 없거든요. 시에리 당신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제 영지 일은 교단 일과도 직결되는 터라 외부 회계사에게 맡길 수가 없더라고요."
"아.....네. 알겠습니다."
시에리는 내 설득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문제는 맞았다. 불만이 있으면 직접 사제장이 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시에리."
"네. 영주님."
"루시우스. 라고 불러줄래요? 어릴 때 처럼."
"네?"
시에리는 당황한 얼굴로 허둥대며 뒷걸음질쳤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도리질을 하며 말했다.
"아, 안됩니다! 그런 불경을 저지를수는....."
"알았어요. 나중에 그렇게 부르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말해요. 시에리.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네....."
시에리는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은 호감도 등락을 스테이터스 창에 표시를 안해주는 게 좀 문제였지만, 시에리의 상태를 보니 대충 어떻게 됐는 지 알것 같았다.
이름: 시에리
직업: 대천신교 남부 지부 소속 수녀
호감도: 82
이거, 금방 자빠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다음 날. 대문 앞이 시끌벅적 했다. 나는 우선 혹시나 아이라가 혀를 깨물지는 않았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1층 계단을 내려갔다. 문 앞에서 누군가 죽은 모양이었다. 마당에서 천으로 시체를 덮어놓은 채 가족들에게 인계하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로빈. 누가 죽었나요?"
"네. 창고 절도 미수범 카를이 죽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문초하기 위해 뺨을 몇대 때렸는 데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맥을 짚어봤더니 이미 사망한 상태라 아침에 가족들을 불러 인계시키고 있습니다."
이 새끼 사람 대가리를 계단으로 후려대더니 결국 죽인 모양이었다. 로빈 입장에선 오늘 새벽에 죽은 것이지만, 내가 볼 땐 로빈이 지하실로 끌고 내려가는 시점에 이미 사망한게 분명했다. 불쌍한 카를. 나는 마음 속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로 했다.
"가족들에게 사망 경위는 확실하게 설명했나요?"
"아직,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창고 절도 시도를 하였기에 이를 제압하던 도중 사망했다고 설명하세요."
계단에 계속 머리를 때려갈겨서 죽였다는 건 좀 그러니까.
"네. 알겠습니다."
나는 로빈에게 이후 상황을 지시하고 다시 몸을 돌렸다. 아이라를 지하실에 가둬놨을텐데, 얘가 혀를 깨물었는 지 목을 매달았는 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새벽에 지하감옥에 찾아갔던 로빈이 아무 말도 안하는 걸 보면 아직 살아있긴 한 것 같은데.
지하감옥의 문을 열면 쾌쾌한 이끼 냄새와 습기 가득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지하감옥 돌벽에는 이끼와 곰팡이가 가득 끼어있어서 만지기만해도 세상에 온갖 병에 다 걸릴 것 같았다.
그 지하감옥에서도 가장 구석진 방에 아이라가 갇혀있었다. 그져는 쇠사슬에 발목이 묶인 채 체념한 표정으로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반성하고 있나요 아이라?"
"......"
아이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바닥만 보고 있었다. 미친 척을 해서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걸까? 나는 아이라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아이라
직업 : 사기꾼
호감도: 0
레벨 : 6
스텟
힘 : 3
민첩: 7
지능: 7
행운 : 0
특성
회계사
오랜 세월 금전이 오가는 일에 종사한 결과
회계업무에 아주 능숙해졌습니다.
영지의 운영비용을 자동적으로 정리합니다.
연기
다른 직업을 연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연기중인 직업 : 광인
숙련된 도둑질
자신의 현재 레벨 이하의 잠긴 문을 전부 열 수 있습니다.
이 수치는 도구에 따라 추가 보정을 받습니다.
감금 상태
현재 구속, 감금된 상태입니다. 스텟에 패널티가 부과됩니다.
연기로 '광인'도 연기 가능하다니. 확실히 대단한 재능이었다. 얘 어떻게 꼬시면 스파이 같은 걸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뭐라고하든 미친척 연기를 계속할게 분명했으니, 우선은 내버려두기로 했다.
1층으로 나와보니, 대문 앞에 커다란 마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저 마차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 영지 내 땅에서 소작료를 내며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이었다.
생각해보니까 저 새끼들도 조져야되는데.
"루시우스 영주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소작농이 고개를 푹 숙이며 내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전에 저거 소작농 맞나? 이웃 영지 영주가 지금 나한테 인사박고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상대의 정체를 가늠할 수 없어서 눈을 찌푸려야만 했다.
뒤룩뒤룩 살찐 뱃살에 걷기도 힘들어서 당나귀를 타고 들어온 저 모습. 거기다가 소작농 주제에 노예를 3명이나 끌고 온 상태였다. 모습을 보아하니 원작 게임을 안했더라도 난 저 놈이 곡식을 빼돌리고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이 게임에서 소작농은 땅을 빌려서 대리로 수확하는 임대인 정도의 위치였다. 실제 소작농과 영주는 조금 더 복잡한 관계였다는 데, 이 게임에서는 그딴 건 고증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는 이런 기형적인 소작농과 영주의 관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네. 그 쪽도 그간 잘지내셨나요? 어....."
나는 저 새끼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 저 소작농의 상태창을 보고싶다고 생각했다.
이름 : 길데르 발파
직업 : 페타 가문 소속 소작농
레벨: 10
스텟
힘: 8
민첩: 2
지능: 15
행운: 20
특성
농부
농경지에서 곡물을 효율적으로 재배할 수 있습니다.
비만
민첩에 패널티를 받습니다.
부정축재
능숙하게 세금을 탈루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최대한 끌어모으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길데르 발파. 이번 농사는 잘 되었나요?"
소작농은 보란듯이 가져온 마차의 덮개를 벗겨냈다. 수레의 절반 정도 분량을 가마니가 채우고 있었다. 그는 눈물을 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올해도 또 흉년인터라..... 이것밖에 작물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얘 직업이 왜 소작농인걸까. 이 정도면 사기꾼 아닌가? 나는 대문을 나와서 수레를 훑어보았다. 가마니를 수레의 절반만 채웠지만, 그래도 자기 나름대로 정성을 들였다는 듯이 가마니 하나 하나는 꽉꽉 채운 상태였다.
보기만 해도 제법 많은 분량인데, 소작농이 빼돌려서 이 정도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 놈들만 제대로 족쳐도 영지의 회계는 아주 투명하고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또 흉년이라니 이상하네요. 제가 열심히 기도를 드리면서, 지력이 충만한 것을 확인했는데요."
"아, 그.... 그러게 말입니다... 제, 제 농사 짓는 실력이 미천하여 땅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인즉, 당신을 고용하고 있으면 제가 손해를 본다는 뜻인가요? 신은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아요. 발파. 인간이 노력하는 부분이 있어야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아, 아니 그런건 아닙니다. 영주님. 내년엔 더 확실하게 좋은 결과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소작농은 당황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 지금까지는 흉년입니다! 라고 하면 영주가 그렇군요! 더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곤 수확물만 받았으니까. 이런 놈이 윗대가리면 나같아도 한탕 해먹을 생각한다.
근데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이 새끼들은 당장 다 죽여버려도 할 말 없는 중죄인들임을 내가 알고있다. 그리고 나는 돈이 필요하다. 영주 업무를 해보면서 느낀건데 매년 들어가는 돈에 비해 영지의 세수가 터무니없이 적었다.
