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 21

“케이건 루나. 당신의 아버지예요.”  청문회. (3)  “케이건 루나. 당신 아버지예요.”  이사장의 말은 장내를 적막으로 만들었다. 
 소음이 절멸된 듯한 공간. 모두가 데큘레인만을 바라보았다. 
 “······호오.”  소피엔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도 이 상황은 예상 밖이었다. 
 아무렴 공동저자라니. 데큘레인의 성격과는 완전히 대척(對蹠)인 짓거리 아닌가. 
 “백년 이상을 함께했거늘······. 까면 깔 수록 새로운 모습이 나온다.”  소피엔은 손에 턱을 괴었다. 이프린이라는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 표정에 담긴 감정은 감히 형언하기 어려웠다. 
 이헬름이 말했다. 
 “데큘레인, 네가? 네가. 뭐, 뭐? 공동 저자?”  토막난 듯 끊기는 목소리가 그 당황을 증거한다. 
 입술만 뻐끔거리는 이헬름을 대신하여, 이사장이 묻는다. 
 “그래도 공동저자에 대한 설명은 필요할 것 같아요! 데큘레인 교수?!”  고개를 끄덕인 데큘레인은 무감한 목소리로 답했다. 변론보다는 서술의 어조였다. 
 “이 아이디어의 착상과 입안은 케이건 루나의 것이다. 그 누구도 생각 못할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발상이었다.”  데큘레인이 이프린을 바라보았다. 이프린의 퀭한 눈가가 촉촉했다. 
 “케이건 루나는 논문의 틀을 세웠고, 나의 몫은 그 발전과 완성이었다. 
그렇기에 두 명 다 제 1 저자로 표기하는 것이 옳았다······ 그 뿐입니다.”  “그렇군요! 이헬름은 질문을 계속 하세요!”  “······왜 지금.”  이헬름은 넋 나간 사람처럼 되물었다. 
 “왜 하필 지금?”  “······음! 제가 대신 할게요! 이헬름 진영은 지금 뭔가 할 상황이 안 되는 것 같네요!”  아드린느가 이헬름 대신 나섰다.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질문했다. 
 “데큘레인 교수가 조교들을 괴롭힌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요? 망가진 사람도 많고! 자살한 사람도 있고! 그런데 왜 하필 이제와서 과거의 조교를 배려하는 건가요?!”  “하필 지금이 아닙니다.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제 제 과거의 과오를 인정합니다.”  “음~”  아드린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데! 참고인 이프린은 더 할 말 있으신가요?”  이프린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아드린느가 방긋 웃었다. 
 “아······ 저······.”  이프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데큘레인, 아드린느, 이헬름을 차례로 보았다. 
 혼란스러웠다. 
 데큘레인이 이럴 줄은 몰랐다- 따위의 일차원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  데큘레인의 솔직한 말이, 아버지가 ‘공동 저자’로서 마법계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 복잡한 고민을 일으킨다. 
 자기자신이 너무······ 돌머리 바보 같다. 
 “······아니요. 이 이상 할 말 없습니다.”  “음! 그렇다면!”  탕—! 탕—! 탕—! 
 이사장이 망치를 두드렸다. 
 “잠시 휴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쉬다 오세요!”  * * *  마탑 청문회장 근처의 고층부에는 테라스가 있다. 산림처럼 꾸며진 그곳의 난간에 서면, 대학 전체의 정경이 한 눈에 보인다. 
 어느덧 밤이 다가온 덕분에. 
 온 세상은 보름달의 빛에 젖어 있다. 
 뚜벅—! 
 얼마 지나지 않아, 대놓고 들으라는 듯 울리는 발소리. 
 조금 더 기다리니 한 사람이 다가온다. 
 느끼한 금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짙은 향수 냄새가 코를 괴롭힌다. 
 “······나는 네가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다.”  이헬름. 
 천천히 걸어온 놈은 나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묻는다. 
