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a 9

정판호가 뒤로 밀려났다.
초월급 데스 나이트의 공격이 강한 것도 있지만, 제자들을 덮친 데스 나이트 중 몇몇이 정판호를 공격한 것이다. 초월급 데스 나이트 하나만을 상대해도 위험한 상황. 그런데 사방에서 다른 데스 나이트의 공격도 쇄도하자 그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빠르게 방어 초식을 펼치면서 그들의 공격은 막아냈으나, 그 끝에는 초월급 데스 나이트의 공격이 있었다.
퍼엉-
쾅!
정판호가 폐허 건물에 처박혔다.
곧바로 달려드는 초월급 데스 나이트.
정판호는 충격에 신음할 새도 없이, 입안 가득 차오른 핏물을 뱉어내며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퉷. 이런 개 같은 새끼가.”
후퇴?
그딴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
정판호는 후발대가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초월급 데스 나이트를 쓰러트리는 것만이 정답임을 알았다.
카앙!
격돌하는 두 존재.
정판호가 피로 얼룩진 입으로 발악하듯 소리쳤다.
“강민혁! 내가 초월급 데스 나이트와 둘만 싸울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
위기의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정판수가 아니었다.
강민혁.
그라면 정답을 찾으리라.
“어서!”
악에 받쳐 마지막 말을 내뱉은 정판호가, 이만 ‘주변’에 대한 신경을 끄고 초월급 데스 나이트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강민혁의 상황도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데스 나이트 무리와 후발대가 격돌하는 순간, 강민혁의 마나도 강력한 화력을 뿜어냈다.
“폭발."
콰앙!
콰콰콰쾅!
등급 외 마법.
그 강력한 충격에 데스 나이트들이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다. 데스 나이트의 숫자가 워낙 많았고, 폭발은 A급 몬스터에게 먹히는 기술이나 그렇다고 압살(壓殺)시키는 파괴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폭발의 피해를 받은 데스 나이트는 일부분. 수호문의 제자들과 데스 나이트들이 뒤얽히는 모습에 후속타를 준비하려는 그때, 정판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민혁! 내가 초월급 데스 나이트와 둘만 싸울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판호가 있는 곳을 확인하자, 그가 머릿수에 밀리는 모습이 보였다.
‘위험해.’
이번 싸움.
강민혁을 비롯한 후발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판호가 초월급 데스 나이트를 쓰러트려야만 한다. 자신의 마법?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서클의 위력을 보여주는 등급 외 마법을 수십 발 사용한다 할지라도, 초월급 데스 나이트는 아무런 충격이 없을 터. 지금은 정판호의 힘이 필요하다. 이 공간에서 그만이, 초월급 데스 나이트를 쓰러트릴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전장의 상황이 눈 속으로 빨려 들어오며, 빠르게 해답을 찾았다.
“정판수!”
강민혁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정판수가 데스 나이트를 뿌리치며 자신을 확인하는 모습에,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지금 당장 장로님 곁에서 일반 데스 나이트를 떨어트려! 당장!”
“씨발.”
정판수가 이를 악물었다.
강민혁.
정말 싫다.
하지만 그 또한 정판호와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목숨이 걸린 위기의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강민혁의 이름은 강한 신뢰를 부여했다.
지난 세월.
강민혁은 질투와는 별개로 믿음직한 후계자였다.
“알겠어.”
파박.
정판수가 몸을 날렸다.
그의 검에서 타오르는 오라.
마침 정판호를 공격하고 있던 데스 나이트들을 향해, 정판수가 그대로 몸을 날려 검을 내리찍었다.
“죽어, 이 개새끼들아!”
캉!
카카캉!
데스 나이트들은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았다. 정판수의 공격을 막기 위해 검을 회수했고, 정판호를 공격하던 데스 나이트들이 모두 정판수를 상대했다. 일 대 다수의 대결. 정판수가 악에 받쳐서 그들을 몰아붙였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 강민혁의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였다.
분뇌의 능력으로 ‘하나의 마법’에 집중한 강민혁이, 정판호와 정판수가 떨어지는 순간 마법을 사용했다.
“태산(泰山).”
쿠웅.
쿠르르르르릉.
땅이 뒤흔들렸다.
바닥이 치솟으며, 주변의 지형지물이 변했다.
지진과는 다른 마법.
태산은 주변의 지형지물을, 마법사가 원하는 형태로 변형시킨다.
‘둘을 위한 무대를 만든다.’
쿠쿠쿠쿵.
정판호와 초월급 데스 나이트.
그들이 위치한 땅이 높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다른 데스 나이트들은 더 이상 정판호를 공격하지 못했다. 둘이 싸우는 무대는 육체적인 능력으로 개입하기에는 너무 높았고, 정판호는 온전히 초월급 데스 나이트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무대는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득달같이 밀려드는 데스 나이트들의 모습에, 강민혁은 곧바로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유성우.”
휘이잉.
콰콰콰콰쾅!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들.
그 강력한 충격이 데스 나이트들을 휩쓸었다.
강민혁은 서클을 활짝 열었다.
쉴 새 없이 회전하는 서클이 마법을 끊임없이 토해냈지만, 상황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정판호.
그가 빠짐으로써 화력이 부족했다.
A급 데스 나이트 수십 마리를 상대로도 밀려나지 않은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마냥 희망적이지는 않다. 시간은 후발대의 편이라고 할 수 없다. 혹시라도 정판호가 초월급 데스 나이트에게 패배한다면, 후발대는 그대로 전멸을 당한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지상의 데스 나이트들을 정리하고, 고군분투하고 있을 정판호를 도와야만 한다.
강민혁이 머리를 쥐어 짜냈다.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법이라는 변수의 힘이 간절했다.
‘마법은 한계가 있어.’
마나.
그것이 바닥을 드러내면 끝이다.
그러니 효율적으로, 최대한 강한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분뇌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마법의 캐스팅도 포기하고, 양쪽의 두뇌가 현재 상황에 걸맞은 최상의 해결책으로 찾으려고 했다. 그러다 머릿속에서 이상한 이질감을 발견했다. 전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이질감.
강민혁이 그것을 건드린 순간.
화악-
'.........?!'
정신의 확장.
강민혁이 눈을 부릅떴다.
세상이 새하얗게 변했고, 주변의 소음이 단번에 사라졌다.
그리고.
“네가 ‘기억의 편린(片織)’을 건드렸다는 것은 힘이 간절하다는 의미겠지.”
클리스만.
그가 눈앞에 나타났다.
빙의.
강민혁의 정신이 클리스만의 몸에 빙의했을 때, 클리스만의 정신은 어디에 있었을까?
본인의 몸?
그렇다면 강민혁의 몸은?
영혼이 없는 몸은 죽어갈 수밖에 없다.
만약 강민혁의 몸이 영혼 없이 존재하고 있었다면, 그 후유증은 어떤 방식으로든 남았어야 한다.
그 말인즉.
“네가 나의 몸에 빙의하고 있을 때, 나 또한 너의 몸에 머물고 있었다.”
클리스만이 말했다.
의식 속의 존재.
거울에서만 보았던 클리스만을 직접 마주한다는 것은, 강민혁으로서는 너무나도 낯선 경험이었다.
“하지만 난 강민혁으로서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설명할 시간이 없다. 내가 인과율(因果律)의 법칙이 허락하는 한에서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강민혁이라는 인간을 직접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너의 몸에 특별한 문양을 남기는 것. 나는 그것에 성공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인과율의 법칙이라니.
그렇다면 그간 강민혁이 해온 일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클리스만이 강민혁으로서 침묵했던 것과는 다르게, 강민혁은 클리스만으로서 많은 일을 했다.
그건 강민혁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만약 클리스만이 강민혁에게 미리 경고했더라면, 강민혁은 허름한 숙소 안에서 절대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클리스만은 그 어떠한 방식으로도 경고하지 않았다. 클리스만으로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했고, 자연스럽게 사건 사고가 따라왔다. 그에 대한 문책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인과율의 법칙을 생각하지 않았고, 이걸 단순히 육체와의 빙의라고만 생각했었다.
차원을 넘나드는 빙의.
그것의 이면에는 조금 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클리스만은 그것에 대해 해명할 이유도, 해명할 의지도 없었다.
“궁금한 게 많겠지.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 몸은, 이미 인과율의 법칙에서 자유로운 상태니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클리스만의 모습은 기억에 남겨져 있는 편린. 그것은 클리스만이 강민혁의 의식에 심어놓은 ‘기억’일 뿐이다. 머릿속에 저장되어있는 영상을 재생시킨 것과 같은 이치기에, 궁금증을 해소할 방법은 없었다.
클리스만의 몸이 흐릿해졌다.
사라지기 직전, 그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는 내가 성공한 기술을 초월 각인(起越刻印)이라 부르기로 했다.”
화악-
공간이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엄청난 현기증이 머리를 어지럽히더니, 강민혁은 눈을 뜨며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현실을 직시했다.
“허억, 허억.”
숨이 차올랐다.
옆에 있던 정민철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괜찮으세요?”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손등으로부터 찌르르 올라오는 전율.
강민혁이 손등을 확인하자, 그곳에는 난생 처음 보는 형태의 마법진이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강민혁은 그것의 정체를 알았다.
자신의 기억이, 아니 클리스만의 기억이 말해주었다.
‘7서클 마법 파이어 스톰(Fire Storm).'
초월 각인.
클리스만은, 상상 속의 지식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73화. < 20. 정판수와 정판호(2) >
처음 각인 마법이 개발되었을 때, 마법 문명의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만약 5서클 마법사에게 7서클 마법을 각인하면, 5서클 마법사는 각인의 힘을 빌려 7서클 마법을 발현시킬 수 있지 않을까?”
문명의 발전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다.
각인이란 마법에 필요한 과정을 마법진이 모두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렇게 마법 실험이 진행되었다. 7서클에 오르길 강하게 희망하는 마법사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하였고, 국가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는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그 결과.
[지원자 전원 사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7서클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서클이 파괴되었고, 역류(逆流) 현상으로 인해 마법사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고 말았다. 애초에 7서클 각인을 받아들인 마법사도 몇 없었다. 어떤 마법사들은 각인 도중에 불타오르는 등의 사고가 벌어지면서, 사람들은 초월 각인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에 이르러서 금단의 기술이라 불리는 영역.
클리스만은 그 영역에 발을 들였다.
강민혁의 육체에 각인시킨 ‘초월 각인’은 실패를 반복했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안전한 형태였다.
다만.
‘초월 각인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상위 서클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과 단단한 서클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너는 그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클리스만의 기억.
그 잔재가 강민혁에게 확신을 주었다.
서걱!
“크아아악!”
수호문의 제자가 비명을 질렀다. 데스 나이트의 공격에 팔이 잘려나간 것이다. 검을 쥐고 있던 팔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로서는 데스 나이트를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희망을 잃어버린 눈빛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데스 나이트를 바라보는 그때, 강력한 화염이 일어나며 데스 나이트에게 작렬했다.
“룬 플레어.”
펑!
화르르르륵.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수호문의 제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미 전의를 잃어버린 그의 모습에, 강민혁은 상황을 반전시킬 강력한 한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초월 각인.’
화악.
마나가 빛을 발했다.