남부 사제장 품위 유지비와 영지 교회로 들어오는 기부금이 아니었다면 이 영지는 진작에 파산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 고혈을 빨아먹는 이 밥벌레 새끼들을 모조리 잡아죽일 필요가 있었다.
"로빈. 말을 준비하세요."
나는 빠르게 로빈을 호출했다. 소작농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나요? 발파. 빨리 당신도 나귀를 타세요."
"무,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당신에게 빌려준 땅으로 가봐야겠군요. 안내하세요. 지금 당장 우린 출발합니다."
로빈이 말 두 필을 데려왔다. 영지에서 가장 고급스럽게 관리받는 이 말들은 돼지고기 케밥으로 말모양을 만든것처럼 살이 뒤룩뒤룩 쪄 있었다.
".....말들 상태가 왜 이래요?"
"영주님도 저도 말타고 어딜 갈일이 없다보니......"
"....앞으론 주기적으로 운동시키세요."
미친 새끼들. 말들 산책도 안시켰다 이거지. 아무래도 기사단 시종들에 기사단원들 정신교육까지 시켜야할 것 같았다. 아무리 평화로운 영지라지만 지킬 건 지켜야될것 아닌가.
우리가 말에 타자 소작농은 더욱 벌벌 떨면서 나귀에 올라탔다. 돼지같은 소작농이 올라타자, 나귀는 죽어가는 비명 소리를 냈다. 어쩌면 소작농이 비명을 지른 것일지도 모르지만, 난 그런것까진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안내하세요. 발파. 지금 당장."
이 새끼가 간질발작 수준으로 몸을 비틀어대는 걸 보니, 아직 수확물을 매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매각을 먼저하고 남은 걸 가져와야 증거가 그나마 덜 남을텐데, 너무 오랫동안 아무런 간섭이 없다보니 아예 정신을 놓아버린게 틀림없었다.
"발파. 출발하세요. 우리를 앞장 세울 생각인가요?"
"가, 가겠습니다."
소작농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보다 더 처연한 얼굴을 하고 천천히 방향을 돌렸다. 속도를 늦추는 게, 이대로 농지로 가는 길에 나와 로빈이 늙어죽길 바라기라도 하는건가 싶어서 나는 더욱 소작농을 다그쳤다.
"발파. 빨리 움직이세요. 왜 그렇게 빌빌 거리죠?"
"네, 네! 알겠습니다."
내 다그침을 듣고 발파가 말을 더 강하게 몰아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노새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어대고 있었다. 나와 로빈이 탄 말도 벌써 힘에 부치는 지 쌕쌕 거친 숨을 내쉬며 혀를 쭉 내밀고 있었다.
나는 말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로빈에게 물었다.
"로빈. 기사단장으로서 할 말이 있나요?"
".....면목이 없습니다."
대충 몇가지만 해결하면 될줄 알았건만, 이 정도면 영지 전체가 썩어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영주들 말까지 좆같이 관리할 정도면 영지가 얼마나 개판이 난거지?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하는 걸까. 나는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그렇게 말타고 1시간이면 충분할 거리를 장장 3시간에 걸쳐 온 결과. 농지에 도착해서 말을 세우자마자 말들은 주저앉아서 거칠게 콧김을 내뿜었다. 로빈이 내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인채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뭐 이 건에 대해서는 로빈의 잘못이 아니긴 했다. 내 허락없이 말을 꺼낼수도 없었고, 원래 몸 주인이던 루시우스가 기사단 훈련에 신경썼을 것 같진 않으니까. 영주가 말을 방관하면 말을 관리하는 놈들도 나태해지기 마련이었다.
"따라오세요 로빈. 일단 이 농지 상태를 봐야죠."
나는 거듭 사과하는 로빈을 끌고 소작농의 농지를 둘러보았다. 농지 한가운데에는 어디 귀족의 별장처럼 생긴 호화스러운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이 건물이 뭔지 알고 있었다.
[히로인 전설] 페타 영지에 돌입할 때 처음 만나는 건물이었다. 플레이어가 이 건물 지하를 뒤져보면 한가득 쌓여있는 곡식을 통해 여기 주인인 소작농이 곡식을 몰래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 저.....그.....보시다시피.....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작농은 아직 자신이 살 여지가 남아있다는 듯 허허벌판인 농지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까지와서 내가 농지만 조사하고 돌아갈거라 생각한걸 보면 이 새끼도 어지간히 빡대가리인게 분명했다.
"집 문을 여세요."
"네?"
"집 문을 열라구요. 발파."
"아, 그.....! 영주님.... 제가 지금 집에... 그.... 작부들을 불러놔서 집안 꼴이....."
의외로 그럴듯한 별명을 들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문으로 다가갔다. 말 옆에 챙겨둔 메이스를 꺼내들고, 문짝을 강하게 후려쳤다.
쾅!
고급 목재로 만든 나무 문이 한순간에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갑작스럽게 나무조각을 뒤집어쓴 애완 고양이가 다락방으로 도망쳤다.
집에 남아있던 부인과 딸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메이스를 쓰다듬으며 거실의 정경을 훑었다.
역시, 그 집이 맞았다. 로빈이 센스 좋게 소작농을 붙잡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에서 하인과 노예 몇명이 앞으로 나왔지만, 감히 로빈과 나에게 덤벼드는 인간은 없었다.
"영주님! 영주님! 제발.. 제발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저는 숨긴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상황까지 와도 소작농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나를 보고 두려움에 떨고있는 부인과 딸들을 지나서 지하실로 이어진 문짝을 발로 짓밟았다.
콰직!
거대한 문짝이 박살나고, 영지민 대피소로 써도 될법한 거대한 지하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약한 바깥 불빛에 모든 걸 의존한 지하실 안에는 곡식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어림잡아도 내게 가져온 세금과는 비교도 안되는 양이었다.
"발파. 여기 지하실에 있는 건 뭐죠?"
"아...그... 제가! 제가! 쭉정이들만 모아놓은....."
이 새끼 구라도 슬슬 들어주기 지겨웠다. 나는 바로 옆에있던 부인의 머리채를 붙잡아 바닥에 내팽개쳤다. 중년의 부인은 잘먹고 다닌 모양인지 소작농과 똑같이 살이 뒤룩뒤룩 쪄있었다. 내가 부인을 바닥에 집어던지자, 딸들이 어미따르는 새끼 오리처럼 줄줄줄 따라와서 엉겨붙었다.
나는 메이스로 부인을 가리킨채 물었다.
"지금 가마니 하나를 뜯어봐서, 밀이 나오면 어떻게할까요? 딸이 둘. 부인이 한 명이니까. 가마니 셋만 확인하면 되겠네."
이런 놈이라도 지 가족은 끔찍하게 챙기기 마련이었다. 소작농은 잡아떼려는 걸 포기하고 머리를 땅에 박으며 외쳤다.
"죄송합니다! 제가 욕심이 생겨서 그만!"
"'제가?' 다른 소작농들은 안그렇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그 놈들도 다 한패입니다!"
"확실하죠?"
"네! 네! 그렇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으리! 제가 욕심이 생겨서 실수하고 만것 같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신다면....."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한 번 사기친 놈은 나중에 또 친다. 한 번만 용서해주면, 두번째도 용서해줄거라 믿는 게 사람이다. 어설프게 벌하면 증오를 가지고, 후환을 남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부인의 머리채를 다시 붙잡아서 들어올렸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고 덜덜 떨고있었다. 딸들은 내 다리를 붙잡고 제발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부인은 쓸모가 없어보였지만, 딸들은 제법 얼굴이 반반했다.