 “알고 있었나? 그 논문에 숨겨진 마법 표식인지 뭔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논문을 발전시켜가던 도중에 알았다. 꽤 교묘한 함정이었다. 
 “어떻게 했지?”  “그대로 놔뒀다.”  해체 자체는 쉽게 했을 것이었다. 회로를 하나 하나 가다듬으면 될 일이었으니. 
 “······.”  그러자 이헬름은 난간을 움켜쥐었다. 끄드득— 살갗이 쓸리는 소리가 선명했다. 
 “왜지. 너는 루나를 미워하지 않았냐?”  나는 이헬름을 돌아보았다. 
 이 놈은 언젠가 데큘레인과 가장 가까웠었다. 그렇기에 그 시절의 데큘레인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 것이었다. 
 “너는 루나도, 루나의 딸도······ 싫어했을 텐데.”  데큘레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이따금 내가 모르는 ‘기억’이 다가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천천히, 혹은 어떤 경험으로부터 촉발되는 ‘사건’들이다. 
 그러나 그 전부는 단편적인 지각(自意)에 불과하기에, 일방적인 흡수보다는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디카일렌은 나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혼잣말하듯 이헬름에게 물었다. 이헬름의 진홍색 동공이 나를 응시했다. 
 “내 재능이 부족했거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 망령의 욕심이 너무 거대했거나.”  “······.”  “뭐가 되었든 그 불만의 나날에 디카일렌은 발견했다. 대마법사의 재능을.”  이헬름은 고개를 두어 번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래. 디카일렌이 죽지 않았다면 너는 당주 자리를 루나에게 빼앗겼겠지. 
한데 아직도 의문이다. 생판 다른 혈통의 아이를 당주 자리에 앉히는 게 그리 쉬운 일이었을까.”  아니. 
 디카일렌은 이프린을 당주로 삼으려던 게 아니었다. 놈은 그저 ‘그릇’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죽어가는 자신의 뇌를 담기에 알맞은 그릇. 
 이프린. 
 “디카일렌은 이미 죽었다. 모든 게 바뀌었지.”  “그래도 내가 아는 너는 루나의 딸을 미워했을 텐데? 케이건을 용서하지 못했을 텐데?”  “······.”  “케이건이나 너나. 둘 다 서로를 미워할 이유는 충분했잖아. 그 놈이 디카일렌에게 알랑방구만 안뀌었다면······.”  나는 저 머나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다같은 천장에, 커다란 보름달이 덩그러니 놓였다. 
 “어차피 과거의 일이고, 이 연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연구의 완성은 내가 아닌 이프린의 몫이지. 또한.”  “······또한?”  “그의 자살은 내 잘못이다.”  “뭐······.”  이헬름이 입을 떡 벌렸다. 그 표정이 세상 멍청했다. 
 “아버지를 죽여 놓고 딸마저 미워할 수는 없지.”  “······그, 렇게.”  이헬름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놈의 이마에는 웬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렇게, 이프린이라는 녀석이 불쌍했냐?”  “아니.”  “그럼? 그럼 네가, 네가 도대체 왜?”  “······”  나는 가만히 생각한다. 
 추측하건데, 동정이나 연민 따위는 결코 아니다. 
 다만 쉽게는 알 수 없다. 내 감정은 「육안」으로도 보이지 않기에. 
 “글쎄.”  그러나 언젠가 책으로 읽은 바. 
 마법사라면 평생 한 번 쯤은 반드시 느낀다던 소회(所懷). 
 “내가 녀석을 제자라 생각하는 모양이지.”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마음을 품어버린 게 아닐까. 
 “······.”  이헬름은 말을 잃었다. 난간을 아득 쥔 손에 힘이 풀렸다. 밀려든 바람이 놈의 식은땀을 식혔고, 흐트러진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흘렀다. 
 “하······ 하. 말이 안 되는데?”  “뭐가 말이냐.”  “몇년 전인가. 길테온이 루나를 멸문시키려 했을 때. 막은 건 너 아니었냐? 