손등에서 타고 올라오는 빛이 강민혁의 서클로 흡수되었고,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그건 강민혁이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회전수 였다. 7개의 서클로 감당해야 하는 회전이 4개의 서클에 부과되자, 강민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핏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당장에라도 피를 토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끄으윽.”
이를 악물었다.
악다문 입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왔다.
보통 사람은 버틸 수 없는 압력.
머리가 팽팽 돌았다.
7서클의 지식이, 정신력을 빠르게 갉아먹었다.
그러나 시련의 공간을 이겨낸 강민혁은, 핏빛으로 물든 눈빛으로 악착같이 초월의 압력을 버터냈다.
그러자.
확-
마나가 퍼졌다.
강민혁의 서클이 개방되며, 방대한 양의 마나가 화염의 속성으로 변했다.
“파이어 스톰.”
쿵.
쿠르르르르릉.
화르륵, 화르르르르르륵!
먹구름이 일었다.
바람이 휘몰아쳤고, 폭풍의 끄트머리에 화염이 일었다. 강력하게 일어나는 화염의 폭풍! 그것이 그대로 데스 나이트들을 덮쳤다. 7서클 마법의 위력은 A급의 데스 나이트조차 버틸 수 없었다. 화염의 폭풍에 빨려 들어간 데스 나이트들은 그대로 잿더미로 변했고, 주변에 있는 데스 나이트들조차 충격을 받았다. 어둠의 마력으로 구성된 그들의 피부가, 타닥타닥 타들어 갔다.
자연의 재앙.
엄청난 위력이었다.
파이어 스톰이 한차례 휩쓸고 가자, 데스 나이트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 이게 대체.”
“파이어 스톰이라고?”
수호문 제자들의 시선이 강민혁을 향했다.
그들은 경악했다.
파이어 스톰이라니.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마법이 뿜어내는 엄청난 위력에, 그들은 이게 현실인지를 의심했다.
상식이 무너져 내렸다.
마법은 분명히 그 한계가 있는데, 강민혁의 마법은 한계라는 단어를 넘어서는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잠깐의 소강상태.
바닥에 쓰러진 강민혁이, 목소리를 쥐어짜며 외쳤다.
“정신 차려! 아직 끝나지 않았어.”
[크아아아악!]
[...죽인다, 모조리 죽인다!]
불길이 사그라진 자리.
마지막 남은 데스 나이트들이, 불길을 뚫고 튀어나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역한 기운은 이제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웩.”
후두둑.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냈다.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눈에 훤히 보였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데스 나이트.
고개를 들어 간신히 그들의 상황을 확인하자, 수호문의 제자들과 한데 얽혀있는 모습이 보였다.
“죽어!”
퍽!
[크르르르륵.]
그야말로 혈전(血戰)이었다.
몸이 성치 않은 수호문의 제자들이, 발악하며 데스 나이트들을 상대했다. 이미 그들은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암흑 도시에 진입한 이후 수차례 전투를 벌였고, 공간 분리를 당하고서 연속적으로 데스 나이트를 상대했다. 중간에 휴식 시간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하루 안에 벌어진 상황에 그들은 정신과 육체적인 피로가 대단했다.
그런데도 아직 사망자가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뛰어난 실력도 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수호문의 정신이 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크아아아악!”
빠직!
데스 나이트 무리의 중심.
정판수가 상처 입은 맹수처럼 날뛰었다.
정판호가 없는 자리에는 그가 있었다.
수호 검법을 사용하며 적절하게 데스 나이트들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다. 어렸을 때의 정판수는 나약했다. 친구를 버리고 몬스터에게 등을 보였던 그는, 수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는 어엿한 전사가 되었다.
‘도와줘야 해.’
빠득.
이를 악물었다.
입은 바짝 말랐고, 서클에서는 허한 기운이 맴돌았다.
마나가 없었다.
등급 외 마법을 많이 사용하기도 했지만, 7서클 마법 한 방에 모든 마나를 사용하고 말았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검이라도 든다면 어떻게 싸워보겠지만, A급 데스 나이트에게는 자신의 검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민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데스 나이트는 검을 포기하게 만든 계기. 그에게 통하는 검을 쥐고 있었다면, 애초에 강민혁은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마법사로서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해.’
새로운 길.
자신은 마법사다.
강민혁은 역한 기운을 참아내며, 김성호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심법으로 마나를 회복하겠습니다. 그러니 바로 곁에서 절 지켜주세요.”
“알겠어요.”
김성호 일행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방패를 몸에 바짝 붙이며 강민혁의 곁을 지켰다.
곧바로 심법에 들어가는 강민혁.
그런데 문득,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잠깐.’
심법.
정신의 힘.
만약 하나의 두뇌로 마나를 받아들이고, 다른 두뇌로 그 마나를 곧바로 마법으로 발현시키면 어떻게 될까.
그건 가능성이다.
마나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시도라도 해볼 만한 가능성.
‘분뇌.’
강민혁의 생각이 나누어졌다.
그리고 사용되는 심법.
주변의 마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월하 심법의 강력한 흡입력(吸入刀)이 자연에 떠돌아다니는 마나를 남김없이 빨아들였고, 강민혁은 또 다른 두뇌로 그것을 곧바로 마법으로 발현시켰다. 그건 독특한 종류의 방식이었다. 마나를 서클에 쌓는 것이 아니라, 서클에 한번 회전시키고 곧바로 마법으로 발현시켰다.
강민혁의 마나는 조금도 없었다.
자연으로 배출되는 마나를 강제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그로 인해 내부에서 충격이 일었고 마나도 제멋대로 날뛰었으나, 강민혁은 마나를 강압적으로 억누르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러자.
“폭발."
콰앙!
콰콰콰쾅!
도박은 성공했다.
결과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캐스팅 시간은 길었고, 마법의 위력도 생각보다 약했으며, 마법의 충격으로 속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강민혁은 마법을 중단할 수 없었다. 자신의 마법은 수호문 제자들의 희망이다. 지금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만 한다.
분뇌.
머리가 한계치의 능력을 끌어올렸다.
한쪽은 심법, 한쪽은 마법.
본인의 마나를 사용할 때보다는 효율적인 방식이 아니나, 강민혁의 마법이 큰 도움이 되었다.
퍽!
서걱!
데스 나이트들이 쓰러졌다.
마법에 충격을 받은 그들은, 수호문 제자들이 휘두른 검을 버티지 못했다.
그리고 화룡점정.
정판수의 검에서 오라가 활활 타올랐다.
이번 전투로 한 단계 발전한 그의 검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데스 나이트들의 목을 베었다.
“다 죽어!”
서걱!
머리가 날아가는 데스 나이트.
강민혁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데스 나이트의 모습에, 강민혁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끝났어.’
다행이었다.
결국 살아남았다.
이제는 마지막.
정판호와 초월급 데스 나이트가 남았다는 것을 떠올리는 순간, 위에서 절망에 물든 목소리가 들렸다.
“판수야아아아아!”
‘..?!’
고개를 들었다.
암흑의 검격.
그것이, 데스 나이트의 목을 베고 있던 정판수의 몸에 그대로 꽂혔다.
콰앙!
쿠르르르르르르릉.
엄청난 폭발.
자욱하게 일어나는 어둠의 마나가 가라앉자, 혈인(血人)이 되어버린 정판수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정판호.
그는 대단한 무인이었다.
기어코 혼자서 초월급 데스나이트를 제압했지만, 그는 죽기 직전에 마지막 수를 사용했다.
[...선택하라, 인간이여.]
암흑의 검격.
초월급 데스 나이트의 공격이 정판수를 향했다. 오라 웨이브 형태의 원거리 공격이 정판수를 노림과 동시에, 초월급 데스 나이트는 육체의 재생을 시작했다. 마나를 소비하여 몸을 회복하는 기술. 양자택일(兩者擇一)을 강요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정판호는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렸다.
‘데스 나이트를 처리한다.’
서걱!
퍽!
머리가 날아갔다.
이로 인한 대가는 안다.
자신이 곧바로 암흑의 검격을 막지 않는다면, 정판수가 그 공격에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렇다고 초월급 데스 나이트를 마무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만약 그를 처리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면, 그로 인해 수호문의 제자들은 모두 전멸을 당할 것이다.
지독히도 현실적인 선택.
정판호는 초월급 데스 나이트를 처리하자마자, 곧바로 정판수에게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해피 엔딩이란, 현실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다.
콰앙!
쿠르르르르르르릉!
정판수가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널브러진 그의 모습에, 정판호가 실성한 사람처럼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아, 안돼.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다, 판수야!”
그의 눈동자가 길을 잃었다.
정판수는 그야말로 넝마가 되어버렸다.
어디를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판수의 상태는 정말 최악이었다.
덜덜덜.
정판호의 손이 떨렸다.
눈에서는 물기가 차올랐다.
그는 황급히 품에서 비상용 포션을 꺼냈고, 눈을 뜨지도 못하는 정판수의 입에 억지로 흘려보냈다.
“제발, 제발 죽지 마라.”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포션을 제대로 삼키지도 못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정판호의 무너져내리는 가슴을 대변했다.
“아, 아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익숙한 상황.
익숙한 구도.
정판호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애타게 불러도 반응하지 않는 정판수의 모습에, 그는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장로님.”
탁.
강민혁이였다.
이미 탈진 상태에 빠져버린 강민혁이, 힘든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정판호의 손을 잡았다.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포기를 강요하는 것 같은 행동에 정판호가 분노를 토해내려는 순간, 강민혁이 힘겹게 말했다.
“제가, 제가 치료해보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네가 치료한다고?”
“예."
정판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치료라니.
이걸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
정판호와 강민혁.
둘은 앙숙의 관계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한다.
그런데 수호문의 호랑이라 불리는 정판호가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을 하더니, 강민혁의 손을 움켜쥐었다.
“제발, 제발 부탁한다. 무엇이든 해다오.”
간절한 음성.
강민혁은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정판수를 내려다보았다.
‘살려내야 한다.’
강민혁은 정판수가 싫다.
자신을 시기 질투하고, 틈만 보이면 깎아내리려는 그가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개인의 감정을 떠나 그는 동료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싸웠던 정판수라는 용감한 전사가, 이렇게 떠나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다.
사라락.
기억에 저장된 책장이 빠르게 넘겨졌다.
극도로 활성화된 두뇌 능력.
그것은 예전에 왕실 마법 아카데미 ‘마법 도서관’에서 보았던, 하나의 책에서 정확히 멈추었다.
[의료 마법]
지금은 막연한 기적이 아니라, 정확한 해결책이 필요한 때였다.
74화. < 20. 정판수와 정판호(3) >
강화 문명에서 처음 마법이 개발되었을 때, 사람들은 게임 판타지 소설처럼 마법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마법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지식을 요구했고, 그중에서도 ‘육체의 회복’은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마나로 육체를 회복하는 행위.
말로는 간단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걸 어떻게 구현하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마법 문명은 회복 마법 개발에 성공했고, 나아가 의료 마법이라는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냈어.’
의료 마법.
머릿속의 기억이 선명하게 살아났다.