나는 부인을 소작농 쪽으로 집어던지고 아직까지 내 다리를 붙잡고 있는 두 딸을 발길질로 밀어내 구석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아직 저택 앞에 서있는 하인 하나를 골라서 말했다.
"당신은 지금 당장 달려가서 경비대원들을 불러오세요. 전신 무장 차림으로 5명. 죄인 호송할 물건들을 가지고 오도록하세요."
신나는 조리돌림 시간이다.개처럼 질질 끌려온 소작농에 대해서 저택 사람들은 제법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갑작스럽게 폭력적으로 변한 나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노골적으로 재산을 챙기려 들다가 망한 소작농에 대한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내 손에 메이스가 들려있다는 것이고 영주 저택 한복판에 소작농 일가가 돼지처럼 끌려왔다는 것이다. 돼지처럼 끌려왔으면 돈까스처럼 맞아야 되는 법. 나는 메이스를 허공에 휘두르며 스윙 연습을 했다. 내 연습을 본 소작농은 꽁꽁 묶인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옆에 누워있던 부인은 소작농에게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여, 여보.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거에요? 네?”
“모, 모르겠어. 미안해.”
참 눈물나는 광경이었다. 옆에있는 두 딸이 소작농 옆에 딱 붙어서 사시나무 떨 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부인과 소작농이 전부 뚱뚱하고 못생긴 것에 비해 딸들은 관리가 잘 되어서 제법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잠깐 마음이 동했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소작농 뭐시기 발파는 흙투성이였다. 수레를 따로 준비하지 않은 경비병들이 밧줄로 대충 묶어서 질질 끌고왔기 때문이었다. 딸들과 부인도 마찬가지로 끌고왔다. 어차피 이 나라에서 범죄자에 대한 인권은 없었다.
심지어 영주에게 바칠 세금을 빼돌리다가 걸린 놈들이라면 더 할말이 없었다. 이 정도면 내가 얘들을 구워먹는 거 말곤 뭐든지 용인될 수준이었다.
"발파. 당신의 죄를 알겠죠?"
"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를 벌하시고 제 가족들은....."
쾅!
메이스로 바닥을 후려쳐서 소작농의 발언을 끊었다. 소작농은 세금을 빼돌리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자기 죄를 인정하고 자신을 벌해주기를 청했다. 그리고 가족들만큼은 살려주길 바라고 있었다.
소란을 듣고 밖으로 나온 시에리가 무슨 일인지 로빈에게 상황을 묻고 있었다. 로빈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시에리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영주님. 그..... 가족들에겐 선처를 해주는 게......"
시에리는 내 권위를 손상시키지는 않을까 매우 조심스러운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에리.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해요. 한 번 선처를 해주면, 안좋은 선례를 만들고 만다구요. 제가 최초의 사례를 제대로 벌하지 않으면, 그 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자기도 그렇게 봐주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악행을 저지른다고요."
시에리가 입을 다물었다. 시에리의 호감도가 살짝 깎인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 일만큼은 봐줄 수 없었다. 사기꾼 앞에서 마음 약하게 굴면 반드시 물린다. 확실하게 끝장을 봐야한다. 나는 로빈을 시켜 시에리를 다시 저택 안으로 보냈고, 다시 소작농을 바라봤다.
"당신에겐 벌을 주고 가족들은 살려달라고 했죠. 발파."
"네! 네! 제발 부탁드립니다!"
소작농이 다시 한 번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이미 자신을 살 수 없다고 확신한 것 같았다. 하지만 세금 탈루는 중죄이며, 무엇보다 저 소작농 부인이나 딸들이 탈세 사실을 몰랐을리가 없다.
오히려 멍청한 영주 새끼를 비웃으며 다같이 파티를 했으면 했지. 아버지나 남편을 말리진 않았을게 뻔했다. 이 새끼들은 공범이다. 공범은 똑같이 처리해야 한다. 여지를 주면 악은 반드시 틈새로 고개를 내미는 법. 나는 이번 일로 확실하게 탈세를 하면 어떻게 되는 지 보여줄 생각이었다.
나는 병사들을 시켜 딸들을 한쪽으로 치워놨다. 그리고 부인 앞에서 메이스를 가볍게 휘둘렀다. 부인은 그 떡두꺼비같은 얼굴을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소작농이 바닥에 엎어진 채 발버둥치고 있었다.
허공에 몇번 메이스를 휘둘러보던 나는 가볍게 부인의 머리를 톡톡치며 타격점을 조준했다. 한쪽 발로 부인의 다리를 밟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영주님! 영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만 벌해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부인이 발버둥치며 자꾸 내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나는 메이스를 휘두르는 궤적을 가늠한 뒤 자세를 잡았다. 소작농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영주님!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죽겠습니다 영주님! 영주님!"
깡!
시원한 소리와 함께 비명을 내지르던 부인이 입을 다물었다. 머리가 크게 돌아가서 바닥을 굴렀다. 덜렁덜렁거리며 매달린 목은 목뼈가 더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닥에 널부러진 부인을 내버려 두고 딸들을 메이스로 가리켰다.
로빈이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영주님. 그래도 딸들까지 그러시는 건....."
"안죽여요."
소작농은 비명을 지르다 못해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멍하니 쓰러진 부인을 쳐다보던 그는 엉금엉금 기어서 부인에게 다가갔다. 싸늘하게 식은 시신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의식을 찾을까 기대하는 듯 했지만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없었다.
* 죽은 자의 상태창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아아....."
나는 메이스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내며 딸들을 끌고오게 했다. 얼굴이 제법 반반하긴 했지만, 굳이 어떻게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자기 엄마를 죽인 놈한테 곱게 다리를 벌릴지도 알 수 없고 침대에서 쑤시기라도 하면 어쩔거야.
지금 주변 분위기를 보니 딸들까지 죽이면 내 이미지가 아주 씹창이 날 것 같았다. 당장 내가 일가족을 전부 죽였단 이야기가 나오면 시에리의 호감도도 떨어질거고.
남의 시선을 신경쓰자면 딸들은 살려주는 게 맞았다.
"영주의 세금을 탈세한 본보기를 받아. 소작농 발파 부부는 처형합니다. 그리고 이 딸들은....."
잠깐 고민하던 나는 로빈에게 물었다.
"우리 영지는 노예 매매가 합법인가요?"
"네. 영주님."
"그럼 노예로 팔아버리죠. 노예 상인을 불러오세요."
이 참에 아이라도 같이 팔아버릴까 했지만, 미친년은 제 값을 쳐주지 않을게 분명했다. 걔는 아직 몸도 쓸만하고 능력도 나름대로 쓸곳이 많으니 아직 좀 더 두고봐야 했다.
소작농은 부인의 시체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지나 싶다가도, 방금 전까지 나를 속여먹으려고 끝까지 거짓말했던 것을 되새기면 금새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럼 정리하죠."
부인은 내가 직접 때려죽였지만, 소작농 발파는 병사들에 의해 목이 잘렸다. 부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던 모습을 보아하니 부부금실은 좋았던 것 같았다. 그 좋은 부부금술 저승에서도 잘 이어나가시길.