그때부터 그딴 마음을 품었을 리 없잖아.”  “내가 그랬나.”  정녕 몰랐던 사실이었지만, 이헬름은 어이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어후.”  놈은 뭐라 대꾸하지는 않았다. 고개를 젓고 한숨만 내쉬었다. 
 “그거 아냐? 이게 내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리고는 사뭇 편안해진 얼굴로 야경을 바라보았다. 
 “공동저자라니. 이 이상 공격할 거리는 없지. 아니, 공격할 의욕도 없어.”  이헬름이 허리를 숙였다. 놈의 축 늘어진 몸이 빨래처럼 난간에 널렸다. 
 “······네가 바뀌었다면 말이지. 그 데큘레인이,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데큘레인이 아니라면 말이지. 미친 듯이 무너뜨리고 싶던 네가 아니라면 말이지······.”  나는 그를 보았다. 
 오래된 치즈처럼 언제나 썩어 있던 그 진홍의 눈에, 달빛이 스며든다. 이유 모를 생기가 깃든다. 
 “굳이 너랑 드잡이질을 하기는 싫다. 과거에 얽메이는 나만 손해거든.”  바로 그 순간. 
 이헬름은 외쳤다. 
 “어이!”  흠칫- 테라스의 입구 쪽에 인기척이 일었다. 
 “얼른 도망가라. 잡히기 전에.”  그러자, 타다다닥—! 
 황급히 멀어지는 달음박질 소리. 
 쿵—! 
 달리다 넘어진 건지, 땅바닥에 무릎을 찧는 소리. 
 “······.”  나는 이헬름을 노려보았다. 이헬름은 큭큭 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데리고 온 건 아니고. 그냥 알고 싶으면 따라오라고 했어. 
그래서 쓸데없는 말은 일부러 안 했지.”  이헬름은 다시 허공에 눈을 옮겼다. 먼 옛날의 일을 더듬는 듯한 시선이었다. 
 “케이건이 사실은 정상적인 놈이 아니었다거나, 제 딸을 사랑하지 않았다거나, 오히려 원망했다거나 하는 말들은······ 너무 가혹하잖아? 
그래도 내 참고인으로 서준 녀석인데.”  피식- 괜히 웃은 놈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도 신사거든.”  * * *  띠디디딕— 띠디디딕—  알람 시계가 울렸다. 이프린은 멍하니 눈을 떴다. 
 “······.”  오늘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 
 —이 연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연구의 완성은 이프린 몫이지. 
 —그의 자살은 내 잘못이다. 
 숨어서 들었던 데큘레인과 이헬름의 문답. 
 —아버지를 죽여 놓고 딸마저 미워할 수는 없지. 
 데큘레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귓가에 되뇌어진다. 
 —······글쎄. 내가 녀석을 제자라 생각하는 모양이지. 
 제자. 
 띠디디딕— 띠디디딕—  아직도 울리는 알람 시계를 끄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책상 위에 놓아둔 종이 한 장을 힐끗거린다. 
 [ 자퇴서 ]  데큘레인의 청문회는 사흘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첫날처럼 격렬하지는 않다고 들었다. 
 아마, 이헬름도 포기한 거겠지. 
 —몇년 전인가. 길테온이 루나를 멸문시키려 했을 때, 막은 건 너 아니었냐? 
 이프린은 루나와 유크라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에 드는 밤까지 이어지는 고민이다. 
 —그 놈이 디카일렌에게 알랑방구만 안뀌었다면······. 
 정말 유크라인의 선대 당주가 자신을 원했고, 아버지도 그렇게 되길 바랐다면. 
 데큘레인이 루나에게 유크라인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었다면. 
 “······하아.”  한숨을 내쉰 이프린은 마지막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깨끗하게 정돈된 내부. 
 필요없는 것들은 다 버렸고, 가져갈 것들은 다 챙겼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방 청소 때문에 민폐를 끼칠 일은 없겠지. 
 그녀는 자퇴서를 품 안에 넣었다. 터질 듯 빵빵한 백팩을 겨우겨우 맸다. 