[...회복 마법의 초창기 모델인 힐(heal)은 상당히 문제점이 많은 마법이었다. 낮은 서클로도 상처 부위를 회복할 수 있는 대신에, 부상자 체내에 있는 마나로 회복하는 과정에서 생명력(生命刀)도 같이 소모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래서 마법의 힘으로 육체를 회복한 사람의 경우에는 수명이 대폭 하락했다. 수명을 대가로 현재의 육체를 회복하는 행위. 그것이 의료 마법의 시작이었다.]
마법은 발전했다.
초창기만 해도 힐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마법이었으나, 마법 문명의 마법사들은 항상 정답을 찾아냈다.
[최종 형태의 ‘힐’은 4서클 이상 마법사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간단한 기술이 아니라, 상당한 컨트롤과 마나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가 필요한 영역. 의료 마법의 탄생은 인간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했다.]
정말 다행히도 강민혁은 의료 마법의 조건에 부합했다.
힐.
강민혁은 심법을 활용해서 자연의 마나를 끌어 올리더니, 정판수의 상처 부위에 마나를 스며들게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오로지 ‘자연의 마나’로만 회복하는 것이다. 초창기 모델은 매우 간단하게 재생력을 끌어올릴 수 있으나, 생명력을 깎고 회복 효과는 대단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그에 반해 강민혁이 사용하는 회복 마법은 리스크가 없고, 그 효과도 크다.
물론 간단하게 사용하는 회복 마법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중상자를 치료할 때는, 고난이도의 회복 마법이 필요하다.
‘리커버리(recovery)를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건 6서클의 영역.
아쉬운 대로, 강민혁은 아주 조심스럽게 마나를 움직였다.
‘의료 마법의 탄생은 현대 의학과 접목하면서부터 시작되었어. 새로운 체계로 회복 마법의 리스크를 떨어트리고, 현대 의학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의료 마법인 거지.’
화아악-
손에서 초록빛이 일었다.
자연의 마나가 움직일 때마다 빠르게 출혈 부위가 지혈되었고, 당장에 조치가 필요한 부위는 자연의 마나를 강하게 부여해서 생명력을 일으켰다. 필요한 만큼의 생명력을 사용하는 것. 그게 바로 의료 마법의 핵심이다. 무분별한 생명력 남발은 수명을 깎아내리지만, 적당한 양은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 있다. 강민혁은 아주 조심스럽게, 머릿속의 기억을 토대로 회복을 진행했다.
“후우.”
이마에 땀이 맺혔다.
사실 강민혁은 이미 몸 상태가 한계에 달했다.
머리는 현기증으로 어지러웠고, 바짝 마른 입은 마실 것을 간절하게 바랐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던 정판호의 눈빛을 생각하니, 강민혁은 희망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계속되는 치료.
그것은 기적이었다.
회복 마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강민혁의 행위는 그야말로 기적처럼 보였다.
‘넌 대체...
정판호.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법으로 몸을 회복시킨다?
그런 마법이 있다는 사실은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다.
강화 전사들이 단전의 마나를 소모해서 외상과 내상을 치료하는 경우는 많지만, 마법사들의 마법은 대부분 공격을 위해 사용되었다. 회복 마법은 미지의 영역. 그런데 그것이 강민혁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정판수의 몸은 분명히 회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점차 얼굴색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희망이 보였다.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배운 걸까? 아니야, 그건 불가능해. 애초에 회복 마법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문득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강민혁.
그가 마법 학술 대회에 나가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
남들은 상상만 하던 미지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말에, 정판호는 당시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래 봤자 마법이잖아.”
그때 했던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는, 강민혁의 모습이 마치 거인처럼 보였다.
‘만약 회복 마법을 네가 직접 개발한 것이라면..........'
마법사.
그들의 영역이 확장된다.
원거리 지원도 가능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부상도 치료할 수 있다.
혁명이다.
마법사의 개념이 새로 잡힐 것이다.
‘넌 지금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고 있는 거야. 기존의 체계를 완전히 바꿀, 전혀 다른 마법 문명을.’
17년.
강민혁을 지켜본 세월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도 강민혁의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정판호였다.
치료가 끝났다.
무려 1시간 동안이나 집중한 탓에 완전히 녹초가 되었지만, 강민혁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정판호.
그가,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급한 부위는 해결했어요. 문제는 상처가 너무 심해서 한 번에 전부 치료할 수는 없고, 판수의 생명력을 고려해서 여러 번 나눠서 회복을 진행시켜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재 판수의 몸 상태로는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해요. 다른 제자들도 피로도가 한계에 달했으니, 일단 여기서 진지를 구축하고 휴식을 취하는 게 어때요?”
“그렇게 하지.”
덥석.
정판호가 강민혁의 손을 잡았다.
강민혁을 그리도 배척하던 그가, 지금은 강민혁을 생명의 은인으로 대했다.
“정말 고맙다. 내가 너에게 그리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잘 안다. 그간의 일은 진심으로 사죄하마. 나 정판호는, 앞으로 너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평생을 노력할 것이다.”
“아니에요.”
사람의 관계란 참으로 묘하다.
평소에는 앙숙처럼 생각하던 둘의 관계가, 단 하나의 사건으로 악감정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진지 구축은 내가 맡겠다. 쉬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정판호가 자리를 떠났다.
이곳은 던전이다.
언제 또 다른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감정에 취해 있을 여유는 없었다. 다시 호랑이 정판호로 돌아온 그는 빠르게 바리게이트를 설치하였다. 그 또한 힘든 사정은 다르지 않을 텐데, 정판호는 위기의 상황에서 리더가 취해야 하는 태도를 정확하게 알았다. 피곤하더라도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의연하고 굳건해야만 밑에 있는 사람이 흔들리지 않는다.
강민혁은 쉬지 못했다.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아직 치료해야 할 제자들이 제법 있었다.
그만큼 어려운 싸움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정판수 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서, 간단한 방법으로도 치료할 수 있었다.
“힐."
화아악.
초록빛으로 일어나는 마나.
2서클 마법사도 사용할 수 있는 힐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었다. 효과는 극적이지 않으나, 그래도 즉발 형태로 간단하게 회복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부상자들을 모두 챙기고서야 강민혁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텅텅 비어버린 서클에, 벽에 기대앉은 강민혁은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정신없는 하루네.’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힘도 얻었다.
초월 각인.
마법 문명에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기술을, 클리스만은 개발하는 것에 성공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그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클리스만은 마법 문명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었다.
‘초월 각인을 자주 사용할 수는 없겠어. 리스크가 너무 커.’
3서클을 뛰어넘는 힘.
그 대가는 컸다.
마나 소모량이 지나칠 정도로 많았고, 정신력도 한계에 도달했다. 초월 각인을 사용한 이후부터는 사실상 강민혁은 탈진 상태에서 정신력만으로 버텼다. 그리고 7서클 마법의 위력도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A급 데스 나이트를 처리할 정도의 위력임은 분명했으나,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직접 7서클 마법을 목격한 강민혁으로서는 위력이 조금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 서클의 한계 때문인 거겠지.’
각인을 통해 초월한 힘을 사용할 수 있었으나, 4개의 서클로 뿜어낼 수 있는 출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초월 각인에 내장된 마법은 최상급일 터. 난 그 일부의 힘만을 사용한 거야.’
그래도 좋은 무기를 얻은 것임에는 분명하다.
초월 각인을 확인해본 결과 쿨타임이 무려 한 달에 달했지만, 7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쿨타임의 경우에는, 서클이 상승할수록 줄어들 것이다.
눈이 감겼다.
아직 생각을 정리할 게 많았지만, 눈꺼풀이 감기는 것을 도무지 막을 수 없었다.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일까.
강민혁의 눈이 그대로 감겼다.
정말,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잠을 오래 자지는 못했다.
주변에 도사라는 위험.
그건 잠을 자는 도중에도 강민혁의 신경을 예민하게 건드렸다.
그래도 몇 시간 잤기 때문일까.
나름 상태가 괜찮아진 강민혁은, 바리게이트 뒤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정판호에게 다가갔다.
“아직도 경계를 서고 계십니까?”
잠들기 직전.
정판호는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경계를 서고 있는 것을 보면, 그동안 정판호는 조금도 쉬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애들이 많이 힘들어하니까.”
짧은 대답.
그러나 그의 마음이 보였다.
정판호는 호랑이였다.
본인이 힘들어도, 크게 내색하지 않고 피곤함과 싸우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경계를 맡기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다. 혹시라도 초월급 데스 나이트가 부활해서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그는 제자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혼자 경계를 맡았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A급 이상의 몬스터들은 부활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불행 중 다행이지.”
후발대로서는 희소식이었다 .
가장 불안했던 부분이 몬스터의 부활이었다.
처음에 그로 인해서 상당히 애를 먹었기에, A급 몬스터가 부활했다면 사실상 후발대는 그대로 전멸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크 리치의 권능에도 한계가 있었고, 그로서도 A급 몬스터를 부활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덕분에 후발대는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 근방에 있는 몬스터들은 모두 처리해버린 상태이니 말이다.
강민혁이 정판호의 옆에 앉았다.
가만히 어둠으로 내려앉은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정판호가 말했다.
“판수는 내 아들이지만 참 모자란 녀석이야. 질투심이 많아서, 친구라 할지라도 자기보다 뛰어난 녀석이 있으면 참질 못하지. 그래서 널 싫어했을 거다. 그리고 그런 판수를 위해서라도, 나는 널 싫어할 수밖에 없었고. 너라는 사람은 인정하지만, 난 내 아들이 더 중요했다.”
".........."
몰랐던 사실이다.
정판호가 강민혁을 배척했던 이유.
그 시작은 정판수로부터 비롯되었다.
아들을 키우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정판호에게 정판수는 너무나도 소중했다.
“나는 강해지기 위해서 한평생을 수호문에 바쳤다. 내 아내는 그런 내가 괴물 같다면서 10년 전에 집을 나가버렸지. 이해해. 나는 남편으로서는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판수가 내게는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게 남은 유일한 혈육(血肉)이자,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자식이니까.”
씁쓸하게 웃었다.
사람들은 모른다.
강덕철과 정판호의 시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는 지금, 정판호의 이야기는 옛날 일이 되었다.
그래서 굳이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티 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동생이 하나 있었다.”
동생.
정판수를 아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이면에는, 부자 관계를 넘어서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리고, 내 동생의 이름이 바로 정판수였다.”
정판수.
그 이름은 아픈 기억을 건드렸다.
75화. < 20. 정판수와 정판호(4) >
그날의 사건은 재앙이었다.
에픽급 몬스터 뱀파이어 로드(Vampire Lord).
거대한 피막의 날개를 펄럭이는 그 괴물은, 강화 전사를 처리할 때마다 상대의 피를 흡수해서 강해졌다.
그때.
그들을 막아섰던 사람들이 바로 수호문이었다.
쾅!
콰르르르르릉.
“빌어먹을!”
“너무 강해!”
뱀파이의 로드가 발현한 피의 폭풍에, 수호문의 제자들이 일제히 휩쓸렸다.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노련한 강화 전사들도 이번만큼은 절망적인 기색을 보였다. 대체 저 괴물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뱀파이어 로드가 소환된 곳은 수호문 인근.
그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수호문과 그 식솔들이 뱀파이어 로드에게 몰살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덕철.