딸들은 노예 상인이 오기 전까진 지하감옥에 갇혀있을 예정이었다. 물론 나는 말동무가 필요할테니 아이라 옆방에 배치해주었다.
현재 아이라는 현재 연기력이 아주 끝까지 물이 올라서 미친년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상태를 보러 올때만 그런 것은 아닌지. 딸들은 내가 지들 부모를 육편으로 만들고 자신들도 노예로 팔 예정인 인간이란 걸 모르는 것처럼 방을 옮겨달라고 간청하고 있었다.
"저, 저 여자 뭐에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제발 방 좀 옮겨주세요. 최소한 저 여자 옆방 말고 다른 곳으로 해주세요!"
이렇게 딸들이 울부짖는 동안에도 아이라는 내가 왔다는 것에 신이 났는지 더욱 더 정신나간 연기를 하고 있었다.
"끼렉! 끼에에에엑! 꺄아아악!"
내가 상태창을 여는 능력이 없었다면 미친년으로 확신하고 사창가에 팔아버렸을거다. 여전히 스테이터스는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었고, 아이라는 광인을 연기하는 중이었다.
며칠 뒤 노예 상인이 와서 딸들의 가격을 책정했다. 이 과정엔 로빈이 개입하지 않았고, 노예상인역시 외부인이었다. 지하감옥에 우리 말고 아무도없는 걸 확인한 나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팔다리 힘줄을 자르면 가격이 떨어지나요?"
"일단 기본적으로 여자 노예들은 사창가에 팔리니까, 그렇게까지 떨어지진 않을겁니다. 얼굴도 제법 괜찮고, 몸매도 쓸만하니 오히려 더 비싸게 받을수도 있습니다."
"그럼 문제없네요. 잘라버리죠."
혹시나 도망이라도 쳐서 잘먹고 잘살면 빡칠것 같으니까 확실하게 인생을 조져버리고 싶었다. 노예상인이 걔들을 어디다 팔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로빈도 시에리도 걔들이 살았으면 됐지 그 다음에 어떻게됐는지는 신경쓰지 않을게 분명했다.
죄인의 처우를 내가 전부 알고있어야되는 것도 아니니 나중에 사창가에서 발견되어도 모른다고 잡아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노예 상인이 데려온 기술자를 이용하여 소작농의 딸들은 팔다리 힘줄이 전부 잘린 장애인이 되었다. 자연적으로 낫지 못하도록 조치를 단단히 취했다고 하니, 이제 저들이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혀도 잘라버리는 건 어떤가요?"
"말 못하는 노예는 가격이 떨어집니다."
"그냥 싸게 줄테니까 잘라버리세요."
돈 때문에 파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이미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는 이 소작농의 딸들은 집게와 가위가 다가오자 미친듯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재갈을 물려서 무슨 말을 하는 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 나에 대한 욕설이었겠지.
바로 옆방에 있던 아이라는 그 모습을 보고 미친년 연기도 그만두고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기술자가 계집의 저항에 쩔쩔매고 있으니 내가 다가가서 뺨을 한대 후려쳤다. 한방에 턱이 쩍 돌아가서 입이 벌어졌다. 노예 상인이 꺼림칙한 얼굴로 말했다.
"턱이 빠졌군요."
"다시 맞출 수 있죠?"
"한 번 빠지면 자주 빠질텐데 이런 질환이 있는 노예는 또 가격이 깎입니다."
나는 아직 턱이 멀쩡한 한명의 머리채를 붙잡고 속삭였다.
"봤지? 어설프게 덤비면 넌 이빨을 다 뽑아버릴거야."
그러자 남은 한 명은 스스로 입을 벌리곤 눈을 질끈 감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비명소리가 울렸다. 아이라는 쇠창살을 잡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이제 노예가된 소작농의 딸들 입 안에 지혈제를 채워넣은 노예상인이 아이라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쪽도 파십니까? 이 아이들의 원래 가격을 합한 것의 두배 값을 쳐드리겠습니다."
아이라는 그 말에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구석으로 도망쳤다. 저거 미친년 연기 포기했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저 쪽은 아직 좀 쓸 일이 있어서요."
"알겠습니다. 안목이 높으시군요."
노예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술자와 함께 딸들을 묶었다. 이미 기운이 다 빠진 두 여식들은 숨만 푹푹 내쉴뿐 눈에 초점이 없었다. 나는 노예상인에게 말했다.
"가급적이면 남부 지방 말고 다른 곳에서 팔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렇게 노예 상인이 지하감옥을 떠나갔다. 이제 남은 건 나와 아이라 둘 뿐. 아이라는 노예 상인이 가자마자 다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끼룩...끼에에엑!"
저거 버릇을 어떻게 고치지?
'매가 약이다.'라고 했던가. 소작농 한 명을 잡아 족치고 재산까지 몰수하고 나니, 다음 날 또 다른 소작농은 수레 4대 분량의 세금을 들고 왔다. 그 뒤로 찾아오는 소작농들 마다 서로 합의라도 한듯이 그만큼의 분량을 수레에 싣고 왔다. 서로 소통을 하고 있는 건 확실한 모양이었다.
맨 처음 나를 벗겨먹으려 했던 소작농이 가져온 세금과 비교하자면 몇배는 되는 분량이었다.
나는 이들 앞에 서서 메이스를 까딱거렸다. 소작농들은 내 손에서 휙휙 돌아가는 메이스를 마치 최면에 걸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저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저 메이스 한방에 소작농 부부가 골로가버렸다는 걸.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내 심사가 뒤틀리면 여기있는 모두가 똑같은 꼴을 당할거라는 사실을
"고생하셨어요. 여러분. 저번에, 킬데..... 발파 씨가 저를 속였다는 슬픈 소식을 아실런지는 모르겠네요. 저는 여러분의 수확량이 얼마나 되는 지 굳이 감시할 생각이 없어요. 왜냐면 그건 저와 여러분 사이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이잖아요. 그렇죠?"
"예, 예.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번에 잘못걸리면 진짜로 뒤진다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발파를 죽이고 난 자리에는 아직도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나는 슬쩍 그 자리로 가서 의도적으로 핏자국을 꾹 밟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는 여러분이. 앞으로도 정직하게 세금을 내줬으면 해요. 서로 귀찮지 않게요. 아시잖아요. 제가 할 일만 잘하면 터치하지 않는거."
이건 내가 행보관 흉내를 내는 게 아니다. 루시우스가 다스리던 영지는 실제로 이 소작농 새끼들이 세금 빼먹는 것만 빼면 아주 잘 돌아가고 있었다. 백성들이 무거운 세금에 고통받는 것도 아니었고, 치안이 불안정한것도 아니었다.
영지 경계에 도적단이 좀 있다는 게 단점이긴 했지만, 얘들도 루시우스를 무서워해서 함부로 못깝쳤다.
소규조수(蕭規曹隨)란 말이 있다. 옛날 중국 한나라의 승상 소하가 죽은 뒤 조참이란 놈이 그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 새끼는 승상이 된 뒤로 술만 쳐먹고 놀기 일쑤였는데, 아랫사람들이 그 연유를 묻자 말하길.
- 소하가 이미 잘 만들어놨는데 제가 뭐하러 건드립니까?
실제로 그 말대로 조참이 아무것도 안해도 나라는 잘 돌아갔고, 조참은 아무것도 안하다가 죽었음에도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런 예시처럼 아무것도 안해도 잘돌아간다면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다.