 “가자~ 고향으로 돌아가자~”  괜히 힘차게 중얼거리며 나가려던 이프린은, 문득. 
 “······응?”  저 문틈 밑의 어떤 봉투를 발견했다. 어제까지는 없었는데, 갑자기 생겨난 물건이었다. 
 오늘 아침에 온 건가. 
 이프린은 두툼한 봉투를 들었다. 그 안에는 웬 편지와 증서가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보았다가,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  이프린은 자그마한 비명을 내질렀다. 
 온몸이 굳었다. 팔 다리 뿐만 아니라 머리도 멈췄다. 
 멍하니, 증서의 내용을 읽었다. 
 [ 마탑후원증서 ]  ■ 대상 : 솔다 이프린 루나  ■ 금액 : 100,000 ∃  마탑에 입학한 날부터 이어지던 익명의 후원이, 오늘 다시 이루어진 것이다. 
 이 후원을 결정한 날짜는, 당장 어제. 
 편지에 적힌 내용은, 단 한 줄. 
 ─당신을 응원합니다. 
 “아니······!”  그 문장을 보자마자 이프린은 백팩을 내팽개쳤다. 그대로 기숙관을 뛰쳐나와 화살처럼 달렸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몸이 알고 있었다. 다리가 제 멋대로 움직였다. 
 달리고, 또 달리고, 미친 듯 달려 마탑에 도착해서, 오늘따라 느릿느릿한 엘리베이터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77 층의 버튼을 누르고······  띵—!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그 명패가 목전에 있었다. 
 [ 수석교수 집무실 : 데큘레인. ]  수석교수 데큘레인. 
 이프린은 그의 이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심장이 부서질 듯 쿵쾅거리고 있었다. 
 뒤늦게,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느꼈다. 
 ─당신을 응원합니다. 
 방금 읽었던 그 한 문장이 가슴을 잡아 뜯었다. 
 “······왜.”  나는 당신을 배신하려했는데. 반대편에 서려했는데. 
 아무 것도 몰랐으면서 너무 섣불렀고, 아버지를 죽게 만든 당신을 여전히, 지금도 어느 정도는 원망하고 있는데. 
 이 미움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텐데. 
 “왜······.”  똑똑—  이프린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집무실을 노크했다. 
 얼마간 기다리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데큘레인의 「염동」이었다. 
 “이프린. 요 근래 연구실에 출근하지 않았더군.”  “······.”  “태업으로 벌점 5 점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자신을 질책하는 그에게로. 
 변함 없이, 차가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게로. 
 유령의 섬. (1)  수석교수의 집무실. 
 저 유리창에서는 따스한 햇살이 넘실거리지만, 데큘레인의 분위기는 여전히 차갑다. 
 두려울 것은 없다. 평소 그대로의 모습이니. 
 “······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이프린은 천천히 데큘레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머뭇머뭇,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게······.”  조심스럽게 딱 한마디를 내뱉었을 때. 
 “있잖아요.”  “나가라.”  “에?”  쿵—! 
 눈 깜빡할 사이에 쫓겨났고, 문이 닫혔다. 
 「염동」의 작용이었다. 
 “······뭐야.”  이프린은 굳게 잠긴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고리를 흔들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뭐······ 열어줘요! 열어줘요! 할 말이-”  “아 이프린 씨. 오셨네요?”  그때 뒤에서 알렌이 다가왔다. 그는 이프린에게 생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저······ 네. 오긴 왔는데······.”  이프린은 괜히 쭈뼛대며 뒷목을 긁적였다. 새삼 등허리가 뜨거웠다. 쪽팔렸고 면목이 없었다. 
 “그······.”  “괜찮아요~”  알렌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데큘레인 교수님도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실 거예요. 저같아도 아마 그렇게 했을 거고요.”  “······.”  “가정사를 공개한 것도 이프린 씨의 용기였어요. 그러니 이프린 씨는 연구로 보답하면 돼요~ 저희 다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요.”  파이팅! 힘차게 외친 알렌은 제 연구실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 조교수 알렌 연구실 ]. 