당시 그는 젊은 문주였고, 그의 곁에는 과거 수호문의 영광을 이루었던 정판호와 같은 신성들이 있었다. 결국 그들이 나서야만 했다. 일반 제자들에게 뱀파이어 로드의 발을 묶으라는 것은 자살하라는 것과 같기에, 강덕철은 뒤로 숨는 것이 아니라 검을 쥐고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10분. 딱 10분만 버티자. 그 안에는 지원 병력이 도착한다.”
“씨발, 오늘이 내 제삿날이구나.”
정판호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정판호는 희생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검 밖에 없었고, 강덕철이라는 사람이 좋았기에 그냥 따랐을 뿐이다. 그리고 동생인 정판수의 영향도 있었다. 상당히 불만이 가득한 정판호의 모습에, 정판수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뒈져도 형이 뒈지진 않을 거야. 형수가 곧 애를 낳을 텐데, 형이 죽으면 내가 어떻게 그 얼굴을 봐?”
그리고 전투가 벌어졌다.
치열한 혈전이었다.
수호문의 제자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갔고, 강덕철을 비롯한 수호문의 핵심 자원들은 목숨을 던졌다.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죽음의 대상이 정판수가 되었을 때, 정판호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아아.”
바닥에 쓰러지는 정판수.
그가 숨을 헐떡였다.
그 구도.
그 모습.
그때의 기억이 정판호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았다.
뒤늦게 도착한 다른 세력들의 도움으로 결국 뱀파이어 로드를 물리칠 수 있었지만, 정판수를 살릴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수호문에서 남자다운 것으로 유명했던 정판호가, 그날은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어댔다. 강덕철에게 정판수를 살려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주변의 사물을 모두 부수면서 정판수를 돌려놓으라고 하늘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나 죽음은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동생은 죽었다.
그것도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겠다고, 나름 한발 앞서서 싸운 것이 그의 사인(死因)이었다.
“미안하다, 판수야. 내가 더 앞에서 싸웠더라면, 내가 저 빌어먹을 괴물보다 강했더라면 네가 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 정말 미안하다. 정말, 정말 미안하다.”
오열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그때부터 한동안 폐인처럼 지냈다.
그런 그를 다시 ‘사람’으로서 살게 해준 것은, 시끄럽게도 울어대는 작은 생명체의 탄생 때문이었다.
“당신 아들이에요.”
지금은 떠나간 아내.
그녀가 힘겹게 아이를 건넸다.
어릴 때부터 우량아로 태어났던 아들은,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목청이 찢어져라 울어대고 있었다.
그 순간.
정판호는 삶의 이유가 생겼다.
“판수, 네 이름은 지금부터 정판수다.”
하나뿐인 아들.
정판수는 그렇게 자라났다.
가만히 얘기를 들어주었다.
이제야 정판호 부자에 관련된 의문이 풀렸다.
‘그래서 같은 항렬(行列)이 아닌데도 같은 돌림자를 썼던 거구나.’
정판호.
정판수.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왜 형제의 이름을 쓰느냐고 물었다.
수호문 내부에서 아는 사람들은 아는 얘기였지만, 모르는 이들이 물을 때면 정판호는 아픈 기억을 말하는 대신 아들을 정말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는 두리뭉실한 대답으로 상황을 넘겼다.
정판수는 그렇게 컸다.
정판호는 아들에게서 동생을 투영했고, 아들이 엇나가는 모습을 알면서도 질책할 수가 없었다.
다만, 동료를 버리는 행위는 용납하지 못했다.
아무리 현실적인 판단으로 버린 것이라 할지라도, 그 버려진 사람에게는 가족이 있을 테니까.
정판호가 말했다.
"내게는 판수가 삶의 희망이었다. 그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진즉에 죽어버렸겠지. 하지만 난 내 아픔을 그리 티 내고 싶지 않았다. 현재 수호문을 이루고 있는 세대는 모두 각자만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렇고, 문주님도 똑같지. 아니, 몬스터로 인해 지옥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참, 빌어먹을 세상이거든.”
씁쓸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말할 생각이 없었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런데 아들이 똑같은 일을 겪고 나자, 오늘만큼은 수호문의 호랑이가 감성에 젖어 들고 말았다.
“아버지를 너무 원망하지 마라.”
".........."
“네 아버지 또한 나와 같은 아픔을 겪으신 분이다. 누군가를 잃었고, 그렇기 때문에 삶의 가치를 힘에 두었던 거지. 그게 네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이었다는 사실은 알지만, 이 세상에서 힘이 없다면 그보다 더한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아버지와 선을 그었음에도, 수호문과의 관계를 끊어내지는 못했다.
수호문.
자신에게는 가혹했고, 너무나도 힘든 어린 시절로 기억되는 곳. 하지만 수호문이라는 이름이 대한민국에서는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영웅들. 길거리에 나가면 일반인들이 수호문의 제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고, 어떤 이들은 고마운 마음에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가지고 있는 전부를 내주었다. 수호문과 같이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강덕철이 추구하는 힘.
그건 개인의 안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강덕철은 힘을 가졌고, 그 힘으로 수호문과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졌다.
수호(守護)라는 단어의 의미에 걸맞게, 강덕철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도.
그런 걸 알더라도, 강덕철은 너무도 잔인한 아버지였다.
딱딱하게 굳은 강민혁의 표정을 보았던 걸까.
정판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푸후, 내가 너무 심각한 얘기만 했지? 그런데 마법은 대체 언제부터 익힌 거지? 겨우 몇 개월 만에 이룰 수 있는 정도의 성취가 아니던데.”
애써 화제를 돌렸다.
강민혁도 표정을 풀고 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고?”
정판호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강민혁의 모습은, 운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마법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없다는 약점은, 백 년의 세월 동안 마법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지. 그런데 넌 A급 몬스터인 데스 나이트를 ‘마법’으로 쓰러트렸다. 그뿐만이 아니야. 마법으로 판수의 몸을 치료시키기도 했지. 난 살면서 네가 사용한 마법을 그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 말은 네가 이루어낸 그 모든 것들이 너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고, 그건 결코 단순한 성취를 의미하지 않는다.”
확고한 음성.
강화 전사만이 절대 갑(甲)이라 생각하는 정판호조차도, 지금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었다.
“너로 인해 새로운 마법 문명이 창조되고 있다. 넌 그냥 마법사가 아니라, 마법의 선구자인 거지.”
마법사.
정판호는 그간 그들을 비주류라 말하며 무시했었다.
참 멍청한 이들이라 생각했다.
힘이 간절한 이 세상에서, A급 몬스터도 쓰러트리지 못하는 학문에 목을 매는 것은 멍청해 보였다.
만약 그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다면.
그따위 마법으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겁에 질려 벌벌 떠는 마법사들을 수도 없이 보았던 정판호기에, 마법사를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강민혁을 보고, 그는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지금처럼만 나아가라. 그렇다면 세상도 마법을, 아니 너라는 ‘마법사’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날의 대화.
그건, 서로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정판수는 좀처럼 일어나질 못했다.
하루 정도 쉬었을 때.
후발대를 맞이한 것은 희망찬 하루가 아니라, 붉은 안광을 토해내는 데스 나이트 무리였다.
“적이 나타났다!”
“전투 준비!”
생존.그것을 위한 사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처음과는 조금 달랐다.
처음에는 단순히 백병전(白兵戰)으로 부딪쳤다면, 지금은 강민혁을 지키는 포메이션을 구성했다.
“민혁이가 마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호한다. 명심해라. 우리의 목적은 무리하게 적을 쓰러트리는 것이 아니다. 자리를 지키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두어라.”
본대와의 합류는 포기했다.
지금의 전력으로 전진은 무모한 선택.
결국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본대가, 지금의 상황을 해결해주기를 말이다.
[...죽인다!]
[...하찮은 인간 녀석들!]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정판호가 있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초월급 데스 나이트와의 전투.
그 여파는 하루 만에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몸이 무거웠다.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정판호는 이를 악물며 데스 나이트의 목을 베었다.
“죽어, 이 개새끼들아!”
서걱!
아들이 태어났을 때.
정판호는 다짐했다.
절대 몬스터에게 굴복하지 않겠다고.
반드시 강해져서, 동생의 몫까지 아들과 무병장수(無病長壽)하겠노라고 말이다.
“폭발.”
쾅!
콰콰쾅!
뒤에서 마법이 사용되었다.
강민혁의 마법에 휩쓸려가는 데스 나이트의 모습을 보자, 괜히 히죽 웃음이 나왔다.
‘강민혁.’
그 이름.
그게 왜 이렇게 든든한지 모르겠다.
아들은 아비를 닮는다고 했던가.
정판수가 가려진다는 이유로 강민혁을 외면했던 것은, 그 또한 옹졸한 마음가짐을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강민혁은 정판수를 외면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간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는 하나, 소중한 것을 지켜준 강민혁에 대한 마음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을 무조건 살려보내주마.’
타닥.
땅을 박찼다.
[...죽어라!]
[...인간!]
수많은 데스 나이트.
그들을 모조리 죽이리라.
검에서 활활 타오르는 오라가 그들과 맞부딪치려는 순간,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
“이, 이게 무슨.”
파사사사삭.
여기저기서 당황한 음성이 들렸다.
데스 나이트가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먼지처럼 변하며 흩어지는 그들의 모습에, 방금까지만 해도 악에 받쳤던 정판호의 몸에 긴장이 풀렸다.
언데드.
그들의 소멸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결국 성공했구나.”
공간 분리를 당하지 않은 선발대.
그들이, 다크 리치를 쓰러트림으로써 S급 던전 암흑 도시의 클리어를 성공했다는 의미였다.
이번 토벌.
K 방송사에서 실시간 방송을 맡으면서, 토벌의 과정은 사람들에게 모두 공개되었다.
다크 리치를 쓰러트린 이후.
밖으로 나온 리포터는,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수호문이 토벌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만, 문주인 강덕철과 그의 후계자 이준호의 활약으로 던전의 악마를 결국 쓰러트렸습니다. 포천 시민 여러분은 이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여러분들을 괴롭히던 던전의 악마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방송은 대박이었다.
수호문의 토벌 영상.
수호문의 활약은 대단했고, 그로 인해서 실시간 시청률이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상승했다.
‘이번 방송으로 이준호는 확실하게 수호문에서의 입지를 다지겠지. 그의 무력은, 정말로 대단했어.’
생각만으로도 몸이 떨렸다.
다만, 아쉬운 게 있었다.
후발대가 공간 분리를 당하면서, 방송의 송출에 문제가 생겨 후발대의 영상을 내보내지 못했다.
후발대는 살았다고 한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방송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녀로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후발대의 카메라맨을 만나자마자,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 대박이에요!”
“뭐가 대박이야? 알아듣게 설명해.”
“후발대에 마법의 신이 있었어요. 강민혁, 그는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라 마법의 신(神)이었다고요!”
"...?!"
급박했던 상황.
알렉스를 부축하는 와중에도, 카메라맨은 프로 정신을 발휘했다.
전부를 찍어내진 못했다.
그런데 그의 카메라에 담긴 몇몇 장면만 하더라도, 세상을 발칵 뒤집어엎기에는 매우 충분했다.