이 탈세충 새끼들만 뺀다면.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탈세충들은 지금 내 아래에서 벌벌기고 있는 중이었다. 소작농이 죽으면 그 자리를 채워서 다시 소작 계약을 맺는 것도 일이다. 그리고 새로 계약을 맺으면 그 놈도 돈에 눈이 돌아가서 곡식을 끌어모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놈들은 이미 잘먹고 잘사는 놈들이니, 오히려 한 번 경고만 해줘도 더 이상 선을 넘지 않는다. 한 번 꿀을 맛본 놈은 어떻게든 그걸 지키려들기 마련. 거기다 오랜 시간 이 땅에서 농사를 지어왔으니 효율적인 재배 루틴도 알고 있으리라. 이 놈들을 살려서 세금만 내게 하는 게 내 이미지에도 좋고 일도 안늘어나서 좋았다.
"그럼 가보세요."
나는 굳이 검사하지 않고 이 소작농들을 내보냈다. 대충 봐도 창고를 가득 채울만큼의 수레가 마당을 따라 대로에 늘어서 있었다. 나는 하인과 병사들을 시켜 이 가마니들을 나르게 했다. 창고가 가득찬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저절로 풍족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창고를 보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러고 나면 이제 아이라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고민거리로 남았다. 이 년은 계속해서 미친척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는데, 내가 계속 반응을 안보이면 슬슬 더한 짓거리도 할 것 같아서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했다.
왜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하냐면
이름: 아이라
직업 : 사기꾼
호감도: 0
레벨 : 6
스텟
힘 : 3
민첩: 7
지능: 4
행운 : 0
특성
연기
다른 직업을 연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연기중인 직업 : 광인
메소드
그녀는 현재 자신의 연기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연기와 현실을 구분하기 힘들어하며 때때로 의도치않은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본래 직업 특성이 비활성화됩니다. 지능이 떨어집니다.
감금 상태
현재 구속, 감금된 상태입니다. 스텟에 패널티가 부과됩니다.
얘가 실시간으로 미쳐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까진 그래도 소리만 질렀지 눈에 총기가 남아있었는데, 요즘에는 진짜로 눈이 맛이가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고, 지가 그랬다는 것에 놀라서 다시 비명을 지르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저러다가 제대로 미쳐버리기라도 하면 창관에 내다 팔아도 제 값을 못받았다. 미친 여자랑 섹스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리기에는 아이라한테 들인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나는 이문제를 빨리 어떻게해야 했다.
나는 우선 시에리를 데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시에리는 지하 감옥의 음습하고 기분 나뿐 풍경이 무서운 듯 내게 꼭 달라붙었다. 시에리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내 마음을 가라앉혀줬다.
"여, 영주님? 여긴 어딘가요?"
"여긴 죄지은 자들이 갇혀있는 지옥같은 곳이랍니다. 죄인들은 이곳에 와서 반성을 도모하지요."
아이라는 내가 시에리를 데리고 자신을 놀리러 왔다고 생각하는 듯, 평소보다 더 격앙된 어조로 괴성을 지르며 쇠창살을 두드려댔다. 동물원에 갇힌 침팬지가 난동을 부리는 듯한 모습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시에리가 그런 아이라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뒤로 조금 물러났다. 나는 그런 시에리의 등을 받치며 아이라를 가리켰다.
"보세요. 저 죄인은 영지의 창고를 털려고한 죄를 물어 이곳에 갇혀있습니다."
"아아, 영주님.... 너무 무섭습니다."
"끼에에에엑! 끼야아아아악!"
시에리가 내 품에 찰싹 달라붙어서 그런 소리를 하자, 아이라가 더 미친듯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분노에 몸을 맡긴 인간은 추해지기 마련. 저 괴성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진심인게 틀림 없었다. 나는 시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시에리는 내게 물었다.
"영주님. 저 사람은 이제 자신의 죄를 이해하지 못할만큼 미친 것 같습니다. 그만 풀어주면 안되겠습니까?"
"아직 세상을 모르네요. 시에리. 저 자는 자신의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척을 하는 것 뿐이랍니다."
"끼야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아이라는 내가 미친척을 했다고 말하자 그게 아니라는 듯이 더더욱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창살을 주먹으로 두드리고, 창살을 부술듯이 이로 물기도 했다. 그 살벌한 눈빛은 정말 살기가 흘러넘치고 있었지만, 난 우리 지하감옥의 내구성을 믿고 있었다.
"아아..... 영주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 이런 감옥에 갇혀있으면 정말 광인이 되고 맙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까."
"시에리. 반성을 하지않으면 벌이 무슨 의미가 있죠? 단순히 광인이 된척 하였다고 죄를 사하여 준다면, 우리는 왜 신에게 기도를 하고, 죄를 용서받으려할까요?"
"그러면 영주님께서는, 저 사람을 계속 여기 가두어둘 생각이신가요?"
"아니오. 벌을 줄겁니다."
나는 시에리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년이 미친 척을 할 때 부터 꼭 주고 싶은 형벌이 있었는데, 이 기회에 한 번 써먹을 생각이었다. 시에리는 내가 말한 내용을 듣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앙증맞은 작은 입이 쩍 벌어지는 걸 보고, 나는 그 입에다가 손가락을 넣고 휘저어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 그런.... 그런 잔인한....."
"시에리. 원래 사기꾼과 도둑은 손을 자릅니다. 그런데, 그런 벌이 정말 교화의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저 사람이 팔을 잘린다고 정말 반성할까요? 아니에요. 시에리. 반성은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달을 때 시작됩니다. 수치를 아는 사람만이 반성을 할 수 있는거죠. 팔을 잘리면 증오만 생길 뿐이에요."
"그래도... 그렇지만...."
"시에리. 저는 정말 저 사람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싶어요. 만일, 진실로 반성하고 새 사람이 된다고 하면, 저는 이 저택에 저 사람을 위한 일자리를 마련해줄수도 있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아이라가 갑작스럽게 조용해졌다. 자신의 벌 이야기가 나오니 미친척보다 그 쪽이 더 궁금한게 분명했다. 시에리는 내 말에 조금씩 마음이 기우는 것 같았다.
종교인인 입장에서, 죄인의 교화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시에리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시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래요 시에리. 그렇게 제 말에 따라주면 되는거에요."
"네. 영주님....."
아이라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서 구석에 있는 침대에 앉았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아이라. 처벌을 받기 전에 방을 옮겨줄게요. 본격적인 처벌은 사흘 뒤에 실시할 것이고, 그 동안 마음 단단히 먹길 바랄게요."
지금 아이라가 처해있는 환경은 최악이었다. 지하감옥은 환기도 잘 안되고 볕도 잘 안들었으며 사람도 많이 오가지 않았다. 공실만 10개가 넘는 이 참혹한 환경에서 미친척을 하고 있으니, 진짜 미치는 게 당연했다.
형벌을 실시하기 전에 아이라가 진짜로 미쳐버리면 나도 곤란했다.
그렇게 나는 아이라를 1층에 잇는 빈 방으로 옮기도록하고 최고의 대접을 해줄것을 명령했다. 하인들에게 슬쩍 들어보면, 방이 바뀐 아이라는 현장에 적응하려는 건지 어떤 상황인지 고민하는 것인지 미친척을 그만두고 얌전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혹시나 미친척을 하면 다시 지하감옥으로 돌려보낼까봐 그런가? 그녀의 속내는 내가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 뒤 시종을 불러 이 마을에 돌아다니는 불량배나 행실이 나쁜 노숙인들을 섭외하도록 했다. 얼마전에 소작농을 때려죽인터라, 시종은 잘걸렸다는 눈빛을 띄고 마을에서 사람 몇명을 수배해서 데려왔다.