 이번에 데큘레인이 새로 증축해준 덕분인지, 그 발걸음이 사뭇 토끼처럼 깡총거린다. 
 “······.”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프린에게, 문득 상기되는 목소리. 
 데큘레인과 이헬름 간의 대화. 
 —이 연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연구의 완성은 이프린의 몫이지. 
 데큘레인이 자신에게 남겨둔 것. 
 그리고, 내가 아버지를 위해 할 일. 
 연구의 완성. 
 “······그래.”  고개를 끄덕인 이프린은 [ 조교 연구실 ]로 달려갔다. 
 연구실의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당황하는 드렌트는 무시한 채, 논문이 가득 쌓인 자리에 앉는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프린은 조금의 시간 낭비도 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의욕이 강했다. 
삶의 그 어느 순간보다 목적이 선명했다. 
 그렇기에, 곧바로 공부를 시작했다. 
 * * *  ······4 박 5 일 동안의 청문회가 끝나고. 
 “둘 다 수고했어요!”  이곳은 100 층 아드린느의 집무실. 
 이헬름과 함께 호출된 나는 아드린느를 마주보고 있다. 
 “제가 엄청 칭찬했으니까 논문 평가는 한 달이면 끝날 거예요! 그런데 그 전까지! 두 분 모두에게 시험이 있어요!”  이사장 아드린느는 내 논문을 부유섬에 전달했다. 
 아마 거의 모든 중독자가 업무를 올-스탑하고 그 논문에만 매달리겠지. 
 “이번에는 실전적인 능력을 파악하기 위함이에요!”  “후보자 사퇴는 안됩니까?”  이헬름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물었다. 아드린느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럼 안 되죠! 아직 역전의 기회는 남아 있어요!”  “······굳이 역전 하기도 싫습니다만.”  “됐어요! 이거나 보세요!”  그리고는 웬 지도와 수정구슬을 꺼냈다. ‘고레스’라는 섬과 관련된 기록물들이었다. 
 그 순간, 퀘스트 알람이 발생했다. 
 [ 메인 퀘스트 : 제단과 귀신 ]  ◆ 정신력 +1  슬슬 퀘스트의 거의 전부에 ‘메인’ 혹은 ‘독립’이라는 딱지가 붙고 있다. 
 ‘사이드’ 따위는 이제 낄 시간이 아닌 것이다. 
 “목적지는 고레스(Goreth) 섬! 귀신의 섬이라고도 불리고, 이 안에 ‘고스트 캐슬’이라는 성도 있어요!”  이사장의 수정구슬이 영상을 송출했다. 입체적으로 보이는 섬의 풍경 자체는 평범했다. 
 배가 정박할 부두, 그 너머의 거대한 성, 길게 자란 잡초와 풀. 
 누가 봐도 오랫동안 버려진 섬이었다. 
 “아마 두 분 다 아카데미에서 교과서로도 배웠을 거예요!”  “예. 압니다.”  이헬름이 쯧- 혀를 차며 대답했다. 
 “고레스. 60 년 전, 3 천 명의 섬사람이 한순간에 실종된 마법적 공간.”  “네 맞아요! 예전에는 특산물도 나고, 관광객도 많던 섬이었는데, 그 사건 이후 죽은 섬으로 전락했죠. 그런데 세상에! 이 섬에 마석 광산이 발견되었다네요!”  “······마석?”  “네~!”  마석 광산. 마법사는 물론 이 세계관의 어느 누구나 탐내는 자원. 
 ‘최상급 마석은 지옥이라도 캐러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니, 그 가치는 말해 입아프다. 
 “거기 묻힌 마석은 자그마치 1 만 톤! 그걸 엘네로 환산하면······ 어머어머!”  이사장이 과장스레 파닥거렸다. 이헬름은 퉁명스런 얼굴로 팔짱을 꼈다. 