76화. < 21. 마법 혁명 >
S급 던전 암흑 도시의 토벌이 진행되던 그 시각.
K 방송사의 채널을 통해, 일반인들은 토벌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당장 한곳으로 모여요! 공간 분리, 다크 리치가 공간 분리를 사용할....”]
[쿠르르르르르릉.]
“헉!”
“이를 어째!”
공간 분리로 위기를 맞이하는 수호문의 모습에, 일반인들이 탄식을 내질렀다. 그곳은 포천 시민들의 대피소였다. 수호문이 던전의 몬스터를 토벌해서 삶의 터전을 되찾아주길 바라던 그들로서는, 수호문의 상황에 표정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호문은 대한민국 최고의 무력 단체 중 하나. 그들마저도 토벌에 실패한다면, 사실상 S급 던전 암흑 도시는 난공불락의 성이나 다름이 없다.
말을 잃은 수호문의 제자들.
깊은 절망감이 한차례 휩쓸어간 화면 안에서, 냉철한 판단으로 수호문을 이끈 사람은 바로 이준호였다.
[“공간 분리가 사용된 이상 후발대를 찾을 방법은 없습니다. 이곳 암흑 도시의 몬스터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부활하는 능력이 있고, 후발대를 찾겠다고 시간을 끌면 우리의 체력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겠지요. 그러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은, 후발대를 위해서라도 빠르게 다크 리치를 처리하는 겁니다. 공간 분리가 우리를 최악의 상황으로 빠트린 것처럼 보이나, 다크 리치 또한 위기감을 느꼈기에 본인의 가장 강력한 기술을 발현시킨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준호는 냉철했다.
변수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그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
다소 잔인한 선택일 수도 있다.
후발대가 바로 뒤에 떨어졌다 할지라도, 전진하는 본대로서는 그들을 도와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너의 말이 맞다. 지금부터 속도를 높인다.”]
강덕철.
그가 이준호의 말에 힘을 실었다.
그때부터는 강덕철도 본격적으로 전투에 가담했다.
본대와 선발대가 힘을 합쳐서 막아서는 적들을 모두 도륙했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도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S급 던전 암흑 도시는 하루 만에 돌파하기에는 너무 넓은 공간을 보유하고 있었고, 수호문 제자들의 체력을 생각해서라도 결국 휴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피로감에 찌든 상태로는 오히려 다크 리치와의 승부가 불투명합니다. 딱 2시간. 2시간만 쉬고 다시 출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후발대에는 정판호 장로님이 있으니, 분명히 그들은 무사할 겁니다.]
[그렇게 하지.]
오로지 실리를 위한 선택.
강덕철과 이준호는 마음을 조급하게 가지지 않았다.
지금 그들이 맞이할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후발대를 모두 잃는 것이 아니라, 조급함에 제 발이 걸려 넘어져 본대마저 전멸하는 것이다. 시간은 수호문의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움직이는 것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강덕철과 이준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제발.”
“수호문이 부디 무사하기를.”
“강덕철 문주님. 저희를 구원해주세요.”
일반인들.
그들이 간절하게 빌었다.
그들은 수호문이 이 세상의 악(惡)을 처단하길 바라며, 동시에 수호문이 안전귀환을 하기를 바랐다. 일반인 중에는 수호문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많다. 본인이 아니더라도, 본인의 뒷세대에는 그러한 인연이 있다. 수호문은 일반인들의 영웅이었고, 그들이 죽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다.
사람들이 기도했다.
수호문이 정의를 실현하기를.
그리고 마침내, 수호문은 다크 리치를 맞이했다.
[...어리석은 인간들, 너희를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트려주마!]
전투가 시작되었다.
다크 리치.
그는 에픽급 몬스터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손길에 수백, 수천의 언데드들이 일어나서 수호문을 공격했고, 그가 사용하는 암흑의 마법은 천지(天地)를 뒤엎었다. 감히 범접 할 수 없는 괴물. 지켜보는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다크 리치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들이 평소에 겪었던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S급 던전 암흑 도시 안에서 다크 리치는 어둠의 신이었고, TV 화면은 정신없이 뒤흔들리며 시끄러운 폭발음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끝내.
[서걱!]
[...크르르르륵, 내가 인간 따위에게 지다니.]
다크 리치.
그가 쓰러졌다.
강덕철과 이준호.
둘의 무력이 기어코 ‘괴물’을 쓰러트린 것이다.
사람들이 감탄했다.
다크 리치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괴물로 보였는데, 그를 상대하는 강덕철과 이준호의 무력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 파사삭, 사라지는 언데드 몬스터들. 사람들의 얼굴에 희망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서, 성공했어.”
“수호문 만세!”
“수호문 만세!”
사람들이 열광했다.
결국 그들의 영웅은, 불가능하리라 생각되었던 S급 던전 암흑 도시의 토벌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수호문의 미래는 정말 밝구나. 저런 분이, 강덕철 문주님의 후계자라니.”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준호가 있는 한, 수호문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지금 이 순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강민혁이라는 옛 후계자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1시간 뒤.
후발대의 영상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후발대의 낙오.
그건 마법 학계의 엄청난 이슈였다.
영국 마법 협회의 존 웨슬리는, 강민혁의 생사가 불투명하다는 소식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강민혁은 절대 죽어서는 안돼.’
수호문.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
후발대에 포함된 강민혁이라는 이름에, 마법 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마법 학계의 희망이 생사가 불투명하다.”
강민혁은 이제 마법 학계에 매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가 발표한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화는 마법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보통은 뛰어난 천재가 나타나면 소속 세력 간의 이해관계로 인해서 한바탕 전쟁이 벌어지는데, 강민혁의 경우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무소속. 그뿐만이 아니라, 강민혁은 자신이 발견해낸 지식을 공공재로 발표하였다. 그러니 마법 학계가 어떻게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강민혁이 특정 세력에 소속되어 그들만의 이득을 추구하지 않는 한, 그는 마법 학계 전체가 보호해야만 하는 보물이다.”
공통된 생각이다.
마법 학계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만약 강민혁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직접 ‘토벌대’를 꾸려서라도 던전에 진입할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수호문이 다크 리치를 처리한 이후, 뒤늦게 후발대의 생존 소식과 함께 영상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 영상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첫 영상.
그 영상에는 후발대와 데스 나이트 무리와의 전투가 담겨 있었다.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투에서, 강민혁의 존재감은 빛을 발했다. 전장의 마에스트로. 강화 전사들이 쉽게 데스 나이트들을 상대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었고, 필요할 때마다 엄청난 화력으로 적을 공격했다.
["폭발.”]
[쾅!]
[콰콰콰쾅!]
“...폭발이라고?”
존 웨슬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등급 외 마법.
그로서는 난생처음 보는 마법이었다.
그 엄청난 위력에 넋을 잃었고, 뒤늦게 강민혁에 대한 의구심이 떠올랐다. 가장 최근에 확인했던 강민혁의 서클은 3서클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천재가 탄생했다고 난리가 났었는데, 강민혁은 결코 3서클의 수준으로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A급 데스 나이트에게 먹히는 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의 마법은 6서클에 버금가는 위력을 보인다는 뜻이다.
영상이 끝났다.
그리고 두 번째 영상.
초월급 데스 나이트와의 전투는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치열하게 싸우던 정판수가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고, 강민혁이 그 앞에 섰다.
[제가 치료하겠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행위.
의료 마법이 발현되는 순간, 존 웨슬리는 현실을 의심했다.
“유, 육체를 치료하는 마법이라니!”
의료 마법.
그것은 이 세상이 지식이 아니다.
강민혁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회복되었고, 그러한 모습에 존 웨슬리는 현기증이 일었다.
믿을 수 없었다.
치료의 영역은 마법사들이 지난 100년의 세월 동안 끊임없이 도전했던 분야지만, 난해한 마나의 세계는 마법사들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법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격 마법밖에 없었고, 그 마법조차도 강화 전사들에게 현저하게 밀리기에 그들은 비주류의 대우를 받았다.
만약 치료 마법이 있었더라면.
적어도, 강화 전사들은 지금보다는 마법사들을 더욱 대우해주었을 것이다.
경악.
존 웨슬리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먼 미래에나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지식들이 발현되는 모습에, 그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강민혁, 넌 대체 어떤 세계에 발을 들인 거냐 ”
목소리가 떨렸다.
주변에서 대마법사라고 칭송하는 존 웨슬리조차도, 강민혁의 세상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영상.
최후의 항전에서 후발대는 살아남았다.
강화 전사들이 강민혁을 지키겠다고 주변을 막아서는 모습은, 전 세계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이 세상의 상식.
그것이 뒤집혔다.
후발대의 영상은 끝났다.
화면은 후발대에 참여했던 카메라맨을 비추었는데, 그는 잔뜩 격양된 표정으로 말했다.
"초월급 데스 나이트와 싸울 때는 도저히 촬영할 수가 없었어요. 당장에 죽을 지경이라, 데스 나이트들을 피해서 도망치기 바빴죠. 확실한 건 정판호 장로님과 강민혁님의 무력이 정말 대단했다는 거예요. 정판호는 홀로 초월급 데스 나이트를 쓰러트렸고, 강민혁은......... 제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마법 학계가 그토록 갈망하던 6서클 이상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았어요.”
K 방송사의 영상.
그것이 끝나는 순간, 전 세계가 ‘강민혁’의 이름을 주목했다.
세상에서 가장 활발하게 정보가 공유되는 곳.
그곳은 바로 인터넷이다.
K 방송사의 영상에, 사람들은 경악한 감정을 글로 배출했다.
-와,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강민혁이 사용한 마법이 A급 데스 나이트들에게도 먹혔어. 그가 유재명과 같은 대마법사라면 납득이라도 하겠지만, 강민혁은 3서클 마법사라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것보다도 강민혁이 정판수를 치료하는 과정을 봐. 그는 분명히 치료 마법을 사용한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다 죽어가던 정판수가 회복될 리가 없잖아. 진짜 믿기지 않는다. 치료 마법은 인류가 그토록 바라던 마법인데, 강민혁은 그걸 실현시켜서 직접 사용하고 있는 거라고!
격양되었다.
현재의 세상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기술의 향연에, 경악한 감정을 담은 수천, 수만 개의 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강화 전사들이 마법사를 보호하기 위해서 발악하는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더욱 놀라운 건 그러한 상황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거야. 전장을 조율하고, 강력한 공격 마법을 사용하고. 저런 마법사가 뒤에 있는데 어떻게 지키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리고 부상을 당하면 마법사가 치료도 해주잖아.
-수호문의 후계자가 마법의 천재였다니. 이러면 수호문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들은 강민혁이 수호문의 일원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잖아. 진짜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네. 이준호라면 분명히 좋은 리더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강민혁이 보여준 임팩트가 너무 강해.
방금 전.
사람들은 이준호야말로 차세대 리더라고 말했다.
그런데 강민혁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강화 전사들을 보니, 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다.
그렇게 한참 강민혁으로 인해 시끄러운 그 시각.
마법 학계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어떻게든 강민혁과 빠르게 접촉하고자 했다.
“연락이 왜 안 돼!”
“강민혁과 어떻게든 연결해.”