이들은 각자 술주정뱅이에 아내를 두들겨패는 기둥서방, 뒷골목에서 애들 삥이나 뜯고다니는 삥쟁이, 도박 중독 노숙자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었다. 이 중에서 사람 구실을 못할거 같은 노숙자를 제외하면, 기둥서방과 삥쟁이만 남았다.
이들은 자기들이 평소에 저지른 죄를 알고 있는 지 고개를 푹숙인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내 메이스를 들고 두 사람을 차분히 쳐다보고 있었다.
"요, 용서해주십시오 영주님! 다시는 아내를 때리지 않겠습니다!"
"저, 저도 용서해주십시오! 다시는 아이들 돈을 뜯지 않겠습니다!"
내가 아무 말도 안했으나, 메이스를 휘두르니 저들의 입에서 진실이 튀어나오더라. 앞으로 내 메이스를 진실의 지팡이라고 불러야겠다.
아이라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오는 음식도 맛있고, 방은 아주 깔끔했으며 하인들도 자신에게 친절하게 굴고 있었다. 사기꾼이 된 이후, 이 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을만큼 대접이 좋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내게 이렇게 잘해주는 거지?
아이라는 지난 사흘 동안 그런 생각을 머릿 속에 품고 살았다. 그래서 제대로 쉴수 없었다. 매일 밤 갑자기 끌려가는 상상을 하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아이라는 사슬에 묶인 채 영주 저택 대문 앞으로 끌려나왔다.
영주가 형벌에 대해 홍보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마을 대로변을 감싸고 서 있었다.
아이라는 벌써부터 그 시선에 압도되어 고개를 숙였다. 옆에 있던 병사가 그런 아이라의 머리에 팻말을 하나 씌워줬다. 아이라는 고개를 숙인 채 그 팻말의 글귀를 읽었다.
- 나는 영주의 저택에서 도둑질을 했으며, 이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도망치려 했습니다.
아이라는 헛웃음이 나왔다. 무엇을 하려나 했더니, 여기서 공개처형이라도 시킬 생각인 것 같았다. 이대로 대로변을 걸으면서 사람들에게 돌 좀 맞고, 아이라는 눈물 좀 흘리면서 반성을 하면 되는 그런 행사였다.
종교인다운 발상이라고 아이라는 생각했다. 영주가 단상에 올랐다. 지금부터 벌어질 처벌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 같았다. 이미 처벌의 내용을 예상했다는 듯 사람들이 돌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자신이 짓는 죄의 무거움을 깨닫지 못하고,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죠. 누구나 그렇게 죄인이 되어갑니다. 여러분도 저도, 모두 가슴 속에 죄를 품고 살고 있습니다."
아이라가 루시우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도 루시우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러분. 여기 죄를 지은 아이라는. 무도한 죄인입니다. 본디 도둑질을 한 자는 손을 자르지만, 저는 그런 잔인한 법으로 사람을 심판해서야 반성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답은 없었다. 모두가 조용히 침묵한 가운데 루시우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도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는 남은 생애 동안 그 죄를 반성하고, 또 속죄하라는 의미가 큽니다. 여기있는 아이라도, 그 죄가 남들보다 조금 더 클 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죄인입니다. 이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동조하듯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파문처럼 일어난 대답 소리는 점점 넓게 퍼져서 큰 함성이 되었다.
"네! 그렇습니다!"
마을 사람 수십명이 동시에 대답하자, 아이라는 그 목소리에 잠시 압도되어 몸을 움츠렸다. 루시우스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병사들에게 손짓한 뒤 말했다.
"아이라의 옷을 벗기세요."
"네?"
아이라는 그 말에 놀라서 미친 척도 잊어버리고 반문했다. 마을 사람들도 뜻하지 않은 전개에 놀란듯 웅성대고 있었다. 지시받은 병사들도 정말 벗겨도 되는 것인지 손을 내민채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이미, 여기있는 아이라는 죄인으로서 이번 생을 끝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고, 새 삶은 새로운 육체에 담는 법. 오늘 아이라는 알몸으로 이 마을을 걷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씻어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의식을 행할 것입니다."
"무, 무슨... 잠시만.... 뭐, 뭐하는 거야!"
병사들이 아이라의 옷을 붙잡았다. 억지로 저항하는 아이라의 옷을 잡아 찢듯이 벗겨내고, 속옷만 남겨놓았다. 아이라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자신에게 시선을 주는 음탕한 눈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분. 죄를 지은 그녀가 길을 걷는 동안 마음껏 모욕하시길 바랍니다. 여죄는 그 모욕과 함께 씻겨나갈 것이며, 다시 이 성문 앞에 돌아오는 순간 그녀는 새 사람이 되어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병사 한명이 아이라를 앞으로 살짝 밀자 사람들이 그만큼 옆으로 물러났다. 아이라가 지나가기 위한 길이 트였다. 루시우스가 말했다.
"아이라. 속옷은 스스로 벗도록 하세요."
"뭐, 뭐라구요?"
"거부한다면 강제로 벗기겠습니다. 우리는 본디 알몸으로 태어나 이 곳에 왔습니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알몸이 되어야 하는 법. 옷을 벗으세요."
"개, 개소리 하지마!"
아이라가 악을 썼다. 그녀는 루시우스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 사람이 날 강간했어! 이젠 여기서 날 욕보이려고 이러는 거라고!"
사람들 사이에는 약간의 동요가 일었지만, 루시우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기도하며 말했다.
"신이시여. 아직까지 거짓된 음해를 일삼는 그녀를 용서해주시길."
"당신들은 다 속고 있는거야! 저 사람 사기꾼에 강간마 새끼라니까?"
"옷을 벗기도록 하세요."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아이라는 발버둥치면서 루시우스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 욕설을 모두 들으면서도, 루시우스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새끼! 빌어 쳐먹어 뒤질 새끼! 야이 개새끼야! 씨....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끼야아아아악!"
아이라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 불합리할 정도의 폭력이, 처벌이 원망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병사들이 속옷을 모두 찢어버리자, 온전히 알몸이 된 그녀만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돌을 집어들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루시우스가 말했다.
"아이라. 당신은 지금부터, 이 마을을 한바퀴 돌겁니다. 어떤 모욕도 감내해야 하며, 만일 주저앉거나 바닥에 쓰러진다면, 다시 제 저택으로 돌아와서 이 행사를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흑....흐흑.... 개새끼...."
아이라는 마침내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루시우스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자, 아이라를 대문 앞에 세우도록 하세요."
병사 두 명이 아이라를 대문 앞에 세웠다. 그들은 아이라의 맨살에 손이 닿자 서로 낯부끄러운 표정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이라는 여전히 훌쩍거리면서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아이라를 대문 앞에 세우자 루시우스가 선언했다.
"그럼, 행진을 시작하겠습니다."
"흐흑...흑....흐흑...."
하지만 아이라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라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이었다. 이 상태로 주저앉아서 계속 울기만 한다면, 영주도 별 수가 없겠지. 자기 입으로 속죄의 행진이라고 했으니 이제와서 자길 죽이지도 않을테고, 그렇다고 억지로 병사들을 시켜 움직이게 한다면 그것도 의미가 없었다.