 “그래서 지금 정화 작전이 준비 중이에요! 여러분들의 시험은 그거예요! 이 정화 작전에 누가 더 도움이 되었는지-”  “그러니까. 자원 봉사라는 말씀이시죠.”  “아뇨! 설마요!”  이헬름이 묻자마자 고개를 젓는다. 
 “실적을 판단하고, 그 기여도에 따라 보상을 분배할 거예요. 예로 이헬름이 3%만큼 기여했다고 판단되면 1 만톤의 0.3%! 거기서 황실에 귀속되는 절반을 제하면 총 15 톤의 광산 지분이 주어지는 거죠!”  15 톤. 마석의 질에 따라 다르긴 하나, 보통 웬만한 중소 영지의 1 년 예산에 준하는 금액이다. 
 아드린느가 말을 이었다. 
 “이헬름은 보조 마법의 대가이고, 혹시라도 나타날 악마나 귀신을 대비한 우리 유크라인의 데큘레인! 아주 좋은 조합이 될 거예요!”  그러자 이헬름이 나를 돌아보았다. 놈은 눈으로 물었다. 이 시험에 참가하겠느냐고. 
 퀘스트가 떠오른 이상, 나로서는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예. 그러겠습니다.”  “······뭐. 그럼 저도. 이사장 자리는 이미 날아갔지만, 광산 지분은 탐나는군요.”  이헬름이 어깨를 으쓱였다. 
 * * *  프렌하임 기사단의 단장실. 장식이나 사치품 따위의 것들은 단 하나도 없는, 정말 지루할 정도로 심심한 목구조(木構造)의 방. 
 “흐음······.”  단장 율리는 기사단의 장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요 근래는 전부 흑자 뿐이었다. 
 “······후후.”  저절로 흐뭇해진다. 자신의 몸 상태는 여전히 악화되고 있지만, 이 정도 수익이라면 충분히 건강한 기사단이라 할만하니. 
 똑똑—  그때 울리는 노크. 
 그녀는 장부를 서랍에 넣었다. 얼른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 뒤에 들어오라 명했다. 
 “······단장님.”  부단장 록펠. 그는 갑옷 차림에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그 서늘한 행색을 보자마자 율리는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입니까, 록펠.”  “베론의 유해를······ 수습했습니다.”  “뭐?”  율리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녀는 급히 록펠에게 다가가 되물었다. 
 “베론의 유해를?!”  프렌하임 기사단 측에서도 유해 수습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을 소모하고도 실패했었다. 
 그만큼 절망적인 절벽이었는데. 
 “예. 유세핀 공 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아······ 그, 그렇군.”  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터덜터덜 물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 언니가 이번만큼은 정말, 정말 진심으로 감사했다. 
 “······돌아왔단 말이지. 그 녀석이.”  마음 한 켠의 짐이 작게나마 녹아내리는 기분. 
 율리는 록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가는 이미 눈물로 촉촉했다. 
 “단장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장례를 다시 치르겠습니다.”  “예. 단원들에게도 그리 말하겠습니다.”  록펠을 고개를 숙이고 단장실 밖으로 나갔다. 
 “······하아.”  깊은 숨을 내쉰 율리는 기사단의 창밖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맑았다. 햇볕이 찬란했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정말 다행이다······.”  그녀는 울음 대신 웃음을 지었다. 
 * * *  한편, 솔다 이프린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  근데 체할 것 같다. 이 안의 많은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힐끗거리고 있으니. 
 “아 속 아파.”  이렇듯 자신은 요즘 대학의 어디에서나 시선을 받는다. 데큘레인의 밑에서 소신 발언을 한 조교라는 이유로. 
 응원하는 사람도 있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죽어라 욕하는 귀족들도 많지만, 정작 데큘레인의 편은 아무도 없다. 
 이프린은 그 부분이 조금······. 
 “음~ 유명인이 여기 있네요?”  누군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를 돌아본 이프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루이나 교수님?”  루이나는 녹색 머리카락을 등허리 뒤로 넘기며 방긋 웃었다. 