“이건 보통의 문제가 아니야. 강민혁이 영상에서 보여준 마법들은, 공공재로 공개하기에는 그 값어치가 너무나도 큰 보물이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어? 다른 세력들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강민혁과의 얘기해서, 그의 지식을 어떻게든 확보해야 해. 그게 우리가 살길이야.”
“강민혁! 강민혁! 제발, 연락 좀 받아라.”
모두가 강민혁과의 연락을 바랐다.
진실.
그것을 듣고 싶었다.
영상에서의 마법들이 정말 실존하는 것이라면,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그 지식을 배우고 싶었다.
그건 존 웨슬리도 마찬가지였다.
강민혁의 개인 연락처로 문자를 보내던 그는, 비서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대마법사님!”
“무슨 일이지?”
“강민혁, 그가 나타났답니다!”
“어디서?!”
존 웨슬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민혁.
화제의 중심인 그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비서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K 방송사! 그가, 직접 K 방송사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77화. < 21. 마법 혁명(2) >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
K 방송사가 후발대의 영상을 내보내기 전에, 강민혁은 카메라맨에게 연락을 받았다.
"혹시 후발대의 영상을 방송으로 내보내도 괜찮을까요? 촬영을 전제로 토벌을 진행한 것이기는 하지만, 강민혁님이 곤란해할 부분이 있으면 편집해드릴게요. 저는, 제 목숨을 구해주신 강민혁님이 곤란해지는 상황을 바라지 않아요.”
카메라맨.
아니, 후발대에 소속된 모든 이들은 강민혁을 은인이라고 생각했다.
전투에서의 활약도 뛰어났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끝까지 부상자를 치료하던 모습이 사람들은 감동시켰다. 당시 강민혁의 상태는 정말 좋지 않았다. 생기를 잃은 표정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강민혁은 부상자를 치료하기 전까지는 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상자에는 카메라맨도 있었다.
초월급 데스나이트와의 전투 장면을 촬영하지 못한 이유는, 도중에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강민혁은 고민했다.
등급 외 마법.
의료 마법.
초월 각인.
강민혁은 이 세상의 상식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행히도 초월 각인은 영상으로 촬영되지 않았다지만,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다. 이로 인해 벌어진 상황은 뻔하다. 세상이 강민혁을 주목할 것이고, 강민혁이 사용한 지식에 대한 ‘해명’을 바랄 것이다.
그렇기에.
“방송에 내보내셔도 됩니다. 그러려고 참여한 토벌이니까요.”
“감사합니다.”
알고 있었다.
S급 던전 암흑 도시에서 제 몫을 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야 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 참석한 자리다. 강민혁은 수호문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내길 원한다.
왜냐고?
‘강민혁이라는 사람은 수호문의 후계자라는 인식이 강해. 그 꼬리표가 따라붙는 한, 무엇을 하든 간에 마법 학계의 사람들은 나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 나는 이번 토벌을 통해서 그 인식을 바꾸어야만 해. 수호문의 후계자 강민혁이 아니라, 마법사 강민혁으로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의료 마법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지만, 이미 드러내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내 목적은 나의 세력을 만드는 것, 나아가 마법을 발전시키고 몬스터들의 완전한 소멸(消滅).’
마탑.
지금 당장은 건설할 수 없다.
이번 일로 대단한 명성을 쌓더라도, 마탑주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최고의 마법사라는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학범, 정상훈, 유재명을 밑에 거느리고, 그 위에 올라서는 세계 최초의 7서클 마법사. 그것이 강민혁이 바라는 그림이고, 그런 그림이어야만 기존의 체계를 완전히 무너트리고 강민혁이 우뚝 설 수 있다.
S급 던전 토벌.
지금 찾아온 기회는 그 밑바탕의 하나다.
자신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마법 학계와 자신을 갈구하는 세력들의 구도를 이용한다.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나중에 강민혁이 포부를 밝혔을 때,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없을 것이다.
‘K 방송사로 간다.’
능력을 밝히기로 결정했다면.
어중간한 게 아니라, 확실한 행동이 필요하다.
K 방송사.
강민혁이 카메라 앞에 섰다.
사전에 얘기가 되었고, 지금부터 하는 모든 언행은 실시간으로 사람들에게 공개될 예정이었다.
“제가 처음에 마법의 길을 택했을 때, 저는 마법의 가능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자질이 부족해서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은 저에게, 마법은 도피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했다.
자신의 치부.
그것을 밝혀야만, 자신이라는 사람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했음을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난 자신의 동화 같은 스토리는, 마법사들에게 희망을 선사할 것이다.
"직접 경험한 마법은 정말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일 마법에 대해 연구했고, 더블 캐스팅과 마법의 형태 변화, 그리고 마나 동화와 같은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해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천재라고 부릅니다. 예, 인정합니다. 전 천재입니다. 100년의 마법 역사가 개발해내지 못한 지식이, 제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말할 이야기의 개연성.
그 모든 일의 변명은 천재(天才)라는 단어로 대체한다.
그럼 자신에게 질문할 수 없다.
어떻게 그런 기술을 개발했느냐고 묻는다면, 천재는 "그냥 가능했다.”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다.
“후발대의 영상이 공개되고서 사람들이 제게 묻더군요. A급 몬스터를 처리한 마법은 대체 무엇입니까? 어떻게 마법으로 부상자를 치료할 수 있었던 겁니까? 그리고 어떤 이들은, 거래를 제안하기도 했죠. 그들도 아는 겁니다. 마법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하며, 이 마법으로 인해 마법사들이 받는 대우가 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저는 그들의 거래에 전혀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지식을 꼭꼭 숨겨두고 혼자서 독식하는 것을 걱정해서 막대한 금액을 제안했겠지만, 사실 그건 괜한 걱정이거든요.”
거래는 없었다.
그런 의도를 가진 전화는 많았으나, 강민혁은 단 한 통화도 받지 않았다.
강민혁은 지금.
수호문 출신의 강민혁이 아니다.
강화 전사들이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길지라도, 마법사로서 대우받지 못한 그들을 대표할 것이다.
“영상에서 보았던 마법들. 그 마법을 모두에게 공개하겠습니다. 저는 1서클부터 5서클까지 더욱 강하고 위력적인 새로운 마법 체계를 찾아냈으며, 의료 마법이라는 모두가 갈망하던 분야도 개발해냈습니다. 그것들을 대가 없이 알려드리겠습니다.”
"헉."
“...그걸 전부 공개하겠다고?”
카메라 바깥.
촬영을 진행하던 스태프들이 당황으로 얼룩진 표정을 보였다. 강민혁의 마법 지식은 천문학적인 가치를 자랑한다. 그걸 대가 없이 그냥 공개하겠다니. 일반인의 머릿속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였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치솟는 시청률에, 그들은 방송이 대박 났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로써 사람들은 본질을 잃는다.’
마법 공개.
그 단어의 임팩트는 대단하다.
강민혁은 숨기지 않는다는 말을 내세움으로써, 자신이 숨겨야만 하는 지식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등급 외 마법.
초월 각인.
그건 모두에게 내줄 수 없는 힘이다. 강민혁만이 알아야만 하는 비장이 무기이고, 그렇기에 그에 관한 질문이 따라붙지 않도록 1서클 부터 5서클까지의 새로운 마법 체계를 제안했다. 그것은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중급(中級) 마법이라 불리는 것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신세계일 것이다. 강민혁이 사는 세상은, 하급 마법조차도 인정받는 세상이지 않던가.
세상이 들끓었다.
강민혁이 하는 말.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저는 마법 학계가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라는 일개 개인의 노력이, 마법 학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마법은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강화 전사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면, 강력해진 마법과 의료 마법이라는 새로운 변화는 마법사에 대한 활용성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실 우스운 일이지 않습니까? 강화 전사나 마법사나, 우리 모두 몬스터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헌터입니다. 이번 일로, 저는 양쪽의 세계가 서로 화합하는 길을 찾길 바랍니다. 이전에는 마법사의 능력이 떨어져서 강화 전사들이 마법사들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지금부터는 그러한 말이 변명으로 적합하지 않을 겁니다.”
좌중을 압도했다.
카메라 너머로, 강민혁의 카리스마가 전해졌다.
17살의 학생이 아니다.
4서클의 마법사가 아니다.
강민혁은 마법 학계를 대표하는, 최초를 이룩하는 선구자로서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섰다.
“이만, 말을 마치겠습니다.”
영상이 끝나는 순간.
세상은, 후발대의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보다 더한 충격에 빠졌다.
하나의 문명이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는 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주 오래전.
말을 타고 다니던 사람들은, 고철 덩어리가 저절로 움직이고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망상에 표정을 찌푸렸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그 무거운 고철 덩어리가 저절로 움직이고 하늘도 날아다닐 수 있다면, 그건 현실이 아니라 네 망상일 뿐이야.”
핸드폰.
컴퓨터.
가상 현실 등등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는 그 순간마다, 사람들은 상식을 거론하며 부정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한다.
그 변화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경악한 마음을 가라앉혔을 때는 이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뒤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강민혁이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강민혁의 발표.
그것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새로운 체계의 마법들은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고, 의료 마법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전투 도중에 발생한 부상은 아직도 현대 의학이 담당하고 있다. 트롤(Trolls)의 피로 제작한 포션으로 간단한 응급 처치는 가능하지만, 결국 병원에 실려 가서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식이 달라졌다.
이제는 의료 마법을 익힌 마법사만 있다면, 강화 전사들은 부상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전투 영상.
그곳에서 활약하던 김성호 일행의 모습이 재조명되었다.
-강화 전사인데도 불구하고 저들은 방패를 들고 마법사를 지키는 데 집중하고 있어. 덕분에 강민혁은 오로지 마법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그게 전투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 강민혁의 발표로 인해서 마법의 활용도는 다양해졌어. 마법의 위력도 상승했지만, 강민혁이 전투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처럼 조율자의 역할도 맡을 수 있고, 필요하면 의사가 될 수도 있어. 그렇다면 당연히 마법사를 지키는 사람도 필요하지 않겠어? 저들의 모습은, 앞으로 달라질 세상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어.
디펜더.
새로운 직종이 탄생했다.
영상에 매료된 몇몇 사람들이 방패를 들었고, 의료 마법을 익히는 마법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중적인 2서클 힐.
그리고 전문성이 필요한 4서클 힐.
마법사에게 다양한 능력이 탑재되었다.
겨우 며칠.
S급 암흑 도시의 토벌이 끝나고, 수호문이 바라던 스포트라이트는 그들을 비추지 않았다.
강민혁.
그가 모든 것을 독식하였다.
발표 이후로 빠르게 변하는 주변의 상황에, TV에 출연한 한 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산업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세상은 크게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강화 문명이 시작되었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죠. 강화 전사가 탄생했고, 그들이 이 세상을 이루는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또 다른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강화 전사가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것과 공존(共存)할 시기가 찾아왔다는 의미일 뿐이죠. 강민혁. 그가, 마법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마법 혁명.
앞으로도 세상을 수도 없이 충격에 빠트릴 강민혁의 행보에, 그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수호문을 향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마법 혁명의 시작은 강화 문명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수호문에서 탄생되었다.