아이라 나름대로 영주 루시우스를 엿먹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아이라는 울면서도 회심의 미소를 띄웠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게 느껴졌고, 누군가의 발소리도 들렸다. 발소리.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고 잇었다.
"누구....."
아이라가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드는 그 순간이었다.
"이 빌어먹을 년이! 누구에게 사기를 치느냐!"
빡!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아이라의 배에 발길질을 가했다.
"커헉....!"
아이라가 헛구역질을 하며 몸을 웅크렸다. 뒤이어 다른 젊은 사내가 나타나서 아이라의 다리를 걷어찼다.
"존경받는 영주님에게 무슨 짓이냐!"
"꺼으윽....."
아이라가 저항할 새도 없이 두 명의 사내가 아이라에게 무자비한 구타를 선사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감히 영주님을 건드렸다고 말할 때마다, 뒤에서 그 말이 옳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사, 살려....."
아이라가 영주의 병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루시우스 역시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퍽! 퍽! 퍽!
살을 저미는 듯 소름돋는 타격음이 울려퍼졌다. 아이라의 배와 다리, 허리, 그리고 온몸에 새파란 멍자국이 생기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저항하던 그녀는 공포와 무력감에 휩싸여 몸을 웅크렸다.
사람들은 행여나 아이라가 죽을까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이라를 신나게 때리던 두 남자도 거친 숨을 내쉬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루시우스가 말했다.
"그만."
아이라는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렇게 두들겨 맞았으니 이제 끝났겠지. 이토록 악의적인 폭행은 처음이었다.아이라는 몸을 벌벌 떨면서 겨우 일으켰다. 전신에 타격으로 인한 상처가 가득했다.
아이라는 마음 속 깊이 안심하고 있었다. 이제 끝이다. 루시우스가 반성했냐고 물어보면, 울면서 그렇다고 대답하면 된다. 그러면 루시우스는 다시 내게 옷을 입혀 돌아가게 해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다른 마을에서 루시우스에 대한 소문을 아주 씹창을 내놓으리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뭐?"
하지만 루시우스가 내민 선언은 아이라의 사고를 정지시키기 충분했다. 병사들도 자신들이 무엇인가 잘못들었다는 듯이 루시우스를 쳐다봤다. 루시우스는 단언했다.
"그녀는 아직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이 행군을 마치고 새사람이 될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미, 미친....."
"그녀를 방으로 데려가세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실시하겠습니다."
"야이 개....."
영주에 대한 욕설을 내뱉기 전에 병사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건 병사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아이라는 다시 그 방으로 끌려들어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이라는 방의 위화감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방에는 날붙이가 없다. 모서리도 뭉뚝하게 갈았고, 무거운 물건도 없었다. 왜지?
문이 열렸다.
루시우스가 미소를 지은 채 방에 들어오고 있었다.
"오, 오지마! 오지말라고!"
아이라는 공포에 질린 채 침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오, 오지 말라니까?"
루시우스가 팔을 벌린 채 다가왔다. 아이라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몸을 웅크렸다.
"오늘 하루 고생했어요."
그리고, 루시우스는 아이라를 품에 꼭 안은채 그렇게 말했다. 아이라는 갑작스럽게 전신을 휘감는 따뜻함에 혼란스러웠다.
"꺼, 꺼져!"
아이라는 루시우스를 격하게 밀어냈다. 바닥에 넘어져 머리라도 깨지길 빌었지만, 그는 작은 체구에 비해 아주 무거웠다. 마치 통나무를 밀어낸듯 도리어 본인이 튕겨나가 침대를 굴렀다.
"진정하세요. 아이라.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이 씨발 미친 새끼! 또 씨발 덮칠려고 왔지? 어? 이 좆같은 버러지 새끼!"
"아이라. 진정해요. 아무리 제게 화를 내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알겠어요? 전 당신을 해치러 온게 아니고, 당신을 덮치지도 않아요. 자. 보세요."
루시우스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아이라는 그 모습에도 여전히 의심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녀는 말했다.
"풀어줘."
"안돼요."
"풀어달라고 씨발! 반성했으니까! 다시는 이 영지에 발도 안들일테니까 풀어달라고!"
"안돼요."
아이라는 이 말다툼이 짜증났다.
"왜? 왜 안되는데?"
"당신은 반성하지 않았으니까요."
"이 씨!발! 새끼야!"
아이라가 베게를 집어던졌다. 루시우스는 베게에 얻어맞고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베게를 집어들어서 다시 침대에 올린 뒤 루시우스는 말했다.
"오늘은 푹 쉬세요. 이따가 상처도 치료해줄테니까요."
"이거나 먹어."
아이라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조소했다. 루시우스는 그 행동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이라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안심하세요. 여기선 아무도 때리지 않아요."
"뭐라는거야. 풀어줘!"
루시우스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문을 열고 사라졌다. 넓은 방 안에 남은 건 이제 아이라 혼자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이라에게 공포가 닥쳐왔다. 혼자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바로 내일 아침에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절망.
"으아아아아악!"
아이라의 방에서 비명이 울렸다.
다음 날 아침. 아이라는 로빈에 의해 개처럼 질질 끌려왔다. 로빈은 아직까지 이 엽기적인 처벌 방식에 익숙해지지 않은 것 같았다. 루시우스는 오늘 아침도 단상에 올라서 있었다.
설마 오늘 또 똑같은 일을 할까 싶어 모였던 마을 사람들은 영주가 정말로 아이라를 끌고 나오자 서로 수군거렸다.
"정숙하세요. 누가 죄인이 회개하는 자리에 잡음을 섞나요?"
물론 그 잡담은 루시우스의 엄중한 경고 한 번에 사라졌다. 루시우스는 오늘도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도, 어제와 같이, 아이라의 속죄의 행군을 시작하겠습니다. 아이라. 넘어지거나 쓰러지면,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겁니다."
아이라는 주변을 훑어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제 자신을 두들겨팼던 그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까지 알몸이 되는 건 익숙하지 않았지만, 아이라는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주변의 남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목에 맨 팻말 덕분에 가슴을 가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아이라는 치부를 가린 채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었다. 그렇게 한 걸음. 다시 또 한걸음.퍽!
누군가 아이라의 머리에 썩은 과일을 내던졌다. 과일을 맞은 아이라가 휘청거리는 그 순간, 누군가 아이라의 다리를 걸었다.
"이 더러운 년!"
"이 좆같은 년!"
아이라는 이 목소리의 정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어제 자신을 두들겨패던 사람들이었다.아이라가 바닥에 쓰러지자 마자 두 사람을 선두로 마을 사람들 몇몇이 아이라를 짓밟기 시작했다.
"악! 악! 영주! 이 씨발! 이래도 되는 거야?"
아이라는 어제처럼 패닉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루시우스에게 따지고 들었다. 루시우스는 가만히 무자비한 구타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악! 악! 사, 살려줘! 나 죽는다고!"
"그만!"
그 때, 루시우스가 외쳤다. 마치 훈련된 병사들처럼 마을 사람들이 전부 행동을 멈추고 조금 뒤로 물러났다. 루시우스는 서있던 병사들에게 말했다.
"아이라를 다시 데려오세요."
아이라는 입술이 까진걸 느꼈다.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옆구리에 시퍼런 멍자국이 또 생겨있었고, 다리뼈에 금이 간것같이 아팠다. 절룩거리며 아이라가 다시 문 앞으로 끌려오자, 루시우스는 말했다.