 “네. 반가워요. 아직도 많이 혼란스러운 얼굴이네요?”  “아······ 네. 안녕하세요.”  이프린은 쓴웃음을 짓고 꾸벅 숙였다. 루이나는 커피를 홀짝이면서 말했다. 
 “어때요. 데큘레인 교수, 사람이 많이 변했죠?”  “아 그게, 저는 옛날 데큘레인 교수 님을 잘 모르니까······.”  편지로만 읽었고, 실제로 경험한 적이 없었다. 이프린은 이제 자신이 보는 것, 또는 본 것만 믿기로 했다. 
 루이나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하긴. 지금은 많이 변한 거예요. 예전에는 엄청, 뭐 말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나쁜 놈이었는데······. 그리고, 사람이 변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요.”  사뭇 씁쓸한 어조였다. 이프린은 눈을 깜빡거리며 그녀를 보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 교수 님한테?”  “음······ 글쎄요. 그걸 말 하면 안 되겠죠? 뭐, 죽을 병에라도 걸렸나?”  “······네?”  그 찰나. 
 멍하니 갸웃거리는 이프린의 기억 저편. 
 무의식의 밑바닥에 매립되어 있던, 어느 목소리 한 줄기가 자그맣게 떠오른다. 
 —그런데······ 내 세상에 교수님은 없어.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음색. 귓가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 그 문장을 되뇌이며, 이프린은 멍하니 고민한다. 
 이 말은 누가, 어디에서 한 것인지. 
 나는 어떻게 이 말을 들은 것인지. 
 “솔다 이프린? 왜 그래요?”  루이나가 물었다. 흠칫 놀란 이프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요.”  “뭐 짚이는 데라도 있어요?”  “아······ 아뇨. 그런 건 아닌데요.”  그가 변한 이유 따위, 알지 못한다. 알 리가 없다. 자신은 데큘레인의 과거를 모르니. 
 그저······. 
 “머리가 아파서요. 이거 때문인가봐요.”  이프린은 제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힐끗거린 루이나가 아- 탄성을 내뱉었다. 
 “아~ 고레시 섬. 고스트 캐슬? 데큘레인 교수가 이번에 간다죠?”  “네.”  “조교도 필참이에요? 여기 위험한 곳이라, 굳이 다 같이 갈 필요는 없을 텐데.”  “필참은 아닌데, 그래도······.”  이프린은 볼을 긁적이면서 말했다. 
 “전 교수 님의 조교이니까 갈 생각이에요. 거기서도 연구는 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교수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가지 않을-”  * * *  “······으허!”  눈을 뜨니 배 안이었다. ‘고레시’라는 섬의 고스트 캐슬로 나아가는 배. 
 이프린은 창 밖을 보았다. 햇볕이 쨍쨍했고, 바다는 안온했다. 배의 내부도 크루즈 답게 평화로웠다. 
 하아아암— 이프린은 늘어져라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다. 
 “이프린 씨. 깨어났네요?”  옆자리의 알렌이 생긋 웃었다. 이프린은 하품 하느라 흘린 눈물을 닦았다. 
 “네. 배는 처음 타보는데, 갑자기 잠들었네요. 배멀미 때문인가?”  “아~ 배가 처음이에요? 그럼 그럴만해요. 근데, 이프린 씨는 수업은 안 들어도 괜찮아요?”  참고로 드렌트는 이 여행에서 빠졌다. 강의와 과제 때문이었다. 
 “네 어차피······. 저한테는 다 쉽거든요.”  “역시~”  감탄하듯 대답한 창 밖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갈 곳에는 귀신이 많대요! 연구할 거리가 많을 거예요~”  “네. 조금 기대 중이에요. 귀신은 마법적 존재잖아요?”  “······.”  알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급작스레 이프린을 돌아보았다. 목이 꺾이듯 기괴한 몸짓이었다. 
 “아, 알렌 조교수님. 몸이······.”  그의 몸은 여전히 창밖을 향하는데, 목만 옆으로 돌아 자신을 응시한다. 