과연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게, 바로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78화. < 22. 수호문, 그리고 영국 마법 협회 >
수술실 앞.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 그곳에, 정판호는 불안과 걱정이 뒤섞인 얼굴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에는 보호자들을 위한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그로서는 그곳에 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엄습하는 불길한 생각. 동생과 아들이 쓰러지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는 상황에, 정판호는 평소 그답지 않게 이빨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미 다 뜯겨나간 손톱 안에서는 핏물이 배어 나왔지만, 쓰라린 통증이 오히려 고통스러운 생각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켜주었다.
‘제발, 살아만 나거라.’
정판수.
그가 초월급 데스 나이트의 공격에 맞았을 때, 사실 아들의 목숨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A급도 아니고 초월급 몬스터의 전력이 담긴 공격은, 자신이라 할지라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살았다.
당장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건만, 강민혁 덕분에 숨은 붙어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던전을 나서자마자 정판호는 정판수를 안 고 병원으로 뛰었다. 몬스터들의 위협으로 인해 현대 의학은 목숨줄만 부지하고 있으면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발달하였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정판수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술이 필요했고, 그렇게 대수술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아직 전투의 피로도 해소하지 못한 정판호는, 피가 말라가는 기분으로 수술실 앞을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수술실의 문이 열렸을 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상태를 묻는 정판호의 눈빛에, 의사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다행히도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사실 정판수 환자의 상태는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최악이었는데, 초기 조치가 매우 훌륭했습니다. 강민혁님이 의료 마법이라는 것을 사용했다죠? 그게 아니었다면 정판수 환자는 죽었을 겁니다. 초기에 출혈 부위를 모두 잡고, 당장 생명에 지장이 가는 부분을 회복시킨 것이 주요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호자님. 정판수 환자는 살았습니다.”
“아."
털썩.
정판호가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수호문의 호랑이가,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 있을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보다는 강민혁님에게 더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의료 마법이 없었다면, 애초에 수술할 시간조차 벌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참 대단한 친구네요. 의료 마법을 직접 개발했다면서요? 앞으로 현대 의학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다. 의료 마법을 적극적으로 현장과 수술실에서 사용한다면, 전투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줄어들 테니까요.”
현대 의학.
그것으로도 살릴 수 없는 환자는 많다.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전장에서, 메스를 들고 뛰어가 수술을 진행할 수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 있어 의료 마법의 탄생은 희소식이었다.
의사의 말에, 정판호는 다른 잡담은 들리지 않고 오로지 ‘강민혁’이라는 이름 하나에 고정되었다.
‘강민혁.’
은인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들이 죽었을 것이다.
일단 자리를 정리했다.
정판수는 회복실로 이동했고, 정판호는 그 곁에서 밤을 지새우며 자리를 지켰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정판수는 며칠이 더 지나서야 의식을 회복했다. 힘겹게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정판수의 모습에, 정판호는 얼마나 울었는지 몰랐다. 정말 펑펑 울었다. 자신의 아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던 정판호는, 정판수가 의식을 차리자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머무는 사이.
밖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다.
후발대의 영상이 공개되었고, 강민혁이 충격적인 발표를 했으며, 그로 인해 마법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 여파.
그것 때문에 수호문에서 비상소집이 떨어졌다.
정판호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아들도 정신을 차린 상황.
정판호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족쇄가 풀렸다.
‘수호문으로 가자.’
인간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정판호는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강민혁의 마법 혁명.
그것은 수호문으로서도 충격적이었다.
비상소집으로 진행된 회의에서, 수호문의 가신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혁이가 벌써 그러한 경지에 오르다니. 후발대 영상과 발표를 확인했는데도,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민혁이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수호문에서 검을 휘두르던 아이입니다. 그런데 ‘의료 마법’을 만들어내다니요. 벌써부터 언론은 난리가 났습니다. 수호문에서 버림받은 낙오자가 마법 혁명을 일으켰다며, 그간 수호문이 강민혁에게 잘못된 길을 강요하고 있었다고 말이에요. S급 던전 암흑 도시를 토벌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나, 사람들은 강민혁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S급 던전 암흑 도시를 토벌하는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수호문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강민혁.
그가 수호문의 낙오자라는 게 문제였다.
수호문의 건재함을 증명하려고 진행되었던 연례행사는, 오히려 강민혁을 위한 무대가 되었다.
강덕철의 시선이 끝자락을 향했다.
그곳에는, 초췌한 기색이 역력한 정판호가 있었다.
“정판호 장로. 강민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직접 경험했으니,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 같은데.”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러자, 정판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마법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마법이란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없는 나약한 힘이기에, 마법사를 배척하는 것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그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강민혁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법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학문입니다. 강민혁이 발표한 의료 마법이, 그리고 제 아들을 살려낸 그 힘이 마법의 가능성을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정판호 본인도 안다.
강민혁을 옹호하는 것.
자신이 그간 저질렀던 일이 있기에, 그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를 말이다.
그런데도 광대가 되기를 자처했다.
고머의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비웃음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는 할 말은 꼭 해야만 했다.
“제가 지켜본 강민혁은 마법의 천재였습니다. 당장 언론이 마법 혁명이 일어났다고 떠들어대는 것처럼, 강민혁으로 인해 마법 학계는 많은 변화를 맞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주님. 강민혁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A급 몬스터를 마법으로 쓰러트리고, 마법으로 제 아들을 살린 사람이 바로 강민혁입니다. 지금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마법의 가치가 인정받는 그 세상에서, 강민혁의 이름은 우리가 알던 것과는 그 무게가 많이 달라질 겁니다. 사람들은 그를 선구자라 부를 것이며, 후일 이 세상의 역사는 강민혁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할 것입니다.”
“크흠.”
“으흠.”
몇몇 가신들이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설마 정판호가 저렇게까지 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잠깐의 침묵.
강덕철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도 같다. 이미 새로운 시대는 열렸다. 그리고 수호문은, 검문이라고는 하나 이 세상의 수호를 위해서는 시대에 도태되는 선택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버릴 것은 버리고. 그래야 앞으로도 우리는 수호문의 식솔들을 지킬 수 있다.”
말을 끊었다.
강덕철의 시선이 좌중을 훑자, 가신들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였다.
“지금 당장 강민혁에게 연락하도록.”
수호문.
그들이 오랜 역사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강한 무력을 떠나서,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에 있었다.
회의가 다시 진행되었다.
강민혁이 자리하자, 강덕철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네 선택이 옳았다. 우리는 회의를 통해 네 힘을 인정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네가 원한다면 수호문에서 마법 부대를 창설하는 것을 허락하겠다. 그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도 약속하도록 하지. 선택은 네게 맡기마. 수호문으로 다시 돌아올지, 아니면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를.”
사과는 없었다.
후계자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할 뿐이다.
강덕철은 그런 사람이었다.
마법의 가능성을 인정해서 파격적인 선택을 내렸으나, 힘의 논리에서 과거를 사과할 이유는 없었다.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마나에 재능이 없는 강민혁은 강화 전사에 어울리지 않고, 수호문의 후계자는 결국 검으로서 증명해야만 한다. 그래서 강민혁의 가능성은 후계자의 자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준호는 S급 던전 암흑 도시에서 충분히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앞으로도 그가 후계자일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
강덕철은 지금 강민혁에게 ‘제안’을 했다.
후계자로서의 강민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수호문의 배경을 대가로 마법의 힘을 얻기를 바랐다.
만약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강민혁의 세력은 크게 성장할 것이다.
지금 당장 마탑을 세운다 할지라도, 수호문이라는 배경에 태클을 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호문.
그들은 이 세상의 강자다.
하지만, 강민혁의 대답은 애초에 정해져 있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왜지?”
마법의 가능성?
인정한다.
하지만 결국 이 세상을 주도하는 것은 강화 전사들이다.
마법사는 이제야 막 인정을 받는 걸음마를 뗐을 뿐, 그 이상의 대우를 바라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만약.
강민혁과 같은 마법사가 3명이 있었다면, 초월급 데스 나이트를 쓰러트릴 수 있었을까?
에픽급 몬스터 다크 리치는?
불가능하다.
강덕철, 이준호, 정판호.
뛰어난 강화 전사들이 있었기에 S급 던전이 무너졌다.
아무리 마법이 효율이 좋고 강한 파괴력을 자랑한다고 한들, 결국 강화 전사는 필요하다. 마법사가 앞에서 직접 싸울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강화 전사의 위치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강민혁이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앞으로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수호문의 후계자가 아닙니다. 문주님과 연을 끊고, 수호문에서 받는 모든 혜택을 버리고 나왔습니다. 사실 혜택이라고 할 것도 없었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매일 같이 처절한 나날을 보냈으니까요. 그런 제게 수호문에서의 과거는 들먹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래라는 것은 장담할 수 없으나, 저는 적어도 후계자였던 강민혁으로서 수호문과 연을 맺을 생각이 없습니다.”
선을 그었다.
그 싸늘한 태도에, 한 가신이 말했다.
“네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강화 전사와의 공존을 말하지 않았더냐.”
“예, 그랬습니다. 그런데 굳이 ‘수호문’과 공존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강화 전사가 많습니다.”
이 상황.
예상은 하고 있었다.
강덕철은 그간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든, 수호문이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변화를 받아들일 사람이다. 하지만 그 근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마법을 인정할지라도 결국 수호문의 중심은 강화 전사들일 테고, 강덕철은 오로지 ‘힘의 논리’로만 사람을 판단하며 이용할 것이다.
자신도 다르진 않다.
힘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적어도 이제는 수호문에게 우선순위를 내줄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과거의 강민혁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마법사의 가치를 인정하고 앞으로 마법의 힘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 부탁하십시오. 제힘이 필요하다고. 과거의 인연을 들먹이는 게 아니라, 거래를 제안하는 입장에서 명확한 대가를 제시하십시오. 그게 앞으로 수호문과 저의 관계입니다. 그러한 선을 지켜주신다면, 저는 수호문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나가려던 강민혁은, 마지막으로 말을 내뱉었다.
“문주님의 말 한마디에 달려오는 것도, 이제는 정말 끝입니다.”
밖으로 나서는 강민혁.
회의실이 침묵에 휩싸였다.
그들로서는, 말없이 강민혁이 떠나간 자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79화. < 22. 수호문, 그리고 영국 마법 협회(2) >
“민혁아!”
정판호였다.
강민혁이 나가자마자 따라 나온 그는, 강민혁을 불러세우더니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고맙다. 네 덕분에 판수가 살았다.”
“...판수가 깨어난 겁니까?”
“그래. 의사의 말로는 초기에 조치하지 않았더라면, 화타가 살아 돌아와도 죽었을 거라고 말하더구나.”
“다행이네요.”
진심이었다.
정판수.
호감이 가는 인간은 아니나, 그렇다고 그가 죽길 바란 적은 없었다. 그도 한때는 강민혁의 동료였던 사람. 전장에서 등을 맞대고 싸우던 그를 기억하기에, 강민혁은 정판수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와의 관계가 어떻든 간에, 몬스터와 싸우다가 죽어가는 그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생각을 정판호도 안다.
강민혁이 정판수를 대단히 소중하게 생각해서 살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정판호에게 중요한 것은 강민혁의 도움으로 정판수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건, 그에게 매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정판호가 말했다.