"그럼. 다시 속죄의 행군을 시작하겠습니다."
아이라의 눈이 크게 떨렸다. 오늘 이 곳에서 날 죽이려는 건가? 아이라는 다시 길을 쳐다봤다. 자신을 죽일듯이 두들겨팼던 남자 둘이 길 앞에 서있었다. 아이라가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저, 저길 지나가라고? 이렇게 방해해도 돼?"
"어떤 조롱도. 멸시도 참아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씨발....씨발....."
아이라가 이를 악물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디 해보라지. 걸음을 내딛을수록, 앞에 선 불량배들은 점점 무섭게 느껴졌다. 아이라가 보기에 그들의 덩치는 한 2미터는 되보였고, 주먹은 무쇠같이 단단해보였다. 아이라는 눈을 질끈 감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한걸음.
다시 또 한걸음.
그리고.
"이 좆같은 년!"
퍽!
퍽! 퍽!
다시 한 번 무자비한 구타가 시작됐다. 아이라에게 팔이 닿는 거리가 되자마자 두 사람은 아이라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뒤 미친듯이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라가 쓰러져서 비명을 지르자 다시 루시우스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아이라를 데려오세요."
아이라는 온 몸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런 아이라를 가만쳐다보던 루시우스가 아이라에게 손을 뻗어서 주문을 외웠다. 새하얀 빛이 아이라의 몸을 감싸더니 다시 상처가 사라졌다. 아이라는 그 의미를 알고 온몸의 털을 곤두세웠다.
"그럼 다시 속죄의 행군을 시작하겠습니다."
맞아서 죽을 수도 없다. 이 길을 끝까지 갈수도 없다. 아이라는 그 순간 아득한 절망을 느꼈다. 정말 자신이 미쳐버릴 때까지 이 짓거리를 계속하겠다는 악의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시 고개를 들면 두 사내가 씩씩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이라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야 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뒤에서 병사가 한걸음 앞으로 밀자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비틀거리며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아이라는 다시금 두 사내 앞에 섰다.
"좆같은 년!"
다시 발길질이 시작됐다. 방금 전보다 훨씬 아프고 고통스러운 발길질이었다. 때려죽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구타에 아이라는 몸을 웅크리고 흐느기기 시작했다.
"그만!"
루시우스가 다시 소리쳤다. 병사들이 다시 아이라를 데려왔다. 아이라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다. 입에서 피거품을 뱉어낸 아이라가 루시우스를 쳐다봤다. 루시우스는 아이라에게 힐을 걸며 말했다.
"속죄의 행군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오후 업무 시간이 시작될때까지, 속죄의 행군은 이어졌다. 아이라가 너덜너덜해진 채 방에 들어오면, 루시우스도 방에 따라들어왔다. 루시우스 다시금 아이라를 꼭 안아주고, 아이라가 욕설을 뱉었다.
"죽여! 죽이라고 씨발년아!"
"그럴 순 없어요."
이젠 왜?라고 묻기도 귀찮았다. 아이라는 대체 자신이 왜 이런 짓을 당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손을 잘리고 장애인으로 사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서 눈물이 나왔다. 아이라는 흐느끼며 물었다.
"나한테.... 나한테 왜 이래...? 씨발...흐흑...나한테... 왜 이러냐고!"
"죄를 지었으면, 회개해야죠."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데? 씨발....이 정도로... 이 정도로 큰 죄야? 어?"
"잘 생각해보세요. 아이라. 왜 벌을 받아야 하죠?"
"몰라 씨발! 내가 그딴 걸 어떻게알아 미친 싸이코 새끼야!"
"안돼요. 아이라. 잘 생각해야죠. 자신이 왜 회개해야 할까요? 그 질문에 답을 찾으세요. 첫번째 숙제입니다."
루시우스가 아이라를 놓고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아이라는 저도 모르게 루시우스를 붙잡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루시우스가 그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아, 아니야."
아이라는 다시 손을 내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루시우스가 문을 닫는 순간. 다시 공포가 찾아왔다. 혼자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바로 내일 아침에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절망.
"속죄의 행군을 시작하겠습니다."
점점 사내들은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잇었다. 처음엔 마을 대로변에서 기다리던 이들은, 매일 같이 한걸음. 한걸음 더 가가이 다가왔다. 그리고 아이라가 다가오면 더욱 더 무자비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루시우스가 죽이지만 않으면 살려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이후, 그 폭력은 더욱 더 강도를 더 해갔다.
"좆같은 년!"
"빌어먹을 년!"
귀로 들리는 욕설과 몸을 깎아내는 구타는 아이라의 정신을 완전히 박살내고 있었다.그렇게 일주일. 그리고 다시 또 사흘. 아이라가 밖에서 두들겨맞으면, 루시우스는 방 안에서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며 그녀를 꼭 안아줬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아이라는 공포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었다.
아이라가 출발하는 바로 그 지점 앞에서, 두 사내가 이를 악물고 콧김을 내뿜으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라가 두 사내의 시선을 마주하고 바들바들 떠는 동안 루시우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속죄의 행군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이 시작됨과 동시에, 두 사내가 아이라를 넘어뜨리고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한참 두들겨맞던 아이라는 눈을 번쩍 뜨더니, 사내 둘을 밀어내고 영주의 저택으로 달려갔다. 단단히 닫혀있는 문을 두드리며 아이라가 비명을 질렀다.
"열어줘! 열어달라고! 이젠... 이젠 싫어! 흐으윽....흐흑....흐흐흑....씨발....흐흑...."
그 모습을 바라보던 루시우스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라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간 아이라는 벽에 바짝 붙은 채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루시우스가 따라 들어오자, 아이라는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시우스가 물었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요. 당신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죠?"
"저택의.... 창고를 털려고... 했습니다...."
아이라는 손을 벌벌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루시우스가 아이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맞아요. 그 벌은 누구 때문에 받는거죠?'
"카를..... 때문에.... 받습니다...."
"맞아요. 아주 잘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아직 회개하지 못했어요. 아이라. 유감이지만 내일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라가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루시우스의 팔을 붙잡았다. 아이라의 눈빛이 간절함을 품고있는 걸 본 루시우스가 물었다.
"왜 그러죠?"
"뭐든지 할게요. 뭐든지 할테니까. 제발 속죄의 행군은 멈춰주세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영주님. 살려주세요. 아니, 차라리 죽여주세요. 손을 잘라도 좋고 혀를 뽑아도 좋으니까. 제발 속죄의 행군만큼은 그만해주세요."
"안돼. 그럴 순 없어요. 당신이 회개했는지 모르잖아요."
아이라가 그 말에 바닥에 더욱 납작엎드리며 빌었다. 루시우스는 그 모습을 보고도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루시우스가 나가려는 그 순간, 아이라가 루시우스의 옷을 붙잡고 외쳤다.
"나가지 마세요!"
"어이쿠."
루시우스가 아이라를 쳐다봤다. 아이라는 울먹이고 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이라가 말했다.
"나가지 마세요. 나가면 그 목소리가 들려요. 그 사내들이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조, 좇같은 년이라고.... 부르면서 절 위협하는 목소리가... 목소리가 들려요.... 뭐든지 할테니까 제발 절 혼자 두지 말아주세요... 속죄의 행군을 멈춰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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