 “이프린 씨.”  “네?”  “제가 아직도 알렌으로 보이시나요?”  “그게 무슨······?”  그때, 알렌의 눈에서 피가 흘렀다. 
 콸콸콸콸—! 수돗물처럼 솟구치는 붉은 진물이 이프린의 온몸에 튀었다. 
 너무 놀란 이프린은 돌처럼 굳었다. 
 그러는 사이, 알렌의 입이 상어처럼 쩍 벌어졌다. 
 그으어어어어······! 
 이프린은 마법을 구성하려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꿈 속에서 주먹질을 할때처럼······. 
 꿈? 
 “······꿈! 꿈이다!”  이프린은 억지로 눈을 떴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방금의 끔찍한 상황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알렌은 옆자리에서 창밖의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다. 
 “어휴······.”  이프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심신 미약 상태라 그런가. 아니면 정신력이 약해진 건가. 
 “······이프린 씨? 무슨 일 있으세요?”  알렌이 걱정스런 투로 물었다. 이프린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그게 제가 꿈을 조금······.”  “무슨 꿈이요?”  “별 거 아녜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이런 꿈?”  “······네?”  턱-! 
 알렌이 제 손을 움켜쥐더니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눈에서 피눈물이 쿠콰콰콰콰카─! 흘렀다. 방금과 똑같은 장면이었다. 
 알렌은 피를 뿜어내며 말했다. 
 “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이런 꿈?”  “으, 으아악······!”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을 치던 이프린은, 어느 순간. 
 “으어!”  다시 꿈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배 안이었고, 낮이 아니라 밤이었다. 
 그때 알렌이 나타났다. 
 “이프린 씨! 무슨 일이에요? 괜찮으세요? ”  “또, 또! 또 하려고! 오지마!”  “······네?”  이프린이 다가오려는 알렌을 제지했다. 알렌은 상처받은 얼굴로 우뚝 굳었고, 어떤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여기는 꿈이 아니다.”  “······?”  이프린은 그쪽을 보았다. 
 수석교수 데큘레인, 그가 책을 읽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이프린. 세이렌이라는 전설을 들어본 적 있나.”  “아, 네. 있어요.”  “바다의 마력은 사람을 끌어들인다. 그 매개는 꿈과 환상이지. 꿈과 환상에서 조금 더 실체를 가진 존재가 ‘귀신’이고. 우리가 가는 섬은 그 현상이 극대화된 마법적 공간이다. 그러니, 그 섬에 가까워질수록 이 현상은 심해질 것이다.”  “······.”  “너는 귀신에게 잡혔다 풀려난 것이다.”  이프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방금 귀신에게 붙잡혔던 손목을 보았다. 
선명한 손자국이 있었다. 
 “허, 저 이거······”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현실의 증거이니.”  “······네?”  이프린이 데큘레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놈들은 나를 흉내낼 수 없다. 네 세상에 내가 없다면, 꿈이라 생각해라. 
내가 존재하는 그곳이 현실인 것이다.”  “오호라~ 과연 멋지십니다. 데큘레인 교수님!”  멀지 않은 소파에서 와인을 즐기던 이헬름이 박수를 쳤다. 데큘레인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네, 네. 그렇게 생각할게요.”  부끄럽게 대답한 이프린은 괜히 창밖을 보았다. 
 바다는 어두웠고, 비바람이 몰아쳤으며, 거친 파도가 배를 두드렸다. 
 콰르르르릉—! 
 부르짖는 듯한 벼락. 그 안에 웬 해골같은 형상이 번쩍였다. 이프린은 화들짝 놀랐지만, 이 낙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돌연히 떠오른 어떤 기억의 파동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세상에 교수님은 없어. 
 무의식의 한 켠에 희미하게 남았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는 마렴. 
 미래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전한 말. 
 이프린은 황급히 데큘레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네 세상에는 교수님이 오랫동안 계시도록 부탁할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데큘레인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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