"병실에서 판수를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난 그간 너를 부정했고, 너에게는 참으로 못된 사람이었겠지. 이렇게 사람이 단번에 태도를 바꾸는 게 웃긴 일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나는 앞으로 너에게 받은 은혜를 평생 갚을 생각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지금부터 너의 편이다. 강덕철 문주님에 대한 충성은 그대로겠지만, 그 이후의 세대는 얘기가 다르다.”
그건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판호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굳은 의지는, 무언가를 결단한 것 같았다.
“난 네가 강화 전사들을 배척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수호문에서 지내며 강화 전사가 얼마나 강한지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너만의 세력’을 취하려고 하겠지. 그래서 강덕철 문주님의 부름에 응한 것이고. 네가 수호문을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제자들은 너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있다. 네가, 강민혁이 다시 수호문으로 돌아오는 가능성에 대해서.”
수호문과의 대화.
단순히 관계 정리만을 위함이 아니다.
수많은 가능성 중 한 갈래를 위해서, 강민혁은 일부러 나타나 제자들에게 그러한 미래를 보여주었다.
수호문의 낙오자.
떠날 때는 초라했을지 몰라도, 지금의 모습은 당당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제자들은 새로운 미래를 떠올렸고, 그건 훗날 가능성이라는 꽃을 피울 것이다.
정판호는 수호문의 장로다.
수십 년간 이 바닥에서 굴러온 그는, 돌아가는 판세가 눈에 보였다.
“네가 수호문을 취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나는 이준호가 아니라 너의 편을 들 것이다. 강덕철 문주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는 하나, 그게 다음 세대에 대한 약속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기억해라.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다 할지라도, 내게 검을 쥘 힘만 있다면 수호문의 정판호는 너의 편일 것이다.”
약속.
정판호가 의지를 다졌다.
혹여 자신의 선택이 골육상쟁(骨肉相爭)으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그는 피의 길을 직접 열 것이다.
정판호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강민혁에게 이득이 되는 일만을 생각했다.
그로 인해 이준호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의 정판호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은혜를 갚는 것.
한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불행해지는 이기심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 정판호였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떠한 확답도 해주지 않았다.
호의를 받아들일 뿐, 강민혁은 이만 수호문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
강민혁은 생각에 감겼다.
‘수호문.’
가능성의 씨앗은 뿌렸으나, 사실 그 씨앗을 수확할 생각은 없다.
만일의 상황을 위한 준비.
적어도 이번 던전 사냥에서 보았던 이준호의 모습은, 수호문의 후계자로서 매우 훌륭했다.
‘이준호는 수호문에 어울리는 사람이야. 마법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내가, 지금의 그를 대체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 그리고 수호문은 검문으로서의 근본을 잃어서는 안 돼. 내가 만약 수호문에 뿌린 가능성의 씨앗을 거둘 날이 찾아온다면, 그건 그 근본을 잃었을 때의 일이야.’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이준호를 믿는다.
강민혁이 기억하는 이준호는, 자신보다도 리더의 자격에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만 수호문에 대한 생각을 털어냈다.
관계 정리를 확실히 끝낸 이상, 수호문이 아니더라도 강민혁은 생각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다.
일단.
‘아카데미로 복귀하자.’
아마 아카데미는 난리가 났을 터.
어머니의 기일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떠난 일개 학생이, 마법 혁명을 일으켜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카데미 정문에는, 학과장 최병호의 소행(?)으로 보이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마법 학과 1학년생 강민혁, 마법 혁명을 일으키다!]
[세계적인 대마법사 강민혁이 공부한 곳!]
[여러분들도 여기서 공부한다면, 강민혁처럼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순간, 현기증이 생기는 강민혁이었다.
구름을 걷는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총장에게 불려간 최병호는, 자신을 향해 정말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총장의 모습을 보았다.
“최병호 학과장, 그간 정말 고생이 많았네. 자네의 노고 덕택에 강민혁이라는 훌륭한 인재가 배출되었어. 앞으로 마법 학과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말만 하게나. 아참, 그리고 가는 길에 계좌도 확인해보게. 원래 이 세상은, 성과를 내면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마법 혁명.
그것이 일어나고 마법 학과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세상이 마법 학과를 주목했다.
마법 학과가 해낸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민혁이 다니는 아카데미라는 사실에 관심을 받았다.
덕분에 마법 학과는 발 빠르게 마법 혁명과 관련된 클래스를 개설할 수 있었다.
[전장 지휘]
[의료 마법]
두 개의 수업.
모두 강민혁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사실 수업에 관련된 정보는 강민혁이 무료로 공개한 것을 참고한 것에 불과했지만, 강민혁이 마법 학과 출신이기에 원조(?)라는 소문이 퍼졌다. 세계 각지의 마법사들이 뒤늦게 마법 학과에 입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거대 기업들에서도 마법 학과를 지원하겠다고 돈 다발을 들고 찾아왔다.
위상이 날로 높아지는 마법 학과.
그렇다 보니 총장의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마법 학과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가, 최병호 학과장을 따로 불러낸 이유가 그것이었다.
‘우리 민혁이가 얼른 돌아왔으면 좋겠네.’
강민혁.
그가 보고 싶었다.
마법 혁명을 일으킨 자신의 소중한 제자(?)가, 마법 학과에 행차해서 마법 학과의 소속임을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한 마음을 담아 현수막을 하나씩 설치했다. 혹시 신경을 쓸까 봐 문자 한 통도 조심스러웠던 그가, 강민혁이 왔다는 사실에 헐레벌떡 뛰쳐나갔다.
그런데.
“당분간 영국에 다녀오겠습니다.”
“...응?!”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
최병호의 표정이 절망에 물들었다.
던전 토벌.
마법 혁명.
그리고 이 타이밍에 영국을 간다니.
그의 머리에,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서, 설마 영국 마법 협회에 들어가려는 생각이니? 그렇지. 너 같은 인재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지. 영국 마법 협회라면 대단한 단체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하던 학업은 마무리하고 가는 게 낫지 않겠니? 그것도 좀 그런가? 이미 넌 학생이 아니라, 교수의 클래스이니 말이야. 하여튼 민혁아. 이렇게 떠나면 이 학과장의 마음은 찢어질지도 모른단다. 만약 네가 원한다면, 학생의 자격이 아니라 교수의 자격을 부여하마. 연봉도 원하는 만큼 말하거라. 얼마를 원하든 간에, 총장님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어떻게든 지급할 테니까.”
횡설수설하는 모양새가 꽤 당황한 모양이었다.
아카데미.
아직은 필요한 포지션이다.
고로 떠날 생각은 없었다.
“아니에요. 그쪽과 처리할 일이 있어서, 그전에 얼굴이나 뵈려고 찾아온 거예요. 아무리 출석을 보장해준다고는 했지만, 일이 하나 끝나자마자 얼굴도 안 보고 바로 떠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혹시 어떤 일인지 물어도 되겠니?”
선뜻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강민혁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병호는 불안에 떨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현재 세계 마법 협회에서 저의 위치. 그걸,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리할 생각이에요.”
하루 전.
강민혁은 존 웨슬리의 전화를 받았었다.
전화기 너머.
존 웨슬리가 말했다.
[마법 학계를 대표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강민혁님이 마법의 새로운 체계와 의료 마법을 공개해주신 덕분에, 마법 학계는 한 단계 더 발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아마 조만간 세계 마법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감사패와 보상을 지급할 것입니다. 강민혁님이 아무리 순수한 마음으로 선의를 베푸셨다고는 하나,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저 또한 동의하거든요.]
“그런가요.”
형식적인 말들.
강민혁이 얼른 본론을 말하길 원하자, 존 웨슬리가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하게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강민혁님이 던전 토벌에서 보여주었던 마법으로 인해, 현재 세계 마법 협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저희가 알기로는 강민혁님은 6서클 마법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대체 어떤 방법으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신 겁니까? 그건 도저히 저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렇게 염치를 무릅쓰고 직접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강민혁의 발표.
그로 인해 일반인들은 본질을 잃었다.
데스 나이트를 처리했던 그 강력한 마법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달랐다.
그들은 궁금했다.
만약 저 힘을 본인들이 소유한다면, 본인들도 강민혁처럼 A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존 웨슬리는 그러한 마법사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강민혁의 반응은 차가웠다.
“지금 착각하시는 게 있네요. 저는 마법의 발전을 위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저의 전부를 내놓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사용한 마법에 대해 해명할 의무가 제게 있습니까? 저는 그 어떤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았고, 현재 아카데미의 학생일 뿐입니다.”
[".........."]
존 웨슬리가 말을 잃었다.
강민혁이 이리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실 이게 당연한 반응이다.
강민혁은 그간 비정상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퍼주었던 것이지, 그에게 지식을 공개할 의무 같은 것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미쳐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존 웨슬리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다.
사실 존 웨슬리의 질문이 크게 무례한 건 아니다.
당연한 반응이다.
애초에, 마법 학계의 사람들이 자신의 마법을 궁금해하리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마법을 밝히지 않고, 가만히 침묵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에게 해를 끼칠 방법이 없다.
이미 강민혁은 마법의 성역이 되었고, 자신을 건드리는 것은 그들에게도 위험한 일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세계 마법 협회에 나라는 사람을 증명한다.’
강민혁이 그간 보여주었던 것.
그건 간접적인 것이다.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지식이거나, 아니면 화면 너머에서나 볼 수 있는 영상.
사람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비상식적인 일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존 웨슬리는 인정하는 부류.
분명 세계 마법 협회에는, 강민혁을 부정하고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강민혁은, 자신을 향한 마법사들의 인식이 달리진 지금의 상황을 확실하게 활용할 생각이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마법을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라는 마법사가 어떻게 A급의 몬스터를 쓰러트렸는지는 직접 보여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거라도 원하신다면, 내일 안으로 비행기를 보내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안에.
[알겠습니다. 당장 보내드리겠습니다.]
안달이 난 입장에서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80화. < 22. 수호문, 그리고 영국 마법 협회(3) >
다음날.
영국 마법 협회에서 보낸 전용기를 타고 강민혁이 영국에 도착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영국의 땅을 밟았을 때, 강민혁을 반긴 것은 수 많은 취재진이었다. 이미 강민혁이 온다는 소식이 퍼진 모양인지, 언뜻 보아도 수백이 넘어가는 취재진이 우르르 몰려들며 강민혁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강민혁님, 영국에 오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마법 학술 대회 이후, 강민혁님을 원한다고 밝힌 마법 단체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단 한 번도 초대에 응하지 않았던 강민혁님이 오늘 영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이는 영국 마법 협회의 입회를 생각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시그널로 받아들여도 괜찮겠습니까?”
“강민혁님의 마법 혁명으로 인해 마법 학계의 판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대체 무한한 지식의 원천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겁니까? 더블 캐스팅, 마나 동화, 의료 마법 등등. 강민혁님의 행보는 지금 마법 학계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영어가 뒤얽혀 들렸다.
마법의 본고장.
강민혁의 방문에 헐레벌떡 마중을 나온 취재진은, 강민혁을 수호문의 후계자로 대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한국은 강민혁이 수호문의 출신이라는 사실을 항상 강조하는 경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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